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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속에 비친 ‘너무나 통속적인’ 미 대통령

    ◎신성한 인물 아닌 호색한·모략가/절대권력·삼원색 등 새 영화 러시/클린턴 대통령 ‘행실’ 영향 분석도 【워싱턴=김재영 특파원】 대통령제를 창시한 미국에서 영화 속의 대통령이 예전과는 달리 몰라보게 통속적이 되고 있다.이를 인간적으로 보는 사람도 많다. 미국 영화 속에서 대통령은 통속적이지 않고 되도록 신성하게 그려지는 게 보통이었다.이는 물론 관람 대상자들의 심리를 간파한 흥행적 고려에 따른 것이다.그런데 최근 영화 소재로서 대통령을 활용하는 방향과 태도에 큰 변화가 생겼다.이같은 변화는 장사속도 장사속이지만 최근 백악관이 보인 저간의 행태와 무관하지 않다고 최근 타임지는 분석하고 있다. 미국 영화중에는 정계의 흑막과 부패를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파헤친 잘된 영화도 드물지 않다.그래서 미국 영화를 ‘정신’이라곤 없는 흥행 위주의 오락물이라고 한마디로 말하기가 어려운 것인데 이런 부패 실상 영화에서도 대통령이나 백악관 만은 신성한 면모가 그대로 보전되곤 한다.물론 닉슨 대통령의 워터게이트 스캔들을 다룬‘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처럼 대통령이 진짜 악한으로 묘사된 예가 없는 것은 아니다.그러나 예컨대 인간적으로는 이해가 가지만 뭔가 도덕적으로 흠이 있는 주인공이 백악관을 차지하기 위해 정치적 야망을 추구한다는 스토리라면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이를 포기하는 것이 당연한 순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연찮게 스캔들 많은 클린턴 대통령이 백악관을 차지하면서 미국의 대통령이 영화 속에서 이상하게 변질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미국 대통령이 만화 속에나 나올 액션영웅이나 음란물에 나올 색정광으로 묘사된다면서 타임지는 “백악관이 플레이보이의 대저택과 드라큘라의 성채 사이의 교차로에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영화 ‘개 꼬리를 흔들어라’에서는 대통령이 미성년 소녀와의 섹스 스캔들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쟁을 시도하고,‘절대권력’에서는 대통령이 외간 여자와 너무 격렬한 정사를 하다 문제가 돼 경호원이 이 여자를 죽이는 내용을 담고 있다.액션스타류로는 대통령이 몸으로 직접 악당들을 물리치는 ‘에어포스 원’과 ‘인디펜던스 데이’를 금방 떠올릴 수 있다. 이런 경향과 관련,내주에 개봉될 ‘삼원색’이란 영화에 특별한 관심이 집중된다.클린턴 대통령의 92년 대통령선거 운동과정을 그린 정치풍자소설을 영화로 만든 것인데,클린턴처럼 장점과 약점이 뒤범벅된 천생의 정치가가 감탄스러운 투지 뿐 아니라 비판의 여지가 있는 술수를 사양치 않으면서 백악관 입성을 노린다는 내용이다.모델이 클린턴이라 색정광적 색채가 없진 않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미 대통령이 어느 때보다 ‘살과 뼈가 있는’ 인간으로 그려진다는 점이다.타임지는 클린턴역을 맡은 존 트라볼타를 표지 인물로 내세우면서 미국인들이 ‘삼원색’의 대통령을 신성이 모자라고 품격이 떨어지는 ‘통속적’ 인물로 볼지,아니면 보다 ‘인간적인’ 주인공으로 환영할지 주목된다고 말해 실제 클린턴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상기시킨다.
  • 허영의 역사/존 우드퍼드 지음(화제의 책)

    ◎에피소드로 다룬 인간의 허영심 인간의 허영은 거울 속에 비친 제 모습을 사랑하면서부터 시작된다.그 대표적인 예가 나르시스다.그리스 신화 가운데 가장 불행한 인물로 꼽히는 나르시스는 연못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해 눈물겨운 사랑을 하다가 끝내는 죽고 만다.이러한 나르시시즘의 정체가 바로 허영심이다.이 책에서는 인간을 옥죄는 미망과도 같은 허영심의 역사를 에피소드 중심으로 다룬다.인간의 허영심은 자기도취가 고개를 내미는 지점에서 싹튼다.그것은 문학작품의 단골 메뉴이기도 하다.오스카 와일드가 그린 소년 도리언그레이나 제인 오스틴의 ‘설득’에 나오는 월터 엘리어트 경,앤소니 트롤로프의 소설에 등장하는 야심만만한 목사 슬럽 등은 연민의 감정까지 자아낸다.이 책에서는 또 인간의 언어에 관한 ‘계급의식적’인 허영을 중세 영국의 시인 초서를 인용해 살핀다.초서가 그린 여자 수도원장이나 에글라틴 부인은 교회에서 ‘품위 있는 콧소리로 노래를 부르고’,프랑스 말처럼 툭툭끊어서 발음해 스스로 높아진 신분을 과시한다.될수 있는 한 대화 중간에 프랑스어로 된 토막말을 많이 써 멋을 부리는 상류계급의 허영은 이처럼 그 역사가 자못 깊다.또 한 예로 영국의 빅토리아여왕은 편지를 모두 이런 식으로 치장한 것으로 유명하다.가령 누군가의 집을 묘사하면서 ‘un vrai bijou(진짜 보석)’라고 하는 식이었다.연못 위의 백조들이 우아한 자태를 뽐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물속에서 허우적 거려야 한다.이와 마찬가지로 허영에 찬 인간들은 자신의 멋부림을 만족시키기 위해 처절하게 발버둥쳐야 했다.이 책은 그동안 밝혀지지 않았던 아름다움의 또 다른 정체,그것을 담아내 오늘의 교훈으로 삼는 데 초점을 맞춘다.여을환 옮김 세종서적 7천500원
  • 인도 카주라호 사원(세계 문화유산 순례:65)

    ◎찬델라왕조 100년 걸처 지은 힌두신의 ‘성전’/950년부터 85개 사원 건립… 현재 22개만 온존/사원 벽면에 조각한 미투나상 ‘관능미의 극치’ 힌두교 신들의 속성은 종종 인간의 동물적인 본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으로 드러난다.그러한 힌두 신들은 의인적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반인반수적이라고 부르는 게 더 어울린다.한 예로 힌두교의 신 시바는 마치 고대 그리스의 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곡 ‘개구리’에 나오는 주신 디오니소스처럼 욕망과 결점을 지닌 과장된 거인이자 주술사로 등장한다.‘문화적 갑옷’이라곤 전혀 걸치지 않은 순수한 원초적 감정의 결정체로서의 힌두 신.그 신들의 은밀한 속살까지 고스란히 엿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인도의 카주라호 사원이다. 카주라호는 인도 북부 마디야프라데시 주의 북단에 위치한 궁벽한 시골마을이다.인구 7천명이 조금 넘는 이 마을은 해가 지면 근처의 정글에서 원숭이 울음소리가 들려올 정도로 외진 곳이다.그러나 오늘날 카주라호는 인도의 대표적인 유적지 가운데 하나로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그곳에 찬란한 ‘성의 신전’ 카주라호 사원이 있기 때문이다.카주라호 사원은 지난 86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인도­아리안양식 석조물 카주라호 사원은 ‘달의 신’ 찬드라의 자손이 세웠다는 인도의 찬델라 왕조가 서기 950년부터 1050년 사이에 건립한 인도­아리안 양식의 석조사원이다.전성기에는 85개의 사원이 있었지만 14세기 이슬람 교도의 지배아래 들면서 파괴돼 현재는 22개만 남아있다.카주라호의 사원군은 시가지를 중심으로 서군과 동군,그리고 남군으로 나뉜다.이 가운데 특히 이목을 끄는 곳은 서군으로 가장 많은 사원이 보존돼 있다.카주라호 사원중 제일 큰 높이 31m의 칸다리아 마하데바 사원을 비롯해 공포의 여신 칼리에게 바쳐진 차운사나트 요기니 사원,시바와 파르바티 부부상이 새겨진 데비 자가담바 사원,시바신이 타고 다닌다는 황소 난디가 새겨진 비슈바나트 사원,태양신 수르야를 모신 치트라굽타 사원 등 특징적인 사원들은 모두 이곳에 몰려 있다. 카주라호의 사원은 화강암으로 된차운사나트 요기니 사원을 빼고는 모두 사암으로 만들어졌다.이곳에서 20여㎞ 떨어진 켄강에서 캐낸 것이라는 이 사암은 분홍색,황갈색 등 색깔도 가지각색이다.그러나 카주라호 사원 외벽은 세월의 무게를 말해주듯 군데군데 거무스름하게 빛이 바래 안타까움을 안겨줬다.그런 곳엔 으레 찌든 때를 벗겨내는 ‘사원지기’들이 있었다.그들의 눈동자엔 하나같이 신심이 가득했다.하루종일 야자나무 솔에 암모니아수를 묻혀 검댕을 닦아내는 것이 그들의 ‘소명’이다. 카주라호 사원을 카주라호 사원이게 하는 것은 바로 사원 외벽에 장식된 미투나상,곧 남녀교합상이다.‘에로틱 조각의 신천지’라는 말에 걸맞게 카주라호 사원의 수많은 나신들은 데칸고원의 대지 만큼이나 뜨거운 김을 내뿜고 있었다.카주라호 사원 가운데 예술적으로 가장 뛰어난 건축물로 꼽히는 칸다리아 마하데바 사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사원은 말끔하게 정돈된 잔디밭과 나직한 울타리가 어우러져 유적공원 같았다. 이름모를 새소리와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빨간 부겐빌리아 꽃 내음이 진동하는 사원은 마치 열락의 땅인양 평온했다.사원 바깥 벽에는 900개가 넘는 온갖 형상의 조각들이 빼곡히 새겨져 있었다. 그 중의 압권은 단연 관능미의 극치를 이룬 미투나상이었다.차오르는 만월처럼 풍염한 여인의 젖가슴과 봉곳하게 솟아오른 도발적인 히프,목 뒤에 입술을 살짝 갖다대면 발목까지 그대로 흘러내릴듯한 매끄러운 몸 선….미투나 상이 뿜어내는 관능은 더 이상의 비유를 허락치 않았다.오죽하면 마하트마 간디는 사랑의 행위를 적나라하게 묘사한 이 조각상들을 모두 부숴버리고 싶다고 했을까. 인도인들은 도대체 어떤 심경으로 신성한 사원에 이처럼 보기 민망한 상들을 새겨 놓았을까 궁금했다.순간 기자의 머리속에는 ‘북회귀선’의 작가 헨리 밀러의 말이 떠올랐다.“섹스는 환생해야 할 아홉가지 이유 중의 하나다…나머지 여덟가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밀러의 생각일 뿐.미투나상의 성결합 자세는 차라리 음양 에너지의 상징이자 정신적 생명력의 승화된 표현으로 다가왔다. ○신성한 사원에 나상 즐비 힌두들은금욕적이고 내세적이며 염세적이어서 현실을 부정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하지만 그것은 일면적인 고찰에 불과하다.그들은 쾌락을 인생의 목표로 삼지는 않지만 그것을 죄악시하지도 않는다.미투나 상은 기본적인 도덕률만 지키면 얼마든지 쾌락을 추구할 수 있다는 그들의 독특한 성관을 압축해 보여준다. 시가지에서 동쪽으로 뻗은 길을 따라가면 올드 카주라호 마을에 이른다.이 마을을 조금 지나면 동쪽 그룹 사원들을 볼 수 있다.이곳엔 파르스바나트·산티나트·아디나트 사원 등 3개의 자이나교 사원들이 한 데 모여 있다.이가운데 유난히 눈길을 끈 곳은 파르스바나트 사원이었다.이 사원 안에 있는 몽골리안 얼굴의 여인상은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 잔상을 남겼다.여기서 다시 남쪽으로 1㎞쯤 가면 카주라호 사원들 중 마지막으로 조성된 두라데오 사원이 모습을 드러낸다.전성기를 지나 쇠락한 기미는 있지만 이곳의 압사라 천녀상 만큼은 남부 그룹 사원의 백미로 일컬어질 만했다. 카주라호 사원의 관능적인 조각상들을 완상하기에 하루일정은 빠듯했다.어느덧 해는 기울고 사원 어깨 너머로 붉은 저녁노을이 물감처럼 번졌다.욕정의 파도가 물결치는 카주라호의 나상에도 희미한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어둠에 스러져가는 사원은 이제 원숭이들의 독천장.휘늘어진 고목 위를 무리지어 오르내리는 원숭이들은 사원의 터주대감이자 ‘하누만’신 바로 그것이었다. ◎여행가이드/델리∼바라나시 항공편/3월 전통무용 축제 볼만 카주라호는 한적한 시골 마을이지만 여행자들이 방문하기 쉽도록 교통편이 비교적 잘 되어 있다.비행기를 탈 경우 카주라호까지는 아그라나 바라나시에서 40분,델리에서 1시간 40분 가량 걸린다.공항에서 시내까지는 약 5㎞ 떨어져 있으며 택시밖에 다니지 않는다. 캘커타나 바라나시 방면에서 온다면 사트나에서 하차해 하루 4번씩 운행하는 버스편을 이용하는 게 편하다. 소요시간은 4시간 정도. 카주라호를 방문하는 데는 몬순 우기가 끝나는 9월부터 혹서기에 들기 전인 3월까지가 무난하다.특히 3월은 힌두사원을 배경으로 인도의 전통 민속무용을 선보이는 카주라호댄스 축제가 열리기 때문에 관광객들의 발길이 잦다.
  • 선거제도:상(대한민국 50년:10)

    ◎5·10 첫 총선 ‘애국심 투표율’ 95.5%/56년 3대 정·부통령선거 자유당서 불법 자행/60년 3·15땐 온갖 부정 총동원… 4·10혁명 유발 민주주의 발전은 선거의 성숙도와 정비례한다.헌정 초기에 성숙되지 못한 권력은 독재의 풍토를 조성했다.이는 급기야 부정선거를 초래했고 결과로 4·19혁명을 불러왔다.5·16군사 쿠데타와 유신헌법에 따른 기형적인 선거제도를 거쳐 드디어 97년에 이르러서야 여야 정권교체라는 최초의 민주적 선거혁명을 경험하게 됐다. 1947년 11월 14일.유엔총회에서는 ‘유엔 감시하에 남북한 총선거를 실시하고 그 국회가 정부를 수립케 하기 위해 유엔임시한국위원단을 파견한다’는 미국의 제안이 43대 0,기권 6으로 가결됐다.그러나 파견된 유엔한국위원단은 북한에 주둔한 소련 점령군의 방해로 남북 총선을 실시할 수 없음을 유엔에 보고했다.유엔은 1948년 2월6일,가능한 지역내의 선거 실시 권한을 한국위원단에 부여했고 이에 따라 역사적인 제헌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되게 됐다. ○26개 정당·단체서 1명씩 드디어 1948년 5월 10일.남북분단과 내전을 우려하는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총선이 실시됐다.당시 언론에는 ‘애국의 단심을 결집한 감격의 투표’ 등의 제목으로 분위기를 전했다. 이날 투표에는 7백84만871명의 유권자 가운데 7백48만7천649명이 참여해 95.5%라는 놀라운 투표율을 기록했다.첫 총선에는 무소속 417명을 비롯해 이승만의 대한독립촉성국민회 등 48개 정당 및 사회단체에서 모두 948명의 후보가 등록,평균 4.4대 1의 경쟁률을 나타냈다.이 가운데 단 한명의 입후보자를 가진 정당 단체도 무려 26개나 됐다. 유엔임시한국위원단은 이날 선거에 대해 “완전히 만족하지는 않으나 한국의 통일과 주권을 향한 일보의 진전이 될 것이며 투표과정도 대체로 원활히 진행됐다”고 유엔에 보고했다.미군정청의 하지 중장도 “한국의 자유선거는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이같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대구 광주 보성 화순 등 각지역에서는 좌익 등 남한 단독선거를 반대하는 세력들에 의해 통신망 파괴와 경찰서 습격,선거공무원 피살 등소란사태가 빚어졌다.당시 선거를 전후한 폭동 및 폭행사건 등은 총 1천47건으로 집계됐다. 선거 결과 정원 200명중 4·3민중항쟁으로 제주도 2개구가 제외되어 198명이 당선됐으며 북한을 위해 100석은 유보시켰다.정당별 분포에서는 무소속이 85석을 차지했으며 다음으로 이승만의 대한독립촉성회가 55석을 얻었다.김성수의 한국민주당이 29석,대동청년단 12석,조선민족청년단 6석,대한독립촉성농민총연맹 2석,대한노동총연맹 1석을 차지했다.김구의 한독당후보들은 무소속으로 출마해 30석을 얻었다. 초대 국회는 제헌헌법을 제정한뒤인 1948년 7월20일 상오 10시 신익희 국회부의장의 사회로 초대 대통령선거를 국회의원들의 간접선거로 실시했다.이승만 180표,김구 13표,안재홍 2표,무효 1표로 이승만을 초대 대통령에 선출했다.이어 부통령 선거에서는 이시영이 당선됐다. 38선에서 소규모 충돌사건이 자주 일어나고 5월 위기설이 정국을 불안케하는 가운데 1950년 5월30일,제2대 총선이 실시됐다.제2대 총선은 대한민국 정부 주관으로 실시한 첫 선거였다.6·25 한국전쟁의 와중에서도 선거는 실시됐다.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끝내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하는 발췌개헌안의 통과로 1952년 8월5일 제2대 대통령 및 부통령 선거가 실시돼 대통령에는 자유당의 이승만,부통령에는 무소속의 함태영이 당선됐다.직선제 대통령 선거는 이승만에게 독재의 길을 열어 주었다.이 선거에서 이승만정권은 야당에게 선거운동을 할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 선거 준비기간을 17일로 단축시켰다.당시 선거법은 선거일 40일전에 선거일자를 공고하도록 돼 있었으나 52년의 선거만은 예외규정을 두었다. ○유권자보다 많은 표도 1956년 5월 15일 치러진 제3대 대통령과 부통령 선거는 자유당에 의한 갖가지 관권선거와 부정선거가 자행됐다.선거 10일전 신익희 후보의 급작스런 사망으로 대통령에는 이승만 후보가 당선됐지만 부통령에는 자유당의 이기붕 후보를 누르고 민주당의 장면 후보가 당선됐다.이는 자유당 정권의 실정에 대해 제한적이나마 국민들의 심판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대중 민주주의의 발전으로 평가된다.‘못 살겠다 갈아보자’는 간결하면서도 핵심을 담은 민주당의 구호는 자유당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정서를 대변했다. 1960년 3월 15일 실시된 제4대 정·부통령 선거는 자유당의 집권 연장이냐,최초의 여야 정권교체냐 하는 갈림길이었다.이미 대통령선거에 앞서 58년 5월2일 실시된 총선에서는 정통야당 민주당의 승리로 끝났다. 대선에 앞서 1월 29일 민주당 대통령후보인 조병옥 박사가 신병 치료차 미국으로 떠나자 이승만 정부는 7월까지 여유가 있던 선거일자를 3월15일로 앞당겨 실시한다고 공고했다.조박사에게 선거운동 기간의 여유를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그러나 미국의 월터리드병원에 입원중이던 조박사는 2월15일 심장병으로 사망했고 야당에서 대통령후보를 내지못함에 따라 선거전은 부통령선거전 양상으로 변했다. 자유당은 이대통령이 후계자로 지목한 이기붕을,민주당은 장면을 각각 부통령후보로 내세웠다.선거전이 불꽃을 튀기는 가운데 이미 4·19의 전조들이 곳곳에서 불거져 나왔다.일요일인 2월 28일 대구 수성천변에서 열린 민주당의 정견발표회에학생들이 집결할 것을 우려해 당국은 학생들의 일요등교를 강행했다.이에 반발한 3백여명의 경북고 학생들은 학교를 뛰쳐나와 경북도청앞에서 시위를 벌여 주동학생 30여명이 구속됐다.3월5일과 14일에는 서울과 마산 등에서 소규모 학생시위가 잇따랐다. 3월15일.투표개시전에 4할의 무더기 투표가 나오는가 하면 투표함 검사를 거부하고 집단 대리투표를 하는 등 민주주의의 초석인 자유선거와 비밀선거는 완전히 파괴된 가운데 투표가 실시됐다.개표과정에서도 올빼미표가 등장했다.민주당의 투개표참관 포기로 투표와 개표를 마음대로 조작한 자유당은 이승만과 이기붕의 득표를 지나치게 많이 발표해 총유권자수를 초과하는 지역도 있었다.대구의 한 선거구에서는 이기붕이 5천표,장면이 32표로 발표된 곳도 있었다.이날 밤 자유당은 긴급 간부회의를 열어 이승만은 80%,이기붕은 70∼75% 정도로 지지율을 조정하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선거 결과를 믿는 국민들은 아무도 없었다.민심은 자유당을 떠났다.부정선거를 통해 국민들의 기본권을 유린당한 이승만정권은 결국 4·19학생의거로 역사의 뒷전으로 사라지는 종말을 맞았다. ◎여,50년 2대총선 야 중진 ‘좌경용공’ 조작/미 대사관 비밀 주간전문 ‘조인트위커’서 확인 선거에 있어서 상대를 음해하는 흑색선전은 우리의 선거사와 역사를 같이한다.최초의 총선에서 부터 가장 최근인 97년 12월 대선에까지 흑색선전은 여지없이 등장했다.주요선거때마다 ‘용공’문제가 이슈화됐으며 지난 대선때는 ‘북풍’문제로 까지 이어졌다.그러나 시민의식이 성숙되어가면서 흑색선전은 효과가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이는 우리 선거문화 발전의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주한 미대사관은 한국정부의 주도아래 처음으로 1950년 5월30일 치러진 제2대 총선에서 “윤치영 이범석 임영신 등 대한국민당 지도부가 야당인 민국당 중진들을 ‘좌경용공세력’으로 조작하여 결정적인 타격을 입혔다”고 본국에 보고하고 있다. 주요현안에 대한 사건보고와 논평을 담은 미대사관의 비밀 주간전문 조인트 위커(JOINT WEEKA)에는 “총선을 앞두고 한국정부와 정당들은 갈수록 공익과 신문 등에 신경을 쓰고 있다”면서 “상대당을 누르기 위한 루머도 난무하고 있다”고 당시 상황을 묘사했다. 미 대사관측은 “특히 민국당은 각 선거구에서 후보당 일백만원까지 지원해주었다.48년 선거때와 달리 민국당은 각 선거구마다 한 후보씩만을 지원하기로 계획하고 있다”고 보고했다.또 “대한국민당은 혼란을 야기하고 민국당을 누르기 위해 지역구마다 한사람의 후보를 지원하는데 덧붙여 70명정도의 ‘새도우’후보(비밀공천자)들을 지원한다는 소문을 냈다.따라서 적은 수의 후보를 미는 정당은 갈수록 줄어들었다”고 보고하고 있다.돈선거와 함께 상대당을 혼란시키고 같은 정당내에서도 서로를 의심케하기 위한 흑색선전이 동원됐다는 얘기다. 보고전문은 관권선거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경찰은 48년때와 마찬가지로 선거가 자유롭고 비밀리 진행될 것이라는 기대에도 불구하고,선거결과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라고 부정적인 견해를 나타냈다.
  • 생명력 넘치는 서울 밤 풍경/김승연씨 판화전

    서울의 밤 풍경이나 서구의 고건축물을 주로 작품에 담아 현실감과 생명력을 이끌어 내는 판화작가 김승연씨가 근작들을 보여주는 개인전을 11일부터 21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선화랑(734­0458)에서 갖는다. 김씨는 풍경이나 건축물을 아주 세밀하게 묘사하면서도 특정부분을 강조하거나 왜곡해 독특한 분위기를 이끌어 내는 기법의 판화작업에 치중해 오고 있는 작가.사진을 토대로 작업해 대상을 실물이나 실제 현장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분위기가 특징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극사실적 동판화 작업으로 서울의 밤 풍경을 묘사한 ‘야간 풍경’ 연작들을 보여준다.어두운 밤거리에 우뚝 솟아 있는 건물과 자동차의 물결·간판·골목길 등이 실제의 모습으로 등장해 살아 있는 삶의 현장 분위기를 전달하는 작품들이다.밤 풍경의 포근함과 함께 넘실대는 소비문화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생명감을 느낄 수 있는 근작들이다.
  • 춤추는 여신들/루치아노 데 크레센초 지음(화제의 책)

    ◎그리스신화 소재로 쓴 환상소설 트로이아 전쟁과 그리스 신화를 소재로 한 환상적 분위기의 소설.호메로스가 쓴 ‘일리아스’는 그리스 연합군의 사령관인 미케네의 아가멤논과 그리스군의 가장 용맹한 장수 아킬레우스의 언쟁으로부터 시작된다.이어 신들의 개입과 영웅들의 전투를 거쳐 트로이아의 장수 헥토르의 죽음으로 끝난다.이 작품에서도 대체적인 전쟁의 진행상황은 그대로다. 그러나 데 크레센초는 호메로스가 찬미한 신들과 영웅들을 오늘의 유머감각에 맞게 새롭게 해석,사뭇 경쾌하게 그린다.전략가인 오디세우스가 스포츠와는 거리가 먼 사람으로 묘사되는가 하면,보잘것없는 말썽꾼 테르시테스는 영웅의 시대를 거부하는 평화주의자요 양심의 소리로 다시 태어난다. 심지어저 세기의 여인 헬레네는 더이상 아름다움의 상징이 아니라 ‘창녀’로 묘사된다. 이 소설의 또 하나의 축은 그리스 신들의 이야기다.아르고나우테스들의 원정,멧돼지 칼레도니오스 사냥,아마조네스 여인족 이야기,트로이아 전쟁의 원인이 된 펠레우스와 테티스의 결혼식과불화의 여인 에리스의 분노,헬레네를 납치한 트로이아의 왕자 파리스의 탄생과 성장,크레타 섬을 지키는 청동인간 탈로스,제물로 바쳐진 아가멤논의 딸 이피게네이아의 이야기 등이 펼쳐진다.그러나 신화의 주인공들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크로노스와 레아의 아들 제우스를 방탕아로 묘사한 것이 그 두드러진 예다. 이 작품은 독자들을 기원전 12세기의 세계로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헬레네와 아가멤논,오디세우스 나아가 호메로스까지 오늘의 나폴리로 인도한다.이것이야말로 고대의 신화와 철학을 결코 지루하지 않게 이야기하는 작가의 비방이다.데 크레센초는 말한다.“신화는 인류가 가장 먼저 개발한 공연예술”이라고.김홍래 옮김 리브로 1만원
  • 영 윈저 왕가의 내밀한 이야기/미 전기작가 키티 켈리의‘로열스’

    ◎1917년부터 80년간의 다큐멘터리 왕실사/찰스­다이애나의 파경 등 가감없이 기록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공립학교에 다니지 않았다.가정교사에게 하루 한시간씩 영국사와 문장학을 배웠을 뿐이다. 때문에 수학이나 과학에 약했고 자연계에 관해서는 개와 말밖에 몰랐다.그녀는 러드야드 키플링과 알프레드 테니슨의 시를 제외한 그밖의 모든 시들을 싫어했다.어느날 그녀는 이탈리아 시인 단테에 대해 ‘단테란 말(마)의 이름?’이라고 물었다” 영국 윈저 왕가의 내밀한 이야기를 다룬 역사 다큐멘터리 ‘로열스’(전2권,키티 켈리 지음·이종인 옮김)가 도서출판 동방미디어에서 나왔다. 키티 켈리는 ‘낸시 레이건:비공식 전기’ 등의 작품으로 잘 알려진 미국의 베스트셀러 전기작가.켈리는 금세기 들어 윈저 왕가는 비영웅적일 뿐아니라 결손가정화해 ‘미디어를 위한 인형극’으로 전락했다고 꼬집는다. 이 책은 1917년에서 1997년에 이르기까지 80년의 영국왕실사를 다룬다.1917년,독일을 미워하는 영국의 국민정서를 잘 알고 있던 영국왕 조지 5세는 자신의 독일 뿌리를 감추기 위해 왕가의 이름을 하노버에서 윈저로 바꿨다.그는 하룻밤 사이에 바텐베르크,메클렌베르크­스트렐리츠,헤세,베틴 등 독일계 가문의 이름을 왕가의 계통에서 박탈해버리고 영국 이름과 타이틀을 만들어 넣었다. 켈리는 이 책에서 훗날 윈저 공작이 된 에드워드 8세의 느닷없는 양위와 그 뒤를 이어 동생 앨버트 왕자가 조지 6세로 등극하는 과정을 그린다.그리고 영국 왕실에 커다란 안정을 가져온 엘리자베스 왕비를 묘사한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어머니,곧 현재의 ‘퀸 마더(Queen Mother)’는 영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인물 중의 하나다.켈리는 우아한 미소에 강철같은 성품을 지닌 퀸 마더의 생생한 초상을 제시한다. 퀸 마더는 비록 평민 출신이지만 2차대전 당시의 런던 공습때 대피하지 않고 런던에 그대로 체류,왕가의 체통을 지켜 온 국민의 존경을 받았다.켈리는 퀸 마더의 출생을 둘러싼 신비를 밝히고 인공수정으로 두 딸을 낳게된 내막도 폭로해 눈길을 끈다. 켈리는 또 조지 6세의 장녀인 엘리자베스 2세의 외로운 유년시절과에든버러공 필립과의 결혼,1952년 아버지의 급서로 인한 갑작스런 등극 등을 상세히 다룬다.켈리가 엘리자베스 2세의 생활에 대해 밝힌 구체적인 사항들 중에는 여왕이 냉정하고 무심한 어머니였다는 내용도 있어 자못 충격적이다.그에 의하면 윈저 왕가의 파탄은 여왕이 기능부전한 어머니였다는 사실에 상당부분 그 원인이 있다. 여왕의 네 자녀 중 셋은 이혼했고 나머지 한명인 막내는 아직 결혼을 하지 않고 있다.바람둥이 남편인 필립 공,속만 썩이는 동생 마거릿 공주, 우유부단한 아들 찰스 왕세자,뻣세기가 남자 못지않은 앤 공주,왕족이 아닌 평민계급에서 데려온 두 며느리 다이애나 스펜서와 사라 퍼거슨….그러나 엘리자베스 여왕은 이 모든 풍상을 헤치고 이제 2002년 대망의 즉위 50주년을 기다리고 있다. 이 책은 여왕의 부군으로 여왕의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왕궁내의 실세’ 필립 공에 대해서도 생생하게 묘사한다.켈리는 필립공이 아직도 가장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말한다.이 책의 후반에서는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의 파경,둘째 며느리인 요크 공작부인 사라 퍼거슨의 이해할 수 없는 음란한 행동 등을 가감없이 다룬다.이 책은 영국 왕실도 이혼과 결손가정의 증가라는 영국적 사회현상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왕세자비 다이애나의 비극적인 죽음으로 윈저 왕가는 또다시 위기의 시대를 맞았다.왕가를 ‘재창건’해야하는 과업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엘리자베스 여왕­찰스 왕세자­윌리엄 왕세손으로 이어지는 지금의 영국 왕실 상황은 빅토리아 여왕­에드워드 왕자­조지 왕세손으로 이어지는 1900년의 빅토리아 말기와 비슷하다.모후인 빅토리아 여왕 사후 에드워드 7세가 왕위에 올랐을 때,그는 이미 59세의 나이로 평생 여자들의 품에 안겨 샴페인이나 마시며 인생을 탕진한 사람이었다.그가 즉위한지 10년도 못돼 죽자 조지왕자는 조지 5세로 등극,윈저 왕가를 창건했다.영국 왕실은 이제 100년 세월의 간격을 두고 똑같은 운명을 맞고 있다.영국 왕실은 과연 ‘스캔들의 궁전’인가. 그러나 영국 왕실은 그 많은 스캔들과 결점에도 불구하고 역경과 비난을 견뎌내는놀라운 능력을 보여왔다.켈리는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1천200년 역사의 영국 군주제는 이제 신과 같은 광휘가 부식되었고 또 위축될대로 위축돼 수모를 겪고 있다.그렇지만 장엄함에 대한 매혹과 새로워진 왕권에 대한 희망은 여전히 영국 사람들의 마음 속에 남아 있다”
  • 20세기의 문명과 야만/이삼성 지음(화제의 책)

    ◎사회정치적 제도 문제로 파악한 전쟁 전쟁의 폭력과 야만을 둘러싼 문제들을 중심으로 20세기 문명을 해부한 연구서.도서출판 한길사가 국내 학계의 인문학 연구성과를 집대성하기 위해 기획한 ‘한길신인문총서’의 첫권으로 나왔다.미국의 대외정책 등에 관해 왕성한 연구·저작활동을 보여온 지은이(가톨릭대 국제학부 교수)는 이 책에서 전쟁을 우주론적·생물학적 관점에서 보지 않고 역사와 사회정치적 제도의 문제로 파악한다.전쟁과 평화의 문제는 운명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인간과 집단이 선택한 일련의 역사적 결과라는 것이다. 전쟁이 단순한 힘과 힘의 대결에 그치지 않고 제노사이드,즉 특정 인종이나 민족에 대한 계획적인 집단 대학살의 비극을 불러오게 된 데는 ‘기억의 정치(politics of memory)’가 개입되어 있다는 것이 이교수의 설명.여기서기억의 정치란 집단적인 기억의 망각과 왜곡,부인,조작의 정치를 뜻한다.정치적 신화의 창조 같은 것이 그에 속한다.이교수는 2차세계대전의 홀로코스트(대학살)에서 보스니아와 르완다의 비극에 이르기까지 20세기 제노사이드의 비극은 인간의 집단적 역사의식이 왜곡,은폐,과장,축소된 데서 비롯된 것이라는 견해를 밝힌다. 나아가 독일인들이 2차세계대전 이후 나치즘의 시대를 ‘히틀러의 시대’로 묘사하는 것은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히틀러 개인의 문제로 환원시키려는 집단적인 기억의 정치가 작용한 탓이라는 미국의 정치학자 허버트 허시의 비판도 소개한다.이 책에서 다루는 또 하나의 주요 주제는 핵과 국제정치질서의 문제다.도구적 이성이 합리적 이성에 의해 통제되지 못한 상태에서 핵문제가 여전히 강대국의 논리로 이해되거나 약소국 혹은 일부 반미 ‘일탈국가’의 문제로만 인식돼서는 안된다는 게 이교수의 지적이다.한길사 2만원.
  • “미 무역적자는 경기회복 요인”

    ◎타국에 시장개방 요구 자료도 활용/낮은 국내 저축률 외자로 보충 가능 【워싱턴〓김재영 특파원】 지난해 미국은 1천2백억달러에 가까운 무역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한국같으면 국가적 위기로 정부,민간 할 것 없이 초비상이 걸릴 문제이겠으나 미국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물론 미 무역대표부나 보호주의적 노선의 의원들은 다른 나라에 시장개방을 요구할 수 있는 둘도 없이 좋은 자료로서 두고두고 요긴하게 써먹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거의 모든 경제학자들은 이 무역적자를 ‘걱정할 일이 아니라 오히려 기뻐해야 할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미국의 유에스뉴스 앤드 월드리포트지 최근호는 전한다. 미국은 7년 호황을 구가하는 데 그치지 않고 경제 속 내용들이 이상형에 가깝게 아주 좋다.‘열반’의 경지라고 묘사되곤 하는데,엄청난 무역적자가 이 경지를 깨뜨리는 방해물이 아니고 이에 어울리는 현상이라고 경제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상품이 얼마나 좋으냐에 의해서 한나라의 무역균형이 결정되는 건아니다.무역수지는 대국적으로 보면 저축과 투자액의 차이의 함수라는 것이다. 기업의 투자재원은 한나라의 국내저축인데 국가경제 전체로 저축이 투자하려는 액수에 못 미칠 때는 외국의 저축에서 빌려 그 차액을 메꾸고자 한다.저축이 부족한 미국이 다른 나라에서 이를 빌린다 치자.이때 그 외국은 어디서 저축을 이루는가.자국 투자용 말고 미국에 빌려줄 가외의 저축을 이루기 위해 외국은 수입보다 수출이 커야만 한다.미국측으로 보아선 무역적자이나,더 들여다보면 국내저축을 웃도는 투자를 뜻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정부 쪽에서 재정적자 문제를 해결했고,기업 쪽에서 경쟁력을 회복했다.기업의 투자는 급증해 경기확장세를 밀고 가고 있으나 민간저축은 계속 낮다.투자재원이 어떻게든 조달되지 않으면 안된다.그러므로 “저축을 별로하지 않는 상황에서 무역적자는 좋은 것이다”라고 하버드대의 그레고리 맨키 교수는 설명하고 있다.
  • 야당세력의 형성(대한민국 50년:8)

    ◎48년 8월 한민당 “이승만정권에 투쟁” 선포/조각 배분 푸대접 받자 초대총리 지명 인준 부결/보수세력에 지나치게 기대 ‘보수야당’ 성격 고착 이승만정권에 대응한 야당세력의 출현은 바로 한국민주당에서 비롯된다. 한민당은 미군정기인 45년 9월16일 좌우대립속에서 지주세력 등 우익측 인사들로 결성된 보수반공연합체 정당으로 출발했다. 중경의 임시정부를 정통정부로 추대하고,여운형을 중심으로 한 건국준비위원회의 인민공화국 타도를 모토로 내걸었다. 한민당은 창당 당시에는 이승만 김구 김규식 등의 임정요인들을 지지하고 이들과 함께 반탁운동을 전개했으나 김구 등 임정세력들과의 노선차이로 결별했다. ○건국까지는 손발 맞춰 그러나 단독정부수립을 주장한 이승만과 한민당은 손발을 맞춰 건국까지 이끈다.이승만과 한민당의 관계는 ‘정약결혼’이라는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이승만은 그들의 국내 지지기반이 필요했고 대신 한민당은 이정권에서 권력을 주도하려는 야심이 있었던 것이다.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귀국한 이승만은정약결혼속에서도 내심 ‘친일정당’으로 비판받던 한민당과 계속 제휴하는 것은 자신의 노선까지도 손상받을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48년 7월20일 제헌국회에서 내각제를 대통령제로 바꿔 초대 대통령에 당선된 이승만은 바로 조각작업에 착수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하나씩 드러냈다. 먼저 한민당이 국무총리로 내세운 당위원장 김성수안을 거부하고 조선민주당 부당수였던 이윤영을 총리로 지명,국회인준을 요구했다. 이에 한민당도 기다렸다는듯 즉각 인준을 부결시켰으며,결국 이범석을 총리로 지명해 인준받은 이승만은 김도연에게 재무장관 자리 하나를 주는 것으로 한민당의 조각참여를 제한했다. 한민당은 이 사건을 ‘이승만의 배신’으로 간주하고 자연스럽게 야당의 길로 전향했다.한민당의 이승만에 대한 불만은 48년 8월8일 발표한 성명에 잘 나타나있다. 이 성명은 ‘…본당원으로서 정부에 국무위원으로 입각한 사람은 김도연 1인뿐이어서 극히 빈약하다.본당은 신정부에 대해 시시비비주의로써 임할 것은 물론이거니와…”라고 주장해 이승만정권에 대한 투쟁을 선포한 것이다. 한민당은 본격 야당으로 강화하기 위해 대한국민당의 신익희 세력 등을 규합,민주국민당(민국당)을 창당하기에 이른다. 따라서 한민당은 창당 3년4개월만인 49년 1월26일 자연해체하게 되고 49년 2월10일에는 민국당으로 자리잡게 된다. 민국당은 이어 정부12개부처의 각료중 7명이나 차지해 세를 불려나갔으나 이승만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기 위해서는 내각책임제 개헌밖에 없다고 여겨 이를 서두르기 시작했다. 민국당은 50년 1월 79명의 서명으로 된 내각책임제 개헌안을 국회에 제출했다.50년 3월14일 국회 본회의에서 내각책임제 개헌안이 표결에 부쳐졌으나 부결로 끝났다. ○49년 2월 민국당 창당 하지만 민국당은 동조자를 확보해 계속 이정권에 도전하는 공세를 펴나갔다.민국당 신익희의 국회의장직 진출로 민국당이 반 이승만세력을 한창 규합해 갈 즈음 6·25전쟁이 일어났다. 이로써 국회활동도 중단되고 정쟁은 사그러지는 듯 했으나 이승만측의 정권에 대한 욕심은 굳건했다.전쟁중에도 민국당이 차지한 의회를 거치지 않고 바로 선거를 치르기 위한 직선제 개헌에 불을 붙인 것이다. 그러나 이어 청·장년들을 강제징집·수용해놓고 간부들은 돈을 횡령한 ‘국민방위군사건’과 ‘거창양민학살사건’을 겪으며 정부불신임이 팽배해지면서 내각책임제 개헌안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이는 마침내 이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야당 국회의원들을 마구 잡아들인 ‘부산정치파동’으로 연결돼 반정부 물결이 거세게 일어났다. 당시 문헌들에서 한민당은 흔히 기본적인 자유와 인권의 수호자로,또한 이승만의 독재적인 행정부 권력에 맞서는 의회 특권의 수호자로 묘사돼있다. 그러나 한민당은 사실상 토지와 지방권력등을 대변하는 기관으로 군림했으며 재원의 분배와 부의 통제를 둘러싸고 중앙 행정권력과 투쟁을 벌일 뿐이었다. ○6·25중에도 개헌 추진 미 중앙정보국(CIA)은 당시 한국 국회를 대한민국 내의 ‘민주주의 정신의 터전’이고 흔히 입법부에서의 논의가 정부관리들과 가열된 공방을 야기시켰다고 파악했다. 그런데 이 국회가 ‘서구의회의 전형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멀며’ 집행부에 대해서는 전혀 효과적인 억제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승만의)‘보나파르티즘’(Bonapartism)에 어떤 장애도 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한민당은 민주국민당으로 변신해서도 국가관료의 고위지도부에 계속 참여했다.49년초 도지사,시장,군수등의 명단은 45∼46년 지방관리들의 명단과 놀라울 정도의 연속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한민당이 야당으로 자리매김했으면서도 이승만정권의 정책에는 동조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즉 한민당은 이승만의 보수주의적 반공노선에 동조함으로써 혁신 세력들을 견제할 수 있었던 것이다.그러면서도 자기 지분을 늘리기 위해 6·25전쟁의 소용돌이속에서도 의원내각제 개헌을 무리하게 추진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많은 한계를 드러냈다. 이는 CIA가 50년 당시 대한민국에서 ‘정치적 경쟁’은 ‘보수지도자들 사이에서만 존재했다’고 평가한데서도 알 수 있다. 한민당은 수많은 당명의 교체속에서도 현재까지 한국 야당의 명맥을 이어준 ‘뿌리’로 치부되고 있다.그러나 첫 야당이 보수세력에 지나치게 기댐으로써 지금까지 한국정치에서 야당의 성격을 보수로 규정하게 만드는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 ◎“야 한민당 관료기구 주도”/49년 미 관리 작성 ‘남한정세 조사’ 보고서 확인 이승만정권시기 관료기구에서 한민당의 주도성과 한계는 1949년 3월 미국관리 맥도널과 로지엘이 직접 대한민국 전역을 여행하며 작성한 ‘남한 정세의 조사’라는 보고서와 미국무부 문서 등 당시 문헌에서 발견할 수 있다. ‘남한 정세의 조사’에 따르면 당시 각 지역의 도지사·시장·군수 등은 1945∼46년 미군정기 지방관리와 거의 일치함을 보여준다.한민당이 이승만정권에 대한 투쟁을 선언했으면서도 관료기구를 주도했던 것이다. 한민당 후신인 민주국민당도 역시 ‘산업가 및 지주들’의 후원을 받는 ‘가장 크고 영향력 있는’ 정당이었다.따라서 이승만정권과 이들 야당세력 사이에는 ‘권력을 향한 경쟁 이외에는 모든 것이 부차적’이었으며 ‘내부 파벌투쟁 또한 강력해 하찮은 자극에도 당을 뛰쳐나가게’ 만들었다.이와 같은 상황에서 한국의 야당은권위주의적 통치권을 획득하려는 노력에 의해 움직여졌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체질적 요소가 이어져 왔다고 볼 수 있다. 미 공문서 기록관리청(NARA) 국무부 일반문서중 50년총선관련자료(Developments concerning the 1950 general election)에 따르면 당시 한국 정당의 정강은 유교체제탓인지 정부에 대해 온정적 시각을 담고 있다고 표현돼있다.게다가 당시 이는 정강자체는 의미없는 것으로 여겨져 부실한 정당정치를 알 수 있다.이들간에 이데올로기의 차이도 권력투쟁에 있어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민국당과 대한국민당 양대정당 사이의 주요한 이슈는 민국당이 행정부에 반대하고 국민당은 지지한다는 차이,그것으로 족했던 것이다.국민당 당수 윤치영도 주한미대사관 관리에게 개인적으로 “우리 당과 민국당의 위치에 큰 차이는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또 민국당은 자유주의를 공언했으나 산업가,지주 등의 지지를 등에 업어 보수정당에서 한발짝도 나가지 못했다.
  • 작가 장정일씨 항소심 집유

    서울지법 형사항소1부(재판장 한정덕 부장판사)는 18일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를 펴내 1심에서 징역 10월을 선고받은 소설가 장정일 피고인(35)에 대한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음란문서 제조죄를 적용,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은 문제의 소설을 성에 대한 인습과 가부장적 권위주의에 도전하는 포르노그라피적 순수 문학 작품이라고 주장하나 38세 유부남과 18세 여고생이 벌이는 비정상적 성관계,집단 성교 장면 등 변태적 성행위를 노골적으로 묘사한 점에 비춰 죄가 인정된다”면서 “그러나 전업작가로서 나름대로 주제 의식을 전달하려 한 점과 음란 문제가 야기된 뒤책을 회수하려 노력한 점 등을 참작해 집행유예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 일 하이쿠 시인 바쇼 기행문 ‘오쿠로 가는 작은 길’

    ◎“가고오는 해 또한 나그네 나도 바람결에 이끌려 해변을 정처없이 거닐다가…”/6천리 여행길의 정취·깨우침 노래 일본 에도시대 전기의 하이쿠(배구) 작가 마츠오 바쇼(송미파초·1644∼1694)의 대표적인 기행문 ‘바쇼의 하이쿠 기행1­오쿠로 가는 작은 길’(바다출판사)이 전남대 일문과 김정례 교수의 번역으로 국내에 소개됐다.하이쿠는 5·7·5의 17음절로 구성된 일본 고유의 정형시.바쇼는 일본의 하이쿠를 대표하는 국민적 시인으로 그의 명성은 일본에 국한되지 않는다.20세기에 들어서서는 미국의 이미지즘 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스페인어권에도 광범위한 영향을 끼쳤다.노벨상 수상작가인 스페인의 대표적인 시인 옥타비오 파스는 ‘바쇼론’을 발표하기도 했다. ‘오쿠로 가는 작은 길’의 원제목은 ‘오쿠노 호소미치(오の세도)’.오쿠의 오솔길이란 뜻이다.이것은 일본의 동북지방에서 가장 큰 도시인 센다이(선대)시 교외에 있는 좁다란 길 이름에서 유래했다.이 책에는 1689년 바쇼가 그의 제자 소라(증량)과 함께 일본 동북지역,즉 오쿠(오)를 여행하면서 느낀 정취를 적은 산문과 하이쿠(배구)가 담겼다.바쇼는 지금의 도쿄 후카가와(심천)에서 호쿠로쿠로(북육로)를 따라 기후현(기부현) 오가키(대탄)에 이르는 6천여리,곧 2천400㎞의 거리를 다섯 달 이상 도보로 여행했다.일본문학에서 여행은 예로부터 많은 문인들이 관심을 가져온 소재다.특히 5·7·5·7·7의 31자로 된 일본의 전통시 와카(화가) 시인의 경우 그런 경향이 뚜렷하다.‘만엽집’에도 여행을 소재로 한 많은 기려의 와카가 있다.그러나 옛 문인들의 경우 여행 자체를 목적으로 일정 기간 이상 여행을 한 예는 매우 드물었다.대개는 정치 혹은 신앙상의 이유에서이거나 개인적인 이유가 많았다.바쇼가 흠모해 마지 않았던 중국의 두보나 이백,일본의 방랑문인 사이교(서행),소기(종기)도 여행 자체를 목적으로 한 경우는 드물었다.이에 비해 바쇼는 순수하게 여행을 위한 여행,예술적 실천으로서의 여행을 목표로 했다.‘방랑미학의 실천자’ 바쇼에게는 인생이 곧 여행이었으며여행은 곧 인생이었다.‘오쿠로 가는 작은 길’의 첫머리에 나오는 구절은 바쇼의 이러한 여행관을 분명히 보여준다. 표박생활로부터 느끼는 유혹은 바쇼를 끊임없이 객지로 내몰았다. 바쇼의 문학은 무소유를 지향한 걸식행각,은둔과 여행에 인생을 바친 탈속정신,그리고 그런 것들을 지지한 각 지방의 열렬한 문하생들과의 공감을 모태로 태어났다. 이 책에는 하이쿠의 문예적 특질에 관한 해설이 곁들여져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하이쿠에는 계절을 나타내는 시어인 기고(계어)와 시적 흐름을 안에서 끊는 역할을 하는 기레지(절れ자)가 들어 있다.전통적으로 와카가 정제된 시어로 잔잔한 세계를 지향하는 데 비해,하이쿠는 일상적인 언어로 자극적이고 새로운 세계를 추구한다.다시말해 하이쿠는 민중의 문예인 것이다.고작 5·7·5의 17자로 단절된 상태에서 하이쿠는 무엇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이런 관점에서 볼때 하이쿠의 특징은 무엇보다 ‘서술의 부정’에 있다고 할 수 있다.최단시형인 만큼 하이쿠는 묘사하지 않음으로써 묘사한 것 이상의 효과를 노리는, 이른바 선에서 말하는 ‘불언의 언’에 의존한다.어떤 주장이나 논리적 귀결점 따위는 독자에게 맡긴 채 하나의 작품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이다.“와카는 번뇌를 읊고 하이쿠는 깨달음을 읊는다”고 한 일본 근대의 대표적인 하이쿠 시인 다카하마 교시(고빈허자)의 말은 이런 특징을 잘 드러내 준다.프랑스의 평론가 롤랑 바르트는 그의 저서 ‘기호의 제국’에서 하이쿠에 대해 ‘가까이 하기 쉬운 세계’이지만 ‘아무 것도 말하려 하지 않는 이중의 성격을 지닌 문예’라고 말했다.하이쿠의 이런 이중성이야말로 일본문학 나아가 일본문화의 단면을 가장 잘 대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오쿠노 호소미치’는 ‘노자라시 기행(야ざらし기행)’‘오이노 고부미’와 함께 바쇼의 3대 기행문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이번에 소개되지 않은 ‘노자라시 기행’과 ‘오이노 고부미’는 오는 7월경 ‘바쇼의 하이쿠기행2’로 묶여져 나올 예정이다.
  • 떠오르는 태양의 전사들/로버트 B 에드거턴(미래를보는 세계의눈)

    ◎일은 책임있는 군사대국 될 것인가/군사력 급성장의 배경 면밀 분석/일왕 향한 맹목적 충성의식 해부도/“잔혹했던 과거사 잊지 말라” 일침 【뉴욕〓이건영 특파원】 일본은 ‘책임있는’ 군사강국이 될 수 있을 것인가.이 책은 21세기를 앞두고 중국과 함께 군사강국으로 재부상하고 있는 일본의 군사력 성장배경들을 면밀히 분석,책임있는 군사강국으로 탈바꿈하는데 필요한 안들을 제시하고 있다.일본 군사력의 성격변화에 대한 고찰을 통해 일본 군사력의 향후 위상도 함께 정립시켜 주고자 했다. 사회학·인류학적 관점에서 전쟁기록물을 써온 로버트 B.에드거턴(Robert B.Edgerton)은 ‘떠오르는 태양의 전사들’이라는 제목의 이 책에서 일본 군사력이 다른 나라와는 구분되는 변화과정을 거쳤음에 유의하면서 잔혹한 전쟁을 겪은 사실에 유의,이를 뼈아픈 교훈으로 삼을 것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UCLA의대 교수인 저자는 일본 군사력이 2차 세계대전 초기 8개월만에 동남아시아를 휩쓸고 호주의 문앞까지 점령할 수 있었던 것은 전략의 ‘단순성’에있다고 분석한다.일본은 1차 세계대전때처럼 뚜렷한 전선도 만들지 않고 ‘보이지 않는 적’으로 행동했다는 것이다.매복작전을 쓰다가 전투가 치열해지면 정글속으로 숨어버리는 단순한 전략을 동원했다.결과적으로 이같은 전략의 단순성이 일본군을 가공할 적으로 만들었으며 이로 인해 일본군의 잔혹성은 더해갔다고 지적하고 있다.연합군이 일본군의 초기 승전이후 일본군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실수를 저질러 일본군 ‘불패’의 신화를 만들어 준 것도 한 원인으로 들었다.한국과 중국에서 일본군이 행한 수많은 전쟁범죄와 인간 대상의 생체실험이 잔혹성의 좋은 사례라고 밝히고 있다. 저자는 일본 군사력의 잔혹성에 대해 분노하면서도 잔혹성 자체를 넘어 배경을 살피는 접근방법을 사용했다.‘사무라이’ 후예의 정신,즉 무사도를 신봉하고 있던 일본군은 1905년까지만 해도 중국·프랑스·러시아·영국,심지어 미국군보다 덜 야만적이었다는 사실에 저자는 주목했다.그는 무엇이 1905년 이후의 일본군을 변화시켰으며 장차 이런 변화가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 지를 설명한다. 에드거턴은 책 첫머리에서 1839년 중국의 아편전쟁 당시의 일본군의 행동을 영국·프랑스·이탈리아·독일·미국군의 행동과 비교,기술하면서 덜 야만적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중국이 홍콩 반환에 그토록 열중한 이유가 어두운 시대 서구로 부터 당한 고통에 대한 복수때문이라고 할 정도로 서구 군인들의 행동은 지극히 야만적이었다고 덧붙였다.중일전쟁과 러일전쟁의 묘사를 통해서도 일본군의 행동은 중국군과 러시아군에 비해 훨씬 인간적이었다고 적고 있다. 저자는 결론적으로 일본군이 변하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서양에 대한 일본의 반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못박고 있다.1905년 러일전쟁의 평화협정을 중재한 미국이 일본의 식민제국 강국으로의 등장을 막기 위해 일본의 점령지와 보상금을 가로챘다고 믿으면서부터 일본의 대 서양 반감은 증폭됐다고 분석했다.이런 이유로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일본군의 정신은 변모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문화를 전수해 준 중국에 열등의식을 갖고 있던 일본은 중국이 유럽과 싸우면서 보여준 허약성을 못마땅하게 여기기 시작했으며 이후에는 중국을 오히려 경멸하고 열등하게 생각했다.과학기술이 발달한 서구에 대한 존경심도 자신들이 군사산업기지들을 세우기 시작하면서 변했다고 말한다.일본의 학교·극장·언론들은 일본이 서구의 ‘야만인’들보다 낫다고 묘사하기 시작했으며,모든 선전문구와 만화들은 젊은이들에게 서양인들을 증오하도록 가르쳤다고 설명한다. 일본인들의 사고에 있어 이러한 변화는 특히 군대윤리를 바꿔 놓았다고 저자는 단언한다.군인들은 자신의 군대지도자와 군부대를 넘어 일왕에 대한 충성 일념으로 행동했으며,일왕 이외의 어떠한 권력도 용인하지 않았다는 것이다.‘일왕을 위해서’란 명분은 군의 민간인에 대한 야만적 잔혹행위의 책임을 면제해줬고,결국 잔혹행위가 이성을 지배하기에 이르렀다는 분석이다. 저자는 일본군은 러일전쟁 전만하더라도 국제법을 준수했지만 2차대전 중에는 자신들의 법만을 따르면서 잔혹행위를 서슴지 않았다고 기술하고 있다.일본 군대윤리에는 항복이란 없었기에 일본군들은 연합군 전쟁포로들을 마구 다루었고 자신들의 기준에 따라 죽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16세기 후반 이미 잘 훈련된 대군을 갖춰 마음만 먹었으면 세계 군사강국이 될 수 있었던 일본이 19세기 후반에 들어서 식민제국주의의 야심을 다른 강대국들보다 앞서 경제강국의 기반을 닦는데 사용한 ‘인내심’을 주시하고 있다.앞으로 일본의 경제력과 군사력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인가를 꼽씹게 하는 대목이다. 현재 일본은 세계에서 두번째로 많은 연 3백억달러의 국방비를 쓰고 있는 사실상의 군사강국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군사능력이 제한받고 있는 나라다.그렇지만 중국의 위협이 도사린 새로운 세계 질서속에서 일본 군사력은 다시 한번 부상할 것이 확실시 된다.바로 이 책이 주목받는 이유다.이 책은 다른 전쟁 관련 서적처럼 역사적 사실에 있어 몇가지의 오류를 범하고는 있지만 기록성이 높아 일본의 지도자들이 과거의 전쟁으로부터 배울 교훈 등 미래를 위한 여러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원제 Warriors Of The Rising Sun,384쪽, 더블유더블유 노턴 앤 컴퍼니(W.W.Norton & Company) 출간,29.95달러.
  • 시오노 나나미/신명나게 풀어 본 전쟁 3부작

    ◎콘스탄티노플 함락∼레판도 해전/문명간의 대결 균형있게 묘사/‘성자필쇠’의 잔잔한 역사 교훈 “…‘일리아스’를 통해 지중해 세계에 매료되었기에 전쟁을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여느 전쟁이 아니라,‘일리아스’에 묘사된 것 같은 다른 문명간의 대결로서의 전쟁을…” 일본태생의 재 이탈리아 여성작가 시오노 나나미(61)는 그의 나이 열여섯살에 품은 이꿈을 세개의 전쟁이야기에 담았다.‘콘스탄티노플 함락’‘로도스섬 공방전’‘레판토 해전’이 그것이다.시오노의 이 전쟁 3부작이 전쟁사 연구가 최은석씨의 번역으로 도서출판 한길사에서 나왔다. 시오노는 영국의 이른바 ‘내러티브 히스토리언(narrative historian)’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다.이는 굳이 우리말로 옮기자면 ‘이야기체 역사가’로 에드워드 기번·매콜리·칼라일·J.R.그린·트리벨리언·토인비·폴 케네디 등이 이에 속한다.요컨대 시오노는 기번을 비롯한 앵글로 색슨류의 역사서술 장르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할 수 있다.시오노의 글에서 드러나는 또하나의 두드러진 특색은 성자필쇠론이다.그의 이런 입장은 1천년 동안 공화제를 지키다가 1797년 나폴레옹의 말발굽 아래 사라져간 베네치아공화국의 멸망을 온갖 시련과 질병 끝에 천수를 다하고 죽는 인간의 자연사에 비유한 대목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이번에 소개된 전쟁 3부작에는 이러한 시오노의 역사인식이 극명하게 드러나 있다.시오노는 ‘전쟁’이야기를 다룰 때 가장 신명이 난다.그는 마치 진중의 야전사령관처럼 힘있게 전투의 고리들을 풀어간다.첫째권 ‘콘스탄티노플 함락’에서는 동로마 제국 비잔틴의 수도로 천년의 영광을 누려온 콘스탄티노플이 1453년 함락되기까지를 다룬다. 바빌론 붕괴나 트로이 멸망에 비견되기도 하는 콘스탄티노플 함락이야말로 작가 시오노의 상상력에 불을 붙이기에 충분한 소재.작가는 비극의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의 입장에서,때론 투르크의 술탄 메메트 2세의 진영에서,때론 베네치아의 젊은 의사 니콜로의 눈을 통해 전쟁을 그린다.또 어떤때는 베네치아의 해군장수 트레비사노의 흉중으로 살며시 들어가 그 운명의 실타래를 풀어젖힌다. 2부 ‘로도스섬 공방전’은 ‘서구문명의 총화’ 콘스탄티노플 함락 이후거대 동방제국을 형성하며 서진하던 오스만 투르크의 대제 술레이만 1세와 성 요한 기사단의 장렬한 공방전을 다룬다.에게해의 작은 섬 로도스는 이슬람 세계에 맞선 기독교 세계의 최전진기지.10만 군세로 밀고 들어오는 술레이만 1세의 물량작전과 이에 맞선 ‘몰락하는 계급’으로서의 기사들의 분전이 처절하도록 아름답게 그려진다.2부는 콘스탄티노플 함락과 레판토 해전 사이의 기간을 설명하는 막간극인 셈이다. 이어 3부작의 완결편인 ‘레판토 해전’에서는 문명의 교체기를 살다간 남자들의 이야기를 그린다.동지중해의 레판토 바다 위에서 목숨을 걸고 자신의 신념을 지켜낸 베네치아의 해군장수 바르바리고,불같은 성격의 베니에로,스페인의 왕자이자 오스트리아공으로 연합함대를 총지휘한 돈 후안,피흘리는 전장의 다른 편에서 피흘리지 않는 전쟁을 치러낸 콘스탄티노플 주재 베네치아대사 바르바로….작가는 더할나위 없이 다양한 인간군상의 삶을선명한 색깔로 되살려 낸다.3부의 압권은 펠리페 2세가 이끄는 서구 연합 함대가 1571년 동방의 무적 투르크를 격파하는 대목.콘스탄티노플 공략부터 헤아려 118년만에 대투르크제국이 품어온 지중해 세계 제패의 야망이 마침내 궤멸된 것이다.그러나 이와 함께 전쟁을 승리로 이끈 해양 도시국가 베네치아와 역사의 주무대였던 지중해의 해도 기울기 시작한다.바로 이 ‘결정적 전투’를 전환점으로 해 역사의 무대는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옮겨지고 만 것이다. 시오노는 지난 64년 이탈리아로 건너가 30년 넘게 그곳에 머물고 있다.그러나 그는 결코 기독교 문화에 무작정 빠져들지 않는다.그 한 예로 시오노는 ‘로마인 이야기’를 쓰면서 에드워드 기번을 포함한 후세 사가들의 로마사는 기독교인의 눈으로 본 역사라고 해서 대부분 참고문헌 목록에서 배제했다. 이 전쟁3부작 역시 이러한 엄정한 사관에 입각해 쓰여졌다.시오노의 전쟁3부작은 서구와 대치하는 이교도 문명,곧 이슬람 문명과의 충돌을 불편부당한 입장에서 다룸으로써 유럽의 역사를 객관적인거리에서 보게 한다.이것은 특히 유럽 중심의 세계사에 젖어 지낸 우리에게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역사평설가로서의 시오노 나나미는 역사를 심판하지 않는다.다만 역사과정을 추적할 뿐이다.
  • 이란 「페르세폴리스」(세계 문화유산 순례:61)

    ◎대평원 열주로 남은 페르시아수도/2,500년 전 다리우스대제가 세운 관성대도시/‘182년 영화’ 알렉산더대왕 말발굽에 폐허로 페르세폴리스는 기원전 2천500여년 전에 건설된 페르시아제국의 수도이다.인도­아리안계인 「파르스」족의 아케메네스 가문이 이룬 국가라 하여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제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첫 비행기를 타고 남쪽으로 2시간을 날면 고대 도시 시라즈에 도착하고,다시 자동차로 동쪽으로 1시간을 달리면 ‘타크트 에 잠시드’에 도착한다.아무도 대답해 주지 않는 페르세폴리스의 현지명이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늘어선 셀 수 없는 열주와 초석, 궁전터와 성벽계단,건물의 잔해들,궁전의 규모라기 보다는 궁성 대도시였다.고도 1500m의 황량한 평원에 끝없이 펼쳐지는 폐허의 잔해에서 묻혀지고 잊혀버린 페르시아 제국의 위용을 떠올리기는 힘들었다.역사의 상처마저 풍화되어 보는 이의 가슴을 친다.페르시아는 고대 아시아의 마지막 자존심이었고, 힘만 믿고 서양을 통째로 동양에 실어 날랐던 알렉산더의 도도한 물결에 정신적 가르침을 준 마지막 스승이었다. 페르세폴리스는 바로 그 동양적 정신의 심장부였다. ○각 국어로 새긴 ‘세계의 문’ 장엄한 도시 페르세폴리스는 기원전 518년 다리우스 대제에 의해 건설되었다.그리고 그 도시의 완성은 그후 100년이 더 지난 후였다.세계정부가 있던 곳이며,당시 지구상에 번성하던 모든 문화의 집결지였다.외국사신이 빈번히 내왕하고,동서양의 상인이 북적거렸다.중앙아시아에서 연결되는 육상 실크로드와 인도에서 건너오는 해로의 요지에 위치하여 풍부한 물자와 다양한 외국의 문물이 페르세폴리스를 살찌웠다. 사치와 향락,호화로운 파티가 연일 계속되었다. 그러나 페르세폴리스의 운명은 그렇게 길지 못했다. 기원전 330년 페르세폴리스에 도착한 알렉산더는 이 놀라운 아시아의 번성을 감당할 수 없었다.철저히 파괴하고 불태웠다.182년간의 짧은 생애였다.그리고 2천260년 동안 망각속에 있었다. 1931년 부터시카고 대학의 동양연구소 고고학 팀이 본격적인 발굴과 복원을 시작하면서 서서히 페르세폴리스의 역사적 의미는 되살아 났다. 페르세폴리스의 대표적인 건축물은 아파다나궁이다.왕들의 대접견장이었던 이 건물은 다리우스 대제때 시작하여 세르케스 왕때 완성되었다.지금은 72개의 기둥 중에 13개만 남아 있다.기둥과 벽면에는 부조가 조각되어 있어 당시의 역사적 편린을 엿볼 수 있다.상대적으로 조그맣게 새겨진 외국사신들이 손에 진상품을 가득 들고 커다랗게 묘사된 페르시아 왕들앞에 서있는 조각은 정말 사실감을 준다.사신들의 공손한 표정이며 왕의 근엄한 태도,날리는 옷자락에서 공물로 바쳐지는 동물들의 몸부림에 이르기까지 역동적인 한 편의 장대한 서사시가 전개된다. 어떻게 돌을 쪼아 저토록 선연하고 감동어린 조각을 만들 수 있을까?항상 그러하듯이 수천년전의 한 역사 유물에서 인간은 숙연함과 겸손을 배우게 된다. 페르세폴리스 건물 중 또 빼놓을 수 없는 가장 화려한 건물은 세르케스궁이다. 19m 42㎝ 높이의 1백개의 열주로 꾸며졌으나,이제 몇몇 기둥만이 그 흔적을 전해줄 뿐이다. 입구의 대문을 받치는 두 개의 큰 기둥에는인간의 모습을 한 황소가 조각되어 있다.11m 높이의 대문 위에는 엘람어와 아시리아어,페르시아어로 각각 ‘전세계의 문’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세계의 중심이라는 페르시아 국의 위용을 엿 볼수 있다.이곳의 기둥마다에도 쐐기문자로 새겨진 역사가 숨쉬고 있다.왕은 주로 세 가지 모습으로 묘사되었다.불을 모신 신전앞에서 기도하는 모습,옥좌에 앉아 있는 모습,또는 걷고 있는 모습들이다.부조의 양식들은 아시리아의 니네베 조각의 양식을 많이 닮아 있다.그러나 자세히 보니 약간의 차이도 보인다.권력과 신분에 따라 인물조각의 크기가 다르다.커다란 왕의 위엄앞에 보일락 말락하는 이름없는 백성의 표정이 인상적이다.특히 옷자락의 묘사에서 니네베 양식은 옷이사람 몸에 찰싹 들러붙어 있으나,이곳 페르세폴리스 양식은 옷이 살아 펄럭펄럭 날리고 있다.최고의 예술적인 조각기법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아파다나관 대표적 건물 신전은 불의 신인 아후라마즈다를 모셨다. 빛과 어둠,선과 악이 엮어내는 페르시아 사람들의 이원론적인 민간신앙이 조로아스터교로 성장했다.그리고 유대교에 직접 영향을 주어,오늘날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이원론적인 세계관이 완성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종교사 이야기이다.기원전 6세기말,페르시아의 창건자인 키루스는 바빌로니아를 멸망시키고,그곳에 포로로 잡혀있던 유대인을 무사히 이스라엘로 돌려보냈다.나아가 재정지원을 통해 예루살렘사원을 재건축하게 해주었다.그래서 히브리 성경에는 유대인 지도자에게도 좀처럼 부여하지 않았던 각별한 존경을 키루스에게 표하고 있다.신과 악마의 대결,천국의 보상과 지옥의 응징개념 등이 바빌론 유수 이후에 매우 뚜렷하게 나타난다. 페르세폴리스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마케도니아의 20대 청년 알렉산더의 광풍을 견딘 세력은 아무도 없었다.페르세폴리스를 불태운 알렉산더는 전군을 풀어 다리우스 3세를 추격했다.카스피해 연안까지 쫓긴 다리우스 3세는 박트리아 총독이었으며,자신의 후계자로 지목했던 베소스의 배반으로 비참하게 죽음을 맞는다.온 몸이 열 군데 이상 칼로 찔린 아시아의 대왕은 마케도니아의 한 병사의 눈에 발견된다.포로로 잡힌 다리우스는 그 병사로부터 한모금의 물을 받아 마신 후,조용히 눈을 감는다.기원전 330년 7월,막 해가 지는 시각이었다.대페르시아 제국도,그 수도였던 화려한 페르세폴리스도 이렇게 하여 기나긴 망각의 역사 속으로 묻혀갔다. ◎여행 가이드/테헤란∼인근 시라즈까지 비행기로 2시간 엄격한 이슬람 국가라 여행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지만,의외로 친절한 이란 사람들의 인간미와 철저한 치안으로,오히려 외국인들에게는 관광의 안전지대이다. 테헤란에서 국내선 비행기로 시라즈로 가서 그곳에서 자동차로 1시간 거리에 페르세폴리스가 있다.현지명이 타크트에 잠시드라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시라즈에는 호마호텔이 유명하다.관광안내는 이란 관광국 안내(892212)나 이란 관광정보센터(227072)로부터 얻을 수 있다.
  • 데리다와 해체주의/휴 J.실버만 엮음(화제의 책)

    ◎새 철학적 패러다임 ‘해체주의’ 고찰 데리다와 해체주의가 현대철학의 영역에 몰고온 새로운 철학적 패러다임을 고찰.데리다는 정통 프랑스인이라기 보다는 ‘아웃사이더’라는 점에서 사르트르나 푸코나 바르트와 같은 동료 프랑스인 석학들과는 얼마간 궤적을 달리한다.우선 데리다는 프랑스령 식민지였던 알제리아에서 태어난 유태계 프랑스인이다.그런 까닭에 그는 말 중심적이고 로고스 중심적이며 질서를 중시하는 헬레니즘적 세계관에 대항해,글과 비이성과 혼돈을 포용하는 헤브라이즘적 세계관을 제시하는 인물로 종종 묘사된다.그것은 마치 ‘오리엔탈리즘 이론’의 주창자인 팔레스타인인 비평가 에드워드 사이드의 경우처럼 그의 앎과 삶이 서로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이는 자신의 삶과 사상이 별개의 것으로 존재하는 현대의 많은 아류학자들과 크게 대비되는 점이다. 데리다는 ‘말’이 ‘글’보다 더 근원적 의미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서구의 오랜 통념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다.그는 ‘말’ 또한 ‘글’처럼 불완전한 2차 언어이며,서구인들이 ‘말’속에 현존해 있다고 믿어온 ‘근원적 의미’ 역시 처음부터 ‘부재’해 왔다고 말한다.그러므로 데리다에 의하면 우리가 ‘말’속에 현존해 있다고 착각하는 것은 ‘근원적 의미’ 그 자체가 아니라,다만 그것의 자취이자 모사일 뿐이라는 것이다.이 책은 바로 이러한 해체주의적 관점에서 데리다가 어떻게 철학사의 중요 인물들을 읽어냈는가를 고찰한다.특히 데리다가 깊은 연관을 맺고 그의 사유를 발전시켜온플라톤·마이스테르 에크하르트·엠마뉴엘 레비나스 등 12명의 철학자들과의 상호 영향관계를 깊이있게 살핀다.데리다의 철학적 사유를 지워버린 문학이론만으로서의 해체주의는 지나치게 피상적인 이해라는 게 이 책의 결론이다.윤호병 옮김 현대미학사 1만3천원.
  • 김홍도 ‘미인화장’의 여인(한국인의 얼굴)

    ◎경대 앞에서 화장하는 여인 그려/엉거주춤 자세 기묘한 행동 묘사 조선시대 풍속화 미인도 가운데 단원 김홍도의 것으로 보이는 작품도 전해오고 있다. 서울대박물관 소장한 이 미인도는 경대 앞에서 화장을 하는 여인을 묘사한 그림이다.왼쪽 윗모서리에 ‘단원이라는 사인글씨가 들어갔으나,도장은 찍지 않았다.그래서 먼저 전자를 앞 세우고 화제를 김홍도 ‘미인화장’으로 달아놓았다. 여인은 다소곳하기 보다는 좀 번잡스럽다.가채머리가 유난히 큰 여인은 숫제좋게 가랑이를 벌리고 앉았다.혼자만의 방이기는 하다.그러나 엉거주춤하고 가랑이 진 앉음새가 사번해 보이거니와,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그 자세로 얼굴을 거울속에 집어넣느라 상체가 왼쪽으로 기우뚱 휘었다.그리고 왼팔을 굽혀 소담한 가채를 떠받들 듯 매만진다.들어 올린 오른팔 역시 한껏 굽혀 손으로 가채끝을 잡았다. 얼굴 화장이 요란하다.호분을 짙게 칠한 여인의 눈초리는 온통 거울에 쏠렸다.얼굴이 본래 곱살했을 여인인데,호분을 두껍게 올리고 나서 눈썹을 갈매기 모양으로그렸다.붉은 입술을 너무 오므라뜨려 토라져 보이는 얼굴이 되었다.그러나 화장한 얼굴이 마음에 들어 안도하는 표정이다.이미 예고한 방문객의 인기척이 나면 용수철처럼 튀어나갈 채비는 다 차렸다.화장한 사연을 알만하다. 장안의 내노라 꼬리를 치는 기녀이거나 어느 한량의 작은집 소첩일 것이다.속곳 가랑이 한쪽을 드러낸 앉음새하고는 본데가 별로 없는 여인이기는 하나 얼굴이 그만큼 반반하면 남정네들 속깨나 태울만도 하다.오므라뜨린 작은입이나 너무 자그마하게 그려놓은 버선발을 보노라면 여인과 인연을 맺은 한량이 마음을 둔 데를 읽을 수 있다.거드름을 피우고 찾아와서는 막상 체면쯤은 접어 둘 한량은 여인을 또 품을 것이다. 앳되게 보이려고 그랬는지,주홍색 깃과 자죽색 끝동을 단 반회장 노랑색저고리를 입었다.갓 시집 온 각시들이 즐기는 노랑저고리를 입기는 했어도 치마를 추스린 품은 그렇지 않다.치마를 끌어올려 호리춤을 찔끈 동여맨 것이나,왼쪽 치마단을 걷어 올린 것은 여염집 규수의 꼴은 아닌 것이다.그래서 남에게 함부로 보이지 않던 여인들 속살격의 속치마와 단속곳까지 드러냈다. 그렇다고 단속곳이 속옷의 마지막이 아니였던 터라 여인은 방심했는지도 모른다.당시 조선의 여인들이 격식을 갖춘다면 8∼10가지의 속옷을 입었다고 한다. 가장 깊속한 속옷을 다리속곳이다.그리고 속속곳과 바지,고쟁이와 어른바지,단속솟과 속치마를 차례로 입었다.
  • 미 하원 “클린턴 탄핵 할수도”

    ◎‘성희롱 위증종용’ 수사 확대 …특검,백악관자료 요구/“클린턴,플라워스와 성관계 인정”/WP지 【워싱턴 AP AFP 연합】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이 전 백악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24)와 관계를 갖고 그녀에게 이에 관해 거짓 증언을 하도록 요청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공화당 의원들이 대통령에 대한 탄핵 가능성을 시사하는 등 성희롱 사건이 자칫 그의 정치 생명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될 전망이다. 화이트워터사건 특별검사이며 섹스 스캔들도 수사하고 있는 케네스 스타는 21일 클린턴 대통령이 폴라 존스 성희롱사건 재판과 관련,르윈스키에게 위증을 하도록 요청했는지 여부에 관해 수사를 확대했다. 특별검사실은 이와관련 백악관에 관련 서류 제출을 요구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그러나 자신이 르윈스키와 관계를 갖고 그녀에게 이에 대해 위증을 하도록 요청했다는 보도 내용을 전면 부인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그러나 폴라 존스 스캔들과 관련,지난 17일 있었던 비밀 증언 과정에서 르윈스키에게 개인적으로 선물한 사실을 인정했다고 22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특히 클린턴 대통령이 지난 70년대 제니퍼 플라원스와의 성관계 사실을 처음으로 인정했다고 전했다. 한편 헨리 하이드 하원 법사위원회 위원장은 CNN과의 회견에서 자신은 스타 검사의 수사 결과를 지켜보겠다고 말하고 혐의 내용이 사실로 입증되면 탄핵 절차를 밟는 것이 하나의 선택이 될 수도 있다고 밝혀 탄핵을 고려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하이드 위원장은 “증인에게 위증을 교사하고 사법부의 일을 방해하는 것은 중죄”라고 강조했다. 스타 검사는 린다 트립 전 백악관 보좌관이 이 일과 관련,르윈스키와 대화한 내용을 담은 녹음 테이프들을 입수했는데 이 테이프 속에는 르윈스키가 1년반에 걸쳐 계속된 대통령과의 정사에 대해 상세히 묘사한 내용이 들어있었다고 미국 언론들이 보도했다.
  • 자녀와 함께 역사를 배우자/3개 국립박물관 특별전 풍성

    ◎중앙­오늘부터 ‘문화재와 보존과학 97’/경주­2월1일까지 신라토우 350점 선봬/구 진주박물관선 임진왜란 관련자료 전시 새해들어 각 국립박물관들이 잇따라 볼만한 전시를 마련,관람객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다.국립중앙박물관이 20일부터 시작하는 ‘문화재와 보존과학97’특별전(2월 19일까지)과 국립경주박물관의 ‘신라토우’기획전(2월1일까지)·임진왜란 전문역사박물관의 임진왜란 유물전이 그것. 이 전시들은 각 박물관별로 문화재와 토우·역사유물 등을 특색있게 보여주는 기획으로 전문가 뿐만 아니라 방학을 맞은 학생들의 유익한 볼거리로도 관심을 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기획전시실에서 여는 ‘문화재와 보존과학97’ 특별전은이 박물관 보존과학실이 지난 1년간 실시했던 보존처리와 연구분석 결과를 대표적인 유물과 함께 공개하는 전시.황해도 평산에서 출토된 철제금은입사호등(통일신라)을 비롯,청주 사뇌사지 출토 청동제유물,나전칠기상자 등 60여점이 출품된다. 고대 목제류의 세포조직을 통해 그 종류를 판정하는 감식법과 고대 채색기법·고대 칠기와 조선 나전칠기의 제작기법을 확인할 수 있는 방식·금속조직사진 등을 함께 소개해 문화재에 숨겨진 미시세계도 보여주는 점이 특징이다.이번에 일반에게 처음 공개되는 진흙막이 마구의 일종인 국보 제207호 ‘천마도장니’도 화제거리다. 국립경주박물관이 마련하고 있는 ‘신라토우’기획전도 흔치않은 볼거리.국립중앙박물관과 경주박물관,국·사립대 박물관이 소장한 토우 350점을 내놓고 있다.신라토우는 5∼6세기 무렵 작은 돌덧널무덤의 부장품으로 제작된것.신라에서만 일정기간동안 만들어진 조각인만큼 당시 신라인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생생히 보여준다.사냥이나 고기잡이·말탄 사람의 모습·악기를 연주하는 모습 등 생활상이 생생하게 묘사돼 있고 남녀의 성을 강조한 상들이 많아 강한 생명력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이와함께 지난 15일 국립 박물관중 최초의 전문역사박물관으로 새로 태어난 옛 국립진주박물관인 임진왜란 전문역사박물관의 임진왜란 관련전시도 볼만한 전시.이 박물관은 2개의 상설 전시실과 지난해 11월 문화재급 유물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던 김용두옹 기증문화재를 전시하기 위해 김옹의 호를 딴 두암실로 편성된 전문 박물관이다. 1층에는 울산성전투도병풍 등 회화·의약·도자문화를 비롯해 전쟁과 여성·전쟁기록 등 전쟁의 문제점들을 주제별로 구분전시하고 있고 2층 전시실에는 현자총동·화차·거북선 등 전쟁에 사용된 무기류를 보여주고 있다.한편 두암실에는 김용두옹이 기증했던 회화 도자기 목가구 금속공예품 등 문화재급 유물 114점이 전시돼 있다.
  • 신윤복 ‘미인도’의 여인(한국인의 얼굴:126)

    ◎넓은 이마·초롱초롱한 눈망울/옷고름 매만지는 자태 선정적 조선시대 미인도는 풍속화속에 자리잡았다. 조선 후기의 여인들 얼굴을 빌려 완성한 미인도는 물론 얼굴이 아름다운 여인의 자태를 그린 그림이다.사녀도따위의 여인 그림도 넓은 의미로보면 미인도에 속한다. 그러나 18세기에 활약한 단원 김홍도나 혜원 신윤복과 같은 풍속화가들의 그림이 미인도로 자리매김 되었다. 미인도는 신비롭고도 고상한 운치를 말하는 신운이 풍겨야 제격이다.그리고 내면세계가 우러나는 내태와 미모에서 오는 외태도 미인도가 갖추어야 할 요건이다.그러니까 얼굴이 곱고 예쁘다고만 해서 다 미인으로 보지는 않았다.누구인가를 무척이나 그리는 정감어린 속내가 어려야 미인이라는 논리가 미인도의 개념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혜원 신윤복은 ‘미인도’를 그려놓고 ‘가슴속에 감춘 온갖 봄 기운을 붓끝으로 전신했다’는 글귀를 붙였다.봄은 정을 쏟아붓고 싶은 여인네 속마음이다.그 발정까지 끄집어내 그렸다고해서 혜원은 전신이라는 말을 썼다.그는 비록 그림이라할지라도 화폭에 가만히 들어앉은 여인을 그리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그래서 와락 끌어안으면 품속을 파고 들 그런 동적인 미인을 육감적으로 그려냈다. 혜원 그림의 미인은 깔끔하게 빗은 머리를 땋아서 틀어올린 트레머리 가채를 썼다.트레머리끝에 매달린 자주색 댕기와 귀밑 살적머리가 애교스러운 여인은 목이 길다.그 길다란 목뒤로 돋아난 실머리가 감칠맛나게 휘어서 흘려내렸다.애초부터 팔등신미인을 그리고자 했던터라 혜원은 얼굴과 목을 조화롭게 인배했다.그래서 고고한 미인으로 묘사되었다. 미인 이마는 넓다.그 아래로 초생달같은 가는 실눈썹이 깨끗한데,크지 않은 눈에 총명한 기운이 감돈다. 그러나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골똘한 마음이 어렸다.화장은 엷으나 볼에 탄력이 붙어 빈약하지 않은 얼굴에 동그스레한 콧방울이 피어올랐다.그 아래 작은 입술이 야무지다.귀를 보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을 미인은 일편단심 한 남정네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삼회장 저고리를 입은 미인의 가슴은 그리 풍만한 편은 못 되어 저고리섭이얌전하다.그럼에도 옷고름을 다 매듭짓지 않은채 한 쪽 고름을 왼손 엄지에 끼어 자긋이 눌렀다.기다리는 마음이 초조해서 일까….오른손으로는 가슴에 달아맨 삼작노리개를 매만지고 있다.왼쪽 겨드랑이로 삐죽 늘어진 붉은색 띠가 왼쪽 치마 단 밑으로 고개를 내민 버선발과 더불어 선정적이다.시체말로 섹시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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