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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궁화장
    2026-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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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防産업계 대부’ 柳纘佑 풍산회장 별세

    류찬우(柳纘佑) 풍산 회장이 24일 오전 5시30분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자택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향년 76세. 류 회장은 60년대말 산업의 기초소재인 동제품 생산업체를 설립한 뒤 30여년간 비철산업 한 업종에만 매진,세계 최고 수준의 신동 전문기업을 일구었다. 70년부터 방위산업에 참여,군 장비의 국산화와 자주국방에 크게 이바지했으며 지난 17년 동안 한국방위산업진흥회 회장을 맡아왔다. 이 때문에 류 회장은 풍산 동파이프 신화와 함께 방산업계의 대부로 불려왔다. 지난 5일 김대중(金大中)대통령으로부터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으며 노신영(盧信永) 전 국무총리와는 사돈관계이다. 유족으로는 청(靑·재미),진(津)풍산 사장 등 2남2녀가 있다. 영결식은 오는 28일 오전 10시,장지는 경기 양주군 장흥면 선영.(02)364-2497∼8
  • 류찬우 풍산회장에 무궁화훈장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5일 청와대에서 류찬우(柳纘佑) 풍산회장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1등급)을 주고 유회장이 안동하회마을과 별신굿 등 전통문화 유산 보존 및 역사전승 사업에 힘쓰는 등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한 점을높이 평가했다. [양승현기자]
  • 퇴직교원 2만7,525명 포상

    정부는 31일 명예 또는 정년퇴직한 교원 2만7,525명에게 훈·포장 및 표창장을 수여했다. 정년퇴직 교원은 9,814명,의원퇴직 571명,명예퇴직 1만7,140명이다. 국민훈장의 경우,무궁화장은 경상대 서영배(徐永培) 전 총장 등 5명,모란장은 서울 대치초등학교 이명숙(李明淑)교장 등 106명,동백장은 부산 동부교육청 이현술(李鉉述)교육장 등 7,732명,목련장은 대구 시지중 최용범(崔鏞範)교감 등 3,992명,석류장은 인천 석천초등학교 김형달(金炯達)교사 등 4,565명이다. 광주 전남공고 정병희(鄭秉熹)교감 등 4,581명은 국민포장을,대전 유성농고 이병도(李炳道)교감 등 2,675명은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경기 신안중 최태술(崔泰述)교감 등 2,067명은 국무총리 표창,강원 강원중 김성용(金聖用)교사 등 1,802명은 교육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훈·포장과 표창장은 소속 기관별 퇴임식에서 시·도교육감이나 대학 총·학장이 전한다. 박홍기기자 hkpark@
  • 퇴직교원 2만7,202명에 훈장·표창

    정부는 16일 30년 이상 재직하다 정년 또는 명예퇴직하는 초·중등 교원 2만733명을 포함,2만7,202명에게 훈장 및 표창을 수여하기로 했다. 2만7,000여명의 교원이 퇴직하면서 국민훈장과 대통령 표창 등을 한꺼번에받기는 역대 최대 규모이다. 교육부는 “오는 31일로 교원 정년이 62세로 단축됨에 따라 지난 3월 이후퇴직하는 2만7,532명 가운데 이미 훈장 등을 받은 330명 이외 2만7,202명이훈·포장을 받는다”고 밝혔다.시상식은 오는 31일 시·도 교육청별로 열린다. 국민훈장 가운데 모란장(재직 연수 48년 이상)은 57명,동백장(〃 40년 이상) 7,677명,목련장(〃 37년 이상) 3,936명,석류장(〃 33년 이상) 4,506명,국민포장(〃 30년 이상) 4,557명이다. 나머지 대통령 표창(〃 28년 이상∼30년 미만) 2,656명,국무총리 표창(〃 25년 이상∼28년 미만) 2051명,교육부장관 표창(〃 15년 이상∼25년 미만) 1,762명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교원의 정년 단축이 논의되던 지난 해 9,486명과 지난 2월 2,270명을 비롯,정년이 확정된 오는 31일까지 모두 3만9,288명이 정년 또는 명예퇴직을 했거나 할 예정이다”고 말했다.97년 5,294명,96년 5,484명의 퇴직 교원에 비해 엄청나게 늘어난 수치이다. 한편 초·중등 교원과 함께 퇴직하는 대학 교원 334명 가운데 무궁화장 5명,모란장 49명,동백장 55명,목련장 56명,석류장 59명,국민포장 24명 등 323명도 훈·포장을 받는다. 박홍기기자 hkpark@
  • 金대통령, 스코필드박사 후손접견 안팎

    [오타와 양승현특파원]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캐나다 방문 일정 중 특이한 것은 6일 새벽(한국시간) 고(故) 프랜시스 스코필드박사(사진) 후손들의접견이었다.에어캐나다 스튜어디스 및 간호사로 일하다 은퇴한 캐서린 스코필드(60·며느리),스위스항공사에 근무했던 리사 크로포드(39·손녀),조경회사를 운영하는 딘 스코필드(37·손자)씨 등 3명이었다. 캐나다인(1889년 영국 출생)으로 온타리오 수의학대학 박사인 스코필드박사는 한국인이 아니면서 국립묘지에 안장된 최초의 인물이다.1916∼20년 경성제대 교수로 재직하던 때 3·1독립운동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1919년 봄부터1년동안 형을 산 뒤 캐나다로 추방됐다.그러나 그는 6·25전쟁 직후인 55년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70년까지 세브란스 의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고아원을설립,우리나라 어린이들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김대통령은 이들과 만나 과거 스코필드박사와 맺은 각별한 인연을 소개했다.스코필드박사가 서울의 한 초라한 아파트에서 병고의 몸으로 몹시 고생할때 그를 직접 찾아뵌 일이있다고 했다.“아파트로 찾아가,아픈 몸을 이끌고 군사독재를 비판하고 우리의 민주화투쟁을 지원해준데 대해 고마움을 표시하고 서로 다짐도 했었다”면서 지금도 당시의 기억이 생생하다고 털어놓았다.또 스코필드박사는 금세기초 한국국민에게 민족의 자결과 민주주의를 가르쳐 준 위대한 인물이라고 평했다. 스코필드박사는 70년 4월12일 우리나라에서 별세했다.정부는 그에게 60년과 68년 각각 국민훈장 무궁화장과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 첫 여성변호사 李兌榮 여사 타계

    ◎서울 법대 첫 여학생… 여권신장·민주화 헌신/여성법률사무소 설립… ‘힘없는 이웃’ 위해 한 평생 국내 첫 여성변호사이자 여성계의 대모인 李兌榮 여사가 17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봉원동 자택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다방면에 ‘여성 제1호’를 기록한 이여사는 민주화와 여권 신장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 1914년 평북 운산에서 태어난 李여사는 36년 이화여전을 졸업한 뒤 해방 이듬해인 46년 서울대 법대에 최초의 여학생으로 입학했다. 남편 고 鄭一亨 박사와는 36년 평양의 한 교회에서 만나 결혼했다.새정치국민회의 부총재인 鄭大哲씨가 아들이다. 49년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李여사는 52년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제2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했다.하지만 李承晩 대통령이 당시 야당 국회의원 鄭씨의 아내라는 이유로 판·검사 임용을 막자 변호사로 개업했다. 56년 8월25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에 가정법률상담소의 전신인 여성법률상담소를 설립했다.여성변호사로서 불우한 처지의 여성들을 만난 것이 계기가 됐다.63년에는 가정법원 설치에 힘을쏟았으며 76년 한국여성운동의 산실인 ‘여성백인회관’을 서울 여의도에 세워 여성차별 철폐와 인권을 위해 전념했다. 63년부터 71년까지는 이화여대 법정대학장을 역임했다.69년 55세 때 ‘한국이혼연구’로 서울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89년에는 여성법률상담소를 중심으로 가족법을 개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맡기도 했다. 李여사는 74년 11월 민주회복국민선언,76년 3·1운동 민주구국선언 등 민주화운동과 인권운동에도 적극 참여했다.이때 金大中 대통령과 李姬鎬 여사와 깊은 교분을 맺었다. 李여사는 이같은 인권운동·여성운동 등의 공로로 71년 세계평화상,75년 막사이사이상,82년 유네스코 인권교육상 등을 비롯,국내에서도 국민훈장,무궁화장,3·1문화상 등을 수상했다. 유족은 鄭大哲 부총재(54)를 비롯,眞淑·善淑·美淑씨 등 1남3녀,빈소는 삼성 서울병원,발인 21일 오전(02)3410­0945∼6
  • 국민훈장 받은 李敦明 변호사/세계인권선언 50주년

    ◎“현정권 인권보호 진일보 환영”/‘정부가 주는 賞’에 세상 변화 실감/인권 지키는 것은 법조인의 기본 사명/약자들 위해 정부가 끝까지 노력해야 “인권을 지키는 것은 법조인의 기본 사명입니다.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상까지 받게 돼 쑥스럽습니다” ‘인권운동의 대부’로 알려진 李敦明 변호사(76)는 10일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세계 인권선언 50돌 기념식에서 인권신장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은 데 대해 “앞으로도 흔들림없이 정진하라는 채찍으로 알겠다”고 소감을 말했다. 35년동안 변호사로 재직하면서 한국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인권침해 사건의 변론을 도맡았던 李변호사는 스스로 말하듯 꿈도 꾸지 않았던 ‘정부가 주는 상’에 세상의 변화를 실감했다. 이같은 사회진보에 작게나마 역할을 했음을 인정받은 것 같아 기쁘다고 그는 덧붙였다. 52년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법조계에 투신한 그는 54년 대전지법 판사를 시작으로 10년동안 법관을 지냈다. 지방판사여서 정치적 사건을 맡을 기회는 없었지만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구속적부심을 적용,피의자를 석방해 ‘인권운동가로서의 면모’를 보였다.대통령 비방으로 구속된 한 야당 정치인을 적부심으로 풀어 준 것이다. 63년 변호사 개업을 하면서도 법률신문 기고를 통해 “변호사로 성공과 실패의 판단기준은 돈을 많이 벌어 큰 집을 사고 자가용을 굴리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기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사회적 책임을 얼마나 실천했느냐로 따져야 한다”는 올 곧은 법조인관을 피력하기도 했다. 72년 10월유신 선포는 그가 본격적으로 인권운동에 참여하게 된 계기였다. 그는 “유신이 선포되던 날 정부가 입법 및 사법권을 독점하고 무엇보다 국민에게서 정부를 선택할 권리를 빼앗아 간데 대해 분노하며 밤잠을 설쳤다”면서 “이 때문에 인권운동에 앞장 서겠다고 결심했다”고 회고했다. ○金芝河씨 사건 변론 李변호사가 인권운동차원서 첫 변론을 맡은 사건은 지난 75년 시인 金芝河씨의 반공법 위반사건이었다. 이후 청계피복노조사건,朴正熙 대통령 시해사건,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삼민투 사건,權仁淑양 성고문사건,金槿泰씨 고문사건 등 한국 인권운동사의 한가운데에 늘 자리했다. 金大中 대통령이 연루된 76년 명동성당 3·1 구국선언사건의 변론도 그의 몫이었다. 동아일보 광고해약사태 땐 동료 변호사들의 협조를 얻어 광고게재운동을 주도했었다. ○5共때까지 암흑시대 그는 “유신이후 全斗煥 정권때까지 인권의 암흑시대라고 할만큼 권력에 의한 인권유린이 극심했다”면서 “당시만 해도 인권변호사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여서 힘들기도 했지만 가장 보람된 기간이었다”고 회고했다. 또 “부지런히 뛰었지만 법관이 용기있는 판결을 내리지 않아 항상 졌다”면서 “나중엔 법관을 보고 변론하는 것이 아니라 방청객을 향해 변론하게 되더라”고 말했다. 李변호사를 중심으로 한 인권변호사 그룹은 80년대 이르러 그 趙永來씨. 李相洙 국민회의 의원 등 소장변호사들의 합류로 세를 불려 88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을 조직했으며 李 변호사는 초대 고문을 맡았다. 87년에는 5·3 인천사태로 수배중이던 李富榮 현 한나라당의원을 숨겨준 죄로 6개월동안 옥고를 치렀다. 이 때 그는 “정치보복으로 국가보안법을 적용해 처단하는 마지막 사람이 되게 해달라”는 유명한 최후진술을 남겼다. 88년 모교인 조선대의 총장직을 제의받고 적임자가 아니라며 극구 사양했지만 학교측에서 수십 번을 찾아와 부탁해 할 수 없이 승낙했다.어차피 정부의 승인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뜻밖에 승인이 나 총장을 맡게 됐고 재직중 李哲揆군 변사사건,어용교수 해직 등 큰 사건에 휘말리기도 했다. ○인권은 곧 민주주의 총장직에서 물러난 뒤 92년부터 한동안 변호사 업무에서 손을 떼고 재야운동에만 전념했다. 현재 덕수합동법무법인에 적은 둔 李변호사는 건강문제로 사건 변호는 맡지 않고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다. 천주교 인권위원회 고문과 지난달 발족한 ‘인혁당사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 대책위원회’의 공동대표도 맡는 등 인권운동에 관한 식을 줄 모르는 열정을 보이고 있다. “암울했던 군사정권 시절에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던 인권변호사가 이젠 인권 신장에 관심을 갖는 후배들이 많아 든든합니다” 천주교 신자인 李변호사의 세례명은 ‘유토피아’의 저자 이름과 같은 토머스 모어. 성인(聖人) 이름을 쓰는 관례를 따르지 않은 것은 정의를 위해 단두대에 선 용기에 감명받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국민이 권리를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인권은 곧 민주주의라는 신념이다. 李변호사는 “현 정권이 전 정권보다 인권에 관한 한 진일보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을 환영한다”면서 “아직도 그늘 속에 있는 약자들을 위해서 할 일이 많은 만큼 정부가 끝까지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한다”고 기대했다.
  • 인권 법·제도적 정착 최선/金 대통령 세계인권선언 기념식 연설

    정부는 10일 오전 10시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金大中 대통령과 朴浚圭 국회의장,윤관 대법원장,金容俊 헌법재판소장,咸正鎬 변협회장을 비롯,시민단체 회원등 1,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50회 세계인권선언 기념식을 가졌다. 인권선언 기념일 행사에 대통령이 참석한 것은 처음이다. 金대통령은 “과거처럼 권력의 폭압으로부터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를 지키는 차원에서 더 나아가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경제·사회적 환경과 제도 및 문화를 만들어나가는,더욱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인권개선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金대통령은 “정부는 인권법의 제정과 인권위원회의 설치를 통해 인권이 법적·제도적으로 더욱 확고히 정착될 수 있도록 만들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朴相千 법무부장관은 ‘국내 인권개선 상황 보고’를 통해 “인권법이 제정돼 내년에 인권위원회가 활동을 개시하면 전반적인 인권상황이 획기적으로 개선되고,인권국가로서의 이미지도 향상될 것”이라고 말했다. 행사에서는 인권보호와 신장에 크게이바지한 李敦明 변호사가 국민훈장 무궁화장,崔昌植 한국갱생보호공단 이사장이 국민훈장 모란장,吳文植 법무사가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또 文昌河 제주지검 범죄예방위원과 周先應 인천구치소 종교위원,한국가정법률상담소 성남지부 등이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 親日의 군상:5/시인 朱耀翰(정직한 역사 되찾기)

    ◎臨政 독립신문 편집국장서 ‘皇國臣民’ 변신/대표적 친일 행적­일 건국이념 八紘一宇서 따온 ‘松村紘一’로 개명.각종 잡지에 친일시 발표·친일단체 간부 역임.“천황 위해 목숨 바쳐라” 전국 순회 강연회 개최/해방후의 족적­전경련 부회장.국회의원 재선.부흥·상공장관.사망후 국민훈장 “아아 날이 저문다.西便하늘에,외로운 江물 우에,스러져가는 분홍빗 놀………아아 해가 저물면 해가 저물면,날마다 살구나무 그늘에 혼자우는 밤이 또 오것마는,오늘은 四月이라 파일날 큰 길을 물밀어 가는 사람소리는 듯기만 하여도 흥셩시러운 거슬 웨 나만 혼자 가슴속에 눈물을 참을 수 업는고?……”(‘창조’ 창간호,1919년 2월) 4월 초파일 저녁 대동강변에서 벌어진 불놀이 장면을 보고 죽은 애인을 그리는 애상조의 이 시는 송아(頌兒) 朱耀翰(1900∼1979년)의 대표작 ‘불놀이’다.이 시는 종래 우리 시의 기본형식을 거부하고 상징적인 수법과 대담성 때문에 흔히 우리 문학사에서 ‘최초의 자유시’로 불려왔다.특히 일제하 우리민족의 아픔과 시대상황을 민족정서로 표현했다 하여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 왔다.우리 역사앞에 처음 등장한 ‘시인 주요한’의 첫출발은 이처럼 좋았다. 주요한은 20세기가 시작된 1900년 10월 평양 목사집안의 8남매중 장남으로 태어났다.1912년 숭덕소학교를 마치고 아버지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갔다.그는 메이지(明治)학원에서 중등과정 5년을 마치고 도쿄 제1고등학교에 진학했다.문학에 심취해 있던 그는 이 무렵 도쿄유학생이자 같은 문학청년 金東仁을 만나 우리나라 최초의 순수문예 동인지 ‘창조(創造)’를 탄생시킨다.‘3·1만세의거’가 터지기 꼭 한 달 전의 일이다.그의 대표작 ‘불놀이’도 바로 여기서 선을 보였다. ‘창조’ 2집이 나올 무렵 고국에서 ‘3·1만세의거’가 일어나자 그는 서둘러 짐을 싸서 귀국했다.그러나 그의 부친은 다시 도쿄로 돌아갈 것을 강권하였다.동생 耀燮(작가·72년 작고)이 몰래 삐라를 복사하여 돌리다가 체포되자 장남인 그에게까지 화가 미칠 것을 우려하였다.결국 도쿄로 되돌아온 그는 한동안 방황하다가 한인(韓人)YMCA 총무 崔承萬을 만나 상하이(上海)로 가라는 권고를 받는다.시인이자 애국청년으로 보낸 그의 상하이시절 9년은 이렇게 시작됐다. 상하이는 그를 반겼다.당시 임시정부에서는 기관지 ‘독립신문(獨立新聞)’ 발간을 준비중이었는데 문사(文士)가 필요했었다.‘독립신문’은 그 해 8월21일 창간호를 냈다.춘원 李光洙가 사장겸 주필이었다.그는 춘원 밑에서 편집국장겸 기자로 있었다.상하이 임정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오랜 시절 동지로 지내는데 나중에 ‘동우회(同友會)사건’으로 변절,친일의 길로 들어서면서도 행동일치를 보이게 된다.상하이시절 그는 자신이 기자로 있던 ‘독립신문’에 ‘송아지’라는 필명으로 ‘조국(祖國)’등 수 편의 애국시를 발표하기도 했는데 ‘송아’라는 그의 아호는 필명 ‘송아지’에서 따온 것이다. 1927년 그는 9년간의 상하이생활을 청산하고 돌연 서울로 돌아왔다.귀국동기는 분명치 않다.다만 그는 귀국후 곧바로 ‘동아일보’에 둥지를 틀었다. 입사 2년만에 편집국장이 된 그는 그 해 광주학생의거 관련 민중대회 발기인으로 참여한 것이 말썽이 돼 일제로부터 곤욕을 치렀다.33년 조선일보로 자리를 옮겼으나 사주(社主)와의 갈등 끝에 李光洙에게 편집국장 자리를 물려주고는 얼마 뒤 퇴사하였다.그 해 그는 화신(和信) 사장 朴興植의 권유로 ‘화신산업’에 입사,언론인에서 회사 중역으로 일대 변신을 꾀한다. 그는 이 무렵 李光洙와 함께 도산 安昌浩가 1913년 미국에서 설립한 ‘흥사단(興士團)’의 국내단체인 ‘수양동우회’(1929년 11월 ‘동우회’로 개칭함)의 핵심간부(이사장)로 활약하고 있었다.이 단체는 친목단체로 위장한 민족단체였는데 당시로선 합법단체였다.회원들은 교육자·목사·변호사·의사 등 부르주아 민족주의자들이 주류였다.중일전쟁(中日戰爭)을 앞두고 이 단체가 일제의 표적으로 떠올랐다. 중일전쟁 발발(1937.7.7) 1개월전 일제는 동우회 해산명령과 함께 동우회원 일제검거에 나섰다.이는 민족주의 계열 인사에 대대적인 검거작전의 신호탄이었다.뒤이어 흥업구락부사건,천도교인사 탄압,조선어학회사건 등이 뒤따랐다.이 때 검거된 동우회 회원은 150여명.4년여에 걸친 재판기간 동안에 2명은 옥사하였고 그를 포함해 ‘화수분’의 작가 田榮澤,작곡가 玄濟明·洪蘭坡 등 18명이 ‘전향서’발표와 함께 친일단체인 대동민우회 가입을 선언하였다(1938년 6월29일). 경기도경찰부가 작성한 비밀문건(特秘제2494호,38년 11월5일)에 따르면,李光洙·朱耀翰 등 보석출소자 28명은 11월 3일 서울시내 효자동 소재 李光洙의 집에 모여 사상전향에 관한 회의를 열고는 충성서약의 표시로 11월 말까지 동우회 입회금 300원(현재 약000)을 포함,총 2,888원을 국방헌금으로 바치기로 결의하였다.헌금 전달자는 朱耀翰으로 결정되었다.상하이 임정에서 ‘독립신문’을 만들고 애국시를 쓰던 그는 어느새 이렇게 변해 있었다. 주요한의 친일성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중의 하나는 마쓰무라 고이치(松村紘一)라는 그의 유별난 창씨명이다.이름에 해당하는 ‘紘一’은 일본의 건국이념인 ‘팔굉일우(八紘一宇)’에서 따온 듯한데 실지로 그는 ‘팔굉일우’라는 시도 썼다.(‘삼천리’41.1) 철저한 일본정신으로 무장한 그는 친일잡지 ‘삼천리’(40년 12월호)에 ‘동양해방(東洋解放)’ 기고를 시작으로 이후 각종 매체에 다수의 친일시·논설을 발표하였다.또 조선문인협회·문인보국회·조선임전보국단·언론보국회·대의당·대화당 등 대표적 친일단체에서 간부로도 활동하였다.그의 대표적인 친일문장 몇을 만나보자. ‘대동아전쟁’ 개전(1941년 12월8일) 직후인 41년 12월 14일 조선임전보국단 주최 ‘미영(美英)타도대강연회’에서 그는 ‘루즈벨트여 답하라’라는 제목으로 강연하면서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과 영국의 처칠 총리를 ‘위대한 어릿광대’라고 지칭하고는 “반도의 2,400만은 혼연일체가 되어 대동아 성전(聖戰)의 용사 되기를 맹세하고 있다”고 포효했다.‘조선임전(朝鮮臨戰)’(‘신시대’,41년9월)이라는 글에서는 “지금 시국이 요구하는 것은 행동이요,희생이요,무조건의 헌신”으로 “동아의 성전이 조선에 구하는 것은 땀과 피와 살과 생명”이라며 “오직 우리는 (천황이)부르실 때 바칠 뿐”이라고 했다. 일제의 징병제 실시를 맞아서는 “오늘에야 우리를/부르시는 높은 뜻을/서로 전해 말하며/눈물 흘리는 것을…”(‘오늘에야’제1절)이라며 감격해 했다.또 조선인 지원병으로서 최초의 전사자 李仁錫군의 죽음을 두고는 “보아라,너들의 피가/내 핏줄을 통해/여기 뿜는다.2,300만의/뜨거운 피가/1억의 피로/한덩어리가 되는/처음의 피가/지금 내 핏줄에서/콸콸 솟는다…”(‘첫피’제3연,‘신시대’41년 3월)고 했다. ‘동의어(同意語)’라는 시에서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사는 것은 아니다…폐하를 위해 살고 또,죽는 것만이 즉 사는 것이다”라고 했다.이쯤되면 그를 조선사람으로 보기 힘들다.이 시들은 대부분 일본어로 번역돼 ‘손에 손을’이라는 그의 시집에 실렸는데 그는 이 시집출간으로 제4회 조선문예상 문학상을 수상했다.해방때까지 친일행각은 계속됐다. 해방후 반민특위에 불구속,기소됐다가 풀려난 후 그는 대한상공회의소 특별위원,대한무역협회장,국회의원(재선)을 거쳐 4·19후 張勉 정권에서 부흥·상공장관을,다시 5·16후에는 경제과학심의회 위원,대한일보 사장,대한해운공사 사장 등을 지냈다. 1979년 그가 사망하자 정부는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주었다.지난 93년엔 서울의 한복판 세종로공원에 그의 시비가 세워졌다. 시비 뒷면 약력란에는 37년 수양동우회사건으로 체포된 이후 해방때까지의 친일경력에 대해서는 단 한줄도 언급이 없다.그에 대한 서훈과 시비건립이 과연 적절한 것이었는지는 다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八紘一宇’ 무슨 뜻인가/‘온세계를 병합해 한집으로 한다’/일본서기서 인용… 1940년 처음 사용 ‘일본서기(日本書紀)’에 따르면 일본의 제1대 천황인 신무천황(神武天皇)이 야마토(大和)에 도읍을 정하면서 ‘육합(六合)을 겸(兼)하여 도(都)를 개(開)하고 팔굉(八紘)을 병(倂)하여 우(宇)로 한다’(6대양 8대주를 병합하여 한 집으로 한다는 뜻임)는 내용의 조칙(詔勅)을 내렸는데 여기서 생겨난 말이 ‘팔굉위우(八紘爲宇)’다. 1940년 8월 제2차 고노에(近衛)내각이 기본국책 요강에서 대동아 신질서 건설을 위해 ‘황국(皇國)의 국시(國是)는 팔굉(八紘)을 일우(一宇)로 하는건국정신에 근거한다’고 밝혔는데 이 때 ‘팔굉일우’라는 용어가 처음 공식적으로 사용됐다.그 후 이 용어는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건설’의 기치를 내건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본토와 일제의 식민지국가에서 광범하게 사용되었으나 패망이후 지금은 거의 사어(死語)가 됐다. □주요한 연보 ▲1900년 평양 출생 ▲1918년 도쿄제일고교 입학 ▲1919년 상해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 편집국장 ▲1921년 상하이 호강대 화학과 입학 ▲1929년 동아일보 편집국장 ▲1933년 조선일보 편집국장,화신산업 입사 ▲1937년 ‘동우회사건’으로 체포 ▲1938년 보석출소후 친일로 전향,해방때까지 각종 친일단체에서 활동함. ▲1949년 반민특위에 불구속,기소 ▲1951년 조선민주당 사무국장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당선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당선 상공·부흥부 장관 ▲1964년 경제과학심의회 위원 ▲1968년 대한해운공사 사장,대한 일보 회장 ▲1975년 능률협회 회장 ▲1977년 전경련 부회장 ▲1979년 숙환으로 사망
  • 40년 근속 초·중등교사 국민훈장 모란장 받게

    ◎교육부·교총 합의서 서명 앞으로 초·중등학교 교원도 40년 이상 근무하면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는다. 이와 함께 교직수당과 담임업무수당·보직교사 수당도 인상된다. 李海瓚 교육부장관과 한국교총 金玟河 회장은 21일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한 ‘98년도 상반기 교섭·협의 합의서’에 서명했다. 이번 합의로 초·중등 교원도 40년 이상 근무하면 대학 교원과 마찬가지로 2등급 훈장인 국민훈장 모란장과 1등급인 무궁화장을 받을 수 있게 됐다. 현행 정부포상업무 지침에 따르면 초중등 교원은 48년 이상,대학 교원은 40년 이상 근무해야 모란장을 받을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이 때문에 초·중등 교원이 모란장을 받기란 사실상 불가능했으며,무궁화장은 심사대상에서 아예 제외됐었다. 훈장 수여기준이 이처럼 차별화되어 있고 비현실적이어서 오는 8월 퇴직하는 서울시 초·중등 교원 1,449명 가운데 모란장 해당자는 1명도 없는 실정이다. ◎行自部선 난색 표명 한편 행정자치부 의정국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교육부로부터 어떤 협의도 들어오지 않았다”면서 “행자부로서는 지난 3월 정부포상업무 지침을 그대로 지킬 것”이라고 훈장 수여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 국회 정치개혁 중심돼야/金 대통령 국회 개원50돌 기념식서 강조

    국회는 30일로 개원 50주년을 맞아 29일 여의도 의사당 중앙홀에서 金大中 대통령과 金守漢 국회의장,윤관 대법원장,각 정당대표,전·현직 국회의원 등 1,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식을 가졌다. 金대통령은 “국회는 정치개혁과 나라안정의 중심이 돼야 한다”면서 “우리 국회가 소모적인 정쟁을 지양하고 정부에 건전하게 비판하고 견제하는 국정의 참다운 동반자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기념식에서 金의장과 朴浚圭 李萬燮 黃珞周 전 의장등 4명이 국회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金대통령으로부터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 고 고흥문씨 가족에 조의 전화/김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은 16일 하오 고 고흥문 전 국회부의장의 미망인 김선녀씨에게 전화를 걸어 깊은 조의와 위로의 뜻을 표했다고 박지원 청와대 대변인이 밝혔다. 김대통령은 이어 문희상 청와대정무수석을 빈소에 보내 조의를 전하고,국고에서 일정액의 장례비를 지급하는 등 법률과 관행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최상의 예우를 하도록 지시했다고 박대변인은 덧붙였다. 한편 정부는 이날 고전부의장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키로 했다.
  • 계명대 이사장 한명수씨

    한명수 계명대 이사장이 1일 경북대 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향년 79세로 계명대와 경북대 교수를 거쳐 경북대 총장을 역임했으며 국민훈장무궁화장을 받았다.발인 3일 상오 10시.(053)428-048
  • 퇴직교원 2,252명 훈·포장­표창

    정부는 21일 이달말로 정년 또는 명예 퇴직하는 교원 1천893명과 경력 15년 이상의 의원 퇴직 교원 359명 등 2천252명에게 훈·포장 및 표창장을 수여하기로 했다.〈명단 18면〉 퇴직 교원 중 김동선 전 부산외대 총장 등 4명은 국민훈장 무궁화장,오동희 경북고 교장 등 52명은 모란장,권부선 서울 동원초등학교 교장 등 834명은 동백장,백기렬 대구 월배초등학교 교사 등 370명은 목련장,송희화 인천 작전초등학교 교사 등 347명은 석류장을 각각 받는다. 홍진삼 광주 우산중 교감 등 234명은 국민포장,손정자 대전 유성농업고 교감 등 105명은 대통령 표창,최문규 전북 삼례여고 교감 등 117명은 국무총리 표창,유정희 경기 성남서중 교사 등 189명은 교육부장관 표창을 받는다.
  • 주말마다 즐기는 도심속 ‘갤러리 콘서트’

    서울 도심에 토요일마다 음악과 그림이 어우러지는 작은 공간이 생겨난다.서울 종로구 사간동 금호미술관 3층 전시실이 그곳.푸른 북악산에 감싸여 경복궁이 건너다 뵈는 여기서 오는 7일부터 매주 토요일 하오7시 작은 갤러리 콘서트가 열리는 것. 음악회의 창안자는 금호그룹 박성용 명예회장.소문난 음악광으로 자기 주머니를 털어 가난한 문화계를 전방위 지원,지난달에는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그는 외국에 다닐 때마다 그림을 병풍처럼 둘러친채 실내악을 감상하는 갤러리 음악회가 그렇게 부러울수 없었다고 한다.토요일만 되면 미술품에 감싸여 음악 들을 곳이 있다면 서울사람들도 얼마나 여유로워질까 생각만하다 여동생인 금호미술관장 박강자씨와 밀어붙이기로 했다. 음악회의 특징은 한달단위로 주제가 있다는 것과 초대권을 없앤 점.우선 6월 「피아노 투 핸즈와 포 핸즈」,7월 「플루트의 향연」,8월 「첼로­첼리스츠」로 정해 국내의 유망 피아니스트,플루티스트,첼리스트들을 모아봤다.또 비록 5천원짜리지만 반드시 표를 사야지 「공짜족」은 입장불허다.무대와 객석이 따로 없이 2백여명의 청중이 연주자를 중심으로 옹기종기 모여앉아 사랑방에서처럼 음악으로 얘기하는 친밀감은 어디서도 맛볼수 없으리라는게 주최측의 자랑.앞으로 어린이 연주자,성악,국악,챔버 오케스트라까지 프로그램도 다채롭게 1년에 52회를 반드시 채우겠다고 장담하고 있다.문의 758­1209.
  • “과기 혁신에 정책 역점”/김 대통령 과학의 날 치사

    김영삼 대통령은 21일 『당면한 우리 경제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지속적인 성장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 혁신을 통해 새로운 성장능력을 창출하는 것이 필수적 과제』라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이날 상오 대전시 유성구 대덕연구단지내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산업계,학계,과학자 등 1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제30회 과학의 날」기념식에 참석,연설을 통해 『금년 상반기중 과학기술혁신 5개년계획을 수립,21세기에 대비한 과학기술 혁신에 모든 정책적 역량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김대통령은 기념식을 마친뒤 KAIST 인공위성센터에 들러 우리별 1·2호 운영현황과 우리별 3호 제작과정을 둘러보고 첨단전문 기술분야의 젊은 연구원들을 격려했다. 한편 이날 기념식에서는 김순경 박사(미국 템플대 명예교수)가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는 등 65명이 과학기술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훈·포장과 대통령·국무총리 표창을 받았으며 한문희 박사(생명공학연구소 연구위원) 등 4명이 대한민국 과학기술상을 수상했다.
  • 퇴직교원 3,017명 훈·포장­표창

    정부는 20일 이달말로 정년(명예)퇴직하는 교원 2천672명과 교육경력 15년이상인 의원 퇴직교원 345명 등 모두 3천17명에게 교육발전에 헌신해온 공로로 훈·포장 및 표창장을 수여키로 했다. 문선재 전 강원대총장 등 4명이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는 것을 비롯,▲김정한 전 여수수산대총장 등 28명은 국민훈장 모란장 ▲이재운 서울 중화초등학교 교장 등 1천20명은 국민훈장 동백장 ▲정춘식 대구 범어초등학교 교감 등 571명은 국민훈장 목련장 ▲민병달 부산 백산초등학교 교사 등 570명은 국민훈장 석류장 ▲강옥수 광주 주월중 교사 등 363명은 국민포장을 수여받는다.이밖에 461명은 대통령표창과 국무총리·교육부장관 표창을 각각 받는다.
  • 올 과학기술상 수상자 4명 선정

    ◎과학상 이인규 교수/기술상 권오석 회장/기능상 이병렬씨/진흥상 민영기 교수 과학기술처는 20일 제28회 대한민국과학기술상 수상자로 과학상에 이인규 서울대 생물학과교수(59),기술상에 권오석 사단법인 한국건설안전기술협회회장(59),기능상에 이병렬 (주)금호타이어 광주공장 기능대리(45),진흥상에 민영기 경희대 우주과학과교수(57)등 4명을 각각 선정,발표했다. 이인규 교수는 우리나라에 조류학이라는 학문영역을 개척하고 식물학에 종분류학을 도입하는등 한국식물학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인정됐으며 권오석 회장은 한국건설안전기술협회를 창립하고 94년 세계간척사상 최대난공사인 시화방조제공사의 안전시공법을 제시하는등 산업안전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수상을 하게 됐다. 또 이병렬 대리는 전자회로설계도면을 국산화,생산성향상에 기여했으며 민영기 교수는 국립천문대장·한국과학저술인협회 부회장등을 역임하면서 국민생활의 과학화에 기여한 공로로 수상자로 선정됐다. 대한민국과학기술상 수상자에게는 대통령상장과 부상 5백만원이 주어지며 시상식은 21일 상오10시30분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존슨강당에서 열리는 제28회 과학의 날 기념식에서 있다. 대한민국과학기술상은 68년 제1회 과학의 날부터 우리나라 과학기술발전에 크게 공헌한 과학기술자에게 수여돼왔으며 현재는 민간기관인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가 심사를 주관하고 있다. ◎과학상 수상/이인규 서울대 자연과학대 학장/“신물질 도출 바닷말에 눈 돌려야” 『뜻밖에 상을 받게 돼 부끄럽습니다.함께 고생한 제자들과 공동연구자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대한민국과학기술상의 하이라이트라 할 「과학상」수상자로 선정된 서울대 자연과학대학장 이인규(59)교수는 『현대과학의 연구업적은 단독으로 성취되는 게 거의 없다』며 「연구동역자」들에게 공을 돌렸다. 이교수가 연구해온 조류학은 김·미역 등과 같은 바닷말을 발견하고 특징과 분포등을 알아내 명명과 분류를 행하는 식물학의 한분야.첨단과학도 아니고 순수과학 중에서도 아주 고전적인 분야라 선행연구가 전혀 없는 상태서 연구에 뛰어들었다. 『공부를해보니 우리 바다에 미지의 엄청난 보화가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더구나 요즘은 생물종의 다양성이 지구의 귀중한 자산으로 인식돼 이에 대한 보호운동이 일고 있지 않습니까』 국내 해안의 바닷말 서식은 지난 66년까지 4백종이 보고됐었으나 이교수는 여기에다 자신이 세계 최초로 발견한 「제주분홍풀」등을 포함,3백20종을 보태 85년 7백20종을 보고했다. 현재 분류된 바닷말은 1천종에 가까워 남북한 통틀어 1천5백종이상의 분류성과가 기대된다고.해조류는 미국등지서 건강식과 치료제등 생약물질및 신물질후보로서 연구도 활발하다. 이교수는 『국내에서는 신물질연구가 버섯등 고등식물에 집중돼 있으나 고등식물은 이미 많이 연구돼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견해를 밝히고 『신물질도출을 위해서는 하등식물인 바닷말에 눈을 돌려야 하며 조류분류연구는 이같은 응용연구의 토대를 제공하는 기초연구로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 조류분류학 외에도 바닷말의 생태와 성분화기작연구로 연구영역을 확대하는 중.이를 위해 바닷말의 실내배양법을 개발하기도 했다. 『6년 남은 정년까지 국내에 서식하는 모든 해조류의 이름과 분포·특징을 밝히는 모노그래프적 연구서적을 발간하는 게 꿈』이라는 이교수는 전국자연과학대학장협의회장으로 기초과학육성진흥법 제정을 이끌어낸 활동가이기도 하다.일본 홋카이도대학 출신으로 부인 한영희여사와의 사이에 2남1녀. ◎기술상 권오석씨/시화방조제 안전시공법 제시 27년간 영산강하구댐등 14개 대형건설사업의 현장소장을 지내고 세계간척사상 최대의 난공사로 꼽힌 시화방조제공사의 안전시공법과 구포열차 사고지점의 지중선 전력구공사의 최적공법을 도출해 제시하기도 한 건설엔지니어. 건설현장에서 숨져가는 동료들을 보면서 건설안전지도의 필요성을 인식,건설안전기술협회를 창립했으며 30여편의 기술지도서를 개발,보급하고 3만7천여명을 교육했다. 94년 한해만도 산업재해로 2천명이 목숨을 잃고 5조원의 재산손실을 입은 사실을 지적하며 『어떤 질병이나 천연재해보다 피해가 큰 산업재해예방을 위해서는 설계단계에서부터 안전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능상 이병렬씨/PCB 전자회로 기판 국산화 설계도면 없이 들여온 외국설비 때문에 고장이 발생할 때 애를 먹는 경험은 기술자가 흔히 겪는 어려움이다. 이병렬 대리는 73년 타이어공장의 자동화공정에 사용된 외제 PCB전자회로 기판의 도면을 분석,국산화시킴으로써 외화를 절감하고 기능을 향상시키는 효과도 가져왔다.또 87년에는 타이어 고무온도검출용 센서를 개발하는등 산업현장에서 묵묵히 기술개발에 힘쓴 대표적인 기술인. 『우리나라에서 기능인이 낮게 평가돼 유감』이라며 기능인에 대한 많은 지원과 홍보,인식전환을 당부했다.조선대 병설 공업전문대 졸업. ◎진흥상 민영기씨/강연·기고 통해 과기풍토 조성 지난 20여년간 국립천문대장,서울대·경희대 교수및 한국과학저술인협회 부회장을 역임하면서 각종 과학프로그램에 참여하고 강연과 기고를 통해 과학기술풍토조성과 국민생활과학화에 기여해왔다. 특히 과학기술에 대한 국내외 정보와 정책뉴스를 다루는 「과학과 기술」지 편집에 참여했으며 방송출연에서도 남다른 감각을 발휘하기도.청소년에게 과학에의 꿈을 주는 천문학자로서 현재 건설중인 보현산의 1.8m 망원경사업도 처음 추진했다. 『상복 없는 사람이 뒤늦게 운이 텄다』고 기뻐하는 그는 미국 런슬러공대 대학원 출신. ◎28회 과학의 날/훈·포장자 명단 ◇국민훈장△무궁화장=이주천(한국과학기술원석좌연구원)△모란장=양승택(한국전자통신연구소소장)△동백장=홍성완(인하대교수)심재동(한국과학기술연구원부장)오영석(재불한국과학기술자협회장)△목련장=양승진(한양대교수)함창식(한국원자력연구소실장)최재윤(유전공학연구소책임연구원)이석호(서울대교수)△석류장=이수웅(대한변리사회회장)김문영(한국자원연구소책임연구원)장문호(과학기술정책관리연구소전문위원)박로상(한국화학연구소부장)◇국민포장=이현구(충남대교수)이광승(한국인삼연초연구원제2부원장)조남진(서울신문사부장)정덕영(한국에너지기술연구소부장)이자학(한국해양연구소책임연구원)◇은탑산업훈장=장영신(애경그룹회장)신동식((주)한국해사기술대표이사)◇동탑산업훈장=채종한(롯데건설(주)기술연구소소장)이중기(농어촌진흥공사부사장)◇철탑산업훈장=조경해(한국전력공사처장)조정주(LG정보통신(주)부사장)◇석탑산업훈장=김문규(한국통신소프트웨어연구소책임연구원)박종양(삼성전자(주)대우이사)◇산업포장=김현수(제일제당(주)종합연구소연구위원)이두철(삼창기업(주)사장)
  • 퇴임각료 23명 서훈

    정부는 황인성·이회창 전국무총리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이영덕 전국무총리및 정재석 전경제부총리 한승주 전외무·김두희 전법무·이병대 전국방·이민섭 전문화체육·김양배 전농림수산·김철수 전상공자원·김우석 전건설·남재희 전노동·윤동윤 전체신부·황영하 전총무처·김시중 전과학기술처·박윤흔 전환경처·서청원 전정무1·권영자 전정무2장관과 박관용 전대통령비서실장 황길수 전법제처장 이충길 전국가보훈처장 유경현 전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사무총장 천용택 전비상기획위원장에게 청조근정훈장을 수여하기로 7일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
  • 인권의날 무궁화장 받은 이홍규옹/무료변론 29년 “법조인의 사표”

    ◎매주 한번 가난한 사람 찾아 법률상담/검사땐 유명한 「대쪽」… 「구속1호」 기록/이회창전총리 부친… 구순나이에도 턱걸이 30번 거뜬 『뚜렷이 내세울 만한 업적도 없는 것 같은데 너무 큰 상을 받게 돼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재조와 재야법조계에서 근 반세기동안 인권신장에 힘써온 우리나라 법조사의 「산 증인」 이홍규(89)변호사가 10일 제46회 세계인권선언일 기념식에서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겸양의 말로 소감을 대신한 이변호사는 「호랑이는 고양이 새끼를 낳지 않는다」는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대쪽판사」로 세간에 알려진 이회창(59) 전총리의 부친이기도 하다. 이변호사는 40세의 「늦깎이」로 광주지검 검사에 임관,법조계에 첫발을 내디뎠다.이후 정년퇴임 때까지 광주세무서사건,장면부통령 저격사건 등을 수사하면서 소신을 굽히지 않아 수사검사의 표상이 될만한 숱한 일화를 남겨 「대쪽 검사」라는 별칭을 들었다. 대표적인 사례는 6·25 발발직후 청주지검 평검사 재직시 수사를 맡은 「충북도지사 횡령사건」.전쟁이 남긴폐허속에서 굶주리고 있는 국민에게 돌아가야 할 미국의 구호물자를 당시 충북도지사가 빼돌려 착복한 사건이다. 즉각 수사에 착수했지만 일개 평검사의 「칼날」로써는 도저히 벨 수 없는 장벽이 가로막고 있었다.구호물자를 횡령한 도지사가 당시 이승만대통령과 미국에서부터 개인적으로 교분을 쌓은 막역한 사이였기 때문이다. 『구속은 물론 아예 수사를 그만두지 않으면 「모가지」를 날리겠다는 압력이 연일 들어왔지요』 당시의 이검사는 그러나 은밀히 내사를 마치고 도지사를 구속한 것은 물론 더 이상의 외압을 피하기 위해 구속한 당일 즉시 기소,법정에 세웠다. 이 사건외에도 부패로 점철된 자유당시절에 「윗사람」의 눈으로 봐선 달갑지 않은 처사를 한 탓으로 이변호사는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50년 서울지검 재직시 좌우익 갈등속에서 무고한 시민을 풀어준게 꼬투리가 돼 반공법 위반혐의로 전격 구속됐던 것.건국후 현직 검사 「구속1호」를 기록한 셈이다. 『전기고문·물고문·잠안재우기고문 등 안 당해 본 게 없어요.정의가 썩은데 대해 어이가 없기도 하고 절망감에 빠지기도 했지요』 결국 무혐의로 풀려나긴 했지만 썩은 정권에 대한 염증과 회의에 사로잡힌 이변호사는 「정의구현을 위해 의지할 지주」를 찾아 카톨릭에 귀의,인생의 전환기를 맞게 된다. 검사생활 20년만인 65년 정년퇴임,변호사로 개업한뒤 29년동안 카톨릭법조인회 회장등을 역임하면서 매주 가난한 사람을 위한 무료법률상담과 무료변론을 통해 서민들의 기본적인 인권옹호에 발벗고 나선 것이다. 이변호사는 아들인 이전총리가 새정부 들어 감사원장과 총리의 중책을 맡았을 때 행여 국정을 소홀히 하지 않을까 가장 가슴을 조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일주일에 한번정도 아들과 만나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눈다』며 내일 모레면 회갑을 바라보는 아들에 대한 「부정」을 감추지 않는다.이변호사는 부인 김사순(83)여사와 4남1녀가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도 원칙에 따르며 낙천적인 성격을 가진 덕분이 아니겠느냐고 웃는다. 요즘도 한달에 3번정도 법정에 직접 나가 변론을 맡는 이변호사는 여느 젊은이 못지않게 건강하다. 젊을 때부터 철봉으로 몸을 다져와 80이 넘은 나이에 모방송국 장수프로그램에 나가 기계체조에 가까운 철봉묘기를 선보인 적도 있고 요즘도 턱걸이 30번은 거뜬히 할 수 있다. 『인권신장을 위해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아 앞으로 30년은 더 살아야겠다』며 환히 웃는 이변호사는 후배법조인에게 『소신껏 일하라』는 당부의 말로 그동안 걸어온 긴 여정을 되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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