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몰래
    2026-03-13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4,134
  • 의대교수가 자녀에 33억 집 사주고 증여세 ‘0원’… 탈세 캔다

    의대교수가 자녀에 33억 집 사주고 증여세 ‘0원’… 탈세 캔다

    ‘꼼수 증여’ 혐의 자산가 146명도 포함국세청이 최근 부동산 투기 과열 조짐을 보인 서울 용산 등지의 부동산 거래에 대해 강도 높은 기획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27일 서울 종로·중·동작·동대문 등 4개 자치구를 투기지역으로 추가 지정한 데 이어 국세청까지 칼을 뽑아 든 것이다. 국세청은 29일 이 같은 부동산 거래 탈세 혐의자 360명을 선정해 세무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변칙 증여 혐의가 있는 고액금융자산 보유자 146명도 함께 조사한다. 이번 세무조사는 자녀에게 수십억원을 몰래 주고 주택이나 분양권을 사면서 증여세를 탈세한 의혹이 있는 자산가, 고가 부동산을 팔면서 다운계약서를 쓴 양도소득세 탈루 혐의자, 토지를 싼값에 사들여 허위 과장광고로 비싼 값에 되팔고 양도세를 내지 않은 기획부동산 등이 타깃이다. 특히 세무조사 대상 중에는 소득이 아예 없거나 연봉이 낮은 미성년자, 20~30대 자녀에게 고가 아파트를 편법 증여한 고소득자들이 상당수 포함됐다. 실제 의대 교수 A씨는 연봉 5000만원인 20대 자녀에게 서울에 있는 33억원짜리 아파트를 사 주고 증여세를 한 푼도 내지 않았다. 청약 과열 지역의 분양가 14억원짜리 아파트에 당첨된 만 19세 미성년자는 부모로부터 편법 증여를 받은 혐의가 포착됐다. 세금을 내지 않으려는 자산가들의 수법 역시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 B씨는 계좌 이체로 아들에게 집 살 돈을 주면 현금 거래 내역이 남는 것을 우려해 꼼수를 썼다. 은행을 수차례 방문해 창구와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서 돈을 뺀 뒤 아들 계좌로 넣기를 반복했다. 아들은 이 돈으로 10억원대의 신도시 부동산을 샀지만 결국 국세청에 꼬리가 잡혀 수억원의 증여세를 물게 됐다. 앞서 국세청은 지난해 8월부터 지난 4월까지 부동산 거래 관련 기획 세무조사를 다섯 차례 실시했다. 지금까지 1584명에게 2550억원의 세금을 추징했고 59명을 조사 중이다. 이동신 국세청 자산과세국장은 “과열 지역 주택을 이용한 편법 증여와 다주택 취득자 등에 대한 검증 범위를 확대하고 탈루 혐의가 발견되면 자금 출처 조사를 포함해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실시하겠다”고 강조했다.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뉴스 in] 직장인 그림의 떡 ‘디지털 부업’

    [뉴스 in] 직장인 그림의 떡 ‘디지털 부업’

    주 최대 52시간 근무제 시행 이후 ‘직장인 유튜버’를 꿈꾸는 이가 늘고 있다. 대부분의 한국 기업들이 겸업 금지 내규를 둔 탓에 유튜브 채널을 몰래 운영하거나 꿈을 포기하는 이들이 많다. 직장인 ‘넷(net) 부업’을 정부가 적극 지원하는 일본과 정반대 풍경이다. 구시대적 취업 규칙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50 넘으니 덤으로 사는 인생, 의미있는 일 고민”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50 넘으니 덤으로 사는 인생, 의미있는 일 고민”

    탈북민 1세대 강철환 대표가 말하는 ‘한국 생활’“이젠 한국에서 더 오래 살았습니다. 북한에서 24살 때까지 살았고, 한국에서 27년째 살고 있습니다. 북한 사람이 아니라 한국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이 더 가까워지기는 했는데···. 나이가 들면 고향이 그리워진다던데 그래서인지 북한에 더 가까워지는 느낌이 듭니다. 북한 인권에 관한 일을 하고 북한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다 보니깐, 그런 것인가 합니다.” 제21회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끝난 다음 날인 27일 서울시 중구에 있는 강철환(51) 북한전략센터 대표 사무실을 찾아갔다. 남북 문제나 통일 이슈에 관한 이야기는 그가 수도 없이 인터뷰했을 터이니 이보다는 한 명의 인간으로서 그와 인터뷰하고 싶어서 찾았다. 그는 “뭐, 인터뷰는 많이 해봤지만 이런 인터뷰는 처음 해봅니다.”라며 말문을 연다. 자연스럽게 이산가족 상봉이 화제에 올랐다. “부모님이나 친지들과 헤어진 실향민들이 금강산에서 이산가족들을 만나던데, 이젠 제가 이산가족이 된 지 25년이 넘었어요. 이분들의 절망 같은 그리움 이런 게 제게도 똑같이 밀려오는 거죠. 북한에 부모님과 동생들도, 많은 친구도 남아 있고···. 절절한 그리움이 어떤 것인지 나이 50이 넘으면서 조금씩 알겠더라고요.” 북송된 재일교포 3세인 그는 9살 때인 1977년 재일 조선총련 간부 출신인 할아버지가 정치범으로 몰리면서 집안이 풍비박산 났다. 이혼한 어머니를 제외한 가족들 모두 함경남도 요덕 정치범수용소에서 10년간 참혹하게 지내다 풀려났다. 이후 요덕 근처에서 5년가량 지내다 1992년 탈북해 한국에 들어왔다. 그는 ‘귀순’이 아닌 탈북민 1세대인 셈이다. 한양대를 마치고, 한국전력에서 신입사원으로 들어가 3년 근무했다. 조선일보 기자로 활동하다 그만두고 2007년부터 북한에 인권과 자유 등을 확산시키는 북한전략센터 대표를 맡고 있다. ‘수용소의 노래, 평양의 어항’이란 책을 내기도 했다.- 죽을 고비를 많이 넘겼는데, 강 대표에게 인생이란.☞ 제가 가장 귀염을 받아야 할 9살부터 11살까지 요덕수용소에서 지냈습니다. 수용소에서 몇 번 죽을 고비를 넘기고, 항상 언제든지 죽는다는 생각에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20~40대를 한국에서 보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제 인생의 황금기였죠. 친구들과 만나서 여행도 하고 연애도 하면서···. 저랑 같이 수용소에 끌려갔던 많은 아이 가운데 저만 인생을 이렇게 살고 있으니, 나이 50이 넘어가니깐 이제 덤으로 살아가는 느낌이 들어요. 이제는 덤으로 사는 인생, 이미 죽었어야 하는 인생인데···, 그래서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해야 되지 않을까 이런 고민을 합니다. 처절한 생활을 했던 그에게 어떤 꿈을 꾸는지를 물었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옛날에는 북한에 잡혀가는 악몽을 자주 꾸었지요. 소스라치게 놀라 깨기도 하고. 한 10년 지나니 꿈에 한국과 북한이 섞여 나오더라고요. 북한에 잡혀 가 고문을 받는데 유엔이 나와서 감시한다든지, 이런 신변안전에 관한 꿈이 섞여 나왔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꿈에도 잘 안 나와요. 꿈도 사회에 적응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 생활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일은.☞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전력에 다닐 때의 일이 생각납니다. 전기요금을 장기간 내지 못한 사람들에게 전기 공급을 끊는 일을 했습니다. 어느 날 서울 성북동 한 단란주점의 전기를 끊자 업소 주인이 식칼을 들고 ‘다 죽인다.’며 욕설을 난리를 쳤습니다. 다른 직원들은 모두 도망가는데 저는 같이 욕설을 하면서 맨주먹으로 싸우려 했지요. 그때 제 말투가 이상하고 도망을 안 가니 업소 주인이 칼을 내던지고 이야기를 하다 나중엔 친구가 됐습니다. 또 한 번은 금호동에 전기를 끊은 집이 몰래 전기를 훔쳐 쓰나 싶어서 찾아가보니 촛불을 켜고 지내더군요. 그때까지 한국의 좋은 모습만 봤는데 ‘가난하고 힘들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대학 다닐 때 남쪽의 학생들과 통일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어서 갔더니 “반역자”라며 욕설을 해서 상당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의 사무실에 들어갈 때 자원봉사를 한다는 외국인 두 명과 한국인 여성 직원 한 명이 컴퓨터 작업에 한창이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자 외국인 여성 한 명이 더 나와 일하고 있었다. 그의 사무실 한쪽 벽면엔 북한에서 발행한 한반도 지도가 걸려 있었다. 맞은편 서가엔 북한 관련 책들이 꽂혀 있었다. 낡은 책들이 보이기에 ‘뭐냐.’고 물었더니 그는 “북한의 학교 교과서”라며 끄집어내 보여줬다. 바스러질 듯 누런 종이에 적힌 활자의 잉크마저 바래서 글씨를 읽기가 어려웠다. 교과서 위쪽에 성경책이 꽂혀 있기에 “교회에 다니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네, 15년 됐습니다.”고 답한다. 부인과 두 자녀와 함께 다닌다고 했다. - 한국 생활에서 적응하기 힘들었던 점은.☞ 와서 보니깐 지연과 학연 이런 것이 보기보다 강했습니다. 한국 사회의 고질적 병폐인 고향과 출신 같은 지역주의, 학교와 학벌과 같은 학연, 가족주의 이런 데 탈북자 출신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 탈북자들은 더욱 소외되고···. 북한은 독재를 강화하면서 끼리끼리 모여 세력화하는 것을 철저히 방지했습니다. 북한에서 고향이고 나발이고 뭐 다 필요없이 흩어버렸습니다. 지역주의 이런 게 없지는 않지만 상당히 완화됐습니다.북한의 인권 운동을 빼고는 그가 어떻게 지낼까. “대학 졸업한지 20년이 넘었는데 갑자기 친구들이 옛날 찍었던 사진을 단톡방 이런데 올려요. 거칠고 투박했던 시절인데, 이때가 엊그제 같은데 참 빠르게 세월이 지나갑니다.” 학교 친구들 만나서 옛날 이야기하고, 몸무게가 늘어 걱정이라는 고민도 한단다. 해외에는 웬만큼 나가볼 만한 나라는 다 가봤다고 했다. 한국의 평범한 50대 남성의 모습이었다. - 예멘 난민이 최근 한국사회에서 이슈가 된 적이 있다.☞ 한국정부가 난민협약에 가입돼 있어서 난민쿼터를 받아들이고는 있지만 분단국가기에 한국은 엄청난 난민 발생 가능성을 예상해야 합니다. 따라서 한국만큼은 북한 난민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유엔을 설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북한에 예멘 정도의 자유가 주어지면 북한주민 절반이 국경선을 넘을 것으로 봅니다. 지금도 중국엔 10만명 이상의 탈북자들이 떠돌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다 난민이지요. 우리 가족, 우리 동포도 지키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규모 외국 난민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일의 순서가 맞지 않다고 봅니다. - 탈북자를 바라보는 한국인의 시선이 곱지 않다.☞ 북한 사람은 기회가 없어 배우지 못했고, 문화생활을 못 했기에 수준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런 것으로 탈북자들을 이등국민 취급하고, 열등하게 취급하는 어떤 선입견 같은 것이 있어요. 지금이야 한국에 사는 탈북자가 3만명이니 눈에 띄는 분쟁이 없겠지만 나중에 통일이 되면 5000만명대 2500만명이 되면 큰 분쟁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를 깔보거나 무시하고 이등국민 취급하는 그런 선입견 빨리 고쳤으면 좋겠습니다. 경쟁이 없는 사회에서 살다가 자본주의 무한경쟁은 우리 탈북자들에게도 엄청난 스트레스입니다. 저는 후배들에게도 당부합니다. 후배들이 북한 출신이라는 자격지심 때문에 누군가의 사소한 한마디의 말에 상처를 입습니다. 그런데 ‘사소한 말에 신경 쓰지 말고, 그 말이 악의적이지 않으면 대범하게 넘겨라.’고 충고합니다. 예전에 제가 밥을 먹는데 “야, 너는 수용소에서 쥐도 잡아먹었다는데, 고기를 남기면 되겠냐.”는 말을 들었습니다. 기분은 되게 나빴지만 대수롭잖게 넘겼지요.그는 요즘의 젊은 탈북자들은 한국사회뿐만 아니라 국제사회 진출도 많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똘똘하고,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후배들도 많아요. 지금은 탈북자를 위한 다양하고 체계적인 교육프로그램도 많아졌어요. 우리야 한국에서 기자 한 것이 최고의 사회 진출이었지만, 국제무대에서 활동이 많이 늘어날 것입니다.” 그는 한국에서 정치도 하게 되는 후배들이 나올 것으로 기대했다. 강 대표는 “한국사회가 그동안 통일을 준비한다고 말하면서도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근혜 정부의 통일준비위원회 자문회의에 참석한 적이 있어요. 그 회의의 주요 사업으로 ‘DMZ박물관’을 건립하자고 논의하더라고요. 민간 업체에 맡기면 되는 것을 이 위원회가 주요 안건의 논의하는 것을 보고 ‘참, 한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글·사진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아파트 주차장 입구에 ‘보복주차’…도요타 차주의 ‘인과응보’

    아파트 주차장 입구에 ‘보복주차’…도요타 차주의 ‘인과응보’

    50대 여성이 차에 주차위반 스티커가 붙은 것에 화가 나 승용차로 아파트 지하주차장 진입로를 막았다가 이웃들에게 큰 불편을 끼쳤다. 아파트 주민들은 해당 차량을 손으로 들어 옮기고 이 여성을 교통방해 혐의로 경찰에 신고했다. 28일 인천 연수경찰서에 따르면 전날 오후 4시 43분쯤 50대 여성 A씨가 자신의 도요타 캠리 승용차를 인천 연수구 송도동의 한 아파트 단지 지하주차장 진입로에 삐딱하게 대놓고 자리를 떠났다. 아파트 주민들은 A씨의 몰지각한 행동으로 주차장을 이용하는데 불편을 겪었다. 차량 앞유리에 적힌 A씨의 전화번호는 불통이었다. 주민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했지만 A씨의 승용차를 견인하지 못했다. 아파트단지 도로가 사유지라는 이유에서다. 6시간가량 불편을 겪은 주민 20여명은 A씨의 승용차를 손으로 들어 인도로 옮겼다. A씨가 차를 몰래 빼가지 못하도록 앞 뒤에 다른 차 2대를 대고 옆은 경계석으로 막았다. 이 아파트단지에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진 A씨는 아파트단지 주차단속 스티커가 자신의 승용차에 부착된 것에 화가 나 이 같은 행위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아직 A씨를 조사하지 않아서 정확한 경위를 속단할 수는 없다”며 “A씨에게 경찰에 출석하라고 통보했으며, 9월 초순 출석하겠다는 답을 받았다”고 말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日오사카 성폭행 탈주범, 보름 넘게 오리무중...주민 분노 극에 달해

    日오사카 성폭행 탈주범, 보름 넘게 오리무중...주민 분노 극에 달해

    일본 오사카의 한 경찰서에서 강력 범죄 용의자가 탈출한 지 보름이 넘게 지났지만, 경찰이 추적의 실마리를 전혀 찾지 못하고 있다. 성난 주민들의 불만이 극에 달하며 경찰에 수천 건의 항의가 쇄도하고 있다.성폭행과 강도상해, 절도 등 혐의로 오사카부 돈다바야시(富田林)시 경찰서에 붙잡혀 온 히다 준야(30·무직) 용의자가 몰래 달아난 것은 지난 12일 오후 8시쯤. 히다 용의자는 경찰서 2층 접견실에서 변호사와 면회를 마친 뒤 경찰서를 빠져 나왔다. 접견실의 칸막이용 아크릴판을 깨부순 뒤 밖으로 나간 것으로 파악됐다. 이후 경찰은 대대적으로 히다 용의자에 대한 수색작전을 펼쳤지만, 아직까지 전혀 행방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경찰에 들어오는 주민 등의 제보는 1200여건에 이르지만 모두 소용이 없었다. 히다 용의자가 자기 집이 있는 오사카부 마쓰바라시에 잠시 들렀다가 주변에 있던 오토바이를 훔쳐 달아났다는 정도가 확인된 전부다. 감시 소홀로 용의자가 도주한 가운데 수색과 검거도 지지부진한 상태에 빠지자 경찰은 바짝 몸이 달았다. 3000명의 인력을 투입해 행방을 쫓고 있지만, 검거의 ‘골든타임’을 한참 넘긴 터라 곤혹스러운 상황이다. 경찰은 탈주 당시 히다 용의자가 사라진 지 1시간 이상이 지나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됐다. 이미 히다 용의자가 돈다바야시 관내를 벗어난 상태였다. 이런 가운데 히다 용의자는 경찰의 뒤늦은 대응을 비웃기라도 하듯 도주 중에도 자전거와 오토바이 절도, 날치기 등의 범행을 통해 돈을 마련하고 있다. 히다가 성폭행과 강도상해 등의 용의자라는 점에서 주민들의 불안은 더욱 커지고 있다. “자녀를 학교에 보내기가 불안하다”, “혼자서 집에 있기 무섭다” 등 경찰에 접수된 항의는 이미 3200건을 넘어섰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은빛자서전 프로젝트<3>] “대의는 이루지 못했지만 소신 나누며 살았습니다”

    [은빛자서전 프로젝트<3>] “대의는 이루지 못했지만 소신 나누며 살았습니다”

    정지환 감사경영연구소장은 충북 옥천신문과 손잡고 ‘은빛자서전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한 사람의 일생은 그 자체가 역사이고 작은 박물관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80세 이상 주민의 구술(口述)을 풀어내 자서전으로 정리하는 프로젝트다(서울신문 3월 16일 자 38면 ‘인터뷰 플러스’ 참조).이번에 만난 사람은 안남면 도덕리(덕실마을)에 사는 이승우(91) 씨입니다. 어린 시절 유교 학자인 조부로부터 ‘천자문’에서 ‘논어’까지 배웠다는 그가 정한 좌우명은 ‘대의소신(大義小信)’입니다. 사람이 한 번 태어나 ‘대의’를 지키기 위해 살아야 하되, 설령 거기에 이르지 못했다 하더라도 ‘소신’ 즉 작은 믿음이나마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며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였을 겁니다.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였냐”고 묻자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6남매를 낳고 키우고 가르치던 시절이었다”고 답했습니다. 인생 90년을 넘길 무렵부터는 ‘상선약수(上善若水)’가 마음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상선약수는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는 뜻으로, ‘노자’에 나오는 말입니다. 낮은 곳으로 흐르는 속성을 가진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습니다. 전국노인서예대전 입선의 경력을 가지고 있는 이 씨는 올봄 대문에 ‘구(龜)’와 ‘용(龍)’을 써 붙였습니다. 거북이와 용처럼 만수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박학다식 조부와 일자무식 부친 밑에서 나는 1928년 옥천군 안남면 도덕리(덕실마을)에서 태어났다. 조상들이 원래 살던 곳은 청산면 궁촌리(활골)였다. 그곳에서 안남면 도덕리로 이주하기로 결정한 분은 증조모였다. 거기에는 그럴 만한 사연이 있었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기 전까지만 해도 청산에는 원님이 있었다. 조부(이규항)는 원님과 동문수학한 사이였다. 6·25전쟁 때까지 생존하셨던 조부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상투를 고집한 유교 학자였다. 평생 낫과 호미 한 번 손에 들지 않고 동네 아이들에게 한문을 가르쳤다. 나도 어린 시절 박학다식한 조부에게 천자문에서 논어까지 배웠다. 빛이 강하면 그림자의 어둠도 짙은 법이다. 젊은 가장이 일하지 않으니 집안이 궁핍할 수밖에 없었다. 불똥은 엉뚱한 방향으로 튀었다. 일하지 않고 글만 읽는 조부에 실망한 증조모는 손자, 그러니까 나의 부친(이종억)에게 어떤 공부도 시키지 않았다. 그래서 부친은 일자무식이 되었다. 증조모는 남편, 그러니까 나의 증조부가 돌아가시자 곧바로 청산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마침 언니가 살고 있던 안남면 도덕리가 이주지가 되었다. 박학다식 조부와 일자무식 부친 밑에서 나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조부는 평생 글만 읽으셨고, 부친은 평생 농사만 지으셨다. 특히 과묵과 인내의 인생을 사셨던 부친은 절대 남에게 해를 끼칠 줄 몰랐던 호인(好人)이었다. ●17세 신랑 이승우와 16세 신부 주재순 나는 안남소학교를 다녔다(7기생). 모친이 조부와 부친 몰래 월사금을 내주었다. 소학교를 마치고 대전에 있는 중학교에 진학했다. 하지만 월사금을 내지 못해 입학만 하고 결국 학교는 다니지 못했다. 중학교 진학에 좌절한 나는 곧바로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내가 15세 때였으니 1942년이었을 것이다. 대전에 있는 한 전기상회 점원으로 취업했다. 당시는 식량은 물론이고 거의 모든 생활용품까지 국가에서 배급하던 전시체제(戰時體制)였다. 전기상회에서 지내다 보니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보다 풍요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것은 상점 점원들이 서로 배급 물품을 교환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17세가 되던 해에 의류를 취급하던 한 상회의 동갑내기 여성 점원과 가까워졌다. “어머니가 많이 아프시니 빨리 귀향하기 바란다.” 갑자기 고향에서 전갈이 왔다. 고향에 가보니 동네 사람들이 우리 집에 잔뜩 몰려와 있었다. 어리둥절해 하는 나에게 집안 어른들이 다짜고짜 이렇게 통보했다. “너는 내일 장가를 가야 한다.” 신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같은 마을에 살고 있던, 나보다 한 살 적은 처녀였다. 그녀는 수원 양성에서 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가 정신대에 끌려가는 것을 피하려고 옥천으로 피신을 와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같은 학자였던 조부끼리 이미 우리 두 사람을 결혼시키기로 약조했다고 한다. 17세 신랑 이승우와 16세 신부 주재순은 너무 어려서 첫날밤을 치르지 못했다. 실제로 첫 아이가 태어난 것은 그로부터 5년 후였다. 그렇게 평생의 인연을 맺은 아내와 나는 73년을 해로했다. ●동양화·연필화·풍물 배우기에 푹 빠져 생존을 위해 가족을 이끌고 타지를 떠돌던 나는 회갑을 앞둔 1980년대 후반 귀향했다. 가족을 이끌고 고향으로 돌아온 나는 농사를 지으며 마을과 지역을 위해 봉사했다. 새마을지도자, 선거관리위원장, 경지정리위원장, 단위농협조합장(임시) 등이 당시 맡았던 나의 주요 직책이었다. 주변에서 ‘돈 안 되는 일’만 골라 한다는 냉소 섞인 뒷말이 들려왔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나는 요즘 미술과 음악에 푹 빠져 있다. 3~4년 전부터 동양화와 풍물을 배웠다. 얼마 전부터는 연필화도 시작했다. 그림 그리고 악기 연주하기를 천하게 여기던 집안 분위기 때문에 멀리했던 것들이다.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들이 너무 많다. 말리는 사람도 없으니 당분간 나의 공부는 계속될 것 같다. 나는 아내 주재순과의 슬하에 6남매(3남 3녀)를 두었다. 1녀 옥자(3남), 1남 상룡(1남 2녀), 2녀 용자(2남), 2남 상준(1남 1녀), 3남 상길(2남), 3녀 숙(2남)이 다시 14명(11남 3녀)의 손주를 낳아주었다. 서원호 객원기자 guil@seoul.co.kr
  • “성 불평등 해소”로 출발한 페미니즘…수세대 거치며 분화

    “성 불평등 해소”로 출발한 페미니즘…수세대 거치며 분화

    ‘남성과 동일한 권리’ 주장하던 1세대 노동·민주화운동하며 70년대 새 국면 80년대에 성차별·성폭력 등 철폐 외쳐 성폭력특별법·호주제 폐지 등 큰 성과서울 시내 한 백화점 3층 여성복 매장 여자 화장실 변기 위 천장에서 몰래카메라가 발견됐다. 여기서 유출된 비디오테이프가 동남아 섹스숍에서 팔린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백화점을 이용해 온 여성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여성단체와 소비자단체들의 거센 항의에 백화점은 공식사과했다. 어제의 몰카 범죄 뉴스가 아니다. 1997년 당시 신촌 그레이스 백화점에서 발생한 일이다. 여자 화장실 천장 구멍에 설치된 3㎜ 크기의 특수렌즈를 통해 백화점 방재실 직원들이 화장실 안을 지켜봤다. 불법 촬영의 수법, 대상, 장소 등이 요즘 범죄와 판박이다. ●각자 피켓 들고 참여… 美 급진주의와 닮아 2018년 한국 여성들이 겪는 성폭력은 20여년 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다. 반면 현실을 바꾸기 위해 거리로 나온 여성들의 모습은 다소 낯설다. 1997년 백화점 앞에서 성명을 발표한 건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기존 여성단체였다. 올여름 혜화역의 ‘불법 촬영 편파 수사 항의 시위’ 주인공은 불특정 다수의 여성이다. 지난 4일 광화문에서 열린 4차 시위에 참가한 40대 김모씨는 “집회에 시민 단체나 정당의 깃발이 없어 어색했다”고 했다. 20대 초반 여성은 “여성 집회에 운동권 깃발이 왜 필요하냐”고 반문했다. 각자 만든 피켓과 붉은 드레스코드만이 동질성의 징표였다. 생물학적 여성만 참가할 수 있고 익숙한 구호 대신 온라인의 미러링(여성 혐오를 거울처럼 뒤집어 남성 혐오로 돌려주는 방식) 단어가 터져나왔다.20년간 못 봤던 여성들의 등장에 한국 사회는 놀라고 있다. 2016년 5월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고정된 조직도 없이 여성집회를 끌어 온 이들. 일각에서는 이들을 급진적 여성주의자(Radical Feminist)라 부른다. 1960년대 미국 급진주의와 닮았다는 이유에서다. 미국에서 시작된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프랑스의 68혁명을 계기로 탄생했다. 미국, 유럽, 남미까지 전쟁, 관료주의, 권위주의에 저항하는 구호가 거리를 뒤덮은 시기, 여성들도 여성 억압 문제를 제기하면서 가부장제에 대항했다. 19세기 제1세대 페미니즘이 참정권 획득과 같은 정치 제도 개선에 노력했다면 제2세대 페미니즘인 이들은 보다 일상적인 문제에 집중했다. 낙태 결정권, 포르노 반대 등을 이슈화해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공론장으로 끌어냈다. 1968년에는 미스아메리카 반대 시위도 일어났다. 브래지어처럼 여성의 몸을 옥죄는 것들을 쓰레기통에 던지며 성 상품화를 비판했다. 지난 6월 한국 페이스북 사옥 앞 상의 탈의시위, 탈코르셋 유행, 1999년 시작된 한국에서의 안티미스코리아대회와 겹쳐지는 장면이다. 1세대에서 2세대로의 변화는 페미니즘 역사를 관통하는 주제인 차이와 평등을 함축한다. 페미니즘 역사는 이 두 가지 질문을 중심으로 진화해 왔다. 1세대는 남성과 동일한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여성과 남성은 똑같은 이성적 인간”이라며 평등의 언어를 내세웠다. 그러나 투표권만으로는 여성들의 삶이 나아지지 않았다. 여성의 경험을 드러내는 언어가 필요했다. 몸의 경험, 개인의 일로 치부됐던 성폭력, 가정폭력이 구조적 문제임을 강조했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 “자매애는 강하다”는 유명한 구호도 등장했다. ●1987년 21개 단체 모여 ‘여성단체연합’ 결성 서구의 반권위주의 분위기와 대조적으로 1960년대 한국은 권위주의 시대였다. 탄압받던 여성 운동은 1970년대 여성노동자 운동과 뒤이은 민주화 운동 속에 새 국면을 맞았다. 경제성장 과정에서 여성 노동자라는 정체성이 드러났고, 동일방직, YH무역 등 젊은 여성 노동자가 밀집된 제조업에서 노조 설립 활동이 치열하게 전개됐다. 당시 운동은 성차별 철폐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지만 여성 노동자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여성운동은 1980년대 전면에 등장했다. 1970년대 노동운동과 학생운동을 경험한 여성들이 사회에 진출한 시기다. 이들은 ‘여성은 정치에 무지하다’는 편견을 깼다. 1983년 6월 여성평우회 창립을 계기로 여성의 전화, 또 하나의 문화, 교회여성운동단체 등이 여성 의제를 이끌었다. 결혼 퇴직, 임금 차별 등 노동현장의 성차별, 성폭력, 성매매 철폐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25세 여성조기정년철폐운동, 부천서 성고문대책위 등을 함께한 21개 여성단체는 1987년 한국여성단체연합을 결성했다. 민주정부가 들어선 뒤 1994년 성폭력특별법이 제정됐고 1999년엔 군 가산점 위헌 결정을 이끌어냈다. 2005년에는 호주제가 폐지됐다. 가족법 개정을 추진한 지 약 50년 만이었다.●LGBT 등 소수자 주체… 영 페미니스트 나와 이전 30년간 여성계가 굵직한 제도 성과를 거뒀다면 민주화 이후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는 그동안 가려져 있던 페미니즘의 주제들이 빛을 봤다. 성소수자(LGBT), 여성장애인, 이주여성 등 소수자 주체들이 드러났다. 2000년대 중반까지 문화운동에 두각을 나타낸 젊은 페미니스트인 ‘영(young) 페미니스트’ 도 등장했다. 이들은 몸, 섹슈얼리티, 환경 등 새로운 문제를 꺼내고 월경페스티벌 등 축제를 통해 일상 속 주제를 풀어냈다. 2015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운동이 일어나기 전까지 약 10년간 페미니즘은 대중과 다소 멀어져 있었다. 이 단절을 끝낸 여성들은 20대 ‘영영(young young) 페미니스트’ 들이다. 남성과 동등한 교육을 받고 학교와 사회에서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일베 등 여성 혐오를 학습한 남성들과 공존한 세대다. 2014년 세월호 참사로 안전 문제에 눈을 떴다. 이전 세대보다 미러링에 익숙하고 안전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최근 자유·급진·상호교차 등 그룹 다양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일각에선 이들을 4세대 페미니스트라고 부른다”면서 “SNS를 기반으로 한 활동, 몰카나 여성 대상 범죄 등 안전 이슈에 적극 나선다는 차별점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페미니즘은 단일한 것으로 규정할 수도 없고, 우리나라 페미니즘도 여러 세대가 섞여 있다”고 분석한다. 최근 페미니즘은 자유주의, 급진주의, 상호교차 페미니즘 등 여러 정신이 공존하며 다양한 그룹이 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여성들의 이합집산도 유동적이다. 워마드의 성체 훼손 논란이나 난민 혐오에 대해 기존 여성계는 반대 의사를 보이며 선을 그었지만 ‘몰카 편파 수사’, 안희정 전 충남지사 성폭행 무죄 판결 비판에는 같은 목소리를 낸다. 영영 페미니스트도 단일한 집단으로 재단하기 어렵다. 지난 18일 여성단체가 주최한 시위에 20대 여성들이 다수 참여하기도 했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영미권에서만 보던 다양한 페미니스트 논쟁이 한국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이것이 페미니즘을 더 중요한 사회적 이슈로 끌어올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올여름을 달군 페미니즘의 열기는 당분간 식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0년 전의 몰카 범죄가 반복되듯 성차별은 한순간에 없어지지 않을 것이고, 여성들을 또 광장으로 소환할 것이기 때문이다. 낙태죄 폐지, 불법 촬영 수사 등 현안도 뜨겁다. 앞으로 또 어떤 새로운 주체가 등장할지 광장으로 시선이 쏠린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4세대 페미니스트 기로는 세월호…몰카 등 ‘안전 이슈’에 눈뜨다

    4세대 페미니스트 기로는 세월호…몰카 등 ‘안전 이슈’에 눈뜨다

    ‘남성과 동일한 권리’ 주장하던 1세대 노동·민주화운동하며 70년대 새 국면 80년대에 성차별·성폭력 등 철폐 외쳐 성폭력특별법·호주제 폐지 등 큰 성과서울 시내 한 백화점 3층 여성복 매장 여자 화장실 변기 위 천장에서 몰래카메라가 발견됐다. 여기서 유출된 비디오테이프가 동남아 섹스숍에서 팔린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백화점을 이용해 온 여성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여성단체와 소비자단체들의 거센 항의에 백화점은 공식사과했다. 어제의 몰카 범죄 뉴스가 아니다. 1997년 당시 신촌 그레이스 백화점에서 발생한 일이다. 여자 화장실 천장 구멍에 설치된 3㎜ 크기의 특수렌즈를 통해 백화점 방재실 직원들이 화장실 안을 지켜봤다. 불법 촬영의 수법, 대상, 장소 등이 요즘 범죄와 판박이다. ●각자 피켓 들고 참여… 美 급진주의와 닮아 2018년 한국 여성들이 겪는 성폭력은 20여년 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다. 반면 현실을 바꾸기 위해 거리로 나온 여성들의 모습은 다소 낯설다. 1997년 백화점 앞에서 성명을 발표한 건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기존 여성단체였다. 올여름 혜화역의 ‘불법 촬영 편파 수사 항의 시위’ 주인공은 불특정 다수의 여성이다. 지난 4일 광화문에서 열린 4차 시위에 참가한 40대 김모씨는 “집회에 시민 단체나 정당의 깃발이 없어 어색했다”고 했다. 20대 초반 여성은 “여성 집회에 운동권 깃발이 왜 필요하냐”고 반문했다. 각자 만든 피켓과 붉은 드레스코드만이 동질성의 징표였다. 생물학적 여성만 참가할 수 있고 익숙한 구호 대신 온라인의 미러링(여성 혐오를 거울처럼 뒤집어 남성 혐오로 돌려주는 방식) 단어가 터져나왔다.20년간 못 봤던 여성들의 등장에 한국 사회는 놀라고 있다. 2016년 5월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고정된 조직도 없이 여성집회를 끌어 온 이들. 일각에서는 이들을 급진적 여성주의자(Radical Feminist)라 부른다. 1960년대 미국 급진주의와 닮았다는 이유에서다. 미국에서 시작된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프랑스의 68혁명을 계기로 탄생했다. 미국, 유럽, 남미까지 전쟁, 관료주의, 권위주의에 저항하는 구호가 거리를 뒤덮은 시기, 여성들도 여성 억압 문제를 제기하면서 가부장제에 대항했다. 19세기 제1세대 페미니즘이 참정권 획득과 같은 정치 제도 개선에 노력했다면 제2세대 페미니즘인 이들은 보다 일상적인 문제에 집중했다. 낙태 결정권, 포르노 반대 등을 이슈화해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공론장으로 끌어냈다. 1968년에는 미스아메리카 반대 시위도 일어났다. 브래지어처럼 여성의 몸을 옥죄는 것들을 쓰레기통에 던지며 성 상품화를 비판했다. 지난 6월 한국 페이스북 사옥 앞 상의 탈의시위, 탈코르셋 유행, 1999년 시작된 한국에서의 안티미스코리아대회와 겹쳐지는 장면이다. 1세대에서 2세대로의 변화는 페미니즘 역사를 관통하는 주제인 차이와 평등을 함축한다. 페미니즘 역사는 이 두 가지 질문을 중심으로 진화해 왔다. 1세대는 남성과 동일한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여성과 남성은 똑같은 이성적 인간”이라며 평등의 언어를 내세웠다. 그러나 투표권만으로는 여성들의 삶이 나아지지 않았다. 여성의 경험을 드러내는 언어가 필요했다. 몸의 경험, 개인의 일로 치부됐던 성폭력, 가정폭력이 구조적 문제임을 강조했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 “자매애는 강하다”는 유명한 구호도 등장했다.●1987년 21개 단체 모여 ‘여성단체연합’ 결성 서구의 반권위주의 분위기와 대조적으로 1960년대 한국은 권위주의 시대였다. 탄압받던 여성 운동은 1970년대 여성노동자 운동과 뒤이은 민주화 운동 속에 새 국면을 맞았다. 경제성장 과정에서 여성 노동자라는 정체성이 드러났고, 동일방직, YH무역 등 젊은 여성 노동자가 밀집된 제조업에서 노조 설립 활동이 치열하게 전개됐다. 당시 운동은 성차별 철폐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지만 여성 노동자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여성운동은 1980년대 전면에 등장했다. 1970년대 노동운동과 학생운동을 경험한 여성들이 사회에 진출한 시기다. 이들은 ‘여성은 정치에 무지하다’는 편견을 깼다. 1983년 6월 여성평우회 창립을 계기로 여성의 전화, 또 하나의 문화, 교회여성운동단체 등이 여성 의제를 이끌었다. 결혼 퇴직, 임금 차별 등 노동현장의 성차별, 성폭력, 성매매 철폐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25세 여성조기정년철폐운동, 부천서 성고문대책위 등을 함께한 21개 여성단체는 1987년 한국여성단체연합을 결성했다. 민주정부가 들어선 뒤 1994년 성폭력특별법이 제정됐고 1999년엔 군 가산점 위헌 결정을 이끌어냈다. 2005년에는 호주제가 폐지됐다. 가족법 개정을 추진한 지 약 50년 만이었다. ●LGBT 등 소수자 주체… 영 페미니스트 나와 이전 30년간 여성계가 굵직한 제도 성과를 거뒀다면 민주화 이후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는 그동안 가려져 있던 페미니즘의 주제들이 빛을 봤다. 성소수자(LGBT), 여성장애인, 이주여성 등 소수자 주체들이 드러났다. 2000년대 중반까지 문화운동에 두각을 나타낸 젊은 페미니스트인 ‘영(young) 페미니스트’ 도 등장했다. 이들은 몸, 섹슈얼리티, 환경 등 새로운 문제를 꺼내고 월경페스티벌 등 축제를 통해 일상 속 주제를 풀어냈다. 2015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운동이 일어나기 전까지 약 10년간 페미니즘은 대중과 다소 멀어져 있었다. 이 단절을 끝낸 여성들은 20대 ‘영영(young young) 페미니스트’ 들이다. 남성과 동등한 교육을 받고 학교와 사회에서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일베 등 여성 혐오를 학습한 남성들과 공존한 세대다. 2014년 세월호 참사로 안전 문제에 눈을 떴다. 이전 세대보다 미러링에 익숙하고 안전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최근 자유·급진·상호교차 등 그룹 다양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일각에선 이들을 4세대 페미니스트라고 부른다”면서 “SNS를 기반으로 한 활동, 몰카나 여성 대상 범죄 등 안전 이슈에 적극 나선다는 차별점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페미니즘은 단일한 것으로 규정할 수도 없고, 우리나라 페미니즘도 여러 세대가 섞여 있다”고 분석한다. 최근 페미니즘은 자유주의, 급진주의, 상호교차 페미니즘 등 여러 정신이 공존하며 다양한 그룹이 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여성들의 이합집산도 유동적이다. 워마드의 성체 훼손 논란이나 난민 혐오에 대해 기존 여성계는 반대 의사를 보이며 선을 그었지만 ‘몰카 편파 수사’, 안희정 전 충남지사 성폭행 무죄 판결 비판에는 같은 목소리를 낸다. 영영 페미니스트도 단일한 집단으로 재단하기 어렵다. 지난 18일 여성단체가 주최한 시위에 20대 여성들이 다수 참여하기도 했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영미권에서만 보던 다양한 페미니스트 논쟁이 한국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이것이 페미니즘을 더 중요한 사회적 이슈로 끌어올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올여름을 달군 페미니즘의 열기는 당분간 식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0년 전의 몰카 범죄가 반복되듯 성차별은 한순간에 없어지지 않을 것이고, 여성들을 또 광장으로 소환할 것이기 때문이다. 낙태죄 폐지, 불법 촬영 수사 등 현안도 뜨겁다. 앞으로 또 어떤 새로운 주체가 등장할지 광장으로 시선이 쏠린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유튜브 스타끼리 복싱 대결, 무승부로 싱거웠지만 돈벌이 짭짤

    유튜브 스타끼리 복싱 대결, 무승부로 싱거웠지만 돈벌이 짭짤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트브에 정기 독자만 1940만명을 자랑하는 KSI(25·영국)와 1820만 독자를 거느린 로건 폴(23·미국)의 복싱 대결이 무승부로 끝났다. 24일(현지시간) 맨체스터 아레나에서 열린 6라운드 경기를 마친 뒤 한 부심은 KSI가 1점 앞서는 것으로 채점했으나 다른 두 부심이 둘의 점수를 똑같이 매겨 결국 무승부가 선언됐다. 1만 5000장 이상 입장권이 팔렸으며 수천 명이 유튜브를 통해 일인당 7.5달러씩 내고 중계를 시청했다. 둘은 곧바로 재대결을 희망했는데 원래 둘은 이날 맨체스터, 다음은 미국에서 재대결을 펼치는 것으로 얘기가 오가고 있었다. 둘은 로스앤젤레스와 런던에서 열린 기자회견 도중 설전을 주고 받고 경기 전에도 서로를 공격하는 동영상을 주고받으며 팬들의 관심을 끌어 올렸다. 서로가 자신이 이겼다고 주장했다. KSI는 “이제 딱 하나 할 일이 남았는데 재대결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해보자.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폴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니 재대결을 그들에게 선물하자”고 짜고 친 듯이 거들었다. KSI는 상대를 향해 “인터넷에 온통 피묻은 네 얼굴을 보게 하고 싶어 기다릴 수가 없다”고 거친 언사를 날렸다. KSI와 폴 모두 검정색 옷으로 치장하고 입장했는데 KSI는 특히 검정마스크를 썼다가 링 위에서는 벗었고, 유니폼 뒤쪽에는 “악몽”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폴이 처음 두 라운드는 지배했지만 KSI는 경기 전에 자랑했듯 엄청난 스태미나로 열세를 만회하고 6라운드까지 승부를 이어갔다. 정기적으로 서로를 거칠게 몰아붙이고 입씨름도 벌였다. 폴의 동생이며 언더카드에 출전했던 제이크가 2라운드가 끝난 뒤 링에 돌진해 KSI와 금세 주먹다짐이라도 벌일 것처럼 하기도 했다. 처음 둘의 대결 소식이 전해졌을 때처럼 많은 이들이 둘이 돈을 더 벌려고 미리 짜놓은 대로 비겼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둘의 대결에 감명을 받았다는 이들도 있었다.본명이 올라지데 올라툰지인 KSI(이 별명은 지혜와 힘, 진정성의 머릿글자를 조합한 것)는 동영상 블로거 겸 래퍼로 여성들을 향해 음담패설을 늘어놓아 비판받기도 하지만 누적 시청 44억 뷰를 기록한 파워블로거다. 주에서 유명한 레슬러였던 로건 폴은 원래 바인(VINE)에서 몰래카메라 블로거로 활약하다 유튜브로 옮겨왔으면 누적 시청 39억 뷰를 자랑한다. 그는 연초 일본에서 자살한 이의 주검을 그대로 보여주는 동영상을 올려 엄청난 비난을 사기도 했다. 이들이 링 위에 오르게 된 것은 다른 두 유튜버, 조 웰러와 테오 ‘말포이’ 베이커가 지난해 링 위에 오르면서 가능해졌다. KSI는 둘의 대결 승자와 붙고 싶다고 도발해 지난 2월 런던의 코퍼 박스 아레나에서 웰러를 제압했다. 당시 KSI와 웰러의 대결을 180만명 정도가 공짜로 즐기고 나중에 둘의 공식 채널을 통해 3600만명이 봤다. 흥행성이 있다는 판단이 내려져 KSI와 폴의 대결이 유료화됐다. 일부에서는 앞으로는 페이퍼뷰 채널이 아니라 유튜브 채널이 흥행성 높은 격투기 대결을 생중계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서울대 여자화장실서 10대 남성 긴급체포…송파서도 몰카 사건

    서울대 여자화장실서 10대 남성 긴급체포…송파서도 몰카 사건

    서울 관악경찰서는 25일 오후 1시 서울 관악구 서울대 사회과학대 2층 여자화장실에 숨어 있다가 발견된 A군을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로 긴급체포했다고 밝혔다. 경찰과 목격자에 따르면 A군은 카메라가 달린 휴대전화를 소지한 채로 여자화장실에 숨어 있다가 이 학교 교수에게 발견돼 경찰에 넘겨졌다. 경찰은 A군이 휴대전화 등으로 불법촬영을 했는지,화장실에 카메라를 설치했는지 등을 조사 중이며 조만간 A군의 신병처리 방향을 결정할 방침이다. 서울대 사회과학대는 A군이 카메라를 설치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해당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통제 중이다. 서울 송파경찰서도 지난 19일 오후 10시 서울 송파구 거여역 근처에서 휴대전화로 여성들을 몰래 촬영한 혐의를 받는 B(37) 씨를 성폭력범죄 처벌법상 카메라 이용 등 촬영 혐의로 불구속 입건해 조사 중이다. 경찰은 B씨의 휴대전화에서 여성들의 신체 부위를 몰래 찍은 동영상 2개를 발견했다. B씨는 그의 거동을 수상하게 본 서울지방경찰청 기동대 소속 이 모 순경에게 검거됐다. 이 순경은 당시 퇴근하던 중 B씨를 발견했고, B씨가 도주하자 뒤쫓아 몸싸움 끝에 붙잡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유튜브 스타끼리 링에서 대결, 2만 관중이 지켜본다

    유튜브 스타끼리 링에서 대결, 2만 관중이 지켜본다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에서 둘은 이미 스타다. 로건 폴(미국)은 정기독자만 1500만명이고, KSI(영국)는 정기독자 1900만명에 누적 시청 횟수가 40억회에 이르는 동영상 블로거다. 그런데 폴과 KSI는 25일(이하 현지시간) 맨체스터 아레나에서 2만명의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복싱 대결을 펼치게 된다. 최근 둘이 인터넷이 아니라 현실의 사각 링에서 글러브를 끼고 대결한다는 소문은 파다하게 돌았지만 과연 둘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떻게 정식 복서가 아닌 이들이 이렇게 정식 경기를 하게 됐는지에 대해 정확하게 알려진 것이 없었다며 영국 BBC가 24일 전말을 소개했다. 먼저 폴이 유명해진 일부터 시작한다. 그는 지난 1월 일본에서 자살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의 주검을 동영상으로 올려놓아 적지 않은 이들로부터 질타를 받았다. 나중에 그는 트위터에 “하도 놀랍고 충격을 받아” 그랬던 것이라며 자신이 경솔했던 것 같다고 사과하는 글을 올렸다. 본명이 올라지데 윌리엄 올라툰지 주니어인 KSI는 지혜(knowledge)와 힘(strength), 진정성(integrity)의 약자를 모아 별명을 붙인 괴짜. 게임과 축구, 몰래카메라 동영상 등으로 블로그를 꾸민다. 2009년 플랫폼을 만든 뒤 누적된 동영상 조회 건수만 40억회에 이른다. KSI는 복싱 링이 낯설지 않다. 유튜브 복싱 챔피언십(YBC)을 만든 ‘사이드맨’ 그룹의 창립 멤버였는데 그와 함께 했던 이선 페인과 대결한다는 소문이 짜하게 돌았다. 둘이 더 많은 정기독자를 끌어들이려고 서로 갈등을 빚는 것처럼 꾸민다는 소문도 많았다. 이런 소문을 듣고 도전장을 내밀었던 이가 조 웰러였다. 웰러는 ‘디스(깎아내림) 동영상’을 만들어 KSI에게 도발한 뒤 도전권을 얻어 런던의 코퍼 박스 아레나에서 맞붙었지만 3라운드 TKO 패를 당해 초대 챔피언 타이틀을 KSI에게 넘겨줬다. 기고만장한 KSI는 링에서 일장 연설을 하면서 다음 번에는 폴을 혼내주겠다고 밝혔다. 남의 죽음을 갖고 함부로 까분 버릇을 고쳐주겠다는 식이었다. 당시 160만명 정도가 유튜브로 이 경기를 지켜봤고 나중에 본 이들까지 합하면 2000만명이었다. 진짜 복서인 플로이드 메이웨더와 격투기 스타 코너 맥그리거가 맞붙은 지난해 8월 대결의 페이퍼뷰 구매자가 670만명이었던 점을 비교하면 아마추어들인 KSI와 웰러의 대결이 훨씬 많은 인기를 누렸던 셈이다. 올해 잉글랜드 축구협회(FA)컵 결승이라 해봐야 870만명 시청에 그쳤다. 여러 보도에 따르면 KSI는 이날 대결 입장료 수입을 100% 챙기고 내년 2월 미국에서 예정된 재대결 입장료 수입은 폴이 100% 갖는 것으로 돼 있다. 영국 시청자들은 런던 출신인 KSI의 승리를 기원하고 있다. 지난달 기자회견 때 폴이 단 하나의 질문도 받지 않고 떠나 엄청난 야유가 쏟아진 것도 작용했다. 사실 폴이 이긴다고 예측하는 이를 발견하긴 어려운데 폴은 예외다. 자신이 이긴다는 데 100만 달러를 걸었다. 둘의 동생들인 데지와 제이크 폴이 언더카드로 앞서 링에 오르는데 복싱이나 레슬링을 좋아하는 팬들은 유명 링 사회자 마이클 버퍼가 정말로 링에 오르게 될지를 궁금해 하고 있다. 유튜버 엘리엇 해크니는 이번 대결이 잠재적인 스포츠 중계사로 유튜브가 등장할 수 있을지 가름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정말로 실현될 것 같지 않았던 일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줘 인터넷 역사에 가장 커다란 유튜브 이벤트로 성사됐다. 페이퍼뷰로는 해보지 못했던 일들이 최초로 벌어져 앞으로 더한 일들도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프로 복서들의 반응은? 전 헤비급 챔피언 타이슨 퓨리의 반응만 살짝 옮긴다.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류화영 심경고백 “엘제이(LJ) 데이트 폭력+집착+경찰 출동까지”

    류화영 심경고백 “엘제이(LJ) 데이트 폭력+집착+경찰 출동까지”

    그룹 티아라 출신 배우 류화영이 방송인 엘제이(LJ)의 사생활 공개 이후 처음으로 입장을 밝혔다. 24일 류화영(26)이 스포츠경향과 인터뷰를 통해 엘제이(42·이주연)와의 관계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놨다. 그는 이날 “엘제이와 알고 지낸 지는 약 1년이 됐다. 정말 잘해줬다. 나를 좋아하냐고 물어봤더니 ‘아니’라는 답변에 친한 여동생 정도로 대한다고 느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하지만 두 달 전쯤 고백을 받았다. 1년 동안 보여준 행동이 진심으로 느껴져 겉모습이 아닌 오로지 마음만 보고 호감을 갖고 서로 관계에 신중하게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 숨겨왔던 폭력성과 지나친 집착으로 연인까지 발전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일주일 만에 지인으로 남기로 하자고 했다”고 털어놨다. 류화영은 “(엘제이를) 달래보고 좋은 관계로 지내려 노력했지만 그럴 때마다 식음을 전폐하거나 자살 협박을 했다. 끝내 ‘기자들에게 전화해서 기사화하겠다’고 협박을 했다”고 밝혔다. 이에 “쌍둥이 언니인 효영이 엘제이를 달래려 했지만 통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심지어 “엘제이는 이후 집에 침입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더 이상 끌려다니기 싫어 8월 22일 새벽 단호하게 말했지만 여전히 폭력성을 보였다. 강제로 휴대폰을 압수했고 가택침입까지 해 나는 소리지르며 방어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사람들이 모여들어 경찰이 출동했고, (엘제이를) 말려서 돌려보냈다. 다음 날 바로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엘제이가 소속사 매니저들에 자료가 더 있다며 ‘화영이와 내가 2년 동안 열애한 걸로 발표하면 그만하겠다’는 협박 문자를 보냈다”고 전했다. 류화영은 엘제이가 공개한 수영복 사진과 관련 “찍은 줄 몰랐기에 충격적이었다. 이걸 위해 치밀하게 준비한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면서 “연인 사이에 사진을 찍는 건 서로 지켜주자는 것 아니냐. 그럼에도 몰래 사진을 찍고 기사화하는 걸 보며 사람이 무서웠다”고 털어놨다. 한편 엘제이는 23일 새벽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류화영과 함께 있는 모습 등 사생활이 담긴 사진을 공개했다. 엘제이는 “류화영과 2년 동안 열애했고, 전날 싸웠다”고 주장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유럽 최대 보호종 거북이 밀매조직 적발…마리당 1300만원

    유럽 최대 보호종 거북이 밀매조직 적발…마리당 1300만원

    거래가 금지된 보호종 거북이를 몰래 키워 유럽 전역으로 내다팔면서 막대한 수입을 올린 조직이 경찰에 적발됐다. 스페인 경찰이 마요르카에서 불법으로 운영되던 거북이 양식장을 적발, 폐쇄했다고 현지 언론이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양식장에선 거북이 1100마리와 부화 과정에 있던 알 750여 개가 발견됐다. 현지 언론은 "거래가 금지돼 있는 거북이를 불법으로 양식하고 밀매하는 조직으로는 유럽에서 최대 규모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조직은 미국, 캐나다, 멕시코 등지에 서식하는 희귀종 거북이를 밀반입하거니 양식해 바르셀로나에 있는 희귀종 반려동물샵을 통해 유럽 각국에 공급했다. 겉으론 희귀종이지만 판매가 금지되어 있지 않은 동물을 팔면서 뒤로는 거래가 금지된 거북이를 밀매했다. 조직이 판매한 거북이는 대부분 멸종위기에 처해 '몸값'이 비싼 종이었다. 스페인 경찰에 따르면 양식장에서 발견된 거북이들은 대부분 세계적으로 멸종위기에 처한 50대 종이었다. 덕분에 조직은 거북이 밀매로 막대한 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업체가 마리당 1만 유로(약 1290만원)에 거북이를 판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발견된 거북이만 시가 110만 유로, 우리나라 돈으로 142억원을 웃도는 셈이다. 스페인 경찰이 거북이 밀매의 꼬리를 잡고 수사를 개시한 건 18개월 전이다. 마요르카 공항을 통해 해외로 밀반출되던 거북이들이 발견되면서 수사가 시작됐다. 경찰은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등 유럽 각지로 거북이 밀매된 사실을 확인하고 이들 국가로부터 수사 협조를 받아 문제의 양식업장을 찾아냈다. 사진=스페인 경찰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이주의 어린이 책] 아빠 따라 간 대중목욕탕…금붕어 몰래 풀어 대소동

    [이주의 어린이 책] 아빠 따라 간 대중목욕탕…금붕어 몰래 풀어 대소동

    팔딱팔딱 목욕탕/전준후 글·그림/고래뱃속/48쪽/1만 3000원어린 시절 주말마다 엄마 혹은 아빠 손에 이끌려 갔던 대중 목욕탕. 뜨거운 탕에서 몸을 불리고 때를 미는 과정이 썩 즐겁진 않지만 아이들에게 목욕탕은 어쩐지 신나는 공간이다. 첨벙첨벙 물놀이를 할 수 있는 냉탕이 있으니까. 아빠를 따라 목욕탕에 가게 된 준우는 냉탕을 좀더 특별하게 즐길 수 있는 기발한 생각을 떠올렸다. 일명 ‘집 안 어항에 갇혀 있는 금붕어들을 목욕탕에 데려가기’. 준우는 아빠 몰래 검은 봉지에 담아 온 물고기를 냉탕에 슬그머니 풀어 버렸다. 물고기들과 헤엄을 치며 즐거운 시간을 만끽하던 준우가 온탕에 있는 아빠를 만나러 간 사이 목욕탕이 발칵 뒤집혔다. 큰 몸집의 민머리 아저씨가 냉탕에 들어갔다가 물고기를 보고 뒤로 나자빠졌기 때문. 준우의 행동에 화를 내던 주변 아저씨들은 “다같이 물고기를 후딱 잡아 버리자”는 한 어르신의 말에 하나둘 냉탕에 모여들었다. 처음엔 시큰둥하더니 물고기를 잡기 시작하던 사람들 얼굴에 어느덧 미소가 어린다. 어린 시절 물고기 잡던 때를 추억하는 할아버지부터 마냥 신난 아이들까지 냉탕은 동네 개울가가 돼 버렸다. 다들 즐거웠는지 ‘금붕어 구하기 대작전’에 참여한 사람들은 음료수도 나눠 먹고, 한국 여행 중 목욕탕에 들렀다가 같이 물고기를 잡았던 미국인 청년과 단체 사진까지 찍는다. 남탕에서 벌어진 대소동을 재치 있게 표현한 작가의 첫 책이다. 목욕탕을 어른과 아이들 모두의 즐거운 놀이터로 그려 낸 작가는 마음을 겹겹이 감싸고 있는 겉옷을 살짝 벗는다면 마음이 팔딱팔딱 뛰는 시원한 순간을 경험할 수 있다고 넌지시 일러 준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모바일 픽!] ‘엄마는 힘들어’…10분 만에 집 난장판 만든 두 딸

    [모바일 픽!] ‘엄마는 힘들어’…10분 만에 집 난장판 만든 두 딸

    세 딸을 둔 엄마의 육아 고충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여러 장의 사진이 공개됐다. 21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잉글랜드 옥스퍼드주 위트니 출신의 엄마 엠마 하우스(24)가 자리를 비운 단 10분 사이에 두 장난꾸러기 홀리(4)와 에비(2)가 저지른 만행(?)을 세상에 알렸다. 엄마 엠마가 꽤 많은 양의 빨래를 하는 동안 두 딸은 2층, 페인트가 있는 방으로 몰래 잠입하는데 성공했다. 침대 밑 상자에 있는 그림물감을 꺼내 벽 여기저기에 보라색으로 마구 칠했고, 카펫에도 온통 아크릴 그림물감 병을 흩뿌려 놓았다. 오싹한 느낌이 든 엄마는 위층으로 올라갔고, 딸들이 벌여놓은 난장판 같은 집안 꼴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욕실 욕조 바닥과 싱크대 곳곳을 자주 빛으로 물들인 채 춤을 추고 있는 홀리와 에비를 발견했다. 엠마는 “두 딸은 생후 11개월 된 여동생 얼굴과 침실에도 그림물감을 잔뜩 칠했다”며 “정말 엉망진창인 상황에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크게 충격을 받은 나머지 솔직히 울고 싶었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딸에게 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묻자, 딸은 ‘엄마, 나는 록스타야’라고 간단히 대답했다”면서 맥 빠진 웃음을 보였다. 엄마는 말썽꾸러기들을 샤워 부스 안에 밀어 넣고, 몇 시간을 들여 딸들이 어지럽혀 놓은 현장을 치우려 노력했다. 그러나 처음으로 되돌리기 힘들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 결국 100달러(약 11만 2000원)를 지불하고 전문 청소인력을 불렀다. 사진=페이스북(엠마하우스)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여기는 중국] 트럭 밑에 숨어 1000km 이동한 가출 소년의 사연

    9살 가출 소년이 18륜 대형 화물트럭의 하단부분에 8시간 동안 몰래 숨었다가 결국 발각됐다. 22일 중국 후난 성 지역 일간 샤오샹 모닝 뉴스 보도에 따르면, 이 소년은 지난 18일 저녁 11시쯤 후난 성 천저우시에 정차해있던 트럭 밑바닥으로 기어 들어가 뒤 차축 근처에 올라탔다. 이후 트럭은 고속도로를 내달렸고 하룻밤 사이 북쪽으로 무려 1000km를 이동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7시쯤, 트럭 운전사가 공장에 차를 멈춰 세우면서 위험천만하게 몰래 탑승한 소년의 존재가 드러났다. 이에 공장 직원들이 소년에게 나오라고 일렀지만 이를 거부하자 직원들은 기름기와 시커먼 그을음으로 뒤덮인 소년을 강제로 끌어냈다. 이후 신고를 받고 출동한 허난 성 미뤄시 경찰은 소년을 상대로 조사에 들어갔고 곧 샤오능이라는 아이의 이름과 집 전화번호 등을 밝혀냈다. 보도에 따르면 샤오능은 이혼한 아버지가 타 지역에서 일을 하는 동안 평일에는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샤오능의 아버지는 “아들이 가출을 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면서 “아마도 외로워 이같은 짓을 벌였는지 모르겠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한편 샤오능의 가정처럼 부모들이 직업을 구하러 도시로 떠나고, 조부모가 아이들을 양육하는 일은 중국 농촌지역에서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중화전국부녀연합회의 2013년 자료에 의하면, 농촌 아이들 6100만 명이 편부모 또는 고아로 살고 있다.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당신의 하우스헬퍼’ 심이영 등장, 하석진X보나 관계에 어떤 영향?

    ‘당신의 하우스헬퍼’ 심이영 등장, 하석진X보나 관계에 어떤 영향?

    ‘당신의 하우스헬퍼’에 심이영이 출연한다. 5년 전 과거가 아닌, 현재의 심이영은 하석진과 보나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22일 KBS2 수목드라마 ‘당신의 하우스헬퍼’ 측은 김지운(하석진 분), 임다영(보나 분), 그리고 이소희(심이영 분)의 스틸을 공개했다. 장씨 할아버지(윤주상 분)가 가지고 있던 소희의 집 주소에 관심을 보였던 다영이 소희를 찾아낸 것인지, 5년 동안 소식이 없던 소희가 나타난 이유는 무엇인지,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자극하고 있다. 함께 찍은 사진이 공개되면서 특별한 관계임을 예고한 소희와 박가람(연준석 분). 그리고 두 사람의 사진은 소희와의 커플 시계를 강에 던지고, 다영과 연애를 시작하면서 과거를 잊기 위해 노력 중인 지운의 마음을 다시 흔들었다.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는 소희와 비밀을 숨기고 있던 가람의 정체 때문에 지운은 다시 과거를 정리해야만 하는 기로에 섰다. 앞서 공개된 예고 영상에서 “그 아가씨 연락처는 대체 왜? 꼭 필요한겨?”라는 장 씨 할아버지의 말을 통해 다영이 지운 몰래 소희를 찾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김샘한테 말해줘야 하나. 김샘이 알면”이라는 다영의 목소리에는 소희의 주소를 지운에게 알려줘도 되는지에 대한 고민이 묻어나온다. 소희의 존재는 지운뿐만 아니라 다영의 마음까지 복잡하게 만들고 있는 것. “과거 회상을 통해서만 등장했던 소희가 22일 방송에 드디어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라는 제작진의 전언과 함께 공개된 스틸컷 속 우연히 마주친 다영과 소희가 포착됐다. 전혀 모르는 사이지만 서로를 보는 눈빛이 두 사람의 첫 만남에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어 스틸컷에는 우편함에 편지를 넣어두는 지운과 이를 발견하고 놀라는 소희의 어긋난 타이밍도 담겨있다. 과거와 현재 속에서 복잡 미묘한 지운, 다영, 소희, 이 세 사람의 관계는 과연 어떻게 정리될까. 한편, KBS2 수목드라마 ‘당신의 하우스헬퍼’는 22일 오후 10시에 방송된다. 사진제공 = KBS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사람이 좋다’ 김종진♥이승신, 재혼 12년차 “완벽주의자 VS 덜렁이”

    ‘사람이 좋다’ 김종진♥이승신, 재혼 12년차 “완벽주의자 VS 덜렁이”

    21일 방송되는 MBC ‘휴먼다큐-사람이 좋다’에서는 ‘브라보 마이 라이프, 가수 김종진’ 편이 전파를 탔다. ▲ 한국대중음악의 자존심 ‘봄여름가을겨울’, 신장암 투병 중인 전태관의 근황과 김종진의 감동적인 우애 1988년, 1집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로 데뷔해 30주년을 맞은 ‘봄여름가을겨울’의 김종진(57)과 전태관(57). 시대를 앞서가는 첨단 장비 사용과 퓨전 장르를 개척한 20대 청년들이 어느덧 흰머리가 가득한 중년이 됐다. 30년이라는 시간은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돈독한 우정을 자랑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늘 굳건할 것만 같았던 봄여름가을겨울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2012년, 전태관의 신장암 발병. 김종진은 겉으로는 담담하게 전태관을 위로했지만 남몰래 울고 또 울었다. 암투병 중인 전태관이 공연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면서 김종진은 홀로 30주년 기념 음반과 공연을 준비하며 전태관의 빈자리를 크게 느낀다. 음악만 신경 쓰던 김종진이 돈과 행사 등 음악 외 모든 것을 책임지던 전태관의 역할도 전부 혼자 해내려니 힘에 부치기 때문이다. 최근 30년 음악 동지의 빈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진다. 지난 4월, 아내마저 먼저 암으로 떠나보내며 홀로 암 투병 중인 전태관을 위해 요즘 김종진은 후배 가수들과 헌정 앨범을 준비 중이다. 윤종신, 윤도현, 장기하 등이 참여, 수익금은 모두 전태관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애인처럼, 분신처럼 각별했던 김종진, 전태관의 30년 우정. ▲ 최초 고백! 김종진은 왼쪽 귀가 들리지 않는다! 난청에도 꺾이지 않고 완벽한 음을 찾아가는 열정 김종진은 평생 음악을 위해 살았다. 밥을 먹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오로지 음악을 위한 일이다. 처음 받은 대학교 장학금으로 기타를 사서 의기양양하게 들어오는 김종진을 보고 어머니는 이후 아들이 음악하는 데 있어서 최고 후원자가 되어 주셨다. 사실 김종진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왼쪽 귀가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난청은 음악의 장애물이 되지 않았다.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노력했다. 지금도 김종진은 공연 전 밴드 멤버들이 연주하는 소리 하나, 박자 하나도 놓치지 않는다. 그의 집에는 공연에 사용되는 1930~1960년대 앰프, 기타, 전깃줄 등 더 깊은 소리를 내기 위한 오래된 장비들이 가득하다. 온전히 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결핍은 소리에 더 집중하게 만들었고, 그 결과 ‘어떤 이의 꿈’, ‘브라보 마이 라이프’ 등 명곡과 매회 열정적인 공연이 만들어졌다. ▲ 깔끔한 완벽주의자 김종진과 덜렁이 아내 이승신의 재혼 라이프 2006년 11월, 김종진과 탤런트 이승신의 결혼 발표는 재혼이라는 이슈로 큰 화제가 됐다. 아들과 딸, 각자 아이를 데리고 시작한 결혼 생활은 그리 순탄하지는 않았다. 완벽주의자이자 ‘음악 밖에 모르는 바보’ 김종진과 덜렁이 아내 이승신의 성격 차이와 가출을 감행할 정도로 방황하는 이승신의 질풍노도와 같은 청소년기처럼 숱한 우여곡절 끝에 하나의 가족이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제가 (아내에게) 붙여준 별명이 옛날에는 내 사랑 덜렁이, 엄청 덜렁대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깔깔 승신’이라고 매사에 깔깔 웃고 그러니까 음악이라는 동굴에 갇혀 있던 저에게 바깥세상은 그래도 살만한 데구나, 밖으로 나갈 때는 언제든지 나를 맞아 줄 가족이 있고, 즐거운 분위기가 있다는 걸 알게 해줬죠.” - 김종진 인터뷰 中 - 어느덧 결혼 12년 차, 깔끔쟁이 김종진은 아내 몰래 부엌을 청소하고, 자신이 만든 이색(?)건강 쉐이크를 함께 마시며 아내를 따라 운동에 나선다. 대학을 졸업한 아들은 취직해 독립했고, 딸은 일본 유학 중. 아이들의 안부 전화 한 통에 기뻐하고 안도한다. 젊고 열정적이었던 청춘의 시간은 가고, 건강 걱정, 자녀 걱정, 노후 걱정을 해야 하는 중년의 나이. 실패를 딛고 재혼이라는 어려운 난관을 거쳐 ‘브라보 마이 라이프’를 만들어가고 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경기도, 초미세먼지 불법 배출 52개 업체 적발

    경기도, 초미세먼지 불법 배출 52개 업체 적발

    경기도 특별사법경찰단은 21일 대기오염 방지시설을 거치지 않고 불법으로 초미세먼지 원인물질을 배출한 52개 업체를 적발했다고 밝혔다. 적발된 업체는 대기오염 방지시설을 가동하지 않은 업체 12곳, 대기오염물질에 공기를 넣어 희석해 배출한 업체 6곳, 오염물질을 방지시설로 유입시키지 않고 몰래 배출한 업체 4곳, 대기배출시설을 신고하지 않은 업체 26곳 등이다. 파주시에 있는 A업체는 폐알루미늄을 녹이는 과정에서 질소산화물과 먼지 등 다양한 대기오염물질을 오염방지시설을 가동하지 않은 채 배출하다가 적발됐고, 인근 B사업장은 특정 대기유해물질인 염화수소를 기준치인 0.4ppm보다 3배 가까이 높은 1.1ppm을 허가 없이 배출하다가 적발됐다. 포천시에 있는 C사업장은 연간 6톤가량의 질소산화물을 신고도 하지 않고 배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도 특사경은 적발된 업체 중 50곳을 형사입건하고, 나머지 2곳에 대해서는 관할 시·군에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의뢰했다. 질소산화물 등은 공기 중으로 배출되면 햇빛과 반응해 초미세먼지를 만드는 물질이다. 도 특사경은 지난 6월 27일부터 지난달 9일까지 도내 전역 270개 질소산화물과 유기물질 등 초미세먼지 원인물질 배출 사업장을 대상으로 환경관리 실태를 점검했다. 한편, 이재명 지사는 이날 SNS에 올린 글을 통해 도 특사경의 이같은 단속 결과를 소개한 뒤 “자신의 작은 경제적 이득을 위해 국민의 건강에 치명적 손상을 입히는 초미세먼지 원인물질을 대기 중에 배출하는 사업자에 대해 강력하게 대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타인의 고통으로 얻는 이득은 반드시 회수되어야 한다”며 “미세먼지 저감 대책을 기본부터 철저히 하겠다”고 덧붙였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IS 성노예’였던 난민 소녀, 독일서 IS 전투원과 ‘악몽의 재회’

    ‘IS 성노예’였던 난민 소녀, 독일서 IS 전투원과 ‘악몽의 재회’

    이슬람국가(IS)에 납치돼 성노예로 지내다 탈출한 뒤 가족과 독일로 넘어가 난민이 됐던 야지디족 10대 소녀가 길거리에서 과거 자신을 가두고 성적으로 학대했던 IS 전투원에게 발각돼 신변의 위협을 느껴 이라크로 되돌아간 사실이 전해졌다. 영국 더 타임스 등 주요 외신은 16일(현지시간) 쿠르드계 이라크 매체 바스뉴스를 인용해 최근 독일 남부 슈투트가르트에 있는 난민 캠프에서 머물던 한 야지디족 난민 소녀가 IS 출신 남성을 피해 이라크 북부 쿠르드 자치지역 쿠르디스탄으로 돌아간 사연을 전했다. 아쉬왁 하지라는 이름의 이 소녀는 4년 전인 2014년 8월, 이라크 북부로 진격한 IS에 의해 납치된 수천 명의 쿠르드족·야지디족 중 한 명이었다. 당시 15세였던 아쉬왁 하지는 가족과 함께 납치됐지만, 아부 후맘이라는 이름의 한 남성에게 100달러(약 11만원) 팔려 약 3개월 동안 이라크 북부와 시리아 지역에서 지냈다. 하지는 함께 팔려온 다른 소녀들과 함께 이 남성에게 거의 매일 밤 성적으로 학대를 받으며 이슬람교로 개종할 것을 강요받았다. 3개월쯤 지났을 무렵, 하지는 다른 소녀들과 함께 몰래 아부 후맘의 휴대전화를 빼돌렸고 자신의 오빠에게 극적으로 연락할 수 있었다. 오빠는 이들 소녀가 탈출할 수 있도록 한 가지 묘안을 떠올렸다. 소녀들은 그의 계획에 따라 신체 이곳저곳을 손톱으로 긁어 상처를 낸 다음 피부병에 걸렸다고 거짓말했다. 이에 따라 병원에 간 소녀들 중 한 명이 수면제를 하나 입수할 수 있었다. 이후 소녀들은 남성의 음식을 준비할 때 수면제를 탔고 남성이 잠이 든 틈을 타 탈출에 성공할 수 있었다. 하지는 이후 가족과 만났고 6개월 동안 이라크에 머물다 함께 독일로 넘어가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그녀는 슈투트가르트에서 살면서 노예 생활 중 생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완화하는 인도적 지원 프로그램을 받았고 슈퍼마켓에 취직해 일도 했다. 하지는 어느 날 누군가에게 미행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던 지난 2월 일을 마치고 집이 있는 난민 캠프를 향해 가던 중 한 남성이 차에서 내려 자신 앞을 가로막았다는 것이다. 하지는 “지난 2월 21일, 누군가가 나를 가로막았다. 그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봤을 때 몸이 굳고 말았다”면서 “날 감금했던 아부 후맘과 똑같이 무서운 턱수염과 못 생긴 얼굴을 하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그가 내게 독일어로 ‘너, 아쉬왁이지?’라고 추궁했을 때 난 곧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소녀는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에게 위험이 미칠 것을 두려워했다. 탈출 후 가족 대부분과 재회했지만 4명의 오빠는 여전히 행방 불명이며 언니 1명은 아직도 IS에 납치된 채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는 독일에서 남성에게 가던 길을 저지당했을 때 다른 사람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남성은 집요하게 따졌다. 그는 “아니, 넌 아쉬왁이 맞다. 난 잘 안다”면서 “내가 바로 모술에서 잠시 함께 있었던 아부 후맘”이라고 말했다. 이어 “네가 지금 어디서 누구와 살고 무엇을 하는지도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는 그 자리에서 도망쳐 남성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근처 시장에 몸을 숨겼다. 귀가 후 오빠에게 연락해 자초 지종을 말하고 다음날에는 난민 캠프 관리자에게 사실을 알렸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CCTV 영상에서 남성의 신원을 파악했다. 남성은 이라크 바그다드 출신으로 본명은 무하마드 라시드였다. 하지만 경찰은 이 남성 역시 난민 지위를 받은 상태이고 소녀에게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므로 해줄 수 있는 일이 거의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하지는 “경찰은 해당 남성도 나처럼 난민이므로 지금은 대응할 수 없다고 말했다. 만일 또 남성에게 저지당하면 여기로 연락하면 된다는 말과 함께 전화번호 하나를 건네줬을 뿐”이라면서 “문제는 남성은 물론 그의 일부 가족이 독일 안에 살고 있어 나는 물론 내 가족이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에 독일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다시는 독일에 가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슈투트가르트 지역을 관할하는 바덴뷔르템베르크주 경찰은 외신들의 코멘트 요구에 어떤 답변도 내놓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트위터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