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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45) 상여 장식에 쓰였던 木人(목인)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45) 상여 장식에 쓰였던 木人(목인)

    사람은 영혼과 육신을 뜻하는 혼백(魂魄)으로 되어 있어, 죽으면 육신은 땅에 묻히고 영혼은 저승에서 심판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염라대왕의 명으로 달려온 저승사자는 쇠몽둥이로 등을 치고, 쇠사슬로 얽어매어 사람의 넋을 저승으로 떼어 간다는 것입니다. 저승사자는 이렇게 무섭지만, 한편으로는 저승길의 난관을 헤쳐가면서 망자와 동행하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사람의 목숨이 끊어지면 가장 먼저 ‘사잣밥’을 차려서 저승사자의 마음을 달래고자 했지요. 흥선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의 시신을 운구할 때 썼던 충남 예산군 덕산면 광천리 마을의 ‘남은들상여’(중요민속자료 제31호)에서도 용머리판 마룻대 중간에 동자 차림으로 팔장을 끼고 있는 저승사자의 모습이 보입니다. 상여 꼭대기에 버티고 서서 잡귀들에게 앞길을 막아서지 말고 썩 물러나라고 호령하고 있는 모습이지요. 상여에는 저승사자뿐 아니라, 갖가지 색깔로 치장된 다양한 목조각이 베풀어졌습니다. 가마는 임금이나 고관대작이 타는 것이지만, 마지막 가는 길에는 신분의 제약이 없었지요. 혼례식 하루 만큼은 신분이 낮은 신랑신부라도 사모관대와 족두리, 원삼 등 궁중예복을 허용한 것도 같은 이치일 것입니다. ‘천국으로 가는 가마’라고 할 수 있는 상여의 목조각은 오히려 신분이 낮은 사람 것이 훨씬 화려해지기도 했습니다. 남연군 것을 비롯하여 남아 있는 조선시대 왕실종친의 상여가 단층인 데 비하여, 경남 산청군 단성면 남사리에 살던 만석꾼 최필주의 장사(1856) 때 사용한 ‘산청 전주 최씨 고령댁 상여’(중요민속자료 제23호)’는 4층의 누각식 건물 형태지요. 조각 장식은 살아 생전에 느끼지 못했던 행복을 주고, 저승사자처럼 망자에게 길동무도 해주겠다는 뜻입니다. 성리학이 국교인 조선시대에 장례절차는 당연히 유교관습을 따랐지만, 내심으로는 영혼불멸의 내세관을 그대로 갖고 있었음을 상여 장식은 보여줍니다. 이렇듯 나무로 만든 인형을 목인(木人)이나 목우(木偶), 목용(木俑)이라고 불렀습니다. 소박하고 순수한 모습에 원색의 화려함과 해학이 더해진 목인은 최근 수집가들 사이에서 새롭게 각광받고 있지요. 특히 상여에 장식된 목인은 매우 다양한 양상을 보입니다. 말이나 해태, 호랑이를 타고 있는 선인, 선비, 광대는 악귀로부터 망자를 보호합니다. 이 망자의 보호자는 일제강점기에는 칼을 든 순사, 해방 이후에는 철모를 쓴 국군의 모습으로 나타나 시대의 변화를 보여줍니다. 봉황을 타고 있는 동자를 조각한 목인은 망자가 하늘로 가고 있음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하지요. 상여 장식에 광대와 재인, 악공이 보이는 것은 귀인의 행차를 의미합니다. 조선시대 과거에 급제한 선비는 사흘동안 서울시내를 돌아다녔는데, 세악수(細樂手)가 연주하는 가운데 광대가 춤추며 익살을 부렸고, 재인은 줄타기나 곤두박질로 흥을 돋우었다고 하지요. 망자가 저승으로 가는 동안 느낄 지루함이나 무서움을 덜어주었을 것입니다. 신랑신부도 등장합니다. 저승에 가서도 좋은 인연을 만나 백년해로하기를 바라는 마음이겠지요. 그런데 신랑신부의 모습만 혼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호적을 들고 있는 여인도 결혼을 상징합니다.‘호적을 판다.’는 말은 여자가 호적을 남자에게 옮긴다는 뜻이지요. 상여 장식에서는 이승에서 호적을 파서 저승으로 가져간다는 의미도 함축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서울 인사동 골목에는 목인박물관이 있습니다. 전국 곳곳에서 수집한 3000점 남짓한 목인을 소장하고 있지요. 자칫 잊혀질 뻔했던 목인이 최근에는 민속학의 영역에 머물지 않고 민중예술의 한 장르로 미술사의 연구 대상이 되고 있는 것도 이런 선구자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dcsuh@seoul.co.kr
  • [軍 과거사위 진상 조사] ‘법난’신군부와 불화가 도화선

    [軍 과거사위 진상 조사] ‘법난’신군부와 불화가 도화선

    25일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밝힌 ‘10·27법난’의 근본 원인은 월주 당시 총무원장 등 조계종단 지도부와 신군부의 불화다. 종단 내 비리와 부정에 대한 내부 투서가 계기가 됐다는 신군부측 주장과 배치되는 내용이다. ●신군부측과의 불화가 도화선 조사 결과에 따르면 1980년 2월 문화공보부는 당시 종권을 장악하고 있던 월주 스님 등 개운사측 승려들의 이념성향에 대해 강한 경계심을 갖고 있었다. 문공부는 개운사의 일부 승려들이 ‘호국불교’라는 순응종교를 버리고 저항불교로 변화될 것을 우려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정부 판단에는 월주 총무원장이 신군부측이 요구한 전두환 장군 지지표명과 문공부의 자율정화 지침을 거부하고 불교재산관리법 개정을 요구하는 등 신군부측과 갈등이 심화된 것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게 위원회 판단이다. 신군부는 종단 집행부 35명을 사회정화 척결대상으로 지목한 종정측 일부 승려들의 진정서를 적극 활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투서 허위 판명에도 사퇴 강요 10월27일 새벽 45명을 연행한 합동수사단은 수사 결과 투서 내용이 대부분 허위이며, 월주 총무원장에게 법적 정통성이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으나 강제로 총무원장 사퇴서를 받아낸 것도 새롭게 확인됐다. 서울과 지역 보안부대에 연행돼 조사받은 승려들도 취조 과정에서 혐의를 인정하고 모든 직책에서 사퇴할 것을 강요받았다. 월주 총무원장에 대한 비리를 투서한 승려 4명은 무고혐의로 합수단 조사를 받고 형사 처벌된 것으로 밝혀졌다. 11월 합수부가 발표한 중간수사 결과도 왜곡·과장됐다는 게 위원회 판단이다. 당시 합수부는 승려들의 부정축재액이 200억여원에 달한다고 밝혔지만 사찰이나 재단법인의 재산을 개인 재산으로 판단해 산정한 것이 대부분이었다는 것이다. 수사 과정에서 승려들의 승복을 벗기고 군복으로 갈아입힌 뒤 몽둥이로 구타하고 물고문과 전기고문을 가한 사실도 확인됐다. 당시 수사3국에서 조사받은 혜성(현 서울 도선사 원로) 스님은 25일 동안 구금된 상태에서 구타와 각목으로 오금치기 등의 가혹행위를 당해 석방 뒤 탈장수술을 받았고, 정수(서울 화개사 원로) 스님은 고춧가루와 빙초산 섞은 물을 코에 붓는 고문과 함께 전기고문을 받았다고 위원회는 밝혔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정윤수의 오버헤드킥] K리그에 기어코 경찰 불러들일텐가

    경기장 출입문은 지하철 개찰구처럼 철저하다. 그나마 안전요원들이 도열해 있는 틈으로 들어가야 한다. 한 번에 한 명씩 들어갈 수 있으며 통로는 좁고 길다. 그렇게 한 명씩 들여보내면서 블랙리스트의 사진과 대조해 본다. 이 과정에서 약간의 소동이라도 벌어지면 순식간에 경찰이 달려온다. 경기장 안에서도 주의 사항이 많다. 흡연은 더러 용인해 주지만 지나친 음주는 사절. 야유를 넘어선 언어 폭력이나 실제적인 물리력은 조금도 허용되지 않는다. 한번 리스트에 오르면 경기장 출입 자체가 금지된다. 경기 도중에는 의자에서 일어서는 것도 금기사항이다. 물론 결정적인 순간엔 예외지만. 가상의 이야기가 아니다. 잉글랜드의 축구장 풍경이다. 이 상황은 필자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홈구장에서 직접 보고 겪은 것들이다. 잉글랜드가 이러한 제도를 도입할 수밖에 없었던 건 지난 1980년대의 훌리건 난동 때문이었다. 끊이지 않는 폭력 사태를 막기 위해 언론도 참여했다. 방송에서는 경기장 난동을 어떻게 진압하였는가를 생생하게 보도했다. 경찰은 훌리건을 무자비할 정도로 진압했다. 그제야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졌다. 축구장에서 난동을 부리면 그 대가로 몽둥이 세례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이 퍼졌다. 관광객의 눈에는 기마 경찰이 이채로운 풍경이지만 현지 팬들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다. 소란을 벌인 사람들은 말발굽 소리를 듣고 전율을 느끼며 도망친다. 누구라도 소란을 멈추지 않으면 기마 경찰은 몽둥이를 휘두른다.물론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축구 경기가 수많은 경찰과 안전요원에 의지해 진행되는 것은 정상적인 풍경은 아니다. 하지만 건장한 남성들이 야유를 주고받다가 주먹질을 벌이고 비극적인 죽음까지 겪다 보면 이같은 고육책을 쓸 수밖에 없다. 지금 K-리그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축구에 대한 사랑이 비극적인 짝사랑으로 끝날 것인지, 아니면 아름다운 합창으로 마무리될 것인지 중대한 상황에 처해 있다. 모든 사랑엔 죄가 없다. 그러나 문제가 될 만한 방식은 반드시 문제 삼아야 한다. 몇 해 전 수원의 이운재는 “제발 동전만은 던지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설마 동전까지 던지랴 생각했었는데, 최근 대전-울산의 경기에서 재연됐다. 물통과 깃발을 던지고 동전까지 던지는 것을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가까운 장래에 우리는 경찰과 안전요원에 둘러싸여 축구를 구경하는 우울한 풍경을 만날지 모른다. 격렬한 난동이나 비참한 사고를 겪게 될 수도 있다. 일반 팬들은 이미 떠나간 다음일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고 치욕스러운 풍경이다.K-리그를 살려야 한다고 목이 터져라 외쳐온 수많은 팬들이 자신의 열정과 사랑을 스스로 치욕스럽게 만드는 일이 더 이상 반복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축구평론가 prague@naver.com
  •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4) 서울 봉은사의 헤라클레스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4) 서울 봉은사의 헤라클레스

    그리스·로마 신화에 상상력을 가미하는 작업으로 명성을 얻은 작가 이윤기는 런던에 있는 영국박물관(British Museum)을 찾았을 때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도록 몇권을 사가지고 나와 입구의 계단에 앉아 펼쳐보다가 ‘바즈라파니(Vajrapani)’라는 제목이 붙은 사진에 눈길이 갔습니다. 곧 금강역사인데, 뜻밖에도 ‘헤라클레스 차림으로 제우스의 벼락을 든 부처님의 수행원’이라는 설명이 붙어있었다지요. 그는 다시 박물관으로 뛰어들어가 부처님 일행을 돋을새김한 이 간다라 조각을 찾았습니다.‘수행원’은 사자 가죽을 머리에 쓰고 왼손에는 제석천이 아수라를 쳐부술 때 썼다는 금강저, 오른손에는 굵직한 몽둥이 같은 것을 들고 있었지요. 올리브 나무를 뿌리째 뽑아 만든 몽둥이를 든 헤라클레스가 성미가 고약한 네메아 골짜기의 사자를 30일 밤낮으로 목졸라 죽인 뒤 그 가죽을 쓰고 다녔다는 그리스 신화 그대로였습니다. 최근 발간된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4-헤라클레스의 12가지 과업’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간다라의 불교 미술이 묘한 매력을 발산하는 것은 그리스 문화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지요. 오늘날 파키스탄의 페샤와르 지역인 간다라는 서기전 327년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에게 정복되었습니다. 그리스 신화의 영웅이 슬그머니 부처님의 호위무사로 자리를 옮길 수 있었던 것도 대대적인 문화융합의 결과였을 것입니다. 헤라클레스의 사자는 그리스 시대에 이미 무사의 어깨를 보호하는 갑옷의 어깨(肩甲·견갑) 장식으로 정착된 듯합니다.‘영웅 따라 하기’를 좋아했던 로마 황제들은 사자가 입을 벌린 채 마치 어깨를 무는 듯한 견갑 장식을 즐긴 것으로 알려지지요. 간다라에서 불교에 편입된 헤라클레스는 흔히 서역으로 부르는 중앙아시아와 중국을 거쳐 한반도에 전해졌습니다. 미술사학자 권영필은 중국에서 헤라클레스를 상징하는 사자가 어깨 장식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당나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설명합니다.657년 시안(西安)의 무덤에서 나온 무인상이 그렇습니다. 베이징 교외의 명 13릉에 도열한 무인석의 어깨 장식도 로마 황제의 그것과 매우 닮았지요. 간다라에서 금강역사가 된 헤라클레스는 동쪽으로 전해지면서 다시 사천왕으로 변신합니다. 신라 문무왕이 682년 세운 경주 감은사 서탑의 사리함에 새겨진 사천왕상에 헤라클레스의 사자가 나타난 것이지요. 금강역사나 사천왕 모두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이니 역할은 달라지지 않은 셈입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봉은사의 목조 사천왕상은 헤라클레스로 하여금 불법을 수호케 하는 전통이 조선시대에도 이어졌음을 보여줍니다. 사천왕은 일주문에 해당하는 진여문(眞如門)에 버티고 있습니다. 조선 영조 22년(1746년) 당시 능창군 이숙 부부의 시주로 조성되었다는 내용을 담은 발원문이 2002년 발견되었지요. 사자 모양의 어깨 장식을 하고 있는 사천왕은 정면에서 보아 진여문의 왼쪽 바깥쪽에 서 계시는 서방광목천(추정)입니다. 어깨뿐 아니라 배에도 사자 머리가 장식되었는데, 무섭기보다는 어수룩해 보이는 광목천의 표정에 걸맞게 귀여운 아기 사자의 모습입니다. 사자 머리 아래에는 한 마리 분의 사자 가죽이 고리로 매달려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헤라클레스가 가죽을 벗겼다는 네메아의 사자일 것입니다. 서울 한복판에 있는 유서깊은 절이 지금도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주인공의 호위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신화보다 더 신화적이지 않습니까. dcsuh@seoul.co.kr
  • 70대 할아버지가 아들에 매를 맞는 속사정

    “앞으로 살 날이 얼마남지 않은 70대 중반의 할아버지가 매일 아들에게 매를 맞는 까닭은?” 중국 대륙에 70대 노인이 아들이 마구 때리는 폭행을 더이상 피할 길이 없자 차라리 감옥으로 보내달라고 호소하고 나서는 엽기적인 사건이 발생하는 통에 주변 사람들이 어리둥절하게 하고 있다. ‘황당한’사연의 주인공은 중국 베이징(北京)시 핑구(平谷)구 뤄잉(羅營)진에 사는 탕(唐·75)모 노인.그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 소녀를 성폭행한 혐의로 징역 5년형(질환으로 집에서 생활하는 감옥외 집행형)을 받고 생활하던 중 아들이 시도때도 없이 때리는 매를 견디지 못해 감옥으로 보내달라고 호소하고 나서는 바람에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고 중국신문망(中國新聞網)이 10일 보도했다. 탕 노인이 아들에 매를 맞고도 꼼짝하지 못하는 사연은 이렇다.지금부터 3년여전인 지난 2004년 4월28일,탕 노인은 집에서 별로 할일 없는 까닭에 오랜만에 마을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산책을 하고 있었다.이때 마침 초등학교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던 같은 동네에 사는 팡팡(芳芳·12·여)양을 만났다. 아리잠직한 그녀의 모습을 보고 갑자기 치솟는 춘정을 이기지 못한 그는 팡팡양에게 할 얘기가 있다며 아무도 없는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아무 것도 모르고 뒤따라갔던 그녀는 육허기에 진 종자의 무지막지한 힘에 밀려 그만 성폭행을 당했다. 하지만 세상에 비밀은 없는 법이다.못된 일을 당한 그녀가 힘없이 앉아 있는 모습을 본 어머니는 집중적으로 따지고 들자 모든 것을 털어놓고 말았다. 이에 화가 꼭뒤까지 치민 팡팡양의 어머니는 즉각 핑구구 공안(경찰)당국에 고소했다.곧바로 체포된 탕은 핑구법원으로부터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다.하지만 핑구법원은 그의 지병 등 건강이 좋지 않은 점을 감안해 감옥외 집행을 받고 집에서 생활했다. 집으로 돌아오자 집안에 냉기가 돌았다.그의 큰 아들이 자신의 체면이 깎였다며 틈 날때마다 몽둥이나 벽돌 등으로 마구 때렸다.더욱이 이웃 주민들도 그의 행위에 손가락질을 하는 바람에 감히 집밖 출입을 하기 어려운 형편이었다. 아들로부터 매를 맞는 것도 하루이틀이지,매번 맞을 수만 없었다.더이상 참지 못한 탕노인은 할 수 없이 감옥으로 보내달라며 사법사무소의 문을 두드렸다. 사법사무소 왕쯔창(王志强) 사무장은 탕 노인의 큰 아들에게 “비록 당신의 아버지가 몹쓸 짓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아버지는 아버지”라며 “특히 범죄자도 인간으로서 누릴 권리가 있는 만큼 참을 수 없을 만큼 힘든 폭력을 휘둘러서는 안된다.”고 충고했다.이에 큰 아들은 “잘 알았다.”며 “앞으로 아버지에게 심하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 읽기] (33) 명과 후금의 정세 Ⅰ

    [병자호란 다시 읽기] (33) 명과 후금의 정세 Ⅰ

    조선이 모문룡의 작폐에 시달리고 있던 정묘호란 무렵 대륙의 정세는 어떠했는가? 1621년 누르하치의 후금군은 요동 전체를 장악했다. 후금은 요동 벌의 중심인 심양(瀋陽)으로 천도하여 산해관까지 넘볼 기세였다. 명은 분명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명의 내정은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당쟁은 격화되었고 환관들은 날뛰고 있었다. ●격화되는 黨爭 1620년 7월 명의 만력제(神宗)가 죽었다. 제위에 오른 지 48년만이었다. 장남 주상락(朱常洛:1582∼1620)이 즉위하여 연호를 태창(泰昌)으로 고쳤다. 길고 긴 세월 동안 만력제의 암우(暗愚)와 태정(怠政)에 시달렸던 사람들은 태창제(光宗)에게 기대를 걸었다. 태창제는 즉위 직후 내탕(內帑)에서 100만냥의 은을 풀어 누르하치를 방어하고 있는 요동의 장사들에게 지급하고, 악명 높았던 광세사(鑛稅使) 등의 파견도 중지하라고 지시했다. 조야는 감동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태창제는 즉위한 지 한달 만에 급사하고 말았다. 다시 태창제의 아들 주유교(朱由校)가 즉위하니 그가 곧 천계제(天啓帝) 희종(熹宗)이다. 만력 중반부터 천계 연간까지 명 조정의 당쟁은 격렬했다. 비운의 황제였던 태창제의 존재와 급사는 당쟁을 더욱 격렬하게 만들었다. 만력제는 정비(正妃)와의 사이에 아들이 없었고 후궁들에게서 얻은 5명의 아들이 있었다. 장남 주상락은 왕(王)씨 성을 지닌 궁녀의 몸에서 태어났는데, 만력제는 왕씨와 주상락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만력제는 정귀비(鄭貴妃)와의 사이에서 난 삼남 주상순(朱常洵)을 총애했다. 그는 주상순을 황태자로 세우려고 했다. 신료들은 ‘장유(長幼)의 순서를 무시하는 것은 불가하다.’며 격렬히 반발했다. 이미 언급했지만 당시 명 예부가, 광해군을 왕세자로 책봉해 달라는 조선의 요청을 계속 거부한 것도 이 문제와 연관이 있었다.‘차남’ 광해군을 승인할 경우, 만력제가 ‘삼남’ 주상순을 책립(冊立)하는 것에 반대할 명분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주상락의 황태자 책립은 19년 동안이나 미루어졌고, 그는 1601년에야 비로소 황태자가 되었다. 황태자가 된 이후에도 그는 파란의 한 가운데 있었다.1615년 장차(張差)라는 괴한이 주상락의 거처에 몽둥이를 들고 난입하여 그를 위해하려다가 미수에 그친 일이 벌어졌다. 황태자를 해치려 했던 엄청난 사건임에도 재상 방종철(方從哲) 등은 사건의 전말을 철저히 규명하려 들지 않았다. 사건의 배후에 정귀비가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고, 동림당(東林黨) 계열의 신료들은 방종철 등을 탄핵했다. 이 사건을 ‘정격안(檄案)’이라고 한다.‘안(案)’이란 사건을 가리킨다. 태창제의 급사 원인을 둘러싼 당론(黨論)도 치열했다. 태창제는 병석에 누운 뒤, 이가작(李可灼)이란 관인이 바친 붉은 환약(紅丸)을 복용했다. 홍환 복용 후 황제가 급사하자 다시 치열한 논란이 빚어졌다. 동림당 관인들은 시약(侍藥) 업무를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고 방종철을 공격했고, 방종철을 옹호하는 관인들은 황제의 죽음이 홍환과는 관계가 없다고 맞섰다.1625년(천계 5)까지 이어진 치열한 논란을 ‘홍환안(紅丸案)’이라 부른다. 태창제 사후, 그가 총애하던 후궁 선시(選侍) 이(李)씨는 황자 주유교를 자신의 거처인 건청궁에 감추었다. 주유교가 아직 어리다는 것을 빌미로 환관 위충현(魏忠賢)과 연결하여 조정을 좌지우지하려 했다. 동림당 계열은 그 같은 기도에 반발하여 주유교를 이씨에게서 떼어내고, 이씨를 별궁으로 옮기게 했다. 이 과정에서 또한 격렬한 정쟁이 빚어졌는데 그것이 ‘이궁안(移宮案)’이다. ●東林黨과 奄黨 ‘정격안’,‘홍환안’,‘이궁안’을 아울러 삼안(三案)이라고 한다.‘삼안’을 놓고 명 조정의 관료들은 수많은 장주(章奏)를 올려 논쟁했고 그 과정에서 당쟁은 격화되었다. 천계 연간(1621∼1627) 명 조정에는 절당(浙黨), 초당(楚黨), 선당(宣黨), 제당(齊黨), 곤당(昆黨) 등 여러 당파가 있었지만 당쟁의 중심은 동림당과 엄당이었다. 동림당은 만력 초기 재상이었던 장거정(張居正)의 전횡에 반대, 도전했던 청의파(淸議派) 관료인 고헌성(顧憲成), 추원표(鄒元標), 조남성(趙南星) 등에 의해 시작되었다. 이들은 장거정이 죽은 뒤에도 내각과 환관들의 비정을 비판했다. 동림당은 강소성(江蘇省) 무석(無錫)에 있는 동림서원(東林書院)을 거점으로 삼았다. 주자학 강학(講學)을 통해 자파 세력을 결집하는 한편, 조정의 정치적 현안에 대해서도 자신들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개진했다. 그들이 황태자 책립, 인사, 요동 방어 등 다양한 문제를 놓고 내각이나 환관들과 대립하게 되면서 당쟁은 격화될 수밖에 없었다. 엄당은 환관들의 무리를 가리킨다. 일본의 동양사학자 미타무라 다이스케(三田村泰助)는 환관을 가리켜 ‘만들어진 제3의 성(性)’이라고 표현했다. 환관 가운데는 종이를 발명한 후한(後漢)의 채륜(蔡倫)이나 명 초기 아프리카까지 이르는 대원정(大遠征)을 주도했던 정화(鄭和)처럼 기념비적인 족적을 남긴 인물도 있었다. 하지만 환관에 대한 일반적인 이미지는 그다지 좋지 않다. 환관이 맡은 일은 천한 것이었지만 때로 천자나 후궁과의 연결을 통해 정치적 실권을 장악하기도 했다. 궁극에는 국가의 명운마저 좌우할 정도로 막강한 권세를 휘두른 자들도 나타났다. 명대에 특히 환관의 폐해가 심했다. 왕진(王振), 유근(劉瑾), 위충현 등이 대표적이었다. 위에서 언급한 ‘삼안’처럼 궁정의 문제가 정쟁의 현안이 될 경우, 환관들이 그 과정에 개입하고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높았다. 천계 연간 위충현이 엄당을 이끌며 조야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것은 유명하다. ●끔찍한 魏忠賢의 시대 위충현(?∼1627)은 하북성(河北省) 숙녕현(肅寧縣) 출신이었다. 젊은 시절 무뢰배였던 그는 도박에 모든 것을 탕진한 뒤, 스스로 환관이 되었다. 본래 이진충(李進忠)이었던 이름도 위충현으로 바꾸었다. 천계제가 즉위하면서 위충현의 권세는 날로 높아졌다.1621년 사례감(司禮監)의 병필태감(秉筆太監)이 되었다. 환관들의 수장 격이었다. 그는 황제 직속의 비밀 경찰인 동창(東廠)의 책임자도 겸했다. 1624년, 동림당원 양련(楊漣)은 위충현을 탄핵했다. 그에게 스물 네 가지의 잘못이 있다고 했다. 위충현은 동창의 책임을 사임하는 등 일단 몸을 낮춰 위기를 벗어났다. 이윽고 천계제의 신임이 회복되자 보복이 시작되었다. 위충현은 1625년 동림당의 핵심 인물인 양련, 좌광두(左光斗), 원화중(袁化中), 위대중(魏大中), 주조서(周朝瑞), 고대장(顧大章) 등 6인을 ‘수뢰’ 혐의로 탄핵했고, 곧 이들에 대한 체포령이 떨어졌다. 위충현의 심복 허현순(許顯純)은 이들에게 상상을 초월한 혹독한 고문을 가했다. 고문을 못 이겨 고대장은 자살했다. 차라리 그가 행복했다. 나머지 5명의 시신은 전부 문드러졌다. 위충현은 1626년에도 옥사를 일으켰다. 고반룡(高攀龍), 주순창(周順昌), 황존소(黃尊素) 등 7명에게 체포령이 떨어졌다. 고반룡은 물에 몸을 던져 자살했고, 나머지 6명은 예의 혹형을 받았다. 환관들이 금의위(錦衣衛)에서 행한 고문은 잔혹했다. 끌려온 자들에게 5가지의 도구를 이용하여 혹형을 가한 후 가죽을 벗기기도 했다고 한다. 주순창은 고문을 받으면서도 위충현을 비판하다가 이를 모두 뽑혔다. 동림당을 탄압하면서 위충현의 권세는 하늘을 찔렀다. 그 배경에는 천계제의 방임이 자리잡고 있었다. 동림서원을 비롯한 동림당의 근거지는 파괴되었고, 각 지역에는 위충현을 모시는 생사당(生祠堂)이 세워졌다. 모문룡도 가도에 위충현을 기리는 생사당을 세웠다. 위충현의 전횡에 절망한 관료들은 사직했고, 변방의 지휘관들 상당수는 누르하치에게 귀순했다. 누르하치의 철기(鐵騎)는 달려오고 있는데 명은 안으로부터 무너지고 있었다. 한명기명지대 사학과 교수
  • [여수참사 6개월 끝나지 않은 악몽] (중) 단속 공포에 떠는 마석 1500 이주노동자

    후텁지근한 폭염이 계속된 지난 16일 낮 경기 남양주시 마석 생성공단의 수은주는 정점에 달했다. 나환자촌에서 이름난 가구단지로 탈바꿈한 이곳은 요즘 ‘폭풍전야’와 같은 정적만이 감돌고 있다.400여개 중소업체,1500여명의 이주노동자가 일하는 ‘이방인의 메카’로 알려져 있지만 정작 외국인 노동자를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방글라데시인 A(35)씨는 “한국 정부가 이달초부터 불법체류자 집중단속 방침을 밝힌 뒤 절반가량이 숨어 지낸다.”면서 “대부분 고용허가제 도입 직전 실시된 2003년의 집중단속 악몽을 떠올린다.”고 전했다. 이곳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가구단지 노동자 중 70∼80%를 불법체류자로 보고 있다. ●70~80%가 불법체류자 정부의 이주노동자 불법체류에 대한 원칙은 ‘무관용’이다. 지난 6월1일 출입국관리법령이 개정됐고 두 달간 계도기간을 거쳐 1일부터 법무부, 경찰청, 노동부 등이 합동 단속반을 운영하고 있다. 단속 대상도 노동자에서 사업주로 확대됐다. 불법고용 사업주에 대한 범칙금이 100만원에서 200만원으로 높아졌고, 고용외국인 수에 따라 수천만원까지 중복 부과도 가능하다. 영세점포 사장인 B씨는 “휴가철 출입국관리소 업무가 폭증해 아직 단속이 심하지 않은 편이다. 우리공장 불법체류 이주노동자를 잠시 쉬게 한 뒤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면서 “이들은 숙련도와 적응성, 한국어 구사능력이 뛰어나다. 국내 노동자는 이곳에서 두 달 이상 버티지 못하더라.”고 전했다. 덕분에 대부분 업체들은 개점휴업 상태다. 사업주연합회는 ‘정부가 합리적 대안을 마련해 달라.’는 연판장을 돌리고 있다. 성공회 남양주교회 이영 신부는 “불법 이주노동자는 허술한 정부정책의 희생양인데 단속위주 정책을 고집하는 건 불합리하다.”면서 “이미 폐지된 산업연수생제 외에 시행 3년째인 고용허가제도 노동자의 이동권을 철저히 제한한 노예제”라고 주장했다. 이 신부는 최근 지역 출입국관리소측과 ‘일터나 숙소까지 들이닥쳐 잡아가지는 않겠다.’는 구두약속을 받아냈다. 하지만 짐을 꾸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방글라데시인 샤니(26)는 “출국 티켓을 끊었다. 단기 관광비자로 들어왔지만 이곳 모습을 보니 답답했다.”고 말했다. ●이주노동자 “단속보다 제도개선을” 12년째 체류 중인 방글라데시인 이라니(32)는 “2003년 단속반이 문을 부수고 들어와 친구를 몽둥이로 때린 뒤 잡아갔다.”고 말했다. 그는 “돈 벌 시간이 없었다.”면서 “5000만원을 모아 10명의 부양가족이 기다리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1995년 입국했지만 매달 40만∼50만원을 받아 겨우 생계를 유지했고, 경기가 회복된 2002년까지는 외환위기의 여파로 야근수당도 챙기지 못했다. 그나마 이곳 체류자들은 노동·주거환경이 개선된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 이라니는 “폭행·폭언이 거의 사라지고 임금도 100만∼150만원선으로 크게 올랐다.”면서 “이전 산업연수생으로 입국하려면 브로커에게 뒷돈(1000만∼1200만원)을 줘 매달 60만∼70만원가량의 월급으로는 손해보기 일쑤였다. 불법체류가 잘못인 줄 알면서도 도망쳐야 했다.”고 전했다. 그는 “정부가 4월에 내놓은 5년 이상 체류 이주노동자에 대한 영주권 부여 계획도 전문 직종에만 해당돼 이곳 노동자들은 혜택을 보지 못한다.”면서 “단속이 아닌 제도적 개선을 부탁드린다.”고 하소연했다. 남양주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김미라 교수의 부모들을 위한 교육특강] (11) 체벌때 자존심 상처 안 주려면…

    [김미라 교수의 부모들을 위한 교육특강] (11) 체벌때 자존심 상처 안 주려면…

    ‘간이 콩알만 해졌다.’‘심장이 강하다.’‘허파에 바람이 들었다.’‘비위가 좋다.’‘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가슴이 뜨끔하다.’‘눈이 높다.’‘얼굴이 뜨겁다.’‘목에 힘을 주다.’‘어깨를 짓누르다.’‘발이 묶이다.’ 위 말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신체의 일부분을 빗대어서 사람의 마음을 표현한 말들만 모아 본 것입니다. 말 그대로 간이 콩알만 해진 것이 아니고 매우 놀랐다는 뜻이고, 심장이 튼실한 것이 아니라 성격이 강인하다는 뜻이고, 배가 실제로 아픈 것이 아니라 시기심이 생긴다는 뜻이지요. 마음은 눈에 보이거나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알아채기도 어렵고 설명하기도 난감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추상적인 마음을 구체적인 몸이나 물건, 풍경 등에 빗대어 표현하곤 합니다. 특히 신체는 마음의 상태에 따라 변화하는 것을 스스로 쉽게 알아챌 수 있기 때문에 물건이나 풍경에 비해 마음과 관련된 표현이 많습니다. 마음을 알아챈 후에 마음에 영향을 주고 싶을 때도 우리는 신체의 일부분을 사용하곤 합니다.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양팔로 가슴을 감싸거나 불편한 마음을 가라앉히려 배를 문지르거나 눈물이 나오면 마음을 걷잡을 수 없을 까봐 눈을 끔뻑끔뻑합니다. 몸과 마음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하나일 때가 많습니다. 나이가 어릴수록 더욱더 그러합니다. ●신체 중 ‘목´ 부분 위는 자존심 영역 아이들을 기르면서 ‘대체 저 아이 머릿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기에 저 모양일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자녀와의 관계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 주어야 할지 잘 몰라 난감할 때 주로 하게 되는 말입니다. 이때 몸을 통해서 마음에 접근해 보시기 바랍니다.(포옹의 교육적 효과라는 글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피부 접촉을 많이 하는 것이 좋습니다. 칭찬이나 격려, 지지 등을 어린 자녀에게 전달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보듬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로서 아이를 훈육하기 위해서는 칭찬이나 격려, 지지 등이 아닌 다른 방식을 사용해야 될 때가 있습니다. 꾸중이 꼭 필요한 경우입니다. 감정이 섞이지 않은 합리적 꾸중을 해야 하지만 꾸중하다 보면 화가 나게 되고 그렇게 되면 꾸중은 야단으로 변질되면서 결국에는 참았던 분노가 폭발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체벌을 하게 됩니다. 아무리 합리적이고 교육적인 체벌이라도 부작용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지만 현실적으로 참 많이도 쓰이고 있는 방법이 육체적 체벌, 즉 매입니다. 그래서 부모님들께 당부하고 싶은 것은 불가피하게 매를 들게 될 때라도 절대로 얼굴과 머리만은 때리지 말라고 부탁드립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신체 중 목 윗부분인 얼굴과 머리는 자존심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자라서 자존심이 발달하게 되면 자존심과 관련된 신체 부분이 생깁니다. 대표적인 자존심 신체 영역이 바로 목 윗부분인 얼굴과 머리입니다. 아이의 자존심을 높여주는 행동으로 칭찬을 할 때 어른들은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곤 합니다. 그러나 칭찬을 받을 때조차도 아이들은 아무에게나 머리를 쓰다듬게 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 굳이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에게만 접촉을 허용하는 영역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얼굴·머리 맞으면 반항적 행동 처벌의 경우에도 역시 신체 다른 부분과는 그 효과가 다릅니다. 등이나 손바닥, 엉덩이를 맞는 것은 그냥 신체의 일부분이 매를 맞는 것이지만 머리나 얼굴을 맞는 것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머리나 얼굴을 맞게 되면 반성이 되기보다는 자존심이 상하면서 반항 행동을 하게 됩니다. 실제로 선생님보다 덩치가 더 큰 남학생들을 보면 선생님이 두꺼운 몽둥이로 매우 세게 엉덩이를 때려도 그대로 조용히 맞고 있지만, 출석부로 머리를 때리거나 손으로 따귀를 때리게 되면 자리를 박차고 학교 밖으로 뛰쳐나갑니다.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목 윗부분을 맞는 것은 무시당하는 것, 즉 자존심이 상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분이 매우 나쁘고 참기 힘들다고 합니다. 어쩔 수 없이 체벌을 하게 될 경우라도 얼굴이나 머리 부분만은 때리지 마십시오. 꽃으로라도 얼굴이나 머리만은 때리지 마십시오. 불가피하게 꼭 필요한 경우에만 자존심을 덜 다치는 부분인 손바닥이나 엉덩이 부분을 체벌하십시오.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는 처벌은 아이를 교육시킬 수 있지만,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처벌은 교육적 효과가 없습니다. 특히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사랑의 매’는 원치 않는 행동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더욱더 악화시킵니다. 옳은 방향의 변화를 가져오지 못하는 처벌은 학대나 폭력과 다르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자식에게 폭력을 휘두르거나 사랑하는 자식을 학대하고 싶은 부모는 없을 것입니다. 단지 잘못된 방법으로 사랑하는 부모가 있을 뿐입니다.
  • 진실화해위 재심권고 ‘아람회 사건’ 피해자 김난수씨

    “딸 아람이가 벌써 스물일곱 살입니다. 지금 수의사로 일하고 있어요. 아람이도 소식을 들으면 기뻐할 겁니다.”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약칭 진실화해위)는 5일 반국가단체 구성 혐의로 징역 10년을 선고받은 ‘아람회’ 사건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피해자 김난수(54)씨는 이날 소식을 전해듣고 “취업이 안 돼 고통받은 지난 세월이 너무 억울하다.”면서 “재심을 통해 무죄를 인정받고 손해배상까지 받으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단순 친목모임이 반국가단체로 ‘아람회’ 사건은 1981년 대전경찰서가 김난수씨와 박해전씨 등 12명을 불법감금 상태에서 고문 등 가혹행위를 한 뒤 법원에서 징역 10년과 자격정지 10년 등 중형을 선고한 사건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 미국을 비판했다는 이유였다. 피해자들은 2년 4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아람’은 김씨의 딸 이름이다. 경찰은 81년 7월 아람씨의 백일잔치를 계기로 김씨 집에 모인 사람들이 단순 친목모임 명칭으로 거론한 ‘아람회’를 반국가단체로 몰았다. 진실화해위는 “국가는 피해자들과 유가족에게 사과하고 재심 등 상응한 조치를 취하라.”고 권고했다. 김씨는 당시 육군 대위로서 직업군인의 길을 걷고 있었다. 김씨는 “장교 선배들과 친구들이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딸아이 백일을 축하했을 뿐”이라면서 “사건 이후 집안은 거의 파탄이 났다.”고 안타까워했다. ●보안부대 지하실서 한달간 고문 김씨는 다른 사람들과 떨어져 81년 8월 혼자 제507보안부대로 이첩돼 조사를 받고 군 검찰에 송치됐다. 김씨는 “무릎 사이에 몽둥이를 끼운 채 군홧발에 밟히는가 하면 발가벗긴 상태로 구타당하는 등 보안부대 지하실에서 한 달간 고문을 받았다.”고 밝혔다.83년 12월 특사로 풀려났지만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려야 했다고 김씨는 전했다. “출소 직후 3개 회사에 합격했지만 신원조회 과정에서 불합격처리됐고, 노태우 정권 때까지도 보안관찰 대상이라 취업이 안 됐습니다. 사면복권된 후엔 나이가 너무 들어 취업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 됐습니다.” 김씨는 식당과 독서실 등을 운영해 봤지만 모두 실패하고 지금은 10여년째 무직상태다. 김씨는 “가정형편이 너무 어려웠기 때문에 아람이도 아빠의 상황을 이해하면서도 경제적으로 무능한 아빠에 대한 불신이 컸을 것”이라며 가슴아파했다. 태어나자마자 반국가단체의 이름이 돼버린 딸 아람씨는 지금 어엿한 성인으로 자라 수의사로 일하고 있다. 5·18광주민주항쟁 유공자이기도 한 김씨는 5·18민주화운동등에관한특별법에 따라 2004년 4월 재심을 청구했고 현재 대전지법에 계류 중이다. 박해전씨 등 다른 피해자들의 재심청구는 작년 7월 서울고등법원에서 재판이 개시됐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적반하장’ 경찰 민중의 몽둥이?

    ‘적반하장’ 경찰 민중의 몽둥이?

    경찰이 순찰차로 어린이를 치고도 곧바로 적절한 조치를 취하기는커녕 오히려 항의하는 아버지를 형사입건하려 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24일 서울 강서경찰서와 목격자들에 따르면 지난 11일 오후 11시30분쯤 서울 강서구 화곡2동 H태권도장 앞 골목에서 이 동네에 사는 A(4)양이 강서경찰서 지구대 소속 최모·이모 경사가 탄 순찰차에 치였다. 그러나 순찰차를 운전했던 최 경사가 곧바로 차에서 내리지 않은 채 쓰러진 A양을 지켜 보기만 했다는 게 동네 주민들의 증언이다. 곧바로 인근에 있던 A양 아버지(40)가 달려와 자초지종을 물었지만 최 경사는 A양을 외면한 채 “보험처리하면 될 것 아니냐.”며 사고처리를 위해 순찰차 주변에 흰색 스프레이를 뿌리기 시작했다. 경찰의 고압적인 행동에 격분한 동네 주민 20여명이 경찰을 에워싸고 항의하자 최 경사는 “아이가 피만 안 나면 된 거 아니냐. 따지는 사람들을 모두 연행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과정에서 최 경사와 A양 아버지 간의 실랑이가 이어졌고, 최 경사는 갑자기 “나를 폭행했으니 공무집행방해죄로 연행하겠다.”며 A양 아버지를 입건했다. 결국 30여분간 방치돼 있던 A양은 어머니에 의해 뒤늦게 병원으로 후송됐다. 최 경사는 사건 직후 “A양 아버지의 폭행을 입증할 진단서를 첨부하겠다.”며 병원에 일주일가량 입원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사건을 목격한 한 주민들은 “사고를 낸 경찰이 오히려 동네 주민들에게 화를 내고 소리쳐 무서웠다.”면서 “피해자 아이의 아버지가 입건되는 공권력의 횡포를 실감했다.”고 입을 모았다. A양의 아버지는 “목격자들의 진술이 모두 맞다.”면서 “당시 억울한 심정은 말로 다 할 수 없지만 다행히 아이의 건강에 별 문제가 없고 경찰도 ‘입건을 하지 않고 사건 해결에 최선을 다할 테니 언론에 알리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강서경찰서 관계자는 “당시 주민들이 흥분한 상태에서 지켜본 탓에 상황을 과장한 측면이 있다.”면서 “사고직후 최 경사와 동승했던 이 경사가 곧바로 내려 아이를 보호했으며, 최 경사는 당시 너무 놀라 A양 부모가 올 때까지 앉아 있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피만 안 나면 된다.’는 발언도 ‘아이가 피가 안 나니 괜찮은 것 같다.’는 안도의 의미였으며, 주민들에게 ‘연행하겠다.’고 한 것은 주민들이 워낙 거세게 항의하고 욕을 해 경찰의 말이 하나도 들리지 않아 주변을 통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최 경사가 워낙 왜소한 사람인데 A양 아버지가 팔목을 세게 붙잡아 이를 놓으라고 수차례 경고했는데도 듣지 않아 그랬던 것”이라면서 “A양 아버지를 조사해 형사계에 넘기려 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형사계 쪽에서 ‘말이 안된다.’고 반려했다. 입건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외국인근로자 현대판 노예?

    #사례1 베트남에서 건너와 인천 서구 A공업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웬 반륭(34)은 지난 3월 작업지시에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현장소장에게 몽둥이로 구타를 당해 왼팔이 부러져 전치 8주의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현장소장은 형사상 책임은 물론, 치료비 지급마저 거부하고 있다.#사례2 역시 베트남 출신인 쩐 디마이티엡(24·여)은 경북 경산시 B섬유회사에서 근무하던 중 지난해 7월 추락 사고를 당해 8개월 가까이 병원 신세를 졌다. 하지만 고용주는 산업재해 보상신청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병원비 1000여만원을 대납했다는 이유로 예금과 급여를 압류했다.#사례3 이란인 압둘 후세인은 불법 체류자 신분이어서 수개월 동안 임금을 체불한 사업주를 고발조차 못하고 있다.“임금 체불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강제 출국되지 않는다.”는 설명에도 신분을 밝히기를 꺼리고, 황급히 자리를 떴다.#사례4 인천 서구 C기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베트남인 하 득빈은 사장에게 보증금 명목으로 700만원을 지급했다. 하지만 사장은 반환 요청을 묵살하고 있다. 국내에 있는 외국인 근로자들의 어두운 그림자다. 이들은 일부 악덕 고용주에 의해 기본권마저도 짓밟히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국민고충처리위원회가 지난 4월과 5월 서울 가리봉동 ‘외국인 노동자의 집’, 인천 도화동 ‘외국인 노동자 센터’에서 실시한 현장 순회상담에서 드러났다. 웬은 고충위의 도움으로 산업재해 신청을 마쳤으며, 소송을 제기하는 문제도 검토하고 있다. 쩐을 비롯한 나머지 외국인 노동자들의 문제도 고충위에 접수돼 현재 처리 절차를 밟고 있다. 30일 고충위에 따르면 외국인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두 차례 순회상담을 통해 모두 142건의 민원을 접수, 처리했다. 이 중 임금·퇴직금 체불이 전체의 42.2%인 60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고용주가 사업장 이탈방지를 이유로 여권을 압수한 뒤 돌려주지 않는 등 출입국 관련 문제 48건, 산업재해 및 민·형사상 문제가 14건 등이다. 고충위 관계자는 “언어 소통이 안 되고, 절차를 몰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여전히 많다.”면서 “오는 7월 대구,9월 경기,10월 충북 등에서도 외국인 근로자를 대상으로 순회상담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고충위는 최근 외국인 근로자 전용 민원상담전화(1588-1517)도 개설, 운영에 들어갔다.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하재봉의 영화읽기] 아포칼립토

    [하재봉의 영화읽기] 아포칼립토

    당신의 심장이 정말 뛰고 있는지 의심스럽다면 <아포칼립토>를 봐라. 심장 뛰는 소리가 탐탐북 소리보다 더 크게 들릴 것이다. 마야 문명이 태어난 원시림 속에서 벌어지는 거대한 생존의 혈투는, 생명력 넘치는 야성적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머리를 자르고 배를 가르고 심장을 꺼내는 일은 예사롭게 펼쳐진다. 그 끔찍한 잔혹함이, 폭력성과 선정성을 무기로 값싼 관심을 불러일으키려는 게 아니라는 것을 당신은 깨닫게 될 것이다. 잠시도 시선을 돌릴 수 없는 무서운 속도의 질주와 싱싱한 에너지가 화면에 가득 차 있는 멜 깁슨 감독의 <아포칼립토>. 호주에서 건너가 어느새 할리우드 최고의 배우에서 이제는 문제적 감독으로까지 성장한 멜 깁슨의 연출력이 도드라지게 드러난 작품이다. <아포칼립토>는 배우 출신 명감독 반열에 우뚝 올라선 멜 깁슨의 야심과, 날것 그대로의 에너지가 화면을 압도하는, 의심할 바 없는 올해의 수작 필름이다. 멜 깁슨 감독의 두 번째 연출작 <브레이브 하트>가 아카데미를 휩쓸 때까지만 해도 감독으로서의 멜 깁슨 앞은 탄탄대로인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세 번째 연출 작품으로 예수의 삶을 소재로 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선택했다. 멜 깁슨 감독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그는 성서에 적힌 그대로 영화를 만들겠다고 선언했지만 문제는 유대인의 반발이었다. 미국 사회에서 유대인 집단이 갖고 있는 엄청난 힘은 할리우드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제작 당시부터 처음 투자를 약속했던 투자자들이 유대인들의 압력을 받고 투자를 철회하면서 난관에 부딪쳤다. 시나리오를 검토한 사람들에 의해 이 작품이 유대인을 비하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멜 깁슨은 주장한다. 예수를 골고다의 언덕에 오르게 한 사람들은 유대인들이다. 성서에 의하면, 빌라도 총독과 헤롯왕이 예수에게 사형 언도를 내리는 것을 서로 피하기 위해 회피하다가 결국 군중들에게 묻는다. 진짜 살인범으로 사형 언도를 받은 죄수 바라바와 예수 중에서 한 사람을 풀어줄 텐데 너희들은 누구를 풀어주기를 원하느냐고. 군중들은 차라리 흉악한 사형수 바라바를 풀어주라고 외친다. 결국 바라바는 풀려났고 예수는 골고다 언덕까지 십자가를 메고 올라가 최후를 맞았다. 그 군중들이 유대인이다. 이런 내용이 알려지면서 결국 멜 깁슨 감독은 자신의 사재를 털어 제작을 해야만 했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이후 멜 깁슨에 대한 할리우드의 시선은 싸늘하다. 비록 그 영화가 엄청난 상업적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제작비의 상당 부분을 사재로 충당한 멜 깁슨에게 결과적으로 막대한 이익을 안겨 주었지만, 멜 깁슨에 대한 미국 영화계의 우호적 시선은 사라졌다. 멜 깁슨 감독이 만든 다음 작품 <아포칼립토>는 시선을 15세기 마야 문명이 꽃피고 있던 원시의 밀림으로 돌린다. <아포칼립토>를 지배하는 것은, 원시림 속에서 거의 발가벗은 채 살아가는 마야인들의 삶에 대한 호기심도 아니고, 날것 그대로 생생하게 재현되는 살인과 복수의 잔혹함도 아니다. 영화를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속도다. 숲 속에서 거의 알몸으로 살아가는 마야의 전사들은 멈추지 않는다. 처음에는 맹수를 사냥하기 위해서 그리고 숲을 파멸시키고 부족의 부녀자를 살해하며 힘센 남자들은 노예로 끌고 가려는 홀캐인 부족의 추격을 피하기 위해서, 그 다음에는 복수를 위해서 달리고 또 달린다. 카메라는 그들의 격렬한 움직임을 어떤 때는 그들보다 먼저 달려가서 잡아내기도 한다. 멜 깁슨 감독은 마야 최후의 전사들에게 리얼리티를 부여하기 위해서 아직 대중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신인들을 대상으로 오디션을 실시했다. 할리우드 경력이 거의 없는 배우들은 그러나 관객들에게는 실제로 마야 전사가 화면으로 등장한 것 같은 놀라운 충격을 주는 효과를 발휘한다. 원시의 숲 속에서 맹수를 사냥하며 자연과 함께 살고 있는 마야 부족의 리얼리티는 새 얼굴로 구성된 배우들과 그들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감독의 용별술에 의해 싱싱한 에너지를 창출하고 있다. 부족장인 부싯돌 하늘과 그의 아들 표범발(루디 영블러드 분)을 중심으로 원시림 속에서 맹수들을 사냥하며 살아가는 마야 부족. 그러나 잔인한 홀캐인 부족이 마을을 습격한다. 쇠로 만든 날카로운 단검과 돌도끼와 돌몽둥이 등 선진무기로 무장한 홀캐인의 침략 앞에 마야 부족의 전사들은 속수무책으로 쓰러진다. 영화의 전반부를 장식하고 있는 홀캐인족의 마을 습격 장면은 놀라운 핏빛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문명인들처럼 여러 가지 이유로 계산된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생존을 위해서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그들에게서는 화면에 묘사된 잔혹함 그 자체보다 더 큰 에너지를 발생시킨다. 그러나 정말 우리들의 아드레날린을 솟구치게 하는 장면은 그 뒤로 이어지는 추격신이다. 생포된 남편의 눈앞에서 강간을 당하고 잔혹하게 죽어가는 여인, 아들의 눈앞에서 처참하게 살해되는 아버지. 홀캐인에게 생포된 남자들과 여자들은 숲 속에 건설 중인 거대한 사원 앞으로 끌려간다. 여자들은 인신매매 되어 노예로 팔려가고 남자들은 노동력을 착취당하며 노예로 이용된다. 허리에 화살을 맞았지만 탈출의 기회를 잡은 표범발은 필사의 힘을 다해 숲 속으로 도망친다. 그를 뒤쫓는 홀캐인 부족장들과 무리들. 생존을 위해서 쫓고 쫓기는 추격신은 그 어느 영화에서보다도 생생하게 만들어져 있다. 멜 깁슨 감독은 능숙한 조련사의 솜씨로 소재를 완벽하게 장악하고, 긴장의 지속과 이완의 짧은 순간으로 전체 내러티브의 완급을 조절하는 탁월한 감각을 보여! 준다. 영화의 백미인 표범발의 탈출신은 그를 쫓는 홀캐인 부족의 파괴력 있는 추격으로 더욱 빛난다. 머리 속까지 잠기는 늪, 나무 위로 도망쳤지만 거기에서 마주치는 표범, 그리고 독사의 공격까지 피하며 표범발은, 수직으로 만들어진 마른 우물 속에 숨겨 놓은 만삭의 아내와 어린 아들을 위해서 죽을 힘을 다해 달린다. 그러나 홀캐인의 추격자들 또한 용맹스럽고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멕시코의 열대우림 정글 지역인 라정글라에서 파나비전의 고감도 디지털 지네시스 시스템으로 촬영된 필름은 매우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전사들의 미세한 동작까지 포착하고 있다. 또 국부만 겨우 가린 원시전사들이지만 각각 개성적인 헤어스타일과 이마까지 덮는 화려한 문신, 코와 입 등 얼굴 부위에 부착하는 장신구, 목과 허리 등에 걸치는 소품들이 어우러지면서 실제 마야 전사들을 보는 것같은 놀라움을 전해주는 <아포칼립토> 미술팀은 영화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데 커다란 기여를 하고 있다. 부족의 전사들이 끌려간 마야 제국. 제사장은 살아 있는 노예들을 신에게 바치면서 돌칼로 가슴을 자르고 뜨거운 심장을 한 손에 움켜쥐며 꺼낸다. 그리고 제물의 머리를 자르고 몸통을 계단 아래로 굴러뜨린다. <아포칼립토>의 이런 잔혹한 영상은 선정성으로 관객들을 유혹하는가 아니면 주제의 드러냄에 효과적으로 기여하는가 우리가 갈등할 필요는 없다. 야만과 폭력으로 얼룩진 역사는 외투만 다르게 걸친 채 현대까지 이어지고 있고 멜 깁슨 감독은 고대 마야를 배경으로 싱싱한 에너지가 넘치는 폭력적 세계의 모습을 창조해 냈다. 그가 타협하는 유일한 것은, 가족의 가치를 가장 높은 곳에 위치시키는 할리우드 전통을 따라가고 있다는 것이다. 오직 가족의 안전을 위해 자신의 숲으로 돌아가려는 표범발의 질주에 영화의 모든 것이 달려 있는 이유다. 글 하재봉 시인, 영화평론가, 동서대 교수     월간 <삶과꿈> 2007.03 구독문의:02-319-3791
  • 김승연회장 어떤 처벌 받나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보복 폭행 사건’은 법치주의 국가에서 법률적인 해결책을 찾지 않고 ‘자력구제’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악랄한 범행으로 분류된다는 게 법조계의 평가다. 자력구제는 고소를 하는 등 법률 절차에 따르지 않고 스스로 보복을 하는 것을 말한다. 그룹 총수인 김 회장과 피해자들의 관계가 대등하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김 회장에 대한 수사가 철저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가능…구속도 가능할 듯 피해자들이 밝힌 것처럼 사건 당시 김 회장 일행이 피해자들을 납치·감금·폭행했다면 김 회장은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3조 집단적 폭행 조항을 위반한 것이 된다. 징역 3년 이상의 형을 받을 수 있는 조항이다. 쇠파이프나 몽둥이를 들었다면 같은 법에 따라 역시 징역 3년 이상의 엄한 처벌을 받을 수 있다. 단순 폭행을 넘어섰기 때문에 합의해도 처벌이 가능하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소시민들이 포장마차에서 싸움이 붙어 맥주병만 깨트려도 가중처벌된다. 피해자 진술이 사실이라면 김 회장이 구속될 수도 있어 보인다.”고 진단했다. 특히 김 회장이 당시 현장에 있었던 이상, 직접 피해자들을 때렸든지 일행에게 때리라고 지시했는지 여부가 법률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다는 게 중론이다. 일행의 우두머리로서 역할을 했기 때문에 김 회장이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공범이 되며, 혹시 재판에 회부된다면 일행 가운데 가장 높은 형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제3자 업무방해에 공인이 법치국가 근간 흔든 책임론도 제기돼 김 회장은 아들을 때린 종업원을 찾기 위해 관련이 없는 종업원을 폭행하고, 더 나아가 북창동 S클럽 사장의 뺨을 때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업무방해죄에 해당한다.S클럽 종업원들이 업무 외 영역에서 김 회장측과 분쟁이 생겼는데, 이를 이들의 영업장에서 해결하려 했기 때문이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성폭행과 성추행을 즐기던 사내의 종착역은

    “쯧쯧,자신이 죽는 줄도 모르고 여자만 보면 성폭행을 일삼더니만….” 중국 대륙에 여성만 보면 성폭행을 하지 못해 안달하던 ‘색귀(色鬼)’로 불리는 사내가 끝내 독살돼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오는 바람에 충격을 주고 있다. 최근 중국신문망(中國新聞網)에 따르면 자신의 생명을 단축한다는 생각도 못하고 깝죽대던 장본인은 중국 중서부 쓰촨(四川)성 루저우시에 살았던 장얼(張二·가명)씨.독신인 그는 주위의 여성들을 보기만 하면 성폭행과 성추행을 일삼다가 끝내 비극적인 종말을 맞았다. 줄곧 독신생활을 해왔지만,궐자는 여성 밝힘증에는 누구 못지 않았다.해서 친구들로부터 그렇게 여자를 좋아하면서 결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을 자주 들었다.이에 대해 장씨는 “세상의 모든 여자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결혼을 할 수 없다.”고 궤변을 늘어놨다. 그러던중 몇년전 어느날,장씨는 같은 동네에 사는 가오(高)모씨의 아내와 그의 딸을 볼 때마다 성폭행했다.이 사실을 안 가오씨는 참지 못하고 아내와 이혼했다.가오씨는 얼마 있다가 재혼했다. 장씨는 이에 그치지 않고 가오씨의 재혼한 아내 류(劉)모씨에게도 성폭행과 성추행을 자행했다.가오씨 부부는 그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해 뼈속 깊이 각인됐다. 지난달 1일밤,가오씨는 회사 일이 많아 야근을 하고 있었다.이 틈을 노려 장씨는 가오씨의 집에 몰래 들어가 혼자 집에 있던 류씨를 범했다.늦게 퇴근한 남편 가오씨는 이 사실을 알고 더이상 장씨를 그대로 놔둘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이들 부부는 그를 열명길로 보내기로 마음을 굳혔다. 이튿날 오전,장씨는 남편 가오씨가 회사에 간 틈을 타 또다시 류씨를 만나러 갔다.장씨는 류씨에게 “술을 좀 먹었더니 속이 쓰리다.”며 “꿀물이나 좀 타 달라.”고 요구했다.류씨는 “잠깐 기다려라.곧 꿀물을 만들어 가겠다.”고 말했다. 그녀는 힐끗거리며 장씨를 쳐다본 뒤 두방망이질 하는 가슴을 안고 몰래 꿀물 속에다 쥐약을 탔다.이 꿀물을 맛있게 들이킨 장씨는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아직도 죽지 않은 모습을 본 장씨는 옆에 있던 몽둥이를 들고와 확인 살해했다.이들 부부는 고의살인죄 혐의로 쇠고랑을 차게 됐다. 온라인뉴스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책 읽어주는 손숙·황석영

    책 읽어주는 손숙·황석영

    “홀아비 죽어 하무자귀야 총각 죽어 몽달귀야/너두 먹구 물러가라/무당 죽어 걸립귀야 소경 죽어 신선귀야/너두 먹구 나가서라/…/총 맞구 칼 맞구 몽둥이 맞구 가던 귀신/비행기 폭격을 맞구 가던 귀신/불에 타서 일그러지구 재가 된 귀신에/마차에 기차에 추럭에 땡크에 치여 죽던 귀신/염병 땀병 흑사병 호열자 장질부사/폐병에 가던 귀신 마마에 가던 귀신/왼갖 잡색 객사귀 원귀야/오늘 많이 먹구 걸게 먹구/모두 먹구 나가서라/…/오늘은 고픈 배 불리구 마른 목 적셔 가구/진 거는 먹구 가구 마른 거는 싸가지구 질빵 걸어 메구 가구/여귀는 똬리 바쳐 이구 가구/동자귀는 오질 앞에 싸가지구/인정 받구 노자 받구 좋은 데루 천도를 허소사” 얼쑤! 지난 27일 오후 7시, 서울 내수동 교보문고 이벤트홀. 연극인 손숙(63)씨에 이어 소설가 황석영(64)씨가 자신의 작품 ‘손님’의 마지막 장 ‘뒤풀이-너두 먹구 물러가라’를 구성지게 낭독하자 객석에서 열띤 박수가 쏟아졌다. 작가의 입을 통해 듣는 소설은 독자가 눈으로 읽는 것과는 또 다른 색다른 맛을 냈다. 손씨의 드라마틱한 낭독은 사뭇 감동적이었다. 황씨의 소설 ‘오래된 정원’ 가운데 주인공 오현우가 출감해 이미 세상을 떠난 연인 한윤희의 편지를 읽는 대목을 손씨가 절절한 감정을 담아 낭독하자 이를 지켜보던 독자들은 하나둘씩 손수건을 꺼내들었다. 황씨가 낭독 작품인 ‘오래된 정원’과 ‘손님’의 창작 내력 등을 자세하게 독자에게 설명하면서 독자와 작가의 거리감은 점점 좁혀졌다. 황씨는 “손 선생이 고교 시절에 학교 문예반장으로서 역시 고교생 문학도였던 나와 조해일, 조세희씨 등과 더불어 문학을 이야기했다.”며 알려지지 않은 손씨와의 인연을 밝혔고,“새벽 해장국 집에서 혼자 소주를 시켜놓고 ‘나는 재주가 없다.’며 자탄했던 적도 많다.”며 창작의 고통도 진솔하게 토로했다. 이날 행사에는 연령과 성별을 초월한 100여명의 독자가 참석했다. 그 중에는 7년 동안 황씨와의 만남을 기다리다 광주에서 올라왔다는 독자도 있어 눈길을 끌었다. 교보문고와 대산문화재단은 지난해부터 작가·예술인 두명씩 초청해 ‘낭독공감’을 열고 있다. 이날 행사는 올들어 두번째 열린 것이다. 교보문고측은 4월에는 유명 외국작가를 초청해 소설 낭독의 맛을 계속 살려나가기로 했다.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방탄복에 숨은 원리는 총알 막는 그물

    방탄복에 숨은 원리는 총알 막는 그물

    즘 고구려 건국을 다룬 인기 사극 ‘주몽’에서는 군사들이 칼을 막아낼 수 있는 철갑옷으로 무장해 승승장구하는 모습이 주목을 끈다. 시공을 훌쩍 뛰어넘어 최근엔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테러 위협에 대비하라는 의미로 방탄 조끼를 선물받아 화제가 됐다. 그러면 신체를 보호하는 방탄복이나 방탄 유리 등 방탄 장비는 어떤 원리로 총알 등을 막아낼 수 있을까. ●총알 뚫지 못하게 그물처럼 촘촘하게 짜 한낱 섬유로 만든 방탄복이 총알을 막을 수 있는 원리는 그물을 연상하면 이해하기 쉽다. 높은 강도를 지닌 유리섬유를 빽빽하게 압축해 가로세로 엇갈려 짜는 것이다. 방탄복의 재료인 방탄 섬유는 보통 실과 달리 매우 질기고 탄성이 좋다. 같은 굵기의 강철보다 10배 이상 강도가 높다. 이 섬유로 만든 실을 그물처럼 촘촘하게 짠다. 여기에 총알이 명중하면 그물을 이룬 실은 총알에 의해 눌려지며 잡아당겨지게 된다. 이때 실이 견디는 힘, 즉 인장강도가 커져 총알은 관통할 수 없다. 마치 그물에 걸린 물고기처럼 옴짝달싹 못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총알에서 발생하는 고열이 섬유를 녹이면서 응집작용을 일으켜 총알의 운동에너지를 떨어뜨리게 된다. 방탄복의 비약적인 발전은 2차 세계 대전 중 초강력 합성섬유인 ‘케블라’가 개발되면서부터 가능해졌다. 이 섬유를 10∼20장 정도 겹치면 총알을 막을 수 있을 정도가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1866년 병인양요 직후 요즘과 같이 가벼운 방탄조끼가 등장했다.‘면제배갑’이라고 불린 이 방탄조끼는 헝겊 13겹을 겹쳐 단단히 꿰매 총탄의 운동 에너지를 차례차례 흡수하도록 설계됐다. 신미양요 때 톡톡히 성능을 입증하기도 했다. 그러나 입고 있으면 너무 더운데다 불에 취약한 단점이 있다. 방탄 조끼가 총알을 막는다 하더라도 충격까지 완전히 완화하지는 못한다. 몽둥이로 맞을 경우 옷을 뚫지는 못하지만 충격이 전달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방탄 유리, 고분자 필름 이용 유리는 그 자체로 어느 정도 방탄 기능을 갖는다. 유리 두께가 4∼5㎝를 넘으면 권총 총알이 뚫지 못한다. 유리섬유가 방탄복의 소재로 쓰이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이만한 두께의 유리는 사용하기에 불편하다. 때문에 폴리에틸렌으로 된 고분자 필름이 이용된다. 이 필름을 투명하게 만들어 2장의 강화유리 사이에 채워 넣거나, 고온·고압으로 성형해 붙이면 방탄 유리가 만들어진다. 유리에 선팅필름을 부착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풍선에 테이프를 붙이고 바늘로 찌르면 풍선이 터지지 않는 이치와 같다. 총알 등이 유리를 관통할때 방탄필름이 조각난 유리를 꽉 붙잡게 되면서 깨어지지 않는 것이다. ●거미줄, 액체 방탄복 등장할까? 보다 더 단단한 방탄 섬유를 만들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과학자들은 최근엔 거미줄로 만든 방탄복에 주목하고 있다. 거미줄의 강도가 어느 섬유보다 크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일부 연구에 따르면 거미줄로 짠 섬유를 이용한 방탄복은 합성섬유나 강철로 만든 방탄복보다 탄성이나 인장강도가 몇배 이상 큰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문제는 거미줄의 대량 생산 여부인데, 최근에는 거미의 유전자를 동물 세포에 이식하는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와 함께 ‘액체 방탄복’도 개발 중이다.‘Armor Holdings’라는 갑옷 제작 업체는 최근 특수 섬유(fiber and polymer)를 이용한 액체 형태의 투구와 갑옷을 선보였다. 총알이나 칼 등 딱딱한 물체가 충격을 가해 오면 단단한 고체로 변하는 원리를 적용시켰으며, 경찰이나 군, 교도소 등에 활용하는 방안이 추진 중이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엿장수로 팔도 누빈 윤팔도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엿장수로 팔도 누빈 윤팔도씨

    # 질문1‘엿 먹어라.’가 왜 욕이 됐을까.1964년 12월 전기 중학입시 공동출제 선다형 문제 중 ‘엿기름 대신 넣어서 엿을 만들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있었다. 정답으로 채점된 것은 ‘디아스타제’. 하지만 보기 중에 ‘무즙’이 있었는데 무즙을 정답으로 표기했다가 낙방한 학생의 어머니들이 법원에 제소하는 등 집단항의에 나섰다. 급기야 직접 ‘무즙’으로 만든 엿을 들고 관련기관 등에 찾아가 “엿 먹어라! 무즙으로 만든 이 엿 먹어봐라!”하며 엿을 들이댔다. 결국 당시 한상봉 문교부차관과 김규원 서울시교육감이 사표를 냈고 무즙을 답으로 썼다가 낙방한 38명은 정원에 관계없이 경기중학에 합격했다. # 질문2 엿장수는 1분에 가위질을 몇번이나 할까.‘초딩’시절, 시골동네에 ‘엿장수’가 찾아와 가위질을 하며 “엿 바꿔먹으라.”고 소리칠 때 여러번 들었던 추억의 문제다. 초롱초롱 눈알을 굴려가며 애써 답을 생각하다가 “야, 그거야 엿장수 맘대로지.”라는 답을 듣고 허탈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피식’ 웃음이 나온다. 어릴 적 가장 반가웠던 손님은 뭐니뭐니 해도 ‘엿장수’였다. 마을 어귀에서부터 절겅대는 가위소리가 들려오면 약속이나 한듯이 다들 쪼르르 달려가 엿장수의 뒤를 따랐던 그 때 그 시절. 오는 날짜도, 가위질 하는 것도 ‘엿장수 맘대로’였지만 늘 반갑기 그지 없었다. 다 떨어진 고무신 한쪽, 망가진 양은 냄비 조각, 심지어는 누나의 긴 머리카락까지 내밀면, 엿장수는 끌과 가위로 탁탁 잘라주며 “옜다, 엿먹어라.”하며 던져주곤 했다. 가끔 “쟤는 왜 많이 주고 저는 쬐금만 주나요?”라고 항의하면 “야, 엿장수 맘이여.” 하며 꿀밤을 맞기도 했다. 윤팔도(81) 할아버지. 어쩌면 어렸을 적 동네에서 한번쯤 만났을 법한 추억의 할아버지다. 지난 66년의 세월동안 ‘엿장수’라는 외길인생을 살아오면서 전국 팔도 구석구석 안 가본 데가 없다. 원래 이름이 석준이었지만 ‘팔도(八道)´로 바꾼 것만 봐도 그의 인생역정이 어떠했는지 짐작이 간다. 한때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엿장수들이 모인 엿가위질 경연대회에서 우승을 차지, 국가대표로 인정받기도 했다. 팔순을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현역으로 뛰기에 최장수 ‘엿장수’이자 살아 있는 ‘엿가위 예술의 달인’으로 꼽힌다. 더욱 눈길 끄는 대목은 그의 막내아들이 5년 전에 아버지와 합류했고 최근에는 손자까지 가세해 그야말로 3대째 ‘엿장수 집안’이 된 셈이다. 설날이 가까워오면 자연스럽게 정겨운 시골추억이 생각나기 마련, 그래서 지난 6일 오후 경기도 일산의 한 백화점 앞에서 엿장사로 가업을 잇는 이들 3부자를 만났다. 청주에 살고 있는 이들은 때마침 백화점측의 초청으로 설 대목 행사에 참석해 길거리에서 흥겨운 엿판을 벌이고 있었다. “일락 서산에 해 떨어지고 이내 목판에는 엿 떨어졌구나. 청춘 과부 잠못 잘 적에 먹는 엿이요, 큰애기 허벅지맹키로 희건 엿이 왔어요. 부산 동래 사탕엿, 울릉도에 호박엿, 전라도 봉산의 생강엿, 강원도 금강산 생청엿….” 윤 할아버지의 구성진 엿타령이 길가는 행인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아들과 손자는 엿가위로 어깨를 들썩들썩 하며 척척 장단 맞추는 모습에 절로 흥이 돋아난다. 잠시 짬을 낸 윤 할아버지와 마주 앉았다.81세의 나이보다 10년은 더 젊게 보였다. 비결을 물었더니 “즐겁게 사는 거여.”라며 그저 호탕하게 웃을 뿐이다. 지나온 인생살이가 간단치 않을터. 일찍 부모를 여읜 그는 8세 때 남사당패에 들어갔다. 왜소한 체구 ㅜ때문에 주로 3층 꼭대기에 올라가는 역할을 맡았다. 잘못되는 날엔 매맞기 일쑤였다.3년 뒤에는 창극단에 들어가 노래를 배웠다. 하지만 배고픔은 여전했다. 14세되던 겨울, 그는 호구지책으로 엿장수로 나섰다. 동네 어른을 통해 충남 공주시 계룡면 경천리(경씨가 1000명 산다는 마을)에 위치한 엿방(엿공장)에 취직했다. 이때부터 하루 밥 세끼를 먹게 되면서 엿장수 생활에 만족과 즐거움을 느꼈다. “엿방에 갔더니 장작불 지펴놨지, 엿물로 밥지어 먹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 비록 머슴 신세나 다름없었지만 남사당 가락으로 가위질 하며 용돈도 벌었어.” 19세되면서 세상 보는 안목이 넓어지자 홀로 독립한다. 음악을 알고 재주가 남달라 자신감이 더욱 생겼던 것. 우선 몽둥이만 한 엿을 만들었다. 이어 리어카를 구입하고 엿가위 두 개를 장만하면서 전국을 돌아다녔다. 가는 곳마다 어린 아이들은 “몽둥이 엿장수가 왔다.”며 떼지어 몰려들었다. 윤 할아버지는 기분 좋은 날이면 “자, 엿먹어라.” 하며 길다란 몽둥이 엿을 몇개씩 집어주기도 했다. 서른 한살 때 군복무를 마친 어느날, 충남 광천의 시골에서 엿판을 벌일 때였다. 창극 노래, 트로트 등으로 이어지는 흥겨운 놀이마당이 한바탕 끝나자 어여쁜 처녀(김종숙·70·지금의 부인)가 다가와 뒤따라가겠단다. 가만 보니 부잣집 딸이었다. 고생 바가지도 얼마든지 감수하겠다는 처녀의 진심을 알고는 친척이 사는 논산으로 함께 야반도주했다. 결국 연산면 살포리에 신혼살림을 차린다. “엿장수한테 누가 딸을 주겠나 싶어 결혼 생각을 안 했지. 허긴 엿가위 장단에 처녀들이 담 넘어 올 정도로 꽤나 인기를 모았어. 생각보단 결혼을 일찍했지만 부인은 늘 독수공방이었지. 리어카 끌고 집을 나가면 1년만에 돌아왔으니까 말야. 그러면서 하나 둘 낳은 아이가 나중에 5남매가 되더군.” 1969년 어느날이었다. 전남 영암 출신으로 큰 엿공장을 운영하는 한 부자의 주최로 서울 신당동에서 전국 엿가위질 경연대회가 벌어졌다. 호남의 송산갑, 부산의 김항구, 경기·인천의 백대가리, 서울의 윤팔도 등 내로라하는 고수들이 모였다. 여기에서 유일하게 ‘쌍가위’를 들고 출전한 윤팔도가 최우수상을 차지, 전국 최고수임을 입증했고 부상으로 쌀 20가마를 받았다. 1985년 12월이었다.KBS 전국 노래자랑 연말결선에서 인기상을 받고 방송국 정문을 나서는데 “오라버니 타세요.” 하면서 누군가 승용차 문을 연다. 얼굴을 보니 코미디언 배연정씨였다. 그 길로 간 곳이 서울 돈암동의 유흥업소. 곧바로 무대 위에 올라 ‘물레방아 도는 내력’‘고향무정’‘돌아가는 삼각지’등 세 곡을 불렀다. 그랬더니 50만원이 든 봉투를 받았다. 며칠 뒤에는 MBC 차인태의 ‘출발 새아침’에 초대받았고 이 방송을 본 신소걸씨한테 연락이 와 2년동안 밤무대에 출연했다. 낮에는 엿장수, 밤에는 가수로 활동했던 것이다. “휴전선으로 가로막힌 이북을 제외하곤 전국 안 가본 데가 없지. 엿가락 길이로 따지면 지구 수십번은 돌았을 거야. 그런데 요새는 엿가위 만드는 곳도 없어지고 뭔가 아쉬워.” 지난 2003년이었다. 윤 할아버지가 뇌경색으로 쓰러지자 막내 아들 일권(36)씨가 잘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쓰고 아버지의 뒤를 이었다. 일권씨는 “60여년동안 일해온 아버지가 존경스러웠다. 만약 돌아가시면 엿불림(구전 판소리)도 끊길 것 같았다.”고 의미 부여를 한다.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한 일권씨는 2년 전 아버지와 함께 ‘엿불림 음반’(대표곡 ‘엿가위 인생´)을 냈다. 아버지의 만류에도 가업을 이은 아들은 초보답지 않게 2005년에는 2억원, 작년에는 3억원을 벌어들여 아버지를 놀라게 했다. 해마다 명절 때 식구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엿판시합이 벌어진다는 일권씨는 “도저히 아버지를 따라갈 수 없다.”며 고개를 흔든다. 아울러 “이제는 초콜릿 대신 우리의 전통 엿을 사랑해야 한다.”면서 폐백이나 입학·졸업시즌에 애용되는 엿을 건강식 웰빙 스타일로 바꾸고 있다고 귀띔했다. “엿은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인정을 나눠주는 메신저 역할을 합니다. 아버지가 해온 66년과 제가 합류해 100년을 꼭 채우겠습니다. 또 제 아들이 100년부터 다시 어어가겠죠.” 손자 경식(13)군도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엿가위를 잡아 엿불림을 구성지게 부른다. 중학교에 진학하는 경식군은 휴일과 방학을 이용, 할아버지를 돕겠다며 활짝 웃는다. 인물 전문기자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26년 충남 논산 출생 ▲34년 남사당 입문 ▲40년 엿장수 생활 ▲69년 전국 엿장수 경연대회 최우수상 수상 ▲85년 KBS전국노래자랑 연말결선에서 인기상 수상 ▲2002년 윤팔도 전통엿집 개업(충북 청주시) ▲현재 사단법인 전통식품연구회 고문
  • [사설] ‘자물쇠 학원’에 아이 맡기는 부모

    겨울방학을 맞아 ‘자물쇠 학원’이 성업 중이라고 한다.‘자물쇠 학원’이란 아이들을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 붙잡아 두고, 외출을 결코 허용하지 않는 학원을 말한다. 이런 학원에서는 몽둥이를 든 감시원이 아이들을 통제하고 학원강사들의 체벌도 자주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같은 학생 관리 시스템이 부모의 요구에 따라 생긴 데다 학부형·학생 할 것 없이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니 정말 한심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자물쇠 학원’이 성행하는 세태를 이 시대 사회병리적 현상의 하나라고 판단한다. 아울러 그 바탕에는 부모의 잘못된 자녀관·교육관이 자리잡고 있다고 본다. 먼저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아무리 학업 성적을 높이려는 목적이 있다고 하나 방학을 맞은 자녀를, 외출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몽둥이 찜질’까지 벌어지는 공간에 매일 12시간씩 잡아둔다는 것은 명백한 인권유린이다. 또 무작정 아이들을 붙잡아 두고 공부를 시키면 성적이 나아지리라는 인식도 교육에 관한 무지·몰이해가 어느 정도인가를 보여주는 듯해 안타깝다. 학교에서는 가벼운 체벌을 당해도 학생·학부모가 난리를 치면서 학원에서는 매를 맞아도 싸다고 동의하는 이 현실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학부모의 의식 변화가 선행해야겠지만 궁극적으로는 공교육이 믿음을 되찾아야 한다. 교육당국도 관련법규가 없다고 손 놓고 있을 게 아니라, 청소년 인권보호라는 차원에서 ‘자물쇠 학원’의 실태를 파악하고 이를 규제하는 방안을 마련하기 바란다.
  • 유괴→결혼→탈출…10살 소녀의 인생 역정!

    유괴→결혼→탈출…10살 소녀의 인생 역정!

    “하느님! 이제 겨우 10년을 살았을 뿐인데….제 인생 살이는 왜 이렇게 팍팍합니까?” 중국 대륙에 아직 10살도 안된 어린 소녀가 차마 귀가 있어도 들 을 수 없고,눈이 있어도 눈뜨고 볼 수 없을 만큼 힘든 생활을 하고 있어 주변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다. 중국 중부 산시(陝西)성 시안(西安)시에 살고 있는 한 어린 소녀는 아직도 어린 나이지만 지난 4년동안 유괴→인신 매매→성폭행→학대→강제 결혼→탈출이라는 인생살이의 험한 맛을 본 얘기가 알려지면서 사람들을 마음을 무겁게 하고 있다고 서부망(西部網)이 10일 보도했다. 기막힌 사연의 주인공은 올해 10살된 마옌옌(馬艶艶).허난(河南)성 정저우(鄭州)역에서 그녀의 험난한 지난 4년의 인생 역정이 널리 알려지면서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마양에 따르면 그녀는 4년전인 6살때 유괴되는 바람에 다시는 집 구경을 하지 못했다.이후 유괴,인신 매매,성폭행,강제 결혼,아동학대,극적 탈출….험난한 인생살이의 쓴맛이란 쓴맛은 모두 봤다. “6살때였어요.어느날 아침,밥을 사 먹으러 집 근처 식당에 들렀어요.그때 어른 두 사람이 앉아서 식사를 하고 있었지요.그런데 그 아저씨 두분이 나에게 유탸오(油條·커다란 꽈배기 비슷)와 콩국을 사주면서 같이 따라가자고 했죠.매일 맛있는 것과 예쁜 옷도 사준다고 했어요.영문도 모르고 따라간 것이 고된 인생살이의 출발점이 됐죠.” 지나온 고된 세월에 너무 지친 탓인지 황달기가 있는 듯 얼굴이 부은 마양은 그러나 아무렇지 않은 듯 지난 생활을 털어놨다.이들 유괴범들은 그녀를 데리고 중국 남부 닝샤(寧夏)지역으로 도망갔다.3일동안 기차를 타고….이후 4년동안 마양은 산시·닝샤·허난성 등 3개성으로 돌아다녔다. 닝샤에서 이들로부터 인신 매매된 그녀는 그곳 주인(양부모)로부터 성폭행까지 당했다.그때 나이가 아직 6살때였다.이 양부는 곧 허난성 중머우(中牟)지역의 어떤 사람에게 팔아넘겼다.이곳에서는 강제 결혼까지 한 뒤 세상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학대를 당했다. 낮에는 소풀베기,농삿일,밥짓기 등의 집안일과 농삿일을 해야 했을 뿐 아니라,밤만 되면 “일을 제대로 못한다.”는 수모를 당하며 무자비하게 몽둥이로 맞아야 했다. 이를 참지 못한 마양은 결국 중머우의 주인(남편)이 잠든 틈을 타 몰래 도망나와 자기 집인 시안으로 가기 위해 기차를 타 끝내 ‘자유의 몸’이 됐다. 하지만 앞으로도 걱정이다.4년전 서안시의 집이 생각나지 않기 때문이다.이에 이날 정저우역 집법 공안을 찾아가 자신의 인생살이를 모두 털어놓는 바람에 그녀의 힘든 인생살이의 실체가 드러났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대학생 46% 여친폭행한 적 있다

    대학생 46% 여친폭행한 적 있다

    #1 여중생 A(15)양은 동갑내기 남자친구 C군으로부터 입술이 터질 정도로 자주 뺨을 맞는다. 평소 매너가 좋던 C군이 성적 얘기만 나오면 돌변했기 때문이다. 부잣집 외아들로 부족함없이 자랐으나 성적 콤플렉스를 가진 C군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주먹을 휘둘렀지만 1시간만 지나면 잘못했다며 싹싹 빌었고 지금도 이 같은 관계가 반복되고 있다. #2 회사원 채모(24)씨는 3년째 남자친구 김모(26)씨와 사귀었다. 약속에 늦는 것을 유독 싫어하던 김씨는 어느날 채씨가 1시간 늦자 옆 건물 옥상으로 끌고가 엎드리게 한 뒤 ‘왜 맞는지를 생각해 보라.’며 몽둥이로 때렸다. 다음 날 김씨는 꽃을 사 가지고 용서를 빌었고, 채씨는 약간 화를 냈지만 그대로 넘어갔다. 탤런트 이민영-이찬(본명 곽현식) 커플이 결혼 전부터 상습 폭행이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데이트 폭력’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 같은 사례들은 우리 사회에 일상화된 ‘데이트 폭력’이 위험 수위에 이르렀음을 드러내고 있다. ●여성 10명 중 4명 데이트 폭력 경험 4일 삼육대 서경현(상담학과) 교수가 오는 3월 건강심리학회지에 발표할 예정인 논문에 따르면 20대 여성 279명 가운데 36.9%가 데이트 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자 대학생 중 46.2%가 한 번 이상 어떤 형태로든 폭력을 행사한 경험이 있었다. 또 한국 성폭력상담소에 지난해 상반기 접수된 1328건의 성폭력 상담 중 6.8%인 90건이 데이트 폭력인 것으로 나타났다. 데이트 폭력은 언어적 모욕을 포함, 신체적·성폭력까지 다양한 범주를 담고 있다. 특히 데이트 폭력은 고스란히 가정폭력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데 문제가 있다. 여성의 전화 부설 성폭력상담센터에 따르면 응답자의 15.9%가 결혼 전부터 폭행을 당했으며 38.6%가 결혼 후 1년 이내에 맞기 시작한 것으로 조사됐다. 폭행을 당하던 피해자가 그대로 결혼에 이르거나, 잠시 폭력성을 숨기던 가해자가 새로운 상대와 결혼을 한 뒤 본색(?)을 드러내는 셈이다. ●데이트 폭력 처벌 쉽지 않아 성폭력이나 가정폭력은 성폭력특별법과 가정폭력방지법으로 제재를 가할 수 있지만 데이트 폭력은 오히려 처벌이 쉽지 않다. 민·형사상 처벌을 할 수 있지만 피해자가 경찰서에서 도착한 순간부터 첩첩산중이다. 여성의전화 부설 성폭력상담센터장인 문채수연씨는 “데이트 폭력은 일반 폭력사건 안에 묻혀 있고, 피해자가 여성이라는 점에서 심각하다.”면서 “일선 형사들의 인식이 문제다. 다른 폭력 사건보다 세심하게 다뤄야 하는데 ‘그렇게 애인을 콩밥 먹이고 싶냐.’는 식의 태도를 보인다.”고 꼬집었다. 한국 성폭력상담소 이윤상 부소장도 “데이트 폭력은 가정폭력과 비슷하게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은폐되기가 쉽고 피해자가 드러내기도 쉽지 않다.”면서 “또 ‘그렇게 싫으면 헤어지지 왜 계속 사귀냐.’는 식의 사회적 편견도 피해자로 하여금 폭력의 수렁에서 빠져 나오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다.”고 밝혔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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