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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요영화] 신용문객잔

    ●신용문객잔(MBC 일요영화특선 밤12시30분)‘신용문객잔(1992)’은 후진취안(호금전)이 만든 홍콩 무협영화의 경전 ‘용문객잔(1967)’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쉬커(서극)가 제작하고 리후이민(이혜민)이 감독한 ‘신용문객잔’은 무협지에나 나올 법한 얘기를 만화같이 다루고 있다. 권력에 눈먼 환관에 맞서 벌이는 무사들의 결투에 특수촬영을 곁들여 보는 재미가 넘쳐난다. 량자후이(양가휘), 린칭샤(임청하), 장만위(장만옥), 전쯔단(견자단) 등 홍콩의 정상급 스타들을 한꺼번에 보는 호사도 누릴 수 있다. 때는 명나라. 환관들이 득세해 나라를 어지럽힌다. 정보기구인 동창의 세력이 가장 강했는데, 동창은 비밀결사대를 조직해 정적들을 살해하고 백성들을 억누른다. 그 우두머리인 조소흠(전쯔단)은 동창에 반대하던 병조판서 양원을 살해하고 그 일가를 몰살하는데, 두 자녀만은 죽이지 않고 변방으로 데려간다. 이들을 미끼로 남은 양원의 무리들을 유인, 제거하려는 술책이었다. 양원의 심복인 주회안(량자후이)은 양원의 아들과 딸을 무사히 구해내지만 동창의 무리는 그가 탈출하는 것을 막는다. 주회안은 폭우로 길을 떠날 수 없게 되자 용문객잔에서 동창의 무리와 맞서기로 한다. 그러자 주회안과 만나기로 한 주회안의 애인 구모언(린칭샤)과 협객들이 당도한다. 한편 용문객잔의 주인 금양옥(장만위)은 인육만두를 만드는 도둑패의 우두머리인데, 주회안에게 반해 유혹하려 한다. 주회안은 비밀통로를 알아내고자 양옥의 정부가 되기로 결심하는데, 양옥의 이간질로 모언은 회안을 오해한다. 모언은 혼자 길을 떠나다 동창의 공격으로 중상을 입는데…. ‘신용문객잔’은 ‘동방불패(1991)’와 ‘황비홍(1991)’으로 시작된 홍콩 무협영화의 전성기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쉬커와 리휘민, 무술감독 청샤오둥(정소동)의 재능과 상상력이 절묘하게 어우려져 무협영화사에 길이 남을 걸작이 되었다. 특히 마지막 15분 동안 사막에서 펼쳐지는 결투신은 놓쳐서는 안 될 명장면이다.85분.18세 관람가.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15일 TV 하이라이트]

    ●VJ특공대(KBS2 오후 11시15분) 살인적인 이자에 시달리는 사채 피해자가 급증하고 있다. 폭행, 감금, 납치는 물론 가족몰살 협박부터 신체포기각서까지 돈을 받아내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불법채권 추심현장을 따라가본다. 때 이른 더위에 입맛을 살려줄 별미도 살펴본다. 그 특별한 맛의 현장을 찾아간다. ●라이프n조이<양지바른 고장, 밀양>(YTN 오후 8시35분) 영화 ‘밀양’으로 한층 친숙해진 햇볕 가득한 양지바른 고장 밀양으로 안내한다. 호국의 기운이 서린 천년고찰 표충사에서는 호국충정의 혼을 되새겨 보고, 자연 속 시원한 강의 뗏목체험을 해본다. 푸른산, 푸른논이 한눈 가득 펼쳐지는 농가에서 전원의 향취를 느껴본다. ●60분-부모(EBS 오전 10시) 매순간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불길한 상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경하씨를 두렵게 만든다. 출산 후에는 불안해서 버스나 지하철을 탈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오은영 신경정신과 전문의와 함께 경하씨가 안고 있는 문제의 원인과 배경을 찾아본다. 앞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도 살펴본다. ●신동엽의 있다! 없다?(SBS 오후 6시50분) 밥보다 인기 좋은 대한민국 대표 식품 라면을 비닐 봉지에 담아서 파는 것이 있는지, 목숨을 걸고 절벽에서 프러포즈 한 사람이 있는지, 아빠 품에 안겨 있던 아기가 ‘여보’라는 소리만 들으면 울음을 터뜨리는 이유를 알아본다. 경기도 김포에서 10층 탑을 들고 다니는 남자의 정체도 살펴본다. ●내 곁에 있어(MBC 오전 7시50분) 선희는 여행을 다녀온 정자에게 서류에 관해 따진다. 정자는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부정하지만 엉겁결에 은호가 자신을 찾아온 일을 말하고 만다. 그것을 들은 선희는 자신에게 태어난 죄밖에 없는 그들에게 왜 그렇게 모질게 대하냐며 화를 낸다. 그 이야기를 바깥에 있던 지애가 듣게 되는데…. ●이영돈PD의 소비자고발(KBS1 오후 10시) 불법 스팸문자로 인해 정신적·금전적 피해를 입고 있는 소비자를 외면하는 이동통신사를 고발한다. 기존 장례식보다 저렴한 값에 장례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을 내세우며 최근 2∼3년 내에 급증한 상조회사. 노인들을 대상으로 불공정약관으로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는 실태를 고발한다.
  • “천벌받을 X” 11살소녀 5년간 성폭행한 사내

    “이런 짐승같은 X,처녀성을 이유로 나이 어린 소녀를 짓밟다니!” 중국 대륙에 자신의 아내가 처녀가 아니었다는 이유로 동네 어린 딸을 성폭행하는 천벌을 받아도 시원찮을 XX가 등장하는 바람에 충격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천인공노케 하는 X은 중국 동남부 푸젠(福建)성 푸저우(福州)시 창러(長樂)시 탄터우(潭頭)진에 살고 있는 돤(段·38)모.중국 중서부 쓰촨(四川)성 출신인 그는 1999년 아내와 함께 고향으로 떠나 이곳에 정착,뜬벌이 생활을 하고 있다. 16일 동남쾌보(東南快報)에 따르면 돤은 아내가 처녀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이웃에 사는 11살짜리 어린 소녀를 5년 동안 성폭행해오다 덜미를 잡혔다. 그는 어릴 때부터 유달리 여성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것은 물론,여성 편력 또한 보통을 넘었다.이 때문에 여성들과 사귀고 헤어지기를 마치 밥 먹는 것보다 쉽게 행동했다. 그러더중 드디어 결혼을 하게 됐다.10여년 동안 보여온 여성 편력으로 경험이 풍부해진 돤은 그러나 자신의 아내만은 ‘처녀’이기를 바라는 말도 안되는 ‘종자’였다. 신혼 첫날밤,‘종자’는 그렇게 처녀이기를 바라던 신부가 처녀가 아닌 사실을 확인하고는 너무 화가 나고,허탈했다.자기 자신만 화가 나고 허탈하면 그것으로 끝내야지,그에 그치지 않고 자신이 만족감을 얻기 위해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됐다.그 발상은 진짜 처녀를 찾으려는,말도 안되는 일을 벌이려고 한 것이다. 그 희생양은 같은 동네에 사는 겨우 11살된 초등학생 샤오린(小林)양으로 결정됐다.지난 2002년 여름 어느날,돤은 샤오린양이 놀러온 샤오린양을 봤다.너무나 앙증맞은 그녀가 보면볼수록 귀여워 ‘종자’는 즐겁게 얘기를 나눴다. 함께 얘기를 나누다가 샤오린양이 돌아가는 순간,갑자기 짐승같은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저 애는 아직 11살이니까,처녀겠지.” 이같은 생각이 떠오르자마자 돤은 아주 친한 옆집 아저씨처럼 살갑게 대했다. 이때부터 돤은 샤오린양을 만날 때마다 주전부리를 사주고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함께 놀아주었다.그러던중 어느날,샤오린양이 돤의 집에 놀러왔다.마침 ‘종자’의 아내는 집을 비운 상태였다.이에 돤은 고대 한마리의 늑대로 변해 어리디 어린 샤오린양에게 성폭행을 자행했다. ‘종자’는 너무나 황당하고 무서운 일을 당한 그녀가 큰소리로 울자,다른 사람이 알 것을 두려워해 식칼을 들고와 “울음을 그쳐라.그렇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고 욱대겼다.돤은 이어 “오늘 일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만일 부모가 알게 되면 집안을 몰살시켜버리겠다.”고 을러댔다. ‘종자’는 샤오린양이 겁을 먹고 부모에게 말전주하지 않은 사실을 알고는 겨를이 나면 집으로 데려가 어린 양을 범했다.돤은 특히 천벌을 받을 X인 것은 그녀가 샤오린양이 아직 미성숙해 임신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무람없이 자기 욕심을 채운 까닭이다. 그러나 돤은 하나는 알고 둘은 몰라 덜미를 잡히게 됐다.5년동안 그녀를 범하면서 샤오린양도 큰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고 있은 것이다. 지난 3월13일,샤오린양은 몸이 아주 불편해 부모와 함께 근처 병원에 가 진찰을 받았다.그 결과 그녀는 임신한 사실이 밝혀졌다.깜짝 놀란 부모가 샤오린양을 옴니암니 추궁한 끝에 저간의 사정을 알아냈다.이에 샤오린양의 부모는 탄터우 변방파출소에 신고했고,천인공노할 범인 돤은 체포됐다. 온라인뉴스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토요영화]

    ●로베르 브레송의 돈(EBS 오후 11시) 꼭 보아야 할 영화 중 하나로 손꼽히는 걸작이다. 로베르 브레송 감독의 이 영화는 세계에 악이 만연해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그 악의 중심에 있는 것은 돈이다. 지폐가 건네지는 손들을 클로즈업하며 사람을 가장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는 것이 돈이란 것을 보여준다. 모두가 ‘자본주의 신’인 돈의 지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그려냈다. 주인공 이본(크리스티앙 파테이)의 저항은 처음엔 소극적이지만 나중엔 자신의 의지로 살인을 저지르고 그 부산물로 돈을 강탈함으로써 자신을 죽음이란 비극으로 몰고 간다. 용돈이 모자란 고교생이 자신이 만든 위조지폐 500프랑짜리로 사진가게에서 액자를 산다. 돈이 위조지폐임을 눈치챈 주인 부부는 주유원 이본에게 위조지폐를 석유값으로 지불한다. 이본은 그 지폐를 사용한 뒤 위조지폐범으로 오인받는다. 그는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재판정에 서지만 패소하고 만다. 직장에서 쫓겨난 이본은 은행털이에 동참하지만 곧 잡혀 감옥살이를 하게 된다. 감옥에 있는 동안 딸은 병에 걸려 죽고, 부인도 그의 곁을 떠난다. 그후 한 늙은 여인의 뒤를 따라 그녀의 집까지 가고 그 여인은 이본을 헛간에 머물게 해준다. 어느날 밤 이본은 흉기로 잠자고 있던 여인의 가족을 몰살하고 경찰을 찾아가 자수한다. ●괴물(캐치온 오후 10시) 지난해 1305만명이란 경이적인 관객을 동원한 봉준호 감독의 괴물은 한국 영화사에 한 획을 그었다. 한강 둔치로 오징어 배달을 나간 강두(송강호)는 우연히 웅성웅성 모여 있는 사람들 속에서 특이한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생전 보지도 못한 무언가가 한강다리에 매달려 움직이는 것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은 둔치 위로 올라와 사람들을 거침없이 깔아뭉개고 무차별로 물어뜯기 시작한다. 강두도 뒤늦게 딸 현서(고아성)를 데리고 정신 없이 도망가지만, 괴물은 현서를 낚아채 유유히 한강으로 사라진다. 하루아침에 집과 생계 그리고 가장 소중한 현서까지 잃게 된 강두 가족…. 돈도 없고 힘도 없는 그들은 아무도 도와주지 않지만, 위험구역으로 선포된 한강 어딘가에 있을 현서를 찾아 나선다.119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일요영화]

    ●어페어 오브 더 넥클리스(SBS 밤 1시5분) 나폴레옹은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세 가지 이유로 로스박에서의 7년 전쟁의 패배, 네덜란드에서의 외교적 중재 실패, 그리고 ‘목걸이 사건’을 꼽았다고 한다. 그 거짓말 같은 실화인 ‘목걸이 사건’을 다룬 영화가 바로 ‘어페어 오브 더 넥클리스’다.1786년 프랑스 파리. 잔은 왕실과의 불화로 어렸을 때 집안이 몰살당하고 혼자 살아남는다. 잔은 자신의 몰락한 가문의 저택을 되찾을 돈을 구하기 위해 사기극을 벌인다. 잔은 2800캐럿짜리 다이아몬드가 박힌 목걸이를 이용한 사기극을 꾸민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편지를 위조해 추기경의 환심을 사고, 왕비에게로 갈 목걸이를 중간에 가로채겠다는 것. 그러나 영적인 힘을 지닌 한 백작이 잔의 정체를 꿰뚫어본다. 한 여인이 만들어낸 ‘목걸이 사건’스캔들이 예기치 않게 왕실의 사치를 폭로하고 다가올 프랑스 대혁명의 기운에 불을 지핀다. 아카데미 의상상 후보에 오른 작품인 만큼 시대 의상과 왕정 풍경은 볼만하다. 조너선 프라이스가 맡은 타락한 추기경이나 애드리언 브로디가 맡은 잔의 건달 남편은 시대 분위기를 설득력 있게 전해준다.‘소년은 울지 않는다’로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을 수상한 주인공 힐러리 스웽크의 새로운 변신도 눈에 띈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목을 내려친 프랑스 대혁명을 유발한 요부의 성적 매력을 그대로 발산하며 열연을 펼쳤다.2002년 작품. 상영시간 108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아치와 씨팍(캐치온 오후 10시) 임창정과 류승범이 더빙해 화제를 모았던 애니메이션. 모든 자원이 고갈되고 인분만이 유일한 에너지원이 된 어느 도시. 자체 생산이 가능한 이 에너지원을 많이 만드는 사람에게 중독성 강한 ‘하드’(아이스크림)가 부상으로 주어진다. 먹이를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처럼 오늘도 하드를 찾아 헤매는 아치와 씨팍. 그리고 이들의 앞 길을 방해하는 ‘보자기 갱단’. 불의를 못 참는 과묵하고 냉철한 형사 개코가 합세하면서 숨막히는 싸움이 시작된다.
  • 의학 오디세이/강신익 등 지음

    인류의 역사는 ‘질병과 의학의 역사’다.1차세계대전의 피해자는 1000만명이 채 안 되지만 전쟁이 끝날 무렵 유행한 ‘에스파냐 독감’은 2000만∼5000만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중세 말 흑사병이나 16세기 유럽인들이 몰고온 병원균으로 인한 아메리카 원주민의 몰살도 질병과 의학이 역사와 결코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준다.‘의학 오디세이’(강신익 등 지음, 역사비평사 펴냄)는 인문의학과 보건의료사, 고대의학 등을 전공한 4명의 저자가 동서양 의학역사의 가장 위대한 순간을 다룬 인문교양서다. 저자들은 의학이 지닌 인문학적 속성에 주목한다. 이를테면 17세기 의학자 하비가 발견한 혈액순환 원리는 데카르트의 기계론적 철학 발전에 중요한 근거가 됐다는 것. 합리적 의학의 시발점이 된 히포크라테스, 광물학과 연금술을 의학에 접목시킨 파라켈수스,‘노동의학의 시조’ 라마치니,‘사회의학의 원조’ 피르호 등의 이야기가 실렸다.1만 2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조선명가 안동김씨/김병기 지음

    우리는 안동 김씨를 흔히 하나의 가문으로만 알고 있다. 그러나 안동 김씨는 시조가 다른 구안동 김씨와 신안동 김씨 두개의 가문으로 나뉜다. 구안동 김씨는 경순왕의 손자 김숙승이 시조인 반면, 신안동 김씨는 고려 태조의 삼태사(三太師) 가운데 한명인 김선평을 그 시조로 한다. 세도정치로 이름을 떨친 안동 김씨는 신안동 김씨다. 신안동 김씨는 조선말 순조 이후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등 정승 자리를 독차지하며 권력을 좌지우지했다.23대 순조비 순원왕후,24대 헌종비 효현왕후,25대 철종비 철인왕후 등 세명의 왕후를 연이어 배출해 왕실의 외척으로도 세도를 부렸다. 안동 김씨는 과연 세도정치로 나라를 어지럽힌 권문세족에 불과한가. ‘조선명가 안동김씨’(김병기 지음, 김영사 펴냄)는 국가의 운명을 좌지우지한 안동 김씨가 우리 역사의 어둠이자 동시에 빛이었음을 강조한다. 조선 정치의 최정점에 선 신안동 김씨는 왕을 막후에서 조종하며 조선의 역사를 자신들의 손아귀에 넣고 주물렀다. 신안동 김씨의 가문사는 곧 조선의 정치사였다.‘조선은 김씨의 나라이지 이씨의 나라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권력투쟁의 와중에서 안동 김씨는 비극에 휩싸이기도 했다. 김수항으로부터 김창집에 이르기까지 안동 김씨 4대는 당파싸움에 휘말려 몰살당하는 비운을 겪었다. 그러나 안동 김씨는 시대를 이끌어간, 자타가 인정하는 명문가였다. 안동 김씨는 조선왕조 사상 가장 많은 문과 급제자를 배출한 집안의 하나이며, 나라의 위기에 목숨을 아끼지 않은 충절과 절의의 본가였다.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에 맞서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김상용·김상헌 형제는 2상(二尙)이라 불리며 안동 김씨의 위상을 높였다. 책은 구한말 조선총독부로부터 남작 작위를 받은 김가진이 독립운동에 뛰어든 이야기 등 독립을 위해 힘쓴 안동 김씨들의 사례도 소개한다. 안동 김씨야말로 조선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데 앞장선 가문이라는 것이다. 배천 김씨로 독립운동가의 후예인 저자(대한독립운동총사편찬위원장)는 “우리나라에는 뛰어난 명문가가 적지 않지만 문중사(門中史)에 대한 연구는 전무하다시피 하다.”며 “이는 문중사학이 가문의 영광에만 집착, 문중 인물에 대한 어떤 비판도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99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한게임배 마스터즈 서바이벌-2006년 하이라이트(14라운드)] 우변 돌파로 흑 승세 확립

    [한게임배 마스터즈 서바이벌-2006년 하이라이트(14라운드)] 우변 돌파로 흑 승세 확립

    장면도(88∼94) 흑이 중앙에서 두번 연속 빵따냄을 하며 상변 일대를 장악해서 확실하게 우세를 잡은 장면이다. 원래는 백이 중앙 가 부근을 보강하는 것이 정수지만 형세가 여의치 않기 때문에 박정상 9단은 백88, 흑89의 교환으로 임시처방을 하고 손을 빼서 반상 최대인 우하귀에 선착했다. 백90,92를 선수하고 94로 미끄러져 들어가자 백도 우변에 제법 큰 실리를 확보했다. 우상변에 아무런 뒤탈이 없다면 백이 오히려 실리로는 앞서 나갈 수 있는 장면, 그런데 과연 아무 수도 없을까? 실전진행(95∼103) 흑95가 날카로운 맥점으로 축머리와 우변 돌파를 맞보기로 한 호착이다. 백96으로 버텨봤지만 흑97,99의 연속되는 맥점으로 결국 103까지 우상변이 돌파 당하면서 백 두 점이 흑의 수중에 떨어졌다. 이것으로 흑이 실리에서도 백을 월등히 앞서게 됐으며 당연히 형세도 흑이 크게 우세해졌다. (참고도) 실전 백100으로 본도 1로 흑 한 점을 잡으며 버티면 어떻게 될까? 만약 아무 수도 안되면 백은 역전에 성공할 수 있다. 그러나 흑2로 백 한 점을 따내면 흑은 최소한 패는 만들 수 있다. 만약 패싸움을 피하기 위해 백3으로 후퇴하면 흑4로 또 다시 한 점을 따낸다. 계속해서 백5로 지킬 때 흑6,8이면 알뜰하게 산 모양. 이것은 하변 백 대마가 몰살당하기 때문에 승부도 끝이다. 유승엽 withbdk@naver.com
  • 이런 짓도 부창부수?…아내, 남편 성폭행 도와

    “어떻게 이런 일이! 성폭행을 자행하는 데도 부창부수(夫唱婦隨)를 하다니.” 중국 대륙에 아내가 남편이 나이 어린 소녀를 성폭행하는 것을 막아주기는 커녕 오히려 도와주는 철저하게 파렴치한 일이 발생,충격을 주고 있다. 남편의 성폭행을 도운 장본인은 베이징(北京)시 차오양(朝陽)구에 살고 있는 장(張)모씨.그녀는 남편이 어린 소녀를 성폭행하는 것을 목격하고 이를 막아주기는 차치하고, 반항하는 소녀의 손을 제지해주는 등 오히려 방조한 혐의로 쇠고랑을 차게 됐다고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人民日報)의 자매지 경화시보(京華時報)가 최근 보도했다. 사건은 지난해 8월 장의 부부가 어렵사리 꾸려나가는 구멍가게에 겨우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샤오링(小玲·가명·14)양이 점원으로 들어오면서 발생했다.샤오링양이 근무한지 한달여가 지난 9월 어느날 저녁,장의 남편은 에멜무지로 샤오링양의 옷을 벗기며 성폭행을 시도했으나 그녀가 너무 큰소리로 우는 바람에 실패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대로 물러설 장의 남편이 아니었다.이미 인간이 아닌 짐승이 됐기 때문이다.이 일이 있은 후 그녀의 남편은 호시탐탐 기회를 엿봤다.그러던 어느날 장의 남편은 끝내 어린 샤오링양을 짓밟아버렸다. 이때 장은 온힘을 다해 저항하는 샤오링양을 도와주기는 커녕 오히려 그녀의 옷을 벗기거나 팔다리를 잡아 남편이 손쉽게 성폭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악녀의 짓을 거침없이 저지른 것이다. 특히 장은 샤오링의 완강하게 반항하자,“죽여버리겠다.너의 집안을 몰살시켜버리겠다.”는 등 갖은 협박과 함께 온몸을 사정없이 두들겨 패기까지 했다. 이 과정에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큰 상처를 입은 샤오링양은 더 이상 점원생활을 하지 못하고 집으로 되돌아갔다. 샤오링의 부모들은 돈 벌러간 그녀가 돈도 벌지 못하고 아무 말없이 집으로 돌아오자,돌아온 이유가 무척 궁금해졌다.하지만 샤오링양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혼자 방안에만 있지,도무지 집밖으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이에 걱정이 된 아버지와 어머니가 겨끔내기로 달래기도 하고,혹은 크게 나무라기도 하며 집요하게 물어봤으나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밤 일찍 잠이 든 샤오링양이 우연히 잠꼬대를 하는 과정에서 “왜 이러세요.제발 나를 가만 두란 말이에요.”라고 큰소리를 버럭 질렀다.옆에 같이 자던 가족들이 깜짝 놀라 일어나 그녀를 집중 추궁한 끝에 이들의 파렴치한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차오양법원은 비공개 재판을 통해 성폭행을 도운 장에게는 징역 4년을,성폭행을 자행한 남편에게는 강간혐의를 적용해 징역 7년을 선고했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부산에서 서울까지 다시 걷는 옛길] (11) 충주길(하)

    [부산에서 서울까지 다시 걷는 옛길] (11) 충주길(하)

    마당바위를 지나쳐 달리던 영남대로는 국도 3호선과 갈라져 충주시내로 접어든다. 달천(달래강) 오른쪽에 길이 나 있다. 지금은 시가지가 발달돼 있지만 험준한 산들이 없고 널따란 평야지대가 펼쳐져 예전에는 여기부터 행인의 발걸음이 훨씬 빨라졌을 듯하다. 충주시 살미면 향산리에서 국도와 잠시 결별한 옛길을 따라 300m쯤 올라가면 대림산성이 나온다. 단월동 창골을 둘러싸고 있는 이 성은 둘레 4906m의 토석혼축이다. 높이 4∼6m로 충북도기념물 110호이다. 충주박물관 길경택 학예연구실장은 “신라말·고려초 지은 성으로 앞에 달천이 해자(垓字·성 밖으로 둘러판 못) 역할을 하는 ‘천혜의 요새’”라고 말했다. ●임장군, 이심바위 전설로 이 성에 조선 선조 때 지어진 ‘정심사’라는 절이 있고 그 앞을 ‘삼초대’라고 부른다. 작은 산이나 골이 깊고 경사가 크게 져 있다. 입석 안내판에는 ‘임경업(1594∼1646) 장군이 대림산에서 태어나 학문을 닦고 3단계로 석축을 쌓아 무술을 연마했다.’고 써있다. 건너편 산 밑에 장군의 묘가 있다는 것도 알려주고 있다. 달천을 건너 임경업 장군의 묘가 있는 풍동에서 만난 주민 김희순(73)씨는 “이 마을에 임장군 후손들이 많이 살고 있는데다 매년 시제에 전국에서 임씨들이 와 제사를 지낸다.”고 전했다. 달천을 따라 삼초대를 거쳐 1㎞남짓 가던 길은 유주막 마을에서 시내 도로와 합쳐진다. 단월역이 있었던 곳으로, 예전에는 주막촌이 형성됐었다. 조선조 학자인 유영길과 동생인 영의정 유영록 등 유씨 가문 사람이 많이 왕래한 데서 이름이 붙여졌다. 유주막에서 풍동으로 가는 달천변 절벽에 이심바위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도로확장 공사로 사라지고 없다. 이 바위는 임장군이 새벽 훈련을 하고 달천 물을 떠마시려는 순간, 강 속에서 이무기가 나타나자 꼬리를 잡고 내동댕이치자 바위가 움푹 파이며 이무기가 죽었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옛길은 시 외곽을 흐르는 달천을 따라 가다 임경업 장군의 영정을 모신 충렬사와 철불좌상(보물 512호)이 있는 단호사를 지나 달천교에 다다른다. 이 철불좌상은 충주가 예전에는 주요 철 생산지였음을 방증하고 있다. 현재 달천교는 두개가 있다. 모두 2차선으로 서울쪽으로 가는 다리는 1990년에 건설됐고 시내쪽으로 들어오는 것은 1999년에 바로 옆에 만들어졌다. 충주문화원 김영대 사무국장은 “일제시대 초까지 이곳에 나루터가 있고 부근에 뱃사공촌과 주막촌이 발달했었다는 얘기를 전해들었다.”고 말했다. ●피눈물 흘린 당간지주 달천교를 건넌 옛길은 국도 3호선과 겹치면서 충주시 주덕읍까지 한참을 내달린 뒤 신니면 방면으로 방향을 튼다. 3호선을 타고 5∼6분간 달리다 군도 27호로 빠져 면사무소 앞을 지나쳐 다시 그만큼을 달리면 신덕저수지에 도착한다. 널따랗고 시원하게 펼쳐진 저수지 곳곳에 낚시꾼들이 보인다. 당초 군도 27호가 국도 3호선이었으나 몇년 전 국도가 새로 만들어지면서 이전 길이 군도로 바뀌었다고 한다. 길에서 오른쪽으로 저수지를 끼고 돌아 깊숙이 들어가면 ‘숭선마을’이 있다. 행정구역은 신니면 문숭리에 해당한다. 이 마을회관 앞에 높이 4.2m에 이르는 사찰의 당간지주가 서 있다. 당초 숭선사에서 기를 꽂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당간지주만 남아 있는 것이다. 숭선사는 고려 광종이 954년에 어머니인 신명순성 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절이다. 마을이름도 이 절에서 따와 내려오는 것으로 전해진다. 신명순성 왕후는 고려 태조의 비(妃)로 충주유씨 유긍달의 딸이다. 정종과 광종 등 5남2녀를 낳았다. 당간지주 앞에 있는 안내판에는 ‘당간지주는 동서 한 쌍이 서 있었으나 일제가 신덕저수지를 만들 때 석재로 쓰기 위해 동쪽 지주를 잘랐다. 하지만 이를 자른 사람이 화를 입어 서쪽 지주가 보존됐다.’고 써 있다. 주민 정건양(88·여)씨는 “일본 사람이 수놈을 가져가 저수지 만드는데 쓰고 암놈을 더 자르려는 데 이 징대(지주)에서 피가 나 못 가져갔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주의 무릎 부근에 주먹 크기로 파인 흔적이 남아 있다. 현재 지주는 검은 이끼에 덮인 채 볏가마니를 쌓아두는 기둥으로 쓰이고 있었다. 되돌아 나오면 저수지 바로 위에 동락초등학교가 나타난다. 한국전쟁에서 첫 승리를 거둔 곳이 이 학교이다. ●전쟁과 여교사 학교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이 ‘김재옥 교사 기념관’이다. 김 교사는 이 학교에 재직하던 한국전쟁 때 승리의 주역이었다.6·25가 터진 1950년 7월7일. 이 학교를 점령 중이던 북한군의 정보를 국군 6사단 7연대 1·2대대에 알려줘 저녁식사 때 기습적으로 공격, 전쟁후 첫 승리를 거두게 한다. 이튿날까지 계속된 소탕작전으로 북한군 800명이 사살되고 90여명이 포로로 잡혔다. 장갑차 3대와 각종 총기를 포획하고 ‘소련제’임을 알리는 총기 1점을 유엔에 보내 참전을 이끌어내는 데 힘이 됐다. 이 전투에서 국군은 1명만 경상을 입는 완승을 거뒀다. 김 교사는 이 부대 소대장과 결혼, 남편을 따라 강원도 인제에서 학교 설립에 힘을 보태며 단란하게 지내다 1963년 10월 ‘고재봉사건’ 때 원한대상으로 오인받아 일가족이 몰살되며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국방부는 김 교사의 반공정신을 알리기 위해 ‘전쟁과 여교사’라는 영화를 만들어 전국에 상영하기도 했다. 교정에는 ‘김재옥 여교사 충혼탑’이 있고 200여m 전방에 별도로 ‘동락전승비’를 세워 김 교사의 업적과 정신을 기리고 있다. 이곳에서 얼마 안 가면 신니면 모남리가 나온다.‘모도원’이란 돌팻말만 남아 있는 이 마을은 조선조 나그네들이 쉬었다 가던 길로 주막이 많았다. 주민 김성숙(66·여)씨는 “30년전 이사왔을 때는 70가구가 넘었는데 지금은 20가구도 안 된다.”면서 갈수록 작아지는 마을 분위기를 전했다. 폐가도 더러 보이고 길 건너에는 폐가조차 한 채도 없어 썰렁했다. 이 마을을 넘자마자 충북 음성군 생극면으로 빠지고 군도나 지방도를 따라 옛길은 경기도 용인으로 들어간다. 글 사진 충주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달래강 전설과 문학 옛날 충주 달래강변에 오누이가 있었다. 오누이는 강 건너편에 있는 밭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살았다. 어느 날 오누이는 평소처럼 일을 끝내고 강을 건너고 있었다. 강은 소나기가 퍼부은 뒤라 많이 불어 있었다. 앞서 강을 건너던 여동생의 옷이 불어난 물에 흠뻑 젖으면서 속살이 훤히 내비쳤다. 여체가 아름답게 드러났다. 오빠는 욕정이 솟구쳤다. 죄의식에 사로잡힌 오빠는 들고 있던 낫으로 자기의 성기를 찍었고 그 자리에서 죽었다. 그러자 누이가 통곡하면서 말했다. “달래나 보지. 달래나 보지…” 했다고 한다. 이 말에서 ‘달래강’이란 강 이름이 생겼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 전설은 ‘달래’라는 지명이 있는 다른 지방에도 비슷한 내용으로 떠돌고 있다. 오빠인지 남동생인지, 낫으로 찍었는지 돌로 찍었는지 명확하지 않게 뒤섞여 내려오는 것을 보면 부풀려져 오랫동안 생명을 이어온 듯하다. 더구나 충주 달래강은 영남대로를 따라 흘러 행인들이 쉴 새 없이 오가던 곳이 아니던가. 호기심이 동할 ‘근친상간’ 내용을 담은데다 내용도 애달퍼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딱 좋은 전설이다. 충주에서 태어난 ‘농무’의 시인 신경림은 ‘달래강 옛나루에’ 시에서 ‘달래강 옛나루에 목을 잡고/이렁저렁 한세월 녹두적이나 구웠지/여름도 유월 진종일 돌개바람 일고/돌개바람 일어 모래기둥 올리고/어리석은 길손들만 찾아 들더라’고 노래하고 있다. 달래강은 속리산에서 발원해 탄금대까지 120여㎞를 달리는 조그만 천이다. 임진왜란 때 중국의 한 명장이 달래강 물을 떠먹은 뒤 “명나라에서 유명한 여산의 약수보다 낫다.”고 칭송했다고 한다. 이런 일로 맛이 단 냇물이라고 해 단냇물이 됐다.‘달다’의 달냇물로 변했으며 한자로 바뀌어 지금의 ‘달천’이 됐다는 설도 있다. ‘저 건너…억새꽃 무더기여, 그걸 보고가면 제일 얕은 여울이여’ 등 달래강을 시로 노래해온 향토시인 임연규(52)씨는 “어릴 적 놀이터인 달래강이 버릴 것 같아 남들에게 자랑도 하지 않는다.”고 애틋함을 내보였다. 한국문인협회 충주지부 엄인순 사무국장은 “충주에서 태어난 문인치고 달래강을 노래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충주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2031년 이란·이스라엘 핵전쟁”

    2001년 9·11 테러 발생 이후 30년이 지난 2031년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영국 출신의 역사학자인 미국 예일대 폴 케네디 교수가 전망한 2031년 세계 모습을 인디펜던트가 11일 소개했다. 케네디 교수는 테러 30년 후의 세계는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테러의 여파에 훨씬 덜 시달리고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30년후에도 중동은 여전히 지구촌 무력분쟁의 무대가 될것으로 내다봤다. 미국은 군사력, 경제·기술력의 우위를 바탕으로 최강국으로 남아 있겠지만,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에 따른 재정 위기와 군사적 실패로 협력외교를 추구하게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중국과 인도는 국제 사회의 중요한 일원이 되고 유럽연합(EU)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끊임없는 불안감 속에서도 현실적으로는 세계 무대의 네 번째 강자로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중동 지역은 드라마틱한 반전이 전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2009∼2012년 격동의 시대를 통해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시리아 정권이 거의 동시에 몰락한다는 설명이다. 케네디 교수는 무엇보다도 이란이 핵무기로 이스라엘 제1의 도시 텔아비브를 파괴하고 이스라엘도 핵으로 반격, 이란인 1000만명이 몰살하는 무시무시한 핵전쟁을 예견해 눈길을 끌었다. 가장 큰 변화는 알카에다의 소멸이다. 알카에다는 2010∼2012년 중국 서부지역에서 무슬림에 대한 보안조치에 항의, 상하이와 베이징에 폭탄 테러를 감행한 후 세력을 잃는다. 케네디 교수는 2031년 지구는 2001년 전문가들이 진단했던 것보다는 나은 상황에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이 한권의 책] ‘혼세의 삼국’ 균형을 잡다

    요즘 TV사극들의 턱없는 민족주의와 사실왜곡에 황당한 느낌을 가져본 적이 있는가.‘김춘추-외교의 승부사’(박순교 지음, 푸른역사 펴냄)는 영웅을 그리되, 어깨에서 힘을 뺀 담백한 서술이 돋보이는 책이다. 문장이 밋밋하고 재미없다는 뜻이 아니다. 저자는 김춘추의 집권과정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역사학자다. 그만큼 사실(Fact)과 상상(Fiction)을 구분해 보이고 있다. 과장과 오류로 독자를 오도하는 흔한 팩션(Faction)이 아니라, 독자에게 생각할 여백을 돌려주고 있다는 뜻이다. 책은 얼핏 태종 무열왕 김춘추의 외교 활동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비친다. 김춘추는 약소국 신라가 백제·고구려를 제압하고 통일대업을 달성하는 밑거름이 됐던 당(唐)과의 연합을 성사시킨 인물이다. 죽음을 무릅쓰고 고구려와 왜(倭)를 방문해 외교담판을 시도하고 당 태종을 찾아 나당동맹을 완성해 내는 과정이 생생하게 묘사된다. 오직 생존만이 지상과제였던 당시 상황에서 실리주의 외교는 유일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외교관으로서 김춘추 조명에만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진골에 속해 숨을 죽이며 살아야 했던 한맺힌 가족사와 이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개척해 마침내 왕위에 오르고 통일의 초석을 놓는 인간 김춘추의 모습에 더 많은 애정을 보인다. 책은 김춘추의 인간적 고뇌와 열정을 사랑하는 딸의 죽음 장면에서부터 풀어나간다. 문희와의 숙명적 인연의 결과 출생한 딸 고타소는 백제 의자왕이 일으킨 침략군에 의해 일가가 몰살한다. 수급(首級)이 잘려나간 처참한 주검 앞에 격분한 김춘추는 고구려행을 결심하며 통일의 의지를 불태운다. 조부 진지왕의 폐위와 가문의 몰락, 아버지 비형의 아들을 위한 희생 또한 김춘추가 절치부심하는 배경이 됐다. 비형은 아들에게 외국어를 가르치고 신라와 왜의 당 유학생을 집안에 초치하여 국제감각을 키워주는 데 전력하는 ‘선진적’ 인물이었다. 진지왕과 유부녀 미도부인의 사랑, 집권 후 소원해진 김유신을 회유하기 위해 예순이 넘은 그와 어린딸을 혼인시키는 장면 등은 제도와 권력의 모순을 보여주기도 한다. 당시는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 비견되기도 하지만, 개별 국가의 내부사정 또한 물고 물리는 권력다툼의 연속이었다. 동생과 아비를 죽이고 집권하는 당태종, 쿠데타를 일으켜 영류왕을 죽이고 보장왕을 옹립한 연개소문, 친백제 정부를 제거하고 개혁을 추구하던 중대형 등이 모두 김춘추의 협상 상대자였다. 이들과의 조우 과정에서 드러나는 각국 이야기도 대중에겐 새롭다. 전반을 통하여 적절히 삽입되는 당시의 생활상은 배경에 불과한 듯싶지만 현대 역사학이 추구하는 중요한 탐구 목표이기도 하다. 대략의 둘레만 1023보에 이르렀다는 왕궁 월성의 풍경과 신라군단의 직능·계급별 군장 묘사, 온돌과 바둑·공차기가 등장하는 고구려 풍속 묘사 등은 당시 사람들이 눈앞에 오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삼국사기’‘삼국유사’‘송서’‘양서’‘구당서’‘일본서기’‘동경잡기’ 등 사료를 인용한 각주 때문에 무조건적 몰입보다는 거리두기가 유지된다. 까다로운 문장과 어려운 단어들이 눈에 띄지만 이는 지식소설을 읽는 독자들이 감내해야 할 몫이다. 또한 고대 분위기 재현 효과도 거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김춘추 개인에 초점이 맞춰져 그의 죽음과 함께 삼국통일의 여정이 끝나버리는 것은 조금 아쉽다. 에필로그 하나쯤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1만 5000원. 신연숙 문화담당 대기자 yshin@seoul.co.kr
  • 빈 라덴 친구가 밝히는 그의 어린시절

    “축구 경기를 하다 휴식 시간에 상대 선수가 그에게 거칠게 구는 것을 보고 쫓아가 떼어 놓았다. 그는 ‘네가 몇 분만 더 기다렸으면 난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어.’라고 말했다.” 9·11 테러의 배후 조종자로 쫓기고 있는 오사마 빈 라덴이 어린 시절 신앙심 두터운 얌전한 소년이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그의 이웃집 친구로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의 유력지 알 매디나 편집국장 대행인 칼리드 바타르피(작은 사진)는 미국 CNN이 제작해 23일 방영하는 다큐멘터리 ‘빈 라덴의 발자취’에서 이렇게 증언했다. 바타르피는 빈 라덴과 함께 10대 시절을 보낸 제다의 뒷골목에서 가진 인터뷰를 통해 그가 가라테 영화를 좋아했으며 미국제 자동차를 몰며 하루에도 몇 차례나 이슬람사원을 찾아 경의를 표하는 내성적인 아이였다고 회고했다. 바타르피는 그렇게 내성적이며 평화를 사랑하던 아이가 어느날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이를 몰살시킨 테러의 배후 조종자로 나타났을 때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그의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한 것은 이스라엘이 1967년 6일전쟁을 통해 예루살렘을 점령했을 때였다. 그는 예루살렘 해방에 대비해 유약해지지 않아야 한다며 수영과 승마를 배우는 한편, 주말엔 해변 대신 사막을 찾으며 ‘거친 삶’을 익혔다. 그러나 온전히 자신의 길을 찾은 것 같지는 않았다. 부친 곁에서 빌딩 사업을 돕던 빈 라덴은 1979년 옛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비로소 명분을 찾은 것으로 보였다. 어릴 때와 달리 말도 많아지고 신앙심 깊고 더 확신에 찬 모습으로 바뀌었다. 그는 자신이 연설하는 아프간 전쟁 모임에 바타르피를 초청했고 친구들에게도 전쟁의 실상을 보아야 한다며 아프간으로 달려올 것을 권했다. 그는 폭력과 전투, 그리고 문화가 빈 라덴을 변화시켰다고 생각한다. 사람을 죽이고 추적을 받으면서 가족, 친구, 원래의 평탄했던 삶에서 격리돼 동굴에 기거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테러리스트의 길을 걷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바타르피는 “아버지의 뒤를 이었더라면 그는 중동에서 가장 성공적인 사업가, 즉 제2의 빌 게이츠가 될 수 있었을 것”이라며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었다고 돌아보았다. 한편 빈 라덴이 한때 미국 여가수 휘트니 휴스턴을 매우 사랑해 남편이었던 바비 브라운을 죽이고 그녀를 첩 중의 한 명으로 데려올 생각까지 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영국 일간 데일리 메일은 21일 수단 출신 여작가 콜라 부프의 자서전을 발췌한 패션잡지 ‘하퍼스 바자’의 기사를 인용, 빈 라덴이 서류가방에 플레이보이, 스타 등의 잡지를 갖고 다녔으며 ‘맥가이버’‘케빈은 12살’‘마이애미 바이스’ 등의 미국 텔레비전 시리즈를 좋아했다고 전했다. 부프는 약 10년 전 납치돼 모로코의 한 호텔에서 넉달 동안 빈 라덴의 성 노예로 잡혀 있었다고 주장해 왔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사설] ‘야만’으로 치닫는 레바논 사태

    레바논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이 3주째를 맞고 있다.12일부터 시작된 이스라엘 침공은 당초 정치단체인 헤즈볼라에 의해 포로가 된 이스라엘 병사 2명의 구출 등 제한적인 목적에서 벗어나고 있다. 양측 사망자는 400명을 훌쩍 넘어서고 있다. 피해자 가운데 어린이들이 200명이 넘는다고 라말 주한 레바논 대사는 밝히고 있다. 외신들은 이스라엘군의 폭격으로 일가족이 몰살당한 참상을 잇따라 전하는 등 레바논 사태는 ‘야만’으로 치닫고 있다. 그제는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레바논 남부지역에서 평화유지활동을 펴고 있는 비무장 유엔감시단원 4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에 대해 아난 유엔사무총장은 “유엔을 표적으로 삼아 정조준 공격을 가했다.”고 비난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침공 초기의 방침을 바꿔 지상군을 레바논 남부 지역에 투입하기로 하는 한편, 국제평화유지군이 투입될 때까지 점령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레바논 사태에 대해 국제사회는 어제 이탈리아에서 국제회의를 열었지만, 국제평화유지군의 구성은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레바논인들의 피해와 고통이 지속될 우려가 높다. 이스라엘과 헤즈볼라는 이를 막기 위해 즉각 휴전에 들어가야 한다. 아울러 미국도 이스라엘을 일방적으로 두둔하면서 헤즈볼라가 테러단체라며 협상대상에서 제외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에 휴전 압력을 가하는 한편 헤즈볼라가 레바논인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원인을 헤아려 근원적인 평화안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 英인디펜던트 “이스라엘은 전범”

    英인디펜던트 “이스라엘은 전범”

    “그 소녀의 주검은 자동차 옆에 너덜너덜해진 인형처럼 누워 있었다.자신과 가족을 안전한 곳에 데려다줄 것으로 믿었던 차에서 그녀는 튕겨나와 처참하게 숨졌다.레바논 전쟁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스라엘 정부는 9일째 계속되는 레바논 공격의 명분을 피랍 병사 구출과 이슬람 시아파 무장세력 헤즈볼라의 해체라고 강변한다.무고한 민간인 피해는 군사작전에 수반되는 ‘부수적인 피해’라는 식으로 빠져나간다.과연 그런가? 영국의 진보일간지 인디펜던트는 20일자 1면에 게재된 로버트 피스크 기자의 베이루트 르포를 통해 이제 전쟁범죄 얘기를 꺼내야 할 때라고 주장한다.다음은 르포 요약. 소녀의 죽음은 잘 연출된 다큐멘터리 같다.그녀와 가족,주민들이 살고 있던 남부 레바논의 국경 마을에 15일 갑자기 이스라엘 군인들이 들이닥쳤다.그들은 헤즈볼라 기지가 너무 가까워 공습에 다칠 수 있다며 마을을 떠나라고 명령했다.주민들은 명령에 할 수 없이 따랐지만 곧 근처를 지키던 가나 출신 유엔평화유지군에 자신들을 보호해달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가나 병사들은 1996년 유엔에 의해 만들어진 교전수칙에 따라 민간인들을 기지에 수용할 수 없다고 거부했다.역설적이게도 10년 전 이스라엘이 카나의 유엔 시설을 공습하는 바람에 보호받던 민간인 106명-절반 이상이 어린이들-이 몰살당한 데 따라 만들어진 수칙이었다. 얼마 뒤 주민들은 북쪽에 있는 텔 하르파 마을로 데려갈 호송 차량에 올라타게 됐고 그 마을 근처에서 그만 이스라엘 전투기가 퍼부은 폭탄에 희생되고 말았다.모든 차량이 폭탄에 산산조각났고 소녀와 부모를 비롯,20여명이 목숨을 잃었고 12명은 몸에 불이 붙은 채 차량에서 간신히 빠져나왔다.소녀의 이름조차 알 길 없다. 얼마나 빨리 ‘전범’이란 용어를 꺼내야 할 것인가?얼마나 많은 어린이들이 이스라엘 공습에 찢겨져야 ‘어쩔 수 없는 피해’라는 애매모호한 단어를 부인하게 될까?이제 인간성에 반하는 전범 얘기를 시작할 때가 아닌가? 무고한 희생은 19일에도 계속됐다.이스라엘 미사일이 나바티 마을을 박살냈을 때 민간인 5명이 숨졌다.남부 스리파 마을 가옥 15채가 무너졌을 때 적어도 23명이 목숨을 잃었고 건물안에 갇혀있던 부상자를 구조할 사람조차 찾을 수 없었다.레바논 당국은 동부 베카 계곡의 나비칫 마을이 공습당한 뒤 숨진 이들의 이름조차 확인해주지 못했다. 이스라엘은 늘 ‘핀으로 집어내듯’‘외과수술같은’ 정밀한 공습 능력을 자랑해왔다.그러나 이들의 공습이 무고한 시민을 살해할 목적으로 치밀하게 기획됐다는 증거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실제로 헤즈볼라 로켓포도 이스라엘 시민을 살상한 적이 있지만 이건 부정확한 군사력의 반증이었다.서구 국가들도 이스라엘 공군에는 헤즈볼라보다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마땅하다.그런 기준에서 이스라엘이 베카계곡에 있는 우유공장을 박살낸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왜 미국계 생필품 회사의 수입 창고를 공습해야 하는가?베이루트 외곽의 종이상자 공장과 시리아로부터 들여오던 새 앰뷸런스에 폭탄을 퍼부은 이유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텔 하르파 마을에서 숨진 소녀가 ‘테러리스트 타깃’인가? 이스라엘이 레바논내 목표물을 얼마나 부주의하게 골랐는가를 잘 보여준 사례는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협력자가 살고 있다고 주장한 베이루트의 기독교 구역에 있는 사용하지도 않는 주차장에 미사일을 4발이나 퍼부은 것에서 드러난다.심지어 진창에 빠져있던 샘물 파는 관정기 2대를 폭격하기도 했다. 지하드 아주르 레바논 재무장관은 이번 공습으로 45개의 다리가 파괴되고 50만명의 민간인이 삶의 터전에서 쫓겨났다고 주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레바논에서 이중 국적을 지니고 있던 수천명의 외국인들이 탈출하고 있다.요르단 암만에 있는 프랑스계 보안회사는 버스로 미국인 한명을 탈출시킬 때마다 3000달러를 받기로 하고 미국 정부에 고용됐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물론 그들은 다마스쿠스나 키프로스에 무사히 도착하기만 한다면,텔하르파에서 몸에 불이 붙은 채 호송차량을 빠져나온 이들보다 운이 좋은 편이다. 한편 19일 하루동안 이스라엘 공습에 70명이 숨져 9일째 이어진 이스라엘 공습기간 가장 많은 인명 피해를 기록했다.지금까지 300여명이 목숨을 잃었고 다친 이는 1000여명이라고 푸아드 시니오라 레바논 총리는 전하면서 즉각 휴전과 국제적인 긴급 원조를 호소했다.20일 뉴욕에서 유엔 사무총장,미 국무장관,유럽연합 대표 등이 회동하지만 전쟁을 뜯어말릴 뚜렷한 해결책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하는 이는 찾아보기 어렵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제16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본선2회전] 흑의 착각으로 승부 결정

    [제16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본선2회전] 흑의 착각으로 승부 결정

    제8보(188∼212) 하변 패가 승부의 관건이다. 백188로 팻감을 썼을 때 흑189로 (참고도1) 흑1로 패를 해소하면 백2로 끊어서 바꿔치기가 된다. 이때 흑은 3으로 상변을 잇게 되는데, 이 결과는 미세하지만 흑이 덤을 내기 힘들다. 그래서 흑189로 받고 191을 팻감으로 쓴 것이다. 백192는 엉뚱한 수인 것 같지만 정수이자 호착. 이 수를 손 빼고 (참고도2) 백1로 이으면 흑6까지 우변 백 대마가 몰살당한다. 치열한 팻감 공방전 끝에 흑도, 백도 팻감이 떨어져 가고 있는 상황에서 백208의 팻감이 등장했다. 다음에 마땅한 팻감이 없는 흑은 209로 패를 해소했는데, 이것이 착각이다. 아마도 백210 다음 (참고도3) 흑1,3으로 두는 수가 있는 것으로 생각한 것 같은데 백A면 흑B로 끊어서 백이 걸리지만 그냥 백4로 단수치면 그만이다. 백212까지의 바꿔치기는 백의 대득. 여기에서 승부가 결정됐다. 나머지 수순은 총보에서 소개한다. (193=▲,196=190,201=▲,204=190,207=▲ 유승엽 withbdk@naver.com
  • [제16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본선 2회전]최후의 승부수

    [제16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본선 2회전]최후의 승부수

    제6보(120∼144) 이미 집의 균형은 무너졌다. 우상귀부터 우변에 이르는 흑집은 아무리 적게 계산해도 60집이 훨씬 넘는다. 즉 백은 좌상귀부터 중앙에 이르는 흑 대마나 좌하귀 흑 대마 중에서 한 개를 반드시 잡아야 한다. 공격을 통해서 약간의 이득을 보는 정도로 추격할 수 있는 단계를 이미 넘어섰기 때문이다. 흑121의 젖힘에 백122의 껴붙임이라는 극약처방을 들고 나와서 일단 차단한다. 슬슬 중앙으로 내몰면서 공격하기에는 백의 입장이 너무나 다급한 상황이다. 그러나 김기용 3단은 129까지 간단하게 사는 형태를 갖춘 뒤에 더 이상 좌상귀 대마를 보강하지 않고 중앙에 못질한다. 백136으로 (참고도1) 1에 젖히면 아직 흑 대마는 미생이다. 흑2로 빠질 때 백3이면 한집을 만들 수 없다. 그러나 흑4로 단수 칠 때 백은 6에 이을 수 없다. 백5로 보강해야 하는데 흑6이면 패. 그나마도 한수 늘어진 패이다. 백이 패를 졌을 때의 손실도 적지 않다. 따라서 백은 패를 걸어가지 못하고 136으로 좌하귀를 압박하고 나선 것이다. 이때 흑137이 또한 강수. 백138로 (참고도2) 1에 한칸 뛰어서 좌하귀 흑 대마를 잡아버리고 싶지만 흑2면 중앙 백 대마가 몰살당한다. 백 대마가 훨씬 더 크기 때문에 이것은 흑의 대승이다. 흑143으로 막아도 아직 좌하귀 흑 대마는 확실한 완생은 아니지만 됫박형이어서 잡으러가는 것도 불확실하다. 그래서 멀찌감치 백144로 뛰어든다. 최후의 승부수이다. 유승엽 withbdk@naver.com
  • 印尼 ‘탐보라 문명’ 찾았다

    1815년 4월10일 인도네시아 남쪽 슘바와섬에 있는 탐보라 화산이 역사에 기록된 폭발 중 가장 강력한 폭발을 일으켰다.1980년 세인트 헬렌 화산 폭발 때보다 무려 200배의 위력이었다. 4000m의 화산이 폭발 후 3000m로 바뀌었다. 4억t의 화산재와 가스층이 하늘을 뒤덮는 바람에 이듬해 세계 곳곳의 기후가 서늘해지고 작물이 심각한 냉해를 입어 “여름이 사라진 해”로 기록될 정도였다. 섬 주민 11만 7000여명이 화산에서 흘러내려온 재와 용암에 몰살당했고 이곳에 존재하던 문명도 2.9m 높이의 잔해 더미에 묻혀 버렸다. 그래서 79년 베수비우스 화산 폭발에 파묻힌 고대 도시를 빗대 ‘동방의 폼페이’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미국과 인도네시아 연구진이 최근 이 화산에서 서쪽으로 24㎞ 떨어진 정글의 한 도랑 밑에서 잃어버린 탐보라 문명의 흔적을 발굴했다. 1만명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도시의 흔적에서 연구진은 초가 가옥과 도자기 주전자, 청동 접시와 함께 화산 폭발 때 목숨을 잃은 것이 분명해 보이는 2명의 뼈 화석을 발굴했다. 한 여성은 부엌일을 하다 최후를 맞은 듯 도자기 옆에 누워 있었고 남자는 칼을 갈다 봉변을 당한 것처럼 보였다. 1만명은 용암 등에 휩쓸려 목숨을 잃었지만 이 일대 주민 10만여명은 화산재 등이 일으킨 질병 때문에 희생됐다. 6주간의 탐사를 주도한 미 로드아일랜드 대학의 하랄두르 시구르손 교수는 엄청난 열을 지닌 용암이 덮쳤을 때 삼림과 사람, 다른 물질들이 곧바로 숯으로 변했다고 밝혔다. 그는 “타임 캡슐을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놀랍게도 현장에서 나온 주전자와 청동 단지들을 볼 때 이 지역 사람들은 전형적인 인도네시아 사람들과 달리 베트남과 캄보디아 등 서남 아시아인들과 흡사한 문명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미국 일간 USA투데이는 전했다.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8) 토정 이지함과 ‘토정가장결’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8) 토정 이지함과 ‘토정가장결’

    ‘토정비결’(土亭秘訣)을 굳게 믿는 친구가 있다. 그는 해가 바뀔 때마다 자기 자신의 일년 신수는 물론 가족과 친지들의 새해운수도 일일이 챙겨준다. 실은 그 친구만 그런 게 아니라 우리 주변엔 그런 이들이 참 많다. 토정(土亭) 이지함(李之·1517~1578년)은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의 삶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토정은 매월당 김시습, 북창 정렴과 함께 조선의 3대 기인으로 손꼽힌다. 놀랍게도 ‘정감록’가운데는 토정이 지었다는 ‘토정가장결’이 포함돼 있어 관심을 끈다. 더욱이 이 예언서는 여러 대 동안 비밀리에 전해졌다고 하므로 더욱 호기심이 일어난다. 그런데 ‘토정가장결’에 무슨 사연이 담겨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친숙한 이름이긴 하지만 실상 우리가 잘 모르는 토정 이지함의 비극적인 생애를 알아보자, 이 기회에 그가 후세에 남겼다는 ‘토정비결’과 ‘토정가장결’, 그리고 ‘정감록’의 관계를 정리해보면 좋겠다. ‘토정비결’(土亭秘訣)을 굳게 믿는 친구가 있다. 그는 해가 바뀔 때마다 자기 자신의 일년 신수는 물론 가족과 친지들의 새해운수도 일일이 챙겨준다. 실은 그 친구만 그런 게 아니라 우리 주변엔 그런 이들이 참 많다. 토정(土亭) 이지함(李之·1517~1578년)은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의 삶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토정은 매월당 김시습, 북창 정렴과 함께 조선의 3대 기인으로 손꼽힌다. 놀랍게도 ‘정감록’가운데는 토정이 지었다는 ‘토정가장결’이 포함돼 있어 관심을 끈다. 더욱이 이 예언서는 여러 대 동안 비밀리에 전해졌다고 하므로 더욱 호기심이 일어난다. 그런데 ‘토정가장결’에 무슨 사연이 담겨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친숙한 이름이긴 하지만 실상 우리가 잘 모르는 토정 이지함의 비극적인 생애를 알아보자, 이 기회에 그가 후세에 남겼다는 ‘토정비결’과 ‘토정가장결’, 그리고 ‘정감록’의 관계를 정리해보면 좋겠다. ●토정은 대단한 기인(奇人) ‘조선왕조실록’엔 토정의 풍모를 전해주는 몇 가지 기록이 있다. 세상 사람들은 이지함을 토정이라 불렀다. 이지함이 거처하던 곳이 토정(土亭)이었기 때문이다. 토정은 일찍이 한양의 마포 항구(麻浦港口)에 흙을 쌓아 언덕처럼 만들어 놓고 그 아래 굴을 팠으며 위에는 정자를 지었다. 그런데 큰물이 졌을 때도 토정이 만든 흙 언덕은 언제나 그대로였다(실록, 선조 수정 11년 7월1일 경술). 토정은 여느 사람보다 머리 하나는 더 있어 보이는 큰 키에 건장한 체격이었다. 특히 발이 무척 컸다고 한다. 토정의 얼굴은 둥글고 검은 편이었고 눈빛이 강렬했다. 목소리는 우렁차고 맑아 상쾌한 느낌을 주었다. 토정은 보통 선비들과는 차림새도 확연히 달랐다. 그는 짚신을 신고 죽립(竹笠)을 쓴 채 걸어 다녔다고 한다. 초립(草笠)에 나막신을 신은 구부정한 모습이었다는 진술도 있다. 그 당시 선비들은 당연히 조랑말이라도 타고 다녀야 되는 줄로 알았고, 항시 의관을 정제했다. 고급스러운 말총으로 꾸민 큰 갓을 쓰고 가죽신을 착용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토정은 이런 풍습을 도외시했으므로, 그가 길거리에 나타나면 사람들은 손가락질하며 비웃기 마련이었다. 담화를 나눌 때도 토정은 수수께끼나 농담을 즐겼고, 점잖지 못한 모습을 보일 때도 많았다(실록, 선조 수정 6년 5월1일 경진). 한마디로, 토정은 격식을 초월했다. 혼례를 치른 다음 날에도 의외의 행동으로 가족과 친지들을 놀라게 했다. 모처럼 새로 지은 도포를 입고 외출한 토정은 어느 다리 밑을 지나다가 추위에 떨고 있는 세 명의 거지아이를 만났다. 토정은 입고 있던 새 도포를 벗어 세 폭으로 찢어서 그 아이들에게 입혀주었다. 그러고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종일 바깥에서 일을 보았다. 토정은 이처럼 호방한 성격이었다. 도인의 면모를 보인 적도 많았다. 그는 열흘 정도는 굶어도 거뜬했다. 무더운 여름철에도 냉수 한 모금 마시는 일이 없었다. 요즘의 건강상식에 크게 어긋난 행동이었다. 토정은 간혹 천리 길을 걸어 어딘가를 바람처럼 다녀오기도 하였다. 배를 타고 방랑하기를 좋아해 제주도를 여러 번 찾았다는데 태풍이 불거나 파도가 거센 날을 용케 피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두 신기하게 여겼다. 간혹 여행 중에 기생들이 별의별 수단을 다 써 유혹했으나 한 번도 넘어가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토정은 정욕마저 완전히 끊어버린 이를테면 속세의 신선이었다는 이야기다. ●임진왜란을 예언했다는 설화도 그래서일까. 토정에겐 앞일을 내다보는 예지 능력이 있었다. 젊은 시절 그는 장인에게 화가 닥칠 것을 미리 알았다 한다. 명종 초년의 일이다. 하루는 토정이 그 부친에게,“아내의 가문에 불길한 기운이 있어 집을 떠나지 않으면 장차 화가 미칠 것입니다.” 라고 아뢴 뒤 식구들을 이끌고 서둘러 한양을 떠났다. 바로 그 다음 날, 토정의 장인은 사화에 연루돼 목숨을 잃었다. 그렇게까지 용했을까 하는 일말의 의문이 없지 않다. 어쨌거나 ‘실록’은 토정의 예언 능력을 무척 칭찬한다. 한 번 사람을 만나보면 그 성품은 물론, 앞날의 길흉까지 환히 알아 맞혔다 한다. 토정은 이미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오래 전에 사태를 예언했다는 구비설화가 남아 있다. 만년에 그는 조선 팔도를 두루 유람했다고 한다. 당연히 천하명산 금강산에도 들렀다. 하루는 날이 기울자 토정은 지친 몸을 이끌고 암벽 위에 서 있는 초라한 암자를 찾아갔다. 워낙 피곤해서 제대로 자리를 펴고 누울 겨를도 없이 방안에 들어가 한 쪽 벽에 기대어 깜빡 잠이 들었다. 조금 있다가 꿈속에 스님 두 분이 나타났다. 그들은 병풍과 자리를 깔며 부산을 떨었다. 토정은 스님들에게 그 까닭을 물었더니, 여러 산의 산신령들이 모여 장차 다가올 난리를 의논할 거라는 답변이었다. 과연 전국 명산의 산신령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회의를 열었다. 여러 주장이 난무했다. 그러자 금강산 산신령이 자리에서 일어나 왜놈들이 동방예의지국 조선을 침략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최선을 다해 놈들을 물리치자고 주장했다. 놀란 토정은 퍼뜩 깨어났다. 조금 전 기대어 잠을 청했던 암자는 오간 데 없었다. 암벽 위엔 한 그루 늙은 소나무만 외롭게 서 있었다. 이런 일을 겪고 나서 토정은 왜란이 일어날 줄을 짐작했다. 이것은 한낱 설화다. 토정을 뛰어난 예언가로 간주하게 된 후대의 민중들이 지어낸 이야기일 수가 있다. 역사 속에서 믿고 따를 만한 인물을 재발견하는 것이 민중들로선 익숙한 일이었다. 그들은 본래 토정이 특이한 선비인 줄 알고 있었으므로, 이런 설화를 덧붙여 민중의 스승으로 이상화했다고 풀이된다. 왜란에 관해선 또 다른 이야기가 토정의 문집에 실려 있다. 일찍이 그는 상중(喪中)에 있던 제자 조헌(趙憲)을 조문하였다. 그날 혜성(彗星)이 밤하늘에 뻗쳐 조헌이 그 조짐을 물었고, 토정은 이 혜성이 천하에 큰 난리가 일어날 조짐이라며 그때에 대비해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했다 한다(실록, 영조 30년 11월27일 임인). 스승의 말을 가슴에 새긴 조헌은 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이 돼 금산에서 북상하던 왜적에 맞서 싸우다 장렬히 전사했다. 문집의 기록은 사제간의 문답을 확대 해석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토정이란 인물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참고가 되기도 한다. 그는 일상적인 일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국가의 장래를 염려했던 것이다. 토정은 다분히 도가적(道家的)이었지만 본질적으론 유가(儒家)의 선비였다. ●사화에 얽혀 불우했던 토정 사실 토정은 국가경영에 관심이 컸다. 평상시 그는 이런 말을 자주 했다.“내가 일백 리 되는 고을을 맡아 다스리게 되면 가난한 백성을 모두 부자로 만들고 야박한 풍속을 돈독하게 바꿀 것이다. 어지러운 정치를 바로잡아 나라의 평안을 지킬 것이다.” 그러나 토정은 벼슬에 나아갈 기회를 얻지 못했다. 명종5년(1549년) 토정이 33세 되던 해에 불행한 사건이 일어났다. 토정의 장인이 역모사건에 연루돼 사형을 당했고, 연좌법에 걸린 토정은 벼슬길이 막혔다. 설상가상으로 죽마고우(竹馬故友) 안명세(安名世)마저 필화를 입고 죽었다. 사관(史官)으로 이름이 높았던 안명세는 명종 연간 을사사화(1545년)에 관련해 윤원형과 이기 등 소윤(小尹)이 윤임 등 대윤(大尹)을 모함해 몰살했다고 적었다. 윤원형 일파는 몰래 사초를 들여다보았고, 자기들에게 불리한 기사를 쓴 안명세를 제거한 것이다. 이후 토정은 울적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어 기인(奇人)으로 처세하게 됐다. 지지난 호에 소개한 정렴은 사화를 일으킨 장본인의 아들이라 스스로 세상을 피했던 데 비해, 토정은 억울하게도 세상에 용납되지 못해 기벽(奇癖)을 갖게 됐다고 해야 맞다. 어찌 보면 세상을 원망하고 자포자기하기가 참 쉬웠을 텐데, 토정은 절망하지 않고 학문에 힘썼다. 성리학뿐만 아니라 천문, 지리 및 의학에도 발군의 실력을 보였고, 조헌과 이산보를 비롯해 여러 제자를 키웠다. 조정이 토정에게 벼슬길을 열어준 것은 한참 지나서였다. 을사사화의 주도세력이 조정에서 물러난 선조 초년이었는데, 그 사이 토정은 이미 늙어버렸다. 그는 60이 가까운 나이에 사실상 초임이나 다름없는 아산군수 자리에서 세상을 떴다. 평생 닦아온 선비의 웅지를 펼칠 겨를도 없었다. 토정이 남긴 글은 뒷날 ‘토정유고’(2권1책)로 정리됐다. 이와는 별도로 민간에서는 ‘토정비결’과 ‘토정가장결’, 주역(周易)에 관한 ‘월영도’, 풍수지리를 다룬 ‘농아집’ 등을 토정의 저술이라 일컫는다. 그런데 실상 ‘토정유고’에는 위에 언급한 어떤 책자도 거론되지 않고 있다. 만일 실증주의의 입장에 충실하고자 한다면 ‘토정비결’이나 ‘토정가장결’ 등은 토정의 저술이 될 수 없다.‘토정유고’외에는 이지함의 저술로 단정할 만한 결정적인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을 모두 후대의 위작으로 볼 것인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토정비결의 매력 물론 어느 쪽도 단언하긴 어렵다. 그러나 다른 책은 몰라도 ‘토정비결’만은 토정의 붓끝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 토정은 의학과 점에 능통했기 때문에 그를 찾아와 운수를 묻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일반의 그런 요구가 많아지자 토정은 아예 한 권의 책을 지어 일상의 번거로움에서 해방되기를 도모했을 법도 하다. ‘토정비결’은 주역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주역과는 다르다. 주역의 기본 괘는 48개인데 비해 ‘토정비결’은 32개다. 괘를 짓는 방법도 달라 이른바 사주 가운데 시(時)를 뺀 년(年), 월(月), 일(日)을 사용할 뿐이다. 조선시대 민간에는 시계가 없어 시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들의 편의를 도모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처럼 ‘토정비결’은 주역을 이용하면서도 조선의 특성을 십분 고려했다. 그러다 보니 점괘의 총수도 주역과는 다르게 됐다. 주역에는 총 424개의 괘가 있으나 ‘토정비결’은 총 144개뿐이다. 훨씬 간편하다고 말할 수 있다. 토정 이지함처럼 기발하고 독창적인 사람이 아니라면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다. ‘토정비결’은 열두 달의 운수를 시구(詩句)로 적어 놓았다.“동쪽에서 목성을 가진 귀인이 와서 도와주리라.”,“관재수가 있으니 혀끝을 조심하라.”는 식이다. 간단명료한 글귀지만 생각할 거리가 많은 점괘다. 각 항목마다 길흉이 적절한 비율로 배합돼 있어 낙관도 실망도 하기 어렵게 돼 있다. 결과적으로,‘토정비결’은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 희망을 불어넣어주며, 일마다 조심스럽게 정성을 다해 처리하도록 이끄는 힘이 있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토정비결’은 운수를 판별하는 데 중점이 있다기보다 일반 민중들에게 삶의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 ‘토정비결’은 단순히 점을 봐주고 금품을 요구하는 직업적인 점쟁이의 저술로 보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내 눈엔 그것이 점을 통해 점을 치는 사람들이 점에만 의존하지 않게 유도하는 기능이 숨겨진 반점술서(反占術書)로 보인다. 토정 이지함과 같이 점에 능통하면서도, 본질적으론 유가(儒家)의 철학을 신봉한 큰선비가 남겼을 법한 저술이다. ●그럼 ‘토정가장결’은? 정리하면, 토정은 살아생전에 이미 기인, 도사 그리고 큰선비로 세상에 유명했다. 더욱이 후세에는 ‘토정비결’과 같은 명저의 지은이로 민중에게 더욱 친숙한 이름이 됐다. 그가 만일 무수한 개인의 운명을 점칠 수 있다면, 나라의 운수인들 모를 까닭이 있었겠느냐는 의견이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맴돌았음이 틀림없다.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선 토정이 남긴 예언서가 어디선가 발견돼야만 했다. 이것이 조선후기 ‘토정가장결’이 탄생한 문화적 배경이다. 분명한 사실은 ‘토정가장결’에 앞서 ‘정감록’이 존재했다는 점이다. 조선왕조가 망하고 진인 정씨가 새 나라를 세운다는 ‘정감록’의 예언을 참작해 ‘토정가장결’이 쓰였다.“내 비록 재주 없으되 우러러보고 굽어 살피며 수년 간 별의 숫자로 헤아려 보니 한양이 500년을 넘기지 못할 것이다.” ‘토정가장결’은 이런 식으로 조선왕조의 멸망을 점쳤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수년 간 별의 숫자로 헤아려” 본 결과, 조선왕조의 운수를 짐작하게 됐다고 했다. 천문에 중점을 두고 예언을 했다는 점이 ‘토정가장결’의 특징이다.‘감결’을 비롯해 다른 예언서들이 풍수지리에 의존해 국운을 점친 것과 큰 차이가 있다. 참고로, 천문 점의 전문가들은 서북지방에 많았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고구려의 천문지식은 중국 사람들도 감탄할 정도였다. ‘토정가장결’에 보이는 두 번째 특징은 압록강 이북의 요동이 중시된다는 점이다. 이 점을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 잠시 비결을 인용하겠다.“장류수(계사) 운은 푸른 옷과 흰 옷이 서쪽, 남쪽에서 침략한다. 이때 전읍(奠 , 즉 鄭姓 眞人)이 바다 섬의 군사를 이끌고 방성, 두성의 장수와 함께 갑오년 섣달 즉시 금강을 건너면 다시 천운이 커질 것이다.(중략) 곽 장군이 요동 군사를 이끌고 방씨, 두씨 장수와 함께 왜적 및 서남 오랑캐를 무찌르며, 청나라를 몰아내고 명나라를 돕는다. 정씨를 편들고 이씨를 공격하면 이씨는 제주로 들어갈 것이니 4,5년간의 운수에 지나지 않는다.” 요약하면, 계사년에 외침이 있는데 만일 그 때 요동의 곽 장군이 나서서 정씨를 도우면 동아시아의 정치질서가 재편된다고 했다. 곽 장군은 새로운 국제질서를 확립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다는 것인데, 곽 장군은 중국인이 아니라 한국 사람으로 상정되었다. 늦어도 19세기 후반엔 고구려의 옛 땅이던 만주가 가난에 쫓겨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어간 상당수 민중들의 손길로 개발되고 있었다.‘토정가장결’에 등장하는 곽 장군은 아마도 이러한 역사적 상황을 반영하는 인물로 해석된다. 달리 말해, 간도에 진출한 빈농들이 이상적인 지도자로 여겼을 법한 가상인물이다. 셋째,‘토정가장결’은 난세의 피란지로 전혀 새로운 장소를 거론했다.“만약 요동 간방으로 들어가지 않을 생각이라면 반드시 삼척부 대소궁기를 향하여 부지런히 힘을 기울여 곡식을 쌓을 일이다.” 일반적으로 말해,‘정감록’은 주로 삼남 지방에 십승지 또는 길지를 설정해두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경상도의 풍기, 충청도 공주 및 전라도 운봉이었다.‘토정가장결’은 이를 정면에서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요동과 삼척이란 뜻밖의 장소를 최고의 길지로 내세운다. 확실히 새로운 변화였다. 여기서 나는 ‘토정가장결’이 출현한 시기를 좀더 정확하게 짐작해볼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간도로의 ‘불법이민’이 본격화된 19세기 후반에 이 예언서가 창작된 것은 아닐까. 참고로, 삼척이 길지로 대두된 이유를 헤아려 보겠다. 토정에 관한 구전설화와 깊은 관계가 있다. 한때 토정은 삼척에 머문 적이 있었다는데 거기서 스님 행색으로 위장한 왜놈 첩자를 붙들었다. 이 일로 임진왜란 때 왜군은 토정이 살던 삼척에는 아예 얼씬도 못했다는 설화가 있다. 신기하게도 구전설화는 예언서의 내용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 모양이다. 물론 거꾸로 됐을 가능성도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토정은 정치적으로 무척 불우한 재사였다. 그래서 그는 기인이자 도사가 되기도 했고,‘토정비결’ 같은 책을 지어 고난 받는 민중의 마음에 용기를 불어넣으려 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토정은 민중의 스승으로 자리매김돼 ‘토정가장결’의 저자로도 둔갑됐다.‘토정가장결’은 ‘정감록’의 논리를 존중하면서도 19세기 후반의 변화된 사회현실을 그대로 투영한다.“알 자는 알리라.” (푸른역사연구소장)
  • “범행 6일전에 몰살 계획”

    “범행 6일전에 몰살 계획”

    경기도 연천 최전방 경계초소(GP)에서 총기 난사사건을 저지른 김모(22) 일병은 선임병의 질책에 불만을 품고 범행 6일 전인 지난 13일 ‘모두 죽여야겠다.’는 생각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고 군 당국이 밝혔다. 이어 그는 범행 전날인 18일 오후 5시쯤 선임병인 신모 상병으로부터 질책을 받게 되자 범행을 최종 결심했으며,19일 오전 2시30분쯤 수류탄 1발을 내무실에 던지고 K-1 소총을 난사했다고 군 당국은 덧붙였다. 윤종성 육군 중앙수사단장(대령)을 본부장으로 한 ‘전방 GP 총기사고 수사본부’는 현장 재검증과 생존 병사, 김 일병 진술 등을 토대로 재수사한 결과 이같이 드러났다고 23일 성남 국군수도병원에서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수사본부는 범행 당시 내무실에 수류탄 1발을 던진 후 K-1 소총을 난사한 것으로 최종 확인됐다고 밝혔다. 수사본부 관계자는 “김 일병이 범행 후 후방으로 도주해 은둔 생활을 하려 했다는 진술 등을 볼 때 우발적이라기보다는 사전에 계획된 범행으로 봐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사고 당일 소주 등 주류 반입이나 회식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수사 발표 이후 동료 부대원들은 이번 참극이 언어폭력과 인격적인 모독 발언이었다기보다는 김 일병이 부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반항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비롯됐다고 진술했다. 같은 GP에 근무한 김 일병의 초·중학교 동창인 천모 일병은 “김 일병은 선임병들이 혼을 내면 욕을 하는 등 반항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래서 더욱 혼이 났고, 혼나는 모습을 많이 봤다.”고 말했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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