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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시대] ‘수사반장’ 권태하 극작가의 대변신

    [인간시대] ‘수사반장’ 권태하 극작가의 대변신

    80년대 말 인기 드라마 ‘수사반장’의 극본을 쓴 장본인이, 극작가에서 풀뿌리 문화를 가꾸는 ‘문화원 전도사’로 변신해 눈길을 모은다. 주인공인 서울 동대문문화원 권태하(63) 사무국장을 지난 22일 오전 답십리동 산 1의121 ‘촬영소 고개’ 쪽 문화원 사무실에서 만났다. “60평생 살면서 이렇다 하고 내놓을 자랑거리란 게 없는데 뭘….” 그는 이런 말로 입맛을 다시며 일순 당황케 하더니 “그런데 글 쓰는 일 말고, 아니 일생껏 완결편이라 할 소설이 몇해 전 8·15 무렵에 내게서 탄생했지 뭐요.”라고 덧붙였다. 손사래를 쳐가면서까지 인터뷰를 사양하며 “문화원 얘기나 나누자.”는 통에 낭패감을 맛봤다가 겨우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던 기자가 물었다.“어떤 일을 두고 한 말씀인지.” 그가 털어놓은 이야기 자체가 한 편의 드라마와 같다. 권 국장은 “사실 처음에는 드라마로 만들 생각에 시작했는데, 역사적 의미를 남길 수 있다면 뜻을 이룬 것이라는 판단으로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고 운을 뗐다. 그런 뒤 원목을 다루는 무역회사에서 인도네시아로 파견돼 일하던 1980년대 초로 기억을 더듬어갔다. ●‘인도네시아 독립영웅은 한국인’ 밝혀내 인도네시아 독립영웅으로 불리며 국민영웅묘지에 묻힌 당시 야나가와 시치세이(梁川七星)가 한국인이라는 확신으로 끝까지 추적해 10여년 만에 명예회복시킨 일화를 들려줬다. 양씨란 성(姓)은 물론, 칠성이란 이름을 일본에서는 쓰지 않는다는 점을 알고 있던 터였다. 그는 연세대 국문학과 출신이다. 양칠성은 일제 때 일본군 군속으로 갔다가 현지 여인과 결혼해 눌러앉게 된 인물이다. 일본의 패망 뒤 인도네시아를 350여년간 지배한 네덜란드의 재식민지화 야욕을 꺾는 게릴라 대원으로 이름을 떨치다 네덜란드군에 붙잡혔고, 끝내 총살의 비운을 맞았다. 권 국장은 당시 인도네시아 정부 등 요로(要路)에 양칠성의 호적과 영문 번역본을 보냈으나 메아리는 없었다. 마침내 95년 그는 ‘양칠성 이름 찾아주기 시민운동본부’를 발족시켰다. 일주일 만에 6000여명의 서명을 받아냈다. 이를 바탕으로 외무부에 진정서를 냈지만 역시 호응이 없었다. 결국 청와대에 진정한 덕분인지 그해 7월 양칠성은 국적을 되찾을 수 있었다. ●주민 참여 문화행사 정례화 “글 쓰는 일도 중요하지만 월 2회 아파트단지 등을 돌며 주민참여 행사를 벌이는 ‘찾아가는 문화원’과 5월 ‘배봉산 아카시 큰잔치’ 등 동대문문화원 운영에 힘쓸 각오입니다.” 79년 한 방송국의 1000만원 고료 드라마 공모에서 당선돼 극작가로 입문한 그는 60년대 인도네시아 보르네오로 건너가 정글을 개척한 한국인의 실화를 그린 실명소설 ‘그들은 나를 칼리만탄의 왕이라 부른다’(94년) 등 3권의 책을 내기도 했다. ●‘…칼리만탄의 왕이라 부른다’등 저서도 다수 동대문구에만 77년부터 30년 가까이 살아 ‘동대문 토박이’를 자부하는 권 국장은 지역언론사 운영 등 직업일선에서 은퇴한 뒤인 94년부터 뜻있는 지인들과 함께 힘을 모아 98년 동대문문화원 창설에 참여했다. 최근엔 항공사 직원으로 공항에서 일한 경험을 살려 밀수범들의 세계를 담은 새 소설의 초고(草稿)도 마쳤다. 내년 초 책으로 펴낼 계획이다. “책에는 당시만 해도 생리대를 검색할 엄두를 못냈던 허점을 노려 생리 때에 맞춰 공작(?)을 수행하는 여성 밀수범, 조직과 의기투합한 공항 직원들의 검은 손, 신문을 도배했던 대형 사건에 얽힌 뒷얘기가 얽어지죠.” “여러가지 여건이 도와준 덕분에 가장 가까이서, 가장 많은 사건을 지켜본 사람입니다. 그러니 내가 아니면 아무래도 쓰기 어려운 소재이지요. 책 나오면 팔리는 것 봐가며 소주 한잔 합시다. 재밌을 것 같지 않아요?”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새장편소설 ‘흑산도 하늘길’ 펴낸 한승원 작가

    새장편소설 ‘흑산도 하늘길’ 펴낸 한승원 작가

    10년 전, 훌훌 털고 노모가 지키는 고향으로 내려가던 길에 작가는 마음밭에 열망의 씨앗 하나를 감췄었다. 한 시공(時空)속에 몸과 마음을 잘 부리고 살다보면 어쩌면 영원을 살 수 있지 싶은, 영원과 소통하는 작품을 일굴 수도 있지 싶은…. ●‘해산토굴’에 스스로 10년을 가뒀죠 고향마을인 전남 장흥 안양 바닷가 ‘해산토굴’이라 이름붙인 글방에 스스로를 “가둔 지” 10년. 중진작가 한승원(66)이 글로써 영원에 닿을 수 있다는 확신을 얻은 시간이다. 작가 자신 “내 삶이 가장 많이 투영된 작품”이라는 새 장편 ‘흑산도 하늘 길’(문이당)에 그 힘센 믿음을 묻었다. 다산 정약용의 둘째형으로, 우리 역사 최고의 어류학 서적인 ‘자산어보’를 남긴 조선 정조 때의 실학자 정약전(1758~1816). 소설은, 독실한 초기 천주교 신자였던 그가 신유박해로 흑산도로 유배돼 그곳에서 삶을 마감하기까지의 일대기를 기둥줄거리로 삼았다. 갇힌 세계에서 끊임없는 저술로 깨달음과 구원을 열망했던 인물에 작가적 삶의 일단이 투사됐음은 물론이다. 작가는 “‘갇힘’에서 ‘놓여나기’의 꿈꾸기”라고 자신의 소설을 압축했다. 책이 찍혀 나온 날 저녁, 인사동에서 그를 만났다.“15년을 쏟아부은 소설이여, 이것이…” 모처럼만에 서울나들이를 한 작가는 새 소설을 향한 애정을 좀체 가라앉히지 못했다.2003년 출간한 ‘초의’보다도 실은 먼저 쓰기 시작한 작품이고, 이번 소설을 쓰느라 ‘사서삼경’을 다시 공부했으며, 정약용·약전 형제의 현학을 이해하기 위해 주역에 빠져야 했다는 등의 이야기가 그렇게 곡진하게 들릴 수가 없다. 왜 정약전이었을까. 삶의 비의(秘意)를 고민한 작가에게 약전의 생애는 ‘정답’ 자체였다.“우리네 삶은 ‘가둬놓기’와 ‘놓여나기’의 길항작용 속에 이뤄지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 길항의 장력이 팽팽해야 긴장된 삶을 살 수 있고, 그래야 좋은 일도 많이 하는 거고.” 33세에 급제해 곧바로 벼슬길에 오른 정약전의 삶은 한참동안 순탄했다. 그러나 소론과 남인 사이에 불거진 당쟁이 신유박해라는 천주교 탄압으로 비화되자 천주교도인 그는 절해고도 흑산도로 쫓겨간다. 소설 속에서 약전은 철저하게 한사람의 인간으로 부활했다. 소흑산도로 향하는 작은 목선에 몸을 싣고 추위와 멀미에 시달리는 모습은 죽음 앞에 작아지는 범인(凡人)의 형상 그것이었다. “정약전에 대한 기록은 정약용이 쓴 묘지명밖에 없다.”는 작가는 “그 속에 소설을 위한 많은 정보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흑산도 이야기 꼭 쓰고 싶었다” “약전의 저서가 ‘자산어보’로 알려졌지만 실은 ‘현산어보’가 맞아요. 약전의 호가 ‘현산(玆山)’이었고, 동생 정약용도 그를 그렇게 불렀어요.‘현산’은 약전이 유배된 ‘흑산(黑山)’과 같은 의미입니다.” 작가는 ‘현’이란 대명사일 때는 ‘자’로 독음되지만, 검다는 뜻일 때는 ‘현’으로 읽어야 한다고 힘을 실어 말했다.‘검을 현(玄)’ 두개가 합쳐진, 검다는 의미의 호(號)라는 것이다. 작가는 소설의 배경인 흑산도를 수없이 들락거렸다. 약전·약용 형제가 함께 나눈 숱한 현학의 흔적들을 거둬 소설에 담았다. 다산·현산이라는 형제의 호부터 현학의 극치라는 게 그의 해석이다.“다산(茶山)은 차의 향기처럼 현묘한 세계를, 현산(玆山) 또한 그윽하고 신비로운 이상을 염원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형제가 갇혀살면서 한 일은 저술활동 뿐이었어요. 각각 강진(다산), 흑산도(현산)로 유배됐는데 그런 질곡이 결국 둘을 ‘큰 산’으로 만들었다 싶어요. 형제는 간단없이 글을 썼고, 그걸 증명받고 싶어 서로의 글들을 주거니 받거니 했고. 사면초가 속의 절대고독을 그들은 어떻게 이겨냈을까, 그걸 써보려 했던 거지요.” 노모가 홀로 사는 시골집에서 150m쯤 떨어진 곳에다 글집(해산토굴)을 짓고 붙박힌 것이 지난 96년. 지금은 육지로 이어진 섬 덕도에서 나고자란 탓일까.“유배담이 아니더라도 꼭 한번은 흑산도 이야기를 쓸 요량이었다.”고 그는 말했다.“나를 스스로 가둬놓고 거기서 빠져나오기 위한 몸부림으로 글을 썼으니 그저 역사인물소설이 아니라 ‘내 소설’인 셈”이라고도 했다. ●역사인물소설 아닌 ‘내 소설’ “한승원에게 시간이 있는가, 자문해본 적이 많았어요. 미래를 좀더 확실히 보장받기 위해 장흥으로 내려갔는데.” 알 듯 모를 듯한 말이다 싶은데, 해설을 붙였다.“서울에서 쓴 글들은 새끼들 먹여살리려는 거였고, 내려가서 쓴 것들이야말로 나 자신을 위한 글이란 말이지.” 그가 “동업 중생”이라 부르는 아들 딸 작가(한동림, 한강)에게는 새 소설을 읽혔을까.“그 아이들, 대학간 뒤로는 내 소설 안 읽어요. 아버지 글에 괜스레 감염될까봐 그렇겠지. 집안에서도 소설 얘길랑 꺼내는 법이 없어.” 해산토굴은 절집이나 마찬가지다. 탑도 세워놨고 와불액자도 벽에 걸어뒀단다. 허름하게 숨어앉은 그 집으로 그래도 뜨문뜨문 그가 소설가임을 잊지 않게 해주는 길손들이 찾는다.‘초의’를 쓴 뒤로 차 한잔 달라며 느닷없이 문을 두드리는데,“애프터서비스하는 맘으로 차를 끓여낸다.”는 그다. 그는 이제 바다이야기를 쓸 작정이다.“청년작가들이 공부를 제대로 해서 바다소설을 쓰면 좋을 텐데 내 새끼들도 안할라더라.”며 “어촌·연근해 어업같은 소재의 소설을 천상 내가 써야겠다.”며 웃었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쓰나미도 뺏지 못한 섬 ‘몰디브’

    쓰나미도 뺏지 못한 섬 ‘몰디브’

    신들의 사죄일까. 쓰나미(지진해일) 이후 신은 몰디브와 태국 푸껫에 보석처럼 빛나는 아름다운 바다를 선사했다. 바다는 쓰나미가 물길을 뒤집어 원시의 물빛으로 돌아갔고, 하늘은 유난히 높고 맑아졌다. 비가 온 뒤 땅이 더 굳어진다고 했던가. 안전한 휴양지로 거듭나기 위해 혼신의 힘을 쏟고 있는 모습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그러나 쓰나미의 상처는 치유됐지만 관광객이 급감하는 등 여전히 후유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 가장 필요한 것은 동정이나 구호물품이 아니라 예전과 같이 여행을 와주는 것이라는 게 이들의 간절한 바람이다.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었던 자연 재해를 딛고 일어선 몰디브와 푸껫. 이제 쓰나미 걱정은 접어도 좋다. 더욱 안전하고 아름다운 휴양지로 재탄생한 그곳으로 떠나보자. 몰디브, 노는 ‘물’이 다르다. 하늘빛을 그대로 닮은 에메랄드빛 바다. 몰디브는 지상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바다를 품고 있다. 인도양에 점점이 뿌려놓은 듯한 산호섬과 하늘 빛을 받아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아름다운 바다.87개의 섬에 하나씩 만들어진 87개의 아름다운 리조트. 사람들이 가까운 휴양지를 두고 10시간 이상 비행기를 타고 먼 인도양의 궁벽한 섬 몰디브를 찾는 이유다. 지난해 말 쓰나미 피해로 섬 전체가 사라졌다는 오보가 나와 해프닝을 빚기도 했지만 몰디브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아니 오히려 바닷물이 정화돼 더욱 아름다운 빛을 발한다. 1190여개의 섬이 끝없이 펼쳐진 산호섬에서 남다른 최상의 휴식을 꿈꾸고 있다면 주저없이 몰디브로 떠나라. 간섭받지 않는 자유. 신이 인간에게 준 최대의 선물인 몰디브에서 지상 최고의 휴식을 만나 보자. ●별빛을 따라 하늘빛 바다로 제까짓 것이 예뻐 봐야 바닷물일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이자 오만이다. 몰디브에 가면 바닷물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가라는 감탄이 저절로 쏟아진다. 밤 10시. 몰디브의 관문인 말레공항에 내릴 때만 해도 나는 오만에 빠져 있었다. 서울에서 싱가포르를 거쳐 11시간만에 도착한 몰디브. 만만찮은 비행에 지쳐 빨리 그냥 리조트에서 쉬었으면 하는 생각이 절실했다. 모든 게 귀찮을 뿐이었다. 그러나 말레 본섬에서 전통배 ‘도니’로 30여분 거리에 있는 랑칸피놀루 섬의 파라다이스 리조트(www.villahotels.com)로 향하는 바닷길. 별빛이 비치는 바다가 예사롭지 않다. 도니에서 바라본 하늘은 우주에 떠있는 조그만 별들까지 모두 헤아릴 수 있을 만큼 투명했고, 별빛을 담은 바다는 보석을 뿌려놓은 듯 반짝였다. 그것도 서막에 불과했다. 리조트에서 잠을 깨운 것은 강렬한 태양 빛이 아니라 눈이 시릴 정도로 아름다운 물 빛이었다. 방문을 열고 나가자 초록색 잉크를 뿌려놓은 바닷물은 마치 천상의 세계에 온 듯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고운 밀가루를 잘 다져놓은 듯한 백사장 위로 찰랑대는 바닷물은 ‘신의 선물’이라는 찬사가 단순한 수식어가 아니라는 느낌이다. 바다는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바닥을 드러내 보이며 깊이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맑았다. 인간의 손때를 타지 않은 순수 자연의 극치. 우리보다 멀리 사는 서양인들이 불평 한마디 없이 이 곳을 찾는 이유는 그만한 매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각박한 도시에서 일상에 찌든 나는 몰디브에서 지상 최고의 휴식을 맞이했다. ●산호를 품은 에메랄드빛 바다 하늘에서 바라본 몰디브는 더욱 아름다웠다. 말레 본섬에서 카누후라 섬의 선 아일랜드 리조트(www.sun-island.com)로 향하는 수상 경비행기(www.tna.com.mv) 안에서 본 섬들은 감탄을 자아낸다. 선 아일랜드 리조트는 국내 허니무너에게 가장 인기 있는 섬으로 말레 본섬에서 수상 경비행기로 30분 거리에 있다. 몰디브는 산호초로 에워싸인 1000여개의 섬이 있어 비행기에서 보면 산호의 군락이 마치 점점이 바다위에 떠 있는 것 같다. 그 산호초 안쪽 바다와 바깥쪽 깊고 푸른 인도양 물색이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리조트에 도착해 공항입국 서류와 같이 까다로운 호텔 체크인 서류를 작성한 뒤 수상 방갈로에 짐을 풀었다. 드디어 천상에서의 휴식이 시작됐다. 특급 호텔급 시설의 수상 방갈로의 베란다를 나오면 바로 수십만평의 산호 수영장. 방갈로에서 수심 1∼2m 정도의 얕은 산호섬 위 바다를 3∼5㎞ 이상 걸어 나가야 인도양 푸른 바다와 직접 맞닿는다. 산호섬 위의 얕고 푸른 바다는 리조트들의 천연 풀장인 셈이다. 이 때문에 바다위에 지어진 방갈로에서 바로 내려가 수영과 스노클링, 카누, 스킨스쿠버 등 갖가지 해양 스포츠를 안전하게 즐길 수 있다. 날씨가 더워 자전거를 빌려(1일 3달러) 이용하면 좋다. 카누와 스노클링 장비대여는 10달러선.< ●천상에서의 달콤한 휴식 몰디브는 휴식 그 자체다. 다른 휴양지와 달리 가이드의 강요나 선택 관광이 없다. 정해진 시간에 알아서 식사를 하고 자유롭게 휴식과 해양스포츠를 즐기면 된다. 푸른 바다 위에 떠 있는 방갈로에서 한껏 게으름을 피우며 늦잠을 자거나, 야자수 그늘 아래 누워 책을 읽어도 방해하는 이가 없다. 강렬한 태양에 몸을 구릿빛으로 태워도 좋다. 지루하면 스노클링을 해보자. 특별한 강습이 필요없이 장비를 빌려 물속에 들어가 산호초 속을 헤엄쳐 다니는 물고기를 감상하면 된다. 바다속에 산호가 많아 아쿠아슈즈를 신어야 다치지 않는다. 특히 저녁에 바다로 나가 낚시를 즐기는 ‘선셋 피싱’(일몰 낚시)은 여행의 재미를 더해 준다. 소위 물반 고기반. 낚싯배를 타고 조금만 나가면 30㎝ 이상의 각종 고기들이 잡힌다. 초보자도 1시간 정도 낚시를 하면 3마리 이상을 충분히 잡는다. 고기를 잡을 때마다 친절한 압둘라 선장이 ‘잡았다.’,‘엄청 크다.’ 등 서툰 한국말로 익살스럽게 외친다. 잡은 고기는 리조트로 가져가 회를 쳐서 저녁상에 내놓는다. ●원주민의 삶속으로 리조트에서 도니를 타고 10분쯤 가면 펜푸시라는 섬에 원주민 마을이 있다. 인구 700여명에 불과한 작은 섬으로 원주민의 전통가옥 등 생활상을 체험할 수 있다. 이슬람 사원에 있는 300여년 된 묘지는 이색적인 풍경으로 다가온다. 묘지의 비석이 둥그런 것은 여자, 뾰족한 것은 남자이며, 나이와 부에 따라 크기가 다르다. 이 곳의 학교는 오전·오후반으로 나눠 수업을 진행하며, 수업은 영어로 진행된다.8학년까지 이곳에서 배우며 10학년까지는 말레 시내나 이웃나라 스리랑카로 유학가야 한다. 기념품 가게도 3∼4곳 있는데 전통 의상과 각종 물고기 모형 등이 있어 들러볼 만하다. 뻔한 기념품이 싫다면 차를 구입하면 좋다. 이 곳은 인근 스리랑카에서 수입한 실론티(홍차)부터 체리차, 라스베리차 등 다양하며 가격은 3∼5달러 수준으로 저렴하다. 몰디브를 떠나기 전 3∼4시간을 내면 말레 시내를 둘러볼 수 있다. 공항섬인 훌룰레섬에서 말레 시내까지는 도니를 타고 15분 걸린다. 시내가 크지 않으며 걸어서 40분이면 돌 수 있다. 시내가 좁아 택시비는 어디를 가나 무조건 2달러다. 볼거리는 몰디브에서 가장 오래된 모스크(이슬람사원)인 ‘후쿠루 미스키’로 산호석을 사용해 만들었다. 수산시장과 재래시장도 가볼 만하다. 한국에서 수십만원 이상 하는 다랑어 1마리가 이 곳에서는 단돈 30달러이며, 각종 고기들이 시장에서 거래된다. 수산시장 옆 재래시장은 바나나와 망고, 커리 등 살 것도 많다. 그렇게 3박4일의 짧은 몰디브 여행은 눈깜짝할 새 지나갔다. 아쉬움도 많지만 아름다운 바다를 보며 원없이 쉬고 즐긴 여행이었다. 말레공항을 떠나는 날. 몰디브는 나의 아쉬움을 아는지 모르는지 점점 멀어져만 갔다.‘굿바이 파라다이스!’ ■ 미리 알고 떠나세요 몰디브 공화국은 인구 27만명에 불과한 작은 섬나라.언어는 인도-아랍어군에 속하는 디베히어이지만 영어가 통용된다. 스리랑카의 서남쪽으로 675㎞ 떨어진 곳으로 1196개의 섬 26개 군도로 이뤄져 있다. 국내에서는 가고 싶은 허니문 명소 1위로 선정되기도 한 곳. 이슬람 국가인 몰디브는 휴대품 반입에 제한이 많다. 다른 나라에서 반입이 금지된 물품외에도 술과 포르노그래피, 애완견 등은 반입할 수 없다. 이슬람에 반하는 종교물품도 금지된다. 그러나 리조트에서는 술을 마음대로 구입해 마실 수 있다. 몰디브로 가는 길은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를 경유해야 한다. 싱가포르까지 6시간30분, 다시 몰디브까지 4시간이 소요된다. 갈아타는 시간을 고려하면 15시간 이상은 잡아야 한다. 시차는 한국보다 4시간 늦다. 한국이 오전 9시면, 몰디브는 오전 5시다.기후는 적도상에 있어 29∼31도로 더우며 연중 기온변화가 거의 없다. 습도가 높은 편이며 바람은 잔잔한 편이다.화폐는 몰디브루피아(1달러=12루피아)가 있지만 달러가 통용된다. 여행에 있어 아쿠아 슈즈와 대형 튜브, 물안경, 선크림, 챙이 넓은 모자 등 바캉스 용품을 챙기면 요긴하다. 여행상품은 마이리조트(www.myresort.co.kr)에서 허니문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선 아일랜드 리조트에서 묵는 5박6일 상품이 184만원으로 스파마사지와 과일바구니, 샴페인이 무료로 제공된다.(02)595-1104. 몰디브·푸껫 글· 사진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아버지 이중섭 스크린에 담고 싶다”

    이중섭(1916∼1956) 화백의 둘째아들 태성(일본명 야스나리·56)씨가 처음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이 화백의 50주기를 기념하는 사업계획을 밝혔다. 태성씨는 22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망우리 공동묘지에 있는 부친의 묘소 이전 문제와 이중섭 일대기를 다룬 영화제작 계획 등에 관해 설명했다. 일본 도쿄에 거주하고 있는 태성씨는 이날 회견에서 부친의 묘소를 많은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장소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이 화백은 사망한 뒤 화장한 유해의 일부가 망우리 공동묘지에 묻히고 또 일부는 부인인 야마모토 마사코(한국명 남덕·83) 여사에게 전달됐다. 유족은 이 유해의 일부를 도쿄의 묘지에 안치하고 매년 참배하고 있다고 태성씨는 전했다. 망우리의 묘소는 묘지사용시한이 다 돼 이장을 해야 할 상황. 이 화백 작품을 취급해온 서울옥션 측은 이 화백이 작품생활을 했던 제주도 서귀포로 이장할 것을 권하고 있다. 이 화백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는 한국의 튜브픽쳐스와 일본의 마크 엔터테인먼트가 공동 제작할 계획으로 현재 시나리오 작업중이다. 태성씨는 “너무 어렸을 적에 헤어져 기억이 별로 남아 있지 않지만 아버지가 53년 선원자격증으로 일본에 건너와 열흘 간 함께 보내면서 나를 꽉 안아 주었던 느낌이 아직도 남아 있다.”면서 “아버지의 진실한 일대기와 어머니 마사코와의 사랑을 담아낼 이 영화를 통해 아버지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정주영회장 추모사진전 연다

    정주영회장 추모사진전 연다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의 4주기를 맞아 현대가(家)가 공동 추모 사진전을 연다. 모든 회사가 다 참여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룹 분리후 처음으로 시도되는 범 현대 행사여서 눈길을 끈다. 기일(21일)이 월요일이어서 제사는 20일에 지내기로 했다. 17일 현대에 따르면 정 명예회장의 9남매가 이끄는 범 현대가 그룹들은 창업주의 기일에 맞춰 21일부터 일주일간 ‘정주영 명예회장 4주기 추모 사진전’을 연다. 청년 정주영에서부터 ‘왕회장’ 시절에 이르기까지 고인의 사진들과 어록이 전시된다. 참여회사는 3남 정몽근 회장이 이끄는 현대백화점, 다섯째며느리 현정은 회장이 이끄는 현대상선,6남 정몽준 국회의원이 대주주인 현대중공업,7남 정몽윤 이사회 의장이 이끄는 현대해상화재보험, 채권단으로 주인이 바뀐 ‘그룹의 모태’ 현대건설 등이다. 각자의 회사 사옥 로비에 전시 공간을 만들어 일반시민들에게도 개방할 방침이다. 추모전에 앞서 현대가 사람들은 고인의 서울 청운동 자택에 모여 20일 제사를 지낸다. 제사가 끝나면 곧바로 경기도 창우리 묘지를 찾아 성묘할 계획이다. 현정은(고인의 5남인 고 정몽헌 회장의 부인) 현대그룹 회장은 이날 다른 시댁식구들-정 명예회장은 형제만 여섯이다-과 함께 성묘를 다녀올 예정이다. 하지만 9남매의 공동 성묘는 올해도 어려울 듯싶다. 각자 그룹을 이끌고 있어 일정이 빠듯하기 때문이다. 실질적인 장남인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지난주에 이미 임원들과 함께 성묘를 다녀왔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日 독도주권 침해] ‘독도수호·역사왜곡 대책특위’ 가동

    [日 독도주권 침해] ‘독도수호·역사왜곡 대책특위’ 가동

    일본 시마네현 의회가 16일 ‘다케시마의 날’ 조례안을 통과시키자 여야는 비난 논평을 내고 ‘독도 수호·일본 역사왜곡 대책특위’ 구성 등 다양한 대책을 쏟아냈다.‘공동의 적’ 앞에서 모처럼 한목소리를 낸 셈이다. 열린우리당 김부겸, 한나라당 임태희 원내수석부대표는 16일 오전 회동,‘독도수호·일본 역사왜곡 대책특위’ 구성에 합의했다. 열린우리당은 긴급의원총회를 열어 결의문을 채택하고 대응방안을 논의했고, 한나라당 의원 117명은 ‘일본 독도 영유권 주장 중단 촉구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열린우리당 임종석 대변인은 “대한민국 영토인 독도를 오히려 한국이 불법점거했다고 주장하는 일본의 행태를 한국과 한국민에 대한 명백한 침략적 저의로 간주한다.”며 “당정은 국토 수호차원에서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강도높게 비난했다. 한나라당 이정현 부대변인도 “시마네현의 조례 확정은 전쟁도발”이라고 규정한 뒤 “독도의 국권을 확인하고 영토를 수호하는 차원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하고 경비대원들을 격려하라.”고 촉구했다. 여야 의원들은 장단기 독도 대책을 앞다퉈 발표했다. 열린우리당 전병헌 의원은 “울릉도 주민이 자발적으로 결성했던 독도의용수비대를 지원·예우하기 위해 ▲기념사업회 설립 ▲묘역 조성 뒤 국립묘지 안장 등을 골자로 하는 특별법안을 발의할 것”이라고 밝혔다.‘올바른 역사교육을 위한 의원모임’과 ‘과거사 청산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소속 의원들도 기자회견에서 “정부는 ‘한·일 우정의 해’관련 공식행사를 전면 재검토하라.”고 요구했다. 한나라당 예결위원 20명은 ▲독도역사포켓책자 1000만부 발간 ▲독도영구거주민 모집 ▲해군 독도함 건조 등 ‘독도 문제 종합대책’ 7대 과제를 발표하고 관련 예산 182억원을 새해 예산안에 반영하도록 정부에 촉구하기로 결의했다. 변양균 기획예산처 장관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참석, 독도 영유권 공고화사업 예산 증액과 관련 “외교통상부와 협의해 필요하다면 증액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같은 당 정의화 의원은 “독도를 완전히 개방하자.”고 촉구한 뒤 구체적 방안으로 ▲울릉도·독도 패키지 관광상품 개발 ▲외교통상부내 독도 전담과 신설 ▲대마도(쓰시마섬) 여행 잠정 중단 등을 제안했다. 같은 당 대구·경북 의원 20명은 오찬 모임에서 조례와 독도에 대한 일본의 영유권 주장 철회 등을 담은 성명서를 채택했다. 이종수 문소영기자 vielee@seoul.co.kr
  • [세상에 이런일이]‘骨프코스’

    경북 구미의 한 골프장이 창업주의 무덤을 골프 코스 안에 만들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6일 선산컨트리클럽은 지난해 11월 세상을 떠난 창업주 전종상(당시 79세)씨의 묘소를 골프장 안으로 이장하기 위해 묘지 조성 작업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유인 즉, 생전에 고향에 골프장을 세워 많은 애정을 쏟았던 창업주의 뜻을 기리기 위해서라는 것. 골프장 측은 2번 홀과 3번 홀 사이에 묘 터를 닦고 있으며, 오는 4월 이장할 계획으로 전해졌다. 이에 회원 가운데 일부는 “유족이 고인의 뜻을 헤아려 골프코스 안에 묘를 만든다면 이해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보았다. 이 골프장 조병욱 총괄부장은 “돌아가신 창업주의 무덤을 사유지인 골프장에 조성하는 데 법적인 문제점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회원들은 “아무리 그래도 골프장과 이웃한 야산도 아닌 홀 사이에 무덤을 만드는 것은 좀 생각해 볼 점이 있는 것 아니냐.”면서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 儒林(299)-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儒林(299)-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그러나 이러한 일화로 인하여 이산해의 가문에서는 아버지 이지번과 작은아버지 이지함이 은둔하였던 단양의 구담을 대대로 기리고 곁들여 두향에게 제사를 지내주었던 것이다. 스승 이퇴계를 존경하여 애인이었던 두향의 제사까지 함께 지내준 이산해의 사제지도(師弟之道). 그러한 사제지도가 없었더라면 오래 전에 두향의 무덤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표석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도 새겨져 있다. 나는 그 내용을 읽어보았다. “…조선 숙종 때 우암 송시열(宋時烈)과 권상하(權尙夏)의 문인으로 호조정랑, 의금부부사, 단양군수였던 수촌(水村) 임방(任傍:1640~1724)은 ‘두향묘시(杜香墓詩)’를 남긴다.…” 묘석에 나오는 임방은 송시열의 제자로 의금부도사를 거쳐 대사성·호조판서에 이르렀던 명신인데, 일찍이 단양의 군수로 재직하다가 두향의 무덤 앞에서 추모시를 한수 읊는다. 그 추모시가 임방의 문집 수촌집(水村集)에 실려 있는 것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외로운 무덤 하나 두향이라네. 강 언덕 강선대 그 아래 있네. 어여쁜 이 멋있게 놀던 값으로 경치도 좋은 곳에 묻어 주었네.(一點孤墳是杜秋 降仙臺下楚江頭 芳魂償得風流價 絶勝眞娘葬虎丘)” 두향에 대해서 노래한 시 중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이 시에서는 두향을 ‘두추(杜秋)’라고 부르고 있다. 두추는 당나라에서 전해 내려오는 최고의 명기. 따라서 임방은 두향을 감히 두추에 비유하여 시를 읊고 있는 것이다. 또한 임방은 두향이 묻힌 이곳을 ‘호구(虎丘)’라고 명명하고 있다. 호구는 오늘날 장쑤성(江蘇省), 쑤저우(蘇州)에 있는 경승지를 말함이다. 하이융산(海湧山)이라고도 하는데,‘오월춘추(吳越春秋)’에 의하면 오나라의 왕 부차가 아버지 합려를 장사지낸 지 3일 후에 백호(白虎)가 나타나 그 무덤을 지켰다는 고사에서 연유하여 호구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언덕 위에는 높이 47.5m의 8각 7층 벽돌건물인 운암사탑(雲岩寺塔)이 있고, 수목이 무성하며 기암괴석이 풍부한 절경이다. 서남쪽 교외 19㎞ 지점에 있는 영암산(靈岩山)에는 월왕 구천이 감금되었다는 굴이 있고, 구천이 복수하기 위해서 부차에게 진상하였던 서시(西施)를 위해 지었다는 별궁터가 남아 있다. 서시는 중국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절세미인. 눈길 한번 돌아보면 성이 기울고, 두 번 돌아보면 나라가 기울 만큼의 경국지색(傾國之色)이었는데, 서시가 몸이 아파 낯을 찌푸리면 나라의 모든 여인들이 이를 흉내내어 낯을 찌푸렸다는 이 전설의 여인은 바로 이 궁터의 금대에서 거문고를 켰던 것이다. 그러나 호구가 유명한 것은 바로 이런 연유 때문에 육조시대(六朝時代) 때에 이르러 나라의 많은 명기들은 자신이 죽으면 동양의 클레오파트라인 서시처럼 자신을 바로 이 호구에 묻어 달라고 유언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호구는 유명한 미인들이나 기생들이 사후에 묻히는 북망산(北邙山)으로 유명했던 곳. 북망산이 낙양(洛陽) 북쪽에 있는 작은 산으로 제왕, 귀인, 명사들의 무덤이 많은 곳이라면 호구는 이처럼 명기들의 공동묘지였던 것이다. 따라서 임방은 이곳을 빗대어 두향이 묻힌 강선대의 무덤가를 호구라고 명명하고 있음인 것이다.
  • 儒林(295)-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儒林(295)-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해변의 묘지’를 지은 폴 발레리의 묘는 실제로 지중해의 바다를 굽어보는 높은 산위에 있다. 비록 바다는 아닐지라도 이제는 바다와 같은 호숫가에 묻힌 두향의 묘지 앞에서 나는 혼잣말로 ‘해변의 묘지’의 처음부분을 중얼거려 보았다. “비둘기들 노니는 저 고요한 지붕은 철썩인다 소나무들 사이에서, 무덤들 사이에서, 공정한 것 정오는 저기에서 화염으로 합성한다. 바다를, 쉼 없이 되살아나는 바다를.…(중략)…. 심연 위에서 태양이 쉴 때, 영원한 원인이 낳은 순수한 작품들, 시간은 반짝이고 꿈은 지식이로다.…” 발레리의 시처럼 호수는, 쉼 없이 되살아나는 호수는 영원한 원인이 낳은 순수한 작품인 두향의 무덤 위에서, 두향의 인생위에서 시간은 태양처럼 반짝이고 있음이었다. 나는 유명한 ‘해변의 묘지’마지막부분을 암송하여 보았다. “바람이 분다. 살려고 애써야 한다. 세찬 마파람은 내 책을 펼치고 또한 닫으며, 물결은 분말로 부서져 바위로부터 굳세게 뛰쳐나온다. 날아가거라. 온통 눈부신 책장들이여. 부숴라, 파도여. 뛰노는 물살로 부숴 버려라. 돛배가 먹이를 쪼고 있던 이 조용한 지붕을.” 발레리의 시처럼 쪽빛 호수는 지붕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 위를 바람이 불어 수면 위를 뛰노는 물결의 파도는 부서지고 있었다.‘바람이 분다. 살려고 애써야 한다.’는 절창은 ‘해변의 묘지’의 골수. 두향은 이곳에 무덤으로 살아 있음이니. 그렇다. 우리들의 생은 발레리의 시처럼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고, 살아도 산 것이 아니다. 삶도 무덤과 같은 것이고, 책장을 열고 닫는 한순간의 바람이라고 할지라도 함부로 사라지지 않으니, 두향은 우리들 곁에 죽어서 살아있음이다. 살아서 죽어 있음이다. 상석 옆에 또 하나의 비석이 서 있었다. 죽은 사람의 내력을 기록하고 있는 묘비였다. 검은색 화강암에는 두향의 묘에 관한 다음과 같은 내용이 새겨져 있었다. 나는 그 묘비를 읽어 보았다. “성명은 두향. 중종시대의 사람이며, 단양태생. 특히 거문고에 능하고 난(蘭)과 매화(梅花)를 사랑했으며, 퇴계 이황(1501∼1570:제15대 단양군수)을 사모했으며, 수절종신(守節終身)하였다.‘명기열전(名妓列傳)’에 의하면 두향이 단양팔경을 지정하기 위해서 청풍군수인 토정 이지번(?∼1575) 선생에게 청풍 경계인 옥순봉(玉筍峰)을 양보 받도록 이황에게 청원하여 단양팔경을 지정하게 하였다. 매년 5월 초에는 두향을 위해 제를 지내고 있다.…” 묘지를 읽어 내리던 내 눈은 어느 한 지점에서 멎어섰다. “명기열전(名妓列傳)” 내 기억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소설의 제목이다. 오래전 작가 정비석(鄭飛石)이 동명의 이름으로 신문에 연재하였던 소설의 이름인 것이다. 제목이 암시하듯 우리나라에서 전해 내려오는 황진이를 비롯한 여러 명기들의 이야기들을 열전형식으로 엮은 인기 소설이었다. 실제로 두향의 묘가 널리 알려지고 두향의 무덤이 수장될 뻔하였던 것을 현재의 위치로 이장하여 이렇게 보존되고 있음은 전적으로 작가 정비석 한사람의 공 때문이니. 그런 의미에서 정비석은 두향 재발견의 일등공신인 것이다.
  • [인사]

    ■ 국가보훈처 ◇서기관 전보△처장비서관 전종호△공보담당관 南昌秀△감사〃 李龍源△기획예산〃 李成春△기획관리실 법무〃 康潤振△보훈관리국 보상급여과장 朱正煥△〃 단체지원〃 愼炫縡△보훈선양국 선양정책〃 白昌基△복지사업국 복지지원〃 庾周鳳△서울북부보훈지청장 鄭鍾基△강릉〃 李起鎔△마산〃 柳大植△순천〃 김의행△목포〃 洪仁杓△국립5·18묘지 관리소장 李南日△국가보훈처 李京雨△복지사업국 의료지원과 李熙範 ■ 증권예탁결제원 △전무 柳興模 ■ 한국교직원공제회 ◇1급 승진△기획조정실 金仁相△총무부 段成基△광주지역본부장(직대) 李在完△교원나라레저개발 전무이사 朴善穆◇1급 전보△감사실장 曺一峰△부산지역본부장 將鍾宣 ■ 숭실대 △부총장(학사) 郭熙魯△〃(대외) 尹玄德△비서실장 서리 林龍來△교목실장 직무대리 延堯翰△대외협력처장 吳徹虎△기획조정실장 曺尤鉉△교무처장 李廷鎭△학생생활〃 韓石煥△총무〃 李丙德△관리〃 李成求△정보지원〃 金修東△출판부장 金光永△생활관장 崔度宰△신문방송전문위원 崔昌河 ■ 상지대 △생산기술연구소장 김제숭△사회복지학과·계약학과 학과장 류만희△학생지원과장 김승구△학사관리〃 박주△교무〃 전인환△생자대·예체대 교학〃 권태준△총무과(총장부속실) 이강재△입학홍보실 홍보주임 최치원△대학원 교학주임 윤명성 ■ 을지의과대 △명예총장 겸 의과대학장 김용일△간호대학장 직무대행 오희영△대학원장 백태경△보건대학원장 겸 학술자료관장 기모란△임상간호대학원장 임숙빈△교학처장 겸 입학관리처장 유승민△기획관리처장 김영훈△교학 부처장(서울) 이애영△교무 〃 이재용△학생 〃 현성희△입학관리 〃 최헌△의과학연구소장 겸 대학원 교학부장 백행운△보건대학원 교학과장 마기중△임상간호대학원 〃 김은경△기초의학과장 김찬△임상의학과장(서울) 구자성△〃(대전) 이창화△임상실습과장(서울) 김상훈△〃(대전) 안규정△간호학과장 허명행△보건대학원 방사선학과장 유인규△보건대학원 물리치료학과장 이광원△정보통신센터 소장 박미라△임상수기훈련센터 〃 이수주△의사국시대책위원장 박원일△간호사국시대책위원장 이꽃메 ■ 충북대 △사회과학대학장 南在鳳△경영〃 鄭在權△약학〃 鄭然馥△의학전문대학원장 林承運△종합인력개발원장 趙誠瓚△평생교육원장 金昌錫△박물관장 李隆助△보건진료원장 崔榮奭△건설기술연구소장 鄭慶燮△중원문화〃 趙恒範△바이오〃 崔壽永△산업경영〃 全達英△동물의학〃 南相允△교직부장 許敬祖△교육매체센터소장 李玉禾△도서관의대분관장 金憲植
  • 儒林(294)-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간신히 암벽위로 올라섰지만 무덤으로 가는 길은 따로 만들어져 있지 않았으므로 나는 소나무가지를 헤치고 몸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송림을 지나 무덤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비교적 양지바른 곳이라 무덤주위는 따뜻한 양광이 내리쬐고 있었다. 무덤 왼쪽에 묘비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검은 화강암으로 잘 깎아 만든 묘비는 다음과 같은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杜香之墓” 그 묘비를 보자 나는 마침내 두향의 무덤에 도착하였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무덤은 잘 정돈되어 있었다. 봉분과 곡장(曲墻) 역시 깨끗하게 단장되어 있었고, 곱게 입힌 떼도 한겨울을 이겨내고 누렇게 변색한 채 봄볕에 한가롭게 졸고 있었다. 도대체 누가 두향의 무덤을 돌보고 있음일까. 미천한 기생의 몸으로 자식도 없이 연고도 없이 이곳에 묻힌 두향의 묘가 사후 5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이처럼 연지곤지 찍은 생전의 모습 그대로 단장되고 있음은. 봉분 앞에는 무덤 앞에 제물을 차려놓는 돌상까지 차려져 있었다. 나는 봉분 앞에 서서 주위를 돌아보았다. 탁 트인 호수 저편으로 한눈에 이퇴계가 가장 좋아하였던 구담봉의 모습이 들어오고 있었다. 비록 강선대는 수몰되어 물에 잠겼다고는 하지만 바로 이곳, 이 자리가 퇴계가 두향과 더불어 노닐고 감흥에 젖어 시를 읊었던 로맨스의 현장이었을 것이다. 구담을 노래한 사람은 이퇴계 뿐이 아니다. 조선의 대학자로 이퇴계와 쌍벽을 이루던 이율곡도 구담봉을 지나며 다음과 같은 시를 남기지 않았던가. “땅을 울리는 듯 잇단 피리소리에 나그네 놀라 깨니/어지러이 떨어지는 가을잎이 창을 두드리는 소리라네/알지 못하겠구나. 밤이 새도록 찬강에 내리는 비가/수척이나 높은 구봉을 가벼이 넘나드니” 일찍이 명종 13년(1558년) 봄.22살의 청년 이율곡은 이미 안동의 도산서원에서 제자를 가르치며 은둔하고 있는 이퇴계를 만나서 사흘간의 짧은 기간동안이지만 가르침을 받는다. 이는 마치 도가를 창시한 노자와 유가를 창시한 공자의 만남처럼 세기적인 사건이다. 이때 이퇴계는 이미 58세의 노인. 비록 36살이나 차이 나는 노소의 만남이었지만 이 만남을 통해 이율곡은 개안하였으니, 눈을 뜨는 데는 천년이 걸릴지는 모르지만 보는 것(見)은 이처럼 찰나에 이루어지는 법이다. 따라서 이율곡이 구담봉을 지나면서 이 시를 읊은 것은 어쩌면 이퇴계를 방문하고 귀로에 오를 때였으니, 이율곡이 노래하였던 ‘알지 못하겠구나, 밤이 새도록 찬강에 내리는 비를(不知一夜寒江雨)’이라는 구절처럼 나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500년의 세월도 저 강 위에 내리는 한 방울의 빗줄기처럼 일말(一抹)의 거품인 것을, 그것이 우리의 인생인 것을. “해변(海邊)의 묘지” 문득 내 머리 속으로 프랑스의 시인 폴 발레리의 대표적인 시가 한 수 떠올랐다.20년간의 긴 침묵 끝에 태어난 순수시의 결정판. 해변의 묘지는 ‘나의 혼이여 죽음 없는 생을 구하지 말라’는 핀다로스의 말을 새겨서 20세기가 낳은 천재시인 발레리가 144행으로 삶과 죽음을 우주적인 시야에서 노래한 최고의 걸작인 것이다.
  • 홍준표 “난 이젠 계엄사령관”

    홍준표 “난 이젠 계엄사령관”

    “혁신위원회가 아닌 혁명위원회를 이끄는 계엄사령관의 심정으로 당이 2007년 대권을 탈환하는데 최적의 여건을 만들겠다.” 한나라당의 쇄신작업을 지휘할 혁신위원장에 내정된 홍준표 의원이 22일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던진 강한 일성이다. 그는 “지금까진 특무상사만 해왔는데 이젠 계엄사령관”이라고 스스로 의미를 부여했다. 한나라당에 대한 진단은 특유의 독설로 시작했다. 홍 의원은 “한나라당도 공동묘지 앞의 침묵을 그만두고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면서 “입만 살아 있는 학술연구단체 같은 모습에서 벗어나 실천하는 정당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혁신위가 그 역할을 해야 하기에 대표의 자문기구가 아니라 실질적 변화를 주도할 실무에 비중을 둘 것”이라고 복안을 밝혔다. 특히 “갈등이 기사(뉴스)를 만든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박 대표와 대립각을 세우겠다.”는 게 요지다. 열린우리당의 4·2전당대회에 버금가는 뉴스를 생산하고 당헌·당규도 과감하게 고쳐 문제 의원에 대해서는 ‘출당 권고’를 내리는 등 구체적인 방안도 제시했다. 그는 혁신위의 주요 활동방향에 대해 “정책 혁신, 홍보 혁신, 당헌·당규 혁신”이라며 “이를 통해 대권 가도의 전투력을 키울 것”이라고 말했다. 혁신위의 모든 역할은 ‘대선승리’와 직결시켰다.“박근혜 대표만이 아니라 강재섭 의원·이명박 서울시장·손학규 경기지사 등 ‘빅4’를 묶어서 원형경기장에 넣은 뒤 2007년 7월까지 혼전을 벌이다가 살아남은 자를 ‘글래디에이터’로 만들어야 한다.”면서 “혁신위는 이 과정을 시스템으로 구축할 용광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출범도 하기 전에 삐걱거리는 조짐도 내비쳤다. 전날 상임운영위에서 나온 ‘혁신위에 외부인사 영입·여성 30%할당’ 등의 방안을 겨냥,“혁신위가 공천추천위냐. 모든 것은 위원장이 결정하고 사안에 따라 운영위나 의원총회에서 의결할 것”이라고 반발했다. 하지만 자신의 행보가 지나친 ‘반박(反朴)’으로만 비쳐지는 것에는 “결과적으로는 박 대표를 위하는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소장파들이 주축이 된 수요모임의 남경필, 원희룡 의원 등이 ‘반박 행보’를 보이는 데에는 “난 단물을 빼먹고 그러는 이들과는 다르다.“며 차별화를 시도했다.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대구지하철 참사 2주기 아물지 않는 ‘상처’

    대구지하철 참사 2주기 아물지 않는 ‘상처’

    ‘잊혀진 사람들, 이들은 과연 누구일까요.’ 대구지하철 참사 2주기를 사흘 앞둔 15일 경북 칠곡군 지천면 낙산리 대구시 공원묘지. 빼곡히 들어선 수천기의 묘는 모두 ‘무슨 성씨 누구의 묘’라며 주인이 있지만 중턱에 나란히 자리한 6기의 묘는 주인이 없다. 대구지하철 참사 사망자 가운데 신원이 밝혀지지 않거나 아직 연고자를 찾지 못한 희생자들이다. ‘DNA 감정확인 미신고.DO8-Ca01(남)의 묘’,‘K-42의 묘 신원확인 불능’,A24-CA03,A24-CA08의 묘 신원확인 불능’. 죽어서도 자신의 이름마저 갖지 못한 이들은 2년째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부여한 유전자 식별번호로만 남아 있다. ‘DNA 감정확인 미신고’는 신원확인을 위한 유전자 감식은 가능했지만 연고자를 찾지 못한 경우이고,‘신원확인 불능’이란 유전자 감식조차 못할 정도로 심하게 불에 타버린 경우다. 이 가운데 DNA를 추출한 3명(남자 1명, 여자 2명)은 기약은 할 수 없지만 언젠가는 연고자가 나타나 이름 석자라도 되찾을 거라는 희망이라도 있지만, 나머지 3명은 영원히 신원확인이 불가능한 상태다. 참사 이후 나란히 이곳에 묻힌 이들은 무연고자라는 이유로 세상의 관심에서 사라졌다. 불타 버린 전동차를 탔다가 억울하게 죽어갔지만 지난 2년간 누구도 이들을 위해 울지 않았고 아무도 찾지도 않았다. 이들에게는 낯선 시립공원묘지의 한평 남짓한 묘터만이 주어진 게 전부였다. 공원묘지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죽어서도 아무도 찾지 않는 이들이야말로 참사의 최대 피해자”라며 “아마도 이들의 영혼은 자신들의 이름 석자만이라도 찾아 달라며 아직도 구천을 떠돌며 세상 사람들을 원망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과연 누구일까. 참사 당시 실종자와 가출자, 행방불명자 신고를 접수한 600여명을 대상으로 유전자 대조작업을 벌였지만 결국 이들의 신원은 확인되지 않았다. 그저 사고가 난 지하철역을 전전하던 노숙자이거나 대구의 변두리 공장에서 숨어 일하던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일거라는 추측만이 무성했다. 대구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도로·철도변 납골묘 허용

    도로·철도변 납골묘 허용

    앞으로는 도로ㆍ철도 변에도 묘지나 납골묘가 들어서게 될 전망이다. 보건복지부 장사제도개선추진위원회는 11일 이같은 내용의 장사제도 개선방안을 마련해 정부에 관련법 개정을 건의했다. 정부는 추진위원회의 안을 토대로 공청회와 토론회 등 여론수렴 과정을 거쳐 최종안을 확정하게 된다. 정부에 제출된 추진위원회의 장묘문화 개선 방안에는 현재 묘지와 납골묘가 들어설 수 없는 도로와 철도, 하천 주변에도 설치가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추진위 방안에 따르면 묘지와 납골묘가 도로ㆍ철도ㆍ하천으로부터 300m 이상,20가구 이상 인가 밀접지역이나 학교·공중시설 장소로부터 500m 이상 떨어진 곳에 설치토록 돼 있는 데서 도로와 철도·하천 주변을 설치 제외지역에서 빼기로 했다. 추진위는 또 장사시설의 수급 불균형 해소를 위해 신도시 개발시 공설 화장장과 납골시설의 설치를 의무화하도록 했다. 호화 납골시설의 억제를 위해 납골묘 1기당 높이를 50㎝, 점유면적도 1.96㎡로 각각 제한하고 시설물로 비석 1개와 상석 1개만 허용토록 했다. 또한 화장 유골을 가루로 만들어 용기 없이 땅에 묻거나 뿌리는 산골(散骨)에 대해서도 공공시설이나 주거지역 인근, 상수원 보호지역 등에서는 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특히 무연고 묘나 불법분묘에 대해 지방자치단체장 주도로 일제조사를 벌여 안장된 시신과 유골을 의무적으로 화장해 납골하거나 이장토록 했다. 이밖에 ▲기존 묘지공원 내 화장장ㆍ납골시설 설치 허용 ▲기존 공설묘지 재개발시 일정규모 이상의 납골시설 및 산골시설 설치 ▲화장장에 시신 안치실 설치 의무화 ▲민간투자 가능 SOC(사회간접자본) 시설에 공설 장사시설 설치 ▲유골 500구 이상 사설 납골시설 설치ㆍ관리시 재단법인 설립 ▲사설묘지 설치자의 묘지 설치 가능 여부 사전 확인 등을 의무화하도록 했다. 유진상기자 jsr@seoul.co.kr
  • 성묘 셔틀버스 운행… 개인택시 부제 해제

    서울시는 7∼11일 교통상황실을 운영하는 등 설 연휴 기간 귀성·귀경·성묘객들의 교통편의를 위해 교통대책을 마련했다. 설 연휴 교통대책에 따르면 고속버스와 시외버스의 하루 운행 대수 및 횟수를 각각 503대(16.2% 증편)와 805회(16.7% 증편)로 늘려 평소보다 2만 7296명을 더 수송한다. 고속도로 진입구간인 남부순환로 남부시외버스터미널∼서초IC 구간과 사평로 삼호가든사거리∼반포IC 구간에 임시 버스전용차로를 7일 정오부터 10일 자정까지 운영한다. 성묘객 대부분이 몰리는 용미리 시립묘지에는 8∼9일 오전 7시∼오후 6시 구파발역을 운행하는 셔틀버스 8대가 임시로 배치된다. 심야에 서울에 도착하는 귀경객을 위해 설날인 9일과 다음날인 10일에는 지하철과 시내버스가 새벽 2시까지 연장운행된다. 7일 오전 4시부터 11일 오전 4시까지는 개인택시 부제도 해제된다. 서울역 광장에서는 구파발·수유리·청량리방면, 영등포역 광장에서는 김포공항·시흥·잠실역 방면, 강남고속터미널에서는 신촌·길동·영등포역 방면으로 버스가 운행되며 요금은 무료다. 교통정보 안내 전화는 고속도로 1588-2505, 국도 1333, 내부순환도 080-2001-114 등이다. 고금석기자 kskoh@seoul.co.kr
  • 수필가 한흑구의 고향 ‘포항’

    수필가 한흑구의 고향 ‘포항’

    “보리, 너는 차가운 땅 속에서 온 겨울을 자라왔다(중략). 보리다! 낮은 논에도, 높은 밭에도, 산등성이 위에도 보리다. 푸른 보리다. 푸른 봄이다.(중략)보리, 너는 항상 순박하고 억세고 참을성 많은 농부들과 함께 이 땅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보리, 하면 생각나는 작가가 있다. 국내 수필문학의 대가로 불리는 한흑구(韓黑鷗·본명 세광·1909∼79년)이다. 그의 대표작 ‘보리’가 지난 60,70년대 국정 중등 국어교과서에 실리는 등 널리 알려져 있어서다. 수필을 시와 같은 미문(美文)으로 쓴 작가로도 유명하다. 수필가는 남북 두 체제에서 작품활동을 한 문인이다.35년 평양에서 월간종합지 ‘동광’에 단편 ‘황혼의 비가’를 발표하며 데뷔했으나 39년 흥사단사건으로 피검된 이후 글을 발표하지 않았다. 그러다 광복되던 해 월남해 수필 창작 등에 전념했다. ●포항에서 30여년간 작품활동 월남후 3년간 서울에서 생활하던 그는 1948년 동해의 푸른 바다가 펼쳐보이는 경북 포항으로 삶터를 옮겼다. 아마 바다와의 인연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수필가는 자신의 필명을 흑구(검은 갈매기)로 했다. 일제 강점기인 29년 미국으로 유학길을 떠날 때 태평양 뱃길 선상을 외롭게 나는 검은 갈매기 한 마리를 보고 자신의 신세에 비유해 붙인 것이다. 그는 포항으로 거처를 옮긴 뒤에는 동해가 좋아 평생 포항에서 안빈낙도의 은둔생활을 했다. 이를 두고 미당(未堂)은 “선생은 스스로 평생을 귀양살이라도 능히 해낼 수 있는 묘한 은둔의 사색가로 사셨다.”고 평했다. 이곳에서 수필가는 100여편의 작품을 발표했다.58년부터 17년간은 영일만에 자리한 포항수산대학 교수로 재직했다. ●‘보리’를 잉태한 영일만 수필가가 ‘보리’를 쓸 당시 포항은 지금의 서산(西山)에서 내항 사이를 시가지로 하는 조그마한 어항이었고, 그 주변은 거의 보리밭이었다. 특히 그가 이육사를 비롯한 다수의 문인들과 자주 찾았다는 영일만의 구만리(九萬里)는 온통 보리밭 물결을 이뤘다. 동네 처녀들이 쌀 한 말을 다 못먹고 시집간다고 했을 정도로 보리밭 천지였다. 포항문협의 창립멤버이자 한흑구 생존시 절친했던 박이득(64·아동문학가)씨는 “흑구 선생은 푸르른 바다와 보리가 조화를 이루며 넘실대는 영일만 일대에서 주로 작품 구상을 했었다.”면서 “‘보리’를 쓸 수 있었던 영감도 영일만에서 얻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또 “보리 작품속의 구절 대부분은 흑구 선생과 함께 영일만의 보리밭을 거닐며 이야기로 나누던 것들”이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지금 영일만 일대의 들녘은 파밭으로 그득하다. 보리밭은 그저 일부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80년대 이후 주민들이 보리농사가 돈이 되지 않자 파 재배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그가 몸담았던 수산대학도 아파트 신축 부지로 팔린 뒤 얼마전 헐리고 말았다. 다만 수필가가 생전에 그토록 사랑했던 동해의 푸른 파도만이 남았다. ●포항문학의 개척자 수필가가 이곳에 정착할 무렵만 해도 인구 5만의 포항은 문화의 변방이었고, 문학의 불모지였다. 하지만 그가 이주한 뒤 문학적 토양을 일궈 싹을 틔우면서 포항문학의 시대가 열리게 됐다.51년에 20여명의 신진 문인들로 구성된 포항문인협회가 결성되기에 이르렀고, 이듬해 시 동인 ‘효안’,55년 ‘청패’ 동인이 탄생됐다. 67년에는 흑구 선생을 정점으로 한 ‘흐름회’란 향토문화단체가 출범했다. 지역 문화행사를 주도하고 소속 회원들이 제각기 문학작품집을 내놓게 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하지만 문협 포항지부가 정식으로 출범하던 해인 79년 수필가는 향년 7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묘지는 영일만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흥해읍 죽천2리 언저리에 마련됐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2년 뒤인 81년에 나온 포항지역의 대표적 문학지인 포항문학 창간호는 온통 한흑구의 특집으로 꾸며져 그가 포항문단에 남긴 큰 자취를 증언한다. 그의 후학들은 83년, 선생의 뜻을 기리고자 청하골 보경사 인근 길섶 숲속에 문학비를 세웠다. 비의 앞면에는 ‘보리’의 마지막 문장이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흑구가 이 지역 문단에 남긴 업적이 수록돼 있다.88년부터 매년 문협 포항시지부 주최로 구만리에서 ‘보리누름문학제’가 열려 작가의 문학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포항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무장 경비속 29일 자오쯔양 장례식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사망 13일만인 29일 오전 9시(현지시간)에 치러질 자오쯔양(趙紫陽) 중국 공산당 전 총서기의 장례식을 앞두고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중국 당국은 장례식 과정에서 일어날지 모르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인민해방군과 공안(公安·경찰)을 대거 배치했다고 미국에 본부를 둔 세계적인 중화권 포털사이트 대기원(大紀元)이 28일 보도했다. 공산당은 장례식이 개최되는 바바오산(八寶山) 혁명공동묘지와 톈안먼(天安門)광장에 군과 공안을 집중 배치했으며, 톈안먼광장에는 26일부터 공안 병력이 3∼5배 증가했고 무장군인들까지 목격되고 있다고 대기원이 전했다. 한편 장례식에는 톈지윈(田紀雲) 전 부총리와 톈안먼(天安門)사태의 주역 왕단(王丹)의 모친 왕링윈(王凌雲) 등을 제외한 반체제 인사들의 참석은 일절 불허된다. oilman@seoul.co.kr
  • 29일 자오쯔양 장례식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중국 공산당은 자오쯔양(趙紫陽) 전 총서기의 장례식을 29일 오전 9시(현지시간) 거행키로 하고 초청장을 발송하기 시작했다고 홍콩과 타이완 언론들이 27일 보도했다. 자오쯔양 장례식 업무를 담당하는 한 중국 관리는 자오 장례식 초청장을 27일 12시부터 배부하기 시작했으며, 초청장에 29일 오전 9시 장례식 개최 사실이 명시돼 있다고 밝혔다. 자오쯔양 장례위원회는 베이징(北京)시 디안먼(地安門) 시다제(西大街) 29호 시청진타이호텔(西城金臺飯店) 8층에 소재한 회의중심에서 장례식 초청장을 발송하고 있다고 이 중국 관리는 전했다. 중국 소식통들은 자오쯔양 가족들과 당국이 26일 팔보산혁명공동묘지(八寶山革命公墓) 대례당(大禮堂)에서 29일 오전 자오에 대한 영결식을 거행하기로 합의했다고 전했다. 중국의 한 소식통은 장례식 절차와 관련,“당은 팔보산혁명공동묘지 제1납골실에 자오의 유골을 봉안키로 양보했고 유족들은 고인의 업적에 대한 재평가 요구를 철회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홍콩의 중국인권민주화운동정보센터 관계자는 “장례식 간소화와 시위 등에 대한 우려 때문에 자오에 대한 추도식은 거행하지 않고 영결식(遺體告別儀式)만 개최할 것”이라며 “고별의식에서 고인의 삶을 간단하게 소개하는 식으로 입장을 절충했다.”고 밝혔다. oilman@seoul.co.kr
  • [뒷골목 맛세상]로데오거리 퓨전요리

    [뒷골목 맛세상]로데오거리 퓨전요리

    ‘떡볶이에 미친’ 이영주(46)씨.24년 동안 떡볶이와 고락을 함께하며 ‘대구 동성로 떡볶이 신화’를 일궈낸 그는 서울 압구정동 로데오거리에 10억원을 들여 떡볶이 전문점인 ‘레드페퍼’를 차려 철판피자떡볶이 등 다양한 떡볶이 관련 메뉴를 선보이고 있다. 1990년대의 압구정동을 묘사한 문학작품들은 압구정동에 대해서 지극히 신랄하다. 시인이자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감독인 유하는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는 연작시에서 압구정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압구정동은 체제가 만들어낸 욕망의 통조림 공장이다/국화빵 기계다 지하철 자동 개찰구다 어디 한번 그 투입구에/당신을 넣어보라 당신의 와꾸를 디밀어보라 예컨대 나를 포함한 소설가 박상우나/시인 함민복 같은 와꾸로는 당장은 곤란하다 넣자마자 띠-소리와 함께/거부 반응을 일으킨다 그 투입구에 와꾸를 맞추고 싶으면 우선 일년간 하루 십 킬로의/로드웍과 섀도우 복싱 등의 피눈물 나는 하드 트레이닝으로 실버스타 스텔론이나/리차드 기어 같은 샤프한 이미지를 만들 것 일단 기본 자세가 갖추어지면/세겹 주름바지와, 니트, 주윤발 코트, 장군의 아들 중절모, 목걸이 등의 의류 액세서리 등을 구비할 것 그 다음/미장원과 강력 무쓰를 이용한 소방차나 맥가이버 헤어스타일로 무장할 것/…이곳 어디를 둘러보라 차림새의 빈부격차가 있는지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는 욕망의 평등사회다 패션의 사회주의 낙원이다/가는 곳마다 모델 텔런트 아닌 사람 없고 가는 곳마다 술과 고기가 넘쳐나니 무릉도원이 따로 없구나 미국서 똥구루마 끌다 온 놈들도 여기선 재미 많이 보는지 재미동포라 지화자, 봄날은 간다…. 걸어가면 만날 수 있다 오, 욕망과 유혹의 삼투압이여/자, 오관으로 느껴보라 안락하게 푹 절여진 만화방창 각종 쾌락의 묘지, 체제의 꽁치통조림 공장, 그 거대한 피스톤이, 톱니바퀴가 검은 기름의 몸체를 번득이며 손짓하는 현장을/왕성하게 숨막히게 숨가쁘게/그러나 갈수록 섹시하게… ●한때는 ‘해방구’… 불황에 빛바랜 느낌 작가 이순원의 장편소설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에서도 1990년대의 압구정동에 대한 묘사는 비슷하게 신랄하다. …오늘 아침 그녀는 자신의 800만원짜리 이태리산 침대에서 잠을 깼다. 침대 맞은편 벽에 걸린 영국산 수제품 뻐꾸기시계가 9시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녀는 침대 아래에 놓인 이태리산 털실내화를 신고 엄마가 있는 안방으로 갔다. 침실과 아빠 엄마의 의상실이 따로 분리돼 있는 방이었다. 아빠는 1억 5000만원짜리 밴츠 560SEL을 타고 이미 출근한 다음이었고, 엄마만 혼자 2200만원짜리 서독산 침대에 누워 프랑스산 오리털이불 바깥으로 한쪽 다리를 걸치듯 내놓고 있었다. 외출을 할 때면 언제나 금박을 장식한 12만원짜리 칼빈 클라인 스타킹을 신는 다리였다.…그녀는 비너스 조각을 한 1400만원짜리 이태리산 대리석 욕조에 가볍게 이온 목욕을 한 다음 자기 침실로 가 2300만원짜리 이태리산 장롱을 열고 전에도 입었던, 입어도 그 속이 확연히 들여다보이는 그물형 스캉달 팬티와 그 팬티와 세트를 이룬 은은한 핑크색 브래지어를 하고 차이나형 꽃무늬가 수놓아진 칼빈 클라인 스타킹을 신었다. 그리고 그 위에 40만원짜리 쏘냐 리카엘 상표가 붙은 블라우스와 70만원짜리 이바노브니 검정색 미니 스커트를 입고 역시 검은 색상의 320만원짜리 피에르 발망 반코트 차림으로 거울 앞에 섰다…핸드백은 엄마의 430만원짜리 것만은 못하지만 자연산 무늬를 조금 갈색나게 처리한 280만원짜리 구찌 악어가죽 핸드백을 골랐다. 그 안엔 어제 쓰다 남은 20몇만원과 조금 전 엄마가 외출하기 전에 주고 간 외환은행권 10만원짜리 수표 석 장,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니 급한 일이 생기면 쓰라고 그 전에 아빠가 주었던 100만원짜리 상업은행권 수표 한 장, 입학 선물로 받은 VIP카드, 얼마 전 갤러리아 명품관에서 12만원 주고 두 개를 사 하나는 영준이 오빠를 준 피에르 가르뎅 손수건, 작은 용기에 담은 몇 가지 드봉 화장품, 그 화장품 판촉물로 받은 굵은 빗 한 자루, 핸드백용 강력 무스, 친구들 전화번호를 적은 1만4천원짜리 프랑스산 양가죽 팬시 수첩, 양가죽 케이스 안의 스위스산 볼펜이 들어 있었고, 그 제일 밑바닥에는 현금 말고는 그 핸드백 안의 유일한 국산품인 이미 반쯤 쓴 피임약이 들어 있었다. 작가 이순원은 1990년대의 소위 ‘압구정파’ 출신 여대생 은지를 통해 압구정동이며 로데오 거리를 묘사하다 못해, 직설적인 어법으로 ‘이 땅 졸부들의 끝없는 욕망과 타락의 전시장, 아니 똥통같이 왜곡된 한국 자본주의가 미덕처럼 내세우는 환락의 별칭적 대명사’운운하며 드러내놓고 울분을 토한다. ●경력 24년… 대구서 강남 중심으로 진출 원래 로데오란 길들여지지 않은 말이나 소의 등에 올라타고 누가 오래 버티는가를 겨루는 서부 카우보이들의 경기를 일컫는 말인데, 미국에서도 상류층만 모여서 사는 베벌리힐스에 있는 세계적인 패션거리에 로데오라는 이름이 붙고, 이어 이 땅의 소위 오렌지족, 혹은 ‘야타족’으로 불리는 부유층 신세대들이 압구정동에 자신들만의 놀이공간을 만들어 로데오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이 신세대들은 한때 로데오 거리를 일종의 해방구로 여겨, 너나없이 세이프티존(SAFETY ZONE)이란 영어를 새겨 넣은 차양이 긴 모자를 자신들만의 무슨 상징물처럼 눌러쓰고 활보하기도 했다. 이순원식 ‘욕망과 타락의 전시장이며 환락의 별칭적 대명사’이자 유하식 ‘욕망의 평등주의이자 패션의 사회주의’인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도 IMF를 지나 우리 경제가 바닥이 보이지 않는 불황의 깊은 늪에 빠져 있는 오늘에 이르러서는, 어딘지 모르게 그 빛이 바랜 느낌이 없지 않다. 실제로 로데오 거리를 기웃거리는 동안 명품점이며 패션점, 각종 음식점의 주인들은 ‘좋은 시절은 물 건너갔다’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로데오 거리의 단골고객이었던 이 땅의 큰손이나 복부인 같은 졸부들이 더 이상 손쉽게 눈먼 돈을 벌어 흥청망청하기에는, 그만큼 우리 사회가 맑아진 것인지도 모른다. 로데오 거리의 식당들도 이제는 고급스럽기보다는 대중적인 간판들이 즐비하다. 주로 퓨전요리 중심인데, 일식이며 중식, 한식, 심지어 소주방까지도 상호 앞에 기꺼이 퓨전이라는 관형어를 붙이고 있다. 어느 식당을 들어가도 가격이 1만원 안팎으로 크게 비싸지 않다. 로데오 거리의 여러 퓨전요리점들 중에서도 단연 눈에 뜨이는 것은 떡볶이 전문점인 ‘레드페퍼’(02-547-3778)다. 한마디로 한다면, 레드페퍼의 주인인 이영주씨는 떡볶이에 미친 사람이다. 올해로 떡볶이 경력이 24년인 중년의 그이는 스스로도 떡볶이에 미쳤다고 기꺼이 자인한다. 이를테면 강남에서도 세가 가장 비싼 로데오 거리에 물경 10억원을 투자하여 건평 100평의 3층 건물을 세내어 떡볶이 전문점을 차린 것이다. 보증금 3억원에 월세 1300만원, 권리금 4억원에 나머지 실내장식으로 총 10억원을 들인 레드페퍼는 기존의 고정관념으로는 떡볶이점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고급카페나 레스토랑풍의 화려한 실내장식과 디자인이 보는 이의 눈을 휘둥그레 만드는데,1층,2층, 테라스, 복층이 모두 손님을 맞는 홀이다. 그중에서 그이만이 출입할 수 있는 3층은 소위 개발실인데, 그 안에는 세계 모든 종류의 소스들이 가득 차 있다. 그 소스들 중에는 그이가 개발한 떡볶이용 고추장이 소스란 이름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떡볶이의 종류를 보면 그이가 떡볶이에 미쳤다는 말이 좀더 실감이 난다.2인분 기준의 철판즉석떡볶이는 레드페퍼떡볶이(1만원), 순대떡볶이(8000원), 거리떡볶이(6000원), 불고기떡볶이(8000원), 해물떡볶이(8000원)가 있는데, 레드페퍼떡볶이는 쌀떡, 야채, 햄, 어묵, 만두, 쫄면, 라면, 팽이버섯이 들어간 거리떡볶이에, 오징어, 새우, 홍합, 꼬마만두, 삶은 계란이 더해진다. 불고기떡볶이는 거리떡볶이를 기본으로 하여 순살불고기와 각종 버섯이 더해지고, 순대는 순대가 더해진다. 이외에도 각각 5000원짜리의 피자떡볶이, 치킨탕수떡볶이, 스파게티떡볶이, 궁중떡볶이가 있고, 쟁반떡볶이, 떡꼬지, 떡튀김, 비빔만두, 순대볶음, 오뎅탕 등이 있다. 얼마 전에는 철판피자떡볶이를 개발했는데, 쌀떡에 화이트소시지, 비엔나소시지, 햄, 모차렐라치즈를 넣어 피자토핑을 뿌리고, 새우, 어묵, 만두, 달걀, 당근, 파, 팽이버섯, 양배추, 피망, 적채, 양파, 페퍼로니 등을 넣어 철판에 볶아내어 매운 것을 싫어하는 청소년들도 기꺼이 즐길 수 있게 만들었다. ●30대 사장 40가지의 롤 메뉴 개발 이영주씨는 떡볶이를 햄버거나 스파게티, 피자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적인 요리로 만드는 것이 필생의 꿈이다. 기실 그가 압구정동의 로데오 거리에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떡볶이 전문점을 낸 것도 그가 펼치고자 하는 꿈의 일환인 셈이다. 그이는 압구정동에 오기 전에 이미 ‘동성로떡볶이’란 상호로 대구에서만 본점에서부터 7호점까지를 직영하여 월 순수익 7000만~8000만원을 올린 소위 ‘떡볶이 신화’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런 그이가 바로 떡볶이의 세계화를 위하여 스스로 동성로떡볶이시대를 청산한 채 서울로 올라온 것이다. ‘러’(02-540-2577)는 ‘날것(raw)이라는 뜻으로 퓨전일식 스타일의 소위 캘리포니아롤 전문점이다.31세의 박진효씨가 운영하는데, 과연 젊은이답게 무려 40가지에 이르는 다양한 롤 메뉴를 내고 있다. 일찍이 압구정동파가 되어 세이프티존이라는 모자를 쓰고 로데오 거리를 휩쓸었을 나이의 그이는 공과계통의 대학을 졸업하고 어학연수 차 미국에 건너갔다가 캘리포니아롤에 눈떠 일본인 요리사 아래서 요리법을 익힌 것이다. 원래 캘리포니아롤이란 스시라는 일본식 생선초밥을 미국식으로 변형시킨 요리인데, 이를테면 날것을 싫어하는 미국인들의 입맛에 맞춰 생선을 안에 넣고 초밥을 밖으로 드러내거나 아니면 튀김가루를 입혀 튀겨내어 거기에 각종 소스를 끼얹는 식이다. 스네이크롤은 장어구이에 아보카드를 얹고, 달콤한 계란말이로 감싼 롤이고, 살몬크런치롤은 밀가루를 기름에 바삭하게 튀겨낸 크런치에 연어를 덮고 거기에 다시 날치알을 얹은 롤이고, 트레저아일랜롤은 역시 크런치에 날치알과 장어, 참치, 아보카드를 섬처럼 쌓아올린 롤이고, 레인보롤은 연어, 참치, 아보카드에 크림치즈를 더한 롤이고, 스파이더롤은 이제 막 껍질을 벗은 물렁한 게를 통째로 튀겨 토마토, 오이, 날치알, 아보카드를 더한 롤이고, 키스미롤은 새우와 게살에 매콤한 칠리소스를 끼얹은 롤이고, 더블펀치롤은 파인애플에 게살, 가리비, 아보카드를 부쳐내어 소스를 뿌린 롤이고, 프라이롤은 크런치에 게살, 날치알, 아보카드를 넣어 기름에 튀겨낸 롤인데, 이렇듯 40여종에 이르는 롤들이 7000~8000원이다. 이밖에도 세트로 내기도 하는데, 필라델피아롤이나 슈퍼크런치롤에 활어초밥이며 튜나샐러드와 우동을 함께 내거나 4가지 롤에 활어회와 활어초밥, 우동을 내기도 한다.
  • 서남아시아 ‘지진해일’ 한달 11개국 28만명 사망

    동·서남아시아를 강타한 쓰나미(지진해일)가 26일로 발생 한 달째를 맞았다. 수마(水魔)에 가족과 재산을 잃고 실의에 빠진 이재민들은 고통과 싸우며 재기의 몸부림을 치고 있지만 복구는 더디기만 하다. 인도네시아 아체주(州)에선 요즘도 매일 1000여구의 시신이 발견되고 있으며 태국의 공동묘지에는 2400여구의 시신들이 신원 확인을 기다리며 묻혀 있다. 25일 현재 11개국에서 28만여명이 숨진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사망·실종자가 23만여명으로 최대 피해를 입은 인도네시아는 50만여명의 이재민 가운데 40만명 가량이 최소 2년 이상 임시수용소에서 살아야 하는 최악의 상황을 겪고 있다.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대통령은 이번 쓰나미 피해가 집중된 아체주에 40억달러의 긴급 자금을 투입하는 등 쓰나미 구호·복구를 국가 최대우선 목표로 두겠다고 밝혔지만 전문가들은 적어도 5년의 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본다. 인도네시아 보건당국도 시신 수습 완료에만 앞으로 한 달 이상 더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는 실정이다. 2500명 이상의 외국인 관광객들을 포함,5370명 이상이 숨진 태국은 연간 100억달러 규모인 관광산업을 부활시키려 하고 있지만 아직 태국을 다시 찾는 관광객들은 쓰나미 이전과는 비교도 힘든 수준이다. 보통 1월이면 3만개의 호텔방이 거의 매진돼온 푸껫의 경우 약 3000개 정도에 손님들이 묵고 있을 뿐이다. 다만 31일부터 이틀 동안 푸껫에서 국제관광기구 특별회의가 열리는 등 국제사회의 도움이 계속되고 정부에서 특별지원도 하고 있어 주민들은 곧 천혜의 관광지란 명성을 되찾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3만 1000여명이 숨진 스리랑카에선 시신 수습이 상당히 진행됐지만 신원 확인도 없이 공동묘지에 묻힌 경우가 많아 실종자 수색은 거의 불가능해진 상태다. 사망자 외에 실종자가 5600여명 이상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지만 당국은 이제 공개적으로 실종자 생사 여부를 확인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밝히고 있다. 황장석기자 외신 suron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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