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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정희 전대통령 등 4389명 수록 친일인명사전 공개

    일제시대 식민지배에 협력한 인사들의 친일 행각과 해방 전후 행적을 담은 ‘친일인명사전’이 발간돼 8일 공개됐다.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와 민족문제연구소는 이날 서울 효창동 백범 김구 묘소 부근에서 일제강점기 친일행위자 4389명의 명단이 들어 있는 친일인명사전 3권을 공개했다. 이번 친일인명사전은 발간작업 이후 8년 만에 이뤄졌으며,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과 ‘시일야방성대곡’을 쓴 위암 장지연, 장면 전 부통령, 작곡가 안익태, 시인 서정주 등 각계 유명 인사들이 포함됐다. 그러나 신현확(1920~2007) 전 국무총리와 최근우(1897~1961) 전 사회당 창당준비위원장 등 3명은 유족들의 이의 신청 등이 받아들여져 수록 대상에서 빠졌다. 편찬위원회에 따르면 ‘을사조약’ 전후부터 1945년 8월15일 해방까지 일본 제국주의에 협력해 민족에 피해를 끼친 자를 친일파로 정의했다. 친일 행위의 자발성과 적극성을 주요 기준으로 반복성, 중복성, 지속성도 고려됐다. 그동안 역사학자 등 150여명의 편찬위원들이 3000여종의 일제강점기 사료를 활용, 2만 5000여건의 친일혐의자 모집단을 추출한 뒤 수록 대상자를 선정했다고 편찬위 측은 밝혔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은 “한국 근·현대사 금기의 영역이 처음 공개된 것을 바탕으로 퇴행적인 역사 인식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편 국가보훈처는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공개한 ‘친일인명사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은 언론인 장지연 등 독립유공자 20명이 포함된 것과 관련, “자료를 입수해 내용을 살펴본 뒤 신중하게 입장을 정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유족이나 친인척들의 명예훼손 소송도 잇따를 전망이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역대 대통령 ‘베트남 과거사’ 발언

    │하노이 이종락특파원│이명박 대통령은 21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응우옌 민 찌엣 주석과의 한·베트남 정상회담에서 “우리 일행 모두는 베트남이 역경을 딛고 아픈 과거를 딛고 미래를 향해 가는 것에 대해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수교 17년을 맞은 양국의 아픈 과거사에 대한 이 대통령의 접근법이다. 아픈 과거를 넘어 미래의 동반자로 나아가자는 취지다. 이 대통령은 공산당 창건자인 호찌민 묘소를 찾았지만 과거에 대한 사과는 하지 않았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8년 베트남을 방문해 “본의 아니게 베트남 국민에게 고통을 준 데 대해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처음으로 공식 사과를 했다.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호찌민 묘소도 찾았다. 2004년 베트남을 방문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우리 국민이 마음의 빚이 있다. 그만큼 베트남의 성공을 간절히 바란다.”고만 했다. 호찌민 묘소에 헌화하고 시신이 안치된 유리관 앞에서 묵념했다. 1996년 베트남을 찾았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과거사 문제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호찌민 묘소도 찾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 중 중간적인 입장을 선택한 셈이다. jrlee@seoul.co.kr
  • [사설] 10·28 재·보선 과열 도 넘었다

    28일 실시될 5개 선거구 국회의원 재·보궐선거가 과열을 넘어 혼탁으로 치닫고 있다. 여야 지도부가 재·보선 지역에 살다시피하며 선거 과열을 앞장서 부추기는 후진적 행태야 사실 새로울 것도 없다. 그런데 어제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현 정권의 실세와 전직 대통령의 부인들까지 사실상 선거전에 가세했다.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은 한나라당 대표를 지낸 박희태 후보가 출마한 경남 양산의 옆 고장인 밀양을 찾았다. 오늘과 내일 경북 청도와 경산을 방문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는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찾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하고 부인 권양숙 여사를 위로했다. 권익위 측이나 이 여사 측 모두 재·보선과 무관한 일정이라지만 곧이들을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정녕 무관하다면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도록 일정을 변경했어야 옳다. 재·보선 지역 주변을 오가는 것만으로도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게 이들의 정치적 무게다. 이들이 이를 모를 리 없다. 무차별 폭로와 근거 없는 비방, 인신공격 등 혼탁 선거의 단골 메뉴도 난무하고 있다. 어제는 한나라당이 이명박 대통령 특별당비 의혹을 제기한 민주당 지도부 3명을 고발하면서 고소고발전의 심지를 돋웠다. 민주당은 정세균 대표의 정치인생과 계파간 권력구도를 걸었고, 친노진영은 정치적 재기의 가능성을 찾느라 혈안이 돼 있다. 이런 야당의 기세에 한나라당은 집권 중반의 국정 동력을 잃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과열 선거판의 한 축에 섰다. 비어 있는 5개 국회 의석을 지역 주민의 뜻에 따라 채워 넣는 선거다. 지난 두 정부와 현 정부가 정권을 놓고 싸우는 선거가 아니다. 이런 식이라면 여야가 얻을 것은 의석이 아니라 국민의 냉소와 불신이다. 민심을 호도하지 말기 바란다.
  • 봉하 찾은 이희호여사 盧 전대통령 묘소 참배

    봉하 찾은 이희호여사 盧 전대통령 묘소 참배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가 21일 오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을 찾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했다. 이 여사의 봉하마을 방문은 고 김 전 대통령 추모비 제막식이 끝난 뒤 첫 외부 행사였다. 이 여사는 마중나온 권양숙 여사의 손을 잡고 노 전 대통령의 묘역으로 걸어가 헌화하고 분향했다. 이 여사는 고개를 숙인 채 긴 묵상을 하다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이 여사와 권 여사는 손을 잡고 묘역 주변과 노 전 대통령이 투신한 부엉이바위, 사저 쪽을 둘러보면서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이 여사의 봉하마을 방문에는 민주당 정책위의장인 박지원 의원 내외를 비롯해 김대중평화센터 윤철구 사무총장, 최경환 공보실장 등이 동행했다. 박 의원은 “이 여사는 건강이 좋지 않았던 권 여사가 김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 참석하고 위로를 해준 데 대한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어 찾은 것”이라고 말했다. 박 의원은 인접한 양산시 등의 재·보궐 선거를 앞둔 시기에 봉하마을을 찾은 이유에 대해 “날짜는 내가 직접 잡았고 국정감사가 없는 날을 택하다 보니 오늘로 잡힌 것”이라면서 “정치적인 의미는 전혀 없으며 두 분의 순수한 뜻이 훼손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정치적인 해석을 경계했다. 김해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밀양 간 이재오위원장 영남서 지방민생 탐방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이 21일 경남 밀양 방문을 시작으로 지방 민생 탐방에 나섰다. 권익위에서 시행하는 지역현장 고충민원 상담제도인 ‘이동신문고’의 일환이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이 위원장이 취임한 뒤 첫번째로 방문한 지역이 공교롭게도 국회의원 재선거가 치러지는 경남 양산과 인접한 밀양인 점을 지적하며 “선거를 의식한 행보가 아니냐.”는 의구심을 보였다. 이 위원장은 이날 밀양시청에 차려진 상담장에서 “민원을 직접 들어보고 해결할 수 있는 것은 꼭 해결하고 차선책이라도 방안을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민주당은 ‘관권 선거’라며 발끈했다. 김현 부대변인은 “하필이면 선거가 치러지는 양산의 옆동네 밀양에 갔다.”면서 “이 위원장의 행보는 관권 선거 의혹을 피해 갈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한가할 틈없는 CEO 한가위

    민속 최대 명절인 한가위 연휴 기간(2∼4일)에도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의 발과 머리는 쉴 틈이 없다. 연휴를 반납하고 해외 현장으로 달려가 사업 확장을 꾀하는가 하면, 특별한 일정은 없지만 연휴를 위기 극복을 위한 경영 전략을 가다듬는 시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1일 재계에 따르면 정준양 포스코 회장은 중앙아시아를 돌며 한가위를 보낸다. 지난달 28일 카자흐스탄으로 출국한 정 회장은 티타늄 소재 개발을 위한 합작 회사 설립을 합의하고 2일 귀국하려 했지만 체류기간을 연장하기로 했다. 중앙아시아 인근 국가로 이동해 자원개발과 원료 조달을 위한 새 사업 확대를 모색하기 위해서다. 민계식 현대중공업 부회장과 최길선 사장은 1일 중동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4일까지 중동을 거쳐 아프리카 등 3개국을 돌며 수주한 플랜트 공사 진행 상황을 점검한다. 가족과 떨어져 명절을 보내야 하는 현지 직원들도 직접 챙길 계획이다. 이지송 토지주택공사 사장은 연휴기간에 4개보금자리주택 시범지구 현장을 둘러보기로 했다.자택에서 차분하게 연말 경영 구상을 위한 시간으로 활용하는 CEO들도 적지 않다. 정몽구 현대·기아차 그룹 회장은 4·4분기 및 내년 사업 밑그림을 그리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할 예정이다. 그동안 덕을 본 ‘환율 효과’가 사라지는 상황에서 글로벌 판매 확대와 비용 절감 대책 마련을 숙고할 것으로 전해졌다. 그룹 후계자로 꼽히는 아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에게 경영 조언도 아끼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과 구본무 LG그룹 회장, 박용현 두산 회장도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휴식을 취하면서 향후 경영을 위한 전략을 구상할 계획이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명예회장은 연휴기간에 고 박인천 창업주의 묘소와 노모 이순정 여사의 자택이 있는 광주로 내려갈 예정이다. 대우건설 매각, 대한통운 검찰 수사 등에 대해 고민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성묘를 다녀온 김승연 한화 회장은 가회동 자택에서 휴식을 취하며 이달 중순 예정된 대우조선해양 이행보증금 반환을 위한 2차 조정, 대우인터내셔널 인수 참여 등 현안 구상에 매진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영표 김경두기자 tomcat@seoul.co.kr
  • [길섶에서] 벌초 대행/이목희 수석논설위원

    4년 전 별세하신 부친은 완고하셨다. 제사를 소홀히 하면 불호령이 떨어졌지만 돌아가시기 몇해 전에 고집 하나를 꺾으셨다. “제사상은 차리겠으나 절은 하지 않게 해 달라.”는 며느리들의 읍소를 받아들였다. 이승을 떠나시기 직전에는 “제사를 예배로 대신해도 좋다.”는 획기적인 허락이 있었다. “조상 묘지 관리를 잘하라.”는 단서가 붙었다. 후손들은 벌초와 성묘는 정성스레 하자고 다짐했으나 작심삼년일 뿐. 올해는 벌초 날짜를 놓고 형제들의 일정이 안 맞아 결국 대행업체에 맡겼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벌초를 대행업체에 맡기겠다는 답변이 훨씬 많았다. 벌초 결과를 인터넷으로 보는 ‘e-명절’ 시대가 도래했다는 기사를 보면서 부친께 미안한 마음을 달래기도 했다. 지난 주말 벌초가 끝난 산소를 둘러보면서 큰형은 “이러다 관리 자체를 대행해 주는 공원묘지로 옮겨야 하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레 운을 뗐다. 하지만 부친의 당부가 아직도 생생한데…. 다음 세대는 몰라도, 우리 세대까지는 지금의 묘소를 성의껏 돌보기로 했다. 이목희 수석논설위원 mhlee@seoul.co.kr
  • [서울광장] 아들아 미안하다/진경호 논설위원

    [서울광장] 아들아 미안하다/진경호 논설위원

    둘째아이가 반기(反旗)를 들었다. 이사를 못 가겠다, 그냥 이 집에서 살겠노라며 드러누웠다. “거기도 친구 많아… 학교도 가깝고.” 어르고 달랬지만 불알친구들과 헤어져 새 학교 낯선 울타리로 들어서야 하는 두려움을 덜어주진 못했다. 타협했다. 이사는 OK, 전학은 NO! 좀 떨어진 동네에 그나마 강북에서 좀 나은 중·고등학교가 있다는 얘기에 혹해 단행한 ‘주민등록 이전사업’. 이사는 다섯해 전 그렇게 이뤄졌다. 고백하건대 주민등록법을 지켜야 한다는 투철한 준법의식은 없었다. 달랑 주소만 옮겼다간 학교의 거주 실사(實査)에 걸려 강제로 전학 조치되는 불이익-상응한 대가라 해야 옳지만-을 받을까 두려웠다. 그 뒤로 중학교 진학 때까지 큰 아이는 1년 반, 둘째는 3년 반을 하루 왕복 1시간씩 승용차와 버스로 등하교하는 고생을 감내해야 했다. 안쓰러웠지만 앞집 옆집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으니 다들 그리 사는가 보다 자위하며 헤죽댔다. 한데 그렇지가 않았던 모양이다. 국무총리와 장관 후보자들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진행된 지난 열흘 신문지면은 어지러웠다. ‘소득탈루’니 ‘다운계약서’니 하는 갖가지 의혹들이 난무했다. 그 가운데서도 ‘위장전입’이란 단어가 유독 많았다. 총리 후보 정운찬씨, 장관 후보 이귀남·최경환·임태희씨, 그리고 대법관 후보 민일영씨가 위장전입 대열에 섰다. 교수도 위장전입, 공무원도 위장전입, 판·검사도 위장전입. 하기야 검사 시절 네 차례 위장전입한 김준규 검찰총장도 지난달 “부끄럽게 생각한다.”는 사과 몇 마디로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다른 후보자들도 뭐가 걱정이겠나. 이쯤 되면 위장전입은 그저 나이 들면 생기는 검버섯 정도가 돼 버린 것 아닌가. 선친 묘소 이장을 위해 임야를 매입하려고 잠시 주소를 옮긴 사실이 드러나 고위공무원 승진 때 탈락했던 선배의 친형을 비롯해 매년 위장전입으로 기소돼 수십, 수백만원의 벌금을 무는 수백명의 장삼이사(張三李四)들만 딱할 뿐이다. 자녀 교육을 위한 위장전입과 부동산 투기를 위한 위장전입을 달리 보자는 논의는 헛헛하다. 까닭 모를 허기를 부른다. 범법 가운데 눈감아 줄 만한 게 뭐가 있는지 사회 전체가 머리 맞대고 찾아보자는, 집단 공모의 제의…. 차갑고 미끄러운 뱀이 혀를 낼름거리며 알몸을 휘감는 것 같아 몸서리가 쳐진다. 범법은 범법이고, 능력은 능력인가. 능력과 자질은 기본사양이고, 준법과 도덕은 선택사양인가. 준법과 도덕은 능력이 아닌가. 이런 나라였나. 서구 의회에서 최대의 욕이 ‘You lie’(거짓말이야)인 건 준법을 도덕보다 낮춰봐서가 아니다. 교통신호 위반까지도 청문회에서 문제 삼을 정도로 준법은 기본이고, 그 바탕 위에서 도덕을 헤아리기 때문이다. 지난 며칠, TV뉴스에 위장전입 얘기만 나오면 채널을 돌렸다. 신문도 치웠다. 장거리 통학이, 위장전입을 꿈도 못 꾼 소심한 아빠의 요령부득 때문이었음을 아이가 알아챌까봐. 법을 어겨도 잘만 장관이 되는 우리 사회의 가치 빈곤을 너무 일찍 아이가 알아버릴까 봐. 라디오 토론프로에서 어느 교수가 말했다. “그래도 청문회에서 곤욕을 치르는 후보들 모습이 반면교사가 되지 않겠느냐.” 유행어가 귓전을 때린다. ‘그건 네 생각이고~.’ 바로 세워야 할 사회의 가치가, 너무 멀다. 아니, 가치를 세울 날이 따로 있는 게 아닐 터이건만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려 애쓴다. 우린 비겁하다.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이대 설립자 스크랜턴 100주기 심포지엄 등 다양한 행사

    이대 설립자 스크랜턴 100주기 심포지엄 등 다양한 행사

    이화여대 설립자 메리 스크랜턴(Mary F Scranton·1832~1909)의 100주기를 맞아 그를 기리는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스크랜턴은 1885년 아펜젤러, 언더우드와 같은 시기에 아들 선교사 윌리엄 스크랜턴(William B Scranton·1856~1922)과 함께 한국 땅을 밟은 1세대 개신교 선교사다. 그녀는 한국에서 엘리트가 아닌 여성·노인 등을 위한 교육과 의료 사업을 주로 펼쳐 이화학당(현 이화여고·이화여대의 전신)을 건립했고, 서울 상동교회·동대문교회·아현교회 등을 세워 병원·약국 등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그가 건립한 학교와 교회 관련자들로 구성된 스크랜턴기념사업회는 새달 8일 그의 100주년 기일을 맞아 그의 삶과 선교철학을 널리 알리기 위한 행사들을 기획했다. 8일 이화여대 컨벤션홀에서는 그가 한국근대사 및 여성교육에 끼친 영향을 재평가하기 위한 학술 심포지엄이 열리고, 이어 서울 양화진에 있는 그의 묘소에서 추모행사가 개최된다. 특히 올해에는 최근 사업회 측이 찾아낸 그의 후손들을 초청, 스크랜턴이 세운 교회를 둘러보고 한국문화를 체험하는 행사도 마련했다. 이들은 사업회와 함께 일본 고베에 위치한 윌리엄 스크랜턴의 묘소도 방문한다. 연합추모예배는 7일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열린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엄마와 읽는 동화] 장승을 찾아서/박상재

    [엄마와 읽는 동화] 장승을 찾아서/박상재

    승희는 유치원에 다닐 때까지 장승을 보면 울음보를 터뜨리기 일쑤였습니다. 4학년 때까지만 해도 장승을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5학년이 되면서 판소리와 사물놀이를 알게 되고, 탈춤도 배우고, 우리 문화재에 대해 배우면서 장승에 대해서도 친근하게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승희 외할아버지는 속리산이 가까운 외딴 산골에서 장승을 만들고 있습니다. 벌써 30년 가까이 장승과 더불어 살아온 장승장이입니다. 외할아버지는 그곳에 장승을 100개도 넘게 만들어 장승공원을 꾸며 놓았습니다. 장승공원에 가면 갖가지 장승들이 줄지어 서 있습니다. 도깨비처럼 험상궂게 생긴 장승도 있지만 저절로 웃음이 나올 만큼 재미있게 생긴 장승들도 많습니다. 우락부락한 인상이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장승이 있는가 하면 시골 할아버지처럼 순하고 어눌해 보이는 장승도 있습니다. 이름도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진서대장군, 북장군, 당장군 등 여러 가지로 불리지만 승희에게는 어느 것 하나 정이 가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승희 외할아버지에게는 장승이 누구보다도 가장 가까운 친구입니다. 산길을 가다 폭풍우에 쓰러진 나무나 병충해를 이기지 못하고 죽은 나무들을 보면 할아버지의 눈에 생기가 돕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시작일 수도 있는 게야. 내가 그것을 증명해주지.” 할아버지는 죽은 나무들을 알맞게 잘라 보물처럼 조심조심 옮겨옵니다. 그러고는 톱과 대패, 망치와 끌을 들고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일을 합니다. 쓱싹쓱싹 대패질 소리가 나고, 뚝딱뚝딱 망치 소리가 들리고, 쩌억쩌억 끌 소리가 들리면 죽은 고목나무는 살아 있는 장승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여름방학이 끝나갈 무렵, 엄마는 승희를 데리고 국립 민속박물관에 다녀왔습니다. 그곳 마당에는 꼴도 보기 싫은 장승 부부가 우두커니 서서 헤벌쭉 웃고 있었습니다. “승희야, 저 장승할아버지 앞에 가서 서 봐. 사진 한 장 찍어 줄게.” “싫어. 내가 사진 찍기 싫어하는 것 엄마도 알잖아요.” 승희가 퉁명스럽게 쏘아붙이자, 엄마는 승희에게 사진기를 건네주며 말했습니다. “그럼 엄마라도 한 장 찍어주렴!” 엄마의 두 눈에는 늦가을 바람결 같은 쓸쓸함이 배어 있었습니다. 승희는 높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장승과 함께 서 있는 엄마의 모습을 사진기에 담아주었습니다. 엄마가 승희의 손을 잡으며 말했습니다. “승희야, 지금도 외할아버지가 싫니?” 승희는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한참을 망설이던 승희가 입을 열었습니다. “난 그냥 외할아버지는 좋은데, 장승 만드는 외할아버지는 싫었어. 외할아버지는 산신령이야. 긴 머리채를 묶은 채 한복을 입고 장승을 만드는 할아버지는 더욱 싫어.” 승희의 마음이 홀가분해집니다. 언젠가 꼭 하고 싶었던 말을 쏟아 놓고 나니 마음이 개운해졌습니다. 화를 낼 줄 알았던 엄마의 얼굴에 가을 햇살 같은 웃음이 흘렀습니다. “그래, 나도 처음엔 그런 외할아버지가 무척 싫었단다. 망나니처럼 어깨까지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질끈 동여매고 나무망치와 끌로 장승 깎는 일에만 골몰하는 할아버지가 왜 그리 싫었는지 몰라. 외할아버지는 장승을 만들 때면 늘 목욕을 한 후 한복을 차려입고 일을 했지. 머리라도 짧게 깎았더라면 땀도 덜 흘렸을 텐데…. 비오듯 흘려대던 그 땀 냄새도 무척이나 싫었어.” 엄마는 외할아버지가 그리운지 눈시울이 젖기 시작했습니다. 며칠 전, 승희는 엄마와 함께 광화문 광장을 찾았습니다. 새로 꾸민 광장을 구경하기 위해서입니다. “광장이 뭔가 좀 허전하지 않니? 그곳에 장승을 세워 놓으면 어떨까?” 엄마는 집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며 말했습니다. “엄만, 누가 외할아버지 딸 아니랄까봐 장승 타령이에요?” 승희가 밉지 않게 눈을 흘겼습니다. 동작역을 지나 이수역에서 다시 7호선 열차로 갈아탔습니다. 출입문 위에 붙어 있는 열차 노선안내도를 보던 엄마가 말했습니다. “승희야, 오랜만에 엄마가 살던 골목에 한 번 가볼까?” “엄마 마음대로 해.” 승희는 별 생각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번 정차할 역은 장승배기, 장승배기역입니다.” “승희야, 이번 역에서 내리자.” 안내방송이 흘러 나오자 엄마는 승희의 손을 잡고 내릴 준비를 했습니다. “엄마 살던 곳이 장승배기였어?” “그래, 엄마 어렸을 땐 동네에 커다란 장승이 우뚝 서 있었는데,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구나.” 엄마는 약간 상기된 얼굴이었습니다. 개찰구를 빠져 나온 엄마는 어느 쪽으로 나갈까 망설이다가 역무원에게 물었습니다. “어디로 나가면 장승을 볼 수 있을까요?” 역무원은 승희 엄마를 쳐다보지도 않고 귀찮다는 듯이 대답했습니다. “오른 쪽 6번 출구로 나가세요.” “예, 고맙습니다.” 엄마의 발걸음이 빨라졌습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밖으로 나오니 가장 먼저 눈부신 하늘이 반겨주었습니다. 승희 엄마는 두리번거리며 장승을 찾았습니다. 승희도 뚤레뚤레 주변을 둘러보며 장승을 찾았습니다. “장승이 어디 있어? 그 아저씨가 잘 못 알려줬나?” 엄마가 실망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그 때 승희의 눈에 장승 한 쌍의 모습이 들어왔습니다. “엄마 저기 있어. 도서관 입구에 서 있잖아.” 먼 발치 도서관 입구에 농구 선수만큼 큰 장승 부부가 헤벌쭉 있었습니다. “애걔, 너무 작다. 기왕에 세워 놓으려면 좀 더 큰 장승을 세워놓지 않고….” 승희는 엄마의 얼굴에서 승희가 전교부회장 선거에서 두 표차로 떨어졌다는 말을 들었을 때 보였던 섭섭한 표정을 읽었습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가까이에 가서 한번 보고가요, 엄마.” 승희가 먼저 엄마의 손을 끌었습니다. “천하 대장군, 지하 여장군.” 승희가 장승에 쓰여 있는 한문 글씨를 읽었습니다. “우리 승희 한문 실력이 보통이 아니구나!” “장승배기 이름에 걸맞은 좀더 우람한 장승을 세웠더라면 좋았을 텐데….” 엄마는 다시 한 번 아쉬움을 토해냈습니다. 승희는 장승 앞에 서 있는 안내문을 읽어보았습니다. -장승배기는 정조가 부친 사도세자의 묘소인 현륭원에 참배하러 가면서 쉬었던 곳이다. 당시 이곳은 인가도 없고 행인마저 적었는데 정조가 장승을 만들어 세우라고 지시한 이후 장승배기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내가 어렸을 때는 덩치 큰 장승들이 제법 많이 서 있었는데, 이젠 장승배기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되었구나.” 엄마의 목소리는 그리움에 젖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없어진 거야?” “도로를 넓힌다, 지하철 공사를 한다, 재개발한다 하면서 마구 없애버린 거지. 우상숭배라는 명목으로 뽑아버린 경우도 있고….” “엄마, 진짜 장승을 보려면 외할아버지를 찾아가면 되잖아요.” “그래, 왜 내가 그 생각을 못했지?” 엄마의 눈빛이 능소화꽃처럼 환해졌습니다. “엄마, 그럼 이번 토요휴업일에 꼭 다녀와요.” “장승이라면 무섭다고 까무라치던 네가 웬일이니?” “엄마, 장승은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이고 서민적인 민속문화재래요, 학교에서 선생님께 배웠어요.” 승희의 목소리에서 외할아버지의 팔뚝 같은 힘이 묻어났습니다. 승희는 토요휴업일을 맞아 엄마와 함께 속리산 부근에 있는 장승공원에 다녀왔습니다. 그곳은 승희 외할아버지가 30여년 동안 피땀을 흘리며 가꿔 놓은 곳입니다. 공원으로 오르는 길가에는 벌개미취, 구절초, 쑥부쟁이 같은 초가을 들꽃들이 승희네를 반겨 주었습니다. 수크령과 억새꽃도 어서 오라는 듯이 손을 흔들었습니다. 공원에는 수많은 장승들이 다양한 몸짓과 재미있는 표정으로 서 있었습니다. 엄마가 저녁밥을 준비할 동안 승희는 공원을 한바퀴 둘러보았습니다. 전에는 대수롭지 않게 보았던 장승들에게 승희의 눈길이 오래오래 머뭅니다. 턱이 유난히 긴 ‘주걱턱장승’, 이가 다 빠지고 얼굴이 쭈글쭈글한 ‘노인장승’, 전통혼례를 올리는 ‘신랑 각시장승’, 하나의 나무에 각기 다른 두 개의 얼굴을 가진 ‘한몸장승’, 얼굴이 꼭 닮은 ‘쌍둥이장승’, 수줍은 듯 기둥 뒤에서 얼굴만 빼꼼히 내놓은 ‘처녀장승’ 등 앙증맞은 장승들이 많이 서 있습니다. 장승 외에도 높다란 장대 위에 나무새를 앉힌 솟대도 서 있고, 나무로 지은 정자도 여러 채 있습니다. 언제나처럼 한복을 차려입은 외할아버지는 정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 여러 장승들의 표정이 참 재미있어서 정다운 느낌이 들어요.” 할아버지의 표정이 구절초꽃처럼 환해졌습니다. “우리 승희가 이제 다 컸구나. 어렸을 때엔 장승을 보고 무섭다며 울음을 터뜨리던 애가 정다운 느낌이 든다니….” “제가 언제 울었어요?” 승희는 엄마한테 들어서 알고 있지만 시치미를 떼었습니다. 조금 머쓱해진 승희가 오랫동안 마음에 담고 있던 말을 꺼냈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 우리 조상들은 왜 장승을 세웠나요?” “장승은 마을 어귀나 고갯마루에 서서 오가는 길손들을 맞이하던 사람들의 친구였단다. 오랜 세월동안 비바람을 꿋꿋이 견디며 경계표나 이정표로, 잡귀나 질병으로부터 사람을 보호하는 수호신 역할을 했지. 사람들은 때로 장승을 찾아와 개인의 소원을 빌기도 했단다. 장승은 이렇게 정다운 친구로, 때로는 수호신이나 믿음의 대상으로 우리 곁을 든든하게 지켜준 고마운 존재란다.” “할아버지, 어떤 장승은 아주 험상궂게 생겨 무섭기도 해요.” “근엄하고 무서운 표정의 장승은 수호신의 역할을 한단다. 잡귀와 재앙을 막아 내려면 무서운 표정을 지어야 하지 않겠니? 그러나 지금은 누구에게나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다정하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의 장승을 만들지.” “그래서 재미있게 생긴 장승들이 많군요.” “그래, 장승은 못 생기면 못생길수록 정감이 가고 재미있단다. 넌 그렇게 생각하지 않니?” “맞아요. 할아버지. 제가 장승을 좋아하게 된 것도 할아버지께서 만드신 재미있고 익살스러운 장승들을 보고나서부터거든요.” “이제 우리 승희와 대화가 통하니 이 할애비는 참 기쁘구나.” “할아버지 이제부터 제가 장승홍보대사가 될 거예요. 친구들이 제 별명을 ”장승“이라고 부르면 활짝 웃을 거구요.” “승희야, 고맙다. 역시 넌 내 손녀야.” 할아버지는 거칠고 투박한 손으로 승희의 손을 꼭 잡아주었습니다. 승희는 할아버지 얼굴이 가을 언덕배기에 줄지어 핀 해바라기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 작가의 말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이 있다. 장승은 우리 조상들의 숨결이 배어 있는 우리의 전통문화 유산이다. 한때 우상숭배라는 미명 아래 장승이 수난을 당하던 시절도 있었다. 우리의 전통문화를 더욱 아끼고 사랑하여 후손에 물려줄 책무가 우리에게 있다. ● 약력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꿈꾸는 대나무)▲새벗문학상 장편동화 당선(원숭이 마카카)▲한국아동문학상, 방정환문학상, 한정동아동문학상 수상▲동화집:개미가 된 아이, 원숭이 마카카 등 50여권▲현재, 서울영일초등학교 교사
  • 고이잠든 작가(作家)앞에 다시선 아씨 김희준(金喜俊)

    고이잠든 작가(作家)앞에 다시선 아씨 김희준(金喜俊)

    『아씨』의 작가 임희재(任熙宰)씨 무덤에 아담한 묘비가 세워졌다. 고인의 옛 동료들(방송작가협회)이 세운 것이다. 그 묘비의 제막식에 『아씨』의 「히로인」김희준양이 새 가정의 『아씨』가 된지 6개월만에 나와 하염없이 눈물짓고 있었다. 고인의 옛동료들이 모여 19개월만에 묘비 세우고 『한 인생이/그가 쓰는 작품에/만천하가 보내는 박수소리를 들으며 쓰러졌다/쓴다는 고통에서 영원히 해방된 것이다/비바람은 언젠가 이 비문(碑文)을 지우리라/그러나/우리는 무(無)의 철리(哲理)를 알기 때문에/슬퍼하지 않는다/산에서 사는 새들아/이곳에 와 노래하라』 자연석을 깎아서 다듬은 조그만 묘비. 그 묘비에 새겨진 묘비명이다. 10월 18일 하오 3시, 경기도 파주군 탄현면 기독교인 공원묘원. 임희재씨가 간 지 19개월만이다. 이 자리엔 미망인 조옥순(趙玉順)씨를 비롯한 가족과 『아씨』에 출연했던 김희준, 김세윤(金世潤)등 「탤런트」, 그리고 생전에 고인을 아끼던 동료작가, 연출가들 60여명이 단촐하게 모였다. 구름 한점 없이 맑게 갠 하늘에선 늦가을의 햇살이 포근히 내려쬐고 있었다. 작가 김교식(金敎植)씨가 차분한 목소리로 개식을 알리자 고인의 마지막 작품인 『아씨』의 주제곡이 녹음「테이프」를 통해 은은히 울려나왔다. 그 순간 장내의 분위기는 숙연해졌다. 묘비명은 고인의 오랜 친구 한운사(韓雲史)씨가 지었고 글씨도 손수 썼다. 이어 추모작품 낭독. 『아씨』의 「히로인」김희준이 「마이크」앞에 섰다. 「아씨」의 주제가가 흐르면서부터 울음을 삼키고 있던 김희준은 고개를 돌리고 손수건에 얼굴을 묻었다. 추모가(追慕歌)는 『아씨』의 주제곡… 복혜숙(卜惠淑)도 합창하며 울어 추모작품은 고인의 마지막 작품인 『아씨』의 마지막 회분의 「내레이션」부분이다. 작년 1월7일 2백56회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 『아씨』의 해설이었다. 김희준의 떨리는 목소리가 이를 낭독해 나갔다. 『아씨는 공연히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친정 부모님이 살아계실 리 만무하지만 변모한 집꼴하며 홀로 계신 오라버니를 뵈오니 가슴이 아파 마주 대할 수가 없었다… 달은 교교하고 밤은 깊어가는데 좀처럼 잠은 오지 않는다. 좀전에 김수만 이란 노신사를 만난 탓일까? 아직도 가슴 한구석에 타다 남은 불씨라도 있단 말인가?… 사람들이 아씨를 가리켜 무던하고 좋은 사람이라느니, 혹자는 천치가 아니고서야 그렇게 한평생을 살 수는 없다느니, 또한 그를 통해서 한국적인 여인상을 재인식하며 인종의 미덕을 높이 승화하기까지 하지만 모두가 부질없는 짓이다. 아씨는 곧 우리들의 어머니며 할머니며 또한 그분들은 다 그렇게 한평생을 살아온 것 뿐이다』 「아씨」김희준은 흐느끼다 읽고 읽으면서 흐느꼈다. 몇번이나 낭독을 중단해야 했다. 추모작품이 낭독되는 동안 미망인을 비롯한 가족들쪽에서 조용한 흐느낌 소기라 들려왔다. 그 자리에 나온 원로 여배우 복혜숙여사의 주름진 얼굴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고인 임씨는 위암이란 진단을 받고 자리에 눕는 바람에 『아씨』의 마지막 탈고를 손수 못했다. 2백회를 갓 넘기고부터 병이 나서 더 이상 작품을 쓰지 못하게 되자 극작가 이철향(李哲鄕)씨가「바통」을 이어받아 작품을 마무리 했었다. 병상에 누워서도 임씨는 작품에 대한 집념을 끝내 버릴 수 없었던지 마지막회의 해설만은 자신이 썼다. 연출가 고성원(高聖源)씨가 병석에 찾아가 임씨가 부르는 대로 받아써서 고인의 뜻대로 마지막 회의「내레이션」으로 집어 넣었었다. 그래서 고인의 많은 다른 작품을 제쳐 놓고 이것을 추모작품으로 결정하여 다시 한번 고인에게 들려 주게 되었다고. 추모가도 『아씨』의 주제가로 했다. 『아씨』에 출연했던 김희준, 복혜숙, 김세윤, 여운계(呂運計), 선우용녀(鮮于龍女),등 5명의 「탤런트」가 나와 『아씨』를 합창했다. “친아버지처럼 자상하게 대해 주셨는데…” 젖은 목소리로 합창이 계속되는 동안 김희준은 시종 우느라고 단 한마디도 노래를 부르지 못했다. 제막식이 끝나고 일행이 산을 내려와도 그녀는 자리를 뜨지 못했다. 『제겐 작가선생님이 아니었어요. 친부모님 같이 느껴지던 분이었어요. 그렇게 말이 없으시고 그토록 착하시던 분이 돌아가시다니 아직도 믿어지지가 않는 군요』 김희준이 임희재씨의 묘소를 찾은 것이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탤런트」생활을 청산하고 평범한 아내로 돌아간 그녀는 옛 동료들과 함께 존경하던 분의 무덤 앞에 나선 순간부터 짙은 애수를 느낀것 같다. 『사실 「아씨」는 제 생활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제가 가장 노력을 했던 작품이고 또 제일 맘에 들었던 작품이었죠. 그분은 제게는 퍽 자상하셨어요. 연기를 잘 해 보기위해 저는 시간만 있으면 댁으로 찾아가 말씀을 들었고 그분도 제 얘길 많이 작품에 반영시켜 주셨어요. 어느 딸과 아버지가 그보다 더 친할 수 있을까요…』 『대본을 좀더 일찍 써 주면 연습을 많이해서 보다 좋은 연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재촉을 하며 응석을 부린 일이 지금 와서는 후회가 돼요…』 사실상『아씨』가 2백회를 넘겼을 무렵 임희재씨는 건강이 아주 나빠 있었다. 위암이라는 결정적인 진단이 내렸었는데 병자 자신은 그걸 모르고 있었다고. 김희준은 임씨의 병상을 방문했을 때 『이젠 병이 다 나은 것 같다. 좋은 작품을 구상하고 있는데…』라면서 김양의 손목을 꼭 잡더라고. 그것이 김양이 임씨를 본 마지막 모습이었다. 김희준은 『아씨』때문에 누구보다도 화려한「탤런트」생활을 누렸다. TV「드라머」로서 가장 큰 인기를 끌었던 이『아씨』는 그때까지 그늘에 묻혔던 김희준을 「톱·스타」의 자리에 올려놓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정상의 인기를 배경으로 결혼, 은퇴해 버린 김희준. 『「탤런트」생활을 다시 해볼 생각이 없느냐』는 물음에 김희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난 4월21일 신경과 의사 하영수(河榮秀)씨와 결혼한 그녀는 한 사람의 아내로서 충분히 행복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보다 임희재씨와의 추억이 담긴 『아씨』로서 그녀의 연기생활을 조용히 마무리짓는 편이 그녀다운 일이라고나 할까. <오(五)> [선데이서울 72년 10월 29일호 제5권 44호 통권 제 212호]
  • [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친환경 고려 인동초도 심지 않아

    김대중 전 대통령은 23일 국립서울현충원의 현 국가유공자 제1묘역 하단에 조성된 264㎡(16×16.5m·80평) 규모의 묘역에 안장됐다. 고인의 묘역은 서울현충원이 위치한 관악산 공작봉(孔雀峰) 기슭의 해발 45m 지점에 있다.공작봉은 ‘공작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으로 햇볕이 잘 드는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묏자리는 장조카와 지관(地官) 등이 사전 답사를 통해 정했다.묘역은 80평 규모로 유족의 뜻에 따라 다소 협소하지만, 친환경적으로 꾸며진다. 묘역 가장자리에 심기로 한 인동초는 자생식물 등 주변 생태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유족의 뜻에 따라 심지 않기로 했다.고인의 묘역은 안지름 4.5m의 원형 봉분과 비석, 상석, 향로대, 추모비 등을 갖추고 있다. 원형 봉분은 2.7m 높이로 12개의 판석이 묘소를 두르고 있다. 옆자리에는 추후 합장을 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됐다.서울현충원은 촉박한 장례 일정을 고려, 묘소 앞에 임시로 나무 비석을 설치했다. ‘제15대 대통령 김대중의 묘’라고 새겨진 나무 비석만이 고인의 묘역임을 표시한다. 삼우제(三虞祭)가 치러진 이후 비석은 화산암의 일종인 오석으로 교체되고 3.46m 높이의 비석 상부에는 국가원수를 상징하는 봉황무늬 조각이 새겨진다.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열린세상] 어떤 대통령으로 남길 것인가/윤성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열린세상] 어떤 대통령으로 남길 것인가/윤성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대중 전 대통령, 그는 분명 현대 정치사에 한 획을 그은 불세출의 인물이었다. 그의 이름을 거명하지 않고서는 해방 후 한국정치를 설명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가 남긴 커다란 족적만큼이나 그의 정치인생은 고난과 역경의 연속이었다. 1963년 6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후 30년을 군사정권과 맞서 싸웠다. 그 사이 몇 차례 죽을 고비도 넘겼다. 숱한 가택연금과 투옥, 그리고 해외망명에 이르기까지 온갖 고초를 다 겪었다. 1997년 마침내 그는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네 번째 도전 만에 얻어낸 대권이었다. 1987년 야권 후보 단일화 실패와 1995년 정계은퇴 번복이라는 오점을 남기면서 성취한 그의 대통령 당선은 한국정치에서 몇 가지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우선 한국정치 역사상 처음으로 여당에서 야당으로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뤄진 것이다. 1987년 직선제 쟁취로 민주화를 이뤘다고 하나 정권은 또다시 군부세력에 넘어갔고, 1992년 김영삼 대통령의 당선은 3당 합당을 통한 것이어서 진정한 의미의 정권교체는 아니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이 갖는 또 다른 의의는 35년간의 영남정권을 종식하고 호남정권을 출범시킨 것이다. 해방 후 첫 진보정권을 탄생시킨 것이 그 세 번째 의의다. 해방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정치는 민주세력 대 반민주세력, 영남 대 호남, 그리고 보수세력 대 진보세력 사이의 갈등으로 점철돼 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변해 왔던 민주화 세력, 호남, 그리고 진보세력, 이 세 집단 모두 정권교체 이전까지는 핍박받는 소수집단이었다. 소수세력을 대표하는 그는 항상 투쟁과 저항의 한가운데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정치역정이 고단했던 것은 당연지사였다. 민주화를 향한 그의 집념, 남북화해 협력에 대한 그의 신념은 굳건했다. 그랬기에 그는 버틸 수 있었고 뜻을 이룰 수 있었다. 한국사회 갈등의 한 축에 서 있었기에 그를 지지하고 따르는 세력이 많았으나, 그 반대편 역시 적지 않았다. 그의 정책이 모든 국민의 공감을 자아내지도 못했고, 한국 정치의 한계를 그대로 보여주어 국민들을 실망시키기도 했다. 재임기간 중 가장 아쉬운 점이 ‘동서화합’이라던 그의 고백처럼 지역주의의 담을 허물지 못했다. 한국정치의 가장 큰 병폐 가운데 하나인 패거리 정치와 측근정치의 벽도 뛰어넘지 못했다. 세 아들이 모두 정치비리에 휘말리는 상황을 막지도 못했다. 그는 우리에게 어떤 대통령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 우리는 그를 어떤 대통령으로 남길 것인가? 그가 한평생 지향한 민주주의와 민족화해에 대한 신념을 기릴 것인가, 아니면 그 사이 얼룩진 흠결을 기억할 것인가? 올해는 미국 링컨 대통령의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라 한다. 링컨은 미국 국민들은 물론 전 세계로부터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 가운데 하나이다. 그의 묘소에는 200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어린 학생들의 생일카드가 장식되어 있다. 그는 과연 100점 만점의 대통령이었을까? 재임 당시 링컨은 그다지 사랑받는 대통령이 아니었다. 그의 전기를 보면 많은 과오도 저질렀다. 남북전쟁 기간 중 언론을 통제했고, 남부 연합에 동조하는 1만 8000명을 재판 없이 감옥에 가두기도 했다. 젊은 시절 사생활도 그리 깨끗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는 노예를 해방하고 국가통합을 이룩한 최고의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있다. 수많은 흠집보다는 그가 이룬 가장 큰 업적을 기렸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모든 정파가 입을 모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고 있다. 그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야 어떻든, 그가 우리 역사에 드리운 무게감은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역사가 다양한 관점으로 그를 평가할 것이다. 그에 앞서 그를 어떤 대통령으로 남길 것인가는 우리 몫이다. 그의 흠집 대신 그가 지향한 가치와 이루어낸 성과를 후손들에게 들려주어야 한다. 링컨이 아닌 우리 대통령의 위인전을 남겨주고 싶기 때문이다. 윤성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현충원 어디 묻히나

    [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현충원 어디 묻히나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역이 국립서울현충원의 현 국가유공자 묘역 하단에 264㎡(16m×16.5m, 80평) 규모로 조성된다. 김 전 대통령의 묘역 인근에는 조선 중종의 후궁이자 선조의 할머니인 창빈 안씨 묘소가 있다. ●해발 45m… 주차장 시설은 없어 김 전 대통령의 묘역은 서울현충원이 위치한 관악산 공작봉(孔雀峰) 기슭의 해발 45m에 있어 한강을 내려다 볼 수 있다. 서울현충원 서쪽 끝에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역 입구로부터 직선거리로 350여m, 김 전 대통령의 묘역 아래에 있는 이승만 전 대통령 묘역으로부터는 100여m 떨어져 있다. 정진태 서울현충원장은 20일 “김 전 대통령의 유가족과 행정안전부가 협의한 결과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80평 규모로 국가원수 묘역을 조성키로 했다.”고 밝혔다. 정 원장은 “유가족의 뜻대로 묘역을 소박하고 검소하게 친환경적으로 조성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김 전 대통령의 묏자리는 지관(地官)과 김 전 대통령 장조카가 서울현충원을 방문해 정했다. 서울현충원에 조성된 이승만 전 대통령의 묘역은 주차장과 진입로를 합쳐 1653㎡(500여평),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역은 3636㎡(1100여평) 규모이다. 김 전 대통령의 묘역에는 주차장 시설이 들어서지 않는다. 김 전 대통령의 묘소는 봉분 앞에 상석과 향로대가 설치되고 오른쪽에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김대중의 묘’라고 새겨진 높이 346㎝의 비석이 세워진다. 또 봉분 하단 왼쪽 부분에 180㎝ 높이의 추모비가 들어선다. 봉분의 직경은 450㎝, 높이는 묘두름돌 하단으로부터 270㎝이다. ●봉분 직경 450㎝ 높이 270㎝ 현충원 관계자는 “21일 묘소의 틀을 갖추는 ‘활개치기’ 작업을 하고, 22일에는 봉분 조성과 진입로 개설, 임시재단 등을 설치하는데 시간이 촉박한 만큼 23일까지 임시적인 조경작업을 끝낼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현충원의 묘역은 법률상 국가원수는 264㎡(80평), 장군 묘역은 1위(位)당 26.4㎡(8평), 국가유공자는 3.3㎡(1평)이다. 정부는 서울현충원에 국가원수들의 묘를 쓸 공간이 부족하자 2004년 6월 대전현충원에 전직 국가원수 서거에 대비해 8위의 안장이 가능한 9653㎡ 규모의 국가원수 묘역을 조성했다. 대전현충원 국가원수묘역에는 최규하 전 대통령이 처음으로 모셔졌고 부인 홍기 여사가 합장됐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묘 위치 묻는 전화 수차례 걸려와”

    고 최진실씨 유골함 도난사건을 수사 중인 경기도 양평경찰서는 사건 발생 직전 묘역 관리소에 최씨의 분묘 위치를 묻는 전화가 여러 차례 걸려왔던 것을 확인, 통화내역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갑산공원 전병기 관리소장으로부터 “사건 발생 5일~1주일 전부터 점심시간 때마다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전화를 걸어와 최씨의 묘 위치를 계속 물었다는 얘기를 직원에게서 들었다.”는 진술을 확보, 통화내역을 분석하고 있다고 17일 밝혔다. 그러나 현장에서 발견된 2개의 소주병에서 채취한 지문은 최씨의 팬을 자처하는 권모(40)씨의 것으로 밝혀졌다. 조사 결과 권씨는 15일 오전 2시쯤 일행 2명과 함께 구리에서 출발해 2시30분께 소주 2병을 들고 최씨의 납골묘를 찾아 1병은 묘에 뿌리고 1병을 나눠 마신 뒤 1시간가량 머문 것으로 확인됐다. 권씨 등 3명은 16일 오전 4시30분쯤 경찰서로 직접 전화를 걸어와 참고인 조사를 받았고 이들의 진술과 현장상황이 일치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양평서 우재진 수사과장은 “동업자 관계인 권씨 등은 전에도 3~4차례 최씨 묘를 다녀간 사실이 있었다.”면서 “이날도 술을 마시고 앞으로 잘해 보자며 최씨 묘를 찾은 것으로 조사돼 범인으로 추정할 만한 근거는 희박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이에 따라 깨진 납골묘 조각에서 채취된 또 다른 지문과 주변 CCTV 분석 결과가 주목된다. 경찰은 국과수에 의뢰한 분묘 조각 등에 대한 감식 결과는 2~3일 뒤 나올 것으로 내다봤다. 경찰은 또 범행이 15일 오전 1~3시 사이에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갑산공원 관계자의 진술도 확보, 사건발생 당일의 자세한 경위를 확인 중이다. 전병기 소장은 “15일 0시30분까지 인근 사찰 관계자 등 3명이 함께 공원 입구를 지키며 시간을 보냈고 나는 공원 내 숙소에서 새벽 3시부터 깨어 있었는데 이 시간대 공원을 드나든 차량은 없었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쇠망치 같은 도구로 십수차례 분묘 벽면을 내려쳐 유골함을 빼간 것으로 미뤄 계획적인 범행에 무게를 두고 있다.”면서 “최씨 묘소를 찾은 사람에 대한 탐문, 주변 CCTV 분석, 동종 전과자 탐문 등 다각도로 수사를 펴고 있다.”고 말했다.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다른기사 보러가기] 현회장 “김위원장 원하는거 다 말하라며… “ 웨이터 출신 ‘제주 야생마’ 양용은 황제 등극 해외포르노 저작권 처벌은 ‘복불복’ 21년만에 빛보는 춘화들 ’파리대왕’ 골딩 15세소녀 겁탈하려 했다 신종플루 치료병원 의사도 환자도 몰라 ”KT 테스트서비스 프라이버시 침해 우려” 이슬람 수영복 ‘부르키니’ 논쟁
  • 故최진실 유골함 도난 수사… “국과수 결과 장담 못해”

    故최진실 유골함 도난 수사… “국과수 결과 장담 못해”

    故 최진실의 유골함이 도난 당하는 엽기적인 사건이 발생한지 사흘이 지나며 다양한 추측만 난무하고 있는 가운데 경찰 수사가 장기화 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17일 경기도 양평경찰서에 따르면 수사팀은 현재 이번 사건의 중요한 단서가 될 주변 도로의 CCTV와 현장에서 발견된 소주병 두 병의 지문, 깨진 납골묘 대리석 조각의 DNA를 감식하는데 사활을 걸고 있다. 이를 정밀 감식 중인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2~3일 정도가 지나야 결과를 알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그 동안 알려진 현장의 정황과 수사 내용으로 볼 때 감식 결과가 나와도 경찰수사에 난항을 겪을 것이란 예상도 나오고 있다. 고인의 묘소를 직접 비추던 CCTV가 지난 12일 낙뢰를 맞아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고, 근처 CCTV도 비슷한 상황인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절도범이 쇠망치로 추정되는 도구를 사용한 점과 납골묘의 약한 부분을 노려 친 점, 범행이 야간에 이뤄진 점, 묘지 앞 CCTV가 작동이 되지 않는 것을 알았을 가능성이 큰 점 등을 미루어 봤을 때 계획적인 범죄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따라서 경찰이 현재 기대하고 있는 소주병의 지문이나 CCTV 판독 결과가 나온다 해도 범인의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치밀한 계획을 세운 범인이 소주병을 남기고 가거나 맨 손으로 범행을 저지를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양평경찰서 관계자는 “이제껏 정황으로 보아 전문가의 소행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계획 범죄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다른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며 “다만 아직까지는 국과수 결과에 큰 기대를 걸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한편 경기도 양평경찰서는 지난 15일 오전 8시10분께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 갑산공원 측으로부터 최진실의 유골함이 도난 당했다는 신고를 받고 수사에 착수했다. 사진제공 = 서울신문NTN DB 서울신문NTN 조우영 기자 gilmong@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쇠망치질 16차례… 사라진 ‘최진실 유골함’

    “누가,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질렀을까.”지난해 10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탤런트 최진실씨의 유골함이 광복절인 15일 새벽 묘지에서 도난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도대체 누가, 어떤 이유에서 범행을 저질렀는지 추정만 난무할 뿐 사건의 실체는 오리무중이다. 경찰은 열혈팬에 의한 계획적 범죄에 무게를 두고 16일 유골이 안치돼 있던 경기 양평군 양수리 갑산공원으로 통하는 국도변 폐쇄회로(CC)TV를 판독하는 동시에 납골분묘 등에서 지문을 채취, 신원확인 작업을 벌이고 있다.●계획적 범행 vs 우발적 소행경찰이 최씨의 유골함 도난 신고를 받은 것은 15일 오전 8시10분쯤. 공원 관계자는 “오늘 오전 7시50분쯤 직원이 묘원을 순찰하던 중 최씨 납골분묘 주변에 꽃바구니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것을 보고 이를 정리하다 최씨의 분묘가 깨져 있고, 유골함이 없어진 것을 확인했다.”고 경찰에 밝혔다. 발견 당시 최씨 분묘는 대리석으로 된 남쪽 벽면이 깨진 상태였고, 누군가 쇠망치 같은 도구로 10여차례 내리친 흔적이 남아 있었다.경찰은 절도범이 쇠망치로 추정되는 도구까지 동원한 것으로 미뤄 일단 계획적인 범행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하고 있다.공원 전병기 관리소장은 “깨진 벽면은 화강암 재질로 두께가 7㎝나 돼 쇠망치와 같은 대형 공구 외에는 부수기 어렵다.”며 “누군가 둔기를 준비해 15~16차례 정도 내려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고인의 지인과 누리꾼들은 이번 사건을 놓고 열혈팬이나 무속인의 소행이 아니겠느냐고 추측하고 있다. 고인의 전 소속사 관계자는 “생전에도 통제할 수 없는 열혈 팬들이 있었는데, 그들 중 한 명이 벌인 일이거나 잘못된 생각을 가진 무속인의 소행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묘지 옆에 소주병이 놓여 있었던 것을 보면 고인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의 소행 같지는 않고, 누군가 와서 고인을 애도하다가 잘못된 행동을 한 게 아닌가 싶다.”며 “한편으로는 뭔가 잘못된 믿음에서 일을 벌인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고 덧붙였다.경찰도 빈 소주병 2개가 발견된 것으로 미뤄 고 최씨의 열혈팬이 무덤 곁에서 술을 마신 뒤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찰은 “면식범의 소행이거나 공범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돈을 노린 절도 가능성과 함께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광팬이 범행을 저질렀거나 잘못된 신념에 사로잡힌 무속인의 범행일 가능성도 열어 두고 있다.경찰은 현장에서 채취한 지문과 CCTV 분석에 집중하고 있다. 현장에서 발견된 빈 소주병 2개와 최씨의 납골분묘 등에서 지문을 채취, 경찰청으로 보내 신원확인 작업을 벌이고 있다.경찰은 또 사건현장에 있던 소주병과 깨진 대리석 조각 등에 범인의 DNA가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 증거물을 보내 정밀 감식을 의뢰할 계획이다.그러나 묘원 2구역에 설치돼 고인의 묘소를 비추던 CCTV는 지난 12일 낙뢰를 맞아 작동하지 않았고, 1구역 CCTV도 비슷한 상황인 것으로 알려져 경찰 수사에 어려움이 예상된다.경찰은 이에 따라 갑산공원으로 통하는 국도상의 CCTV 2대에 녹화된 화면을 확보, 사건발생 추정시간인 14일 오후 6시~15일 오전 8시를 전후해 공원 주위를 드나들던 차량을 정밀분석하는 등 단서를 찾고 있다. 현장에 있던 방명록을 입수해 지난 14일 최씨 묘소를 찾은 사람에 대한 탐문조사도 병행하고 있다.갑산공원 측은 “공원에는 직원 1명이 상주하며 24시간 묘원을 관리하고 있으며 14일 오후 6시 마지막으로 묘원을 순찰할 때에는 이상한 점이 없었다.”고 밝혔다.●“고인 두 번 죽이는 일”네티즌들은 “충격이다. 어처구니가 없다. 죽어서도 편히 쉬지 못하나?”라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빨리 유골함을 찾아서 편히 쉴 수 있게 했으면 좋겠다.”며 안타까워했다. 다음 게시판의 아이디 ‘뽀돌이님’은 “어떤 잘못된 믿음에서 유골을 빼냈건 망자의 영면을 방해하는 것은 절대 득이 될 일이 없으니 다시 갖다 놓으시길”이라고 적었다.또 다른 네티즌은 “너무 황당하다. 죽어서까지 편안히 쉬지 못하고 이런 수난을 겪는 것을 보니 참담하다.”고 말했다.최씨 어머니는 이날 취재진들에게 “유골함을 제자리에 돌려만 준다면 어떤 책임도 묻지 않겠다.”며 “진실이가 편히 쉴 수 있도록 힘들어하는 가족들에게 제발 돌려 달라.”고 호소했다.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故최진실 분묘서 지문 채취… 17일 국과수 조사의뢰

    故최진실 분묘서 지문 채취… 17일 국과수 조사의뢰

    작년 10월 사망한 탤런트 고(故) 최진실의 분묘가 훼손되고 유골함이 도난당한 현장에서 소주병 2개 등이 발견돼 경찰이 조사에 착수했다. 15일 현재 사건을 조사 중인 경기도 양평경찰서 측은 “갑산공원 내 고 최진실의 묘지와 소주병에서 지문을 채취했다.”며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이하 국과수)에 의뢰해 지문을 감식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경찰은 범인이 대리석으로 된 무덤을 둔기로 훼손한 것으로 보인다며 우발적인 범행인지 계획적인 범행인지에 대해서 심층적으로 조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 13일부터 갑산공원 내 CCTV가 작동되지 않은 점에 대해서는 “비가 많이 와 화면을 꺼 둔 상태였다.”고 해명했다. 경찰은 감산공원 내외의 CCTV를 수거해 범행 장면 녹화 여부를 확인할 계획이다. 한편 경찰은 15일 오전 8시 30분 경 고 최진실의 묘소가 파손되고 유골함이 사라졌다는 갑산공원 직원의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사진제공 = 서울신문NTN DB 서울신문NTN 박민경 기자 minkyung@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故 최진실 묘비 훼손·유골함 도난…대체 누가?

     탤런트 고(故) 최진실씨의 유골함이 사라졌다.  경기 양평경찰서는 15일 “최씨의 유골함이 도난당했다는 신고를 받고 경위를 조사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최씨의 유골이 안치됐던 양평군 양수리 갑산공원 관계자는 “오늘 새벽 순찰 중 최씨의 묘소가 열려 있고 유골함이 도난된 것을 발견했다.”며 “묘비도 일부 훼손돼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고 말했다.  경찰 형사팀과 과학수사대는 현장에 출동해 도굴 경위 등을 정밀 조사 중이다. 그러나 현장에 설치된 CCTV가 작동되지 않은 것으로 밝혀져 이를 통해선 단서를 찾을 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CCTV는 지난 13일부터 작동이 멈췄다.  도굴된 소식을 전해들은 고 최진실 측 관계자와 유가족들도 현장에 도착해 사태를 파악하고 있다.최씨 어머니 정옥숙씨는 “도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가슴이 너무 뛰어 말을 못하겠다.”며 울먹였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다른기사 보러가기] 玄-김정일 면담, 8·15경축사가 관건? ”대출 급해요? 적금부터 가입하세요” 면접도중 차 왜 뒤져? ”조선독립 꾀했으니 내란죄” 전두환 “DJ때 제일행복” 해외음란물도 저작권 있나? 추성훈 “실바는 아직…”  
  • 故 최진실, 유골함 도난…경찰 수사 중

    故 최진실, 유골함 도난…경찰 수사 중

    배우 故 최진실의 유골함이 사라져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15일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 갑산공원에 안치돼 있던 최진실의 유골함이 도난당했다. 이날 오전 경찰은 도난신고를 받고 자세한 경위를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갑산공원 관계자는 “오늘 새벽 묘원을 순찰하다 최진실의 묘소가 열려 있는 것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고 말했다. 사진제공 = 서울신문NTN DB 서울신문NTN 김예나 기자 yeah@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강북구 다문화가족 문화투어

    강북구 다문화가족 문화투어

    강북구의 다문화 가족들이 지역 명소와 역사를 둘러보는 일일 문화투어에 나선다. 강북구는 4일 다문화가정 부모와 자녀들이 함께하는 문화투어를 6일 개최한다고 밝혔다. 투어는 사회적 편견과 문화적 차이로 어려움을 겪어온 다문화 가족들의 성공적인 사회 정착을 위해 마련됐다. 투어 일정에는 국립4·19민주묘지와 우이동 봉황각 순국선열묘역 방문이 포함됐다. 다문화가정 2세들이 나라사랑 정신과 소속감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다. 문화투어에는 주민센터에서 추천받은 다문화 가정의 자녀와 부모 40여명이 참여한다. 강북문화원의 전문 강사가 문화 해설사로 나서 참가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참가자들은 우선 강북문화정보센터와 영어마을 수유캠프 등을 돌아보게 된다. 생활 속에서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는 지역시설 견학을 통해 정보를 얻기 위해서다. 이어 국립4·19민주묘지로 이동,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선열들을 참배하고 4·19혁명의 전개 과정과 의의를 배운다. 또 헤이그 특사로 파견돼 을사조약의 부당함을 주장한 이준 열사 묘소와 손병희 선생이 3·1운동을 준비한 봉황각, 손병희 선생 묘소 등을 순례한다. 구는 이를 통해 다문화 가정 구성원들이 자연스럽게 순국선열의 희생 정신을 배우게 할 계획이다. 묘소에서는 헌화와 참배를 한다. 한편 강북구는 지난해에도 지역 결혼이민여성들을 초청, 주요 시설과 문화재를 탐방하는 ‘다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이상형 가정복지과장은 “사회변화에 따라 다문화 가정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며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생활터전인 강북구를 이해하고 사회일원으로 정착하는 데 도움을 주려 한다.”고 밝혔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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