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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향찾은 「오색팔중」 꽃망울 맺다(조약돌)

    ◎임란때 건너갔다 5월에 귀환한 동백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반출돼 4백년간의 타향살이 끝에 지난 5월 귀환,울산시청 광장정원에 심어진 오색팔중의 울산동백(사진)이 6개월만인 최근 탐스러운 꽃망울을 터뜨렸다.다섯색깔의 여덟겹 꽃이 핀다해서 오색팔중이라 불리는 이 세계적 희귀동백은 울산시청 정원사 이택수씨(47)에 의해 정성스럽게 가꾸어져 왔다. 이 동백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일본으로 가져가 군주이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바쳐진뒤 교토시 지장원 춘사(춘사)앞뜰에 심어진 것을 일본을 방문했던 예총 울산지부장 최종두씨(54)등이 원목의 3세나무 3그루를 갖고와 심은 것이다. 이때 함께 가져와 독립기념관과 사천군 조·명합동묘소앞 뜰에 심은 2그루의 동백도 최근 꽃망울을 맺고있다.
  • 인천·대전·전주서 공약대결/3당 후보

    민자·민주·국민등 3당 대통령후보들은 6일 인천과 충남북,전주등을 순회하면서 유세대결을 벌이거나 공장등 근로현장에서 공약을 제시하며 득표활동을 계속했다. 민자당의 김영삼총재는 이날 『인천시가 21세기에는 무역·교통·정보·통신·금융기능을 갖춘 세계적 중심지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면서 이를위해 인천시 지하철의 조기건설과 도시외곽순환도로건설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총재는 이날 인천시립체육관에서 열린 대선필승결의대회에 참석,이같이 공약하고 경기도의 공해시설을 집단화하는 한편 5단계 수도권광역상수도사업을 조기에 마무리,맑은물 공급을 앞당기겠다고 말했다. 김총재는 이와함께 근로복지진흥법 제정을 통한 근로복지기금조성,여성취업정보센터설치운영및 보육시설 증설등도 약속했다. 민주당의 김대중대표는 이날 충남 천안군의 독립기념관을 방문,『집권하는 즉시 해외에 흩어져 있는 4백여기의 독립운동가 묘소와 국내에 산재해 있는 독립유공자들의 묘소를 한 곳에 봉안,「민족묘지」를 조성해 후세들에게 민족적인 자긍심과 독립심을 고취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대표는 또 유성신신농장에서 대전택시기사들과 간담회를 갖고 『개인택시 기사들이 건의해온 차고지 증명폐지,대리기사 고용허용 등을 적극 추진토록 하겠다』면서 택시기사들에 대한 완전 월급제실시와 월급제 실시에 따른 사주의 부담을 덜기 위한 택시부가세 감면등을 약속했다. 정주영국민당대표도 이날 하오 전주에서 열린 전북지역 3대 국민운동실천 당원결의대회에 참석,『근로소득세의 실질적 경감을 위해 근로소득자의 손비를 인정하는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정대표는 또 『영세기업의 면세점도 매출액기준으로 5천만원에서 1억원으로 상향조정하는 한편 농자금 금리를 연3%로 낮추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 윤관장군 묘역 말끔히 단장/정화사업 마무리… 내일 준공식

    사적 제323호로 지정된 윤관장군의 묘역정화사업이 마무리되어 30일 경기도 파주군 광탄면 분수리 현장에서 준공식을 갖는다. 문숙공 윤관장군기념사업회(회장신현확전총리)가 지난해 4월착공한 묘역정화사업에는 후손들이 낸 성금등 모두 12억원이 투입됐다.기념사업회가 이번에 벌인 정화사업은 외삼문 신축을 비롯,전마총복원,사적비및 시비건립,자연석담장및 철책등으로 돼 있다.그리고 취사장과 급수시설 설치,주차장을 확장함으로써 참배객들의 불편을 덜어주게 됐다. 윤관장군은 고려 예종2년 30만대군을 이끌고 북방정벌에 나서 두만강북쪽7백리까지 진출,1천8백리에 걸쳐 9개의 진성을 구축하고 7만5천여명을 이주시켰다.당시 윤관장군의 북방정벌은 끊임없이 변경을 침입하는 여진족을 소탕하기위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윤관장군의 묘소와 그를 모신 사당인 여충사는 그의 후손들에 의해 최근까지 비교적 잘 보존되어왔다.그러나 지난 87년12월 이곳이 국가지정문화재인 사적으로 지정됨에 따라 훼손된 부분을 원상복원키로 결정.문화제관리주의 승인을 받아 지난해 1차국정화공사를 착공하게 됐다.
  • 비리없는 「청권정치」 역설/김 총재/3당후보 대선표밭순례 현장

    ◎동사무소 등 돌며 애로사항 청취/김 대표/“민부시대 열겠다” 종친회서 기염/정 대표 민자·민주·국민 3당대통령후보는 12월대선을 50여일 앞둔 26일 일제히 지방유세에 나서 득표대장정에 들어갔다. 김영삼민자당총재와 김대중민주당대표는 이날 경기일원을 돌며 유세전을 갖고 정주영국민당대표는 경주에서 득표활동을 벌이면서 각각 정책공약을 내세우며 지지를 호소했다. ▷민자당◁ 김영삼총재는 26일 하오 수원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경기지역 대선필승결의대회겸 민주자유청년봉사단(민청) 발대식에 참석,한국병치유를 통한 신한국건설과 강력한 정부및 지도력의 필요성을 역설. 김총재는 특히 민주 대 반민주 구조대립과 정치를 위한 정치의 시대 종막을 선언하고 국민들이 보다 편안하고 잘살게하는 「생활정치」와 부정부패 근절을 위한 「청권정치」의 의지를 표명. 주최측은 대회직전 대형 멀티비전을 이용해 김영삼총재를 적극 홍보했고 가수·코미디언 연예인과 당의 상징인 곰돌이 농악대 브라스밴드 등을 동원,분위기를 돋우었으며 대회장 곳곳에 「가자! 김영삼과 함께 변화와 개혁의 시대로」「변화는 과감하게 개혁은 확실하게」「우리는 바란다 강력한 지도자 김영삼」등의 대형 현수막을 내걸어 지지분위기를 유도. 당원들의 환호속에 등단한 김총재는 참석자들의 열기에 고무된듯 상기된 표정으로 『대회장에 들어서는 순간 이번 대선에서 우리가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됐다』고 강한 자신감을 피력. 김총재는 경기지역이 대선판도를 가름할 승부처임을 의식,『경기도의 결정은 우리나라 전체의 결정과 같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며 『여러분의 결의와 활동여하에 따라 우리나라 운명이 결정된다』고 대선에서의 압도적 지지를 호소. 김총재는 또 『7백만에 달하는 경기도 주민들은 경기도가 수도 서울에 인접한 관계로 적잖은 불편을 겪고 있다』며 『내가 집권하면 교통난과 주택난을 해결하고 수도권내 불균형현상과 각종 공해및 여가공간부족문제 등을 해결하겠다』고 공약. 그는 『우리 대한민국은 지금 이대로는 절대 안된다』고 전제,『나는 앞으로 우리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등 한국병을 치유하겠다』며 국민 과반수이상이 압도적 지지를 몰아줄것을 당부. ▷민주당◁ 김대중대표는 이날 특별제작한 유세용 버스를 타고 처음으로 일산·파주·문산등 경기북부지역을 누비며 본격적인 소규모 지역순회 유세에 돌입. 김대표는 첫 방문지인 신행주대교 붕괴현장을 둘러본 것을 비롯,일산 신도시 아파트및 상가,문산 영풍악기 제2공장,파주 이률곡선생기념관,동두천 여성자활복지시설,동두천시장 등 무려 6개 시·군 12곳을 방문하는등 밤늦게까지 강행군. 김대표는 이날 가는 곳마다 『역시 현장을 와봐야 실정을 알게 된다』며 미민주당 클린턴후보의 버스투어를 본뜬 자신의 새로운 선거기법 도입및 활용에 매우 고무된 표정. 신행주대교 붕괴현장에서 「6·25당시와 같은 부교설치」라는 대안을 제시했고 일산 신도시에서는 파출소·동사무소·아파트관리사무소·상가·임대아파트등을 직접 돌아보며 이들의 애로사항을 청취. 그는 이날 마지막으로 하오10시쯤 의정부시 낙양동 648 최영출씨(61·농업)집을 방문,이웃주민 20여명과 함께 대화의 시간을 갖고 『민주당이 집권하면 농촌의 부채탕감과 곡가 인상등을 통해 빚을 안지고 살 수 있게 하겠다』고 공약했고 이 집에서 하루를 묵었다. ▷국민당◁ 정주영대표는 이날 경북 경주군 내남면에서 있은 정씨 시조 시제에 정씨 연합대종회 총재자격으로 참석,시조묘소에서 제을 지낸뒤 문중인사들과 오찬을 함께 하며 사실상 득표활동을 전개. 정대표는 이날 문중인사들과 환담한 자리에서 『조상들의 숭고한 애국충절을 본받아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대통령후보로 나섰다』면서 『국민당은 모든 노력을 경주하고 그간 갖춘 조직을 전면 가동해 이번 대선에서 기필코 승리할 것을 조상의 묘소앞에서 맹세한다』고 필승을 다짐.또 『대통령이 되면 단 한점도 부끄럼이 없는 지도자가 될 것이며 오로지 나라의 경제발전으로 온 국민이 골고루 잘 사는 민부의 시대를 꼭 열겠음을 우리의 영광된 가문에 맹세한다』고 「가문」의 지지를 호소.
  • 구심점 상실… 신당창당 타격/박태준씨 “불참”선언 파장

    ◎합류약속 인사들마저 태도 돌변/추진력 약화로 일정 수정 불가피/「광양담판」후 이미 결심… 주변정리 거쳐 공표 포항에서 칩거중인 박태준 민자당전최고위원이 17일 측근을 통해 신당불참여를 공식선언 함으로써 그의 행보를 둘러싼 항간의 구구한 억측들이 사라지게 됐다. 비록 측근을 통한 간접적인 입장표명이긴 하나 『더 이상 혼탁한 정치판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박의원의 최종 심경이 확인된 셈이다. 박의원이 이같은 결심을 하게된 것은 지난 10일 김영삼총재와의 「광양담판」이후라고 측근들은 전한다.정치판에 발을 잘못 디뎠으나 앞으로는 마음을 모두 비우겠다는 것이 「박심」의 본질이라는 설명이다. 박의원의 핵심측근인 조용경보좌역은 『최고위원직사퇴와 탈당선언은 사실 더 이상 정치권의 눈치를 보지않고 당당하게 내 길을 가겠다는 선언이었다』고 말해 정치권 일부의 추측처럼 「외압」이 아닌,「박의원 스스로의 선택」임을 강조했다. 이는 정치권 일각에서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지난 15일 정석모의원과의 단독 요담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설명이기도 하다. 박의원행보의 큰 흐름은 지난달 29일 광양제철 4호기 준공식 직후 고박정희대통령묘소를 참배,박의원이 읽은 「준공보고」에서부터 감지되기 시작했다는 것이 정가의 정설이다.박의원은 당시 「보고」에서 울먹이는 목소리로 『박대통령의 혼령이 계시다면 이 박태준이가 흔들리지 않고 선택한 길을 갈 수 있도록 붙잡아 달라』는 내용의 상당히 이례적인 말을 했었다. 물론 신당추진인사들이 내건 현실 정치개혁 부분을 박의원이 심정적으로 공감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신당참여 가능성이 증폭된 점도 없지 않다. 이와관련,박의원의 또 다른 측근은 『신당추진인사들과 같은 방향으로 생각해온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어느 정치인이나 스스로 행동하고 판단하는 길만이 현실정치에 꿈을 심을수 있다는 게 박의원의 한결같은 생각이었다』고 언급,박의원이 처음부터 신당행을 고려하지 않고 있었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정치개혁을 이룩해야 한다는 평소의 소망과 자신을 따르던 사람들에 대한 의리때문에 박의원이 11일째 포항과 광양을 오가며 향후 거취를 놓고 고심해온 것은 틀림없다. 박의원이 10일 넘는 이러한 「장고」끝에 신당불참여,즉 「정치2선 후퇴결심」을 내리게 된 동인은 포철에 대한 끝없는 애정과 현실정치에 대한 실망과 회의때문인 것으로 측근들은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이번 결심이 정계은퇴로까지 이어 질는지는 아직 불투명하다.조용경보좌역은 이에대해 『한일의원연맹 한국측 회장등 공인으로서 맡고 있는 일들이 많아 이런 소임은 계속 추진할 것 같다』고 언급,박의원이 당장 은퇴까지 생각하고 있지 않음을 밝혔다. 신당추진세력들은 박태준 전최고위원의 신당불참의사 표명으로 신당창당일정에 차질을 빚을 것이 틀림없다. 당초 신당추진세력들은 박의원의 합류에 이어 박의원 또는 강영훈전국무총리를 국민후보로 추대해 신당의 골격을 갖추고 국민당과의 통합을 이룩한다는 복안이었다. 그러나 가장 큰 관건이었던 박의원합류가 어려워짐에 따라 추가탈당자영입교섭은 커녕 오히려 합류를 약속했던 인사들 조차도 주춤거리는 상황으로 돌변했다. 17일낮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의 12인 신당추진세력모임도 원래는 이 자리에서 창당실무작업팀을 구성할 예정이었으나 이 보다는 「박의원을 좀더 설득하자」「박의원 없이 창당작업을 계속하자」는 원론수준의 논의가 주조를 이뤄 퇴보한 느낌이었다.특히 이날 참석할 예정이었던 12인중 이종찬·박철언·이자헌·장경우·한영수·유수호·정호용·김용환·강창희의원등 9명은 참석했으나 이재환·성무용·임춘원의원은 불참,위축된 분위기를 반증했다.참석자중 정호용·강창희의원은 「무소속으로 남겠다」고 까지 밝혀 신당창당 작업의 앞길이 험난할 것임을 시사했다. 따라서 박의원의 불참의사표명은 박의원의 동참을 창당기폭제로 삼으려는 신당추진세력에 타격을 주었음은 물론 내주초 창당준비위 발족,이달말 창당이라는 기본일정의 수정이 불가피해졌다.그러나 신당추진세력들은 신당 창당을 절대목표로 삼고있는 만큼 세력이 크게 위축된 상태에서라도 계획을 실행할 것으로 보인다.
  • 아내·딸·장인·장모 살해/만기출소 40대,재결합 거부에 앙심

    ◎한밤 도끼 휘둘러 아들은 중상 별거중인 40대 가장이 아내가 재결합을 반대하자 새벽에 처갓집에 몰래 들어가 흉기로 아내와 딸·장인·장모등 4명을 살해하고 아들에게 중상을 입히고 자신은 부모묘소에서 극약을 먹고 쓰러져 있다 경찰에 붙잡혔다. ▷범행◁ 12일 상오1시57분쯤 서울 노원구 공릉2동 산53의1 한도주택 21동 201호 여영균씨(75)집에서 사위 최오림씨(49·은평구 불광3동 445의30)가 여씨와 장모 한천순씨(74),부인 여명자씨(50),딸(17·서울Y고1년)과 아들(15·G중2년)을 도끼로 내리쳐 여씨등 4명을 숨지게 하고 아들을 중태에 빠뜨렸다. 아들 최군은 『잠을 자다 머리가 아파 일어나 보니 아버지가 식구들을 도끼로 내리치고 있었으며 「살려달라」고 비는 나에게도 도끼를 휘둘러 다리에 상처를 입히고 달아났다』고 말했다. ▷현장◁ 여씨 부부는 반항한 흔적이 없이 안방 이불위에 나란히 누워 숨져있었다. 부인과 딸은 건넌방에서 잠자다 변을 당했으며 아들은 2층 침대에 누워있다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 최씨는 여씨 가족 앞으로 『너희들을 다 죽이지 못하고 일부만 죽이고 가니 한없이 원망스럽다.네 어머니는 철없는 너희들에게 내가 깡패고 전과자라는등 악담만을 했다.우리 아들과 딸의 시체는 우리 누님에게 돌려주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 ▷범인주변◁ 범인 최씨는 76년 3월 숨진 여명자씨와 결혼,1남1녀를 뒀으며 부인 여씨가 전남편과의 사이에 낳은 딸(23)도 호적에 입적시켰으나 현장에 없어 화를 면했다. 최씨는 결혼직후 성동구 응봉동,도봉구 쌍문동 등에서 셋방살이를 했으며 폭력·특수절도등 전과 23범으로 결혼후에도 자주 부인과 심하게 다투는등 가정불화를 겪어왔다. 최씨는 또 88년 3월 평소 하던 자가용영업을 못하게 되자 부인과 처가 식구들이 자신을 푸대접하는데 격분,장모 한씨를 도끼로 내리쳐 살인미수혐의로 구속돼 실형 4년을 복역했다.
  • 박태준과 아이아코카/김호준 본사 논설위원(굄돌)

    『나는 임자를 잘 알아.이건 아무나 할수 있는 일이 아니야.아무 소리말고 맡아….그 말씀 한마디에 25년이란 긴 세월을 철에 미쳐…』 지난3일 포철의 박태준회장이 추강생산 2천만t 체제를 완공한후 박정희대통령 묘소를 찾아가 올린 보고문은 후기산업사회에 신화를 창조한 한 철인의 깊은 감회를 담고 있다.그는 『용광로를 구경조차 해본일이 없는 39명의 창업요원을 이끌고 포항의 모래사장을 밟았을때는 각하가 원망스럽기도 했다』고 회고하면서 『그러나 필생의 소임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이 순간 각하에 대한 추모의 정만이 더욱 새로워질뿐』이라며 쇳물처럼 뜨겁고 진한 눈물을 떨구었다. 그로부터 이틀후에 나온 그의 포철회장직 전격사퇴 소식은 많은 사람들에게 놀라움과 충격을 안겨주었다.자리에 연연하는 공인들의 추태가 항다반사여서 그런지 그의 결단은 신선하게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후의 사태는 전격사퇴의 또다른 측면을 드러냈다.하루아침에 조타수를 잃은 세계제3위의 제철소 포철과 한국철강업계가 불안과 위기감에 휩싸인 것이다.포철인들은 사의 철회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고 포철과의 철강협력이 예정대로 추진될 것인지에 대한 문의가 국내외에서 잇따랐다. 중국의 등소평이 한국에 철강부문 협조를 요청한것은 거의 박회장 개인에 대한 신뢰때문이었다.한일양국이 제3국에대한 철강수출의 과당경쟁을 자제하고 있는것도 박회장과 신일본제철 경영진간과의 깊은 신뢰관계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얘기다.박회장이 남긴 공덕은 하루 아침에 메울수 있는 그런 자리가 아니다. 도산직전의 크라이슬러 자동차사를 기적적으로 회생시킨 미국의 슈퍼스타 리 아이아코카의 처신은 우리에게 많은것을 시사한다.그는 지금 46년간의 자동차 인생을 정리하기 위해 크라이슬러 본사에서 마지막 정열을 쏟고 있다.내년 설날이면 평범한 노인으로 돌아가는 아이아코카는 지난 4월 크라이슬러 회장직 사임을 전격 발표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그러나 그건 즉각 사퇴가 아니라 7개월후의 퇴진을 예고한 것이었다.그는 지금 후임으로 내정된 사람에게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해주며 퇴임후 크라이슬러를위해 자신이 할수있는 일을 찾고있다. 박회장은 사임발표에 앞서 자신의 거취문제를 놓고 장고했다.아이아코카와 같은 처신의 묘미를 모를리 없었거만 굳이 전격퇴진을 택한 사연은 무었이었을까?
  • 「내각제의 대선공약화」 이견갈등/박태준파동의 시와 말

    ◎노 대통령의 당적이탈 선언후 대사색/9일 측근 통해 김 총장에 탈당계 제출 박태준최고위원으로부터 비롯된 민자당의 동요는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가,그 전말을 엮어 본다. ▷발단◁ 박위원은 9월18일 노태우대통령의 당적이탈선언후 일체의 직접언급은 삼갔으나 간간이 번민의 일단을 드러냈다.박위원은 21일 당무회의석상에서 심경을 피력해달라는 한 당무위원의 요구에 대해 『정말 잔인하다.말하라면 하고 가만 있으라면 있었는데 어떻게 대책을 얘기할 수 있느냐』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박위원은 또 『대통령으로부터 얘기를 들은 적도 없고 내생각을 정리할 시간도 없었다』면서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이때부터 박위원은 당무나 자신의 입장에 대해서 간접화법으로 불만을 토로했으며 거취문제에 대한 숙고를 시작했다고 볼수 있다. ▷김 총재­박 위원 1차회동◁ 두사람은 9월21일 하오 시내 모 호텔에서 17분동안 밀담을 나누었다.회동후 22일 박위원은 『내가 엄청난 일을 생각하고 있는줄 아는 모양이지』라고 반문하며 『나는 당에 충성해왔고 지금도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말해 선거대책위원장을 맡게될 것이라는 추측이 오갔다.그러나 이틀뒤 최재욱비서실장은 『박위원이 대사삭에 들어갔다』고 언급해 박위원이 거취문제를 숙고하고 있음을 밝혔다.당내에서는 김총재와 박위원의 단독회동을 다시 추진했으나 양측의 일정때문에 취소됐다. ▷외부인사 접촉◁ 박위원은 9월27일 경제인들의 광양제철소 제4기 준공 축하모임에서 국민당의 정주영대표와 만났다.그후 10월2일과 5일에도 정대표와 회동했다.그로부터 박위원이 향후거취와 관련해 외부인사를 활발히 접촉하고 있음이 드러났다.박위원은 지난 28일에는 무소속의 정호용의원과도 장시간 만났다.이후 박위원은 김총재를 대신해 당무회의도 주재했으나 30일 포철과 불편한 관계에 있는 허화평의원이 입당하자 상당히 섭섭한 감정을 표현했다.김총재가 허의원 입당문제에 대해 자신과 한번도 상의가 없었다는 것이다.박위원은 이날 하오 중국에서 귀국하는 노태우대통령환영행사에도 광양제철소 행사준비를 이유로 불참했다. ▷노 대통령­박위원 회동◁ 노대통령은 10월2일 광양제철소 제4기준공식이 끝난후 박위원과 20분간 단독회동을 가졌다.이자리서 노대통령은 자신의 당적이탈 배경을 설명하고 박위원의 이해를 구했다.대통령의 「9·18선언」이후 첫회동에서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고 주변에서는 전했다. 3일 상경한 박위원은 국립묘지를 참배하고 고박정희대통령묘소에서 『각하의 혼령이 있다면 이 박태준이가 흔들리지 않고 25년전의 마음으로 돌아가 매진할 수 있도록 굳게 붙들어달라』고 인사했다.박위원은 이날 대우그룹의 김우중회장과도 만난것으로 전해졌다.박위원은 포철회장직 사임에 대한 결심도 이미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포철 회장직 사임◁ 10월5일 박위원은 긴급소집된 포철이사회에 회장직사표를 제출했으며 이사회는 이를 반려하고 박위원이 사퇴한다면 이사 전원도 동반사퇴하겠다고 밝혔다. ▷박위원의 포항행◁ 6일 하오부터 포항과 광양제철소에서는 박위원의 회장직 사퇴를 반대하는 직원들의 농성이 시작됐다.포철직원 70여명은 7일상오 상경,북아현동의 박위원 자택을 방문해 사퇴의사 번의를 촉구했다. 박위원은 7일하오 잠실체육관에서 열린 중앙위원회 전체회의 참석일정을 취소하고 포항으로 내려갔다.포항제철소에는 농성직원과 가족 1만여명이 박위원의 사퇴번의를 촉구하며 눈물로 호소했고 박위원은 자신이 물러나는 이유를 들며 이들을 설득했다.박위원이 8일 명예회장직을 수락함으로써 회사소요는 진정됐다.박위원이 포항에 머무르는 동안 민자당은 박위원의 위로와 당무복귀를 위한 설득사절 파견을 결정하고 8일 김영구총장·황인성정책위의장을 포항으로 보내 박위원을 설득했다. 이춘구·이한동·박준병의원등 당내 중진의원들도 뒤따라 내려가 박위원과 저녁을 함께하며 향후문제를 논의했고 이자리서 박위원은 민정계의 와해에 대해 울분을 토했다고 전해졌다. ▷광양행◁ 3일간을 포항에서 머문 박위원은 9일 헬기편으로 광양에 도착했다.광양제철 직원들과 저녁식사를 마친 박위원은 곧바로 숙소로 직행,보도진과의 접촉을 피했다.이날 박위원과 30여분간 독대한 최비서실장은 하오6시30분 상경해 김영구총장과 만나 박위원의 최종 입장을 통고했다. ▷사퇴의사표명◁ 포항과 광양에서 거취문제에 대한 결심을 굳힌 박위원은 9일상오 조용경보좌역을 서울로 보내 김영구총장에게 사퇴서를 전달했다.이어 이날 하오 최재욱비서실장도 서울에 도착,김총장과 비밀리에 만나 박위원의 최종입장을 전달했다.김총장은 저녁9시30분쯤 상도동 김총재 자택을 방문,최실장과의 접촉사항을 보고했고 이자리에서 김총재는 전격 광양행을 결정했다.
  • 꽃 귀한 여름에 분홍·흰색으로 만개/배롱나무(나무이야기:19)

    ◎추위에 약해 남부서 관상용으로 심어/주로 글방·관청의 뜰,묘지 주변에 많아 배롱나무는 중국의 남부가 원산지이다. 낙엽활엽교목으로 높이가 8m에 달하며 우리나라에서는 충청도 이남에서 주로 관상용으로 심고 있으나 요즈음에는 서울에서도 가을에 어린가지를 볏짚으로 싸주면 월동이 가능하다.배롱나무속은 30종으로 구성되며 지리적으로는 아시아남부와 동부,뉴기니아,필리핀군도 및 호주에 분포한다.이 나무는 꽃이 귀한 여름철에 꽃을 계속 피워준다고 하여 초본인 백일홍에 비유,목백일홍이란 이름으로 더 알려지게 되었다.줄기는 모과나무처럼 얼룩이 졌으며 매끈하여 원숭이도 미끄러진다는 뜻의 일본이름도 가지고 있고 중국사람들은 백양수또는 자미화라고 쓰는데 양자는 가려울 양자로 사람이 매끈한 줄기를 만지면 나무가 간지럼을 탄다는 다소 과장된 표현이긴 하나 나무를 사람의 경지에 까지 올려 놓은 것으로 생각되어 나무에 대한 사랑이 참으로 가슴에 성큼 와닿는 표현이 아닌가 싶다.또한 꽃색이 보라색을 띠는 경향이 있다하여 자미라고도한다.원산지인 중국에서는 이 나무를 옛날부터 관청의 뜰에 심었다.우리나라에서도 더운 여름에 오래 견디는 꽃이라 하여 글방의 앞뜰이나 사찰,향교 또는 묘지 주변에 많이 심었음을 볼 수 있다.이 나무중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것은 1965년4월에 천연기념물 168호로 지정된 부산시 부산진구 양정동에 있는 수령 8백년,높이 8m,흉고둘레 1m인 노거수이다.이 나무는 동래정씨의 시조인 정문도공의 묘소 앞에 심어져 있다. 배롱나무는 수피가 얇아 추운 겨울을 견디기 힘든,겨울을 싫어하는 나무라 할 수 있고 여름철 더위를 잊게 해주는 여름철의 나무라 할 수 있다.그래서 이 나무는 양지바른 곳에서 잘자라며 배수가 잘되는 곳을 좋아한다.추위를 견디는 내한성은 약하나 짠 바닷바람에는 잘 견딘다.그러나 대기오염에는 비교적 약한 편이다.원줄기는 홍갈색으로 평활하고 벗겨진 자리는 희다.잎은 서로 마주나고 표면은 윤택이 난다.꽃은 암수가 한 나무에 같이 있으며 7∼9월에 이르기까지 핀다.백색으로 피는 흰배롱나무는 인천에서 자라는 것으로 흔하지 않다.
  • 평양의 추석은 “단순한 휴일”

    ◎88년 차례 허용했으나 “유명무실”/식량난으로 평시음식 준비 고작 북한주민들에게도 추석은 즐거운 명절이다.그러나 북한에서의 추석은 정작 다례와 전통 미풍양속의 계승보다는 하루를 쉴 수 있다는 휴무일과 여행의 하루로서의 의미가 더 크다. 추석날만큼은 여행증명서없이 시·군 경계지역을 벗어나 조상의 묘소를 찾아 다례를 지내고 출가한 자식과 가까운 친·인척을 찾아볼 수 있고 각종 노역에서 해방되어 하루를 쉴 수 있기 때문이다. 김일성의 『봉건잔재를 뿌리 뽑아야 한다』는 지시와 6·25전쟁후 본격화된 「사회주의 개혁」으로 북한 전역에서 사라졌던 추석은 지난 88년 민속명절날로 공휴일화됐고 주민들의 제사행위 역시 이때부터 허용됐다. 그러나 이같은 제사인정에도 불구하고 문중수준의 다례는 가족주의·종파주의를 조장하고 김일성 유일사상에 배치된다 하여 아직도 철저히 금지되고 있다. 북한에선 제례시 햇곡식 햇과일로 제물을 따로 준비하거나 전통의식에 따라 음식을 선별하여 차리지 않는다. 심각한 식량난으로 햇곡식을 준비할 수도 없거니와 사과 배 등 제례용 햇과일은 외화획득원으로 거의 전량 수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금 여유있는 주민들은 평시에 먹던 음식에서 조금씩 절약하여 준비한 재료를 이용,떡·지짐이·생선과 약간의 나물을 제물로 올리고 대부분의 주민들은 과자·사탕­삶은 돼지고기­몇마리의 명태를 제단에 올린다. 그러나 이같은 북한당국의 추석제례허용에도 불구하고 많은 북한주민들은 조상의 묘를 찾아 다례를 지내지 못하고 있다.지난 58년부터 시작된 주민성분 조사사업과 주민강제이주정책 실시로 많은 주민들이 고향을 등졌기 때문. 이로 인해 북한내에선 무연고 아닌 무연고 묘소가 늘어났으며 70년대 이후 추진돼온 「새땅찾기」와 「다락밭 조성」사업으로 수많은 이들 묘소가 불도저에 밀려 농토화되는 수난을 당했다.【내외】
  • 시립묘지 3곳 공원묘지로 재개발/1기 2평규모로 조성/시 방침

    ◎무록고묘는 화장후 납골당에 서울시는 19일 갈수록 심해지는 묘지난을 해결하기 위해 망우리를 비롯한 3개 시립묘지를 재개발,공원묘지로 조성하기로 했다. 서울시의 한 관계자는 『벽제·망우리·내곡리등 3개 시립묘지의 분묘 10만8천여기(기)가운데 40%정도인 4만3천여기가 연고가 없는 무연고 분묘』라면서 『내년부터 15년이상 성묘를 하지 않은 분묘는 공고기간을 거친뒤 화장을 통해 납골당에 안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시는 이와함께 시립묘지를 1개 묘소가 2평크기인 공원묘지로 바꾸어 이장을 희망할 경우 시가 경비를 부담해 분묘를 이장,관리해주기로 했다. 이에따라 시는 평균 20평 수준인 분묘가 2평크기의 공원묘지로 조성되면 10만8천기인 3개 시립묘지의 수용능력이 50만여기로 4배이상 늘어날 것으로 분석했다. 시는 또 앞으로 매장보다 화장하는 풍습이 크게 늘 것으로 보고 내년부터 6백억원의 예산을 들여 하루에 50구의 시신을 처리할 수 있는 제2화장장을 오는 94년까지 짓기로 했다.
  • “추석날 교통혼잡 피하자”/휴일 묘지마다 조기성묘 행렬

    ◎일부는 벌초뒤 유원지 나들이/대도시 주변 귀가길 곳곳 체증 추석을 닷새 앞둔 휴일인 6일 전국의 공동묘지.공원묘지등지는 추석 당일의 혼잡을 피해 미리 조상의 묘소를 찾은 성묘객들로 크게 붐볐다. 낮기온이 30도를 웃도는 늦더위 속에서도 가족단위의 성묘객들은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차려놓고 제사를 지낸 뒤 묘지주변을 손질했으며 일부는 성묘후 인근 유원지로 가 휴일 나들이를 즐기기도 했다. 이 때문에 서울 망우리공동묘지로 가는 동대문구 청량리와 중랑구 일대는 아침 일찍부터 몰려든 성묘차량들로 심한 교통체증을 빚었으며 경기도 고양시 벽제로 통하는 은평구 갈현동,구파발등도 하루종일 혼잡했다. 또 이날 하오3시부터는 성묘를 마치고 돌아오는 차량들과 휴일을 이용,유원지를 찾았던 차량들이 귀경길에 얽혀 구리시 교문동,퇴계원 주변이 큰 교통혼잡을 빚었다. 【수원=조덕현기자】 서울 중랑구 망우동과 경기도 구리시 교문동 일대에 걸쳐 있는 망우리공동묘지에는 상오8시부터 성묘객들이 찾아들어 이날 하룻동안 5천여명이 다녀갔다. 이밖에 고양시 문봉동 벽제시민공원에 5천여명,국제공원묘지에 1천여명,모란공원 3천여명,포천군 소홀면 혀릉묘원에 1천여명등 경기도 일대에서 모두 2만여명이 성묘를 마쳤다. 망우리공동묘지관리소장 박대구씨(46)는 『교통혼잡이 워낙 심해 미리 성묘를 하려는 인파로 지난주부터 붐볐다』면서 『추석연휴를 가족과 함께 즐기려는 세태가 확산되면서 지난해부터 때이른 성묘객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성묘객 이호성씨(45·회사원·서울 관악구 남현동)는 한가한 때 성묘를 해야 조상의 고마움을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되고 가족끼리 단란한 시간도 즐길 수 있어 몇년전부터 앞당겨 성묘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광주=박성수기자】 광주·전남일대에서도 망월동 시립묘원을 비롯,곳곳의 묘지에 성묘객들이 몰려 성묘를 한뒤 낫과 풀깎는 기계등으로 벌초를 했다. 광주 망월동시립 묘원에는 4백여명이 찾아왔는데 시립묘원 한 관계자는 『극심한 교통혼잡을 피해 미리 성묘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추세』라면서 광주를 떠나 서울등 타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대부분 이라고 밝혔다. 【대구=남윤호기자】 대구·경북지역 각 공원 묘지의 경우도 추석전 성묘객이 부쩍 늘어 6일 각 공원묘지마다 5백∼6백명이 성묘를 했다. 대구근교인 경북 칠곡군 시립 공원묘지와 학명공원 묘지의 경우 지난주 일요일과 6일에 각각 6백∼7백명의 성묘객들이 다녀간 것으로 집계됐으며 경산군 백합공원묘지와 장미공원을 찾은 성묘객도 5백∼6백명에 달했다.
  • 황선수 조부 묘터 100평 기증

    황선수조부묘터100평기증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인황영조선수(22)의 할아버지 묘소를 임대해준 땅주인이 묘소주변 임야 1백평을 황선수 가족에게 기증해 화제. 강원도 삼척시 사직동 313 천일성씨(53)는 황선수가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따자 이를 축하하기 위해 황선수의 조부 묘소로 임대해준 삼척군 근덕면 매원리 산71 임야 1백평을 기증하겠다고 황선수의 아버지 황길수씨(51)에게 밝혔다는 것.
  • 일연스님 어머니 낙랑군부인묘 발견

    ◎영남대 김재원교수팀 경북군위 야산서 확인/자연석 2층 축대에 봉분높이 3m/고려양민 무덤등 연구에 귀중한 자료 【군위=남윤호기자】 고려후기의 고승으로 삼국유사를 쓴 일연스님의 어머니 낙랑군부인 이씨의 묘소가 발견됐다. 영남대 김재원불교미술사연구소장(46)과 경북 군위군 향토사학자 송문현씨(55·경북도의회의원)는 서지학자 박영순씨(57)의 사료고증을 받아 29일 경북 군위군 고로면 화북3리 해발 4백여m의 능등산 정상에서 낙랑군부인 이씨의 묘소를 확인했다. 2년전부터 매달 「이달의 문화인물」을 선정해 그 인물의 업적과 사상을 기리고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오늘에 재조명하는 사업을 펼치고 있는 문화부는 일연스님을 「7월의 문화인물」로 선정했는데 김소장 등은 일연스님의 달을 맞아 화북3리에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에 따라 낙랑군부인 이씨의 묘소찾기에 나서 여러차례의 답사끝에 묘소를 확인하게 됐다. 이 묘소는 자연석으로 50∼60㎝ 높이의 축대를 2층으로 쌓았으며 묘역의 직경이 30m에 이를 정도로 큰 규모이다. 또 봉분의 규모도 높이 3m,너비 6∼7m정도로 보통묘의 3∼4배 정도나 커 이곳 주민들은 막연히 「능」이라고만 불러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봉분위에는 잔디가 전혀 없기때문에 그동안 상당량의 흙이 빗물에 씻겨 나갔을 것으로 보여 처음의 규모는 지금보다 훨씬 컸을 것으로 추정됐다. 현장을 확인한 김소장은 『군위군의 전설·신화·역사 등을 모아 지난 50년대에 편찬한 군위 군지(군지)에 「낙랑군부인묘소 맞은편 화산 문필봉 아래 인각사에 일연스님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보각국사 정조탑에서 아침마다 이상한 광채가 일어 어머니 무덤으로 날아가 문안을 올렸다」는 기록이 적혀 있는 점으로 미루어 이 무덤이 일연스님 어머니 묘소가 확실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 지역이 우리나라 최초로 국가형태를 이룬 성읍(성읍)국가시대의 도읍지가 아닌데도 산꼭대기에 이 정도 규모의 묘지를 조성한 것으로 보아 왕사(왕사)였던 일연스님과 깊은 관계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 무덤은 자연석을 이용해 쌓은 석축과 유구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어 현재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은 고려시대 양민들의 무덤과 생활상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여 보호대책이 시급한 실정이다. 낙랑군부인에 대한 기록은 거의 전해오고 있지 않으나 보각국사 탑 비명에 그 일부가 남아있다. 이 기록에는 일연스님의 어머니 이씨는 장산군(현 경산)의 김언필과 결혼,17세때에 해가 사흘동안이나 자신의 배를 비추는 꿈을 꾸고 일연스님을 낳았으며 96세에 숨졌다고 적혀있다. 낙랑군부인 이씨의 묘소가 발견되자 역사학계와 불교계는 일연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고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 정비돼야 할 호화분묘(사설)

    호화분묘에 대한 일제 정비작업이 전개되리라고 한다.분묘제도에 대해서는 엄격한 법정기준이 있는데 그걸 무시하고 턱없이 어마어마한 분묘를 마련하여 불법을 자행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결국 공권력의 철퇴가 내려지게 될 모양이다. 우리는 국토면적이 비좁아서 산사람들도 세계에서 가장 밀도가 높은 공간에서 살아가는 나라다.그런나라의 국민이면서 국토가 무한정 넓은나라 사람들보다도 더 분묘의 사치에 집착하는 것이 우리다.살아서 호강하던 사람은 그 호강이 죽어 이후까지 함께 갈수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처럼 호화분묘에 집착한다.이런 생각은 불식되지 않으면 안된다. 정부는 이번 기회에 법규에 어긋나는 분묘와 불법묘지에 대한 정비를 과감하고 엄격하게 해나갈 방침이라고 한다.당연히 그래야 할 일이다.불법분묘의 문제는 국토이용의 문제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불법형질변경 및 자연녹지 훼손에 이르는 갖가지 위법을 자행하게 해서 거기 따르는 문제가 한두가지가 아니다.그 뿐만이 아니다.있는 사람들의 유택에 대한 호사와 욕심은,많은 어렵고 힘든 사람들의 삶의 의욕을 저상시키는 결과까지 부르게 된다.산사람 발뻗고 살 공간도 절대적으로 모자란데 죽은이가 제왕의 유실처럼 거대한 면적을 차지하게 한다는 것은 더불어사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그런 사상이 내포된 법이 엄격하게 지켜만 진다면 이런 일은 발생 단계에서 차단된다.그런 뜻에서도 호화분묘 정비계획은 엄격히 집행되어야 한다. 호화분묘문제에서 특히 국민이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불법의 주인공이 한결같이 이른바 사회지도층이라는 사실이다.전직장관에 국회의원,재벌급 부자와 명망있는 사회 저명인사들이 즐비하게 단속된 명단에 포함되어 있는 것에 실망과 분노를 느끼게 된다.살아서 누린 영화를 죽기까지 연장시키려는 이기주의가 노정되고 있기 때문이다.이런 일이 국민에게,국가의 인상을 얼마나 손상시키는지를 생각한다면 그렇게는 못할 것이다.더구나 국정에 참여해본 적이 있는 국무위원이나 입법부를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이토록 이기적이고 무책임하다는 사실이 불쾌감을 치솟게 한다. 당국이 호화분묘단속을 하면서 함께 진행할 일이 있다.대표적 사회지도층의 분묘 현황을 공개하여 확연히 밝혀주고 불법한 부분은 솔선하여 정비하게 하는 일이다.남은부분은 강제력도 불사하고 새로운 부조리를 감시해야 한다. 우리가 지닌 분묘에 관한 인식과 의식에도 변화가 와야한다.조상의 묘소규모와 효가 상징적 함수관계에 있고,명당사상이 뿌리깊게 자리잡아온 우리에게는 쉽사리 변하지 않는 것이 분묘에 얽힌 의식이다.그러나 묘소의 규모가 효와는 관계가 없고 마침내는 살아있는 사람의 하세에 불과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오히려 많은 사람들의 빈축과 손가락질로 조상을 욕먹이고,당대를 벗어나 자손에게 맡겨질 경우 불화와 불효의 빌미를 제공할 뿐이다.세월이 흐를수록 그같은 현상은 더 심화한다.미래도 책임질수 없고 현재도 부담만 되는 일을 더이상 고집하기 보다는 냉철하게 현대적인 사고에 적응하는 편이 현명하다.정책도 그런 맥락에서 발상되어 많은 선택이 개발되고 종교등 사회교육의 분담기관에서도 협조하여 사회분위기의 변화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 민통선 첫 성묘/내무·국방부 지원 조상묘 찾기 첫날

    ◎“50년만에 찾아온 불효 용서하세요”/잡초로 뒤덮인 묘지보곤 목메어 말못잇고/“지뢰지역 못들어간다”에 먼발치서 눈물만 『어머니­ 저 용구가 50년만에 찾아왔습니다.어머니…』 강원도 철원군 김화면 암정리 야산 중턱.잡초에 뒤덮인 자그마한 무덤을 눈앞에 둔채 윤용구씨(70·서울 관악구 봉천1동 960의40)는 목이메어 더이상 말을 잇지못했다. 미수복 경기·강원도민회가 주관하고 내무부 국방부가 지원한 민통선지역내 조상묘찾기 운동 첫날인 1일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지역을 찾은 실향민 34가구 87명은 분단 42년의 아픔과 조상묘를 찾은 감격의 눈물을 한없이 뿌렸다. 『바로 저기가 어머니묘입니다.제발 들어가게 해주세요』 윤씨의 눈물젖은 하소연이 계속됐지만 인솔장교는 윤씨 어머니 묘소 주위에 둘러처진 지뢰지역 표시때문에 윤씨를 제지하면서도 고개를 돌렸다. 지금부터 51년전인 1941년 19살의 나이로 병사한 어머니를 고향김화읍 암정리 공동묘지에 모신 윤씨는 그동안 회사 경비원 등으로 일하면서도 묘소찾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강원도민회등을 통해 몇차례 수소문으로 대충 위치를 확인하다가 이번에 민통선지역내 조상묘 찾기운동 기사를 신문에서 읽은 뒤 곧바로 도민회로 달려가 성묘신청을 해 이날 어머니묘소를 확인하게 됐다. 이날 김화지역을 방문한 34가구중 조상묘를 찾은 가구는 갈말면 정연리 일대 4가구,생창리 2가구 암정리 1가구등 총7가구인데 이중 정연리 4가구 유족들은 묘소에서 벌초를 하고 성묘등을 하며 그동안 못다한 효도를 했지만 나머지 가구의 유족들은 묘소주위가 지뢰지역이어서 눈으로 확인하는데 그쳐야했다. 신청자가 54명이나 돼 가장 기대를 모았던 조북면 백덕리·율목리·금곡리지역은 전지역이 비무장지대안에 위치,출입이 통제돼 철책선에 정성스레 차려온 제수를 차려놓고 제사를 지내는데 그쳐 안타까움을 더했다. 백덕리에 할아버지·아버지등 선영이 있는 한명옥씨(56·서울 강서구 내발산동 659)는 9명의 가족이 찾아와 철책너머로 보이는 오성산 기슭을 가리키며 자신의 옛집을 찾아보고 아들에게 선영위치를 가르쳐주기도 했다. 『회사에 휴가까지 내고 찾아왔는데 못들어간다니 정말 안타깝습니다.바로 저기가 아버님 산소인데두요』 세살때 어머니의 손을 잡고 월남한 한춘석씨(43·서울 구로구 시흥2동220의110)는 비무장지대 안쪽에 있어 갈 수 없는 아버지의 묘소를 바라보며 『저기도 우리나라 땅인데 언제 통일이되어 성묘를 할수있느냐』며 인솔장교의 손을 잡고 울먹였다. 이번 행사를 주관한 미수복 강원도민회 남궁산사무국장(60)은 『묘소를 못찾은 가족이 많아 실망이 크겠지만 앞으로도 이 운동을 계속 추진,실향민의 아픔을 달래고 2세들에게 조상의 은덕을 기리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6·25 42주년을 맞이해 3일까지 계속되는 민통선지역내 조상묘찾기 운동은 지난 6월17일부터 27일까지 이북5도민회 등에서 접수를 받아 강원 2백74명,경기 85명등 모두 3백59명이 신청했으며 추석무렵에 2차로 조상묘찾기를 실시할 계획이다.
  • 백범선생 43주기/효창원서 추모제

    백범 김구선생의 제43주기 추모제가 26일 상오10시 서울 용산구 효창원내 고인의 묘소에서 거행됐다. 이날 추모제에는 백범의 장남 김신씨(70)등 유족들과 김영삼·김대중·정주영씨등 3당대표,국회의원,백범선생 기념사업회 회원등 5백여명이 참석,조국의 광복과 통일을 위해 평생을 바친 고인의 업적을 추모했다.
  • 장례절차 무료상담/「임종의 전화」 이용자 급증

    ◎개설 두달째… 문의전화 7백여통/노부모 모시고 있는 30∼50대 많아/수의 정찰가로 판매… 수익금은 불우이웃장례비로 복잡한 장례의식과절차를 무료로 상담해 주는 「임종의 전화」를 이용하는 사람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현재 서울과 부산에서 운영중인 이 전화를 이용하는 계층은 주로 임종을 앞둔 노부모를 모신 30∼50대가 대부분.갑자기 상을 당했으나 절차를 몰라 상담해오는 경우도 많다. 서울에서 「임종의 전화」(208­0044)가 지난4월16일 개설된 이래 두달동안 걸려온 상담·문의전화는 7백여통에 이르고 있다.부산 구서동에 위치한 부산지부(516­1010)의 경우 지난달 30일 문을 연이후 1백50여건의 각종 문의가 쇄도했다.문의내용가운데 90%이상이 노부모의 임종을 얼마 앞둔 자손들이 임종에 대비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를 몰라 물어 오는 경우로 나타났다.다음으로 이장문제,장의사·영안실의 횡포고발,장례비용등이 차지하고 있다. 최근 상담사례 가운데 경기도 미금시에사는 유기동씨(78)는 자식없이 혼자서 살고 있는 케이스.만약 상을 입을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상담한뒤 뒷처리를 미리 부탁했다.미국으로 이민갔다가 고국으로 돌아온 위재필씨(50)는 미국 LA공원묘지에 묻혀 있는 부친의 시신을 선산에 이장하는 절차를 상담해 왔다.또 목포에 사는 이모씨(53)는 5년전에 매장한 부친의 묘소를이장하는 과정에서 당시 장의를 맡았던장의사가 관바닥에 비닐을 깔아놓고 매장해 버려 시신을 육탈시키지 못한 불효가 됐다고 장의사에 의한 피해를 호소해 왔다. 「임종의 전화」에서는 이같은 24시간 상담서비스와 함께 더 큰일을 권장사항으로 다루고 있다.우리 국토의 1%를 차지하는 묘지문제의 심각성을 들어 상담자들에게 화장을 권하거나 과다한 장례비용을 아낄 수 있는 올바른 절차와 정보도 제공해 주는 일이 그것이다. 「임종의 전화」김승기사무국장(46)은 『우리나라에는 매년 25만명이 사망하고 있으며 이들의 장례비용으로 쓰이는 비용만 4천억원에 달하고 있다』는 점을 중시했다.『그러나 이같은 비용은 장의사나 영안실등 장례업자들의 폭리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간소한 장례와합리적인 절차로 장례과소비를 50%이상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일례로 수의의 경우 보통 70만원에서 1백20만원,최고품은 2백만원을 호가하는 폭리를 지적했다.「임종의 전화」는 이에따라 수의를 미리 준비하려는 이들을 위해 삼베수의를 30만원에 정찰가격으로 보급하고 있다.수의판매사업으로 남는 수익금은 기금으로 조성,소년·소녀가장의 가족이나 환경미화원·무의탁거택보호자등이 사망할 경우 모든 장례절차를 무료로 치러주기로 했다.또 묘지과잉현상을 막기위해 「임종의 전화 위령납골당」건립도 추진할 계획이다. 임종의 전화는 7월안으로 대구 광주 수원 안양 성남 원주 강릉 대전 등에지부를 개설하는등 올해안으로 전국 30개 도시에 지부를 만들어 상담활동과장례과소비추방운동을 펴나가기로 했다.
  • 경관이 내연의 처 흉기살해/군포서 소속 임 경위/어제 광명서

    ◎「숨겨둔 아들」 양육싸고 말다툼 끝/권총 휴대 한채 도주… 연고지등에 형사대 급파/경찰 【광명=조덕현·김학준·박희순기자】 현직경찰중견간부가 내연의 처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뒤 달아난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19일 하오8시10분쯤 경기도 광명시 하안동 271 주공아파트 512동 906호 이영순씨(34·여)집에서 군포경찰서 방범과 방범2계장 임영택경위(36·군포시 금정동 창원빌라 3의 201호)가 흉기로 이씨의 가슴등 4곳을 찔러 숨지게 하고 달아난 것을 군포경찰서 형사계 정기동경장이 발견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날 상오2시50분쯤 임경위가 군포경찰서 금정파출소에 감독순시를 나와 근무중인 김춘석순경에게 『총기가 필요하다』며 38구경 권총 1정과 실탄3발,공포탄2발등을 가지고 나간뒤 출근을 하지 않아 소재를 파악하다 2년전부터 이씨와 사귀어온 사실을 밝혀내고 이씨의 집 아파트문을 뜯고 들어가보니 이씨가 가슴 등에 흉기로 찔려 피를 흘린채 숨져있었다는 것이다. 경찰은 2년전부터 임경위가 이씨와 사귀어 왔으며 지난 5일 이씨가 14개월된 아들을 임경위집에 데리고 와 『당신의 아들이니 당신이 키우라』고 맡기고 돌아갔다는 임경위 가족들의 말에 따라 임경위가 내연의 관계가 밝혀지자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건경위를 조사중이다.경찰은 임경위가 파출소에 들러 권총을 가지고 나갔다가 이를 범행에 사용치 않고 흉기를 사용한 것은 범행후 자살을 기도하거나 제2의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추정하고 임경위의 소재파악에 나섰다. 임경위는 지난 81년 3월 순경으로 경찰에 들어온뒤 지난해 경위로 승진,서울 노량진·남부·관악경찰서에 근무해오다 지난 3월 군포경찰서 방범2계장으로 발령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동료경찰관들은 임경위가 평소 말이 없고 성실한 편이었으며 진급 시험을 쳐 경위로 진급하는등 근무를 착실히 해온 모범 경찰관이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날 하오 10시20분쯤 신갈∼안산간 고속도로 입구인 수원시 장안구 이의동 동수원 인터체인지에서 숨진 이씨의 서울1조 6695호 자주색 르망승용차를 발견하고 임경위가 이씨를 살해한뒤 이 차를 타고 달아난 것으로 보고 이일대에 대한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다. 경찰은 임경위의 부친묘소가 전북 정주시에 있음을 확인하고 정주에도 형사대를 보냈다.
  • 「오색팔중동백」 돌아왔다/임란때 반출된 나무의 “3세”

    ◎일 사찰측과 3년교섭 결실/높이 50㎝짜리 묘목… 어제 울산에 심어 임진왜란때 일본으로 반출됐던 희귀목 동백나무 3그루가 4백년만에 귀환,이중 1그루가 27일 하오 원생지인 울산시 청사 앞 화단에 임시로 심어졌다. 이 나무는 곧 충렬사가 들어설 학성공원으로 옮겨 심게되며 나머지 2그루는 오는 6월1일 충남독립기념관 앞뜰과 경남 사천의 「조·명합동묘소」인 귀무덤 옆에 심어진다. 다섯색깔의 여덟겹 꽃이 핀다해서 오색팔중이라 불리는 이 동백나무는 임란당시 울산성을 점령한 가등청정이 이 일대 학성에서 자생하던 것을 약탈해 일본으로 가져가 군주이던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에게 바쳐진 것이다. 당시 원목은 지난 83년 고사하고 1백여년쯤 전에 삽목해 심은 2∼3세 나무 10여그루가 현재 교토시 지장원 춘사에 자라고 있으며 이번에 옮겨진 나무는 3세인 높이 50㎝가량의 묘목이다. 이같은 결실이 맺어진 것은 지난 89년 1월 교토의 춘사를 찾았던 예총 울산지부장 최종두씨(53)가 사찰 안내 팸플릿에서 이곳에 심어진 동백나무가 조선의울산학성에서 이식된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한데서 비롯됐다. 이 동백나무의 사연을 알게된 최씨는 오코치(대하내존무)주지에게 한 그루쯤 되돌려 받으려 했으나 거절 당해 귀국즉시 서울 자비사 주지 박삼중스님,재일동포였던 울산 의성시장 대표 박재헌씨등과 의논,오코치 주지에게 최근 한국에 이장한 경남 사천의 귀무덤에 옮겨 심기로 하고 응락을 받았다는 것. 당시 가등청정으로부터 이 동백나무를 헌상받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유서깊은 지장원 춘사에 심고 다도회를 열때마다 동백꽃의 화려한 자태를 즐겼다고 한다. 한편 울산시는 이 동백나무를 알루미늄 철책망을 만들어 보호키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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