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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에서 가장 보기 흉한 건물에 北 ‘류경호텔’

    세계에서 가장 보기 흉한 건물은 무엇일까? 미국의 뉴스전문 채널인 CNN이 운영하는 여행 정보 사이트 CNNgo가 지난 4일 ‘세계에서 가장 보기 흉한 건물 10’(10 of the world’s ugliest buildings)을 선정해 발표했다. 다행히 보기 흉한 건물에 우리나라 건축물은 포함되지 않았으나 CNNgo는 영예(?)의 1위로 평양 류경호텔을 올려놓았다. 세계 언론사의 조사에서 보기 흉한 건물 톱 10안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류경호텔은 평양 보통강 유역에 자리잡은 지상 101층짜리 호텔로 1987년 첫삽을 떴지만 이후 경제난으로 수십년간 공사가 중단됐다. 그러나 2008년 공사가 재개된 후 오는 4월 김일성 주석의 100번째 생일을 맞아 호텔 일부를 개장할 것으로 알려졌다. 2위에는 객실수만 1,500개에 이르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초호화 호텔 아틀란티스가, 3위는 루마니아 의회궁, 4위는 체코 프라하에 위치한 지슈코브 텔레비전 타워, 5위는 미국 시애틀에 있는 EMP(Experience Music Project)박물관이 차지했다. 이밖에 베트남 하노이의 호치민 묘소(6위), 영국 리버풀의 메트로폴리탄 대성당(7위), 미국 포틀랜드의 포틀랜드 빌딩(8위), 엽전모양으로 유명한 중국 선양의 팡위안(方圓) 빌딩(9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페트로브라스 본사’(10위)가 이름을 올려 체면을 구겼다.   CNNgo측은 “‘가장 보기 흉한 건물’이라는 제목보다 더 정확히 어울리는 제목은 ‘세계에서 가장 불화를 일으키는 건물’”이라며 “미적 기준은 주관적 요소가 강해 순위에 논란의 여지는 있다.”고 밝혔다. 사진=팡위안 빌딩(좌측), 류경호텔(우측)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26일 민주통합당 예비경선 3대 포인트

    26일 민주통합당 예비경선 3대 포인트

    26일 열리는 민주통합당의 예비경선은 차기 대권주자 구도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순위권 싸움이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친노(친노무현)계의 대부활이 이뤄질지, 시민세력 대 민주당 조직선거의 대결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각 후보들의 합종연횡이 어떻게 이뤄질지가 관전 포인트다. 예비선거에서는 민주당 측 462명, 시민통합당 측 300명 등 중앙위원 762명이 1인당 3표씩 투표권을 행사한다. 각 후보들로서는 최소 120∼150표 정도는 얻어야 전체 15명 중 9명이 진출하는 본선 턱걸이가 가능하다. ●‘1위 경합’ 한명숙·문성근 좁혀져 현재 1위 싸움은 한명숙 후보와 문성근 후보 간 경합으로 좁혀지는 분위기다. 두 후보 모두 당 안팎 친노계의 지원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1, 2위를 거머쥘 경우 사실상 친노계의 화려한 부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정세균 상임고문은 각각 문 후보와 한 후보를 밀고 있다. 그들이 상위 성적으로 본선 티켓을 따낸다면 시민선거인단이 대폭 참여할 것으로 보이는 1·15 지도부 선출 대회에서는 당 지도부 재편에 있어 친노가 주도권을 장악할 것으로 보인다. 순위 구도에 따라 당내 위상이나 지역 공천에 영향을 미칠 후보도 있다. 통합과정에서 당내 폭력 시비 배후로 표가 빠졌다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 이후 다시 조명을 받고 있는 박지원 후보가 대표적이다. 당내에서는 내년 총선 정국을 감안해 호남권 배려 차원에서라도 박 후보의 상위권 진입이 가능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특히 통합 이후 당내 화학적 결합이 원만하지 못하다는 평가가 잇따르면 박 후보로 표가 재결집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6위 안에 들어갈 인물로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대중성과 당내 정책위의장로서 호평을 받았던 박영선 후보, ‘세대교체’를 외치며 대권주자인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와 486(40대·80년대 학번·60년대생)그룹의 지지를 받고 있는 이인영 후보, 대권을 노리는 정동영 상임고문이 지원하고 시민사회계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이종걸 후보 등이 거론되고 있다. 시민통합당 출신들이 똘똘 뭉쳐 시민사회계 대표들에게 표를 몰아줄 경우 김기식·이학영 후보도 진입 가능성이 점쳐진다. ●향후 총선 공천까지 영향 미칠 듯 이번 선거에서 시민세력과 민주당 조직 간의 대결은 향후 총선 공천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9위권 내에 막차를 탈 인물로는 한나라당 텃밭인 대구 불모지 출마에 배수진을 친 김부겸 의원, 이강래 전 원내대표 등이 예상된다. 각 캠프에서 전략적 배제투표와 후보들 간 합종연횡을 벌일 경우 커트라인에 몰려 있는 후보들의 당락은 언제든지 뒤바뀔 수 있다. ●9명 본선 진출… 표심 잡기 올인 경선을 하루 앞둔 당권주자들은 중앙위원들의 표심을 잡기 위해 올인했다. 각 후보들은 자신이 앞서 몸담았던 당 출신 중앙위원들에게 한표를 호소했다. 성탄 연휴를 적극 활용해 일일이 전화를 걸거나 문자 메시지를 통해 대면 접촉을 강화했다. 현장 연설이 당락을 좌우할 수 있는 만큼 5분짜리 연설문 준비에도 만전을 기했다. 한 후보는 마지막까지 직접 연락을 돌려 지지를 호소하고 연설문을 가다듬었다. 판세가 유리하다고 보고 있지만 시민사회계의 표 몰아주기에 따라 결과가 바뀔 수 있는 만큼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문 후보는 24일 ‘나는꼼수다’ 패널이자 26일 BBK사건 허위사실 유포죄 확정으로 구치소 입감을 앞두고 있는 정봉주 전 민주당 의원과 함께 아버지인 고(故) 문익환 목사의 경기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 묘소를 참배했다. 박지원 후보는 지역구인 목포에 내려가서도 중앙위원들에게 전화를 돌려 표를 다졌다. 순위권 내 진입이 불확실한 ‘마이너 후보’들은 읍소 전략을 펼쳤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용산, 효창공원 금연구역 지정

    내년 4월부터 용산구 효창동 효창공원에서 담배를 피우면 과태료 10만원이 부과된다. 용산구는 ‘용산구 금연구역 지정 및 간접흡연 피해방지 조례’가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됨에 따라 효창공원을 자역 첫 금연구역으로 지정한다고 22일 밝혔다. 3월까지 계도 및 홍보기간을 거친다. 용산구는 ‘담배연기 없는 도시 만들기’를 위해 지난 10월 해당 조례를 공포했다. 개정된 국민건강증진법은 지방자치단체가 간접흡연 위험이 높은 장소를 자체 금연구역으로 지정하고 위반 땐 과태료를 물릴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효창공원은 백범 김구 등 애국지사 묘소를 포함한 데다 효창어린이공원, 효창운동장 등과 가까워 시민들의 발길이 붐비는 곳이다. 용산구는 금역구역 시범운영 뒤 성과에 따라 추가 지정 등을 검토할 계획이다. 단속반 2개조가 2인 1조로 교대하며 계도 및 단속 활동을 편다. 담배 없는 도시 만들기는 성장현 구청장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된 사업으로 알려졌다. 성 구청장은 10여년 전 담배를 끊고 지금까지 금연을 실천하고 있다. 앞서 용산구는 한남동 오거리~유엔 빌리지 1.36㎞ 구간을 금연홍보거리로 조성해 금연문화 확산 캠페인 등을 벌이고 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59) 김제 망해사 팽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59) 김제 망해사 팽나무

    ‘침묵의 봄’으로 유명한 지난 세기 최고의 해양생태학자 레이철 카슨(1907~1964)은 유고집 ‘자연,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에서 “자연을 ‘아는 것’은 자연을 ‘느끼는 것’의 절반만큼도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자연에 진정으로 다가서기 위해서는 그 어떤 지식보다 자연으로부터 경이로움을 느끼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올바른 지식과 지혜는 “자연에 대한 감정과 인상이 튼튼한 바탕을 이루어야 열매 맺게 된다.”고 강조한 것이다. 그래서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뭇 생명을 만나는 데에 있어서 상대의 이름을 안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거니와 길고 깊은 만남을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름을 알기 전에 거쳐야 할 다른 과정은 없을까. 꽃도 잎도 열매도 모두 내려놓은 겨울 나무는 그의 이름을 알기 어려워지기 때문에 떠오르는 생각이다. ●지식보다는 감성으로 지켜온 나무 사람이나 짐승에게 그렇듯이 나무의 이름도 그의 특징을 드러내는 한 표징이다. 그래서 이름을 잘 알아두면 그 나무와 더 빠르고 깊이 친해질 수 있다. 그렇다면 이름을 모르거나 혹은 잘못 아는 나무와의 관계는 어떠할까. 전북 김제의 너른 만경벌 끝자락 바닷가에 자리 잡은 망해사에서 400년을 살아온 한 쌍의 나무 앞에 서면, 이 같은 의문이 구체적인 현실을 만나게 된다. 이 나무는 봄에 노란색 꽃을 피우고 가을이면 까만색 열매가 조롱조롱 맺히는 팽나무다. 그게 이 나무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정보다. 그러나 절집에서나 마을에서나 이 나무를 팽나무라고 부르는 사람은 많지 않다. 비슷하게 가지를 넓게 펼치는 느티나무와 헷갈려 잘못 부르는 것도 아니다. 한 쌍의 나무 가운데 비교적 우뚝 선 큰 나무를 사람들은 ‘할배나무’라고 부르고 조금 작은 옆의 나무를 ‘할매나무’라고 부를 뿐이다. 전라북도 지방기념물 제114호인 이 나무 앞에는 지자체에서 정성들여 세운 입간판이 있다. 거기엔 분명히 ‘망해사 팽나무’라고 씌어 있지만, 그게 무슨 대수인가. 입간판 바로 앞에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할배나무 할매나무라고 부른다. 사람의 호칭인 ‘할배’, ‘할매’가 어찌 나무의 이름이 될 수 있겠는가. 게다가 식물학적으로 따지고 들면 이 같은 호칭은 이치에도 맞지 않다. 팽나무는 은행나무나 비자나무처럼 암나무와 수나무가 따로 있는 암수딴그루가 아니다. 굳이 할배 할매처럼 성(性)을 구별해 부르려면 최소한 암수로 구분되는 나무여야 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이 같은 지식은 소용에 닿지 않았다. 절집 요사채 앞마당에 너그러운 품으로 서 있는 나무를 보고, 사람들은 고향의 할머니 할아버지를 떠올린 건지 모른다. 게다가 400년을 살아온 나무이니, 나이로 치면 영원한 할배 할매가 아닐 수 없었다. ●400년 전 진묵 대사가 심어 망해사 팽나무는 400년 전 이 절에 주석한 진묵(震默, 1562~1633) 대사가 심은 나무라고 한다. 망해사는 신라 문무왕 11년(671)에 지은 천년고찰이지만 여러 차례의 부침을 겪은 뒤 조선의 대표적 선승(禪僧) 가운데 한 사람인 진묵이 주석하면서부터 인근에 사세를 널리 떨쳤다. 진묵은 망해사에 주석하면서 한 채의 전각을 짓고, 법당이자 요사채로 사용했다. 소박한 전각이지만 서해 낙조의 아름다운 풍광을 즐길 수 있는 곳이어서, 낙서전(西殿)이라는 당호를 붙였다. 낙서전을 지은 뒤에 진묵은 그리 넓지 않은 앞뜰에 나무를 심었다. 바닷바람을 막으려는 뜻도 있었겠지만 작은 마당이 허허로운 탓이기도 했다. 그때가 1624년, 지금으로부터 400년 전이다. 두 그루 가운데 할배나무로 불리는 큰 쪽의 나무는 키가 21m나 되고, 가지는 사방으로 고르게 25m 가까이 펼쳤다. 그 곁에 다소곳이 서 있는 할매나무는 키가 17m, 가지퍼짐은 사방으로 17m쯤 된다. 할배나무보다는 작지만 이 정도면 우리나라의 여느 팽나무에 비해 결코 작은 규모가 아니다. 나무가 전체적으로 순한 동그라미 모습을 갖춘 것도 사람들에게 고향 집 할머니의 너그러운 품을 떠올리게 했을 게다. 한 쌍의 팽나무는 적당히 거리를 두고, 그윽한 눈길을 데면데면 나누며 400년이라는 긴 세월을 살아왔다. 마치 겉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평생 드러내지 않으면서 마음속으로만 서로를 보듬어 안고 살아가는 우리네 할머니 할아버지의 성정과 분위기를 영락없이 닮았다. 이 나무가 팽나무인지 느티나무인지 소나무인지를 아는 게 과연 사람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일까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의 마을로 닥쳐오는 칼바람을 온몸으로 막으며 우리네 할매와 할배처럼 세상살이에 지친 영혼을 위무하고 지켜온 세월이 400년이다. 더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서해바다 지금은 새만금 방조제로 주지 스님이 출타 중인 오붓한 절집 망해사에 가톨릭 교회의 수녀님 다섯 분이 찾아 들었다. 김제 시내의 성당에 살면서도 멀지 않은 망해사를 찾아오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바다를 바라보아 망해사라고 했지만, 지금은 새만금 방조제에 막혔으니 호수 호(湖)자를 써서 망호사라 해야 하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절집을 이리저리 구경하던 수녀님들 가운데 가장 젊어 보이는 수녀님이 홀로 할배나무 앞의 입간판을 유심히 읽은 뒤, 칼바람에 윙윙거리는 나뭇가지 끝을 바라보며 ‘팽나무’라고 분명하게 소리 내어 나무의 이름을 불렀다. ‘망해사’가 아니라 ‘망호사’라 부르고 싶은 것처럼 그 나무는 ‘팽나무가 아니라, 할배나무예요’라고 고쳐 주려다 그만두었다. 이름보다 더 귀중한 것이 삶의 진정성, 느낌, 인상 그런 감정에서 오는 게 아닌가 하는 마음에서였다. 세상에 떠도는 모든 이름들이 허공으로 산산이 부서져 흩어지는 겨울 오후다. 글 사진 김제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 가는 길 전북 김제시 진봉면 심포리 1004. 서해안고속국도의 동군산나들목으로 나가서 전주 방면으로 직진한다. 대야교차로를 지나 5.6㎞ 남쪽으로 가면 다시 신금교차로가 나온다. 우회전하여 지방도로 711호선을 이용해 5㎞ 남짓 간다. 만경여자중학교 앞의 사거리에서 우회전하여 광할 방면으로 지평선을 바라보며 9.5㎞ 간다. 오른편으로 나오는 심창초등학교를 지나면 ‘망해사’ 혹은 ‘곽경렬선생묘소’ 방면을 가리키는 안내판이 나온다. 우회전하여 300m 가면 망해사 입구다. 절집까지는 자동차를 주차할 수 있는 솔숲에서 걸어가야 한다.
  • 한명숙 “이명박 정권 반드시 심판” 문성근 “시민과 손잡고 총선 승리”

    한명숙 “이명박 정권 반드시 심판” 문성근 “시민과 손잡고 총선 승리”

    한명숙(왼쪽) 전 국무총리와 문성근(오른쪽) 전 ‘국민의명령’ 대표가 19일 민주통합당 당권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양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두 사람의 출마 선언으로 민주통합당 지도부 경선 레이스가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한명숙 전 총리는 이날 서울 영등포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정권 교체는 한명숙의 마지막 소임”이라면서 “반드시 빼앗긴 민주정부의 꿈을 되찾고 싶다.”고 출사표를 던졌다. 당 대표 출마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2년여간 갇혀 있던 검찰의 덫에서 벗어난 한 전 총리의 정치적 재활이자 ‘정치인 한명숙’의 마무리 행보이기도 하다. 특히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을 겨냥해 “대권주자가 비대위원장으로 나서 혁신한다는 것은 자신의 권력 강화를 목표로 할 수밖에 없다.”면서 “이명박 정권을 심판하고, 이 나라를 또다시 과거로 퇴행시킬 박 비대위원장과 맞서 반드시 승리하겠다.”고 다짐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에 조의를 표하며 “정부도 조의 문제에 인도주의적 관점을 가질 것을 당부한다.”고 촉구했다. 한 전 총리는 이날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찾은 데 이어 20일엔 봉하마을을 방문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한 뒤 부산에서 검찰개혁을 주제로 한 북 콘서트를 연다. 민주진보 진영을 아우르는 ‘대표 선수’임을 강조하려는 의중이다. 문성근 국민의명령 대표도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출마 기자회견을 갖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망연자실한 채 주저앉아 있었지만 언제까지 뒤돌아보기만 할 수 없다.”면서 “시민과 함께 총선 승리와 정권 교체를 이룰 것”이라고 다짐했다. 문 대표 역시 김 국방위원장 사망에 조의를 전하며 “김 국방위원장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과 한반도의 평화공존과 상호번영을 위해 6·15선언과 10·4선언을 발표했다. 이 정신은 이후에도 존중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문 대표는 기자회견에 앞서 영등포당사에 들러 당직자들과 상견례를 가진 뒤 마석모란공원 민주열사 묘역에 참배하는 것으로 출마 행보를 이어 갔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한글 수집품 국내 최다… 청소년 교육의 장으로”

    “한글 수집품 국내 최다… 청소년 교육의 장으로”

    드라마 촬영지로 이름 난 전남 순천의 낙안읍성을 꼭 찾아야 할 이유가 하나 늘었다. 한글과 전통 문화를 고집스럽게도 지켜내려 했던 고(故) 한창기 선생이 평생 모은 유물들을 한자리에 모은 뿌리깊은나무박물관이 지난달 21일 읍성 들머리에서 100m 떨어진 곳에 문을 열었다. 순천시에서 21억원을 지원받아 시립 간판이 붙여졌지만 1736㎡의 터에 들어선 전시관과 8채의 한옥을 오롯이 채운 것은 고인의 열정과 집념이었다. 단원 김홍도의 낙관이 찍힌 ‘창해낭구도’, 신사임당의 것으로 보이는 ‘초충도’를 비롯해 진귀한 문화재와 민속품 등 6500여점 가운데 800여점을 우선 선보이고 앞으로 수장고에 보관된 것들과 번갈아 전시된다. 박물관 건립에 헌신해 온 차정금(59) 뿌리깊은나무재단 이사장을 만났다. 그는 1997년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 한창기 선생의 제수로, 형의 유지를 이으려 재단을 설립한 남편 상훈씨마저 이듬해 역시 간암으로 떠나자 재단 일을 도맡아 왔다. →박물관을 세우겠다는 뜻을 14년 동안 꺾지 않은 이유는. -유언집행인 한 분이 국립중앙박물관에 모두 기증하고 받는 20억원의 보상금으로 다른 기념사업을 하자고 했다. 그런데 시숙의 유물들이 중앙박물관에 가면 국보급 유물들에 가려 햇빛 한 번 보지 못한 채 수장고에 묵히게 된다. 그러면 한창기 선생은 없어지는 것인데 그분의 존재가 없어지는 일을 가족으로서 할 수 없었다. →지난달 개관식 뒤 곧바로 시숙(媤叔)의 묘소를 찾았다는데. -힘들게 완공하고 나니 감회가 새로웠다. ‘시숙님, (생전에 원하시던 일) 다 해놨어요.’라고 말했어요. 이렇게 어려운 일을 맡겨 놓고 가셨는데 해낸 것을 보고 장한 일 했다고 하실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기뻤다. →영화 ‘서편제’를 촬영한 한옥이 눈에 띈다. -90년 전 구례 산적리에 백경 김무규 선생의 부친이 지은 것이다. 80년대 초에 시숙이 사고 싶어 했는데 형편이 되지 않았다. 2001년에 처음 보러 갔는데 다 허물어져 있어 김홍남 전 국립박물관장 등이 너무 안타까워했다. 구례군수를 찾아가 “보존해야 한다.”고 했더니 ‘사유재산이고 경주 다음으로 문화재가 많아 관리할 수가 없다.’는 답을 들었다. 그래서 터를 잡아 박물관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정민숙 가구박물관장이 옮겨 오는 아이디어를 내 그렇게 했다. →생전에 선생의 고집이 대단했다. -잡지 ‘뿌리 깊은 나무’를 창간할 때 영어나 한문을 한 글자도 넣지 않고 편집했다. 브리태니커백과사전을 팔아 돈을 벌 정도로 영어를 잘했는데 그랬다. ‘삼국지’ ‘옥련몽’ 등 한글소설과 조선후기 목판 등 한글 관련 수집품으로선 국내에서 가장 많다. 유물들도 돈되는 것보다 민속품을 주로 모았다. 신발도 짚신, 아녀자들의 꽃신, 궁중에서 신던 것까지 시리즈로 죄다 모았다. 재물의 가치로 보지 않고 우리 문화의 맥을 짚는 물건으로 보았으면 좋겠다. →관람객들의 반응은. -시골 박물관이라고 우습게 여겼다가 규모 면에서나 수집된 물품들의 가치를 보며 많이 감탄한다. →앞으로의 꿈은. -선생의 소중한 뜻과 이룬 것들을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 가르치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됐으면 좋겠다. 고인보다 더 큰 이상을 좇으며 성장했으면 한다. 또 안경이나 회중시계 등 개인 유품을 순천의 아파트에 보관 중인데 따로 전시할 수 있으면 더 바랄 게 없겠다. 글 사진 순천 문성호 PD sungho@seoul.co.kr ■9일 밤 7시 30분 케이블 채널 서울신문STV ‘TV 쏙 서울신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최루탄·고성 아수라장… 4년4개월 끌다 5분만에 가결

    최루탄·고성 아수라장… 4년4개월 끌다 5분만에 가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4년 4개월 만인 22일 오후 국회 비준동의안은 불과 1시간 30여분 사이 속전속결로 처리됐다. 한나라당의 ‘연막 작전’이 주효했다.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등은 한나라당의 단독 처리에 반발했지만 우려했던 몸싸움은 빚어지지 않았다. 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이 최루탄을 들고 와 본회의 개의 직전 단상 앞에서 터뜨리는 돌발상황이 빚어졌으나 큰 충돌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박희태 국회의장은 이날 오후 3시를 기해 본회의 소집을 전격적으로 결정했다. 5분 뒤에는 본회의장 질서 유지를 위한 경호권까지 발동했다. 이에 따라 국회 본회의장으로 연결되는 국회 본관 정현문 등지에 경찰이 배치돼 출입을 통제했다. 앞서 박 의장은 오후 4시까지 한·미 FTA 비준안에 대한 심사를 마쳐 달라고 여야에 요청한 상태였다. 4시 이후 비준안을 직권상정하겠다는 뜻을 예고한 것이다. 당초 본회의는 24일로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국회가 휴회 결의를 하지 않은 만큼 언제든지 본회의를 열 수 있다는 게 한나라당 설명이다. 야당 입장에서는 허를 찔린 셈이다. 반면 여당은 지도부를 중심으로 사전 교감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박 의장은 이날 연암 박지원의 손자이자 개화파 선구자인 박규수의 묘소를 방문하기 위해 충남 부여를 찾아 자리를 비웠고, 오후 2시로 예고된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는 내년도 예산안만 다룬다고 선을 그었다. 야당의 경계심을 늦추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그러나 의총 시작 10분 전부터 이상 징후가 감지됐다. 의총 개최 장소가 본청 2층에서 본회의장 맞은편인 3층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장으로 변경됐다. 홍준표 대표는 의총 모두 발언에서 “오늘 안 온 사람이 많다.”면서 “중요한 의총, 국익을 가름 짓는 의총에 나오지 않는 분은 뭐하려고 한나라당 의원으로 출마합니까.”라면서 본회의 개최를 암시하는 발언을 했다. 이어 황우여 원내대표는 2시 50분쯤 의총 도중 “(비준안을) 오늘 본회의장에서 통과시키자.”고 제안했다. 의총에 참석했던 의원 130여명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3시 8분 이명규 원내수석부대표를 선두로 일제히 본회의장으로 향했다. 의총에 불참했던 박근혜 전 대표도 이 대열에 합류해 본회의장으로 들어갔으며, “오늘 표결 처리하느냐.”는 물음에 “네.”라고 답변해 당 지도부와 사전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때 민주당 지도부는 김성곤·강창일 의원 출판기념회에 참석 중이었다. 3시 11분 소속 의원을 상대로 긴급 소집 문자가 일제히 발송됐다. 3시 26분 모습을 드러낸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국민들의 뜻을 무시하고 비준안을 강행 처리하면 안 된다.”면서 굳은 표정으로 본회의장에 입장했다. 본회의는 한나라당의 표결에 의해 비공개로 진행됐다. 경호권 발동으로 국회 본회의장에는 국회의원과 의사진행을 위한 국회 사무처 직원들을 제외하고 취재진 등 외부인들은 일절 출입이 금지됐다. 방청석도 폐쇄됐다. 민주당 의원 중 가장 먼저 본회의장에 입장한 강기정 의원은 내부 상황을 휴대전화로 직접 촬영한 뒤 기자들에게 공개하기도 했다. 의장석에는 박 의장으로부터 본회의 사회권을 넘겨 받은 정의화 부의장이 앉았다. 의장석으로 이어지는 양측 진입로는 경위들이 에워쌌다. 예결위 야당 간사인 강 의원은 “한나라당이 의총을 핑계로 예결위 개최 시간을 늦췄는데, 본회의 소집을 요구한 것은 약속 위반”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 김진표 원내대표 등도 정 부의장에게 강력히 항의했다. 국회방송으로 본회의장 상황이 중계되지 않고 있는 데 대해서는 “회의를 공개하라.”고 목청을 높였다. 3시 50분쯤 자유선진당 이회창 전 대표 등 자유선진당 소속 의원 8명도 본회의장에 입장했다. 류근찬 의원은 “의결정족수가 채워지면 표결에 참여하겠다.”고 말했다. 비준안에 대한 강행 처리 가능성이 높아지자 민주당은 3시 55분 전원위원회 소집을 요구했으나 정 부의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어 4시 5분에는 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이 본회의장 의장석 앞에서 최루탄을 터뜨려 매케한 냄새가 진동했다. 내부에 있던 여야 의원들 중 일부는 눈물을 쏟아내며 밖으로 황급히 빠져나오기도 했다. 비슷한 시간, 야당 보좌진 등은 본회의장 관람석 등으로 통하는 유리문을 깨부순 뒤 진입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경위들과 몸싸움이 빚어졌고 김선동 의원 등은 경위들에게 끌려나가 격리 조치됐다. 결국 정 부의장은 4시 23분 본회의 개회를 선언한 뒤 비준안을 표결에 부쳐 5분 만인 28분 가결처리했다. 민주당 의원들이 단상 앞으로 몰려나와 고성을 지르며 항의했으나 표결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표결에는 총정원 169명인 한나라당 의원 대다수와 자유선진당 의원 8명, 창조한국당 의원 1명 등 170명이 참여했다. 민주당과 민노당 의원들은 모두 표결에 불참했다. 151명이 찬성하고 7명이 반대, 12명이 기권한 표결 결과로 볼 때 한나라당 협상파 의원 대부분도 표결에 참여한 것으로 풀이된다. 반대표는 선진당 의원 6명과 한나라당 황영철 의원이 던진 것으로 전해졌다. 장세훈·이현정·이재연기자 shjang@seoul.co.kr
  •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28) 다발성 손상이 남긴 진실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28) 다발성 손상이 남긴 진실

    2004년 4월 28일 경기 안성시 외곽의 도로변 산자락. 나물을 뜯던 동네 여인들이 뼈만 남은 사람 팔을 발견했다. 바로 옆 헤집어진 흙바닥 틈으로는 백골이 된 머리뼈도 보였다. 주변엔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 굶주린 산짐승들이 누군가의 묘소를 건드렸다는 생각에 사람들은 소름이 돋았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겨우 추슬러 쏜살같이 산을 내려왔다. 이 얘기를 전해 들은 동네 어른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갸웃했다. 정상적으로 묘를 썼다면 그렇게 동물이 시신을 훼손할 정도로 얕게 묻을 리도, 근처에 썩는 냄새가 진동할 리도 없다고 입을 모았다. 주민들의 신고를 받고 도착한 경찰 감식반은 엎어진 채 매장돼 있는 여성의 시체를 발견했다. 시신은 땅바닥에서 30㎝ 정도 깊이에 묻혀 있었다. 마음이 급한 누군가가 시신을 숨기려 한 정황이 역력했다. 최초 팔이 발견된 곳으로부터 서너 걸음 떨어진 곳에서는 다른 신체의 일부도 발견됐다. 산짐승들 때문에 주검은 비록 여기저기 흩어졌지만, 결과적으로 그 덕에 여성은 억울함을 풀 기회를 얻었다. 여성은 분홍색 반소매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키는 170㎝가량. 비교적 큰 체구였다. 하지만 그 이상을 알아내기는 어려웠다. 신분증이나 지갑이 없었고, 손가락은 심하게 부패해 지문 채취가 불가능했다. 감식반은 시신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옮긴 뒤 실종자 명단을 뒤지기 시작했다. ●교통사고·추락사고로 인한 메세레르 골절 시신은 숨을 거둘 당시의 정황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사인은 다발성 손상. 부러진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갈비뼈는 무려 17곳이 나갔다. 부검의는 여성의 왼쪽 다리 뼈와 아래·위 팔뼈를 유심히 살폈다. 부러진 곳은 하나같이 쐐기 모양을 하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충격에 순간적으로 휘어지던 뼈가 더 버티지 못하고 충격의 반대 방향으로 비스듬하게 갈라진 모습이었다. 메세레르 골절. 교통사고나 추락사고 등으로 신체가 강한 충격을 받았을 때 생기는 손상이다. 경찰은 일단 그녀가 교통사고나 추락사고 등으로 숨진 뒤 이곳에 매장된 것으로 추리했다. 그렇다면 추락과 교통사고 중 어느 것이 원인이었을까. 비밀은 부러진 다리뼈에 숨어 있었다. 부검의는 뼈를 추슬러 부러진 부위의 정확한 높이를 쟀다. 사인이 교통사고였다면 그녀의 다리뼈에는 자동차 범퍼와 부딪칠 때 생긴 골절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자동차 범퍼의 높이는 차종마다 다르다. 일반 세단형 승용차는 50㎝ 안팎이고 소형 트럭이나 소형 버스는 60㎝,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나 대형 트럭, 버스 등은 이보다 높다. 여기에는 물론 변수가 있다. 급제동 여부다. 브레이크를 강하게 밟는 순간 자동차 앞부분이 아래로 숙여지기 때문에 손상 부위가 실제 범퍼의 높이보다 낮은 곳에 자리 잡게 된다. 사고 당시 신발의 높이도 변수가 된다. 숨진 여성의 넓적다리뼈는 발바닥으로부터 65㎝ 정도 높이에서 부러져 있었다. 결론적으로 여성은 승용차보다는 범퍼가 높이 달린 트럭이나 SUV 등에 부딪혔을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이 나왔다. 여기서 잠깐, 보행자가 차와 부딪쳤을 때 뼈가 견뎌낼 수 있는 강도를 따져 보자. 흔히 예상하는 것보다 세지 않다. 건강한 성인 남자라도 시속 25㎞로 서행하는 경차(약 650~700㎏)와 부딪쳐 뼈가 부러질 수 있다. 경차의 속도가 시속 45㎞까지 올라간다면 부딪힌 사람은 예외 없이 뼈가 부러진다. 물론 뼈가 약한 여자나 노인, 아이들은 더 작은 충격에도 뼈가 부러진다. 여성의 신원이 확인됐다. 열 달 전 집을 나가 소식이 끊긴 인근 동네 새댁 A(당시 33세)씨였다. 이가 빠진 모양과 키, 사라질 당시 입고 있던 옷, 나이답지 않게 많았던 새치까지 모든 것이 일치했다. 2003년 7월 초 A씨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구멍가게 여주인이었다. “아마, 가게 문 닫을 시간이었죠. 밤 10시 20분쯤 남편 끓여 준다며 라면을 사 갔어요. 아… 새댁이 나간 후 ‘쿵’ 하는 소리가 났어요. 무슨 일이 있나 나가 봤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더라고요.” ●10개월 전 현장에 떨어진 손톱만한 크기의 증거 강력반 형사들은 그녀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했고, 사고 차량의 운전자가 시신을 숨겼다고 판단했다. 이제 10개월 전 인적 드문 시골길에서 뺑소니를 친 범인을 찾을 차례. 막막해하는 형사들에게 반장은 호미를 하나씩 건넸다. “다들 현장에 나가서 후딱 증거 찾아와.” 산도적 같은 덩치의 강력반 형사들은 투덜거리며 호미를 들고 A씨의 예상 경로를 따라 길가를 뒤졌다. 그렇게 현장 뒤지기를 몇 시간. 한쪽에서 “찾았다.”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두께 5㎜, 지름 2~3㎝ 정도의 엄지손톱 크기만 한 플라스틱 조각 3개였다. 그곳에서는 몇년 동안 한 건의 교통사고도 없었다. 경찰은 차량정비 전문가들을 통해 그 조각들이 1991~1996년식 SUV 갤로퍼의 방향지시등 덮개임을 알아냈다. 당시 안성과 충북 진천 등 그 일대의 해당 차종 소유자는 286명이었다. 경찰은 이들을 상대로 A씨가 사라진 당일의 행적과 차량 보험처리 여부, 방향지시등 교체 여부 등을 조사했다. 한 명씩 용의선상 인물을 좁혀 가는 과정에서 범인이 먼저 움직였다. 최근 방향지시등은 물론 엔진까지 교체한 같은 동네 주민 B(43)씨였다. 그가 경찰 조사를 받은 뒤 바로 잠적해 버린 것이었다. 그는 도주 과정에서 가족에게 뺑소니와 암매장 사실을 시인했다. 경찰은 안성 시내를 뒤져 B씨를 검거했다. 그런 독한 짓을 했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날 밤 B씨는 시내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고 말했다. 앞에서 오는 대형 트럭의 전조등이 시야를 가리는 순간 차량 오른쪽이 뭔가를 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 그는 ‘들짐승이겠지’ 하는 생각에 그냥 차를 몰았다고 했다. 하지만 불안한 마음이 들었고, 몇 시간 뒤 다시 돌아와 살펴보니 논두렁에 A씨가 쓰러져 있었다고 했다. 논두렁에서 새댁을 꺼내 차에 실은 그는 차를 몰았다. 우선 달아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갈림길이 나왔다. 한쪽은 병원을, 다른 한쪽은 산을 향하는 길이었다. 핸들의 방향에 따라 그의 운명이 바뀌는 자리였다. 잠시 후 그의 차는 산쪽을 향하고 있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28)부러진 뼈의 모양이 일러준 사고의 진실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28)부러진 뼈의 모양이 일러준 사고의 진실

     2004년 4월 28일 경기도 안성시 외곽의 도로변 산자락. 나물을 뜯던 동네 여인들이 뼈만 남은 사람 팔을 발견했다. 바로 옆 헤집어진 흙바닥 틈으로는 역시 백골이 된 머리뼈도 보였다. 주변엔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 굶주린 산짐승들이 누군가의 묘소를 건드렸다는 생각에 사람들은 소름이 돋았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겨우 추슬러 쏜살같이 산을 내려왔다.  이 얘기를 전해들은 동네 어른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갸웃했다. 정상적으로 묘를 썼다면 그렇게 동물이 시신을 훼손할 정도로 얕게 묻을 리도, 근처에 썩는 냄새가 진동할 리도 없다고 입을 모았다.    ●쇄골모양으로 부러진 뼈…메세레르 골절  주민들의 신고를 받고 도착한 경찰 감식반은 엎어진 채 매장돼 있는 여성의 사체를 발견했다. 시신은 땅바닥에서 30㎝ 정도 깊이에 묻혀 있었다. 마음이 급한 누군가가 시신을 숨기려 한 정황이 역력했다. 최초 팔이 발견된 곳으로부터 서너 걸음 떨어진 곳에서는 다른 신체의 일부도 발견됐다. 산짐승들 때문에 비록 주검은 여기저기 흩어졌지만, 결과적으로 그 덕에 여성은 억울함을 풀 기회를 얻었다. 여성은 분홍색 반소매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키는 170㎝가량, 작지 않은 체구였다. 하지만 그 이상을 알아내기는 어려웠다. 신분증이나 지갑이 없었고, 손가락은 심하게 부패해 지문 채취가 불가능했다. 감식반은 시신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옮긴 뒤 실종자 명단을 뒤지기 시작했다.  시신은 숨을 거둘 당시의 정황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사인은 다발성 손상. 부러진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갈비뼈는 무려 17곳이 나갔다. 부검의는 여성의 왼쪽 넓적다리 뼈와 아래위 팔 뼈를 유심히 살폈다. 부러진 곳은 하나같이 쐐기 모양을 하고 있었다. 갑작스런 충격에 순간적으로 휘어지던 뼈가 더 버티지 못하고 충격의 반대방향으로 비스듬하게 갈라진 모습이었다.  메세레르 골절(Messerer´s fracture). 교통사고나 추락사고 등으로 신체가 강한 충격을 받았을 때 생기는 손상이다. 경찰은 일단 그녀가 교통사고나 추락사고 등으로 숨진 뒤 이곳에 매장된 것으로 추리했다.  그렇다면 추락과 교통사고 중 어느 것이 원인이었을까. 비밀은 부러진 넓적다리 뼈에 숨어 있었다. 부검의는 뼈를 추스러 부러진 부위의 정확한 높이를 쟀다. 사인이 교통사고였다면 그녀의 다리 뼈에는 자동차 범퍼와 부딪힐 때 생긴 골절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자동차 범퍼의 높이는 차종마다 다르다. 일반 세단형 승용차는 50㎝ 안팎이고 소형트럭이나 소형버스는 60㎝,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나 대형트럭, 버스 등은 이보다 높다.  여기에는 물론 변수가 있다. 급제동 여부다. 브레이크를 강하게 밟는 순간, 자동차 앞부분이 아래로 숙여지기 때문에 손상 부위가 실제 범퍼의 높이보다 낮은 곳에 자리잡게 된다. 사고 당시 신발의 높이도 변수가 된다. 숨진 여성의 넓적다리 뼈는 발바닥으로부터 65㎝ 정도 높이에서 부러져 있었다. 결론적으로 여성은 승용차보다는 범퍼가 높이 달린 트럭이나 SUV 등에 부딪혔을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이 나왔다.  여기서 잠깐, 보행자가 차와 부딪혔을 때 뼈가 견뎌낼 수 있는 강도를 따져보자. 흔히 예상하는 것보다 세지 않다. 건강한 성인 남자라도 시속 25㎞로 서행하는 경차(약 650~700㎏)와 부딪혀 뼈가 부러질 수 있다. 경차의 속도가 시속 45㎞까지 올라간다면 부딪힌 사람은 예외 없이 뼈가 부러진다. 물론 뼈가 약한 여자나 노인, 아이들은 더 작은 충격에도 뼈가 부러진다.  여성의 신원이 확인됐다. 열 달 전 집을 나가 소식이 끊긴 인근 동네 새댁 A씨(당시 33세)였다. 이가 빠진 모양과 키, 사라질 당시 입고 있던 옷, 나이 답지 않게 많았던 새치까지 모든 것이 일치했다.  2003년 7월 초 A씨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구멍가게 여주인이었다.  “아마. 가게 문닫을 시간이었죠. 밤 10시 20분쯤 남편 끓여준다며 라면을 사갔어요. 아…새댁이 나간 후 쿵하는 소리가 났어요. 무슨 일이 있나 나가봤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더라고요.”    ●10개월전 현장에 떨어진 손톱크기의 증거  강력반 형사들은 그녀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했고, 사고차량의 운전자가 시신을 숨겼다고 판단했다. 이제 10개월 전 인적드문 시골길에서 뺑소니를 낸 범인을 찾을 차례. 막막해 하는 형사들에게 반장은 호미를 하나씩 건넸다. “다들 현장에 나가서 후딱 증거 찾아와.”  산도적 같은 덩치의 강력반 형사들은 투덜거리며 호미를 들고 A씨의 예상 경로를 따라 길가를 뒤졌다. 그렇게 현장을 뒤지기를 몇시간. 저쪽에서 “찾았다.”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두께 5㎜, 지름 2~3㎝ 정도의 엄지손톱 크기만한 플라스틱 조각 3개였다. 그곳에서는 몇년 동안 한 건의 교통사고도 없었다. 경찰은 차량정비 전문가들을 통해 그 조각들이 1991년~1996년식 SUV 갤로퍼의 방향지시등 덮개임을 알아냈다.  당시 안성과 충북 진천 등 그 일대의 해당 차종 소유자는 286명이었다. 경찰은 이들을 상대로 A씨가 사라진 당일의 행적과 차량 보험처리 여부, 방향지시등 교체 여부 등을 조사했다.  한 명씩 용의선상 인물을 좁혀가는 과정에서 범인이 먼저 움직였다. 최근 방향지시등은 물론 엔진까지 교체한 같은 동네주민 B씨(43)였다. 그가 경찰 조사를 받은 뒤 바로 잠적해 버린 것이었다. 그는 도주과정에서 가족에게 뺑소니와 암매장 사실을 시인했다. 경찰은 안성 시내를 뒤져 B씨를 검거했다.  그런 독한 짓을 했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날 밤 B씨는 시내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고 말했다. 앞에서 오는 대형 트럭의 전조등이 시야를 가리는 순간. 차량 오른쪽이 뭔가를 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엔 그는 “들짐승이겠지.” 하는 생각에 그냥 차를 몰았다고 했다. 하지만, 불안한 마음이 들었고, 몇 시간 후 다시 돌아와 살펴보니 논두렁에 A씨가 쓰러져 있었다고 했다. 논두렁에서 새댁을 꺼내 차에 실은 그는 차를 몰았다. 우선 달아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갈림길이 나왔다. 한쪽은 병원을, 다른 한쪽은 산을 향하는 길이었다. 핸들의 방향에 따라 그의 운명이 바뀌는 자리였다. 잠시 후 그의 차는 산쪽을 향하고 있었다.  유영규기자whoami@seoul.co.kr 서울신문의 주간연재 기획물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에 보내주시는 독자 여러분의 성원과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지난 4월 16일 시작된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시리즈는 굵직한 사건현장을 누빈 베테랑 현장기자의 생생한 경험과 법의학 전문가들의 자문을 바탕으로 구성하는 서울신문의 특화기사입니다. 그동안 연재돼 온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의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크랩해 두시면 한편의 현장 과학수사의 사례집으로 활용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1) 데이트 강간을 위한 ‘악마의 술잔’ 한모금에 블랙아웃…24시간내 검사 못하면 미제사건 2) 죽음의 性도착증 ‘자기 색정사’ 혼절직전의 성적 쾌감 탐닉…‘질식에 중독되다’ 3) 부인을 죽인 건 오열했던 남편 사고로 위장한 최악의 선택…죽거나 혹은 더 나빠지거나 4) 아내의 눈속에 담긴 죽음의 비밀…흔해서 더욱 잔인한 교통사고 위장 살인 5) 강간 후 살해된 여성, 그리고 부검의 반전 죽을 때까지 여성이고 싶었던 남성의 사연 6) 살인현장 속 왠 대변(?)검사… 초미니 흔적 ‘미세증거물’ 속에 숨은 진실 7) 정자가 수상한 정액…씨없는 발바리’ 과학수사 얕봤다가 정관수술까지 한 연쇄 성폭행범 8) 엽기살인마는 피가 다르다(?) 혈흔 속 性염색체가 ‘악마의 姓’ 을 지목하다 9) “왜 그날 조폭은 남진의 허벅지를 찔렀나?”… 칼잡이는 당신의 ‘치명적 급소’를 노린다 10) 물 마신던 A씨의 갑작스런 사망 왜? 사람의 능력 이상으로 물 많이 마시면 생명 잃는다 11) 장문의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엄마…알고보니 생활반응은 죽음의 진실을 알고 있다 12) 불탄 시신의 마지막 호흡…그녀가 아들을 지목하다 화재사망 속 숨어있는 타살흔적 찾기 13) 車 운전석에서 질식해 숨진 그녀의 주먹쥔 양팔 14) 성형수술 자국이 일러준 주검의 주민번호 광대뼈 축소술, 동거男에 목졸린 백골의 한 풀다 15) 연쇄살인범에 당한 20대女…6년만의 대반전 연쇄살인 택시기사, 274만개의 눈 CCTV가… 16) 20대 여성이 남긴 마지막 글씨…살인자를 지목하다 찢어진 장부가 범인을 증언하다 17) 물속에서 떠오른 그녀의 흰손…살인자를 가리키다 바다에서 건진 토막시신의 신원찾기 18) 헤어드라이어 살인…‘전류반’은 못 숨겼네 몸에 남은 전기충격 자국이 완전범죄 밝혀내다 19) 자살이라 보기엔 너무 폭력적인 죽음…왜? 참혹한 죽음…가해자·피해자는 하나였다 20) 아파트 침대 밑 여성 시신 2구의 잔인한 진실게임…누명 벗겨준 거짓말 탐지기 21) 그 남자 노리는 ‘한밤 통증’… 동양인의 저주? 청장년 급사 증후군 22) 70% 부패한 시신… 말없이 증언하는 ‘어금니’ 억울한 죽음 단서 된 치아 23) 살인현장의 240㎜ 운동화…60대 노인의 트릭이었다 별무늬 자국의 비밀 24) 택시에 튄 흙탕물이 살인자를 뒤바뀌 놓다 돈 버리고 납치… 이상한 택시 강도 25) 담배꽁초에 묻은 립스틱 DNA 검사해보니 살인 현장에 남은 ‘그 남자’의 립스틱 26) 목졸려 숨진 60대 시신 크게 훼손됐는데… 범인의 속임수였다 ‘파란 옷’ 입었던 살인마 27) 흉기에 17번 찔려 죽은 여자 유일 목격자 경비 최면 걸자 법최면이 일러준 범인의 얼굴 28) 부러진 뼈의 모양이 일러준 사고의 진실…범퍼가 남긴 ‘메세레르 골절’
  • 첫 출근지 ‘노량진 시장’… 첫 결재 ‘무상급식 지원안’

    첫 출근지 ‘노량진 시장’… 첫 결재 ‘무상급식 지원안’

    박원순 새 서울시장의 첫 행보는 철저한 ‘민생 현장 중심’이었다. 이른 새벽 먼저 민생 현장에서 시민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며 하루를 힘차게 열어젖힌 박 시장은 다시 민생 현장에서 시민들의 애로사항을 들으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2년 8개월 임기의 첫 방문지는 동작구 노량진 수산시장이었다. 시민들의 먹을거리가 모여드는 시장을 가장 먼저 파격 방문함으로써 겉으로만이 아닌 진정한 ‘친서민’ 성향을 고스란히 내보인 셈이다. 박 시장은 예정보다 조금 늦은 오전 6시 30분쯤 서초구 방배동 자택에서 택시를 타고 나와 10여분쯤 뒤 수산시장에 도착했다. 남색 점퍼에 빨간 목도리를 걸친 수수한 차림새로 점포 곳곳을 누비며 상인들에게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하겠다. 힘좋은 생선처럼 팔팔 뛰겠다.”고 팔을 흔들며 당선사례를 했다. 박 시장을 알아본 상인들은 멀리서 뛰어와 반갑게 손을 잡거나 함께 휴대전화로 ‘셀카’를 찍었다. 박 시장은 특유의 선선한 웃음을 머금어 “감사하다.”는 말을 연발했다. 박 시장은 함께 아침 밥상거리를 사려 나온 신혼부부에게 “아기가 잘 크도록 도와 드리겠다.”며 “(아이를) 많이 낳아달라.”고도 했다. 서울시 차원에서의 보육 지원 의지가 엿보였다. 박 시장의 첫 일정을 보기 위해 새벽부터 나와 기다린 시민도 눈에 띄었다. 조유선(24·서강대 3년)씨는 “실제 만나 보니 생각한 대로 정말 서민 이미지를 닮았다.”고 평가했다. 수산시장에 이어 박 시장은 동작구 동작동 국립현충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검은 넥타이와 말쑥한 정장으로 갈아입은 박 시장은 현충탑, 무명용사탑,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묘소를 차례로 참배했다. 방명록에는 ‘함께 가는 길’이라고 서명해 짧지만 강한 메시지를 남겼다. 첫 출근길에선 지하철을 이용했다. 4호선 동작역을 출발해 서울역에서 환승, 1호선 시청역까지 20분 남짓 걸렸다. 평소에도 자주 지하철을 이용했다는 그는 직접 교통카드를 찍고 플랫폼에 들어서서는 시민들과 인사를 나눴다. 전동차가 출발하지 않자 “(나 때문에) 이거 잡은 겁니까? 빨리 가세요.”라며 불편한 마음을 살짝(?) 드러내기도 했다. 박 시장은 출근 후 가장 먼저 청사 1층 종합민원실을 방문해 직원들을 격려했다. 앞서 청사 앞에 대기 중인 취재진에게는 “즐거운 출근길이었다. 앞으로 어려움이 있겠지만 차근차근 상식과 합리에 기반해 풀어 가겠다.”고 소신을 밝혔다. 이어 간부들과 인사를 나눈 뒤 시정 현안을 보고 받았다. 이 자리에서 박 시장은 첫 결재로 ‘초등5·6학년 무상급식 지원안’에 사인을 했다. 오전 11시쯤에는 국회로 이동, 민주당 손학규 대표를 예방했다. 손 대표는 박 시장과 웃으며 악수한 뒤, “서울시장 선거의 가장 큰 의미는 변화였고, 우리 사회 변화의 물결이 와 있는데 그 선두에 박 시장이 있었다.”고 치켜세웠다. 박 시장은 “손 대표님이 저보다 더 열심히 뛰셨다.”면서 “경선 이후에도 저와 함께 해주신 걸 보면서 희망이 많은 정당이라고 생각한다.”고 화답했다. 박 시장은 시의회 의원들과 오찬을 가진 뒤 오후에는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 진보신당, 창조한국당을 차례로 예방했다. 박 시장은 오후 5시엔 영등포역 인근 쪽방촌을 둘러보며 실태를 확인하고, 상담소 관계자 및 쪽방생활자 등을 만나 현장의 목소리를 들었다. 강병철·황비웅기자 bckang@seoul.co.kr 사진 이언탁·도준석기자 utl@seoul.co.kr
  • 눈물 흘린 박근혜, 조카 은지원 만나다…

    눈물 흘린 박근혜, 조카 은지원 만나다…

    내년 총선·대선의 바로미터가 될 서울시장 보궐선거일인 26일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선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32주기 추도식이 열렸다. 이날은 역사적으로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닌 날이다. 1979년 궁정동 대통령 안가에서 당시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재규의 총탄에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한 것 외에도 1909년엔 안중근 의사가 중국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날이기도 하다. 특히 올해는 대선급 광역단체장 선거로 불리는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포함해 전국 42개 선거구에서 재·보선이 실시된 날로 기억될 것이다. 한나라당의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와 동생 지만씨 등 유족들은 물론이고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인 나경원 후보와 친박(친 박근혜)계 의원 30여명이 참석해 고인을 추념했다. 박 전 대표는 추도식 시작 10여분 전 검은색 정장 차림으로 식장을 찾았고, 뒤이어 나 후보가 도착하자 반갑게 악수하며 자리를 안내했다. 박 전 대표는 옆자리의 지만씨를 한 칸 옆으로 이동하게 한 뒤 나 후보를 유족석에 앉도록 배려했다. 초박빙의 선거구도로 인해 살인적인 선거일정을 소화해낸 나 후보는 전날 저녁 박 전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추도식 참석 의사를 밝힌 데 이어 이날 오전 중구 신당2동 장수경로당 투표소에서 한 표를 행사한 뒤 선대위의 강승규·이두아 의원 등과 함께 현충원을 찾았다. 그는 선거전 ‘강행군’으로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꼿꼿한 자세로 추도식을 지켜봤다. 지만씨는 유족 인사말을 통해 “아버지는 부의 양극화를 염려하고, 한국적 민주주의를 생각했다.”며 “국민 모두에 공평한 기회를 통한 선진 복지국가 건설이 아버지의 꿈이었다.”며 고인의 뜻을 기렸다. 이어 박세환 재향군인회장이 울먹이며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과거 사례를 말하자 박 전 대표도 만감이 교차하는 듯 입술을 굳게 깨물고는 붉어진 눈시울로 먼 산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그러나 끝내 눈물을 떨구지는 않았다. 박 전 대표는 추도식 전후 간간이 나 후보와 대화를 나눴고, 유족 인사말이 끝난 뒤 묘소로 자리를 옮기는 과정에서도 나 후보를 친절하게 안내하는 등 예를 갖췄다. 박 전 대표는 헌화와 분향을 마친 뒤 “(유족 대표로서) 저는 여기 남아서 오신 분들 손을 일일이 잡아드려야 한다.”면서 나 후보를 배웅했다. 특히 추도식에는 박 전 대표의 조카인 가수 은지원도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은지원은 고 박정희 전 대통령 누나의 손자로, 박 전 대표가 은지원의 5촌 당고모다. 이외에도 이해봉 허태열 안홍준 유정복 이성헌 이혜훈 정희수 최경환 구상찬 김옥이 배영식 손범규 이진복 이학재 이한성 조원진 허원제 의원 등 친박계 의원 30여명이 참석했고 조문객도 4000명에 육박하는 등 예년 수준을 크게 웃돌았다. 전광삼·이재연기자 hisam@seoul.co.kr
  • 장승배기, 동작의 랜드마크로 만든다

    “난제도 많지만 장승배기 개발은 필수적이다. 흑석·노량진 뉴타운과 각종 재개발·재건축 사업으로 동작의 지도가 바뀌고 있다. 특히 장승배기 도심개발은 미래 동작의 화룡점정이 될 것이다.” 문충실 동작구청장은 3일 “태스크포스(TF)로 운영되던 ‘장승배기 도심발전 추진단’을 최근 ‘도심발전 추진기획단’이라는 부서로 승격해 동작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면서 이같이 의욕을 다졌다. 지역 한가운데에 위치한 장승배기 일대는 지하철 7호선 장승배기역이 지나가고 1호선과 9호선이 만나는 노량진역이 인접한 교통 요충지다. 조선시대 정조(재위 1776~1800)가 경기도 수원에 위치한 아버지 사도세자 묘소에 참배하러 갈 때 “무사히 행차할 것”을 기원하며 장승을 세웠던 데서 지명이 유래했다. 그러나 장승배기는 오랫동안 개발이 이뤄지지 않아 지역 중심지 구실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이에 따라 구는 지난 4월부터 구의원과 도시계획 및 건축 등 각 분야 전문가 16명으로 이뤄진 자문단을 발족해 구체적인 계획안을 마련 중이다. 구는 장승배기를 관통하는 간선도로를 중심으로 구역을 나누고, 주변 노량진뉴타운 및 재개발 추진구역과 비슷한 수준의 개발 계획을 마련할 계획이다. 무엇보다 문 구청장의 의지가 굳다. 그는 “이곳을 동작의 랜드마크로 만들겠다.”며 “일대에 구청 등 행정기관을 이전해 상업과 행정이 어우러진 개발 청사진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주민추진협의회도 구성해 개발 초기단계부터 주민의사를 반영, 사업의 구상안을 선도적으로 수행하고 실현가능성을 높인다는 복안이다. 랜드마크에 걸맞게 바이어나 관광객들이 머물 수 있는 특급호텔을 유치하고, 구청과 경찰서 등 공공·행정기관 이전 등을 심도 있게 논의 중이다. 또 단순히 지나가는 곳이 아닌 사람들이 머물며 즐길 수 있도록 복합 쇼핑몰과 대형마트 등 건립도 고려하고 있다. 구 관계자는 “토지비율이 높은 곳을 선도 사업구역으로 선정해 추진하는 방법을 구상 중”이라면서 “이 경우 다음 단계 사업이 순차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선도사업의 용도, 위치, 규모 등에 대한 명확한 조건설정도 충분히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업을 위한 구역편성은 사업시행장에 초점을 맞출 예정이다. 주민의견 수렴을 통한 자율적 조합방식의 ‘공동개발구역’과 토지일괄매입 방식의 ‘민간사업자 개발구역’으로 나눠 추진하게 된다. 하지만 복병도 있다. 이 일대에는 4~5명씩 지분을 가진 단독상가가 많아 소유주들이 ‘필지 통합’에 동의해야 하고, 호텔과 쇼핑센터를 지으려고 해도 대규모 투자 또한 절대적이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故최진실 3주기 추모식

    고 최진실씨 3주기 추모식이 2일 오전 경기 양평 갑산공원 묘원에서 열렸다. 오전 10시 40분쯤 시작된 추모식에는 고인의 어머니 정옥숙씨와 진실씨의 두 자녀를 비롯해 동료 연예인 이영자·홍진경·조연우씨 등 30여명이 참석했다. 추모식은 1시간 동안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기독교식 추모 예배로 진행됐다. 가족과 친구들은 추모 예배 동안 차분하게 기도하고 찬송가를 부른 뒤 옆에 있는 동생 고 최진영씨의 묘소를 찾아 누나에 이어 작년에 세상을 떠난 고인을 기렸다. 최진실씨 측 관계자는 “작년보다 분위기가 많이 차분해졌다.”면서 “진실씨의 자녀들도 예전보다 많이 편해 보였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포토 에세이 | 중국 무이산

    포토 에세이 | 중국 무이산

    몇 년 전부터 차(茶)를 좋아하는 몇몇 차인(茶人)들이 중국의 남쪽 복건성(福建省)에 있는 무이산(武夷山)에 꼭 가보라고 했다. 무이산은 유네스코 세계자연문화유산에 등재된 중국 5대 명산(名山) 중의 하나이고, 중국에서 손꼽히는 무이암차(武夷岩茶)와 서양 홍차(紅茶)의 발원지라는 것이었다. 중국차의 근원을 알고 즐기려면 반드시 가봐야 할 차의 원산지라고 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조선조 때의 통치철학으로, 퇴계나 율곡에 의해 크게 발전했던 성리학의 뿌리인 주자학(朱子學)의 본고장으로 유명한 곳이다. 주자 주희(朱熹) 선생이 태어나서 학문을 닦고 대성(大成)한 뒤 세상을 떠나 묻혀 있는 유적지로 그 발자취가 곳곳에 남아 있다고 했다. 차인들 권유에 마음속으로 가보고 싶다고 되뇌이고 있을 때, 마침 관심을 가진 가깝게 지내는 분들이 적지 않아 동호인의 단체여행으로 현장에 가게 됐다. 국내 여행사들은 아직 무이산을 관광상품화 시키지 못하고 있다. 중국에는 가볼 만한 관광지가 워낙 많은데다 무이산은 주로 차(茶)와 주자학 관계의 일부 전문답사팀으로 한정되어 있는 실정에서 그런 듯싶었다. 무이산은 중국이라는 규모로 볼 때 아주 작은 시골이다. 인구는 21만 명. 서울에서 직행으로 가는 비행기는 없고, 대만의 바로 건너편인 복건성의 항구도시 샤먼(厦門)으로 가서 국내선 비행기로 갈아타 내륙 쪽으로 40여 분 더 가야 한다. 비행기가 밤중에 도착해서 그런지 그저 그런 중국의 시골 비행장이었고,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 차창 너머로 보이는 거리도 어둡고 조용해 보였다. 그러나 차 관계 일로 무이산에 자주 왔다는 어떤 차인은 유네스코 세계자연문화유산 등재 10주년과 이곳에서 해마다 열리는 세계차박람회가 전 세계 차인들의 주목을 끌면서 무이산은 구시가지·신시가지로 나뉘어 무섭게 발전하고 있다는 말을 했다. 밝은 날에 보는 무이산은 관광객들로 붐볐다. 한국 관광객은 별로 보이지 않았으나 중국·대만·홍콩 등에서 온 단체가 대부분이었다. 무이산 관광의 하이라이트는 산 정상(頂上)에 오르는 것과 내려와서 무이구곡(武夷九曲)을 대나무 뗏목으로 흘러 내려오는 정취이다. 그날따라 공교롭게도 비가 내렸다. 주저했으나 이곳에는 비오는 날이 많고, 비오는 날 산에 오르는 것이 더 운치가 있다는 말을 들으며 강행했다. 무이산은 해발 750m밖에 안 되지만 전체가 큰 바윗덩이 하나처럼 보였다. 정상인 천유봉까지는 바위를 깎아 848개의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안개 때문에 멀리 앞이 보이지 않는 가파른 돌 계단을 숨차게 오르며 잠시 잠시 둘러보는 풍광은 신비로운 선경(仙境)이었다. 아래는 산을 휘감고 흐르는 구곡(九曲)의 강이고, 강위에 점점이 흘러내리는 대나무 뗏목, 산능선을 오르는 돌계단 앞뒤로는 안개에 싸인 바윗덩이와 소나무들, 직벽을 타고 내리는 가느다란 폭포줄기가 멋졌다. 이래서 중국의 5대 명산에 들어간 것일까. 중국의 5대 명산은 안휘성의 황산, 산동성의 태산, 강서성의 노산, 사천성의 아미산 그리고 복건성의 무이산이다. 황산의 기이함, 태산의 웅장함, 화산의 험준함, 계림의 수려함을 찬탄하는데 무이산은 그 모든 것을 다 담고 있다고 이곳에서는 자랑한다. 걸어서 산에 오르기 힘든 사람들을 위해 가마꾼들이 산 밑에 대기하고 있었다. 정상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데 400위안(한국 돈 7만 원)을 내라고 한다. 앞뒤로 두 사람이 둘러메는 가마로 지붕이 있어 비를 피할 수 있게 됐다. 앉아서 사방을 둘러보며 정상까지 오를 수 있어 편한데, 가마 타는 값이 좀 비쌌다. 한참 전이지만 안휘성의 황상에서는 100위안(한국 돈 1만8천 원) 했었고, 보통 200위안이면 될 듯싶지만 중국에도 인건비가 계속 올라간 느낌이다. 정상에 올라 기념사진들을 찍고 나면 다음은 뗏목을 타는 순서다. 굵은 대나무를 통째로 엮어 만든 뗏목 위에는 두 줄로 셋씩 여섯 개의 대나무 의자가 마련됐다. 앞뒤로 사공이 둘, 긴 대나무 막대기로 방향을 잡아가며 흘러간다. 여자 사공들도 간간히 눈에 띈다. “장엄한 바위산 밑으로 푸르게 흐르는 무이구곡을 대나무 뗏목 위 의자에 앉아 유유히 내려오며 맑은 바람이 머무는 바위 사이사이마다 차나무가 자라는 풍취에 잠겨 보라”고 차인들은 말했다. 앞과 뒤의 중국인 사공은 알아듣지 못하는 중국말로 쉬지 않고 주변 풍물을 설명하고 있고, 그와 상관없이 관광객들은 저마다 즐겁게 웃고 떠들었다. 현재 300여 개의 대나무 뗏목이 운용된다고 하며, 하류쯤에 도착한 뗏목은 자동차에 실려 상류로 옮겨진다. 이 무이계곡을 중심으로 옛날부터 불교·유교·도교가 성행했다고 하며 송(宋)·원(元) 시대 때부터 이곳에서 나는 차가 널리 퍼졌다고 한다. 무이산은 기후와 풍토관계도 있겠지만 차나무의 천국이라 불릴 정도로 차나무의 품종이 다양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여 종류가 넘는다고 한다. 그 가운데 4대 명차(名茶)로 대홍포·철라한·수금귀·백계관이 꼽히고 4대 명차에는 속하지 못하지만 흔하게 팔리는 차로 육계가 있다. 차 전문가가 아닌 보통 관광객으로서는 일일이 구별하기 어렵고, 그곳에서 제일로 치는 대홍포(大紅袍)도 여러 층이 있는 듯했다. 무이암차의 대표 브랜드가 대홍포이고, 누구나 대홍포를 찾기 때문에 저마다 대홍포라고 내놓는 것 같았다. 가는 데마다 시음을 시키는데 그게 그것 같을 뿐, 맛을 보고 구분할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될 것인가. 차에 대해 너무 모른다는 것만 자탄하며 다녔다. 대홍포라는 이름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진다. 옛날 어느 문인이 과거를 보러 상경하다가 무이산 천심사에 이르렀다. 그런데 갑자기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배가 아파 더 이상 걸을 수 없게 됐다. 그때 천심사의 승려들이 이를 발견하고 구룡(九龍) 암벽에서 찻잎을 따와 차를 달여 한 잔 주었다. 그것을 마시자마자 온몸이 가뿐해지고 아픈 배가 씻은 듯이 나았다. 그렇게 해서 그 문인은 무사히 과거를 보아 장원급제할 수 있었다. 그는 은혜에 감사를 표하기 위해 천심사에 다시 갔고, 그때 마시던 차를 가지고 돌아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황제가 똑같이 배가 아프다고 하는데 궁중의 어의도 속수무책이었다. 그 문인은 마침 천심사에서 가지고 온 차를 황제에게 바쳤다. 그것을 달여 마시자 황제도 씻은 듯 건강을 회복했다. 그 후 다시 천심사를 찾은 문인은 자신이 걸쳤던 홍포를 차나무에 덮어 주었고, 그 홍포를 벗기는 순간 차나무가 빨간색으로 변했다. 무이산에는 대홍포의 모수(母樹)가 여섯 그루나 있어서 모두 소중하게 가꾸고 있고, 그 모수를 보려는 차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했다. 무이산에는 장예모 감독이 제작·연출한 <대홍포 산수실경 쇼>가 근래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다. 2,000여 명의 관객을 수용하는 야외극장으로 관객이 앉아 있는 자리가 360도 돌아가면서 200여 명 이상이 출연하는 대규모 쇼가 펼쳐진다. 레이저빔과 조명으로 무이산의 우람한 실경 봉우리가 어둠 속에서 나타나고, 강가 숲으로 말이 달리는가 하면 한쪽의 거대한 무대에서는 무이암차에 얽힌 전설과 남송(南宋)시대의 화려한 춤과 노래가 이어진다. 80분 동안 관객의 자리가 두 번 360도 돌아가며 자연경관과 화려한 무대를 앉아서 돌아가며 즐기게 하는 착상이 놀라웠다. 인구 21만 명밖에 안 되는 시골 소도시에서 비싼 입장료(한 사람 218위안(한국 돈 4만 원))에도 불구하고 연일 객석을 꽉 채운다는 사실이 불가사의하게 여겨졌다. 중국이니까 되는 중국적인 것일까. 차산업과 무이산 관광이 나날이 발전해가는 것에 비해 주자학의 주희(朱熹) 선생 유적지 관리에는 너무나 무관심하고 소홀했다. 솔직히 실망했다. 주희 선생의 묘소와 그 어머니 묘소는 작은 자갈돌을 모아 쌓은 봉분으로 그나마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풀이 나지 않는 묘역이니까 특별히 돌보지 않아도 외양은 그런대로 유지할 수 있는 것 같았다. 주희 선생이 살았다는 주자고거(朱子故居), 무이산 자연공원 초입에 세워진 무이정사(武夷精舍)는 건물이나마 유지되고 있었으나 찾아오는 사람도 드물었고, 관리도 썰렁했다. 말년에 강학을 했다는 고정서원은 거의 버려진 것과 다름 없었다. 어린 시절에 수학했다는 병산서원, 홍현서원을 비롯한 유적지는 겉모양만 보일 뿐 주희 선생을 기리며 관리하는 것 같지 않았다. 이번에 같이 간 일행 중에는 주자 주희 선생의 32대손인 주덕화(朱德和) 평화사 대표 내외분이 조상의 유적지를 찾은 남다른 감회와 감사의 뜻을 보였다. 그러나 소홀한 관리에는 못내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한국의 신안(新安) 주(朱)씨는 주희 선생의 후손으로, 칭기즈칸의 몽골군이 원(元)나라를 세우고 주자학을 배척하는 바람에 고려 때 한국으로 망명하여 정착했다는 것이다. 주희 선생 묘소 근처에는 한국의 신안 주씨 중앙종친회에서 참배하고, 적지 않은 돈을 기증했다는 기념비석이 세워져 있었다. 글·사진_ 김용원
  • 새터민 강씨의 가슴 아픈 ‘사부곡’

    새터민 강씨의 가슴 아픈 ‘사부곡’

    “찾느라 고생 많으셨죠? 반갑습니다.” 2003년 부친을 찾겠다는 일념으로 북한을 탈출했지만 추석을 앞두고서야 32년 전에 세상을 떠난 사실을 알게 된 강순희(70·가명)씨.<서울신문 9월 19일자 27면 보도> 23일 밤 7시 30분 케이블 채널 서울신문STV를 통해 방영되는 ‘TV 쏙 서울신문’ 취재진이 지난 19일 강씨 집을 찾았다. 책상 한 켠에는 부친의 40대 시절로 추정되는 흑백사진이 놓여 있었다. 강씨는 처음 부친 묘소를 찾은 지난 8일의 감격과 흥분이 채 가시지 않는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북한에서 숱한 설움을 겪고 남한에 내려와 모든 방법을 썼지만 아버지를 찾지 못했다. 하지만 우연히 서장님이 우리집을 방문해 찾게 됐다.” 이어 “아버지가 살아 계시면 100세가 넘기 때문에 솔직히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막상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듣자 울음부터 터졌다. 그 동안의 그리움과 아쉬움이 섞였기 때문”이라며 깊은 숨을 내쉬었다. 또 “서장님 도움이 없었더라면 지금도 아버지를 찾지 못했을 것이다. 바쁜 일도 많을 텐데 우리 같은 서민들까지 신경써 줬다.”며 박노현 (59) 경기 성남시 분당경찰서장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했다. 북한에 남은 동생들 안위 걱정에 본인의 신변과 가족 사진 공개는 한사코 거부했다. 강씨는 “나야 이제 편히 살지만 동생들은 아직도 차별과 냉대를 받으며 굶주리고 있다. 그들에게 누가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박 서장은 “처음엔 그냥 지나치려 했는데 아파트 현관까지 뛰어 내려와 붉게 물든 눈으로 호소하는 강 할머니 눈빛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라고 당시를 돌아봤다. 이어 “쉽지 않았는데 경찰서 직원들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나도 직접 함경남도 이원군 도민회에 전화를 걸어 찾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밖에 TV 쏙 서울신문은 시각장애인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설치된 점자 보도블록 표면에 물기가 묻어 있을 경우 상당히 미끄러워 비장애인들이 다칠 수 있다는 서울신문 보도를 받아들여 서울시가 블록의 재질 기준을 선진국 수준으로 높이기로 했다는 내용과 서울 마포구 홍익대 앞의 클럽 ‘바다비’ 문을 닫지 않게 하기 위해 인디 음악인들이 뭉친 사연, 지난 18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K팝 커버댄스 페스티벌 태국 본선의 뜨거운 열기를 전한다. 또 경제부 임주형 기자가 저축은행 영업정지 이후 파장과 앞으로의 과제를 점검하고 함혜리 문화체육 에디터가 우리 관광산업의 인프라를 대폭 개선해야 한다는 점을 역설한다. 전북 진안 마이산의 독특한 풍광도 살짝 엿볼 수 있다. 글 사진 성민수PD globalsms@seoul.co.kr
  • [新 베트남 기행] (하) 끝없는 남진정책이 낳은 사회상

    [新 베트남 기행] (하) 끝없는 남진정책이 낳은 사회상

    여정의 첫 기착지인 수도 하노이의 날씨는 무덥고 습했다. 중부의 고도 후에의 햇살은 모든 것을 숨 막힐 듯한 무시간의 정적 속으로 몰아넣는 강렬한 것이었다. 그러나 옛 월남의 수도 호찌민의 밤은 예상 밖으로 서늘했다. 상하의 나라 베트남의 날씨는 이렇게 지역에 따라 미묘한 차이가 있었다. 인도차이나 반도의 동안을 따라 북쪽에서 남쪽까지 장장 1750㎞에 걸쳐 길게 뻗쳐 있는 나라이니 이와 같은 기후 차이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중요한 것은 기후 차이가 서로 다른 물리적 환경을 만드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또한 역사적으로 독특한 지역 문화와 전통을 일구어 낸 중요한 변인으로 작용했다. 10세기 경, 천년에 걸친 중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을 쟁취했을 때 베트남의 영토는 홍하(紅河) 델타를 중심으로 한 북부에 국한되어 있었다. 중부에는 문화 전통이 다른 참파 왕국이 약 천년 동안 존속해 왔고, 남부는 앙코르와트에 수도를 두었던 캄보디아에 속해 있었다. 독립 왕조를 세운 이후 베트남은 남쪽으로 영토를 넓혀 나가는 남진 정책에 힘을 쏟았다. 그리하여 15세기 무렵 중부를 병합하고 이어 300년 뒤인 18세기에는 마침내 남쪽 기름진 메콩 강 델타를 영토에 편입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북·중·남부를 포괄하는 베트남 최초의 통일 왕조인 응우옌 왕조의 가장 큰 과제는 지방 분권화의 줄기찬 요구를 다독거리는 것이었다. “남북은 일가”라는 명제는 호찌민의 정치적 구호이기에 앞서 19세기 응우옌 왕조가 통치 이념으로 이미 강조했던 것이다. 응우옌 왕족의 건국이 1802년이고, 왕국이 프랑스의 식민 지배하에 들어가는 것이 1859년이니, 전통시대 베트남의 통일된 역사는 실제로 반세기에 불과했다. 정치적 통일을 이룬 오늘의 베트남을 말하면서 사회문화적 혼종성(hybridity)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치적으로는 ‘일가’를 이루었지만 북·중·남부 지역은 여전히 독자적인 지역 의식이 강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하노이에서 중부 후에와 호이안을 거쳐 남부의 호찌민까지 종주하는 이번 여정에서 그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북베트남은 중국의 영향을 받은 유교문화가, 참파 왕국과 푸난(扶南)왕국이 있었던 중남부는 인도의 영향이 짙은 불교문화가 상대적으로 더 두드러진다. 특히 남방문화에는 힌두교의 색채도 가미되어 에로틱한 힌두교의 비슈누와 가네슈의 신상도 호찌민의 역사박물관에서는 찾아볼 수 있었다. 이렇게 혼재하는 서로 다른 문화 전통에 식민지 시대에 유입된 프랑스 문화가 뒤섞이면서 베트남은 한층 다채로운 하이브리드 문화를 창출해 냈다. 베트남의 건축물에서도 이 점을 엿볼 수 있었다. 하노이를 비롯한 북부에서는 폭이 좁고 긴 세장형의 토지 위에 3~4층으로 쌓아올린 튜브 하우스 스타일의 집들이 많이 눈에 띄지만 중부의 후에나 남부의 호찌민에는 그런 양식의 집은 그렇게 많지 않고 오히려 주황색 오지기와를 얹은 유럽풍의 집들이 종종 눈에 띈다. 중부의 고도 후에에 자리한 응우옌 왕조의 황궁 태화전은 중국의 자금성을 모방한 것이지만, 궁성의 외곽에는 유럽의 성채를 모방한 해자가 설치되어 있다. 후에를 가로지르는 향강(香江)의 북안에 산재해 있는 왕릉에서도 토착 양식과 외래 양식이 동거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응우옌 왕조의 2대 황제였던 민망 황제의 장중한 왕릉의 경우 건물은 중국식이지만 내정의 정원은 서양식이었다. 이 기묘한 절충과 조화는 마지막 황제 바오 다이가 선황제를 기려 건설한 화려한 카이 딩 왕릉에서는 독특한 예술미로 표출된다. 묘소로 오르는 109개의 계단 양편을 장식하고 있는 거대한 용의 형상에 압도된 관람객의 눈앞에 펼쳐지는 왕릉의 내부는 서양의 성당에서나 볼 수 있는 형형색색의 타일, 유리 및 녹색의 옥으로 장식된 화려한 벽면, 그 사이사이를 수놓고 있는 다양한 주제의 벽화, 그리고 거대한 천장화로 한 편의 만화경을 이루고 있다. 이런 독특한 혼성 양식의 건축물이 보존되어 있는 후에는 1993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후에에서 다낭을 거쳐 호이안에 이르는 해안에는 백사장이 줄곧 이어진다. 넘실대는 짙푸른 바다와 고운 모래사장과 야자수 그늘이 피곤한 여행객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해안을 따라 곳곳에 현대식 시설을 갖춘 리조트, 콘도, 호텔들이 들어서고 있었다. 특히 다낭의 해변에 건설되고 있는 휴양단지는 엄청난 규모여서 사회주의 체제 속으로 밀고 들어오는 자본주의의 거센 물결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념과 실용주의의 이와 같은 절충 또한 하이브리드 문화의 한 단면이다. 글 사진 신문수 서울대 교수·미국문학
  • 여야 정치인 추도식 대거 참석

    모처럼 햇살이 내리쬔 18일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서거 2주기 추도식이 서울 동작구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열렸다. 범야권이 총집결한 가운데 추도식은 엄중히 치러졌다. 추도식이 열린 현충관 내부는 DJ의 영향력을 보여주듯 1, 2층 모두 추모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김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와 아들 김홍일·홍업 전 의원, 홍걸씨가 내빈을 맞은 가운데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 손학규 민주당 대표,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 등 여야 대표들이 대부분 참석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와 최근 대선 야권 후보 선두로 급상승한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비롯한 친노(親)계 인사, 한화갑 평화민주당 대표 등 동교동계 인사 등 야권 주요 인물들도 총출동했다.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홍일씨는 휠체어를 타고 부축을 받았다. 맨 앞줄에 앉은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의 육성 영상 등을 보며 행사 내내 눈물을 훔치고 고개를 떨궜다. 바로 뒷좌석에는 김 전 대통령의 ‘영원한 비서실장’ 박지원 전 민주당 원내대표가 앉았고, 이 여사의 옆에는 권 여사가 문 이사장과 앞뒤로 나란히 앉아 추모했다. 손 대표는 홍 대표에게 자리를 양보하며 앞줄에 같이 앉았다. 유 대표는 서서 지켜봤으며 이 대표는 뒤늦게 도착했다. 손 대표는 소회를 묻자 “정권 교체를 위해 야권 통합을 하는 건 DJ의 명령이자 역사가 우리에게 맡긴 지상과제”라면서 “반드시 민주세력을 대통합해서 정권 교체를 이루겠다.”고 밝혔다. 손 대표와 문 이사장은 지난 5월 노 전 대통령의 서거 2주기 추도식 이후 처음 공개석상에서 만났다. 악수는 했지만 특별한 대화는 오가지 않았다. 박 전 원내대표는 “김 전 대통령은 마지막 병석에서까지 야권 통합을 통한 정권 교체를 소망했다.”면서 “김대중 정신을 잇는 건 야권 통합을 통해 내년 총선 승리와 정권 교체를 이루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문 이사장은 “안 계신 자리가 너무 크다. 요즘 같은 세상에 정말 아쉽다.”고 말했다. 정세균 민주당 최고위원은 “남북 문제 등 모든 게 어려운데 가르침을 못 받아 안타깝다.”면서 야권 통합과 관련해 “논의만 말고 행동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유 대표는 보좌관 시절인 1989년 DJ 당 대표 연설문 작성을 위해 동교동에 불려갔던 기억을 회상하며 “영광이고 제 가족들을 다 아신다.”면서도 “DJ는 수차례 야권 통합을 하신 분이지만 그때는 진보정당이 없었다.”면서 “지금은 정치지형이 많이 달라졌고 민주당이 이제 행동할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과의 야권 통합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드러낸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묘소에서의 헌화, 참배가 끝난 뒤 민주당 영등포당사에서는 DJ와 노 전 대통령의 흉상 제막식이 열렸다. 이 여사는 “감사하다. 민주당이 정권 교체에 성공해 국민이 잘사는 나라를 만들고 남북 통일로 평화로운 나라를 만들어 주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권 여사도 “만감이 교차한다. 두 분 뜻을 잘 받들길 부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민주당 산하 민주정책연구원은 국회 의원회관에서 ‘DJ 추모 2주기 토론회’를 열고 그의 뜻을 기렸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8·15 66주년] “음지서 독립 투쟁한 여성도 수만명… 정부가 증언·사료 수집해 예우해야”

    [8·15 66주년] “음지서 독립 투쟁한 여성도 수만명… 정부가 증언·사료 수집해 예우해야”

    “들꽃은 늘 조명받지 못했다. 오히려 발에 밟히고 차였다. 그러나 들꽃의 생명력은 강하다. 그들은 진 것이 아니라 여전히 피어있다.” 시인 이윤옥(52·여)씨는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들꽃이라고 말한다. 지난 6월 출간된 그의 두번째 시집 ‘서간도에 들꽃피다’는 역사의 뒤편에 묻혀있던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조명한 최초의 시집이다. 이씨는 “최초의 여성 의병장인 윤희순, 광복군 여성대원들의 맏언니였던 오광심은 물론 밥 짓고, 군복 만들고, 독립자금 조달한 여성들도 모두 독립유공자”라면서 “이들을 기억하지 않는 현실이 안타까워 시로 그들의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고 말했다. 특히 이씨는 “‘(여성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으려면 증거를 가져오라’는 정부의 독립유공자 심사체계는 어불성설”이라며 “정부가 직접 여성독립운동 사료를 수집하고 드러나지 않은 여성 유공자들을 발굴해 걸맞은 예우를 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생사를 건 엄혹한 시기에 그들이 독립투쟁의 흔적을 남겼겠느냐.”면서 정부의 태도 변화를 촉구했다. 66돌을 맞은 광복절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 서울신문사에서 이씨를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여성독립운동가에 대한 평가는.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역할이 형편없이 과소평가돼 있다. 남성 독립유공자가 수만명이라면 여성 유공자의 숫자도 비슷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 공인된 독립유공자 1만 2966명 가운데 여성은 204명에 불과하다. 직접 총과 폭탄을 들고 싸운 여성도 적지 않지만 뒷전에서 밥 짓고, 독립운동 자금을 모아 나르는 등 음지에서 묵묵히 제 역할을 다한 여성들도 모두 독립유공자 아니겠는가. →현재의 독립유공자 심사체계에 문제가 있다는 말인데…. -스스로 서류를 제출해 독립운동을 증명하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으려면 직접 증거자료를 수집해 국가보훈처 심사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의 상황을 안다면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것이다. 일본군에 쫓겨 생사가 걸린 상황에서 일부러 서류 등 흔적을 없앴는가 하면 가명을 서너 개씩 쓰기도 했다. 그나마 명단에 오른 분들은 후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 기록을 수집하고 정리해 가능했다. 독립유공자라는 사실을 숨기고 사는 분들도 많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개선해야 한다고 보는가. -간단하다. 정부가 나서 여성독립운동가들의 흔적을 찾아야 한다. 일제강점기 당시의 국내와 일본신문만 봐도 적잖은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평남도청에 폭발물을 던진 안경신 의사의 경우도 ‘여자폭탄범’이라는 제목으로 기사가 실렸다. 또 백범일지를 보면 연미당·정정화 여사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이렇게 하나하나 기록을 되짚어 찾는 것이 국가가 할 일 아니겠는가. 생존해 있는 여성독립운동가가 몇 분 안 된다. 그들의 증언이 가장 중요하다. 빨리 그 분들의 구술을 문서로 기록해 둬야 한다. →여성독립운동가를 주제로 한 시를 쓰게 된 계기는. -몇 해 전 강의를 하던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독립운동가를 아는 대로 써 보라고 했다. 여성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댄 학생이 손에 꼽을 정도였고, 그나마 태반이 유관순 열사였다. 그런 현실이 서글펐다. 그때 가까이 두고 읽을 수 있는 시집으로 여성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기록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시를 쓰는 데 필요한 자료는 어떻게 수집했나. -기록이 거의 없었다. 국가보훈처 자료도 여성유공자 한 명당 서너줄의 기록이 전부였다. 그때부터 이들의 활동무대를 직접 찾아 나섰다. 중국 상하이, 광저우, 항저우, 충칭 등을 답사했고, 춘천 부산 나주 인천 수원 등을 돌면서 자료를 수집했다. 그러나 생존한 여성독립운동가가 6명에 불과해 자료 수집도 쉽지 않았다. 생가와 묘지가 제대로 보존되지 않아 경북 안동에서 김락 지사의 묘소를 찾아가는 데 마을 사람들에게 수소문해야 했을 정도다. →앞으로의 계획은. -내년 3·1절에는 여성독립운동가를 주제로 두 번째 시집을 내고 싶다. 이미 펴낸 시집도 공공도서관이나 초·중·고교에 보급해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만 쉽지 않다. 얼마 전 요양원에 계신 이병희 여사를 찾아가 직접 시를 낭송해 드렸다. 눈물이 쏟아져 끝까지 읽을 수 없었다. 앞으로 시를 통해 여성 독립유공자 200여명의 숭고한 일생을 재조명해 보고 싶다.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식물계 황소개구리’ 가시박에 토종식물 사라진다

    ‘식물계 황소개구리’ 가시박에 토종식물 사라진다

    최근 내린 폭우로 조상의 묘소가 무너져 내리지는 않았는지 살펴보기 위해 얼마 전 선산을 찾았다. 그리 높지 않은 나지막한 산이지만 입구부터 가시가 붙은 덩굴식물이 길을 막았다.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가시박이다. 지난해 많이 걷어냈지만 곳곳에서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묘소는 별 탈이 없었지만 가시박을 처리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가시박은 환경부가 생태계 교란 식물로 지정한 외래식물이다. 어떤 곳은 나무를 타고 올라간 가시박이 집채만큼이나 무성한 곳도 눈에 띄었다. 가시박은 산과 들, 도심 하천 가릴 것 없이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식물이 됐다. 전문가들은 씨앗이 여물기 전인 요즘이 가시박 등 생태교란 식물을 제거하는 적기라고 말한다. ●‘원산지 북미’ 1980년대 후반에 들어와 가시박은 서식지가 급속도로 확산돼 2009년 6월 생태계 교란 식물로 지정됐다. 한해살이 덩굴 식물로 잎은 오이나 박잎과 비슷하며 꽃은 6~9월에 걸쳐 핀다. 원산지는 북미로 최대 8m 이상 자라고 여름철에는 하루에도 20㎝가 넘게 자랄 정도로 생장 속도가 빠르다. 1980년대 후반, 농가 소득을 높이기 위해 오이, 호박에 접붙이기용 작물로 들여왔다. 생장이 빠른 가시박 줄기에 오이나 호박의 줄기를 붙여 수확량을 늘리는 방법이다. 처음 들여온 곳이 경북 안동으로 알려져 ‘안동대목(臺木)’이란 이름으로도 불린다. 가시박은 번식력도 강해 주변 식물이나 나무를 덮어버려 키 작은 나무나 식물들은 햇빛이 차단돼 고사되고 만다. 줄기나 열매의 가시에 찔릴 경우 피부병을 유발하기도 한다. 번식력이 워낙 뛰어나 ‘식물계의 황소개구리’라는 별칭도 생겼다. 영양분을 흡수하기 위해 다른 식물을 말라죽게 하는 독성 물질도 뿜어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문가들은 2000년 강우량이 많아지면서 물길을 타고 가시박이 폭발적으로 확산됐다고 진단한다. 환경부에 따르면 가시박은 서식지가 특정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전국적으로 분포돼 있다. 가시박 등 생태 교란종 서식지가 확산되면서 토종식물은 급속히 개체군이 줄어들고 있다. 환경부는 가시박을 비롯 단풍잎 돼지풀, 서양등골나물, 털물참새피, 도깨비가지, 애기수영, 서양금혼초, 미국쑥부쟁이, 양미역취 등 11종을 생태계 교란종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단풍잎돼지풀·털물참새피 등도 확산 생태 교란종은 서식지가 광범위한 외래식물로 2007년부터 국립환경과학원을 통해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 모니터링은 매년 전국의 같은 지역을 선정, 서식지 확산과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 등을 분석한다. 분석 자료에 따르면 단풍잎 돼지풀은 파주, 인천, 연천, 부산의 조사지역에서 63~70%의 높은 밀도를 보였다. 216~256㎝로 자라 토착식물의 성장을 방해하고 꽃가루도 날려 알레르기 등을 일으키는 주범으로 알려졌다. 서양등골나물은 서울 월드컵공원, 남산공원, 광주 남한산성의 조사지역에서 46~55%를 차지, 키 작은 토종식물의 성장에 피해를 주는 것으로 조사됐다. 털물참새피도 창녕에서 90%의 높은 밀도를 보였는데 생태습지의 보고인 우포늪으로 확산이 우려되는 실정이다. 특히 생태계 교란 식물로 지정은 안 됐지만 빗자루국화와 미국가막사리, 큰김의털 등의 외래식물도 빠르게 토착화되고 있다. 빗자루국화는 하천변과 습지, 생태공원 등에서 볼 수 있고 하천의 물길을 따라 널따랗게 자라는 곳과 길게 늘어선 곳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미국가막사리도 하천과 습지 주변에서 확산, 갈대나 달뿌리풀 같은 자생종과 키 작은 식물을 고사시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방용으로 들여온 큰김의털도 토종식물을 밀어내고 빠르게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씨앗 여물기 전에 제거해야 효과적 환경부는 생태교란 동식물 관리를 위해 올해 7억 600만원의 예산을 확보했다. 지난해 4억 2000만원보다 크게 늘었다고는 하지만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예산은 식물 외에 뉴트리아, 황소개구리, 붉은귀거북, 블루길,배스 등 생태교란 동물 관리까지 포함된 비용이다. 위해 동식물 퇴치 비용은 지방환경청이나 지방자치단체 예산으로 충당하고 있다. 생태계 교란 식물을 제거하기 위해 매년 환경부와 산림청, 지방자치단체와 환경·시민단체들이 나서고 있다. 하지만 워낙 광범위하게 분포돼 있는 데다 일일이 사람 손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부분 제거에 그친다. 이경율 환경실천연합 회장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한강변 주변 생태계 교란 위해식물 제거작업을 시작했다.”면서 “올해는 서울시와 협약을 맺고 한강 생태공원 전체에 대한 외래식물 제거작업을 주도적으로 벌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오정근 자연보전협회논산지부 회장은 “이벤트성 행사로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안 된다.”면서 “생태교란 식물의 특성을 파악해 확산 요인을 차단하는 등의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가시박 등 생태 교란종은 씨앗으로 전파되는 경우가 많은 만큼, 씨가 여물기 전에 제거를 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덧붙였다. 글 사진 유진상기자 jsr@seoul.co.kr
  • 현충원 ‘이상한’ 묘역 배치

    현충원 ‘이상한’ 묘역 배치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임시정부 요인들의 묘역 위치를 둘러싼 논란이 거세다. 임시정부 요인들이 예우는커녕 홀대를 받고 있다는 게 논란의 초점이다. 독립유공자 유족들은 임시정부 요인들이 장군들 묘역 아래에 배치돼 마치 장군들의 휘하인 듯한 모습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친일 논란에 휩싸인 장군들의 묘가 장군 묘역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 자체에 더 분노하는 상황이다. ●장군들에 지휘받는 형국 국립 서울현충원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역을 정점으로 피라미드형 구조를 갖추고 있다. 가장 길지(吉地)로 꼽히는 꼭대기 박 전 대통령 묘소 바로 아래 장군 제1묘역이 배치돼 있다. 장군 제1묘역을 중심으로 김대중·이승만 전 대통령 묘소가 있다. 임시요인 묘역은 멀리 떨어진 장군 제2·제3묘역 아래 놓여 있다. 이곳에는 임시정부 대통령을 지낸 박은식 선생을 비롯, 대한매일신보 초대 총무이자 임시정부 국무령을 지낸 양기탁 선생, 독립군 양성소인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이상룡 선생 등 대한민국 건국의 토대를 닦은 독립운동가들이 안장돼 있다. 심지어 장군 제2·제3묘역에는 친일 인물들도 다수 포함돼 있다. 제2묘역의 이응준 장군은 일본 육사 출신으로 일제가 징병제를 실시하자 “기다리던 징병제가 실시됐다.”며 청년들의 참전을 선동, 대좌(대령)까지 올랐다. 제3묘역의 정일권 장군은 만주에서 헌병 상위(대위)로 활동한 전력이 있으며, 이종찬 장군은 일본군 공병 소좌(소령) 출신으로 일제로부터 훈장까지 받았다. 대전현충원의 상황도 별로 다르지 않다. 백범 김구 선생 암살의 배후로 지목받는 김창룡 장군의 묘소는 김구 선생의 어머니 곽락원 여사와 아들 김인 선생의 위에 있다. 이에 대해 독립유공자 유족들은 “현충원의 전체적인 배치를 바꾸든지 친일 인물들을 이장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초대 독립군 사령관이었던 지청천 장군의 외손자 이준식씨는 “백선엽 장군의 경우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친일인사로 규정했는데, 이런 인물이 임정 요인들의 머리 위에 안장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보훈처·국방부 책임 떠넘기기만 그러나 국립묘지 운영을 담당하는 국가보훈처와 국방부는 책임만 떠넘기고 있다. 보훈처 관계자는 “서울현충원은 국방부가 관리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국방부 측은 “애당초 설계에 문제가 있었다.”면서도 “하지만 안장 여부와 위치 결정은 보훈처 소관이어서 친일 논란이 있는 사람이라도 국방부가 막을 방법은 없다.”고 해명했다. 한 독립유공자단체 관계자는 “현충원 묘역 배치는 독립유공자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라면서 “예우 차원에서 재배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동현기자 mose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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