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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명목재 땅 18년만에 되찾아/법원,“신군부의 몰수 무효” 판결

    60년대까지 국내 10대 재벌에 속했다가 80년대 들어 신군부에 의해 해체된 부산 동명목재의 옛 사주측이 소송 끝에 재산 일부를 되찾았다. 서울지법 민사합의41부(재판장 羅鍾泰 부장판사)는 19일 동명목재 姜錫鎭 사장(84년 사망)의 아들 政男씨와 딸 2명이 신군부에 의해 몰수된 재산을 돌려달라며 부산시와 관세청 등을 상대로 낸 소유권이전등기 말소 청구소송에서 “피고는 원고측으로부터 넘겨받은 35억여원 상당의 토지 3필지를 돌려주라”면서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다.
  • ‘고위공직자 비리 조사처’ 신설

    ◎黨政 부패방지법 내주 확정… 5급 이상 재산등록/공직자 재산등록 실사 감사원으로 일원화 정부와 여당은 공직비리를 지속적으로 단속하기 위해 검찰 조직 내에 ‘고위공직자 비리조사처’를 신설하고 조사처장의 임기제 등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내용의 부패방지기본법 제정안을 내주초 당정협의를 통해 최종확정할 방침이다. 당정은 이에따라 검찰과 별도로 부패방지를 위한 특별수사기구(특별검사제 도입) 설치는 백지화하기로 했다. 당정은 또 부정공직자의 취업제한 규정을 신설하는 한편 현행 공직자 등록재산에 대한 실사권을 감사원으로 일원화할 방침이다. 당정은 또 재산등록 의무 공직자를 현행 4급이상에서 5급이상으로 확대키로 했으며 등록 예금액도 현행 1,000만원 이상에서 500만원 이상으로 하향 조정키로 했다. 당정은 내부고발자 보호규정을 신설하는 대신 고발자의 성실의무를 규정, 고발이 정치적이나 사사로운 목적으로 남용되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한편 제보의 처리기관을 감사원으로 일원화할 방침이다. 국민회의 南宮鎭제1정조위원장은 13일 “기존 사정기관이 정치적 중립성을 견지하는 상황에서 검찰과 별도의 특별수사기구를 설치하는 것은 오히려 검찰중립성을 훼손하고 조직을 2원화시킬 우려가 크다”며 “대신 비리조사처장의 임기를 보장하는 등 중립성 확보방안을 제도적으로 마련키로 했다”고 밝혔다. 南宮 위원장은 또 “현행 공직자 윤리법과 공무원 범죄에 관한 몰수특례법 등을 부패방지법으로 흡수하는 한편 내부비리 고발자 보호규정과 자금세정(세탁)규제와 예산부정 방지 관련 조항을 종합,단일법으로 만들겠다”고 덧붙였다.
  • ‘98민중대회/요구는 ‘과격’ 질서는 ‘만점’

    ◎여의도 한강둔치서… 새정부 출범후 최대 집회/“재벌 해체” “부패정치인 재산 몰수” 큰목소리/경찰과 충돌없어 성숙한 집회문화 과시 9일 하오 여의도 한강둔치에서 열린 ‘98 민중대회’는 참가 인원와 단체면에서 새 정부가 출범한 이후 최대 규모의 집회다.민주노총 전교조 참여연대 등 60개 시민사회단체의 회원 2만5,000여명이 참석했다.행사를 주최한 단체들은 집회에 7만여명이 참석했다고 주장했다. 요구와 주문도 다양했다.10대 요구안에는 ‘IMF를 불러들인 경제파탄 책임자 처벌’에서부터 ‘민주열사 특별법 제정’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현안들이 망라됐다.주된 기류는 사회적 개혁이 미진하다는 것이었다.“정부가 요구안을 수용하지 않으면 오는 12월 중순에 제2차 민중대회를 전국 동시다발적으로 치르겠다”는 경고의 메시지도 나왔다. 참가자들은 다소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지키며 다른 단체의 주장을 진지한 모습으로 경청하고 박수를 보냈다.행사를 전후해 경찰과의 충돌도 없었다. 첫번째 기조연설자로 나선 민주노총 李甲用 위원장은 “60만 조합원은 불평등한 IMF협약 폐기를 통한 경제주권회복과 경제파탄의 주범인 재벌해체,부패관료·정치인 재산몰수 등을 위해 앞장 서겠다”고 말했다. 전국농민회 총연맹 李수금의장은 “농산물 저가격정책과 농산물 수입개방 등 정부의 잘못된 농정으로 농민들은 IMF위기에서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정부는 농가부채 해결과 농축산물 가격보장 및 소득보장 등 농가파산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국빈민운동연합준비위원회 梁연수위원장은 “실업대란으로 노점상과 노숙자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현실에서 소외된 빈민들에 대한 정책은 거의 없다”면서 “관료들이 군림하고 재벌 위주의 정책을 펴는 것을 더이상 두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오는 11일 총파업을 결의한 전국민주택시노동조합연맹 노조원 1,200여명은 “사납금제도는 시민에게 불친절하고 난폭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밖에 없었던 제도였다”면서 “택시기사에게 안정된 작업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은 월급제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이들은 200여명의 대표자지문이 찍힌 플래카드 들고 나와 단결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사전행사로 전국교사대회를 개최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올바른 교육개혁’과 ‘교육노조 법제화’ ‘인간화교육’ 등을 촉구했다. 이들은 개회사를 통해 “교육환경 개선없이 경제논리에 의해 차등보수제, 수습교사제,정년단축 등을 도입하는 정책은 학교 교육을 더욱 황폐화시킬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대회장 소식과 연설내용,현장모습은 인터넷 진보네트워크센터의 홈페이지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 됐다.
  • 통감부와 대결(다시 태어난 ‘대한매일’:8)

    ◎침탈·탄압에 맞대응/매국노·침략자 규탄/신문지법 등 공포 맞서 논설 통해 간담 서늘케/민족혼 고취·항일 주도 1906년 1월31일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초대 통감으로 하는 통감부가 발족되면서 국내 언론은 이전과는 판이한 양상을 띠게 된다. 각국 공·영사관의 철수를 강행,열강의 모든 권익을 빼앗은 통감부는 매국내각을 구성한 뒤 본격적인 한국침탈에 걸림돌이 되는 언론에 대한 탄압에 돌입했다.1906년 4월부터 통감부령 제10호로 언론활동의 통제조항을 둔 보안규칙 시행에 들어간 것을 필두로 1907년 7월24일 李完用 내각으로 하여금 ‘광무신문지법’을 공포토록 해 본격적인 항일 민족지 죽이기에 들어간 것이다.대한매일신보도 1908년 4월 개정된 이 신문지법에 따라 결국 철퇴를 맞고 말았다. 이 시기 통감부는 대한매일에 대해 유달리 집중적인 압력을 가해왔다.대한매일이 을사조약 이후 항일의 필치를 높여간 만큼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었다.이러한 상황에서도 대한매일은 ‘영국인 사주’(裵說)덕에 치외법권의 보호를 받아 날카로운필봉을 어김없이 휘둘렀고 매국자들을 예외없이 고발했다.그러나 결국 신문지법을 대동한 일제의 탄압에 한껏 타오르던 항일 민족혼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1906년의 보안규칙 시행이나 1907년의 신문지법은 처음엔 국내에서 발행되는 민간신문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그러나 통감부는 사사건건 물고늘어지는 명의의 대한매일을 그냥 놓아둘 수 없었다.따라서 1908년 4월29일 신문지법을 개정,대한매일의 기세를 꺾는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신문지법은 일본의 통감정책에 저해되는 일체의 언론에 대해 발행정지권을 비롯해 벌금형과 체형,신문 인쇄기기 몰수 등 강력한 처벌조항을 담았다.더욱이 1907년 7월24일 신문지법을 발포한지 닷새만에 집회·결사를 금지하는 보안법이 공포되고 31일 한국군대까지 해산된 것을 보면 대한매일을 비롯한 항일 민족지에 대한 통감부의 탄압이 얼마나 치밀한 것이었나를 알 수 있다. 이 법은 1910년 한일합병이 강행된 뒤에도 계속 발효됐고 해방후 1952년까지 존속한 식민지 악법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가장 날카로운 논봉을 들고 나선 것은 역시 대한매일이었다.정부가 허수아비로 전락한 마당에 숱한 애국지사들은 자유로운 필치를 유지하는 대한매일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통감부와 관련한 일련의 논설들은 이같은 사실을 명확히 보여준다.통감부 설치 직후인 1906년 2월9일자 1면 논설 ‘통감(統監)’과 3월9일자 1면 논설 ‘이등후(伊藤侯)’는 통감부 설치의 불법성을 비난한 대표적인 예다.“일본이 이웃나라 안에 자기나라 대표를 파견해 권력을 장악함은 옳지 못한 일”(統監),“한국의 내정은 일인이 지휘하고 외무는 동경에서 관할하니 한국의 독립이란 어디 있느냐”(伊藤侯). 또 8월15일자 논설 ‘한국과 일본’에선 “이등박문은 현존 한국의 노예같은 정부 대신을 지휘해 모든 일을 자기가 집행함이 한국을 일본에 정복된 국민의 지위에 떨어뜨리는 제반 악계를 꾸몄다”고 폭로했다.1907년 1월16일자에는 “을사5조약을 승인하지 않으며 열국의 보호를 요청한다”는 고종의 칙서를 발표해 침략자들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친일정부가 발행하는 관보 게재를 중단한 것도 획기적인 일이다.법령공포와 정부시책 홍보가 내용인 관보는 한일합병 때까지 발간된 대부분의 신문들이 중요 내용을 전재할만큼 큰 뉴스원이었고 신문보급과도 깊은 관련이 있었다.그러나 일본이 득세하면서 자주성과 독립성을 잃게 됐고 관보기사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익어갔다.대한매일은 마침내 1908년 3월6일자 1면 논설 ‘관보정게(官報停揭)’에서 “관보의 내용이 과연 한국사람의 관보인가”라고 쓰고 이날부터 관보란을 폐지했던 것이다. 이처럼 거듭되는 배일 논조에 격분한 통감부는 마침내 裵說 타도를 결의하고 나섰고 대한매일은 일제의 집요한 탄압에 강하게 맞선 裵說과 논진(論陣)이 추방 혹은 구속되면서 서서히 시들어갔다. ◎신문사들의 수난/주요 재원 신문대금 체납 ‘눈덩이’… 경영난/社告로 납부 독촉… 日帝 탄압에 곡필 보도도 통감부의 언론탄압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국내 언론은 심각한 경영난을 겪게 된다. 사전검열에 따른 기사삭제,반포금지 및 정간이횡행하자 자연 독자들의 신뢰감이 떨어지기 시작했다.따라서 당시의 신문,특히 민족지들은 광고수입이 적은데다 주요 재원인 신문대금의 체납이 많아 극심한 어려움을 겪었고 이에 따라 자유로운 논조를 펴지 못하는 지경에 빠졌다. 실제로 내부 경무국이 펴낸 ‘고문경찰소지’(1910년 간)에 따르면 통감정치 첫해인 1906년 한 해만 하더라도 황성신문은 7건,만세보는 6건,제국신문은 13건이나 기사를 삭제당했다.또 1909년 ‘경찰사무개요’와 ‘조선통감부 시정연감’은 발매반포금지 및 압수처분의 경우 1908년 64건,1909년은 137건으로 기록하고 있다.대한매일만 하더라도 1909년 한 해 동안 발매반포금지 14건에 모두 1만6,314부를 압수당했다. 이같은 탄압이 전개되자 신문 운영에 극심한 어려움을 겪기 시작한 민족지들은 대중적인 호소에 적극 나섰다.사고와 잡보를 통해 독지가의 성원과 신문대금 납부를 촉구하기에 이른 것인데 그 사정이 매우 급박했음을 알 수 있다. 황성신문은 “신문대금을 빨리 지불하는 사람은 문명인이라”는 이례적인 사고를 냈고 어떤 대신이 체납금을 보내왔다는 사실을 기사로 보도하기까지 했다.사설에서도 “독자가 신문대금을 지불치 않으므로 신문을 발행 못한다”고 쓰고 있다. 대한매일도 사고에 “본사가 이전하겠는데 수리 정돈에 경비가 매우 모자라니 대금을 송치해주기 바란다”는 글을 올렸다.심지어는 “각 지점에서 본사 대금 체납이 많은데 평양지점은 미납급이 300여원에 달했으니 본사경비를 어떻게 충당할 수 있겠는가”라며 재촉하는 사고를 내기도 했다.한 잡보에는 “재정난으로 휴간한 제국신문의 복간을 위해 각 부인회에서 보조금을 모집하기로 했다”는 글까지 올린 것을 보면 당시 언론이 얼마만큼 극심한 경영난을 겪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 盧 전 대통령 차명계좌 1,300억 최근 몰수/朴 법무 밝혀

    盧泰愚 전 대통령은 최근까지 1,300억원의 차명계좌를 관리해온 것으로 드러났다.朴相千 법무부장관은 19일 국회 법사위 답변을 통해 “盧 전 대통령측이 신한·동화·한일은행에 예치해둔 1300억원의 차명계좌를 발견,지난 14일 서울지검이 몰수했다”고 밝혔다. 朴장관은 이어 “全斗煥 전 대통령에게 추징된 2,205억원 중 313억원만 집행하고,1,892억원은 아직 집행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 어떻게 해야 사라질까(중하위 공직 비리:3­2·끝)

    ◎“처벌불감증 추방” 제도화/재산몰수 등 징계수위 높여/‘모두 잃는다’ 인식 갖도록/美·英·獨선 발본색원 조치 공무원의 비리는 도마뱀의 꼬리인가.끊임없는 사정작업으로 꼬리(비리 공무원)를 잘라내도 비리공무원은 계속 생겨난다. 이런 탓에 ‘200억원 재산의 6급 주사’를 계기로 부정축재 재산을 몰수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아무리 가벼운 비위사실이라도 3차례 적발되면 파면 또는 해임하는‘징계 3진 아웃제’도 제기된다. 그리고 금고 이상의 형을 받거나 파면된 공무원으로 한정된 퇴직금지급 제한대상 공무원의 범위를 자격상실, 자격정지 또는 해임된 공무원까지 확대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마디로 비리를 저지르면 명예뿐 아니라 재산적으로도 손해라는 인식을 심어줘서 비리가 발붙이지 못하는 건전사회를 이룩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는 상위직은 명예, 중·하위직일수록 재산을 중요시한다는 현실을 감안한 것이다. 尹泰範 부산 부경대 교수는 “우리 사회는 공익이 개인적인 이익에 우선하지 못한다”며 “부정부패는 천민자본주의의 속성”이라고 말했다. 비리가 적발돼도 그만이라는 ‘한탕주의’와 ‘처벌불감증’이 부정부패를 부추기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잘해야 몇년 감독갔다 오면 평생 먹고 살 수 있다는 얄팍한 계산은 특정 비리공무원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국민의 세금을 빼돌렸던 지난 95년의 ‘인천 북구청 세무비리사건’에서 그대로 나타났다. 그래서 부랴부랴 제정된 것이 뇌물 또는 국고횡령 등의 범죄로 취득한 불법재산을 환수하기 위한 ‘공무원 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이지만 한번도 적용된 적이 없다. 우리나라는 비리공무원을 처벌하는 조항과 적용범위,대상,강도 등의 면에서 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느슨한 ‘솜방망이 제재’에 그치는 것으로 평가된다. 감사활동에서 형사 처벌돼야 할 비리가 적발돼도 파면같은 행정처벌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선진국은 비리공무원에게는 재산형 등의 처벌을 가해 부정부패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미국은 뇌물수수 또는 공금유용 등으로 기소되면 불법 취득한 재산에 대해서는 즉각 잠정동결조치에 돌입하도록 돼 있다. 형사재판이 시작되면 재산 몰수 에들어가고 모든 절차가 끝나는 대로 국고에 환수된다. 재산몰수에 그치는 게 아니라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벌금형이 추가된다. 이때문에 공무원이 한번 비리에 연루되면 공직생활도 끝이고 그나마 모은 재산도 빼앗기게 된다. 미국의 이런 제도는 필리핀의 마르코스나 파나마의 독재자 노리에가의 미국내 재산이 동결되도록 하기도 했다. 독일은 뇌물을 주고받으면 6개월에서 5년간의 징역형을 규정하고 있다. 한 장관이 지난 93년 한 연합회에 친척의 회사제품을 소개하려고 보낸 편지가 공개되는 바람에 사임했던 사실은 독일의 깨끗한 공직사회를 반영한다. 영국의 경우는 좀더 강한 조치를 취한다. 합법적인 강의료와 원고료같은 부수입도 공개하도록 돼 있기 때문에 합법을 가장한 뇌물 수수도 불가능하도록 한다. 이런 탄탄한 제도 덕분에 고위직이 거액의 부정을 저지른 경우는 거의 없다.
  • 공직비리를 보면 사회변화가 보인다/‘감사원 50년사’를 보면

    ◎40∼50년대­쌀·담배 등 정부물자 착복이 주류/60∼70년대­경찰·세무 등 대민행정 비리 싹터/80∼90년대­현금뇌물 선호… 날로 첨단·지능화 정부수립 이후 50년 동안의 사회변화에 따라 공직자 비리유형도 계속 변화해왔다.감사원이 발간한 ‘감사원 50년사’를 중심으로 공직비리 및 이에 대응하는 감사의 변화를 살펴본다. ▷40년대 말과 50년대◁ 먹을 것,입을 것이 없었던 시절이어서 주로 정부 물자를 공무원들이 나눠 갖는 수준이었다.고위공직자는 뇌물을 받거나 예산을 유용했으며,하위공직자들은 쌀,휘발유,담배 등을 착복했다. 49년 내무부에서 호구조사부 7만부를 제작,구매하면서 1,200만원을 고가로 구매한 사실이 밝혀져 장관과 차관이 사퇴했다.53년에는 영세민에게 배급해야 할 구호양곡을,54년에는 몰수한 양담배를,55년에는 휘발유를 불법 착복하거나 처분해 감사에 적발된 사건이 발생했다. 감사원의 전신인 당시 감찰위원회는 권력 핵심부와의 마찰도 두려워하지 않았다.1,500만원을 유용한 曺奉岩 농림부 장관과 450만원의 뇌물을 받은 任永信 상공부 장관을 파면하기도 했다.감찰위원회는 그러나 55년 권력에 의해 해체되는 비운을 맞았다. ▷60년대◁ 경찰,세무 등 일선 대민행정과 관련한 비리가 나타나기 시작한다.63년 대민 업무에 대한 특별직무감찰이 실시돼 99명이 문책됐다.66년부터 68년까지 세무관서의 과세자료 활용실태를 감사해 세금탈루를 줄였다. 66년에는 처음으로 재외공관에 대한 감사가 실시됐다.69년에는 서울지방병무청 감사에서 병역기피자 3만5,661명이 적발됐으며,그 가운데는 2,000명의 공무원이 포함돼 있었다. ▷70년대◁ 경제개발과 관련한 부정부패가 늘어나고 부정의 규모도 커졌다. 71년 농협과 수협 감사에서 조합간부가 농·수산자금 30억원을 횡령한 사실이 밝혀졌다.관련자가 1,500명이나 됐다.72년에 서울시의 상수도·보건위 생·청소·건축 행정 실태를 감사했다.그 결과 무려 500명이 파면됐다.76년에는 국방부에서 지급한 국가배상금 13억원을 군인과 민간인이 조직적으로 결탁,편취한 사실이 드러났다.79년에는 절대농지에 호화별장 103동을 불법건축한 사실이 밝혀졌다. ▷80년대◁ 전산 기술을 활용하고 달러와 현금으로 뇌물을 받는 등 공직비리가 보다 지능화되기 시작했다.이에 대응해 역점·전문·총괄감사 등 감사의 기법을 다양화하려는 노력도 시도됐다. 81년 금융기관의 근로자 재산형성 저축예금에 위규가입한 16만명을 밝혀냈다.83년에 대기업의 비업무용 토지 8,400만평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담합입찰 및 예정가격 누락 등의 혐의가 밝혀졌다.84년과 85년에는 부정·유사 휘발유 유통실태를 추적 조사했다.정상 휘발유 유통량의 49%인 7,398억원 어치의 부정휘발유가 유통된 사실이 드러났다. ▷90년대◁ 단순비리 차원을 넘어 정책의 효율성을 감사하는 단계에 이르렀다.93년 평화의 댐,98년의 외환위기 특별감사가 대표적이다.93년에는 처음으로 군 전력증강사업에 대한 감사가 시작됐다.이로써 청와대,안기부,국방부 등의 성역이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 日 밀항 한국어선 몰수 물의/국제관레 깨고 自國法 일방 적용

    일본 검찰이 국내에 불법체류하던 중국인을 일본으로 밀항시킨 우리나라 선원을 구속한데 이어 이례적으로 이들이 밀항에 사용한 우리나라 선박까지 몰수키로해 물의를 빚고 있다. 19일 부산지검과 부산 해양경찰청에 따르면 일본 후쿠이(福井)검찰청은 지난 3월 돈을 받고 국내에 불법체류중이던 중국인 45명을 태워 후쿠이항으로 밀항시키려던 경남 통영선적 제11강해호(39t·선장 李경석) 등 우리나라 선원 4명을 붙잡아 출입국관리법 위반혐의로 구속기소했다. 일본측은 이와 함께 ‘선주가 자신의 선박이 밀항에 사용된다는 사실을 알았을 경우에 한해 선박이 제3자 소유라도 몰수할 수 있다’는 자국의 출입국관리 및 난민 인정에 관한 특별법을 내세워 현재 후쿠이항에 압류돼 있는 강해호를 몰수했다. 그러나 일본 검찰의 이같은 방침은 ‘범행에 이용된 선박이라도 제3자 소유일 경우에는 몰수하지 않는다’는 일반적 국제관례에 배치된다는게 법조계의 지적이다.
  • 親日의 군상:1­1/시리즈를 시작하며(정직한 역사 되찾기)

    ◎친일파 청산 ‘참된 역사’의 출발/日帝 앞잡이 기득권층 형성… 反통일세력화/민족자존 위해 더 미룰수 없는 ‘금세기 숙제’ 20세기 우리 현대사에 등장한 용어중 ‘친일파’만큼 불명예스런 것도 없다.‘친일파’로 한번 낙인찍히면 씻을 수 없는 오욕으로 영원히 남아 왔다. ‘친일파=매국노=반민족행위자’라는 등식으로 인식되는 친일파문제는 지금에 와서도 민감한 사안으로 남아 있다.이 문제는 그동안 쉽게 손대기가 어려웠고 학계에서조차 ‘쓰이지 않은 역사’로 방치돼 왔다. ○‘쓰이지 않은 역사’로 방치 친일파문제는 그 죄상(罪狀)에 대해 단죄는 물론 역사적 평가도 없이 오늘에 이르렀다.간헐적으로 친일논쟁이 터질 때마다 우리사회에서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직도 불씨가 남아 있다는 증거다.수 년전 매국노 李完用 후손의 ‘땅찾기 소동’은 친일파문제가 얼마나 민감한 이슈인가를 잘 보여주었다. 민감한 이슈를 이 시점에서 다시 거론하는 것은 왜인가?그 이유는 해방 반세기가 지나서도 마치 ‘역사의 미라’처럼 온존해 있는 친일파문제를 금세기내에 매듭짖고 정의가 살아있는 정직한 역사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그동안 우리 사회는 해방후 친일잔재를 척결하지 못한 탓으로 민족정기가 땅에 떨어지고 가치관의 혼란도 극심했었다.일부 친일파들은 독립유공자로 둔갑해 훈장을 받기도 하고 심지어 독립유공자들의 공적을 심사하기도 했다. 친일 문인의 작품이 최근까지 교과서에 버젓이 실렸는가 하면 국립묘지에는 아직도 친일 경력자가 묻혀있다.친일파연구가 고(故) 林鍾國 선생은 친일파청산의 의의를 “철저하게 짓밟혀 버린 민족자존을 회복하고 자손만대에 민족정기가 살아있음을 증명”하기 위해서라고 지적했다. ○親日 논리·행적 기록 남겨야 일제 앞잡이 친일파들은 해방후 이승만 정권의 비호아래 신생 대한민국의 새로운 지배층으로 변신하였고 다시 군사 독재정권에 와서는 ‘영원한 기득권층’으로 자리잡았다.이들중 대다수는 극우·반공논리로 무장하여 반(反)통일세력을 형성해왔고 또 독재권력옹호자,매판자본가,어용지식인,심지어 한·일 외교무대에서 굴욕외교에 앞장서기도 했다.이런 상황에서는 통일과 민족정기를 논할 수 없다. 이제 친일파 청산문제는 더이상 다음 세기로 미룰 수 없다.이제라도 역사학계와 연구자들은 그들의 친일논리와 행적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그러나 이같은 작업은 개인에 대한 단죄차원보다는 과거사 청산과 올바른 가치관 확립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동국대 법학과 韓相範(64) 교수는 “우리사회의 부패·모순구조는 해방후 친일파 척결을 하지못한데서 기인한 것”이라고 분석하고 “금세기가 가기전에 우리사회가 친일파 청산작업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친일파의 정의와 범주/매국노·식민정책 협력자 통칭/독립신문 7개 부류 첫 거론/제헌국회 反民法 구체 규정 보통명사‘친일파’의 사전적 의미는 ‘일본과 친하게 지내는 개인이나 무리’정도로 풀이할 수 있다.그러나 우리 근현대사에 등장하는 ‘친일파’의 경우 그들이 활동한 시기와 일본과 친하게 지낸 정도 면에서 차이가 있다.후자의 경우 ‘을사조약을 전후하여 해방전까지 일본제국주의와 가깝게 지내면서 매국(賣國)에 가담했거나 또는 일제강점하에서 일제의 식민지 정책에 협력한 자’들을 통칭한 것이다.따라서 이 경우 ‘친일파’는 매국노,반민족행위자,민족반역자 등과 같은 뜻으로 통용되고 있다. 20세기 전반 외세지배를 겪은 나라들은 대개 우리의 ‘친일파’와 유사한 의미의 용어를 가지고 있다.중국은 일제에 협력한 자들을 ‘한간(漢奸)’이라고 부른다.‘중국인으로서 적과 통모(通謀)하여 반역죄를 범한 매국노’라는 뜻이다.프랑스는 나치정권에 협력한 반역자를 ‘나치협력자’로 부르고 있다.이같은 용어들은 ‘민족반역자’라는 의미를 공통적으로 담고 있는데 전쟁범죄자인 ‘전범(戰犯)’과는 의미가 다르다. ‘친일파’는 구체적으로 어떤 자들을 가리키는가.친일파의 범주에 대한 첫 거론은 1920년 상해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이 보도한 ‘칠가살(七可殺)’이다.이는 당시 독립진영에서 처단대상자로 지목했던 매국적(賣國賊)·친일관료·밀고자 등으로 7개 부류로 대단히 포괄적인 내용이었다.친일파의 범주가 구체적으로 논의된 것은 해방후의 일이다.미군정하 남조선과도정부 입법의원은 1947년 ‘민족반역자·부일협력자·간상배에 대한 특별조례법’을 만들면서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규정하였다.이 법은 민족반역자와 부일협력자를 따로 구분하고 있으며 8·15 이후의 간상배까지 처벌대상으로 삼고 있다.부일협력자의 경우 악질적인 친일파는 물론 일본인과 결혼한 자,일본말을 상용한 자,또 민족반역자의 경우 만주에서 활동한 경찰관까지 포함하고 있다. 한편 제헌국회가 제정한 반민족행위처벌법(반민법)은 친일파의 범주를 보다 구체적이고 한정적으로 규정하였다.이 법은 제1조∼5조에 걸쳐 친일파의‘죄’를 규정하고 있는데 매국노·수작자·고급관료·악질분자 등을 대상자로 규정하고 있다.서울대 사회학과 신용하(愼鏞厦) 교수는 “반민법에서 규정한 친일파는 제한된 직위와 악질적인 반민족행위자만을 대상으로 했다”고 지적했다. □제헌국회 제정 반민족행위처벌법 조 항 반민족행위자 분류 현 황 제1조 ①일본과 통모(通謀)하여 ①사형또는 무기징역 한일병합에 적극 협력한자 ②그 재산과 유산의 ②한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전부 혹은 2분의1 조약 또는 문서에 조인하거나 이상 몰수 모의한 자 제2조 ①일본정부로부터 작위(爵位)를 ①무기징역 또는 5년 받은자 이상의 징역 ②일본제국의회의 의원이 된 자 ②그 재산의 전부 혹은 2분의 1이상 몰수 제3조 ①독립유공자나 그 가족을 ①사형,무기징역 또는 악의적으로 살해,박해한 자 5년 이상의 징역 ②또는 이를 지휘한 자 제4조 ①습작(襲爵)한자 ①10년 이상의 징역 ②중추원 부의장,고문 또는 참의를 ②또는 15년 이하의 지낸 자 공민권 정지 ③칙임관 이상의 관리를 지낸 자 ③그 재산의 전부 ④밀정행위로 독립운동을 방해한 자 혹은 일부 몰수 ⑤독립운동을 방행할목적으로 단체를 조직했거나 그 단체의 수뇌간부로 활동한 자 ⑥군,경찰의 관리로서 악질적인 행위를 한 자 ⑦비행기,병기,탄약 등 군수공업을 책임경영한 자 ⑧도(道),부(府)의 자문 또는 결의기관의 의원을 지낸 자 ⑨관공리로서 직위를 이용하여 민족에게 해를 가한 악질분자 ⑩각종 친일단체의 수뇌간부를 지낸 자 ⑪친일 언론·저작활동을 한 문화계 인사 ⑫개인으로서 일제에 적극 협력한 자 제5조 ①고등관 3등급 이상,혹은 ①반민법 공소시효 훈5등급 이상을 받은 관리 결과전까지 공무원 ②헌병,헌병보,고등경찰을 지낸 자임용금지(단,기술관 은 제외) ◎‘친일의 군상’ 자문위원 12명 위촉/객관·공정성 검증… 반론권 보장합니다 서울신문사는 미래지향적 차원에서 친일파 청산을 위해 기획한 ‘친일의 군상’시리즈를 보다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보도하기 위해 12명의 자문위원을 위촉했습니다. 자문위원은 역사학자·변호사·종교가·언론인 등 관계 분야의 저명한 인사들로 구성됐습니다.모든 글은 자문위원들의 검증과 명예훼손 등 법적 검토를 거쳐 게재됩니다.자문위원은 인물 선정에도 참여하며 정기적으로 만나 시리즈의 내용을 종합 평가하고 앞으로의 방향 등에 대해 조언할 것입니다. 서울신문사는 특히 보도된 내용에 대한 반론권을 보장합니다. 자문위원명단은 다음과 같습니다. ▲金祐銓 전 광복회 부회장 ▲姜萬吉 고려대 교수(한국사) ▲韓相範 동국대 교수(법학) ▲李炫熙 성신여대 교수(한국사) ▲朴鍾淳 충신교회 담임목사(한국기독교총연합회 공동회장) ▲李泰鎭 서울대 교수(한국사) ▲姜昌一 배재대 교수(한일관계사)▲朴元淳 변호사(참여연대 사무처장) ▲朴은慶 광운대 강사(정치학) ▲林大植 외국어대 강사(한국사) ▲金三雄 서울신문 주필(친일문제연구가) ▲崔光一 서울신문 제작이사
  • ‘행복의 나라’ 한대수(금지문화 금지인생 이제야 말한다:5)

    ◎“물좀 주소 물좀 주소 목마르오/시대의 갈증 노래했는데…”/68년부터 명동·대학가 활동/통기타·청바지 문화 선도/2집 앨범 “체제전복” 낙인찍혀/75년 渡美… 음악활동 계속/지난달 일시 귀국 에세이 출간/“개인무대 갖는게 작은 소망” 1975년 한 해를 마감하는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무렵인 12월 어느날 김포공항 대합실.긴 머리에 청바지 차림의 한 청년이 초췌한 모습으로 뉴욕행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고 있었다.한국 가요계에 파문을 일으키며 청년문화를 주도하던 가수 韓大洙(50)였다.미국 유학후 숨가쁘게 살았던 한국에서의 생활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쳐지나갔다.자신의 음악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 땅의 분위기가 한스럽기만 했다.채 피어나기도 전에 꺾여진 꽃처럼 자신의 음악을 가슴에 묻은 채 한대수는 그렇게 훌쩍 한국을 떠났던 것이다. 짧은 활동기간에 비해 뚜렷한 인상을 남긴 이색적인 경력의 싱어 송라이터.통기타와 자유의 청년문화를 생겨나게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당시 트로트와 사랑타령 일색이던 대중가요를 뿌리째 뒤흔들며 젊은이들의 우상이 됐던 가수 韓大洙.그는 왜 한국을 떠나야만 했을까. 어린시절부터 남달리 굴곡이 많은 개인적인 삶을 살았던 그였다.핵 물리학자인 아버지의 실종으로 7살때부터 줄곧 조부모와 함께 살았다.10살때 미국으로 이주해 3년간 미국생활을 한뒤 돌아와 한국에서 중학교를 마쳤다.17세때 미국에 사는 아버지의 소재가 확인돼 다시 미국으로 옮겨 고교를 다녔지만 적응하지 못한채 방황의 10대를 보냈다.韓씨의 재능은 이때 발견된다.상담교사의 도움으로 시와 노래를 쓰기 시작했다.나중에 국내에서 히트했던 ‘행복의 나라’‘그날까지’‘옥의 슬픔’같은 노래들이 모두 이때 쓴 것이다.고교졸업후 뉴햄프셔 대학 축산과에 진학했으나 적성이 맞지않아 중퇴,뉴욕 사진학교를 다녔다. 그리고 귀국한 게 1968년 초.이때 한국의 가요사는 다시 쓰이게 된다.당시 국내 가요계는 트로트가 지배하던 시기.국내에선 처음으로 싱어 송라이터로 데뷔한뒤 발로뛰는 음악인의 생활로 접어든다.서울 무교동의 ‘세시봉’과 명동의 ‘오비스캐빈’에서 청바지,가죽장화 차림에 통기타 하나들고 포크록을 소개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이듬해인 69년 이렇다할 공연무대에 서기엔 아직 무명가수였던만큼 대학가를 돌기 시작했다. 총학생회장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공연을 의뢰해 축제기간중 이화여대와 서울대,서강대,부산대 강당공연을 통해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이때 언더그라운드 가수로 인상지워지게 됐다.그리고 그해 겨울 그 유명한 서울 남산 드라마센터 공연.그때만해도 드라마센터는 고상한 장르의 유명인들에게만 공연이 허용되던 곳.무명의 대중가수가 무대에 오른 것 자체가 화제거리였다.평소 韓씨의 음악에 매료된 팬들이 어렵게 마련한 데뷔 콘서트였다. 벼르고 별렀던 무대였던 만큼 혼신을 다한 공연이었다.이틀 공연 모두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대성공이었다. 74년 군에서 제대하고 나니 유명해져 있었다.자신이 곡을 쓰고 金敏基가 부른 ‘바람과 나’,楊姬銀이 부른 ‘행복의 나라’가 인기곡으로 불려지고 있었다.신세계레코드사에서 앨범제작 의뢰가 들어왔다.그래서 만든 첫 앨범이 ‘멀고 먼 길’이다.너무나도 반가운 제의라 하루만에 녹음을 모두 마쳤다.‘물좀 주소’‘행복의 나라’‘바람과 나’등 수록곡들이 대학가를 중심으로 들불처럼 번져갔다.그리고 1년도 채 안돼 시련이 닥쳐왔던 것이다. 75년 가을 두번째 앨범을 만들었다.코리아헤럴드 기자로 재직중일 때였다. 기자로 일하면서 오후엔 남모르게 레코드 취입을 하느라 코피를 쏟기가 일쑤였다.마침내 레코드가 나왔다.이제 자신의 음악을 인정받는 뿌듯함에 마냥 들떠 있었다.기쁨은 채 2주가 못돼 좌절로 바뀌었다.당시 문공부에서 레코드 수거령이 떨어졌다.체제전복적 음악이란 낙인이 찍혔다.첫 앨범 ‘멀고 먼 길’도 함께 묶였다. “‘물좀 주소’등 히트곡들이 대학생들 사이에 번져가면서 정치·사회상 황에 맞물려 당국의 곱지않은 시선을 받았던게 사실입니다.당국이 ‘물좀 주소’에선 물고문을 연상했던 것 같아요.두번째 앨범은 표지가 문제였지요.녹슬은 철조망에 고무신이 걸려있는 모습인데 한국적 정서와 민중을 상징한 것이지요.죄수(철조망)가 흰 고무신을 신으니 박해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었지요” 동양방송과 기독교방송 음악프로 출연도 막혔다.어쩔 수 없이 명륜동 자취방에서 직접 노래하고 녹음한 테이프를 만들어 매장에 내다 팔았다.테이프는 열악한 음질에도 불구하고 불티나게 팔려나갔다.이 테이프는 첫 앨범 취입 전부터 하나 둘씩 만들었던 것으로 이렇게 만든 테이프만도 100여개가 넘는다.하지만 그것도 잠시뿐.감시망이 좁혀지면서 테이프 제작도 할 수 없게 됐고 더이상 설 땅이 없어졌다.마침내 미국행을 결심했다. 이후 줄곧 뉴욕에서 살면서 시·사진·음악활동을 계속했다.89년 ‘무한대’,90년 ‘기억상실’,91년 ‘천사들의 담화’ 등 레코드도 세 집을 냈다.종전의 분위기와는 달리 자신의 삶을 담은 노래들이다.지난해 가을엔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록그룹 10개가 참가한 록페스티벌에도 참가했다.80년 일시 귀국해 남산 드라마센터에서 약식 공연을 가진지 17년만의 무대였다.그리고 지난달 잠시 귀국해 자전적 에세이집을 냈다.자신의 모든 것을 담은 기록이다. 75년을 결코 잊을 수가 없다는 韓씨는 이렇게말한다.“그 시대 정책 자체에 반감을 가진 적은 없습니다.어느 나라나 국가정책과 예술가들의 자유로운 정신은 엇갈리기 쉽지요.당시 정부의 목적의식을 흐리는 활동이 제재받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지요.문화예술인들이 심한 갈증을 느끼는건 당연했구요. 오랫동안 나를 못봐온 팬들을 위해 개인무대를 갖고 싶습니다” ◎사연들/장막을 걷어라 너의 좁은 눈으로 이세상을 더 보자/철조망 유신압제 상징 이유/‘고무신’·‘첫 앨범 잇따라 판금/‘행복의나라’ 희망 메시지 가득한데 68년 귀국후 세시봉과 오비스캐빈에서 시작된 韓大洙의 국내 음악활동은 불과 7년만에 종지부를 찍게 된다. 귀국전 미국 생활에서 반문화운동(카운터 컬쳐 무브먼트) 경향의 포크록에 심취했던 만큼 국내에서의 활동도 자연스럽게 자유와 젊음으로 대변되는 이 음악으로 시작됐다.미국 고교시절 답답한 생활을 노래에 담은 노래들이 70년대 사회 분위기와 맞물려 금지곡이 된 것은 우연의 일치다.대학가를 돌면서 언더그라운드 가수로 인상지워지고 금지문화의 한 주역이 된 것도 사실상 노래말의 상징성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물좀주소’와 ‘행복의 나라로’는 그의 대표적인 노래.“물좀 주소 물 좀 주소/목마르요 물좀 주소/물은 사랑이요 나의 목을 간질며/놀리면서 밖에 보내네/아 가겠소 난 가겠소/저 언덕위로 넘어 가겠소/여행도중에 그 님 만나 본다면/난 살겠소 같이 살겠소”(물좀 주소).“장막을 걷어라/나의 좁은 눈으로 이세상을 더 보자/창문을 열어라/춤추는 산들바람을 한번 또 느껴보자/가벼운 풀밭 위로/나를 걷게 해주세/봄과 새들의 소리/듣고싶고 울고 웃고 싶소/내마음을 만져줘/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 테야”(행복의 나라로) 유신정권의 압제 아래서 자연스럽게 현실 비유적인 내용으로 인식될 수 있었고 대학가에선 더욱 인기가 좋았다.물은 갈증을 해결하는 그 무엇이며 행복의 나라는 답답한 상황으로부터의 탈출과 희망의 의지가 역력한 상징임에 틀림없다.특히 金敏基 楊姬銀 등 사회성짙은 노래를 주로 불렀던 이들에 의해 불려지면서 자연스럽게 화살이겨냥됐고 마침내 철조망과 흰 고무신을 표지 사진으로 쓴 ‘고무신’ 앨범으로 피할 수 없는 족쇄가 채워진 것이다.‘자유의 길’‘병든 고아’‘술 취한 여자’‘물좀 주소’ 등 노래마다 일일이 검열을 당했고 레코딩까지 허락됐던 앨범 몰수는 韓씨를 떠나게 만들고야 말았다. ◎그의 길 ▲48년 부산출생. ▲64년 부산 경남고교 입학. ▲65년 미국 롱아일랜드 고교로 전학. ▲66년 뉴햄프셔 대학 수의학과 입학. ▲67년 뉴욕 사진학교에서 사진 전공. ▲68년 귀국.작사·작곡가·가수로 데뷔. ▲69년 드라마센터 공연. ▲70년 군입대. ▲74년 첫 앨범 ‘멀고 먼 길’ 발표. ▲75년 두번째 앨범 ‘고무신’ 발표,금지.미국으로 돌아감. ▲89년 ‘무한대’ 발표. ▲90년 ‘기억상실’ 발표. ▲91년 ‘천사들의 담화’ 발표. ▲98년 현재 뉴욕에서 사진작가및 창작활동중.자전적 에세이 출간.
  • 制憲 50돌을 돌아본다:4­1/보안법 문제(정직한 역사 되찾기)

    ◎보안법 상처의 흔적들/시행 50년… 멍든 인권 곳곳에/曺奉岩 등 수많은 政敵에 간첩죄 적용/사회 전반에 올가미… 한해 수백명 구속 영화 ‘레드 헌트’는 제주 4·3항쟁때 양민 학살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지난해 9월 홍익대학교에서 열린 인권영화제와 한달 뒤 부산에서 개최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다. 검찰은 이 영화 상영과 관련,인권영화제를 주최한 인권사랑방 대표 서준식씨를 지난해 11월 구속했다. 국가보안법상의 이적표현물 반포 혐의였다. 그러나 부산영화제(조직위원장 문정수 부산시장) 상영과 관련해서는 구속된 사람이 없었다. 같은 영화 상영을 둘러싸고도 보안법 적용은 이렇게 다르다. 검찰은 당시 “서씨는 비전향 사상범으로 고의성 여부가 문제된다”고 밝혔다. 사상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법적용이 다를 수 있다는 논리다. 국제사면위원회를 비롯한 국내외 인권단체들의 석방노력으로 서씨는 얼마전 보석으로 풀려났지만 국가보안법을 둘러싼 논란과 시비는 끊이질 않았다. 보안법과 관련,서준식씨의 경우처럼 세인의 주목속에 논란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조용히 처리되는 사건이 훨씬 많았다. 올해로 국가보안법이 제정된 지 50주년을 맞지만 보안법 역사의 뒷면에는 대한민국 인권의 상처투성이 흔적들이 가득하다. 우리 사회에서 보안법을 비켜갈 수 있는 분야는 어디에도 없었다. 진보적인 정치인,지식인,학생,노동자 등이 보안법의 올가미에 걸려 죽기도 하고 감옥에도 갔다. 진보적 정치운동과 관련, 보안법에 의한 최대의 피해사례로는 조봉암과 진보당사건 및 2차 인민혁명당 사건,김대중 내란음모사건 등을 들 수 있다. 1958년 1월11일 밤 경찰은 조봉암 위원장 등 진보당 간부 10여명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했다. 야당 당수 조봉암은 간첩혐의를 뒤집어쓰고 다음해 7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1심 재판장인 유병진 판사는 이승만 정권의 간첩조작에 저항해 무죄를 선고했으나 항소심에서 뒤집혔다. 유병진 판사는 우익세력들에 의해 용공판사로 몰렸고 2년후 법복을 벗어야 했다. 2차 인혁당사건은 1974년 전국적인 반(反)박정희 투쟁을 준비하던 민청학련을 용공으로 몰기 위해 존재하지도 않던 배후조직을 조작한 사례로 비판받고 있다. 10년전 1차 인혁당 사건에서 이미 경미한 혐의로 판명됐던 인혁당이 10년 뒤 재건되어 정부전복을 꾀했다는 것. 그러나 2차 인혁당 사건은 1차 때보다 더 증거가 없다는 의혹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75년 대법원에서 상고는 기각됐고,24시간도 못되어 8명이 처형됐다. 보안법과 관련,현대언론사에서 최대의 필화사건으로 꼽히는 것은 1961년의 ‘민족일보’ 사건이다. 진보적 혁신 언론을 표방한 민족일보는 용공언론으로 몰려 조용수 발행인의 사형집행과 함께 폐간의 운명을 맞아야 했다. 그러나 당시 공소장에 용공으로 단정돼 예시된 것들은 ‘통일에의 전진을 위하여’‘남북교역 시기는 성숙하였다’ 등의 제목하에 실린 기사들이다. 보안법 위반 사건 가운데 한가닥의 온정도,최소한의 법적 기본권과 인간의 존엄성조차도 기대할 수 없는 게 바로 간첩사건이다. 공안기관은 월·납북자의 친·인척,정보사법 전과자,조총련의 연고가족,납북 귀환어부 등의 신상 정보를 모두 입력해 놓고 있다. 이러한 신상 정보는 언제라도 ‘간첩사건을 조작할 수 있는 자료’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실제로 조작 의혹이 적지않았다. 78년 귀국중 간첩혐의로 체포돼 20년째 갇혀 있는 조상록씨도 그중의 한 사람이다. ◎독소조항/반국가단체 구성·가입죄­노동·학생단체 등 민주화 운동 조직 파괴/찬양·고무죄­개념 모호해 자의적 해석 가능… 남용 심각/불고지죄­‘침묵의 자유’ 침해… 반인륜적 행위 강요 치안유지법,조선사상범보호관찰령,국방보안법,조선사상범예방구금령,불온문서임시취체법…. 일제가 군사파시즘의 길을 걸으면서 국내외 반대세력을 탄압하기 위해 제정했던 대표적인 법률들이다. 이중 치안유지법은 일본 및 식민지의 사회주의자와 반체제주의자,독립운동가 등을 처벌한 대표적 악법이었다. 국가보안법은 탄생(1948년 12월1일) 과정부터 일제의 치안유지법을 빼닮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형법의 특별법인 이 법이 형법 제정(1953년 9월18일)보다도 빨리 만들어졌다는 것은 당시 반대세력을 누르기 위해 이 법이 얼마나필요했던가를 잘 보여준다. 국가보안법은 제2장의 제3∼10조가 범죄로 규정되는 행위들과 처벌을 정하고 있는 핵심적인 조항들이다. 이중에서도 제3조·7조·10조가 가장 독소적이고 남용될 소지가 많다고 비판받는 조항들이다. 제3조는 반국가단체 구성 및 가입,가입권유 등에 대한 처벌로 제7조 3항의 이적단체 구성·가입죄와 함께 민주화운동 조직을 파괴하는 주요한 조항으로 지목돼 왔다. 형벌도 반국가단체 수괴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밖에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가혹하다. 그러나 막상 반국가단체로 낙인찍힌 단체들의 면면을 보면 단순한 반정부적 노동·학생운동 조직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학생운동조직인 전민학련과 민청학련,기독교 청소년들의 신앙공동체인 한울회 등이 대표적 사례다. 제7조는 반공법 제4조를 그대로 승계한 것으로 찬양·고무 및 이적단체 구성과 가입,이적표현물 제작·반포·판매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가장 심각하게 남용돼온 조항으로 일반 형법 등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보안법의 ‘상징’과도 같다. 이미 헌법재판소에서 “그 문언상 위헌이나 한정적 해석하에 합헌”이라는 한정 합헌 결정이 내려진 바 있다.먼저 찬양·고무·동조라는 개념이 너무 애매모호해 지극히 자의적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집을 철거하려는 당국자에게 “김일성보다 더한 놈들”이라고 했다가 구속되고(1978년), “북한이 남한보다 중공업이 더 발달되어 있다”고 했다가 이 조항에 걸려 유죄를 선고받기도 했다(1976년). 10조는 반인륜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불고지죄 조항이다. 모든 보안법 위반자에 대한 불고지를 처벌하다가,91년 개정때 3조·4조·5조의 죄에 한해 성립하도록 범위를 축소했다. 또 친족관계일 때는 죄를 감경(減輕) 또는 면제할 수 있도록 했다. 개정에도 불구하고 불고지죄는 ‘침묵의 자유’를 침해하고 직무상 취득한 비밀을 지켜주어야 하는 직업윤리를 저버리지 않으면 안되는 반사회적인 행태를 여전히 강요하고 있다. 수년전 서경원 의원 방북사건에서 한겨레신문 윤재걸 기자가 인터뷰중 알게된 사실을 신고하지 않아 구속된 것이 대표적 사례다. 김동식 간첩사건과 관련,불고지죄 혐의로 구속됐다 항소심에서 무죄선고를 받은 전 서울대 삼민투위원장 함운경씨는 “설사 보안법 위반자라는 것을 알아도 친구나 친척을 당국에 신고할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라며 불고지죄의 반인륜성을 비판했다. ◎北 형법은 가혹한 反인권적 악법/유추해석 인정·중벌위주 형벌체계 적용 국가보안법 개폐론이 불거져 나올 때마다 거론되는 것이 북한의 반국가사범에 대한 가혹한 형법체계다. 보안법보다 훨씬 가혹한 법조항들이 북한내 통일논의 자체를 원천봉쇄하고 있는 상황에서 보안법만을 폐지하면 ‘남쪽만의 무장해제’가 아니냐는 시각이다. 북한 형법은 자유민주주의국가의 기본 원칙인 법치주의 원리를 무시한 가장 비민주적인 악법으로 평가받고 있다. 우선 북한 형법은 유추해석을 인정해 죄형법정주의를 무시하고 있다. 제10조에 “형사법에 동일한 행위를 규정한 조항이 없을 때는 종류와 위험성으로 보아 가장 비슷한 행위를 규정한 조항에 따라 형벌을 정한다”고 돼 있어,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범죄인으로 규정,처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공소시효에 대한 명문규정도 없다. 제42조는 “반국가범죄와 고의적 살인죄에 대해서는 기간에 관계없이 형사책임을 추궁할 수 있다”로 규정,범인은 죽을 때까지 형사소추를 받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김일성과 김정일을 비방하거나 그들에게 저항하는 행위는 반국가범죄(제44∼55조)로 규정,사형이나 전재산 몰수형으로 처벌하게 돼 있다. 또한 은닉범,불신고범,방임범의 처벌규정을 두고 있고,반국가범죄의 경우 이를 예외없이 적용하고 있다. 형벌의 종류를 규정하고 있는 제21조에는 반국가범죄의 경우 ‘○○년 이상의 로동교화형에 처한다”고 돼 있어 우리법의 “○○년 이하의 형에 처한다”는 형식에 비해 중벌위주의 형벌체계를 적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제한없는 형량을 선고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반인권적 형벌체계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앰네스티와 보안법/“국제인권기준에 맞게 개정해야”/매년 인권보고서 통해 개폐 촉구 “양심수를 양산해온 국가보안법은 국제인권법에 크게 미달하는 수준입니다. 이는 국제인권기준에맞도록 개정돼야 합니다”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 로스 대니얼스 집행위원은 지난해 말 한국을 방문,이렇게 말했다. 그는 “어떤 사상을 가졌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테러단체를 조직하거나 폭력혁명을 공개적으로 추구하지 않은 이상 구속돼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앰네스티의 인권보고서를 통해 “보안법 위반으로 매년 체포되는 수백명 중 상당수가 폭력이 아닌 단지 ‘고무찬양’과 ‘이적행위’ 등으로 구속됐다”고 지적했다. 앰네스티는 매년 인권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국가보안법 개폐를 주장해왔다. 또한 주요 보안법 위반 사건마다 항의성명과 함께 피해자 석방을 촉구했다. 지난 96년에는 보안법 개정과 안기부의 권한 남용 방지 장치 마련을 촉구하는 편지를 우리나라 정당 대표들에게 보내기도 했다. □특별취재반 ▲특집기획팀=李昌淳 팀장·許南周·李穆熙 차장, 金聖昊·任昌龍 기자
  • 制憲 50돌을 돌아본다:3(정직한 역사 되찾기)

    ◎고쳐야할 법/국가보안법의 어제와 오늘/취중 농담 한마디로 ‘철창행’/“예비군훈련 싫어 북한 가고파”­국가보안법 위반/백일잔치에 모여 시국 이야기­反국가단체 결성죄/“北 지하철 남한보다 7년 앞서”­反국가단체 찬양 고무죄 “예비군훈련이 지긋지긋해서 북한으로 넘어가 버리겠다”고 농담을 했다. 그저 예비군훈련이 싫어서 한 농담이었다. 북한으로 넘어갈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그 농담 때문에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됐다. 영화나 소설 속의 이야기 같지만 60년·70년대 우리의 현실이었다. 농담이나 취중에 한 말도 보안법 위반이 되었던 것이다. 그 당시 유행하던 ‘막걸리 보안법’이란 말은 인권침해의 시대상황을 증언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을 둘러싼 논쟁은 그러나 한 세대전의 과거 일만은 아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비슷한 유형의 사건을 놓고 유·무죄 공방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96년 ‘미제침략백년사’를 소지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됐던 신희주씨. 전남대 사학과 4년 재학중이던 그는 재판부에낸 자기변론문에서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역사를 공부하는 대학생이 역사자료를 소지·탐독하는 것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면 이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입니다. 저에 대한 판결은 죄의 유무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상식’과 ‘억지’의 싸움이라고 봅니다.” 국가보안법 만큼 거센 ‘악법’ 시비와 논란속에도 자리를 굳건히 지켜온 법도 드물다. 일제하의 치안유지법을 그대로 계승했다는 태생적 시비에서부터 위헌성 및 기타 법률과의 중복성,남북관계법과의 상충성에 대한 논란 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현행 국가보안법은 4장25조로 구성돼 있다. 그중 제3조∼제10조까지가 핵심이다. 여기에서도 제7조(찬양·고무등)는 법학자와 인권단체들로부터 가장 독소적이이고 가장 심각하게 남용되는 조항이라고 비판 받는 부분이다. 반국가단체를 찬양·고무하거나,이를 목적으로 단체를 구성하거나 가입한자,이러한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표현물을 제작·반포·판매한 자 등을 처벌하게 돼 있다. 그러한 조항을 근거로 교사,대학강사들이 동료 딸 백일잔치에 모여 시국 이야기를 한 것이 ‘반국가단체 결성죄’가 됐고,“북한 지하철은 우리보다 7년이나 앞섰다”는 발언은 ‘반국가단체 찬양·고무죄’가 됐다. 재미교포가 북한에서 만난 가족으로부터 받은 가족사진을 남쪽의 동생에게 보여줬는데, 그 동생은 이를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입건됐다. 국가보안법 제10조의 이른바 ‘불고지죄’를 지은 것이다. 이러한 논란과 혹독한 비판속에서도 역대 정부는 남북분단이라는 ‘특수상황’ 때문에 보안법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북한 형법 44조∼45조는 반국가범죄의 처벌을 부작위범까지 포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형량도 사형과 남은 가족의 전재산 몰수 등 엄청나게 가혹하다. 북한은 또 ‘조선노동당 규약’을 헌법의 상위규범으로 삼고 있어,애초부터 죄형법정주의 정신을 찾아볼 수 없다. 일부 학자들은 북한의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보안법 폐지는 남쪽만의 무장해제다.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보안법을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인권보호 차원에서 보안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소리가 여전히 높다. □악법 논란이 있는 현행 법률 ◆보안관찰법(제정 혹은 전문 개정일:89.6.16) ·집회 참석 금지, 매3개월 중요활동 보고, 타보호관찰대상자와 회합통신 금지 ·한번 처벌받은 일로 다시 처벌­일사부재리원칙 위배 ·행정부(법무부장관)가 처분 결정­죄형법정주의 위배 *비고:89년 폐지된 사회안전법의 보안관찰처분 강화시켜 입법 ◆사회보호법(80.12.18) ·재범 우려 있는 범죄자에게 보호감호, 치료감호, 보호관찰 처분 ·동일 행위로 이중 형벌­인권침해 소지 *비고:89년 보호감호기간이 7년 넘지 않게 개정 ◆정기간행물의 등록에 관한 법률(87.11.18) ·95년 발행인 결격사유 확대하고, 공보처장관이 등록취소할 수 있게 개정 ·비판과 감시의 역할 상당히 약화시킬 위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89.3.29)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뀌기는 했으나 신고절차가 까다롭고 ‘금지통고제’ 남용의 소지가 있어 ‘사실상의 허가제’란 비판 ◆국가안전기획부법(80.12.3) ·93년 검찰에 넘겨줬던 국보법7조 및 10조 위반자 수사권 넘겨받아 권위주의 회귀 논란 *비고:96년 12월 개정안 여당 단독처리 ◆군사기밀보호법(93.12.27) ·기밀 분류에 대한 군관계자의 자의적 해석 가능­죄형법정주의 위배 논란 *비고:92년 기밀 범위를 확장 해석해서는 안된다는 헌재의 ‘한정합헌’ 결정 ◆행형법(61.12.23) ·형의 선고로 재소자의 기본권이 어디까지 구체적으로 제한돼야 하는지 명백한 기준 부족­교도소에 지나친 재량권 부여로 인권유린과 비리의 소지 높음 ◎기고/朴元淳 변호사·참여연대사무처장/보안법 어떻게 할것인가/쿠데타로 집권했던 권력자들/국민의 인권 짓밟고 숨통 조여/이제는 그들의 눈물 닦아줄때 국가재건최고회의,비상국무회의,국가보위입법회의….젊은 세대들은 이 명칭들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하리라. 모두 쿠데타 입법기관이다. 멀쩡한 국회를 해산한 다음 군인과 독재자들이 그 대신 만든 기관이다. 이들 ‘무허가 입법기관’들은 아무런 국민의 위임도 없이 하루에도 몇십건씩 수백개의 법률들을 양산했다. 이 법률들은 말할 것도 없이 그러한 권위주의 통치를 정당화하거나 용이하게 하는 것이어서 국민들의 권익을 침해할 가능성이 극도로 높은 것이었다. 말이 법이지 폭력에 다름아니라고 비판하는 견해가 적지 않았다. 국가보안법,반공법,형사소송법,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노동관계법…. 악법의 상징인 국가보안법은 일부 개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민의 기본권침해의 여지를 수없이 남기고 있다. 지난 1993년 유엔인권이사회가 한국정부에 대하여 아무리 특수한 안보여건을 고려하더라도 이 법은 반민주적인 것이므로 개폐되어야 한다는 공식적 권고를 하기에 이르렀다. 형사소송법도 인신구속에 관한 대수술이 있었지만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는 모법으로서는 여전히 한계가 많다. 피의자 수사시에 변호인 입회권 하나 보장되지 않으며 검찰 불기소결정에 대해 재정신청을 허용하는 범죄는 극히 제한되어 있다. 이러한 정치적 기본권에 관한 법률 외에도 국민의 일상생활과 관련된 수많은 법률들에서 악법의 요소를 발견하기란 한강에서 모래알을 줍기 만큼 쉬운 일이다. 이러한 법률에의해 제한되고 침해된 국민들의 권리란 미처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억울하게 구속되거나 재산을 뺏기고도 말못한 채 수십년을 살아야 했다. 조금 숨통이 트이고 권력의 눈치를 덜 보는 세상이 되어 소송,고소를 제기하자 법원은 소멸시효기간 경과니 공소시효 완료니 하면서 기각하는 것을 다반사로 삼았다. 재심이라는 것도 너무 엄격하여 쓸모가 없었다. 한숨과 절망만이 이들의 것이었다. 지난 ‘80년의 봄’을 짓밟은 군부 쿠데타에 저항한 상당수 시민들이 포고령 위반 또는 계엄법위반으로 징역을 살았다. 이때의 희생자들이 재심에 의해 무죄를 받는 사례들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이들은 자신들의 비용으로 재심을 신청하고 재판을 또다시 받아야 했다. 왜 우리는 이들 정의로운 역사의 희생자에게 특별법이라도 만들어 간단한 방법에 의한 재심으로 무죄를 선고받게 하고 국가가 그들의 희생에 대해 보상을 하도록 하지 않는가. 지난 金泳三 정부는 많은 것을 “역사의 평가”에 맡기고자 하였다. 역사의 저편 무대로 사라지기에는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구체적인 고통에 시달리고 있고 계속 그런 피해자를 양산하는 악법이 엄존하고 있음에도 아무런 시정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양심수는 쌓이고 악법의 피해자들은 세상을 떠돌고 있었다. 누더기가 된 법은 국민의 불신과 불만을 초래하였다. ‘법을 지키는 사람만 바보’되기 일쑤인 사회에서 법치주의는 설 자리가 없었다. 새 정부는 ‘국민의 정부’‘제2의 건국’이라는 구호를 좋아했다. 진정한 ‘국민의 정부’가 되기 위해서는 金大中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언명한 것처럼 국민의 눈물을 닦아 줄 수 있어야 한다. ‘제2의 건국’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동안 역대 정부가 저지른 잘못을 이 정부는 시정해 주어야 한다. 지난 1978년 미국정부는 자신들이 1943년 태평양전쟁 시기 미국 서해안 거주 일본계 미국인들을 강제로 집단 이주시킨 행위에 대하여 사죄하고 1인당 2만달러씩의 보상금을 지급하였다. ‘왕은 잘못이 없다’는 이론이 전제군주시대에는 있었다. 그러나 민주사회에서 정부가 잘못한 것은 그 다음 정부에서라도 당연히 시정하고 잘못에대한 배상을 하여야 한다. 그것이 아무리 ‘판도라의 상자’처럼 끝없이 귀찮은 청소작업이라고 하더라도 이제는 착수해야 할 일이다. 새정부 처음으로 맞는 제헌절에 ‘악법 청소청’이라도 만들고 ‘악법희생자 신문고’라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악법,이대로 둘 수는 없다.
  • 부패방지 特搜部 신설/與 이르면 7월 법제정

    ◎재산등록 5급까지 확대/金 대통령,趙 대행에 지시 공직자 재산 등록범위가 4급에서 5급으로 확대되고 대통령 직속으로 부패방지를 위한 특별 수사부가 설치된다.또 공익 정보제공자의 보호를 위해 내부자 고발 보호제도가 도입되는 등 부패 공직자들에 대한 처벌이 대폭 강화된다. 金大中 대통령은 25일 국민회의 趙世衡 총재권한대행 등 당 3역의 주례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국정개혁과 제도개혁 차원에서 모든 유형의 공직자 부패방지를 위해 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부패방지 기본법’을 수정 보완,다음 국회에서 통과시킬 것을 지시했다”고 金元吉 정책위의장이 전했다. 국민회의가 수정 보완하는 부패방지기본법은 공직자윤리법,공무원 범죄 몰수 특례법 등 공직자 부패 관련법의 미비점을 보완한 것으로 공직자 관련 종합법의 성격을 띠고 있다. 수정 보완될 부패방지법안은 우선 공직자 윤리 및 행동규범을 구체화하기 위해 공직자 청렴의무를 강화하는 한편 뇌물과 선물의 한계를 분명히하고 선물의 금액도 대폭 축소하도록 하고 있다.또 재산등록과 공개심사규정을 강화하기 위해 재산등록 의무자를 현행 4급에서 5급으로 대폭 확대하고 등록재산의 실사와 처벌을 명확히 하기로 했다. 내부자 고발자 보호제도를 도입,공익을 위한 정보제공자를 보호하고 공무원들의 자금세탁규제를 강화하기 위해 일정금 이상의 거래에 대해서는 굼융거래 실명제를 도입한다. 또 공직자 부패행위 처벌을 대만과 싱가포르 수준으로 강화하고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특별 검사를 임명,부패방지 특별수사부를 설치하는 것을 담고 있다. 부패 방지기본법은 96년 12월 국민회의에서 의원발의로 제출했으나 당시여당인 신한국당의 반대로 국회에 계류돼 왔다.
  • 대책/‘죄인 아닌 환자’처벌·치료 병행을(확산되는 백색공포:하)

    ◎초등학교부터 약물 오·남용 예방교육 바람직 확산되는 ‘백색공포’ 마약류 사용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이제 마약류 사용이 일부 계층과 직종에 한정되었던 시대는 지나갔다.특히 IMF 사태 이후 현실의 어려움을 이기지 못해 마약류에 의존하는 일반인이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와 관련,“마약류의 단속에는 한계가 있다”면서 “근본적으로 약물을 대하는 국민들의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아울러 처벌 위주 보다는 치료 쪽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고 강조한다.마약류 사범은 범죄자가 아니라 환자라는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뜻이다. 국민들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는 교육과 홍보가 필수적이다.이는 마약류수요를 차단하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특히 마약류 유통 실태를 올바로 파악한 뒤 어릴 때부터 약물의 올바른 사용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교육부는 이를 위해 초등학교 5·6학년부터 고교 3학년에 이르기까지 체육 및 과학교과 과정의 ‘약물 오·남용예방교육’을 내실화하기로 했다.초·중·고교 양호교사 100명에게 오는 8월 3∼6일까지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가 여는 ‘약물 남용 예방 연수’에 참가하도록 한 것도 같은 취지이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등 민간단체도 국민들이 쉽게 다가설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계몽·홍보활동을 강화하기로 했다. 그러나 정부 부처뿐아니라 민간단체도 아직은 구호에만 그칠 뿐 실효성있는 정책을 올바로 시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마약류 사범을 치료하고 상담할 수 있는 정부 및 민간 차원의 시설도 확충해야 한다. 현재 초범이나 증세가 약한 사범을 서울시립정신병원이나 경기도 부곡 마약병원 등에 보내는 ‘치료보호제’가 있지만 거의 이용되지 않고 있다.완치가 어려운 중독자들을 수용,치료하는 곳은 공주치료감호소가 유일한 기관이다. 민간단체인 청소년약물상담소 간사 龍京姬씨(25)는 “마약류 사범들이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국립의료기관이 매우 부족한 형편”이라면서 “치료비도 비싸 보통 가정의 환자들은 엄두를 내지 못한다”고 말했다. 마약류의 공급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경찰과 검찰의지속적인 단속과 함께강력한 처벌도 필요하다. 아직 활용도가 높지 않은 ‘마약류 불법거래 방지에 관한 특례법’을 활용,히로뽕 등 마약류 공급 사범이 마약을 팔아 챙기는 불법수익을 몰수·추징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 崔元碩 전 회장 出禁… 재계 긴장

    ◎부실경영 재벌총수 ‘司正 본격화’/비리 미리 들춰내 ‘구조조정 명분쌓기’ 추측도/15개 대기업 오너 거명… 司法처리는 소수 예상 말로만 무성하던 재벌총수에 대한 사정(司正)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부실경영에 대한 막연한 책임이 아니라 재산은닉 등 명백한 범법행위를 묻고 있다.崔元碩 동아그룹 회장이 첫 케이스다.崔회장의 출국금지는 지금까지 재벌총수들에 대한 내사(內査)가 사정당국의 수사로 구체화할 것임을 예고한다. 崔회장의 재산은닉 혐의는 동아건설에 대한 6,500억원의 3차 협조융자 과정에서 드러났다.채권은행단이 동아건설의 자산을 실사하던 중 상당한 금액이 해외로 빠져나간 사실을 확인했다.崔회장과 가장 가까운 인물의 가족에게 사업자금 명목으로 수백만달러가 지원된 것으로 전해졌다.사정당국이 채권단에 귀뜸해 줬다는 얘기도 있다. 채권은행단은 금감위에 이 사실을 통보했고 李憲宰 금감위원장은 5월22일 검찰에 출국금지를 요청했다.동아건설은 하루앞선 21일 협조융자를 받았다.기업은 살고 이튿날 회장에는 사법조치가내려져 희비가 엇갈렸다. 재계는 사정의 칼날이 崔회장에서 끝날 것으로 보지 않는다.정부는 부실기업주의 재산을 몰수하고 형사처벌하겠다고 이미 밝혔다.물론 횡령 등 불법적인 행위에 국한된다.사정당국은 그동안 재벌총수들의 해외 은닉자산을 은밀히 조사했다.국내 도피자산과 편법적인 자금흐름도 관계기관의 협조를 얻어 조사를 마쳤다. 부실기업주 처벌은 기업의 구조조정과도 맥을 같이한다.부실기업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오너의 비리는 불거거지기 마련이다.정부는 이를 감추기 보다 오히려 알림으로써 구조조정의 명분을 쌓고 있다.대구지역의 청구그룹은 비자금 조성과 관련해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현재 J그룹의 J회장,H그룹의 K회장,또 다른 H그룹의 K회장에 대한 내사가 마무리된 것으로 전해졌다.협조융자를 받았거나 부실징후기업으로 분류된 N,H,S,K,A 등 15개 대기업 오너들도 처벌대상으로 오르내리고 있다.그러나 정부가 이들 기업주들을 모두 처벌하지는 않을 전망이다.경제에 미치는 파장을 감안해 사법처리는 1∼2명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대신 금융기관으로 사정의 화살이 비켜갈 가능성이 높다.금융기관 구조조정도 가속화해야 하기 때문이다.과거 정권에서 편법대출을 통해 자리를 유지한 은행장들이 사정대상이다.정부는 환란책임을 금융기관에 묻지는 않았다.그러나 지금은 ‘금융 빅뱅’의 과정에 있다.몇몇 은행들의 퇴출이 불가피하다.현재 금융 구조조정이 혼선을 빚는 것도 우량·부실은행을 가리지 않고 자기들이 합병을 주도하려 하기 때문이다. 최근 사정당국이 시중은행 등 일부 은행장에 대해 내사를 벌이고 있다고 한다.진위 여부를 떠나 구조조정을 가속화화기 위한 차원에서 있음직한 얘기다.
  • 서울신문제정 제8회 마약퇴치대상 수상자/마약없는사회 만들기 앞장

    ◎대상­유관기관 실무대책반/89년 출범 마약류 퇴치 정책총괄/관련부처 유기적 공조체제 확립/韓­中 마약대책회의 창설에 온 힘 제8회 마약퇴치대상에서 영예의 대상(단체상)을 수상한 ‘마약류단속 유관기관 실무대책반’(반장 文孝男 대검찰청 마약과장)은 국내 마약퇴치의 명실상부한 중추기관이다. 유관부처간의 효율적인 정보교환,협조체제 구축 및 범정부적 종합대책 강구·조정 등을 위해 지난 89년 4월 출범했다.마약류를 퇴치하기 위한 정책의수립 및 추진을 담당한다. 대검을 비롯,외교통상부 교육부 보건복지부 관세청 경찰청 식품의약품안전청 안기부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등의 실무 책임자들이 참석한다. 매월 열리는 실무대책반 회의에서는 ▲외국산 마약류의 국내 밀반입 차단 ▲마약류 공급조직 분쇄 ▲청소년 약물남용 확산 방지 ▲국제협력활동 지원 ▲치료·보호제도 활성화 및 대국민 홍보·계몽 등이 논의된다. 96년 12월에는 서울 등 6개 지방검찰청에 ‘검찰·세관 합동수사반’을 편성,외국산 마약류의 밀반입 차단에 유기적인 공조체제를 구축했다. 실무대책반은 해마다 6월에 대검 주최로 열리는 ‘마약류단속 국제협력회의’(ADLOMICO)에 적극 참여,마약류의 유통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고 국제적인 협력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유엔이 정한 ‘세계 마약류 퇴치의 날’(6월26일) 관련행사의 기본계획을 협의·확정해 언론기관과 국민운동단체 등의 참여를 유도하고 마약류퇴치 국민대회,마약류 불법사용자 자수기간 설정·운영,마약류 포스터 전시회 등을 개최하기도 한다.앞으로는 국내에 밀반입되는 히로뽕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국산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중국측에 제의해 놓은 ‘한·중 마약대책회의’ 창설에 힘을 쏟을 방침이다. 文 대책반장은 “건전한 사회에는 마약이 침투할 수 없다”면서 “경제파탄으로 사회 구성원 모두가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더욱 준동하고 있는 마약사범을 뿌리뽑는데 앞장 서겠다”고 다짐했다. ◎특별상­관세청 특수조사과/국내외 수사기관 협력체제 구축/작년에 4만g 373억원어치 압수 전국 세관에 42반 2,534명의 마약전담반을 설치,97년에만 34건 4만2,208g,373억원 상당의 밀수 마약을 압수했다. 미국에서 탐지견 30마리를 도입,전국 주요 공항과 항만에 배치하고 김포 부산 인천 김해 제주세관에 첨단 과학수사장비를 설치해 수사 능력을 배가시켰다. 지난해 6월에는 법원으로부터 마약 밀수 혐의자에 대한 통신제한 허가서를 발부받아 감청을 통해 관련자를 검거하는 등 새로운 수사기법을 개발했다. 국내외 마약수사기관과 협력 체제를 구축해 마약 관련 정보교환을 활성화했다.특히 미국과 독일 등의 정보 제공으로 대마를 밀반입하는 이란인 등 37명을 검거하고 대마와 에페드린을 다량 압수했다. ◎본상­단속=의정부지청 수사반/7명이 혼연일체… 1년간 270명 적발/도시 유흥가 마약류 유입 방지 기여 李기동 마약전담검사 등 7명이 혼연일체가 돼 97년 6월부터 1년동안 마약류 사범 270명을 적발,143명을 구속함으로써 급격하게 도시화되고 유흥지역이 확대되고 있는 경기 북부 지역의 마약류 확산 방지에 기여했다. 97년 6월에는 일본 야쿠자 조직과 연계해 일본산 히로뽕을 국내에 반입,기업체 및 여행사 대표,디자이너 등 중상류층에 팔아온 19명을 적발했다.같은해 10월부터 12월까지는 히로뽕을 흡입하고 러브호텔을 전전하며 불륜을 일삼은 기업체 대표,자영업자,호스테스 등 히로뽕 밀매 및 흡입사범 51명,대마초 상습 흡입자 13명 등 64명을 적발,54명을 구속했다. 특히 98년 3월에는 히로뽕 밀매로 거액을 치부한 조성탁의 아파트와 차량,예금 등 4억원의 재산을 기소 전 몰수·추징보전처분함으로써 마약사범들에게 경종을 울렸다. ◎본상­단속=부산서부署 崔東甲/작년 21건 적발 34명 구속 실적/도주범인 쫓다 전치 16주 부상도 지난해 6월7일 부산시 사상역 앞에서 시가 5억원 상당의 히로뽕 밀매 현장을 급습했다가 달아나는 범인들의 차량에 치어 전치 4개월의 상처를 입고도 권총을 쏴 3명을 붙잡았다. 당시 부상으로 지금까지 통원치료를 받고 있으며 목발에 의지해 출근하고 있다. 지난 1월에도 수영구 수영로터리 부근 주차장에서 히로뽕 판매범을 검거하는 등 지난해 6월부터 21건에 34명을 구속하고 1명을 불구속 송치했다. 73년에 경찰에 투신해 92년에는 전국에서 절도범을 제일 많이 잡아 포도왕상을,93년에는 청룡봉사상 용상을 받았다. 96년 3월부터 부산 서부경찰서 형사과 강력반장으로 근무하면서 몸을 돌보지 않고 강력 및 마약 범죄 근절에 힘썼다. ◎본상­학술=國科搜 마약분석과/논문 15편 발표… 9,000건 감정/히로뽕 성분 모발에 잔류입증도 불과 10명의 인원으로 지난해 5월부터 지난 4월까지 향정신성의약품 환각물질 부탄가스 등 마약류 사건 9,453건을 감정 처리했다. 지난해 5월에는 히로뽕 성분이 소변에서는 발견되지 않더라도 모발에서 발견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경찰에 통보했다. 6월에는 변사자 2명의 피를 분석해 치사량에 가까운 히로뽕을 복용한 사실을 확인,사망 원인을 밝혀내고 신속하게 사건을 종결토록 했다. 지난해 8월에는 이탈리아 파도바에서 열린 제35차 국제법학회에 참석,‘메스암페타민에 존재하는 불순물 분석에 의한 제조원 추적’을 내놓는 등 1년간 15편의 논문을 발표해 마약류 퇴치를 위한 학술 연구 분야에 공헌했다. ◎본상­계몽=식의약청 金炳昱 과장/벌칙·벌금 균형이루게 法 개정/200병상 중독자 진료소 개원 마약법 향정신성의약품관리법 대마관리법을 개정해 마약류 관련 법률의 벌칙과 벌금이 균형을 이루도록 조정했다. 지난해 12월에는 마약류 중독자들이 보다 전문적인 치료와 재활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200병상 규모의 국립부곡정신병원 부설 마약류 중독 진료소를 개원했다. 마약류 오·남용 방지를 위한 표어와 포스터를 공모해 우수작 1편과 가작 2편을 선정,전국에 각 7만부씩 배포하는 등 대국민 홍보 및 계몽 활동을 펼쳤다. 97년 11월에는 교육부 안기부 대검찰청 경찰청 등 마약류 관련 공무원 120명이 참석하는 ‘마약류퇴치 워크숍’을 개최하는 등 업무 협력과 능률향상 등에 기여했다. 이번 달에 개최되는 유엔마약특별총회에서 채택될 ‘마약수요 감축지침선언문’에 대한 의견을 제출하는 등 국제사회의 공동대처 방안 수립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본상­보도=조선일보 方聖秀 기자/동남아 ‘쿤사’ 국내 침투 보도/IMF 이후 급증 사회실상고발 96년 10월부터 검찰청을 출입하며 히로뽕 대마초 헤로인 아편 등 마약류의 확산 추세와 문제점을 심층보도했다. 지난해 6월에는 동남아 최대의 마약 생산·밀매 조직인 쿤사의 국내 조직이 적발됐다는 기사를 게재해 경각심을 일깨웠다. 지난 4월에는 마약사범의 4억원대 재산을 검찰이 처음으로 기소전 몰수 제도를 적용해 몰수했다는 기사를 실어 검찰의 적극적인 대처 의지를 전달했다. 지난해 11월에는 고 朴正熙 대통령의 아들 朴志晩씨의 불행한 삶과 인생유전을 상세하게 보도함으로써 마약에 빠지면 어떻게 되는가를 잘 전했다.지난 4월에도 IMF 이후 히로뽕 등 마약류에 의존하는 사람이 늘었다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소개했다
  • 압수된 수입품 공매 응찰해볼만/관세청 전국 31개세관서 수시입찰

    ◎식품·가전·양주 등 다양… 시가보다 20% 싸/유찰땐 7차례까지 공매… 반값에 살 수도 ‘공매를 통해 싸게 사세요.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있습니다’ IMF 시대에는 전국 31개 세관이 실시하는 공매를 통해 마음에 드는 물품을 싸게 사는 것도 절약의 한 방법이다.보훈복지공단 판매장에서 유찰된 물건을 구입하는 것도 씀씀이를 줄이는 길이다. 관세청 산하 서울 김포 부산 인천세관 등은 외국에서 불법으로 들여오거나 세금을 내지 않아 압수 또는 몰수한 수입품(체화물품)에 대해 주기적으로 공매에 부치고 있다.종류도 수입품 만큼이나 다양하다.농수산물 음식물 가전품 건강식품 영화필름 책 양주 골프채 등 실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관세청은 압수한 수입품을 보세장치장에 3개월,휴대품은 1개월 보관했다가 수입자나 개인이 고율의 세금 등을 이유로 찾아가지 않으면 공개 입찰을 통해 구매자에게 팔고 있다. 일선 세관장은 수시로 이 기한을 넘긴 물품에 대해 예정가격과 공매조건등을 정한 뒤 입찰 10일 전에 매각공고를 낸다.예정가격은 경매비용 등을뺀 금액으로 일반 소비자 값보다 보통 20%정도 싸다. 경쟁 입찰에 앞서 세관은 구매자가 사전에 물품의 종류와 구입 희망 물품을 고를 수 있도록 서울세관의 경우 매주 화·금요일 상오 9시부터 하오 5시까지 보관 중인 물품을 공람시키고 있다. 입찰 자격은 사업자 등록증이 있으면 되며 야생동물 등 특별법이 적용되는 물품은 참가자격을 별도로 제한한다.입찰하기 위해선 사전에 입찰금액의 10% 이상을 통관과에 미리 내야 한다. 낙찰은 원매자 가운데 가장 높은 금액을 써넣은 사람이 된다.유찰 때에는 모두 7차례까지 5일 이상 간격을 두고 입찰이 계속된다.보통 4∼5회에서 낙찰된다.낙찰자는 통상 일주일 안에 잔금을 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낙찰을 포기한 것으로 간주한다. 원활한 낙찰을 위해 3회 입찰때부터 예정가를 처음 가격의 10% 이내에서 내릴 수 있다.7차까지 갈 경우에는 예정가가 처음의 절반값이 되는 셈이다.최근에는 경기불황 탓으로 입찰자가 예년보다 눈에 띄게 줄고 있다. 세관은 낙찰된 물건에 대해 공매비용 관세 세금 등을 제외하고도 남는 돈이 있으면 물건 주인에게 되돌려 준다.끝까지 유찰된 물품은 폐기 또는 국고에 귀속시키거나 보훈복지공단의 진열장에 전시,일반에게 판매한다. 이처럼 관세청이 공매에 부쳐 얻은 돈은 지난 해 모두 174억1,100만원에 달했으며 올들어 4월까지 52억9,600만원으로 집계됐다.95년 180억원,96년 156억원.입찰 관련 문의는 각 세관 화물과.서울세관은 544­3711­5211
  • 부실경영 형사책임 안묻는다/정부 방침

    ◎“법체계상 기업주 처벌·재산몰수 불가능”/횡령 유용때 사법처리·담보범위내 몰수 가능 정부는 부실경영에 대한 책임만으로 기업주를 형사처벌하거나 재산을 몰수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24일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위원회 등에 따르면 정부는 합법적인 절차에 따른 구상권(求償權) 절차는 있을 수 있으나 경영을 잘못했다는 이유로 기업주를 형사처벌하는 행위 등은 현행 법체계상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상법상 대주주나 경영진에 대한 책임은 출자한도 이내로 제한돼 있다”며 “횡령이나 유용 등에 대한 사법처리는 지금도 형법에 따라 처벌하고 있다”고 말했다.이 관계자는 “재산몰수도 대출담보로 잡혀있는 범위에서만 가능한 것”이라며 “경영을 잘못했다고 재산을 몰수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밝혔다. 정부는 그러나 기업재산을 횡령 또는 유용했거나 국내·외에 불법 은닉한 행위에 대해서는 철저히 조사해 사법처리한다는 방침이다.이를 위해 청와대 재경부 금감위 검찰 국세청 등이 합동으로 기업주들의 재산은닉 여부를 내사하고 있다.특히 몇몇 재벌그룹 회장에 대해서는 기업재산의 유용 혐의 등을 잡고 친인척 명의의 국내외 재산내역을 면밀히 조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의 다른 관계자는 “금감위가 부실기업을 판정하면 이들 기업주들은 개인재산을 자진 헌납하거나 검찰의 조사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며 “동아에 협조융자를 해주는 조건으로 崔元碩 회장의 개인재산 헌납을 요구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말했다.
  • 수하르토 일가/軍 보호막 안전할까

    ◎수하르토­처벌·재산몰수 요구 거세 망명 가능성/3남3녀­외채 차입·엄청난 축재… 처벌 불가피 수하르토가 사임함에 따라 그동안 족벌경영으로 인도네시아 경제를 파탄지경으로 몰아넣은 그의 친·인척들의 운명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수하르토 주식회사’란 말이 있을 정도로 수하르토 본인을 포함한 그의 일가 피붙이들은 국가의 모든 산업을 장악하며 엄청난 부를 축재해왔기 때문. 막대한 권력을 휘둘렀던 지난 32년간의 장기집권에서 수하르토가가 끌어모았다고 예상되는 총재산 규모는 3백억달러선(약 40조원).현직 대통령으로 국영항공기제작사의 회장직을 겸임했던 수하르토 개인의 자산이 약 30억달러.여기에 유료도로회사를 운영했던 큰딸 시티 하르디얀티는 하루 수입만 20만달러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그녀의 재산 규모는 아버지와 같은 30억달러선.그러나 대재벌 총수였던 차남 밤방과 토미,티티에크와 마미에크 등 다른 형제들에 비하면 그녀의 재산규모는 새발의 피에 불과했던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더하고 있다.이들은 생전 모든기업거래에서 뇌물을 받아 ‘마담 10%’로 통했던 어머니 티엔의 기업감각을 그대로 전수받았다. 인도네시아 100대 고액소득자에 모두 이름이 오를 정도로 수하르토 자녀들이 막강한 재벌이 된 이유는 수하르토가 자녀들이 진출하는 사업마다 독점을 보장하는 등 이익을 낼 수 있게끔 직간접으로 비호해왔기 때문이다. 수하르토 가족중에 가장 뻔뻔스런 수혜자였던 막내 아들 토미는 그의 소유인 ‘티모르’ 자동차회사를 모든 경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국제통화기금(IMF)의 개혁요구조차 묵살해버리는 절대권력을 누리기도 했다. 군부가 수하르토 일가의 안전을 책임지겠다고 나선 상태지만 급변하는 상황아래서 부정축재의 주범인 수하르토와 그의 자녀들이 어떤 ‘운명’을 맞을지는 예측 불허다.학생과 시민들의 처벌요구에 군이 밀릴 경우,수하르토가 정치적 망명의 길을 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그의 3남3녀 자녀들 역시 부정축재한 재산을 포기하고 해외로 도피하지 않는 한 국민감정상 처벌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현재 인도네시아가 안고 있는 8백억달러의 민간외채중 30%가 이들 수하르토의 자녀들이 차입해온 것으로 드러나 수하르토 일족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최고조에 달해있는 형편이다.
  • 부실기업주 처벌 강화해야(사설)

    정부가 방만한 경영으로 금융기관에 막대한 부실채권을 안겨준 기업주의 재산을 몰수하고 형사책임을 묻기로 한 것을 적극 지지한다.우리나라 대기업 경영형태는 기업주가 ‘고용사장’에게 민·형사상 책임을 떠 맡기고 자신은 회장으로 있으면서 실제로는 사장의 권한을 행사하는 기형적 형태가 일반적이다. 또 기업이 부도가 나면 부실채권을 금융기관에 떠 넘기는 무책임한 경영풍토가 만연되면서 금융기관의 부실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 온 것이다.최근 정부가 기업구조조정조치의 하나로 기업주(지배주주)가 기업의 사장 또는 임원으로 참여,경영책임을 묻도록 하는 장치를 마련했으나 과거 경영부실에 대해서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게 되어 있다. 그 점에서 정부가 금융기관에 부실채권을 안겨준 기업인 가운데 명백한 부실책임이 입증되는 기업주에 대해서는 횡령 등 형사처벌과 재산몰수 등 구상권을 행사키로 한 것은 당연하다. 금융기관 부실로 인해 향후 5년동안 국민이 직접 세금으로 부담해야하는 금융구조조정 비용이 무려 40조원으로추정되고 있다.국민이 억울하게 세금을 부담해서 금융기관을 살려야 하는 마당에 악덕 기업주가 재산을 숨겨 놓고 호의호식하는 것은 결코 용납해서는 안된다. 정부는 미국 부시행정부 때 저축대부조합을 정리하면서 우리나라 성업공사와 같은 기관에 법률관련 부서를 설치하고 연방수사국(FBI)과 공조,부실기업의 경영자와 기업회계 담당자 등 1천500명에 대해 민·형사상 책임을 물은 일이 있다.정부는 당시의 미국사례를 철저하게 연구하여 우리실정에 맞는 조사방법을 강구토록 당부한다. 한국은 미국과 달리 금융실명제가 완벽하게 시행되지 못하고 있고 개도국의 일반적인 형태인 삼각거래를 통한 재산의 해외도피가 비교적 용이하다.정부는 그 점을 감안,부실 기업인의 재산조사를 치밀하고 철저하게 진행해야할 것이다.우리국민의 해외송금 등 이전(移轉)수지 지급액이 지난 97년에는 60억달러로 95년보다 10억달러가 늘어났다. 이는 일부 계층의 해외 재산도피가 한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재산의 해외도피를 가려내기 위해서는 외국 수사기관과 공조체제를구축하는 대책도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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