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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주범 검색대 통과안해

    지난달 24일 광주지법 법정 탈주극은 정필호(鄭弼鎬·37)가 주도했으며 검신대는 교도소측이 작동시키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광주지검 특별수사본부(본부장 辛南奎형사2부장)는 8일 정과 공범인 노수관(魯洙官·38),장현범(張鉉範·31)을 대질신문한 결과,“지난 1월27일 법정출두시 정이 탈주 범행을 이들에게 제의해 이뤄졌다”고 밝혔다. 검찰은 “탈주 당일 법정에 출두하는 기결수가 단 3명이었으며 출정 담당교도관이 아예 검색대가 있는 문을 열지도 않아 범인들이 검색대를 통과하지않았으며 몸수색도 허술하게 이뤄져 법정까지 흉기반입이 가능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또 “탈주과정에서 맨 마지막에 뛰쳐 나오던 노가 제지하던 교도관이동재(李東宰·48·교위)씨를 쇠꼬챙이로 찌른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정은 자신이 만든 흉기 4개를 법정에 출두 전 기결사 앞 땅 속에 묻어 놓은뒤 탈주 당일 핑계를 대고 의무대쪽으로 가 품 속에 숨겨 들여왔다고 털어놨다.흉기는 정이 1개,공범 장에게 1개,노에게 2개를 건네줬다. 정은 또 지난 1월 초교도소 내 다른 재소자인 추모씨 등 2명에게도 “주차된 청소차를 이용해 교도소 담을 넘어 달아나자”는 제의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광주 남기창기자 kcnam@
  • [집중취재] 흔들리는 교도행정

    *운영실태 및 문제점. 교도행정이 흔들리고 있다.재소자들에 대한 관리,감독이 느슨해지면서 법정탈주사고가 일어나는가 하면 재소자들이 교도관들을 협박하고 폭언을 퍼붓기도 한다.전문가들은 인권을 강조하는 ‘열린 교도행정’의 과도기적 부작용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재소자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시책이 뒷걸음질 쳐서는안된다고 입을 모은다.광주교도소 탈주사건을 계기로 교도행정의 실태와 문제점을 조명하고 그 대책을 짚어본다. 2월 현재 전국 43개 구치소·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재소자들은 6만4,018명이다.그러나 이들을 관리·감독하는 계호(戒護)직원은 1만784명으로 계호직원 1명이 재소자 6명을 관리,감독하고 있는 셈이다. 반면 미국은 계호직원 1명이 재소자 3.9명을 맡고 있다.일본은 3명,영국은2.2명,호주는 1.9명,캐나다는 1.3명으로 더욱 낮아진다. 우리의 교정인력이얼마나 부족한지를 한눈에 알 수 있다.사정이 이렇다 보니 관리·감독에 과부하가 걸리는 것은 당연하다. ‘체감교정’의 어려움은 휠씬 심각하다.우리나라는 구치소와 교도소의 재소자 관리체계가 다르다.구치소가 독립적으로 있는 곳은 접견과(면회),보안과(관리),출정과(공판 등으로 법정에 나가는 미결수들을 계호하는 임무)로나눠져 업무분담이 되고 있다. 반면 기결수만을 수용하는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 교도소는 미결수와 기결수를 함께 수용해 관리하고 있다.이 때문에 보안과에서 접견·보안·출정 업무를 동시에 처리하고 있다. 3,000명 수용 규모의 광주·대전·안양 교도소의 경우 미결수가 평균 1,000여명 정도 있다.이번에 탈주사건이 벌어진 광주교도소도 보안과 직원이 계호를 맡았다. 문제는 3교대로 운영되는 야간근무다.평균 200∼300명이 수용된 사동(舍棟)에 1명의 근무자가 배치되지 못하고 있다. 인력난 때문이다.의정부교도소는 야간에는 사동 20여곳 가운데 5∼6곳은 재소자들이 돌아가며 계호를 서는 ‘자치계호제’를 운영하고 있을 정도다. 98년 이후 재소자들의 인권보호가 강화되면서 교정행정은 더욱 어렵게 됐다.인권을 내세워 재소자들이 교도관을 폭행하거나 고발,곤궁에 처하게 하기때문이다.96년 147건,97년 127건,98년 151건에 불과하던 재소자들의 교도관에 대한 폭언·폭행 건수가 지난해 306건으로 2배 가량 늘어난 것이 이를 말해준다. 교도소내 각종 장비가 부족하고 낡은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몸수색을하는 검신장비는 전국에 114대(대당 400만원가량) 있다.그러나 검신을 정밀하게 하기 위해서는 350대 정도는 돼야 한다. 특히 미국 등 선진국은 장비(대당 5,000만원가량)의 성능이 좋아 인력을 줄일 수 있을뿐더러 물품 및 마약소지 등에 효과가 크다.더구나 재소자들이드나드는 감방문이 자동 개폐식으로 돼 있는 외국과 달리 수동으로 돼 있어출정이나 공판때는 교도관이 일일이 열고 닫아야 한다. 주병철기자 bcjoo@. *열악한 근무환경. 지난 달 중순 지방 교도소의 교도관 A씨는 직권남용(권리행사 방해) 등의혐의로 관할 지청에 고소를 당했다.교도소장 면담을 요청했는데 거부했다는이유였다.비슷한 사례는 지난 해 8월에도 있었다.서울시내 교도소의 교도관B씨는 재소자가 사동내의 청소를 교도관이 직접 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시켰다며 교도관을 같은 혐의로 고소했다.이 사건은 현재 관할검찰에 계류중이다. 지난해 말 서울시내 또다른 교도소 교도관 C씨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미수 혐의로 고소당했다.한 재소자가 “훈계시간에 교도관이 째려 보는 바람에 심장박동에 이상이 생겨 의무과 이송을 요구했는데도 들어주지 않았다”며 검찰에 소장을 냈기 때문이다. 교도관이 재소자들로부터 피소된 건수는 지난해 크게 늘어났다.피소건수는97년 22건,98년 25건이었으나 열린 교정행정이 본격적으로 실시된 99년 91건으로 급증했다. 교도관들은 또 재소자들의 폭언·폭행에 시달리고 테러의 위협에 놓이기도한다.협박이나 폭언·폭행 이유도 각양각색이다. 지난해 9월 지방 교도소에서는 목욕을 하겠다는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며 재소자가 교도관에게 의자와 집기 등을 집어던져 교도관이 10∼12주의 상해를 입고 병원에 장기입원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또다른 지방 교도관 K씨는 재소자의 생트집에 혀를 내둘러야 했다.K씨는 평소 자신에게 감정을 품고 있던 재소자가 “계획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부추기고 있다”면서 생트집을 잡아 K씨를 주먹으로 때렸다.K씨가 달아나자 뒤쫓아가 얼굴 등을 다시 두들겨 패는 바람에 K씨는 한동안 몸을 가누지 못했다. 뿐만 아니다.교도관들은 출퇴근때도 마음을 놓지 못한다.지난해 연말 서울시내 모교도소의 교도관 3명이 퇴근길에 정체불명의 괴한으로부터 흉기로 발목이 찍히는 등 사고가 일어나 출소후 재소자들의 보복테러에 비상이 걸리기도 했다.경찰은 아직까지 범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한 교도관은 “밤에 퇴근할때는 항상 주위를 돌아보는 등 경계하곤 한다”면서 “특히 일부 교도관은 집으로 걸려오는 협박전화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주병철기자. *주요 탈주사건 일지. ▲1981년 6월 서울남부지원서 재판받고 나오던 이상훈(당시 27세)등 특수절도 피고인 3명 흉기로 교도관 위협,수갑·포승 풀고 탈주. ▲83년 4월 절도혐의로 2심재판 받던 대도 조세형 옛 서소문 대법원청사내 구치감 창문 뜯고 탈주. ▲88년 10월 지강헌 등 미결수 12명 서울 영등포교도소 이송중 호송버스 빼앗아 탈주. ▲90년 12월 무기수 박봉선 등 3명 전주교도소 감방 쇠창살 자르고 탈옥. ▲96년 7월 안양 소년분류심사원에 수용된 128명 유리창 깨고 직원 협박해탈주. ▲97년 1월 무기수 신창원 부산교도소 쇠창살을 절단한뒤 탈옥. ▲2000년 2월24일 재판받기 위해 광주지법 법정 들어서던 강절도범 정필호등 3명 흉기소지,탈주. *광주사건 계기 개선책 마련. 광주교도소 탈주사건을 계기로 법무부가 마련하고 있는 ‘교도행정 종합대책’은 내부 및 외부적 개선책으로 요약된다. 내부적으로는 우선 3교대 근무를 하는데 필요한 최소 인력 600∼700명을 충원하기로 했다.특별계호임무 등을 위해 무술교도관 200명도 특별채용할 방침이다.충원이 되면 적어도 사동 한동당 계호직원 1명이 감시·감독을할 수 있다. 장비와 시설도 확충하기로 했다.첨단 검신장비를 도입하고 주요 지점에는모두 CC-TV를 설치키로 했다.필요한 예산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하는 자리에서 적극 요청한다는 방침이다. 사동 출입문도 올해안에 수동식에서 자동 개폐식으로 모두 교체된다. 추가로 필요한 교정 시설은 상당 부분 확보됐다.청주여자·순천·수원교도소가 2002년을 목표로 착공에 들어가는 등 전국에 모두 9개의 구치소·교도소를 신설하기로 했다.재소자들에 대한 처우 개선의 일환으로 연탄을 쓰던사동을 난방으로 바꾸고 재래식 변기도 수세식으로 바꾼다. 외부적으로는 검찰과 법원의 수사 및 재판 관행이 교도 행정에 걸림돌이 된다고 보고 점진적인 개선을 요청할 방침이다. 특히 재소자의 과밀수용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검찰의 불구속 수사원칙이 확대돼야 한다는 입장이다.일본의 경우 재소자 5만3,156명 가운데 미결수가 9,341명(17.6%)에 불과한 반면 우리나라는 재소자의 무려 45.6%가 미결수인 것으로 조사됐다.미결수가 넘쳐나고 있는 것이다.이는 검찰이 피의자를 일단구속한 뒤 기소하는 편의주의 때문이다. 교정 관계자는 “우리나라도 미결수 수용인원을 전체 수용인원의 20% 범위내로 줄이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면서 “법원도 재판을 신속하게 진행해 미결수를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주병철기자. *외국의 경우.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은 인적 계호보다 첨단장비를 동원한 물적 계호에 비중을 두고 있다. ■미국 연방교도소 95개,주(州)교정시설 1,000여개로 모두 190여만명을 수용하고 있다.미결수를 구금하는 구치시설은 우리와 달리 경찰에서 담당한다. 2개월간의 분류심사를 거쳐 수형자를 6종류로 나눈 뒤 등급에 따라 적합한교도소에 수용한다.개선 정도에 따라 보다 자유로운 곳으로 바꾸어 준다. 흉악한 수용자가 많은 시설은 인적계호보다 첨단장비 등을 동원한 물적계호 위주로 운영된다.수용자 사동 중앙에 통제실이 설치돼 있고 출입문도 자동개폐식으로 돼 있다.직원 대부분은 재소자 상담이나 교육에 투입된다. ■일본 아직도 감옥법과 형무소라는 용어가 존재하고 있듯 엄격한 규율위주로 운영되고 있다.우리나라에서 시행하고 있는 부부접견,전화사용 등은 일체 허용되지 않는다.다만 재소자 1인당 하루 급양비는 6,610원으로 2,210원인우리보다 3배 가량 많다.재소자에 대한 기본적 처우는 관대하다. ■영국 수용자 6만여명에 직원은 4만여명이다.교도행정은 교정·교화에 중점을 두고 있다.전국의 교정시설을 재소자의 죄목에 따라 4단계로 나눠 수감하고 있다. 개선 정도에 따라 개방된 형태의 교도소로 옮겨준다. ■이탈리아 직원수 4만6,000여명에 수용자 5만여명으로 거의 1대1로 감시·감독한다.교정시설은 구치소,징역형 집행 교도소,사회안전처분 교도소(교정병원 포함) 및 보호감시센터 등으로 구분된다.특히 마피아 등 조직범죄 예방에 관심을 쏟고 있다. 주병철기자
  • 교도소 높은 담 곳곳에 구멍

    광주교도소의 담은 높았지만 곳곳에 외부와 통하는 구멍이 뚫려 있었다.밖으로 나가는 재소자를 검색하는 단층촬영(X-ray) 검신기는 낡아서 고장나 있었고 재소자 수가 너무 많아 몸수색은 생략됐다. 광주지방법원 법정에서 탈주했던 정필호씨(37)등이 25㎝ 크기의 흉기를 들고 교도소를 유유히 빠져나올 수있었던 것은 당시 검신기가 제대로 작동하지않았기 때문으로 밝혀졌다. 25일 광주교도소에 따르면 희대의 탈주극이 벌어졌던 지난 24일 오후 피고인 158명이 법정으로가면서 교도소의 검신기를 통과했지만 아무런 이상도 발견되지 않았다.단층촬영 검신기는 쇠붙이 등 위해물질이 발견되면 즉시 빨간불을 밝혀주지만 이날은 전혀 ‘이상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 문제의 검신기가 이미 고장 나 있었다는 분석을 가능케 하는 대목이다.실제로 교도소의 한 관계자는 “한국에서 만든 검신기가 아닌데다 구입한지 10년이 훨씬 넘어 그동안 고장이 잦았다”고 털어놨다. 이어 “법정으로 가는 재소자가 많다보니 적은 교도인력으로는 일일이 몸수색은 처음부터 불가능해 검신기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정씨 등의 탈주 당시 법정에는 겨우 6명의 교도관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탈주범의 25㎝짜리 흉기는 ‘교도행정 부재’를 웅변적으로 말해준다.이날붙잡힌 장현범씨는 경찰에서 달아난 정필호씨가 탈주극을 벌이던 법정에 들어서면서 자신과 역시 검거된 노수관씨에게 한자루씩 건네 주었다고 말했다. 하마터면 교도관의 생명을 앗아갈 뻔했던 흉기가 교도소안에서 세자루가 만들어 지고 있었지만 교도소측은 낌새조차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정씨 등은 모두 미결수로 작업장에도 못나가고 방안에만 갇혀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흉기를 손에 넣을 수있었는지도 반드시 밝혀져야 할 대목이다. 수년을 주기로 반복되어온 재소자들의 탈주극을 가능케 했던 교도행정의 구멍은 밀레니엄시대를 맞아서도 뚫려 있었던 셈이다.교도소 장비의 현대화와함께 교도행정에 총체적인 지도 점검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
  • [사설] 흉기가 반입되는 법정

    강도사건 피고인 3명의 광주지법 탈주 사건은 피고인이 흉기를 교도소에서부터 법정에 숨겨 들여와 재판 직전 교도관을 마구 찌르고 달아난 것으로 교도행정의 난맥상과 호송체계 허점을 드러냈다.전과 15범 등의 강력범죄 피고인들이 교도소내에서 어떻게 흉기를 확보해 보관할 수 있었고 더욱이 법정까지 들여올 수 있었는지 철저히 가려내 재발되는 일이 결코 없도록 해야 한다. 통상적으로 미결수들을 법정으로 호송할 때는 X선 검신기와 몸수색 등 보안검색을 해야 함에도 이번에는 안전조치가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다.길이 25㎝나 되는 흉기를 범인들이 몸에 지니고 법정까지 들어와 난동을 벌일 수 있는것이 전국적인 보안수준이 아닌지 우려된다. 광주교도소측은 당시 검신기가고장나 있었다고 하나 범인들이 이를 알고 악용했다면 고장난 검신기가 오랫동안 방치돼 왔다는 것이어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범인들의 흉기 소지 과정도 문제다.사제칼 출처는 검거된 범인들을 조사해 봐야 밝혀지겠만 교도소내부에서 조달되었든,외부에서 반입되었든 재소자 관리의 허점을 드러냈다. 쇠붙이는 언제나 흉기화할 수 있어 교도소내 반입과 소지에 특별히 신경을써야 함에도 이를 적발하지 못한 것은 크게 잘못됐다.또 한명의 교도관이 30여명이나 되는 많은 피고인을 호송해 법정에서 수갑을 푸는 순간을 범인들이노린 만큼 호송체계의 강화가 시급히 요구된다. 교도소측의 늑장대응과 경찰의 구멍 뚫린 검문검색으로 탈주범들이 죄수복차림으로 승합차와 승용차,화물차,지하철을 바꿔타며 서울에 잠입할 때까지한번도 검문당하지 않은 것도 문제다.16시간 만에 상인 신고를 받고 출동한경찰이 치밀히 대응하는 데 실패한 것도 사건을 신속히 마무리짓지 못한 원인이 됐다. 법무부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특정강력범죄의 경우 수갑을 찬 채 재판을 받도록 추진키로 한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다만 그동안 인권 사각지대로 알려진 교정행정의 개선을 위한 전반적인 제도개혁이 후퇴되어서는 안된다.일반피고인의 경우 인권 보장과 미결수 무죄원칙에 따라 사복착용과 수갑·포승등 계구 사용 제한은 바람직하다. 근본적인 문제는포화상태에 이른 교정시설과 인원의 확충이다.재소자는 계속 늘고 있어 전국 43개 교정시설에 7만여명이 수용돼 적정인원 5만여명을초과한 지 오래다.교정공무원 1인당 관리 재소자가 선진국의 2배인 6.3명에이르러 교도소내 비리와 사고의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수용자를 격리하여 교정·교화한 뒤 사회로 돌려 보낸다’는 교도행정의 목표가 반드시 이뤄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 다시‘새장’에 갇힌 生佛

    [뉴욕 연합] 지난 1월 중국을 탈출해 인도 북부 접경지역 다람살라에 머물고 있는 티베트 불교계의 제17대 카르마파(生佛)인 우기엔 트린지도르지(14)는 외부인들과 접촉이 엄격히 통제된 사실상의 가택연금 생활을 하고 있다고 미국 ABC 방송이 최근 현지발로 보도했다. 이 방송에 따르면 그의 망명허용 문제가 인도와 중국간의 정치쟁점으로 부각된 가운데 카르마파는 협소한 규토사원에서 산보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활동의 제약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통제와 감시를 피해 망명길에 오른 도르지가 또다른 ‘새장’에 갇힌 생활을 하고 있는 주된 이유는 물론 신변안전때문이다. 중국이나 카르마파의 지위와 재산을 노리는 라마교의 경쟁자가 그에게 위해를 가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현지 경찰의 판단이기도 하다.특히 외국인들은 각별한 주의를 요하는 대상이 되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때문에 그의 경호원들은 카르마파를 접견하려는 관광객들에게 영하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상의와 시계는 물론 양말까지 벗도록 하는 철저한 몸수색을 실시하고 있다.심지어 방문객들은 경호상의 이유로 비단목도리를 선물하는 관습도 허용되지 않을 뿐 아니라 카르마타가 격리선에서 20피트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어 접촉 자체가 불가능하다. 티베트 망명정부의 소식통들은 카르마파가 사원들을 방문하는데도 제약이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 여성재소자 60% 동상 경험

    여성 재소자 10명중 6명이 동상에 걸린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형사정책연구원이 24일 법무부에 제출한 ‘여성수용자의 처우실태 및 개선방안 연구’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13개 교정시설에 수용중인 1,600여명의 여성 재소자들중 61.6%가 ‘동상에 걸린 적이 있다’고 답했다. 재소자들은 겨울철 추위 이외에도 거실공간 협소(50.1%),여름철 더위(48.9%),목욕 및 샤워시설 부족(31.6%),건강문제(26.6%) 등을 개선해야 할 처우문제로 꼽았다. 또 조사대상 여성의 23.7%가 교도관에 의해 몸수색을 받을 때 ‘성적 수치심을 느낀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여성재소자의 평균 면회시간은 9.21분으로 전체 조사대상자의 60.0%가 면회시간이 부족하다고 여기고 있었으며 특히 자녀와는 칸막이 없는 공간에서 면회를 희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종락기자 jrlee@
  • 印機납치범 승객 살해 최후통첩

    [칸다하르 - 뉴델리 - 이슬라마바드 외신종합]인도항공 A300 여객기 승객 160명을 인질로 잡고있는 납치범들은 27일 “자신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인질들을 차례로 살해하겠다”는 최후통첩을 발표했다고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라믹 프레스가 보도했다. 이와함께 아프가니스칸의 집권세력 탈레반은 27일 재급유를 마친 피랍 여객기의 납치범들에게 “인질을 석방하거나 아니면 아프간을 떠나라”는 최후통첩을 전달했다. 자신을 압둘라라고 밝힌 칸다하르 지역의 탈레반 대변인은 이날 수도 카불에서 가진 인터뷰를 통해 이같이 밝혔으며 “아프가니스탄 당국은 인도정부가 협상팀을 보내지 않은데 대해 격분해 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아프가니스탄 주재 에리크 데 물 유엔조정관은 26일 납치범들과1시간 동안 협상을 갖고 당뇨병 환자인 아닐 쿠라나의 석방을 이끌어 냈다. 현재 인질로 잡혀 있는 승객은 모두 160명이다. 러시아는 이날 오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특별회의에서 이 문제를 논의해야된다며 안보리 소집을 요구했다. 한편 이번 비행기납치사건이 인도 정보기관이 꾸민 자작극이라는 주장이제기돼 인도와 파키스탄간 외교적 신경전이 가열되고 있다. 납치사건을 조사중인 네팔당국은 26일 납치범 5명중 4명이 카트만두 국제공항에서 몸수색과 화물검색을 받지 않고 여객기에 탑승한 사실이 밝혀졌다고밝혔다.네팔당국은 납치범들의 탑승의혹등 전체적인 조사를 마치기 위해서는약 2주간의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파키스탄 정부 전날 인도 언론이 이번 납치사건을 반이슬람교 운동의 기회로 이용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난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양국관계가 다시 악화될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 [문명자 회고록 내가 본 朴正熙와 金大中](1)

    대한매일은 미국 US 아시안뉴스 서비스 주필인 문명자씨의 미공개 회고록 ‘내가 본 박정희와 김대중’을 단독입수,내용 가운데 일부를 발췌하여 연재합니다.문씨는 지난 73년 ‘김대중납치사건’을 국내에 보도한 이후 신변에 위협을 느껴 미국에 정치망명을 선언한 이후 30여 년간 미국서 활동해온 현역언론인입니다.그동안 그는 국내에서 접할 수 없는 한국관련 고급정보를 목격하고 기록해 왔으며 이번 회고록은 이같은 내용들을 토대로 한 것 입니다.회고록에는 한국현대사의 ‘미스터리’는 물론 한·미관계의 이면사를 처음 공개한 것도 상당수 포함돼있어 ‘역사적 기록’으로서도 큰 의의가 있을 것입니다. 73년 4월 15일 대만대학에 박사학위를 받으러 간다며 한국을 빠져나온 전중앙정보부장 김형욱(金炯旭)이 며칠후 미국에 나타났다.그것은 영락없는 도망길이었다. 5·16 쿠데타의 주동인물중 하나였던 그는 그후 출세가도를 달렸다.63년 5월 제4대 중앙정보부장으로 취임한 김형욱은 박정희를 위해 별명처럼 ‘곰’같은 충성심을 발휘하는 한편 자기자신을 위해 온갖 부정한 방법을 동원해치부를 했다.이같은 김형욱이 미국으로 도망온 이유는 자명했다.수십년간 충성해온 수하들을 하루 아침에 내치고 잡아넣는 박정희의 냉혹성에 대한 공포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가 미국에서 김형욱을 처음 만난 것은 그가 71년 공화당 전국구 의원 신분으로 남미를 방문하고 뉴욕에 들렀을 때였다.그때 나는 MBC 워싱턴특파원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유엔 취재차 뉴욕에 있다가 당시 컬럼비아대학 연수생으로 와 있던 동아일보 기자 이웅희(李雄熙·현 무소속 국회의원)와 함께 김형욱과 뉴욕의 한 한국음식점에서 식사를 했다. 김형욱이 미국으로 도망온 이후 나는 그와 수 차례 만난 적이 있다.73년 11월 내가 미국에 정치망명을 선언한 후 그는 내게 “문 여사,용감한 결심을존경합니다.우리는 뜻을 같이 하는 동지입니다”라며 전화를 걸어오기도 했다.그는 내가 망명을 선언한 후 부쩍 자주 전화를 걸어왔는데 “김대중 납치범 명단을 내가 다 가지고 있는데 때가 되면 가르쳐주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77년 1월 김형욱은박 정권의 미국 의회 부정로비사건 조사를 위해 구성된프레이저위원회에 증인으로 채택되어 있는 상태에서 아들과 함께 유럽여행을한 적이 있다. 그는 뉴욕 케네디공항을 통해 미국으로 돌아왔는데 여기서 낯뜨거운 사건이 발생했다.김형욱이 달러를 밀반입하다가 세관원에게 걸린 것이다.내가 그 사건을 처음 알게 된 것은 한 유태인 친구의 제보 때문이었다. 세관원은 오리걸음(덕 워킹)으로 걸어 들어오는 동양남자가 뭔가 숨긴 것이틀림없다고 확신,김형욱을 멈춰 세웠다.꼭 아편쟁이같이 생겨 마약밀수를 하는 줄 알았다고 한다. “헤이,유,스탑”(여보,좀 멈춰요). “미?”(나요?). “예스,유”(예,당신말이오). 더욱 한심한 일은 세관원이 그를 불러 세워 몸수색을 하려 하자 김형욱은 한국식으로 세관원을 협박했다고 한다.“내 몸을 수색해서 아무것도 안나오면너 그냥 두지 않겠다”.“오케이”.세관원은 보안관에게 명령했다. “데려가 발가벗겨”. 보안관이 김형욱을 방으로 데려가 발가벗겼는데 그는 무려 7만5,000달러의돈뭉치를 다리에 붕대로 둘둘 감고 그 위에 여자 타이즈를 입고 있었다고 한다. 79년 10월 7일 김형욱이 프랑스 파리에서 실종된 후 나는 교토통신의 요코가와 워싱턴특파원과 함께 처음으로 뉴저지에 있는 그의 저택을 방문한 일이있다.그의 부인 신영순(申英順·在美)에게 주소를 물어 찾아간 그의 집은 웬만한 미국 부호의 집 못지않게 호화롭게 꾸며져 있었다. 실종 직전 김형욱은 이른바 ‘회고록’ 출판문제로 박 정권과 막판 거래를하고 있었다.박 정권은 김형욱에게 “회고록을 출간하지 않는 대가로 500만달러를 주겠다”고 제의하고 이미 100만∼150만 달러를 먼저 지불했다고 한다.김형욱은 그 나머지 돈을 받으러 파리에 갔다가 결국 실종되고 만 것이다. 김형욱이 어떻게 최후를 맞았는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우선 중앙정보부가 파리에 온 김형욱을 납치,살해한 후 센강에 버렸다는 설도 있었고,또 산 채로 짐짝처럼 포장해 KAL기에 실어 서울로 데려갔다는 설도 있다. 그 무렵 우리 사무실에 프랑스어로 된 익명의 편지가 날아들었는데 그 내용은 김형욱이 KAL기 짐칸에실려갔다는 것이었다. 나는 미국의 한 항공사 화물부에 문의를 해보았다.“사람을 짐짝처럼 싸서운송하는 것이 가능합니까?”.“산소가 부족해 호흡이 곤란하고 온도·습도가 낮아 사람이 짐칸에서 파리∼서울간 15시간을 버틴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이래저래 취재는 벽에 부딪쳤고 나는 김형욱의 사인규명을 거의 포기했다. 그런데 80년대초 나는 뜻밖의 루트를 통해 김형욱의 사인에 대한 상당히 정확한 정보에 접하게 되었다.발설자는 정일권(丁一權) 전 국무총리였다.그는유럽을 여행하던 중 파리에서 자신이 신뢰하는 모 인사(본인의 요청으로 신분을 밝힐 수 없음)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잔인하다 잔인하다 했지만 박정희가 이렇게 잔인할 수 있나.잘못했다고비는 김형욱이를 자동차에 실어 그대로 폐차장에 밀어넣어 버렸다네”그의 말에 따르면, 산 채로 서울로 납치해간 김형욱을 차지철이 경복궁에서청와대로 이어지는 지하벙커를 통해 박정희 앞에 대령했는데 김형욱이 박정희에게 “잘못했습니다.죽여주십시오”하고 빌었다는것이다. 정일권의 말대로라면 김형욱은 폐차장 압착기 아래서 최후를 맞았다는 얘기가 된다.정일권의 입장에서 보면 김형욱은 자신을 대통령으로 옹립하려던 ‘이북파 최측근’이었으니 분개할만도 했을 것이다. 나는 이같은 사실을 정일권 본인을 통해 거듭 확인한 바 있다.지난 86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하얏트호텔에서 정일권을 만난 자리에서 나는 이렇게 물어보았다. “김형욱이가 서울로 잡혀와서 비참하게 죽었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으시다는데 사실인가요?”“예,내가 그런 애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그것은 사실입니다”. 정일권은 말년에 암에 걸려 고생하다가 94년 타계했는데 내가 그를 본 것은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정리 정운현기자 jwh59@ -文明子씨 일문일답 ■회고록을 출판하게 된 동기는. 역사를 위한 기록이다.한국사회는 가치의 혼돈시대를 맞고 있다.이대로 한세기만 지나면 한국사회에는 박정희를 미화하는 기록만 남을 것이다. 오랫동안 미국의 권부를 가까이서 취재하면서 나는 국내에서 접하기 힘든사실들을 많이 보고 들었다.우리 후손들의 역사인식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바람으로 그동안 보고 들은 박정희의 모든 것을 기록했다. ■회고록의 제목은 ‘내가 본 박정희와 김대중’인데 박정희 전대통령에 관한 부분이 70% 정도를 차지하는 있는 것 같은데…. 61년 5·16쿠데타 때부터 시작해 82년 김대중씨가 사형수에서 사면을 받고워싱턴에 왔을 때까지를 기록했기 때문이다.박정희씨는 이미 관 뚜껑에 못을박은 사람이고 김대중씨는 아직 활동하는 현역 정치인이 아닌가. 김대중씨에대한 기록은 또다른 기회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문 주필의 박정희 전대통령 비판에 대해 일각에서는 주관적이라는 지적이나올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박정희에 대해서 나는 한 언론인으로서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있다.그러나독자들은 나의 책에서 사실만을 보면 된다.1961년 4월이후 현재까지 워싱턴에서 벌어진 한국정치 관련사건들을 사실에 입각해 기록했다.사실에 대한 해석과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문 주필의 회고록에는 특정인들의 실명이 거침없이 거론되고 있는데…내가 실명을 거론한인물들은 한국정치사에서 책임있는 위치에 있었던 사람들이다.그들은 공직에 취임함으로써 이미 역사의 심판대 위에 스스로 올라선것이다. 나는 그들에 대한 역사적 기록을 남겼을 뿐이다.한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한국언론의 익명문화다.육하원칙의 가장 첫번째 요소가 ‘누가’이지 않은가.한국의 언론인들은 혈연·지연·학연의 인간관계 속에 깊이 편입돼 있어 실명을 거론하지 못한다. 퇴직후에도 그 인간관계 속에서 살길을 찾아나가야 하므로 ‘익명의 문화’는 극복되지 않는다.내 경우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한국사회에서 떨어져 40년을 살아왔기 때문에 거칠 것이 없다. ■그동안 ‘반한인사’ 또는 ‘친북인사’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는데 이에대한 본인의 견해는? 유신정권때인 70년대까지는 ‘반한인사’로 불렸는데 80년대말 남북 고위급회담이 본격화된 후 북한취재에 나서면서 ‘친북인사’로 호칭이 바뀌었다. ‘반한인사’,‘친북인사’란 중앙정보부가 만들어낸 용어로 전혀 타당하지않다.굳이 말하자면 ‘반박정희 인사’나 ‘반유신인사’라고해야 옳다.‘친북’도 그렇다.남북은 같은 민족이다.서로가 ‘친북’도 하고 ‘친남’도해야 한다.‘친미’나 ‘친일’,‘친중’과는 성격이 다른 것이다.94년 김일성 주석 사망후 ‘100일설’부터 ‘3년설’까지 북한붕괴론이 대단했다.내가북한에 가보고 와서 북한은 붕괴하지 않는다고 했더니‘친북인사’라고 했다. 한반도 남북에 사는 사람들은 분단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보는 시야도 반쪽짜리일 수밖에 없다.스스로 외눈박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면 두 눈으로 보는 사람이 편파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정운현기자] -文明子씨는 인가 문명자(文明子·70)씨는 38년째 미국 권부의 상징인 백악관을 출입하고 있는 현역 재미교포 언론인이다.73년 11월 당시 보도금지 사항인 ‘김대중납치사건’을 보도한 후 중앙정보부의 체포위협을 피해 미국에 ‘정치망명’을한 전력으로 그동안 국내에선 그의 활동이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80년 중국 덩샤오핑(鄧小平)의 초청으로 미국 여기자단 단장으로 중국을 방문,덩샤오핑을 인터뷰했으며 90년 남북고위급회담 이후방북취재를 시작한이후 92,94년 두차례에 걸쳐 김일성 주석을 인터뷰했다. 30년 대구 출생인 문씨는 숙명여고 졸업후 연세대 영문학과 1학년 재학중 6·25를 맞아 피란지 부산에서 일본으로 유학,메이지대 경제학부·와세다대국제법 대학원을 졸업했다. 61년 조선일보 워싱턴특파원을 시작으로 동아일보,경향신문,MBC 워싱턴특파원을 역임한 그는 73년 미국에 정치망명한 후 미국인 동료기자들과 함께 US아시안뉴스 서비스(통신사)를 설립,국제정치담당 주필로 일하고 있다. 동양통신 초대 워싱턴특파원을 지낸 남편 최동현(崔潼鉉)씨와 사이에 1남 1녀.그의 미국이름 주리 문(Julie Moon)은 ‘대지’의 작가 펄 벅 여사가 지어준 것이다. [정운현기자]
  • “申昌源 검거 더이상 실패는 없다” 도봉서 전담반/수사반의 하루

    ◎24시간 연고선 탐문·수색활동 반복 4일 하오 3시 서울 도봉구 방학 1동 방학우체국 앞 의정부 방면 8차선 도로. 경찰의 검문에 불응한 채 의정부 방향으로 도주하던 서울 XX 7086호 흰색 엑센트 승용차를 서울 도봉경찰서 소속 순찰차 4대와 기동타격대 및 형사기동대 차량이 순식간에 에워쌌다. 申昌源 사건과 관련한 112 주민신고를 받은 도봉경찰서 지령실에서 출동메시지를 내린 지 10여분만이었다. 문제의 승용차 안에는 申昌源으로 지목된 30대 초반의 용의자와 20대 여자가 타고 있었다. 형사기동대 차량에서 내린 도봉서 강력2반 李浩勛 경사와 朴星珍 경장이 날렵한 동작으로 용의 차량에 탄 운전자를 향해 권총을 겨누며 “손들어”라고 외친다. 이어 “문열고 나와”라는 朴경장의 힘찬 목소리에 용의자가 차에서 내렸다. 李경사는 용의자의 두 손을 차 위에 올리게 하고 다리도 벌리게 한 뒤,기민한 동작으로 몸수색을 한다. 타격대 대원들 10여명은 용의자를 향해 K­2소총을 겨누고 있었다. 112주민 신고에 따라 출동한 경찰에 용의자가 체포되는 순간이었다. 이날 상황은 도봉서가 탈옥수 申昌源을 검거하기 위해 실시한 현장실습훈련(FTX)이었다. 훈련을 마친 경찰관들은 곧장 朴雄圭 형사과장과 吳상탁 방범과장 주재로 현장 점검 시간을 가졌다. 훈련도중 불합리하고 미숙한 점을 재점검하는 자리였다. 도봉서는 지난 16일 새벽 서울 강남구 포이동에서 申昌源이 경찰의 포위망을 뚫고 유유히 사라진 이후 지금까지 매일 이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도봉서는 지난해 1월20일 申昌源이 부산교도소를 탈옥한 이래 李경사 등 강력2반 7명을 申昌源 검거 전담반으로 편성하는 한편,강력 1·3반은 추적 수사반으로 진용을 갖췄다. 전담반장인 尹源 경위는 “실습훈련은 보통 자정 무렵부터 새벽 2시 사이에 불시에 이뤄진다”면서 “내 관할지역에 申昌源이 은신하고 출현한다는 정신자세로 근무에 임해 반드시 申을 붙잡겠다”고 다짐했다. 검거전담반의 하루는 상오 10시 朴雄圭 형사과장 주재 아래 수사회의를 갖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어 30분 뒤 尹반장 책임 아래 수사반원 토론회를 가진 뒤 상오 11시부터 현장으로 나간다. 현장수사는 申의 선·후배 등 주변인물에 대한 연고선 탐문과 은신 용의처 수색활동으로 크게 나뉜다. 특히 은신 용의처 수색을 위해 도봉산과 수락산의 계곡과 하천,중랑천 주변,다방이나 찻집 등을 샅샅이 뒤지고 있다. 수색활동에는 강력1·3반 반원들이 24시간 교대근무로 지원을 하고 있다. 이같은 현장활동은 하오 5시 경찰서로 돌아올 때까지 계속된다. 경찰서로 돌아와 근무일지를 작성하고 하오 6시 형사과장으로부터 미진한 점에 대한 보충 지시를 받고 하오 8시부터 다음날 상오 5시까지 야간활동에 들어간다. 다음날 상오 5시까지 야간활동을 마치고 나면 남는 시간은 고작 5시간. 숙직실에서 눈을 잠시 붙인 뒤 아침 먹고 다시 申昌源 검거활동에 나선다. 尹반장은 “이 지역은 의정부·남양주와 인접한데다 교통수단이 좋아 범죄인들 입장에서는 도피여건이 충분한 만큼 반복되는 훈련과 탐문수색 활동으로 이같은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주민들도 조금이라도 의심이 되면 즉각 신고를 해 달라”고당부했다.
  • 빗장 풀린 루브르박물관

    ◎대낮 도둑 들어 19세기 油畵 1점 ‘증발’/관람객 몸수색 소동… 당분간 문 닫을듯 【파리=金柄憲 특파원】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서 3일 낮 19세기 유화 1점이 도난당했다. 박물관측은 이날 점심 때가 끝날 무렵 19세기 프랑스의 대표적 풍경화가 가운데 한사람인 카미유 코로의 작품 ‘세브르의 길’이 없어진 사실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고 밝혔다. 코로의 작품은 도난방지용 강화유리판과 액자는 그대로인 채 34×49㎝ 크기의 유화 캔버스만 칼로 감쪽같이 오려져 없어졌다.유화의 정확한 가치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프랑스 경찰은 하오 3시쯤 현장에 도착,박물관 출입문을 차단하고 현장 감식과 함께 당시 박물관 내에 남아 있던 관람객들의 몸 수색을 실시했으나 범인을 찾아내지 못했다. 경찰은 루브르박물관 내 소장품을 가지고 간 범인은 명화 수집가이거나 그림 밀매루트를 가진 국제전문조직의 소행으로 추정하고 있다. 박물관측은 하오 5시30분쯤 모든 관람객들을 내보냈으며 내부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다.이에 따라 루브르박물관은 4일부터당분간 개관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루브르박물관 소장품 도난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건은 1911년 발생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도난사건으로 한 이탈리아 화가가 모국으로 가져가기 위해 모나리자를 훔쳤다가 2년 만에 회수된 바 있다.
  • 전직예우 소홀한 검색/검찰 조사체계의 허점

    ◎수사안전수칙 외면 자해소동 초래/감시·통제체계에도 곳곳 구멍 투성이 권영해 전 안기부장이 자해소동을 일으키기까지에는 검찰의 피의자 조사체계 부실에도 원인이 있었다. 피의자에 대한 몸 수색과 신문절차,감시 및 통제가 미흡했다. 먼저 몸 수색은 피의자의 신변안전과 조사의 안정성 차원에서 신중하고도 엄격히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몸수색의 세부절차나 원칙을 명시한 내부규정조차 갖고 있지 않다.현행 형사소송법은 법원으로부터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으면 몸수색이 가능하다고만 규정하고 있어 형식적인 몸수색에 그치기 일쑤다. 특히 몸수색은 피의자의 지위나 신분과 상관없이 엄격하게 해야 하나 권씨에 대해 ‘전직 안기부장으로서의 지위와 명예를 감안해’ 소홀히 했다. 신문 과정에서도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검찰은 권씨가 허위 기자회견을 사주한 혐의에 대해서만 조사했고 이를 모두 시인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출두 전에 이미 알려진 혐의사실에 대해 권씨가 모멸감을 느껴 자살을 기도했을까에 대해선 의문이 남는다.위압적인 방법으로 조사했는지,또는 ‘북풍사건’ 이외의 다른 혐의에 대한 추궁은 없었는지에 대해 검찰이 밝혀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감시 및 통제체계에도 보완이 필요하다. 권씨가 조사를 받던 방에 딸린 화장실에서 5분동안 자해소동을 하는 동안 몰랐다는 것은 문제다.검찰은 권씨가 변기뚜껑을 깨고 머리로 벽을 들이받으며 소리를 지르자 자해사실을 알게 됐다. 서울지검에서는 96년 9월 특수3부 12층 조사실에서 서울버스비리 사건으로 조사받던 전직 서울시 버스노선관리계장 송모씨가 탁자 위에 놓인 문구용칼로 자해를 하기도 했었다.
  • 북풍수사 새 국면­권씨 자해 전말

    ◎화장실서 칼날로 복부 3번 그어/20일 하오 9시­성경책 꺼내다 칼 확인 품에 감춘뒤 예배/21일 상오 4시­직원 1명 남자 화장실로 자해후 벽받으며 소동/상오 5시40분­20분 소란뒤 응급실 도착 긴급 수혈뒤 수술실로 권영해 전 안기부장은 20일 하오 3시45분쯤 서울 서초동 서울지검청사 뒤편 출입구를 통해 11층 특별조사실(1145호)로 들어섰다.권씨는 이에 앞서 오제도 변호사등 변호인을 통해 서울지검에서 조사받을 수 있도록 검찰에 요청,서울지검 남부지청에서 진을 치고 있던 취재진을 따돌렸다.수사팀은 권씨가 조사실에 들어서자 양복 주머니를 뒤지고 샘소나이트 손가방을 열어 소지품을 확인했다.그러나 자진출두 형식이라 몸수색은 하지 않았다. 권씨는 조사에서 대선전 재미교포 윤홍준씨의 김대중후보 비방 기자회견을 지시하고 공작금 25만달러를 지불한 혐의에 대해 순순히 자백했다. 그러나 권씨는 동기부분과 정치권의 개입여부 등에 대해서는 함구,검사들과 한동안 입씨름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오변호사는 이와 관련,“권씨가 ‘검사들의 대북관에 대해 심각한 괴리를 느꼈다’고 말했다”고 전해,조사 과정에서 격론이 벌어졌음을 추측케 했다.또한 권씨는 북풍공작 문서작성 경위 등에 대해서는 ‘국가 기밀’이라며 진술을 일체 거부했다. 수사진은 하오 9시쯤 장로인 권씨가 “예배를 보게 해달라”고 요청하자직원 1명만 남기고 옆방으로 옮겨갔다.이어 권씨가 성경책을 꺼내기 위해 가방을 열자 바닥에 있는 10㎝ 길이의 문구용 칼이 눈에 들어왔다.순간적으로 권씨는 칼을 품에 숨기고 10여분만에 예배를 마쳤다. 21일 상오 4시쯤 조사를 마무리진 수사팀이 권씨의 조서를 컴퓨터로 출력하기 위해 12층으로 올라갔다.조서 끝부분에 권씨의 서명을 받기만 하면 조사가 완료되는 것이다.조사실에 직원 1명과 40분간 시간을 보낸 권씨는 ‘모종의 결심’을 하고 화장실로 갔다. 이어 세면대 앞에서 품에 숨겨둔 칼날을 꺼내 복부를 3번 힘껏 그었다.머리로는 벽을 들이받고 변기의 물통 뚜껑을 세면대에 내리쳐 깨뜨리는 등 5분동안 소동을 피웠다.검찰직원이 화장실에 들어섰을 때 권씨는 이미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검찰이 강남성모병원에 앰블런스를 요청한 것은 상오 5시5분쯤.한 관계자는 “격렬하게 몸부림치며 소란을 피는 권씨를 제지하느라 20여분만에야 연락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검찰은 피가 흥건히 괸 화장실 바닥에서 문구용 칼날을 발견했다. 상오 5시40분쯤 권씨는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에 도착했다.피를 많이 흘려 혈압이 급속히 떨어진 권씨는 2차례 긴급수혈을 받은 뒤 상오 8시10분쯤 수술실로 옮겨져 1시간40여분에 걸친 수술을 받았다.
  • “1차진술만으로 영장청구 가능”/김원치 지청장 문답

    ◎권씨 존중 몸수색 안해… ‘강압’ 당치않하/회견 공작금 25만불 출처 밝힐수 없어 김원치 서울지검 남부지청장은 22일 “권영해 전 안기부장의 상태가 호전되는 대로 빠르면 23일 안기부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권씨에 대한 신병처리는. ▲의료진과 상의해 23일 청구여부를 결정하겠다.상태가 나빠져도 영장을 발부받은 뒤 집행은 미룰 수 있다. ­신문 전에 수색을 하지 않은 이유는. ▲수사진의 잘못이 아니다.권씨가 자진출두 형식으로 수사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형사소송법의 강제수사 규정에 따르지 않아도 되었다. ­2차 진술은 언제 받나. ▲의료진의 의견을 종합해 검토하겠다.현재 권씨는 1차 진술을 마친 뒤 본인의 동의(날인)만을 받지 않은 상태이다.이 진술서로도 영장청구가 가능하며 증거서류로 법원에 제출할 수 있다. ­공작금 25만의 출처와 중간에 없어진 3만1천달러는. ▲출처는 아직 밝힐 수 없다.3만1천달러는 이 전 실장이 갖고 있다가 다른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했다.배달사고로 볼 수 있다. ­특수조사실에 설치된 폐쇄회로 TV가 작동했었나. ▲폐쇄회로 TV는 사고 당시 사용할 필요가 없어 작동시키지 않았다. ­수사 분위기가 강압적이었나. ▲수사진에게 권씨의 명예와 인격을 존중하는 수사태도를 보이라고 거듭지시했기 때문에 강압적이지 않았을 것이다. ­자해 동기와 칼의 출처 등은. ▲사고후 수사진이 권씨를 아직 만나지 못했다.권씨가 밤샘조사를 받으며 수차례에 걸쳐 성경을 만지작거리며 수사진에게 나가달라고 요구했고 이때 가방 또는 성경책 속에 있던 칼을 꺼내 몸에 감춘 것으로 추정된다. ­앞으로 수사는 누가 지휘하나. ▲23일 상오 다른 사람에게 수사지휘권을 넘긴다.권씨가 사건의 전모를 낱낱이 털어놔 진상을 규명하는데 협조했다면 부하에 대해 관대한 처분을 하려했으나 불상사가 발생,진상규명이 다소 어려워졌으며 결과적으로 부하들에 대한 처분에 영향을 주어 유감스럽다.
  • 30대 절도피의자 수감중 음독자살

    절도 피의자가 경찰의 몸수색을 피해 유치장 안으로 독극물을 가지고 들어가 이를 마시고 자살했다. 11일 강원도 춘천경찰서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상오 5시20분쯤 특수절도 혐의로 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된 손기홍씨(39·춘천시 효자동)가 복통을 호소,병원으로 옮겨지던중 숨졌다.
  • 비밀 핵도시 K­26(시베리아 대탐방:41)

    ◎3백m 지하에 핵탕·위성 제조공장/94년 폐쇄… 핵 기술자 불한 등 건너가 활약/현재는 반도체 등 평화적 물품 샌산 박차 크라스노야르스크지역에 있는 거대한 지하핵도시 「크라스노야르스크­26」을 취재해보고 싶은 욕심 때문에 취재팀은 이 지역을 두번째 방문했다. 지난 40년대 후반 완성된 「크라스노야르스크­26」(이하 K­26)은 스탈린시대 유물로 독일 등 외국군의 공격을 피해 옛소련 전지역에 걸쳐 세운 10개 「1급 비밀군수도시」가운데 하나다.「시베리아 대탐방 1부에서 소개해던 「톰스크­7」도 이같은 비밀 도시군에 속한다.취재팀은 지난 2월 「K­26」에 대한 1차 취재시도가 실패한 뒤 다시 취재를 시도했다.하지만 K­26 시측은 이런저런 구실로 취재를 거부했다.표면적인 이유는 방문허가가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비밀샐까 공개 꺼려 시 출입관계자들이 요구한대로 이미 한달전 러연방 원자력부·국방부에 방문신청을 했는 데도 허가가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현지 기자들의 얘기로는 『94년 플루토늄공장 폐쇄식이후 최근까지 어느 외국기자에게도 허가가 나오지 않고 있다』는 설명이었다.그들은 옐친대통령의 공개행정 약속에도 불구,이 도시를 개방하지 않고 있는 데 대해 두가지 이유를 들었다.하나는 군부·보수 정치세력들의 입김이 세지면서 군사비밀을 서방세계에 다시 「볼모」로 잡고 개방을 꺼린다는 것이다.또 하나는 이 도시안의 「화학공장」「위성통신공장」등의 군사비밀·기술들이 자꾸 공개되면 그 기술 역시 빠져나갈 우려 때문에 연방정부가 계속 폐쇄하기로 내부방침을 정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도시 방문을 위해 4일동안 주·시관계자와 안전부관계자등 온갖 인맥을 동원했으나 허사였다.취재진이 낙담을 하고 있을 때 「해결사」가 나타났다.취재중 우연히 만난 대우그룹 김우중회장의 주선으로 마침내 방문길이 열렸다.방문조건은 매우 까다로웠다.방문시간은 한시간,사진은 찍지못하고 관계자들이 안내하는 한·두곳정도만 방문한다는 조건이었다. 시 출입관계자와 약속한대로 취재팀은 크라스노야르스크에서 동쪽으로 50㎞ 떨어진 이 도시 출입문 앞에 도착했다.사얀산맥 숲속 예니세이 강둑에 위치한 이곳 역시 출입통제가 엄격했다.주민 3만여명이 자신의 주거지를 드나드는 데도 신분증을 보이며 출입하고 있었다.취재팀도 몸수색을 받고 드디어 이 도시안에 들어섰다.이름 밝히기를 거부하는 두명의 관계자를 따라 나섰다.겉으로는 아파트 몇채만 보일 뿐 여느 시베리아 도시와 다를 바가 없었다. ○자작나무로 도시 위장 인구 3만명이 갇혀사는 「지하비밀도시」라는 인상은 조금도 풍기지 않았으며 자작나무 등으로 잘 위장돼 있었다.소형버스를 타고 제일 처음 지나친 곳은 「지하화학공장」이었다.안내자의 설명에 따르면 이 지하공장은 지하 3백m에 위치해 있으며 지하의 도로길이만해도 28㎞에 달한다는 것이다.이곳의 지하공간을 만들기 위해 세계에서 가장 깊고 지하면적이 큰 모스크바 지하철 공사때 파낸 흙부피보다 2.5배나 많이 파냈다는 것이다.이 화학공장은 사실상 냉전종식을 알리는 가장 구체적인 상징이었다.40년대 후반부터 냉전시대가 종식될 때까지 이곳은 플루토늄 239를 재처리하며 무기급 핵폭탄을 제조했었다고 한다.그러던 지난해 가을 미·러시아 양국의 최고위 국방관계자들은 바로 이 자리에 모여 폐연료봉을 영구 폐쇄시키는 「플루토늄생산중단식」을 가졌다.취재진이 톰스크시에서 취재한 바로는 이 화학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많은 플루토늄 재처리기술자와 핵과학자들이 중국과 일본 이란등 제3국으로 빠져나갔다는 것이다. 빠져나간 핵기술자와 과학자들의 수는 1천여명이 훨씬 넘는 것으로 관계당국은 파악하고 있다.일부는 핵재처리시설을 갖고 있는 북한으로 건너가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었다. 한 안내자는『현재 이곳은 플루토늄 재처리기술을 응용한 반도체생산,텔레비전 전력공급장치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면서 『기존시설을 이용해 우유운송컨테이너,플라스틱제품등도 생산해 전체 생산품의 50%가 평화적인 물품』이라고 말했다.그러나 그는 다른 50%의 생산품 그러니까 군수물자에 대해서는 설명을 꺼렸다. ○통신위성 등 제작 판매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응용과학센터」.이곳은 연간 20기 이상의 군사·민간용위성을 만드는 우주통신공장이었다.취재팀은 컴퓨터카드를 이용한 육중한 출입문 3·4곳을 지나 때마침 거의 완성단계에 접어든 코스모스­S정지위성을 볼 수 있었다.이 위성은 러시아 자체위성으로 러시아 전역에 음성·화상통신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지난 93년 제작에 착수했던 위성이다.설계총책임자인 미하일 리세트네프박사는 『현재 캐나다와 공동으로 제작중인 통신위성 소브칸스타위성을 포함해 30여개 프로그램을 수행하고 있다』면서 『이제는 어떤 나라에서 어떤 위성을 주문하든 우리가 자체 제작·판매할 수 있다』고 말했다.소브칸스타위성은 러시아측이 정지위성을,캐나다측이 위성내의 전자장치와 재정을 지원해 만들고 있는 데 오는 96년쯤 러시아와 유럽,북아메리카지역을 커버하는 전화·컴퓨터통신·텔레비전방송망에 활용될 예정이라고 소개했다.응용과학센터는 소브칸스타위성 말고도 몰니야 1·2·3,라두가등 통신위성과 시카다 클로나스등 항공위성,에탈론등 측지위성,과학위성등「위성백화점」이라할 만큼 어떤 위성이라도 제작할 수있는 능력을 갖춘 곳이라고 안내자는 자랑했다. 이 공장 역시 지하공장과 지상공장으로 나뉘어져 있었고 보안문제로 종업원수와 규모는 밝히지 않았다.이 공장에는 특히 완성된 위성을 실험하기 위해 엄청난 규모의 자체 실험실을 갖고 진공상태에서의 위성능력을 실험하기도 했다.이 공장은 현재 미국과 캐나다에 국한,합작형태의 위성회사를 설립했을 뿐 기술누출을 우려해 서방의 기업과 「함부로」손잡는 것을 꺼리고 있는 눈치였다.하지만 리세트네프박사는『국가재정지원이 크게 축소돼 13만명의 러시아 우주산업종사자 가운데 40%가 실직상태에 있다』면서 연방정부의 관심을 촉구하기도 했다.
  • 「삼풍」 피고인 25명 첫 공판 이모저모

    ◎이회장 “붕괴진실 가려달라” 아리송한 주문/금속탐지기 동원,방청객 소지품 등 점검 사상 최악의 사상자를 낸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구속기소된 이준(73)회장 등 관련 피고인 25명에 대한 1심 첫공판이 30일 하오2시 서울지법 대법정에서 열려 8시간30분동안의 뜨거운 법정공방끝에 하오 10시30분쯤 검찰측 직접신문만 끝낸뒤 폐정됐다. ○…이날 공판이 열린 417호 대법정은 조계사 폭력사건,성수대교 붕괴사건등 사회적으로 이목이 집중된 대형사건들만 열렸던 곳으로 유가족,보도진 등 3백여명의 방청객들로 꽉 메워졌으며 8시간이 넘는 마라톤공판에도 불구하고 한사람도 도중에 자리를 뜨지 않은 진지한 분위기속에서 진행. 흰색 상의를 입고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법정에 들어선 이회장은 모두진술을 통해 『수많은 사망자와 부상자를 낸 이 사고의 모든 책임은 전적으로 나에게 있으며 모든 죄를 달게 받겠다』고 입을 뗀뒤 『건물이 무너지게 된 원인을 법정에서 정확히 밝혀 피해자 가족들에 대한 배상등 제가 져야 할 모든 책임을 지게 해 달라』고울먹이는 목소리로 10여분동안 진술. 그는 또 『철근과 콘크리트로 지어진 건물이 마치 책을 쌓듯 차곡차곡 무너져 내린 붕괴현상은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라면서 『붕괴원인에 대한 각양각색의 보도가 있었으나 부디 재판장님은 삼풍백화점의 「붕괴의 진실」을 꼭 가려내 달라』고 참사에 대한 「반성」과 붕괴원인에 대한 「의문」을 동시에 표출했다. ○…재판장인 이광렬 부장판사는 검찰신문에 앞서 이례적으로 『피해자 가족들의 아픔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겠으나 지금은 법률적인 책임을 규명하는 단계』라고 밝히고 『피고인의 진술의 자유가 최대한 보장되어야만 공정한 재판이 이뤄지기 때문에 비록 유가족들의 정서에 어긋나는 진술이 나오더라도 질서를 지켜달라』고 주문했다. 이부장판사는 또 조남호 서초구청장에 대한 폭행사건을 의식한 듯 『피고인의 권익보호를 맡은 변호인들도 「공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변호인들에게 행패를 부리는 불상사가 빚어져서는 절대 안된다』고 거듭 요청했다. 한편 법원측은 통상 강력사건 공판때만 동원하는 청원경찰 10여명을 법정주위에 배치,검색대에서 금속탐지기로 일일이 방청객들의 몸수색을 하고 가방을 열어 소지품을 검사하는등 각별한 신경을 썼다. ◎「실종처리 43명」 사망인정 그후/「사체없는 사망자」 50명 넘을듯/국과수 감식 21구도 거의가 사체 일부분/「사망자로 확인된 피해자」와 중복 가능성 삼풍백화점 붕괴참사와 관련,서울시가 그동안 실종처리한 43명을 「사체 없는 사망자」로 인정키로 해 유가족과 당국 사이의 실종자시비는 일단락됐다.그러나 이 43명과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21구의 사체등 사망자 64명 가운데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정밀감식을 거치더라도 50여명은 「사체 없는 사망자」로 남을 전망이다. 서울시가 29일 제2차 실종자심사위원회에서 잠정적으로 사망을 인정한 64명 가운데 고객등 일반인은 15명쯤에 불과하고 나머지 49명안팎은 삼풍백화점이나 입주업체 직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객등 일반인은 사고현장에서 유류품이나 유실물이 발견된 사람으로 주부가 대부분이다. 그러나정작 문제는 64명의 사체를 찾는 것이다.서울시는 현재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정밀감식작업을 벌이고 있는 21구의 사체를 제외한 43구의 희생자에 대해서는 사체확인작업이 거의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그나마 21구도 완전한 형태를 갖춘 시신은 거의 없이 머리·몸통 등 부분사체가 대부분이어서 감식결과 여러 점이 동일한 피해자의 분리된 사체로 확인될 수도 있고 일부는 이미 사망자로 확인된 피해자의 것일 가능성도 높다.따라서 국과수 감식결과 추가로 확인될 신원은 20명에도 훨씬 못미칠 전망이다. 이들에 대한 감식결과는 빠르면 내달초 나올 예정이지만 이와는 별도로 현장에서 발굴된 뼛조각등 1백90여점의 「사체흔적」에 대해서는 주인을 찾아주는 작업에 상당한 시일이 걸릴 예정이다.더구나 「사체흔적」으로 추가확인되는 신원은 거의 없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결국 사망자로 인정받았다 하더라도 유류품이나 유실물만 남긴 「사체 없는 사망자」가 50여명에 이를 것으로 보여 유가족의 아픔은 여전히 남아 있다.
  • 조폐창 직원 8명 철야조사/신권도난 수사

    ◎검찰/불신권 보충·처리과정 집중 추궁 【옥천=김동진 기자】 한국조폐공사의 옥천 조폐창 지폐분실 사고를 수사하는 청주지검 특별수사반(반장 임안식 부장검사)은 15일 인쇄부 박상남(42)·차윤구(36)·이진호씨(47) 등 활판과 직원 6명과 공무과 손형식(46)·안진국씨(21) 등 8명을 철야 조사했다. 검찰은 이들을 대상으로 인쇄가 불량한 지폐의 보충 및 처리 과정을 집중 추궁했다.이들은 사고가 발생한 지난 9일 하오 3시30분 쯤 잘못 인쇄된 지폐를 폐기하고 보충하는 일을 맡았었다. 그러나 도난당한 지폐의 행방과 관련,대전과 옥천 등지에 있는 이들 8명의 집을 수색했으나 혐의점을 찾아내지 못했다. 검찰 조사 결과 보충 은행권을 담아놓는 인쇄부 활판과의 망차에 다른 부서 직원의 접근이 가능하며 불량지폐 발견시 보충권의 출납기록이 이뤄지지 않는 등 관리가 허술했다. 또 보충 은행권을 취급하는 직원이 따로 정해져 있음에도 다른 부서 직원들의 출입이 자유롭고 옷을 갈아입거나 출입하는 과정에서 몸수색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도드러났다. 검찰은 조폐창이 국가보안 「가급」 시설로 외부 경비는 물론 적외선 감지기 등의 내부 보안장치가 철저하기 때문에 외부로부터의 침입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 날 지난 해의 노사분규와 관련,노사관계에 불만을 품은 자의 범행일 가능성과 지폐유출로 피해를 입는 동료직원을 겨냥한 계획적인 범행 가능성도 조사했다. 한편 지난 14일 용의선상에 올랐던 엄모씨(36)와 그의 부인에 대한 조사에서는 엄씨의 분명한 알리바이가 밝혀져 별다른 혐의점을 찾아내지 못했다.
  • 차단된 도시 세베르스크(시베리아 대탐방:9)

    ◎핵·화학무기 제조… 베일의 “군사도시”/외부와 단절… 러 연방정부서 직접관리/5만여 주민 통행증없이는 출입못해 시베리아 대탐방◎핵 비밀도시 서시베리아 중부 오브강 지류인 톰강변에 자리잡은 톰스크시.인구 50만명의 이 도시안에 다시 인구 5만명의 「특별시」(톰스크­7)가 자리잡고 있어 관심을 끈다.러시아 연방정부가 직접 관리하는 「세베르스크시」라는 곳이다. 특별관리하는 이유는 이 도시가 바로 핵물질과 화학무기를 만드는 비밀 군사도시 였기 때문이다. ○높이 4m 2중철망 「페레스트로이카」시대가 열리면서 톰스크시는 외부인의 출입을 허용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이 작은 도시는 철저히 장막속 폐쇄사회로 남아 있다.5만명의 인구가 작은 문 하나로 외부와 통하며 도시속에서 갇혀진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톰스크시내 중심부에서 북쪽으로 약10㎞ 떨어진 세베르스크시 정문.휴일인데도 사람들의 발길은 뜸했다.이곳 시민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자신의 마을로 들어서는데도 「통행증」을 제시하고 있었다.정문은 높이 4m정도의 철창이이중으로 돼 있었고 길이는 세곳에서 자동차가 통과할 수 있을 정도였다. 시민들은 발급받은 통행증을 들고 출입안내소를 통과하고 있었다.시장을 가기 위해 밖으로 나온 사람도,친지를 만나기 위해 시 밖으로 나온 사람도 다시 들어가려면 반드시 출입안내소를 통해야 한다.한 가족이 안내소로 들어섰다.이들은 『집으로 간다』는 말을 건넨 뒤 권총을 찬 군인으로부터 몸수색을 받았다.이들이 몸수색을 받는 동안 다른 경비병은 이들이 가지고 들어온 가방을 샅샅이 뒤졌다. 면회소옆에는 이 도시로 들어가려는 한 흰색승용차가 통과하려는 참이었다.이번에는 소총을 든 경비병이 차량 트렁크를 뒤지고 있었고 다른 경비병은 차량의 보니트를 열어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뒤 통과시켰다.정문 앞쪽 택시정류장에서 친지를 기다리던 30대쯤으로 보이는 한 가장을 만났다. 『관광객인데 이곳에 들어갈수 없는가』 『들어갈 수 없을 것이다.들어가자면 주정부에서 특별허가를 받아야한다.얼씬거리면 곤란하다』 『친척들의 출입은 자유로운가』 『세베르스크밖의 친척들도 2년전에는 출입할 수 없었다.지금은 친척들의 방문이 허용됐는데 주 안전부에서 허가를 얻어야만 한다』 『불편하지 않는가』 『별로 불편함이 없다.생활기반이 이 시안에 있기 때문이다』 ○군인들 철저 몸수색 오랜 세월동안 폐쇄생활에 길들여진 탓인지 이곳 주민들은 별로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오히려 묻는 외부인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눈치였다. 세베르스크시가 지금까지도 철저히 통제되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이곳에는 우라늄 235,238을 비롯,무기급 핵물질을 만드는 공장이 있기 때문이다.「톰스크 화학물질생산공장」이라는 곳이다.지하에는 각종 비밀병기공장이 들어서 있다는 것도 공공연한 비밀로 알려져 있다.이곳에서 핵물질을 생산한다는 것이 외부세계에 알려진 것은 지난 93년.당시 옐친정부는 『화학공장에서 근로자의 실수로 핵물질이 누출됐으며 생활에는 이상이 없었다』고 발표한 이후부터 였다. 『생활에 이상이 없다』는 정부발표와는 달리 당시 이곳 세베르스크시민 상당수가 시 밖으로 소개됐고 시측은 방사능의 낙진이 뒤덮인 건축물을 철거하기도 했다는 것이다.또 일부 도로를 땅속깊이까지 파내 어디론가 실어내 가는 것이 시민들의 눈에도 목격 됐었다고 한다. 이 시에는 핵물질공장외에도 화학물질의 1차원료를 가공하는 각종 공장들이 들어차 있다.희귀병을 치료하는 종합병원도 있다.물론 국민학교부터 전문대학에 이르기까지 교육시설도 잘 갖춰져 있다는 것이 주위 사람들의 얘기다.가급적이면 이 폐쇄도시안에서 모든 생활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톰스크 주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1957년 흐루시초프시대 미국과의 핵무기 경쟁시대에 접어들면서 탄생한 도시중의 하나가 「톰스크­7」이라고 설명했다.당시 정부는 우수한 두뇌,평균이상의 지적수준을 가진 사람들을 불러모으기 위해 이곳에서 생활할 사람들에게 「파격적인」대우를 해주었다는 얘기도 들린다. ○93년 핵물질 누출도 정문에서 만난 세베르스크의 한 시민은 페레스트로이카이후에도 왜 이 도시가 개방되지 않고 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우리는 외부세계에 도시를 개방하기 싫다』고 말했다.도시를 개방하면 다른 도시사람들이 몰려올 것이고 다른 도시사람들이 몰려오면 임금수준이 다른 도시보다 높은 「일자리」를 잃게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관광객인 것처럼 정문앞에서 20여분동안이나 주춤거리자 정문 2층 경비초소의 한 경비병이 어디론가 전화를 하고 있었다.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껴 대절한 승용차를 타고 막 떠나려는 순간 소총을 든 군인 세명이 황급히 뛰어오며 『멈춰』라고 소리 질렀다.취재진은 가슴이 두근거렸다.이들에게 붙잡혀 조사를 받으면 언제 풀려날지도 모를 일이었고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이곳 정문사진을 비롯,그동안 취재해온 취재노트·필름을 빼앗길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취재팀은 차에서내리지 않은채 「바람」을 잡았다. 『우리는 관광객이다.재미있는 도시가 있다고 해 와 봤다.들어가려고 하는데 저기 저 시민들이 못들어갈 것이라고 해 지금 돌아가는 중이다』 이렇게 말하며 여권을 보여주자 한참을 들여다 본뒤 가라고 했다.톰스크라는 도시가 얼마만큼 폐쇄적이고 경직된 도시인가를 실감했다.취재중 만난 세르게이 부들로프 톰스크주 부지사도 세베르스크시에 대해서 만큼은 『내가 할 수 있는 얘기가 없다』며 꼬리를 뺐다.
  • 군수산업/민영화 바람(시베리아 대탐방:6)

    ◎비행기 엔진공장서 압력밥솥 생산/군­민수품 생산비율 90년 9대1서 현재 5대5로 서시베리아 중부 옴스크주에는 크고 작은 기업이 14만개나 된다.대부분이 군수품을 생산하는 업체들이다.90년 초 「페레스트로이카」이전에는 한때 주총생산액의 90%까지를 군수산업이 충당했던 곳이 옴스크주다. 군수산업이 발전한 것은 스탈린이 2차대전 당시 독일의 침공을 피해 거대한 군수기업군을 이곳에 「통째로」 옮겨놓았기 때문이다.모두 군사비밀로 가득찬 공장들이다.취재진이 주택가의 대규모공장를 가리키며『어떤 제품을 만드느냐』고 물으면 한결같이 시민들은 『비밀이다』고 답한다.상황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스탈린시대의 낡은「잔재」가 아닐 수 없다. ○군수기업 14만개나 옴스크 중심가에서 약 10킬로미터 떨어진 흐멜니츠키 거리의 「바라노브」도 군사비밀로 가득찬 비행기엔진 생산공장이다.전투기와 여객기의 엔진을 동시에 만드는 곳으로는 러시아의 유일한 엔진제조공장이다.취재진은 외국기자로서는 사상 처음으로 이곳 공장을 취재하는데「성공」했다.러시아의 군수기업은 서방기자들의 취재방문을 극도로 통제,승인절차를 밟는데만 두달이 소요된다.전투기나 여객기의 조립공장·엔진제조공장을 취재하기는 서방도 마찬가지로 어렵다.첨단기술이나 군사비밀의 노출때문이다.하물며 많은 군사비밀로 가득하고 옛소련의 제도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이곳 옴스크 군수공장취재는 말할 나위도 없다. 취재팀은 4일동안을 옴스크에 묵으며 「바라노브」의 고위 관계자와 잘 통하는 한 주정부관리를 소개받았다.익명을 요구한 주정부관리가 소개해 준 이는 세르게이 드미트리옌코 부사장(41)이었다.공장취재가 쉽게 이뤄진 것은 취재팀이 한국의 주요언론이라는 사실,보도를 통해 「바라노브」가 소개되면 한국 등 서방과의 교류성사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강조했기 때문이다.군수기업들이 서방의 자본도입에「목말라」있다는 점을 십분 활용했다. 상오 9시.세르게이 부사장은 취재진과 만나기로 한 회사 정문 안내소에 비서를 데리고 직접 나와주었다.많은 근로자들이 교대를 위해 출퇴근하고 있었다.근로자들은철창으로 된 여러개의 출입문중 한 군데를 골라 들어갔다.제복을 입고 권총을 찬 경비원들이 몸수색을 하고 있었다.근로자들이 자기일터로 들어가려면 다시 몸수색을 받고 이중삼중의 경비를 통과해야 한다.취재진은 「높은 분」이 직접 나와줘 수월하게 사무실로 안내됐고 곧 견학에 나섰다. 세르게이 부사장은 『민간여객기 안토노프기종,전투기인 미그·수호이 기종을 여기서 생산하고 있다』면서 『전투기의 고객들은 인도 말레이시아와 옛소련연방국가 등 19개국에 달하고 있다』고 소개했다.1,2차대전때는 전투기인 일류신­4,수호이­2,라보치킨­5,7,9,11,투폴예프­2,툴라코브­8 등의 엔진이 모두 이곳에서 생산됐다. 민간여객기는 설계부터 생산때까지 6∼8년이 걸린다는 그는 『현재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으로부터 주문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호이기공장 취재 러시아 군수업체들이 대부분 그렇듯 이 회사 역시 큰 시련을 맞고 있었다.군수품 특히 전투기엔진의 주문이 80%이상 줄었고 종업원도 임금을 적게 주자 30%가 직장을 떠나버렸다.현재는 1만6천명이 남아있었다.회사가 비상대책의 하나로 계획한 자구책은 이곳 생산시설을 이용,민수용품을 만드는 일이었다.90년 군수품과 민수품의 생산비율이 9:1이었던데 비해 현재는 5:5까지 민수품 생산이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비행기의 엔진제작을 빼고 민수용으로 만들고 있는 것은 자동차변속기 농업용트랙터 잔디깍기였고 생활용품인 주전자 압력밥솥 찻잔 경유통들도 만들고 있었다.세르게이부사장의 비서인 블라디미르 세르게예프씨(53)는 『2천년까지는 군수품대 민수품의 비율을 2:8정도로 만들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비행기 엔진을 만들 정도로 훌륭한 기술을 갖고 있는데 외국의 투자,합작이 부진한 이유는』 『외국회사들이 이 회사가 국영기업이라는 것을 알면 합작을 거절한다』 『다른 기업들이 모두 민영화되고 있는데 왜 국영으로 남아 있나』 『연방정부가 주요 군수공장을 민영화하는 것을 꺼린다.종업원 모두가 민영화를 기대하고 있고 올해안으로는 주식회사로 갈 것같다』 하지만 이「국영기업」도조금씩 「비즈니스 마인드」를 갖기 시작했다.최근 2년동안 미국의 항공기엔진 제작회사인 제너럴모터스(GM)사에 10여명의 기술진과 경영진을 파견,경영관리능력을 배우고 돌아왔다는 것이다.민영화를 하지않아 엄청난 손해를 보고 있다는 세르게이부사장은 『외국자본의 도입이 급해 마켓팅에 신경쓸 여력이 없다』고 인정하고 『한국과는 민수용여객기엔진 분야가 전망이 좋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국영기업「바라노브」와는 달리 주식회사「포포브」의 사정은 크게 달랐다.이곳 역시 통신기기등 군수물자를 만드는 비밀군수공장이어서 방문취재에 같은 어려움을 겪은 곳.하지만 2년전 주식회사로 전환,홍보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통신기기기술을 응용해 컬러TV를 만들어내기 시작했고 여기서 생산·수출하기 시작한 가스계량기는 유럽에서 열린「시베리아공업전시회」에서 금메달을 수상했다.회사내에「무역부」「마켓팅부」같은 새 부서가 신설됐고 서유럽의 각종 전시회에도 신제품을 선보이는 등 활발한 판촉활동을 벌이고 있었다.이 회사의 알렉산드르표도로프 기술사장은 『최근 한국의 구미 평택 수원등 공업단지를 방문,한 회사의 TV생산라인을 사오려했으나 한국에서 50%의 현금을 먼저 요구하는 바람에 무산됐다』며 아쉬워했다. ○한국기업 투자원해 그는 회사들이 묘안을 짜내며 안간힘을 쓰는데도 『루블화의 인플레이션이 가속화,기업사정이 크게 호전되지 않고 있다』며 현 정부를 비판했다.하지만「포포브」는 자체TV생산라인을 8개월이 걸려 완성했을 정도로 고도의 기술능력을 갖추고 있었다.미국과 독일 파나마 등과 합작사업을 시작하는 등 자본주의의 여느 기업활동 못지 않았다. 『옴스크 지역은 다른 어느 지역보다도 투자여건이 좋습니다.투자금액이 1백만달러 이상이면 세금이 거의 없어요.한국의 통신기기·전자제품 기업들에게 많이 소개해 주십시오』 표도로프 사장의 말은 「절규」에 가까왔다.
  • 해방거리 김활란식 개량한복 “물결”/유행으로 본 세태변화

    ◎6·25땐 밍크코트·귀금속 걸치면 처벌/드럼통펴 만든 첫 국산차 「시발」 등장/군낙하산으로 만든 여성속옷 “불티”/45∼50년대/붕어빵 먹고 걷는 「재건데이트」 유행/정전·단수 빈번… 집마다 양초필수품/60∼70년대/5공시절 9시 TV 「땡전뉴스」에 국민 “신물” 역사란 거창한 사건의 나열만은 아닐 것이다.역사에 기록되어 있는 사건이란 역사의 책갈피 속에 숨어있는 그 시대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투영일 뿐이다.우리의 현대사도 마찬가지다.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뭉뚱그리면 아마 책에 씌어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재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근엄하게 씌어진 역사책만으로는 그 시대 사람들의 삶을 복원하지 못한다.흔히 흥미거리로만 치부되기 쉬운 과거의 생활상은 이처럼 깊이있는 역사인식을 위해 더없이 훌륭한 보조수단이 된다.광복 50주년을 맞아 그 반세기 동안 생활상의 조각들을 한데 모아보기로 한다. 1945년8월15일 일왕 히로히토가 떨리는 목소리로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자마자 터져나온 것이 가수 남인수의 「감격시대」였다.그 시대 한일관계는 곧 「너의 불행이 곧 나의 행복」인 셈이었다. 광복은 여성들의 의복에도 왔다.「김활란 스타일」의 개량한복이 거리를 휩쓴 것도 이 무렵이다.그러나 물자가 귀했던 만큼 일본식 「몸뻬」도 사라지지 않았다.「몸뻬」차림의 여자들이 왜색을 일소하자는 운동이 벌어지자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미군정이 실시되자 미군부대 주변을 전전하는 새로운 여성층이 등장했다.이에 대한독립촉성국민회는 『민족의 체면을 팔아먹는 천박한 여성들은 깨끗한 삼천리 강산으로부터 말소시켜야 한다』는 담화를 냈다.이 담화는 「말소」해야 할 여성을 「외인 승용차에 동승하는 여자,껌을 씹으며 거리를 방황하는 여자,괴상한 두발(파마머리)과 화장을 하는 여자」로 예시했다.요즘 이 기준을 적용하면 삼천리 강산에 남아있을 여성이 거의 없는 셈이다. 이런 상황 아래 6·25가 일어나자 「감격시대」를 불렀던 남인수는 다시 「가거라 삼팔선」을 지어야 했다.「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로 시작하는 「전우야 잘자라」가 전우를 잃은 슬픔과 함께 잃었던 땅을 다시 찾는 안도가 담겨 있었다면 「단장의 미아리고개」는 이산가족의 아픔 그 자체였다.그 아픔은 다시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로 이어졌다.또 전국 각지에서 임시수도로 모여든 피란민의 애환을 담은 「이별의 부산 정거장」은 이북 출신의 이른바 「삼팔 따라지」들에게는 더더욱 남달랐다. 그러나 그 피란의 와중에서도 정치판에는 사사오입,막걸리 선거,피아노 표가 판을 쳤다.시중에는 또 마카오 복지 등 사치스런 옷감이 범람해 당시 신문에는 「당신의 옷차림은 전시생활에 알맞습니까」라는 글이 실리고 「전시생활 개선법」이 만들어져 밍크목도리와 귀금속을 착용하면 처벌당하기도 했다. 물론 대다수 국민들은 극도의 내핍에 적응했고 이에따라 유엔군으로부터 흘러나온 「유엔잠바」와 「KJP패션」이 가장 유행하는 옷차림이었다.「KJP」란 바로 「구제품」의 약자였다. 1953년경에는 나일론이 들어왔다.값싸고 질긴 나일론은 순식간에 보급됐고 반투명의 흰 나일론으로 된 군용 낙하산 기지가 젊은 여성들의 블라우스와 속옷으로 「화려한 변신」을 하기도 했다. 1955년에는 국산자동차 제1호인 「시발」이 나왔다.「시발」은 미군으로부터 불하받은 지프의 뼈대에 드럼통을 펴서 씌운 차였다.엔진과 변속기 등 중요부품은 물론 미제 지프 것을 썼지만 국산화율은 50%나 됐다고 한다. 이승만 정권은 1960년3월15일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한 부정선거를 저질렀다.당시 야당의 구호는 『썩은 정치 물러가라』.이에 대한 자유당의 반응은 『썩었으면 어떠냐,별 놈 다봤다』라는 한마디로 「막가는」것이었다.이같은 후안무치는 곧 이승만 자신의 외침처럼 「한데 뭉친」 국민들에 의해 4·19로 응징됐다. 4·19는 1년만에 「중단없는 전진」을 내세운 박정희의 5·16으로 물거품이 된다.「혁명정부」는 「재건」으로 「민생고를 해결」하겠다고 다짐했다.이 때 유행하던 「재건 데이트」는 기껏 붕어빵이나 먹으며 하루종일 걸어다니는 데이트를 의미한다.그 만큼 국민들에게 고통을 요구하는 시기였다. 박정희 정권은 출범 2년이 채 못된 1963년 이른바 4대 의혹사건을 일으킨다.최초의 국산차 「시발」이 운명을 다한 것도 이 사건 때문이었다.한창 인기를 끌던 국산차 「시발」은 일본 닛산의 「블루버드」를 조립한 세단형 「새나라」가 나오자 운명을 다할 수 밖에 없었다.박정희 정권은 당시 국내사업가도 아닌 재일동포에게 자동차공업을 독점하는 특혜를 주었던 것이다.김종필씨가 이 사건으로 국민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면서 외유길에 오르며 남긴 「자의반 타의반」은 지금 고사성어의 반열에 들만한 고전이 됐다. 60년대는 아직 전반적으로 사회가 안정되지 못했다.지금은 몇시간만 정전이 되어도 신문 사회면에 대문짝만하게 보도 되지만 당시는 정전이나 단수는 항다반사였다.집집마다 양초가 필수품이었고 밤에만 물이 나오는 고지대 주부들은 물을 받느라고 새벽을 밝혀야 했다. 그런가하면 70년대까지 입석버스에는 문이 두개로 차장도 둘이었다.여차장들은 저임금속에 끊임없이 수입을 가로챈다는 이른바 「삥땅」의 의심을 받으며 버스회사의 남자직원들보터 몸수색을 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그래서 어느차장의 『청량리 중랑교가요』라는 외침이 『차라리 죽는게 나요』라는 절규로 들리던 시절이었다. 새마을운동은 1970년에 본격화되었다.「새마을노래」를 귀가 따갑게 듣기시작한 것도 이 때다.「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1990년대 초반까지도 마을의 새마을회관에 높이 내걸린 스피커를 통해 국민들의 새벽잠을 깨웠다.이 노래는 어느 틈엔가 폐차 직전의 낡은 쓰레기차에서나 가끔 들을 수 있는 노래가 됐다. 박정희 정권은 1972년 「10월 유신」을 선언하고 국민들을 더욱 옥죄어 나갔다.1975년에는 금지곡이 양산됐다.「아침이슬」은 물론이고 『자 떠나자 고래잡으러…』로 시작하는 「고래사냥」까지 묶였다.박대통령을 「고래」로 착각했던 것일까. 박정권은 마침내 「그 때 그사람」이라는 노래가 흐르는 가운데 울린 몇발의 총성으로 1979년10월26일 막을 내렸다. 전두환대통령이 취임한 것은 1980년9월1일이었다.TV에서 9시 시보가 울리자마자 곧 『전두환대통령께서는…』하는 「땡전뉴스」가 시작된 것도 같은 날이었다. 그러나 이날부터 대통령과 닮았다는 이유로 「금지인물」이 된 탤런트도 있었다.1960년대 중반에 발표된 김상희의 「대머리 총각」도 이 시기에 나왔다면 금지곡이 되었음은 물론 작사가 작곡가 가수 모두가 보안사가 운영하는 「서빙고호텔」에서 한동안 숙식을 제공받았을 것이다. 이어지는 군 출신 대통령에 대한 편치 않은 국민감정은,당시 청와대에서는 영화 「사관과 신사」를 「토관과 신토」로,미당 서정주선생을 「말당선생」으로 읽는다는 우스개를 낳았다.연희동에서는 아직도 「신사불이」를 위해 수입식품을 먹지 않는다던가. 전대통령으로부터 배턴을 이어받은 노태우대통령과 그 이후 시대는 과거라고 하기에는 너무 가까운 현실이다.그러나 이 시대도 불과 얼마뒤면 다시 과거사가 될 것이다.한 시대의 평가는 이처럼 공식적인 역사기록 속에만 남는 것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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