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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78㎏ 참치, 日 경매서 약 35억 원에 낙찰…기록 경신

    278㎏ 참치, 日 경매서 약 35억 원에 낙찰…기록 경신

    일본의 한 남성이 도쿄에서 열린 새해 첫 수산 경매에서 거대한 참치를 한화로 약 35억 원에 낙찰받았다. 영국 BBC 등 해외 언론에 따르면 5일, 일본에서 대형 요식업체를 운영하는 키요시 키무라는 최근 도쿄 도요스 수산시장에서 새해 처음으로 열린 경매에 참여해 대형 참치를 낙찰 받았다. 이 남성이 사들인 참치는 무게 278㎏의 참다랑어로, 일본 북부 연안산이다. 낙찰 가격은 3억 3360만 엔(한화 약 34억 7000만원)이며, 이는 종전 기록인 2013년 1억 5500만 엔(약 16억 1330만원)의 두배가 넘어 신기록을 달성했다. 수 십 억원에 달하는 참치를 사들인 기무라 기요시는 ‘일본 참치왕’을 자칭하는 요식업체 대표이며, 경매가 끝난 뒤 “좋은 참치를 샀다. 가격은 생각보다 비쌌지만, 손님들이 이 훌륭한 참치를 드셔보실 수 있길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편 새해 첫 참치 경매는 도매업자와 스시업계의 대표주자들이 참여하며, 대체로 크고 질 좋은 참치를 매우 높은 가격에 낙찰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경제블로그]김동연 전 부총리, “정책결정 과정의 반성 없어 아쉬워”

    [경제블로그]김동연 전 부총리, “정책결정 과정의 반성 없어 아쉬워”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2017년 11월 정무적 고려로 적자국채 발행을 지시했다고 폭로한 당사자인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가 침묵을 깨고 지난 3일 페이스북에 장문의 글을 남겼습니다. 김 부총리는 게시글에서 “공직자는 당연히 소신이 있어야 하고 그 소신의 관철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도 “소신과 정책의 종합적이고 합리적인 조율은 다른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김 부총리는 이어 “34년 공직생활 동안 부당한 외압에 굴복한 적은 없다”면서도 “다른 부처, 청와대, 나아가서 당과 국회와 협의하는 과정에서 보완될 수도, 수용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 정책형성 과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적자국채 발행이 청와대의 외압 때문이 아니라 종합적인 고려에 의한 판단이었다는 겁니다. 이런 김 부총리의 설명은 기재부의 해명과 비슷한 맥락입니다. 하지만 김 부총리는 신 전사무관이 지적한 정책결정 과정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신 전 사무관은 지난 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정치개혁)에 올린 ‘나는 왜 기획재정부를 그만두었는가‘라는 글에서 정책결정과정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했습니다. 신 전 사무관은 “정책 페이퍼를 쓰고 나면 이걸 청와대에 보고해야 하는 건지 말아야 하는 것인지 고민한다. 청와대에 보고를 하기로 결정하더라도 청와대 지시와 부처 명령체계 내의 지시가 다르면 재차 고민한다. 누구말을 따라야 하는 것인가“라고 실무진의 고충을 토로했습니다. 청와대와 부처에 이중으로 보고 절차를 밟아야 하는 과정에서의 혼선을 말한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김 부총리의 해명이 불충분하다는 지적이 공무원 사회 내부에서도 잇따르고 있습니다. 우선 청와대와 정부부처 간의 소통 부재가 심각한 것으로 보입니다. 중앙부처의 A사무관은 “청와대에서 갑자기 지시를 떨어뜨려서 빨리 뭘 만들어내라고 하니 설익은 정책들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면서 “부처의 정책 자율권을 보장해주고 자율권이 충돌하면 조정해주는 것이 상급기관의 역할인데 그런 부분이 개선이 안되는 고질적인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신 전 사무관은 청와대의 부당한 지시가 있어도 부처에서 제대로 대응하기 쉽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이런 신 전 사무관의 인식에 공감하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중앙부처의 B사무관은 “대통령은 늘 바뀌지만 청와대 시스템은 달라지지 않는 것 같다”면서 “말도 안되는 지시를 받았지만 버텼다고 눈밖에 난 적이 있는데, 어설프게 나서면 바로 아웃된다는 인식이 팽배해서 속마음을 털어놓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습니다. 경제부처의 C과장은 “청와대와 부처간 의견이 다를 경우에는 청와대의 무게감이 다르기 때문에 부담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더 늦기 전에 바꾸어야 한다. 정권이 아니라 시스템을 말이다”라고 지적한 신 전 사무관의 글 맺음말이 울림을 주는 이유입니다. 세종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2030 세대] 양갱을 들여다보자면/김현집 미 스탠퍼드대 고전학 박사과정

    [2030 세대] 양갱을 들여다보자면/김현집 미 스탠퍼드대 고전학 박사과정

    어렸을 땐 뭐든 단정해 버리기 쉽다. ‘나름 다르다’, 이런 말은 밋밋하고 설득력이 없다.방학 때 집에 돌아오면, 한국과 외국 생활을 비교했다. 한국에선 무엇이든 신속하고 편리하고 정확하다. 길도 시원스럽다. 영국은 오래되고 낡아 불편하지만 아름답다. 풀과 나무는 짙푸르고 화려하다. 반면 한국의 색은 왠지 어둡다. 어린 나에겐 이 점이 특히 거슬렸다. 유럽의 색은 다채롭다. 사람들도, 심지어 하늘도, 잔디도 그렇다. 풀벌레도 자지러지지 않고 점잖게 우는 것 같았다. ‘아름다운 건 서양이다.’ 나는 그렇게 단정했다. 대학에서 들었던 ‘동양의 미와 예술’ 같은 강의도 나의 이런 억지를 막지 못했다. 그럴 즈음 읽었던 책이 나쓰메 소세키의 ‘풀베개’다. 나쓰메는 나처럼 영국 유학 경험이 있었다. 정확히 100년 전이다. 나쓰메도 동서양 사이에서 고민이 많았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박쥐처럼 쥐와 새 사이를 오갔다. 일본은 서구화되고 있었고, 나쓰메는 영문학을 공부했다. 그러다 보니 작품이 동양의 미에 대한 사유로 가득하다. 양갱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도 한다. ‘서양 과자 중에서 이토록 쾌감을 주는 것은 하나도 없다. 크림의 빛깔은 약간 부드럽기는 해도 다소 답답하다. 젤리는 언뜻 보석처럼 보이지만 부들부들 떨고 있어 양갱만큼의 무게감이 없다. 백설탕과 우유로 오층탑을 세우는 짓은 언어도단이다.’(송태욱 역) 동양의 아름다움을 처음 나에게 설득력 있게 보여 준 글이었다. 감각적인 미, 서양뿐만 아니라 동양에도 있었다. 양갱에도 있고, 양갱과 같은 어두움을 품고 있는 우리 할아버지 정원 석등 위에 자란 이끼에도 있다. 양갱 하나로 나쓰메는 내가 동양의 색깔을 바라보는 태도를 바꿔 놓았다, 마치 코페르니쿠스가 우주의 축을 다시 잡았듯이. 서양의 색이 발랑 드러내놓은 색이라면 동양의 색은 감추고 여민 색이다. 무엇이 더 아름다운지는 순전히 개인의 취향이겠지만 양갱을 먹을 때마다 나는 나쓰메를 떠올리고 동양의 색을 음미하게 된다. 동시대의 일본의 또 다른 작가 다니자키 준이치로도 동양의 색과 어둠을 얘기했다. ‘음예예찬’이라는 작품에서 그는 말한다. 일본인은 원래 외광이 닿지 않는 어두운 구석의 맛을 선호하고 즐겼다. 거무스름한 그림자. 그게 일본인의 색이라는 거다(혹은 동양의 색이다). 서양식 화장실은 하얀 타일로 바닥을 깔고, 밝은 전등불로 밝히는데 일본의 화장실은 어둡다. 굳이 화장실이 훤히 밝아 민망한 얼굴을 보지 않아도 좋겠다는 게 그이의 생각이었다. 또한 옻칠한 검은 그릇에 담긴 된장국의 깊은 색을 얘기한다. 이제는 드러내놓고 이게 내 ‘색’이다 말하는 색은 부담스럽다. 이 글을 쓰면서 바흐의 ‘푸가의 기법’을 듣고 있다. 이 독일 음악보다 내 마음을 움직일 음악은 없을 듯하다. 동서양을 너무 따지면 민망하다.
  • “최저임금 시행령 헌법소원은 무리수”

    “최저임금 시행령 헌법소원은 무리수”

    주휴수당 폐지 땐 사실상 16% 임금 삭감 경사노위 논의 안건 채택도 쉽지 않을 듯최저임금 산정에 법정 주휴시간을 포함시킨 최저임금 시행령 개정에 반발한 소상공인연합회가 청구한 헌법소원이 ‘무리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정부가 (대법원 판례를 무시해) 삼권분립 원칙을 깼다”는 이유를 댔지만 정부는 헌법에 배치될 만큼 중대한 절차상 문제가 없다고 강조한다. 3일 학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소상공인연합회의 헌법소원 청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쪽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은 위임입법 사항으로 정부의 고유권한이어서 그렇다. 게다가 이번 시행령 개정으로 주휴수당 지급 의무가 새로 생기는 것도 아닌 만큼 헌법상 ‘영업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고용노동부는 법원의 해석도 시행령 개정에 따라 바뀔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국 법체계에서 위임입법은 일반적이고 최저임금 산정 근로시간도 지금껏 시행령으로 규정해 왔다”면서 “헌법재판소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문제 삼을지 명확하지 않지만 소상공인연합회가 헌재에 의지해 문제를 해결하긴 어렵다”고 진단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결과를 예측하긴 어렵지만 시행령 개정은 현행법에서 미비한 부분을 바로잡기 위한 것”이라면서 “이를 새로운 부담처럼 왜곡하는 주장에 대해선 헌재가 옳은 판단을 내릴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경영계가 요구하는 주휴수당 폐지는 논의 안건으로 올리는 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 당장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문턱조차 넘지 못할 가능성이 있어서다. 여당은 주휴수당 폐지를 반대하고 있으며 정부도 전체 임금체계 개편과 관련해서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를 통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노동계는 주휴수당이 폐지되면 사실상 16%의 임금 삭감이 발생하는 만큼 대화 자체를 거부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도 주휴수당 폐지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김진 법무법인 지향 변호사는 “유급휴일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한 주휴수당 개념을 없애는 것만이 답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근로시간 단축으로 휴일이 보장되고 있으며 급여 수준도 올랐기 때문에 주휴수당 제도에 대한 방향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심현희 기자의 맛있는 맥주 이야기] 겨울에도 핫 뜨거… 동남아에 꽂힌 맥주

    [심현희 기자의 맛있는 맥주 이야기] 겨울에도 핫 뜨거… 동남아에 꽂힌 맥주

    쌀 섞은 라거 위주서 크래프트 유행 소득 증가·새것 선호… 시장 급성장 소규모 양조 허용 베트남 ‘블루오션’ 한파가 몰아치고 있습니다. 이맘때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샌들을 신고 한량처럼 어슬렁 어슬렁 숙소 주변을 걷다가 얼음을 동동 띄운 맥주나 한잔 시원하게 들이키는 상상, 한번쯤은 해보셨을겁니다. 다행히 우린 비행기를 타고 5시간 남짓만 가면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줄 곳에 닿을 수 있습니다. 바로 겨울철 휴가지 1순위로 꼽히는 동남아시아입니다. 덥고 습한 동남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맥주입니다. 대표적인 국가인 태국과 베트남의 맥주 시장 규모만 봐도 이 지역 사람들아 맥주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두 국가의 맥주 판매량은 2017년 기준 각각 2080억 리터, 3917억 리터에 달합니다. 특히 태국보다 인구가 더 많은 베트남은 아시아에선 규모가 중국과 일본에 이어 3위이고, 글로벌 시장에서도 10위권입니다. 맥주가 ‘국민 술’인 셈이죠. 스타일로 분류할 때 동남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가볍고 시원한 맥주는 ‘미국식 부가물 라거’에 속합니다. 맥주에 쌀이 들어갔기 때문인데요. 미국식 부가물 라거란, 맥주에 보리가 아닌 쌀, 옥수수 등의 기타 곡물을 첨가해 저온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효모로 발효한 맥주를 뜻합니다. 과거 미국에선 맥주 만들기에 적합한 보리 품종인 두줄보리가 귀했습니다. 대신 싸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쌀과 옥수수를 넣어 맥주를 만든데서 유래한 스타일이죠. 옥수수가 흔한 멕시코에선 부가물 라거 맥주를 만들 때 주로 옥수수를 사용하고 쌀이 풍부한 태국과 베트남 등의 라거는 양조 시 쌀을 애용하는 경향이 나타납니다.맥주에 이 ‘부가물’들이 들어가면 진한 맥아의 맛이 묽어지고 마실 때 입안에 느껴지는 무게감도 가벼워지는 효과가 납니다. 물론 ‘기타 곡물을 넣은 맥주는 진정한 맥주가 아니다’, ‘유럽식 보리 100% 맥주만이 오리지널이다’라고 주장하는 ‘맥주 덕후’들도 있겠지만, 어쨌든 1년 내내 여름인 지역에서 마시기에 이 부가물 라거는 최적의 맥주 스타일인 셈입니다. 얼음 타서 마시는 ‘부가물 라거’가 오랫동안 지배해 온 이 지역에서도 최근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크래프트 맥주 열풍이 동남아 시장을 피해갈 순 없었기 때문인데요. 5~6년 전 외국인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시장이 조금씩 커지고 있습니다. 유로모니터 이오륜 선임연구원은 “새로운 맥주에 대한 욕구가 소득 증가와 맞물려 동남아의 프리미엄 수입 맥주 및 크래프트 시장을 성장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실제로 지난달 찾은 태국 방콕 수쿰빗 지역의 한 크래프트 맥주 펍은 평일 저녁인데도 늦게까지 현지인들로 가득 차 있었는데요. 이 펍을 운영하는 한국인 안태영(34)씨는 “태국인 평균 임금을 생각하면 한 잔에 6000원이 넘는 크래프트 맥주는 매우 비싼 술이지만,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어 방콕 시내에만 3호점을 준비 중”이라고 하더군요. 맥주 맛은 예상을 뛰어넘었습니다. IPA에 커피를 넣은 신선한 시도도 인상적이었고요. 더운 지역이다 보니 크래프트 맥주들도 전반적으로 가벼운 보디감을 가져 마시기도 편하더군요. 놀라운 점은 소규모 양조장이 맥주를 제조해 판매를 할 수 없게 돼 있는 정부의 강한 규제에도 불구하고 태국인들이 크래프트 맥주를 즐기고 있다는 점입니다. 태국 맥주 시장은 2개의 거대 맥주 회사가 시장을 93% 이상 차지하고 있는 독과점 구조인데요. ‘싱하’를 제조하는 ‘분 라드’ 양조장 규모가 가장 크고 ‘창’ 맥주로 유명한 ‘타이 비버리지 PCL’이 그다음입니다. 소규모 양조장의 외부 유통을 허락하지 않았던 2014년 4월 이전의 한국 맥주 시장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크래프트 맥주에 대한 수요를 법이 가로막는 현실을 태국의 ‘맥덕’들은 인근 캄보디아와 베트남에 양조장을 지어 맥주를 만들고, 자국으로 역수입하는 방식으로 타파하고 있습니다. 아쉽게도 관계자들은 “소규모 양조 면허에 대한 빗장이 풀릴 가능성은 현재로선 적다”고 하네요. 소규모 양조가 가능한 베트남에서는 국내 크래프트 맥주가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호찌민을 중심으로 수십 개의 양조장과 펍이 성업 중인데요. 초창기인 지금은 외국인들이 시장을 이끌고 있지만, 국내 맥주 업계 관계자들은 “머지않아 베트남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인건비가 싸고, 부동산 등 양조장을 짓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 국내 관계자는 “이미 블루오션 단계를 넘어선 국내 크래프트 맥주 회사들 사이에선 아시아 시장을 타깃으로 맥주 비즈니스를 할 때 베트남이 가장 적합한 곳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macduck@seoul.co.kr
  • 美 국방부 새 수장 “中, 中, 中 기억하라”

    中, 시리아 등 현안 제치고 최우선 과제로 “중국, 중국, 중국을 기억하라.” 미국 국방부의 새 수장이 취임 이후 첫 회의에서 중국을 최우선 관심사와 과제로 삼아야 된다고 중국 문제를 전면에 들고 나왔다. 새해부터 미국 국방부를 이끌게 된 패트릭 섀너핸 장관대행은 2일(현지시간) 주요 참모진과의 첫 회동에서 이처럼 중국과의 새로운 ‘강대국 경쟁’ 시대를 강조하면서 국방 전략에 대해 폭넓은 검토를 지시했다고 AP통신 등이 전했다. 중국, 러시아 등과의 경쟁 시대로 접어든 데 초점을 맞출 것을 지시한 국방부의 국가방위전략(NDS)에 무게를 둔 조치다. 섀너핸 대행은 시리아 등 ‘발등의 불’인 현안 처리 과정에서도 중국 업무를 최우선순위에 둘 것을 주문했다. 미 국방부는 지난해 국방전략의 중심을 ‘테러와의 전쟁’에서 ‘강대국 간 경쟁’으로 전환하는 NDS를 발표,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AP·로이터통신 등은 이날 “섀너핸 대행이 이 자리에서 또 NDS에 초점을 맞추고 노력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전했다. 일부에서는 지난해 미 국방부가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로 간주하는 등 강경 입장을 보인 배경에는 섀너핸 대행의 견해가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섀너핸 대행은 자신의 승진으로 공백이 생긴 부장관 임무는 데이비드 노퀴스트 감사 담당 차관이 맡을 것이라고 밝혔다. 섀너핸 대행은 항공사 보잉의 수석 부사장 출신으로 2017년 7월 의회 인준을 거쳐 부장관으로 재직해 왔다. 그는 보잉에서 30여년 동안 방산 관련 업무에 종사했으며, 보잉의 787 드림라이너의 개발·생산을 총괄해 왔다. 그의 부장관 발탁에 대해 당시 존 매캐인 상원의원은 청문회에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지 않는다는 데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한다”며 우려를 보인 바 있다. 일각에서는 “방산업체들이 대중, 대러 긴장 고조를 통해 이익을 보려 한다”는 지적들도 나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섀너핸 부장관에게 지난 1일부터 장관대행을 맡겼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사람 만하네…40kg 짜리 ‘괴물 메기’ 잡은 여성 화제

    사람 만하네…40kg 짜리 ‘괴물 메기’ 잡은 여성 화제

    미국의 한 여성이 40kg에 달하는 대형 메기를 잡아 화제다. 폭스뉴스 등 미국 현지 언론은 지난 2일(현지시간) 미국 테네시주에 사는 파울라 캐시 스미스라는 이름의 여성이 사람 몸집만 한 ‘괴물 메기’를 낚았다고 보도했다. 파울라가 SNS에 게시한 사진에는 두손으로 안기도 힘들만큼의 대형 메기의 모습이 담겨 있다. 파울라는 허벅지에 메기를 올려놓고 온몸으로 지탱하며 겨우 사진을 찍었다. 파울라는 내슈빌 북서쪽 켄터키 호수에서 이 메기를 잡았다. 테네시 야생 동물자원부는 파울라가 잡은 메기 사진을 페이스북에 공유하며 “파울라는 겨울낚시의 묘미를 보여주었다. 파울라가 잡은 40kg짜리 메기는 개인 낚시 최고 기록이다. 그녀는 이 메기를 강으로 다시 돌려보냈다”고 전했다.파울라가 대형 메기를 잡은 테네시 강은 물이 깊고 1년 내내 물고기들이 많기로 유명하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낚시가 특히나 어려운 겨울에 이런 엄청난 크기의 메기가 잡혔다는 것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지역 주민들 역시 이렇게 큰 물고기가 사는 줄은 미처 몰랐다며 놀라움을 표했으며, 파울라가 메기를 다시 방생한 것에 대해 박수를 보냈다. 켄터키 수산자원부는 지금까지 이 지역에서 잡힌 메기 중 가장 큰 것은 브루스 W. 미드키프라는 사람이 20년 전 오하이오 강에서 잡은 것으로 47kg이 넘었다고 밝혔다. 이른바 ‘괴물 메기’로 불리는 대형 메기는 등과 허리 쪽이 옅은 파란색에서 회색빛이 돌고, 배 쪽은 하얀빛이 돈다. 보통은 크기 50~127cm에 무게는 13~27kg 정도이며, 다 자란 물고기는 약 170cm의 크기에 무게는 68kg에 달한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수백만 감동시킨 몸무게 270㎏ 여성의 다이어트 도전기

    수백만 감동시킨 몸무게 270㎏ 여성의 다이어트 도전기

    270㎏에 육박하는 여성의 다이어트 비디오가 수백만 명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미국 미시시피주에 사는 레나트라 리드(39)는 두 달 전 몸무게가 283㎏을 넘어서자 운동을 시작했다. 그녀의 트레이너인 프랭크 하빈은 윗몸일으키기, 타이어 운동, 점핑잭 등 다양한 운동을 하는 레나트라의 영상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유했다. 해당 영상의 조회 수는 순식간에 5200만 회를 넘어섰고, 100만 건에 달하는 지지 댓글이 달렸다. 레나트라는 몸무게가 270㎏을 넘어서면서부터 체중을 재지 않았다. 그러나 점점 불어나는 몸무게 때문에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면서 심각성을 깨달았다. 그녀는 “길을 걷다가 동료들과 얘기를 나누기 위한 것처럼 멈춰서곤 했지만 사실은 숨을 쉴 수 없어 당황했다”고 말했다.23개월짜리 딸이 있는 레나트라는 이대로 가다간 딸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이어트를 결심했다. 그녀는 “내가 잘못돼 내 딸이 다른 사람 손에 크는 것은 볼 수 없었다. 단지 딸의 미소와 성장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다이어트의 충분한 동기가 됐다”고 밝혔다. 이후 하빈과 함께 운동을 시작한 레나트라는 벌써 13㎏ 이상을 감량했고 2년 전 몸무게로 돌아갔다. 그녀는 “단 몇 킬로그램을 뺐을 뿐인데 내 허리둘레가 줄어든 걸 알 수 있다. 심지어 숨도 잘 쉬어진다.”고 말했다. 레나트라는 다이어트를 하고 난 뒤 기분도 좋아졌다고 설명했다.레나트라의 노력에 감명받은 트레이너 하빈은 지난 11월 그녀의 운동 영상을 게재했고, 대중들은 “대단하다. 새로운 당신을 보고 싶다”, “당신이 나에게 동기를 부여했다”며 응원을 보냈다. 하빈 역시 “레나트라는 절대로 그만두지 않을 것이다. 끝까지 밀고 나갈 거라고 믿는다”며 아낌없는 지지를 보냈다. 레나트라의 영상이 화제가 되자 미국의 크라우드펀딩사이트 ‘고펀드미’는 그녀의 개인 트레이닝 비용과 체중감량 후 성형 수술을 위한 모금에 나섰다.레나트라는 “몸집이 크다는 이유로 이제 그만 숨어라. 주저앉아만 있지 말고 일어나라. 당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무언가 해야 한다는 걸 깨달을 필요가 있다”며 사람들을 독려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유족 “임교수, 한때 우울증… 정신질환자 낙인 없는 치료 원할 것”

    유족 “임교수, 한때 우울증… 정신질환자 낙인 없는 치료 원할 것”

    범인, 미리 흉기 준비… ‘계획범죄’ 무게 법원 “구속 필요성 인정” 영장 발부 “아들 살린 은인에게 날벼락” 조문 행렬 정부·의료계 ‘임세원법’ 제정 추진 나서지난달 31일 강북삼성병원에서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진 임세원 교수가 가해자를 피해 도망치는 과정에서 간호사들을 먼저 피신시킨 것으로 확인됐다. 임 교수를 향한 애도의 물결도 커지고 있다. 2일 서울 종로경찰서에 따르면 피의자 박모(30)씨는 사건 당일 오후 5시 44분 신경정신과 상담실에서 임 교수와 진료 상담을 하던 도중 임 교수를 흉기로 찔렀다. 임 교수는 중상을 입은 채 도망치며 간호사들에게 도망치라고 소리쳤다. 이어 간호사가 잘 피했는지 확인한 뒤 박씨가 쫓아오자 다시 달아났다. 하지만 임 교수는 3층 진료 접수실 근처 복도에서 박씨에게 붙잡혀 다시 흉기에 찔렸다. 임 교수는 응급실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지만 과다 출혈 등으로 끝내 숨졌다. 경찰 관계자는 “임 교수가 간호사를 대피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폐쇄회로(CC)TV에 담겼다”면서 “자신이 흉기에 찔렸는데도 간호사가 잘 피했는지 확인하려는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 이날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으러 가는 길에 모습을 드러낸 박씨는 범행 동기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일절 답하지 않았다. 박씨는 조울증으로 불리는 양극성 장애를 앓아 입원 치료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박씨가 흉기를 미리 준비한 점을 토대로 ‘계획범죄’에 무게를 두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이언학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구속 필요성이 인정된다”며 박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임 교수의 여동생 세희씨는 이날 빈소가 마련된 서울적십자병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빠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의료진 안전과 모든 사람이 정신적 고통을 겪을 때 사회적 낙인 없이 치료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임 교수가 자신의 우울증 극복기를 책으로 낸 사실을 거론하며 “사랑했던 환자를 위해 자신을 드러냈던 것”이라면서 “오빠가 직업에 소명의식이 있었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사회적 낙인 없이 치료받기를 원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밝혔다. 임 교수에게 치료를 받은 환자와 가족들은 이날 빈소를 찾아 눈시울을 붉혔다. 지난 10년간 아들의 우울증 치료를 임 교수에게 맡긴 정모(55)씨는 “임 교수는 우울증약을 끊지 못하고 극단적인 행동까지 보였던 아들에게 새 삶을 선물한 은인인데, 이런 날벼락이 어딨느냐”라며 울먹였다. 조문을 마친 동료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너무 갑작스러워 경황이 없다”며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임세원법’ 제정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학회 관계자는 “위급상황 시 의사들이 진료실에서 대피할 수 있는 뒷문을 만드는 등의 안전장치를 두는 내용이 담길 것”이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진료실 내 대피통로 마련, 비상벨 설치, 보안요원 배치, 폐쇄병동 내 적정 간호 인력 유지 등 진료 현장의 안전실태 점검에 나서기로 했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유족 “임세원 교수도 한때 우울증…고통받는 이들 낙인 없는 치료 원해”

    유족 “임세원 교수도 한때 우울증…고통받는 이들 낙인 없는 치료 원해”

    중상 입고 간호사 대피 노력 CCTV 찍혀 범인, 미리 흉기 준비… ‘계획범죄’ 무게 범행동기 질문에는 일절 답하지 않아 정부, 진료환경 안전 개선안 마련키로 외래치료명령제 활성화 법안도 협의지난달 31일 강북삼성병원에서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진 임세원 교수가 도망치는 과정에서 간호사들을 먼저 피신시킨 것으로 확인됐다. 임 교수를 향한 애도의 물결도 커지고 있다. 2일 서울 종로경찰서에 따르면 피의자 박모(30)씨는 지난달 31일 오후 5시 44분 신경정신과 상담실에서 임 교수와 진료 상담을 하던 도중 임 교수를 흉기로 찔렀다. 임 교수는 중상을 입은 채 도망치며 간호사들에게 도망치라고 소리쳤다. 이어 간호사가 피했는지 확인한 뒤 박씨가 쫓아오자 다시 달아났다. 하지만 임 교수는 3층 진료 접수실 근처 복도에서 박씨에게 붙잡혀 다시 흉기에 찔렸다. 임 교수는 응급실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지만 과다 출혈 등으로 끝내 숨졌다. 경찰 관계자는 “임 교수가 간호사를 대피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폐쇄회로(CC)TV에 담겼다”면서 “자신이 흉기에 찔렸는데도 간호사가 잘 피했는지 확인하려는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 이날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은 박씨는 범행 동기에 대해 일절 답하지 않았다. 박씨는 조울증으로 불리는 양극성 장애를 앓아 입원 치료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박씨가 흉기를 미리 준비한 점을 토대로 ‘계획범죄’에 무게를 두고 있다. 임 교수의 여동생 임세희씨는 이날 임 교수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적십자병원 장례식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빠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의료진 안전과 모든 사람이 정신적 고통을 겪을 때 사회적 낙인 없이 치료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임 교수가 자신의 우울증 극복기를 책으로 낸 사실을 거론하며 “사랑했던 환자를 위해 자신을 드러냈던 것이라 생각한다”면서 “오빠가 얼마나 자신의 직업에 소명의식이 있었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사회적 낙인 없이 치료받기를 원했는지 알 수 있었다”고 밝혔다. 아울러 “오빠는 효자였다. 굉장히 바쁜 사람인데도 2주에 한 번씩은 멀리서 부모님과 식사했고, 아이들을 너무 사랑했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대책 마련에 나섰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고인은 생전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걱정하고 치유 과정을 함께 하면서 평소 환자를 위해 성실히 진료에 임했다”면서 “지난 1일 대한신경정신의학회와 회의를 갖고 의료인의 안전한 진료환경을 위해 개선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우선 진료실 내 대피통로(후문) 마련과 비상벨 설치, 보안요원 배치, 폐쇄병동 내 적정 간호인력 유지 등 진료현장 안전실태 조사를 추진한다. 또 비자의 입원 환자에 대해 퇴원 조건으로 1년간 외래치료를 의무적으로 받도록 하는 ‘외래치료명령제’ 활성화 법안도 국회와 적극 협의하기로 했다. 퇴원 정신질환자 정보 연계 관련 법안은 현재 국회에 발의된 상태다. 복지부는 다만 “이번 사건이 ‘정신질환자가 위험하다’는 부정적 인식으로 이어지지는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곧 돌아와 결혼하겠다던 아들이 주검으로”

    “곧 돌아와 결혼하겠다던 아들이 주검으로”

    미얀마 출신 이주노동자 딴저테이 아버지당국 단속 과정서 사망한 아들 소식에 고통 “아들의 죽음으로 제 오른팔 하나가 떨어져 나간 것 같습니다. 이제 전 그저 아들의 죽음의 진실을 알고 싶을 뿐입니다.”지난해 8월 법무부 불법체류자 단속 과정에서 사망한 미얀마 노동자 딴저테이(당시 26세)의 아버지 깜칫(54)은 2일 오후 1시 30분 서울 종로구 조계사 회의실에서 취재진을 만나 조심스레 심경을 털어놨다. 지난달 25일 한국에 입국한 딴저테이의 아버지는 이날 조계사를 찾아 딴저테이 사망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 힘쓴 시민단체들과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소속 스님들을 만나 깊은 감사의 뜻을 전했다. 깜칫은 “아들 딴저테이는 병든 형 대신 자기라도 가족을 부양하겠다고 한국까지 훌쩍 떠나 4년 동안 번 돈을 남김없이 가족에게 보냈던 착한 아들”이었다면서 “비자가 만료될 즈음 자기가 꿈이 있어 1년만 더 일하고 돌아오겠다고 했는데 이렇게 됐다”며 고개를 떨궜다. 이날 아버지 깜칫은 마음에 담긴 말을 길게 꺼내놓지 못했다. 시종일관 목소리는 작았고, 대답을 할 때마다 곤혹스러운 듯 이마와 얼굴을 매만졌다. 마치 아들 사망의 무게가 그의 어깨에 놓인 듯 그의 어깨는 잔뜩 움츠려 있었다. 그는 “무엇보다도 아들의 죽음의 진실을 알고 싶다”고 했다. “법무부가 내놓는 자료만으론 누가 잘못했는지, 공개 영상 이전이나 이후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다”면서 “이 죽음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대통령께서도 힘써주시기를 꼭 좀 부탁드린다”고 부탁했다. 그러면서 “아직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이상 이런 일들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사건 발생 소식을 듣고 지난 9월 한국에 입국했던 깜칫은 아들의 뇌사 판정을 직접 들었다. 그는 “미얀마에서 아들이 잘못됐다는 소리를 한국에 있는 다른 미얀마 노동자 친구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 처음엔 병원 차트에 자살이라고 적혀 있었다고 전해들었다”고 했다. 그 외에 당국의 연락 등 일체의 사망 안내는 없었다. 아버지는 뇌사 상태였던 딴저테이의 장기를 4명의 한국인에게 기증하는 데 동의했다. 한국이 밉지는 않았냐는 질문에는 “아들은 어차피 죽어 살 수 없지만, 아들의 몸으로 아직 살아있는 다른 사람들은 살 수 있다고 해 그렇게 결정했다”고 했다. 또한 “아들이 죽을 당시에는 경황이 없어 몰랐지만, 진실을 밝혀주기 위해 애써주는 분들이 계셔 마음이 나아졌다”며 “정말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자리에는 딴저테이와 한국에서 함께 살았던 노동자 등 동료 2명도 함께 했다. 한국에서 딴저테이와 함께 근무했던 동료 노동자 A씨는 “딴저테이가 고국에 있는 여자친구와 결혼하기 위해 이번 김포 건만 끝나고 돌아가겠다고 했는데, 김포 현장에서 이렇게 됐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2014년 3월에도 다른 단속을 본 적이 있지만 그땐 문 앞에서 신분증을 검사하는 식으로 차분히 진행됐는데, 이번엔 갑자기 들이닥쳐 뛰어다니며 사람들을 잡아끄는 등 그때와는 많이 달랐다”고 증언했다. 딴저테이는 지난해 8월 김포의 한 건설현장에서 갑자기 들이닥친 법무부 불법체류 단속 과정에서 공사 현장에 떨어졌다. 그는 뇌사 상태에 빠졌다가 지난 9월 8일 한국인 4명에게 장기를 기증하고 세상을 떠났다. 딴저테이는 2013년 취업비자로 한국으로 넘어와 2018년 초 비자 연장이 안 돼 불법체류자 신세가 됐다. 이주노동자단체는 단속 과정에서 국가가 안전대책을 제대로 마련하지 않고 토끼몰이식 단속을 강행한 데 책임이 있다고 보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이 사건을 조사중이다. 깜칫은 이날 오후 5시 서울 광화문광장 김용균 분향소에서 태안화력에서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 어머니를 만나 아들을 잃은 부모로서 서로를 위로했다. 글·사진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독일 외국인 혐오 추정 차량 돌진 범죄

    독일 외국인 혐오 추정 차량 돌진 범죄

    새해 첫날 새벽에 외국인 혐오 정서에 물든 것으로 추정되는 독일 운전자가 차를 몰고 시민들을 향해 돌진해 5명이 다쳤다. DPA통신 등은 1일(현지시간) 이른 오전 독일 서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의 소도시 보트로프에서 50대 독일인 남성이 운전하는 차가 새해맞이 폭죽놀이를 하려고 광장에 모인 시민들을 덮쳤다고 보도했다. 어린이 등 4명이 다쳤고 한 여성은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다. 부상자 중에는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출신이 포함돼 있다고 현지 경찰이 전했다. 헤르베르트 로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내무장관은 용의자가 체포된 직후 “외국인을 죽여라”는 발언을 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용의자가 외국인을 해코지하려고 고의로 돌진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조사 중이다. 용의자는 정신적 문제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용의자는 범행 후 인근 도시 에센으로 달아나 두 차례에 걸쳐 또 시민들에 돌진해 1명을 더 다치게 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빨라진 펜… 아날로그·디지털 자유롭게 오가는 삼성 노트북 ‘펜S’

    빨라진 펜… 아날로그·디지털 자유롭게 오가는 삼성 노트북 ‘펜S’

    반응속도 2배 향상·펜팁도 3종류로 다양 텍스트 변환 인식률 높아…무게는 상당삼성전자가 최근 출시한 신제품 노트북 ‘펜S’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는 제품이다. 지난달 20일부터 일주일간 써 본 펜S는 노트북과 태블릿PC 두 개의 모드를 지원하는 ‘컨버터블 노트북’으로 펜의 역할을 최대한 끌어올렸다는 걸 장점으로 내세운다. 이번 제품엔 펜의 반응 속도를 2배 향상시켰고, 펜촉에 해당하는 팁을 3종류로 다양화했다. 펜을 써보기 위해 탑재된 앱 중 가장 기본이 되는 ‘삼성노트’를 사용해 봤다. 펜이 닿은 궤적을 따라 선이 즉각적으로 나타났는데, 시간차는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일러스트레이터 같은 전문가 영역을 경험해 본 적은 없지만 반응 속도만 놓고 보면 실제 연필이나 펜으로 종이에 그리는 것과 큰 차이가 없었다. 세 종류로 제공되는 펜팁은 아날로그 감성을 더 살려 줬다. 제품에 동봉된 도구로 기본 흰색 펜팁을 뽑아 내고 검은색 팁을 끼워 써 보니 미끄러짐이 없이 약간 빡빡한 듯한 필기감이 느껴졌다. 손글씨를 쓰거나 스케치를 하기에 적절해 보였다. 회색 팁은 부드럽게 잘 미끄러지는 재질이었다. 수채화를 그릴 때처럼 터치를 많이 하는 작업에 적당하다. 태블릿 모드에서 회원 가입이나 로그인을 하기 위해 이메일 주소나 아이디, 비밀번호를 입력할 때도 펜을 이용할 수 있었다. 손으로 쓰면 바로 디지털 텍스트로 변환되는 앱이 자동 실행되기 때문이다. 인식률이 매우 높아서 어지간한 악필이 아니면 큰 문제 없이 쓸 수 있겠다 싶었다. 다만 단어 단위로 인식·변환하는 속도가 빠르진 않아서 긴 글을 쉬지 않고 쓰기엔 좀 불편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제품 무게는 상당하다. 15형 제품을 써 봤는데 태블릿PC로 쓰기엔 다소 불편함이 있었다. 무게도 무게지만, 뒤로 접어서 손에 들면 키보드가 눌릴 수밖에 없다. 태블릿 모드에서 키보드가 동작하진 않지만, 버튼이 계속 눌리는 느낌은 사용자에 따라 불편할 수 있을 것 같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금융당국 두 수장, 종합검사제 두고 ‘엇갈린 신년사’

    금융당국 두 수장, 종합검사제 두고 ‘엇갈린 신년사’

    지난해 부활한 ‘금융사 종합검사제’를 놓고 최종구 금융위원장과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신년사를 통해 엇갈린 시각을 드러냈다. 지난 연말 금감원 예산 삭감을 놓고 갈등을 빚었던 두 기관이 올해도 각을 세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1일 금융 당국 등에 따르면 금감원은 윤 원장의 2019년 신년사를 통해 지난해 7월 재개한 종합검사를 본격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종합검사제는 금감원이 금융사를 지정해 강도 높은 조사를 벌이는 것이다. 2015년 금융사에 부담이 크다는 이유로 폐지했다가 윤 원장 취임 이후 다시 운영하고 있다. 윤 원장은 신년사에서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유인부합적 종합검사를 실시하고자 한다”며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검사 부담을 줄여 주되 그렇지 못한 경우 검사를 강화함으로써 금융회사에 감독 목적 달성의 유인을 부여하고 내부 통제 및 위험관리 능력 강화를 유인하는 방식”이라고 강조했다. 윤 원장은 금융사와 소비자 간의 정보 비대칭성을 해소하기 위해선 금감원의 감독이 철저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보고 있다.반면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2019년 신년사를 통해 “과도한 금융 감독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 위원장은 “시장의 자율과 창의를 제약하는 낡은 규제의 틀은 버리고 디지털 혁명 시대에 적합한 새로운 프레임이 필요하다”면서 “암묵적 규제, 보신적 업무 처리, 과중한 검사·제재 등 혁신의 발목을 잡는 금융 감독 행태를 과감히 개선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27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도 “종전에 금융사 부담이 너무 커지지 않도록 금감원이 스스로 (종합검사 폐지를) 결정했는데 그것을 다시 부활시키는 것에 대해 약간의 우려와 의문이 있다”고 말해 종합검사제 부활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금융 업계에선 종합검사를 놓고 두 기관이 충돌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최근 금융위가 규제 완화를 통해 금융산업을 육성하는 방향으로 정책 중심을 잡은 반면 금감원은 윤 원장 취임 이후 감독 기능 강화에 역할의 방점을 찍고 있어서다. 지난해 삼성증권 유령주식 배당 사태와 케이뱅크 특혜 의혹 해명,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등을 놓고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다 연말 금감원 예산 삭감을 놓고 갈등이 깊어진 것도 이런 관측에 무게를 더한다. 일각에선 종합검사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제도 정비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금융사 관계자는 “올해 종합검사 1순위는 지난해 즉시연금 일괄지급 권고를 거부한 삼성생명이 될 것”이라면서 “소비자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검사라도 대상 선정에 객관적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해피 뉴 이어’ 불꽃·레이저쇼… ‘새드 뉴 이어’ 차량·흉기 테러

    ‘해피 뉴 이어’ 불꽃·레이저쇼… ‘새드 뉴 이어’ 차량·흉기 테러

    호주 폭우 몰아쳐도 150만명 불꽃쇼 관람 美 타임스스퀘어선 볼 드롭·공연 펼쳐져 日도쿄서 20대 남성 차량 돌진… 8명 부상 英맨체스터역서 ‘알라’ 외치며 흉기 난동지구촌이 불꽃놀이와 레이저쇼, 폭죽과 거리 콘서트 등 화려한 축제와 카운트다운 행사 속에서 들뜬 새해를 맞이했다. 교회와 성당, 사원 등을 찾아 차분히 기도를 올리거나 가족과 함께 새해 첫날을 보낸 사람들도 많았다. 차량 폭주 등 사건사고도 적지 않았다. 올해도 사모아와 키리바시 등 태평양 섬나라들이 새해 첫날을 가장 먼저 맞았다. 사모아 수도 아피아에서는 불꽃놀이로 새해를 시작했고 해수면 상승으로 국토가 잠기고 있는 키리바시 수도 타라와 주민들은 교회에서 예배하는 등 조용한 새해 첫날을 맞았다. 호주 시드니는 가장 먼저 대규모 축제로 지구촌의 새해를 열었다. 시드니항에서는 8.5t의 폭죽과 10만번 이상의 특수효과를 활용한 역대 최대 규모의 불꽃놀이가 12분 동안 펼쳐졌다.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 속에서도 150만명 이상이 자리를 지키고 불꽃축제를 즐겼다. 세계적인 야경을 자랑하는 홍콩의 빅토리아항에서도 180만 달러(약 20억원) 규모의 불꽃놀이가 10분 동안 진행됐고, 주변 건물에서 레이저쇼와 음악 축제로 수십만 관광객들의 흥을 돋웠다.미국의 대표적인 명소인 뉴욕 맨해튼 타임스스퀘어에서는 무게 6t의 대형 크리스털 볼을 떨어뜨리는 ‘볼 드롭’ 행사가 200만명의 인파들의 환호성을 자아냈고, 언론 자유 침해를 경고하기 위해 11명의 언론인이 크리스털 볼 낙하 버튼을 눌렀다. 타임스스퀘어에서는 볼 드롭 행사 전 스팅, 스눕독,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등 유명 가수들의 공연도 펼쳐졌다.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의 세계 최고층 빌딩 부르즈칼리파에서 열린 불꽃놀이에는 수십만 명의 인파가 몰려 이를 지켜봤고, UAE 라스알카이마에서는 11.8㎞에 이르는 세계 최장 직선 불꽃놀이가 진행됐다.이집트 기자 피라미드에서도 새해맞이 제야의 심야 불꽃쇼가 펼쳐졌고, 영국 런던 시계탑 빅벤 타종과 템스 강변 불꽃놀이도 새해를 기념했다. 독일 베를린은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대형 콘서트와 불꽃·레이저쇼를 열어 새해를 자축했다. 프랑스 파리는 샹젤리제 거리에서 ‘박애’를 주제로 한 불꽃놀이와 레이저쇼가 펼쳐졌다. 음력 설을 쇠는 중국은 조용히 새해를 맞이했다. 베이징올림픽 메인경기장을 포함한 대도시 곳곳에서 새해 카운트다운 행사가 열렸고, 타종 행사를 위해 불교 사찰을 찾는 시민들이 많았다. 2014년 새해맞이 행사 도중에 36명이 압사하는 사고가 발생했던 상하이에서는 주요 거리마다 경찰들의 삼엄한 경계가 펼쳐졌다. 유니세프(유엔아동기금)는 이날 태어난 아기가 전 세계적으로 39만 5072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한편 일본 도쿄에서는 새해 첫날 많은 사람들이 찾는 메이지 신사 부근 시부야구 다케시타거리에서 20대 남성이 승용차로 행인들을 들이받아 대학생 1명이 혼수상태에 빠지는 등 8명이 부상했다. 사고가 난 곳은 연말연시를 맞아 차량의 통행이 금지된 곳이다. 용의자는 “테러를 일으켰다”면서 “사형에 대한 보복으로 (범행)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도심 맨체스터역에서도 ‘알라´를 외친 남성이 흉기 난동을 벌여 경찰관 등 3명이 다쳤다. 필리핀에서는 태풍 오스만 여파로 71명이 숨지고 17명이 실종됐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12일’ 간격두고 태어난 쌍둥이 남매의 기적같은 사연

    ‘12일’ 간격두고 태어난 쌍둥이 남매의 기적같은 사연

    한 날 한시에 태어나는 평범한 쌍둥이들과 달리, 무려 12일이라는 간격을 두고 태어난 쌍둥이 사연이 알려져 놀라움을 안겼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지난달 31일 보도에 따르면 잉글랜드에 사는 비키 그린은 5개월 전, 쌍둥이를 임신한 지 26주 만에 조산의 위험을 맞았다. 곧바로 맨체스터의 세인트메리병원을 찾은 그녀는 의사로부터 최대한 조산을 막아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고, 치료를 시작했다. 하지만 쌍둥이 중 한명인 프리즐리의 출산을 막을 수 없었고, 결국 프리즐리는 임신 26주차에 몸무게 0.67㎏의 미숙아로 먼저 세상에 나왔다. 그린은 남은 쌍둥이가 단 하루라도 더 뱃속에 머물렀다 태어나길 바랐고, 불행 중 다행스럽게도 또 다른 쌍둥이 페이즐리는 그로부터 12일을 더 기다렸다가 오빠인 프리즐리를 따라 세상에 나왔다. 그린은 “첫째인 프리즐리를 출산한 뒤 집으로 돌아왔을 때, 기분이 매우 이상했다. 출산을 했는데도 또 한명의 아이가 여전히 뱃속에 있었기 때문”이라면서 “먼저 태어난 프리즐리는 매우 작은 몸집을 가졌지만 마치 전사처럼 생존을 위한 준비가 돼 있었다”고 전했다. 이어 “의사는 뱃속에 남은 또 다른 쌍둥이는 진통이 오기 전까지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 말했다”면서 “첫째를 낳은 뒤 12일 만에 또 한번 진통을 겪었지만, 현재 두 아이 모두 건강하다”고 덧붙였다. 현지 언론은 쌍둥이가 12일의 간격으로 태어나는 사례는 많지 않으며, 잉글랜드 내에서는 가장 긴 시차를 두고 태어난 쌍둥이일 것이라고 전했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2019 서울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당선소감] 어둠 속 헤매던 글쓰기 숲, 한 줄기 빛 보았다

    [2019 서울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당선소감] 어둠 속 헤매던 글쓰기 숲, 한 줄기 빛 보았다

    저는 글쓰기 숲에서 자주 길을 잃습니다. 어쩌면 글을 피해 도망 다녔다는 말이 더 맞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고 보면 지금껏 어린 시절 아버지 서재에서 대면한 책들에게서 받은 두려움에 붙들려 있었던 게 아닌가 합니다. 글은 엄청난 무게로 압박을 하고, 때로는 허허로운 웃음으로 잡아끌기도 합니다. 생각이 방향을 잃으면 주저앉아 가만히 나를 들여다봅니다. 많은 것들이 살아있는 숲은 언제나 아름답습니다.흔히들 삶과 문학은 하나이면서도 다르다고 하지요. 저는 그 차이가 수렁처럼 깊어 서로 함께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막막한 12월 끝에 받은 당선 소식은 어둠 속에서 본 한 줄기 빛이었습니다. 그대로 앞을 향해 나가도 좋다는 끄덕임이었습니다. 온몸으로 부딪고 살아온 시간 속에서, 더는 도망갈 곳도 없는 저는 늘 부끄럽습니다. 이제는 아이들의 마음을 읽고 찾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부족한 제 글에 힘을 보태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더없는 감사를 드립니다. 무엇보다 함께 글을 읽어주고 정성스럽게 합평을 해준 동화세상 학우들과 선생님들, 글쓰기의 모범을 보여주신 임철우 교수님, 최수철 교수님, 미학에 맛 들이게 해주신 정선태 교수님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문학에 정신 팔려 있는 저를 지켜봐준 가족들과 가차 없는 회초리로 사랑을 주신 돌아가신 아버님과 어머니께, 힘든 세월 잘 견디어준 형제들에게 이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김수은 ▲1953년 전남 강진 출생 ▲서울교육대학교 국어교육과 졸업 ▲한신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백석대 교육대학원 상담심리학과 졸업 ▲초등학교 교사 정년퇴직 ▲현재 그림에니어그램 전문강사
  • [2019 서울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 앙상블/채기성

    [2019 서울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 앙상블/채기성

    사실 경희를 만나려고 만난 것은 아니었다. 내가 먼저 경희를 봤다면 나는 아마도 버스에 타지 않았을 것이다. 나와 곧 결혼을 앞두고 있는 J가 그녀의 어머니를 논현동 게장 집으로 퇴근 시간에 맞춰 모셔 오지 않았더라면 굳이 몸을 구겨 가며 버스를 탈 일도 없었을 것이다. 경희를 만나고 나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정체 탓에 긴 행렬로 이어진 차들 사이를 뚫고 버스는 간신히 일 차선으로 빠져나와 정류장 쪽으로 겨우 몸을 돌렸다. 출입문 앞 쪽까지 가득 찬 사람들의 무게를 견디며 몸을 늘어뜨리고 천천히 기어 오는 버스를 보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일찍 나오지 그랬어. 조금 늦을 것 같다는 내 문자에 대한 J의 회신에도 한숨이 생략된 것처럼 느껴졌다. 마무리하지 못한 일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남들보다 도로 쪽에 위태로울 정도로 바짝 붙어 섰다. 버스 앞문이 열리기는 했지만 입구까지 막아서 있는 사람들을 어깨로 밀어내며 올랐다. 내 바로 뒤에서 어깨로 등을 떠밀던 한 남자는 문이 닫히지 않자 결국 내릴 수밖에 없었다. 남자의 낭패한 표정이 나에게는 왠지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 같았다. 버스 문이 겨우 닫혔다. 수많은 사람들이 버스를 타기 위해 몰려들었지만 선택받은 사람은 나 혼자였다. 근래 들어 가장 운이 좋은 순간이었다.다음 정거장에서 앞쪽으로 몇 사람이 내리면서 문이 열렸다. 출입구 난간에 서 있던 나는 다시 사람들을 밀치고 버스 안쪽으로 올라섰다. 정류장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좁은 버스 출입구로 몰려들었지만 탈 수 있는 사람은 몇 사람 없었다. 출입구 쪽의 사람들에게서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자 거기에는 퇴근 때보다 더 짙어진 어둠이 있었다. 버스 안의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고 무표정하게 저마다의 핸드폰을 보며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버스 창에 반사되어 보였다. 차례로 사람들을 훑어보다 버스 중간 즈음에서 나처럼 창밖을 쳐다보고 있는 사람이 눈에 띄었다. 낮은 조도의 등 아래에서도 확연히 알 수 있었다. 경희였다. 오래전부터 나에게 닿아 있었던 것 같은 무거운 시선. 사람들을 비집고 버스에 탈 때부터 나를 알아봤을 것 같은 시선. 아니면 그전부터. 우리가 서로 보지 않았던 시절부터 그래 왔다고 하더라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은 경희의 무겁고 오래된 시선에 사로잡혀 나는 자리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무표정한 사람들의 흔들림을 사이에 두고, 경희와 나는 창을 통해 비친 서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었다. 앞으로 내려도 되죠? 버스 맨 앞자리에 앉아 있던 한 여성이 기사 쪽을 향해 몸을 치켜세웠다. 버스 기사는 대답이 없었다. 버스 앞쪽으로 끼어들어 미적거리는 차량 때문에 예민해졌는지 기사는 후미 등을 반복해서 껐다가 켜 댔다. 버스 기사는 앞쪽 출입문은 되도록 열지 않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앞쪽으로 내리는 사람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문을 열어 줄 수밖에 없었다. 기껏해야 한두 명 탈 수 있는 공간이라도 타기 위해 정류장에 있던 사람들이 몰리면서 어깨로, 등으로, 자기 곁에 있는 사람들을 밀어냈다. 버스 기사는 혼잡을 피하기 위해 뒷문을 먼저 열어 사람들을 그쪽으로 유도한 다음 앞문을 열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뒤쪽이든 앞쪽이든 누군가 탈 만한 공간은 없었다. 일단 버스 앞쪽 난간에 매달린 다음, 문이 닫힐 수 있도록 까치발을 하고 몸을 앞으로 밀어대는 사람들이 여러 명 있었지만, 위험하다는 기사의 만류로 내려설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타겠다며 몸을 구겨 넣다가 버스를 출발조차 못 하게 만들었던 나를 경희가 봤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얼굴에 열이 올랐다. 고개를 쭉 뻗어서 경희가 있는 쪽을 보려고 했지만 그렇게 해서는 경희를 볼 수 없었다. 다시 창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거기에 움직이지 않고 내게로 향해 있는 경희의 시선이 머물러 있었다. * 경희를 마지막으로 봤던 것은 그녀가 독일로 떠나기 바로 전날이었는데, 그날은 그녀의 생일이었다. 나는 경희의 생일을 기억하고 있었지만 먼저 연락하지는 않았다. 매년 경희의 생일을 챙겨 온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때만큼은 그녀의 생일을 챙길 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먼저 연락을 한 것은 내가 아니라 경희였다. 독일로 떠나기 전에 꼭 나를 보고 떠나야 하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러마 했다. 신용카드 연체 독촉 전화와 문자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외출을 해야 한다는 것도 부담이 됐다. 수개월간 회사의 급여가 체납된 끝에 회사를 그만둔 상태였다. 밀린 임금과 퇴직금이 언제 들어올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었다. 한동안 내지 못했던 월세 비용과 저축, 보험, 통신 요금의 더미에 묻혀 나는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억지로 그 더미를 뚫고 나가 경희를 만나 웃으며 생일을 챙겨 줄 수 있을 만한 여력이 전혀 없던 것이었다. 그녀를 만나는 시간만큼이나 연체된 카드 대금이 불어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돈을 쓰지 않는다고 해도, 적어도 커피 한 잔은 사야 되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니 조금 비참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오늘은 내가 살게. 함께 밥을 먹거나 술을 먹고 나서 경희가 보통 그렇게 얘기하면 나는, 배우가 무슨 돈이 있어, 하고는 늘 그렇듯이 그녀보다 한발 앞서 호기롭게 계산을 하고는 했다. 정말 유명한 배우가 되면, 그때야말로 나를 잊지 말고. 그리고 내가 다짐하듯이 경희의 눈을 보며 얘기하면, 보통 그녀는 익살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명한 배우라는 말이 낯간지럽다는 듯이. 오늘은 내가 살게. 경희가 그렇게 말하면 그렇게 하게 내버려 두어야겠다고 다짐하고 나서야 나는 옷을 챙겨서 나갈 준비를 할 수 있었다. 늘 만나던 홍대입구 8번 출구에서 만나 경의선 숲길 쪽으로 걸어가면서 경희는 딱히 어디를 가자거나 뭘 먹고 싶다고 선뜻 말하지 않았다. 둘이 자주 가던, 맥주를 마시며 음악을 듣기에 괜찮고, 또 무엇보다도 술이며 안주가 그리 비싸지 않은 익숙한 곳 몇 군데를 얘기해 봤지만 경희는 하나같이 마뜩잖은 표정을 지으면서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와인을 마시고 싶어. 그럼 어디? 뭘 하고 싶은데. 그렇게 물으려던 참이었다. 와인. 경희를 따라 입 밖으로 뱉어진 단어의 모음 두 개가 허공에서 공허하게 떠돌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두 개의 원 안으로 와인이 무한대로 부어지고 있는 게 떠올려졌다. 경희와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함께 와인을 마셔 본 적이 없었다. 가자, 안 그래도 생일인데. 그건 비싸잖아. 사실은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건 결국 나에게 향한 말일 뿐, 경희에게 닿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경희가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가지 않을 수는 없어 나는 그렇게 하자고 말했다. 걸음을 옮기는 중에도 와인과 곁들여져 나올 샐러드와 안주 같은 것을 생각하니 머리가 복잡해졌다. 내가 낼게. 와인을 다 마시고 나서 자리를 뜰 때 경희가 그렇게 말하는 것을 상상하는 것이 그저 작은 위안이 되었다. 경희가 그 말을 할 때면 아주 단호하고, 무엇보다 진짜 멋있어 보일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좋아 보인다며 경희가 앞장서 들어간 곳은 이층짜리 주택을 개조해 만든 건물이었다. 그냥 보기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건물 앞에 주차된 차들은 거의 대형 수입차 세단이었다. 광택이 도는 창문 안쪽으로 와인을 마시며 앞에 앉은 남자를 그윽이 바라보는 여자가 보였다. 푸른색을 띠는 롱 드롭 귀걸이가 여자가 웃을 때마다 흔들렸다. 거기 안쪽에 있는 여자와 양복을 입은 남자, 그리고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어쩐지 다른 세상의 사람들 같았는데 그래서 그 안쪽으로 들어간다는 게 여간 내키는 일이 아니었다. 진짜인 사람들은 저기에 있는데, 여기에 어울리는 사람들은 저기 있는데, 그 사람들을 따라 하기 위해서 들어가는 사람처럼 스스로 여겨져서 그랬다. 와인을 좋아하는 줄 몰랐네. 경희는 그 말을 듣고 나를 한 번 쳐다보더니 옷가지들을 풀지 않고 걸치고 있던 머플러를 더 조여 맸다. 춥기도 하고. 와인을 마시면 몸이 좀 따뜻해지지 않을까. 그렇게 말하고 경희는 익살스럽게 웃었다. 마음도. 그 말과 동시에 머금고 있던 웃음이 바람에 꺼진 촛불처럼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그 순간, 경희의 표정은 차갑고, 두 눈은 아래쪽 어딘가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일 것이라고 나는 직감했지만 그에 대해서 바로 묻지는 않았다. 경희는 나와 대화 중에도 반복해서 몇 번쯤 웃다가 다시 떠오르는 생각을 제어하지 못하겠는지 허공에 떠 있는 생각들을 겨냥한 채 눈을 겨눴다. 경희는 내가 한 말을 자주 놓쳐서 무슨 말을 했는지 반복해서 물었다. 경희와 나 사이의 대화들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계속 어긋나고 있었다. 딱히 서로에게 닿을 만한 대화가 없었는데, 생각해 보니 그건 우리가 서로에 대해서 내적 요구가 가장 큰 마음속의 것들을 꺼내 놓지 않았기 때문에 빚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경희가 와인 한 병을 더 마시자고 하기 전에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고, 경희는 와인을 마실 때마다 잔을 비웠다. 처음에는 와인 잔에 반쯤 따르던 나도 양을 삼분의 일로 줄였다. 와인의 건조한 습기가 그녀의 입술에 붙어 입술 틈 사이로 갈라졌다. 깊숙이 몸 안으로 채워 넣을 것이 필요한 사람처럼 경희는 천천히 그리고 느리게 잔으로 담은 붉은색 와인을 몸속으로 들이부었다. 미처 저어할 틈도 없이 경희는 추가로 와인을 주문했다. 경희처럼 단번에 와인을 마셔 버려도 취기가 오르지 않았다. 그곳을 나올 때 경희보다 앞서 나오면서 신용카드로 결제한 금액이 이십오만 원쯤이었는데, 내가 낼게, 라고 경희가 나선 것은 아니었다. 오늘은 네 생일이니까, 이 정도쯤 괜찮아. 내가 먼저 그렇게 얘기하자 경희는 고맙다는 말을 했다. 평소보다 돈을 더 많이 쓴 게 아니냐며 한 번쯤 얘기해 줄 수는 없는 것일까. 나도 위로받고 싶다고. 와인을 마시는 내내 대화가 엇갈린 경희에게 하고 싶었던 말들이 마음속에서 웅얼거렸다. 내가 힘들 때도 타인을 챙겨야 한다는 모순이 나를 초라하게 만들고 있었다. 경희가 독일로 떠난 이후, 우리는 만난 적이 없었다. * 팔꿈치로 등을 짓이기는 듯이 세게 문질렀다가 신경질적으로 툭툭 치는 사람은 내 뒤에 서있던 중년의 여성이었다. 등을 마주 보고 서 있었는데 등을 찌르듯이 뾰족한 팔꿈치로 계속 찔러서 나는 최대한 여자의 등과 멀어지려 앞쪽으로 몸을 바짝 당기고는, 등을 활자로 폈다. 상대적으로 배가 앞쪽으로 들이밀어지는 바람에 이번에는 바로 앞에 서 있던 남자가 고개를 돌려 나를 흘겨봤다. 배를 살짝 집어넣자 다시 여자의 팔꿈치 찌르기가 계속됐다. 내가 앞쪽으로 바짝 다가설수록, 그렇게 해서 생긴 빈 공간을 여자가 오히려 좁혀오는 것 같았다. 앞 남자는 몸이 닿는 게 싫은지 어깨춤으로 나를 살짝 밀쳐냈다. 하는 수 없이 활자로 핀 등을 일자로 세우자 기다렸다는 듯이 여자의 날카롭고 뾰족한 팔꿈치와 닿았다. 왜 자꾸 밀고 그러냐는 여자의 거친 음성과 얼굴이 동시에 나에게 쏟아졌다.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내 쪽을 쳐다봤다. 저도 계속 밀려서요. 여자에게 따지려 들면 더 싸움이 날까 봐 나는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젊은 사람이 싸가지가 없긴. 여자는 그렇게 자기 말만 하고는 몸을 획 돌렸다. 결국 그 말을 타인, 상대방에게 던지려고 작정한 사람처럼, 타인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 의도한 사람처럼 여자는 그 말을 던지고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여자의 팔을 붙잡고 지금 뭐라고 한 거냐며 따지며 물었을 텐데 나는 일부러 평정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저 뒤쪽의 경희도 여기를, 지금 나를 보고 있을 것이었다. 여자의 신경질적인 목소리와 방어하는 내 목소리를 들었을 것이었다. 버스에 탈 때부터, 여자가 팔꿈치로 나를 찌르고, 싸가지 없다는 말을 듣고 있는 순간까지 전부 그대로를 경희는 다 보고 있는 것이었다. 경희와 친구로 지내면서 보여 준 적이 없었던 민낯의 모습들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만 있는 것 같았다. 버스에 타지 말았어야 한다니까. 나를 탓하는 목소리가 뇌에서 진동 주파처럼 반복적으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거기요, 그런 사람 아니에요, 아주머니. 경희의 목소리였다. 아주머니, 방금 뒤에 있는 남자한테 소리 지르신 아주머니요. 차들이 밖으로 늘어서 있었다. 옆 차선으로 옮기려는 차들이 켠 주황색 방향지시등이 깜빡이고, 좁은 틈 사이로 조금이라도 움직이려 하거나 끼어드는 차선을 막아서는 차들의 붉은 후미등이 헤드라이트 불빛과 뒤섞여 흔들리고 있었다. 여자는 사람들로 가려진 버스 뒤쪽을 고개를 돌려가며 목소리의 주인을 찾았다. 뭐야, 누구야. 방금 전의 격앙된 목소리보다 누그러진 신중한 목소리로 여자는 중얼거렸다. 그런 사람 아니라구요, 아주머니 옆에 있는 남자. 싸가지 없는 사람 아니에요. 김이 서리기 시작한 창 위로 희미하게 얹힌 도로의 풍경이 캔버스에서 흘러내린 물감들이 아무렇게나 뒤섞여 만들어 낸 그림 같았다. 경희의 목소리가 내게는 비현실적으로 들렸기 때문인지 바로 앞의 풍경도 아득하게 느껴졌다. 뭐야, 누구야. 누군데 그래 지금. 여자는 연신 뒤쪽을 쳐다보다가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아줌마, 이제 조용히 좀 하세요. 여자 앞쪽에 앉아 있던 중년의 남자가 여자를 향해 말했다. 아니, 내가 괜히 그래요? 여자가 정색을 하고 남자를 내려 봤는데 동시에 여자의 목소리가 버스 기사의 욕설에 묻혔다. 버스 기사는 이제는 참기 힘들다는 듯이 운전석 옆의 창문을 열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버스 앞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싸가지 없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사람들의 웅성거림을 뚫고 경희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사람들의 고개와 시선이 다시 버스 뒤쪽으로 향했다. 경희의 그 말이 귓속에서 울리더니 가슴으로 내려와 울렸다. * 경희와 만나지 않고 지내던 시간 동안 나는 딱 한번 그녀의 연극을 보러 간 적이 있었다. 대학로 소극장에서 연극을 시작했다며 한번 보러 오라는 문자를 받고 나서였다. 경희가 독일로 떠난 이후 연락이 뜸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나는 그녀가 언제 한국에 돌아왔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이후에도 몇 번쯤 경희가 먼저 연락을 해 왔지만 나는 받지 않았다. 한동안 일을 하지 않고 있다가 다시 들어간 직장에서의 일이 절실하기도 했고, 그만큼 일상과 일과 중에는 일보다 중요한 일을 만들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운 마음도 있었다. 책상 한쪽에서 진동으로 울리고 있는 휴대폰 액정 화면 위에 경희라는 이름이 몇 번인가 떠 있었고, 손을 키보드 위에 올려놓은 채 나는 그것을 무심하게 지켜보았다. 진동이 그치고 이름이 사라진 자리에 매번 무표정한 내 얼굴 표정이 비쳐 보였다. 다시 전화가 오면 받아야겠다고, 아마도 그런 생각을 했던 것도 같았다. 그러나 경희가 두 번 연속으로 전화를 하는 일은 없었다. 경희에게 연락도 없이 소극장으로 향한 건, 한 번도 그녀가 연극 무대에서 연기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잘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시작할 만큼 간절히 원하던 뮤지컬을 떠나 갑작스럽게 다른 장르의 무대로 간 이유가 궁금하기도 했고, 연극 무대에 선 경희가 어떤 모습인지 멀리서 한 번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다. 나는 애써 그녀의 변화를 모른 척하고 싶었지만 그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독일로 그녀가 떠난 뒤로 내게 몇 번이나 연락했는지, 언제 연락했는지를 모두 세고 있었던 것처럼 노력해도 지워지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회사 휴게실에서 커피를 내릴 때, 누군가 뒤에서 손으로 등을 짚을 때, 차를 운전하다가 커브를 돌 때 같은 평범한 순간들의 틈을 타고 떠올려지는 기억들이었다. 나랑 사귀자. 농담이라며 경희가 무심코 던진 말이 한동안 얼마나 나를 들뜨게 했는지, 처음 뮤지컬 무대에 선 그녀를 단순히 객석에서 바라보던 일이 그렇게나 떨릴 만한 일이었는지를 재차 묻는 것 같은 기억들이었다. 기억들은 금세 사라졌다가 다시 불현듯 나타났다. 그래서 경희와 멀어지기 위해서는 갖고 있던 기억들이 완전히 소진되어 떠올릴 거리가 없을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한때 삶의 중심과 사건들을 나누고 공유했던 경희와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슬픈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이상할 것도 없었다. 어떤 시절 속에 존재할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인 관계의 인과와 고리가 있는 것일 뿐이고, 우리는 지금 막 그 인과를 빠져나가고 있는 것이라고. 완전히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그 힘에 저항하는 관습과 기억의 뜨거운 층위를 뚫고 나가는 수밖에 없다고 나는 생각했다. 경희의 연극을 보러 온 것은 그런 생각의 연장이었다. 연극 무대에 선 경희를 확인하면 끝내 그 층위를 완전히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내가 그 기억들의 저항에 설득되었기 때문이었다. 중년 남자의 독백으로 시작된 연극의 삼분의 일이 지나갈 무렵까지도 경희는 무대에서 보이지 않았다. 진한 화장을 하고 등장한 중년 남자의 딸이 경희일 것 같았지만 아니었다. 중년 남자의 내연 관계인 직장 후배도 아니었다. 극의 중반 즈음을 지나서 등장한 중년 여성이 경희였다. 앞서 등장한 여성들이 모두 경희가 아닐까 생각했던 탓인지 중년의 여성으로 나타난 경희가 뜻밖에도 낯설게 느껴졌다. 훨씬 나이가 들어 보이게 분장을 한 이유도 있겠지만 그동안 경희가 뮤지컬에서 맡아 왔던 역할들에 비하면 지나치게 정적으로 보였다. 정돈되지 않은 머리와 유행이 지난 옷들을 차려입은 그 역할이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 중년의 역할은 조금 더 나이가 들면 적정하게 소화해 낼 수 있는 게 아니냐며, 연극이 끝난 후에 찾아가 경희에게 얘기해 주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 그런 나이가 되면 말이야, 표현하지 않으려 해도 연기가 자연스러워질 텐데 굳이 왜. 나는 경희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거기까지 떠올리다가 멈췄다. 넌 내 말을 들은 적이 없지. 정작 내가 경희에게 하고 싶던 말은 그 말이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사실은 그 말 안에 내가 경희를 미워하는 감정이 얼마간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그 감정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고 있을 때, 이상하게도 경희가 독백을 할 때마다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일부러 무대 뒤편으로 자리를 잡아 놓기도 했고, 소극장이지만 그래도 무대 조명이 밝아서 어두운 객석의 사람들을 쉽게 알아보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음에도, 경희의 시선이 내게로 고정되어 있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경희를 외면하고,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 그때 혹시 말없이 소극장을 찾아가 공연을 보고 있던 나를 경희가 알아봤는지, 그리고 그녀가 뮤지컬에서 연극무대로 전향한 이유 중에 어떤 것을 먼저 물어볼지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경희네가 했던 연극 공연을 보러 갔었다고, 차라리 그렇게 말을 시작하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럼 경희는 알아, 혹은 그랬어? 그렇게 둘 중에 하나로 대답하고, 나는 궁금했던 것 중 하나는 먼저 알게 될 수도 있을 테니까. 그렇게 다시 관계가 시작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145번 버스는 여전히 천천히 이동하고 있었다. 평소에도 정체가 심한 신사동 고개에서부터 가로수길 입구를 거쳐 신사동 사거리 쪽으로 내려가는 길에 차들이 어지럽게 엉켜 있었다. 신사동 고개에서 정차했다가 출발한 버스는 그나마 정체가 덜한 좌회전 차선으로 옮겨 갔다가, 신사역이 가까워오자 사 차선에서 일 차선으로 한 번에 가로질러 갔다. 그사이 각 차선에 겹쳐 있던 차들 몇 대가 신경질적으로 클랙슨을 울려 댔다. 버스 기사의 거친 운전을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자리에 앉아 있거나 서 있는 사람들 모두 금요일 퇴근길의 정체가 지겨운 표정이었다. 이번 정류장에 내리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람과 앉으려는 사람, 내리기 쉽도록 문 옆으로 가 있으려는 사람들이 뒤섞이는 동안 사람들에게 밀려났는지 경희의 모습은 창에 보이지 않았다. 버스가 느릿하게 가는 동안 나는 자주 버스 뒤편을 쳐다보았다. 사람들의 등과 머리 사이 틈새 어딘가에 경희가 목에 두른 파란색과 검은색 도트 무늬가 새겨진 스카프가 보이는 것도 같았다. 버스는 신사역 정류장 바로 앞에 차를 대지 못하고, 조금 미치지 못한 곳에 정차한 상태에서 문을 열었다. 사람들이 앞 뒤 문 밖으로 쏟아져 내렸다. 나는 내리려는 사람들을 먼저 비집고 들어가 버스 뒤편으로 향했다. 이제는 텅 비다시피 한 버스를 아무리 찾고 둘러봐도, 경희는 없었다. * 아마도 신사역에 도착하기 전이나 아니면 그보다 전 정류장에 내렸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혹 다른 사람을 경희로 착각한 것이 아니었는지 의심도 해 보았지만 그건 분명히 아니었다. 그렇게 깊고 말간 눈빛으로 나를 빤히 쳐다볼 수 있는 사람은 경희밖에 없었다. 화가 렘브란트는 자신의 연대기에 따라 자화상을 그려 냈는데, 청년기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의 모습은 비록 달라졌어도 눈빛만큼은 그대로인 것처럼 느껴진다. 육체는 사라져도 눈빛만큼은 영겁의 시간을 살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나는 한눈에 경희의 눈빛을 알아볼 수 있었다. 경희의 모든 것이 달라진다고 해도 눈빛 하나로 그녀를 구분해 낼 자신이 있었다. 그녀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버스 창을 통해서였지만 서로를 알아보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랬으므로 버스에서 내려 신사역에서 지하철을 갈아타고 집에 도착해서도, 날이 지나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하며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그녀가 있었으나 사라졌던 자리와 음성을 지우지 못하고 더듬거리며 있었다. 몇 번쯤 핸드폰을 들고 경희의 연락처를 훑다가 말고, 통화 버튼을 누르려다 멈추고를 반복했다. 갑자기 사라진 그녀에게 집중되는 생각의 관성이 오히려 나 자신을 괴롭힐 정도였다.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버스에서 경희를 만나기 이전으로 그저, 돌아가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시, 그녀와 연결된 세계에 살고 머물게 될 것이었다. 그녀와 단절된 삶으로서의 세계. 그것이 내가 원하는 일이었으므로 나는 그날의 일을 기억 속에서 정리하기로 했다. 버스에서의 만남과 기억에 욕심을 내지 않기로 했다. 버스에서 경희가 사라진 이유도 묻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마음먹은 대로 경희가 정리가 된 적은 없었다. 삶의 어디선가 경희는 꼭 뛰쳐나오는 것이었다. 145번 버스에서처럼. 전우영씨죠. 굵고 낮은 목소리 톤을 가진 한 남자의 전화를 받은 것은 내가 어느 정도 경희에 관한 일을 어느 정도 잊고 있을 때였다. 회사 연수원에서 승진자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을 받다가 밀려오는 졸음 때문에 잠깐 교육장을 나와 라운지 의자에 몸을 기대고 있던 때였다. 그렇습니다만. 차경희씨의 오랜 친구라고 들었습니다. 남자의 입에서 경희의 이름이 불려졌을 때, 그녀를 생각지 않고 지내던 시간들은 금세 증발되고, 애써 한쪽에 치워 놓고 쌓아 두려 했던 경희의 기억들이 눈앞으로 함몰되어 쏟아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남자의 음성에서 느껴진 알 수 없이 무겁고 감당하지 못할 어떤 예감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남자가 전한 것은 경희의 죽음이었다. 그저 한번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우영씨가 가장 친했던 친구라고 해서요. 마지막에 경희는 우영씨에게 연락을 하지 못했지만요. 제가 대신이나마 한번 만나 뵈어야 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남자의 무거운 목소리는 내 무의식의 심연보다 깊어 그곳에서 나를 끌어내리는 소리 같았다. 온 힘을 다해 끌어내리는 목소리. 반드시 나를 만나야만 한다는 의지와 무게로 나의 목을 끌어안는 목소리였다. 그건 그래서 남자의 목소리라기보다 내 목소리인 것 같았다. 남자를 통해서라도 경희를 알아내야만 한다는 목소리. 그런데 혹시, 전화를 주신 분은 누구시죠. 아, 제 소개를 하지 않았네요. 남자가 헛기침을 하며 목소리를 다듬었다. 경희의 소식이 믿어지지 않았으므로 나는 섣불리 어떤 판단을 할 수가 없었다. 남자의 말을 들으면서도 나는 반쯤 정신이 몽롱한 상태였다. 저는 김재철이라고 합니다. 남자는 굵은 톤으로 지금까지의 조심스러운 말투와 다르게 기운차게 자신을 소개했다. 남자의 이름이 상당히 낯익다는 생각이 들어 기억 속 어딘가 존재하는지 떠올려 보고 있었는데, 남자가 이어 꺼낸 말을 듣고 나서 나는 그가 누구인지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경희와 같은 배우였습니다. 뮤지컬을 오래 같이 했습니다. *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났지만 나는 남자를 만나지 않았다. 남자의 얘기를 듣고, 동창들이나 친구들을 수소문해 경희가 안치되어 있는 납골당을 찾아갔다. 그리고 근 한 달 동안 계속 술을 마셨는데 그때마다 경희에 대한 모든 사소한 기억까지 기억해 내려고 애를 썼다. 경희에 대한 기억을 꺼내면 꺼낼수록 그 기억들의 중심에는 어떤 죄책감이 놓여 있었다. 그녀와의 관계를 단절하고, 기억들을 끊어 내려 했던 죄책감을 희석시키고자 나는 끊임없이 그녀의 기억들을 불러일으키고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래도 한 가지 이상했던 것은, 오 개월 전에 이미 떠난 그녀가 어떻게 불과 이 개월 전에 버스 안에서 나를 마주칠 수 있느냐는 점이었다. 나는 술을 마시면서도, 출근을 하면서도 서류 더미 위로 떠올려지는 그 물음에 대해 제대로 답할 수가 없었다. 내가 본 것은 경희, 차경희가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남자에게 먼저 연락을 한 것은 그 일에 대해 한 번쯤 말해 보고 싶어서였다. 내가 본 것이 경희에 대한 일종의 환영이었는지, 아니면 착시였는지, 혹은 다른 무엇인지 알아보고 싶어서였다. 고백하자면 내가 그녀에게 갖게 된 어떤 죄책감이 버스 안에서의 기억과 강하게 밀착되어 내게서 한시도 떨어져 나가지 않고 있음이 괴로워서였다. 남자는 예상대로 내가 아는 사람이었다. 경희가 했던 한 뮤지컬 공연에서 수도 없이 그녀를 머리 위까지 들어 올리던 상대 남자 배우. 남자는 그때처럼 팔 근육이 여전히 우람했다. 콧수염뿐이었던 수염이 턱 밑까지 깊고 거칠게 길러져 있었다. 더 달라진 게 있다면 한데 묵어 허리까지 내렸던 긴 머리를 잘라내 버린 것이었다. 그가 자신을 들어 올리기 쉽도록 해야 한다며 경희 스스로 다이어트와 금식을 하면서 몸무게를 조절했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분명히 버스 안에 있었던 겁니다.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남자는 경희가 버스 안에 있었던 게 분명하다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실은 버스에 없었던 게 아니구요?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어긋난 겁니다. 그런 일이 종종 있어요. 과거의 시간에 놓여 있던 어떤 순간의 지형이 어긋나거나 뒤틀려서 현재의 시간 어딘가에 다시 배치가 된 겁니다.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에요. 우영씨가 본 건 경희가 맞아요. 그럼, 시간의 잘못된 인과다? 그렇다기보다 찢어 붙이기 같은 거죠. 저쪽 시간에서 잘못 끼워진 시간이 현재의 어떤 시간에 다시 조합된 거예요. 껴 맞춰진 거죠. 그런들 어쩔 수가 없어요. 그건, 시간이 하는 일이니까. 깨진 거울의 한쪽 면에 새 거울 조각을 맞추듯이. 가급적 오류를 그런 방식으로 해결해 가면서, 되도록 완벽한 시간성을 구현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죠. 그러나 모든 것들을 통제할 수는 없는 겁니다. 그러니 우영씨가 본 건 그와 같은 통제에서 벗어난 시간의 왜곡으로 일어난 일이다, 이겁니다. 이 세상에 없는데도 나타날 수 있는? 내가 반문하자 남자는 한쪽 눈으로 윙크를 하며 한 손으로는 엄지와 검지를 ㄴ자로 만들어 나를 쏘는 흉내를 냈다. 쿨. 언제나 만날 수 있다 이 말입니다. 돌이켜 보면, 내가 경희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언젠가부터 그림자처럼 그녀 곁에 붙어있는 남자가 같이 떠올려졌다. 그 남자에 대해 아직도야? 그렇게 물으면 경희는 다른 얘기를 하고 싶어 했다. 왜 대답을 안 해? 그렇게 다시 경희에게 물으며 본론으로 돌아가면, 네가 싫어하잖아. 경희는 그렇게 대답했다. 그 깊고 비어 있는 눈빛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그런 대화는 경희와 만날 때마다 반복이 됐다. 나 역시 경희가 싫어할 것을 알면서도 그게, 매번 집요하게 그 남자에 대해 물었다. 그 사람. 그 사람 뭐? 취기가 볼에 붉게 오른 경희의 오른쪽 눈가가 엷게 떨렸다. 이런 얘기를 더 이상 주고받고 싶어 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 사람 만나러 가지 말라고, 독일에. 독일로 떠나기 전 만났던 그때를 생각해 보면 그래서, 내가 잔인하게 느껴졌다. 언제까지 아내가 있는 사람을 만날 건데, 너. 그래도 그 정도는 늘 경희에게 하는 얘기였으니 어쩌면 거기까지만 말하고 멈췄어도 괜찮을 법했다. 경희는 내가 연이어 던진 말을 듣고 감정적으로 완전히 무너지는 것 같았다. 너는 그 사람의 아내까지 망치려는 거야. 그때, 경희에게 그렇게 소리치며 화를 내고 짜증스럽게 말한 게, 오랜 실직 상태로 지쳐 있던 나 자신에 대한 분노였는지, 아니면 정말 경희가 나의 상태와 상관없이 자신의 생일만 챙기려 드는 것 같다고 여긴 것 때문이었는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분명한 건 내가 오랫동안 그녀의 편이 돼주기보다 조언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며 화를 내고 있다는 사실이었고, 어쩌면 경희는 내가 자신을 혐오스럽게 느끼고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녀에게 실망하며 마음을 닫아 버리려 노력했던 나와 달리, 이제는 세상에 없는 경희에 대해서도 언제든 만날 수 있다고 말하는 남자에게서 나는 어떤 종류의 패배감을 느꼈는데, 자세히 그 감정을 살펴보니 더 깊은 안쪽에는 경희에 대한 부채의 감정이 거기 머물러 있었다. 나를 실망스럽게 쳐다보는 것 같은 경희의 얼굴처럼. * 경희는 그즈음 자주 뮤지컬계를 떠나고 싶다고 얘기를 했다. 그럴 때마다 그렇게 사랑하는 뮤지컬을 떠날 수 있겠냐고 농담조로 말하면 경희는 별 말없이 허공을 쳐다보고는 했다. 그제야 그 질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있다는 듯이. 더 큰 박수를 받는 건 주연급뿐이잖아. 그래서 경희가 그렇게 덜컥 그 얘기를 꺼냈을 때, 정말 그녀에게 뮤지컬에 대한 권태로움이 심각하게 찾아왔구나 싶었다. 경희는 수년째 뮤지컬 무대에서 코러스와 춤을 뒷받침하는 앙상블 역할을 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자랑스러워했기 때문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출연 배우들 중에서도 가장 마지막에 박수를 받는 주연의 뒷모습을 같은 무대에서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황홀하다고 했던 그녀였다. 주연에게 기립 박수를 치는 사람들 중의 하나에 불과한 것처럼 경희가 말했을 때, 경희에게는 뮤지컬을 더 이상 할 수 있는 어떤 동력도 남아있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주연을 맡는 사람은 따로 있더라고. 경희의 그 말이 내게는 인생에서 자신이 주인공이 될 일은 없는 것 같다고 토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자조 섞인 말투로 뮤지컬을 떠나야 하는 이유들을 말하던 끝에, 경희는 그 남자, 김재철이라는 사람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그는 최근에 막을 내린 뮤지컬에서 경희의 파트너 역할을 했던 남자 배우라고 했다. 경희의 뮤지컬을 빠지지 않고 보던 나에게도 익숙한 남자 배우였다. 한데 묶은 긴 머리와 양 팔의 근육을 드러낸 화려한 의상을 입고 경희와 호흡을 맞추던 강한 인상의 그를 나도 강렬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무대에서 경희를 몇 번씩이나 어깨 위로 들어 올리고, 경희의 두 손만을 잡고 몸을 쭉 뻗은 경희를 회전시키는 등의 고난도 동작을 소화해야 하는 역할이었다. 남자가 유부남이었다는 사실은 서울 공연이 끝나고 시작한 지방 투어 때, 회식이 끝나고 각자의 숙소로 돌아가기 전, 자신에게 입맞춤을 하고 난 다음에야 알았다고 했다. 남자가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알고 마음을 돌리기에는 그때는 이미 늦었었다고 경희는 고백했다. 경희는 남자의 아내가, 그 공연을 주최한 뮤지컬 회사의 안무가라는 사실은 남자와 조금 더 깊은 관계로 발전한 후에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남자의 아내가 보는 앞에서 경희는 매일 남자와 공연 연습을 하고 있던 것이었다. 묘해. 경희는 남자와 남자의 아내 앞에서 연습을 하고 있던 순간을 그렇게 묘사했다. 미쳤어?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지르듯이 경희에게 소리를 질렀다. 나를 의심하는 눈초리로 바라보는 아내와 나를 부서질 정도로 사랑하는 남자 사이의 중심에 내가 있는 거잖아. 그런 셋을 단원들이 바라보고 있고 말이야. 너와 남자의 관계를 단원들이 알아? 아내도? 알고 있는 것 같아. 경희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내가 이 극의 주인공이야. * 경희가 뮤지컬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된 것이 한정된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뮤지컬에 대한 권태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남자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경희를 버스에서 마주쳤을 때, 나는 먼저 그 이유를 묻고 싶었었다. 사실 나는 경희가 뮤지컬을 떠난 이유보다 남자와의 관계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지를 묻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그걸 더 궁금해할 것이라는 것을 경희는 아마 알고 있었을까. 그래서 버스에서 사라진 걸까. 나는 오래 경희의 곁에 머물러 있었지만, 생각해 보니 그녀의 편에 서있던 순간들은 많지 않았다. 내가 경희에게 던지고 싶던 질문들은 그래서 수거되어야 할 것들이었다. 더 이상 경희에게 닿지 말아야 할 것들이었다. 퇴근 시간 무렵 145번을 탈 때면, 발뒤꿈치를 들고 버스 안쪽을 살펴보는 버릇이 생겼다. 가만히 서서 고개만 돌려가며 사람들 사이 틈으로만 봐서는 경희를 찾아낼 수가 없는 것이었다. 사람들 사이를 파고들어 가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 됐다. 경희를 다시 만난다면, 아무것도 묻지 않고, 함께 춤을 춰야겠다고 생각했다. 버스 안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내 편을 들어 주는 경희의 목소리가 가끔 환영처럼 들렸다.
  • 지난 여름 혹독한 폭염이 쌀 품질을 떨어트렸다

    지난 여름의 이례적인 폭염이 쌀 품질까지 떨어트린 것으로 나타났다. 충남도 농업기술원은 31일 삼광 등 5개 벼 품종의 현미천립중(현미 1000개의 무게)이 올해 수확기(8월 중순∼9월 하순) 21.5g으로 평년 23.3g보다 1.7g 줄었다. 같은 시기 벼의 제현율(벼가 현미가 되는 비율)도 82.5%에 그쳐 평년(83.4%)보다 0.9% 감소했다. 이에 따라 기술원은 현미가 도정돼 쌀이 되는 도정수율도 1% 넘게 줄 것으로 추정했다. 기술원 관계자는 “날씨가 엄청 뜨거운 상태에서 벼가 익으면 알이 가벼워지고 품질도 떨어진다”며 “올해는 벼에 꽃이 피어 알이 익어가는 8월 중순부터 9월 하순까지 40일간 평균 기온이 평년보다 1.7도나 높은 탓”이라고 했다. 올해 이 기간 하루 평균온도가 22도를 훨씬 넘어 평년 21도 안팎보다 높았다. 이 때문에 농민들은 6월이 적합한 삼광벼의 모내기를 5월로 앞당기고 있다. 기술원은 폭염 전 벼가 익는 ‘빠르미’(충남4호)를 개발했다. 정종태 답작연구팀장은 “모내기가 빨라도 꽃을 피우는 등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신품종 벼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고 했다. 홍성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남북 연락창구 통해 인편으로 첫 전달…김여정·김영철-서훈 메신저 역할 무게

    구체 경로 안 밝혀… 판문점서 접촉 가능성 “조만간 답신 보낼 것”… 특사·핫라인 거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30일 문재인 대통령 앞으로 보내온 친서가 구체적으로 어떤 경로를 통해 우리 측에 전달됐는지 관심이 쏠린다. 서울을 공식 방문한 북한 고위급 인사가 공개적으로 전달한 형식이 아니라 청와대가 돌연 공개했기 때문이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남북 사이 여러 소통 창구가 있다”며 “(북측이) 그중 한 창구, 통로를 통해 전달해 왔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전달 방법이나 장소 등 구체적인 경로는 밝히지 않았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에서 “인편으로 전달된 것으로 알지만 구체적 방식은 모른다”고 했다. 다만 “사람이 오간 적은 없다”고 밝혔다. 북측 인사가 서울로 와서 친서를 전달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북측 인사가 극비리에 서울에 온 게 아니라면 개성공동연락사무소나 판문점을 통해 인편으로 친서가 전달됐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그런데 휴일에는 개성공동연락사무소에 당직자만 근무하는 만큼 북측으로부터 사전 통보를 받고 남측 인사가 판문점에 가서 직접 수령했을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남북 간 연락 창구를 통해 김 위원장이 친서를 보내온 것은 처음이다. 그동안에는 특사단이 직접 친서를 들고 왔다. 최고지도자의 친서이니 만큼 인편으로 격식을 갖춰 전달해 온 것이다. 그랬던 친서를 상시 연락 창구를 통해 주고받았다면 그 자체로 큰 변화인 셈이다. 남북 정상이 자주 만나면서 상시 연락 창구를 통해 실무적으로 친서를 주고받는 단계로까지 남북관계가 발전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다만 판문점 같은 연락 창구를 통하더라도 최고지도자의 친서이니 만큼 김 위원장의 동생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이나 김영철 통일전선부장 등 고위급을 통해 친서를 전달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김영철 부장은 지난 6월에도 미국을 방문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친서를 전달했었다. 북에서 김여정이나 김영철 급의 인사가 나왔다면 우리 측에서도 서훈 국가정보원장 등이 직접 수령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도 조만간 답신을 보낼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북측처럼 비공개 인편으로 보낼 것인가, 특사를 파견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정해진 바 없다”고 답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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