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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火魔가 삼킨 ‘꿈’ 소방관은 웁니다

    火魔가 삼킨 ‘꿈’ 소방관은 웁니다

    주인을 잃었지만 사물함 속 구조장갑, 장화, 방화복 등은 여전했다. 개인 용구 위에 지난 3일 오후 소방서로 배달된 물건이 하나 더해졌다. 포장도 뜯기지 않은 채였다. 경기 송탄소방서 119구조대원 한상윤 소방교가 화마 속에서 숨진 그 시간 직후, 소방서에는 캠핑용 테이블이 도착했다. 한 소방교는 세 살배기 쌍둥이 아들 둘과 임신 5개월째인 부인(29)과 함께 여행을 떠나겠다며 주변 동료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하곤 했다. 24시간 격일제 근무를 하는 소방관으로서 단 하루의 휴무일이지만, 쌍둥이들과 노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피로회복제이자 보약이었다. 캠핑용 테이블은 여행에 가져가기 위해 주문한 것이었다. 이날 오전 경기 평택 가구전시장 화재 현장에서 진화 작업을 하다 2층 건물이 무너지며 숨진 한상윤 소방교의 애틋한 사연이 알려지자, 전국 소방공무원들의 추모 열기가 확산되고 있다. 함께 순직한 이재만 소방장 역시 10살, 8살 생때같은 두 아들을 둔 가장으로 친형(이재광씨)도 화성소방서 소속 소방관이어서 안타까움을 더했다. 동료 안바우 소방장은 “얼마 전 텐트를 장만했다며 뿌듯해했는데 사고 직후 도착한 물건을 보니 우리의 억장이 더 무너진다.”면서 “훌륭한 동료 두 명을 한꺼번에 잃어 망연자실하고 있을 따름이다.”라고 말했다. 소방방재청 관계자는 4일 “화재 진압 중 일어난 순직 사고는 2008년 6명에 이어 3년 만의 일”이라며 “전국 3만 5000여 소방공무원들이 자발적으로 조의금 모금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경기도, 행정안전부, 보훈처 등과 논의를 거쳐 1계급 특별승진, 옥조근정훈장 추서, 국가유공자 지정, 국립묘지 안장 등을 후속 조치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재만 소방장과 한상윤 소방교에 대한 영결식은 5일 오전 송탄소방서에서 소방서장으로 치러진다. 한편 소방공무원의 공무 중 사상자는 경기지역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 소방본부에 따르면 2005~2009년 5년 동안 도내에서 소방관 364명이 화재진압과 구조·구급 등의 활동을 하다 순직하거나 다쳤다. 이는 같은 기간 전국 1560명의 23.3%에 이르는 것으로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치이다. 이처럼 경기도 내에서 공사상자가 많은 것은 위험성이 큰 대규모 공장과 창고·위험물 시설 등이 밀집해 있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특정 소방대상 시설은 전국의 15.6%나 몰려 있고, 위험물을 제조하는 곳도 19.9%로 전국에서 가장 많다. 하지만 도내 소방관 한 명이 담당하는 주민 수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2062명에 달한다. 경기소방본부 관계자는 “경기도는 면적이 서울의 17배에 달하고, 시설물과 차량등록 대수도 전국에서 가장 많은 등 상대적으로 위험요소를 많이 안고 있다.”고 말했다. 박록삼·김병철기자 youngtan@seoul.co.kr
  • 역사 에세이 ‘임형주, 장희빈을 부르다’ 펴낸 파페라 테너 임형주

    역사 에세이 ‘임형주, 장희빈을 부르다’ 펴낸 파페라 테너 임형주

    파페라 테너가 책을 썼다. 서점가에 넘쳐나는 자전 에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역사 에세이란다. 예약주문이 몰려 지난달 15일 초판으로 1만 5000부를 찍었다. 그런데 다 팔려 나갔다. 1만부를 더 찍었다. 궁금해서 책을 잡았다. ‘요부’ ‘팜므파탈’의 화신으로 각인된 장희빈이 주인공이다. 우리가 알던 모습과는 다르다. 첩의 딸로 태어났지만, 계급사회의 장벽을 넘어 국모(國母)까지 오른 신여성, 남인과 서인이 벌이는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 아들(경종)의 안위를 위해 목숨마저 내놓은 모성애를 가진 여인으로 재해석한 것. 30일 서울 태평로의 한 식당에서 ‘임형주, 장희빈을 부르다’를 펴낸 작가 임형주(25)를 만났다. ●계급사회 넘은 신여성으로 재해석 책이 잘 팔린다고 운을 띄웠다. 쑥스러운지 배시시 웃었다. “처음에는 상업적으로나 작품성 모두 불안했다. 관둘까 수십 번 고민했다. 하지만 장희빈이란 인물에 매료된 세월이 너무 길었다. 서른, 마흔이 되면 내 틀에 갇혀 모험하지 못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막무가내처럼 지른 거다.” 왜 장희빈이었을까. 어릴 적 자주 놀러 가던 외할아버지댁 서가에는 역사책이 빽빽했다. 수많은 위인을 제쳐두고 소년 임형주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장희빈이었다. 당시 드라마 ‘장희빈’(1995)에서 정선경이 연기한 표독스러운 눈빛에 마음이 흔들렸단다. “할아버지는 장희빈과 인현왕후, 숙종 사이에 얽힌 정치적 관계를 내 눈높이에 맞춰 설명해 줬다. 역사란 후대의 평가와 해석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어렴풋이 알게 됐다.” 책의 에필로그에는 꿈에서 장희빈과 조우한 대목이 나온다. 진짜냐고 물었다. 그는 “많은 분이 책 팔려고 꾸며낸 얘기 아니냐고 하더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이어 “사람이 어떤 일에 몰두하면 꿈에도 나오지 않나. 에필로그에 쓴 것처럼 긴 대화가 오간 건 물론 아니지만, 꿈에서 만난 건 분명하다.”면서 “어쩌면 서오릉에 있는 그녀의 묘지에 갔다 와서 그런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꿈에서까지 장희빈 만났죠” 지난 2년 장희빈과 동거한 느낌이라고도 했다. “외국공연을 가는 비행기에서, 공연장과 방송국 대기실, 동네 카페에서 틈틈이 자료를 읽고 메모를 했다. 어른들 말씀으로는 너무 혼령을 오래 갖고 있으면 안 좋다고 하더라. 이젠 그 분을 떠나보내야겠다.”(웃음) 방송기자가 꿈이었다는 그는 앞으로도 글쓰기를 놓을 생각이 없다. 차기작 구상도 끝냈다. 이번에는 역사소설이다. 그는 “신라 진성여왕에 꽂혀 있다. 나쁜 여자한테 이상하게 끌린다.”며 웃었다. 이어 “사료가 정말 없어서 역사 에세이보다는 소설로 접근한다. 신라 왕족들의 근친상간은 일반적이었는데 유독 그에게만 음탕하다는 주홍글씨를 씌웠다. 그가 정치를 잘못한 것도 있지만, 그 때문에 신라가 망했다는 건 비약”이라고 강조했다. 작가 이전에 그는 가수다. 지난달부터 6년 만에 전국 투어를 하고 있다. 일본에서 선 발매됐고, 국내에서도 곧 나올 아시아 통합앨범 ‘오리엔탈 러브’를 기념한 공연이다. 그는 “4집 누적 판매량이 10만장인데 요즘 음반시장에서 그 기록을 깨는 건 불가능하다. 판매량이 전부는 아니지만 스스로를 넘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과 부담이 너무 크다.”고 털어놓았다. 내년이면 데뷔 10년째다. 그는 “내년부터 보폭을 넓힌다. 미국에서 정규 1집을 낸다.”면서 “현지 크로스오버 전문 레이블과 계약했다.”고 밝혔다. 그의 이름 앞에는 수많은 ‘역대 최연소’ ‘한국인 최초’ 타이틀이 붙는다. 일부에선 삐딱하게 보기도 한다. ‘최연소’ ‘최초’를 수집하는 건 아니냐는 것. 그는 “어릴 땐 우쭐했다. ‘혹시 최연소인가요’라고 주위에 묻기도 했다.”며 멋쩍게 웃었다. 이어 “요즘은 짐이 된다는 걸 느낀다. ‘최초, 최연소라더니 이것밖에 못 해?’라고 할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글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사진 손형준기자 boltagoo@seoul.co.kr
  • [2011 지방예산 효율화 우수사례] 대통령상 서울시·전북도·용인시의 노하우

    [2011 지방예산 효율화 우수사례] 대통령상 서울시·전북도·용인시의 노하우

    행정안전부와 서울신문이 공동주관한 올해 ‘지방자치단체 예산 효율화 우수사례 발표대회’에서는 무려 207건의 예산절감 사례가 전국에서 올라와 각축을 벌였다. 대통령상을 공동수상한 서울시와 전북도, 경기 용인시를 비롯한 수상 자치단체 33곳은 최대 수백억원에 이르는 예산절감과 함께 재정난 속에서 소정의 교부금도 받게 돼 겹경사를 맞았다. ■ 서울시 - PDA로 과태료 현장 고지 등기비용 등 年21억 절감…시민불편 해소도 “예전엔 꽁초 투기 현장을 적발하면 과태료 사전통지서를 등기우편으로 보냈는데, 40% 이상이 수취인 불명으로 반송됐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현장에서 개인휴대단말기(PDA)를 이용해 즉시 발급함으로써 불필요한 행정력 낭비를 없애게 됐습니다.” ‘과태료 사전통지서 PDA 발급’으로 대통령상을 공동수상한 김근수 서울시 세무과장은 “등기발송에 따른 비용 10억원 등 연간 21억원의 예산절감 효과를 가져왔다.”면서 “특히 자진 납부율이 32%에서 62%로 늘어난 게 고무적”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자진 납부하려는 경우 시민이 전용(가상)계좌를 현장에서 요구하거나 항의전화가 빗발쳐 행정력 낭비가 심했다.”며 “PDA를 통한 현장발급 시스템을 도입함으로써 시민들의 불만을 크게 해소하게 돼 보람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납부 불편에 따른 항의 전화만도 연 4000통을 웃돌았다. 서울시는 그동안 단속 현장에서 위반자의 성명, 주민등록번호, 주소 등 여러 항목에 대해 수기로 기재하고 다시 시스템에 입력하는 등 불편을 겪었다. 당사자들도 사전통지서를 제때 받지 못하거나 잊어버리고 자진납부 때 20% 세액감면 혜택을 놓치는 등 어려움이 많았다. 또 위반자 신원확인 땐 거짓 주민번호를 제공하거나, 담배꽁초를 무단투기했을 경우엔 가족에게 통보돼 갈등을 유발시킨다는 지적도 받아 왔다. 지난해 12월 서울시 세무과 세금연구 동아리 ‘4U-TAX’가 아이디어를 내 기존 자동차번호 영치 PDA 중계 시스템을 재활용한 PDA 발급 시스템을 개발했다. 중계 서버의 재활용으로 개발비용 2억원을 절감했을 뿐만 아니라 주민번호 등 3개 항목만 입력하면 바로 현장에서 사전통지서를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지난 1월 영등포와 용산·서대문구에서 시범 운영한 뒤 3월부터 25개 자치구와 6개 도로사업소로 확대 적용했다. 김 과장은 “사전통지서 PDA 발급으로 연간 64억원의 세입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전국적으로 확대할 경우 연간 245억원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귀띔했다.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전북도 - 체납세 징수방법 개선 경매·공매 동시에… 체납 징수율 전국 1위 전북도가 지난 25일 서울신문과 행정안전부가 공동주최,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열린 ‘2011년 지방자치단체 예산 효율화 우수 사례 발표대회’에서 전국 광역·기초단체가 제출한 6개 분야 207건의 사례 가운데 당당히 1위인 대통령상을 받았다. 전북이 심사위원들로부터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것은 기존의 체납세 징수 방법을 획기적으로 개선했기 때문이다. 종전 경매에 의한 징수는 배당액만 수령하고 남은 체납세를 결손 처분하는 데 그쳤으나 경매와 공매를 동시에 추진해 체납액을 전액 징수했다. 체납자인 ㈜○○개발은 전주시 완산구에 소재한 대형 쇼핑몰이 경기불황으로 사업이 부진하자 2007년 2월부터 재산세 등 27건 4억 8000만원의 지방세를 체납했다. 그러나 금융기관들이 이 쇼핑몰에 대한 경매를 진행해 전북도는 2억 8000만원만 배당받고 나머지 2억원은 받지 못할 상황이었다. 도는 이를 예산절감 과제로 선정해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 방안 마련에 나섰다. 도청 실무진은 고문 변호사들의 자문을 받아 치밀한 체납세금 징수 작전을 펼쳤다. 2년여 동안 부동산 압류, 공매 예고, 납부계획서 제출, 공매 중단 등 우여곡절도 많았다. 하지만 전북도는 공매대행기관과의 유기적인 협조로 과감하고 신속하게 공매를 추진, 체납세 전액을 징수하고 1400만원의 추가 이자수입 효과까지 얻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는 고가의 재산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경기침체를 이유로 지방세를 내지 않는 고질·악성 체납자를 끝까지 추적해 징수한다는 경종을 울려준 모범 사례다. 이와 함께 전북도는 체계적이고 적극적인 체납세 징수 시스템을 구축해 8월 말 현재 체납세 징수율 28.6%로 전국 1위를 차지했다. 체납액도 지난해보다 115억원이나 줄었다. 이인재 전북도 기획관리실장은 “서민들의 성실한 납세 의식을 저하시키고 조세 형평을 크게 훼손하는 고질·악성 체납은 끝까지 추적, 반드시 추징해 건전한 납세 풍토가 실현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용인시 - 공유재산정보 市홈피 공개 거래 활성화로 68억 수입… 공정성 확보도 경기 용인시가 공유재산정보를 시 홈페이지에 공개, 이용 가치를 높이는 방법으로 지방재정 수입을 늘려 서울신문사와 행정안전부가 주관한 ‘2011년도 지방자치단체 예산 효율화 우수사례 발표대회’ 대통령상을 공동수상했다. 세수 감소 등 지방재정이 열악해지는 상황에서 시가 관리하고 있는 임대 가능한 공유재산 정보를 공개, 시민 접근성과 이용 가치를 높여 수익을 늘리자는 판단에서였다. 그동안 공유재산에 대한 임대와 매각은 주로 담당 공무원이 전화민원을 받아 공무원·민원인 간 상담하는 방법으로만 이뤄진 탓에 쌍방 간 설명이 부족하고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었으며, 공유재산을 이용하고 싶은 일반인들 역시 모든 정보를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정보 공간이 부족했다. 이 때문에 시는 홈페이지를 통해 공유재산 대부와 매각 가능 토지정보 공개, 국·공유재산의 사용, 매수방법 등 다양한 정보를 제공, 시책사업에 필요한 자금 확보를 추진한 것이다. 이를 통해 벌어들인 추가 수입은 11월 현재 68억원으로 전년도에 비해 277% 증가했고, 대부수입 또한 전년도에 비해 182% 증가했다. 또 이용 가능한 공유재산 정보를 홈페이지에 공개해 투명하고 공정한 방식으로 공유재산을 빌려 주거나 매각하고 있다는 신뢰도 얻었다. 시는 올해 말까지 시가 보유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보존부적합 토지를 적극 발굴, 매각할 계획이어서 공유재산 매각 수입을 더 늘려 나간다는 방침이다. 또 내년 9월로 예상되는 용인시립장례센터 ‘평온의 숲’ 개장에 맞춰 공시지가가 137억원에 이르는 시립공동묘지 26곳(77만 9600여㎡)의 매각도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국·공유 재산의 효율적인 관리방법에 대한 고민은 이를 관리하는 모든 공무원의 숙원이며 국가·자치단체의 당면과제 중 하나”라며 “공유재산의 정보 공개는 시민들의 알 권리를 충족시킬 뿐만 아니라 공유재산의 수요와 재정건전성 확보, 자주재원을 확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장충식기자 jjang@seoul.co.kr
  • 故 박병선 박사, 인천 가톨릭대에 유산 기부

    故 박병선 박사, 인천 가톨릭대에 유산 기부

    지난 23일 프랑스에서 타계한 재불 서지학자 박병선 박사가 유산 2억원과 장서 9박스를 인천 가톨릭대학교에 기부했다고 천주교 인천교구가 24일 밝혔다. 고인의 유해는 다음 주 중 국립묘지에 안장된다. 가톨릭 신자인 박 박사는 생전에 인천교구의 정신철 세례자요한 보좌 주교와 두터운 친분을 가져왔다. 전달식은 26일 인천교구 설정 50주년 폐막 미사 때 열린다. 인천가톨릭대는 고인의 뜻을 기려 도서관에 ‘박병선 루갈다 전용 도서를 위한 공간’을 마련할 계획이다. 국립묘지안장대상심의위원회(위원장 국가보훈처 차장)는 “서면 심의를 통해 고인이 국가·사회에 현저하게 공헌한 업적을 인정해 고인의 국립묘지 안장을 의결했다.”고 이날 문화체육관광부가 밝혔다. 이날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은 고인의 선종에 애도를 표시하고 서울 용산 국립박물관에 마련된 빈소에 조화와 애도 메시지를 전했다. 김성호 편집위원 kimus@seoul.co.kr
  • [박병선 박사 타계] 타국서 눈감았지만… ‘마지막 안식처’는 고국땅

    [박병선 박사 타계] 타국서 눈감았지만… ‘마지막 안식처’는 고국땅

    고(故) 박병선 박사는 생전에 “나 죽으면 화장해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 해변에 뿌려 달라.”는 말을 자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고인의 유해가 프랑스 바다에 뿌려질 것이란 관측이 제기됐으나 ‘마지막 안식처’는 고국 땅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방선규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정책관은 23일 “박 박사가 유해를 프랑스에 뿌려 달라고 했다는 보도가 나오지만 최근에 유가족과 함께 박 박사에게 직접 확인한 바로는 고국에 묻히고 싶다는 의지가 확고했다.”면서 “국립묘지 납골당에 모실 가능성이 지금으로서는 크다.”고 밝혔다. 방 정책관은 “국립묘지에 안장되려면 1등급 훈장을 받아야 하는데 박 박사는 2등급 훈장”이라면서 “하지만 그에 준하는 현저한 업적이 있으면 국립묘지 안장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 조항을 적용해 국가보훈처 국립묘지안장심의위원회에 심의를 요청했고, 반려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국립묘지 안장이 확정되면 유해는 현지 장례 절차를 마친 뒤 한국으로 온다. 빈소는 파리 한국문화원에 설치됐다. 영결식은 프랑스 파리 7구에 소재한 외방선교회에서 25일(현지시간) 오전 10시 30분에 엄수하기로 했다고 주프랑스 한국대사관(대사 박흥신)이 23일 밝혔다.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과 청주고인쇄박물관 등 두 곳에도 국내 분향소가 마련됐다. 청주는 고인이 발견한 직지심체요절이 ‘태어난’ 곳이다. 직지는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인쇄됐다. 이명박 대통령은 부음을 듣자마자 조전을 보내 유족을 위로했다. 이 대통령은 조전에서 “특히 박 박사의 노력으로 외규장각 의궤가 145년 만에 고국의 품에 안기게 된 것을 우리 국민 모두 감격스럽게 지켜봤다.”면서 “대한민국 국민은 우리 역사와 문화유산에 대한 박 박사의 깊은 애정과 숭고한 업적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라고 추모했다. 고인과 함께 외규장각 도서 환수 운동에 앞장서 온 이태진(서울대 명예교수) 국사편찬위원장은 “반환 운동을 함께 벌이면서 1990년부터 10여 차례 만났는데 그때마다 좋은 말씀을 많이 해 주셨다.”면서 “고인의 열정과 노력을 높게 평가했는데 애석하다.”고 말했다. 생전에 고인과 친분이 두터웠던 서지학자 박상국 한국문화유산연구원장은 해외 출장 중에 부음을 접하고 “해외 문화재 반환의 큰 별이 돌아가셨다.”며 안타까워했다. 박 원장은 “고인이 이룩한 업적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서지학계 및 문화재 반환운동사에서도 기념비적”이라고 평가한 뒤 “외규장각 도서가 이제 막 고국에 돌아왔으니 몇 년만이라도 그 감격을 즐기며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고인이 영구 귀국을 꺼려 한 사연도 털어놓았다. 박 원장은 “언젠가 여쭤 보니 프랑스에서는 연금이 나오고 노후생활 보장이 우리나라보다 훨신 잘돼 있어 영구 귀국을 꺼려 하시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박 박사는 지난해 1월 경기 수원 성빈센트 병원에서 직장암 수술을 받은 뒤 10개월 만에 프랑스로 돌아가 병인양요 관련 저술 준비 작업을 계속해 왔다.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軍 변사자 4명 55년만에 ‘순직’ 명예회복

    군 복무 중 ‘변사(變死)’ 처리됐던 군인이 55년 만에 ‘순직’ 판정을 받았다. 국방부 조사본부 사망사고민원조사단은 6·25전쟁 직후 비상상황과 행정미비 탓에 ‘변사’ 처리됐던 고 이상태 일병 등 4명의 사인을 재조사해 순직으로 바로잡았다고 18일 밝혔다. 1년 6개월간 전국을 수소문하고 당시 전우와 전국 행정기관의 서류를 추적한 끝에 이들 모두 부대업무와 관련된 일로 숨진 것으로 드러났다. 육군본부 전사망심의위원회는 지난달 24일 순직으로 최종 결론지었다. 1953년 입대한 이 일병은 1956년 2월(당시 31세) 경기 연천에서 총기 폭발사고로 숨진 것으로 판명됐다. 이 일병의 아들 영호(63)씨는 “돌아가신 아버지께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리라 생각한다.”면서 “수십년 전 일인데 부산까지 수차례 왕복하며 끝까지 신경 써 준 조사단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민원을 제기한 적도 없는데 처음 조사관들로부터 아버지에 관한 전화를 받았을 때는 보이스피싱인 줄 알았다.”면서 “조사관을 냉랭하고 섭섭하게 대했던 게 미안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 이미 고인이 된 어머니를 국립묘지에 모실 수 있게 됐다. 고(故) 명창재 하사는 1956년 11월 강원도 인제에서 지뢰 폭발로, 정찬효 이병은 1957년 11월 화목 채취 후 복귀하던 중 지뢰 폭발로, 김경한 상병은 1957년 6월 인계철선에 의한 수류탄 폭발로 각각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2006년 창설된 조사단은 지금까지 접수된 군 내 사망사고 민원 630건 가운데 578건을 처리했다. 이 중 123명이 전사·순직으로 정정돼 국가보훈 혜택을 받게 됐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영웅’ 되어 美에 온 이라크 견공

    ‘영웅’ 되어 美에 온 이라크 견공

    “정말 예쁜 강아지가 생겼는데 내일 사진 보내줄게.” 2007년 5월 4일 이라크에 파병 중이던 23세의 미군 병사 저스틴 롤린스는 미국에 있는 여자친구 브리트니 머리에게 들뜬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하지만 그것이 롤린스의 마지막 목소리였다. 그는 다음 날 도로 순찰 중 이라크 반군의 폭탄 공격으로 숨졌다. 롤린스의 전우들이 그의 가족에게 보내준 사진 속에서 롤린스는 행복한 표정으로 생후 1주일 된 앳된 강아지를 안고 있었다. ●“강아지 사진 보내줄게” 마지막 전화 2주 뒤 롤린스의 유해가 고향인 뉴햄프셔에 도착했을 때 한 군 장성이 부모에게 “혹시 원하는 게 있느냐.”라고 물었다. 부모는 지체 없이 롤린스가 안고 있었던 강아지를 원한다고 답했다. 어머니 론다는 “롤린스의 강아지를 얻는다면 롤린스의 일부가 돌아왔다고 느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군은 난색을 표시했다. 규정상 전쟁터의 동물을 미국으로 이송하는 건 금지돼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여자친구와 가족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뉴햄프셔 상원의원과 주지사 등에게 군을 설득해 달라고 호소했다. 또 지역 신문을 통해 사연을 알리자 많은 시민들이 편을 들어줬다. 결국 군은 가족들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결정했다. 롤린스의 전우들은 먼 길을 떠날 강아지를 깨끗이 목욕시켰다. 자원봉사자들이 댄 비용으로 강아지는 민간 운송업체 항공편을 통해 최근 뉴햄프셔로 왔다. 부모는 강아지의 이름을 ‘히어로’(영웅)라고 지었다. 그리고 지난 9일(현지시간) 재향군인의 날을 앞두고 이제는 성인 개가 다 된 히어로와 롤린스의 부모, 여자친구 머리가 알링턴 국립묘지의 롤린스 묘역을 찾았다고 워싱턴포스트가 11일 보도했다. 히어로를 실어나를 비싼 항공료는 한 방송사가 후원했다. 그 방송사는 히어로의 이야기를 14일 방영할 예정이다. ●아들 묘역 찾은 ‘히어로’ 애도하는 듯 히어로는 롤린스의 묘역에 코를 대고 연신 킁킁거렸다. 그런 히어로를 쓰다듬으며 아버지 미첼은 말했다. “저스틴을 다시 만나니 좋으냐. 네 털을 여기 좀 남겨다오. 저스틴이 아마 좋아할 거야.”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美 알링턴 국립묘지에 ‘아리랑’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주요 인사와 수천 명의 미국 시민이 운집한 알링턴 국립묘지에 우리의 아리랑 선율이 울려 퍼졌다. ●“우리는 한국서 3년간 피흘리며 싸웠다” 미 대통령이 가장 각별한 공을 들이는 행사 중 하나인 재향군인의 날 기념식이 거행된 11일(현지시간) 알링턴 국립묘지. 오바마 대통령과 부인 미셸 여사, 리언 패네타 국방장관 등 요인들이 단상에 나타나면서 식이 시작됐다. 미국 국가 연주에 이어 오전 11시 20분쯤 사회자 짐 벤슨 보훈부 홍보국장이 미군이 참전한 주요 전쟁사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 제일 처음 2차 세계대전을 언급한 데 이어 ‘한국전쟁’을 소개하자 당시 전투복을 차려입은 병사가 단상 앞으로 나와 부동자세로 정렬했다. 곧이어 우리 귀에 익은 아리랑이 배경음악으로 30여초간 아름답게 연주됐고, 이 장면은 주요 방송을 통해 미국 전역에 생중계됐다. 벤슨 국장은 “우리는 한국의 포크 촙 힐(경기 연천 서북지역), 부산, 인천 등에서 자유를 지키기 위해 3년간 피를 흘리며 싸웠다.”는 설명을 곁들였고 참석자들은 박수로 화답했다. 이어 베트남전 등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잠시 후 등단한 오바마 대통령은 연설을 통해 “전쟁의 파도가 물러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오사마 빈라덴 사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군 철수 계획, 리비아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 축출 사실 등을 거론하면서 “10년간의 전쟁 끝에 우리가 이제 건설할 필요가 있는 국가는 우리나라이다.”라고 지적했다. ●오바마 “전쟁의 파도 물러나고 있다” 그는 “참전군인들의 헌신은 빈라덴을 궁극적으로 심판했고 카다피의 잔혹한 독재를 끝내는 데 도움을 줬다.”면서 “친애하는 미국 국민 여러분, 우리의 군대가 고향으로 돌아오고 있다.”고 강조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무덤서 파낸 29구 시체와 함께 산 러시아男

    무덤서 파낸 29구 시체와 함께 산 러시아男

    공동묘지에서 29구의 여성시체를 파내 집으로 가져와 함께 산 남성이 체포되는 충격적인 사건이 러시아에서 발생했다. 영국 매체 데일리 메일의 보도에 의하면 러시아 니주니노브고로드에 사는 아나톨리 모스크빈(45)은 지역 공동묘지를 돌아다니며 시체와 유골을 파내 집으로 가져왔다. 그는 러시아 서부에 위치한 750여개의 공동묘지에서 시체를 수집했는데, 그의 집에서 발견된 29구의 시체는 모두 15세에서 26세 사이의 여성시체였다. 시체들에는 인형 같은 옷이 입혀졌고 유골만 남은 시신은 스타킹이 신겨져 있었으며 곰 인형으로 분장된 시체도 발견됐다. 그의 엽기적인 행각은 여름 휴가에서 돌아온 부모가 시체를 발견해 경찰에 신고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그는 이웃들로 부터 ‘천재’라 불릴 정도로 13개의 언어를 구사하고, 역사에 대한 조예가 깊어 지역 박물관에서 강의를 하며 몇 권의 책도 쓴 인물임이 알려지면서 더욱 충격을 주고 있다. 그는 평소 관이나 무덤 주변에서 잠을 자는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경찰은 이 남성에 대한 정신감정을 의뢰한 상태다. 사진=데일리 메일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통신원 김경태 tvbodaga@hanmail.net
  • 中 화궈펑 묘지 ‘축구장 14개 크기’

    마오쩌둥 사후 잠시 중국을 이끌었던 전 국가주석 화궈펑(華國鋒)의 새 묘지가 진시황 등 봉건 제후들의 묘역만큼이나 웅장한 규모로 조성돼 논란이 되고 있다. 화궈펑의 유골이 베이징 바바오산(八寶山) 혁명공묘에서 지난 3일 고향인 산시(山西)성 뤼량(呂梁)시 자오청(交城)현에 조성된 묘역으로 이장돼 3일간 제사를 지낸 뒤 6일부터 일반에 공개됐다고 반관영통신인 중국신문사가 보도했다. 방대한 규모 때문에 ‘화링’(華)으로도 불리는 화궈펑의 새 묘지는 면적이 축구장 14개 규모인 10만㎡에 이르고 365개의 화강암 계단을 쌓아올린 뒤 그 위에 묘실과 비석 등을 설치했다. ‘H’ 자 형상의 묘비는 5.5m나 된다. 365개의 계단은 그가 1년 365일 당과 국가를 위해 헌신했다는 의미를 담았고, H 자 묘비는 그의 성 이니셜이다. 묘비 높이 5.5m는 그가 55세 때 국가주석에 취임했다는 의미다.뤼량시와 화궈펑 유족은 “고향에 묻히고 싶다.”는 그의 유언에 따라 2009년부터 중앙정부 승인을 얻어 묘역 조성 공사를 진행했다. 뤼량시 측은 호화 묘역 논란에 대해 “농지를 점유하지 말고 민간인들과 다툼을 일으켜서는 안 되며 유적을 파괴해서도 안 된다.”는 3가지 원칙에 따라 황량한 야산에 묘역을 조성했으며 비용은 산림녹화 등을 포함, 1000만 위안(약 17억 5000만원)이 들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각에서 묘역 조성비가 1억 위안이 넘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마오쩌둥 시신이 보관돼 있는 베이징의 ‘마오주석 기념당’(면적 5만 7000㎡)보다 묘역 규모가 크고, 유골을 중국과 타이완 사이에 뿌려 묘지를 남기지 않은 덩샤오핑과도 비교된다는 점에서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사할린 강제동원 한인 묘 1600여기 확인

    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는 일제 강점기 당시 러시아 사할린으로 강제 동원돼 현지에서 사망한 한인 묘 1600여기를 확인했다고 6일 밝혔다. 위원회는 지난 7~8월 사할린 유즈노사할린스크 제1공동묘지에 대한 현장 조사와 자료 분석을 통해 묘 1019기에 한인이 묻힌 사실을 확인했다. 다른 묘 574기도 여러 정황을 고려할 때 한인이 묻힌 것으로 위원회는 추정했다. 위원회는 이번 조사 결과를 종전에 접수한 강제 동원 피해 신고 사례와 대조해 현지에 묻힌 강제 동원 피해자 22명의 국내 유족을 확인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60여년 만에 피해자와 유족을 연결할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로마제국 멸망 뒤에 영국 악천후 있었다?

    로마제국 멸망 뒤에 영국 악천후 있었다?

    로마제국은 영국 날씨 탓에 망했다? 영국의 흐리고 음산한 날씨가 고대 로마제국의 멸망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돼 눈길을 끌고있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5일(현지시간) 기원후 1세기 현재 런던지역에 거주했던 고대 로마인들이 영국의 고약한 날씨 탓에 영양실조 등 건강 악화를 겪었고 이 때문에 런던을 떠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런던박물관의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연구팀은 고대 로마시대 런던에 거주했던 2만2천여명의 유골을 조사한 결과 런던 남쪽 공동묘지에 묻힌 남성의 18%가 비타민C 부족과 알코올·육류 과다 섭취로 인한 통풍을 앓았다고 밝혔다. 또 서쪽 공동묘지에 묻힌 사람의 8%는 치아에 구멍 등 손상이 있었다. 당시 런던에는 과일이 부족해 이 지역 로마인들은 영양실조를 겪었으며, 습한 환경 때문에 독감도 앓은 것으로 조사됐다. 연구진은 영국에서 이집트 사막까지 드넓은 지역을 정복한 고대 로마제국이 영국의 음산한 날씨라는 복병을 만났고 이런 기후가 로마인들이 런던을 떠나는 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청산되지 못한 역사… 친일 소송 때마다 안타까워”

    “청산되지 못한 역사… 친일 소송 때마다 안타까워”

    “친일 관련 소송을 할 때마다 정말 안타까울 뿐입니다.” 제5회 ‘임종국상’ 사회 부문 수상자로 결정된 이민석(42) 변호사는 2일 수상 소감에 대한 기쁨보다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 변호사는 친일인명사전 등 다수의 친일 관련 소송을 상대로 싸워 모두 승소한 공로를 인정 받았다. ●친일 관련 소송 모두 이겨 임종국상은 친일 문제 연구에 일생을 바친 문학평론가 임종국(1929~1989)의 뜻을 기려 민족문제연구소가 지난 2005년 제정한 상이다. 임 평론가는 1965년 굴욕적인 한·일협정을 계기로 친일 문제 연구를 시작해 1966년 ‘친일문학론’을 발표했다. ‘친일문학론’은 당시 문단에서 큰 힘을 발휘하던 서정주, 백철 등의 친일 행위를 담아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이 변호사는 1997년 사법시험(39회)에 합격한 뒤 2003년 부산지검 검사로 재직하다 퇴직했다. 평범한 변호사였던 그는 2005년 일본의 우파 월간지 ‘정론’에 기고한 당시 한모 전 고려대 교수의 “일제 식민지 지배는 축복이었다.”를 읽고 친일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어이가 없었다.”는 게 당시의 심정이다. 근현대사를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다. 이 변호사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될 때마다 청산되지 못한 역사에 대한 아쉬움이 컸다.”면서 “대부분의 원본 자료가 일본어여서 뒤늦게 일본어 공부도 했다.”고 말했다. 2008년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 한국위원회’의 비영리민간단체 등록 신청을 외교부가 거부한 사건에서부터 친일 문제 관련 소송을 적극적으로 맡았다. “외교부가 일본 외무성을 대변하는 것 같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이 변호사는 “2009년 10월 박정희 대통령의 아들 지만씨가 친일인명사전 출판 금지 가처분 신청을 낸 것과 관련한 소송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면서 “법률적 어려움보다 역사적 사실을 재판부에 설명하는 과정이 힘들었다.”고 돌이켰다. 재판부에 역사적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일본어로 된 일제강점기 때 기록을 하나하나 번역해 정리했다. “소송이 아니라 역사 논문을 쓴 것 같았다.”고 했다. ●“국립묘지에 묻힌 부적격자 이장해야” 이 변호사는 “국립묘지에 독립군을 짓밟은 친일 인사나 민주화를 탄압한 인사가 안장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면서 “친일 재산 환수법과 별도로 국립묘지에 묻힌 부적격자들을 이장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학술 부문에서는 이재승(47)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수상한다. 김동현기자 moses@seoul.co.kr
  • 헌재 “전과자 국립묘지 안장 불가능 합헌”

    헌법재판소는 범법 전과가 있는 국가유공자의 국립묘지 안장을 거부한 국가보훈처의 처분이 헌법상 평등원칙에 위배된다는 헌법소원심판 사건에서 재판관 전원 일치로 합헌 결정했다고 31일 밝혔다. 박씨는 월남전 참전 유공자로 등록된 부친이 사망한 뒤 국가보훈처에 국립대전현충원 안장을 신청했으나 부친의 폭력·사기 전과를 이유로 거부당하자 “국립묘지법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국립묘지법)조항이 불명확하고 광범위하게 기본권을 제한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당시 국가보훈처는 박씨 부친의 사례가 국립묘지법 10조에 규정된 국립묘지의 영예성(榮譽性) 훼손에 해당하는 자로 판단했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국립묘지세부운영규정 등은 자의적 법적용을 배제할 객관적 기준이 있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안석기자 ccto@seoul.co.kr
  • [도심의 허파를 찾아서] (8·끝) 유럽의 도시숲을 가다

    [도심의 허파를 찾아서] (8·끝) 유럽의 도시숲을 가다

    유럽의 도시 숲은 도시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환경적 가치를 넘어 사람에게 필요 공간으로, 생활권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유럽의 도시를 아름답게 만드는 도구이기도 하다. 유럽의 도시들은 숲 속에 자리 잡은 모습이다. 도시가 성장하면서 필요한 시설은 재건축을 통해 확충하거나 외곽마을을 연결해 확보하는 등 자연 파괴를 최소화하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산을 밀어버린 후 도시나 숲을 조성하는 것과 다른 방식이다. 금싸라기 땅인 도심 한가운데 숲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점도 이채롭고 형태도 다양하다. 도시 숲이 규모가 크고 시설물을 최소화해 다소 거친 모습이라면, 도시공원과 정원은 규모는 작지만 잘 가꿔져 편안함을 준다. 숲과 녹지를 조화롭게 배치해 남녀노소가 모두 즐길 수 있고, 휴양과 취미·생활공간으로 향유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숲은 조성보다 잘 가꾸고 잘 이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나라가 지향하는 도시 숲의 모습이다. 서울신문은 7회에 걸쳐 ‘도심 속 허파’인 도시 숲을 소개했다. 유럽과 역사적 배경이 다르고 부족한 인프라와 경험 등으로 시작은 미미하지만 100년 후 우리도 아름답고 울창한 도시 숲을 보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본다. ●도심 금싸라기 땅 한가운데 숲이… 독일 프랑크푸르트 시유림(Stadtwald)은 가장 모범적인 도시 숲으로 평가받고 있다. 공원으로서 시민들에게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을 생산하는 숲의 생태적 역할뿐 아니라 목재생산도 이뤄지고 있다. 총 면적 6000㏊로 서울숲(115㏊)의 52배에 달하는 거대한 숲이다. 숲 속에 조성된 길만 서울~부산 간 거리인 440㎞에 달한다. 산지가 없는 지형을 고려해 임도를 업다운(마운트화)으로 설계한 것이 이채롭다. 이 길은 시민들의 산책로이자 자전거 도로, 벌채 운반용으로 사용하며 별도로 80㎞의 승마길도 만들어졌다. 연간 이용객이 600만명에 달하지만 시설물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숲 속 놀이공원 등 일정 장소에만 배치했다. 독일 최초의 숲 유치원이 세워진 역사의 현장을 보여주듯 한 무리의 어린이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이곳은 하루에 60여명씩 200일간 아이들이 숲에서 살아 있는 체험학습을 한다. 숲은 새벽시간엔 승마, 오전에는 아이들, 오후에는 자전거를 즐기거나 달리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숨가쁘게 사람들을 맞아하고 있다. 한국에서 말로만 듣던 녹색댐의 존재도 확인했다. 숲에서 공급되는 식수가 프랑크푸르트 식수의 40%를 차지한다. 생태적 안전과 경관 유지, 물 생산 능력 제고를 위해 활엽수 비중을 높일 계획이다. 생명줄인 숲을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를 실감케 한다. 목재도 생산한다. 지난해 목재생산액이 90만 유로(약 14억원)에 달했다. 위기도 경험했다. 산성비 피해로 나무 생장에 지장을 초래해 목재 수확량이 줄어드는 ‘후유증’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도시 요지에 있다 보니 건축과 도로 등 기반·편의시설 확충을 위한 용도변경 요구가 끊이질 않는다. 숲의 서쪽에 들어선 프랑크푸르트공항 2터미널은 시민들의 거센 반발로 건설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시는 2000년 숲 전체를 보호림으로 지정했다. 숲을 지키기 위한 사랑과 관심을 보여준다. 산림청 국립수목원 이철호 박사는 “잘 가꾼 인공 조림지로 나무들이 환경 스트레스를 받는 듯하다.”면서도 “숲이 울창하고 숲가꾸기와 신규 조림을 매뉴얼에 맞춰 시행하는 등 체계적인 관리가 이뤄지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일광욕… 산책… 친숙한 생활공간 독일 뮌헨시 중심에 위치한 ‘영국 정원’(Englischer Garten)은 슈바빙 대학가에서 바이에른 궁전까지 이어져 있다. 젊은이들은 번잡한 도심을 통과하는 대신 자전거 등을 이용해 시내로 나가는 이동로도 활용한다. 총 면적 375㏊로 도시공원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인 이곳에는 100개의 다리와 78㎞의 산책로, 12㎞의 승마길이 조성됐고 호수도 있다. 산책로는 숲길과 임도 코스로 구분돼 있고 산책로에는 자전거나 말의 출입을 금지해 사람들을 배려했다. 공원 형태는 우리나라 북서울 꿈의 숲과 울산대공원을 연상케 한다. 공원 중앙에는 드넓은 잔디광장이 펼쳐져 일광욕이나 간단한 운동이 가능하고 호숫가와 공원 입구에는 레스토랑 등 다양한 편의시설도 들어섰다. 공원을 걷다 보면 원시림에 들어선 듯 찬기를 느낄 정도로 울창한 숲을 만날 수 있고 공원을 가로지르는 개천과 어우러져 산속에 있는 기분이다. 영국 정원에서도 산책을 즐기거나 나무 아래에서 독서하는 시민, 달리는 젊은이, 체험학습 나온 어린이 등 유럽의 여느 공원과 다름없이 사람의 발길이 이어졌다. 몸이 건강하지 못한 이들이 보호자의 부축 속에 숲을 걸으며 치유받는 광경도 보였다. 평일 오전 입구부터 공원 곳곳에 현장 체험에 나선 유치원생과 중학생 단체가 숲 가이드와 교사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며 숲을 즐기고 있었다. 영국 정원이 유명해진 이유 중 하나가 ‘누드 일광욕’을 허용한 것인데 직접 목격하지는 못했다. 공원에는 시민들의 정성이 담겨져 있다. 강풍과 태풍으로 나무가 쓰러지고 느릅나무 병이 창궐해 간벌하자 시민들이 나무 기증 운동을 통해 숲을 복원했다. 뮌헨시는 지난해 1963년 숲을 남북으로 단절시킨 도로(Isarring)의 지중화 계획을 마련했다. 하루 11만대 차량이 이용하는 이 도로의 공원 구간(300m)을 5900만 유로를 투입해 지하로 건설해 시민들에게 온전한 숲을 제공키로 했다. 오베르트 마르고트(72·여)는 “남편이나 손자와 산책을 하거나 친구와 자전거를 타고 호숫가 레스토랑에서 식사도 한다.”면서 “마음이 편안하고 경관이 아름다워 올 때마다 즐겁다.”고 말했다. ●옛 자연을 그대로 품은 채… 오스트리아 ‘비너발트’(빈 숲)는 빈에 있는 숲이 아니라 주변 지역을 잇는 거대한 산림·초원 지대다. 총 면적은 13만 5000㏊로 이 중 7만㏊가 산림이다. 빈 근처의 엄청난 규모의 숲이 벌채되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은 과거 황실과 귀족 소유로 잘 보존된 덕분이다. 숲의 형태도 유럽의 다른 공원과 차이를 보였다. 비너발트에 속한 라인저 공원은 옛 황족의 수렵원으로 원시림을 유지하고 있다. 2월부터 11월 중순까지 오전 8시에 개장해 오후 6시 30분에 문을 닫는다. 멧돼지와 노루·사슴 등 야생동물이 많아 벽이 쳐 있고 지정된 길을 이탈해 숲으로 들어가는 것을 금하고 있다. 공놀이 등 운동을 할 수 없고 개와 같은 애완 동물도 데려올 수 없다. 도시 중심에 있는 프라터 도시 숲은 시민들의 휴양공간이다. 600㏊에 달하는 공원에는 놀이기구와 체육시설, 식당을 비롯해 숲길과 산책로, 잔디광장이 조성돼 있다. 중앙에 4.5㎞의 중앙 통행로를 만들어 자전거 등을 즐길 수 있게 했고 좌우로 놀이 공원과 숲 공원을 배치했다. 체코 프라하의 도시 숲은 독일처럼 크진 않지만 동네마다 개와 아이들 산책을 위해 소공원들이 많다. 이중 패트슌언덕과 비셰흐라드 숲은 도시에서 가장 높은 언덕(120m)과 외곽 성에 조성된 공원이다. 패트슌언덕은 프라하 성과 비슷한 높이로 연인들의 공원과 산악열차가 유명하다. 등산(?)을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이기도 하다. 비셰흐라드는 음악가 묘지와 역사 유물이 있어 연중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연일 관광객이 끊이질 않는 비엔나와 프라하에서 도시숲은 주민들만 아는 ‘비밀창고’같은 곳이다. 빈 시 산림공무원인 흘라바체크씨는 “비너발트는 교육과 휴양, 체험을 우선하기에 시민들의 접근성을 개선하는데 주력하고 있다.”면서 “건강한 숲 보존을 위해 겨울에는 간벌 등 숲가꾸기를 실시하고, 수종 갱신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고 소개했다. 글·사진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카다피, 사막에 묻힌다...시신, 심하게 부패해

    카다피, 사막에 묻힌다...시신, 심하게 부패해

    사막의 텐트에서 태어나 영욕의 삶을 살다 간 무아마르 카다피가 사막에 묻힌다. 리비아 과도국가위원회(NTC)의 한 관계자는 24일(현지시간) “카다피와 그의 넷째 아들 무타심의 시신을 리비아 사막의 비공개 묘지에 묻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또 시신 매장에 앞서 일부 이슬람 지도자가 간단한 의식을 치르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NTC의 시신 매장 계획은 무스타파 압델 잘릴 NTC 위원장이 카다피의 사망 경위를 조사하겠다고 약속한 지 불과 몇 시간 뒤에 발표됐다. 앞서 NTC는 국제사회와 인권단체로부터 “카다피가 교전 과정에서 숨졌는지 또는 처형당했는지를 명확하게 밝혀내야 한다.”는 압박을 받아왔다. NTC 측은 미스라타의 한 정육점 냉동 창고에 전시됐던 카다피와 무타심의 시신은 더이상 방치할 수 없을 만큼 부패해 땅에 묻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카다피의 무덤 위치를 밝힐 경우 지지자가 모여들어 성지화될 수 있기 때문에 공개하지 않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NTC의 한 관계자는 “(시신 인도를 두고) 카다피 부족과 협상을 벌였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고 밝혔다. 한편 카다피의 차남 사이프 알이슬람은 리비아에서 벗어나기 위해 현재 니제르와 알제리의 국경지대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NTC 관계자는 사이프 알이슬람이 카다피의 처남이자 정부기관 수장이었던 압둘라 알 세누시의 도움을 받아 위조 여권을 이용해 리비아를 빠져나가려 한다고 밝혔다. 카다피의 자녀 8명 중 정확한 소재가 파악되지 않은 사람은 사이프 알이슬람뿐이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백제길·고구려길도 만든다

    정부가 오는 2012~2015년까지 280억원의 국비를 들여 역사와 문화가 담긴 새로운 탐방로 개척에 나선다. 기존 둘레길, 올레길 등 경관 위주가 아닌 ‘역사적 이야기’가 담긴 테마 탐방로 조성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한다는 복안이다. 역사·문화 탐방길 조성사업과 함께 지방자치단체 주도의 서민형 휴양·리조트 개발사업도 조심스럽게 물밑에서 타진되고 있다. 24일 국토해양부와 지자체 등에 따르면 정부는 최근 ‘2012년 내륙역사문화 탐방로 조성사업’을 확정하고 기본조사설계에 들어갔다. 내년까지 실시설계와 영향성 평가를 마무리한 뒤 2013년부터 3년간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행할 예정이다. 지역주민, 지자체의 참여를 끌어내기 위해 시행자를 아예 기초자치단체장으로 지목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이번 사업은 기존 정부의 단편적인 생태길, 녹색경관길 복원과는 차별화될 전망이다. 새 탐방로는 총 4개 구간, 99.4㎞에 걸쳐 조성된다. 3개권역으로 나뉜 초광역개발 시범사업의 하나로 추진된다. 향후 전국으로 확대될 경우 280억원대의 사업비가 10~30배가량 확대될 수 있다. 예컨대 충남 부여 일원에 조성될 백제역사탐방로(25㎞)는 궁남지, 능산리 고분군, 정림사지, 낙화암, 청마산성 등을 잇는 폭 2m의 도보길로 만들어진다. 서동으로 불리는 백제 무왕의 출생 설화가 담긴 궁남지에서 출발해 단 2개만 남아있는 백제시대 석탑인 정림사지석탑(국보 9호), 백제의 수도 사비성이 함락될 때 3000명의 궁녀가 백마강에 몸을 던졌다는 낙화암 등을 돌아보는 코스다. 김석기 국토부 내륙권발전지원과장은 “도보길 안에는 국립박물관과 옛 성곽, 묘지, 집터 등이 포함돼 당시 생활상과 역사를 함께 체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같은 방식으로 충북 충주(30㎞) 일원에는 국원성, 중원고구려비, 충주산성 등을 잇는 제1 고구려역사탐방로, 제천(14.4㎞) 일대에는 제2 고구려역사탐방로가 각각 조성된다. 2구간에는 역사·문화 외에 약초건강길, 청풍너울길 등이 함께 들어선다. 또 전북 정읍 일원에는 선비문화탐방로(30㎞)가 들어서 최치원의 위패를 모신 무성사원과 조선왕조실록이 안치됐던 내장산국립공원의 용굴암 등을 둘러보게 된다. 한편 국토부는 역사·문화 탐방길 조성사업과 함께 지자체 주도의 서민형 휴양·리조트 개발사업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농촌이나 도서의 부재지주 땅을 수용·개발해 지역민 등의 휴양문화를 끌어올린다는 취지에서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오감도’ 이상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오감도’ 이상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 1934년 식민도시 경성의 여름은 뜨거웠다. ‘조선중앙일보’에 7월 24일부터 연재되기 시작한 작품 ‘오감도’(烏瞰圖) 때문이다. 작가는 2000여편 중에서 30편을 골라 연재할 계획이었지만, 결국 15회를 넘기지 못했다. 띄어쓰기 무시! 문법 파괴! 기호와 숫자가 문자를 대신하는 시! 독자들은 분노했다. 이것은 시가 아니다, 당장 원고를 불살라라, 작가가 미쳤다! 하지만 작가는 자신을 미쳤다고 비난하는 독자들에게 반문한다. ‘왜 미쳤다고들 그러는지. 대체 우리는 남보다 수십년씩 뒤떨어져도 마음 놓고 지낼 작정이냐?’ 그가 보기에 대중은 게으르고 편협했다. 자신은 지금 시대의 어리석음과 무지를 뛰어넘고 있는 중인데 독자들은 아직도 구태의연한 문학관만 소비하는 중이니 말이다. ‘오감도’의 작가 이상(李箱·1910~1937). 그는 정말 시대와 불화한 천재였을까. 시대가 박제시켜 버린 천재였을까.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재능이나 영감에 의지해 개성을 뽐내는 그런 천재는 아니었다. 모두가 문명화, 근대화라는 덧없는 망상 속에서 허둥댈 때, 그는 아무도 보지 못했던 문명의 메커니즘을 보고, 시대의 이면을 볼 줄 아는 눈을 가진, 비상(非常)한, 비상(飛上)을 꿈꾼 지식인이었다. ●모던 경성, 적빈(赤貧)의 시공간 1910년 9월생인 그는 일본어를 국어로 하는 세상에서 태어나 문화통치 기간인 1920년대에 학교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1920년대 중반이 되면 제국 일본의 식민 경영이 본격적으로 뿌리내리게 된다. 아울러 경성의 도시경관은 총독부 건물, 경성제국대학, 백화점을 중심으로 근대 도시의 풍모를 갖추어 나가기 시작한다. 그 안에서 근대적 학교교육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고 출판산업 규모가 비약적으로 커졌다. 그리하여 1920년대에는 신문과 잡지를 통해 동시대의 근대문화를 흡수하고 소비하는 ‘대중’이 유럽풍 옷가지와 장신구로 몸을 두르고 커피 한잔을 찾아 방랑하는, 보들레르가 명명했던 ‘산보객들’이 경성 한복판에 등장하기에 이른다. 경성고등보통학교 건축과 학생이었던 이상 역시 화구통을 메고 거리를 어슬렁거린다. 그러나 그의 눈에 비친 것은 가난이었다. 끼니를 잇기 힘든 가난한 중인 가문의 장남이었던 그는 현미빵을 팔아 학교를 다녔다. 그가 배우는 최신 기하학과 건축학이 식구들과 이웃의 허기를 달래줄 날은 참으로 요원했다. 하지만 이런 물질적 가난보다 더 무서운 것은 정신의 가난이었다. 생활은 점점 더 돈을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었다. 돈은 아비와 자식, 친구와 애인을 연결시켜 주는 가장 강력한 매개체였다. 의리도 인정도 돈 앞에서는 힘을 쓸 수 없었다. 지독한 정신의 가난은 가난한 서민들뿐 아니라 도시인 전체를 갉아먹고 있었다. 대중매체가 선전하는 소비와 향락, 학교에서 강요하는 청결하고 근면한 생활. 이상이 보기에 이것은 실상 일본식 유행풍속을 좇아 양복을 입고 몇 개 안 되는 다방을 전전하면서 ‘교양입네’ 하는 꼴이었다. 제국 일본의 식민도시 경성은 제대로 문명화를 구가하지도 못하면서 박래품 소비에만 열광하는 ‘무늬만 근대도시’였다 경성의 도시인들은 모두 ‘모던’(modern)이라는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보지만, 정작 자신의 텅 빈 정신은 보지 못하는 불구자들이었다. 왼팔을 들면 거울 속의 나는 오른팔을 들어 올리는 기묘한 형국처럼 도시인들은 자신을 비추는 문명의 거울 앞에서 분열증에 시달렸다. 지독한 정신의 가난 속에서도 겉으로는 잘사는 척, 문명인인 척하기에 급급한 삶이라니! 이상은 이 사태가 공포스러웠다. 그 수선스러움에 질식할 것 같았다. 이 가난에 맞서야 한다! ●나의 펜은 나의 칼이다 1930년 ‘조선’에 연재된 첫 장편소설 ‘십이월 십이일’을 필두로, ‘이상한 가역반응’, ‘삼차각설계도’, ‘건축무한육면각체’ 등 기하학과 일본어가 맞물린 시들과 ‘지도의 암실’ 등의 소설, 다양한 수필이 발표된다. 문명을 지탱하는 정신의 가난과 대결하면서 그가 집중적으로 관심을 기울인 것은 언어의 문제였다. 식민지 조선에서는 일본어가 국어다. 하지만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은 조선어다. 그는 식민지에서의 가난과 소외가 무엇보다도 언어와 그 언어 사용자 사이에 놓인 간극 때문에 발생한다고 생각했다. 예컨대 1930년대를 지배하는 ‘모던’이라는 말 안에는 그 어떤 진지한 성찰도 부재했다. 도시의 소비자들은 양복(洋服), 양행(洋行)과 같이 서양풍을 내세운 습속에만 매달릴 뿐 왜 서양식 옷을 입고 서양에서 나온 책을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 자문하지 않았다. ‘모던’이란 말은 식민지 조선에서 텅 빈 기호였다. 그 안에서 어떤 정신적 가치도 찾을 수 없었다. 이상은 그런 시대를 ‘활자허무시대’라고 명명했다. 이상은 그렇게 기호에 갇혀 자기 삶의 진실을 외면하는 문명인의 삶을 해부하기로 했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그런 그에게 문학은 대중이 기대하는 여가선용이나 위안의 도구일 수 없었다. 그렇다고 사회주의자들이 주장하듯 특정한 계급의 현실을 드러내고 정치적 방향을 선동하는 이념의 도구에 머무를 수도 없었다. 문명의 매커니즘을 해부하고, 소외된 삶을 극복하는 것! 이것이 문학의 일차적인 임무여야 했다. 이상에게 펜은 그런 가난한 문명과 나태한 정신을 향해 휘두르는 칼이어야 했다. 그의 시 ‘오감도’는 숫자와 여러 가지 기호들을 통해 근대적 삶의 폐쇄성과 불구성을 해부하는 ‘메스’로서의 문학이었던 셈이다. ‘오감도’ 연재가 중단된 후 자신의 시도가 불러일으킨 적대적 반응에도 불구하고 이상은 실망하지 않았다. 자신을 몰라보는 대중을 무시하지도 않았으며, 관광객의 시선으로 그들의 삶을 관조하지도 않았다. 속악한 돈의 횡포나 비정한 이기주의를 직시하면서도, 그는 자신 역시 허위에 찬 근대의 산물임을 처절하게 의식했다. 박태원과 김기림 같은 지인들은 이상이 퇴폐적 카페를 열고 여급들과 연애하는 것을 보면서, 그가 문학만이 아니라 자신의 삶으로도 문명을 비판하고 자조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는 감추려고도, 미화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자신이 겪은 배반과 궁핍을 솔직하게 드러내면서 근대문명을 고민하고, 그 안을 휘청거리며 걸었다. ●이상, 시대의 혈서를 쓰는 자 1936년 가을, 이상은 일본 도쿄로 떠났다. ‘날개’를 통해 평단으로부터 큰 주목과 호평을 받은 직후였다. ‘날개’는 돈으로 마음과 정신을 사고파는 근대인의 삶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작품이다. 여기서 이상은 주인공이 날개를 얻어 비상할 것을 꿈꾸는 장면으로 작품을 마무리했다. 해부를 넘어 새로운 도덕을 발견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어쩌면 그 도덕적 비전이 식민지 조선 바깥에, 현해탄 건너 문명의 본산에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도쿄에서 그를 기다리는 것은 허영의 낙원이었다. 특가품, 할인품, 온갖 상품들로 넘쳐나는 긴자 거리에서 사람들은 모두 성병에 걸린 듯 화려하게 치장한 채 돌아다녔으며, 최신 서적들은 그저 교양으로 소비되고 있었다. 거기에도 자기 삶의 정열을 태우는 인간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현대 자본주의의 병폐가 더 노골적으로 발산되고 있었다. 영국 런던에 가도 사정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딜 가도 적막, 암흑, 권태뿐이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새로운 도덕을 찾아야 한단 말인가. 20세기가 그토록 찬미해 마지않는 문명이란 정신의 가난만 키우는 황금만능의 허위 세계임을, 이상은 낯선 땅에서 뼛속 깊이 절감한다. 그해 겨울 도쿄 거리에서 이상은 불온한 조선인으로 낙인찍혀 감방에 갇히게 된다. 도일(渡日)하기 전부터 앓았던 폐병은 급속도로 악화되었고, 문명의 속악성은 그의 마음에서 한 가닥 희망마저 앗아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그는 글을 쓰면서 돌파구를 모색하겠다는 의지를 포기하지 않았다. 1937년 4월 17일. 채 십년이 되지 않는 창작 기간 동안 오직 근대문명의 실상을 파헤치기 위해 글을 썼던 이상이 죽었다. 그의 죽음은 친구 김기림의 말대로 제 육체의 마지막 조각을 갖고 제 혈관을 짜서 쓴 시대의 혈서였다. 죽기 몇 달 전 탈고한 소설 ‘종생기’(終生記)에서 이상은 자신의 묘지명을 작성한다. “일세의 귀재(鬼才) 이상은 그 통생(通生)의 대작 ‘종생기’ 일편을 남기고 서력 기원후 일천구백삼십칠년 정축(丁丑) 삼월삼일 미시(未時) 여기 백일(白日) 아래서 그 파란만장(?)의 생애를 끝막고 문득 졸하다. 향년 만이십오세와 십일개월.” 자신을 죽이고, 그 시체로부터 생과 예술의 본질을 투시하려 했던 자. 임박한 죽음 앞에서도 이상은 그렇게 끝까지 예리한 언어의 칼날을 거두지 않았다. 오선민 남산강학원 연구원
  • [부고] ‘해직기자 출신’ 김태홍 前의원 별세

    [부고] ‘해직기자 출신’ 김태홍 前의원 별세

    김태홍 전 국회의원이 18일 오후 숙환으로 별세했다. 69세. 해직기자 출신인 고인은 5공화국 정권의 보도지침을 폭로했다가 구속돼 옥고를 치렀다. 광주 북구청장, 광주시 정무부시장, 16·17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유족은 부인 최정숙씨와 2남1녀. 빈소는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영안실 3호실이다. 발인은 20일 오전 8시, 장지는 광주 5·18 국립묘지다. (02)2227-7556.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지원민방위대 국가 재난사태 투입된다

    앞으로 자원봉사자 중심의 ‘지원민방위대’가 현행 ‘의무민방위대’를 보완해 폭우·산사태·폭설 등 대규모 국가 재난사태에 참여한다. 지원민방위대원은 또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의 적용을 받아 봉사활동 중 다치거나 하면 국가에서 보상·치료해야 하며 사망하면 국립묘지에 안장된다. 소방방재청은 17일 이 같은 내용의 지원민방위대 활성화 방안을 밝혔다. 방재청 관계자는 “사실상 국가재난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 ‘의무민방위대’를 대신해 언제든 봉사할 준비가 돼 있는 자원자 중심으로 지원민방위대를 꾸려, 각종 재난 사태에 대비할 것”이라면서 “나아가 지원민방위대가 더 능동적으로 민방위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법제도도 보완해 대규모 재난에 대비한 광역 활동도 전개할 방침”이라고 했다. 자원봉사자들이 현재 재난에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 387만 7000여명의 ‘의무민방위대’ 역할을 대신하는 것이다. 지원민방위대는 자원봉사자로 꾸려지지만, 민간조직이 아닌 정부조직으로 결성할 것으로 지난 9월 시·도 민방위 관계자 회의에서 결정됐다. 지원민방위대 지원자격은 20~65세 남녀로 폭력 등의 전과가 없고, 정당활동을 하지 않는 자다. 9월 현재 2만 3600여명이 지원했다. 의무민방위대는 20~40세 국민 가운데 남자라면 누구나 동원돼 ‘적 침공이나 전국 또는 일부 지방의 안녕·질서를 위태롭게 할 재난으로부터 주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의무(민방위기본법 제1조)’가 있다.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 동원된 사례는 지난해 연평도 포격 사태 때 210명 동원이 전부다. 법적 동원에 응하지 않으면 징역 1년 또는 벌금 10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한 처벌규정이 있지만, 이 법에 따라 처벌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한편 방재청은 지원민방위대원들의 재난 대처능력을 키우기 위해 오는 12월 16일까지 지원민방위대원 가운데 2640명을 우선 선발해 충남 천안 국립방재교육연구원에서 16회에 걸쳐 2박 3일의 합숙교육도 한다. 또 내년에 3240명, 2013년 이후에는 매년 1만여명 이상 합숙교육 등을 통해 심폐소생술 등 재난안전교육을 실시한다는 방침이다.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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