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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립묘지에 전과자 상당수 묻혔다/감사원 조사

    ◎91년∼92년 6월까지 2백명중 43명/법령 허점투성이… 경건한 이미지 퇴색 나라와 겨레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묘소인 국립묘지에 상당수의 전과자가 안장돼 국립묘지의 의미를 무색케하고 있다. 감사원이 지난해 국방부에 대한 감사에서 91년 1월부터 지난해 6월말까지 1년반동안 국립묘지에 안장된 2백16명에 대한 생존당시 범죄행위및 형사처벌내용을 확인한 결과 예비역 대령인 김모씨등 11명이 사기·횡령등 전과자인 것으로 드러났다. 게다가 벌금형을 받은 32명을 포함하면 안장된 2백16명 가운데 전과자는 20%인 43명에 이른다. 민족의 성역으로 알려진 국립묘지에 이처럼 상당수 전과자가 안장될 수있는 것은 현행 국립묘지령의 허점때문이다. 현행 국립묘지령은 장관급장교나 20년이상 군에 복무한 사람중 전역·퇴역 또는 면역된 사람들을 안장대상자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대상자가운데 금고이상의 형을 받고 집행종료후 5년이 경과되지 아니하거나 집행유예기간이 끝난뒤 2년이 지나지 않은 사람만 안장대상에서 제외,금고이상의 확정판결을 받고도 5년이 넘으면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있도록 돼 있다. 이에따라 감사원은 반국가적 ·반사회적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안장하는 것은 국립묘지의 경건·신성함을 훼손하는 행위라고 지적하고 전과자들은 국립묘지안장대상에서 제외될 수있도록 하라고 통보했다.
  • 독립운동가 신규식선생 묘소 발견

    ◎상해만국공원에 가명 안장… 복원 일제치하 중국 상해를 중심으로 한 초창기 해외독립운동의 주요 지도자중의 한사람인 신규식선생의 묘소가 상해 만국공원내 외국인묘역에서 발견돼 13일 묘비제막과 함께 복원됐다. 13일 거행된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 복원기념식에 참석키 위해 상해에 온최창규 독립기념관장 등 정부관계자와 현지 중국인 관계자들은 지금까지 주요 항일독립운동 지도자 가운데 유일하게 묘소가 유실된 것으로 알려졌던 신규식선생의 유해가 만국공원(현재명칭 송경령공원)내에 중국인 가명묘비로 안장돼 있는 것으로 최근 확인돼 묘소복원이 이뤄지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신규식선생은 우리나라가 일제 치하에 있던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조소앙선생 등과 함께 신한혁명당을 결성,지난 1917년 8월 스톡홀름에서 열렸던 만국사회당대회에 대표를 파견해 한국의 독립을 국제사회에 호소하는 등 중국내 항일독립운동의 효시적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 내일 한식… 묘소 관리요령을 알아보면

    ◎훼손된 봉분에 잔디씨앗 뿌리는건 무모/잔디가 죽은 부분은 뗏장으로 보수를/나무 심을때는 키작은 회양목 바람직 오는 5일은 식목일이자 예부터 설날 단오 추석과 함께 4대 명절의 하나인 한식.조상의 묘소를 찾아 성묘하고 유택을 돌보는 날이다. 이날은 성묘를 한뒤 겨우내 망가진 무덤의 잔디를 새로 입히는 개사초(개사초)작업을 하게된다.「음력 3월과 9월에 무덤을 옮기면 재앙을 받는다」(삼구불동총)고 해서 음력 3월에 든 올해 한식에는 사초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 있지만 이는 전혀 근거없다는게 유림학자의 설명.한국원예기술협회 차건성이사의 도움말로 한식날 묘소관리요령을 알아본다.동지로부터 1백5일째인 한식은 겨우내 얼었던 지반이 녹으면서 봉분이 무너지거나 패이는 등 묘소가 훼손된 경우가 적지않다.이때 잔디가 없거나 죽은부분은 뗏장을 떠서 보수를 해주어야 한다.뗏장이 그리 많이 필요치 않으면 주위의 것을 떼다가 심는것이 간편하다.뗏장을 옮겨심을때는 밑에 붙은 흙은 털지 않아도 되지만 봉분의 잔디 죽은 자리부분 흙은파버려야 한다.흙을 파버린 부분은 꽃삽을 이용해 낙엽이 섞인 부드러운 주위의 흙으로 메운다음 뗏장을 올리고 잘 다져준다.소포장 비료를 구해 새로 심는 잔디 밑에 뿌려주면 더욱 좋다. 잔디 손상이 심하면 화원에서 뗏장을 사서 보수해주어야 한다.화원과 묘목상가에서는 뗏장을 가로 세로 각각 30㎝ 크기로 잘라서 파는데 비닐봉지에 담아 운반해오면 된다. 잔디씨앗을 훼손부분에 뿌리는일은 별로 도움이 못된다.잔디씨앗은 온도가 섭씨30도이상 되어야 발아하는데 지금 기온으로는 싹틔우기가 어림없기 때문이다.또 잔디씨앗은 납물질로 코팅이 되어있어 자연발아가 어렵다.따라서 잔디씨앗을 사더라도 염산처리로 싹을 틔운것을 구입해야 한다. 묘소를 돌볼때 봉분에 웃자란 잡초를 제거하는것도 빼놓을수 없는일.그러나 잡초를 그냥 뽑아버리는 일외에 제초제를 사용하는일은 되도록 삼가는 것이 좋다.제초제의 잔류독이 인체와 잔디에 피해를 주기 때문. 묘소 주위에 나무를 심을때는 번거롭지 않게 묘소주변 화원에 맡기는 것이 좋다.심는 수종으로는키가 작아 그늘을 드리우지 않고 겨울에도 잎을 떨구지 않는 옥향나무와 회양목이 권할만하다.심을때는 묘소 날개부분으로부터 1m이상 떨어지게 심고 앞쪽에 심을때는 좌우동형으로 예쁘게 심어야 한다.
  • 김문기 전 의원 수감/6억 받고 7명 부정편입학·땅 위장매입

    ◎「뒷문편입학」관련 학부모 6명 입검/검찰 전민자당 김문기의원(62·상지대 재단이사장)의 부동산위장등기·부정편입학사실을 수사해온 대검 중앙수사부는 31일 김전의원을 업무방해·국토이용관리법위반등 혐의로 구속,수감했다. 검찰은 또 김전의원에게 부정편입학생을 알선하고 학부모로부터 1천만원을 받아 챙긴 혐의로 주간한국의약신문 발행인 김남훈씨(46·서울 강동구 천호동217)도 업무방해혐의로 구속하고 이원우씨(64·한약업·충북 제천시 중앙로2가)등 학부모 6명을 입건했다. 검찰수사결과 김전의원은 달아난 사위 황재복씨(46·전 상지대총장 비서실장)와 김남훈씨의 소개로 91년에 2명,92년에 5명등 모두 7명의 학생을 상지대 한의학과에 점수조작등으로 부정편입학시켜주고 1인당 1억∼1억5천만원씩 모두 6억원을(부정편입생 1명은 액수불상)받은 혐의를 받고있다. 김전의원은 또 지난해 4월 거주민이 아니면 살수없는 강원도 원주시 우산동641의9 자연녹지 8백40평을 이모씨의 이름으로 사들이는등 이 일대 시가 12억원대의 땅 7천7백39평을사들인 혐의도 받고 있다. 김전의원은 이와함께 강원도 원주군 소초면 평장리 산190의3 선친묘소주변 약8백평의 녹지를 무단 훼손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전의원은 이밖에 91년12월에 서울 종로구 평창동445의14 1백여평의 땅을 현국립교육평가원장 모영기씨(당시 교육부 대학정책실장)로부터 2억6천만원에 사들일때 황모씨의 이름을 이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 사거 4백주기… 국어국문학계 중심 재조명 활발

    ◎정치야심 좌절… 문학서 성공/「충자청백」에도 귀양·복직 반복/5일 진천군 송강사서 추모제 조선시대 가사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송강 정철(15 36∼1593)의 작품과 인물에 대한 재평가작업이 사거 4백주기를 맞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국어국문학계를 중심으로 각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이번 재조명은 송강문학의 본질과 함께 지금까지 가려져 있던 정치인으로서의 송강의 진면목이 새로 들춰져 흥미를 끈다. 사거4백주기를 기념하기 위해 최근 발간된 「송강문학연구논총」에 수록된 「정철과 그의 시」를 집필한 박요순(한남대·국문과)교수는 『송강은 「청사에 빛날 가사문학의 최고봉」이라는 문학적 평가에 반해 「정치인으로서나 관직자로서는 주위로부터 많은 원한을 사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즉 송강은 정치무대에서 「충자청백」「청직」「강개정직」등의 평판을 얻었으나 정작 그의 정치행로는 탄핵과 복직,귀양의 길을 되풀이 한 험로였다는 것. 「이조실록」명종·선조대의 기록에 송강의 언행이 무려 2백77회나 거론된 점도 그의 정치적 야심을 짐작할 수 있는 논거로 보았다.박교수는 또 문인과 정치인의 길을 함께 걸었던 송강의 의식과 생애를 사로 잡았던 것은 정치였고,문학은 부차적인 것이었지만 결국 표면에 내걸고 전력을 다했던 정치계에서는 실패했고 부차적이었던 문학에서 성공하는 아이러니한 결과를 낳은 것으로 분석했다. 이와함께 「관동별곡」「사미인곡」「속미인곡」「성산별곡」「장진주사」등 5편의 가사와 시조80여수,한시 5백여수등 유작에서 나타난 송강가사의 성격과 본질을 고찰했다. 「송강문학연구논총」(국학자료원간)에는 이밖에 지난36년 「진단학보」에 발표된 송강문학에 관한 최초의 근대적 학문연구결과인 가람 이병기선생의 「송강가사의 연구」를 현대문법으로 정리해 게재한 것을 비롯,조윤제 이병도 조규익 이종국씨등 20명의 전문학자들의 논문 22편이 수록됐다. 한편 영일정씨문청공파종친회는 오는 5일 송강의 시신이 안치된 충북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 송강사에서 4백주기추모행사를 연다.추모제는 묘소봉제,사당춘향제,추모특별강연회등 순으로 진행될 계획이다.종친회는 또 현재의 송강유물관을 송강기념관으로 개칭,내부를 수리하고 유적·유물을 재진열하는 한편 「사미인곡」등 대표적 가사작품 5편을 원로서예가 여초 김응현씨의 휘호로 액자를 만들어 현양하는등 새로 단장된 기념관을 공개키로 했다.
  • “재산 60억정도… 부채도 25억”/박양실 보사 일문일답

    ◎아들 주민등록 옮긴게 죄되는줄 몰라/주위사람들 권유로 농지 사들였을뿐 부동산 투기등으로 물의를 빚고 있는 박량실보사부장관은 6일 상오 청와대 국무회의에 참석한뒤 곧바로 청와대 기자실에서 회견을 갖고 자신의 부동산투기여부및 거취등에 대한 입장을 표명했다. ­이번 사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임명권자인 대통령과 새정부에 누를 끼쳐 대단히 송구스럽다. ­가족명의의 재산이 얼마나 되는가. ▲제일 덩치가 큰 것은 산부인과가 들어 있는 저동빌딩이다.남편이 60년대 의대졸업후 결혼을 해 66년에 그곳으로 이사했으며 이사간 다음 남편이 세상을 떴다.당시 그 집을 산뒤 5년 분할계약으로 구매해 70년도에 정식으로 등기하면서 한 푼의 오차도 없이 상속세를 물었다.소유주는 내 아들로 돼있으며 내 아들과 친권자로서 내 이름으로 등기가 돼있다.대지는 1백33평이며 건평은 1백38평정도다.이 집에서 24년간 살다가 인접한 제일생명부지 1백평을 합쳐 제일생명과 합자해 저동빌딩을 짓게 됐다. 3층부터 8층,그리고 9층 일부와 지하층 반이 내 몫이고 나머지는 제일생명 소유다. ­저동빌딩의 가격이 몇백억원 된다는데. ▲국세청과 내무부 고시가격으로 약 38억원쯤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몇백억원이 된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내 재산은 대충 60억원 정도이며 부채가 약 25억원쯤 돼 순재산은 35억원 정도다. ­부동산 투기등과 관련해 장관직을 사퇴할 용의는 없는가. ▲대통령을 직접 만나 보지 못했다.임명권자가 책임지고 물러나라고 하면 물러나겠다.그러나 사실 나에게는 물러날 자유도 없다.내 스스로 사퇴의사를 표명하지 않겠으며 대통령의 뜻에 따르겠다. ­절대 농지를 불법으로 사들인 사실이 있는가. ▲병원에 오래 있어서 법을 잘 모른다.사들인 농지부근에 친정 아버지 어머니의 묘소가 있고 묘지기가 농지를 사두는게 좋겠다고해 사들인 것 뿐이다.주민등록을 옮겨야 된다기에 아이의 주민등록을 옮겼으나 이렇게 큰 죄가 되는 줄 몰랐다.딸 아이의 아파트는 은행에서 4천3백만원의 대출을 받아 사들였으며 3천만원에 전세를 주고 있다.아직 세무서에서 아파트 구입에 대한 조사가 안 나온 것으로 안다.경남 거창땅 7천평은 내가 잘못 얘기한 것으로 실제로는 3천5백평 정도 된다.여하튼 어리석은 짓을 했다고 생각하며 잘못된 것이다. ­세금은 얼마 정도 냈는가. ▲33년째 의사생활을 하고 있는데 병원소득은 별로 없다.의료보험이 어렵다는 것을 잘 알지 않느냐. ­세금을 거의 내지 않았다는 얘긴가. ▲무슨 말인가.다 냈다.
  • “레닌은 유태인혈통의 편집광”

    ◎새 전기 출간… “혁명중 문화재 조직적 파괴” 공산주의가 막을 내렸다지만 볼셰비키혁명을 이끈 레닌에 대한 존경심만은 좀처럼 버리지 못하는게 러시아국민들이다.붉은 광장의 레닌묘소에는 지금도 매일 수많은 참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고 스탈린,KGB 창시자 제르진스키의 동상은 모조리 철거돼도 레닌동상만은 꽤나 건재한 게 러시아의 현실이다. 이처럼 아직도 「소련의 국부」로 남아있는 레닌을 유대인·위선자·편집광적인 권력욕에 사로잡힌 인물로 묘사한 전기가 발간돼 화제가 되고 있다.지난달 중순 벨카출판사가 발간한 「햇빛속에서」가 바로 화제의 책으로 저자는 러시아민족주의 경향의 책을 주로 써온 블라디미르 솔로우힌. 우선 표지에서부터 레닌의 얼굴 절반을 마귀의 형상으로 묘사,책의 성격을 단적으로 짐작케 한다.소련시절 정형화된 레닌전기들이 공통적으로 담고있는 레닌의 사상·연설 등에 대한 언급은 생략하고 곧바로 레닌에 대한 인신공격부터 시작한다.주된 줄거리는 레닌이 광폭하고 주변의 심복 몇사람의 말만 듣는교활한 과대망상증 환자로 그려가고 있다.『레닌은 어린시절부터 정서적으로 불안정하게 뒤틀려있었고 이것이 뒷날 혁명전후 러시아문화를 조직적으로 파괴하는 작업으로 나타났다』는게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레닌의 모친 마리아 블랑크가 유대인이었다고 단정짓고 그 때문에 레닌이 어릴적부터 자신에게 적대적인 러시아문화·러시아인에 대한 증오감을 키워왔으며 혁명뒤 소비예트건설이라는 이름아래 전통러시아문화에 대한 조직적인 파괴행위를 저질렀다고 주장한다.정치적으로도 레닌은 혁명뒤 러시아인 다수가 자신을 지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대인·라트비아인들을 주요 지지기반으로 삼았다고 이 책은 쓰고 있다. 구체적인 증거로 초대 소비예트 인민위원회 구성원 22명 가운데 유대인이 20명이었고 국방위원회는 43명 가운데 34명이 유대인,KGB 전신인 체카의 지도자 45명 가운데 43명이 유대인이었다고 주장한다. 한편 이 책이 논란을 불러일으키자 일부에서는 초기혁명지도부 인사들 가운데 유대인 분류숫자등 책 내용의 상당부분이 정확하지 않은자료를 근거로 삼고 있고 러시아민족주의를 의도적으로 부추기려는 의도 또한 너무 노골화 돼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 “3·1정신 일깨워 부정부패 척결을”

    ◎3·1절 74돌 맞아 각종교단체 시국선언 문민정부 출범 이후 첫번째 맞는 74주년 삼일절을 맞아 각 종교단체에서는 시국선언과 각종 행사를 통해 삼일정신의 올바른 계승과 아울러 민족의 통일과 국민의 의식개혁을 촉구한다. 천도교는 당일 상오9시 독립선언에 참가한 민족대표 33인의 하나인 제3세교주 손병희선생의 우이동묘소를 참배한뒤 상오11시 서울 중앙대교당과 전국 각교당에서 기념식을 갖는다.또 서울기념식이 끝난뒤에는 일반시민과 함께 탑골공원까지 가두행진을 벌이며 손병희선생 동상앞에 집결,참배후 동학민족통일회의 이름으로 민족 자주역량으로의 통일과 총체적 부정부패의 척결을 촉구하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한다. 불교계는 사찰별로 기념법회및 남북통일기원법회를 개최한다.특히 대한불교청년회는 기념법회에 이어 33인의 하나로 문학정신을 통해 민족자주혼을 일깨운 만해 한용운 대선사를 기념하기 위한 백일장을 대구(28일)를 비롯,서울 청주 전주(3월1일)등에서 개최한다.또 2일에는 조계사불교청년회 주관으로 조계사 대웅전에서 도문스님을 초청,만해강연회를 갖는다. 기독교는 각교회및 단체별로 28일 3·1절 기념예배를 통해 민족화합및 통일을 위한 기도회를 갖는다.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3·1절 성명서를 발표,『교회는 민족과 교회앞에 3·1정신을 계승,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총체적 부패 척결로 한국병의 치유의 길을 찾을 것』을 촉구할 예정이다. 이에앞서 범종교계 대표로 결성된 통일광복민족회의(공동대표의장 오익제 천도교교령)는 27일 낮12시 경운동 수운회관에서 시국선언문을 발표,남북통일을 위한 남북정상의 조건없는 만남과 부정부패 근절을 위한 새정부의 대개혁 추진등을 촉구했다.
  • “경사났네”… 온종일 축하잔치/대통령 취임하던날 거제·마산 모습

    ◎마을대청소후 TV보며 함께 기도/거제/주민들 농악에 맞춰 “신한국” 합창/마산 ○…김영삼대통령의 생가가 있는 경남 거제군 장목면 대계마을 70여가구 3백여 주민들은 지난 23일부터 이틀동안 마을 대청소를 실시한데 이어 25일 아침 생가와 마을입구에 「경축 김영삼대통령 취임」이라고 쓴 현수막을 내걸고 돼지고기와 떡 음료수 술 과일등을 차려놓고 상오9시부터 종일 큰잔치를 벌였다. 주민들은 취임식이 시작되자 TV수상기 2대가 설치된 생가로 몰려들어 기쁨을 나누었으며 특히 대통령이 선서하는 대목에서는 기도를 하며 새대통령의 앞날을 축복했다. 주민들은 이어 농악대를 선두로 마을을 여러 바퀴 돌았는데 하오에 외포마을등 인근마을의 농악대까지 가세하자 분위기는 절정에 이르렀다. 이 마을 정수갑이장(57)은 『큰닭섬에서 탄생한 새 대통령이 반드시 신한국을 창조할 것』이라면서 김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생가에서 축하잔치를 열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바랐다. 한편 박부나할머니(82)등 여든을 넘긴 할머니 5명은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김대통령의 모친 묘소에 둘러앉아 아들의 대통령취임 소식을 전하며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김대통령의 부친 김홍조옹(82)이 살고있는 마산시 회원구 회성동 동네에서도 흥겨운 잔치마당이 벌어졌다. 회성동노인회 농악단이 집앞 사거리에서 한바탕 농악놀이를 벌인 것을 시작으로 인근주민 5백여명이 새마을부녀회와 청년회에서 준비한 술과 음식을 나누며 한껏 즐거워 했다. 주민들은 김대통령의 앞날에 영광이 함께 할 것과 취임식 참석차 상경한 김옹의 건강을 함께 빌기도 했다. 주민 박인길씨(66)는 『새 대통령의 부친이 거주하는 동네에 함께 산다는게 괜히 자랑스럽다』면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 석별의 정 나누고…「신한국」그리며…/가는대통령·오는대통령 이모저모

    ◎비서·경호실 돌며 아쉬운 악수/노/조깅화 등 단출한 이삿짐 꾸려/김 김영삼새대통령은 취임 하루를 앞둔 24일 취임행사 준비와 새 국정운영구상에 몰두했고 상도동자택은 25일 상오의 이사채비에 하루종일 분주했다.노태우이임대통령은 청와대에서 마지막 국무회의를 주재한뒤 국립묘지참배,청와대경내순시등의 바쁜 일정을 보낸뒤 저녁에는 친지들과 식사를 하며 청와대에서의 마지막 날을 마감했다. ▷상도동◁ ○…김새대통령은 상도동에서의 마지막 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상오 5시20분 「민주조기회」회원들과의 조깅으로 시작했다. 김새대통령은 이날 문앞에서 당분간 볼 수 없음을 아쉬워하는 조깅멤버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눈뒤 야호산을 4㎞ 가량 뛰었다.그리고 이들이 마련한 환송모임에 참석,준비한 케이크와 다과를 들며 지난 20여년 이상 조깅을 같이 해준 주민들에게 사의를 표했다. 조깅멤버들의 환송식에서 동네주민 김종운씨는 『국가와 민족을 위한 큰 정치가 온 나라에 뻗치고 세계에 퍼져 나가길 기원한다』고 김새대통령의 행운을 빌었으며김새대통령은 『제가 청와대에 가더라도 시간이 나면 여기서 여러분들과 한번 뛰도록 해보겠다』고 석별의 아쉬움을 나타냈다. 주민들과의 환송연이 끝난뒤 김새대통령은 그동안 자택경비를 위해 수고한 김종언노량진경찰서장과 윤두영동작구청장 한선호상도동장등에게 전화를 걸어 노고를 치하했으며 상오 9시10분쯤 자택을 나서 취임전까지의 마지막 시간을 보냈다.김새대통령은 그러나 이날 당에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시내 모처에서 취임사준비및 각료인선구상을 가다듬었으며 밤 8시40분쯤 귀가해서는 64년부터 30년간 살아온 상도동에서의 밤을 맞았다. ○…김새대통령의 가족들은 이날 취임식 참석과 청와대입주를 위해 부산한 움직임을 보였으며 부친인 김홍조옹은 하오에 상경했다.상도동측은 이미 주초에 이사짐을 꾸려놓았으며 25일 상오10시 1·5t 트럭 1대로 옮길 예정이다.이사짐은 여행용가방 7개,책을 담은 박스 3개와 액자 몇개가 전부이다. 그러나 간소한 짐에도 불구,김새대통령은 부친과 작고한 어머니 박부련여사의 사진,가족사진과 고향거제도의 전경그림등을 챙겼으며 평소 가까이 하던 붓·벼루·먹과 등산복·조깅화등도 넣었다.또 과자박스에 담은 책속에는 「권력이동」「정관정요」등의 정치학서적과 함께 친분이 두터운 인사들의 연락처 노트도 들어있다. 김새대통령의 청와대행에는 오랫동안 상도동집을 돌봐온 김상봉·김순재비서와 시래기국을 잘 끓이는 지수할머니가 동행하며,20년간 김새대통령의 차를 몰아온 이충일씨는 대통령전용 1호차를 운전하게 된다. 그리고 상도동집은 지난 17일 귀국한 장남 은철씨 부부가 관리할 예정이다. ▷청와대◁ ○…노태우이임대통령은 임기 마지막날인 24일 상오 청와대에서 현승종국무총리를 비롯한 전국무위원이 참석한 가운데 국무회의를 주재한데 이어 국립묘지를 참배,현직 국가원수로서의 공식일정을 끝냈다. 노이임대통령은 이날 낮에는 청와대에서 정해창비서실장을 비롯한 수석비서관들과 오찬을 함께 했으며 하오에는 비서실·경호실의 각 방을 돌며 직원들과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노이임대통령은 이날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임기말의 어려운 상황에서 중립선거 관리내각이라는 막중한 책임을 다하고 국정현안과제의 마무리,새대통령의 취임준비 등 정부이양작업을 순조롭게 진행시켜온데 대하여 노고를 치하했다. 노이임대통령은 회의를 마치고 본관앞 계단에서 국무위원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노이임대통령은 이어 부인 김옥숙여사와 전수석비서관들과 함께 국립묘지에 도착,현충탑에 헌화·분향한뒤 고리승만·박정희전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했다. 노이임대통령은 오는 3월초쯤 전례에 따라 최규하·전두환전대통령을 방문,퇴임인사를 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노이임대통령의 경내순시에 앞서 정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들도 각 사무실을 돌며 직원들과 작별의 악수를 나누었다. 정실장과 수석비서관들은 이날 사무실 짐정리를 마치는 등 떠날 채비를 완료했는데 25일 상오 노이임대통령 환송행사에 참석한뒤 각자 새생활을 시작할 예정. 그러나 비서관들과 행정관들은 일단 이사짐을 싸둔 상태에서 잔류여부 및 후임자가 확정될 때까지 「불안한」근무를 계속해야할 입장이다. 이들은 청와대를 떠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각오를 밝히면서도 물러난 다음의 생활에 대한 걱정에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한편 25일부터 청와대 앞길이 전면 개방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지자 청와대측은 직원들의 주차장으로 사용했던 경내 분수대주변 차도양편의 주차선을 지우는 등 김새대통령을 맞기 위한 마무리 단장에 부산한 하루를 보냈다.
  • 부천역사 연구소/향토사 발굴·홍보 크게 기여

    ◎지역 사학가 최현수씨 사재털어 설립… 문화발전에 큰몫/의병장 기념비 세우고 「지역사」도 편찬/매달 주민들에 특강,역사적 인물 소개/각지역 고유이름·인물사 각종 정보지에 발표도 한 향토사학자가 사재를 털어 설립한 민간학술연구단체가 잊혀진 지역의 역사를 발굴하고 잘못된 역사적 사실을 바로잡는데 앞장서는등 향토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경기도 부천시 남구 심곡1동 595「부천역사연구소」사무실은 오는 23일로 예정된 「부천사 연구」책자 발간을 앞두고 요즘 한창 바삐 돌아간다. 최현수소장(37)황성진간사(23·여·인하대 사학과 4년)를 비롯,15명의 연구위원·자료조사위원들은 3평 남짓한 사무실에서 머리를 맞대고 자료를 검토,토의하느라 시간을 잊고 있다. 최소장이 부천역사연구소 문을 연 것은 지난 91년 12월. 비록 연륜은 짧지만 이 연구소는 그동안 실로 활발한 활동을 벌여왔다. 대표적인 것이 설립이래 매달 셋째주 목요일에 일반시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해온「부천역사 특강」이다. 이 강좌에서는 부천과 관계된 역사적 인물을 선정,그의 생애와 활동을 소개해 주민들에게 지역역사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91년 12월23일 첫 강좌에는 부천에서 오랫동안 작품활동을 한 정지용시인을 소개해 부천에「정지용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와함께 부천문화원이 발행하는「복사골 문화」와 각종 지역생활정보지에 각 지역의 이름유래·인물사를 꾸준히 발표해 오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활동중에서도 연구소측이 가장 보람있게 여기는 사업은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박진의 업적을 발굴해 그의 기념비를 세운 일이다. 최소장은 지난해 「죽산 박씨 대동보」를 살펴보다 박진이 임진왜란이 나던 해인 15 92년 둘대산(지금의 춘덕산)에서 2백여명의 의병을 조직,유격전술로 왜군의 주력부대를 격파한 사실을 발견했다. 이후 박의병장의 묘소가 부천시 남구 역곡1동 춘덕산 능골에 초라한 모습으로 남아 있음을 알고 기념비추진위원회를 구성,후손및 주민들로부터 2천4백여만원을 모아 지난해 11월9일 묘소 주변에 3m 높이의 기념비를 건립했다. 이러한 사업을 이루는 데는 최소장과 황간사의 헌신적인 노력이 앞섰지만 민충환부천전문대 교수(54),김희태독립기념관전시과장(49)등 이 지역 출신 연구·자료조사위원들의 도움이 컸다. 전남 해남 출신으로 인하대와 동대학원에서 사학을 전공한 최소장은 『지난 85년 부천시사편찬상임위원(별정직 5급)을 맡으면서 부천과 인연을 맺게 됐다』면서『자기 고장역사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한가락 시조모임」/두번째 시조집 펴내

    ◎옛 선비들 풍류 즐겼던 유적지 탐방/현장서 읊은 13명회원의 작품 실어 조상들의 숨결이 남아있는 전국의 정자들을 찾아다니며 시조문화활동을 전개해오고 있는 「한가락 시조 모임」이 두번째 시조모음집 「한가락」을 펴냈다.13명이라는 많지 않은 회원들이 매달 한번씩 전국에 흩어져있는 유적지중 옛 선비들이 시조를 지어 불렀던 정자를 골라 답사하고 현장에서 즉석으로 지어 읊은 시조들을 다듬어 현장 사진과 함께 한데 모아놓은 책이다. 우리 조상들의 문화유산인 시조를 원형 그대로 가사와 창,문학과 음악이 조화를 이뤘던 모습으로 계승·발전시키기 위해 「한가락 시조 모임」이 발족한 것은 지난 90년 4월.매주 월요일이면 어김없이 모여 시조공부를 하고 또 매달 한번씩 전국의 유적지를 탐방하면서 풍류를 즐겼던 선조들의 멋을 체험하는 것이 이들의 주요활동이다. 지난 91년 첫번째 시조모음집을 낸데 이어 얼마전 나온 두번째 시조집 「한가락」에는 포천 왕방산에 자리한 고려말 선비 이헌 성여완의 묘소를 시작으로 지난 7일 경북 군위군 효령면 삼영정에 이르기까지 모두 34회에 걸친 전국 유명 정자탐방결과가 담겨있다. 시조시인 중관 최권흥씨의 지도아래 진행되는 이들의 「역사탐방」은 정자주변에 둘러앉아 현장에 대한 역사공부와 함께 토론을 벌인뒤 선비들의 정신을 되새기는 시조를 지어 그 자리에서 읊어보는 것으로 마무리된다.근대화과정을 거치면서 물밀듯이 들어온 서구문물과 사상의 와중에서 우리 조상의 문화유산이 본래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는 안타까움에서 모인 「한가락 시조 모임」.20대에서 60대까지 세대차를 넘어서 고르게 분포된 뜻깊은 문화사랑공동체이다.
  • 형명의 종중땅 증여 과세시점은 언젠가(경제살롱)

    형이름으로 된 종중 묘소용 임야 3백평을 지난 90년4월 증여받았다.세법을 잘 몰라 지난 해 10월에야 세무사를 통해 증여세 86만원을 냈다.한달후 세무서로부터 증여세 1천만원을 내라는 통지서를 받았다.묘소용 임야인데다 땅값이 비싼 편도 아닌데 세금이 왜 이렇게 많은가. ○실제증여시기 기준 종전의 국세청 시행령에는 증여를 확인한 시점(귀하의 경우는 92년 10월)을 기준으로 과세토록 돼 있었다.그러나 대법원에서 이 규정이 위헌이라는 판결이 나 최근 시행령을 개정,과세시점을 실제 증여시점으로 바꿨다.따라서 귀하에게 92년의 공시지가를 적용한 것은 잘못이다.귀하가 실제 증여받은 90년은 공시지가가 적용되기 이전이므로 당시의 내무부 기준시가에 의해 세액이 결정된다.귀하가 받은 통지서는 결정 전 안내이기 때문에 세액조정이 가능하다.
  • “새 미국의 등장” 축제 5일째/클린턴 대통령 취임식 이모저모

    ◎곳곳서 한밤까지 불꽃놀이·야외 콘서트/“뭔가 다른것 기필코 이루겠다” 다짐 연설 빌 클린턴이 미국의 새 대통령으로 취임하던 20일 수도 워싱턴 거리는 열광하는 시민들로 온통 축제분위기였다. 워싱턴 뿐만아니라 온 미국이 젊은 기수에 의한 「변화와 희망」의 기대에 들떴고 세계 각국이 「새로운 미국의 등장」을 예의주시했다. 클린턴대통령의 취임식전후 축하행사의 이모저모를 살펴본다. ○연설 짤막하게 끝내 ○…클린턴대통령은 이날 취임연설을 보기드물정도로 짤막하고 명료하게 끝마쳤다. 그의 취임선서가 이처럼 짧은 시간안에 끝마치게 된것은 취임연설을 너무 길게했다가 후유증으로 시달리다 끝내 사망한 제9대 윌리엄 해리슨 대통령의 전례가 참작됐다고 한 측근이 전언. 미국대통령 역사상 취임연설이 가장 길었던 때는 해리슨대통령의 약 90분이었으며 가장 짧았던 때는 1백33단어로 끝낸 조지 워싱턴대통령이었다고. ○풀네임으로 취임선서 ○…클린턴은 20일 정오(한국시간 21일 새벽2시) 의사당앞에서 거행된 취임식에서 「윌리엄제퍼슨 클린턴」이라는 풀네임으로 취임선서를 했다.그의 어렸을적 원래이름은 「윌리엄 제퍼슨 블라이드 4세」로 클린턴이라는 이름은 어머니의 재혼후 의붓아버지의 성에서 따온 것이다.윌리엄 랭키스트 대법원장 앞에 선 클린턴은 가죽 성경에 왼손을 얹고 『나는 미국 대통령직을 성실히 수행하고 미국 헌법의 유지.보호와 수호를 위해 최선을 다할것을 엄숙히 맹세한다』고 선서했다. ○“행사규모 크다” 비판 ○…새로운 지도자를 맞는 워싱턴은 부시 대통령의 임기만료를 불과 며칠 앞두고 터진 이라크사태로 어수선한 가운데도 5일간의 사전축제로 크게 들뜬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 국내외 축하사절단이 대거 몰려든 가운데 워싱턴은 곳곳에서 야외콘서트,불꽃놀이 및 축하타종식 등이 열려 도심교통이 곳곳에서 마비되기도 했다.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당초 예정보다 행사규모가 커진데 대한 비판도 없지 않다. ○32년만에 축시 부활 ○…이번 취임식에서는 지난 61년 케네디대통령의 취임식 이후 32년만에 축시낭독이 부활됐다. 이날 축시낭독은 TV연속극 「뿌리」에도 출연한바 있는 흑인여류작가 안젤로(64)가 맡았는데 그녀는 취임식때까지 철저히 비밀에 부쳐온 자신의 자작시 「아침의 맥박」을 3분30초동안 낭독했다. ○…클린턴당선자는 19일 고 케네디 전대통령의 묘소를 찾은 자리에서의 연설을 통해 『재임중 그저 자리나 차지하고 있지 않겠다』면서 『무언가 다른 것을 기필코 이뤄내고 말 것』이라고 다시 한번 의욕을 과시했다. ○의상 4번 바꿔입어 ○…클린턴대통령의 부인 힐러리여사는 이날 여러차례 의상을 바꿔입어 행사참석인사들과 언론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힐러리여사는 보통 에메랄드·자주·빨강 등 보석빛깔에 물결처럼 흐르는 코트를 즐겨입는데 이날도 신정부의 앞날을 상징하는 의미에서 밝은 색조의 의상들을 착용했다. 그녀는 이날 상오의 앨링턴국립묘지 참배,정오의 취임선서식,하오의 케네디센터 방문,저녁때의 축제행사 참석등 모두 4차례나 의상을 바꿔입었으며 이 가운데 선서식 때입은 가운은 스미소니언의 미국 역사박물관에 기증돼 영구전시될 예정이다. ○외로울때 색소폰 불어 ○…클린턴 대통령은 취임 식전축하행사의 하나로 19일 열린 어린이 모임에서 자신은 10대부터 대통령이나 적어도 공직자가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케네디센터에서 열린 이 축하행사에서 어린이들의 질문에 이같이 답변하고 『만일 공직에 출마해서 당선된다면 이는 한번 해볼만한 일이며,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좋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화가 난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렇다』고 답변한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화를 억누르는 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그는 『어렸을때 나는 때로 화를 내고 때로 어리석은 일들을 했었다.화가 나서 땅을 걷어 차고 벽을 주먹으로 치고,공이나 다른 것들을 던지거나 했다』면서 그러나 지금은 심호홉을 하면서 하나에서 열까지 센다고 말했다. 그는 때로 화를 내는 것이 올바를 때가 있다면서 『화를 낼 가치가 있는 때가 있는 법』이라고 말하고 자신은 과거 외로울때면 색소폰을 불었다고 말했다. ○부시,기자접촉 회피 ○…백악관에서의 마지막 저녁을 맞은 부시대통령은 19일 저녁 미국민들에게 『믿음과 용기,근면함과 영감』을 가질 것을 당부. 부시대통령은 몇시간후 취임식을 가질 클린턴이 국내외 관심의 초점이 되는 것을 방해하지 않기위해 공식연설도 하지 않고 기자들을 애써 피하는 모습. 그는 백악관 관리인들과 경호원등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함께 사진을 찍은 후 빌리 그레이엄 목사 일가를 저녁식사에 초청,백악관에서의 마지막 밤을 함께 했다. ○미­러 정상회담 희망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은 20일 미국의 빌 클린턴 신임대통령에게 취임축하전문을 보내고 가까운 장래에 두나라 정상이 만날 수 있기를 희망. 옐친대통령은 이날 대통령궁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달초 모스크바에서 있은 2단계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Ⅱ)서명식 당시 그가 행한 연설중 두나라간 대화가 중단돼서는 안된다는 부분을 다시 한번 역설. 옐친 대통령은 양국관계의 중요성을 부각하면서 클린턴 대통령과의 회담이 빠른시일내 제3국에서 개최되길 희망한다고 재차 강조.
  • 두 얼굴의 사회(변화하는 베트남:5)

    ◎“개방” 뒷전엔 통제·감시 여전/「인민오염」 우려 공안통치를 강화/비밀경찰 인구 5.5명당 한명 꼴 75년 공산통일이전 대통령궁으로 쓰였던 호치민시 통일궁 1층 호치민홀에는 『베트남에는 오직 한 사람의 지도자가 있다.이를 누구도 바꾸지 못한다.호치민』이라고 씌어져 있다. 또 하노이 호안킴호수옆 베트남정부 영빈관에서 호치민묘소가 있는 바딘광장으로 가는 길목 전쟁박물관 맞은편에는 출생지 러시아에서조차 철거된 레닌동상이 아직도 건재하고 있다. 호치민시 르던가 미대사관 앞에는 『여기 미대사관이 있었다.미침략자들은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1968년 1월31일 남베트남 인민과 군대가 이 건물을 점령했다.이 승리는 인민의 승리였다.1975년 4월29일 미침략자들은 이 빌딩 옥상에서 헬기를 타고 떠나갔다.1978년 12월22일』이라고 쓰인 동간판이 정문옆에 서있다. 이처럼 베트남에는 개혁과 개방 물결에도 불구하고 관리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혁명의 순수성」,즉 사회주의체제를 지키려는 당국의 의지가 곳곳에 엿보인다. 레닌과 그의 숭배자인 호치민은 여전히 베트남 인민들의 신봉의 대상이며 이제는 오히려 그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지만 미국은 아직도 베트남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제국주의 침략자」로 남아 있다. 베트남외무성 한국과 직원 구엔 안지씨는 『미국도 한국도 이제는 친구』라며 『베트남사람들은 과거를 되돌아보지 않는다』고 몇번씩 힘주어 말하지만 개방이 몰고온 사회주의 분위기의 위축에 몹시 신경쓰이는 눈치였다. 베트남정부는 체제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인민들에 대한 통제와 감시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대한무역진흥공사 호치민시무역관장 조영복씨가 든 예는 베트남의 공안통치를 단적으로 설명해준다. 베트남에 진출한 한 한국기업은 혹시 베트남에서의 영업에 도움이 될 까 해서 베트남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청년을 서울에서 데려왔다. 그러나 이 청년은 사장과의 불화로 얼마되지 않아 자취를 감추었다. 사장은 이 청년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했으나 헛수고에 그쳐 결국 비밀경찰에게 부탁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비밀경찰은 2일만에 이 청년이 언제 어디를 거쳐 어떤 비행기편으로 출국했는지 알아냈다. 베트남의 비밀경찰 숫자는 대략 1백20만명.전체인구가 6천6백만명이므로 인구 5.5명당 한명꼴로 비밀경찰이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 숫자는 군대병력 1백15만명보다 5만명이나 많은 것이다. 조관장은 『이같은 수치는 하다못해 시클로운전사,나아가 거지들 가운데조차 비밀경찰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포철 하노이지사 오대용과장은 『외국인이 쓰는 전화와 팩시밀리는 모두 도청당한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베트남정부의 감시체제를 설명한다. 오과장에 따르면 이같은 감시와 통제에 일일이 역정내다 보면 아무 일도 못하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며 사는것이 오히려 마음 편하다는 것이다. 또 베트남의 정부기관들은 자신이 캐낸 정보를 독점하지 않고 곧바로 여러기관에 알리기 때문에 그만큼 정보의 효율성이 높다고 설명한다. 베트남 정보기관의 정보수집능력은 어느집에 몇 식구가 살며 그들의 이름과 나이가 몇 살인지 또 그가운데 누가 아편쟁이이고 전과자인지까지 속속들이 파악할만큼 뛰어나다. 특히 외국인들에 대해서는 한시도 감시의 눈초리를 떼지 않아 호텔에 몇시에 들어와 어디에 갔다가 몇 시에 돌아왔는지까지 호텔에 비치된 장부에 기록한다. 때문에 호치민시처럼 과거에 자본주의를 경험했던 곳을 돌아보면 이곳이 분위기상으로는 서방세계와 별 차이가 없다는 느낌을 가질 수도 있지만 이는 큰 오산이다. 베트남에는 소문인지 사실인지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법에 3인이상의 집회를 금지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 「도이모이」 6년… 곳곳 개방물결(변화하는 베트남:1)

    ◎작년 사유재산 인정뒤 생활상 급변/노출 심한 아오자이의상 다시 유행/퇴폐문화 부활 조짐… 대도시 러브호텔 성업 공산화 17년,베트남의 현주소는 어디인가.베트남은 지난 86년 12월 제6차 공산당 전당대회에서 쇄신이란 뜻의 「도이모이」를 새로운 정책으로 채택,경제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또 6년여가 흐른 지금 「도이모이」의 성과는 곳곳에서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다.그러나 우리의 60년대초를 연상케하는 베트남이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고 있으나 자본및 기술,경험의 절대부족과 개혁·개방의 후유증을 최소화하려는 사회주의체제신봉자들의 반동적 노력때문에 결코 순탄치만은 않다.베트남의 변화된 모습과 앞으로의 개혁방향등을 시리즈로 싣는다. 베트남의 개방과 개혁을 향한 노력은 곳곳에서 드러난다.남부와 북부,도시와 농촌 어디를 돌아봐도 「도이 모이」의 물결이 넘친다.다만 75년 공산통일 이전 자본주의를 경험한 적이 있는 호치민시(구 사이공)를 중심으로 한 남부지역과 프랑스에서 독립한이래 줄곧 공산정권 치하에 있었던 북부지역간에 변화의 속도가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지난 4월 베트남 정부가 사유재산을 인정하고 재산의 상속및 증여,인도를 허용한 뒤부터 개방과 개혁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는 것이 이곳에 진출한 우리 상사원들의 설명이다. 우선 개혁과 개방의 모습은 젊은이들의 옷차림에서부터 감지할 수 있다. 하노이시 번화가 호안 킴가 옆에 있는 호수 근처를 거니는 젊은 남녀들의 T셔츠 가운데는 성조기와 붉은 바탕에 금색의 별이 새겨진 베트남 국기가 나란히 인쇄된 것도 있다.이런 T셔츠는 심지어 사회주의 신봉자였던 국부 호치민의 묘소가 있는 바딘광장 근처 기념품가게에도 버젓이 걸려 있다. 또 하노이 최대시장인 초 동 슈안시장에는 질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자본주의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청바지가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노출이 심하다고 해서 금지됐던 베트남 여자들의 전통 의상 아오자이가 허용된 것도 「도이 모이」가 시행된 뒤부터이다. 그러나 아오자이는 이제 여염집 여인네의 일상 옷차림에서부터스튜어디스의 제복,학생들의 교복에 이르기까지 베트남 여자들의 의생활을 지배하고 있다. 정작 69년에 죽은 호치민이 소스라쳐 벌떡 일어날 일은 젊은이들의 성풍속도이다. 하노이와 호치민같은 대도시에는 미니호텔이라는 우리로 치면 남녀에게 섹스장소를 제공하는 러브 호텔이 성업중이다.두 사람이 겨우 누울 만한 크기의 미니 호텔은 손님이 없는 시간에 방을 빌려주고 「과외돈」을 챙기려는 종업원들에 의해 불법으로 운영되고 있다.개방과 개혁은 한편으로 자본주의라는 퇴폐의 냄새를 풍기기도 한다. 쿠바수상 카스트로가 지난 77년 베트남전 승리를 기념해 지어주었다는 하노이 탕 로이(승리라는 뜻)호텔에는 마사지걸이 있는 사우나도 있다.마사지걸 중에는 간호원과 공무원도 있다는 것이 삼성지사 곽세호 과장의 귀띔이다. 호치민시에서 가장 크고 역사가 1백년이 된다는 벤 탄 시장 입구에는 여자들의 머리를 손질해주고 손톱·발톱을 다듬어주는 이른바 노상 뷰티숍이 눈길을 끈다.우리나라의 구두닦는 곳처럼 얕은 의자에는 비교적 부유해 보이는 중년여자들이 줄지어 앉아 있고 그 앞에는 쪼그려 앉아 이들의 손톱·발톱을 다듬는 손놀림이 분주했다. 호치민시에는 이미 영어로 된 대형 입간판이 즐비하고 호치민시에 비해 한산하기 짝이 없는 하노이에도 「SHOP」「CAFE」등 영어로 된 간판이 들어서기 시작하고 있다. 공산화전 미군장교클럽으로 쓰였던 호치민시 렉스호텔옆 극장에는 앞으로 상영될 외국영화 포스터가 걸려 있고 대여섯평 남짓한 공간에 겨우 엉덩이를 걸칠만한 의자를 설치하고 TV로 비디오를 보여주는 비디오숍에도 미국영화가 태반이다.
  • YS 금의환향… 온동네 축제물결/대선후 첫 귀향·축하연 이모저모

    ◎“큰닭섬에 경사났네” 농악대 나와 환영/5백명 초청,가락동연수원서 자축연 김영삼 대통령당선자는 22일 「금의환향」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하루를 보냈다. 김당선자는 이날 대선후 처음으로 자신의 고향인 거제도와 마산을 방문,부친과 동네어른들에게 당선인사를 했다. 이에앞서 그는 이날상오 큰 꿈을 키웠던 모교인 서울대 입시현장에 들러 대학관계자와 학부모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교육대통령론 피력 ○…김당선자는 이날 수험장주변의 혼잡을 피하기 위해 수험생들의 입실이 끝난 9시쯤 서울대에 도착,김종운총장으로부터 입시준비현황 등을 설명들은 뒤 『젊은 학생들이 마음놓고 공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예의 「교육대통령논」을 피력. 김당선자는 입시경쟁률과 도서관실태 등에 관심을 표명한 뒤 『이제 「민주대 반민주」구도는 종식되고 새로운 선거문화도 정착된 만큼 국민 모두가 신한국건설을 위해 전진해야 한다』고 강조. 김총장은 『서울대 동문중에서 첫 직선대통령이 나와 참으로 기쁘다』고 축하인사. 이어 김당선자는학부모 5백여명이 기다리고 있는 학생회관 식당에 들러 『1년동안 자녀들과 함께 고3병을 앓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았느냐』『꼭 합격하길 바란다』고 위로해 학부모들로부터 많은 박수를 받기도. ○모친묘소서 눈시울 ○…김당선자는 이날 대선후 처음으로 부인 손명순여사와 함께 고향인 경남 거제를 방문,선영에 성묘하고 귀경길에 마산에 있는 부친 김홍조옹을 찾아 인사. 김당선자는 이날 상오9시40분쯤 성남 서울공항을 출발,대통령 전용기인 공군2호기와 공군헬기를 차례로 이용,고향인 거제군 장목면 외포리 대계마을에 도착,곧바로 모친과 조부모 백부 묘소를 찾아 헌화 참배. 특히 김당선자는 모친 박부연여사의 묘소에서 봉분잔디를 고르며 대통령당선통지서를 바치고 눈시울을 붉힌뒤 한동안 만감이 교차하는 듯 고향 앞바다를 내려다보며 묵상에 잠기기도. 또한 부인 손여사와 김당선자의 여동생들도 『어머니 오빠가 대통령이 돼서 지금 찾아왔습니다』며 북받치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오열해 주위를 숙연케 했다. 김당선자가 생가가 있는 대계마을에 이르자 주민들은 「큰 닭섬에 경사났네 김영삼대통령」「김영삼대통령당선 경축」「대도무문의 크신 뜻을 통일의 시대로」등 플래카드와 애드벌룬을 내걸었고 농악대를 동원,수기를 흔들고 「대통령 김영삼」을 연호하는가 하면 「나의 살던 고향」을 연창하는등 온통 축제분위기. 주민들의 환호속에 생가에 도착한 김후보는 지역유지및 주민대표 20여명과 오찬을 함께 하며 주민들의 숙원사업및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거제발전에 관심을 표명.이어 김당선자는 귀경길에 마산 회성동으로 부친 김홍조옹을 찾아 대통령당선통지서를 내보이며 『아버지 이것을 타기 위해 40년이 걸렸습니다』고 인사한뒤 부인 손여사와 나란히 큰절. 마산 부친댁 인근주민 3천여명이 몰려나와 꽹가리와 북을 치며 김당선자의 마산방문을 열렬히 환호하자 대문 입구로 나와 즉석 연설. ○연예인 대거 참석 ○…김당선자는 이날 하오 김종필대표 정원식선대위원장을 비롯한 소속의원·당직자·선대위관계자등 5백여명을 「정권창출의 산실」이 된 가락동 중앙정치교육원으로 초청,자축연을 베풀고 당선사례. 김당선자는 인사말을 통해 『이제 우리 앞에는 국민 모두를 화합을 통해 하나로 묶고 우리 경제를 되살리는 과제가 놓여 있다』면서 『정권창출의 주역인 우리모두가 고통을 분담하면서 신한국건설을 위해 함께 뛰자』고 당부. 특히 이날 행사에는 김후보의 대선유세에서 큰 역할을 했던 「큰 나래회」소속 연예인들이 대거 참석.
  • 중학생때의 꿈 대통령 되기까지(김영삼 결단·돌파 40년:상)

    ◎인간면모/활달했던 성장기… 항상 긍정적/“역사·국민앞에 떳떳이/신의·약속 중시… 친화력도 겸비/유복한 가정 외아들… 돈에 초연 제14대 대통령당선자 「김영삼을 모르는 국민은 없다.그는 지금까지 살아오는 과정에서 한 인간으로서,정치인으로서 너무나 뚜렷한 족적을 보여주었다.패기 넘치는 젊은 정치인으로 출발,민주화 투쟁·반독재투쟁의 선봉에 항상 앞장서 있던 그는 이제 집권당총재를 거쳐 대통령당선자가 되었다.화려하면서도 영욕이 교차했던 그의 정치경력 때문에 국민들이 거는 새대통령에 대한 기대는 남다르다.김영삼당선자의 인생과 정치비전을 상·하로 나누어 재조명해 본다. 1992년 12월19일­. 긴세월 대권을 향한 「김영삼집념」은 실현됐다. 대통령은 정치인의 꿈이다.그는 그 꿈을 성취했다. 이제 그의 앞에 놓인 것은 새로운 역사의 창조이다. 그가 어떻게 결단하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국가의 진운이 결정된다. 그는 뜬눈으로 밤을 세우고도 이날 새벽 5시에 어김없이 아침운동길에 나섰다.마산에 계신 부친 김홍조옹에게 안부전화도 잊지 않았다. 어제 아침과 다른 것은 없었다. 그러나 어둠속에서 상도동야산을 달리는 그의 머리속에는 ” 늘 기도/이자리에 이르기까지 숱한 세월의 기억들이 스쳐지나갔으리라.지난날의 어떠한 난관보다도 더 힘들고 막중한 대통령의 자리를 생각했을 것이다. 김영삼대통령당선자는 1927년 12월20일 경남 거제도동쪽 장목면 외포리 대계마을에서 태어났다.부친 김홍조옹(82)은 어장주로 거제에서는 알아주는 갑부였고 모친 박부연여사(60년 작고)는 대가집 며느리답게 포용력이 크고 자식들 교육에도 열성적이었다고 한다.김영금씨 충정공파 28대손인 김당선자는 여동생만 다섯인 외아들로 태어나 유복한 어린시절을 보냈다.이러한 성장과정은 그가 돈문제에 초연한 점이라든가 숱한 역경에 부닥쳐서도 대담하고 낙관적인 태도를 버리지 않는 심성의 바탕이 되었다. 어머니 박여사는 60년 고정간첩에 의해 살해돼 가족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꿈많은 어린시절 그는 섬소년으로 바다를 벗삼아 자랐고 지금도 그는 바다만 보면 불행하게 돌아가신 어머니의 포근했던 모성을 떠올리며 가슴이 저민다고 한다. 그는 장목소학교 통영중 경남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문리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학창시절 그는 정의감이 강했으며 수영·축구등 운동에도 만능이었다고 동기생들은 전한다.통영중시절 김영삼학생이 한국인학생을 차별하는 일본인교장을 골탕먹여 무기정학을 받은 사건은 아직도 동기생들 사이에 일화가 되고 있다. 또 어머니로부터 하숙비를 더타내 가난한 동급생을 돕는 따뜻한 면모도 가졌다고한다. 지금도 젊은이 못지않은 건강을 유지하고 항상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로 정치적 고비를 헤쳐온 그의 행동양식은 활달했던 학교생활 과정에서 쌓은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에게도 설레던 첫사랑의 기억이 있다.서울대학생시절 하숙집 이웃의 박모라는 여학생을 짝사랑했고 사랑이 무르익을 무렵 6·25전쟁으로 연락이 끊겼다.다시 서로의 소식을 알게됐을때는 이미 각각 가정을 가진 남이었고 그녀가 남편과 사별한뒤 만나자고 했을때 그는 고민끝에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24세때인 51년 이화여대약학과3학년에 재학중이던 손명순여사와 결혼,슬하에 2남3녀를 두었다. 김당선자는 자신의 결혼에 대해 『처음에는 장가를 가지 않겠다고 버텼으나 결국 어른들의 성화에 못이겨 한번 선이나 보자는 심정으로 고향에 갔었다』고 무뚝뚝하게 당시를 회고하지만 손여사는 『멋쟁이같고 의리와 뚝심이 있어보여 마음에 들었다』고 감격적인 젊은날을 회상한다. 그의 성격은 「한번 한다면 한다」는 무서운 저력을 지니고 있다.대통령의 꿈도 중학시절부터 비롯됐다.「미래의 대통령 김영삼」이라고 하숙방에 써붙였던 목표는 이후 50여년간 그를 채찍질했고 그를 결국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약속을 중시하는 그의 신의와 상대를 편하게하는 친화력이 그를 「정치거산」으로 또 대통령으로 만든 원동력이었다. 정적에 대해서는 서릿발같은 단호함으로 살아왔지만 자신의 품을 찾아드는 인사는 기꺼이 품어주는 포용력도 그의 돋보이는 점이다.이같은 그의 신의와 포용력은 따르는 사람들에게 「그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충성심을 갖게한다고 한다. 그의 정치적 동반자이자 「좌동영 우형우」중 한사람이었던 고금동영정무장관은 암으로 투병하면서도 누가 될까봐 내색하지 않고 세상을 뜨는 순간까지 김당선자를 보필했다. 김당선자가 고금장관의 병상에서,묘소에서 흘렸던 뜨거운 눈물은 지금도 남은 동지들의 가슴을 적시게 한다. 늘 웃는 동안으로 사람을 대하지만 그는 유신직후 가택연금을 당했을때 양주 두병의 주량과 하루 서너갑씩이나 피우던 담배를 하루아침에 끊을 만큼 「독기」도 지녔다. 그는 무서운 결단과 포용력을 아울러 갖춘 정치지도자이지만 부친에게 매일 아침문안 전화를 드리는 효자이며 또 손자들에게는 자상한 할아버지이다. 그는 항상 『역사와 국민앞에 떳떳한 행동을 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달라』는 기도로 자신을 새롭게 가꾸고 있다.
  • 김대중후보,대표사퇴 왜했나

    ◎대선 역전극 노린 막판 승부수/부동표 흡수·당결속 2중포석 민주당의 김대중후보가 14일 기자회견을 통해 당대표직을사퇴키로 선언한 것은 선거 막바지 당결속을 강화함과 동시에 부동표 흡수를 통해 막판 역전극을 노린 승부수라고볼 수 있다. 김후보측은 앞으로 남은 3일간의 선거활동 기간동안「타후보의 지지선언」유도,「김권폭로」등 연속적인 「카드」를 준비할 계획이었으나 진척상황이 여의치 않아 이번 선언을 승부수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김후보는 지난 5월의 전당대회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선거의 당락에 관계없이 당무일선에서 물러날 것』임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그때마다 당내 민주계는 당무일선에서 후퇴할 것을 강력히 요구해왔고 이에 대해 뚜렷한 「보장책」을 내놓지 못했었다.따라서 당내일각에서는 김후보의 당권포기에 대해 강한 의구심을 갖고 있었으며 이것이 당의 결속에 장애를 가져온 것 또한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후보가 선거 막판에 대표위원직을 내놓은 것은 이번 카드를 최대한 활용해보겠다는 계산이 깔린것이다. 수도권의 부동층이 역대의 어느 대통령선거때보다 많은 시점에서 「당권포기」카드를 던짐으로써 효과의 극대화를 노렸다고 볼 수 있다. 즉 『김대중은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유권자들에 대해 『약속은 반드시 실천한다』는 지도자상을 부각시킴으로써 수도·중부권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부동층의 시선을 자극해보자는 것이다. 특히 김후보는 이번 선언에서 대표직사임을 천명하면서 『존경하는 이기택 대표최고위원과 당지도자 여러분이 당을 원만히 이끌어 달라』는 주석을 붙임으로써 영남권 유권자는 물론 당내 민주계의 영남권공략에 추진력을 불어넣기 위해 애쓰고 있다. 김후보의 이러한 의도는 『노태우대통령과 거국내각구성을 협의할 것』이라거나『대화합의 마음가짐에서 이승만박사와 박정희전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했다』고 강조한 대목에서 명백히 찾아볼 수 있다. 이와 함께 후계구도에 대해 의구심을 버리지 않고 있는 당내 일부세력들에 대해서도『안심해도 된다』는 「보장」을 해줌으로써 당내의 결속을 유도,효과의 극대화를꾀하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표의 창출보다는 고정표가 많은 김후보의 득표기반으로 볼 때 이번 선언이 부동표의 확보에 어느정도로 영향을 미칠 지는 아직 미지수이며 선언의 실효성에 대해서도 의문을 갖는 층이 당내외에 적지않은 것도 사실이다. 지난 대선때의 후보사퇴 번복,광역선거 이후 당권포기에 이은 복귀등 「전력」등을 들춰내지 않더라도 민주당은 다수의 간부들이 「이대표로의 무조건적 당권이양」에 동의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김후보가 의원직 사퇴를 유보한 것도 의구심을 갖게하는 대목중의 하나라는 지적이다. 더욱이 김후보는 평소 『후계자로 생각하는 사람이 3∼4명 있다』고 공언해 왔음에도 당내기반이 취약해 「리더십」에 문제가 있는 이대표에게 당권을 넘겨준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 “지역감정·투자부진 해소”/대선후보들/지방유세·직능단체 접촉

    제14대 대통령선거에 나선 후보가 8명으로 최종 확정된 가운데 각 후보들은 26일 지방유세를 갖거나 직능단체간담회 등에 참석하는 등 득표활동을 계속했다. 【거창=황진선기자】 민자당의 김영삼대통령후보는 대선일정 공고이후 처음으로 취약지인 전북 정주·장성·남원등 호남지역에서 유세를 갖고 지역감정타파를 집중 강조,『한국병중에서 가장 고질적이고 만성적인 지역감정을 고치는 방법은 인사쇄신과 낙후지역개발』이라고 지적하고 『인사정책에서만은 지역차별이 없어야 하며 권력핵심을 특정지역에서 독점해서는 안된다』고 인사쇄신책을 제시했다. 민주당의 김대중후보는 지방유세를 쉬고 전국대학강사노조협의회 임원단과의 면담에 이어 서울 강동구 상일동소재 어린이 지체장애자보호시설인 주몽재활원을 방문,장애인들에 대한 공약을 제시하는등 직능단체와 소외계층에 대한 득표활동을 계속했다. 【진주=윤두현기자】 국민당의 정주영후보는 경남 함양 거창 협천 진주에서 『김영삼후보는 「정치안정」이라는 미명아래 국회 다수당이 아니면 대통령을 내서는 안된다고 하고 있는데 불과 3년전 그가 얼마나 다수당의 횡포를 비판했느냐』고 말했다. 정후보는 『3·4분기의 3.1% 성장으로 우리 경제가 11년만의 최악임에도 정부는 특별한 경기부양책을 쓰지 않겠다고 하고 있다』면서 『불경기때 더 투자를 하는 것이 경제의 상식』이라며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난했다. 새한국당의 이종찬후보는 천안 온양 예산 당진 서산등 충청도 일원에서 유세를 벌이고 서해안고속도로 조기완공·공단건설및 국제항만개발·농지매매거래 자유화 등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신정당의 박찬종후보는 서울 노량진 전철역과 경기 시흥 과천 등지에서 노상토론회를 갖고 『역대정권은 특정세력만을 위한 경제개발을 해 오늘의 경제위기가 도래했다』고 비판한뒤 대기업의 소유와 경영 분리유도·대통령직속의 경제윤리위원회 설치 등 경제정의 실현을 위한 10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무소속의 김옥선후보는 서울 명동일대·백화점 등지를 찾아 유권자와 접촉하며 지지를 호소했고 백기완후보는 김구 장준하선생의 묘소를 방문해 대선후보출마에 따른 보고대회를 가진뒤 도시빈민대표 50여명과의 간담회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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