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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설명] 伊 베르가모 코로나 희생자 묘지 앞 진혼곡…

    伊 베르가모 코로나 희생자 묘지 앞 진혼곡 유럽에서 코로나19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주 베르가모의 묘지 입구에서 28일(현지시간) 가에타노 도니체티의 ‘미완성 레퀴엠(진혼곡)’이 연주되는 가운데 희생자 영결식이 진행되고 있다. 오페라 작곡가 도니체티의 고향이자 관광도시로 유명한 베르가모는 코로나19 감염 사태로 인구 12만명 중 6000명 이상이 숨졌다. 세르조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은 영결식 연설에서 “아직도 세계를 위협하고 있는 코로나19로 베르가모에서 수많은 이들이 희생됐다”면서 “마지막 포옹과 인사도 없이 가족을 잃은 이들에게도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위로했다. 베르가모 AP 연합뉴스
  • 파리 예배당 벽 틈에서 프랑스 혁명 유해, 로베스피에르도?

    파리 예배당 벽 틈에서 프랑스 혁명 유해, 로베스피에르도?

    1789년 프랑스 혁명 때 단두대에서 처형당한 이들의 유해 500여구가 통설과 달리 ‘속죄의 예배당’ 벽 안에 묻혀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됐다. 속죄의 예배당은 나폴레옹의 몰락 이후 왕정 복귀가 이뤄져 루이 18세가 형 루이 16세와 그의 부인 마리 앙투아네트의 시신을 1815년 공동묘지에서 역대 왕족의 묘지인 생드니 대성당으로 옮기고 난 뒤 그 터 위에 짓기 시작해 1826년 완공한 건축물이다. 그동안 역사학자들은 프랑스 혁명 때 단두대에서 숨진 이들의 유해는 루이 18세의 명에 따라 발굴돼 파리 지하묘지(카타콤)로 이장됐다고 믿어 왔는데 이 통설을 뒤집을 증거가 이번에 발견됐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과 텔레그래프가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예배당을 관리하는 에므리크 프니구에 드 스투츠는 예배당 벽들에서 발견된 특이한 틈새와 루이 18세가 쓴 편지에서 얻은 힌트를 바탕으로 고고학자에게 조사를 의뢰했고, 고고학자들은 벽들의 틈새에 카메라를 넣어 사람의 뼈로 채워진 나무상자 4개를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2018년의 일이었지만 파리 등 프랑스 전역에서 반정부 ‘노란 조끼’ 시위가 확산할 때여서 알려지면 귀족들의 유해가 묻혀 있다는 소문이 돌아 공격 당할까봐 함구했다고 텔레그래프는 전했다. 이에 따라 본격적인 추가 조사가 내년부터 이뤄질 예정이다. 프랑스 혁명을 논할 때면 빠지지 않는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 유해도 이곳에 묻혀 있을 수 있다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로베스피에르는 1793년 집권 후 정의 구현을 내세워 공포정치를 펼치다 이듬해 단두대 위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가 처형당하면서 지금의 콩코르드 광장에서 루이 16세와 앙투아네트의 목을 참수하고 이곳에 묻어버리면서 시작된 공포 통치도 막을 내렸다. 스투츠는 현지 일간 르 파리지앵 인터뷰를 통해 “고고학자들이 건넨 사진 속에 팔다리 유해가 놓여 있는 것을 보고 너무 감격해 눈물을 터뜨릴 뻔했다”며 “지금까지는 이 예배당이 루이 16세 부부만을 기리는 공간으로 여겨졌는데 이번 발견으로 이곳이 (귀족들과 혁명 참가자들 모두 잠든) 혁명의 공동묘지였음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이곳에 묻혀 있을 수 있는 다른 유명한 인물로는 루이 15세의 정부였던 마담 뒤 바리, 극작가이며 초기 여성 인권활동가였던 올림프 드 고쥬, 오를레앙 공작이며 프랑스의 마지막 국왕인 루이 필리페 1세의 아버지인 루이 필리페 등이 거론된다. 일부에서는 국왕의 엄명에도 부르봉 왕정의 복귀에 불만을 품은 작업 인부들이 반발해 벽 틈에 유해들 일부를 숨긴 것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제주 건축 규제 완화 읍·면 휴게음식점 오수처리시설 가능

    제주 건축 규제 완화 읍·면 휴게음식점 오수처리시설 가능

    제주도는 건축규제 완화와 도민 애로 사항을 해소하기 위해 입법예고한 개정 도시계획조례가 최근 도의회를 통과해 7월말부터 단계적 시행 예정이라고 28일 밝혔다. 조례 주요 내용에는 건축경기 부양을 위해 자연녹지지역 건폐율을 완화하고,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대상 연면적 산정에서 부속용도를 제외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특히 읍·면 휴게음식점(300㎡ 미만) 및 동지역 농산물가공품 생산시설(500㎡ 미만)에 오수처리시설 설치가 허용되며 자연녹지·계획관리지역내 공기업 사무소 허용 등 건축관련 규제가 개선된다. 또 가족묘지·차고지 증명제 목적 소규모 토지 분할이 허용되고, 태양광발전설비를 도로에서 200m 이격하기로 했다. 태양광발전 설비 이격거리 제한규정은 내년 1월부터 시행할 계획이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자치광장] 홍범도 장군, 효창공원에 잠들기를/성장현 서울 용산구청장

    [자치광장] 홍범도 장군, 효창공원에 잠들기를/성장현 서울 용산구청장

    지난 16일 햇살이 따갑게 내려쬐던 여름 초입. 홍범도 장군 기념사업회 이사장인 우원식 국회의원, 기념사업회 관계자들과 함께 효창공원을 찾았다. 정확히는 효창공원 내 백범 김구 선생, 삼의사 묘역과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모셔올 터를 둘러본 것. 문재인 대통령은 3·1절 제101주년 행사에서 카자흐스탄에 안치돼 있는 홍범도 장군 유해를 국내로 봉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지난 7일 봉오동 전투 100주년 기념식에서도 재차 강조했다. 문제는 유해를 모셔올 장소를 찾는 것이다. 정부는 서울 현충원에 더이상 묘역을 조성할 공간이 없어 대전 현충원까지 검토했지만, 확정된 것은 아니다. 용산구는 우리나라 근현대의 아픈 역사와 함께한 충혼의 도시다. 그중에서도 효창공원은 ‘독립운동의 성지’라는 상징적인 면에서 국립묘지인 현충원과는 결이 다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이었던 김구 선생은 물론 초대 임시의정원 의장 이동녕 선생, 국무위원 조성환 선생(군무부장)·차리석 선생(비서장), 이봉창·윤봉길·백정기 의사의 묘역, 안중근 의사 가묘가 있다. 용산구는 효창공원 의열사를 재정비하고 시민들에게 개방하는 것은 물론 독립운동가의 정신을 이어 가기 위한 역사사업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 그 일환으로 2024년까지 서울시와 함께 효창공원을 효창독립 100년 공원으로 조성한다. 독립운동가를 추모하는 동시에 역사를 기억하고, 주민들이 일상의 휴식을 느낄 수 있도록 성소(聖所)로 만들겠다는 취지에서다. 또한 용산구 관내에는 백범 김구기념관, 유관순 열사 추모비는 물론 1911년 항일독립운동 단체인 권업회(勸業會) 초대 회장 최재형 선생의 기념사업회도 있다. 오는 10월이면 이봉창 의사 기념관도 문을 연다. 독립운동의 역사를 느낄 수 있는 인프라가 충분히 갖춰져 있다. 1920년 항일독립전쟁 최초의 승리로 기억되는 봉오동 전투.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홍범도 장군이 이끌었던 대한독립군의 정신을 계승해 한국광복군을 창설했다. 그만큼 홍범도 장군이 독립운동사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용산구는 독립운동을 위해 헌신한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효창공원에 안장할 것을 제안한다.
  • 27일~29일 국립 5·18민주묘지서 ‘예술 만장전’열려

    27일~29일 국립 5·18민주묘지서 ‘예술 만장전’열려

    망자의 넋을 기리는 글이 담긴 만장이 오는 27~29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주변에 내걸린다.특히 5·18 40주년인 올해는 이들 만장이 미국·일본·호주 등 해외 50개 도시에 부내져 ‘광주정신·대동세상’의 의미를 세계인과 공유한다. 광주민족예술인단체총연합(민예총)은 이 기간 5·18민주묘지 입구에서 만장전 ‘예술 만장전-5월의 미풍’을 개최한다. 이번 만장전은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오월 정신을 승리의 역사, 따뜻하고 아름다운 역사로 기억하고 계승하고자 기획됐으며 전국 각지 작가 51인이 참여한다. 민예총은 이번 만장전 이후 작품들을 해외 50개 지역 5·18 행사위로 보낼 계획이다. 미국의 주요 도시 외에도 캐나다 벤쿠버, 토론토, 브라질 상파울로, 일본, 호주 등이 포함돼 있다. 광주의 노여운·박성완·임남진·조정태·최재덕·허달용을 비롯해 구례의 박나리·오치근 작가, 해남의 김우성 작가가 참여한다. 또한 전북의 진창윤,서울의 고경일·김서경·김운성·김종도·김호민·이하 등 전국 작가 51인이 포함돼 있다. 개막 당일 27일 오후 2시에는 민주묘지 입구에서 문화제가 펼쳐진다. 세대를 노래하는 삼촌밴드, 민중가수 류의남 공연, 예술만장 관람투어가 이어진다. 또 전국 농민들의 트럭 518대가 전두환 표정을 풍자한 518개 대형 초상을 싣고 5·18민주광장(옛 전남도청)까지 퍼레이드를 진행할 계획이다. 퍼레이드는 광주민예총을 비롯한 전국 16개 민족예술단체와 전국농민회총연맹이 공동으로 주관하며, 전두환·노태우가 항복한 날에 발표된 6·29선언에 맞춰 진행하자는 의미를 담아 27일에 펼쳐진다. 행렬의 맨 선두에는 전두환을 형상화한 대형 조형물(탑재 높이 1.2m 포함 4.2m, 길이 7m)을 실은 트럭이 서고, 차례로 518대의 트럭이 뒤따른다. 518점 그림은 전국에서 모인 전문작가와 시민, 청소년 참여작가 총 398명이 전두환의 뻔뻔스러운 표정을 다양하게 그린 것이다. 퍼레이드가 끝나면 5·18민주광장에서 5·18제40주년문화예술추진위가 마련한 ‘저항의 밤’ 문화제가 오후 7시부터 펼쳐진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친일잔재청산 특위, 친일찬양금지법 제정 및 국립묘지법, 상훈법 촉구 건의

    친일잔재청산 특위, 친일찬양금지법 제정 및 국립묘지법, 상훈법 촉구 건의

    경기도의회는 제344회 정례회에서 친일잔재청산특별위원회(위원장 김경호)의 (가칭)친일찬양금지법 제정 및 국립묘지법, 상훈법 개정 촉구 건의안을 채택했다. 친일잔재청산특별위원회는 최근 일부 기관 또는 학계에서 독립유공자, 일본군 위안부피해자 및 강제동원 피해자를 모욕하고, 일본의 침략전쟁 행위를 미화하거나 찬양하는 경우가 발생함에 따라, 이러한 친일찬양 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처벌하기 위한 (가칭) 친일찬양금지법의 제정을 촉구하는 건의안을 발의하게 됐다. 또한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에서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자가 현재까지도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어 있음을 개탄하며, 친일반민족행위자의 국립묘지 안장을 금지하고, 이미 안장된 경우 이장을 강제할 수 있도록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의 개정과 친일반민족행위자에게 수여된 서훈을 취소할 수 있도록 상훈법의 개정을 촉구했다. 김경호 위원장은 “과거사 청산 작업은 제국주의에 대한 동조와 추종을 단죄하여 공동체를 보호하고 그 과오와 폐해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역사적인 공동체적 과업”이라며, “3.1운동과 헌법정신을 기리며 인권국가의 위상을 확립하기 위하여 (가칭) 친일찬양금지법이 제정되고, 국립묘지법, 상훈법의 개정이 조속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노태우 장남 “父, 5·18에 무한책임…‘내가 희생되는 게 낫다’”

    노태우 장남 “父, 5·18에 무한책임…‘내가 희생되는 게 낫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인 노재헌 동아시아문화센터 원장은 23일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아버님께서 (1987년) 6·29민주화선언 며칠 전 가족들에게 ‘다시는 광주(사태)같은 일이 일어나면 안 되고 차라리 내가 희생되는 게 낫다’는 비장한 뜻을 밝힌 기억이 난다”고 했다. 노 원장은 이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개인적으로 6·29 선언에 광주 5·18의 정신이 씨앗이 돼 녹아있다고 생각하고, 아버님도 6·29 선언을 하겠다고 말씀하시며 ‘이제 더이상 우리 국민들의 뜻을 물리적이거나 강압적인 힘으로 제압할 수는 없다. 그런 때는 지났다’고 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아버님은 항상 본인이 역사에 대해서는 무한책임을 갖고 있다고 생각을 했고, 5·18과 관련해서 어떤 역할을 하든지간에 책임을 회피하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다”며 “5·18을 둘러싸고 북한국이 개입됐다든지 하는 사실이 아닌 엉터리 뉴스를 통해서 국론이 분열되는 것에 안타깝다는 표현을 많이 하셨다”고 설명했다. 지난해와 올해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참배한 노 원장은 “사실 아버님이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 상황이 오면서 참배를 하고 사죄의 행동을 옮겨야겠다는 생각은 항상 있었는데 지난해 어느 날 갑자기 ‘더이상 미루지 말고 참배하러 가자’는 생각이 떠올라 무작정 내려갔다”며 “사죄에 대한 아버님의 말씀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게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대신 저와 저희 가족이 나서서 치해와 화해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드릴 수 있다면 100번이고 1000번이고 사과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근홍 기자 lkh2011@seoul.co.kr
  • 노태우 장남 “5·18 천번이라도 사과…아버지도 마음 아파했다”

    노태우 장남 “5·18 천번이라도 사과…아버지도 마음 아파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노재헌 동아시아문화센터 원장은 5·18 민주화 운동과 관련해 아버지가 본인의 책임을 회피하려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노재헌 원장은 23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치유와 화해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100번이고 1천번이고 사과를 해야 하고, 할 수 있다. 직접 오지 못하는 아버지의 뜻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뜻을 담아 사죄와 참배를 하고 싶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노 원장은 지난해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했고, 5·18 민주화운동 유공자들에게 직접 사죄의 말을 전했다. 그는 “아버지는 5.18 (민주화 운동과) 관련해 어떤 역할을 했든 간에 본인의 책임을 회피하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5·18 얘기가 나올 때마다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난 부분에 대해 마음 아파했다”고 전했다. 노 원장은 “아버지의 뜻을 이해하고 어떻게든 풀어드려야 한다는 생각과 가슴 아파해왔던 세대로서 나 자신의 책무도 있었다. 대한민국 국민이 우리 현충원에 가서 6.25 전사자에 참배하듯이 우리 광주도 국립묘지고 민주 묘역인데 당연히 참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 원장은 “아버지가 병상에 누우신 지 10년이 넘었다. 말씀과 거동을 전혀 못 하신 지도 꽤 오래됐다. 아무것도 못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노태우 전 대통령의 상태를 설명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보훈대상] 전몰군경 유족 신덕례

    [보훈대상] 전몰군경 유족 신덕례

    신덕례(71)씨는 대한민국전몰군경유족회 서울특별시지부 구로구지회장이다. 구로보훈회관 건립과 보훈예우수당 지원 등 보훈가족 복지증진 활동에 적극 참여했다. 회원 및 불우이웃 돕기, 기초질서 지키기 캠페인, 서해 태안 앞바다 기름유출 등 재해복구 참여로 지역 사회발전에도 기여했다. 휴전선 155마일 종주행사, 6·25 참전 유엔군 전사자 유족 돕기 선양사업 등에 적극 참여했으며 국민들의 애국심 고취와 국립현충원 지킴이 봉사활동, 무연고 묘지 한송이 헌화운동, 수도권회원 현충원 참배 행사 활동으로 나라 사랑 문화 확산에 이바지했다.
  • 한발 떨어져 찾는 ‘은밀한 일상’ 한발 앞서 찾아온 ‘따뜻한 위로’

    한발 떨어져 찾는 ‘은밀한 일상’ 한발 앞서 찾아온 ‘따뜻한 위로’

    빼앗긴 봄에도 꽃은 피듯이 코로나19 시대에도 여름은 왔다. 6월 초, 기온이 27도까지 올라가자 베를리너들은 성급히 옷을 벗고 공원에 드러누웠다. 꽁꽁 싸맸던 마음을 꺼내 햇빛에 널고 ‘코로나 블루’(코로나19로 인한 우울감)에 멍든 몸을 뜨거운 햇살에 지졌다. 남자들은 웃통을 벗고, 여자들은 비키니 차림이었다.7월의 수영장이나 해변이 아닌, 5월부터(!) 공원에서 저러고들 있으니 계절의 경계가 무색했다. 절로 눈길이 갔지만 동네이웃처럼 자주 보다 보니 어느새 익숙한 풍경이 됐다. 하루는 나도 비키니를 챙겨 입고 태닝족에 합류했다. 반듯이 누워 배와 등을 태웠다. 두 시간 남짓 누워 있었는데 벌겋게 살이 익었다. 베를린에선 이미 여름이 시작된 느낌이다.베를린에서 가장 좋은 계절을 꼽으라면 역시 여름이다. 베를린뿐만 아니라 유럽 도시 전체가 여름에 활기를 띤다. 오전 5시가 되기도 전에 날이 밝고(서머타임 때문에), 해는 밤 9시가 넘어야 진다.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고 나오면 하늘은 그제서야 짙은 푸른 색으로 어두워지고 석양의 끝을 지운다. 유럽으로 출장을 올 때마다 놀라던 초여름의 늦은 일몰, 잊고 있던 유럽의 긴 해가 매일 떠오르는 요즘이다. 여름에만 할 수 있는 일도 하나둘 늘어난다. 늦은 밤에 보는 오픈에어 시네마도 며칠 전부터 시작했다. 베를린에 있는 35곳의 야외 영화관이 문을 연 것이다. 야외 영화관은 여름 한철 반짝 문을 열고 9월 초면 문을 닫는다. 오픈에어 시네마가 문을 닫는 건 베를린의 여름이 끝났다는 신호다.●‘한여름 밤의 꿈’ 같은 오픈에어 시네마 지난해 여름엔 거의 매주 야외 영화관에 갔다. 이 좋은 걸 베를린 다닌 지 12년 만에, 남자친구가 생겨서 처음 해봤다. 야외 영화관은 동네마다 몇 군데씩 있다. 큰 공원 안에 있기도 하고 슈프레 강변의 바 안에 있기도 하고 클럽 옆에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곳은 크로이츠베르크의 마리아난 플라츠에 있는 프라이루프트 키노다. 영화관 뒤로는 1800년대에 지어진 멋진 문화공간이 있고, 사방은 나무로 둘러싸여 있다. 처음 가는 사람이라면 시골 숲속이나 인적 드문 공원에 들어가는 기분이 들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자연적이고 평온한 바람이 분다. 오픈에어 시네마의 자리는 일찍 온 순서대로 앉는다. 맨 앞자리 몇 줄은 천으로 된 비치의자를 놓을 수 있다. 자리를 사수하려면 한 시간 정도 일찍 가는 것이 좋다. 줄을 서 있다가 30분 전에 문이 열리면 사람들은 일사불란하게 비치의자를 들고 좋은 자리를 찾는다. 영화관 안에는 생맥주와 팝콘, 커리 부어스트(소시지) 등을 먹을 수 있는 야외 매점도 (당연히) 있다. 매점의 불빛이 서커스장 조명처럼 발랄하다. 야외 영화는 보통 밤 9시가 넘어야 시작한다. 싱그러운 나무의 냄새를 맡고 맥주를 마시며 영화를 보는 건 여름이라서 할 수 있는 일이다. 다른 계절엔 아예 즐길 수 없으니까. 커다란 스크린이 야외에 있으니 코로나19의 일상에서도 상대적으로 안심이 된다. 앉는 사람들 간의 거리는 조정을 하겠지만, 춤도 출 수 없고 디제이도 없이 문을 여는 베를린의 클럽보다는 상황이 훨씬 낫다. 베를린에서 야외 영화관을 고를 때 주의할 점이 하나 있다. 독일어로 더빙된 영화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일이다. 독일에선 극장뿐 아니라 TV에서 보여 주는 모든 해외 영화에 더빙이 돼 있다. 자막이 익숙한 우리에겐 구식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어릴 때부터 오디오 북을 듣고 자는 독일인들에게 더빙은 친숙하고 일상적인 문화다. 더빙 문화의 역사도 길어서, 유명 할리우드 배우들의 목소리는 보통 정해져 있는 성우가 있다. 예를 들어 브루스 윌리스는 30년 넘게 한 목소리다. 야외 영화관을 고를 때는 원어에 영어 자막이 있는 영화를 선택해야 한다. 안 그러면 이해도 못 하는 독일어를 두 시간 내내 듣게 될 수도 있다. ●베를린의 편의점 ‘슈페티’ 앞에서 맥주 한 잔 베를린의 여름이 뜨거워지는 건 슈페티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수로 알 수 있다. 슈페티는 베를린의 편의점 같은 곳. 동네마다 있고 대부분 24시간 문을 연다. 없는 것 없이 다 파는 우리나라의 편의점과는 달리 간단한 식료품과 과자, 음료, 담배류, 술을 주로 판다. 종류마다 다 있는 건 역시 맥주. 밤 10시면 슈퍼마켓까지 다 닫는 베를린에서 유일하게 술을 살 수 있는 곳이다. 그러니 사람들이 밤마다 슈페티 앞으로 모이는 건 당연하다. 술을 사서 가게 앞 인도나 벤치, 길가에 아무렇게나 앉아 마신다. 계절을 가리지 않고 슈페티 앞에는 늘 사람들이 맥주병을 들고 서 있다. 하지만 여름엔 그 열기의 농도 자체가 달라진다. 가게 앞의 긴 테이블과 의자를 가득 메우고 앉아 있는 사람들의 바이브가 짜릿하게 전해진달까. “여긴 뭔데 이렇게 사람이 많아?” 하고 쳐다보면 힙한 바가 아니라 슈페티 앞일 때도 많다. 베를린의 슈페티는 술 취한 아저씨나 돈 없는 어린애들만 가는 곳이 아니다. 온 몸에 문신을 한 힙스터들, 소문 듣고 찾아온 관광객, 클럽 가기 전에 취하러 온 젊은 애들, 집 앞에 한 잔 하려고 나온 동네 주민까지 한데 어울려 같이 마시고 같이 취한다. 동네 사랑방이자 여름엔 펍보다 붐비는 ‘가맥집’이다.그 도시에서 꼭 가 봐야 하는 바 순위가 있는 것처럼 베를린에는 유명한 슈페티 명소가 있을 정도다. 미테의 로젠탈러플라츠 역 바로 앞 슈페티가 그렇다. 밤새도록 사람들이 앉아 술을 마시는 다국적 만남의 장소다. 이곳은 워낙 유명해서 슈페티답지 않게 안에 어엿한 화장실도 갖추고 있다. 서울의 ‘편맥’처럼 베를린에는 ‘슈맥’이 있다. 슈페티 앞에 사람이 꽉 차 있는 밤을 만나면 베를린의 여름밤이 도착했음을 알리는 것이다.●히피들의 은신처, 크룽커크라니히 옥상 바 날이 좋으면 더 각광받는 곳, 바로 루프톱 바다. 베를린에도 내로라하는 야외 옥상 바가 많다. 대부분은 호텔 꼭대기에 있다. 25아워스 호텔 꼭대기에 있는 몽키바는 그중에서도 특히 유명하다. 베를린 동물원이 내려다보이는 전망 때문에 유독 사랑받는다. 베를린을 놀러 오는 여행자들의 인기 리스트에 항상 꼽히는 곳이기도 하다. 미테의 아마노 호텔 꼭대기에도, 베를린에서 가장 핫한 부티크 호텔, 소호에도 루프톱 바가 있다. 모두 세련되고 힙한 분위기가 넘친다. 하지만 우리가 매번 호텔 바를 가지는 않듯이, 여기서도 그렇다. 호텔 바보다는 오래돼 보여도 자연적이고 자유가 넘치는 곳을 좋아한다. 그런 옥상 바가 한 군데 있다. 히피들의 아지트처럼 대접받는 크룽커크라니히 바다. 노이쾰른의 쇼핑몰 꼭대기에 숨어 있는 이곳에는 삐걱대는 나무 의자와 테이블이 제멋대로 놓여 있다. 사람들은 바에서 맥주 한 잔을 사서 아무 데나 털썩 앉는다. 유일하게 이들이 신경을 쓰는 건 아름다운 노을. 그것만큼은 놓치지 않으려고 집요하게 쳐다본다. 이곳에서 내다보이는 베를린의 도시 풍경 또한 최고다. 시야를 막는 고층빌딩 하나 없이 고만고만하게 낮고 많은 지붕 너머로 베를린의 상징인 TV타워가 내다보인다. 이 낮은 지평선 도시와 석양을 즐기기 위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것. 노이쾰른의 아카덴 쇼핑몰 꼭대기로, 한 번에 찾기는 힘든 길을 헤매면서 올라간다. 가는 길이 쉽지 않아 관광객의 레이더에서는 여전히 조금 벗어나 있다. ●야외 사우나서 꿈꾸는 ‘이열치열’ 베를린의 여름이 매일 뜨겁고 쨍쨍한 것만은 아니다. 30도까지 치솟다가도 갑자기 13도로 뚝 떨어질 때가 있다. 그러면 7월 말이어도 조용히 가죽재킷을 꺼내 입어야 한다. 전기장판만큼은 켜지 않으리라 다짐하면서. 이렇게 으스스한 날엔 목욕가운을 챙겨 바발리로 향한다. 인도네시아 발리에 있는 스파 단지처럼 넓은 정원과 실내외 수영장, 마사지실, 레스토랑 그리고 사우나가 13개나 있는 곳이다. 카운터에서 밴드를 차고 들어가고, 나올 때 쓴 비용을 결제한다. 바발리 안에서는 모두 가운을 입고 돌아다닌다. 그러다 사우나에 들어갈 때는 고이 가운을 걸어두고 알몸으로 들어간다. 사우나 안에 남자 여자가 ‘깨벗고 같이’ 들어가는 것이다. 아는 사람은 알다시피 독일의 사우나는 혼욕 문화다. 안에 들어가면 계단식 나무의자에 줄줄이 발가벗은 사람들이 앉아 있다. 매 시간마다 열리는 사우나 프로그램에 맞춰 온 사람들이다. 처음엔 어디에 눈을 둬야 할지 몰라 허공을 쳐다보고 일부러 자연스러운 척도 한다. 하지만 알몸이라는 부끄러움도 잠시, 모두가 똑같이 알몸인 그곳에서 뭔가 원초의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 누구 하나 똑같은 체형 없이, 늘어진 배와 제각각으로 생긴 허벅지, 어깨, 가슴, 성기까지 늘어뜨리고 앉아 있는 모습이 그냥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바발리의 사우나에는 특별한 점이 또 있다. 필링 프로그램이 시작될 때, 팬티만 걸친 전문 마스터가 들어와 프로그램 소개를 하고 커다란 부채질을 한다. 사람들이 앉아 있는 뒤쪽 끝까지 골고루 뜨거운 바람을 보내 주는 것이다. 종교 의식을 치르듯 강하고 경건하게 부채질을 하는 마스터의 몸놀림 또한 이곳 사우나의 관전 포인트다. 야외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할 수도 있고 2층 벽난로 앞에서 와인을 마실 수도 있다. 바발리는 베를린에서 단연 최고의 경험을 누릴 수 있는 곳이다. 다만 코로나19 상황으로 현재 사우나는 이용이 중단된 상태다. 그래도 야외 수영장에서 나체로 수영하고 정원에 누워 마사지를 받거나 휴식을 취하는 건 여전히 가능하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바발리는 가장 먼저 가고 싶은 곳이다. 뜨거운 사우나에서 땀을 쫙 뺀 후 뻥 뚫린 샤워실에서 샤워하며 이열치열 여름을 나고 싶다. ●공원처럼 산책하는 베를린만의 ‘묘지피서 ’ 베를린에서 공원만큼 산책하기 좋은 곳이 묘지다. 동네마다 크고 작은 묘지가 있다. 제각각 다른 크기의 비석과 그 앞에 놓인 꽃들, 울창한 나무들이 많아 평화롭다. 대부분 숲처럼 나무가 많아서 공원인 줄 알고 들어갔다가 나중에 묘지인 걸 안 적도 많다. 아주 춥고 우중충한 날씨가 아니라면 음산한 기분도 들지 않는다. 햇볕 좋은 여름이라면? 18세기의 멋진 비석도 구경하고 책 읽고 빈둥거리기 좋다. 베를린 사람들은 묘지에서도 공원처럼 산책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풀어놓고 놀게 한다. 누군가의 묘지가 이토록 가깝고 친근하게 있다면 추모하는 일도 서글프지만은 않을 것 같다. 보다 가벼운 걸음으로 찾아와 마음을 나누다 갈 듯하다.베를린에 사는 친구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묘지가 있었다. 그 묘지 안에는 장례식을 치르던 작은 교회가 있었는데, 나중에 카페로 오픈을 했다. 카페 스트라우스. 내부는 아치형의 천장이 그대로 있고, 안쪽으로 들어가면 장례식 홀로 쓰이던 공간이 나온다. 반투명 유리로 돼 있는 지붕과 빈티지한 카키색의 창문, 스테인드글라스 유리, 그 안으로 따사롭게 들어오던 햇살에 낮은 탄성이 나올 정도다. 누군가의 죽음이 거쳐 갔고 누군가의 눈물이 흘렀던 공간이라고 하기엔 더없이 평온하고 조용하다. 어느 해 8월, 이 묘지 교회의 작은 정원에서 한참을 앉아 있었다. 따뜻한 카푸치노 한 잔을 마시며 오전 내내 책을 읽던 아침이 생각난다. 베를린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이라 더 그랬을 것이다. 작년 여름엔 남자친구와 함께 노트북을 싸 들고 자주 묘지로 갔다. 프란즐러베르크의 오래된 묘지 안에 있는 라이제파크에 가기 위해서다. 검은 비석과 잡풀, 큰 나무들이 울창한 묘지 안쪽으로 죽 걸어 들어가면 공원이 나온다. ‘볼륨을 줄인’, ‘거의 들릴 듯 말 듯한’, ‘나즈막한 목소리’ 등의 뜻을 가지고 있는 라이제파크는 이름처럼 뭔가 신비로운 분위기가 있다. 공원에는 짧은 풀들이 잔디처럼 자라 있고 그 뒤로 무릎까지 오는 잡풀이, 그 뒤로 중간 키의 나무들이, 그 뒤로 가장 큰 나무들이 겹겹이 둘러싸고 있다. 풀숲이 무성해 바로 앞까지 와서야 인기척이 느껴진다. 풀밭에 누워 있으면 도심 한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잊게 된다. 푹푹 찌는 한여름, 살갗이 타 들어갈 것처럼 덥다가도 이 공원 나무 아래에만 누우면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에어컨 있는 집이 거의 없고 지하철에도 에어컨이 없는 베를린에서 호수로 피신을 못 갈 땐 이 공원이 제일 만만하면서도 은밀한 피서지다. 여행작가 dongmi01@gmail.com
  • 광명 국립소방박물관 문화체육관광부 타당성 평가 통과

    광명 국립소방박물관 문화체육관광부 타당성 평가 통과

    경기 광명시는 광명동 국립소방박물관 건립을 위한 ‘문화체육관광부 설립타당성 사전평� ?� 통과됐다고 17일 밝혔다. 그동안 사전평가가 통과되지 못해 건립에 필요한 예산편성이나 전문인력 확보 등에 어려움이 있었으나 이번 설립타당성 사전평가 통과로 해소됐다. 광명에 들어설 소방박물관은 2018년 소방청에서 기초자치단체를 대상으로 공모해 6개 도시가 신청했으며 광명시가 접근성과 정책지원 부문에서 높게 평가받아 최종 후보지로 선정됐다. 소방청과 공동으로 건립하는 국립소방박물관은 광명동 산 127번지 일대에 372억원(광명시 30억원)을 공동 투입해 세운다. 지하 1층, 지상 2층, 연면적 5000㎡ 규모로 2024년까지 건립할 계획이며 전시실을 비롯해 수장과 교육·연구·사무실 등으로 꾸며질 예정이다. 전시실은 대한민국의 소방역사의 변천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소방역사와 장비·조직·디지털영상관으로 조성된다. 정보관은 소방산업의 육성과 소방공무원 채용정보, 소방학술자료 등을 구축해 소방관련 대학생이나 취업준비생, 소방산업 종사자를 위한 전문기술과 정보를 제공할 계획이다. 시는 지난해 10월 소방청과 업무협약을 맺고 소방박물관이 원활히 건립될 수 있도록 부지를 조성하고 박물관 건립에 필요한 행정 지원 등을 약속했다. 시는 현재 광명동 일대 공동묘지에 대한 묘지 등 지장물을 정비하고 있다. 현재 60% 공정률을 보이고 있으며 2021년까지 완료할 예정이다. 시에는 사립인 충현박물관 1곳이 있으며 수도권 내에서 문화기반시설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으로 소방박물관이 들어서면 우리나라 소방역사에 대한 과거 현재 미래를 조명할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박승원 시장은 “국립소방박물관이 지나버린 과거를 단순히 보여주는 박물관이 아니라 미래의 첨단기술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박물관으로 건립되도록 행정지원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는 소방청과 전담 TF팀을 구성해 긴밀한 협조체계를 구축하고 국립소방박물관 건립에 최선을 다할 방침이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신흥무관학교 재원 조달, 독립군 양성… 만주 독립운동의 ‘숨은 공신’

    신흥무관학교 재원 조달, 독립군 양성… 만주 독립운동의 ‘숨은 공신’

    수원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이며 근대교육자인 임면수는 이회영이나 이상룡과 같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인물이다. 전 재산을 털어 수원 삼일학교를 설립했고 만주로 망명해 신흥무관학교 재원 조달에 몸바치는 등 만주독립운동을 뒤에서 도운 숨은 조력자이기도 하다. 신흥무관학교 분교 교장으로 독립군을 양성하고 결사대원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그가 고문으로 반신불수가 돼 고향에 돌아왔을 때는 기거할 방 한 칸도 없었다. 임면수 선생은 1874년 6월 13일 경기도 수원군 수원면 매향리(현 화성시)에서 아버지 임진엽과 어머니 송씨 사이에서 2남으로 출생했다. 삼일학교 설립에 기부한 재산을 보면 그의 가계는 중농 이상의 부호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호는 필동(必東) 또는 필동(弼東)을 사용했다. 임면수는 19세 때 나중에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뒷바라지하고 독립운동가들을 돌본 전현석과 결혼했다.선생은 어려서는 향리에서 한학을 공부했지만 늦은 나이에 근대 교육을 받았다. 수원양잠학교를 졸업한 선생은 화성학교에 진학, 2년 동안 공부했다. 당시 화성학교 학생들은 일본군 군자금을 기부하는 등 일본에 협력하는 자세를 보였다. 러일전쟁에 통역으로 참가하는가 하면 각종 기관의 일어 통역으로 일하기도 했다. 그러나 선생은 항일투쟁이라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주시경·이동휘 등 애국지사들과 교류 선생은 1905년 서울로 와서 한국사와 한국지리 등을 가르치며 학생들에게 민족의식과 역사의식을 고취시키던 상동청년학원에 입학했다. 선생은 국어강습회를 열었던 주시경과 이동휘 등 애국지사들을 그곳에서 만나 교류했다. 경기 강화에서 사학을 30여곳 설립해 교육 사업을 하고 임시정부 국무총리를 지낸 이동휘는 선생의 진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선생은 수원에서 이하영, 김태제 등과 함께 국채보상운동에 뛰어들었다. 국한문 취지서를 자비로 발간해 동참을 호소하고 경기도 각 지역에 배포했다. 반향은 컸다. 수원에서는 취지서 발표 2~3일 만에 당시로서는 거금인 500여원이 모금될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1903년 29세의 선생은 젊은 동지들과 함께 유명한 신여성 화가 나혜석이 졸업한 수원 삼일여학교를 설립했다. 학교는 북감리교회로 운영권이 넘어가면서 설립 후 3년이 지나자 재정난을 겪게 됐다. 부호 강석호는 1906년 5월 거금을 기부했고 나중석도 부지 900여평을 기증했다. 선생도 집터와 토지, 과수원을 내놓았다. 현 매향정보중고등학교가 자리잡은 곳이 그가 희사한 땅이다. 1909년 선생은 삼일학교 교장이 됐고 다른 사립학교 설립도 도왔다. 선생은 1907년 기호지방 출신 인사들이 조직한 기호흥학회에서도 활동했다. 서우학회, 교남교육회, 호남학회와 같은 교육진흥 사업을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지역마다 학회가 조직됐는데 기호흥학회도 그중 하나였다. 광주와 수원 등 경기도와 충청도 지역에 19개 지부가 있었고 수원 지역 교육자로서 선생은 교육과 계몽운동에 앞장섰다. 1910년 선생은 서울로 올라와 신민회에 가입하고 양기탁의 집에서 열렸던 구국운동회의에 참여했다. 신민회의 결의에 따라 모국을 떠나 만주에서 독립군을 양성하기로 결심했다. 삼일학교 운영은 나홍석에게 위탁했다. 경술국치 직후인 1910년 10월 초 선생은 극비리에 가족을 이끌고 만주 봉천성 환인현 횡도촌으로 망명했다. 그곳에 먼저 정착한 이회영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은 1911년 6월 독립군을 양성하기 위해 농가 2칸을 빌려서 신흥강습소를 개설했고 1912년 통화현 합니하로 이전, 신흥중학으로 이름을 바꿨다. 신흥중학은 후에 신흥무관학교로 발전하는데 수만 평의 연병장과 수십 칸의 내무실은 생도들이 합심해 만들었다. 통화현 합니하는 독립군 무관 양성의 본영이 됐다. 선생의 역할은 재원 조달이었다. 신흥무관학교 유지비와 군사훈련비를 조달하고자 영하 40도의 한파와 폭설을 무릅쓰고 썩은 좁쌀, 강냉이, 풀나무 죽으로 연명하면서 동포들의 도움을 구하러 다녔다. 선생 부부는 객주업에 종사했는데 독립군의 연락소, 휴식소, 무기보관소, 회의실 공간으로 제공하기 위함이었다. 독립운동의 아지트였던 셈이다. 부인 전 여사는 수시로 방문하는 별동대, 특파대 등의 식사를 하루에 대여섯 번이나 내놓았고, 그들의 보따리와 총기를 맡아 챙겨 주는 등 노고를 아끼지 않았다. 독립군으로서 전 여사의 밥을 안 먹은 이가 없을 정도였다. 전 여사의 인내심과 온순함, 예의 바른 행동에 누구나 머리를 숙였고 ‘독립의 어머니’로 칭송을 받았다. 선생의 비문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그 당시 독립운동가로 선생댁에서 잠을 안 잔 이가 별로 없고, 그 부인 전현석 여사의 손수 지은 밥을 안 먹은 이가 없으니 실로 선생댁은 독립군 본영의 중계 연락소이며 독립운동객의 휴식처요, 무기보관소요, 회의실이며 참모실이며 기밀 산실이었으니….” 만주의 한인자치기관 부민단에서는 1916년 3월 16일 독립운동가들의 근거지를 위협할 일본영사관 분관 설치를 제지할 방안을 논의했다. 그 방책으로 결사대 200명을 편성했고 7~8명은 통화현 시가에 잠입했는데 선생도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1916년 9월 9일 안동 주재 일본영사가 일본 외무대신에게 보낸 ‘재만 조선인 비밀결사 취조의 건에 대한 회답’ 등에 선생의 이름이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당지(통화현)의 배일자 중 유력자인 결사대원 임필동”이란 표현에서 당시 만주 독립운동계에서의 선생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양성중학교 교장 일하며 제2 신흥무관학교로 선생은 1910년대 중반 통화현 합니하에 설립된 민족학교인 양성중학교 교장으로 활동했는데 이 학교는 제2 신흥무관학교 격이었다. 교수로 재직한 이세영과 재무감독 이동녕 등은 신흥무관학교의 실질적인 중심인물이었다. 3·1운동 이후 일본군들은 1920년 간도로 출병해 만주 지역의 독립운동가를 체포·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선생은 1920년 6월 12일 밤 해룡현 북산성자 삼도가 김강의 집에서 체포됐다. 일본 경찰관과 친일 조선인을 암살하고 동지들을 통해 상하이 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을 송금하려 한 혐의였다. 선생은 압송돼 가던 중 한국인 경찰 유태철의 도움으로 여관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선생은 낮에는 숨고 밤이 되면 걸어서 14일 만에 길림성 이통현 고유수 한인 농촌마을에 도착해 동포 박씨 집에 은둔했다. 그곳에 머물다 장춘을 거쳐 부여현에 도착해 안승식의 도움을 받았고 그의 집에서 겨울을 보냈다.●아담스기념관 건축 감독… 고문 후유증에 타계 그러나 1921년 2월쯤 길림시내에 잠입해 활동하다 밀정의 고발로 길림영사관에 체포된 뒤 평양감옥에서 심한 고문을 받았다. 전신이 마비될 정도의 위중한 상태가 되자 일제는 선생을 석방했고 수원으로 귀향했지만 그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독립운동가들이 대부분 그렇듯 그의 가족사도 불운했다. 만주에서 20세가 돼 독립운동에 가담한 장남 우상이 1919년 국내에 잠입해 군자금을 마련하고 만주로 돌아가다 동상을 입어 객사한 것이다. 선생은 1923년 삼일학교 아담스기념관 건축 감독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고문 후유증으로 건강이 악화돼 1930년 11월 29일 56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1964년 세류동 공동묘지에 안장됐던 선생의 유골은 삼일상고 동산으로 옮겨졌고 기념비도 세워졌다.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고 묘소는 국립현충원으로 옮겨졌다. 2015년 기념사업회가 발족했으며 손자 임병무씨도 유품을 수원박물관에 기증하고 조부의 업적을 기리는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해군으로, 삯바느질로…부부는 ‘전쟁영웅’이 됐다 [밀리터리 인사이드]

    해군으로, 삯바느질로…부부는 ‘전쟁영웅’이 됐다 [밀리터리 인사이드]

    귀신 잡는 해병대·인천상륙작전 등‘해군의 아버지’로 불린 손원일 제독해군 모집하고 모금으로 전투함 마련부인 홍은혜 여사는 ‘해군의 어머니’전쟁 고아 돌보고 해군 군가 작곡도부부 전쟁영웅. 아마 대한민국 전사(戰史)에 흔치 않은 사례일 겁니다. 초대 해군참모총장으로 국방장관까지 지낸 손원일(1909~1980) 제독과 부인 홍은혜(1917~2017) 여사가 바로 주인공입니다. 손 제독은 2012년 9월, 홍 여사는 지난해 8월 각각 국가보훈처가 지정하는 ‘6·25 전쟁영웅’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부부의 일생은 ‘해군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우리에게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14일 해군에 따르면 손 제독은 1909년 평안남도 강서군에서 2남 3녀 가운데 맏아들로 태어나 독립운동가였던 부친을 따라 중국으로 망명했습니다. 부친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의정원 의장을 지낸 손정도 선생입니다. 1924년에 중국 남경 중앙대 항해과를 졸업한 그는 1927년 중국해군의 국비유학생으로 3년간 독일에서 수학했습니다. 젊은 시절 고난도 있었습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는 이유로 일제의 감시를 받던 그는 1930년 일시 귀국했다가 상해독립단체의 비밀연락원의 임무를 띠고 입국했다는 혐의로 일본경찰에 붙잡히게 됩니다. 그는 모진 고문을 받으며 1개월간의 옥고를 치렀습니다. 출감 후 다시 중국으로 건너간 손 제독은 무역업에 종사하다 1945년 광복을 맞아 귀국하게 됩니다. ●“나라를 지키려면 해군이 필요하다” 손 제독은 1945년 8월 ‘해군의 씨앗’으로 불리는 ‘해사대’를 결성했습니다. 해군의 중요성을 일찍이 인식해 직접 발품을 팔며 어렵게 70명의 대원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그 해 11월 11일 오전 11시 서울 관훈동 표훈전에서 70명의 해사대 대원이 모여 결단식을 가진 ‘해방병단’이 바로 우리 해군의 모태입니다. 11월 11일이 해군 창립일이 된 것도 손 제독의 깊은 뜻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해군을 ‘바다의 신사’라고 여겨 ‘열 십’(十)과 ‘한 일’(一)을 합친 ‘선비 사’(士)를 뜻하는 11월 11일을 택했습니다. 1946년에는 해군사관학교의 전신인 해군병학교를 세웠습니다. 1948년 정부 수립 후 초대 해군참모총장이 된 그는 이듬해 해병대를 창설, 모든 해군 조직을 외세가 아닌 우리의 손으로 만드는 신화를 썼습니다.1949년 손 제독은 미국으로부터 전투함을 구입하기 위해 ‘함정 건조기금 갹출위원회’를 구성하고, 장병과 국민 모금운동을 벌여 어렵게 1만 5000달러의 자금을 마련했습니다. 당시 손 제독의 부인 홍 여사는 장병 부인들을 모아 삯바느질로 전투함 구입 자금을 마련하는데 앞장 섰다고 합니다. 손 제독은 정부 지원금 4만 5000달러를 합해 6·25 전쟁 직전 백두산함, 금강산함, 삼각산함, 지리산함 등 4척의 전투함을 구입, 바다를 지키게 했습니다. 그의 선견지명은 놀라운 성과로 돌아왔습니다. 백두산함은 6·25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6월 26일 새벽, 무장병력 600여명을 태우고 부산으로 향하던 북한 수송선을 격침시켜 첫 승전보를 올렸습니다. 우리 군의 사기를 크게 높인 것은 물론 북한의 배후 위협 전략을 조기 차단한 값진 승전이었습니다. ●6·25 전쟁 전 전투함 마련…첫 승전보 심지어 그가 일군 해병대는 단독작전으로 1950년 8월 ‘통영상륙작전’을 감행, 적 469명을 사살하고 차량 12대를 노획하는 대전과를 거뒀습니다. 당시 미국 종군기자 마거린 히긴스로부터 “귀신도 잡을 수 있겠다”는 평가를 받아 해병대에 붙여진 별명이 ‘귀신 잡는 해병대’입니다. 동시에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 직전 ‘엑스 레이’ 작전을 지시, 북한군이 점령하고 있던 인천 지역에 잠입해 한 달 동안 북한군 해안포대의 위치와 규모 등 정보를 수집하는 성과를 올렸습니다. 이는 더글러스 맥아더 유엔군사령관의 지휘 아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는 데 밑거름이 됩니다. 당시 침투 부대의 활약상은 영화 ‘인천상륙작전’에 잘 녹아들어 있습니다. 정전협정 직전인 1953년 6월 국방부 장관에 취임한 뒤에도 국군묘지(현재의 국립서울현충원)와 국방대학원 설립, 군목제도 및 국내외 위탁교육제도 신설 등 특유의 수완으로 군의 핵심 정책들을 만들었습니다.부부는 닮는다고 합니다. 홍 여사의 나라를 위한 헌신도 지극했습니다. 홍 여사는 6·25 전쟁 중 부상당한 해군과 해병대 병사들을 돌보는데 노력을 다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다음해인 1951년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에 공장과 탁아소, 유치원 등을 지어 전사자 가족을 도왔고 부상병을 돕기 위한 모급활동도 펼쳤습니다. ●“대한민국 해군이 ‘일본 군가’를 부르다니…” 홍 여사가 해군에 미친 영향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홍 여사는 늘 해군사관학교 생도들이 군가가 없어 일본 군가에 가사를 붙여 부르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이화여자전문학교(현재의 이화여대) 작곡과에서 수학한 경험을 살려 손 제독이 쓴 가사에 곡을 만들어 한국 최초의 군가 ‘해방 행진곡’을 발표했습니다. 이후에도 ‘바다로 가자’, ‘해군사관학교 교가‘ 등 다수의 해군 군가를 직접 작곡했습니다. 손 제독은 1980년 71세, 홍 여사는 2017년 100세로 타계했습니다. ‘전쟁영웅 부부’의 업적을 이렇게 짧은 글로 정리하는 것 자체가 버거울 정도로 그들은 군과 현대사에 굵은 한 획을 그은 인물이었습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조성환 의원, 경기도 자연장 장려 및 지원 조례안 보건복지위 심의 통과

    조성환 의원, 경기도 자연장 장려 및 지원 조례안 보건복지위 심의 통과

    경기도의회 보건복지위원회 조성환(더불어민주당·파주1) 의원이 대표발의 한 ‘경기도 자연장 장려 및 지원 조례안’이 지난 11일 경기도의회 제344회 정례회 보건복지위원회 회의에서 통과됐다. 조 의원은 “기존의 매장 위주의 장묘문화와 화장의 증가로 인한 봉안시설의 설치로 인해 국토훼손과 장묘 수요·공급 상의 불균형이 초래되어 묘지문제는 커다란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면서 “또한 급격한 저출산·고령사회의 대두와 핵가족 및 1인 가구 중심의 가족구조 변화에 기인하여 장묘 문화에 대한 국민 의식 변화와 환경보호에 대한 요구가 강화되면서 전통적인 장묘문화에 대한 변화가 요구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번 조례안은 이러한 현실을 고려해 국토의 효율적인 관리와 공공복리 증진을 위하여 친환경적인 장사제도인 자연장을 장려하고 도민들의 편리 도모와 자연장의 원활한 활용을 도모하고자 제안하게 되었다”며 덧붙였다. 조례안에서는 ▲도지사의 책무 ▲자연장 기본계획 수립·시행 ▲자연장 장려 지원사업 ▲공설자연장지설치 지원 ▲자연장 관리·운영 실적 평가 ▲자연장 장려 및 교육·홍보를 위한 협력체계 구축 등을 주요 내용으로 담고 있다. 조례안의 주요 내용 중에서 특이할 만한 사항은 자연장 장려와 지원을 위해 두 가지 정책이 병행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첫번째는 공설자연장지 조성 등 시설 인프라 구축과 기존 공설묘지 및 사설묘지에 매장된 묘, 봉안시설을 자연장지로 이장하는 것을 유도하기 위한 사용료 지원, 둘째, 도민들의 인식전환을 위한 교육, 홍보 사업 등이다. 이날 심의에서는 기존 공동·공설 묘지의 재개발을 통한 자연장 확충으로 기존 묘지를 없애는 동시에 자연장을 확충하여 친환경적인 장사정책에 부합하는 내용으로 수정 가결됐다. 조 의원은 “미래에 닥칠 위기에 대비하지 않고, 현실적인 상황을 이유로 더 이상 적극적인 자연장 장려 및 지원 정책을 실시하는데 주저한다면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 경기도는 심각한 자연환경의 훼손과 함께 사회경제적 비용을 초래할 것”이라면서 “전국 최대규모의 인구 수를 지닌 우리 경기도가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자연장을 장려하여 정착시켜나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조 의원은 “자연장지 조성 시 단순히 과거 장사시설에 대한 개선과 변형의 차원에서 접근할 경우, 기존 장사시설이 갖는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고 할 것이므로 단순한 장사시설로서의 의미를 더해 친환경성, 지속가능성, 녹색성장의 기반, 환경과 문화교육의 장 등 지역의 어메니티(amenity) 요소가 가미되어 조성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통과된 조례안은 오는 6월 24일 경기도의회 제344회 정례회 제4차 본회의에서 의결될 예정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부고] 김준씨 장모상, 김종영씨 부친상, 백원옥씨 모친상, 신현일씨 부친상

    ■ 김준(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씨 장모상 △ 김연태씨 별세, 이경호(순천향대 교수)·제호(솔루엠 전무)·소영(호서대 교수)씨 모친상, 김준(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씨 장모상, 박금정·백경아씨 시모상, 11일, 강남성모병원 장례식장, 발인 13일 오전 5시, 장지 천안공원묘지. 02-2258-5940 ■ 김종영(롯데홈쇼핑 상무)씨 부친상 △ 김기운씨 별세, 김종영(롯데홈쇼핑 마케팅부문장 상무)씨 부친상, 11일, 강원도 강릉의료원 7호실, 발인 13일. 033-610-1444 ■ 백원옥(㈜대일텍 대표이사)씨 모친상 △ 천삼례씨 별세, 백병종씨 배우자상, 백원옥(㈜대일텍 대표이사)·은경·창원(플라워밀 대표)·선웅씨 모친상, 11일, 경기 시흥장례원 201호, 발인 13일. 031-434-4114 ■ 신현일(유진투자증권 리스크관리본부장)씨 부친상 △ 신명균씨 별세, 신현일(유진투자증권 리스크관리본부장)씨 부친상, 11일,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4호실, 발인 13일. 02-2227-7560
  • ‘재난현장 앞장’ 고 김희목 소방위, 23년 만에 대전현충원 안장

    ‘재난현장 앞장’ 고 김희목 소방위, 23년 만에 대전현충원 안장

    ‘가장 믿음직한 소방관’, ‘보육원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었던 분.’ 11일 소방청이 공개한 정은애 군산소방서 금동119안전센터장의 ‘고 김희목 소방관 가족들에게 드리는 위로의 말씀’에는 고 김희목 소방위에 대한 그리움이 글 곳곳에 묻어 있다. 정 센터장은 “재난 현장에서 힘들고 위험한 일은 항상 먼저 앞장섰던 가장 믿음직한 소방관으로 후배들은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동보호시설 정읍애육원의 서완종 원장도 “꾸준히 기부와 봉사를 하며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었던 정말 고마운 분”으로 그를 기억했다. 약 23년 전 화재 진압 도중 순직한 김 소방위의 유해가 13일 전북 정읍 가족묘지에서 국립대전현충원으로 이장된다. 김 소방위는 1983년 전북도 소방공무원으로 임용돼 화재진압대원으로 활동하던 중 1997년 정읍시 농협창고 화재 진압 도중 떨어진 콘크리트 구조물로 인해 순직했다. 그는 당시 가족묘지에 안장됐다가 이번에 가족들이 현충원 안장을 희망하면서 이장하게 됐다고 소방청은 설명했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여기는 남미] 코로나 진상 은폐하려고…야밤에 은밀하게 시신 매장

    [여기는 남미] 코로나 진상 은폐하려고…야밤에 은밀하게 시신 매장

    코로나19 사태에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는 중미국가 니카라과가 진상을 은폐하고 있다는 의혹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니카라과에서 일명 '익스프레스 시진 매장'이 자행되고 있다고 복수의 중남미 언론매체가 1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익스프레스 시신 매장'은 표현 그대로 신속하게 진행되는 매장을 일컫는다. 코로나19가 지구촌을 강타하면서 사망자가 속출한 국가에선 흔한 일이 되어버렸지만 니카라과에선 은밀하게 진행된다는 게 다른 점이다. 복수의 중남미 언론은 "주민 대부분이 잠든 야밤에 운구차량이 공동묘지에 줄지어 들어가고 있다"면서 "코로나19 사망자로 의심되는 시신 매장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은밀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코로나19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족의 참관은 보통 2~3명으로 제한된다. 유족들은 일정한 거리에서 하관을 지켜본 뒤 바로 공동묘지에서 나와야 한다. 중남미 언론은 "밤에 공동묘지로 들어가는 운구차를 경찰이 에스코트하고 있다"면서 익스프레스 시신 매장이 정부의 주도로 이뤄지고 있는 것 같다는 의혹을 강력히 암시했다. 니카라과 보건부에 따르면 11일 기준으로 니카라과에선 코로나19 확진자 1464명, 사망자 55명이 발생했다. 전일비 증가율은 제로(0)였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는 게 의학계와 시민단체들의 주장이다. 중남미 언론에 따르면 다니엘 오르테가 니카라과 정부가 코로나19의 현황을 축소-은폐하고 있다고 주장한 의사단체와 인권단체는 최소한 30여 개에 이른다. 니카라과의 시민단체 '시민보초대'는 "지난 3월 이후 코로나19 누적 확진자는 최소한 5000명, 사망자는 1000명 이상이지만 정부가 실상을 감추고 있다"고 최근 폭로했다. 사회적으로도 비판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니카라과의 정치평론가 엘리세오 누녜스는 최근 인터뷰에서 "오르테가 대통령이 무오류에 강한 집착을 갖고 있다"면서 "코로나19 방역과 관련해 도무지 실패를 인정하려 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사망자가 나오는 병원들도 코로나19의 진상 은폐를 거들고 있다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중남미 언론은 "익스프레스 매장으로 처리되는 시신이 코로나19 사망자로 의심되지만 사망진단을 내린 병원들은 '비전형적인 폐렴에 의한 사망'이라고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사진=코메르시오 홈페이지 캡쳐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플로이드 떠나보낸 날… 흑인 첫 공군 참모총장 탄생

    플로이드 떠나보낸 날… 흑인 첫 공군 참모총장 탄생

    바이든 “美서 인종적 정의 실현해야” 뉴욕증권거래소 8분 46초간 거래중단 “펜스, 인준회의 주재로 여론 다독이기” 미국을 넘어 전 세계적인 인종차별 반대 시위를 촉발시킨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싸늘한 주검이 된 지 15일 만인 9일(현지시간)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다. 백인 경찰의 무릎에 목을 짓눌린 그의 ‘8분 46초’는 흑인인권 문제에 대한 여론을 다시 환기시킨 것과 더불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반통합·반민주적 행보에 경종을 울리며 미국 내 정치·사회적 지형을 뒤흔들었다.이날 플로이드의 고향 텍사스주 휴스턴 ‘찬양의 샘’ 교회에서 있었던 그의 장례식은 추모·위로의 메시지와 이 같은 비극이 또다시 반복돼서는 안 된다는 다짐으로 물들었다. 흑인 인권운동가 알 샤프턴 목사는 “가해자들이 죗값을 치를 때까지 플로이드의 가족과 함께하자”고 강조했고, 미아 라이트 찬양의 샘 교회 공동 목사는 “우리는 울고 애도하고 있지만 곧 위로와 희망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 등 공화당 주요 인사들까지 트럼프에게 등을 돌리며 지난 15일간의 시위가 ‘트럼프 대 미국’의 대결구도가 된 가운데 이날 장례식장에서는 미 사회의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다시 한 번 울려 퍼졌다. 플로이드의 조카인 브룩 윌리엄스는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해 “누군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고 말하지만, 미국이 언제 위대했던 적이 있었느냐”며 “미국은 지금이 변화를 위한 시기”라고 성토했다. 민주당 대선후보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장례식장에 보낸 영상 메시지에서 플로이드의 딸 지아나를 향해 “아빠가 세상을 바꾸게 될 것”이라며 “플로이드를 위한 정의가 실현될 때 우리는 진정으로 이 나라에서 인종적 정의를 실현하는 길에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 국민들도 이날 하루만큼은 모두가 ‘플로이드’가 된 모습이었다. 조문객 500여명이 참석한 장례식은 미 전역에 생중계됐고, 플로이드의 시신이 담긴 황금색 관이 휴스턴 외곽 메모리얼 가든 묘지의 어머니 곁으로 이동하는 동안 수많은 인파가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뒤따랐다. 뉴욕증권거래소(NYSE)는 정오 시간에 맞춰 8분 46초간 거래를 중단하며 묵도의 시간을 갖기도 했다. 이는 NYSE의 228년 역사상 가장 긴 묵도였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휴스턴시는 이날을 ‘조지 플로이드의 날’로 선포해 영원히 추도하기로 했다. 한편 흑인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참모총장 자리에 오른 찰스 브라운 공군 참모총장 지명자에 대한 의회 인준안이 이날 98대0의 전원 찬성으로 상원을 통과했다. 헌법상 당연직 상원 의장이지만, 주요 의전행사 외에는 상원 회의를 주재하지 않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본회의를 직접 주재해 눈길을 끌었다. 인준안의 무난한 통과가 예상됐음에도 부통령이 직접 본회의장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흑인 출신 참모총장 탄생에 의미를 부여해 최근 악화된 여론을 다독이려는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서울포토] 금빛 관…하얀 마차 타고 돌아온 ‘플로이드’

    [서울포토] 금빛 관…하얀 마차 타고 돌아온 ‘플로이드’

    미국 백인 경찰의 가혹한 폭력에 희생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9일(현지시간) 46년의 생을 마감하고 고향 땅 텍사스 휴스턴에 잠들었다. 플로이드 유족은 휴스턴 ‘파운틴 오브 프레이즈’(Fountain of Praise·찬양의 분수) 교회에서 500명의 조문객이 참석한 가운데 6시간 가량 진행됐다고 AP통신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수천 명의 시민은 이날 두 줄로 나뉘어 추도식장에 차례로 입장, 플로이드가 잠든 금빛 관을 바라보며 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유족과 조문객들은 눈물을 흘리며 플로이드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했다.메리 화이트 목사는 숨지기 직전 ‘엄마’를 찾던 플로이드를 언급해 장례식장은 일순간 흐느낌으로 가득했다. 화이트 목사는 “플로이드가 엄마를 외치던 순간 이 나라의 모든 어머니가 그의 울음을 듣고 우리의 아이와 손자를 위해 통곡했다”고 말했다. 장례식을 마친 뒤 플로이드가 잠든 금빛 관은 휴스턴 외곽의 메모리얼 가든 묘지로 향했다. 플로이드의 관을 실은 마차가 휴스턴 경찰의 호위 아래 고향 땅에서 마지막 여정에 오르게 된 것이다. 이날 휴스턴은 플로이드의 마지막 여정을 지켜보려는 인파로 북적였다. 추도객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을 위해 마스크를 쓴 채 사회적 거리 두기 지침에 따랐다. 대부분의 시민이 ‘숨 쉴 수 없다’는 플로이드의 마지막 절규를 새긴 티셔츠와 마스크를 착용했고, 일부는 솔(soul) 명곡 ‘린 온 미’(Lean on me·나에게 기대세요)를 함께 불렀다.플로이드는 당시 백인 경찰의 무릎에 8분 46초간 목을 짓눌렸고, ‘숨 쉴 수 없다’는 말을 남긴 채 숨을 거뒀다. 플로이드의 마지막 절규는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인종 차별과 경찰 폭력에 대한 글로벌 저항 시위를 촉발시켰다. 휴스턴시는 그가 영면에 들어간 이날을 ‘조지 플로이드의 날’로 선포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차별 항의 물결 일으킨 조지 플로이드, 고향 휴스턴에 영면

    차별 항의 물결 일으킨 조지 플로이드, 고향 휴스턴에 영면

    백인 경찰의 가혹한 폭력에 희생된 아프리카계 미국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46)가 9일(현지시간) 46년의 생을 마감하고 텍사스주 휴스턴에 잠든다. 플로이드 유족은 이날 오전 11시 45분(중부 표준시)쯤 휴스턴의 ‘파운틴 오브 프레이즈(찬양의 분수)’ 교회에서 시작된 장례식에 500명의 조문객이 참석한 가운데 장례식을 열었다. 장례식은 무려 4시간이나 이어졌다. 지난달 25일 미국 현충일인 메모리얼 데이에 플로이드가 숨진 뒤로 정확히 보름 만이다. 장례식은 TV와 인터넷으로 생중계됐고, 유족과 조문객들은 눈물을 흘리며 플로이드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했다. 조문객 중에는 휴스턴이 지역구인 앨 그린, 실라 잭슨 연방 하원의원, 실베스터 터너 휴스턴 시장, 아트 아세베도 경찰서장, 장례 비용을 전액 부담한 복서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 할리우드 배우 제이미 폭스와 채닝 테이텀 등이 눈에 띄었다. 미아 라이트 파운틴 오브 프레이즈 교회 공동 목사는 “우리는 울고 애도하고 있지만, 위로와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며 “지금은 하나님이 우리와 전 세계 사람들을 연결한 순간”이라고 밝혔다. 메리 화이트 목사는 “플로이드가 (숨지기 직전) 엄마를 외치던 순간 이 나라의 모든 어머니가 그의 울음을 듣고 우리의 아이와 손자를 위해 통곡했다”고 말하자 장례식장은 일순간 흐느낌으로 가득했다. 고인의 동생 로드니는 “전 세계는 형을 기억할 것이고, 그가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말하며 흐느꼈다. 다른 동생 필로니즈는 “형은 내게 슈퍼맨이었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터너 시장은 “남아공과 캐나다, 케냐 나이로비, 독일 베를린, 한국과 유럽 곳곳에서 플로이드의 이름이 언급될 것이라고 누가 상상했겠느냐”고 물었다. AP 통신은 “그는 세계에 변화의 힘을 일으킨 ‘빅 플로이드’가 됐다”고 전했다. 고인이 휴스턴의 유명 힙합 그룹 ’스크루드 업 클릭‘(SUC)에서 래퍼 ’빅 플로이드‘로도 활동한 것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 민주당 대선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장례식장에 보낸 영상 메시지를 통해 “지금은 인종적 정의를 실현해야 할 때”라며 “우리는 영혼을 찔러 상처를 내는 인종차별을 다시는 외면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바이든 전 부통령은 고인의 딸 지아나를 거명하면서 “아빠가 세상을 바꾸게 될 것”이라며 “플로이드를 위한 정의가 실현될 때 우리는 진정으로 이 나라에서 인종적 정의를 실현하는 길에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역시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향한 성토도 빗발쳤다. 민권운동가 앨 샤프턴 목사는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저 높은 곳의 사악함”이라고 직격탄을 날리면서 “플로이드는 저항 운동의 주춧돌이 됐다”고 평가했다. 윌리엄 로슨 목사는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백악관을 청소하는 것”이라고 공박했다. 장례식을 마친 뒤 플로이드가 잠든 금빛 관은 휴스턴 외곽의 메모리얼 가든 묘지로 향했다. 어머니가 누운 곳 바로 옆에 누일 예정이다. 플로이드의 관을 싣고 한 쌍의 백마가 이끄는 흰 마차가 휴스턴 경찰의 호위 아래 1.6km 거리를 운구하는데 40분 정도 노제가 거행됐다. 장례식장 밖 컬런 대로는 플로이드의 마지막 여정을 지켜보려는 인파로 북적이고 있고, 벌써 묘지에서 기다리는 추모객도 눈에 띈다. 플로이드는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태어났지만, 46년 생애의 대부분을 휴스턴에서 보냈다.휴스턴 제3구(區)에서 자랐고, 휴스턴의 잭 예이츠 고교 풋볼팀과 농구팀의 이름난 선수이기도 했다. 휴스턴 시는 그가 영면에 드는 이날을 ‘조지 플로이드의 날’로 선포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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