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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니 로즈 “젊은 흑인들 부당한 대접 받는다는 스털링 발언 옳다”

    대니 로즈 “젊은 흑인들 부당한 대접 받는다는 스털링 발언 옳다”

    “라힘 스털링(24·맨체스터 시티)이 젊은 흑인 선수들을 미디어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비판했을 때 선수들은 하늘에 붕 떠 있었다(over the moon).” 잉글랜드 축구대표팀의 풀백 대니 로즈(28·토트넘)가 언론들이 스털링의 발언을 문제 삼았을 때 동료들이 입을 다문 것에 의아함을 느꼈다며 스털링은 “라커룸에서 우리가 늘 하던 얘기를 옮겼을 뿐”이라고 감쌌다. 로즈는 22일(이하 현지시간) 체코, 25일 몬테네그로와의 유럽축구선수권(유로) 2020 예선 경기를 앞두고 대표팀에 소집됐는데 19일 BBC 스포츠 인터뷰를 통해 “그의 발언이 100% 사실에 부합한다는 것이 몹시 슬프다”고 말했다. 스털링은 지난해 12월 첼시와의 경기 도중 한 팬으로부터 인종 차별 소지가 다분한 말을 들었다. 나중에 여러 신문들은 젊은 흑인 선수들을 묘사하는 방식 때문에 인종주의에 기름을 끼얹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 그의 발언을 문제 삼았다. “그가 미디어들로부터 받은 공격은 도가 넘어도 한참 넘은(bang out of order) 것들이었다. 그가 미디어에 대한 글을 (인스타그램에) 올려놓았을 때 우리 모두는 이 모두를 동의해놓고도 하늘에 붕 떠 있는 것 같았다. 라힘에게 페어플레이를!!” 스털링은 팀 동료인 토신 아다라비오요와 필 포든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주택을 구입했을 때 언론들이 피부색 때문에 다른 잣대를 들이댔다고 정면으로 비판했다. 스털링은 흑인인 아다라비요오를 향해 “프리미어리그 출전 경력도 없는데도 225만 파운드의 집을 샀다”고 비난한 반면, 백인인 포든에 대해선 “어머니를 위해 200만 파운드의 주택을 구입해 미래를 준비했다”고 기술하는 문제를 언론이 드러냈다고 꼬집었다. 또 자메이카 킹스턴에서 총격을 받고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스털링이 다리에 새긴 라이플 문신을 보고 언론들이 무분별하게 비난한 것에 대해서도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로즈는 “소셜미디어의 몇 안되는 긍정적인 점 하나는 당신 역시 목소리를 낼 수 있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라며 “이제 라커룸에서의 소년들 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이 미디어가 라힘을 노리고 있음음 알게 됐다. 우리는 이것이 바뀌어 어떤 식으로든 라힘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길 바란다. 그러면 우리 모두 고마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개러스 사우스게이트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은 체코, 몬테네그로와의 경기를 앞두고 처음으로 칼룸 허드슨오도이(18·첼시)를 발탁했는데 그 역시 지난 14일 디나모 키예프(우크라이나)와의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리그 경기 도중 인종 차별 구호를 들었다. 전에 인종 차별 공격에 대해 “귀가 먹었으며” 축구 단체들이 이를 바꿀 용기를 갖고 있지 않다고 밝혔던 로즈는 “오늘 아침에도 칼룸이 견뎌냈다는 신문 기사를 읽었다. 하룻밤 새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우리가 해결책을 찾을 때까지 한두 가지 사례가 더해질 것이며 이 문제를 다루거나 걱정하는, 믿을 만한 기관이 없다고 말하고 싶지 않은 현실이 서글프다. 칼룸 역시 이런 일에 영향 받지도, 설사 이 일에 대해 얘기할 필요가 있더라도 내가 여기 이렇게 있으니 참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동영상] 이스라엘 법무장관이 등장하는 ‘파시즘 향수’ 정당광고

    [동영상] 이스라엘 법무장관이 등장하는 ‘파시즘 향수’ 정당광고

    이스라엘의 극우 법무장관 아옐렛 샤케드가 등장하는 정당 광고 ‘파시즘 향수’가 다음달 9일 총선을 앞두고 소셜미디어에 올라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스라엘에서는 투표 2주 전부터 텔레비전 광고가 금지돼 여러 정당들은 소셜미디어를 정당 광고의 플랫폼으로 이용하고 있는데 지나친 내용이 적지 않다고 영국 BBC가 19일(현지시간) 전했다. 샤케드 장관이 등장하는 흑백 필름의 광고는 마치 상업 광고처럼 만들어져 그녀는 예쁜 모델처럼 캣워킹을 선보인 다음 향수의 매력을 음미하는 것처럼 묘사되는데 비싸 보이는 향수의 이름이 파시즘이다. 잔잔한 피아노 음악이 깔린 가운데 들려오는 여성의 목소리는 히브리어로 “사법 개혁” “권력 분산” “최고법원의 폭주 저지”와 같은 그녀의 핵심 공약을 들려준다. 향수를 자신의 몸에 흩뿌린 샤케드 장관은 마지막으로 “내게 이 향기는 민주주의처럼 느껴진다”고 읊조린다. 이 광고는 그녀의 울트라 민족주의 성향의 정책들에 쏟아진 비판을 가볍게 피해가려고 만들어졌다. 샤케드 장관은 이스라엘 최고법원이 지나치게 자유주의적이거나 국가의 개입을 강조하는 판결을 내린다고 비판해왔다. 그녀는 조금 더 보수 성향의 법관 셋을 지명하려 한다며 계속 법무장관으로 일하게 되면 사법부의 권한을 제한하겠다고 공언해왔다.그녀에 비판적인 이들은 이 광고가 특히 다른 나라에서 조롱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파시즘을 용인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도우파 청백당을 주도하는 프니나 타마노샤타는 예루살렘 포스트와의 인터뷰를 통해 “여성을 아름다움의 대상으로 객체화하는 쇼비니스트 남성들을 오히려 돕고 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샤케드 장관은 곱지 않은 시선을 인식한 듯 이스라엘 육군 라디오에 출연해 “스스로를 좀 내려놓고 싶었다.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통째로 과장된 정치적으로 올바른 대화를 좋아하지 않는다”며 “사람들도 조금 덜 진지하게 받아들였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녀와 나프탈리 베네트 교육부 장관은 정착지에 찬동하는 유대인의 고향 정당을 탈당한 뒤 울트라 민족주의 성향의 뉴라이트 정당을 창당했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 지지도가 높지 않자 유권자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이런 자극적인 내용의 광고를 만든 것으로 보인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지난주 중도우파 쿠랄누 정당은 역시 여론조사에서 고전하자 물고기 한 마리와 몸집이 산만한 하마가 나무를 기어오르는, 영화 예고편처럼 만들어진 광고를 내놓았다. 이런 광고들은 총선 과정에 유권자들이 마주하고 있는 진짜 이슈에 대한 관심을 오히려 흩뜨리는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한편 지난 17일 이스라엘 최고법원은 극우 유대인의 힘 정당 지도자인 미카엘 벤아리의 다음달 총선 입후보를 무효화했다.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20% 안팎의 아랍인에 대한 그의 코멘트 때문이었다. 하지만 같은 정당의 일부 후보들은 여전히 총선에 나선다. 이스라엘은 건국 이래 늘 다양한 정당이 난립해 한 정당이 정국을 홀로 이끌 수 없어 연립정부를 구성하곤 한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소박함만 한국의 美라더냐… 고려의 호방함 서린 ‘독립운동 성지’

    소박함만 한국의 美라더냐… 고려의 호방함 서린 ‘독립운동 성지’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으며 가장 주목받는 문화재는 단연 경북 안동의 임청각(보물 182호)이다. 경술국치 직후 집주인 이상룡은 일가 친족을 이끌고 서간도로 망명했다. 막대한 재산을 처분한 자금으로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무장독립운동의 주역들을 양성하고, 임시정부 제3대 대통령 격인 국무령을 역임했다. 오랫동안 방치되던 임청각은 독립운동의 성지가 되어 대대적으로 복원 정비할 예정이다. 이 집은 올해 창건 500주년을 맞으며, 고려 주택의 전통을 가진, 매우 드물고 소중한 건축 유산이기도 하다.●고성 이씨 법흥파종택… 이명이 1519년 창건 임청각은 고성 이씨의 한 분파가 안동 법흥동에 건립한 파종택이다. 하나의 옛집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가문의 역사를 들추는 수고를 해야 한다. 집은 곧 인격의 표현이고, 종택은 오랜 시간의 축적물이기 때문이다. 고성 이씨의 시조는 고려 문종 때 호부상서를 지낸 이황이다. 그는 거란의 침략을 막아 내는 큰 무공을 세워 철령군(철령은 경남 고성의 옛 이름)에 봉해졌다. 이 가문은 고려조에 정승급만 5명이나 배출한 명문가로 성장했고, 조선 초 좌·우의정을 지낸 이원이 용헌공파를 이루게 된다. 그의 아들들은 전국에 걸쳐 번성했는데, 6남인 이증(1419~1480)은 안동부 남문 밖으로 이주해 안동 지역의 입향조가 됐다. 그의 차남인 이굉은 낙동강 건너 현 정상동에 귀래정을 지었고, 이 일대는 고성 이씨의 씨족 마을로 발전했다. 이증의 3남 이명은 1519년 영남산 남록, 법흥동의 낙동강변에 정자를 지어 임청각이라 이름하니, 현재의 군자정 건물이다. 1540년, 여기에 본격적인 살림채와 가묘를 세워 파종택으로 정착시킨 이는 이명의 6남인 또 다른 이굉이다. 임청각 정착의 역사는 한 가문이 어떻게 명문가로 성장하는지, 그리고 어떤 건축적 장치가 필요했는지를 보여준다. 소수 귀족만이 성씨를 가졌던 고려시대에는 국가적 공헌을 이뤄 성씨를 하사받았다. 성씨와 동시에 일정 지역을 식읍으로 받는데, 곧 본관이 된다. 왕조가 바뀌는 조선 초는 기존 명문가들의 명암이 엇갈리는 시기였다. 새 왕조에 참여한 가문은 더욱 번창하게 되지만, 반대의 경우 멸문지화를 입던지 재야의 향반으로 전락하게 된다. 조선 초의 향촌은 고려적 장원 체제가 해체되고 새로운 체제로 전환하는 큰 변혁기를 맞았다. 이 시기에 번창한 가문의 자손들은 전국 각지의 새로운 소유지를 찾아 분파하게 되며, 파종가들이 출현했다. 종가가 되려면 종택을 짓고, 시조를 제사할 사당을 세워야 한다. 또한 향촌의 절경 곳곳에 개인 소유의 정자를 세운다. 지역의 경관을 소유하는 자가 바로 지역의 세력가가 되기 때문이다. 임청각은 별장인 정자로 시작해서 살림집과 사당을 가진 종택으로 확장한 경우다. 가문을 연지 500년 만의 결실이며, 그로부터 또 다른 500년이 흘렀다. ●고려 한옥의 또 다른 흔적, 온돌이 드문 2층집 우리의 건축들은 임진왜란 때 거의 파괴되어 현존하는 대부분은 17세기 이후에 지어진 것이다. 임란 이전의 것으로 임청각같이 큰 집이 온전히 남은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 집은 오래되고 거대할 뿐만 아니라 후대의 다른 살림집과 확연히 구별되는 중요한 특징을 갖는다. 남아 있는 부분만도 1층 50칸, 2층 12칸의 큰 규모로 후대의 한옥이라면 적어도 5채의 독립 건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이 집은 별채인 군자정을 제외한 모든 살림채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하늘에서 보면 마치 불완전한 용(用)자와 같이, 5개의 안마당을 중심으로 기와지붕의 선들이 이어진다. 평면 구성만도 밀집되고 복잡한데, 경사지를 활용한 3차원적 구성은 더욱 복합적이다.임청각의 눈에 띄는 특징은 2층 구조가 주를 이룬다는 점이다. 현재 2층 공간은 12칸이 남아 있지만, 원래는 20여 칸이나 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머리가 부딪힐까 걱정해야 하는 다락이 아니라 충분히 생활이 가능한 정식 2층 공간이다. ‘한옥은 단층’이라는 상식은 임청각에서 여지없이 깨진다. 김시습의 ‘금오신화’ 중 ‘이생규장전’은 고려 말 개성을 무대로 전개되는 연애기담이다. 2층루가 있고 이들을 은밀한 복도가 연결하는 것으로 여주인공의 집을 묘사했다. 아마도 이 소설을 쓴 조선 초까지, 개성과 한양의 큰 살림집의 일반적인 모습이었을 것이다. 임청각의 2층 바닥은 물론 1층 대부분도 마루 바닥이었다. 한옥의 가장 큰 특징이라는 온돌은 총 70칸 중 5칸에 불과했다. ‘한옥은 온돌’이라는 상식도 깨진다. 후대에 온돌로 개조한 부분까지 다해야 겨우 10칸이다. 서울 종로의 공평지구 재개발 때 조선 전기의 한옥 마을을 발굴하게 되었다. 보통 10여 칸 집에 단 1칸만 온돌방이며 마루가 주된 바닥을 이룬 집들이었다. 온돌이 한옥의 주된 바닥형식이 된 것은 17세기 이후이다. 이 집의 창호들 역시 후대의 것과는 확연히 차이가 있다. 창틀이 벽 가운데 떠 있는 것 같이 보이는 이른바 ‘액자창’들이 대부분이며, 아예 벽의 일부에 창을 끼운 것 같은 붙박이창도 여럿이다. 2짝 여닫이창들은 예외 없이 가운데에 문설주를 둔 ‘영쌍창’들이다. 이러한 액자창, 붙박이창, 영쌍창은 고려시대부터 내려온 전통이며, 18세기 이후의 한옥에서는 보기 힘든 오래된 기법들이다.한마디로 임청각은 고려 살림집의 전통을 간직한 호방하고 웅장한 집이다. 흔히 한국적 미학이라 일컫는 ‘소박하고 단순한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 송나라 사신 서긍이 고려 수도 개성의 풍물을 그린 ‘고려도경’의 묘사와도 같이 입체적이고 복합적인 건축이다. 13칸 행랑채의 수평적 장대함, 거의 3층 높이 안채의 수직적 당당함, 오래된 창호형식의 고졸함, 낙동강의 풍경을 감싸 안는 군자정의 넉넉함…. 이제는 거의 사라져 임청각만이 간직하고 있는 우리 건축의 또 다른 전통이다. ●보수 속 혁신… 남자는 군자정·여자는 살림채 써 임청각의 500년 세월 가운데 수차례 대대적 수리를 했지만, 후손들은 선조의 유산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러나 털끝 하나도 건드리지 않는 원론적 보수는 아니었다. 골격을 유지하면서도 마루들을 온돌방으로 개조했다. 남자 주인들은 별당인 군자정을 거처로 삼아, 살림채 대부분의 사용권을 여자 가족과 하인들에게 넘겨주었다. 옛 형식은 지키되, 새로운 내용을 수용한 은밀한 혁신의 결과다.석주 이상룡(1858~1932)은 이 가문의 가장 혁신적인 인물이다. 퇴계학파의 정통을 이은 안동의 큰 유학자로서 을사늑약 때부터 의병활동과 애국계몽운동에 앞장섰다. 1911년 노비를 해방하고 조상들의 위패를 묻은 뒤 서간도에 망명, 만주 땅에서 74세로 운명할 때까지 무장독립 투쟁에 헌신했다. 노비 해방과 제사 철폐는 정통 유림에게 있을 수 없는 패륜이다. 심지어 종손으로서 종가인 임청각을 팔아 독립운동 자금으로 썼다. 그러나 그는 군자정의 주인답게 진정한 ‘군자’였다. 군자란 누구인가? 세상의 문제와 해답을 깨달은 사람, 더 나아가 깨달음을 온몸으로 행하는 지행합일의 인간이다.1700년대 언저리, 이 집안의 두 형제가 분가해 임청각 좌우로 탑동파종택과 평지파종택을 세웠다. 1941년 일제는 고성 이씨 3형제 동네 앞에 중앙선 철도를 부설했다. 임청각의 대문채 등이 파괴되었고, 탑동파종택 앞의 법흥사지7층전탑(국보16호)은 기울어졌으며, 철도 노선에 포함된 평지파종택은 아예 흔적이 사라졌다. 일가족 10명이 독립유공자로 추서된 불령선인의 가문에 대한 야만적 보복이었다. 1913년 임청각을 한 일본인에게 2000원(현 가치 200억원 추산)에 팔았는데, 이를 알게 된 고향의 일가들이 합심하여 3000원에 곧 되사 보존할 수 있었다. 이 거액 매입을 주도한 이는 석주의 20촌 동생인 평지파종택의 이태희였다. 그는 일제 식민 치하의 수모를 감내하며 자신의 방법으로 고향과 가문을 지켰다. 보수와 혁신은 한몸이었다. 정통 유림이 무장투쟁가로 변신하고, 해방된 노비가 독립군이 됐다. 망명해 딴 나라에서 순국한 이도 있고, 고향에 남아 은밀히 독립운동을 도운 이도 있다. 비록 모두를 추서할 수는 없어도, 모두가 애국자이다. 280억원의 예산으로 임청각 일대를 복원 정비한다고 한다. 철도 이설과 임청각 정비뿐 아니라 사라진 평지파종택을 비롯해 외거 노비들의 가랍집까지 복원해야 한다. 이들 모두가 보수의 전통 속에서 혁신을 꿈꾸고 몸 바쳤던 역사이기 때문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건축학자
  • ‘장자연 법정’ 증언 윤지오 “상식 벗어난 질문 많아서 놀라”

    ‘장자연 법정’ 증언 윤지오 “상식 벗어난 질문 많아서 놀라”

    고 장자연씨 사건 관련 리스트를 직접 목격한 것으로 알려진 배우 윤지오(32)씨가 다시 법정에 나와 증언한 뒤 눈물을 흘렸다. 윤씨는 조선일보 기자 출신으로 민간기업 임원을 지낸 A씨 측 변호인의 태도에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윤씨는 서울중앙지법 형사20단독 오덕식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A씨의 강제추행 혐의 공판에 출석해 당시 상황을 다시 증언했다. 윤씨는 지난해 12월에도 같은 법정에 나와 증언했지만 지난달 재판부가 변경되면서 검찰이 ‘육성 증언을 들을 필요가 있다’며 재정신청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여 참관인 신분으로 출석한 윤씨는 증인으로 전환됐다. 비공개로 진행된 재판에서 약 40분간 증언한 뒤 법정을 나온 윤씨는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활동 기간을 연장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고 복도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 윤씨는 “문재인 대통령이 진실규명 촉구를 처음으로 언급해주셨고”라며 말하다가 재차 울음을 터뜨렸다. 윤씨는 “추행 정황에 대해 다시 회상을 하는 것조차 힘들었지만 다시 한 번 말씀드렸다”고 말하면서 A씨 측 변호인단의 태도를 지적했다. 윤씨는 “당시 장면에 대해 상세하게 묘사라라고 하셔서 했는데 그 과정에서 (A씨 측) 변호인 한 분이 웃었다”면서 “그 분도 하는 일을 하는 거지만 상식에서 벗어난 질문이 많아서 놀랐다”고 털어놨다. 윤씨는 “국가에 신변보호와 진실규명 딱 두 가지를 부탁드린다”면서 “어떤 보상도 말해본 적 없고 저는 그럴(보상을 받을) 가치도 없다”고 말했다. 또 윤씨는 “상황을 아는 다른 연예인도 있고, 목격자가 저 혼자가 아니다. 증언을 좀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유영재 기자 young@seoul.co.kr
  • 유인석, 정준영에 성매매 알선 정황…유리홀딩스 대표 사임

    유인석, 정준영에 성매매 알선 정황…유리홀딩스 대표 사임

    가수 승리와 함께 성매매 알선 혐의를 받고 있는 유리홀딩스 유인석 대표가 가수 정준영에게 성매매를 알선한 정황이 드러났다. 유인석씨는 유리홀딩스를 사임했다. KBS는 15일 입수한 카카오톡 대화 내용에 따르면 정준영은 2015년 크리스마스 당일 유씨에게 자신의 주소를 공개한 뒤 성매매 여성과 성관계를 하고 돌려보내면 되느냐고 물어봤다. 이 과정에서 정준영은 성매매 여성을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인 것처럼 묘사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원정 성매매를 했다는 정황도 담겼다. 정준영은 2016년 4월 씨앤블루 소속 이종현과 대화 중 독일 베를린 여행이 재밌었다며 그곳에서 성매매 여성들과 만났다고 밝히기도 했다. 정준영의 카카오톡 대화방 곳곳에는 정준영 외에 다른 연예인들의 성매매 정황도 포함돼 있다고 밝혀 파문이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2015년 말부터 가수 승리 등이 포함된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성관계 동영상 등 불법 촬영물을 수차례 공유한 혐의로 정준영의 구속영장 신청 여부를 검토 중이다. 경찰은 또 정준영이 영상 공유 뿐 아니라 국내외 성매매 정황을 포착한 만큼 수사를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한편 배우 박한별은 성접대 의혹 등에 연루되면서 경찰 조사를 받은 남편 유인석씨 논란에도 MBC 주말특별기획 ‘슬플 때 사랑한다’에서 하차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MBC 관계자 역시 “작품에 출연 중인 배우 본인 문제가 아닌 만큼 현재로서는 작품 일정에도 변동사항은 없다. 예정된 회차대로 방송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토르 노르웨이 장관님, 동거녀가 차에 불 질러 체포되자 집무 배제

    토르 노르웨이 장관님, 동거녀가 차에 불 질러 체포되자 집무 배제

    토르 미켈 와라 노르웨이 법무·공공안전·이민 장관이 동거녀가 자신의 차에 불을 지른 혐의로 체포되자 잠정적으로 집무에서 배제됐다. 노르웨이 연립정부의 한 축을 이루는 진보당 소속인 와라 장관와 함께 지내는 라일라 아니타 베르테우센(54)은 지난 10일(이하 현지시간) 오슬로 자택 근처에 주차된 와라 장관의 자동차에 불을 지른 혐의 등 넉달 동안 다섯 건에 이르는 인종주의 공격이 발생한 것과 관련해 14일 보안기관 PST에 의해 체포됐다. 경찰은 우선 방화 동기를 조사한 뒤 다른 사건들에 대해서도 조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에르나 솔베리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와라 장관과 가족에게 불행한 일이라며 “(경찰의 공식 발표 한 시간 전에 들은) 일련의 사건에 대한 정보들은 나와 정부 전체에 하나의 충격으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그녀는 와라 장관을 공공안전 업무에서 배제하고 자신이 이 사건 수사를 직접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베네딕테 뵌란드 PST 수장은 베르테우센을 장관의 입주 파트너라고 묘사하며 범죄 내용을 잘못 파악하도록 하는 행위까지 저지른 혐의도 받고 있다고 밝힌 뒤 “범행 동기들을 특정하긴 이른 단계”라고 덧붙였다. 베르테우센의 유죄가 확정되면 1년 징역형이나 벌금형이 선고될 수 있다. 와라 장관을 겨냥한 공격은 지난해 12월 6일 그의 집과 자택에 ‘인종주의자’ 낙서가 등장한 것이 시작이었다. 비슷한 공격이 지난 1월과 지난달 한 차례씩, 이달에만 두 차례나 더 있었다. PST는 이 사건들을 해결하지 못한다는 비난에 시달렸는데 총리도 많은 다른 정치인들과 그 가족들을 걱정하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진보당 소속이지만 와라 장관은 중도파로 여겨졌는데 이런 공격이 계속되니 의아한 일이었다. 베르테우센은 와라 장관과 24년을 함께 지냈는데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올린 글을 통해 장관 차에 불이 붙여졌을 때 자신은 잠들어 있었다고 해명하고 경찰 대응의 문제점을 조롱하는 내용이었다. 또 ‘Ways of Seeing’이란 연극에 장관이나 다른 인기있는 정치인 자택 사진이 사용된 것이 문제라며 오슬로의 한 극장 책임이라고 지적했다. 이 사건 수사를 직접 관장하겠다는 총리의 태도도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난 13일 베르테우센과 마찬가지로 극장을 공개 성토했다가 다음날 베르테우센이 체포되자 극장에 사과하지도 않았고, 공영방송 NRK의 입장 표명에도 노코멘트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영국 BBC는 전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50세의 순종, 80세 아편쟁이 노인 같았다” 독일 기자가 본 마지막 황제

    “50세의 순종, 80세 아편쟁이 노인 같았다” 독일 기자가 본 마지막 황제

    “햇빛 보지 않은 얼굴…정원 가꾸며 소일 日, 명성황후 산 채로 불에 태워 죽였다”대한제국의 2대 황제이자 마지막 황제인 순종(1874~1926년)이 일제강점기에 독일 신문 알게마이네 차이퉁 기자와 가진 인터뷰가 14일 공개됐다. ‘오늘의 서울, 황제를 만나다’(1924년 5월 3일자)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황제 자리에서 물러난 뒤 은거하고 있던 순종은 기자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그저 “폐인 같은 모습으로 아편을 피우는 늙은 노인”의 모습으로 그려졌다. 독일 뷔르츠부르크대 중국학과 고혜련 초빙교수가 이날 공개한 기사에 따르면 무명의 기자는 아르날도 치폴라라는 이탈리아 기자와 함께 순종과의 인터뷰를 추진했다. 일본돈 50엔의 비용을 지불한 뒤 창덕궁일 것으로 예상되는 궁에서 순종을 만난 기자는 순종의 첫인상에 대해 “80세 정도의 깡마르고 햇빛을 보지 않은 얼굴의 노인이었다. 황제는 그저 아편을 피우거나 정원을 가꾸는 일로 소일하고 있다. 가족만 남은 그는 한국정치의 비극적 인물이다”라고 묘사했다. 당시 순종의 나이는 50세에 불과했다. 순종과의 인터뷰는 수월하지 않았다. 어떤 질문을 건네도 황제는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 기자는 순종에게 “황제로 있던 시절(1907~1910년) 이탈리아 대표사절을 기억하는지”를 물었으나 황제는 미소만을 띠었다. (1923년 발생한) 일본의 관동대지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었으나 역시 고개를 흔들기만 했다고 묘사돼 있다. 기자는 일제 만행의 역사를 알고 있었다. 기사에는 “미친 (일본) 군대는 고종의 궁에 침입해 명성황후를 때린 후 석유를 붓고 산 채로 불에 태워 죽였다. 황제는 러시아 공사관으로 도망쳐 살아남았다. 불행한 왕조에 남은 건 고난의 길 뿐이었다”고 서술돼 있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나경원 “해방 후 반민특위 탓 국민 분열” 논란

    나경원 “해방 후 반민특위 탓 국민 분열” 논란

    친일청산 ‘반민특위’ 분열 원인 지목 민주당 “이념적 편가르기, 강한 유감” 민평당도 “한국당 정체성 뭔가” 비판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14일 “해방 후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로 인해서 국민이 무척 분열했다”고 주장했다. 친일청산 활동을 했던 반미특위를 분열의 원인으로 묘사한 발언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나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국가보훈처가 과거와 전쟁을 확대하며 기존 독립유공 서훈자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하고 사회주의 활동 경력자 298명에 대해서는 재심사를 통해 서훈 대상자를 가려내겠다고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이어 “친일 행위를 하고도 독립운동자 행세를 하는 가짜 유공자는 가려내겠다고 한다”며 “가짜는 가려내야 하지만 본인들 마음에 안 드는 역사적 인물에 대해서는 친일 올가미를 씌우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결국 우파는 친일이라는 프레임을 통해서 이 정부의 역사공정이 시작되는 것 아닌가”라며 “반민특위로 무척 분열했던 것을 모두 기억할텐데 또다시 이러한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주실 것을 말씀드린다”고 했다. 반민특위는 일제 시대 반민족행위를 조사하고 처벌하기 위해 1948년 설치한 특별위원회다. 이승만 정부와 친일 경찰 등의 조직적 방해로 인해 1년만에 와해되고 말았다. 여야는 일제히 비판했다. 이해식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친일 잔재를 청산하고 역사를 바로 세우라는 국민 염원마저 ‘국론 분열’ 운운하며 이념적 편 가르기에 나선 것에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홍성문 민주평화당 대변인도 “5.18 망언으로 국민을 분노하게 한 김진태, 김순례, 이종명 의원에 대한 징계는 눈 가리고 아웅하더니 반민특위 활동에 대해 국민을 분열시켰다고 평가하는 한국당의 정체성은 무엇인가”라고 지적했다. 이근홍 기자 lkh2011@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전두환과 승리/김성호 문화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전두환과 승리/김성호 문화부 선임기자

    전두환 전 대통령과 아이돌그릅 빅뱅 멤버인 승리가 항간에 뜨겁게 회자된다. 전두환씨는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돼 공판에 출두한 뒤 연일 입초시에 오르고 있다. 승리는 강남의 유명 클럽 버닝썬 사건의 중심 인물로, 관련 일탈이 끝 모를 지경으로 확산되고 있다. 두 사람은 모두 자연인이 아닌, 공인(公人)이다. 세인들의 입에 그 이름이 쉼 없이 오르내림도 예사롭지 않은 공인의 신분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따져 보면 두 사람의 요란한 회자는 ‘유명 공인’ 말고도 이중구조의 부조리 때문이다. 일반 상식에서 동떨어진 그들만의 생각과 행동 말이다. 지난 11일 5·18 광주민주화운동 39년 만에 광주 법정에 선 전두환씨를 보자. 전씨의 혐의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헬기 사격을 증언한 조비오 신부에 대한 명예훼손이다. 전씨 회고록에서 조비오 신부는 ‘가면 쓴 사탄’,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로 묘사된다. 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의 넋을 달래려는 광주 시민들과 관련한 자신은 ‘씻김굿의 제물’로 쓰고 있다. 혹시나 하는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전씨 측이 사죄나 유감 표현은커녕 헬기 사격 일체를 부인한 것이다. 발포 명령 인정 여부를 묻는 취재진 질문에 전씨가 던진 외마디는 “이거 왜 이래”였다. 광주민주화운동은 헌법적·법적 판단이 명쾌하게 정리된 한국의 아픔이다. 대부분의 국민들도 그에 동의한다. 그러니 ‘이거 왜 이래’는 전씨가 얼마나 심각하게 세상과 동떨어진 이중구조의 벽 속에 갇혔는지를 보여 주는 단초다. 의도된 회피이겠지만 말이다. 요즘 젊은이들이 흔히 쓰는 말을 빌리자면 안드로메다다. 또 버닝썬의 승리는 어떤가. 직원의 손님 폭행 논란으로 시작된 버닝썬 사태는 이제 연예인 성범죄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버닝썬 실소유주에 마약 유통, 성범죄, 경찰 유착 의혹을 받는 승리가 연예계 은퇴라는 모면 수를 택했지만 사태는 그야말로 복마전이다. 그 버닝썬 사태 역시 매일매일을 열심히 건전하게 사는 일반인과는 몹시 다른 이중구조의 세상에서 놀아난 사람들에 시선이 쏠린다. 얼마나 많은 공인들이 그들만의 잔치(?)를 즐겼을지의 분노 어린 의심이다. 한국은 국민소득 3만 달러를 자랑스럽게 입에 올린다. 우리 사회는 그 자랑스러운 3만 달러 시대에 발을 제대로 맞춰 사는 것일까. 그 거창한 3만 달러는 현실과 거죽의 괴리 앞에서 여지없이 무색해지곤 한다. 양극화 말고도 우리 앞에 드리워진 삶은 팍팍하기만 하다. 위기의 청년실업이며 자영업자·비정규직의 생존 위협, 급속한 초고령화 진입…. 그 와중에 ‘그들만의 리그’, ‘그들만의 잔치’로 불리는 일탈과 누림이 활개치고 있는 것이다. 남의 눈과 공중의 상식은 아랑곳없이 내 생각대로, 그렇게 나만 잘살아 보자는 식의 이중구조. 그 틈새에 끼어든 뻔뻔한 이기주의 탓에 우리는 수없이 많은 손실과 반목을 치러 왔지 않은가. 대중의 기대를 짓밟고 국민에게 던진 ‘이거 왜 이래’ 응수는 그래서 더 큰 원성과 분노를 낳고 있다. 승리 역시 기대와 꿈을 분노로 바꿔 놓은 ‘위험한 공인’이다. 살얼음 같은 세상 속, 그들만의 위험한 리그를 이제 끝내자. ‘위험한 공인들’ 말이다. kimus@seoul.co.kr
  • 철길 뚫어 교통오지 탈출… 관광자원 살려 남북거점지 도약

    철길 뚫어 교통오지 탈출… 관광자원 살려 남북거점지 도약

    남북교류시대를 앞두고 강원 평화(접경)지역 지자체마다 평화시대 교두보 마련에 팔을 걷어붙였다. 개발에 밀렸던 각종 사회간접자본(SOC) 건설 청사진에서부터 주민들과 군 장병들에게 희망을 주는 문화행사까지 다양한 준비에 바쁘다. 살기 좋은 고장으로 만들어 남북한 교류시대 중심지로 만들겠다는 각오가 남다르다. 주민들도 험준한 산악과 최전방 군사 지역이라는 이미지를 벗는 기회를 놓칠 수 없다며 적극적이다. 강원도와 휴전선을 맞댄 고성·인제·양구·화천·철원 등 5개 평화지역 지자체들이 준비하는 남북교류협력시대 청사진들을 12일 들여다봤다.“지뢰 지대와 첨예한 군사 대치 지역으로 아무도 갈 수 없었던 땅이 평화시대를 맞아 상전벽해할 날도 머지않았습니다”. 남북 화해와 교류시대를 꿈꾸며 강원도 평화지역이 꿈틀거리고 있다. 우선 열악한 SOC 관철에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 철길과 도로가 뚫려야 남북교류시대 허브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당장 춘천~화천~양구~인제~속초(고성)를 잇는 동서고속화전철 조기 개통과 강릉~제진 간 동해선 철길(104.6㎞), 철원 백마고지~월정역 간 경원선 철길 복원(11.7㎞)을 바라고 있다. 강원연구원 관계자는 “2년 전 정부에서 사업 추진이 확정된 동서고속전철이 완공되면 서울에서 춘천을 경유해 화천과 양구, 인제, 속초(고성)로 이어지며 전방지역 발전에 기폭제 역할이 기대된다”며 “당장은 사업 추진이 지지부진하지만 본격적인 남북교류시대가 열리면 탄력을 받을 전망”이라고 말했다. 교통 오지로 남은 전방 곳곳까지 고속도로와 국도 건설에 대한 희망도 살리고 있다. 강원도는 춘천~철원 간 중앙고속도로 연장(63㎞)과 속초~고성 간 동해고속도로 연장(16.6㎞), 포천~철원을 잇는 고속도로(25.3㎞) 건설을 남북교류시대를 여는 과제로 정부와 협의 중이다. 양구 월운리~북강원도 금강을 잇는 국도 31호선(우선 군사분계선까지 11.5㎞)과 경기 연천~철원 월정리를 잇는 국도 3호선(13.8㎞) 건설에 집중하고 있다. 평화지역 지자체들이 남북교류시대를 내다보며 추진하는 청사진도 다양하다. 금강산 관광길이 막힌 지 11년째를 맞은 고성군은 육지와 바다를 아울러 알찬 사업들을 구상하고 있다. 동해안 최북단인 현내면 사천리 일대(제진역 인근)에 동해선 철길과 연계한 물류환승단지 조성을 정부에 요청했다. 남북 철길이 열리고 시베리아 철길과 연계되면 러시아와 유럽으로 가는 동해안 최대 물류기지로 만들겠다는 복안이다. 제진역 주변 사천리 일대에 호텔과 면회소, 면세점 특산품 판매장 등이 있는 남북교류 이산가족 상설 면회소 건립도 제안했다. 9·19 남북공동선언에서 발표된 원산~강릉(245㎞)의 동해관광공동특구 조성에서 화진포를 거점으로 한 고성을 홍콩 방식의 특별지구로 지정해 줄 것을 정부에 요청했다. 김가현 고성군 남북교류팀장은 “산불과 관련한 남북산림협력센터 설치와 평화 백두대간 트레일 조성, 남북 공동어로구역 설정, 남북 수산협력 거점화, 남북평화잼버리공원 조성 사업 등을 남북교류사업으로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경기도와 강원도 경계에서 교통 오지로 남은 철원군도 다양한 교류사업을 준비 중이다. 백마고지 인근인 철원읍 대마리·중세리 일대 330만㎡(3000억원 규모)에 철원평화산업단지 조성을 추진한다. 이미 기본계획 수립을 거쳐 2014년 국회에서 법률안 발의까지 마치고 지난해 9월에는 강원도,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한국소기업소상공인연합회와 공동업무협약 양해각서(MOU)까지 체결했다. 철원읍 풍천리 일대에는 태봉국 철원성(내성 7.7㎞, 외성 12.5㎞) 남북 공동조사도 추진하고 있다. 정광민 철원군 평화지역발전과장은 “역사와 문화의 최우선 교류 분야로 추진하면서 ‘태봉국 테마파크’ 조성과 연계해 관광자원화할 계획”이라면서 “지뢰 제거 작업을 끝낸 화살머리고지 일대는 세계 남북 평화지역 추모공원과 둘레길을 조성한다는 복안”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남북교류협력 조례’를 공포한 양구군의 행보도 발빠르다. 우선 남북협력 농업생산 전초기지를 추진하고 나섰다. 북위 38도에 있고 평균 해발 600~700m 고산지에 있다는 이점을 앞세워 감자, 옥수수 등 북한 지역 날씨에 적응해 식량난을 해결할 수 있는 작물시험 재배지로 자리매김하겠다는 복안이다. 현재 해안면 통일농업시험장에 연구시범포를 설치하면 언제든 가능하다는 계산이다. 인근 친환경 유기질 비료 생산업체와 협력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농촌의 부족한 일손을 북한 주민들을 끌어들여 해결하는 방안도 계획하고 있다. 양구 특산품인 수박, 멜론, 사과와 시래기 농사를 대규모로 지으며 일손이 부족한 어려움을 해결하겠다는 복안이다. 철책선 안쪽 문등리의 자원을 조사, 개발하겠다는 ‘민통선 북방마을 복원 프로젝트’도 추진한다. 서정혁 양구군 기획조정실 주무관은 “조선시대 백자 원료로 유명했던 양구 백토와 북한 해주, 봉산, 회령 등에서 나는 북한산 백토를 합토해 통일도자기를 만드는 사업도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화천군은 남북협력사업과 화천생태평화특구 조성 추진을 위해 민간인통제선 조정에 적극적이다. 현행 10㎞ 이내를 5㎞ 이내로 줄이고, 제한보호구역도 25㎞에서 15㎞로 줄여야 각종 사업이 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2006년 특구로 지정된 화천 평화생태지역은 백암산 로프웨이(2.12㎞)와 전망대, 생태관찰학습원 등이 추진되고 있다. 화천~평화의댐~금강산 수로 관광루트 개발사업도 올해까지 평화의댐(23㎞)까지 잇는 유람선과 DMZ 주변 관광자원을 연계해 1단계 사업을 마무리하고 남북교류사업이 본격화되면 평화의댐에서 금강산댐까지(35㎞) 2단계 사업을 완료할 계획이다. 최인한 화천군 기획계장은 “도로와 자전거길을 잇는 DMZ 순환 둘레길을 만들고 노후된 안동철교 재가설과 안동철교~양의대 하천습지~오작교 구간(4㎞) 생태학습지도를 만든다”고 말했다. 인제군은 내설악~금강산을 연계해 남북 관광특구와 DMZ 평화생명특구 개발로 남북교류의 대동맥 역할을 맡겠다고 선언했다. 이를 위해 동서고속화철도 원통역을 잇는 23㎞ 구간 대체 노선의 신설을 바라고 있다. 사업이 마무리되면 연간 20만~30만명의 내금강 관광객이 찾는 새로운 평화관광 벨트가 가능해질 전망이다. 또 백담사와 장안사, 표충사 등 북측 금강산 고찰들과의 불교문화 교류도 가능해질 전망이다. 더불어 6·25전쟁 이전 가전리~금강산 35㎞의 옛 금강산 가는 길을 복원하면 남북 공동 발전과 함께 민족 동질성 회복, 정신문화 발전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이명규 인제군 평화지역발전담당은 “이 밖에 서화면 천도리 평화지역발전사업을 비롯해 원통에 군 장병과 주민이 함께할 수 있는 복합커뮤니티 건립사업, 북한 금강군과 연계한 내수면 어류 복원연구사업, 북한 금강군 산림복원을 위한 양묘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다”며 “북한 산림 복원으로 발생하는 임산물은 다시 인제 지역 주민들의 소득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라디오스타’ 이이경, ‘묻지마 폭행’ 당해 의식불명 고백 “느낌 쎄했다”

    ‘라디오스타’ 이이경, ‘묻지마 폭행’ 당해 의식불명 고백 “느낌 쎄했다”

    배우 이이경이 ‘라디오스타’에 출연해 고등학교 시절 의식불명에 빠진 사연을 전한다. 오는 13일 오후 방송되는 MBC 예능프로그램 ‘라디오스타’는 김종국, 이이경, 유세윤, 쇼리 네 사람이 출연하는 ‘왜그래 종국씨’ 특집으로 꾸며진다. 이이경은 고등학교 시절 ‘의식불명’에 빠진 사연을 공개할 예정이다. 길 한복판에서 ‘묻지마 폭행’을 당했다는 그는 “느낌이 쎄-했다“고 전하며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해 모두를 경악케 했다. 또한 이이경은 UV 노래에 심의 의혹을 제기하며 눈길을 끈다. 스스로 UV 팬임을 밝힌 이이경은 노래방에서 ‘설마 아닐거야’라는 노래를 부르던 중 가사가 너무 세서 당황했다고. 생각지도 못한 가사 해석에 스튜디오가 초토화됐다는 후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축구에 대한 남다른 애정으로 유노윤호의 뒤를 잇는 ‘열정맨’의 탄생을 예고했다. 활동하는 축구팀만 무려 5개라고 밝혀 이목을 집중시켰다. 더불어 김종국의 축구팀에도 매주 게스트로 나가 뛴다고 말해 놀라움을 자아냈다. 이에 김종국은 그를 팀에 영입하기 위해 회비를 내라고 하자 급 연락 두절된 사연을 폭로하며 그를 당황케 했다고 해 궁금증을 자아낸다. 그런가 하면 이번 방송에는 김종국을 비롯해 이이경, 유세윤, 쇼리 네 명의 게스트가 역대급 케미와 넘치는 입담을 보여줬다고 전해져 기대를 모은다. 과연 이이경이 급 연락 두절된 이유는 무엇인지, 의식불명에 빠진 사연은 무엇인지 오는 13일 오후 11시 10분 방송되는 ‘라디오스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윤지오 “장자연 리스트, 장자연이 쓴 것 아닐 수도”

    윤지오 “장자연 리스트, 장자연이 쓴 것 아닐 수도”

    故 장자연 씨와 같은 소속사에서 일했던 윤지오씨가 최근 출간한 자전적 에세이 ‘13번째 증언’(사진·가연)에서 ‘장자연 리스트’의 진위를 언급해 눈길을 끈다. 장씨가 직접 쓴 리스트가 아니라는 뜻으로, 사실일 경우 ‘장자연 리스트’에서 출발한 사건의 본질 역시 밑바닥부터 흔들릴 수 있다. 책은 장씨와 함께 ‘ㄷ’ 엔터테인먼트사에서 일하며 성추행 사건을 직접 목격한 윤씨가 자신이 그동안 겪었던 일을 담았다. 윤씨는 특히 장자연 리스트가 알려진 과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윤씨는 장씨가 자살한 뒤 5일이 지난 2009년 3월 12일 ‘ㅎ’ 엔터테인먼트 대표 Y에게서 전화를 받는다. “장자연이 쓴 글이 내게 있다”는 이야기였다. 윤씨는 장씨의 친언니인 S와 함께 Y를 만나 문서를 확인한다. 그러나 S는 해당 문서에 관해 “자연이의 글씨체와 다르다”고 주장한다. 실랑이 끝에 Y는 그 자리에서 원본과 사본을 불태워버린다.그러나 다음 날 언론에 ‘장자연 리스트’가 공개되며 사태가 커진다. 윤씨는 경찰을 대동하고 전날 불태운 재를 수거해 분석했다. 그러나 재에서는 인주 성분이 나오지 않았다. 원본이 아니라는 뜻이다. 윤씨는 이와 관련 “Y가 태운 것이 원본이 아니었고, S가 ‘글씨체가 다르다’고 한 만큼, 장자연 리스트는 장자연이 쓴 게 아닐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윤씨는 이와 관련 당시 Y가 처한 상황을 리스트 작성의 이유로 든다. 장자연의 소속사인 ‘ㄷ’ 엔터테인먼트에서 일하던 Y는 따로 나와 회사를 차리면서 2명의 연예인을 데리고 나오면서 ‘ㄷ’ 엔터테인먼트사 대표 K와 손해배상 청구소송 중이었다. 앞서 Y는 윤씨에게 “만나서 무언가를 써줬으면 좋겠다. 자연이도 썼다”며 만나줄 것으로 부탁한 바 있다. 윤씨는 이와 관련 “실제로 장씨 유족들은 당시 ‘K와 Y의 갈등으로 자연이가 희생양이 됐다’며 문건의 실체 규명보다 누가 어떤 목적으로 문건을 작성하고 유출했는지에 더 큰 분노를 드러냈다”며 장자연 리스트가 실제 장씨가 쓴 것이 아님을 암시했다. 또 윤씨는 장씨를 성추행한 조선일보 출신 기자 C에 관해 “가지고 있던 기자 명함 때문에 혼동했지만, 그가 장자연을 성추한 게 맞다”고 여러 차례 강조한다. 윤씨는 K의 생일날이었던 2008년 8월 5일 C씨가 장자연을 성추행 한 일도 책에서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당시 한 술집에서 C씨가 노래하던 장자연을 붙잡아 옷 속으로 손을 넣는 등 성추행 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당시 윤씨가 증언을 번복한다는 이유로 C를 처벌하지 않았다. 윤씨는 또 책에서 “방송사를 뒤흔들 정도로 성장한 회사의 대표가 나에게 출연을 조건으로 잠자리를 요구했다”고 털어놓는다. 다만 다른 이들과 달리 이니셜을 밝히지는 않았다. 책 제목인 ‘13번째 증언’은 윤씨가 경찰과 검찰에서 13번이나 참고인으로 증언한 데에서 따왔다. 윤씨는 자신이 여러 차례 증언했지만, 경찰과 검찰이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고 억울한 심경을 책에서 드러내기도 한다. 그는 앞서 언론 인터뷰를 통해 “‘13번째 증언’은 진실만을 기록한 에세이북”이라며 “제가 이제껏 언론에서 공개한 내용은 빙산의 일각이며, 책에서 더 많은 내용을 다룬다”고 밝힌 바 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영웅’을 찾는 김부장…‘동주’에 빠진 이대리

    ‘영웅’을 찾는 김부장…‘동주’에 빠진 이대리

    안중근 다룬 ‘영웅’ 이례적 男관객 몰려 초연 ‘여명의 눈동자’ 예매자 21% 40대 ‘윤동주, 달을 쏘다’ 관객 80% 20·30대女 군복무 배우 출연 ‘신흥무관학교’도 인기임시정부 수립(4월 11일) 및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우리 역사를 다룬 창작뮤지컬이 연이어 무대에 오르고 있다. 역사물이라는 성격상 주제는 다소 무겁지만, 출연진이나 소재 등에 따라 관객의 성향이 뚜렷하게 갈리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초연 10주년을 맞아 지난 9일부터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오른 뮤지컬 ‘영웅’은 상대적으로 남성 관객, 40대 관객의 비중이 높다. 8일 현재 기준 인터파크 티켓 예매자 정보 자료를 보면 남성 예매자가 30.3%, 40대 예매자는 25.7%로 나타났다. 특히 여성 관객 비중이 90% 이상인 일반적인 뮤지컬 작품과 비교하면 ‘영웅’을 보는 남성 관객 비중은 이례적으로 높다. 2017년 세종문화회관 공연 때도 남성 관객이 27.4%에 이르기도 했다. 가족 관객 비중을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40대 이상 예매자가 많다는 것은 부부나 부모·자녀 등이 함께 관람하는 관객층이 적지 않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이토 히로부미 암살 사건 등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1년을 다룬 ‘영웅’의 주인공 ‘안중근’에는 배우 정성화·양준모가 더블캐스팅됐다. 지난 1일 삼일절에 맞춰 디큐브아트센터에서 초연 무대가 시작된 창작뮤지컬 ‘여명의 눈동자’는 1990년대 초 인기를 끌었던 동명의 드라마를 원작으로 하는 만큼 중장년층의 호응도가 높다. 인터파크 티켓을 통한 전체 예매자 가운데 40대 비중이 21.6%로 나타나 드라마를 기억하는 이들의 예매가 많은 것으로 분석됐다. 위안부 문제와 제주 4·3사건 등 우리 현대사의 아픔을 다루면서도 자극적인 연출을 최소화하는 등 관객 연령대를 넓혔다. 변숙희 프로듀서는 “무대 소품인 의자는 소녀상의 의자를 상징적으로 표현한다”며 “가슴 아픈 역사를 직접적이기보다는 간접적으로 묘사했다”고 설명했다. 작품은 앞서 투자 사기를 당하며 큰 위기를 겪었다. 이 때문에 대극장 무대에 대형 무대장치를 올리는 대신 무대 양쪽에 객석 300여석을 설치하는 이른바 ‘나비석’을 올리는 방식으로 무대를 재구성했다. 제작비를 줄이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지만 이 같은 미니멀한 연출이 오히려 배우와 관객이 함께 호흡하는 느낌을 주는 ‘신의 한수’가 됐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36부작에 이르는 드라마의 방대한 서사를 2시간여로 압축한 스토리라인에 대한 호불호는 갈리지만, 앙상블과 조연 등의 연기는 호평이 대체적이다. 작품의 규모를 줄이며 티켓 가격도 최고가 7만원으로 책정돼 다른 작품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다.지난 5일부터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무대에 오른 ‘윤동주, 달을 쏘다’와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2월 말부터 공연 중인 ‘신흥무관학교’ 등은 여성과 젊은층 관객의 호응이 높다. 윤동주 시인을 소재로 한 서울예술단의 ‘윤동주, 달을 쏘다’는 2012년 초연 이래 재연 때마다 꾸준히 흥행 성적을 내는 스테디셀러 공연이다. 인터파크 티켓 예매자 정보에 따르면 이번 공연의 여성 예매자는 93.9%로, 20대와 30대 예매자는 각각 39.4%와 38.3%로 나타났다. 독립운동사를 다룬 ‘신흥무관학교’는 제70주년 국군의날 기념작으로 지난해 육군본부가 기획한 ‘군(軍) 뮤지컬’이다.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한 앙코르 공연에는 현재 군복무 중인 배우 강하늘과 지창욱, 가수 조권, 온유 등 대중적인 스타들이 총출동하고 있다. 여성 예매자가 91.1%, 20대와 30대 예매자는 39.3%, 31.3%에 이르러 군입대로 볼 수 없었던 스타들을 보기 위해 작품을 선택하는 팬들이 적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공연계 관계자는 “‘영웅’과 같은 작품은 기업이나 학생 단체관람 수요도 적지 않다”면서 “‘윤동주, 달을 쏘다’는 초연 때부터 ‘윤동주’ 역으로 출연해온 뮤지컬 배우 박영수에 대한 팬덤 등이 여성 관객이 많은 배경으로 꼽힌다”고 설명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조선인 손으로 만든 ‘장화홍련전’… 첫 상업영화 시대 열다

    조선인 손으로 만든 ‘장화홍련전’… 첫 상업영화 시대 열다

    1920년대 전반, 드디어 조선 영화는 무성영화 시대의 막을 올렸다. 연쇄극 ‘의리적 구토’로 조선 영화의 첫발을 뗀 1919년부터 조선 무성영화의 대표작 ‘아리랑’이 개봉한 1926년 이전의 시기, 조선 영화계는 어떤 영화들을 만들면서 무성영화 시대를 개척해 갔을까. 주목할 부분은 식민지와 제국 구도에서 조선인들만으로 자유롭게 영화를 만들 수는 없었다는 사실이다. 일제강점 아래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당국의 정책뿐 아니라 재조선 일본인의 자본과 끊임없이 협상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물론 조선인 관객들을 위한 영화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역할은, 조선의 이야기를 다루는 조선인 감독의 연출과 조선 사람을 연기하는 조선인 배우들의 연기였다. 이 지점이 조선의 무성영화가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이었던 셈이다. 최초의 극영화 ‘월하의 맹서’(1923), 일본인 흥행사가 제작한 최초의 상업영화 ‘춘향전’(1923), 조선 영화인들의 손으로 제작된 ‘장화홍련전’(1924) 등의 작품을 통해 당시의 무성영화 제작 현장을 살펴보도록 한다.●조선인이 감독한 최초의 극영화 ‘월하의 맹서’ 1923년에 공개된 ‘월하의 맹서’는 온전한 극영화의 형식을 갖춘 최초의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 영화의 의미는 크게 두 가지다. 야외의 활극 장면만 영화로 표현했던 이전의 연쇄극과 달리, 기승전결의 스토리를 모두 필름 촬영으로 소화한 극영화라는 점 그리고 각본, 감독, 출연 모두 조선인의 손으로 이뤄낸 점이다. 당시 언론인이자 연극인으로 활동했던 윤백남(1888~1954)이 각본과 감독을 맡았고, 그가 이끌어 온 민중극단의 단원 이월화, 권일청, 문수일, 송해천 등이 출연했다. 신파극 무대에서 활약하던 이월화(1904~1933)는 이 영화를 통해 조선 영화 최초의 스타 여배우로 등극한다. 한편 영화 매체를 성립시키는 기술 파트까지 조선인이 해결하기는 힘들었는데, 촬영과 편집은 일본인 오타 히토시가 맡았다. 사실 이 영화는 영화관에서 개봉한 극영화가 아니라 조선총독부 체신국이 저축 장려를 목적으로 제작한 계몽영화였다. 다시 말해 영화관용 상업영화가 아니라 당국의 선전영화였다. 1923년 4월 9일 경성호텔에서 처음 상영했고, 이후 순회영사로 각 지역에서 공개되었다. 당시 매일신보 기사는 ‘월하의 맹서’의 분량을 ‘전 2권’, ‘2천척의 긴 사진’으로 기록하는데, 이를 상영시간으로 환산해 보면 33분 정도에 해당한다. 중편 길이의 영화였던 것이다. ‘월하의 맹서’ 제작 과정에서 볼 수 있듯이, 조선의 무성영화는 자본과 기술의 제공, 연출과 배우의 역할이 분리되어 시작될 수밖에 없었다. 영화 제작은 무엇보다 큰 자본이 필요한 작업이고 촬영, 현상 등의 근본적인 기술이 해결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반면 조선인 관객을 대상으로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각본, 연출 그리고 출연 영역에서 조선 영화인들의 역할이 반드시 필요했다. 이렇게 조선 무성영화는 첫발을 뗐다.‘월하의 맹서’ 공개 이전에도, 일본인 영화제작사가 만든 ‘국경’(1923)이 상영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나리키요 다케마쓰 등 재조선 일본인을 중심으로 한 극동영화구락부가 제작한 영화로, 촬영은 일본에서 온 나리키요 에이가 담당했다. 물론 출연은 박순일 등 조선인 배우들이 맡았다. 이 영화는 중국 국경 지대의 마적을 토벌하는 일본국경수비대의 활약을 묘사한 내용으로 전해진다. 흥미로운 점은 1923년 1월 13일 단성사에서 개봉한 첫날, 조선인 학생들의 야유로 영화 상영이 중단되었고, 이후 다시 상영되지 못한 것이다. 당시 ‘조선공론’의 문예담당 기자 마쓰모토 데루카가 “아무리 영화가 형편없는 것일지라도 직접적인 야유를 보내 중지시키는 것은 심히 좋지 않은 일이다”고 기록한 것에서, 조선인 관객들의 과격한 반응을 어느 정도 짐작해 볼 수 있다. ●학생들 야유로 하루 만에 상영 중단된 ‘국경’ 이 영화의 상영이 하루 만에 중단된 사정을 현재로서는 자세히 파악할 수 없지만, 당시 조선인 관객들이 모욕감을 느꼈던 것이 결정적인 이유로 알려진다. 조심스러운 추정이지만, 조선인 관객들의 입장에서는 영화에 등장하는 마적들이 만주에서 활약하던 무장독립군들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을까. 결론적으로 관객과 만나지 못한 ‘국경’은 상업영화로서 실패했지만, 조선인 관객들이 영화를 거부한 사건으로 영화사 기록에 남게 되었다. 조선 영화계가 본격적인 상업영화의 시대를 연 것은 일본인 흥행사 하야카와 마스타로가 설립한 동아문화협회의 ‘춘향전’(1923) 그리고 조선인 영화관 단성사가 영화제작을 위해 설립한 촬영부의 ‘장화홍련전’(1924)이 등장하면서이다. 하야카와는 1913년 경성의 일본인 거리에 고가네칸을 설립하며 조선 흥행계에 뛰어든 인물이다. 그는 조선부업공진회 개최에 맞춰 고전 소설 ‘춘향전’의 영화화를 추진하며, 하야카와 고슈라는 이름으로 직접 연출까지 나섰다. 영화는 전북 남원 현지에서 로케이션 촬영을 진행했고, 조선인 관객들을 위해 당대 최고의 인기 변사 김조성이 이몽룡으로, 기생 한명옥이 춘향으로 출연했다. 하지만 동아문화협회의 간부였던 김조성이 배우의 역할로만 머물지 않았을 것이다. 일본인 자본주가 감독에 나선 작품이지만, 조선 고전의 각색과 연출 과정에서 조선인 관객들의 취향을 파악하고 있던 그의 존재가 반드시 필요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완성된 ‘춘향전’은 조선부업공진회가 개최된 1923년 10월 5일 서울 단성사에서 개봉해 조선인 관객들의 큰 관심을 받았고, 18일부터 전북 군산의 군산좌에서, 21일부터 공진회 내의 활동사진관에서 연이어 상영되었다. 이 작품은 조선의 영화관에서 상영된 최초의 상업영화로 평가할 수 있다. 이후 하야카와는 ‘춘향전’의 성공을 기반으로 1924년 7월 인사동의 조선인 상설관 조선극장을 인수해 단성사의 라이벌로 나섰다.●‘장화홍련전’ 흥행에 日 ‘춘향전’ 재개봉 응수 당시 ‘춘향전’은 “이건 한 개의 슬라이드지, 영화에 대한 몽타주가 아무것도 없다”고 평가받기도 했다. 이러한 기술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조선인 관객들의 큰 호응을 얻고 흥행에 성공하자, 조선 영화계는 크게 두 가지 반응을 보였다. 첫 번째는 조선 흥행계의 유일한 조선인 경영자였던 박승필 역시 단성사에 촬영부를 만들고 조선 영화인들의 손으로 만든 ‘장화홍련전’으로 응수한 것이다. 두 번째는 극장 자본이 주도한 영화제작을 넘어 본격적인 영화사 설립이 추동된 점이다. 바로 부산에 설립된 조선키네마주식회사였다. 조선인 주도의 영화 제작은 바로 이듬해에 이어졌다. 하야카와의 행보에 자극 받은 단성사의 박승필이 1924년 7월 단성사 내에 촬영부를 설치하고, 역시 고전 소설인 ‘장화홍련전’을 극영화로 제작했다. 배우는 장화와 홍련 역에 기생 김옥희와 김운자, 원님 역에 인기 변사 우정식을 출연시켰다. 앞선 ‘춘향전’의 성공 요인을 기반으로 삼은 것이다. 하지만 이쪽은 연출 인력이 보강되었다. 각색은 단성사의 변사로 유명한 김영환이, 감독은 우미관 출신의 영사기사로 단성사의 전체 운영을 맡고 있었던 박정현이 나섰다. 훗날 감독이 되는 이구영도 당시 단성사 직원으로 각본과 연출에 관여했다는 기록이 있다. 사실 무성영화 현장은 지금의 프로듀서와 감독처럼 그 역할이 엄밀히 구분되지 않았던 시기였다. 가장 주목할 부분은 촬영 역시 조선인이 맡았다는 점이다. 조선 최초의 촬영기사로 기록되는 이필우(1897~1978)가 이 영화로 데뷔하게 된다. ‘장화홍련전’의 영화사적 의미는 제작, 연출, 출연 그리고 초창기 영화매체의 가장 중요한 성립 조건인 기술에서도 전부 조선인의 손으로 이루어진 점이다. “경성 천지의 키네마 팬이 한결같이 손꼽아 기다리던” ‘장화홍련전’이 1924년 9월 5일 단성사에서 개봉하자 조선에 영화상설관이 생긴 이후로 처음 맞는 대성황을 이뤘고, 이에 하야카와의 조선극장은 ‘춘향전’의 재개봉으로 응수한다. 이후 동아문화협회는 하야카와가 다시 감독으로 나선 ‘비련의 곡’(1924), 김조성이 감독으로 나선 ‘흥부놀부전’(1925)을 조선극장에서 개봉한 후, 경영난으로 해산했다. ●무성영화 개척해 간 조선영화인들 초창기 조선 영화계에서 극장의 산하가 아닌, 영화제작사로 처음 등장한 조직은 조선키네마주식회사다. 1924년 7월 11일 일본인 사업가들에 의해 부산에서 설립됐다. 촬영소는 복병산에 있던 러시아 영사관 건물을 임대해서 사용했고, 회사의 중심인물은 부산 묘각사 주지였던 승려 다카사 간초였다. 그는 왕필렬이라는 조선 이름으로 회사 창립작 ‘해의 비곡’(1924)과 원제가 ‘암광’이었던 ‘신의 장’(1925), ‘동네의 호걸’(1925)을 직접 연출했다. 촬영기사는 작품마다 일본에서 불러왔다. 동아문화협회에서 김조성의 역할처럼, 조선키네마주식회사에서도 조선 영화인의 역할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훗날 무성영화 감독으로 이름을 날리는 이경손, 안종화 등 당시 무대예술연구회 단원들이 합류했기 때문이다. ‘해의 비곡’의 경우 안종화, 이월화, 이채전 등 조선인 배우들이 출연했을 뿐만 아니라, 이경손이 조감독을 맡았다. 실질적인 감독 역할이었다. 규모를 키운 2회작 ‘운영전’에서는 ‘월하의 맹서’를 연출한 윤백남이 감독으로 초빙되었다. 조선키네마 역시 조선 영화인들의 적극적인 가담으로 제작이 진행되었다. 한편 무성영화의 스타 나운규가 조선키네마의 연구생이던 당시 ‘운영전’에서 처음 단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1923년부터 1925년까지의 무성영화 전기에 모두 12편의 조선 영화가 제작되었다. 1923년 2편, 1924년 3편, 1925년 7편이다. 이 작품들 중 다수는 일본인 제작자가 만들고 연출도 겸했다. 그리고 그 제작 현장에서 조선인 감독과 기술 스태프들이 성장했다. 다른 한편으로 단성사가 제작한 ‘장화홍련전’처럼 연출과 출연은 물론이고, 조선인 촬영기사가 전면에 나선 작품도 있었다. 이처럼 무성영화 시기, 제작, 연출 그리고 촬영 등의 기술 파트에서 일본인과 조선 영화인이 만들어내는 도제, 경합, 협업 등의 관계가 역동적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정종화 한국영상자료원 선임연구원
  • 스윙스, 돈까스와 무슨 상관? ‘임보라와 사귀면서 별 얘길..’

    스윙스, 돈까스와 무슨 상관? ‘임보라와 사귀면서 별 얘길..’

    래퍼 스윙스가 불쾌감을 드러냈다. 스윙스는 최근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통해 팬들과 소통하는 도중 자신을 패러디한 웹드라마 ‘좀 예민해도 괜찮아’ 측에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날 스윙스는 “지금 DM이랑 이메일 등으로 팬들이 나한테 ‘화가 난다’고 얘기한다. 화가 나는 이유는 웹 드라마에서 나를 묘사한 듯한 캐릭터를 가지고 클럽에서 여자한테 ‘돈까스 좋아하세요?’하면서 만지작거리는 장면이 나왔기 때문이다. 고소하라더라”라고 웹드라마 속 한 장면을 언급했다. 스윙스는 “그거 봤을 때 기분이 당연히 나빴다. 유머보다는 조롱 같아서”라며 “내 편 들어줘서 고마운데 나는 발언의 자유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예술은 표현의 제재가 최대한 없는 걸 지지한다. 자신을 보호할 수 없는 사람 말고는 누구나 조크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웹드라마 측의 표현의 자유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스윙스는 드라마 제작진에게 “다 필요 없고 구렸다. 안 웃겼다. 기분이 나빠서 안 웃겼다는 게 아니라 창의성이 없었다. 다음엔 제대로 해달라. 나와 다른 사람들을 웃겨달라”며 일침을 가했다. 스윙스가 언급한 웹드라마는 ‘좀 예민해도 괜찮아’. 지난해 7월 공개된 온스타일 웹드라마 ‘좀 예민해도 괜찮아’에서는 클럽에서 한 남성이 여성의 몸을 더듬거리며 유혹하는 모습이 담겼다. 스윙스를 패러디한 듯한 이 남성은 스윙스의 ‘돈까스 좋아하세요? 나 돈가스 싫어하는 여자 한 번도 못 봤다’라는 대사를 하며 여성에게 작업을 걸었다. 스윙스는 현재 모델 임보라와 공개 열애 중이다. 스윙스는 앞서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에 출연해 예쁜 여자친구 사귀는 법으로 이른바 ‘돈까스 꼬시기’를 팬들에게 전파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또 스윙스는 평소에도 돈까스 마니아로 유명한 인물. 하지만 ‘돈까스 꼬시기’ 해당 장면이 뒤늦게 논란이 되면서 스윙스의 팬들은 스윙스에 “고소하라”고 요청했고, 이에 스윙스가 늦었지만 답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래퍼 스윙스는 2007년 EP앨범 ‘업그레이드(Upgrade)’를 발매하며 데뷔했다. 사진 = 서울신문DB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1310억 달러의 베조스 따위야” 인류 최고의 부자 만사 무사

    “1310억 달러의 베조스 따위야” 인류 최고의 부자 만사 무사

    제프 베조스 아마존 창업자는 1310억 달러의 자산으로 현대 인물 가운데 가장 많은 돈을 모은 것으로 지난주 포브스가 집계했다. 그런데 베조스는 인류 역사에 있어왔던 부자들에 견주면 그야말로 새발의 피다. 실존한 인류 가운데 가장 재산이 많았던 것으로 평가받는 이는 14세기 서아프리카 말리 제국을 다스린 만사 무사 왕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 역사학과의 루돌프 버치 부교수는 “당시 무사의 재산 규모를 세다간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라 그가 얼마나 부자인지, 통치 권한이 얼마나 막강했는지를 지금의 사람들에게 설명하기가 불가능하다”고 영국 BBC에 말했다. 2015년에 머니 닷컴에 기고했던 제이콥 데이비슨은 “묘사할 수 있는 범위를 뛰어넘는 부를 누렸다”고만 적었다. 2012년에 미국 웹 매체 셀레브리티 넷 워스(Celebrity Net Worth)는 그의 재산을 4000억 달러로 추정했는데 경제 역사학자들은 숫자로 세는 게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았다.그는 1280년에 태어났는데 형 만사 아부바크르가 필생의 숙원이던 대서양 탐사를 떠난 뒤 돌아오지 않은 1312년부터 제국을 통치했다. 14세기 시리아 역사학자 시밥 알우마리에 따르면 아부바크르는 바다 너머를 동경해 2000척의 배와 수천명의 남녀, 노예들을 데리고 떠났다. 세상을 떠난 미국 역사학자 이반 반서티마 같은 이들은 아부바크르가 남아메리카에 당도했다고 주장했지만 증거를 찾지 못했다. 어쨌든 무사의 통치 기간 제국은 어마어마하게 발전했다. 팀북투 등 24개 도시를 병합했다. 제국은 3200㎞ 넘게 뻗어나갔다. 얼마나 방대했느냐면 지금의 니제르, 세네갈, 모리타니아, 말리, 부르키나파소, 감비아, 기니비사우, 기니, 코트디부아르가 조금씩이라도 속했다. 대영박물관은 그가 통치하던 말리 제국의 부가 세계 고대 왕국들의 절반 정도가 됐다고 평가했다.그 전까지는 그나 제국의 존재가 널리 알려졌지 않았지만 독실한 무슬림으로 사하라 사막을 건너고 이집트를 거쳐 메카 순례를 떠나면서 위용이 알려졌다. 대상(隊商) 행렬이 떠났을 때 무려 6만명의 남성과 1만 2000명의 노예가 따랐다. 먹으려고 양과 염소가 긴 행렬을 이룬 것은 물론이다. 수백 마리의 낙타 등에는 황금이 실렸다. 알우마리는 무사가 떠난 지 12년 뒤 카이로를 찾았는데 만나는 사람마다 무사 얘기를 하더라고 기록에 남겼다. 무사는 카이로에 3개월 머무르며 10년 통치에 쓰일 황금들을 다 넘겼다. 미국의 스마트애셋 닷컴은 무사의 메카 순례가 15억 달러의 손실을 중동 전체에 가져왔다고 평가했다. 그를 따라나섰던 어릿광대들마저 그에게 좋지 않은 노래를 지어 부를 정도로 그는 흥청망청 황금을 뿌렸다. 이렇게 통 큰 행보를 하면서 1375년 카탈란 아틀라스 지도에 팀북투가 표시되고 그 위 황금 왕좌에 앉은 그의 모습이 그려지게 됐다. 팀북투는 아프리카의 엘도라도로 불리게 됐다.19세기 골드러시 열풍에 힘입어 한탕을 노리는 유럽인들이 500년 전 만사 무사의 황금을 찾겠다며 아프리카에 몰려온 것도 이 덕분이었다. 무사는 선지자 무함마드의 직계 후손들과 안달루시아 지방의 시인 겸 건축가 아부 에스 하크 에스 사헬리를 비롯한 이슬람 학자들을 데리고 돌아왔다. 사헬리는 1327년 저유명한 징구에레버(Djinguereber) 모스크를 설계했고 무사는 200㎏의 황금을 선물했는데 오늘날 가치로 환산하면 820만 달러가 된다. 아울러 문학과 교육의 중요성을 일찍이 깨달았던 그는 학교와 도서관을 지어 팀북투는 교육의 중심지가 됐고, 전세계에서 몰려든 이들이 오늘날 상코레(Sankore) 대학으로 발전한 학교에서 공부했다. 그가 57세를 일기로 1337년 세상을 떠나자 아들들이 제국을 쪼개 통치하다 13년 뒤 결국 소멸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다이노+] 최강의 포식자 티라노사우루스, 아기공룡 때 모습은?

    [다이노+] 최강의 포식자 티라노사우루스, 아기공룡 때 모습은?

    오래 전 지구를 주름잡았던 최상위 포식자 ‘티라노사우루스 렉스’(Tyrannosaurus rex·이하 티렉스)는 가공할만한 힘을 가진 턱과 이빨, 그리고 튼튼한 다리와 꼬리로 악명이 높다. 무시무시한 외모와 덩치로 경외감까지 자아내는 티렉스도 그러나 귀여웠던 어린시절은 있었다. 최근 미국 뉴욕 자연사박물관에서 실제와 가장 가까운 모습으로 제작한 티렉스 모형과 이를 영상으로 구현해 관심을 끌고있다. 티렉스는 영화 '쥬라기 공원' 등으로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이번에 박물관 측이 공개한 공룡의 모습은 조금 다르다. 먼저 티렉스는 파충류와 비슷한 피부를 가진 것으로 생각돼 왔지만 박물관 측에서는 깃털을 가진 공룡으로 묘사했다. 이는 공룡에 대한 최근의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한 것이지만 여전히 티렉스같은 수각류 공룡이 깃털을 지녔는지 여부는 지금도 학자들 사이에서 논란이다.이번에 공개된 공룡 중 가장 관심을 끈 것은 '아기공룡' 티렉스다. 막 알에서 나온 티렉스는 마른 칠면조 만한 크기로 몸 전체가 보송보송한 털로 덮여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짧고 귀여워’ 조롱거리가 되는 앞발도 아기공룡 때가 상대적으로 더 길다. 이후 20년 쯤 지나 어른이 된 티렉스는 코에서 꼬리까지 12~13m, 무게는 6~9톤까지 성장한다. 이번 티렉스 전시회를 기획한 마틴 슈바바흐는 "티렉스는 가장 상징적인 공룡 중 하나로 이번 전시회는 2000년 이후 새롭게 발견된 과학적 사실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이어 "티렉스 특유의 앞발도 과거보다 더 작게 묘사됐는데 이는 약하거나 쓸모없다는 의미는 아니다"면서 "티렉스의 앞발은 매우 튼튼하고 근육질로 먹이를 잡기위해 사용됐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어린이 책] 어린 도킨스에게 ‘영웅’이었던 동물과 대화하는 의사 이야기

    [어린이 책] 어린 도킨스에게 ‘영웅’이었던 동물과 대화하는 의사 이야기

    둘리틀 박사의 모험/휴 로프팅 글·그림/장석봉 옮김 궁리/전 12권/각 권 1만~1만 5000원 “지금 내 영웅이 찰스 다윈이라면 어린 시절의 영웅은 둘리틀 박사입니다. 둘리틀 박사의 모험 이야기들을 몇 번이고 읽으며, 과학자의 꿈을 키웠습니다.”세계적인 진화생물학자이자 책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가 찰스 다윈에 비견하는 이 인물, 둘리틀 박사는 누구일까. ‘침팬지의 어머니’ 제인 구달의 말을 빌리면 ‘이 통통하고 친절하고 열정적인 의사’는 실존 인물이 아니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아들에게 수용소 생활을 ‘게임’이라고 소개했던 아빠처럼,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부상으로 치료를 받는 와중에도 두 아이에게 동물과 대화를 할 줄 아는 의사 이야기를 그림과 곁들여 보낸 아버지 휴 로프팅(1886~1947)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이러한 둘리틀 박사의 모험 시리즈 12권 전체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완간됐다. 낙관으로 가득 차 조금은 대책 없는 인물 둘리틀 박사가 앵무새, 개, 돼지 등의 동물들과 함께 펼치는 좌충우돌 모험담은 어른이 읽어도 묘하게 빠져드는 마력이 있다. 다만 흑인 왕자 ‘범포’와 그의 고향 아프리카 사람들을 묘사하는 일부 대목에서 인종 차별로 여겨질 만한 부분들이 있다. 궁리 측은 이 대목을 남겨 둔 까닭에 대해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시대적 환경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는 법”이라며 “그 시대를 뛰어넘어 사랑받는 작품이라면 그런 결점을 뛰어넘을 무언가가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썼다. 아이들과 함께 읽으면서 유념해야 할 부분이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CEO 신화를 만든 부조리의 피라미드

    CEO 신화를 만든 부조리의 피라미드

    CEO사회/피터 볼룸·칼 로즈 지음/장진영 옮김/산지니/304쪽/1만 8000원기업에서 최고경영자(CEO)는 경영 총괄뿐 아니라 구성원 생활 패턴까지 좌우한다. 그 영향력은 한 기업의 영역에 머물지 않은 채 정치에 막강한 실력을 행사하며 영웅 대우까지 받는다. 가치 창출의 혁신가이면서 한편으론 사이코패스와 사악한 기생충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책은 곳곳에 CEO 지상주의가 만연한 CEO사회를 정면 비판한다. ‘CEO는 우리를 구원할 마지막 희망일까’라는 물음을 던진 두 사람은 단호하게 말한다. “CEO사회에 의문을 제기하고 뒤집지 못하면 사회적, 도덕적으로 파탄에 이르게 될 것이다.” 저자들은 왜 지금 세상의 대세인 CEO를 혹독하게 비판할까. 그 답은 CEO의 유래와 폐단에서 찾아진다. CEO사회는 수십 년의 신자유주의적 정치와 경제개혁의 산물이다. 그 사회에서는 경영자주의가 핵심이고 기업의 경영방식은 기업뿐만 아니라 모든 조직에 전달되기 마련이다. 이 대목에서 저자들은 콕 집어 지적한다. “지독하게 개인주의적이고 반민주적인 CEO사회는 수단, 경쟁의식, 효율성을 중시한다.” 이런 사회에서 관용, 정의, 협력, 신중함, 평등의 가치는 무시된다고 강조한다. 저자들은 특히 성공신화니 어쩌니 하며 CEO를 미화하기 일쑤인 풍토를 지적한다. “이런 신기루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무력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무력함을 느끼게 만든 사람들의 노예가 되며 그들 가치의 노예가 된다”고 말한다. 저자들은 이 밖에도 상업적 가치가 민주적 가치를 가리는 기업 정치의 부상, CEO의 입맛에 맞게 관대함과 자선의 정의마저도 바꾸는 부조리를 꼼꼼하게 파헤친다. “역사적으로 꼴찌가 되기 위한 경쟁일 뿐.” 이렇게 CEO사회를 정의한 저자들은 경고한다. “경제적 평등, 민주주의, 사회정의, 연민의 소중한 가치가 사라질 수 있다. 여기에는 엄청난 개인적, 집단적 비용이 수반된다. CEO를 현재 위치에서 끌어내릴 방법을 찾아 보다 진보적이고 자유로우며 민주적인 경제와 사회를 만들어 나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존엄한 죽음을 말하다] 디그니타스를 바라보는 스위스 현지 시각

    [존엄한 죽음을 말하다] 디그니타스를 바라보는 스위스 현지 시각

    스위스에서는 지난 20년 동안 2700명이 넘는 외국인이 디그니타스를 통해 생을 마감했다. 특히 독일과 영국, 프랑스 등 안락사가 금지된 주변국에서 죽기 위해 스위스로 넘어오는 일이 빈번해졌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디그니타스가 자살 관광을 조장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2011년 조력자살 금지법안 상정… 시민들 85% 반대 스위스에서 외국인 안락사가 가능해진 건 1998년 디그니타스 설립 이후부터다. 1980년대 들어 환자와 의사를 연결해 주는 민간단체들이 하나둘씩 생겼지만 자국민에 한해서였다. 하지만 디그니타스는 대상을 외국인으로까지 넓혔다. 조력자살 지원 단체들의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스위스 현지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2011년 취리히주의회는 조력자살 자체를 금지하고, 외국인에게도 조력자살을 허용하지 않는 법안을 각각 상정했다. 하지만 당시 취리히 시민의 85%와 78%가 각각 반대표를 던지면서 기존의 법안을 유지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하지만 이런 법안이 발의된 배경에는 조력자살이 일상화되는 데 대한 우려와 함께 외국인의 무임승차론 등 문제도 있다. 조력자살이 발생하면 일단 스위스 검찰과 경찰, 법의학자가 현장에 나가 조사를 해야 한다. 현지 화장장도 세금으로 무료 운영된다. 취리히대 법의학연구소의 미하엘 탈리 교수는 디그니타스 블루하우스(조력자살을 시행하는 집)를 “마치 죽음을 찍어내는 공장 같다”고 묘사했다. 그는 “거의 매일 조력자살이 이뤄지면서 조사팀은 통상 근무시간 중 3시간가량을 조력자살 조사에 매달려야 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디그니타스는 회원비를 받는다지만 외국인 주검을 처리하는 사회적 비용은 모두 스위스인이 부담하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외국인 주검 처리, 스위스인이 부담” 부정적 시각도 외국인의 경우 신원 확인이나 사망자의 판단 능력을 확인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우스터검찰청의 마누엘 케얼리 수석검사는 “병 때문에 신분증의 모습과 사망자의 모습이 다른 경우도 많고, 가족이나 지인들이 이미 자리를 떠 조사 과정에서 종종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했다. 이런 탓에 디그니타스를 바라보는 당국의 시선은 곱지 않다. 취리히 검찰은 2017년 디그니타스 설립자이자 공동대표인 루드비히 미넬리가 조력자살을 돕는 과정에서 이익을 취했다며 기소했고, 지난해 1심에서 미넬리가 무죄를 받자 항소했다. 취리히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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