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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포 3·1만세운동-2] 군하리장터 만세운동중 체포돼 서대문형무소 옥살이한 여성 이살눔은 ‘김포의 잔다르크’

    [김포 3·1만세운동-2] 군하리장터 만세운동중 체포돼 서대문형무소 옥살이한 여성 이살눔은 ‘김포의 잔다르크’

    경기 김포 3·1만세운동 전개과정에서 일제에 의해 체포돼 재판을 받은 인원은 고촌면 6명을 비롯해 양촌면 9명, 월곶면이 13명으로 모두 28명이다. 1919년 3월 23일자 조선총독에게 보내는 ‘독립운동에 관한 건 (제24보)’에 의하면 월곶면 만세시위 상황에 대해 주모자 10명을 연행했다고 기록돼 있다. 판결문을 통해서 22일 성태영·이살눔·백일환·이병린·오복영 등 5명이 재판을 받은것으로 기록돼 있다. 체포된 10명 중 5명만 기소하고 나머지 5명은 훈방처리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김포에 독립만세운동을 한 사람이 많은데 당시 관련 사진이나 자료가 대부분 사라져 남아있는 대표적인 사례를 들어본다. 이경덕(1886~1948·이살눔)은 김포출신으로 성서학교 학생이었다. 이살눔은 이 지역에서 주도적으로 만세운동을 한 유일한 여성으로 김포의 잔다르크라 불린다. 월곶면 고양리에서 성태영·백일환 등과 함께 독립만세시위운동을 계획하고 3월22일 군하리장터에 모인 수백명의 군중에게 태극기를 배부해주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행진 중 일경에 체포됐다. 7월1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위반으로 징역 6개월을 언도받고 공소했으나 경성복심에서 기각당하고 옥고를 치렀다. 이살눔은 옥고를 치르던 중 병을 얻어 10월27일 가출옥으로 서대문감옥에서 석방됐다. 이후 군하리에서 목회자의 삶을 살다가 알 수 없는 병으로 사망했다. 정부는 고인의 공을 기리어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2003년 8월15일 이살눔이 전도사 몸으로 실천한 뜻을 기리기 위해 박형규 목사 외 17명과 11개 교회가 참여해 현 월곶면 푸른언덕교회 내 ‘이경덕전도사 3·1운동기념비’를 세웠다. 현재 이살눔의 양아들 부인인 며느리가 생존해 있으나 석방이후 삶의 기록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어느날 알 수 없는 병을 얻어 남편이 몰래 밤중에 공동묘지에 안장했다고 한다. 현재 묘소위치가 어디인지도 모른다는 전언이다. 임용우(1884~1919)는 당시 통진 창신학교를 졸업하고 모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1912년 27세 당시 덕적도 명덕학교로 부임해 8년간 근무하면서 많은 애국청년들을 길러냈다. 그해 2월하순쯤 천도교회의 연락을 받고 3월1일 상경해 서울에서 독립선언서에 참가하고 3월3일 고향인 군하리 면사무소 앞에 면민들을 집합시켜 대한독립만세를 제창하고 시가행진을 벌였다. 또 1919년 3월29일 최복석·윤영규 등과 함께 월곶면 갈산리·조강리 일대 독립운동을 주도했다. 이날 정오 갈산리에서 최복경이 만든 태극기를 선두로 만세시위운동을 벌이고 오후 2시 군하리 향교와 보통학교·면사무소를 차례로 행진을 벌였다. 또 4월9일 자기가 재직하는 명덕학교 운동회를 덕적도 해안가에서 개최해 모인 참관들과 학생들이 앞으로 나아가 이재관·차경창 등과 만세를 선창하는 등 독립만세를 외치다가 체포됐다. 이해 5월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위반으로 징역 1년6개월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일제의 잔인한 고문으로 순직했다. 정부는 그의 공을 기리어 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박충서는 김포출신으로 3월23일 양곡리 장날을 이용해 박승각·박승만·안성환·전태순·오인환·정억만 등과 만세운동을 계획하고 주도했다. 그는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던 학생으로 3·1운동 파고다선언식에 참석하고 남대문과 대한문 일대에서 시위에 참여하다 귀향했다. 그는 3월19일 안성환의 집에서 박승각·박승만·전태순과 만나 양곡장날인 23일을 정해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했다. 태극기와 격문·경고문 등을 작성해 오인환과 정억만에게 줘 동리에 배포하도록 했다. 23일 양곡장터에 모인 수백명의 군중 앞에 나서 독립만세운동을 벌이고 장터를 행진하며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체포됐다. 9월4일 보안법 위반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1982년 대통령표창을, 199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런데 월곶면 지역의 만세운동을 주도한 사람 가운데 박용희와 당인표·조남선은 일제에 의해 체포되지 않았다. 박용희는 22일 만세를 주도한 후 길림성으로 망명해 한림회를 결성해 활동했다. 그는 중국에서 농장을 경영하며 군자금을 마련해 제공했다. 1933년 7월 일인살해 사건으로 소만교 국경으로 도피생활 중 해방돼 고향 월곶면 고양이로 돌아와 농업에 종사하며 6·25전까지 민족청년단에서 활동했다. 당인표는 만세운동을 주도한 후 망명했다고 하나 행방을 알 수 없다. 조남선은 만세시위에 참여한 후 망명했으며 4년 후 고향으로 돌아와 사망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 조선헌병대사령관이 육군대신에게 보낸 ‘전국 각지의 3월 22일부터 23일까지의 시위 운동상황’ 보고서에 의하면 23일 양촌면 오라리장터 만세시위에서 60여명을 연행했다고 보고하고 있다. 이 문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이 60명 주모자 중 9명을 기소하고 나머지는 훈방처리됐음을 알 수 있다. 경기도지 (1955)에 의하면 김포 3·1독립만세운동 과정에서 부상자 120명 체포자 200명으로 파악되고 있고 사망자는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가톨릭 성학대 비상회의 한 달 전… 교황 “세간 기대 과해”

    가톨릭 성학대 비상회의 한 달 전… 교황 “세간 기대 과해”

    가톨릭 성학대 대책 마련 주교회의가 채 한 달이 남지 않은 가운데,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번 회의에 대한 세간의 기대가 너무 크다며 부담감을 드러냈다. 세계청년대회 참석 차 파나마를 방문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은 28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로 돌아오는 전세기 안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는 2월 21일부터 나흘간 바티칸에서 열리는 주교회의를 언급했다. 그는 “준비 작업이 잘 진행되고 있다”면서도 “(아동 성)학대 문제는 인간의 문제로 모든 곳에 존재하기 때문에 계속 이어질 것이다. 과도한 기대를 낮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또 “회의의 목표 중 하나는 각국 주교들이 성 학대 문제를 어떻게 예방하고 희생자들을 어떤 방법으로 도울 것인지 명확한 원칙을 얻은 채 본국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해 미국을 비롯해 칠레, 호주, 아일랜드 등 세계 곳곳에서 가톨릭 사제들에 의한 아동 성학대 논란이 불거지면서 교회가 위기에 놓이자 각국 가톨릭 최고 의사 결정기구인 주교회의 의장이 참석하는 대책 회의를 열기로 했었다. 그는 최근 베네수엘라의 극심한 혼란상을 우려하기도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현재 자신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베네수엘라의 유혈 참상 가능성”이라면서 “공정하고 평화로운 해결책이 도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나는 베네수엘라 국민 전체를 지지한다”면서 “특정 나라에 ‘이걸 하라, 저걸 하라’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한쪽 편을 드는 것은 목회자로서 경솔하고 해를 미치는 행동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난 사상 최초의 중남미 출신 교황이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100개 단체 모여 “국제사회 종교·국가 망신…한기총 해체 촉구”

    100개 단체 모여 “국제사회 종교·국가 망신…한기총 해체 촉구”

    한기총해체촉구세계시민인권연대(사무총장 김신창)는 2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반국가·반사회·반종교·반평화 한기총 해체 촉구 기자회견 및 궐기대회’를 열었다. 오는 29일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 선거를 앞두고 열린 이날 행사에는 ㈔부패방지국민운동범기독교총연합회 오항열 연합회장, 한기총폐쇄실천목회자연대 신영문 목사, 세계불교정상회의 한국 대표 혜원스님, 초교파전도사협회 주현숙 전도사, 세계여성평화인권위원회 구현진 부위원장, 국제청년평화그룹 청년인권위원회 서민혁 운영위원, 신천지예수교회 국용호 장로, 권중광 인천 전 서구청장, 강제개종피해인권연대 박상익 공동대표 등이 참여했다. 행사에 모인 이들은 최근 10년간 한기총 소속 목회자 1만 2000여명이 성폭력, 사기 등 유죄판결을 받고, 국민을 가르고 국가를 혼란에 빠트리는 가짜뉴스의 온상이란 사실을 지적하며 “심각한 국가적 명예실추, 국제사회에서의 종교 망신을 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천부인권인 ‘종교의 자유’를 탄압하는 강제개종을 막을 ‘강제 개종 금지 및 처벌법’을 조속히 제정해달라”고 촉구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민주화항쟁 성지’ 향린교회, 역사 속으로

    명동성당과 함께 1987년 민주화항쟁을 대표하는 명소인 향린교회(서울 을지로2가 164-11) 건물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27일 개신교계와 향린교회 관계자 등에 따르면 향린교회는 최근 재개발 시행사에 현 건물을 매각하고 다른 곳에 교회 건물을 세워 옮기기로 확정했다. 지난 5월 교회 내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공동의회를 통해 교회 건물과 용지를 매각키로 한 결정에 따른 조치이다. 이에 따라 중구청에서 사업승인이 나면 본격적인 철거와 이주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향린교회는 민중신학자 안병무(1922-1996) 등 청년 12명을 중심으로 결성된 종교공동체가 1953년 5월 남산 기슭 고아원 터에 교회를 세운 게 시초다. 원래 특정 교파에 소속하지 않는 평신도 독립교회로 출발했다가 1959년 한국기독교장로회에 가입했다. 남대문시장이 있는 남창동으로 옮겼다가 1967년 지금 자리로 이전했다. 교회 종탑이나 십자가를 건물 바깥에 세우지 않는 것을 비롯해 예배실 천장을 낮추고 고딕창 등의 장식적 요소를 일절 쓰지 않는 교회로 유명하다. 특히 1987년 5월 종교계와 정치계, 학생운동조직 등 각계 인사들이 모여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국본)를 결성한 장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 국본은 민주화 세력을 결집시켜 그해 6월 항쟁을 주도적으로 이끈 조직이다. 향린교회는 조만간 신도와 목회자 등 교회 내부의 의견을 수렴해 4대문 안으로 이전 장소를 확정할 예정이다. 특히 민주화 운동 등 역사성을 고려해 교회 건물 일부를 살리면서 민주화운동 기념공원을 만드는 방법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사설] 이재록 목사 중형, 성범죄 불관용 인식 확산 계기돼야

    신도 8명을 4년여간 수십 차례나 성폭행·성추행한 혐의를 받는 만민중앙교회 이재록 목사가 1심 재판에서 징역 15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이 목사가 피해자들의 신앙심을 이용해 정신적으로 길들인 뒤 성적으로 착취했다고 판단했다. 최근 교회 내 성폭력 폭로가 잇따르는 가운데 법원이 종교계의 이른바 ‘그루밍 성범죄’를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교회 그루밍 성범죄란 목회자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여신도를 길들인 뒤 심리적 우위 상태에서 성폭력을 가하는 행위다. 이번 재판은 피해자들이 심리적·물리적으로 반항하기 어려운 ‘항거불능’ 상태였는지가 핵심이었다. 이 목사 측은 정상적 지적 능력의 성인 여성들을 항거불능 상태라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재판부는 피해자들이 절대적 권위에 복종하는 신앙생활을 했으므로 항거불능 상태였다고 인정했다. 신도 수가 13만 명에 이르는 대형 교회 담임목사가 인면수심의 만행을 수년 간 저질렀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충격이다. 더욱 충격인 것은 교단에서는 비슷한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폭로들이다. 신앙을 악용한 성적 착취가 암암리에 묵인되고 있다면 이런 야만이 또 없다. 올 들어 ‘미투 운동’을 거치면서 우리 사회는 성범죄 인식에 일대 변혁을 맞았다. 성범죄로 좌절하는 피해자에게 증거를 직접 제시하라는 식의 재판 태도는 넘기 힘든 2차 고통의 벽이었다. 지나친 증거주의 재판에 가해자가 명예훼손 운운하며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이는 사례는 흔했다. 피해자의 입장을 헤아리지 못하는 법원의 경직된 판단이 성범죄에 경고가 되지 못한다는 비판이 높았다. 그런 점에서 최근 법원의 판결들은 유의미한 변화로 읽힌다. 30대 부부가 성폭행 피해를 주장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에 대해 지난달 대법원은 가해자의 성폭행 혐의를 인정하는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피해자답지 않았다’며 성폭행 피해를 인정하지 않았던 1, 2심에 “성인지 감수성을 결여한 판결”이라고 반박한 것이다. 성폭력 피해자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보호하려는 법원의 노력은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져야 한다. 피해자에게는 지나치게 엄격하고 가해자에게는 관대한 이중잣대를 들이댄다는 인식은 법원이 스스로 불식시켜야 할 문제다. 이참에 13세 이상의 성범죄 피해자는 강제성이 입증돼야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는 현행법의 구멍도 손질돼야 할 것이다. 법의 보호 범위를 13세 이상으로 확대해 성범죄에 관한 한 가해자를 최대한 엄벌하려는 사회적 의지를 확인시켜야 한다.
  • [인터뷰 플러스] “백제, 우리 민족의 자부심과 긍지 돼야”

    [인터뷰 플러스] “백제, 우리 민족의 자부심과 긍지 돼야”

    문화, 문화재, 전문 인력양성, 인적 네트워크 그리고 백제사로 20년 넘게 한 길을 살아온 이 사회의 숨은 진주가 있다. 아무도 관심 없던 90년대부터 문화재를 유지·보존하고 관리·활용하는 공로를 인정받아 문화재 보호 유공자로 문화재청장과 국무총리 표창을 받은 한국문화재지킴이단체연합회 상임이사이자 (사)문화살림의 대표로 왕성하게 활동하는 오덕만 선생을 찾았다. 고구려와 신라의 역사에 비해 백제사의 사회적 인식이 낮은 것에 대한 국민적 지평을 넓히고 민족 문화재의 체계적인 관리와 활용을 천명(天命)으로 받아 천직을 수행하는 장인 오덕만 대표의 모습 속에 우리 사회에 반드시 존재해야 할 소중한 시대의 자산이고 기대되는 민족의 문화전도사란 생각이 든다. 편집자 주→‘문화’를 한마디로 정의를 한다면? 신자유주의적 문화관을 극복하는 방안은. -참 어려운 질문입니다. “문화는 공생(共生)과 공존(共存)의 길에서 선린(善隣) 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살림의 문화라는 것이죠. 이런 생각을 갖고 ‘문화살림’이란 이름으로 지난 20년간 ‘문화재 보존과 활용’에 대해 국민의 입장에서 활동해 왔다고 자부합니다. 그리고 신자유주의의 가장 큰 폐해는 극심한 양극화이고 ‘문화는 산업이다’라며 관점에서 문화의 상품화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어요. 문화가 고부가 상품을 만드는 중요한 수단으로 자본축적의 새로운 개간지가 되고 있는데, 이러다 보니 문화의 공유적·보편적 가치와 공공재로서의 의미가 소홀해질 수밖에 없어요.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은 문화복지 차원에서 지역문화, 공동체문화, 생활문화의 활성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왜 백제사와 백제문화인가요. -제가 송파에 들어와 산 지 40년이 되었어요. 1988년도에 송파구는 강동구에서 분구가 되었어요. 그래서 저는 가끔 송파를 말할 때 이주민이 만든 도시라고 이야기를 해요. 그런데 이곳에 우리 고대사의 한 국가였던 백제의 도읍이 있었던 거예요. 663년 백강전투에서 패한 왜와의 연합군 백제의 681년(B.C.18년~A.D.663) 역사 가운데 493년간의 왕도지가 송파였다는 게 놀라운 사실이 아닌가요? 몽촌토성, 풍납토성, 석촌동 고분 등 백제의 가장 찬란했던 시기의 유적들이 원형을 갖추고 보존되고 있는데 지금의 송파구민은 물론, 국민들이 백제를 모르고 살아요. 저도 90년대 중반에 송파에 정착하면서 백제에 대한 공부를 다시 하게 됐어요. 백제는 고구려, 신라보다 더 먼저 국가의 기틀을 확고히 다질 수 있는 경제력과 문화력을 꽃피웠고, 이를 기반으로 해상교역 등을 통해 동아시아 일대로 문화전파력을 갖출 수 있었어요. 백제문화는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다’는 말이 가장 잘 표현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참 멋지지 않나요? 이런 백제가 더 많이 부각이 되고 우리 민족의 자부심과 긍지가 되어야 합니다. →문화와 공동체로 지역에서 20년 넘게 활동하셨습니다. (사)문화살림을 직접 설립하셨나요. -80년대 중반에 상봉동에서 목회를 하면서 지역 운동을 했어요. 당시에 초교파적으로 젊은 목회자들이 한국민중교회운동연합에 소속되어 노동·농민·도시빈민교회를 할 때였어요. 당시 상봉동 지역은 삼표연탄공장의 분진으로 인해 지역주민들이 극심한 환경적 피해를 받고 있었고, 심지어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박길래 씨 같은 분들이 진폐 환자로 발생하는 등 큰 피해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어 당시 환경단체와 대학생들과 함께 공해문제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지역 운동에 앞장서기도 했어요. 90년대 초반에 다른 목회자께 교회를 맡기고 저는 부모님이 계시는 송파로 오게 되었죠. 아이들을 키우면서 대안 교육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고 당시에는 대안학교를 만들고 싶었죠. 그래서 시작한 일이 ‘현장체험 주말학교’였어요. 아이들에게 많은 경험을 할 기회를 만들어 주고 다양한 삶의 현장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우리 아이들만 데리고 다니다가 이웃의 학부모님들이 자기 아이들도 데리고 가달라고 부탁을 받다 보니 점차 규모가 제법 커지게 되었어요. 저 혼자 감당할 수 없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전문 체험학습지도사를 양성하고, 또 지역의 문화재를 자원봉사로 설명해 주는 문화재 해설사도 양성했어요. 그것이 지금의 문화살림이 세상에 나오게 된 동력이죠. →(사)문화살림에 대해 소개해 주시겠어요. -일반회원 수는 430여명, 카페회원 수는 1900여명, 80여명의 활동가가 있어요. 주요 활동은 문화재 보존 활동, 교육 활동, 문화재 활용 사업, 네트워크 사업으로 크게 4가지로 구분해요. 첫째로 문화재 보존 활동은 문화재지킴이활동으로 성균관지킴이, 창덕궁지킴이, 한양도성시민순성관, 한성백제유적지킴이, 위례청소년지킴이, 청년유네스코세계유산지킴이가 있어요. 둘째로 교육 활동은 송파지역문화유산교육, 파주시지역문화유산교육, 국외문화재서울시민아카데미, 문화재지킴이 기본교육과 심화교육이 있고요. 셋째로 문화재 활용 사업은 송파구의 석촌동 고분 및 풍납토성과 파주시의 반구정 황희선생유적지 문화재활용사업이 있어요. 네트워크 사업은 송파문화예술네트워크사업과 서울·경기권의 문화재지킴이단체들의 서경문화유산포럼, 전국의 문화재지킴이단체와 문화유산활용단체와 연대를 깊게 하고 있어요. →문화재지킴이 활동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지난 2005년에 문화재청이 예산과 인력 부족으로 인해 민간의 문화재지킴이 활동과 연계하여 전국의 문화재들을 관리·보호하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민관 협력사업입니다. 국민의 자원봉사활동으로 민족 문화재를 지키는 활동입니다. 전국에 약 8만명의 문화재지킴이들이 있고 상시 감시활동부터 모니터링, 환경정화 활동, 안내 및 교육 활동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문화재를 지키는 것을 넘어 지역공동체를 회복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남북교류협력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 준비하는 사업이 있나요. -민간 차원의 남북문화재 교류협력 활성화를 위한 활동을 목표로 지난 10월 1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남북문화재 협력네트워크 창립대회를 했습니다. 문화재는 민족 동질성 회복과 민족혼을 일깨우는 상징물이기에 교류협력을 넘어 민족통합과 통일에 기여하리라 봅니다. 우선 문화재 전시 등으로 남북문화교류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문화재지킴이’ 지도사 양성을 위한 민간자격증을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2016년 고용노동부 민간자격증으로 제가 상임이사로 일하고 있는 (사)한국문화재지킴이단체연합회가 자격증 부여단체로 등록되어 곧 추진하려 합니다. 문화재지킴이 활동을 위해서는 문화재에 대한 기본 지식과 활동요령은 물론, 문화재 관련 법령과 수리 등의 기본 관리에 전문성이 요구되기에 이를 지도하고 관리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을 필요로 합니다. 또한 국가 문화재를 비롯한 전국 지자체의 지방문화재 보존과 활용은 물론, 청소년들의 문화재 의식 제고를 위해 학교나 현장에서 지킴이를 교육하고 관리·운영해야 하는 전문가는 지금 당장 필요한 전문가입니다. →인생 철학에 대해 소개해 주시겠어요. -上善若水(상선약수)입니다. 도덕경에서 老子가 이르길, ‘물은 이 세상에서 으뜸가는 선의 표본’이라 했어요. 이는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듯이 몸을 낮추어 겸손하며 남에게 이로움을 주는 삶을 살고자 하는 저의 마음이지요. 또한 사회적 리더로서 항상 저의 능력이 부족함을 느끼고 살기에 “순리에 따라 오는 사물은 거부하지 않고, 이미 지나간 사물은 뒤쫓지 않으며, 몸이 좋은 시기를 만나지 못했다면 바라지 말고, 일이 이미 지나갔으면 생각하지 말라”는 명심보감의 글귀도 제 삶의 나침반 역할을 합니다. 김병식 객원기자 kbs@seoul.co.kr 1960 전북 김제 출생 학력 1979.2 동인천고등학교 졸업 1986.12 한성신학교(합동보수) 신학과 졸업 1987.12 총회신학원(개혁) 목회연구과 졸업 경력 1989.4 녹원생활협동조합 설립 이사장 1999.9 현 위례역사문화연구회 회장 2005.2 현 한국체험교육협회 회장 2007.5 문화재 보호 유공자로 문화재청장 표창 2011.11~2017.12 서경문화유산포럼 회장 2013.3 현 (사)문화살림 대표이사 2014.10 문화재 보호 유공자로 국무총리 표창 2015.11 현 (사)한국문화재지킴이단체연합회 상임이사 2017.3 현 한양도성문화제 추진위원장 2017.6 현 송파문화예술네트워크 회장 2017.9 현 (사)한국문화유산활용단체연합회 부회장 2018.4 현 문화재청 궁능활용심의위원 2018.10 현 송파구 관광정책자문위원 강사 경력 2005.9~2008.12 경기대학교 사회교육원 강사, 울산 현대한마음회관 체험학습지도사 강사 2009.6~2012.12 전국문화관광해설사(한국관광공사) 보수교육 강사 2009.8~2012.12 서울시 공무원 직무교육 한국사 강사(서울시인재개발원) 2010.3~2012.12 서울시민대학(서울시립대) 강사
  • [혐오 허무는 사람들] ‘혐오’ 이제 그만… 소통·관심 가지면 편가르기 사라진다

    [혐오 허무는 사람들] ‘혐오’ 이제 그만… 소통·관심 가지면 편가르기 사라진다

    우리 일상 속 깊숙이 파고든 혐오는 항상 이분법적인 대결구도를 만들어낸다. 여성과 남성, 성소수자와 기독교계, 노인과 젊은이는 서로 편을 가르고 ‘혐오’ 대결을 펼친다. 하지만 이런 낡은 구도에 균열을 내는 사람들도 있다. 성소수자 인권 활동을 하는 목회자,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남성, 노인 봉사에 나선 청년들을 통해 우리 스스로 만든 혐오를 허물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봤다.●“개신교도도 성소수자에게 관심을” 임보라 섬돌향린교회 목사는 성소수자 인권 지킴이다. 성소수자를 반대하는 대표적 집단인 개신교계에서 무지갯빛 옷을 입고 퀴어퍼레이드에 나섰다는 점에서 파격이 아닐 수 없다. 이단이라는 논란도 불거졌다. 하지만 임 목사는 “모든 개신교가 성소수자를 거절하진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성소수자 문제를 놓을 수 없다”고 말했다. 임 목사는 오히려 “개신교의 성소수자 혐오가 기독교적 가치에 어긋나는 행동”이라고 꼬집는다. 그는 “예수님도 당시 사회적으로 천대받는 사람들과 함께했고 그것이 바로 기독교적 가치”라면서 “모두를 사랑해야 할 기독교가 오히려 앞장서서 성소수자를 죄인으로 규정하고 그들의 평등한 삶을 막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임 목사는 성소수자 혐오 치유법으로 ‘진짜 관심’을 제시했다. 그는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성소수자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어떤 마음으로 교회에 나가는지 있는 그대로 이야기를 듣고 금기시하기보다는 대화의 장을 열면 변할 수 있다”고 말했다.●“여성에 대한 일상적 차별부터 해소해야” 최근 ‘여성 혐오’를 혐오하며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남성들이 늘고 있다. 지난해 9월 독서 토론으로 시작된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남함페)’은 20~30대 남성 8명과 여성 4명을 주축으로 1년간 페미니즘 공부 모임을 해왔다. 반(反)성폭력 스티커를 남자화장실에 붙이는 운동에 나설 준비도 하고 있다. 남함페 회원들은 “페미니즘을 접하면서 남성으로서 특권을 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운영진인 A씨는 “독서 모임에 참여하기 전에는 요즘 세상에 성차별이 어딨나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남성으로서 내 삶을 돌아보고 세상을 보는 시선도 넓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읽은 여자 아이돌 가수는 각종 위협을 받지만 남자는 그렇지 않은 현실”이라면서 “차별과 폭력을 겪는 여성의 경험을 혐오 표현으로 부정하고 왜곡해선 안 된다”고 꼬집었다. ‘남함페’ 운영진은 여성 혐오의 원인이 ‘익숙함’에 있다고 봤다. 우리 사회가 가부장적 위계질서를 당연한 것으로 인식해 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여성에 대한 성희롱과 성차별을 비판하고, 방관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여성 혐오를 지우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소통만 하면 사라질 노인 혐오” 국민대 노인 봉사동아리 ‘레오’와 연합동아리 ‘코코볼’ 소속 청년들은 노인 혐오가 ‘소통의 부재’에서 온다고 보고 소통 활동에 나섰다. ‘레오’ 회원들은 격주로 독거노인을 찾아 말동무를 하고 집안일을 돕는다. 이석중(21) 대표는 “일부 노인의 행동을 노인 전체의 모습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면서 “틀딱충 같은 혐오 표현은 장난으로라도 쓰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코볼’ 회원들은 노인복지관과 연계해 손주 역할을 자처한다. 박서연(23) 회장은 “고령화사회에서 노인들이 가장 많은 도움이 필요한 취약층”이라면서 “디지털 매체로 대화하는 게 익숙해진 청년들이 노인과 오프라인에서 소통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두 청년은 “소통이 없으니 노인에 대해 잘 모른다”면서 “노인 봉사를 직접 해 보면 노인들이 뭐든 배우려는 의지가 강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며 소통을 거듭 강조했다. 이씨는 “일부 노인의 행동을 전체의 모습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면서 “약자인 모습이 노출되는 게 두려워 사회로 나오길 꺼려하는 분들을 교류하도록 돕는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씨는 “노인들이 정보화 시대에 적응해 사회 구성원으로 제 몫을 하도록 정책적으로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목회자·교회 늘어나는데…교회 찾는 신도는 갈수록 줄어

    ‘개신교 신도는 줄어드는 반면 목회자·교회는 계속 증가세.’ 2일 개신교계에 따르면 지난 9월 정기총회에 보고된 각 교단 통계 분석 결과 대부분 교단에서 교인 수 감소현상이 심화되는 등 교세가 줄어든 것으로 확인됐다. 2017년 기준 대다수 교단에서 전년 회기 대비 교인이 줄어들었고 전년 회기 교인 수가 늘었던 교단들도 감소했다. 예장 통합총회는 교인 수가 전년도 273만 900명에서 1만 6586명(0.61%) 감소한 271만 4314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처음 예장통합을 앞질렀던 예장 합동총회도 줄었다. 276만 4428명에서 7만 5570명(2.7%)이나 감소했다. 특히 지난 회기 교인 수 증가세를 보였던 예장 고신총회는 2004년 이래 최저의 교인 수를 기록했다. 작년엔 47만 3500명이었지만 올해는 45만 2932명으로 2만 568명 감소했다. 한편 지난해 교세가 9%나 감소했던 한국기독교장로회는 전년 대비 2.14%인 5032명이 줄어 감소세가 주춤했다. 이에 비해 교회와 목회자는 증가했다. 예장 통합총회는 산하 교회가 8984개에서 9096명으로 1.25% 증가했다. 목회자도 530명이 늘어난 1만 9832명, 장로는 42명이 증가한 3만 1279명으로 조사됐다. 예장 합동총회의 경우 교회는 0.1% 줄어 1만 1922개를 기록했으며, 목회자는 1.2% 증가한 2만 3726명이었다. 기장총회는 전년 회기 대비 교회 7개, 목회자 38명이 늘었지만 입교인은 897명 줄었다. 예장 합신총회는 교회 수 958개로 전년보다 10곳이 늘었지만, 교인은 14만 6898명으로 전년보다 4800여명 줄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교회가 성범죄 목사 감싸고 목회 방관”... 끝나지 않은 교회 미투

    “교회가 성범죄 목사 감싸고 목회 방관”... 끝나지 않은 교회 미투

    “기장 박 목사 성폭력 유죄에도 2차 가해 계속”피해자, 교단의 조직적 ‘목사 감싸기’ 비판“기하성 성폭력 면직 목사도 아직 지방서 목회”시민단체, 교회 운영 중단 등 적극적 대응 촉구‘미투(#MeToo·나도 피해자다)’ 운동 이후 교회 내 성폭력 고발도 계속되는 가운데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미흡하다는 비판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피해자와 시민단체들은 “교회가 가해자인 목회자들을 감싸거나 징계 이후에도 목회를 지속하게 방관해 2차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면서 교회의 적극적 대응을 촉구했다. 기독교계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단체인 피해자지원네트워크는 6일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소속 박모 목사의 성폭력 사건에 대한 교단의 대처가 피해자에게 극심한 2차 피해를 일으켰다”면서 교단에 추가 피해 조사와 박 목사 면직을 요구했다. 박 목사는 지난해 조카 A씨를 성폭행하려던 혐의로 지난달 22일 서울중앙지법으로부터 징역 3년을 선고 받았다. 그러나 피해자 측은 “교단 내 목사, 장로 등 관계자들이 재판 과정에서 박 목사에 대한 선처를 호소하고 A씨에 대한 허위 소문을 퍼뜨려 극심한 2차 피해를 입었다”고 폭로했다. A씨는 이날 입장문을 통해 “교회는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오히려 나를 가해자로 몰아붙였다”면서 “박 목사의 죄가 세상에 드러났지만 여전히 난 지옥 같은 삶을 산다”고 고통을 호소했다. 해당 목사는 구속 직전까지 목회활동을 지속한 것으로 전해졌다. 채수지 기독교여성상담소장은 “박 목사는 피해자를 무고죄로 역고소 하며 지속적으로 압박했다”면서 “피해자 편에 서야 할 노회도 가해자 선처를 호소하는 등 사실상 공모자였다”고 비판했다. 교회의 대응이 미흡하다는 지적은 순복음교회 계열의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기하성)에서도 제기됐다. 기하성 소속의 박모 목사는 20년 전 조카에 대한 성폭행 미수가 밝혀지며 지난달 31일 면직 조치됐다. 그러나 박 목사가 아직도 전북 익산에서 목회를 이어간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피해자지원네트워크 김성환 목사는 “목사 자격이 박탈된 박 목사가 개척기금을 반납하지 않고 목회를 이어가고 있다”면서 “기하성 총회가 개척 지원금을 3개월 안에 회수하겠다고 하지만 이는 성범죄자가 3개월간 목회를 계속하도록 방관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 목사는 지난해 3월 교단으로부터 2억원의 개척기금을 받아 익산에 개척 교회를 설립했다. 지난달 29일에는 한국여성의전화 등 여성단체가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순복음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박 목사의 사과와 재발방지 노력을 촉구하기도 했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시민들 ‘명성교회 부자세습’ 반대 촛불 켭니다

    명성교회 부자 세습 논란이 확산되는 가운데 시민들이 저지에 나서 주목된다.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는 6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중구 서울파이낸스센터 앞 인도에서 명성교회 세습 반대 촛불문화제를 연다. 기독법률가회, 좋은교사운동, 청어람ARMC, 촛불교회가 함께 마련한 문화제에서 참가자들은 세습 철회를 강력히 촉구할 방침이다. 그동안 명성교회 세습을 둘러싸고 교회와 교단 안에서 반대 목소리가 이어졌지만 시민단체들이 연대해 실력행사에 나서기는 처음이다. 명성교회 설립자인 김삼환 원로목사는 2015년 12월 정년퇴임했고, 김하나 목사는 이에 앞서 2014년 경기 하남에 새노래명성교회를 세워 독립했다. ‘교회 세습은 없다’던 명성교회는 지난해 3월 김하나 목사를 위임목사로 청빙하는 승계작업을 추진해 빈축을 샀다. 지난달 7일에는 명성교회가 소속된 예장통합 재판국이 무기명 비밀투표를 통해 김하나 목사 청빙 유효판결을 내려 논란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시민사회단체들이 연대행동에 나서는 것은 오는 10∼13일 예장통합 총회에서 사실상 교회 세습을 매듭짓는 절차를 남겨 두고 있기 때문이다. 전북 익산 이리신광교회에서 열리는 총회에서는 지역교회 모임인 노회에서 선출한 목사와 장로 대의원 1500명이 마지막 의제로 명성교회 세습 관련을 다룰 것으로 알려졌다. 예장통합 헌법에 따르면 해당 교회에서 사임(사직) 또는 은퇴하는 위임(담임)목사의 배우자, 직계비속과 그 직계비속의 배우자는 위임목사나 담임목사로 청빙할 수 없다. 명성교회 목회자와 신도·장로들은 김삼환 목사가 이미 은퇴한 상태인 만큼 교단 헌법에 적시된 ‘은퇴하는’이란 구절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교회 측 입장을 놓고 갈린 채 맞서고 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법원, ‘조카 성폭행 미수 목사’ 징역 3년 선고

    법원, ‘조카 성폭행 미수 목사’ 징역 3년 선고

    자신의 조카를 성폭행하려다 미수에 그친 목사에게 징역 3년이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1부는 22일 박모 목사에게 징역 3년과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40시간 이수를 명령했다. 서울의 한 교회 담임목사인 박 씨는 지난해 봄 혼자 사는 조카 집에 찾아가 성폭행을 시도한 혐의를 받고 있다. 조카는 박 씨가 개척한 교회 신자이기도 했다. 박 씨는 현재 혐의를 부인하고 있으며, 교단 측에는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1심 판결에 대해 박 목사 교회 소속 교단인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는 “충격과 부끄러움을 금할 길 없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기장 총회는 “이번 사건에 대해 철저한 진상규명에 힘쓰고 교단 헌법에서 정한 절차에 따라 엄중히 책임을 물을 것”이라며 “깊은 상처를 입은 피해자가 또 다른 피해를 입지 않도록 살피겠다”고 밝혔다. 앞서 서울의 대형 교회인 온누리교회는 성문제를 일으킨 목사를 지난달 해임했다. 온누리교회는 홈페이지 올린 사과문을 통해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법에 따라 불륜을 범한 정 모 목사를 해임했다며, 정 씨가 소속된 미국 교단에 이 사실을 전달해 엄중한 징벌을 받도록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 씨는 신도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것으로 알려져 해임됐다. 그러나 해당 신도는 “불륜이 아니라 전형적인 목회자의 성폭력”이라며 “교회 측에서는 피해자 조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불륜이라고 단정해 서둘러 수습했다”고 주장했다. 이 신도는 교회 성폭력 관련 단체와 함께 대응에 나설 예정이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단국대, 소강석 목사에 명예박사 수여

    단국대, 소강석 목사에 명예박사 수여

    단국대(총장 장호성)가 22일 시인 소강석 목사에게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수여한다. 목회자의 모범적 신앙생활과 평화를 사랑하는 시인으로서의 업적이 단국대 교시 ‘진리·봉사’에 부합해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수여키로 했다. 소 목사는 국가와 사회에 대한 봉사 공로로 2007년 마틴 루서 킹 국제평화상, 2011년 국민훈장 동백장 등을 수상했다.
  • “목회자의 죄악” 온누리교회, 여신도와 불륜 부목사 해임

    “목회자의 죄악” 온누리교회, 여신도와 불륜 부목사 해임

    온누리교회가 여성 교인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정모 목사를 해임했다. 이재훈 담임목사는 16일 온누리교회 인터넷 홈페이지에 ‘성도님들께 사과드립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당회운영위원회는 지난 7월 13일 긴급회의를 열어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법에 따라 불륜을 범한 정모 목사를 해임했다”고 밝혔다. 이어 “간음을 금하신 하나님의 말씀과 교회법 권징에 따라 해임 징벌하고 이를 공개하기로 결정했다”며 “아울러 정 목사가 소속된 미국 교단에 관련 사실을 전달해 소속 교단의 엄중한 징벌과 합당한 치리를 받도록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목사는 “목회자의 죄악으로 성도들에게 큰 실망과 상처를 끼쳐드려 모든 목회자를 대표해서 머리 숙여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온누리교회 모든 목회자들은 뼈를 깎는 통회의 심정으로 하나님과 교회 앞에서 거룩을 추구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뉴스앤조이에 따르면 정모 목사는 미국 교단 소속으로 2009년 온누리교회에 부임했다. 2017년부터 여신도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것이 들통나면서 지난 8일부터 강단에 오르지 않았다. 온누리교회 목사들은 앞으로 20일간 오전 9시부터 11시까지 교회에 모여 금식기도의 시간을 보낼 예정이다. 다음은 교회가 발표한 사과문 전문. 당회운영위원회는 지난 7월 13일 긴급회의를 열어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법에 따라 불륜을 범한 A 목사를 해임하였습니다. 간음을 금하신 하나님의 말씀과 교회법 권징에 따라 해임 징벌하고 이를 공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아울러 A 목사가 소속된 미국 교단에 이 사실을 전달하여 소속 교단의 엄중한 징벌과 합당한 치리를 받도록 할 예정입니다. 목회자의 죄악으로 성도들에게 큰 실망과 상처를 끼쳐드려 모든 목회자를 대표해서 머리 숙여 진심으로 사과 드립니다. 온누리교회 모든 목회자들은 뼈를 깎는 통회의 심정으로 하나님과 교회 앞에서 거룩을 추구하도록 하겠습니다. 온누리교회 담임목사 이재훈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교인들에겐 청천벽력… 고통 딛고 향기 나는 이웃으로 거듭날 것”

    “교인들에겐 청천벽력… 고통 딛고 향기 나는 이웃으로 거듭날 것”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참사에 충격이 컸어요. 하지만 이웃의 고통을 보지 못하는 관성적 신앙생활을 버리고 ‘향기 나는 이웃’으로 거듭나자는 교훈으로 받아들입니다.” 지난 8일 강남향린교회 천막 주일예배에서 만난 김석권(49·경기 오산)씨. 8년 전부터 이 교회의 예배며 모든 행사에 빠짐없이 참여해오던 중 벌어진 ‘교회 침탈’에 분노를 느끼지만 낮은 곳에서 고통받는 이들을 더욱 섬기자는 성숙한 신앙을 다지게 됐다고 밝혔다.김씨는 경기 오산의 대형 보수 교회를 다니다가 교회와 목회자들의 행태에 염증을 느낀 뒤 강남향린교회로 옮겨 신앙생활을 이어온 인물. “성경에 충실하자는 기독교 보수 신앙은 존중받아 마땅합니다. 하지만 보수 기독교 교회가 기득권과 결탁해 정치세력화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크게 실망했습니다.” 보수적 신앙과 정치적 진보의 입장이 충분히 양립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점차 허물어져 가는 기대를 견딜 수 없었다. 새로운 신앙처를 물색하던 중 향린교회를 알게 됐고 만족한 신행을 이어 갈 수 있었다고 한다. “향린교회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평등하게 민주적으로 참여하는 작은 교회입니다.” 개인 구원에 머물지 않고 낮은 곳에서 고통받는 이들을 먼저 보듬자는 열린 교회. 그곳에서 다른 신도들과 호흡하고 행동하면서 늘 행복하다는 김씨다. 하지만 이번 교회 침탈에 분노를 느끼는 신도들을 보면서 슬픔을 느낀다고 전했다. “교회도 역시 사람들이 모인 집단인 만큼 구성원들 간 의견 차가 있을 수 있어요.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신도들의 입장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부활절 이틀 전 가장 경건한 마음으로 예배를 준비하던 교인들에겐 공통의 청천벽력이 아닐 수 없다고 강조한다. 많은 신도들이 종교 침해에 대한 분노와 충격을 느끼는 와중에 높아져 가는 목소리가 반갑다고 한다. “너무 교회 안에서만 충실하게 살았던 게 아닌지 반성합니다. 교회가 순탄하게 새 터전으로 이전했다면 우리와 비슷하게 고통받는 이웃들을 볼 수 없었을 것이라는 의견들이 많아요.” 그래서 향린 신도뿐만 아니라 이 지역에서 재개발로 인해 여전히 고통받는 모든 이들과 끝까지 어깨동무하며 아픔을 보듬겠다고 다짐한다. 글 사진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향린교회는…

    향린교회는 6·25전쟁 중인 1953년 5월 17일 안병무·홍창의 등 12명의 젊은 신앙인이 서울 중구 남산 기슭에서 시작한 신앙공동체를 모태로 한다. 평신도였던 이들은 새로운 신앙공동체 건설에 뜻을 모아 교회를 창립했다. 6·25전쟁 체험과 그 고난 가운데서 무능했던 체험을 바탕으로 기성교회를 갱신하려는 열정으로 똘똘 뭉쳐 붙인 공동체 이름이 ‘향기 나는 이웃’이라는 향린이다. 그 공동체의 지향은 네 가지의 창립정신에 응축돼 있다. 생활공동체와 입체적 선교공동체, 평신도교회, 독립교회의 정신은 향린공동체를 결속시키고 함께 움직이게 하는 기준으로 살아있다. 향린교회의 가장 큰 특징은 목회자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교회가 아니라 모든 교인이 목회자처럼 주체적으로 선교에 참여하는 ‘평신도교회’라는 점이다. 하지만 창립 때부터 이웃을 섬기고 교파에 휩쓸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향린교회도 숱한 위기를 겪었다고 한다. 세상의 변화와 교세 성장이란 벽을 넘지 못했던 것이다. 독립교회로 있은 지 6년 만인 1959년 3월 한국기독교장로회에 가입했고 1974년 10월 김호식 목사를 담임으로 청빙, 창립 21년 만에 목회자를 모시는 교회로 바뀌었다. 처음 지향과는 달리 대형교회로 치닫는 한편 대사회적 활동을 놓고 갈라진 분열과 갈등은 교회 안팎의 거센 지탄을 받았다. 그러던 중 ‘초기의 향린교회로 돌아가자’는 교인들의 뜻을 모아 1993년 5월 서울 강남 송파지역에서 분가한 게 강남향린교회이다. 향린교회 창립 40주년 만에 새로 일군 신앙공동체. 향린교회 측은 그 사건을 놓고 창립자들의 분가선교론을 40년 만에 실천한 쾌거로 여긴다. 그 강남향린교회는 모범적인 한국교회의 갱신 사례로 거듭 꼽힌다. ‘성인교인 500명이 넘으면 다른 교회로 내보낸다’(1993년 향린교회 신앙고백 선언)는 선언에 따라 강남향린교회가 분가선교의 길을 결단하면서 또 한 차례 분가가 이뤄졌다. 강남향린교회에서 파송한 교인들을 중심으로 2004년 11월 서울 강동구 천호동에서 창립한 들꽃향린교회. 이후 향린교회 60주년이 되던 2013년 1월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서 섬돌향린교회가 탄생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경제적 부담 잊고 마음껏 연주…체계적 교육까지 받아 좋아요”

    “경제적 부담 잊고 마음껏 연주…체계적 교육까지 받아 좋아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야만 악기를 배울 수 있다는 고정관념을 버리지 못했다면 저 역시 바이올린을 시작할 엄두를 못 냈을 거예요. 출발이 한참 늦은 제가 예원중을 준비한다고 했을 때 다들 안 될 거라며 고개를 저었죠.”●건국대와 함께 2008년부터 진행 올해 관현악과 18학번으로 연세대에 입학한 이아영(19·가명)양은 지난 21일 “바이올린을 전공한 다른 친구들에 비해 늦게 시작한 만큼 ‘내겐 이 길밖에 없다’는 생각뿐이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양이 전공으로 바이올린을 켜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다. 이전까지는 정식으로 배워 본 적이 없다. 목회자 가정에서 자란 이양은 “서울시 음악영재 장학생으로 뽑혀 제대로 된 음악 기초 공부를 한 뒤 바이올린을 전공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2008년부터 건국대 음악영재교육원과 함께 음악적 재능은 뛰어나지만 경제적 여건 등으로 체계적인 교육을 받기 어려운 음악영재를 발굴해 지원한다. 이양의 어머니는 신문 광고를 보고 이 장학사업을 처음 접하고 딸에게 권유했다고 한다.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던 이양은 “1년 동안 다양한 음악 수업을 들은 뒤 5학년이 되면서 주 1회 전공 레슨을 받는 일반영재 과정을 듣게 됐다”면서 “남들은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준비하는 예원학교에 붙은 것은 기적적인 일”이라고 했다. 목회자인 아버지의 뜻에 따라 예원학교에 지원했는데, 덜컥 합격한 것이다. 주위에서 다들 불가능하다고 예상했던 일이었다. 이양을 지도했던 윤성원(바이올리니스트) 건국대 교수조차 준비 기간이 비교적 짧아 선화예중에 지원하도록 권했던 터였다. ●6년 간 전공 레슨·매주 음악 수업 그는 자신이 음악에 푹 빠지고, 또 걱정 없이 마음껏 음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전부 음악영재 장학생으로 뽑힌 덕분이라고 공을 돌렸다. 6년 동안 전공 레슨은 물론 매주 토요일 음악 관련 수업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1 때까지 학교에서 주 1회, 건대에서 주 1회 받는 수업으로 버텼습니다. 악기 연주는 재정적으로 어려우면 시작조차 하기 힘든데, 저는 운이 좋게 음악영재 장학생이 돼서 이 길을 걷게 됐어요. 단순히 경제적 부담을 줄여 주는 것을 넘어 체계적인 음악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었습니다. 음악에 대한 이해를 차근차근 할 수 있게 됐거든요.”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가수 자두 남편 “아내가 내게 독을 먹였다...응급실行”

    가수 자두 남편 “아내가 내게 독을 먹였다...응급실行”

    ‘동치미’ 가수 자두가 남편에게 독이 든 음식을 먹인 사연을 공개했다.28일 방송되는 MBN ‘속풀이쇼 동치미’(이하 ‘동치미’)에는 가수 자두(37‧김덕은)가 출연, 남편과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털어놓는다. 이날 자두는 “남편이 결혼 후 살이 쪄서 건강식을 준비한 적이 있다”며 입을 열었다. 그는 “내가 시즌한정에 굉장히 약한데, 마트에 가니 봄에만 먹을 수 있는 제철나물 원추리가 있더라. 그때만 해도 원추리가 우리 부부에게 독이 될 줄은 몰랐다”라고 털어놨다. 자두는 “원추리를 살짝 데쳐먹으면 맛있다고 해서 남편과 함께 먹었다. 너무 맛있었다. ‘여보, 나 원추리를 인생나물로 결정했어. 매 끼니마다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라고 남편에게 말할 정도였다”라고 밝혔다. 이어 “먹고 나니까 점점 몸이 무거워지면서 손끝이 저리더라. 그제서야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원추리는 독성분이 있어서 끓는 물에 데친 후 찬물에 1~2시간 이상 담갔다가 조리하라고 쓰여 있었다”고 설명했다. 자두는 “게다가 1회 정량은 40g인데, 난 이미 500g 정도를 먹은 후였다”며 “4시간 동안 구토를 했다. 같이 먹은 남편도 계속 화장실을 드나들었고 결국 친정아버지가 와서야 응급실에 갈 수 있었다”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잘못된 섭취 방법으로 큰일을 치를 뻔한 자두는 “그 후로 목회자인 남편이 설교할 때마다 ‘아내가 나에게 독을 먹였다’라고 얘기하고 다닌다”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그는 “앞으로 우리 집에는 모르는 나물, 버섯류는 절대 반입 금지다. 오늘 웃으면서 애기했지만 그땐 정말 죽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한편 자두가 출연하는 ‘동치미’는 이날(28일) 오후 11시 방송된다. 사진=MBN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사랑의 교회’ 오정현 목사 자격 없어… 대법 “편입학 과정에 하자” 파기 환송

    ‘사랑의 교회’ 오정현 목사 자격 없어… 대법 “편입학 과정에 하자” 파기 환송

    서울 서초구에 있는 대형 교회인 ‘사랑의 교회’ 담임목사 오정현(62) 목사가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예장합동) 교단이 정한 목사 요건을 충분히 갖췄는지에 대해 다시 심리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대법원 1부(주심 김신)는 김모씨 등 이 교회 신도 9명이 “오 목사에게 사랑의 교회 담임목사를 맡긴 결정을 취소해 달라”며 예장합동 동서울노회와 오 목사를 상대로 낸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원고 승소 취지로 서울고법에 돌려 보냈다고 16일 밝혔다. 파기환송심 결과에 따라 오 목사가 사랑의 교회 목사를 못 맡게 될 수도 있다. 이번 소송은 미국 장로교 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오 목사가 국내 예장합동 교단 목사 자격을 제대로 갖췄는지가 쟁점이었다. 오 목사는 1986년 미국 장로교 교단 한인서남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뒤 2002년 총신대 신학대학원 연구과정 3학년에 편입해 졸업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동서울노회는 2003년 강도사(일종의 목회자 면허) 고시에 합격한 오 목사에게 인허를 내준 뒤 그를 사랑의 교회 목사로 위임했다. 이에 김씨 등은 오 목사가 교단의 규정을 어겨 무효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교단 헌법은 목사의 자격 요건으로 ‘총신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후 총회에서 시행하는 강도사고시에 합격해 1년 이상 교역에 종사한 후 노회고시에 합격해 목사 안수를 받은 자’로 한정하고 있다. 또 한국 외 지역의 목사가 교단 목사로 교역하려면 신학교에서 2년 이상 수업한 후 총회 강도사고시에 합격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앞서 1, 2심은 오 목사를 목사로 위임한 노회의 결의가 부당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오 목사의 학적부를 보면 미국 장로교 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경력이 기재돼 있지 않다”면서 “이 경력 기재 없이 편입했다면 오 목사는 목사가 아니라 목사 후보생 자격으로 편입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오 목사는 2003년 8월 사랑의 교회 초대 담임목사인 고 옥한흠 목사에 이어 담임목사로 부임했다. 2013년 논문 표절 의혹이 제기되는 등 일부 신도를 중심으로 오 목사에게 담임목사 자격이 없다는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한편 사랑의교회 측은 ‘성도님들께 알려드립니다’라는 입장문에서 “이번 판결은 예장합동 총회의 성직 취득 제도와 헌법, 총회신학원의 다양한 교육 과정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기인한 것”이라며 “서울고법의 심리 과정에서 이 점을 한층 더 소상히 입증하겠다”고 밝혔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고소영’ ‘사미자’… 특권층 안식처 한국 교회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고소영’ ‘사미자’… 특권층 안식처 한국 교회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권력과 교회/김진호 지음/강남순·박노자·한홍구·김응교 대담/창비/247쪽/1만 6000원지난해 11월 교인 8만명의 초대형 교회 명성교회가 ‘세습 논란’에 휩싸였다. 40년간 지도력을 행사해 온 원로목사가 아들에게 담임목사직을 넘겨준 것.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해에 불거진 대형 교회의 세습 행태는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이를 두고 개신교 내의 한 인사는 “이번 사건으로 가장 피해를 받는 존재는 바로 하나님과 한국교회”라며 “목회자로서 깊이 사과한다”는 뼈아픈 성찰의 목소리를 냈다. 이 사건은 오늘날 한국 교회가 ‘적폐의 성역’임을 보여 주는 한 사례다. ‘개독’이라는 네티즌들의 비아냥에서도 알 수 있듯, 오늘날 교회는 “한국사회가 지닌 지독한 문제들이 집약된, 한국사회의 축소판”(강남순)이라는 비판의 한가운데 있다. 사회 각계에서 민주화가 이뤄졌으나 대형 교회는 아직도 목회자 세습 등 전근대적 시스템이 굳건히 자리해 있다. 사랑과 포용을 이야기해야 할 교회에서 여성·성소수자·무슬림 등 소수자들을 향한 목사의 혐오 발언도 횡행한다. 이명박 정권 시기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박근혜 정권 시기 ‘사미자’(사랑의교회·미래를경영하는연구모임)라는 말이 있듯 특권층의 배타적인 안식처로 자리잡기도 했다. 결혼과 취업을 위한 인맥공장으로 기능하면서 말이다. 책은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강남순 미국 텍사스 크리스천대 브라이트 신학대학원 교수,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 교수,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김응교 숙명여대 교수의 대담으로 엮였다. 대담을 진행한 저자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은 “개신교 출신 파워엘리트 혹은 개신교라는 종교 자체는 사회에 좋은 존재인가”라고 반문하며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긍정적 평가보다는 부정적 평가에 한 표를 던질 것이며 책이 기획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밝혔다. 대담자들은 한국사회의 적폐를 고스란히 답습하는 한국 교회의 문제들을 비판하며 개신교가 개혁과 쇄신을 통해 우리 사회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영성을 발휘할 수 있을지 타진한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종교계 ‘위드유’ 선언, 의혹 목회자들 사임·사과 이어져

    종교계 ‘위드유’ 선언, 의혹 목회자들 사임·사과 이어져

    종교계 내에서 미투 운동을 지지하는 ‘위드유’ 선언이 잇따르고 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인권센터는 13일 미투 운동 피해자들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하면서 “미투 운동을 정치화해 본질을 흐리고 피해자들을 기만하는 행태는 중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교회 내 성 문제에 폐쇄적이었고 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정의롭게 다루지 못했다”고 고백하면서 미투 운동 피해자들을 보호하고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는 정책 마련을 촉구했다. 불교계 시민단체들도 이날 조계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피해자의 회복을 위해 지원하고 성차별적 문화와 성폭력을 가능케 했던 구조에 대해 반성하고 개선하겠다”며 미투 운동을 지지 의사를 밝혔다. 미투 폭로를 통해 의혹이 제기된 목회자들이 사임하거나 사과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개신교계는 수원의 한 대형교회 당회장인 이모 목사가 한 여성 신도에 의해 성추행 의혹이 폭로된 뒤 소속 교단에 당회장직 사임서를 제출했다고 전했으며 교단 측은 이 목사의 사의를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투 폭로로 성추행 정황이 드러난 부산의 한 목사도 지난달 31일 본인 SNS에 “2016년 재개발 지구 철거민 투쟁 현장에서 있었던 성추행 사건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 드린다”면서 피해자에게 사죄했다. 한편, 불교계에서는 여직원 성추행 혐의로 징역 6개월을 선고받은 선학원 이사장 스님의 사퇴를 촉구하는 성명도 나온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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