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2026-07-05
    검색기록 지우기
  • ES
    2026-07-0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82,922
  • 들어와 봄 황홀한 섬

    들어와 봄 황홀한 섬

    지금껏 세 번 정도 겨눴던 것 같다. 그때마다 거센 바람과 악천후로 발길을 돌려세웠던 섬이 있다. 남녘의 절해고도 관매도(觀梅島)다. 전남 진도의 여러 섬 가운데 가장 빼어난 섬으로 꼽힌다는 곳이다. 파도가 일군 기암괴석과 밀가루처럼 고운 모래 해변, 100년은 족히 넘겼을 솔숲이 해학적인 전설들과 어우러져 있다. 섬 전체가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속했고, 국립공원 명품마을 제1호 등 이력도 화려하다. 장판 같은 바다 위로 봄바람이 살랑대던 어느 날, 네 번째 시도 만에 관매도로 가는 배에 몸을 실었다. 관매(觀梅)는 ‘매화를 본다’는 뜻이다. 이름만으로는 누구나 섬에 매화가 많을 것이라 예상하기 십상이다. 한데 이 섬과 매화는 별 관계가 없다. 볼매(볼뫼)도, 관호도 등으로 부르던 것을 일제강점기 때 관매도로 바꿨다고 한다. ‘볼뫼’는 산을 본다는 뜻이고, ‘관호’는 호수처럼 잔잔한 앞바다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섬 여행이 주는 즐거움 중 하나는 독특한 지형을 만나는 것이다. 관매도 역시 거대한 해안지형과 기암괴석이 볼만하다. 이런 웅장한 해안 경관들을 우리 선조들은 ‘뫼’라고 뭉뚱그려 표현하지 않았을까. 그런 점에서 보면 ‘볼뫼’라는 낯선 단어가 썩 잘 어울린다는 생각도 든다. 관매도 여행의 절정은 4~5월과 가을이다. 특히 봄에 섬 전체가 유채꽃으로 물들 때 많이들 찾는다. 그런데 왜 이도 저도 아닌 지금? 얼추 2㎞에 달하는 해변을 혼자 걸어 본 기억이 있다면, 혹은 두려울 정도로 거대한 해식동굴에서 혼자 파도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있다면 잘 알 터다. 세상 고즈넉하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고 들리지 않던 것들이 귀에 가득 찬다. 그 장관이라는 유채꽃을 볼 수는 없지만, 대신 붐비지 않는 한적함과 고요를 얻을 수 있다. 첫 배로 관매도에 들어왔다가 오후 배로 이웃 섬 조도까지 둘러보고 나가는 이들도 있다. 그러려면 관매도에 머무는 시간은 기껏해야 3시간 정도다. 섬의 일부만 볼 수 있는 시간이다. 아마 ‘일타쌍피는 해야 본전치기’라는 생각에서 이런 여정을 짜는 것일 텐데, 단언컨대 ‘본전’은 관매도에 있다. 생전 처음 보는 생경한 풍경들, 고요 속에 잠들고 어선 발동 소리에 잠이 깨는 낯선 경험들은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다. 관매도 가는 배는 진도항에서 탄다. 진도항의 옛 이름은 팽목항이다. 2014년 4월 이후, 대한민국 모든 이의 가슴에 결코 지워지지 않을 상흔으로 남은 이름이다. 세월호의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가슴 아파서 발걸음하지 못한 사이 시간은 벌써 8년이 흘렀다.현지 분위기는 예전과 다소 다른 듯하다. ‘세월호 팽목 기억관’의 진도항 존치 여부를 두고 유족, 시민단체 측과 진도군 측이 갈등을 빚고 있다. 진도항에서 1㎞쯤 떨어진 곳엔 국민해양안전관이 들어서고 있다. 세월호 추모, 해양 안전 의식 고취 등 여러 목적으로 조성되는 공간인데, 여기도 상황은 비슷하다. 오는 5월 준공 여부도 불투명하고 문을 연 뒤 제대로 운영될지도 걱정이다. 진도군과 국가가 운영비를 놓고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어서다. 이래저래 아이들 볼 면목이 없다. 오전 9시 50분 배를 탔다. 관매도로 가는 첫 배다. 조도와 관사도, 소마도, 대마도 등을 거쳐 관매도까지 간다. 거리는 진도항에서 24㎞ 정도. 원래 1시간 20분 거리지만 완행버스처럼 가다 보니 2시간 정도로 늘었다. 그래도 나쁠 건 없다. 어쩌면 두 번 보기 힘든 섬들을 줄줄이 눈에 담을 수 있으니 말이다.관매도의 볼거리들은 섬 구석구석에 산재해 있다. 하루를 묵어도 다 돌아보려면 빠듯할 정도다. 대표적 경관은 ‘관매8경’으로 요약된다. 1경인 관매해변과 해송숲, 2경 방아섬(남근바위), 3경 돌묘와 꽁돌, 4경 할미중드랭이굴, 5경 하늘다리, 6경 서들바굴폭포, 7경 다리여, 8경 하늘담 등이다. 이 가운데 서들바굴폭포와 할미중드랭이굴, 다리여, 하늘담 등은 배를 타야 제 모습을 볼 수 있다.선착장에 내리면 길은 둘로 갈라진다. 왼쪽은 관매마을, 오른쪽은 관호마을이다. 관매마을 앞에 해변이 있다. 길이가 얼추 2㎞에 달하는 긴 해변이다. 백사장은 경사가 완만하다. 썰물 때는 바닷물이 수십 미터 뒤로 물러난다. 그래도 깊이 차이가 별로 없다. 예전에는 관매도를 관호도라고 불렀다. 앞바다가 호수처럼 잔잔해서 그랬다. 그 이름의 배경이 된 곳이 바로 이 해변이다. 해 질 무렵이면 장판 같은 바다 위로 해가 지는 서정적인 장면과 마주할 수 있다. 해변의 모래도 밀가루처럼 곱고 단단하다. 경운기가 오가도 끄떡없을 정도다. 해변 뒤는 해송숲이다.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빼곡하다. 일반적인 방풍림에 견줘 나무들의 둥치가 엄청 굵다. 솔숲 옆엔 거대한 후박나무 두 그루가 서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다. 관매도의 성황림으로, 해마다 정초에 이 나무 아래에서 마을 동제를 지낸다. 해변 옆엔 거대한 층암절벽이 늘어서 있다. 멀리서도 시선을 끌던 곳인데 가까이에서 보니 위용이 더 대단하다. 이쯤에서 관매8경에 이의를 제기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이 층암절벽을 포함해 관매9경이라 불러야 했다. 실제 절벽의 모양이 채석강과 매우 흡사하다. 얇은 암석 절리들이 두꺼운 책처럼 겹겹이 쌓여 있다. 옆으로 펼쳐진 규모는 오히려 채석강보다 넓다. 이런 지형에선 해식동굴이 다양하게 발달하기 마련이다. 절벽이 들고 나는 곳마다 크고 작은 해식동굴이 형성돼 있다. 주민들은 이 일대를 ‘구랍’이라 부른다. ‘동굴 앞’에 있다는 뜻이다. 구랍 일대의 명소는 ‘독립문바위’다. 일몰 명소로 알려진 곳이다. 한데 내려가기가 매우 위험하다. 워낙 급경사여서 국립공원 측에서 입구를 막아 놓았다. 사실 독립문바위 정도의 층암절벽은 관매해변 옆에서 얼마든지 수월하게 볼 수 있다. 인증 사진 한 장 찍겠다고 힘들여 내려갈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낙조 풍경 역시 관매해변 쪽이 훨씬 서정적이다.관매해변과 장산편마을 사이엔 평탄하고 너른 들이 있다. 이 들녘은 관광객을 위해 봄엔 유채꽃, 가을엔 메밀꽃밭으로 활용된다. 3월 말쯤이면 너른 들 전체가 노란 유채꽃으로 뒤덮일 테다. 독립문바위에서 1㎞쯤 떨어진 곳에 방아섬이 있다. 섬 꼭대기엔 커다란 바위가 솟아 있다. 절구공이를 닮은 이 바위 덕에 섬 이름도 방아섬이 됐을 것이다. 한데 주민들은 굳이 남근바위라고 부른다. 방아섬엔 선녀들이 밤마다 내려와 방아를 찧고 올라갔다는 전설이 있다. 선녀들은 많은 곳을 두고 왜 하필 남근바위에서 방아를 찧고 놀았을까. 참 얄궂은 상상이 가미된 전설이다.이처럼 관매도의 대표 경관들은 하나의 스토리로 연결돼 있다. 해학과 풍경이 적당히 얽혔다. 관호마을 쪽의 돌묘와 꽁돌, 하늘다리 등도 비슷하다. 꽁돌은 하늘나라 옥황상제가 애지중지하던 둥근 돌이었다. 어느 날 옥황상제의 두 아들이 꽁돌을 갖고 놀다 지상으로 떨어뜨렸다. 옥황상제는 하늘장사를 보내 꽁돌을 가져오라고 했다. 한데 지상에서 선녀와 맞닥뜨린 게 화근이었다. 선녀들은 방아섬에서 방아찧기 놀이를 하다가 지루하면 하늘다리로 날아올라 잠자리 같은 선녀 옷을 벗고 놀았다지. 하늘장사가 선녀들의 미색에 ‘멘털이 털려’ 함흥차사가 되자 옥황상제는 또 다른 사자들을 내려보냈다. 한데 이들마저 하늘장사의 전철을 밟았다. 화가 치솟은 상제는 꽁돌 옆에 묘를 만들어 이들을 묻어 버렸다. 그게 바로 돌묘란다. 무미건조하더라도 사실적인 이야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이렇게 설명할 수 있겠다. 지리적으로 남근바위 등은 사암류(화산쇄설성응회암)에 속한다. 풍화와 침식에 강하다. 남근바위는 절벽 꼭대기에 남은 응회암, 꽁돌은 절벽에서 굴러떨어진 응회암이다. 수많은 시간 동안 풍화와 침식이 이어졌고, 그 덕에 현재의 형태를 이루게 됐다. 꽁돌에는 구멍들이 나 있다. 전설은 하늘장사의 손바닥 형상이라 보지만, 학술은 타포니라고 말한다.선녀들이 옷을 벗고 놀았다는 하늘다리 쌍바위섬은 응회암 그 자체의 절벽지대다. 주민들은 베락밧(벼락바위)이라고 부른다. 벼락을 맞아 둘로 갈라졌다는 건데, 학술적으로는 지각변동으로 갈라졌을 것이라 추정된다. 절벽 양쪽으로 작은 다리가 놓여 오갈 수 있다. 폭은 3m 정도지만, 발아래 절벽의 높이는 50m에 달한다. 굽어보는 것만으로도 머리카락이 쭈뼛 선다. 예전 주민들은 여기에 나무로 다리를 놓아 오갔다고 한다. 하늘다리에 서면 멀리 동·서거차도가 보인다. 그 너머에 세월호를 삼킨 바다가 있다. 옷자락을 여밀 수밖에 없는 장면이다. 다리여와 하늘담은 관호마을 끝자락에서 다른 경로로 접근해야 한다. 가는 길이 꽤 멀어 왕복 2시간 정도는 잡아야 한다. ■ 여행수첩 →오전 9시 50분, 낮 12시 10분 하루 두 차례 배가 오간다. 차량도 싣고 갈 수 있다. 여러 섬을 들르는 1항차는 2시간 5분, 조도만 들르는 2항차는 1시간 20분 정도 걸린다. 성수기엔 운항 횟수가 는다. 새섬두레호 (061)544-5353, 한림페리호 544-0833. →섬에선 민박이나 캠핑을 해야 한다. 식당은 있지만 비수기엔 거의 영업을 하지 않는다. 민박집에서 식사까지 해결해야 한다. 민박집은 꽤 많다. →섬에서 낚시는 금지다. 국립공원 지역이기 때문이다. 택시 등 대중교통도 없다. 성수기엔 자전거 대여점이 운영되기도 한다. →유람선이 없어 섬 일주를 하려면 어민들의 배를 빌려야 한다. 값은 15만원 선이다. 관광객들끼리 돈을 추렴해 빌리는 경우가 보통이라고 한다.
  • 내려다 봄 짜릿한 섬

    내려다 봄 짜릿한 섬

    지금껏 세 번 정도 겨눴던 것 같다. 그때마다 거센 바람과 악천후로 발길을 돌려세웠던 섬이 있다. 남녘의 절해고도 관매도(觀梅島)다. 전남 진도의 여러 섬 가운데 가장 빼어난 섬으로 꼽힌다는 곳이다. 파도가 일군 기암괴석과 밀가루처럼 고운 모래 해변, 100년은 족히 넘겼을 솔숲이 해학적인 전설들과 어우러져 있다. 섬 전체가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속했고, 국립공원 명품마을 제1호 등 이력도 화려하다. 장판 같은 바다 위로 봄바람이 살랑대던 어느 날, 네 번째 시도 만에 관매도로 가는 배에 몸을 실었다. 관매(觀梅)는 ‘매화를 본다’는 뜻이다. 이름만으로는 누구나 섬에 매화가 많을 것이라 예상하기 십상이다. 한데 이 섬과 매화는 별 관계가 없다. 볼매(볼뫼)도, 관호도 등으로 부르던 것을 일제강점기 때 관매도로 바꿨다고 한다. ‘볼뫼’는 산을 본다는 뜻이고, ‘관호’는 호수처럼 잔잔한 앞바다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섬 여행이 주는 즐거움 중 하나는 독특한 지형을 만나는 것이다. 관매도 역시 거대한 해안지형과 기암괴석이 볼만하다. 이런 웅장한 해안 경관들을 우리 선조들은 ‘뫼’라고 뭉뚱그려 표현하지 않았을까. 그런 점에서 보면 ‘볼뫼’라는 낯선 단어가 썩 잘 어울린다는 생각도 든다. 관매도 여행의 절정은 4~5월과 가을이다. 특히 봄에 섬 전체가 유채꽃으로 물들 때 많이들 찾는다. 그런데 왜 이도 저도 아닌 지금? 얼추 2㎞에 달하는 해변을 혼자 걸어 본 기억이 있다면, 혹은 두려울 정도로 거대한 해식동굴에서 혼자 파도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있다면 잘 알 터다. 세상 고즈넉하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고 들리지 않던 것들이 귀에 가득 찬다. 그 장관이라는 유채꽃을 볼 수는 없지만, 대신 붐비지 않는 한적함과 고요를 얻을 수 있다. 첫 배로 관매도에 들어왔다가 오후 배로 이웃 섬 조도까지 둘러보고 나가는 이들도 있다. 그러려면 관매도에 머무는 시간은 기껏해야 3시간 정도다. 섬의 일부만 볼 수 있는 시간이다. 아마 ‘일타쌍피는 해야 본전치기’라는 생각에서 이런 여정을 짜는 것일 텐데, 단언컨대 ‘본전’은 관매도에 있다. 생전 처음 보는 생경한 풍경들, 고요 속에 잠들고 어선 발동 소리에 잠이 깨는 낯선 경험들은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다. 관매도 가는 배는 진도항에서 탄다. 진도항의 옛 이름은 팽목항이다. 2014년 4월 이후, 대한민국 모든 이의 가슴에 결코 지워지지 않을 상흔으로 남은 이름이다. 세월호의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가슴 아파서 발걸음하지 못한 사이 시간은 벌써 8년이 흘렀다.현지 분위기는 예전과 다소 다른 듯하다. ‘세월호 팽목 기억관’의 진도항 존치 여부를 두고 유족, 시민단체 측과 진도군 측이 갈등을 빚고 있다. 진도항에서 1㎞쯤 떨어진 곳엔 국민해양안전관이 들어서고 있다. 세월호 추모, 해양 안전 의식 고취 등 여러 목적으로 조성되는 공간인데, 여기도 상황은 비슷하다. 오는 5월 준공 여부도 불투명하고 문을 연 뒤 제대로 운영될지도 걱정이다. 진도군과 국가가 운영비를 놓고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어서다. 이래저래 아이들 볼 면목이 없다. 오전 9시 50분 배를 탔다. 관매도로 가는 첫 배다. 조도와 관사도, 소마도, 대마도 등을 거쳐 관매도까지 간다. 거리는 진도항에서 24㎞ 정도. 원래 1시간 20분 거리지만 완행버스처럼 가다 보니 2시간 정도로 늘었다. 그래도 나쁠 건 없다. 어쩌면 두 번 보기 힘든 섬들을 줄줄이 눈에 담을 수 있으니 말이다.관매도의 볼거리들은 섬 구석구석에 산재해 있다. 하루를 묵어도 다 돌아보려면 빠듯할 정도다. 대표적 경관은 ‘관매8경’으로 요약된다. 1경인 관매해변과 해송숲, 2경 방아섬(남근바위), 3경 돌묘와 꽁돌, 4경 할미중드랭이굴, 5경 하늘다리, 6경 서들바굴폭포, 7경 다리여, 8경 하늘담 등이다. 이 가운데 서들바굴폭포와 할미중드랭이굴, 다리여, 하늘담 등은 배를 타야 제 모습을 볼 수 있다.선착장에 내리면 길은 둘로 갈라진다. 왼쪽은 관매마을, 오른쪽은 관호마을이다. 관매마을 앞에 해변이 있다. 길이가 얼추 2㎞에 달하는 긴 해변이다. 백사장은 경사가 완만하다. 썰물 때는 바닷물이 수십 미터 뒤로 물러난다. 그래도 깊이 차이가 별로 없다. 예전에는 관매도를 관호도라고 불렀다. 앞바다가 호수처럼 잔잔해서 그랬다. 그 이름의 배경이 된 곳이 바로 이 해변이다. 해 질 무렵이면 장판 같은 바다 위로 해가 지는 서정적인 장면과 마주할 수 있다. 해변의 모래도 밀가루처럼 곱고 단단하다. 경운기가 오가도 끄떡없을 정도다. 해변 뒤는 해송숲이다.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빼곡하다. 일반적인 방풍림에 견줘 나무들의 둥치가 엄청 굵다. 솔숲 옆엔 거대한 후박나무 두 그루가 서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다. 관매도의 성황림으로, 해마다 정초에 이 나무 아래에서 마을 동제를 지낸다. 해변 옆엔 거대한 층암절벽이 늘어서 있다. 멀리서도 시선을 끌던 곳인데 가까이에서 보니 위용이 더 대단하다. 이쯤에서 관매8경에 이의를 제기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이 층암절벽을 포함해 관매9경이라 불러야 했다. 실제 절벽의 모양이 채석강과 매우 흡사하다. 얇은 암석 절리들이 두꺼운 책처럼 겹겹이 쌓여 있다. 옆으로 펼쳐진 규모는 오히려 채석강보다 넓다.이런 지형에선 해식동굴이 다양하게 발달하기 마련이다. 절벽이 들고 나는 곳마다 크고 작은 해식동굴이 형성돼 있다. 주민들은 이 일대를 ‘구랍’이라 부른다. ‘동굴 앞’에 있다는 뜻이다. 구랍 일대의 명소는 ‘독립문바위’다. 일몰 명소로 알려진 곳이다. 한데 내려가기가 매우 위험하다. 워낙 급경사여서 국립공원 측에서 입구를 막아 놓았다. 사실 독립문바위 정도의 층암절벽은 관매해변 옆에서 얼마든지 수월하게 볼 수 있다. 인증 사진 한 장 찍겠다고 힘들여 내려갈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낙조 풍경 역시 관매해변 쪽이 훨씬 서정적이다.관매해변과 장산편마을 사이엔 평탄하고 너른 들이 있다. 이 들녘은 관광객을 위해 봄엔 유채꽃, 가을엔 메밀꽃밭으로 활용된다. 3월 말쯤이면 너른 들 전체가 노란 유채꽃으로 뒤덮일 테다. 독립문바위에서 1㎞쯤 떨어진 곳에 방아섬이 있다. 섬 꼭대기엔 커다란 바위가 솟아 있다. 절구공이를 닮은 이 바위 덕에 섬 이름도 방아섬이 됐을 것이다. 한데 주민들은 굳이 남근바위라고 부른다. 방아섬엔 선녀들이 밤마다 내려와 방아를 찧고 올라갔다는 전설이 있다. 선녀들은 많은 곳을 두고 왜 하필 남근바위에서 방아를 찧고 놀았을까. 참 얄궂은 상상이 가미된 전설이다.이처럼 관매도의 대표 경관들은 하나의 스토리로 연결돼 있다. 해학과 풍경이 적당히 얽혔다. 관호마을 쪽의 돌묘와 꽁돌, 하늘다리 등도 비슷하다. 꽁돌은 하늘나라 옥황상제가 애지중지하던 둥근 돌이었다. 어느 날 옥황상제의 두 아들이 꽁돌을 갖고 놀다 지상으로 떨어뜨렸다. 옥황상제는 하늘장사를 보내 꽁돌을 가져오라고 했다. 한데 지상에서 선녀와 맞닥뜨린 게 화근이었다. 선녀들은 방아섬에서 방아찧기 놀이를 하다가 지루하면 하늘다리로 날아올라 잠자리 같은 선녀 옷을 벗고 놀았다지. 하늘장사가 선녀들의 미색에 ‘멘털이 털려’ 함흥차사가 되자 옥황상제는 또 다른 사자들을 내려보냈다. 한데 이들마저 하늘장사의 전철을 밟았다. 화가 치솟은 상제는 꽁돌 옆에 묘를 만들어 이들을 묻어 버렸다. 그게 바로 돌묘란다. 무미건조하더라도 사실적인 이야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이렇게 설명할 수 있겠다. 지리적으로 남근바위 등은 사암류(화산쇄설성응회암)에 속한다. 풍화와 침식에 강하다. 남근바위는 절벽 꼭대기에 남은 응회암, 꽁돌은 절벽에서 굴러떨어진 응회암이다. 수많은 시간 동안 풍화와 침식이 이어졌고, 그 덕에 현재의 형태를 이루게 됐다. 꽁돌에는 구멍들이 나 있다. 전설은 하늘장사의 손바닥 형상이라 보지만, 학술은 타포니라고 말한다. 선녀들이 옷을 벗고 놀았다는 하늘다리 쌍바위섬은 응회암 그 자체의 절벽지대다. 주민들은 베락밧(벼락바위)이라고 부른다. 벼락을 맞아 둘로 갈라졌다는 건데, 학술적으로는 지각변동으로 갈라졌을 것이라 추정된다. 절벽 양쪽으로 작은 다리가 놓여 오갈 수 있다. 폭은 3m 정도지만, 발아래 절벽의 높이는 50m에 달한다. 굽어보는 것만으로도 머리카락이 쭈뼛 선다. 예전 주민들은 여기에 나무로 다리를 놓아 오갔다고 한다. 하늘다리에 서면 멀리 동·서거차도가 보인다. 그 너머에 세월호를 삼킨 바다가 있다. 옷자락을 여밀 수밖에 없는 장면이다. 다리여와 하늘담은 관호마을 끝자락에서 다른 경로로 접근해야 한다. 가는 길이 꽤 멀어 왕복 2시간 정도는 잡아야 한다. ■ 여행수첩 →오전 9시 50분, 낮 12시 10분 하루 두 차례 배가 오간다. 차량도 싣고 갈 수 있다. 여러 섬을 들르는 1항차는 2시간 5분, 조도만 들르는 2항차는 1시간 20분 정도 걸린다. 성수기엔 운항 횟수가 는다. 새섬두레호 (061)544-5353, 한림페리호 544-0833. →섬에선 민박이나 캠핑을 해야 한다. 식당은 있지만 비수기엔 거의 영업을 하지 않는다. 민박집에서 식사까지 해결해야 한다. 민박집은 꽤 많다. →섬에서 낚시는 금지다. 국립공원 지역이기 때문이다. 택시 등 대중교통도 없다. 성수기엔 자전거 대여점이 운영되기도 한다. →유람선이 없어 섬 일주를 하려면 어민들의 배를 빌려야 한다. 값은 15만원 선이다. 관광객들끼리 돈을 추렴해 빌리는 경우가 보통이라고 한다.
  • 강행도 연기도… 지자체 국제행사 ‘조마조마’

    강행도 연기도… 지자체 국제행사 ‘조마조마’

    “올해는 무조건 합니다. 열지 못하면 국비 28억원을 반납해야 하는 등 부작용이 큽니다.” 계룡세계군문화엑스포조직위원회 유병훈 사무총장은 16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행사가 무산되면 사업비 절반이 날아간다”며 이같이 말했다. 엑스포는 당초 2020년에 열려다가 코로나19 확산으로 두 번 연기됐다. 오는 10월 7~23일 3군 본부가 있는 계룡대에서 개최된다. 힘들게 유치한 대형 국제행사를 놓고 지자체들이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멈추지 않는 코로나19 유행 탓에 강행하면 흥행이 불안하고, 연기하면 예산만 낭비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계룡세계군문화엑스포는 세계 첫 군 엑스포로 2017년 정부의 승인을 받아 사업비 190억원 중 일부가 국비로 지원됐다.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세계 6위로 급성장한 국방력을 뽐내기 위해 열려고 했던 국제행사다. 해외 참전용사와 가족, 8개국 군악대 초청에는 어려움이 없지만 문제는 목표 관광객 131만명이 올지, 외국인 7만명을 유치할 수 있을지다. 유 사무총장은 “여행사를 상대로 설명회를 계속 열고 있다”며 “돈도 돈이지만 세계 유일 분단국인데도 평화를 수호하는 국가임을 알릴 기회여서 대회 무산은 상상도 할 수 없다”고 했다. 울산시도 오는 6월 25~26일 세계관광산업콘퍼런스를 강행하기로 했다. 시 관계자는 “국가 간 이동이 불편해 참가국이 처음 30개국에서 20개국으로 줄고, 9억 9000만원인 국비 지원도 5억원까지 쪼그라들 수 있지만 무조건 열겠다”고 말했다. 안전관광 시스템을 전 세계에 알려 지역 관광산업을 살리려는 행사다. 충남 보령시는 오는 7월 16일부터 8월 15일까지 국비 43억여원 등 총 145억원을 들여 대천해수욕장 일대에서 보령해양머드박람회를 개최한다. 매년 열리는 머드축제를 정부의 승인을 받아 글로벌 축제로 확대한 것이다. 각종 체험행사와 학술대회를 열 머드테마파크도 완공 직전이다. 문제는 코로나 상황에서 몸 부딪힘이 격렬한 프로그램이 많다는 점이다. 120만명 방문객 목표로 강행할 참이지만 고민이 적잖다. 머드박람회조직위원회 관계자는 “1년 연기하면 운영비 등 20억원 이상이 더 들어가고, 코로나가 끝난다는 보장도 없다”며 “올해 ‘보령방문의 해’ 의미도 퇴색된다”고 밝혔다. 이어 “일본 오키나와 등 가까운 해외 주둔 미군에 공을 들이고 있는데 외국인 유치 12만명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 불안하다”고 털어놨다. 반면 전북도는 아직 1년 반이나 남은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대회를 1년 연기하겠다고 세계스카우트연맹에 요청했다. 애초 계획대로라면 내년 8월 새만금지구에서 개최되는 행사다. 따라서 올해 8월 개최하려던 프레잼버리도 1년 뒤로 미뤄졌다. 전북도 관계자는 “170여개국 청소년 5만명이 참가하는데 코로나가 불러올 입국 제약과 활동 위축 등으로 대회의 성공을 담보할 수 없다”며 “조직위의 인건비와 운영비로 연간 15억여원이 더 들지만 연기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 日 후쿠시마 앞바다 M7.3 지진...도호쿠 지역 쓰나미 주의보 (종합)

    日 후쿠시마 앞바다 M7.3 지진...도호쿠 지역 쓰나미 주의보 (종합)

    2011년 3월 11일 미야기, 이와테, 후쿠시마 등 일본 도호쿠 지역을 중심으로 1만 8000명 이상의 사망자를 냈던 동일본대지진이 발생한 지 11년이 지난 가운데 당시 여진으로 추정되는 강진이 발생했다. 16일 오후 11시 36분 후쿠시마현 앞바다에서 규모 7.3, 최대 진도 6강(强)의 지진이 발생했다. 일본 기상청은 지진 발생 직후 “후쿠시마현, 미야기현 해안지대를 중심으로 높이 1m 규모의 쓰나미가 우려된다”며 쓰나미 주의보를 발령했다. 이번 지진의 진앙은 북위 37.70도, 동경 141.70도이며 지진 발생 깊이는 33㎞다. 후쿠시마현, 미야기현, 이와테현 등의 대부분 지역에서 진도 4~6강의 흔들림이 관측됐다. 수도인 도쿄도에서도 진도 4가 관측됐다. ‘진도’는 지진의 강도를 뜻하는 ‘규모’와 달리 실제 체감도를 말해 주는 일본 정부의 기준으로, 6강은 서 있기가 불가능해 기어가야 이동이 가능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몸이 내동댕이쳐질 수도 있는 수준이다. 일본에서 진도 6강의 강한 지진은 지난해 2월 13일 같은 후쿠시마현 앞바다에서 발생한 지진 이후 13개월만이다.
  • 수려한 산세에 아찔한 출렁다리 명품 등산코스...거창 Y자형출렁다리, 하동 성제봉 구름다리

    수려한 산세에 아찔한 출렁다리 명품 등산코스...거창 Y자형출렁다리, 하동 성제봉 구름다리

    경남도는 최근 하동군 성제봉과 거창군 우두산이 출렁다리가 놓이면서 수려한 산세와 아찔한 출렁다리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관광등산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고 16일 밝혔다.거창 가조면에 있는 해발 1046m 우두산은 산 모습이 소의 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우두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산 풍광이 유별나게 아름다워 별유산으로도 불린다. 9개의 봉우리로 이어지는 산세가 신비롭다. 우두산 해발 620m 지점에 계곡 위로 세 곳을 연결한 Y자형 출렁다리가 설치돼 있다. 2020년 10월 개통된 이 출렁다리 이름은 공모를 통해 ‘거창Y자형출렁다리’로 공식 명명됐다. Y자형 출렁다리는 국내 최초로 특수공법인 와이어(여러가닥 강철 철사를 합쳐 꼬아 만든 줄)를 연결한 현수교 형식으로 건설됐다. 세 봉우리를 연결한 전국 최초 출렁다리로 높이 60m, 길이는 각각 45m, 40m, 24m로 총 길이는 109m이다. 최대 하중은 60t으로 몸무게 75kg인 어른 800명 전체 무게에 해당한다. 동시 최대 수용 인원은 230명이다. Y자형 출렁다리를 이용할 수 있는 등산코스는 항노화힐링랜드 입구~고견사~의상봉~우두산상봉~마장재~거창Y자형출렁다리~항노화힐링랜드로 원점회귀하는 코스로 3시간쯤 걸린다. 항노화힐링랜드 입구에서 총 길이 1.1km 무장애 데크로드와 나무계단, 야자매트 등으로 조성한 트래킹길을 따라 출렁다리를 이용하는 짧은 순환코스도 있다.하동군 지리산 남쪽 능선 끝자락에 우뚝 솟아 있는 성제봉(형제봉)은 나란히 서 있는 두 개 봉우리가 우애 깊은 형제와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지리산 성제봉 해발 900m 신선대 일원에는 출렁다리인 ‘성제봉 신선대 구름다리’가 놓여 있다. 지난해 5월 준공된 신선대 구름다리는 총 길이 137m, 너비 1.6m로 다리 기둥이 없는 무주탑 현수교 형식으로 건설됐다. ‘성제봉 신선대 구름다리’에 서면 박경리(1926~2008) 작가의 소설 ‘토지’의 무대 악양 평사리 넓은 들판과 굽이굽이 흐르는 섬진강 비경, 섬진강 건너 우뚝 솟은 백운산 등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구름다리로 오를 수 있는 등산코스는 ●고소성~신선대 구름다리(3.4㎞ 3시간), ●강선암 주차장~신선대 구름다리(1.6㎞ 1시간 30분), ●활공장~성제봉~신선대 구름다리(3.0㎞ 1시간 10분) 등 세갈래가 있다. 활공장 구간은 화개면 부춘마을에서 활공장까지 임도를 이용해 차량으로 갈 수 있지만 일반차량 통행은 제한돼 출입 할 수 있는지를 미리 국유림관리소에 확인해야 한다. 윤동준 경남도 산림휴양과장은 “코로나19로 몸과 마음이 지친 시민들에게 하동 성제봉과 거창 우두산 출렁다리 명품 등산코스가 봄기운을 느끼며 건강과 활력을 키우는 좋은 나들이 장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단독] “협력 파트너 있는 공동정부 대통령, 독주·오만할 수 없는 구조”

    [단독] “협력 파트너 있는 공동정부 대통령, 독주·오만할 수 없는 구조”

    최광숙의 INSIDE ‘DJ정부 첫 비서실장’ 김중권 인터뷰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13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이끌 위원장에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를 임명하는 것을 시작으로 공동정부를 향한 첫발을 내디뎠다.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김종필(JP) 전 국무총리 간 연합으로 탄생한 김대중 정부가 첫 번째 공동정부라면, 윤석열 정부는 두 번째 공동정부가 된다. 대선을 불과 엿새 앞두고 단일화가 이뤄졌기에 향후 출범하게 될 공동정부에 대해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앞서 DJP 공동정부를 경험한 김대중 정부의 김중권 초대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난 14일 만나 공동정부가 나아가야 할 방향 등에 대해 들어봤다. 김 전 실장은 “단독 집권하면 대통령은 견제받지 않아 ‘제왕적 대통령’의 위험에 빠질 수 있지만 공동정부는 함께 선거를 치르고 향후 성공적인 국정 운영을 위해 힘을 합쳐야 할 파트너이기 때문에 항상 조심하고 긴장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공동정부 대통령은 독주할 수도, 오만할 수도 없는 구조”라고 했다. 김 전 실장은 특히 “이번 대선 결과가 박빙 승부였기 때문에 우군끼리 화합하고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국민들이 든든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DJP연합과 달리 이번 단일화는 전격 이뤄져 잘 운영할지 걱정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공동정부로 출범했는데 삐것거린다면 윤석열·안철수 두 사람 모두에 도움이 안된다. 두 사람은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정치적 운명공동체가 되었다. 상대를 존중하고 더불어 가야 한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통치할 수 없다. 윤 당선인의 협력 의지가 확고하고 안 대표도 합리적이라서 잘 운영할 것으로 본다.” -공동정부 운영에 가장 중요한 것은. “단일화 담판 과정에서 합의 각서 등이 거론되자 윤 후보가 안 후보에게 ‘종이쪼가리 뭐가 필요하겠나. 나를 믿어라, 나도 안 후보를 믿겠다’고 했다는데, 공동정부에서는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 신뢰 관계 속에서 국정을 펼쳐야 정권과 정치가 안정된다. 국민들이 원하는 것도 그것이다. 5년 내내 같이 가야 산다.” -DJP 공동정부는 어땠나. “정권 초 DJ와 JP 간 믿음이 공고했다. DJ는 주변에서 JP나 자민련에 대해 불만을 얘기하면 ‘공동정부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고 펄쩍 뛰었다. JP도 노력했다. 당시 비경제분야 장관은 DJ, 경제분야 장관은 JP 몫으로 나눠 공동정부를 구성했다. 어느날 JP는 ‘대통령께서 경제분야 장관으로 추천하실 분이 있으면 추천하라’고 해 DJ가 김성훈 농림부 장관을 임명할 수 있었다. 두 사람 모두 공동정부가 깨지면 어떻게 되는지 그 여파를 잘 알고 있었다.” -이념적으로 달랐던 DJP연합의 어려움은. “당시 공동정부는 내각제 개헌을 고리로 탄생했다. 어느 날 자민련 당무회의에서 김용환 의원 등 강경파들이 ‘DJ가 내각제를 추진하지 않으면 공동정부를 파기해야 한다’고 당시 총리이던 JP를 몰아세웠다. JP는 여소야대 정국이라 내각제안의 국회 통과가 어렵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들은 막무가내였다. 화가 난 JP가 ‘연립정부를 깨깼다. 내일 아침 총리 사퇴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나는 밤 12시쯤 김 전 대통령을 깨워 전화로 이런 상황을 알리고 아침에 김 총리, 박태준 자민련 총재 등과 함께 조찬하도록 건의했다. 다음날 아침 세분이 조찬을 하신 뒤 총리 사퇴 기자회견은 취소됐다. ” 만약 이날 밤 자민련 내에서 벌어진 JP사퇴 소동을 김 전 실장이 적절히 처리하지 못했다면 하루밤 사이 공동정부가 무너질 수 있는 긴박한 상황이었다. 양측 협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사례다. -공동정부 내 협력 못지 않게 앞으로 180석의 거대 야권과의 협치도 과제다. “민주당 등 야당과의 협치 없이 국정을 운영할 수 없다. 특히 여소야대 정치지형이기 때문에 야당과 소통하지 않으면 법안 하나 통과시키기 어려운게 현실이다. 민주당과 보여주기식 대화가 아니라 진심으로 소통하고 협력하지 않으면 난관을 헤쳐나가기 힘들다.” -현 정치 상황을 보면 야당과의 소통이 쉽지 않을 것 같다. “DJ는 야당 의원들을 비공개로 청와대로 불러 식사를 하곤 했다. 나중에 이 사실이 알려지면 야당 의원들은 ‘사꾸라’로 몰렸다. 우리나라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처럼 야당 의원들과 만나거나 전화하는 것도 어렵다. 그래도 윤 당선인은 여야 영수회담을 자주 열고, 야당 대표실도 찾아가고, 야당 의원 지역구에서 주요 행사가 열리면 찾아가 칭찬해주는 등 접촉을 확대해야 한다. 국민은 대통령이 진솔하게 야당과 대화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한다. ” -여야 협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게 인사 아닌가. “그렇다. 윤 당선인은 내 편만 기용하지 말고 합리적인 진보 인사들을 과감히 정부에 참여시켜야 한다. 장관 한두 명이 입각한다고 해서 협치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자기 이익만 챙기려고 해서는 안된다. DJ는 ‘어려울 때 일수록 원칙을 지켜라’고 했다. 상대를 속여 유리하게 하려고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대선 결과를 보면 진영 갈등이 심각하다. 국민 통합이 과제다. “윤 당선인은 첫 기자회견에서 진보·보수, 영남·호남 따로 없다고 했다. 보수, 진보를 넘어서야 한다. 기존의 정치 프레임인 보수와 진보 틀은 이제 수명을 다했다. 진영 대결에서 벗어나야 국가 발전이 가능하다. 국민 통합을 위해서도 인사를 잘해야 한다. 내편 네편 인재를 가리지 말고 발탁하고, 국민 눈높이에 맞지않으면 과감히 정리해야 한다. 선거 캠프에서 일했다고 능력이 안되는 사람에게 중책을 맡기면 안된다. 의리도 중요하지만 국민과 국가 이익이라는 더 큰 가치를 생각해야 한다. 두 가치가 충돌하면 항상 더 큰 가치를 선택해야 한다.” -대통령 비서실장의 덕목은. “대통령과 한 몸이 돼 대통령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대통령이 만날 사람, 만나지 않을 사람 등을 구별하고 대통령이 만나고 싶지 않아도 필요한 사람은 만나게 하고, 그 반대는 차단해야 한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스트레스가 많아 건강을 해칠 수 있어 때로는 말동무가 돼 위로해 줄 수 있어야 한다. 특히 ‘노’(NO)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마음을 비워야 한다. 마지막 공직으로 생각하고 내일이라도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해야 바른 소리를 할 수 있다. 민심을 여과 없이 전달하고 굴절 없는 정언을 하지 않으면 대통령을 망칠 수 있다. ” -윤 당선인은 청와대를 슬림화하겠다고 한다. “그동안 청와대는 정부 부처 과장급 인사까지 관여하는 등 행정부를 시시콜콜 좌지우지했다고 한다. 청와대는 대통령을 그림자 보좌하는 조직으로 앞에 나서면 안 된다.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비서관들과 회의하는 모습이 TV에 많이 나오는데, 이보다 대통령이 장관들과 함께 국정을 논의하는 국무회의 장면이 더 많이 나와야 장관들에게 힘이 실린다. 헌법에도 국무회의를 최고 심의기관으로 규정하고 있다. 비서실장 시절 수석비서관들에게 부처에 간섭하지 말라고 했다. 장관들에게 힘을 실어 주기 위해 한 달에 한 번 대통령과 독대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윤 당선인의 청와대 이전 의지가 강해 보인다. “박근혜·문재인 청와대를 상징하는 ‘제왕적 대통령’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대통령이 국민 속에 있다는 것을 보여 주려는 의도로 보인다. 그만큼 제왕적 대통령의 폐해가 컸다는 얘기다. DJ도 청와대 이전 공약을 지키려고 했지만 경호 문제 등의 이유로 하지 못했다. 이제 시대 상황이 바뀌었다. 경호 매뉴얼도 바뀔 필요가 있다. 청와대 이전은 ‘제왕적 대통령’과 ‘불통’ 이미지를 한꺼번에 불식시킬 수 있는 카드다.” 김중권은 누구 1939년 경북 울진 출생으로 판사를 지내다 민정당 3선 의원, 노태우 정부 청와대 정무수석, 김대중 정부 청와대 비서실장, 새천년민주당 대표 등을 지냈다. 국회 내에서 다양한 직책을 거치면서 다져진 정치 전반에 대한 조율 능력과 추진력 등으로 보수와 진보 정권에서 두루 요직에 등용됐다. 노태우 정부 정무수석을 지냈는데도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동교동 가신을 제치고 삼고초려해 초대 비서실장으로 발탁한 것도 그의 능력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 “어떻게 유치한 행사인데”…강행도, 연기도 불안한 지자체 국제행사

    “어떻게 유치한 행사인데”…강행도, 연기도 불안한 지자체 국제행사

    “올해는 무조건 합니다. 열지 못하면 국비 28억원을 반납해야 하고, 부작용이 한 둘이 아닙니다.” 계룡세계군문화엑스포조직위원회 유병훈 사무총장은 16일 서울신문과 통화에서 “대행 사업비 등 계약도 거의 끝나 행사가 무산되면 사업비 절반이 날아간다”며 이같이 말했다. 엑스포는 당초 2020년 열려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져 두 번이 연기됐다. 오는 10월 7~23일 삼군본부가 있는 계룡대에서 열린다. 힘들게 유치한 대형 국제행사를 강행해도, 연기해도 불안해 지자체들이 고민에 빠졌다. 멈추지 않는 코로나19 때문에 강행하면 ‘흥행 성공’이 불안하고, 연기하면 ‘예산 낭비’ 논란이 불거질 수 있는 탓이다.세계 첫 군(軍) 엑스포로 2017년 정부의 승인을 받아 사업비 190억원 중 일부 국비를 지원받았다. 국방력이 세계 6위 정도로 급성장한 상황에서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열려던 국제행사다. 해외 참전용사와 가족, 8개국 군악대 초청에는 어려움이 없지만 문제는 목표 관광객 131만명 중 외국인 7만명 유치다. 유 사무총장은 “여행사를 상대로 유치 설명회를 계속하고 있다”면서 “돈도 돈이지만 세계 유일의 분단국인 데도 평화를 수호하는 나라임을 널리 알리는 기회여서 무산시킬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울산시도 오는 6월 25~26일 세계관광산업콘퍼런스를 강행하기로 했다. 시 관계자는 “국가 간에 이동이 불편해 참가국이 애초 30개국에서 20개국으로 줄고, 9억 9000만원인 국비 지원도 5억까지 쪼그라들 수 있어 무조건 열겠다”고 밝혔다. 한국의 안전 시스템을 전 세계에 알려 관광을 활성화하려는 행사다. 충남 보령시는 오는 7월 16일부터 8월 15일까지 국비 43억여원 등 145억원을 들여 대천해수욕장 일대에서 보령해양머드박람회를 개최한다. 매년 열리는 머드축제를 정부의 승인을 받아 글로벌 축제로 확대한 것으로 각종 체험행사와 학술대회를 열 머드테마파크는 완공 직전이다. 문제는 코로나 상황에서 몸부딪힘이 격렬한 프로그램이 많다는 점이다. 120만명 방문객 목표로 강행할 참이지만 고민이 적잖다. 머드박람회조직위원회 관계자는 “1년 연기해도 코로나가 끝난다는 보장이 없지 않느냐”면서 “1년 미룰 때마다 인건비와 운영비로 20억원 이상 날아가고, 올해 ‘보령방문의 해’ 의미도 퇴색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외국인 12만명 유치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조직위 박돈해 부장은 “일본 오키나와 등 가까운 해외 주둔 미군에 공을 들이는 등 여러 유치 활동을 펼치고 있는데 불안하고 고민이 크다”고 털어놨다.반면 전북도는 내년 8월 부안군 새만금지구에서 열려던 세계스카우트잼버리의 1년 연기를 세계스카우트연맹에 전격 요청했다. 따라서 오는 8월 열려던 프레잼버리도 1년 뒤로 미뤄진다. 이유는 역시 코로나19가 멈추지 않아 대회의 성공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전북도 관계자는 “세계잼버리만 조직위 인건비와 운영비로 연간 15억여원이 투입돼 그 만큼 더 예산이 들겠지만 170여개국에서 5만명의 청소년이 참가하는데 입국 제약은 물론 프로그램 활동 위축 등으로 성공 개최가 불투명하다”면서 “마음이 아프지만 연기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 엄마가 왜? 공시생 아들 2000대 때려 살해…징역 7년

    엄마가 왜? 공시생 아들 2000대 때려 살해…징역 7년

    친아들을 대나무 막대기 등으로 2000번 넘게 때려 숨지게 한 60대 여성에게 징역 7년형이 확정됐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16일 살인 혐의로 기소된 A(64)씨에 대한 검찰의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A씨는 지난 2020년 8월 경북 청도에 있는 한 사찰에서 당시 35세였던 아들을 약 2200회 동안 대나무 막대기로 내려치거나 발로 머리를 차 결국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범행 당시 A씨는 아들이 폭행 탓에 쓰러져 몸을 가누지 못하는 등 이상징후가 보이는데도 멈추지 않고 2시간 30분가량 폭행을 이어갔고 결국 아들은 온몸의 피하출혈로 인한 속발성 쇼크 등으로 숨졌다. 사건 현장 폐쇄회로(CC)TV에는 아들이 어머니에게 맞는 동안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고 용서를 구하기만 하는 장면이 담겼다. A씨는 절에 머물면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아들이 사찰 내부 문제를 바깥에 알리겠다고 말하자 “버릇을 고치겠다”며 폭력을 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찰 내부 문제가 무엇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경찰은 A씨에게 상해치사 혐의를 적용했으나 검찰은 살해 의사가 있었다고 보고 살인죄를 적용해 A씨를 재판에 넘겼다. A씨는 재판 과정에서 아들이 사찰에서 계속 문제를 일으키며 훈육 목적으로 때렸으며 살해 의사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1심은 “범행 방법이 매우 가혹하고 결과가 극히 중하다는 점에서 그 죄책이 매우 무겁고 유족 중 피해자의 아버지가 엄벌을 원하고 있다”면서 A씨의 유죄를 인정했다. 다만 “아들을 체벌로 훈육할 수도 있다는 잘못된 믿음에서 피해자를 폭행하다 결국 사망에까지 이르게 한 것이고 사망의 결과를 예견하고 이를 감수하면서까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며 살인죄가 아닌 상해치사죄를 물어 징역 7년형을 선고했다. A씨가 치명적인 부위는 피하면서 주로 양팔과 엉덩이 등을 때렸고 사건 현장 근처에 목검 등 강한 타격을 줄 수 있는 도구가 있었음에도 이를 사용하지 않은 점 등도 고려됐다. 2심도 같은 판단을 내렸다. 대법원은 원심 판결에 법리 오해 등 잘못이 없다고 보고 처벌을 확정했다.
  • 아들 2000번 때려 숨지게 한 60대 어머니 징역 7년

    아들 2000번 때려 숨지게 한 60대 어머니 징역 7년

    친아들을 대나무 막대기 등으로 2000번 넘게 때려 숨지게 한 60대 여성에게 징역 7년형이 확정됐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살인 혐의로 기소된 A(64)씨에 대한 검찰의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을 그대로 확정했다고 16일 밝혔다. A씨는 2020년 8월 한 사찰에서 아들(당시 35세)을 2100여차례에 걸쳐 대나무 막대기로 폭행하거나 발로 머리를 차 사망케 한 혐의로 기소됐다. 수사 결과 A씨는 절에 머물면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아들이 사찰 내부 문제를 바깥에 알리겠다고 말하자 폭력을 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폭행은 아들이 쓰러져 몸을 가누지 못하는 등 이상징후가 보이는데도 멈추지 않고 2시간 30분가량 이어졌고, 피해자는 결국 온몸의 피하출혈로 인한 속발성 쇼크 등으로 숨졌다. 사건 현장 폐쇄회로(CC)TV에는 아들이 어머니에게 맞는 동안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고 용서를 구하기만 하는 장면이 담겼다. 경찰은 당초 A씨에게 상해치사 혐의를 적용했으나 검찰은 살해의 의사가 있었다고 보고 살인죄를 적용해 A씨를 재판에 넘겼다. 1심은 “범행 방법이 매우 가혹하고 결과가 극히 중하다는 점에서 그 죄책이 매우 무겁고, 유족 중 피해자의 아버지가 엄벌을 원하고 있다”면서 A씨의 유죄를 인정했다. 다만 “아들을 체벌로 훈육할 수도 있다는 잘못된 믿음에서 피해자를 폭행하다 결국 사망에까지 이르게 한 것이고 사망의 결과를 예견하고 이를 감수하면서까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며 살인죄가 아닌 상해치사죄를 물어 징역 7년형을 선고했다. 2심도 같은 판단을 유지했다. 대법원은 2심 판결에 법리 오해 등 잘못이 없다고 보고 처벌을 확정했다.
  • 수소제거기 결함 쉬쉬한 한수원… ‘친원전’ 하려면 비리부터 끊어야죠 [박록삼의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 이야기]

    수소제거기 결함 쉬쉬한 한수원… ‘친원전’ 하려면 비리부터 끊어야죠 [박록삼의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 이야기]

    원자력발전은 말 그대로 ‘뜨거운 감자’다. 20대 대선에서도 확인됐듯 찬반 논리 모두 과학·기술적 고려보다는 정치적 판단이 더 앞서기 일쑤다. 그럼에도 각각의 논리는 명쾌하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폭발 및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계기로 원전에 대한 우려와 불안은 공포 수준에 이르렀다. 중준위 이상 방사성 폐기물 처리에 대해서는 아직도 해법을 못 찾고 있다. 탈(脫)원전 정책 추진이 불가피하다는 논리다. 반면 원전 지지 논리 역시 명확하다.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 및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서는 원전 말고는 답이 없다는 입장이다. 대선 다음날인 지난 10일 서울 남창동 원자력안전위원회 사무실에서 원안위 위원인 이병령(75) 원자핵공학 박사를 만났다. 한국형 원전 개발의 총책임자이자 상업화 성공의 핵심 주역인 이 박사는 윤석열 당선인의 친원전 정책을 찬성하면서도 그에 앞서 선행돼야 하는 근본적 문제점을 지적했다.“원전은 깨끗하고 효율적인 에너지입니다. 탈원전 정책은 현실에 맞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원전의 안전을 최대한 확보해 막연한 불안과 불신을 덜어 내야 합니다.” 원안위는 원전의 건설 및 운영, 정비, 해체 등을 담당하는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의 활동을 규제 감시하는 최고 규제기구다. 2019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몫 추천으로 원안위원에 위촉된 이 박사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원전 국정 농단”이라고 할 만큼 비판적이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원자력 안전을 위협하는 원전 업계 내부 움직임에 대한 비판에도 주저함이 없다. 40년 가까이 ‘원자력쟁이’로 살면서 몸으로 겪었던 원전 업계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고발하는 책을 세 권이나 펴냈을 정도다. “원전 업계 내부의 문제는 바깥 사람들이 믿지 못할 정도로 엉망진창입니다. 비리가 너무 많지만 제대로 된 견제와 감시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공고한 이너서클을 이루고 있는 느낌입니다.” 원전 업계의 각종 이권을 독점하고 있는, 이른바 ‘원전 마피아’에 대한 지적이다. 다만 ‘원전 마피아’ 면면을 직접 지목하는 것에는 조심스러워했다. 이미 세계에서 자랑할 만한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경제성을 가진 APR1400 등 한국형 원전이 있는데도 미국에 의존하려는 세력의 존재와 문제점을 자신의 저작을 통해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자면 2006년 한국형 원자로의 중국 수출을 막은 것은 아이러니하게 한국 원전업계였다. 하고 싶은 얘기는 많은 듯했지만 말을 아꼈다. 그는 “여러 문제들에 대해 나중에 더 구체적으로 말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원전 내 수소제거장치(PAR)에 대해서는 상세한 설명을 이어 갔다. 이 박사는 “세계적으로 원전이 430기가 있고 여기에서 한 해 3건 안팎의 크고 작은 사고가 일어나고 있지만 수소 폭발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방사능 외부 유출도 없고 안전한 것”이라면서 수소제거장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원전에서 발생하는 수소를 제거하지 못하면 폭발이 일어나고 방사능 유출 등 대형 참사가 벌어진다.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의 수소 폭발이 그 위험성을 증명했다. 이후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차원에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요구에 따라 국내 24기 모든 원전에 전원 없이도 촉매 작용으로 수소를 산소와 재결합시켜 수소를 제거하는 장치를 달았다. 원전의 수소폭발 가능성을 줄이고 방사능 대량 유출을 막는 장비다. 그러나 이 수소제거장치의 품질 적합성 여부에 대한 의문이 끊이지 않았다. 한수원은 2018년 이 장치를 독일로 가져가서 적합성 시험을 했다. 그 결과 수소 제거 성능이 규격의 30~60%로 미달했을 뿐 아니라 특정 환경에서 불꽃이 튀는 현상도 확인됐다. 폭발을 막으려 만든 장치가 오히려 폭발의 촉매제이자 점화원이 될 수 있음을 뜻한다. 사실상 불량 판정이다. 한수원은 이 시험 결과를 2년 가까이 쉬쉬해 오다가 지난해 1월 한수원 간부의 국민권익위원회 제보로 뒤늦게 외부에 알려졌다. 곧바로 경실련이 원자력안전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해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그 뒤에도 개선이나 장비 교체 등은 없었다. 이 박사가 계속 문제를 제기하면서 지난달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다시 시험을 진행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수소제거장치에서 불꽃이 튀는 현상은 여전했다. 이달 말까지 두 차례의 시험이 추가로 진행될 예정인 만큼 최종 결론을 지켜봐야 할 일이지만 심각한 우려는 남는다. 이 박사는 “이것이야말로 진짜 국가 위기 상황”이라면서 “원전 수소 폭발이 일어나게 되면 나라가 20년은 후퇴한다”고 말했다. 그는 “원자력 전문가들이 금과옥조로 삼고 있는 말이 바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는 것”이라면서 “원전의 안전성을 담보하는 수소제거장치의 안전성이 의심받는 상황에서 한 치의 우려와 불신도 없이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문제는 지난해 7월 원안위가 조건부로 허가한 신한울 1호기 가동과 관련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이달 말 최종 결과에 따라 최종 허가 여부가 결론 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아직 최종 결론이 난 것은 아니지만 위험성에 대한 우려가 큰 만큼 문제가 더욱 커지기 전에 선제적으로 이 설비를 교체해야 한다”면서 “원전 한 기당 교체 비용은 10억원으로 총 300억원 정도면 가능하다”고 말했다. 특히 2009년 UAE에 수출한 원전 4기에도 똑같은 수소제거장치를 부착한 만큼 리콜 등 선제적인 대응을 하지 않으면 향후 원전 수출 등 해외 원전사업과 관련해 자칫 더 큰 문제로 비화될 수도 있다는 게 이 박사의 설명이다. 그는 “원전업계 내부에서 탈원전 정책에 대한 비판은 많이 하면서도 정작 안전과 관련된 대책에 대한 얘기는 제대로 하지 않고 있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사업자인 한수원에 대해 규제기관인 원안위,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은 팽팽한 긴장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면서 “원전을 안전하게 이용하기 위해, 또 원전 정책의 지속을 위해서라도 한수원을 개혁하고 원안위의 규제 수준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삶은 롤러코스터를 탄 듯 파란만장했다. 한국형 원전은 1986년 개발을 시작해 1992년 마쳤다. 상업로인 울진 3, 4호기를 100% 순수 국내 독자 기술로 설계하고 성능보증, 애프터서비스까지 수행했다. 1972년 이후 미국, 프랑스, 캐나다 등에서 원전을 줄창 수입만 하고 독자적 기술은 엄두도 못 내, 세계 원전 전시장 같던 나라가 거둔 과학기술적 쾌거였다. 설계, 제작, 시공 등 원전 건설 전 과정의 총책임을 맡았던 이 박사는 이를 ‘기술 독립 선언’이라고 불렀다. 이 박사 세대 특유의 굳건한 애국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후 1995년 7월 한국원자력연구원 대북 원전지원팀장에서 갑작스레 보직 해임됐다. 1994년 제네바 협정에 따라 북한에 설치할 원자로를 미국의 뜻을 거스르면서까지 한국형 원자로로 설치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은 것이 ‘누군가’에게 눈엣가시로 비친 탓이었다. 해고도 아니고, 단지 보직에서 물러난 일이었지만 세상은 떠들썩하게 반응했다. 그는 “당시 보직 해임은 미국의 입장을 강요한 미 원전회사와 국익을 외면한 국내 원전 마피아의 합작에 의한 결과”라면서 “이들이 지금도 활개치고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꾸려지고 5월 10일이면 윤석열 정부가 탄생한다. 지난달 25일 문재인 대통령은 “원전이 지속 운영되는 향후 60여년 동안은 원전을 주력 기저 전원으로서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면서 “(신한울 1·2호기, 신고리 5·6호기를) 가능하면 빠른 시간 내에 단계적 정상가동을 할 수 있도록 점검해 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여기에는 탈원전 정책과 2050탄소중립 에너지 전환 정책 사이의 짙은 고뇌가 배어 있다. ‘탈탈원전 정책’을 천명한 윤 당선인 또한 정책 선명성만이 아닌 현실적 고려 사항이 많음을 뜻한다. 이 박사는 “특정 세력이 연구 용역을 독점하고 원전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등 원자력계의 해묵은 부정부패 관행을 도려내는 강력한 의지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비리와 부정부패가 없어야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은 물론 미국의 3분의1, 프랑스의 2분의1 수준인 비용 효율성을 가진 우리 원전이 해외시장에서 빛을 발할 수 있다”면서 윤 당선인이 원전업계 비리를 근절해 줄 것을 당부했다. 1947년 공주 출생.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나와 카이스트에서 원자력공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 “한국 여성, 좌절할 필요 없어… 어려워도 변화는 계속된다”

    “한국 여성, 좌절할 필요 없어… 어려워도 변화는 계속된다”

    尹당선인 여가부 폐지 공약 관심“한국 남성들, 여성 자유 희망하길” 가정폭력 탓 가출부터 40년 회고“위험·폭력 노출된 삶 전달하고파배제·혐오, 전면적 사회 변혁 필요”“페미니즘은 젠더에 초점이 맞춰져 있긴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보편적인 인권의 문제라 생각합니다.” 2014년 책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한다’를 통해 ‘맨스플레인’(mansplain) 현상을 비판하며 여성의 대변자로 떠오른 미국의 여성학자 리베카 솔닛(61). 그는 첫 회고록을 낸 기념으로 15일 한국 언론과 가진 온라인 간담회에서 “페미니스트인 것이 자랑스럽다”면서 “페미니즘의 지향점은 남성 배제가 아니라 그동안 배제됐던 여성들이 남성들과 동등하게 포함되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솔닛은 ‘세상에 없는 나의 기억들’(창비)에서 가정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집을 떠난 1981년부터 지난 40년을 되짚었다. 이미 여러 저서에 자신의 이야기를 녹이긴 했지만 이 책에선 좀더 직접적이고 분명하게 한 여성으로서 맞닥뜨려야 했던 시간들을 끄집어냈다. 회고록의 원제는 ‘비존재의 기억들’(Recollections of My Nonexistence)이다. 솔닛은 “30여년에 걸쳐 페미니즘과 여성 폭력에 대한 많은 글을 써 왔지만 아직도 충분히 다 얘기하지 못했다”면서 “여성이 위험과 폭력 속에 끊임없이 노출돼 있다는 것을 오히려 평범하고 일반적인 삶을 산 제 개인사를 통해 전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가 평범하다고 말한 건 그의 친구처럼 이별을 통보했다고 연인에게 칼부림을 당하거나 살면서 한 번도 강간을 당한 적이 없었고, 아직 살해되지 않았기 때문에 붙일 수 있는 표현이다. 그는 길에서 누군가 자신에게 침을 뱉거나 몸을 강제로 잡아끌고, 집 앞까지 따라오는 스토킹을 당했지만 그런 피해에는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대신 “더 부자 동네로 이사 가라”든가 “옷을 섹시하게 입지 말라”, “총을 갖고 다녀라” 등의 ‘조언’을 들었다. 솔닛은 이런 것들이 여성들이 일반적으로 경험하는 배제와 비존재라고 설명했다. 배재와 비존재는 정치, 경제, 문화까지 모든 분야에서 일어난다. 그는“이런 배제나 혐오는 여성들이 피한다고 되는 것이 아닌 전면적인 사회 변혁이 필요한 일”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여성가족부 폐지 등을 약속하며 ‘이대남’(20대 남성)의 지지를 받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게도 솔닛은 관심을 보였다. 백인우월주의자들의 전폭적인 지지로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을 떠올리며 그는 한국 여성들에게 “너무 좌절할 필요도, 멈출 필요도 없다”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변화와 진전은 계속 있었다”고 말했다. 동시에 “여성이 동등한 위치를 갖는다 해서 남성의 것을 빼앗는 게 아니다”라며 “한국 남성들도 여성이 더 자유를 누리고 존중받는 세상에서 동등한 지위를 누리는 것을 희망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 산 정상 부근서 200m 추락에도 생존…英 남성 ‘인간 고무공’ 별명 얻었다

    산 정상 부근서 200m 추락에도 생존…英 남성 ‘인간 고무공’ 별명 얻었다

    영국 북서부 해발고도 950m 산 정상에서 200m 아래로 추락한 등산객이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그는 눈 덮인 산비탈에서 고무공처럼 몸이 튕겨 충격이 줄어든 덕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생존자는 ‘인간 고무공’이란 별명을 얻었다. 15일(현지시간) 영국 데일리메일 등에 따르면, 익명의 남성 등산객은 지난 7일 잉글랜드 레이크 디스트릭트에 있는 헬벨린산의 정상 부근에서 발을 헛디뎌 추락했다. 이날 오후 3시 반쯤 목격자의 최초 신고가 접수돼 구조대가 출동했다. 구조대는 구조 헬기까지 동원했지만, 남성의 생존 가능성을 희박하다고 봤다. 하지만 구조대원들의 예상은 빗나갔다. 추락 현장에서 발견된 남성은 스스로 일어서 걸을 수 있을 정도로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현장에 있던 한 구조대원은 “마치 인간 고무공처럼 산비탈을 안전하게 튕겨 내려온 것 같았다”고 말했다. 산악 구조대 대변인은 성명에서 “남성은 눈 덮인 산비탈을 오르다가 미끄러져 추락한 것으로 보인다. 크게 넘어졌는데도 걸을 수 있었던 것은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면서 “혹시 모를 척추 부상에 우려가 있어 추가적인 검사를 받도록 병원으로 이송했다”고 밝혔다.
  • ‘김구라 아들’ 그리, 코로나19 확진 “생각보다 많이 아파”

    ‘김구라 아들’ 그리, 코로나19 확진 “생각보다 많이 아파”

    래퍼 그리(김동현)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격리 중인 근황을 전했다. 그리는 15일 자신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다들 근황 궁금해 하셔서, 코로나19 양성으로 인해서 격리 중”이라는 글을 게시했다. 이어 “생각보다 많이 아프네요”라며 “다들 몸 조심”이라고 전했다. 한편 그리는 방송인 김구라의 아들이기도 하다. 그는 웹예능 ‘공부왕찐천재 홍진경’ 등에 출연하면서 활발하게 방송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 “응원” vs “불쾌”…가림막 밑으로 어깨 두드려 ‘강제추행’

    “응원” vs “불쾌”…가림막 밑으로 어깨 두드려 ‘강제추행’

    “성적 의도 없다” vs “수치심 느꼈다면 강제 추행”택시 기사의 거부 표현에도 수차례 어깨를 두드린 승객이 강제추행 혐의로 검찰에 넘겨졌다. 경기 안양도안경찰서는 15일 이러한 혐의로 50대 A씨를 이달초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A씨는 지난해 12월 13일 60대 택시 기사 B씨 뒷좌석에 탑승해 B씨의 어깨 부위를 아래로 네 차례 쓸어내린 혐의를 받고 있다. A씨는 택시 기사의 뒷자석에 앉았다. 코로나19로 가림막이 설치돼 있었으나 A씨는 이 가림막 밑으로 택시 기사의 어깨를 두드렸다. 당시 A씨는 다른 남자 승객과 함께였다. B씨가 “불쾌하다”며 거부 의사를 표현했음에도 신체 접촉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날 KBS 보도에 따르면 B씨는 A씨에게 “몸을 만졌다”고 경고했다. A씨가 “응원하는 것이다”라고 답하자 B씨는 “응원한다고 택시 기사 몸을 만져도 되는가”라고 반문한다. 남자 승객이 “사과드린다”고 말했으나 A씨가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자 실랑이 끝에 차를 세웠다. A씨는 “성적인 의도 없이 택시 기사를 응원하기 위해 어깨 쪽을 가볍게 톡 친 것”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당시 택시 운전석 주변에는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가림막이 있었는데 그 아래로 손이 들어와 추행이 이뤄졌다”며 “성적인 의도가 없었더라도 상대방이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면 강제 추행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B씨는 KBS에 “손님 중에 택시 기사의 몸에 쉽게 손을 대는 경우가 있다”며 “용기를 내 경찰에 신고했다”고 말했다.
  • [안도현의 꽃차례] 소나무의 운명/시인

    [안도현의 꽃차례] 소나무의 운명/시인

    열두어 살 무렵 나무젓가락과 깡통을 하나씩 들고 송충이 잡기에 동원된 적이 있었다. 가파른 산비탈에서 깡통이 가득 채워질 때까지 송충이를 잡았다. 선생님은 무엇보다 소나무를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둥산에다 나무를 심는 산림녹화사업은 1970년대 초반부터 범국가적으로 이루어졌다. 빨리 성장하는 아까시나무, 리기다소나무, 일본잎갈나무, 편백 등이 이때부터 꾸준히 식재됐다. 국가가 주도한 이 조림 사업은 나무 대신 석탄과 석유를 주연료로 사용하면서 크게 성공했다. 지게를 지고 나무하러 가던 젊은이들은 상경해서 공장 노동자가 됐고, 이제는 봄날 근교의 산벚나무꽃을 지그시 관망하는 나이가 됐다. 50년이 지나간 것이다. 불땀이 좋아 나무꾼들에게 수난을 당하던 소나무는 울울창창 숲을 이루게 됐다. 숲에서 오래 성장한 소나무는 궁궐이나 사찰을 짓는 목재로 주로 이용됐으나 근래에는 업자들에 의해 도시로 이주했다. 조경업자들은 관공서와 아파트의 조경수로 소나무를 빠뜨리는 법이 없다. 몸값이 불어난 소나무는 21세기에도 그야말로 한국인들의 생활 밀착형 나무가 됐다. 소나무의 품종 중에 금강산에서 경북 울진까지 동해안을 따라 내려오면서 사는 금강송이 있다. 산림청과 문화재청이 울진 소광리 일대를 금강송 군락지로 지정할 무렵 시 한 편을 쓴 적이 있다. “소나무의 정부(政府)가 어디 있을까?/소나무의 궁궐이 어디 있을까?” 이렇게 시작하는 시인데, 군락지 입구에 시비가 세워져 있기도 하다. 최근 역대 최대 규모의 울진, 삼척 산불이 휩쓸고 간 곳은 금강송의 최남단 지역이다. 금강송은 가지를 옆으로 펼치지 않고 수형이 일직선으로 곧게 뻗은 아주 잘생긴 나무다. 폭설이 많이 내리는 지역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몸을 곧추세워 눈 피해를 덜 입는 똑똑한 나무이기도 하다. 금강송이 자라는 숲을 일찍이 김명인 시인은 눈물겹게 아름다운 시로 노래한 적이 있다. ‘너와집 한 채’라는 시다. 앞부분은 이렇다. “길이 있다면, 어디 두천쯤에나 가서/강원남도 울진군 북면의/버려진 너와집이나 얻어 들겠네 거기서/한 마장 다시 화전에 그슬린 말재를 넘어/눈 아래 골짜기에 들었다가 길을 잃겠네” 이 금강송이 자라는 숲이 이번 산불로 대거 사라졌다. 산불의 원인은 대부분 사람에 의한 실화다. 그렇다고 예방 캠페인을 강화하고 헬기와 소방장비, 인력과 예산을 대폭 늘린다고 못된 산불을 잡을 수 있을 것인가. 산불이 지나간 지역의 산림복구사업에는 거의 다 소나무를 심는다. 치산녹화 정책 50년 동안 빼곡하게 소나무를 심어 산을 푸르게 만들었으나 산불에는 속수무책이다. 소나무에 대한 애착이 혹시 산불의 크기를 키웠던 것은 아닐까? 숲에 소나무 밀집도가 높아지면서 산불의 행동이 바뀌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소나무 한 종을 편애하면 그 주위에 오히려 멸종위기종이 늘어날 수도 있다. 다양한 나무가 자라는 숲이 건강하다. 나무와 나무 사이의 거리 두기도 생각할 때다.
  • 담벼락 낙서·전봇대·페인트칠…어? 사진 작품!, 소리꾼의 외유 “꿈 많았어유”

    담벼락 낙서·전봇대·페인트칠…어? 사진 작품!, 소리꾼의 외유 “꿈 많았어유”

    코로나19로 일상이 멈추자 소리꾼은 카메라를 들었다. 조리개며 초점이며 “전문적인 카메라는 숫자가 어려워서” 대신 아내의 휴대전화 카메라를 여기저기 갖다 댔다. 동네를 산책하며 만난 낡은 벽의 낙서, 전봇대에 붙었다 떨어진 테이프의 흔적, 공사 현장의 방수포, 담장의 페인트칠 등이 모두 프레임 안에 들어왔다. 장사익(73)이 16~21일 서울 종로구 인사아트프라자 갤러리에서 여는 사진전 ‘장사익의 눈’은 소리꾼의 눈에 비친 세상을 표현하는 자리다. 2019년 서예전에 이어 전시 개최는 두 번째로 이번엔 사진 60여점을 통해 예술가의 독특한 시각을 선보인다. 최근 종로구 자택에서 만난 장사익은 “어느 한곳에 명확한 목표를 두고 거기만 향해 달리는 삶도 있겠지만 주위를 두루 살펴보며 즐기다 보면 새로운 길도 찾게 되는 것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사진은 풍경을 일반적인 구도에 맞춰 찍은 게 아니라 피사체의 일부를 크게 확대했는데 그 모양과 질감이 생경하다. 추상회화 같기도, 포스터 배경 같기도 하다. 장사익은 “진짜 전문가들이 보면 혼낼 일이다. 민망하다”면서도 “관심은 마음을 기울인다는 뜻이다. 꾸준히 미술관도 가고, 좋은 사람들과 같이 어울리고 관심을 가지니 몸에 쌓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음악인, 가수라는 칭호보다 소리꾼으로 불린다. 국악이라는 장르 탓도 있지만 거칠게 끓어오르며 가슴을 절절하게 울리는 그만의 소리는 치유의 힘을 지녔다. 특히 젊은 시절 보험사부터 가구점, 전자제품 회사, 카센터 등을 전전하다 46세라는 늦은 나이에 데뷔하게 된 이력은 유명하다. 50만원도 안 되는 세금을 낼 돈이 없었고, 친구들 만날 면목이 없어 10여년간 동창회를 못 나갔다. 진한 충청도 말씨를 쓰는 장사익은 “꿈이 많았어유”라고 운을 뗐다. “가다 보니 내 길이 아닌 것 같고, 넘어지고 쓰러졌지요. 그러다가 노래에서 내 길을 찾았죠. 인생은 ‘구도’(求道)의 길이라는 말이 딱 맞습디다.” 북악산 코앞에 위치한 집에선 사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꽃이 피고, 초록빛 이끼가 끼고, 단풍이 들고, 눈이 쌓이는 풍경이 통유리창 밖에 펼쳐진다. 장사익은 “보통 인생에는 봄만 있다고 생각하는데 만물이 성장하는 건 여름”이라고 비유했다. 덥고, 태풍이 불고, 비바람 몰아치는 시기에 열매가 큰다. 그 시기를 거쳐야 생명력이 오래간다. 그래서 자신의 30대 역시 방황이 아니라 무르익는 때였단다. 최근엔 성대결절로 큰 수술을 세 번이나 하고 아예 노래를 못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나이듦과 죽음에 대한 생각도 깊어졌다. 그는 “요즘에는 나이 60은 인생의 끝이 아닌 시작”이라며 “시간은 남는데 할 게 없다는 사람이 많다. 생각만 하지 말고 움직이다 보면 하고 싶은 게 계속 나온다”고 했다. 57세에 완주한 마라톤도, 서예와 사진도 이것저것 해 볼까 하면서 시작한 일이다. “인생을 즐기니 재미있는 일이 많이 벌어진다”고 그는 덧붙였다. 장사익은 곧 새 음반을 발매하고, 오는 10월엔 서울 세종문화회관을 시작으로 전국 투어 콘서트도 개최한다. 앞으로의 목표를 묻자 “완성된 노래를 하고 싶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노래에는 인생을 바라보는 방식이 반영된다”며 “그저 세월 따라 흘러가는 유행가가 아니라 80, 90살에 맞는 진정한 내 노래를 하고 싶다”고 했다. “죽기 직전에 ‘내 인생 조졌네’ 한탄하긴 싫어유. 야, 잘 놀았다 하면서 가렵니다.” 
  • 통증은 전기처럼 ‘찌릿’ 스트레스는 ‘쭈뼛’… 바른 자세 생활 중요

    통증은 전기처럼 ‘찌릿’ 스트레스는 ‘쭈뼛’… 바른 자세 생활 중요

    40대 중반의 주부 A씨는 옆구리가 너무 아파 가끔 자리에 주저앉곤 한다. 예리한 물건으로 찌르는 듯한 격심한 통증이 갑자기 그리고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몇 초에서 길게는 몇 분 동안 짧은 통증이 이어지면 온종일 스트레스를 받는다. 병원에서 신경통이라는 진단을 받았고, 지금은 진통제를 먹어야 일을 할 수 있다. ●염증·종양·당뇨·대상포진 등도 원인 신경통은 신경을 따라 발생하는 순간적인 통증을 가리킨다. 통증을 담당하는 신경에 이상이 발생하면서 증상이 나타난다. 근육이 뭉쳐 있는 압통점을 누를 때 주변 신경을 자극해 통증을 유발하거나 신경을 압박하는 특정 자세를 취할 때에도 발생한다. 다쳐서 발생하는 일반적인 통증과 달리 신체 일부분이 갑자기 아프거나 전기가 오는 듯 찌릿한 통증이 이어지는 게 특징이다. 감각 과민이나 저하 등 증상, 운동신경 마비, 근육 경련 등의 증상도 함께 나타나곤 한다. 지속 시간은 짧지만 반복적으로 나타나다가 3개월 이상 통증이 이어지는 만성 통증으로 진행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자극이 없는 상태에서도 통증을 겪는다. 다양한 증상만큼 통증의 원인도 여럿이다. 흔한 원인으로는 신경 주변 근육, 인대, 신경 주행 부위의 뼈, 조직 염증, 부종 등에 따른 신경 압박, 신경을 담당하는 혈관 등이 꼽힌다. 이 외에 종양, 염증, 감염 등도 원인이 될 수 있다. 관련 있는 기저질환은 당뇨병, 대상포진, 후천성면역결핍증(HIV), 척수 손상, 요통 등이 있다. 흔히 겪는 신경통으로는 삼차 신경통, 좌골 신경통, 말초 신경염, 손목터널 증후군, 후두 신경통, 늑간 신경통 등이 있다. 좌골 신경은 우리 몸에서 가장 크고 굵은 신경 중 하나로, 다리 뒷면과 무릎 아래 신경 기능을 주로 담당한다. 좌골 신경통은 허리에서부터 엉덩이와 다리 뒷부분으로 측면부를 따라 퍼져 내려가거나 올라오는 통증을 동반한다. 추간판 탈출증(디스크)이 주된 병인이며, 척추관 협착증, 척추 전위증, 종양, 감염, 동맥 경화증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제대로 걷지 못하고, 요통과 함께 한쪽 다리 종아리를 따라 당기고 저리고 시리고 아프며, 심하면 발이나 발가락까지 통증이 온다. 급기야 감각이 마비될 수도 있다. 삼차 신경통은 다섯 번째 뇌신경인 삼차 신경에 생기는 신경통이다. 이 신경은 안면, 구강, 코 점막, 혀의 촉각 등을 담당한다. 각막과 결막 반사를 지배하고, 씹을 때 사용하는 저작근의 운동과 아래턱 운동을 맡고 있다. 삼차 신경통은 40대 이후 연령대에서 자주 발생하며, 눈 주위에서 아래쪽으로 내려와 귀 뒷부분, 얼굴의 한쪽 면, 윗입술까지 통증이 번진다. 가만히 있어도 아프고, 세수나 면도를 할 때, 음식을 먹을 때 혹은 바람이 얼굴을 스쳐도 통증이 발생한다. 살짝 건드렸을 때 칼로 찌르는 듯한 심한 통증으로 놀라곤 한다. 치통으로 오해해 이를 뽑고 신경치료를 하는 사례도 있다. 통증이 일어나면 안정을 취하고, 주위 환경을 어둡게 만들고 소음을 차단해 조용한 상태를 유지하는 게 도움이 된다. 뇌전증 치료제를 사용하며, 약물치료로 효과가 없는 경우 수술을 할 수 있다. 경추 상부에서 시작해 뒤통수 부분 두피로 진행하는 후두 신경에 통증이 오면 후두 신경통이 의심된다. 뒤통수에서 머리 앞쪽까지 통증이 지나가거나 귀 뒤쪽 부위에 발생하기도 한다. 주로 잘못된 자세나 경추와 두개골 사이의 근육이 경직하면서 신경을 압박해 발생한다.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통증이 심하고, 진통제로도 잘 조절되지 않아 신경주사치료를 시행하기도 한다. ●인과관계 모호해 제때 치료 못 받아 박상준 세브란스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는 “신경통은 증상이 일반적이지 않고 인과관계가 모호해 잘 발견이 되지 않아 제때에 적절히 치료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그러다 만성화한 통증이 불면증, 우울증 등의 다른 증상을 동반해 삶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다”면서 “통증 자체를 질환으로 인식하고 적극적인 치료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신경통은 부위를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터라 치료가 간단하지는 않다. 먼저 증상 원인이 되는 질환을 치료하고, 다음으로 약물요법이나 물리치료요법과 같은 대증적 치료를 진행한다. 약물요법은 소염진통제, 항염증제(스테로이드), 근이완제, 항경련제, 비타민제, 혈관확장제 등을 의사의 지시에 따라 올바르게 사용한다. 이럴 때 통증이 한결 가벼워진다. 물리치료요법으로는 통증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는 부위에 부담을 주지 않도록 하는 견인요법, 아픈 부위를 고정해 안정을 유지하는 코르셋요법, 아픈 부위를 따뜻하게 하는 온열요법 등이 있다. 수술적 치료는 추간판 탈출증, 골절과 같은 신경 압박에 따른 신경통이 원인일 때 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신경통에 걸리지 않도록 하는 바른 생활 태도를 유지하는 일이다. 특히 최근엔 PC나 스마트폰 장기간 사용 등으로 손목터널 증후군(손목 수근관 증후군)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은데, 올바른 자세와 충분한 휴식을 해야 한다. ●“스트레칭 등 습관화 해야 예방” 박진석 한양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통증이 발생했을 때는 우선 통증을 줄이는 자세를 유지하고, 통증이 반복되면 이를 경감시킬 수 있는 약물의 도움을 받는 게 좋다”며 “무엇보다 평상시 통증을 유발시킬 수 있는 자세를 피하고, 신경에 압박을 줄 수 있는 장시간 작업이나 공부 이후에는 잠시 스트레칭을 해 근육을 풀어 주는 등의 노력을 습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 단돈 6000원… ‘탐라’를 탐하라

    단돈 6000원… ‘탐라’를 탐하라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이 여행 패턴마저 바꾸고 있다. 코로나19로 언택트(비대면) 문화가 확산된 데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을 자유를 느끼고 싶어 떠나는 사람이 늘면서 개별 여행이 대세가 되고 있다. 그러나 여행 준비를 하면서 경비가 넉넉지 않으면 좋은 여행지라도 망설여진다. 특히 제주는 교통비가 만만하지 않다. 여행(travel)의 어원처럼 고행(travail)이 될까 봐…. 그러나 걱정 붙들어 매시라. 단돈 6000원에 하루 종일 제주를 여행할 수 있는 이동수단이 있다. 제주시티투어버스다. 섬에서 가장 싸고, 가장 안전한 여행이라고 사족을 달고 싶을 만큼 관광객의 만족도가 높다. 제주도는 코로나19 시대 여행을 꺼리는 사람을 위해 백신 접종자에게 성인 기준 하루 1만 2000원에서 절반인 6000원으로 할인해 주고 있다고 14일 밝혔다. ●2층 여행버스 오픈카보다 매력 경북 경산에 사는 강성남(66) 할머니는 손자 윤현석(정평초 4)군과 최근 난생처음 단둘이서만 제주로 2박 3일 여행을 왔다. 그냥 손자하고만 오고 싶었더랬다. 남은 인생의 버킷리스트처럼. 아들이 숙소를 예약해 줬지만, 나머지는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무작정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30년 만의 제주 여행으로 ‘골목 안 허름한 어느 집의 정낭(대문) 같은 사소한 것’까지 놓치고 싶지 않아 렌터카도 빌리지 않았다. 아직도 건강한 두 발만 믿었다. 그런데 공항 안내소에서 우연히 소개받아 탄 제주시티투어버스가 할머니와 손자에게 보통 사람들이 꿈꾸는 ‘오픈카’ 여행 이상의 행복함을 안겨 줬다. 영국 런던의 빨간 2층버스와 닮은 반개방형 버스에 오르는 순간 오픈카에 탄 거 같은 설렘이 다가왔다. ●전설과 노을에 스며드는 투어 제주도는 2015년부터 개별관광객 증가 추세에 맞춰 교통편의를 위해 구도심과 신도심을 연계하는 코스로 제주시티투어버스를 운영하고 있다. 지역 상권 활성화에 기여하고 외국인 관광객을 타깃으로 했다. 우리나라에서 2층버스를 운행하는 서울, 부산, 여수 등지를 현장 답사해 제주만의 아름다운 경관을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폐쇄형이 아닌 반개방형 2층버스로 제작했다. 처음에는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운행했다. 2017년부터 1500만명에 이르는 내국인 관광객의 편의를 위해 대상을 확대했다. 코스마다 상세한 안내와 함께 역사를 스토리텔링해 탑승객들의 만족도가 높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행한다. 다음달부터는 야밤버스가 오후 6~9시 다닌다. 야밤버스는 DJ가 음악을 틀어 주며 특별한 여행 추억을 만들어 준다. 손목에 차는 1일 이용권만 있으면 삼성혈이든, 동문시장이든, 용두암이든 실컷 보다가 싫증 날 때쯤 다시 탈 수 있다. 온종일 22개 정거장에서 자유롭게 타고 내리며 제주시내 구석구석을 여행할 수 있는 순환형 투어버스다. 한 바퀴 도는 데 2시간 걸린다. 쌍둥이말 등대에서 바라보는 노을이 유명한 이호테우해변에서는 ‘핫플’(핫플레이스)이라는 안내방송이 더 황홀하게 노을에 빠져들어 가게 한다. ●생산 41억·부가가치 20억 유발 효과 관광지 할인 혜택도 준다. 초가 8동으로 이뤄진 미니 민속촌 김만덕 객주에선 해물파전, 몸국 등 제주토속음식을 할인 가격에 맛볼 수 있는 등 제휴한 음식점과 숙박업소에서 5~30%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은 20%, 한라수목원은 50% 할인해 입장할 수 있다. 놓치면 후회할 뷰맛집도 많다. 제주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제주시티투어버스의 지역경제 파급 효과를 분석한 결과 제주 지역 생산유발 효과만 40억 9864만원에 달하며, 부가가치 유발 효과는 총 20억 3000만원, 취업유발 효과는 61명으로 조사됐다. 제주시티투어버스는 2017년 3만 5551명에서 2018년 7만 7970명, 2019년 8만 2977명으로 탑승객이 늘었지만 코로나19 여파로 지난해 3만 9982명으로 절반이나 감소했다. 도는 코로나19로 외국인 입도객이 급감했지만 반대로 내국인 개별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시티투어버스의 전망을 밝게 보고 있다.
  • “심한 몸살·목에 칼 박은 듯”… 얕볼 수 없는 오미크론 후유증

    “심한 몸살·목에 칼 박은 듯”… 얕볼 수 없는 오미크론 후유증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에 감염된 많은 확진자가 “독감과는 전혀 다른 수준의 고통을 경험했다”며 오미크론을 얕봐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확진 뒤 장시간 지속되는 후유증(Long COVID·롱 코비드)을 호소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직장인 배모(29)씨는 지난 12일부터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뒤 인후통과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배씨는 14일 “확진되기 전부터 몸을 멍석에 말아 두들겨 때리는 것처럼 아팠다”면서 “목에 칼을 몇 개 박아 놓은 것처럼 목소리도 낼 수 없다”고 했다. 평소 목감기나 독감도 걸려 봤지만 코로나19는 이전 질병과는 비교할 수 없는 아픔이라고 표현했다. 코로나19 확진 후 평소 좋지 않던 면역력이 더 나빠지며 증상이 악화하거나 원인 모를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이도 있다. 잔기침, 식욕 저하를 비롯해 폐 섬유화(폐가 굳는 현상)가 나타나기도 한다. 지난달 중순 확진 판정을 받은 박모(30)씨는 “완치 후에도 대화를 하거나 일상생활을 할 때 기침이 멈추질 않는다”면서 “오르막길을 걷고 뛸 때도 폐활량이 예전 같지 않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달 초 확진 통보를 받은 박모(32)씨도 “격리 해제일 1~2일 정도까지 기침이 드문드문 이어졌고 가래가 나오거나 소화가 잘 안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는 코로나19 확진자가 완치 이후에도 증상이 장기화하는 현상을 ‘포스트 코로나 컨디션’ 또는 ‘롱 코비드’라고 규정하며 4주 이상 건강 문제가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구체적인 인과 관계는 아직 밝혀진 게 많지 않다. 의료진들은 “코로나19를 감기에 비교하는 건 어렵다”며 더욱 철저한 개인 방역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정기석 한림대 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코로나19는 독감과 비교해 봐도 전파력이나 치명률 등에서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며 “학계에서 폐 섬유화도 롱 코비드의 일환으로 보고 있지만 다른 증상의 경우에는 임상적인 관찰과 연구가 더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