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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28)부러진 뼈의 모양이 일러준 사고의 진실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28)부러진 뼈의 모양이 일러준 사고의 진실

     2004년 4월 28일 경기도 안성시 외곽의 도로변 산자락. 나물을 뜯던 동네 여인들이 뼈만 남은 사람 팔을 발견했다. 바로 옆 헤집어진 흙바닥 틈으로는 역시 백골이 된 머리뼈도 보였다. 주변엔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 굶주린 산짐승들이 누군가의 묘소를 건드렸다는 생각에 사람들은 소름이 돋았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겨우 추슬러 쏜살같이 산을 내려왔다.  이 얘기를 전해들은 동네 어른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갸웃했다. 정상적으로 묘를 썼다면 그렇게 동물이 시신을 훼손할 정도로 얕게 묻을 리도, 근처에 썩는 냄새가 진동할 리도 없다고 입을 모았다.    ●쇄골모양으로 부러진 뼈…메세레르 골절  주민들의 신고를 받고 도착한 경찰 감식반은 엎어진 채 매장돼 있는 여성의 사체를 발견했다. 시신은 땅바닥에서 30㎝ 정도 깊이에 묻혀 있었다. 마음이 급한 누군가가 시신을 숨기려 한 정황이 역력했다. 최초 팔이 발견된 곳으로부터 서너 걸음 떨어진 곳에서는 다른 신체의 일부도 발견됐다. 산짐승들 때문에 비록 주검은 여기저기 흩어졌지만, 결과적으로 그 덕에 여성은 억울함을 풀 기회를 얻었다. 여성은 분홍색 반소매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키는 170㎝가량, 작지 않은 체구였다. 하지만 그 이상을 알아내기는 어려웠다. 신분증이나 지갑이 없었고, 손가락은 심하게 부패해 지문 채취가 불가능했다. 감식반은 시신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옮긴 뒤 실종자 명단을 뒤지기 시작했다.  시신은 숨을 거둘 당시의 정황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사인은 다발성 손상. 부러진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갈비뼈는 무려 17곳이 나갔다. 부검의는 여성의 왼쪽 넓적다리 뼈와 아래위 팔 뼈를 유심히 살폈다. 부러진 곳은 하나같이 쐐기 모양을 하고 있었다. 갑작스런 충격에 순간적으로 휘어지던 뼈가 더 버티지 못하고 충격의 반대방향으로 비스듬하게 갈라진 모습이었다.  메세레르 골절(Messerer´s fracture). 교통사고나 추락사고 등으로 신체가 강한 충격을 받았을 때 생기는 손상이다. 경찰은 일단 그녀가 교통사고나 추락사고 등으로 숨진 뒤 이곳에 매장된 것으로 추리했다.  그렇다면 추락과 교통사고 중 어느 것이 원인이었을까. 비밀은 부러진 넓적다리 뼈에 숨어 있었다. 부검의는 뼈를 추스러 부러진 부위의 정확한 높이를 쟀다. 사인이 교통사고였다면 그녀의 다리 뼈에는 자동차 범퍼와 부딪힐 때 생긴 골절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자동차 범퍼의 높이는 차종마다 다르다. 일반 세단형 승용차는 50㎝ 안팎이고 소형트럭이나 소형버스는 60㎝,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나 대형트럭, 버스 등은 이보다 높다.  여기에는 물론 변수가 있다. 급제동 여부다. 브레이크를 강하게 밟는 순간, 자동차 앞부분이 아래로 숙여지기 때문에 손상 부위가 실제 범퍼의 높이보다 낮은 곳에 자리잡게 된다. 사고 당시 신발의 높이도 변수가 된다. 숨진 여성의 넓적다리 뼈는 발바닥으로부터 65㎝ 정도 높이에서 부러져 있었다. 결론적으로 여성은 승용차보다는 범퍼가 높이 달린 트럭이나 SUV 등에 부딪혔을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이 나왔다.  여기서 잠깐, 보행자가 차와 부딪혔을 때 뼈가 견뎌낼 수 있는 강도를 따져보자. 흔히 예상하는 것보다 세지 않다. 건강한 성인 남자라도 시속 25㎞로 서행하는 경차(약 650~700㎏)와 부딪혀 뼈가 부러질 수 있다. 경차의 속도가 시속 45㎞까지 올라간다면 부딪힌 사람은 예외 없이 뼈가 부러진다. 물론 뼈가 약한 여자나 노인, 아이들은 더 작은 충격에도 뼈가 부러진다.  여성의 신원이 확인됐다. 열 달 전 집을 나가 소식이 끊긴 인근 동네 새댁 A씨(당시 33세)였다. 이가 빠진 모양과 키, 사라질 당시 입고 있던 옷, 나이 답지 않게 많았던 새치까지 모든 것이 일치했다.  2003년 7월 초 A씨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구멍가게 여주인이었다.  “아마. 가게 문닫을 시간이었죠. 밤 10시 20분쯤 남편 끓여준다며 라면을 사갔어요. 아…새댁이 나간 후 쿵하는 소리가 났어요. 무슨 일이 있나 나가봤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더라고요.”    ●10개월전 현장에 떨어진 손톱크기의 증거  강력반 형사들은 그녀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했고, 사고차량의 운전자가 시신을 숨겼다고 판단했다. 이제 10개월 전 인적드문 시골길에서 뺑소니를 낸 범인을 찾을 차례. 막막해 하는 형사들에게 반장은 호미를 하나씩 건넸다. “다들 현장에 나가서 후딱 증거 찾아와.”  산도적 같은 덩치의 강력반 형사들은 투덜거리며 호미를 들고 A씨의 예상 경로를 따라 길가를 뒤졌다. 그렇게 현장을 뒤지기를 몇시간. 저쪽에서 “찾았다.”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두께 5㎜, 지름 2~3㎝ 정도의 엄지손톱 크기만한 플라스틱 조각 3개였다. 그곳에서는 몇년 동안 한 건의 교통사고도 없었다. 경찰은 차량정비 전문가들을 통해 그 조각들이 1991년~1996년식 SUV 갤로퍼의 방향지시등 덮개임을 알아냈다.  당시 안성과 충북 진천 등 그 일대의 해당 차종 소유자는 286명이었다. 경찰은 이들을 상대로 A씨가 사라진 당일의 행적과 차량 보험처리 여부, 방향지시등 교체 여부 등을 조사했다.  한 명씩 용의선상 인물을 좁혀가는 과정에서 범인이 먼저 움직였다. 최근 방향지시등은 물론 엔진까지 교체한 같은 동네주민 B씨(43)였다. 그가 경찰 조사를 받은 뒤 바로 잠적해 버린 것이었다. 그는 도주과정에서 가족에게 뺑소니와 암매장 사실을 시인했다. 경찰은 안성 시내를 뒤져 B씨를 검거했다.  그런 독한 짓을 했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날 밤 B씨는 시내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고 말했다. 앞에서 오는 대형 트럭의 전조등이 시야를 가리는 순간. 차량 오른쪽이 뭔가를 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엔 그는 “들짐승이겠지.” 하는 생각에 그냥 차를 몰았다고 했다. 하지만, 불안한 마음이 들었고, 몇 시간 후 다시 돌아와 살펴보니 논두렁에 A씨가 쓰러져 있었다고 했다. 논두렁에서 새댁을 꺼내 차에 실은 그는 차를 몰았다. 우선 달아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갈림길이 나왔다. 한쪽은 병원을, 다른 한쪽은 산을 향하는 길이었다. 핸들의 방향에 따라 그의 운명이 바뀌는 자리였다. 잠시 후 그의 차는 산쪽을 향하고 있었다.  유영규기자whoami@seoul.co.kr 서울신문의 주간연재 기획물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에 보내주시는 독자 여러분의 성원과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지난 4월 16일 시작된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시리즈는 굵직한 사건현장을 누빈 베테랑 현장기자의 생생한 경험과 법의학 전문가들의 자문을 바탕으로 구성하는 서울신문의 특화기사입니다. 그동안 연재돼 온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의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크랩해 두시면 한편의 현장 과학수사의 사례집으로 활용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1) 데이트 강간을 위한 ‘악마의 술잔’ 한모금에 블랙아웃…24시간내 검사 못하면 미제사건 2) 죽음의 性도착증 ‘자기 색정사’ 혼절직전의 성적 쾌감 탐닉…‘질식에 중독되다’ 3) 부인을 죽인 건 오열했던 남편 사고로 위장한 최악의 선택…죽거나 혹은 더 나빠지거나 4) 아내의 눈속에 담긴 죽음의 비밀…흔해서 더욱 잔인한 교통사고 위장 살인 5) 강간 후 살해된 여성, 그리고 부검의 반전 죽을 때까지 여성이고 싶었던 남성의 사연 6) 살인현장 속 왠 대변(?)검사… 초미니 흔적 ‘미세증거물’ 속에 숨은 진실 7) 정자가 수상한 정액…씨없는 발바리’ 과학수사 얕봤다가 정관수술까지 한 연쇄 성폭행범 8) 엽기살인마는 피가 다르다(?) 혈흔 속 性염색체가 ‘악마의 姓’ 을 지목하다 9) “왜 그날 조폭은 남진의 허벅지를 찔렀나?”… 칼잡이는 당신의 ‘치명적 급소’를 노린다 10) 물 마신던 A씨의 갑작스런 사망 왜? 사람의 능력 이상으로 물 많이 마시면 생명 잃는다 11) 장문의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엄마…알고보니 생활반응은 죽음의 진실을 알고 있다 12) 불탄 시신의 마지막 호흡…그녀가 아들을 지목하다 화재사망 속 숨어있는 타살흔적 찾기 13) 車 운전석에서 질식해 숨진 그녀의 주먹쥔 양팔 14) 성형수술 자국이 일러준 주검의 주민번호 광대뼈 축소술, 동거男에 목졸린 백골의 한 풀다 15) 연쇄살인범에 당한 20대女…6년만의 대반전 연쇄살인 택시기사, 274만개의 눈 CCTV가… 16) 20대 여성이 남긴 마지막 글씨…살인자를 지목하다 찢어진 장부가 범인을 증언하다 17) 물속에서 떠오른 그녀의 흰손…살인자를 가리키다 바다에서 건진 토막시신의 신원찾기 18) 헤어드라이어 살인…‘전류반’은 못 숨겼네 몸에 남은 전기충격 자국이 완전범죄 밝혀내다 19) 자살이라 보기엔 너무 폭력적인 죽음…왜? 참혹한 죽음…가해자·피해자는 하나였다 20) 아파트 침대 밑 여성 시신 2구의 잔인한 진실게임…누명 벗겨준 거짓말 탐지기 21) 그 남자 노리는 ‘한밤 통증’… 동양인의 저주? 청장년 급사 증후군 22) 70% 부패한 시신… 말없이 증언하는 ‘어금니’ 억울한 죽음 단서 된 치아 23) 살인현장의 240㎜ 운동화…60대 노인의 트릭이었다 별무늬 자국의 비밀 24) 택시에 튄 흙탕물이 살인자를 뒤바뀌 놓다 돈 버리고 납치… 이상한 택시 강도 25) 담배꽁초에 묻은 립스틱 DNA 검사해보니 살인 현장에 남은 ‘그 남자’의 립스틱 26) 목졸려 숨진 60대 시신 크게 훼손됐는데… 범인의 속임수였다 ‘파란 옷’ 입었던 살인마 27) 흉기에 17번 찔려 죽은 여자 유일 목격자 경비 최면 걸자 법최면이 일러준 범인의 얼굴 28) 부러진 뼈의 모양이 일러준 사고의 진실…범퍼가 남긴 ‘메세레르 골절’
  • 첫 출근지 ‘노량진 시장’… 첫 결재 ‘무상급식 지원안’

    첫 출근지 ‘노량진 시장’… 첫 결재 ‘무상급식 지원안’

    박원순 새 서울시장의 첫 행보는 철저한 ‘민생 현장 중심’이었다. 이른 새벽 먼저 민생 현장에서 시민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며 하루를 힘차게 열어젖힌 박 시장은 다시 민생 현장에서 시민들의 애로사항을 들으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2년 8개월 임기의 첫 방문지는 동작구 노량진 수산시장이었다. 시민들의 먹을거리가 모여드는 시장을 가장 먼저 파격 방문함으로써 겉으로만이 아닌 진정한 ‘친서민’ 성향을 고스란히 내보인 셈이다. 박 시장은 예정보다 조금 늦은 오전 6시 30분쯤 서초구 방배동 자택에서 택시를 타고 나와 10여분쯤 뒤 수산시장에 도착했다. 남색 점퍼에 빨간 목도리를 걸친 수수한 차림새로 점포 곳곳을 누비며 상인들에게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하겠다. 힘좋은 생선처럼 팔팔 뛰겠다.”고 팔을 흔들며 당선사례를 했다. 박 시장을 알아본 상인들은 멀리서 뛰어와 반갑게 손을 잡거나 함께 휴대전화로 ‘셀카’를 찍었다. 박 시장은 특유의 선선한 웃음을 머금어 “감사하다.”는 말을 연발했다. 박 시장은 함께 아침 밥상거리를 사려 나온 신혼부부에게 “아기가 잘 크도록 도와 드리겠다.”며 “(아이를) 많이 낳아달라.”고도 했다. 서울시 차원에서의 보육 지원 의지가 엿보였다. 박 시장의 첫 일정을 보기 위해 새벽부터 나와 기다린 시민도 눈에 띄었다. 조유선(24·서강대 3년)씨는 “실제 만나 보니 생각한 대로 정말 서민 이미지를 닮았다.”고 평가했다. 수산시장에 이어 박 시장은 동작구 동작동 국립현충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검은 넥타이와 말쑥한 정장으로 갈아입은 박 시장은 현충탑, 무명용사탑,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묘소를 차례로 참배했다. 방명록에는 ‘함께 가는 길’이라고 서명해 짧지만 강한 메시지를 남겼다. 첫 출근길에선 지하철을 이용했다. 4호선 동작역을 출발해 서울역에서 환승, 1호선 시청역까지 20분 남짓 걸렸다. 평소에도 자주 지하철을 이용했다는 그는 직접 교통카드를 찍고 플랫폼에 들어서서는 시민들과 인사를 나눴다. 전동차가 출발하지 않자 “(나 때문에) 이거 잡은 겁니까? 빨리 가세요.”라며 불편한 마음을 살짝(?) 드러내기도 했다. 박 시장은 출근 후 가장 먼저 청사 1층 종합민원실을 방문해 직원들을 격려했다. 앞서 청사 앞에 대기 중인 취재진에게는 “즐거운 출근길이었다. 앞으로 어려움이 있겠지만 차근차근 상식과 합리에 기반해 풀어 가겠다.”고 소신을 밝혔다. 이어 간부들과 인사를 나눈 뒤 시정 현안을 보고 받았다. 이 자리에서 박 시장은 첫 결재로 ‘초등5·6학년 무상급식 지원안’에 사인을 했다. 오전 11시쯤에는 국회로 이동, 민주당 손학규 대표를 예방했다. 손 대표는 박 시장과 웃으며 악수한 뒤, “서울시장 선거의 가장 큰 의미는 변화였고, 우리 사회 변화의 물결이 와 있는데 그 선두에 박 시장이 있었다.”고 치켜세웠다. 박 시장은 “손 대표님이 저보다 더 열심히 뛰셨다.”면서 “경선 이후에도 저와 함께 해주신 걸 보면서 희망이 많은 정당이라고 생각한다.”고 화답했다. 박 시장은 시의회 의원들과 오찬을 가진 뒤 오후에는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 진보신당, 창조한국당을 차례로 예방했다. 박 시장은 오후 5시엔 영등포역 인근 쪽방촌을 둘러보며 실태를 확인하고, 상담소 관계자 및 쪽방생활자 등을 만나 현장의 목소리를 들었다. 강병철·황비웅기자 bckang@seoul.co.kr 사진 이언탁·도준석기자 utl@seoul.co.kr
  • 눈물 흘린 박근혜, 조카 은지원 만나다…

    눈물 흘린 박근혜, 조카 은지원 만나다…

    내년 총선·대선의 바로미터가 될 서울시장 보궐선거일인 26일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선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32주기 추도식이 열렸다. 이날은 역사적으로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닌 날이다. 1979년 궁정동 대통령 안가에서 당시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재규의 총탄에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한 것 외에도 1909년엔 안중근 의사가 중국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날이기도 하다. 특히 올해는 대선급 광역단체장 선거로 불리는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포함해 전국 42개 선거구에서 재·보선이 실시된 날로 기억될 것이다. 한나라당의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와 동생 지만씨 등 유족들은 물론이고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인 나경원 후보와 친박(친 박근혜)계 의원 30여명이 참석해 고인을 추념했다. 박 전 대표는 추도식 시작 10여분 전 검은색 정장 차림으로 식장을 찾았고, 뒤이어 나 후보가 도착하자 반갑게 악수하며 자리를 안내했다. 박 전 대표는 옆자리의 지만씨를 한 칸 옆으로 이동하게 한 뒤 나 후보를 유족석에 앉도록 배려했다. 초박빙의 선거구도로 인해 살인적인 선거일정을 소화해낸 나 후보는 전날 저녁 박 전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추도식 참석 의사를 밝힌 데 이어 이날 오전 중구 신당2동 장수경로당 투표소에서 한 표를 행사한 뒤 선대위의 강승규·이두아 의원 등과 함께 현충원을 찾았다. 그는 선거전 ‘강행군’으로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꼿꼿한 자세로 추도식을 지켜봤다. 지만씨는 유족 인사말을 통해 “아버지는 부의 양극화를 염려하고, 한국적 민주주의를 생각했다.”며 “국민 모두에 공평한 기회를 통한 선진 복지국가 건설이 아버지의 꿈이었다.”며 고인의 뜻을 기렸다. 이어 박세환 재향군인회장이 울먹이며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과거 사례를 말하자 박 전 대표도 만감이 교차하는 듯 입술을 굳게 깨물고는 붉어진 눈시울로 먼 산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그러나 끝내 눈물을 떨구지는 않았다. 박 전 대표는 추도식 전후 간간이 나 후보와 대화를 나눴고, 유족 인사말이 끝난 뒤 묘소로 자리를 옮기는 과정에서도 나 후보를 친절하게 안내하는 등 예를 갖췄다. 박 전 대표는 헌화와 분향을 마친 뒤 “(유족 대표로서) 저는 여기 남아서 오신 분들 손을 일일이 잡아드려야 한다.”면서 나 후보를 배웅했다. 특히 추도식에는 박 전 대표의 조카인 가수 은지원도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은지원은 고 박정희 전 대통령 누나의 손자로, 박 전 대표가 은지원의 5촌 당고모다. 이외에도 이해봉 허태열 안홍준 유정복 이성헌 이혜훈 정희수 최경환 구상찬 김옥이 배영식 손범규 이진복 이학재 이한성 조원진 허원제 의원 등 친박계 의원 30여명이 참석했고 조문객도 4000명에 육박하는 등 예년 수준을 크게 웃돌았다. 전광삼·이재연기자 hisam@seoul.co.kr
  • 장승배기, 동작의 랜드마크로 만든다

    “난제도 많지만 장승배기 개발은 필수적이다. 흑석·노량진 뉴타운과 각종 재개발·재건축 사업으로 동작의 지도가 바뀌고 있다. 특히 장승배기 도심개발은 미래 동작의 화룡점정이 될 것이다.” 문충실 동작구청장은 3일 “태스크포스(TF)로 운영되던 ‘장승배기 도심발전 추진단’을 최근 ‘도심발전 추진기획단’이라는 부서로 승격해 동작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면서 이같이 의욕을 다졌다. 지역 한가운데에 위치한 장승배기 일대는 지하철 7호선 장승배기역이 지나가고 1호선과 9호선이 만나는 노량진역이 인접한 교통 요충지다. 조선시대 정조(재위 1776~1800)가 경기도 수원에 위치한 아버지 사도세자 묘소에 참배하러 갈 때 “무사히 행차할 것”을 기원하며 장승을 세웠던 데서 지명이 유래했다. 그러나 장승배기는 오랫동안 개발이 이뤄지지 않아 지역 중심지 구실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이에 따라 구는 지난 4월부터 구의원과 도시계획 및 건축 등 각 분야 전문가 16명으로 이뤄진 자문단을 발족해 구체적인 계획안을 마련 중이다. 구는 장승배기를 관통하는 간선도로를 중심으로 구역을 나누고, 주변 노량진뉴타운 및 재개발 추진구역과 비슷한 수준의 개발 계획을 마련할 계획이다. 무엇보다 문 구청장의 의지가 굳다. 그는 “이곳을 동작의 랜드마크로 만들겠다.”며 “일대에 구청 등 행정기관을 이전해 상업과 행정이 어우러진 개발 청사진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주민추진협의회도 구성해 개발 초기단계부터 주민의사를 반영, 사업의 구상안을 선도적으로 수행하고 실현가능성을 높인다는 복안이다. 랜드마크에 걸맞게 바이어나 관광객들이 머물 수 있는 특급호텔을 유치하고, 구청과 경찰서 등 공공·행정기관 이전 등을 심도 있게 논의 중이다. 또 단순히 지나가는 곳이 아닌 사람들이 머물며 즐길 수 있도록 복합 쇼핑몰과 대형마트 등 건립도 고려하고 있다. 구 관계자는 “토지비율이 높은 곳을 선도 사업구역으로 선정해 추진하는 방법을 구상 중”이라면서 “이 경우 다음 단계 사업이 순차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선도사업의 용도, 위치, 규모 등에 대한 명확한 조건설정도 충분히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업을 위한 구역편성은 사업시행장에 초점을 맞출 예정이다. 주민의견 수렴을 통한 자율적 조합방식의 ‘공동개발구역’과 토지일괄매입 방식의 ‘민간사업자 개발구역’으로 나눠 추진하게 된다. 하지만 복병도 있다. 이 일대에는 4~5명씩 지분을 가진 단독상가가 많아 소유주들이 ‘필지 통합’에 동의해야 하고, 호텔과 쇼핑센터를 지으려고 해도 대규모 투자 또한 절대적이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故최진실 3주기 추모식

    고 최진실씨 3주기 추모식이 2일 오전 경기 양평 갑산공원 묘원에서 열렸다. 오전 10시 40분쯤 시작된 추모식에는 고인의 어머니 정옥숙씨와 진실씨의 두 자녀를 비롯해 동료 연예인 이영자·홍진경·조연우씨 등 30여명이 참석했다. 추모식은 1시간 동안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기독교식 추모 예배로 진행됐다. 가족과 친구들은 추모 예배 동안 차분하게 기도하고 찬송가를 부른 뒤 옆에 있는 동생 고 최진영씨의 묘소를 찾아 누나에 이어 작년에 세상을 떠난 고인을 기렸다. 최진실씨 측 관계자는 “작년보다 분위기가 많이 차분해졌다.”면서 “진실씨의 자녀들도 예전보다 많이 편해 보였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포토 에세이 | 중국 무이산

    포토 에세이 | 중국 무이산

    몇 년 전부터 차(茶)를 좋아하는 몇몇 차인(茶人)들이 중국의 남쪽 복건성(福建省)에 있는 무이산(武夷山)에 꼭 가보라고 했다. 무이산은 유네스코 세계자연문화유산에 등재된 중국 5대 명산(名山) 중의 하나이고, 중국에서 손꼽히는 무이암차(武夷岩茶)와 서양 홍차(紅茶)의 발원지라는 것이었다. 중국차의 근원을 알고 즐기려면 반드시 가봐야 할 차의 원산지라고 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조선조 때의 통치철학으로, 퇴계나 율곡에 의해 크게 발전했던 성리학의 뿌리인 주자학(朱子學)의 본고장으로 유명한 곳이다. 주자 주희(朱熹) 선생이 태어나서 학문을 닦고 대성(大成)한 뒤 세상을 떠나 묻혀 있는 유적지로 그 발자취가 곳곳에 남아 있다고 했다. 차인들 권유에 마음속으로 가보고 싶다고 되뇌이고 있을 때, 마침 관심을 가진 가깝게 지내는 분들이 적지 않아 동호인의 단체여행으로 현장에 가게 됐다. 국내 여행사들은 아직 무이산을 관광상품화 시키지 못하고 있다. 중국에는 가볼 만한 관광지가 워낙 많은데다 무이산은 주로 차(茶)와 주자학 관계의 일부 전문답사팀으로 한정되어 있는 실정에서 그런 듯싶었다. 무이산은 중국이라는 규모로 볼 때 아주 작은 시골이다. 인구는 21만 명. 서울에서 직행으로 가는 비행기는 없고, 대만의 바로 건너편인 복건성의 항구도시 샤먼(厦門)으로 가서 국내선 비행기로 갈아타 내륙 쪽으로 40여 분 더 가야 한다. 비행기가 밤중에 도착해서 그런지 그저 그런 중국의 시골 비행장이었고,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 차창 너머로 보이는 거리도 어둡고 조용해 보였다. 그러나 차 관계 일로 무이산에 자주 왔다는 어떤 차인은 유네스코 세계자연문화유산 등재 10주년과 이곳에서 해마다 열리는 세계차박람회가 전 세계 차인들의 주목을 끌면서 무이산은 구시가지·신시가지로 나뉘어 무섭게 발전하고 있다는 말을 했다. 밝은 날에 보는 무이산은 관광객들로 붐볐다. 한국 관광객은 별로 보이지 않았으나 중국·대만·홍콩 등에서 온 단체가 대부분이었다. 무이산 관광의 하이라이트는 산 정상(頂上)에 오르는 것과 내려와서 무이구곡(武夷九曲)을 대나무 뗏목으로 흘러 내려오는 정취이다. 그날따라 공교롭게도 비가 내렸다. 주저했으나 이곳에는 비오는 날이 많고, 비오는 날 산에 오르는 것이 더 운치가 있다는 말을 들으며 강행했다. 무이산은 해발 750m밖에 안 되지만 전체가 큰 바윗덩이 하나처럼 보였다. 정상인 천유봉까지는 바위를 깎아 848개의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안개 때문에 멀리 앞이 보이지 않는 가파른 돌 계단을 숨차게 오르며 잠시 잠시 둘러보는 풍광은 신비로운 선경(仙境)이었다. 아래는 산을 휘감고 흐르는 구곡(九曲)의 강이고, 강위에 점점이 흘러내리는 대나무 뗏목, 산능선을 오르는 돌계단 앞뒤로는 안개에 싸인 바윗덩이와 소나무들, 직벽을 타고 내리는 가느다란 폭포줄기가 멋졌다. 이래서 중국의 5대 명산에 들어간 것일까. 중국의 5대 명산은 안휘성의 황산, 산동성의 태산, 강서성의 노산, 사천성의 아미산 그리고 복건성의 무이산이다. 황산의 기이함, 태산의 웅장함, 화산의 험준함, 계림의 수려함을 찬탄하는데 무이산은 그 모든 것을 다 담고 있다고 이곳에서는 자랑한다. 걸어서 산에 오르기 힘든 사람들을 위해 가마꾼들이 산 밑에 대기하고 있었다. 정상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데 400위안(한국 돈 7만 원)을 내라고 한다. 앞뒤로 두 사람이 둘러메는 가마로 지붕이 있어 비를 피할 수 있게 됐다. 앉아서 사방을 둘러보며 정상까지 오를 수 있어 편한데, 가마 타는 값이 좀 비쌌다. 한참 전이지만 안휘성의 황상에서는 100위안(한국 돈 1만8천 원) 했었고, 보통 200위안이면 될 듯싶지만 중국에도 인건비가 계속 올라간 느낌이다. 정상에 올라 기념사진들을 찍고 나면 다음은 뗏목을 타는 순서다. 굵은 대나무를 통째로 엮어 만든 뗏목 위에는 두 줄로 셋씩 여섯 개의 대나무 의자가 마련됐다. 앞뒤로 사공이 둘, 긴 대나무 막대기로 방향을 잡아가며 흘러간다. 여자 사공들도 간간히 눈에 띈다. “장엄한 바위산 밑으로 푸르게 흐르는 무이구곡을 대나무 뗏목 위 의자에 앉아 유유히 내려오며 맑은 바람이 머무는 바위 사이사이마다 차나무가 자라는 풍취에 잠겨 보라”고 차인들은 말했다. 앞과 뒤의 중국인 사공은 알아듣지 못하는 중국말로 쉬지 않고 주변 풍물을 설명하고 있고, 그와 상관없이 관광객들은 저마다 즐겁게 웃고 떠들었다. 현재 300여 개의 대나무 뗏목이 운용된다고 하며, 하류쯤에 도착한 뗏목은 자동차에 실려 상류로 옮겨진다. 이 무이계곡을 중심으로 옛날부터 불교·유교·도교가 성행했다고 하며 송(宋)·원(元) 시대 때부터 이곳에서 나는 차가 널리 퍼졌다고 한다. 무이산은 기후와 풍토관계도 있겠지만 차나무의 천국이라 불릴 정도로 차나무의 품종이 다양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여 종류가 넘는다고 한다. 그 가운데 4대 명차(名茶)로 대홍포·철라한·수금귀·백계관이 꼽히고 4대 명차에는 속하지 못하지만 흔하게 팔리는 차로 육계가 있다. 차 전문가가 아닌 보통 관광객으로서는 일일이 구별하기 어렵고, 그곳에서 제일로 치는 대홍포(大紅袍)도 여러 층이 있는 듯했다. 무이암차의 대표 브랜드가 대홍포이고, 누구나 대홍포를 찾기 때문에 저마다 대홍포라고 내놓는 것 같았다. 가는 데마다 시음을 시키는데 그게 그것 같을 뿐, 맛을 보고 구분할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될 것인가. 차에 대해 너무 모른다는 것만 자탄하며 다녔다. 대홍포라는 이름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진다. 옛날 어느 문인이 과거를 보러 상경하다가 무이산 천심사에 이르렀다. 그런데 갑자기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배가 아파 더 이상 걸을 수 없게 됐다. 그때 천심사의 승려들이 이를 발견하고 구룡(九龍) 암벽에서 찻잎을 따와 차를 달여 한 잔 주었다. 그것을 마시자마자 온몸이 가뿐해지고 아픈 배가 씻은 듯이 나았다. 그렇게 해서 그 문인은 무사히 과거를 보아 장원급제할 수 있었다. 그는 은혜에 감사를 표하기 위해 천심사에 다시 갔고, 그때 마시던 차를 가지고 돌아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황제가 똑같이 배가 아프다고 하는데 궁중의 어의도 속수무책이었다. 그 문인은 마침 천심사에서 가지고 온 차를 황제에게 바쳤다. 그것을 달여 마시자 황제도 씻은 듯 건강을 회복했다. 그 후 다시 천심사를 찾은 문인은 자신이 걸쳤던 홍포를 차나무에 덮어 주었고, 그 홍포를 벗기는 순간 차나무가 빨간색으로 변했다. 무이산에는 대홍포의 모수(母樹)가 여섯 그루나 있어서 모두 소중하게 가꾸고 있고, 그 모수를 보려는 차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했다. 무이산에는 장예모 감독이 제작·연출한 <대홍포 산수실경 쇼>가 근래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다. 2,000여 명의 관객을 수용하는 야외극장으로 관객이 앉아 있는 자리가 360도 돌아가면서 200여 명 이상이 출연하는 대규모 쇼가 펼쳐진다. 레이저빔과 조명으로 무이산의 우람한 실경 봉우리가 어둠 속에서 나타나고, 강가 숲으로 말이 달리는가 하면 한쪽의 거대한 무대에서는 무이암차에 얽힌 전설과 남송(南宋)시대의 화려한 춤과 노래가 이어진다. 80분 동안 관객의 자리가 두 번 360도 돌아가며 자연경관과 화려한 무대를 앉아서 돌아가며 즐기게 하는 착상이 놀라웠다. 인구 21만 명밖에 안 되는 시골 소도시에서 비싼 입장료(한 사람 218위안(한국 돈 4만 원))에도 불구하고 연일 객석을 꽉 채운다는 사실이 불가사의하게 여겨졌다. 중국이니까 되는 중국적인 것일까. 차산업과 무이산 관광이 나날이 발전해가는 것에 비해 주자학의 주희(朱熹) 선생 유적지 관리에는 너무나 무관심하고 소홀했다. 솔직히 실망했다. 주희 선생의 묘소와 그 어머니 묘소는 작은 자갈돌을 모아 쌓은 봉분으로 그나마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풀이 나지 않는 묘역이니까 특별히 돌보지 않아도 외양은 그런대로 유지할 수 있는 것 같았다. 주희 선생이 살았다는 주자고거(朱子故居), 무이산 자연공원 초입에 세워진 무이정사(武夷精舍)는 건물이나마 유지되고 있었으나 찾아오는 사람도 드물었고, 관리도 썰렁했다. 말년에 강학을 했다는 고정서원은 거의 버려진 것과 다름 없었다. 어린 시절에 수학했다는 병산서원, 홍현서원을 비롯한 유적지는 겉모양만 보일 뿐 주희 선생을 기리며 관리하는 것 같지 않았다. 이번에 같이 간 일행 중에는 주자 주희 선생의 32대손인 주덕화(朱德和) 평화사 대표 내외분이 조상의 유적지를 찾은 남다른 감회와 감사의 뜻을 보였다. 그러나 소홀한 관리에는 못내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한국의 신안(新安) 주(朱)씨는 주희 선생의 후손으로, 칭기즈칸의 몽골군이 원(元)나라를 세우고 주자학을 배척하는 바람에 고려 때 한국으로 망명하여 정착했다는 것이다. 주희 선생 묘소 근처에는 한국의 신안 주씨 중앙종친회에서 참배하고, 적지 않은 돈을 기증했다는 기념비석이 세워져 있었다. 글·사진_ 김용원
  • 새터민 강씨의 가슴 아픈 ‘사부곡’

    새터민 강씨의 가슴 아픈 ‘사부곡’

    “찾느라 고생 많으셨죠? 반갑습니다.” 2003년 부친을 찾겠다는 일념으로 북한을 탈출했지만 추석을 앞두고서야 32년 전에 세상을 떠난 사실을 알게 된 강순희(70·가명)씨.<서울신문 9월 19일자 27면 보도> 23일 밤 7시 30분 케이블 채널 서울신문STV를 통해 방영되는 ‘TV 쏙 서울신문’ 취재진이 지난 19일 강씨 집을 찾았다. 책상 한 켠에는 부친의 40대 시절로 추정되는 흑백사진이 놓여 있었다. 강씨는 처음 부친 묘소를 찾은 지난 8일의 감격과 흥분이 채 가시지 않는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북한에서 숱한 설움을 겪고 남한에 내려와 모든 방법을 썼지만 아버지를 찾지 못했다. 하지만 우연히 서장님이 우리집을 방문해 찾게 됐다.” 이어 “아버지가 살아 계시면 100세가 넘기 때문에 솔직히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막상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듣자 울음부터 터졌다. 그 동안의 그리움과 아쉬움이 섞였기 때문”이라며 깊은 숨을 내쉬었다. 또 “서장님 도움이 없었더라면 지금도 아버지를 찾지 못했을 것이다. 바쁜 일도 많을 텐데 우리 같은 서민들까지 신경써 줬다.”며 박노현 (59) 경기 성남시 분당경찰서장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했다. 북한에 남은 동생들 안위 걱정에 본인의 신변과 가족 사진 공개는 한사코 거부했다. 강씨는 “나야 이제 편히 살지만 동생들은 아직도 차별과 냉대를 받으며 굶주리고 있다. 그들에게 누가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박 서장은 “처음엔 그냥 지나치려 했는데 아파트 현관까지 뛰어 내려와 붉게 물든 눈으로 호소하는 강 할머니 눈빛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라고 당시를 돌아봤다. 이어 “쉽지 않았는데 경찰서 직원들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나도 직접 함경남도 이원군 도민회에 전화를 걸어 찾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밖에 TV 쏙 서울신문은 시각장애인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설치된 점자 보도블록 표면에 물기가 묻어 있을 경우 상당히 미끄러워 비장애인들이 다칠 수 있다는 서울신문 보도를 받아들여 서울시가 블록의 재질 기준을 선진국 수준으로 높이기로 했다는 내용과 서울 마포구 홍익대 앞의 클럽 ‘바다비’ 문을 닫지 않게 하기 위해 인디 음악인들이 뭉친 사연, 지난 18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K팝 커버댄스 페스티벌 태국 본선의 뜨거운 열기를 전한다. 또 경제부 임주형 기자가 저축은행 영업정지 이후 파장과 앞으로의 과제를 점검하고 함혜리 문화체육 에디터가 우리 관광산업의 인프라를 대폭 개선해야 한다는 점을 역설한다. 전북 진안 마이산의 독특한 풍광도 살짝 엿볼 수 있다. 글 사진 성민수PD globalsms@seoul.co.kr
  • [新 베트남 기행] (하) 끝없는 남진정책이 낳은 사회상

    [新 베트남 기행] (하) 끝없는 남진정책이 낳은 사회상

    여정의 첫 기착지인 수도 하노이의 날씨는 무덥고 습했다. 중부의 고도 후에의 햇살은 모든 것을 숨 막힐 듯한 무시간의 정적 속으로 몰아넣는 강렬한 것이었다. 그러나 옛 월남의 수도 호찌민의 밤은 예상 밖으로 서늘했다. 상하의 나라 베트남의 날씨는 이렇게 지역에 따라 미묘한 차이가 있었다. 인도차이나 반도의 동안을 따라 북쪽에서 남쪽까지 장장 1750㎞에 걸쳐 길게 뻗쳐 있는 나라이니 이와 같은 기후 차이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중요한 것은 기후 차이가 서로 다른 물리적 환경을 만드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또한 역사적으로 독특한 지역 문화와 전통을 일구어 낸 중요한 변인으로 작용했다. 10세기 경, 천년에 걸친 중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을 쟁취했을 때 베트남의 영토는 홍하(紅河) 델타를 중심으로 한 북부에 국한되어 있었다. 중부에는 문화 전통이 다른 참파 왕국이 약 천년 동안 존속해 왔고, 남부는 앙코르와트에 수도를 두었던 캄보디아에 속해 있었다. 독립 왕조를 세운 이후 베트남은 남쪽으로 영토를 넓혀 나가는 남진 정책에 힘을 쏟았다. 그리하여 15세기 무렵 중부를 병합하고 이어 300년 뒤인 18세기에는 마침내 남쪽 기름진 메콩 강 델타를 영토에 편입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북·중·남부를 포괄하는 베트남 최초의 통일 왕조인 응우옌 왕조의 가장 큰 과제는 지방 분권화의 줄기찬 요구를 다독거리는 것이었다. “남북은 일가”라는 명제는 호찌민의 정치적 구호이기에 앞서 19세기 응우옌 왕조가 통치 이념으로 이미 강조했던 것이다. 응우옌 왕족의 건국이 1802년이고, 왕국이 프랑스의 식민 지배하에 들어가는 것이 1859년이니, 전통시대 베트남의 통일된 역사는 실제로 반세기에 불과했다. 정치적 통일을 이룬 오늘의 베트남을 말하면서 사회문화적 혼종성(hybridity)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치적으로는 ‘일가’를 이루었지만 북·중·남부 지역은 여전히 독자적인 지역 의식이 강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하노이에서 중부 후에와 호이안을 거쳐 남부의 호찌민까지 종주하는 이번 여정에서 그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북베트남은 중국의 영향을 받은 유교문화가, 참파 왕국과 푸난(扶南)왕국이 있었던 중남부는 인도의 영향이 짙은 불교문화가 상대적으로 더 두드러진다. 특히 남방문화에는 힌두교의 색채도 가미되어 에로틱한 힌두교의 비슈누와 가네슈의 신상도 호찌민의 역사박물관에서는 찾아볼 수 있었다. 이렇게 혼재하는 서로 다른 문화 전통에 식민지 시대에 유입된 프랑스 문화가 뒤섞이면서 베트남은 한층 다채로운 하이브리드 문화를 창출해 냈다. 베트남의 건축물에서도 이 점을 엿볼 수 있었다. 하노이를 비롯한 북부에서는 폭이 좁고 긴 세장형의 토지 위에 3~4층으로 쌓아올린 튜브 하우스 스타일의 집들이 많이 눈에 띄지만 중부의 후에나 남부의 호찌민에는 그런 양식의 집은 그렇게 많지 않고 오히려 주황색 오지기와를 얹은 유럽풍의 집들이 종종 눈에 띈다. 중부의 고도 후에에 자리한 응우옌 왕조의 황궁 태화전은 중국의 자금성을 모방한 것이지만, 궁성의 외곽에는 유럽의 성채를 모방한 해자가 설치되어 있다. 후에를 가로지르는 향강(香江)의 북안에 산재해 있는 왕릉에서도 토착 양식과 외래 양식이 동거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응우옌 왕조의 2대 황제였던 민망 황제의 장중한 왕릉의 경우 건물은 중국식이지만 내정의 정원은 서양식이었다. 이 기묘한 절충과 조화는 마지막 황제 바오 다이가 선황제를 기려 건설한 화려한 카이 딩 왕릉에서는 독특한 예술미로 표출된다. 묘소로 오르는 109개의 계단 양편을 장식하고 있는 거대한 용의 형상에 압도된 관람객의 눈앞에 펼쳐지는 왕릉의 내부는 서양의 성당에서나 볼 수 있는 형형색색의 타일, 유리 및 녹색의 옥으로 장식된 화려한 벽면, 그 사이사이를 수놓고 있는 다양한 주제의 벽화, 그리고 거대한 천장화로 한 편의 만화경을 이루고 있다. 이런 독특한 혼성 양식의 건축물이 보존되어 있는 후에는 1993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후에에서 다낭을 거쳐 호이안에 이르는 해안에는 백사장이 줄곧 이어진다. 넘실대는 짙푸른 바다와 고운 모래사장과 야자수 그늘이 피곤한 여행객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해안을 따라 곳곳에 현대식 시설을 갖춘 리조트, 콘도, 호텔들이 들어서고 있었다. 특히 다낭의 해변에 건설되고 있는 휴양단지는 엄청난 규모여서 사회주의 체제 속으로 밀고 들어오는 자본주의의 거센 물결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념과 실용주의의 이와 같은 절충 또한 하이브리드 문화의 한 단면이다. 글 사진 신문수 서울대 교수·미국문학
  • 여야 정치인 추도식 대거 참석

    모처럼 햇살이 내리쬔 18일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서거 2주기 추도식이 서울 동작구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열렸다. 범야권이 총집결한 가운데 추도식은 엄중히 치러졌다. 추도식이 열린 현충관 내부는 DJ의 영향력을 보여주듯 1, 2층 모두 추모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김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와 아들 김홍일·홍업 전 의원, 홍걸씨가 내빈을 맞은 가운데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 손학규 민주당 대표,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 등 여야 대표들이 대부분 참석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와 최근 대선 야권 후보 선두로 급상승한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비롯한 친노(親)계 인사, 한화갑 평화민주당 대표 등 동교동계 인사 등 야권 주요 인물들도 총출동했다.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홍일씨는 휠체어를 타고 부축을 받았다. 맨 앞줄에 앉은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의 육성 영상 등을 보며 행사 내내 눈물을 훔치고 고개를 떨궜다. 바로 뒷좌석에는 김 전 대통령의 ‘영원한 비서실장’ 박지원 전 민주당 원내대표가 앉았고, 이 여사의 옆에는 권 여사가 문 이사장과 앞뒤로 나란히 앉아 추모했다. 손 대표는 홍 대표에게 자리를 양보하며 앞줄에 같이 앉았다. 유 대표는 서서 지켜봤으며 이 대표는 뒤늦게 도착했다. 손 대표는 소회를 묻자 “정권 교체를 위해 야권 통합을 하는 건 DJ의 명령이자 역사가 우리에게 맡긴 지상과제”라면서 “반드시 민주세력을 대통합해서 정권 교체를 이루겠다.”고 밝혔다. 손 대표와 문 이사장은 지난 5월 노 전 대통령의 서거 2주기 추도식 이후 처음 공개석상에서 만났다. 악수는 했지만 특별한 대화는 오가지 않았다. 박 전 원내대표는 “김 전 대통령은 마지막 병석에서까지 야권 통합을 통한 정권 교체를 소망했다.”면서 “김대중 정신을 잇는 건 야권 통합을 통해 내년 총선 승리와 정권 교체를 이루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문 이사장은 “안 계신 자리가 너무 크다. 요즘 같은 세상에 정말 아쉽다.”고 말했다. 정세균 민주당 최고위원은 “남북 문제 등 모든 게 어려운데 가르침을 못 받아 안타깝다.”면서 야권 통합과 관련해 “논의만 말고 행동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유 대표는 보좌관 시절인 1989년 DJ 당 대표 연설문 작성을 위해 동교동에 불려갔던 기억을 회상하며 “영광이고 제 가족들을 다 아신다.”면서도 “DJ는 수차례 야권 통합을 하신 분이지만 그때는 진보정당이 없었다.”면서 “지금은 정치지형이 많이 달라졌고 민주당이 이제 행동할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과의 야권 통합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드러낸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묘소에서의 헌화, 참배가 끝난 뒤 민주당 영등포당사에서는 DJ와 노 전 대통령의 흉상 제막식이 열렸다. 이 여사는 “감사하다. 민주당이 정권 교체에 성공해 국민이 잘사는 나라를 만들고 남북 통일로 평화로운 나라를 만들어 주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권 여사도 “만감이 교차한다. 두 분 뜻을 잘 받들길 부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민주당 산하 민주정책연구원은 국회 의원회관에서 ‘DJ 추모 2주기 토론회’를 열고 그의 뜻을 기렸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8·15 66주년] “음지서 독립 투쟁한 여성도 수만명… 정부가 증언·사료 수집해 예우해야”

    [8·15 66주년] “음지서 독립 투쟁한 여성도 수만명… 정부가 증언·사료 수집해 예우해야”

    “들꽃은 늘 조명받지 못했다. 오히려 발에 밟히고 차였다. 그러나 들꽃의 생명력은 강하다. 그들은 진 것이 아니라 여전히 피어있다.” 시인 이윤옥(52·여)씨는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들꽃이라고 말한다. 지난 6월 출간된 그의 두번째 시집 ‘서간도에 들꽃피다’는 역사의 뒤편에 묻혀있던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조명한 최초의 시집이다. 이씨는 “최초의 여성 의병장인 윤희순, 광복군 여성대원들의 맏언니였던 오광심은 물론 밥 짓고, 군복 만들고, 독립자금 조달한 여성들도 모두 독립유공자”라면서 “이들을 기억하지 않는 현실이 안타까워 시로 그들의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고 말했다. 특히 이씨는 “‘(여성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으려면 증거를 가져오라’는 정부의 독립유공자 심사체계는 어불성설”이라며 “정부가 직접 여성독립운동 사료를 수집하고 드러나지 않은 여성 유공자들을 발굴해 걸맞은 예우를 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생사를 건 엄혹한 시기에 그들이 독립투쟁의 흔적을 남겼겠느냐.”면서 정부의 태도 변화를 촉구했다. 66돌을 맞은 광복절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 서울신문사에서 이씨를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여성독립운동가에 대한 평가는.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역할이 형편없이 과소평가돼 있다. 남성 독립유공자가 수만명이라면 여성 유공자의 숫자도 비슷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 공인된 독립유공자 1만 2966명 가운데 여성은 204명에 불과하다. 직접 총과 폭탄을 들고 싸운 여성도 적지 않지만 뒷전에서 밥 짓고, 독립운동 자금을 모아 나르는 등 음지에서 묵묵히 제 역할을 다한 여성들도 모두 독립유공자 아니겠는가. →현재의 독립유공자 심사체계에 문제가 있다는 말인데…. -스스로 서류를 제출해 독립운동을 증명하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으려면 직접 증거자료를 수집해 국가보훈처 심사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의 상황을 안다면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것이다. 일본군에 쫓겨 생사가 걸린 상황에서 일부러 서류 등 흔적을 없앴는가 하면 가명을 서너 개씩 쓰기도 했다. 그나마 명단에 오른 분들은 후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 기록을 수집하고 정리해 가능했다. 독립유공자라는 사실을 숨기고 사는 분들도 많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개선해야 한다고 보는가. -간단하다. 정부가 나서 여성독립운동가들의 흔적을 찾아야 한다. 일제강점기 당시의 국내와 일본신문만 봐도 적잖은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평남도청에 폭발물을 던진 안경신 의사의 경우도 ‘여자폭탄범’이라는 제목으로 기사가 실렸다. 또 백범일지를 보면 연미당·정정화 여사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이렇게 하나하나 기록을 되짚어 찾는 것이 국가가 할 일 아니겠는가. 생존해 있는 여성독립운동가가 몇 분 안 된다. 그들의 증언이 가장 중요하다. 빨리 그 분들의 구술을 문서로 기록해 둬야 한다. →여성독립운동가를 주제로 한 시를 쓰게 된 계기는. -몇 해 전 강의를 하던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독립운동가를 아는 대로 써 보라고 했다. 여성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댄 학생이 손에 꼽을 정도였고, 그나마 태반이 유관순 열사였다. 그런 현실이 서글펐다. 그때 가까이 두고 읽을 수 있는 시집으로 여성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기록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시를 쓰는 데 필요한 자료는 어떻게 수집했나. -기록이 거의 없었다. 국가보훈처 자료도 여성유공자 한 명당 서너줄의 기록이 전부였다. 그때부터 이들의 활동무대를 직접 찾아 나섰다. 중국 상하이, 광저우, 항저우, 충칭 등을 답사했고, 춘천 부산 나주 인천 수원 등을 돌면서 자료를 수집했다. 그러나 생존한 여성독립운동가가 6명에 불과해 자료 수집도 쉽지 않았다. 생가와 묘지가 제대로 보존되지 않아 경북 안동에서 김락 지사의 묘소를 찾아가는 데 마을 사람들에게 수소문해야 했을 정도다. →앞으로의 계획은. -내년 3·1절에는 여성독립운동가를 주제로 두 번째 시집을 내고 싶다. 이미 펴낸 시집도 공공도서관이나 초·중·고교에 보급해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만 쉽지 않다. 얼마 전 요양원에 계신 이병희 여사를 찾아가 직접 시를 낭송해 드렸다. 눈물이 쏟아져 끝까지 읽을 수 없었다. 앞으로 시를 통해 여성 독립유공자 200여명의 숭고한 일생을 재조명해 보고 싶다.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식물계 황소개구리’ 가시박에 토종식물 사라진다

    ‘식물계 황소개구리’ 가시박에 토종식물 사라진다

    최근 내린 폭우로 조상의 묘소가 무너져 내리지는 않았는지 살펴보기 위해 얼마 전 선산을 찾았다. 그리 높지 않은 나지막한 산이지만 입구부터 가시가 붙은 덩굴식물이 길을 막았다.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가시박이다. 지난해 많이 걷어냈지만 곳곳에서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묘소는 별 탈이 없었지만 가시박을 처리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가시박은 환경부가 생태계 교란 식물로 지정한 외래식물이다. 어떤 곳은 나무를 타고 올라간 가시박이 집채만큼이나 무성한 곳도 눈에 띄었다. 가시박은 산과 들, 도심 하천 가릴 것 없이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식물이 됐다. 전문가들은 씨앗이 여물기 전인 요즘이 가시박 등 생태교란 식물을 제거하는 적기라고 말한다. ●‘원산지 북미’ 1980년대 후반에 들어와 가시박은 서식지가 급속도로 확산돼 2009년 6월 생태계 교란 식물로 지정됐다. 한해살이 덩굴 식물로 잎은 오이나 박잎과 비슷하며 꽃은 6~9월에 걸쳐 핀다. 원산지는 북미로 최대 8m 이상 자라고 여름철에는 하루에도 20㎝가 넘게 자랄 정도로 생장 속도가 빠르다. 1980년대 후반, 농가 소득을 높이기 위해 오이, 호박에 접붙이기용 작물로 들여왔다. 생장이 빠른 가시박 줄기에 오이나 호박의 줄기를 붙여 수확량을 늘리는 방법이다. 처음 들여온 곳이 경북 안동으로 알려져 ‘안동대목(臺木)’이란 이름으로도 불린다. 가시박은 번식력도 강해 주변 식물이나 나무를 덮어버려 키 작은 나무나 식물들은 햇빛이 차단돼 고사되고 만다. 줄기나 열매의 가시에 찔릴 경우 피부병을 유발하기도 한다. 번식력이 워낙 뛰어나 ‘식물계의 황소개구리’라는 별칭도 생겼다. 영양분을 흡수하기 위해 다른 식물을 말라죽게 하는 독성 물질도 뿜어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문가들은 2000년 강우량이 많아지면서 물길을 타고 가시박이 폭발적으로 확산됐다고 진단한다. 환경부에 따르면 가시박은 서식지가 특정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전국적으로 분포돼 있다. 가시박 등 생태 교란종 서식지가 확산되면서 토종식물은 급속히 개체군이 줄어들고 있다. 환경부는 가시박을 비롯 단풍잎 돼지풀, 서양등골나물, 털물참새피, 도깨비가지, 애기수영, 서양금혼초, 미국쑥부쟁이, 양미역취 등 11종을 생태계 교란종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단풍잎돼지풀·털물참새피 등도 확산 생태 교란종은 서식지가 광범위한 외래식물로 2007년부터 국립환경과학원을 통해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 모니터링은 매년 전국의 같은 지역을 선정, 서식지 확산과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 등을 분석한다. 분석 자료에 따르면 단풍잎 돼지풀은 파주, 인천, 연천, 부산의 조사지역에서 63~70%의 높은 밀도를 보였다. 216~256㎝로 자라 토착식물의 성장을 방해하고 꽃가루도 날려 알레르기 등을 일으키는 주범으로 알려졌다. 서양등골나물은 서울 월드컵공원, 남산공원, 광주 남한산성의 조사지역에서 46~55%를 차지, 키 작은 토종식물의 성장에 피해를 주는 것으로 조사됐다. 털물참새피도 창녕에서 90%의 높은 밀도를 보였는데 생태습지의 보고인 우포늪으로 확산이 우려되는 실정이다. 특히 생태계 교란 식물로 지정은 안 됐지만 빗자루국화와 미국가막사리, 큰김의털 등의 외래식물도 빠르게 토착화되고 있다. 빗자루국화는 하천변과 습지, 생태공원 등에서 볼 수 있고 하천의 물길을 따라 널따랗게 자라는 곳과 길게 늘어선 곳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미국가막사리도 하천과 습지 주변에서 확산, 갈대나 달뿌리풀 같은 자생종과 키 작은 식물을 고사시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방용으로 들여온 큰김의털도 토종식물을 밀어내고 빠르게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씨앗 여물기 전에 제거해야 효과적 환경부는 생태교란 동식물 관리를 위해 올해 7억 600만원의 예산을 확보했다. 지난해 4억 2000만원보다 크게 늘었다고는 하지만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예산은 식물 외에 뉴트리아, 황소개구리, 붉은귀거북, 블루길,배스 등 생태교란 동물 관리까지 포함된 비용이다. 위해 동식물 퇴치 비용은 지방환경청이나 지방자치단체 예산으로 충당하고 있다. 생태계 교란 식물을 제거하기 위해 매년 환경부와 산림청, 지방자치단체와 환경·시민단체들이 나서고 있다. 하지만 워낙 광범위하게 분포돼 있는 데다 일일이 사람 손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부분 제거에 그친다. 이경율 환경실천연합 회장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한강변 주변 생태계 교란 위해식물 제거작업을 시작했다.”면서 “올해는 서울시와 협약을 맺고 한강 생태공원 전체에 대한 외래식물 제거작업을 주도적으로 벌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오정근 자연보전협회논산지부 회장은 “이벤트성 행사로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안 된다.”면서 “생태교란 식물의 특성을 파악해 확산 요인을 차단하는 등의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가시박 등 생태 교란종은 씨앗으로 전파되는 경우가 많은 만큼, 씨가 여물기 전에 제거를 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덧붙였다. 글 사진 유진상기자 jsr@seoul.co.kr
  • 현충원 ‘이상한’ 묘역 배치

    현충원 ‘이상한’ 묘역 배치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임시정부 요인들의 묘역 위치를 둘러싼 논란이 거세다. 임시정부 요인들이 예우는커녕 홀대를 받고 있다는 게 논란의 초점이다. 독립유공자 유족들은 임시정부 요인들이 장군들 묘역 아래에 배치돼 마치 장군들의 휘하인 듯한 모습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친일 논란에 휩싸인 장군들의 묘가 장군 묘역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 자체에 더 분노하는 상황이다. ●장군들에 지휘받는 형국 국립 서울현충원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역을 정점으로 피라미드형 구조를 갖추고 있다. 가장 길지(吉地)로 꼽히는 꼭대기 박 전 대통령 묘소 바로 아래 장군 제1묘역이 배치돼 있다. 장군 제1묘역을 중심으로 김대중·이승만 전 대통령 묘소가 있다. 임시요인 묘역은 멀리 떨어진 장군 제2·제3묘역 아래 놓여 있다. 이곳에는 임시정부 대통령을 지낸 박은식 선생을 비롯, 대한매일신보 초대 총무이자 임시정부 국무령을 지낸 양기탁 선생, 독립군 양성소인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이상룡 선생 등 대한민국 건국의 토대를 닦은 독립운동가들이 안장돼 있다. 심지어 장군 제2·제3묘역에는 친일 인물들도 다수 포함돼 있다. 제2묘역의 이응준 장군은 일본 육사 출신으로 일제가 징병제를 실시하자 “기다리던 징병제가 실시됐다.”며 청년들의 참전을 선동, 대좌(대령)까지 올랐다. 제3묘역의 정일권 장군은 만주에서 헌병 상위(대위)로 활동한 전력이 있으며, 이종찬 장군은 일본군 공병 소좌(소령) 출신으로 일제로부터 훈장까지 받았다. 대전현충원의 상황도 별로 다르지 않다. 백범 김구 선생 암살의 배후로 지목받는 김창룡 장군의 묘소는 김구 선생의 어머니 곽락원 여사와 아들 김인 선생의 위에 있다. 이에 대해 독립유공자 유족들은 “현충원의 전체적인 배치를 바꾸든지 친일 인물들을 이장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초대 독립군 사령관이었던 지청천 장군의 외손자 이준식씨는 “백선엽 장군의 경우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친일인사로 규정했는데, 이런 인물이 임정 요인들의 머리 위에 안장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보훈처·국방부 책임 떠넘기기만 그러나 국립묘지 운영을 담당하는 국가보훈처와 국방부는 책임만 떠넘기고 있다. 보훈처 관계자는 “서울현충원은 국방부가 관리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국방부 측은 “애당초 설계에 문제가 있었다.”면서도 “하지만 안장 여부와 위치 결정은 보훈처 소관이어서 친일 논란이 있는 사람이라도 국방부가 막을 방법은 없다.”고 해명했다. 한 독립유공자단체 관계자는 “현충원 묘역 배치는 독립유공자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라면서 “예우 차원에서 재배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동현기자 moses@seoul.co.kr
  • 현대 “금강산관광 먼저”… 北 “재산등록 다시”

    현대 “금강산관광 먼저”… 北 “재산등록 다시”

    현대아산 장경작 사장 등 임직원 11명이 4일 고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의 8주기를 맞아 금강산을 찾았다. 미국인 사업가가 금강산 사업권을 사들였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어서 이번 방북에 관심이 모아졌으나, 남북은 원론적인 입장만 되풀이한 채 헤어졌다. 오전 고성군 동해선남북출입사무소(CIQ)를 통해 방북한 장 사장 일행은 금강산에 있는 정 전 회장의 추모비 앞에서 북측 인사들과 추모행사를 가졌다. 북측에서는 명승지개발지도국이 아닌 금강산특구개발지도국의 명찰을 달고 나왔으며 리충복 부국장 등 5명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측은 이 자리에서 현대아산 측에 북측이 새로 정한 특구법에 따라 등록하라고 기존 입장을 되풀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현대아산 측은 근본적으로 금강산 관광 문제가 우선적으로 해결되어야 하며, 재산권 문제는 나중에 따로 얘기하자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 사장은 “3주내에 재산등록을 마치라는 것은 문제가 있다. 재산등록은 검토할 단계가 아니다라는 입장을 북측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미국인 사업자에 대해서는 “북측을 통한 관광객 유치를 양해바란다.”는 정도의 입장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아산 관계자는 “북측 관계자들은 ‘우리도 어떻게든 손님을 끌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고, 이에 대해 우리는 ‘계약 관련 문제 등을 해결해 줘야 우리도 이야기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입장을 전달했다.”고 전했다. 한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경기 하남의 정몽헌 전 회장 묘소를 참배한 뒤 금강산관광 사업 재개 의지에 변함이 없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방북 계획은 아직까지 없다.”면서 북한이 미국에서 새 금강산 사업자를 선정한 것을 알고 있었느냐는 물음에는 “모르는 일이다.”라고 짧게 답했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아방궁 논란’ 일해재단 영빈관 국민 품으로

    ‘아방궁 논란’ 일해재단 영빈관 국민 품으로

    1988년 ‘현대판 아방궁’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세종재단의 전신 일해재단 영빈관이 일반에 공개된다. 경기 성남시 수정구 시흥동 세종연구소(옛 일해연구소)에서 도보로 7∼8분 떨어진 곳에 자리 잡은 이 영빈관을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지구촌체험관으로 사용하기로 결정한 것. KOICA 관계자는 3일 “최근 외교통상부로부터 사용 승인을 받아 내부수리 및 전시공간 설계에 착수했다.”면서 “서울 서초구 염곡동 훈련센터에서 운영 중인 지구촌체험관을 이곳으로 옮겨와 빠르면 10월부터 각종 전시와 교육, 휴식시설을 갖춘 종합전시관으로 활용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주변 부지에 ‘공적개발원조(ODA)공원’, ‘개발도상국 문화공원’, ‘KOICA 공원’ 등 휴식 개념을 갖춘 공간도 조성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영빈관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1983년 10월 9일 미얀마 아웅산묘소 폭파사건으로 순직한 수행원들의 유족에 대한 생계 지원과 장학사업을 위해 일해재단을 설립하고 2년 뒤에 완공한 330㎡(100평) 규모의 단층 건물이다. 부속 부지는 총 8만 5900㎡(약 2만 6000평)로, 영빈관 주변에는 3홀 규모의 골프장과 테니스장, 연못이 있으며 정원에는 수령이 수백년에 이르는 노송들도 있다. 실내 수영장과 고급 샹들리에, 등나무 가구, 수입 변기 등 초호화 시설을 갖춘 이 영빈관은 전 전 대통령의 퇴임을 앞둔 1988년 초 일해재단 기금 강제모집 파문의 와중에 존재가 알려지면서 그해 4월 18일 취재진에 단 한 차례 공개된 뒤 지금껏 폐쇄돼 왔다. 특히 같은 해 11월부터 시작된 국회 5공비리 일해재단 청문회 과정에서는 전 전 대통령의 사저로 사용하기 위해 지은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며 출석 증인들과 의원들 간에 날선 공방이 오가기도 했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일해재단 영빈관, 국민 품으로

    일해재단 영빈관, 국민 품으로

     1988년 ‘현대판 아방궁’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세종재단의 전신 일해재단 영빈관(?사진?)이 일반에 공개된다. 경기 성남시 수정구 시흥동 세종연구소(옛 일해연구소)에서 도보로 7∼8분 떨어진 곳에 자리 잡은 이 영빈관을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지구촌체험관으로 사용하기로 결정한 것.  KOICA 관계자는 3일 “최근 외교통상부로부터 사용 승인을 받아 내부수리 및 전시공간 설계에 착수했다.”면서 “서울 서초구 염곡동 훈련센터에서 운영 중인 지구촌체험관을 이곳으로 옮겨와 빠르면 10월부터 각종 전시와 교육, 휴식시설을 갖춘 종합전시관으로 활용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주변 부지에 ‘공적개발원조(ODA)공원’, ‘개발도상국 문화공원’, ‘KOICA 공원’ 등 휴식 개념을 갖춘 공간도 조성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영빈관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1983년 10월 9일 미얀마 아웅산묘소 폭파사건으로 순직한 수행원들의 유족에 대한 생계 지원과 장학사업을 위해 일해재단을 설립하고 2년 뒤에 완공한 330㎡(100평) 규모의 단층 건물이다. 부속 부지는 총 8만 5900㎡(약 2만 6000평)로, 영빈관 주변에는 3홀 규모의 골프장과 테니스장, 연못이 있으며 정원에는 수령이 수백년에 이르는 노송들도 있다.  실내 수영장과 고급 샹들리에, 등나무 가구, 수입 변기 등 초호화 시설을 갖춘 이 영빈관은 전 전 대통령의 퇴임을 앞둔 1988년 초 일해재단 기금 강제모집 파문의 와중에 존재가 알려지면서 그해 4월 18일 취재진에 단 한 차례 공개된 뒤 지금껏 폐쇄돼 왔다. 특히 같은 해 11월부터 시작된 국회 5공비리 일해재단 청문회 과정에서는 전 전 대통령의 사저로 사용하기 위해 지은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며 출석 증인들과 의원들 간에 날선 공방이 오가기도 했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사학비리 백화점’ 충암학원 특감 결과

    이런 사학도 있다. 공사비 불법 집행, 운동부 훈련비 횡령, 교원 채용 비리, 회의록 허위 작성, 이사장 차남 임용, 특별반 운영, 학교회계 목적 외 사용, 법인 임원 직무 태만…. 서울시교육청이 사학 비리 의혹 제보를 받고 지난 2월부터 학교법인 충암학원에 대해 벌인 특별감사에서 적발한 비리 항목들이다. 감사 결과 충암학원은 시설·인사·학교 운영 등 사학재단이 저지를 수 있는 온갖 비리를 총망라한 ‘종합 비리 세트’로 드러났다. 시교육청은 충암초·중·고등학교 재단인 충암학원에 대해 특별감사를 실시한 결과, 모두 32건의 비리를 적발했으며 재단 이사와 감사 전원의 임원 취임 승인을 취소하기로 했다고 7일 밝혔다. 감사 결과 충암중학교는 2009년 5월 하지도 않은 창호 교체 공사를 한 것처럼 허위로 계약서를 꾸며 8000여만원을 챙겼으며, 2008~2009년에는 야구부 훈련비 명목으로 800만원을 회계 처리 없이 지출, 횡령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2008~2010년 충암고 교원 신규 채용 때의 평가 자료를 무단 폐기했으며, 이사장의 차남을 행정실장으로 임용한 뒤 잦은 해외 여행으로 업무를 사실상 보지 않았음에도 인건비로 2억원을 지급한 사실이 확인됐다. 교육청이 금지한 특별반도 몰래 운영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충암고는 교육청의 교육과정 승인도 받지 않고 학교장 지시로 교과성적이 우수한 3학년생 16명에게 특별 수업을 진행했는가 하면 재단 측은 매년 두 차례에 걸쳐 신규 및 부장 교사들이 설립자 묘소를 참배하도록 하고, 소요 경비 1137만원을 초등학교 교수 학습 활동비에서 빼내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시교육청은 이 같은 비리의 책임을 물어 이사장 등 이사회 임원 10명에 대해 취임 승인을 취소하고, 관련 예산 4억 7300여만원을 회수하기로 했다. 또 비리에 연루된 교직원 11명을 징계하기로 했으며, 다른 교원 13명에 대해서는 경고·주의 조치 했다. 또 공사비 횡령 의혹과 관련, 지난 4월 검찰에 관련자를 고발한 데 이어 무단으로 교원 채용 서류를 폐기한 사안을 추가 고발하기로 했다.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 “공초의 시 읽으며 시의 참맛 알아”

    “공초의 시 읽으며 시의 참맛 알아”

    서울신문사가 주관하는 제19회 공초(空超) 문학상 시상식이 3일 오전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시상식에는 수상자로 뽑힌 정호승(61) 시인을 비롯해 김종길·성찬경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이근배 공초숭모회장, 이성부 시인 등 시단 관계자 100여명이 참석했다. 정 시인은 “공초의 시를 읽으며 시를 공부했고, 시의 참맛을 알아 왔는데 직접 뵙기도 전에 떠나셔서 늘 아쉬운 마음이었다.”면서 “이 상을 받음으로써 마치 공초의 품 안에 안긴 것같이 넉넉하고 기쁜 마음이다.”라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정 시인은 상금 500만원과 상패를 받았다. 수상작은 지난해 11월 발간한 정 시인의 시집 ‘밥값’에 실린 ‘나는 아직 낙산사에 가지 못한다’이다. 정 시인은 “천년 고찰 낙산사가 불에 탔다는 소식을 듣고 내 인생의 낙산사도 소멸된 듯한 느낌에 이 시를 썼다.”면서 “이제 낙산사를 다녀온 뒤 낙산사를 가야할 이유에 대해 쓰고 싶다.”며 웃었다. 참석자들은 시상식을 마친 뒤 서울 수유리 빨래골 공초 선생 묘소를 찾아 48주기 추모 행사를 가졌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김영삼 전 대통령 29일 방러 고르바초프 만나

    김영삼 전 대통령 부부가 오는 29일부터 6월 5일까지 7박 8일간 러시아를 방문한다.  김 전 대통령 측은 23일 “김 전 대통령은 1989년 6월 2일 한국 정치인 최초로 옛 소련(러시아)을 방문해 한∙러 수교(1990년 9월 30일)의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면서 “한∙러 수교 20주년을 기념하는 뜻에서 러시아 극동문제연구소(소장 티타렌코)에서 김 대통령의 최초 방소 일자에 맞춰 초청했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번 방러 기간 동안 극동문제연구소와 모스크바 국제관계대학에서 특별 강연을 한다. 또 한∙러 수교 당시 소련 대통령이었던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을 만나고, 수교 당시 큰 역할을 했던 이그나텐코 이타르타스통신 사장과 오찬을 함께 한다.  김 전 대통령은 옐친 전 대통령 묘소와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의 부인 라이사 여사 묘소도 참배할 예정이다. 옐친 전 대통령은 1994년 6월 김 전 대통령의 러시아 공식 방문 중 자동 군사 개입 조항이 핵심이던 조(朝·북한)·소(蘇) 조약 폐기와 대북 무기부품 공급 중단을 약속했고, 김일성의 남침을 증명하는 6·25전쟁 관련 문서를 김 대통령에게 넘겨줬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노무현 키즈’ 토크쇼… 추모 콘서트…국내외서 추모행사

    주말 전국 곳곳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2주기 추모 행사가 벌어진다. 미국, 영국 등 해외에서도 추모의 밤 등의 행사가 열린다. 야권 지도자들은 23일 노 전 대통령 추도식에 총집결한다. 야권 통합 등 진보 진영 ‘새판 짜기’의 계기가 될지도 주목된다. 21일 서울과 노 전 대통령의 고향인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는 친노 인사들이 대거 참석하는 대규모 추모문화제가 진행된다.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는 오후 2시부터 10시까지 노 전 대통령 사진전, 추모 콘서트 등이 펼쳐진다. 이날 열리는 시사토크쇼에는 ‘노무현 키즈(kids)’인 안희정 충남지사, 김두관 경남지사, 이광재 전 강원지사와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가 출연한다. ‘슬픔을 넘어 희망으로’란 부제의 추모 공연에서는 각계 명사들이 무대에 오른다. 봉하마을에서는 방송인 김제동씨의 ‘토크 콘서트’가 열린다. 서울과 이원 생중계로 연결해 이야기 손님인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서울 공연에 등장시키기도 한다. 그 밖에 광주·울산·워싱턴 등 10개 지역에서도 추모 행사가 개최된다. 22일에는 부산·제주·영국 등 17개 지역에서 추모문화제와 전시회 등이 열린다. 친노무현 인사들은 서거 2주기 전날 봉하에서 회동한 뒤, 23일 추도식에 참석할 예정이다. 야권 지도자들도 총출동한다. 오후 2시 노 전 대통령 묘역 옆에서 엄수되는 추도식에는 권양숙 여사와 아들 건호씨 등 유족과 손학규(민주당)·유시민(국민참여당)·이정희(민노당)·조승수(진보신당) 등 각당 대표들이 참석한다. 광주~부산~마산 등 영·호남을 잇는 ‘남부민주벨트론’을 강조한 정세균 민주당 최고위원, 한명숙·이해찬 전 총리 등 참여정부 주요 인사들이 자리한다.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20일 노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찾았다. 대표 권한대행이지만 한나라당 대표가 노 전 대통령의 묘역을 방문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친노 진영의 성지를 찾아 상생과 화합의 모습을 보이고, 지난 4·27 재보궐 김해 선거 승리로 마련된 한나라당 지지세를 확산시키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황 원내대표는 묘소 참배 뒤 예정에 없이 고인의 사저로 권양숙 여사를 예방, 30분간 비공개 대화를 나눴다. 면담에서 문재인 이사장과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한나라당이 사저를 ‘아방궁’이라고 말한 것을 비판하자 권 여사가 “방문에 감사하고, 한나라당에서 처음 와서 가슴에 맺힌 게 많아 저런다.”며 말리기도 했다. 황 원내대표는 “잘 모시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소탈하고 불의에 진노하는 어른”이라고 회고했다. 추모 행사는 21일 오전 7시 10분, 오후 7시 케이블 채널 서울신문STV ‘TV 쏙 서울신문’에서 방영한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나와 통일] “한국은 北에 식량 지원하고 北은 고맙다고 말해야 한다”

    [나와 통일] “한국은 北에 식량 지원하고 北은 고맙다고 말해야 한다”

    1991년 11월 25일. 남북의 여성이 분단 46년 만에 서울에서 얼굴을 맞댔다. 분단 후 처음으로 북한 여성이 판문점을 넘어와 남북통일과 평화를 노래한 것. 이를 성사시킨 사람은 남한의 여성도 북한의 여성도 아니었다. 4년 넘게 남북한의 메신저 역할을 한 시미즈 스미코 전 일본 사민당 의원의 노력이 숨어 있었다. 남북 분단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주장하는 시미즈 의원으로부터 남북 여성 교류를 성사시키기까지의 뒷얘기와 현 남북관계에 대한 소회를 들어 봤다. →4·15 김일성 생일을 맞아 북한에 다녀왔다고 들었다. 요즘 평양의 분위기는 어떤가. -김일성 주석 탄생 100년(2012년)을 앞두고 축하 분위기였다. 작년에 북한에 갔을 때와 달리 주택이 잘 정비돼 있다는 느낌이었다. 살구꽃과 개나리꽃이 아주 예쁘게 폈고, 분위기가 휴일에 축제가 더해져 즐거워 보였다. →외부에서는 북한이 매우 빈곤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경제적으로 빈곤한 것은 사실이긴 하다. 그래도 내년에 강성대국을 앞두고 국민 경제 강화를 최우선하는 한편 굉장히 자신감에 차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기술 등 여러 측면에서 늦었지만 그런 가운데서 자기들의 힘으로 이루겠다는 의욕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몇 번째 방북인가. -24번째다. 1972년에 간 게 처음이었다. →어떤 계기로 북한 문제에 관여하게 됐나. -1972년 북한의 초청으로 처음 평양을 방문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일본에서는 조선반도가 인식의 대상이 아니었다. 당시 북한에서 박물관, 역사전시관 등을 보고, 일본이 한반도를 식민지배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이른바 여성운동, 평화운동을 하는 내가 일본의 이런 야만적인 행동을 모르고 있었다니 엄청 충격을 받았다. →남북이 분단된 데에 일본의 책임을 느낀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일본이 일으킨 전쟁으로 한반도가 짓밟힌 뒤, 해방되지 못하고 오히려 연합군에 의해 분할 점령되지 않았나. 일본이 패전했기 때문에 한반도를 일본의 영토로 보고 희생자가 된 것이다. 식민지배가 원인이 돼 분단이라는 희생을 강요받고 있다는 의미에서 일본은 한반도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1991년 남북한 여성 교류에 어떤 계기로 참가하게 됐나. -1987년 8월 이우정 당시 여성단체연대 공동대표가 ‘원자폭단 금지 세계대회’ 참석차 일본에 왔다. 감시를 피해 밤에 그녀가 묵고 있는 호텔을 찾아가 한국의 민주화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했다. 그랬더니 오히려 이 대표가 북한 동포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했다. 이 대표는 “동족인데도 사십년 넘게 못 만나고 있다. 북한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일본에서 북한 여성을 만날 수 없겠느냐.”면서 남북한 여성이 만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사실 일본이 북한과 국교가 맺어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나로서도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지만, 이 대표의 열정에 감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누구를 만나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무려’ 여연구 당시 최고인민회의 부의장(몽양 여운형의 딸)을 말하는 게 아닌가(웃음). 그 이후 4년간 인편을 통해 북한에 편지를 보낸 끝에 일본 대회 개최가 결정됐다. 아마도 김일성 주석에게 편지가 전달됐던 것 같다. →굉장히 긴 노력 끝에 이뤄 낸 결실이었다. -이 대표는 남북이 만난다고 하면 정부의 간섭을 받을 테니 ‘아시아 평화의 여성의 역할’로 하면 어떻겠느냐는 아이디어를 냈다. 행사 준비도 문서로는 일절 남기지 않고, 구두로만 전달해 몰래 준비했다. 정체가 드러날까 봐 참가자도 모호하게 했다. 미키 무쓰코(고 미키 다케오 전 총리의 부인), 오타카 요시코 자민당 참의원 등을 초청했다. 나중에 정부으로부터 “자민당 행사냐.”라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대성공이었다(웃음). 일본에서 열린 첫 대회에 1000명 이상이 모여 대성황을 이뤘다. →집회에서 남북한이 뜻을 모았나. -일본이 과거 식민지배에 대해 사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평화·우호적인 관계를 만들어 남북한 여성의 교류를 확대하고, 위안부 문제도 함께 해결하자고 뜻을 모았다. 정치의 벽을 부수는 것은 역시 민중의 힘이라는 것을 느꼈다. →같은 해 11월에 서울에서 제2차 대회가 열렸다. -한국 여성들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한국에 돌아가 통일원을 움직였다. 하지만 당시 한국에서는 이 집회에 대한 반발이 거셌다. 결국 여연구가 아버지 여운형의 묘소를 참배했는데, 약속한 일정엔 없었던 일이라고 정부에서 문제를 삼아 도중에 북으로 돌아갔다. 도중에 깨진 건 참 유감이었지만, 집회 당시 마치 남북이 통일된 것처럼 흥분하고 감격했다. 남북한 여성들이 껴안고 울고 웃는 모습에 감격하면서도 한편으로 분단의 책임을 느꼈다. →지금과 비교하면 당시 남북 교류가 굉장히 활발했던 것 같다. -민중들의 교류, 대화가 없으면 화해와 통일로 갈 수 없다.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을 발표했을 때 드디어 밝은 시대가 오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군사적 관점으로만 상대를 보면 미움과 분노밖에 생기지 않는다. 작년에 여러 군사적인 문제가 있었지만 어떻게 하면 긴장을 없앨 수 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남북통일이 일본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나. -그렇지 않다. 일본이 (남북통일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을 배우고, 동북 아시아 지배의 역사뿐 아니라 앞으로 동북아시아 지역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면서 지역의 새로운 미래, 새로운 상황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면 이런 시대는 100년도 더 갈 것이다. 인간성을 발휘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지 않으면, 민주적이고 평화적인 나라가 되기 어렵다. 그걸 이룩하는 게 우리 세대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등 국제사회의 북한에 대한 식량지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식량지원은 인도주의 차원의 문제다. 남북 간의 대립이 있더라도 지원 의지가 없으면 대화의 길은 열리지 않는다. 인간은 한번 지원을 해 준 나라는 잊지 않는다. 일본인은 전쟁 후 미군의 건빵·탈지분유 등을 받으면서 점령군에 대한 적대감이 없어졌다. 역시 음식이라는 건 인간에게 일상생활에서 없으면 가장 괴로운 것 아니냐. 북한도 여러 지원에 대해 한국 동포들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게 좋다. →남북통일이 된다면 어떤 형태가 가장 좋을까. -다른 나라가 말할 문제는 아니지만 가장 좋은 건 다른 나라의 간섭 없이 같은 민족끼리 스스로 하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양측의 좋은 점을 취하고 통일을 다른 나라의 간섭이나 군사적 대립만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실현될 것라고 생각한다. 조선 민족은 긴 역사와 문화를 가지고 있다. 나는 항일운동이나 민주화 투쟁에서 조선의 민족성에 크게 놀랐다. 보다 건설적인 방향으로 경제 발전뿐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발전을 위해 지혜를 살려 주었으면 좋겠다. 권력자가 아니라 시민들이 머리를 맞대면 좋은 지혜가 나올 것으로 생각한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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