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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준표 노무현 참배 후 “훌륭한 대통령이었다” 과거 인연도 털어놔

    홍준표 노무현 참배 후 “훌륭한 대통령이었다” 과거 인연도 털어놔

    홍준표 노무현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2일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인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을 찾아 노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했다. 6·4 지방선거에서 맞붙었던 김경수 전 노무현 재단 봉하사업본부장의 안내를 받은 홍준표 지사는 분향소에서 헌화하고 노 전 대통령이 잠들어 있는 너럭바위 추모대에서 묵념했다. 홍준표 지사는 방명록에 “편안하게 쉬십시요”라고 짤막하게 적었다. 홍준표 지사는 참배 뒤 묘소 인근의 노 전 대통령 사저를 방문해 권양숙 여사를 만났다. 홍준표 지사는 “추석을 맞아 경남 출신 대통령 묘소와 부인 권양숙 여사께 명절 인사를 드리러 왔다”고 소감을 밝혔다. 아울러 홍준표 지사는 봉하마을 생태공원 조성 등에 필요한 예산을 지원하기로 약속했다고 덧붙였다. 홍준표 지사는 사저에 들어가기에 앞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치적으로는 반대 입장에 있어서 달랐지만 훌륭한 대통령이었다”고 덕담했다. 새누리당 소속인 홍준표 지사가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홍준표 지사는 한나라당 원내대표 시절이던 2008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 생가 옆에 건립한 사저를 아방궁이라고 비난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홍준표 지사는 “당시 잘못된 보고를 믿고 그랬다. 미안한 마음이 없어지면 묘소를 한번 방문하겠다고 약속했었다”고 말했다. 홍준표 지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과거 인연도 털어놨는데 “1996년 1월26일 김영삼 전 대통령의 권유로 신한국당에 들어가기로 돼 있었는데 그 전날 밤 노 전 대통령과 제정구·이철 전 의원, 유인태 의원 등 꼬마 민주당 스타 9명이 우리 집으로 와 민주당에 입당할 것을 새벽 2시까지 4시간 동안 설득했다”고 정치 입문 당시를 소개했다. 홍준표 지사의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 참배 소식은 SNS 상에서 화제를 모으며 ‘홍준표 노무현’, ‘홍준표 노무현 묘소 참배’, ‘홍준표 노무현 훌륭한 대통령’ 등의 연관 검색어를 낳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인간의 탐욕을 ‘소름 돋게’ 비틀다

    인간의 탐욕을 ‘소름 돋게’ 비틀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어린 딸은 호숫가를 맴돌며 억지로 눈물을 짜낸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슬픈 복희’가 되기를 강요한다며 이내 밝은 표정으로 호숫가를 뛰어다닌다. 복희를 이용해 한몫 챙기려는 이들은 복희에게 ‘슬픈 복희’가 될 것을 강요하고, 복희는 ‘슬픈 복희’와 ‘즐거운 복희’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다. 극작가 이강백의 신작 ‘즐거운 복희’는 집단이 만들고 믿는 ‘신화’에 관한 이야기다. 이야기가 누구의 욕망과 목적으로 만들어지는지, 그 이야기가 어리석은 군중에 떠받들여지면서 누구의 욕망을 채우는지를 과장된 인물과 상황을 통한 은유로 보여 준다. ‘파수꾼’(1974), ‘내마’(1975), ‘봄날’(1984)에서 엿볼 수 있는 이강백 특유의 정치 우화적 요소가 다분하다. 커다란 호숫가의 펜션을 분양받은 퇴역 장군이 죽는다. 장군이 죽자 근처의 다른 펜션들을 분양받은 7명의 주인들은 장군의 죽음을 이용해 펜션에 고객을 유치할 방법을 궁리한다. 그들은 장군의 유해를 국립묘지가 아닌 펜션 단지에 모시고, 복희에게 매일 아침 울면서 장군의 묘소를 찾을 것을 강요한다. 날마다 수십, 수백 명의 군인들이 복희를 보러 펜션을 찾고 일곱 주인들은 주머니를 두둑히 채우는 ‘슬픈 복희’ 신화의 탄생이다. 극은 슬피 울다 웃기를 반복하는 복희처럼 부조리투성이다. 대한제국 시절 증조부가 받은 작위를 물려받았다고 믿는 자칭 ‘백작’, “장군님이 세 번 임종하셨다”는 헛소리를 곧이곧대로 받아 적는 자서전 대필가 등 펜션 주인들은 하나같이 희화화된 인물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머리를 맞대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톱니바퀴가 맞물리듯 치밀하게 돌아간다. 호숫가에 정체불명의 배가 떠오르자 ‘복희호’라 이름짓고, 밤에는 나팔수가 나팔을 부는 음악회를 열어 호숫가를 슬픔과 즐거움이 공존하는 곳으로 만든다. 복희는 ‘슬픈 복희’이기를 거부하고 ‘즐거운 복희’가 되기로 결심한다. 신화가 감춰버린 진실이 꿈틀대는 순간이다. 나팔수와 사랑에 빠진 복희는 그와 함께 마을을 빠져나가려 하고, 펜션 주인들은 둘을 떠나지 못하게 막는다. 호수의 물결은 이들이 탄 보트를 집어삼키고 복희만이 목숨을 건진다. 펜션 주인들은 죽은 나팔수를 그리워하는 복희의 초상화를 그려 팔며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든다. 작품은 세월호 참사와 포개지면서 정치적 우화의 색채를 더 강하게 내뿜는다. 배의 침몰과 영혼의 수장(水葬), 연인의 울부짖음과 방관하는 사람들까지, 지난해 초고가 완성된 작품에 비치는 세월호의 잔상은 우연의 일치겠지만 기막히게 치밀하다. 한편으로는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우화로 읽힐 여지도 충분하다. 돈 되는 상품을 만드는 데 혈안이 된 모든 이들의 욕망에 대한 풍자이기 때문이다. 현실의 어떤 풍경과 대입해도 아귀가 딱딱 들어맞는 ‘소름 돋는’ 경험은 거장의 탁월한 통찰에 절로 무릎을 치게 만든다. 21일까지 서울 중구 남산예술센터. 1만 8000~2만 5000원. (02)758-2150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이승복 아버지 생전 40년간 정신질환 앓아…비극적인 사연

    이승복 아버지 생전 40년간 정신질환 앓아…비극적인 사연

    이승복, 이승복 아버지 고 이승복 군의 아버지 이석우(83) 씨가 별세했다. 이석우 씨는 지병이었던 폐부종이 악화돼 강릉의 한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았지만 지난 24일 오후 급성 신부전증 등으로 별세했다. 고 이승복 군은 1968년 북한 무장공비들에게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치며 저항하다가 9세 나이에 참혹하게 살해됐다. 이후 이석우 씨는 부인 주대하(당시 33세)씨와 삼남 승수(당시 7세), 딸 승자(당시 5세)도 함께 잃었으며 15세였던 장남 학관씨만 무장공비에게 수십 군데를 찔리고도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이후 이씨는 40여년간 정신질환과 폐부종, 급성 신부전증 등을 앓으며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한편 이 씨의 묘는 평창군 용평면 노동리 이승복기념관 내 부인 묘소 옆에 마련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승복 父, 40년 정신질환 앓다 숨져…재조명된 이승복

    이승복 父, 40년 정신질환 앓다 숨져…재조명된 이승복

    이승복, 이승복 아버지,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고 이승복 군의 아버지 이석우(83) 씨가 별세했다. 이석우 씨는 지병이었던 폐부종이 악화돼 강릉의 한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았지만 지난 24일 오후 급성 신부전증 등으로 별세했다. 고 이승복 군은 1968년 북한 무장공비들에게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치며 저항하다가 9세 나이에 참혹하게 살해됐다. 이후 이석우 씨는 부인 주대하(당시 33세)씨와 삼남 승수(당시 7세), 딸 승자(당시 5세)도 함께 잃었으며 15세였던 장남 학관씨만 무장공비에게 수십 군데를 찔리고도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이후 이씨는 40여년간 정신질환과 폐부종, 급성 신부전증 등을 앓으며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한편 이 씨의 묘는 평창군 용평면 노동리 이승복기념관 내 부인 묘소 옆에 마련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지금&여기] 금융권 구조조정에 대한 단상/이유미 경제부 기자

    [지금&여기] 금융권 구조조정에 대한 단상/이유미 경제부 기자

    출근을 해 노트북을 연다. 새로운 메일 리스트를 빼곡히 채운 수십통의 이메일. 작별인사를 알리는 A증권사 직원의 메일에 가장 먼저 눈길이 간다. 메일을 열어 본 뒤 삭제 버튼을 누른다. ‘잘 가세요’란 답장은 쓰지 않는다. 지난 7개월 동안 조금은 익숙해진 이별 방식이다. 서로의 민망함과 불편함은 최소화하면서 간단하게 ‘뜻밖의 퇴사’와 이별을 알리는 방법이다. 올해 금융권은 은행·증권·보험 등 업권을 가리지 않고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다. 올 상반기에만 ‘희망퇴직’이란 명목으로 짐을 싼 금융권 인력들이 약 5000명에 이른다. 외환위기 이후 최대 규모라는 수식어도 따라붙는다. 인력 구조조정 과정에서 진통과 잡음도 적지 않았다. 고액 연봉에 콧대 높았던 금융맨들이 ‘나가라’는 회사의 독촉에도 ‘못 나가겠다’고 울며 버텼다. 수억원의 퇴직위로금을 받아도 주택담보대출 원리금과 자녀들 학자금을 빼고 나면 동네에서 치킨집 차리기도 빠듯한 현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희망퇴직’이 아니라 ‘절망퇴직’이란 자조도 나왔다. 정작 대규모 감원을 초래했던 부실 경영에 대해선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신사업 발굴보다는 베끼기식 금융상품 출시에 급급하고, 수수료 수익에만 의존하던 천수답식 경영 행보가 실적 악화로 이어졌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구글이나 애플, 페이스북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이 자진해 ‘1달러 연봉’을 받았던 대인배스러운 모습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거듭되는 실적 악화에도 수십억원의 연봉과 성과급을 꼬박꼬박 챙겨가던 뻔뻔함은 더이상 마주치고 싶지 않다. 그래도 그들 역시 ‘사람’인지라 직원들을 길거리에 내모는 마음만큼은 편치 않았던 모양이다. 지난달 초 희망퇴직으로 수백명을 내보냈던 모 은행장은 희망퇴직 하루 전날 돌아가신 아버지 선산을 찾았다. 일정에도 없이 급작스럽게 묘소를 찾아 소주를 따르고 한참을 말없이 맨손으로 잡초를 제거했다. 일주일 넘게 손에 풀독이 올라 고생을 했다고 한다. 죄책감과 미안함 등 복잡한 심경을 미뤄 짐작할 수 있겠지만,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된 가장들의 고통에 비할 바는 아니다. 어제의 비극을 뒤로한 채 금융시장은 새 경제팀의 경기부양책에 잔뜩 들떠 있다. 하지만 ‘경영합리화’란 이름으로 5000명에게 강요된 희생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뼈아픈 교훈이다. yium@seoul.co.kr
  • 夏~ 숲·강변 글램핑休~ 힐링 템플스테이…더운데 멀리 갈 거 있나요 ‘피서 in 서울’

    夏~ 숲·강변 글램핑休~ 힐링 템플스테이…더운데 멀리 갈 거 있나요 ‘피서 in 서울’

    자연으로, 해외로 떠나는 계절이다. 여행의 반은 여정이라고 했다. 하지만 여름 휴가철의 여정은 도로에서 돈과 시간을 낭비하는 것으로 끝나기 쉽다. 그렇다면 서울로 떠나자. 도심 속 빌딩이나 은행에 앉아 에어컨 바람을 쐬라는 게 아니다. 호젓한 마음의 피서를 원한다면 템플스테이를, 자연과 호흡하고 싶다면 숲속·강변의 캠핑장을, 서비스를 받고 싶다면 실속 호텔 패키지를 권한다. 도서관 여행, 432개 분수 탐방, 역사기행 등 가장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서울의 숨어 있던 참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내 안의 행복한 달’ 지난 5일 서울 은평구 진관사에서는 9명이 모여 스스로 우려낸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선우 스님의 ‘달 이야기’를 경청했다. 따뜻한 물을 쓰는 일본식 다도(茶道)와 달리 펄펄 끓는 물을 이용해 찻잎의 맛과 향을 우려내는 우리나라 전통식 다도를 배운 후였다. 달은 하나다. 하지만 냇가에 있는 이는 흐르는 물에 비친 달을 보고, 어떤 이는 접시물에 반사된 달을 보며, 또 다른 이는 찻잔에 어린 달을 본다. 달은 하나지만 상황에 따라 1000가지로 보인다. 보름달이 되고 사라지기도 하지만, 단지 모양이 변하거나 가려졌을 뿐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괴롭고 슬플 때 우리는 행복이 사라졌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행복은 늘 그 자리에 있다. 내 안의 행복한 달을 찾아야 하는 이유다. 선우 스님은 “많은 젊은이들이 인터넷을 들여다보며 남부러울 정도의 이성친구, 자동차, 저택이 없다고 불행한 감정을 갖는데 그것이 곧 달을 가리는 행위”라면서 “달은 내 안에 있는데 밖에서 찾고 있다”고 말했다. 1005년 역사의 진관사에서 열리는 여름 템플스테이는 지난해 6월 함월당을 완공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지난해 3500명이 찾았고 올해는 5000명이 찾을 것으로 예상한다. 특별한 여름 휴가를 지내려는 이들이다. 10명 이상 단체는 주중에 참여 가능하고 개인은 8월 주말에 아직 자리가 남아 있다. 1박 2일 프로그램은 다도, 참선, 둘레길 걷기, 새벽 3시 30분 행복예불 등으로 이뤄져 있다. 이날 이곳을 다녀간 한 중년 주부는 맘껏 울 수 있는 장소가 없어 찾아왔다고 했다. 자신은 늦깎이 공부를 시작했지만 아이들은 공부를 하지 않아 애가 탔다. 다른 중년 남성은 자신을 추월해 승진하는 후배 때문에 자괴감에 빠졌다. 하지만 이들은 오히려 자신이 타인에게 나누어 줄 게 많다는 행복감을 느끼고 돌아갔다. 한 20대 청년은 수년간 공부 끝에 미국 대학 박사과정에 입학했는데 정작 떠나려니 한국이 너무 소중하고 사랑스럽다고 했다. 선우 스님은 “결심했던 것을 이루면 정작 갖고 있던 게 소중해지는데 다른 편에서 보면 이는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라면서 “그 두려움에 망설이지 말고 두려움은 이곳에 두고 가라”고 조언했다. 진관사 외에 종로구 조계사·묘각사·금선사, 강남구 봉은사, 강북구 화계사, 성북구 길상사, 양천구 국제선센터 등 8곳에서도 여름 템플스테이를 연다. 다만, 일반적인 여행상품이 아니어서 사찰 사정에 따라 일정이 바뀔 수 있다. 홈페이지를 통해 일정과 프로그램 등을 사전에 확인하는 게 좋다. 난지·노을 캠핑장 등 한강변을 중심으로 들어선 캠핑장은 서울대공원, 중랑캠핑숲, 강동그린웨이 등 숲속으로 확장되는 추세다. 서울 안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고 새소리를 들을 수 있어 인기가 높다. 이 가운데 중랑캠핑숲은 서울 도심에 설치된 첫 오토캠핑장과 전원 공급 시스템 및 스파를 갖췄다. 가족 트레킹 코스로도 유명하다. 이곳에서 1.9㎞ 떨어진 망우리 공원에는 5.2㎞의 산책로인 ‘사색의 길’과 독립운동가 묘소 등이 있다. 망우리 공원엔 1970년대만 해도 2만 8500여기의 묘소가 있었는데 분묘 이전 지원 등으로 현재 8400여기만 남았다. 캠핑장에서 4.9㎞ 떨어진 용마폭포공원은 동양 최대의 인공폭포로 각종 체육시설과 산책로 등이 조성돼 있다. 캠핑장에서 20분 떨어진 곳에는 동구릉(태조 이성계의 건원릉 포함 왕·왕비의 9개 묘소)이 자리하고 있다. 캠핑은 좋은데 텐트 등 장비 구입이 부담스럽다면 서울시가 오는 19일부터 다음달 19일까지 운영하는 한강 글램핑장도 괜찮다. 한강 뚝섬·잠실·잠원 지구에 각각 100동, 여의도에 200동을 설치한다. 글램핑(glamping)은 화려하다(glamorous)와 캠핑(camping)을 조합해 만든 신조어로 필요한 도구들이 모두 갖춰진 곳에서 안락하게 즐기는 캠핑을 뜻한다. 캠핑장에는 샤워장, 바비큐존 등이 함께 운영되며 테이블, 의자, 매트, 아이스박스, 랜턴, 담요 등을 빌릴 수 있다. 한강 캠핑은 뚝섬, 잠실, 잠원, 여의도, 망원, 난지, 광나루 지구의 한강수영장과 연계해 즐길 수 있다. 주말에 캠핑을 한다면 서울시가 7월 20일부터 8월 17일까지 다양한 선박 60여척을 운항하는 몽땅 배 퍼레이드(일요일 오후 4~5시)를 볼 수 있다. 양화~여의도~반포 구간을 운항한다. 한강 다리 밑에서 영화를 보는 다리밑 영화제도 지난해 진행했던 방화대교, 양화대교, 성산대교, 동작대교, 한남대교, 청담대교 외에 원효대교와 천호대교가 추가됐다. 7월 25일부터 8월 16일까지 매주 금·토요일 저녁 8시에 영화를 무료로 볼 수 있다. 단, 원효대교 밑인 여의도 물빛무대는 오후 8시 30분부터, 천호대교 옆 광진교 8번가는 오후 7시 30분부터 영화가 시작된다. 사전예약 없이 시간에 맞춰 가면 된다. 시내에 432개나 되는 분수도 아이들에게 최고의 피서 선물 중 하나다. 광화문광장 분수, 여의도 물빛광장 분수, 동작구 보라매공원, 강북구 북서울 꿈의숲, 강동구 서울숲, 마포구 월드컵공원 분수 등이 유명하다. 광화문 분수는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 50분까지 50분 가동, 10분 휴식을 반복한다. 여의도 물빛광장 분수는 지하수를 이용한 자원 재활용 시설로 물 웅덩이가 함께 있어 물놀이에도 좋다. 북서울 꿈의숲은 분수, 폭포, 물놀이장을 모두 갖췄다. 자치구별로 보면 도봉구에 29개로 가장 많고 동작구(27개), 성동구(26개), 중랑구(25개), 송파구(22개) 순이다. 한강 캠핑, 영화 상영, 분수 등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시 홈페이지(www.seoul.go.kr)에서 찾을 수 있다. 서울 시내 계곡도 훌륭한 피서지로 매년 사람들을 끌어모은다. 강북구 우이동 계곡, 종로구 부암동의 백사실 계곡과 평창동 계곡, 은평구 진관동 삼천사 계곡과 진관사 계곡 등이다. 편안한 휴가를 원한다면 호텔 패키지를 선택할 수 있다. 대부분의 호텔이 호텔 내 시설과 식사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여름 휴가 상품을 내놓는다. JW메리어트 관계자는 “여름 휴가로 호텔을 찾는 이들이 늘어나는 추세를 반영해 올해는 35만원선(세금·봉사료 제외)의 패키지 상품을 내놓았다”면서 “실내 수영장, 키즈풀 피트니스 시설 등을 무료로 이용하면서 흥인지문이 보이는 테라스에서 서울의 야경을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가족끼리 한적하게 담소를 나누며 걷고 싶다면 서울 둘레길과 한양도성길도 그만이다. 남산, 낙산, 인왕산, 북악산, 4대문, 한양도성을 잇는 한양 도성길은 18.6㎞로 조성돼 있다. 관악산, 북한산, 대모산, 수락산, 봉산, 아차산 등을 이어 서울의 외곽을 한 바퀴 도는 서울 둘레길은 153㎞나 된다. 서울 근교 산자락길은 접근성이 뛰어난 등산 코스를 선정해 노약자나 어린이, 유모차 등도 불편 없이 이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 안산, 매봉산, 관악산, 배봉산, 고덕산, 서달산, 인왕산 자락길을 포함해 9곳에 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대한민국 변화시킬 마지막 기회”

    “대한민국 변화시킬 마지막 기회”

    박근혜 대통령은 6일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어렵게 살려낸 경제회복의 불씨를 더욱 크게 살려내고 우리 경제의 재도약을 이끌어 대한민국의 희망을 만들어 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59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정부는 우리 사회의 비정상적인 적폐를 바로잡아서 안전한 나라, 새로운 대한민국을 반드시 만들어 갈 것”이라며 “지금이 아니고는 해낼 수 없는 일이다. 국민 여러분의 적극적인 동참이 없다면 이룰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이름 모를 산야에 묻혀 있는 많은 호국용사들의 유해를 발굴하는 사업에 더욱 노력해 마지막 한 분까지 가족의 품으로 모시도록 하겠다”면서 “6·25 전쟁에 참전해 공헌을 했음에도 국가유공자로 예우받지 못한 분들에 대해서도 공적을 발굴해 묘소를 국립묘지로 옮기고 위패를 모셔서 마지막까지 정성을 다해 예우해 드릴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어 박 대통령은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들의 희생 위에 자유와 번영의 꽃을 피웠고, 잃어버린 주권을 찾는 원동력이 됐으며, 전쟁의 폐허를 딛고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를 이룩한 동맥이 됐다”고 고마움을 표한 뒤 “우리에게는 선열들이 남기신 고귀한 뜻을 이어받아 부강한 나라, 국민 모두가 행복한 나라를 만들어 가야 하는 책무가 주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저는 국민 여러분과 함께 힘을 모아서 안팎의 도전과 시련을 반드시 극복하고 대한민국의 희망찬 미래를 열어 가겠다”고 다짐했다. 박 대통령은 “금년에는 우리 정부 요청으로 중국 하얼빈역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개관됐고, 시안에 광복군 제2지대 표지석을 설치했다”면서 “앞으로도 선열들의 애국정신을 기리는 사업을 꾸준히 추진해 후세들이 조국을 위한 희생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박 대통령은 “북한이 핵개발과 도발 위협을 계속하는 한 한반도의 평화는 요원할 것”이라며 “북한 정권이 진정으로 경제발전과 주민 삶의 향상을 원한다면 핵개발과 도발 위협부터 내려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 [글로벌 시대] 미얀마와 북한/정해문 한·아세안센터 사무총장

    [글로벌 시대] 미얀마와 북한/정해문 한·아세안센터 사무총장

    드라마는 은막이나 브라운관을 통해서만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현실에서도 수많은 드라마가 펼쳐지고 있으며, 인위적으로 제작된 작품보다 더욱 극적인 효과를 연출하곤 한다. 최근 역사를 돌이켜 보면, 지난 3년간 미얀마가 숨 가쁘게 달려온 개혁·개방의 길은 그야말로 세기의 드라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민주화 투쟁의 아이콘 아웅산 수치 여사의 복권이 상징하듯 민주주의 정착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과 미얀마 테인 세인 대통령의 상호방문이 보여주듯 이 나라는 장기 고립에서 벗어나 국제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기지개를 켜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의 경제제재가 풀리자 동남아의 마지막 숨은 보석을 캐려는 외국기업인들로 미얀마는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미얀마는 제이드와 루비 등 주요 보석의 세계적 생산강국이다. 또한, 대다수 소수민족 반군과 개별적으로 정전·휴전 합의를 도출한 데 이어 카친독립기구(KIO)를 비롯한 기타 반군그룹을 포괄하는 단일 평화협정 체결에 우선순위를 부여함으로써 정치·경제·사회 안정과 발전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더욱 공고히 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양곤을 중심으로 미얀마의 주요 도시는 지금 활기가 넘친다. 사람들의 얼굴은 밝은 내일을 확신한 듯 진취적인 모습이 역력하며 경제발전과 개인 생활수준 향상을 이루겠다는 열정으로 충만해 있다. 이러한 개혁과 개방의 자신감을 바탕으로 미얀마는 1997년 아세안 가입 이래 처음으로 올해 아세안 의장국을 수임하고 지난 5월 아세안 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하였으며, 2015년 아세안 공동체 출범 준비에 응분의 기여를 함으로써 장차 동남아 핵심국가로 발돋움할 입지를 굳히면서 국제사회의 호감도를 계속 높여가고 있다. 세계를 놀라게 하는 미얀마의 드라마는 어떻게 가능했고, 그 정반대의 길로 빠져들고 있는 북한에는 어떤 시사점을 던질까. 군부 강권 통치로는 막다른 골목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깨달음이 새로운 진로선택을 강요했다고 볼 수 있다. 태국을 비롯한 같은 아세안 회원국과 중국, 인도 등 접경국들의 경제적 번영도 미얀마의 역사적 선택에 않은 영향을 미쳤으리라 보인다. 과감하고 전향적인 행보로 밝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미얀마의 드라마를 가장 관심 깊게 지켜봐야 할 나라는 북한이다. 북한은 핵무기 개발과 고립·폐쇄 정책으로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려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경제적 피폐와 주민 고통으로 이어져 체제 이완으로 귀결될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북한은 1983년 전두환 대통령의 미얀마 방문 당시 외교사절 등 수행원 17명의 목숨을 앗아간 아웅산 테러를 자행하였다. 30여년이 지난 올해 당시 참극의 현장인 아웅산 묘소의 경내에서 추모비 제막식이 곧 거행된다. 이 추모비는 세계가 그날의 아픔과 함께 북한의 테러행위를 영원히 잊지 않을 것임을 증언해 줄 것이다. 개혁·개방으로 성공하지 못한 나라는 거의 없다. 북한은 멀리 쳐다볼 필요도 없이 미얀마의 드라마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한때 사회주의 형제국이었던 미얀마, 베트남, 라오스 및 캄보디아 등 아세안 후발 가입 4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전벽해와 같은 변화의 물결이 주민들 생활수준 향상에 어떤 순기능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경제 체질을 강화시켜주고 있는지, 어느 정도로 국제 사회와의 상호의존을 깊게 해 주는지, 관찰하면 북한 스스로에 대한 답이 나올 것이다.
  • [글로벌 시대] 디엔비엔푸/배종하 주베트남FAO대표

    [글로벌 시대] 디엔비엔푸/배종하 주베트남FAO대표

    5월의 베트남 햇살은 따갑다. 바야흐로 폭염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 수은주가 30도 후반을 오르내리고 거리를 조금만 걷노라면 이마에 땀이 송송 맺힌다. 하지만 지난 두어 달 동안 유별나게 비가 많고 습기가 찼던 탓에 속옷이 칙칙하게 달라붙는 불쾌함에도 저녁 무렵이면 많은 시민들이 쏟아져 나와 시내 중심의 호안끼엠 호수는 산책 나온 시민들로 붐빈다. 지난 7일은 베트남 국민에게 특별한 날, 60년 전 베트남 북서쪽 라오스 국경 지역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승리한 날이다. 7일 디엔비엔푸에서는 대통령을 비롯, 각국의 사절, 외교단, 지역 주민들이 참석한 대대적인 승전기념식이 있었다. TV마다 당시 전투 상황을 담은 다큐멘터리, 훈장을 주렁주렁 단 90세 노병들의 치열했던 전투 인터뷰, 시내 주요 거리에는 승전 문구를 담은 현수막, 나라 전체가 디엔비엔푸로 떠들썩하다. 당시 전설적인 승리를 지휘했던 보응우옌잡 장군은 작년 가을 102세로 세상을 떠났는데 고향에 묻힌 그의 묘소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1946년 호찌민은 독립선언을 했으나 프랑스가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계속 베트남을 지배하려는 야욕을 드러내 양측은 지루한 전쟁을 계속했다. 디엔비엔푸는 베트남과 라오스를 잇는 전략적인 요충으로 호찌민 군의 주요 작전지역이었다. 이에 프랑스 군은 디엔비엔푸를 장악하기 위해 1953년 여름부터 대규모 거점을 구축했다. 육로로 접근이 어려운 산악지역이라 비행장을 건설하고 어마어마한 병력과 물자를 공수했다. 호찌민 군은 디엔비엔푸를 공략하기로 결정하고 대대적인 전투 준비를 했고 마침내 1954년 3월 13일부터 5월 7일까지 두 달 동안 치열한 전투를 벌인다. 이 전투가 세계 전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호찌민 군은 절대적으로 열등한 전력에도 불구하고 승리했기 때문이다. 호찌민 군은 도로조차 없는 산악지역에 인력으로 야포 수백문을 험난한 산꼭대기까지 끌어올리고 눈에 띄지 않도록 철저하게 위장했다. 산꼭대기에서 포격이 날아올 줄 상상도 못했던 프랑스 군들은 허를 찔려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 군은 미국으로부터 무기와 물자를 엄청나게 공급받았지만 최후엔 공중 공급마저 끊어지면서 고립된 상태에서 방어선이 무너져 결국 항복하고 말았다. 프랑스군의 전사가 3000명, 부상 5000명, 포로가 1만명이 넘었으니 그 피해가 얼마나 극심했는지 알 수 있다. 역사적으로는 이 전투가 인도차이나의 운명을 가르는 전환점이 됐다. 프랑스는 디엔비엔푸 패전 이후 인도차이나에서 물러났고 알제리에서마저 영향력을 상실하면서 해외 식민지 기반을 완전히 잃었다. 프랑스가 물러간 이후 미국이 인도차이나에 개입했지만 20년 후 미국도 불명예스럽게 철수해 베트남은 통일을 이뤘다. 영국의 역사학자 마틴 윈드로는 디엔비엔푸 전투를 식민지 지배하에서 게릴라가 아닌 제대로 조직된 군대를 만들어 유럽의 제국주의 세력을 물리친 최초의 사례라고 평가하고 있다. 전쟁은 승자의 논리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프랑스가 이겼더라면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고 패배한 쪽은 고스란히 역사의 멍에를 뒤집어썼을 것이다. 그러나 호찌민을 비롯한 지도자들은 철저한 준비와 계산, 탁월한 지휘체계로 상대의 허를 찔러 역사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였다. 디엔비엔푸는 60년이 지난 지금도 베트남 국민의 가슴 속에 뜨겁게 남아 있다. 비록 가난한 나라지만 베트남 사람들의 자존심은 어느 나라 못지않게 높다. 시원한 밤바람을 맞으며 호안끼엠 호수를 거니는 노인네들 얼굴에는 굵은 주름이 가득하지만 여유와 자신감이 흐른다.
  • 이용섭 탈당 및 국회의원직 사퇴…새정치 광주시장 윤장현에 맞서 출마 선언

    이용섭 탈당 및 국회의원직 사퇴…새정치 광주시장 윤장현에 맞서 출마 선언

    ‘이용섭 탈당’ ‘이용섭 국회의원직 사퇴’ ‘새정치 광주시장’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한 이용섭 의원이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광주시장에 무소속으로 도전키로 했다. 이용섭 의원은 7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민주화의 성지 광주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국회의원직을 사퇴한다”고 밝혔다. 이용섭 의원은 이날 “김한길·안철수 새정치연합 공동대표는 밀실 담합으로 황금연휴를 앞둔 지난 2일 심야에 광주시민의 뜻을 철저하게 짓밟는 ‘낙하산 공천’, ‘지분 공천’을 전격 발표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안철수 대표는 자기 지분을 챙기는 대신 새 정치 민주연합의 미래를 버렸고 김한길 대표는 당권유지를 위해 광주시민을 버렸다”며 “안철수의 새 정치는 죽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두 대표의 ‘호남 인물 죽이기’를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며 “일신상의 편함보다 제가 갖고 있는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시민들과 아픔을 함께 나누면서 광주시민들의 눈물을 닦아드리는 것이 저의 도리”라고 설명했다. 이용섭 의원은 “이제 6·4 광주시장선거는 ‘민주 대 반민주세력’, ‘시민후보 대 낙하산후보’, ‘광주살리기 세력 대 광주죽이기 세력’ 간의 싸움이 됐다”며 “광주시민들이 낙하산후보가 아닌 시민후보를 뽑아 ‘광주정신’이 살아 있음을 보여 달라”고 호소했다. 한편 이용섭 의원은 기자회견 직후 국회의장을 만난 뒤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했다. 이어 8일에는 봉화마을을 찾아 권양숙 여사를 예방한 뒤 지지자들과 함께 광주 5·18 묘소 참배를 할 계획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한식맞이 성묘

    한식맞이 성묘

    6일 ‘한식’을 맞아 경기 파주시 용미리 공원묘지를 찾은 일가족이 조상의 묘소 앞에서 차례를 지내고 있다. 한식은 동지 후 105일째 되는 날로 예로부터 설날·단오·추석과 함께 4대 명절로 꼽힌다.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 지역 명소 둘러보고 도로명 유래 공부하기

    “오늘은 회기동이 유래한 회기로에 있는 세종대왕기념관에 갑니다. 회기동은 연산군의 생모 폐비 윤씨의 묘소인 회묘(懷墓)가 있어서 붙은 이름이랍니다. 그럼 출발할까요.” 동대문구가 초등학교 3~4학년 학생들에게 지역 명소와 문화유산을 돌아보고 도로명의 유래를 알 기회를 제공한다고 31일 밝혔다. 자라는 어린이들에게 향토사를 알려줘 자긍심을 높이고 미래 동대문을 이끌 인재로 크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다. 지역 명소를 직접 볼 기회가 적었던 초등학생들에게 주요 명소와 유적지를 탐방할 시간을 제공하고자 마련된 프로그램엔 6월까지 11개교가 참여한다. 해당 학교가 필요한 날짜를 지정한다. 견학 장소는 ▲경희대와 시립대 캠퍼스, 교내 박물관 ▲서울약령시와 한의약박물관 ▲배봉산 근린공원 ▲세종대왕기념관과 영휘원 등이다. 전문 해설사가 동행해 상세한 안내와 설명을 들려준다. 또 도로명과 관련된 역사적 이야기와 도로명주소에 대한 교육도 곁들여 더 쉽게 도로명주소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유덕열 구청장은 “아이들이 고장의 역사와 문화를 더 쉽게 접할 수 있기를 바란다”면서 “학생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꾸준히 개발하겠다”고 말했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김울산 여사 기부정신 잊지 않을게요”

    대구시교육청이 교육 기부의 상징인 김울산(1858~1944) 여사를 재조명한다. 김 여사는 일제강점기 때 사재를 털어 학교를 설립하는 등 교육과 사회봉사에 헌신했다. 시교육청에 따르면 김 여사는 1926년 대구에 있던 사립 명신여학교를 인수했다. 그리고 광복의 염원을 담아 학교 이름을 ‘복명’으로 바꿨다. 그 학교가 지금의 복명초등학교다. 당시 김 여사는 쌀 4000석에 해당하는 돈 8만원을 학교 설립을 위해 기부했고 운영비로 매년 3000원을 내놓는 등 이 학교를 위해 20만원 상당을 들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 돈은 지금의 가치로 200억~250억원으로 추정되며 요즘 학교 하나를 짓는 데 드는 비용과 맞먹는다. 그는 또 대구 최초의 초등학교인 희도학교(현 종로초등학교)에도 1000원을 기부했다. 흉년이 든 해에는 쌀 2000석을 내놓아 구호에도 앞장섰다. 김 여사는 조선 말기 정3품인 통정대부 김철보의 장녀로 울산에서 태어나 16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19세에 남편과 사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관기가 돼 정미소와 술집을 운영하면서 많은 재산을 모았고 그렇게 모은 재산을 교육과 사회봉사를 위해 썼다고 한다. 하지만 후손이 없어 그의 공적은 제대로 기려지지 않았고 대구 북구 조야동에 있는 김 여사의 묘소에는 봉분이 훼손된 채 그의 소작인이 설치한 비석만 남아 있다. 복명초교 교정에도 김 여사의 흔적은 교정 한편에 세워진 석상이 전부다. 시교육청은 다음 달 김 여사의 업적을 재조명하는 학술세미나를 시작으로 교육기부 공로자 기념사업회를 구성, ‘김울산 상’을 제정하고 ‘김울산 길’도 지정할 계획이다. 또 김 여사의 묘소를 정비하고 그에 관한 전기를 발간해 교육용 자료로 활용할 계획이다.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은 “김 여사는 진정 대구 교육 기부의 어머니라 할 만하다”며 “김 여사의 정신을 기리고 계승해 나눔과 배려로 빛나는 도시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경북 ‘근·현대 문학 관광벨트’ 지지부진

    경북 ‘근·현대 문학 관광벨트’ 지지부진

    이문열, 김주영 등 한국 문학사를 빛낸 작가를 다수 배출한 안동, 청송, 영양 등지에 흩어진 문학 관광 자원을 연계하는 경북도의 ‘한국 근·현대 문학 관광벨트’ 구축 사업이 유명무실하다. 19일 경북도에 따르면 도는 2010년부터 2012년까지 3년간 안동, 청송, 영양 등 북부 지역에 한국 근·현대 문학 관광벨트를 구축하기로 했다. 이들 지역에 구축된 문학 관광 인프라를 활용해 새로운 융복합형 관광 콘텐츠를 개발한다는 목적이었다. 안동은 일제강점기 때 저항시인 이육사의 출생지로 생가와 묘소, 문학관이 있고 청송은 작가 김주영을 배출한 곳이다. 또 영양은 ‘시원’(詩苑)을 창간한 시인 오일도, 청록파 시인 조지훈, 소설가 이문열 등의 출생지다. 매년 5월과 7월이면 영양과 안동에서 ‘지훈문학제’와 ‘이육사 문학축전’이 열린다. 이문열의 고향 마을인 영양 두들마을은 작품 ‘선택’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금시조’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 등의 무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도는 주요 사업으로 이육사문학관~영양 주실마을(조지훈)·감천마을(오일도)·두들마을(이문열)~청송 객주 테마파크(김주영) 구간에 문학관광 버스를 운행할 계획이었다. 이들 지역을 연계한 월별, 계절별 릴레이 문학 축제를 개최하고 도보 탐방로를 조성하는 한편 교육·체험 복합형의 대규모 근대문학 테마타운도 건립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이들 작가와 관련된 근대문학 공원, 문인의 집 등도 짓기로 했다. 문예대학 운영과 학생 문예캠프 상설화 등도 추진한다. 중장기적으로 이 일대를 근·현대 문학관광특구로 지정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그러나 지금까지 사업 대부분이 추진되지 않고 있다. 오는 25일 청송군 진보면 진안리에 73억원을 들여 객주문학관을 준공하는 정도가 고작이다. 도가 당초 계획했던 경북 북부 지역 문학 관광벨트 조성을 통한 관광객 유치 등이 겉돌고 있다. 시·군 관계자들은 “도의 문학 벨트 조성 사업이 장밋빛 청사진에 불과하다”면서 “도가 안동을 중심으로 추진 중인 ‘한국 정신문화 중심 도시 육성’ 사업 등에 문학 벨트 조성 사업을 포함시켜 함께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대구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새정치연합 정책노선 ‘탈DJ·盧 지우기’ 충돌

    새정치연합 정책노선 ‘탈DJ·盧 지우기’ 충돌

    통합신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의 정체성을 담은 정강·정책을 놓고 민주당과 안철수 의원 측의 노선 갈등이 본격화되고 있다. 그동안 민주당은 발기취지문 등에서 중도노선을 취하고 있는 안 의원 측의 입장을 상당 부분 수용하는 모양새를 취했으나 통일·외교·안보, 복지·경제 분야 등 각론에 들어가면서 양측의 입장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 것이다. 특히 민주당의 기존 정강·정책에 김대중(DJ)·노무현 전 대통령의 성과만 언급하고 있는 데 대해 안 의원 측이 박정희 정권의 7·4 공동선언과의 형평성을 문제 삼고 나서 신당의 좌표 설정에도 진통이 예상된다. 60년간 이어져 온 민주당 노선에 중대 기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은 18일 서울 여의도 민주정책연구원에서 정강·정책분과위원회 회의를 열고 양측이 마련한 정강·정책 초안을 논의했다. 새정치연합이 민주당에 제시한 정강·정책 초안에는 ‘6·15 남북공동선언과 10·4 남북정상선언 등을 존중·승계한다’는 내용이 빠진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안 의원 측 윤영관 공동분과위원장은 “과거의 소모적, 비생산적인 이념 논쟁은 피하는 게 좋다”며 제안 배경을 설명했다. 이는 민주당으로선 정신적 지주인 김대중·노무현 두 대통령의 핵심적 성과를 부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에서 물러날 수 없는 부분이다. 논란이 커지자 안 의원 측 금태섭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을 갖고 “6·15 남북공동선언이나 10·4 남북정상선언을 존중하지 않아서 뺀 것은 아니다. 7·4 공동선언은 왜 없느냐는 지적이 나올 수 있어 특정 사건을 늘어놓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안 의원 측이 그동안 중도 노선을 취해 왔던 만큼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성과를 담으려면 박정희 정권의 공도 담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안 의원은 지난 대선에 이어 새해 첫날에도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했고 민주화 세력뿐 아니라 산업화 세력도 포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이에 민주당 측 정강·정책분과위원인 홍종학 의원은 “7·4 공동선언도 정강·정책에 넣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해 조율 가능성은 열어뒀다. 그러나 친노무현·DJ계 등 강경파가 ‘노무현 흔적 지우기’, ‘탈DJ’라고 반발하면서 양측이 접점을 찾기까지 상당한 진통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박지원 의원은 “논쟁을 피하고자 좋은 역사, 업적을 포기하면 안 된다”고 비판했다. 권노갑·정동영 등 민주당 원내 상임고문들도 이날 안 의원과의 만찬 자리에 우려를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안 의원 측은 처음 제시한 초안에 ‘4·19 혁명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도 넣지 않았으나 논란이 커지자 정강·정책 전문에 기술하기로 한발 물러섰다.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통합신당 “고집불통” 오거돈·김상곤 어쩌나

    통합신당 “고집불통” 오거돈·김상곤 어쩌나

    6·4 지방선거에서 안철수 의원 측의 기대주였던 오거돈(왼쪽) 전 해양수산부 장관과 김상곤(오른쪽) 전 경기도교육감이 민주당과 안 의원이 추진하는 통합신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의 난제가 되고 있다. 부산시장에 출마하는 오 전 장관은 통합신당 합류를 거부한 채 무소속 후보를 고집하고 있고 김 전 교육감은 최근 좌클릭 행보를 강화하면서 중도노선 강화로 외연 넓히기에 들어간 신당을 당혹스럽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안 의원 측 입장에서는 ‘안철수 브랜드’로 통하는 두 후보가 통합신당의 후보가 돼야 지방선거에서 체면을 차릴 수 있기 때문에 고민이 더욱 깊다. 오 전 장관은 17일 부산시장 출마 기자회견에서 “정당의 힘으로 시장이 되고 싶지 않다”면서 무소속 출마 의지를 재차 강조했다. 이에 민주당 후보로 부산시장에 출마한 김영춘 전 의원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오 전 장관이 무소속 출마를 얘기하면 더 이상 기다릴 필요가 없다. 각자 마이웨이를 가는 수밖에 없다”며 초강수를 두는 등 양측의 신경전이 고조되고 있다. 양측이 야권 단일화에 실패한다면 안 의원 측이 지지하는 후보가 오 전 장관과 통합신당 후보 두 명인 모양새가 돼 어떻게든 정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김 전 교육감도 새정치연합의 또 다른 고민거리로 떠올랐다. 김 전 교육감은 최근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소에 “참배할 생각이 없다”고 발언해 논란을 일으켰을뿐더러 ‘공짜 버스’ 논쟁까지 촉발시키면서 진보적 색채를 뚜렷이 하고 있다. 이는 그동안 안 의원 측이 보여 왔던 행보와 차이가 난다. 안 의원은 새해 첫날에도 현충원을 찾아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차례로 참배했고 이에 김효석 공동위원장은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로서 잘한 일”이라고 평가했었다. 특히 새로 출범한 새정치연합이 우클릭 행보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김 전 교육감의 행보가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치권 관계자는 “2010년 지방선거에서 유시민 후보가 패한 것처럼 경기도는 보수 대 진보 구도로 갈 경우 싸움이 어려워진다”면서 “김 전 교육감이 마이너스 정치가 아닌 플러스 정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유일한 박사 43주기 추모식

    유일한 박사 43주기 추모식

    11일 서울 구로구 항동 유한공업고에서 유일한 박사 43주기 추모식을 맞아 유한양행 및 관계사 임원들이 유 박사 묘소에서 참배하고 있다. 왼쪽부터 최상후 유한화학 사장, 최규복 유한킴벌리 사장, 김해룡 유한크로락스 사장, 김선진 유한양행 전 사장, 김태훈 유한양행 전 사장, 김윤섭 유한양행 사장, 유도재 유한학원 이사장, 이광명 유한공고 교장, 이권현 유한대학 총장. 유한양행 제공
  • 50년간 삶·시대의 장면 생생히

    50년간 삶·시대의 장면 생생히

    지난 반세기 한국 사진 저널리즘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삶의 기억, 시대의 기록’전이 28일부터 다음 달 17일까지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전시관에서 열린다. 한국사진기자협회(회장 홍인기)가 창립 50주년을 맞아 주최하는 대규모 사진전으로 전국 일간지, 통신사 사진기자들이 찍은 수백만점의 보도사진 가운데 300여점을 선보인다. 대연각 화재(1971년), 마더 테레사 수녀 방한(1981년), 미얀마 아웅산 묘소 폭파(1983년), 황영조의 마라톤 금메달 획득(1992), 숭례문 화재(2008년) 등 우리 근현대사를 속속들이 포착한 사진들이다. 이 가운데 서울신문 김동준 전 기자가 대연각 호텔 화재 현장을 담은 ‘필사의 탈출’은 UPI 사진상을 받은 화제작이다. 전시는 주제전과 본 전시, 특별전 등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주제전 ‘사진으로 읽는 한국현대사’에선 1959년 미스코리아 진의 서울 태평로 퍼레이드 모습과 1964년 전투기를 타고 한반도 상공에서 촬영한 최초의 독도 항공 사진 등이 나온다.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록 사진 가운데 당시 언론에 실리지 못한 사진들을 모은 ‘34년 만의 약속-80년 5월, 그날의 사진’도 공개된다. 본 전시로는 지난 한 해 사진 중 우수작을 선정해 보여주는 한국보도사진전의 제50회 수상작 전시와 ‘현장의 사진기자’전이 함께 열린다. 특별전으로 ‘전설의 사진기자 3인’전과 ‘역대 대상 수상작’전도 펼쳐진다. ‘1960년 4월 18일의 고려대생 피습 사건’을 찍은 정범태(86), ‘1987년 6월 25일 78일의 가택연금에서 해제된 김대중 전 대통령’을 찍은 전민조(70), 판문점을 출입하며 기록해 온 김녕만(65) 등 원로 사진기자 3명의 사진을 소개한다. 특별전에서는 사진기자의 카메라, 가방, 취재 완장 등의 변천사를 함께 보여준다. 성인 1만 2000원, 청소년 1만원, 어린이 8000원. (02)733-9576∼7.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살아 있었구나”… 납북선원, 40년 만에 동생 안고 오열

    “살아 있었구나”… 납북선원, 40년 만에 동생 안고 오열

    “형님아….” 20일 오후 3시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 50대 중년 남성 두 명이 서로 얼굴을 만져 보고 뺨을 비벼보다 울음을 터트렸다. ‘얼굴을 기억할 수 있을까’ 했던 걱정은 친형을 눈앞에서 본 순간 하얗게 사라졌다. 42년 전 납북된 친형 박양수(58)씨를 만난 박양곤(52)씨는 ‘형님’, ‘형님’을 되뇌다 다시 말을 잇지 못하고 형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오열했다. 이번 이산가족 상봉에는 납북 선원 2명이 포함돼 양곤씨 등 남측 가족과 상봉했다. 양수씨는 1972년 12월 28일 서해에서 조업하다 북한 경비정에 납치됐다. 당시 그를 비롯한 25명의 어부는 쌍끌이 어선인 오대양 61, 62호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중이었다. 지난해 9월 함께 납북됐던 선원 전욱표(69)씨가 탈북하며 ‘오대양호 납북 사건’이 다시 여론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양수씨는 1972년 초등학교만 막 졸업하고 “고기잡이해서 돈을 벌어 가정을 돕겠다”며 나간 뒤 바다 밑으로 사라지듯이 북으로 납치돼 ‘생이별’했다. 양곤씨는 “무엇보다 (형님이) 건강하시니까 감사하다”며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형의 납북 이후 가족들이 출국을 금지당하는 등의 설움이 모두 사라지는 듯했다. 이날 아들 박종원(17)군과 동행한 양곤씨는 형과 형수 리순녀(53)씨를 함께 만났다. 양곤씨는 형에게 돌아가신 부모님과 큰형의 묘소 사진, 고향 마을 풍경 사진을 보여 줬고 내복 등 의류와 생활필수품을 선물했다. 양수씨는 북쪽의 부인을 소개하며 “내가 당의 배려를 받고 이렇게 잘산다”고 준비해 온 봉투에서 꺼낸 가족사진을 보여 주기도 했다. 최선득(71)씨 가족과 상봉한 동생 최영철(61)씨는 1974년 2월 15일 백령도 인근에서 홍어잡이를 하다 북측의 함포 사격을 받은 뒤 납북됐다. 당시 동생 최씨가 타고 있던 수원 33호는 포격을 받고 침몰했고 함께 조업하던 수원 32호와 선원 14명이 함께 북으로 끌려갔다. 이후 동생의 행방은 2008년 납북자가족모임이 공개한 ‘납북 선원 사진’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형 선득씨는 “이제 우리 7남매가 모두 살아 있는 것을 알았다”며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에 상봉한 전후 납북자는 박근혜 정부와 북한 김정은 체제 아래 처음으로 남쪽의 가족과 만난 사례다. 이번 상봉을 포함해 상봉 행사에서 남측 가족을 만난 납북자는 모두 18명에 불과하다. 납북자는 2000년 11월 제2차 이산가족 상봉부터 국군포로와 함께 특수이산가족 형태로 2∼3명씩 참여해 왔다. 금강산공동취재단 안석 기자 ccto@seoul.co.kr
  • “엄마, 저예요”… 치매 노모 만난 딸 울음 터트려

    “언니, 저예요. 왜 듣지 못해요. 언니, 언니….” 20일 열린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서는 그 누구도 애절하지 않은 사연이 없었다. 백발이 성성한 이산가족 상봉 대상자들은 20일 오후 3시부터 두 시간 동안 금강산호텔에서 생이별한 형제와 자식, 심지어는 얼굴도 모르는 손주와 만나 분단의 아픔을 달랬다. 평남이 고향으로 6·25 전쟁 당시 두 딸을 시부모에게 맡기고 남편과 함께 월남했다는 이영실(88) 할머니는 치매 증세로 북쪽의 친동생 정실(85·여)과 딸 동명숙(66)씨를 알아보지 못해 지켜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명숙씨는 이 할머니가 자신과 이모를 알아보지 못하자 “엄마, 이모야, 이모, 엄마 동생”이라며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면서도 이 할머니의 계속 손을 잡고 귀엣말을 하며 어머니 곁을 떠나지 못했다. 정실씨도 탄식과 함께 눈물을 쏟아냈다. 황해도 연백이 고향인 이범주(86) 할아버지는 6·25 때 헤어진 북측 남동생 윤주(67)씨와 여동생 화자(72)씨를 만나 “미안하다”는 말을 되뇌었다. 이 할아버지는 “연백에서 바로 건너면 강화도고 내가 장남이니까 1·4후퇴 때 할아버지께서 내가 먼저 가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부모님의 묘소는 어디에 있는지, 기일은 언제인지 등을 물으며 부모님 곁을 지킨 동생들을 위로했다. 평북이 고향인 김영환(90) 할아버지는 북녘에 두고 온 아내 김명옥(87)씨와 아들 대성(65)씨를 만났다. 이번 상봉단 82명 가운데 유일하게 배우자를 만났다. 손기호(91) 할아버지는 딸 인복(61)씨와 외손자 우창기(41)씨를 만났다. 딸을 눈앞에 두고 말을 잇지 못하는 손 할아버지에게 인복씨는 “못난이 딸을 찾아오셔서 고마워요”라며 울면서 껴안았다. 전시 납북자 가족도 이날 상봉에 포함됐다. 최남순(65·여)씨는 60여 전 죽은 줄로만 알고 있던 아버지가 사망 전 북한에 남기고 간 이복동생 경찬(53)·경철(46)·덕순(56·여)씨를 만났다. 최씨는 상봉장에서 북측 가족에게서 건네받은 아버지 사진을 보고, 부친의 고향과 직업 등을 묻고는 “아무리 봐도 제 아버지가 아닌 것 같다”며 북측 가족의 아버지가 자신의 아버지와 동일 인물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의형제’를 맺는 것으로 정리했다. 김섬경(91) 할아버지와 홍신자(83) 할머니는 거동이 불편해 구급차를 타고 금강산까지 이동했다. 이들은 건강상의 이유로 21일 개별상봉 후 귀환하기로 했다. 저녁 7시부터 북측 주최로 열린 만찬에서도 가족들은 서로에게 음식을 떠주며 상봉의 감격을 이어 갔다. 오후 개별상봉 때보다 긴장감이 누그러지며 남북 가족이 함께 사진을 찍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렸다. 리충복 북한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이 뜻깊은 상봉은 북과 남이 공동의 노력으로 마련한 소중한 결실”이라고 평가했다. 유중근 대한적십자사 총재는 “이산가족 상봉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인도적 사업”이라며 “가장 인간적이며 민족적 과제”라고 화답했다. 금강산공동취재단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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