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묘사
    2026-06-18
    검색기록 지우기
  • 독일
    2026-06-18
    검색기록 지우기
  • 첫 승
    2026-06-18
    검색기록 지우기
  • LA 병원
    2026-06-18
    검색기록 지우기
  • 철도
    2026-06-18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1,080
  • “한국인들이 못생긴 이유는…” 도를 넘은 日 ‘혐한 열풍’

    “한국인들이 못생긴 이유는…” 도를 넘은 日 ‘혐한 열풍’

    “한국인들은 왜 이렇게 못 생겼을까요?”, “문제는 한국인들이 얼굴만 못 생긴 게 아니라 성격도 안 좋다는 거죠.”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일부 몰지각한 일본 네티즌들의 무차별 저질 공세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 일본내 한류 열풍이 고조되는 것과 비례해 확산되는 우익 인사 중심의 ‘혐한론’(嫌韓論)이 인터넷에서도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9일 2채널에는 ‘왜 한국인의 얼굴은 못 생겼을까’란 게시물이 올랐다. 이 글을 쓴 일본 네티즌은 “한국은 못 생긴 얼굴의 특징을 모조리 가지고 있다.”면서 “이 때문에 한국은 세계 제일의 성형대국이 됐다.”고 비난했다. 그는 한국인의 특징을 ▲얼굴이 크다 ▲아래턱이 넓다 ▲코가 둥글다 ▲미간이 넓다 ▲아랫입술이 윗입술보다 나와 있다. ▲눈이 작고 쌍꺼풀이 없다 ▲ 광대뼈가 붙어있다 등으로 규정하고, 그래서 못 생겨 보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보편적인 미의 기준에 벗어나는 조건을 모조리 갖추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한국 여고생은 50%, 여중생은 20%가 성형을 했다.”, “초등학생도 성형을 한다.”, “성형으로 똑같은 얼굴이 많다.”, “10명중 8명이 성형을 했다.”, “성형수술을 축하선물로 준다.” 등 악의적인 주장을 늘어놓으면서 출처가 불분명한 사진들을 인터넷에 대거 게시했다. 이 사진들은 한국 여학생들의 외모를 악의적으로 편집한 내용들이다. 이 네티즌을 모방해 다른 네티즌들도 경쟁적으로 한국 여성들의 사진을 올리고 있다. 그는 또 신문기사와 성형외과 원장의 인터뷰 등을 인용해 한국인들이 마치 성형중독자인 것처럼 묘사했다. “눈과 귀는 6세부터 성형수술을 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한 의사의 말도 첨부했다. 이 글을 본 일본 네티즌들은 “내가 가발을 써도 한국 여학생들보다는 예쁘겠다.”, “그렇게 성형에 돈을 퍼붓는데도 못 생긴 것이 더 문제”, “한국인들의 열악한 유전자에 문제가 있기 때문”, “한국인들은 성격도 나쁘다.” 등 악성 댓글을 줄줄이 달고 있다. 이는 한국에 대해 일부 적은 수의 일본인들이 갖고 있는 혐오감을 보여주는 사례다. 일본 내에 전체적으로 한류 붐이 일면서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지면서 이를 제지하려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한층 높아지고 있다. 연예계 한류 주역들에 대한 파렴치한 공격도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최근 걸그룹 소녀시대와 카라 등이 “노예계약과 성상납을 통해 성공했다.”는 등 악의적인 유언비어에 시달린 것이 대표적이다. 이에 대해 국내 네티즌들도 일본과 일본인들을 비하하고 조롱하는 글들로 맞서고 있어 인터넷 상에서 자칫 양국민들의 대립이 심화하는 상황을 비화될 가능성이 우려되고 있다. 한 국내 네티즌은 “세계적으로 일본인들 얼굴이 최악 아닌가? 자기들 얼굴은 생각도 안하고 말도 안되는 사진만 골라서 시비를 걸고 있다.”고 말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아이들 표정 떠올리면 미안하고 또 미안”

    2005년 ‘광주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 당시 교직원과 청각 장애인 등 9명을 조사했던 경찰관이 트위터에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며 당시의 심경을 밝힌 글을 남겼다. 그러나 경찰관의 글을 본 소설 ‘도가니’의 작가 공지영씨는 “신고받고도 왜 4개월이나 수사를 시작하지 않았는지를 밝히지 않는다면 경찰분들도 더는 할 말이 없으실 것”이라며 경찰의 뒤늦은 수사에 의문을 제기했다. 광주 남부경찰서 과학수사팀 김광진(38) 경사는 지난 4일 밤 트위터에 ‘도가니 담당 형사였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그 사건은 세상의 모든 단어를 사용하더라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었다. 수화를 통해서였지만 그들의 표정을 생각하면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고 밝혔다. 또 “이 사건은 세상에서 일어나지 말아야 했다.”면서 “(당시) 그들의 고통이 내 가슴을 찌르는 듯했다.”고 말했다. 김 경사는 “영화 ‘도가니’에서는 금품을 수수한 담당 형사가 신고를 받고도 수사하지 않고, 장애인을 비하하는 발언을 하면서 물대포를 쏘는 등의 장면이 나온다.”면서 “이는 사실과 전혀 다르다.”며 영화에서 묘사된 경찰의 모습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영화를 통해 모든 국민이 소외된 사회적 약자의 인권에 대해 자성하고 개선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며 “비극이 재발되지 않도록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 달라.”고도 당부했다. 작가 공씨는 김 경사의 글과 관련, 수사 문제를 지적한 뒤 “소설 혹은 영화 때문에 고초를 당하셨다고 들었다.”면서 “교육청과 시청의 미루기 행태는 취재했지만 경찰은 제가 만든 인물이다. 피해가 있다면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김 경사는 이에 대해 “당시 첩보를 처음 접수한 형사가 4개월간 비밀리에 1차 조사를 벌였고 나는 2차 조사 때부터 참여했다.”면서 “학교 측에 숨겨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광주 최치봉·서울 이영준기자 cbchoi@seoul.co.kr
  • “순수한 열정으로 산 오르는 사람들 그렸죠”

    “순수한 열정으로 산 오르는 사람들 그렸죠”

    관객의 가슴을 움직일 ‘이야기’에 목마른 충무로에 단비가 내렸다. 한국시나리오작가협회가 주최하고 서울신문사가 후원하는 ‘2011년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시나리오 공모전’ 최우수상에 ‘산의 기도’를 낸 양경모(33)씨가 4일 선정됐다. 협회는 ‘산의 기도’를 비롯해 총 8편의 수상작을 발표했다. ●“꼭 영화로 만들어졌으면…” 단편영화를 만든 감독이기도 한 양씨는 “너무 큰 공모전이라 기대는 안 했다. 시나리오를 준비하면서 나 같은 신인 감독에게 (제작비가 많이 들어갈) 이런 작품을 누가 맡겨 줄까 생각했다. 최우수상을 받게 돼서 꿈만 같고, (누구의 손에 의해서든) 꼭 영화로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산의 기도’는 칸첸중가봉 등정을 둘러싼 산사람의 도전과 우정, 경쟁과 갈등, 분노와 좌절을 다뤘다. 탄탄한 구성력은 물론 작가가 직접 칸첸중가에 오른 것처럼 묘사가 살아 꿈틀댄다는 평가를 받았다. 언론의 화려한 주목을 받는 여성 산악인과 별다른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본 적이 없는 남성 산악대장의 이야기가 축을 이룬다. 둘은 한때 연인이었지만, 이제는 깊은 우정을 간직한 채 각자의 길을 걷고 있다. 그런데 남성 산악대장의 후원사가 산악팀 존속을 무기로 무리한 등정을 압박하면서 사단이 난다. ‘인재’(人災)가 예고된 상황에서 여성 산악인은 옛 사랑의 목숨을 구하려고 지옥 같은 등반길에 오른다. 양 감독은 “2004년 칸첸중가에서 사고를 당한 계명대 산악부의 이야기에서 모티프를 얻었다.”면서 “누가 더 빨리, 누가 더 많은 봉우리에 오르는가를 놓고 경쟁하는 산악계의 풍토가 대세처럼 비춰지지만, 여전히 순수한 열정만으로 산에 오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의대 졸업후 영화로 인생 항로 수정 고려대 의대를 졸업한 양 감독은 영화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해 인생 항로를 수정했다. 공중보건의로 군 복무를 하면서 주말에 한겨레영화제작학교를 다녔다. 2005년 27세의 늦깎이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에 입학했다. 의사 면허를 가진 그는 이따금 선배들이 경영하는 병원에서 아르바이트하는 한편 틈틈이 단편 작업을 했다. 단편 ‘시베리안 캥거루’(2009)는 포르투갈과 영국, 루마니아의 국제영화제에 초대를 받는 등 호평을 얻었다. 양 감독은 “의대에서 생사의 경계에서 느껴지는 감정들과 생명의 소중함 등을 배웠기 때문에 시간을 낭비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한예종에 다니면서 이쪽이 얼마나 춥고 배고픈 바닥인지 충분히 봤지만 후회는 없다. 앞으로 스릴러·호러 같은 장르 영화를 찍고 싶다.”고 말했다. 우수상에는 ‘경부고속도로’(서선덕), ‘공항에 부는 바람’(손학렬·김율), ‘자전거 왕-민족의 영웅 엄복동’(최슬기), ‘헤어월드’(손정섭), ‘공무원블루스’(김선자), ‘위 아 더 원’(최종현·임진평), ‘뛰니까 청춘’(한유림) 등 7편이 뽑혔다. 상금은 최우수상 3000만원, 우수상 각각 1000만원이다. 대상 수상작은 내지 못했다. 기성과 신인, 국적·연령 제한 없이 대문을 활짝 연 공모전에는 8월 22~29일 137편의 시나리오가 접수됐다.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인 김지헌 원로작가, 차승재 영화제작가협회장, 최용배 청어람(영화 ‘괴물’ 제작사) 대표, ‘박봉곤 가출사건’의 김태균 영화감독, 오희성 롯데시네마 영화마케팅팀장 등 5명의 심사위원이 본심에 오른 15편을 심사했다. 시상식은 오는 14일 오후 5시 서울 인현동 PJ호텔에서 열린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데스크 시각] 영화 ‘도가니’의 분노/박홍기 사회부장

    [데스크 시각] 영화 ‘도가니’의 분노/박홍기 사회부장

    영화 도가니는 막힌 사회를 향한 울부짖음 같다. 들을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는 청각장애 어린이들이 닫힌 편견의 문을 들이박는 것 같다. 응어리를 조금이라도 풀려는 몸부림 같다. 도가니의 뜻은 영화 속 인권센터 간사 서유진이 외치는 “미친 광란의 도가니”다. 개봉 10일 만에 관객 250만명을 넘어섰다. 지금껏 실화를 다룬 영화들이 적지 않았지만 도가니 같지는 않았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다룬 ‘살인의 추억’, 이형호군 유괴사건을 모델로 한 ‘그 놈 목소리’, 개구리소년을 재현한 ‘아이들’과는 분명 다르다. 물론 공소시효 연장을 일궈내고 , 재수사도 끌어냈지만 도가니 파장과는 차이가 크다. 이전의 실화 영화들은 대체로 불특정 다수를 노린 범죄에 노출된 사회와 그 범죄에 대한 공권력의 대항에 초점을 맞췄지, 제도와 힘 있는 자들의 위력을 한데 묶어 적나라하게 겨냥하지는 않았다. 영화 도가니는 2000년부터 2005년까지 광주 인화학교에서 벌어진 청각장애 어린이들의 성폭행을 다뤘다. 2005년 이 사건은 세상에 드러났다. 공지영 작가는 실제 사건이 너무 끔찍하고 추잡한 일이 많아 절반도 쓰지 못했고, 영화는 소설의 3분의1밖에 묘사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만큼 충격적이다. 하지만 죄질이 가장 나쁜 교장과 행정실장, 교사 등은 피해 어린이들의 부모를 어르고 회유해 조직적으로 진상을 은폐했다. 또 족벌체제의 교육권력과 돈을 밝히는 경찰과의 유착, 부정과 타협하고 출세를 좇는 검사, 전관예우라는 무기를 든 변호사, 법무법인이라는 유혹에 법 정의마저 내팽개치는 재판장 등 똘똘 뭉친 ‘권력의 카르텔’ 속에 사건의 실체는 존재할 수 없었다. 국가기관도 가해자였다. 때문에 “그들을 벌 받게 해주세요.”라고 소리 없이 손짓으로 절규하는 무력한 어린이들의 편을 드는 이들은 적고 약했다. 교장, 행정실장, 교사 등 가해자는 1심에서 모두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영화 밖 현실에서는 교장은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았다. 피고인들에게 재판장이 집행유예를 선고할 때 관객들은 숨을 멈춘 듯했다. 사회 이면을 한꺼번에 봐서다. 어이없는 판결에 피해자, 약자와 소수자로 감정이입된 탓일 게다. 음습한 공포와 두려움을 느꼈을 법하다. 실제 재판에 참여했던 공판검사마저도 당시 상황에 “치가 떨린다.”라고 일기에 썼다. 도가니는 국민들의 공분을 일으켰다. 93세의 프랑스인 스테판 에셀이 세상을 향해 “무관심이야말로 최악의 태도”라며 “분노하라.”고 한 외침의 의미를 깨달은 듯싶다. 격분은 당연하다. 사회적 갈등을 조장하거나 부추기려는 게 아니다. 자신에 대한 경고이자 각성이다.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이다. 당시 이런 분위기가 일었다면 인화학교에 교장 사진이 지금껏 걸리고, 교사가 버젓이 학교로 돌아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오죽하면 검찰이 “현실에서 있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선을 긋고, 법원이 “실제와 다르다.”며 거리를 뒀겠는가. 광주교육청은 “좀 더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며 사과했고, 경찰청은 재수사에 나섰다. 정치권은 법 정비를 서두르고 있다. 인화학교 폐쇄라는 결정이 났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뒷북이자 반성이다. 영화 한 편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 막힌 것을 뚫고 닫힌 것을 열고 있다. 청각장애 어린이의 성폭행을 둘러싼 권력기관과 힘 있는 자들의 부당거래, 이에 따른 솜방망이 처벌에 더욱 분노하는 것이다. 인권과 정의라는 사회적 감정을 움직이는 기폭제가 된 이유다. 도가니가 가진 힘이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영화를 본 뒤 “더 이상 우리 사회에 장애아동에 대한 인권유린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옳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두 스스로를 되돌아봐야 한다. 슬픔·분노의 도가니를 빚은 ‘힘’들이 먼저 자성해야 함은 물론이다. 장애인뿐만 아니라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보듬고, 함께 가야 한다.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영화 속 서유진이 “우리가 싸우는 건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이 우리를 바꾸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목소리를 높였듯 말이다. hkpark@seoul.co.kr
  • [열린세상] 중산층을 살려야 사회갈등 해소된다/허만형 중앙대 행정학과 교수

    [열린세상] 중산층을 살려야 사회갈등 해소된다/허만형 중앙대 행정학과 교수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발전하면 빈부 격차가 심화되고 계급투쟁이 일어나 사회혁명의 도화선이 된다고 주장했다. 대공황에서 허덕이던 1930년 전후 당시의 경제 현실을 보고 사회주의자들은 쾌재를 불렀다. 자본주의의 붕괴와 사회주의의 도래를 전망했다. 그러나 대규모 공공사업과 사회보장이라는 두 축을 가진 케인스의 재정정책이 실현되자 자본주의는 자정력을 갖추었고, 사회주의는 도래하지 않았다. 대한민국은 위기를 맞고 있다. 빈부격차가 심화되어 양극화 사회로 묘사된 지 오래이고, 보수와 진보 갈등의 골도 깊어만 간다. 중산층 붕괴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 또한 심상치 않다. 정책마다 갈등이 촉발되고, 갈등이 일어나면 극한으로 치닫는다. 반값 등록금, 서울시 무상급식, 한진중공업 사태가 대표적 사례이다. 중산층의 정의 방법은 다양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소득 순으로 나열하면 중위소득의 50~150% 내 가구를 중산층으로 규정한다. 소득을 기준으로 10등급으로 분류할 때 아래에서 세번째에 속하는 3분위에서 위에서 세번째에 속하는 8분위까지가 중산층이다. 한국의 중산층 비중은 1997년 73.6%에서 2008년 63.2%로 추락했다. 중산층의 소득증가 폭은 다른 계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아 그 층이 더 얇아질 전망이다. 10여년 전인 1999년 소득이 가장 많은 계층인 10분위의 소득은 전년보다 6.2% 늘었으나 2분위에서 9분위까지의 소득증가율은 이보다 낮은 2.2~4.3%에 그쳤다. 2000년에도 그 추세는 변하지 않았다. 2001년에는 10분위의 소득이 전년보다 9.9% 늘었으나, 중산층이 포함된 2분위에서부터 7분위까지는 이보다 낮은 8.5~9.7%에 불과했다. 중산층의 상대적 소득 감소 추세는 김대중 정부 말기에서 노무현 정부 초기까지 완화되다가 노무현 정부 말기 다시 심화되기 시작했다. 2006년에는 10분위의 소득이 전년보다 5.9% 많아졌으나 3~6분위는 5.2~5.8% 증가에 그쳤다. 2007년에는 10분위의 소득이 전년보다 8.8% 증가했으나 나머지 9개 분위는 5.3~7.2%에 불과했다. 2008년에는 10분위 소득이 전년보다 6.0% 증가했지만 나머지 9개 분위는 4.8~5.9% 증가에 그쳤다. 저소득층과 중산층은 더 가난해지고 부자는 더 부자가 되는 현상이 10년 넘게 지속되어온 현실을 보여주는 통계이자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중산층의 소득이 상대적으로 줄면 저소득층으로 전락하거나 그 경계선상으로 밀려나는 가구가 늘어난다. 그래서 앞으로 중산층이 더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중산층에 관한 현 정부의 2009~2010년 성적표는 명암이 엇갈린다. 전 가구를 대상으로 할 경우, 2년간 중산층에 해당되는 3~8분위의 소득증가율은 상위 9~10분위의 소득증가율보다 높았다. 도시근로자를 대상으로 하면 2009년에 10분위의 소득증가율은 나머지 9개 분위보다 높았고, 2010년에는 반대였다. 중산층에 대한 정책결과가 과거 10년에 비해 나빠지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개선된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한국의 사회갈등비용이 국내총생산(GDP)의 25%이며, 갈등지수는 세계 네번째로 높다고 주장한다. 공감하지만 처방에는 동의할 수 없다. 법치주의 확립, 정책결정 효율화, 신뢰사회 구축, 유연한 시민의식과 열린 문화 정착, 시장경제의식 제고, 사회갈등관리 강화, 국제사회 리더십 강화 등을 처방책으로 제시했다. 이 중에서 가진 자가 양보하고 중산층을 지원하는 스스로의 역할은 하나도 없다. 모두 “네 탓이며, 네가 먼저”를 주문하는 과제이다. 이런 인식은 갈등만 부추길 뿐이다. 중산층은 사회통합과 유지의 중심축이다. 빈부격차로 갈등이 유발되면 완충역할을 하는 계층이다. 이 계층이 취약하면 완충 역할은커녕 갈등의 주체로 나서기도 한다. 그래서 갈등이 심화된다. 중산층 복원정책이 시급하다. 비정규직 같은 노동구조 개편과 세제 개편 등 가시적, 정책적 처방이 없으면 사회 혼란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 ‘이상 다음의 근대인’ 평론가 김현 문학전시관 가보니…

    ‘이상 다음의 근대인’ 평론가 김현 문학전시관 가보니…

    평론은 문학 작품을 쓰지 못한 자의 자존심의 발로로 여겨졌다. 하지만 문학평론가 김현(1942~1990)은 아름다운 문체와 감수성 넘치는 글로 비평을 문학의 한 장르로 끌어올렸을 뿐 아니라 그의 매혹적인 문장은 ‘김현체’로 명명되었다. 그의 고향 전남 목포에서 4·19 세대이자 한글 세대로 한국 문학 비평의 새 장을 연 김현을 기리는 문학 전시관이 30일 개관했다. 김현은 진도에서 태어났는데 부친이 목포에서 구세 약국을 열어 큰 성공을 거두면서 목포를 실질적인 고향으로 삼게 된다. ‘김현 문학 전시관’은 목포 출신 문학인 김우진, 박화성, 차범석 전시관이 있는 목포의 갓바위 문화타운에 터를 잡았다. 목포 앞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시관에 들어서니 어린 시절 김현이 가르며 뛰어다녔던 바닷바람 내음이 코끝을 간질인다. 김현이 꿈꾼 것은 ‘억압 없는 사회, 억압하지 않는 문학’이었으며 그는 평생 이를 실천했다. 김현 문학 전시관에는 그의 육필 원고, 동료 문인들과 주고받은 편지, 평소 아끼던 문구류, 생전에 사용하던 안경, 책상과 컴퓨터 등 그간 유족들이 보관해오던 유품 300여점이 곱게 전시되어 방문객을 맞이한다. 이를 위해 김병익, 김주연과 함께 ‘문지4K’로 불리며 현재 김현문학기념사업회 회장을 맡은 김치수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지난해 김현 20주기에 맞춰 유품을 전달한 바 있다. 김 교수는 “세상을 떠난 김현의 문학 정신을 전시관에 살려 놓은 느낌”이라며 “거울 등으로 김현 비평의 핵심적인 이미지를 구현했다.”며 만족스러워했다. 7살에 진도국민학교에 입학한 김현은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목포 북교국민학교로 전학한다. 목포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경복고로 전학하여 친형과 함께 서울에서 생활했다. 김광남이란 본명 대신 김현이란 필명을 사용한 것은 스무 살인 1962년 ‘자유문학’ 평론 부문에 ‘나르시스 시론’이 당선되면서다. 같은 해 김승옥, 최하림과 함께 소설 동인지 ‘산문시대’도 창간했는데, 동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곳이 수산시장 옆 목포 오거리의 한 허름한 다방이었다. 김현은 글 실력뿐 아니라 술 실력으로도 유명했는데, ‘산문시대’를 계속 발행하면서 술 실력이 늘고 사람을 ‘조직’하는 역량도 발휘되었다. 김현과 함께 ‘한국문학사’를 쓴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는 그를 “이상(李箱) 다음의 근대인”이라고 말했다. 30대의 김현은 1977년 서울 구반포 삼거리의 반포치킨이 문을 열었을 때부터 여기서 동료, 제자, 문인들과 어울려 자주 술을 마셨다. 아직도 영업 중인 반포치킨은 공지영 작가를 비롯한 많은 문인의 추억의 장소이기도 하다. 문학 전시관 개관식과 함께 열린 심포지엄에서 정과리 연세대 교수는 김현이 목포로 이사해 ‘독서 소년’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묘사하면서 “목포는 김현에게 사회이자 규범과 규칙으로 이루어진 제도였다.”고 설명했다. 목포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도가니’후폭풍] ‘도가니’ 황동혁 감독 “마녀사냥 아닌 재발 방지 계기 됐으면…”

    [‘도가니’후폭풍] ‘도가니’ 황동혁 감독 “마녀사냥 아닌 재발 방지 계기 됐으면…”

    영화 ‘도가니’가 국민들의 공분은 물론 경찰 재수사를 이끌어내는 등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 작품은 상업영화로는 어둡고 불편한 내용을 담고 있어 투자를 받기가 쉽지 않았고, 흥행을 점치는 이도 크게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슈와 흥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며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연출을 맡은 황동혁(40) 감독을 29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영화 반응이 폭발적이다. -전혀 예상을 못해 얼떨떨하다. 이렇게까지 큰 관심을 보일 줄 몰랐다. 아동 성폭행은 물론 법조계나 공무원, 경찰 비리 등 우리가 뉴스에서 늘상 보고 듣던 사건인데, 영화에서 이 모든 것이 한꺼번에 보여지니까 많은 사람들이 분노한 것 같다. 특히 이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고, 피해자가 장애 아동이었다는 점이 더 분노하게 만든 것 같다. →연출할 때 선정성과 사실성 사이에서 고민이 많이 됐을 것 같다. -원작자인 공지영 작가가 너무 끔찍하고 추잡한 일이 많아 소설에서 실제 사건의 절반도 다 쓰지 못했다고 했다. 영화로 만들기에는 소설의 내용도 너무 세서 그나마 3분의1 정도밖에 묘사하지 못했다. 누군가를 분노하게 하고 자극하려고 만든 영화가 아니다. 이런 일이 불과 몇년 전에 우리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일어났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그럼에도 경찰이 재수사에 나서는 등 파장이 엄청나다. -누군가를 선동하려고 만든 영화가 아닌데 너무 갑작스러운 반응에 솔직히 좀 당황스럽다. 이 사건은 일사부재리의 원칙 때문에 다시 재판정에 올라가진 못한다. 그러나 아직 대책위원회가 있으니 영화를 통해 아직 뭔가 풀리지 않은 것들이 해결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영화가 인권 사각지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인 만큼 마녀사냥이나 신상털기 같은 일시적인 분노보다는 장기적으로 이런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한 제도적이고 법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성폭행 묘사 장면에서 아역 배우들의 후유증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있는데. -아역 배우들의 감정 이입을 방지하고, 관련 장면은 최대한 단순하게 연출했다. 아이들의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카메라 각도 등 촬영 트릭을 이용해 분위기만 극대화하려고 했다. 오디션 때는 물론 촬영도 부모 입회 아래 진행했다. 성추행 등 불가피한 장면은 체구가 작은 성인 남성 배우를 썼다. 아역 배우들은 무대 인사를 함께 다닐 정도로 모두 잘 지내고 있다. →재편집을 통해 19세 관람 등급을 15세로 낮추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는데. -사건 자체가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일어난 일이고, 단순히 장애 아동 성폭행 문제가 아니라 21세기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과 비리를 다룬 영화이기 때문에 교육적인 측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성폭행 등 일부 구체적인 묘사를 잘라낸다면, 청소년들도 충분히 함께 보고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도가니’후폭풍] 19禁에도… 청소년들 “도가니 보자” 열풍

    [‘도가니’후폭풍] 19禁에도… 청소년들 “도가니 보자” 열풍

    “도가니 봤어? 벌써 100만명이라는데.” “주말에 봤는데, 왠지 찜찜했어.” 29일 오후 서울 송파구의 한 고교 앞 건널목,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이런 대화를 나누며 길을 걷고 있었다. 신문, 인터넷 등 각종 매체가 앞다퉈 관련 소식을 전한 탓에 청소년들 사이에서도 영화 ‘도가니’는 어김없이 화젯거리였다. 영화가 주는 충격의 여진이 관람 불가 대상인 고등학교 교실에까지 전해진 것이다. 고교 2년생 이선희(17)양은 “영화를 보고 온 친구들이 교실에서 얘기를 많이 한다.”고 전했다. 영화 속 성폭행 피해 아동이 자신들과 비슷한 또래라는 점도 도가니에 대한 청소년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그러나 영화 도가니는 성폭행 등의 묘사가 구체적이고 직접적이라는 이유로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았다. 그럼에도 영화관에는 도가니를 보려는 청소년들이 적지 않다. 영화관 관계자는 “영화가 청소년 문제를 다루고 있는 데다 입장객을 상대로 일일이 신분증을 확인하기도 어렵다.”고 귀띔했다. 한편 원작인 공지영 작가의 ‘소설 도가니’는 출간 2년 만에 교보문고·영풍문고·반디앤루니스 등 모든 대형서점에서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전국을 분노의 도가니로 만든 ‘도가니’ 황동혁 감독

     청각 장애 아동을 성폭행한 실제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도가니’가 국민들의 공분은 물론 경찰 재수사를 이끌어내는 등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 작품은 상업영화로는 어둡고 불편한 내용을 담고 있어 투자를 받기도 쉽지 않았고, 흥행을 점치는 이도 크게 많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는 이슈와 흥행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으며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연출을 맡은 황동혁(40) 감독을 29일 전화로 만났다.   영화 반응이 폭발적이다.  -전혀 예상을 못해 얼떨떨하다. 이렇게까지 시민들이 큰 관심을 보일 줄 몰랐다. 아동 성폭행은 물론 법조계나 공무원, 경찰 비리 등 우리가 뉴스에서 늘상 보고 듣던 사건인데, 영화에서 이 모든 것이 한꺼번에 보여지니까 많은 분들이 분노하신 것 같다. 특히 이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고, 피해자가 장애 아동이었다는 점이 더 분노하게 만든 것 같다. 내용이 충격적이기 때문에 연출할때 선정성과 사실성 사이에서 고민이 많이 됐을 것 같다.  -원작자인 공지영 작가가 너무 끔찍하고 추잡한 일이 많아 소설에서 실제 사건의 절반도 다 쓰지 못했다고 했다. 영화로 만들기에는 소설의 내용도 너무 세서 그나마 3분의 1정도 밖에 묘사하지 못했다. 다 담았으면 어땠을까 싶다(웃음). 누군가를 분노하게 하고 자극하려고 만든 영화가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이런 곳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만들었다. 그럼에도 경찰이 재수사에 나서는 등 파장이 엄청나다.  -누군가를 선동하려고 만든 영화가 아닌데 너무 갑작스러운 사회적인 반응에 솔직히 좀 당황스럽다. 이 사건은 일사부재리 원칙 때문에 다시 재판정에 올라가진 못한다. 그러나 아직 대책위원회가 있으니 영화를 통해 아직 뭔가 풀리지 않은 것들이 해결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영화가 인권사각지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인 만큼 마녀사냥이나 신상털기같은 일시적인 분노보다는 장기적으로 이런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한 제도적이고 법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성폭행 묘사 장면에서 아역 배우들의 정신적인 상처나 후유증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있는데.  -아역 배우들의 감정 이입을 방지하고, 관련 장면은 최대한 단순하게 연출했다. 아이들의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카메라 각도 등 촬영 트릭을 이용해 분위기만 극대화하려고 했다. 오디션 때는 물론 촬영도 부모님 입회 아래 진행했다. 성추행 등 불가피한 장면은 덩치가 작은 성인 남성 배우를 썼다. 아역 배우들은 무대 인사를 함께 다닐 정도로 모두 잘 지내고 있다. 재편집을 통해 19세인 관람 등급을 15세로 낮추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는데.  -사건 자체가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일어난 일이고, 단순히 장애 아동 성폭행 문제가 아니라 21세기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과 비리를 다룬 영화이기 때문에 교육적인 측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성폭행 등 일부 구체적인 묘사를 잘라낸다면, 청소년들도 충분히 함께 보고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 제목인 ‘도가니’가 의미하는 바는.  -도가니의 사전적인 의미는 쇠를 녹이는 그릇이다. 분노의 도가니, 슬픔의 도가니가 될 수도 있다. 사실을 접한 뒤 여러가지 감정이 끓어오르는 상태를 잘 은유한 것이라고 생각해 원작소설 제목을 그대로 썼다. 두 번째 작품으로 ‘큰 일’을 냈다.(황 감독은 2007년 ‘마이 파더’로 데뷔했다.)  -거듭 말하지만 이런 일이 불과 몇 년 전에 우리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일어났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을 따름이다. 영화와 관련된 논의가 (관련 법 개정 등) 좋은 결과를 낳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미궁의 범죄’ 시민 재판정에… 공소시효 연장 끌어내

    ‘미궁의 범죄’ 시민 재판정에… 공소시효 연장 끌어내

    영화 ‘도가니’를 계기로 관련 사건이 재조명되는 가운데 ‘도가니’와 같이 실제 사건을 다룬 기존의 영화들이 주목받고 있다. 기억 속에 남아있던 실제 사건을 극적으로 묘사한 영화들은 대중의 관심을 증폭시키면서 제도 변화나 묻혀졌던 사건의 재수사 등을 이끌어냈다. 한마디로 ‘영화의 힘’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 정도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다룬 ‘살인의 추억’은 2003년 개봉 당시 상당한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살인의 추억’은 570만명의 관객을 동원, 그해 한국영화 최고 흥행기록을 세웠다. 이에 따라 한동안 잊혀졌던 해당 사건과 진범에 대한 여론의 관심이 폭발, 재수사 요구가 빗발쳤다. 영화가 종영된 뒤에도 9차 사건의 공소시효가 끝나는 2005년 11월을 앞두고 공소시효기간 폐지에 대한 논의에 불을 댕겼다. 2007년 1월 선보인 영화 ‘그놈 목소리’는 공소시효기간 연장을 이끌어냈다. 1991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압구정동 이형호군 유괴살해사건’을 소재로 삼은 이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 실제 범인의 몽타주와 함께 범행 당시 이군의 부모를 협박했던 실제 목소리를 들려줬다. 영화 개봉 1년 전 사건 공소시효는 만료됐지만 공소시효기간 폐지운동을 벌인 결과 그해 12월 최장 15년이었던 공소시효기간을 25년으로 연장시키는 법안이 통과됐다. 사건은 미궁에 빠져 있다. 2009년 막을 올린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은 검찰의 재수사를 이끌어냈다. 영화는 1997년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한 햄버거 가게 화장실에서 대학생 조모(당시 23세)씨가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을 다뤘다. 당시 현장에 있던 유력한 용의자 2명 중 한국계 미국인 에드워드 리(32)가 진범으로 지목됐지만 1998년 대법원은 이 사건을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고 다음 해 9월 무죄가 확정됐다. 그러나 흉기 소지 및 증거 인멸 혐의만 적용됐던 또 다른 살인용의자 아서 패터슨(32)은 복역 중이던 1998년 8월 특별사면으로 풀려났고 검찰이 출국금지를 연장하지 않은 틈을 타 다음 해 8월 미국으로 출국했다. ‘이태원 살인사건’이 개봉돼 당시 사건이 재조명되자 법무부는 서울중앙지검 외사부의 요청에 따라 2010년 1월 패터슨에 대해 미국에 범죄인 인도 청구를 했다. 이 사건의 공소시효는 내년 4월에 만료된다. 지난 2월에는 ‘대구 성서초등학생 실종사건’, 이른바 ‘개구리소년’을 다룬 ‘아이들’이 개봉돼 아동 대상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기간 폐지 운동에 다시 한번 불을 지피기도 했다. 신진호기자 sayho@seoul.co.kr
  • 재미교포 이창래씨 소설 ‘항복자’ ‘데이턴 문예 평화상’ 수상

    재미교포 소설가 이창래(46)씨가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소설 ‘항복자’(The Surrendered)로 올해 ‘데이턴 문예 평화상’을 수상했다고 AP통신이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지난해 출간된 ‘항복자’는 한국전쟁의 격랑에 휘말린 세 사람을 통해 전쟁의 참상과 공포를 심도 있게 묘사한 작품으로,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출간 당시 뉴욕타임스가 “눈을 뗄 수 없는 작품”이라고 평하는 등 현지 언론의 극찬을 받았다. 데이턴 문예평화상은 1995년 데이턴 평화협정에 따라 보스니아 내전이 종식된 것을 기념해 제정된 상으로, 평화 증진에 기여한 문학작품에 수여되며 상금은 1만 달러다. 올해 논픽션 부문에선 회고록 ‘정의에서’(In the Place of Justice)를 쓴 윌버트 리듀가 수상했다. 살인 혐의로 미국 루이지애나 교도소에서 40년 이상 복역한 뒤 저널리스트와 편집장으로 변모한 자신의 인생을 회고한 책이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양승태 대법원장 “보석조건부 영장 검토…인신구속제 대안될 것”

    양승태 대법원장 “보석조건부 영장 검토…인신구속제 대안될 것”

    양승태 신임 대법원장이 구속영장을 발부하면서 보석과 같이 보증금, 주거제한 등 조건을 부과해 석방하는 ‘보석조건부 영장제도’가 현행 인신구속 제도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때문에 이용훈 전임 대법원장 때 검찰과 갈등을 빚었던 구속영장제를 둘러싼 갈등이 재연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양 대법원장은 27일 오전 대법원에서 공식 취임식을 가졌다. 양 대법원장은 취임식과 기자간담회를 통해 차기 대법관 인선 방안과 상고심 제도 개선, 법조일원화 등에 대한 자신의 구상을 피력하며 사법부의 향후 6년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 취임식에서는 “근본적으로 국민이 분쟁 해소를 위한 법원의 사법 기능을 잘 이해하는 바탕 위에서 투명하게 드러나는 재판과정을 직접 눈으로 보고 공정성을 확인할 때에 비로소 전폭적인 신뢰 확보가 가능하리라 믿는다.”며 국민참여재판 확대 의지도 내비쳤다. 다음은 양 대법원장과의 일문일답. →조만간 대법관 2명을 제청한다. 기존 대법관 구성에서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대법관 구성에서 어떤 원칙을 갖고 있는가. -대법원이 기능을 다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견해를 수용해야 한다. 다양함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특정 학교가 같다고, 지역이 다르다고 다양성의 유무를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대법원에만 접수되는 사건이 1년에 3만 6000여건에 이른다. 하급심의 잘잘못을 따지는 데 시간을 많이 쓴다. 고도의 법적 소양을 갖춘 사람이 필요하다. 이런 상황을 놔두고 다양성만 추구하면 효과를 볼 수 없다. 다양성도 추구하고 대법원의 본래 기능도 회복하는 방안을 찾겠다. →상고심 기능 강화를 위한 대법관 증원이나 고등법원 단위의 상고심사부 설치 등의 주장이 나온다. -제 고집만이라면 ‘상고허가제’(항소심 판결에 대해 원심 법원이 대법원에 상고 여부를 허가하는 제도)가 맞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세계적으로도 대부분 국가에 있는 제도다. 하지만 대법원에 상고해서 최종 판단을 받아 보자는 욕구가 국민들 사이에 일반화돼 있는데 상고허가제를 받아들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대법관 증원은 지금 왜곡돼 있는 대법원의 현실을 심화시킬 수밖에 없다. 대법관 증원은 문제 해결에서 더 멀어지는 방식이다. 적어도 우리나라 사법체제 속에서 대법원이 기능을 수행하려면 대법관 수가 12명이 맞다고 생각한다. 이들이 합의하는 것도 쉽지 않다. →형사소송법에서 바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영·미에선 수사기관에서 영장을 청구하면 법원이 영장을 발부하면서 미리 보석처분을 정해버린다. 영장은 형벌의 사전집행이나 처벌이 아니라 신병확보의 수단이다. 구속을 시키면서 보석조건을 까다롭게 정하면 구속 효과도 있고 피의자의 자유권을 제약하지 않을 수 있다. 구속영장 제도의 전반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앞서 인사권을 분산한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구체적인 방안이 있는가. -대법원장의 인사권 분산은 과거부터 생각해 왔다. 첫 번째 방법은 법 개정 없이 고등법원장의 건의를 받아 이를 수용하는 방식으로 인사권을 분산할 수 있다. 두 번째는 법을 개정해서 법원장들이 인사권을 행사하도록 할 수도 있다. 복잡한 절차가 필요 없다면 당장 1월부터 시행할 수도 있다. 인사권 분산은 움직일 수 없는 결심이다. →내년부터 법조 인력이 많이 양산된다. -법조 일원화로 가는 방향은 이미 정해졌다. 졸업하고 바로 법관으로 채용될 길은 이미 법적으로 막혔다. 로클러크 제도를 통해 법관을 보조하는 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본다. 미국은 변호사 시험에 합격해 많은 부분으로 진출한다. 로스쿨 출신들도 법조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진출하면서 스스로 활동 분야를 개척할 필요가 있다. →영화 ‘도가니’가 논란이 되고 있다. -영화 자체는 오래된 사건이 모델이지만, 형량이 원래 사건과 다르다. 그 당시 법과 양형기준으로는 이상한 관행이 아니다. 이후에 양형기준으로 많이 올라가고, 법 자체도 바뀌면서 많이 달라졌다. 영화는 실제 모델 사건에서 형도 낮고, 현재 진행되는 것같이 묘사되면서 국민이 분개하고 있다고 본다. 그래서 모델이 된 사건은 그런게 아니라는 것을 인터넷을 통해라도 밝혀야 되지 않느냐고 이야기했다. 안석기자 ccto@seoul.co.kr
  • 동·서양인 눈으로 본 ‘조선인’ 명품 초상화 비교해 볼까

    동·서양인 눈으로 본 ‘조선인’ 명품 초상화 비교해 볼까

    조선시대 초상화의 정수를 중국, 일본의 작품과 비교해 볼 수 있는 ‘초상화의 비밀’ 전이 27일 개막하여 11월 6일까지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린다. 한국을 중심으로 중국과 일본, 유럽의 초상화까지 함께 전시돼 국제적 시야에서 조선시대 초상화를 조망할 수 있는 최초의 전시로 총 200여점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한·중·일, 유럽 등 200여점 국내 최대 규모 국내 초상화전 가운데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전시의 양도 압도적이지만 전시 구성도 이야기와 대결을 위주로 흥미진진하게 이루어졌다. 관람객은 이름만 들어도 관련 이야기가 떠오르는 충신 정몽주, 이순신 장군, 충절의 논개, 황희 정승, 어사 박문수, 오성과 한음 등의 초상화를 통해 역사 속 주인공의 얼굴을 직접 마주 보며 대화하는 듯한 체험을 할 수 있다. 태조 어진(임금의 초상화)은 화려하면서도 장엄한 왕실 초상화의 특징을 잘 드러낸다. 화면 중간까지 높이 그린 양탄자는 청색의 곤룡포, 적색의 어좌와 어울려 인물의 권위를 부각시킨다.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청나라 개국공신 오보이(1615~1669)의 초상화도 오른손 엄지에는 궁수를 상징하는 반지를 끼고 있어 무술로 이름난 무관임을 나타낸다. 일본 에도막부의 창시자 도쿠가와 이에야스(1543~1616)의 초상 역시 신사 앞에 배치하는 사자모양으로 된 한 쌍의 석상(고마이누·?犬)을 그려넣어 신격화된 인물을 드러낸다. 조선시대 최고 초상화가로 손꼽히는 이명기와 바로크의 거장 페터르 파울 루벤스의 초상화를 비교해 보는 재미도 크다. 소설 ‘베니스의 개성상인’의 소재가 됐던 루벤스의 그림은 임진왜란 중 왜병에 의해 강제로 끌러간 조선 평민 내지는 포로 병사 ‘안또니오 꼬레아’로 알려졌다. 또 다른 설은 에도시대 일본에 와 있던 네덜란드 스펙스 무역 관장(체류시기 1606~1621)에게 발탁된 조선의 전직 관리라고 주장한다. 화면 왼쪽 뒤에 그려진 조그만 배 한 척은 이 인물이 멀리서 배를 타고 온 방문객임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본다. 루벤스의 그림을 살펴보면 한복을 입은 인물은 탕건과 유사한 준모(駿帽)를 쓴 다음 그 위에 투명한 사방관을 착용하고, 조선시대 관리들이 입던 16세기 철릭에 가까운 옷을 입고 있다. 콧수염이 짧은 젊은이로 보이는 이 인물은 까만 분필로 몸체와 얼굴이 표현됐고, 양볼과 콧등, 입술 등에 붉은색을 칠해 생기가 넘친다. 루벤스 그림의 주인공이 포로나 상인이 아니라 조선의 전직관리였음을 증명하고자 이번 전시에서는 그가 초상화에서 입었던 철릭과 함께 이명기의 ‘서직수초상’이 같이 전시된다. ‘서직수초상’은 우리나라 초상화에서는 드문, 서 있는 모습 전체를 그렸다. 약간 고개를 숙이고 눈을 치켜뜨고 있어 다부진 선비의 품격을 담은 이 초상과 루벤스 그림 속 주인공의 옷매무새가 비슷함을 읽어 낼 수 있다. ●얼굴만 둥둥 떠있는 윤두서 자화상 압권 한국 초상화상 혁명과도 같은 획기적인 작품으로 꼽히는 ‘윤두서 자화상’은 외형 묘사와 내면세계의 표현이 조화를 이뤘을 뿐 아니라 얼굴만 둥둥 떠 있어 압도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2006년 국립중앙박물관의 적외선 조사에서 도포의 옷깃이나 주름이 촬영돼 일부러 얼굴만 그린 미완성작이 아님이 확인됐다. 문동수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대륙적 규모의 중국 초상화보다 겸손하고, 섬세한 분위기의 일본 초상화보다 절제된 조선의 초상화는 한국 미술의 위대한 성취”라고 강조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미드 ‘수사물 걸작’ 2편 방영

    케이블채널 폭스는 미국에서 가장 위대한 수사물이라는 평가를 끌어낸 두 수사물을 동시에 방영한다. 26일부터 매주 월~목요일 오후 11시에 연속 방영되는 ‘성범죄 전담반’과 ‘특수 범죄 전담반’이다. 각각 뉴욕과 로스앤젤레스를 배경으로 특별한 사건에 얽힌 이야기와 해결과정을 묘사한 이 작품들은 1990년부터 ‘로 앤드 오더’(Law and Order) 시리즈에서 번외편(스핀오프)으로 제작돼 본 시리즈보다 더 높은 인기를 끌었던 작품들이다. 이 가운데 ‘특수범죄 전담반’은 지난 7월 미국에서 방영된 최신작이다.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25) ‘만세전’의 작가 염상섭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25) ‘만세전’의 작가 염상섭

    염상섭(1897~1963)은 널리 알려진 ‘국민작가’다. 염상섭이 ‘국민작가’인 것은 물론 그의 걸출한 문학작품 덕분이지만, 그의 삶이 근대 이후 한국사의 중요한 맥락들과 궤를 같이해 온 때문이기도 하다. 그가 철들 무렵 조선은 식민지가 되었고, 그는 한일병탄 2년째인 1912년 일본 유학생활을 시작한다. 1930년대에는 만주로 건너갔다가 해방이 되자 신의주를 거쳐 38선을 간신히 통과해서 서울로 돌아왔고, 이후 종군작가로 한국전쟁을 체험한다. 이처럼 식민지 조선과 제국 일본, 해방과 한국전쟁을 마주했던 염상섭의 삶의 국면들은 100편이 훨씬 넘는 그의 장·단편 소설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가히 문제적 시대를 살아낸 문제적 작가인 셈이다. 그러나 역사와 시대가 문제적이었다고 해서 반드시 문제적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흔히 한국문학사에서 염상섭을 일컬어 ‘리얼리즘의 최고봉’이라 하는데, 이 찬사 속에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생생하게 재현해냈다는 평가가 담겨있다. 그렇다면 염상섭이 바라본 ‘있는 그대로의 사실’은 어떤 것이었을까. ●선망과 자괴 사이에서 일본 유학생 시절, 그는 식민지인이라는 피해자의 입장과 제국 일본을 선망하는 학습자 사이에 놓여 있었다. 이른바 ‘친밀한 적’을 마주해야하는 고통, 즉 일본을 본받고 따라하면서도 그런 자신을 경멸하고 자책하는 이중적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는 당시 일본에 유학한 조선인이라면 누구나 다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염상섭의 경우는 좀 더 특별난 데가 있었다. 그의 유학이 일본군 육군 중위였던 맏형의 보살핌 아래에 있었기 때문이다. 맏형 염창섭은 대한제국 시절, 영친왕이 유학이라는 명분 아래 일본으로 인질처럼 끌려갈 때 그 시종으로 따라갔다. 이후 염창섭은 대한제국의 유학생 신분으로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간다. 하지만 대한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면서, 그는 일본군대로 편입하는 길을 선택한다. 곡절 많은 내력이지만, 현실에서 일본군 장교라는 위치는 대단한 것이었다. 그런 형 덕분에 염상섭도 사립학교나 학원가를 전전하던 조선유학생들과는 달리 정규 일본 명문중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이후 염상섭은 동아일보 정경부 기자(일본특파원)를 비롯해서 시대일보, 조선일보, 심지어 총독부기관지였던 매일신보, 만주국의 홍보지 역할을 했던 만선일보에서까지 두루두루 일한다. 할 일 없이 이 거리 저 거리를 헤매고 다녔다는 가난한 식민지 지식인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셈이다. 게다가 염상섭만큼 일본어와 일본문학에 정통한 문인은 없었다고 한다. 그런 만큼 염상섭에게는 ‘군복자락 콤플렉스’, ‘현해탄 콤플렉스’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일본군 장교인 형은 든든한 버팀목이었지만 부끄러운 존재였고, 조선과 일본 사이의 바다 현해탄을 오가는 것처럼 일본을 선망하다가도 한편으로는 식민지인임을 자각하고 괴로워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 콤플렉스를 잘 보여주는 것이 오사카 독립선언서 사건이다. 염상섭은 2·8독립선언서, 기미독립선언서에 영향을 받아 1919년 3월 18일 오사카에서 단독으로 독립선언문을 기초하고, 거사를 꾀하다가 체포되어 3개월의 미결수 생활을 겪는다. 이 독립선언문에는 ‘오사카 한국 노동자 일동 대표 염상섭’이라고 쓰여 있다. 그 전해에 병으로 대학을 자퇴했고, 작은 신문사의 기자생활을 하긴 했지만 그가 노동자 대표라기엔 다소 억지스럽다. 게다가 정규 일본 명문 중학을 졸업하고, 귀족자제들이 다니던 게이오 대학 문과에 입학했던 그의 이력을 떠올리면 생뚱맞기 짝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노동자를 자처하고 나선 것은 그의 깊은 콤플렉스 때문이었다. 염상섭의 내면에는 일본 육군장교의 동생, 안온한 일본유학생이라는 자괴감이 늘 존재했고, 그 반작용의 심리로 자신을 노동자대표로 내세우고 싶었던 것이다. ●군복자락으로부터 야차의 길로 식민지 상황에 대해 어떤 이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 받아들이고 체념했다. 또 어떤 이는 식민지를 벗어나기 위해 일본과 투쟁하는 것만이 최선이라 했다. 어떤 이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자신을 부끄럽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 괴로움으로 현실을 등지거나 스스로 자기 파멸로 내몰아가기도 했다. 물론 자기이익만을 챙기기에 급급한 무리들도 있었다. 이런 가운데 염상섭은 자기 삶을 글쓰기로 옮겨놓음으로써 자괴감으로부터 벗어나 자기 세계와 대면하고자 한다. 염상섭의 대표작으로 널리 알려진 ‘만세전’(1924)은 자전적 경험이 깊이 투영된 일본 유학생 ‘이인화’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인화’는 답답한 현실에 대해 맹렬하게 발작을 일으킬 정도이면서도 딱히 해결방법을 찾지 못하는 괴로움을 여실히 보여준다. 자기변명과 자기연민, 자조가 뒤범벅인 소설 속 인물. 그런 인물을 그려놓는 일, 바로 글쓰기를 통해 염상섭은 새로운 길을 만난다. 그는 1923년 첫 창작집 ‘견우화’를 발간하면서 자신의 소설쓰기를 이렇게 설명한다. “소설이란 것이 인생과 그 종속적 제상을 묘사하는 것인 이상 인간이 어떻게 고민하는가를 그리는 것은 물론이다. 소설에 예술적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것은 연극적·음악적·회화적·조각적 요소를 어떻게 약배하며 약동하도록 그리겠느냐는 문제이지만, 기초적 조건은 역시 사람은 어찌하여, 어떻게, 얼마나 고민하는가, 또는 그 고민이 어떻게 전개되며 어떻게 처리되는가를 묘사함에 있다. (중략) 이러한 의미로 나의 처음 발간하는 단편집에 대하여 야차(夜叉)의 마음을 가진 보살을 의미하는 ‘견우화’라는 표제를 택하였거니와…….” (‘견우화’의 서문) 그에게 소설쓰기는 세련된 기교를 펼쳐 보이는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예술적 사명감이라기보다는 인간의 내면을 가차 없이 속속들이 살펴보는 괴롭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오죽하면 첫 단편집을 “야차의 마음을 가진 보살을 의미하는 ‘견우화’”라고 이름 붙였다고 스스로 해명하는 것일까. 혼란스럽고 복잡한 세상 속에서 인간의 내면을 그리는 일은 스스로 야차(악마)가 되기를 자처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스스로 야차되기를 선택함으로써 그는 군복자락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었다. 일본 육군장교의 동생이자 독립선언을 하는 식민지 조선인, 총독부 기관지의 정치부장이자 조선인 소설가. 이러한 극단들을 오가던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기. 그러한 자신이 속해있는 두 세계를 두 눈으로 똑똑히 보기. 그것이 염상섭의 작가적 출발이자, 글쓰기의 의미였다. 물론 두 눈으로 세계를 똑똑히 본다고 해서 쉽게 해답을 발견할 수는 없다. 오히려 염상섭의 작가적 두 눈은 해답보다는 일상적 삶 속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삶의 미세한 진실을 바라보고자 했다. 일상 속에서는 아무도 순결하거나 정의롭지 않다는 것 그리고 사람들은 박쥐 같은 양면성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가족들조차도 핏줄보다는 돈(욕망)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 등. 1930년대 ‘삼대’가 그려낸 풍경은 그러한 삶의 이면에 대한 해부였다. 그래서 염상섭의 작품은 우리가 쉽게 지나치거나, 마치 외눈박이처럼 하나로만 바라보는 것을 온전히 다 보여준다. 해방 이후, 이데올로기의 각축장이 되었던 역사적 현장이나 전쟁 상황에서도 염상섭의 이러한 자세는 계속 이어진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에서 1·4후퇴 때까지의 긴박한 상황을 생생하게 드러낸 ‘취우’(1953)는 전쟁의 극한상황이나 고통을 묘사하기보다는 그 와중에도 노골적으로 돈에 집착하는 인간의 욕망을 그려내고 있다. 이 지점에 이르면, 왜 염상섭이 국민작가로 회자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역사와 삶을 대면하는 방식으로서의 글쓰기. 그리고 단면적인 세계, 양가적인 판단을 넘어서는 복잡다단한 세계를 그려내는 작가. 그의 글쓰기는 현실의 복잡함 속에서 길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두 눈 크게 뜨고 자신과 자신의 삶을 응시하는 것이었다. 자기 삶의 응시가 그로 하여금 글쓰기로 나아가게 했고, 그것이 국민작가 염상섭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것일 터이다. 김연숙 남산강학원
  • 워치 딜러라는 새 캐릭터 우연이 지배한 묘한 사랑

    김진익의 새 장편소설 ‘융프라우가 보이는 자리’(한솜 펴냄)는 워치 딜러라는 다소 생소한 직업의 주인공을 내세운 작품이다. 워치 딜러는 세계 최고가의 시계를 판매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시계의 고향 스위스 인터라켄을 중심으로 베른, 루체른, 일본, 한국 등에서 이야기를 펼쳐 간다. 소설 속에는 워치 딜러뿐 아니라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한다. 초반에 전혀 관련 없던 이들이 스토리가 전개되며 하나씩 얽혀 가는데, 추리소설의 복잡한 구조와 닮았다. 주인공 찬우는 세계 최고의 워치 딜러다. 하지만 그는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은 것도, 든든한 후견인이 있는 것도 아니다. 아버지는 그와 어머니를 버렸고, 어머니 또한 대학생인 그를 두고 세상을 떴다. 그런 그를 세계 최고의 자리까지 오르게 한 것은 오로지 시계에 대한 열정과 노력이었다. 이런 부류의 인물에게 다가오는 사랑은 대개 느닷없기 마련이다. 제대로 된 연애 한번 못 해본 그에게 어느 날 핑크빛 사랑이 찾아온다. 길거리에서 본다면 한번쯤 되돌아볼 아리따운 그녀, 자신감 넘치고 활동적으로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단아하고 청순한 매력을 지닌 윤지다. 둘은 첫 만남부터 호감을 갖는다. 제어할 수 없을 만큼 급속도로 가까워진 둘은 결국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한다. 공식처럼 말이다. 그런데 윤지를 만난 이후 찬우는 이상한 꿈에 시달린다. 너무도 현실 같은 꿈에선 늘 한 남자가 등장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남자는 찬우에게 묘한 부탁을 하고, 그 남자와의 만남이 지속될수록 찬우는 그와 자신이 어떤 연결고리로 묶여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파헤치면서 더욱 놀라운, 어쩌면 지독한 우연의 반복이라 할 인연과 만나게 된다. 여러 등장 인물들을 하나로 엮고 있는 인연의 끈은 호루라기다. 호루라기를 맨 처음 갖고 있었던 인물은 책 첫머리에서 찬우와 닮았다는 얘기를 들은 남주호였다. 그는 자신의 약혼녀에게 받았던 호루라기를 윤지의 연인이었던 이현에게 줬고, 이현은 아이거 북벽에서 생사의 기로에 섰던 순간 그 호루라기를 윤지에게 건네준다. 이후 이야기의 얼개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윤지가 잃어버린 호루라기가 뜻밖에도 찬우의 손에, 찬우가 남주호에게 건넨 호루라기가 또다시 윤지의 손에 들어가는 우연의 반복 말이다. 책은 호평을 받았던 저자의 첫 장편 ‘프레지아 꽃향기’에 이은 두 번째 작품이다. 저자 특유의 감각적인 문장력과 생생한 감정 묘사가 돋보인다. 다만 지나치게 우연이 반복되는 게 다소 거슬린다.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걸리면 죽어…피할 곳 없는 공포

    걸리면 죽어…피할 곳 없는 공포

    맷 데이먼, 귀네스 팰트로, 주드 로, 케이트 윈즐릿, 마리옹 코티아르, 로렌스 피시번…. 각자 한 편의 영화를 오롯이 책임질 만한 배우들이 떼로 나선다. 지난달 이탈리아 베니스영화제에서 첫 공개될 때부터 화제를 모았던 ‘컨테이젼’이 올스타급 출연진을 구성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 할리우드 배우들이 가장 신뢰하는 감독 스티븐 소더버그의 공이다. 1989년 스물여섯의 어린 나이에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로 프랑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고, 2001년에는 마약의 덫에 빠진 미국사회를 고찰한 ‘트래픽’으로 아카데미영화제를 점령했다. 재기발랄한 범죄물 ‘오션스’ 시리즈에서는 조지 클루니, 브래드 피트, 맷 데이먼, 줄리아 로버츠 등 스타군단을 제어하는 능력을 입증했다. ‘컨테이젼’이 주목받는 또 다른 지점은 전염병에 노출된 인류의 대재난을 담담하게, 그래서 더 섬뜩하게 묘사했다는 점이다. 보통 재난 영화가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 작품은 차분히 감염 경로를 뒤쫓는다. 최근 수년 새 조류 인플루엔자(AI), 사스 등 변종 바이러스의 확산에 따른 공포는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영화 속 허구나 이웃의 일쯤으로 흘려 넘길 수 없다는 얘기다. 영화를 본 뒤 악수가 꺼려지고, 강박적으로 손을 씻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오는 22일 국내 개봉하는 영화는 베스(귀네스 팰트로)가 홍콩 출장에서 돌아온 다음 날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며 숨지는 데서 시작된다. 아들까지 비슷한 증세를 보이며 숨진다. 갑자기 아내와 아들을 잃게 된 미치(맷 데이먼)의 일상을 중심으로 감염에 대한 공포가 전 사회로 퍼지는 과정이 묘사된다. 질병통제센터 등 보건당국은 신종 병원균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치버(로렌스 피시번) 박사를 중심으로 대응 조직을 꾸린다. 전 세계에서 수백만 명이 죽고 보건당국은 백신 개발에 실패를 거듭하자 사회는 극심한 혼란에 휩싸인다. 학교, 공공기관, 병원마저 문을 닫고 사람들은 식료품 사재기에 나선다. 그 사이 한 블로거(주드 로)는 바이러스에 대응하는 민간요법을 블로그에 올려 군중을 동요시키고 ‘예언자’란 별칭을 얻는다. 영화는 다큐멘터리처럼 객관성과 냉정함을 잃지 않는다. 감정을 절제하고 과학과 가능성에 기반을 둠으로써 보다 사실적인 공포감을 자아낸다. 캐릭터 개개인의 시점에서 원인 불명의 전염병이 퍼지는 과정을 동시다발적으로 뒤쫓는다. 이들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지만, 반드시 교차되거나 하나의 사건으로 귀결되지 않는다. 소더버그는 기존의 질병이나 재난 영화의 뻔한 전개에서 벗어나 정교한 스릴러물에 가까운 세련된 연출력을 선보인다. 초호화 캐스팅을 자랑하지만, 어느 한 명의 연기도 튀지 않고 전체적으로 균형을 이룬다. 다만 다양한 캐릭터와 이야기가 등장하지만 연결 고리가 적어 산만한 면이 없지 않고, 전반적인 화법이 건조해 영화적인 재미는 조금 덜할 수 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중동서 고대 미스터리문양 ‘나스카 라인’ 무더기 발견

    중동서 고대 미스터리문양 ‘나스카 라인’ 무더기 발견

    안데스 문명 유적으로 페루 나스카 평원 등에 그려진 거대 지상 그림 ‘나스카 라인’과 흡사한 고대 문양이 중동 지역에서도 발견돼 학계 관심을 끌고 있다. 14일(현지시간) 과학전문 라이브사이언스닷컴에 따르면 호주 고고학자 데이비드 케네디 교수팀이 시리아와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 등 광대한 사막 지역에서 나스카 라인과 흡사한 대규모 고대 문양을 발견했다. 최소 2000년 전 이 모래사막 위에 돌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중동판 나스카 라인은 지름이 작은 것은 25m에서 큰 것은 70m에 이른다. 또한 지상에서는 문양을 알아보기 어렵지만 항공 사진을 통해 확인 시 여러 개의 바퀴살을 가진 둥근 바퀴 모양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들 고대 문양은 단독적으로 그려져 있는 곳도 있으며, 요르단 아즈라크 오아시스 근처처럼 수십 개씩 군집을 이룬 형태도 발견되기도 했다. 이와 함께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직사각형 형태를 띠는 것도 있으며, 둥근 바퀴 모양이라도 바퀴살이 두 개만 존재하는 문양도 발견됐다. 케네디 교수는 “로마 고고학을 전공했지만 1920년대 요르단 상공을 비행했던 영국 공군 조종사가 쓴 저서에서 이를 묘사한 부분을 읽으면서 호기심을 느끼게 됐다.”면서 “직접 항공 탐사를 통해 이 유적을 확인하게 됐다.”고 밝혔다. 아울러 연구팀은 이들 구조물이 고대인들의 신앙 숭배 지역이거나 천문과 관련한 계절 의식의 장소로 활용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아직 확실한 증거는 밝히지 못하고 있다. 한편 이번 연구결과는 ‘고고학 저널’ 최신호에 게재될 예정이다. 윤태희기자 th20022@seoul.co.kr
  • 흡연자, 금연하면 밤이 안무섭다는데…

    남성이 금연에 성공하면 성적 능력이 개선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고 15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 등 외신이 전했다. 미국 재향군인회 보스턴 건강관리 시스템(VABHS)과 텍사스대학 오스틴 캠퍼스 공동 연구팀은 논문을 통해 금연 성공이 남성의 성 건강을 개선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성적인 문제가 없다고 밝힌 65명의 흡연자를 선정, 이들을 니코틴 패치를 사용한 8주간의 금연 프로그램에 참여토록 했다. 참가자들은 금연 시작 전과 중간, 이후로 각각 나눠 성적인 묘사가 나타난 영화를 시청한 뒤 신체 변화를 기록했으며, 평소 상태에 대해 묻는 설문조사에도 참여했다. 조사가 끝날 무렵 참가자 중 45명은 금연에 실패했지만 20명은 끝난 시점 이후 1주일 이상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또한 금연을 지속 중인 남성들은 흡연하는 남성들보다 발기 능력이 좋아지고 성적으로 더 쉽게 흥분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연구팀은 전했다. 발기는 해면체에 피가 모여들어 음경이 커지는 현상으로, 담배에 들어 있는 화학 성분이 혈관을 좁게 만들어 피가 흘러들어 가는 것을 방해해 흡연자들이 발기부전을 겪을 확률은 일반인보다 두 배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연구팀은 “(연구 결과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지는 아직 모른다.” 면서도 “(이번 결과가) 남성이 금연을 단행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연구 결과는 ‘영국 국제 비뇨기학 저널’(BJUI) 최신호에 게재됐다. 윤태희기자 th20022@seoul.co.kr
  • [어른들을 위한 동물원 이야기] (20)전래동화로 본 동물들의 잘못된 상식

    [어른들을 위한 동물원 이야기] (20)전래동화로 본 동물들의 잘못된 상식

    추석 연휴에 보름달을 보고 있노라면 달의 표면에 토끼 귀 한쌍 같은 무늬가 보인다. 저걸 갖고 옛날 사람들이 달에 토끼가 산다고 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상한 점은 나는 아무리 봐도 분명히 한 마리뿐인데, 전래 동화에서는 두 마리가 마주 보고 떡방아를 찧는 걸로 나온다는 점이다. 한 마리만 있으면 외로울 거라고 생각한 조상들의 배려일까.(참고로 야생 산토끼는 실제로 혼자 산다.) 동화책 속의 동물 이야기에는 작가의 개인적 생각이 많이 개입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생물을 다루다 보니 이야기가 입에서 입을 거치면서 사실에 기반한 것처럼 둔갑되기도 한다. 이것은 종종 동물에 대한 잘못된 상식이나 편견으로 이어진다. 대표적으로 손해를 보는 동물이 이솝우화 속의 베짱이다. 곤충학자의 관점에서 베짱이의 음악은 겨울이 되기 전에 자손을 남기기 위한 처절한 노동의 산물이다. 하지만 이솝우화 속에서는 게으름과 나태함의 극치로 묘사된다. 베짱이의 수명은 6개월 정도다. 게을러서가 아니라 평균 수명이 짧아서 겨울을 못 넘긴다. 당연히 죽기 전에 짝 찾을 마음이 다급하다. 높은 울음소리로 암컷을 유인하는 수컷의 목소리는 종족 번식을 위한 절박한 세레나데다. 안데르센 동화에 나오는 미운 오리새끼의 사례도 과학과 동떨어져 있다. 오리과에 속하는 어미새들은 둥지 주변에서 알과 비슷하게 생긴 것을 모두 끌어오는 습성이 있다. 심지어 공이나 백열전구를 자기 알로 착각하기도 한다. 오리나 고니 등은 한번 동거가 이루어지면 평생 자기 부모, 자식으로 인정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뻐꾸기의 탁란(托卵)이 가능하고 개가 고양이를 키우는 것 또한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운 오리새끼가 동화의 스토리처럼 가족들로부터 구박을 받았을 리는 없었을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자기 정체성을 고민할 이유도 없었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전래 동화가 다들 비과학적인 건 아니다. 흥부전 원본을 읽다 보면 조상의 지혜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중에서 흥부가 다친 새끼 제비의 다리를 고쳐주는 장면을 살펴보자. “…칠산 조기 껍질 벗겨 두 다리를 돌돌 말고 오색 당사로 찬찬 감아 제 집에 넣었더니 십여일 지난 후에 양각이 완고하여 비거비래(飛去飛來) 노는 거동 보기가 장히 좋다.” 일반인이 보기에는 어떨지 몰라도 수의사인 내 눈에는 우리나라 전래 의학의 응급처치법과 골절 치료법이 상세히 보인다. 잘 마른 조기 껍질이나 명주실은 탄력성이 있으면서 상처와 친화되는 좋은 재료다. 특히 제비 다리 정도의 가는 다리에는 부목으로 아주 제격이다. 서민들의 상식이 이 정도라면 당시 우리 의학이 상당한 수준에 있었던 게 아닌가 여겨지는 대목이다. 최종욱 광주 우치동물원 수의사 lovenat@hanmail.net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