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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술경영’차세대 인기직업으로 뜬다

    지난 8월말 세종문화회관이 재단법인으로 바뀌면서 실시한 첫 공채직원 선발 경쟁률은 무려 100대1이었다.17명을 뽑는데 1,700여명이 몰린 것이다.극심한 취업난 탓도 있겠지만 예술단체에서 일하고자 하는 젊은이들이 그만큼 늘어나고 있음을 말해주는 단적인 사례이기도 하다.삼성문화재단이 매년 실시하는 ‘멤피스트’(문화예술인재양성제도)에서 지원자가 가장 많이 몰리는분야 역시 예술경영이다.90년대초 영화가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듯 이제는 예술경영이라는 신직종이 그 자리를 대신한 것처럼 보인다. 국내에 예술경영이란 용어가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10년전 단국대 경영대학원에 석사과정이 처음 개설되면서부터.이후 최근 2∼3년새에 중앙대(예술대학원) 경희대(경영대학원) 숙명여대(정책대학원) 서울시립대(도시행정대학원) 홍익대(미술대학원)등이 특수대학원안에 예술경영 과정을 잇달아 만들었다. 해외유학파도 갈수록 늘고 있다.LG연암재단의 김주호부장(영국 시티대) 스튜디오 메타의 이승훈실장(뉴욕시립대) 문예진흥원 교육연수팀의 홍영주씨(뉴욕대)등 현재 20여명의 미국·영국 유학파들이 각 문화현장에서 활약하고 있다.그러나 현장경험 없이 2∼3년의 외국유학만으로 섣불리 일에 뛰어들었다가 뼈아픈 실패를 경험하는 이들도 적지않다.예술의 전당이 전문적 예술경영의 모범 사례가 된 이후 각 예술기관·단체도 앞다퉈 이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새로운 시도와 실험으로 한국적 예술경영과 마케팅의 모습을 보여준 정동극장과 이제 막 발걸음을 내디딘 세종문화회관 등을 비롯해 전문 예술경영은빠른 속도로 확산될 전망이다. 미국 아메리컨대학에서 예술경영을 전공한 문화관광부 도서관박물관과 용호성 사무관은 “앞으로 2∼3년내에 상당수의 문예회관이 독립법인화하고,현재 33관에 불과한 문화의 집이 대폭 늘어나게 되면 예술경영 전문인력들의 수요가 급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예술경영의 발전을 위해서는 전문인력의수급을 위한 제도적 기반위에 이들을 위한 자격인증제와 의무고용제,그리고인턴제도 등이 도입돼야 한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이순녀기자
  • 장애인 재활·자립 체계적 뒷받침

    중랑구(구청장 鄭鎭澤)는 24일 장애인 관련 정책수립 및 자활·취업 등을위해 관내에 거주하는 등록·미등록 장애인 전체를 대상으로 데이터베이스구축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외환위기의 영향으로 최근 2년새 급증한 실직 또는 미취업 장애인의 취업을 주선,이들이 안정된 고용기회를 통해 재활의욕을 갖게 함은 물론 이를 공공근로사업 발굴과 향후 각종 장애인 정책의 근거자료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중랑구는 이를 위해 서울 기능장애인협회 중랑구지부에 의뢰해 오는 12월 30일까지 가정방문 면담 형식으로 관내 5,333명의 장애인들이 보유한 기술과근로능력 여부 등 실태를 조사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관내 기업체를 대상으로 장애인 의무고용 이행여부를 조사,이를근거로 정확한 장애인 취업수요도 산정하기로 했다. 중랑구는 조사결과를 통해 구인·구직 현황과 작업 난이도,급여 조건,고용주와 피고용주의 이해와 고충 등을 파악,적정 일자리를 알선해 주게 된다.구청에 장애인의 취업상담과 고충을 듣는 전담 창구도 개설할 계획이다. 정진택(鄭鎭澤)구청장은 “경제난으로 위축된 장애인 취업을 돕고 복지 차원에서 이들의 재활과 자립을 돕기 위해 데이터베이스 구축사업을 추진하는것”이라고 말했다. 심재억기자 jeshim@
  • [대한시론] 고시제도 개편돼야

    정부는 공무원선발제도를 전반적으로 재검토하면서 특히 고시제도의 획기적인 개편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었다.현재 공무원채용은 9급,7급,5급 공개채용시험을 통한 충원인원이 대부분을 점하고 있다.그러나 필답시험 위주의 채용은 공정성과 객관성을 확보하는 데는 유리하지만 아무래도 지식 위주로 평가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종합적인 자질을 평가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특히 엘리트공무원을 충원하는 고시제도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현재 고시는 1∼2차는 필답시험,3차는 면접으로 구성된다.1차시험은 객관식으로 출제되는데 4∼5과목이 필수로 지정돼있고 논술형인 2차시험은 행정·외무고시의 경우 필수 4과목,선택이 2과목이다.따라서 전체과목수는 기술고시가 8과목,행정·외무고시는 11과목에 달한다.이처럼 많은 과목의 시험을치러야 하기 때문에 우수한 인재를 유치하는데 장애가 될뿐 아니라 피상적인 지식측정에 그치게 된다. 시험방법과 형식도 전통적인 필답고사에 의존하고 있어 암기 위주의 논리적인 답안작성 능력만 측정하고 있는셈이다.사법시험은 사례식문제가 많이 출제되고 있는데 행정·외무고시에서는 그런 방식이 일반화되지 않고 있어 문제해결능력의 측정이 곤란한 실정이다.현재의 시험과목과 방법만으로는 외국어 구사 등 국제화 추진능력이나 전문분야의 지식·정보활용능력을 평가하기 어렵게 돼있다.영어가 필수과목이지만 필답고사 위주이고 직렬별로 전공과목시험을 거치지만 전문지식과 능력을 평가하는 데 한계가 있다.마지막으로면접시험은 당락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짧은 시간에 근무자세와 직무수행능력에 대한 평가를 기대하기 어렵다. 현재 고시는 약 6개월에 걸쳐 세차례 시험을 실시해 합격자를 시보로 임용하고 있는데 기간을 단축하면서 1,2차 시험과목을 통폐합하고 면접시험을 강화해야 한다.이렇게 조정된 고시를 1차시험으로 해 채용예정자를 선발하고 1년이상의 교육 및 실무수습 후에 2차전형을 거쳐 채용 여부를 확정하는 게타당하다고 본다.이 경우 2차시험은 꼭 필답고사일 필요는 없다.전인적인 평가와 고급공무원으로서의 적합성 판단이중요하다.제2차시험에서 탈락하는사람은 연수과정을 재이수시키거나 6급으로 임용하는 등의 조치가 있어야 할 것이다. 독일의 고등행정 공무원시험과 사법시험은 일원화되어 주(州)별로 실시되는데 제1차시험 합격 후 2년동안 Speyer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을 비롯,공법,경제학,재정학 등 교육을 받을 기회가 선택적으로 주어지며 2년 후 제2차시험을 치르고 있다.프랑스의 국립행정대학원(ENA)도 실질적인 고급공무원 임용시험에 해당하는 입학시험에 합격해 2년간 교육을 받은 후 졸업시험 석차를임용에 반영하고 있다.이런 선진국의 제도들을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고시 응시자격을 학사학위 취득자나 취득예정자로 제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또 고시준비에 매달려 대학교육을 소홀히 하는 폐단을 방지하기 위해 대학성적이 평균 B학점 이상인 자만이 응시할 수 있게 해야 하며 장기에걸쳐 고시에 집착하는데서 오는 개인적 또는 국가적 낭비를 감안해 응시횟수를 5회 이내로 제한할 필요가 있다.무엇보다도 시험과목을 축소해 수험생들의심리적 부담을 줄이면서 심층적인 평가가 가능하도록 하고 사례 위주로출제하여 문제해결능력 측정에 역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예컨대 헌법이나 국사는 객관식 시험과목으로 할 것이 아니라 나중에 직전(職前)교육과정에서 이수·평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영어를 비롯한 외국어과목도 독해나 문법 일변도가 아니라 실제 회화능력까지 평가할 수 있도록 전문기관에 위탁하여 평가하는 방안이 강구되어야 한다.현행 고시제도는 이러한 방향으로의 근본적인 개선이 불가피한 상황이다.그러나 일부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기본틀을 바꾸어 당장 내년부터 시행에 옮기는데는 여러 부작용이 예상된다.무엇보다도 시험응시를 목표로 오랫동안 준비해온 수험생들의 혼란과 불이익을 최소화해야 할 것이다.따라서 일정한 예고기간을 두고 수험생과 교육기관들이 새로운 충원제도에 대응하여 준비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줘야 할 것이다.그리고 필답시험의 비중을 낮추고 면접이나 인턴기간의 근무평가 등 주관적 평가가 강화되는 경우의 부작용에 대해서도 충분한 대비책을마련해야 할 것이다. 金 信 福 서울대 행정대학원장 한국행정학회장
  • [대한포럼] 당산철교 재개통의 교훈

    “교량 구조물은 하나의 숨쉬는 생명체이다.안전하고 견고해야 할 뿐만 아니라 아름다워야 하며 주변 환경과 함께 숨을 쉬어야 한다” 오늘의 미국 도시를 있게 한 공공건설의 선구자 로버트 모세스가 한 말이다.그렇다.교량은사람과 차가 그 위로 다니는 기능면만 가지고는 생명력이 없다.교량이 생명력을 십분 유지하려면 개성 있는 조형미와 더불어 안전하고 견고한 건강함이 어우러져야 한다.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진찰과 애정어린 보살핌이 요구된다. 안전문제로 3년 전 철거되었던 당산철교가 재건설돼 22일 재개통됐다.철거당시 ‘전면 보수’와 ‘재건설’문제를 놓고 열띤 토론회까지 열어 전문가들 사이에도 의견이 엇갈렸던 처방이 ‘재건설’쪽으로 가닥 잡히고 3년 가까운 공사끝에 새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 “갈아타는 불편이 없어지고 당산역에서 합정역까지 셔틀버스로 가는데 걸리던 30여분이 절약돼 그동안의 불편함이 꿈만 같이 여겨집니다” 철교 재개통과 더불어 도심 순환선의 기능이 회복된 지하철 2호선을 이용하는 승객들의 얼굴에오랜만에 환한 미소가 찾아왔다.한강의 물은 철거 당시와 마찬가지로 도도히 흐르고 전동차가 철교위를 미끄러지듯 지나자 승객들은 만족한표정으로 창밖을 내다보기도 했다. 재개통된 당산철교는 상부가 박스 구조의 상로교로 건설되고 내진설계가 반영되는 등 기존 교량과는 다른 구조를 갖췄다.방진용 레일을 깔아 소음을 줄였으며 변형률을 측정하는 계측시설 등 안전시설도 크게 보강돼 앞으로 100년은 견딜 것이라고 한다.지난 84년 건설된 당산철교는 균열 등 안전문제로지적을 받아오다가 96년 12월 31일 교각 21개와 상판 철거 및 재건설 공사에 들어갔으며 이에 따라 순환선인 지하철 2호선 당산역∼합정역 구간이 끊겨서울 남서지역의 교통체증을 가중시켰다. 당산철교 재개통 과정은 우리에게 값비싼 교훈을 남겼다.70∼80년대 외형적인 고속성장은 부실을 가져왔고 재시공은 그 대가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가르쳐 줬다.94년 10월 출근길 성수대교 허리가 갑자기 내려앉고 32명의 무고한 시민이 희생되자 ‘설마 다리가 무너질까’하는 우리네 생각이 얼마나 안이한 것인가를 일깨워 줬다. 고작 15년 만에 주저앉은 성수대교는 ‘빨리빨리’만 외치던 우리의 안전불감증에 일대 경종을 울려주었고 이후 서울시는 한강교량에 대한 일제 안전점검을 실시했다.그 결과 한강다리 23개 중 서울시가 관리하는 17개에서 무려 4,100건의 결함이 발견돼 대대적인 보수 작업을 벌였다.당산철교는 결함이 너무 커 재시공을 벌였으나 아직도 영동·천호·한남·한강대교등 8개 다리의 교각에는 치명적 손상이 방치되고 있어 성수대교의 참사가 재연될 위험이 상존하고 있다.위험교량의 보수가 시급하다. 당산철교는 처음 남광토건이 87억원의 공사비로 건설했으나 재공사비는 철거비 6억원을 포함,735억원이 소요됐다.부실시공으로 10배 가까운 대가를 치른 셈이다.이와 함께 사회·경제적 간접 손실액도 최소 3,000억원으로 전문가들은 추산하고 있다.그러나 가장 큰 손실은 시민들 가슴에 남겨놓은 불신과 불안이라 하겠다. 한강다리 건설 100주년인 99년도 저물어 가고 한달 후면 새천년을 맞는다. 우리는 지난 한세기 많은 것을 배웠고 또 잃었다.1900년 7월 한강철교가 개통돼 ‘도강(渡江)’의 편리함을 맛보았고 ‘붕괴(崩壞)’라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우리는 편리함만을 추구하다 교량의 생명력을 간과하는 우(愚)를범했다. 재개통된 당산철교가 100년의 숨쉬는 생명력을 유지토록 하기 위해서는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끊임없는 진찰과 정성어린 보살핌이 뒤따라야 한다.당산철교가 부실의 과거를 털어내고 21세기로 향하는 다리로 다음세기에 기억되기 위해서는 안전진단과 보수가 뒤따라야 한다. 李基伯 논설위원 kbl@
  • [국악] 조선 궁중무용 ‘정재제전’

    정재(呈才)란 조선시대 궁중 잔치에서 추던 춤.국립국악원이 궁중무용의 아름다움을 되살리고자 해마다 여는 정재제전의 올해 이름은 ‘궁중의 한나절정취를 찾아서’이다.25·26일 오후7시 국립국악원 예악당(02)580-3300∼3. 무대에 오르는 춤은 쌍무고춘앵전 수보록 영지무 왕모대가무 등 다섯편. 이 작품들을,그 시절의 아취를 느낄만한 따뜻한 분위기 속에 저녁-이른 새벽-아침-점심-저녁이라는 시간 흐름에 따라 엮는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보유자인 김천흥의 고증을 바탕으로 국립국악원의 하루미가 재안무하고,이병훈 용인대 연극과교수가 연출한다.반주는 국립국악원 정악연주단이 맡는다. 이용원기자 ywyi@
  • 신당 2차 영입인사 분석

    신당 창당추진위에서 11일 발표한 2차 영입인사들의 가장 큰 특징은 16대총선에서 수도권 및 취약지역을 공략할 ‘필드형’이라는 점이다.때문에 2차 추진위원 영입기준은 출신 지역과 전문 분야보다는 ‘중량감’에 무게를 뒀다는 평가다.발기인과 1차 추진위원 선정기준이 각 분야의 대표성,지역안배였던 것과 비교하면 크게 차이가 난다. 연령별로는 50∼60대가,출신 직업별로는 전문경영인·중견언론인·전현직관료 등이 신당 대열에 대거 합류한 것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연령별로는 30대가 5명,40대 4명,50대 12명,60대 9명으로 나타났다.50∼60대가 21명으로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분야별로는 전현직 공무원이 6명으로가장 많고,전문경영인이 5명,장성 출신도 3명이나 됐다.법조계에서 4명,언론계도 4명이 포함됐다.이밖에 시민단체(2명),금융(1명),농민운동(1명),학계(2명) 인사들도 포함됐다.여성계에도 6명을 배려했다. 2차 추진위원들의 면면을 분석해 보면 16대 총선 당선가능성에 무게를 둔‘실전용’이라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다.내년 총선에서 수도권과 영남지역등 취약지역 공략에 최선을 다한다는 여권의 총선 구도와도 맞물려 있다.신당추진위 김민석(金民錫)대변인은 “호남·충청권 출신은 수도권에 출마하고영남 출신은 상당수가 출신지역에서 출마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 및 수도권 출마가 예상되는 인사로는 곽치영(郭治榮) 데이콤 사장,김영훈(金英薰) 대성산업 사장,김진호(金辰浩) 전 합참의장,김창수(金昌洙) 조선일보 주간부 차장,이득렬(李得洌) 한국관광공사 사장,이석형(李錫炯·변호사) 경실련 부정부패추방운동본부장,이승엽(李承燁) 삼환컨설팅 대표,이재달(李在達) 우진화학 부회장,이종걸(李鍾杰)변호사,전수신(全秀信) 삼성라이온즈 대표이사,정성호(鄭成湖)변호사,정세현(丁世鉉) 전 통일부차관 등이다.정세현 전 차관은 임실·순창,곽치영 사장은 마산,김창수 조선일보 차장은 대전 출마도 고려하고 있다.특히 이승엽(안양 동안)·이재달(경기 파주)·이종걸(안양 만안)·전수신(수원 또는 용인)·정성호(경기 연천 또는 동두천)위원 등은 출마 예상 지역구가 보다 구체적이어서현역의원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김규재(金圭在) 대구상공회의소 부회장,송화섭(宋花燮) 대구대 교수,이순목(李淳牧) 우방그룹 회장 등은 대구에서,이근식(李根植)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이사장은 경남 고성에,정학균(丁學均) 한국노총 부산시협의회 회장은 부산에서 출마할 것으로 알려졌다. 강동형기자 yunbin@ * 386세대 경제전문가 2명‘눈길’11일 발표된 여권 신당창당추진위의 영입인사에는 특이한 경력의 386세대전문가 2명이 포함됐다.서울대 경제학과 출신 배선영(裵善永·39) 전 재경부 서기관과 같은 대학 심리학과 출신 이승엽(李承燁·39) 삼환컨설팅 대표가주인공.이들의 정계 입문은 지난 6·4 인천 계양·강화갑 재선거 당시 송영길(宋永吉)후보의 낙선으로 침체됐던 386세대의 정치 도전에 활력을 불어 넣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경남 함양 출신인 배씨는 대학 3학년때 행정고시 24회에 최연소 합격한 데이어 외무고시 16회도 통과한 수재형 관료 출신이다.83년 재무부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한 뒤 재무부 국제금융국,재경원 감사관실,청와대경제비서실을 거쳤다. 특히 그는 청와대에 근무하던 지난해 케인즈 이론을 반박한 ‘화폐·이자·주가에 관한 새로운 패러다임’이라는 책을 저술,화제를 뿌렸다.동양철학계의 거두인 고(故)배종호(裵宗鎬) 연세대 교수의 6남 가운데 막내이며 미혼이다.서울 강남지역 출마를 바라고 있다.경기 안양 출신인 이씨는 세계 5대 금융컨설팅 회사인 ‘프라이스 워터하우스 쿠퍼스’의 국내 최연소 임원을 역임한 금융전문가로 유명하다.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과 한국IBM 이사대우등을 역임하면서 주요 기업의 경영혁신과 인수합병 작업에 관여했다. 대학시절 학생운동을 하다 중퇴한 이씨는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아태재단 후원회장을 지내다 작고한 이동진(李東鎭) 전 의원의 차남으로 경기 안양 동안갑 출마를 기대하고 있다. 박찬구기자 ckpark@ * 영입인사 면면..군·관·재·학계 인사등 두루 망라 11일 발표된 여권의 2차 신당추진위원 면면은 다양하다.관료,군,전문경영인,재계,학계,언론계,법조계,여성계,시민운동단체 등에서 영입됐다. 관료출신 가운데 정세현(丁世鉉) 전 통일부차관은 20년이 넘게 대북 관련업무를 담당해온 통일안보 전문가다.최홍건(崔弘健) 전 산자부차관과 이근식(李根植) 전 내무부차관,남동우(南東佑) 전 강원도정무부지사,김규재(金圭在)전 안동시장도 있다. 군 출신으로 참여한 김진호(金辰浩) 예비역 육군대장은 ROTC 2기 출신으로최초로 합참의장에 올랐다.4성장군을 지낸 편장원(片將圓) 전 합참1차장은남북군사회담 대표를 맡기도 했다.이재달(李在達) 우진화학 부회장은 예비역 육군중장이다. 재계에서는 영남 출신 인사들이 눈에 띈다.대구의 이순목(李淳牧) 우방그룹 회장과 마산의 곽치영(郭治榮) 데이콤 사장,부산의 전수신(全秀信) 삼성라이온즈 대표이사 등이다.전경련 상임이사인 김영훈(金英薰) 대성산업 대표와충북 출신의 여성기업인인 하태리(河泰里) 동양도자기 대표도 포함됐다. 언론계에서는 중량급 앵커와 중견 신문기자 출신이 참여했다.이득렬(李得洌) 전 MBC사장,최동호(崔東鎬) 한국방송진흥원 이사장,조선일보 노조위원장을지낸김창수(金昌洙) 주간부 차장 등이다. 법조계의 이석형(李錫炯)변호사는 경실련 부정부패추방운동본부장을,이종걸(李鍾杰)변호사는 성폭력상담소 이사를 맡고 있다.정성호(鄭成湖),최인호(崔仁虎)변호사 등도 폭넓은 시민단체 활동을 벌여오고 있다. 노동계의 경우 배석범(裵錫範) 전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리는 제1기 노사정위원회에 민주노총 대표를 지냈다.여성인 김영주(金榮株) 전 금융노련 부위원장과 부산지역 노동운동가인 정학균(丁學均) 전 한국노총 부산시협의회장 등도 참여했다. 박대출기자 dcpark@
  • [집중취재] 居昌 등 양민학살 10여건 진상규명 본격화

    *노근리사건 계기로‘한국전쟁 의문사’관심 고조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 ‘노근리사건’을 처음으로 세상에 알린 정은용(鄭殷溶·76)노근리사건대책위원장이 지난 94년 사건의 진상을 실화소설로 엮은 책의 제목이다.책 제목대로 우리는 그동안 그들의 ‘아픔’을 얼마나 절감해 왔는가.피해자의 역사는 외면해도 되는 것인가.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이데올로기의 갈등으로 빚어진 동족상잔의 ‘상처’ 가운데 하나인 ‘노근리사건’에 반세기만에 ‘진실의 햇살’이 내리쬐고있다.지난 9월말 미국 AP통신은 1년여에 걸친 현장취재와 문헌조사,관계자들의 증언청취를 토대로 ‘노근리사건’은 피난민 400여 명이 미군의 무차별폭격과 사격에 의해 학살당한 사건이라고 보도하였다.AP통신의 보도는 기존국내언론의 보도를 바탕으로 한 것이지만 가해자인 미군병사들의 증언과 관련자료를 추가로 발굴했다는 점에서 노근리사건의 진상규명에 한걸음 더 다가섰다고 할 수 있다.이 보도는 한국과 미국에서 커다란 반응을 불러일으켰다.특히 지난 4일에는 당시양민학살에 가담했던 미군병사 한 사람이 노근리를 사죄방문한 바 있다. 아울러 노근리사건을 계기로 한국전쟁 전후·전쟁중 공권력(군·경찰)에 의해 자행된 양민학살문제를 종합적으로 재점검,구체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그러나 이들 사건이 ‘마무리’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과 논쟁이 예상된다. 우선 ‘노근리사건’을 보는 시각차 문제다.유족측은 이 사건이 ‘무고한양민에 대한 무차별학살’임을 강조하고 있는 반면 미국측은 ‘전쟁상황’에서 발생한 사건임을 감안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이는 보상문제를 가름하는 중요한 관건이다.따라서 노근리사건에 대한 피해자 보상문제는 미국측의각별한 이해와 배려가 필요하다.미국은 민간인 504명이 미군에게 학살당한,월남전 최대의 양민학살사건인 ‘밀라이사건’을 처리하면서 당시 학살에 가담했던 육군중위 1명을 기소했을 뿐 피해자에 대한 보상은 하지 않았다.이는미국이 이 사건이‘전쟁상황’에서 발생한 사건임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진상규명과 관련,의외로 장시간이소요될 가능성도 있다.미국측은 정확한진상조사를 내세워 방대한 자료검토와 관련자 증언청취를 주장하고 있다.다만 미국측이 이 사건의 처리를 군 수사기관격인 육군성내 감찰기관에서 담당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해자조사 문제는 상당한 수준까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노근리사건을 계기로 한국전쟁 전후에 다른지역에서 발생한 양민학살사건에 대해서도 ‘관심’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지난 96년 특별법이 제정돼 현재 명예회복·위령사업 등이 진행중인 ‘거창사건’을 비롯해‘함평사건’‘문경사건’‘고양사건’‘여순사건’ 등이 모두 10여 건의 ‘양민학살’이 당국의 진상규명·보상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피해자들은 대개 한국전쟁 전후에 ‘통비(通匪)분자·좌익분자 소탕작전’이라는 명목하에 군이나 경찰들에게 학살당한 양민들이다.그동안 피해자나 유족들은 유족회등을 구성,수집한 자료나 증언을 바탕으로 반세기 가까이 관계당국에 진상규명을 호소해 왔다.‘함평사건’의 경우 60년 국회에서 특위를 구성,진상조사보고서까지 작성했었으나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함평군청에서 이 사건을담당해온 전인균씨(법무통계 담당)는 “군 당국이 작전일지·전투상보 등은기밀자료라며 공개를 거부하고 있어 핵심자료에 접근이 불가능한 실정”이라고 말했다.그러나 국방군사연구소 나종삼 전사부장은 “한국군에서 작전일지·전투상보 등을 작성하기 시작한 것은 50년 12월경부터이며 ‘양민학살’을 확인하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대개의 양민학살사건의 경우 피해자들의 증언 이외에 확보된 자료가 거의 없어 진상규명 자체가 어려운 실정이다. 한편 이미 관련자료가 미국 등에서 확보된 사건의 경우 진상규명에 ‘서광의 빛’이 보이는 측면도 있다.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노근리사건이 마무리 되면 다른 지역의 양민학살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에 본격적으로 나설 계획인 것으로 안다”고 밝히고 “20세기에 발생한 불행한 일은 20세기에 해결하고넘어가는 것이 역사의 정의”라고 말했다. 정운현기자 jwh59@ -차영구 국방부 정책기획국장 문답 ‘노근리사건’이 군의 주요현안가운데 하나로 떠올랐다.올 정기국회 국감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 의원들의 질의가 쏟아졌고 국방부는 진상규명 등 문제해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다음은 국방부 차영구(52·육군소장) 정책기획국장과의 일문일답. ■‘노근리사건’ 해결과 관련,국방부의 입장은. 우선 정확한 진상조사가 급선무라고 본다.관계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관련자료 검토,현장조사 등이 치밀하고도 조직적으로 진행돼야 할 것이다. ■국방부 내에 별도의 조사기구 같은 것이 구성돼 있나. 현재 정부차원에서총리실 산하에 국무조정실장이 반장으로 있는 대책반이 구성돼 있으며 국방부 조사반은 그 산하에 포함돼 있다.국방부 자체 조사반은 국방부 정책보좌관이 반장,국방군사연구소장이 실무반장을 맡고 있으며,역사학 교수,6·25참전군인,유족 등으로 구성된 외부자문위원단을 현재 구성중이다. ■‘노근리사건’은 미국측의 반응·협력이 중요한데. 미 육군성 에커먼 감찰관(중장)과 협의하는 과정에서 미국이 이 사건을 적극적이고 진지하게 다루려 한다는 인상을 받았다.현재 미국은 이 사건과 관련,트럭 1대분 분량의자료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안다.미국측 역시 피해자들의 증언내용과 이 자료들을 토대로 광범위한 조사작업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보상문제는 어떻게 됐나. 아직 거론된 바 없다.미국측은 ‘선조사 후처리’방침을 밝힌 바 있는데 결과에 따라 ‘처리’할 것으로 본다.한가지 덧붙일 것은 이 사건의 처리과정에서 한미군사동맹체제가 위협받아선 곤란하다는점이다.억울한 개인이 있어서는 안되겠지만 국가안보 역시 중요한 문제다. ■국군에 의한 양민학살사건과 관련,국방부가 관련자료 공개에 미온적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는데. 소관사항이 아니라 단언할 수 없다.다만 진상규명에필요한 자료라면 관계규정에 의거,참고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정운현기자 * 49년만에 訪韓‘노근리 사격’美 데일리씨 한국민들에게 엄청난 분노와 회한을 안겨준 노근리 기관총 난사사건의 장본인으로 미 NBC방송 주선으로 지난 1일부터 닷새간 방한, 노근리 현장과 유가족들을 찾아보고 돌아온 에드워드 데일리씨는 5일 출국직전 기자와 만나 이번 방문을 “화해로의 여행”이라고 말하고 “이제야 원죄같은 악몽에서 조금은 벗어날 것같다”고 말했다. 한국전 개전 직후인 50년 7월26일 저녁 노근리에서 미 제1기갑사단 7연대소속 중사로 수백명의 피란민들을 향해 기관총을 난사했던 그의 노근리 방문은 49년여를 한(恨)속에 살아온 피해자들과의 화해인 동시에 자신의 ‘과거’와의 화해였다.19살의 나이에 ‘전쟁’의 이름으로,‘명령’이라는 이름으로 어린이,부녀자들을 향해 총을 쏘았고 이제 68세의 노인이 돼 그 피해자들을다시 찾아 사죄하고 함께 부둥켜안고 울었던 것이다. ■유가족들과는 나눈 이야기는. 유가족들을 만나기로 한데는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나는 노근리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있다고 믿지 않았다.대전에서 그들의 얼굴을 대하는 순간 심장마비를 일으킬 것같은 기분이었다.유가족들이 당시 상황에 대해 많은 질문을했고 나는 기억하는 대로 솔직히 대답하고 그분들에게 사과했다. ■피란민들을 왜 쏘았나. 7월25일 오후 늦게 우리 부대는 영동에 있는 제8연대로 합류하라는 명령을받았다.대전은 이미 함락됐다고 들었다.우리 부대는 26일 오후 노근리 인근철교에 도착했다.주민들은 이날 새벽부터 폭격을 피해 굴다리밑에 숨어있었다.오후 늦게 중대장인 맬번 챈들러 대위로부터 기관총을 굴다리 양쪽에 설치하라는 명령을 받았다.피란민들이 밖으로 나오면 무조건 사살하라고 했다. ■터널 밖으로 나오는 사람들만 쏘았나.아니면 터널 안으로도 쏘았나. 터널 안으로도 쏘았다.우리도 극도의 공포와 혼란에 빠져 있었다. ■피란민들 쪽에서 응사가 있었는가.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때였다.터널안쪽에서 나오는 서너번의 총구 불길을내눈으로 보았다.기관총은 우군끼리 겨냥하지 않도록 예각을 이루어 배치됐다.하지만 지금 생각하니 반대편쪽 우리편에서 날아온 총탄이었을 가능성도배제할 수는 없다. ■왜 피란민들을 적으로 간주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고 보는가. 북한군 게릴라들이 피란민 대열에 숨어있다는 풍문이 무성했고 병사들은 극도의 공포에 떨었다.죽은 피란민 사이에 북한군 복장을 한 시체들과 북한군무기들이 나왔다는 말도 들었다. ■왜 이제 와 사실을 털어놓을 생각을 하게됐나. 전우들과는 정기적으로 만나지만 누구도 노근리 일을 입에 담지 않았다.부녀자와 어린이들을 죽인 일을 누가 입에 담고 싶어하겠는가.2년전 노근리 사건을 취재하던 AP통신 기자가 국방부 사료를 뒤지다가 내 이름을 확인하고는 찾아왔다.내게 ‘진실을 말해주겠느냐’고 물었고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그에게서 생존자가 있다는 말을 처음 들었다. ■노근리 사건이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노근리에서 남하하다 그해 8월12일 고령 낙동강 전선에서 북한군 제10사단25연대에 포로로 잡혔다.그뒤 북한군의 선전용 겸 방패막이로 낙동강 전선에 투입됐다가 9월12일 왜관에서 탈출해 천신만고 끝에 부대로 복귀했다.한국전과 노근리 사건은 내 인생에 최대의 악몽이다.정신과 치료도 몇번 받았다. ■한미 양국에서 진상조사가 시작됐다.끝까지 진실을 말해주겠나. 조사단에게 진실을 말하겠다.유가족들의 고통을 더 이상은 외면하지 않겠다. 이기동기자 yeekd@
  • [김삼웅 칼럼] 매카시와 정형근과 언론

    주한 미국대사관 문정관을 지낸 그레고리 핸더슨은 한국 정치를‘회오리바람형 정치’라고 분석한 바 있다.무슨 일이 벌어지면 회오리바람처럼 일시에모든 것을 휩쓸고만다는 것이다. 핸더슨의 지적은 지금도 바뀌지 않는 것같다.‘언론문건’을 둘러싸고 정계와 언론계는 한바탕 회오리바람에 휩쓸렸다.한국 정치의 후진성과 언론의 저급성이 한목에 드러난다.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이 정부가 언론장악을 기도하고 있다는‘언론문건’을폭로하면서 정국은 삽시간에 태풍권으로 진입하고 회오리바람은 여야관계를대치상태로 만들었다.탈선 언론인이 문건을 만들고 또다른 탈선 언론인은 문건을 훔쳐 정치인과 거래했다. 일부 언론은 본질 규명보다 자사에 유리 또는 불리한 내용을 확대 또는 축소하거나 선정적 보도로 정쟁을 부추긴다. 정 의원의 무책임한‘폭로’와 죽기 아니면 살기로 공방에 나선 여야의 대결에서 정치는 실종되고 국회는 밀림의 싸움판이 되었다.‘막가파’식의 대결에서 정치는 자정기능을 상실했다.마치 반세기 전 명예욕과 증오심에 가득찬매카시 상원의원의 폭로로 미국 정계가 광기에 휩쓸렸듯이 그런 양상이다. 정 의원의 언행은 매카시와 비슷한 대목이 적지않은 것 같다.1950년 2월20일매카시 의원은‘볼록하고 흠집이 많이 난 황갈색 손가방’을 들고 의사당에나타났다. 장내가 긴장되었다.며칠 전‘예고편’을 폭로한 바 있었기 때문이다.매카시는 다시 많은 정치인과 관료를 공산주의자 혹은 그 동조자라고 폭로했다. 정 의원은 11월25일 국회 본회의장 발언대에 섰다.여야 의원과 기자들이 긴장했다.‘폭로’가 예고되었기 때문이다.그는 7쪽짜리 보고서를 공개하고,“이 문건은 이강래 전 청와대정무수석이 극비리에 작성해 현 여권 실세를 통해 김대중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폭로했다. 그러나 매카시의 경우와는 달리‘폭로’는 이틀 후 문일현 중앙일보기자가문건을 만든 것으로 밝혀지면서 거짓임이 드러났다.그런데도 문건 작성자를이종찬 국민회의부총재와 이강래씨라고 지목하고 입수 경위를 언론사 간부→이 부총재 측근→여권에 가까운 사람→여권 실세→평화방송 이도준 차장으로말을 바꾸면서 폭로전을 계속하고 언론보도의 중심자리에 섰다. 매카시가 그랬듯이. 매카시는 연일 시간과 장소를 바꿔가면서 적대세력과 무고한 관리·지식인들을 공산주의자로 매도했다.그의 선동적 발언을 부채질한 것은 언론이었다. 매카시가 폭로전을 벌이는 동안‘완전히 새로운 기자집단’이 생겨나 그의참모진을 돕고 언론에 대서특필했다. ‘매카시 광풍’의 큰 책임은 그가 속한 공화당 지도부의 방조와 방관이고,다음은 상업주의와 정파의식에 물든 언론이었다.정 의원의 폭로와 말바꾸기행각에 일부 언론이 보인 행태는 반세기 전 매카시 선풍 당시 미국 언론의보도와 크게 다르지 않는 듯하다.더욱이‘문건거래’에서 보인 추악상까지겹치면서 한국판‘정(鄭)카시즘’의 절정을 이루었다. ‘미국의 치욕’으로 자리매김된 매카시 선풍은 얼마 후 매카시가 의회에서제명되고 언론이 이성을 회복하면서 마무리되었다.매카시의 충동적 발언이단지‘대중의 관심을 끌 만한 것’이라는 이유 하나로 언론의 본래 책무인진실규명을 외면한 채 무책임하게 대서특필한 신문이 그의 정치적 광기에 후원자 노릇을 한 것이다. 아직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일종의 해프닝에 가까운 사건을 음모와 공작으로부풀려서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는 정치 작태는 청산돼 마땅하다.이 사건이 정치와 언론개혁의 필요성을 거듭 확인시켜준 것이 소득이라면 소득이다. 지금은 금세기 마지막 정기국회 기간이다.민생과 개혁법안이 쌓여 있다.새천년을 준비하느라 밤을 새워도 모자랄 때이다.국민이 IMF체제에서 고통을겪으며 개혁에 땀을 흘릴 때 자체 개혁마저 외면해온 국회가 국력 소모에만땀을 흘린다면 국민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언론 또한 마찬가지다. 문제의 문건이 권력의 작용인지 해프닝인지 검찰조사를 통해 밝히도록 하고면책특권의 악용 방지까지를 포함하여 국회의원의 자질, 제도, 기능 등 정치개혁을 서둘러야 한다.정치가 언제까지 스스로의 자정력을 갖지 못한 채 자학과 타학의 질곡에서 메르포스의 새처럼 거꾸로 날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아닌가.언론 또한 마찬가지다. 김삼웅 주필
  • [대한광장] 대한민국의 침묵

    한국전쟁 발발 직후 피란지 대전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무초 주한미대사를만났는데 이 자리에서 무초는“각하,이제 전쟁은 당신들의 전쟁이 아니라 우리의 전쟁이 되었습니다”라고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곧이어 7월12일 한국전쟁의 작전권은 미 극동사령관 맥아더에게 이관되었고,이승만은“대한민국에 있어서 UN의 공동 군사노력에 있어 한국 내 또는 한국 근해에서의 작전중인 유엔군의 모든 부대가 귀하에게 통솔되고 귀하가 그 최고사령관에 임명되어 있는 사실을 감안하여 본인은 현재의 작전상태가 계속되는 동안 일체의 지휘권을 위촉함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결국 ‘대한민국’은 전쟁의 실질적인 주인공이었으면서도 주인으로 대접받지 못하는 어정쩡한 상황에 계속 직면하였다.유엔군 병력의 반수 이상을 차지한 한국측은 부사령관 지위도 얻을 수 없었고,38선 수복 후 북으로의 진격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으며 심지어는 휴전선을 어디에 설정할 것인가에 대한 결정에서도 완전히 배제되었다. 전쟁 중 마셜 미 국방장관이 내한하였으나 대통령은 물론 육군참모총장도만나지 않은 채 미 8군의 벤플리트 장군과 요담하고 떠난 일도 있다.이 사건을 두고 당시 육군참모총장이었던 정일권은 “섭섭하다 못해 배신당한 느낌마저 들었다”고 말하면서 “원조받는 입장의 참모총장이 겪어야 했던 이 섭섭함은 지금껏 커다란 마음의 상처로 남아 있다”고 토로한 바 있다. 그러나 우리 민초들은 군지휘관이 입은 정신적 상처와는 비할 수도 없는 고통을 이후 겪게 되었으며 ‘우방’이라는 논리 속에서 그들이 겪었던 ‘이해할 수 없는’ 상황만큼 무초의 말을 실감케 해주는 일은 없었다. 전쟁이 발발하기 이전 1949년 6월21일에 이미 미 극동군사령부는 유사시에대비하여 480명의 미 군사고문단을 포함한 2,000여명의 재한 미국인 철수계획을 미리 짜놓고 있었다.‘한국전쟁’에서 스톤은 자신이 만난 보좌관이 남한의 미군 장교 가족들과 그외의 사람들을 후송하기 위한 선박들이 준비되어 있었다는 증언을 한 사실을 중시하였다. 실제 미국은 전쟁이 발발하자 단 3일 동안에 1명의 실종자만 냈을 뿐 전원을 일본으로 무사히 철수시켰다.26일부터 29일까지 도합 2,000여명의 미국인이 수송기와 배편으로 한국을 떠났다.미 CIA 요원을 지낸 박 하리마오는 이러한 철수가 아주 치밀하게 준비된 것이라고 증언하고 있다.물론 자국민 보호를 위한 미국의 이러한 조치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그리고 전쟁 중미군 3만명이 전사한 일을 가볍게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노근리를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우방’인 미군의 총탄에 수많은 국민들의 목숨을 내맡기고도 지금껏 제대로 목소리 한번 내지 못한 우리는 무엇이냐는 것이다. 형식상으로 한국전쟁은 한국과 유엔,아니 정확히 말하면 한국과 미국의 확고한 동맹 속에서 치러진 전쟁이었다.그러나 사실 ‘우방’,‘동맹’이라는것은 냉엄한 국제질서 속의 대등한 지위에 있는 국가간의 관계에서나 성립할 수 있는 개념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다. 이 점에서 본다면 무초를 비롯한 미국인들은 애초부터 솔직하게 한국전쟁이 자신들이 주도한 전쟁이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생각된다.오직 한국정부만이 그러한 주장을 ‘천기 누설’이라도 되는 것처럼 억제해온 것이다.그렇다면 역대 정부가 피학살자들의 ‘진상규명’요구를 ‘국가안보’ 혹은 ‘한·미우호’의 명분으로 금기시해온 사실이야말로 여전히 ‘진실’을 두려워하는 세력이 한국 정치를 압도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닌가. 뒤늦게나마 미국측에 의해 확인되고 있는 도처에서의 양민학살건과 한국인을 사실상 적으로 취급한 그러한 행동이 한국인에 대한 멸시와 ‘인종적 편견’ 없이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 확인되고 있는 지금 미국은 양심과 정의라는 또 한번의 강자의 포용력을 과시하면서 한국전쟁을 뒷수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우방’의 심기를 건드릴 수 없어 무고한‘국민’의 희생에 대해 항의 한번 해보지 못한 한국의 시계는 50년 동안 멈추어 서있다.침묵의 세월은 너무나 길었다.한국정부가 이 긴 침묵을 거두고 당당하게 나서서 사건의 진상규명에 앞장설 때만이 한·미간에 진정한‘우리’의 관계가 수립될 수 있으며,지금도 ‘청심환을 먹어야 잠을 이룰 수 있는’ 피해자들이 국가의 품안에서 안식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김 동 춘 성공회대 교수·사회학
  • 與, 도·감청 정쟁중단 촉구

    국민회의는 21일 도·감청 문제를 둘러싼 정쟁 중단을 한나라당에 촉구하고나섰다. 국민회의 이영일(李榮一)대변인은 이날 ‘한나라당은 선동을 중지하고 법개정에 나서야 한다’는 제목의 논평에서 “통신비밀보호법의 개정을 통해 국민들이 보다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한나라당도 그 목적이 정치 선동이 아니라면 법개정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이어 “현재의 통신보호비밀법은 국민회의가 야당시절 당시 여당이었던 한나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만들었기 때문에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이 대변인은 “한나라당은 지난 2개월동안 도감청문제를 이슈화했지만 불법사례를 한 건도 제시하지 못했다”고 비난했다. 한편 한나라당은 국정원이 이부영(李富榮)원내총무를 명예훼손 및 기밀누설혐의로 고소한 것과 관련, 이날 천용택(千容宅)국정원장을 무고 및 국정원법·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서울지검에 고발했다. 강동형기자 yunbin@
  • 日 오사카 知事, 선거운동원 여대생 성추행 혐의

    성추행 의혹을 받고 있는 요코야마 노크 오사카(大阪)지사(67)가 의회로부터 반성하라는 ‘경고장’을 받았다. 오사카 의회는 21일 본회의를 열어 지사로서 행정의 신뢰를 회복하고 성추행과 관련,반성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오사카 의회가 지사의 품위나정치적 자세를 문제삼아 결의안을 채택하기는 77년 이후 22년만이다. 회의에 앞서 공명당은 요코야마 지사의 문책결의안을,공산당은 불신임결의안을 제출키로 하는 등 일부 정당들이 강경방침을 세웠으나 자민당 등과의협의에서 ‘반성결의’로 절충을 본 것으로 전해졌다. 요코야마 지사는 지사 선거 직전인 지난 4월8일 선거운동차량 안에서 선거운동원이었던 여대생(21)의 허벅지를 만지는 등 성추행한 혐의로 오사카 지검에 고소당했다.그도 이 여대생이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있다며 무고혐의로맞고소했다. 더욱이 이 여대생은 지난 8월초에는 성추행 고소사건으로는 최다액수인 1,200만엔(1억3,000만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민사소송도 제기했었다. 그러나 지난주 열린 민사재판에서 요코야마지사측 변호인은 “답변하지 않겠다”고 밝힘으로써 혐의사실을 사실상 인정한 셈이 됐다고 일본 언론들은보도하고 있다. 황성기기자 marry01@
  • 검찰, 행인 감금·폭행 파문 진범 잡히자 사과않고 풀어줘

    검찰 수사관들이 불법 도·감청사범 수사 과정에서 무고한 시민 3명을 불법체포해 감금·폭행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파문이 일고 있다. 양경주(梁景周·36·제주시 아라2동)씨 등 3명은 13일 “지난 2일 오후 3시30분쯤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에서 서울지검 강력부 수사관들에게 불법 체포됐다”고 주장했다.양씨 등은 방송음악제작에 필요한 시장조사차 이곳에 들렀다가 갑자기 덮친 3∼4명의 건장한 청년들에게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갔다. 양씨가 “왜 이러느냐.당신들은 누구냐”며 항의했으나 이들은 신분도 밝히지 않은채 “이 ××야,따라와”라고 폭언하며 한적한 곳으로 끌고 갔다.이어 양씨 등에게 수갑을 채우며 “떠들지 말라”고 말했다.이들은 반발이 심하자 양씨에게는 등 뒤로 수갑을 채웠다. 양씨는 “인신매매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도대체 누구냐’고 다시 물었다가 ‘이 ××,왜 이렇게 말이 많아’하는 폭언과 함께 목과 얼굴을 수차례 얻어맞았다”고 주장했다.수사관들은 이어 이들을 승합차 안에 감금한 뒤 쇠파이프를 흔들며 “눈을 마주치거나 고개를 들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위협하고 소지품을 모두 압수했다.한 수사관은 “당신들은 통신관련 위반 사범으로 체포됐다”고 엄포를 놓았다. 양씨 일행은 차 안에 감금된 지 40여분만에 풀려났다.다른 검찰 수사관들이 진짜 용의자를 붙잡았기 때문이다.하지만 수사관들은 사과를 요구하는 이들에게 “공무집행 방해”라고 위협한 뒤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 양씨 일행은 이 사실을 곧바로 인권실천시민연대에 신고했다.또 PC통신 등을 통해 억울한 사정을 호소했다. 문제가 확대되자 지난 8일 양씨 일행을 체포했던 서울지검 수사관들이 양씨와 함께 체포됐던 김모씨(36) 형제를 찾아가 형식적으로 사과했을 뿐 실제폭행을 당했던 양씨에게는 사과조차 없었다. 양씨는 “영문도 모른채 공포에 떤 40여분간의 악몽을 잊을 수가 없다”고억울함을 호소했다. 이에 대해 서울지검 관계자는 “조사결과 수사관들이 양씨 일행을 용의자로오인, 체포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실랑이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폭행한 적은없다”면서 “피해자를 찾아간 것도 수사과정에서 있었던 오해를 풀기 위한것이었다”고 해명했다. 이상록기자 myzodan@
  • [굄돌] 그대,우리의 아픔을 아는가

    지난 주 내내 노근리 학살 사건으로 전 지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나는 이 사건의 보도를 접하면서 몇 가지가 뚜렷이 대비되어 마음이 착잡했다.어린딸과 아들을 미군의 총탄에 잃은 팔순을 앞둔 대책위원장 정은용 할아버지와 명령을 따라 무고한 양민을 향해 총알을 퍼부었던 퇴역 미군 증언자 할아버지.‘지구촌 경찰’을 자처한 미국의 추악한 두 얼굴.코소보와 동티모르 등다른 나라의 ‘인종청소’는 잘 알고 있으면서 정작 내가 태어난 한반도의아픈 역사에 대해서는 무지한 대다수 한국인들.사건의 사실규명을 위해 오랫동안 철저한 조사를 벌였던 미국의 통신사와 무고한 양민들을 잃고서도 피해자 증언조차 청취하지 않았던 정부.그리고 위험을 감수하고 진실을 밝히기보다는 센세이셔널리즘에 빠져 있는 언론의 비겁함. 집요한 추적 끝에 이 사건의 진상을 전 세계에 타전한 것은 우리 나라의 언론이 아니라 가해자 미국의 통신사였다.미국 국립 문서보관소에서 비밀 해제된 문서를 뒤져 그 당시 사살 명령서를 찾아낸 주역은 AP통신 한국인 민완기자다.그기자가 기초자료로 삼은 것은 1994년 우리 나라 진보지인 한 일간지와 월간지의 기사였다고 한다.그리고 그 일간지 기사의 바탕이 된 것은 바로 현 노근리 사건 대책위원장인 정은용 할아버지가 쓴 실화소설 ‘그대,우리의 아픔을 아는가’라는 한 권의 책이었다. 이 책의 서술은 분명 육하원칙에 따라 씌어진 건조한 기사체와는 다르다.노근리 사건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들려주는 것은 물론,노근리 사건을 제대로 된 역사의식을 가지고 바라보게 한다.그런데 왜 이 책이 출간되던 당시대다수 우리 언론들은 침묵했을까? 왜 우리 국민들은 여태까지 이 책의 출간을 모르고 있었을까? 우리를 ‘구해준’ 미국의 범죄를 드러내는 것 자체가사상범으로 몰릴 수 있는 우리의 현실 때문이었을까? 나는 노근리 사건의 진상이 밝혀진 지금이라도 이 책이 독자들에게 많이 읽히기를 원한다.그래서노근리 사건 이외에도 거창,제주 4·3,고양시 금정굴 양민학살사건 등 감춰진 ‘역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평생을 바친 사람들의 증언에 뒤늦게나마 귀기울이기를 바란다.어쩌면 이것이 무고하게 죽어 구천을 떠도는 원혼들을 달래는 진정한 길인지도 모르니까. 강맑실 사계절출판사 대표
  • [외언내언]‘노근리’에는 왜 갔나

    6·25동란때 미군에 의해 양민이 대량학살된 충북 영동 ‘노근리사건’을조사하기 위해 지난 5일 현장을 방문한 국회의원들의 행태가 그곳 주민들은물론 국민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노근리 양민 대학살사건 대책위’정은용위원장이 국회의원들에게 당시의 상황을 증언하고 있는데 국회의원중 누군가가 “미군이 오인사격(誤認射擊)을 한 건 아니냐?”고 질문을 했다.정위원장이 “절대 아니다”고 답변하는 순간 의원들 가운데 누군가가 “에이…그럴리가 없어”라는 말이 흘러나왔다.“별거 아닌데 그만 가지”라는 말도 이어졌다. 놀란 유족들이 발언자를 살폈으나 목소리의 주인공은 확인되지 않았다.이뿐 아니다.자민련 박신원(朴信遠)의원은 “우리 고향에서는 2,000명이 미군에게 죽었다”고 했다.유족들이 ‘그정도 가지고…’라는 뉘앙스로 듣고 항의하자 박의원은 “유사 사건이 9건이나 있다는 의미였다”고 해명했다.유족들이 “그동안 정부가 진상규명을 외면한 것도 모자라 국회의원들까지 이럴 수 있느냐”고 항의했다.그러나 의원들의 반응은 엉뚱했다.“농담삼아 던진 이야기를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느니,“의원들끼리 한 이야기인데(유족들이)쌓인 게 많아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는 식이었다. 국회 행자위 2반 소속 이들 국회의원들이 이날 보인 행태는 민족의 상처를뒤늦게나마 씻어주겠다는 우리나라 국회의원이 아니라 제3국 국회의원들의그것이었다.제3국 의원들이라고 무고한 양민이 대량학살당한 현장에서 그런태도를 보였겠는가.그렇다면 국민들은 “노근리에는 왜 갔는가?”그들에게묻지 않을 수 없다.AP통신이 ‘노근리양민학살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던 때 국내신문도 보지 않았다는 말인가.“그들(피란민들)을 적군으로 대하라-Treat them(refugees) as enemy”라는 비밀해제된 당시 군 작전명령의 원문(原文)까지 나와 있었다.‘오인사격’은 무슨 얼어죽을 ‘오인사격’인가.게다가 ‘의원들끼리 던진 농담’이라는 말은 또 무슨 소리인가.거액의 출장비를 받고 농담이나 하려고 노근리에 갔다는 말인가.아녀자까지 포함된 무고한 주민 200여명이 학살당한 노근리사건이 ‘별것’아니라면,얼마나 많은 양민들이 떼죽음을 당해야 ‘별것’이 된다는 말인가.“나라가 참으로 큰일이다”라는 탄식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장윤환 논설고문
  • 美軍, 예천서도 양민학살

    경북 예천지역에서도 6·25당시 미군의 폭격으로 한 마을 주민 50여명이 집단학살되고 9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는 주장이 주민들에 의해 제기됐다. 순흥 안씨 집성촌인 예천군 보문면 산성리 주민들은 지난 51년 1월19일 낮12시쯤 마을 상공에 아군 정찰기 2대가 저공으로 선회한 뒤 잠시후 미군 전투기 6대가 날아와 폭탄을 대량 투하하고 기름까지 뿌려 마을이 순식간에 불바다로 변했다고 6일 주장했다. 이로 인해 이 마을 130여가구 가운데 80여가구가 불에 타 전소되면서 노인부녀자 어린이 등 양민 50여명이 숨지고 9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는 것이다. 당시 목격자인 안석기씨(74)는 “안동시 북후면과 경계지역인 이 마을 부근에서 국군과 인민군이 치열한 전투를 벌였는데 미군이 인민군 낙오병이 마을에 남아있는 것으로 오인하고 폭격을 한 것 같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한편 충북도의회(의장 金俊錫)는 이날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과 관련,피해자와 유족들의 명예회복 등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도의회는 이날 성명을 통해 “무고한 양민 수백명이 미군에 의해 무차별 학살됐다는 사실에 충격과 비애를 금할 수 없다”며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으로 희생된 피해자와 유가족의 명예회복과 충분한 보상을 뒷받침할 수 있는특별법 제정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도의회는 또 “이 사건에 대해 그동안 보여줬던 정부당국의 미온적인 태도를 규탄한다”며 “한·미 양국 정부는 철저한 진상조사를 벌이고 노근리 사건으로 희생된 영령들의 원혼을 달래주기 위한 위령탑 건립 등 특별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예천 김상화·청주 김동진기자 shkim@
  • 국감 이모저모

    4일 상임위별로 열린 국정감사에서는 노근리 사건,중앙일보 사태 등이 이슈로 부각됐다. ■국회 국방위의 합동참모본부에 대한 국감에서는 6·25전쟁 중 미군이 무고한 양민 400여명을 학살한 ‘노근리사건’의 진상규명 문제가 ‘도마’위에올랐다. 한나라당 서청원(徐淸源)의원은 의사진행 발언을 통해 “육사가 발간한 한국전쟁사와 국방군사연구소의 전사부에도 이 사건과 관련된 기록이 상세히보존돼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노근리사건에 대한 전사자료를 공개하고 민간인 사망자 숫자를 정확히 밝히라”고 요구했다. 국민회의 장영달(張永達)의원은 “노근리 사건 피해자들이 그동안 끊임없이민원을 제기했음에도 불구, 국방부는 현장조사조차 하지 않았다”면서 “정부 차원의 공동조사와는 별도로 군 자체의 조사단을 구성할 계획은 없느냐”고 물었다. ■건설교통위의 충북도에 대한 국감에서 국민회의 김홍일(金弘一)의원과 서한샘의원도 노근리사건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이에 대해 이원종(李元鐘)충북지사는 “우리나라와 미국 정부의진상조사에맞춰 사건의 진상규명과 수습을 위한 자치단체 차원의 지원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한나라당 이부영(李富榮)총무는 오전 문광위 국감현장을 방문,소속의원들을 독려했다.그는 언론개입을 부인하는 박지원(朴智元)문화부장관의 답변에대해 “전혀 개전의 정을 안보이고 공격적인 답변을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앞서 한나라당 문광위 의원 8명은 국감회의 시작 전인 오전 9시 세종문화회관 커피숍에 모여 대책회의를 갖고 중앙일보 문제를 집중 추궁하기로결의했다. ■39개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국정감사 모니터 시민연대’는 이날 기자회견을 자청,국회를 비난하고 나섰다. 시민연대는 아침 국방부 청사앞에서 방청 불허 및 출입 통제에 대한 항의시위를 벌인데 이어 오전 국회에서 손봉호(孫鳳鎬) 공동대표와 모니터 요원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자회견을 갖고 “국감 방청을 즉각 허용하고 시민단체의 평가활동을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시민연대의 국정감사 평가활동은 유권자가 소외되고 민생현안이뒤로 밀려나는 오늘의국회 현실에 대한 시민자구책의 일환”이라며 “국감을 비롯한 모든 의정활동에 대해 국민은 알 권리를 갖는다”고 주장했다. 우득정 최광숙 김동진기자 djwootk@
  • [김삼웅 칼럼] 다른 양민학살도 밝히자

    6·25한국전쟁 발발 다음날 충북 영동군 노근리에서 미군이 저지른 양민학살만행이 반세기 만에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나는 1995년 이맘 때 ‘해방후 양민학살사’란 책을 쓰면서 현지를 취재한적이 있다.50년 6월 25일 영동군 일대와 대전지역에서 피란온 많은 사람이노근리 부근 금광굴에서 피란생활을 하고 있었다.26일 한낮이 되자 미군이일본인 통역을 대동하고 나타나 주민들에게 마을을 떠나라고 명령하여 주민들은 내키지 않는 피란길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피란민이 경부선 열차의 철길을 따라 노근리에 당도했을 때 미군들의 무전연락을 받은 미군 전투기 2대가 나타나 피란민들을 향해 무차별 기총사격을 가하는가 하면 인근의 미군들도 일제히 총을 쏘아댔다는 것이 생존 주민들의 증언이었다.4월혁명이 나던해 11월 유족들은 미국정부가 피해보상을 해준다고하여 서울에 개설한 소청사무소에 배상을 청구했다.그러나 소청사무소는 “법정기한이 경과한 후 제출한 것이기 때문에 심의할 권한이 없다”는 답변으로 유족들의 요구를 외면하고 곧 5·16쿠데타가 일어나 이 사건 역시 다른 양민학살사건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졌다. 불행한 한국 현대사는 수많은 양민학살의 비극을 겪어왔다.양민학살은 우리시대의 아물기 어려운 비극이고 상처이다.결코 덮어둔다고 아물 수 없는 상처인 것이다. 6·25전쟁을 전후하여 인민군이나 외국군에 의한 양민학살도 심했지만 우리군과 경찰, 우익단체들에 의해 자행된 양민학살도 수없이 많았다.학계는 45년 해방에서 공비토벌이 끝나는 10여년 동안에 6·25전쟁으로 인한 군인·군속 등 전쟁 관련 희생자를 제외하고도 줄잡아 100만 명으로 추산한다.희생자대부분이 이데올로기 문제로 죽어갔지만 막상 당사자들은 이데올로기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무고한 양민들이었다. 이들은 좌익척결의 이름으로,공비토벌의 명분으로,통비분자라는 혐의로,용공이적·인민군에 부역했다는 이유로 억울하게 죽어갔다.6·25전쟁의 와중에서 발생한 양민학살 사건으로는 남원·문경·부산·해남·완도·고양·함평·임실·고창·순창·무주·산청·함양·거창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제14대 국회는 ‘거창 양민학살사건 관계자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을제정한 바 있고 현 국회는 ‘제주 4·3양민학살진상규명위원회’를 구성하여활동중이다. 또 고양시 금정굴 양민학살과 전북 함평지역에서도 진상조사위원회가 활동한 바 있다. 우리 민족처럼 망자(亡者)에 대해 정성을 다하는 민족도 흔치 않다.그런데무고하게 죽은 100만 혼령의 대부분이 유골 수습도 제대로 안되고 진상규명도 안된 가운데 반세기를 보내고 있다.이것은 사자에 대한 도리가 아닐 뿐더러 문명국가의 수치스런 일이다. 양민학살 실태에 대한 전국적인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더 이상 미루다가는학살실태를 밝혀줄 공공기관의 자료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당시의 참상을 증언할 목격자들이 급격히 줄어들어 영구미제로 남게 된다.행자부에 따르면 거창사건은 위령비 건립 등이 추진중이며 함양·산청사건도 진상규명이 끝나명예회복이 추진중이라 한다.여타지역의 사건도 조사에 나서야 한다.4월혁명후 세상이 바뀌면서 진상규명 작업이 봇물처럼 터져나왔지만 군사정권은 유가족과 사회단체들이 유골을 찾고 위령비를 세우고 진상을 청원하는 행위를‘용공’으로 몰아 탄압했다. ‘국민의 정부’는 과거 정권과 달라야 한다.국회가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여 전국적 조사에 착수하고 정부가 뒷받침해야 한다.그리하여 유골을 수습하여 영원한 안식처를 만들고 위령탑을 건립하고,명예회복과 위령제를 지내용서와 화해의 기회를 갖도록 해야 한다. 미국 남북전쟁때 남·북군 4만여명이 숨진 게티스버그에 링컨이 세운 국립군사공원,프랑코가 스페인 내전때 ‘전몰자의 계곡’에서 사망한 수십만명장병들의 혼령을 위로하는 대사원을 세운 것에서 우리는 배울 바가 있어야한다.양민학살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은 미래에 그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못하도록 하는 역사 교훈으로서도 중요한 것이다. 김삼웅 주필
  • 金대통령“韓·美공조 노근리 진실 밝혀야”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2일 노근리사건과 관련,“우리가 단독으로 조사하는 것보다는 한·미 합동으로 하는 것이 효율적일 것”이라며 한·미 공조하에 정확한 진실을 밝히고 보상 등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도록 관계부처에 지시했다. 김 대통령은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주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우리가 적극적으로 진상조사에 나서야 한다”며 이같이 지시했다고 청와대 관계자가 전했다. 정부는 이에 따라 4일 관계부처 차관회의를 갖고 한·미 합동으로 진상규명을 위한 기구 구성 문제 등을 협의할 예정이다. 김 대통령은 또 “비록 50년 전 일이지만 그렇게 무고하게 살해된 사람이있다면 진상을 밝혀서 돌아가신 원혼이나마 한을 풀어주고 유가족에게 위로의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 대통령은 탈북자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인간의 권리 가운데 가장 절박한 것은 의식주 문제로 탈북자 문제는 중국과 북한에 국한해서 볼 게아니다”면서 “그런 점에서 단순한 불법 월경자로 취급할 사안이 아니어서정부는 이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양승현기자 yangbak@
  • 국가기관이 국가유공자 홀대

    국가를 위해 공헌한 국가유공자와 가족들의 생활안정을 위해 실시하는 ‘국가유공자 의무고용’을 국가기관이 잘 지키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민회의 김원길(金元吉)의원은 1일 국회 정무위의 국가보훈처 국감에서 국가유공자의 ‘법정인원 대비 의무고용 비율’이 국가기관 13%,일반 기업체 47%,사립학교 51% 등 취업보호제도를 가장 잘 준수해야 할 국가기관이 오히려 이를 가장 지키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국가 기관별 법정인원 대비 의무고용 비율은 ▲중앙행정기관 14% ▲지방자치단체 9% ▲교육자치단체 19% ▲공립학교 17% ▲기타 국가기관 4% 등으로지자체와 중앙행정기관이 의무고용비율을 잘 지키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행 국가유공자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상 의무고용비율은 국가기관 및지자체는 기능직 정원의 20% 이내,사립학교는 교직원 정원의 10% 이내,일반기업체는 업체에 따라 총 직원의 3∼8% 등으로 정해져 있다. 주현진기자 jhj@
  • [외언내언]‘마구잡이 소송’

    사실적·법률적 근거없이 잇달아 소송을 제기해서 상대방에게 정신적·경제적 피해를 끼쳤다면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신문에 보도된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피고 남아무개씨(77)는 돈을 빌려준사실이 없음에도 빌린 돈을 갚으라며 안아무개씨(71)의 집과 공장에 대해 부동산 가압류신청을 내고 같은 사건에 대해 본안 소송과 경매신청 등 3년동안 여덟차례나 송사를 벌였다가 모두 패소했다.이에 대해 안씨는 소송에 시달리느라 정신적·경제적 피해를 보았다며 남씨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고 한다.재판부(서울지법 민사항소6부·재판장 李斗煥부장판사)는 27일 안씨가 남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 파기환송심에서 “피고가 사실과 법률적 근거가 없음을 알 수 있었는데도 소송을 잇달아 제기했다면 재판제도의 취지와 목적에 현저히 어긋나는 것으로 상대방에 대해 불법행위를 구성하는 것”이라고 밝히고,“안씨는 남씨의 제소에 대응하느라 어쩔 수 없이변호사 비용을 대는 등 경제적·정신적 부담을 진 것이 명백한만큼 남씨에게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재판을 받을 국민의 권리는 헌법에 보장돼 있다.따라서 소송을 냈다가 패소하더라도 곧바로 불법행위가 되는 것은 아니다.그러나 이번 사건처럼 허위의 사실을 내세워 잇달아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형사고발의 경우 고발 사안이 허위로 밝혀지면 무고죄로 단죄된다.하지만 민사소송의 경우는 상대방을 괴롭히기 위한 악의적인 제소를 막을 방법이 별로 없다.패소했을 때 상대방의 소송비용을 물어주는 정도다.70대 두 노인 사이에 벌어진 이번 송사의 판결은 근거없이 소송을 남발하는 제소자에게 위자료 책임까지 물어 소송 남발현상에 제동을 걸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 굳이 사족(蛇足)을 하나 달아보자.피고 남씨는 70대 후반의 노인이다.남씨가 변호사의 도움없이 소송을 했을 가능성도 있으나,아무래도 여덟차례 송사를 벌이는 과정에서 소송대리 변호사를 선임했을 가능성이 더 크다.그렇다면 사실 여부를 따져보지 않고 사건을 수임한 변호사에게도 문제가 있다고 하겠다.지난번대전 법조비리 사건 때 같은 변호사 사무실에서 동일 사건의 원고와 피고의 소송대리를 맡은 ‘엄청난 사례’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장윤환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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