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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 난젠지에 있는 초조대장경 조선 초 日승려가 수집해 간 것”

    “日 난젠지에 있는 초조대장경 조선 초 日승려가 수집해 간 것”

    ‘일본 난젠지(南禪寺)의 일체경(一切經) 장경 중 대부분은 조선 초기에 일본으로 건너간 초조대장경과 팔만대장경’ 일본 교토 난젠지에 수장된 일체경의 초조대장경과 팔만대장경은 고려말∼조선초기 일본 승려들이 수집해 가져간 것이란 주장이 제기됐다. 고베 젠쇼지(禪昌寺) 주지인 곤도 도시히로(近藤利弘)는 고려대장경연구소와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공동주최로 10·11일 서울대 규장각에서 열리는 초조대장경 국제워크숍 중 ‘일체경의 유래’ 발제를 통해 이 같은 내용을 밝힐 예정이다. 곤도 도시히로의 주장은 일본에 있는 우리의 초조대장경과 팔만대장경이 임진왜란과 일제침략기에 강제로 반출됐다고 알려진 것과는 달라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곤도는 미리 배포된 발제문을 통해 “젠쇼지의 에도(江戶)시대 기록을 볼 때 일체경은 원래 젠쇼지에 있던 것을 1614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명에 의해 지금의 난젠지로 옮긴 것”이라며 “중국 원(元)나라기의 원판인 제46∼88고가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밝혔다. 곤도는 그러나 “원(元)판에 더해 1400년부터 1429년까지 부족한 부분을 고려나 중국 각지에서 출판된 것을 구입하거나 일본에서 추가해 지금의 일체경을 갖췄다.”고 덧붙여 일체경이 임진왜란 훨씬 이전인 조선 초기에 이미 완성됐음을 시인했다. 특히 “일체경에 들어 있는 지도를 보면 일체경은 중국의 익주 성도, 복주 동선사각원, 개원사, 항주 만산보령원, 고려의 부인사 등지에서 10세기 말∼13세기 제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며 “제작된 나라에서도 극히 일부만 남아 있는 귀중한 것들”이라고 강조했다. 일체경은 고려의 초조대장경·팔만대장경을 비롯해 중국 송대의 송판, 원대의 원판, 고려사경, 일본 사경 등 한·중·일 삼국의 경전들을 수집해 한질의 대장경으로 완성한 6000권 분량의 대규모 컬렉션. 경, 율, 논 등 이른바 불교의 ‘삼장’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1967년 한국의 한 서지학자가 이 일체경에 고려 초조대장경이 들어 있음을 처음 확인해 기록으로만 전하던 초조대장경의 실존이 확인되어 양국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고려 초조대장경은 중국 북송시대의 개보대장경(開寶大藏經)에 이어 세계 대장경으론 두 번째 제작된 것.5000여권의 방대한 분량이지만 몽골전쟁 때 목판이 완전히 파괴된 뒤 기록으로만 전해오다가 일본 난젠지와 국내 고려대장경연구소 등 양국 학자들이 공동 복원과 디지털화 작업을 벌이고 있다. 현재 국내 300여권을 포함해 일본 교토 난젠지의 1800권, 쓰시마민속자료관 600권 등 전체 분량의 절반 정도가 세상에 알려졌다.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일산 킨텍스, 볼거리·놀거리 가득

    관광박람회로는 국내 최대 규모인 ‘2007 경기국제관광박람회’가 11월15일부터 18일까지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개최된다. 경기도와 한국관광협회중앙회가 주최하고 경기관광공사, 경기도관광협회가 주관하는 이번 박람회에는 미국·일본 등 세계 30여개국,200여개 기관,500여개 업체가 참가한다. 특히 국내 최초로 세계 각국의 국수음식을 맛볼 수 있는 누들(Noodle) 축제가 열리고 한류우드 홍보관, 문화관광 UCC전시 등 이색적인 이벤트가 잇따라 개최돼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 일반 관람객들이 직접 체험하면서 물건도 가져갈 수 있는 FTA마케팅관, 농특산물 아이디어 상품 공모전시 등이 열리며 공예체험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마련된다. 이와 함께 중국 기예단과 몽골민속 예술단의 공연을 비롯, 필리핀과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각국의 민속공연이 잇따라 펼쳐지고 안성 태평무, 평택 웃다리 농악, 경기도 국악당 ‘한국의 美-웨딩’ 등 우리 전통민속공연도 감상할 수 있다. 부대행사로는 한·중 환황해 관광포럼, 해외바이어 B2B 비즈니스 상담, 해외관광청 프레스 미팅, 여행예약 담당자 지자체 설명회 등이 열린다. 지난 2003년 개최 이래 올해로 5회째를 맞는 경기국제관광박람회는 한국관광의 선진화 및 세계화 촉진 등 관광산업발전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람회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며 입장권은 전용 인터넷 홈페이지(www.gitm.or.kr)를 통해 무료로 받은 수 있다.(02)757-6161.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세계사 교과서 바로잡기/삼인 펴냄

    교과서가 오류와 편견으로 가득 차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 사회·세계사 교과서는 ‘세계를 처음 만나는 창’임에도 불구하고 강대국 중심으로 구성돼 편향된 세계관을 심어주고 있다. 때론 잘못된 지식을 전해주기도 한다.‘세계사 교과서 바로잡기(삼인 펴냄)’는 이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 인도·이슬람권·아프리카권 등 지역 전공학자 7명이 쓴 책이다. 저자들은 먼저 소승불교, 화교, 파오, 니그로 인종, 색목인 등 교과서에 나오는 잘못된 용어부터 지적한다. 조흥국 부산대 국제전문대학원 교수는 동남아시아와 스리랑카의 불교는 소승불교가 아니라 ‘상좌불교’라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작은 수레’라는 뜻의 소승(小乘)이란 이름은 나중에 생긴 대승불교 쪽에서 소승불교의 개인주의적 구도 방식을 비판하며 일방적으로 붙인 이름이라는 것이다. 19세기 말부터 사용된 ‘화교’라는 명칭은 외국에 일시적으로 체류하는 중국인을 뜻한다.20세기 중엽 이후 현지 사회에 점차 동화돼 가는 중국인들에게는 ‘화인(華人)’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하다는 게 조 교수의 지적이다. 화인은 14∼17세기 중국 역사를 기록한 ‘명사’에 나오는 용어로 해외에서 활동하는 중국인들을 지칭한다. 최근 중국에서도 공식 문서에 외국으로 이주한 중국계 사람들을 화인이라 부르고 있다. 몽골의 이동식 천막 게르를 중국어로 ‘파오’라고 하는 것은 김치를 기무치라고 하는 꼴이다. 또 니그로에서 파생된 ‘니거(nigger)’라는 속어는 흑인을 향한 가장 모욕적 표현으로 미국에선 금기시되는 말이다. 백인이 흑인 노예를 경멸하는 의미로 쓰였던 니그로란 단어를 우리 교과서에서는 왜 버젓이 쓰고 있을까. 색목인이라는 말도 문제다. 색목인은 제색목인(諸色目人), 즉 각양각색의 사람이란 말의 준말로 눈동자의 색이 다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는 중학교 교과서의 설명은 오류다.1만 9800원.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누드 브리핑] 형제나라 터키, 광진구에 문화원 약속

    자치구마다 해외 자매도시를 갖고 있는데요. 애향심이 부족한 주민에게는 자매도시 방문을 권할 만하다고 합니다. 서울의 세계디자인도시 선정에 얽힌 뒷이야기도 들어 봅니다.●밖에서는 한국이 대단한 나라 정송학 광진구청장이 최근 자매도시인 터키 콘야시 에레일리구를 방문, 환대를 받았다고 합니다.지난 14일부터 나흘 동안 방문한 자리에서 터키 측으로부터 30억원을 들여 광진구에 터키문화원을 짓겠다는 약속도 받아냈다고 하는군요.2002년 광진구가 미화 10만달러를 들여 현지에 공원과 한국전통식 정자를 지어준 데 대한 보답이라고 하네요. 터키인들이 한국에 우호적이라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는데요 이번에도 깜짝 놀랄 정도로 깍듯하게 정 구청장 일행을 환영했다고 합니다. 광진구에는 몽골인들이 많이 살고 있고, 유일한 몽골인 학교도 위치해 있는데요. 올해초 정 구청장이 몽골을 방문했을 때에도 예의를 갖춘 대접을 받았다고 합니다.광진구는 서울에서는 ‘구세(區勢)’가 그리 큰 편은 아니지만 해외에 나가면 위상이 한 단계 높아지는 셈입니다. 구청장을 수행한 한 직원은 “외국에서는 한국을 대단한 나라라고 생각하는데,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등 애향심이 부족한 주민 등을 한번쯤 자매도시로 데려가 보여 주면 버릇을 고칠 수 있을 것”이라고 이색처방을 내리더군요.●서울의 WDC 선정은 깜짝쇼 서울시가 지난 주말에 ‘세계디자인수도(WDC)’로 선정됐는데, 도시들 간의 경쟁도 치열했던 모양입니다.WDC 선정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국제산업디자인단체연합회(ICSID)’의 총회에서 발표됐는데요. 오세훈 서울시장도 지난 주에 급히 미국으로 날아갔지요. 막판 로비도 하고 혹시 선정되면 총회장에서 즉석 수락연설도 하기 위해서입니다. 세계 산업디자인단체 연합체가 창립 50주년을 맞아 처음으로 선정하는 만큼 20개국 도시가 출전해 치열하게 경합을 했다고 합니다.그런데 막상 ‘신참’으로 여겨지는 서울이 선정되자 전 ICSID 회장이자 국제 디자인계의 거두인 일본의 에쿠완 겐지가 일본 도쿄시 관계자들에게 호통을 친 모양입니다.‘지금까지 뭘 했느냐.’는 것이지요. 도쿄는 이번에 출전하지 않고 옵서버 자격으로 참여했습니다. 떨어진 두바이, 싱가포르 등 유명 도시들도 분위기가 썰렁했는데요 특히 샌프란시스코는 유명한 관광도시인 데다 총회 개최지로서 로비도 치열하게 했는데 떨어져 초상집을 방불케 했다는 후문입니다.서울팀
  • [20&30] 직장 회식문화 좋거나 싫거나

    [20&30] 직장 회식문화 좋거나 싫거나

    직장에서의 세대차이는 회식문화에서 눈에 띄게 나타난다. 세상은 크게 바뀌었지만 ‘삼겹살에 소주 한잔, 그리고 2차…´로 대변되는 직장 회식문화는 예전과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회식은 왜 술로 시작해 술로 끝내야 하는 것인가라는 새내기 직장인들의 푸념과 ‘회식=술’이라는 등식에 익숙해진 고참 직장인들의 보이지 않는 갈등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도 한국의 회식 자리에서 엄청나게 술을 마시는 것에 놀란다고 한다. 그러나 개인주의적인 삶에 익숙한 외국인들이 한국의 회식 문화를 부러워하는 목소리도 있다.20&30이 말하는 솔직한 회식문화를 들어봤다. ●회식은 왜 항상 술? 회사원 김모(26·여)씨는 직장의 회식 문화가 여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원래 술도 못할 뿐더러 ‘1차 술집,2차 술집,3차 술집’으로 이어지는 ‘회식라인’이 너무 지루하다고 말한다.“계속 술만 먹고, 가끔 노래방 가는 게 전부라 가끔은 답답합니다. 사람들끼리 모이면 정말 할 게 많은데 매번 술만 먹으니 오히려 스트레스가 더 쌓일 때가 많아요.” 김씨는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자고 선배에게 제안했다가 되레 쓴소리를 듣었다.“선배한테 1차로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고 2차로 칵테일 바를 가자고 했더니 ‘뭐 이런 애가 다 있냐.’며 황당한 웃음을 짓더라고요. 같이 얘기할 기회도 많고 더 좋을 텐데 아쉬움이 컸습니다.” 회사원 송모(26)씨도 술 일색인 회식문화가 못마땅하다. 원래 간이 좋지 않은 송씨에게 술은 독이나 마찬가지다. 그래도 다 먹는 분위기 속에서 혼자 안 먹으면 눈치가 보여 어쩔 수 없이 마실 때가 많다. “직장 상사가 잔을 주시는데 어떻게 안 받아요. 눈 딱 감고 무조건 먹습니다. 별 수 없이 종종 병원에 가서 간 검사를 합니다. 그 방법이 최선이죠.” 회사원 성모(26)씨는 회식 가운데 ‘대낮 회식’이 가장 힘들다. 영업 쪽에 근무하고 있다 보니 별 수 없이 술 접대가 많을 수밖에 없는데 특히 ‘대낮 회식’을 할 때가 많아 일에 지장을 미칠 정도다.“항상 경쟁하듯 술을 마셔요. 접대하는 사람이나 접대 받는 사람이나 누가 더 술이 센지 경쟁하죠. 특히 대낮에 이런 ‘경쟁 아닌 경쟁’을 하고 나면 몸을 추스르기 힘들죠. 말이 회식이지 이건 고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술먹는 게 차라리 좋다? 은행원 황모(30)씨는 회식 때마다 ‘차라리 술만 먹고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팀장부터 동료들까지 하나같이 노래방이라면 자다가도 일어나는 사람들입니다. 회식이라면 아예 1차부터 노래방에 가서 술 마시면서 노래를 부르지요.” 문제는 황씨가 음치라는 것이다.“팀원들이 노래 한 번 부르라고 권하는 걸 요령껏 피하다가 체면상 한 번 부릅니다. 팀원들이 가수 뺨치게 노래를 잘하는 사람들이라 제가 노래를 못하는 게 부담스러워요.” 장모(31·여)씨는 술보다도 담배 연기 때문에 회사 회식이 곤욕이다.“제가 술은 좀 마시는 편이거든요. 웬만한 남자들보다 잘 마십니다. 문제는 제가 폐가 안 좋다는 거예요. 술자리에서 남자 동료들이 한꺼번에 뿜어대는 담배연기 때문에 질식할 거 같아요.” 한번은 참다가 지쳐서 정색을 하며 문제 제기를 했다. 동료들은 미안했는지 앞으로는 교대로 한명씩만 담배를 피우기로 규칙을 정했다.“회식 시작할 때는 그 규칙을 지키죠. 하지만 취기가 오르기 시작하면 과장이 제일 먼저 규칙을 어겨요. 그러고 나면 다시 ‘너구리 잡기’예요. 지금은 어떻게든 넓고 환기가 잘 되는 곳을 회식 장소로 하도록 하는 걸로 작전을 바꿨답니다.” ●회식 자리가 그리워요 지난해 광고회사에 입사한 정모(26)씨는 다른 20&30과는 달리 함께 술을 마시며 ‘달리는’ 공동체 문화가 오히려 그립다고 말한다. 워낙 개인적인 성향이 강한 회사 분위기 탓에 제대로 된 회식자리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친구들은 회사에서 술먹느라 ‘정신 없다.’,‘힘들다.’ 말이 많은데, 저는 오히려 술에 취해 재미나게 얘기하는 그런 분위기가 그리워요. 대학 시절부터 밤새 술먹고, 술에 취해 못다한 얘기도 하는 게 정말 좋았거든요.” 이 때문에 정씨는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난 자리에서 주도적으로 항상 ‘폭탄주’를 제조해 친구들 사이에서 원성이 자자하다고 말한다. 한창 술에 힘들어하는 입사 1∼2년차 친구들은 ‘폭탄주’ 얘기만 들어도 과민 반응을 보이기 때문. “입사해서도 마땅히 술 먹을 곳이 없어 친구들과 만날 때마다 술을 많이 먹는 편인데, 친구들은 이게 못마땅한가 봐요.‘회사에서 원없이 먹는 술, 여기서도 그렇게 먹어야 하냐.’면서 볼멘소리도 해요.” 회사원 김모(26)씨도 회식자리가 즐겁기는 마찬가지다. 연배 차이가 많이 나는 직장 상사들에게 그나마 농담이라도 건넬 수 있는 게 회식자리이기 때문이란다. “제정신으로는 직장상사 앞에서 어떻게 농담을 할 수 있겠어요. 경직된 회사문화에서 그나마 ‘탈출구’가 될 수 있는 게 술자리 아닌가요. 같이 폭탄주 원없이 마시고, 노래방 가서 춤추고, 이러면 ‘딱딱한 우리 조직도 아직은 살 만하다.’란 생각을 하게 되죠.” ●이런 회식자리가 부럽다 연구소에서 일하는 강모(29·여)씨는 회식이 즐겁다.1주일에 한 번 있는 회식날은 팀원들이 모두 모여 보드게임을 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저녁을 맛있는 걸로 먹고 나서는 보드게임방에 가요. 다같이 머리를 맞대고 보드게임을 하다 보면 서너시간은 금방이거든요. 그러고 나서 시원한 맥주 한 잔으로 목을 축이고 헤어지는 거죠. 벌써부터 다음 회식이 기다려져요.” 벤처기업에서 일하는 여모(35) 팀장은 술만 먹고 다음날 속만 쓰린 회식을 바꾸기 위해 고민을 많이 하다 나름대로 해법을 찾았다. 팀원 중에는 술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술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었다. 모두가 즐겁게 회식도 하고 단결력도 높이는 방법을 고민하던 여 팀장이 찾아낸 방법은 바로 볼링이었다. “일단 다같이 편을 나눠서 볼링을 하는 겁니다. 가끔 술내기 볼링도 하고요. 자연스럽게 웃음꽃이 만발하고 박수 소리가 넘쳐납니다. 두세 시간 동안 즐겁게 놀다가 술을 못 마시는 사람은 집에 보냅니다. 하지만 자리가 즐거우니까 술은 안 마시더라도 대개 자리를 지키지요. 미리 예약해 놓은 곳에 가서 소주 한 잔을 곁들여 늦은 저녁을 먹죠. 운동을 하느라 땀을 흘린 뒤라 그런지 소주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어요. 팀원들도 만족스러워하고 특히 제가 가장 즐겁습니다.” 외국인들 눈에 비친 한국의 ‘회식문화’는 어떨까. 외국인들은 한국인이 회식 자리에서 너무 많은 술을 마신다는 것에는 한결같이 입을 모았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시각은 사람들마다 엇갈렸다. ●몸이 버티나요?” 대학생 비지저(26·중국)는 한국의 술문화가 못마땅하다. 비는 “중국이나 한국이나 술을 못 먹으면 직장생활 하기 힘든 것은 마찬가지”라면서도 “그런데 한국에서는 술을 안 먹으면 감시하는 눈으로 쳐다봐 부담스러울 때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에서는 윗사람 앞에서도 먹기 싫으면 안 먹겠다고 얘기하는데 한국 사람들은 찍힐까봐 두려워 꾹 참고 먹는 모습이 안타깝다.”고 아쉬워했다. 회사원 율리아(23·여·카자흐스탄)는 “카자흐스탄에서는 보드카 한 잔만 진하게 먹고 분위기를 즐기는데, 한국에서는 회식 장소에서 폭탄주 돌리느라 정신이 없다.”면서 “정작 회식자리에 술은 있지만 대화가 없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회사원 우노다 시오리(27·여·일본)는 “일본도 한국과 비슷하게 일 때문에 술을 마실 수밖에 없을 때가 종종 있다.”면서도 “그러나 말없이 폭탄주를 만들어 마시는 것을 보고 많이 놀랐다.”고 말했다. 우노다는 “직장 사람들과 동료애를 돈독히 한다는 것보다는 몸만 혹사시키는 것 같아 깜짝 놀랐다.”고 되뇌었다. 회사원 카이오(26·브라질)는 “한국의 회식문화는 좀 딱딱한 것 같다.”면서 “브라질은 술을 마실 때 음악과 함께하며 춤을 추며 거의 축제나 다름없다.”면서 “한국은 일의 연장선 같아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한국 남성과 결혼한 마리아(30·러시아)는 일주일에 두세 번씩 술에 취해 몸도 가누지 못할 정도가 돼 집에 들어오는 남편 때문에 스트레스다. “한국 기업들은 사람 중요한 줄 모르는 것 같아요. 건강을 지키면서 열심히 일하도록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하루가 멀다 하고 죽기 직전까지 술을 마셔대는 사람들이 어떻게 일을 잘 할 수 있겠어요.” ●같이 둥글게 모여 술자리 ‘인상적´ 회사원 개리 모리스(24·독일)는 한국의 회식문화가 부럽다. 따로따로 떨어져 술을 마시는 분위기가 아니라 같이 둥글게 모여 회식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기 때문이다. 모리스는 “독일 등 유럽인들은 병맥주 하나 들고 돌아다니면서 술을 마신다.”면서 “한국인들은 둥글게 모여 앉아 술을 마시면서 ‘우리는 하나다.’라는 일체감을 느낄 수 있어 인상적이다.”고 말했다. 대학교 강사 스테판 헤크만(30·미국)은 “한국인들은 노상에서도 술을 마시며 함께 이야기하는 분위기가 좋다.”면서 “따로 떨어져서 이야기하지 않고 다 함께 같은 화제로 말하는 한국인의 술문화가 너무 좋아 보인다.”고 부러워했다. 외국기업 한국 지사에서 일하는 제임스(34·영국)는 한국 사람보다도 더 한국의 회식문화를 즐긴다. 잔돌리기는 기본이고 폭탄주도 자기가 먼저 권할 정도다. 한국 사람도 못 말리는 그의 술버릇은 영국 런던에서 공부할 당시 한국 유학생과 알게 되면서 시작됐다. “친하게 지내면서 같이 술도 자주 마셨어요.1차,2차,3차 자리를 옮겨 다니면서 종류별로 마시는 것도 그때 배웠고요. 폭탄주를 맛있게 제조하는 방법도 전수받아 지금은 소주나 맥주만 보면 섞고 싶어질 정도랍니다. 술을 마시면서 인생의 고민을 함께 나눈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친구 아니겠어요.” 한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는 바얀(27·몽골)은 한국 친구들이 술을 너무 못 마셔서 불만이다.“몽골에 있을 때는 친구들과 칭기즈칸 보드카를 마셨어요. 한국 술문화가 몽골과 비슷해 좋긴 하지만 소주는 너무 순하잖아요. 그래서 하루는 칭기즈칸 보드카를 가져왔는데 몇 잔 마시니까 친구들이 모두 취해버리더라고요.”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 읽기] (41) 정묘호란의 후유증

    [병자호란 다시 읽기] (41) 정묘호란의 후유증

    인조는 1627년 4월12일, 서울로 돌아와 경덕궁(慶德宮)으로 들어갔다.1624년 이괄의 난을 맞아 서울을 버렸다가 되찾았던 경험을 3년 만에 되풀이했던 것이다. 이번에도 어렵사리 정권은 지킬 수 있었지만 그 후유증은 컸다. 청북에서는 의병들이 계속 저항하는 와중에 모병과 후금병 사이의 충돌이 끊이지 않았다. 명은 ‘조선이 오랑캐와 화친했다.’고 의혹의 눈길을 보냈고 후금은 ‘속히 모문룡을 잡아 죽이라.’고 채근했다. 민생 문제가 시급한 와중에 조정 신료들은 후금과 화약을 맺은 것에 대해 시비와 논란을 멈추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문제를 풀어야 할지 막막한 상황이었다. ●모문룡, 후금과 화친 빌미 자신의 발호 정당화 화의가 체결되면서 후금군 대부분은 철수를 시작하여 압록강을 건넜다. 하지만 홍타이지는 의주를 조선에 반환하지 않았다. 후금군은 의주 부근에 주둔하면서 모문룡을 체포하겠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들은 몽골병을 포함하여 수천 명에 이르렀는데 아예 농사를 지으면서 장기간 주둔할 태세를 보이고 있었다. 조선은 사자를 보내 완전히 철수하라고 종용했지만 후금 측은 듣지 않았다.“조선이 모문룡을 제거해 주면 철수하겠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모병들은 그들대로 청북 주변의 섬과 육지를 오가며 마구잡이로 날뛰고 있었다. 간헐적으로 후금군을 습격하는가 하면 조선 관아와 백성들에 대한 약탈을 멈추지 않았다. 조선 조정은 단속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모문룡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모문룡은 ‘조선이 후금과 화친했다.’는 것을 빌미로 자신들의 발호를 정당화하려 했다. 과거에도 그러했지만 정묘호란 이후 청북은 훨씬 더 위험한 ‘화약고’가 되어 버렸다. 모병과 후금군 사이의 충돌은 다반사가 되었고, 그 와중에 조선은 ‘샌드위치’의 처지로 몰렸다. 화약을 체결하면서 조선과 후금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사자의 왕래가 빈번해졌다. 문제는 사자들이 서울과 심양을 오가면서 모병들이 득실대는 청북 지역을 지나야 한다는 점이었다. 모문룡은 후금 사자를 체포하여 ‘한 건 올리려’ 덤볐고, 후금 사절들은 그들대로 모병들과의 충돌을 피하려 하지 않았다. 1627년 5월, 심양을 왕래했던 이홍망(李弘望)의 보고 내용은 ‘샌드위치’가 되어 버린 조선의 딜레마를 여실히 보여 준다.“후금 군인이 한인 네 명과 조선인 네 명을 붙잡아 제게 데려왔습니다. 그는 저에게 ‘한인이 조선 사람들을 살해하기에 잡아 왔으니 그대가 직접 한인을 죽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그럴 수 없다는 뜻으로 말했더니 후금 군인이 말하기를 ‘조선은 한인과 마음을 같이하고 있으니 도리상 그러할 것이다.’라고 하면서 마침내 한인을 죽였습니다.” ●화친에 대한 비판이 격화되다 종묘사직을 지키려고 화의를 맺긴 했지만 조선의 입장에서 ‘오랑캐’ 후금을 ‘형’으로 받드는 것은 도무지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그와 함께 인조와 화의를 주도한 신료들을 특히 힘들게 했던 것은 명의 반응이었다. 이미 정묘호란이 일어난 직후 명 일각에서는 노골적으로 조선을 비판하는 목소리들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1627년 5월, 성절사(聖節使)로 명에 갔다가 귀국했던 김상헌(金尙憲)은 명에서 ‘조선이 누르하치에게 양곡을 원조했던 사실이 있다. 조선이 후금을 두려워하여 명과 후금 사이에서 관망하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는 등의 소문이 돌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고했다.1627년 6월, 요동에서는 ‘조선이 오랑캐와 혼인을 맺었고, 오랑캐에게 땅을 내주고 거주하는 것을 허용했다.’는 풍문마저 돌았다. 인조와 조선 신료들은 명의 그 같은 태도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미 ‘오랑캐와 화의를 맺은 것 때문에 인조반정 당시 내세웠던 명분이 크게 훼손되었다.’고 스스로 찜찜해 하던 차였다.‘광해군이 후금과 화친했기 때문에 타도해야 한다.’고 외쳤던 인조정권의 입장에서 명의 비난은 극심한 굴욕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인조는 이미 척화파 윤황(尹煌)의 발언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입은 바 있다. 윤황은 강화도에 있을 때, 화의에 반대하면서 ‘오늘의 화친은 이름만 화친일 뿐 실제로는 항복입니다. 전하는 요행을 바라는 간신들에게 넘어가 더러운 오랑캐 사자를 접견하고도 부끄러워 할 줄을 모르십니다.’라고 직격탄을 날렸었다. ‘항복’이란 말에 격분한 인조는 ‘유식한 그대들은 오랑캐에게 항복한 임금을 섬기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가?’라고 맞받았다. 그러면서 윤황을 잡아다가 국문하라고 지시했었다. 서울로 돌아온 뒤 논란은 재연되었다.7월1일, 생원 이흥발(李興渤) 등이 상소를 올렸다.‘명나라 장수가 우리 경내에서 피살되었음에도 전하는 오랑캐 사신을 객관에 머물게 하고 극진히 예우하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적 사신의 목을 베어 명나라로 보내지 않으면 우리는 끝내 중국을 배신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했다. 마땅히 대꾸할 말이 없었던 인조는 ‘그대들이 가상하다. 나도 후회하고 있다.’며 물러섰다. 화의에 대한 자괴감과 명에 대한 미안함은 신료들에게 엉뚱한 자격지심을 촉발시켰다. 후금군은 철수하면서 강홍립이 조선에 남도록 허용했다. 이어 강홍립이 후금에 억류되었을 때 거느리던 사람들도 조선으로 송환했다. 화의가 이루어진 데 대한 만족감의 표시였다. 송환된 사람 가운데는 강홍립이 후금에서 재취(再娶)했던 부인도 있었다. 그녀는 한족 출신 장군 동기공( 奇功)의 딸이었다. 신료들은 그녀가 강홍립에게 가겠다고 하자 아우성을 쳤다.‘오랑캐에게 항복하여 누르하치와 홍타이지를 섬긴 자에게 한족 여인을 다시 거느리게 해 주는 것은 참람하다.’는 것이 반대 명분이었다. 인조는 그녀를 강홍립에게 보내라고 했지만 신료들은 반대했다. 그들은 그녀를 명나라로 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기공의 딸은 ‘조선에서 살 수 없으면 죽어 버리겠다.’고 호소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논란이 한창이던 7월27일 강홍립이 세상을 떠났다. 자신을 ‘매국노’로 매도하는 분위기에서 비롯된 스트레스 때문이었을까? 그의 죽음과 함께 논란은 종식되었다. ●이인거, 창의중흥대장 칭하며 병권 요구 화의를 둘러싼 논란이 여전히 그치지 않고 있던 1627년 9월, 모반 사건이 터졌다. 강원도 횡성(橫城)에 살던 유학(幼學) 이인거(李仁居)가 주도했던 사건이었다. 이인거는 9월26일, 원주목사 홍보와 강원감사 최현(崔晛)을 찾아가 만난 자리에서 자신의 계획을 털어 놓았다. 그 내용은 이러했다.‘조정에서 오랑캐와 화친했으니 내가 의병을 일으켜 곧바로 서울로 올라 가겠다. 전하께 주화파 간신 한 사람의 목을 베도록 청한 다음 서쪽으로 달려가 오랑캐를 토벌하겠다.’ 최현 등이 미심쩍게 여겨 반신반의하고 있던 9월29일, 이인거는 군사를 일으켜 횡성현의 무기고를 탈취한 뒤 스스로를 ‘창의중흥대장(倡義中興大將)’이라 칭했다. 10월1일, 이인거의 상소가 조정에 도착했다. 이인거는 ‘전하는 호란을 맞아 몸소 갑옷을 입고 와신상담하는 자세로 적과 맞서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오랑캐 사신의 접대나 일삼고 눈치만 살폈으니 천지와 귀신이 공분(公憤)하고 나라가 견융(犬戎)의 땅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라고 일갈한 뒤, 자신에게 병권을 달라고 요구했다. 인조와 조정은 경악했다. 급히 선전관을 보내 강원감사 최현을 잡아들이게 하는 한편, 서울과 경기도의 병력 수천을 동원하여 전진시켰다. 비변사는 궁성의 호위를 강화하기 위해 호위대장이 군관들을 거느리고 대궐 밖에서 숙직하도록 하고, 동대문에서 횡성에 이르는 길의 요소 요소마다 정탐병을 배치했다. 이인거가 거느렸던 병력은 고작 70명 남짓이었다. 그는 9월30일, 횡성읍에서 벌어진 가벼운 교전 끝에 체포되었다. 싱거운 ‘해프닝’이었다. 하지만 처벌은 참혹했다. 심문 과정에서 모두 20명이 죽고 14명이 유배되었다. 진압 이후 인조는 모든 책임을 윤황에게 돌렸다. 윤황이 ‘항복’ 운운하는 바람에 이인거 등이 민심의 불만을 틈타 일을 저질렀다고 질타했다. 하지만 인조와 화의를 주도한 신료들의 마음은 도무지 편치 않았다. 이인거의 시도는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후금과의 화의에 대한 싸늘한 민심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정묘호란 직후 조선의 분위기는 그렇게 어수선하고 착잡했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鄭,후보 첫날 평화시장으로

    鄭,후보 첫날 평화시장으로

    숨가쁜 하루였다.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는 16일 대선후보로서 첫 공식일정을 바쁘게 소화했다. 속도전이었다. 캠프의 한 관계자는 “몽골 기병론이 되살아난 거 아니냐.”고 평가하기도 했다. 첫 행선지는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이었다. 새벽 5시30분 어둑어둑한 시장 골목에 정 후보가 모습을 드러냈다. 공식일정의 시작이다. 이날 방문은 ‘서민경제를 살리겠다’는 정 후보의 강력한 의지 표명으로 읽혔다. 자신의 경선 공약이기도 하다. 정 후보가 평화시장을 방문한 이유는 또 있다. 그는 30년 전 평화시장에 옷을 내다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정 후보를 본 상인들은 ‘시장 계단에 앉아 고단함을 달래던 청년’을 기억했다. 어깨를 감싸며 반갑게 맞았다. 정 후보도 예전 일을 회상했다. 그는 “30년 전 가져온 바지가 안 팔려 아래쪽에 깔려 있으면 맨 위로 올려 놓곤 했다.”고 말문을 열었다.“그래도 사장님들이 마음이 좋으셔서 봐주셨다.”고 웃음을 보였다. 정 후보와 인연이 있었던 한 상인은 “대통령이 되려면 소탈해 보여야 하는데 귀공자 같아서 걱정”이라고 했다. 정 후보도 “내가 평화시장에서 일했다면 사람들이 도대체 안 믿어 준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면서 “평화시장이 없었으면 굶어죽었을 텐데 통일부 장관까지 했다.”고 감회에 젖기도 했다. 다른 상인은 손부터 부여잡았다.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였다. 정 후보의 예전 모습을 기억한다고 했다.“수금 안 해 주면 달라는 말도 못 하고 계단에 앉아 기다리곤 했다.”고 옛일을 더듬었다. 정 후보는 “그때는 대통령이 될 생각은 꿈에도 못했는데 이제는 서민을 생각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정 후보는 이곳에서 해장국으로 아침을 먹었다. 식사 후 곧장 현충원으로 향했다. 그는 방명록에 ‘대한민국을 한단계 더 업그레이드시켜 영령들께 보답하겠다.’고 썼다. 이어 4·19묘지를 참배했다. 새벽 일찍 집을 나선 탓에 피곤한 기색도 보였다. 그러나 이동 중에 만난 지지자들에게 환한 웃음을 보였다. 팔짱을 끼고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다. 캠프 관계자들은 “많이 피곤할 텐데.”라며 줄곧 걱정을 했다. 잠시 한국노총 사무실에 들른 정 후보는 국회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날은 통합신당의 제8차 의원총회가 계획돼 있었다. 지난해 5·31지방선거 이후 오랫동안 의원총회에 모습을 나타내지 못한 그다. 이제 대선후보가 되어 다시 의원들 앞에 서게 됐다. 정 후보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강당에 들어섰다. 이날 참석한 70여명의 의원들은 박수로 대선후보를 맞았다. 정 후보는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감사하다.”는 인사도 건넸다. 특히 이해찬·손학규 진영의 의원들에게는 더 오래 말을 건넸다. 두 손을 꼭 잡으며 귓속말을 하기도 했다. 통합신당 의원총회는 오랜만에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오충일 대표는 “대선후보가 선출되고 나니 의원들 얼굴도 밝아졌고, 당도 밝아졌다. 오늘 신문을 보니 정 후보 얼굴에서 빛이 나더라.”고 인사말을 했다. 또 “이명박 후보의 얼굴과 정동영 후보의 얼굴만 비교해 봐도 이미 대선은 끝난 것”이라고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인사말을 위해 연단에 선 정 후보는 몇 시간 전 평화시장에서 나눈 대화로 말문을 열었다. 그러다 순간 눈시울이 붉어졌다. 예전 생각이 떠오른 듯했다. 한참 말을 못 잇고 헛기침을 했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더니 말을 이어갔다.“차별 없는 성장, 가족행복시대란 얘기는 그냥 글이 아니었다.”고 했다. 그는 “저의 꿈을 가슴 밑바닥에서 직접 쓴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또 한번 말을 멈추고 눈물을 글썽였다. 의원총회장을 나온 정 후보는 통합신당 당사를 찾았다. 당직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격려의 말을 전했다. 당사에 들어서는 정 후보의 얼굴은 상기돼 있었다. 감회가 남다른 듯했다. 힘차게 악수를 나누며 “고맙습니다.”를 되풀이했다. 당직자들은 “그동안의 갈등을 잘 덮고 한마음으로 갔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어느새 점심시간이 훌쩍 넘었다. 통합신당 지도부와 하는 오찬이 마련돼 있었다. 정 후보측은 경선기간 내내 지도부와 크고 작은 마찰을 빚었다. 여론조사 반영과 원샷경선 도입 등 규칙 변경에 대한 불만을 적나라하게 표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날 오찬장은 화합 분위기 일색이었다. 정 후보는 “연초만 해도 희망이 없었고 8월5일 창당때 마음속에 의구심이 있었지만 이제 자신감을 가지게 됐다.”고 했다. 정 후보는 이날 오후 캠프 해단식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당의 화합과 대선승리를 위해 정 후보를 지원한 사람들은 2선으로 물러나는 심정으로 임하자.”며 백의종군 자세를 결의했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정경원 우정사업본부장 “유비쿼터스 우체국 완성이 목표”

    정경원 우정사업본부장 “유비쿼터스 우체국 완성이 목표”

    “6개월이 6년 같습니다. 서유기에 나오는 손오공처럼 머리털이라도 뽑아서 분신이라도 만들고 싶은 심정입니다.” 취임 6개월을 맞은 정경원 우정사업본부장은 15일 서울 종로구 서린동 우정사업본부에서 소감을 묻자, 눈코뜰새 없이 바쁘다는 것을 에둘러 표현했다. 정 본부장은 ‘모바일(Mobile) 본부장’으로 통한다. 좀처럼 자리에 눌러앉아 있는 성격이 아니다. 몸을 바쁘게 움직여야 직성이 풀린다. 그는 취임 이후 매주 한 차례 이상 지방 체신청과 우체국을 찾고 있다. 직원 사기 진작 차원이다.‘총수’가 나타나 말단 직원들의 손을 잡고 등을 두드려주면 사기는 오를 수밖에 없다.6개월동안 찾은 지방만도 160곳이 넘는다. 국내뿐이 아니다. 지난 7일에는 몽골로 날아가 ‘한국·몽골·카자흐스탄 우정협력 공동위원회’ 설립 협정을 주도했다.6월에는 베트남, 인도네시아를 방문, 우정협력협정을 맺었다. 그는 “정보기술(IT) 때문에 (우정사업본부가)죽었다가 IT 때문에 살아났다.”고 ‘사활(死活)론’을 폈다. 편지가 인터넷 등의 발달로 급격하게 줄었을 때만해도 눈앞이 캄캄했다고 회상했다.“하지만 우정기술을 IT기술에 접목시키면서 우정사업본부가 제2의 부흥기를 맞고 있다.”고 말했다. 정 본부장은 “‘유비쿼터스 우체국’ 완성이 목표”라며 “지금도 한국의 우정사업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정 본부장은 우편사업단장 시절인 지난해 스위스 베른에서 개최된 만국우편연합(UPU) 총회에 참석,‘IT가 우정서비스에 미치는 영향’이란 주제로 발표를 해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다른 나라 대표들은 우정사업 발전의 척도로 우체통이 몇개라거나, 자전거가 몇대라는 수준에 머물렀다. 디지털대 아날로그였던 셈이다. 주제 발표 뒤 세계 우정사업의 흐름이 바뀌기 시작했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이 우정사업 현대화에 나섰다. 물론 한국이 모델이다. 이집트, 알제리, 브루나이, 파키스탄 등도 우정사업본부를 벤치마킹하고 있다. 이를 통해 돈도 많이 들어오고 있다. 우정사업본부는 지난해 우정IT 수출로 2457억원(우정 시스템 1700억원, 우편장비 757억원)을 벌어들였다. 올 상반기도 우편물 봉함기 등 716억원을 해외에 팔았다. 정 본부장은 “우정사업의 민영화 또는 공사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고 강조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국가 직영으로 우편사업을 하는 나라는 미국과 한국뿐이다. 가까운 일본도 최근 우정 민영화를 단행했다. 그는 “민영화 중간단계로 우정청을 설립하는 방안이 가장 현실적”이라며 “이미 우정사업본부는 독립채산제와 별도의 본부를 가지고 있는 등 우정청의 기능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 도중 외부로부터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다.‘정경원호(號)’의 우정사업본부가 올해 한국능률협회가 주관하는 한국의 경영대상평가에서 고객만족경영대상 종합대상과 경영품질대상 종합대상을 받았다는 낭보였다. 글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사진 김명국기자 daunso@seoul.co.kr
  •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42) 백두산 정계비를 세운 역관 김지남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42) 백두산 정계비를 세운 역관 김지남

    조선시대 과학자는 대부분 중인 출신이었다. 양반 출신의 과학자들이 있기는 했지만, 관청이 자주 바뀌다 보니 평생 과학 연구만 하고 살 수는 없었다. 남병철·병길 같은 천문학자 집안 말고는, 중인 집안에서나 대대로 과학 연구를 계속할 수 있었다. 이들은 결혼도 자기들끼리 했고, 직장도 자기들끼리 소개하거나 물려주었다. 이남희 교수의 박사논문 ‘조선시대 잡과합격자연구’에 의하면, 현재까지 확인된 잡과 합격자는 역과 2976명, 의과 1548명, 음양과 865명, 율과 733명을 합하여 6122명이다. 산학(算學)은 정조가 즉위하던 1756년부터 주학(籌學)이라 하여 취재(取才) 형식으로 간단하게 뽑았는데 1627명 이상 선발하였다. 4대가 같은 잡과에서 합격한 세전성(世傳性)은 의과, 음양과, 역과, 율과 순으로 강했다. 어린 시절부터 집안에서 보고 들어야 대물림하기 쉬웠으니, 책에 없는 비법은 핏줄로만 상속되었다. 세전성을 거꾸로 설명하면, 역과 출신은 다른 잡학도 연구하여 전공자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 대표적인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역관 김지남이다. ●외교사 자료집 ‘통문관지´를 아들과 함께 편찬 김지남(金指南·1654∼1718) 은 호조 주사(籌士) 김여의와 전의감정(典醫監正) 이몽룡의 딸 사이에 태어나 역관이 되었다. 주학(籌學) 집안과 의학 집안이 만나 역학을 전공한 아들을 키운 것이다.18세에 급제하여 28세 되던 1682년에 일본에 다녀왔다. 도쿠가와 쓰나요시(德川綱吉)가 장군직을 물려받자 축하사절로 파견되었는데,6개월 동안 1만 1000리 먼 길을 여행했으며, 사행일지인 ‘동사일록(東日錄)’을 기록했다. 그 해에 청나라까지 다녀왔으니, 지남(指南)이라는 이름 그대로 길에서 나그네로 한 해를 보냈다. 환갑이 넘도록 중국에 자주 드나들며 유창한 중국어로 외교상의 문제만 아니라 경제적인 문제, 정치적인 문제도 많이 해결하였다.1710년에 정재륜을 따라 북경에 갔을 때 우연히 심양의 장수 송주와 며칠 동안 이야기했는데, 우리 나라가 제후의 법도를 잘 지킨다는 사실을 많이 말했다. 나중에 송주가 재상이 되자 그러한 사실을 황제에게 직접 아뢰어, 황제가 조선에서 바칠 공물을 줄여 주었다. 국가 재정이 그만큼 절약된 셈이다. 김지남이 역관으로 활동하며 남긴 업적은 수없이 많지만, 그 가운데 하나가 외교사 자료집이라고 할 수 있는 ‘통문관지’를 편찬한 사실이다. 이 책의 공동 편찬자인 아들 김경문은 서문에서 편찬 동기를 이렇게 밝혔다.“예부터 우리나라는 인접한 중국·요(遼)·연(燕)·여진·일본 등과 어려운 문제를 타결한 법례가 많았지만, 이를 수록한 문헌이 없다. 그래서 고증할 길이 없어 어려움이 많다. 영의정 최석정이 사역원 제조로 있을 때에 김지남이 전고(典故)에 밝다는 사실을 알고, 외교 고사를 수집 정리하여 편찬하게 하였다.” 이 책에는 사역원의 관제, 역과(譯科), 여로(旅路), 출장비부터 중국과 일본에 보내는 외교문서나 접대하는 음식에 이르기까지, 역관들이 알아야 할 모든 항목이 설명되어 있고, 대표적인 선배 역관들의 간단한 전기도 실려 있다.12권 6책의 방대한 분량인데, 후배 역관들이 비용을 갹출하여 출판하였다. 조선시대에 17회나 재판을 찍을 정도로 많이 읽히고 참고가 된 책이다. 김지남은 역관 박정시의 딸과 혼인하여 7남 3녀를 낳았는데, 그 가운데 아들 5형제가 모두 역과에 급제했다. 이창현이 편찬한 ‘성원록´에는 경문(慶門)·현문(顯門)·순문(舜門)·유문(裕門)·찬문(纘門)의 가계가 여러 페이지에 걸쳐 소개되어, 대표적인 역관 집안으로 정착했음을 보여준다. ●화약 만드는 법을 연구하고 책까지 쓰다 김지남은 한 사람의 역관으로 편하게 살지 않고, 중국어로 나라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발벗고 나섰다. 정묘호란 뒤에 청나라와 싸우기 위해 화약이 많이 필요해지자 만드는 방법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우선 흑색화약의 원료인 유황과 염초를 많이 만들어야 했다. 김양수 교수는 ‘조선후기 전문직 중인의 과학기술활동’이라는 논문에서 1635년에 이서(李曙)가 편찬한 ‘신전자취염초방(新傳煮取焰硝方)’의 염초 제조법을 이렇게 설명했다. 가마 밑의 흙과 미리 준비해둔 재·오줌 등을 화합했는데, 뇨분 속에 있는 질산암모늄과 재 속에 있는 탄산칼륨을 반응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렇게 만들려면 가마를 때기 위해 막대한 나무가 필요했다. 김지남이 개량한 제조법은 나무 대신에 일년생 잡초를 써서 비용이 줄어들고 품질은 더 좋아졌다. 1692년에 부사로 연행 길에 오른 민취도가 김지남에게 염초 제조법을 알아보라고 하자, 요양의 어느 시골집에 찾아들어가 사례금을 주고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주인이 죽어 비법을 익히지 못했다. 중국에서는 화약 만드는 것을 국법으로 엄하게 금했으므로, 목숨을 걸고 배워야 했다. 조선이 비록 항복한 나라라고는 하지만, 가상 적국이기 때문이다.2년 동안 실험 끝에 성공했으며,1698년에 그 방법을 책으로 써서 출판한 것이 ‘신전자초방(新傳煮硝方)’이다. 화약 만드는 여덟 가지 과정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는 이렇게 요약하였다.“먼저 흙을 모으고(取土) 재를 받아서(取灰) 같은 부피의 비율로 섞는다(交合). 섞은 원료를 항아리 안에 펴고 물을 위에 부어 흘러나오는 물을 받아(篩水) 가마에 넣고 달인다(熬水). 이 물을 식혀서 모초(毛硝)를 얻고 이 모초를 물에 녹여 다시 달여서(再煉) 정제시킨다. 재련 후에도 완전히 정제되지 않았으면 또 한번 달인다(三煉). 이렇게 얻은 정초(精硝)를 버드나무 재, 유황가루와 섞어서 쌀 씻은 맑은 뜨물로 반죽하여 방아에 넣고 찧는다(合製).” 이렇게 만든 화약은 땅 밑에 10년을 두어도 습기에 변질되지 않고, 흙과 재도 예전의 3분의1밖에 들지 않아 자주 국방과 국가 재정에 큰 도움을 주었다. 장인들이 읽기 쉽도록 한글로 언해하였다.1796년에도 다시 출판했으니, 오랫동안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백두산 기행일기 ‘북정록´ 남겨 김지남은 한국사에 여러 차례 이름을 남겼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백두산 정계비를 세울 때에 역관으로 참여한 사실이다. 백두산은 지형이 험해 조선 쪽에도 사람이 별로 살지 않았으며, 청나라에서는 황실의 근본이라고 해서 아무도 살지 못하게 했다. 원나라를 세운 몽골족이 결국 중원과 북경을 포기하고 몽골로 돌아간 것을 타산지석으로 삼은 것이다. 피차간에 사람이 살지 않다 보니 국경선이 엄격하게 없었다. 1692년에 청나라에서 백두산을 조사하며 조선 측에 길을 안내하라고 했는데, 길이 없다고 핑계를 대어 무마하였다.1710년에 우리 백성이 국경을 넘어가 살인하자 청나라에서 조사관이 나왔는데, 김지남이 추운 겨울날 길을 안내하지 않고 열흘이나 버텨 유야무야되었다. 그러나 1712년 2월24일에 청나라에서 자문(咨文)이 왔는데, 얼음이 녹으면 압록강에서 배를 타고 올라가 국경을 조사할테니, 조선 측에서 도와달라는 내용이었다. 오라총관(烏喇摠管) 목극등(穆克登)은 수십 명의 수행원을 이끌고 2월15일에 이미 북경을 떠난 상태였다. 조정에서는 박권(朴權)을 접반사로, 김지남을 수역(首譯)으로 임명하였다. 김지남은 아들 김경문을 데리고 갔다. 이들은 혜산을 출발하여 오시천, 서수라, 화덕, 지당을 거쳐 박봉곶에 도착하여 압록강 근원을 조사하였다. 백두산 천지에 이르러 확인한 다음, 분수령에 내려와 정계비를 세웠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이었으므로 밀림과 벼랑, 강줄기 사이로 말 타고 갈 수 있게 길을 닦는 것만도 큰 일이었다. 천지 가까이 오자 목극등은 노인이라는 핑계를 대며 박권과 김지남을 떼어내려고 애썼다.5월6일에 백두산 등반 인원이 확정되었는데,59세 되던 김지남은 끝까지 우겨 따라가게 허락받고,55세 되던 박권은 결국 오르지 않기로 했다. 여기까지 따라온 이유가 정계비(定界碑)를 세우기 위한 것인데, 책임자 양반은 빠지고 역관 김지남이 목극등과 대담하며 모든 일을 진행하였다. 백두산을 오가며 세 사람이 모두 기행일기를 썼는데, 김지남의 ‘북정록’이 박권의 ‘북정일기’나 김경남의 ‘백두산기’보다 질적으로, 양적으로 훌륭하다. 박권의 기행문은 가장 중요한 부분이 빠졌던 것이다. 양반 관원은 중도에 포기했지만, 전문가는 끝까지 따라가 ‘서위압록(西爲鴨綠) 동위토문(東爲土門)’의 증인이 되었다. 비록 정계비를 세웠지만, 나라가 약해지면서 국경도 없어졌다. 조선통감부를 설치해 외교권을 박탈한 일본은 1909년에 남만주철도 부설권을 얻는 대가로 간도를 청나라에 넘겼다.1931년에 만주사변을 일으키면서 정계비마저 없앴다. 최근에 한국 연구자들이 백두산 정상에서 동남쪽으로 4㎞ 떨어진 곳에 남아 있는 정계비의 받침돌을 발견하였다. 백두산 관광이 시작된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김지남같이 책임있는 전문지식인을 다시 생각해 본다. 허경진 연세대 국문과 교수
  • 北·日수교 실무회의 사전 조율

    |도쿄 박홍기특파원|북한과 일본의 국교정상화 교섭 담당 실무책임자들이 지난 13일부터 중국 선양에서 올해 안에 국교정상화 실무회의를 열기 위한 비공식 협의에 들어갔다. 14일 일본의 언론에 따르면 북한의 송일호 북·일 국교정상화 교섭담당대사와 일본의 야마다 시게오 외무성 동북아 과장이 실무회의를 위한 일정과 의제 등을 사전 조율하고 있다. 6자회담의 장소가 아닌 곳에서 북·일 실무 책임자들이 접촉을 하기는 후쿠다 야스오 정권 들어 처음이다. 특히 후쿠다 총리는 대북 관계에서 대화를 중시하는 데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일본의 대응을 지켜본다는 자세를 내보인 만큼 관계 개선의 걸림돌인 납치문제를 둘러싼 대화의 진전 여부가 주목되고 있다. 일본 측은 북한이 요구하는 일제 강점기의 ‘과거 청산’뿐만 아니라 북·일의 납치문제 합동조사 또는 북한의 납치문제 재조사 등에 대해서도 협의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외무성 관계자는 이날 “북·미 협의에서도 핵시설의 연내 불능화를 목표로 성과를 내고 있다.”면서 “북·일 실무회의에서도 구체적인 성과가 요구된다.”며 실무회의 재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북한이 일본과의 비공식 협의에 나선 배경에는 6자회담에서 합의한 비핵화 프로세스를 순조롭게 진행시키기 위해 한국과 미국, 중국 등 3국이 강력히 거들고 나섰기 때문으로 전해졌다. 북한 역시 일본을 따돌릴 경우, 비핵화 프로세스가 늦어져 경제지원은 물론 미국의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에도 영향을 준다고 판단한 것으로 분석된다. 북·일 실무회의는 지난 9월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열렸지만 별다른 결론을 내지 못한 채 “가능한 한 자주 대화를 계속한다.”는 데만 의견을 일치를 봤다. hkpark@seoul.co.kr
  • [정책선거 원년으로] 범여권, 中·러 연계개발 주력… 이명박은 대운하

    [정책선거 원년으로] 범여권, 中·러 연계개발 주력… 이명박은 대운하

    국토개발·건설과 관련된 역대 대통령 선거의 단골 공약은 ‘지역 균형발전’과 ‘수도권 집중 완화’다. 국토개발·건설 분야에서는 각 후보의 정책 비전이 드러나는 편이라 ‘큰 그림’이 많이 제시된다. 그러나 대선 때마다 반복적으로 균형발전과 수도권 집중 해소책이 제시됐지만 큰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국토개발공약은 다른 정책분야들과 유기적으로 연계되지 못하면 시너지효과를 낼 수 없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17대 대선 후보들의 국토개발·건설 관련 공약을 전체적으로 비교해보면, 범여권 후보들은 중국횡단철도(TCR)나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연계, 한반도 상생경제, 항공우주 7대 강국, 한반도 시대, 환황해 경제권과 환동해 경제권, 한반도의 국제 물류 중심지화 및 세계적 관광지대화 등 한반도 전체를 중심에 두고 있다. 대륙을 연결하며 국토개발의 시야를 넓히는 가운데 발전의 근거를 찾는다는 것이다. 반면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국토개발·건설 공약은 ‘대운하 건설’로 종합되고 있어 국내 개발 차원에 시각이 머물고 있는 측면이 있다고 볼 수 있다. ●‘孫·鄭·李의 장기계획´ 실현성 제고 과제로 국토개발과 건설 이슈는 국가발전의 견인차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각 후보의 공약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비전이다. 그래서 국내 차원의 균형발전과 분산을 강조하던 데서 벗어나 새로운 성장동력 창출과 사회·경제적 발전의 원동력에 대한 장기적인 전망을 제시하는 대통합민주신당 손학규·정동영·이해찬 후보의 공약이 나름대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실현 가능성 여부를 놓고 국민들을 대상으로 설득력을 높여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도 한반도의 국제 물류 중심지화 및 세계적 관광지대화를 내세웠지만 다른 후보에 비해 구체성이 더 떨어진다. 지역밀착형 노동중심 혁신 클러스터 구축 공약은 노동 공약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던 과거 공약과 달리 노동자들의 삶의 터전인 지역의 발전을 어떻게 촉발시키고 기여할 것인가를 구체화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다만 지역경제발전협의체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 갖춰져야 할 운영원리를 제시해야 하는 게 과제다. ●이명박 외엔 교통공약 찾아볼 수 없어 역대 대선에서 후보들은 물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규모 교통시설 건설, 대도시 교통난 해소, 대중교통 활성화 등을 제시해 왔다. 하지만 17대 대선 후보들의 공약에서는 이런 교통분야의 공약을 아직까지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명박 후보만 대도시권 광역교통관리에 관한 특별법을 개정해서 광역교통 연합체인 수도권 광역교통 행정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한다. 이런 공약은 역대 대통령 선거 때마다 나왔던 공약이었고, 수도권 집중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이 없이는 미봉책 수준을 넘지 못할 수도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대통합민주신당을 비롯한 다른 후보들은 교통분야 역시 민생분야임을 깨닫고 정책생산에 나서야 할 것이다. 오수길 한국디지털대 교수 ■후보별 공약 점검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대운하 건설 공약은 찬반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만약 대통령으로 당선되더라도 공약 실현 과정 내내 시비가 이어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한 공약으로, 사회적 통합을 결여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당 내에서도 ‘내수시장 위주의 공약’이라거나 ‘미래지향적이지 못한 토목공사’라는 비판이 커지면서 재검토 또는 수정을 시사하고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명박, 대운하 사회통합 미흡 이명박 후보가 최근에 밝힌 재개발 및 재건축 완화, 용적률 상향조정, 전매제한 단축 등의 입장, 그리고 수도권 광역도로망 및 광역철도망의 조속한 완성 등의 공약은 경부운하 건설을 통해 국가 전체를 균형 있게 발전시킬 수 있다는 ‘균형’을 불확실하게 만들고 있다. 수도권 위주의 국토개발과 건설을 지속하려는 것이라면, 현재까지 참여정부의 국가균형발전정책이 상당부분 성공한 것으로 보는 것인지, 시장원리에 따라 어차피 균형보다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인지를 밝혀야 한다. 이명박 후보의 공약은 그래도 상당부분 구체성을 갖추고 있는데, 여권 후보들의 공약은 아직 구체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들 모두 이명박 후보의 공약에 대해 ‘토목공사’로는 국가발전을 이뤄낼 수 없다고 비판하면서 나름대로 각자의 중·장기적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적 실현가능성은 불분명한 상태다. 경제개발의 원동력을 남북 공동의 국토개발에서 찾고 있기 때문이다. 여권 후보들이 내세우는, 남북이 공동으로 나서야 하는 새로운 국가발전의 비전은 정치적 실현 가능성에 대한 로드맵과 병행돼야 할 것이다. 그리고 중·장기적인 사회·경제적 편익까지도 구체적으로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여권 후보들이 제시하고 있는 새로운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감수해야 할 비용이나 예상치 못할 위험들을 고려하면, 그에 따른 편익이 훨씬 높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인프라 구축 등에 들어갈 비용의 조달 방법, 정치적 비용을 줄이기 위한 국내 정치적 합의과정과 남북의 합의과정에 대한 로드맵도 구체적으로 제시돼야 한다. 나아가 세계경제체제에 편입된 이상 안정적인 일자리는 늘지 않을 수도 있으며, 다른 대안들을 모색해야 한다는 설득도 비전 제시와 함께 이뤄질 수 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범여권, 공약 구체성, 실현 가능성 결여 대통합민주신당의 손학규 후보는 토목공사가 아니라 창조적 국토발전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글로벌 비즈니스 포털로서의 광역수도권, 글로벌 물류 및 대일 비즈니스 포털로서의 광역영남권, 동북아 브레인 포털로서의 광역중부권, 대중 비즈니스 포털로서의 광역남부권 등 광역대도시권의 건설을 주장한다. 인천, 태안-안면, 새만금, 압해-화원, 광양-남해, 부산-진해 등 6대 개방특구 조성 방안도 제시하고 있다. 정동영 후보는 이명박 후보의 공약을 ‘개발독재시대형 토건국가 중심’의 정책이라고 규정하고,‘삶의 질 성장을 위한 지속가능발전’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를 위해 마련한 것이 ‘문화강국, 대한민국을 위한 7대 공약’인데, 개발독재 시기의 건설 분야와 이후 성장한 제조업 분야를 뛰어넘을 수 있는 새로운 성장동력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인 것은 ‘항공우주 7대강국 도약’ 비전이다.‘AIR-7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헬기를 포함한 중소형 대중항공기를 독자적으로 개발·운영함으로써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대중항공의 동북아 거점을 만든다는 구상이다. 이해찬 후보는 ‘한반도 시대’를 추진하기 위한 4대 전략으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 경제공동체 형성, 한강·임진강·서해안 평화공동수역 조성, 비무장지대(DMZ)의 평화지대화 등을 내세운다. 이 가운데 한반도 경제공동체 형성을 위한 핵심과제로는 개성공단 3단계 조기완공, 북한 4대 경제특구 활성화, 북한 고속도로망 건설추진, 남북한 연계 관광사업 추진, 남·북·중·러 북방경제협력체제 구축 등을 제시하고 있다. 개성공단을 모델로 남포, 평양, 신의주를 특구로 개발하고 북한 동해안의 금강산, 원산, 단천, 나진·선봉이 개발되면, 미국-일본-남북한-러시아가 연결되는 환동해경제권이 완성돼 동해안 일대의 발전이 일어난다는 구상이다.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후보는 경의선과 동해선을 개통, 대륙횡단철도와 연결해 21세기 철의 실크로드를 만들어 아시아와 유럽으로 시장을 다변화하고, 중국·몽골·러시아·중앙아시아와의 직교역을 활성화하며, 러시아 석유와 시베리아 천연가스를 한반도종단 수송관으로 연결해 활용하고, 또 대륙과 해양을 잇는 국제물류중심지로서의 한반도를 건설한다는 공약을 내세우고 있다. 한정된 국토와 환경용량을 소모하는 방식의 경제성장은 영원할 수 없고 대규모 개발 사업으로는 한반도의 미래를 책임질 수 없다고 비판하며,‘생태적 경제 비전’을 제시한다. 이와 관련되는 것이 ‘노동중심 혁신 클러스터’라 할 수 있다. 울산 자동차산업, 포항 제철산업, 광양 석유화학산업, 창원 기계산업, 대구 섬유산업, 수원 반도체산업 등 지역경제의 핵심 축으로 특화된 공단들에 주목한다. 기존의 지역단위 노사정위원회를 발전시켜 노사정-금융-대학이 참여하는 지역경제발전협의체를 가동하고 특화된 공단의 지역경제적 특성을 살려 지역밀착형 노동중심 혁신 클러스터를 활성화시킨다는 것이다. ■손학규 “본고사 찬성 아니다”… 교육분야 입장 밝혀와 대통합민주신당의 손학규 대통령 경선 후보 측은 11일 ‘손 후보가 본고사 부활을 찬성한다.’는 본지의 보도<11일자 4면>와 관련, 자료를 보내와 “본고사든 수능시험이든 대학이 결정할 수 있는 자율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손 후보 측은 ‘기여입학제 찬성’에 대해서는 “찬성한다고 얘기한 적이 없으며, 국민정서상 도입이 곤란하다는 입장을 일관성있게 유지해왔다.”고 밝혔다. 자립형 사립고 설립 자율과 관련해 “자립형 사립고 설립 자율은 지방에 국한된 것”이라면서 “자사고만을 의미하지 않고 대안학교와 특성화고 등을 지방에 설립할 때 규제를 적극 완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 亞헌법재판관회의 9일 개막

    헌법재판소는 독일 콘라드 아데나워 재단과 공동으로 9∼11일까지 제5차 아시아 헌법재판관 회의를 연다고 7일 밝혔다. 이번 회의는 ‘시민적, 정치적, 사회·경제적 권리보호에 있어서 헌법심사의 기준’이라는 주제로 열리며, 인도네시아, 태국, 몽골, 리투아니아 등 아시아 9개국 헌재소장 및 재판관과 독일·호주 등 외국 헌법학자들이 참석해 각국의 주요 결정례와 심사기준을 논의한다.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05일 TV 하이라이트]

    ●아시아의 창-공자를 찾아서(KBS1 밤 1시25분) 중국계 캐나다인 2세 웨이슨 초이는 공자의 흔적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그는 중국으로 건너가 공자가 태어난 취푸 마을의 동굴부터 기원전 479년 공자의 무덤까지 방문한다. 웨이슨 초이와 함께 공자가 남긴 가르침들을 돌아보며, 그것이 현대인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함께 얘기해 본다.   ●다큐10-내가 산을 사랑하는 이유 5부(EBS 오후 9시50분) 옐로스톤은 미국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한없이 신비로운 원시의 자연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옐로스톤에선 포효하는 폭포와 거대한 협곡 등 경이로운 풍경이 사시사철 그 모습을 달리한다. 옐로스톤은 미국의 세렝게티 초원이라 불릴 만큼 다양한 야생동물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부부 클리닉-사랑과 전쟁(KBS2 오후 11시15분) 벌써 수년째 승진도 못하고 만년과장 자리에 머물고 있는 기홍은 아내 볼 면목이 없다. 그럼에도 싫은 소리 한마디 안 하고 누구보다 든든하게 자신을 내조해 주는 아내와 딸 보람이를 볼 때마다 기홍은 더 열심히 일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던 기홍에게도 마침내 기회가 오는데….   ●심리극장 ‘천인야화’(SBS 오후 8시50분) 기존의 미니 드라마와 리얼토크 형식을 바꿔 현대인의 이상 심리를 다루는 본격 심리 버라이어티로 새롭게 단장했다. 진행은 기존 MC 박해미와 함께 2년 남짓 만에 방송활동을 재개하는 개그맨 김진수가 맡는다. 손석한 연세신경정신과 박사가 고정출연해 임상경험을 바탕으로 솔루션을 제공한다.   ●생방송 섹션TV 연예통신 400회 특집(MBC 오후 9시55분) 1999년 5월 첫 방송을 내보낸 ‘섹션TV 연예통신’이 지난 8년5개월의 역사를 정리한다.400회를 맞아 특별히 부산국제영화제 현장을 찾았다. 국내외 톱스타들이 ‘레드카펫’을 밟는 현장을 생중계하고, 부산을 찾은 일본의 톱스타 기무라 다쿠야와의 인터뷰도 내보낸다.   ●라이프 n 조이(YTN 오후 8시35분) 가깝고도 먼 나라 몽골, 초원을 달리던 몽골인들의 전통문화를 통해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키우고 자연과 인간이 이뤄낸 작품을 감상하며 가을의 정취를 느껴본다. 향긋한 커피향에 가을을 담아내고 함께 만드는 음식으로 추억이 방울방울 맺혀가는 곳, 이색 체험거리가 가득한 경기도 남양주로 출발한다.
  • “네안데르탈인 시베리아 지배”

    현생인류의 사촌인 네안데르탈인이 중국에도 살았다? 주로 유럽이나 중앙아시아에만 거주한 것으로 알려진 네안데르탈인이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훨씬 동쪽인 중국 부근까지 진출했었다는 사실이 새로 밝혀졌다. 독일 막스 플랑크 진화인류학 연구소 학자들이 네이처지 최신호에 발표한 내용이다. 연구진은 우즈베키스탄의 테시크타시 지역과 시베리아의 알타이 산맥 동굴에서 발견된 사람과(科) 동물(호미니드)의 화석에서 미토콘드리아 DNA를 채취, 유럽 다른 지역에서 발견된 네안데르탈인 표본과 대조한 결과 유전학적으로 같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연구진은 시베리아의 오크라드니코프 동굴에서 발견된 4만년 전 어른 호미니드의 미토콘드리아 DNA의 개도(開度·중심점에서 퍼져나감) 흔적이 깊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이들이 본류로부터 갈라진 지 오래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런 사실은 12만 5000년 전 지구 기후가 따뜻했던 시절 네안데르탈인이 러시아 평원의 대부분을 지배했다는 가설을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구진은 네안데르탈인의 화석이 시베리아에서 발견됐다는 사실은 이들이 동쪽으로 더 멀리, 몽골이나 중국까지도 진출했을 가능성까지도 시사한다고 강조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백제의 혼’을 깨운다

    ‘백제의 혼’을 깨운다

    2007년 가을,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에 화려한 백제 의상을 입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왁자지껄하게 한판 잔치를 벌이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백제의 주막과 상점·농가에서 소박하고 정감있는 백제인의 생활이 펼쳐진다. ‘한성 백제’ 500년의 역사를 재현하는 한성백제문화제의 한 장면이다. 2일 송파구에 따르면 구는 오는 5일부터 7일까지 올림픽공원을 중심으로 한성백제문화제를 연다.1994년부터 격년으로 치러지며 올해 여덟번째를 맞았다. 이번 축제는 철저한 고증을 통한 ‘백제 문화의 재현’과 ‘이야기가 있는 축제’로 치르는 것이 특징이다. 올림픽공원, 몽촌토성, 위례성길 등 지역을 제한하고 불필요한 행사를 줄여 백제의 역사와 문화를 촘촘하게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 김영순 송파구청장은 “백제를 건국한 여걸 소서노의 이야기와 한성 백제의 역사성을 군더더기 없이 빠르고 쉴틈 없이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온몸으로 느끼는 백제시대 첫날인 5일 오전 10시에는 올림픽파크텔에서 ‘한성백제 학술세미나’를 열고, 한성 백제의 모든 것을 파헤친다. 이어 올림픽공원 평화의 광장 특설무대에서 백제기악전승보전회, 해오름전통예술단 등이 출연해 백제인의 전통 공연을 선사한다. 오전 7시에는 혼불 점화, 송파비전 선포식, 희망의 배 출항식과 함께 가수 김장훈의 공연 등 화려한 ‘백제의 어제와 오늘’이 줄줄이 이어진다. 백제의 생활상은 둘째날인 6일 오전 10시부터 시작되는 ‘백제장터’에서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자원봉사자, 연극인 등이 백제 사람들로 분장해 백제주막, 포목전, 대장간, 물장수 등 거리모습을 정감있게 표현한다. 백제 토기를 만들거나 활쏘기, 백제의상 디지털 체험 등 직접 백제시대로 떠나는 경험도 할 수 있다. 석촌동 백제 초기 적석총, 서울놀이마당 등에서는 전국대학생 마당놀이, 백제 코스프레 경연대회, 국제민속축제 등이 펼쳐진다. ●1000여명이 참가하는 건국 행진 마지막 날인 7일에는 오후 2시부터 소서노와 비류, 온조가 주몽을 떠나 송파로 남하하는 백제건국 행렬이 펼쳐진다. 올림픽공원 사거리를 출발해 위례성길을 거쳐 평화의 문 광장에 이르는 1.5㎞ 구간에서 1000여명이 참가하는 장대한 행진이다. 행렬의 끝은 온조왕 즉위식과 2000년 전의 역사를 고전 무용, 퍼포먼스 등으로 표현한 역사 재현극으로 이어진다. 3일간의 ‘짧고 굵은’ 대장정이 끝나는 폐막 공연은 이날 오후 7시에 열린다. 단심줄 감기, 김덕수 사물놀이패, 가수 김건모 공연으로 꾸민 폐막식에는 드라마 ‘주몽’에서 소서노역을 맡았던 한혜진씨가 참석할 예정이다. 한편 이번 한성백제문화제에는 일본 왕인총수협회, 왓소축제실행위원회, 미야자키 백제마을 등의 일본인들이 백제를 찾는다.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시, 중국 퉁화시, 몽골 칭길테구 등 구 해외자매도시와 국제친선클럽 주한 외교사절단도 참가할 예정이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단독]EBS, 외국인 며느리 한글 가르친다

    다문화 가정을 위한 맞춤형 한국어 강의가 오는 11월 교육방송(EBS)에서 첫 선을 보인다. 문화관광부 산하 국립국어원은 11월부터 국내·외에 사는 다문화 가정을 위한 한국어 강의를 EBS 플러스2 위성채널을 통해 정기적으로 실시한다고 1일 밝혔다. 강의 내용은 ‘중급’(中及) 과정 75편으로, 한국어 전문 강사가 2D 애니메이션과 국립국어원이 발간한 맞춤형 교재를 활용한다. 강의는 간단한 한국어로 이뤄진다. 시간은 11월5일부터 내년 4월27일까지 매주 세 차례씩 오전 6시∼6시30분이다. 강의는 교육방송 홈페이지(www.ebs.co.kr)에서도 주문형 비디오(VOD)로 아무 때나 볼 수 있고, 무료로 내려받을 수도 있다. 국립국어원과 교육방송은 내년 4월쯤에는 ‘초급‘(初及) 과정도 선보일 계획이다. 초급 과정은 일본어와 중국어, 러시아어, 베트남어, 몽골어, 태국어, 타갈로그어(필리핀 원어) 등 7개 국어로 강의를 진행하고, 교재도 해당 언어로 제작할 계획이다. 국내 다문화 가정 구성원의 대부분이 아시아권 국가 출신자라는 점을 감안했다. 특히 절반에 가까운 48.4%가 읍·면 지역에 살고 있는 점을 고려해 내년 5월부터 시작할 예정인 중급 2단계 과정부터는 우리나라 지역별 사투리를 다룬 교재를 따로 발간, 실제 생활에서 유익하게 활용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국립국어원은 이와 함께 인터넷이 제대로 보급돼 있지 않은 세계 각국의 한국인 다문화 가정을 위해 방송과는 별도로 오디오 테이프와 교재 및 CD,DVD 등을 만들어 한국어 교육 지원단체를 통해 무료로 배포할 계획이다. 이준석 한국어진흥팀장은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도 경제적으로 어려운 다문화 가정 구성원들이 정확한 우리 말을 쉽게 배울 수 있게 하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신명나는 3색 전통문화축제

    신명나는 3색 전통문화축제

    하늘은 높고 축제는 살찐다. 가을은 축제의 계절. 이맘때면 전국 어디서나 크고 작은 축제들이 열린다. 물놀이 위주의 행사가 많은 여름철과 달리, 전통과 문화에 초점을 맞춘 축제가 대부분. 파란 하늘을 캔버스 삼아 한바탕 신명을 풀어놓을 전통문화축제 대표선수 셋이 개막을 기다리고 있다. 흥겨움이 넘치는 축제를 찾아 가을의 문을 활짝 열자.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안동 국제탈춤페스티벌 “사회의 탈을 벗어던지고 꾸밈없는 인간 본연의 신명을 찾는다.” 2007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이 28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10월7일까지 안동 탈춤공원과 하회마을 등 안동시 전역에서 개최된다.6년 내리 문화관광부 선정 최우수 축제 자리를 놓치지 않은 국내 가을축제의 대표선수. 축제 기간 동안 무려 600여개 행사가 숨쉴 틈 없이 이어진다.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우리나라 탈춤 공연단 19팀과 해외공연단 8개국 10개팀 등 참가해 춤 솜씨를 뽐내는 탈춤 한마당. 국내의 중요무형문화재 14개와 기타 비지정 전승문화재가 모두 참가해 총 40회 공연을 벌이고, 태국·부탄·불가리아·러시아 등의 공연단이 80여회 신명을 풀어낸다. 놋다리밟기, 하회선유줄불놀이, 차전놀이 등 30여가지 전통 민속놀이와 탈춤따라 배우기, 월드마스크 경연대회, 엽기탈 댄스대회 등 다양한 체험·경연 행사도 잇따른다.www.maskdance.com,(054)841-6397∼8. 안동 인근 지역에서는 다양한 축제가 나들이객들을 기다린다. 울진과 봉화에서는 송이 잔치판이 열린다. 울진 금강송 송이축제가 28∼30일 울진군 엑스포공원 일대, 봉화 춘양목 송이축제는 29일∼10월2일 봉화읍 내성천 체육공원과 관내 송이산에서 각각 열린다. 영주에서는 10월3일∼7일 풍기인삼축제, 영천에서는 10월2∼6일 한약축제가 각각 열린다. ■ 안성 남사당 바우덕이 축제 청명한 가을 하늘을 통째로 마당 삼은 남사당패의 흥겨운 한판 놀음이 가을 바람을 타고 찾아온다. 영화 ‘왕의 남자’를 통해 유명세를 떨친 ‘안성 남사당 바우덕이 축제’가 10월2일 전야제를 시작으로 7일까지 안성시내 강변공원에서 펼쳐지는 것. 축제는 ‘곰뱅이 트기’(남사당 예법에 따라 축제를 열어도 좋다는 허락을 받는 의식)를 시작으로, 어름(줄타기), 풍물, 살판(땅재주), 덜미(꼭두각시극), 덧뵈기(탈놀이), 버나놀이(접시돌리기) 등 총 여섯 개의 남사당 풍물놀이 공연으로 구성된다. ‘왕의 남자’ 권원태, 국내 유일 여자 어름산이 박지나, 서주향 등이 펼치는 화려한 줄타기 묘기는 단연 축제의 하이라이트. 이밖에도 ‘조선시대판 비보이’ 살판과 외국인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상모놀이, 무동놀이 등이 연이어 펼쳐진다. 특히 올해는 중국, 몽골, 불가리아, 태국, 터키, 영국 등 6개국 공연단이 참여해 화려하고 다채로운 공연을 선 보일 예정이다. 가족이 함께 즐기고 배우는 7가지 남사당놀이 체험프로그램도 마련돼 있다.www.baudeogi.com,(031)676-4601. ■ 충주 세계무술축제 충주는 중요무형문화재 76호 태껸의 예능보유자 정경화씨가 제자들을 길러온 곳. 이를 기념하기 위해 충주시는 10년째 세계 무술 고수들을 초청해 경연을 벌이는 축제를 열고 있다. 올해도 28일∼10월4일 충주시 탄금대 칠금관광지 일대에서 20개국 25개 무술단체가 참가한 가운데 세계무술축제가 열린다. 우리 민족 전통무술 ‘태껸’을 비롯, 중국 ‘소림무술’, 브라질 ‘카포에라’, 태국 ‘무에타이’, 러시아 ‘삼보’ 등 세계 주요 무술의 정수를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올해부터는 외국선수와 우리나라 선수가 동수로 겨루는 ‘충주 이종격투기대회(WHAFIC)’와 무술과 비보잉을 결합한 퓨전 비보이 대회 ‘마셜 아츠 비보이 그랑프리’ 등 2개 대회가 신설됐다. 이밖에 야간 무술 시연, 대한민국의 무술스타 베스트 10 등 다양한 행사가 준비됐다. 축제 기간에 탄금대·중앙탑 등 주요 관광지를 순회하는 중원문화 유적투어 버스도 무료로 운행될 예정.www.martialarts.or.kr, 중원문화관광재단 (034)850-7981∼3.
  • 원불교·천태종 국내외 문화포교 활발

    원불교·천태종 국내외 문화포교 활발

    원불교와 불교 천태종이 대중포교와 사회 교화를 위한 문화시설을 나라 안팎에 각각 하나씩 건립했다. 원불교가 ‘전통문화 1번지’인 서울 북촌한옥마을에 마련한 은덕문화원과, 천태종이 몽골 울란바토르시 인근에 세우는 만복사(滿福寺). 원불교의 은덕문화원이 문화활동을 통한 도심 포교의 거점이라면 천태종 만복사는 몽골과 한국 불자들의 신심을 잇는 문화교량격 사찰이다. ●문화공연 등 소통 프로그램 운영 원불교 은덕문화원은 서울교구(교구장 이선종 교무)가 조선시대 궁성 수비진인 금위영서영(禁衛營西營) 자리에 도심속 원불교 문화운동의 구심점으로 마련한 공간. 신자인 전은덕 교도가 원불교에 기증한 대지 1716㎡안에 큰 대문과 대각전, 세심당, 인화당, 사은당, 살롱 마고 등 전통 한옥 건물들과 정원을 갖춘 문화원이다. 문화원은 각종 문화공연을 비롯해 탐방객 맞이 행사인 사랑방, 세미나며 학술모임인 아카데미 등 일반인들에게 원불교를 친숙한 종교로 자리매김하는 문화운동 차원의 소통 프로그램을 중점 운영할 계획이다. 다음달 3일 오세훈 서울시장을 비롯한 각계 인사들을 초청해 열 개관식에서는 경산 종법사가 설법을 하며 김성녀, 장사익이 출연하는 음악회도 이어진다. 원불교 서울교구측은 “원불교 교도가 희사한 부지에 세워진 은덕문화원은 교조인 소태산의 정신을 살려나갈 아카데미운동에 우리의 얼과 멋을 곁들인 전통문화의 산실뿐 아니라 서울에서 교단의 각종 활동을 이어가는 영빈관 기능을 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한국·몽골 종교 문화교류 활발 기대” 만복사는 울란바토르 시가 내려다보이는 복드산 자락에 건립될 천태종 해외 포교당.4∼5년 안에 노천대불을 비롯한 법당과 문화센터가 모두 들어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1차 불사로 지난 16일 중국 쓰촨(四川)성의 목문석(木紋石)으로 조성한 20m 크기의 입상(立像) 노천대불 봉안 기공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천태종 전 총무원장 운덕 스님과 울란바토르 시장 등이 참석했다. 천태종은 석가모니 본존불과 그 옆의 약사여래상으로 조성된 노천대불의 기반공사를 올해 안에 마치고 내년 9월쯤 봉안식을 가질 예정이다. 천태종측은 “만복사는 몽골 현지의 불자들이 신앙을 이어갈 귀의처이지만 한국에 들어와 있는 많은 몽골인들에게도 신앙 차원에서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공간”이라며 “이번 만복사 불사를 계기로 한국과 몽골간 종교·문화교류가 더욱 활발해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쥐라기 공원의 벨로시랩터 깃털 있었다”

    “쥐라기 공원의 벨로시랩터 깃털 있었다”

    영화 ‘쥐라기 공원’에 등장하는 작은 공룡 벨로시랩터(Velociraptor)는 깃털로 덮여 있었다는 연구가 나왔다. 벨로시랩터는 라틴어로 ‘날랜 사냥꾼’이란 뜻이다. 미국 자연사박물관의 앨런 터너 박사는 지난 1998년 몽골의 고비사막에서 발견된 벨로시랩터의 팔 아랫부분에 난 작은 돌기들이 현대 조류의 깃털 구조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사이언스지 최신호에 발표했다고 21일 BBC가 보도했다. 이런 돌기들은 ‘깃털 손잡이’로 불리는 부분으로, 인대와 일련의 깃털이 뼈와 연결되는 부분이며 깃털이 없는 동물에는 존재하지 않는 구조이다. 연구진은 이는 아주 작은 공룡뿐 아니라 많은 포식성 공룡들도 깃털을 갖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새로운 증거라고 지적했다. 고비 사막에서 발견된 벨로시랩터의 화석은 약 8000만년 전의 것으로 추정된다. 벨로시랩터의 몸크기는 큰 독수리 정도에 몸무게 15㎏ 정도였을 것으로 보이나 영화에서는 키가 2m나 되는 것으로 과장되게 묘사됐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사막중국/ 폴리테이아 펴냄

    봄철만 되면 황사가 기승을 부리면서, 그 원인을 퇴치하겠다며 적지 않은 한국 기업과 단체가 황사발원지로 지목되는 중국이나 몽골의 사막으로 달려가 나무를 심는다. 지리학자인 이강원 전북대 교수는 그러나 사막화는 사막을 녹지로 바꾸고 초지를 경지로 바꾸는 과정에서 발생한 현상인 만큼 그 과정을 반복할 이유가 없다고 비판한다. 지하수위가 낮거나 강수량이 확보되지 않는 곳에 나무를 심으면 관정을 파거나 하천수를 끌어들여야 하는 만큼 지하수위를 더욱 하강시켜 오히려 사막화를 촉진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사막중국’(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중국연구총서 9, 폴리테이아 펴냄)에서 “사막화 현상은 순수한 자연적 과정의 결과가 아니라 토지이용의 변화와 맞물려 있으며, 토지이용의 변화는 다시 사회변동과 깊은 연관을 갖고 있다.”고 설명한다. 중국의 사막화 현상 또한 사회변동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에 따르면 중국의 북방 건조지역 개발은 역사적으로 여러 차례에 걸쳐 시도되었다. 그 가운데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후의 시도가 가장 규모가 컸고 지속적이었다. 쑨원(孫文)이 1965년 ‘건국방략(建國方略)’에서 표방했을 만큼 북방 건조지역에 대한 이주와 개간 정책이 당시 중국에서는 일종의 숙원사업이자 시대정신이었다는 것이다. 1958년 시작된 대약진운동은 ‘자연개조’의 차원에서 북방으로 인구이동과 대규모 개간을 촉진시켰다.1966년 문화대혁명은 또다시 건조지역에 외지인구를 유입시켰고 초원과 사막의 개간이 빠르게 이루어졌다. 1978년 개혁개방 정책이 시행되면서 북방 건조지역 농민들이 개인적으로 토지확대와 가축의 수 불리기에 몰두하면서 사막화는 더욱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사막화 현상의 원인이 바로 사막을 옥토로 바꾸겠다는 시도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교수는 “근본적인 대책은 사막화 지역의 주민을 이주시키고 경지와 지하수 관정을 폐쇄하는 등 지극히 인간적인 정성을 다하는 것뿐”이라면서 “이후 사막을 없애거나 황사를 소멸시키는 것은 우리의 몫이 아니라 장구한 자연적 치유과정의 몫”이라고 말했다.1만 5000원.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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