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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민정부 일지

    ▲2월25일=취임식,청와대 앞길·인왕산 개방 ▲2월26일=첫 조각발표 ▲2월27일=김대통령 재산공개,안기부장 경호실장 국무회의 불참지시 ▲3월4일=차관급 명단발표,정치자금근절선언,청와대안가 철거지시 ▲3월6일=대사면,황인성총리재산공개 ▲3월8일=법무·보사·건설장관 전격교체,육군 참모총장·기무사령관등 군수뇌 전격교체 ▲3월12일=민자당 대표 당3역 재산공개 ▲3월18일=장관급 29명 청와대 간부 11명등 재산공개 ▲3월19일=이인모 노인 북송,신경제 특별담화 고통분담호소 ▲3월22일=민자당 의원 당무위원 1백61명 재산공개 ▲3월27일=차관급 1백25명 재산공개 ▲4월1일=대통령 전용 귀빈실 7곳개방 ▲4월2일=수방사령관 특전사령관 전격경질,재산물의 차관급 4명 경질 ▲4월6일=민주당 의원 95명등 1백4명,국민당 의원 13명 재산공개 ▲4월8일=육군대장 3명 인사 ▲4월27일=감사원 율곡감사 특감착수 ▲5월3일=정덕진검거,슬롯머신 수사착수 ▲5월8일=대입부정 1천4백21명 공개 ▲5월13일=김대통령 「12·12는쿠데타적 사건」규정 ▲5월14일=광주민주화운동 명예회복조치 발표 ▲5월20일=공직자윤리법 개정안 국회통과 ▲5월24일=태평양경제협의회 서울총회 「신외교」선언 ▲6월3일=취임 1백일=회견 ▲6월15일=여야 첫 영수회담 ▲6월26일=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백범묘소 참배 ▲7월2일=「신경제 5개년계획 특별담화」 ▲7월10일=한·미 정상회담(서울) ▲8월9일=옛총독부건물철거 지시 ▲8월12일=금융실명제 전격실시,대구동을등 2개 지역 보궐선거 ▲9월14일=한·불 정상회담 ▲10월1일=국군의 날 45돌 치사 「신한국군의 원년」선언 ▲11월6일=경주 한·일=정상회담 ▲11월17∼25일=방미 ▲11월 19일=한·중 정상회담 19∼21일=호주,캐나다등과 정상회담,아태경제협력체 정상회담 ▲11월24일=한·미정상회담(워싱턴) ▲12월9일=「쌀 대국민특별담화」 ▲12월16일=이회창총리임명 ▲12월21일=전면개각 ▲1월6일=연두기자회견 ▲1월24일=지자제 관련 선심행정 불용및 통합선거 방법검토지시(내무 부 업무보고) ▲2월5일=교육개혁위원회 발족 교육제도 대담한 개혁촉구 ▲2월25일=취임1주년 기자회견 남북정상회담 제의 ▲3월15일=정치개혁법 서명(3월4일 여야합의로 국회통과) ▲3월24∼26일=일본공식방문 ▲3월26∼30일=중국공식방문 ▲4월30일=이영덕신임총리 임명 ▲6월1∼7일=러시아,우즈베키스탄 공화국 공식방문 ▲6월18일=남북정상회담개최합의(카터 전미국대통령의 김일성 메시지 수용) ▲7월5일=보선관련 특별담화,깨끗한선거천명 ▲8월2일=대구 수성갑등 3개 보궐선거 ▲8월15일=광복절 경축사에서 「민족발전 공동계획」제안 ▲9월16일=내각과 민자당에 부정부패 발본 강력장치마련 지시 ▲10월1일=국군의 날 치사 남북대화재개 촉구 ▲10월8일=부패공무원 재산몰수 법제화 천명(기자간담회) ▲10월31일∼11월4일=이붕 중국총리 방한 ▲11월10∼19일=필리핀·인도네시아·호주 공식방문,APEC 정상회담 참석,미국·중국·일본·캐나다와 정상회담
  • 비,북 화물선 입항 불허/새달 김대통령 방문 앞두고

    【방콕 연합】 필리핀 정부는 오는 11월10일로 예정된 김영삼 대통령의 필리핀 공식방문을 앞두고 마닐라항에 정박한 북한 화물선과 선원의 상륙을 불허하고 있다고 마닐라의 외교소식통이 29일 말했다. 이 소식통은 선원 44명을 태운 북한 화물선 무두봉호가 지난 23일 마닐라항의 사우스 하버에서 2백m 떨어진 해상에 정박했으나 필리핀 항만당국으로부터 상륙허가는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필리핀주재 한국대사관 관리들은 지난 83년10월8일 전두환 대통령의 미얀마 방문을 앞두고 북한선박이 랑군항에 입항했으며 랑군 도착 하루 뒤인 10월9일 전대통령 일행이 버마 건국영웅 아웅산 장군의 묘소를 참배했을 때 북한 특수공작원들에 의해 장치된 폭탄이 폭발,서석준 부총리 등 수행원 17명이 희생된 사실을 필리핀 외무부와 치안당국에 상기시키면서 북한 화물선을 주시하고 있다.
  • 「10·26」 15주 대대적 추도식

    ◎전대통령·총리­정당대표 등 거물급 대거 참석/고문직 수락한 김대중씨,행사참석은 “사양” 26일 상오 11시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 박정희 전대통령의 묘소에는 여야 정치권을 비롯,각계의 전·현직 거물급 인사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 박전대통령의 15주기 추도식을 위해서이다. 지난 해까지는 「제3공화국」 인사들의 친목모임인 「민족중흥동지회」(회장 백남억) 주최로 조용히 치러졌던 박전대통령 추모 행사는 지난 4월 동지회 총회의 결의에 따라 올해는 「범국민적 추도식」으로 변경됐다.당연히 참석대상자들의 면면도 각계를 망라하게 됐다. 79년 국장 때 집행위원장을 맡은 신현확 전국무총리가 추도위원장을 맡아 최규하·전두환·노태우 전대통령들을 고문으로 위촉,참석을 약속받았다.이기택 민주당대표는 본인이 고사해 빠졌지만 김종필·김동길·박찬종·이종찬씨등 여야정당대표들도 모두 고문직을 수락했고 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도 다른 일정을 내세워 행사에는 참석할 수 없다고 했지만 고문직은 수락했다. 이들을 포함,김재순·강영훈·김덕주씨등 전직 3부요인과 이철승·이민우씨등 전직정당대표,최종현 선경그룹회장등 재계인사,김수환 추기경·한경직목사·탄성스님등 종교계 원로등 모두 49명이 고문으로 위촉돼 있다. 박전대통령과 정치적 신조를 달리했거나 적어도 무관심 그룹에 포함돼 있던 각계 원로들까지 자리를 함께 하는데 대해 추도위측은 『79년 치러진 고인의 국장을 기준으로 추도식 참가인사들을 구성했기 때문』이라고 설명. 주최측은 초청장에서 「어른의 위대한 치적 속에 살면서도 그 치적에 걸맞게 모시지 못하는 우리들…」이라는 표현으로 이번 추도식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백남억회장도 미리 배포한 식사에서 『오늘날의 우리 국력을 배양해 주신 그 어른의 높은 경륜과 탁월하신 영도력』이라고 박전대통령의 업적을 기렸다. 그 무렵 역사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 최규하 전대통령도 『남북관계가 복잡 미묘하게 전개되고 있을 때 국가안전을 위한 그 분의 철석같은 의지와 경륜을 그린다』는 요지의 추도사를 준비해 놓았다. 반면 전두환·노태우 전대통령은 공식적발언을 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민족중흥동지회 명예회장인 민자당의 김종필대표는 『겨울이 되어야 솔이 푸른 줄 안다』(세한후 지송청)고 고인의 「지도력」을 기리는 인사말을 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들의 인식은 최근 잇따른 대형 사고의 근원을 「부실한 개발독재 정권의 유산」으로 여기고 있는 현정권 핵심인사들의 생각과는 궤를 달리하는 것도 사실이다.
  • 순국선열 9위 묘소 중국서 새로 발견/봉환절차 추진중

    중국 만주일대에서 대한독립군사령관으로 청산리 봉오동전투를 이끌었던 최진동(일명 최희)선생등 순국선열 9위의 묘소가 새로 발견됐다. 국가보훈처는 18일 지난 한달동안 중국의 길림성과 요령성·흑룡강성등 간도지역에 흩어진 독립유공자 묘역에 대한 실태조사결과 최진동선생등의 묘역을 확인,국내 봉환절차를 추진중이라고 밝혔다. 이번에 묘소가 발견된 독립유공자는 최진동선생외에 천보락·윤현진·김일곤·윤세주·양기하·차도선·신혁희·오영선선생이다. 최진동선생(1878∼1945)은 대한독립군사령관으로 홍범도 연대장,안무 부관과 함께 봉오동전투를 치렀으며 천보락선생(1852∼1908)은 류인석의병진에서 선봉장으로 활약했었다. 윤현진선생(1892∼1921)은 임정에서 재무위원장으로 일했으며 김일곤선생(1912∼1943)은 조선의용대 분대장으로 활약하다 순국했다. 윤세주선생(1901∼1942)은 조선의용대 주편위원으로 기관지를 발행했으며 양기하선생(1878∼1932)은 대한독립군 정보국장으로 항일투쟁을 벌였다. 오영선선생(1886∼1943)은 임정 군무부장을 지냈고 차도선선생은 홍범도와 함께 의병을 일으켰으며 신혁희선생(1867∼1937)은 유인석의병장을 보좌,항일무장투쟁을 벌였다.
  • 백범묘소 찾은 일 국회의원/주병철 사회부기자(현장)

    ◎“「백범일지」에 감명… 참배 결심” 단풍을 시샘하듯 밤새 내린 가을비가 그치고 맑은 햇살이 내리쬐고 있는 16일 하오 3시 서울 용산구 효창원내 백범 김구선생 묘소. 『백범의 뜻을 기리기 위해 꼭 한번 참배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머리가 희끗희끗한 일본 자민당 중의원 8선의원인 시가 세스씨가 이곳을 찾은 동기를 말하고 묵념을 올리고 있었다. 올해 57세인 시가의원은 일본 현역 의원으로는 처음으로 항일 민족지도자 백범선생의 묘소를 찾은 것이다. 『얼마전 일본에서 활동중인 한일관계연구가 최서면씨로부터 받은 백범일지를 읽고 감명해 참배하게 됐습니다』 시가의원은 합장을 마친뒤 함께 온 한국인 일행이 비석을 가리키며 선생의 항일운동과 정신을 설명하자 숙연한 표정으로 귀를 기울였다.미리 연락을 받고 나와있던 백범선생의 손자 김양씨(41)를 보고는 뜨거운 악수를 나누었다. 참배를 마친 시가의원은 백범선생에 대해 자기가 갖고있는 존경심과 느낌을 담담한 어조로 털어 놓았다. 『김구선생의 백범일지처럼 역사를 평가하는 포착법을 가르쳐 준 책은 없었습니다.바로 자신의 위치와 할 일을 깨우쳐 주고 있는 책이지요』마치 내년이면 패전 50주년을 맞는 일본인들에게 이 책 만큼 의미있는 가르침과 반성을 줄 책은 없는 것 같다는 표정을 지었다. 시가의원의 참배를 지켜보는 우리측 일행 역시 그의 행동이나 말을 단순한 겉치레로 보는 것 같지는 않았다. 백범선생의 손자 김씨는 『일본 현역국회의원이 백범묘소를 찾은 것은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일본에서 같이온 최씨도 『이번 일본 현역의원의 백범선생 묘소참배를 계기로 하나하나 살아 숨쉬고 있는 우리 민족의 혼을 되살려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가의원은 현재 부친의 상중이라고 한다.다시 안중근의사의 묘소를 참배하러 가야한다며 바쁘게 발걸음을 옮기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잊을만 하면 「망언」을 되풀이 하는 일부 일본 지도층과는 다른 면을 볼 수 있었다.
  • 독립선열 유해 5위 봉환/내일 중국서

    ◎이화일·손병헌·강백규·김기선·윤희순선생 조국광복을 위해 헌신하다 중국 길림성 일대에서 서거한 독립군 출신의 이화일선생 등 중국안장 독립유공자 유해 5위가 17일 봉환된다. 보훈처는 15일 이들 다섯분의 유해가 17일 하오 김포공항으로 환국,서울 동작동 국립묘지 영현봉안관에 임시 안치됐다가 이화일·손병헌·강백규·김기선선생등 네분은 18일 대전국립묘지에,윤희순(여)선생은 20일 강원도 춘천 소재 선영에 각각 안장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국외안장 선열 1백24기의 유해중 국내에 봉환된 독립유공자는 모두 38위로 늘어나게 됐다. 정부는 국외안장 선열들에 대한 유해 봉환사업의 일환으로 지난해 중국 현지 묘소 실태조사를 벌여 소재지가 확인된 다섯분의 유해를 먼저 국내에 봉환키로 결정,지난 11일 유해봉환반을 현지에 파견했었다.이번에 봉환되는 독립유공자들의 약력은 다음과 같다. ◇이화일선생(1882∼1945)=함북 경성 출생으로 1920년 6월 홍범도장군이 지휘하는 봉오동전투에 참전,일본군 1백20명을 사살하는 등 여러차례의 전투에서 독립군의 일원으로 큰 공을 세웠다.77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됐다. ◇손병헌선생(1870∼1946)=경북 영천 출생으로 1922년 통군부등 8개 단체가 통합 결성한 통의부에 가입,참모로 활동했으며 1926년부터는 간도 용정의 대성중학교교사로 민족교육에 헌신했다.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됐다. ◇강백규선생(1878년∼미상)=1920년 3월에는 간도지역청년회부회장으로서 무장독립군을 조직,항일투쟁을 벌였으며 1924년 2월에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개최된 제1회 국민위원회 10인 후보중 한사람으로 선출돼 「국민위공보」를 발행했다.63년 국민훈장 애족장이 추서됐다. ◇김기선선생(1888∼1920)=평북 정주 출생으로 중국 봉천성 통화현에서 배달학교를 설립,민족교육에 헌신하고 한족회의 일원으로 항일활동을 벌이다 1920년 11월 배달학교에서 일군의 습격을 받아 사망했다.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다. ◇윤희순선생(1860∼1935)=의병장 유홍석의 며느리로 1895년 시아버지가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반발,강원도 춘성에서 의병을 일으키자 의병군가를 작곡해 항일의식을 고취시키는 등 부녀의병의 일원으로 참여했다.83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됐다.
  • 「건강한 가정」 범국민 캠페인/관계부처 첫회의

    ◎매주 「가정의 날」 지정… 조기귀가 권장/폭력 놀이문화 규제­경로사상 고취 정부는 「지존파」사건등에서 나타난 우리사회의 심각한 도덕적 타락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의식개혁운동을 개혁차원에서 전정부·범국민적으로 강력히 추진해야 한다는 판단 아래 「건강한 가정만들기」를 핵심전략과제로 선정해 부처별로 자체계획을 수립,우선적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정부는 7일 이영덕국무총리 주재로 김두희법무·김숙희교육·이민섭문화체육·서상목보건사회·오인환공보처·권영자정무2장관·이효계내무부차관등 7개 관련부처 장·차관과 각계인사 23명이 참석한 가운데 「건강한 가정 건강한 사회 만들기모임」 첫회의를 열고 이같이 결정했다. 정부는 가정의 교육기능을 높인다는 취지에서 매주 하루를 「가정의 날」로 지정,학생·공직자·직장인등 국민 모두가 평소보다 일찍 귀가하는 범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고 「가정의 날」에는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교육적 내용이 담긴 TV프로그램을 방영하도록 방송사에 협조를 요청하기로 했다. 정부는 「가정의 날」이 아닌 평상시에도 가족과 함께 지내는 시간을 확대하기 위해 직장에서 불필요하게 기다리는 관행을 없애고 상사의 눈치를 보지 않는,부담 없는 퇴근분위기를 조성하는 한편 지나친 저녁회식의 자제와 건전한 음주문화의 정착을 통해 퇴근 뒤 곧바로 귀가하는 풍토를 만들어나갈 방침이다. 정부는 부모를 통한 가정교육의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가정교육에 대한 교육프로그램을 개발,보급하고 중·고·대학생에 대한 예비부모교육을 강화하는 한편 폭력·사행성 어린이놀이기구를 규제하는등 비도덕적 놀이문화를 개선해나가기로 했다. 또 명절과 휴가철에는 「조상의 묘소 찾아보기운동」을 전개하고 「부모님 찾아뵙기」 「안부전화드리기」를 권장하며 노부모와 함께 살면서 부양하는 사람에 대한 실질적인 우대조치를 마련해 경로효친의 풍토를 만들어나갈 계획이다. 이와 함께 지역사회의 교육기능활성화를 유도하기 위해 노인·부녀회등을 통한 「마을서당운동」을 펼치고 덕망있는 연로자를 마을어른으로 위촉하는 제도를 검토하는 한편 학교·교회등 각종 시설을 청소년상담과 부모교육센터로 적극 활용하기로 했다. 정부는 민간단체의 국민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민간단체의 국민운동지원에 관한 법률」의 제정과 「기부금품모집금지법」의 개정을 추진하는 한편 소비자보호법·영유아보호법·사회교육법등 관련법률의 개정을 검토하기로 했다.
  • 범인차 트렁크서 유골 발견/지존파 수사

    ◎불에 탄 1㎏… 제3의 희생자 가능성/수첩·밧줄 등 12개 증거물도 수거/경찰,닷새 방치했다 뒤늦게 찾아/김기환,“부친·백부유골” 주장 【영광=최치봉기자】 「지존파」일당의 또다른 범죄행위여부를 밝힐 수 있는 두개골조각등 인골과 증거물이 추가로 발견됐다. 전남 영광경찰서는 23일 지존파에 대한 검거작전이 전개된 지난 19일 이들로부터 압수한 전남 1러 1239호 르망승용차 트렁크에서 인골·나침반·철사줄·수첩등 12개 품목의 증거물을 수거,공개했다. 이 차는 19일 상오9시쯤 김현양과 이경숙이 경찰의 추적을 피해 불갑지서에서 8㎞쯤 떨어진 영광읍 학정리까지 달아날 때 사용한 두목 김기환소유 승용차로 경찰은 이같이 중요한 증거물이 들어 있는 차를 경찰서 뒷마당에 닷새동안이나 방치해두었었다. 경찰이 이날 공개한 압수품목은 검은 비닐봉지에 들어 있는 두개골조각과 불에 탄 인골 1·04㎏과 이들에게 살해된 소윤오씨의 것으로 보이는 수첩 1개,김현양의 수첩 1개,나침반,현금 5만4천원이 든 지갑,성분이 밝혀지지 않은 이물질이 들어있는 박카스병 1개,길이 3m의 철사줄,대검집등이다. 소씨의 것으로 추정되는 수첩에는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간절한 사연이 기록돼 있었다. 지난 13일 납치된 직후 범인들에게 건네주기 위해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이 글에서 소씨는 『긴급으로 마련할 수 있는 금액은 4천3백만원뿐이며 현금으로 준비할 테니 선처바랍니다』라고 쓴 뒤 『경찰에도 알리지 않겠으니 제 아내와 딸들을 해치지 않겠다고 약속해주시오』라고 애원했다.소씨는 또 범인들이 요구한 듯 서울 중화동 자신의 집 약도와 회사운영상태가 적힌 울산공단내 회사약도,두 딸의 이름·나이·학교와 부인의 이름등을 상세히 적어놓았다.이 수첩에는 또 범인들이 써넣은 것으로 보이는 예금주 「이주현」이름의 국민은행계좌번호와 적외선망원경·소총·탄환·일본도·도청장치·무전기등 범행도구의 가격이 적혀 있었다. 또 김현양의 수첩에는 『넉넉한 생활 한번 못해보고 일생을 마감한다는 것은 너무나 억울하고 불공정한 세상이다』라는 독백이 적혀 있었다. 경찰은 이번에 발견된 인골이 주범김기환의 부친과 큰아버지의 것으로 묘소이장을 위해 발굴,함께 분쇄해 섞은 뒤 가지고 다녔다고 범인들이 진술하고 있어 진위여부를 가리기 위해 국립과학연구소에 정밀조사를 의뢰했다. ◎지존파에 첫 희생/여인신원 곧 확인 【대전=최용규·이천렬기자】 지존파 일당의 살인연습 첫번째 희생자로 살해·암매장된뒤 지난 22일 현장검증에서 드러난 20대여자의 신원이 곧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대전서부경찰서는 23일 신원미상의 20대 여자는 대전시 유성구 세동 노적산 기슭의 암매장 발굴 현장에서 5㎞쯤 떨어진 곳에 사는 최기성씨(47·충남 논산군 두마면 두계리 140의 1)의 셋째딸인 미자양(당시 20세)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최씨의 혈액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보내 발굴된 유골과 비교 감식을 의뢰했다.
  • 태연한 살인재연에 미소까지/남기창 전국부기자(오늘의 눈)

    「인간이기를 포기했다」고 스스로 내뱉는 범인들의 태도는 오히려 당당했다.차마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잔혹하고 끔찍한 범행수법에 주위사람들이 경악했지만 인면수심의 이들은 잔잔한 미소까지 띠었다. 이들은 한때 「지존파」 조직원이었던 송모씨가 조직을 배반하고 달아났다는 이유로,조상묘소에 성묘갔던 중소기업체 사장부부를 아무런 이유없이 각각 납치해 잔인하게 살해해 태웠다.또 이들은 경기도 양평국도에서 차안에 있던 두명을 납치해 여자가 보는 앞에서 남자를 살해한뒤 교통사고사로 위장하기 위해 인적이 드문 전북 장수까지 차를 타고 이동했다. 뿐만아니라 조직의 두목 김기환은 대전 유성에서 조직의 잔인함과 대담함을 보여준다며 집으로 가던 20대 초반의 여인을 납치,윤간한뒤 살해해 사체를 암매장하는 살인실습도 마다하지 않았다. 범인들은 현장검증이 실시되는 곳에서 얼굴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고 이를 보러나온 주위사람들이 『너희들도 사람이냐』며 욕설을 했지만 오히려 자신들의 할일을 했다는 듯 시종 의젓한 태도를 보였으며 검증과정에서도 조사경찰관들의 잘못을 짚어 정정하는 여유조차 보여줬다. 대부분 불우한 결손가정과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가정출신으로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대도시 막노동 판을 전전하면서 「가진자」에 대한 적개심을 키워왔다는 그들. 『제대로 사람대접 한번 받아보지 못했다』면서 고급차를 탄 사람들을 무조건 납치·살해한뒤 자신들의 아지트에서 화장까지 하는 극악무도함을 보여줬다. 도대체 인간은 얼마만큼 잔인할 수 있는가를 이들은 극명하게 증명했다. 희대의 살인사건을 저지르고 다니다 붙잡히고도 『더많은 사람을 죽이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과연 해줄 말이 남아 있는지 궁금하다. 이번 사건이 「빈익빈 부익부」「황금만능주의」등 물질만능에 뒤틀린 사회구석구석의 잘못된 제도 때문에 일어났다고 말하는 일부의 소리를 뒤로 하면서 『세금을 낼 필요가 있겠느냐』『국민의 안전을 위해 존재하는 경찰은 도대체 그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는 불만을 다시한번 곰곰이 되씹어 보게 된다.
  • 광복 50돌 기념사업 대폭 축소/당초 90개서 48개로

    ◎예산도 1백50억으로 반감 정부는 내년에 있을 광복50주년 기념사업을 경축식등 중점사업 18개,독립유공자의 발굴과 포상등 관련사업 30개등 모두 48개로 잠정 확정했다. 이는 처음에 계획했던 90개에서 대폭 축소된 것이며 이에 따라 예산도 3백억원에서 1백50억원으로 줄어들게 되었다. 정부는 대신 민간차원의 기념행사를 보다 확대하기로 하고 민간단체들의 자발적인 기념행사 추진을 적극 유도할 방침이다. 정부가 잠정 확정한 광복50주년 기념사업은 다음과 같다. ▷중점사업◁ ▲광복 50주년 중앙경축식 ▲구총독부 철거행사·미술전 ▲광복길놀이 ▲중경임시정부청사 복원행사 ▲독립유공자위문 격려행사및 해외유공자 초청 ▲광복 50주년 기록영화제작 ▲근대백년 민속풍물전및 생활사 전시 ▲전통음악대공연및 창작 국악무용극 ▲경제전시관 설치및 수출상품 전시회 ▲세계한민족 삶 소개 영상자료 제작 ▲세계한민족 총서 제작 ▲95세계한민족 축전 ▲독립기념관 대축제 ▲예술의 전당 종합예술축전 ▲농어촌 한마당 전진대회 ▲세계를 빛낸 한국음악인 대향연 ▲세계속의 한국경제 대토론회 ▲TV기획 민족통일 대토론회 ▷관련사업◁ ▲독립유공자 대대적 발굴 포상 ▲독립유공자 관련 추모사업 ▲해외선열 유해봉환및 묘소단장 ▲국내외 독립운동 사적지 순례 ▲독립운동 관련 해외사료조사및 문헌발굴 보급 ▲이달의 독립운동가 선정 재조명 ▲한국독립운동사 재조명학술대회 ▲제3차 한·중 국제학술대회 ▲일제식민지 정책 학술대회 ▲광복반세기 경제사회상 책자발간 ▲국내외 순회 사진전 ▲광복50주년 기념 민족예술경연대회 ▲무궁화 우수품종 전시회 ▲한국미술의 오늘 전시회 ▲광복50주년 기념교포행사 ▲세계적인 대형뮤지컬 창작 순회공연 ▲광복 50주년 기념 시·도별 통일문제 대토론회 ▲95미주한민족 통일포럼 ▲세계한민족 통일문제 대토론회 ▲전국대학생 통일논문 현상공모 ▲국립중앙극장 창작예술 특별공연 ▲광복50주년 기념 종합학술대회 ▲재외한국인 초청 청소년 과학경진대회 ▲한·일 문화 온고이지신 ▲통일한마음 달리기 대회▲국민체육문화축제 ▲KOREA CUP 국제축구대회 ▲21세기 10대우주강국 도약을 향한 우주주간 선포 ▲기념우표 발행
  • 궁금한 김대통령의 추석연휴 구상/제2의 개혁드라이브 펼칠까

    ◎「최 인천시장 사의」 대대적 사정예고 관측/각계 목소리 청취… 미·북회담 대책도 점검 김영삼대통령은 추석연휴 3박4일을 주로 지방휴양지인 청남대에서 국정운영에 관한 구상을 하면서 보내고 21일 하오 청와대로 돌아왔다. 이에 앞서 김대통령은 연휴 첫날인 18일 고향인 거제도를 방문,모친의 묘소에 성묘하고 부친 홍조옹에게 문안인사를 한 뒤 청남대로 갔다. 김대통령의 이번 추석연휴 구상은 정기국회대책과 더불어 인천 북구청 세무비리사건,미국과 북한의 3단계 고위급 2차회담등 국정현안에다 전남 영광의 엽기적 연쇄살인사건까지 겹쳐 정국의 분위기쇄신이 절실한 상황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주목되고 있다. 김대통령은 22일 상오 청와대로 이영덕국무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들을 불러 조찬간담회를 갖고 「청남대구상」의 일단을 피력하면서 추석연휴가 끝나는 데 따르는 국정의 차질없는 운영을 당부할 예정이다. ○…김대통령은 청남대에서의 시간을 주로 가족들과 보냈으며 외부인사들의 방문은 거의 없었다고 청와대측은 설명. 그러나김대통령은 관계비서관들이 올린 각종 자료를 검토하면서 각계인사들과 전화통화를 갖고 국정운영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를 청취했다는 후문. 무엇보다 김대통령은 인천 북구청 세무비리사건과 관련한 공직사회의 부정부패척결방안에 대해 골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이에 따른 결론은 강도 높은 「제2의 사정」으로 기울 가능성이 큰 것으로 관측.연휴기간에 이루어진 최기선인천시장의 전격적인 사의표명도 대대적인 사정조치에 앞서 시비의 소지를 미리 제거하려는 의지의 표명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라는 분석.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최시장의 사퇴는 여권 핵심부와의 사전교감이 이루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하고 『이는 사정에 결코 성역이 있을 수 없다는 김대통령의 의지에 따른 것으로 제2의 개혁드라이브를 예고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연휴 첫날인 지난 18일 지미 카터 전미국대통령이 친서를 보내 남북대화를 중재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답신을 한승수주미대사를 통해 전달하도록 했다.김대통령은 그뒤에도 미·북 3단계 2차회담과 관련한 일련의 움직임을 수시로 보고받으면서 적절한 대응책을 관계자들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관계자는 『정기국회와 오는 11월의 아·태경제협력체(APEC)정상회담등 일정을 감안할 때 김대통령이 이번처럼 차분하게 국정에 대한 구상을 할 기회는 많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고 『따라서 김대통령은 연휴기간에 당면현안은 물론 집권 3차연도에 대비해 다각도의 구상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이 관계자는 내년의 지방자치선거를 앞두고 연말이나 내년초로 예상되는 대대적인 당정개편도 이번 「청남대구상」의 골간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18일 김대통령의 거제도방문에는 부인 손명순여사와 아들 현철씨내외,손자등 가족들이 동행했으며 청와대의 박상범경호실장,주돈식공보·홍인길총무수석,김석우의전비서관,김기수수행실장등이 수행. 김대통령은 이날 전용기와 헬리콥터를 번갈아 타고 거제에 도착,장목면 외포리 대계마을 입구에 있는 모친 박부연여사의 묘소에 성묘한 뒤마을안 생가로 내려와 부친 홍조옹에게 큰절로 인사. 이 자리에서 홍조옹은 『민심이 천심인데,잘 한다고 칭찬하는 사람도 있지만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고 「민정」을 전달하며 분발을 당부.김대통령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면서 『하늘이 우리를 도와줄 것입니다』라고 대답했고 홍조옹은 『계속 열심히 해서 국민의 기대에 보답하라』고 당부.
  • 팔월 한가위(외언내언)

    명절인파를 우리는 귀성객이라고 부른다.고향에 돌아간다는 뜻이다.허둥대며 살던 일상에서 문득 정신차리고 돌아가는 곳,죽음을 맞으면서도 머리를 향하는 근본되는 곳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오늘의 명절인파가 모두 그 고전적 의미의 「귀성」인 것은 아니다.하늘 맑은 계절에 찾아오는 황금연휴의 멋진 휴가를 즐기기 위해 나들이를 나가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항공권예약이 일찌감치 끝나버렸다는 것은 알려진 일이다.종교에 따라 명절차례에서 해방된 사람들도 많이 있다. 자손의 도리로 차례를 생략하는 일에 가책을 받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콘도미니엄에서 차례를 지내는 풍습도 이제는 예사로워졌다.도시에 살자면 이사하는 경험이 얼마든지 있으므로 콘도차례에는 조상도 이해가 있으실 것이다. 그러나 추석명절이 아름다운 것은 이날이 매우 겸허한 감사의 날이기 때문이다.이날은 조상께 드리는 우리의 추수감사절이다.조상의 음덕을 소중히 여기며 앞으로도 욕심부리지 않고 일가친척·이웃이 화목하며 우애있게 부지런히 살 터인즉 계속해서 보살펴주소서,하고 비는 날이다.또한 오늘날에는 제각기 바쁘고 경황 없게 사느라고 해가 바뀌어도 좀처럼 만나보기 어려운 집안간의 일가친척들을 이날 만나서 우애도 다지고 조상들에 대한 회고담도 나누자는 날이 되었다.그러노라면 자라는 세대에게 범절도 알고 반듯한 가풍도 지닌 집안임을 알릴 기회도 얻게 된다. 객지에서 분주한 삶을 사느라고 오랫동안 부모를 못 찾아뵌 자손이 부모품을 찾아 마음을 위로하기도 하고 돌아가신 분의 묘소 앞에 엎드려 회한의 눈물을 흘려보는 날이기도 하다.그런 일은 산 사람을 위한 일이다. 비록 고향산이 아니라 고층아파트 위에 걸리는 달이라도 둥글게 떠오르는 추석달은 지친 생활인을 위로한다.이런 명절맛이 화려한 휴가보다 더욱 어울리기도한다.그래서 유난히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는 날이 이 추석명절이기도 하다.
  • 벌초/신원영 신원문화사 대표(굄돌)

    추석은 설날과 더불어 우리 민족의 가장 큰 명절로 친다. 추석 연휴를 일주일 앞둔 지난 일요일은 성묘객과 행락객이 몰려 고속도로는 물론 묘지로 가는 국도와 서울로 돌아오는 길이 밤늦도록 극심한 정체현상을 빚었다. 또 서울의 강남 일대와 백화점가에도 추석 차례상에 올릴 제수용품과 선물등을 장만하기 위한 쇼핑객들이 몰려 체증 현상과 더불어 추석절을 맞아 들뜬 분위기 그대로였다. 돌아가신 조상들을 격식에 따라 빈틈없이 모신다는 것은 어려운 현실이지만 우리에게는 1년에 설날,한식,추석등 서너차례 조상의 묘소를 찾아 성묘를 하는 유교문화의 영향을 받은 전통적 관습을 갖고 있다. 또 한가위를 맞기 전에 일년 내내 자란 잔디를 깎아주고 무성해진 잡초와 묘소 주변의 나뭇가지를 손질해 조상의 묘를 깨끗이 하고 돌보는 벌초를 하게 된다.그동안 고향을 지키는 일가 친척의 몫이 되었던 벌초가 도시화 추세로 말미암아 농촌의 일손이 줄어들면서 도시로 나가있는 후손들이 고향을 찾아 벌초를 하지 않으면 안될 현실에 이르렀다. 옛날 부모상을 입게 되면 3년 탈상때까지 벼슬과 생업마저 버리고 돌아가신 부모곁을 떠나지 않고 3년 내내 시묘살이를 해야만 자식된 도리를 다 했다고 한다. 그러나 요즘 바쁜 사회생활과 생업으로 인하여 조상의 묘소관리를 제대로 못할 처지에 있는 후손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2∼3년전부터 이러한 경우에 있는 후손들을 위하여 산소관리대행업이라는 신종업종이 등장해 이 사업을 시작한 농협에서는 제법 호황을 누리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80년대 까지만 해도 낫으로 벌초를 했으나 이젠 예초기라는 새로운 기계로 짧은 시간에 손쉽고 편리하게 벌초를 하게 되었다. 금년 여름 유례없었던 더위와 가뭄으로 인하여 풀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여 농업용 예초기 판매가 부진했으나 벌초 시기를 맞아 벌초용 예초기 판매가 예년에 비해 수요가 급증했다고 한다.이제 이와같이 벌초의 풍속도가 변화 되어가고 있는 것같다. 이러한 현상이 부모와 조상을 모시는 효성의 소홀함으로 저 세상에 계신 조상님께 보여지지는 않을는지.
  • 호치민과 김일성의 차이/이목희 정치부기자(오늘의 눈)

    우리 국무총리로서는 처음으로 베트남을 방문한 이영덕총리가 31일 상오 하노이 중심부에 자리잡은 호치민(호지명)묘소를 찾았다.이총리는 나라안에서의 「주사파」논란을 우려한 듯 호치민묘소에 헌화만 하고 시신을 보존하고 있는 내부는 참배하지 않았다. 그러나 기자의 눈으로 볼때 이총리는 하지 않아도 될 몸조심을 한 듯 여겨졌다.호치민과 김일성은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다. 호치민은 이데올로기를 떠난 국민적 영웅이었다.이총리가 그의 묘소를 방문했을 때는 날씨가 화창했으나 전날까지만 해도 비가 억수같이 퍼부었다.그런 빗속을 뚫고 맨발에 후줄그레한 차림의 참배객들이 그의 묘소에 줄을 이었다. 한 베트남 참배객은 이렇게 말했다.『프랑스에서 독립하기 위해,미국과 싸우기 위해 사회주의를 택했을 뿐 그것이 우리의 유일한 목표는 아니다』라며 『호치민은 공산주의 지도자이기 이전에 민족의 지도자』라고 강조했다. 이 참배객의 말은 실제에서도 일치했다. 이총리가 총리회담을 하고 국가주석을 예방한 하노이의 주석궁은 일반의 상상을 벗어나 있었다.정문을 지키는 위병은 슬리퍼를 신은 자유스런 복장이었다.주석궁 안에서 경호를 하는 경찰관도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채 귀빈의 방문을 전혀 개의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북한처럼 삼엄하고 강요된 분위기는 어디에도 없었다.「주체사상」이라는 명목아래 김일성·김정일을 「살아있는 신」이라 주장하는 북한과는 확연히 달랐다.물론 「기쁨조」도 없고 「어버이수령」이란 말도 없었다.그만큼 「인간적」이었다.사회주의에 앞서 사람으로서 가져야 할 표현과 감정의 자유를 한껏 누리는 듯한 분위기였다. 따라서 호치민은 외세의 침략에 맞서 치열하게 싸우다 통일도 보지못하고 운명을 달리한 민족지도자였지 「주체사상」이라는 허무맹랑한 이데올로기로 국민을 압제한 독재자가 아니었다. 지난 69년에 사망한 그는 아들에게 정권을 물려주지도 않았다.그의 사망후 베트남은 집단지도체제를 채택했다.그가 물려준 「청렴주의」도 철저히 이행,25년동안 무리없이 정권을 이끌고 있다.최근들어 중간관리들의 부패가 일부 되살아나고 있다는 지적이나오지만 최고지도층은 아직도 그의 노선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우리나라의 「주사파」도 이데올로기 보다는 국가와 민족을 먼저 생각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해진다.
  • “살아계신줄 알았던 당신이…”/북국적 홍승복씨 국립묘지서 「상봉」

    ◎6·25때 월남,전사한 남편찾아 귀국/중국서 40년거주… 삯바느질로 연명 북한국적의 홍승복할머니(66·중국 요녕성 심양시)가 43년만에 6·25때 전사해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 안장돼 있는 남편의 묘소를 찾았다. 중국에서 배편으로 28일 인천항을 통해 입국한 홍할머니는 이날 하오 4시쯤 동작동 국립묘지 서편9번묘역에서 남편 현만호씨의 묘비를 확인하는 순간 『살아있을 줄 알았던 당신이 왜 여기 누워있느냐』며 오열했다. 홍할머니가 남편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결혼한지 만 6년만인 지난 51년 1·4후퇴 직후.남편 현씨는 평남 중화군 용현면에서 만삭의 몸이었던 홍할머니에게 『아들을 낳거든 광섭이라고 이름을 지으라』면서 월남,곧바로 국군에 자원했다가 51년 3월17일 경기도 양평지구전투에서 전사했다. 그러나 남편의 죽음조차 알지못한 홍할머니는 6·25가 끝나고 북한당국이 남편의 월남전력을 문제삼아 사상 감시를 계속하자 이를 견디지 못한 나머지 55년 중국으로 밀입국,삯바느질과 공장잡역부생활등으로 심한 고생을 했다.홍할머니는 『중국이 북한탈출자란 이유로 국적을 바꿔주지 않아 현재까지 북한국적으로 살아왔다』고 말했다.홍할머니가 월남한 남편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지난 90년 4월.고국을 방문했던 아들 광섭씨(45·철도기관사)가 남편의 전우이자 국민학교 동창인 최양근씨(64·국가유공자)에게 남편의 묘지를 찾아달라는 수백통의 편지를 띄운끝에 남편이 국립묘지에 안장돼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한편 외무부는 홍할머니가 비록 북한국적을 갖고 있지만 6·25 전사자의 아내인 점등을 고려,한국국적으로 인정해 홍할머니가 국내에 영구귀국할 수 있도록 다른 관계기관들과 협의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김정일의 과격성 잊지말자/강인덕 극동문제연구소장(대북정책 새접근)

    ◎대남정책 수정 약속때 대화해도 안늦어 우리 민족사에서 사상 유례없는 불행을 초래케한 장본인­김일성이 사망하고 김정일정권이 출현했다.이로써 남북관계의 개선과 평화통일의 최대 장애요인의 하나가 제거된 셈이다. 이제 북한에서 김일성의 권위때문에 표출하지 못했던 여러의견이 분출될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었다고 할 것이다.그렇다고 당장 무슨 큰 변화가 일어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금물이다.왜냐하면 새로 등장한 김정일정권의 본질적 특성으로 보아 우리가 바라는 변화를 기대할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김정일은 누구보다 강하게 「일당독재,중앙집권적 사회주의·계획경제를 개혁하는 것이 사회주의체제를 붕괴시키는 요인」이라고 주장해 왔다.따라서 김정일정권도 지금까지 선대가 추진했던 대내외 정책,대남전략을 계승·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보면 김정일정권은 사라진 김일성정권처럼 여전히 남북관계의 개선과 평화통일의 새로운 장애물일 따름이다. 이런 의미에서 정부의 대북정책이 크게 바뀌어야 할 이유가 없다. 또 한가지유념할 것은 김정일정권의 장래문제이다.물론 앞으로 당분간 김정일체제는 유지될 것이다.과거 20년동안 김정일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전력했던 지원세력들은 계속적인 충성을 서약하고 있다.그러나 이들이 앞으로 변함없이 김일성생존때처럼 그를 지지할 것인가는 확실치 않다.정권인수과정에서 별다른 저항을 보이지 않았다고 해서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라고 믿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침체된 경제를 회생시키자면 개혁·개방으로의 전환이 불가피하고 그 과정에서 선대의 정책노선을 크게 수정하지 않을수 없기 때문이다.그 과정에서 반드시 정책대결이 일어날 것이며 그것은 새로운 권력투쟁을 유발할 것이다. 아직 환영할 만한 정책을 제시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존의 정책을 변경할 것이라는 징후도 나타나고 있지 않다.특히 김정일정권의 장래가 확실하지도 않은데 미리부터 정부가 김정일정권을 환영할 만한 정권으로 보는듯한 인상을 주어서는 안된다. 우리가 환영할 수 있는 정권은 개혁·개방으로 전환하는 정권이어야 하며 핵개발을 중지하고 대남전략을 수정하여 남북관계를 확실하게 개선시킬 것을 확약하는 정권이어야 한다.과거 그가 자행한 대남도발(판문점 도끼만행,아웅산묘소 폭발테러,KAL기 격추,최은희·신상옥 부부납치등)로 보나 그의 이론과 정책으로 보나 선대정권에 못지않은 과격주의 경향을 지닌 정권이다.우리는 이 점을 유의해야 한다.유화적인 양보로 반대급부를 기대할수 있다는 확증은 전혀 없다. 이런 사실을 감안해 신중을 기하면서 상대방 정책이 밝혀질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김일성과 약속했던 남북정상회담이기 때문에 재개해야 한다는 생각도 성급한 것이다.상대가 바뀌었으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또한 장차 상대해야 할 대상이라고 하여 할말도 하지못하는 유약성을 보여서는 안된다.무엇때문에 상대방의 눈치를 봐야 하는가? 우리가 기대하는 바가 뭣이라는 것을 당당히 말해야 한다.어차피 남북관계는 밟아야 할 과정을 밟고 나야 해결될 것이다. 정부는 신중하면서 명백한 태도를 보여주기 바란다.특히 정치인들의 신중한 태도가 긴요하다.일부 야당국회의원들의 「김일성 조문」발언에서 우리사회의 대북인식이 얼마나 혼란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이러한 혼란된 대북관을 시정하지 않고는 본질상 전정권과 다름없는 김정일정권과 대응할수 없다.가장 위험스러운 것은 감상적 낙관적 자세이다.김정일개인의 성격으로 보나 권력구조 안정성여부로 보아 선대정권보다 김정일정권이 더욱 불확실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정부는 신중하고도 단호한 원칙을 제시해 주길 바란다.
  • 풍수보도(외언내언)

    서슬 퍼렇던 박정희대통령 유신시절,호화분묘 일제보고 지시가 벼락같이 떨어졌다.퇴근무렵 보건사회부 위생국은 초비상으로 시·도에 지시하고 엄중한 대외비로 긴급 조사가 진행됐다.여러 수사기관도 동원된 보고서가 청와대에 제출됐다. 당시 어렵게 노출된 일부 호화분묘 소유자 명단은 모두가 돈있고 권력있는 사람들이었다. 제주도의 한 부유한 재일교포 부모묘소는 묘역이며 석물이 왕릉과 다를게 없었다. 경기지역에 많이 몰려있는 호화묘에는 가묘도 많았다.봉분에는 석조부조 띠를 두루고 아스라한 석조 계단이며 기단이 사진으로도 호화극치였다.어떤 재벌 가묘는 옆에있는 별장이 왕릉의 재실같이 어마어마해 당시 조사자도 놀랐다. 청와대 불호령과 시도의 원상회복 감시로 일부는 시정되고 질타도 받았다.그후에도 호화분묘 정비는 계속 사업으로 시행됐다.묘지법도 (61년 11월5일 제정) 68·73·81년까지 호화분묘를 쓰지못하도록 묘역축소 석물제한등 세세한 규정을 두며 고쳐졌다. 최근들어 지난해까지도 사회기강 확립차원에서 호화분묘 불법분묘를 꾸준히 단속 고발해왔다.그래도 지난해말 현재 1백9건이 호화분묘로 적발됐다.보사부가 계속 계몽·단속하고 있지만 20여년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호화·불법분묘는 근절되지 않고있다. 그 가장 큰 장애 요인이 뿌리깊은 풍수발복설로 지적되고 있다.호화·불법분묘 거의가 풍수에 따른 것이라 한다.명당이라고 쓴 묘소들이 도시계획으로 파헤쳐지고 누대 발복한다는 묘소에 몇번 공고해도 자손이 나타나지 않아 무연고 분묘로 처리되는 경우가 아파트건설단지마다 확인되고 있는 현상은 서울 사람들이 다 아는 일이다. 북한 김일성사망과 함께 풍수 역술인을 대서특필한 매스컴에대해 시민들의 질타가 대단하다.김을 위대한 지도자로 착각케하고 풍수의 신비를 조장하는 보도태도 어쩌면 좋은가.
  • 이준열사/“을사조약 무효”외친 헤이그밀사(이달의 독립운동가)

    ◎만민공동회·신민회서 항일운동/고종친서 갖고 네덜란드로… 병사 『땅이 작고 사람이 적어도 위대한 인물이 많으면 위대한 나라가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이면 모두 다 아는 일성 이준열사(1859년12월18∼1907년7월4일)가 남긴 어록이다. 이준열사는 국운이 기울어가는 시기에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위대한 업적을 남김으로써 자신의 말대로 이 나라를 「위대하게」 만든 애국선열이다. 함남 북청출신으로 소년기 최익현등 거유로부터 영향을 크게 받은 열사는 30세때인 1888년 고향에서 가산을 털어 경학원을 설립,인재양성에 나서는 것으로 애국운동을 시작했다. 일본 조도전대에서 신식학문을 배운 열사는 이승만·이동령·민영환·이상재·이상설·이동휘·양기탁·남궁억·노백린·장지연등 애국지사들과 함께 만민공동회 활동을 폈으며 비밀결사인 「개혁당」을 조직하기도 했다. 당시 선생은 안창호·이상재와 함께 웅변의 대가로 장안에서 높은 명성을 얻고 있었다. 열사는 이후 안병준등 친일파 반대운동과 신민회조직 참여,국채보상운동전개등에 나섰다. 이처럼 쉴틈없이 구국운동에 헌신하던 열사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46개국이 참가한 가운데 제2회 만국평화회의가 개최된다는 소식을 듣고는 비밀리에 광무황제를 접견,「을사조약은 일제의 협박으로 강제로 체결됐으므로 무효」라는 내용의 황제친서를 건네받고 1907년 4월 밀사의 길을 떠났다. 2개월여만에 헤이그에 도착한 선생은 현지에서 일제의 폭압성을 알리기 위해 각국대표들을 만나려 했으나 이들이 거절하고 만나주지 않자 연일 통곡하다 마침내 병을 얻어 순국하고 말았다. 선생의 유해는 헤이그 에이켄무이넬묘지에 매장됐다가 순국 55년만인 지난 63년 조국의 품안으로 돌아와 국민장으로 서울 수유리 선열묘역에 안장됐다. 정부는 열사의 공훈을 기려 63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으며 64년 서울 장충단공원에 열사의 동상을,72년 헤이그묘소에 흉상과 기념비를 건립했었다.
  • “항일필봉” 양기탁선생 묘소 찾았다

    ◎유족들,중국 강소성 율양현서/“유해봉환 곧 보훈처와 협의” 중국에서 일제에 항거하다 순국한 우강 양기탁선생의 묘소를 찾았다. 구한말 대한매일신보를 창간,민족적 자각을 일깨운 언론인으로 또 일제 강점기 무장항일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로 활약했던 우강선생의 묘소가 최근 중국 강소성 율양현 현지를 방문한 유족들에 의해 확인됐다. 그동안 우강의 묘소는 정부가 유해봉환을 추진중인 해외안장 독립유공자 87위 가운데 소재가 확인되지 않은 66위중의 하나로 분류돼 정부 관계자들은 물론 유족들을 안타깝게 해왔다. 중국 현지를 방문하고 돌아온 우강의 자부 최선옥씨(76)와 손녀사위 박유철씨(56·건설공무원교육원장)등 가족들은 26일 『그동안 강소성 담양현 길당암 부근에 안치됐을 것으로만 추정해오던 우강선생의 묘소 위치를 해방직후 김구선생이 그려주신 약도와 현지에 생존해 있는 제자들의 증언을 통해 확인할수 있었다』고 밝히고 『유골수습및 봉환등 구체적인 절차는 국가보훈처와 협의해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 양기탁선생 묘소를 찾기까지/백범이 남긴 약도로 사후56년만에 확인

    ◎유족들,제자와 함께 정확한 위치 찾아/“유해봉환위해 정부차원 지원 있어야” 『대한사람에 우리들은요­산과 골이야 아무리 깁허도 우리마음은 당할수 없누나/대한사람에 우리들은요­물과 불이야 아무리 겁나도 우리마음은 해할수 없누나/대한사람에 우리들은요­달과 놀이야 아무리 발거도 우리마음은 빗칠수 없누나/대한사람에 우리들은요­총과 칼이야 아무리 무셔도 우리마음은 뚜룰수 없누나/…』(양기탁 「아해들 노래」 중에서) 독립운동가이자 문인이자 언론선각자로 평생을 민족에 대한 끝없는 사랑으로 일관한 우강 양기탁선생(1871∼1938)의 묘소가 중국 강소성 율양현의 한 시골마을에서 후손들에 의해 발견됐다. 상해에서 내륙쪽으로 7시간 이상 버스로 달려가는 강소성 남부의 작은 마을 대부진 남문두에는 아직도 우강의 가르침을 기억하는 제자들이 생존하고 있어 그들의 증언을 통해 우강이 기거하던 고당암터와 묘소터를 확인할수 있었다는 것이다. ○상해서 7기간 거리 우강은 구한말 대한매일신보(서울신문 전신)를 창간하여 외세의 침입에 항거,「행동하는 필봉」으로 민족자존의 횃불을 드높였다.또 일제치하에서도 굴하지 않고 만주와 중국대륙을 무대로 민족적 자각과 독립을 위해 앞장섰던 인물이다.이번에 그의 묘소가 사후 56년만에 유족들의 노력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된것은 오는 7월18일 대한매일신보 창간 90주년을 앞두고 더욱 뜻깊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동안 우강의 묘소는 정확한 소재가 파악되지 않아 가족들은 물론 애국선열들의 유해봉환을 추진해오고 있는 정부와 뜻있는 이들의 애를 태워왔다. 우강의 묘소를 찾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것은 백범 김구선생이 해방후 유족들에게 건네주었던 묘소의 약도였다.백범은 우강과는 5년 연하로 신민회 활동에 이어 상해 임시정부등에서 함께 활동해와 남다른 교분을 갖고 있었으며 해방후 우강의 유족인 장남 효손(6·25때 납북)에게 아버지의 묘소를 찾아보라며 현장의 위치를 그려 갖다 주었다는 것이다.이 약도는 우강이 말년에 기거하던 고당암과 주변의 뽕나무밭,묘소위치등을 상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지난 3월 이 약도를 들고 묘소를 찾아나섰던 우강의 자부 최선옥씨(76)는 『납북된 남편의 뜻을 40여년만에 이루게돼 여한이 없지만 어서 유해를 모셔와 고국에서 편안하게 영원히 쉬시게 하는 일이 남아있다』며 울먹였다. ○농지개선작업때 이장 우강의 묘소를 찾는 작업은 독립운동가 박은식선생의 손자이자 최씨의 사위인 박유철씨(56·건설공무원교육원장)가 4∼5년전부터 모친(최윤신·77)의 중국에 사는 친척들을 통해 수소문하면서 시작됐다.그 결과 대략적인 위치가 파악됐으며 이번에 박씨가 모친·장모와 함께 현장을 답사,백범의 약도와 비교해보고 생존한 제자들의 증언을 통해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게 된것이다. 우강의 묘소는 원래 고당암 앞의 뽕나무밭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60년대 모택동이 대대적으로 전개한 농지개선작업때 4∼50ⓜ 남쪽으로 이장했으며 오늘날에는 밭 한가운데 거의 형체를 알아볼수 없게 방치돼 있다는 것이다. 유족들이 이 마을에서 만난 제자이자 이장을 역임했던 번정재씨(79·농업)는 『선생은 키가 크고 하얀 얼굴에 수염을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으며 학문이 높고 기공의 경지가 높아 많은 존경을 받았다』고 회상하고 『선생이 기거하시던 고당암에는 늘 기공을 연마하려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고 덧붙였다. 우강의 유족측은 올 가을쯤 다시한번 강소성의 묘소를 방문,구체적인 유해봉환을 위한 절차를 현지정부와 협의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광복 50주년을 맞는 내년까지는 반드시 유해봉환이 이뤄질수 있도록 정부차원에서도 관심을 기울여 줄것을 강력히 촉구했다.◎양기택선생의 항일 족적/대한매일신문 창간… 국권회복 앞장/신민회 결성… 독립군 양성 등 무장투쟁 말 외세의 침략이 노골화돼가던 1871년 4월2일 평양에서 태어난 우강은 소년시절 한학을 배운뒤 15세때 상경,한성외국어학교에서 영어를 배웠고 25세때 부친과 함께 미국인 게일의 한영사전 편찬작업에 참여했다.그 과정에서 일본 미국등을 다니며 선진문물을 배울 기회가 있었다. 이어서 1898년 독립협회에 가담하였고 개혁당 당원으로 활약하는등 활발한 구국운동을 전개했다.러일전쟁이 일어난 1904년에는 대한제국 황실의외교담당부서인 궁내부 예식원 직원으로 임명돼 영어통역을 맡기도 했다. 우강의 가장 큰 업적은 대한매일신보의 창간이다.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조선의 관할권을 내세우는등 침략을 노골화하자 이를 견제하고 국민을 교육시키기 위한 신문의 필요성을 절감했다.따라서 당시 영국 데일리뉴스의 임시특파원으로 서울에 와있던 어니스트 베델(1872∼1909)을 사장으로 하고 자신은 총무를 맡아 새신문을 창간했던 것. 국한문 혼용의 국내용 신문과 별도의 영문판도 발행한 대한매일신보는 일제의 잔혹한 통감정치 하에서도 전국각지의 의병활동을 상세하게 다루고 국채보상운동을 펴는등 국운이 쇠하여가는 절망적 상황에서도 끝까지 민족에게 항일의식과 애국계몽의식을 심어 국권회복운동의 불씨를 재우지 않으려 노력했다. 우강은 또 안창호·이동휘·이동령·노백린·이시영·김구등과 함께 신민회를 창립,해외독립기지 건설등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대한매일신보 사무실내에 본부를 두고 활동을 벌이던 신민회는 1909년 전국대회를 열고 해외에 독립군기지를 세우고 무관학교를 설립해 독립군을 양성하는 한편 국내진입작전을 펼쳐 독립을 쟁취한다는 「독립전쟁전략」을 채택하기도 했다. 이어서 한일합방을 앞둔 1910년 3월에는 신민회가 만주 망명을 결정하고 서간도에 기지를 마련,자치기관인 경학사를 설치하고 신흥강습소를 설립했다.이같이 신민회의 활동이 해외거점을 확보하자 일제는 1911년 7월 「양기탁보안법위반사건」을 날조,신민회 중앙간부 16명을 모두 체포하고 신민회를 해체해버렸다.이어 13년에는 총독암살사건(일명 「105인사건」)으로 6년형을 언도받고 복역했다. 4년만에 감형으로 출소한 우강은 16년 주거제한지인 평남 강남군 쌍용면 신경리를 탈출,만주로 가서 신흥무관학교와 광복회에서 활동했다.그러나 2년뒤 18년에 천진에서 일본경찰에게 다시 체포돼 국내로 압송,전남 거금도로 유배됐다. 20년 4월 유배를 끝나고 서울에 와있던 우강에게 새로 창간된 동아일보가 고문및 편집감독으로 추대를 제의해 왔지만 언론을 통한 독립운동의 한계를 느끼고 있던 그는 거절했다. 34년 제26회 의정원 회의에서 우강은 김규식 조소앙과 함께 국무위원으로 선임되었고 이어 주석으로 선출되었다.그러나 그는 주석직도 얼마 가지 않아 사임했으며 모든 관직을 떠나 강소성 율양현으로 들어가 선도에 몰입하다 38년 4월,67세로 이국에서 쓸쓸한 최후를 맞았다. 우강은 이같은 공로로 62년 독립유공자중 건국공로훈장 「복장」을 수여받았으며 86년 독립기념관의 독립유공자 임정위원 42인에 추대됐다. ▷연보◁ △1871 평남 평양 소천출생 △1885 한성외국어학교 영어수학 △1895 게일의 영어사전편찬 도움 △1900 나가사키 유학 △1904 베델과 대한매일신보 창간 △1907 신민회 조직 △1913­5 「양기탁 보안법 위반사건」 및 「105 사건」등으로 투옥 △1916 만주로 탈출 △1918 전남 거금도 유배 △1922 만주에서 의성단 조직 △1926 임정 국무령 추대,거절 △1934 임정 주석 선출 △1938 강소성 담양현 고당암에서 선도연구중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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