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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년간 다녀온 어머니 묘, 알고보니…황당 사연

    17년 동안 엉뚱한 곳에 성묘를 해 온 한 여성이 억울한 사연을 호소해 눈길을 모으고 있다고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이 30일 보도했다. 캐서린 헤이우드(60)는 17년 전인 1994년, 어머니가 사망하자 장례업체를 고용해 장례식을 한 뒤 랭커셔 지방의 공동묘지에 안장했고, 이후 그녀는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자주 묘를 찾아가 어머니를 그리워했다. 지난 2월 아버지마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헤이우드는 아버지의 유해를 어머니의 묘 근처에 뿌렸다. 하지만 지난달 다시 묘를 찾은 그녀는 묘지 관리사로부터 청천벽락 같은 소식을 접했다. 헤이우드 어머니의 진짜 묘는 17년간 방문했던 묘에서 500야드 떨어진 곳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묘지 관리사는 헤이우드에게 각 묘들의 위치가 그려진 지도까지 보여주며 그녀의 실수를 증명해보였다. 사연인 즉, 어머니의 장례식을 대행한 업체가 유해를 안장한 뒤, 유가족에게 실수로 잘못된 위치를 전달한 것. 그녀는 “17년 간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는다.”면서 “기쁘고 슬픈 일이 있을 때마다 어머니의 묘를 찾아왔는데, 엉뚱한 사람의 묘 였다니 황당할 따름”이라며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어 “잠을 이룰 수 없을만큼 마음이 슬프다. 아버지의 유해조차 엉뚱한 곳에 뿌렸으니, 하늘에서 부모님이 화를 내실 것 같다.”면서 “다시는 나 같은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길 바랄 뿐”이라고 덧붙였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무연고 묘지’ 해마다 는다

    ‘무연고 묘지’ 해마다 는다

    추석을 앞두고 성묘가 한창인 가운데 전국 곳곳에 방치되는 무연고 묘지와 관리비 체납 묘지가 늘고 있다. 30일 경북 지역 공원묘지에 따르면 가족·후손들이 찾지 않거나 연락이 닿지 않는 ‘무연고 묘지’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이는 핵가족화와 더불어 최근 경제난과 이민 등의 영향인 것으로 보인다. 칠곡 현대공원묘원의 경우 전체 묘지 2만 7000여기(매장 2만 5000여기, 납골 2000여기) 가운데 무연고 묘지가 1300여기(5%)에 달한다. 또 4년 이상 관리비(연간 3.3㎡당 9000원)를 내지 않은 장기 미납 관리묘도 5400여기(20%)에 이른다. 이 공원묘원의 노정현 총무부장은 “미납 관리묘에 대해서는 묘지 인근에 ‘관리비 미납 묘지’ 문구를 새긴 푯말을 설치해 관리하고 있으나 묘 연고자들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9000여기가 안장된 경산 공원묘원은 연간 1억원 정도의 관리비를 받지 못하고 있다. 공원묘원 관계자는 “전체 묘지 중 15~20% 정도가 관리비를 내지 않고 있다.”면서 “후손들에게 수납용 지로용지를 보내도 ‘수취인 불명’으로 되돌아오는 경우가 400여통 된다. 심지어 10년 이상 관리비를 내지 않는 경우도 400여명이 넘는다.”고 말했다. 경산 백합공원도 8700여기 중 1700여기(20%)가 찾는 이 없는 무연고 묘지다. 때문에 이 공원의 관리비 체납액은 7억원 정도 쌓였다. 이 공원 김응만 관리부장은 “공원 사정상 신용정보회사를 통한 채권추심도 고려해 봤지만 야박하게 굴 수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편”이라고 하소연했다. 그는 “하지만 매년 추석을 앞두고 제초 작업 등 기본적인 관리는 하고 있다.”고 했다. 묘지 2000여기가 조성된 군위의 신세계·금산공원묘원 등도 5년 이상 미납 관리묘가 500기 이상, 20년 이상 장기 미납 관리묘가 100여기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원 지역의 강릉공원묘지, 영동공원묘지, 청솔공원묘원 등이 관리하는 분묘 1만 5000기 중에서는 30%에 가까운 4000여기가 무연고 또는 미납 관리묘다. 강릉공원묘원의 경우 3000여기 중 절반 정도가 무연고 분묘이고, 분묘 4000여기를 관리하는 영동공원묘원은 1000여기가 5년 이상 미납 관리묘다. 이런 가운데 일부 후손들은 분묘 관리비를 의도적으로 내지 않는 ‘얌체족’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공원묘원 관계자는 “추석을 앞두고 미납 관리묘 앞에 식혜와 과일, 생선 등이 놓여 있는 등 사람이 다녀간 흔적을 종종 보지만, 어려운 경제사정 탓인지 관리비를 납부하는 경우는 없다.”고 말했다. 전재운 대구향교 총무국장은 “경제난과 핵가족화, 글로벌 사회 등의 영향으로 조상 묘를 돌보지 않는 후손들이 부쩍 늘고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씁쓸해하면서도 “신세대들에게 조상에 대한 의례(儀禮)를 갖추라고 강요할 수 없을 만큼 세상이 많이 변했다. 장묘 문화와 조상 분묘 관리 방법을 개선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대구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호남 정자 문화의 메카 전남 담양 ‘명옥헌 원림’

    호남 정자 문화의 메카 전남 담양 ‘명옥헌 원림’

    절경을 두고 굳이 탐승의 적기를 따지는 것이 부질없기는 합니다. 하지만 배롱나무꽃 흐드러진 전남 담양의 명옥헌 앞에서라면 누구라도 늦여름날의 선경에 마음 뺏기지 않을 재간이 없겠습니다. 담양은 지금 연분홍으로 빛납니다. 나락 익는 길가, 절집 뜰, 그리고 옛 선비의 고졸한 정원에 배롱나무꽃이 무시로 피었습니다. 이 꽃이 세 번 피고 지면 가을이라지요. 처서가 지났으니 이제 여름도 막바지입니다. 배롱나무 붉은 꽃비 맞으며 가을을 맞는 건 어떨지요. ●피고 지길 세 번…이 꽃 지면 가을 담양의 대표 아이콘을 꼽으라면 단연 대나무다. 여기에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이 엇비슷한 무게감을 갖는다. 하지만 한여름에서 초가을로 넘어가는 길목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맘때라면 대나무도, 메타세쿼이아도 배롱나무에 한 수 접어줘야 한다. 연분홍 배롱나무꽃이 담양 전체를 더없이 화사하게 꾸미고 있기 때문이다. 배롱나무꽃 핀 풍경이 장하기로는 단연 명옥헌 원림(鳴玉軒 苑林)이 꼽힌다. 명옥헌은 정자의 이름, 원림은 정자에 딸린 정원을 뜻한다. 정자 오른쪽에서 흘러내리는 개울물이 옥구슬 부딪치는 소리를 낸다 해서 이름지어졌다. 명옥헌 원림은 예쁘다. 첫 눈길에 정신을 쏙 빼놓는다. 좁은 고샅길을 올라가다 느닷없이 골목 어귀에서 튀어 나오는데, 명옥헌은 보이지 않고, 불그레한 꽃잎과 이를 담담하게 비춰내고 있는 연못이 장관을 이룬다. 명옥헌은 인조반정의 주역 오희도(1583~1623)의 집터 위에 넷째 아들 오이정(1619∼1655)이 아버지를 기리며 지은 정자다. 정자 앞뒤로 네모난 연못을 파서 주변에 적송, 배롱나무 등을 심고 가꿨다. 각진 연못 안엔 원형의 섬을 만들어뒀다. 대지는 네모, 하늘은 둥글다는 당시의 우주관이 반영된 공간이다. 명옥헌 ‘원림’의 한자를 정원의 일반적인 표현인 ‘園林’으로 쓰지 않고 굳이 ‘苑林’이라 표현한 것엔 까닭이 있다. 윤재득 담양군 문화재담당은 “둘을 가르는 가장 큰 차이는 담장의 유무”라며 “바깥 공간과 구분짓는 담장이 있으면 ‘園林’, 담장 없이 바깥과 소통하고 있으면 ‘苑林’이라 부른다.”고 설명했다. 명옥헌 원림엔 담장이 없다. ‘숲은 그대로 두고, 주변에 정자를 적절하게 배치한’, 이른바 차경(借景) 형태의 자연순응적인 정원양식이다. 차경은 자연을 경관 구성 재료의 일부로 빌려왔다는 뜻이다. 숲 위쪽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정자를 세웠다. 가운데 방을 들이고 사방엔 마루를 깔았다. 마루에 앉으면 눈앞에 펼쳐진 정원과 배롱나무꽃의 절창을 그윽하게 굽어볼 수 있다. 배롱나무는 100일 붉은 꽃, 백일홍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발음 나는 대로 백일홍, 배기롱 등으로 불리다 배롱나무로 굳어졌다. 독특하고 애처로운 사연이 깃든 다른 이름도 많다. 세 번을 피었다 지면 쌀밥 먹을 때가 됐다고 해서 쌀밥나무, 줄기를 긁으면 나무가 간지럼을 타는 것처럼 흔들려서 간지럼나무 등으로 불린다. 자줏빛 ‘자’(紫)에 장미 ‘미’(薇)를 써 자미나무라고도 한다. 이름만큼 평가도 엇갈렸다. 송명숙 문화관광해설사는 “매끈하고 붉은빛을 띤 줄기에서 여인의 몸이 연상된다거나, 꽃이 너무 붉어 집 안에 심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며 “귀신을 잘 쫓는다고 해서 묘지나 사당 주변에도 흔히 심었다.”고 했다. 반대로 청렴과 무욕을 상징하기도 했다. 스님들은 100일 동안 매일 번갈아 가며 돋아나는 꽃에서 용맹정진을 배웠고, 선비들은 껍질을 벗은 줄기에서 무욕의 청빈한 삶을 보았다. 배롱나무꽃은 보통 한 가지에서 피고 지기를 세 번 거듭한다. 송 해설사는 “7월 중순부터 피기 시작해 8월 초와 하순께 두 번 절정을 이룬 뒤 9월 초~중순께 마지막 정열을 불태운다.”고 설명했다. 명옥헌 주변엔 40여 그루의 배롱나무가 있다. 80~150년 된 노거수(巨樹)가 30여 그루, 2002년 해체 보수 당시 심은 후계수들이 10여 그루 된다. 늙은 몸이건, 젊은 몸이건, 하나같이 연분홍 꽃술을 우박처럼 매달고 있다. 꽃은 지고 난 뒤에도 진한 흔적을 남긴다. 동백처럼 꽃송이째 뚝뚝 떨어지기 때문이다. 줄기에 매달린 꽃이나 바닥에 떨어진 꽃이나, 주변을 연분홍으로 물들이긴 마찬가지. 필경 꽃은 분홍빛 카펫을 깔아 함께 붉었던 여름을 배웅하려는 게다. ●자연 위에 흔적 없이 얹은 인공미 명옥헌의 ‘연관 검색어’로 꼭 찾아봐야 할 곳이 소쇄원 등 정자들이다. 영남을 대표하는 정자의 메카가 경남 함양이라면, 담양은 호남 정자 문화의 보고라 불린다. 그만큼 풍치 좋은 정자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그 중 소쇄원은 한국을 대표하는 정원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조선 중종 때 양산보가 기묘사화로 스승 조광조가 세상을 뜨자 자연에 숨어 살겠다며 꾸민 곳이다. 초록빛 대나무숲과 배롱나무들이 둘러친 계곡 안쪽에 광풍각이 있고, 그 뒤로 제월당이 내려다 보고 있다. 송강 정철이 노닐던 식영정과 송강정도 소쇄원에 버금갈망정 뒤지지는 않는다. 특히 소쇄원과 이웃한 식영정은 ‘그림자도 쉬어가는 정자’라는 뜻의 이름만큼이나 운치가 넘친다. 정철의 대표작인 ‘성산별곡’이 탄생한 곳으로, 아름드리 노송과 배롱나무, 연못 위 정자 부용당 등이 어우러져 그림과 같은 풍경을 펼쳐내고 있다. 길 모퉁이에 있어 스쳐가기 쉬운데, 꼼꼼하게 짚어보는 게 좋다. 봉산면 제월리의 면앙정은 송순의 체취가 묻어 있는 곳. 1533년(중종 28년) 건립됐다. 강호가도(江湖歌道)의 선구자로 꼽히는 송순이 퇴계 이황 등과 학문을 논하고 후학들을 길러내던 곳이다. ●느릿한 발걸음에 풍경 걸리고 창평면 삼지내 마을은 장흥군 유치면, 완도군 청산도, 신안군 증도 등 우리나라에 있는 총 4곳의 슬로시티(Slow City) 가운데 한 곳이다. 16세기 초에 형성된 전통마을로, 옛 멋을 그대로 간직한 한옥과 아름다운 돌담길 사이로 ‘싸목싸목’ 걷는 맛이 각별하다. 마을 내에는 자연을 차용해 건축미가 빼어난 ‘고재선 가옥’ 등 여러 채의 전통 한옥이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 있다. 돌과 흙을 사용한 토석담도 정겹다. 최근엔 복개됐던 월봉천과 운암천, 유천 등 삼지천(三支川)을 원래 모습대로 되돌려 놓는 공사가 한창이다. 먹거리도 많다. 조선시대 임금에게 진상했다던 창평 쌀엿과 한과는 물론, 막걸리, 약초 등을 직접 만들거나 맛볼 수 있다. 한과(강정) 체험은 1만원을 받는다. 체험 시간은 1시간 정도 소요된다. 막걸리는 2시간에 2만원이다. 발효 등의 과정에 시간이 많이 걸려 자신이 만든 술을 직접 맛볼 수는 없고, 앞서 다른 체험자가 만든 1ℓ를 선물로 받는다. 쌀엿은 1㎏에 1만 5000원이다. 최근 포장도로를 걷어 내고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 간 메타세쿼이아 숲길도 걸어볼 만하다.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중 약 1.2㎞ 구간의 아스콘을 벗겨내고 흙길로 ‘리모델링’했다. 차들이 쌩쌩 내달리던 가로수길 바로 위 88고속도로 또한 멀찌감치 이전시켰다. 담양군은 이 구간에 대해 차와 자전거의 통행을 일절 금지하고 보행자 통행만 허용할 방침이다. 글 사진 담양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61) ▲가는 길 호남고속도로 창평나들목을 나와 60번 지방도를 따라 고서 방향으로 달리면 왼쪽에 명옥헌(380-3150) 이정표가 나온다. 차는 후산마을 주차장에 두는 게 좋다. 메타세쿼이아 숲길 등을 먼저 보려면 88고속도로 담양나들목을 이용하는 게 낫다. 담양 시티투어버스 이용은 군 홈페이지(tour.damyang.go.kr) 참조. ▲맛집 삼지내 마을 초입 전통시장 주변에 맛집들이 몰려 있다. 창평시장국밥(383-4424)이 그 중 유명하다. 머리고기·내장·선지 국밥 6000원. 대나무에 밥을 지은 대통밥은 읍내 박물관앞집(381-1990)이 잘한다. 1만 2000원. ▲잘 곳 삼지내 마을에서 한옥 민박을 운영하고 있다. 인터넷 창에 ‘남도민박’을 치면 민박집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한옥에서’, ‘매화나무집’, ‘명가혜’ 등이 알려졌다. 주말 4인 가족 기준 10만원 선.
  • [카다피 몰락] 트리폴리서 잠든 美 첫 원정 해군 200년 만에 귀향?

    [카다피 몰락] 트리폴리서 잠든 美 첫 원정 해군 200년 만에 귀향?

    카다피 정부군과 반정부군이 최후의 격전을 벌이고 있는 리비아 트리폴리 도심의 녹색광장(순교자의 광장) 바로 아래에는 207년 전 트리폴리에서 전사한 미 해군들이 묻혀 있다. 이들은 1804년 아프리카 북서 해안지역의 해적을 소탕하기 위한 바르바리 전쟁 당시 폭발물을 실은 전함을 타고 트리폴리에 도착하기 직전 폭발물이 터지는 바람에 전함과 함께 수장됐다. 당시 숨진 미 해군은 리처드 소머스 사령관을 비롯해 모두 13명. 이 가운데 시인 롱펠로의 삼촌인 헨리 워즈워스 중위도 포함돼 있다. 희생자들 가운데 일부는 트리폴리의 신교도 공동묘지에 묻혔고, 나머지는 녹색광장 바로 밑에 매장됐다. 현재 미국에서는 이들의 유해 송환 문제를 놓고 재향군인회와 해군, 의회 사이에 논쟁이 한창이다. 재향군인회가 6개월 전 리비아 사태가 촉발된 직후 이들의 유해를 고국으로 송환해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해야 한다며 입법 로비를 벌이면서부터다. 22일(현지시간) 허핑턴포스트에 따르면 재향군인회의 팀 테츠는 “유해를 송환할 수 있는 적기를 맞았다.”면서 “리비아 정세는 변하고 있고, 후손들도 유해 송환을 강력히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정치 전문지 폴리티코는 “재향군인회는 리비아 사태와 관련해 각별히 관심을 가질 만한 로비를 벌인 11개 그룹 가운데 하나”라고 전했다. 재향군인회의 수개월에 걸친 로비 끝에 트리폴리에 묻힌 해군의 유해를 발굴, 송환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도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 법안은 해군사관학교 출신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존 매케인(애리조나) 상원의원의 반대로 난관에 봉착했다고 허핑턴포스트는 전했다. 매케인 의원은 허핑턴포스트의 입장 표명 요청에 응하지 않았지만, 그 이유는 미 해군의 공식 입장에서 짐작할 수 있다. 게리 러프헤드 제독은 “해군의 관습과 전통은 전함이 가라앉은 장소를 전사자들의 명예로운 안식처로 삼는 것”이라면서 “해군은 트리폴리 묘지를 전사자들의 마지막 안식처로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해군 대변인 애레나 게레스 중위도 러프헤드 제독의 발언이 해군의 공식 입장이라고 확인했다. 이에 재향군인회 대변인 마티 칼라한은 “카다피군이 시위대를 진압했던 녹색광장과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신교도의 공동묘지는 조국을 위해 희생한 이들의 마지막 안식처로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은 명예로운 전사자들을 존중할 의지와 힘을 갖고 있고, 알링턴 국립묘지에도 이들이 묻힐 장소가 있다.”고 덧붙였다. 리비아 사태의 급진전으로 미 해군들의 유해가 207년만에 송환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용인 시립묘지 26곳 매각 추진

    경기 용인시는 시가지 정비 및 시 재정 확보 차원에서 시립공동묘지 26곳(77만 9600여㎡)의 매각을 추진한다고 21일 밝혔다. 시는 이를 위해 시립공원묘지 관리방안 연구 용역을 오는 10월 말까지 마친 뒤 내년 9월로 예상되는 용인시립장례센터 ‘평온의 숲’ 개장에 맞춰 매각 작업에 들어갈 방침이다. 26곳의 용인시립 공원묘지에는 8616기의 묘가 조성돼 있으며, 이 가운데 6600여기가 무연고 묘지로 시는 파악하고 있다. 시는 또 지목이 임야 또는 잡종지인 시립묘지의 전체 공시지가는 137억원인 것으로 집계했다. 연고가 있는 묘지의 경우 평온의 숲으로 무료 이장하고, 다른 지역으로 이장을 희망하면 비용을 지원하기로 했다. 연고가 없는 묘지는 위령탑을 세운 뒤 한 곳으로 모아 이장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시립공동묘지 매각은 시가지 정비와 시 재정 확보, 평온의 숲 활성화 때문이다. 용인시 처인구 이동면 어비2리 산 11 일대 58만 4411㎡에 조성 중인 용인시립장례센터 평온의 숲에는 화장로 10기와 분향실 17실, 유골 4만 2000구를 봉안할 수 있는 봉안당 등이 설치될 예정이다. 1만 3000구를 봉안할 수 있는 2만 7000㎡ 규모의 자연장지와 세계장묘문화공원, 세계장례박물관, 임종체험관, 옛돌조각공원, 인공폭포, 카페테리아 등 문화·편의시설도 조성된다.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國家葬 조문객 식비 국고지원 안한다

    이달 말부터 전·현직 대통령 서거 등으로 국가장(國家葬)이 거행될 경우 조문객 식사비 등 일부 비용은 국고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행정안전부는 16일 이 같은 내용이 담긴 ‘국장·국민장에 관한 법률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국가장 장례비용은 전액 국고로 부담하되 ▲조문객 식사비용 ▲노제(祭) 비용 ▲삼우제 비용 ▲49일재 비용 ▲국립묘지 외 토지구입·조성 비용 등 국가장 성격에 맞지 않는 일부 비용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번 개정은 지난 5월 30일 공포된 ‘국가장법’의 후속 조치다. 이 법은 기존의 ‘국장·국민장에 관한 법률’이 대상자를 구분하는 기준이 모호하고 문제점이 제기돼 국장(國葬)과 국민장(國民葬)을 국가장으로 통합하고 장례기간도 각각 9일·7일 이내에서 5일 이내로 단축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기존 법률에서는 ‘국장에 소요되는 비용은 전액을 국고에서 부담하고, 국민장 소요 비용은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일부를 국고에서 보조할 수 있다.’라고 규정해 장례비용 중 어디까지 국고를 지원해야 하는지 명확하지 않았다. 2009년 5월 서거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는 국민장으로 7일간 거행됐다. 3개월 뒤 서거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는 국장으로 거행하되 유족의 뜻에 따라 6일간 진행됐다. 노 전 대통령의 국민장에는 조문객 식사비를 포함해 모두 29억 5000만원의 국고가 지원됐고, 김 전 대통령의 국장에는 행안부의 장례비 지원금(20억 9000만원) 외에 국립묘지 안장에 따른 국방부 지원금까지 모두 32억 7000만원이 지원됐다. 행안부 관계자는 “기존 법률에는 조문객 식사비도 지원해야 하는지 명확하지 않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경우에는 봉하마을 주민들이 조문객에게 식사를 제공하면서 이 비용까지 국가에서 지원했고, 김 전 대통령 국장에서는 조문객 식사 제공이 없어 지원 비용에 산정되지 않았다.”면서 “이처럼 기존 규정이 명확하지 않아 시행령을 통해 국고 지원 대상을 명확히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8·15 66주년] “야스쿠니 A급 전범, 전쟁범죄자 아니다”

    [8·15 66주년] “야스쿠니 A급 전범, 전쟁범죄자 아니다”

    오는 28일로 예정된 일본 민주당 차기 대표 경선에서 차기 총리로 선출될 가능성이 높은 노다 요시히코 재무상이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된 A급 전범에 대해 ‘전쟁 범죄자가 아니다.’는 망언을 되풀이했다. 그는 15일 각의 후 기자회견에서 “A급 전범이 전쟁범죄자가 아니다.”고 주장했던 2005년의 입장과 관련해 “사고방식에 기본적으로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이는 2005년 자신이 민주당에 제출했던 ‘야스쿠니신사에 관한 질문주의서’에서 “(야스쿠니에 합사된) A급 전범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전쟁범죄자가 아니다.”라고 밝힌 입장에서 변함이 없다는 의미다. 그는 총리가 되면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할 것인지에 대해 “가정을 전제로 한 질문”이라며 언급을 피했다. 노다 재무상은 2005년 “A급 전범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A급 전쟁 범죄자가 아니기 때문에, 전쟁 범죄자가 합사됐다는 이유로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반대하는 것은 논리로서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당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옹호했다. 그는 “잘못된 A급 전범 이해에 기초한 야스쿠니 참배 논란은 A급 전범으로 불리는 사람들에 대한 인권 침해이며, 인권과 국가의 명예에 관한 문제”라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일본의 여야 국회의원 50여명이 2차 세계대전 종전 기념일을 맞아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 야당인 자민당의 다니가키 사다카즈 총재와 아베 신조 전 총리, 여권에서는 민주당의 하라구치 가즈히로 전 총무상이 참배했다. 하지만 간 나오토 총리를 비롯한 내각의 각료들은 모두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야스쿠니신사를 찾지 않았다. 이에 대해 극우 망언을 서슴지 않는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는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 뒤 “그들(간 내각 각료들)은 일본인이 아니다.”고 비난했다. 대신 간 총리는 도쿄 일본 무도관에서 열린 ‘전국 전몰자 추도식’에 참석하고, 지도리가후치 전몰자 묘지에 헌화했다. 간 총리는 추도식에서 “세계대전에서 많은 국가, 특히 아시아의 여러 나라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다.”면서 “깊이 반성하면서 희생자의 유족에 삼가 애도의 뜻을 표한다.”고 사죄했다. 아키히토 일왕도 행사에 참석해 “전쟁의 참화가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간절하게 기원하며, 전 국민과 함께 전쟁에서 쓰러진 분들에게 마음으로부터 애도를 표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본이 당시 이웃 국가에 어떤 고통을 주었는지는 언급하지 않았으며 사죄의 말도 하지 않았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8·15 66주년] “음지서 독립 투쟁한 여성도 수만명… 정부가 증언·사료 수집해 예우해야”

    [8·15 66주년] “음지서 독립 투쟁한 여성도 수만명… 정부가 증언·사료 수집해 예우해야”

    “들꽃은 늘 조명받지 못했다. 오히려 발에 밟히고 차였다. 그러나 들꽃의 생명력은 강하다. 그들은 진 것이 아니라 여전히 피어있다.” 시인 이윤옥(52·여)씨는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들꽃이라고 말한다. 지난 6월 출간된 그의 두번째 시집 ‘서간도에 들꽃피다’는 역사의 뒤편에 묻혀있던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조명한 최초의 시집이다. 이씨는 “최초의 여성 의병장인 윤희순, 광복군 여성대원들의 맏언니였던 오광심은 물론 밥 짓고, 군복 만들고, 독립자금 조달한 여성들도 모두 독립유공자”라면서 “이들을 기억하지 않는 현실이 안타까워 시로 그들의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고 말했다. 특히 이씨는 “‘(여성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으려면 증거를 가져오라’는 정부의 독립유공자 심사체계는 어불성설”이라며 “정부가 직접 여성독립운동 사료를 수집하고 드러나지 않은 여성 유공자들을 발굴해 걸맞은 예우를 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생사를 건 엄혹한 시기에 그들이 독립투쟁의 흔적을 남겼겠느냐.”면서 정부의 태도 변화를 촉구했다. 66돌을 맞은 광복절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 서울신문사에서 이씨를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여성독립운동가에 대한 평가는.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역할이 형편없이 과소평가돼 있다. 남성 독립유공자가 수만명이라면 여성 유공자의 숫자도 비슷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 공인된 독립유공자 1만 2966명 가운데 여성은 204명에 불과하다. 직접 총과 폭탄을 들고 싸운 여성도 적지 않지만 뒷전에서 밥 짓고, 독립운동 자금을 모아 나르는 등 음지에서 묵묵히 제 역할을 다한 여성들도 모두 독립유공자 아니겠는가. →현재의 독립유공자 심사체계에 문제가 있다는 말인데…. -스스로 서류를 제출해 독립운동을 증명하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으려면 직접 증거자료를 수집해 국가보훈처 심사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의 상황을 안다면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것이다. 일본군에 쫓겨 생사가 걸린 상황에서 일부러 서류 등 흔적을 없앴는가 하면 가명을 서너 개씩 쓰기도 했다. 그나마 명단에 오른 분들은 후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 기록을 수집하고 정리해 가능했다. 독립유공자라는 사실을 숨기고 사는 분들도 많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개선해야 한다고 보는가. -간단하다. 정부가 나서 여성독립운동가들의 흔적을 찾아야 한다. 일제강점기 당시의 국내와 일본신문만 봐도 적잖은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평남도청에 폭발물을 던진 안경신 의사의 경우도 ‘여자폭탄범’이라는 제목으로 기사가 실렸다. 또 백범일지를 보면 연미당·정정화 여사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이렇게 하나하나 기록을 되짚어 찾는 것이 국가가 할 일 아니겠는가. 생존해 있는 여성독립운동가가 몇 분 안 된다. 그들의 증언이 가장 중요하다. 빨리 그 분들의 구술을 문서로 기록해 둬야 한다. →여성독립운동가를 주제로 한 시를 쓰게 된 계기는. -몇 해 전 강의를 하던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독립운동가를 아는 대로 써 보라고 했다. 여성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댄 학생이 손에 꼽을 정도였고, 그나마 태반이 유관순 열사였다. 그런 현실이 서글펐다. 그때 가까이 두고 읽을 수 있는 시집으로 여성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기록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시를 쓰는 데 필요한 자료는 어떻게 수집했나. -기록이 거의 없었다. 국가보훈처 자료도 여성유공자 한 명당 서너줄의 기록이 전부였다. 그때부터 이들의 활동무대를 직접 찾아 나섰다. 중국 상하이, 광저우, 항저우, 충칭 등을 답사했고, 춘천 부산 나주 인천 수원 등을 돌면서 자료를 수집했다. 그러나 생존한 여성독립운동가가 6명에 불과해 자료 수집도 쉽지 않았다. 생가와 묘지가 제대로 보존되지 않아 경북 안동에서 김락 지사의 묘소를 찾아가는 데 마을 사람들에게 수소문해야 했을 정도다. →앞으로의 계획은. -내년 3·1절에는 여성독립운동가를 주제로 두 번째 시집을 내고 싶다. 이미 펴낸 시집도 공공도서관이나 초·중·고교에 보급해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만 쉽지 않다. 얼마 전 요양원에 계신 이병희 여사를 찾아가 직접 시를 낭송해 드렸다. 눈물이 쏟아져 끝까지 읽을 수 없었다. 앞으로 시를 통해 여성 독립유공자 200여명의 숭고한 일생을 재조명해 보고 싶다.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무덤 유실된 공동묘지에 순국비 세워

    무덤 유실된 공동묘지에 순국비 세워

    이범진은 1895년 러시아,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 유럽 3개국 주재 공사로 임명되었다. 그는 1901년 러시아 상주 공사로 임명되어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오기 전에는 주로 파리에 머물며 활동했다. 이 시기 이범진이 러시아에 올 때 그가 숙소 겸 임시 사무소로 활용했던 곳이 바로 모스크바 역사 옆에 붙어 있는 옥탸브리스카야 호텔이다. 이 호텔은 1851년 모스크바와 페테르부르크 사이의 철도교통이 시작되면서 차르의 명에 따라 건설된 것인데, 처음에는 즈나멘스카야 호텔로 불리다 19세기 후반에는 세베르나야 혹은 볼샤야 세베르나야 호텔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리고 다시 러시아 혁명 이후 1930년에 옥탸브리스카야 호텔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 호텔 앞에는 원형의 봉기광장이 있고 넵스키 대로를 통해 예르미타시(동궁)로 이어진다. ●공사시절 푸시킨 살던 거리에서 살아 이범진은 1901년 6월경 페테르부르크로 와서 상주공사직을 수행했는데 이때 세묘놉스카야 거리 11번지에서 잠시 체류하다 1901년 11월 이후로는 판텔레이몬스카야 거리 5번지에서 살았다. 이곳에 공사관을 설치하고 1905년 6월까지 근무했던 것이다. 이 건물 3층 6호와 7호에 공사관이 위치했다. 우리 정부는 이 건물 1층 벽면에 ‘이 건물에서는 1901년부터 1905년까지 이범진 러시아 주재 대한제국 초대 상주공사가 집무하셨습니다.’라는 내용의 현판을 부착했다. 이 거리는 지금 페스텔랴 거리로 이름이 바뀌었다. 러시아의 대문호 푸시킨도 이곳에서 1833~34년 가족과 함께 살았다. 푸시킨은 이 집에서 ‘어부와 물고기 이야기’ ‘청동의 기사’ ‘푸가초프 반란사’ ‘안젤로’ 등의 작품을 완성했다. 이범진 공사도 때때로 이 정원을 거닐며 깊은 사색에 잠겼을 것이다. 1905년 6월 공사관이 폐쇄된 후 이범진은 노바야 데레브냐의 체르노레첸스카야 거리 5번지로 옮겨 살았다. 이곳은 당시 목재로 지은 별장들이 많던 교외인데 이범진은 방 6개가 달린 2층 집에서 비서들과 함께 살았다. 당시 페테르부르크 신문 기사에 의하면 이범진은 이웃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그가 외출하려고 나갈 때면 사람들이 몰려와서 “왕자님, 조선 왕자님” 하며 인사를 했다고 한다. 그는 1911년 1월 13일 12시 거실 천장의 전등에 밧줄을 달고 목매 자살했다. 이범진이 순국한 집은 체르노레첸스카야 거리 5번지와 란스코예 도로 5번지가 만나는 지점에 있었는데 오래전에 도시 개발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러시아 정부, 장례식 때 황족 대우 이범진의 시신은 페트로파블롭스카야 병원으로 옮겨져 영안실에 안장되었다. 현재 리바 톨스토고 거리 5번지에 위치한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의과대학 병원의 제5병동(외래환자진료병동)이 바로 이 병원이다. 1911년 1월 21일 영안실 예배당에서 이범진의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이날은 유독 날씨가 추웠고 눈도 많이 내렸고 바람도 많이 불었다. 이범진의 관은 6마리의 말이 이끄는 흰 마차에 실려 핀란드역까지 옮겨지고 이후 운구 열차로 운반되었다. 러시아 정부가 이 마차를 제공한 것은 그에게 황족의 대우를 해준 것이다. 시신은 상트페테르부르크 주의 파로골로보 구역에 있는 우스펜스코예 공동묘지에 묻혔다. 이 묘지는 1950년대에 세비르노예(북부) 공동묘지로 명칭이 바뀌었다. 그의 묘지는 루터파 신도들의 매장 구역에 있었지만 오랜 세월 여러 차례에 걸친 묘지 정리 과정에서 유실됐다. 지난 2002년 우리 정부는 이범진 공사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여 이 묘지에 이범진 공사 순국비를 세워 고혼을 위로하고 있다. 전현수 교수
  • 현충원 ‘이상한’ 묘역 배치

    현충원 ‘이상한’ 묘역 배치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임시정부 요인들의 묘역 위치를 둘러싼 논란이 거세다. 임시정부 요인들이 예우는커녕 홀대를 받고 있다는 게 논란의 초점이다. 독립유공자 유족들은 임시정부 요인들이 장군들 묘역 아래에 배치돼 마치 장군들의 휘하인 듯한 모습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친일 논란에 휩싸인 장군들의 묘가 장군 묘역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 자체에 더 분노하는 상황이다. ●장군들에 지휘받는 형국 국립 서울현충원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역을 정점으로 피라미드형 구조를 갖추고 있다. 가장 길지(吉地)로 꼽히는 꼭대기 박 전 대통령 묘소 바로 아래 장군 제1묘역이 배치돼 있다. 장군 제1묘역을 중심으로 김대중·이승만 전 대통령 묘소가 있다. 임시요인 묘역은 멀리 떨어진 장군 제2·제3묘역 아래 놓여 있다. 이곳에는 임시정부 대통령을 지낸 박은식 선생을 비롯, 대한매일신보 초대 총무이자 임시정부 국무령을 지낸 양기탁 선생, 독립군 양성소인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이상룡 선생 등 대한민국 건국의 토대를 닦은 독립운동가들이 안장돼 있다. 심지어 장군 제2·제3묘역에는 친일 인물들도 다수 포함돼 있다. 제2묘역의 이응준 장군은 일본 육사 출신으로 일제가 징병제를 실시하자 “기다리던 징병제가 실시됐다.”며 청년들의 참전을 선동, 대좌(대령)까지 올랐다. 제3묘역의 정일권 장군은 만주에서 헌병 상위(대위)로 활동한 전력이 있으며, 이종찬 장군은 일본군 공병 소좌(소령) 출신으로 일제로부터 훈장까지 받았다. 대전현충원의 상황도 별로 다르지 않다. 백범 김구 선생 암살의 배후로 지목받는 김창룡 장군의 묘소는 김구 선생의 어머니 곽락원 여사와 아들 김인 선생의 위에 있다. 이에 대해 독립유공자 유족들은 “현충원의 전체적인 배치를 바꾸든지 친일 인물들을 이장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초대 독립군 사령관이었던 지청천 장군의 외손자 이준식씨는 “백선엽 장군의 경우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친일인사로 규정했는데, 이런 인물이 임정 요인들의 머리 위에 안장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보훈처·국방부 책임 떠넘기기만 그러나 국립묘지 운영을 담당하는 국가보훈처와 국방부는 책임만 떠넘기고 있다. 보훈처 관계자는 “서울현충원은 국방부가 관리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국방부 측은 “애당초 설계에 문제가 있었다.”면서도 “하지만 안장 여부와 위치 결정은 보훈처 소관이어서 친일 논란이 있는 사람이라도 국방부가 막을 방법은 없다.”고 해명했다. 한 독립유공자단체 관계자는 “현충원 묘역 배치는 독립유공자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라면서 “예우 차원에서 재배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동현기자 moses@seoul.co.kr
  • 조봉암 선생 ‘독립유공자’ 또 보류

    조봉암 선생 ‘독립유공자’ 또 보류

    국가보훈처가 9일 죽산 조봉암 선생에 대한 독립유공자 선정 결정을 또다시 보류한 것으로 확인됐다. 대법원이 지난 1월 재심을 통해 조 선생에 대해 무죄 판결을 선고한 것과는 배치되는 결정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복수의 정부 관계자는 9일 “국가보훈처 공적심사위원회가 조 선생을 독립유공자로 선정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면서 “조 선생의 과거 행적이 문제가 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1898년 9월 25일 인천 강화에서 태어난 조 선생은 1919년 3·1운동에 참가했다가 복역한 뒤부터 광복 때까지 사회주의 사상에 입각한 항일 독립운동을 벌였다. 조선공산당 조직에 참가하기도 했던 조 선생은 46년 박헌영에게 충고하는 공개서한을 발표하며 공산당과 결별한 뒤 제헌의원, 초대 농림부 장관, 국회 부의장을 지냈고 2·3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낙선하기도 했다. ‘평화통일론’을 내걸고 진보당을 이끌며 이승만 대통령과 경쟁해온 조 선생은 1958년 1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돼 대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이듬해 처형됐다. 이와 관련,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2007년 9월 조 선생과 유족에 대한 명예회복을 국가에 권고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도 지난 1월 52년 만의 재심을 통해 조 선생의 간첩죄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보훈처 관계자는 “조 선생의 사회주의 행적이나 공산당 활동이 서훈 심사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면서도 “다만 독립유공자로 선정하기에는 일제 말기의 부적절한 행적이 확인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유족과 시민 단체 등은 크게 반발했다. ‘조봉암 선생 명예회복 범민족추진위’ 조인환(78) 운영위원장은 “국가보훈처가 지난해에는 ‘사법부의 재심 결과가 나오면 그 판단을 존중해 공적 재심사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하고는 이번에는 명확한 이유도 밝히지 않고 있다.”면서 “사안은 다르지만 5공 비자금 조성에 관여한 혐의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은 고(故) 안현태 전 청와대 경호실장에 대해선 복권됐다는 이유로 국립묘지 안장을 승인해주고, 조 선생에 대해선 번번이 서훈 결정을 미루는 게 과연 형평성을 갖춘 온당한 처사냐.”고 꼬집었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부고] 영화음악 작곡가 이철혁씨

    이철혁(본명 이경수) 한국영화음악작곡가협회 회장이 8일 오전 5시 25분 별세했다. 77세. 전남 영암 출생인 고인은 1971년 영화 ‘아름다운 팔도강산’을 시작으로 ‘푸른교실’(1976), ‘감자’(1987), ‘싸울아비’(2001) 등 40년간 400여편에 이르는 영화음악 작업을 했다. 1992년에는 317편의 영화음악을 작곡해 기네스북 예술장르 부문 영화음악 편에 ‘최다 작곡 기록 보유자’로 등재됐다. 대중가요도 많이 남겼다.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를 편곡한 것을 비롯해 최정자의 ‘처녀농군’, 김상희의 ‘빗속의 연가’, 패티김의 ‘추억 속에 혼자 걸었네’, 정훈희의 ‘풀꽃반지’ 등을 작곡했다. 유족은 부인 김희자씨와 2남 1녀. 차남 태규씨는 2004년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로 대종상영화제 음향상을 받았다. 빈소는 고려대 안암병원 305실. 발인은 10일 오전 8시. 장지는 경기 양평군 팔당공원묘지. (02)923-4442.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인사]

    ■국가보훈처 ◇과장급 전보 △공훈심사과장 정관회△국립임실호국원장 최기용◇일반계약직공무원 임용△국립4·19민주묘지관리소장 천영택 ■특허청 ◇부이사관 전보 △특허심판원 심판정책과장 이해평◇기술서기관 전보△기계금속건설심사국 정밀기계심사과 김병남△〃 공조기계심사과 강정석△화학생명공학심사국 약품화학심사과 임혜준△특허심판원 송무팀 임형근 ■서울대 △그린바이오과학기술연구원장 조성인 ■한국은행 ◇국·실·부장 등 보임 △정보서비스실장 이홍철△법규〃 이희원△비서〃 손민호△금융결제국장 이중식△베이징사무소 상하이주재 준비 오인석△외자운용원 운용지원부장 이문형△대전충남본부장 오재권△강남〃 서정곤◇국외사무소 이동 <3급>△뉴욕사무소(워싱턴주재) 김기원△프랑크푸르트사무소 홍경식△런던사무소 장기선<4급>△뉴욕사무소 이관교△베이징사무소 김명식
  • ‘5공 비리’ 안현태 현충원 안장 결정 하루만에… 군사비밀작전 하듯 ‘기습’ 안장

    ‘5공 비리’ 안현태 현충원 안장 결정 하루만에… 군사비밀작전 하듯 ‘기습’ 안장

    5공화국 시절 청와대 경호실장을 지낸 고(故) 안현태 전 육군 소장이 지난 6일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국가보훈처 국립묘지 안장 대상 심의위원회가 5·18 관련 단체들의 반발과 졸속 심사 논란을 무릅쓰고 안씨의 현충원 안장을 결정한 지 단 하루 만이다. 국가보훈처는 “6일 오전 11시 안씨에 대한 안장식이 유족과 지인 등이 참석한 가운데 장군 2묘역에서 열렸다.”고 7일 밝혔다. 안장식에는 5공 때 안씨에게 청와대 경호실장직을 물려준 장세동 전 안기부장 등 5공 출신 인사들도 상당수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5·18 관련 단체들은 ‘기습 안장’이라며 비판하고 나섰다. 5·18 기념재단 등은 지난 6월 25일 지병으로 숨진 안씨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자금 조성에 관여하며 뇌물을 받은 혐의 등으로 1997년 징역 2년 6개월 형을 받고 복역한 5공 핵심인물이어서 안장 대상이 아니라고 지적해 왔다. 더구나 관련 단체들은 지난 5일 안장 대상 심의위의 심사결과에 반발, 효력정지 가처분신청과 취소 소송을 내는 등 법적 대응에 나설 계획이었다. 심의위 결정 하루 만에 안장식을 가진 것도 이런 법적 대응을 의식한 기습 안장이라는 게 관련 단체들의 주장이다. 5·18 기념재단 송선태 상임이사는 “안장 결정이 난 지 하루도 지나기 전에 군사 비밀작전을 하듯이 비밀리에 안장하는 것을 보니 씁쓸하다.”면서 “이번 주 중으로 대책회의를 열어 대응방안을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씨줄날줄] 국립묘지/박대출 논설위원

    칠백의총(七百義塚)은 사적 제105호다. 임진왜란 때 전사한 700의사를 모신 곳이다. 조헌의 문인(門人) 박정량 등이 세웠다. 민간이 주최였으니 국립묘지는 아니다. 지금은 국가가 사적으로 관리한다. 국영묘지인 셈이다. 현대식 국립묘지 1호는 국군묘지다. 1955년 서울 동작동에 조성됐다. 1985년 대전에 하나 더 지어졌다. 전자는 국립현충원으로, 후자는 국립대전현충원으로 불린다. 국립 4·19묘지, 국립 3·15묘지, 국립 5·18묘지도 있다. 국립 호국원은 영천, 임실, 이천 등 3곳에 있다. 따라서 국립묘지는 8개다. 국립현충원의 첫 주인은 무명용사다. 1956년 1월 16일 안장됐다. 캐나다 출신 선교사 스코필드는 외국인 1호다. 한국식 이름은 석호필(石虎弼)이다. 그는 애국지사 묘역에 모셔져 있다. 애국 선열 200여위가 안장된 곳이다. 이갑성(李甲成)도 함께 있다.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이다. 건국훈장 대통령장도 받았고, 장례는 국민장으로 치러졌다. 그런데 친일 논란에 휩싸였다. 석호필류(類)는 문제 없다. 이갑성류는 논란이 된다. 5공(共) 인사는 이 범주에 든다. 유학성 전 의원이 스타트를 끊었다. 그는 12·12 쿠데타와 관련해 항소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대법원 확정 판결 2주 전에 사망했다. 대법원은 공소를 기각했다. 법적으론 하자가 없게 됐다. 육군 대장의 경력만 인정받았다. 결국 2006년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사자(死者)의 권리만 살아남았다. 이번엔 안현태씨가 논란거리다. 그는 육군 소장 출신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경호실장을 지냈다. 지난 6월 25일 지병으로 숨졌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뇌물 등) 위반으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이듬해 사면돼 잔형 집행 면제를 받았다. 1년 뒤 복권도 이뤄졌다. 그래서 국가보훈처는 국립대전현충원 안장을 결정했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과 맞물려 논란이 커졌다. 노 전 대통령의 경우 건강 악화로 더 민감한 사안이 됐다. 국립묘지법 제5조 3항은 안장 배제 대상을 명시하고 있다. 국가보안법 위반행위로 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고 형이 확정되면 배제된다. 범죄로 금고 1년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고 형이 확정돼도 마찬가지다. 사면 복권되면 어떤 경우에 해당될까. 이 조항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유권해석이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조항도 있다. ‘국립묘지의 영예성을 훼손한다고 인정된 사람’. 앞으론 이 대목에 더 신경써야 할 것 같다. 박대출 논설위원 dcpark@seoul.co.kr
  • 광주아시아인권학교 8일 개막

    아시아 인권 활동가들의 소통 공간인 ‘광주아시아인권학교’가 8일부터 3주 동안 열린다. 5·18기념재단은 세계 16개국 22명의 인권·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올해 8번째 맞는 광주아시아인권학교에 참가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서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판문점, 김대중도서관, 5·18묘지 등을 방문할 예정. 이어 한국 민주화운동사, 남북관계, 과거사청산 등과 관련한 강좌에 참석하고 국내 시민사회 활동가들도 만난다. 수료식은 오는 25일 전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열린다. 인권학교 사업은 5·18기념재단과 전남대학교 공익인권법센터가 공동 주관하고 성공회대학교가 후원한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5공 비리’ 안현태 국립묘지 안장 논란

    ‘5공 비리’ 안현태 국립묘지 안장 논란

    국가보훈처가 5일 전두환 정권 때 대통령 경호실장을 지낸 고(故) 안현태 전 육군 소장의 국립대전현충원 안장을 의결해 논란이 예상된다. 지난 6월 25일 지병으로 사망한 안씨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자금 조성에 관여하며 뇌물을 받은 혐의 등으로 1997년 징역 2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던 대표적인 ‘5공 인물’이라는 이유로 5·18 관련 단체들이 이번 보훈처의 결정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보훈처는 “국립묘지 안장 대상 심의위원회가 서류심사를 통해 안씨를 국립묘지 안장 대상자로 심의·의결했다.”고 밝혔다. 보훈처는 일부 민간위원들의 반발로 앞서 두 차례 심의에서 결론이 나지 않자 서면심의로 대체하고 표결로 안씨의 안장을 의결했다. 보훈처는 15명의 심의위원들 가운데 9명이 표결에 참여해 정부 측 위원 6명과 민간위원 2명이 찬성했고, 1명이 반대했다고 밝혔다. 민간위원 3명은 이번 서면심의에 반발해 사퇴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현행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는 ‘금고 1년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거나 국립묘지 영예성을 훼손한 경우에 안장 비대상으로 심의·의결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보훈처는 이번 심의 결과와 관련, “안씨가 1998년 특별복권됐으며 베트남에 파병돼 국위를 선양한 점, 1968년 1·21사태 때 청와대 침투 무장공비를 사살해 화랑무공훈장을 받은 점, 전역 후 대통령 경호실장을 지내며 국가안보에 기여한 점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부에선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군사 쿠데타에 가담했던 예비역 장성들과 ‘율곡사업 비리’ 등 각종 비리로 복역했던 예비역 장성들의 입김이 이번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번 의결에 따라 비리 연루자 등도 국립묘지 안장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5·18 기념재단 송선태 상임이사는 “이번 결정은 5공 부활의 서곡이자 역사를 31년 전으로 되돌리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관련 단체들은 이번 결정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신청과 취소 소송을 내는 등 법적 대응에 나설 방침이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5共 경호실장 故 안현태씨 국립묘지 안장 논의에 반발

    제5공화국시절 청와대 경호실장을 지낸 고 안현태씨의 국립묘지 안장이 논의되면서 5·18 관련 단체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4일 5·18 기념재단 등에 따르면 국가보훈처는 최근 두 차례의 국립묘지 안장 대상 심의위원회에서 안씨의 국립묘지 안장 여부를 논의했다. 지난 6월 25일 지병으로 숨진 안씨는 육군 소장으로 예편해 자격은 있지만, 금고 이상의 형을 받아 위원회의 심사를 거쳐야만 안장될 수 있다. 그동안 위원회는 상습도박·무고죄로 집행유예를 선고받거나 사기죄로 징역형을 받은 국가유공자도 국립묘지 안장 대상에서 제외하는 등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 왔다. 위원회는 논란 끝에 결정을 미루고 5일 다시 회의를 열기로 했다. 5·18 단체들은 “민주주의와 헌정질서를 어지럽힌 인물을 국립묘지에 안장하는 것은 역사적 죄를 짓는 행위”라며 반발하고 있다. 재단의 한 관계자는 “국립묘지는 애국자와 국가발전에 헌신한 사람 중에서도 국가적으로 존경받는 인물이 안장되는 곳”이라며 “5월 학살을 주도한 전두환 정권의 핵심 인물을 이곳에 안장하는 것은 국민을 모독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안씨는 육군사관학교(17기)를 졸업한 ‘하나회’ 출신으로, 수경사 30경비단장과 공수여단장, 전두환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청와대 경호실 차장 등을 거쳤다. 광주 최종필기자 choijp@seoul.co.kr
  • 묘가 2억6000만원? 호화판 묘지공원 화제

    웬만한 아파트 값에 매물로 나온 가족묘가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한 묘지공원에 있는 가족묘가 25만 달러(약 2억6000만원)에 매물로 나왔다. 가족묘 앞에는 ‘On sale’이라는 팻말이 걸려 있다. 억대의 가족묘가 있는 곳은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레콜레타 공원묘지다. 아직도 아르헨티나의 국모로 추앙받는 에바 페론의 가족묘가 있는 유명한 곳이다. 매물로 나온 가족묘는 에바 페론 가족묘와 맞붙어 있다. 레콜레타 공원묘지의 가족묘는 모두 대리석 등으로 호화롭게 꾸민 주택형으로 유명하다. 보통 지하와 1층 구조로 만들어져 있다. 호화판 주택형 가족묘는 비싸기로도 유명하다. 공원묘지 관리자는 “공원 내 위치와 주변 환경, 건축물의 예술성에 따라 가장 싼 게 20만 달러(약 2억1000만원), 비싼 건 최고 50만 달러(약 5억2500만원)까지 값이 나간다.”고 밝혔다. 외국인 등 관광객이 매일 평균 2000명이 호화판 가족묘를 구경하기 위해 공원묘지를 방문하고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61년전 생이별 부친 명예회복 이제 시작”

    “61년전 생이별 부친 명예회복 이제 시작”

    “여든이 다 된 노인이 백주대낮에 부끄러운 것도 모르고 길거리에서 엉엉 울었어요. 제가 죽기 전에 조금이라도 아버지의 명예를 되찾아 다행이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멉니다.” 61년 전 생이별한 아버지가 정부로부터 납북자로 인정받은 날, 어느덧 80세의 나이를 바라보는 아들은 벅차오르는 기쁨과 복받치는 회한에 말을 잇지 못했다. ●“5년전 평양 묘지에 안장 확인” 6·25 전쟁 중 납북자로 인정받은 김상덕(1891~?) 전 제헌국회의원의 아들 김정륙(76) 임시정부기념사업회 부회장은 2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아버지의 납북 경위와 그간 납북자의 자식으로서 처절하게 살아야 했던 지난날을 털어놓았다. 세파의 고초를 겪은 그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지만, 아버지가 북으로 끌려가던 1950년 7월의 그날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전쟁이 터지자 이 박사(이승만 전 대통령)는 라디오를 통해 ‘우리가 곧 반격하니 도망가지 말라. 서울을 사수하고 나도 여기 있겠다.’고 말했어요. 이 박사의 안심하라는 말만 믿고 아버지와 저는 서울에 남아 있었죠. 반민특위 위원장을 지낸 아버지는 납북을 피해 돈화문 근처 친척집으로 피신했어요. 안심하라던 이 박사는 이미 남쪽으로 피한 뒤였죠.” 그렇게 집에서 숨어 지낸 지 20여일이 지난 7월 초순, 비극이 시작됐다. 아들이 아프다는 소식을 들은 김 전 의원이 필동 자택을 찾은 것. 어디서 소식을 들었는지 이내 인민군이 집으로 쳐들어왔고 그렇게 아버지와 이별했다. 인민군은 “남쪽에서 훌륭한 사업(반민특위)을 하신 어른이시니 걱정말라. 조금 있다가 돌아오실거다.”고 했지만 김 전 의원은 돌아오지 않았다. 2006년 남북교류를 통해 평양을 방문한 아들은 아버지가 평양 외곽의 한 묘지에 묻혀 있는 것을 확인했다. ●“영전에 무궁화훈장 바쳤으면…” “아버지는 분명히 북한에 강제로 잡혀갔음에도 과거 정부로부터 이적행위자 취급을 받았어요.” 김 전 의원은 1990년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았다. 김 부회장의 소원은 두 가지다. 다른 제헌의원들처럼 무궁화 훈장을 받아 아버지 영전에 바치고, 아버지가 못다 이룬 친일을 청산하는 것. 그는 “납북자의 명예회복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면서 “정확한 사인을 밝히고 추가 납북자 규명을 위해 남북관계부터 정상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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