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묘지
    2026-06-19
    검색기록 지우기
  • 미국
    2026-06-19
    검색기록 지우기
  • 외도
    2026-06-19
    검색기록 지우기
  • 2026-06-19
    검색기록 지우기
  • 원동
    2026-06-1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6,815
  •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한라산 돈내코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한라산 돈내코

    지난해 12월에 열린 한라산 돈내코 코스가 첫봄을 맞았다. 살랑살랑 봄바람이 불자 한라산은 기지개를 켜며 겨우내 쌓인 눈 이불을 털어냈다. 그러자 진초록색 구상나무들과 흰색 좀고채목들이 뒤섞인 황홀한 원시림이 드러나고, 그 뒤로 악마의 성 같은 백록담 남벽이 우뚝하다. 15년 만에 얼굴 드러낸 한라산 남쪽 자락은 봄 치장으로 분주하다. 예로부터 돈내코는 서귀포 주민들의 물놀이 장소였다. 한라산이 화산 지형인 탓에 계곡이 발달하지 못했지만, 돈내코는 사철 맑은 물이 콸콸 흘러넘친다. 그래서 제주에서는 백중날 물맞이 장소로 돈내코 계곡이 가장 붐빈다. 돈내코는 돗(돼지)과 내(하천)·코(입구)가 합쳐진 말이다. 예전엔 야생 멧돼지가 물을 마시러 내려오는 계곡이었다고 한다. ●멧돼지떼 물 먹으러 내려오던 계곡 돈내코 코스가 묶인 것이 1994년. 백록담 오르는 서북벽 코스가 훼손되면서 그 대안으로 1986년 남벽 코스를 열었지만, 그곳마저 무너지면서 부랴부랴 길을 통제하게 되었다. 화구벽은 한번 훼손되면 복구가 힘들다는 것을 감안하면 안타까운 일이다. 15년 만에 열린 돈내코 코스 중 남벽 분기점에서 백록담까지 오르는 약 700m 거리는 여전히 출입금지다. 하지만 백록담 화구벽을 바라보면서 윗세오름까지 이어진 길은 한라산의 절경 중 절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산행 코스는 돈내코에서 남벽 분기점을 거쳐 윗세오름대피소까지 이어지고, 하산은 어리목이나 영실로 내려갈 수 있다. 돈내코 코스의 들머리는 돈내코 유원지에서 좀 올라가면 나오는 충혼묘지(시온동산)다. 무덤들이 편안하게 서귀포시와 바다를 바라보는 자리다. 인간 세상이 궁금한지 머리를 살짝 내민 백록담을 바라보며 산행을 시작한다. 탐방안내소를 지나 언덕에 올라서면 서귀포 시내와 문섬, 범섬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진초록 구상나무·자작나무 숲 진풍경 열대우림 분위기가 나는 밀림을 지나면 작은 늪지대인 썩은물통에 닿는다. 멧돼지들이 진흙 목욕하기 좋은 곳이다. 이어지는 길에는 서어나무와 굴거리나무가 번갈아 가면서 길섶을 가득 메운다. 살채기도 팻말을 지나니 이번에는 적송들이 미끈하게 쭉쭉 뻗었다. 그동안 사람 발길이 뜸했던 만큼 숲은 풍성해졌다. 평궤대피소에 이르면 험한 길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시야가 넓게 트이며 광활한 고원지대가 펼쳐진다. 빽빽한 제주조릿대 뒤로 나타난 거대한 백록담 남벽을 향해 걷다 보면 어느새 남벽 분기점. 여기서 고개를 쳐들고 바라보는 약 200m 높이의 시커멓고 날카로운 남벽의 모습은 영락없이 파키스탄 카라코람 산맥의 무시무시한 거벽이다. 남벽 분기점부터 윗세오름대피소까지 이어진 길이 이번 산행의 하이라이트다. 남벽 분기점에서 나무 데크를 타고 방애오름에 오르면 진초록색 구상나무와 자작나뭇과의 흰 좀고채목이 어울린 몽환적 풍경이 펼쳐진다. 한국 특산종인 두 나무는 보는 각도에 따라 백록담 남벽, 멀리 서귀포 바다와 어울려 절경을 선사한다. 방애오름샘에서 달고 시원한 물을 들이켜고 다시 출발하면 이번에는 백록담 남서벽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울창한 구상나무 숲 뒤로 펼쳐진 웅장한 남서벽 표면에는 마치 동종(銅鐘)의 유두(乳頭)처럼 날카로운 바위들이 박혀 있다. 눈과 어우러진 검은 남서벽의 범접할 수 없는 위용은 한라산 어느 곳에서도 보기 힘든 경이로움이다. ●볼레오름·이스렁오름 숨막히게 펼쳐져 하산은 영실 코스로 잡았다. 어리목 코스보다 좀 험하지만 풍광이 좋기 때문이다. 윗세오름을 오른쪽으로 끼고 돌면 노루샘. 충분히 목을 축이고 나무 데크를 따라 내려오면 드넓은 고산초원 선작지왓이 펼쳐진다. ‘돌들이 널린 들판’이란 뜻인 선작지왓이 웅장한 백록담과 어울린 모습은 한라산을 대표하는 풍경 중 하나다. 선작지왓에서 내려서는 계단길에는 시야가 넓게 터지며 볼레오름, 이스렁오름, 노로오름 등 한라산 서쪽의 오름 군락이 숨 막히게 펼쳐진다. 이 길에서 주의 깊게 봐야 할 것은 제주 삼면의 바다가 전부 보인다는 점이다. 날이 좋으면 왼쪽 병풍바위 뒤로 나오는 범섬부터 시계방향으로 송악산~차귀도~비양도~한림까지 제주의 절반쯤이 한눈에 들어온다. 계단을 내려와 울창한 활엽수림을 통과하면 그윽한 적송 숲을 지나 영실휴게소에 닿는다. 돈내코에서 영실까지 무엇 하나 절경 아닌 것이 없는 완벽한 산길이다. 글 사진 여행전문작가 mtswamp@naver.com ■ 산길 가이드 돈내코 코스는 서귀포 쪽에서 한라산을 오르는 유일한 길이다. 남벽 분기점까지 7㎞ 3시간30분쯤 걸리는 먼 길이다. 그래서 돈내코 탐방안내소(500m)에서는 오전 10시30분까지 입장을 허락하고 있다. 남벽 분기점(1600m)에서 윗세오름대피소(1700m)까지는 2.3㎞ 1시간쯤 걸린다. 윗세오름대피소에서 영실까지는 약 3.7㎞ 1시간30분쯤 걸린다. 돈내코 탐방안내소 064-710-6920. ■ 가는 길&맛집 돈내코 등산로 입구인 충혼묘지(시온동산)까지는 서귀포시 중앙로터리 정류소에서 3번 버스가 다닌다. 문의 서귀포시 건설교통과 064-760-3114. 제주시에서 올 경우는 종합시외버스터미널(064-753-1153)에서 12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5·16도로 경유 서귀포행 직행버스를 타고, 돈내코유원지 입구인 법호촌에 내려 3번 버스나 콜택시를 이용한다. 택시요금 약 5000원선. OK콜택시 064-732-0082. 영실에서 제주시로 가는 버스는 오후 1시56분, 3시16분, 4시56분, 5시36분에 있다. 제주공항과 가까운 노형동의 제주늘봄(064-744-9001)은 남원읍 한라산 자락에서 자란 육질 좋은 재래 흑돼지를 내놓는 맛집이다.
  • 6·25전사 호주군 부인 60년만에 남편곁으로

    6·25전사 호주군 부인 60년만에 남편곁으로

    6·25전쟁 때 전사해 부산 대연동 유엔기념공원에 잠든 남편의 묘지에 자신의 유해를 함께 묻어 달라고 유언한 호주 참전용사 부인의 순애보가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부산 유엔기념공원관리처는 14일 오후 유엔기념공원에서 영연방국가(영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의 6·25 참전용사와 유가족 200여명 등이 참석한 가운데 헌화 참배행사와 유골 합장식을 연다고 13일 밝혔다. 유골 합장식의 주인공은 1950년 10월3일 당시 34세의 나이로 전사해 이곳에 안장된 호주군 대위 케네스 존 휴머스톤과 그의 아내 낸시 휴머스톤. 남편과 사별 이후 독신으로 지낸 낸시는 지난해 10월 91세의 나이로 숨졌으며, 생전 유엔기념공원에 잠든 남편과 함께 있고 싶다는 유언을 유족들에게 남겼다. 유족들은 유엔기념공원에 이 같은 뜻을 전했고 공원 측은 참전용사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 이를 수용했다. 유엔기념공원은 “6·25전쟁 호주군 참전용사로 영연방국가 추모식에 참가하는 휴머스톤의 친구가 낸시의 유해가 담긴 유골함을 가져와 묘지 옆에 합장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박은정 유엔기념공원 홍보과장은 “대부분 나이가 어린 상태에서 참전해 전사했고 결혼을 한 전사자는 부인이 재혼하는 경우도 있어 부부가 합장하는 사례는 드물다.”고 말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스티븐스 美대사 광주 여고생에 특강

    스티븐스 美대사 광주 여고생에 특강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대사가 광주 여고생들과 만난다. 광주 설월여고는 13일 스티븐스 대사가 학교를 방문해 1시간가량 특강한 뒤 학생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눌 것이라고 12일 밝혔다. 이번 만남은 이 학교 영어 동아리 ‘ELF’ 회원들의 요청으로 이뤄졌다. 이 동아리는 지난해 11월 영자신문 ‘설월타임스’ 발행을 준비하면서 명사 인터뷰를 하기로 하고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대사를 인터뷰 대상자로 뽑았다. 이어 스티븐스 대사에게 ▲한국 영어교육·입시제도에 대한 입장 ▲외교관이 되려면 해야 할 일 ▲은퇴 후 계획 ▲학창시절 이야기 등을 듣고 싶다는 메일을 보냈고 스티븐스 대사가 이를 승락한 것이다. 미 대사관은 지난 1월 스티븐스 대사가 학교를 방문해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답변 이메일을 보내 만남이 성사됐다. 앞서 스티븐스 대사는 12일 광주 5·18기념재단을 방문했다. 스티븐스 대사는 2008년에도 국립 5·18민주묘지를 참배하는 등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보여 왔다. 기념재단 관계자는 “스티븐스 대사와의 면담에서 올해로 기밀이 해제되는 80년 5월 당시 미국 정부의 문서 등을 적극 공개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스티븐스 대사는 이날 양림동 양림산 정상에서 열린 역사문화마을 관광자원화 사업 기공식에도 참석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박사님 가르침은 내 인생의 나침반”

    “박사님 가르침은 내 인생의 나침반”

    “박사님 가르침은 오늘의 저를 만든 인생의 나침반이었습니다.” 정운찬 국무총리가 12일 자신의 은인인 고(故)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 박사의 서거 40주기 추모 행사에 참석해 고인의 넋을 기렸다. 정 총리는 이날 오전 국회 대정부질문 출석에 앞서 30여분간 국립서울현충원 스코필드 박사의 묘지를 찾아 헌화했다. 스코필드 박사는 정 총리가 평소 ‘자신을 키운 4명의 아버지’ 가운데 1명으로 꼽아 온 인물이다. 정 총리는 추도사에서 “스코필드 박사는 제암리 마을과 수촌리 마을의 학살사건 현장을 사진으로 찍어 일제의 만행을 세계에 알리신 선구자”라면서 “스코필드 박사야말로 우리 민족의 자유와 권리를 신장하고 온몸으로 정의를 실천한 박애정신의 표상이자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은인”이라고 말했다. 정 총리는 “저는 박사님의 분에 넘치는 은총을 받았던 수혜 학생의 한 명”이라면서 “중학교에도 진학할 형편이 못 됐던 저는 ‘입학금을 마련해 주겠다.’는 박사님을 만나 학업에 뜻을 둘 수 있었다.”고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정 총리는 1960년 중학교 때 처음 스코필드 박사를 만났다. 스코필드 박사는 아버지를 여읜 정 총리를 수양아들로 삼았고 등록금과 생활비 등을 지원해 줬다. 이날 참배에는 정 총리가 명예회장을 맡고 있는 ‘호랑이 스코필드 동우회’ 회원들이 함께했다. 정 총리는 이날 저녁에는 서울대에서 열린 스코필드 박사 추모 40주년 기념행사에도 참석했다. 1916년 캐나다 의료 선교자 자격으로 한국에 온 스코필드 박사는 한국에 대한 각별한 애정으로 ‘석호필(石虎弼)’이라는 한국 이름을 짓고, 해방 이후 교육·의료 활동을 했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도시와 길] 서울 미아리고갯길

    [도시와 길] 서울 미아리고갯길

    “미아리 눈물 고개~ 님이 떠난 이별 고개~ 화약연기 앞을 가려 눈 못 뜨고 헤매일 때…” 미아리 하면 떠오르는 것은 바로 ‘단장의 미아리고개’란 옛노래다. 첫 음절만 들어도 노래에 한(恨)이 가득 서려 있다. 철사로 손을 묶이고 맨발로 다리를 절면서 뒤를 자꾸만 돌아보며 북쪽으로 끌려가는 남편과 십년이 가도 백년이 가도 살아서 돌아오기만을 바라는 부인의 애틋한 마음이 절절하게 묻어 있다. 이 노랫말을 지은 반야월(93)선생은 실제로 피란 중 맏딸이 공포에 질려 숨져 고갯길에 자신의 손으로 묻을 수밖에 없었던 슬픈 사연이 있다고 한다. 미아리고개는 성북구 동선동과 돈암동 사이에 있는 고개로 되넘이고개(되너미고개)라고도 불렸다. 병자호란 때 오랑캐, 즉 ‘되놈’이 한양을 침범할 때 고개를 넘었기 때문에 되너미고개라고 불렀다고 한다. 남쪽인 돈암동에서 길음동을 지나 의정부 방면으로 가는 길목에 이 고개가 마지막 고개여서 되너미고개라고 했다는 설도 있고, 미아7동에 있는 불당골 자리에 있던 ‘미아사’라는 절 이름에서 유래되었다는 설 등 유래가 분분하다. ●한국전쟁 땐 최후의 방어지 역할 미아리고개는 한국전쟁 당시 서울 북쪽의 유일한 외곽도로였기 때문에 최후의 방어지로 치열한 교전이 벌어진 곳이다. 경사가 어찌나 가파르던지 길음시장과 부근 주거지역보다 도로의 높이가 높아 4·19혁명 때에는 미아로 옆 길가로 버스가 굴러떨어지는 사고도 있었다 한다. 미아로는 돈암동로터리를 기점으로 돈암동, 길음동을 동북방향으로 뻗어 미아삼거리까지 폭 25m, 길이 1.5㎞에 달한다. 도성의 북쪽 방향에 위치해 의정부, 포천, 철원 등지에서 서울로 입성하는 유일한 관문이자 교통의 요충지 역할을 한 탓에 교통정체와 사고가 잦았다. 1964~1966년 대대적인 도로확장공사로 미아로 도로의 폭은 8m에서 구간에 따라 23~35m의 4차선도로로 확장되었다. 경사도 10도나 낮아졌다. 그러나 대대적인 확장공사에도 불구하고 미아로의 교통정체는 계속됐다. 결국 2007년 4월 603억여원(보상비 78.6% 차지)을 들여 성북우체국에서 창문여고에 이르는 구간을 폭 35m, 왕복 7~8차선으로 확장하는 공사에 들어가 1년 10개월만인 지난해 2월 개통해 숨통이 트였다. ●시각장애인들의 점성촌 고갯길이 시작되는 태극당 빵집 맞은편에 점성촌이 들어선 것도 미아로 확장공사를 벌이며 경사를 완만하게 만들기 위해 옹벽을 세우면서부터다. 남북 방향으로 옹벽을 만들면서 동서로 횡단하는 길을 그 밑으로 뚫어 자연스레 굴다리가 생겨났다. 중구에서 이주해온 시각장애 역술인들이 옹벽과 굴다리를 의지하며 하나 둘 점판을 깔면서 터를 잡았다.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100여곳이 성업하면서 외국인들도 찾는 관광코스가 될 정도였으나, 지금은 간신히 10여곳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미아리고개에 점집이 번성하게 된 이유는 고개 너머에 조성된 한국인 전용묘지 덕분이라고 한다. 예로부터 영혼은 북으로 드나든다고 믿었는데, 미아리고개가 바로 영혼이 다니는 길목이었던 셈이다. ●‘미아리 텍사스촌’도 사라지고… 단장의 미아리고개와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미아리 텍사스촌’이다. 이곳은 고갯길을 넘자마자 시작된다. 예전에 월곡동은 미아로를 중심으로 길음동과 마주하고 있는 곳으로 미아시장이 형성되어 길음동 사람들이 자주 왕래했다. 지대가 모래땅이어서 물이 잘 나와 콩나물공장들이 즐비했다. 일제 강점기부터 해방 이후까지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지만 1960년 이후 염색공장, 피혁공장들이 들어서면서 쇠락했다. 이 지역이 성매매 집결지로 유명해진 것은 1968년 ‘종삼(종로3가 사창가)소탕작전’이 실시된 이후 포주와 성매매 여성들이 미아시장 근처 월곡동 88일대에 터를 잡으면서부터이다. 구 관계자는 “미아리 텍사스라는 지명이 어떻게 유래되었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성매매 집결지 안에 있는 술집이 서부영화에 등장하는 술집의 모습과 흡사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하다.”고 했다. 그는 “서부영화 속에 등장하는 술집이 1층은 술 마시며 포커를 치고 2층에서 잠을 자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 탓에 붙여졌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창 호황을 누릴 적엔 400군데서 1000명이 넘는 여성들이 일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황량할 정도로 을씨년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 흉물스럽게 남겨진 몇몇 건물의 먼지 쌓인 유리문과 너덜너덜해진 커튼, 굳게 잠긴 오래된 문에선 호시절이 언제였는지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이들이 이른바 ‘9·23 사태’라고 부르는 2004년 9월 성매매특별법 실시 이후 여성들이 하나둘 떠났기 때문이다. ●39층 주상복합 아파트로 탈바꿈 성매매 집결지라는 오명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반가운 것은 이곳이 신월곡 1·2·3구역으로 나뉘어 2003년 미아균형발전촉진지구로 지정된 것. 구 관계자는 “올해 토지보상문제가 해결되면 내년 5월쯤에는 본격적인 공사에 착수하지 않겠느냐.”면서 “그래도 여전히 골목 업소들에선 간간이 영업을 하는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특히 이 일대는 39층 높이의 주상복합 아파트 등 랜드마크 건물들이 들어설 예정이어서 강북의 새로운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다. 실제 이 길을 지나가다 보면 곳곳에 초고층 빌딩과 아파트가 잔뜩 들어서고 있다. 얼핏 보아도 금세 대기업이 참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뉴타운사업과 관계자는 “성매매집결지에 달라붙은 미아시장 역시 역사 속으로 사라져 내년 6월이면 지하 6층, 지상 23층 198가구 규모의 주상복합 아파트로 재탄생한다.”면서“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옛 추억이 서린 곳이 하나 둘 사라지는 것이 한편으론 안타깝지만 주민들 대부분은 윤락가 동네라는 어두운 이미지를 벗을 수 있어 반기고 있다.”고 말했다. 글ㆍ사진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운구차 세우고 시신 회수한 황당 경찰

    엄숙하게 발인식을 거행하고 묘지로 향하는 운구차를 경찰에 세운 후 관에서 시체를 꺼내가는 황당한 일이 멕시코에서 벌어졌다. 편안하게 마지막 길을 가지 못하고 관에서 나온 시신도 경찰의 것이다. 지난 9일(현지시간) 멕시코 바하 칼리포르니아 수르 주(州)의 북서부 도시 라파스에 있는 한 장례식장. 이틀 전인 교통사고로 숨진 경찰관의 발인식이 치러졌다. 식에는 라파스 경찰청장 등 경찰 고위 관계자가 대거 참석해 아쉽게 간 고인을 기억하며 유족들을 위로했다. 절차에 따라 발인식이 끝난 후 경찰의 시신을 담은 관은 운구차에 옮겨졌다. 불의의 사고로 동료를 잃은 경찰들이 관을 들었다. 운구차는 천천히 묘지를 향해 장례식장을 출발했다. 유족과 참석자들이 탄 자동차가 운구차 뒤를 따랐다. 운구차 행렬은 라파스 주요 거리를 돈 후 묘지를 향해 방향을 잡았다.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벌어진 건 바로 이때다.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경찰차에서 수사관 5명이 내리며 운구차를 멈춰세웠다. 그리곤 운구차 뒷문을 열고 관을 내린 후 시신을 꺼내려 했다. 뒤를 따르던 유족과 고인의 친구들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장면을 지켜보다 정신을 차리고 황급히 차에서 내려 운구차 쪽으로 달려갔다. 고성이 오가는 가운데 신분을 밝힌 수사관들은 “부검을 못했다. 묻히기 전에 반드시 시신을 꺼내 부검을 받게 하라는 명령을 받고 왔다.”며 기어이 시신을 가져갔다. 라파스 경찰청장은 장례를 취재하던 멕시코 기자들에게 “과연 누가 그런 명령을 내렸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멕시코 네티즌들은 “교통사고로 사망한 경찰이 묘지로 가다가 또 교통사고를 당한 것과 마찬가지”라면서 관을 열고 시신을 회수한 경찰당국을 비난하고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박홍환 특파원 베이징은 지금]박사증에 가짜결혼 증명서까지 이색 제수품으로 본 中의 31일

    “바오마(寶馬·BMW의 중국식 이름)를 타고, 별장으로 놀러가 애인과 즐기세요.” 청명절(한식) 연휴를 앞둔 중국에 이색 제수용품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종이로 만든 돈을 태워 부(富)에 대한 망자(亡者)의 한을 풀어주는 것은 이미 옛 이야기가 됐다. 빈부격차가 확대될수록 중국의 서민들은 현실의 ‘로망’을 제수용품을 통해 투사하고 있는 듯하다. 어차피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꿈이라면 곧 재로 변할 모형으로라도 마음 속에 간직하겠다는 소망일까? 중국인들의 청명절 제수용품에 대한 집착은 각별하다. 세태의 변화에 따라 제수용품도 발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실제 ‘바오마’ ‘볘수(別墅·별장)’ ‘박사증’ ‘영주권’ 등 최근 유행하는 제수용품은 언론을 통해 종종 등장하는 단어들이다. 유명 연예인도 새롭게 제수용품 목록에 올랐다. 영화배우 장만위(張曼玉)나 가수 차이이린(蔡依林) 등과의 가짜 ‘결혼증명서’가 단돈 50위안(약 8500원)에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젊고 예쁜 여성이나 건장한 남성, 콘돔 모형까지 등장했다. 중국에서는 ‘음란 제수용품’으로도 불린다. 일부는 ‘빗나간 효심’을 질책한다. 하지만 막는다고 없어질지는 의문이다. 중국의 청명절 제수용품이 원래부터 이랬던 건 아니다. 전통적인 것은 역시 ‘종이돈’이다. 불과 20~30년전만 해도 선조의 묘지 앞에 만두나 국수 한 그릇 올리고, 종이 돈을 태우는 게 후손들의 가장 큰 소망이었다. 제수용품 변화의 이유는 역시 사회의 변화와 무관치 않다. 베이징 시민 왕빈(王斌)은 “호화롭고, 역동적인 현대사회에서 살아보지 못한 선조들에게 약간의 돈을 들여 그걸 보여주는 게 뭐가 나쁘냐.”고 되물었다. 그런 점에서 ‘젊고 예쁜 여성’이나 가짜 결혼증명서는 왕빈 등 많은 중국인들에게 이상한 일이 아닐 법도 하다. 어차피 제수용품은 세태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니까. 저장(浙江)성 항저우(杭州)의 저장대학 펑강(馮剛) 교수는 30일 반관영 중국신문사와의 인터뷰에서 “전통적인 제사 방식을 없애서도 안 되겠지만 온라인제사, 가정제사, 헌화제사 등 새로운 제사 방식을 널리 보급함으로써 청명절을 진짜 청명하게 맞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stinger@seoul.co.kr
  • 재산분배 불만 70대 형 살해

    재산분배 불만으로 60대 동생이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70대 형을 살해하고 자신은 음독자살을 기도했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경남 김해서부경찰서는 25일 재산분배에 불만을 갖고 형(70·중소기업 대표·마산시 양덕동)을 살해한 혐의로 김모(61·농업·김해시 한림면)씨를 붙잡아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김씨는 24일 오전 11시쯤 김해시 한림면 단감농장 안에 있는 아버지 묘지를 멧돼지가 훼손했다며 형을 농장으로 오게 한 뒤 “왜 농장을 내 명의로 등기이전해 주지 않느냐.”며 대나무 막대로 여러 차례 머리를 때려, 형이 실신하자 컨테이너 창고 안으로 끌고 가 코와 입을 비닐테이프로 막아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김해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안중근의사 순국 100주년] 유해 묻힌 감옥일대 개발바람에 파헤쳐져

    [안중근의사 순국 100주년] 유해 묻힌 감옥일대 개발바람에 파헤쳐져

    │다롄 박홍환특파원│100년 전 ‘그날’도 이렇게 발해만의 바닷바람은 매섭게 살을 엘 정도로 세게 불어제쳤을까?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중국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의 뤼순(旅順)은 3월의 막바지에도 여전히 추운 겨울이었다. 마지막까지 안 의사는 ‘고국의 봄’을 그리워하며 찬바람이 뼈를 에는 이국 땅의 감옥에서 의연하게 최후를 맞았다. 사형집행 직전 그는 이렇게 소원했다. “내가 죽거든 뼈를 하얼빈의 공원에 묻어 두었다가, 국권이 회복되면 조국 땅으로 옮겨다오.” ☞ [사진] 안중근 의사, 그 분은 가셨지만… 안 의사 압송 길을 따라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哈爾濱)에서 밤 기차를 타고 창춘(長春), 선양(瀋陽), 다롄을 거쳐 24일 오전 도착한 뤼순의 옛 일본군 감옥은 일본 군국주의 및 제국주의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항일 교육장소로 바뀌어 있었다. 4m 높이의 담장이 700여m에 걸쳐 둘러쳐져 있는 수감시설 면적은 약 2만 6000㎡. 러·일전쟁 승리로 감옥을 포함, 뤼순 전체를 획득한 일본은 패망할 때까지 이곳을 주요 반일 정치범 수용시설로 활용했다. 안 의사와 이회영 선생을 비롯해 무수하게 많은 항일 열사들이 이곳에서 고문을 받아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한 많은 삶을 마감했다.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 의사의 묘지가 항일운동의 성지로 활용되지 않을까 두려웠던 일제는 유해를 유족하게 인도하길 거부했다. 그래서 그의 유해는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고국 땅을 밟지 못하고 있다. 안 의사 유해가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담장 밖은 상당히 개발돼 있었다. 2008년 3~4월, 29일간 한국 단독으로 유해발굴 작업을 벌였던 곳은 이미 수십층짜리 고층 아파트 여러 동이 들어서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바로 옆 뤼순감옥 정북 방향 야산도 개발을 위해 모두 파헤쳐져 있었다. 만약 이곳에 유해가 있었다 해도 이미 훼손됐을 것으로 추정될 정도이다. 담장 바로 뒤에는 항만 하역시설에 쓰이는 철골 구조물을 만드는 공장이 들어섰고, 잇대어 있는 공터에는 인근 공사장에서 일하는 농민공(농촌 출신 도시 일용직 노동자)들의 임시숙소가 세워졌다. 공장 직원 등은 안 의사 유해에 대해 무신경하게 “처음 듣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우리 측 일부 인사들이 뤼순감옥 동쪽 500여m 지점을 유해 매장 장소로 지목하고 있지만 이곳에도 이미 저층 아파트들이 많이 들어서 유해를 찾기는 어려워보였다. 우리 정부가 안 의사 유해 발굴을 위한 한·중·일 3국 간 협력을 강조하고 나선 것도 이런 현실적 여건과 무관치 않다는 판단이다. 구체적인 장소를 특정해야 그나마 발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 측 사정에 밝은 한 현지 인사는 “이미 1960~70년대에 중국과 북한이 여러차례 발굴작업을 벌였지만 찾지 못했다.”며 “중국 측은 오래 전에 (유해 발굴을) 포기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해 발굴을 둘러싸고 ‘내분’이 벌어지는 꼴사나운 광경도 펼쳐지고 있다. 우리 내부에서조차 어느 쪽의 유해 관련 정보도 믿지 못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 안 의사 추모를 위해 뤼순감옥을 찾은 한 인사는 “이런 모습을 안 의사도 결코 원하지 않을 것”이라며 “100주기를 계기로 안 의사의 정신을 우리 가슴에 묻는 것으로 유해 문제를 해결하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안 의사는 낯선 이국 땅에서 우리 후손들에게 많은 ‘화두’를 던져주고 있는 셈이다. 글 사진 stinger@seoul.co.kr
  • ‘요람서 무덤까지’… 獨축구클럽 이색 팬서비스

    ‘요람서 무덤까지’… 獨축구클럽 이색 팬서비스

    독일 프로축구클럽이 이색적인 팬서비스를 연이어 개발, 화제가 되고 있다. 독일 분데스리가 함부르크가 클럽 회원을 위해 묘지를 장만한 데 이어 또다른 명문 하노버가 회원을 위한 특별 분만실을 장만했다. 출생이나 사망을 축구클럽이 책임지는(?) 시대가 도래한 셈이다. 하노버 홈구장 인근 병원에 설치된 ‘하노버 분만실’은 테마 분만실이다. 클럽의 이름을 따 ‘하노버 96’으로 명명된 이 분만실은 커튼에서부터 산모가 입는 가운까지 클럽을 상징하는 온통 초록과 백색으로 꾸며져 있다. 같은 색으로 제작된 축구화, 축구공 등이 분만실을 장식하고 있다. 경기가 있는 날이면 구장의 함성을 생생히 들려 올 정도로 병원은 구장에 인접해 있다. 절묘하게 타이밍이 맞는다면 축구 팬들의 열렬한 응원 속에 아기를 낳을 수 있다. 클럽 관계자는 “축구장 주변의 열기와 열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진 분만실”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2일 하노버 분만실에서 아기를 낳은 한 여성은 “경기가 있는 날 아기를 낳는다면 함성과 응원으로 걱정이나 잡생각을 떨쳐버릴 수 있을 것 같다.”며 “테마 분만실을 낸 건 기발한 아이디어인 것 같다.”고 평가했다. 회원 전용인 이 분만실에서 태어나는 아기는 생후 1년 내 하노버 클럽 회원으로 자동 가입된다. ‘하노버 96’ 분만실에선 벌써 회원 2세 10명이 태어났다. 클럽 관계자는 “엄밀히 말하면 클럽의 팬은 아기가 아니라 부모지만 하노버 분만실에서 태어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아기들이 성장하면 하노버의 팬이라는 정체성(?)을 갖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통신원 손영식 voniss@naver.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애국지사 송정헌 여사 별세

    애국지사 송정헌 여사 별세

    대한민국 임시정부 김구 주석의 경호원 유평파 선생의 아내인 애국지사 송정헌 여사가 지난 22일 중국 난징(南京)에서 별세했다. 91세. 1919년 중국 항저우에서 중국인으로 출생한 여사는 1937년 중국 강서성 노산구강 폐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다가 당시 임정 의정원 의원이자 광복군 군의처장이던 유진동 선생을 만나 한국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이어 남편과 함께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입대했고 한국혁명여성동맹에 가입, 항일운동에 앞장섰다. 정부는 여사의 공훈을 기려 199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유해는 귀국 후 대전 국립묘지에 안장될 계획이다. 유가족으로는 장남인 유수송씨 등 3남 1녀.
  • 안의사 유해 매장 추정지 추적

    안의사 유해 매장 추정지 추적

    EBS는 안중근 순국 100년 기념일인 26일 오후 11시10분 특집 다큐멘터리 ‘안중근 순국 백년-안 의사의 유해를 찾아라’를 방송한다. 이 다큐멘터리는 안 의사 유해 찾기에 나선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예상 매립지를 직접 찾아가 안 의사 유해의 존재 가능성을 찾아본다. 1909년 10월26일 중국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은 그로부터 5개월 후인 1910년 3월26일 뤼순 감옥에서 31세의 삶을 마감한다. 이후 그의 시신은 침관(시신을 눕힐 수 있는 관)에 모셔져 뤼순 감옥 죄인묘지 어느 곳엔가 매장된다. 죽기 직전 그는 동생들에게 자신을 꼭 고국 땅에 묻어 줄 것을 유언한다. 하지만 안 의사 묘역이 독립운동의 성지가 될 것을 우려한 일본 당국에 의해 은밀하게 처리된 유해는 아직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유해 매장지를 추측할 수 있는 유일한 단서는 사형 당일 보고서에 적힌 ‘뤼순 매장’이라는 기록 뿐이다. 제작진은 안 의사의 유해발굴에 관심이 있는 김영광 안중근의사숭모회 부이사장이 안 의사 묘지 참배자 두 명의 증언에 따라 유해 매장지로 추정한 북위 38도49분27초, 동경 121도16분2초 지역을 찾아간다. 이곳은 뤼순 감옥 동쪽 500m 지점이다. 제작진은 “오카야마 소학교를 다닌 신현만(1933년생으로 추정)씨와 현재 66세인 L씨가 16년의 차를 두고 안 의사의 묘역을 참배한 목격담을 들려줬는데, 그들 기억 속 묘역의 위치가 일치한다.”고 밝혔다. 또한 안 의사의 의거를 도운 유동하 열사의 조카인 김파씨가 그린 안 의사의 묘역 약도가 있는데, 이 약도 속 묘역 위치도 같은 곳을 가리킨다는 것. 제작진은 “이들이 지목한 지역에는 ‘죄인묘역’이라는 석탑이 세워져 있으며 인근에서 가장 오래된 묘역”이라며 “모든 증언자가 이구동성으로 주장하는 그 장소는 현재 아파트 공사 지역 바로 인근이다. 언제 어떻게 공사로 파헤쳐질지 모르는 일”이라고 우려했다. 연출을 맡은 안태근 PD는 “취재를 통해 안 의사 묘의 존재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다.”면서 “프로그램이 안 의사의 유해를 찾을 수 있는 단초가 되기를 기원하며, 국민적 관심을 호소한다.”고 말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북한 미사일 1000여기 보유…김정일유고 등 모든상황 대비”

    북한이 각종 미사일 1000여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는 가까운 시일내 발생할 수도 있는 북한의 유고(有故) 사태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태영 국방부 장관은 17일 서울 여의도동 대신증권에서 열린 글로벌 문화경제 포럼 초청 특강에서 “북한은 중거리미사일(IRBM)과 스커드, 노동미사일 등 미사일 1000여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이어 “북한의 유고사태뿐 아니라 모든 상황에 대비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이며, 국방부는 모든 상황에 충실히 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커트 캠벨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는 지난달 방한기간 중 일부 정치인과 비공개 면담하는 자리에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건강과 관련, “의학적 소견을 종합해 보면 3년”이라고 대답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김 장관은 “이명박 대통령은 6·25 60주년과 G20 정상회의 개최를 맞아 올해 부산 유엔 묘지에 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직 대통령이 유엔 묘지를 참배하는 것은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 이후 처음이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故 최종현 SK회장 ‘숲의 명예전당’ 헌정

    故 최종현 SK회장 ‘숲의 명예전당’ 헌정

    고(故) 최종현 전 SK그룹 회장이 ‘숲의 명예전당’에 헌정된다. 15일 산림청에 따르면 숲의 명예전당 선정위원회는 황폐화된 산림의 자원화와 산림보호를 위해 노력하고 기업의 이윤을 산림에 투자해 기업임업의 선구적 역할을 한 최 전 회장을 헌정자로 선정했다. 최 전 회장은 1972년 인재양성과 산림 자원화를 위해 전문 임업기업인 서해개발을 설립, 74년 약 4000만㎡를 활엽수 단지로 조성했고, 90년에는 1000만㎡를 인재양성과 임학발전을 위해 충남대 학술림으로 기증했다. 최 전 회장은 특히 산지가 묘지로 잠식되는 것을 우려해 1998년 세상을 떠나면서 “시신의 화장과 화장시설을 건립해 사회에 기증하라.”는 유언을 남기기도 했다. SK그룹은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세종시 은하수공원에 500억원을 들인 화장시설을 조성해 기부했다. 헌정식 행사는 4월1일 고인의 가족 등이 참석한 가운데 경기 포천 국립수목원에서 개최된다. 한편 2001년 조성된 숲의 명예전당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현신규 박사, 독림가 임종국씨, 김이만 나무할아버지, 민병갈 전 천리포수목원장 등 5명이 헌정돼 있다. 정부대전청사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깔깔깔]

    ●청년의 소원 한 청년이 해변을 산책하던 중 물에 빠진 사람을 보고 급히 뛰어들어 밖으로 끌어냈다. 그 사람은 놀랍게도 유명한 정치권 실세였다. “젊은이, 내가 누군지 아는가?” “네! 압니다. 어르신!” “자네는 나라를 위해 큰일을 했네. 얼마 후면 내가 집권하게 될텐데, 자네에게 보답하고 싶네. 소원을 말해 보게.” “국립묘지에 묻히고 싶습니다.” “이해할 수 없군. 자네는 건강한 젊은이 같은데….” “그렇습니다. 하지만 제가 누구를 살려냈는지 친구들이 알게 되면 저는 살아남지 못할테니까요.” ●유부남이란 유부남이란? : 아버지가 살아 계시는 남자 또 다른 유부남이란? : 유사시 부를 수 있는 남자 또또 다른 유부남이란? : 유난히 부담 없는 남자
  • [Seoul 요모조모-만원의 행복] 강북구 삼각산 순례길

    [Seoul 요모조모-만원의 행복] 강북구 삼각산 순례길

    ‘제주도에 올레길이 있다면 강북구에는 순례길이 있다.’ 서울 강북구 삼각산은 백두·금강·묘향·지리산과 함께 오악으로 꼽힌다. 순례길은 삼각산을 끼고 도는 3.4㎞ 구간에 걸쳐 있다. 아직은 미완성이다. 그럼에도 순례길은 등산로 곳곳에 유적지와 문화재 등이 산재해 있어 등산객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통일교육원 입구서 시작 삼각산 순례길은 통일교육원 입구에서 시작된다. 초행길인 방문객을 위한 배려가 엿보이는 동반자 같은 표지판이다. 이어 졸졸 흐르는 대동천 물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인간이 만든 소리가 아닌 자연이 빚어내는 음악이 곳곳에서 재잘거린다. 지난가을 화려한 삶을 마감한 나뭇잎들이 수북이 쌓인 숲길을 거닐고, 띄엄띄엄 만나는 목재다리를 건너고, 두메산골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섶다리와 만나는 재미도 쏠쏠하다. 특히 이 길에서는 유난히도 굴곡 많은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삼각산 자락엔 일제 치하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대한 독립의 정당성을 알리고 장렬히 산화한 이준 열사를 비롯해 3·1운동을 주도한 의암 손병희 선생 등 우리나라 독립과 건국을 위해 헌신한 선열들의 묘역 16기가 흩어져 있다. 안내를 맡은 이중인 강북구 테마공원기획단 주임은 “이곳에 안장된 애국지사 16명은 모두 건국훈장을 받았으며, 대부분 국민장이나 사회장을 치른 애국지사들”이라면서 “4·19민주묘지와도 가까워 청소년들이 애국지사들과 ‘대화’하고 그들의 시대정신을 배우는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손색이 없다.”고 강조했다. ●4·19 민주묘역이 한눈에 보광사에서 조금 내려오면 4·19민주묘역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전망대에 다다른다. 전망데크에 서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숙연해지는 자신과 마주할 수 있다. 순례길의 끝자락엔 솔밭공원(보광사 입구)이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서 잠시 지친 다리를 쉬게 해도 좋다. 서울에서 유일한 평지형 소나무 군락지로 100여년생 소나무 1000여그루가 집단 자생하고 있다. 순례자의 쉼터 같은 곳이다. 구는 올해 안에 솔밭공원부터 손병희 선생 묘역까지 2.2㎞ 등 모두 6.2㎞ 순례길을 추가로 조성한다. 산행으로 허기진 배를 채워줄 먹을거리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우리콩 순두부집(995-5918)에서 먹는 순두부와 콩비지 정식(각 6000원)은 사찰음식처럼 정갈하다.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부산 여중생 성폭행 피살] “나태한 어른들 탓… 가엾어 어쩌나” 오열

    [부산 여중생 성폭행 피살] “나태한 어른들 탓… 가엾어 어쩌나” 오열

    ”모든 원망, 두려움 잊고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어라.” 순백의 영혼을 채 꽃 피우지도 못한 어린 나이에 성폭행범에게 목숨을 잃은 부산 여중생 이모(13)양의 영결식이 9일 유족과 친지 등의 오열 속에 치러졌다. 오전 9시 부산 사상구 감전동 부산전문장례식장에서 치러진 장례식 동안 내내 하늘에서는 이양의 죽음을 애도라도 하듯 비가 내려 슬픔을 더했다. 영결식은 유족 등 3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조촐하게 치러졌다. 30여분간의 영결식이 끝나고 발인이 시작되자 어머니 홍모(39)씨가 쓰러지며 오열하기 시작했다. 아버지 이모(40)씨도 “생전에 잘해준 것이 없어 너무 한스럽다.”며 “어려운 환경에서도 꿋꿋하고 밝게 컸는데 애비 역할도 못했다.”며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발인예배를 집전한 박정규 목사는 “맑고 순수한 영혼이 꽃을 피우지도 못하고 쓰러졌지만, 이 영혼이 우리 나태한 어른들을 반성시키고 깨우치는 밀알이 돼 다시는 이 같은 일이 없도록 간절히 기도한다.”라고 말했다. 유족들도 “어린 것이 가엾고 불쌍해서 어쩌나”하며 손수건으로 흐르는 눈물을 연방닦았다. 장례식장을 나선 운구행렬은 이양의 추억이 담겨 있는 모교인 사상초등학교로 이동해 운동장을 한 바퀴 돈 뒤 영락공원으로 향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인근 주민과 이 학교 교사들도 눈시울을 붉히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정든 교정과 친구들의 배웅을 뒤로한 채 금정구 영락공원에 도착한 이양 시신은 화장 뒤 기장군 철마면 실로암 공원묘지에 안장됐다. 한편, 살해범 김길태씨를 추적하고 있는 경찰은 오후 2시부터 1500여명을 동원해 범행 장소이자 김씨의 은거지로 추정되는 부산 덕포동 일대에서 밤 늦게까지 대대적인 수색 작업을 벌였으나 별다른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여중생 성폭행·살해 파장] 김 “난 범인아니다” 경찰에 두차례 전화

    부산 여중생 살인 사건을 수사 중인 부산 사상경찰서 수사본부는 8일 이모양 살해 피의자로 용의자 김길태씨를 확정하고 전국 공조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이번 사건을 맡고 있는 수사본부장을 기존 서장에서 경찰청 차장으로 격상하고, 전 경찰관에 갑호 비상에 준하는 근무를 실시키로 했다. 또 14개 팀 75명으로 추적 검거팀을 구성하는 동시에 피의자 검거에 결정적 단서를 제공하는 시민에게 주는 신고보상금도 500만원에서 2000만원으로 올렸다. 경찰은 이날 피살된 이양의 시신에서 채취·검출한 모발, 타액, 질액 등을 거둬 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감정을 의뢰한 결과, 범인 김길태씨와 유전자가 같은 DNA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한편 피의자 김씨는 이양 납치 이후 2차례나 경찰에 직접 전화를 걸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 경찰은 지난해 12월 초 김씨를 단순폭행범으로 검거까지 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경찰이 상습 성범죄자인 김씨에 대한 추적관리와 사건현장 주변에 대한 치밀한 수사를 했더라면 이양 살해사건은 방지할 수도 있었다는 점에서 경찰의 허술한 수사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수사본부에 따르면 김씨는 이양 납치 다음날인 지난달 25일 덕포시장 인근 아버지 집에서 “나는 범인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전화를 경찰에 걸었다. 또 경찰이 자신을 이양 실종사건 용의자로 지목한 같은달 28일에는 사상구 주례동 친구 이모(33)씨가 운영하는 한 주점에 나타나 “내가 범인이 아닌데 경찰이 나를 쫓는 것 같다. 어떻게 된 건지 알아봐 달라.”고 말한 뒤 오후 10시쯤 사라졌다. 이후 이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형사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5분 뒤에는 직접 김씨가 공중전화로 이 형사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도 했다. 김씨의 전화를 받고 20여분 뒤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김씨는 이미 주변을 벗어난 뒤였다. 첫 번째 검거 기회를 놓친 것이다. 이어 김씨는 지난 3일 오후 5시쯤 이양의 집에서 20여m 떨어진 빈집에 모습을 나타냈다. 잠을 자고 있던 중 경찰 수색팀의 플래시 불빛에 놀라 입구 반대편 창문을 통해 담장 3.5m 아래로 뛰어넘어 달아났다. 경찰이 김씨 뒤를 쫓았지만 지리에 익숙지 않아 담장을 넘는 과정에서 발목에 골절상을 입었다. 지난해 12월 초에는 단순 폭행 사건으로 이번 사건 수사본부인 사상경찰서에서 조사까지 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수사 본부 측은 “당시 김씨는 우범자관리대상이 아니고 단순 폭력 사건이어서 불구속 입건한 뒤 집으로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한편 이양의 빈소가 차려진 부산 감전동 부산전문장례식장은 온종일 울음바다를 이뤘다. 이양의 어머니 홍모(39)씨는 “우리 딸이 무슨 죄가 있다고 그렇게 험한 일을 당해야 하냐.”며 “범인에게 직접 물어보고 싶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다른 가족들도 모두 망연자실한 모습뿐이었다. 이양의 장례식은 9일 오전 금정구 영락공원에서 화장한 뒤 해운대구 반송동 실로암 공원묘지에 안장될 예정이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죽음 통해 발견한 삶의 의미

    이정희의 친구, 서인주가 죽었다. 1년 전 폭설이 퍼붓던 겨울 새벽 미시령에서 자동차 사고로 죽었다. 인주를 사랑했던 미술평론가는 죽음을 자살로 단정짓는다. 그리고 아름다운 외모, 탁월한 그림 작품, 불행한 개인사, 드라마틱한 죽음 등을 근거 삼아 예술가적인 열정에 의한 자살로 미화한다. 그러나 얼핏 불행해 보일지라도 삶에 대한 무한한 열정과 아들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확신했기에 스스로 삶을 포기했을리 없다고 믿으며 정희는 친구의 죽음을 실체적으로 밝히고자 직접 나선다. 1년 전 정희는 한 남자를 간절히 죽이고 싶었으나 차마 행하지 못했다. 대신 자신이 죽일 수 있는 유일한 사람, 자신을 죽이려 한다. 그러나 왼쪽 손목에 주저흔만 세 개 남겼을 뿐 실패에 그친다. 한참 거슬러 올라가면, 정희가 사랑했던, 예술을 사랑하고, 우주를 사랑하고,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것을 가르쳐준 인주 외삼촌의 죽음이 있다. 한강(40)의 새 장편소설 ‘바람이 분다, 가라’(문학과지성사 펴냄)는 삶의 곳곳에 포진해 있는 죽음의 비의(秘意)와 맞닥뜨리며 힘겹지만 물러섬 없는 투쟁을 전개한다. 무기는 한강 특유의 섬세하면서도 감각적인 문장, 그리고 먹그림의 시각적 이미지와 생의 기원, 우주의 신비에 대한 천체 물리학적 사유, 진실을 좇아가는 미스터리식 서사 얼개다. 작품을 구상하고서 책이 나오기까지 4년 6개월이 걸렸다. 한강은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던 환자가 갑자기 스스로 숨을 쉬는 바람에 환자의 호흡과 인공호흡기의 호흡이 부딪치는 것인 ‘브레스 파이팅(Breath fighting)’에서 소설이 시작됐다.”면서 “삶과 죽음의 경계 위에 서서 숨과 숨이 맞부딪치는 팽팽한 긴장의 순간으로 점철된 삶에 대해 사유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소설은 차라리 죽어서 끝내고 싶은 통증을 겪는 현실 속에서도 ‘누군가가 무릎이 짓이겨진 채 뜨거운 배로 바닥을 밀고 간다.’는 큰 울림 속에서 마친다. 시인 남진우가 폴 발레리의 시편 ‘해변의 묘지’ 중 유명한 구절인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를 빌려썼듯 한강 역시 강렬한 삶의 의지를 표현하는 데 발레리에게 의탁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北 화폐개혁 실패 이후 주민 사상적 동요 심해”

    │워싱턴 김균미특파원│대북 인권단체 ‘좋은 벗들’의 이사장인 법륜 스님은 4일(현지시간) 화폐개혁 이후 “북한 주민들의 사상적 동요가 아주 심해졌다.”고 밝혔다. 법륜 스님은 워싱턴 코러스하우스(주미 한국대사관 문화홍보원)에서 ‘화폐개혁 이후 북한 상황’을 주제로 강연을 하고 여러 경로를 통해 수집한 화폐개혁 이후 북한 사정에 대해 비교적 소상히 전했다. 그는 “지금까지는 북한이 어려움에 처해도 미국의 경제봉쇄 등 외부로 책임을 돌렸지만, 이번에는 중앙당의 정책 실패로 혼란이 가중됐다.”면서 “(북한 주민들이) 국가가 아무것도 해주는 것이 없는 상황에서 정부 정책의 잘못으로 죽게 됐다고 생각하면서 ‘(북한의) 정치 체제가 문제다.’라는 의식을 공공연히 갖게 됐다.”고 말했다. 법륜 스님은 특히 북한에서 화폐개혁 실패 이후 가장 큰 문제는 식량부족으로 굶어 죽는 사람들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청진 공동묘지의 경우 화폐개혁 이전에는 사흘에 1구 정도의 장례식이 이뤄졌으나, 1월 들면서 하루에 2∼3구의 장례가 이뤄지고 있다.”면서 “90년대 중반 대량 아사사태 때도 괜찮았던 신의주에서도 아사자가 발생하고 있고, 평양 변두리 지역의 경우에도 길에서 노인들이 굶주린 채 동사하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보통 북한에서는 아사자가 춘궁기인 4월부터 나왔는데, 올해는 1월부터 나왔다.”면서 “특단의 대책이 없으면 3∼4월에 가면 아사 사태가 아주 심각해질 것”이라고 북한에 대한 인도적 차원의 식량지원 필요성을 제기했다. kmkim@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