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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분 데이트 (1) - 이영임

    5분 데이트 (1) - 이영임

    「멕시컨·모드」가 깜찍히도 어울리는 미스 조흥은(朝興銀) 이영임(李英任) 양 깜찍하게도「멕시컨·모드」가 어울리는 이 아가씨는 하루 2~3천만원의 현찰을 주무르는 행복한 아가씨다. 창구를 지키고 있는 이 아가씨의 이름은 이영임. 1949년 광주산이다. 인천 인화여상을 졸업한 후 지난 7월 1일 면접시험을 거쳐 입행(入行). 160cm의 키에 약간 그을은 듯한 피부색, 도톰한 입술이 무척 이국적이다. 멕시코의 명우(名優)「마리아·펠릭스」를 연상케 하는 크고 검은 눈이 이 아가씨의 미(美)의「포인트」다. 우수(憂愁)에 젖은듯한 눈매가 바로「멕시코」아낙네들을 닮았다. 『첨엔요 많은 돈을 만지니까 즐겁더니 이젠 화폐가치로 보이질 않고 숫자로만 보여요. 틀리면 봉급에서 변상해야 하거든요』 - 만약 아가씨 앞에 복면의「갱」이 나타나 총구를 겨눈다면? 『우선 쌩긋 웃어주죠. 그리곤 수고하십니다-하고 몇 마디 말을 건네다 슬쩍「윙크」를 해주죠. 그럼 얼떨떨할 것 아녜요? 그때 우리 주임님이「갱」뒤에서 몽둥이로 꽝! 하면 …』 월급은 수당까지 합쳐 1만 9천원 정도. 이것저것 제하고 손에 들어오는 건 1만 6천원 가량인데, 시집준비로 10만원짜리 적금을 붓고 나머지는 용돈으로. 모자라지 않느냐는 물음에 자기 나이나 경력에 비해 오히려 좀 많은 것 같단다. - 시집은? 『딸 넷, 아들 하나라서, 아버지 어머니는 2, 3년안으로 보내시겠대요』 취미는 뜨개질. 사실은「스튜어디스」가 되고 싶었단다.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은 이태리 명우의 이름인「○○○·○○」. 자신도 그 여배우를 제일 좋아한다고. 그러고 보니 짙은 눈매, 육감적인 입술이 무척 닮았다. ※ 뽑히기까지 10월 12일「멕시코·올림픽」이 그 막을 올린다. 그래서 우선 첫 표지는「멕시컨·무드」를 살리기로 했다. 조흥은행 섭외과와 인사과가 주동이 되어 5백여 여행원을 놓고 인기조사결과「미스·朝興銀」후보로 뽑힌 아가씨는 2명. 한 아가씨는 중역진(重役陣)서, 이 아가씨는 평행원(平行員)들이 추천했다. 직접 창구에 앉아 있다는 것과 남성행원들이 모두 이 아가씨를 추천한 것, 그리고 이국적인 이 아가씨의 분위기가「미스·朝興銀」이 되게 했다. ★ 신사가 뽑은 퀸 ★ ※ 공모요령 종업원 백 명 이상의 기업체 또는 집단을 단위로 그 직장에 근무하는 여직원들 중에서 제일 예쁘고 상냥하고 인기 있는 아가씨를 골라 주시면 됩니다. 선발은 미혼 여직원들 중(학력 고졸이상) 10명 안팎의 후보를 내어 전체 남성 직원들의 무기명 비밀투표 득표순위로 3명을 선발해 주시면 됩니다. 본사에 투표결과를 알려주시면 곧 행운의 세 아가씨에「카메라·테스트」를 실사, 그 중 가장「카메라」를 잘 받는 아가씨를「신사가 뽑은 퀸」으로「선데이 서울」표지에 소개하게 됩니다. ※ 일류 디자이너 총동원 <의상> 뽑힌 아가씨의 용모와 계절에 맞추어 본사에서 부탁 드린 일류「디자이너」들이「아이디어」를 총동원, 차례로 새롭고 멋진 의상을 꾸밉니다. <미용> 역시 본사가 지정한 일류 미용실에서 촬영 당일 미용을 담당, 여러분의「신사가 뽑은 퀸」을 더욱 아름답고 돋보이게 매만져드립니다. [ 선데이서울 68년 9/22 제1권 제1호 ]
  • 살인극으로 막내린 일확천금 망상

    일확천금을 꿈꾸며 머나먼 타국 땅으로 금을 캐러 떠났던 한국인 업자들이 한 명은 주검으로 나머지 3명은 살인자로 돌아왔다.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3일 사금을 캐러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으로 떠났다가 사업에 실패하자 이모(60)씨를 몽둥이로 때려 숨지게 한 윤모(62·경비원)씨와 김모(37·무직)에 대해 살인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아직 시에라리온에 남아 있는 또 다른 김모(38·노동)씨에게도 같은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하고 국제 공조수사를 벌일 예정이다. 이들은 지난해 5월 우리나라에서 수억원의 투자금을 모은 뒤 자신들의 돈을 들이지 않고 사금 채취 기술만으로 큰 돈을 벌 수 있다고 믿고 현지로 떠났다. 사금채취를 시작했지만 5개월 동안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했다. 투자금이 바닥나자 조급해진 김씨는 사업 실패 원인을 이씨에게 돌리기로 하고 한국인 직원 2명과 함께 지난해 10월 캠프 안에서 이씨의 양손을 묶고 몽둥이로 마구 때려 숨지게 했다. 돈을 벌어오겠다며 외국으로 떠났던 아버지가 사망한 소식을 듣고 이씨의 아들(35)은 현지로 달려가 기계에서 떨어졌다는 아버지의 갈비뼈가 여러 개 부러져 있는 등 수상한 점을 발견했다. 또 나이지리아의 한국대사관을 몇 번이고 찾아가 진실을 밝혀내려고 동분서주했다. 이에 한국에 있던 부인과 딸도 경찰에 신고하고 수사를 요청했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 결과를 바탕으로 타살 가능성을 열어두고 한국에 와 있던 김씨의 회사 종업원 2명을 불러 혐의를 추궁한 끝에 범행 사실을 자백받았다. 안동환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데스크시각] 치매환자 정책의 그늘/유진상 공공정책부 차장

    얼마 전 고향 후배로부터 만나자는 전화를 받았다. 건설업체에 들어가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소식은 전해들은 바 있었다. 평소 연락도 안 하던 그의 갑작스러운 제의가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만난 터라 자연히 술잔을 기울이며 서로의 근황을 물었다. 그런데 이런저런 얘기 끝에 올해 초 회사를 그만뒀다는 말을 전했다. 세태가 그런 만큼 구조조정에 의한 퇴직이려니 생각하고 위로하는데 엉뚱하게도 이유가 아버지 때문이란다. 맞벌이 부부로 홀로된 아버지와 함께 사는데 2년 전부터 부친이 중증치매에 걸려 겪은 우여곡절을 들려줬다. 처음엔 사람을 사서 아버지를 돌보게 했는데 “왜 남의 집에 맘대로 들어오느냐.”며 욕설과 함께 몽둥이질까지 해 포기했다고 한다. 결국 1년 넘게 유료 요양시설에 보냈지만 막대한 요양비용에 빚까지 지게 되자, 자신이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서 모시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직장에서 돌아오는 며느리 얼굴에 침을 뱉고, 욕설을 퍼붓는 등 아버지의 증상이 심해져 아내와 심각한 갈등을 빚고 있다는 속내까지 털어놨다. 시골에서 친척이 올라온 김에 아버지를 부탁하고 주간보호센터 등 공공기관 요양원을 둘러보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어느 정도 취기가 돌 즈음, 집에 가야 된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택시를 기다리는 동안 그는 엉뚱하게 ‘불량주부’라는 드라마를 봤냐고 물었다. 무슨 내용인지는 대충 알고 있다고 하자,“내가 드라마속 주인공처럼 느껴진다.”면서 “기약없는 주부역할을 언제 그만두게 될지 답답한 마음”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TV드라마 불량주부는 실직한 남편이 ‘전업주부’의 역할을 맡게 되면서 살림과 양육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고, 부인은 직장생활의 고통을 체험하면서 남자들의 고민을 이해하게 된다는 줄거리다. 나는 헤어지는 자리에서 “자넨 절대 불량주부가 아니고 ‘우량주부’니까 머지않아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는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러자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하며 자리를 떴다. 그와 헤어진 뒤 치매관련 정보를 유심히 보는 버릇이 생겼다. 인터넷 사이트 ‘치매가족협회’에도 들른다. 게시판에 올려진 치매환자 가족들의 사연을 읽다 보면 후배에게 정보와 위안의 말을 전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다. 현재 국내의 치매환자는 65세 이상 노인의 8.3%인 34만 6000여명으로 추산된다. 전문가들은 10년 후 60만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치매는 완치가 어렵고 치료기간도 얼마가 걸릴지 몰라 고질병으로 불린다. 막대한 경제적 부담은 물론 밀착감시가 필요해 가족들을 지치게 만든다. 특히 고령인구 증가와 함께 노인성 치매환자도 급증하는 추세다. 그러나 전국의 치매 요양병원은 537개, 병상수는 공공·민간을 통틀어 4만개(무료병상 2만개)도 안 된다. 보건복지부에서 병원치료가 필요하다고 분류한 8만 3000여명의 절반도 수용할 수 없는 규모인 셈이다. 그나마 유료시설의 경우 월 100만∼250만원의 시설이용료를 부담해야 돼 서민들로서는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월 12만원 정도를 받고 출·퇴근 식으로 운영하는 주간보호센터 등의 재가복지시설에는 대기자들로 넘쳐난다. 치매환자는 본인은 물론 단란한 가정을 파탄으로 빠뜨린다. 가정파탄으로 이어지는 치매환자를 가족들만으로 감당하기엔 힘이 부친다. 치매환자를 돌보다 지쳐버린 가족들이 환자를 유기하거나 살해하는 사건들도 자주 일어나고 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현재 정부의 지원정책은 저소득층(기초생활수급대상자)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차상위층을 비롯한 서민층의 지원은 전무하다. 다행히 정부는 2007년 공적 노인요양보장제를 부분도입하고 2013년부터 전면확대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관련법 제정과 재원마련, 시설구축 등 해결 과제들도 산적해 있다. 치매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전문성을 갖춘 중간 관리자나 간병인을 체계적으로 양성하는 교육시스템 마련, 환자 부양가정에 지원을 늘리는 등 세심한 준비가 필요하다. 유진상 공공정책부 차장 jsr@seoul.co.kr
  • 인사 안한다고 후배 몽둥이질 개그맨 김진철 영장

    서울 송파경찰서는 10일 후배를 몽둥이로 마구 때린 개그맨 김진철(25)씨에 대해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에 따르면 KBS 개그맨 18기 출신인 김씨는 지난달 초 방송국 분장실에서 2년 후배인 김모(29)씨를 밀대로 5차례 정도 때린 데 이어 지난 4일 밤 10시쯤 KBS 연구동 옥상에서 20기 후배 14명을 불러 일명 ‘원산폭격’을 시키면서 후배 김씨의 허벅지와 허리 등을 각목으로 30여차례 때려 전치 6주의 상처를 입힌 혐의다. 조사 결과 김씨는 피해자 김씨 등 개그맨 공채 후배들이 평소 인사를 잘 하지 않는 등 건방지다는 이유로 폭행을 휘두른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는 KBS 2TV의 개그콘서트에서 인기코너인 ‘깜짝 홈쇼핑’에 ‘김깜박’으로 출연해 왔다. 김준석기자 hermes@seoul.co.kr
  • ‘이건희 회장 고대사태’ 학생들 비판 언론사마다 미묘한 차이

    관련자들로선 곤혹스러웠겠지만, 지난 주 이건희 회장의 명예박사 학위수여식을 둘러싸고 고려대에서 벌어진 소동은 언론의 관점에서 흥미로운 사건이었다. 삼성은 대한민국의 간판 기업인데다 어렵다는 신문 시장에서 최대 광고주로 꼽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2일 수여식 뒤 3일 고대 보직교수들의 사퇴 선언으로 이어진 이 사건은 3·4일자 신문에 어떻게 반영됐을까. 큰 틀에서 보자면 학생들의 행동을 비판하면서 사건 추이와 다양한 반응을 전달하려 했다는 점에서 큰 차이는 없다. 그러나 미묘한 차이점들은 눈에 띄었다. 조선일보는 4일자 9면 ‘이건희 명박 후폭풍’ 기사에서 부제목으로 ‘좌파단체 학생들이 주동’,‘경찰, 민노당원 참여 조사’를 나란히 배치했다. 조선의 정치적 지향점을 감안해보면 포인트를 어디다 두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미친 개에게는 몽둥이가 약’이라는 인터넷판 제목은 선정성에서 단연 압권이었다. 그러나 사설에서는 균형을 갖췄다. 같은 날짜 사설 ‘이건희 회장 학위 수여식의 일부 고대생’에서 “식장 주변에 피켓라인을 만들어 자신들의 뜻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꼬집으면서도 “물론 무노조 경영과 편법상속을 둘러싼 논란같은 삼성의 ‘그늘’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라고 지적했다. 중앙은 기사를 두드러지게 전진 배치했다.3일자 2면에 기사를 배치하면서 부제목으로 ‘기념관 건립 기부금 400억이 모자랐나‘로 뽑은데 이어 4일자에는 1면 하단에 고대 보직교수들의 사의 표명 소식을 싣고 10면에 학내외 반응을 다뤘다.‘대학의 지성 고작 이 수준인가’라는 4일자 사설도 다른 신문들과 달리 사설 가운데 첫번째 꼭지로 다뤄졌고 “실망과 개탄을 금할 수 없다.”며 비난의 톤도 한층 끌어올렸다. 동아는 삼성과 고려대 사이에 끼어있는 관계 때문인지 조선·중앙과는 대별되는 태도를 보였다.3일자 2면에 배치된 기사에서는 학위 수여식 사진을 크게 배치하고 학생들의 시위 사실은 기사 말미에 간략하게만 언급했다. 그러나 4일자에서는 8면에 3꼭지를 할애해 다양한 의견을 전달했다. 특히 기사의 주요 제목으로 굵게 뽑힌 “불과 60여명이 학교 명예에 먹칠”이 눈길을 끌었다. 일부의 문제일 뿐이라는 강조로 보였다. 사설은 내지 않았다. 이에 반해 한겨레·경향신문의 기사는 학생들과 학교의 문제점을 모두 지적했다. 사설을 내지 않은 한겨레와 달리 경향은 이 문제를 사설로 다뤘다.4일자 ‘유감스러운 고려대의 명예학위 저지 소동’에서 학생들의 무분별한 행위를 비판한데 이어 대학들의 명예박사학위 수여 기준과 우리사회 전반의 기부문화 문제를 짚으면서 대학의 지성적인 의사소통을 주문했다. 서울신문은 4일자 3면에 ‘고개숙인 고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사태의 전말과 엇갈리는 반응을 간결하게 전달했다. 같은 날짜 사설 ‘세계 고대에서 일어난 일’에서는 이 회장을 ‘탁월한 경영인’이라고 평가한 뒤 학생들에 대해서는 ‘잘못된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고 비판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일본 얼라들 땜에 억쑤로 열받아” “요로코롬 말해분게…고맙쇼잉”

    “일본 얼라들 땜에 억쑤로 열받아” “요로코롬 말해분게…고맙쇼잉”

    영·호남 국회의원들이 28일 모처럼 진땀을 뺐다. 짧게는 38년, 길게는 64년 동안 익숙해진 토박이말 대신 낯선 사투리로 연설한 까닭이다. 국회 지방자치발전연구회가 마련한 ‘사투리 어울림 한마당’에서였다. 의원들은 외국어라도 하듯 비지땀을 쏟았다. 급한 마음에 고향 말씨도 섞여 ‘국적 불명’의 사투리도 적지 않았다.‘영남 표준말’에선 ‘억쑤로’가 맞는데, 호남 의원은 ‘억씨로’라고 실수하는 식이었다. 반면 영남 의원들은 ‘∼잉’으로 끝나는 호남 말투가 영 어색한지 목소리가 떨렸다.‘어’ ‘여’를 ‘아’ ‘야’로 헷갈리게 말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독도 문제·저출산 대책 등 다채로운 주제로 청중들에겐 폭소를 안겨주었다. ●“갱상도 표준말, 억씨로 불편해 죽겠네예.” 전북 전주덕진 출신의 열린우리당 채수찬 의원은 “채수찬 ‘어원’(의원)입니다.”라는 말로 폭소부터 이끌었다. 영남권에서 ‘으’,‘어’ 발음을 구별하기 힘든 것을 ‘벤치마킹’한 것. 그는 특히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다며 “60년대 새마실운동 만키로 9시만 되불만 전기를 끄나∼삐고,10시부터는 통행을 금지시캬, 아를 만들도록 해야 합니더. 이거이 에나지도 줄이고, 일석이조 아입니꺼.”라고 주장했다. 평소 구성진 호남 사투리로 유명한 열린우리당 주승용 의원은 “일본 얼라들이 독도를 저거 땅이라고 하니깐 억쑤로 열이 받아가꼬 마 요새 잠을 설친다 아잉교. 일본 아∼들 다리 몽둥이를 다 뿌라삐고, 뒤통수 쎄게 한대 쌔리뿔고 나서 독도뿐만 아이라 대마도도 마 우리땅이라꼬 큰 소리로 해불고 싶드라고예.”라고 외쳤다. 광주 출신인 열린우리당 양형일 의원은 억센 영남 말을 빌려 본회의장 좌석 배치를 바꾸자고 말했다. 그는 “문희상 의장하고, 박근혜 대표하고 나란히 앉차∼야 됩니데이. 니캉내캉 이 얘기 저 얘기 하믄 국민들도 좋다 할 낍니다.”면서 “생각해 보이소. 억씨게 생긴 문 의장하고, 곱상한 박 대표 나란히 앉차∼노믄 누가 덕 보겠습니꺼.”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하이고, 허불나게 어려워라이.” 영남권 사투리가 ‘모국어’인 의원들도 ‘호남 표준말’에 도전했다. 경남 통영·고성의 한나라당 김명주 의원은 유창한 호남 사투리로 고향 자랑을 실컷 한 뒤 이순신 장군의 시 구절을 패러디해 “한산섬, 저 뭐다냐, 그 바닷가에 혼자 앙거서, 질로 큰 칼을 허리춤에 차뿔고, 시름에 잠겨 있는 시방…워데서 한 가락 피리가락이…”라고 능청을 떨어 웃음보를 터뜨리게 했다. 부산 출신인 열린우리당 조성래 의원은 영화 ‘황산벌’을 본떠 “쥐뿔도 없음시로, 툭하믄 군사를 내라 말아라 허는 거여?”,“워메 왕이 욕을 허여야? 쪼까 웃긴당께.”라고 1인2역에 도전했다. 경북 봉화 출신인 한나라당 김충환 의원은 “선거법이 거시기 된 다음부터는 정치인이 겁나게 성가시게 되부랐소. 오늘 요로코롬 말해분게 속이 시원해부러잉. 고맙쇼잉.”이라며 최근 관련법 위반혐의로 조사를 받은 사실을 해명하기도 했다. ●“말은 달라도, 우리는 하나” 사투리 바꿔치기에 출전한 ‘선수’들은 ‘원어민 교사’가 녹음해준 테이프를 반복해 들었다고 입을 모았다. 연설 내용은 이미 다 외웠지만, 혹시나 실수할까 두려워 발표 직전까지 마음을 졸이며 원고를 들여다보기도 했다. 주승용 의원은 “‘슨거’ 때만 되믄, 지역 감정을 악용했는디 이제는 경상도 전라도는 아름다운 친구라는 거 보여드릴 낍니더.”라고 장담했다.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15) 변산 태진스님과 정감록 사건(下)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15) 변산 태진스님과 정감록 사건(下)

    1733년 7월 전라도 남원성벽에 괴벽보가 나붙었다. 머지않아 영조 임금이 쫓겨나고 새 세상이 열린다는 내용이었는데 벽보를 직접 작성한 사람은 남원 부자 김영건의 아들들이었다. 이 벽보에는 김씨들의 숙적인 이유성 일가의 이름이 도용돼 있어 이씨들을 모함하기 위해 그랬을 거라고 추측해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이 그처럼 단순하고 우발적이었을까? ●이여매와 이여진 형제의 이름으로 된 벽보 남원성벽에 내걸린 벽보는 이유성의 아버지 이여매와 숙부 이여진의 이름으로 되어 있었다. 이 형방은 문서를 읽고 나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세상에 이런 흉악한 문서에 제 이름 석자를 붙여 걸어둘 바보가 과연 있겠는가? 형방은 박 호장, 최 이방 등과 이 문제를 상의한 다음 이씨 집안과 다투고 있던 김영건 부자에게 혐의를 두었다. 일차로 김영건 부자를 연행한 다음 그 집안을 수색했다. 그 과정에서 벽보의 초안이 발견돼 사건은 싱겁게 마무리되는 듯했다. 김씨들이 괴문서의 말미에 이여매 형제의 이름을 적어 놓았다면, 그것은 어처구니없는 실수였다. 그러나 원수의 이름을 빌려 반역의 의지가 명백한 벽보를 붙일 만큼 김씨들은 무지몽매했을까? 벽보를 손수 쓴 김원팔로 말하면 제법 공부를 많이 한 사람으로 그 정도 계산도 못할 만큼 청맹과니는 결코 아니었다. 김원팔 형제가 남문 옆 성벽에 벽보를 붙여두고 집으로 돌아간 직후, 세 사람의 괴한이 그 자리에 나타났다. 둘은 좌우에서 망을 보았고 나머지 한 사람은 벽보의 맨 끝에 “이여매와 이여진 씀”이란 글귀를 추가했다. 그 글씨체는 영락없이 김원팔의 것이었다. 하지만 좀더 자세히 살펴 보면 왼쪽으로 좀더 비스듬히 올라간 것이 눈에 띌 만도 했다. 눈썰미가 남다른 이방 최정도는 그 점을 이미 정확히 짚고 있었지만, 그는 누구에게도 필체의 미세한 차이를 말하지 않았다. “사건은 이 정도로 마무리돼야 한다. 만약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된다면 남원은 헤어날 길이 없는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 들어간다. 지금 필요한 것은 사건의 근원적인 규명이 아니다. 확대 수사는 도리어 민심을 뒤흔들어 놓을 뿐이다. 여기서 종결시키자. 더 이상의 불필요한 잡음을 불러일으키지 말고 사적 원한에 근거한 우발적인 사건으로 마무리하자. 그것이 모두에게 좋다. 어차피 이 세상은 그런 것이다!” 이것이 남원의 사정을 누구보다 꿰뚫고 있던, 아니 18세기 한국사회의 물정을 정확히 파악했던 최정도 이방의 생각이었다. ●김영건 일가를 저버린 지하조직 따지고 보면 그랬다. 조직은 김원팔 일가를 희생양으로 삼기로 작정했다.18세기에는 하삼도만 해도 남원 운봉 함양의 지리산, 부안의 변산, 충청도 계룡산과 오서산, 합천의 가야산 등지를 잇는 지하조직이 결성돼 있었다. 조직원의 수가 얼마나 됐고 조직의 구성이 어땠는지 전모를 정확히 파악할 길은 없지만, 수십 수백 명이 가담한 비밀결사가 존재했던 것만큼은 사실이었다. 그런 지하조직의 최종 목표는 조선왕조를 전복시키고 용화세계 또는 미륵세상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동학에서 말하는 지상천국, 후천세계의 원형이 이미 18세기에 형성되고 있었다. 지하조직은 ‘정감록’을 비롯한 각종 비결을 앞세워 민심을 선동했다. 조직은 나라를 원망하는 각양각색의 인사들을 점조직으로 편성했다. 조직의 활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각처의 부자들을 포섭하거나 도적질을 하기도 했다. 남원부자 김영건 같은 이는 지하조직의 입장에서 보면 무척 쓸모있는 인물이었다. 김영건은 천민출신이라서 기존의 사회질서를 반대했으며 자금력도 어느 정도 충분한 데다 김원팔과 같이 유능한 아들이 있어 지하조직의 한 귀퉁이를 맡길 만했다. 김영건 자신은 아마 짐작도 못했을 테지만, 지리산에 근거지를 둔 지하조직은 오래 전부터 김영건 일가를 포섭하는 데 큰 관심이 있었다. 일찌감치 지하조직의 지도부는 김영건의 비밀을 알고 있었다. 남원, 운봉, 함양 일대를 제 손금 들여다보듯 훤히 아는 탁발승들이 바로 조직의 중추였는데,17세기 후반 영건의 어머니 분금이 무작정 노씨 집을 뛰쳐 나왔을 때 지리산에서 굶어 죽지 않고 무사히 남원으로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이 실은 어느 탁발 승려 덕택이었다. 그 인연은 영건이 모르는 사이에도 계속됐었다. 나중에 분금이 아들 영건에게 남긴 유언 가운데 부처님의 원력을 말한 것도 다 그런 사정이 있어서 나온 말이었다. 양반 정 노인의 신분시비 사건으로 김영건은 큰 충격을 받아, 현세를 지배하는 논리에 회의를 품게 된다. 하지만 그는 천품이 온화하고 조심성이 많으며, 이미 노년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조직을 위해 물불 안 가리고 희생을 바칠 사람은 못 되었다. 지하조직은 그런 판단을 했기 때문에, 그의 세 아들들에게 더더욱 큰 기대를 걸었다. 지하조직은 지도부에 속한 변산의 승려 태진과도 연줄이 있는 최봉희를 시켜 김원팔, 김원하, 김원택 3형제에 대한 접근을 시도했다. 최봉희는 우선 비결을 가지고 그들을 설득하려 했고, 가장 먼저 그 먹이를 문 사람은 김영건의 막내아들 김원택이었다. 그 덕분에 김원팔과 김원하를 조직에 가담시킬 수 있게 됐다. 그런데 1732년 가을부터 김원택은 조직을 이탈할 기미를 보이고 있었다. 김원택은 지하조직이 추구하는 목적이 지극히 비현실적이라고 판단했고, 조직 활동은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해 김씨 일가의 담당인 최봉희 보기를 꺼려했다. 그는 형들과도 일정한 거리를 취하고 있었다. 조직은 김원택에 대해 다각도로 회유책을 폈으나 전혀 통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됐다. 조직은 마지막 수단을 고안했다. 김영건 일가에게 괴벽보를 작성해 남원읍성에 부착하도록 지시했다.3형제가 공동으로 하라는 명령이었다. 이런 식으로라도 그들을 묶어두지 않으면 장차 조직을 관리하기가 어려울 것이란 게 상부의 판단이었다. 김원팔 형제가 벽보를 붙이는 순간에도 조직은 멀리서 그 광경을 감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현장에 나타난 것은 약속한 3형제가 아니었다. 김원택이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이 마음에 걸린 담당책 최봉희는 상부와 긴급히 상의했고, 그 처방은 간단명료했다. 김씨 일가를 희생시켜라! 그리고 최봉희 넌 멀리 도망쳐라! 우리 조직의 남원 지부는 당분간 활동중지다! 그러나 이 벽보를 계기로 민심을 한 번 뒤흔들어 놓을 것이다. ●김원택과 최봉희의 머리싸움 거슬러 올라가 살펴 보면, 남원의 일부를 담당한 최봉희는 부자 김영건이 가장 사랑하는 막내아들 김원택에게 접근했었다. 최는 세상 물정에 두루 밝은데다 붙임성이 대단히 좋았다. 게다가 남원에선 손꼽히는 양반가문의 후예였다. 집이 가난한 것만 빼놓으면 도무지 나무랄 데가 없는 선비였다. 출신이 미천해 고민하고 있던 김원택 일가로선 그런 최봉희와 사귀게 된 것이 큰 영광이었다. 최봉희의 지식에 매료된 김원택은 장형 원팔과 중형 원하에게 차례로 최를 소개했다. 김원팔 등은 매일 같이 최봉희를 만났고 그 때마다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후의를 베풀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마치 최봉희가 김원팔의 식객(食客)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처음엔 정말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최봉희는 김씨 일가의 내면을 완벽하게 통제하기 시작했고, 김원택은 바로 그 점을 못마땅해했다. 그래서 원택은 최가 자기 형들과 함께 만든 필묵계에도 관여하길 거부했다. 그는 두 형과 아버지 김영건에게 최를 멀리하라고 몇 차례 간청하였으나 이미 소용없는 일이었다. 벽보를 붙이는 문제가 집안에서 거론되자 김원택은 최가 배후 인물임을 직감했다. 그래서 그는 가장 충직한 종 남산을 성밖으로 내보내 최봉희가 숨을 만한 곳을 미리 수소문하라고 했다. 만일의 경우 관가에 연락해 최봉희가 즉각 검거되도록 손을 써둔 것이었다. 김원택은 장차 아버지와 형들이 벽보사건의 주범으로 몰려 멸문의 화를 당할 게 너무 억울했다. 만일 집안에 화가 닥치면 최를 비롯한 지하조직도 분쇄되어야 마땅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지하조직은 점조직이라 최봉희 위에 누가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원택은 그동안 최봉희에게 들은 이야기를 생각나는 대로 모두 정리해 보았다. 문득 변산 승려 태진의 이름이 뇌리에 떠올랐다. 가만히 생각할수록 태진과 최봉희의 관계는 예사롭지 않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사건이 터졌을 때 원택은 배후조종자로 태진을 고발했다. ●‘정감록’ 사건의 마무리 김영건 4부자를 비롯해 최봉희, 태진 등은 제각각 검거된 장소와 시각은 조금씩 달랐지만 모두 서울로 압송되었다. 그들은 창덕궁의 정문인 인정문(仁政門)에 설치된 특별수사본부에 끌려가 엄한 취조를 받았다. 때로 국왕 영조가 직접 심문에 나설 정도였다. 제1급 시국사건으로 취급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사건에 연루되어 전라도에서 서울까지 끌려가 조사를 받은 사람이 삼사십 명이나 됐고, 전라도 각처에서 일시 검거돼 취조받은 사람은 수백을 헤아렸다. 인정문 앞에선 열흘 넘게 날마다 지독한 고문이 계속됐다. 몽둥이찜질은 기본이고, 인두로 몸 지지기, 정강이뼈 뒤틀기, 무릎 관절 부수기 등은 이를테면 선택사항이었다. 혐의자들은 차례로 단독 심리를 거쳐, 관련자와 대질 신문을 받은 뒤 다시 재심리를 받았다. 중간에 말이 바뀌면 모든 수사과정이 처음부터 되풀이됐다. 하루에도 여러 차례 거듭된 고문과 그 중간에 잠깐 끼어든 달콤한 회유, 그리고 교활한 유도신문이 연달았다. 머리 좋고 경험 많은 의금부 관리들을 비롯해 조정대신들 그리고 국왕 영조까지 직접 심문에 나섰기 때문에, 그 자리에 끌려 나온 사람은 여간한 배짱과 지능으로는 조금도 숨기거나 속일 수가 없었다. 며칠만 닦달을 하면 고분고분 모든 사실을 실토하게 되었다. 특히 사건 심리의 초기 단계에는 가능한 모든 범위로 수사가 확대되었다. 털끝만큼이라도 혐의가 있어 뵈는 사람은 연일 추가로 체포돼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김원팔과 그의 아버지 김영건은 고문을 견디다 못해 판결도 내려지기 전에 형틀에서 죽고 말았다. 실상 벽보 사건에 전혀 가담하지 않는 김원택도 맞아 죽었다. 고문을 잘 견뎌 용케 살아남은 이는 김원하였다. 그는 역적의 아들이란 죄로 또다시 두들겨 맞은 다음 변방으로 유배되었다. 이럴 때도 고수는 따로 있었다. 지하조직의 하급간부 최봉희는 사형을 받아 마땅하다는 수사관들의 의견이 있긴 했지만 그의 죄를 증명할 결정적인 단서가 나오지 않아 외딴섬으로 귀양가는 데 그쳤다. 본래 점조직으로 운영된 조직이다 보니 김영건 부자는 최봉희의 윗선이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그들은 수사과정에서 최봉희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했지만, 특수 훈련을 받은 최봉희는 노련했다. 최는 갖은 고문에도 불구하고 지하조직의 비밀은 하나도 노출시키지 않은 채, 아무렇게나 생각나는 대로 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불러제침으로써 수사본부를 피곤하게 만들었다. 나중에 수사본부는 최봉희를 미치광이로 규정함으로써 그에 대한 수사를 매듭지었다. 조직의 거물이자 당시 전라도내에서 이름난 승려였던 변산의 태진은 자신을 변호하기에 충분한 지혜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남사고 비결’을 소장했다는 점만 인정했을 뿐, 벽보 사건과 무관하다는 점을 끝까지 주장했다. 영조는 “태진의 대답이 범행을 자백한 것이나 마찬가지구나!”라고 하여 태진이 사건에 관련돼 있다고 보았지만 구체적인 물증을 확보하지 못했다. 결국 다른 방법이 없어 태진을 함부로 죽이지 못하고 섬으로 귀양보냈다. ●조정은 지하조직의 존재를 알고 있었는가? 당시 도승지 홍경보는 영조에게 이런 조언을 했다.“지금 영남 하도(下道, 경상남도)와 호남의 인심이 매우 험악합니다. 만약 수사를 여기서 멈춘다면 괴수들이 비웃을 것입니다. 각별히 헤아려서 연루자를 체포해야겠지만 마구잡이로 잡아들이면 안 됩니다. 그런 뜻으로 공문을 보내면 어떻겠습니까?” 영조는 홍경보의 말이 옳다며 민심을 자극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수사를 계속하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수사는 불가능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하조직에 음양으로 관련돼 있었던 데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사정이 조금만 더 악화되면 조직에 대거 참여할 기세였다. 이런 판국에 혐의자들을 함부로 붙들어다 고문하게 되면 조정이 정말로 우려하는 반란 또는 폭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었다. 그야말로 혹 떼려다 혹 붙인다는 말처럼 될 수도 있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관리들은 자신들의 임기에만이라도 그저 별일 없이 조용하기를 바랐다. 얼마나 애를 써서 얻은 벼슬자리인가. 아직 본전을 다 뽑지도 못했는데 만일 난리가 일어나 벼슬을 놓치게 되는 일이 생겨선 절대 안 될 일이었다. 그래서 그들 관리들은 이구동성으로 아뢰었다. “엄히 조사를 해봤습니다만 별탈은 없는 듯합니다. 백성들이 불안해서 생업을 소홀히 하는 일이 없도록 이제 수사를 종결해야 됩니다. 이번 사건은 배후에 무슨 특별한 조직 같은 것은 없습니다. 그저 시골의 무식하고 못돼 먹은 반역자 김영건 4부자가 사적인 원한으로 엉뚱한 짓을 벌인 것입니다.” ●영조의 선택 영조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그 또한 알고 있었다.“역적 놈들은 과인의 목을 요구한다. 놈들은 이 나라가 망하기만 바라고 있다.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사건을 축소해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로 처리하는 것이 제일이다. 이것은 일부 몰지각한 놈들의 소행이라고!” 결국 왕의 생각이나 조정대신들, 지방관들의 뜻은 남원 이방 최정도의 견해와 다를 것이 없었다. 그렇게 둘러대긴 했지만 왕의 마음은 께름칙했다. 하필 왜 남쪽 지방, 그것도 전라도에서 이런 고약한 무리들이 자꾸 나오는 것일까. 왕은 자기의 친어머니가 전라도 출신의 미천한 나인인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이 더욱 산란했다. 그는 불편한 심기를 완전히 눅이지 못한 채 목청을 돋워 각도의 관찰사들을 독려했다. “전라도는 우리나라에서 잡술을 가장 숭상한다고 들었다. 근래 태진이란 중놈의 예언서를 보면 그 폐해의 심각성을 알만 하다. 예언서를 엄금해야 한다. 너희들 휘하의 지방관들에게 명하여 어리석은 백성들이 일체 그런 불온서적에 관심을 갖지 못하게 하라. 삿된 경전(邪經)을 버리고 성리학에 힘쓰게 하라.” 왕은 ‘정감록’에 대한 이데올로기 전쟁을 선포했다. 그러나 낡은 성리학으로 ‘정감록’을 이길 수 있을까. (푸른역사연구소 소장)
  • 쉬어가기˙˙˙

    이탈리아 정부와 경찰이 축구장 관중 폭력을 뿌리 뽑기 위해 초강경책을 쓰기 시작했다고. 이탈리아 경찰은 지난 16일 치러진 AS로마-레지나전에 앞서 서포터스로부터 칼과 몽둥이, 자극적인 문구가 새겨진 플래카드 등을 대량 압수하는 한편 경기장 상공에는 헬리콥터까지 띄워 관중들의 동태를 살폈다. 이탈리아 정부는 앞서 15일에는 경기중 관중석에서 물건이 날아 오면 즉각 경기를 중지시키고, 해당팀에 0-3패를 주는 정책 등도 시작했다.
  • 학교폭력 보듬은 ‘사랑의 손’

    “무엇을 잘못한 건지 스스로 깨달을 수만 있다면 너희를 용서할 수 있단다.” 1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 서울보호관찰소 대강당. 교복차림의 남녀학생 20여명과 학부모 3명이 책상을 두고 마주 앉았다. 법무부 산하 서울보호관찰소가 마련한 ‘용서와 화해의 장’에 참여한 이들은 보호관찰을 받고 있는 학교폭력 가해학생과 피해자 부모들이다. 학생들은 “엄마라고 생각하고 편하게 대하렴.”이라며 손을 건네는 조정실(47)씨가 어색한지 그저 멀뚱멀뚱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조씨가 딸(19)의 사연을 털어놓자 학생들은 진지한 얼굴로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조씨의 딸은 중학교 2학년이던 2000년 4월 점심시간에 학교 선배 5명에게 화장실로 불려나가 집단폭행을 당했다. 앞서 딸이 일진회 학생들에게 당한 괴로움을 털어놓았고, 조씨가 직접 그 학생들을 야단치자 보복을 한 것이었다. 몽둥이와 주먹, 발로 마구 때려 딸은 40여일 동안 입원치료를 받아야했다.5년이 지난 지금도 조씨는 편하게 잠을 이루지 못한다. 딸이 행여라도 악몽으로 괴로워할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조씨가 “처음에는 가해학생들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미웠다.”고 털어놓자 가해학생들의 머리는 더욱 더 수그러들었다. 이를 본 조씨가 “하지만 지금은 여기 있는 너희들이 모두 내 아들 딸과 같으니 서로 모든 것을 털어놓고 이야기해 보자.”면서 한 명씩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아이들이 비로소 자신들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창욱(가명·17)이는 학교 친구를 때리다 이를 부러뜨렸다. 창욱이는 “장난이라고 생각했지만 입에서 피를 흘리는 것을 보니 내가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그때부터 야단맞을까 두려워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학교 선배 집에 머무르게 됐다.”고 말했다. 그날부터 선배들과 어울려 학교 친구들 돈까지 뜯었지만 맞은 아이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피해 학생의 어머니 이모(47)씨는 고개를 떨군 창욱이에게 “너는 이미 잘못을 뉘우치고 있으니 그걸로 충분하다.”며 두 손을 꼭 잡았다. 행사가 끝난 뒤 예지(가명·15)는 “피해 학생 엄마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마음이 후련하고 무엇이 정말 잘못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서울보호관찰소 위광환 과장은 “학교 폭력 가해학생들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어른들의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행사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키르기스 아카예프 대통령 하야

    키르기스스탄에서 반정부 시위대가 정부 주요 건물을 점령하면서 옛소련 국가 가운데 그루지야와 우즈베키스탄에 이어 세번째로 민중혁명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러시아 이타르타스 통신은 야당쪽 발언을 인용, 아스카르 아카예프 대통령이 하야했다고 보도했다. ●시위대 기세에 경찰들 도주 24일 수도 비슈케크에서는 전날부터 모여들기 시작한 5000여명의 시위대가 대통령 관저와 정부청사 건물을 포위했다. 시위대는 몽둥이를 휘두르고 돌을 던지며 경찰과 대치하다가 건물을 경비하던 수백명의 경찰들이 도주하자 청사 안으로 진입했다고 목격자들이 전했다. 지난 13일 부정선거에 항의하며 남부지역에서부터 시위가 시작된 지 11일만이다. 시위대는 청사를 완전히 장악한 뒤 공무원들을 구타했으며, 가구와 집기 등을 건물 밖으로 내던지고 서류를 불태우기도 했다고 러시아 리아 노보스티 통신이 전했다. 전날 케네슈베크 듀셰바예프 내무장관은 “합법적으로 물리력을 이용한 진압을 할 수 있다.”며 강경진압 방침을 밝혔지만 이날 시위대를 향해 총을 발사하지는 않았다. 이어 시위대는 키르기스 국영 방송국을 점거했으며, 투옥돼 있던 야당의 핵심 지도자인 펠릭스 쿨로프 전 부통령을 풀어줬다. 지난 2000년 아카예프의 퇴진을 요구하다 투옥된 쿨로프는 석방 직후 “평화적인 권력이양을 위해 조만간 야당 지도자들과 회동하겠다.”고 말했다. ●혼미한 키르기스 정국 정부에서 아무런 공식발표를 하지 않고 있는 가운데 러시아 인테르팍스 통신은 아카예프 대통령 일가가 헬기편으로 인근 카자흐스탄으로 떠났다고 보도했다. 러시아로 도피했다는 설도 나오고 있다. 아카예프 대통령은 사건 당시에는 관저 밖에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또 키르기스 의회는 이날 밤 긴급 회의를 열고 새 대통령을 뽑는 선거 일정 등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현지 소식통들이 전했다. 한편 러시아는 이날 키르기스 주둔 러시아군에 중립을 지킬 것을 지시한 뒤 “키르기스는 조속히 법질서를 회복해야 한다.”고 밝혔다. ●장기집권·종족갈등이 원인 반정부 세력이 노란색을 상징색으로 선택하면서 ‘레몬혁명’으로 불리고 있는 이번 시위는 지난달 27일 총선 1차 투표와 이달 13일 결선투표를 통해 야당이 참패한 뒤 부정 선거 의혹이 제기되면서 남부지역의 오슈와 잘랄아바트 등지에서부터 시작됐다. 이면에는 가난한 남부지역의 우즈베키스탄계와 비교적 부유한 북부지역 키르기스계 주민들간의 종족 갈등이 숨어 있다. 옛소련 시절인 1990년부터 장기 집권해온 북부출신 중심의 아카예프 정권에 대한 분노가 총선을 계기로 터져나온 것이다. 또 2003년 그루지야, 지난해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의 옛소련 국가들에서 민중혁명이 잇따라 성공한 것도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장택동기자 taecks@seoul.co.kr
  • 해경4명 억울한 옥살이 12년

    해양경찰 대원이 1955년 중국으로 피랍돼 12년동안 옥살이를 했으나 정부로부터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사실이 23일 뒤늦게 밝혀졌다. 당시 해양경찰대 소속 경비정인 ‘견우정’ 대원이었던 안영진(80·충북 보은군 수한면), 박래봉(79·부산시 동래구 명장2동), 김창호(77·제주도 북제주군 조천읍), 주시완(81·인천시 남구 봉춘동)씨 등 4명은 지난 6일 국민고충처리위원회에 이같은 사실을 진정했다. 안씨는 당시 계급이 경사였고 박씨 등 3명은 순경이었는데, 이들은 같은해 12월25일 오전 4시쯤 200t급 견우정에서 근무중 야음을 틈타 평화선을 침범해 불법 조업하던 중공 어선을 나포하던 중 오히려 피랍됐다. 견우정의 제1승선조인 이들은 당시 중공 선단중 한 어선에 재빨리 올라탄 뒤 저항하는 어부들을 신속히 제압하고 조타실, 기관실 등을 장악했으나 어둠속에서 추격해온 7∼8척의 중공 어선과 교전중 본선인 견우정과 떨어지면서 피랍되고 만 것. 이들은 피랍 과정에서 총 개머리판과 몽둥이 등으로 유혈이 낭자하게 구타당한 뒤 중공 정부로 넘겨져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와 지난(濟南)시의 감옥에서 마음대로 죽지도 못하는 극한의 옥고를 치러야 했다.1967년 4월 중공 정부가 구형한 형기를 마치고 풀려나 홍콩의 한국대사관을 통해 피골이 상접한 몰골로 돌아왔으나 이미 행방불명을 이유로 면직된 상태였다고 주장했다. 이승만 정부는 이들이 피랍된 뒤 1961년11월까지 종전대로 가족들에게 임금을 지급해 왔으나 박정희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이마저도 중단해 가족들 역시 ‘굶기를 밥 먹듯’ 하며 처참한 생활을 이어갔었다. 이들은 다행히 고향으로 돌아온 뒤 7개월만에 복직됐다 스스로 그만두거나 정년퇴직했으나 중국에서의 옥살이 기간이 복무기간에서 빠져 퇴직금. 연금에서도 손해를 보아야만 했다. 특히 이들 중 주씨는 작년 8월 옥살이에서 얻은 지병 등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으며 박씨는 당시 고문으로 청각을 잃었고 안씨와 김씨도 모두 심각한 후유증을 앓아 매일 병원 신세를 질 정도이다. 제주 김영주기자 chejukyj@seoul.co.kr
  • [녹색공간] 정몽주는 누가 죽였는가/이현주 목사

    통일되면 가보고 싶은 곳이 몇 군데 있는데 그중 한 곳이 개성 선죽교다. 선죽교는 이방원의 지시로 조영규가 정몽주를 쇠몽둥이로 쳐죽였다는 곳이다. 정몽주가 이성계를 문병갔을 때 이방원이 술상을 차려 대접하면서 그의 속셈을 떠보려고 읊었다는 시조는 이렇다.“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어진들 긔 어떠리. 우리도 이같이 얽어져 백년까지 누리리라.” 이에 화답하여 읊은 정몽주의 시조는 ‘단심가’ 라는 제목까지 붙을 만큼 널리 알려져 있다.“이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이방원의 노래에 담겨진 뜻은 말 그대로,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떠냐, 형편 닿는 대로 시절의 변화에 적당히 응하면서 이럭저럭 살자는 것이다. 세상에는 이런 태도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없잖아 있다. 그런 사람들을 일컬어 (이방원)이라고 불러 보자. 그들에게는 남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이루어야 할 무슨 뜻이 없다. 반면에 정몽주의 단심가에는 말 그대로 붉은 핏발이 서려 있는 느낌이다. 내 뜻과 소신에는 변함이 없다. 백번을 죽여도 내 뜻을 빼앗거나 꺾지는 못할 것이다. 세상에는 이런 태도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없잖아 있다. 필요할 경우 자기 뜻을 이루기 위해 남을 죽일 수도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을 일컬어 (정몽주)라고 불러 보자. 그날, 선죽교에서는 누가 누구를 죽였던 것일까? 역사는 이방원이 정몽주를 죽였다고 말한다. 그 사건 이후로 정몽주의 모습은 사라지고 이방원이 나중에 임금까지 된 것을 보면 틀린 기록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방원)이 (정몽주)를 죽인 것은 아니다.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떠냐, 형편 닿는 대로 한 백년 살다가 죽지. 이런 노래를 부른 (이방원)에게 누구를 죽이면서까지 이루어야 할 계획이나, 반드시 관철해야 할 뜻이 있었겠는가? 그랬다면 그 사람은 (이방원)이 아니라 (정몽주)다. 그러니까 그날 선죽교에서 정몽주를 죽인 자는 (이방원)이 아니라 이방원의 얼굴을 한 (정몽주)였던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피바람이 불었을 리 없다. 정몽주의 얼굴을 한 (정몽주)를 이방원의 얼굴을 한 (정몽주)가 죽였다.(이방원)은 남을 죽여서라도 반드시 이루어야 할 무엇이 없는 사람이다. 그에게는 남의 목숨을 없애면서까지 관철시켜야 할 뜻이나 계획이 없다.‘논어’에 보면 공자가 그런 분이었다는 기록이 있다(제9,‘자한’편). 실제로 그날 선죽교에서 공자가 정몽주를 만났다고 상상해 보자. 그가 과연 부하를 시켜 쇠몽둥이로 정몽주를 쳐죽였겠는가? “그릇된 확신이야말로 모든 미망 가운데서도 가장 사람을 황폐케 하는 것이다. 아돌프 히틀러도 폴 포트도 자기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확신에 찬 사람들이었다.”(소걀 린포체). 이것은 반드시 이래야 한다고 확신하여 그 확신을 관철코자 하는 사람들과 그것은 결코 그럴 수 없다고 확신하여 그 확신을 목숨 걸고 지키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들이 만나면 (정몽주)가 (정몽주)를 죽이는 살벌한 선죽교의 역사가 되풀이될 수밖에 없을 터인데…. 세계가 당장 오늘 밤에 끝장난다 하더라도,“네 뜻이 그러냐? 내 뜻은 다르지만 네가 없어지면 나도 없어져야 하니 내 뜻을 꺾으마. 어디 한번 네 뜻대로 해보자.”고 말하는 사람 좀 보고 싶다. 이현주 목사
  • 北 核무기 보유 공식선언

    북한이 10일 북핵 문제를 논의하는 6자회담과 관련, 회담 참가의 무기한 중단과 함께 핵무기 제조·보유를 처음으로 공식 선언했다. 북한 외무성은 이날 성명을 통해 “회담 참가 명분이 마련되고 회담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 충분한 조건과 분위기가 조성되었다고 인정될 때까지 불가피하게 6자회담 참가를 무기한 중단할 것”이라고 발표했다고 조선 중앙통신이 전했다. 북한 외무성은 또 “부시행정부의 증대되는 대조선 압살정책에 맞서 핵무기전파방지조약(NPT)에서 단호히 탈퇴했고 자위를 위해 핵무기를 만들었다.”면서 “우리의 핵무기는 어디까지나 자위적 핵억제력으로 남아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지난 2일 미 부시 대통령의 새해 국정연설을 계기로 조기 재개 가능성이 예상되던 6자회담은 당분간 표류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북한의 핵무기 보유 선언을 계기로 미국내 대북 강경파를 중심으로 6자회담 무용론이 확산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정부는 이날 오후 늦게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어 북측 성명 내용을 분석하고 향후 6자회담 대책 등을 숙의했다.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은 북핵 문제 협의차 10일 오전 미국으로 떠났다. 한·미 양국은 오는 14일 워싱턴에서 외교장관회담을 갖고 북한 외무성 성명 내용을 평가하고 향후 대응책을 논의한다. 북한 외무성은 성명에서 “2기 부시 행정부는 대통령 취임연설과 연두교서, 국무장관의 국회인준 청문회 발언 등을 통해 우리와는 절대 공존하지 않겠다는 것을 정책화했다.”며 “미국이 핵몽둥이를 휘두르면서 우리 제도를 기어이 없애버리겠다는 기도를 드러낸 이상 우리 인민이 선택한 사상과 제도,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핵무기고를 늘리기 위한 대책을 취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외무성은 이어 “오히려 그들은 ‘폭압정치의 종식’을 최종목표로 선포하고 우리나라(북한)도 ‘폭압정치의 전초기지’로 규정했으며 필요하면 무력사용도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고 폭언했다.”고 강변한 뒤 “대화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우리의 원칙적 입장과 조선반도를 비핵화하려는 최종목표에는 변함이 없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이날 북한의 ‘핵무기 보유 선언’과 관련해 이규형 외교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북핵은 용인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재천명했다. 이규형 대변인은 또 북한의 6자회담 참가 무기한 중단 발표와 관련,“유감의 뜻을 표명한다.”고 밝히고 “북한은 6자회담이 열릴 동기가 조성되지 않았다고 하지만 이제는 조건없이 회담에 참여해야 할 때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이 대변인은 이어 “그간 북한의 핵능력에 관해서는 정부가 정밀한 추정과 판단을 해왔으며 향후 미국 등 우방과 긴밀협력해 대응할 예정”이라고 예고했다. 한편 다른 정부 당국자는 북한 외무성 발표의 의도와 관련,“6자회담 참가가 당분간 어렵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북한의 핵무기 보유 선언과 관련,“핵보유나 핵억제력을 갖고 있다는 것은 북한이 계속 발표해 왔다.”며 과도한 의미 부여를 경계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北 核무기 보유 공식선언] 北 외무성 성명 요약

    2기 부시 행정부는 ‘폭압 정치의 종식’을 최종 목표로 선정하고 우리나라도 ‘폭압정치의 전초기지’로 규정했다. 필요하면 무력 사용도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공연히 폭언했다. 미국은 우리를 적대시하다 못해 ‘폭압정권’이라고 하면서 전면 부정해, 이제 회담할 명분조차 사라졌다. 우리는 더는 6자회담에 참가할 수 없게 됐다. 우리는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으로 조성된 엄중한 정세에 대처하여 다음과 같이 천명한다. 첫째, 우리는 6자회담을 원했지만 회담 참가명분이 마련되고 회담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 충분한 조건과 분위기가 조성되었다고 인정될 때까지 불가피하게 6자회담 참가를 무기한 중단할 것이다. 둘째, 미국이 핵몽둥이를 휘두르면서 우리 제도를 기어이 없애버리겠다는 기도를 명백히 드러낸 이상 우리 인민이 선택한 사상과 제도,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핵무기고를 늘리기 위한 대책을 취할 것이다. 우리는 이미 부시 행정부의 증대되는 대조선 고립 압살정책에 맞서 핵무기전파방지조약(핵확산금지조약)에서 단호히 탈퇴했고, 자위를 위해 핵무기를 만들었다. 우리의 핵무기는 어디까지나 자위적 핵 억제력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 곳곳에 ‘죽음의 덫’… 야생동물 ‘살육’ 기승

    곳곳에 ‘죽음의 덫’… 야생동물 ‘살육’ 기승

    #1 지난해 12월 경북 봉화군 태백산맥 자락의 산속. 생후 4년 된 산양(천연기념물 217호, 환경부지정 1급 멸종위기종)은 사정없이 내리치는 몽둥이질에 속수무책이었다. 밀렵꾼 박모(63)씨가 쳐놓은 강력한 덫은 도망도, 반항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숨져간 산양은 입을거리로 쓰기 위해 가죽이 벗겨진 뒤 사람들의 밥상에 올라감으로써 생을 마감했다. 산양은 우리나라에 겨우 수백마리 남아 있을 뿐이다. #2 사진작가 최협(28·돌베개출판사)씨는 두 달 전 강원도 철원군 대마리 들판을 찾았다. 독수리가 허공 높은 곳에서 빙빙 맴도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니나 다를까. 현장에선 쇠기러기 수십마리가 흰 거품을 문 채 쓰러져 있었다. 사체를 부검하니, 식도엔 갓 삼켜진 듯한 볍씨가 잔뜩 들어있다. 누군가가 볍씨에 독극물을 묻혀 뿌려놓은 것이다. 최씨는 이런 경험이 “흔한 편”이라고 한다. ●“웬만한 산은 야생동물의 지뢰밭” 야생동물의 겨울나기는 힘겹다. 먹잇감이 적어서도 그렇지만 가장 큰 위협은 사람들의 밀렵이다. 동네 야산이든, 깊은 산속이든 올무나 덫·그물·총포·독극물 등 다양한 형태의 밀렵도구들이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발견된다. 그래서 “야생동물에게 웬만한 산이나 들은 모두 ‘지뢰밭’”(야생동물보호협회 최인봉 부산·경남지회장)이라고 한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 한해 동안 적발된 밀렵행위는 653건(971명), 밀렵·밀거래된 야생동물의 숫자는 957마리에 이른다. 멧돼지·고라니·너구리 등 포유류와 각종 조류, 양서·파충류 등이 망라돼 있다. 예년보다 다소 줄긴 했지만 밀렵행위 자체가 감소한 것은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밀렵·밀거래가 더욱 은밀해져 적발되는 경우가 줄었을 뿐”이라는 주장이다. 지난해 수거한 올무 등 불법엽구(2만 449개)가 예년보다 훨씬 는 점도 이를 방증한다. 한번 밀렵도구에 걸려든 야생동물은 용케 구조되더라도 대부분 생사의 고비를 또 한번 넘어야 한다. 덫이나 올무에서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을 치다 다리가 부러지거나 살이 어 들어가는 경우가 다반사인데,“겁이 많고 예민한 고라니 등 초식동물들은 치료하는 과정에서 충격의 여파로 죽기도 한다.”(한국야생동물구조센터 조광일 원장)는 것이다. 수술에 성공해 살아남아도 이전과 같은 야생의 삶을 기대할 순 없다. 한 쪽 다리가 없어진 불구로는 아무래도 자연 도태될 확률이 높기 때문에 “무조건 방사하기는 어려운 실정”(조 원장)이라고 한다. ●年 시장규모 1500억… 주로 건강원 통해 거래 밀렵이 성행하는 건 물론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수요는 야생동물의 ‘어느 부위가, 몸에 어떻게 좋다.’는 식의 ‘보신(補身)문화’에서 대부분 비롯된다. 환경부에 따르면 전국의 밀렵꾼은 1만 6000여명, 연간 시장규모는 1500억원으로 추산될 정도다. 최인봉 지회장은 “밀렵꾼들을 다수 거느리고 있는 건강원을 통해 주로 거래가 이뤄지는데 멧돼지 쓸개와 고기가 각각 50만∼150만원씩, 오소리는 100만원, 고라니는 40만원 정도”라고 말했다. 밀렵행위에 대한 단호한 처벌이 뒤따르지 않는 것도 밀렵을 부추기는 요인이다.“대부분 200만원 안팎의 벌금으로 끝나기 때문에 두 번만 밀렵해도 본전을 뽑는 구조가 문제”(야생동물보호협회 최성규 사무국장)라는 지적이다. 야생동물도 삶을 부지하기 위해 나름대로 대응 능력을 높여가고 있다. 멧돼지처럼 후각이 예민한 야생동물은 올무에 쉬 걸려들지 않을 정도다.“철사로 만든 올무에 녹이 슬거나 비에 젖어 있을 경우 냄새를 맡고 함정을 피해 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은 뾰족한 수가 되지 못한다. 언제나 한 술 더 뜨는 인간을 당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최 사무국장은 “요즘은 고무로 코팅한 올무나 스프링올무가 나오는 등 밀렵도구가 더 ‘발전’했고, 밀렵단속이 심해지자 등산객으로 가장해 도구를 등산가방에 넣고 다니는 등 갈수록 수법이 교묘해지고 있다.”며 혀를 찼다. 밀렵은 사람에 의한 ‘야생동물 잔혹사’나 다름없다는 얘기다. 박은호기자 unopark@seoul.co.kr ■ 야생동·식물보호법 문답풀이 지난해 2월 제정돼 1년간의 경과기간을 거친 뒤 오는 10일부터 발효되는 야생동·식물보호법의 주요 내용을 문답으로 간추린다. ●먹는자 처벌 야생동물은 어떤 경우든 먹어선 안되나. -야생동물 32종(표 참조)만 해당한다. 합법적으로 허가를 받아 사육된 동물은 대상이 아니며, 밀렵되거나 밀수된 야생동물을 먹을 때만 처벌을 받는다. 밀렵 여부를 몰랐을 때는 어떻게 되나. -밀렵된 사실을 알면서 먹을 경우에만 처벌한다. 그러나 자라 등 인공증식되는 일부 종(種)을 제외한 나머지 동물의 밀렵 여부는 상식적으로 판단이 가능하다. 식품위생법상 음식점에서 판매가 불가능한 데다, 고가로 은밀히 거래되기 때문이다. 해를 끼치는 멧돼지나 고라니를 잡아서 먹을 경우는. -농작물·과수원에 해를 끼치는 경우 유해동물 포획허가를 받은 뒤 잡아먹는 것은 가능하다. 수렵장에서 수렵허가를 받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것을 스스로 처분해야 하지, 판매·유통시켜서는 안된다. ●포획 금지 모든 종류의 야생동물 포획이 금지되나. -포유류와 조류는 모든 종류가, 양서·파충류는 32종(표 참조)만 금지된다. 국내에 43종의 양서·파충류가 있는데 이 가운데 비교적 흔하거나 보신용으로 쓰이지 않는 11종은 대상이 아니다. 살모사 등 독사도 못 잡나. -생태계의 중요한 구성요소이므로 이유없이 포획할 수 없다. 그러나 인체에 위해를 미칠 우려가 있는 경우는 허가없이 잡아도 된다. 학교에서 개구리 해부를 위해 잡는 것도 금지되나. -학술연구 목적으로 지방자치단체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사육 개구리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박은호기자 unopark@seoul.co.kr
  • 소록도는 더 이상 외롭지 않았다

    소록도는 더 이상 외롭지 않았다

    한센인(한센병 환자와 병력자) 700여명이 모여 사는 전남 고흥군 도양읍 소록1리 소록도. 일본 변호사 65명과 한국 변호사 37명이 일제강점기 때 강제 수용돼 노역에 시달린 이곳 할아버지, 할머니 117명을 대리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보상청구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01년 특별법을 제정, 강제 수용됐던 일본 한센인에게 1인당 800만∼1400만엔씩 보상했지만, 소록도 주민은 내국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했다. 한·일 변호사들은 지난 8월 일본 정부의 결정에 불복, 보상청구소송을 냈다. 소록도 한센인들에게 재판과정을 보고하러 가는 변호사들을 동행, 취재했다. ■ 日정부상대 소송 소록도 르포 #1. 할머니와 손녀의 상봉 지난 11일 오후 2시. 전남 고흥군 소록도 중앙리 강당을 가득 메운 할아버지, 할머니 50여명이 한국과 일본의 변호사들을 반갑게 맞았다. 한센병을 앓았던 노인들은 불편한 몸으로 휠체어를 타거나 비스듬하게 바닥에 앉아 있었다. 일본에서 온 여변호사들이 손가락이 뭉개진 할머니 손을 다정히 잡으며 “안녕하세요.”라고 서툰 한국어로 안부를 묻는다. 일그러진 얼굴로 눈을 꼭 감은 할아버지를 포옹하기도 했다. 미소를 머금은 할아버지, 할머니는 오랜만에 손녀딸이라도 만난 듯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이날 일본 변호사 5명과 한국 변호사 15명이 보고대회에 참석했다.10차례가 넘게 이곳을 방문한 사람도 있었다. 대한변호사협회 박영립 인권이사가 “첫 재판(10월25일) 때 장기진(84), 강석우(80) 할아버지가 증언했는데 17일 2차 재판 때 김일임(71·가명) 할머니가 증인으로 나선다.”고 말하자 노인들은 투박한 손으로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2. 피와 눈물로 얼룩진 ‘소록도’ 서울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6시간을 달리면 전남 고흥군 녹동항에 도착한다. 섬의 모양이 어린 사슴을 닮았다는 소록도(小鹿島)는 선착장에서 돌을 던져도 닿을 듯 가까이 보인다. 선착장과 소록도 사이 거리는 겨우 600m. 섬은 가운데 자리잡은 중앙공원을 중심으로 오른쪽은 관광객이 북적이는 해수욕장, 왼쪽은 출입이 제한된 한센인 거주지역으로 나뉜다. 김명호(55) 자치회장은 “일제강점기 때 6000여명이 거주하던 섬에는 이제 ‘한센인’ 702명만이 남았다. 평균 연령은 78세이고 한해 노환으로 사망하는 분만 50∼60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1936년에 착공돼 3년4개월만에 완공된 중앙공원은 한센인의 피와 눈물로 만들어졌다. 한센인 6만여명이 강제 동원돼 산림을 베어내고,6000여평의 대지를 조성했다. 암석은 완도 등에서 채취, 운반해 왔다. 나무는 일본과 타이완에서 들여왔다. 장기진 할아버지는 “몇 척의 배를 연결해 뭍에서 섬까지 다리를 만들었어. 우리는 목도라는 장대에 길이 2∼3m, 폭 1∼1.5m짜리 돌 수십개를 매달아 옮겼지. 언덕 위를 오르다 쓰러지면 돌 위에 앉은 일본인이 몽둥이로 마구 때렸어.”라고 회상했다. 중앙공원 한쪽에 자리잡은 붉은 벽돌집도 ‘고통의 역사’를 안고 있다. 시체해부실, 감금실, 단종대(斷種臺·남성불임수술대)…. 김 자치회장은 “일제 때 한센인은 다섯 차례 ‘죽음’을 맞이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가족과 생이별하며 호적에서 파내져 한번, 자녀를 낳지 못하도록 단종수술 받으며 또 한번, 목숨이 끊어져 한번, 그 시체를 해부해 또다시 한번, 불에 태워 화장하며 마지막으로 죽는다는 것이다. 감금실은 일제 때 노역을 하지 않거나, 소록도를 탈출하다 잡힌 한센인들이 7∼60일씩 갇혔던 곳이다. 실컷 매를 맞은 뒤 감금되면 음식도 없이 추위를 견뎌야 했다. 결혼을 하려면 단종수술을 해야 하는 규정은 2002년 10월24일 국립소록도병원 운영규칙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유지됐다. #3. 오늘도 고통은 계속된다 한·일 변호사들은 진술서를 작성하기 위해 노인들이 살고 있는 집을 방문, 강제 격리된 상황과 인권침해 실태를 조사했다. 권모(77) 할아버지는 1943년,16살 때 3살 많은 누나와 소록도로 들어왔다고 했다. 경북 안동에 살던 남매는 “소록도에 가면 6개월만에 나병을 고칠 수 있다.”는 일본 순사의 말을 믿고 따라나섰다. 그러나 소록도는 치료는커녕 좁은 방에 10명씩 몰아넣어 강제노역을 시키는 ‘지옥’이었다. 가마니를 짜고, 벽돌을 굽고, 토끼가죽을 만들었다. 당시 한센인들은 한 해 벽돌 140만장, 가마니 30만장, 토끼가죽 1500장을 생산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배고픔에 잠을 잘 수가 없었어. 동상과 고된 노동으로 멀쩡하던 손과 발은 상처투성이로 변해갔지. 그리고 손목, 발목이 절단되더라고….”권 할아버지의 한숨이 이어진다. 1945년 광복 후 강제노역은 사라졌다. 그러나 강제격리 정책은 66년 말까지 계속됐다.92년에야 소록도에 노령수당이 지급됐고, 이듬해 의료보험 대상자로 선정됐다. 장애인 등록은 94년 9월에 가능해졌다.4평 남짓한 단칸방에서 생활하는 소록도 노인들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적용받지 못하고 있다. 병원에서 의식주를 해결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래서 이들의 생활비는 노령수당 3만∼5만원이 전부다. 한센인 할아버지, 할머니의 애달픈 사연을 변호사들은 한글과 일본어로 옮겼다. 이 진술서는 일본에서 진행 중인 보상청구 소송에 주요 자료로 일본재판소에 제출될 것이다. 12일 오후 변호사들은 노인들의 배웅을 받으며 뭍으로 향했다.“고마우이.” 뭉툭한 손으로 등을 쓰다듬던 할머니를 향해 한 여변호사가 돌아섰다. 그는 차별, 편견과 싸우느라 가냘퍼진 할머니의 어깨를 감싸안았다.“우리는 하나인 걸요.” 소록도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소송 앞장 日변호사 구니무네 “인권을 침해당한 한국인도 일본인과 동등하게 보상받아야 합니다.” 일본인 구니무네 나오코(國宗直子·49) 변호사는 2002년 3월부터 소록도 한센인 소송에 앞장서고 있다. 소록도변호단의 일본측 사무국장을 맡으며 14차례 방문했다.12일 한센인 117명에게 받은 진술서를 마무리하던 그를 만났다. 구마모토 출신의 구니무네 변호사가 소록도에 관심을 가진 것은 다키오 에이지(73) 때문이다. 일본 근대사를 전공한 다키오씨는 구니무네 변호사가 1998년 일본 한센인들을 대리해 국가배상 소송을 진행, 승소하자 소록도 얘기를 들려줬다. 1907년 ‘나병예방법’을 제정한 일본은 1996년, 법이 폐지될 때까지 90년 가까이 한센인을 요양소에 강제 격리시켰다. 구니무네 변호사를 비롯한 일본 변호사 200여명은 ‘한센병 예방법 위헌 국가배상 변호단’을 구성, 소송을 냈고 2001년 5월 승소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항소를 포기, 한센병 환자 보상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했다. 구니무네 변호사는 “일제강점기 때 한국과 타이완에서도 한센인 강제격리정책이 펼쳐졌다는 얘길 접하고 바로 소록도로 달려왔다.”고 말했다. 국적과 관계없이 국가의 불법행위에 대해선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는 “일본인들에게 많은 고통을 받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나를 반갑게 맞을 때 눈물나도록 고마웠다.”고 털어놨다. 일본 한센인들이 보상금 일부를 기금으로 조성, 소송비용을 내고 있다고 전했다. 언어 장벽 탓에 소록도 노인들의 진술서를 받는 게 쉽지 않던 구니무네 변호사는 한국 변호사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우리 일을 대신해줘서 고맙다.”며 발벗고 나섰다. 한·일 변호사 102명은 지난 8월 도쿄 지법에 보상청구소송을 냈고, 지난 10월25일에 이어 17일 열리는 2차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구니무네 변호사는 “일본 한센인들은 요양소에서 의식주 해결은 물론 매월 8만 5000엔(약 85만원)씩 받아 기본적인 생계를 유지한다. 그러나 한국 한센인들의 생활 여건은 너무나 열악하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한센인이 정당한 대우를 받으려면 일본 정부에 앞서 한국인들의 편견과 오해를 넘어서야 한다.”고 말했다. 타이완 한센인 격리지역인 낙생원의 일본 정부 상대 소송도 돕고 있다. 소록도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한센병에 대한 몇가지 오해 한센인에 대한 두려움과 차별은 오해와 무지에서 비롯된다고 가톨릭의대 채규태 교수는 지적한다. 그는 한센병은 하늘이 내리는 형벌(天刑)도, 전염성이 강해 격리가 필요한 난치병도 아니라고 말한다. 한센병에 대한 몇 가지 오해를 풀어본다. ●한센병은 전염성이 강하다 한센병은 전염병예방법상 가장 낮은 단계인 3군 전염병이다. 결핵의 전염력이 한센병의 2000배를 웃돌 정도다. 특히 일반인은 95% 이상 한센병에 대한 자연 항체를 갖고 있다. 또 리팜피신이란 치료제를 단 1차례 4알(600㎎)만 복용해도 나균의 99.9%는 전염력을 상실한다. 신체는 물론 성접촉, 임신을 통해서도 감염되지 않는다. ●치료하려면 격리조치가 필요하다 1980년대 치료제 리팜피신이 발견되면서 한센병은 통원치료를 받는 병으로 바뀌었다. 전염력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손가락·발가락 등 일부 신체기관의 변형으로 수술이 불가피하면 입원하지만, 장기간 격리는 필요치 않다. ●한센병은 난치병이다 한센병은 약물 복용으로 1∼2년이면 완치된다. 예전엔 치료시기를 놓쳐 변형된 손·발로 살아가는 한센인이 많았지만, 최근 발병한 환자들은 피부 반점 정도만 남는다. 치료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몸속 나균은 전염력을 잃는다. ●한센병은 유전된다 1973년 대한나협회가 조사한 결과, 전국 88개 정착촌에 살고 있는 2세 4157명 가운데 한센병에 감염된 2세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가족 가운데 한센인이 있다 해도 감염은 240만명에 한 명 꼴로 일반인과 다르지 않다고 의학계는 분석하고 있다. ●새로운 한센병 환자가 많다 2004년 1월 현재 한센인은 1만 6801명이다. 대부분 치료가 끝난 사람들이다. 새로운 환자는 해마다 20여명에 불과하다. 소록도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2년간 보안사 강제근무 재일교포 김병진씨 1인시위

    2년간 보안사 강제근무 재일교포 김병진씨 1인시위

    “과거 청산 없이는 화해도 미래도 없습니다. 아픔과 한을 덮어둔 채 어떻게 화해가 가능하겠습니까.”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 재일교포 김병진(49)씨가 ‘나는 간첩이 아니다.’라고 쓴 항의문을 목에 걸고 1인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모국 유학 시절 간첩으로 몰려 보안사에서 고문 당하고 강제로 근무까지 해야 했던 그는 사건 21년 만에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신청을 하기 위해 지난 9일 입국했다. 김씨에게 불행이 닥친 것은 연세대 대학원에서 공부하던 1983년 7월. 보안사 직원 4명이 “후배가 데모하다 잡혔는데 신원확인만 해달라.”며 다짜고짜 차에 태웠다. 끌려간 곳은 보안사 서빙고 분실. 잠 안재우기, 전기고문, 물고문 등 3개월 동안 갖은 고문과 협박을 당한 끝에 김씨는 ‘간첩’이 됐다. “한국에 자장면이라는 것이 싸고 맛있더라.”고 말한 것이 ‘서울의 물가·시세를 탐지·수집·보고한 간첩 행위’로 둔갑하는 식이었다. 여권까지 빼앗긴 그는 공소 보류를 조건으로 보안사에서 2년 동안 대공 정보분석 업무를 담당하는 군무원으로 일해야 했다. 고문을 받던 바로 그 곳에서 근무하던 시절은 끔찍했다.“몽둥이로 온몸을 폭행했던 계장을 다시 만났을 때는 아찔하면서 나도 모르게 권총을 찾았을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대학원에 복학해 앞으로도 보안사 활동에 협력하겠다.”고 약속한 뒤에야 보안사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일본으로 도피했지만 그곳에서도 추적을 받아 부친의 집에도 머물지 못하고 학원 강사, 목욕탕 청소부 등을 전전하며 어려운 삶을 이어갔다. 김씨는 1988년 아사히신문 논픽션 부문에 자신이 경험한 간첩 조작 사건 등을 바탕으로 한 ‘보안사’가 당선되고,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출간돼 파문을 일으켰다. 김씨는 보안사의 내부사정을 누설,‘군사기밀보호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입국금지 조치됐다. 김씨가 다시 고국을 찾은 것은 2000년. 김씨의 한글강좌를 수강하던 일본인 1800명이 당시 김대중 대통령 앞으로 탄원서를 보낸 것이 계기가 됐다. 김씨는 최근 국가보안법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세상이 변하려면 과도기가 필요한 것”이라면서 “국민을 정신적으로 억누르는 국가보안법은 반드시 폐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15일 서울 종로구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원회를 찾아 명예회복을 신청한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儒林 속 한자이야기] (49)

    儒林 230에는 拈華微笑(잡을 념/꽃 화/작을 미/웃을 소)가 나온다. 이 말은 ‘말로 통하지 아니하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일’을 뜻한다. 어느날 석가는 제자들을 靈山(영산)에 불러모아 그들 앞에서 손가락으로 ‘연꽃 한 송이를 집어들고 말없이 약간 비틀어 보였으나’ 그 뜻을 아는 제자가 없었다. 가섭만이 그 뜻을 깨닫고 微笑(미소)짓자 그에게 眞理(진리)를 傳授(전수)했다.‘拈華微笑’는 바로 여기서 유래한 말이다. ‘拈’자는 ‘어떤 물건을 손으로 집어들다.’라는 뜻을 나타내었다.‘華’자는 ‘꽃’의 뜻을 나타내기 위해서 가지마다 꽃이 만발한 나무 모양을 본뜬 것이다.‘빛나다.’‘번성하다.’는 뜻으로 확대 사용되자 본래의 뜻을 보존하기 위해서 ‘花’를 따로 만들었다.用例로는 ‘華麗(화려:빛나고 고움)’‘華而不實(화이부실:외관은 좋으나 내용이 없음)’이 있다. ‘微’자는 어른이 몽둥이로 두들겨 맞을 지경에 이를 만큼 ‘약하다.’는 본래의 뜻에서 ‘작다.’‘가늘다.’라는 뜻이 파생된 것으로 추정된다.用例에는 ‘微動(미동:약간 움직임)’‘微妙(미묘:뚜렷하지 않고 야릇하고 묘함)’‘微賤(미천:신분이 낮음)’이 있다. ‘笑’자는 ‘竹’과 ‘犬’이 합쳐진 會意(회의)라는 설,‘犬’을 ‘夭(어릴 요)’로 바꾸면서 形聲字(형성자)가 되었다는 설 등이 있다. 용례에는 ‘笑納(소납:편지글에서, 보잘것없는 물건이지만 웃으며 받아 달라는 뜻으로 겸손하게 이르는 말)’‘談笑(담소:웃고 즐기면서 이야기함)’‘失笑(실소:어처구니가 없어 저도 모르게 웃음이 툭 터져 나옴)’가 있다. 웃음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기쁠 때는 물론이고 낙담하거나 실망할 때도 웃게 되는 경우가 있지만, 진정한 웃음은 기쁨과 즐거움을 내포하고 있는 웃음일 것이다. 몹시 우스워 배꼽을 잡고 쓰러질 정도의 상황일 때는 ‘抱腹絶倒(포복절도)’, 손뼉을 치며 크게 웃는 ‘拍掌大笑(박장대소)’, 매우 즐거운 표정으로 활짝 웃는 ‘破顔大笑(파안대소)’, 허리가 꺾이고 배가 아플 만큼 웃는 ‘腰折腹痛(요절복통)’이 있다. 그런가 하면 터무니없거나 같잖아서 나오는 웃음인 ‘可笑(가소)’, 마음이 씁쓸할 때 나오는 ‘苦笑(고소)’, 경멸이나 체념 등의 뜻으로 차갑게 웃는 ‘冷笑(냉소)’, 냉소보다 더 적극적으로 경멸하는 웃음인 ‘嘲笑(조소)’와 같이 좋지 않은 웃음도 있다. 그밖에도 참다못해 터져나오는 ‘失笑(실소)’, 갑자기 세차게 터져 나오는 ‘爆笑(폭소)’, 입을 크게 벌리고 웃거나 떠들썩하게 웃는 ‘哄笑(홍소)’가 있는가 하면 수줍은 듯 입가에 살포시 웃음을 띠는 ‘含笑(함소)’ 혹은 ‘微笑(미소)’가 있다. 또한 아리따운 여성의 웃음을 나타내는 ‘嬌笑(교소)’와 性的(성적)인 인상을 강하게 풍기는 웃음인 ‘艶笑(염소)’도 있다. ‘웃는 낯에 침 뱉으랴!’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웃음은 생활 속에서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것임에 틀림없다.‘一笑一少 一怒一老(일소일소 일노일로)’ 즉, 웃는 만큼 젊어지고 화를 내는 만큼 늙는다고 하였다. 나 자신의 健康(건강)과 幸福(행복)은 물론, 우리 모두를 위해 건강한 웃음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김석제 경기 군포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 [씨줄날줄] 회족(回族)/이목희 논설위원

    이슬람교를 회교(回敎)라고도 부른다. 중국내 회족(回族) 대다수가 이슬람교를 믿는데서 유래됐다.7세기경부터 이슬람교를 믿는 아랍, 페르시아, 터키 민족 일부가 실크로드와 남해 무역항로를 거쳐 중국으로 들어왔다. 이들의 후예와 이슬람교로 개종한 중국인 자손들이 14세기쯤 중국 북서부에 모여살면서 회족이 생겨났다.2000년 현재 회족은 987만여명이다.55개의 소수민족 중 세번째로 인구가 많다. 티베트인이나 위구르인과 달리 회족은 중국 중앙정부 정책에 순응하는 쪽이었다. 그런 회족이 주류민족인 한족(漢族)과 종족충돌을 일으켰다. 중국 중부에 위치한 허난(河南)성에서 지난달 29일 발생한 일이다. 회족 택시기사가 한족 여자아이를 치어 숨지게 한 사건을 둘러싸고 한족과 회족 주민이 대규모 유혈사태를 빚었다. 미 뉴욕타임스는 양측이 농기구와 몽둥이로 무장한 채 격돌해 148명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사건이 국제적 관심을 모으자 중국 정부는 7명이 사망하고,42명이 다쳤다고 이례적으로 발표했다. 이번 충돌을 우발 상황으로 넘겨선 안 될 듯싶다. 중국이 눈부신 경제발전을 하면서 그에서 소외된 소수민족의 불만이 커져가고 있다. 회족도 예외는 아니다. 순수 한족이 사는 지역은 중국 전체의 절반도 안 된다. 나머지는 소수민족이 차지하고 있다. 이들이 분리독립이나 정치적 자립을 요구하는 사태를 중국 정부는 두려워하고 있다. 종족갈등에 종교문제까지 개입한다면 사태는 복잡해진다. 만약 초강력 이슬람 국가가 지금 존재한다면, 같은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 대한 ‘억압’을 지켜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 소수민족 문제는 우리도 얽혀 있다. 중국 동북지역에 200만여명의 조선족이 살고 있다. 중국측이 고구려사를 왜곡하는 저변에는 조선족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하자는 생각이 깔려 있다. 나아가 북한에서 비상상황 발생시 간여할 근거를 만들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 조선족 자치주내의 한국어학교가 대폭 줄고 있다. 중국의 소수민족 동화정책이 진척을 보고 있음을 의미한다. 몇십, 몇백년 뒤의 국제정세가 어찌 변할지 예단할 수 없다. 중국 내정에 간섭하긴 힘들겠지만, 조선족은 우리 민족이라는 인식을 분명히 갖고 중장기 외교정책의 틀을 짜야 한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中, 회족·한족 충돌 공식인정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중국 중부 허난(河南)성에서 발생한 한족(漢族)과 이슬람 신자들인 회족(回族)간 유혈 충돌에 대해, 중국 정부는 1일 관영 신화통신을 통해 7명이 숨지고 42명이 부상했으며 18명이 체포됐다고 공식 발표했다. 중국 정부는 그러나 이번 사태가 한족과 소수민족간의 충돌인지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했다. 신화통신은 이 사건을 처음 확인한 정부 성명을 인용, 이번 충돌이 지난달 27일 교통사고를 둘러싼 싸움으로 시작돼 31일까지 계속됐으나 현재 모든 것이 통제되고 있다고 말했다. 신화는 중머우현 난런 마을 주민 루가 난웨이 마을 주민 류와 교통사고로 논쟁을 벌인 뒤 루와 난런 마을 주민 여러명이 류의 집으로 몰려가 류와 가족을 공격하며 이번 사태가 시작됐다고 전했다. 앞서 뉴욕 타임스지는 이번 유혈 충돌로 148명이 숨졌으며 주민들의 말을 인용, 한족과 회족이 농기구와 몽둥이 등을 들고 싸우면서 일부 주택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고 전하며 계엄령이 선포돼 외부인의 마을 출입 등이 통제되고 있다고 보도했었다. oilm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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