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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마트폰 많이 한 아이, 비만 가능성 ↑ - 호주 연구

    스마트폰 많이 한 아이, 비만 가능성 ↑ - 호주 연구

    스마트폰이나 TV 등 인공광에 노출되는 시간이 긴 아이일수록 비만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시사하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호주 퀸즐랜드공과대(QUT) 유아기 수면연구 공동 연구진은 미취학 아동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통해 하루 중 이른 시간대부터 모든 빛에 노출된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몸무게가 더 많이 나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밝혀냈다. 연구진은 호주 브리즈번에 있는 보육원 6곳에 다니고 있는 3~5세 아동 48명을 대상으로, 2주 동안 아이들의 ‘수면’과 ‘활동’, ‘빛 노출’이 키와 몸무게를 기반으로 한 ‘체질량지수’(BMI)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비교 분석했다. 이어 12개월 뒤 다시 데이터를 측정했다. 연구를 이끈 카산드라 패틴슨 박사과정 연구원은 “하루 중 이른 시간대에 ‘중간 정도 빛’(인공광 포함)에 노출된 아이들이 BMI 증가와 관련성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면서 “반면 오후에 실내외에서 가장 많은 양의 빛에 노출된 아이들은 더 날씬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어 “추적 연구에서는 첫 조사 당시 빛 노출량이 많았던 아이들은 12개월 뒤 체질량이 더 많았다”면서 “심지어 초기에 체중과 수면, 활동을 계산한 뒤에도 빛은 의미 있는 영향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즉 빛 노출이 아동 체중에 크게 영향을 준다는 것. 또 패틴슨 연구원은 “전 세계 5세 이하 어린이 약 4200만 명이 현재 과체중이나 비만으로 분류되고 있어 이번 연구결과는 세계 최초이자 중요한 돌파구가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표했다. 이어 “태블릿과 스마트폰, 야간 조명, 텔레비전 등에서 나오는 불빛을 포함한 인공조명 때문에, 오늘날 아이들은 이전 세대보다 더 많은 환경에서 빛에 노출돼 있다”면서 “이런 빛 노출 증가는 비만의 세계적인 증가와도 일맥상통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는 QUT의 건강과 생물의학 혁신 연구소(IHBI)와 어린이 건강연구센터(CCHR)의 협력을 통해 이뤄졌다. 포유류에 인공광과 자연광 모두의 노출 시기와 강도, 기간이 급격한 생물학적 영향을 주는 것은 기존 연구로 알려졌다. 패틴슨 연구원에 따르면, 체내시계로도 알려진 활동일 주기는 빛 노출에 크게 영향을 받으며, 이는 수면 유형(패턴)이나 몸무게 변화, 호르몬 및 기분 변화에 영향을 준다. 그녀는 “비만에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는 열량 섭취량과 신체 활동 감소, 수면 시간 감소, 수면 시기 변화가 있다”면서 “이제 빛을 또 다른 요인으로 더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패틴슨 연구원은 다음 연구는 이를 통해 아동 비만과의 싸움에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녀는 “우리는 미취학 아동뿐만 아니라 영유아를 대상으로 추가 연구를 할 계획”이라면서 “그동안의 동물 실험은 빛 노출 시기와 강도가 신진대사 기능과 체중 상태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줬는데 우리 연구결과는 그 같은 결과를 우리에게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또한 “이번 연구는 서로 다른 시간에 서로 다른 유형의 빛에 노출되는 것이 이제 아동 몸무게에 관한 논의 일부가 될 필요가 있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연구결과는 국제 학술지 ‘플로스원’(PLOS ONE) 최신호(1월 6일자)에 게재됐다. 사진=ⓒ포토리아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단독] ‘재활 골든타임’의 힘…줄타기 명인 다시 뛰다

    [단독] ‘재활 골든타임’의 힘…줄타기 명인 다시 뛰다

    [메디컬 인사이드] 추락사고 ‘줄타기 명인’ 홍기철씨의 기적 ‘기적’보다 적당한 표현이 있을까요. 사고로 경추(목뼈)가 손상돼 사지마비 상태로 병실에 누워 있던 환자가 5개월 만에 뜀박질을 할 정도로 회복됐다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소식을 최근 접했습니다. 약 4m 높이에서 떨어져 눈 깜짝할 사이에 땅에 머리를 부딪히며 목이 꺾였다고 했습니다. 수술을 받은 뒤에도 휠체어에서 몸을 가누지 못해 끈으로 몸을 묶어야 했다고 합니다. 저는 그 기적 같은 재활 과정이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그를 수소문했습니다. 10일 경기 양평의 국토교통부 산하 국립교통재활병원. 재활 스케줄 때문에 틈이 없어 이날 어렵게 그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그는 중요무형문화재 58호이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줄타기’ 명인 1호 홍기철(61)씨였습니다. 15세 때부터 줄타기를 독학해 40년 이상 25m 외줄과 함께한 그는 지난해 7월 26일 한 공연장에서 첫 추락 사고를 당했습니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 활동했고, 전국 팔도 가보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합니다. 유일하게 명주실로 꼰 줄을 타며 고령에도 양다리 코차기, 물동이 이기 등 누구도 쉽게 흉내 내기 어려운 고난도 기술과 늘 함께한 그였지만 불운까지 내다볼 순 없었습니다. 홍 명인은 “오전에 비 때문에 줄이 좀 젖었는데 오후에 줄이 다 말랐다고 생각해 올랐다가 갑자기 미끄러졌다”고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급히 경기도의 한 대학병원에서 응급수술을 받았지만 이미 경추 5·6번에 심각한 손상을 받은 뒤였습니다. 수술 결과가 좋고 자가호흡이 가능하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명인은 무더운 8월 아픈 심신을 병상에 누인 채 교통재활병원으로 갔습니다. ●“줄이 미끄러워 떨어졌어” 청천벽력 같은 사고 부인 허인숙(61·한국국악협회 양평군지부장)씨는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남편에게 기저귀를 채웠습니다. 노인 봉사를 위해 딴 요양보호사 1급 자격증을 남편을 위해 쓰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팔다리는 물론 몸을 가누지 못해 휠체어에 몸을 보자기로 묶고 병실 가까운 곳을 다녔습니다. 움직이려고 해도 처음에는 꼼짝도 못 했습니다. 배꼽 아래쪽은 아예 감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희망을 버리진 않았습니다. 이른바 ‘재활 골든타임’에 대한 설명을 듣고 각오를 다졌습니다. 재활 골든타임은 이르면 사고 72시간 이후, 늦어도 6개월 이내에 재활치료를 시작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르면 이를수록, 환자가 적극적일수록 몸의 기능을 회복하는 데 좋다는 재활치료의 기본 이론입니다. 손부터 조금씩 움직여 보기 위해 물리치료사에게 몸을 맡겼습니다. 재활전문병원이어서 최장 하루 8시간 질환별 일대일 맞춤 재활치료가 가능했습니다. 한 달 뒤부터 회복 속도가 빨라졌고 두 달이 지나자 휠체어에 몸을 실을 수 있게 됐습니다. 팔은 여전히 못 가누는 상태였지만 날아갈 것 같았다고 합니다. ●늦어도 6개월… ‘재활 골든타임’의 힘을 믿다 재활환자 중에는 “이 약은 내 몸에 맞지 않다”, “오늘은 기분이 안 좋다”며 치료를 거부하는 사례가 흔하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홍 명인은 치료 순응도가 높았고 의료진도 치료 속도를 높였습니다. 이진영(41) 재활의학과 교수는 “우리가 보통 ‘숙제’라고 표현하는데 8시간 정규 치료과정을 끝내고도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추가로 운동해 12시간을 채웠다”면서 “손상 환자는 우울감 때문에 무기력해지기 마련인데 홍 명인은 누구보다 치료 의지가 높았다”고 평가했습니다. 곧 발목에 힘을 줘 발로 휠체어를 조금씩 뒤로 이동시키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오전 5시에 일어나 휠체어를 조금씩 끌고 다녔습니다. 의료진은 틈나는 대로 그를 30분 정도 일으켜 세웠습니다. 어지러움 때문에 고통스러웠지만 점점 다리에 힘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홍 명인은 “첫째, 부지런해야 하고 내 의지가 강해야 한다”면서 “치료만 잠깐 받고 가서 밥 먹고 잠자고 드러누우면 가망이 없다”고 했습니다. 한쪽 팔을 조금 쓸 수 있게 되자 눈에 보이는 물체는 모조리 붙들고 일어나려고 했다고 합니다. 몸무게는 늘 58㎏이었습니다. 11월 중순, 드디어 다리 힘으로 몸을 일으킬 수 있게 되자 병원 전체에 설치된 복도 난간을 잡고 움직였습니다. 그는 모든 병원 공간을 활용했습니다. 처음에는 50m도 가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엘리베이터 대신 1층부터 병실이 있는 4층까지 줄곧 계단을 이용했습니다. 병원 뒤 재활 운동장과 주변 경사로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이순현(37) 재활 치료부장은 “일상생활을 하다 갑자기 휠체어를 타다 보니 좌절하고 의기소침해진다”면서 “최대로 기능을 끌어올리면 95~98%까지 회복할 수 있기 때문에 끈기와 용기가 중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홍 명인은 ‘동아시아 최대 규모 재활병원’이라는 특성을 파악해 치료시설을 십분 활용했습니다. 그의 치료 일정표를 직접 들여다보니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물리치료사와 함께 운동치료실과 통증치료실, 작업치료실, 일상생활동작실 등 병원 내 모든 치료시설을 이용하는 내용으로 빽빽하게 채워져 있었습니다. 특히 ‘수(水) 치료실’에서 부력을 이용해 근육량을 늘리는 데 집중했습니다. 치료기기 페달을 하루 600~700개씩 밟아 물 밖으로 나올 때 다리가 떨릴 정도로 노력했습니다. 물속에서 움직이면 근육량이 더 빨리 늘지만 관절 부담은 작은 장점이 있다고 합니다. 몸 상태가 점점 더 좋아지자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 숟가락을 내려놓기 무섭게 병상을 내려왔습니다. 다만, 몇 가지 원칙은 꼭 지켰습니다. 집이 인근이었지만 병원 밖으로 외출하면 의지가 무뎌질까 봐 완쾌한 뒤에 나가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부인 허씨는 “남편과 매일 ‘반년 안에 일어서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고 했습니다. 과거엔 흡연을 즐겼지만 병원을 나가지 않다 보니 저절로 척추 건강에 좋지 않은 담배를 끊게 됐습니다. 우울증이 심해질 수 있는 술도 입에 대지 않았습니다. ●“일어서겠다”는 의지로 기적을 만들다 퇴원을 3일 앞둔 홍 명인의 ‘버그균형척도’(BBS)는 처음 병원에 왔을 때 5점에서 현재 55점으로 11배 상승했습니다. 불과 5개월 만에 이룬 성과입니다. 버그균형척도는 척수 손상환자의 균형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56점이 만점입니다. 가장 마지막 단계라고 하는 ‘뒤로 걷기’와 ‘빠르게 뛰기’도 가능해졌습니다. ‘일상생활동작 검사’(ADL TEST)에서는 18점이었던 점수가 100점으로 사실상 완치 판정이 내려졌습니다. 최근 이런 사실을 접한 일부 물리치료사와 간호사가 믿기 어려운 결과에 고무돼 눈물을 내비쳤다고 합니다. 홍 명인은 “의료진의 헌신적인 도움이 없었다면 도달하지 못했을 것”이라면서 “불가능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도움에 보답하는 차원에서 1m 이내 높이에서라도 줄타기 공연을 환자들에게 보여 드리는 것이 소원”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날씬한 몸매 원한다면 아침밥은 늦게 저녁밥은 빨리”

    “날씬한 몸매 원한다면 아침밥은 늦게 저녁밥은 빨리”

    날씬한 몸매와 건강을 위해 아침을 꼭 잊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아침을 빠뜨리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침식사를 하는 시간 역시 중요하다는 사실이 연구를 통해 입증됐다. 영국 BBC의 한 건강프로그램을 통해 진행된 연구에 따르면, 아침식사는 가능하면 늦게 먹는 대신 저녁 식사는 가능한 빨리 먹으면 체내 지방을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콜레스테롤이나 혈당을 수 주 내에 낮추는데에도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를 이끈 서레이대학의 조나단 존스톤 박사는 16명의 성인 남녀를 대상으로 10주간 실험을 실시했다. 연구진은 실험참가자 중 절반에게 일반적인 식사시간에 식사를 하게 한 반면, 나머지 절반에게는 아침 식사를 90분 늦게, 저녁 식사를 90분 빨리 지급하고 먹게 했다. 그 결과 아침을 늦게 먹고 저녁을 일찍 먹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체내 지방비율이 낮아지고 콜레스테롤 및 혈당 수치도 낮아지는 것을 확인했다. 이러한 증상은 모두 당뇨 및 심혈관질환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진은 먹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는 것, 즉 먹기 시작하는 시간을 늦추고 마지막 식사 시간을 당겨 하루 동안 먹는 시간을 짧게 만드는 것이 몸무게를 조절하고 나아가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입증됐다고 강조했다. 이와 별개로 또 다른 실험에서는 아침과 늦은 저녁에 같은 양의 기름진 음식을 먹게 한 뒤 혈당 수치를 체크했다. 그 결과 아침에 기름진 음식을 먹었을 경우 두 시간이 지난 후에야 혈당이 본래의 수치로 돌아왔지만, 저녁에는 혈당 수치가 돌아오는데까지 걸리는 시간이 아침때보다 더 길었다. 늦은 시간 음식을 먹으면 혈액에 다량의 당과 지방 성분이 추척되고, 수면 호르몬인 멜라토닌이 이러한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오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에 원래의 몸상태로 돌아오는 속도가 느려진다는 것. 이 때문에 아침에 기름진 음식을 먹는 것보다 밤에 기름진 음식을 먹는 것이 몸에 더 해로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실험결과로 미뤄 봤을 때, 아침식사를 늦추고 저녁 식사시간을 최대한 당기는 것은 비만뿐만 아니라 심혈관계통 또는 당뇨 질환의 원인이 되는 콜레스테롤이나 혈당의 과다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연구를 이끈 존스톤 박사는 “아침에는 충분한 칼로리를 섭취하고, 점심이나 저녁에는 이보다 적게 먹는 것이 신진대사를 높이고 몸무게를 감소하거나 정상 몸무게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진=포토리아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와우! 과학] 영화 ‘킹콩’ 모델 거대 영장류 10만 년 전 멸종됐다

    [와우! 과학] 영화 ‘킹콩’ 모델 거대 영장류 10만 년 전 멸종됐다

    세계적인 인기를 얻은 영화 '킹콩'에는 약 8m에 달하는 거대한 고릴라 킹콩이 등장한다.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허구의 존재지만 고대 지구에는 그 모델이 된 역사상 가장 큰 영장류가 실제로 존재했다. 바로 지난 1935년 홍콩 한약방에서 이빨화석으로 발견된 거대 영장류 '기간토피테쿠스'(Gigantopithecus)다. 최근 독일 '젠켄베르크 인간 진화와 고대환경센터'(HEP)는 기간토피테쿠스가 기후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10만 년 전 멸종했다는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발표해 관심을 끌고있다. '현실판 킹콩'으로 불리는 기간토피테쿠스는 키 3m, 몸무게 500kg에 달하는 거대 종으로 30만~100만년 전 지금의 중국 남부 밀림 속에서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거대한 원숭이'라는 의미를 가진 기간토피테쿠스는 큰 덩치만큼이나 많은 관심을 끌었지만 이에 대한 연구는 지지부진했다. 그 이유는 아래턱뼈와 몇 개의 이빨 외에는 발견된 화석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탓에 전문가들은 기간토피테쿠스가 육식성인지 채식성인지 확실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으며 심지어 판다처럼 대나무를 먹고 살다 멸종했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이번 HEP 연구팀은 탄소동위원소 측정 방법으로 기간토피테쿠스 이빨의 에나멜을 분석했으며 이를 통해 무엇을 먹고 살았는지와 멸종 원인을 추론했다. 그 결과 기간토피테쿠스의 멸종시기는 10만 년 전으로 채식만 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그렇다면 기간토피테쿠스의 멸종을 이끈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연구를 이끈 허베 바체렌스 교수는 "기간토피테쿠스는 깊은 밀림 속에서만 살며 채식을 했으며 대나무를 먹지는 않았다"면서 "서식지가 사바나 환경으로 바뀌면서 점점 먹이를 구하기 힘들어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덩치가 너무 무거워 높은 나무 위에 올라가 먹이를 딸 수도 없었다"면서 "서식지를 벗어나지 않았고 거대 덩치를 유지하며 살아야하는 기간토피테쿠스의 운명은 멸종 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알쏭달쏭+] 10만년 전 거대 영장류, 결국 멸종한 이유는?

    [알쏭달쏭+] 10만년 전 거대 영장류, 결국 멸종한 이유는?

    세계적인 인기를 얻은 영화 '킹콩'에는 약 8m에 달하는 거대한 고릴라 킹콩이 등장한다.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허구의 존재지만 고대 지구에는 그 모델이 된 역사상 가장 큰 영장류가 실제로 존재했다. 바로 지난 1935년 홍콩 한약방에서 이빨화석으로 발견된 거대 영장류 '기간토피테쿠스'(Gigantopithecus)다. 최근 독일 '젠켄베르크 인간 진화와 고대환경센터'(HEP)는 기간토피테쿠스가 기후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10만 년 전 멸종했다는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발표해 관심을 끌고있다. '현실판 킹콩'으로 불리는 기간토피테쿠스는 키 3m, 몸무게 500kg에 달하는 거대 종으로 30만~100만년 전 지금의 중국 남부 밀림 속에서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거대한 원숭이'라는 의미를 가진 기간토피테쿠스는 큰 덩치만큼이나 많은 관심을 끌었지만 이에 대한 연구는 지지부진했다. 그 이유는 아래턱뼈와 몇 개의 이빨 외에는 발견된 화석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탓에 전문가들은 기간토피테쿠스가 육식성인지 채식성인지 확실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으며 심지어 판다처럼 대나무를 먹고 살다 멸종했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이번 HEP 연구팀은 탄소동위원소 측정 방법으로 기간토피테쿠스 이빨의 에나멜을 분석했으며 이를 통해 무엇을 먹고 살았는지와 멸종 원인을 추론했다. 그 결과 기간토피테쿠스의 멸종시기는 10만 년 전으로 채식만 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그렇다면 기간토피테쿠스의 멸종을 이끈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연구를 이끈 허베 바체렌스 교수는 "기간토피테쿠스는 깊은 밀림 속에서만 살며 채식을 했으며 대나무를 먹지는 않았다"면서 "서식지가 사바나 환경으로 바뀌면서 점점 먹이를 구하기 힘들어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덩치가 너무 무거워 높은 나무 위에 올라가 먹이를 딸 수도 없었다"면서 "서식지를 벗어나지 않았고 거대 덩치를 유지하며 살아야하는 기간토피테쿠스의 운명은 멸종 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건강을 부탁해] ‘늦은’ 아침식사, 다이어트에 도움된다

    [건강을 부탁해] ‘늦은’ 아침식사, 다이어트에 도움된다

    날씬한 몸매와 건강을 위해 아침을 꼭 잊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아침을 빠뜨리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침식사를 하는 시간 역시 중요하다는 사실이 연구를 통해 입증됐다. 영국 BBC의 한 건강프로그램을 통해 진행된 연구에 따르면, 아침식사는 가능하면 늦게 먹는 대신 저녁 식사는 가능한 빨리 먹으면 체내 지방을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콜레스테롤이나 혈당을 수 주 내에 낮추는데에도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를 이끈 서레이대학의 조나단 존스톤 박사는 16명의 성인 남녀를 대상으로 10주간 실험을 실시했다. 연구진은 실험참가자 중 절반에게 일반적인 식사시간에 식사를 하게 한 반면, 나머지 절반에게는 아침 식사를 90분 늦게, 저녁 식사를 90분 빨리 지급하고 먹게 했다. 그 결과 아침을 늦게 먹고 저녁을 일찍 먹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체내 지방비율이 낮아지고 콜레스테롤 및 혈당 수치도 낮아지는 것을 확인했다. 이러한 증상은 모두 당뇨 및 심혈관질환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진은 먹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는 것, 즉 먹기 시작하는 시간을 늦추고 마지막 식사 시간을 당겨 하루 동안 먹는 시간을 짧게 만드는 것이 몸무게를 조절하고 나아가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입증됐다고 강조했다. 이와 별개로 또 다른 실험에서는 아침과 늦은 저녁에 같은 양의 기름진 음식을 먹게 한 뒤 혈당 수치를 체크했다. 그 결과 아침에 기름진 음식을 먹었을 경우 두 시간이 지난 후에야 혈당이 본래의 수치로 돌아왔지만, 저녁에는 혈당 수치가 돌아오는데까지 걸리는 시간이 아침때보다 더 길었다. 늦은 시간 음식을 먹으면 혈액에 다량의 당과 지방 성분이 추척되고, 수면 호르몬인 멜라토닌이 이러한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오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에 원래의 몸상태로 돌아오는 속도가 느려진다는 것. 이 때문에 아침에 기름진 음식을 먹는 것보다 밤에 기름진 음식을 먹는 것이 몸에 더 해로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실험결과로 미뤄 봤을 때, 아침식사를 늦추고 저녁 식사시간을 최대한 당기는 것은 비만뿐만 아니라 심혈관계통 또는 당뇨 질환의 원인이 되는 콜레스테롤이나 혈당의 과다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연구를 이끈 존스톤 박사는 “아침에는 충분한 칼로리를 섭취하고, 점심이나 저녁에는 이보다 적게 먹는 것이 신진대사를 높이고 몸무게를 감소하거나 정상 몸무게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진=포토리아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사육사 애정으로 건강 되찾은 183세 최장수 거북이

    사육사 애정으로 건강 되찾은 183세 최장수 거북이

    영양실조 등으로 한 때 위독했던 영국의 183세 거북이가 사육사의 정성어린 보살핌 덕분에 건강을 회복했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19세기에 태어나 21세기인 현재까지 영국령 식민지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생존하고 있는 세이셸 코끼리 거북(Seychelles tortoise) ‘조나단’의 근황을 소개했다. 조나단은 지난 2005년 갈라파고스 육지거북 ‘해리엇’이 17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이래 ‘세계 최장수 육지동물’의 영예를 이어나가고 있다. 조나단과 같은 코끼리거북(뭍에 사는 대형 거북의 총칭)들의 평균 기대수명은 150년 정도다. 따라서 조나단은 코끼리거북 중에서도 유독 늙은 셈이다. 이토록 많은 나이 때문인지 조나단은 백내장으로 시력을 거의 모두 잃고 후각을 상실하는 등 자연스러운 건강 악화를 겪어 왔다. 그러나 더 큰 문제가 됐던 것은 조나단의 식사 습관이었다. 한 때 뾰족했던 주둥이가 점차 닳아 뭉툭해지자 원하는 식물을 뜯어먹기 힘들었던 조나단은 영양가 없는 잔가지와 나뭇잎만을 주워 먹었고, 결국 영양실조 및 체중감소가 찾아왔던 것. 이런 조나단의 문제를 진단해 낸 수의사 조 홀린스는 이후 조나단의 식단을 완전히 개편해 그의 건강을 되찾아 줄 수 있었다. 홀린스는 “사과, 당근, 상추, 구아바, 바나나 등 칼로리가 높은 야채 및 과일을 먹여준 이후 조나단의 삶은 완전히 개선됐다”고 설명했다. 덕분에 조나단의 몸무게는 회복됐으며 이전보다 활동량도 늘었다. 무엇보다 주둥이가 다시 단단하게 자라남에 따라 원하는 풀을 마음껏 물어뜯을 수 있게 됐다. 콜린스는 “최근 조나단은 피하 지방이 증가했기 때문에 앞으로 겨울을 나는데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이미 나이가 많지만 조나단이 앞으로 더 오래 생존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며 희망적인 전망을 내비쳤다. 원래 영국령 세이셸 군도에 살던 조나단은 1882년에 세인트헬레나 섬 총독에게 선물된 이래 지금까지 섬을 지키고 있으며 그 동안 섬을 다스렸던 총독은 총 28명이다. 조나단의 생존기간에 걸쳐 영국 왕좌에 앉았던 왕은 조지 4세부터 현재의 엘리자베스 2세까지 총 8명이며, 그 기간 선출됐던 영국총리는 51명이다.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먼 우주에 외계인이 사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먼 우주에 외계인이 사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머나먼 우주에 존재하는 수많은 별들의 중력을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이 해외연구진에 의해 개발됐다.최근 오스트리아 비엔나 대학과 캐나다 브리티시 콜롬비아 대학 공동연구팀은 멀리 떨어진 별의 표면중력을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의 케플러(Kepler) 우주망원경과 캐나다우주국(CSA)의 모스트(MOST) 우주망원경의 관측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이 측정 방법은 항성에서 발하는 미묘한 빛의 변화를 바탕으로 표면 중력을 재는 방식이다. 우리가 사는 지구와 마찬가지로 항성인 태양에도 중력이 존재한다. 태양은 지구보다 20배 이상의 중력을 가졌기 때문에 만약 몸무게 60kg의 사람이 태양 위에 선다면 1200kg 이상 나가게 된다. 그러나 수십억 년 후 태양이 적색거성(red giant star·별의 진화 과정 중 마지막 단계)이 되면 중력 또한 50분의 1로 줄어든다. 그렇다면 왜 학자들은 한가하게(?) 멀고 먼 항성의 중력을 측정하려고 하는 것일까? 이에대한 대답은 외계생명체 혹은 인간이 살 수 있을만한 환경을 가진 '슈퍼지구' 찾기와 관계가 깊다. 특정 행성이 생명체가 존재할 만한 조건인지 알기 위해서는 먼저 그 행성의 모성인 항성에 대해 파악해야 한다. 곧 특정 항성이 우리 태양처럼 적절한 중력과 온도를 갖고 있다면 그 주위를 도는 행성은 '슈퍼지구'가 될 수 있는 기본 조건을 갖춘 셈이다. 슈퍼지구는 생명 서식 가능 구역으로 불리는 ‘골디락스 존’(Goldilocks zone)이 열쇠다. 곧 행성이 항성과 너무 가깝지도(뜨겁지도) 멀지도(춥지도) 않은 적당한 지역에 위치해 있을 경우 생명체가 존재 가능한 행성이 될 수 있다는 추측이다. 연구를 이끈 제이미 매튜 교수는 "만약 우리가 항성에 대해 모른다면 그 주위를 도는 행성도 알 수 없다"면서 "외계행성의 크기는 항성의 크기와 관계가 깊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 기술로 항성의 크기와 밝기 측정이 가능하다"면서 "조건에 부합하는 항성의 주위 골디락스 존에 행성이 있다면 그곳에는 물이 있고 아마 생명체가 존재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세계에서 제일 키 큰 기린…5m 88㎝

    세계에서 제일 키 큰 기린…5m 88㎝

    “나보다 더 큰 기린 있으면 나와봐!” 영국의 한 동물원에서 ‘세계 최장신 기린’으로 추정되는 기린의 모습이 공개돼 눈길을 사로잡았다. 4일(현지시간)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보도에 따르면 영국 펨브룩셔의 한 동물원에 사는 기린 ‘줄루’의 발끝부터 머리끝까지의 몸길이는 무려 약 5m 88㎝. 기린의 평균 신장인 4m 50㎝~5m를 훌쩍 웃도는 키다. 이 동물원에는 줄루를 포함해 수컷 기린이 총 3마리가 있는데, 이들과 함께 서 있을 때에도 머리가 삐죽 솟아있는 것으로 보일 만큼 큰 신장을 자랑한다. 동물원 내 기린 우리의 높이보다 줄루의 키가 더 큰 탓에, 사육사들은 먹이를 줄 때마다 특별히 마련한 층계에 올라야 한다. 동물원 사육사에 따르면 줄루는 5년 전 네덜란드에서 이곳 동물원으로 옮겨진 뒤 줄곧 관람객들의 사랑을 독차지해 왔다. 언뜻 보기에도 다른 기린보다 월등히 큰 키를 자랑하는 탓에 다른 어떤 동물보다 눈에 잘 띄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줄루를 보살피는 사육사인 팀 모퓨(39)는 데일리메일과 한 인터뷰에서 “아마 이 기린이 야생에 있었다면 눈에 띄는 키 때문에 암컷들의 관심을 독차지했을 것”이라면서 “다른 어떤 기린에 비해 온순한 성격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키가 큰 줄루는 사육사와 가까이 서 있을 수 있는 담장을 매우 좋아한다. 다만 키가 크고 몸무게가 1.3t에 달하는 등 몸집이 커서 그런지, 유독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면서 “공식적인 기록은 아니지만, 아마도 줄루는 세계에서 가장 키가 큰 기린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한번 살찌면 살 뺀 후에도 조기사망 위험 높아

    한번 살찌면 살 뺀 후에도 조기사망 위험 높아

    운동부족이나 부적절한 식습관, 불규칙한 생활습관 등으로 과체중 또는 비만이 되었던 사람이 다시 정상체중을 회복한다면, 건강도 완전히 회복됐다고 볼 수 있을까?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학과 보스톤대학 연구진에 따르면 한번 살이 쪘다가 빠진 사람은 애초에 비만인 적이 없었던 사람에 비해 여전히 조기사망위험률이 27%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1988~2010년 수집된 국민건강영양조사(National Health and Nutrition Examination Survey, NHANES)자료를 분석하고 2011년 사망률과 비교‧분석했다. 그 결과 데이터 수집 당시 표준 몸무게를 유지하던 사람 중 39%는 과거 과체중이나 비만이었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었으며, 이들은 몸무게가 정상수준을 유지한 사람에 비해 당뇨나 심장질환, 더 나아가 암의 위험이 더욱 높아지는 것을 확인했다. 연구진은 이러한 현상의 원인이 비만 또는 과체중 시절 얻은 질병의 가능성이 높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연구를 이끈 보스톤대학의 앤드류 스트로크는 “기존의 연구는 현재 몸무게가 기준보다 높거나 비만일 경우 각종 건강상 위험이 뒤따른다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사실상 살이 빠졌다 할지라도 지속적으로 정상체중을 유지한 사람에 비해 각종 질병에 노출될 위험이 더욱 높다는 사실이 입증된 연구는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과체중 또는 비만인 상태에서 다이어트를 할 경우 발생되는 건강상 위험이 있다. 신진대사율이 떨어지고 더 나아가 조기사망위험률이 높아질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됐다”고 덧붙였다. 신진대사율이 떨어질 경우 적은 양을 먹어도 살이 찔 위험이 높아지며, 더 나아가 같은 칼로리를 섭취해도 살이 찔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미 정상범위를 넘어서 상태에서 살을 빼는 것도 중요하지만, 꾸준히 식습관 조절과 운동을 통해 과체중이나 비만의 상태까지 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사진=포토리아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美FBI, ‘미모의 여성 보석털이범’ 공개수배

    美FBI, ‘미모의 여성 보석털이범’ 공개수배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5일(현지 시각), 미모의 여성 보석털이범을 공개 수배하고 나서 화제가 되고 있다. FBI는 이날 홈페이지 등에 올린 공개 수배를 통해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으로 추정되는 미모의 여성은 그동안 미국 각 주를 돌면서 10여 차례 이상 보석 가게 등에서 무장 강도 행위를 한 용의자라고 밝혔다. FBI에 따르면, 키 176cm, 몸무게 약 72kg으로 추정되는 이 백인 여성은 말쑥한 스포츠 웨어 차림으로 그동안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를 비롯해 5개 주에 있는 보석 가게를 돌면서 무장 강도 행각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여성은 함께 공개 수배된 30대 흑인 남성과 함께 각 보석상을 돌면서 해당 남성이 망을 보는 사이, 권총으로 보석 가게 직원들을 위협한 다음 진열된 보석을 휴대한 가방에 넣어 유유히 사라졌다. FBI는 미국 각 주의 보석 가게 등에서 이들 동일 커플에 의한 강도 행위가 잇따르고 피해가 급증하자, 급기야 이들을 공개 수배한 것으로 알려졌다. FBI는 "이들 커플은 총기를 휴대하고 있어 매우 위험한 인물"이라며 이 여성이나 커플에 관해 정보를 가지고 있는 시민들의 제보를 요청했다. 다니엘 김 미국 통신원 danielkim.ok@gmail.com
  • 곰인형 껴안고 잠든 아기 북극곰 ‘엄마 품이 그리워’

    곰인형 껴안고 잠든 아기 북극곰 ‘엄마 품이 그리워’

    자신과 똑 닮은 곰 인형을 안고 잠이 든 아기 북극곰 한 마리. 최근 미국에 있는 한 동물원에서 태어난 이 아기 곰이 인터넷상에서 스타로 떠올랐다. 미 오하이오주(州)의 콜럼버스 동물원&수족관은 지난해 말부터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이 아기 북극곰의 소식을 전하고 있다. 지금까지 공개된 영상은 페이스북에서만 280만 명이 넘는 사람이 봤으며 관련 사진 역시 공개되는 즉시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고 있다. 현재 생후 8주차에 접어든 이 아기 곰은 담당 사육사들의 따뜻한 보살핌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지만, 사실 안타까운 사연이 있다. 지난해 11월 6일 세상에 나온 아기 북극곰은 태어난 지 불과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어미로부터 버림받고 말았다. 동물원 관계자는 새끼 곰의 어미 오로라가 처음 5, 6일 동안은 잘 보살피는 듯했지만 그후 포육실을 나간 뒤로 돌아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동물원 측은 오로라가 돌아오리라 믿고 충분한 시간을 기다려도 오지 않아 새끼 곰의 안전을 위해 인공 포육을 결정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때 아기 북극곰의 몸무게는 고작 226g. 인공 포육 이후 몸무게는 3kg을 넘어섰고 몸길이도 40cm 이상 자랐다. 담당 사육사는 “그는 매우 잘 자라고 있다”면서 “약간 불안한 듯한 모습을 보이더니 위아래 앞니 4개가 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아직 네 발로 완전히 걷지 못하지만, 아기 북극곰이 어미로부터 버림받은 아픔을 잊고 잘 자라길 바라본다. 사진=페이스북/콜럼버스 동물원&수족관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키 5m 88㎝ ‘세계 최장신 기린’ 화제

    키 5m 88㎝ ‘세계 최장신 기린’ 화제

    “나보다 더 큰 기린 있으면 나와봐!” 영국의 한 동물원에서 ‘세계 최장신 기린’으로 추정되는 기린의 모습이 공개돼 눈길을 사로잡았다. 4일(현지시간)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보도에 따르면 영국 펨브룩셔의 한 동물원에 사는 기린 ‘줄루’의 발끝부터 머리끝까지의 몸길이는 무려 약 5m 88㎝. 기린의 평균 신장인 4m 50㎝~5m를 훌쩍 웃도는 키다. 이 동물원에는 줄루를 포함해 수컷 기린이 총 3마리가 있는데, 이들과 함께 서 있을 때에도 머리가 삐죽 솟아있는 것으로 보일 만큼 큰 신장을 자랑한다. 동물원 내 기린 우리의 높이보다 줄루의 키가 더 큰 탓에, 사육사들은 먹이를 줄 때마다 특별히 마련한 층계에 올라야 한다. 동물원 사육사에 따르면 줄루는 5년 전 네덜란드에서 이곳 동물원으로 옮겨진 뒤 줄곧 관람객들의 사랑을 독차지해 왔다. 언뜻 보기에도 다른 기린보다 월등히 큰 키를 자랑하는 탓에 다른 어떤 동물보다 눈에 잘 띄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줄루를 보살피는 사육사인 팀 모퓨(39)는 데일리메일과 한 인터뷰에서 “아마 이 기린이 야생에 있었다면 눈에 띄는 키 때문에 암컷들의 관심을 독차지했을 것”이라면서 “다른 어떤 기린에 비해 온순한 성격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키가 큰 줄루는 사육사와 가까이 서 있을 수 있는 담장을 매우 좋아한다. 다만 키가 크고 몸무게가 1.3t에 달하는 등 몸집이 커서 그런지, 유독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면서 “공식적인 기록은 아니지만, 아마도 줄루는 세계에서 가장 키가 큰 기린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K리그 뜬 베트남의 별 “박지성만큼 빛나리”

    K리그 뜬 베트남의 별 “박지성만큼 빛나리”

    “K리그에서 뛰면서 한국 축구를 배워 베트남 국가대표팀에도 큰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베트남 축구선수로는 처음으로 한국 프로축구 K리그 클래식 무대에 서게 된 르엉쑤언쯔엉(20·인천 유나이티드)은 4일 K리그에서 성공하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베트남 올림픽 국가대표로 선발돼 현재 베트남에서 훈련 중인 쯔엉과 이메일 인터뷰를 했다. 쯔엉은 한국에서는 생소한 선수지만 베트남에선 ‘황금세대’로 통하는 축구스타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오는 12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리는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U-23) 챔피언십에 베트남 올림픽대표팀 주전으로 출전한다. 쯔엉은 “주변에서 인천은 좋은 구단이라고 적극 추천했다”며 “일단 꾸준히 경기에 나서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힘든 도전이 되겠지만 도전을 이겨 내는 것 또한 나에겐 기쁨이다. 이 경험을 토대로 베트남 국가대표팀에 큰 도움이 되고 싶다”며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또 “앞으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었던 박지성처럼 되고 싶다”고 꿈을 밝혔다. 쯔엉은 키 177㎝, 몸무게 67㎏으로 넓은 시야와 롱패스 능력이 장점이다. 기존 소속팀이었던 HAGL에서는 주장이자 프리킥 전담 키커로 활약했다. 그는 “베트남에서 K리그 중계를 본 적이 있다. 일본과 더불어 아시아 최고 리그로 알고 있다”면서 “신체적으로 강한 선수가 많고 베트남 선수들에 비해 일대일 능력이 뛰어나고 압박이 심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쯔엉은 베트남 프로축구인 V리그에 대해 “모두 14개 팀이 있는데 미래세대 양성을 위해 어린 선수들에게 기회를 많이 준다. 나도 그중 한 명”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아직 경기장 시설이나 상태 등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조만간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은 물론 프로축구연맹도 쯔엉이 K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해 주기를 기대한다. K리그가 베트남에서 인기를 얻고 장기적으로는 광고 수입과 중계권 수입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연맹 관계자는 “지난해 하반기 K리그 상위 스플릿 10개 경기를 베트남에 중계했는데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을 했다”며 “올해도 중계를 확대하는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천 구단 관계자는 “쯔엉을 통해 한국 문화가 베트남에 전파되고 이를 계기로 한국에 거주하는 베트남인뿐 아니라 현지 팬들도 한국에 넘어와 직접 인천 경기를 관람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며 “지난달 28일 호찌민에서 열린 공식 입단식은 현지에서도 큰 관심을 모았다”고 귀띔했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킹콩’ 같은 거대 영장류 10만년 전 환경변화로 멸종

    ‘킹콩’ 같은 거대 영장류 10만년 전 환경변화로 멸종

    세계적인 인기를 얻은 영화 '킹콩'에는 약 8m에 달하는 거대한 고릴라 킹콩이 등장한다.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허구의 존재지만 고대 지구에는 그 모델이 된 역사상 가장 큰 영장류가 실제로 존재했다. 바로 지난 1935년 홍콩 한약방에서 이빨화석으로 발견된 거대 영장류 '기간토피테쿠스'(Gigantopithecus)다. 최근 독일 '젠켄베르크 인간 진화와 고대환경센터'(HEP)는 기간토피테쿠스가 기후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10만 년 전 멸종했다는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발표해 관심을 끌고있다. '현실판 킹콩'으로 불리는 기간토피테쿠스는 키 3m, 몸무게 500kg에 달하는 거대 종으로 30만~100만년 전 지금의 중국 남부 밀림 속에서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거대한 원숭이'라는 의미를 가진 기간토피테쿠스는 큰 덩치만큼이나 많은 관심을 끌었지만 이에 대한 연구는 지지부진했다. 그 이유는 아래턱뼈와 몇 개의 이빨 외에는 발견된 화석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탓에 전문가들은 기간토피테쿠스가 육식성인지 채식성인지 확실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으며 심지어 판다처럼 대나무를 먹고 살다 멸종했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이번 HEP 연구팀은 탄소동위원소 측정 방법으로 기간토피테쿠스 이빨의 에나멜을 분석했으며 이를 통해 무엇을 먹고 살았는지와 멸종 원인을 추론했다. 그 결과 기간토피테쿠스의 멸종시기는 10만 년 전으로 채식만 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그렇다면 기간토피테쿠스의 멸종을 이끈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연구를 이끈 허베 바체렌스 교수는 "기간토피테쿠스는 깊은 밀림 속에서만 살며 채식을 했으며 대나무를 먹지는 않았다"면서 "서식지가 사바나 환경으로 바뀌면서 점점 먹이를 구하기 힘들어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덩치가 너무 무거워 높은 나무 위에 올라가 먹이를 딸 수도 없었다"면서 "서식지를 벗어나지 않았고 거대 덩치를 유지하며 살아야하는 기간토피테쿠스의 운명은 멸종 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아하! 우주] 그곳에 외계인이 살고있을까?…항성 중력측정법 개발

    [아하! 우주] 그곳에 외계인이 살고있을까?…항성 중력측정법 개발

    머나먼 우주에 존재하는 수많은 별들의 중력을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이 해외연구진에 의해 개발됐다.최근 오스트리아 비엔나 대학과 캐나다 브리티시 콜롬비아 대학 공동연구팀은 멀리 떨어진 별의 표면중력을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의 케플러(Kepler) 우주망원경과 캐나다우주국(CSA)의 모스트(MOST) 우주망원경의 관측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이 측정 방법은 항성에서 발하는 미묘한 빛의 변화를 바탕으로 표면 중력을 재는 방식이다. 우리가 사는 지구와 마찬가지로 항성인 태양에도 중력이 존재한다. 태양은 지구보다 20배 이상의 중력을 가졌기 때문에 만약 몸무게 60kg의 사람이 태양 위에 선다면 1200kg 이상 나가게 된다. 그러나 수십억 년 후 태양이 적색거성(red giant star·별의 진화 과정 중 마지막 단계)이 되면 중력 또한 50분의 1로 줄어든다. 그렇다면 왜 학자들은 한가하게(?) 멀고 먼 항성의 중력을 측정하려고 하는 것일까? 이에대한 대답은 외계생명체 혹은 인간이 살 수 있을만한 환경을 가진 '슈퍼지구' 찾기와 관계가 깊다. 특정 행성이 생명체가 존재할 만한 조건인지 알기 위해서는 먼저 그 행성의 모성인 항성에 대해 파악해야 한다. 곧 특정 항성이 우리 태양처럼 적절한 중력과 온도를 갖고 있다면 그 주위를 도는 행성은 '슈퍼지구'가 될 수 있는 기본 조건을 갖춘 셈이다. 슈퍼지구는 생명 서식 가능 구역으로 불리는 ‘골디락스 존’(Goldilocks zone)이 열쇠다. 곧 행성이 항성과 너무 가깝지도(뜨겁지도) 멀지도(춥지도) 않은 적당한 지역에 위치해 있을 경우 생명체가 존재 가능한 행성이 될 수 있다는 추측이다. 연구를 이끈 제이미 매튜 교수는 "만약 우리가 항성에 대해 모른다면 그 주위를 도는 행성도 알 수 없다"면서 "외계행성의 크기는 항성의 크기와 관계가 깊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 기술로 항성의 크기와 밝기 측정이 가능하다"면서 "조건에 부합하는 항성의 주위 골디락스 존에 행성이 있다면 그곳에는 물이 있고 아마 생명체가 존재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공무원 인사 기록 카드에 학력 안 나온다

    앞으로는 공무원 인사 기록 카드에서 출신 학교와 키·몸무게 등 신체 사항, 결혼 여부 등 직무 관련성이 낮은 항목들이 삭제된다. 단, 정부 내부 시스템상에는 저장되고 출력물에서만 볼 수 없도록 했다. 인사혁신처는 이런 내용을 담은 ‘공무원 인사·성과 기록 및 전자 인사 관리 규칙’을 이달 안에 개정, 시행할 예정이라고 3일 밝혔다. 조성주 인사처 인사정책과장은 “각 부처와 기관 인사권자가 학연, 지연 등에 얽매이지 않고 업무적 성과 등 능력 위주로 공무원을 평가하도록 하자는 취지”라며 “정부 내부 시스템까지 굳이 들여다보지 않는 한 출신 고등학교나 대학교 등 편견을 유발할 만한 정보는 확인할 수 없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대학교 전공은 기재된다. 이와 함께 앞으로 인사권자는 인사 기록 카드에 공무원의 근무 실적과 직무 수행 능력을 분리해 상세하게 기재해야 한다. 공직 사회 내부에 성과주의를 정착, 확산시키겠다는 인사처 방침에 따른 것이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새해 첫날 45세 생일맞은 멸종위기 ‘검정 코뿔소’

    새해 첫날 45세 생일맞은 멸종위기 ‘검정 코뿔소’

    전 세계적으로 멸종 위기 동물로 보호되고 있는 검정 코뿔소(black rhinoceros)가 새해 첫날 45세 생일상을 받아 화제를 모으고 있다고 1일(현지시간) 미 주요 언론들이 보도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동물원은 새해 첫날인 2016년 1월 1일, 자체 페이스북에 동물원에서 사육하고 있는 검정 코뿔소인 엘리(Elly)에게 오트밀과 당밀 등으로 '45' 숫자가 새겨진 맛있는 생일상을 제공해주었다고 밝혔다. 동물원 측은 야생에서 출생한 이 이 코뿔소의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지만, 지난 1974년 4월부터 이 동물원에서 생활하고 있는 엘리가 1971년 1월 1일 출생한 것으로 간주하고 매년 새해에 생일상을 제공해 주고 있다고 말했다. 암코뿔소인 엘리는 40년 넘게 샌프란시스코 동물원에 생활하는 동안 14마리의 새끼와 15마리의 손자새끼, 6마리의 증손자 새끼 등을 거느리는 대가족을 형성하는 데 일조를 했다고 동물원 측은 강조했다. 코뿔소는 1960년대 이전만 해도 약 20만 마리가 넘게 지구 상에 존재했으나, 일부 국가에서 코뿔소의 뿔이 만병통치약으로 잘못 알려져 대표적인 밀렵의 표적이 되는 바람에 현재는 그 수가 약 3천에서 5천 마리 정도에 불과할 정도로 멸종위기 보호동물로 지정되어 있다. 샌프란시스코 동물원 측은 북미 지역 동물원에는 모두 약 60마리의 코뿔소가 있는데, 마이애미 동물원에 있는 코뿔소가 약 38세의 나이로 추정되어 엘리가 북미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코뿔소라고 강조했다. 몸무게가 900kg이 넘게 나가는 엘리는 평소 바나나와 옥수수, 비트 등을 좋아하며 현재 손자 코뿔소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고 동물원 측은 밝혔다. 검정 코뿔소는 시력이 약한 편이지만, 대신 월등한 청각과 후각을 가지고 있으며, 야생에서는 보통 수명이 16년에서 20년 정도로 알려졌다. 사진: 새해 첫날 45세 생일을 맞은 검정 코뿔소 (샌프란시스코 동물원 제공) 다니엘 김 미국 통신원 danielkim.ok@gmail.com
  • [2016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핀 캐리(pin carry)-김현경

    [2016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핀 캐리(pin carry)-김현경

    각각의 플레이어들이 감당할 수 있는 볼링공의 무게는 다르다. 몸무게의 10분의 1 정도 되는 볼링공을 선택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완력에 자신이 있다면 더 무거운 공도 괜찮다. 볼이 무거울수록 흔들림은 적고, 파괴력은 더 커진다. 오빠는 자신의 체중에 비해 다소 무거운 공을 사용하곤 했다. 그 16파운드짜리 볼링공이 65킬로그램밖에 되지 않는 오빠에게 실제로 버거웠는지, 아니면 적절한 무게였는지는 알 수 없다.  나는 고향으로 향하는 기차에서 오빠의 동영상을 반복해서 되돌려 보았다. 유튜브 검색 창에서 오빠의 이름과 ‘볼링’이라는 단어를 함께 치면 열 개가 넘는 동영상이 뜬다. Y시장배 아마추어 볼링 대회의 결승전 영상, 그리고 형식이 ‘제일볼링장’이라는 태그를 달아 업로드한 짧은 영상들로, 대부분 볼링공을 던지고 있는 오빠의 뒷모습을 찍은 것이다. 이따금 스트라이크를 치고 나면, 뒤로 돌아 허공을 향해 두 주먹을 내지르며 기뻐하는 모습이 짤막하게 잡히기도 했다.  기차가 속도를 줄이자 차창 밖으로 눈에 익은 풍경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커다란 모형 볼링핀을 지붕 위에 얹은 ‘제일볼링장’ 간판도 보였다. 나는 객차의 출입문을 향해 트렁크 바퀴를 천천히 굴리며 걸어갔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낡고 찌든 구두가 맨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의 오래된 구두로, 십여 년 전 그를 쫓아낸 오빠가 아버지의 외투와 함께 마당으로 내던졌던 그 구두였다. 앞코가 해지고, 뒤꿈치가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낡은 갈색 구두의 원래 모습이 얼마나 날렵했는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당신은 아바이도 아이다. 한 번만 더 내 눈에 띄만 우리 둘 다 제 명에 몬 삽니데이. 살아생전에 서로 보는 일 없도록 하입시더!” 오빠는 커다란 전정가위를 손에 든 채로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내가 있는 한, 이 집에 그 종자가 발을 디디 놓는 일은 없을 끼다. 엄마도 맞고 산 세월은 이제 잊으이소. 열일곱 살의 오빠는 짐짓 근엄하게 말했다. 자신이 지키고 있는 한 아버지는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고 우리를 안심시켰던 오빠의 말은 그대로 지켜진 셈이다. 하지만 오빠는 이제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고, 아버지는 십 년 만에 나타나 러닝셔츠와 트렁크 팬티 바람으로 거실에 선 채로 나를 맞고 있었다. 닳을 대로 닳은 구두만큼이나 아버지의 몰골은 비참했다. 몸피가 절반 이상 줄어들었고, 정수리의 머리카락은 다 빠져 휑뎅그렁했다. 게다가 새카만 피부와 깡마른 팔다리, 그리고 볼록한 배는 아프리카의 기아를 연상시켰다. 기세등등했던 예전의 모습을 모두 잃어버린 채 젓가락 같은 팔로 러닝셔츠 안의 배를 긁고 있는 그의 모습에 나는 흠칫 놀라 한 걸음 물러섰다.  “왔나? 밥은? 너거 엄마는 밭에 갔다. 덥은데 어서 들와서 선풍기 바람 쫌 쐐라.” 약간 새된 소리가 섞인 음성은 그대로였다. 방금 학교에서 돌아온 딸을 맞는 듯 다정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건네고 있는 그를 보면서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아버지는 이 집에 발을 들여놓을 자격이 없다.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내한테도, 거…걸리가 있다 카더라. 나도 다 들었는 말이 있다.” “걸리고, 권리고 간에 당신에게는 아무것도 없어요. 이게 어떤 집인데!” 나는 악을 쓰며 소리쳤다. 그는 대꾸도 하지 않고 저벅저벅 걸어서 현관과 맞닿은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내 방이었다. 고향을 떠나고 나서야 갖게 된 내 방. 그가 방 안으로 사라지고 나서야 내가 신발조차 벗지 않고 현관에 서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현관에 놓인 그의 구두를 집어 들어 마당으로 던져 버렸다.  냉장고에는 자양강장제 열 병이 두 개씩 나란히 줄을 지은 채 놓여 있었다. 각성 효과가 있다는 자양강장제를 물처럼 마시던 오빠가 세상을 뜬 지도 이 년이 지났지만, 엄마는 냉장실 가장 잘 보이는 선반에 갈색 병에 담긴 드링크를 열 병씩 정리해 놓는 습관을 아직 버리지 못한 것이다. 오빠는 매일 아침 자양강장제를 마시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젊은 날의 선택’이라는 광고로 유명한 노란색 드링크제를 양쪽 점퍼 주머니에 불룩하게 넣은 채로 출근하던 그의 뒷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사고가 났던 날, 오빠가 몰던 트럭 조수석 바닥에는 빈 드링크제 병이 스무 개 남짓 뒹굴고 있었다. 오빠는 졸릴 때마다 자양강장제를 마시면 힘이 난다고 했다. 오빠는 자주 졸려했고, 늘 피곤해했다. 일상생활에서도 깜박깜박하는 일이 잦아서 소변을 본 후 변기 커버를 위로 젖혀 놓고 물도 내리지 않은 채, 화장실에서 그냥 나오는 일이 허다했다. 나는 그를 대신해 물을 내리면서 자양강장 드링크제처럼 샛노란 오빠의 오줌이, 거품을 일으키며 변기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곤 했다. 오빠 방에 들고 온 짐을 풀었다. 책상에 놓인 액자 속 오빠는 머리카락을 노랗게 탈색한 채 경직된 얼굴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유분방한 헤어스타일과는 어울리지 않게 심각한 표정을 담은 이 사진이 영정사진이 될 줄은 몰랐다. 사진 액자 옆에는 두 개의 볼링핀이 놓여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볼링핀 모양의 트로피다. 한 개는 2.0리터짜리 생수 병 크기 정도로 크고, 나머지 하나는 막걸리 병만 했다. 오빠가 냉장 트럭에 가득 싣고 다니던 막걸리 말이다. 오빠는 이 지역에서 소문난 아마추어 볼링 선수였다. 그와 한판 붙기 위해 인근의 다른 도시의 사람들이 이곳까지 원정을 오기도 했었다는 건 오빠가 죽고 나서야 알았다. 빈소에서 문상객들이 늘어놓는 오빠의 무용담을, 나는 상복을 입고 빈청에 앉아 참담한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오빠의 사인은 졸음 운전이 불러일으킨 사고로 인한 심박정지였다. ‘중부내륙고속도로 선산IC 인근에서 서울 방면으로 시속 130㎞로 달리던 K주류회사의 냉장 트럭이 오전 6시 40분경 가드레일을 들이받았고, 운전자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는 보도가 전파를 탈 만큼 큰 사고였다, 새벽부터 출근해 냉장 트럭을 몰고 전국 각지로 막걸리를 배달하다가 사고를 당했으므로 그의 죽음은 당연히 업무상 재해에 해당했다. 사고 전날에도 오빠는 새벽 4시에 출근해 저녁 8시에 퇴근했고, 사고 당일에도 어김없이 새벽 4시에 출근했다. 그러나 회사는 오빠가 죽기 전날 밤 12시까지 볼링을 쳤다는 사실을 문제 삼았다. 나는 엄마에게 절대 회사가 원하는 대로 합의서 따위에 도장을 찍어 주어서는 안 된다고 여러 번 힘주어 말했다. 엄마는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는 오빠의 회사 사람들이 찾아와 현란하게 혀를 휘두를 때에도 엄마가 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는 사실이다. 나는 다니던 대학을 휴학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엄마의 곁을 지켰다. 문도 열어 줘서는 안 된다는 회사 사람들을 집에 들이고, 오빠가 즐겨 마시던 드링크제를 그들에게 내놓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엄마를 때리고 싶다는 충동에 시달렸다.  오빠가 그날 밤 12시까지 볼링을 치지 않았더라면…. 회사는 이런 가정을 내놓고 우리를 괴롭혔다. 과한 취미생활이 화를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나는 오빠를 대신해 회사와 싸웠다. 회사의 주장이 말도 되지 않는 것이라 강변하면서도 새로운 가정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라 괴로웠다. 그날 아침 내가 오빠에게 전화라도 한 통 했더라면 그런 사고를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오빠가 그날 새벽에 뜨거운 국과 밥을 먹고 나간 것이 오히려 졸음 운전의 이유가 되지는 않았을까. 엄마는 싫다는 오빠에게 한사코 아침을 먹여 보낸 것을 후회했다. 만약 내가 서울에 있는 대학을 고집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내 한 학기 등록금은 당시 식구들이 살던 고향집의 연세(年貰)보다 비쌌다. 머릿속에서 새로운 가정이 하나씩 튀어나올 때마다 커다란 대바늘이 심장을 깊게 찔러 대는 느낌이었다. 오빠의 죽음을 곱씹을 때마다 튀어나오는 가정들과 후회는 바늘 끝처럼 날카롭고 좁았다가 때로는 큰 파도처럼 밀려와 삶 전체를 부정하고 휘저어 버렸다. 아버지가 반듯한 가장이었다면, 엄마가 좀 더 야무지게 우리 남매를 건사할 줄 알았더라면, 오빠는 다른 인생을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장례식장에서 내가 가장 많이 들은 위로의 말은 엄마에게 잘해야 한다는 소리였다. 이웃들과 몇 안 되는 친척들은 동공이 초점을 잃고 실성한 사람처럼 빈소를 지키고 있는 엄마를 보며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나더러, 이제 너그 엄마한테 남은 사람은 인숙이 니밖에 없다고 말했다. 친척들은 혹시라도 자신에게 일말의 부담이 돌아오지는 않을까 하는 경계심을 감추고 살아남은 내 책임을 강조했다. 나 역시 하나뿐인 오빠를 잃었다는 말은 차마 내뱉지 못했다. 슬픔 이전에 책임이라는 단어가 목구멍에 와 박히면서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더구나 촌각을 다투면서 처리해야 할 문제들이 너무나 많았다. 오빠의 시신을 확인하고, 경찰을 면담하고, 장례 절차를 결정하는 것도 온전히 내 몫이었다. 내 동창이자 오빠의 친한 후배였던 형식의 도움이 아니었더라면 곤란한 일이 더 많았을 것이다. 인호 행님은 내한테도 친행님이나 다름없다. 형식은 삼일 내내 장례식장에 머무르며 우리를 도왔다. 형식은 주변의 선후배들에게 오빠의 부고를 알렸고, 생각보다 늘어나는 조문객을 맞으려 술과 음식을 추가로 주문했다. 나를 대신해 소매를 걷어붙이고 음식을 나르며 조문객들을 대접했고, 장례 행렬 맨 앞에서 오빠의 영정을 들었다. 그러면서도 장례 기간 내내 내 시선을 피해 의아한 마음이 들게 했다.  오빠의 화장이 진행되는 동안 화장터 앞마당으로 나를 따로 불러 오빠가 남긴 보험금이 있다는 사실을 전해 준 것도 형식이었다.  “장례 다 치아고 말해 줄라 캤는데 행님을 저래 불구디에 보내디리고 나이 인자 말해도 되겠다 싶어서. 볼링동호회에 보험설계사 하시는 행님이 계시거덩. 그 행님한테 인호 행님이 얼마 전에 보험 하나를 들었다. 그기 정확히 말하만, 무슨 내기를 해가꼬 20만 원 정도 인호 행님이 땄는데 그거를 보험 행님이 돈으로 안 주고 인호 행님 이름으로 종신보험을 들어뿌맀다 이기라. 첫 달 보험료 대납해 줬다 카민서. 두 달도 안 된 일인기라. 그걸로 그 보험 행님이랑 인호 행님이 싸우고 억수로 난리 났는데, 일이 이래 되고 보이 이런 거를 불행 중 다행이라 캐야 되는 긴지…. 사람 운명이라 카는 기 참… 얄궂다.” 형식은 끝까지 내 눈을 제대로 쳐다보지 않은 채, 나와 반대 방향으로 몸을 돌려 길게 담배 연기를 뿜었다. 화장터에서 나는 매캐한 냄새와 형식의 담배 냄새가 섞여 공중으로 흩날려졌다.   오빠가 내 이름으로 남긴 보험금이 꽤 된다는 소문이 퍼지자 이웃들은 그래도 이제 인숙이네는 걱정 없겠다는 말을 대놓고 했다. 동네 사람들은 아들 죽은 보험금으로 포도밭을 사고 새로 집을 지었다며 수군거렸다.  돈으로 위로할 수 있는 죽음이란 없다. 오빠의 보험금을 받았다고 해서 그를 잃은 슬픔이 가시는 것은 아니었다. 위로받기 위해 그 돈을 받은 것 또한 아니었다. 오빠는 죽으면서 보험금을 내 앞으로 남겼고, 우리는 오빠가 살아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돈이 필요했다. 우리는 항상 가난했다. 오빠는 가난하게 자라, 가난하게 살다가 갔고, 우리에게 적지 않은 돈을 남겼다. 보험금 5억과 회사로부터 받은 보상금 1억, 6억이란 돈은, 남은 사람들이 더 이상 가난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는 돈이었다.  남의 집 농사일을 도와주고 품삯을 받으며 살던 엄마의 소원은 자기 명의의 땅과 집을 가지는 것이었다. 내 소원은 학교 앞에 원룸이라도 하나 얻고, 돈 걱정 없이 대학을 다니는 것이었다. 오빠는 형식처럼 볼링장 아들로 태어나 볼링을 실컷 치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했다가 굳어지는 엄마의 표정을 보고 농담이라며 유난스럽게 웃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꿈은 나와 엄마의 소원을 이뤄 주는 것이라고 했다. 이제 세 사람의 소원은 모두 이루어진 셈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중 그 누구도 행복하지 않다. 고시원을 전전하다가 처음으로 내 공간으로 마련한 8평짜리 오피스텔은 아늑했다. 뜨거운 물을 가장 센 수압으로 오래도록 틀어 놓고 머리를 감다가, 나도 모르게 콧노래를 부르는 스스로에게 흠칫 놀라 벌거벗은 몸으로 주위를 둘러본 적이 있다. 나는 이 집에서 행복할 자격이 없다는 말을 되뇌면서 괜히 주눅이 들었다. 오빠는 볼링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볼링을 몰랐더라면, 형식과 어울리지 않았더라면, 그랬다면 어쩌면 지금과는 다른 현실이 펼쳐지지 않았을까 하는 원망은 지금도 떨치기 어렵다. 장례가 끝난 후, 오빠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휴대전화에 남겨진 형식의 메시지들을 읽으며 나는 호흡이 가빠졌다. 형식은 거의 매일 밤 오빠를 자기네 볼링장으로 불러냈다.  행님 오늘 제가 3 대 3 죽이는 멤버들로 조 짜놨습니더. 판돈이 꽤 커예. 이거는 진짜 빅 매치라요. 컨디션 조절 잘하고 오시이소. 드링크 시원하게 해 놓고 기다리께예. 오빠의 휴대전화를 들고 읍내에 있는 형식의 볼링장으로 달려갔다. 볼링장 입구의 커피 자판기 앞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그를 보자마자 따귀를 올려붙였다. 형식이 놓친 종이컵에 담긴 커피가 바닥에 쏟아졌다.  “으. 뜨거버라! 니 미친 거 아이가.”  대답도 없이 볼링 레인 앞에 놓인 공 하나를 집어 들었다. 볼링공을 들고 성큼성큼 걸어가 볼링장 입구의 유리문을 향해 힘껏 던졌다. 창 깨지는 소리와 함께 유리가 산산조각이 났다. “야, 이형식. 너 어떻게 우리한테 이럴 수가 있어?” “머라카노. 니 뭐 잘몬 쳐 묵었나.” “너는 왜 이렇게 멀쩡해? 우리 오빠를 노름에 끌어들여 죽게 해 놓고, 어떻게 이렇게 멀쩡하게 살고 있냐고!” 나는 형식이 가슴팍과 어깨를 주먹으로 치며 소리를 질렀다.  “아이다, 그런 기 아이고. 니가 무슨 오해가 있는 갑는데, 행님은 노름을 하신 기 아이고… 그거는 그냥 친목 도모다. 그라이깐 여기 볼링동호회 회원들끼리 재미로 했던 내기인기라.” “그래? 그럼 이 얘기 경찰서 가서 한 번 해 볼까. 매일 밤 판돈이 백만 원에서 이백만 원씩 오가는 볼링 게임이 내기인지 도박인지 말이야.” “니 말 다했나? 니 그래 말하만 나는 뭐 할 말 없을 줄 아나. 그래도 해…행님이 우리캉 볼링을 칬기 때문에 그 보험을 들게 된 기지. 동네 사람들이 다 칸다. 너거 집은 행님 죽어 가꼬, 그나마 남은 사람들이 살게 됐다꼬. 6억이 뭐 누구 집 아 이름이가?” 나는 형식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다시 레인 앞에 놓인 볼링공 하나를 들어 카운터 방향으로 던졌다. 형식이 자리를 비운 카운터에는 아무도 앉아 있지 않았다. 둔탁하게 볼링공이 떨어지고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곧장 볼링장 밖으로 나와 버렸다. 뒤통수에 대고 거칠게 욕을 하는 형식에게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은 채 입구에 잘게 부서져 있는 유리 조각을 밟으면서 그곳을 빠져나왔다.   밭에서 돌아온 엄마의 바지 자락은 흙투성이였다. 엄마는 입구에 더러운 몸뻬 바지와 토시를 허물처럼 벗어 두고, 반팔 셔츠와 팬티만 입은 채로 거실을 가로질러 욕실로 들어갔다. 못 본 사이 살이 더 빠졌는지 팬티조차 몸뻬처럼 헐렁했다. 엄마는 팬티를 발목까지 내리고 쪼그리고 앉아 욕실 바닥에 소변을 보았다. 욕실 문도 닫지 않고 수채 구멍에 오줌을 누는 엄마의 엉덩이를 나는 얼굴을 찌푸린 채 바라보았다. 변기가 아닌 수채 구멍 앞에 쪼그려 앉아 소변을 보는 엄마의 버릇은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고쳐지지 않았다. 나는 이기 편한데 우짜겠노. 엄마는 늘 말을 분명하게 하지 않고 입안에서 삼키듯이 말했다. 학창 시절, 매일 아침 욕실에 들어갈 때마다 욕실 바닥에서 올라오는 지린내에 숨이 막혔다. 변기 물 내리는 것을 자주 깜빡하는 오빠도 지긋지긋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꼭 서울로 대학을 가야겠냐고 묻는 오빠의 질문에 나는 간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첫 학기 등록금만 마련해 달라고, 그다음에는 어떻게든 내가 알아서 해 보겠다며 겨우 오빠를 설득했다. 오빠에게도 집을 떠날 기회가 있었다. 공고 3학년 때 수원에 있는 반도체 공장에 취직이 되었지만 오빠는 고민 끝에 입사를 포기했다. 아들을 멀리 보내기 싫어했던 엄마의 만류 탓이 컸다. 대신 오빠는 집에서 멀지 않은 막걸리 공장에 취직했다.  “인숙아, 오빠야가 볼링부인 거 알제? 오빠야가 볼링 칠 때 제일 어려븐 기 뭐꼬 카만 스페어(spare) 처리다. 한 번에 스트라이크를 못 시키만 두 번째 공 떤질 때 나머지를 다 넘가야 되거덩. 최고 골치 아픈 기 뭐꼬 카만 핀이 몇 개 남지도 안해 가꼬 뚝뚝 떨어지가 있을 때인 기라. 그거를 스플릿(split)이라 카거덩. 양쪽 끝에 핀이 이래 두 개 뚝 떨어져 있으면 결국 한 개를 내삐릴 수빢에 없더라 카이. 그라이깐, 식구끼리는 서로 붙어 살아야 처리가 쉽다. 뭐 이런 말이다.”  오빠가 한창 볼링에 빠져들던 시기였다. 오빠는 모든 것을 볼링과 연결시켜 이야기하려 들었고, 볼링에 대해 이야기할 때만 환하게 웃었다.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던 나는 그때부터 굳게 다짐했다. 처치 곤란한 스페어, 그래서 포기해야 하는 스페어가 아니라, 아예 다른 레인에 스스로를 세워 보겠다고. 나는 일부러 사투리를 쓰지 않았고, 친구를 깊게 사귀지도 않았다. 이 좁은 동네를 떠나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 가서 온전한 나로 새롭게 살아 보고 싶었다.  아버지가 들고 온 유리단지 속에는 수백 마리의 굼벵이가 서로 몸이 뒤엉긴 채 꿈틀거리고 있었다.  “지금 뭐하자는 거예요? 이런 게 어디서 났어요?” “어데서 났기는? 샀지. 읍내 건강원에 외상 잽히가 샀다. 읍에 나갈 일 있으만 그 집에 돈 쫌 갖다 주라. 구하기 힘든 기라꼬 억수로 생색내더라. 이따가 너거 엄마 오만 이거 씻거가 한 번 찌놓으라 캐라.” “아니, 대체 뭘 믿고 외상을 줘요?” “내 믿꼬 줬겠나? 인숙이 니 인자 부자됐다꼬 소문이 자자하더라.”  “그래서, 좋으세요?” “누가 좋다 카더나. 사람들이 그칸다 카는 기지. 나도 참 기가 차가 말도 안 나온다.” 아버지는 유리단지를 손에 든 채 계속 만지작거렸다. 나는 투명한 단지 표면에 희뿌옇게 찍힌 손자국을 보면서 미간을 찡그렸다.  “얼마를 원해요? 그때 말한 권리라는 게 얼마짜리라고 생각하세요?” “35다.”  “당장 필요한 용돈 말고요. 얼마를 주면, 이 집에서 나가겠느냐고 물은 겁니다. 많이는 못 줘요. 우리 이제 돈 없어요. 엄마도 농협에 빚내서 비료 사고 농사지어요.” “35만 워이 아이라 35키로. 그기 지끔 내 몸무게다.” 예전의 그는 36인치 사이즈 바지를 입을 정도로 체격이 좋았다. “걱정 마라. 오래 안 있는다. 나도 곧 인호 저트로 갈 끼다.” 그의 건강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은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었다. 죽을 병에 걸렸다는 말도 엄살로 보이지만은 않았다. 나는 무슨 병인지 묻지 않았다. “그러면서 약은 왜 구해다 먹어요? 무슨 염치로 이래!” “하루를 살아도 쫌 덜 아프까 싶어가 칸다. 내가 이거 한 빙 사 묵는 것도 아깝나? 인호 글마가 살아 있었으만, 내를 이래 멸시하지는 않았을 끼다. 적어도 다 죽어 가는 아바이한테 이래 하는 거는 갱우가 아이라 카이!”  아버지가 눈을 희번덕거리며 소리쳤다. 우윳빛 투명한 몸체에 붙은 검은색 대가리를 뒤흔들며 유리벽을 타고 있는 굼벵이들처럼 마지막 발악을 하는 것 같았다.  “오빠 이름 입에 올리지도 말아요. 오빠가 어떻게 살다가 죽었는지 알기나 해요?” 더 독한 말로 쏘아 주려는데, 아버지가 갑자기 배를 움켜쥐며 주저앉았다. 놀라 엉거주춤 팔을 뻗었다. 그는 내 손을 뿌리치고 욕실로 달려갔다. 푸른색 타일이 깔린 욕실 바닥에 검붉고 끈적끈적한 피가 흩뿌려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러닝셔츠 앞섶을 붉은 피로 흥건하게 적신 아버지가 욕실에서 나와 방으로 들어가자, 나는 바지를 무릎까지 걷고 욕실로 들어가 샤워기를 틀었다. 물을 세게 틀어서 바닥의 끈적끈적한 핏자국을 지우다 말고, 나는 쪼그려 앉아 울었다. 오빠였더라면 아버지를 다시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오빠가 돌아와 어서 이 스페어들을 처리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방으로 들어가 옷장 문을 열었다. 오빠의 방에는 그가 쓰던 물건과 옷가지 들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내가 갖다 버린 오빠의 유품들을 엄마는 모두 다시 주워 왔다. 오빠가 입던 옷들 사이로 얼굴을 파묻어 보았다. 오빠에게서 늘 나던 냄새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담배 냄새와 시큼한 막걸리 냄새가 섞여서 나던 찌든 내가 좀약 냄새와 함께 코끝에 돌았다. 외투 주머니에서는 따스한 온기마저 전해졌다. 오빠의 점퍼 주머니에 하나하나 손을 넣어 보다가 손바닥 크기의 수첩 하나를 발견했다. 수첩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볼링에 관한 메모밖에 없었다. PVC 재질의 수첩 커버에는 ‘제일볼링장 이용권’이 스무 장 남짓 끼워져 있었다.  책상에 앉아 수첩을 첫 장부터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수첩은 각 장마다 오빠가 치른 게임에 관한 기록으로 채워져 있었다. 오빠는 자신이 얻은 점수와 딴 돈 혹은 잃은 돈을 먼저 기록하고, 그날 컨디션과 치러 낸 게임의 보완점들을 짤막하게 적어 놓았다. 돈을 잃은 날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작은 액수라도 잃은 날이면, 처리하지 못한 스페어의 위치와 공의 각도까지 그려 가면서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려 들었다. 나는 모르는 볼링 용어를 인터넷 검색 창에서 찾아보면서까지 오빠의 게임을 내 나름대로 복기해 보려 애썼다. 오빠는 파워모션 볼링을 선호했다. 5스텝의 순서로 빠르게 어프로치 라인을 통과해 공의 스피드와 파워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 방식이었다. 오빠는 되도록 1회 차 투구에서 스트라이크 존을 공략해 성공시켜야 한다고 수첩에 써 놓았다. 스페어에 대한 부담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오빠가 정신력이 강한 선수는 아니었던 듯하다. 첫 투구에서 스트라이크를 성공하지 못하면, 2회 차 투구에서는 미스가 잦았다. 그럼에도 그의 에버리지가 높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더블(두 번 연속 스트라이크)과 터키(세 번 연속 스트라이크)를 심심치 않게 보여 줄 정도로 스트라이크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수첩 곳곳에 빨간색 글씨로 쓰인 ‘일타열피!’라는 문구는 계산할 줄 모르는 오빠의 삶을 그대로 보여 주는 것 같았다. 막걸리 상자를 들 때에도 오빠는 남들처럼 한 상자씩 드는 게 아니라 두세 상자를 한꺼번에 겹쳐 옮기곤 했다. 상가에 조문 온 회사 동료들은 남들보다 일 처리가 빨랐던 오빠를 좋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게 일을 허겁지겁 끝내고 그가 달려간 곳은 볼링장이었다…. 오빠는 볼링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무언가를 지독하게 사랑한다는 것은,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그것에 매달릴 각오가 필요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그 무엇도 사랑할 수 없는 인간이었다.  아침 느지막이 거실로 나가자 엄마는 집에 없고, 아버지의 방문 앞에는 빈 죽 그릇이 놓인 개다리소반이 나와 있었다. 나는 늦은 아침을 먹고 읍내의 볼링장으로 나갔다. 카운터 앞에서 쿠폰을 내밀자, 형식은 두 눈이 동그레져서 물었다. “니 이거 어데서 났노?” “이 쿠폰 너네 볼링장 꺼 맞지? 240 사이즈로 줘.” 나는 대답 대신 건조한 목소리로 내 할 말만 늘어놓았다. 형식은 순순히 볼링화를 꺼내 주었다. 푸른색 쿠폰 한 장을 내고 하루 종일 볼링을 쳤다. 쿠폰 한 장당 한 게임을 이용할 수 있다는 규칙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다섯 게임에서 열 게임은 족히 쳤다. 신발 대여료도 따로 내지 않았다. 형식은 그런 내게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평일 낮 시간의 볼링장은 한산했다. 오빠의 옆에서 구경한 적은 있었지만, 직접 볼링을 쳐 본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부러 볼링공을 세게 바닥에 던지듯 굴렸다. 레인 위로 볼링공을 떨어뜨릴 때마다 쿵 하는 소리가 나며 발끝에 진동이 와 닿았다. 미치광이 같으니라고. 이게 뭐라고, 수첩에 공부를 해 가면서까지 쳐. 대단한 박사 나셨어. 그 시간에 집에 일찍 와서 잠이나 잤어야지. 나더러 걱정 말라고 자기가 다 책임진다고 하더니, 결국 이렇게 나한테 다 떠넘기고 혼자 떠났나. 공은 레인 옆의 도랑같이 생긴 회색 거터 속으로 들어가 떼굴떼굴 굴러가기 일쑤였다. 잠자코 지켜보고 있던 형식이 슬그머니 옆에 다가와 이죽거렸다.  “그래 가꼬 바닥이 뿌사지겠나. 더 씨기 쾅쾅 떤지 뿌라. 아이고 답답아래이. 그래 하는 기 아이고….” 형식이 내 손과 어깨를 붙들고 볼링공 잡은 자세를 교정시켜 주려 했다. 나는 볼링공을 손에 든 채로 형식을 노려보았다. 순간 형식은 움찔한 기색을 보이며 다시 카운터로 돌아갔다. 오일이 덧발라져 번들거리는 레인 위로 나는 폭탄을 던지듯 공을 던졌다. 오빠에게 등록금을 부쳐 달라고 했던 내 발등을 볼링공으로 찧어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옆 레인에서는 교복을 입은 학생 무리들이 시끄럽게 순서를 바꿔 가며 볼링을 치고 있었다. 볼링공이 굴러가 핀에 부딪칠 때마다 그들은 요란스럽게 박수를 치며 깔깔 웃어 댔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자리를 정리하고, 신발을 갈아 신었다. 카운터에 신발을 반납하며 힐끗 학생들의 전광판을 들여다보았는데, 그들은 10프레임이 아니라 12프레임으로 게임을 마무리 짓고 있었다. 나는 형식에게 시비조로 말을 붙였다.  “쟤네들은 왜 열 번이 아니라 열두 번씩 쳐? 내가 쿠폰 손님이라고 홀대하는 거야?”  형식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니는 여어가 노래방맨치로 사장이 뽀나스 프레임 더 주고 싶으만 줄 수 있고 그런 덴 줄 아나? 그기 아이라 쟈들은 10회 차 떤질 때 스트라이크를 해 가꼬, 뽀나스 프레임을 받은 기다.” “보너스?”  “하긴, 니는 맨날 개판 치는 점수만 받아 가꼬 그런 기 있는 줄또 몰랐겠지. 인호 행님이 진짜 뽀나스 게임의 명수였는데…. 10회 차를 스트라이크 때리 가꼬 두 번 더 뽀나스 투구를 받아 뿌리민 당해 낼 사람이 없었제.” 형식은 혀를 끌끌 차며 말을 이어 나갔다. “나는 그때 저 행님은 진짜 운빨 쥑인다 생각했거덩. 스트라이크를 치도 우째 저 순간에 딱 성공시키민서 뽀나스 투구를 받아 가까. 행님이 내한테 자주 했던 말이 인생 끝까지 가봐야 안다꼬, 두고 봐라 늘 그캤는데….” 오빠는 운이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더 볼링의 운에 집착했는지도 모르겠다. 탁월한 실력에 운까지 따라 준다고 치켜세워 주는 주변 사람들의 부추김이 졸린 눈을 부비며 공을 던지게 하는 힘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빨간색 팬티와 체크무늬 양말을 신은 날이 제일 점수가 좋다며 속옷과 양말 색깔까지 메모해 놓은 오빠의 수첩을 떠올리며 나는 한숨을 쉬었다.  볼링공이 처음부터 끝까지 일직선으로 곧게 굴러가는 경우는 드물다. 공이 휘어지는 지점인 후킹 포인트까지 계산에 넣어야 완벽한 스트라이크를 이뤄 낼 수 있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오빠는 언젠가는 인생의 훅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던 걸까. 그러나 오빠가 펼치던 인생이란 게임은 너무 빨리 끝나 버렸다. 보너스는커녕 주어진 프레임의 점수 칸을 제대로 채워 보지도 못한 채 종료되어 버린 것이다.   엄마와 아버지를 앞세우고 포도밭을 향해 걸었다. 포도송이를 종이 포장하는 작업을 해야 했다.  “그 집은 너거 아이라도 일손 안 많나. 오늘 우리도 해야 되는데, 우짜노. 내일은 약 치야 되는 날인데…. 오늘은 꼭 우리 밭에 와 줘야 된다꼬 내가 말 안 하더나…. 어데, 내 말은 그기 아이고….” 아침에 일어나 거실로 나오자 엄마는 전화기를 붙들고 여기저기 전화를 해대고 있었다. 약속을 어긴 건 상대방인 것 같은데, 엄마는 화를 내지도 못하고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쩔쩔맸다. 오기로 했던 이들은 엄마와 함께 조를 짜서 인근의 과수원과 비닐하우스로 일당 벌이를 다니던 아주머니들로, 오빠의 장례식장에 달려와 가장 큰 목소리로 곡을 해 주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엄마가 포도밭을 사면서 그들의 태도는 묘하게 변해 갔다. 유월 초순, 포도알이 새파랗게 영글 즈음이면 포도송이를 종이로 감싸 줘야 하는데 시기를 놓치면 병충해나 햇빛, 농약으로 포도가 상할 수 있다. 답답한 마음에 내가 도울 테니 남한테 아쉬운 소리하지 말라며 큰소리를 쳤다. 방 안에 틀어박혀 숨죽이고 있던 아버지도 눈치를 보며 나갈 채비를 했다. 아버지나 나나 밭일을 안 해 봤기는 마찬가지였다. 생각보다 일이 어렵지는 않았다. 다만 온몸에 땀이 줄줄 흐를 정도로 더운 게 문제였다. 나는 엄마와 예닐곱 걸음 떨어져 혼자 일했고, 아버지는 엄마와 한 조를 이루어 일했다. 아버지가 포도송이를 종이로 감싸면 엄마가 옆에서 그 위를 철끈으로 묶었다. 너무 쫄리게 묶으만 안 된다 카이, 포도도 숨을 쉬이야제. 엄마가 종이를 건네주면서 하는 말에 불현듯 기억하기조차 싫은 오빠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랐다.  입관 전 마지막 인사를 하는 시간이었다. 피투성이로 병원에 실려 왔을 때와는 달리 깨끗한 모습으로 분까지 바르고 누워 있는 오빠의 모습은 차라리 편안해 보였다. 사고 직후 끔찍한 모습을 보지 못했던 엄마는 오빠를 쓰다듬으면서 통곡을 했다. 그리고 장례사를 붙들고 염해 놓은 오빠를 가리키며 애원하듯 말했다. “우리 아는 답답은 거 싫어하는데, 너무 꽉 쫄라 놨다. 옷도 찡기는 거 싫다 캐가 내가 맨날 한 치수 큰 걸로 사주고 캤는데…. 어차피 태울 꺼 아이가. 쪼매만 풀어 주만 안 되겠나. 우리 인호는 저래 답답은 거 싫어한다 안 카능교.” 목구멍에서 넘어온 뜨거운 기운을 억지로 삼키고 있는데, 아버지와 엄마가 나누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지난 삼십여 년간 아무 탈도 없이 서로 의지하면서 산 금슬 좋은 부부인 양, 같은 포도송이를 붙든 채 도란거리는 그들의 모습에 허망한 생각마저 몰려왔다. 엄마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이곳에 내려와 있는 내가 한심했다.  “니는 와 하필이믄 포도밭을 샀노. 쪼매난 하우스 같은 거를 샀으만 차라리 좀 핀하고 나슬 낀데.” “우리 인호가 포도를 제일 안 좋아했능교. 맨날 넘우 밭에서 얻어 가꼬 알매이 쪼매난 것만 믹인 기 계속 마음에 걸린다. 제사상에 제일 큰 걸로 올리 줄라꼬 그캤제.”  오빠 이야기가 나오자 엄마는 별안간 땅바닥에 주저앉아 꺽꺽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몸속 깊은 곳에서 토해 내는, 비명에 가까운 울음이었다. 한편으로, 별안간이라는 표현을 쓰기에는 철퍼덕 주저앉아 우는 품새가 너무나 익숙하고 자연스러워 보였다. 처음 있는 일이 아닌 듯했다. 어쩌면 엄마는 목 놓아 울기 위해서 이 밭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는 차라리 속 시원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웅얼거리면서 속의 말을 삼키던 엄마였다. 이렇게 울기라도 해야 썩은 포도알처럼 문드러진 가슴속 응어리가 조금이라도 풀리지 않겠는가. 주변은 고요했다.  아버지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니 와 이카노. 일나 봐라. 동네 사램들이 들으만 머라카겠노. 내가 니 뭐 우째 했는 줄 알겠다. 동네 우사시럽구로.” 그는 진땀을 흘리며 엄마에게 다가갔다. 엄마의 팔을 붙들고 일으켜 세우려고 했지만 아버지의 팔뚝은 엄마의 절반에 못 미칠 정도로 앙상했다. 엄마를 일으키려던 아버지가 오히려 휘청거리면서 흙바닥에 넘어졌다. 아버지는 스스로 일어날 기력조차 없는지 거칠게 숨을 내쉬면서 네 발 짐승처럼 엎드려 있었다. 나는 눈을 찡그린 채, 쓰고 있던 선캡을 벗어 얼굴에 부채질을 했다. 포도나무의 높이가 낮아 똑바로 서지도 못하고, 허리를 숙인 엉거주춤한 자세로 연신 부채질만 해댈 뿐이었다. 숨이 막히게 더웠다. 엄마의 울음소리가 조금씩 잦아지고 있을 무렵 아버지가 땅바닥에 카악하고 가래침을 뱉었다. 길고 끈적끈적한 가래침이 끊어지지 않고, 그의 아랫입술에서 덜렁거렸다.   오빠는 죽기 전날까지 도박판을 벌였다. 수첩을 절반쯤 넘기다가 나는 게임일지의 패턴이 이상하게 변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가 생의 막바지에 빠져 있었던 게임은 단순히 볼링 에버리지를 얼마나 많이 내는지를 다투는 게 아니라 누가 점수를 제일 적게 내는지로 승부를 겨루는 게임이었다. 그렇다고 공을 레인 옆의 거터 구역에 빠뜨려서도 안 되었다. 핀 스폿까지 공을 굴리되, 가장 적게 핀을 쓰러뜨리는 자가 돈을 따갔다는 점에서 실력보다는 운이 더 중요한 투전판이나 마찬가지였다. 오빠의 공은 킹핀과 헤드핀을 아슬아슬하게 잘 비켜나가 많은 수의 핀을 남겼다. 형식의 말에 따르면, 점수를 많이 내는 오빠를 견제하기 위해 점수를 적게 내는 사람이 승자가 되도록 룰을 바꾼 것이었는데, 오빠는 의외로 빨리 새로운 게임에 적응했다. 투구 자세와 쓰던 볼을 바꾼 효과가 컸다. 5스텝 대신 4스텝, 평소 쓰던 16파운드의 볼 대신 13파운드 볼을 쓴다. 거친 필체로 채워진 오빠의 메모는 꼼꼼했고 진중했다. 배치도까지 그려 놓고, 검은색으로 표시된 10번 핀 하나만 안정적으로 아웃시키기 위한 공의 동선을 짰다. ‘훅 볼’이라고 동그라미 쳐진 단어 옆에는 별모양 그림이 여러 개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스트레이트로 곧게 전진시키다가 핀 앞에서 오른쪽 바깥으로 볼의 커브를 유도해서 10번 핀을 날리는 전략이었다.   ⓻ ⓼ ⑨ ❿   ⓸ ⓹ ⓺ ↱    ⓶ ⓷ ↗     ⓵ ↗      ↱      ↑ ‘뉴 게임’이라고 이름 붙인 그 게임의 판돈은 날이 갈수록 더 커지고 있었고, 그에 비례해 메모에 담긴 욕망의 크기도 기묘하게 불어났다. 사고 즈음의 오빠는 팬티 한 장을 갈아입는 데에도 예민하게 굴어 엄마가 애인이 생겼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게임 한 판에 한 달치 월급이 오갔으니 그럴 만도 했다. 다른 핀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큰 헤드핀(1번 핀)과 킹핀(5번 핀)을 비켜 지나가 단 하나의 핀만 깨끗하게 날려야 한다고 휘갈겨 놓은, 낯부끄러울 정도로 진지하고 치열한 메모로 빼곡하게 채워진 그 수첩을 나는 마당으로 들고 나와 오빠가 남긴 잡동사니와 함께 불태웠다. 맞춤법도 제대로 몰라서 ‘핀 캐리를 경게하자.’라고 빨간 글씨로 강조해 놓은 오빠의 흔적을 나는 볼품없는 물건을 버리듯 내팽개쳤다. 내 서울살이를 지탱했던 것이 오빠가 쓰러뜨리지 않은 스페어스(spares)라는 걸 잊고 싶었다. 까맣게 내려앉은 잿더미를 발로 밟고 침을 퉤퉤 뱉었다. 수첩에서 빼낸 몇 장의 쿠폰이 손 안에서 구겨졌다.  화가 치솟으면서 무언가 던지고 부숴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볼링장에 갔다. 이 집에서 머무른 대부분의 시간이 그런 나날이었다. 마지막 남은 쿠폰을 내고 벤치에 앉아 볼링화를 갈아 신으며, 나는 심호흡을 했다. 마지막으로, 가장 점수를 적게 내는 볼링을 쳐 보기로 했다.  오른쪽 끝의 10번 핀을 노리고 던졌더니 볼링공은 손에서 떨어지는 족족 레인 밖으로 굴러가기 바빴다. 한 번은 10번 핀에 공이 닿긴 닿았는데, 스치기만 했는지 핀이 살짝 기우뚱하는 데 그치고 오뚝이처럼 말짱하게 섰다.  “으이고, 속 터지 죽겠네. 니는 우째 핀을 맞차 놓고도 점수를 못 내노? 이거 끼고 한번 해봐라.” 형식이 볼링 아대라며 낯선 장비를 내밀었다. 광택이 나는 단단한 재질로 이루어진 붉은 아대는 아이언맨의 갑옷 같았다.  “핀이 맞으만 머하노. 손모가지에 히마리가 없어 가꼬, 핀이 쓰러지지를 안 하는데. 이거 차고 한 번 해 봐라. 훨씬 더 힘이 잘 들어갈 끼다.” 나는 웅얼거리듯 작게 말했다. “딱 하나만 아웃시키고 싶어. 아주 깨끗하게.” 형식은 내 팔에 억지로 아대를 채우느라 무슨 말인지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한 번에 다 되는 기 아이다. 첨부터 우째 깨끗하이 다 처리하겠노. 부담 가질 필요 엄따. 공짜로 주는 거 아이다. 빌리주는 기다. 신발하고 같이 반납하만 된다.” 단단한 아대를 착용하자 팔목부터 팔꿈치까지 깁스를 한 느낌이었다. 공의 구멍에 손가락을 끼우고 천천히 스텝을 밟았다. 확실히 공이 뻗어 가는 기세가 이전보다 좋았다. 10번 핀을 향해 스트레이트로 나아가던 공이 핀 스폿 앞에서 갑자기 왼쪽으로 휘어지면서 1번 헤드 핀을 정확하게 때렸다. 헤드 핀이 넘어지면서 킹 핀을 때렸고, 또 킹 핀이 주변의 핀들을 쓰러뜨렸다. 스트라이크였다. “브라보! 내가 말 안 하더나. 아대 끼면 힘을 팍 받아 갖고 점수가 더 나올 끼라고. 이야, 핀 캐리 직이네. 일단 공을 쌔리삤다 카만 저런 반발력으로 핀 캐리가 나와 줘야 속이 씨원해진다 카이. 아대가 완전 임자 만났는 갑다.” 형식은 박수를 쳐 가면서까지 너스레를 떨었다. 스트라이크를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손끝에 얼얼하게 느껴지는 감각이 이상한 희열을 불러일으켰다. 공에 맞은 핀이 튀어 오르는 순간, 핀과 핀끼리 부딪치며 내는 소리의 경쾌함이 내 몸마저 가볍게 만들어 버리는 느낌이었다. 나는 쓰러진 핀들이 쓸려져 나가고 새로운 열 개의 핀으로 리셋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얼얼한 손끝과 팔을 단단하게 감싸고 있는 아대를 어루만졌다.  볼링핀 간 중심에서 중심 사이의 거리는 30.48㎝이다. 각각 떨어져 있지만 완전히 독립적으로 서 있는 것은 아니다. 무너지는 순간에는 서로의 영향을 강하게 받을 수밖에 없다. 도망가려 해 봤자, 강한 힘이 덮쳐 버리면 결국 한꺼번에 무너지게 마련이다.  반환구가 방금 전 내가 던졌던 10파운드짜리 남색 공을 뱉어 냈다. 오일이 표면 곳곳에 묻은 공을 헝겊으로 닦으며 오빠를 생각했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 힘껏 굴려도 결국 같은 자리로 다시 돌아오는 이 볼링공처럼 매일 새벽 수백 상자의 막걸리를 싣고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낯선 도시까지 가 닿았다가 결국 제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오빠의 삶이 이제야 묵직하게 다가왔다. 퇴근 후 지친 몸으로 무거운 볼링공을 던지며 그가 얻어 내고 싶었던 보너스는 무엇인지 나는 계속 외면하려 들었다. 그가 죽고 나서야 그것을 더 고통스럽게 들여다보게 된 것은 아마 그 대가일 것이다.  눈물을 들키지 않으려 벤치에 앉은 형식과 반대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희뿌옇게 펼쳐진 눈앞에는 다시 제자리를 찾은 열 개의 볼링핀이 전투 태세를 갖추고 서 있었다. 넘어진 핀이든 남은 핀이든 시간이 지나면 결국 모두 쓸려 나가고, 새로운 프레임이 시작된다. 그것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게임의 법칙이었다. 나는 보너스 프레임에 선 기분으로 허벅지에 힘을 준 채 볼링공에 세 손가락을 끼우고 어프로치 라인에 섰다.
  • 커피, 운동선수 지구력 향상에 도움 입증 (연구)

    커피, 운동선수 지구력 향상에 도움 입증 (연구)

    모닝커피나 모닝티 한잔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나른한 기분을 쫓는 것뿐만 아니라 신체 활동력을 높이는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됐다. 특히 운동선수들에게는 커피가 주는 효과가 특히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조지아대학교 연구진은 논문 9편과 600건 이상의 관련기사 중 카페인을 복용한 선수와 그렇지 않은 선수를 비교한 부분을 발췌해 재분석했다. 그 결과 운동을 하기 1시간 전, 몸무게에 따라 3~7㎎의 카페인을 섭취한 운동선수는 그렇지 않은 운동선수에 비해 지구력이 평균 24%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사이클이나 달리기 등 높은 지구력을 필요로 하는 운동에서 카페인을 섭취한 선수들은 그렇지 않은 선수에 비해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또 운동선수들에게 커피를 마신 뒤 운동을 하게 한 뒤 자신이 힘들다고 느끼는 정도를 수치로 표현한 운동자각도(RPE)를 체크한 결과, 커피를 마시면 운동 자각도가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를 이끈 사이먼 히긴스 박사는 “커피를 마시면 마치 카페인으로 만든 알약을 먹는 것과 마찬가지로 운동선수들의 지구력 및 기록 향상에 도움이 되는 것을 확인했다”면서 “다만 커피 원두나 제조법에 따라 카페인의 함량이 달라지기 때문에, 자신의 체질 및 체급에 맞춰 적정한 양을 섭취하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번 연구결과는 미국의 ‘국제스포츠영양ㆍ운동대사저널’(International Journal of Sport Nutrition and Exercise Metabolism) 최신호에 실렸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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