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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대중시대­성장기와 정치철학(하의도에서 북악까지:하)

    ◎고난의 한평생 용서·화합으로 일관/목포상고 수석입학후 정치에 남다른 관심/엄한 어머니에 바르게 사는 삶의 좌표 배워/73년 납치사건 직후 “이후락씨 용서했다” 15대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19일 아침. 기자회견을 위해 국회로 떠나기에 앞서 일산자택의 계단에 잠시 멈춰선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의 눈에는 물기가 어렸다. 한국현대사를 관통하며,고난으로 점철된 40년 정치 역정을 포함한 지나간 생애가 주마등 처럼 스쳐가는 순간이었다. 젊은 시절의 정열을 보상받아야 할 시기에 젊은 시절보다 더 큰 역경에 부딪쳐야 했고,능력을 발휘해야할 때 비방과 모략에 대한 해명에 시간을 보내야 했다.그럼에도 ‘잘 못 알려진 것도 내 책임’이라면서 자신에게 씌워진 굴레와 처절하게 싸워 온 인고의 세월이 마침내 보상받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의 삶은 철저하게 용서하는 삶이기도 하다.지난 73년 ‘김대중 납치사건’이 일어난뒤 그는 이 사건의 책임자로 지목됐던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에 대해서 “이미 용서했다”며 화합을 역설했다.지난 92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소를 처음 찾았을 때는 ‘이제는 과거를 묻고 그분의 공적만을 생각하겠다’고 약속했다. 80년 ‘서울의 봄’때 사형선고를 받은뒤 그는‘나는 이제 죽지만,이 땅에서 정치보복의 희생자는 나로써 끝나기를 바란다’고 마지막 진술을 했다.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듯 사형선고를 내린 주역인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에 대해서도 ‘죄는 묻되 사람은 용서해야 한다’고 당선되자마자 사면을 추진했다. 혹자는 그의 관용을 두고 ‘유권자를 의식한 것’이라고 평가 절하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삶의 일관된 화두는 ‘국민’이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적어도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국민’이지 ‘절대권력과의 대결’이 아니었기에 보통사람에게는 어려워 보이는 가해자에 대한 관용이 더 쉬웠을 것 만은 분명하다. 그는 종종 감옥에 갖혔던 시절을 회상하며 ‘토인비나 러셀,종교서적을 읽다가 ‘감옥에 안왔으면 이런 진리를 모르고 죽을텐데’라고 느낀 적이 많았다’고 말한다. 이같은 술회가 대정치인의 풍모를 보여주기위한 스케일 큰 농담이라기 보다는 그의 진심이 진하게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그는 ‘역사속에서 어떻게 평가받을지가 가장 두렵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역사’ 또한 ‘국민’의 미래형임에 분명하다. 그는 정치가 국민들로 부터 백안시당할 때도 존경받는 정치인이 되고자하는 목표를 버린 적이 없다. 나아가 ‘위인정치’를 흠모했는지도 모른다. 그가 ‘선생님’이라는 최고의 존칭으로 불리우고 싶어하는 것도 이같은 분위기의 반영일 것이다. 정치 뿐 아니라 인생 그 자체에도 이같은 자세는 유지된다. 그에게 있어 자신과 관련된 문제에 관한 한 ‘평범’이란 아마 ‘참을 수 없는 정도’의 동의어인 것 같다. 그의 일생은 이처럼 ‘참을 수 없는 정도’를 넘어서려는 노력으로 일관되고 있다. 역설적으로 그의 성장환경이 그만큼 평범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는 목포에서 뱃길로 두시간 남짓 떨어진 한반도 서남단의 작은섬 하의도에서 태어났다. 그를 낳은 마을 후광리를 두고 풍수장이들은‘물가로 나오는 달팽이의 더듬이’에 해당한다고 풀이하기도 한다. 고향마을 이름은 훗날 그의 아호가 된다. 그의 아버지(김운식)는 정치에 관심이 많은 부농이었다. 이장이었던 아버지 덕에 그는 신문을 일찍부터 접할 수 있었고,여덟살 무렵에는 벌써 1면의 정치기사에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또 육자배기나 쑥대머리가 장기인 한량이기도 했다. 이처럼 그의 정치적 자질과 예능인에 대한 애정은 아버지로 부터 비롯됐다. 그의 어머니(장수금)는 아버지의 두번째 부인이었다. 어머니는 아들 셋과딸 하나를 낳았지만 어린시절부터 보기 드물게 총명했던 그에게 자신의 인생을 걸었던 것 같다. 그런 탓에 어머니는 누구보다는 엄하게 자식들을 키웠고,특히 그에게는 더했다. 그는 지금도 어머니를 설명할 때 마다 여섯살 무렵 술취한 방물장수의 담뱃대를 아버지께 드린다며 들고왔다고 회초리로 장단지에 핏물이 배도록 맞았던 일화를 들려준다. 어머니는 또 친지가 그의 총기를 높이 사 일본에서 공부를 시키고 싶다고 했을 때 허락치 않았다. 유일한 희망을 멀리 떠나보낼 수 없었던 탓일 것이다. 대신 어머니는 ‘네가 원하기만 한다면 목포에 나가 끝까지 공부를 시켜주겠다’고 약속했다. 그 약속은 보통학교 4학년 때 현실화됐다. 어머니는 하의도의 집과 농토를 모두 처분하고 목포로 나가 여관을 운영하며 학창시절 그를 뒷바라지했다. 그는 목포 제일보통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5년제 목포상업학교에도 수석으로 들어갔다. 상업학교를 택한 것은 실업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입학한 뒤에는 점차 정치쪽에 관심이 쏠렸다. 학교에서 한달에 한번씩 열리는 시국강연회에 특히 흥미를 느꼈다. 한반도와 일본,세계정세를 듣는 일이 신났다. 시국강연회가 열리면 이따금 날카로운 질문을 해서 교관을 난처하게 만들기도 했다. 선생님들은 ‘너는 사리가 분명해 남을 설득시키는 능력이 있다’고 격려해 주었다. ‘언어구사 능력이 정확명료하다’고 학적부에 기록된 것도 이 무렵이다. 이 일련의 일은 그로 하여금 정치가의 길로 나가겠다는 꿈을 더욱 부풀게 만들었다. 그는 3학년이 되자 일본으로 건너가 대학에 가겠다는 뜻을 세우고 취업반에서 진학반으로 옮긴다. 그러나 일본은 태평양전쟁에서 점차 궁지에 몰리고 있었고,여행허가를 받는 일도 어려웠다. 그는 1944년 봄에 졸업할 예정이었지만 전시특별조치에 따라 한해전인 43년 가을에 졸업했다. 그에게 정규교육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는 지금도 대학을 가지 못한 것을 한스러워한다. 그래서 자신의 저서인 ‘대중참여경제론’이 미국의 하버드대학에서 출간된 것을 더욱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가 이희호 여사와 결혼한 것도 아마도 ‘인간 이희호’에 대한 도전이자,이화여전과 서울사대를 나와 미국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는 학력에 대한 도전이 성공을 거둔 것인지도 모른다.
  • 꺼질듯 다시 타올랐던 ‘민주화 불꽃’(하의도에서 북악까지:상)

    ◎망명·투옥 등 역경의 세월/‘40대 기수론’ 정계 새바람/71년대선 95만표차 석패/신군부에 사형언도 받아/3당합당에 92년 또 패배/‘적과의 동침’ 4수끝 집권 후광 김대중.그의 삶은 꺼질듯 하면서도 이내 다시 타오르는 촛불이자,얼은 눈밭에서도 꽃망울을 터뜨리는 인동초이기도 했다. 그의 40년 정치역정은 영과 욕,환희와 좌절이 교차한 한편의 드라마다.특히 유신의 장막이 드리워진 72년부터 6·29선언이 있은 87년까지는 납치와 망명·투옥·연금으로 점철된 가시밭 길의 연속이었다. 그의 민주화에 대한 헌신과 그에 뒤따른 인고의 세월은 11차례나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르는 것으로 국제사회에서 먼저 인정 받았고,이제 당당히 제15대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국민적인 평가를 받은 셈이다. 정치가로서 김대중의 이력은 해방 직후 몽양 여운형이 주도한 건국준비위원회에 참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그는 당초 좌우익이 망라됐던 건준의 주도권이 다툼끝에 좌익으로 넘어가자 탈퇴한다.그러나 평생 ‘색깔론’의 꼬리표가 따라붙는 뼈아픈 경력이 됐다.그가 본격적으로 정치에 눈을 돌린 것은 해운업으로 여유가 생긴 54년이다.정치지망생 김대중은 목포에서 민의원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이어 59년 강원도 인제 보궐선거와 60년 5대 민의원 선거에서도 거푸 쓴잔을 마셨다.그는 4.19혁명으로 다시 치러진 61년 5월 인제보선에서 처음 당선됐다.그러나 금배지는 커녕 사흘만에 5·16쿠데타가 나는 바람에 의원선서도 하지 못하고 의원직을 상실하고 만다.그는 군정 기간 동안 모두 3차례나 투옥되는 등 야당정치인으로 본격적인 고난을 겪기 시작했다.그러나 장면박사를 만나면서 민주당 신파의 맥을 잇는 계기가 된다. 그는 63년 6대 총선에서 훗날 정치적 고향이 된 목포에서 다시 출마해 당선되면서 부터 발군의 지략과 달변으로 각광을 받게 된다.6대 국회 초반 6개월동안 13차례나 본회의 발언을 했고,차관도입과 세제특혜·경제개발계획의 문제점 등을 날카롭게 추궁,야당의 경제통으로 명성을 날렸다. 67년 7대 총선에서 다시 당선된 그는 68년 5월 평생의 정치적 동지이자 라이벌이 된 김영삼과의 첫번째 대결인 원내총무경선에서 패한다.그러나 71년대선을 앞둔 신민당 대선후보 지명경선에서 2차투표 끝에 결국 김영삼을 꺾는 대역전을 엮어냈다.이때 김영삼·이철승과 함께 내걸었던 기치가 바로‘40대 기수론’이다. 김대중 후보는 71년 대통령선거에서 바람을 일으켰으나 공화당 박정희 후보에게 95만표차로 석패하고 만다.‘투표에서 이기고,개표에서 진’ 이 선거는 그러나 혼쭐이 난 박정권이 그에 대한 탄압을 본격화하는 직접적인 계기가된다.이때부터 5년반 동안의 투옥과 3년여의 망명,6년반의 가택연금으로 대표되는 그의 험난한 정치인생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특히 71년말 교통사고로 위장한 살해기도를 간신히 모면했으나,그 후유증으로 오른쪽 다리에 장애를 입었다.도쿄에 체류하던 73년 여름에는 중앙정보부원들에 의해 납치되어 수장당할 위기에 빠지기도 했다. 그는 가택연금중이던 1979년 10·26 박정희 대통령이 피살되면서 사면복권되어 정치일선에 복귀했지만 ‘5·17’을 주도한 전두환의 신군부에 의해 내란음모죄로 군사재판에서 사형을 언도받는다.그는 국제여론과 미국정부의 압력에 힘입어 사형에서 무기,무기에서 20년형으로 감형되어 82년말 죽음의 그림자에서 또 한번 벗어나지만 그 ‘대가’로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야 했다.그는 그곳에서 2년2개월동안 망명 아닌 망명 생활을 했다. 그는 미국에 있는 동안에도 고국의 민주화운동에 힘을 바쳐 국내에 있던 김영삼과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를 결성한다.또 85년 2.12총선을 앞두고 전격 귀국,신민당의 압승을 끌어내는 견인차가 됐다.그의 계속된 민주화운동은 87년 6월항쟁을 촉발시켰고,마침내 직선제 개헌을 쟁취하는 밑거름이 됐다. 그는 87년 대선을 앞두고 김영삼과 함께 이민우의 신민당을 깨고 나와 통일민주당을 창당했다.그러나 김영삼과의 후보단일화에 실패하자 평민당을 창당해 출마하게 된다.그러나 결과는 노태우·김영삼 후보에 이어 3등이었다.대권 재수가 실패로 돌아간 것이다. 평민당은 88년 4.26총선에서 ‘황색돌풍’에 힘입어 원내 제1야당으로 부상한다.그가 정치적으로 재기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 셈이다.하지만 90년 전격적인 3당 합당으로 입지가 다시 좁아진 결과 92년 14대 대선에 김영삼 후보에게 패해 세번째 도전 역시 실패로 돌아갔다. ‘오늘로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평범한 시민이 되겠다’는 유명한 정계은퇴 선언은 이때 나온 것이다.그는 이후 영국으로 건너가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연구활동에 정진하다 93년 7월 귀국했다.그는 이후 순수한 연구단체를 표방한 ‘아·태평화재단’을 설립하는 등 정치와는 일정한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여주려 애썼다. 그는 95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조순 서울시장 후보의 연설원으로 정치일선에 재등장하면서 7월18일 정계복귀를 선언한다.9월5일에는 이기택 총재의 민주당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새정치국민회를 창당,제1야당 총재로 정계전면에 공식으로 복귀했다. 그러나 96년 4·11총선에서 전국구 14번의 배수진을 치고 내각제 개헌저지선인 100석 확보에 총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79석을 얻는데 그쳤다.‘야권분열의 책임자’라는 비난이 거세게 몰아닥쳤다. 40년 정치역정에서 최대 정적의 한사람이자 이념적 좌표가 다른 김종필이 동지가 된 것은 이때 부터다.그는 15대 국회개원과 함께 김종필이 이끄는 자민련과 공조체제를 구축하여 ‘DJ(김대중) 불가론’으로 대표되는 당내 이상기류를 잠재웠다.15대 대통령선거전이 본격화되자 김종필과는 혈맹의 관계로 발전한다.김대중을 두당의 대통령 단일후보로 하는 이른바 DJP연합이 그것이다. 김대중은 1997년 12월18일 제15대 대통령선거에서 결국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꺾었다. □김대중 당선자 연보 ▲생년월일=25년 12월3일 ▲출생지=전남 신안군 하의면 ▲44년=목포상업학교 졸업 ▲48∼50년=목포일보 사장 ▲51년=흥국해운 사장,해상방위대 전남지구 부단장 ▲60년=민주당 대변인 ▲61년=5대 민의원 보궐선거 당선(강원·인제) ▲62년=이희호 여사와 결혼 ▲63년=6대의원(목포) ▲65년=민중당 대변인 ▲68년=신민당 정책위의장 ▲71년=7대 대선출마 ▲76∼78년=3·1민주구국선언사건 등 주도 및 투옥. ▲80년=사면복권(2월),5·18 내란음모 사형언도(9월) ▲81년=무기 감형,미국 망명 ▲85년=민추협 공동의장 ▲87년=평민당 창당,13대 대선출마 ▲91년=신민당 창당 ▲92년=14대 대선출마 및 정계은퇴 ▲93년=영국 출국 ▲94년=아태재단 설립 ▲95년=국민회의 창당 ▲97년=15대 대선출마 및 당선
  • “이렇게 좋을수가” 곳곳서 축하잔치/김대중 대통령 당선되던 날

    ◎광주­금남로 모여 만세합창… ‘맥주 공짜파티’도/목포­시민 ‘목포의 눈물’ 합창… 모교선 특별조회/하의도­당선 플래카드 내걸고 고유제 준비에 분주 김대중후보의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19일 광주·전남지역은 축하의 물결에 휩싸였다. 이날 상오 1시쯤부터 몰려 든 시민 3만여명은 광주시 동구 금남로 1가 전남도청앞 광장과 충장로 등을 가득 메운채 ‘김대중’을 연호했고 일부 시민들은 얼싸 안고 “잘됐다”“한을 풀었다”며 당선의 기쁨을 만끽했다. 광주 광산구 우산동 S호텔은 이날 하루동안 사우나와 커피숍을 시민들에게 무료로 개방했고 일부 맥주집과 옷가게도 맥주와 옷을 무료로 제공하는 등 축제에 동참했다. 목포역 앞 광장도 이날 새벽 3백여명의 시민들이 몰려 들어 ‘목포의 눈물’을 합창하고 김대중후보의 홍보 피켓을 흔드는 등 당선의 기쁨을 함께 했다. 김당선자의 모교인 목포상고는 이날 재학생 1천4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당선 축하 특별조회를 가졌다. 김당선자의 고향인 신안군 하의도 후광리의 김당선자 친척들은 조상들에게 대통령 당선을 알리는 고유제를 준비하느라 바쁜 일손을 놀렸고 주민들은 당선축하 플래카드를 내건채 꽹과리와 장고를 치며 마을잔치를 벌였다. 밤을 거의 뜬 눈으로 지샌 하의도 주민들은 이날 새벽에 잠시 눈을 붙이거나 휴식을 취한뒤 날이 밝자 삼삼오오 김당선자의 큰 조카집인 김홍선씨(34)집에 다시 몰려와 술과 음식을 들고 꽹과리를 치며 당선을 축하했다. 마을입구 선착장 부근에는 “제15대 대통령 후광 김대중 선생 당선”이라고 적은 플래카드 10여개가 내걸려 축하 분위기를 더했다. 5·18 광주민중항쟁유족회는 이날 망월동 5·18묘역을 찾아 기념행사를 가졌으며 시민연대모임 등 8개 사회단체는 ‘김당선자는 국민통합과 민족화해를 바탕으로 21세기 새 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내용의 당선축하 메시지를 발표했다.
  • 3당 종반 폭로전 가열

    대선전 종반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3당 후보진영은 13일 병역,선거자금,남북문제,부정선거시비 등으로 상대후보를 흠집내기 위한 무차별적인 폭로전을 벌였다. 한나라당은 13일 한국전쟁 당시 목포경찰서 경무계에서 전시 병사차출 업무를 담당했다는 제보자(74)의 증언을 토대로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가 당시 취약한 호적행정을 이용,병역을 기피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국민회의 박홍엽 부대변인은 이날 한나라당 정재문 의원이 지난 9월과 11월2차례에 걸쳐 북경에서 북한 조평통 안병수 위원장대리와 만나 남북경제협력과 관광개발에 관해 교섭했고,교섭대가로 상당한 금품을 주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주장했다. 김대중 후보 선대위의 조세형 김복동 공동수석부의장은 이날 가지회견에서 한나라당의 사채시장 5백여억원 차용시도 의혹을 거듭 제기하며 “한나라당은 선거막판에 전국의 직능,관변 및 유사기관단체 지원 등에 막대한 자금을 살포하려 했음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신당도 이에 가세,“한나라당 후보는 집권수단으로천안연수원과 새로 입주한 신당사 등 모든 것을 돈과 바꾸려고 모재벌과 거래하고 있다는 제보가 있다”며 의혹을 증폭시켰다. 한나라당은 그러나 13일 통상적 거래절차에 따라 천안연수원 매각을 추진했음에도 불구,사채업자 강동호씨가 금권선거를 획책하려는 것으로 폭로했다고 주장하고 강씨를 허위사실 공표 및 통신비밀보호법 위반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 목포대 총장 노진영 교수

    목포대 제3대 총장에 노진영 교수(55·법학과)가 선출됐다.노교수는 광주출신으로 65년 성균관대를 졸업하고 81년 목포대에 부임해 사회과학대학장과 경영대학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내년 3월 취임할 예정이다.
  • 호남·제주/“다들 속마음은 굳어있제”(권역별 판세 점검:3)

    ◎“마지막 기회” 지역감정 부추길까 조심/다른 지역·후보 최근 동향에 귀 기울여/제주는 독주후보 없이 “경제만 살린다면”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의 아성인 광주는 예상외로 차분했다.거리는 물론 술집이나 다방,시장통을 돌아다녀봐도 어디에도 과거와 같은열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면 으레 IMF 경제위기와 나라걱정,먹고사는 어려움이 화제로 올랐다.적어도 ‘겉보기’는 그랬다. 하지만 호남인들의 ‘밑바닥 정서’는 사뭇 달랐다.폭풍전야의 고요함이랄까,대선일에 맞춰 터질 휴화산같은 긴장이 배어있는 듯했다.DJ의 생애 마지막 대선도전과 높아진 당선 가능성에 직면해 오히려 ‘집단적 표심표출’은 자제하되 내부적으로 ‘결집력’은 더욱 공고해진 분위기였다. 광주에서 20년간 택시운전을 하고 있는 전병곤씨(52)는 “여기야 김대중이상 없는디,선거 얘기해서 무엇합디요”라고 반문하면서 “내색은 하지 않지만 다들 선택은 굳어있제‥”라고 말을 끊었다.금남로 지하상가에서 만난 윤광석씨(64)는 “김총재는 이번에 마지막이고 당선 가능성도 높은께,다들 이심전심으로 밀어줘야 한다는 생각뿐이제‥”라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국민회의 광주지부의 한 당직자는 “숫적으로 경상도의 반도 안되는데 괜히 지역감점을 일으킬 빌미를 주면 안된다는 것이 현지의 심정”이라며 차분함의‘이면’을 설명했다. 다른 지역에서 주요 공격재료인 김후보에 대한 건강문제와 ‘반쪽 대통령’도 이곳에선 논쟁거리도 되지 못했다.슬쩍 이 문제를 꺼내면 대뜸 “그것은 음해지라.테레비(TV)를 봐도 그렇고,90살은 살것 같은데 뭐가 문제랑가” “혼자 안되는데 헐수 있간디,1년이고 2년이고 잘하면 되제‥”라며 오히려 설득조였다. 그래선지 김후보보다는 다른지역,다른 후보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음식점에서 만난 김도현씨(43·사업)는 “경상도에서는 ‘우리가 남이가’한다지만,(대통령후보가) 안나왔승께 김총재를 찍어주면 지역감정도 풀리고 국민화합도 이뤄질텐데”라고 아쉬움을 나타냈고 최준호씨(27·회사원)는 “언론에서 이회창씨가 쫓아온다는디,서울은 어떻답디요”라며 김총재의 당선 가능성을 궁금해했다. 국민회의측은 “기권방지에 주력할 것”이라며 ‘선거율 높이기’로 잡았고 한나라당측은 “선거운동 해봐야 소용이 없다”고 허탈헤하면서도 “막판에 이후보의 당선가능성이 높아지면 10%대로 올라설 것”이라며 기대감을 버리지 않았다.국민신당 이인제 후보측은 조직정비가 제대로 돼있지 않은 점을 시인하면서도“그래도 이인제 후보를 욕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며 자위를 하고 있다. 반면 제주도는 호남과 달리 압도적인 지지 후보가 보이지 않고 있다.“누가 대통령이 되든 제주경제를 살릴 사람을 뽑겠다”는 것이 제주 현지의 민심이었다.여론조사를 봐도 경제대통령 이미지를 부각시킨 김대중 후보의 강세와 이회창 후보의 반등이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쟁점­지역개발/낙후된 지역경제 회복 관심/이회창­새만금 특별법·대중 교역 기지로/김대중­목포·광양·광주 3대 권역별 개발/이인제­제주 국제관광단지 건설·공항 확장 호남지역의 최대 관심사는 단연 ‘지역 경제개발’이다.3당 모두 국토개발에서 철저하게 소외돼 왔다는 현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사회간접자본 투자와 대규모 공단조성을 앞다퉈 약속했다. 전북의 경우 ‘새만금 종합개발’이 관심의 초점이다.한나라당은 환태평양경제권 중심지역으로 유통단지,해양관광단지 조성,국제공항 건설을 약속했다.국민회의는 ‘새만금 내부개발 특별법’의 제정을 통한 21세기 첨단산업지대 육성안을 발표했다.국민신당은 복합산업단지를 목표로 생산·교역·물류기지 건설을 공약했다. 전남·광주의 경우 낙후된 사회간접자본 투자에 관심이 쏠려있다.한나라당은 “육·해·공 모든 면에서 교통기반을 확충해 대륙과 해양의 가교 역할을 맡기겠다”며 표심을 파고들고 있다.세부적으로 호남고속도로 우회도로의 조기건설과 국도22호선 확장,지하철 조기준공 등이다.대중국 교역 기지및 환태평양 시대의 교두보 확보라는 장미빛 청사진도 곁들였다. 국민회의는 공단조성에 초점을 맞췄다.목포·광양·광주권 등 3대 권역별개발을 통해 목포를 조선·항공산업 메카로 육성하고 광양만은 환광양만권 공업벨트 조성,광주권은 미디어 첨단산업공단으로 만든다는 방침이다. 제주의 경우 3당 모두 ‘획기적인 관광산업 개발’을 앞세웠다.경제침체때문에 주 수입원이 관광산업이 최악의 상황에 빠져 있다는 판단이다.한나라당은 도전역의 면세화와 국제컨벤션센터 건립을,국민회의는 각종 세제혜택과 면제지역 확충,국제 직항로 개설추진을,국민신당은 국제관광단지 건설,제주공황 확장을 내걸었다.
  • 지방재정 확충 아이디어를 찾자/권이담 목포시장(공직자의 소리)

    본격적인 민선자치 3년째를 맞아 전국 230여개 지방자치단체들은 요즘 변화와 개혁의 물결 속에서 저마다 자생력 확보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지자체도 가정이나 일반회사처럼 살림을 꾸려나가는데 그 무엇보다도 ‘돈’ 즉 재정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밤길을 안전하게 다닐수 있도록 밝혀주는 전구 하나에서부터 청소,상·하수도 등의 생활민원,도로,항만,공항,철도건설 등 사회간접자본(SOC)에 이르기까지 막대한 예산이 소요된다. 그러나 현 자치단체의 재무구조는 어떤가.자주재원인 지방세와 세외수입은 취약하기 이를데 없고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지방교부세,지방양여금,국고보조금은 지원보다는 통제수단에 묶여 빈약한 지방재정을 더욱 압박하고 있다.이러한 재정 압박은 도시나 군지역의 모든 자치단체가 한결같이 겪는 고통이며 해결해야할 과제다. 그렇다고 제도나 현실만 탓하고 앉아 있으면 누가 해결해줄 것인가.자치단체 스스로 자생력 확보를 위해 찾아나서야 한다. 자치단체 모두가 지방재정력 확충을 위해 손과 발을 걷고 찾아나선다면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짧은 기간이나마 시정을 이끌면서 느낀 몇가지 자생력 확보 방안을 짚어보고자 한다. 첫째,도로교통법 위반 관련 범칙금을 전액 국고수입 처리하는 것을 교통안전시설에 들어간 최소한 예산만큼은 국가가 자치단체에 지원해주는 제도 마련 방안이 그것이다. 둘째,환경오염의 원인자 부담원칙에 따라 징수하는 환경개선부담금 징수교부율도 현 10%를 그 이상으로 인상 조정을 제안한다. 셋째,지방세제 개편을 통한 광고세,관광세 등을 신설한다. 넷째,농수산물 도매시장 직영,자치단체 화물터미널 운영 등 새로운 자구적 경영수익사업 확충 등의 방안이 있다. 위에 열거한 방안들은 오직 자치단체의 자생력을 키워나가는 사례일 뿐이다.꼭 최상의 안이고 절대적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으나 우리앞에 놓인 수많은 일을 해결하는데 필요한 지방재정 확충을 위한 기폭제가 되었으면 한다.
  • 남부 초겨울 폭우 피해 잇따라/제주 300㎜

    ◎여객선 항공기 결항… 유조선 좌초/오늘 10∼80㎜더올듯 [김태균 기자·전국 종합] 제주와 납해안 지방에 호우경보 및 들우주의보가 발효된 가운데 25일 전북 완도에 186.5㎜의 비가 내리는 등 전국에 걸쳐 많은 비가 와 곳곳에서 큰 비 피해가 났다. 이 비는 26일 상오까지 전국적으로 10∼80㎜가량 더 내린 뒤 그칠 전망이다. 기상청은 25일 하오 10시 30분을 기해 남해안 지방등에 내렸던 호우경보 및 주의보를 모두 해제했다. 제주지방에는 강풍과 함께 최고 300㎜가 넘는 폭우가 쏟아져 선원 3명이 탄 어선 1척이 실종됐으며 가두리 양식장이 파도에 유실됐다. 제주와 부산 목포 완도 인천 등을 연결하는 6개 항로연안 여객선 9척의 운항이 통제돼 승객 1천여명의 발이 묶이는 등 연안여객선 10개 노선 26척의 운항이 끊겼다. 제주 김해 울산 대구 포항 여수 목포 등 남부지방 7개 공항의 항공기 2백40여편의 운항도 중단됐다. 이날 상오 8시45분쯤 북제주군 우도 북동쪽 11마일 해상에서 선원 3명이 탄 북제주군 한림선적 채낚기어선 제2협신호(7t급 선장이윤철)가 실종됐다. 경남 통영시 육지면 연화리 촛대바위에서 나낏를 하던 강경조씨(41·부산시 해운대구 송정동 158) 등 3명은 파도로 고립돼 강씨는 익사하고 2명은 실종됐다. 또 하오 4시20분쯤 경북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구룡포항 북방파제 앞바다에서는 부산선적 2백37t급 유조선 동진호(선장 이기수·21)가 방파제에 부딪혀 좌초되면서 많은 양의 기름이 유출됐다.
  • 지역특성 살린 세계화전략 세우자/권이담 목포시장(공직자의 소리)

    세계 경제질서가 급속히 글로벌화되면서 국가들간의 경제 유대보다는 기업과 기업간,지역과 지역간의 유대에 의해 재편되고 있다. 이러한 추세로 볼때 지방의 세계화 전략을 어떻게 수립하고 시행해 가느냐에 따라 지역발전은 물론이고 국가발전까지도 좌우하게 될 것이다.지방의 세계화 전략은 말할것도 없이 다양한 지역의 특성을 살려 세계시장에 접목시키는 일이 급선무다. 최근들어 지방화시대가 열리면서 지역 특성을 살린 관광발전 전략이 수립되고 지역발전을 위한 각종 상품이 개발되고 있는게 사실이다.그러나 국내 시장만을 겨냥하는 상품이 대부분인데다 단기적인 개발전략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 안타깝다. 우리나라는 좁은 국토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다양한 특색을 갖고 있다.내륙지역이 있는가하면 해안지역이 있고,대도시가 있는가하면 농촌지역이 있다.또한 자세히 살펴보면 사회,문화적 차이도 적지 않다. 지방의 세계화 전략을 수립하는데 이러한 다양한 특성을 고려해야겠지만 그중에서도 지리적,환경적 특색은 가장 중요한 요소중의 하나다.해양을 끼고 있는 지역은 21세기 신해양시대에 대비한 세계화 전략을 세워야 하며 내륙지역은 내륙간 지정학적 위치를 감안한 세계화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우리 목표는 해양도시인데다 다도해 등 천혜의 관광자원을 확보하고 있고 지정학적으로 태평양과 대륙을 잇는 요충지인 관계로 지방의 세계화 전략 수립에 있어 표본적 지역으로 꼽힌다.따라서 목포의 세계화 전략은 당연히 신해양시대를 겨냥한 해양자원개발에 초점이 맞춰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방의 세계화를 추진하는 가장 기본적인 주체는 지역 주민들인 만큼 지역주민 모두가 개방적 시각과 합리주의적인 사고를 갖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특히 공직자들의 오랜 관습과 관행의 타파야말로 지방의 세계화를 앞당기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 목포에 자생식물원 건립/환경부,99년까지 15억 들여 용해동에

    ◎멸종위기·희귀종 등 126종 국내 첫 전시/환경오염·개발로 인한 고유식물 보전 멸종위기를 맞았거나 희귀한 식물만을 모아 키우는 자생식물원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건립된다. 환경부는 오는 99년까지 전남 목포시 용해동 갓바위 공원지 안에 국고보조 4억7천여만을 포함해 모두 15억원을 투입,특정자생식물원을 건립키로 했다고 17일 밝혔다. 부지면적 1천평에 들어서는 식물원은 자연환경보전법에 지정 고시돼 있는 1백26종의 각종 고유 식물을 모두 전시한다. 멸종위기 식물로는 섬자리공,흑난초,풍란,나도풍란,섬말나리,순채,삼지구엽초,가시연꽃,깽깽이풀,노랑돌쩌기,시로미,섬시호 등 16종이다. 희귀종 식물로는 솔잎난,고란초,대암사초,섬천남성,큰연영초,솔나리,엽란,큰솔나리,대청부채,약난초,된장풀 등 49종이다. 우리나라에만 서식하는 설악눈주목,섬천남성,금강애기나리,자주솜대,한라돌창포,함양원추리,여우꼬리풀,왕둥글레,고추냉이,금강제비꽃,금강초롱꽃,도라지모시대,갯취,국화방망이 등 모두 41종도 전시된다. 해마다 줄어드는 관중,자라풀,땅나리,천마,큰새우난,땅귀개,헐떡이풀,끈끈이주걱,끈끈이귀이개,한라장구채 등 20종도 선보인다. 환경오염과 각종 개발사업으로 생태계 훼손이 극심해지면서 우리 고유의 자생식물과 서식지 파괴가 날로 심해지고 있으나 이를 보호·증식하기 위한 서식지의 보전시설은 전무한 실정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갈수록 사라지는 국가 중요 생물자원을 보전하고 국민들에게 자생식물에 대한 의식을 높여주기 위해 전시관 건립을 추진하게 됐으며 앞으로 환경교육장으로 활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 이동전화사 “섬으로… 바다로…”/한통도 기지국 신설

    ◎적자 예상 불구 대외 이미지 높이려 신세기 등 잇단 진출 신세기통신에 이어 한국통신프리텔이 도서지역에 기지국을 세워 섬과 바다에서 통화가 되게 하는 등 이동전화 회사들이 속속 섬지역 서비스에 들어가고 있다. 이동전화 회사들이 적자가 예상되는 섬 지역에서 서비스를 하는 것은 자사의 서비스 커버리지가 낙도지역까지 포함된다는 점을 강조,대외 이미지를 높이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통신프리텔은 지난10일 도서지역 기지국 개통으로 섬과 바다에서도 통화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통프리텔은 지금까지 1천360여개의 기지국을 완료했으며 이중에는 도서지역 기지국도 다수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한통프리텔에 따르면 제주도,거제도등 큰 섬은 물론 중부지역의 화도·대부도,호남권의 화태도·노화도·보길도·안좌도 등에서 통화가 가능하고 연말까지 울릉도·백령도·홍도 등의 섬에서 개인휴대통신(PCS)전화를 걸고 받을수 있게 된다. 한통프리텔은 특히 추자도 지역의 기지국 개통으로 목포와 제주도 사이의 바다구간에서도 개인휴대통신(PCS)016으로 통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남 신안군 안좌도에서 수산업을 하고 있는 유충렬씨(46)는 통화를 하고난 뒤 “안좌도와 같은 작은 섬에서 이동통신의 혜택을 누리게 될 줄은 몰랐다”면서 “마치 섬지역에 처음으로 전기가 들어왔을때의 기분”이라고 말했다. 신세기통신은 지난달말 백령도,마라도,월미도등의 섬지역에서 서비스를 시작했다. 신세기통신의 한 관계자는 아직 군당국과 협의할 것이 남아 있어 자세히 밝힐수는 없으나 이미 밝힌 일부 섬지역외의 여러 섬과 내륙의 오지에서도 이동전화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 밀입국 조선족 60명 검거/목포 해양경찰서

    5일 하오 5시30분쯤 전남 영암군 군서면 군서농공단지앞 도로에서 밀입국한 중국 조선족 60명이 목포해양경찰서 형사대에 붙잡혔다. 이들은 남자 53명,여자 7명으로 봉고차와 19t트럭에 나눠타고 광주로 가던 중이었다. 해경은 목포 북항 부근에 정박하고 있던 선박을 수색한 결과 밀입국자의 것으로 보이는 의약품 등이 발견돼 추적끝에 이들을 검거했다. 해경은 국내 선적의 이 선박이 공해상에서 중국 어선으로부터 이들을 인계받아 북항을 통해 입항한 것으로 보고 정확한 밀입국자 수와 밀입국 경위를 조사중이다.
  • 일 여인의 국경넘은 고아사랑/윤학자 여사 사후 30년만에 기념비

    ◎총둑부관리 부친따라 7살때 한국에/본명 다우치… 고향 고지시선 ‘성녀’로 ‘한국 고아의 어머니’ ‘목포의 어머니’로 추앙받아온 일본여인 다우치 치즈코(전내천학자·한국이름 윤학자)여사.7살때 총독부관리였던 부친을 따라 한국에 와 한국인 남편을 만나고 이후 목포에서 3천여 고아들을 키우기는데 평생을 바치다 68년 작고한 그가 최근 고향사람들에 의해 성자로 자리매김됐다. 지난달 31일 그의 출생본가에서 6백m 떨어진 고치(고지)시 와카마스초의 한 귀퉁이에는 기념비 하나가 세워졌다.이날은 그가 태어난 날이자 동시에 작고한 날.그가 평생을 바친 목포 공생원 원아들의 ‘목포의 눈물’ 합창속에 진행된 기념비 제막식에 모인 450여명은 고인의 헌신적 사랑과 베풂의 삶을 기리고 계승을 다짐했다.한국에서는 공생원 원아 80여명과 생전에 같이 생활했던 노인들,전남도와 목포시 관계자 등 250여명이 참석했고 일본에서는 다우치여사의 장남 윤기씨(55) 등 가족과 하시모토 다이지로 지사 등 정계인사,모금운동을 주도한 상공인 등 200여명이 자리를 함께 했다.
  • “국민회의 당원 월북”/북 중앙통신 보도

    【서울 AFP 연합 특약】 국민회의 당원인 정민(46)씨가 얼마전 월북했다고 북한 중앙통신이 1일 보도했다. 중앙통신은 목포 출신으로 안산에서 사업을 하던 정민씨가 “한국의 부패때문에 월북했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중앙통신은 정민씨가 어떻게 북한에 들어왔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정민씨는 서울,일본,호주 등에서 사업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 터키상선 해상충돌후 도주/한국선원 7명 실종

    ◎목포해경 뒤쫓아 검거 26일 상오 0시쯤 전남 신안군 흑산면 만재도 남서 8.6마일 해상에서 일본으로항해중이던 터키국적 9만605t급 상선 제너럴 카짐오비호가 조업중이던 경남 남해선적 51t급 통발어선 제21금화호(선장 최진현·31·남해군 미조면 미조리)를 들이 받았다. 이 사고로 금화호 기관장 이형운씨(30·미조면 미조리) 등 선원 7명이 실종되고 선장 최씨 등 4명은 인근에서 조업중이던 어선에 구조됐다. 목포해경은 사고직후 경비정을 긴급 출동시켜 달아나던 터키상선을 인근 해상에서 검거헤 목포로 압송,선원들을 상대로 사고 원인을 조사중이다.
  • 지방거점도시 8곳 조성/토지개발방안 등 연내 마련/건교부

    지방경제권 형성을 통한 지역경제활성화와 수도권 기능분산을 위해 지방거점도시가 조성된다. 이환균 건설교통부 장관은 16일 “21세기 지방화 시대에 맞춰 쾌적한 주거환경을 갖춘 지방도시의 모델로 전국 8대 광역권별로 거점도시 1개씩을 조성할 방침”이라며 “이를 위해 지역균형개발법 등 관련법의 보완 또는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건교부는 각계 전문가 20∼30명으로 실무기획단을 구성,올해안에 대기업 본사가 이전할 거점도시내 지구지정 및 토지개발방식,세제·금융지원 방안 등을 마련,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내년부터 본격적인 법안마련에 들어갈 방침이다.이에 따라 빠르면 내년부터 아산만권,부산·경남권,대구·포항권,대전·청주권,군산·장항권,광양·진주권,광주·목포권,강원권 등 8개 광역권에 거점도시 조성이 추진된다. 광역권별로 1∼2개씩 선정될 거점도시에는 대기업 본사나 지방기업이 입주할 업무거점지구가 지정되며 개발방식으로는 업무지구로 지정된 지역의 토지를 정부가 수용하거나 매수해 확보하되 실제 개발은 민간기업이 맡도록 하는 방법이 검토되고 있다. 이장관은 “특별법에는 대기업 본사의 지방이전을 촉진하기 위해 본사를 거점도시로 옮기는 기업에 대해 법인세를 일정기간 감면해 주는 등 재정·금융 및 도시기반시설 설치지원방안,서울수준의 교육·문화 및 각종 편의시설을 갖추기 위해 대학교의 지방이전은 물론 해당지역 고등학교 출신에 대해 특례입학을 허용하는 방안 등을 담을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 DJ 비자금 공방­여 초강경대응 배경

    ◎이 총재 정치생명 건 한판승부/이미지 훼손 감수하며 3김청산에 앞장/확전 유도… 12월대선 양자대결 압축 시도 신한국당의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를 겨냥한 비자금 조성 의혹 공세가 ‘백병전’의 양상을 띠고 있다.이회창 총재가 직접 선봉에 나섰다.그동안 ‘보고받은바 없다’던 미온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비자금 조성 폭로를 ‘혁명적 과업’으로 천명하고 나선 것이다. ○여권 총공세 돌입 이총재의 진두 지휘는 여권의 의지를 가늠케 하는 단초다.이날 법사위 국감에서 송훈석 의원 등이 40명에 이르는 친·인척들의 19개 금융기관 403개 계좌에 분산 입금된 총 4백15억원 내역을 폭로하고 구범회 부대변인이 이를 측면지원을 한 것도 이 연장선으로 이해된다.또 통일외무위에서 국민회의 김총재의 아·태재단의 자금 사용내역 의혹을 제기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여권의 이러한 총공세는 이 싸움의 종착지를 엿보게 한다.이총재의 한 측근도 “신한국당이 정권재창출에 성공하느냐,못하느냐의 승부처”라고 강조한다.이총재가 자신의 이미지 훼손을 감수하면서 까지 정치적인 모든 것을 걸었음을 의미한다.공세의 방향을 바꿔 국민회의 김총재의 비자금을 축재와 치부로 몰아세우고 있는 것도 이의 반증이다.신한국당 이사철 대변인이 이날 “김총재가 거액의 자금을 친·인척 명의로 은닉·축재한 것은 자신의 아성인 목포지구당을 장남인 김홍일씨에게 물려준 것과 함께 족벌체제 구축과 권력 대물림을 위한 사전준비”라며 강도높게 맹공을 퍼부은 데서도 이를 읽을수 있다. ○당체제 일사불란 여권의 초강수는 이제 총력전을 한번 펼쳐보일 때가 됐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신한국당이 이 와중에서 선대위체제 출범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도 비자금 공방을 둘러싸고 한때 당내 잡음이 있었지만,이번 파문을 통해 당을 총력체제로 전환하려는 의도로 여겨진다.이총재가 부산·울산지역 방문뒤 13일 하오 이한동대표와 심야회동을 갖고 비자금 폭로에 조율을 거친 것도 일사분란한 당체제 구축이 선결과제라는 공동인식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확전을 계기로 여론의 지지도와 관계없이정국이 양자대결로 좁혀져가면서,3김 청산의 중심축에 이총재가 서서히 자리하기 시작했다는 판단에 기초한다.
  • 전국 39곳에 대형 유통단지 조성/10개 권역 격자형 연결

    ◎1단계 28곳 2001년까지 개장/2011년까지 2,000만평 추가 공급 전국을 격자형으로 연결하는 물류센터 39곳이 들어선다. 건설교통부는 7일 전국 10개 권역에 39개 유통거점을 설정하는 ‘유통단지개발 종합계획’을 확정하고 우선 1단계로 올해부터 오는 2001년까지 전국 28개 유통거점에 8백50만평의 유통단지를 조성키로 했다. 1단계로 공급될 유통단지는 수도권 6개 거점에 2백40만평,아산만권 2개 거점에 90만평,대전·청주권 3개 권역에 60만평,군산·장항권 3개 거점에 70만평,광주·목포권 2개 거점에 60만평,광양만권 1개 거점에 20만평,부산·경남권 5개 거점에 1백70만평,대구·경북권 4개 거점에 1백만평,강원권 2개 거점에 40만평 등이다. 이에 따라 올해 말부터 사업시행자들이 입지선정 및 개발계획을 수립해 유통단지지정 신청을 하면 1백만㎡(30만평)초과 규모는 건설교통부가,1백만㎡ 이하 규모는 시도지사가 지정하게 된다. 2002∼2011년의 2∼3단계 사업기간에는 각각 1천30만평과 9백70만평의 유통단지가 공급된다.권역별 구체적인 공급계획은 1단계 사업의 추이에 따라 결정된다. 유통단지는 화물터미널,집배송단지,농수산물물류센터 등 물류시설 중 1개 이상을 필수시설로 하고 도소매단지,농수산물 도매시장 등과 금융·편의시설 등 지원시설이 집단적으로 들어선다. 유통단지로 지정되면 토지수용권부여,취득세·등록세 면제,재산세·종합토지세 50% 감면 등 사업 인허가 및 세제상의 혜택이 주어진다.
  • 목포개항 100주년/21세기 국제항 웅비의 나래 편다

    ◎신산업도로·신외항·망운국제공항 건설/환태평양시대 주도 중추도시 탈바꿈 ‘목포의 옛 영화를 되찾자’ 목포시가 1일 개항 100주년을 맞았다.‘소외와 눈물’로 대변되던 목포가 제 2의 개항 선언과 함께 웅비의 나래를 활짝 펴고 있다. 21세기 신 해양시대를 맞을 준비가 한창이다. 대불공단과 호남선을 잇는 서남권 신산업철도 기공식이 30일 열렸다.목포항 물동량 수송을 맡게 될 이 철도는 무안군 일로읍∼대불공단∼신외항간 17㎞이며 오는 2006년까지 2천67억원이 투입되는 대 역사다. ○‘소외와 눈물’로 대변 허사도 일원에서는 신외항이 건설되고 있다.2만∼3만t급 선박 22척이 동시에 접안할 수 있는 부두와 4.9㎞에 달하는 안벽축조 공사가 진행중이다. 인근 무안에는 21세기 항공수요를 담당할 망운국제공항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인천∼군산∼목포를 잇는 서해안고속도로와 호남선 복선화 등 굵직굵직한 사회간접자본 확충사업도 한창이다. 목포는 1896년 강화도 조약으로 부산 인천 원산항이 개항된 이듬해 10월1일 고종 황제의 칙령 반포로 문을 열었다. 일본과 중국을 잇는 무역항로의 중심지이며 영산강을 통한 내륙 화물운송의 적지라는 지리적 이점이 개항 이유였다. ○40년대엔 전국 3대항 그후 일제시대 목포항은 호남평야에서 나는 쌀과 면화·소금 등을 일본으로 반출하고 건설자재 등을 반입하면서 호남경제의 핵심 도시로 떠올랐다. 1930∼40년대만 전국 3대항 6대 도시로서 반세기동안 번영을 누렸다. 해방과 함께 쇄락의 길에 접어 들었다.60년대 부산∼대구∼서울을 잇는 동부권 개발에 치우친 정책 때문이었다. 정치·사회적 환경이 개발을 가로막았다는 시민 정서가 아직도 남아 있다.대중가요 ‘목포의 눈물’이 이곳의 한을 대표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목포는 이를 딛고 일어나 용트름을 시작했다. 서남권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할 대불산업단지가 가동되고 중국 연운항과 직항로 개설도 임박해 있다.환태평양시대를 주도할 중추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개항 100주년을 기념한 목포,중국 연운항,일본 벳부 시장회의가 1일 열린다.통상·문화·환경·관광·청소년 등에 대한 공동 협력방안을 모색한다. 목포는 강제 개항이 아닌 진정한 주인으로서 제 2개항 선언과 함께 황해 경제권 시대의 거점 무역항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고 있다.
  • 개항 100돌 기념행사/열린 음악회 시작으로 한달간 펼쳐

    ◎가요제·국악공연·체육대회 등 다채 목포개항 100주년 기념행사가 10월 한달동안 목포 일원에서 다채롭게 펼쳐진다. 30일 서남권 화합과 발전을 다짐하고 축제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한 전야제로 KBS ‘열린음악회’가 목포체육관에서 펼쳐진 것을 시작으로 시민의 날인 1일에는 같은 장소에서 개항 100주년 기념식이 시민 등 5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다. 이날 행사에는 권이담 목포시장을 비롯,자매도시인 중국 강소성 연운항(련운항)시 및 일본 벳부시 시장과 주한 미국대사,프랑스 파리시 4구 부시장 등 외빈 56명도 참석한다. 자매시장단은 3개 시를 연결하는 관광루트 개발과 통상·문화·환경 등 공동 관심사에 대한 공동 선언문도 발표한다. 도자기 축제는 5일까지 하당 신도심에서 열리며 강진·나주 등 7개 시·군 31개 업체가 참여한다. 이밖에 한·중 사진예술교류전 한·중 국제학술세미나 전남·중국 미술협회전 옛 포구와 풍물사진전 국악경연대회 수석전 목포가요제 개항 100주년 기념 학술세미나 시민종합체육대회 등이 문화예술회관등에서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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