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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시아군 ‘민간인’ 표식 무시…미망인·할머니 성폭행

    러시아군 ‘민간인’ 표식 무시…미망인·할머니 성폭행

    지난달 24일 러시아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 여성들의 성폭행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남편을 잃은 미망인도, 미처 피난을 가지 못한 노인도 표적이 됐다. 전쟁 중 성범죄는 전쟁범죄이자 국제인도법 위반에 해당한다. 우크라이나 마리아 멘젠체바 의원은 “우리는 절대 침묵하지 않을 것”이라며 최근 키이우 교외에서 벌어진 성폭행 사건에 대해 규탄했다. 레시아 바실렌코 의원은 이달 초 영국 의원들을 상대로 한 연설에서 “여성들이 집단 성폭행을 당했다는 보고가 있다. 이 여성들은 일반적으로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사람들, 즉 노인들”이라며 “피해 여성들은 강간범이 처벌 받는 것을 보지도 못하고 스스로 극단을 선택해버린다”고 말했다. 키이우에서 테르노필로 도망친 33세 나탈리야(가명)는 피해자로서 러시아군이 저지른 끔찍한 만행을 알렸다. 민간인 표식으로 문 앞에 하얀 시트를 걸어놨지만 소용없었다. 총성 소리와 함께 문이 부서졌고, 반려견이 총에 맞아 죽었다. 사령관은 남편이 있는 나탈리야에게 전쟁만 아니었으면 당신과 연애를 했을 것이라고 추파를 던졌고, 그가 끌고 온 군인들이 “당신 남편은 나치”라며 남편을 죽였다. 나탈리야는 고작 4살인 어린 아들을 지켜야 했다. 러시아군은 나탈리야의 머리에 총기를 겨누고 번갈아 가며 성폭행했고, 이후로도 세 차례나 집에 침입해 성폭행했다. 러시아군이 술에 취한 틈을 타 나탈리야는 아들을 데리고 집을 빠져나왔다. 아들은 여전히 아빠가 살아있다고 믿고 있다. 이리나 베네디코바 우크라이나 검찰총장은 나탈리야의 남편을 살해하고, 나탈리야를 성폭행한 러시아 군인들에 대한 공식적인 수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안타깝게도 남편의 시신은 아직 수습하지 못했다. 러시아군이 여전히 마을을 점령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탈리아는 “앞으로 이 모든 것들을 품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지만 남편이 우리를 위해 지은 이 집만큼은 도저히 팔 수 없을 것 같다”고 털어놨다.“숨어있던 여성들까지 강간” 우크라이나 현지 언론인 유로마이단프레스(EP)에 따르면 아나스타샤 타란(30·여)은 얼마 전 수도 키이우 외곽에 있는 이르핀에서 극적으로 탈출한 뒤 “러시아가 점령한 마을은 지옥과도 같았다. 러시아 군인들은 지하실에 숨어 있던 여성들을 강간했으며, 무고한 민간인에게 마구 총을 쏘아댔다”고 주장했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러시아 군인들이 우크라이나에서 민간인을 성적으로 학대했다는 보고서를 받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남부도시 헤르손에 거주하다 피난을 떠난 한 20대 여성은 “지인을 통해 헤르손 거리 한복판서 젊은 여성들이 러시아 군인에 의해 성폭행을 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덧붙였다. 우크라이나에서 포로로 잡힌 러시아 군인에게 콘돔 뭉치가 발견되는 영상이 공개되기도 했다. 타란은 “남편과 함께 이르핀에서 탈출했지만, 우리에게 남은 것은 여권과 몇 장의 개인 서류, 반려묘 3마리 뿐이었다”면서 “여전히 많은 이르핀 주민들이 마을에 갇혀 있고, 누군가는 탈출을 시도하다가 사망했다. 나는 여전히 밖으로 나가는 것이 두렵다”고 호소했다.
  • “러시아 군인, 남편 살해하고 자녀 앞에서 성폭행” 충격 증언

    “러시아 군인, 남편 살해하고 자녀 앞에서 성폭행” 충격 증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한 달이 넘은 가운데,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여성들을 상대로 끔찍한 성폭행을 자행하고 있다는 주장이 또 제기됐다. 우크라이나 유럽평의회(Council of Europe) 상임 대표인 마리아 메젠체바 하원 의원은 27일(현지시간) 영국 스카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수도 키이우 외곽의 브로바리 지역에서 발생한 사건을 언급했다. 메젠체바 의원에 따르면, 피해 여성 A는 러시아 군인에 의해 남편을 잃었으며 이후 미성년 자녀 앞에서 성폭력을 당했다. 이 사건은 당국이 이미 조사에 착수했으며, 현지 검찰이 가해자에 대한 체포 영장을 발부한 것으로 확인됐다.메젠체바 의원은 “이 사건뿐만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사건이 있다.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공개할) 준비가 되면 그때 더 공개할 것”이라면서 “정의는 승리해야 하는 만큼, 이런 사건은 반드시 기록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성폭력은 전쟁범죄이자 국제인도법 위반으로 간주한다. 우리는 절대 침묵하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브로바리 지역의 성폭력 사건과 관련해 우크라이나 검찰총장도 입장을 밝혔다. 이리나 베네딕토바 검찰총장은 “해당 사건에 대해 당국이 수사 중이다. 피의자에 대한 체포 영장이 발부됐다는 사실을 러시아 측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러시아 군인들이 우크라이나 여성을 성폭행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수도 키이우 외곽의 이르핀에서 극적으로 탈출한 아나스타샤 타란(30·여)은 21일 현지 언론인 유로마이단프레스(EP)와 한 인터뷰에서 “러시아 군인들은 지하실에 숨어 있던 여성들을 강간했으며, 무고한 민간인에게 마구 총을 쏘아댔다”고 주장했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 역시 러시아 군인들이 힘없는 우크라이나 여성을 상대로 성폭행을 저질렀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우크라이나 하원의원인 레시아 바실렌코도 “러시아군이 키이우 외곽 마을에서 피난이 어려운 노인들을 성적으로 학대했다는 보고가 있었다”고 말했고, 남부도시 헤르손에 거주하다 피난을 떠난 한 20대 여성은 “지인을 통해 헤르손 거리 한복판서 젊은 여성들이 러시아 군인에 의해 성폭행을 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덧붙였다. 한편, 유엔 인권사무소는 지난달 24일 개전 이래 이달 26일 자정까지의 우크라이나 내 민간인 1119명이 숨지고 1790명이 부상한 것으로 집계했다. 유엔아동기금(UNICEF·유니세프)은 국외 피란민 중 150만 명 이상이 아동이고 이들이 인신매매 등을 당할 위험이 늘고 있다고 우려했다.
  • “내가 너무 잘하니까 징계”...푸틴 찬양한 러 선수, ‘적반하장’ 분노

    “내가 너무 잘하니까 징계”...푸틴 찬양한 러 선수, ‘적반하장’ 분노

    “대체 내가 무엇을 잘못했단 말인가. 나는 단순히 내 나라(러시아)와 대통령(블라디미르 푸틴)을 응원했을 뿐인데, 그게 왜 논쟁의 대상이 되는지 모르겠다.” 지난해 도쿄올림픽에서 금메달 2개를 획득하며 세계적 스타로 발돋움했던 러시아 수영 선수가 국제연맹의 징계 방침에 강하게 반발하며 분노를 표출했다고 일본 스포츠매체 다이제스트가 28일 현지 보도를 인용해 전했다. 하지만, 그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자국과 상대국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 푸틴 대통령을 강력히 지지하고 나서 지탄을 받고 있다. 장본인은 2020 도쿄올림픽 배영 100m와 200m에서 각각 우승을 차지하고 자유형 계주에서도 은메달을 땄던 예브게니 릴로프(25). 릴로프는 지난 18일 러시아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크름(크림반도) 병합 8주년 기념 콘서트’에 참석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열렬한 지지를 보냈다.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상징하는 ‘Z’ 표식을 가슴에 달고 무대에 올라 9만 5000대 관중의 갈채에 화답했다.이에 국제수영연맹(FINA)은 러시아와 벨라루스의 올해 6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리는 세계수영선수권대회 출전을 금지한 것과 별개로 릴로프 개인에 대한 징계 절차 착수를 결정했다. 징계위는 이번 주에 구성된다. 릴로프의 후원사인 세계적 수영복 브랜드 스피도는 그와의 계약을 즉각 해지했다. 이에 대해 릴로프는 현지 일간지 ‘스포르트 엑스프레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나름의 항변을 했으나 자국의 무고한 인명 살상과 평화 파괴에 대해서는 극도의 불감증을 드러냈다. “나는 지난 18일 기념 콘서트에서 ‘Z’ 문양이 새겨진 옷을 입고 우리나라 국가를 불렀을 뿐이다. 대체 내가 무엇을 잘못했단 말인가. 단순히 내 나라와 대통령을 응원했을 뿐인데 왜 논쟁의 대상이 되는지 모르겠다.” 그는 또 “(내가 핍박받는) 중요한 것은 내가 세계 수영계의 얼굴이기 때문”이라며 “루즈니키 스타디움(지난 18일 문제의 기념 콘서트가 열린 장소)에 있었던 게 내가 아닌 다른 선수였다면 이렇게까지 문제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내가 올림픽에서 지대한 관심을 끌다 보니 모든 생활 전반에서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라고도 했다. 이어 “경쟁이 없는 곳에 스포츠의 진보는 없다”며 “우수한 선수가 없으면 스포츠는 전진할 수 없다”고 강변했다.
  • 가난했던 대구 소년, 헌법학에 불멸의 발자취 남기고 떠나다

    가난했던 대구 소년, 헌법학에 불멸의 발자취 남기고 떠나다

    ‘한국 헌법학의 태두’ 김철수 서울대 명예교수가 89세를 일기로 26일 별세했다. 서울신문은 2013년 5월 ‘명사가 걸어온 길’이라는 인물탐구 기획 코너를 통해 고인이 밟아온 삶의 궤적을 2회에서 걸쳐 집중적으로 조명한 바 있다. 고인은 당시에도 만 80세 고령이었지만, 스트레이트로 5시간에 걸친 짧지 않은 인터뷰를 정력적으로 소화해 냈다. 자신의 인생을 채워온 수많은 사건들과 사람들을 대부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인터뷰 전문을 그대로 소개한다. ========================== [명사가걸어온 길] (11) 한국 헌법학의 태두 김철수 해방·전쟁·좌우 분열… 격동의 시대, ‘책벌레 소년’ 헌법에 눈을 뜨다유신헌법 참여 협박에도 정치권 러브콜에도… 학자의 양심 지켰다열두 살 되던 해 일제가 패망했다. 환희에 천지가 요동쳤다. 해방. 어렸지만 그게 뭔지 너무도 잘 알았다. 그러나 조국의 운명은 사람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혼돈과 분열이었다. 국토는 남북으로 찢기고 민중은 좌우로 갈렸다. 얼마 전까지 ‘조국 해방’을 외치며 함께 어깨를 걸었던 동지들이 생각이 다르다고, 처지가 다르다고 원수가 돼 등을 돌렸다. 어제까지 한 교실에서 공부했던 친구가 좌익 프락치로 몰려 책상을 비웠다. 해방 공간의 극심한 무정부 상태를 보며 소년은 결심했다. 국가 시스템의 뼈대가 되는 헌법을 공부하겠노라고. 그 다짐대로 헌법 연구는 평생의 업이 됐고, 소년은 우리나라 헌법학의 ‘태두’(泰斗)가 됐다. 지난 10일 서울 동작구 상도동 한국헌법연구소에서 만난 김철수(80) 서울대 명예교수는 5시간에 걸친 긴 인터뷰에도 피로한 기색 없이 꼿꼿하게 여든 성상의 인생과 철학을 얘기했다. 유복한 친구 둔 덕에 책 실컷 읽고...극렬한 좌우 대립 지켜보며 성장1933년 7월 대구에서 빈농(貧農) 집안의 6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책 읽는 것을 유난히 좋아했다. 유복한 친구를 둔 덕에 원하는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었다. 책 읽느라 학교 공부는 뒷전이었다. 통학 기차 안에서도 그의 손에는 항상 책이 들려 있었다. “친구 아버지가 당시 대구지역 마사회 회장이었어요. 경마장에는 일본 사람들이 자기들 나라에서 가져온 세계 문학대전집, 세계 사상대전집 같은 책들이 그득그득 꽂혀 있었지요. 그때 읽은 책 중 가장 감명 깊었던 게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이었어요. 강의 중에 ‘레 미제라블’을 말하면 학생들은 ‘아 장발장이 빵 하나 훔쳤다가 탈옥하는 거요?’ 정도의 반응이 대부분이었지만 사실 이 책은 대단한 책입니다. 무려 2600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에 형벌, 정치, 법철학 등 다양한 사회 문제와 고민이 담겨 있으니까요.” 책에 빠져 살던 김 교수의 관심이 사회로 옮겨가기 시작한 것은 나라가 광복을 맞으면서였다. ‘민주국가 건설’에는 이견이 없었지만 어떤 민주주의를 택하느냐를 두고 극심한 분열 양상이 온나라를 휩쓸었다. “좌익과 우익으로 나뉘어 나라가 완전히 엉망이었지요. 특히 제가 살던 대구는 당시 공산주의의 총본산인 모스크바(소련의 수도)에 빗대어 ‘한국의 모스크바’로 불렸을 정도예요. 좌익의 활동이 국내 어떤 도시보다도 활발하고 강했어요. 그러다 보니 저는 극렬한 좌우 대립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보며 큰 충격을 받았어요. 경찰이 사람을 잡아가고 때리고, 또 반대되는 공공기관 테러가 일어나고. 우리 사회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바로 헌법이었던 것이지요.” 1947년 제헌(制憲) 헌법을 만든다는 소식을 접한 그는 법대생이나 학자들이 보던 고시 잡지 등을 읽으며 헌법학자의 꿈을 키워나갔다. 그때가 우리 나이로 열다섯이었다.시력 나빠 전쟁터 끌려가지 않아...대학 입학 천막 강의실 공부 1950년 전쟁이 터졌다. 고도근시로 고생하던 그는 전쟁터로 끌려가지 않았다. 1952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다. 전쟁 탓에 서울의 대학들이 부산으로 피란 온 터였다. 부산의 허름한 판자촌에서 법학 강의를 들었다. 법학도들이 ‘천막 강의실’에서 힘겹게 공부하던 이 시기 이승만 당시 대통령은 불법적인 개헌을 추진한다. 이른바 ‘발췌개헌’의 시작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부산으로 피란 가 있는데 거기에서 임기 4년이 만료됐어요. 이 대통령은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헌법을 고치려 들었는데, 이걸 야당이 반대했고 그 결과로 야당 의원들에 대한 탄압이 시작됐어요” 이 대통령은 “전시에 부산에 침투한 간첩이 많으니 소탕을 해야 한다”는 이유를 대며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그리고 이내 속셈을 드러냈다. 간첩을 잡겠다던 당초 주장과 달리 야당 의원과 무고한 시민에 대한 검거와 폭력이 이뤄졌다. “야당 지도자였던 장면 선생도 잡아넣었어요. 3명 이상 모이면 잡아갔어요. 국회로 출근하는 버스가 있었는데 버스에 탄 채로 계엄사령부에 끌려 가기도 했어요. 옛 경남도청에 무덕관이라고 해서 유도 연습장 같은 곳을 국회의사당으로 썼는데 그 일대에 ‘백골단 깡패’들이 쫙 깔려 있었어요. 이 대통령에 반대하는 의원은 전부 계엄사령부로 소환했다고 보면 될 겁니다.” 김 교수는 해방 이후 우리 사회의 질곡의 상당 부분은 친일파 등 일제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데서 비롯됐지만 일부 불가피한 대목도 있었다고 말했다. “광복 이후 친일파 척결은 예견된 수순이었습니다. 그래서 친일파를 처벌하는 법률도 만들었는데 법률로 처벌하려다 보니까 당시 정부관료, 경찰, 군인 등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걸렸던 거죠. 일제강점기 때는 외국 유학자를 비롯해 능력 있는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이 대통령이 보기에 친일파를 다 쫓아내면 행정이나 정치를 못하겠다 싶었던 거죠. 반민특위에 걸렸던 경찰들을 풀어주고, 결국 그 경찰들이 치안 등 최소한의 사회 시스템을 유지해 전쟁통에 질서를 유지했다고 볼 수 있죠. 일부 사람들은 이 대통령이 반민특위를 없앴다는 이유로 친일파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그 당시의 사정도 일부 헤아릴 필요는 있을 겁니다.”이 대통령은 연임에 성공했고 1953년 전쟁이 끝났다. 김철수는 스무 살의 청년이 됐다. 김철수는 한 살 아래 학과 동기를 만나 사랑을 키워갔다. 궁핍과 혼돈의 시대에 서울대 법대 커플의 사랑은 주위의 부러움과 시샘을 샀다. 하지만 당사자들을 포함해 그 누구도 이들의 사랑이 비극으로 끝날 줄은 짐작하지 못했다. 대화 주제가 ‘첫번째 아내’로 옮겨가자 김 교수의 목소리톤이 낮아졌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첫 아내’ 전혜린과 캠퍼스 커플...뮌헨대 유학중 결혼 김 교수의 첫 번째 아내는 한국 문학계와 여성 예술인들 사이에서 ‘불꽃처럼 살다간 여인’으로 회자되는 전혜린이다. 두 사람은 부산에서 맺은 인연을 서독(독일 통일 전) 뮌헨에서 키워나갔다. 전혜린이 1955년 먼저 뮌헨대 유학길에 올랐고 김 교수는 이듬해 그의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이역만리에서 기쁨과 고통을 나눴다. 문학가가 꿈이었지만 아버지의 성화로 법대에 진학했던 전혜린은 독문학과에 입학해 그토록 바랐던 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체계적인 법 공부에 목 말랐던 김 교수는 법학 공부를 이어갔다. 하지만 전쟁국가 출신 동양인에게 서독은 마음 놓고 공부만 할 수 있는 ‘기회의 땅’은 아니었다. 당시 누구나 그랬듯 너무도 가난했다. 나라를 벗어나 공부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선택받은 삶이 됐던 시절이었다. 대통령의 허가가 있어야만 외국 송금이, 그것도 최고 50달러까지만 가능했던 시절이었다. 두 사람은 장학금과 통·번역 아르바이트 등으로 생계를 꾸렸다. 전혜린은 훗날 유학생활의 궁핍에 대해 “물을 마시니까 죽지는 않더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인에 대한 시선은 싸늘했다. 지구상에 한국, 코리아라는 나라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드물었다. “사람들에게 한국에서 왔다고, ‘코리아’라고 그러면 아프리카 콩고에서 왔냐고 그랬어요. 그 나라에 기차는 있느냐, 뭘 먹고 사느냐 등 질문을 해대는데, 미개인 취급을 하더군요. 교수들도 저를 보며 전쟁 중인 나라에서 공부는 무슨 공부를 했겠느냐며 일본 학생들과도 크게 차별을 뒀습니다. 약소국 국민의 설움이란 게 뭔지 당해 보지 않고서는 알기 어렵습니다.”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소외감은 두 사람의 관계를 더욱 견고하게 했다. 1957년 그들은 뮌헨에서 결혼을 했다. 생활은 결혼 전과 다름 없이 곤궁했지만 함께한다는 것만으로 의지와 위안이 됐다. 그러던 중 전혜린은 1959년 딸을 낳고 한국으로 돌아가 이듬해 성균관대에서 강사로 둥지를 틀었다. 김 교수는 2년 뒤 모교 교수 자리를 제안받고 서울로 돌아왔다.이혼 1년 뒤 전혜린 작가 스스로 목숨 끊어 배 고프고 힘들었던 서독 생활을 정리하고 고국에 왔지만 서울에서는 더 큰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귀국하자마자 5·16 쿠데타가 터졌다. 박정희 당시 제2군사령부 부사령관을 중심으로 한 육군사관학교 출신 장교들이 무력으로 청와대를 장악했다. 당시 박정희 군부가 취한 여러 조치 가운데 ‘군 미필자는 공무원이 되지 못한다’는 게 있었다. 시력이 나빠 군대에 못 간 김 교수는 공무원인 서울대 교수에 임용되지 못했다. 서울대는 물론 어디에서도 군 미필자인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아내와의 관계도 벌어지기 시작했다. 먼저 입국한 전혜린은 대학에서 강의하며 서울의 문인들과 어울렸다. 밤 늦게까지 명동에서 삶과 죽음, 예술을 논했다.“아내가 언제부턴가 문인의 죽음을 동경했어요. 처음에는 나는 사회규범과 질서를 중시하는 법학자이고 아내는 사회의 틀보다는 자유와 이상을 갈망하는 문학가라서 서로 다르겠거니 했는데 이 사람이 자꾸 ‘니체도 카프카도 일찍 죽었다’ 이러면서 빨리 죽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 거예요. 수면제도 많이 갖고 다니고. 그러다 보니 저도 덜컥 겁이 나더라고요.” 결국 두 사람은 1964년 합의이혼을 했다. 그리고 1년 뒤 전혜린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그는 교수 임용 제한이 풀리면서 서울대 법대 학생과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고교 교사와 재혼...꼬박꼬박 ‘그 사람’ 제사 챙기는 아내 그로부터 2년 뒤 김 교수는 고교 교사와 재혼을 했다. “아내는 지금도 꼬박꼬박 그 사람(전혜린)의 제사를 지내고 있어요. 자기가 낳은 아이들에게도 제사에 꼭 참석하라고 그러고. 참 고마운 사람이죠.” 그는 사별한 아내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반평생 이상을 함께하고 있는 지금의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함께 표했다.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큰 시련을 겪고 난 그는 다시 연구에 매진했다. 체계적인 헌법학 이론과 정력적인 강의, 활발한 저술활동으로 헌법학계에서 빠르게 자신의 입지를 굳혀갔다. 이는 박정희 군사정권이 새롭게 부상하는 법학자에 대해 점차 날카로운 감시의 눈초리를 들이대도록 만드는 빌미가 됐다. 드디어 등장한 유신헌법의 시대. ‘학자 김철수’는 어떻게든 이 난국을 빠져나가야만 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3년 12월 17일부터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에 스러진 1979년 10월 26일까지 15년 10개월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잘살아보세~”라는 한목소리 외의 다른 의견과 생각은 용납되지 않는 시대였다. ‘지성인의 전당’인 대학에는 사복 경찰과 정보원들이 교수와 학생들을 감시하며 일거수 일투족을 ‘상부’에 보고했다. 이런 박정희 정권에도 대학과 언론의 비판이 제한적이나마 가능했다. 적어도 잡아가지는 않았다고 한다. 1962년부터 3년간 서울대 학생과장...‘중정’과 맞서“군대에 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교수로 임용되지 못하고 학교에서 무급 조교로 일하다가 1962년 9월 취업 제한이 풀리면서 학생과장을 맡았어요. 요즘 같으면 학생담당 부학장쯤 되는데 그걸 만 3년 했어요. 3년 동안 중정(중앙정보부) 사람들이랑 참 많이도 싸웠었죠. 학교에 출입하던 중정 사람 중 훗날 안기부(중정의 후신 국가안전기획부)의 장까지 하고 그랬는데 이 사람들은 어느 교수가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뭘 가르치는지, 어떤 말을 하는지 낱낱이 기록해 상부에 보고했어요. 그때 중정의 한 간부가 ‘당신에 대한 기록이 엄청 쌓여 있다. 중정에서는 당신이 학생들 선동하는 걸로 보고 있으니 조심하라’고 경고하기도 했었죠. 하긴 그땐 법대 학생들이 제일 열심히 데모했고, 그 학생들에게 우리 법이 잘못됐다고 가르친 것도 나였으니….” 교수들로부터 정의와 바른 법치에 대한 가르침을 받은 학생들은 거리로 나갔다. 김 교수의 말대로 당시 서울대에서는 법대생들을 중심으로 학생운동이 조직됐다. 이때 서울대 총학생회장도 법대 소속이었다. 이명박 정부에서 대통령 실장을 지낸 정정길(71)씨다. 서울의 대학생들은 연합해 정권의 부당함에 맞섰다. 대표적인 사건이 1964년 한일기본 협정 반대 시위다. 박 대통령이 일본과의 외교관계 정상화를 위한 협정을 추진하자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굴욕 외교’라는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시위 세력은 들불처럼 번지면서 그해 ‘6·3 사태’가 터졌다. 1964년 한일협정 반대시위 선봉 고려대 이명박-서울대 정정길 박 대통령은 6월 3일 시위대 해산을 위해 서울시 전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서울 시내에 4개 사단병력을 투입해 시위 학생들을 잡아들였다. 이때 시위대 선봉에서 정정길 서울대 총학생회장과 함께 나선 인물이 이명박 고려대 상대 회장이다. 김 교수는 “당시 단과대 회장은 훗날 대통령이 되고 다른 학교 총학생회장은 그 대통령의 비서실장이 됐는데 어찌 보면 거꾸로 된 거 같기도 하고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재미있는 인연이죠. 노태우 정권에서 황태자로 불렸던 박철언(13~15대 국회의원)도 시위단 사이에서 격문 쓰고 그랬던 시절이 있었죠”라며 웃어 보였다. 학생들을 거리로 이끈 것은 바른 정치와 민주화를 향한 학생들의 뜨거운 열망과 굳은 의지였지만, 중정에 끌려간 그들을 빼오는 것은 교수들의 몫이었다. 6·3사태로 정정길을 비롯한 수많은 서울대생들이 중정과 경찰 등에 잡혀갔다. 법대 학장이 학생들에 대한 보증서를 써 주고 김 교수 등이 중정 등을 찾아가 사정해 수감된 학생들을 빼왔다. “그땐 시위가 끊이지 않았는데 시위만 했다 하면 학생들이 청와대로 가야 한다고 해서 중앙청(현 경복궁 자리)으로 가곤 했죠. 저는 학생 관리도 제 일이었으니까 관리 차원에서 같이 중앙청으로 따라가고 하면서 치안국 보안과장과 서울 정보분실장과도 자주 마주쳤죠. 한 놈은 중학교 동기고 또 한 놈은 대학 동기였는데 그놈들이 저한테 ‘너는 학생 과장이라면서 왜 학생 선도도 못하냐’고 난리를 피우고 그러면 저는 ‘니들이나 똑바로 해라’며 목소리를 높이곤 했어요.” 정보요원이 수업을 감시하고 학생들이 중정과 경찰서 유치장 등을 드나들었어도 김 교수는 ‘그나마 괜찮았던 시절’이라고 했다. 여기에 더해 1960년대에 몇 없었던 ‘낭만적인 에피소드’도 소개했다.창경궁 통째로 빌려 이대생들과 미팅 주선 “그때라고 해서 학생들이 시위만 하고 돌 던지고 그렇지만은 않았어요. 하루는 총학생회장 정정길이 우리가 종합대학이니까 종합대 축제를 하자면서 서울대생 전원과 이화여대생 전원 미팅을 제안하는 거예요. 처음에는 터무니없다고 생각했지만 청춘 남녀들에게 좋은 일이겠다 싶어서 제가 창경원(현 창경궁)을 빌려볼 생각으로 창경원장을 찾아갔어요. 창경원장도 학교 선배였거든요. 창경원장도 암울한 시대에 젊은이들에게 좋은 일이라며 흔쾌히 승낙하면서 날을 잡아 ‘창경원 오후 휴원’이라고 걸어놓고 두 학교 학생들만 무료 입장시켰죠. 지금 보면 대규모 미팅 같은 것인데 순 남학생 판에 여학생은 몇 없고 그런 모습도 어찌나 재밌던지… 그래도 훗날 그 만남을 계기로 결혼한 사람이 10쌍도 넘더라고요. 우리한텐 재미고 낭만이었지만 다음 날 청소하시는 분들 애 많이 먹었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캠퍼스의 소소한 낭만도, 학자 김철수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도 그리 길게 가지 못했다. 1972년 10월 박 대통령은 유신헌법을 선포한다. 박정희 정권은 김철수에게 유신헌법에 근거한 탄압에 앞서 유신헌법 제정 공신이 되기를 강요했다. “정권이 유신헌법 만들려고 여러 가지 작업을 했어요. 몇몇 교수는 해외에 보내서 자료 수집을 담당하게 하고 나를 포함한 야당 성향 교수들도 법무부 자문위원회라는 걸 만들어 그걸 하라고 강요했죠. 나는 절대로 못한다고 했더니 정부 쪽에서는 쉽게 말해 까불지 말라는 식이었고 일부는 참여를 거부하면 항명죄라며 협박까지 했죠. 그게 다 나중에 유신헌법이 각계의 자문위원들이 참여해 만든 것이라는, 정당성 부여를 위한 계략이었던 거죠.” 김 교수는 갖은 협박성 설득에도 학자의 양심을 지켰다. 하지만 이어 유신헌법 홍보에 나서 달라는 제안이 들어왔다. 말이 제안이지 명령과 강압이었다. 정권은 중정을 통해 김 교수가 방송과 라디오에서 유신헌법 홍보를 맡도록 압박했다. 유신헌법 찬양 글·홍보방송 안하고 버텨 “하루는 학교에서 높은 자리에 있는 분이 점심을 같이 먹자고 해서 나갔는데 식사 마치고 저를 TBC(동양방송) 앞에 내려주더군요. 방송에 출연하라는 뜻이었죠. 결국 정문으로 들어가 바로 후문으로 빠져나갔죠. 방송은 저 대신 다른 분이 출연했는데 중정에서는 방송 펑크 냈다고 난리가 났고, 그때 제대로 찍혀 저에 대한 탄압도 시작됐습니다.” 당시 김 교수는 한 언론사의 논설위원을 겸하고 있었다. 역시 유신헌법을 찬양하는 글을 쓰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김 교수는 학자의 양심에 반하는 글은 쓸 수 없었다. 결국 해당 언론사의 정치부장이 찬양 글을 대신 썼다. 이후 김 교수를 대신해 유신을 찬양했던 한 인사는 국회 배지를 달았고, 또 한 인사는 장관까지 올랐다. 반면 김 교수에게는 정권의 보복이 시작됐다. 가장 먼저 저술 활동이 금지됐다. “청와대 쪽 사람들과 법학자들과 저녁 식사 자리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저한테 ‘절대로 책 쓰지 말라. 책 쓰면 큰일 난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때 이미 제3공화국에 관한 헌법책을 다 써놨고 유신헌법이 나오면서 유신헌법의 문제점까지 다 정리한 상태였거든요. 출간을 강행했죠. 그게 1973년 1월 10일이었습니다.” 저술활동 금지당한 후 미·독 떠돌아 하지만 책은 출간 즉시 전량 몰수됐고 김 교수는 중정에 끌려갔다. 일주일간 회유와 압박이 이어졌다. 박 대통령을 ‘독재적인 대통령’, 유신헌법을 ‘현대판 군주제’라고 비판한 대목에 대해서는 북한과 내통한 것 아니냐는 억지도 부렸다. 결국 김 교수는 정권이 문제 삼은 부분의 수정을 약속하고 풀려났다. 1년간 집필이 금지됐고, 연구비도 끊겼다. 김 교수는 더 이상 한국에 머무를 수 없었다. 그래서 미국과 독일 등지의 방문 교수를 지원해 국외를 떠돌며 박정희의 시대가, 유신의 시대가 저물기만을 바랐다. 철권(鐵拳) 같았던 박정희의 시대가 저물고 1980년 ‘서울의 봄’이 찾아왔다. 유신헌법으로 유린된 헌법을 바로잡을 논의가 시작됐다. 이때 김 교수도 헌법 개정에 참여했다. 김 교수 등이 제안한 개정안은 최규하 당시 대통령도 만족했다. 그러나 곧 전두환이라는 걸림돌을 만나 헌법도 정치적 의도로 변질됐다. 그래도 김 교수는 1987년 헌법재판소 설치를 ‘유신 이후 헌법적 발전’으로 꼽았다. 대화는 자연스레 헌법재판소에 대한 평가로 이어졌다. 김 교수는 애정 어린 쓴소리를 늘어놨다. “요즘 헌재의 결정을 보면 재판관들이 얼마나 헌법을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어요. 야간 옥외집회 금지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고 인터넷 실명제는 위헌 결정을 내렸는데 이런 것들은 또 질서 유지의 관점으로 보면 필요하거든요. 판검사들이 재판관이 되는데 판검사 때는 헌법을 읽을 일이 없어요. 오히려 연구관들이 재판관보다 헌법을 더 잘 알아요. 재판관 임명 시 헌법에 대한 이해도를 반영할 필요가 있어요.” 최근 긴급조치 위헌에 대한 해석 권한을 놓고 헌재와 대법원이 갈등을 빚은 데 대해서는 헌재의 주장에 손을 들어줬다. “독일은 최고 사법부가 헌법재판소입니다. 학자들은 우리나라도 헌법 만들 때 헌재를 대법원보다 우위로 둬야 한다고 주장해 법원에서 결사반대했던 건데 헌법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헌법 해석권한을 가진 헌재를 대법원보다 우위에 두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유신시절 정권에 저항했던 모습에 비하면 상당히 보수적으로 변했다는 대중의 평가에 대해서는 ‘공동체 주의’를 강조했다. “30대에 진보적이지 않고 40대에 보수적이지 않으면 이상하다는 말도 있잖습니까. 아무래도 젊을 때는 개인이 절대적이라는 생각을 갖기 쉽죠. 그런데 나이가 들다 보면 아무리 똑똑하고 잘해도 개인은 모래알 같은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경찰을 2만명 증원하겠다고 했는데 생각해 보면 국민이 질서를 지킨다면 이런 사회 비용을 쓰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결국 개인주의에서 공동체 주의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재판관 임명시 헌법 이해도 반영 필요”여든의 노학자는 헌법 연구에만 매진한 인생을 조용히 돌아봤다. 그는 학자가 대통령이 될 게 아니라면 정치권에 진출하는 것에 회의적이다. 학자가 정계에 발을 들이는 순간 학자의 소신을 지킬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 교수는 1980년대 여야를 막론하고 정부에서도 관료로 ‘러브콜’을 받았지만 모두 거절했다. “저는 대학교수가 관료나 정계로 가는 걸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았어요. 학자나 언론인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말을 할 수 있지만 관료나 정치인이 되면 조직 논리가 우선하거든요. 소신을 지키려면 쓴소리도 할 줄 알아야 하는데 공직에서 그런 사람은 살아 남기 힘들죠. 정치권은 특히 더 심하고요. 어떤 정치인이 공천권을 쥐고 있는 당수와 싸울 수 있겠어요” 장시간의 인터뷰는 젊은 기자도 피로감을 느낄 정도였지만 김 교수는 여전히 생기가 넘쳤다. 헌법과 사회 질서에 대한 고민에서는 좌익 프락치로 몰려 잡혀가는 친구들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소년 김철수의 고민도 고스란히 묻어 나왔다. 인터뷰를 마치며 책장 가득한 그의 저서를 보며 “인세도 많이 받으셨겠다”는 농담 섞인 질문을 던졌다. “옛날엔 꽤 들어오더니만 요즘은 학생들이 책을 안 사긴 참 안 사네요”라며 웃어 보였다. ■김철수가 걸어온 길 1933년 경북 대구 출생(6남 1녀 중 장남) 1956년 서울대 법과대학 졸업 1957년 서독 뮌헨에서 전혜린과 결혼 1961년 서독 뮌헨대 졸업 1962년 서울대 법과대학 조교수 1967년 미국 하버드대 법과대학원 수료 1971년 서울대 법학박사 1972년 서울대 법과대학 교수(~1998년) 1988년 한국공법학회 회장(~1989년) 1990년 한국헌법연구소 소장(~2001년) 1995년 한국법학교수회 회장, 국제헌법학회 이사 1998년 제주 탐라대 총장(~2000년)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1998년~) ■주요저서 헌법학(1972) 현대헌법론(1979) 비교헌법론(1980) 법과 사회정의(1982) 한국헌법사(1988) 법과 정치(1995) 정치개혁과 사법개혁(1998) 헌법정치의 이상과 현실(2012)
  • 바이든, 러시아 정권교체 시사…러 “바이든이 결정할 사안 아냐”

    바이든, 러시아 정권교체 시사…러 “바이든이 결정할 사안 아냐”

    폴란드 연설 “민주주의 억압 푸틴, 권좌에 있을 수 없어”미국 언론 “푸틴에 대한 퇴진 촉구·대러접근 변화” 보도백악관 “이웃국 향한 권력행사 불허한다는 뜻” 해명러시아 “당신 결정 사항 아냐” 반발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에 대해 “권좌에 계속 남아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러시아가 침공한 우크라이나의 접경국인 폴란드 바르샤바를 방문 중인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면서 이렇게 밝혔다고 미국 AP통신·CNN이 보도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언급은 사실상 러시아의 정권 교체를 촉구한 것으로 해석된다. AP는 “바이든 대통령이 푸틴의 퇴진을 촉구했다”고 했고 CNN은 “바이든 대통령이 푸틴이 더는 러시아의 지도자가 돼선 안 된다고 선언했다. 미국의 러시아 접근법에 중대한 변화를 반영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에 러시아 크렘린궁의 드미트리 페스코프 대변인은 “그것은 바이든 씨가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라며 “오직 러시아 연방 국민의 선택”이라고 반박했다. 백악관 관계자는 연설 직후 바이든 대통령이 러시아의 정권 교체를 언급한 게 아니라고 진화에 나섰다. 관계자는 “바이든 대통령 발언의 요점은 푸틴 대통령이 이웃나라나 그 지역에 대해 권력을 행사하도록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라며 “그는 러시아에서 푸틴 대통령의 권력이나 정권 교체에 대해 논의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 전쟁은 러시아의 전략적 실패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신속하고 가혹한 대가만이 러시아의 진로를 바꿀 유일한 방법이다”라고 했다. 또한 푸틴 대통령을 향해 “단 1인치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영토로 이동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다만 그는 “미군은 러시아군과 충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토 동맹을 방어하고자 유럽에 있다”며 우크라이나 내에 미군이 개입할 의사가 없음을 강조했다. 또한 “러시아가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있다”며 “푸틴 대통령이 거짓말로 전쟁을 정당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지난 30년에 걸쳐 독재 세력이 전 세계에 걸쳐 되살아나고 있다”며 “그것은 법치·민주적 자유·진실에 대한 무시를 특징으로 한다. 오늘날 러시아는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자신의 나라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그렇게 하려 했다. 민족적 연대의 잘못된 주장에 따라 이웃국들을 무력하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또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비(非)나치화’한다고 뻔뻔스럽게 말하는데 이는 거짓말이다”라며 “민주적으로 선출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유대인으로 그의 부친 가족은 나치 대학살로 말살됐다. 푸틴은 이전의 모든 독재자처럼 후안무치하다”고 비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을 ‘범죄자’로 칭하면서 “그는 나토 확대를 러시아를 불안정하게 하려는 제국주의 프로젝트로 그리고 싶어 하지만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나토는 방어 동맹으로 러시아의 종말을 추구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또한 러시아 국민을 향해 “여러분은 우리의 적이 아니다”라며 “나는 여러분이 무고한 어린이와 조부모의 죽음을, 또 러시아의 미사일과 폭탄을 맞고 있는 병원과 학교·산부인과의 상황을 받아들인다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것은 과거의 기억이 아니다”라며 “정확히 러시아군이 바로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우리는 여러분과 함께한다”고 연대감을 표했다.
  • 디지털 공간, 누군가 당신을 노리고 있다[OTT 언박싱]

    디지털 공간, 누군가 당신을 노리고 있다[OTT 언박싱]

    1995년 개봉한 영화 ‘네트’는 휴가를 떠난 한 여성이 위험에 빠지는 이야기를 다뤘다. 적대 세력에 의해 디지털 공간에서 개인 정보가 완전히 지워진 여성은 휴대전화와 여권을 도둑맞은 순간 세상에 자신을 증명할 길이 없어진다. 이 때문에 어떠한 보호도 받지 못하고 위험에 노출된다. 당시 큰 충격을 줬던 이 작품에 등장한 디지털 범죄는 27년이 지난 현재 더욱 교묘해지고 강력해졌다. 이를 잘 보여 주는 드라마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클릭베이트’(2021)다. ‘클릭베이트’는 클릭(Click)과 미끼(Bait)의 합성어로, 자극적인 제목과 이미지 등으로 가치가 떨어지는 콘텐츠의 클릭을 유도하는 행위를 말한다. 스마트폰을 통해 언제 어디서든 디지털 공간에 접속할 수 있는 요즘 클릭베이트는 더욱 빈번해지고 있다. 만약 이 행위가 범죄에 활용되면 어떻게 될까. 어느 날 온라인 공간에 건실한 가장 닉의 동영상이 올라온다. 누군가에게 납치당한 그는 자신이 성범죄자이며 동영상 조회수가 500만을 넘어가면 목숨을 잃는다고 말한다. 매스컴은 앞다퉈 이 사실을 보도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빠르게 퍼진 닉의 영상은 조회수가 급상승하기 시작한다. 클릭을 멈춰 달라는 가족의 호소와 달리 그 속도는 점점 빨라진다. 이러한 모습은 SNS가 지배하는 현대사회의 범죄 양상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SNS 범죄에는 특정한 가해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불특정 다수가 어디에선가 흘러나온 허위 사실, 비방, 모욕에 가담한다. 이들은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거나 피해자가 극단적인 상황에 직면한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발을 뺀다. 또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자정을 운운한다. 하지만 미끼와 자극이 가해지면 똑같은 현상이 반복된다. 닉은 온라인상에서 좋은 먹잇감이 된다. 네티즌들은 자신의 클릭 한 번으로 성범죄자를 처벌할 수 있다는 그릇된 정의감에 빠진다. 범인은 닉의 개인정보를 도용해 온라인 범죄를 저지른 건 물론 그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네티즌에게 돌리는 일종의 게임을 설계한다. 게임 속에서 네티즌들은 살인을 유희처럼 즐긴다. 열심히 버튼을 누르면 퀘스트를 깨는 오락처럼 클릭을 반복해 한 개인을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것이다. 이는 범인이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코드이자 악플로 대표되는 온라인 인격 살인이 발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웨이브를 통해 국내에 소개된 영국 BBC의 6부작 드라마 ‘더 캡처’(2019)는 디지털 범죄의 새로운 형태로 떠오르는 딥페이크가 소재다. 딥페이크는 특정 인물의 얼굴 등을 인공지능(AI) 기술을 사용해 영상에 합성한 편집물을 말한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아이리시맨’(20 19)이 이 기술을 활용해 로버트 드니로와 알 파치노의 젊은 시절 모습을 담아내며 호평을 들은 바 있다. 이처럼 딥페이크 기술은 영상 제작에 있어 획기적인 발전을 보여 주지만 범죄에 악용될 우려가 있다.‘더 캡처’는 한 군인이 딥페이크로 인해 범죄자로 몰리는 과정을 그린다. 전쟁범죄로 재판을 받던 숀은 무죄를 선고받은 다음날 자신을 변론한 변호사 해나의 살인 용의자가 된다. 서로 키스만 나누고 헤어졌을 뿐인데 폐쇄회로(CC)TV에는 그가 해나를 폭행한 뒤 끌고 가는 장면이 찍혀서다. 기억과 영상이 배치될 때 우리는 영상을 믿는다. 기억은 변질될 수 있는 반면 영상은 진실을 복제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기술이 발달할수록 거짓과 진실의 영역은 점점 흐려진다. 소통을 위한 SNS와 환상을 실현시키는 딥페이크가 행복이 아닌 두려움의 대상으로 변질돼 버렸다는 점은 이 두 작품이 현실에 보내는 경고다. 디지털 공간이 우리에게 더 많은 시간과 정보를 요구할수록 디지털 범죄의 공포는 더 가까이 다가올 수 있다. 8부작으로 완결한 ‘클릭베이트’와 시즌2 소식이 들리는 ‘더 캡처’의 이야기는 다가올 미래가 아닌 이미 펼쳐진 현실이다. 각각 청소년 관람불가, 15세 이상 관람가. 김준모 키노라이츠매거진 편집장
  • [나우뉴스] “러 군인, 숨어있던 여성들 강간”…우크라 피란민 충격 증언

    [나우뉴스] “러 군인, 숨어있던 여성들 강간”…우크라 피란민 충격 증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민간인 피해가 폭증하는 가운데, 폐허가 된 우크라이나의 한 마을에서 러시아 군인들이 피신한 우크라이나 여성들을 성폭행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우크라이나 현지 언론인 유로마이단프레스(EP)의 21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아나스타샤 타란(30·여)은 얼마 전 수도 키이우 외곽에 있는 이르핀에서 극적으로 탈출했지만, 탈출 과정은 지옥 그 자체였다. 타란은 EP와 한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점령한 마을은 지옥과도 같았다. 침략자들은 이르핀 주민들을 끔찍하게 대했다”면서 “러시아 군인들은 지하실에 숨어 있던 여성들을 강간했으며, 무고한 민간인에게 마구 총을 쏘아댔다”고 주장했다.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 역시 러시아 군인들이 무력한 우크라이나 여성을 상대로 성폭행을 저질렀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쿨레바 장관은 “러시아 군인들이 우크라이나에서 민간인을 성적으로 학대했다는 보고서를 받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크라이나 하원의원인 레시아 바실렌코 역시 “러시아군이 키이우 외곽 마을에서 피난이 어려운 노인들을 성적으로 학대했다는 보고가 있었다”고 말했고, 남부도시 헤르손에 거주하다 피난을 떠난 한 20대 여성은 “지인을 통해 헤르손 거리 한복판서 젊은 여성들이 러시아 군인에 의해 성폭행을 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덧붙였다. 러시아 군인들이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는 주장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4일 쿨레바 장관은 영국 왕립국제문제연구소에서 가진 연설에서 “불행히도 우리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도시에서 여성들을 강간한 여러 사례를 알고 있다“면서 ”(국제법은) 이 전쟁을 일으킨 모든 사람이 결국 법의 심판을 받도록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유일한 문명의 도구”라고 주장했다.우크라이나에서 포로 잡힌 러시아 군인에게서 콘돔 뭉치가 발견되는 영상이 공개되기도 했다. 타란은 “남편과 함께 이르핀에서 탈출했지만, 우리에게 남은 것은 여권과 몇 장의 개인 서류, 반려묘 3마리 뿐이었다”면서 “여전히 많은 이르핀 주민들이 마을에 갇혀 있고, 누군가는 탈출을 시도하다가 사망했다. 나는 여전히 밖으로 나가는 것이 두렵다”고 호소했다. 한편, 유엔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 국내에서 피란한 인구는 648만 명, 민간인 사망자는 902명이 넘는다고 밝혔다. 유엔아동기금(UNICEF·유니세프)은 국외 피란민 중 150만 명 이상이 아동이고 이들이 인신매매 등을 당할 위험이 늘고 있다고 우려했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알바’ 후 집가던 여대생 쳐 징역11년 받은 30대…항소 기각

    ‘알바’ 후 집가던 여대생 쳐 징역11년 받은 30대…항소 기각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새벽 귀가하던 여대생을 치어 숨지게 해 징역 11년을 선고받은 30대 남성의 항소가 기각됐다. 대전지법 형사항소2부(부장 최형철)은 24일 도주치사와 위험운전치사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조모(39)씨에 대한 항소심을 열고 조씨와 검찰의 항소를 모두 기각했다. 재판부는 “조씨의 행위는 살인에 준하는 범죄”라며 “1심 형량이 적당하고, 사정 변경도 없다”고 밝혔다. 앞서 검찰은 “음주운전으로 무고한 시민을 숨지게 하고 도주하는 등 죄질이 불량하다”고 조씨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무기징역은 이 사건에 적용할 수 있는 법령상 최고형에 해당한다. 조씨는 지난해 10월 7일 오전 1시 30분쯤 승합차를 몰고 대전 서구 어린이보호구역(제한속도 시속 30㎞) 교차로를 신호 위반해 시속 75㎞의 과속으로 달리다 횡단보도를 건너던 행인 2명을 들이받고 달아났다. 이 사고로 김모(당시 22세)씨가 현장에서 숨졌다. 다른 행인(39)은 중상을 입고 치료를 받았다. 조씨는 ‘뺑소니’로 4㎞ 더 달아나다 인도로 돌진해 화단을 들이받고 멈췄다. 당시 혈중알코올농도는 0.204%로 면허취소 수준을 넘었으나 조씨는 범행 은폐를 위해 차량 블랙박스를 떼어 현장을 벗어났다.경남 김해가 고향인 김씨는 대전 모 사립대 외식조리학과 졸업을 앞둔 대학생으로 가족과 떨어져 혼자 취업 준비를 하면서 치킨 가게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귀가하던 중이었다. 김씨의 어머니는 “취업준비를 하면서 스스로 용돈을 벌겠다며 밤 늦게까지 아르바이트를 마다하지 않았고, 그 날도 택시비를 아끼려고 걸어가다 사고를 당했다”며 “왠지 느낌이 안 좋아 대전으로 출발했는데 대구를 지날 때 사망했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이어 “사고 이틀 전이 내 생일인데 ‘맛있는 거 사 먹으라’고 용돈을 보내주며 통화한 게 마지막일 줄 누가 알았겠느냐”며 “그런데 조씨는 사과 한마디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조씨는 재판 과정에서 34장의 반성문을 제출했으나 조씨를 엄벌하라는 탄원서도 10여통이 접수됐다.
  • 어린이, 의료진까지 죽인 러시아…美 “전쟁범죄” 푸틴 ‘전범’ 규정

    어린이, 의료진까지 죽인 러시아…美 “전쟁범죄” 푸틴 ‘전범’ 규정

    유엔 인권사무소는 23일(현지시간) 러시아의 침공으로 우크라이나 어린이 81명을 포함해 민간인 977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다친 민간인은 어린이 108명을 포함해 1594명으로, 실제 사상자 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산했다. WHO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보건 시설과 노동자 등에 대한 공격은 64건으로 확인됐다. WHO는 “보건 시스템은 목표물이 아니며 목표물이 돼서도 안 된다”라며 러시아의 공격 중단을 촉구했다. 우크라이나에서 국외로 피란을 떠난 난민도 약 한 달 만에 360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 과반인 약 214만 명이 폴란드로 갔고, 나머지는 루마니아(약 56만 명), 몰도바(약 37만 명), 헝가리(약 32만 명) 등으로 피란을 떠난 것으로 파악됐다. 국제기구 통한 처벌 추진 시사 러시아가 민간인을 겨냥한 무차별적인 폭격을 가해 희생자가 속출하는 상황.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전범’으로 규정했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침공 과정에 전쟁 범죄를 저질렀다고 평가한다”고 밝혔다. 블링컨 장관은 “민간인을 의도적으로 겨냥한 무차별적인 공격과 잔학 행위에 대한 믿을 만한 수 많은 보도를 본다. 매일 같이 여성과 어린이 등 무고한 민간인 사상자가 늘고 있다”라며 “러시아군은 아파트, 학교, 병원, 인프라, 민간 차량, 쇼핑센터 구급차를 파괴하고 있고, 이로 인해 수천 명의 무고한 민간인이 죽거나 다쳤다”고 했다. 블링컨 장관은 “미국 정부는 전쟁 범죄 보도를 계속 추적하고, 우리가 수집한 정보를 동맹, 파트너, 국제기구와 공유할 것”이라며 국제사법재판소(ICJ)나, 전쟁범죄 등의 처벌을 위해 설치된 국제기구인 국제형사재판소(ICC)를 통한 처벌 추진을 시사했다.
  • “러 군인, 숨어있던 여성들 강간”…우크라 피란민 충격 증언

    “러 군인, 숨어있던 여성들 강간”…우크라 피란민 충격 증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민간인 피해가 폭증하는 가운데, 폐허가 된 우크라이나의 한 마을에서 러시아 군인들이 피신한 우크라이나 여성들을 성폭행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우크라이나 현지 언론인 유로마이단프레스(EP)의 21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아나스타샤 타란(30·여)은 얼마 전 수도 키이우 외곽에 있는 이르핀에서 극적으로 탈출했지만, 탈출 과정은 지옥 그 자체였다. 타란은 EP와 한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점령한 마을은 지옥과도 같았다. 침략자들은 이르핀 주민들을 끔찍하게 대했다”면서 “러시아 군인들은 지하실에 숨어 있던 여성들을 강간했으며, 무고한 민간인에게 마구 총을 쏘아댔다”고 주장했다.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 역시 러시아 군인들이 무력한 우크라이나 여성을 상대로 성폭행을 저질렀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쿨레바 장관은 “러시아 군인들이 우크라이나에서 민간인을 성적으로 학대했다는 보고서를 받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크라이나 하원의원인 레시아 바실렌코 역시 “러시아군이 키이우 외곽 마을에서 피난이 어려운 노인들을 성적으로 학대했다는 보고가 있었다”고 말했고, 남부도시 헤르손에 거주하다 피난을 떠난 한 20대 여성은 “지인을 통해 헤르손 거리 한복판서 젊은 여성들이 러시아 군인에 의해 성폭행을 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덧붙였다. 러시아 군인들이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는 주장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4일 쿨레바 장관은 영국 왕립국제문제연구소에서 가진 연설에서 “불행히도 우리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도시에서 여성들을 강간한 여러 사례를 알고 있다“면서 ”(국제법은) 이 전쟁을 일으킨 모든 사람이 결국 법의 심판을 받도록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유일한 문명의 도구”라고 주장했다.우크라이나에서 포로 잡힌 러시아 군인에게서 콘돔 뭉치가 발견되는 영상이 공개되기도 했다. 타란은 “남편과 함께 이르핀에서 탈출했지만, 우리에게 남은 것은 여권과 몇 장의 개인 서류, 반려묘 3마리 뿐이었다”면서 “여전히 많은 이르핀 주민들이 마을에 갇혀 있고, 누군가는 탈출을 시도하다가 사망했다. 나는 여전히 밖으로 나가는 것이 두렵다”고 호소했다. 한편, 유엔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 국내에서 피란한 인구는 648만 명, 민간인 사망자는 902명이 넘는다고 밝혔다. 유엔아동기금(UNICEF·유니세프)은 국외 피란민 중 150만 명 이상이 아동이고 이들이 인신매매 등을 당할 위험이 늘고 있다고 우려했다.
  • “푸틴 설득 좀”…31세차 연인 카바예바에 쏠리는 눈

    “푸틴 설득 좀”…31세차 연인 카바예바에 쏠리는 눈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블라미디르 푸틴(69) 러시아 대통령이 궁지에 몰리게 되면 생화학무기를 사용할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는 가운데, 푸틴과 사이에서 두 아들과 7살 된 쌍둥이 딸들, 총 4명의 자녀를 둔 것으로 알려진 알리나 카바예바(38)에게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국 뉴욕포스트, 페이지식스 등 외신은 소식통을 인용해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격을 감행해 무고한 시민을 공격하고 난민 위기를 야기하는 동안 그의 가족들은 스위스 모처에 머물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푸틴 대통령은 첫 번째 아내인 승무원 출신의 류드밀라 슈크레브네바와 두 딸을 시베리아의 지하도시에 은신시킨 것으로 전해졌다. 한 소식통은 22일(한국시간) “카바예바의 친구들이 ‘푸틴에게 전쟁을 끝낼 수 있게 설득을 해달라’는 요청을 하고 있다. 푸틴이  누구의 말도 들을 것 같지 않지만 그의 얘긴 들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카바예바는 푸틴과 접촉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고, 만난다고 해도 아이들과 함께 다시 나올 수 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카바예바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리듬체조 금메달리스트로 리듬체조 역사상 가장 많은 메달을 획득한 선수로 이름을 알렸다. 한때 ‘러시아에서 가장 유연한 여성’으로 불렸으며, 한 남성잡지에서 누드 촬영을 하기도 했다.2008년 첫 염문설…결혼 사실 부인 카바예바와 푸틴 대통령의 염문설이 처음 불거진 것은 2008년이다. 당시 한 매체는 푸틴 대통령이 이혼한 뒤, 카바예바와 결혼할 예정이라고 보도했지만 크렘린궁은 부인했고, 매체는 폐간됐다. 카바예바는 이후 집권 여당인 통합러시아당 공천을 받아 2014년까지 국회의원을 지냈다. 약 8년간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며 러시아 최대 언론사인 ‘내셔널 미디어 그룹’ 회장으로 활동했다. 당시 연봉은 1000만 달러(약 123억원)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카바예바와 푸틴 대통령 사이에 2명의 어린 아들과 쌍둥이 딸은 모두 스위스 여권을 소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립국인 스위스는 지난달 28일 유럽연합(EU)의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페이지식스는 “푸틴 대통령 가족 모두 스위스 여권을 소지하고 있고, 은닉 재산이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스위스의 제재가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불명확하다”고 말했다.
  • [나우뉴스] 묘비처럼…우크라 광장에 놓인 주인잃은 109대의 빈 유모차

    [나우뉴스] 묘비처럼…우크라 광장에 놓인 주인잃은 109대의 빈 유모차

    우크라이나의 한 광장에 빈 유모차 109대가 마치 묘비처럼 진열됐다. 지난 18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 등 외신은 아기도 타지않은 빈 유모차 109대가 우크라이나 서부 도시 리비우의 중앙 광장에 배치됐다고 보도했다. 햇볕이 잘드는 광장 위에 놓인 109대의 유모차는 바로 러시아의 침공 이후 사망한 어린이의 숫자를 의미한다. 전쟁으로 희생된 무고한 어린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빈 유모차가 놓인 것. 이는 동시에 러시아에 대한 강한 비판과 전쟁의 비극을 보여주기도 한다. 실제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3주차에 접어들면서 민간인 피해자의 수도 기하급수적으로 늘고있다.   유엔 인권사무소 측은 17일 기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숨진 민간인 수가 780명에 달한다고 집계했으며 이중 어린이는 52명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당국은 어린이 사망자만 최소 109명으로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다고 보고있다. 특히 최근 폭격으로 상당한 피해를 입은 마리우폴에서만 적어도 2400여 명이 숨졌다는 보도도 나왔다. 또한 전쟁으로 발생한 난민도 문제다. 유엔 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18일 기준 우크라이나에서 다른 나라로 탈출한 난민은 약 327만 명에 달한다. 여기에 러시아의 공격 지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발이 묶인 인구도 약 1200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민간인 피해자가 늘고있는 것은 러시아군의 예상과 달리 모든 전선에서 교착 상태에 빠진 것이 원인이다. 이에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에 대한 무차별적인 포격으로 압박하며 무고한 시민들을 살상하고 있다. 그러나 마리아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러시아 군대는 마을과 도시를 폭격한 바 없다”면서 민간인 살상을 부인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양복→외투→반팔티… 젤렌스키, 국민 희생에 푸틴에 “협상하자”

    양복→외투→반팔티… 젤렌스키, 국민 희생에 푸틴에 “협상하자”

    “협상 준비 됐다. 무고한 국민 잃고 있다”젤렌스키 우크라 대통령, 푸틴에 담판 제안서방 무기 지원에 러시아 첨단무기로 대응전쟁에 집 잃은 국민 1000만명 넘는 상황 무차별 포격 가하는 러, 실무협상에만 집중양복을 입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의 침공 직전인 지난달 20일쯤 국민들에게 러시아와의 전쟁에 동참해달라고 호소했다. 지난달 24일 러시아가 침공을 단행하자 이틀뒤 면도도 못하고 키이우에 선 그는 서방의 탈출작전을 거부했다며 국가를 지키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이달 20일(현지시간) 반팔 티셔츠만 입은 젤렌스키 대통령은 역시 면도도 못한 얼굴로 등장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담판을 제안했다. 그는 점점 증가하는 국민의 희생을 외면할 수 없다고 했다. 미 의회에 도움을 요청하고, 수많은 서방 언론과 인터뷰를 통해 군사적 지원을 호소했지만 3차 세계대전을 우려한 미국 등은 우크라이나 파병은 안 된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무차별 포격을 가하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민간인들의 안전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빠른 결판이 가능한 정상 담판보다 실무진 간 양국 평화협상에 집중하고 있다. ‘전쟁 영웅’으로 평가받는 젤렌스키 대통령은 가장 힘든 순간에 섰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20일 CNN 인터뷰에서 “나는 그(푸틴)와 협상할 준비가 돼 있다. 지난 2년 동안 준비돼 있었다. 협상 없이는 이 전쟁을 끝낼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전쟁을 멈추게 할 단지 1%의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우리는 현장에서 매일 사람들, 무고한 국민들을 잃고 있다”고 했다. 이어 우크라이나가 반격을 통해 존엄성을 증명할 능력이 있다면서도 “하지만 불운하게도 우리의 존엄성이 생명을 보존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젤렌스키 대통령은 최근 폴란드의 미그 전투기 지원 및 자국 영공의 비행금지구역 지정이 사실상 무산된 이후 조 바이든 대통령을 압박하도록 미국 의회에 호소했다. 이는 미 정치권의 큰 지지를 끌어냈지만 결과는 기존과 같이 무기 지원 규모를 늘리는 선이었다. 러시아는 이에 극초음속미사일 ‘킨잘’을 동원해 타격했고 우크라이나가 서방의 무기를 동원해 분전할수록, 민간인의 피해는 급속도로 증가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러시아가 생화학무기와 핵무기를 동원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미국과 서방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이 아닌 우크라이나 문제를 두고 러시아와 협상할 계획은 아직 없는 듯 하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스라엘의 중재 노력에 기대를 걸었지만 이날 “국가 간 (분쟁을) 중재할 수는 있지만, 선과 악 간의 중재 시도는 실수”라며 특별한 성과가 없는 것에 실망감을 나타냈다. 또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CNN에 푸틴 대통령과 자신의 정상 간 협상 시도가 실패할 경우 이번 전쟁이 3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배수의 진’을 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하지만 4차까지 진행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평화회담에서 러시아 측 협상 대표인 블라디미르 메딘스키 대통령 보좌관은 지난 18일 “우크라이나의 중립국 지위와 나토 불가입 문제는 양측이 최대한 입장을 좁힌 조항”이라며 양국 정상 회담은 평화협정에 합의한 뒤에나 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무차별 포격으로 압박하며 요구조건을 하나라도 더 관철시키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우크라이나에서 1000만명 이상이 집을 잃었고 380만명이 국외로 피난을 떠난 것으로 집계된다.
  • “日, 젤렌스키에 돌 던질 자격 있나”...진주만 공격 때 민간인 대거 사망 [김태균의 J로그]

    “日, 젤렌스키에 돌 던질 자격 있나”...진주만 공격 때 민간인 대거 사망 [김태균의 J로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 16일 미국 연방의회 화상 연설에서 러시아의 자국 침공을 일본의 진주만 공격에 빗대어 언급한 데 대해 일본내 보수 진영을 중심으로 거센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젤렌스키와 우크라이나를 더 이상 동정하지 않겠다” 등 대놓고 혐오감을 드러내고 있다. 유명 개그맨 마쓰모토 히토시는 20일 TV에 나와 “(젤렌스키 대통령이) 진주만 공격을 갖다붙인 것은 영 거슬린다. 일본인으로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미국의 지지와 지원을 호소하면서 “1941년 12월 7일 당신을 공격하는 항공기로 하늘이 새까맣게 물들었던 끔찍한 아침 진주만을 기억하라”고 말했다. 동시에 2001년 알카에다에 의한 미 중심부 공격인 9·11테러도 언급했다.  일본 측 불만의 핵심은 ‘9·11은 세계무역센터 등을 겨냥한 민간인 테러이지만, 진주만 공격은 군사시설을 겨냥한 것으로 성격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일본의 국민정서 근저에 자리한 ‘태평양전쟁 책임 불감증’이 여실히 드러났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가운데 반발의 근거가 되는 팩트 자체도 틀렸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뉴스위크 일본판은 지난 19일 ‘젤렌스키의 진주만 공격 언급으로 우크라이나 지지를 철회하는 사람들의 착각’이라는 기사에서 이를 심도 있게 다뤘다.뉴스위크는 “진주만은 군사시설만을 표적으로 한 것이었기 때문에 9·11과 동급으로 비교해서는 안된다는 것은 국제적으로도 극히 소수의 견해에 불과하다”며 “일반적으로 (피해 당사국인) 미국은 9·11과 진주만 공격을 같은 종류의 본토 공격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에서 태평양전쟁의 막을 올린 진주만 공격과 태평양전쟁의 막을 내린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는 각기 무게감이 전혀 다른 ‘가해’와 ‘피해’ 개념으로 인식되는 게 일반적이다. 자국의 진주만 공격이 미 태평양함대와 기지 등 ‘군사적 목표에 대한 공격’이었던 반면 미국의 히로시마 등 원폭 투하는 무고한 인명을 25만명 이상 몰살시킨 ‘민간인에 대한 공격’이라는 정서다. 이에 대해 평론가 후루야 쓰네히라는 “진주만 공격이 애초 군사시설만을 노린 공격이었다는 것이 사실이라 해도 일본군의 인도적 배려라고 하기보다는 민간시설을 폭격해도 얻을 수 있는 군사적 이득이 없었기 때문일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군사목표를 겨냥하지 않았다고 해도) 당시 미국 민간인 68명이 사망하고 35명이 부상했다”며 결과적으로 진주만 공격이 민간인에 피해를 주지 않았다는 주장은 팩트가 잘못된 것이라고 했다. “민간인 사상자 가운데는 당시 미군의 오폭이나 대공포 파편 낙하로 숨진 사람도 포함되지만, 이는 일본군의 공격이 없었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기 때문에 공격을 정당화하는 소재로 삼아서는 안된다.”특히 진주만 공격이 ‘군사시설만을 겨냥한 신사적 공격’이었다는 인식은 ‘그 전쟁은 옳았던 것이다’라는 수정주의 역사관으로 이어질 소지가 크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은 대부분 아시아, 태평양 각지의 전장에서 가공할만한 무차별 폭격으로 악명을 떨쳤다. 중일전쟁 때 중국 충칭 등 인구 밀집 대도시를 초토화시키는 등 도심, 군사시설에 상관없이 무차별 파괴를 자행해 비인도적인 ‘전략폭격’의 원조로 불렸을 정도다. 후루야 평론가는 “만일 중국과 북한이 자위대 기지를 선제공격해 자위대원 약 2300명(진주만 기습으로 숨진 미군)과 민간인 68명이 숨졌을 때 과연 일본이 ‘군사시설만 겨냥한 신사적인 공격’으로 간주할 것인가”라며 “이런 상황에도 분노하지 않을 사람만이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 [속보] 젤렌스키 “푸틴과 협상 실패하면 3차대전” 항전 의지

    [속보] 젤렌스키 “푸틴과 협상 실패하면 3차대전” 항전 의지

    “협상 없이 전쟁 끝낼 수 없다” 우크라이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협상할 준비가 돼 있다며, 협상 시도가 실패할 경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은 3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최근 수일째 4차 평화회담을 이어가고 있다. 젤렌스키는 이날 CNN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2년간 협상을 준비했다. 협상 없이 이 전쟁을 끝낼 수 없다고 생각한다”라며 “이 전쟁을 멈추게 할 단지 1%의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렇게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는 현장에서 매일 사람들, 무고한 국민들을 잃고 있다”라며 “러시아군은 우리를 말살하고 죽이려고 침공했지만, 우리 국민의 존엄성과 함께, 우리 군이 강력한 타격을 줄 수 있고 반격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라며 항전 의지를 전했다. 젤렌스키는 “하지만 우리의 존엄성이 생명을 보존하지는 못할 것”이라며 “그래서 어떤 형식이든, 어떤 기회든 푸틴과 협상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협상 시도들이 실패하면 3차 세계전쟁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며 성공적인 협상을 거듭 강조했다.주민 400명 대피한 학교 폭격당해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동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에 대한 무차별적인 폭격을 이어가는 가운데 현지 지방정부가 주민 수백 명이 대피 중인 학교 시설이 폭격당했으며,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시민 수천명을 러시아 지역으로 강제로 끌고 갔다고 주장했다. 마리우폴 시의회는 “러시아군이 주민 약 400명이 대피한 예술학교 건물을 폭격했다. 건물이 파괴돼 대피한 주민들이 잔해 아래에 있다”고 말했다. 현재 마리우폴은 러시아군에 포위돼 집중적인 폭격을 받고 있다. 지난 16일에도 러시아군의 공습으로 주민들이 대피 중이던 극장 건물이 파괴된 바 있다. 러시아군이 군사시설뿐만 아니라 병원과 교회, 아파트 등 민간 건물도 무차별적으로 폭격하면서 사망자가 속출했고 도시 전체가 폐허로 변한 상태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러시아군이 도시 내부로 깊숙이 진격해 우크라이나군이 도시에 대한 통제력을 잃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는 러시아군의 마리우폴 포위 공격이 ‘전쟁 범죄’로 역사에 남을 것이라면서 “이 평화로운 도시에 점령자들이 한 짓은 수 세기 동안 기억될 테러”라고 비판했다.
  • 묘비처럼…우크라 광장에 놓인 주인잃은 109대의 빈 유모차

    묘비처럼…우크라 광장에 놓인 주인잃은 109대의 빈 유모차

    우크라이나의 한 광장에 빈 유모차 109대가 마치 묘비처럼 진열됐다. 지난 18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 등 외신은 아기도 타지않은 빈 유모차 109대가 우크라이나 서부 도시 리비우의 중앙 광장에 배치됐다고 보도했다. 햇볕이 잘드는 광장 위에 놓인 109대의 유모차는 바로 러시아의 침공 이후 사망한 어린이의 숫자를 의미한다. 전쟁으로 희생된 무고한 어린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빈 유모차가 놓인 것. 이는 동시에 러시아에 대한 강한 비판과 전쟁의 비극을 보여주기도 한다. 실제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3주차에 접어들면서 민간인 피해자의 수도 기하급수적으로 늘고있다.  유엔 인권사무소 측은 17일 기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숨진 민간인 수가 780명에 달한다고 집계했으며 이중 어린이는 52명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당국은 어린이 사망자만 최소 109명으로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다고 보고있다. 특히 최근 폭격으로 상당한 피해를 입은 마리우폴에서만 적어도 2400여 명이 숨졌다는 보도도 나왔다.또한 전쟁으로 발생한 난민도 문제다. 유엔 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18일 기준 우크라이나에서 다른 나라로 탈출한 난민은 약 327만 명에 달한다. 여기에 러시아의 공격 지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발이 묶인 인구도 약 1200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민간인 피해자가 늘고있는 것은 러시아군의 예상과 달리 모든 전선에서 교착 상태에 빠진 것이 원인이다. 이에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에 대한 무차별적인 포격으로 압박하며 무고한 시민들을 살상하고 있다. 그러나 마리아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러시아 군대는 마을과 도시를 폭격한 바 없다”면서 민간인 살상을 부인했다.  
  • 우크라이나 전쟁의 참상…임시 무덤에 줄줄이 묻히는 시신들

    우크라이나 전쟁의 참상…임시 무덤에 줄줄이 묻히는 시신들

    러시아군의 무차별 공격으로 우크라이나 민간인들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는 가운데 전쟁의 참상을 한 눈에 보여주는 영상이 공개됐다. 지난 17일(현지시간) 영국 데일리메일 등 외신은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브(키예프) 인근 도시인 부차 지역에서 수많은 민간인 시신들이 장례식은 커녕 묘비도 하나 없이 매장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현지 주민의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된 영상을 보면 검은색 자루에 담긴 수많은 시신들이 임시로 파낸 도랑에 줄지어 묻히고 있는 것이 확인된다. 보도에 따르면 이곳은 세인트 앤드류 페르보즈반노호 교회 옆으로 총 67명의 사망한 민간인이 매장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주민은 "사망한 사람들을 위한 십자가나 추모비도 없이 이들은 매장됐다"면서 "주민들은 거의 말 없이 엄숙한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시신을 정리해 땅 속에 묻었다"고 밝혔다.실제로 부차는 키이우 외곽 지역 중에서도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피해가 큰 지역으로 17일에는 36t의 식품과 의약품이 전달되기도 했다. 이에 앞서 지난 7일 수도 키이우 북쪽에 자리한 체르니히브시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시신이 집단 매장된 바 있다. 당시 시 공무원들은 도시 외곽 지역에 도랑처럼 땅을 파서 러시아 공격으로 사망한 사람들의 시신을 관에 넣어 일렬로 묻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3주째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처럼 민간인의 피해도 커지고 있다. 이는 러시아군의 예상과 달리 모든 전선에서 교착 상태에 빠진 것이 원인으로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에 대한 무차별적인 포격으로 압박하며 무고한 시민들을 살상하고 있다.  유엔 인권사무소 측은 16일 기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숨진 민간인 수가 726명에 달한다고 집계했으며 이중 어린이는 52명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실제 사망자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이미 수천 명이 사망했다고 밝히고 있으며 최근 폭격으로 상당한 피해를 입은 마리우폴에서만 적어도 2400여 명이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 사진 한 장에 담긴 전쟁의 참상…러 미사일에 엄마 잃은 아들

    사진 한 장에 담긴 전쟁의 참상…러 미사일에 엄마 잃은 아들

    러시아군의 무차별 공격으로 우크라이나 민간인들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는 가운데 전쟁의 참상을 한 눈에 보여주는 사진이 보도돼 안타까움을 주고있다. 지난 17일(현지시간) AFP통신 등 외신은 이날 아침 우크라이나 키이브(키예프)의 한 아파트 땅 바닥에 주저앉아 시신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리는 한 남성의 사연을 보도했다.신원이 공개되지 않은 이 남성은 슬픔을 주체하지 못하고 오열하고 있는데 시신은 바로 자신의 어머니다. 그의 어머니가 목숨을 잃게 된 이유는 너무나 안타깝다. 이날 아침 러시아군의 미사일이 수도 키이브로 날아왔으나 우크라이나 방공망이 이를 격추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미사일 잔해 일부가 이 아파트에 떨어졌고 이 과정에서 1명이 사망하고 3명이 부상을 입었다. 만약 러시아 미사일이 그대로 도시를 강타했다면 수많은 민간인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어 격추된 것이 다행이었지만 한편으로 뜻하지 않은 희생자가 나온 셈이다.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3주째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처럼 민간인의 피해도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이는 러시아군의 예상과 달리 모든 전선에서 교착 상태에 빠진 것이 원인이다. 이에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에 대한 무차별적인 포격으로 압박하며 무고한 시민들을 살상하고 있다.유엔 인권사무소 측은 16일 기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숨진 민간인 수가 726명에 달한다고 집계했으며 이중 어린이는 52명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실제 사망자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이미 수천 명이 사망했다고 밝히고 있으며 최근 폭격으로 상당한 피해를 입은 마리우폴에서만 적어도 2400여 명이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마리아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러시아 군대는 마을과 도시를 폭격한 바 없다"면서 민간인 살상을 부인했다.
  • 풀뿌리 민주주의, 우크라 손잡다

    풀뿌리 민주주의, 우크라 손잡다

    “전쟁 중단과 평화 회복 위해 연대한국도 러 강력한 제재에 동참을”“지구촌에 위기를 가져오고 인권을 침해하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강력히 규탄한다. 우크라이나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군사 공격을 즉각 중단하라.” 전국 22개 기초지방자치단체 간 인권협의기구인 한국인권도시협의회 회원도시 단체장들이 한목소리로 러시아의 행위를 규탄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연대의 뜻을 전했다. 한국인권도시협의회는 17일 서울 중구 주한 러시아대사관 인근에 있는 정동제일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성명을 발표했다. 이 자리에는 협의회 회장인 이동진 서울 도봉구청장을 비롯해 문석진 서울 서대문구청장, 김정식 인천 미추홀구청장 등이 참석했다. 이 구청장은 “평화와 인권을 옹호하는 국제사회의 우려에도 러시아가 감행한 전쟁이 벌써 4주째에 접어들었다”면서 “한국인권도시협의회는 우크라이나의 주권 및 영토 수호 의지를 지지하며, 다시는 무고한 희생이 없도록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쟁을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이어 문 구청장은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 시민이 우크라이나의 자유, 인권, 평화와 민주주의의 회복을 위해 함께 마음을 모아 연대할 것을 호소한다”고 강조했다. 국내에 거주하는 우크라이나인들도 참석해 조속히 전쟁을 중단할 것을 호소했다. 서울팝스오케스트라 단원인 콘스탄틴은 “러시아의 공격으로 수많은 민간인, 특히 어린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 전쟁은 정당화될 수도, 용서받을 수도 없다”면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평화를 위한 대화에 나서길 바라지만 러시아가 전쟁을 중단하지 않는 한 한국도 러시아에 대한 강력한 제재에 동참해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서울시구청장협의회(회장 이성 구로구청장)도 앞서 지난 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무력 침공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서울시 구청장 일동’ 명의로 발표된 입장문에서는 “전쟁을 경험하고, 아직도 휴전 상태에 머물러 있는 우리나라 입장에서 전쟁에는 승자란 없으며, 모두가 패자일 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며 “우크라이나에 하루빨리 평화가 찾아오고, 국민이 일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기초지방정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 한국민속촌, 26일부터 봄 축제 웰컴 투 조선 개막

    한국민속촌은 봄 시즌 축제인 ‘웰컴 투 조선’을 오는 26일부터 6월 26일까지 진행할 계획이라고 17일 밝혔다. 행사 기간 주말과 공휴일에는 무고한 백성을 괴롭힌 사또를 벌하는 내용의 마당극 ‘사또의 생일잔치’가, 평일에는 민속 마을 사람들이 잔치를 준비하며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룬 마당극 ‘지금 우리 고을은’이 펼쳐져 관람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할 예정이다. 또 입고 온 옷에 따라 신분이 정해지는 ‘노비 7부제’가 시행돼 노비가 된 관람객과 추노꾼 캐릭터의 추격전이 펼쳐진다.추노꾼에게 잡힌 노비는 감옥에 갇히는 상황극을 함께 하게 된다. 이밖에 재미난 MBTI 검사를 할 수 있는 3초 한약방을 비롯한 각종 체험 행사가 열려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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