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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돈지갑 찾아준 휴가병 사례비 사양하고 귀대(조약돌)

    ○…휴가중이던 병사가 거액이 든 지갑을 주워 주인에게 돌려주고 사례금마저 거절한 사실이 밝혀져 화제. 10일 육군에 따르면 이기자부대 신병교육대 조교인 宋永哲 병장(24·전남 목포)은 휴가를 마치고 귀대하던 9일 하오 3시쯤 서울 상봉버스터미널 화장실에서 6백만원의 현금과 수표가 든 지갑을 주웠다.宋병장은 지갑에 든 명함을 보고 분실자인 黃현승씨(27·국제콜택시협회 직원·서울 중랑구)에게 연락,지갑을 돌려줬다. 宋병장은 黃씨가 건넨 사례비를 마다하고 귀대했으나 黃씨가 宋병장의 부대를 직접 찾아 부대장에게 고마움을 전하면서 宋병장의 선행이 알려지게 됐다.
  • 바다위에서도 이동전화 건다/남해안 전지역·제주도 일대 선박 연결

    ◎선박→육상=지역+가입자 번호/선박↔선박=해당선박 번호/육상→선박=0131+선박번호 항해중인 선박에서도 육상에서와 똑같은 이동전화서비스를이용할 수 있게 됐다. 한국통신은 목포에서 부산에 이르는 남해안 전지역을 대상으로 이동중인 선박과 선박간,선박과 육지간을 연결하는 해상이동전화서비스를 최근 시작했다. 한국통신은 이를 위해 25억원을 투입해 목포 완도 고흥 김해 하동 부산 등 6개 지역에 중계탑을 설치하고 이들을 연결해주는 해상이동전화 교환시설을 목포에 갖췄다. 이 서비스는 기존의 무전기 형태와 달리 육지에서 사용하고 있는 셀룰러방식을 도입,중계탑의 통달(通達)거리가 100㎞나 돼 목포,부산 등 남해안의 해상 및 인근 도서는 물론,제주도에 이르기까지 이동중인 선박에서 통화할수 있다. 이용방법도 간단하다.선박에서 육지로 통화하려면 일반전화와 마찬가지로 지역번호와 가입자 번호를 누르면 된다.국제전화는 국제전화사업자 식별번호와 국가번호 지역번호 전화번호를 차례로 누르면 된다. 선박에서 선박으로 통화하려면 해당 선박번호만 누르면 된다. 육상에서 선박으로 전화하려면 접속번호 0131을 누른 뒤 해당 선박번호를 누르면 된다.이용요금은 가입비 3만원에 보증금 20만원,단말기 임대료 3만원이고 통화료는 기본료 3만원에 10초당 15원이다. 선박에 해상이동 공중전화가 설치되면 가입비,단말기 임대료,기본료가 면제되며 보증금 20만원에 이용료는 20초당 50원이다. 한국통신은 오는 2000년까지 서해안 및 동해안 지역에도 서비스를 확대할 계획이다.
  • 탐진댐 수몰지 農民의 하소연/金在鍾 전남장흥군수(공직자의 소리)

    전남 장흥군 부산면과 유치면 일대에는 담수량 1억8천3백만t의 탐진댐이 오는 2001년까지 들어설 예정이다.목포와 해남 영암 강진 등 서남권 7개 시·군에 생활 및 공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한 댐이다. 댐이 건설되면 관내 11개 마을,692가구의 2천1백여명이 실향민으로 전락하고 농경지 10.7㎢가 사라진다. 실향민들의 상당수가 6·25 이후 맨몸으로 들어와 문전옥답을 일군 가슴아픈 사연들을 안고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있다. ○재배 菊花 보상비 비현실적 총 공사비(3천2백64억원) 가운데 보상비로 1천9백53억원 정도가 계상돼 있다.산술적으로 따져봐도 영세 농가가 손에 쥐는 액수는 농협 부채 등을 미리 공제하면 실제로 읍내로 나와 전세방 하나 얻기도 힘든 형편이라고 본다. 현재 수몰 농경지 31만여평에는 국화가 심어져 있다.경작자 가운데는 외지인도 섞여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만 대부분은 현지 농민들이다. 주민들의 요구사항은 간단하다.최근에 착공한 전북 용당댐에서 적용했던 보상기준대로 보상을 해 달라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해 10월 15일 ‘공공용지 취득 및 손실에 관한 특례법 시행규칙 개정안(공특법)’이 공포·시행되면서 탐진댐부터 이를 적용할 수 있는근거가 새롭게 만들어 졌다. 탐진댐 건설 실시계획 공고는 ‘공특법’ 개정안 시행보다 닷새 늦은 지난해 10월 20일자로 확정됐다.주민들의 항의와 반대집회의 강도가 높은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 비롯된다. ○탄력성 없는 ‘공특법’ 적용 특용작물(국화나 장미)에 대한 보상은 댐 건설 고시전에 실제 영농소득의 평균치 수준에서 하도록 못박았다. 그래서 군은 이 법 시행을 2001년부터 건설되는 댐부터 적용될 수 있도록 경과규정을 두어야 한다는 견해를 건설교통부 등에 거듭 전했다.보상문제의 실마리는 수몰민의 심정을 헤아리는 포용력에서 찾아야 풀린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최근 건설교통부가 군에 보내온 답변서를 보노라면 더욱 더 답답한 심정이다.보상협의가 잘 안되면 보상 수령액 중 부산면과 유치면 일대에 심어놓은 국화를 뽑고 미수령액은 중앙토지수용위원회의 결정으로 보상한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 시판 피자·어묵 세균 득실/21업체 적발

    ◎대공원 등선 유통기간 지난 제품도 세균이 기준치의 7배 가까이 들어 있는 피자와 대장균에 오염된 어묵 등을 만들어 온 식품업체 21곳이 적발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어린이 날을 앞두고 어린이들이 즐겨 먹는 식품과 놀이시설내 식품 판매업소의 위생상태를 점검한 결과 (주)팜그린(경기도 파주시 광탄면)의 ‘불고기피자’에서 세균이 허용기준(g당 3백만 마리)의 약 7배인 g당 2천만 마리가 검출됐다고 4일 밝혔다. 또 대양식품(전남 목포시 석현동)의 ‘부산맛땡어묵’은 대장균 검사에서 양성반응을 보였으며 바로식품(경기도 의정부시 의정부1동)의 ‘바로어묵’은 어육 함량이 30% 이상 모자란 것으로 드러났다. 놀이시설 내 판매업소 가운데 경기도 과천시 서울대공원 안에 있는 대공원식당과 서울 강북구 번동 드림랜드 내 아이스크림 1호점은 유통기한이 지난 냉면제품과 아이스크림을 보관,안전청에 의해 적발됐다.
  • 남원 어제 30.9도/기상관측이래 최고

    29일 전북 남원의 낮 기온이 4월 기온으로는 이 지역 관측이래 가장 높은 30.9도까지 치솟는 등 영·호남지역에 한여름같이 더운 날씨를 보였다. 순천 29.6도 임실 29.5도 광주 29.1도 진주 28.7도 군산 28.6도 목포·무안 28.4도 등 전국 11곳에서 관측 최고값이 경신됐다. 서울은 25.2도였다.
  • 해외사무소 3곳 내년 폐지/한은 조직개편 확정

    ◎본부 부서 축소,감원 포함 파리 브뤼셀 싱가포르 등 한은의 3개 해외사무소가 내년 말까지 폐쇄된다.그러나 목포 포항 울산 강릉 등 한국은행 국내 4개 지점의 폐쇄 방안은 백지화됐다. 한은은 지난 25일 금융통화위원회를 거쳐 이같은 내용의 조직개편안을 확정했다.16개 부서인 본부를 13개로 축소,2천800명의 인원을 2천4백여명으로 줄이기로 했다.조사 1·2부와 금융경제연구소는 조사부로 통·폐합되고 자금부는 정책기획부와 금융시장부로 분리된다.은행에 대한 최종 대부자로서의 감독업무 수행을 위해 은행부가 신설되며 기획·문서·홍보부는 기획부로,금융결제부와 국고부는 금융결제부로 각각 통합된다. 일부 신규업무 개발부서에 외국 전문가를 한시적으로 활용키로 했다.물가목표제(인플레이션 타깃)를 시행하고 있는 영국 호주 뉴질랜드 등에서 전문가를 초빙할 방침이다.
  • 주한미군:上(대한민국 50년:16)

    ◎45년 日 항복후 4만5천명 첫 진주/6·25땐 최대 32만명 파병 ‘韓國수호’/국력 신장 따라 우리방위비 분담 늘어 이땅의 주한미군 역사는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이 항복을 선언한지 25일만인 1945년 9월 8일부터 시작됐다.이날 하지중장 휘하의 제7사단이 1진으로 인천에 상륙했다.인천 내항에는 해방군으로서 입성하는 미군을 환영하는 인파로 발디딜 틈이 없었으며 부두는 온통 태극기와 성조기의 물결을 이루었다.이어 29일과 10월 8일 40사단과 16사단이 부산과 목포에 도착,38선 이남지역을 지배하는 점령군으로 주둔하기 시작했다.당시 주둔병력은 4만5천명. 이후 주한미군의 존재는 대한민국 50년사의 전개와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면서 이땅의 정치·사회·문화 등 모든 면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특히 주한미군의 철군을 둘러싼 한미간 논쟁과 갈등은 두나라 관계의 본질을 대변해줄 만큼 양국의 정치적 상황과 국민적 정서를 그대로 반영하며 전개됐다. ○닉슨 ‘괌독트린’ 2만명 철수 주한미군에 의한 군정통치는 48년 8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끝났다.그리고 한반도를 미국의 방위선에서 제외하는 애치슨라인이 설정됨에 따라 49년 5월부터 6월 사이에 군사고문단 500명만 잔류시킨뒤 철수했다.주한미군의 첫번째 철군이다.이 과정에서 당시 李承晩 대통령은 미국측에 충분한 보상과 확실한 안전보장 등을 요구했지만 결국은 점령군의 철수완료 시기만을 통보받았다. 그러나 미군은 이로부터 1년만에 한국전쟁이 발발함으로써 유엔 참전국의 일원으로 재진주해야 했고 이때 치른 대가는 컸다.전쟁기간중 가장 많을 때는 32만7천의 병력을 파견했으며 전사 3만3천여명,부상 10만3천여명 등 인명피해만도 엄청났다.하지만 종전 이후인 8월8일 한국정부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합의하고 10월1일 조인함으로써 한반도에 합법적으로 주둔할수 있게 됐다. 70년대 들면서 한미간에는 또 한차례 주한미군의 철수를 둘러싸고 신경전과 갈등이 전개됐다.70년 닉슨이 아시아에서의 미국역할의 축소를 밝히는 이른바 괌독트린을 선언함에 따라 그해 후반기부터 71년 3월에 걸쳐 7사단 병력 2만명이 철수했다.한국측은 미국의 일방적인 주한미군 감축계획은 66년한국군이 월남에 증파될때 맺은 ‘브라운 각서’의 주한미군 감축시 사전협의 약정을 위반한 것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결국 이후 열린 협의에서 미국은 한국군 현대화 5개년 계획을 지원하기 위해 약 15억달러의 군사원조및 차관을 제공하는 한편 양국간 연례안보협의회를 개최하기로 합의를 보았다.우리의 방위산업 육성과 국군현대화 등의 추진이 본격화하는 계기가 된 셈이다. 세번째 철군은 이로부터 5년이 지난 76년 7월 인도주의를 표방한 민주당대통령후보 카터가 대선공약으로 내걸면서 쟁점화됐다.당시 한국은 유신의 철권통치하에 있던 시기로 한국의 인권문제가 미국내에서 여론의 쟁점으로 부각돼있었다.미의회 프레이저소위원회 청문회가 “한반도가 적화되더라도 미국과 일본의 안전에 영향이 없는 만큼 인권탄압적인 한국으로부터 미군을 철수해야 한다”고 못박을 정도로 미국내의 반한여론은 드높았다.한국정부는 이를 내정간섭의 논리와 핵개발 위협으로 맞받아침으로써 양국관계에는 살얼음판 같은 핵긴장이고조됐다.朴正熙는 75년 6월 12일자 워싱턴포스트와의 회견에서 “한국은 핵무기를 개발할 능력을 갖고 있으나 지금은 개발하고 있지 않다.만일 미국이 핵우산을 걷어가면 한국은 핵무기를 개발하게 될 것이다”고 공개선언,미국정부를 압박했다.그런 한편으로는 ‘선보완 후철군’론을 주장하며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균형 유지책과 한국의 자체 방위력 증강조치를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카터의 철군결정은 미의회 및 군부로부터 많은 비판과 반발을 샀고 이에 카터는 싱글러브 장군을 주한 미8군 참모장에서 해임,철군 반대론에 쐐기를 박기도 했다. ○韓·美軍 역할­위상 큰 변화 아무튼 3차 철군을 둘러싼 한미간의 밀고 당기기에서 한국은 20억달러 상당의 무기 및 군사시설을 제공받고 미공군의 강화,한미 합동군사훈련 실시,한미연합사령부 설치 등의 부수적 성과를 거뒀다.또한 3천4백명의 철수가 이뤄진뒤 미국은 대북한 군사력 재평가결과에 따라 81년까지의 주한미군철수 동결조치를 발표함으로써 3차 철군계획은 사실상 백지화로 일단락됐다. 이상에서 보듯 80년 이전에 거론되거나 실행된 주한미군 철수는 철저하게 미국의 입장에서 결정된 것이며 한국의 입장이 개입될 여지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80년대 초 한국이 정치적 격변을 거치면서 주한미군 철수문제는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됐다.광주의 참극에서 행해진 주한미군의 역할문제다.주한미군은 전에 한국의 정치적 격변기 때마다 민주화를 지지하는 태도를 취하기는 했으나 결정적 역할을 하지는 못했다.61년 5·16 쿠데타때는 매그루더 사령관이 이의 저지를 시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했고 79년 12·12 쿠데타태도 위컴사령관이 신군부에 항의를 했다고는 하나 항의로 그쳤다.그러나 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에는 신군부측의 병력이동과 관련,주한미군 작전지휘권 아래 있는 부대의 이동이라는 측면에서 주한미군이 직·간접적으로 신군부를 지원 내지는 묵인했다는 비난을 샀다.그리고 이때부터 한국민들로부터‘반전반핵’‘양키 고홈’의 야유를 받으며 시위의 대상으로 몰리기에 이르렀다. 어쨌든 철군을 둘러싼 양국간 대립과 해소의 과정을 거치면서 한국군과 주한미군의 역할 및 위상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즉 한국전쟁 이후 70년대 말까지는 한반도의 안보를 미군이 주도하고 한국군이 보조하는 관계에서 80년대초 동반자관계로 격상했고 90년대 들어서는 94년 미군의 평시작전통제권 이양이 상징하듯 한국군이 주도하고 미군이 보조하는 단계로까지 발전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점점 미묘한 문제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의 문제다.한국의 경제력 신장을 반영하기도 하는 방위비 분담은 78년 한미연합사 창설이후 어김없이 제기되면서 특히 대한군사판매차관(FMS)를 졸업한 86년 이후로는 연례안보협의회의 최대 관심사로 등장했다.
  • 괌 사고 보상협상의 ‘돈 얼룩’/金慶雲 사회부 기자(오늘의 눈)

    대한항공 801편 괌 추락사고의 보상문제가 8개월이 지나도록 실마리를 풀지 못하고 있다. 대한항공측은 유가족들이 터무니 없는 보상금을 요구한다며 고개를 가로젓는 반면 유족측은 회사측이 사고 수습과정에서부터 무성의했다며 아예 협상테이블을 외면하고 있다. 업친데 덥친격으로 유족대표 3명과 회사측 대표 사이에 거금이 거래된 사실이 검찰 수사로 밝혀졌다.이들은 지난 해 10월 서울 강서구 등촌동 88체육관에 있던 합동분향소를 대한항공 연수원으로 옮기는 등의 대가로 2억5천만원을 주고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사고로 숨진 승객은 모두 229명이다.하지만 유족 가운데 2억5천만원의 보상금에 합의한 사람은 60여명 뿐이다.93년 아시아나 항공기의 목포 추락사고당시에는 두달여 만에 전격적으로 합의가 이뤄졌다. 물론 아직도 사고의 책임소재가 뚜렷하지 않아 항공사로서는 보상금을 ‘척척’ 내줄 수 없다는 점을 십분 이해한다. 그러나 대한항공측의 협상 자세가 국적 항공사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소극적이며 이기적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시간을 끌며 말을 바꾸기 일쑤였고 불리한 규정은 숨기려 했다는 것이 유족들의 주장이다. 당시 국제관례에 따른 최종 보상금은 1억2천5백만원에서 1억5천만원까지 거론됐으나 협상이 시간을 끌면서 환차손 때문에 2억원을 훌쩍 넘어버렸다.보상금은 합의 또는 판결 당시의 한율을 적용받는다. 유족들은 사고현장에서 위로금조로 받은 2천5백만원에 장례비 1천5백만원이 포함됐다는 말을 뒤늦게 들었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사고 직후 항공기사고 보상 한도액인 10만 SDR(1억2천억원 상당)이 폐지되었음에도 대한항공은 자사 보상약관의 개정을 계속 미루다 지난 2월 건설교통부의 지적을 받고 부랴부랴 바꿨다. ‘벼랑끝 협상’만을 고집하는 유족측에게도 문제가 없지 않다.“신원이 규명되지 않은 상태로 화장된 63명에 대해 별도의 책임을 지기 전까지는 협상에 응할 수 없다”는 주장은 억지에 가깝다. 현재 회사측이 제시한 보상금 2억7천5백만원은 기존 항공사고 보상액보다 50% 이상 많은 금액이다.새로운 협상대표의 원만한 합의를 기대한다.
  • 고속도 931㎞ 확충·철도 39% 복선화/건교부 업무보고 요지

    ◎미분양공단 외국·벤처기업에 싸게 임대 건설교통부가 16일 金大中 대통령에게 보고한 주요 업무 내용을 요약한다. □대형국책사업의 효율적 추진=경부고속철도 사업계획을 재검토,7월까지 구체적인 건설방안을 마련한 후 일관되게 사업을 추진한다.인천국제공항은 2000년 말 개항에 차질이 없도록 공정관리를 철저히 하며 공항운영 준비단을 구성,개항 준비를 추진한다. □교통·물류난 완화=오는 2002년까지 고속도로를 현재의 1천889㎞에서 2천820㎞로 늘리는 한편 철도 복선화율을 39%,전철화율은 46%로 확충한다.또 6대도시 지하철을 현재의 2배(262㎞에서 499㎞로)로 확충하고 시내버스 공영차고지제를 도입하는 등 대중교통시설을 지원한다. □21세기 국토비전 제시=제 3차 국토종합계획(92∼2001년)을 앞당겨 종료하고 2020년을 목표로 하는 제 4차 국토종합계획을 수립한다.경부축과 더불어 U자형의 연안개발축을 형성한다.수도권집중 문제를 해소하고 국토의 국제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지역균형발전을 도모한다. □산업용지공급=대불·북평단지 등장기 미분양 산업단지를 국가에서 할인 매입한 뒤 외국기업과 국내 벤처기업에 저렴한 가격으로 분양·임대한다.천안,광주 평동의 기존 지방산업단지 내에 외국인 전용산업단지를 조성한다. □8대 광역권 개발사업 추진=지방대도시(부산·경남권,대전·청주권,대구·포항권,광주·목포권) 또는 신산업지대(아산만권,군산·장항권,광양·진주권) 등을 주변생활권에 묶어 수도권에 대응하는 지방거점 육성을 위해 ‘8대 광역권 개발사업’을 계속 추진한다. □아산만권 배후 신시가지 개발=충남 아산시 배방면,충남 천안시 불당동일원 9백75만평에 아산만 광역권의 배후지원도시가 올해부터 2011년까지 개발된다.쾌적하고 산업,연구,업무,교육 등 다양한 기능을 갖춘 자족형 도시로 조성한다.올해 지역균형개발법에 의한 개발촉진지구로 지정하고 99년 말까지 도시개발계획 및 설계를 추진한다. □개발제한구역 제도개선=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의 합리적인 재조정 및 주민의 권익보호를 위한 방안 등을 다각적으로 검토한다.개발이익 환수나 훼손부담금 부과 등 대비책도 강구된다.주민,환경단체,전문가 등 25명으로 제도개선협의회를 구성한다.실태조사 및 토론회를 거쳐 8월까지 시안을 마련하고 공청회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한 뒤 연말까지 개선안을 확정한다.
  • 4개 부두 外資 1억弗 내외 유치/해양수산부 주요 업무계획

    ◎해변·갯벌 환경보전 등 위해 관리법 개정 해양수산부가 15일 대통령에게 보고한 주요 업무계획을 요약한다. □해양전진기지 개발=태평양 심해저광구의 망간단괴 개발 위해 정밀탐사 및 기술을 개발,2010년 상업화한다.오는 9월 남극에 한국·칠레 공동연구센터를 설치한다.러시아와 해양과학공동연구센터를 2000년 설치,초고속선 및 수중로봇 등의 핵심기술을 개발한다.남태평양 피지 및 마샬공화국과 협력을 강화,해저광물 및 수산자원개발을 추진한다. □연안관리법 제정=해변·갯벌 등의 효율적 관리와 환경보전을 위해 연안관리법을 제정한다.연안개발 및 이용을 조정·통제할 수 있는 용도지역제를 도입한다.새로 제정될 법률을 통해 연안통합관리 계획을 세운다. □수산업 구조조정=연근해 어족자원의 감소와 해외어장의 축소로 전체 어선의 26%인 3천여척(11만5천t)의 감척이 불가피하다.99년부터 2004년까지 매년 400척씩 줄여나간다.어업인 스스로 출어척수나 어업시기 등을 조정하는 자율관리제도를 시행한다.2t 미만 선박을 운영하는 영세어업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한다.연근해 어족자원 보호·육성을 위한 어획량 제한 및 어장 휴식년제를 추진한다. □외국자본 유치=부산항 감만부두 확장사업에 호주의 물류회사인 P&O포트사의 미화 1억달러 자본참여를 추진중이다.인천항 종합여객시설에 싱가포르 TIC사의 1억4천만달러,인천북항 원목부두에 미국 SSA사의 6천1백만달러,목포신외항 다목적 부두에 미국 쿠퍼&라이브랜즈사의 1억달러를 각각 유치한다. □동북아 물류중심지 구축=부산 가덕신항 및 광양항에 2011년까지 5만t급 선박접안이 가능토록 선석(船席) 48개를 건설한다.배후부지에 대규모 국제물류단지를 개발한다. □해상안전확보=내년 2월부터 해상안전을 위해 해상교통방송을 실시한다.대형 유류오염사고시 국가차원의 긴급방제 체제를 확립한다.
  • 한라펄프제지 매각/보워터社에 2억弗 받아

    한라그룹 계열사인 한라펄프제지가 미국의 제지업체에 팔린다. 10일 산업자원부에 따르면 한라펄프제지는 목포 대불공단 내의 공장을 미국 보워터사에 2억달러에 팔기로 하고 오는 13일 계약을 체결한다.보워터사는 지난 96년 17억달러의 매출을 올린 세계 36위의 제지회사이며 미국내 제2의 신문용지 공급회사. 대불공단내 12만3천평 규모의 부지위에 연산 24만t의 신문용지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는 한라펄프제지는 지난 해 3월 준공돼 7월부터 정상가동에 들어가 연말까지 6백10억원의 매출을 올렸으나 생산시설 투자 등으로 부채규모가 2천7백34억원에 이른다.자산규모는 3천20억원이다. 한편 한라펄프는 올들어 1·4분기중 5만1천t의 신문용지를 생산,2만3천t을 수출했다. 보워터사는 한라제지를 인수,생산물량중 일부를 내수시장에 팔고 나머지는 일본,동남아,인도시장에 수출할 것으로 알려졌다.
  • ‘솔잎 혹파리’ 70년만에 정복

    ◎임목육종연,내성 강한 새 품종 소나무 개발/29년 비원서 첫 발견… 배년 20㏊ 이상 피해/인공교잡 10년 연구 결실… 북에도 공급 가능 70년동안 우리나라 산림에 큰 피해를 주어 온 솔잎 혹파리가 마침내 ‘정복’됐다. 산림청 임목육종연구소는 8일 소나무의 종간 인공교잡을 통해 솔잎 혹파리 피해를 이겨내는 강력한 내충성(耐蟲性)과 일반 소나무보다 생장력이 1.5배나 좋은 소나무 교잡종(해송 전남 37호×소나무 충북3호)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실험결과 신품종 소나무는 솔잎 혹파리의 피해율이 0.1∼0.2%로 극히 미미해 나무생육에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임목육종연구소는 “신품종 소나무의 개발로 20만㏊가 넘는 소나무림의 피해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면서 “솔잎 혹파리 피해를 집중적으로 당하고 있는 북한에도 종자를 공급할 수 있게 돼 한반도 전역이 솔잎 혹파리의 피해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고 밝혔다. 산림청은 그동안 벌채,DDT BHC 등 살충제 살포,솔잎 혹파리의천적(天敵)인 먹좀벌 방사 등 솔잎혹파리의 피해 방지를 위해 갖가지 노력을 해왔으나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신품종 소나무 개발은 74년부터 80년까지 추진돼다가 성과가 없어 중단됐으나 89년부터 이 연구소 金奎植 박사를 중심으로 재개돼 10년간 연구끝에 성공하게 됐다.임목육종연구소는 이 품종을 전국적으로 보급하기 위해 종자(솔씨)를 생산할 수 있는 채종원 30㏊를 조성하고 2002년부터 10㏊의 전시림을 각 도에 1개소씩 만들 계획이다.2007년부터는 연간 1천㏊를 조림할 수 있는 종자가 생산될 전망이다. ■솔잎 혹파리란=1929년 서울 비원과 목포에서 처음 발견된 이후 전국적으로 확산돼 61년에는 최고 41만㏊까지 피해면적이 확산됐다.지난해말 현재 피해발생 면적은 20만8천㏊.솔잎혹파리는 유충상태로 땅에서 월동하다 5∼7월에 성충으로 변해 암컷 한마리가 솔잎사이에 100개 내외의 알을 낳는다.알은 5∼7일 뒤 부화되며 유충이 솔잎의 밑부분으로 파고 들어가 소나무 양분을 빨아먹는다.따라서 솔잎혹파리 피해를 당하면 솔잎이 말라죽으면서결국 소나무가 죽게 된다.임목육종연구소 관계자는 “솔잎혹파리는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주로 발생하고 있는데 일본은 60년대부터 급격하게 피해면적이 늘었다가 72년부터는 자연 감소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피해가 여전하다”고 말했다.
  • 영산강은 말없이 흐르건만(박갑천 칼럼)

    나주목(羅州牧)조의 십이영(十二詠)가운데 제8영. “붉은뱃전(舷) 검은 돛대가 파도에 가득하고/나지막한 집 마을마다 노적가리 높구나/백만섬 영산창(榮山倉)의 곡식있으니/올해는 백성들 고혈짠다는 말 하지들 마소”.뱃길따라 세곡(稅穀)을 실어 날랐던 왕조시대, 지금의 영산포언저리에 조창(漕倉)있었음을 알려준다. 본류길이 115.5㎞의 영산강.지난날에는 서해의 한사리 밀물이 나주까지 밀려들었다.영산포까지는 70년대 중반까지도 작은배들이 드나들면서 수산물거래로 박신거렸고.후백제 甄萱과 弓裔휘하의 王建이 공방전을 벌인 곳도 영산강하류 영암군 덕진포(德津浦)께였다.912년 견훤이 중국으로 보내는 교역선을 영광앞바다에서 나포한 왕건은 승리한 군대를 이끌고 나주포구로 개선하고있다. 수리시설 없는 영산강은 가뭄과 홍수에 민감하여 유역주민에게 피해를 주어왔다.黃玹의 은 1876년의 가뭄으로 굶어죽는 사람이 속출했는 가하면 그 이듬해에는 장마로해서 논밭곡식이 거의 썩어 버렸다고 써놓는다.현대로 와서는 1967년의 나주지방 가뭄이 유명하다.이해 여름 40일 동안의 강우량이 고작 37㎜였다는 것 아니던가. 이같은 가뭄과 홍수의 되풀이를 두고는 목포의 여류작가 朴花城의 작품을 떠올린다.여러 단편 가운데 ‘홍수전후’가 1934년,‘고향없는 사람들’과‘한귀(旱鬼)’가 1935년에 발표되었는데 가뭄·홍수와 영산강유역 주민들의 참상을 그리고있다.“작년 홍수때문에 쌀알 몇밖에 건져보지못한” 오삼룡이네 등 아홉집 가족이 평안남도 강서농장으로 이민하게 되는 시작이 ‘고향없는 사람들’.그곳에서 다시 귀향하기로 작정한 사흘전 오삼룡은 가장 친하게 지냈던 고향의 강판옥으로부터 긴편지를 받는다.“…하늘이 무심하여 작년에는 자네들을 몰아내고 금년에는 개벽이래로 두번도 없는 큰가뭄이 우리들을 마저 죽여 고향에서 쫓아내네그려.…”삼룡이는 이 편지를 받고 고향에 갈 생각을 버린다. 광주시에서 추진하는 영산강 개발사업이 환경영향평가의 벽에 부딪혀 있다.그 개발이 생태계를 파괴하게 돼있다는 것이 환경당국의 눈길.홍수예방을 위한 범위안에서계획을 다시 짜보라는 주문인 것으로 알려진다.개발에 따르는 파괴와 보존의 조화는 항상 어려운 대목.억겁의 역사를 안은채 오늘도 영산강은 말없이 흐른다.
  • 남부 호우·영동 대설/제주 103㎜ 비… 미시령 46㎝ 쌓여

    1일 제주 성산포에 103㎜가 넘는 비가 내리는 등 전국적으로 제법 많은 봄비가 왔다. 또 영동 산간지방에는 대설주의보가 내려진 가운데 미시령 46 대관령 28.5 한계령 27 진부령 25 태백 24㎝ 등 폭설이 쏟아졌으며 2일까지 5∼10㎝의 눈이 더 올 것으로 예상돼 눈 피해가 우려된다. 중부지방은 1일 밤 대부분 그쳤으나 제주 및 남부지방에는 2일 낮까지 간간이 비가 내려 전체적으로 제주 50∼110㎜,남부 20∼80㎜,중부 5∼30㎜ 가량의 비가 올 것으로 예상된다. 1일 하오 10시 현재 강수량은 제주 100.5 서귀포 99 남해 69완도·산청 56.5 목포 54.9 금산 53㎜ 등이며 서울에는 31.7㎜의 비가 왔다. 2일 아침기온은 서울 2도 등 영하 3도∼영상 8도,낮기온 서울 11도 등 4∼14도로 제법 쌀쌀하겠다. 한편 눈이 많이 내린 영동 산간지역 가운데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미시령 정상 6.5㎞ 구간에서 이날 상오 11시부터 차량통행이 전면 금지됐으며 진부령 대관령 등 일부 구간에서 교통이 통제됐다. 이번 비로 제주를 비롯한 대부분 해상에 폭풍주의보가 내려져연안 여객선의 운항이 전면,또는 일부 중단됐다.
  • 한나라,34개 지구당 조직책 발표

    한나라당은 30일 李漢東 대표 주재로 당무운영위원회를 열어 서울 강북갑위원장에 鄭泰允 전 신한국당위원장,강북을위원장에 全大烈 전 민주당 강북갑위원장을 임명하는 등 34개 미확정 지구당에 대한 조직책을 선정,발표했다. 한나라당은 나머지 12개 미확정 지구당중 7∼8개는 ‘4·2 재·보선’후 곧바로 확정하고 계파간 경쟁이 치열한 4∼5개 지구당은 조직책 선정을 4월 전당대회이후로 넘길 방침이다.당무운영위는 또 南平祐 의원 별세와 崔旭澈 의원의 선거법 위반 확정판결로 공석이 된 경기 수원팔달과 강원 강릉을 지구당을 사고지구당으로 의결했다. 당무운영위가 확정한 34개 지구당 조직책 명단은 다음과 같다. ◇서울(5) ▲강북갑=鄭泰允 ▲강북을=全大烈 ▲양천갑=金東洙 ▲영등포을=丁炳元 ▲강남을=金勝建 ◇부산(3) ▲북·강서을=許泰烈 ▲해운대·기장갑=孫泰仁 ▲사하갑=李正男 ◇대구(2) ▲남=鄭相泰 ▲수성갑=李源炯 ◇광주(2)▲북을=高貴男 ▲광산=金冕中 ◇대전(1) ▲중=金聖植 ◇경기(5) ▲안양동안갑=沈在哲 ▲부천원미갑=河庄輔 ▲평택갑=張基萬 ▲평택을=李慈憲 ▲오산·화성=禹浩泰 ◇강원(1) ▲삼척=陳京鐸 ◇충북(3) ▲충주=韓昌熙 ▲보은·옥천·영동=沈揆喆 ▲진천·음성=李忠範 ◇전북(5) ▲정읍=李義官 ▲진안·무주·장수=李光國 ▲임실·순창=楊大院 ▲고창=李伯龍 ▲부안=朴鍾哲 ◇전남(6) ▲목포신안갑=裵鍾德 ▲목포신안을=宣茂一 ▲순천갑=金永根 ▲순천을=趙俸勳 ▲곡성·구례=趙奉吉 ▲해남·진도=丁時采 ◇경북(1) ▲포항북=李秉錫.
  • 본사 사장에 車一錫씨/어제 정기주총서 선임

    서울신문사는 30일 상오 정기 주주총회 및 이사회를 열고 대표이사 사장에 車一錫 전 국민일보 상임고문을 선임했다. 신임 車사장은 31년 전남 목포 출신으로 미국 아델피대,뉴욕대 행정대학원을 졸업한뒤 연세대 교수를 지냈다. 63년 건설부 중앙도시계획위원회 위원으로 관계에 들어가 중앙공무원교육원 고문교수,66년부터 70년까지 서울시 제2부시장을 역임했다. 71년 재계로진출해 조선호텔 사장,관광협회 회장을 지냈고 신동아건설 사장,삼호풍산 회장,우흥산업 회장으로 재직했다. 車사장은 월간 신앙계 발행인을 시작으로 한국사회과학연구소 이사장,극동방송국 이사,국민일보 사장,국민일보 상임고문을 역임했고현재 주한 과테말라 서울명예총영사,국제언론인협회(IPI) 한국위원회 이사,아시아신문재단 한국위원회 이사,한국신문윤리위원회 이사를 맡고 있다.
  • 빨치산 토벌(대한민국 50년:13)

    ◎49년 ‘레드 킬러 작전’ 3,400여명 사살·생포/군검,지리·오대·태백산일대 주민 90% ‘적색’ 분류/48년부터 6·25휴전후까지 산악지대서 ‘소탕전투’ ‘낮에는 대한민국,밤에는 인민공화국’. 빨치산의 점령지역을 일컫는 표현이다.낮에는 군경의 치안아래 있으나 밤만 되면 빨치산의 점령구로 바뀌었다.대한민국 영토이면서도 한국의 통치권에서 벗어나 있었던 곳.48년부터 50년 사이 일부 남한지역은 이처럼 사실상‘무정부 상태’였다. 봄바람이 북풍을 녹이기 시작하던 49년 3월.1백여명의 빨치산은 전남 곡성군에서 군경과 대대적인 전투를 벌였다.경찰 사망자 수는 1백여명이고 통신도 파괴됐다.보성 화순 순천 나주 함평 구례 영광 등에서도 비슷한 전투가 잇따랐다.그해 8월 전남 화순도 더위와 피비린내로 뒤덮였다.3백여명의 빨치산은 광부들과 연합해 철로,통신시설을 차단한뒤 건물을 불태우고 경찰관을 무참히 학살했다.호남지역 빨치산 활동의 중심은 역시 험준한 산세를 갖고있는 지리산 일대. ○48년 ‘여순사건’서 촉발 경상북도도 빨치산 활동이 활발했던 지역이다.빨치산이 은신해 있던 산의 이름을 딴 ‘일월산 부대’의 지휘자는 유명한 金達三이었다.일제 또는 미제 소총으로 무장한 빨치산은 경찰서와 군부대를 습격했다.국군 1개 중대는 빨치산의 공격으로 41명이나 사망하기도 했다.경북지역 가운데 봉화 영덕 영주 등의 동북지역에서 빨치산은 발호했다. 대중과 연계해 무장투쟁을 벌이는 게릴라를 일컫는 빨치산은 48년 10월의 여순사건으로 촉발됐다.토벌 군경에 쫓겨 지리산으로 들어간 반란군들은 소규모 유격전을 벌였다.49년 6월에 접어들면서 빨치산은 더위 만큼 날뛰었다.조국전선을 결성한 북한이 게릴라를 대거 남파했기 때문이었다.북한은 게릴라 전문양성기관인 ‘강동정치학원’을 설치해 게릴라들을 훈련시킨뒤 남으로 내려보냈다.때로는 남한에서의 투쟁을 독려하고 고무하기 위해 남한내 빨치산을 북으로 불러 올려 교육시켰다.강원도지역도 38선을 넘어온 북한군이 빨치산들과 어울려 유격활동을 했지만 남쪽지역에 비해 그다지 심하지는 않았다. 빨치산의 활동은 49년 9월들어 절정에 달했다.정규군 편제인 병단을 만드는가 하면 중대 소대 분대도 편성됐다.심지어 여단으로 편성되기도 했다.무기와 탄약은 북한으로부터 보급받았으며 생활은 현지보급에 의존했다.산악을 근거지로 한 빨치산들은 이즈음해서 산을 내려온다.경찰서와 군부대를 공격하는 ‘아성(牙城)공격’이다.목포형무소에서는 폭동이 발생해 1천4백여명의 죄수 가운데 4백여명이 탈옥하는 일도 벌어졌다. 이에 따라 李承晩 정부는 대대적인 빨치산 토벌작전에 나선다.전국을 지리산,오대산,태백산 지구로 나눠 빨치산 토벌 동계 대공세를 벌였다.38선에서의 대치와 충돌 못지 않게 남한 내부의 산악지대는 ‘전장(戰場)’이었던 것이다.빨치산의 수는 1만여명.하지만 빨치산과의 전투보다 추위와 눈보라와의 싸움은 토벌을 더욱 힘들게 했다.빨치산은 지리산이나 일월산처럼 산세가 험하거나 외진 곳을 주 근거지로 삼았던 탓이다.빨치산을 추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로 당시 관계자들은 회고하고 있다.군경은 주민 가운데 90%가 공산주의자라고 의심했을 정도로 주민들은 빨치산 편으로 분류됐다는 점은 중요한 대목이다.주민들은 빨치산에 대한 정보를 군경에 제공하기를 거부했다.빨치산의 보복과 경찰에 대한 반감·증오가 얽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12월 6일 李承晩 대통령이 방송에 모습을 드러냈다.“최단시일에 공비소탕작전을 끝내고 명년 초에 후방치안문제로 유보해오던 지방자치단체의 선거및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실시한다”고 빨치산 소탕작전을 독촉하는 발언을 했다.토벌군은 마을을 불살라 유격대를 주민들과 분리시키는 ‘소진(燒盡)소개(疎開)작전’으로 빨치산의 끈질긴 저항을 진압하기 시작했다. ○이현상 체포로 “작전 끝” 정부군의 진압에 49년 겨울을 지나면서 게릴라들은 차츰 소멸돼 갔다.12월 15일 지리산에서 벌어진 빨치산 토벌작전인 ‘레드 킬러’로 1천7백여명의 빨치산이 사망했고 1천7백여명이 생포됐으며 132명이 귀순했다.이에 앞선 그해 10월 좌파에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던 남로당에 대한 등록취소령도 남한내 빨치산 활동에 조종(弔鍾)을 울리는데 일조를 했다.50년 봄으로 접어들면서 빨치산의 활동은 잠잠해졌다.마치 6월의 한국전쟁을 앞둔 폭풍전야의 고요함이었다. 빨치산 토벌작전은 한국전쟁이 끝난후까지도 여전히 계속됐다.53년 5월17일 빨치산 소탕 작전사령부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틀림없이지리산 벽점골 비트에 잠복중입니다”.작전과장의 설명에 장교들은 침을 삼켰다.남한내 빨치산의 총지휘자이자 충청 경상 전라도를 넘나들며 경찰서와 관공서를 습격했던 남부군단 사령관 李鉉相.종적을 감춘지 3년만에 그의 은신처를 알아낸 것이다.여순사건의 지휘자였던 金智會 등을 체포해서 밝혀낸 쾌거였다. 치밀한 작전계획 아래 포위망을 좁힌 것은 그로부터 5개월뒤.李鉉相을 체포하기 위해 동원된 병력은 4개 연대였다.9월 18일의 새벽바람을 가르며 1연대는 운봉을 출발해 남원군 산내면을 경유해 반성리에 포진했으며 3연대는 노고단을 경유에 반야봉으로,5연대는 함양을 경유해 백무동 능선을 압박해 나갔다. 2연대는 돌격대 역할을 맡았다.바스락 소리에 돌격대는 숨을 멈췄고 수십미터 앞에는 잡초를 헤치는움직임이 포착됐다.빨치산 3명이 조금씩 움직였고 거리가 5m 앞으로 좁혀졌을때 돌격대의 총구가 불을 뿜었다.숨진 빨치산가운데 한명이 李鉉相.이로써 기나긴 3년동안의 빨치산과의 전쟁은 끝났다.당시 李承晩 대통령이 완전히 성공을 거둔 유일한 것이 빨치산 토벌이었다. ◎약간의 마을 파괴” 미 반공시각 파악/일부 국내학자들 “지금이라도 진산규명” 주장/“민족사 정립 차원 특별법 제정해야” 빨치산은 한국전쟁과 마찬가지로 아직도 깊은 상처를 남기고 있다.빨치산진압작전은 ‘모조리 죽이고,모조리 태우고,모조리 빼앗는(殺光,燒光,槍光)’다는 ‘삼광(三光)작전’.일본군이 만주 및 한만 국경지역에서 조선과 중국의 항일 게릴라들을 토벌할 때 사용하던 전술이었다. 일부 마을에서는 게릴라가 아닌 민간인을 대량으로 죽여 물의를 빚기도 했다.군경의 초토화 정책에 따른 것이다.49년 경남 하동과 경북 문경에서는 국군이 마을사람 수백명을 모아놓고 집단적으로 살해했다는 것이다.국회에서도 “민중들의 삶의 근거지를 빼앗고 좌익으로 몰고 있다”는 비난이 제기됐다.李靑天 국방위원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진상조사단까지 구성돼 현지 조사활동을 벌였으나 ‘빨갱이 소탕’이라는 지상명제에 밀렸다. 당시 주한미대사관의 드럼라이트 영사가 본국에 타전한 보고서는 “별로눈에 띠지 않는 약간의 마을 파괴가 있었다”고 기술하고 있다.드럼라이트영사의 보고서는 다분히 반공논리에 의해 작성된 측면이 많다.“공산주의의 위협에 대한 유일한 대답은 비공산주의자 청년들을 가려 뽑아 그들을 좌익과 같이 견고하고 무자비한 행동에 맞설 수 있도록 조직화해야 한다”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40여년이 흐른 지금 일부 학자들 사이에는 이제라도 진상규명을 벌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특별법을 제정해 ‘민족사 정립을 위한진실규명 국민위원회’같은 기구를 설치하자는 것이다.제주 4·3사건의 피해자·유가족 명예회복을 위해 국회가 요즘들어 진상규명특별위원회를 구성키로 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4·3사건과 빨치산은 아직도 우리의 가슴에 응어리져 50년동안 슬픔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 검사장급 14명 프로필

    ◎김수장 부산지검장/검찰내 대전고 인맥의 맏형 시원스런 외모에 호남형으로 검찰내 대전고 인맥의 ‘맏형’.대검 중수부 1과장으로 재직하던 88년 ‘5공 비리’수사 때 장세동 전 안기부장을 구속했다.일처리가 깔끔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충남 대덕(53·사시8회) ▲서울대 법대 ▲서울지검 특수2부장 ▲서울지검 의정부지청장 ▲법무부 보호·교정국장 ◎강신욱 대구지검장/‘우지라면’ 등 대형사건 많아 맡아 호리호리한 외모에 과묵하고 강직하다는 평.‘우지라면 사건’‘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등 사회적으로 이목을 끈 사건을 많이 맡았다.전주지검장재직 때 관내 토착 폭력조직을 소탕,민생치안에 기여했다.▲경북 영주(54·사시9회) ▲대검 중수2과장 ▲서울지검 특수2부장 ▲대구고검 차장 ▲사법연수원부원장 ▲청주·전주지검장 ◎이재신 수원지검장/사회봉사 명령제 정착에 기여 업무 장악력과 추진력이 높다는 평.광주지검장 재직 때 관내 대학 신입생에게 건전한 학생운동을 호소하는 소책자를 만들어 배포했다.법무부 보호국장 때는 성인범에 대한 보호관찰제와 사회봉사명령제 정착에 기여했다.▲전북 정읍(55·사시8회) ▲서울대 법대 ▲서울지검 총무부장 ▲부산지검 1차장 ▲제주지검장 ▲법무부 보호국장 ▲광주지검장 ◎전용태 인천지검장/선후배 신망 두터운 크리스찬 조용하고 온화한 성품으로 선후배 검사들의 신망이 두텁다.만나는 사람마다 성경책을 건네주며 종교를 갖도록 권유할 정도로 독실한 크리스천.67년행시 4회에도 합격했다.▲충남 당진(58·사시8회) ▲서울대 법대 ▲서울지검형사4부장 ▲춘천지검 차장 ▲대공판송무부장 ▲춘천·청주지검장 ◎주선회 청주검사장/맥 짚는 감각 탁월한 공안통 수재형으로 맥을 집는 감각이 탁월한 공안통.한총련을 사실상 와해시키고민주이념 연구소의 운영을 본궤도에 올려 놓았다.영화 및 미술을 보는 안목이 수준급.등산 애호가로 부인 이정은씨(46)와 2남.▲경남 마산(50) ▲마산상고·고려대 법대 ▲사시 10회 ▲대검 공안과장 ▲서울지검 3차장 ▲울산지청장 ▲대검 감찰·공안부장. ◎유재성 광주지검장/소탈한 성격 누구에도 친근감소탈하고 서글서글한 성격으로 누구에게나 친근감을 준다.중수부 1과장기획과장 등 대검의 요직을 두루 역임했다.창원지검장 시절 낙동강 살리기운동에 앞장서 환경보호 자원봉사 협의회를 발족시켰다.부인 최정선씨(52)와 2남.▲전북 김제(57) ▲경기고·서울대 법대 ▲사시8회 ▲창원지검장 ▲법무부 교정국장 ▲수원지검장. ◎송인준 대전지검장/후배 편안하게 해주는 ‘보스형’ 온화한 성품으로 후배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선이 굵은 보스형.벌금 징수집행률을 대폭 높이고 검찰의 대 국민친절운동에도 앞장섰다.‘바람과 나무’라는 시집을 낸 시인으로 부인 오영순씨(49)와 사이에 1남3녀.▲충남 대덕(54) ▲대전고 서울법대 ▲사시10회 ▲법무부 검찰3과장 ▲서울지검 서부지청 차장검사 ▲서울지검 북부지청장 ▲대검 강력부장 ◎박주환 울산지검장/서민적 풍모의 ‘외유내강형’ 서민적 풍모에 소탈한 성격의 외유내강형.제주지검장으로 있으면서 검사나 직원들이 현지 민원인 안내나 조사 때 의사소통을 원활히 하도록 ‘친숙한 제주방언’이라는 책자를만들어 큰 호평을 받았다.부인 한성림씨(52)사이에 2남1녀.▲경남 창녕(55) ▲경북고·서울법대 ▲사시10회 ▲전주지검 차장검사 ▲서울지검 남부지청장 ▲제주지검장 ▲대검 형사부장 ◎신승남 법무부 검찰국장/인정 많지만 일처리는 매서워 합리적 성격에 인정도 많으나 일처리는 매섭다는 평.93년 재산공개 때 상속 재산이 많다는 이유로 검사장 승진에서 탈락하는 불운을 겪었다.후배 검사들과 불어 공부를 함께 할 정도로 학구파다.부인 조현숙씨(51)와 사이에 1남2녀.▲전남 영암(58) ▲목포고·서울대 ▲사시9회 ▲서울지검 3차장검사 ▲광주고검 차장 ▲법무부 법무실장 ▲법무부 기획관리실장 ▲전주지검장 ◎진형구 대검 공안부장/머리회전 빠르고 정세분석 탁월 머리 회전이 뛰어나고 정세분석이 탁월한 기획통.서울지검 2차장 때 상무대 비리사건,탁명환 피살사건 등을 무난하게 처리,능력을 인정받았다.동기들에 비해 인사에서 다소 손해를 봤으나 이번에 보상받았다는 평.최영옥씨(50)사이에 1남2녀.▲경기 광주(53) ▲경복고·서울공대 ▲사시11회▲전주지검 차장검사 ▲서울지검 서부지청장 ▲대검 공판송무부장 ▲대검 감찰부장 ◎이명재 대검 중수부장/기획력 뛰어난 특수수사통 부드러운 인상에 말을 아끼는 특수수사통.대검 연구관을 4년이나 했을 정도로 기획력도 탁월하다.김기춘 전 장관으로부터 ‘당대 최고의 검사’라는칭찬을 받았다.한양전문대 교수인 유근향씨(53)와 사이에 2남1녀.▲경북 영주(55) ▲경북고 서울법대 ▲사시11회 ▲대검 중수2·3과장 ▲서울지검 특수1부장 ▲서울지검 서부지청장 ▲사법연수원 부원장 ◎박순용 서울지검장/검찰·법무부 요직 두루 거쳐 소탈한 성품으로 특수·공안부와 검찰국 등 검찰과 법무부의 요직을 두루거쳤다.김대중 대통령 비자금 사건을 무난히 처리,업무 능력을 인정받았다.한국형사정책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등 사법발전에도 관심이 깊다.부인 김혜정씨(52)와 사이에 2남.▲경북 선산(53세) ▲경북고 서울 법대 ▲사시8회 ▲서울지검 서부지청장 ▲대검 공판송무부장 ▲법무부 교정·검찰국장 ▲대검 중수부장 ◎최병국 전주지검장/총선·한총련사태 무난히 처리 공안통으로 후배들에게 엄하나 뒤끝이 없다.4·11 총선과 한총련 사태 등을 무난히 처리했다.특수부 경험이 없는데도 울산지청장 때 인지사건 1위를 기록했다.유명산 대부분을 올라본 등산광으로 부인 한명숙씨(52)와 사이에 1남2녀.▲경남 울산(56) ▲부산고·서울법대 ▲사시9회 ▲울산지청장 ▲서울지검1차장 ▲법무부 기획관리실장 ▲대검 공안부장 ◎제갈융우 춘천지검장/합리적 성격… 따르는 후배 많아 합리성과 추진력을 갖췄으면서도 선이 굵다는 평.다정다감한 면도 있어 따르는 후배들이 많다.김영삼 정권 때 동기들에 비해 빛을 못보다 이번에 제자리를 찾았다.부인 지정현씨(50)와 사이에 3남1녀.▲대구(53) ▲경북고·서울법대 ▲사시11회 ▲법무부 검찰2과장 ▲수원지검 특수부장 ▲대검 공안기획담당관 ▲인천지검 부천지청장 ▲대구고검 차장
  • 서열 중시 실무형 전진 배치/검사장 승진·전보 안팎

    ◎‘안정속 변화 추구’ 검찰 개혁 의지 엿보여 19일 단행된 검사장 승진 및 전보인사도 고검장 인사때와 마찬가지로 서열을 중시하면서 실무형을 전진 배치한 점이 특징이다.또 안정속에 변화를 추구,검찰을 개혁하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박상천 법무장관이 지난 3일 취임사에서 밝힌대로 학연과 지연에 얽매이지 않고‘인재 풀’을 적극 활용한 점도 평가받을만 하다. 검찰국장에는 목포고를 나온 신승남 전주지검장을 앉혀 박장관을 최측근에서 보좌토록 했다.신국장은 동기들에 비해 검사장 승진이 2년 늦었지만 검찰국장에 발탁됨으로써 선두로 뛰어 올랐다. 서울지검장은 막판까지 경합을 벌였던 경기고 출신의 최경원 전 검찰국장이 법무차관으로 승진함에 따라 경북고 출신인 박순용 대검중수부장이 비교적 순탄하게 입성했다.둘 다 사시8회다. 이번 인사의 하이라이트는 공안 경험이 없는 진형구 대검감찰부장의 공안부장 발탁이다.그동안 얼룩졌던 과거를 청산하고 공안의 순수기능을 회복,환골탈태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또 대검중수부장에 이명재 대검총무부장을 전격 발탁한 것은 그의 수사능력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TK 출신이면서도 처신이 신중해 수뇌부의 눈에 든 것으로 보인다. 진부장과 이부장은 사시 11회 동기로 정권교체 뒤 국가사정과공안을 사실상 진두 지휘하는 쌍두마차를 형성하게 됐다. 고검장 승진에서 탈락한 안강민 서울지검장(사시8회)은 대검형사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대검 참모 가운데 가장 여유있는 자리라는 점을 배려했다는 후문이다.
  • 검·경 고위급 인사 지각변동/오늘 고검장 인사 ‘MK’득세 예상

    ◎PK·TK출신 경찰간부 7명 사퇴 검찰과 경찰 국가안전기획부 등 사정기관의 인사 회오리가 거세게 일고 있다. 특히 이들 기관의 핵심 요직에 호남 출신 인사들이 대거 중용되거나 중용될 예정이어서 그동안의 인사 판도를 크게 바꿔놓고 있다. 16일 단행될 고검장급 인사와 이어 단행될 지검장 인사에서도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검찰인사는 통상 차관급인 고·지검장 인사를 함께 하는 것이 관례인데 고검장과 지검장을 나눠 단계적으로 실시할 예정이어서 그 의도에촉각이 모아지고 있다. 법무부와 검찰관계자들은 검찰수뇌부를 인위적으로 물갈이 하는 대신 고검장 승진 및 전보인사를 하면서 승진 대상자들을 탈락시켜 자연스럽게 사퇴를 유도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다. 현재까지 주광일 서울고검장(55·사시5회) 공영규 부산고검장(57·사시6회) 등 고검장 2명과 감사위원에 내정된 김병학 대전지검장(56·사시6회) 등 3명이 사표를 제출했지만 고검장 인사를 단행하면 사표를 제출하는 간부가 더 나올 가능성이 크다. 검찰 주변에서는 그동안 학연과지연으로 영광을 누렸던 K고,TK,PK출신보다는 목포 광주를 일컫는 ‘MK’ 출신들의 ‘득세’를 점치고 있다. 검찰의 인사 대상자는 법무차관 대검차장을 포함,전국의 고·지검장급 40명이다. 지난 13일 단행된 경찰인사에서는 구홍일 경찰청차장 이필우 서울경찰청장 조성빈 해양경찰청장 황활웅 부산지방경찰청장 등 치안감 이상 경찰 고위간부 7명이 한꺼번에 물러났다.특히 4명의 치안정감 가운데 경찰대학장으로 있다가 승진한 김세옥 경찰청장만 빼고 모두 옷을 벗었다. 이번에 물러난 경찰간부들은 지난 정권에서 인사특혜를 받은 것으로 지목된 PK·TK출신이 대부분이다. 이에 앞서 국가안전기획부도 지난 7일 박일룡 이병기 전차장 등 차관급 7명의 사표를 모두 수리하고,1급 이하 인사와 조직에 대한 개혁 작업을 가속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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