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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포토] 이한열 묘소 참배하는 문재인 전 대표

    [서울포토] 이한열 묘소 참배하는 문재인 전 대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8일 오전 김홍걸 광주공동선대위원장과 함께 광주 북구 민족민주열사묘역을 찾아 이한열 열사의 묘소에서 참배를 하고 있다.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 [The Best 시티] 서울 속 이방인 동네? 역사의 숨결 숨쉬는 동네!

    [The Best 시티] 서울 속 이방인 동네? 역사의 숨결 숨쉬는 동네!

    성장현 구청장 ‘역사 바로세우기’… 유관순길 등 조성 거리에 즐비한 외국 음식점과 간판들, 다양한 피부색의 외국인 관광객, 미군부대 등에서 새어 나온 이국적 문화들. ‘용산’ 하면 당장 떠오르는 이미지는 ‘서울 속 이방인 동네’쯤 된다. 하지만 이는 반만 맞는 말이다. 용산에는 백범 김구 등 항일 투사들이 잠들어 있는 효창원과 6·25의 아픔을 추모하는 전쟁기념관, 국립중앙박물관 등 역사를 기리는 시설이 많다. 용산 향토사학자인 김천수씨는 “김구 선생이 이봉창·윤봉길·백정기 의사 등의 묘소를 효창원으로 모셔온 건 용산의 역사성에 주목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성장현 용산구청장은 용산의 특성에 맞춰 역사바로세우기 사업을 여럿 진행해 왔다. 지난해 9월 유관순추모비를 건립하고 유관순길을 조성한 것이 대표적이다. 유 열사는 1920년 9월 28일 순국한 뒤 용산 이태원 공동묘지에 안장됐지만, 일제가 군용기지 조성을 위해 이장하는 과정에서 유해의 행방이 묘연해졌다. 지난 5일에는 충청남도 천안의 유 열사 생가터 인근에서 소나무와 흙을 가져와 추모비 인근에 심기도 했다. 오는 9월에는 유 열사 순국 96주년을 맞아 추모제를 개최한다. 또 한국과 악연을 가진 베트남 퀴논시를 기념하는 테마거리를 이태원에 오는 10월까지 조성하기로 했다. 퀴논시는 베트남 중남부의 해안도시로 베트남전 때인 1965~1972년 맹호부대가 주둔했던 곳이다. 구는 1997년 퀴논시와 자매결연한 뒤 관계 회복 노력을 해 왔다. 성 구청장은 매년 1월 간부 공무원들과 함께 효창원의 의열사를 참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의열사는 백범 김구 등 일제강점기 임시정부 요인 7명의 영정이 안치된 곳이다. 구는 또 지난 3월부터 구민들에게 용산의 역사에 대해 가르치는 강좌를 진행하기도 했다. 성 구청장은 “용산의 역사적 가치를 잘 지키면서 여기에 스토리를 더한다면 용산의 매력이 더 커질 것”이라면서 “앞으로도 용산의 역사를 제대로 알리는 작업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독자의 소리] 한식이 주는 교훈

    4월 5일은 설날, 단오, 추석과 함께 우리나라 4대 명절 중 하나인 한식(寒食)이다. 한식날에는 불을 사용하지 않은 찬 음식을 먹는다. 선조들은 왜 더운 여름날도 아닌 봄철에 찬 음식을 먹게 했을까. 산림청 산불통계연감에 따르면 2014년 산불 발생 건수는 492건에 피해 면적이 137㏊이다. 이 중 봄철에 발생한 산불이 396건에 124㏊이다. 전체 산불 피해 면적의 90%가 한식을 전후한 봄철에 발생했다. 최근 5년간 전국적으로 2148㏊가 넘는 산림이 잿더미로 변했고, 700억원이 넘는 재산 피해를 입었다. 산에 묘목을 심어 숲을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과 산림의 공기 정화 기능까지 계산한다면 피해액은 더 늘어날 것이다. 이쯤 되면 선조들이 왜 하루 정도는 찬 음식을 먹더라도 불을 사용하지 말라고 했는지 짐작이 간다. 이는 봄철 산불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기 위함일 것이다. 입산자 부주의와 논밭두렁 소각이 2014년 산불 원인의 74%를 차지하고 있다. 한식날 조상의 묘를 찾는 성묘객과 농촌에서 일하는 농업인들이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여도 봄철 산불의 상당 부분을 막을 수 있다. 묘소 주변 쓰레기는 소각하지 말고 다시 가지고 가야 한다. 해충 방제 효과가 적은 논밭두렁 소각도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 산불 예방을 위해 찬 음식도 마다하지 않던 선조들의 지혜를 본받아 애써 가꾼 숲이 잿더미로 변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장진호 농협안성교육원 교수
  • 무궁화 심은 순국선열의 길, 나라 사랑 피었네

    무궁화 심은 순국선열의 길, 나라 사랑 피었네

    ‘식목일에는 나라 상징 무궁화를 심어요.’ 박겸수 강북구청장은 오는 5일 오전 10시 주민 100명과 함께 ‘주민참여 나무심기 행사’를 연다. 매년 식목일에 여는 ‘주민참여 나무심기’는 구 전체 면적의 60%가 녹지 공간인 강북구의 산림자원을 키우는 행사다. 특히 올해는 무궁화를 북한산 국립공원의 순국선열 묘소에 심어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키우게 된다. 무궁화를 심을 곳은 수유동의 이준 열사 묘소와 신익희 선생 묘소다. 식목일날 묘소 진입로를 따라 좌·우측 녹지에 무궁화를 심는다. 또 김창숙과 신숙, 김도연, 서상일, 유림 선생의 묘소와 광복군 합동 묘에도 무궁화를 심을 계획이다. 1000만 서울시민의 산책로인 강북구 북한산 둘레길에는 순국선열 16위의 묘역이 있다. 이 가운데 이준, 손병희, 이시영, 김창숙, 신익희 선생의 묘역은 문화재이기도 하다. 박 구청장은 “푸른 자연은 후대에 줄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선물”이라며 “식목일뿐 아니라 일상 속에서도 꾸준히 나무를 심고 가꾸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강북구는 식목일 행사 외에도 나무돌보미 사업, 옥상 텃밭 조성사업 등 생태 환경에 대한 지역사회의 관심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녹화사업을 주민과 함께하고 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파키스탄 북동부 공원서 폭탄테러…참혹했던 현장

    파키스탄 북동부 공원서 폭탄테러…참혹했던 현장

    파키스탄의 소수 기독교 신자를 겨냥한 자살폭탄 테러 희생자가 70명을 넘어섰다. 자폭 테러가 놀이터에서 일어났고 희생자 대부분이 어린 아이들이어서 전세계는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무고한 시민의 목숨을 노린 이슬람 무장단체의 범죄행위가 극에 달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자폭 테러로 추정되는 이번 사건은 일요일인 지난 27일(현지시간) 저녁 파키스탄 북동부 라호르의 공원에서 일어났다. 그네가 있던 자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한 구조대원은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에 “사망자 대다수가 여성과 아이들이었으며, 부상자도 크게 다쳐 목숨이 위태로운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이 무장조직 파키스탄텔레반(TTP)의 강경분파 자마툴 아흐랄은 이번 테러의 주범임을 자처하면서 부활절 기독교도를 노린 행위였다고 밝혔다. 실제 폭발 당시 공원은 부활절을 축하하는 기독교 신자들로 붐볐으며 가족 단위 시민들이 집으로 향하던 중이었다고 경찰 고위간부인 하이더 아시라프는 전했다. 이들 대부분은 중하위 계층 시민들로 전해졌다. 현지 TV 방송국의 생중계에 따르면 사고 장소는 곳곳이 피로 물들고 들것에 실려나가는 사신과 부상자들로 아수라장이었다. 구조대원들은 줄지어 대기한 구급차에 부상자를 옮겨싣고 라호르 시내 7개의 병원으로 수송했다. 병원들은 수백명의 부상자 수술과 치료에 필요한 헌혈을 요청하고 있다고 파키스타 언론인 더 네이션은 전했다. 안타까운 사연도 이어졌다. 8명의 일가가 모두 숨지고 3달 전 결혼한 신혼부부도 함께 목숨을 기도 했다. 경찰관인 무하마드 이크발은 더 네이션에 “두 다리를 잃은 9살짜리 남자아이도 목격했다”며 참혹했던 테러 현장을 증언했다. 목격자들은 끔찍했던 폭발 순간을 떠올렸다. 지샨(17)은 “폭탄이 터진 그네 바로 옆에 서 있었다. 아주 큰 폭발과 함께 정신을 잃었고 눈을 떠보니 병원이었다”고 말했다. 파티마 비비(60)는 “내 평생 그렇게 큰 굉음은 처음 들었다. 정말 끔찍했다”고 돌아봤다. 이 지역 주민인 하산 임란(30)은 로이터통신에 “폭탄이 터졌을 때 화염이 높은 나무 위까지 치솟았다”면서 “공중에 날아오른 시신을 목격했다”고 전했다. 시민들은 실종된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부상병동과 각 병원 영안실에 모여들었다. 무하마드 아시라프(50)와 아내는 라호르 시내 한 병원에서 12살 짜리 아들을 찾고 있었다. 아시라프는 그의 아들이 친척들과 폭탄이 터진 공원에 놀러나갔었다며 “오 알라신이시여 하나뿐인 제 아들은 어디있습니까. 저희를 구하소서. 저희를 보호하소서”라고 울부짖었다. 시신들은 마요 병원에 속속 안치됐다. 시신을 안치할 관과 묘소는 무료로 제공될 방침이라고 더 네이션은 전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툇마루 끝까지 늘린 창호, 옹색한 임시 궁궐의 흔적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툇마루 끝까지 늘린 창호, 옹색한 임시 궁궐의 흔적

    임진왜란 당시 의주로 피난을 떠났던 선조는 전세가 진정 국면에 접어들자 한양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은 불타버려 남아 있는 전각이 없었다. ‘조선왕조실록’은 이 과정을 비교적 사실적으로 적었다. 선조 25년(1592) 4월 14일의 기록이다. ●임진왜란 때 불탄 경복궁 대신 월산대군 사저로 ‘궁성에 불이 났다. 임금이 탄 수레가 의주로 떠나려 할 즈음 간악한 백성이 먼저 내탕고에 들어가 보물을 다투어 가졌는데, 이윽고 난민(民)이 크게 일어나 먼저 장례원과 형조를 불태웠으니 두 곳에 공사 노비의 문적(文籍)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궁성의 창고를 크게 노략하고 불을 질러 흔적을 없앴다’ 이듬해 10월 1일 아침 벽제역을 출발한 선조는 저녁 무렵 서울의 월산대군 집에 들었다. 월산대군의 후손이 살고 있었다. 이날 월산대군 사저를 행궁(行宮)으로 삼았다는 기사는 ‘선조실록’의 ‘수정실록’에 보인다. 행궁으로 공식화하는 절차상 문제는 신경 쓸 겨를조차 없는 다급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한 나라의 왕실과 조정이 쓰기에 월산대군 집만으로는 당연히 좁았다. 이웃 계림군의 집도 행궁에 포함시켜 각 관서를 들였다. 청양군 심의겸의 집은 세자궁(東宮)으로 삼았다. 그러니 세자가 임금에게 문안을 드리려면 민가 골목을 이리저리 돌아 입궁해야 할 만큼 옹색했다. 1597년 일대에 목책을 둘러치고 문을 달면서 임시 궁성은 모습을 갖추었다. ●규모 갖춘 덕수궁은 대한제국 성립 이후에야 덕수궁의 역사는 이렇게 초라하게 시작됐다. 오늘날 대한문으로 들어가면 정전인 중화전을 중심으로 편전인 경효전과 침전인 함녕전이 규모 있게 자리잡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대한제국 성립 이후의 역사를 보여줄 뿐이다. 임진왜란 당시 행궁의 흔적은 중화전 뒤편 단청도 입히지 않은 석어당(昔御堂)과 즉조당(卽祚堂)에 남아 있다. 행궁의 정전(正殿)으로 쓰인 즉조당의 규모는 세도가의 사랑채 수준을 넘어서지 않는다. 비좁은 즉조당에서 열린 조회(朝會)는 초라했을 것이다. 당시의 옹색한 처지는 석어당과 즉조당, 그리고 즉조당과 이어붙인 준명당(浚明堂) 뒤편으로 가면 더욱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비좁은 전각을 최대한 넓게 쓰려는 듯 오늘날 아파트 베란다를 확장하듯 창호를 툇마루 끝까지 늘려놓은 모습이 인상적이다. 월산대군은 세조의 큰아들인 도원군의 큰아들이니 세조의 큰손자다. 도원군은 세자로 책봉됐지만 18세에 죽는 바람에 세자빈 한씨는 궁궐 밖으로 나가야 했다. 이때 왕실에서 지어준 집이 훗날 월산대군 사저다. 한씨는 두 아들을 두었는데, 곧 월산대군과 자을산군이다. 자을산군이 성종으로 등극하고, 한씨도 입궐하자 월산대군 후손이 대를 물려 살았다. 임시 궁궐은 정릉동 행궁이라고 불렀다. 지금의 미국대사관저 언저리에 태조의 제2비인 신덕왕후의 무덤인 정릉(貞陵)이 있었기 때문이다. 태종은 등극 1년 만에 이 배다른 어머니의 묘소를 당시 양주땅인 오늘날 돈암동 고개 너머로 옮기고 석재는 광통교 복구공사에 쓰게 했다. 이장에 앞서 능역(域)을 크게 축소했는데, 이때 조선왕조 개창 공신들이 다투어 땅을 차지하고 왕실도 상당 면적을 확보할 수 있었던 듯하다. 지금의 중구 정동이다. ●문화재청, 29일부터 석어당 등 전각 내부 공개 선조는 정릉동 행궁에 16년을 머물다 즉위 41년(1608) 승하한다. 광해군이 왕위에 오른 것도 훗날 영조가 즉조당으로 이름 붙인 행궁의 서청(西廳)이었다. 광해군은 한때 창덕궁에 환궁했다가 정릉동 행궁으로 돌아와 경운궁이라 이름 짓고 한동안 머문다. 인목대비가 유폐된 서궁(西宮)도, 반정(反政)으로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가 즉위한 곳도 여기다. 중화전을 비롯해 행궁 권역을 둘러싼 전각은 1902년 완성됐다. 하지만 석어당과 즉조전은 물론 중화전을 포함한 대부분의 전각은 1904년 대화재로 주저앉고 만다. 석어당과 즉조전의 복구는 즉각적으로 이루어졌지만 역사성은 어쩔 수 없게 훼손됐다. 우리에게 익숙한 덕수궁이라는 이름은 고종이 1907년 순종에게 양위한 뒤 이곳에 살면서 붙인 것이다. 마침 문화재청은 오는 29일부터 4월 3일부터 석어당 등 덕수궁 전각의 내부를 공개하는 ‘궁궐 내부를 엿보다’ 행사를 갖는다고 한다. 즉조당은 지금도 정면에서 내부를 볼 수 있다. 글 사진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유승민, 이한구 비난에 “대꾸할 가치 없다”…탈당 후 첫 공식일정은?

    유승민, 이한구 비난에 “대꾸할 가치 없다”…탈당 후 첫 공식일정은?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유승민 의원은 24일 이한구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장이 “당을 모욕하고 침을 뱉으며 자기 정치를 위해 떠났다”며 맹비난한 것에 대해 “대꾸할 가치가 없다”고 말했다. 유 의원은 이날 오전 탈당 후 첫 공식일정으로 대구 동구 용계동의 선거사무소에서 당원 및 지지자들에게 탈당 경과와 사유를 설명한 뒤 기자들과 만나 “공관위원장이 뭐라고 했는지 모르겠지만 대꾸할 가치가 없다”며 일축했다. 유 의원은 공천관리위 뿐 아니라 당 지도부를 향해서도 공천 과정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유 의원은 “어제(23일) 공관위에 대해서만 말씀드린 게 아니고 당이 공천하는 전반적인 것을 다 보고 들은 바를 말씀드렸다”고 설명했다. 당의 공천 배제 방침에는 청와대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관측에 대해 묻자 유 의원은 잠시 뜸을 들이다 “저는 모르는 이야기다. 모르겠다”며 말을 아꼈다. 유 의원은 자신을 중심으로 한 ‘무소속 연대’ 가능성에 대해서는 “연대라는 표현을 제가 써본 적은 없다”며 “당장 어떻게 연대를 하고 그런 계획이나 약속은 한 적 없다. 연대라는 말을 쓰는 것 자체도 옳은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다만 “너무 급박하게 모든 것이 이뤄지고 그래서 지금부터 서로 연락하면서 고민을 해볼 문제”라고 가능성을 남겨뒀다. 유 의원은 이날 공식일정에 앞서 새벽 일찍 경북 영주시 풍기읍에 있는 선친 유수호 전 의원의 묘소에 다녀왔다. 이와 관련 “탈당도 해서 인사 드리러 다녀왔다”고 말했다. 첫 일정으로 지지자들에게 그동안의 경과를 설명한 것에 대해서는 “그동안 10년 넘게 저와 같이 해오던 식구들이니 제가 당연히 보고를 드려야 했다”면서 “이제는 주민들 한 분 한 분이 4·13 총선에서 표를 행사하실 분들이니 모두가 소중하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만날 생각”이라고 말했다. 오전 설명회에는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일부 지지자들으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참석자들은 이날 대다수가 유 의원과 뜻을 같이 해 탈당하기로 했다. 또 무소속 출마를 위한 동의 역시 200여명 정도 서명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핫뉴스] 유승민 새누리 탈당선언 “어떤 권력도 국민을 이길 수 없다”(전문)[핫뉴스] 한핏줄 다른당…당적 다른 형제·남매의 도전
  • 국내여행 | 남쪽바다가 건네는 말②통영이 진하다

    국내여행 | 남쪽바다가 건네는 말②통영이 진하다

    통영은 진하다. 색이 진하고, 향이 진하고, 맛이 진하다.역사가 그러하고, 문화가 그러하고, 사람이 그러하다.좁은 골목에도 음악가와 화가의 삶이 얽혀 있고, 낡은 가옥에도 소설가와 시인의 인생이 묻어 있다. 얽히고 묻은 것들은 하나같이 묵직하다. 참 농밀하기도 하다. 그래서 통영의 여운은 오래도록 맴돈다.강구안. 멀리 동피랑과 나폴리 모텔이 보인다세병관의 서쪽 망루인 서포루동피랑의 상징인 벽화세병관 마루에 앉아 회상하다 통영 앞에는 어김없이 비경, 예향, 미항이라는 수식어가 달라붙는다. 수식어 대신 ‘동양의 나폴리’만으로도 불린다. 그러나 통영이 나폴리가 되기 이전에 통영은 이순신의 고장이다. 임진왜란 이후 왜군에 치가 떨린 조정은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의 5개 수영을 아우르는 삼도수군통제영을 마련한다. 뼈아픈 치욕은 무너진 궁궐의 재건보다 먼저 삼도수군통제영을 설치하도록 했다.1604년에 설치된 삼도수군통제영은 300여 년간 경상, 전라, 충청의 삼도 수군을 지휘하던 본영이었다. 초대 통제사는 임진왜란 당시 초대 통제사인 이순신. 그의 한산도 진영이 최초의 통제영이었다. 이후 6대 통제사가 지금의 통영으로 통제영을 옮겼다.삼도수군통제영을 거닐어 본다. 차곡차곡 쌓인 시간이 발끝에서 단단하게 전해진다. 400년 넘게 닳은 돌층계 위로 겨울비가 흩날린다. 층계 끝의 문에는 지과문止戈問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그칠 지止, 창 과戈, 즉 창을 거둔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칠 ‘지’자를 창 ‘과’자 밑으로 가져와 두 글자를 합치면 싸울 무武 가 된다. 이것은 평상시에는 창을 거두지만, 유사시에는 싸우기를 주저하지 않겠다는 무장의 기상이다.무장의 다짐은 지과문을 지나 세병관에도 고스란하다. 세병관이라는 이름은 두보의 시구 ‘만하세병挽河洗兵’에서 가져왔다. ‘하늘의 은하수로 피 묻은 병기를 씻는다挽河洗兵挽河洗兵挽河洗兵挽河洗兵挽河洗兵.’ 즉, 전쟁이 그치고 평화를 갈망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씻을 세洗의 삼수변을 제거하면 먼저 선先이 된다. 평상시에는 세병이나, 유사시에는 선병. 평화를 바라는 마음 중에도 전투를 유념한다. 세병관의 현판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크단다. 목이 아프도록 현판을 올려다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세병과 선병 모두 결국은 백성과 조국을 지극히 아끼는 마음인 것을.삼도수군통제영과 어우러진 통영 시내의 모습이 통영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 주는 듯하다 국보 305호 세병관은 정면 9칸, 측켠 5칸의 단층 팔작지붕으로 된 목조건물이다. 이는 우리나라 단일 면적의 목조건물로서는 가장 큰 규모이다. 세병관은 삼도수군통제영의 의전과 연회를 행했던 객사건물이었으나 일제시대에는 기둥 사이에 벽을 세우고 초등학교로 사용됐다. 긴 세월 동안 몇 차례의 보수는 있었을지언정 삼도수군통제영의 다른 건물들이 소실될 때에도 세병관은 당당하게 세월을 견뎌냈다.세병관의 마루로 올라선다. 동쪽 망루인 동포루와 서쪽 망루인 서포루, 북쪽 망루인 북포루가 좌청룡과 우백호, 북현무로서 세병관을 감싼다. 정면으로는 멀리 미륵산 자락이 너울대고, 세병관 뒤로는 여황산이다. 마루가 맑고 서늘하다. 세병관 마루에서 바라보는 통영시내는 겨울비로 흠뻑 젖었다. 삼도수군통제영의 기와 너머로 통영의 땅과 바다가 들어온다.통영이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을 숱하게 잉태한 이유를 파헤치다 보니 삼도수군통제영이라는 답이 나온다. 무슨 말인고 하니, 삼도수군통제영으로부터 파생된 것들로 인해 통영의 문화가 풍부해졌기 때문이란 말이다. 통제영의 12공방은 임진왜란 당시 군수품을 자체 조달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조선시대 한양을 제외한 지방에서는 통영 12공방 장인의 수가 가장 많아서 1895년 폐영 당시 250명에 달했다고 한다. 숫자만 많은 것이 아니라 생산품 역시 최상품이었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는 통영소반 위에 안주를 차리는 것으로 부를 과시했다고 한다. 통영에서는 버선 한 켤레, 빗 하나, 갓 끈 하나조차 허술하지 않으니 그 안목들이 오죽했을까.한편, 통제영 300년이라 함은, 통제사가 300년 동안 부임했다는 이야기다. 통제사는 조선시대 정2품의 벼슬이었다. 정2품의 양반이 통제사로 부임하면 통영으로 홀로 오는 것이 아니라 식솔들과 노비들을 모두 끌고 온다. 일년 반마다 새롭게 부임하는 통제사는 한양의 최신식 유행을 퍼트렸고, 이는 통영의 복색을 세련되게 만들었다.뿐만 아니라, 세병관에서 의전과 연회 때마다 연주되는 예악을 들음으로써 통영의 음악도 풍부해졌다. 예악은 궁궐이 있는 한양이 아니고서는 듣기 힘든 고급 음악이었다. ‘전라도 가서는 소리하지 말고, 경상도 가서는 춤추지 말라’고 했다. ‘통영 가서는 춤도 소리도 하지 말라’가 되겠다. 충청, 경상, 전라 수군이 모여 저마다 춤 한 사위, 노래 한 가락 읊조리는 곳이 삼도수군통제영이었기 때문이다. 춤과 소리를 잘할 수밖에 없다. 이 모든 것들은 오랜 시간을 들여 축적되고 융합되었고, 순간마다 땅은 비옥해졌다. 이후 이 땅은 윤이상, 박경리, 유치환, 김춘수, 전혁림 등과 같은 근사한 꽃들을 피워냈다.서호시장은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다강구안 골목의 대표적인 조형물 ‘이중섭 물고기’강구안 골목의 오래된 가게 사이로 세련된 감각의 가게들이 함께 공존한다히히히 강구안, 정겨운 서호시장‘어, 나폴리 모텔이다.’ 통영의 강구안 해안가를 거닐다 중얼거렸다. 나폴리 모텔은 2009년 개봉한 홍상수 감독의 영화 <하하하>에서 남여 주인공이 우연히 만나는 장소다. <하하하>는 63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상을 받은 영화로, 영화의 배경인 통영의 매력이 가득 담긴 영화다. 강구안에서 나폴리 모텔을 보니 ‘하하하’가 아니라 ‘히히히’ 하는 웃음이 새어 나온다.이제 강구안은 늘상 웃음소리로 소란하다. 물론 영화 때문은 아니다. 오래된 강구안 골목에 사람이 몰리기 시작한 것이다. 원래 강구안은 바다가 육지로 들어온 항구를 일컫는다. 통영에서는 중앙동, 항남동 등의 일부 해안을 옛날부터 강구안이라고 불렀다.통영의 명동으로 불릴 정도로 번화했던 강구안이 통영여객선터미널의 이전으로 쇠락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사람들은 골목재생사업을 시작했다. 덕분에 지금 강구안 골목에는 통영에서 가장 오래된 여관, 70년간 이어 온 돼지국밥집, 55년 동안 풀무소리 끊긴 적 없는 대장간, 30년 넘은 목욕탕들이 여전히 소곤댄다. 그 사이로 게스트하우스와 작은 카페들도 함께 살 비비며 공존한다. 골목 어딘가에는 화가 이중섭과 유치환 시인이 술잔을 기울이던 곳이 있을 것이다. 지금 강구안은 새벽 1시에 후루룩 먹는 우짜우동과 짜장을 섞은 요리 맛처럼 달큰하고 뜨뜻하다, 히히히.서호시장은 통영항 여객선터미널 건너편에 위치한다. 예전 서호만 터를 매립해 만든 새 땅에 자리한 시장이라 새터시장으로도 불린다. 이른 아침부터 서호시장은 활기가 넘친다. 굴이 좋은 계절이라 그런지 통통하고 뽀얀 굴이 곳곳에서 보인다. 볼락과 학꽁치가 지천이다. 시장 한 켠 방앗간에서는 아침부터 고소한 기름 짜는 냄새가 번지고, 과일이며 나물이며 바구니마다 수북하다. 부지런한 상인들은 새벽부터 좌판을 벌였을 것이다. 알뜰한 사람들은 조금 더 싱싱하고 조금 더 저렴한 물건을 찾아 시장 골목 여기저기를 누빈다. 새벽 조업을 마친 어부들은 뜨끈한 해장국으로 거친 속을 푼다.서호시장에는 시래기를 뭉근하게 끓인 시락국, 국물이 시원하고 맑은 물메기탕, 해장에 최고라는 졸복국 등 다양한 해장국 가게가 많다. 시장의 활기가 궁금하다면 아침에 갈 것. 오후가 되면 비교적 한산해진다.▶travel info 욕지도·통영FERRY욕지도 여행의 출발은 통영이다. 통영의 통영여객선터미널과 삼덕여객선터미널에서 여객선과 카페리가 운항한다. 소요시간은 통영여객선터미널에서 출발할 경우, 1시간 30분, 삼덕여객선터미널에서 출발할 경우 45분이다. 삼덕여객선터미널의 경우 통영 시내에서 차로 15분 거리 떨어져 있으므로 교통편에 따라서 터미널을 선택하는 것이 좋겠다.통영→연화도→욕지도 하루 5회 왕복운항 여객운임 편도 9,700원, 승용차 차량운임 편도 1만5,000~2만6,000원 삼덕→욕지도 하루 8회 왕복운항 여객운임 편도 7,600원, 승용차 차량운임 편도 1만8,000~2만4,000원FESTIVAL 욕지섬문화축제 욕지섬문화축제는 욕지도의 대표적인 축제다. 1992년부터 10월 중순경에 개최되는 이 축제는 120여 년 전 처음으로 사람들이 욕지도에 살기 시작한 것을 기념하는 축제다. 욕지도 특산물인 고구마와 고등어를 주제로 한 ‘GO(구마)GO(등어)페스티벌’과, 과거 어민들의 어선인 전마선을 체험할 수 있는 ‘전마선노젓기대회’와 같이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마련된다.STAY욕지도 옵타티오펜션 전 객실이 바다 전망이다. 일반형 객실 외에도 가족단위 여행객이 머물면 좋을 복층형 객실이 마련되어 있다. 복층형 객실의 2층 천장의 창을 통해 욕지도의 밤하늘을 감상할 수 있다. www.optatio.co.krrestaurant욕지도 늘푸른횟집 욕지도의 싱싱한 고등어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곳. 고등어회를 주문하면 어떻게 먹어야 맛있는지 친절히 설명해 준다. 고등어회뿐만 아니라 욕지도 고등어로 만든 고등어조림도 일품이다. 칼칼한 양념이 밥도둑이 따로 없다. 055 642 6777통영 통굴가 제철 굴을 코스로 즐길 수 있다. 가격에 따라 코스에 나오는 메뉴가 조금씩 다르다. 통통하고 맛이 진한 굴을 다양한 요리로 즐겨 보자. 055 645 2088통영 분소식당 겨울이면 제철 물메기탕이, 봄이면 도다리쑥국을 맛볼 수 있다. 시원한 국물과 씹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보드라운 물메기살을 호로록 맛보다 보면 어느새 속이 뻥 뚫린다. 졸복으로 만든 졸복해장국도 인기. 055 644 0495MUSEUM박경리 기념관 한국 현대문학의 거장. 박경리 선생은 통영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기념관 내부에는 선생의 친필 원고를 비롯하여 유품, 사진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기념관 뒤쪽으로는 선생의 묘소가 자리한다. 경상남도 통영시 산양읍 산양중앙로 173 09:00~18:00, 매주 월요일, 법정공휴일 다음날 휴관 무료 055 650 2541~3 pkn.tongyeong.go.kr윤이상 기념공원 세계적인 음악가 윤이상을 기리기 위한 공원. 전시실과 카페 및 기념품숍, 각종 공연과 세미나와 같은 실내행사를 위한 메모리홀, 야외행사장인 경사광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시실에는 윤이상의 생애와 함께 생전 사용하던 악기 및 친필 악보를 비롯하여 생전의 유품을 전시하고 있다. 경상남도 통영시 중앙로 27 도천테마공원 09:00~ 18:00 1월1일, 설날 및 추석연휴, 매주 목요일, 공휴일 다음날 휴관 무료(단, 공연 및 세미나는 별도) 055 644 1210 www.isangyunmemorial.com통영옻칠미술관 옻칠과 회화를 접목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옻나무에서 채취한 수액을 정제하고 안료를 배합하여 옻칠을 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각도에 따라 다르게 빛나는 광채가 신비롭다.경상남도 통영시 용남면 용남해안로 36 10:00~18:00, 매주 월요일(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다음날), 설날, 추석 휴관 어른 3,000원, 어린이 1,000원 055 649 5257 www.otchil.org에디터 천소현 기자 글·사진 Travie writer 이윤정 취재협조 한국해양소년단 경남남부연맹 www.hanbada.or.kr,통영시 www.tongyeong.go.kr
  • ´평택 실종 아동´ 끝내 숨진 채 발견…계모가 학대해 숨지자 암매장

    ´평택 실종 아동´ 끝내 숨진 채 발견…계모가 학대해 숨지자 암매장

     계모가 길가에 버리고 왔다던 ‘7살 원영’이는 끝내 숨진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경기 평택경찰서는 신군의 계모 김모(38)씨가 원영군이 소변을 못 가린다는 이유로 지난달 1일 욕실에 가둬놓았고, 다음날 숨진 채 발견되자 시신을 열흘간 베란다에 방치하다 야산에 암매장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12일 밝혔다.  경찰 조사결과 김씨는 지난달 1일 오후 1시 원영군이 소변을 못가린다는 이유로 밥을 주지 않고 욕실에서 옷을 벗겨 찬물을 끼얹고 20시간 가량 가둬놨다. 이날 평택 일대 바깥 기온은 최저 영하 10.7도 였다. 원영군은 다음날 오전 9시30분쯤 친부 신모(38)씨가 욕실 문을 열자 숨진 채 발견됐다.  신씨 부부는 이후 10일간 원영군의 시신을 이불에 싸 베란다에 방치한 뒤 같은달 12일 오후 11시 20분쯤 시신을 차에 싣고 청북면의 한 야산에 암매장했다고 진술했다. 암매장 장소는 신씨 아버지의 묘지에서 5m가량 떨어진 곳이다.   경찰은 지난달 14일 신씨 부부가 청북면의 한 슈퍼에서 신용카드로 막걸리와 육포,초콜릿을 구입한 사실을 확인하고, 이 장소에 간 경위를 조사하던 중 신씨와 김씨의 진술에서 모순점을 발견해 추궁하다가 암매장 사실을 자백받았다. 신씨는 ”원영이를 데려가지 않았다“고 진술한 반면, 김씨는 ”아이를 데려갔다“고 진술했다.  이에 따라 경찰은 범행 시점이 지난달 20일이 아닌 14일 전후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자택 인근 CCTV 영상을 확보해 분석하던 중 12일 오후 11시 25분쯤 빌라 현관 바로 앞에 차를 대놓고 무언가를 싣는 장면을 확보했다. 이어 차량 동선을 추적한 경찰은 신씨 부부가 당일 밤 신씨 아버지 묘소가 있는 청북면 야산으로 가는 CCTV 영상을 확보했다. 경찰은 신씨 부부가 12일 밤 원영군을 암매장한 뒤 14일 초콜릿 등을 구입해 암매장 장소를 다시 찾아 장례 의식을 치른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김씨가 지난달 20일 포털 사이트에서 ‘살인 몇년 형’등의 키워드를 검색한 사실도 확인했다.   결국 지난 달 20일 자택 인근 초등학교 앞 폐쇄회로(CC)TV 등에 찍힌 여성과 아이는 김씨와 원영군이 아닌 셈이다.  경찰은 청북면 야산에서 원영군 시신을 수습하는 한편 시신을 부검해 학대 여부 등 정확한 사인을 밝힌 뒤 신씨 부부에 대해 살인 혐의를 적용할 수 있을지 검토할 계획이다.  경찰 관계자는 “계모 김씨는 살인에 대해 부인하고, 신씨는 김씨가 아들을 욕실에 가둔 사실도 몰랐다고 진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경기 남양주 수락산 흥국사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경기 남양주 수락산 흥국사

    조선은 성리학을 새로운 국가 이념으로 내세웠지만, 1000년에 이르는 불교국가의 전통이 하루아침에 흐지부지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왕실부터가 건국 초기부터 줄곧 불교에 호의적이었으니 숭유억불(崇儒抑佛)이 국시라지만 불교는 기회만 있으면 다시 고개를 들고 일어났다. 신권(臣權)이 왕권(王權)의 위세에 억울린 영·정조 시대가 그랬고, 세도정치로 국가의 기강이 무너져 내린 시대에는 더했다. 19세기에는 비빈(妃嬪)은 물론 상궁과 세도가의 부녀까지 시주에 나서면서 왕실의 원당(願堂)이 도성 주변에 집중적으로 세워진다. 원당은 세상을 떠난 이의 명복을 빌고 후손의 발복(發福)을 염원하는 사찰이다. 조선의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에는 ‘낡은 사찰의 수리만 허용할 뿐 새 절의 건립을 금지한다’(凡寺社勿新創 唯重修古基者)고 했지만, 원당 사찰은 새로 지으면서 논밭을 내려받고 세금을 면제받는 특권까지 누릴 수 있었다. ●신라 원광법사 창건 기록… 선조때 원당으로 경기 남양주 수락산 자락의 흥국사(興國寺)는 대표적 원당의 하나다. ‘흥국사 사적(寺蹟)’에는 ‘신라 진평왕 21년(599) 원광 법사가 수락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고 적혀 있지만 뒷받침하는 유물이나 유적은 남아 있는 것이 없다. 원당이 된 것은 선조 시절이다. 즉위 원년(1568) 아버지인 덕흥대원군을 기리고자 수락사에 원당을 짓고 흥덕사(興德寺)라 편액했다. 흥국사라는 이름을 다시 내린 것은 인조 4년(1626)이라고 한다. 흥국사를 흔히 ‘덕절’로 부르는 것도 이런 내력 때문이다. 실제 흥국사에서 볼 때 오른쪽 산자락에 덕흥대원군 묘소가 있다. 서울 상계동에서 별내신도시로 넘어가는 코스를 택한다면 왼쪽으로 덕흥대원군 묘소를 알리는 푯말이 먼저 나타난다. 200m쯤 산길을 올라가다 보면 풍수지리에 문외한이라도 명당 자리라는 탄성이 절로 나오는 곳에 무덤이 나타난다. 덕흥대원군은 중종의 일곱째 아들이다. 명종이 왕위를 이을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승하하자 덕흥대원군의 셋째 아들 하성군이 왕위를 물려받는데 곧 선조다. 선조는 아버지를 덕흥대원군으로 추존했는데, 왕이 아닌 왕의 아버지를 대원군이라고 부르는 전통의 시작이다. 덕흥대원군 무덤 아래 보이는 무덤은 그의 첫째 아들이자 선조의 맏형인 하원군의 것이다. 흥국사는 우수한 화승(畵僧)을 다수 배출한 사찰로 알려졌다. ‘덕절 중은 불을 때면서도 막대기로 시왕초(十王草)를 그린다’는 우스개도 그래서 나왔을 것이다. 보물로 지정된 ‘소조석가여래삼존좌상 및 16나한상 일괄’을 비롯해 중요한 문화재도 많다. 하지만 흥국사는 대방(大房)의 존재로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부엌까지 갖춘 대방… 도성에서 반나절 거리 부엌을 포함한 다양한 공간을 가진 대방은 스님들이 생활하는 복합 공간을 뜻한다. 하지만 흥국사 대방은 왕실과 세도가 여인들이 편안하게 머물며 기도할 수 있는 ‘원스톱’ 신앙 공간의 성격이 짙다. 흥국사가 19세기 들어 다시 왕실의 중요한 의례 공간으로 떠오른 것은 도성에서 반나절 거리에 길도 크게 험하지 않다는 지리적 이점이 한몫했을 것이다. 흥국사 대방은 만세루방이라고도 불린다. 대방 건축 이전에 다른 절처럼 큰법당 앞에 만세루라는 누각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만세루는 순조 18년(1818) 흥국사 대화재 당시 소실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대방은 대리청정을 하고 있던 효명세가의 명으로 1830년 세웠다. 덕흥대원군이 태어난 지 300주년이 되는 해다. 30칸의 대방은 고종 14년(1877) 다시 불탔고, 철종비인 철인왕후 김대비의 시주로 2년 뒤 37칸에 이르는 현재의 모습으로 중건됐다. 규모가 커졌다는 것은 드나드는 사람도 많아졌다는 뜻이다. 대방의 기둥에는 조선시대에는 궁궐이 아니면 쓸 수 없었던 다듬은 돌(熟石)이 대거 사용됐다. 대방 건축 자체를 궁궐 대목장이 지휘했을 것이다. 글 사진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문화재 아닌데… 퇴계 문중 건축물 보수 특혜 논란

    문화재 아닌데… 퇴계 문중 건축물 보수 특혜 논란

    경북도와 안동시가 예산 수억원을 들여 특정 문중의 재사(齋舍) 보수에 나서 혈세 낭비와 특혜 시비가 일고 있다. 재사는 묘소를 관리하고 묘제를 올리기 위해 지은 문중 건축물이다. 3일 도와 시에 따르면 올해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의 수곡재사를 보수하기로 했다. 시는 지난해 말 도비 및 시비 등 4000만원을 들여 설계 작업을 마쳤다. 이 재사는 퇴계 이황(1501∼1570) 선생이 50세 되던 해 집안 묘소를 관리하기 위해 인근 용수사 설희 스님에게 부탁해 지었다고 전해지며 현재 종손이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지은 지 오래된 데다 관리마저 부실해 현재 대부분의 기둥과 기와가 부식 또는 훼손됐으며 누수로 붕괴 조짐마저 있다. 재사는 정면 5칸, 측면 6칸의 ‘口’ 자 형태(연면적 100여㎡)다. 재사는 퇴계 선생이 태어난 곳인 온혜리 노송정(경북도 민속문화재 제60-2호) 종택과 불과 200여m 떨어져 있지만 문화재로 지정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도와 시가 문화재도 아닌 이 재사 보수에 총 5억원(도·시비 각각 2억 5000만원)을 투입하기로 하면서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퇴계 종손 측은 재사를 노송정 종택과 가까운 곳으로 이전, 건립해 줄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재사가 외진 곳에 있어 관리가 힘들고 도난 사고마저 잇따르기 때문이란 이유에서다. 도와 시는 이전 문제도 협의하고 있다. 이 같은 종손 측의 요구가 받아들여지면 추가 예산 투입이 불가피한 데다 시가 계획 중인 재사의 문화재 지정 추진에 상당한 걸림돌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안동 지역 주민들은 “특정 문중에 대한 특혜이자 혈세 낭비”라며 “재검토해야 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안동시 관계자는 “문화재 주변 지역 정비 사업의 하나로, 특혜성 사업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안동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퇴계 가문 재사 보수에 세금 투입 ‘특혜’ 논란

    퇴계 가문 재사 보수에 세금 투입 ‘특혜’ 논란

    경북도와 안동시가 예산 수억원을 들여 특정 문중의 재사(齋舍) 보수에 나서 혈세 낭비에 특혜 시비가 일고 있다. 재사는 묘소를 관리하고 묘제를 올리기 위해 지은 문중 건축물이다. 3일 도와 시에 따르면 올해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의 수곡재사를 보수하기로 했다. 시는 지난해 말 도비 및 시비 등 4000만원을 들여 설계작업을 마쳤다. 이 재사는 퇴계 이황(1501∼1570) 선생이 50세 되던 해 집안 묘소를 관리하기 위해 인근 용수사 설희 스님에게 부탁해 지었다고 전해지며, 현재 노송정 종손이 관리하고 있다. 그 러나 지은 지 오래된 데다 관리마저 부실해 현재 대부분 기둥과 기와가 부식 또는 훼손됐으며 누수로 붕괴 조짐마저 있다. 재사는 정면 5칸, 측면 6칸의 ‘口’자 형태(연면적 100여㎡)다. 재사는 퇴계 선생이 태어난 곳인 온혜리 노송정(경북도 민속문화재 제60-2호 ) 종택과 불과 200여m 떨어져 있지만, 문화재로 지정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도와 시가 문화재도 아닌 이 재사 보수에 총 5억원(도·시비 각 2억 5000만원)을 투입하기로 하면서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노송정 종손 측은 재사를 노송정 종택과 가까운 곳으로 이전, 건립해 줄 것을 강력 요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재사가 외진 곳에 있어 관리가 힘들고 도난 사고마저 잇따르기 때문이란 것. 도와 시는 이전 문제도 협의하고 있다. 이 같은 종손 측의 요구가 받아들여지면 추가 예산 투입이 불가피한데다 시가 계획 중인 재사의 문화재 지정 추진에 상당한 걸림돌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안동지역 주민들은 “특정 문중에 대한 특혜이자 혈세 낭비다”며 “재검토해야 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안동시 관계자는 “문화재 주변지역 정비사업의 하나로, 특혜성 사업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한편 경북도와 안동시는 수백억원대 예산으로 안동지역에 ‘서애(류성룡)·학봉(김성일) 공원 조성사업’을 추진하다가 시민단체 등의 반발에 부딪혀 사업을 재검토하는 등 추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안동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김종필 전 총리 박영옥 여사 1주기 추모식 참석

    김종필 전 총리 박영옥 여사 1주기 추모식 참석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21일 충남 부여군 외산면 반교리의 한 묘역에서 열린 부인 박영옥씨의 1주기 추모식에 참석해 묘소를 둘러보고 있다. 부여 연합뉴스
  • 전통시장 찾은 朴대통령… “여기 창조경제·문화융성 다 있네요”

    전통시장 찾은 朴대통령… “여기 창조경제·문화융성 다 있네요”

    박근혜 대통령이 설 명절 연휴를 앞둔 5일 오후 인천 정서진중앙시장을 방문했다. 2012년 3월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때 찾았던 곳이다. 박 대통령이 시장통을 지날 때 상인들은 “물건을 사 달라”거나 “들러 달라”고 요청했고 박 대통령은 찐빵, 식혜, 호떡, 빈대떡, 딸기 등을 샀다. 점포 곳곳을 다니던 박 대통령이 젊은 상인들이 많아진 것을 보고 호기심을 표시하자 상인들은 2014년부터 문화관광형 시장 육성 사업에 참여해 이름을 바꾸는 등 문화 마케팅을 통해 특성화를 추진해 온 덕분이라고 답했다. 이에 박 대통령은 “4년 전과 많이 달라졌다. 태양광발전 설비도 하고 (시장에서) 문화 프로그램도 운영하는 것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이 합쳐진 모델”이라면서 “그런 쪽으로 더욱 육성되도록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면서 “요즘은 전부 문화하고 접목을 해야 빛이 나고 사람들이 매력을 느끼지 않느냐”며 “문화가 빠지면 앙꼬 빠진…”이라고 하자 상인들이 “찐빵”이라고 답했다. 박 대통령은 “장사가 잘되시나요? 경제활성화 법안들만 통과돼도 경기도 살고 전통시장 상인분들도 많이 웃으실 텐데”라며 안타까움을 표하기도 했다. 한편 박 대통령은 지난 4일 선친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묘소가 있는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으로 성묘를 다녀왔다. 청와대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 설, 추석 전 등 명절 때 빠짐없이 성묘를 했으며 필수 경호 인력을 제외하곤 별도의 수행원이나 가족을 대동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설 연휴 기간 관저에 머무를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 김종인, 광주선 홀대 봉하선 환대

    김종인, 광주선 홀대 봉하선 환대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31일 ‘야권의 심장’ 광주에서 전두환 정부 시절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 참여 전력을 재차 사과했다. 김 위원장은 전날부터 1박 2일 일정으로 광주를 방문했는데 취임 후 첫 지방 일정이다. ‘국보위 전력 논란’이 호남 민심 회복에 걸림돌이 되지 않게 제대로 ‘털고 가자’는 의도로 읽힌다. 지도부와 함께 광주 북구 망월동 5·18 묘지를 참배한 김 위원장은 “(전두환) 정권에 참여했는데, 광주의 상황을 와서 보니 제가 사죄의 말씀을 드려야 되겠다는 마음이 저절로 생겨난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한 희생자의 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추모 글을 읽기도 했다. 전날 밤에는 차명섭 5·18 기념재단 이사장, 정춘식 유족회장 등을 만나 직접 사과했다. 참배 과정에서 고성과 몸싸움도 있었다. 5·18 정신실천연합 관계자 등 30여명은 더민주 지도부가 도착하자 “전두환 때 받은 훈장을 반납하고 오라”고 항의했고, 5·18 기념재단 관계자들은 이를 제지했다. 김 위원장은 오후엔 경남 김해 봉하마을로 이동,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하고 권양숙 여사를 예방했다. 참배객과 지지자들은 “김종인의 힘, 당신의 능력을 믿습니다” 등의 피켓을 들고 응원했다. 권 여사도 “당을 살리는 데 최선을 다해 주기를 바란다”며 “될 것 같다. 뭔가 보이는 것 같다”고 덕담을 건넸다. 한편 새누리당 김용갑 상임고문은 “김 위원장은 국보위에 적극적인 참여 의사가 있었던 인사 명단에 포함돼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내가 야당 비대위원장으로 온 데 대한 불만 때문이 아닌가 싶다”며 반박했다. 광주·김해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김종인, 광주서 무릎꿇고 사죄 “국보위 전력 사과”…시민들 항의

    김종인, 광주서 무릎꿇고 사죄 “국보위 전력 사과”…시민들 항의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31일 광주를 찾아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참배해 이틀 연속 자신의 전두환 정권 당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 참여 전력을 사과했따. 그러나 이날 일부 5·18 관련단체 회원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다. 김 위원장은 이날 오전 비대위원, 선대위원 등 지도부가 총출동해 5·18 묘지를 참배했다. 여기에는 5·18 기념재단, 5·18 민주유공자유족회, 5·18 민주화운동부상자회, 5·18 구속부상자회 관계자들도 동참했다.그는 전날에도 5·18 단체 관련자들과 만찬을 함께 하면서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자신의 국보위 전력을 둘러싼 비판 여론을 해소하는 데 방점을 뒀다.그러나 더민주 지도부가 묘역에 도착하기 전부터 5·18 민주유공자회 설립추진위 등 일부 단체 관계자 30여명이 충혼탑에 자리를 잡은 채 “국보위 참여한 것 후회없다는 사람은 망월묘역을 참배할 자격이 없다”는 손피켓을 들고 항의했다.김 위원장을 향해 “전두환 때 받은 훈장을 반납하고 와라”, “역사의 죄인이 대명천지에 절대로 이럴 수 없다”라고 몰아붙이자, 김 위원장과 동행한 5·18 단체 관계자는 “왜 5·18을 정치에 이용하려고 하냐. 왜 광주를 부끄럽게 만드냐”고 반박하기도 했다.또 김 위원장이 충혼탑 분향을 위해 경찰의 스크럼 뒤에 대기하던 중 5·18 단체 관련자 간에 고성과 삿대질이 오가는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김 위원장은 장내가 정리된 뒤에야 “5·18 영령들의 정신을 받들어 더 많은 민주화를 이루겠습니다”라고 방명록에 적은 뒤 현장으로 돌아왔다. 김 위원장은 5·18 희생자들의 묘역을 둘러보며 윤상원 박기순 열사의 묘에서 절을 한 뒤 묘비를 쓰다듬었으며, 박관현 열사의 묘 앞에서는 무릎을 꿇고 추모 글을 읽었다.김 위원장은 “(전두환) 정권에 참여했는데, 광주의 상황을 와서 보니 제가 사죄의 말씀을 드려야되겠다는 마음이 저절로 생겨난다”며 “거룩한 이 분들의 뜻을 받들어 보다 많은 민주주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이후 비대위·선대위 합동회의에서 참석자들은 야권 분열이 빚어진데 사과하면서 광주의 민심을 되돌리는데 총력전을 기울였다.이종걸 원내대표는 “국립묘지를 참배하며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송구스런 맘 뿐이었다”고 말했다.박영선 비대위원은 “광주시민들이 요즘 더민주에 차가운 매를 주시고 있다”며 “5·18 묘역에서 김 위원장이 무릎꿇고 사죄했다. 그 장면을 지켜보면서 진심을 느낄 수 있다”고 광주시민의 지지를 호소했다.우윤근 비대위원은 “호남 사람,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무릅꿇고 사죄하는 마음으로 모두 일어서겠다”고 말했고, 이용섭 비대위원은 “더민주가 야권의 맏형으로서 분열을 막지못한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했다.당 홍보위원장인 손혜원 선대위원은 “묘역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들으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며 자신이 설 연휴 때 광주를 위한 슬로건을 만들겠다고 밝히기도 했다.김 위원장은 오후 김해 봉하마을로 이동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하고 권양숙 여사를 예방한다.앞서 김 위원장은 지난 29일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을 방문해 입원 치료 중인 이희호 여사를 병문안했다. 김성수 대변인은 “절대 안정을 취하라는 의사 권유로 이 여사와 대화를 나누지 못했고, 병실을 지키고 있던 김홍걸 교수와 30분 대화를 나눴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대만 총통 선거 현장을 가다] “변화” vs “성장”… 침묵하는 표심 향해 막판 유세

    대만 총통선거를 이틀 앞둔 14일 총통 후보들은 마지막 차량 유세에서 당의 텃밭을 집중적으로 파고들며 막바지 표밭 다지기에 나섰다. 당선이 유력시되는 차이잉원(蔡英文) 민진당 후보는 이날 ‘민진당 표밭’인 대만 남부 지역을 훑었다. 차이 후보는 확성기와 요란한 깃발을 단 오토바이 부대 및 차량과 함께 가오슝을 출발해 타이난과 자이, 장화를 거쳐 타이중에 이르는 차량 유세의 대미를 장식했다. 연도에 몰려든 시민들과 학생들은 “총통은 떼어 놓은 당상”이라며 “차이잉원 자유(加油·화이팅)!”를 소리 높여 연호했다. 일부 시민들은 “샤오잉(小英·차이잉원 지칭)이 당선되면 시집갈 수 있겠네”라는 익살스러운 플래카드를 들고 나오기도 했다. 타이베이 중산(中山)역에서 만난 시민 위궈화(兪國華·48)는 “지금 대만에는 변화가 필요하다”며 “대만의 변화를 이끌어낼 후보는 오직 차이잉원밖에 없다”고 두둔했다. 주리룬(朱立倫) 후보는 이날 ‘국민당 벨트’인 대만 북부 지역을 공략했다. 타이산, 신좡을 출발해 수린과 싼샤, 잉거, 투청 등을 거쳐 반차오에 이르기까지 신베이 전역을 샅샅이 누볐다. 주 후보는 특히 부인 가오완첸(高婉?)과 함께 차량에 동승해 당선을 응원하는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어 답례하며 ‘남다른 부부애’를 과시했다. 그는 “아내가 정말 고생한다”며 “어제저녁에도 나를 위해 생선탕을 끓여줘 맛있게 먹었다”며 겸연쩍은 듯이 웃었다. 이를 지켜보던 리젠민(李建民·37)은 “차이 후보가 미혼인 점을 겨냥해 가정이 편안하면 국가도 평안해진다는 점을 강조해 표심를 얻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총통 후보들은 침묵하며 관망하는 표심을 얻기 위해 총력전을 펼쳤다. 상대 후보는 최대한 평가절하하고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 부각시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주 후보는 이날 신베이시 차량 유세에서 유권자들을 향해 차이 후보에 대해 “신뢰가 없는 사람”이라고 포문을 열었다. 차이 후보가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정책과 관련해 속으로는 대만 독립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겉으로는 ‘현상 유지’라고 애매모호하게 답변하는 등 성실하지 못한 ‘공약’(空約)만 남발하고 있다고 비판한 것이다. 그러면서 “침묵하는 탓에 소외되는 사람들이 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 열과 성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주 후보는 앞서 13일에는 가장 존경받는 전직 총통 ‘장징궈(蔣經國) 카드’도 던졌다. 장징궈의 28주기인 이날 마잉주(馬英九) 총통 등과 함께 장징궈 묘소를 참배했다. 침묵하는 다수가 대부분 나이 많은 노령층인 점을 감안해 고도 경제성장을 견인한 장징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려 한 것으로 분석된다. 차이 후보는 이날 장화 차량 유세에서 “헛된 루머에 현혹되지 말라”고 맞받아쳤다. 주 후보 측이 이번 선거 기간 동안 차이 후보에 대한 불법 정치 자금 수수설을 흘리고 있는 데 대한 반격이다. 차이 후보는 “집권 국민당은 침묵하는 다수들이 자신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줄 아는데, 이는 매우 큰 착각”이라며 “국민당은 하루빨리 이 같은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침묵하는 다수의 사람들이야말로 바로 이 사회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라며 “이들은 오만방자한 정부가 바뀌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는 만큼 이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어 주는 정치를 이뤄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타이베이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新국토기행] 경남 통영

    [新국토기행] 경남 통영

    경남 통영시는 한려해상국립공원으로 둘러싸인 다도해 지역이다. 남해안 경남 중간에 육지와 유인도 44개, 무인도 526개로 이뤄졌다. 잔잔한 푸른 바다와 올망졸망 떠 있는 크고 작은 섬이 어우러진 풍광이 환상적이다. 항구와 동·서호만을 낀 도심 경치는 동양의 나폴리로 불린다. 면적은 239.54㎢, 인구는 13만 9349명이다. 굴곡이 심한 리아스식 해안에 동해 난류가 흘러 수산자원이 풍부, 일찍부터 수산업이 발달했다. 통영은 세계 해전사에 빛나는 한산대첩의 현장으로 많은 유적이 있다. 충청·전라·경상, 삼도 수군을 총지휘하던 삼도수군통제영이 1604년부터 1896년까지 300년 동안 있었던 군사도시였다. 통영 지명도 삼도수군통제영을 줄인 것이다. 언어의 마술사로 불리는 시인들조차 표현할 언어를 찾지 못할 만큼 빼어난 한려수도 통영의 비경은 문학·예술 창작의 자양분이 됐다. 극작가 유치진과 시인 유치환 형제를 비롯해 시인 김춘수, 김상옥, 작곡가 윤이상, 소설가 박경리, 화가 전혁림 등이 통영 출신이다. 박경리 선생은 그의 바람대로 한려수도가 내려다보이는 미륵산 양지바른 언덕에 영원히 잠들었다. 통영은 대전~통영 고속도로 개통으로 접근이 편리해지면서 사계절 관광지가 됐다. 경남도와 통영시는 김천~통영~거제를 잇는 고속철도가 건설되면 수도권과의 교통이 더욱 편해져 세계적인 해양 휴양 관광도시로 발전할 것으로 기대된다. >>볼거리 ●한려수도 한눈에 보는 ‘국내 최장 케이블카’ 우리나라 100대 명산이며 한려수도 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미륵산(해발 461m)을 오르내리는 케이블카다. 아래 하부역에서 정상 근처 상부역 사이 선로 길이가 1975m로 국내에서 가장 길다. 8인승 곤돌라 47대가 시간당 800여명을 수송한다. 정상에 오르면 호수처럼 잔잔한 한려해상공원의 환상적인 다도해 풍경이 발아래 펼쳐진다. 정상에서 직선거리로 90㎞쯤 떨어진 대마도는 1년에 30여일, 105㎞ 떨어진 지리산 천왕봉은 절반쯤 육안으로 볼 수 있다. ●동양 최초의 바다 터널 ‘통영 해저터널’ 1932년 개통된 동양 최초의 바다 터널이다. 길이 483m, 너비 5m, 높이는 3.5m다. 바다 양쪽을 막은 뒤 바다 밑을 파서 콘크리트 터널을 만드는 방식으로 건설했다. 통영과 미륵도를 연결하는 주요 연결도로로 사용되다가 충무교와 통영대교가 건설되면서 지금은 사람만 다닌다. 터널 입구에 ‘용문달양’(龍門達陽)이 쓰여 있는데 ‘용문을 거쳐 산양(山陽)에 통하다’라는 뜻으로 산양은 미륵도를 일컫는다. ●은하수 끌어와 병기를 씻는 세병관 통제영이 설치된 다음해인 1605년 건립된 객사로 통영시 세병로 27에 있다. 국보 제305호. 통정면 9칸, 측면 5칸으로 된 단층 팔작집으로 1646년과 1872년에 증개축됐다. ‘세병관’(洗兵館)이란 이름은 중국 당나라 시인 두보의 시 ‘세병마’(洗兵馬)에 나오는 ‘만하세병’(挽河洗兵)에서 따온 것으로 ‘은하수를 끌어와 병기를 씻는다’는 뜻이다. 통제영 주요 건물과 12공방 건물 등은 2000년부터 13년에 걸쳐 복원·건립됐다. ●한산도 곳곳에 서린 이순신 장군의 혼 한산도 두억리 일대 52만 5123㎡에 제승당을 비롯해 이순신 장군 영정을 봉안한 충무사, 활터인 한산정, 각종 비석 등이 있다. 한산도는 한산면을 이룬 29개 유·무인도 가운데 가장 큰 본섬이다. 섬 중간쯤에 전망 좋은 망산이 있어 가벼운 등산과 유적지 탐방을 같이할 수 있다. 제승당 자리에는 이순신 장군이 기거하는 운주당이 있었으나 정유재란 때 불에 타 없어졌다. 이순신 장군은 1593년 8월 초대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돼 1597년 파직될 때까지 운주당에서 삼도수군을 통제했다. 1740년 통제사 조경이 유허비를 세우고 운주당 터에 건물을 지어 제승당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1930년대에 중수하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방문한 뒤 1975~76년에 새로 지었다. 통영 여객선 터미널에서 배가 다닌다. ●김춘수 유품 전시관·박경리 기념관 예향 도시 명성에 걸맞게 곳곳에 통영 출신 문인·예술인 기념관과 생가 등이 있다. 망일 1길 82(정량동)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청마문학관이 있다. 유치환(1908~1967) 시인의 문학세계를 기리고 보존하기 위해 2000년 2월 14일 개관했다. 육필 원고를 비롯한 유품과 서적·논문 등 문헌자료가 전시됐다. 청마 초가집 생가도 복원했다. 통영항이 한눈에 보이는 해평5길 142의 16(봉평동)에는 ‘꽃의 시인’ 김춘수(1922~2004) 유품전시관이 있다. 2008년 3월 28일 문을 열었다. 김 시인의 육필 원고와 쓰던 가구, 옷가지, 시집 등 유품 330여점을 볼 수 있다. ‘토지’의 작가 박경리(1926~2008) 유품과 자료를 전시한 박경리기념관도 산양읍 산양중앙로 173에 2010년 5월 5일 개관했다. 기념관이 있는 박경리 공원에 선생 묘소가 있다. 색채의 마술사라 불리는 전혁림(1916~2010) 미술관이 남포3길 19-1(봉평로) 미륵산 자락에 있다. 전 화백이 오랫동안 생활하던 집을 헐고 미술관을 지어 2003년 5월 11일 개관했다. 전 화백 작품을 타일 조각을 이용해 벽화로 만들어 단장한 미술관 외벽이 눈길을 끈다. 도천동 중앙로 27 도천테마공원에는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1917~1995) 기념관이 있고 옆에 생가가 있다. 통영시 큰발개 1길 38(도남동) 해변에 있는 음악 전용 공연장이다. 바다를 배경으로 3만 3038㎡ 부지에 2013년 5층 규모로 개관했다. 메인홀은 1300여석 규모다. 윤이상의 음악 업적을 기리려고 2000년부터 매년 여는 통영국제음악제 공연장으로 사용한다. ●발아래 바다와 함께 즐기는 섬마을 산행 사량도는 발아래 아름다운 바다를 두고 산행을 즐길 수 있는 섬으로 유명하다. 통영에서 뱃길로 20㎞쯤 떨어졌다. 사량도 이름은 뱀이 많이 서식해 붙여졌다는 설과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뱀이 기어가는 것처럼 보여 부르게 됐다는 설이 있다. 윗섬과 아랫섬에 일주도로가 잘 닦여 있고 두 섬을 잇는 연도교가 지난해 10월 개통됐다. 상도 중앙을 동서로 가로질러 지리산~불모산~옥녀봉으로 이어지는 바위능선 종주 등산길은 쇠 사다리와 출렁다리로 아찔한 절벽을 지나며 섬 산행의 스릴을 맛볼 수 있다. 통영항에서 남쪽으로 24㎞에 있는 연화도는 통영 8경의 하나인 용머리 바위로 유명하다. 연화도는 바다에 핀 연꽃이란 뜻이다. 깎아지른 해변 기암괴석이 늘어선 모습이 신비롭다. 특히 용이 바다를 향해 헤엄쳐 나가는 모양으로 바다에 떠 있는 용머리 바위는 연화도 절경의 백미로 꼽힌다. 대매물도와 소매물도, 등대섬으로 이뤄진 매물도도 가 볼만하다. 특히 등대섬은 경치가 빼어나 영화 촬영장소로 자주 이용되면서 유명하다. 소매물와 등대섬은 바닷물이 들 때는 분리됐다가 빠지면 ‘열목개’라는 자갈길로 이어져 걸어서 건너갈 수 있다. 1910년 일본이 등대를 세워 미군 함정을 감시하는 초소로 이용했다. 비진도는 두 개의 섬이 해수욕장으로 이어져 있다. 해수욕장 서편은 모래밭이고 동편은 몽돌밭이다. 일출과 일몰을 한자리에서 동시에 볼 수 있다. 욕지도는 욕지면의 주 섬으로 까만 몽돌로 된 덕동 해수욕장이 유명하다. 해발 392m의 천왕봉은 산세가 아름다워 많은 등산객이 찾는다. 일주도로가 잘 뚫려 있다. 장사도는 동백이 섬을 뒤덮어 꽃이 피면 섬 전체가 불타는 것처럼 아름답다. ●남망산국제조각공원과 동피랑 벽화골목 남망공원길 29(동호동) 야트막한 남망산 공원 야외 1만 5700㎡에 10개 나라 조각가 15명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1997년 10월 개장한 조각공원은 작품을 감상하며 통영 시가지와 바다를 구경할 수 있어 인기다. 동호동 언덕에 ‘동쪽에 있는 벼랑’이란 뜻의 동피랑 마을이 있다. 중앙시장 뒤쪽에 비탈진 골목과 작은 집들이 미로처럼 얽혀 있는 마을이다. 이순신 장군이 설치한 통제영에 딸린 시설인 동포루가 있었다. 통영시는 마을을 철거하고 동포루와 공원을 조성할 계획이었으나 지역 시민단체가 나서 벽화 그리기 운동을 벌였다. 예쁜 벽화마을로 변신해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자 시도 철거 계획을 철회했다. >>먹거리 ● 고기잡이 나간 남편 생각에 만든 ‘충무김밥’ 오래 보관해도 상하지 않도록 김 안에 밥만 넣고 만든다. 반찬으로 나오는 무 김치, 오징어무침과 같이 먹어야 제 맛이 난다. 충무김밥은 1930~40년대 통영지역 어촌에서 시작한 향토 음식으로 알려졌다. 고기잡이를 나간 남편이 바다에서 술만 먹는 것을 보고 아내가 김밥을 만들어 줬으나 금방 상해서 버릴 때가 많았다. 그래서 밥만 넣어 김밥을 만들고 깍두기와 주꾸미로 반찬을 따로 만든 게 충무김밥 시초로 전해진다. 충무김밥이 전국적으로 알려진 것은 1981년 여의도 광장에서 열린 문화행사 ‘국풍 81’이 계기가 됐다. 당시 통영지역 ‘원조 뚱보 할매’ 어두이 할머니가 만들어 팔면서 홍보가 됐다. ●철·구리·칼슘·비타민 풍부한 ‘통영굴밥’ 흑미 찹쌀과 콩, 밤, 대추, 수삼 등으로 지은 밥에 통영 굴을 얹어 살짝 익힌 건강식이다. 밥이 뜸이 들 무렵 깨끗하게 손질한 굴을 밥 위에 얹는다. 미국 식품의약청(FDA)에서 인정한 청정한 통영 앞바다에서 갓 건져 올린 싱싱한 생굴을 쓴다. 굴밥은 일반 밥에는 없는 철, 구리, 칼슘 등의 무기질과 비타민 A·B·C·D 등 영양소가 풍부하다. ●청정해역 졸복이라 더 시원한 ‘통영복국’ 통영복국은 통영 청정해역에서 잡은 싱싱한 졸복을 사용한다. 일반 복국보다 국물 맛이 더 시원하고 담백하다. 복어는 단백질과 비타민이 풍부하고 유지방이 없어 최고의 다이어트 식품으로 꼽힌다. 간 해독이 뛰어나고 여성들의 피부미용에도 효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나리와 콩나물을 넣어 끓여 숙취 해소에도 좋다. ●밤처럼 타박하고 단맛 강한 ‘욕지 고구마’ 욕지도 고구마는 섬 특유의 자연환경에서 자라 맛이 탁월하다. 욕지 고구마는 물 빠짐이 좋은 섬의 비탈진 황토밭에서 강한 해풍과 풍부한 일조량 속에 자라 속살이 밤처럼 타박하고 단맛이 강하다. 욕지도 고구마 순을 육지로 가져가 재배해 본 결과 욕지 고구마와 같은 맛이 나지 않는 것으로 분석됐다. 욕지도 밭 가운데 70%가 고구마를 재배한다. 택배 주문할 수 있다. ●팥앙금에 꿀까지 바른 ‘통영 꿀빵’ 뱃사람들이 따뜻한 기후에 상하지 않고 오래 두고 먹을 수 있게 만든 간식이다. 6·25전쟁 이후 만들어 먹은 것으로 전해진다. 밀가루를 반죽, 속에 팥앙금을 채우고 기름에 튀겨 만든 뒤 상하지 않게 겉에 꿀을 바른다. 통영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文과 차별화 나선 안철수… 키워드는 ‘호남·중도’

    文과 차별화 나선 안철수… 키워드는 ‘호남·중도’

    ‘국민의당’ 창당을 추진 중인 안철수 의원이 11일 창당준비위원회 발족 이후 첫 지방 일정으로 ‘야권의 심장부’인 광주를 찾아 호남 민심을 집중 공략했다. 안 의원은 이날 광주 서구 상록회관에서 열린 ‘광주 집단지성과의 대화’에서 부인 김미경 서울대 교수의 고향임을 내세워 ‘호남의 사위’라는 점을 부각시켰다. 그는 “정치를 하면서 어떤 부분에서 (호남의) 상실감이 큰지 깊이 이해했다”며 “호남의 소외 문제를 해소하는 것은 시대적 과제”라고 말했다. 또 “지금 제 머릿속에는 대선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다”면서 “대선을 생각하고 움직이는 사람은 국민들이 금방 알아채고, 총선에서 심판받을 것”이라고 했다. 안 의원의 광주행은 더불어민주당 탈당 이후 이번이 두 번째다. 탈당을 고심하던 지난해 11월 30일까지 합치면 보름에 한 번꼴로 광주를 찾은 셈이다. 이는 제1야당인 더민주 문재인 대표와 ‘호남의 적자’ 자리를 두고 펼치는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탈당을 막판 고심 중인 호남 지역 현역 의원들의 신당 합류 결단을 촉구하는 측면도 있다. 국민의당에 대한 호남의 지지율이 비교적 높게 나타나는 점도 고무적이다. 아울러 안 의원은 이날 첫 일정으로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에 이어 박정희, 이승만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했다. 국민의당이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정당임을 부각시키면서 중도층을 흡수하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더민주의 경우 지난해 2월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지도부 가운데 문 대표만 나 홀로 박정희, 이승만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했다. 이어 광주로 이동한 안 의원은 가장 먼저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찾았다. 지난 2014년 민주당과의 합당 과정에서 ‘5·18 광주민주화 운동’을 당 정강·정책에서 제외하려다 곤욕을 치른 안 의원은 이를 의식한 듯 ‘5·18 정신’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국민의당 강령에 5·18 정신이) 당연히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한편 안 의원은 오는 12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방문해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하고 권양숙 여사를 예방한다. 광주·순천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 국민의당 창당 발기인 대회… “내일 이승만·박정희 묘역 참배한다”

    국민의당 창당 발기인 대회… “내일 이승만·박정희 묘역 참배한다”

    국민의당 창당 발기인 대회… “내일 이승만·박정희 묘역 참배한다”국민의당 창당 발기인 대회 안철수 무소속 의원이 주도하는 신당인 ‘국민의 당’이 10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창당 발기인대회를 갖고 창당준비위원회를 정식 발족했다. 국민의 당은 다음달 2일 중앙당 창당을 목표로 이날부터 시·도당 창당 작업, 당원 모집 및 외부인사 영입 등에 나설 계획이다. 국민의 당은 이날 발기인대회에서 ‘미래를 향한 담대한 변화’를 기치로 내세워 국민의 삶을 중심에 두는 ‘국민 중심의 정치’를 선언했다. 발기 취지문에서는 “비생산적 이념 대립, 지역갈등, 국민분열의 시대를 청산하고 성찰적 진보와 개혁적 보수를 아우르는 새로운 대안정치, 민생정치, 생활정치의 시대를 열 것”이라고 밝혔다. 또 “우리의 기준은 오로지 국민의 ‘더 나은 삶’으로 이를 위해 이념적으로 유연할 것”이라면서 “의제에 따라 진보와 보수의 양 날개를 펴면서 합리적 개혁을 정치의 중심에 세우겠다”고 설명했다. 창준위는 그러면서 “시민의 참여, 국민의 참여만이 담대한 변화를 이루어낼 수 있다. 정치를 바꾸라는 국민의 명령에 동참하면서 새정치의 대장정에 함께 해달라”고 당부했다. 이날 발기인대회에서는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와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이 공동 창당준비위원장으로 선출했다. 안 의원은 인재영입위원장을 맡기로 했다. 발기인은 총 1978명이 참여했고, 현역 의원 중에서는 안 의원과 김한길 의원을 비롯해 최근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김동철·문병호·유성엽·임내현·황주홍 의원 등 7명잉 이름을 올렸다. 공직자 출신으로는 이남기 전 공정거래위원장이 포함됐고 교육게에서는 김현수 전 대구 대명중학교 교장 등이, 시민사회에서는 여창호 전 부산 YMCA 이사장 등이 참여했다. 이밖에도 김대중 대통령의 주치의 출신인 강대인 씨, 김근식 경남대 교수, 김유정·김창수 전 의원 등도 포함됐다. 일반 시민들 가운데에서도 중장비 개인사업자 정한영 씨, 대한항공 기장 송민철 씨, 다문화가정 한국어교사 이진경 씨, 분뇨처리 비료공장을 운영하는 정영환 씨, 필리핀 다문화여성 한예솔 씨, 삼거리 픽쳐스 엄용훈 대표, 전 해태타이거즈 야구선수 최해식 씨, 부산신항만 하역운송 노동자 조청한 씨 등도 참여했다. 그러나 안 의원과 지난 2012년 대선을 함께 준비했던 김성식·박선숙 전 의원과 신당 참여 여부로 주목을 받고 있는 장하성 고려대 교수 등은 이번 명단에 이름을 넣지 않았다. 더민주당을 탈당한 김영환·최재천·권은희 의원도 아직 진로를 결정하지 않고 발기인에 포함되지 않았다. 다만 권 의원은 이날 발기인대회가 끝난 뒤 11일부터 안 의원 측에 합류할 것을 공식화했다. 한편 안 의원은 11일 첫 일정으로 서울 동작구의 현충원에서 이승만·박정희·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할 예정이다. 이후 안 의원은 광주를 찾아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참배한 뒤 지역 간담회와 강연회에 연이어 참석하고 순천경찰서를 격려 방문한다. 이날 광주 일정에는 더민주당을 탈당한 권은희 의원도 함께 할 예정이다. 안 의원은 이어 같은 날 밤 경남 창원으로 이동해 1박을 한 뒤 오는 12일에는 김해 봉하마을의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하고 권양숙 여사에게 새해 인사를 할 예정이다.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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