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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서 “반달머리 뱀 봤다” 신고…알고보니 ‘불멸의 육지플라나리아’로 확인

    美서 “반달머리 뱀 봤다” 신고…알고보니 ‘불멸의 육지플라나리아’로 확인

    미국 버지니아주(州)에서 반달 모양의 머리를 지닌 기묘한 뱀 한 마리가 발견됐다는 민원이 접수돼 관심이 쏠리고 있다. 샬럿 옵서버 등 현지매체 보도에 따르면,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버지니아 야생동물 관리통제소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체스터필드카운티 미들로디언에 사는 익명을 요구한 한 주민으로부터 반달 모양의 머리를 지닌 이상한 뱀을 발견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고 밝혔다. 24시간 뱀 신고센터를 통해 주민으로부터 영상를 제보받은 이 기관은 “우리는 해마다 뱀 몇천 마리를 확인하지만 문제는 이렇게 생긴 뱀을 본적이 없다는 것이고 그 생물이 자연의 기이한 현상에 의한 것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다”면서 “그러므로 그 정체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얼마든지 답해달라”고 밝혔다. 이어 “그 생물의 몸길이는 약 25~30㎝로 묘사됐다”고 덧붙였다. 그러자 영상 속 생물의 정체를 아는 네티즌들으로부터 뱀이 아니라 아시아에서 넘어온 망치머리 편충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망치머리 편충은 육상플라나리아 또는 육지플라나리아로 불리는 비팔리움속의 편형동물로, 외래종이지만 현지 환경에 적응해 흔해진 것으로 전해졌다.이 생물은 이른바 망치머리상어로 불리는 귀상어의 머리 모양과 비슷하게 생겼다는 특징뿐만 아니라 일부 종은 반으로 자르면 양쪽이 모두 살아 남아 본질적으로 불멸의 존재인 것으로 유명한 플라나리아의 특성을 지녔다. 게다가 체색과 무늬가 다양하고 어떤 개체는 밝은 색을 띄지만 또 다른 개체는 어두운 갈색이다. 그리고 일부 개체는 화려한 무늬를 갖고 있다. 이번에 버지니아에서 보고된 망치머리 편충은 온전한 갈색이고 몸길이는 최대 약 30㎝로 보고됐다. 이 생물은 육식성으로 지렁이 등의 먹이를 소화 효소로 녹여 잡아먹지만, 사람이나 개·고양이 같은 반려동물에게는 해롭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흥미롭게 이들 동물은 꽤 오래 전부터 사람들에게 알려졌지만, 여전히 전문가들을 아리송하게 하고 있다. 일부 종은 유성생식을 하며 또 다른 일부 종은 몸을 두 개로 분리해 한쪽에서는 꼬리가 다른 한쪽에서는 머리가 자란다. 연구자들은 미국에 있는 종들은 1900년대 아시아에서 수입한 원예 식물들에 섞여 들어왔으며 1901년 이후 온실에서 흔히 볼 수 있게 됐다고 추정한다. 한편 이런 육지플라나리아는 국내에서도 몇 종이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조국 “檢, 절대반지 낀 ‘어둠의 군주’…탈원전 타격 의도 분명”

    조국 “檢, 절대반지 낀 ‘어둠의 군주’…탈원전 타격 의도 분명”

    “윤석열, MB·김학의 부실수사 비판에 반격한 것” 주장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전지검의 월성 1호기 원전 경제성 조작 의혹 수사를 언급하면서 “검찰은 `정치’는 물론 `정책’에도 개입하고 있다”며 악의 화신으로 묘사했다. 그는 대전지검이 강제수사에 나선 것과 관련해 “정책 결정 과정을 ‘범죄’로 보고 심판하겠다는 뜻이다. 이런 식이면 향후 정책에 대한 정무 판단과 행정 재량 등은 극도로 위축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국정감사 답변에서 ‘감사원의 지적은 경제성 평가에 국한된 것이고, 조기 폐쇄 결정 자체는 안전성과 주민 수용성 등을 고려한 정책적 판단’이라고 답한 바 있다”며 “청와대와 정부의 정책결정 관련자들이 월성 1호기를 최대 2년 더 운행하는 것이 경제적이라고 보고를 받았음에도 가동 중단을 결정한 것이 범죄다? 대한민국 대통령, 대통령 비서실, 각 행정부처는 정책을 결정하기 전에 검찰에 계획서를 제출하고 허락을 받은 후 집행해야 하겠구나”라고 비꼬았다. 조 전 장관은 “(검찰이) 조직 수장에 대한 비판과 MB 부실수사, 김학의 부실수사, 라임·옵티머스 부실수사 등의 비판에 반격한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검찰 수사에서) 문서 폐기 등 몇몇 공무원의 잘못이 드러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수사를 통해 탈원전 정책에 타격을 주겠다는 의도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조 전 장관은 검찰을 소설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악역 사우론에, 검찰개혁을 주장하는 이들을 주인공 프로도가 속한 ’반지원정대‘에 빗대기도 했다. 그는 “수사권과 기소권이라는 2개의 절대반지를 낀 검찰은 ‘어둠의 군주’가 됐다”며 “사우론에게는 난쟁이 프로도가 우습게 보일 것이다. 그러나 반지원정대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평일 오후 3시, 앙코르만 30분…조성진의 ‘도발’ 찐감동이 ‘만발’

    평일 오후 3시, 앙코르만 30분…조성진의 ‘도발’ 찐감동이 ‘만발’

    4일 오후 3시 서울 예술의전당. 코로나19로 운영이 중단되기도 했던 예술의전당이, 평일 오후에 이토록 북적인 적이 있었을까 싶을 만큼 콘서트홀 주변을 가득 메운 인파는 그 자체로 설렘을 줬다. 2018년 1월 이후 2년 9개월 만에 국내 팬들을 만나는 ‘금손’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리사이틀을 보기 위해 치열한 예매 전쟁을 뚫고 모인 또 다른 ‘금손’들이었다. 공연 한 시간 반 전부터는 친필 사인 음반을 사러 100여명이 줄을 서며 아이돌 콘서트 현장 느낌을 풍겼다. 단정한 검은 정장 차림으로 성큼성큼 무대에 오른 조성진은 마스크 위로 반짝이는 눈들과 반갑게 인사한 뒤 앉아 피아노 건반을 손수건으로 스윽 문질렀다. 이어 슈만의 ‘숲의 정경’을 시작하며 객석을 청량한 숲으로 인도했다. 독일 극작가 하인리히 라우베의 ‘사냥일기’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으로 숲을 묘사하는 9개 곡으로 구성됐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숲의 입구로 들어섰지만 사냥꾼과 저주받은 장소를 마주하기도 하고, 새소리를 지나 이별의 쓸쓸함까지 다채로운 풍경을 선사했다.조성진은 이어 이번 전국투어 무대마다 공통적으로 선보인 시마노프스키의 ‘마스크’로 공연을 정점으로 이끌었다. 폴란드의 드뷔시라고도 여겨지는 작곡가이지만 유럽 무대에서도 만나기 어려운 작품이다. “베토벤만큼 좋은 곡을 썼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작곡가의 작품을 연주하길 좋아한다”는 그의 취향이 담긴 선택이 객석에도 통했다. 기계음이 켜진 듯 다소 그로테스크한(괴기스러운) 음이 반복되기도 하고 피아니스트의 손이 건반 양 끝을 힘차게 오간다. 조성진의 넘치는 에너지와 눈을 뗄 수 없는 테크닉은 이 낯선 곡을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했다. 강렬함과 섬세함을 자유롭게 변주하며 찰랑이는 머리와 쿵쿵 페달을 밟는 발소리도 원래 악보에 적혀 있던 것처럼 음악이 됐다. 새로움을 흡수하느라 한껏 집중하고 긴장됐던 흐름은 슈베르트 ‘방랑자 환상곡’으로 사르르 녹았다. 지난 5월 발매한 앨범 ‘방랑자’의 수록곡으로 귀에 익은 선율을 경쾌하면서도 힘있게 이어 갔다. 지난 4월 도이치 그라모폰 중계로 온라인으로 선보일 때보다 알차고 깊어진 느낌이었다. 인터미션 없이 세 작품을 전력질주한 조성진은 앙코르에서 또 한 번 객석을 놀라게 했다. 리스트의 피아노 소나타 b단조 전곡을 30분 동안 연주한 것이다. 2018년 1월 앙코르로 40분에 달하는 쇼팽 발라드 전곡을 연주하는가 하면 지난달 30일 대구에선 쇼팽 녹턴과 스케르초를 연달아 다섯 곡 선사하면서 앙코르를 ‘3부’로 끌고 가는 그다운 진행이다. 어렵게 다시 만난 관객들에게 선물을 주듯 무대를 마친 조성진은 여러 차례 객석을 찬찬히 둘러보면서 박수를 보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경성에선 무리 속 고독을 걸었고 파리에선 자본주의 곁을 걸었다

    경성에선 무리 속 고독을 걸었고 파리에선 자본주의 곁을 걸었다

    파리 파사주는 자본, 베를린은 관료제·소비의 도시경성에선 선진 문물 동경과 식민지 우울 담긴 ‘산책’산책에 내재된 정주·유목… 우리 삶도 그와 닮은꼴“구보는 고독을 느끼고, 사람들 있는 곳으로, 약동하는 무리들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 생각한다. 그는 눈앞에 경성역을 본다. (…)그러나 오히려 고독은 그곳에 있었다. 인간 본래의 온정을 찾을 수 없었다.”(‘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중) ‘산책’은 그저 한가로운 단어 같다. 보고 즐길 것을 찾느라 분주한 여행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근육도 제대로 쓰지 않고, 땀도 나지 않으니 운동에 비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이 느긋하고 쓸모없어 보이는 행위에서도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 예컨대 박태원은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 경성이라는 공간, 군중의 무리에서 식민지 근대인의 고독을 묘사했다. 이창남 경북대 독어독문학과 교수의 신간 ‘도시와 산책자´는 1920~1930년대 파리, 베를린, 경성, 도쿄와 같은 도시를 무대로 한 비평과 소설에서 산책의 의미를 찾는다. 산책은 부유한 이들 혹은 엘리트나 즐기는 행위였지만 근대 들어 대중에게까지 퍼졌다. 발터 베냐민은 ‘파사주 작품’을 통해 물신주의에 빠진 파리의 산책자를 포착했다. 나폴레옹 3세와 오스만 남작의 대대적인 재정비 사업으로 관통 대로가 뚫리고 기념비적 건축물과 거대 광장이 들어선다. 베냐민은 파사주(통행로)를 가리켜 ‘상품 자본의 신전’이라고 지칭한다. 대중은 사유하는 대신 파사주를 산책하며 새로운 물건을 보느라 여념이 없다. 지크프리트 크라카우어는 ‘직장인’에서 베를린을 중심으로 관료화한 체제와 소비적 도취가 함께하는 대도시를 묘사한다. 체제 속에 붙잡힌 대중은 한편으로는 유목 생활을 꿈꾼다. 산책은 일상 탈출의 방식인 셈이다.일본 제국주의는 오스만 남작의 파리 재정비 사업을 도쿄에 그대로 적용했다. 저자는 이를 두고 도쿄는 파리의 아시아 버전이고, 식민지 조선에 그대로 이식한 경성은 식민지 로컬 버전이라고 봤다. 저자는 경성을 산책하던 이상, 박태원, 나혜석 같은 지식인들을 선진 문물에 대한 동경과 식민지인의 우울이라는 이중적 측면에서 조명한다. 이상은 ‘오감도’와 ‘날개’를 통해 당시 상황을 묘사했다. 뚫린 길을 내달리면서도 공포에 젖은 아해들, 창부 아내를 두고 경성 미쓰코시 백화점 위에서 자살하는 지식인의 모습은 근대인의 공포와 소외를 나타낸다. 1920년대와 1930년대 작품들을 살펴본 저자는 도쿄의 외국인 산책자 슈테판 바크비츠의 기록을 통해 국경을 넘나드는 현대의 산책자까지 돌아본다. 산책이 이방인과 타자에 대한 경계 짓기를 허무는 긍정적 계기도 있다고 주장한다. 책은 저자의 주관석 분석, 특히 독일 작품을 주로 소재로 삼아 난해한 부분이 다소 있다. 1920년대와 1930년대 연구에서 1990년대로 바로 건너뛴 점도 다소 아쉽다. 그럼에도 느린 보행과 깊은 사색으로 상징되던 산책이 합리성과 효율성으로 점철된 도시 속 삶과 함께 종말을 고하진 않았다는 주장은 생각해 볼 만하다. 저자는 산책에 내재한 ‘정주’와 ‘유목’의 개념을 뽑아내고, 두 개념이 서로 대립하는 게 아니라 교차하는 변증법적 삶이 우리의 일상이라고 말한다. 대도시로 대표되는 자본과 체계의 압박에서 벗어나려 하면서도, 또 다른 정주의 장소를 희구하는 탈출과 회복의 과정이 바로 산책인 것이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정확·정교하게 진실 좇는다… 원칙주의자 ‘그레이 레이디’

    정확·정교하게 진실 좇는다… 원칙주의자 ‘그레이 레이디’

    1851년 창간 NYT, 독보적 신뢰·영향력 발휘케네디 피격·OJ 심슨 등 범죄기사 정수 모아범죄 보도는 사람들의 훔쳐보고 싶은 본능을 자극한다. 그래서 범죄 관련 기사를 읽는 행위를 ‘길티 플레저’(죄의식을 느끼면서도 즐기게 되는 심리)라 치부하기도 한다. 읽는 이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범죄 기사를 작성할 때는 선정성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세계적 정론지로 꼽히는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독보적인 신뢰도와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 일면을 ‘뉴욕타임스 크라임’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오랫동안 NYT에서 범죄보도를 해온 케빈 플린은 NYT 1851년 창간 후부터 축적한 수많은 범죄 기사의 정수를 꼽아 책에 담았다. 플린은 우리로 치면 ‘시경 캡’(일선 경찰 출입기자들을 지휘하는 기자)을 지냈고, NYT가 많은 퓰리처상을 받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책에서 다룬 범죄 기사는 모두 87건이다. 암살, 납치, 학살, 조직 폭력, 연쇄 살인, 성범죄, 화이트칼라 범죄 등으로 구분해 구성했다. 링컨과 케네디 대통령, 존 레논 등 당대 아이콘의 암살부터 ‘연쇄 살인범’이란 용어를 탄생시킨 H H 홈스 등 살인마와 영화 ‘스카페이스’의 주인공인 알 카포네, 수천명의 투자금을 빼돌려 150년 형을 선고 받은 버나드 매도프 등 미국 사회를 뒤흔든 온갖 유형의 범죄와 마주할 수 있다. 각 장의 기사는 시간순으로 배치했고, 해당 사건의 뒷이야기와 현장 사진, 저자의 짤막한 평가 등을 곁들였다. 기사는 거의 대부분 소설체다. 그래서 마치 범죄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든다. 예컨대 2006년 멕시코의 마약왕 엘 차포의 체포 기사는 이렇게 시작된다. “세계에서 가장 악명 높은 마약왕은 셔츠 차림으로 오물을 뒤집어 쓴 채 하수도를 통과한 다음 붐비는 차량 사이로 모습을 감췄다.” 한국에서라면 가장 중요한 팩트를 육하원칙에 따라 앞세우지 않았다는 핀잔이 쏟아질 리드다. 그리고 대부분의 기사가 만연체다. 문장을 짧게 끊어 팩트를 정확하게 전달하려는 우리 신문과 매우 다르다. 간결하고 주옥같은 문장으로 사건을 전하는 경우도 있긴 하다. 2007년 한국계 조승희의 버지니아공대 총기 난사사건 기사가 그 예다. 셰일라 드완 기자는 당시 지옥 같았던 총격의 현장을 이렇게 묘사했다. “총격은 계속 이어졌다. 10분, 15분, 20분 간간이 멈췄다가 다시 이어지면서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가장 인상적인 건 방대하면서도 정교한 정보량이다. 1963년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 기사는 총상 부위를 설명하는 대목에서 “첫 총알이 목 울대뼈 바로 밑으로 들어간 것 같다”며 “뒤통수와 머리 오른쪽에도 큰 상처가 있었다”고 적고 있다.H H 홈스의 교수형 기사에선 그가 마지막 아침 식사를 어떤 표정으로 했는지, 교수대의 발판이 떨어진 시각은 몇 시 몇 분인지 등을 상세히 전한다. 사건 당일에 어떻게 이토록 정교하고 많은 양의 기사를 쓸 수 있었을까. 직접 봤거나, 당국에서 정보를 제공했거나, 현장에 있던 누군가에게서 들었을 것이다. 경찰의 정보 제공이 극히 제한적이고, 기자를 만나면 숨기기부터 하려는 우리의 풍토에 비춰보면 그저 부러울 뿐이다. 선정적인 기사는 선정적인 사건 자체보다 파급력이 크다. 자극적인 표현으로 대중의 분노를 부추기는 기사는 사건의 핵심을 밝히기보다 부작용을 낳을 때가 더 많다. 그런 점에서 ‘그레이 레이디’(Gray Lady)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완고하고 원칙에 충실한 NYT의 기사 작성 방식은 한국의 언론들에 적지 않은 울림이 될 듯하다. 손원천 선임기자 angler@seoul.co.kr
  • 상대방 입장 비틀어보는 가깝고도 먼 나라… 쌓여가는 반대와 혐오

    상대방 입장 비틀어보는 가깝고도 먼 나라… 쌓여가는 반대와 혐오

    가깝고도 먼 관계인 한국과 일본. 과거사로 인한 앙금이 여전한데 청산을 위한 대화와 합의는 멀어만 보인다. 특히 냉랭할 대로 냉랭해진 지금의 양국 관계에선 오히려 ‘반일’과 ‘혐한’이라는 대칭적인 감정만 쌓여가는 것처럼 보인다. 8년 반에 걸쳐 한국 특파원을 지낸 사와다 가쓰마 마이니치신문 기자는 그 풀리지 않는 대립의 원인을 “상대 입장을 자신의 기준으로 짐작해 곡해하기 때문”이라고 못박는다. 최근 심하게 악화된 한일 관계도 바로 그 때문이며, 그 배경엔 냉전 종식 이후 달라진 세계질서 구도와 30년간 민주화를 이루고 국력이 일본만큼 성장한 한국의 변화가 있다고 풀어낸다. 저자는 우선 지금의 한일 관계를 ‘냉전 종결 후의 구조적 변화에 의한 삐걱거림’으로 묘사한다. 한일기본조약에 입각한 ‘1965년 체제’는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냉전하의 유사동맹이었지만 이후 스스로 국력 신장을 자각한 한국이 새로운 국제질서를 지향하며 움직이고 있는 게 기본적인 구도라고 강조한다. 실제로 그런 시대변천에 따른 인식변화는 일본 내 한국에 대한 세대 간 인식 차에서 확인할 수 있다. 50대 이상 일본인 중에는 한국을 내려다보는 시각을 가진 사람이 여전히 많지만 10~20대는 한국을 ‘선망의 대상’으로까지 본다. 세대차는 한국에 대한 인식만이 아니라 정치성향 등에서도 뚜렷하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30년 전, 40년 전의 경험과 기억으로 21세기 대한민국을 논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는 한국 독자들에게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만 정말로 일본에서는 있는 일’이라고 밝힌다. 한국 사람들이 일본을 말할 때도 비슷한 현상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저자는 “‘친일파 청산’이라는 말의 울림은 일본인에게 한국 사람들이 느끼는 것과는 다른 강렬한 인상을 준다”며 이런 말을 남긴다. “한일 관계를 정상궤도로 돌리는 일이 쉽진 않겠지만 피할 수도 없다. 상대방의 실상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은 그를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다음 무대 피날레를 앙코르로… ‘평일 오후 3시’ 조성진의 특별한 선물

    다음 무대 피날레를 앙코르로… ‘평일 오후 3시’ 조성진의 특별한 선물

    4일 오후 3시 서울 예술의전당. 코로나19로 운영이 중단되기도 했던 예술의전당이, 평일 오후에 이토록 북적인 적이 있었을까 싶을 만큼 콘서트홀 주변을 가득 메운 인파는 그 자체로 설렘을 줬다. 2018년 1월 이후 2년 9개월 만에 국내 팬들을 만나는 ‘금손’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리사이틀을 보기 위해 치열한 예매 전쟁을 뚫고 모인 또 다른 ‘금손’들이었다. 공연 한 시간 반 전부터는 친필 사인 음반을 사러 100여명이 줄을 서며 아이돌 콘서트 현장 느낌을 풍겼다. 단정한 검은 정장 차림으로 성큼성큼 무대에 오른 조성진은 마스크 위로 반짝이는 눈들과 반갑게 인사한 뒤 앉아 피아노 건반을 손수건으로 스윽 문질렀다. 이어 슈만의 ‘숲의 정경’을 시작하며 객석을 청량한 숲으로 인도했다. 독일 극작가 하인리히 라우베의 ‘사냥일기’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으로 숲을 묘사하는 9개 곡으로 구성됐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숲의 입구로 들어섰지만 사냥꾼과 저주받은 장소를 마주하기도 하고, 새소리를 지나 이별의 쓸쓸함까지 다채로운 풍경을 선사했다. 조성진은 이어 이번 전국투어 무대마다 공통적으로 선보인 시마노프스키의 ‘마스크’로 공연을 정점으로 이끌었다. 폴란드의 드뷔시라고도 여겨지는 작곡가이지만 유럽 무대에서도 만나기 어려운 작품이다. “베토벤만큼 좋은 곡을 썼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작곡가의 작품을 연주하길 좋아한다”는 그의 취향이 담긴 선택이 객석에도 통했다.기계음이 켜진 듯 다소 그로테스크한(괴기스러운) 음이 반복되기도 하고 피아니스트의 손이 건반 양 끝을 힘차게 오간다. 조성진의 넘치는 에너지와 눈을 뗄 수 없는 테크닉은 이 낯선 곡을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했다. 세헤라자드, 광대 탄트리스, 돈 쥬앙의 세레나데가 역동적으로 이어지는 동안 강렬함과 섬세함을 자유롭게 변주하며 찰랑이는 머리와 쿵쿵 페달을 밟는 발소리도 원래 악보에 적혀 있던 것처럼 음악이 됐다. “귀에 꽂히는 멜로디는 없지만 듣다 보면 계속 생각나는 음악”이라는 그의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새로움을 흡수하느라 한껏 집중하고 긴장됐던 흐름은 슈베르트 ‘방랑자 환상곡’으로 사르르 녹았다. 지난 5월 발매한 앨범 ‘방랑자’의 수록곡으로 귀에 익은 선율을 경쾌하면서도 힘있게 이어 갔다. 지난 4월 도이치 그라모폰 중계로 온라인으로 선보일 때보다 알차고 깊어진 느낌이었다. 인터미션 없이 세 작품을 전력질주한 조성진은 앙코르에서 또 한 번 객석을 놀라게 했다. 리스트의 피아노 소나타 b단조 전곡을 30분 동안 연주한 것이다. 2018년 1월 앙코르로 40분에 달하는 쇼팽 발라드 전곡을 연주하는가 하면 지난달 30일 대구에선 쇼팽 녹턴과 스케르초를 연달아 다섯 곡 선사하면서 앙코르를 ‘3부’로 끌고 가는 그다운 진행이다. 어렵게 다시 만난 관객들에게 선물을 주듯 무대를 마친 조성진은 여러 차례 객석을 찬찬히 둘러보면서 함께 박수를 보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佛 무슬림 화났다…영화 ‘보랏’ 선정적인 버스 광고 논란

    佛 무슬림 화났다…영화 ‘보랏’ 선정적인 버스 광고 논란

    지난 2006년 개봉해 숱한 화제와 논란을 낳았던 영화 '보랏'이 이번에는 광고 문제로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 4일(현지시간) 더타임스 등 유럽언론은 프랑스 거주 무슬림들이 파리 시내에서 운행하는 '보랏' 영화 광고를 제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영화 광고는 최근 개봉한 '보랏' 속편을 광고하는 포스터로 다소 선정적인 이미지를 담고있다. 알몸 상태의 보랏이 마스크로 중요부위를 가리고 누워있기 때문. 지난 2006년 처음 공개돼 세계적인 화제를 모은 '보랏 : 카자흐스탄 킹카의 미국문화 빨아 들이기'는 영국 출신 코미디 배우 사샤 바론 코엔이 주연을 맡은 모큐멘터리다. 내용은 카자흐스탄 출신의 보랏이 미국의 선진 문화를 배워 조국을 발전시키라는 카자흐스탄 정보부의 특명을 받고 미국 뉴욕으로 간다는 설정. 그러나 개봉 직후부터 보랏은 카자흐스탄 시골생활에 대한 조롱이나 우스꽝스러운 미국 생활 묘사 등이 담겨 국제 문제로까지 비화됐다. 이에 카자흐 당국이 분노한 것은 당연했으며 러시아는 특정인종과 이슬람교를 폄하했다는 이유로 상영금지 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다만 이후 카자흐 당국은 보랏의 흥행으로 관광객이 대폭 늘어나자 '관광객 증가에 도움을 줬다'며 뒤늦게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이번에 프랑스 무슬림들이 영화 광고에 분노한 이유는 그같은 과거와 함께 보랏이 '알라'라는 글귀가 새겨진 반지를 끼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무슬림 사이에서 당장 버스에서 영화 광고를 내리라는 요구가 SNS를 중심으로 빗발쳤다. 특히 프랑스는 이슬람 선지자 무함마드 풍자 만평을 둘러싸고 무슬림 국가들과 갈등이 깊은 상태로 최근에는 이슬람 극단주의자의 흉기 테러까지 발생한 바 있다. 그러나 파리의 지하철과 버스 등을 운용하는 파리교통공사(RATP) 측은 광고를 내려달라는 무슬림들의 요구를 단번에 일축했다. 그러나 현지언론은 "RATP의 공식적인 발표와 달리 무슬림들이 많이 거주하는 일부 지역의 운행 버스에서는 광고가 내려졌다"고 보도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19금’ 등급만 올리면 ‘막장하우스’도 괜찮나요

    ‘19금’ 등급만 올리면 ‘막장하우스’도 괜찮나요

    SBS 월화드라마 ‘펜트하우스’가 지난 3일 4회분을 19세 이상 시청가로 등급을 높여 방송했다. 드라마에 대해 선정성, 폭력성 수위가 너무 높다는 항의가 빗발친 탓이다. 그러나 ‘19금 등급’이 자극적 전개를 위한 면피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펜트하우스’는 첫 회부터 가정폭력, 복수, 출생의 비밀, 시체 유기 등 자극적인 요소들을 쏟아부으며 4회 만에 시청률 13.9%(닐슨코리아 기준)로 단숨에 동시간대 1위에 올랐다. 1~3회에서 15세 이상 시청 등급으로 미성년자 납치와 집단 괴롭힘, 선정적인 불륜 묘사, 자녀를 밀폐된 공간에서 구타하는 아버지 등 폭력적 묘사로 시청자들의 항의도 쏟아졌다. 드라마 게시판에는 “인간의 존엄성이 없다”, “아이들이 채널 돌리다 잠시라도 볼까 겁난다”는 항의글이 줄을 잇고 있다. 일그러진 상류 사회와 비뚤어진 욕망의 모습을 담기 위한 의도라지만, 자극을 위한 자극만 있을 뿐 설정과 상황이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이 때문에 4회 방송에 한해서 19세 이상 시청 등급을 적용했다. 드라마 관계자는 “이후 회차의 등급은 방송 전에 결정될 것”이라고 밝혔다.최근 종합편성채널과 케이블 채널들을 중심으로 19세 이상 시청 드라마가 잇따라 전파를 탔다. 특히 수사 등 장르물 중심이었던 ‘19금’은 파격적인 설정의 치정극이나 멜로물까지 확대됐다. 현재 방송 중인 MBN ‘나의 위험한 아내’도 1~3회에 등장한 납치, 외도 장면 탓에 성인 등급을 적용했다. 지난 5월 종영한 JTBC ‘부부의 세계’는 높은 등급에도 30%에 육박하는 시청률로 흥행했다. ‘부부의 세계’를 만든 모완일 PD의 전작 ‘미스티’(2018)도 3회까지 19세 이상 시청가였다. “소재와 표현의 범위를 넓히고 더 효과적으로 내용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게 제작진이 꼽는 장점이다. 등급 상향에 대한 시청자들의 거부감도 예전보다 낮아지면서, MBC ‘나쁜 형사’(2018) 등 지상파도 장르물에서 ‘19금’을 붙였다. 문제는 등급이 자극적 묘사를 합리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일 수 있다는 점이다. 방송 프로그램들은 사전 심의 없이 내부 심의를 거쳐 자체 등급을 붙이고 이후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제재 여부를 가린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콘텐츠 다양성 측면에서 연령과 소재에 맞는 19세 이상 시청가 드라마들은 존재할 필요가 있다”면서 “다만 깊이 있는 메시지와 공감을 얻어야 하는데, 자극만 추구하기 위해 등급을 높이는 것은 부정적 측면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부부의 세계’나 ‘스카이캐슬’은 상류층의 욕망과 그 문제를 조밀하게 드러내고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했다”며 “이에 비해 ‘펜트하우스’는 단순 쾌감이나 사건이 주는 표피적인 자극 이상의 것이 보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사사건건 충돌했던 유럽 “트럼프 재집권은 악몽”… 中 지도부는 바이든, 日은 내심 트럼프 재선 바라

    사사건건 충돌했던 유럽 “트럼프 재집권은 악몽”… 中 지도부는 바이든, 日은 내심 트럼프 재선 바라

    ‘미국 우선주의 연장이냐, 세계 질서의 대전환이냐.’ 지난 4년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두고 울고 웃은 전 세계가 3일(현지시간) 치러진 대선 결과를 숨죽이고 지켜봤다. 이번 선거가 미중 갈등과 기후변화, 무역질서 등 국제사회 역학 구도를 근본적으로 뒤바꿀 수 있어서다. ●국제사회 역학구도 변화될지 촉각 트럼프 행정부와 사사건건 충돌해 온 유럽 국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에 대놓고 거부감을 드러냈다. 미국이 파리기후변화협약에 재가입하고 세계보건기구(WTO) 탈퇴 절차를 중단해 다자주의가 복원될 것이라는 기대가 물거품이 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날 독일 디벨트는 “많은 유럽인은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을 악몽으로 본다”고 비판했다.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부 장관도 “그간 중국과 러시아, 유럽연합(EU)은 미국의 적으로 묘사돼 왔다. 이런 일은 끝나야 한다”고 촉구했다. 프랑스 르피가로 역시 미 대선 후보의 선거 불복을 염두에 둔 ‘아메리칸 서스펜스’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전 세계에서 월드컵 결승전을 제외하면 이번 미 대선에 맞설 서스펜스가 없다”고 비꼬았다. 중국은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 의사를 드러내지 않은 채 선거 이후 미국 사회 혼란상에 주목했다. 베이징 외교가에서는 중국 최고지도부가 트럼프 대통령보다는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를 선호한다고 본다. 글로벌타임스는 4일 논평에서 “미국 사회는 선거 전에 분열됐다가도 이후에는 다시 합칠 수 있는 국가였지만 올해는 사정이 다르다”면서 “미 대선 결과 발표 이후 일어날 (폭동 등) 사태는 상당히 실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많은 이들이 걱정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환구시보 역시 “트럼프 대통령이나 바이든 후보 모두 중국에 대한 강경책을 주장한다”면서 “이들은 누가 더 중국을 강하게 때릴 것인지를 두고 경쟁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일본 정부는 내심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바란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아베 신조 전 총리 시절 트럼프 대통령과 구축한 우호적 분위기를 스가 요시히데 신임 총리도 이어갈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마이니치신문은 이날 “트럼프가 재선되면 주일미군 주둔 경비를 더 많이 부담하라는 미국 측 압력이 거세질 수 있다. 반면 바이든 후보가 당선되면 기후변화 문제와 관련한 정책적 전환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내다봤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스가 총리는 바이든 후보가 당선되면 그가 정식 취임하는 내년 1월 이후 미국을 방문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되면 연내 방미를 포함해 조기에 정상회담을 하는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英, 트럼프 재선 땐 美와 더 밀착될 듯 보리스 존슨 총리가 이끄는 영국도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으로 밀월관계가 강해질 것으로 기대하는 모습이다. 여기에는 그간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적극적으로 지원한 트럼프 대통령이 낙선하면 자신들이 ‘외톨이’ 신세가 될 수 있다는 위기감도 자리잡고 있다. 베이징 류지영 특파원 superryu@seoul.co.kr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시체 유기까지 나온 ‘펜트하우스’…19금이면 ‘막장’ 괜찮나요

    시체 유기까지 나온 ‘펜트하우스’…19금이면 ‘막장’ 괜찮나요

    폭력성·선정성 시청자 비판 쇄도…4회 등급 높여SBS 월화드라마 ‘펜트하우스’가 지난 3일 4회분을 19세 이상 시청가로 등급을 높여 방송했다. 드라마에 대해 선정성, 폭력성 수위가 너무 높다는 항의가 빗발친 탓이다. 그러나 ‘19금 등급’이 자극적 전개를 위한 면피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펜트하우스’는 첫 회부터 가정폭력, 복수, 출생의 비밀, 시체 유기 등 자극적인 요소들을 쏟아부으며 4회 만에 시청률 13.9%(닐슨코리아 기준)로 단숨에 동시간대 1위에 올랐다. 1~3회에서 15세 이상 시청 등급으로 미성년자 납치와 집단 괴롭힘, 선정적인 불륜 묘사, 자녀를 밀폐된 공간에서 구타하는 아버지 등 폭력적 묘사로 시청자들의 항의도 쏟아졌다. 드라마 게시판에는 “인간의 존엄성이 없다”, “아이들이 채널 돌리다 잠시라도 볼까 겁난다”는 항의글이 줄을 잇고 있다. 일그러진 상류 사회와 비뚤어진 욕망의 모습을 담기 위한 의도라지만, 자극을 위한 자극만 있을 뿐 설정과 상황이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이 때문에 4회 방송에 한해서 19세 이상 시청 등급을 적용했다. 드라마 관계자는 “이후 회차의 등급은 방송 전에 결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작품 다양성 아닌 자극 위한 ‘19금’ 지양해야” 최근 종합편성채널과 케이블 채널들을 중심으로 19세 이상 시청 드라마가 잇따라 전파를 탔다. 특히 수사 등 장르물 중심이었던 ‘19금’은 파격적인 설정의 치정극이나 멜로물까지 확대됐다. 현재 방송 중인 MBN ‘나의 위험한 아내’도 1~3회에 등장한 납치, 외도 장면 탓에 성인 등급을 적용했다. 지난 5월 종영한 JTBC ‘부부의 세계’는 높은 등급에도 30%에 육박하는 시청률로 흥행했다. ‘부부의 세계’를 만든 모완일 PD의 전작 ‘미스티’(2018)도 3회까지 19세 이상 시청가였다. “소재와 표현의 범위를 넓히고 더 효과적으로 내용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게 제작진이 꼽는 장점이다. 등급 상향에 대한 시청자들의 거부감도 예전보다 낮아지면서, MBC ‘나쁜 형사’(2018) 등 지상파도 장르물에서 ‘19금’을 붙였다. 문제는 등급이 자극적 묘사를 합리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일 수 있다는 점이다. 방송 프로그램들은 사전 심의 없이 내부 심의를 거쳐 자체 등급을 붙이고 이후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제재 여부를 가린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콘텐츠 다양성 측면에서 연령과 소재에 맞는 19세 이상 시청가 드라마들은 존재할 필요가 있다”면서 “다만 깊이 있는 메시지와 공감을 얻어야 하는데, 자극만 추구하기 위해 등급을 높이는 것은 부정적 측면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부부의 세계’나 ‘스카이캐슬’은 상류층의 욕망과 그 문제를 조밀하게 드러내고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했다”며 “이에 비해 ‘펜트하우스’는 단순 쾌감이나 사건이 주는 표피적인 자극 이상의 것이 보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6·25 끝나지 않은 전쟁을 기억하며

    6·25 끝나지 않은 전쟁을 기억하며

    한국전쟁 70주년의 해가 저문다. 전쟁 세대가 점점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서 끔찍한 참상도, 트라우마도 희미해진다. 경기도미술관이 올해 마지막 전시로 기획한 ‘흰 밤 검은 낮’은 기억에서 멀어지는 전쟁의 흔적들을 현재로 불러내 희생자와 실향민에 대한 애도와 위로를 건네는 자리다. 전시는 ‘겨울나무집 사람들’, ‘흰 도시’, ‘함께 추는 춤’ 등 3개 소주제로 나눠 작가 14명(팀)의 작품 41개를 배치했다. ‘겨울나무집 사람들’은 전쟁 세대의 이야기다. 텍스트의 흔적을 이미지로 변환하는 작업을 하는 고산금 작가는 전쟁 발발 당시 신문 지면을 인공진주로 시각화한 작품을 선보인다. 김금순 작가의 그래픽노블 ‘나목’은 박완서의 동명소설에서 묘사한 1950년대 서울의 모습을 생생하게 되살렸다. 전후 1세대 화가 하인두(1930~1989)의 대표작 ‘만다라’와 ‘묘계환중’ 등은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준다. ‘흰 도시’는 경기도 접경 지역에 남아 있는 분단의 현실을 조명한다. 가장 오래된 주한미군 기지였던 캠프 그리브스의 장교 숙소를 모형으로 설치한 정정주의 작품과 파주 적군묘를 촬영한 전명은의 사진 작품 ‘적군의 묘’ 시리즈 등이 전시된다. ‘함께 추는 춤’에서는 기억과 애도의 방식을 담는다. 한석경 작가는 실향민이었던 외할아버지의 삶을 소재로 한 사운드 설치작품 ‘늦은 고백’을 내놨고, 업셋프레스_안지미+이부록은 젊은 시인들과 함께 희생자들을 기리는 시모음집 ‘금단의 서재’를 선보였다. 전시 제목은 한강의 소설 ‘흰’에서 따왔다. 구정화 경기도미술관 학예사는 “과거로 소환되는 과정을 완전한 빛도 완전한 어둠도 없는 하루로 은유한 데서 영감을 얻었다”면서 “70년 전 사건을 마주하기에 적절한 태도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내년 2월 14일까지.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을 기억하는 방식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을 기억하는 방식

    한국전쟁 70주년의 해가 저물고 있다. 전쟁을 경험한 세대가 점점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서 끔찍한 참상도, 트라우마도 희미해지고 있다. 경기도미술관이 올해 마지막 전시로 기획한 ‘흰 밤 검은 낮’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기억에서 멀어지는 참혹한 전쟁의 흔적들을 현재의 시공간으로 불러내 희생자와 실향민에 대한 애도와 위로를 건네는 자리다. 전시는 ‘겨울나무집 사람들’, ‘흰 도시’, ‘함께 추는 춤’ 등 3개 소주제로 나눠 작가 14명(팀)의 작품 41개를 배치했다. ‘겨울나무집 사람들’은 전쟁 세대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들을 모았다. 텍스트의 흔적을 이미지로 변환하는 작업을 하는 고산금 작가는 한국전쟁 발발 당시 신문 지면을 인공진주로 시각화한 작품을 선보인다. 김금순 작가의 그래픽노블 ‘나목’은 박완서가 원작 소설에서 묘사한 1950년대 서울의 모습을 생생하게 되살려냈다. 전후 1세대 화가 하인두(1930~1989)의 대표작 ‘만다라’와 ‘묘계환중’ 등은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준다.‘흰 도시’는 김포, 파주, 연천 등 경기도 접경 지역에 남아있는 분단의 현실을 조명한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미군 기지였던 캠프 그리브스의 장교 숙소를 모형으로 설치한 정정주의 작품과 경기도 파주에 있는 적군묘를 촬영한 전명은의 사진 작품 ‘적군의 묘’시리즈 등이 전시된다. ‘함께 추는 춤’에서는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들이 전쟁을 기억하고, 희생자를 애도하는 방식을 소개한다. 한석경 작가는 실향민이었던 외할아버지의 삶을 소재로 한 사운드 설치작품 ‘늦은 고백’을 내놨고, 업셋프레스_안지미+이부록은 젊은 시인들과 함께 한국전쟁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시모음집 ‘금단의 서재’를 선보인다. 전시 제목은 한강의 소설 ‘흰’에서 따왔다. 구정화 경기도미술관 학예사는 “과거 속으로 소환되는 과정을 완전한 빛도 완전한 어둠도 없는 하루로 은유한 데서 영감을 얻었다”면서 “70년 전 사건을 마주하기 위한 적절한 태도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내년 2월 14일까지.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영국 법원 “조니 뎁의 앰버 허드 폭행, 대부분 사실”

    영국 법원 “조니 뎁의 앰버 허드 폭행, 대부분 사실”

    미국 할리우드 스타 조니 뎁(57)이 전 부인 앰버 허드(34)와 서로가 폭행했다고 주장하며 막장 폭로전을 벌인 끝에 매체를 상대로 한 명예훼손 재판에서 결국 패소했다. 법원은 앰버 허드가 조니 뎁으로부터 폭행당했다는 주장을 대체로 사실로 인정했다. 2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 스카이 뉴스에 따르면 런던 고등법원은 조니 뎁이 영국의 대중지 ‘더 선’의 발행인인 뉴스그룹뉴스페이퍼(NGN)와 주필 댄 우튼을 상대로 제기한 명예훼손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고 밝혔다. 법원은 모두 14건의 폭행이 있었다는 앰버 허드의 주장과 관련해 12건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NGN은 그들이 발간한 기사가 ‘대체로 사실’이라는 점을 보여줬다”고 밝혔다. 앞서 우튼은 2018년 4월 기사에서 조니 뎁이 결혼생활 중 부인 앰버 허드에게 폭력을 행사했다며 그를 ‘아내 폭행범’(wife beater)이라고 묘사했다. 그러면서 조니 뎁이 ‘해리포터 시리즈’의 작가 J.K. 롤링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신비한 동물사전’에 캐스팅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조니 뎁은 앰버 허드에게 폭력을 행사한 적이 없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7월 런던 고등법원에서 열린 3주간의 재판에 조니 뎁은 소송 당사자로, 앰버 허드는 소송의 증인 자격으로 각각 출석했다. 두 사람은 재판 과정 내내 막장 폭로전을 벌였다. 앰버 허드는 “조니 뎁이 주먹으로 치고, 따귀를 때리고, 발로 차고, 박치기하고 목을 조르고, 욕하고, 소리치고, 협박하는 등 신체폭력과 언어폭력을 일삼았다”면서 “날 죽이려는 것 같았다”고 주장했다. 또 “조니 뎁은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그가 괴물이라고 부르는 ‘또 다른 자아’가 저지른 일이라고 변명했다”고 말했다. 이에 조니 뎁은 앰버 허드의 불륜 의혹을 제기하며 오히려 앰버 허드가 폭력적이었다고 주장했다. 조니 뎁은 “앰버 허드가 채닝 테이텀과 에디 레드메인, 제임스 프랭코, 짐 스터게스, 케빈 코스트너, 리암 헴스워스, 빌리 밥 손턴 등 동료 남자 배우들과 바람을 피웠다”고 증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앰버 허드가 보드카 병을 던지는 바람에 손가락 끝 부분을 다쳐 잃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앰버 허드의 주장은 거짓이며 “그녀는 남자한테서 돈을 털어먹는 여자(gold-digger)”라는 조니 뎁의 주장을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날 판결 후 더 선은 성명을 통해 “가정폭력 피해자는 침묵해서는 안 된다”면서 “판사의 신중한 검토, 재판에 증인으로 나선 앰버 허드의 용기에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조니 뎁과 앰버 허드는 2009년 영화 ‘럼 다이어리’ 촬영 당시 만나 2011년 영화 프로모션 행사를 하던 중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 4년간의 연애 끝에 2015년 2월 결혼했지만 18개월 만에 이혼에 합의했다. 이번 소송과 별개로 조니 뎁은 앰버 허드가 미국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글과 관련해서도 미국 버지니아 법원에서 명예훼손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20년 옥살이’ 윤성여씨 “이춘재, 진실 말해준 것은 고마워”

    ‘20년 옥살이’ 윤성여씨 “이춘재, 진실 말해준 것은 고마워”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윤성여(53)씨가 2일 진범 이춘재(57)가 증인으로 출석한 재판이 끝난 뒤 “이춘재가 법정에 나와 진실을 말해준 것은 고마운 일”이라고 말했다. 윤성여씨는 이날 자신이 청구한 8차 사건 재심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이춘재를 처음으로 직접 보고 그의 증언을 들은 것에 대한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그는 “그나마 이춘재가 진실을 말해줘서 여기까지 온 것”이라며 “여기까지 오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그 사람(이춘재)에겐 고맙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법정에 나와 진실을 말해준 것은 고마운 일이고 홀가분하지만 100% 만족스럽지는 않고 결심, 선고 등 결과가 나와 봐야 100% 만족이 될 것 같다”며 재심 무죄에 대한 기대를 피력했다. 다만 이춘재가 이날 법정에서 자신에게 사죄한 데 대해서는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윤성여씨는 “본인이 사과하니까 예의상 받아준 것”이라고 했다. 윤성여씨는 이날 재판 중 이춘재가 과거 범행 현장 주변을 묘사하는 답변을 할 때에는 고개를 끄덕이며 듣다가도 “당시 왜 범행을 저질렀는지 모르겠다”는 등의 말을 할 때에는 눈을 감고 고개를 뒤로 젖히며 감정을 드러내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춘재 8차 사건은 1988년 9월 16일 경기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에서 박모(당시 13·중학생)양이 성폭행을 당한 뒤 살해된 사건이다. 당시 윤성여씨는 범인으로 몰려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년간 복역하다가 2009년 가석방됐다. 이춘재의 범행 일체 자백 이후 지난해 11월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은 올해 1월 이를 받아들여 이날까지 재심 재판을 진행해왔다. 앞서 재판부는 지난 9월 이번 논란의 결정적 증거인 현장 체모가 30년의 세월이 흐른 탓에 DNA가 손상돼 감정이 불가능하다는 판정이 나오자 이춘재를 직접 법정에 부르기로 결정했다. 다만 이춘재가 증인의 지위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이날 촬영을 불허, 이춘재의 현재 모습은 언론을 통해 공개되지 못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왜 그랬나 모르겠다”…‘살인의 추억’ 증언한 56살 이춘재

    “왜 그랬나 모르겠다”…‘살인의 추억’ 증언한 56살 이춘재

    34년만에 이춘재, 모습 공개몽타주와 같은 날카로운 눈 ‘살인의 추억’ 진범 이춘재(56)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춘재는 연쇄살인 8차 사건 재심 재판의 증인으로 나섰다. 2일 오후 수원지법 형사 12부(박정제 부장판사) 심리로 진행된 이 사건 재심 재판에서 이춘재는 증인 신분으로 교도관들에 이끌려 피고인 대기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으나 얇게 찢어진 날카로운 눈매는 30여 년 전 몽타주 속 사진과 같았다. 다만 눈가에 잡힌 주름과 희끗희끗해진 머리카락은 흘러간 세월을 실감케 했다. “본인 이름이 이춘재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재판장의 말에 따라 증인 선서를 마친 이춘재는 자리에 앉아 사건 당시에 대한 진술을 이어갔다. 14건에 이르는 살인과 30여 건에 달하는 성범죄를 모두 스스로 저질렀다는 진술을 하면서도 그는 감정에 큰 변화가 없는 듯 한결같은 목소리 톤을 유지했다. 왜 그런 사건을 저지르게 됐느냐는 물음에는 “지금 생각해도 당시에 왜 그런 생활을 했는지 정확하게 답을 못하겠다”며 “계획을 하고 준비를 해서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기 때문에 무슨 사유인지는 모르고 당시 상황에 맞춰 (살인을) 하지 않았나 생각을 한다”고 답했다. 사건 피해자들에게는 “저의 사건에 관계된 모든 분에게 죄송하다는 말씀드리고 싶다”며 “반성하고 있고, 그런 마음에서 자백했다. 하루속히 마음의 안정을 찾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며 반성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억울한 옥살이를 한 윤성여(53) 씨는 피고인석에 앉아 증인석에서 진술하는 이춘재의 모습을 내내 지켜봤다.윤씨는 이춘재가 과거 범행 현장 주변을 묘사하는 답변을 할 때는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그 당시 왜 범행을 저질렀는지는 모르겠다는 등의 말을 할 때는 눈을 감고 고개를 뒤로 젖히며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윤씨의 가족들과 수사를 진행해온 검찰 및 경찰 관계자들도 법정을 찾아 수의를 입은 이춘재의 모습을 지켜봤다. 이날 재판은 88석 규모의 대법정과 같은 규모의 중계 법정에서 동시에 공개됐다. “이춘재 증인에 불과” 언론 사진·영상 촬영 불가 이춘재 8차 사건은 1988년 9월 16일 경기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에서 박모(당시 13·중학생) 양이 성폭행 피해를 본 뒤 살해당한 사건이다. 20년을 복역하고 2009년 가석방된 윤씨는 이춘재의 범행 자백 이후인 지난해 11월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은 올해 1월 이를 받아들여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다. 앞서 재판부는 지난 9월 이번 논란의 결정적 증거인 현장 체모가 30년의 세월이 흐른 탓에 DNA가 손상돼 감정이 불가능하다는 판정이 나오자 이춘재를 직접 법정에 부르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춘재가 증인의 지위에 불과하다며 촬영을 불허해 언론의 사진·영상 촬영은 이뤄지지 못했다.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최고의 중동 전문 기자 로버트 피스크 74세에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최고의 중동 전문 기자 로버트 피스크 74세에

    1970년대 중동 지역에 파견돼 미국과 이스라엘의 외교 정책을 날카롭게 비판했던 로버트 피스크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74세를 일기로 세상을 등졌다. 아이리시 타임스는 고인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아일랜드 더블린의 자택에서 실신해 세인트 빈센트 병원에 입원한 뒤 얼마 안돼 사망 선고가 내려졌다고 보도했다. 그는 중동 보도로 많은 상을 받았고, 특히 미국과 이스라엘 외교 정책의 위선을 폭로하는 등 서방의 대중동 외교를 비판한 것으로 명성을 떨쳤다. 50년 넘게 중동뿐 아니라 발칸 반도, 북아프리카 등을 돌며 영국 신문들에 기고했는데 미국 일간 뉴욕 타임스는 2005년에 그를 “아마도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해외 파견 기자”라고 표현했다. 마이클 D 히긴스 아일랜드 대통령은 1일 고인의 부음을 듣고 성명을 내 “커다란 슬픔”을 느꼈다며 “저널리즘의 세계에 그가 끼친 족적과 중동 문제에 대한 코멘트 등 우리 시대 가장 훌륭한 해설가 중 한 분을 잃었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1946년 켄트주 메이드스톤에서 태어난 그는 나중에 아일랜드 시민권을 얻어 더블린 외곽 달키에 집을 마련했다. 선데이 익스프레스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한 그는 1972년 벨파스트로 거처를 옮겼는데 타임스의 북아일랜드 특파원 역할을 하기 위해서였다. 4년 뒤 같은 신문의 중동 특파원으로 임명돼 레바논 베이루트로 파견돼 레바논 내전, 1979년 이란 혁명과 아프가니스탄-소련 전쟁, 이란-이라크 전쟁 등을 취재했다. 1989년 타임스 소유주인 루퍼트 머독과 불화로 회사를 그만 뒀다. 1988년 미 해군의 이란항공 655 여객기 격추 사건을 취재한 자신의 기사가 잘려나가자 미련 없이 사표를 던졌다. 그 뒤 인디펜던트로 옮겨 나머지 기자 경력을 그 곳에서 마쳤다. 특히 이스라엘의 사브라-샤틸라 학살과 시리아의 하마 대학살을 직접 잠입 취재했고, 1990년대 오사마 빈 라덴을 세 차례나 인터뷰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빈 라덴을 “부끄러움 타는 남자”라고 묘사하는가 하면 1993년 첫 인터뷰 때 “어느 모로나 무자헤딘 전통을 지키는 산악전사”라고 바라봤다. 9·11 테러가 일어난 뒤 20년 동안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시리아 등의 갈등 현장을 누볐다. 아랍어에 능통했고, 책상물림을 끔찍히 싫어하고 자신의 지역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최고로 쳤다. 2005년 책 ‘문명에 이르는 위대한 전쟁-중동 정복’을 집필했는데 이 지역의 역사를 꿰뚫으며 미국과 영국, 이스라엘의 외교 정책을 신랄하게 꼬집었다. 미군의 공격에 분노한 난민들의 공격을 받아 목숨을 잃을 뻔하기도 했고, 바로 옆에서 포탄이 터지는 바람에 영구적인 부분 청각 장애 판정을 받기도 했다. 그의 좌우명은 “보고 들은 걸 기록하고, 가능하다면 나쁜 녀석들의 이름을 적어두는 목격자”가 되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미국 여기자 라라 말로우와 결혼했다가 2006년 이혼했는데 자녀가 없었다. 영국 BBC의 중동 편집자 제레미 보웬은 “너무 젊을 적 일이다. 난 로버트를 좋아하고 존경했다. 어느날 옛 유고슬라비아 취재를 마치고 레바논 남쪽에 도착했는데 그가 내 재킷의 냄새를 킁킁거리며 맡더니 체코의 자두주인 슬리보비체(slivovitza) 냄새가 난다고 했다. 난 학교 다닐 때도 그의 기사를 읽었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복했다.(그런데 아직도 기자 일을 하고 있는 것이냐고 타박한 듯하다) RIP(평화롭게 영면을) 피스크”라고 추모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임정욱의 혁신경제] 트럼프가 재선되면 안 되는 이유

    [임정욱의 혁신경제] 트럼프가 재선되면 안 되는 이유

    남의 나라 선거에 이처럼 관심을 갖고 열을 내보기는 처음이다. 매일 현지 선거상황을 전하는 뉴스를 보고, 듣고, 읽는다. 유튜브 덕분에 현지와 시차 없이 생생하게 현지 TV보도 뉴스를 볼 수 있는 세상이 된 덕분이기도 하다. 내일 투표가 시작되는 미국 대선 얘기다. 예전에 미국에 약 7년간 살아 봤지만 현지에 거주할 때도 이렇게까지 선거에 관심을 갖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번 미국 대선의 결과는 세계 정세는 물론 미국과 한국에 있는 내 가족과 친구들의 삶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한국인치고 미국에 친척이나 친구가 없는 사람이 없다. 자녀를 유학 보낸 사람도 많다. 이들이 최근 “과연 미국이 살 만한 나라인가”에 대해 회의했다. 이번 대선은 그런 물음에 해답을 줄 것이다. 2008년 말 오바마가 당선될 당시 “역시 미국은 위대한 나라”라고 생각했다. 백인이 주류인 나라에서 흑인 대통령을 낼 정도로 다양성을 인정하고 포용할 줄 아는 나라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2016년 트럼프 당선 이후에는 혼란에 빠졌다. 미국이 내가 예전에 알던 나라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황당한 사람이지만 대통령이 되면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했다. 이후 그의 임기 동안 인종 갈등, 반이민정책, 멕시코 국경장벽 등 수많은 논란을 불러 왔다. 그래도 사상 최고의 경제호황 덕분에 트럼프가 재선해도 괜찮지 않냐고 하는 사람들이 한국에도 많았다. 호전된 북미 관계도 작용했다. 하지만 나는 예전부터 쭉 절대로 트럼프가 재선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다음은 그 이유다. 우선 그는 최악의 리더십을 가진 리더다. 리더들에게는 공통적인 덕목이 있다. 정직성, 청렴성, 경청의 자세, 비전, 적절한 권한 이양, 겸손, 다른 사람을 위한 배려, 공감능력 등이다. 트럼프의 리더십은 여기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오히려 정반대다. 입만 열면 거짓말이고, 남의 이야기는 듣지도 않는다. 겸손은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고 언제나 자기만큼 뛰어난 사람은 세상에 없다고 자랑한다. 공감능력은커녕 전쟁에서 희생된 용사들이나 코로나로 희생된 가족들이나 의료진을 의심하며 조롱한다. 희망적인 미래비전 대신 공포와 혐오를 조장하는 음모론 발언으로 지지자들을 선동하고 대립·분열을 만들어 낸다. 굳이 긍정적인 면을 평가하자면 활발한 소통 능력 정도인데, 그것마저도 대중의 관심을 끌려는 그의 은밀한 욕망에서 나온 것이다. 이런 사람이 당신의 직장 상사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인성, 리더십에서는 최악인데 부하들을 괴롭혀 좋은 실적을 내고 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무엇보다 우리의 자녀들에게 “저런 리더를 본받아 너도 저렇게 훌륭한 사람이 되거라”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두 번째 이유로는 지나친 미국 우선 정책과 우방에 대한 홀대다. 아메리카 퍼스트를 내세워 표심을 얻은 것은 이해하지만 유럽의 나토와 한국 등 전통의 우방국들을 “미국을 등쳐 먹는” 나라들로 묘사하며 말도 안 되는 청구서를 내밀 때마다 당혹스럽다. 세 번째는 반이민 정책이다. 위대한 나라 미국을 만들 수 있었던 바탕은 다양성을 포용하는 힘이었다. 실리콘밸리만 가 봐라. 그 수많은 혁신회사들을 만들고 지탱하는 힘은 러시아, 인도, 중국, 한국 등 전 세계 수많은 국가에서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넘어온 이민자들이다. 그것을 전면 부정하고 빗장을 닫아 건다면 미국의 힘은 빠르게 약화될 것이다. 지난 몇 달간 코로나를 피해 한국으로 피난(?) 온 미국의 한인 교포들을 많이 만나 봤다. 모두 대단한 실력을 지닌 최고의 인재들이다. 그런데 이들 상당수가 미국에 사는 것에 대한 회의감을 느낀다고 했다. 아시안에 대한 혐오와 질시를 요즘에 직접 경험했다는 사람도 많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코로나19의 빠른 극복을 위해서도 트럼프가 물러나야 한다. “코로나 걸려 보니 아무것도 아니더라”며 큰소리치며 코로나바이러스의 위협을 부정하는 그의 존재 자체가 미국에는 재앙이다. 물론 트럼프가 패배하더라도 쉽게 승복하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더라도 매일 트위터를 통해 증오, 혐오, 공포, 선동의 메시지를 쏟아 놓을 것이다. 아니 직접 트럼프TV 유튜브 채널을 시작해서 자신의 메시지를 증폭시킬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가 대통령직에서 물러난다면 적어도 그를 매일 뉴스에서 만날 일은 없어질 것이다. 어서 빨리 트럼프 이후의 미국을 만나고 싶다.
  • 부분과 부분, 부분과 전체는 하나… 대통합의 ‘화엄 도량’

    부분과 부분, 부분과 전체는 하나… 대통합의 ‘화엄 도량’

    석가모니의 깨달음으로 불교가 시작했다. 스스로 해탈하려는 소승에 더해 중생을 구제하려는 대승불교로 확대되었다. 대승의 모든 신앙을 통합한 것이 화엄종이며, 그 방대한 가르침을 기록한 경전이 화엄경이다. 지리산 화엄사는 이름 그대로 화엄사상을 건축으로 구현한 가람이다. 그러나 그 역사는 거대한 화엄경의 내용만큼 복잡하고 중층적이다.●화엄종, 화엄경, 창건 화엄사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처음으로 화엄사상을 들여왔으나 그는 계율학을 신라 불교의 근간으로 삼아 전제 왕권 강화에 이바지했다. 다음 세대인 의상대사는 당나라에 유학해 2대 화엄종주 지엄의 수제자가 됐고, 삼국 통일 직후 귀국해 신라 화엄종을 세웠다. 계율학이 분단시대의 부국강병 수단이었다면 화엄종은 통일시대 통합의 국교였다. 의상의 후예들은 각지에 화엄도량을 열었고, 그중 중요한 사찰들을 묶어 화엄십찰이라 불렀다. 화엄사는 마땅히 그중에서도 핵심이었다. 544년 서역의 승려 연기조사가 창건했다는 설은 전설일 뿐이다. 최근 발굴된 기록에 근거해, 연기조사는 국찰 황룡사에서 화엄경 사경을 주도한 이로 8세기 후반에 화엄사를 실질적으로 창건했다는 설이 합리적이다.현재 화엄사의 모습은 임진왜란 후 재건된 결과이며, 8세기 창건 당시의 모습은 사뭇 달랐다. 이 시기의 유적은 각황전의 기단과 초석, 그 앞의 큰 석등, 그리고 동5층석탑이다. 창건 가람은 동향으로 앉았고, 각황전 자리에 장육전이라는 건물이 있었다. 장육전과 동5층석탑 사이, 서5층석탑 자리에 금당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동서축을 따라 (동)석탑, 금당, 석등, 장육전으로 구성된 전형적인 1탑 1금당 형식의 가람이었다.현 각황전은 2층이지만 장육전은 3층이었다. 내부에는 화엄경을 정교하게 새겨 넣은 거대한 석경벽을 세웠다. 화엄석경은 임진왜란 때 불타 파괴돼 1만 9000여 파편으로 남아 있다. 추정하면 600여매의 돌판에 총55만여자를 새긴 대규모 경판이었다. 내부 고주가 서 있는 5칸×3칸 기둥 사이 사방으로 석경벽을 두르고, 이를 순회하며 화엄경 전편을 읽을 수 있는 구조였다. 장육전은 곧 건축으로 쓴 화엄경이었고, 화엄사가 화엄종의 종찰이 되는 종교적 근거였다. 장육전 창건과 동시에 특이한 모습의 석탑과 석등을 뒤편 언덕에 조성했다. 탑은 사자 4마리와 가운데 승려 1명이 탑을 받치고 있는 모습의 4사자3층탑이다. 석등 역시 승려 1명이 꿇어앉아 석등을 받치고 있다. 4사자석탑의 인물은 스승이며, 석등의 승려는 제자인 연기조사로 사제 간의 전법을 묘사한 것 같다. 사자탑의 전통은 꾸준해서 고려시대의 사자빈신사지탑이나 홍천 괘석리탑이, 그리고 화엄사 원통전 앞에도 일부가 남아 있다. 화엄사의 사자탑은 그 효시일 뿐 아니라 가장 완벽한 유산이다. ●거듭된 중창과 가람의 대변화 화엄종은 신라 불교의 대세가 됐다. 종교의 거대화는 분열을 수반한다. 후삼국시대, 신라는 쇄락하고 왕건의 후고구려와 견훤의 후백제가 자웅을 겨루던 때다. 거대 화엄종은 왕건 편에 선 희랑과 견훤 편 관혜의 무리로 분화됐다. 북악파인 희랑은 해인사와 부석사에, 남악파인 관혜는 화엄사에 근거지를 두었다. 결과는 왕건과 희랑의 승리,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했다. 화엄사의 종단 내 위상이 크게 추락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태조 왕건의 마지막 해, 943년에 고려 왕실은 화엄사를 크게 중창했다. 패자 남악파에 대한 승자의 마지막 배려였을까?기존의 대석단을 연장해서 현재와 같이 ㄱ자로 꺾은 모습으로 만들었다. 새로 조성한 북쪽 석단 위에 새로운 불전을 세웠다. 현재의 대웅전 자리다. 기존의 동5층석탑은 마치 대웅전에 속한 탑같이 되었다. 창건기의 금당을 없애고 서5층석탑을 세워 장육전 앞의 탑으로 삼았다. 두 개의 석탑이 동서로 놓여 마치 쌍탑식 가람 같아 보이지만, ‘장육전+서탑’과 ‘대웅전+동탑’의 1탑식 가람 두 개가 한 공간에 공존하는 것이다. 두 탑은 규모와 형태가 유사하지만 자세히 보면 차이가 많다. 서탑은 일절 장식이 없다. 반면 동탑은 하층기단에 12지상, 상층기단에 8부신중, 1층 몸돌에 사천왕상을 조각했다. 같은 듯 다른 이 형태적 차이는 적어도 150년 이상의 조성시기 차이 때문이다. 새로운 불전과 불상을 모셨다는 것은 신앙의 대상이 더해졌다는 것, 더 나아가 종파가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화엄석경이 봉안된 기존의 장육전은 여전히 화엄신앙의 중심이었다. 현 각황전 불단 안에는 신라 때 불상을 세웠던 대석이 남아 있다. 아마도 법신, 보신, 화신의 3신불상을 모셨고, 장육전이니 1장 6척(약 4.8m)의 거대한 입상이었을 것이다. 비로자나불 중심의 3신불은 화엄신앙의 핵심이다. 새로 더해진 불전, 현재의 대웅전은 원래 석가모니불을 모신 곳으로 선종 계통의 중심 불전이다. 조선시대의 기록에 화엄사는 줄곧 선종을 대표하는 사찰로 등장한다. 고려 불교의 4대 종파는 교종의 화엄종과 법상종, 선종의 천태종과 조계종이었다. 천태종은 화엄사상을 바탕으로 선불교를 융합한 종파였고, 종조 대각국사 의천은 화엄사에 각별히 애착이 많았다. 여러 연유로 화엄사는 고려 초에 교종인 화엄종에서 선종인 천태종으로 종파를 바꾸었을 가능성이 높다. 적어도 기존 화엄에 더해 선불교를 습합한 것은 확실하다. 임진왜란 때 화엄사는 의승병의 근거지였고 불에 타 파괴된다. 남은 것은 석단과 석탑과 석등 그리고 산산조각 난 화엄석경뿐이었다. 40년 후인 1636년에야 중창 재건을 시작했다. 중창주인 벽암대사는 남한산성을 수축한 공을 세운 팔도총섭이었다. 인조의 신임을 얻어 불사를 벌였으나 대웅전 등 겨우 일부만 가능했다. 열악한 경제 여건으로 대규모 다층건물인 장육전 재건은 엄두를 내지 못했다. 입구에 일주문을, 그 위로 금강문과 천왕문을 세워 긴 진입로를 만들었다. 전형적인 조선후기의 산중 가람이 되었다. 장육전은 1702년에야 왕실의 후원을 얻어 겨우 중창한다. 그나마 2층으로 줄이고 이름도 각황전으로 바꾸었다. 중창 대웅전에 이미 비로자나의 3신불을 모셨기에 각황전에는 석가불 중심의 3세불과 보살들을 모셨다. 신앙적 내용으로 본다면 대웅전은 대적광전으로, 각황전은 대웅보전으로 불러야 마땅하다. 전쟁 후 순서 없이 재건했기에 벌어진 혼란이다. ●중창으로 이룬 연화장 세계 화엄사에는 두 개의 중심이 병존한다. 각황전은 크고 높고, 대웅전은 상대적으로 작고 낮다. 평범한 가람배치라면 각황전의 위세에 대웅전이 눌릴 지경이다. 두 중심을 동등하게 인식할 특별한 방법이 필요했다. 일주문에서 시작된 진입 동선을 육중한 보제루 앞에서 동쪽으로 틀어 운고각 쪽으로 오르게 했다. 마당 한 귀퉁이에서 중심 공간을 마주하도록 의도한 것이다. 가까운 대웅전은 실제보다 크게, 멀리 있는 각황전은 작게 보인다. 결과적으로 두 중심은 거의 같은 크기와 높이로 인식된다. 건물의 위치와 규모를 바꿀 수 없으니, 인간이 바라보는 시점을 바꾼다. 입체적이고 감각적인 실감형 배치법이다. 각황전은 후일 영조가 된 연잉군을 위해 그의 생모 숙빈 최씨가 시주한 법당이다. 대시주에 대한 화답으로 원통전으로 세워 연잉군의 원당으로 삼았다. 그후 사이사이에 나한전과 영전을 세웠다. 각황전부터 대웅전에 이르는 5개 건물은 높낮이가 다르다. 운고각 앞에 서면 이 다섯 건물이 ‘강, 약, 중강, 약, 강’의 리듬을 가진 하나의 연속체로 다가온다. 화엄은 부분과 부분, 부분과 전체가 하나라는 통합의 사상이다. 화엄법계 중 최상은 ‘사사무애법계’로, 부분들이 독자적이어도 전체 질서에 아무런 장애가 없는 자유로운 세계이다. 화엄의 세계는 온갖 꽃들이 어우러진 무한한 정원인 연화장 세계다. 각황전과 대웅전, 원통전 등 화엄사의 전각들은 독자적인 중심성을 갖지만, 동시에 전체 속에서 조화된다. 화엄 법계를 이루는 동력은 ‘끝없이 펼쳐지는 원인과 결과의 그물’인 무진연기이다. 모든 만물은 변화한다. 1300년 역사 속에서 화엄사의 사상도 가람의 건축도 변화했다. 화엄종이 분열되어 종파가 바뀌고 전쟁의 파괴가 새로운 가람을 만들었다. 그러나 과거의 질서는 사라지지 않고 새로운 질서가 그 위를 덮는 중창의 무진연기 속에서 건축적 연화장 세계를 꽃피우고 있다. 건축학자·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 [다이노+] 중생대 도요새?…긴 부리를 지닌 익룡 발견

    [다이노+] 중생대 도요새?…긴 부리를 지닌 익룡 발견

    공룡 영화에 등장하는 중생대 생물은 대부분 역할이 정해져 있다. 티라노사우루스 같은 대형 수각류 육식 공룡은 무시무시한 이빨로 등장인물들을 위협하고 이보다 더 거대한 초식 공룡은 육식 공룡의 공격을 받기 전까지 평화롭게 풀을 뜯는다. 익룡은 하늘을 나는 거대 파충류로 보통은 하늘 배경에 등장하는 조연이지만, 종종 사람을 공격하기도 한다. 하지만 현생 조류와 마찬가지로 중생대 익룡의 크기와 형태 역시 매우 다양했다. 지금까지 알려진 100여 종의 익룡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전투기와 비슷한 날개폭을 지니고 있지만, 작은 것은 참새만 했다. 이들의 생활 방식이나 먹이 역시 크기 차이만큼 다양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익룡 화석은 대부분 보존 상태가 좋지 않아 이들이 중생대에 어떻게 먹고 살았는지 연구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무게를 줄이기 위해 뼛속이 비었을 뿐 아니라 매우 얇아 화석화가 잘 되지 않기 때문이다. 포츠머스 대학 연구팀은 최근 모로코의 백악기 후기 지층인 켐 켐(kem kem) 지층에서 소형 익룡이 어떻게 먹고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화석을 발견했다. 신종 익룡인 렙토스토미아 베가엔시스(Leptostomia begaaensis)는 긴 주둥이에 날카로운 이빨이 있는 일반적인 익룡과 달리 길고 뾰족한 핀셋 같은 주둥이를 지녀 연구팀은 처음에 익룡 화석이 아닌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화석을 자세히 분석한 연구팀은 이 화석의 주인공이 지금까지 보고된 적 없는 독특한 주둥이를 지닌 익룡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렙토스토미아는 칠면조와 비슷한 크기의 소형 익룡으로 현생 조류 가운데 도요새, 키위와 가장 비슷한 부리를 지녔다. 렙토스토미아는 도요새처럼 갯벌이나 물 위에서 긴 부리를 이용해서 작은 벌레나 갑각류를 잡아먹었던 것으로 추정된다.(복원도 참조) 이런 먹이는 현재는 물론이고 중생대에도 매우 풍부했기 때문에 이는 현명한 생존 전략이었을 것이다. 중생대판 도요새가 백악기에 번성했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사실 영화에 묘사된 것과는 달리 거대한 익룡도 목은 길고 가느다란 편이어서 공룡처럼 큰 먹이는 삼키기 힘들다. 따라서 주된 먹이는 물고기나 작은 동물들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크기가 작은 익룡의 경우 정확히 어떻게 먹고 살았는지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다. 아마도 현생 조류처럼 먹이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진화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이를 확인하기는 어려웠다. 렙토스토미아의 발견은 막연한 추정을 과학적 증거로 검증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과학은 이런 과정을 거쳐 발전하는 법이다. 고든 정 칼럼니스트 jjy05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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