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구작 「유자소전」(이달의 소설)
◎범속한 삶속에 용해된 유가사상
언어를 사용한다거니,언어를 쓴다거니 하는 말은 이문구의 언어표현방식을 얘기할때 적절하지 못하다.이문구는 언어를 부린다.그의 소설은 쓰여진 말들의 집결체가 아니라 부려진 말들의 곳간이다.그의 언어는 드넓은 목초지대에 부려진 마소와 같아서 힘입고 자유로우며 생동한다.이문구는 생명체로서의 언어를 부린다.숨을 쉬는 언어이기 때문에 그의 언어는 많은 선율을 지니고 있다.선율을 타면서 비로소 그의 언어는 언어의 몸체를 얻는다.그는 대상을 서술할때 이미지로서라기 보다 음조와 가락을 머금고 있는 수많은 소리의 형식으로서 상상하는 드문 작가이다.그 소설 문체의 음악성은 말(언)과 글(문)사이의 구별이나 대립을 무화한다.이문구 문체의 탁월함은 말/글의 대립을 넘어선다는 데에 있다.말/글의 대립을 넘어선다는 것은 도식적으로 말해 감성/지성,표현체/지시체 사이의 대립을,결국 주정주의/리얼리즘의 대립을 넘어선다는 것을 뜻한다.주관/객관의 대립을 훌쩍 넘어선다는 점에 이문구 문체가 품는 세계관이깃들여 있다.그가 「전」의 형식에 깊은 관심을 쏟는 것도 그의 이러한 문체적 세계관과 관련이 깊다.왜냐하면 「전」형식은 역사와 인물의 양면을 아우르는 형식이기 때문이다.짧게 말해 「전」은 수가적 한자문화권에서 고유하게 발전되어온 한 인물의 일대기이면서 수사적 기록이다.「전」은 개인성과 역사성을 함께 추구하는,달리 말해 1인칭 시선과 3인칭 시선을 함께 아우르는 유가적 역사 서술의 독특한 방편이 된다.「유자소전」은 이러한 「전」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다.이문구는 오랫동안 「전」의 형식에 골몰해온 작가이다.「우리동네」연작이 그렇고 「관촌수필」도 「전」의 성격이 짙다.이번에 출간된 「유자소전」도 그러한 기왕의 작업선상에 있다.그러나 이문구의 「전」형식과 전통적 「전」과의 차이는 그가 유교적 가치관이 지닌 소중한 부분을 이어받으면서도 그 유교적 세계관의 허구성을 비판한다는 점이다.그 비판은 대개 청승떨기와 능청떨기를 통해 이루어진다.한 예를 보자.
『한번은 내가 짐짓 해보는 말로,「대관절 그 개갈 안난다는말이 무슨 뜻이라나?」,유자더러 물었더니 유자 대답하여 가로되,「아,그 개갈 안난다는 말처럼 개갈 안나는 말이 워디 있간 됩세 나버러 개갈 안나게 묻느다나」/하고 사뭇 퉁명을 부리는데 그러는 그의 표정을 읽으니 말이 난 제제에 아예 어원까지 캐서 적실하게 밝혀줄 수만 있다면 작히나 좋을까만 허나 말인즉 원체가 「개갈 안나는」말인지라 당최 종잡을 수가 없어서 유감이라는 내색이 역력하였다』
인용문에서 「…말하기를」이라고 쓰지 않고 「…가로되」를 쓴 것은 경전에서 흔히 쓰인 「왈」(왈)의 직역을 의식한 것인데 이는 예를 존승하는 의식의 발로이다.그러나 그러한 의례적 존칭투는 「개갈 안 난다」라는 비속적 관형어투에 의해 감싸인다.그 감싸임에 의해 즉 「가로되」는 「개갈 안 난다」라는 세속어투의 감싸임에 의해 「가로되」의 쓰임새가 더불어 세속화된다.이문구의 소설에서 유림적 의식은 이처럼 민중적 범속성에 의해 늘 감싸인다.그 민중적 범속성물 가운데 그가 유별나게 자주 사용하는 것은 능청떨기이다.「개갈 안 난다」는말의 말꼬리를 잡고 능청을 떠는 동안 그 능청이 유가적 의식을 녹이면서 감싸안는 것이다.그래서 이문구의 소설에서 유가의식은 돌올하게 솟아서 권력을 행세하는 것이 아니라 민중들의 세속적 삶 속에 스며든 채로 멀리 퍼진다.범속한 삶 속에 용해된 「민중화한 유가의식」은 그러므로 그 자체로써 이문구 문학의 주요한 한 주제를 이루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