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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굄돌] 후손사랑 나라사랑

    해마다 가을이면 찾아 뵙는 아버지의 묘소이지만 갈 때마다 풍경이 달라져있음을 느낀다.묘원은 훨씬 확장된 것 같고 길도 가로수도 잘 정비되어 있다.여기저기 흩어져 나름대로 자리잡은 소나무 잣나무 낙엽송 메타세쿼이아 등은 한해 사이에 훌쩍 자란 것 같다.병영처럼 질서정연하게 잘 정돈된 묘원은 고요하다.그러나 적막해 보이지는 않는다. 형형색색 온갖 색깔과 모양의 꽃들은 석병에 꽂혀,비록 찾는 이는 없지만 자손들의 정성스런 손길이 배어 있음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이 조용하고 평화로운 유택도 시간이 흘러가면 비워주어야만 한다.매장문화가 발달된 우리나라에서는 해마다 여의도 면적의 3∼4배나 되는 넓은 땅이 묘지로 이용된다고 한다.세월이 흐를수록 묘지로 변하는 국토는 점점 더 넓어질 것이다. 정부는 이러한 문제점을 타개하기 위하여 매장문화를 화장문화로 바꾸려 많은 애를 쓰고 있다.또한 묘지법도 강화하였다.그러니 어차피 묘소는 60년 후에는 파헤쳐지고 납골당으로 이사가야만 한다. 지난 여름에도 태풍과 장마에 많은 묘소가유실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자손들이 허탈해 하고 민망해 하는 모습은 남의 일 같지 않았고 정말 보기에도 딱했다. 와우아파트가 무너지고 삼풍백화점이 붕괴되었을 때 우리는 참으로 마음 아파했고 또 분노했었다. 우리 모두는 이러한 일이 재발되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혔었다.그래서 건축법이 보완되었고 책임 있는 관련자들은 처벌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비록 유택이지만,자손들이 소중히 하는 묘소들이 해마다 장마 때면 유실되었다는 기사는 보았지만 누군가가 책임을 졌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어차피 죽은 자의 일이라서 그러하겠지만 적절히 보호를 받지 못한다면,또한 일정기간이 지나고 나면 납골당으로 옮겨야 할 처지라면,얼굴도 잘 모르는 후손들에게 번거럽고 힘든 뒷 치닥꺼리를 맡길 것이 아니라,스스로 자손들에게 부탁하여 아예 처음부터 납골당으로 들어가 좌정(?)하는 것이 더 깨끗하고 마음 편할 것 같다.생을 마감하면서 후손과 나라사랑의 작은 뜻을 실천하는 길이 되기도 할 것이다. ▶ 김춘옥 전업미술가협 이사장
  • 행사/ ‘장영실의 날’ 과학기술 전국대회 外

    ◆‘장영실의 날' 과학기술 전국대회 과학선현 장영실선생기념사업회(회장 鄭根謨)는 제4회 장영실의 날을 맞아 25일 오전 10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전국 과학기술자 및 발명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과학기술전국대회’를 열고 26일 오전 11시 충남 아산시 선생 묘소에서 추계제향을 갖는다.(02)722-9981. ◆조동필선생 추모 학술강연회 남촌재우회(회장 諸宰馨)는 25일 오후 5시 고려대 교우회관 대강당에서 고(故) 남촌(南村) 조동필(趙東弼) 선생 1주기 추모 학술강연회를 갖는다.(02)921-2591. ◆‘한국부패의 원인구조' 토론회 흥사단투명사회운동본부(상임대표 李潤求)는 25일 오후 4시 부산 부경대에서 ‘한국 부패의 원인구조와 제도개혁 방안’을 주제로 토론회를 연다.(02)745-1913. ◆학교폭력의 실태·문제점 토론회 청소년보호위원회(위원장 李承姬)는 25일 오전 10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콘퍼런스홀에서 ‘학교폭력의 실태와 문제점’을 주제로 토론회를 연다.(02)3703-2076. ◆‘공공거래정책 방향' 심포지엄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공동대표 宋丙洛)는 25일 오후 2시 서강대 동문회관 2층에서 ‘공동거래정책의 올바른 방향모색’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갖는다.(02)741-7660. ◆초·중고생 기념관 관람 감상문 공모 전쟁기념관(관장 朴益淳)은 31일까지 전국 4학년 이상 초등학생,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기념관 관람 감상문을 공모한다.분량은 200자 원고지 12∼15장이다.(02)709-3209.
  • 장승배기 ‘장승제’ 개최, 무병장수 기원제등 마련

    동작구(구청장 김우중)는 오는 24일 노량진2동 장승배기에서 주민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장승제’를 개최한다. 토속적인 전통 제례를 통해 우리 전통문화를 계승·발전시키고 마을 주민들의 무병장수를 기원하기 위해 마련됐다. 행사는 일동배례·초헌·고축·아헌·종헌·일동배례 등 제례와 노량진2동 사물놀이팀의 사물놀이,뒤풀이 순으로 진행된다. 장승제가 열리는 이곳은 조선시대 사도세제가 뒤주 속에 갇혀 죽은 뒤 그의 아들 정조가 수원 현륭원(사도세자 묘소) 참배시 장승을 세워 잠시 쉬어가던 곳이다. 최용규기자
  • [공직자 에세이] 열린 마음으로/실학이 숨쉬는 곳으로

    경기도는 조선후기 개혁적이고 실용적인 학문인 실학이 발생하고 성장·발전한 곳이다.실학하면 쉽게 떠오르는 인물이 반계 유형원,성호 이익,다산 정약용이다.성호 이익은 안산에서 일생을 보내며 후학을 양성하다가 안산에 묻혀 있고,실학을 집대성한 정약용 역시 광주에서 태어나 벼슬살이와 유배기간을 제외하고 평생 고향을 벗어나지 않았다.반계 유형원은 서울에서 태어나 호남 땅 부안에서 탁월한 학문적 업적을 남겼지만 묘소는 용인에 있어 경기도와 인연을 맺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실학의 선구자라 불리는 ‘지봉유설’의 저자 이수광,이익의 제자이며 역사서 ‘동사강목’의 저자 안정복과 권철신,화성에 살며 농업을 연구하고 농업서 ‘천일록’을 집필한 우하영을 비롯해 조선후기 많은 학자들이 경기지방에서 태어나거나 성장,활동하면서 혈연·지연·교우관계를 통해 학문 경향을 같이하며 실학을 연구 발전시켰다. 이들 실학자는 임진왜란 이후 피폐해진 국가를 재건하고 사회를 개혁하기 위해 다양한 개혁안을 제시하였다.그리고 현실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를 발전시키기 위해 실용적인 학문을 연구하였고,앞선 과학기술을 받아들였다. 당 시대 가장 앞선 성곽 축성술을 받아들여 만들어진 수원 화성도 이들 실학자의 지혜의 산물이다.화성을 설계한 정약용은 중국 및 서양의 과학기술을 이용해 거중기(擧重器)를 제조하는 등 새로운 축성 기술을 도입했으며,공사 총감독은 실학자 채제공이 맡아 진행하였다. 지금 우리 사회는 지식정보화 사회로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이러한 때 새로운 시대를 준비한 개혁적이며,실용적인 학문인 실학은 재조명되고 재평가되어야 한다. 현재 경기도는 동북아시아권 경제 중심지로 도약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물류,유통인프라를 확충하고 국제 비즈니스 기반을 조성하며,평택항을 중심으로 서해안권역 개발을 위해 다양한 시책을 추진하고 있다.그리고 지식기반 산업 집적지를 조성하고 첨단 과학기술 기반을 구축하며 중소기업 경쟁력과 국제통상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러한 때 우리와 같은 동북아시아 문화권에 속한 중국과 일본에서도 공통적으로 발생하고 발전한 실학을 지나간 시대의 유물로서 역사교과서 속에만 두지 말고 끄집어 내 가까이에서 쉽게 만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경기도는 지금 실학을 주제로 하는 테마박물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경기도 실학박물관은 실학 관련 유물을 수집 전시하는 것은 물론,실학관련 정보와 연구를 집적한 연구의 중심지,청소년 눈높이에 맞춘 전시 및 체험교육 체계를 구성한 문화공간으로 구성할 계획이다. 그리고 실학을 중심으로 하는 경기학 연구 프로젝트를 추진,경기도를 실학의 고장,실학이 살아 숨쉬며 계속 연구 발전하는 고장이 되게 하고자 한다. 손학규/경기도 지사
  • [공직자 에세이] 열린 마음으로/ 잊혀진 독립유공자 찾기

    지난주 제57주년 광복절 경축행사가 성대히 열렸다.정부에서는 이 자리에서 208명의 독립유공자를 포상했다.올해 포상자 중에는 정부에서 일제시대의 재판기록 등 관련자료를 확인해 공적이 인정된 139명의 잊혀져 있던 독립운동가도 포함됐다. 일제 강점기 국내외에서 의병과 독립군 활동,3·1운동,군자금 모금,항일 외교활동 등 독립운동에 참여한 인원이 얼마나 됐는지 정확히 집계되지는 않았지만 일부 문헌에 따르면 약 300만명으로 추정되고 순국한 분도 20여만명에 이른다고 한다.하지만 이중 공적이 확인돼 포상된 경우는 9174명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독립유공자 포상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공직자의 한 사람으로서,독립된 조국에 살고 있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책임감과 함께 안타까운 마음을 갖게 된다. 독립유공자 포상이 부진한 원인은 해방 직후의 사회적 혼란,6·25전쟁으로 인한 자료의 소실,관련 인사의 사망 등으로 공적 확인이 어렵기 때문이다.해외 독립운동의 주요 활동무대였던 중국·러시아 등지에서의 자료수집이 근래에 와서야 이루어진 것도 포상이 더딘 이유 중 하나다.행형(行刑) 기록 등 일제측 자료의 경우 독립운동가를 탄압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실을 왜곡하는 사례도 많아 역사적 사실 규명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이분들 중에는 후손이 없는 분과 후손이 있으면서도 선대의 독립운동 사실을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의 애국지사 묘역에는 유해를 찾지 못하고 후손도 없는 순국선열 132분을 위패로 모시고 있는 무후선열제단(無後先烈祭壇)이 있다.또한 강북구 수유리의 북한산 기슭에 있는 후손 없는 광복군 17분을 모신 합동묘소와 충남 홍성에 있는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수백명의 시신을 수습해 모신 홍주의사총 등 관심을 기울여야 할 시설물이 우리 주위에 많이 있다. 이렇게 나라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분들의 공적을 과연 우리 후손들이 정확히 평가하고 역사에 올바로 자리매김하고 있는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이제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일은 자신과 가족을 돌보지 않고 오직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를 찾아 포상하고 그분들의 공적을 역사기록으로 남겨 후세에 귀감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동안 정부에서는 많은 인력과 재원을 투입,독립운동 관련 사료를 수집하고 분석함으로써 알려지지 않은 독립유공자를 찾아내는 사업을 전개해 왔다.이러한 일들은 정부는 물론 사회 각계각층 모두가 열의를 갖고 조그마한 사료라도 소홀히 하지 말고 독립운동사 정립의 역사적 자료로 소중히 활용해 나가야만 성과가 더해지리라 생각한다. 일제의 강점에서 벗어나 광복을 이룬 지도 어언 60년이 가까워 온다.시간이 흐를수록 지난날 조국 강토에서,만주벌판에서,미주대륙에서,심지어 일본열도에서까지 독립항쟁을 전개한 애국선열들을 발굴하는 일이 시급하다.잊혀진 과거를 찾아 내일의 좌표로 삼아 나가는 일은 어떻게 보면 경제적 측면에서 간과하기 쉽지만 미래의 국가 발전을 위해 어느 일보다 중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국민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성원이 절실한 때다. 이재달/ 국가보훈처장
  • 고향 간 교황 ‘마지막 인사’

    ‘수백만 고향사람들의 떠나지 말아 달라는 호소에 교황의 눈자위가 눈물로 적셔졌다.노(老) 교황과의 ‘영원한 이별’을 직감한 듯 군중들의 뺨에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최근 건강이 눈에 띄게 악화돼 ‘서거 임박설’까지 나도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82)가 19일 마지막 고국방문이 될지도 모르는 나흘간의 감동적인 일정을 마치고 고국 폴란드를 떠나 로마로 돌아갔다.이로써 폴란드 방문을 계기로 고향에 남아,13세기 이후 최초로 서거 전 사임하는 첫번째 교황이 될것이라는 소문은 일단 잠재웠다. 그러나 로마 교황청이 올해 교황의 해외방문 일정을 더이상 잡지 않았다는 점에서 ‘만일의 상황’에 대비하는 인상이 짙다.교황은 고령에 암살 후유증,교통사고,종양제거수술,무릎 관절염,파킨슨씨병 등 질병이 겹쳐 최근 거동은 물론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급격히 쇠약해지고 있다. ●감동의 고향방문= 교황의 이번 폴란드 방문은 영원한 ‘작별인사’처럼 비쳐져 전세계인의 감성을 자극했다.해외언론들이 이번 방문을 ‘향수어린 여행’이나 ‘감상적 방문’ 등으로 부른 것도 이같은 정서를 반영한 것이다. 실제 이번 교황의 여행은 자신의 삶의 궤적을 차례로 되짚어가는 일정으로 짜여졌다.교황은 지난 17일 젊은 날의 대부분을 보낸 크라코프에 머물며 자신이 살던 옛 집과 거리 등을 둘러보며 추억에 잠겼다.특히 자신이 독일 나치 치하에서 일했던 채석장을 찾아 “날마다 나무 신발을 신고 이 길을 걸어 일하러 갔던 것을 요즘에도 생각한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이어 1938년 이사해 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타이니예카 10번가의 2층짜리 회색 건물을 찾아 이 집에 살고 있는 7살 소년으로부터 꽃다발을 받았다.교황은 78년 교황으로 추대될 때까지 크라코프 주교로서 머물렀던 사제관을 이번에 숙소로 사용했는데,숙소 앞에 청년들이 몰려와 교황에게 “떠나지 말아달라.”고 외치기도 했다. 폴란드인 수십만명은 또 그가 이동할 때마다 연도에 늘어서서 교황을 열렬히 환영했다.교황은 18일엔 부모 묘소를 찾았으며,46년 자신이 사제서품을받고 첫 미사를 올렸던 바벨 성당도 방문했다.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폴란드를 떠나기 전날 교황이 집전한 야외미사에 사상 유례가 없이 많은 200만 인파가 몰렸을 때였다.군중들이 교황에게 울면서 떠나지 말아 달라고 외치자교황의 눈시울도 붉어졌다.이때 교황은 군중들에게 “다음에 또….하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손에 달려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러나 교황은 폴란드 출국 전 공항에서 행한 고별연설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나를 만나기를 바랐지만,다 만나지 못했다.다음 기회에….”라고 말해희망을 버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를 알현했던 알렉산데르 크바니예프스키 폴란드 대통령은 “교황은 정신적으로는 완벽한 상태”라고 전했다.호아킨 나바로 발스 바티칸 대변인도 “내 생각으로,교황은 폴란드에 다시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왕성했던 교황=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전임 교황들과 달리 바티칸에 머물면서 교회 일에만 매달리지 않고,세계 120여개국을 돌아다니며 인권문제,이념갈등 해결을 위해 왕성한 활동을 벌여왔다.이번 폴란드 방문은 24년 재임기간 동안 98번째 외국 방문이며 조국방문으로는 9번째다. 교황은 건강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중동성지를 순례하고 공산국가인 쿠바를 방문하는 등 전세계에 가톨릭과 자유화의 바람을 일으켰다. 91년 반포한 회칙 ‘100주년’에서 교황은 민주적 자본주의를 종교적으로 승인하는 한편 동유럽 공산권의 몰락을 이끌었다.92년엔 지동설을 주장해 파문당했던 17세기 과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에 대해 ‘교회가 오류를 범했다.’며 교회의 잘못을 공식 선언했다.93년에는 이스라엘과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2000년 동안 지속됐던 유대인과 기독교인 사이의 반목과 갈등을 청산하는 길을 열었다. 교황은 폴란드를 떠나며 후일을 기약했다.그러나 많은 폴란드인들은,그리고 교황 자신도,이번이 그의 마지막 모국 방문이 될 것임을 예감하고 있는지 모른다. 김상연기자 carlos@
  • “젊은날 나무신발 신고 일하러 다녔었지”교황 고향 폴란드 크라코프 방문

    [크라코프(폴란드) 외신 종합] 교황 요한 바오로 2세(82)가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모국 방문 길에서 짙은 향수에 젖었다. 교황 바오로 2세는 지난 17일 젊은 날의 대부분을 보낸 폴란드의 크라코프에서 자신이 살던 옛 집과 거리 등을 둘러보며 추억에 잠겼다.교황은 자신이 나치 치하에서 일했던 채석장 맞은 편에 지어진 ‘주의 자비’ 성당 봉헌식 말미에 “날마다 나무 신발을 신고 이 길을 걸어 일하러 갔던 것을 요즘에도 생각한다.”며 “내 개인적 추억의 많은 부분은 이곳과 관련돼 있다.”고 말했다. 교황은 봉헌식이 끝난 뒤,1938년 이사해 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타이니예카10번가의 2층짜리 회색 건물을 찾아 이 집에 살고 있는 7살 소년으로부터 꽃다발을 받았다. 교황의 대변인은 “거리 구석구석마다 (교황의)추억이 배어 있다.”고 설명했다. 가톨릭 신도가 대부분인 폴란드인들은 이날 수십만명이 교황의 숙소에서 ‘주의 자비’ 성당에 이르는 12㎞의 연도에 늘어서서 교황을 열렬히 환영했으며 교황이 머무는 나흘간 전국에서 400만∼500만명이 크라코프에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교황은 1978년 교황으로 추대될 때까지 크라코프 주교로서 사용했던 사제관에 묵으며 당시 썼던 침대를 쓰고 있다고 교회 관계자가 전했다. 교황은 18일에는 부모 묘소를 찾았으며 1946년 자신이 사제 서품을 받고 첫 미사를 올렸던 바벨 성당도 방문했다. 고령에 파킨슨씨 병 등을 앓고 있는 교황의 고향 방문은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고 있으나 교황은 “앞으로도 언제든 그를 맞을 준비가 돼 있다.”는 레스제크 밀러 폴란드 총리의 말에 “하느님이 허락하신다면….” 이라고 답했다. 지난 16일 나흘간의 일정으로 고향 폴란드 방문을 시작한 교황은 크라코프 도착연설을 통해 폴란드인과 전세계인들을 향해 “미래가 불확실하더라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격려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 8.15 민족통일대회/ 행사 취재 뒷얘기/“北대표단 大選 질문 공세”

    지난 14일부터 열린 8·15 민족통일대회는 분단 이후 서울에서 처음 열리는 남북한 민간차원의 행사라는 의미에 걸맞게 숱한 화제를 낳았다. *북측 기자들의 소회- 이번 대회에 동행한 북측 기자 14명은 남측 기자들의 치열한 취재 경쟁을 지켜보며 “누구를 위한 행사인지 모르겠다.”며 불만섞인 반응을 보였다. 조총련 기관지인 ‘조선신보’의 김지영(36)기자는 15일 사진전 개막식 때 갑자기 남측 취재진이 몰려들자 “작품을 감상하기 위한 자리지 기자들 취재하라고 마련된 자리는 아니지 않으냐.”면서 “남측 기자들은 규율성이 너무 없다.”고 꼬집었다. 북한 일간지의 한 기자는 지난 14일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여원구 의장이 선친인 여운형 선생의 묘소를 참배하는 문제로 북측 대표단과 보도진 사이에 신경전이 벌어지자 “너무 무례한 것 아니냐.”며 남측 기자들에게 쓴소리를 던졌다. 노동신문의 엄일규 기자는 방문 소감을 묻는 질문에 “통일을 이루려면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면서 “남측기자들도 통일의 대열에 동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개막식 축사를 낭독한 통일연대 한상렬 상임대표를 가리키며 “저 양반 연설 참 잘한다.”고 관심을 보였으며,남측 기자들이 다양한 질문을 던지자 “취재하러 왔다가 취재만 당한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한 기자는 “우리를 반길 것으로 믿었던 서울 시민이 보이지 않아 안타깝다.”며 서운한 마음을 드러냈다. *남한 사정에 밝은 북측 대표단- 행사 기간 동안 공식·비공식 자리에서 극도로 말을 아꼈던 북측 대표단이 정작 각종 행사 참석을 위해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는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신화고속 소속 버스 운전사 장용길(54)씨는 16일 “북측 대표단이 최근 연말 대선을 앞두고 인기가 오르고 있는 정몽준씨와 김대중 대통령의 아들 비리 문제 등에 대해 많이 질문했다.”고 전했다.이들은 이동중에 서울 지하철 5호선 ‘아차산역’ 주변을 지날 때 태조 이성계와 관련된 유례를 설명하고 새로 지은 한강다리의 이름도 척척 얘기하는 등 남측 안내원들을 머쓱하게 했다고 한다. 운전사 장씨는 “간부급들은 서울 토박이보다 서울을 더 잘 아는 것 같다.”면서 “북측 대표들의 인사성 바르고 예의바른 모습은 남한 젊은이들이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행사 첫날 점심식사로 쇠고기가 나오자 불교계 대표단이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기도 했다.일부 다른 대표단은 “통일을 위해 먹어야 되지 않겠는가.”라며 농담을 건넸다. *눈길 끈 북측 예술단원- 20∼30대 배우들로 이뤄진 북측 예술단원들은 빼어난 미모와 단아한 차림으로 단연 이목을 집중시켰다.이들은 간단한 화장품과 손수건,‘자주통일’,‘민족자주’ 등의 구호가 적힌 깃발,한반도기 등이 들어 있는 작은 손가방을 하나씩 들고 있었다. 특히 이들은 남측 기자들이 “일정이 빡빡한데 몸은 괜찮으냐.”고 묻자 한결같이 “일 없습네다.(괜찮습니다)”라고 대답했다.또 “한복을 입으니 곱다.”고 말을 건네자 “무용할 때가 더 고우니 사진도 많이 찍어달라.”며 받아 넘겼다. 행사 이틀째부터는 쏟아지는 질문에 익숙해진 듯 “남한에는 20대 중반의 미혼 여성이 많다.”는 기자의 말에 “빨리 좋은 가정을 꾸리셔야죠.”라며 재치있게 응수했다. *달걀 할머니- 민족통일대회 본 행사가 시작된 15일 90도 가까이 허리가 굽은 한 할머니가 지팡이를 짚고 두리번거리며 호텔 로비와 지하1층 등을 돌아다녀 눈길을 끌었다. 강동구 천호동에 사는 박모(73)할머니는 “북한 사람들을 보고 싶어 왔다.”며 기자에게 북측 대표단의 동정을 물었다.박 할머니는 “배고프면 먹으려고 달걀까지 몇알 삶아 왔다.”면서 “북한 사람들에게도 달걀을 선물로 주고 싶다.”고 활짝 웃었다. 박 할머니는 “북한 사람들이 무서웠던 적도 많았지만 나이가 들수록 ‘한민족’이라는 느낌을 갖게 됐다.”면서 “통일이 돼 북한에 갈 수 있을 때까지 살고 싶다.”고 말했다. 구혜영 박지연기자 koohy@
  • 8.15 민족통일대회/ 개막식·합동공연 이모저모/견우·직녀 만나는 날 함께 감동 나눈 南北

    광복 57돌을 맞은 15일 온 겨레의 통일과 화해의 염원을 담은 8·15 민족통일대회가 서울 광진구 광장동 워커힐호텔에서 막을 올렸다.때마침 음력 7월7일로 칠월칠석이었던 이날 견우와 직녀처럼 한자리에 모인 남북측 인사들은 함께 손뼉치고 환호하며 가슴찡한 감동을 나눴다. ◇개막식 직전- 워커힐 호텔에서 첫날 밤을 보낸 예술단원들은 제이드가든에서 열린 개막식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오전 9시쯤 1층 로비로 나왔다.맨 얼굴의 일부 여성 예술단원들은 의자에 앉아 화장을 시작했고 쑥스러운 듯 기자들에게 “맨 얼굴은 찍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전날 아버지 몽양 여운형의 묘소를 방문하고 호텔에 돌아온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여원구 의장은 환한 미소로 “푹 잘 잤다.”고 말했다.개막행사가 끝난 뒤 여 의장은 “마치 남북이 통일된 느낌”이라며 가슴벅찬 표정을 지었다. ◇개막식- 이날 오전 9시30분 열릴 예정이던 개막식은 남북 공동호소문 작성을 둘러싼 진통으로 1시간쯤 늦어졌다.개막식이 시작되자 행사장 입구에 도열한 남측 대표단은 스피커를 통해 울려퍼지는 북한 노래 ‘반갑습니다.’에 맞춰 손뼉을 치며 북측 대표단을 맞았다. 조화윤(22·여·동아대 3년)씨 등 남측 대학생 3명과 조명애(21·여)씨 등북한 예술단원 3명이 가로 200㎝,세로 145㎝의 남·북한 단일기를 함께 들고 입장하자 남북측 대표단은 모두 기립해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김영대 북측 대표단장은 축사를 통해 “따뜻하게 맞아준 남녘 동포와 서울시민들에게 감사한다.”면서 “6·15 공동선언 정신을 계승 발전시켜 통일을 앞당기자.”고 말했다. 김명철 조선농업근로자동맹 부위원장은지난 6월 월드컵대회와 북한 아리랑축전을 나란히 언급,“아리랑 축전의 성공적 개최와 세계 축구선수권대회에서의 선전은 민족 공동의 자랑이자 긍지”라며 남북을 동시에 치켜세웠다. ◇합동예술공연- 개막행사가 늦어지자 공연도 예정보다 1시간30분쯤 지난 낮12시25분 시작됐다. 북측은 행사에 앞서 “오늘 이 자리는 견우와 직녀의 만남과 같다.”고 말해 갈채를 받았다.북측 대표단의 공연이 끝나자 관객들은기립 박수로 화답했다. 한편 이날 오후 2시30분쯤 여원구 의장은 호텔 1층 무궁화볼룸에서 5촌 조카 여인영(54)씨 등 남측 가족 11명과 57년만에 해후했다. 남측 가족이 호텔을 찾아오자 여 의장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선 채로 3명의 조카로부터 큰절을 받은 뒤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여 의장은 가족의 얼굴을 일일이 감싸며 “네가 누구냐.꿈만 같다.”고 울먹였다.남측 가족은 북측의 혈육을 위해 준비한 한과를 전달했고,일부 가족은 편지를 건넸다. ◇사진·미술전- 오후 3시30분 무궁화볼룸에서 열릴 예정이던 사진전과 미술전은 북측이 가져온 일부 작품의 내용과 설명의 표현을 국정원이 문제삼는 바람에 1시간40분이 지난 5시10분쯤에야 가까스로 열렸다. 지난 7월 아들은 낳은 비전향 장기수 이재룡 부부에게 전달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친필 서한 전시여부를 놓고 당국과 마찰이 빚어진 것으로 알려졌으나 사진전에서 그대로 공개돼 많은 남측 참관인들의 시선을 끌었다.이 서한에는 “우리나라 인민들의 축복속에 태어난 아기 이름을 ‘축복’이라고 지어줍시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구혜영 이세영 박지연기자 koohy@
  • 여원구씨 몽양묘소 참배/ “”18살 때 떠났던 딸 50년만에 왔습니다””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여원구(74) 의장이 14일 서울 우이동에 있는 아버지 몽양(夢陽) 여운형(呂運亨)선생의 묘소를 참배했다. 여 의장은 이날 오후 5시쯤 서울 워커힐호텔을 출발해 검정색 승용차를 타고 오후 6시50분쯤 묘소 입구에 도착했다.여 의장은 10촌 동생 여익구씨와 수행원 한 명의 부축을 받으며 묘소 입구에서 50여m 오르막에 있는 아버지의 묘소를 올라가는 동안 계속 가슴이 복받치는 듯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여 의장은 참배 물품으로 가져온 백로주를 술잔에 붓고 향불에 데운 뒤 제상에 올려 놓자마자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버님,18세 때 아버지 곁을 떠난 뒤 50여년 만에 처음으로 아버지 앞에 찾아왔습니다.아버지,큰절 받으십시오….아버님께서 지난 46년 서울 계동 집 앞에서 평양으로 떠나라며 제 등을 밀어주고 곧 통일된다며 뒤따라 오신다더니 왜 여기에 누워 계십니까….” 여 의장은 가슴에 사무친 한을 털어내듯 10여분 동안 혼잣말로 절규하다 아버지의 묘 주위를 한 바퀴 돌면서 잡초를 뽑았다.여 의장은 지난 47년부터 여운형 선생의 묘를 관리해온 유지현(65·서울 강북구 수유4동)씨에게 제기를 선물로 건네고 “불효자식을 대신해 아버지 묘를 지켜주셔서 고맙다.”며 큰절을 올리기도 했다. 여 의장 일행이 참배를 하는 동안 묘소 주위에 모여든 100여명의 주민들은‘50여년 만의 참배’를 조용히 지켜봤다.주민 양일두(40·서울 강북 수유4동)씨는 “자식이 아버지의 묘소를 찾아오는 것은 우리의 전통”이라면서 “명절 때라도 자주 찾아올 수 있게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후 7시25분쯤 자리를 뜨면서도 여 의장은 아쉬운 듯 멀어지는 아버지의 묘소를 자꾸만 뒤돌아 보며 눈물을 흘렸다. 구혜영 이세영 기자 sylee@
  • “화해·통일 밑거름” 8·15통일대회 개막

    분단 이후 처음으로 서울에서 남북이 모두 참여하는 ‘2002 8·15민족통일대회’가 열렸다. 북측 대표단(단장 김영대 민화협회장) 116명은 14일 오전 고려항공편으로서 해직항로를 이용해 입국,‘2002 민족공동행사 남측추진본부’ 대표영접단40여명의 환대를 받은 뒤 서울 광장동 워커힐호텔로 이동해 8·15행사 공식일정에 들어갔다. 남북 참가단 540여명과 민주노동당 권영길(權永吉) 대표,이창복(李昌馥) 민주당 의원 등 초청인사 50여명은 저녁 워커힐호텔에서 개막 사전행사로 남측의 환영공연과 남북공동 만찬 행사를 가졌다.이에 앞서 북측 대표단은 인천공항 도착성명을 통해 “이번 서울 방문을 통하여 민족적 화해와 단합을 도모하고 조국통일에 유리한 환경을 마련하기 위하여 모든 성의와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한편 몽양 여운형(呂運亨) 선생의 셋째딸 여원구 조국통일민주전선 의장은 이날 오후 7시쯤 서울 우이동 부친의 묘소를 찾아 참배했다. 남북은 15일 개막식에서 ‘민간 교류 활성화가 화해와 통일의 밑거름’이라는 사실을 공동호소문을 통해 재확인할 계획이다. 한편 ‘남남(南南) 갈등’을 우려해 이번 행사에 불참하기로 결정한 한총련과 범민련 남측본부는 이날 건국대에 모여서 ‘8·15대회 성사 축하한마당’을 가졌으며 북측은 서울 행사와는 별도로 평양에서 8·15민족통일대회를 진행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
  • 北대표단 서울 첫날/ 김단장에 붉은악마 티셔츠 선물

    서울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남북민족통일대회에 참석한 북측 일행은 첫날 남측 관계자의 따뜻한 환영 속에 숙소인 워커힐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일부 단체들의 시위가 있었지만 한총련,범민련 남측본부 등 진보단체의 자제와 경찰의 철통 같은 경비로 첫날 일정이 진행됐다. ◇도착 및 환영- 북측대표단은 예정시간을 45분 넘긴 오후 1시15분쯤 인천부터 동행한 우리측 대표단 40여명의 안내를 받으며 워커힐 호텔 현관 앞에 도착했다.경호원과 취재진,호텔직원 등 100여명이 모인 호텔 앞에는 ‘남남(南南)갈등’을 우려,대회 불참을 선언한 범민련 관계자도 개인자격으로 나와 대표단을 맞았다. 김영대 북측 대표단장은 승용차에서 내려 호텔 직원이 건넨 꽃다발을 받아들고 환하게 웃으며 “감사합니다.”를 외치며 호텔로비로 들어섰다.이어 여원구 부단장은 몸이 불편한 듯 여성 2명의 부축을 받으며 김 단장의 뒤를 따랐는데 환영인파가 인사를 건네자 밝은 미소로 화답하기도 했다. 7대의 버스에 나눠 타고 도착한 나머지 대표단은 한반도기와 ‘민족자주’,‘자주통일’이란 글자가 적힌 수기를 흔들며 호텔 로비에 들어섰다.대회에 참가하지 못한 미전향 장기수 10여명도 이날 호텔 환영장에 나와 눈길을 끌었다. ◇오찬- 이들은 호텔에 도착한 뒤 곧장 오찬장인 1층 무궁화볼룸으로 직행,양식 뷔페로 점심을 들었다.한편 이자리에는 여운형추모사업회 고문이자 평생동지인 이기형 시인이 여원구 부단장을 만나 “56년 만에 딸을 만났다.”며‘반갑습니다,잘오셨습니다.’란 제목의 시를 건넸다. 오후 5시 가야금홀에서 시작될 예정이었던 축하공연은 여원구 부단장의 묘소 참배 논란으로 1시간30여분 늦게 시작되었다. 김 단장은 민주당 한광옥·한나라당 이부영 의원 등과 한 테이블에 앉아 축하공연을 지켜보며 담소를 주고받았다. 김 단장은 “같은 민족이라 그런지 통하는 느낌”이라며 공연이 끝날 때마다 박수를 치며 호응했다.김 단장은 또 김덕수 사물놀이패가 나오자 “저 사람은 많이 본 사람”이라고 말하며 관심있게 지켜봤다.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한나라당 이부영 의원은 붉은악마 티셔츠와 월드컵 때응원사진을 김 단장에게 선물했다.이어 8시30분부터 시작된 만찬에서 김 단장은 남측의 한상렬목사 이부영 의원과 한자리에 앉았다.김 단장은 “이런 행사가 지속되도록 남측 통일단체가 힘써주길 바란다.”며 온겨레의 건강을 위한 건배제의를 했다. 한편 여원구 부단장은 부친 묘소참배를 마치고 30여분 늦게 만찬장에 도착했다.감회를 묻는 질문에 “57년 만에 아버지 묘소를 참배한 기분 말로 다하겠느냐.”면서 “눈물만 흐르더라.”고 말했다.만찬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관련단체 움직임- 한총련과 범민련 남측본부 등 통일단체가 독자적인 거리집회를 자제해 진보단체와 보수단체 사이의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공식행사에 참가하지 않은 한총련과 범민련 남측본부는 이날 오후 민족공동행사 추진본부의 한 축인 통일연대와 함께 건국대에서 ‘8·15대회 성사 축하 한마당’을 열었다.행사에는 노동자·농민·학생 등 1만 5000여명이 모였으며,우려됐던 인공기 게양 등은 일어나지 않은 채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치러졌다. 한편 자유시민연대는 이날 오전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 앞에서 규탄집회를 갖고 “서해도발에 대한 북측의 사과도 없이 열리는 8·15 행사는 북의 대남교란 책동에 불과하며 김정일 체제를 강화하는 데만 이용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진상 구혜영 박지연기자 jsr@
  • [발언대] 순국선열 유해봉환에 관심 갖자

    31일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고(故) 박우식 소령의 유해가 35년 만에 조국의 품에 돌아왔다. 선열 유해봉환을 추진하고 있는 정부 부처에 몸 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국가를 위해 순국·전사한 분들의 유해발굴 사업은 국민의 애국심 함양 차원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정부의 소임이 아닌가 싶다. 필자는 서울 용산에 있는 효창원(孝昌園)에 가끔 들르곤 한다.효창원에는 백범 김구 선생 등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要人)의 묘소와 이봉창·윤봉길·백정기 의사 등 3의사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3의사 묘소 옆에는 안중근 의사의 가묘(假墓)가 함께 자리잡고 있다.그 곳을 들를 때마다 광복이 된 지 5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고국으로 모셔 오지 못한 데대한 아쉬움과 함께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곤 한다. 국가보훈처는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펼치다 쓸쓸히 생을 마감한 순국선열의 유해봉환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지금까지 해외에 있는 227위중 77위의 유해는 국내에 모셔 왔으며,미봉환된 150위중 60위는 현지에 단장또는 보존하고 유족들과 협의해 6위의 봉환을 추진하고 있다.안타까운 것은 그중 64기는 지형변동 등으로 묘소의 소재 확인이 곤란하다는 점이다.안중근 의사의 경우도 포함돼 있다. 중국·미국·러시아 등 해외묘소 실태조사를 꾸준히 실시해 많은 성과를 거두었으나,현지 사정 및 인력·예산 문제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그러나 유해봉환 사업은 언젠가는 꼭 찾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인내심 있게 추진돼야 한다.여기에 국민적 관심과 참여가 더해지고 오늘을 사는 우리의 노력이 후세들에게 이어져 결실을 맺게 된다면 먼저 가신 선열들의 공훈과 희생에 조금이나마 보답하는 길이 될 것이다. 오늘은 광복절이 들어 있는 8월을 여는 첫 날이다.이번 8월에는 가족과 함께 효창원과 독립기념관 등 선열들의 나라사랑 정신이 살아 숨쉬는 현충시설을 찾아 보는 소중한 시간을 가져 보는 것이 어떨까.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말이다. 김종성 (국가보훈처 차장)
  • 행사 / 여운형선생 추모비 제막식

    몽양(夢陽) 여운형(呂運亨) 선생 추모사업회(회장 呂澈淵)는 몽양 서거 55주기를 맞아 18일 오전 11시 경기 양평군 양서면 선생 생가터에서 추모비 제막식을,19일 오후 1시 서울 우이동 묘소에서 최창규 성균관장,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식을 갖는다.
  • 내일 이준열사 95주기 추념식

    대한제국 고종 황제의 밀사로 만국평화회의가 열리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조국 광복의 정당성과 일제의 잔학성을 세계만방에 알린 이준(李儁) 열사의 순국 95주기 추념식이 14일 오전 11시 서울 강북구 수유동 묘소에서 열린다. 추념식에는 이재달(李在達) 국가보훈처장,이영덕(李榮德) 전 국무총리,헤인 드브리스 주한 네덜란드대사 등이 참석한다.
  • [우리구 청사진] 김충환 강동구청장 “암사·고덕지구 재건축 힘쓸것”

    당당히 ‘3선 고지’를 밟은 김충환(金忠環·48) 강동구청장은 1일‘일류행정,일류 강동 완성’을 민선 3기 구정의 기조로 삼겠다고 밝혔다. 제한된 지방자치의 여건속에서도 행정의 선진화를 통해 본질적 의미의 자치행정 모델을 선보이겠다는 각오다. 이를 위해 그는 “행정의 민주성,지역특화행정,주민복지행정 등 3대 전략적 목표를 반드시 달성하겠다.”고 강조한다. 처음 구청장이 됐을 때 다짐했던 친절하고 깨끗하며 최선을 다하는 행정 마인드와 자세도 잊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이다. 우선 정책적 측면에서 그동안 끊임없이 추진해 온 청소,주차,도시계획,문화,공원,복지 등 6개 과제를 마무리할 계획이다.세계화·정보화 등 21세기형 정책 목표도 개발,실천에 옮기기로 했다.이같은 과업과 아이디어가 가시화되면 지구촌 시대의 새로운 도시행정 표본이 만들어 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구청장은 또 기존 사업의 마무리와 함께 앞으로 4년간 중점적으로 추진할 과제도 가다듬었다.가장 역점을 두는 사업은 ‘차고지 증명제’의 도입이다. 그는 “광역시·도에서도 차고지 증명제를 실시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이 제도를 도입하지 않고는 주차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고 못박았다. 재건축·재개발 사업도 본격적으로 추진할 생각이다.이 사업은 강동의 환경을 업그레이드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이다.고급도시로의 교두보 역할을 할 첫번째 사업 대상은 암사지구와 고덕지구다.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암사선사주거지와 관련해서는 국제학술회의 강화를 통해 세계속에 우리나라의 선사문화를 심는 작업을 게을리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특히 백제 시조인 온조대왕 묘소 복원에 애착을 갖고 있는 만큼 백제 뿌리찾기에 정성을 쏟을 생각이다. 그는 이와 함께 “민선 3기는 그동안의 경험 등을 토대로 풀뿌리 민주주의인 지방자치를 완성시키는 시기”라며 대외적인 활동도 보다 폭넓게 펼칠 뜻을 내비쳤다. 김 구청장은 “장기적인 개인 과제로 차기 서울시장 출마라는 분명한 목표를 설정했다.”면서 “앞으로 4년간 구민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면 주민들의 적극적인 호응속에 시장에 도전장을 던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풍부한 행정 경험과 세계화에 적합한 리더십을 갖춘 사람 중에서 서울시장이 나와야 한다.”며 강한 의욕을 감추지 않았다. 최용규기자 ykchoi@
  • 부모 성묘차 방북하는 조류학자 원병오박사

    조류학자인 원병오(73·경희대 명예교수)박사가 한국전쟁 때 헤어진 부모 묘소를참배하기 위해 방북길에 올랐다.그는 베이징을 거쳐 22일부터 고향인 개성 방문에이어 평양 애국열사릉의 부모님 묘소를 찾는 등 새달 6일까지 북한에 머물 예정이다.원 박사의 선친은 김일성대학 교수로서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역임한 세계적인 조류학자인 원홍구 박사. 원 박사는 한국전쟁 당시 둘째형과 함께 북한에 남은 부모와 생이별했고 1965년 우연히 아버지 소식을 접하게 됐다.철새의 이동경로를 연구중이던 원박사는 당시 일본 도쿄의 국제조류보호연맹 아시아지역본부로부터 한통의 편지를 받았다. 편지엔 북한의 저명한 조류학자 원홍구박사가 우연히 철새인 북방쇠찌르레기 다리에서 일련번호(C7655)가 새겨진 알루미늄 링을 발견했는데 발신지를 알고 싶다는내용이 담겨 있었다. 북한의 아버지는 국제조류보호연맹을 통해 아들이 2년전 서울에서 북방쇠찌르레기를 날려보낸 사실을 확인했다. 이후 원박사는 부자 상봉의 날만 손꼽아 기다렸으나 아버지가1970년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마저 3년뒤 눈을 감았다. 원 박사의 이번 방북은 지난 4월말 독일의회대표단의 방북 과정에서 통역을 담당한 한국외대 독일어과 홀머브로흘로스 교수가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에게 그의 편지를 전달해 성사됐다.부모묘소 참배와 남북한 학술교류를 희망한다는 뜻을 밝히자 북측은 지난달 17일 북한동물학회 명의로 초청장을 보내왔다.원박사는 “북한의 대학에서도 강의하고 남북 학술교류에 기여하고 싶다.”며 “새들처럼 자유롭게 왕래할 날이 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수정기자 crystal@
  • 이회창 충청 ‘보은 답방’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대통령후보가 6·13지방선거 이후 첫 지방 나들이로 18∼19일 대전과 충남을 찾았다. 이 후보가 대전·충남을 찾은 것은 지방선거 지지에 대한 답례성 성격이 짙다. 한나라당은 대전시장·충북지사를 차지하는 등 충청권 지방선거에서 약진했다.이번 방문은 주민 지지에 대한 ‘보은’이자 12월 대선을 앞둔 ‘충청지역 민심 다지기’인 셈이다.김종필(金鍾泌) 자민련 총재나 이인제(李仁濟) 민주당 의원에 대한 견제도 깔려 있다. 이 후보는 19일 지난해 산불이 발생했던 충남 예산의 17대조 선영 묘소를 찾아 성묘했다.이어 읍내 상설시장을 방문,예산군수 선거에서 한나라당 박종순 후보가 자민련 후보를 누르고 당선된 것에 대해 감사를 표시했다.많은 상인들과 주민들은 이 후보에게 큰 박수를 보내고 앞다퉈 악수를 청하는 등 지방선거 이전과는 적잖이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한편 이 후보는 지난 18일 저녁 대전시내 한 음식점으로 염홍철(廉弘喆) 대전시장 당선자를 포함한 이 지역 출마자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여러분들의 노력으로 충청지역에도 (민심)변화의 계기를 만들었다.”면서 “당선자들은 겸허한 마음으로 시정 활동에 임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 후보는 월드컵 경기에도 언급,“경기장에서 관람한 한·미전을 제외하곤 야외에서 응원한 모든 경기에서 우리 대표팀이 승리했다.”면서 “22일 열리는 한·스페인전에서도 광주를 방문,길거리 응원으로 승리를 유도해야겠다.”고 광주방문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예산 조승진기자 redtrain@
  • 아웅산 테러현장 대형 추모비-미얀마,한국언론에 첫 공개

    지난 83년 10월9일 17명의 우리 정부 인사들이 북한의 폭탄테러로 희생된 장소인 미얀마 아웅산 묘소의 새로 단장한 모습이 한국언론에 처음 공개됐다. 아웅산 묘지는 지난 83년 전두환(全斗煥) 전 대통령의 미얀마(당시 버마)방문을 수행한 서석준(徐錫俊) 부총리와 이범석(李範錫)외무장관 등이 전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한 북한의 테러로 희생된 현장.묘지의 주인공인 아웅산 장군은 독립 영웅으로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인 아웅산 수지 여사의 아버지.미얀마 군사정부는 이 장소가 민주화 시위를 촉발할 수 있다는 이유로 내외국인의 접근을 철저히 차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한국측에는 지난 90년 테러 희생자 유족들의 추모행사를 위해 단 한 차례 공식 공개했을 뿐이다.미얀마 군사정부는 동남아국가연합(ASEAN)언론인교류 행사차 지난 4일 미얀마를 방문한 한국 외교부 기자단에게 이례적으로 참배와 사진촬영을 허용했다. 폭탄테러 당시 아웅산 장군 묘지 위에 세워진 기와집 모양 건물은 테러당시 파괴된 뒤 아예 철거,흔적조차 사라졌으며,다만 묘소뒤로 검붉은색의 가로 20∼30m,세로 10m가량의 직사각형 대형 콘크리트 추모물이 세워졌다. 북한 테러범 3명 중 신기철 대위는 현장에서 사살되고 체포된 진모 소좌와 강민철 대위는 미얀마 최고재판소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뒤 진소좌는 사형에 처해졌고,테러사실을 자백한 강민철은 종신형을 선고받고 현재도 미얀마 교도소에서 복역중이다.주 미얀마 한국 대사관측은 강씨를 가끔식 면회,근황을 챙기며 한국 신문 등을 넣어 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수정기자 crystal@
  • 대한매일 제정 공초문학상 시상식

    대한매일신보사가 제정한 제10회 공초(空超)문학상 시상식이 4일 한국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열렸다. 시상식에는 수상자인 김종해(金鍾海) 시인을 비롯해 원로시인인 이원섭(李元燮)씨,이근배(李根培) 한국시인협회장,신세훈(申世薰) 한국문인협회이사장과 정진규(鄭鎭圭)·김남조(金南祚)·신달자(申達子) 시인,이선영·이유경·이수익·임중빈 공초숭모회원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시상식에서 대한매일신보사 유승삼(劉承三) 사장은 식사를 통해 “공초문학상이더욱 뜻깊은 이유는 순수하게 그를 아끼고 존경하는 시인과 예술인들이 자발적으로 뜻을 모았다는 점 때문”이라며 “늘 시단의 중심에서 때로는 치열하게,때로는 부드럽게 시를 써오신 김종해 시인이 공초 선생님의 무소유와 자유인으로서의 시 정신을 이어받는 수상자가 된 것을 축하한다.”고 말했다. 김종해 시인은 “처음 수상 소식을 듣고는 당황스러웠으나 40여년에 걸친 나의 시 세계를 인정받았다는 마음에 큰 행복감을 느꼈다.”며 “이 상을 계기삼아 더 치열한 자세로 나의시세계를 완성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숭모회원 등 참석자들은 시상식이 끝난 뒤 수유리 공초 선생의 묘소를 참배하고 추모제를 봉행했다. 심재억기자 jes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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