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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재인 박정희 참배에 정청래 비판…새정치연합 대표에 문재인

    문재인 박정희 참배에 정청래 비판…새정치연합 대표에 문재인

    ‘문재인 박정희 참배’ ‘새정치연합 대표에 문재인’ 문재인 박정희 참배에 새정치민주연합 정청래 신임 최고위원이 쓴소리를 남겼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9일 자신의 트위터에 “이승만, 박정희 참배에 앞서 첫 일정으로 백범 김구 선생의 묘소, 인혁당 열사들의 묘소 참배가 더 우선이라 생각했다”며 “똘레랑스는 피해자의 마음을 더 먼저 어루만지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가해자를 용서하는 것은 그다음에 해도 늦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날 문재인 신임 당대표는 취임 후 첫 행보로 이승만, 박정희 두 전직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신임 지도부는 이날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을 방문해 현충원을 참배했다. 문재인 대표는 국론 분열을 끝내자는 뜻에서 그 동안 야당 지도부가 들르지 않았던 이승만, 박정희 두 전직 대통령의 묘소까지 처음으로 방문했다. 그러나 최고위원단 내에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문재인 당대표와 문희상 전 비대위원장, 우윤근 원내대표만 참배했다. 신임 지도부의 상징성이 담긴 첫 행보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구성원 간에 이견이 발생한 것을 두고 문재인 대표 체제가 순항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도 벌써부터 나온다. ’선명한 야당’을 강조하며 당내 강경파의 목소리를 대변하던 정·유 최고위원이 이·박 전 대통령 묘역 참배에 반대한 것은 당의 노선과 정체성을 두고 시작부터 지도부 안에서 인식 차이가 발생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날 치러진 새정치연합 당 대표 선거에서 새정치연합 대표에 문재인 후보가 신임 당대표로 선출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에 문재인…정청래 쓴소리 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에 문재인…정청래 쓴소리 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에 문재인, 박정희 참배 문재인 박정희 참배에 새정치민주연합 정청래 신임 최고위원이 쓴소리를 남겼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9일 자신의 트위터에 “이승만, 박정희 참배에 앞서 첫 일정으로 백범 김구 선생의 묘소, 인혁당 열사들의 묘소 참배가 더 우선이라 생각했다”며 “똘레랑스는 피해자의 마음을 더 먼저 어루만지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가해자를 용서하는 것은 그다음에 해도 늦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날 문재인 신임 당대표는 취임 후 첫 행보로 이승만, 박정희 두 전직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신임 지도부는 이날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을 방문해 현충원을 참배했다. 문재인 대표는 국론 분열을 끝내자는 뜻에서 그 동안 야당 지도부가 들르지 않았던 이승만, 박정희 두 전직 대통령의 묘소까지 처음으로 방문했다. 그러나 최고위원단 내에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문재인 당대표와 문희상 전 비대위원장, 우윤근 원내대표만 참배했다. 전날 치러진 새정치연합 당 대표 선거에서 새정치연합 대표에 문재인 후보가 신임 당대표로 선출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문재인 대표, 이승만·박정희 묘역 참배…새정치 일각 반발

    문재인 대표, 이승만·박정희 묘역 참배…새정치 일각 반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취임 후 첫 일정으로 화해와 통합을 내세우며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했다. 그러나 당내 일각에서는 반발이 나오고 있다. 문재인 대표는 9일 취임 후 첫 일정으로 서울 동작동 현충원을 찾아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했다. 야당 지도부가 비록 제한된 인원이기는 하지만 보수 진영의 두 전직 대통령 묘역을 참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재인 대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역을 먼저 참배한 뒤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을 차례로 들러 헌화, 분향하고 묵념했다. 문재인 대표의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 참배에는 문희상 전 비상대책위원장과 우윤근 원내대표, 김성곤·윤후덕·송호창 의원이 함께했다. 문재인 대표의 현충원 방문에는 안철수 전 대표를 비롯해 현역 의원으로 50여명이 동행했다. 최고위원 5명 중에선 주승용 정청래 오영식 의원이 참석해 현충탑에 참배했으며, 전병헌 유승희 최고위원은 불참했다. 문재인 대표는 참배에 앞서 “모든 역사가 대한민국입니다. 진정한 화해와 통합을 꿈꿉니다”라고 방명록에 적었다. 문재인 대표는 묘역 참배 후 기자들과 만나 “두 분 전직 대통령에 대해서는 그 과를 비판하는 국민이 많지만 한편으로는 공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도 많다”면서 “저는 이런 평가의 차이는 결국 역사가 해결해주리라 생각하지만 묘역 참배 여부를 둘러싸고 계속 이런 갈등을 겪는 것은 국민 통합에 도움이 안된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표는 “그 갈등을 끝내고 국민 통합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참배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진정한 국민 통합은 묘역 참배로 되는 게 아니라 역사의 가해자 측에서 역사의 잘못을 반성하고 국민에게 진솔하게 사과하고 피해자들을 위로하고, 그래서 피해자도 용서하는 마음을 가질 때 비로소 이뤄지는 것”이라며 “박근혜 정부가 그런 진정한 화해와 통합의 길로 가기를 진심으로 촉구한다”고 희망했다. 아울러 “지난 대선 때도 여러 번 촉구했는데 지금까지 이뤄지지 않았다”며 “박근혜 정부가 국민 통합에 역행하는 일을 많이 한다”고 유감을 나타냈다. 그는 “그 중 하나가 극심한 인사 편중, 인사 차별”이라며 “그 뿐만 아니라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국민통합을 깨는 현저한 사례가 많은데 이는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민주정부의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그 부정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게 두 정부에서 이뤄졌던 두 분 대통령이 북한 지도자와 함께 한 6ㆍ15, 10ㆍ4 공동선언을 실천하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그것이 내부적으로는 국민통합을 깨고 외부적으론 남북관계를 파탄에 이르게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금이라도 두 공동 선언을 실천하는 자세를 가지는 게 바로 박 대통령이 말한 통일대박에 이르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당내 강경파를 중심으로 시기상조라는 비판이 나왔고, 특히 새 지도부 내에서조차 거센 반발이 나왔다. 이날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 참배에 문재인 대표와 문희상 전 비대위원장, 우윤근 원내대표를 비롯한 일부 의원만 참석한 것이 이를 방증하는 대목이다. 전날 문재인 대표와 신임 지도부가 첫 간담회를 열어 두 전직 대통령 묘역 참배를 두고 의견을 교환했으나 일부 최고위원이 반대 의사를 밝혀 반쪽짜리 행사가 됐다.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 참배에 반대했던 정청래 최고위원은 9일 자신의 트위터에 “이승만, 박정희 참배에 앞서 첫 일정으로 백범 김구 선생의 묘소, 인혁당 열사들의 묘소 참배가 더 우선이라 생각했다”며 “똘레랑스는 피해자의 마음을 더 먼저 어루만지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가해자를 용서하는 것은 그다음에 해도 늦지 않는다”고 밝혔다. 전날 간담회에서 묘역 참배에 거부 의사를 밝힌 유승희 최고위원은 이날 아예 현충원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당 대표 경선에 나섰던 이인영 의원도 이날 현충원에서 “전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다”면서 두 전직 대통령 묘역 참배에 거부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중도 성향 의원들은 문재인 대표의 참배 결정을 ‘역사에 대한 화합의 손짓’으로 받아들이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처럼 성향에 따라 새 지도부의 첫 행보에 대해 엇갈린 의견이 나오자 당 지도부는 논란 진화에 나섰다. 우윤근 원내대표는 “여당과 달리 야당은 늘 의견이 다양하다. 그게 야당의 특성”이라면서도 “큰 틀에서는 대승적으로 진영 논리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문재인 대표의 결정에 힘을 실어줬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명인·명물을 찾아서] 박연 선생 혼 깃든 충북 영동 난계국악촌

    [명인·명물을 찾아서] 박연 선생 혼 깃든 충북 영동 난계국악촌

    “얼~쑤~, 충북 영동군에 오셔서 신명 나는 국악의 매력에 푹 빠져 보세요.” 우리나라 3대 악성(樂聖) 가운데 한 명인 난계 박연(1378~1458) 선생의 혼이 깃든 영동군에 조성된 난계국악촌은 국악을 보고 즐기며 선조들의 멋스러운 풍류를 느낄 수 있어 인기를 끌고 있다. 8일 군에 따르면 난계 선생의 생가와 묘소가 있는 심천면 고당리 일원에 자리 잡고 있는 난계국악촌은 난계국악박물관, 난계국악기 체험전수관, 난계국악기제작촌 등으로 구성됐다. 가장 먼저 난계국악박물관이 건립됐다. 국비와 지방비 등 모두 21억 2400만원이 투입돼 2000년 9월 완공된 난계국악박물관은 부지 2350㎡에 연면적 762㎡(지하 1층·지상 2층) 규모로 지어졌다. 국내에서 국악 전문박물관은 서울의 국립국악원 박물관과 난계국악박물관 단 두 곳뿐이다. 난계국악박물관에 마련된 국악실에는 가야금을 비롯한 현악기 14종과 타악기 37종, 관악기 19종 등 총 100여종의 국악기와 국악의상이 전시돼 있다. 세종실록, 대악후보, 악학궤범, 가곡원류, 금보 등 국악관련 고문서도 만나볼 수 있다. 체험실에서는 가야금, 거문고, 해금, 대금, 단소, 장구, 북, 소고 등을 직접 다뤄볼 수 있다. 난계의 삶과 업적을 엿볼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다. 또한 이곳에서는 가야금 연주자로 인간문화재였던 함동정월(1917~1994) 선생이 쓰던 가야금과 아쟁도 구경할 수 있다. 함동정월 선생은 드라마 ‘춤추는 가얏고’의 실제 주인공이다. 난계의 장원급제 합격증과 부부초상화, 국립국악원 김호성 원로사범이 판소리 명창인 박동진 선생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악인들의 공연을 녹음한 자료도 보관돼 있다. 난계국악박물관에 가면 기네스북에 세계에서 가장 큰 북으로 등재된 ‘천고’도 볼 수 있다. 천고는 ‘소망과 염원을 하늘에 전달하는 북’이라는 뜻이다. 난계국악기제작촌의 이석제씨가 군에서 2억 3000만원을 지원받아 만든 천고는 울림판 지름 5.54m, 울림통(북 몸통) 길이 5.96m, 울림통 지름 6.4m, 무게 7t에 이른다. 북을 만드는 데 들어간 재료도 엄청나다. 수령 150년 이상 된 소나무 원목 15t 트럭 4대 분량과 어미소 40마리의 가죽이 사용됐다. 제작기간은 15개월이나 걸렸다. 천고에는 태극과 팔괘, 청·황·흑·백·적룡 등 5룡(龍)이 새겨져 있다. 소리는 낮고 웅장하며 긴 여운이 있다. 천고 이전에 가장 큰 북은 2000년 일본에서 제작된 울림통 길이 4.95m, 울림판 지름 4.8m, 무게 2t 크기의 ‘태고’였다. 볼거리가 많다 보니 지난해 7만 6800여명이 난계국악박물관을 다녀갔다. 인근에 위치한 난계국악기 체험전수관은 전문 국악인과 동호인들의 연수 장소로 인기를 얻고 있다. 32억원을 들여 2005년 12월 준공된 이 전수관은 연면적 1490㎡ 규모(지하 1층·지상 3층)로 소공연장, 체험전수실, 개인연습실, 세미나실, 숙박시설들을 갖추고 있다. 국악을 전공하는 대학생들은 지도자를 모시고 이곳에 와서 1주일 정도 숙박을 하며 악기연습에 몰입한다. 국악에 빠져 있는 동호인들은 전수관에 머물며 국악으로 스트레스를 날리고 간다. 서울예대, 사물광대, 전통예술공연단, 밀양검무보존회 등 전국 각지에서 다녀갔다. 악기 없이 전수관을 찾는 일반인들을 위해 악기와 함께 타악기와 현악기 강사가 배치돼 있다. 민용덕 체험전수관 운영담당은 “옛적에 이름난 소리꾼들이 여름에 깊은 산 속에 들어가 판소리를 집중적으로 가르치고 배우는 것을 ‘산공부’라고 했는데, 우리 전수관이 바로 국악인들의 산공부 장소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라면서 “인근에 국악박물관, 난계의 생가 및 묘소가 있는 데다, 국토의 중심이라 접근성까지 좋아 인기가 많다”고 말했다. 지난해 8만 9000여명이 전수관을 다녀갔다. 올해도 인기가 여전해 지난달에만 6316명이 전수관을 방문했다. 전수관에서는 매주 토요일 전국 최초의 군립 국악관현악단인 난계국악단 상설공연도 열린다. 2001년 준공된 난계국악기제작촌 역시 전국에서 외지인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현재 제작촌에는 현악기와 타악기 제작업체가 1곳씩 입주해 다양한 국악기를 만들고 있다. 현악기 제작업체의 경우 10명이 일하며 연간 매출액이 10억원을 넘는다. 제작촌에서는 일반인들이 직접 대패작업, 줄메우기, 인두작업 등 국악기제작 체험도 할 수 있다. 1년에 세 번으로 나눠 제작체험을 하면서 자기가 갖고 싶은 악기를 만들어 갈 수도 있다. 해마다 5만명 이상이 제작촌을 찾고 있다. 관광차 한국을 방문해 이곳에 들르는 외국인들도 상당수에 달한다. 조준석 현악기제작업체 대표는 “자연의 소재를 그대로 활용해 소리를 내는 국악기를 보고 외국인들이 매우 신기해한다”면서 “국악기에 빠져 제작촌을 지속적으로 찾는 외국인도 있다”고 자랑했다. 군은 오는 5월 개관을 목표로 212억원을 들여 난계국악촌에 국내 최대 규모의 국악체험촌을 짓고 있다. 국악체험촌은 3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다목적 공연장, 공방, 국악단연습실, 100명이 동시에 이용할 수 있는 단체체험실, 전문가 강습실, 숙박실, 식당 등으로 꾸며진다. 이행구 난계국악박물관장은 “국악체험촌이 문을 열면 국악의 저변 확대에 크게 기여하면서 영동군이 국악의 성지로 발전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난계국악촌을 다녀온 김동우(50)씨는 “화려한 꾸밈 없이도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국악에 대한 궁금증을 모두 해결할 수 있는 곳”이라면서 “아이들이 자주 접하지 못하는 국악을 체험할 수 있어 교육장소로도 좋다”고 말했다. 영동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김병일 사람과 향기] 평범한 어머니도 자식을 훌륭하게 기른다

    [김병일 사람과 향기] 평범한 어머니도 자식을 훌륭하게 기른다

    지난해 말과 올해 초에 걸쳐 율곡 선생의 외가가 있는 강릉에서 퇴계 선생의 고향인 안동으로 예상치 않은 손님들이 두 차례나 방문했다. 2월부터 방영 예정인 강원의 자랑스러운 역사 인물을 조명하는 ‘뿌리 깊은 강원’이라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지역 방송국 관계자들이다. 첫 번째 소재로 퇴계 어머니 춘천 박씨와 율곡 어머니 신사임당을 다룬다고 했다. 두 분이 어떻게 해서 자식을 위대한 인물들로 키워 냈는지 널리 알리려는 취지에서다. 두 어머니는 매우 대조적이다. 강릉이 고향인 신사임당은 그야말로 삼척동자도 다 아는 훌륭한 어머니의 표본이다. 반면 춘천 박씨는 세상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그런 어머니다. 고향도 강원도가 아니다. 본관은 춘천이지만 이미 고조부 때 경상도 용궁(경북 예천)으로 이사 온, 굳이 말하면 경상도 사람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두 분을 비교 조명하려는 이유는 왜일까? 자녀 교육에 열중하는 오늘의 어머니들에게 역사에 널리 알려진 어머니 못지않게 묻혀 있는 평범한 어머니의 사례를 소개하는 것 또한 의미가 있고 관심도 더 끌 수 있다고 생각한 듯하다. 옳은 판단이다. 성공한 이들은 한결같이 자기 인생 뒤에는 어머니가 계셨다고 말한다. 퇴계 역시 자신에게 가장 영향을 끼친 사람은 어머니라고 했다. 춘천 박씨는 과연 어떤 분이고 또 어떻게 자식을 길렀기에 시대와 지역을 초월해 존경받는 퇴계가 자신에게 가장 영향을 주었다고 말했을까. 자신이 직접 지은 어머니 묘갈지(묘비글)에서 퇴계는 회상한다. “어머니는 덕망 있는 선비 집안에서 태어나 타고난 품성이 아름다웠으며 시어머님 섬기는 데 정성을 다했고 제사를 성심껏 모셨다.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33살의 어머니 앞에는 나이 어린 7남매가 있었다. 삼년상을 마친 후 밤낮으로 농사짓고 누에 치는 일에 매달렸고, 자식들이 성장하자 가난을 벗기 위해 더욱 힘을 쏟으셨다. 자식들이 원근의 스승을 찾아 공부할 수 있도록 해 주셨다. 늘 훈계하시기를 문예(지식)만 치중하지 말고 몸가짐과 행실에 주의를 기울이거라, 또 세상 사람들이 과부의 자식은 교양 없다 비방하니 너희는 남보다 백배 노력해야 한다고 하셨다. 비록 글을 배운 적은 없으나 평소 아버님의 가르침과 아들들이 공부하는 것을 곁에서 듣고 깨쳐 학식과 생각이 여느 선비와 다를 바 없었다. 다만, 이를 안으로만 지니고 겉으로는 항상 고요히 품고만 있었을 뿐이다.” 어머니의 이러한 삶은 아들의 삶에 나침판이 됐다. 어떤 점에서였을까. 먼저 불우한 환경을 탓하지 않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생활 태도다. 젊은 나이에 홀로 된 어머니는 안살림과 밖의 일을 가리지 않고 밤낮없이 일해 가정을 일으키고 자식 교육에 헌신했다. 쉼 없이 학문에 정진해 조선 최고의 학자가 된 퇴계는 이런 어머니의 모습을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랐다. 다음으로 지식보다 사람됨을 더욱 중시하는 가정교육 분위기다. 사람은 지식보다 행실이 더 중요함을 자식들에게 독려하며 어머니 스스로 먼저 솔선해 실천하는 모습이 자식에게 절실하게 다가왔던 것이다. 퇴계가 늘 겸손과 배려를 실천한 것도 이 점을 어머니로부터 배워 몸에 배게 했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글자를 모르는 어머니도 자식을 훌륭하게 기를 수 있다는 것이다. 글을 몰라 지식이 얕아도 끊임없이 견문을 얻어 지혜를 터득해 가면 올바른 처신을 하게 된다. 그러면 그 자녀로부터 얼마든지 존경받는 부모가 되고, 자녀 또한 이를 본받아 훌륭하게 자랄 수 있다. 퇴계는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식음을 전폐해 꼬챙이처럼 말라 목숨을 잃을 지경에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이 지극한 효도는 삶의 정신적 멘토를 잃은 아픔 때문이었을 것이다. 훗날 어머니 묘소 앞에 묘갈지를 직접 써 세운 것도 같은 맥락이다. 조선시대 여성의 묘갈은 드물다. 그럼에도 퇴계는 어머니의 것을 직접 만들어 세웠다. 존경의 마음이 시대적 관행과 문화를 뛰어넘게 한 것이다. 세월은 많이 흘렀지만, 오늘 우리의 어머니들에게 자녀를 훌륭하게 기르고 효도까지 받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어떤 것인지 잘 가르쳐 주는 사례다.
  • 남해군수가 명나라 장군 참배한 까닭은

    남해군수가 명나라 장군 참배한 까닭은

    경남 남해군 박영일 군수가 410여년 전 노량해전에 조명연합군으로 참전했다가 전사한 중국 장군의 고향 도시를 찾아 감사를 전하고 교류를 합의했다. 남해군은 26일 박 군수를 비롯한 교류추진단이 지난 20~24일 펑청시를 방문해 임진왜란 당시 조선원병 수군 부총병으로 참전했다가 노량해전에서 숨진 명나라 등자룡(鄧子龍) 장군의 묘소를 참배했다고 밝혔다. 박 군수 등의 방문은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역사적 인연을 매개로 등 장군의 고향 펑청시와 우호 교류를 하기 위한 것이다. 박 군수는 등 장군이 숨진 남해군 고현면 소재 남해 관음포에서 직접 채수한 성수를 장군의 무덤 앞에 올렸다. 등 장군의 후손들과 만나 “위기에 처한 조선을 구하려고 400여년 전 등자룡 장군이 원정 온 그 길을 거슬러 남해군민의 고마운 뜻을 전하기 위해 찾아왔다”고 인사말을 했다. 박 군수는 “등 장군이 목숨을 바쳐 지킨 신의를 교훈 삼아 두 지역이 화합하고 교류해 번영을 이루자”고 말했다. 등 장군 후손들은 “선조께서 돌아가신 지 416년 만에 조상님의 은덕을 잊지 않고 찾아준 박 군수에게 감사드린다. 남해군에서 가져온 성수는 등씨 가문의 가보로 영원히 보존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박 군수는 특히 “관음포만 일대에 조성 중인 이 충무공 순국공원 조성사업 현장에 등 장군의 활약을 소개하는 기념 공간을 조성할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남해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김무성 “DJ 묘소도 참배”에 우윤근 “잘하셨다” 사례 인사

    김무성 “DJ 묘소도 참배”에 우윤근 “잘하셨다” 사례 인사

    새누리당 지도부는 1일 오전 박근혜 대통령이 참배한 직후 국립현충원을 방문하는 것으로 새해 일정을 시작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현충탑만 참배했던 이전 지도부와 달리 이승만·박정희·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역도 찾아 참배했다. 김 대표는 당직자들과 신년인사회를 갖고 김영삼·이명박·전두환 전 대통령 등 역대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의 자택도 방문해 새해 인사를 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민주정책연구원 회의실에서 단배식을 갖고 새해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과 우윤근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와 당 대표 후보, 최고위원 후보들이 대거 참석했다. 당 지도부는 이어 현충원의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고 수유리 4·19 민주묘역을 찾은 뒤 동교동 자택의 이 여사를 예방했다. 또 오후에는 경남 김해 봉하마을의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고 권양숙 여사를 예방했다. 우 원내대표는 경기 안산 합동분향소에서 열리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들의 ‘엄마의 밥상’ 행사에 참석했다. 이날 오전 현충원에서는 앞서 참배를 하고 나가는 여당 지도부와 단배식을 마치고 참배를 가는 야당 지도부가 현충문 앞에서 우연히 마주쳐 서로 덕담을 나누기도 했다. 김 대표가 “아침에 DJ(김대중 전 대통령) 묘소 참배했다”고 말하자 우 원내대표가 “잘하셨다”고 사례하며 서로를 응원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 조현오 전 청장 몰래 참배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 조현오 전 청장 몰래 참배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차명계좌가 있다는 발언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조현오 전 경찰청장이 최근 봉하마을 노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24일 경찰 등에 따르면 조 전 청장은 지난 23일 오전 5시쯤 수행원 3명을 데리고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노 전 대통령 묘소를 찾았다. 당시 묘역을 지키던 의경은 처음에 조 전 청장 일행의 묘역 출입을 막았다. 이에 따라 조 전 청장 측은 경남지방경찰청 상황실에 전화를 걸어 신원 확인을 거쳐 묘소 참배 뜻을 밝힌 뒤 묘소를 참배했다. 조 전 청장은 준비해 온 꽃바구니 하나를 놓고 수 분 동안 묘소 참배를 한 다음 오전 5시 40분쯤 묘소를 떠났다. 경찰에 따르면 조 전 청장은 경찰이나 노무현 재단 측에 사전에 알리지 않고 봉하마을을 방문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해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단독] “이 여사 방북 인도적 차원… 남북관계 변화 상징적 의미 될 것”

    [단독] “이 여사 방북 인도적 차원… 남북관계 변화 상징적 의미 될 것”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의 방북 추진은 남북 간 2차 고위급회담 접촉 결렬 이후 가장 무게감 있는 남북대화의 이슈다. 무엇보다 유엔의 북한인권 결의안 채택으로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박이 어느 때보다 높아진 상황에서 이 여사의 방북 추진을 향한 국내외적 관심은 더욱 커졌다. 개성에서 진행되는 남북 간 관련 실무협의를 하루 앞둔 20일 김대중평화센터 관계자들은 차분히 방북을 준비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7일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김대중평화센터를 찾아 방북 준비 상황을 청취하는 등 동교동계도 이번 방북을 주시하고 있다. 이 여사는 오는 25일 오전 서울국립현충원의 김 전 대통령 묘소를 찾을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실무협의 단장인 김성재 전 문화부 장관은 이날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이 여사 방북이 가시화되는 것과 관련해 “남북 관계 변화를 위한 상징적 의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중아카데미 원장인 김 전 장관은 이 여사가 방북 의사를 처음 밝힌 지난달 28일 박근혜 대통령과의 청와대 접견에 배석한 바 있다. 김 전 장관은 ‘이 여사 방북이 꽉 막힌 남북 관계의 물꼬가 되지 않을까 기대하는 여론도 있다’고 하자 “(우리도) 희망 사항이다. 북측과 방북 협의를 진행하다 보면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라며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이어 “방북 협의에는 통상 7~10일 정도가 걸린다”면서 북측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와의 협의 과정도 비교적 원활했음을 시사했다. 그러면서도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는 시각에 대해서는 “순수한 인도적 지원 차원으로 봐 달라”며 조심스러워했다. 다만 자신의 입을 빌려 “인도적 지원의 이번 방북이 남북 관계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고 계시다”며 이 여사의 뜻을 전했다. 이번 방북이 성사되면 이 여사 측은 2000벌 이상의 목도리를 갖고 방북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김대중평화센터 인사들로 이뤄진 민간단체 ‘사랑의친구들’은 2011년과 2012년 각각 1500벌과 2800벌의 목도리를 북한 어린이들에게 전달한 바 있다. “북에 보낼 목도리 제작에는 자원봉사자 500여명이 참여할 것”이라고 사랑의친구들 측 관계자는 전했다. 북한이 이 여사 방북을 어떻게 활용할지도 관심이다. 북측이 “열렬히 환영한다”는 뜻을 밝힌 것도 이 여사에 대한 예우에 상당히 신경을 쓰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북한으로서는 이 여사 방북을 북한 인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력을 완화하는 카드로 활용할 수도 있다. 더불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의 면담 여부도 주목된다. 김 전 장관은 “(접견 가능성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며 말을 아꼈다. 이번 실무접촉에는 김 전 장관과 윤철구 김대중평화센터 사무총장, 이정원 사랑의친구들 사무총장 등이 참석한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新 국토기행] 멋:유교문화의 보고

    [新 국토기행] 멋:유교문화의 보고

    안동은 유교문화의 보고다. 보유한 지정 문화재만도 307점에 이른다. 국가지정 문화재 87점(국보 5점, 보물 39점 등), 경북도도지정 문화재 220점(유형 69점, 무형 5점 등) 등이 있다. 이 때문에 안동을 찾는 많은 관광객은 무엇을 돌아봐야 할지를 몰라 난감해한다. 하지만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봉정사와 한국국학진흥원의 유교목판, 하회별신굿탈놀이 등이 하회마을에 이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가 추진돼 이들 문화재만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하회마을 연간 100만명이 찾는 명실상부한 안동 관광의 1번지이다. 1999년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방문과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로 세계적인 유명세를 탔다. 강이 곡선을 그리며 감싸는 하회는 풍산 류씨가 600여년간 살아온 동성마을이다. 마을에는 조선 5대 명재상으로 이름 높은 서애 류성룡(1542~1607) 선생이 7년 동안 겪은 임진왜란의 전황을 기록한 징비록(국보 제132호) 등 많은 보물급 유적이 있는 충효당(보물 414호), 풍산 유씨의 대종가 양진당(보물 36호) 등 중요문화재 18점이 있다. 1984년 마을 전체가 국가 중요민속자료 제122호로 지정됐다. 160여채의 전통 기와집과 210여채의 초가집이 끊어질 듯 연결되는 길, 돌담과 어울려 있다. 마을 서북 쪽에는 해발 64m의 절벽인 부용대가 있다. 하회마을은 물 위에 핀 연꽃처럼 보이는데 그 연꽃을 보는 자리라 해서 이름 붙여졌다. 마을에는 서민들의 ‘하회별신굿탈놀이’와 선비들의 ‘선유줄불놀이’가 전승되고 있다. ■도산서원·병산서원 도산서원은 사적 제170호로 조선 최고의 유학자였던 퇴계 이황(1501~1570)의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동서재 정면 3칸, 측면 2칸의 홑처마 맞배집으로, 전체적으로 간소하다. 당초 퇴계가 1561년에 도산서당을 건립, 후학양성에 힘썼던 ‘성리학의 성지’였으나 선생이 타계하자 후학들이 서당이 있던 자리에 서원을 건립했다. 서원 안에는 400여종에 달하는 4000권이 넘는 장서와 장판 및 이황의 유품이 남아 있다.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살아남았다. 선조는 도산서원이란 현판을 사액했는데 그 편액은 명필가인 석봉 한호(1543~1605)의 글씨다. 도산서원 앞에는 낙동강이 유유히 흐른다. 강 건너편에는 과거시험을 보던 곳인 시사단이 있다. 서원 인근에는 퇴계가 태어나고 묻힌 태실과 묘소, 종부가 손님을 맞는 퇴계종택, 제자 금난수(1530∼1604)가 지은 고산정, 퇴계의 14대 후손으로 독립운동가이자 민족시인인 이육사(1904~1944)의 묘소와 문학관이 있다. 병산서원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권율 등 명장을 등용한 문신 겸 학자 서애 선생이 후학들을 양성하던 곳이다. 제자들이 ‘존덕사’를 지어 위패를 모셨다. 사적 제260호이다. 서원의 만대루나 입교당에 올라서면 한 폭의 그림이 펼쳐진다. 병산이 이름 그대로 병풍처럼 자리하고 낙동강이 그 앞을 잔잔하게 흐른다. 고미술연구가들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원 건축의 백미로 꼽는 이유다. 두 서원은 2011년 세계유산 잠정목록으로 등재됐으며 유네스코 실사를 거쳐 2016년쯤 등재가 확정될 전망이다. ■봉정사 신라 문무왕 12년(672)에 의상대사(625~702)의 제자 능인 스님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천년고찰이다. 우리나라 목조 건축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인 극락전으로 유명하다. 하회마을처럼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다녀간 뒤 세계적인 유명세를 탔다. 사찰 입구 솔 숲길은 여왕이 다녀간 길이라고 해서 ‘퀸스로드’로 이름 붙여졌다. 1987년 로카르노 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동승’ 등 영화를 촬영한 곳이기도 하다. 고려 태조와 공민왕이 다녀간 곳으로 국보와 보물이 가득하다. 극락전(국보 제15호)을 비롯해 대웅전(국보 제311호), 화엄강당(보물 제448호), 고금당(보물 제449호), 대웅전 후불탱화(보물 제1614호), 목조관음보살좌상(보물 제1620호), 영상회 괘불도(보물 제1642호), 아미타설법도(보물 제1643호) 등 14점이 있다. 경내 영산암은 사찰이라기보다 사대부가의 아름다운 정원처럼 뛰어난 미를 갖춰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가까이서도 아름답지만 멀리서 바라보면 더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 같은 절집이다. 안동시는 2018년까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킨다는 계획이다. ■국학진흥원 유교목판 조선시대 유학자들이 쓴 책을 찍어내기 위한 목판 기록물로 우리나라 유교문화를 대표하는 기록유산 중 하나다.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는 지난 2월 한국국학진흥원이 소장하는 718종의 유교책판 6만 4226장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국내 후보로 최종 결정했다. 내년 6월쯤 등재 여부가 최종 결정된다. 이들 목판의 유형으로는 문집류가 583종(81.2%)으로 가장 많다. 다음으로 성리서 52종, 족보류 32종, 예학서 19종, 역사·전기류 18종, 몽훈·수신서 7종, 지리 3종, 기타 4종으로 유학자들이 만든 기록물이 대부분이다. 유학 집단의 사회적 공론을 거쳐 후손이나 후학이 자발적으로 경비를 모아 책을 인쇄하기 위해 목판을 제작했다는 점과 주요 등재 기준인 진정성, 독창성, 세계적 중요성이 뛰어나 등재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이들 목판은 현재 자동통풍시스템, 자동항온항습시설, 가스식 자동소방시스템, 출입통제 및 도난방지시스템 등 첨단시설을 갖춘 목판 전용 수장 시설인 장판각에 보관 중이다. 사전 예약(054-851-0764)해야 관람할 수 있다. ■하회별신굿탈놀이 하회마을에서 800여년의 긴 역사를 이어 전승돼 온 탈에 담긴 웃음, 풍자, 해학으로 민중의 희로애락을 대변한다. 지배계층인 양반과 선비의 허위성을 폭로하는 서민들의 애환을 풍자적으로 그려 내는 게 특징이다. 중요무형문화재 제69호. 하회에 사는 허 도령이 제작했다는 하회탈은 모두 14개였으나 3개가 분실되고 현재 10종 11개가 국보 제121호로 지정됐다. 탈놀이 전 과정은 모두 10개 마당으로 구성됐다. 하지만 상설공연(1~2월 매주 토~일, 3~12월 매주 수·금·토·일요일)에서는 6개 마당만 무료 공연된다. 영국 여왕이 하회마을을 방문했을 당시 직접 관람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우리나라 대표 축제 중 하나로 꼽히는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의 근간이기도 하다. 예술성과 민중성이 뛰어난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평가된다. 안동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도솔산 500년 전 미라 “사화 때 화를 입은 인물” 충격적 진실은?

    도솔산 500년 전 미라 “사화 때 화를 입은 인물” 충격적 진실은?

    도솔산 500년 전 미라 “사화 때 화를 입은 인물” 충격적 진실은? 대전 서구 갈마동 도솔산에서 500년 전으로 추정되는 미라가 발견됐다. 대전시립박물관은 지난 1일 서구 갈마아파트 뒷산 단양우씨 세장지에서 조선시대 중종대 인물인 우백기(禹百期)의 미라와 함께 출토된 습의(襲衣)를 수습했다고 3일 밝혔다. 미라가 발견된 곳은 조선시대부터 단양 우씨들의 세장지였으나 도시개발 때문에 대부분 묘소가 오래전 이장되고 이날 마지막 남은 1기의 묘소를 옮기던 과정에서 미라가 출토된 것이다. 시립박물관 측에서는 미라와 함께 발견된 시신을 싼 대렴의(大斂衣)를 긴급 수습하고 나서, 출토복식의 특성인 급격한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보존처리 전문기관으로 바로 옮겼다. 피장자인 우백기는 우세건(禹世健, 1497~1529)의 넷째 아들로 족보에 생몰연대는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조선시대 궁중의 음식을 담당하던 관청인 사옹원(司饔院)의 봉사(奉事)와 태조의 계비인 신덕왕후를 모신 정릉(貞陵)의 참봉(參奉) 직을 지낸 인물로 기묘사화 때 화를 입었다고만 기록돼 있다. 시립박물관은 이번에 수습한 출토복식이 실유물이 희귀한 16세기 전반기인 임진왜란 이전 자료로 매우 학술적 가치가 높을 것으로 내다봤다. 대전시립박물관은 지난 2004년 보문산 목달동에서 여산송씨 출토복식과 2011년 금고동에서 안정나씨 출토복식을 연이어 수습한 바 있다. 이 가운데 여산송씨 출토복식 일부와 안정나씨 묘에서 출토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한글편지는 현재 시립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다. 네티즌들은 “도솔산 500년 전 미라, 대단하네”, “도솔산 500년 전 미라, 정말 학술적 가치가 높은 듯”, “도솔산 500년 전 미라, 이렇게 오래된 시신이 있다니”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하와이 화산 용암에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묘지 화제

    하와이 화산 용암에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묘지 화제

    최근 하와이 킬라우에아 화산에서 분출한 용암이 일부 마을에 흘러들어 주민들이 긴급 대피한 가운데 아직도 꿋꿋이 서있는 한 묘지의 모습이 언론에 보도됐다. 현지언론의 보도로 화제에 오른 이 묘지는 최근 용암 때문에 폐쇄된 인구 950명의 작은 마을 파호아에 위치해 있다. 일본계 사토가(家)가 묻힌 이 묘지는 지난 6월 킬라우에아 화산의 용암이 약 1000도의 화기를 품고 서서히 흘러내리며 마을을 덮쳐오면서 사라질 운명에 처했었다. 그러나 미 지질조사원이 지난달 28일(이하 현지시간) 촬영한 사진이 따르면 용암은 이 묘지 앞에서 기적적으로 전진을 멈췄다. 묘지가 용암에 덮혀 사라질까봐 발만 동동 굴렀던 가족들이 기뻐하는 것은 당연한 일. 사토가 가족은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지난 23일 묘소를 찾아 작별인사를 했다" 면서 "이후 묘지가 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살아남아 기적"이라며 기뻐했다.이어 "조사원들로부터 이 사진을 받고 모두 함께 덩실덩실 춤을 췄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아직까지 묘지가 안전하다고 장담하기에는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하와이 화산 관측소 측은 "현재 용암의 영향으로 묘지 지역은 일반인 출입이 불가하다" 면서 "또다시 용암이 흘러내릴 가능성이 있으며 사토가 가족의 입장을 이해해 특별히 사진을 제공한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하와이 카운티 당국은 마을 내 학교를 모두 폐쇄했으며 지역 주민들은 하와이 수호여신인 '펠레'(Pele·화산의 여신)에게 마을을 용암으로부터 지켜달라는 간절한 기도를 올리고 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퇴계 이황의 ‘두 번째 직업’은 시골 의사였다

    퇴계 이황의 ‘두 번째 직업’은 시골 의사였다

    조선의약생활사/신동원 지음/들녘/951쪽/3만 9000원 ‘부모가 역병으로 사망했다면 묘소를 지켜야 하나, 피해야 하나?’ ‘노비가 아프면 약을 써야 하나?’ 첫 번째 질문의 답은 조선 후기 실학자인 이익(1681~1763)이 쓴 ‘성호사설’에 담겨 있다. 제13권 ‘피려’는 역병의 유행과 예절의 충돌을 심각하게 다루면서 성리학적 질서를 놓고 갈등하는 당시 지식인의 면모를 드러낸다. 역병이 돌 때 친한 친구나 부모, 형제 사이에 피하는 것이 올바른 것이냐 아니냐는 게 논쟁의 핵심이다. 이익의 입장은 단호했다. “아무리 부자지간이라도 살아남는 것이 자손의 도리”라고 봤다. 이익은 조선 최고 유학자인 퇴계 이황(1501~1570)의 말을 인용한다. “생명을 살리는 것 우선, 산 자 우선의 원칙”이라는 것이다. 1599년 간행된 문집 ‘퇴계집’이 널리 읽히면서 퇴계의 언행은 후대 조선 사대부의 귀감이 됐다. 공교롭게도 퇴계집에는 병과 의학에 관한 방대한 기록이 남아있다. ‘향약구급방’ ‘구급방’ ‘화제’ ‘의방’ 등 유명 의약서들이 종종 인용되고, 이황이 처방을 내릴 때 어떻게 약을 썼는지 알려주는 글귀들도 상당하다. “‘도적산’으로 열을 다스려 열이 낮아진즉 ‘분청음’을 쓰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식이다. ‘퇴계전서’에는 직접 처방을 내린 20여건의 약제 목록이 등장한다. 아들 준의 감기에는 순기산과 정기산을 처방했고, 조카 혜의 번열에는 반총산을 지어 먹도록 했다. 노비인 아노의 눈병에는 도체탕과 활혈탕을 달여 먹게 했다. 이쯤에서 두 번째 답도 나온다. 조선시대 대다수 사대부는 자신의 의학 지식과 약물을 노비에게 베풀었다. 노비는 집의 가장 큰 재산이며, 병 치료는 자발적 복종을 끌어내기 위한 좋은 계기였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한국과학사’를 가르치는 저자는 “퇴계의 의술 정도라면 할 이야가 어느 정도 있다”고 말한다. 이황은 명나라 주권이 쓴 의서인 ‘활인심방’의 상권을 직접 필사해 활용할 만큼 의학 지식이 풍부했다. 저자는 “이황이 언제부터 의학을 접했는지 알 수 없지만, 의원이 없는 시골에서 의료 행위를 펴던 유의(儒醫)와 다름없었다”고 말한다. 이는 유성룡, 정약용 등 다른 저명한 문인들도 마찬가지였다. 퇴계집에는 16세기 중후반 조선의 의료 구조를 엿볼 수 있는 대목도 나온다. 지방의 난치병 환자들이 장안 최고 의원이라는 안판서, 손사균, 조성, 유지번 등을 찾아가 병을 고쳤다는 이야기들이다. 한양 출신 의원이 이황의 며느리를 침술로 고친다는 구절에선 당시 한성과 시골 간 의료 격차를 가늠할 수 있다. 저자가 꼽은 또 다른 대표적 유의는 조선 인종 때 문신인 이문건(1495~1567)이다. 승정원 부승지를 지낸 그는 손자 숙길의 성장기를 담은 ‘양아록’과 41~73세까지 쓴 ‘묵재일기’로 유명하다. 11년 11개월 분량의 10책이 현존하는 묵재일기는 3분의1가량이 질병과 의료 기록으로 채워졌다. 조선 최고의 의약생활사로 꼽히는 이유다. 거기에는 환자로서 이문건 자신을 비롯해 가족, 노비, 이웃의 발병과 대응이 날마다 적혀 있다. 그 가운데는 사또나 관찰사도 포함되며 심지어 말, 소, 돼지의 병력까지 엿보인다. 16세기 조선 사람들이 어떤 병을 많이 앓았고 치료했는지 알려 준다. 저자는 또 1786년 4~6월 유행했던 정조 때의 홍역을 다루며 혁신군주라던 정조의 질병에 대한 인식을 살펴본다. 당시 홍역은 큰 피해 없이 지나갔지만 이는 정조의 대책이 효과적이었다기보다 1775년 이후 병균의 독력이 약해진 덕분이라는 설명이다. 정조는 당시 홍역이 하늘의 기운에 따라 발병하며, 원혼을 달래 병을 낫게 해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아울러 1700~1791년 조선에서는 서양의학이 ‘참으로 괜찮은 것’이란 담론이 형성됐으나 이후 천주교가 사악한 종교로 규정되면서 의학마저 부정되는 양상을 띠었다고 증언한다. 또 조선총독부 기록을 인용, 1914년 조선의 인구 1만명당 의원의 분포는 1.55명(황해)부터 15.92명(경성)이었다고 전한다. 책은 조상들이 많이 앓던 병과 병의 원인, 치료방법, 의료지식 등을 추적한다. 실제로 병을 앓은 사람의 관점에서 서술하는 미시사의 관점으로, 방대한 분량이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새정치연 비대위 초반부터 삐걱

    새정치연 비대위 초반부터 삐걱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 체제가 초반부터 난항을 겪고 있다. 당내 비노무현 그룹의 반발에 이어지는 데다 내년에 치러질 차기 당대표 선거를 겨냥해 비대위원들 간에 조기 경쟁에 돌입한 모양새다. 친노의 구심점인 문재인 의원이 차기 당권을 향한 발걸음에 속도를 내고 있다는 정황은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문 의원의 측근인 문성근 전 민주당 대표와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 등과도 최근 교류가 잦아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비노무현 측 의원들의 촉각이 곤두서 있는 상황이다. 특히 모바일투표가 차기 전당대회에서 부활할지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모바일투표는 전당대회에서 일반 국민이 휴대전화로 정당 선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 제도로 상대적으로 조직력이 강한 친노(친노무현) 진영에 유리하다는 게 일반적 시각이기 때문이다. 비대위원인 박지원 의원은 이날 트위터에 문 비대위원장이 언론 인터뷰에서 모바일투표 재도입을 시사한 것과 관련, “문 비대위원장에게 공사석에서 발언을 조심하라고 말씀드렸다”고 썼다. 박 의원은 “(모바일투표는) 문제가 없는 게 아니라 가장 큰 문제”라며 “특히 비대위에서 논의도 안 됐고, 비대위가 출범하자마자 이런 시비가 시작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날 그의 발언은 차기 당권을 노리고 있는 박 의원이 경쟁 상대인 문재인 의원을 의식해 문 비대위원장에게 경고를 날린 것으로 해석된다. 비대위 구성에서 제외된 당내 중도혁신파 의원들도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됐다. ‘민주당의 집권을 위한 모임’ 소속 김성곤·김동철·유성엽 의원은 이날 문 비대위원장과 만나 중도파를 대변하는 비대위원 임명을 추가 요청했다. 세 의원이 거론한 3대 중도세력은 안철수계, 손학규계, 중도파 의원 모임인 ‘민집모’다. 이런 복잡한 계파 간 갈등 속에서 이날 비상대책위원회는 첫 외부 일정으로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과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며 당 혁신 의지를 다졌다. 이날 방문에는 문 비대위원장을 포함해 박영선 원내대표, 정세균 상임고문 등 비대위원 전원과 조정식 사무총장 등 30여명이 대거 참석했다. 문 비대위원장은 방명록에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중 선조에게 올린 장계에 나온 “금신전선 상유십이(今臣戰船 尙有十二·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라는 문구를 한자로 남겼다. 이순신 장군이 12척의 배로 왜군의 330척에 맞선 것처럼 당 상황이 어렵지만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비대위원들은 현충탑 참배에 이어 김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했다. 이 자리에는 김 전 대통령의 부인인 이희호 여사와 아들 홍업·홍걸씨, 권노갑 상임고문, 정균환 전 의원 등이 동행했다.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나라경제·국민행복 꿈 이뤄졌으면”…朴대통령, 페이스북에 추석 메시지

    “나라경제·국민행복 꿈 이뤄졌으면”…朴대통령, 페이스북에 추석 메시지

    박근혜 대통령은 추석 연휴 국립 서울현충원에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묘소에 성묘를 다녀온 것 외에는 관저에서 머물렀다고 한다. 청와대는 이번에도 “비공개 일정인 만큼 언제 다녀왔는지 등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기로 했다”고 9일 밝혔다. 박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지난해 추석에도 수행원단을 최소화해 비공개로 성묘를 다녀왔다. 박 대통령은 이번 명절에도 동생 지만씨 부부 등 가족들을 따로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가족을 둘러싼 구설을 경계해 취임 이후 홀로 명절을 보내고 있다”는 게 청와대 주변의 전언이다. 결국 박 대통령의 추석 연휴는 여느 때처럼 관저에서 장관·수석 등이 올린 보고서를 읽고 정국 구상에 몰두한 것으로 정리된다. 연휴 직후부터 남북과 미국 간 긴박한 외교 일정 등이 예정돼 있고 경제활성화를 위한 골든타임도 활용해야 하는 상황이다. 박 대통령은 추석인 지난 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모든 사람이 같은 꿈을 꾸면 꿈이 현실로 이뤄진다는 말이 있듯이 나라 경제와 국민 여러분의 행복을 위해 모두 함께 소원을 빌어 그 꿈이 이뤄졌으면 합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하늘색 반소매 블라우스에 회색 긴 치마의 편안한 차림으로 청와대 경내의 한 석조 다리 위를 걷는 사진도 함께 실었다.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 “남북문제·4강 외교·경제활성화 해법 집중 모색”

    “남북문제·4강 외교·경제활성화 해법 집중 모색”

    박근혜 대통령은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5일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 현대시장을 찾아 추석 물가를 점검하고 상인들을 격려하는 것으로 연휴 기간 일정을 일단락했다. 이후 부모의 묘소에 성묘하는 것 정도의 일정이 예상된다. 김기춘 비서실장은 연휴기간 내내 청와대로 출근하며, 각 수석비서관 등 주요 참모진도 교대로 근무할 예정이다. 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 두 번째로 맞는 추석 연휴 기간 경제활성화와 남북 문제 등 현안을 보고받고 대책을 점검하게 될 것이라고 청와대 관계자가 전했다. 1차적으로는 남북 문제와 4강 외교 등 외교·안보 문제가 시급한 점검 대상이다. 최근 강석주 북한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의 유럽 4개국 순방 이후 리수용 북한 외무상의 뉴욕 방문이 예정돼 있고, 19일부터는 인천아시안게임에 북한 선수단의 참가가 뒤따른다. 경제 문제 역시 주요 점검 대상이다. 박 대통령은 8월 12일 무역투자진흥회의를 시작으로 국민경제자문회의(8월 26일), 노사정위원회 간담회(9월 1일), 제2차 규제개혁 장관회의(9월 3일)를 주재한 데 이어 지난 4일에는 에너지 신산업 대토론회에 참석하는 등 최근 경제 행보에 집중했다. 연휴 기간에는 창조경제 실현을 통한 경제활성화 및 일자리 창출 방안, 규제개혁 장관회의에서 제기된 규제개혁 과제, 노사정 대타협 방안, 경제활성화를 위한 주요 입법 사안과 향후 과제 등을 점검할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이날 개인 페이스북 계정에 올린 추석 영상 메시지에서 “저도 우리 경제를 다시 일으키고 모두가 행복한 삶을 누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다른 해보다 빨리 돌아오는 추석인데 국민 여러분의 체감 경기가 더뎌서 어려움이 많으실 것이라 생각한다”며 “그러나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처럼 풍요롭고 정겨운 한가위가 되시기를 기원드린다. 명절 연휴에도 쉬지 못하고 일하시는 근로자 여러분과 경찰관, 소방관, 군 장병 여러분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리면서 모두 따뜻하고 기쁨 가득한 한가위를 보내시기 바란다”고 기원했다. 이날 재래시장 방문과 관련해 청와대는 “경쟁력이 떨어지는 시장도 교육과 컨설팅, 마케팅 촉진 등을 통해 자신감을 갖게 하자는 취지의 일정”이라며 “대통령이 방문한 전통시장 매출은 경우에 따라 200% 이상 상승효과를 누리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날 추석 영상 메시지에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세월호 사건을 둘러싼 문제를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 등도 주요한 고민의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 홍준표 “노무현 훌륭한 대통령이었다”

    홍준표 “노무현 훌륭한 대통령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를 ‘아방궁’이라고 비난했던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2일 노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했다. 홍 지사는 이날 오후 3시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 있는 노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한 뒤 묘소 인근의 노 전 대통령 사저를 방문해 권양숙 여사를 만났다. 홍 지사는 묘역에 도착해 헌화, 분향을 하고 묘소 앞에서 묵념한 뒤 방명록에 ‘편안히 쉬십시오’라고 적었다. 이어 사저를 방문해 권 여사와 30여분간 이야기를 나눴다. 홍 지사는 권 여사에게 봉하마을에 추진하고 있는 노 전 대통령 기념관 조성과 관련해 “도울 일이 있으면 적극 돕겠다”고 약속했다. 권 여사는 “방문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홍 지사는 사저에 들어가기에 앞서 기자들에게 “노 전 대통령은 정치적으로는 반대 입장에 있어서 달랐지만 훌륭한 대통령이었다”고 덕담을 했다. 정장수 비서실장은 “추석을 앞두고 전직 대통령 묘소를 인사차 참배한 것”이라고 방문 배경을 설명했다. 새누리당 소속인 홍 지사가 노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한 것은 처음이다. 홍 지사는 한나라당 원내대표 시절이던 2008년 노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 생가 옆에 건립한 사저를 아방궁이라고 비난해 논란이 됐었다. 이와 관련해 홍 지사는 “당시 잘못된 보고를 믿고 그랬다”면서 “미안한 마음이 없어지면 묘소를 한번 방문하겠다고 약속했었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 측에서는 김경수 전 비서관과 정상문 전 총무비서관, 박정규 전 민정수석비서관 등이 참석했다. 김맹곤 김해시장도 자리를 함께했다. 김해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홍준표 노무현 참배 후 “훌륭한 대통령이었다” 과거 인연도 털어놔

    홍준표 노무현 참배 후 “훌륭한 대통령이었다” 과거 인연도 털어놔

    홍준표 노무현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2일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인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을 찾아 노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했다. 6·4 지방선거에서 맞붙었던 김경수 전 노무현 재단 봉하사업본부장의 안내를 받은 홍준표 지사는 분향소에서 헌화하고 노 전 대통령이 잠들어 있는 너럭바위 추모대에서 묵념했다. 홍준표 지사는 방명록에 “편안하게 쉬십시요”라고 짤막하게 적었다. 홍준표 지사는 참배 뒤 묘소 인근의 노 전 대통령 사저를 방문해 권양숙 여사를 만났다. 홍준표 지사는 “추석을 맞아 경남 출신 대통령 묘소와 부인 권양숙 여사께 명절 인사를 드리러 왔다”고 소감을 밝혔다. 아울러 홍준표 지사는 봉하마을 생태공원 조성 등에 필요한 예산을 지원하기로 약속했다고 덧붙였다. 홍준표 지사는 사저에 들어가기에 앞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치적으로는 반대 입장에 있어서 달랐지만 훌륭한 대통령이었다”고 덕담했다. 새누리당 소속인 홍준표 지사가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홍준표 지사는 한나라당 원내대표 시절이던 2008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 생가 옆에 건립한 사저를 아방궁이라고 비난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홍준표 지사는 “당시 잘못된 보고를 믿고 그랬다. 미안한 마음이 없어지면 묘소를 한번 방문하겠다고 약속했었다”고 말했다. 홍준표 지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과거 인연도 털어놨는데 “1996년 1월26일 김영삼 전 대통령의 권유로 신한국당에 들어가기로 돼 있었는데 그 전날 밤 노 전 대통령과 제정구·이철 전 의원, 유인태 의원 등 꼬마 민주당 스타 9명이 우리 집으로 와 민주당에 입당할 것을 새벽 2시까지 4시간 동안 설득했다”고 정치 입문 당시를 소개했다. 홍준표 지사의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 참배 소식은 SNS 상에서 화제를 모으며 ‘홍준표 노무현’, ‘홍준표 노무현 묘소 참배’, ‘홍준표 노무현 훌륭한 대통령’ 등의 연관 검색어를 낳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인간의 탐욕을 ‘소름 돋게’ 비틀다

    인간의 탐욕을 ‘소름 돋게’ 비틀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어린 딸은 호숫가를 맴돌며 억지로 눈물을 짜낸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슬픈 복희’가 되기를 강요한다며 이내 밝은 표정으로 호숫가를 뛰어다닌다. 복희를 이용해 한몫 챙기려는 이들은 복희에게 ‘슬픈 복희’가 될 것을 강요하고, 복희는 ‘슬픈 복희’와 ‘즐거운 복희’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다. 극작가 이강백의 신작 ‘즐거운 복희’는 집단이 만들고 믿는 ‘신화’에 관한 이야기다. 이야기가 누구의 욕망과 목적으로 만들어지는지, 그 이야기가 어리석은 군중에 떠받들여지면서 누구의 욕망을 채우는지를 과장된 인물과 상황을 통한 은유로 보여 준다. ‘파수꾼’(1974), ‘내마’(1975), ‘봄날’(1984)에서 엿볼 수 있는 이강백 특유의 정치 우화적 요소가 다분하다. 커다란 호숫가의 펜션을 분양받은 퇴역 장군이 죽는다. 장군이 죽자 근처의 다른 펜션들을 분양받은 7명의 주인들은 장군의 죽음을 이용해 펜션에 고객을 유치할 방법을 궁리한다. 그들은 장군의 유해를 국립묘지가 아닌 펜션 단지에 모시고, 복희에게 매일 아침 울면서 장군의 묘소를 찾을 것을 강요한다. 날마다 수십, 수백 명의 군인들이 복희를 보러 펜션을 찾고 일곱 주인들은 주머니를 두둑히 채우는 ‘슬픈 복희’ 신화의 탄생이다. 극은 슬피 울다 웃기를 반복하는 복희처럼 부조리투성이다. 대한제국 시절 증조부가 받은 작위를 물려받았다고 믿는 자칭 ‘백작’, “장군님이 세 번 임종하셨다”는 헛소리를 곧이곧대로 받아 적는 자서전 대필가 등 펜션 주인들은 하나같이 희화화된 인물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머리를 맞대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톱니바퀴가 맞물리듯 치밀하게 돌아간다. 호숫가에 정체불명의 배가 떠오르자 ‘복희호’라 이름짓고, 밤에는 나팔수가 나팔을 부는 음악회를 열어 호숫가를 슬픔과 즐거움이 공존하는 곳으로 만든다. 복희는 ‘슬픈 복희’이기를 거부하고 ‘즐거운 복희’가 되기로 결심한다. 신화가 감춰버린 진실이 꿈틀대는 순간이다. 나팔수와 사랑에 빠진 복희는 그와 함께 마을을 빠져나가려 하고, 펜션 주인들은 둘을 떠나지 못하게 막는다. 호수의 물결은 이들이 탄 보트를 집어삼키고 복희만이 목숨을 건진다. 펜션 주인들은 죽은 나팔수를 그리워하는 복희의 초상화를 그려 팔며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든다. 작품은 세월호 참사와 포개지면서 정치적 우화의 색채를 더 강하게 내뿜는다. 배의 침몰과 영혼의 수장(水葬), 연인의 울부짖음과 방관하는 사람들까지, 지난해 초고가 완성된 작품에 비치는 세월호의 잔상은 우연의 일치겠지만 기막히게 치밀하다. 한편으로는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우화로 읽힐 여지도 충분하다. 돈 되는 상품을 만드는 데 혈안이 된 모든 이들의 욕망에 대한 풍자이기 때문이다. 현실의 어떤 풍경과 대입해도 아귀가 딱딱 들어맞는 ‘소름 돋는’ 경험은 거장의 탁월한 통찰에 절로 무릎을 치게 만든다. 21일까지 서울 중구 남산예술센터. 1만 8000~2만 5000원. (02)758-2150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이승복 아버지 생전 40년간 정신질환 앓아…비극적인 사연

    이승복 아버지 생전 40년간 정신질환 앓아…비극적인 사연

    이승복, 이승복 아버지 고 이승복 군의 아버지 이석우(83) 씨가 별세했다. 이석우 씨는 지병이었던 폐부종이 악화돼 강릉의 한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았지만 지난 24일 오후 급성 신부전증 등으로 별세했다. 고 이승복 군은 1968년 북한 무장공비들에게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치며 저항하다가 9세 나이에 참혹하게 살해됐다. 이후 이석우 씨는 부인 주대하(당시 33세)씨와 삼남 승수(당시 7세), 딸 승자(당시 5세)도 함께 잃었으며 15세였던 장남 학관씨만 무장공비에게 수십 군데를 찔리고도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이후 이씨는 40여년간 정신질환과 폐부종, 급성 신부전증 등을 앓으며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한편 이 씨의 묘는 평창군 용평면 노동리 이승복기념관 내 부인 묘소 옆에 마련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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