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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흉악범 5명 사형 집행/법무부,올두번째

    ◎“반사회적 범죄 단호 응징 경고”/양평 일가살해 범인 2명엔/기소 11일만에 사형을 구형/검찰 법무부는 4일 경기도 부천에서 데이트하던 남녀를 살해한 죄 등으로 사형이 확정된 손오순(22) 등 흉악범 5명을 사형시켰다. 이들 흉악범은 강도살인ㆍ존속살인ㆍ강간치상 및 살인 등 흉악범죄를 저지르고 서울구치소와 부산구치소,광주교도소에 수감돼 있다가 이날 상오 교수형을 당했다. 이날의 사형집행은 지난 4월17일 포항 연쇄강도ㆍ강간살인 사건의 주범 최정호(24) 등 9명의 사형이후 7개월만이며 이로써 현재 사형이 확정된 죄수는 재심중인 2명을 포함,16명이 남았다. 이날 사형된 죄수들 가운데 전경숙(26)은 죄를 참회하는 뜻으로 안구를 사회에 기증했다. 법무부는 이날의 사형집행에 대해 『정부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뒤에도 양평 일가족 살인사건 화성여중생 살인사건 등 강력범죄가 잇따르고 있어 법의 집행을 엄격히 해 경고를 주는 뜻에서 단행된 것』이라고 밝혔다. 사형이 집행된 손은 지난 87년 11월 공범7명과 함께 경기도 부천시 도당동 야산에서 데이트하던 정모군(18)과 김모양(20)을 숲속으로 끌고가 정군을 몽둥이로 때려 숨지게 하고 김양을 윤간하는 등 모두 15차례에 걸쳐 강도살인ㆍ강도강간죄를 저질러 사형선고를 받았었다. 전은 지난 86년 11월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의 치과병원에 들어가 원장 김모씨(64)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하는 등 5차례에 걸쳐 강도살인 등을 저질렀다. 함께 처형된 송재홍(35)은 지난 83년 12월 사망보험금 6천만원을 받아낼 목적으로 택시에 아버지를 태우고 제주도 서귀포시 회수동 숲속으로 데려가 돌로 때려 숨지게 한뒤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택시운전사(25ㆍ여)도 돌로 때려 실신시키고 택시에 불을 질렀다. 또 임천택(42)은 지난해 10월 부산 동래구 복천동 가정집에 들어가 흉기로 주인(38)을 찔러 숨지게 하고 4만원을 빼앗았다. 이재철(29)은 지난해 7월 부산 부산진구 부암3동 약수터에서 여중 1년생(12)을 납치,강간한 뒤 목졸라 살해했다. ◎여자 공범,분리심리 【수원=김동준기자】 수원지검 박종환검사는 4일 수원지법 형사합의2부(재판장 유창석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양평 일가족 암매장 살해사건 첫 공판에서 윤용필(31),오태환(31) 등 2명의 피고인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또 심혜숙피고인(21)에 대해서는 선임변호사의 분리심리 요청에 따라 오는 11일 하오2시에 첫 공판을 열기로 했다. 이들 피고인 2명에 대한 구형은 기소 11일만에 신속히 이뤄진 것으로 이는 흉악범에 대해 곧바로 형을 선고하거나 집행함으로써 범죄응징 효과를 높이는 등 사회적 대응을 위한 검찰과 법원의 의지에 따른 것이다. 이날 재판부는 또 이례적으로 법정에서 보도진들에게 피고인들에 대한 사진을 촬영토록 허용했다. 박검사는 논고를 통해 『피고인들은 어린 손녀 앞에서 외할아버지의 목을 졸라 살해한 뒤 매장하고 흙이 입까지 차 오르는 동안 계속 살려달라고 애원하던 서연양을 생매장하는 잔인성을 보였고,완전범죄를 꾀하기 위해 불과 3시간동안 4명의 목숨을 앗아버렸으며,검거된 후 강릉에서 신혼부부를 살해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는 등 비인간성,야수성까지 보여 사형을 구형한다』고 극형 구형 이유를 밝혔다. 윤ㆍ오피고인 등 2명에 대한 선고공판은 다음달 18일 상오10시 수원지법 210호 법정에서 열린다.
  • 어린이 환각폭행 잇따라/양주서 이틀새 2명 유인해 뭇매

    【양주】 어린이를 유인해 얼굴을 담뱃불로 지지는 등 잔혹행위를 한뒤 돌려보내는 사건이 잇따라 부모들이 불안해 하고 있다. 지난 4일 상오10시쯤 경기도 양주군 회천읍 덕정리 118 이종일씨(34ㆍ상업) 집 앞에서 놀던 이씨의 아들 민하군(4)과 같은 집에 사는 변영득씨(43)의 아들 수근군(6) 등 2명이 여중생 3명이 낀 5명의 불량 청소년들에게 유인돼 현장에서 8백여m 떨어진 석우동 다리밑에서 몽둥이로 얻어맞고 얼굴을 담뱃불로 지지는 등 잔혹행위를 당하다 하오6시30분께 풀려났다. 또 이에앞서 3일 하오5시쯤에도 박만찬씨(30ㆍ회사원ㆍ회천읍 덕정리 135)의 아들 응국군(5)이 『좋은 곳으로 가서 놀자』며 유인하는 10대 남녀 2명에게 인근 야산으로 끌려가 몽둥이로 온몸을 얻어맞고 1시간30여분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경찰은 여학생이 낀 이들 5명이 모두 담배를 피우는 데다 모닥불로 머리카락을 태우는 등 비정상적인 행동을 했다는 어린이들의 말에 따라 본드 등 환각제를 상습적으로 복용하는 청소년 폭력배들일 것으로 보고 인근 불량청소년 등을대상으로 수사를 펴고 있다.
  • “핵반대” 격렬시위… 한때 치안부재/지서등 관공서 습격ㆍ방화

    ◎군직원ㆍ경관등 묶어놓고 뭇매/일부는 밤늦도록 화염병 시위/안면사태/정부해명에 진정기미… 경찰,50여명 연행 【안면도=박국평ㆍ육철수ㆍ송태섭기자】 핵폐기물처리장 건설계획에 반대하며 지난 6일부터 3일째 집단시위를 벌이던 충남 태안군 안면읍 주민 1만여명은 8일 하오10시쯤 정부가 핵폐기물 계획이 없었다고 해명한 소식이 전해지자 일단 진정국면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주민 5백여명은 『정부의 핵폐기물처리장 설치계획의 완전백지화가 확인될 때까지 투쟁하겠다』면서 이날 자정까지 안면읍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시위를 계속했다. 이에앞서 주민들과 학생들은 8일 하오5시쯤 안면지서와 안면 의용소방대에 난입,안면지서를 모두 불태우고 소방차 등을 탈취하는 등 하오 늦게까지 과격시위를 벌였다. 이들 주민ㆍ학생들은 또 이날 상오11시40분쯤부터 안면읍 승언리1구 한국전력 안면지소앞 도로를 점거,시위를 벌이다 현장에 나와있던 태안군청 공보실장 이영세씨(47)와 서무계장 박홍식씨(37) 등 군청직원 5명을 납치,몽둥이 등으로 때린후 팬티만입히고 옷을 모두 벗겨 양손을 나일론끈으로 묶은채,도로에 쌓아놓은 드럼통과 폐타이어위에 50여분동안 서있게한 뒤 읍사무소로 끌고가 감금,하오5시쯤 풀어주었다. 이들 시위대의 이같은 과격시위로 인구 2만여명의 안면읍은 행정업무가 마비되고 한동안 무법천지를 이뤘다. ▷시위동기◁ 이날 상오10시 안면읍 버스정류장 광장에서 주민 1만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건설반대」 대회에서 주민대표 박노태씨(45) 등 8명이 지난7일 서울에서 정근모 과기처장관을 만나 「에너지연구소 건설 강행방침」 답변만 듣고 왔다고 발표하자 흥분한 주민들이 일제히 처분장설치 반대를 외치며 과격시위에 들어갔다. ▷방화 및 경찰관 납치◁ 시위상황을 살피기 위해 현장에 나와 있던 공보실장 등 5명의 군청직원을 납치했던 시위대는 이어 현장에서 신임 안건수 안면지서장(47ㆍ경위)이 타고온 충남1 마3975호 로얄프린스승용차를 탈취,석유를 뿌려 전소시키고 안경위를 끌어내 집단폭행,2주이상의 상해를 입혔다. 이때 현장에 있던 안면지서소속오재규경장(35)과 김호성순경(29) 등 2명도 이들 시위대에게 몽둥이 등으로 맞아 오경장은 실신,안면도 서울병원에 입원하고 김순경은 무전기를 빼안긴 채 붙들려있다가 풀려났다. 시위대들은 경찰에 돌 등을 던지며 읍내에서 공방전을 벌이다 하오7시25분쯤 안면지서 건물에 휘발유 등을 뿌린뒤 불을 질러 목조건물 내부 1백65여㎡와 부속 예비군 중대본부 무기고 등 모두 3백30㎡를 불태웠다. 그러나 무기고에 보관중이던 총기류와 화약류는 직원들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사전에 인근 군부대로 모두 옮겨놓았고 주요문서는 시위대들이 미리 지서 밖으로 꺼낸 다음 불을 질러 큰 피해는 없었다. 이에앞서 시위대 1만여명은 상오9시30분쯤 안면읍 승언리앞에서 농성을 벌이다 3㎞ 떨어진 서해안연구단지 조성부지로 몰려가 건설현장 사무소의 가건물 1백여㎡와 포클레인 1대에 휘발류를 뿌려 전소시켰다. 한편 시위대는 낮12시쯤 사고현장을 취재하던 대전 매일신문 사회부 이광희기자(30)에게도 집단폭행을 가해 전치 2주의 상해를 입히고 카메라를 빼앗았다. ▷차량탈취◁ 하오5시쯤 의용소방대와 안면지서에 난입한 시위대는 의용소방대의 차고대형 철제셔터 2개를 부수고 충남9 가2086호 소방차와 안면지서옆 읍사무소에 세워져 있던 충남7 가2083호 쓰레기차를 탈취,한전 안면지소 앞까지 몰고가 이 차량으로 바리케이드를 보강했다. ▷시위진압◁ 충남도경은 하오 늦게까지 시위가 계속되자 전투경찰 9개중대 1천1백여명을 안면읍내에 투입,시위대들이 점거하고 있던 읍사무소와 안면지서 등을 되찾았다. 경찰이 투입되자 시위대는 도로에 설치됐던 드럼통과 폐타이어 등 바리케이드에 불을 질러 안면읍 전체가 30여분동안 폭발음과 연기 등에 휩싸였다. 안면읍에 투입됐던 경찰관 10개중대중 8개중대는 하오9시30분 현재 서산군으로 철수하고 나머지 2개중대는 연륙교 인근에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경찰에 밀려 연륙교와 승언리 한전앞쪽으로 밀려난 시위대는 최루탄을 쏘는 경찰과 맞서 돌과 화염병을 던지며 밤늦게까지 곳곳에서 산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경찰은 시위현장에서 주민대책위 최석칠위원장등 간부 5명과 주민 50여명을 연행,조사하고 있다.
  • 보기 민망한 한국인 관광객의 추태(특파원수첩)

    ◎중국동포 골탕먹인 「서울손님들」/선물주며 조선족 처녀들 꾀기 예사로 중국 흑룡강성에서 태어나 자란 조선족동포(중국에선 우리 한족과 발음이 같은 한족을 구별하기 위해 이렇게 부른다) 김모양 등 2명은 올 봄 같은 동포가 운영하는 북경의 한 음식점에 취직했다. 이 한식점은 언제나 서울서 온 손님들로 가득찼고 김양 등은 처음 보는 남조선 사람들에게 호기심과 호감을 갖고 대했으며 한 핏줄이란 점에서 모든 친절을 베풀었다. 이들 가운데 조그만 회사의 사장이라는 두명의 50대 중반 아저씨들은 김양 등에게 『딸같다. 집을 떠나 객지에서 돈을 버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으냐』며 항상 따뜻한 말을 건네 주었다. 얼마뒤 이 아버지뻘되는 사장 아저씨들은 『너희들에게 줄 선물을 깜빡 잊고 호텔에 두고 나왔다』며 저녁식사를 마치곤 호텔에 함께 가자고 했다. 김양 등은 선물을 받는다는 반가움에 아무런 다른 생각없이 호텔방까지 따라 갔다가 다음날 이른 아침 나오는 신세가 됐다. 밤새 울어 퉁퉁부은 눈두덩에 어깨가 축 처져 나오는 이들 10대소녀는 호텔문지기로 위장근무중이던 중국 공안원에게 불려 가 조사를 받았고 외국인과 윤락행위를 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들 소녀에게 내려진 형벌은 「3년형의 노동개조」였다. 벽지의 사역장에 보내져 3년동안 노동에 종사하게 된 것이다. 사장 아저씨들은 각각 중국돈 5천원(약 1천달러)의 벌금을 무는데 그쳤다. 북경의 한 조선어 방송국에서 아나운서를 하던 동포 박모씨는 역시 서울에서 온 사람들 때문에 「직위해제」를 당하고 1년동안 청소 등 허드렛 일을 해야하는 곤욕을 치르고 있다. 중국에서 패션쇼를 한다고 온 서울사람들의 부탁을 받고 동포 처녀 2명을 안내인으로 소개해 준게 화근이었다. 이 동포 처녀들도 앞의 김양 등과 비슷하게 당했고 예외없이 3년노동개조의 처벌을 받아 벽지로 보내졌다. 박씨는 윤락행위를 알선한 혐의로 아나운서 일 대신 방송국 청소하기 등의 잡일을 하게 된 것이다. 박씨가 환멸과 분노를 더욱 느끼게 된 것은 당사자인 서울사람들이 『안됐다』며 미화 50달러짜리 지폐 한장을 제3자를 통해 전해왔을 때였다. 길림성 혼춘에서 자라나 기차구경 제대로 못했던 동포 이모양(18)도 북경의 한식점에서 일하다 유달리 친절하게 대하는 서울의 사장 아저씨 때문에 순박한 소녀의 꿈을 짓밟혔다. 이 아저씨는 『내가 돈을 대줄테니 식당일 그만두고 미장원일을 배워라』며 유혹했다. 그리곤 아예 사글세방까지 얻어주고 『다시 오겠다』며 한국으로 되돌아 갔다. 북경당국이 아시안 게임기간동안 시내에서 직업없이 지내는 오지인을 강제로 귀향시키기 위해 호구조사를 나오자 이양은 겁이 나서 전에 일하던 음식점주인 집을 찾았다. 한밤중 문앞에서 웅크리고 앉아 우는 이양을 본 주인 부부는 하룻밤을 재운뒤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주선해줬다. 이상과 같은 이야기는 기자가 북경에서 직접 듣고 관계자들로부터 확인한 내용들이다. 한 동포 음식점주인은 밤중에 느닷없이 전화가 걸려와 『낮에 그곳으로 식사를 하러갔던 서울서 온 아무개인데 아가씨 한명만 보내달라』고 말하는 데는 기가 차다고 했다. 어떤 때는 마구 화를 내면서 밤중에 음식점까지 와서는 『돈은 얼마든지 달라는대로 준다는데 왜 안된다는 거냐』며 따지고 드는데는 할말을 잊는다고 했다. 우리 동포들이 많이 사는 연길에선 한국 관광객들이 마을처녀를 희롱하는데 화가 치민 동포청년들이 몽둥이를 휘둘렀다는 얘기도 들린다. 한국인들이 처음 중국에 가기 시작했을 때 우리 동포들은 반가움과 기대감 등으로 순수한 마음에서 한 핏줄을 맞이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제는 분위기가 너무나 다르게 바뀌었다. 자기 잘난 자랑에다 『그까짓거 몇푼 안되는데 내가 대줄테니 사업한번 해봅시다』는 식으로 큰 소리만 치고는 뒷소식이 없는게 예사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이어린 동포 소녀들의 앞날까지 망치게 하고 있으니 이들의 분노는 대단할 수 밖에 없다. 88올림픽을 TV로 보고 이들이 느꼈던 조국에의 향수와 같은 민족으로서의 자긍심은 점차 사라지는 성 싶다. 한국의 경제에 대해서도 중국 동포들은 회의적이다. 『이젠 무역수지도 적자고 경제도 나쁘다고들 하는데 무슨 돈자랑을 그렇게 하고 으스대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다음달에 한중 무역사무소가 상호교환설치되면 더욱 많은 사람들이 중국을 오가게 될 것이다. 『우리 할아버지들은 일제때 항일운동을 했거나 조국에서 일본인들에게 농토를 빼앗겨 먹고 살길이 없어 중국에 건너왔던게 아닙니까. 그래서 우리가 태어났고 또 중국의 경제발전이 뒤져서 못사는 편이긴 하지만 서로 인간성을 짓밟히면서 아귀다툼하며 살지는 않습니다』 중국정부기관에서 일하는 한 동포 엘리트는 한국의 같은 겨레와 느끼는 이질감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었다.
  • 휴전 37돌ㆍ범민족대회 계기로 본 어제ㆍ오늘

    ◎“냉전ㆍ대화의 장”… 두얼굴의 판문점/화해ㆍ도발ㆍ긴장 엇갈린 「국권의 사각지대」/북측,남북교류 구실로 정치선전장화 기도 휴전협정이 조인된지 37년,그동안 판문점은 동서이념 대결과 남북분단의 상징으로 뉴스의 초점이 돼왔으며 최근에는 활발해진 남북대화와 함께 개방여부를 놓고 또 한차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1953년 7월27일 상오 10시 유엔군사령관 마크 클라크 미육군대장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김일성사이에 체결된 휴전협정발효와 함께 군사분계선이 지나는 휴전회담 회담장을 중심으로 직경 8백m의 원을 그려 유엔군과 공산군의 공동경비구역으로 삼은 것이 오늘의 판문점이다. 세계 각국의 언론에 「하늘 아래 둘도 없는 기묘한 장소」라고 불리운 판문점은 북위 37도57분20초,동경 1백26도40분40초,한국도 북한도 아닌 국권의 진공지대이다. 휴전이후 37년동안 4백50여차례의 군사정전위원회 본회담이 열렸으나 합의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논쟁과 설전만 계속해왔다. 북한의 선전과 도발,생떼,어거지가 본회담의 주류를이루던 판문점은 때로는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팽팽한 긴장의 현장이었으나 7천만 민족의 통일의 염원이 결려있는 곳이며 남과 북의 유일한 대화통로여서 늘 뉴스의 초점이 되어 왔다. 당초 휴전회담은 1951년 7월10일 공산군의 통제지역인 개성에서 시작됐다. 공산측의 제의에 따라 회담장소를 개성으로 정한 유엔군측은 휴게소건물이나 회의장건물이 모두 공산측의 장악아래있어 심리적으로나 실질적으로 많은 압박을 받았다. 1951년 10월25일 유엔군측은 당시 남북군사분계선상에 있던 판문점을 새로운 회담장소로 제의,공산측의 합의를 받아 옮겼다. 초가집과 판잣집 4채 밖에 없던 주막거리 판문점은 일약 유엔군과 공산군의 고위장성을 실어나르는 헬리콥터와 내외신 보도진들이 몰려드는 뉴스의 현장이 되었다. 대형 천막 4개를 급히 세우고 이속에서 회담은 계속 됐다. 2년여동안 휴전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이곳에는 천막대신 목조건물이 세워졌고 53년 7월27일 역사적인 휴전협정이 이곳에서 조인됐다. 그로부터 37년이 지난 현재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안에는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장을 비롯,유엔군측의 자유의 집ㆍ평화의 집ㆍ일직 장교실ㆍ초소ㆍ막사 등이 들어서고 공산측에도 판문각ㆍ통일각ㆍ경비본부초소ㆍ막사 등과 중립국 감시위원회 회의실 등 10여채의 건물이 들어서 있다. 그러나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가 열리는 남북의 회담장은 군대 막사형인 단층의 목조건물로 20여평밖에 되지 않는다. 회담장 한 가운데 녹색 커버를 씌운 테이블이 놓여 있으며 테이블위로 국토를 양분하는 비극의 군사분계선이 지나고 있다. 군사분계선을 앞에 놓고 유엔군과 공산군의 장군급대표 5명이 『안녕하십니까』나 『또 만납시다』라는 인사말도 없이 37년간 수사학적인 말의 전쟁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대표단뒤로는 비서장을 비롯한 보좌관과 한국어ㆍ영어ㆍ중국어 통역 등 20여명씩의 수행원들이 회의장을 가득 메운다. 군사정전위가 열릴때마다 유엔군대표들은 서울을 출발,헬리콥터나 차량편으로 임진강의 자유의 다리를 건너 회담장으로 가고 공산측은 하루전에 평양을 출발,개성에서 1박을 한뒤 4천m의 「돌아오지 않는 다리」대신 북쪽에 새로 놓은 다리를 지나 판문점에 도착한다. 유엔군측의 자유의집은 65년 9월30일 준공됐으며 거의 같은 시기에 공산측도 2층 건물인 판문각을 준공했다. 80년 6월20일에는 자유의 집옆에 연건평 1백40평의 남북총리회담장 건물이 준공됐고 89년 12월20일에는 남북회담장소로 사용할 3층의 백색건물 「평화의 집」을 준공했다. 71년 8월 남북적십자 예비회담과 72년 7월의 7.4공동성명으로 판문점에서 남북조절위원회가 열리면서 판문점은 휴전이후 두절된 남북대화의 통로가 활짝 열리는듯 했었다. 그러나 73년 8월28일 북한의 일방적인 남북대화중단 선언으로 판문점은 또다시 냉전과 설전의 싸늘한 분위기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남북회담이 중단된지 3년뒤인 76년 8월18일 북한의 경비병 30여명이 도끼와 몽둥이 등으로 미군장교 2명을 살해한 도끼만행사건이 일어나 판문점은 숨막히는 긴장감에 휩싸이기도 했다. 도끼만행사건이전에도 59년 1월27일 소련 프라우다지 평양특파원 이동준씨 귀순,67년 3월22일 이수근위장탈출,75년 6월30일 미군장교 구타사건 등 크고 작은 사건들이 수없이 일어났다. 80년대에 들어 남북대화가 재개되면서 판문점은 남북회담장소로 변해 84년 11월15일 남북경제회담과 85년 7월23일 남북국회회담을 위한 예비회담 체육회담 등이 계속해 열렸다. 85년 9월20일에는 남북고향방문단 2백여명이 이곳에서 출입사열을 거쳐 교환방문했으며 84년 수재때에는 북한이 제공한 수재구호물자 쌀 7천1백96t,의약품 7백59상자가 이곳을 통해 전달되기도 했다. 휴전뒤 37년동안 1백55마일의 군사분계선중 유일하게 총칼대신 탁자가 놓여진 이곳에서는 상스러운 욕설에서부터 고도의 이념논쟁에 이르기까지 수억만 단어가 3개국 언어로 구사되면서 때로는 국민들에게 희망과 기대를 주는 장소로,때로는 분노와 실망을 안겨주는 장소가 되기도 했다.
  • “돈 훔쳤다”자백강요/후배때려 1명 사망

    25일 상오3시쯤 서울 노원구 하계동 시영아파트 503동 403호 박정이씨(48ㆍ여) 집 안방에서 박씨의 아들 오모군(18ㆍD공고3년)과 김모군(17ㆍ무직) 등 2명이 동네 후배인 이모군(17) 등 4명을 돈을 훔친 사실을 자백하라며 몽둥이로 마구 때려 이군을 숨지게 하고 오모군(17) 등 3명에게 중경상을 입혔다.
  • 30대 의처증 가장,딸 살해ㆍ장모 폭행

    【강진】 22일 0시쯤 전남 강진군 강진읍 덕남리 103 김권심씨(68) 집에서 김씨의 사위 최형채씨(36ㆍ강진읍 덕남리 449)가 장모 김씨와 장녀 최은하(8) 차녀 은비양(6) 등 3명을 몽둥이 등으로 폭행,차녀 은비양이 숨지고 장모 김씨와 장녀 은하양은 중상을 입었다.
  • 기도원서 신도ㆍ주민 난투극/울주/3천여명 각목휘둘러 27명 중경상

    ◎“축사지어 식수원 오염”시비끝에 【울산=이용호기자】 25일 상오11시30분쯤 울주군 상북면 길천리 산65의2 할렐루야기도원(원장 김계화ㆍ50ㆍ여)에 들어가려던 신도 2천6백여명과 이를 저지하는 이 마을 주민 6백여명이 난투극을 벌여 신도 정치환씨(49)와 마을주민 정상록씨(61) 등 27명이 중경상을 입고 인근 언양 동강병원에서 가료중이다. 이날 상오5시쯤 길천리 이장 이일만씨(48) 등 주민들은 경운기 15대를 동원,기도원 입구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몽둥이ㆍ삽 등을 들고 버스ㆍ봉고차 등 60여대의 차량을 타고 온 신도들과 대치하다가 상오11시30분쯤 신도들이 기도원에 들어가려하자 이를 저지하는 과정에서 돌을 던지고 몽둥이를 휘두르는 등 격렬한 싸움을 벌였다. 이때 현장에는 이미 신고를 받고 출동한 울산경찰서소속 2개 중대병력 2백40여명이 배치돼 싸움을 제지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원장 김씨는 지난3월 이일대 부지 2만여평을 매입,축사 3동과 관리사 1동 등 1백여평을 개조해 할렐루야기도원으로 사용해 왔는데 주민들은 기도원이 들어서식수원이 오염되는 등 환경이 불결해 진다고 주장해 왔으며 지난 한달동안 기도원 출입을 저지하기 위해 주민 20∼30명이 기도원 진입로를 지켜 이곳을 찾는 신도들과 대립해 왔다.
  • 사형제도는 합헌/대법/20대 살인범 위헌심판신청 기각

    대법원 형사1부(주심 김덕주대법관)는 24일 강도ㆍ살인등 혐의로 1,2심에서 사형이 선고된 손오순피고인(23ㆍ경기도안산시원곡동)이 낸 사형제도에 대한 위헌제청신청을 『사형제도는 국가 형사정책상 헌법에 위배된다고 할수 없다』고 기각하고 손피고인의 상고도 기각,사형을 확정했다. 손피고인은 지난 87년11월 경기도 부천시 도당동 야산중턱에서 데이트하던 정모군(18)과 김모양(20)에게 접근,정군을 숲속으로 데려가 몽둥이로 때려 숨지게 한뒤 김양을 차례로 폭행하고 현금 2만6천여원을 빼앗은 혐의로 구속 기소됐었다.
  • 처음 공개된 마쓰시로 「제2대본영」

    ◎한인원혼 떠도는 「일제」발악의 현장/지하호 13㎞… 「본토결전」위해 극비공사/한인노무자 7천명 강제동원… 천여명 사망/맨발ㆍ맨손으로 발파작업… 하루3∼5명 희생당해 【마쓰시로 연합】 일본이 패망 직전 일왕의 임시 거처와 전시최고사령부(대본영) 구축을 위해 한국인 노무자들을 강제 동원,극비리에 건설하던 「마쓰시로 대본영」 내부가 22일 처음으로 공개됐다. 일본군의 「제2대본영」으로 불리는 마쓰시로 대본영은 일본의 패색이 짙어가던 1944년 11월11일 상오 11시 대규모 발파작업을 시발로 도쿄 북서쪽 6백㎞지점의 나가노(장야)현 나가노시 마쓰시로읍 일대 3개 야산의 땅밑에 구축하던 지하호로 당시 현지 경찰과 헌병들조차도 공사사실을 모를만큼 철저히 은폐돼 왔던 곳이다. ○3개 야산에 구축 태평양전쟁말기 사이판섬 함락(44년 7월) 등으로 일본 본토에 대한 공습이 본격화되면서 일본군 수뇌부가 도쿄 대본영을 폐쇄,이른바 「본토결전」태세를 갖추기 위한 배수진으로 마련됐던 이 대본영에는 최소한 한국인 노무자 7천여명이 지하갱도굴착,발파작업 등에 강제 동원돼 1천여명이 죽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본이 패망하기 하루전인 45년 8월 14일까지 9개월동안 계속된 대본영 건설공사에는 당시 돈으로 2억엔이라는 엄청난 예산과 연인원 3백만명이 투입돼 패전으로 공사가 중단될 때까지 총연장 13㎞의 지하호가 완성(공정률75%)됐으며 발파등 가장 위험하고 힘든 막장작업에는 강제징용된 한국인들이 동원돼 하루 3∼5명씩 목숨을 잃은 것으로 생존자들은 증언하고 있다. 요미우리(독매),아사히(조일)등 일본 취재진 50여명과 함께 이날 처음으로 한국탐사팀과 취재진에 공개된 대본영지하갱도 안에는 당시 한국인 노무자들의 참혹했던 상황을 짐작케 하는 낙서,유류품 등이 곳곳에서 발견됐으며 지상에 세운 소위 일왕침실은 완공된 상태로 보존돼 있었다. 무학산,상산 등 해발 1백∼2백50m 높이의 3개 야산 지하에 파들어가던 대본영에는 왕궁,참모본부,왕족학습원,군사령부,정부행정기관 및 언론사가 들어설 수 있도록 돼 있다. ○곳곳에 한인 유류품 총연장 13km의 지하호는높이 3m,폭 3m의 통로가 바둑판처럼 뚫려 있었으며 지질이 단단한 암반이어서 어떠한 공습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는 것이 이곳을 공개한 관계자들의 설명이었다. 현재 대본영의 지상건물과 갱도 일부는 지진관측소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으며 완공된 상태의 일왕 침실은 10평 크기의 일본 고유 다다미방으로 공습위험이 있을 경우 대피하도록 별도의 지하궁전이 마련돼 있었으나 이곳은 공개하지 않았다. 대본영 부근 시노노이 아시히 고교 지하호 연구회가 펴낸 조사서와 와다 노보루(화전등)의 저서 「송대 대본영」에 따르면 한국인 노무자들은 무학산지하호 부근에 78동,상산 지하호 부근에 1백29동등 모두 2백40여개동의 급조막사(반장)에 20∼30명씩 나뉘어 기거하면서 거의 유폐된 상태에서 기계ㆍ노예처럼 혹사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당시의 증언자나 자료가 거의 없어 사망자 숫자 등은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고 있다. ○노예처럼 혹사당해 다만 하루 3∼5명씩의 한국인 노무자들이 발파사고,갱붕괴사고 등으로 실려나간 뒤 돌아오지 않았으며 일왕침실 공사에 동원된 사람들은 특정공사가 끝나면 20∼30명씩 집단으로 한밤중에 끌려나가 돌아오지 않았다는 극소수 생존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당시 최소한 1천여명이 목숨을 잃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을 뿐이다. 실제로 일본신주대 학생들이 최근 작성한 보고서 등 마쓰시로 대본영에 관한 조사서들은 『특히 일왕의 임시거처에 동원된 한국인의 경우 등 뒤로 수갑이 채워져 어딘가로 끌려갔으며 이들이 산중에서 총살돼 매장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당시 건설현장에 동원됐다가 해방 이후 지금까지 대본영 부근에 살고있는 유일한 한국인 생존자인 최태소씨(68ㆍ본적 경남 합천군 가야면 이천리)는 이날 현지 취재에 동행,자신이 직접 굴착했던 곳을 일일이 기억해내며 참담했던 순간을 회상했다. 최씨는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는 침목이 깔려있던 흔적과 천장,벽에 무수히 뚫려 있는 다이너마이트 발파용구멍 등을 가리키며 45년전의 공사현장을 바로 어제 일처럼 기억해냈다. ○사담땐 죽도로 구타 최씨가 규수지방에서 거주하다 건설현장에 끌려온 것은 24살 때인 1944년 10월말쯤. 지금은 논ㆍ밭으로 변해버린 상산지하터널앞 광장에는 수백채의 조선인 숙소가 빽빽히 들어찼고 그때부터 최씨는 줄곧 인근 마을에서 건설공사 현장 잡역부로 일하면서 거주해왔다고 회상했다. 최씨등 한국인 노무자들이 주로 맡았던 일은 하루 12시간씩 맨발 맨손으로 낙반 가능성이 있는 곳이나 막장 등에서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리는 가장 위험한 것이었다. 『한창 나이였던 덕분에 죽을 고비를 겪고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최씨는 『50∼60대 한국인 노무자들이 상당수 있었는데 거의 대부분이 중노동이나 사고로 숨졌다』고 말했다. 최씨는 또 『일본인 작업반장들은 1개조 4명으로 점조직처럼 구성된 작업반원들이 다른 조 사람들과는 물론 반원들끼리도 사담하는 것을 일체 금지시키고 이를 어겼을 경우 몽둥이 죽도 등으로 무참히 구타했다』며 『지금 징용자수나 사망자 수가 유곽도 잡히지 않는 원인이 바로 거기에 있다』고 말했다. ○실제인력 더 많을듯 지난 87년 8ㆍ15해방 42주년을기념해 한국인 강제징용 사실을 다룬 「머나먼 여행」이라는 책을 발간했던 하루카 나루타비씨(50ㆍ여)는 마쓰시로 대본영 건설현장에 동원됐던 한국인 징용자수와 사망자수을 좀더 구체적으로 증언하고 있다. 이날 현지취재에 동행했던 하루카씨는 『4살때인 1944년 10월초 부모를 따라 마쓰시로로 이사했다』며 『나중에 어머니로부터 들은 바로는 하루 평균 한국인 노무자 5∼6명이 사망했다』고 말했다. 하루카씨는 『현재 알려진 7천∼1만명의 한국인노무자 투입은 실제보다 훨씬 축소된 것』이라며 암반 굴착작업이 하루에 1∼5m씩 진행된 것으로 미루어 볼때 9개월동안 동원된 인력은 이보다 훨씬 많을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하루카씨는 『현재 일본정부는 강제연행자에 대한 공식적인 문서가 다 소각됐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어디엔가 명부가 있을 것』이라며 『앞으로 일본정부의 정확한 기록을 찾아내는 것이 마쓰시로 대본영 건설의 진상을 파헤치는 요체』라고 강조했다.
  • “적법절차거친 사장취임 방해한건 불법”/KBS사태 문공위공방 중계

    ◎“사장선출과정 외부개입 없었나” 의원들/“집무불가능 판단… 경찰투입 요청” 서사장 ○…KBS사태를 다루기 위해 19일 하오 소집된 국회문공위는 서기원사장의 인사말 청취여부등 회의절차문제를 놓고 여야의원들 사이에 첨예하게 대립,논란을 벌인 끝에 정책질의에는 아예 들어가지 못하고 개회한 지 30분만인 하오 2시45분쯤 정회하는등 초반부터 파란. 이날 문공위에는 KBS사태가 경찰의 공권력투입과 이에 따른 노조원들의 제작거부로 인한 정규방송중단 등으로 국민적 관심사로 확대되고 있는 점을 반영하듯 권오석의원(민자)을 제외한 상위소속 의원전원이 참석. ○…이날 보고는 당초 서기원KBS사장의 인사와 보고로 시작할 예정이었으나 야당의원들이 『신임사장이 적법하고 타당한 절차를 거쳐 선임되었는지를 따지는 자리이니 만큼 서사장의 인사는 유보해야 한다』고 사장자격을 문제삼아 최병렬공보처장관의 보고로부터 진행. 최장관은 보고에서 『착잡한 심정으로 보고드린다』면서 『공영방송인 KBS가 지난 12일 이후 1주일동안 정상적으로 방송되지 않고 파행적으로 운영된데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 최장관은 이어 『이번 사태는 노조원들이 적법한 절차를 거쳐 임명된 사장의 취임을 방해하고 방송제작을 거부한 데서 발단된 것으로 이는 노조 본래의 영역을 벗어난 불법ㆍ부당행위다』라고 규정. 최장관은 공권력 투입에 대해서는 『불법적인 집단행동에 따른 질서유지를 위해 유감스럽지만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강조. 최장관의 보고가 끝나자 정대철위원장은 서사장에게 인사와 보고를 하라고 말했으나 이철의원(가칭 민주)은 『사장으로서의 적법성ㆍ타당성 여부를 따지는 마당에 사장인사는 부적절하며 사장이 아닌 KBS 일원의 자격으로 보고해야 한다』고 제동. ○…서사장은 『KBS가 이 지경까지 된데 대해 국민 여러분에게 사과와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문을 열고 그동안의 경위를 보고. 서사장은 『11일 첫 출근을 했을 때 사장실 문을 부수고 몰려온 노조원들에게 에워싸여 물러갈 것을 강요 당했고 이같은 상황에서는 도저히 집무를 할 수 없다고 판단,스스로 물러 나왔다』고 설명. 서사장은 『12일 출근했을 때도 노조원들이 잠겨있던 복도의 셔터문을 뜯어내고 몰려와 복도에 있던 간부들을 끌어낸다는 보고를 받고 이를 방치하면 다시 내쫓기고 집무를 못한다고 판단,영등포경찰서에 경찰투입을 요청했다』고 설명. 이때 손주항의원(평민)이 『공권력 요청을 단독으로 결정한 것이냐』고 묻자 서사장은 『간부들로부터는 상황보고만 받았고 독자적으로 판단해 요청했으며 정부기관과 상이하지도 않았다. 경찰서에는 경비관련 본부장이 전화를 걸어 요청토록 했다』고 답변. 이에 최훈의원(평민)이 『노조와 협의조차 하지도 않고 사장취임만 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에서 취한 조치가 아니냐』고 추궁. 서사장은 『취임하기 이틀전인 지난 9일밤 9시쯤 사장이 아닌 개인 자격으로 노조사무실을 방문해 노조간부들과 1시간정도 대화를 나눴다』고 소개하고 『그러나 노조측이 나를 전적으로 부인하고 대화의 상대로 여기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답변. 서사장은 『공권력투입이 너무 이르지 않느냐는 지적도 있지만 국가로부터 위임 받은 책임도 있느니 만큼 불가피했다』고 부연. ○…사원대표로 참고인 진술한 KBS프로듀서 고희일씨는 『KBS주변에는 평소 전경들이 배치돼 있지 않은데 서사장이 공권력투입을 요청한지 10분만에 전경들이 달려온 점을 볼 때 사전에 공모한 것이 명백하다』며 공권력투입이 사전계획임을 주장하고 『서사장이 온다는 것은 공영방송인 KBS가 권력의 시녀로 전락하는 것이 명백한 이상 유일한 해결책은 서사장이 물러나고 공영방송을 국민에게 돌려주는 것 뿐』이라고 서사장 퇴진을 요구. 이어 질문에 나선 임인규의원(민자)은 『서사장의 임명과정에서 외부의 압력이 있었는지의 여부와 KBS사원들이 출세지향적인 인물로 인신공격을 하고 있는데 과연 KBS사장으로 적절한 인물인지에 대한 장관의 견해를 밝혀달라』고 요구한뒤 방송을 장악하려는 의도는 없었는지를 추궁. 임의원은 이어 서사장에게 『KBS를 명실상부한 국민방송으로 이끌 소신과 방안은 무엇인가』라고 물은뒤 『지난 11일 취임해 그다음날 공권력을 투입했는데 시간상으로납득이 어렵다』면서 공권력투입의 배경와 사원들과의 대화노력을 밝힐 것을 주문. 최훈의원이 『공권력투입으로 TV프로가 중단되고 사원7천여명이 퇴진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서사장은 『내가 모자라고 부덕한 탓으로 생각하고 반성하고 있다』고 답변. ○…질의순서에서 이철의원은 『KBS이사회는 적부토론도 하지않고 이미 내정된 서기원씨를 사장으로 임명제청했다』고 주장하고 경위를 밝힐 것을 요구. 손주항ㆍ박석무의원(이상평민)은 『서사장은 공영방송사장으로 부적격한 반민주적 인물로 이미 KBS를 이끌만한 자격과 능력이 없다는 것이 드러난 만큼 퇴진시켜야 한다』고 주장. 신경식의원(민자)은 『서사장을 선출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개입하였다는 주장에 대한 사실여부를 밝히라』고 요구하고 『노조가 서사장을 관변사장이라는 이유로 취임을 거부하였다는데 취임조차하지 않은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그같은 단정을 내린 것은 다른 의도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라고 질의. 강삼재의원(민자)은 『어떠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공권력투입을 막아야할 공영방송사장이 스스로 자격을 포기한 것이다』라고 규정,서사장의 자진사퇴용의와 KBS이사회에서 면직제청을 고려할 용의가 있느냐고 추궁. 황철수의원(민자)은 『정부가 춘투와 관련한 노조활동에 대한 기선을 잡기위해 강경조치를 취했다는데 사실이냐』고 물었고 이윤자의원(민자)은 『객관적으로 제3자라고 할 수 있는 인물들로 중재자를 구성해 해결토록 하자』는 방안을 제시. 최장관은 야당의원들이 서사장이 공권력을 조기투입한 문제를 집중 거론하자 『공권력투입을 옹호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양비론의 입장에서 보지 않는다』면서 『적법절차에 의해 임명된 사장을 취임하지 못하게 하고 사장을 거의 몽둥이로 내쫓다시피한 「원인행위」를 얘기해야 한다』고 반론. 최장관은 『현재 KBS사태가 과거 5공시절이나 그 이전에 정부가 파견한 사장이 KBS를 장악했다는 사실에 대한 조건반사적인 측면을 고려할 때 언론자유의운동 측면이 있다는 것을 안다』고 전제하고 『그러나 KBS 노조원 사이에 나돌고 있는 유인물에 『몇천명을 경영합리화라는 계획으로 감원한다』는 등 전혀 근거없는 얘기가 나도는 것을 볼 때 언론자유측면과는 다른 측면도 있다고 본다』고 언급. 최장관은 이어 『현재의 방송실정은 사장 한명을 바꾼다고 해서 정부가 방송을 장악할 수는 없다』면서 KBS노조측이 「방송장악음모」의 사례로 내세우는 PD구속사건,KBS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방송제도개편계획등은 「별개의 사건」이라고 강조.
  • “경관이 전자봉고문 지하실에 가두고 폭행 자백강요”

    ◎고교생들 주장… 경찰선 “조사하겠다” 【수원=김동준기자】폭력혐의로 구속됐다 풀려난 고교생들이 경찰조사 과정에서 전자봉 고문과 허위자백을 강요받았다고 주장,물의를 빚고있다. 지난 3월2일 학교주변에서 폭력을 휘둘러온 혐의로 구속됐다 보석으로 석방된 오모군(19ㆍ성남L고교3)ㆍ조모군(18ㆍO고교2)등에 따르면 이날 하오9시쯤 성남경찰서 성남파출소와 경기도경 특별수사기동대에 연행돼 지하실에서 4일동안 조사를 받으면서 전자봉고문과 구타를 당하고 허위자백을 강요받았다는 것이다. 오군 등은 경찰이 자신들이 중학동창모임인 「불가사리」라는 축구서클을 폭력서클로 몰아세워 범죄단체조직에 관한 진술을 강요하면서 이에 응하지 않자 전자봉고문과 몽둥이ㆍ주먹ㆍ구두발 등으로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이로인해 오군은 성기를 다쳐 소변을 제대로 보지못하고 박모군(18ㆍ성남S고2) 등 2명은 배ㆍ허벅지 등에 붉은 반점과 피멍이 들었다는 것. 이들외에도 같은 혐의로 구속돼 현재 수원교도소에 수감중인 나머지 5명들도 부모들의면회결과 옆구리ㆍ가슴 등에 피멍이 들어있는 것이 확인됐다. 이에대해 도경 특별수사기동대 관계자는 『당시 이들을 기동대내 식당에 모아놓고 진술만을 들은뒤 검찰의 지시를 받아 구속했을뿐』이라며 고문사실을 부인하고 철저히 조사해 진상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 국교생 4명,후배에 뭇매/옷 벗겨 방치,동사

    【인천=이영희기자】 인천 중부경찰서는 5일 평소 자신들의 말을 잘듣지 않는다고 국교 1년생에게 뭇매를 때리고 옷을 벗겨 얼어죽게한 권모군(11ㆍY국교5년) 등 국교 상급학생 4명을 상해치사혐의로 입건,조사중이다. 경찰에 따르면 권군 등은 지난 2일 하오8시쯤 인천시 남구 용현1동 산5 수봉공원 망배단 망배탑 뒤편에서 이마을 최정식군(8ㆍY국교1년)의 옷을 벗기고 플라스틱제 몽둥이와 주먹으로 마구때려 최군을 실신시킨후 그대로 버려둔채 달아나 동사케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권군 등은 이날 수봉공원 인근 S오락실에 있다가 최군이 들어오자 『왜 우리들을 피해 다니며 말을 듣지 않느냐』면서 최군을 1.5㎞ 떨어진 수봉공원으로 끌고가 이같은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 실업교육 강화와 재수생 문제(사설)

    기운이 펄펄나고 총기가 초롱초롱한 청년 30만명이 좌절과 실의에 싸여 황금같은 시기의 인생을 녹슬게 하고 있는 것은,나라를 위해서나 사회를 위해서나 또는 집안을 위해서나 막대한 손실이다. 어찌어찌 헤어나 새로운 길을 가게 된다하더라도 지치고 진이 빠져서 준락오병처럼 따라가는 「삶」밖에 안되는 경우가 더 많다. 진학 안한 고졸생들의 문제는,이제 더는 방치해 둘 수 없는 문제가 되었다. 극히 일부의 상위성적 집단을 말고는 거듭해봐야 승산이 거의없는 재수를 하겠다고 학원가를 방황하는 젊은이의 수가 수십만씩 되어가는 이 실체에 대한 해결의 길을 지금 모색하지 못한다면 점점 더 심각한 후유증을 남기게 될 것이다. 혈기는 왕성한 데 현실적 억압으로 뜻을 펴기 어려울 때 젊은이가 가장 크게 유혹을 받는 것은 범죄이거나 퇴폐등 타락한 길이게 마련이다. 유능한 재목을 적소에 활용하지 못하는 순기능적 손실만이 아니라 멀쩡한 기둥감이 몽둥이가 되어 해를 끼치는 역기능의 화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문교부가 인문계 고교에서도 직업교육을 강화하고 실업계 고교교육을 대폭 확대하는 방향으로 고교교육과정을 개혁한다고 밝힌 것은 해마다 누증되는 재수생문제를 해소하고 3분의1의 진학생 위주로 다수가 희생되어야 하는 입시위주의 고교교육을 바로잡기 위함으로 보여 늦기는 했지만 이제부터라도 수습하려는 의지라고 생각되어 환영한다. 우리에게 있어 대학진학 과열풍토는 그 자체만으로도 커다란 사회적 모순의 빌미가 되고 있다, 모든 과정의 학교교육이 비정상화하고,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난제를 만들고 있다. 이런 문제들을 원천적으로 풀어나가기 위해서도 진학하지 못하는 고졸생들의 문제는 해결되어야 한다. 대졸의 고학력 인력은 남아 돌지만 고졸인력은 모자라서 못쓰는 우리 형편까지 감안하면 고교과정에서 직업교육을 이수시켜 취업의 길로 나서게 하는 것은 진작부터 연구했어야 할 일이다. 여상출신의 사무원을 한두사람 구하기 위해서 학교로 추천을 의뢰하면,출근버스나 사원복지등 여러조건을 따져 묻고 시원찮다 싶으면 『우리 학교에서는 추천할 만한 학생이 없습니다』라는 반응을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이미 금년에만 해도 실업계 고교진학을 희망하면서도 수용능력의 부족으로 인문계로 진학한 학생이 12만4천명이나 되었다. 이런 현상은 교육정책이 현실에 적절한 대처를 못해왔음을 드러내주는 일이다. 이런 욕구를 원활하게 수용하여 확대할 수 있는 방향으로의 개편이 시급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대학진학에 대한 뿌리깊은 집착이 해소될 수 있는 사회분위기를 조성해 주지 못한다면 여전히 「재수라도 하겠다」는 맹목적인 「반학생 반시민」의 수가 줄어들지 않는다. 대학을 나오지 않고는 좋은 신랑감도 좋은 신부감도 안된다고 생각하는 풍토,대학이라도 나와야 현재보다 나은 신분상승의 기회가 찾아올 것이라고 굳게 믿는 생각을 떨쳐버려야 한다는 인식이 보편화 할 수 있지 않고는 고교교육정책의 개혁만으로는 성과를 거두기가 어렵다. 취업에 있어서만은 대졸보다 차라리 고졸이 속편한 시대가 되었으므로 이 조건을 잘 살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고질적인 난제인 재수생문제의 해결에접근하기 바란다.
  • 노름판서 8천만원 잃은 구청 직원/폭력배에 「청부 강도」

    ◎회칼ㆍ가스총 휘둘러 8백만원 털어 서울 서초경찰서는 16일 강남구청 운수과 주사 염영규씨(32)와 폭력배 김창윤씨(27ㆍ폭력전과3범ㆍ경기도 이천군 이천읍 창천리 89) 등 모두 4명을 강도상해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위성주씨(22) 등 2명을 같은 혐의로 수배했다. 염씨는 지난8일 하오8시30분쯤 이모씨(53) 등 10여명과 함께 서초동 W복덕방에서 도박판을 벌이다 김씨 등에게 무선호출기와 전화를 통해 연락,몽둥이와 생선회칼 가스총 등을 들고 도박판을 덮치게해 8백여만원을 강탈하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이씨는 머리를 가스총으로 맞아 전치 10일의 상처를 입었다. 염씨는 지난 85년부터 이씨 등과 도박을 해오다 지난해까지 8천여만원의 돈을 잃은데 화가 나 자신이 경영하는 술집에 자주 드나들던 김씨 등에게 보복범행을 의뢰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범행에 앞서 예행연습까지 하는 등 치밀함을 보였으나 강탈한 8백만원 가운데 1백만원짜리 자기앞수표 1장을 추적수사한 경찰에 이날 붙잡혔다.
  • 폭력배 보복 살인극/룸살롱 주인 피살

    【광주=임정용기자】 집단 패싸움끝에 숨진 폭력배의 동료 3명이 반대파 조직의 두목을 흉기로 난자,살해했다. 9일 상오2시45분쯤 광주시 북구 중흥동 국보장여관 앞에서 이 여관 지하 국보장룸살롱 주인 송종선씨(30ㆍ광주시 북구 운암동 69의103)와 종업원 김수진양(25ㆍ서울시 영등포구 문래동)을 수기동파(일명 동아OB파) 폭력조직 행동대원 노모(19ㆍ광주시 북구 문흥동),박모(19ㆍ광주시 서구 내방동),김모군(20ㆍ광주시 서구 쌍촌동) 등 3명이 몽둥이와 흉기를 휘둘러 송씨가 숨지고 김양은 경상을 입었다. 김양에 따르면 이날 영업을 끝낸 뒤 손님 4명과 함께 송씨가 운전한 광주1 다2592호 승용차를 타고 시내 동구 불로동 그랜드호텔 나이트클럽에서 술을 마시고 국보장여관에 도착하는 순간 미리 기다리고 있던 노군 등 3명이 달려들어 송씨의 왼쪽 가슴과 겨드랑이를 흉기로 16군데나 난자해 살해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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