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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럼프 마음 빼앗은 근육질 美 ‘고릴라 장군’에 이란 운명 달렸다 [월드피플+]

    트럼프 마음 빼앗은 근육질 美 ‘고릴라 장군’에 이란 운명 달렸다 [월드피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 공격에 대해 고심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이 단 한 명의 장군에게 이례적인 권한을 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8일(현지시간)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중부사령부 마이클 에릭 쿠릴라 사령관(59·육군 대장)이 중동 사태에 전적인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름 때문에 ‘고릴라’라는 별명이 붙어있는 쿠릴라 사령관은 이스라엘과 이란 갈등이 격화하는 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군부 내 대표적인 ‘매파’ 장군으로 분류된다. 특히 폴리티코는 고위 관계자들의 발언을 인용해 중동 내 항공모함 추가 배치부터 전투기 배치까지 쿠릴라 사령관의 요청이 거의 모두 승인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미군은 항공모함과 공중 급유기를 중동 방향으로 배치한 데 이어 F-16과 F-22, F-35 등 전투기와 군용기를 중동에 추가로 배치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고위 관계자는 폴리티코와의 인터뷰에서 “쿠릴라 사령관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 데 매우 능숙하다”면서 “이번 중동 위기 국면에서 다른 국방부 관리들을 압도하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전직 고위 관리도 “쿠릴라 사령관은 트럼프 대통령과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이 원하는 장군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면서 “덩치가 크고 근육질로 그들이 원하는 바로 그 치명적인 모습”이라고 말했다. 육군 사관학교 출신인 쿠릴라 사령관은 걸프전, 이라크전, 아프가니스탄전, 이슬람국가(IS) 격퇴 작전에 참여하는 등 풍부한 실전 경험을 갖췄으며 2022년 4월부터 중부사령관으로 재임해 왔다. 특히 2005년 이라크 전쟁이 한창일 때 그는 세 발의 총격을 받았음에도 부대 지휘를 계속해 동성무공훈장을 받았다.
  • “헌신에 감사”… 보훈 가족 보듬은 강동

    “헌신에 감사”… 보훈 가족 보듬은 강동

    서울 강동구는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지난 17일 강동구보훈회관에서 지역 내 국가보훈대상자와 그 가족 등 200여명을 초청해 ‘보훈 가족 위문 행사’를 개최했다고 18일 밝혔다. 이번 행사는 나라를 위해 헌신한 국가보훈대상자와 그 가족에게 감사와 존경의 뜻을 전하고, 지역사회 내 보훈 문화 확산과 공감대 형성을 위해 마련됐다. 1부 공식 행사는 무공훈장과 보훈유공자에 대한 표창 수여식으로 시작됐다. 이어 강동구아동청소년미래본부 소속 학생들이 국가보훈대상자들의 희생을 기리며 감사의 마음을 담은 편지를 낭독했다. 2부는 보훈을 주제로 한 문화 공연과 참여 프로그램으로 꾸며졌다. 행사가 끝난 뒤에는 보훈회관 1층 식당에서 식사가 제공됐다. 식사로는 주먹밥과 강동구중식업연합회의 재능기부로 마련된 자장면, 탕수육이 함께 차려졌다. 이수희 강동구청장은 “국가보훈대상자들의 나라를 위한 희생과 헌신에 깊은 존경과 감사를 드린다”며 “앞으로도 이들의 명예를 드높이고, 지역사회에 보훈의 가치가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도록 세심한 정책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 75년 만에… 6·25 참전 비정규군 24명에 무공훈장 서훈

    75년 만에… 6·25 참전 비정규군 24명에 무공훈장 서훈

    국방부가 6·25전쟁에 참전한 비정규군 공로자 24명에 대해 11일 무공훈장을 서훈했다. 이날 서훈된 24명 중 22명이 미군이 창설한 8240부대, 2명이 미국 중앙정보부(CIA)가 창설한 영도유격대 소속으로 활약했다. 하지만 이들은 정규군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동안 서훈 대상으로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전쟁 발발 당시 교사였던 고 이종학씨는 학생들과 함께 학도의용대를 결성하고 미 8240부대 예하 동키 제11부대에서 부대장으로 유격 작전을 지휘했다. 1951년 4월 황해도 옹진군 교정면에서 북한군 순찰대를 기습해 17명을 사살하고 피난민 1200명을 구출한 공로로 75년 만에 충무무공훈장(3등급)을 받았다. 영도유격대 소속 고 최제부씨는 1951년 9월 50여명의 대원과 함께 미 수송기로 함경도 혜산군 일대를 공중 침투해 적 14명을 사살하고 적의 주요 시설을 파괴한 공을 세워 충무무공훈장을 받았다. 5형제가 함께 활약한 사례도 있었다. 특히 차남인 고 이영이씨는 미 8240 예하 울팩 제1부대 대대장으로 1951년 3~12월 개성 탈환 작전에서 적 20여명을 사살하고 9명을 생포하는 등의 활약으로 화랑무공훈장(4등급) 수훈자로 선정됐다. 국방부는 6·25전쟁에서 공적을 세우고도 서훈이 누락된 공로자에 대해 심사를 통해 추가로 서훈하는 제도를 2011년부터 시행해 지난해까지 340명이 무공훈장을 받았다. 김선호 국방부 장관 직무대행은 이날 서울 용산구 국방컨벤션에서 열린 수여식에서 “위기에 처한 국가를 수호하기 위해 군번도, 계급도 없이 적 지역에 침투해 유격 작전 등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비정규군 무공 수훈자에게 국방부를 대표해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 6·25 때 102회 출격한 ‘하늘의 영웅’, 전우의 손자와 프로야구 시구·시타

    6·25 때 102회 출격한 ‘하늘의 영웅’, 전우의 손자와 프로야구 시구·시타

    6·25전쟁 당시 공군 조종사로 100여회 출격한 노장이 현충일을 맞아 전우의 손자와 함께 프로야구 시구자 및 시타자로 나선다. 5일 공군에 따르면 6일 서울 송파구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잠실야구장)에서 열리는 2025 KBO리그 두산베어스 대 롯데자이언츠 경기에 6·25 참전 조종사인 예비역 공군 대장 김두만(98) 장군이 시구자로, F-15K 조종사 강병준(33) 소령이 시타자로 참여한다. 강 소령은 김 장군과 함께 참전했던 고 강호륜(1925~1990) 장군의 손자다. 강 장군과 김 장군은 각각 1948년 학사사관 3기, 1949년 학사사관 5기로 각각 임관해 공군 창설기를 함께한 선후배 조종사였다. 두 사람은 여의도, 제주, 사천, 강릉기지에서 함께 근무했고 전시에는 한국 공군 최초 단독출격작전, 지리산 공비토벌작전 등을 함께 수행했다. 공군작전사령관, 제11대 공군참모총장 등을 지낸 김 장군은 6·25전쟁 당시 대한민국 최초 100회 출격을 기록하기도 했다. 정부로부터 을지무공훈장, 은성충무무공훈장 등을 받았고, 6·25전쟁 10대 영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현재 김신장군기념사업회장을 맡고 있다. 강 장군은 1948년 미국으로부터 L-4 항공기를 인수해 서울 상공을 최초로 비행했을 때 임무를 수행한 조종사 중 한 명이다. 우리 공군은 6·25전쟁이 발발하자 미 공군의 F-51D 무스탕 전투기를 급히 인수하게 됐는데 강 장군은 F-51D 도입요원 10명 중 한 명으로 선발돼 일본으로 건너갔다. 당시 단 한 번의 전투기 탑승 비행훈련만 마친 뒤 전투기를 조종해 대구기지로 돌아오기도 했다. 강 장군은 전쟁 중 평양대폭격작전 등 총 78회 출격했고, 이후 정부로부터 을지무공훈장, 충무무공훈장 등을 받았다. 시타에 나선 강 소령은 할아버지를 따라 전투 조종사가 돼 영공방위 최일선에서 국가와 국민을 지키고 있다. 할아버지를 직접 뵌 적은 없지만 할머니와 아버지로부터 할아버지의 활약상을 듣고 ‘운명처럼’ 조종사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고 한다. 강 소령은 2015년 공군 학군사관 42기로 임관해 비행교육과정을 마치고 현재는 공군 제11전투비행단 제102전투비행대대에서 3편대장으로 영공방위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지난 2021년 레드플래그 알래스카 훈련에 페리 조종사로 참가했고, 주변국 항공기의 방공식별구역(KADIZ) 무단진입 시 여러 차례 출격해 전술 조치를 실시한 뛰어난 조종사로 꼽힌다. 2020년 국군 전사자 유해 송환 시 조국으로 돌아오는 호국영령들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엄호비행을 맡았던 적도 있다. 김 장군은 “전쟁 때 100번 넘게 출격했는데 이렇게 세월이 흘러 만원 관중 앞 시구까지 하게 됐다”며 “특히 강 장군 손자가 훌륭하게 커서 F-15K 조종사가 된 걸 보니 기쁘고 안전하게 비행 잘했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강 소령도 “할아버지께서 시타하는 모습을 보셨다면 얼마나 뿌듯하셨을까 하는 마음에 울컥했다”며 “할아버지와 김두만 장군님처럼 불굴의 투지와 불패의 기량으로 대한민국을 굳게 수호하는 조종사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한편 이날 현충일을 맞아 경기장에서는 호국영령께 대한 묵념을 진행한다. 이때 공군 군악대가 직접 트럼펫 연주를 하고 애국가도 공군 군악대 박혜진 중위가 부른다. 김 장군과 강 소령의 시구·시타가 끝나면 F-15K 4대로 구성된 편대가 잠실야구장 상공을 저공으로 지나는 기념비행을 실시한다. 공군은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며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있는 공군 조종사들의 헌신을 기리는 의미”라고 전했다. 공군은 전투기 비행음에 대한 송파구 시민들의 양해를 당부했다.
  • “한국 너무 자랑스럽다”던 지한파… 6·25 참전 랭걸 前하원의원 별세

    “한국 너무 자랑스럽다”던 지한파… 6·25 참전 랭걸 前하원의원 별세

    6·25 전쟁 참전용사이자 미국 의회 내 지한파의 ‘산파’ 역할을 했던 찰스 랭걸 전 연방 하원의원이 미국 현충일(메모리얼 데이)인 26일(현지시간) 별세했다. 95세. 그의 수석보좌관이었던 해나 김 전 보건복지부 부차관보는 “랭걸 전 의원이 이날 뉴욕에서 별세했다”고 전했다. 1930년 뉴욕 할렘에서 태어난 랭걸은 어린 시절 청소, 공장일을 하던 어머니 손에서 어렵게 자랐다. 고등학교를 중퇴한 뒤 20살이었던 1950년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모르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태평양을 건너 한국까지 왔다. 특히 그는 1950년 11월 평양 이북 군우리 전투의 기억을 평생 잊지 못했다. 미 보병 2사단에 소속된 그는 중공군에게 포위돼 죽음의 문턱까지 갔고 포탄 파편에 부상을 입고도 40여명의 동료를 이끌고 기적적으로 탈출했다. 이 공로로 퍼플하트와 동성 무공훈장을 받았다. 2007년에는 한국 정부가 수교훈장 광화장을 수여했다. 1971년 민주당 연방 하원의원(뉴욕)으로 당선된 이래 2017년 1월 은퇴할 때까지 23선으로 46년간 최초 흑인 하원 세입위원장(2007~2010년) 등 민주당의 대표적인 거물급 흑인 정치인으로 활약했다. 한국과의 인연, 애정은 의정 활동의 밑거름이 됐다. 그는 2003년 연방의회 지한파 모임인 코리아 코커스 창립 멤버이자 초대 회장을 지냈다. ‘한국전 참전용사 인정 법안’, ‘한국전 납북자 송환 결의안’, ‘6·25 전쟁 추모의 벽 건립안’ 등 한국 관련 법안을 주도했다. 1977년 지미 카터 당시 대통령의 주한미군 철수 계획에 강력 반대하기도 했고, 한일 과거사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2015년 아베 신조 당시 일본 총리 방미 때는 그가 의회 연설에서 과거사를 사과해야 한다는 서한도 발표했다. 고인은 2021년 백선엽 한미동맹상 수상 당시 “(한국전쟁 때) 부상을 입고 한반도를 떠날 땐 악몽과도 같았고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기에 한국이 전쟁 폐허를 딛고 미국의 7번째 교역 파트너이자 국제적 거인으로 부상한 게 너무나 자랑스럽다”는 소회를 밝힌 바 있다. 한국 대선 후보들도 그를 추도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페이스북에 “한미 동맹의 든든한 수호자였다”고 썼고,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대한민국을 공산화의 위기에서 지켜 낸 영웅”이라는 추모글을 올렸다.
  • 딘 헤스 美공군 대령 10주기… “1000명의 고아 구한 당신을 잊지 않겠습니다”

    딘 헤스 美공군 대령 10주기… “1000명의 고아 구한 당신을 잊지 않겠습니다”

    “한국전쟁때 1000명의 전쟁고아를 구한 당신을 잊지 않겠습니다.” 22일 대한민국 공군과 제주도에 따르면 6·25전쟁의 10대 영웅이자 1000여 명의 전쟁고아를 구한 고(故) 딘 헤스(1917년 12월 6일~2015년 3월 3일) 미국 공군 대령의 10주기 추모행사가 이날 오전 제주항공우주박물관에서 거행됐다. 헤스 대령이 진정한 영웅으로 기억되는 이유는 냉혹한 전쟁터에서도 인류애를 실천한 따뜻한 군인이었기 때문이다. 고인은 1951년 1·4후퇴 당시 죽음을 각오하고 1000여명의 전쟁고아를 서울에서 제주도로 수송하는데도 기여해 ‘전쟁고아의 아버지’로 불렸다. 당시 그는 공군의 지휘부를 적극 설득해 무려 15대의 C54 수송기를 전쟁고아 후송작전에 투입해 무사히 피신시켰다. 퇴역 이후에도 평생 전쟁고아를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다 2015년 98세의 나이로 생애를 마쳤다. 이날 행사에는 오영훈 제주도지사와 이영수 공군참모총장, 놀란 바크하우스 주한미국영사, 커트 헬핀스타인 제7공군 부사령관, 양영철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이사장, 이계훈 공군전우회장을 비롯해 공군 관계자 및 유가족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특히 고인의 자녀인 로렌스, 에드워드, 로날드 헤스 씨와 당시 아이들을 함께 구출했던 계원철 장군의 유가족, 고인과 전선에 같이 나섰던 최원문 대령의 유가족들이 자리했다. 헤스 대령은 6·25전쟁 당시 바우트 원(BOUT-1) 부대장으로 공군 주력기인 F-51(무스탕) 전투기를 한국 공군 조종사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양성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그는 부대 창설 1년여 만에 단독 작전 수행이 가능한 한국 공군 전투 조종사 24명을 양성했으며, 총 250여 회의 전투에 참여해 6·25 항공전사에 빛나는 공을 세웠다. 당시 자신의 전투기에 새겼던 ‘신념의 조인(By Faith I FLY)’은 현재 우리 공군 조종사의 기상을 상징하는 문구로 전해지고 있다. 고인은 6·25전쟁 당시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무공훈장과 소파상 등을 받았으며, 공군에서는 헤스 대령의 위대한 정신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2017년 3월 9일 제주항공우주박물관 야외전시장에 공적 기념비를 세웠다. 이영수 공군참모총장은 “고인을 추모하는 것은 대한민국 공군 조종사를 훈련시키는 부대의 책임자였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보여준 대한민국을 향한 진심 어린 사랑과 믿음, 인류애를 잊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고인의 높은 뜻을 이어받아 앞으로도 국민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할 것을 가슴 깊이 맹세한다”고 말했다. 놀란 바크하우스 주한미국영사는 “한미 동맹은 안보에 초첨을 맞춰 시작됐지만, 헤스 대령과 양국의 동료들 덕분에 7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양국은 포괄적인 동반자 관계로 발전했다”면서 “오늘날 한미동맹에 기여하고 희생한 고 헤스 대령과 한미 당국자 동료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고 전했다.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딘 헤스 대령의 기적의 비행은 인류와 평화 연대의 소중한 유산이 돼 제주 공동체에 깃들어 있다”며 “제주도정은 대령의 숭고한 뜻을 깊이 새기고 평화의 섬 제주에서 우리 아이들이 자신의 꿈을 더 크게 펼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 네이비실·의사·우주비행사…‘괴물 스펙’ 조니 김, 첫 NASA 임무는?

    네이비실·의사·우주비행사…‘괴물 스펙’ 조니 김, 첫 NASA 임무는?

    미 항공우주국(NASA)의 한국계 미국인 조니 김이 8일 오후 2시 47분(한국시간) 러시아 우주선 소유즈를 타고 국제우주정거장(ISS)으로 향했다. 이날 김 씨를 비롯해 러시아 우주인 세르게이 리지코프, 알렉세이 주브리츠키를 태운 소유즈 MS-27 우주선이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에서 무사히 발사됐다. 이후 그는 ISS에서 과학 조사와 기술 시연 임무를 수행한 뒤 8개월 후 지구로 귀환할 예정이다. 많은 우주비행사가 ISS로 향했지만 유독 김 씨에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는 한국계이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의 경력 때문이다. LA 출신인 김 씨는 2017년 총 1만 8000명의 지원자 중 선발된 유일한 한국계 미국인이다. 특히 김 씨는 남들은 하나도 이루기 힘든 미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실 출신이자 하버드대 의대 전문의 그리고 NASA 우주비행사이기도 하다. 이에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41세의 김 씨가 이룬 업적은 전 세계적으로 영감의 원천이 됐지만 약간의 당혹감도 안겨준다”면서 “모든 아시아 아이에게는 최악의 악몽”이라고 촌평했다. 곧 미국판 ‘엄친아’라는 것. 실제로 그의 스펙은 화려하다 못해 괴물 같아 미국 내에서도 큰 조명을 받았다. 1984년 한국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캘리포니아 샌타모니카 고교를 졸업한 뒤 네이비실에 입대해 100회 이상 전투 작전을 수행해 은성무공훈장을 받았다. 이후 그는 샌디에이고대학에서 수학을 전공(석사)한 뒤 해군 ROTC 장교를 거쳐 하버드의대에서 의학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특히 매사추세츠 종합병원 응급실과 보스턴 브리검 여성병원 등에서 레지던트로 일하던 그는 NASA 우주비행사 프로그램에 지원해 당당히 선발되며 결국 이번에 우주로 가는 꿈까지 이뤘다. 앞서 지난달 김 씨는 첫 우주 임무 수행을 앞둔 기대감을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며 “ISS에서 하게 될 과학 연구를 공유함으로써 다음 세대에 영감을 주는 데 이바지할 수 있다는 것을 굳게 믿고 지지한다”고 밝힌 바 있다.
  • 네이비실 훈장에 하버드 의대 ‘괴물 스펙’ 조니 김, 이젠 우주로

    네이비실 훈장에 하버드 의대 ‘괴물 스펙’ 조니 김, 이젠 우주로

    미 항공우주국(NASA)의 한국계 미국인 조니 김이 8일 오후 2시 47분(한국시간) 러시아 우주선 소유즈를 타고 국제우주정거장(ISS)으로 향했다. 이날 김 씨를 비롯해 러시아 우주인 세르게이 리지코프, 알렉세이 주브리츠키를 태운 소유즈 MS-27 우주선이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에서 무사히 발사됐다. 이후 그는 ISS에서 과학 조사와 기술 시연 임무를 수행한 뒤 8개월 후 지구로 귀환할 예정이다. 많은 우주비행사가 ISS로 향했지만 유독 김 씨에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는 한국계이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의 경력 때문이다. LA 출신인 김 씨는 2017년 총 1만 8000명의 지원자 중 선발된 유일한 한국계 미국인이다. 특히 김 씨는 남들은 하나도 이루기 힘든 미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실 출신이자 하버드대 의대 전문의 그리고 NASA 우주비행사이기도 하다. 이에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41세의 김 씨가 이룬 업적은 전 세계적으로 영감의 원천이 됐지만 약간의 당혹감도 안겨준다”면서 “모든 아시아 아이에게는 최악의 악몽”이라고 촌평했다. 곧 미국판 ‘엄친아’라는 것. 실제로 그의 스펙은 화려하다 못해 괴물 같아 미국 내에서도 큰 조명을 받았다. 1984년 한국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캘리포니아 샌타모니카 고교를 졸업한 뒤 네이비실에 입대해 100회 이상 전투 작전을 수행해 은성무공훈장을 받았다. 이후 그는 샌디에이고대학에서 수학을 전공(석사)한 뒤 해군 ROTC 장교를 거쳐 하버드의대에서 의학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특히 매사추세츠 종합병원 응급실과 보스턴 브리검 여성병원 등에서 레지던트로 일하던 그는 NASA 우주비행사 프로그램에 지원해 당당히 선발되며 결국 이번에 우주로 가는 꿈까지 이뤘다. 앞서 지난달 김 씨는 첫 우주 임무 수행을 앞둔 기대감을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며 “ISS에서 하게 될 과학 연구를 공유함으로써 다음 세대에 영감을 주는 데 이바지할 수 있다는 것을 굳게 믿고 지지한다”고 밝힌 바 있다.
  • 네이비실→의사→NASA 우주비행사…결국 우주로 간 조니 김의 무한도전 [월드피플+]

    네이비실→의사→NASA 우주비행사…결국 우주로 간 조니 김의 무한도전 [월드피플+]

    미 항공우주국(NASA)의 한국계 미국인 조니 김이 8일 오후 2시 47분(한국시간) 러시아 우주선 소유즈를 타고 국제우주정거장(ISS)으로 향했다. 이날 김 씨를 비롯해 러시아 우주인 세르게이 리지코프, 알렉세이 주브리츠키를 태운 소유즈 MS-27 우주선이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에서 무사히 발사됐다. 이후 그는 ISS에서 과학 조사와 기술 시연 임무를 수행한 뒤 8개월 후 지구로 귀환할 예정이다. 많은 우주비행사가 ISS로 향했지만 유독 김 씨에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는 한국계이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의 경력 때문이다. LA 출신인 김 씨는 2017년 총 1만 8000명의 지원자 중 선발된 유일한 한국계 미국인이다. 특히 김 씨는 남들은 하나도 이루기 힘든 미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실 출신이자 하버드대 의대 전문의 그리고 NASA 우주비행사이기도 하다. 이에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41세의 김 씨가 이룬 업적은 전 세계적으로 영감의 원천이 됐지만 약간의 당혹감도 안겨준다”면서 “모든 아시아 아이에게는 최악의 악몽”이라고 촌평했다. 곧 미국판 ‘엄친아’라는 것. 실제로 그의 스펙은 화려하다 못해 괴물 같아 미국 내에서도 큰 조명을 받았다. 1984년 한국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캘리포니아 샌타모니카 고교를 졸업한 뒤 네이비실에 입대해 100회 이상 전투 작전을 수행해 은성무공훈장을 받았다. 이후 그는 샌디에이고대학에서 수학을 전공(석사)한 뒤 해군 ROTC 장교를 거쳐 하버드의대에서 의학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특히 매사추세츠 종합병원 응급실과 보스턴 브리검 여성병원 등에서 레지던트로 일하던 그는 NASA 우주비행사 프로그램에 지원해 당당히 선발되며 결국 이번에 우주로 가는 꿈까지 이뤘다. 앞서 지난달 김 씨는 첫 우주 임무 수행을 앞둔 기대감을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며 “ISS에서 하게 될 과학 연구를 공유함으로써 다음 세대에 영감을 주는 데 이바지할 수 있다는 것을 굳게 믿고 지지한다”고 밝힌 바 있다.
  •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4월의 독립운동 선정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4월의 독립운동 선정

    국가보훈부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을 올해 4월의 독립운동으로 선정했다고 31일 밝혔다. 임시정부는 일제의 국권 침탈과 식민 통치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하이에서 수립됐다. 민주공화제를 천명하고 국민의 자유권과 평등권을 명시하는 등 하나의 독립운동 단체가 아닌 독립 국가의 정부로서 역할을 선포했다. 임시정부는 1919년 말 육군무관학교를 설립하고 1930년대 중국 각지의 군관학교에 한인 청년들을 보내는 등 무관 양성에 힘썼다. 또한 한인애국단을 조직해 의열투쟁을 전개하고 이봉창 의사와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지원하는 등 수많은 항일 독립투쟁을 벌였다. 1940년 9월 17일에는 한국광복군을 창설해 미국 전략첩보국(OSS)과 합작해 국내 진입 작전을 추진하는 등 연합국과 공동작전을 벌이기도 했다. 임시정부는 이외에도 교육과 문화, 구호 등 다양한 사업도 추진했다. 임시정부가 선포한 대한민국 임시헌장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한다’는 제헌헌법을 거쳐 현행 헌법까지 계승됐다. 현행 헌법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있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보훈부는 이와 함께 ‘4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이준식(1900~1966) 육군 중장을 선정했다. 1900년 평안남도 순천 출생인 이 중장은 3·1운동 이후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임시정부에서 활동하며 무장 항일투쟁을 펼쳤고, 광복 후 귀국해 육군 준장으로 진급했다. 6·25전쟁 당시 제3사단장으로서 북한군 남하를 저지하기 위한 영해·영덕 방어 임무를 수행했다. 북한군이 부산으로 진출하려는 과정에서 영덕과 영해가 점령당했지만 유엔군과 국군이 합동작전으로 이 지역을 탈환하면서 낙동강 방어선을 형성할 수 있었다. 이 중장의 탁월한 지휘력과 전략적 판단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게 보훈부의 설명이다. 이 중장은 1954년 태극무공훈장,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고 1966년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됐다.
  • ‘6·25 4대 영웅’ 김종오 장군 59주기 추모식

    ‘6·25 4대 영웅’ 김종오 장군 59주기 추모식

    대한민국육군협회가 ‘6·25전쟁 4대 영웅’으로 꼽히는 김종오(1921~1966) 장군 제59기 추모식을 27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진행했다. 1921년 5월 세종시 부강면에서 출생한 고인은 6·25전쟁 개전 초기 육군 제6사단장을 맡아 북한군의 남진을 5일간 지연시키며 서부전선 국군 주력 부대의 한강 방어선 구축과 유엔군의 참전 시간을 확보했다. 1952년 10월에는 9사단장으로서 백마고지 전투를 승리로 이끌기도 했다. 그가 6·25전쟁 4대 영웅으로 불리는 이유다. 김 장군은 국군 최고의 무공훈장인 태극무공훈장을 받았다. 휴전 후에는 육군참모총장, 합동참모의장 등을 맡았다. 권오성 육군협회장은 “그 누구보다 군복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시고, 대한민국을 늘 가슴에 담고, 군대의 본질을 지켰고, 군복 입은 자를 특히 사랑하신 당신이 자랑스럽다”고 추모했다. 김 장군의 손자 영주씨는 “할아버지의 용기와 희생, 나라를 위한 헌신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교훈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 ‘6·25전쟁 4대 영웅’…백마고지 승리 이끈 김종오 장군 기린 육군협회

    ‘6·25전쟁 4대 영웅’…백마고지 승리 이끈 김종오 장군 기린 육군협회

    ‘6·25전쟁 4대 영웅’으로 꼽히는 김종오(1921~1966) 장군 추모식이 서울 용산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렸다고 27일 대한민국육군협회가 밝혔다. 제59기 추모식인 이날 행사에는 권오성 육군협회장과 유가족, 권대일 국립서울현충원장 등 관계자와 6사단, 9사단 장병들이 참석했다. 오전 11시부터 시작해 개식사와 국민의례, 고인 약력 보고, 추모글 낭송, 헌화와 분향, 유가족 인사 등이 이어졌다. 김선호 국방부 장관 직무대행,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 김명수 합동참모의장, 권 회장, 고창준 육군참모총장 직무대리, 김관진 백선엽장군기념재단 이사장, 김진성 6사단장의 화환도 자리에 함께했다. 김 장군은 1921년 5월 세종시 부강면에서 출생했다. 6·25전쟁 개전 초기 육군 제6사단장을 맡아 북한군의 남진을 5일간 지연시키며 서부전선 국군 주력부대의 한강 방어선 구축과 유엔군의 참전 시간을 확보했다. 당시 김일성이 직접 “남조선의 사단 중 제대로 된 사단은 6사단 밖에 없으니 그걸 깨부숴야 한다”고 언급할 정도였다. 김 장군은 백마고지 전투의 영웅으로도 유명하다. 그가 9사단장을 맡을 당시인 1952년 10월 벌어진 백마고지 전투는 12번이나 주인이 바뀔 정도로 전쟁이 치열했는데 김 장군의 활약 덕분에 국군이 승리할 수 있었다. 그가 ‘6·25전쟁 4대 영웅’으로 꼽히는 이유다. 이런 공로를 인정바다 김 장군은 국군 최고의 무공훈장인 태극무공훈장을 받았다. 이외에도 육군사관학교장, 육군참모총장, 합동참모의장 등을 거치며 육군의 발전을 위해 헌신했다. 그리고 군문을 나선 1년 후인 1966년 3월 30일 지병으로 생을 마감했다. 권 회장은 “그 누구보다 군복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시고 대한민국을 늘 가슴에 담고, 군대의 본질을 지켰고, 군복 입은 자를 특히 사랑하신 당신이 자랑스럽다”면서 “6·25전쟁을 온전히 한 몸으로 받아내신 당신의 존재는 바로 역사이자 기록”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험한 세상에 큰 빛이 되어주신 당신이 있어서 행복하다”고 덧붙였다. 김 장군의 손자 김영주씨는 “할아버지의 용기와 희생, 나라를 위한 헌신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교훈을 주고 있다”면서 “전장의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오직 국가와 국민을 위해 싸우셨던 숭고한 정신을 우리는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추모했다. 육군협회는 지난해부터 협회 주관으로 김 장군 추모식을 개최해왔다. 육군협회 관계자는 “국민적 무관심 속에 국가와 군에서조차도 영웅을 기리는 추모식이 없는 현실에 마음이 아프다”면서 “향후 김종오 장군의 업적과 위상을 재조명하고 호국영웅에 대한 국민적 인식 전환을 위해 육군협회가 호국영웅 선양사업을 주도적으로 확대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 나른한 봄, 열차 이용 시 ‘지갑’ 잘 챙겨야

    나른한 봄, 열차 이용 시 ‘지갑’ 잘 챙겨야

    나른한 봄 열차 이용객이 빈번하게 잃어버리는 물건은 ‘지갑’으로 나타났다. 열차 유실물 중 충전기와 우산 등은 회수율이 크게 떨어졌다. 6일 SRT 운영사인 SR에 따르면 지난해 접수된 유실물은 총 1만 2956건으로 이중 48%(6254건)가 주인에게 인도됐다. 인도율이 높은 품목 중 휴대전화는 671건 중 80%인 536건을 찾아갔다. 가방(65%), 지갑(56%) 등 상대적으로 고가 귀중품은 분실자의 적극적인 문의와 인도받기 위한 행동이 빠른 것으로 분석됐다. 반면 우산(13%)과 의류(34%), 충전기·보조 배터리(37%) 등은 인도율이 떨어졌다. 특이한 유실물로는 ‘대한민국 화랑 무공훈장’, ‘도마뱀’, ‘엽전’, ‘첼로 활’ 등이 포함됐는데 모두 회수된 것으로 확인됐다. 월별 유실물 차이가 확인됐다. 12~3월에는 가방이, 4~11월은 지갑이 분실 신고가 가장 많았다. 특히 옷차림이 가벼워지는 봄철부터는 지갑 유실 사례가 높아 이용객들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SR은 강조했다. SRT 열차와 역에서 발견된 유실물은 7일간 역사 유실물센터에 보관되며, 기간 내에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경찰서로 이관된다. 유실물은 역사 유실물센터 및 에스알 고객센터(1800-1472)로 문의하거나, 경찰청 유실물 통합포털(http://lost112.go.kr)에서 검색 및 확인할 수 있다. 이종국 SR 대표이사는 “열차 도착에 앞서 안내방송을 실시하는 등 열차 이용객의 소지품 유실 방지 및 인도를 위한 노력을 더욱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 밀양시, 6·25 전쟁 참전용사 2명 유족에 무공훈장 전수

    밀양시, 6·25 전쟁 참전용사 2명 유족에 무공훈장 전수

    경남 밀양시는 지난 21일 6·25전쟁에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한 유공자 유족에게 무공훈장을 전수했다고 24일 밝혔다. 전수식은 국방부의 ‘6·25전쟁 무공훈장 주인공 찾기 캠페인’을 통해 전쟁 당시 무공훈장 서훈 대상자로 선정됐으나 긴박한 전장 상황으로 훈장을 받지 못한 영웅을 기리고자 열렸다. 화랑무공훈장 대상자는 고 심점득 병장과 고 안주영 상병이었다. 고 심점득 병장은 전쟁 당시 수도사단 공공대대, 고 안주영 상병은 21사단 65연대 소속이었다. 이들은 대한민국 영토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자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안병구 밀양시장은 국방부 장관을 대신해 고 심점득 병장의 차남 심재극씨, 고 안주영 상병의 장손 안자룡씨에게 훈장증과 훈장 메달을 전달했다. 화랑무공훈장은 대한민국 무공훈장 중 네 번째 등급에 한다. 전투에 참여해 많은 전공을 세운 이에게 수여한다. 안 시장은 “호국영웅과 그 가족의 헌신을 기억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며 “밀양시는 국가를 위해 헌신한 유공자분들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을 잊지 않고 앞으로도 유공자 예우에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美, 故 김영옥 대령에 ‘의회 황금훈장’ 재추진

    美, 故 김영옥 대령에 ‘의회 황금훈장’ 재추진

    미국 전쟁 영웅인 한국계 고(故) 김영옥 대령에게 ‘의회 황금훈장’을 수여하기 위한 법안이 1일(현지시간) 미국 의회에서 다시 발의됐다. 한국계 연방 하원의원인 영 김(공화·캘리포니아), 매릴린 스트리클런드(민주·워싱턴), 데이브 민(민주·캘리포니아) 의원 등은 이런 내용의 법안을 하원에 제출했다. 법안은 한국계 미국인인 김 대령이 삶을 통해 보여 준 영웅적인 행동과 리더십, 인도주의의 실천을 기리기 위해 의회 황금훈장을 사후적으로 수여하는 내용을 담았다. 의회 황금훈장은 미 의회가 민간인에게 수여하는 최고 영예의 상으로 의회가 군인에게 주는 최고 무공훈장인 명예훈장과 동격이다. 김 대령은 독립운동가 김순권 선생의 아들이다. 고인은 로스앤젤레스(LA)에서 태어나 미군 장교로 제2차 세계대전과 6·25전쟁에 참전해 뛰어난 무공을 세웠다. 고인은 2차대전 참전 후 예편했다가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재입대해 제7보병사단 31보병연대 참모를 거쳐 미군 역사상 유색 인종 가운데 처음으로 전투대대장을 맡았다.
  • “중공군 막다 전사”…이순신만큼 용감했던 스물셋 청년, 이달의 전쟁영웅으로

    “중공군 막다 전사”…이순신만큼 용감했던 스물셋 청년, 이달의 전쟁영웅으로

    1952년 10월 6일. 강원도 철원 서북방 12㎞ 지점인 백마고지(395고지)에서 중공군과 국군의 전투가 시작됐다. 백마고지는 고암산과 효성산이 교차해 남쪽으로 흐르는 능선의 끝자락에 있는 야산으로 철원평야를 내려다볼 수 있는 요충지이자 물자 보급로로서 국군에게 매우 중요한 지형이었다. 당시 국군 제9사단 제30연대는 다음날까지 중공군의 공격을 네 차례나 막아냈다. 이후 일진일퇴의 치열한 전투가 이어지는 과정에서 사망한 국군은 총 504명. 이들이 목숨 걸고 백마고지를 지킨 덕에 중공군은 8000명이 넘는 사망자를 내고 결국 물러나야 했다. 백마고지를 지키다 사망한 수많은 청년 중 하나가 바로 이성덕 중위(당시 소위)다. 국가보훈부는 이 중위를 ‘2024년 12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고 29일 밝혔다. 1929년 1월생인 이 중위는 육군갑종사관후보생 제9기로 1952년 1월 5일 육군소위로 임관해 국군 제9사단 제30연대 제3대대에 배속돼 제11중대 소대장으로 복무했다. 이 중위는 당시 중공군이 백마고지로 남하하기 위해 반드시 건너야 하는 북쪽 전초진지인 ‘화랑고지’를 지키고 있었다. 중공군은 화랑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대규모 병력을 집중시켰으나 이 중위가 소속된 11중대는 중공군의 거듭된 공격을 거푸 막아냈다. 중공군이 10월 7일 다시 공격에 나섰고 탄약과 식수조차 부족한 상태로 고지를 사수하던 11중대는 결국 포위됐다. 이 중위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소대원들을 독려해 적의 공격을 막아내다가 머리에 포탄 파편을 맞고 전사했다. 그의 나이 스물셋이었다. 이 중위가 지키다 사망한 화랑고지는 한때 중공군에 내줬으나 10월 15일 제29연대가 화랑고지 선상의 전초진지를 확보하면서 전투에서 승리하는 발판이 됐다. 많은 청춘이 스러져간 백마고지 전투는 6·25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전투 중 하나로 꼽힌다. 정부는 백마고지 전투에서 활약한 이 중위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1계급 특진(소위→중위)을 비롯해 을지무공훈장(1952년)과 화랑무공훈장(1954년)을 추서했다. 그리고 국가보훈부는 이번에 그를 12월의 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 국가보훈부는 이와 함께 세 명의 외국인을 ‘12월의 독립운동가’로 발표했다. 주인공은 아일랜드 선교사인 패트릭 도슨, 토마스 다니엘 라이언, 어거스틴 스위니. 우리 민족에게 일제의 패망을 정확히 예언하고 독립의 희망을 전한 공로다. 아일랜드 골롬반 외방선교회 선교사인 세 사람은 1930년대 내한해 제주도에서 활동했다. 1930년대 후반~1940년대 중반 일제의 침략전쟁이 절정에 달하고 일제가 언론을 통제하고 승전만을 과장 보도할 때 세 사람은 “중일전쟁이 장기화된다면 일본은 물자 부족으로 패전한다”, “미국이 있기 때문에 전쟁이 장기화되면 일본의 승산은 없다” 등 정확한 상황을 한국인들에게 전했다. 진실을 말했음에도 세 사람은 유언비어 유포와 불경 혐의로 1941년 12월 체포됐다. 10개월 후인 1942년 10월 도슨은 ‘육군형법 및 해군형법 위반 및 불경죄’로 징역 2년 6개월, 라이언과 스위니는 ‘육군형법 및 해군형법’ 위반으로 금고 2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이들이 전한 소식은 진실이 됐고 일본은 1945년 8월 항복했다. 일본의 패전과 함께 세 사람도 자유의 몸이 됐다. 광복 후에도 한국을 도왔던 이들은 각각 1989년(도슨), 1971년(라이언), 1980년(스위니) 선종했다. 정부도 이들이 베푼 선의를 잊지 않았다. 우리 정부는 1999년 도슨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라이언과 스위니에게는 건국훈장 애족장을 각각 추서했다.
  • ‘형제는 용감했다’…축구선수였던 쌍둥이, 함께 공군 장교로 “필승!”

    ‘형제는 용감했다’…축구선수였던 쌍둥이, 함께 공군 장교로 “필승!”

    대학교까지 함께 축구선수로 뛰었던 형제가 함께 공군 장교에 임명돼 화제다. 공군은 27일 경남 진주 공군교육사령부 대연병장에서 제153기 학사사관후보생 임관식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이날 임관식을 통해 총 205명의 공군 장교가 탄생했다. 이 가운데 여군은 72명이다. 이날 임관식에서는 쌍둥이가 함께 공군 소위로 임관돼 관심을 끌었다. 주인공은 이도훈, 이도형 형제. 두 사람은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교까지 12년간 축구선수로 활약했다. 특히 고등학교 3학년 때는 독일 쾰른 쾨니히스도르프에 나란히 입단했을 정도로 유망한 선수였다. 형제는 태극마크를 유니폼이 아닌 군복에 달기로 결심했고 동생인 이도형 소위가 먼저 공군 부사관 244기로 임관했다. 이도훈 소위가 부사관 245기로 따라왔다가 이번에 나란히 장교로 임관하게 됐다. 두 사람은 “태극마크를 단 국가대표 장교로 공군이라는 그라운드에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할 수 있게 돼 영광스럽다”며 “임무에 최선을 다하고 공군에 필요한 인재로 계속 성장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자매가 함께 임관하진 않았지만 여동생을 따라 임관한 언니 또한 화제다. 박혜원 소위는 여동생인 박혜정 소위와 함께 현역 공군 준사관인 삼촌의 권유로 군인을 결심했다. 그러나 건강 문제로 두 차례나 입영 후 신체검사에서 탈락하는 아픔을 겪었다. 동생이 먼저 임관하는 것을 지켜봤던 언니는 세 번의 도전 끝에 학사사관후보생이 될 수 있었고 함께 군생활을 하게 됐다. 두 자매의 사촌오빠인 이준헌 소위도 함께 임관한다. 박혜원 소위는 “동생, 사촌오빠와 함께 공군 장교로서 영공방위 임무를 수행하게 돼서 영광”이라며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했던 삼촌의 일생을 본받아 나 자신의 사익보다 공익을 우선시하는 공군 장교로 거듭나겠다”고 말했다. 세 남매가 나란히 공군에 복무하는 사례도 나왔다. 김선희 소위의 쌍둥이 남동생이 올해 공군 부사관 248기로 임관했고 누나인 김선희 소위가 이번에 학사사관후보생으로 임관했다. 김선희 소위는 “동생들과 함께 공군의 일원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하게 되어 뿌듯하게 생각한다”며 “여러 진로를 고민하고 도전해 공군 장교의 길을 선택한 만큼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임세현 소위는 6.25전쟁 참전용사였던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국가에 헌신하기로 결심한 사례다. 그는 예비역 육군 중령이자 금성 화랑무공훈장, 무성 화랑무공훈장을 받은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입대를 결정했다. 임 소위는 “외국에 살면서도 한국인으로서 국가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었다”면서 “해외에서의 경험을 적극 활용해 임관 후에도 한미 동맹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는 공군 장교로 거듭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공군 장교가 되기 위한 폭풍감량은 이번에도 이어졌다. 조민기 소위는 장교가 되기 위해 4개월간 120㎏에서 70㎏까지 감량에 성공했고 임관의 꿈을 이뤘다. 앞서 그의 한 기수 선배인 152기 학사장교 이우현 소위는 160㎏에서 90㎏를 빼 화제가 된 바 있다.
  • 신임 보훈심사위원장이 ‘연평도 포격’ 영웅 서정우 하사 어머니 김오복씨

    신임 보훈심사위원장이 ‘연평도 포격’ 영웅 서정우 하사 어머니 김오복씨

    2010년 연평도 포격전에서 전사한 영웅 고 서정우 하사의 어머니 김오복씨를 3년 임기의 보훈심사위원장으로 임명했다고 국가보훈부가 17일 밝혔다. 보훈심사위원장에 보훈가족이 임명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보훈심사위원회는 독립유공자를 비롯한 국가유공자, 보훈보상대상자 및 유족 요건 인정 및 상이등급 구분 판정 등 사항을 심의하는 국가보훈부 소속 합의제 의결기관이다. 김 신임 위원장은 광주대성여고 교장을 지냈고, 교직 생활 이후에는 국가보훈위원회 민간위원, 국가보훈부 정책자문위원 등을 맡아 보훈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고 보훈부는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국가를 위한 희생과 헌신의 가치를 잘 알고 있는 만큼, 국민 눈높이에서 보훈 심사를 세심히 살피겠다”며 “심사 업무의 투명성과 공정성, 형평성의 원칙을 바탕으로 보훈 심사 대상자에게 신뢰도를 제고하는 심사체계를 구축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18일 국립대전현충원 현충탑 참배와 제2연평해전, 연평도 포격전, 천안함 묘역을 참배하는 것으로 공식 일정을 시작한다. 고 서정우 하사는 2010년 11월 23일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당시 마지막 휴가를 가려고 선착장에서 배를 기다리던 중 북한군의 포탄 소리를 듣고 귀대했다가 포탄 파편에 맞아 전사했다. 고인에게는 화랑무공훈장이 추서됐고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 간첩에 맞서 총격전 끝에 사망한 경찰, ‘2024 경찰영웅’ 됐다

    간첩에 맞서 총격전 끝에 사망한 경찰, ‘2024 경찰영웅’ 됐다

    경찰청은 ‘2024 경찰영웅’으로 심재호 경위와 이재현 경장, 나성주·장진희 경사 등 순직 경찰관 4명을 선정했다고 20일 밝혔다. 경찰청은 2017년부터 해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 경찰관을 ‘경찰영웅’으로 선정해 업적을 기려오고 있다. 심재호 경위와 이재현 경장은 서울 서부경찰서 소속 강력반 형사였다. 2004년 8월 마포구 소재 커피숍에서 강력사건 피의자인 이학만을 발견한 두 형사는 신분증을 제시하고 피의자에게 동행을 요구했다. 그 순간 이학만이 흉기를 휘둘렀고 심재호 경위가 흉기에 찔려 쓰러졌다. 쓰러지는 심재호 경위를 부축하던 이재현 순경도 순식간에 달려드는 이학만이 내지른 흉기에 찔리고 말았다. 이재현 순경은 흉기에 찔리고도 이학만을 필사적으로 붙잡아 도주를 막고 제압하려 했으나 이학만은 이재현 순경을 추가로 여러 차례 찌르고 도주했다. 두 형사는 병원으로 후송됐지만 안타깝게도 끝내 순직하고 말았다. 당시 정부는 위험한 순간에도 불의에 굴하지 않고 소임을 다한 두 형사에게 1계급 특진과 함께 옥조근정훈장을 추서했다. 심재호 경위·이재현 경장의 순직은 위험직무 수행 중 사망한 공무원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이후 ‘위험직무 관련 순직 공무원 보상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는 등 예우·지원을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 또 이 사건 이후 경찰관들의 안전한 직무 수행을 위해 경량화된 보호복이 일선에 지급됐다. 충남 부여경찰서 소속 경찰관이었던 나성주·장진희 경사는 1995년 10월 부여군 정각사 인근에 무장간첩이 나타났다는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했다. 나성주 경사는 도주로 차단을 위해 태조봉 인근에서 매복하던 중에 간첩을 발견했다. 간첩과 총격전을 벌인 나성주 경사는 그만 머리에 총상을 입고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치료를 받다가 숨졌다. 장진희 경사는 총격전 이후 산속으로 도주하는 간첩을 발견해 끝까지 추격에 나섰으나 간첩이 쏜 총탄에 맞아 현장에서 순직했다. 정부는 당시 두 경찰관의 국가수호 정신을 기려 2계급 특진과 함께 충무무공훈장을 추서했다. 1997년 12월 부여 대간첩작전 전적지 현장에 경찰충혼탑이 건립되는 계기가 됐다. 조지호 경찰청장은 “전사·순직 경찰관들의 희생과 헌신에 상응하는 예우를 갖추는 일은 경찰관들의 사명감과 자긍심의 토대를 닦는 일”이라며 “올해 말까지 선정된 경찰영웅들의 추모조형물을 건립하고 참된 경찰정신과 업적을 널리 알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 한국전 영웅 군마 ‘레클리스’, 고향 제주에도 동상 세운다

    한국전 영웅 군마 ‘레클리스’, 고향 제주에도 동상 세운다

    한국전쟁 영웅 군마 ‘레클리스’의 동상이 완성돼 고향 제주에서 위용을 드러낸다. 제주도와 한국마사회 제주지역본부에 따르면 제주마축제가 열리는 오는 26일 렛츠런파크 제주(제주경마공원)에서 ‘전쟁영웅 레클리스 전신 동상 제막식’이 개최된다. 한국마사회 제주지역본부 관계자는 9일 “다리에서 목(어깨)까지 1m 40㎝의 실물 크기로 지난 6개월 동안 제작된 레클리스 동상이 제막식 때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다”고 말했다. 1949년 7월 제주에서 태어난 암말 ‘레클리스’는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미 해병대의 일원으로 입대했다. 차량이 다닐 수 없는 험한 길을 오가며 포탄과 물자 수송, 부상병사 이송 등의 임무를 도맡았다. 한두 번 갔던 길은 혼자 찾아서 가고, 부상당한 병사들을 데리고 전장에서 복귀할 정도로 영리했다고 전해진다. 1953년 3월 경기 연천 지역에서 벌어진 ‘네바다 전투’에서는 닷새 동안 쉼 없이 물자를 옮기며 승리의 일등 공신이 됐다. ‘무모할 정도로 용감하다’는 뜻의 ‘레클리스’라는 이름도 이때 붙여졌다. 정전 뒤 미국으로 건너간 레클리스는 무공훈장 등 5개의 훈장을 받았고 1959년에는 하사 계급장을 받아 미군 최초의 말 부사관이 됐다. 1960년 명예전역한 뒤 1968년 생을 다했다. 미국 해병대유산재단(MCHF)은 지난 2013년 7월 미국 버지니아주 국립해병대박물관 옆 야외 공원에 레클리스 동상을 세워 기리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미 해병대 베이스캠프인 펜들턴해병기지 등 총 6군데에도 동상이 세워졌다. 우리나라엔 2016년 경기 연천군에 ‘레클리스 공원’이 조성됐다. 오영훈 제주지사는 최근 정책 공유회의에서 레클리스 제막식과 관련해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제주에서 새롭게 인식하고 천연기념물 제주마의 우수성과 가치를 전 세계에 알리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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