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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몽골과 도시분야 교류차 출국

    이규방(李揆邦) 국토연구원장은 몽골과의 토지 및 도시분야 교류협력차 몽골 정부 초청으로 28일 출국한다.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51)장승의 마음은 하늘의 마음이다(上)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51)장승의 마음은 하늘의 마음이다(上)

    ●장승연구 소홀… 민중정신사 소외시키는 것 판소리 ‘흥부가’의 ‘박타령’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늘어선 조를 보면 대촌 당산 법슈(法首) 갓고’하는 부분이다.이 법슈(法首)는 벅수,법수라고 부르는 장승을 말하는데,이 말은 중국,일본의 문화와 아무 관련 없는 우리나라 토종이다. 장승 얘기는 가루지기타령(변강쇠타령)에 보다 상세하게 나온다.그 내용을 정리하자면 이렇다.즉 천하잡놈 강쇠가 산에 나무하러 가서 산고개에 서 있는 장승을 뽑아와 방에 군불을 때고 자다가 장승 동티로 죽어버린다.그러자 팔자 한번 겁나게 드센 옹녀가 강쇠놈 시체를 치우기 위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한다.길손들이 강쇠 시신을 치우려고 하다가 변을 당하는 이야기다. 생활 토대를 잃어버리고 떠돌아다니는 유랑민의 참담한 생활상을 주제로 하고 있는 변강쇠타령의 비극성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 장승이다. 우리나라 상류 사회의 신앙이었던 유교·불교와 관련된 역사와 미술은 많은 연구 성과물을 가지고 있지만 민중의 정신사라 할 수 있는 무속과 장승 연구 업적은 그리 많지 않다.무속 연구도 귀족 취향적 풍토에 머물러 있어서 무속의 참모습을 제대로 드러내는데는 한계를 지녔다.장승 연구가 희귀한 까닭은 민중의 정신사가 소외되고 있음을 뜻한다.안타깝고 또 잘못된 일이다.크게 후회할 일이다. ●‘살아있는 장승’ 갈촌선생을 뵙다 이같은 민중정신사의 소외 속에서도 30년 가까이 한국의 탈과 장승 연구에 삶을 녹여 넣고 있는 갈촌 이도열(李道烈·58·갈촌 탈 박물관장 겸 장승학교 교장) 선생을 만났다.그는 한국의 탈과 장승연구 분야에서 최고의 권위자이자 살아 있는 장승 그 자체로 통하는 귀하고도 고마운 분이다.오광대의 고장 경남 고성에 있는 ‘갈촌 탈 박물관’에서 탈과 장승에 관한 선생의 깨달음을 전해 들었다. 문:탈과 장승에 관한 생각을 언제부터 골똘히 하게 되셨는지요. 李:농과대학을 다니다가 군대에 나갔는데,훈련 중에 허리를 크게 다치는 바람에 일찌감치 제대를 했지요.그 길로 아버지께서 경영하시던 한우 비육 농사를 도우면서 농사를 시작했습니다.고향에서 살아가려면 농사 외에 다른 뜻 있는 일을 함께 해야만 보다 온전한 삶이 되지 않겠나 싶어서 이것 저것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았지요. ●‘고성오광대’는 신명의 원천 ‘고성오광대’가 눈에 들어오더군요.젊은 내가 땀흘려 배우고 지켜나가야 할 몫이라는 생각을 했지요.농사가 육신을 키우고 지켜주는 신명이라면 오광대의 춤과 노래는 영혼을 맑게 해주고 자라나게 하는 신명의 원천이라고 여겼지요. 오광대 춤을 배우게 되면서 한 가지 의심이면서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게 되더군요.탈을 만드는 문제였어요.탈의 눈,코,색깔,크기 등이 매우 다양한데 그 까닭을 알고 싶었어요.그런데 내 의문을 풀어 줄 만한 문헌,자료가 우리나라에 별로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 더욱 더 풀기 어려운 의문에 휩싸이게 되었지요. 이같은 의문을 안은 채 농사를 계속했지요.70년대 초반 우리나라 농촌이 대개 다 그러했듯이 고향을 떠나는 풍조가 만연하는 가운데서도 농촌에 남은 청년들은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농우회(農友會)를 조직하여 연대하기 시작했지요.이 농우회를 근간으로 하여 가톨릭 농민회를 만들어 이끄는 일을 맡기도 했지요. ●농민의 역사 안에서 생겨난 탈 한국 농업이 어려움에 봉착하고 농촌이 붕괴되기 시작하면서 저는 역설적으로 농민과 농업,농촌 문화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지요.농업(농사)은 한국 문화의 원형이며,농민은 그 문화의 어머니라는 것을 깨달았어요.탈은 그 농사와 농민의 역사 안에서 생겨났다는 것도 알았지요.좀 복잡하지만 계기라면 계기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문:흔히 탈과 장승은 조금 다른 것이라고 알고 있는데,어떤 관계로 봐야 합니까? 李:탈은 세 종류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태양탈,신앙탈,예능탈이지요.태양탈은 구석기,신석기시대 또는 그 이전에도 이루어진 여러 종류의 암각화,상형문자들을 말합니다.어둠,추위,맹수의 공격,식량,종족의 번식,사냥,태양의 힘 등과 인간의 생존 관계를 상징하는 그림들이지요.신앙탈은 고인돌,선돌,장승 등 자연의 섭리로부터 인간이 보호받게 되기를 갈망하면서 만들게 된 것인데,주술성을 중요하게 여기지요.종족 보호,건강과 식량의 확보를 위해 하늘에 기원하는 마음을 돌이나 나무에다 새긴 것이지요.예능탈은 주술성이 없어지고 단지 유희의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을 일컫는 말입니다. ●모든 ‘탈’의 근원은 욕심 문:그렇다면 ‘탈’이란 말은 어떤 의미를 지녔으며,언제부터 나타났을까요? 李:(웃음을 머금으면서)사람 사는 세상엔 참 탈도 많지요.배탈,해탈,돈탈,명예탈,온갖 욕심으로 해서 생기는 탈로 해서 한시도 탈 안 나고 살기 어렵지요. 배탈이 왜 생기는가? 사람이 태어나면서 어머니 젖꼭지부터 물지요.그 젖을 먹으면서 탈이 시작됩니다.어머니가 음식을 잘못 먹으면 젖먹이한테 배탈이 나거든요.젖을 너무 많이 먹어도 배탈이 나지요.몸은 거부하는데 욕심 때문에 자꾸 먹다보니 탈이 나지요.배탈은 생기기 전에 자신이 알고 있습니다.알면서 욕심을 억누르면 탈이 안생기지요.모든 탈의 근원은 욕심입니다.돈탈,명예탈은 목숨도 앗아가지요. 스님들은 내 마음의 어둠,고통,번뇌,망상을 다 태워버리는 것을 해탈이라고 하더군요.결국 왜 탈이 생기는가? 자연의 섭리에 어긋나는 생각을 하고,행동을 하니까 탈이 생길 수밖에 없지요. ●탈은 상상력·꿈·희망·기도의 상징 그래서 탈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인간이 욕심으로 하여 생기는 자연재앙으로부터 지켜지게 되기를 소망하는 마음의 형상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인간이기 때문에 욕심을 낼 수밖에 없고,그 욕심이 아니라면 또 세상은 얼마나 심심하겠습니까? 자연의 섭리와 인간의 욕심이 충돌하면서 생기는 탈은 어쩔 수 없이 또 자연의 섭리로 치유시켜 주고,쓸어안아서 자연으로 회귀하도록 다독거려주는 신(神)이 필요한 것이지요.참 얼마나 재미있는 상상입니까? 얼마나 멋진 말입니까? 그 상상력,꿈,희망,기도의 상징물이 탈이며,장승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원래 탈의 어원(語原)은 몽골의 ‘타르’라고 하더군요.‘타르’는 맑아지다,깨끗해지다,밝아지다,좋아지다는 뜻을 지녔다고 합니다.또한 불타다,불에 타서 없어진다는 뜻도 들어 있다고 합니다.‘탈춤’이라는 춤은 몸에 붙어 있는 온갖 탈을 탈탈 털어 내기 위해 추는 춤입니다. 문:장승은 탈의 기능적 한 종류임을 알겠는데,장승이 맨 처음 세워진 것은 언제쯤일까요? 그리고 그 때의 장승이 지녔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李:대개 삼국시대부터 장승이 세워진 것으로 봅니다.삼국시대 장승의 눈,코,입,귀와 몸이 지녔던 그 시대의 마음을 느껴보기 위해서 나는 그 시대의 의식주 환경을 재현하여 그 안에서 한 달 가까이 생활해 보기도 했지요. 음식은 거의 생식을 하고,옷은 겨울에도 내의 없이 홑껍데기 한복을 입었으며,산에다 토굴을 파거나 판잣집을 지어서 지냈는데 산이나 들판의 바위,나무 밑에서도 지냈지요.적게 먹고 그것도 생식을 하니까 잠이 적어지고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생각이 깊어지더군요.자연의 모습을 더욱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지요. ●장승 통해 자연치유 능력 발견 그런 마음의 상태에서 장승을 생각했지요.인간은 왜 장승을 다듬어 세우는가? 이 물음은 인간의 마음에는 왜 액이 생기는가 하는 것과 같지요.자연에서는 액이나 탈이란 것이 없습니다.인간이 많이 살게 되면서 자연과의 조화가 파괴되면서 액과 탈이 생겼지요.이 액과 탈을 치유시키기 위해 장승을 세운 것입니다.약이나 인위적 치료가 아닌 자연치유 능력을 인간 스스로가 발견한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자연과 공존할 수 있을까? 탈없이 살 수 있을까 하고 궁리한 끝에 터득한 것이 장승을 세우는 것이었지요.장승이 서는 자리가 엄격하게 선택되고,장승 다듬는 일이 신성시되고,장승 위치에 따라 역할이 달라지는 데까지 인간의 생각이 미쳤지요.마을마다의 액과 탈에 따라 장승의 모양과 서는 위치가 다른 것은 그 마을 사람들의 기원,소망이 각각 다르고 지리적 위치도 다르기 때문이지요. ●현대에도 장승 세우는 것은 ‘효험’ 때문 문:현대 사회에 들어온 이후에도 계속 장승을 세우고 있는데 무슨 이유일까요? 李:오랜 옛날에 세운 장승이 지금까지 남아서 전해지고 있는 이유나 오늘날 도심 한 가운데나 아파트 단지에도 장승을 세우기도 하는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효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문:효험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李:자연과의 공존,상생의 필요성을 느끼면서 우주 속의 내가 어떻게 하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되는 것이겠지요.그 때 장승은 나를 자연으로 인도해주는 안내자이자 내 안에 감춰져 있는 또 다른 나의 모습이기도 하거든요.그것은 미신이나 우상 따위가 아니라 우주와 나의 하나됨을 깨닫게 해주는 영혼의 등대 혹은 영혼의 치료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51)장승의 마음은 하늘의 마음이다(上)

    ●장승연구 소홀… 민중정신사 소외시키는 것 판소리 ‘흥부가’의 ‘박타령’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늘어선 조를 보면 대촌 당산 법슈(法首) 갓고’하는 부분이다.이 법슈(法首)는 벅수,법수라고 부르는 장승을 말하는데,이 말은 중국,일본의 문화와 아무 관련 없는 우리나라 토종이다. 장승 얘기는 가루지기타령(변강쇠타령)에 보다 상세하게 나온다.그 내용을 정리하자면 이렇다.즉 천하잡놈 강쇠가 산에 나무하러 가서 산고개에 서 있는 장승을 뽑아와 방에 군불을 때고 자다가 장승 동티로 죽어버린다.그러자 팔자 한번 겁나게 드센 옹녀가 강쇠놈 시체를 치우기 위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한다.길손들이 강쇠 시신을 치우려고 하다가 변을 당하는 이야기다. 생활 토대를 잃어버리고 떠돌아다니는 유랑민의 참담한 생활상을 주제로 하고 있는 변강쇠타령의 비극성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 장승이다. 우리나라 상류 사회의 신앙이었던 유교·불교와 관련된 역사와 미술은 많은 연구 성과물을 가지고 있지만 민중의 정신사라 할 수 있는 무속과 장승 연구 업적은 그리 많지 않다.무속 연구도 귀족 취향적 풍토에 머물러 있어서 무속의 참모습을 제대로 드러내는데는 한계를 지녔다.장승 연구가 희귀한 까닭은 민중의 정신사가 소외되고 있음을 뜻한다.안타깝고 또 잘못된 일이다.크게 후회할 일이다. ●‘살아있는 장승’ 갈촌선생을 뵙다 이같은 민중정신사의 소외 속에서도 30년 가까이 한국의 탈과 장승 연구에 삶을 녹여 넣고 있는 갈촌 이도열(李道烈·58·갈촌 탈 박물관장 겸 장승학교 교장) 선생을 만났다.그는 한국의 탈과 장승연구 분야에서 최고의 권위자이자 살아 있는 장승 그 자체로 통하는 귀하고도 고마운 분이다.오광대의 고장 경남 고성에 있는 ‘갈촌 탈 박물관’에서 탈과 장승에 관한 선생의 깨달음을 전해 들었다. 문:탈과 장승에 관한 생각을 언제부터 골똘히 하게 되셨는지요. 李:농과대학을 다니다가 군대에 나갔는데,훈련 중에 허리를 크게 다치는 바람에 일찌감치 제대를 했지요.그 길로 아버지께서 경영하시던 한우 비육 농사를 도우면서 농사를 시작했습니다.고향에서 살아가려면 농사 외에 다른 뜻 있는 일을 함께 해야만 보다 온전한 삶이 되지 않겠나 싶어서 이것 저것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았지요. ●‘고성오광대’는 신명의 원천 ‘고성오광대’가 눈에 들어오더군요.젊은 내가 땀흘려 배우고 지켜나가야 할 몫이라는 생각을 했지요.농사가 육신을 키우고 지켜주는 신명이라면 오광대의 춤과 노래는 영혼을 맑게 해주고 자라나게 하는 신명의 원천이라고 여겼지요. 오광대 춤을 배우게 되면서 한 가지 의심이면서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게 되더군요.탈을 만드는 문제였어요.탈의 눈,코,색깔,크기 등이 매우 다양한데 그 까닭을 알고 싶었어요.그런데 내 의문을 풀어 줄 만한 문헌,자료가 우리나라에 별로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 더욱 더 풀기 어려운 의문에 휩싸이게 되었지요. 이같은 의문을 안은 채 농사를 계속했지요.70년대 초반 우리나라 농촌이 대개 다 그러했듯이 고향을 떠나는 풍조가 만연하는 가운데서도 농촌에 남은 청년들은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농우회(農友會)를 조직하여 연대하기 시작했지요.이 농우회를 근간으로 하여 가톨릭 농민회를 만들어 이끄는 일을 맡기도 했지요. ●농민의 역사 안에서 생겨난 탈 한국 농업이 어려움에 봉착하고 농촌이 붕괴되기 시작하면서 저는 역설적으로 농민과 농업,농촌 문화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지요.농업(농사)은 한국 문화의 원형이며,농민은 그 문화의 어머니라는 것을 깨달았어요.탈은 그 농사와 농민의 역사 안에서 생겨났다는 것도 알았지요.좀 복잡하지만 계기라면 계기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문:흔히 탈과 장승은 조금 다른 것이라고 알고 있는데,어떤 관계로 봐야 합니까? 李:탈은 세 종류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태양탈,신앙탈,예능탈이지요.태양탈은 구석기,신석기시대 또는 그 이전에도 이루어진 여러 종류의 암각화,상형문자들을 말합니다.어둠,추위,맹수의 공격,식량,종족의 번식,사냥,태양의 힘 등과 인간의 생존 관계를 상징하는 그림들이지요.신앙탈은 고인돌,선돌,장승 등 자연의 섭리로부터 인간이 보호받게 되기를 갈망하면서 만들게 된 것인데,주술성을 중요하게 여기지요.종족 보호,건강과 식량의 확보를 위해 하늘에 기원하는 마음을 돌이나 나무에다 새긴 것이지요.예능탈은 주술성이 없어지고 단지 유희의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을 일컫는 말입니다. ●모든 ‘탈’의 근원은 욕심 문:그렇다면 ‘탈’이란 말은 어떤 의미를 지녔으며,언제부터 나타났을까요? 李:(웃음을 머금으면서)사람 사는 세상엔 참 탈도 많지요.배탈,해탈,돈탈,명예탈,온갖 욕심으로 해서 생기는 탈로 해서 한시도 탈 안 나고 살기 어렵지요. 배탈이 왜 생기는가? 사람이 태어나면서 어머니 젖꼭지부터 물지요.그 젖을 먹으면서 탈이 시작됩니다.어머니가 음식을 잘못 먹으면 젖먹이한테 배탈이 나거든요.젖을 너무 많이 먹어도 배탈이 나지요.몸은 거부하는데 욕심 때문에 자꾸 먹다보니 탈이 나지요.배탈은 생기기 전에 자신이 알고 있습니다.알면서 욕심을 억누르면 탈이 안생기지요.모든 탈의 근원은 욕심입니다.돈탈,명예탈은 목숨도 앗아가지요. 스님들은 내 마음의 어둠,고통,번뇌,망상을 다 태워버리는 것을 해탈이라고 하더군요.결국 왜 탈이 생기는가? 자연의 섭리에 어긋나는 생각을 하고,행동을 하니까 탈이 생길 수밖에 없지요. ●탈은 상상력·꿈·희망·기도의 상징 그래서 탈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인간이 욕심으로 하여 생기는 자연재앙으로부터 지켜지게 되기를 소망하는 마음의 형상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인간이기 때문에 욕심을 낼 수밖에 없고,그 욕심이 아니라면 또 세상은 얼마나 심심하겠습니까? 자연의 섭리와 인간의 욕심이 충돌하면서 생기는 탈은 어쩔 수 없이 또 자연의 섭리로 치유시켜 주고,쓸어안아서 자연으로 회귀하도록 다독거려주는 신(神)이 필요한 것이지요.참 얼마나 재미있는 상상입니까? 얼마나 멋진 말입니까? 그 상상력,꿈,희망,기도의 상징물이 탈이며,장승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원래 탈의 어원(語原)은 몽골의 ‘타르’라고 하더군요.‘타르’는 맑아지다,깨끗해지다,밝아지다,좋아지다는 뜻을 지녔다고 합니다.또한 불타다,불에 타서 없어진다는 뜻도 들어 있다고 합니다.‘탈춤’이라는 춤은 몸에 붙어 있는 온갖 탈을 탈탈 털어 내기 위해 추는 춤입니다. 문:장승은 탈의 기능적 한 종류임을 알겠는데,장승이 맨 처음 세워진 것은 언제쯤일까요? 그리고 그 때의 장승이 지녔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李:대개 삼국시대부터 장승이 세워진 것으로 봅니다.삼국시대 장승의 눈,코,입,귀와 몸이 지녔던 그 시대의 마음을 느껴보기 위해서 나는 그 시대의 의식주 환경을 재현하여 그 안에서 한 달 가까이 생활해 보기도 했지요. 음식은 거의 생식을 하고,옷은 겨울에도 내의 없이 홑껍데기 한복을 입었으며,산에다 토굴을 파거나 판잣집을 지어서 지냈는데 산이나 들판의 바위,나무 밑에서도 지냈지요.적게 먹고 그것도 생식을 하니까 잠이 적어지고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생각이 깊어지더군요.자연의 모습을 더욱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지요. ●장승 통해 자연치유 능력 발견 그런 마음의 상태에서 장승을 생각했지요.인간은 왜 장승을 다듬어 세우는가? 이 물음은 인간의 마음에는 왜 액이 생기는가 하는 것과 같지요.자연에서는 액이나 탈이란 것이 없습니다.인간이 많이 살게 되면서 자연과의 조화가 파괴되면서 액과 탈이 생겼지요.이 액과 탈을 치유시키기 위해 장승을 세운 것입니다.약이나 인위적 치료가 아닌 자연치유 능력을 인간 스스로가 발견한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자연과 공존할 수 있을까? 탈없이 살 수 있을까 하고 궁리한 끝에 터득한 것이 장승을 세우는 것이었지요.장승이 서는 자리가 엄격하게 선택되고,장승 다듬는 일이 신성시되고,장승 위치에 따라 역할이 달라지는 데까지 인간의 생각이 미쳤지요.마을마다의 액과 탈에 따라 장승의 모양과 서는 위치가 다른 것은 그 마을 사람들의 기원,소망이 각각 다르고 지리적 위치도 다르기 때문이지요. ●현대에도 장승 세우는 것은 ‘효험’ 때문 문:현대 사회에 들어온 이후에도 계속 장승을 세우고 있는데 무슨 이유일까요? 李:오랜 옛날에 세운 장승이 지금까지 남아서 전해지고 있는 이유나 오늘날 도심 한 가운데나 아파트 단지에도 장승을 세우기도 하는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효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문:효험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李:자연과의 공존,상생의 필요성을 느끼면서 우주 속의 내가 어떻게 하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되는 것이겠지요.그 때 장승은 나를 자연으로 인도해주는 안내자이자 내 안에 감춰져 있는 또 다른 나의 모습이기도 하거든요.그것은 미신이나 우상 따위가 아니라 우주와 나의 하나됨을 깨닫게 해주는 영혼의 등대 혹은 영혼의 치료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 개고기 값은 폭락하는데 보신탕값 그대로

    산지 개고기값이 폭락하고 있다.소비량도 눈에 띄게 줄고 있다.반면 보신탕값은 그대로여서 개고기 애호가들만 ‘봉’이라는 지적이다. 국내 개고기 소비량의 30∼40%를 담당하고 있는 경기 성남 모란시장내 견육판매업소들에 따르면 6월 초 개고기 판매가격은 1근에 4000원대를 유지하고 있다.수요가 많은 복날(7월20일)전 가격이라는 점에서 사실상 연중 최고가인 셈이다.전국적인 개고기 행사(?)가 끝난 뒤 찬기운이 돌기 시작하면 1근에 1800원대로 떨어질 것이라는 것이 상인들의 얘기다. 개고기 가격을 살펴보면 말그대로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수준이다.여름 한철을 제외한 매년 가격이 전년도 같은 기간에 비해 절반가량으로 떨어진다. 개고기값이 떨어지는 것은 개고기가 중국이나 몽골에서 대량 밀수입돼 가격하락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것이 시중에 널리 퍼진 소문이다.그러나 국내 개고기 물량마저 넘쳐난다며 밀수설에 이의를 다는 사람도 많다.사정이 이런데도 보신탕값은 요지부동이어서 개고기애호가들은 불만이다. 용인에서 인테리어업을 하고 있는 김항묵(42)씨는 “개고기 수육을 1근정도 시키면 보신탕집에서 여전히 3만원 가량 받고 있다.”며 “산지 개고기 폭락이 보신탕업소 배만 불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소비량도 가관이다.예년같으면 복날 개 한 마리(통상 40근)를 통째로 사가는 소비자들이나 업소들이 많았으나 이제는 10∼20근 정도만을 구매하는 것이 통상적인 수준이다.3∼4년전 1근에 연평균 8000∼9000원대를 유지하던 좋은 시절은 다 간 셈이다.소비량이 줄어든 데 따른 원인분석도 제각각이다. 상인들이 우선 순위로 꼽고 있는 것은 장기적인 경기불황.전반적인 경기침체가 개고기소비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모란시장 내 K상회 주인 김모(48)씨는 “3년전부터 경기가 하락세를 타면서 복날을 제외하고서는 소비가 줄기 시작했다.”면서 “지금으로서는 다른 원인을 찾지 못해 속만 앓고 있다.”고 말했다. 보신식품이 다양해지면서 젊은층이 보신탕을 선호하지 않는 등 생활패턴의 변화를 들기도 한다. 그러나 성남시청사 앞에서 보신탕집을 운영하는 P음식점 주인 강모(38·여)씨는 “최근 음식점을 찾는 고객들 가운데는 의외로 젊은층이 많다.”며 이의를 제기하기도 한다. 최근의 유력설은 애완견을 기르는 집이 늘어나기 때문이라는 것.집에 기르는 개를 보면 고기를 먹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회사원 정모(50·성남시 분당구 분당동)씨는 “어쩔수 없이 회식때 개고기를 먹지만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 생각이 나 가능한 한 피한다.”고 말했다. 사단법인 한국애견협회는 국내에서 애완견으로 사육되고 있는 개의 수는 식용인 육견을 제외하고도 올해 350만마리가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10년전인 1994년 100만리에 비교하면 3배가량이 넘는 수치다. 애견협회 사무장 김용현(31)씨는 “경제난으로 버려지는 강아지가 늘고 있지만 실제 애완견을 기르는 가구수는 늘고 있는 실정”이라며 “아마도 보신탕의 수요가 줄어드는 한 요인일 것”이라고 말했다. 성남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동아시아축구연맹 회장에 취임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이 19일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동아시아축구연맹 총회에서 회장으로 정식 취임한다.정 회장은 2006년 6월까지 연맹을 이끌며 2005년에는 한국에서 제2회 동아시아연맹컵 대회를 치른다.동아시아축구연맹은 2002년 동아시아의 축구 발전과 단합을 위해 한국 중국 일본 북한 홍콩 타이완 마카오 몽골 괌 등 9개국이 참가해 창설했으며,본부는 도쿄에 있다.˝
  • 외국인 근로자 서포터스 운영

    인천시 남동구는 남동공단내 기업에 근무하는 외국인근로자를 위해 사회·종교단체,기업체가 참여하는 국가별 서포터스를 구성,운영한다. 이를 위해 구는 인도네시아,방글라데시,인도,러시아,네팔,몽골,베트남,태국 등에 관심이 있거나 언어소통 능력을 있는 회원을 이달 말까지 모집한다.(032-453-2052).
  • 첫휴일 15만명 입장 ‘뜨거운 열기’

    ‘2004 강릉국제관광민속제’가 개막 이후 첫 휴일인 13일 입장객이 15만명을 넘어서는 등 무더위 만큼이나 뜨거운 열기속에 순항했다. 이날 아침부터 무더위가 한창인 한낮에도 관람객이 끊임없이 이어져 행사장이 발디딜 틈 없을 정도가 계속되자 이날에만 15만명(무료 입장객 포함)이 넘는 관람객이 찾은 것으로 강릉시는 전망했다. 행사 첫날인 지난 11일 총 입장객이 8만 2000명이 몰린데 이어 개막 3일째인 이날 시는 분위기가 크게 고무돼 10만번째 유료 입장객에게 김치냉장고를 전달했다. 휴일을 맞은 행사장에는 무더위에도 많은 관람객들이 몰려 단오체험관이나 세계민속관,한국민속관,농업민속관 등 모든 전시관이 관람객들로 긴줄이 이어지는 대혼잡을 빚었다.특히 2개관이 운영되는 단오민속체험관은 단오제 부적그리기,단오제 신주(술)마시기,수리취떡 만들기,관노탈 그리기,단오제 부채그리기,창포머리감기 등을 직접 시연할 수 있어 최고의 인기 장소가 되고 있다.또 수리공연장 등에도 벨라루스와 파라과이,중국 지린성,케냐,호주,캐나다,몽골,밀양백중놀이,관노가면극 등 국내외 공연단의 공연 때마다 관람객들로 가득차 성황을 이뤘다. 노인들에게는 북·꽹과리·징·바라소리와 인간문화재인 무녀 빈순애(강릉단오제 굿 부문 예능보유자)씨의 신명나는 단오굿이 펼쳐지는 단오굿당이 단연 인기있는 명소.관람객 김명자(67·여·강릉시 강동면)씨는 “무녀의 걸쭉한 사설에 모든 시름을 잊게 되고 신명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강릉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와다 하루키 지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급속한 국제화·세계화의 조류를 타고 있다.경제적 상호의존의 심화와 국경을 넘나드는 자본과 상품의 이동으로 어느 국가도 국제사회 속에서 고립된 채 외로운 섬으로 살아갈 수는 없게 되었다.이와 동시에 지역 국가간의 결속과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지역주의 역시 강화되고 있다. 그러나 세계화·지역화의 물결 속에서도 동북아시아는 첨예한 민족주의적 갈등과 안전보장문제에 휩싸여 있다.영토,역사인식 문제와 더불어 북핵위기라는 안전보장상의 문제가 동북아 국가들의 민족주의를 강화시키고 있다.즉,동북아에서는 세계화·지역화·민족주의화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이러한 지역적 상황 속에서 동아시아 공동체 창설에 대한 관심이 점차 고조되고 있으며,최근 ‘동남아시아 국가연합(ASE AN)+한 중 일’이라는 지역공동체가 제안되기도 하였다.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와다 하루키 지음,이원덕 옮김,일조각 펴냄) 역시 이러한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에 착안하여,1990년 이래 저자가 구상해 온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 구상의 배경과 필요성,그리고 장애요인들을 검토하여 구체적 실천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책에서 저자는 참된 동아시아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먼저 ‘동북아시아 6국(한국·북한·미국·중국·일본·러시아)과 몽골’의 동북아시아 국가연합(ANEAN)을 설립한 후,ASEAN과 통합하는 방법이 가장 바람직하며,동북아 공동의 집의 중추적 역할은 한국과 동북아 각 지역에 살고 있는 동북아 코리안이 주도해야 한다고 적고 있다.즉,전전 일본이 제창한 일본 중심의 대동아 공영권이 아닌,한반도가 중심이 되는 새로운 지역주의의 창설을 일본인 학자가 제창하고 있는 색다른 책이다. 저자인 와다 하루키(和田春樹,동경대학교 명예교수)는 김대중 납치사건,민청학련사건 등과 관련된 일본의 시민운동에 참여하면서 한국과 인연을 맺은 역사학자이며,한국의 근현대사에 대한 대표적인 연구자의 한 사람이다. 와다 교수는 책에서 동북아가 이질적이고 다원적인 지역이며,갈등과 대립의 지역이지만,동북아에서 공동의 집이 가능하다면 전 인류적 공동의 집이 가능할 것이라고 설파하고 있다.이 책이 주장하는 동북아 공동의 집은 북핵위기 등 안전보장위기의 극복,긴급사태에 대비한 상호원조체제의 정비,공동의 환경보호,FTA 등의 경제공동체 형성,국가간의 문화교류 등을 골격으로 할 것이며,궁극적으로는 정치와 안보 공동체로 발전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동아시아 공동체를 어떠한 형태로 추진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고 있다.그러나 동아시아 공동체를 ASEAN+3로 추진할 것인가,아니면 우선 ANEAN을 형성한 후 ASEAN+ANEAN으로 추진할 것인가 하는 것은 결코 상호 배타적이지 않다.예를 들어 경제협력은 ASEAN+3로,안보대화는 ANEAN을 토대로 하여 지역 공동체로 발전시키는 양면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북핵문제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공동의 안전보장 확보는 공동체의 기본 조건이다.따라서 지역문제해결에 비교적 성공적으로 운용되고 있는 6자회담을 발전시켜 동북아 공동체의 기초로 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하겠다. 비록 6자회담이 현재는 북핵문제의 해결이라는 한시적인 목적으로 운용되고 있으나,이 책에서 공동의 집의 골격의 하나로 거론하고 있는 ‘동북아 비핵화지대 구상’ 등은 북핵문제해결 이후에 6자회담을 지역 공동체로 발전시킬 수 있는 주요한 의제의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은 저자의 표현대로 유토피아일 수 있다.그러나 동북아 공동의 집이 가능하다면 인류 공동의 집,전 지구 공동의 집 또한 가능할 것이며,이러한 유토피아에의 지향은 우리의 의식과 행동을 전환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도 있다.1만 3000원. 전진호(광운대 일본학과 교수)˝
  • [Seoulite]민화 모임 ‘도린회’

    “민화를 그리다보면 한지와 먹의 은은한 향에 취해 마치 저도 화선(畵仙)이 되는 것 같아요.” 매주 수요일 도봉구 문화교양강좌가 열리는 날이면 창6동 도봉구민회관에는 ‘주부 장승업’이 출현한다.그것도 한두 명이 아니라 단체 등장이다. 지난 1995년부터 지금까지 9년간 진행된 이 수업은 이미 미술계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서울시 25개 구청 가운데 최초로 민화반을 개설했을 뿐만 아니라 수강생의 실력이 일취월장했기 때문.특히 민화반 수강생들이 자발적으로 ‘도린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은 미술계의 중심 인사동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민화를 사랑하는 도봉구 이웃들의 모임’이라는 뜻으로 지난 96년 결성된 도린회는 처음에는 오로지 회원들의 친목과 회원전을 위해 결성됐다.하지만 회원들의 실력이 나날이 향상되면서 공모전에서 수상하는 등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됐다.신미술대전,영월 김삿갓문화제 등 굵직굵직한 공모전에서 대상을 휩쓰는가 하면 인사동으로 진출해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지난 2000년 미국 아이오와주립대가 주최한 “한민족초청전”에 초대되기도 했고,이달 초에는 몽골 울란바토르 자나바자르 예술박물관에서 열린 ‘한국불화 및 민화전’에 출품,우리 문화의 진수를 선보였다.지난 99년에는 새서울가꾸기 운동의 일환으로 도봉로에 민화를 병풍식으로 그려 호평을 받기도 했다. 지난해까지 도봉구에서 살다 인근 강북구 수유5동으로 이사한 전 회장 최남경(54·여)씨는 “회원 20여명이 함께 민화를 그려나가며 정을 쌓고 있다.”며 “가입은 자유지만 탈퇴는 불가능”이라며 결속력을 자랑했다.신미술대전 등에서 5회 수상경력이 있는 최씨는 “은은한 한지와 묵의 향기를 맡으며 민화를 그리다보면 시·공간을 초월해 우리 민족의 정서를 뿌리부터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창동에 사는 주부 이정순(49)씨는 “무용을 전공해 그림에 소질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하다보니 계속 빠지게 된다.”며 “내가 그린 그림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는다는 사실이 너무 좋다.”고 말했다. 강좌 개설 당시부터 민화반을 지도하고 있는 이영숙(58) 옹기민속박물관장은 “회원들이 처음에는 유명작품을 베껴 그리는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스스로 창작을 해낼 정도”라고 자랑했다.이 관장은 또 “처음에는 연꽃 등을 그리다 1년 정도만 꾸준히 노력하면 동물이나 인물을 그리는 수준까지 이른다.”며 “누구나 전문화가 뺨치는 프로급 실력을 가질 수 있다.”고 귀띔했다. 고금석기자 kskoh@seoul.co.kr
  • 볼그레한 빛깔 진도 ‘홍주’

    “카아∼” 톡 쏘는 맛이 목구멍을 할퀴고 위장 깊숙이 전해지는 짜릿함을 느껴 본 사람만 안다.예부터 전남 진도에서 전해 내려온 전통 민속주 ‘홍주’맛이 이렇다.볼그레한 와인처럼 예쁜 때깔을 자랑하지만 보드카나 위스키 만큼독하다.마신 뒤 입안에 감도는 지초(芝草)향만이 서양의 술과 다를 뿐이다. 홍주는 증류주로서는 드물게 숙취가 없고 뒤끝이 깨끗한 ‘약주’로 알려져 있다.‘독주’를 좋아하던 섬 사람들이 즐겼으나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조때는 진상품이었다. 오늘날까지 전통 홍주 제조법의 맥을 이어온 허화자(79·전남 진도읍 쌍정리) 할머니는 “나이가 드니 공이 많이 드는 술 빚기가 힘에 부친다.”면서도 “누룩을 만들고 소주를 내릴 때는 온 정성을 다해야 한다.”고 털어 놨다.혹 명주(名酒)라는 이름에 손색이 가지 않을까 우려해서다. 어렸을 때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숙모밑에서 자라면서 홍주 제조법을 어깨 너머로 배웠다는 할머니에게서 홍주는 술 이상의 인생을 담고 있다. “옛날 양반집에서나 만들어 즐기던 술”이라는 허 할머니의 말에선 자부심이 배어있다.정말 홍주는 광복 전까지만해도 탁주와 달리 지체 높은 집안에서나 만들었던 고급 술이었다.그러던 것이 밀주 단속이 강화되면서 일반 서민들에 의해 밀주로 지금까지 명맥이 이어지고 있는 것. 지방무형문화재 제26호로 지정된 허 할머니는 지금껏 가마솥에 고조리(주전자처럼 꼭지가 달린 옹기)를 얹어 장작불을 지피는 전통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물론 대량 생산하는 농가도 있지만 그 맛을 비교해서는 안된다는 허 할머니 말에는 장인정신이 그래도 녹아 있다.“정성이 들어가야 술맛이 제대로 나지요.” 홍주는 보리·밀 등 곡류를 반죽해 만든 누룩과 고두밥을 섞어 발효시킨 덧술을 끓여 만든다.가마솥에 덧술을 넣고 고조리를 통과시키면 알코올성분이 함유된 증류주가 모아진다.여기까지는 일반 소주를 내리는 방식과 비슷하다. 홍주 제조의 핵심은 지초라는 생약에 있다.지초는 홍주의 붉은 색깔을 내는 주 재료인데,진도에서 자생한다.지초의 양이나 증류때 불의 강약이 술의 진홍색 또는 연홍색 등의 색깔을 좌우한다.최종 증류주를 받아낼 때 삼베에 잘게 썬 지초 뿌리를 올려 놓고 통과시키면 향과 색이 밴 홍주(알코올농도 40∼45%)가 빚어진다. 지초 표피에 다량 함유된 나프타 퀴논계열의 붉은 색소에는 해열 및 항균작용이 탁월한 성분이 들어있다.이는 정혈(精血)을 돕기도 한다. 이곳 주민들은 예부터 감기,소화불량,설사,복통이 날 때는 홍주를 소주잔으로 한 두잔씩 마셨다고 전해진다. 진도홍주는 보관중 자홍색이 검붉은 색으로 변한다.이는 술의 숙성에 따른 현상이며 밑에 깔리는 찌꺼기는 지초다. 그래서 홍주는 지초주(芝草酒)라고도 하며 중국 원나라에서 들어왔다는 소주에서 그 근원을 찾는다.일부 학자들은 삼별초를 토벌하러 온 몽고인들이 홍주 내리는 비법을 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제기한다.하지만 재료로 쓰이는 지초는 황폐한 몽골 땅에서는 생육이 힘들기 때문에 그곳에서 전래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다.일부에서는 조선조 연산군때 양천 허씨 문중이 진도로 내려오면서 제조 비법이 전해졌다고도 한다.전파 경로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고려조 이후 이 지방에서 자연 발생한 토속주란 데는 이견이 없는 듯하다. 홍주는 허 할머니의 제조비법 전수에 따라 현재 6개 농가가 ‘전통홍주보존회’를 만들어 보존,개발·산업화에 힘쓰고 있다.또 최근에는 강삼길(55·여)씨 등 2명이 홍주 비법 전수 장학생으로 선정돼,맥 잇기에 나섰다. 진도군 문화관광관(061-540-3229). 글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따라 빚으세요 재료=누룩,쌀,보리쌀,지초 (1) 쌀과 보리쌀을 7대 3비율(5㎏)로 섞어 고두밥을 짓는다. (2) 고두밥을 누룩 한 되와 섞어 항아리 등에 넣고 섭씨 20∼23도 온돌방에서 15일 정도 숙성시킨다. (3) 숙성된 덧술을 소주고리나 증류기 등에 넣고 섭씨 60도 정도로 가열,비점이 낮은 휘발성분을 제거한다. (4) 용기 겉부분에 냉각수를 부어 증류된 소주를 얻어낸다. (5) 소주를 잘게 썬 지초뿌리를 넣은 삼베주머니를 통과시키면 선홍색 홍주가 완성된다.이때 지초는 술덧 한 말당 100g정도 사용한다.˝
  • 동아시아 예술제 북한어린이 수원 온다

    북한·중국·일본·몽골·마카오·한국 등 동아시아 6개국 어린이가 참여하는 ‘2004 유네스코 동아시아 어린이 공연예술제’가 오는 7월 27일∼8월 2일 경기도 수원에서 열린다. 참가규모는 국외공연단 180명과 국내공연단 170명,국내외 초청인사 250명 등 모두 600여명이다. 특히 북한이 중국을 통해 유네스코측에 참가하겠다는 의사를 밝힘에 따라 남북한 문화교류 증진 및 평화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정식공연은 개막공연과 본공연 등 이틀만 하고,나머지 3일은 학교·문화유산 방문,공장 견학 등으로 짜여 있다.해외 어린이공연단은 모두 홈스테이를 통해 한국문화를 접할 수 있도록 했다. 한국은 11개 어린이팀이 참가,가야금 오케스트라와 창작발레,한국무용,풍물굿,탈춤,창작무용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선보인다.개·폐막식에는 성악가 조수미씨의 특별공연이 펼쳐진다. 수원 김병철기자 kbchul@
  • 9월11~12일 한국어능력시험

    교육인적자원부는 외국인과 재외동포를 대상으로 한 제8회 한국어능력시험(KPT)을 오는 9월11∼12일 서울교대·부산대·충남대·전남대 등 국내 4곳을 비롯,16개국 46개 지역에서 실시한다고 30일 밝혔다.첫 실시된 97년 당시 응시자는 2000여명이었으나 해마다 늘어 지난해 7회 시험에는 1만 416명이 시험을 봐 61.1%가 합격했다.올해는 1만 5000명이 지원할 것으로 예상된다.시험일은 ▲9월11일 미국·몽골·호주·브라질·베트남 ▲12일 한국·일본·중국·러시아·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우즈베키스탄·독일·태국·캐나다·영국 등이다. 국내 원서교부와 접수는 다음달 24일부터 8월3일까지 한국교육과정평가원과 시·도별로 지정된 대학에서 이뤄진다.자세한 내용은 평가원 홈페이지(www.kice.re.kr)를 참고하면 된다.˝
  • 儒林(104)-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儒林(104)-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채마밭을 지나자 다시 옛길이 나타났다.간신히 차 두세대가 엇갈려 갈 수 있을 정도로 비좁은 도로였다.도로 옆에는 아직 개발되지 않은 한옥들이 자리잡고 있었고,허름한 상점들이 쉴 새 없이 오가는 작업 차에서 풍기는 먼지를 뒤집어쓰고 구부정하게 허리를 굽히고 있었다.나는 상점에 들러서 말린 건어물과 소주 한 병을 사들었다.지난 겨울 능주로 갔을 때 향을 피운 분향만을 했던 것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상점 주인에게 조광조의 무덤이 있는 위치를 묻자 그는 턱으로 가리키며 말하였다. “언덕길을 내려가시면 큰 도로 입구 변에 있을 것입니다.잠깐이면 됩니다.” 비닐봉지에 물건을 싸들고 나는 다시 밖으로 나왔다. 거리 곳곳에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었다.도로뿐만 아니라 야산의 나뭇가지 위에도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이곳의 땅이 수원으로 편입되는 것을 반대한다는,페인트로 조잡하게 쓰여진 글씨였다.한결같이 붉은 페인트였으므로 얼핏 보면 붉은 피로 쓰여진 혈서처럼 보이고 있었다. 나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휘파람이라도 불고 싶은 가벼운 마음이었으나 마음과는 달리 발걸음은 무거웠다.그것은 조광조에 대한 이러한 상반된 평가 때문이었다.나는 지난 6개월 이상 조광조에 대한 추적을 계속해 왔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조광조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던 것이다. 조광조. 과연 그는 누구인가. 영웅인가,역적인가.아는 자인가,모르는 자인가.‘하늘의 도’와 ‘제왕의 법’을 알았던 성현인가,나라를 어지럽힌 괴수인가.지식인인가,지성인인가.도덕주의자인가,위선자인가.개혁적인 정치가인가,과격한 극단주의자인가.현실적인 인물이었던가,이상적인 몽상가였던가.오늘을 사는 우리가 본받아야 할 인물인가,아니면 본받지 말아야 할 인물인가. 그 순간 나는 한 짝은 검고 한 짝은 흰 태사혜의 신발을 마지막으로 선물하였던 갖바치의 참위를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 조광조는 여전히 한 짝은 검고,한 짝은 흰 가죽신을 신고 있는 것이다.500년이 흐른 세월 뒤에도 그는 여전히 짝짝이의 신발을 신고 있는 것이다.그렇다면 조광조는 검은 사람인가,아니면 흰 사람인가. 오늘날 우리들 중 자신이 검은 신을 신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은 조광조 역시 검은 신을 신었다고 할 것이다.스스로를 진보주의자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은 조광조 역시 진보주의자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며,스스로를 보수주의자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조광조를 과격한 극단주의자로 폄하하고 있을 것이다.이렇듯 자신의 이념이나 이기주의에 의해서 조광조는 아직도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여전히 한 밤의 숙청극은 계속되고 있다.아직도 권력의 신무문에서는 쿠데타가 이루어지고 있으며,끊임없이 정적에게 사약이 내려지고 있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이 백성을 위한다는 미명하에 이루어지고 있지만 실은 권력을 장악하려는 추악한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다.그 어디에도 백성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 순간 내 머리 속으로 몽골제국의 초기 공신이었던 야율초재(耶律楚材)가 떠올랐다.역사상 가장 강력하였던 몽골제국의 세조 쿠빌라이의 뛰어난 정치고문이었던 야율초재는 때문에 인류사상 최고의 정치가로 손꼽히고 있다.그는 요나라의 왕족 출신으로 대대로 금나라를 섬겼으나,몽고군이 요나라를 점령하자 칭기즈칸에게 항복한 인물로,군정과 민정을 분리하여 군관이 민중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고,세제를 정비하여 제국의 경제적 기초를 확립하였던 대정치가였던 것이다.
  • 儒林(104)-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채마밭을 지나자 다시 옛길이 나타났다.간신히 차 두세대가 엇갈려 갈 수 있을 정도로 비좁은 도로였다.도로 옆에는 아직 개발되지 않은 한옥들이 자리잡고 있었고,허름한 상점들이 쉴 새 없이 오가는 작업 차에서 풍기는 먼지를 뒤집어쓰고 구부정하게 허리를 굽히고 있었다.나는 상점에 들러서 말린 건어물과 소주 한 병을 사들었다.지난 겨울 능주로 갔을 때 향을 피운 분향만을 했던 것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상점 주인에게 조광조의 무덤이 있는 위치를 묻자 그는 턱으로 가리키며 말하였다. “언덕길을 내려가시면 큰 도로 입구 변에 있을 것입니다.잠깐이면 됩니다.” 비닐봉지에 물건을 싸들고 나는 다시 밖으로 나왔다. 거리 곳곳에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었다.도로뿐만 아니라 야산의 나뭇가지 위에도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이곳의 땅이 수원으로 편입되는 것을 반대한다는,페인트로 조잡하게 쓰여진 글씨였다.한결같이 붉은 페인트였으므로 얼핏 보면 붉은 피로 쓰여진 혈서처럼 보이고 있었다. 나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휘파람이라도 불고 싶은 가벼운 마음이었으나 마음과는 달리 발걸음은 무거웠다.그것은 조광조에 대한 이러한 상반된 평가 때문이었다.나는 지난 6개월 이상 조광조에 대한 추적을 계속해 왔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조광조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던 것이다. 조광조. 과연 그는 누구인가. 영웅인가,역적인가.아는 자인가,모르는 자인가.‘하늘의 도’와 ‘제왕의 법’을 알았던 성현인가,나라를 어지럽힌 괴수인가.지식인인가,지성인인가.도덕주의자인가,위선자인가.개혁적인 정치가인가,과격한 극단주의자인가.현실적인 인물이었던가,이상적인 몽상가였던가.오늘을 사는 우리가 본받아야 할 인물인가,아니면 본받지 말아야 할 인물인가. 그 순간 나는 한 짝은 검고 한 짝은 흰 태사혜의 신발을 마지막으로 선물하였던 갖바치의 참위를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 조광조는 여전히 한 짝은 검고,한 짝은 흰 가죽신을 신고 있는 것이다.500년이 흐른 세월 뒤에도 그는 여전히 짝짝이의 신발을 신고 있는 것이다.그렇다면 조광조는 검은 사람인가,아니면 흰 사람인가. 오늘날 우리들 중 자신이 검은 신을 신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은 조광조 역시 검은 신을 신었다고 할 것이다.스스로를 진보주의자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은 조광조 역시 진보주의자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며,스스로를 보수주의자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조광조를 과격한 극단주의자로 폄하하고 있을 것이다.이렇듯 자신의 이념이나 이기주의에 의해서 조광조는 아직도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여전히 한 밤의 숙청극은 계속되고 있다.아직도 권력의 신무문에서는 쿠데타가 이루어지고 있으며,끊임없이 정적에게 사약이 내려지고 있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이 백성을 위한다는 미명하에 이루어지고 있지만 실은 권력을 장악하려는 추악한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다.그 어디에도 백성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 순간 내 머리 속으로 몽골제국의 초기 공신이었던 야율초재(耶律楚材)가 떠올랐다.역사상 가장 강력하였던 몽골제국의 세조 쿠빌라이의 뛰어난 정치고문이었던 야율초재는 때문에 인류사상 최고의 정치가로 손꼽히고 있다.그는 요나라의 왕족 출신으로 대대로 금나라를 섬겼으나,몽고군이 요나라를 점령하자 칭기즈칸에게 항복한 인물로,군정과 민정을 분리하여 군관이 민중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고,세제를 정비하여 제국의 경제적 기초를 확립하였던 대정치가였던 것이다.˝
  • 세계사 편력1,2,3/곽복희·남궁원 옮김

    “보통 사람들이 언제나 영웅일 수는 없다.그들은 날마다 빵과 버터,자식 뒷바라지,또 먹고 살아갈 걱정 등 여러가지 문제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일단 때가 무르익어 사람들이 커다란 목표를 세우고 확신을 갖게 되면 아무리 단순하고 평범한 사람이라도 영웅이 되며,역사는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해 커다란 전환기가 찾아온다.그리고 그들 속에서 위대한 지도자가 나타나 모든 사람에게 활기를 불어넣어 큰 일을 이루도록 이끄는 것이다.” ●印영웅 네루가 딸 간디에 보낸 편지 196편 인도의 독립영웅 자와할랄 네루가 1930년 외동딸 인디라 간디의 13번째 생일을 축하해 보낸 옥중편지의 한 대목이다.네루가 나이니 형무소에서 쓴 이 편지는 거창한 도덕적 설교나 엄숙한 얼굴의 훈계가 아니다.네루 자신의 표현대로 “착한 요정이 줄 수 있는 공기나 정신,영혼으로 된 어떤 것”,다시 말해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의 선물이다.어떻게 지도자가 탄생하고 역사를 이끌어가는가를 소상하게 일러준 네루의 글은 훗날 인도의 초대 여성총리가 된 인디라 간디의 신념과 용기의 원천이 됐다. ●이야기체 편지글… 부담없이 읽혀 네루가 1930년부터 1933년까지 3년 동안 옥중생활을 하면서 딸에게 쓴 196편의 편지글들을 모은 ‘세계사 편력1,2,3’(원제 Glimpses of World History,곽복희·남궁원 옮김,일빛 펴냄)이 ‘결정판’의 형태로 완역돼 나왔다.이야기체의 편지글 형식인 만큼 부담없이 읽힌다는 게 장점이다.이 글들이 씌어진 시기는 인도가 영국의 지배를 받으며 독립운동을 전개하던 때.우리 역시 그 당시 일제의 지배 아래 있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우리의 입장에서 보는 세계사’라고도 할 수 있다. ●어린 딸의 역사적 안목 키워주려 노력 1919년부터 간디 밑에서 인도 독립을 위한 반영투쟁에 나선 네루는 1921년 이래 1945년까지 여덟 차례 체포되면서 9년 동안 감옥생활을 했다.네루는 어머니와 할아버지마저 투옥돼 홀로 남겨진 어린 딸에게 편지를 통해 역사와 인생을 보는 안목을 키워주려 했다.조국애에 대한 강조도 잊지 않았다.“가장 오래된 도시인 베나레스,즉 옛날의 카시를 찾아가 그 속삭임에 귀 기울여 보렴.아득한 옛날-숱한 제국의 몰락과 새로운 복음을 가져온 불타,오랜 세월 평화와 위안을 찾아 모여든 수많은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해 주지 않니? 늙고 쇠퇴하고 지저분하고 악취가 나지만 활기차고 연륜으로 가득차 있는 곳이 바로 베나레스다.그 얼굴에서 인도의 과거를 볼 수 있고,강물의 속삭임 속에서 사라진 세월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민족우월·제국주의 반대… 민주적 평등 강조 세계 역사는 바야흐로 중심이동이 이뤄지고 있다.이제 더이상 서구와 미국중심의 편협한 역사관으론 다변화하는 현대 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중국·인도 등 동양의 새로운 강자가 역사의 전면에 나서고 있다.네루는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누구보다 앞서 읽었다.그는 모든 민족의 자주성과 평등을 강조하며 민족우월주의와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나아가 동양이 과거엔 오히려 서양을 능가하거나 동등했음을 편지 곳곳에서 강조한다.“세계 여러 민족들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처럼 그렇게 다르지 않다.지도는 여러 나라들을 울긋불긋하게 구분해 놓고 있지만 그 색깔 구분이나 국경에 연연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아시아 사람들은 커다란 파도가 밀어닥치듯 몇번이나 유럽을 정복했다.그들은 유럽에 문화의 빛을 전해줬다.아리아인,스키타이인,훈족,아랍인,몽골인,투르크인….아시아는 이 민족들을 마치 메뚜기떼를 낳듯이 잇따라 키워냈다.사실 유럽은 오랫동안 아시아의 식민지와 같은 존재였다.” ●“행동은 사상의 종점이다” 네루가 국민회의파에 참여하게 된 것은 1916년 간디를 만나 그의 행동주의에 영향을 받아서였다.네루는 자신의 196회분 마지막 편지에서 “행동은 사상의 종점이다.”라는 프랑스 작가 로맹 롤랑의 말을 인용하며 다시 한번 ‘행동한다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행동을 동반하지 않는 사상은 모두 미숙아이며 변절이다.만약 우리가 사상의 주인이 되려 한다면 우리는 마땅히 행동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롤랑의 말은 곧 네루의 말이기도 하다.각권 1만 8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조양호회장 몽골대통령 환담 신입사원들과 나무심기 참가

    대한항공 조양호(왼쪽)회장이 21일 몽골 울란바토르시의 대통령궁에서 바가반디 몽골 대통령과 환담하고 있다. 조 회장은 대한항공이 이날부터 내달 1일까지 신입사원 1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몽골 바가누르 지역 묘목심기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몽골을 방문했다.대한항공은 이번 행사에서 포플러 3000그루를 심을 예정이다.
  • [새 음반]

    ●D12 ‘D12World’ 에미넴이 15세 때 클럽에서 함께 활동했던 흑인 5명과 결성한 힙합밴드의 두번째 앨범.어셔의 빌보드차트 연속 5주 1위 행진을 무너뜨린 화제의 앨범이다.첫 싱글 ‘My Band’는 에미넴에게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것을 꼬집은 곡으로 ‘Without Me’를 떠올리게 하는 곡.에미넴의 음악을 좋아하는 팬이라면 절대 실망하지 않을 듯.비속어가 많아 국내에는 클린버전으로 출시됐지만 청소년 이용불가 판정을 받았다. ●양방언 ‘에코우즈’ 재일동포 2세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프로듀서인 양방언의 5집 앨범.국악·몽골음악 등 아시아의 음악,아일랜드의 켈틱음악,록,재즈,클래식 등이 어우러졌다.양방언은 홍콩 스타TV 드라마 ‘정무문’과 영화 ‘썬더볼트’의 음악을 담당했고,MBC 드라마 ‘상도’의 메인테마를 작곡하기도 했다. ●오욱철 ‘첫사랑’ MBC 드라마 ‘종합병원’에서 의사 독사역으로 스타덤에 올랐던 중견탤런트 오욱철의 새 앨범.최근 음반을 출시한 배인순의 ‘늦어서 미안해요’의 노랫말을 만들기도 한 오욱철은 11곡의 수록곡 가운데 10곡을 직접 작사했다.˝
  • “한국인 기원은 中한족”

    한국인의 기원은 중국일까,몽골일까. 한국인은 ‘중국 중북부 농경민족’에서 비롯됐으며 중국 한족 및 일본인과 유전적 연관성이 크다는 주장이 나왔다.이는 한국인이 유전적으로 몽골인과 매우 가까운 반면 중국인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기존 연구결과와 상당한 차이가 있다.주요 학설로 통용되던 북방(몽골) 단일기원설도 뒤집는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단국대 생물학과 김욱 교수는 혈연관계가 없는 한국인 185명을 대상으로 ‘미토콘드리아 유전자(DNA) 변이’를 분석한 결과,한국인은 동아시아 남·북방 민족의 유전자가 혼재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11일 발표했다. 특히 한국인은 그동안 유사민족이라고 알려졌던 몽골인들보다 중국 한족 및 일본인과 더 가까운 유전적 특성을 보였다고 김 교수는 덧붙였다. 한국인과 일본인이 유전적으로 가깝게 나타난 것은 2300여년 전 일본 열도에 정착한 야요이(Yayoi) 민족이 한반도에서 이주했음을 보여주는 유전학적 증거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안미현기자 hyun@˝
  • 강제출국 대기 외국인 화성서 23명 ‘대탈주’

    화성 외국인보호소에서 지난해에 이어 또 다시 외국인들이 집단으로 탈주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9일 오후 5시40분쯤 경기도 화성시 마도면 외국인보호소에서 강제출국 대기 중이던 불법체류 외국인 23명이 담을 넘어 도주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날 오후 외국인수용소 직원들이 저녁 배식을 마친 수용자 4명을 17,18호 보호실에 들여보내려고 문을 여는 순간 수용실 안에 있던 외국인 32명 가운데 중국인 홍모(31)씨 등 23명이 문을 밀치며 몰려나와 직원 1명과 경비원 1명을 폭행하고 손잡이를 부순 뒤 정문 옆 담을 넘어 달아났다.당시 외국인보호소에는 직원 7명과 경비원 11명이 근무하고 있었으나 이들의 탈주를 막지 못했다. 달아난 외국인들은 중국인 11명,러시아인 4명,몽골인 3명,우즈베키스탄 및 카자흐스탄인 각 2명,베트남인 1명 등이다.이날 오후 6시쯤 몽골인 2명과 카자흐스탄인 1명이 붙잡힌 데 이어 오후 8시쯤 중국인 1명이 추가로 붙잡혔다. 화성 김병철기자 kbchul@˝
  • [8일 TV 하이라이트]

    ●장미의 전쟁(오후 7시55분) 재하는 처가에 들어와 살겠다고 밝힌다.정식 결혼식은 재하 부모의 허락 후에 올리기로 한 두 사람은 언약식을 올린 뒤 혼인신고를 한다.미연은 현우의 소개로 병원 상가를 세놓고 계약서를 쓴다.일이 수월하게 됐다는 생각에 미연은 다른 상가까지 현우에게 임대인을 소개받으려 하는데…. ●인사이드 월드(오후 1시25분) 영양,얼룩말,악어 등 모든 야생동물 고기를 맛볼 수 있는 케냐에서 야생동물의 미래에 대해 살펴본다.인구가 증가하면서 더 많은 식량이 필요한 사람들이 덫을 이용한 밀렵행위가 기승을 부린다.밀렵을 막고 야생동물 구별을 위한 환경단체의 노력과 환경 보호론자,밀렵꾼 등의 입장을 들어본다. ●모비 딕(오후 5시40분) 외국인들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에이햅 선장은 백경을 발견하는 자에게 스페인 금화를 주겠다고 말한다.백경에만 집착하는 에이햅 선장에게 스타벅은 불안함을 느낀다.오랜 항해에 지친 선원들은 충돌이 일어나고,불의의 사고로 선원 퍼스가 죽는다.온 배가 슬픔에 잠겨있을 즈음,백경이 나타난다. ●최동호의 세상읽기(오전 7시) 2004 아테네 올림픽이 100일 앞으로 다가왔다.이번 올림픽에선 국제대회 통산 5번째 남북 동시 입장이라는 쾌거를 이루기도 해 우리 체육계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관심은 날로 뜨거워져 가고 있다.대한체육회 이연택 회장을 만나 아테네 올림픽 D-100을 점검해 보는 시간을 갖는다. ●일요일이 좋다(오후 6시10분) 강호동,신정환,이휘재,이성진,노유민,채연,정다혜,김지혜 등이 출연한다.기상천외의 희귀한 물건을 놓고 발 만으로 무엇인지 알아맞춰 본다.‘신동엽의 사랑의 위탁모’에서는 초보엄마 엄정화와 명랑아기 수진이의 돌잔치 현장을 공개하고,탤런트 김희애가 엄정화에게 한 수 지도한다. ●도전!지구탐험대(오전 8시30분) 탤런트 구자미가 그돈느 인디오의 생활속으로 뛰어들었다.원시생명이 살아 숨쉬는 정글속에서 나름의 전통을 일구고 지혜를 닦아온 그돈느족의 삶이 공개된다.척박한 자연속에서 유목민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몽골인들의 생활속으로 찾아간 탤런트 유퉁의 따뜻한 이야기도 펼쳐진다. ●무인시대(오후 10시10분) 최충헌은 명종에게 봉사십조를 올려 국정을 개혁해야 한다고 주청한다.최충헌의 이러한 정책은 명종의 불안감을 가중시키지만,문신들에게는 지지를 받는다.최충헌이 소군들을 황궁에서 쫓아내고,거병에 불만을 품은 자들을 참살하자,명종은 두경승에게 최충헌을 척살할 것을 명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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