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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간인 10명 군부대서 난동/기물파괴·사병 집단폭행뒤 도주

    【이천=조덕현기자】 20대 청년 2명이 술을 마시고 자신들이 근무했던 군부대를 찾아갔다가 군인들에게 폭행을 당한뒤 일행과 함께 군부대로 난입,난동을 부린뒤 달아났다. 지난 4일 하오7시쯤 경기도 이천군 신둔면 육군 모부대에 이 부대의 방위병으로 근무했던 조모씨등 마을 청년 2명이 술에 취해 부대에 근무하는 장교를 만나러 갔다가 연병장에서 훈련중이던 현역군인들과 시비를 벌여 군인들로부터 폭행을 당했다. 이들은 군부대 위병소유리창을 부수고 달아났다가 함께 축구시합을 했던 일행 8명과 함께 이날 하오9시쯤 차량 2대에 나눠타고 제지하는 초병의 총을 뺏은뒤 초소를 부수고 군부대로 들어갔다. 이들은 이어 중대본부로 들어가 바둑을 두고있던 중대장 임모대위(33)와 선임하사를 폭행하고 2층 내무반으로 몽둥이를 들고 들어가 군인들을 폭행한뒤 달아났다. 이 과정에서 군부대에 난입했던 민간인 1명이 팔뚝에 11바늘을 꿰매는 상처를 입었으며 군인 3명이 부상을 입었다. 한편 군부대에서 난동을 부린 조씨등은 5일 하오 모두 자수했다.
  • “학교는 안전한줄 알았는데…”/박현갑 사회부기자(현장)

    ◎괴한에 혀잘린 6세여아 부모 “울분” 『놀이터라고는 학교밖에 없어 그곳에서 놀았는데 이런 봉변을 당하다니…』. 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4일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한림대부속 강남성심병원 607호실. 10대로 보이는 청소년 2명의 끔찍한 범행으로 혀가 잘린 방모양(6)의 아버지 방성문씨(35·회사원·동작구 신대방1동)가 병상에 누워있는 외동딸을 내려다보며 허탈한 모습으로 중얼거렸다. 방양이 봉변을 당한 것은 지난 2일 하오 3시30분쯤.집에서 멀지않은 문창국교 별관 보일러실에서였다. 같은 속셈학원에 다니는 동네친구 정모양(7)과 함께 이 학교 운동장에서 소꿉장난을 하며 놀던중 범인들이 나타나 보일러실로 끌고간뒤 「혀를 내밀라」며 흉기로 위협해 혀를 2∼3㎝정도 잘렸다. 입에서 피를 흘리며 보일러실에서 나오는 두 친구를 본 동네 꼬마친구들이 놀라 외치는 소리를 듣고 밖으로 뛰어나온 방씨는 딸을 데리고 황급히 병원을 찾았다.방씨는 그러나 『잘린 혀를 제때에 봉합하지 못해 당분간 딸이 언어장애 상태로 있어야 할 것같다』는 의사의 말에 하늘이 무너지는 것같았다. 『경찰이 좀더 신경을 써서 사건현장조사를 해 잘린 혀를 찾았더라면 딸이 이 지경으로 되지는 않았을텐데…』.방씨는 어린이날 선물로 병원측에서 준 토끼저금통을 두 발로 꼼지락거리며 놀고있는 어린 딸을 내려다보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방씨는 『이 학교 주변에 담배와 본드등을 흡입하는 불량배들이 자주 들락거려 주민이 몽둥이를 들고 직접 쫓아다니기까지 했었다』면서 『경찰이 평소 주민들의 신고를 무시하지않고 방범순찰활동을 강화했었더라면 우리 딸이 이런 봉변을 당했겠느냐』고 하소연했다. 자기가 무슨 이유로 봉변을 당했는지도 모른채 아직도 두려운 표정을 하고서 칭얼대는 어린 아이를 보면서 「어린이 날」하루만 요란을 떨다마는 아동보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잘못된 인식이 하루 빨리 고쳐져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다.
  • “북한 최고인기 소프라노는 왕선화”(북한 이모저모)

    ◎주택 3만호 휴전 40주전 완공독려 ○노동신문 사설 통해 촉구 ○…평양시내 창광거리 아파트 신축공사장에서 최근 대형 붕괴사고가 발생,2백여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가운데 북한은 지난달 30일 현재 평양에 건설중인 3만세대의 살림집 건설을 오는 7월 휴전협정 40주(7·27)까지 완공할 것을 촉구했다. 북한은 이날 당기관지 노동신문 사설을 통해 평양의 3만세대 주택을 조속히 완공하는 것은 올해 건설분야의 중요한 과제라고 지적하고 주택건설에 참여하고 있는 건설자들과 군인들이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혁명정신」을 발휘,공기를 앞당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신문은 이어 3만세대 주택건설을 조기 완공하기 위해서는 공사속도를 높이고 맡겨진 과제를 일정대로 차질없이 수행해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시멘트·골재 등 자재의 적기공급 ▲인력활용의 극대화 ▲조직체계의 확립 ▲지방의 관련부서 지원강화를 촉구했다. 이 신문은 또 공기단축과 함께 질적인 문제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고 강조하고 『한장의 벽돌을 쌓고 한평의 미장을 해도 질을 보장하는데 힘을 넣어야 하며 훗날에도 가서도 떳떳이 자랑할 수 있게 든든하고 보기좋게 건설할 것』을 요구했다. ○「조선예술」지 최근호 소개 ○…북한음악계에서 현재 최고의 대우와 인기를 받고 있는 「고음」(소프라노)여가수는 평양음악무용대학 교원인 인민배우 왕선화라고 평양서 발행되는 예술잡지 「조선예술」 최근호가 소개했다. 해방전 황해도에서 출생한 왕선화는 서울에서 음악수업을 받기도 했으나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다가 6·25동란중 북한군경비사령부 협주단에 입단하면서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50년 12월 23일 김일성 참석하에 가진 공연에서 김일성으로부터 「치하」를 받은 후부터 일취월장한 왕선화는 혁명가극 「피바다」를 비롯해 「밝은 태양아래에서」「밀림아 이야기하라」등 14편의 가극작품에서 주인공을 맡았으며 62년 「공훈배우」가 된데 이어 68년 11월 26일 평양대극장에서 공연시 김정일의 눈에 들어 가수 겸 「지도원」으로 활동하게 됐다. 혁명가극 「꽃파는 처녀」,음악무용가이야기 「낙원의 노래」등에서 주인공과 방창을 잘 지도했다는 이유로 77년 「인민배우」 칭호를 받았고 그후 평양음악무용대학에서 후진양성에 힘쓰며 예술학 준박사학위까지 받았다고 이 잡지는 전했다. ○LA폭동 피해보상 주장 ○…북한은 지난달 29일 미로스앤젤레스 흑인폭동 1주년을 맞아 이 사건이 미국의 뿌리깊은 「인종차별정책」에 기인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한인동포들에 대한 피해보상 및 보호대책 수립을 촉구했다. 북한은 이날 「처신을 바로하는 것이 좋다」제하의 노동신문 논평을 통해 사건당시 한인동포들이 피해를 입은 것은 『전적으로 미국의 인종·민족차별정책 때문』이라고 지적,『동족이 미국에서 차별대우를 받고 있는데 대해 결코 수수방관할 수 없다』면서 그같이 주장했다. 북한은 이어 미국이야말로 『세상에서 인종차별·민족차별이 가장 극심한 인권의 불모지』라고 주장하면서 그러한 미국이 다른 나라들의 인권상황을 거론하는 것은 『인권유린자로서의 저들의 추악한 정체를 감추고 인권몽둥이를 휘둘러 다른 나라의 내정에 간섭해 보려는 것』이라고 맹렬히 비난했다.
  • 러 노동절시위 유혈충돌/옐친 퇴진 요구

    ◎경찰트럭 등에 방화… 3명 사망설 【모스크바 UPI 로이터 연합】 모스크바에서 1일 세계 노동절 행사도중 보리스 옐친 대통령에게 반대하는 친공산계 보수 시민들의 격렬한 대규모 투석,방화 시위가 발생해 진압경찰과 시위군중을 포함 최소한 1백40여명이 부상했으며 2∼3명의 사망설이 나돌고 있으나 확인되지 않고있다. 지난 91년8월 쿠데타기도사건 이후 최악의 유혈 사태를 빚은 이날 시위에서 2명이 사망했다는 미확인 소문이 나돌고 있으나 아직 확인 되지 않고 있으며 수천명의 시위군중들은 경찰의 진압작전에도 불구하고 해산하지 않고 러시아 의회 의사당을 둘러싼채 바리케이드를 치고 반옐친 집회를 계속하고 있다. 친공민족주의 조직인 민족구국전선(NSF)이 주도한 노동절기념 행사에 참석한 약7천명의 모스크바 시민들은 당초 고르키 광장으로 한정된 행사장을 벗어나 모스크바대학쪽으로 이동하면서 경찰 경비망을 뚫고 크렘린 궁앞 붉은 광장쪽으로 진출을 시도,이를 저지하려는 경찰과 충돌했다. 레닌언덕 부근에서 경찰 저지망에 막혀 붉은광장 진입이 좌절된 시위대는 경찰이 저지선으로 세워놓은 버스와 트럭에 불을 지르고 경찰트럭에도 방화했으며 돌과 병,보도블록을 깨 진압경찰에 집어던지고 쇠파이프와 몽둥이를 휘두르며 곤봉과 물대포로 진압작전에 나선 경찰에 격렬히 저항했다. 시위대는 『옐친에게 죽음을』이란 구호를 외치며 의사당 주변에 재집결해 경찰진압에 대비한 바리케이드를 치고 의사당을 에워싼채 비상의회의 소집과 옐친의 퇴진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고있다. 시위현장에 있던 한 시민은 시위양상이 한마디로 시가전을 방불케했다고 전했다.
  • 안혁·강철환씨가 말하는 참상(요덕15호 북한정치범수용소:17)

    ◎지옥의 생지옥:마/굶주림·질병에 인간품성마저 상실/위아래 없어… 남녀노소가 욕설·폭력/몇달째 안씻어 흉측한 몰골에 악취 수용소 생활은 굶주림과 질병으로 당연히 육체가 황폐해 진다.그러나 그보다 더 비참한 일은 사람들의 정신까지도 망가진다는 사실이다. 인간이 오랫동안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때 과연 얼마만큼 이성과 감성이 피폐해지고 추악해지며 또한 비굴해 질 수 있는가를 입증하는 곳이 바로 정치범수용소이다. 수용소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깨끗하고 더러운 것,선하고 착한 것,옳고 그른 것에 대한 인식이 마비되어 있다. 이는 물론 자포자기에서 비롯된 것이다.삶에 대한 가치와 희망이 상실되었을때 사람들은 자기 자신은 물론 주변에대해서도 아무런 관심과 의미를 찾게되지 않는다고 들었지만 수용소는 그런 이야기를 극명하게 실감 할 수 있는 곳이다. 더욱 놀라운 일은 이처럼 인간성이 무너지는데는 학식있는 인텔리층이나 그렇지 못한 사람이나 남녀노소에 별 차이가 없다는 점이다. 처음 수용소에 들어오는 사람은 한 열흘동안은세수도하고 양치질도하고 머리를 감는등 밖에서의 생활습관을 그대로 보여준다.그러나 한 달만 지나면 그같은 습관은 어느새 사라진다.물론 목욕탕등 위생시설이 없는 탓도 있지만 생에대한 애착이 사라지면서 인간의 품성도 함께 소멸되기 때문이다. 약 3개월쯤 지나면 사람들의 몰골이 흉측스럽게 변한다.전혀 세수를 않고 머리를 감지 않아 누가 누군지를 얼른 알아 볼 수 없게된다.손발을 안씻는것도 물론이다.여름철에는 더위때문에 하는 수 없이 개울에서 멱을 감는 일이 많아 덜한 편이나 가을부터 이듬해 4월정도까지의 6개월동안은 한 번도 세수나 머리를 감지 않는다. 수용소 안에서는 위아래도 없다.밖에서 아무리 높은 지위에 있었거나 나이가 많아도 서로 『야』 『이 간나야』 『이 새끼야』로 부른다.힘이 좋은 20대에게 50·60대 사람들이 얻어 맞는 일은 다반사이다.물론 수용소 안에서의 폭력행위는 금지되어 있으나 보위원들의 눈을 피해 예사로 구타행위나 집단폭행이 일어난다.한 60대 남자는 혼자서 몰래 갖고 들어왔던 담배를 피우다 이를 뺏으려는 20대 3명과 시비가 일어 무차별 몽둥이질을 당했다.팔뼈가 부서지고 이빨이 3개나 부러졌다.그런데도 이 60대 남자는 『작업도중 다쳤다』고 보위부원들에게 신고했다.보복이 두려워 일러바치지 못한 것이다. 수용소 여자들의 비참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20대의 팔팔한 탁구선수출신인 나는 수용소 안에서 싸움을 잘했다.완력을 과시하지 않으면 얕잡아보기 때문에 일부러 왈가닥 행세를 자주해 나를 방어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싸운 사실이 들통나 보위원 사무실에 끌려갔을 때의 일이다.의자에 앉아 나를 취조하는 보위원 곁에 20대 처녀가 무릎을 꿇고 앉아 온 몸을 「안마」하고 있었다.그 처녀는 온갖 아양을 떨며 보위원의 비위를 맞추려고 땀을 뻘뻘 흘렸다.부동자세로 서 있는 나는 염두에도 없었다. 보위원은 연방 나에게 욕지거리를 하고 막대로 때리면서 처녀의 온 몸을 더듬고 희롱했다.민망해서 못볼 짓도 했다. 수용소의 젊은 여자들은 어떤 짓을 해서라도 보위원들과 친분을 트려고 경쟁적으로 안달한다. 자기들의 몸을 담보로 몇조각의빵이나 몇 알의 사탕을 얻어먹고 강제노역에서 빠지기 위해 눈을 반짝인다.남자수용인들은 물론 온갖 욕지거리를 하며 손가락질을 하고 심지어 침까지 뱉지만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단한 「빽」이 있다고 자랑한다.한 처녀는 어쩌다 임신까지 했었으나 보위부원들은 모두 시치미를 떼고 오히려 수용소 남자들과 금지된 「부화」(성관계)를 했다며 운동장에 세워두고 옷을 벗기며 막대기로 복부를 때리며 인민재판을 했다.그러한 광경을 보고도 사람들은 동정은 커녕 뒤돌아서며 그 처녀에게 욕을 했다.임신 7개월쯤 되었던 그 처녀는 수용소에서 어디론가 끌려 나간뒤 돌아오지 않았다.
  • 안혁·강철환씨가 말하는 참상(요덕15호 북한정치범수용소:9)

    ◎생과 사의 경계선:라/들끓는 이… 독방수용땐 차라리 고문/사시사철 가려움에 잠설치기 일쑤/잡다가 간수에 들키면 “말썽핀다” 몽둥이 찜질 수용소안에는 수용된 사람들 말고도 반갑지 않은 식구(?)들이 참 많다.가족세대숙소 독신자숙소 식당 구류장,심지어 병동까지 병균을 옮기는 벌레와 짐승들이 득실거린다.그나마 쥐는 고기에 굶주린 수용소 사람들의 좋은 먹이가 된다. 그러나 이는 겨울철은 말할 것도 없고 거의 일년내내 수용소 사람들을 괴롭힌다. 숙소나 식당같은 곳에서는 그래도 참을만 하다.숙소에서는 하루종일의 중노동탓에 피로에 젖어 가려움같은 것은 미처 느낄 틈이 없고 식당에서는 주린배를 채우느라 식탁 주위에 이가 기어다녀도 음식에 섞여 있지만 않으면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다. 그러나 겨우 한사람이 들어갈만한 공간밖에 안되는 구류장에서는 이를 잡기 위해 옷을 벗어 털어낼 수도 없기 때문에 가려움과 답답함이 이루 말할 수 없다. 길이 2m,가로 세로 각각 1.5m 가량의 구류장은 수용소안의 수용소라 불리는 곳이다.뚜렷한잘못이 있어서 가는 것은 아니고 일과후 혁명학습을 하다가 방귀를 뀌었다든지 작업중 보위부원과 눈길이 마주쳤다든지 하여튼 재수가 없으면 끌려가는 곳이다.수용소에 수감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인간에게는 최악의 형벌이자 수용소내의 구류장이라는 것이 별 의미가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차단된 세계에서 또다시 외부와 격리된다는 것은 참기 어렵다. 구류장에는 햇빛이 들지 않아 이가 특히 많다.또 구류장에 들어갈 때는 허리띠와 지퍼,단추까지 다 떼기 때문에 이가 몸속으로 기어들기 쉽다. 처음에는 이를 잡으려고 옷을 다 벗고 구류장안에서 몸부림치고 발버둥을 쳐보지만 이내 지쳐 잠속으로 빨려들어가고 만다.아침에 일어나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이가 새까맣게 붙어 있다. 이를 잡는 일도 계호원(구류장을 지키는 간수) 몰래해야 한다.구류장 안에서 이를 잡다 계호원에게 들키는 날에는 영락없이 끌려나와 매를 맞게 된다. 나는 수용소내에서 입바른 소리나 행동을 많이 하는 바람에 구류장에 수시로 끌려간 편이다.대여섯번 끌려간 것으로 기억되는데 이유를 분명히 알고 끌려간적은 한번도 없다. 언젠가 한겨울에 구류장에서 1주일을 보낸 적이 있다.독신자숙소에서처럼 제일 먼저 풍기는 것은 역시 불결한 냄새였다.벽면 아래쪽이 유난히 까만 것이 눈에 들어왔지만 전에 수용된 사람들에게서 묻은 땟자국일 것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이라는 것을 발견하곤 도저히 몸을 접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이들은 한동안 굶주렸던지 사람 냄새를 맡고는 일제히 내 몸위로 기어오르기 시작해 순식간에 발목을 덮어버렸다. 이를 잡지 않고는 잠을 잘 수 없을 것같아 털어내고 이가 모여있는 곳을 발로 짓뭉개고 온갖 발버둥을 쳐봤지만 그래도 별수가 없었다. 그것을 본 계호원은 『구류장에 들어와서도 말썽을 핀다』며 쇠막대에 코를 걸고 끌어낸 다음 족쇄를 채워 구류장문에 매달아놓고 쇠파이프로 온몸을 때렸다. 이는 수용소안에서 아무 거칠 것이 없는 보위부원들조차 두려워하는 존재이다.보위부원들은 자신들에게까지 이가 옮을까봐 전전긍긍한다.그래서 틈만 나면사람들을 밖에 끌어내 이잡이를 시킨다. 학교에서도 생활총화라고 불리는 정신교육시간에 학생들에게 이사냥을 시킨다. 아이들이라 비교적 창피함은 덜하지만 남녀학생들이 서로 알몸을 내보이는 일은 부끄럽기짝이 없었다. □특별취재반 김만오(정치부차장) 양승현(정치부기자) 최철호(사회1부〃) 문호영(정치부〃) 송태섭(사회1부〃)
  • 빙그레 응원관중 난동/3백여명 선수단버스 유리창 등 부숴

    ◎한국시리즈 2차전 패배 격분 9일 대전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홈팀 빙그레가 롯데에 패한데 격분한 관중 3백여명이 경기가 끝난 하오9시10분부터 1시간여동안 빙그레 구단 1호버스(대전5라6210·운전사 김성귀)의 유리창을 모두 부수는등 난동을 부렸다. 또 관중들이 던진 돌에 맞아 KBS카메라맨 조신호씨(37)와 도창현의경등 경찰과 관중 20여명이 부상을 입고 병원에 후송되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이날 9회부터 난동관중들은 병과 오물 등을 그라운드로 던지기 시작,경기가 끝난직후 본부석 출입문 부근의 대형 유리창 30여장을 모두 깨뜨린 뒤 빙그레선수들이 타고있던 구단버스로 몰려가 돌과 몽둥이 등으로 유리창을 깨뜨렸다. 빙그레선수들은 버스에 갇혀있다가 추가로 투입된 대전중부경찰서 소속 기동경찰 3개 중대의 도움으로 덕아웃으로 철수했다가 난동이 가라앉은 하오10시20분쯤 숙소로 돌아갔다. 한편 롯데선수단도 관중들의 난동으로 한시간여동안 대전구장에 갇혀있기도 했다.
  • “배후 밝혀라” 폭행/안두희씨 납치 권중희씨 구속

    【인천=김학준기자】 백범 김구선생 암살범 안두희씨(75) 피랍사건을 수사중인 인천 중부경찰서는 26일 안씨를 납치했던 권중희씨(56·민족정기구현회장)와 신현석씨(34·장비대여업·춘천시 후평동 동산아파트 102동 611호)등 2명을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혐의로 구속했다. 권씨와 신씨는 지난 23일 상오 6시쯤 인천시 중구 신흥동3가 동영아파트 502호 안씨집에 들어가 안씨의 부인 김영희씨(59)를 밧줄로 묶어 방에 감금한 뒤 중풍으로 안방에 누워있던 안씨를 납치,경기도 가평군 외서면 고성리 사슴목장으로 끌고가 『백범암살 배후를 밝히라』면서 몽둥이등으로 마구때린 혐의다.
  • 다시 새기는 그 충절/이달의 독립운동가 신규식선생

    ◎서울신문사·국가보훈처 공동선정 선열들의 애국·애족사상을 기리기 위해 서울신문사와 국가보훈처가 마련한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예관(예관) 신규식선생이 선정됐다.9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신규식선생이 한·중수교 시점에서 재조명된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선생은 단순한 독립운동가로서가 아니라 독립운동의 2대 조류인 외교중심론과 무장투쟁론을 접목시켰을 뿐만 아니라 국력배양·민중계몽운동·경제적 자립기반 확충등 총체적 운동을 치열하게 전개했기 때문이다.신규식선생의 43세 짧은 생애를 되새겨 본다. ◎상해 임정수립 주역… 중국승인 얻어내/한·일 합방 직후 망명… 12년간 항일운동 매진/신해혁명 참여… 손문정부와 연계투쟁 길터/22년 임정분열에 통분,병석에서 25일간 단식… 43세로 생 마감 신규식선생이 남긴 명저 「한국혼」은 이렇게 시작된다. 『마음이 죽어버린 것보다 더 큰 슬픔이 없고,망국의 원인은 이 마음이 죽은 탓이다.…우리의 마음이 곧 대한의 혼이다.다 함께 대한의 혼을 보배로 여겨 소멸되지 않게하여 먼저 각자 자기의 마음을 구해 죽지 않도록 할 것이다』 이 글에 담긴 선생의 철학은 목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소신찬 행동으로 이어진다. 19세기말에서 20세기초 사이 망국의 한을 온몸과 마음 바쳐 투쟁으로 승화시킨 신규식선생의 웅변이 지금 이 시대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음은 무엇을 뜻하는가.우리의 독립이 진정한 의미의 독립이라 할지라도,나라가 남과 북으로 갈라진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 것인가. ○충북 문의서 출생 신규식선생은 1880년 1월13일 충북 문의군(현재 청원군)에서 중추원 의관을 역임한 신용우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신채호 신백우와 함께 「산동삼재」라고 불렸다. 17세때 신학문에 뜻을 세우고 상경,관립한어학교를 거쳐 육군무관학교에 입학하여 무덕을 쌓게 되었다.신동으로 불리며 한학등 구학문에 능통하고 문학에도 탁월한 자질을 지녔지만 기울어가는 국권을 회복하는 길은 오직 국력배양에 있다고 생각했다. ○을사년 순국기도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육군참위로서 지방군대와 연계,대일항전을 계획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13도 유생들이 조약 철회를 상소하고,장지연은 황성신문에 피를 토하듯 「시일야 방성대곡」을 썼다.민영환 조병세 홍만식등은 자결했다. 민심이 가마솥 끓듯 펄펄 끓을 때였다.청년장교 신규식은 계동·가회동·운니동등의 솟을대문들을 골라 몽둥이로 후려치며 미친듯 소리 질렀다. 『을사오적들은 나오너라!』 신규식은 호랑이라도 잡을 듯 거리를 쏘다녔지만 역부족이었다.운니동 집으로 돌아 왔을 때 그는 자신이 한낱 미약한 존재였음을 확인했을 뿐이다. 사흘을 문걸어 잠그고 굶었다.그리고 결론을 내렸다.민영환등의 순국은 소극적 행동이 아니라 적극적 투쟁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죽음은 거름의 역할을 하는 것­내한몸 거름이 되어 무수한 열매를 맺을수 있다면 여한이 없겠다』(「한국혼」 참조·26살 신규식의 이같은 생각은 그러나 후일 「치욕을 알면 피로써 죽음을 할 수 있고,치욕을 씻으려면 피로써 씻어야 한다」는 투쟁적 신념으로 바뀐다) 신규식은 독약을 마셨으나 문을 부수고 들어온 가족들에 의해 겨우 목숨을 구했다.그러나 약기운이 번진 오른쪽 눈은 시신경을 다쳐 애꾸가 되었다.거울을 들여다 본 신규식은 냉소를 지었다. 『애꾸,그렇다.이 애꾸눈으로 왜놈들을 흘겨보기로 하자.어찌 나 한사람만의 상처이겠는가.우리민족의 비극적 상징이다』 이때부터 청년 신규식은 흘겨볼 예(예)자,볼 관(관)자­예관으로 자호를 삼아 끝까지 사용했다. 문동학원·덕남사숙의 설립 또는 지원,중동학교장 취임,공업전습소생들을 중심으로한 「공업연구회」조직,월간 「공업계」창간,윤치성 민대식등 퇴역장교를 규합한 황성광업주식회사 설립·운영,민족종교인 대종교에의 입교,분원자기공장의 설립과 고려자기 재현운동…등등이 선생의 무서운 행동력을 입증한다. 그러나 1910년 「보호」라는 양의 탈을 쓰고있던 일제는 본색을 드러냈다.경술국치가 그것이다.우리나라는 통째로 그들의 입속으로 삼켜졌다. 선생은 다시한번 자결을 생각했으나 마음을 고쳐먹고 1911년 상해로 망명,운명할 때까지 12년여 동안 위대한 업적을 남기게 된다. 첫째는 당시세계정세를 능동적으로 이용하면서 독립운동의 2대 조류인 외교중심론과 무장투쟁론이라는 두가지 운동노선을 접목시켰다는 점이다.혁명가적 열정과 선각자적 혜안을 함께 갖춘 선생은 중국혁명동맹회에 가입,송교인 진기미 손문등과 교류하며 중국신해혁명에 외국인으로 참여하여 나중 중국국민당정부와의 항일연계투쟁의 기틀을 마련했다. 1911년 여름 어느날 선생은 손문과 함께 자리를 했다. 『예관선생이 우리 동맹회를 도와주시니 참으로 장한 일이십니다』 『바로 중국혁명운동이 한국독립에 직결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점에서 그렇습니까?』 『역사적으로 볼 때 양국 사이는 순치(순치)의 관계였습니다만 중국은 우리를 속국시한 것도 또한 사실입니다.혁명이념으로 볼 때 과거 우리에게 진 묵은 빚을 청산해주리라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과연 듣던대로 훌륭한 논객이요.애국자이십니다』 선생과 손문의 혁명적 동지애는 변함없이 지속됐다.이 우정을 바탕으로 선생은 손문의 도움을 얻어 많은 우리 젊은이들을 적성에 따라 교육시켰다. ○3·1운동을 점화 둘째는 3·1독립운동과 상해임정수립의 주춧돌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선생은 1917년 조소앙 박용만등 13명의 독립운동가와 함께 선포한 「대동단결선언」을 통해 핀란드 폴란드등 당시 피압박민족의 독립을 열거하며 이는 좋은 징조이므로 우리나라도 통일된 최고기관 즉 정부의 조직필요성을 역설했다.또 국내와 일본등에 동지들을 밀파,2·8독립선언에 영향을 끼쳤다. 1919년 3·1운동이 터졌고 상해에서 선생은 프랑스 조계내에 독립임시사무소를 개설,정부수립을 추진했다.(언론인이며 3·1운동 민족대표 33인중 한명인 오세창은 『3·1운동은 예관에 의해 점화되었다』고 단언하고 있으며 당시 일경비밀정보도 『…이 소요를 유발시킨 데에는 상해거주 불령선인들의 선동에 크게 힘입었다』고 쓰고 있다) 상해임정도 수립되었고 5월에는 손문등 중국광동정부로부터 국가승인도 얻어내는 외교적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정부수립후 고질적 파벌의식과 지방색·출세욕 등이 뒤엉켜 1921년4월 이후 임정은 혼란에 빠져들었다.선생은 병원에 누워 의정원 회의참석을 거부했다.4월10일 소위 「재미파」이승만이 내각수반이 되었다. 이듬해까지 병석에 누운 선생은 국내외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는 한국인들이 단합되지 않는 것을 통탄하면서 25일동안이나 불식·불언·불약을 고집했다. 이튿날인 1922년9월25일.선생은 마지막 남은 숨을 호흡단절법으로 끊고 이승을 버렸다. 『정부…정부…』 희미한 소리가 숨을 거두는 그의 목에서 새어나왔다.단식 25일만에 처음 나온 말은 선생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말이 되었다.그 말은 70년이 지난 지금 이 시대에도 남아있을 유언이 아닐는지…. ◎독립운동에 외교적으로 크게 공헌/역사적 평가/신승하 고려대교수·동양사 예관 신규식은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상 알려져있는 것보다 숨겨져있는 공이 많은 분이다.특히 중국에서 한국임시정부가 수립될 수 있었고 또한 중국정부나 중국인들로부터 중국에서 우리나라 임시정부가 독립운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지원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은 분이다.그런데 불행하게도 1922년 43세의 젊은 나이로 일찍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그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한 분이다. 구한말 애국계몽운동때부터 구국자강을 위하여 실업과 교육밖에 없다는 신념아래 학교를 세우고 또한 우리나라에선 제일 먼저 실업전문잡지인 「공업계」를 발간하였다.그러나 나라를 잃게 되자 중국으로 망명하여 상해에서 중국혁명당 인사들과 접촉하고 동맹회에 가입하였다.그리고 중국이 잘되어야만 우리나라도 잘될수 있다는 생각아래 그들과 함께 신해혁명에 참가하여 이후 중국 혁명당인들과의 교류가 더욱 밀접하게 될 수 있었다. 그는 인재의 양성이 절실하다 보고 우리 젊은이들을 위하여 학교를 세웠으며 또한 중국인의 무관학교는 물론 일반 학교에도 입학을 주선하고 심지어 외국유학까지 보냈다.그리고 독립운동을 널리 알리고 선전하기 위하여 진단이란 잡지를 상해에서 발간하였다. 1921년에 손문이 광주에서 광동호법정부를 수립하자 한국임시정부 의정원은 그를 전권사절로 파견하였다.그리하여 한국임시정부가 호법정부의 승인을 받고 중국의 각 군사학교에서 한국학생의 수용을 허가받아 이후 황포군관학교 광동대학 등에 한국 젊은이들이 많이 입학되었으며 이들은 독립운동의 기간이 되었다. 따라서 신규식의 평가는 단순한 독립운동의 차원에서 할 것이 아니라 한걸음 앞서 독립운동을 위한 또 이를 전개하는 과정가운데 중국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역할과 공헌이 있었음을 높게 사야 할 것이다.
  • 만간요법 개발 등 동의학연구 활발(오늘의 북한)

    ◎“낙후양의 보완”… 약초재배 권장/탈모엔 피부 붉어질때까지 솔잎 자극/설사땐 약쑥·식초 달여 식전에 한술씩 북한은 현대의료기술의 낙후와 기초및 전문치료약품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방도로 동의학(한의학)을 중점 연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지난 80년「인민보건법」을 공포한 후 국가 보건정책차원에서 동의학의 연구와 보급을 추진하면서 전국 곳곳에 재배단지를 조성, 동약의 원료인 약초공급의 원활화를 꾀하고 있다.또 「동약처방집」「동약연구자료집」「조선동약총서」와 같은 동의학 연구 저서를 발간하는 등 동의학의 과학화와 이론체계 수립에도 힘쓰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같은 북한 동의학발전의 견인차 역할은 동의학 육성방침에 따라 지난 58년 「조선의학과학원」산하 「동의학연구소」로 설치된 뒤 87년 독립기구로 승격한 「조선동의과학원」이 맡고 있다. 임상실험실 외과연구실 부인과연구실 민간요법연구실 등을 갖춘 이 과학원은 지난 89년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전통의학협동연구센터」로 선정됐으며 지난 90년에는 「전자식 동의진단 치료기」를 개발하기도 했다. 「조선동의과학원」활동 가운데 특히 두드러진 것은 총 4만6천여건에 이르는 전래 민간요법의 수집·정리사업과 연구다. 북한은 이 민간요법을 각 대학병원과 도·군병원에 설치돼 있는 동의과에서 임상 활용하는 한편 인민들의 의료서비스난 해결을 위해 계속적인 개발과 보급에 노력하고 있다. 북한주민들이 일상생활에서 활용하고 있는 민간요법 가운데 대표적인 몇가지를 소개한다. □감기치료 ▲마늘을 한번에 2∼3g씩 하루 2∼4회 식후에 먹는다.▲파밑부분 60g과 생강10g을 함께 찧어서 끓는 물에 풀어 넣은 후 그 김을 입과 코로 들이마신다. ▲큰 배(이)에 10여군데의 구멍을 뚫고 껍질을 벗긴 마늘을 한쪽씩 넣은 뒤 이를 물에 적신 종이로 잘 싸서 불에 구워 먹는다. ▲언 사과 2개의 즙을 내어 마신다.▲술 한잔에 달걀 한개를 풀어 먹은 후 땀을 낸다.▲코가 막힐 때는 팥죽 한사발에 메밀쌀 70g과 파뿌리 3개를 넣고 1시간 정도 달여 한번에 다 먹은 후 더운 방에서 땀을 내면 좋다.메밀쌀대신 입쌀이나 좁쌀을 사용해도 무방하다. ▲악성감기로 열이 날때는 물1백㎖정도에 적당량의 간장을 타서 끓이다가 계란 1개를 넣어 먹는다. □탈모증치료 ▲솔잎으로 만든 솔을 이용,수시로 머리카락이 빠진 부분을 피부가 붉어질 때까지 자극한다.▲마늘이나 생강을 찧어 그 즙을 탈모 부위에 자주 바른다.천에 묻혀 문지르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콩팥염치료 ▲옥수수 수염을 일정량의 물에 달인후 그 물을 한번에 1백∼1백50㎖씩 하루 세번 먹으면 소변보기가 한결 쉬워진다.▲만성콩팥염일 경우 같은 양의 옥수수 수염과 딸기의 뿌리에 적당량의 물을 넣고 절반 정도로 줄때까지 달인 후 깨끗한 천으로 걸러 한번에 1백㎖씩 하루 3번 식전에 먹는다. □이질·배앓이 ▲배가 차고 설사할 때 약쑥 1백g에 5%식초 5㎖와 물 2백㎖를 넣고 달인 후 하루 세번 식사전에 한숟가락씩 먹는다. ▲1백g씩의 약쑥과 검은 콩을 각각 불에 볶아 빻은 다음 밀가루로 반죽,무게 22g씩의 알약으로 만들어 하루 세번 8∼10알씩 먹는다. ▲임신중인 환자는 생계란이나 삶은 계란 2∼3개를 한번에 먹는다.▲만성적인 이질에는 개뼈를 흰재가 되도록 불에 태워 식전에 5g씩 더운 물 또는 미음에 타서 먹는다.▲파에 소금을 조금 넣어 찧은 것을 약천으로 싸서 따뜻하게 데운 후 배를 찜질한다. □타박상치료 돌이나 몽둥이에 맞아 피부밑에 어혈이 지거나 붓고 아픈 경우엔 감자 생강 솔잎등이 이용된다. ▲생감자를 찧어 환부에 붙이는데 이때 생감자속의 솔라닌성분이 염증을 가라앉히는 작용을 한다.▲생강 1백g에 겨자 10∼15g을 섞어 찧은 다음 환부에 붙이고 헝겊으로 싸맨다. ▲된장을 두툼하게 바르고 싸맨다.다쳐서 벗겨져 피나 체액이 고여 몹시 부어 올랐을 때 바르면 피부 밖으로 스며나온 체액들이 흡수되면서 붓기가 가라앉는다.▲고춧가루와 약한 불에 녹인 바셀린을 1대5의 비율로 섞어 무른 고약이 되게 한다.이 고약을 하루 한번 또는 이틀에 한번 다친 곳에 바른다. □기관지염치료 기관지염증으로 심한 가래 기침 열이 나는 경우 ▲봄·가을에 캔 말린 은시호(대나물)뿌리30g, 도라지1백g, 살구씨30g, 아편껍질열매15g을 함께 빻아 알약으로 만든 후 한번에 4g씩 하루 세번 먹으면 염증이 가라앉고 가래가 줄어든다. ▲도라지 20g과 율무쌀 30g을 물에 달여 하루 3번 마신다.율무쌀이 없을 때는 도라지를 잘게 썰어 물 0.5ℓ에 일주일 동안 담가 뒀다가 짜서 한번에 0.1∼0.2ℓ씩 하루 2∼3번 마신다.
  • 외청독립 1년… 경찰,조용한 내부개혁

    ◎독자예산 편성… 인력·장비 보강/3분내 출동… 검거율 24% 높여/즉심개선등 민원인불편해소 노력 경찰청이 1일로 발족1주년을 맞았다. 우리의 국립경찰은 지난해 이날 내무부장관의 보조기관이던 치안본부에서 외청으로 격상돼 나름대로 독자적인 예산편성과 조직운영으로 민생치안에 힘을 기울이며 그동안의 관행을 과감히 개선하는 등 새로운 위상을 세우기 위해 노력해왔다.그리고 그 결실은 겉으로는 아직 눈에 잘 안띄는 듯도 보이나 실상 내부를 들여다보면 1년동안으로서는 엄청나리만큼 큰 변화를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경찰은 특히 각종범죄사건의 범인검거에 최우선적인 역점을 둬 112순찰차량 5백70대를 보강,모두 1천9백26대의 순찰차를 전국 74개 시지역에 까지 확대운용함으로써 신고후 3분안에 출동하는 기동성을 확보했다. 이에따라 살인·강도·강간·절도·폭력 등 이른바 5대범죄의 검거실적이 개청전보다 24%나 증가했으며 순찰중 현행범 검거율은 자그만치 87%나 늘어나 112신고가 「국민의 비상벨」로서의 자리를 확고하게 잡았다. 이와 함께 과학수사를 위해 지문자동검색기와 함께 IBM9021­505 주전산기를 도입,일선경찰서등에 설치된 4천여대의 단말기를 통해 10초안에 모든 범죄자료를 검색·조치할수 있게됐다. 수사인력의 양성과 자질향상을 위해 형사연수원도 신축,오는 10월부터 교육에 들어가게 된다. 지난해 서울 은평·도봉·방배·부산 연산경찰서 등 10개 경찰서와 46개 지파출소를 신설한데 이어 올해 대전북부경찰서등 2개 경찰서와 30개 지파출소를 늘리고 1만여명의 경찰관을 증원했다.내년부터 오는 96년까지는 8만여명에 그치고 있는 직업경찰관을 12만여명으로 늘려 늘어나는 치안수요에 대처할 계획이다. 이밖에 각시도 경찰청에 여자형사기동대,전국1백34개 도시 경찰서에 여성상담실 및 신고전화(국번+0118)를 개설해 여성대상범죄를 예방하고 지하철경찰방범수사대와 외국인범죄수사전담반·마약밀수사범검거를 위한 해양특수강력수사대 등도 발족시켰다. 경찰청은 제도개선에도 역점을 둬 법률21개,대통령령 23개,내무부령 18개,훈령 99개,예규 1백12개 등 모두 2백73개의 경찰관련법규를 정비했다. 이와함께 지방경찰청소관 5백55개 자치법규도 사무의 효율적인 처리와 시민편의를 위해 손질했다. 민원인들의 편의를 위해 1백4종의 민원서식 가운데 62종에 대해 날인대신 서명을 할수 있도록 했고 82종류의 민원중 처리기간을 단축하는등 12종류를 간소화했으며 특히 고소·고발등 형사민원은 접수뒤 한달안에 처리하도록 했다. 그동안 비능률과 낭비요인이 돼온 관행을 고친 제도개선도 22가지에 이른다. 즉결심판제도에서 법칙금의 1.5배를 미리 내면 법정에 출석하지 않고도 재판을 받을 수 있게 했고 범죄경력 전산자료 가운데 「혐의없음」「공소권없음」「죄안됨」등 무죄확정판결을 받았거나 불기소처분을 받은 기록을 다른 전과가 없을때는 삭제해 그동안 억울하게 전과자취급을 받아온 52만여명의 민원소지를 없앴다. 일과시간에만 가능하던 유치인면회도 공휴일과 일과시간이후에도 실시하고 도로교통법위반자에 대한 법칙금납부기한을 10일에서 20일을 더 연장했으며 공항보안검색과 여객선선착장 임검제도 등도간편하게 했다. 이같은 괄목한만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조직의 중립성을 공고히하고 독자적인 수사권을 갖는 등 앞으로 해야할 과제도 적지않은 형편이다. 이를 위해서는 모든 것을 일시에 충족시킬수는 없는 일이기에 꾸준히 보유인력의 자질을 향상시키고 과학적인 수사를 위한 적절한 투자 등이 뒷받침돼야 함은 물론이다. ◎전문가 시각/주관중 경희대교수·정치학/어디에도 기울지 않는 정립화 이뤄야/다수의 여론도 잘못됐으면 영합 말길 국립경찰청이 발족한지 1년.지난 1년동안 경찰의 위상은 어느정도 달라졌으며 이른바 「중립화」는 어느정도 이뤄졌는가.특히 중립화를 말할때 그것은 무엇을 뜻하는가.경찰은 과연 누구사이에서 중립적이어야 하는가.국민과 범죄자들 사이의 중립은 물론 아닐 것이다.또 정부와 범법자들 사이의 중립도 아니며 정권과 국민사이에서의 중립화도 아니다.경찰이 국민편에 서고 선한 사람편에 서는데는 중립화란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누구를 위한 중립화인가.그것은 정의를 위해서는 누구편에도 기울지 않는다는 중립화일 것이다.때로 국민 대다수의 여론이 잘못 유도된 언론에 오염되어 사회적 정의에서 떠나있다면 거기에도 영합하지 말아야 한다.굳이 중립화라는 용어를 써야 한다면 중립화란 정립화이다.직립동물인 인간이 똑바로 선다는 것은 중정적 자세를 뜻한다.좌에도 우에도 기울지 않고 위에도(권력) 아래에도(민중) 경도됨이 없이 똑바로 선다는 뜻이다.중용이란 중정이요 정상이요 평상심이다.경찰의 주체성을 지키는 것이 곧 경찰의 중립화이다.도둑을 잡고 살인범을 추적하는 것은 정권을 위해서가 아니다.난폭운전을 단속하고 공해업소를 적발하는 것은 강자나 약자를 위해서가 아니다.우리 모두를 위해서다.정의나 선은 항상 전체편에 선다는 것이 필자의 윤리관이다.의사는 환자전체를 위하고 스승은 학생전체를 위하고 정치인들은 국민전체와 국가전체를 위해 살아야한다.경찰은 사회전체의 질서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난폭한 데모와 폭력적파업을 경찰이 막으려는 것은 난폭한 운전자를 막는 것과 다를바가 없다.몇 사람의 난폭운전자를 단속하는 것은 모든 운전자를 위하는 길이다.몇몇 불법파업에 경찰이 개입하는 것은 우리 전체산업을 위해서 유익한 일이다.다만 선의의 평화롭고 원목적에 부합되는 데모를 못하게 하는 것은 정상적인 자동차운전자를 막는 것과 같다.치안본부가 경찰청이 되었다고 경찰의 「원목적」적 고유업무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사회질서의 유지는 경찰의 최초의,최후의 원목적(원초적,원래적,순수목적)이다. 사회적 혼란은 민주국가에서도 독재국가에서도 악이다.경찰관 한사람 한사람이 경찰본연의 주체성과 전체성을 지닐때 경찰은 중립화되는 것이다.검찰의 중립화도 마찬가지다.사직당국이 사정을 사정으로하면 그것은 정립자세가 아니다.사람이 아첨할 때는 허리가 앞으로 굽어지고 교만할 때도 뒤로 자빠진다.경찰의 아첨이나 교만은 함께 정립적자세가 아니다.군경들의 「차렷!」하는 부동자세가 중립적자세를 말한다.경찰은 지팡인가,몽둥인가.지팡이도 몽둥이도 모두 중립화시킬 수가 있다.착한 백성들에게는 지팡이,나쁜자들에게는 몽둥이가 되는 것이 경찰의중립화다.이것이 거꾸로 되어 착한 백성에게 몽둥이,나쁜자들에게 지팡이가 되면 이것은 중립화가 깨지는 상태다. 특정정권을 위한 잘못된 질서를 바꾸거나 그것을 막으려는 기도는 혁명의 문제지 경찰중립화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다.혁명으로 질서가 바뀐다 하더라도 체제질서가 바뀌는 것이지 사회질서가 바뀌는 것이 아니다.
  • 창원 상의회장 직대/한밤 집앞서 피습

    【창원=이정령기자】 12일 하오11시45분쯤 경남 창원시 용호동 롯데아파트 13동 302호앞에서 집으로 들어가던 창원상공회의소 박창식회장직무대행(58)이 20대 청년 2명에게 피습당해 전치 2주의 부상을 입었다. 박회장에 따르면 열쇠로 아파트문을 여는 순간 갑자기 내려온 청년 1명이 나타나 몽둥이로 머리를 2차례 때렸다는 것이다. 박회장은 머리 뒷부분 2곳이 각각 5㎝가량 찢어져 10바늘씩을 꿰맨 뒤 귀가했다.
  • 지동현씨가 밝히는 새우잡이배의 「생지옥 실상」

    ◎폭력 난무하는 “현대판 노예선”/조명등 켠채 24시간 작업강요/매 못견딘 동료 탈출실패 속출/노인·정신박약자까지 납치… “일못한다” 뭇매/반항엄두 못내고 죽을때까지 「빠삐용 생활」 『배안은 지금까지 듣도 보지도 못했던 무법천지였습니다.매를 견디지 못해 두들겨 맞아 죽느니 차라리 물에 빠져 죽는 것이 낫다는 생각으로 바다에 뛰어들었습니다』 지난 6일 하오 8시쯤 전남 신안군 도초면 우이도 근해에서 무동력 새우잡이배를 타고 조업도중 선장의 구타에 못이겨 죽음을 무릅쓰고 바다에 뛰어들어 36시간동안 표류한 끝에 8일 상오8시쯤 전남 진도군 외병도리 앞바다에서 극적으로 구조된 지동현씨(35·인천시 서구 가신동 157)는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이 아직 실감나지 않는듯했다. 인천에서 국민학교를 나와 벽돌공일을 해온 지씨가 선원생활을 하게 된것은 지난 2월26일 서울 영등포역에서 돈을 많이 벌게 해주겠다며 접근한 30대 남자 2명의 꾐에 빠져 목포로 내려오면서부터였다. 그때부터 2박3일동안 목포 모여관에서 자신을 꾀어온 30대 남자 2명과 함께 투숙해 있던중 2월29일 밤 양질님씨(62·여·어업·목포시 달성동)가 나타나 현금 1백만원을 지씨에게 건네주면서 돈을 헤아려보라고 했다. 양씨는 지씨가 확인한 돈을 다시 빼앗아 30대 남자들에게 건네주었고 이들은 곧 사라졌다. 양씨는 이어 지씨에게 흰종이와 볼펜을 내밀며 1백만원에 대한 차용증을 강제로 쓰게 한 뒤 전남 신안군 도초면 우이도 바닷가로 데려갔다. 이같은 과정을 통해 지씨는 제3영풍호(선주 박세만·54)에 태워져 고된 노역에 시달려야 했다. 지씨가 손에 만져본 1백만원이 2박3일 동안의 식비와 여관비였다는 사실을 안 것은 오랜 뒤였다. 『선상생활은 글자그대로 지옥과 같았습니다』지씨는 「일을 못한다」 「말대꾸한다」는 사소한 이유로 선장 서대원씨(36)로부터 심한 구타와 공갈·협박을 당해야 했다고 말했다. 지씨등 선원들은 선장의 지시에따라 상오6시쯤부터 그물을 치고 어구를 손질하거나 밤새 건져올린 새우를 선별하는등 하오 늦게까지 가혹한 노동에 시달렸다. 특히 밤시간 때에 물이 들면 불을켜놓고 야간작업을 하기 일쑤였다. 이렇게 잡은 새우는 20∼30t급 동력모선이 매일 현장에 찾아와 가져갔으며 반찬거리등 생활용품을 대신 전해주었다. 지씨는 작업도중 졸거나 하면 선장 서씨등이 몽둥이·망치등 옆에 있는 물건을 아무것이나 집어들고 자신의 어깨·등을 마구 때렸다면서 몸서리를 쳤다. 한번은 이같은 생활을 견디다 못한 동료 선원들이 튜브를 타고 탈출을 기도했으나 파도가 심해 되돌아오자 서씨 등은 이들을 묶어 놓고 몽둥이 등으로 초주검이 되도록 때려 자신도 처음엔 감히 탈출할 엄두를 내지 못했었다고 털어놨다. 지씨가 탄 배에는 선원이 모두 5명이었다고 했다.이중에는 60대 2명이 포함돼 있었는데 선장은 이들에게 폭언과 폭행을 일삼았다고 했다. 지씨는 지난 6일 하오8시쯤에도 일을 못한다는 이유로 선장 서씨로부터 주먹으로 얼굴등을 맞은 뒤 탈출을 결심,튜브 2개와 스티로폴 부유물 1개를 가지고 망망대해로 뛰어들었다. 지씨는 목이 마르고 잠이 쏟아졌지만 잠들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버티면서 36시간 동안을 표류하다 50여㎞쯤 떨어진 진도군 조도면 앞바다에서 3t급 배를 타고 톳채취 작업을 하던 김성기씨(55)에 의해 극적으로 구조됐다. 경찰관계자는 연근해에서 조업중인 어선에서 선원간에 폭력이 난무,살인사건이 발생하기도 한다면서 최근들어서는 선주들이 심각한 선원부족 현상을 겪자 정신질환자와 범법자들까지 고용해 선상폭력 사건이 급증하고 있다고 밝혔다. 신안군 앞바다에서는 지난해까지 91척의 무동력선이 5∼6척씩 선단을 이뤄 조업을 해왔으나 올들어 인력난이 심화돼 21척이 출어를 포기했으며 현재 조업중인 70척에서 3백50여명이 일하고 있다.
  • 입원 20대 의문사/경찰,약물중독 추정

    5일 하오10시쯤 서울 동대문구 전농2동 성바오로병원 611호실에서 홍종민씨(21·강서구 화곡2동 850)가 갑자기 발작을 일으켜 3시간30분동안 치료를 받다 숨졌다. 홍씨와 함께 병실에 있었던 차종석씨(26)는 『병문안을 와 침대에서 TV를 함께 보다 종민이가 갑자기 입에 거품을 물고 발작을 일으켰다』고 말했다. 홍씨는 지난15일 하오11시50분쯤 전농2동 청량리역 포장마차앞길에서 폭력배로 보이는 20대청년 4명에게 몽둥이로 온몸을 얻어맞고 흉기로 오른쪽 허벅지를 찔려 이 병원에 입원했었다. 경찰은 숨진 홍씨가 평소 신경안정제를 상습적으로 복용해왔으며 입원당시에도 약물중독증세를 보였다는 병원관계자등의 진술과 홍씨의 침대밑에서 다량의 약이 발견된 점등으로 미루어 약물중독으로 숨진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인을 조사하고 있다.
  • “장택상 수도청장 암시 받았다”/백범암살 안두희회견

    ◎“CIA개입 주장은 사실무근”/“배후는 김창룡·노덕술·최운하등 4명뿐” 백범 김구선생의 암살배후를 43년만에 밝힌 안두희씨(75)는 14일 하오 『장택상 김창룡 노덕술 최운하씨 등 4명으로부터 김구선생을 암살해야 한다는 강력한 암시를 받고 이에 공감해 암살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안씨는 이날 문화방송과의 회견에서 『47년 월남한후 서북청년단에 가입해 활동할 당시 김창용등으로부터 「빨갱이들이 쫓기면 모두 경교장으로 꼬리를 감춘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면서 『이들로부터 서북청년단이 빨갱이를 때려잡는데는 최고인데 왜 아무 힘도 못쓰느냐는 말을 듣고 나도 모르게 세뇌당해 암살을 결심하게 됐다』고 밝혔다. 안씨는 『그러나 이들 4명외에 다른 배후인물은 없었으며 어느 누구로부터도 직접적인 암살지시를 받은 바는 없었다』면서 『미CIA가 개입됐다는 이야기는 권중희씨등으로부터 몽둥이로 맞아 억지로 한 이야기일뿐 처음 듣는 이야기』라고 부인했다. 장택상씨는 지난 46년9월17일 초대 수도경찰청장으로 임명돼 48년8월4일까지재직했으며 노덕술씨는 2대 수도경찰청 수사과장으로,최운하씨는 2대 수도경찰청 정보과장으로 46년9월부터 50년5월까지 재직했다.
  • 외언내언

    컴퓨터범죄 급증,대책이 시급하다고 온 세계가 말하고 있지만 실은 아직 컴퓨터범죄에 관한 정의조차 정리돼 있지 않다.우선 현재로서는 「컴퓨터를 사용해 거액의 돈을 훔치는 것」이 가장 큰 범죄이다.그런가하면 「사생활침해와 같은 서비스의 절도」가 점점더 심각한 현상을 만들고 있다.이미 우리에게서도 서류를 써낸일이 없는데 특정신용카드를 받게 되는 경우가 있다.타 신용카드의 자료를 전용한 것이 되는데 이런 경우 아직은 범죄아닌가라고 묻기는 어렵다.◆컴퓨터범죄의 가능성은 너무 크다.은행컴퓨터를 조작해 거액의 돈을 사취하는 형식쯤은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군대에서는 병기고에서 무기의 숫자를 조작해 병기를 빼낼수 있다.무엇을 빼내는 것이 아니라 없애버리는 것도 범죄로서는 목표가 된다.자신의 불리한 자료를 지우는 것만이 아니라 컴퓨터 자료를 몽땅 파괴해버리겠다는 위협은 실제로 새로운 테러리스트들의 방법이다.◆그래서 컴퓨터범죄자의 범인상까지도 새롭게 만들어진다.험상믿은 얼굴이 아니라 「젊고 교양있고 기술면에 유능하며 공격적인 인간」이라는게 최근 이 연구분야에서 내린 표현이다.이 범죄자들은 단지 「도전을 위해」범죄를 저질러본다고까지 반응한다.말이 안되지만 즐기면서 범죄를 하는 것이다.굶주림이나 무지때문에 저질러지는 범죄가 아니기 때문에 이는 또 화이트칼라들만의 범죄이다.◆화이트칼라범죄라는 점에서 현재로서는 형량도 가볍게 된다는 문제가 제기된다.미국에서도 2백만달러쯤을 사취하고 6개월징역판결을 받게 되는데,이것도 보호관찰로 넘어갈 수 있다.최근 정의는 이렇게 되어 있다.「재물·금전·서비스 그리고 정치적 및 사업적 유리한 점을 얻는 것을 목적으로하여 사기·은폐·약탈을 하기위해 컴퓨터를 사용하는 것」이 컴퓨터 범죄이다.◆입법예고된 형법개정안에 컴퓨터범죄가 등재됐다.그 해독이나 위해 정도를 보면 컴퓨터범죄야 말로 칼이나 몽둥이를 든 범죄의 몇십배 몇백배 이사회에 해독을 끼치는 범죄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 농공단지 업체 기도원 둔갑/공장위장 “기도생활 소홀”수용환자 폭행

    ◎함평… 사이비 종교단체 적발 【함평=최치봉기자】 사이비 종교단체가 농공단지에 입주공장을 기도원으로 개조하고 신병치료를 위해 모여든 국민학생을 포함한 남녀 환자 20여명을 집단 폭행한 사실이 밝혀져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전남 함평경찰서는 27일 함평농공단지 입주업체인 영수실업(대표 이화정·44)을 기도원으로 개조,신병치료를 위해 모여든 강모씨(41·함평군 학교면) 등 20여명을 폭행한 이 회사공장장 이시현씨(36)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경비책임자 김시윤씨(32)를 입건했다. 경찰은 또 이 회사 사장 서규석씨(43·폭력 등 전과 7범·광주시 서구 양동 41) 등 4명을 수배했다. 이씨 등 이 회사 간부 5명은 지난 25일 하오 7시쯤 회사 사장실에서 기도생활에 충실치 못하다며 강씨와 부인 채씨(39) 아들(15·광주 K중 3년) 등 일가족 3명을 몽둥이 등으로 마구 때려 전치 2∼3주의 상처를 입힌 혐의를 받고 있다.
  • “혼수적다” 아내 구박·폭행/30대 한의사에 구속영장(조약돌)

    ○…대구 달서경찰서는 7일 혼수가 적다며 아내를 구타한 한의사 박극로씨(34·대구시 달서구 두류1동 766의 6)를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과 간통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 경찰에 따르면 박씨는 지난 84년 결혼한 부인 이모씨(여·29)에게 혼수가 적다며 구박,별거해오다 지난해 9월부터 자신의 한의원 간호조무사 정모씨(23)와 수차례 정을 통해 왔으며 지난해 9월말 이혼요구를 거절하는 부인 이씨를 몽둥이로 마구때려 전치 4주의 상처를 입힌 혐의.
  • 캄보디아 평화계획에 “암운”

    ◎귀국 키우 삼판 군중공격에 방콕 피신/민족평의회 첫회담 불투명 【프놈펜 AFP 로이터 연합】 캄보디아의 크메르 루주 지도자인 키우 삼판이 27일 프놈펜에 귀환했으나 성난 군중들의 공격을 받고 간신히 프놈펜을 탈출,방콕으로 피신했다. 캄보디아 4개 정파중의 하나인 크메르 루주 지도자 키우 삼판의 귀국이 거부당함에 따라 유엔 중재하의 캄보디아 평화계획은 암운을 드리우게 됐다. 방콕주재 외교관들은 12월초에 열릴 캄보디아 최고민족평의회(SNC)의 첫번째 공식회담이 이날 사태로 인해 예정대로 열릴지 불투명하게됐다고 말했다. 캄보디아 국가원수로 추대된 노로돔 시아누크공은 이날 사태가 발생한후 4개 정파지도자들이 참석하는 긴급회담을 가능한 한 빠른 시일내에 방콕에서 개최할 것을 제의했다고 방콕의 정통한 소식통들이 말했다. 시아누크공은 롤랑 뒤마 프랑스외무장관과 알리 알라타스 인도네시아 외무장관,라프딘 아흐메드 유엔대표에게도 회담에 참석해 달라는 초청장을 보낸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75∼78년 캄보디아를 온통 「킬링필드」(학살의 장)로 몰아넣은 악명높은 크메르 루주 지도자인 키우 삼판은 이날상오 방콕으로 부터 프놈펜에 도착했으나 크메르 루주의 학살로 가족과 친척을 잃은 수천명의 프놈펜시민들은 그가 묵고있는 별장을 포위,『그를 죽여라』라고 외쳤으며 성난 일부 시민은 집안으로 난입,돌과 몽둥이 주먹등으로 집단 폭행을 가했다. 머리에 유혈이 낭자한채 키우 삼판은 하오2시경 현장에 도착한 훈센총리등 캄보디아정부지도자들의 도움을 받아 장갑차편으로 손센 국방장관등 3명의 크메르 루주지도자들과 함께 공항으로 피신,방콕으로 돌아갔다. 캄보디아정부는 이날 성명을 통해 『국민들의 감정을 이해하지만 그같은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설득한 노력이 실패한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정부성명은 이어 지난달 파리에서 크메르 루주와 함께 서명한 평화협정을 준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해발 1,160m 시범목장서 양치기 17년(이런 공무원)

    ◎국립종축장 남원지장 김춘석목부/호롱불 막사서 조수 둘과 외로운 생활/70년대엔 무장공비 나올까 뜬눈 밤샘도/연구소에 실험용 양 보낼땐 자식 잃은 기분 넓은 들과 양떼 그리고 양치기.어린시절 한번쯤은 누구나 꿈꿔봤던 아름답고 평화로운 목장풍경이다.전북 남원군 운봉면 용산리 지리산의 준봉들이 병풍처럼 둘러선 해발 1천1백60m의 덕두산 바래봉 국립종축장 남원지장(남원지장)에서 목부(목부)로 일해오고 있는 김춘석씨(48)가 바로 우리들이 흔히 동경해오던 동화속의 인물이다.양띠해가 저물어가는 올해까지 17년간이나 양만을 벗삼아 살아온 그는 기능직 공무원 가운데 말단직이지만 앞으로도 동화속의 착하고 묵묵한 양치기로 남아있겠다고 했다. 『아마 제가 양띠어서 양과 인연이 닿게 됐나봅니다.우리나라가 호주와 합작해서 면양시범목장으로 이곳 남원지장을 만든지 3년째 되던 지난 74년에 양치기가 됐습니다』 ○중 중퇴 아쉬워 독학 그는 맨처음 일용직으로 이곳에 취직했다.군제대를 한 다음해인 68년 동네어른의 중매로 동갑내기인 부인한금이씨와 결혼했으나 살길이 막막하던 차에 일용직으로 취직하게 된것만도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었다.열심히 내일같이 일한 결과 기능직 10등급이 됐다고 했다. 그가 태어난 곳은 이곳 목장에서 내려다 보이는 운봉면 동천리이다.험산준령에서 양들을 지키는 일은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고 했다.더욱이 가족과 멀리 떨어져 지내야 할 고독감을 이겨내는데는 오랜 기간이 지나야 했다. 『물론 지금도 양을 몰고 산위에서 생활하는게 쉽다고는 볼 수 없지만 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산에 오르기가 무서웠습니다.당시 북에서 무장공비들이 자주 넘어올 때 아닙니까.그래서 밤이면 몽둥이를 머리맡에 두고 거의 뜬눈으로 새우기도 했죠』 무리를 벗어나 길을 잃은 양들을 밤늦게까지 찾아 헤맨적도 셀 수 없이 많았다. 지금은 양의 수가 많이 줄어 1천3백마리 정도지만 초창기에는 4천∼5천마리나 됐으니 그가 한숨을 돌릴 시간조차 없었던 것도 당연했다. 특히 태풍이 심하게 불거나 비가 많이 올 때는 양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더욱 많았다.어떤때는 비바람을 뚫고밤길로 바래봉을 완전히 넘어 뱀사골부근까지 이들을 찾아 나선적도 있었다.그래서 그의 산타는 실력은 일반인이 2∼3시간 걸리는 곳을 1시간이면 충분히 주파한다고 했다. 그에게 가장 가슴아픈 일은 친자식처럼 키워온 양들을 자기손으로 골라 전국의 각병원과 연구실에 실험용으로 보낼때다. 『양은 성격이 온순해 다투거나 싸우는 일이 없고 인내심도 강합니다.각박한 요즘세상에서 우리들이 본받아야 할 점이 많은 동물이지요』 그는 보조수 2명과 함께 산꼭대기에 마련된 4평남짓한 막사에서 생활을 하며 양들을 돌본다.이곳 막사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그래서 밤에는 등불을 켜야 한다.그는 집이 가난해 중학교를 중퇴했기 때문에 호롱불밑에서 못배운 공부도 독학으로 한다. ○월급 절반 항상 저축 『동료가 쌀이나 반찬거리를 가지러 내려갔다가 올라올 때가 제일 기다려집니다.가끔씩 가족들 소식이나 그곳에서 일어난 이야기등을 한아름 가지고 올라오거든요.그럴때면 「사람사는 이야기」가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어요.떨어져 살고있는 가족들에게는 미안하기만 하죠』그는 풀이 새파랗게 돋는 6월부터 양떼를 몰고 5백㏊에 달하는 바래봉 산꼭대기에서 양과함께 지내다 10월말이면 가족이 살고 있는 운봉면 용산리 축사로 양떼를 몰고 내려온다. 그는 부인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과 함께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특히 첫째 둘째인 미숙(22) 미정양(20) 셋째 넷째인 창진(18)창길군(14)등 자녀들이 아무 불평없이 훌륭하게 자라준 것이 대견스럽다는 것이다. 『옛날에 쌀 1가마값이 9천원을 했는데 월급이 1만3천원이었으니 집사람이 가계를 꾸려가는데 어려운 것은 당연한 것이죠.아이들도 남들처럼 잘입히고 잘먹이지도 못했지만 저를 이해하고 따랐습니다.』 ○정년까지 양과 생활 월세 3천원짜리 방에서 시작해 자식들을 키우느라 아직 집한칸도 마련하지 못했지만 자식들이 양떼들처럼 곱고 곧게 자라주고 있어 그저 감사할 뿐이라고 했다. 지난해에는 융자 4백만원을 얻어 근처 서천리에 택지 60평을 샀다.그리고 내년쯤에는 그동안 저축한 돈으로 이곳에 가족들과 함께 살 집을 지을 예정이다.그는 매월월급의 절반정도인 30만원가량을 꼬박꼬박 저축하고 있다. 『정년이 될때까지 계속 양들과 함께 일할 생각입니다.몇년전까지는 퇴직후에도 양을 길러볼까 했는데 우루과이라운든가 하는것 때문에 약간은 망설이고 있습니다.죽을때까지 양과 함께 하겠다는 당초 생각이 이뤄질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저는「평생양치기」이에요』 묵묵히 일하는 이런 공무원이 있기에 지리산의 차가운 초겨울 바람도 결코 매섭지만은 않은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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