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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평론가 김훈씨 첫 장편소설 「빗살무늬 토기의 추억」

    ◎무의미에 대항한 허무주의자의 죽음/화재 진압하다 숨진 소방관의 삶 회고/“에세이식 소설의 독특한 장르 개척” 평가 문학평론가이자 저널리스트인 김훈씨(47·시사저널 사회부장)가 계간「문학동네」 봄호에 장편소설 「빗살무늬토기의 추억」 연재를 마쳤다. 문학기자 또는 문학평론가로서 섬세한 언어의 운용과 사유깊은 문장으로 독특한 경지를 이룩했던 김씨는 소설가로서 첫발을 내디디며 선보인 자신의 작품에 대해 그리 만족치 않는 모습이다.기자와의 만남에서 그는 『나의 소설은 실패로 끝났다』고 되뇌었다.시간상의 문제 등으로 석연찮게 마무리했던 소설의 결말부가 끝내 부담으로 남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문학동네」에 2회 분재된 그의 소설은 이제까지 산문작업에서의 자신의 장점들을 고스란히 이어받고 있으며 한국소설로는 드물게 에세이식 소설로 독특한 경지를 획득했다는 평가를 받고있다.장편「빗살무늬토기의 추억」은 한 소방서장이 화재진압과정에서 부하 소방관의 사고사를 계기로 부하의 삶을 되새기는 회고담이다.작가가 한때기자직을 그만두었던 89년말부터 1년반에 걸쳐 3분의 2가량 썼다가 5년의 공백기간을 딛고 지난해 마무리한 소설로서 소방관과 중장비기사에 대한 내밀한 묘사가 돋보이고 있다.일간신문 사회부 사건기자를 지낸바 있는 작가의 체험과 관련수험서 읽기,수년전 시화지구 간척사업에서 십장일을 맡았던 친구 동생의 경험에 빚지고 있는 부분이다.하지만 이 소설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은 질긴 사유로써 사물의 본질을 파고드는 문장들이다. 『질료의 죽음과 함께 불꽃도 죽는 것이어서,그것들의 삶과 죽음,생성과 소멸은 같은 축 위에 놓여 있었지만,불은 타오름으로 질료를 죽였고 질료는 스러짐으로 불꽃을 타오르게 하다가 이윽고 저 자신의 죽음으로 불꽃을 죽이는 것이었다』 이처럼 불을 비롯해 바람,수직의 구조,한낱 쇳덩어리에 불과할 중장비들이 그의 언어 부림에 의해 사물의 비릿한 속살을 드러낸다.『3인칭으로 소설을 쓰는 일에는 자신이 안선다』고 그는 말했지만 이 소설의 1인칭 시점은 특유의 사유깊은 문장을 구사하는데 좋은 기반이 되고 있음이분명하다. 또한 이전의 산문작업으로 허무주의라 규정지어졌던 작가의 세계관은 이 작품에 독특한 분위기를 부여하고 있다.타오르는 불꽃에 속수무책인 인간,화재현장에서의 맥없는 죽음들,그리고 애완 청거북의 죽음처럼 삶에 언뜻언뜻 끼어드는 죽음 등….그의 생각은 신석기시대의 인간이 도구인 돌도끼로부터 벗어나는데 수천년이 걸린,최신 소방장비조차 불끄는데 별로 소용되지 못하는 문명에 대한 답답함과 불신에 닿아있는듯 하다.그러나 허무주의는 세상에 대항하는 방법일뿐,그는 결코 허무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지는 않는다. 작가는 화재현장에서 불에 이끌리는 소방수,자신의 몸짓이 하릴없는 줄 알면서도 불의 발화점을 향해 돌진하는 장철민을 세상의 무의미함에 대항하는 「허무주의의 전사」로 내세운다.그러나 그 전사는 세상에 부딪혀 깨어지듯 화재현장의 무너지는 콘크리트천장에 머리를 부딪혀 죽는다. 대리인은 죽고 『언어와 실제는 배반이다』『나의 글의 메시지가 남에게 과연 전달될 수 있을까』하고 회의하는 또다른 허무주의자 김훈이 남아있다.『청동기시대에서 철기시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세계변혁의 도구로서 발명된 무기(철기)와 악기를 대비하는 차원에서 음을 다룬 소설을 구상하고 있다』고 말하는 그의 앞 재떨이에는 담배꽁초가 버려진 탄피처럼 혹은 시체처럼 수북이 쌓여있다.그의 허무주의가 어떤 변모를 겪었는지는 다음 작품이 말해줄 것이다.
  • 극장가/뉴요커 관심 고조… 입장권“불티”(브로드웨이“새바람”:6)

    ◎오페라 나비부인/뮤지컬 미스사이공/3월무대 대결/미스 사이공/무대장치 뛰어난 뮤지컬 4대작… 5년째 관객 밀물/나비부인/메트로폴리탄 단골 레퍼토리… 40년만에 재창작 올봄 브로드웨이 극장가는 한바탕 뮤지컬대 오페라의 대결이 벌어질 전망이다.91년 4월 공연을 시작,공전의 히트를 기록해오고 있는 뮤지컬 「미스 사이공」과 오는 3월말부터 링컨센터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에서 새롭게 선보일 「나비부인」(MadamaButterfly)이 그것이다. 음악위주의 오페라와 이에 반기를 들고 음악과 연극이 혼연일체가 된 총체극을 표방하고 나선 뮤지컬은 원래 음악극에 뿌리를 같이 하고 있지만 브로드웨이에 공존하면서도 지리적으로 엄연히 구분돼 있는 만큼이나 서로 다른 영역으로 발전해왔다. ○“침체” 오페라 활력 기회 브로드웨이의 공연장은 주로 뮤지컬극장들이 몰려 있는 44∼53스트리트를 중심으로 남쪽으로는 오프브로드웨이 혹은 오프오프브로드웨이라고 불리는 연극 위주의 소극장들이 집중된 반면 그 북쪽으로는 카네기홀과 링컨센터등 주로오페라,발레등 소위 순수창작예술 공연장들로 크게 3분돼 있어 각기 독자적인 위치를 고수해왔다. 그러나 그동안 뮤지컬의 흥행에 비해 상대적으로 침체에 빠져있던 오페라의 자존심을 걸고 뉴욕 메트로폴리탄오페라(MET)가 「나비부인」을 40년만에 재창작,새로운 작품으로 내놓을 계획이어서 미군병사와 동양여인 사이의 비극적인 사랑이라는 동일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미스 사이공」과의 비교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브로드웨이가 53스트리트와 만나는 곳에 위치한 브로드웨이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는 「미스 사이공」은 월남전이 막바지에 다다른 19 75년 4월 사이공을 무대로 시작된다.시골소녀 킴은 사이공 함락 3주전,사이공의 한 술집으로 팔려오게 되고 첫손님인 미대사관 경비해병인 크리스와 사랑에 빠진다. 며칠후 미군은 모두 철수하고 사이공시는 호치민시로 이름이 바뀌며 공산화가 시작된다.고향으로 돌아간 후 크리스의 사내아이를 낳아 기르며 살고 있던 킴에게 어느날 공산당 간부가 되어 돌아온 같은 마을의 청년이 구혼해온다.킴은 그의집요한 요구를 단호하게 거절하다 마침내는 그를 살해하고 방콕으로 도망친다. 미국으로 돌아온 크리스는 결혼하여 평범한 삶을 꾸려간다.3년후 그는 미국내 베트남의 미국인사생아돕기 단체로부터 킴이 도망쳐 나와 자신의 아들을 데리고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새부인과 함께 아들을 데리러 방콕으로 간다.킴은 꿈에도 그리던 크리스가 자신을 찾아 온다는 소식에 밤잠을 설치며 기다렸지만 막상 부인과 함께 나타난 그가 아들을 데리러 왔음을 알게 되자 실의에 빠진다.킴은 아들을 크리스에게 넘겨준 뒤 권총으로 자살하고 만다. 지난 87년 영국에서 감독 카메론 매킨토시가 작곡가 클라우드 미첼 쇤베르크와 함께 만들어 대히트를 기록한후 91년 브로드웨이에서 미국판 막을 올린 이 작품은 「캐츠」,「레미제라블」,「오페라의 유령」등과 함께 브로드웨이를 장악하고 있는 뮤지컬 4대작으로 알려져 있다. ○극중무대 인상적 처리 이 작품의 내용 자체는 별로 새로울 것이 없지만 극중 여러대목에서의 인상적인 무대처리는 메시지의 효과를 배가시키고 있다.즉 베트남 공산화과정을 상징적으로 처리한 대목에서는 무대뒤에 거대한 호지명의 동상이 서 있고 그 아래 깃발과 총을 든 인민과 군인들의 행렬등 장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또한 사이공 최후의날 미대사관의 긴박함과 철조망을 사이에 둔 피란민들과 미군병사들의 운명의 갈림등이 잘 나타나 있다.특히 미군병사들을 수송하기 위해 무대에 내려앉아 굉음을 쏟아내며 비상하는 헬리콥터의 모습은 무대장치 변화의 극치를 이룬다. 일부종사의 동양여인들의 남성관과 자식의 인생을 위해 희생하는 동양적인 자식에 대한 사랑을 강조하고 있는 이 뮤지컬은 월남전으로 자존심과 목숨과 물질을 한꺼번에 잃어 상실감에 사로잡혀 있는 미국인들에게 도덕적 상실감마저 인식시켜 주고 인간성의 회복을 촉구하는 작품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은 영국에서 보다 미국에서 훨씬 큰 반향을 불러일으켜 많은 진기록을 낳았다.미국에서의 공연을 위한 아시아계 미국인의 배우모집에는 10여명 선발에 2천여명이 몰려들 정도였고 미국 초연 때 주인공인 킴역과엔지니어 역에 영국배우 리 살롱가와 조나단 프라이스가 캐스팅되자 미국배우협회가 보이콧하고 나서는 진통을 겪기도 했다. 또 초연을 앞두고 3천6백만달러라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사상최고의 예매액수를 기록했으며 메저니석(2층 앞부분 가운데 몇줄) 입장권은 1백달러로 최초로 뮤지컬 입장료 1백달러 시대를 열기도 했다.현재 최고좌석이 2백달러인 오페라에 비하면 그래도 싸다. 한편 베르디 이후 이탈리아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로 추앙받는 푸치니의 작품인 「나비부인」은 1907년 초연 이후 MET의 고정 레퍼토리가 돼왔다.존 루터 롱의 소설을 각색한 이 작품은 19세기말 일본의 나가사키에 주둔하고 있던 미국해군사관 핑커턴이 몰락가문 출신 15세 기생 초초상(나비아가씨)과 결혼하면서 시작된다.얼마후 핑커턴은 돌아온다는 말을 남기고 미국으로 돌아간다.그가 꼭 돌아올 것을 믿는 나비부인은 그의 아들을 키우며 돈많은 야마도리 공작과의 재혼 권유도 뿌리친다.3년이 흐른 뒤 핑커턴이 부인을 데리고 나비부인 앞에 나타난다.나비부인은 아이를 부인에게 넘겨주고 전래의 보도로 자결한다. ○무려 770여회 공연 「나비부인」은 「미스 사이공」의 스토리 전개에 많은 영향을 끼쳤을 뿐 아니라 또 88년 브로드웨이 유진 오닐극장에서 7백70여회 공연돼 호평을 받은 연극 「마담 버터플라이」의 구성에도 힌트를 제공했다.데이빗 헨리 황의 작품인 이 연극은 60년대 중국주재 프랑스 외교관 갈리마르가 북경의 오페라가수인 송 릴링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것인데 동양에 대한 서양의 편견,여성에 대한 남성의 선입관 등을 잘 묘사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같이 「나비부인」을 토대로한 뮤지컬과 연극등이 히트를 친데 힘입어 MET측도 지난해부터 오페라 「나비부인」의 전면적인 재창작을 시도해왔다.1907년 첫제작 이래 지난 22년과 58년에 대대적인 개작을 거친 뒤 최근 37년동안 그대로 공연돼 왔으며 이번이 네번째 창작이 된다. 지난 2년동안 이번 창작을 진두지휘해온 지안카를로 모나코 감독은 『이번 새창작의 모토는 오페라를 마음속의 필름으로 간주하고 영상화된 리얼리즘을 추구하자는 것』이라고설명하고 『출연진 교체는 물론 전체적인 무대배경부터 출연자들의 의상까지 새로 장만,보는 각도에 따라서도 새로운 맛을 느낄수 있도록 제작될것』이라고 밝혔다.오는 3월28일부터 8회 공연.지휘는 33세의 젊은 지휘자 대니얼 가티,나비부인역은 소프라노 캐서린 말피타노,핑커턴역은 리처드 리치등이 맡는다. 한편 「미스 사이공」측도 올 공연진의 보강을 위해 지난해 주인공 킴역을 새로 선발하는 등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특히 이번 선발에서 3백대1의 관문을 뚫고 한국인 이소정양(22·하와이 브리감영대)이 뽑혀 뮤지컬과 오페라의 한판 대결이 벌어질 3월무대의 기대를 크게하고 있다.
  • 구동독 미술작품 42점 일반공개

    ◎베를린 역사박물관서 4월14일까지 전시회/공산주의 정부가 주문… 화가들 강제 노역/작품엔 예술성 지키려는 고민흔적 역력 공산 동독 시절 당의 주문에 따라 그려진 회화작품 42점이 베를린의 역사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다.이 전시회는 동독의 42년 공산통치 시절을 대표하는 작품들을 엄선,시대에 따른 미술세계의 특징이나 표현기법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제공한 것으로 평가된다. 노동운동과 계급투쟁을 고증하기 위한 자료로 만들어진 이 작품들은 예술도 사회통치를 위한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공산사회의 속성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그러나 공산당의 요구대로 그림을 그려 계급이 없다는 공산사회에서 때로는 영웅이나 귀족과 같은 대우를 받으며 호의호식했던 동독 미술인들이 예술가로서의 고집을 바탕으로 예술적 세계를 지켜내려 애쓴 흔적도 담고 있어 그들이 겪어야 했던 방황과 고민·혼돈의 한 단면을 드러내기도 한다. 동독이 공산국가의 합당성을 나타내는 그림들을 요구하기 시작한 것은195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당으로부터 공산운동의 당위성을 입증하는 전시회 개최를 명령받은 당시의 베를린 역사박물관장은 실제로 그같은 작품들이 한 점도 없는데 고민하다 화가와 조각가들에게 이같은 주제로 작품을 만들 것을 주문했다.1백20여명의 작가들이 역사박물관으로 소환돼 공산통치를 합법화시키기 위한 작업에 투입됐다.빌리 콜베르크,막스 링그너,빌리 지테 등이 이때의 대표적 작가들이다. 이 가운데 함부르크에서의 시민봉기 사건을 계급투쟁으로 묘사한 콜베르크의 「함부르크 봉기에서의 탤만」(1954년작)은 사회주의적 새 역사의 방향을 제시한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았다.그러나 이 작품은 마치 탤만은 옛 황제처럼 그와 얘기를 나누는 시민들은 황제의 수행원들 같은 느낌을 주고 있어 「국민들의 삶에 밀접하게 연관된 예술」을 기치로 내건 공산당의 의도와는 동떨어진 인상을 풍긴다. 60년대 들어 공산당국은 작가들을 산업현장 일선으로 투입하기 시작했다.「어머니의 귀향」 「국기에 대한 맹세」 등 이 시대의 작품들은 현실성을 띠기 시작했으나 예술적·미적으로는 동독 42년간 가장 낮은 점수를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으로 평가된다. 이같은 사회주의적 현실주의는 76년 지크하르트 길레의 「휴식과 구조물을 세우는 사람들」이 등장하면서 동독 미술세계에서 사라지게 됐다. 이번 전시회는 독일에서 동독 당시의 미술에 대한 재평가가 시작됐음을 보여준다.이밖에도 동독에서 마지막 문화장관을 지낸 헤어베르트 쉬르머는 동독미술의 완전한 이해를 위해 이미 1만2천여 작품의 목록을 만들어놓고 있다.이 전시회는 오는 4월14일까지 계속된다.
  • SBS의 「모래시계」를 보고/이경순 방송평론가

    ◎껍질벗은 새드라마… 폭력장면은 흠 「모래시계」가 드디어 끝났다.누군가 『인생을 한낱 텔레비전 드라마 보는 재미에 사느냐』고 나무란다면 머쓱할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새삼 시청률을 들먹이지 않아도 이 드라마처럼 사람들을 사로잡은 텔레비전프로그램이 달리 또 있을까? 시청률면에서는 우리 텔레비전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모래시계」조차 그 기록을 깨지는 못했다는 김수현 극본의 「사랑이 뭐길래」도 이 드라마처럼은 시청자들을 몰입하게 만들고 열광시키지 못했다고 기억된다. 더욱 「사랑이 뭐길래」는 전국 네트워크인 MBC 전파로 주말 황금시간대에 방송된데 비해 「모래시계」는 정작 드라마의 주요 배경인 전남 광주에서 조차 정상시청이 불가능한 SBS의 지역 한계성에다 평일 밤 10시대 편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뜨거운 호응과 공감대를 이끌어낸 것은 여러 의미에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이제까지 방송된 수많은 드라마와 지금 방송되고 있는 모든 드라마가 상대적으로 시시해 보이고 빛바래 보이게 하는 「모래시계」의 강점을 한마디로 뭉뚱그리자면 『새롭다』는 말로 표현할수 있을 것이다. 소재도 극본도 연출도 영상도 대사도 연기도 이제까지 방송된,지금 방송되고 있는 어느 드라마와도 뚜렷이 구분되는 차별성이 두드러진다. 작가 송지나는 초기작품 「호랑이 선생님」이나 「퇴역전선」「우리 읍내」는 물론 베스트셀러 소설을 각색한 「인간시장」「여명의 눈동자」에서도 드러나듯이 여느 드라마 작가,특히 인기 「여류」작가라고 통칭되는 이들과는 색다른 작가의식을 가진 이다.「모래시계」에서 「상식」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사회 정의에 대한 신뢰와 열의가 극본의 바탕에 공통되게 흐르고 있는 것이 이 작가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남성작가도,최고 인기작가로 불리는 어느 선배작가도 손대지 못한 5공을 정면으로 치고 들어가는 극본을 써낸 송지나의 치열한 작가정신이 없었다면 「모래시계」의 성공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물론 연출자 김종학의 치밀한 장인의식도 높이 평가할만 하다.「모래시계」가 거둔 성공중 극본의 탁월함 다음으로 꼽힐 수 있는 것이 빼어난 영상이다. 우리나라 텔레비전 드라마 작가중 최고로 손꼽히는 작가 김수현씨가 「언어의 마술사」로 불리듯 청각매체인 라디오 드라마처럼 영상매체인 텔레비전 드라마 조차 극의 전개를 대사에 의존해온 현실을 감안하면 극도로 대사를 절제한 극본을 영상으로 살려낸 것은 연출자의 역량이었다.거기에 더해 탁월한 극본과 치밀한 연출에 힘입어 저마다의 기량을 다한 주·조연급 연기자들도 드라마 성공의 일등 공신속에 포함될 충분한 자격이 있다. 주 4회 방송이라는 파격적인 편성 또한 극의 밀도를 유지하는데 큰 몫을 했음은 물론이다. 옥에도 티가 있다는데 이 드라마라 하여 어찌 흠이 없으랴! 광주 민주화 항쟁과 운동권에 대한 묘사가 미흡하다거나,조직폭력배를 미화했다는 부정적인 의견이나,빈번한 폭력장면이 안방극장의 위험수위를 넘어섰다는 비난은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닌다. 그러나 역사성이나 의미는 커녕 단순한 재미조차 제공하지 못하는 난센스 코미디 수준의 짜증나는 드라마 범람속에서 오늘 이만한 드라마를 보게 해준 「모래시계」제작진에게 대부분의 보통 시청자들은 아마도 고마움의 갈채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태수의 뼛가루를 뿌리는 혜린과 우석의 마지막 장면을 보며 시청자들은 『이만한 드라마를 다시 보기까지 또 얼마나 짜증나는 프로그램들을 참아내며 기다려야 할까』를 생각하느라 더 한층 아쉽고 허전해 했을듯 싶다. 이번 「모래시계」열풍을 지켜보며 이땅의 텔레비전 드라마를 만드는 일에 종사하고 있는 많은 이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태수의 대사처럼 『그 다음이 문제야』다.
  • 한­러 외교관계 이상기류/북핵해결 관련 러 독자행보 가속

    ◎러,한반도 영향력 강화하려 대북접근/북에 자국경수로 지원주장 등 실리정책 한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심상치 않은 것 같다.지난 90년 수교한 이후 소련과 이를 승계한 러시아는 대한반도 관계에서 일방적이라고 할 정도로 우리와의 친밀도를 높여왔다.전통적 맹방이었던 북한과의 관계가 단절상태에 이르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는 것으로 비쳐졌다.그런 러시아가 최근에는 한반도의 남쪽에 두었던 관심의 무게를 북쪽으로 점차 옮기는 듯 하다. 그러한 변화를 가장 잘 나타내주는 것이 북핵문제의 해결방식에 대한 러시아의 태도이다.러시아는 코리아에너지개발기구(KEDO)에 참여하기를 거부하고 있다.한·미·일 3국 뒤에 물러선 2차적 역할이 싫다는 것이다.단순한 거부정도가 아니라 북한에 공급될 경수로는 한국형이 아니라 러시아형이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북한의 핵문제를 해결하는데 누구보다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한반도 주변의 4강 가운데 러시아만이 한국의 입장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일부에서는 러시아가 순수하게 경제적 목적때문에 북한에 러시아형 경수로를 건설하기 원한다고 믿는다.그러나 러시아형 경수로가 채택되는 「이변」이 온다 하더라도 러시아가 40억달러에 이르는 경수로 건설비용을 마련할 방도가 마땅치 않아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분석이다.정부는 그 보다는 러시아가 한반도에서의 영향력을 회복하기 위한 의도로 북한에 접근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러시아는 세계초강대국으로서의 위치가 나라 안팎에서 허물어져가는 상황에 크게 당황해하고 있다는 것이 당국자의 설명이다.강대국으로서의 위치와 위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전략적 요충지인 한반도에서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긴요하며,이를 위해 북한측을 지원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이같은 전략과 함께 한국민이 대러시아 시각도 양국관계에 틈을 만든 것으로 정부는 판단하고 있다.고르바초프 전대통령은 냉전을 종식한 평화의 수호자로,옐친 현대통령은 난폭한 술주정뱅이로 대비되고,러시아는 장래가 불투명한 빈곤한 국가로 한국의 언론에 일관되게 묘사되는 상황에 대해 러시아는 여러 채널로 우리 정부에 강력한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난 2년 동안의 협상과정에서 완전히 소외됐다는 인식도 러시아의 심기를 틀어지게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정부도 고심하지 않을 수 없다.여러 채널로 러시아가 KEDO에 참여해줄 것을 설득하고 있으며,중단됐던 경협 차관협상도 재개할 계획을 마련해두고 있다.정부의 외교공세가 어떤 효력을 발휘할지는 명확하지 않다.한 당국자는 『러시아는 그동안 필요이상으로 과소평가돼 왔다』고 지적하고 『한번 벌어진 관계를 회복하는 데는 엄청난 외교적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 판사가 음란성 결정/대법/일반인 검증 필요없다

    출판물의 음란성여부에 대한 판단은 당시의 사회통념과 일반인의 정서를 고려해 판사가 결정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대법원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형사2부(주심 김형선 대법관)는 11일 음란소설을 쓴 혐의로 기소된 소설가 조동수 피고인(43·서울 도봉구 수유2동)에 대한 음란문서 제조사건 상고심에서 이같이 판시,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조씨는 92년 남녀간의 각종 성행위를 노골적으로 묘사한 성애소설 「꿈꾸는 열쇠」5천부를 제작,판매한 혐의로 기소돼 1심과 2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 분단·통일소재 영화 잇달아 선뵌다

    ◎「높은땅… 」「원더풀…」 「장벽」… 기획 「이도백화」 개봉 임박/자아벽/남북 신세대 병사 우정·갈등 묘사/이도백화/이산의 아픔·민족의 대화합 그려 광복 50주년을 맞아 분단과 통일을 소재로 한 「의식있는」영화들이 잇따라 선보일 예정이어서 영화계 안팎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비무장지대를 배경으로 한 진계동 감독의 「높은 땅 낮은 이야기」를 비롯,용성시네콤의 「원더풀 내사랑」,오덕환 감독의 「장벽」이 기획단계에 있으며 강상룡 감독의 「이도백화」는 후반작업을 끝내고 개봉준비에 들어갔다. 복거일씨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높은 땅 낮은 이야기」는 19 60년대,민족분단의 상징인 비무장지대 전방관측소(GP)에 근무하는 장교와 사병들의 생활을 생생하게 그린 「병영영화」.진계동 감독(31)은 신승수,임권택 감독의 조감독으로 「수탉」「개벽」「장군의 아들」시리즈 등의 작품을 통해 연출경험을 쌓은 「현장파」로 이 작품을 위해 「진시네마」란 독립프로덕션까지 차렸다.『과거에 만들어진 그 어떤 군대영화도 군인들의 본모습이나 그들이 처했던 시대의 진실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했다.그런만큼 섣부른 이데올로기나 정체를 알 수 없는 휴머니즘을 내세우기보다는 「제복속에 갇힌 젊음」과 분단의 실상을 그리는데 역점을 두겠다』는 것이 그의 연출의도. 원작자 복거일씨는 『소설이 휴전선 비무장공간을 무대로 한 짤막한 삽화들의 모음인데다 한 장교의 개인적인 의식의 흐름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영화화면 구성에 어려움이 예상된다』며 『그런만큼 영화적 상상력이 한층 필요할 것』이라고 기대를 표시했다. 「육지속의 고도」 GP의 사계를 담을 이 영화는 3월초 크랭크인,12월말쯤 개봉될 예정이다. 용성시네콤이 준비중인 「내사랑 원더풀」(가제)은 귀순한 북한 남자와 남쪽 여자가 결혼해 서로의 이질감을 극복하고 화합을 이뤄나가는 과정을 코믹 터치로 그린 영화.남북의 하나됨도 결국 작은 사랑에서 비롯된다는 통일메시지를 담을 계획이다.특히 「원더풀…」엔 귀순 유학생 전철우씨가 남자 주인공 이강우 역으로 출연할 예정이어서 화제.세계적인 무용수 미하일 바리시니코프가 미국으로 망명,「순수한 재능」을 살려 영화「백야」에 출연한 적은 있지만 분단국가의 귀순자가 통일염원 영화에 출연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어서 관심을 더한다.3월초 임진각에서 첫 촬영을 시작,8월 광복절에 맞춰 선보일 예정이다. 유진선 감독 밑에서 현장수업을 쌓은 신인 오덕환 감독(35)도 비무장 초소를 무대로 한 영화「장벽」의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제작사를 물색중이다.김중태씨의 동명소설을 토대로 한 「장벽」은 군사훈련 도중 비무장지대(DMZ)에서 만난 남북 두 신세대 병사의 이념보다 강한 우정과 갈등을 통해 민족동질성의 회복을 추구하는 영화. 한편 이산의 아픔과 분단극복,민족의 대화합을 강조하는 휴먼드라마 「이도백화」는 새달 개봉을 앞두고 있어 올해들어 부쩍 활발해진 「통일영화」에 대한 관객의 첫 반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 “문명사 대변혁” 지식사회 도래한다/「거대한 변화」

    ◎미 피터 드러커 교수 21세기 상진/자본·노동력보다 지식이 부국의 필수 자원/산업·생산·경영 혁명 거치며 사회주의 붕괴/“190년대 자본주의 몰락” 마르크스 예언 빗나가/효율적 지식 응용하는 개인·조직만이 생존 『국부의 달성을 위해서는 자본과 노동력보다 지식이 더 필수적인 지식사회가 도래하고 있다』미국 캘리포니아주 클레어먼트 대학원의 피터 드러커 교수는 사회주의 패망이후 세계를 휩쓸고 있는 거대한 변화로 지식사회의 등장을 꼽고 이는 인류역사에서 전무후무한 일대변혁이라고 진단했다.그는 인류사가 산업혁명·생산혁명·경영혁명을 거쳐 이제 지식이 절대적 자원이 되는 지식사회로 진입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이 놀라운 변화의 주인은 지식의 의미변화로서 과거에는 지식이 존재에 과한 개념이었으나 지금은 행동에 관한 개념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지난 반세기에 걸친 자본주의 사회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심도 있게 분석해온 드러커 교수는 앞으로는 지식을 효율적으로 응용하는 조직과 개인만이 살아남을 것이라고 예언했다.「변모하는 산업사회」「단절의 시대」등 다수의 저서로 잘 알려진 금세기 최고의 경영사상가이자 문명비평가인 드러커 교수는 1909년 오스트리아 태생으로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다.그가 「다이얼로그」지에 기고한 「지식사회의 도래」란 제목의 논문 요지를 소개한다. 1750년부터 1900년까지 1백50년 동안 자본주의와 기술이 세계를 정복,문명세계를 창조했다.자본주의와 기술 자체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새로운 것은 이것들의 확산속도다.산업혁명과 자본주의 속으로 선진기술을 침투시켜 오늘의 절대적 자본주의를 만든 것은 이 두 요인의 속도와 규모였다. 자본주의는 사회의 한 요소에만 그치지 않고 사회 자체가 됐다.절대화된 자본주의는 전과는 달리 국지성을 벗어나 서구와 북유럽에서 18 50년까지 위력을 발휘했다.그리고 다시 50년 동안 전세계로 퍼져나갔던 것이다. 지식의 의미에서 일어난 극단적 변화가 이를 가능케 했다.서구와 아시아를 가릴 것 없이 지식은 「존재」에 적용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그러나 하룻밤 사이에 그것은 「행동」에적용되기 시작했다.그것은 자원이 되고 실익이 되었다.개인적 재산이었던 지식은 하룻밤 사이에 공공재산으로 둔갑했다. 첫 단계 1백년동안 지식은 도구·과정 및 상품에 적용됐고 이것이 산업혁명을 만들어냈다.그러나 지식은 동시에 카를 마르크스가 말한 「소외화」를 초래,계급전쟁을 창조하고 급기야는 공산주의를 만들었다. ○생산요인으로 작용 1880년 언저리에서 시작된 2단계 과정에서 지식은 새로운 의미를 얻으면서 일에 적용되기 시작하더니 생산성 혁명을 가져왔다.생산성 혁명은 무산계급을 중산급 부르주아 계급으로 전환시켰으며 이들은 거의 중산층에 가까운 소득을 확보하게 되었다.결국 생산성 혁명은 계급전쟁과 공산주의를 패배시켰다. 지식의 마지막 단계 변화는 2차대전후에 왔다.이 단계에서 지식은 지식 자체에 적용되기 시작했다.이를 경영혁명이라 할 수 있다.지식은 자본과 노동 모두를 옆으로 밀어낸 채 생산의 한 요인이 됐다. 오늘의 사회를 「지식사회」라고 부르기엔 빠를지도 모른다.인류는 이제 겨우 지식경제를 갖게 됐다.하지만 오늘의 사회가 후기자본주의임에는 틀림없다. 자본주의와 산혁명에 의해 사회가 변하는데는 서유럽에서 1백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17 50년만 해도 미미한 존재였던 자본주의자와 무산계급자들은 19세기 들어 자본주의와 기술이 침투한 곳이면 어디서나 지배적 계급이 되었다. 일본에서 이 변화는 30년이 못 걸렸다.그 기간은 명치유신이 일어난 1867년부터 중일전쟁이 터진 18 94년까지였다.상해·홍콩·캘커타·봄베이,또는 제정 러시아에서도 더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기술적 변화의 속도는 자본 수요를 폭발시키고 새로운 기술은 생산의 집중을 초래,공장의 출현을 불가피하게 했다.지식이 수천개의 소규모 가내공장에 적용될 수는 없었다.생산은 하룻밤 사이에 손재주 단위에서 기술 단위로 옮겨졌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이 등장한 것도 제임스 워트의 증기 기관차가 등장한 무렵인 17 76년의 일이었다.그러나 「국부론」도 기계·공장·산업생산 등에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국부론에서 언급한 생산이란 고작 가내공업 수준이었다.나폴레옹전쟁이 있은 40년 후까지도 공장과 기계가 재대로 주목받지 못했다. 1830년대에 들어와 발자크가 소설을 통해 은행원과 증권거래가 지배하는 자본주의 프랑스를 묘사하기 시작했다. 산업화는 마르크스가 말한 「궁핍화」가 아니라 물질적 향상을 의미했으나 그 충격은 가히 병폐에 기까웠다.새로운 계급으로 변모한 프롤레타리아들은 마르크스의 말마따나 「소외」되었다.이들은 결국 그들의 생계를 소수 자본주의가들이 소유한 공장에 의존하다보니 갈수록 무력해지고 가난해져 종내는 자본주의를 무너뜨리게 된다고 마르크스는 예언했다. 현세의 마르크스 주의자들도 이 견해에 동조하고 있다.심지어 반 마르크스 주의자들 마저 자본주의 「내재적 모순」에는 동의한다.19세기 후반까지 자본주의의 모순에 대한 믿음은 상당한 세력으로 사회를 지배했고 많은 뜻있는 인사들이 사회주의 쪽으로 기울었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의 「소외」와 「궁핍화」만을 가져온다던 자본주의는 망하지 않고 반대로 사회주의가 망해버린 이유는 무엇인가.이에 대한 대답은 생산성 혁명이다. 미국의 저명한 경영학자였던 프레드릭 윈즐로 테일러가 비록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좋은 교육을 받았지만 노동자가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시력이 나빴던 그는 하버드대 입학을 포기하고 기계공이 되었다.기술이 뛰어났던 그는 곧 보스의 일원이 되었다.그는 이 과정에서 자본가와 노동자간의 증오와 갈등을 목격했다.그는 갈등 해소의 방안으로 노동자의 생산성 향상에 착안했다. ○스미스 「국부론」 등장 그의 생산성 향상방안은 자본가의 이익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노동자·자본가에 다같이 혜택을 줄 수 있는 것이었다.그의 교훈을 가장 잘 활용한 예가 전후 일본의 사용자와 노조였다. 테일러의 생산성 혁명 이론은 선진국의 생산성을 50배 높였다.한국·대만·싱가포르 등이 열악한 조건 속에서 경제성장을 이룩한 것도 테일러의 교훈덕이었다. 생산성 향상은 부수적으로 노동자들의 생활 향상을 가져오고 이는 구매력증가를 수반했다.마르크스가 걱정했던 무산대중은 부르주아로 둔갑했다.자본가가 아니라 블루 칼라의 노동자들이 자본주의와 산업혁명의 진정한 수혜자가 되었다.이는 마르크스가 1900년대에 올 것으로 예언한 자본주의의 몰락이 왜 마르크시즘의 몰락으로 대체되었는지를 설명해 준다.1차 세계대전후 빈곤과 실업이 만연된 중부 유럽의 패전국에서 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는지도 같은 맥락에서 대답을 찾을 수 있다.모든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그처럼 자신만만하게 예상한 대공황 이후의 공산주의 혁명이 나타나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다. 지난 수백년간 생산성 폭발을 초래한 경제를 가능케한 것이 지식을 일에 적용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의외로 적다. 지식의 의미 변화는 사회와 경제를 변모시켰다.지식은 개인과 경제의 자원으로 치부된다.지식만이 오늘날 의미 있는 자원이다.재래식 의미의 생산의 요건들,즉 자본·노동·토지는 소멸된 것은 아니고 2차적인 요인으로 밀려났다.이 3대 요건은 지식만 있으면 얻을 수 있고 그것도 쉽게 구할 수 있다.이제 새로운 의미에서의 지식은 사회적·경제적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수단으로서의 지식이다. 이같은 지식 적용의 다양성에서 오는 변화를 경영혁명이라 부를 수 있다.이제 경영혁명이 지구를 휩쓸고 있다.경영혁명이란 말에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기업경영을 떠올릴지 모르지만 이는다른 개념이다.기업경영은 주로 이윤추구를 염두에 둔 것이지만 경영혁명은 영리·비영리를 가리지 않는 조직 관리의 방식이다. 이제 지식은 필수불가결의 절대적 자원이 된 반면 종래의 자원이었던 자본·노동·토지 등은 지식에 따라오는 수단으로 전락했다.이 현상은 오늘의 사회를 후기자본주의로 바꾸어 놓았다. 세상은 정치·경제·사회적 역동성을 요구하고 있으며 인류는 하나의 지식에서 다양한 지식으로 옮겨가고 있다. ○후기자본주의 진입 전통적으로 지식이란 일반적인 것이었지만 지금은 고도로 전문화된 필요성이 되었다.과거 우리는 『지식 있는 남자 또는 여자』란 말을 하지 않고 대신 『교육받은 사람』이란 말을 해왔다.교육받은 사람은 많은 것에 대해 알고 이해하지만 한가지 일에 전문가는 아니었다.많은 것을 아는 사람보다 한가지 일을 완벽하게 해내어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하게 되었다. 미국혁명의 해인 1776년 식으로 지식사회의 장래를 예측하는 것은 바보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그러나 한가지 예측가능한 것은 지식사회는 앞으로 지식의 형태와 내용,그 책임과 의미,그리고 교육받은 사람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따라 도전을 받게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 모델이 조각가 위해 미술관 건립

    ◎「현대 조각의 아버지」 아리스티드 마욜 기념/불 75세 비에르니여사,자신의 누드상 등 전시 프랑스의 한 할머니가 자신을 모델로 그리던 예술가를 위해 미술관을 세워 사회에 기증해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그것도 예술가가 죽은지 51년만에 이뤄진 일이다. 프랑수아 미테랑대통령도 지난달 20일 파리 시내 그르넬 거리에서 열린 「마욜 미술관」 개관식에 참석해 프랑스 국민들의 관심을 반영했다.마욜 미술관을 세운 사람은 올해 75세의 디나 비에르니여사. 비에르니여사는 「현대 조각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아리스티드 마욜(1861∼1944)의 전속모델이었다.1935년 마욜이 그린 「나신 연구」같은 그림의 주인공이 바로 비에르니여사다. 또 루브르박물관 옆의 튈르리공원에서 볼 수 있는 12개의 청동동상들도 마욜이 나신의 비에르니여사를 모델로 만든 조각들이다.이 조각들은 비에르니여사가 소장하고 있던 것을 지난 64년 앙드레 말로가 문화장관일때 정부에 기증한 것이다. 이 청동동상들은 세계의 유명 박물관들이 복사판을 구하려고 혈안이 돼있지만 한 작품당 12개로 한정돼 있는 복사판도 거의 동이 나있어 박물관을 애타게 하고 있다. 비에르니여사는 1934년 마욜을 만나게 된다.당시 14세의 여학생이던 비에르니여사는 조각을 하던 친구를 따라 지방에 내려갔다가 73세의 하얀 수염투성이인 마욜과 인사를 나누게 된다. 비에르니는 그뒤 일요일이면 부모 몰래 지방으로 내려가 마욜을 위한 나체 포즈를 취하기 시작했으며 이런 생활은 대학에서 화학을 공부하면서도 계속된다.60살 차이나는 화가와 모델은 스페인을 함께 여행하기도 했다. 2차대전 당시 비에르니는 레지스탕스 운동에 가담했다가 체포되지만 마욜은 그의 예술을 좋아하는 독일군측에 부탁해 비에르니를 석방시켜 준다.하지만 지난 44년 83세이던 마욜은 자동차 사고로 숨져 모델과 화가의 관계도 끝나고 만다. 비에르니는 그뒤 1947년 마티스와 잔 부세등 마욜의 친구들의 권유로 파리시내 야콥 거리에 화랑을 세워 경영하기 시작했다.지난 73년 마욜의 아들인 루시앙 마욜이 숨지고 유산을 물려받자 마욜 미술관 건립을 꿈꾸게 된다.지난 81년 1천2백만프랑(약 18억원)의 기금으로 미술관 건립재단을 설립했지만 세계 각지에 팔려나가 흩어져 있는 마욜의 작품들을 사모으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는 것이다.소유하고 있던 집을 팔고 미국과 일본의 컬렉션을 돕는 일을 하기도 했다. 미술관 건립꿈을 실현하는데 꼬박 14년의 세월이 걸렸고 그녀는 『어떻게 보면 미친짓이라는 생각도 들었다』고 회고한다.비에르니여사는 『마욜은 화실도 없었고 조수도 없이 언제나 혼자서 일했다』면서 『그는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베끼지도 않았을 뿐더러 자연을 그대로 묘사하지도 않았다』고 마욜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설명했다. 마욜은 시장에서 파는 종이에 그림을 그리지 않았고 그가 사용한 몽트발이라는 섬유는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고 비에르니여사는 기억하고 있다.항상 호기심을 버리지 않은 예술가의 모습이 비에르니여사가 50여년동안 가슴에 담고 있는 마욜이었다. 마욜 미술관에는 러시아화가들의 그림도 전시돼 눈길을 끌고 있다.이 작품들은 비에르니여사가 지난 60년대 옛소련으로부터 빼낸작품들이다.모스크바에서 반출이 금지된 카바코프·불라토프등의 작품의 파리 전시를 위해 러시아세관의 감시망을 피해 가져 온 작품들이 남아 있는 것이다.
  • 일 디자이너/「아우슈비츠 패션」 “물의”

    ◎수용복 연상 잠옷에 번호… 군화자국 새겨/“박해받은 불행 비속화” 유태인 강력 반발 일본인 여성 패션 디자이너가 아우슈비츠 수용수들의 유니폼을 본뜬 옷을 패션쇼에 선보여 유태인 사회 등으로부터 강한 비난과 반발을 받고 있다. 레이 카와쿠보씨(여·52)는 지난달 27일 파리에서 열린 올해 가을 및 겨울철 남성복 패션쇼에 이른바 「아우슈비츠 패션」을 내놓았다.죽음의 수용소인 아우슈비츠가 해방된지 꼭 50년 되던 날 수용수들이 입고 있던 줄무늬 수용복을 그대로 본뜬 파자마가 상품으로 등장한 것이다. 카와쿠보씨는 이 복장에다 수용수들의 수감번호를 의미하는 듯한 일련의 번호까지 새겼다.게다가 군화자국도 집어넣어 독일군이 유태인을 학대하는 장면을 연상케 했다. 이를 알게된 유태인측은 당연히 펄쩍 뛰었다.유태인협회 유럽지역 사무총장인 세르쥬 콰젠바움씨는 2차대전에서 나치 독일에 의해 박해받은 불행했던 유태인들의 이미지를 비속화시키는데 일단 우려의 뜻을 나타냈으며 6일 공식성명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카와쿠보씨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게 줄무늬 의상의 의미』라며 『패션쇼의 주제는 파자마에서 나타나듯이 「잠」에 관한 것』이라고 변명했다.그녀는 『오해가 일어났다는 사실이 슬프며 놀랍다』고 주장했다. 카와쿠보씨는 한술 더떠 『개인적으로 나는 항상 유태인을 존경해 왔으며 마음속으로 그들을 가깝게 여겨 왔다』고 했으며 그녀가 소속된 회사인 일본의 「콤 데 갸르송」측도 의상에 새긴 숫자는 어린이가 벽에 그림을 그리듯 「천진난만한」 표현일 뿐이라고 강변한다. 그러나 카와쿠보씨는 지난해 패션쇼에서도 보스니아 내전을 묘사하는 군복을 선보이다 비난을 받은 전력이 있다.카와쿠보씨 뿐 아니라 나치의 만행과 유태인의 불행했던 과거를 상품화시키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는데 유태인들은 더욱 흥분한다.
  • 여류 조각가 김영희씨 초대전/브론즈·테라코타 등 근작 28점 전시

    ◎오늘부터 다도화랑 여류 조각가 김영희씨(32) 초대전이 3일부터 17일까지 다도화랑(542­0755)에서 열리고 있다.지난 89년 첫 전시를 가진 이래 2회째 개인전으로 최근 3년여에 걸쳐 작업해온 새로운 작품들을 선보이는 자리. 김씨는 본래 고전적 인체묘사,즉 콘트라포스트(무게)를 기본으로 하는 인체의 중력 또는 볼륨을 탐색해온 작가.그러나 이번 전시에서는 이러한 서구적 인체묘법에서 벗어나 인체조각의 무중력(가벼움)과 양감을 제거한 작품들을 보여주고 있다.특히 구름의 이미지를 최대로 활용,토우적 인체와 융화시키는 등 우리의 전통으로 회귀하는 일련의 작품들을 내놓았다.회화적 요소와 여백의 미를 강조한 것도 이번 전시작품의 특징.『자연과 인간의 일체성을 새로운 시각에서 조형해 봤다』는 김씨는 86년 중앙미술대전 장려상,87년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 등의 수상경력을 지닌 작가로 이번에 브론즈,대리석,테라코타 작품 28점을 출품했다.
  • 신라 흙인형 기마인물상/말탄 주인공은 앳된 귀공자(한국인의 얼굴)

    ◎관모 갖췄지만 얼굴엔 장난기 가득/키작고 살찐 말… 재래종 과하마인듯 우리나라 고대 흙인형중에는 말을 탄 모습을 한 몇점의 유물이 전해오고 있다.흙을 가지고 빚은 이른바 기마인물상으로 부르는 유물들이다.경주 금영총에서 한쌍의 유물과 토기장식용으로 만든 김해 덕산리출토물 1점은 출토지가 확실한 기마인물상.이밖에 출토지가 알려지지 않은 또다른 신라의 기마인물상도 명품으로 꼽힌다. 이들 유물 가운데 출토지 미상의 기마인물상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전체 높이가 15㎝에 불과하지만,말 잔등에 올라탄 인물상의 표정은 무척이나 밝다.말 위의 전방을 주시하는 주인공 눈에는 장난기가 어렸다.딴에는 말을 세차게 몰아서 숨이 가쁜 탓인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약간 벌린 입과 눈이 묘하게 조화되어 귀여운 인상을 풍긴다.관모를 갖추었는데도 마상인물에게 거들먹대는 구석을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아직은 위엄을 부릴 줄 모르는 나이 어린 신라의 귀공자라는 생각이 든다.본래 있던 팔 한짝이 잘려나가 한손으로 말고삐를 잡았으나,말부리는 솜씨가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이 기마인물상은 그만큼 균형감각이 살아 있는 조형미술품이라 할 수 있다.가을 말인 듯싶게 살이 통통하게 올라 마상인물이 아주 가벼워 보인다.그리고 말위에 앉은 인물은 실제 앳된 소년일 것이다. 말을 탄 소년의 다리가 아직은 짧아서 발거리는 생략되었다.말갖춤(마구)은 그런대로 차렸다.머리와 가슴에 띠를 두르면서 말방울까지 단 말잔등에는 안장도 얹혀 있다.이러한 말갖춤으로 미루어 말을 타기 시작한 기마의 역사가 꽤 오래된 시기에 만든 흙인형으로 여겨진다.하기야 서력기원 전후의 유적인 김해 조개더미(김해패총)에서 말뼈가 나오는 것을 보면,이 무렵 신라인들은 말타는 기술을 충분히 배웠을 것이다. 이 기마인물상이 탄 말은 키가 작다.키가 작다는 사실은 말다리가 길지 않다는 데서도 나타난다.삼국시대의 말들은 대체로 작은 종자라는 기록도 있다.3세기 무렵 고구려·백제·신라에는 이른바 과하마(과하마)라는 작은 말이 있다는 기록이 「삼국지」(삼국지)동이전(동이전)에 나온다.이기록은 「말의 체구는 작지만 산을 오르는데 편하다」고 과하마를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과하마는 석자의 말(삼척마)이라고 적었다.일본인 학자 마쓰모토(송본구희)는 자신의 저서 「재래마」에서 동아시아의 재래마 기준측정치는 몸길이가 1백33.892㎝라고 밝힌 바 있다.그러고 보면 아시아의 말은 작았다는 이야기다.또 머리길이는 49.298㎝,목길이는 50·666㎝,무게는 2백75.9㎏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삼국시대에 작은 말만을 키운 것은 아니다.「삼국유사」는 「동쪽에 두 종류의 말이 있는데,북쪽에서 온 호마와 나라안의 향마」라고 기술함으로써 호마의 존재를 들추어냈다.이 호마는 몽골말과 중앙아시아를 거쳐 들어온 아라비아계통 큰 말과의 교배종이라는 설이 있다.
  • 2월 문화인물/남명 조식선생/퇴계와 함께 영남유학파 이끈 석학

    ◎「남명집」 「파한잡기」 「남명가」 등 남겨 문화체육부는 조선시대 성리학자인 남명 조식선생을 95년 2월의 문화인물로 선정했다. 조식(15 01∼15 72)선생은 기묘사화로 가문이 화를 당한후 조정의 벼슬을 사양한채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에만 열중해 퇴계 이황과 함께 영남 유학의 양대산맥을 이룬 인물. 벼슬에서 물러난후 학문도야와 후진양성에 열중한 선생은 학문과 사상이 널리 알려져 사림의 종사로 추앙받고 조정에서도 수차례 벼슬을 내렸으나 모두 사퇴해 고고한 자세를 흐트리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61세때 진주로 이주해 많은 영재를 모아 가르쳤는데 이들의 대부분이 조선 선조시대의 정치·학술계의 주역이 됐고 임진왜란때 의병을 일으킨 절의지사이기도 했다. 성리학 가운데서도 실천유학을 역설한 선생은 72세를 일기로 영면했고 조정에서는 16 16년 선생의 학문을 높이 평가해 영의정에 추증했다. 저서에 「남명집」,「남명학기유편」,「파한잡기」 등이 있고 작품에는 남명가,권선지로가가 있다. 문체부를 비롯한 관련단체는 선생을 기리는 학술대회,백일장,유적답사,전시회등 다양한 행사를 마련한다.
  • 고베지진과 한국이미지/김은상 무역협회 부회장(일요일 아침에)

    WTO발족에 따라 무한경쟁시대는 이미 시작되었다.또 우리상품의 생산코스트가 계속 상승하고 있어 이에 맞춰 품질도 어느 정도 향상되고는 있으나 우리 상품의 국제적 성가가 낮아 제값을 못받고 있다는 걱정도 크다.상품의 성가는 바로 국가나 그 구성원인 국민의 이미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우리에 대한 대외이미지가 결코 만족스럽지 못해 앞으로 무한경쟁시대를 어떻게 뚫고 나갈지 걱정이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우려들을 들으면서 최근 일본의 고베지진 때 보여준 일본사람들의 행동과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을 비교해 보면서 다시 한번 우리의 대외이미지 개선문제를 생각해 보게 된다. 일본은 과거 2차대전을 일으켰고 중상주의적 통상정책으로 여러 나라들과 많은 마찰을 겪고 있지만 일본인은 예의바르고 정직하며 끝없는 개선을 추구하는 민족으로 그 이미지가 비교적 좋은 편이다.더구나 이번 고베지진 때 보여준 침착함,경탄할 만한 질서의식과 자존심은 비록 이번 재앙으로 엄청난 희생을 치렀지만 대외적으로는 일본인의 좋은 이미지를 더욱 좋게 해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가.우리는 스스로 지금까지 한번도 외국을 침번한 일이 없는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으로 5천년의 찬란한 문화와 동방예의지국임을 자랑하고는 있지만 외국에 비치는 우리 이미지는 반드시 우리생각과 일치하지는 않는 것 같다. 한국인은 열심히 일하고 어떠한 어려움에 부딪치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이를 꿋꿋하게 극복하는 저력있는 국민이라는 좋은 이미지도 있지만 반면에 한국인은 조급하고 거칠며 자기들끼리만 어울린다는 등의 좋지 못한 이미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면 작년쯤인가 우리나라에서 상영이 금지된 바 있는 「폴링 다운」이라는 할리우드영화에 비쳐진 한국인의 이미지는 『무식하고 돈밖에 모르는 졸부들』로 묘사되고 있다.또 국내 산업현장에서 근무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은 우리를 『성질이 불같고 거칠며 상소리를 많이 하고(못사는 나라에서 왔다고)비웃고 사소한 일에도 의심이 많다』고 평하고 있다 한다.인도네시아에서는 한국의 산업현장을 대단히 어려운 것으로 보고 현지에서실시하는 특수훈련에 합격한 사람만을 한국에 근로자로 내보낸다고 할 정도이니 우리의 이미지가 어떤지 상상하고도 남을 일이다.게다가 한국의 욕설이 동남아에서는 국제어로 되어가고 있다고 하지 않는가. 뿐만 아니라 똑같은 시기에 일본과는 반대로 이런 우리의 이미지를 더욱 나쁘게 하는 사태가 국내에서는 계속 일어나고 있다.성수대교 붕괴사고는 그동안 쌓아 올린 건설업계의 실적에 비해 대단한 이미지 손상을 주었으며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차별적인 대우와 이들의 불만표출 또한 동남아 각국에 과장되게 알려져 우리의 이미지를 손상시킬 것이 틀림없다. 지금 우리는 세계화를 부르짖고 있다.세계화란 세계인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의식개혁 운동으로 세계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는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 그 기본이라 할 것이다.이러한 의미에서 우리의 이미지 개선이 바로 세계화의 길이며 우리가 세계속에서 기회를 확대하는 첩경이라 하겠다.그리고 그것이 반드시 그렇게 어려운 것만은 아닐 것이다.이번 고베지진 때 보여준 우리의 조그만 지원과 같은 일이 앞으로도 어려운 일을 당하는 이들에게 계속 이어진다면 말이다.
  • 「말미잘」로 15년만에 연출 복귀 유현목감독(인터뷰)

    ◎“서정 넘치는 담백한 영화 추구”/한국적 리얼리즘으로 섬소년 성장과정 묘사 지난 80년「사람의 아들」을 끝으로 작품활동을 중단했던 유현목(70)감독이 15년만에 새영화「말미잘」로 컴백,살아있는 한국적 리얼리즘을 선보인다. 3월 초 개봉예정인 「말미잘」은 호기심많은 아홉살 섬소년이 엄마의 재혼을 통해 성의식에 눈떠가는 과정을 그린 일종의 성장영화. 『오랜 영화생활 탓인지 탄탄한 극적 구성과 논리성을 추구하는 「드라마주의」에 염증을 갖게 됐습니다.강렬한 메시지를 전하기보다는 사소한 인생삽화들을 스케치하듯 그려 전체적으로 서정적이면서도 담백한 맛을 느낄 수 있도록 했어요』 마치 새로 데뷔하는 기분이라는 유감독은 영화의 주관객층이 신세대인만큼 될 수 있는대로 젊은 연출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다. 사회적 리얼리즘과 전위미학을 실험하는가 하면 인간의 실존문제에 몰두하는 등 그동안 중후한 작품세계를 보여온 유감독에게 「가벼운 재미」를 겨냥한 이 영화는 대단한 「파격」인 셈이다.우리 영화계에서「유현목」하면 곧 「재미없는 영화」를 떠올릴만큼 대중성과는 거리가 먼 영화의 길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전 어릴적부터 고독을 좋아했던 것같아요.도스토예프스키에 심취한 나머지 어둡고 스산한 「슬라브적 고독」에 빠져 젊은 나날을 보내곤 했으니까요.그래서인지 감각적인 멜로영화엔 그다지 재능이 없고 특히 여성취향의 묘사에 서툴러요.제 작품엔 사랑이야기가 별로 없잖습니까』 해방후 한국영화사의 대표적 영화작가로 꼽히는 유감독은 지난 55년 감독에 입문한 이래 「오발탄」「잉여인간」「순교자」「장마」등 40여편의 화제작을 연출한 영화계의 원로.올해 안으로 영화인생 반세기를 정리하는 고희기념 논문집도 낼 예정이다.
  • 마녀·괴물 동화주인공 한자리에/이서 어린이 위한「환상의 이미지」전

    매부리코의 마녀,뚱뚱한 진흙 괴물,왕자와 공주,마법에 걸린 물고기,난쟁이,백조,공작,갈매기,쥐와 고양이….어린이들의 동화속에 즐겨 등장하는 주인공들이다.텔레비전에 밀려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 동화속 주인공들이 한데 모여 전시회를 갖는다.오는 27일 이탈리아의 트레비소에서 막을 올리는 「환상의 이미지」전이 바로 그것.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책의 표지 또는 책속의 삽화들을 모은 이 전시회는 2월26일까지 한달간의 전시가 끝나면 곧이어 슬로베니아의 류블랴나와 독일의 에센 등지로 다음 일정이 잡혀 있다.이 전시회의 또다른 특징은 어린이들의 꿈과 상상력을 키우기 위한 워크숍도 함께 열고 있는 것.따라서 어린이들은 물론 부모들로부터도 꾸준한 관심을 모아왔다. 올해로 열두번째가 되는 이 전시회는 프라하 태생의 스테판 자브렐이 지난 83년 이탈리아의 사르메데에서 처음으로 자신이 그린 아동용 삽화들을 모아 전시회를 가진 것이 기원.자브렐의 삽화전에 국제아동도서위원회(IBBY)와 유니세프(유엔아동기금),이탈리아 파두아대학의 동화전문연구소가 즉각 큰 관심을 표명하면서 후원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고 84년부터 순회전시회가 열리게 됐다.또 85년부터는 의류제조업체인 스테파넬이 전시회 비용을 부담하겠다고 나섰다. 또 사르메데는 이 전시회 하나로 동화책의 표지나 삽화를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들의 메카로 떠올랐다.사르메데시가 해마다 일러스트레이터들을 대상으로 여는 여름학교는 전세계에서 많은 동화작가들 또는 삽화 화가들이 몰려들어 성황을 이룬다.이들은 모두 다음 세대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동화에 자신의 삶을 바치려는 각오를 다진 사람들이다. 전시회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첫번째 부분은 주로 유럽과 캐나다·남아공 출신 작가들의 작품으로 구성돼 있다.두번째는 중국과 일본·대만·베트남 등 아시아 출신 작가들의 작품으로 구성돼 있다.이 둘째 부분에선 얼마전까지만 해도 미국 문물의 수입으로 전통 문화가 질식사하기 일보직전에까지 몰렸던 이 아시아국가들이 새롭게 찾은 전통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바탕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음을 분명히 볼수 있다. 마지막으로 세번째 부분은 옛 페르시아 문명의 미니어처 화법을 새롭게 부활시킨 이란의 피루제 골모하마디(여)의 작품으로만 구성돼 있다.그녀 작품의 특징은 세부 부분을 정확히 묘사하지 않고 암시하는 선에서 그치는데 있다.그녀의 기법은 오히려 보는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여러 관점에서 자신을 동화속의 나라로 몰입하게 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는 어린이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며 어른들도 마찬가지다.「환상의 이미지」전이 의도하는 것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 우편엽서 모으기/미에 동호인 6만­취미클럽 1백개

    ◎“돈 적게 들여 각국풍물 감상”/6·25참전용사 한국엽서 7천장이나 수집 돈을 별로 들이지 않고 세계 각국의 다양한 풍물을 접하면서 수집벽을 만족시킬 수 있는 「우편엽서모으기」가 미국에서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다.미국 뉴 저지주 모리스타운에 사는 데이비드 코베트(36)는 할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것을 포함해 모리스타운의 풍경을 담은 엽서를 6백장쯤 갖고 있다.그래서 그는 이제 이 도시에서 1910년대의 모리스타운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아는 유일한 사람이 됐다. 펜실베이니아주 노드에 사는 제임스 루이스 로(65).한국전 참전용사인 그는 한국우편엽서를 7천장이나 수집,한국우편엽서 최대 소장자로 꼽힌다.그는 이것들을 모으는데 3만달러(2천4백만원)쯤 들었다. 로가 모은 것은 현대 서울의 화려한 모습이 아니라 일제 지배하에 만들어진 오래된 것들이었다.한국인은 게으르고 일본인은 문명화된 것으로 묘사한 것이 대부분이다.특히 한국인이 술에 취해 술병을 땅바닥에 내팽개친 채 쓰러져 있는 것을 묘사한 것도 있다. 해방이후 한국은 일본이발행했던 수십만장의 엽서를 없애 버렸다.그러나 전후세대는 그들의 과거의 일부로서 이러한 옛 우편엽서들에 대해 다시 관심을 갖게 됐다. 로가 지난91년 한국에서 우편엽서 전시회를 열었을 때 관람객들로 성황을 이뤘다.로는 다른 종류의 엽서들도 모으고 있으며 「표준 우편엽서 목록」등을 포함,여러권의 우편엽서 관련 서적을 펴낸 저자이기도 하다. 현재 미국에서는 6만명가량이 엽서를 모으고 있고 전국적으로 약1백개의 수집 클럽이 운영되고 있다. 지금까지 가장 비싸게 팔린 우편엽서는 「아르 누보」작가 알퐁스 뮈샤가 도안한 것으로 1990년 1만3천5백달러(1천80만원)에 매매됐다. 1900년부터 1920년까지의 미국우편엽서 역사를 저술한 앤드리어스 브라운은 『그 취미의 아름다움은 태양아래 있는 모든 사물과 접촉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우편엽서 수집을 예찬했다. 우편엽서는 뒷면에 글씨가 씌어 있으면 가치가 깎인다.일부 예외도 있다.마릴린 먼로나 시어도어 루스벨트대통령과 같은 이의 서명이 담겨 있는 엽서는 명사들의 친필을 모으는 사람들 덕택에 수천달러씩에 팔리기도 한다. 일부 수집가들은 그들이 모은 엽서를 발행처나 도안가별로,또는 주제나 지역별로 분류하는 열성을 보이기도 한다. 이 열성수집가들은 또한 엽서의 사회적·역사적 의미를 탐구한 서적등 우편엽서관련 서적등을 두루 섭렵,우편수집 이론에도 일가견을 가지고 있다.
  • 현실적 생활인 모델/새 경제이론 속속 등장(현장 세계경제)

    ◎유혹·편견·중독 등 실제경제행위 초점/화폐 환상론/실질·명목가치 동일시 한다/행동 경제학/「합리적 기대」 가설은 오류 딱딱한 경제학 책 속의 인간은 어떤 모습인가.사랑도 눈물도 갈등도 없는 시계장치같은 인간이다.경제학적 용어로 말하면 「합리적 경제인」이다.그러나 구체적인 생활세계에서 만나는 인간은 이와는 딴판이다.합리적 선택같은 것하고는 별 상관이 없는,「사랑에 속고 돈에 우는」 덜 떨어진 사람이 대다수다.최근 들어 이런 「현실적 생활인」을 모델로 삼은 경제이론이 속속 등장해 경제학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이 새 이론들은 과거의 경제이론이 합리성을 너무 좁게 해석해 인간을 마치 돈버는 일에만 몰두하도록 프로그램된 로봇으로 묘사했다고 비판하고 이 합리성 개념을 전면적으로 재정의 하거나 크게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최근 실험심리학 등의 성과에 힘입어 이 새 이론들은 「사람이 실제생활에서 어떻게 선택행위를 하는가」를 연구하는 데 유혹·공포·중독·무지·편견 따위 인간적 약점을 끌어들인다. ○실험심리학 힘입어 대표적인 이론이 「화폐환상」론이다.화폐환상이란 명목상의 화폐가치를 실질적인 화폐가치와 똑같다고 오인하는 것이다.화폐임금이 10% 인상됨과 동시에 물가가 10% 올랐다면 실질임금 인상은 없는데도 임금이 10% 올랐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화폐환상에 빠진 것이다.전통경제학은 합리적 경제인의 관점에서 화폐환상은 없다고 가정했으나 새 이론은 실제 선택행위에서 화폐환상이 매우 널리 퍼져 있다고 본다. 이 것은 몇 가지 실험에서 증명됐다.먼저 실질임금의 하락을 견디는 방법에 대한 선택권이 주어졌을 때,사람들은 명목적인 화폐임금이 조금 늘고 이보다 더 많이 화폐지출이 늘어나는 상황를 가장 선호했으며 화폐임금의 변동없이 화폐지출이 조금 늘어나는 상황을 그 다음으로 선호했다.가장 꺼려하는 상황은 화폐지출의 변동 없이 임금이 깎이는 상황이었다. 화폐환상은 실질임금이 증가하는 경우에도 아주 명백했다.대다수 사람들은 화폐지출이 같은 크기로 늘어난다 하더라도 일단은 명목임금이 많이 오르기를 원했다.「합리적이지도못하게」 사람들은 화폐임금 상승 그 자체를 중시하는 것이다.이런 행태는 예를 들어 인플레를 통제하고자 하는 정부의 정책 시행을 매우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정책시행에 장애물 또 다른 이론은 「행동경제학」분야에서 나타나는데 이는 「합리적 기대」가설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한다.합리적 기대 가설은 사람들이 경제전반의 흐름을 완전히 이해하고 행동한다는 가설이다.이 주장은 다시 말하면,사람들이 빈틈없는 연역적 추론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가정하는 것과 통한다.이 가정에 따르면 합리적 기대론자 두 사람이 장기를 둘 경우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한두 시간동안 가만히 지켜만 보다가 마침내 한쪽이 패배를 선언하는 것으로 끝나야 한다.현실은 전혀 다르다.사람들은 장기를 둘때 실착를 거듭하고 수를 잘못 읽고 빗나간 예측을 한다. 최근의 행동경제학은 인간의 경제행위도 이와 마찬가지며 이는 주식시장에서의 선택행위에서 아주 잘 나타난다고 말한다.주식시장에서 사람들은 서로 다른 경험법칙을 갖고 있으며 미래에 대해 서로 다르게 예상한다.동시에 사람들은 장기평균치나 통계적 확률보다는 최근의 데이터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또 정보를 얻고 처리하는데 드는 비용과 어려움 때문에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선택을 따르는 것이 값싸고 안전하다고 판단하게 된다.이런 편견과 무지로 인해 사람들은 한곳에 몰려들고 추세에 맹목적으로 따르게 된다.이런 사실은 주식시장이 왜 우세한 분위기에 의해 지배되며,거품이 생겨나 마구 커졌다가 급작스레 꺼지는가를 설명해준다. ○절제의 어려움 연구 새 경제이론은 또 과거의 경제학이 거의 무시해온 일상생활의 다른 면,즉 유혹의 힘과 절제의 어려움을 연구대상으로 삼는다.이것은 이를테면 「저축행동에 관한 표준이론」을 좀더 현실화하는데 도움을 준다.표준이론은 사람들이 일생에 걸쳐 그들의 소득을 적절히 분배하기 위해 초년에는 대부를 받고 중년에는 저축하고 퇴직후에는 저축한 돈으로 살아간다고 가정한다.그러나 「유혹의 경제학」에 따르면 이런 일은 자연스럽게 일어나지는 않는다.대다수 사람들은 저축을 더 하겠다는 생각은 있으면서도 돈 좀 생겼다 싶으면 쓰고자하는 욕망에 쉽게 휘말려버린다. 때문에 사람들은 대체로 연금저축이라거나 주택융자금상환처럼 매월 일정액을 강제로 떼어내는 방식으로만 저축을 한다. 「공돈」을 저축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 고신라 흙인형 남자상(한국인의 얼굴:14)

    ◎금방울음 터뜨릴듯 비통한 모습/주인사망 슬퍼하는 하인을 묘사/입벌린채 망연자실… 몸도 뒤틀려 신라의 흙인형은 조형술이 뛰어나 일찍부터 예술성을 인정받았다.과감한 생략기법을 구사했음에도 표정과 동작에서는 제작자의 의도가 확연히 드러난다.얼굴에 나타난 감정과 몸둥이를 통해 묘사한 율동이 그것이다.이러한 작품들 가운데는 별 다른 구분없이 그저 흙인형(토우)으로 부르는 한 떼의 유물들이 전해진다.말을 탔거나 끄는 사람,악기를 다루는 주악상,여러 표정의 남녀 인물상이 있다. 이들 흙인형들 중에서 슬퍼하는 남자인물상은 아주 감동적이다.무릎을 꿇고 슬픈 얼굴을 한 인물상(국립중앙박물관 소장)과 서서 슬픔을 감추지 못하는 인물상(국립경주박물관)이 있다.이들 인물상은 두손을 모아 한껏 예의를 갖춘 자세다.그러나 얼굴은 금새 울음을 터뜨릴 듯 비통해 보인다.슬픔을 못 견딘 나머지 몸 마저 뒤틀렸다.무릎을 꿇은 인물상이 더욱 그렇다. 무릎꿇은 인물상은 슬픔이 너무 커서 망연자실한 것인가,눈을 크게 뜬채 입도 다물지 못하고있다.우람한 어깨 한쪽이 올라간 것은 슬픔을 추수릴 수가 없는 탓이리라.손은 비록 대담히 생략되었을 지라도 그 끝에 까지도 슬픔이 포개어 졌다.소박한 솜씨 뒷전에 생동감 넘치게 살아난 동작과 표정은 가히 신라 흙인형미술(토우미술)의 진수라 할 수 있다. 서 있는 인물상은 오랜 슬픔으로 해서 거친 모습이다.입을 다물 힘도없고,눈도 제대로 뜨지 못할 만큼 기력을 잃었나보다.이들 흙인형은 주인을 평생 모셨던 봉사자들이 그 주인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이라고 한다.죽음을 슬퍼하는 인물상 중에는 줄(현)이 달린 비파모양의 악기를 타면서 만가를 부르는 주악상도 있다.주인의 저승길을 탄주로 인도하는 이 인물상의 슬픔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사자에 대한 봉사자들의 슬픔이 이쯤되고보면 주종관계가 보통이 아닐 것이다.이들 흙인형은 불행히도 출토지가 밝혀지지 않은채 막연히 경주출토품으로 전해질 뿐이다.그러나 공식적인 발굴조사에서 흙인형들은 주로 신라 지배자급 무덤들에서 나온다.이 같은 사실을 고려하면 무덤에 묻힌 주인공들을 위해 껴묻거리로 만들었을 것이다.결국 흙인형은 죽은 주인공의 사후세계 동반자 구실을 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흙인형이 출토되고 있는 이른 시기의 무덤형태(묘제)는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경주에서 널무덤(토광묘)이 사라지면서 4세기 전반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돌무지 덧널무덤은 고신라특유의 무덤이다.한반도 전체는 물론이고 영남지방에서도 경주분지에만 존재하고 있다.시신을 넣은 나무널 위에 다른 큰 나무덧널을 씌우고 돌멩이로 덮은 뒤 흙을 쌓아 만들었다. 이 돌무지 덧널무덤은 신라가 연맹왕국으로 발전하는 시기에 나타났다.
  • “한미 방위조약은 불평등… 수정해야/박정희

    ◎정부 공개 「1960∼1964 외교문서」요약/“장면이 4·19사태 선동… 증거댈수 있다”/이승만/박정희 워싱턴 와도 원조협정 안맺어/케네디/한국침공 용인하면 3차대전 유발/러스크 새정부들어 두번째로 공개된 「19 60­1964외교문서」는 「4·19」에서 「5·16」,「경제개발단계」로 이어지는 우리 격동기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고 있다.쫓겨난 이승만 전대통령의 귀국시도에서부터 「4·19학생운동」에 대한 당시 미국정부의 평가까지 주요외교활동이 상세히 기술돼 있다.박정희혁명정권이 정권안정을 위해 미국등으로부터 원조를 얻어내려고 몸부림친 흔적도 엿보인다.이런 가운데 박군사정권은 미측의 요구로 시작된 「월남파병」을 국가경제 재건과 미측과의 관계개선에 이용하려 애쓴 흔적도 기록으로 남겨져있다.이같은 격동의 드라마를 「4·19관련문건」등 5개의 주제로 요약해 본다. ▷「4·19」직후의 상황◁ 4·19발생 이틀뒤인 60년 4월21일.이대통령은 경무대에서 매카나기 주한미국대사를 면담했다.이날 외무부는 두 사람의 대화내용을정리한 전문을 주미한국대사관에 전달했다. ▲매카나기=미국 정부는 한국에 대한 순수한 선의와 우의에서 이번 사태에 대한 우려를 표시하지 않을 수 없다. ▲이승만=최근의 혼란은 단 한 사람,장면에 의해 일어난 것이다.그가 정치적 목적 때문에 노·장 주교(이름을 말하지는 않음)와 함께 헌법은 물론 종교 윤리에도 어긋나는 폭력을 부추기고 있다.원한다면 장면이 학생들을 선동한 증거를 댈 수도 있다. ▲매카나기=미국 정부는 장면씨가 이런 사태를 유발할만큼 영향력을 가졌다고는 믿지 않는다.미국인들은 그보다는 한국의 각료들이 이대통령에게 국민들의 진정한 목소리를 전달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이대통령은 지난 3·15선거 당시에 무슨 일들이 자행됐는가를 모르고 있을 것이다. ▲이승만=워싱턴 정가에 알려진 한국의 상황은 완전히 오도된 것이다. ▲매카나기=소요와 혼란을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뭔가 긴급한 조치가 필요하다.한국의 헌법구조에도 어떤 개혁이 필요하다고 본다.지금같은 상태가 계속된다면 국제사회에서 이대통령의 위신은 크게 손상될 것이다. ▲이승만=현상황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것 같소. ▲매카나기=지난 선거에서 불공정하고 부정한 경찰력이 남용된 것이 소요의 가장 큰 원인이다.정부와 국민간의 관계를 복원할 수 있는 어떤 개혁 조치를 서둘러야 한다. ▷이승만 전대통령 귀국시도◁ 4·19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나 하와이에 머물던 이승만전대통령은 62년에 들어서자 귀국을 시도한다.62년 3월7일 김세원 주호놀룰루 총영사가 외무부장관에게 보낸 전문은 『근간에 몹시 쇠약해진 이박사가 부인 프란체스카,아들 인수씨와 함께 귀국하고 싶다고 측근인 최병엽씨를 통해 밝혔다』고 보고하고 『교포들의 여론은 소수를 제외하고는 이박사가 귀국해서 한국에 묻히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3월16일에는 한국 국민에 대한 사과성명을 발표하는등 귀국준비를 본격화한다.그러나 당시 집권한 5·16세력의 대응은 강경했다.최덕신외무부장관은 곧바로 『국민감정을 고려할 때 찬성할 시기가 아니다』면서 『귀국하지 못하게 조치하라』고 김총영사에게 지시했다.3월17일에는 이원경외무부차관이 『귀국을 고집하면 이박사와 그 부인이 가진 여권 CM DP 709,DP 710을 시급히 회수하거나 무효화하라』는 지시까지 내린다.집권자인 박정희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도 이날 『사과를 하더라도 국민감정이 풀릴 시간이 필요하다.정부의 허가없이는 귀국이 안되도록 총영사에게 지시하라』는 전문을 호놀룰루에 띄우도록 지시했다.결국 다음날인 3월18일 이전대통령은 귀국을 포기했다.호놀룰루 총영사관은 이날 『(이박사가)출발 취소함.양자 이인수 귀국』이라는 보고 전문을 보냈다.이에 대해 외무부는 『만족한다』면서 『노고에 감사한다』는 회신을 보낸다.그 다음날 김총영사는 이전대통령을 만난뒤 『정부가 하는 일에 복종해야지.나라가 잘되어간다니 죽기전에 한번 보고 싶다』고 이전대통령이 말한 내용을 외무부에 보고한다.김총영사의 보고 전문은 『이박사 건강이 지극히 쇠약해 말을 이해하기 어려운 상태』라고 이전대통령의 상태를 묘사하고 있다.이전대통령은 65년 7월19일 하와이에서 별세했다. ▷박정희 국가재건 최고회의의장대미교섭◁ 5·16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은 그해 11월 미국을 방문하기에 앞서 케네디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의 지도자들에게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수정을 촉구하기 위한 「대미교섭자료」(1급비밀)를 작성,주미한국대사관등에 보낸다.이 자료는 이승만전대통령이 1953년 5월30일 아이젠하워 미국대통령에 보낸 서한에서 『한국정부는 휴전협상을 맹렬히 반대하며,한미방위조약의 체결을 전제로 남북한에서 외국군대는 동시 철수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고 전한다.이에 따라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그해 6월16일 답신을 보내 『한국정부가 제의한 한미방위조약체결을 위한 교섭을 개시하겠다』고 약속했다는 것이다. 최고회의측은 그러나 당시 체결된 방위조약이 『한국정부의 휴전반대정책을 무마하기 위한 타협책으로 단독 북침을 위한 한국군의 단독군사행동을 견제하고자하는 고려가 반영됐다』,『북한지역은 한미방위조약 적용지역에서 제외돼 앞으로 한국정부가 북한지역을 회복한다고 하더라도 공동 방위지역에서 제외된다』,『방위조약이 미국측의 일방적 통고로 정지될 수 있으므로 한국의 안전보장에 대한 항구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등의 논리를 내세워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수정과 한국에 대한 계속적인 군사비 원조를 요청하도록 했다. ▷「5·16」이후 한­미관계◁ 딘 러스크 당시 미국무장관은 61년 11월7일부터 4일동안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의 미국방문에 앞서 한국을 찾는다.송요찬 과도내각수반·최덕신외무장관등이 이들 일행과 회담을 갖고 『박의장이 방미하면 꼭 대한원조를 성사시켜줘야 한다』며 간곡히 부탁하나 거절당한다. ▲딘 러스크 국무장관=한국이 (5·16)문제해결을 위해 기울인 노력에 심심한 사의를 표한다.「혁명정부에 대한 한국민의 신임」이 있다고 하는데 미국은 이 말을 중시한다.한국은 한국만의 힘으로 군을 유지함은 불가능할 것이다.(나는)한국에 대한 침공을 용인하는 것은 3차대전발발의 요인이 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중의 한 사람이다.미국의 세계적인 입장 때문에 박의장 방미를 전후해 양국간에 야기되는 문제가 있을 것이다.미국은 미국상품 구매정책을 강력히 주장할지도 모른다.한국의 소요문제도 잘 이해하는 바다.한국정부의 경제개발을 위한 결의를 지원할 뜻을 가지고 있고 한국을 원조할 준비도 갖추고 있음을 명백히한다. ▲최덕신외무장관=보도에 따르면 원조액이 대폭 삭감된다는 얘기가 있다. ▲러스크=미의회가 지원원조비를 대폭 삭감,케네디대통령도 실망하고 있다.개발차관의 희망은 크다.한국은 5개년 경제개발계획아래 실질적인 수출용 상품이나 용역을 어느정도 생산할 수 있나. ▲최덕신=60년 수준에서 1억달러를 벌고 있으며 대부분 원자재수출과 유엔군에 대한 용역과 군납을 통해서다.목표년도가 끝나면 3억1천만달러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러스크=한일회담이 조기에 성공한다면 다른 방법으로도 원조가 가능할것도 같다. ▲송요찬내각수반=미군사원조를 현재수준이라고 가정할 때 60만대군을 유지하려면 국방비부담의 자연증가 때문에 경제발전이 어렵다.우리의 희망은 59년수준 군유지비를 유지해주어야 하겠다는 것이다.박의장 방미시 2일간의 일정외에 실무자들이 계속남아 토의하는 것은 어떤가. ▲러스크=미국은 특수한 문제가 있으며 이번 같은 성질의 방문을 통해특정한 원조문제에 관련된 합의사항 발표를 원치않고 있다.박의장이 특정한 원조를 위해 방미한다는 인상을 주어서는 안된다.케네디대통령은 책임있는 대사를 통해 가장 유효하게 원조문제를 매듭짓길 원하고 있다. ▲송요찬=이런 식으로 가면 5개년 계획의 성공은 어렵고 장관께서는 조급해하지 말라고 했지만 우리는 시간적요소가 중요하다. ▷월남파병 관련문서·64년5월∼10월◁ ▲신상철 주월대사보고=주월미군 관할권은 완전히 미국에 귀속돼 있음.호주·뉴질랜드 훈련단등도 마찬가지임.대월남 지원에 대해 필리핀·노르웨이·일본·자유중국·서독등은 적절한 방도를 검토하고 있으며 네덜란드는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음.많은 의료인원을 파견하겠다는 국가는 한국뿐임.월남측에서는 한국측에 DC­3여객기의 승무원파견을 요청했음.월남에서의 작전권은 미군에 속하지 않고 월남이 갖고 있음.주둔군지위문제와 관련해 특정한 협정은 맺지 않아도 좋을 것임.미군이나 호주군등의 전례를 따라야 할 것임. ▲한­월양해서한(한국지원단의 지위규정)=한국지원단은 호주훈련단 및 뉴질랜드 공병단과 다름없음을 확인한다.호주훈련단의 지휘권은 호주에 있다.호주군 및 뉴질랜드군에 대해서는 미군에게 허여된 것과 같은 특권과 문제를 허여키로 돼 있다. ▲월남지원단의 명칭논란=외무부는 「파월한국원조단」이라는 식으로 군사적인 면에 한정하는 것을 꺼렸으며 국방부는 당초 월남측에 대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군사적인 성격을 강조,「한국군사원조단」으로 하자고 맞섰다.외무부는 지원단이 외교관의 특권을 적용받으려면 협정문 해석상 『광의로 만들어야 한다』고 계속 버티다 국방부 주장에 밀려 「한국육군지원단」으로 협정문 초안을 작성했다. 그러나 국방부는 다시『「육군지원단」이 군사상 협소한 인상을 준다』며 「한국군사원조단」을 고집,결국 국방부안으로 통과됐다. ▲「군사원조단」의 지휘체계논란=국방부는 당초 외무부가 교섭권등을 이유로 주월대사가 지휘권을 가져야한다고 주장한데 대해 『이는 군통수및 지휘체계상 있을 수 없다』며 국방부의 지휘감독아래 둘것을 주장,관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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