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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재 화재 ‘꼼짝마라’

    서울 동작구 ‘용양봉저정’에는 조선 정조 임금이 수원에 있는 아버지 장조(사도세자)의 묘를 찾을 때마다 들러 한강을 보면서 쉬어 갔다는 얘기가 전해 내려온다. 목조건물인 이곳에 갑자기 방화로 인한 화재가 발생했다. 자동불꽃감지기에 화재가 감지되자 119자동속보장치를 통해 119에 신고가 이뤄졌다. 문화재관리인이 신속히 초기 진압을 시도하고, 곧이어 출동한 119 진압대원들이 소방차와 각종 장비를 동원해 본격적인 화재 진압에 나섰다. 화재는 5분여 만에 진화됐고 다행히 큰 피해는 없었다. 동작구가 숭례문 방화사건 2년을 맞이해 지난 13일 실시한 모의 훈련 장면이다. 구는 문화재 보호에 대한 경각심을 되새기고 문화재 침입 및 화재에 대한 실전 대응능력을 키우기 위해 지난해 2월부터 모의훈련을 실시해 왔다. 이날 훈련에는 구청, 동작경찰서, 동작소방서 등에서 관계자 50여명이 참석해 실제 방화를 가상한 소방훈련을 실시하고, 문화재를 훼손하는 침입자에 대한 대처방법을 배우는 프로그램도 진행됐다. 훈련에 참여한 문화재 관리인 김창현(61)씨는 20일 “실제 훈련을 해보니까 이론으로만 교육받았을 때보다 더 실감나고, 많은 것을 배우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구는 문화재 관리인 4명을 별도 고용해 용양봉저정을 1일 4교대 24시간 경비하고 있으며 적외선 감지센서, 폐쇄회로(CC)TV, 경광등 및 자동불꽃탐지기 등을 설치해 다각적인 문화재 안전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해빙기를 맞아 이달 말까지는 지역내 서울시 지정 유형문화재 8곳에 대한 안전점검을 실시해 위험요인을 사전 정비할 계획이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부적에 대한 믿음 어디서 왔을까

    부적에 대한 믿음 어디서 왔을까

    1997년 경복궁 경회루 연못을 준설하던 공사팀은 연못 깊숙한 곳에서 꿈틀거리며 승천하는 모습의 청동용을 발견했다. 궁궐 대부분이 불에 약한 목조건물이라 우리 조상들은 화재를 막고자 하는 마음으로 불을 다스리는 동물의 상징인 용을 조각해 넣었던 것이다. 기원전 2000~3000년 신석기 시대에 우리 조상들은 동물들이 화살이나 작살에 맞은 모습을 바위에 새겨 넣었다. 사냥 성공을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모두 부적(符籍)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부적은 동양권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기원전 8세기 고대 이스라엘을 다스렸던 솔로몬 왕은 각종 부적과 마법의 주문을 책으로 남기게 했다. 16세기에 살았던 프랑스 앙리2세의 아내 카트린 드 메디시스는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부적을 만들었다고 한다. 도대체 부적이란 어떤 것이기에 아득히 오랜 옛날부터,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널리 퍼져 있던 것일까. 과학과 이성이 기상을 드높이고 있는 21세기에 초자연적인 힘을 지닌 것으로 여겨지는 부적을 찾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은 어떠한 연유에서일까. 부적에 대한 믿음은 어느 문화권에서나 찾아볼 수 있지만 그 효험을 입증할 만한 과학적 근거는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경험과 증언은 부적을 여전히 유효하게 만든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불안함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EBS가 ‘다큐프라임’ 시간에 3부작 다큐멘터리 ‘부적’을 준비했다. 5일부터 사흘 동안 오후 9시50분에 방송된다. 인류의 가장 오랜 믿음 가운데 하나인 부적의 기원과 역사를 짚어보는 한편, 여러가지 실험을 통해 부적에 얽힌 현대인의 불안한 심리를 들여다본다. 이집트에서 경찰의 단속을 피해 부적을 만드는 주술사를 만나보고, 부적의 나라 일본에서 부적과 관련된 도야도야 축제, 도조신 축제 등 다양한 축제를 찾아가는 등 세계 각국의 부적에 대한 현장 취재가 돋보인다. 문신 부적이 발달한 태국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기록과 성적으로 승부를 걸지만 징크스에 민감하고 행운의 마스코트나 부적을 믿는 스포츠 선수들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월드 뉴스라인] 中 허베이 고성 남문 폭죽에 전소

    주민들의 폭죽놀이 불씨 때문에 중국 허베이(河北)성 스자좡(石家庄)시 정딩(正定)현 고성의 남문이 화재로 전소됐다. 18일 오후 8시19분 발생한 화재는 4시간 동안 지속됐으며 2층 목조건물을 모두 태웠다고 반관영 통신인 중국신문사가 19일 보도했다. 정딩 고성은 베이징, 바오딩(保定)의 고성과 함께 ‘북방 3대 고성’으로 불리며 동진(東晋·317~420)시대에 처음으로 건축됐다. 불에 탄 남문은 2001년 400만위안(약 6억 8000만원)을 들여 원형대로 복원됐으나 결국 9년만에 다시 잿더미로 변했다.
  • [호암 이병철 탄생 100주년] “富기운 받자” 하루 수백명 생가 찾아

    [호암 이병철 탄생 100주년] “富기운 받자” 하루 수백명 생가 찾아

    경남 의령군 정곡면 중교리 723에 있는 호암 생가는 일년 내내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진다. 생가는 산과 바위벽을 뒷·옆담으로 삼고, 앞에는 멀리 남강이 흐르고 있다. 풍수지리를 잘 모르는 사람이 봐도 명당임을 느끼게 한다. ●산의 기 혈(穴)닿고 강은 역수(逆水) 이뤄 이무형(58) 생가관리소장은 7일 “전국에서 찾아오는 방문객 가운데 특히 자영업 등 개인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세계적인 기업 삼성을 일으킨 부자기운을 받아 사업이 번창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많이 방문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생가 방문객이 평일에는 200~300명, 주말과 공휴일에는 1000여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지난 3일에는 전국 우수 대학생들 가운데 선발된 호암캠프 전국대학생대표단 110명이 호암생가를 찾기도 했다. 1997년 개방한 뒤 지금까지 17만여명이 생가를 방문했다. 부부가 함께 생가를 방문한 이철우(55·부산)씨는 “생가 자리와 주변 형세가 모든 것을 안을 수 있는 좋은 터로 보인다.”고 말했다. 생가 동쪽에 자연 바위로 된 담벽은 방문객마다 부자기운을 받으려고 손으로 만지고 문질러 반들반들 빛이 난다. 개인 사업을 하는 박모(48·대구)씨는 “올 한해도 사업이 잘 됐으면 하는 생각에서 호암 생가를 찾아왔다.”며 한참동안 바위벽에 기대 서 있었다. 호암 생가는 전통 한옥 양식으로 안채·사랑채·대문채·광 등으로 이뤄져 있다. 안채와 사랑채 방향은 남서향이다. 1851년 호암의 할아버지가 지은 안채가 가장 오래됐다. 생가는 그동안 몇 차례 증·개축을 거쳐 2007년 11월19일 재개방됐다. 호암은 이 생가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 호암 생가를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에 호암의 둘째·셋째 할아버지 집이 자리잡고 있다. 생가는 곡식을 쌓아놓은 모습의 노적봉처럼 생긴 주변 산의 기(氣)가 산자락 끝에 위치한 생가에서 혈(穴)이 돼 맺혀 있다. 또 앞쪽 멀리 남강도 물이 빨리 흘러가지 않고 생가를 돌아보며 천천히 흐르는 역수(逆水)를 이루어 명당중의 명당으로 꼽는다. ●4층 목조 삼성상회 기업인 많이 찾아 “부자 기운을 받으러 왔습니다.” 이날 오후 2시쯤 대구시 중구 인교동 옛 삼성상회 터에 중년신사 10여명이 찾았다. 이들은 벽에 걸린 삼성상회 예전 모습을 담은 흑백 사진과 당시 건물을 떠받치던 6개의 기둥을 둘러보며 이렇게 작은 곳이 삼성그룹의 모태라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호암은 28세 때인 1938년 3월1일 660㎡ 남짓한 공간에 4층짜리 목조건물을 지었다. 삼성상회라는 간판을 걸고 무역, 제분, 제면업을 시작했다. 전화기 1대와 국수기계, 그리고 직원 40명이 전부였다. 1년 만에 호암은 ‘별표국수’로 성공하고 이어 조선양조를 인수, 대구에서 손꼽히는 사업가 반열에 올라서게 된다. ‘별표’는 별을 의미하는 ‘삼성’에서 따온 상표이다. 의령·대구 한찬규·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대구 삼성상회 터 관광객 북적

    삼성그룹의 모태가 된 대구시 중구 인교동 삼성상회 터가 관광객들로 문전성시다. 이곳은 삼성 창업자인 고 호암 이병철 회장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대구시와 대구상공회의소가 현재 기념공간을 조성하고 있다. 인근에서 기계공구 유통 전문기업을 운영하는 최영수(63) 사장은 “사람들이 찾아와 사진도 찍고 구경도 한다.”면서 “성공한 기업인이 처음 사업을 시작한 곳이라 그런지 부자의 기운을 받으려고 왔다고 얘기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이 가운데 일본인 관광객도 많다. 외국에서 삼성이 더 큰 회사로 평가받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삼성상회’ 간판이 붙어 있었던 지하 1층, 지상 4층의 옛 목조건물은 1997년 도시계획에 따라 철거되면서 제 모습을 잃었다. 삼성 측이 보존 목적으로 조성한 대리석 기념 벽과 삼성상회의 옛 모습 사진, 그리고 과거에 팔았던 별표 국수 상표 등을 통해 당시의 풍경을 짐작해 볼 수 있을 뿐이다. 이곳을 관리하는 삼성물산 김종수(46) 과장은 ”옛 삼성상회 건물의 주요 부분은 용인에, 외벽은 대구에 있는 창고에 보관 중“이라고 말했다. 공구거리를 지나 삼성상회 터에서 250여m 안쪽으로 가면 호암이 살았던 집(인교동 164의 8)이 있다. 이 집은 3남인 이건희 삼성그룹 전 회장이 1942년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호암은 부인, 자녀들과 함께 250㎡의 방 7개짜리인 이 한옥에서 생활했다. 이건희 전 회장은 1947년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이사하기 전까지 6년여간 이곳에서 지낸 것으로 전해진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대구 삼성상회터 관광객 북적

    삼성그룹의 모태가 된 대구시 중구 인교동 삼성상회 터가 관광객들로 문전성시다. 이곳은 삼성 창업자인 고 호암 이병철 회장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대구시와 대구상공회의소가 현재 기념공간을 조성하고 있다. 인근에서 기계공구 유통 전문기업을 운영하는 최영수(63) 사장은 “사람들이 찾아와 사진도 찍고 구경도 한다.”면서 “성공한 기업인이 처음 사업을 시작한 곳이라 그런지 부자의 기운을 받으려고 왔다고 얘기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이 가운데 일본인 관광객도 많다. 외국에서 삼성이 더 큰 회사로 평가받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삼성상회’ 간판이 붙어 있었던 지하 1층, 지상 4층의 옛 목조건물은 1997년 도시계획에 따라 철거되면서 제 모습을 잃었다. 삼성 측이 보존 목적으로 조성한 대리석 기념 벽과 삼성상회의 옛 모습 사진, 그리고 과거에 팔았던 별표 국수 상표 등을 통해 당시의 풍경을 짐작해 볼 수 있을 뿐이다. 이곳을 관리하는 삼성물산 김종수(46) 과장은 ”옛 삼성상회 건물의 주요 부분은 용인에, 외벽은 대구에 있는 창고에 보관 중“이라고 말했다. 공구거리를 지나 삼성상회 터에서 250여m 안쪽으로 가면 호암이 살았던 집(인교동 164의 8)이 있다. 이 집은 3남인 이건희 삼성그룹 전 회장이 1942년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호암은 부인, 자녀들과 함께 250㎡의 방 7개짜리인 이 한옥에서 생활했다. 이건희 전 회장은 1947년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이사하기 전까지 6년여간 이곳에서 지낸 것으로 전해진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막걸리 화려한 부활] 45시간 배양·32개 체크…“80년 맛의 비결”

    [막걸리 화려한 부활] 45시간 배양·32개 체크…“80년 맛의 비결”

    충북 진천 덕산면의 낡은 단층 목조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시큼달큼한 술 냄새가 진동한다. 최대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정신이 아득해진다. 1929년에 설립돼 80년째 전통기법으로 술을 빚는 술도가 ‘세왕주조’. 1998년에 가업을 물려받은 이규행(48) 사장은 3대째 양조장을 지키고 있다. 백두산 전나무를 가져다 지은 양조장은 장인의 술맛을 지키는 ‘살아 숨쉬는 공장’이다. 문을 서향으로 내 바람이 잘 통하고 집 앞에 심은 측백나무는 열기를 막아 한여름에도 건물을 시원하게 해준다. 봄부터 가을까지 측백나무에서 나오는 진액은 바람을 타고 건물 표면에 달라붙어 자외선과 해충을 막아 주는 천연코팅제 역할까지 해 준다. 세왕주조에서 생산하는 ‘덕산 막걸리’는 한결같은 맛 덕분에 내로라하는 주당들도 최고로 친다. 이 사장은 “원료의 신선도, 고두밥의 수분함량과 찌는 온도, 종균실 습도, 누룩의 양 등 32개 항목의 체크리스트가 80년째 똑같은 술맛을 유지시켜 주는 요인”이라고 귀띔했다. ●양조장은 백두산 전나무로 지어 2대 사장인 아버지 재철(80)씨의 깐깐한 입맛도 큰 역할을 한다. 은퇴한 재철씨는 매일 점심과 저녁에 양조장에서 갓 만든 막걸리를 한 잔씩 곁들인다. 평소에는 아무 말이 없다가 술맛이 달라지면 아들(이규행 사장)에게 “맛이 이상하다.”며 한마디 한다고 한다. 규행씨는 “아버지 말씀을 들으면 즉시 비상회의에 들어가는데 제조공정을 하나씩 되짚어 가다 보면 문제점이 꼭 발견된다.”면서 “술맛 구별은 나도 자신하는데 아버지의 입맛은 도저히 당해낼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직접 빚는 술을 사람에 비유하곤 한다. 그는 “엄마 뱃속에서 아홉달 열흘을 있어야 건강하게 태어나는 아기처럼 막걸리도 적당히 발효를 시켜야 좋은 맛을 낸다.”고 설명했다. 인공적으로 빨리 생산한 막걸리는 마시면 뱃속에 가스가 차고 트림이 자꾸 나온다는 것이다. 발효를 너무 오래 시킨 막걸리는 유통 중에 쉬거나 맛이 쉽게 변하기도 한다. 막걸리를 발효시키는 미생물인 백국균을 45시간 배양하고 5일에 걸쳐 생산하는 덕산막걸리는 깔끔하고 뒤끝이 없다. 이 사장은 “호빵, 술떡을 만들 때 덕산막걸리를 넣어야 발효가 알맞게 잘된다는 말씀을 하는 분들이 많아 가게나 절에서 인기가 많다.”고 소개했다. ●지금의 사장 IMF 이후 가업 잇기에 올인 하지만 이 사장이 처음부터 술에 관심이 많았던 것은 아니다. 건축설계사무소를 운영했던 그는 IMF 외환위기 직전인 1996년 건설경기가 바닥을 치자 사업을 접고 아버지의 양조장에 들어왔다. 형과 동생은 ‘전통술은 가망이 없다.’면서 가업 잇기를 포기했지만 이 사장은 전통양조장에 인생을 걸었다. 밥 짓는 것부터 차근차근 배웠고 배달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좋은 술맛을 찾기 위해 마시고 또 마셨다.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그가 만든 ‘생거진천 쌀막걸리’는 대통령상을 세 번이나 받았고 한약재로 빚은 ‘천년주’와 검은쌀와인인 ‘흑비’ 등 약주도 반응이 무척 좋다. 이 사장에겐 꿈이 있다. 세왕주조를 농가소득에 보탬이 되는 사회적 기업으로 꾸려 가는 일이다. ●1.2ℓ 7년째 1700원… 쌀값 낮춰줬으면 그는 “진천에서 나는 친환경 검은쌀로 기능성 막걸리를 만든 것처럼 농민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 술을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이 사장은 “1.2ℓ 막걸리 한 병이 7년째 1700원”이라면서 “막걸리 원료로 공급되는 쌀값을 낮춰 준다면 전통주 생산업체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글ㆍ사진 진천 오달란기자 dallan@seoul.co.kr
  • 55년된 목조건물 순식간에 화마로

    55년된 목조건물 순식간에 화마로

    지은 지 50년이 넘은 부산의 한 여인숙에서 불이 나 6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낡은 목조건물이어서 불이 순식간에 번지는 바람에 투숙객 전원이 화를 피하지 못했다. 26일 오전 7시50분쯤 부산시 중구 남포동3가 현대여인숙에서 화재가 발생, 김한수(60)씨 등 투숙객 5명(여성 1명 포함)이 숨지고 1명이 중상을 입었다. 불은 여인숙 2층과 3층을 태워 1000여만원(소방서 추산)의 재산 피해를 내고 1시간여 만에 꺼졌다. 사망자들은 2층 입구에 있는 방 한곳에서 2명, 2층 복도 안쪽 방 두곳에서 각각 1명, 3층 방에서 1명이 발견됐다. 투숙객 박기수(38)씨는 불을 피해 3층에서 뛰어내리다 다리에 골절상 등을 입고 부산대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여인숙 주인 여모(61·여)씨는 “2층에서 ’펑 ‘하는 소리가 나 올라가 보니 객실에서 연기가 새어 나왔고, 금방 불길이 복도로 번졌다.”고 말했다. 화재신고를 받은 소방당국은 소방차 34대와 소방대원 102명을 투입해 진화에 나섰으나 좁은 방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데다 출입문 입구와 통로가 좁고, 출입문까지 목조로 돼 있어서 진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경찰은 숨진 사람들이 모두 방 안에서 발견된 점으로 미뤄 화재 당시 불이 난 줄 모른 채 잠을 자다 변을 당한 것으로 추정했다. 소방당국 관계자는 “노후 목조건물이라 불이 순식간에 번지면서 투숙객들이 미처 대피할 틈이 없었거나 유독가스에 질식해 의식을 잃은 뒤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사망자 중 60대 여성의 신원 확인을 위해 국립수사과학연구소에 유전자(DNA)감식을 의뢰했다. 화재가 난 여인숙은 1층 카운터, 2~3층은 객실로 이뤄진 3층 건물이지만, 건축 대장에는 2층짜리 건물로 등록돼 있어 3층을 무단 증축한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은 여인숙 건물이 지어진 지 55년이나 된데다 소방점검 대상이 아니어서 오래된 전기배선에서 누전으로 불이 났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사망자:김한수(60)·김종달(50)·김성갑(64)·정재철(45)씨, 미상(대구·여성) ●부상자:박기수(38)씨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가장 비싼 2000원권 판매 우표 나왔다

    가장 비싼 2000원권 판매 우표 나왔다

     지식경제부 우정사업본부는 1999년 11월부터 10년 동안 사용돼 온 2000원권 ‘금동관’ 우표를 ‘금동대탑(金銅大塔)’으로 새롭게 디자인해 25일부터 전국 우체국에서 판매한다고 밝혔다. 2000원권 우표는 현재 우체국에서 판매되는 24종의 보통우표 중 최고 가격이다.  이 우표에는 탑 좌측 배경에 시변각 잉크로 인쇄된 ‘KOREA’라는 문자를 넣었고 우표를 비스듬히 기울여 보면 보라색 글자가 나타난다. 또 탑 아랫부분에는 돋보기로 보면 확인할 수 있는 ‘한국우정 KOREA POST’를 미세 문자로 새겨 우표사용자와 수집가들에게 색다른 재미를 줄 것으로 기대된다.  우표 디자인 소재인 금동대탑은 일반적인 탑이라기보다 공예품으로 높이가 155cm로 상당히 큰 편이다. 고려 전기에 제작된 것으로 국보 213호로 지정돼 있으며, 고려시대 석탑 양식이나 목조건물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다음 판매 우표는 ‘한국만화 100주년 기념우표’ 1종으로 6월 2일 나온다. 인터넷서울신문 최영훈기자 taiji@seoul.co.kr
  • 종로구 쪽방촌 방역소독 실시

    서울 종로구가 경제적 소외계층이 밀집해 있는 쪽방촌에서 ‘찾아 가는 방역서비스’사업을 펼친다. 구는 29일까지 돈의동과 창신동 일대 쪽방 전 지역에 살균·살충을 위한 방역소독을 실시한다. 특별 방역소독은 전염병을 예방하고, 위생 환경을 개선해 주민들의 건강을 지키고자 마련됐다. 현재 돈의동과 창신동에는 149개의 건물에 1287개의 쪽방이 있으며, 이 중 사람이 거주하는 쪽방은 1011개에 달한다. 돈의동 쪽방지역은 과거 집창촌을 용도 변경해 쪽방으로 사용 중인 지역으로 약 33%가 목조건물이며, 다른 지역에 비해 일용 건설인부, 식당보조 및 행사 일일도우미 등 임시근로자가 많이 거주한다. 과거 여인숙 밀집지역인 창신동지역 역시 70% 이상이 일용근로자이며, 36%가 국민기초생활수급자다. 구는 이들 지역의 방역을 위해 총 10명으로 구성된 방역소독반을 운영하며, 창신동과 종로 1~4가동 새마을방역봉사대와 연계해 총 12회 소독활동을 펼친다. 방역특장차로 건물외곽과 하수구, 쓰레기 주변 등을 중점적으로 방역하는 한편 정화조의 모기 유충을 없애기 위해 149개동의 건물 정화조에 약품을 투여할 예정이다. 또한 쪽방 거주자들이 스스로 해충을 구제할 수 있도록 바퀴벌레나 모기, 파리 구제용 약품을 쪽방상담소를 통해 무료 배부한다. 구 보건위생과 관계자는 “점점 무더워지는 여름철에 쪽방촌 일대 주민들이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SPECIAL 편지]고흐의 편지는 영혼의 소리다

    [SPECIAL 편지]고흐의 편지는 영혼의 소리다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외로움’의 상징이다. 우선 그는 자기 작품에 대해 불만이 컸다. 그리고 고독했다. 아마도 처음에는 고독을 스스로 초대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고독을 초대한다’는 표현이 어색하게 들릴지 몰라도 그의 족적을 보면 그는 분명히 고독 때문에 몸부림을 치면서도 고독을 즐긴 듯한 느낌을 풍기고 있다. 그는 또한 말할 수 없이 가난했다. 그가 살던 집을 한 번 들러보면 알 수 있다. 나는 2002년 5월, 칸영화제에 참석하러 가는 길에 그 당시 문화관광부 오지철 기획관리실장(현 한국관광공사 사장)과 함께 프랑스 주재 한국문화원 손우현 원장의 안내로 고흐가 살던 집을 방문할 기회를 가졌다. 아주 작은 마을, 파리가 다섯 마리만 날아다녀도 시끄럽다고 불평할 정도로 조용한 마을의 길가에 있는 2층짜리 목조건물이 그가 살던 하숙집이다. 삐걱거리는 목조건물 층계를 올라가면서 바로 앞에 보이는 작은 구석방이 그가 묵고 있던 곳이다. 두 평이나 될까? 오른쪽에 작고 낡은 싱글침대가 있고 왼쪽 구석에 아주 조그만 사각 테이블과 의자가 가구의 전부이다. 너무 작은 방이다. 몸 하나 뉘일 곳만 있으면 되지 큰 방이 무엇 때문에 필요한가? 하고 말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화구 하나 제대로 펴 놓을 수 없을 정도로 작은 방에서 어떻게 그림을 그릴 수가 있었을까? 왼쪽으로 난 창 밖으로는 그가 늘 산책했고, 화구를 들고 와서 그림을 그리곤 했다는 언덕이 보인다. 나는 그 언덕에 올라가 보았다. 특별할 것 없는 그저 평범한 밭길이다. 그러나 고독한 그에게는 이 모든 것이 친구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리고 이 언덕길 모습은 그의 그림 속에 많이 등장한다. 그가 살던 집도 자기 것이 아닌 셋방이고, 그 방 아래에는 작지만 포근한 식당이 있다. 그곳에서 고흐는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나도 고흐가 앉아서 식사했다는 바로 그 의자에 앉아서 와인을 곁들여 점심식사를 했다. 이게 무슨 행복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공연히 씁쓸해지기도 했다. 내가 앉아 있는 이 자리에서 그는 편지를 많이 썼다고 한다. 고갱에게도 쓰고, 다른 친구에게, 그리고 가족들에게도 편지를 썼는데 주로 자기 동생 테오에게 많은 편지를 보냈다는 것이다. 내용은 대체로 작품에 대한 불만이 많았던 모양이다. 그는 안부나 물어보는 정도의 편지가 아니라 자신이 보는 세상을 그림과 함께 글로도 쓰고 싶어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림은 자신이 원할 때 그렸지만 편지는 의무적으로 썼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후세 사람들이 자기의 생활과 발자취를 더듬어서 기념관을 만들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는 것을 무덤에 있는 그가 알고 있다면 그는 지금쯤 외로움을 접을 수 있을까? 아니 어쩌면 더욱 더 외로워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가 쓴 상당수의 편지 원본이 기념관에 전시되어 있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에게 큰 위로가 되었던 친구는 결국 ‘편지’였다고 볼 수 있다. ‘해바라기’를 통해 자신이 찾고자 하는 태양을 봤다면 그는 편지를 통해 자기 자신을 정리하고 싶었을 것이다. 1,100편이 넘는 그림을 그렸지만 그는 그림보다는 편지를 쓰면서 위로를 받았다고 볼 수 있다. 동생 테오가 답장을 하지 않으면 곧바로 짜증 나는 내용으로 편지를 쓴 것을 보면 분명하다. 귀를 잘라도 해결이 되지 않고, 정신병원에 입원을 해도 해결이 되지 않는 것을 편지가 대신 해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것은 그가 살던 집을 가본 사람이면 느낄 수 있다. 진실로 가난한 생활을 한 고흐는 자신의 그림을 팔겠다고 나선 동생 테오에게조차 신경질을 부렸다. 그러면서도 그 편지 속에는 애정이 가득 담겨져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너는 텅 빈 캔버스가 사람을 얼마나 무력하게 만드는지 모를 것이다. 그것은 화가에게 ‘너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라고 말하는 것 같단다”라고 쓴 이 편지에서 그의 작품에 대한 고뇌를 볼 수 있고, “자살하는 것보다는 유쾌한 삶을 사는 것이 낫다”라며 고독과 싸움을 하기도 했다. 자살하는 것보다 사는 것이 낫다고 강조한 그가 왜 자살을 택했을까? 궁금한 대목이다. 그는 죽기 직전에 유난히 편지를 많이 썼다. 1890년에 37세의 나이로 권총자살을 한 그는 88년과 89년 사이에 편지를 몰아쳐서 썼다. 왜 그랬을까? 고독 때문이다. 편지를 그는 가장 큰 친구로 삼았다. 그리고 그림에서 표현 못한 자기 감정을 편지에서 마음껏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여섯 점의 해바라기로 작업실을 꾸며볼 계획이다. 황금이라도 녹여 버릴 것 같은 열기, 해바라기의 느낌을 다시 얻는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 고흐의 편지 中 그는 상당히 많은 편지에서 해바라기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있다. 그는 그림에서 고독을 느끼고, 편지에서는 위안을 받은 것이 아닐까? 죽기 바로 직전까지 편지 쓰기를 멈추지 않은 것을 보면 충분히 그렇게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의 글 속에는 고독과 불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랑도 있고, 연민도 있다. 가족에 대한 걱정도 있고 친구에 대한 우정도 있다. 고흐의 작품을 보기 전에 편지를 한 장이라도 읽고 나서 보는 것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의 편지는 자기 작품의 해설서와도 같다. 스스로 귀를 자르고, 정신병원에 입원을 하고, 권총으로 목숨을 끊었지만, 그는 절대로 정신질환자가 아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최소한 그의 편지는 그렇게 말하고 있다. 이것이 편지의 힘이다. 글 정홍택 기획위원
  • “내 가슴엔 아직 국보1호 못지킨 죄책감의 불씨가…”

    “내 가슴엔 아직 국보1호 못지킨 죄책감의 불씨가…”

    그때의 3분은 영원과 같았다. 2008년 2월10일 오후 8시50분 “숭례문에 불이 났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하기까지 3분 동안 배연창(54) 서울 회현 119안전센터 부센터장의 머릿속엔 수많은 생각이 오고갔다. 그는 숭례문 화재 현장에 투입된 첫 소방대원이었다. “1년이 지난 지금도 눈앞에서 국보 1호가 무너지는 모습은 잊혀지지 않는다.”고 그는 말했다. ●“연기만 보였지만 중대상황 직감” 1년 전 화재현장에 도착했을 때 목조건물 화재를 다뤄본 적은 있었지만 국보급 지정문화재 화재는 배씨도 처음이었다. 현장에서 보이는 것은 연기뿐이었지만 그는 상황이 예사롭지 않음을 직감하고 바로 소방력 증원을 요청했다. 배씨는 “목조건물은 구조상 조그마한 기와집도 진화가 오래 걸린다.”면서 “숭례문은 지붕의 적심(기와와 서까래 사이에 설치된 통나무 구조물)이 깊고 기와도 단단해 진압이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옷에 고드름이 얼 정도로 추운 날씨였지만 배씨는 추위를 느낄 겨를도 없이 진압에 매달려야 했다. 공기호흡기를 교체하기 위해 잠시 헬멧을 벗었을 때 그는 자신을 바라보는 무수한 시민들과 눈이 마주쳤다. ‘내가 여기서 주저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화재 현장에 다시 뛰어들었다. 불은 꺼졌지만 죄책감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배씨의 가슴에는 불에 타 쓰러진 국보 1호가 아직 남아 있었다. 그는 “당시 매스컴에서 매일 소식을 들을 때마다 회초리로 맞는 기분이었다.”면서 “일부 진압 과정에서 소방대원들이 오판했다는 얘기를 들을 때 특히 아쉬웠다.”고 했다. 그나마 위안을 삼는 것은 숭례문 복원 소식이다. 종종 숭례문 주위를 찾는다는 배씨는 복원 현장을 보며 마음의 짐을 더는 기분을 느낀다. ●“문화재 경비시스템 더 강화해야” 숭례문 화재 이후 문화재 관리 매뉴얼이 만들어지고 전문 인력 양성도 이뤄졌지만 배 부센터장은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단언한다. “어떤 이들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고 하겠지만 화재 이후로 문화재 관련 유관기관과의 협조체제가 잘 이뤄지고 있다.”면서 “문화재 관리 인력 보충과 경비시스템 강화 등은 더 필요하다.”고 그는 말했다. 안석기자 ccto@seoul.co.kr
  • 만추의 극장가 눈물에 젖다

    만추의 극장가 눈물에 젖다

    깊어가는 가을, 달랑 두장밖에 남지 않은 달력을 보면 허탈한 생각부터 들게 마련이다. 이 같은 아쉬운 마음을 감동으로 달래줄 영화 두 편이 연이어 개봉된다. 우리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아시아의 감성을 바탕으로 만남과 헤어짐에 대한 깊이있는 성찰을 담은 수작들이다. 누군가 옆에서 톡 건드려주기만 바랄 정도로 울 준비가 되어 있는 당신이라면, 손수건을 들고 극장을 찾아 보는 것은 어떨까. ●‘굿 바이´… 죽음에 대한 또다른 시각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죽음. 이 세상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하는 사람은 누굴까. 영화 ‘굿 바이’(Good & Bye,30일 개봉)는 고인의 마지막 길을 준비하는 납관(納棺)을 소재로 죽음의 의미를 되짚는 작품이다. 첼리스트에서 얼떨결에 전문 납관사가 된 주인공을 통해 삶과 죽음의 진정한 의미를 묻는다. 도쿄에서 잘나가는 오케스트라의 첼리스트였던 다이고(모토키 마사히로)는 갑작스러운 악단 해체로 졸지에 백수 신세가 된다. ‘연령을 불문하고, 고소득을 보장한다.’는 여행가이드 구인 광고를 보고 찾아간 곳은 일반 여행사가 아니라 인생의 ‘마지막’ 여행을 안내하는 납관을 하는 곳이다. 아무리 일자리가 궁한 처지라고는 하지만 죽은 사람을 본 적도 없는 다이고에게 시체를 염(殮)하고 관에 넣는 일은 고역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새로 얻은 직업에 대해 아내 미카(히로스에 료코)에게 말하지도 못하고 수차례 그만둘 결심을 하지만, ‘누군가 언젠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고 또 배웅받는다.’는 진리를 깨달으며 점차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느낀다. 죽음, 시체, 납관 등 다소 무거운 소재를 다루지만 이 영화가 시종일관 우울한 것만은 아니다. 할머니의 유언에 따라 무릎까지 오는 고등학생 양말을 할머니에게 신겨준 손녀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한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태왕사신기’ 등을 맡았던 일본 영화 음악계의 거장 히사이시 조는 일본 목조건물의 운치가 남아 있는 야마가타현을 배경으로 깊은 울림이 있는 감성을 전달한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절제의 미학’을 살리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몬트리올영화제 그랑프리 수상작으로, 내년 아카데미 영화제 외국어영화상에 일본 대표로 출품될 예정이다. ●‘러블리 로즈´… 만남에 대한 색다른 정의 ‘가족’이란 과연 생물학적인 혈연의 관계로만 탄생하는 것일까. 영화 ‘러블리 로즈’(새달 6일 개봉)는 이런 생각에 반기를 든다.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지만, 도시의 차가움이 느껴지는 베트남 사이공의 밤거리. 영화는 한 치의 흔들림 없는 시선으로 현대인들의 외로움과 오롯이 마주한다. 부모를 잃고 삼촌의 손에서 크면서 노동 착취를 당하기 일쑤인 열살 소녀 투이(팜티 한)는 이를 견디다 못해 도망친다. 투이는 거리를 돌아다니며 장미꽃을 팔기 시작하지만, 대도시에도 온통 자신처럼 외로운 사람들뿐이다. 국수집에서 우연히 만난 스튜어디스 란(켓 라이)은 매력적인 외모에도 남자들에게 받은 상처 때문에 괴로워하고, 동물원에서 만난 코끼리 사육사 하이(레더 루) 역시 약혼녀가 떠난 이유도 알지 못한 채 그녀 옆을 끊임없이 맴돈다. 결국 갈 곳 없는 자신을 가족처럼 돌봐준 란과 하이의 ‘사랑의 메신저’ 역할을 하기로 마음먹은 투이. 하지만 사랑의 결실을 보기도 전에 심술궂은 투이의 삼촌은 그녀를 찾아내 다시 차가운 공장 안으로 밀어넣는다. 베트남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영화 공부를 한 스테판 거저 감독은 동양적 정서를 살려 삭막한 현대 도시인들의 아픔을 잘 표현해 냈다. 영화 속 투이의 손에 들린 한 송이의 붉은 장미는 외로움 속에 핀 가족애와 사랑의 희망을 역설적으로 표현한다. 세련된 눈요깃거리가 있는 영화는 아니지만, 사람들의 진심을 이어 주는 10살 소녀의 앙증맞은 연기가 지워지지 않는 잔상을 남긴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씨줄날줄] 단성사/함혜리 논설위원

    우리나라에 처음 영화가 소개된 시기는 의견이 분분한데 1903년 황성신문에 ‘동대문 내 전기회사에서 활동사진을 돌린다.’는 기사가 소개된 것으로 미뤄 이를 시초로 보기도 한다. 활동사진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커지고 일본인들의 조선 진출이 늘어나면서 서울에는 전문적인 상설관들이 하나둘 설립되기 시작했다. 그중의 하나가 종로3가에 있는 단성사(團成社)다. 1907년 좌포도청이 있던 자리에 2층 목조건물로 세워진 단성사는 일반 연회장으로 부침을 거듭하다 1918년 광무대(光武臺)의 경영자인 박승필(1875∼1932년)이 인수하면서 영화 전문 상영관으로 탈바꿈했다. 박승필은 판소리 탈춤 등 구극(舊劇)을 전문으로 하는 광무대와 영화 위주의 단성사를 동시에 운영함으로써 당시 일본인들이 주도권을 잡고 있던 흥행계에서 한국인으로는 독보적인 위치를 확립했다. 극장운영을 통해 축적한 자본으로 영화제작에도 뛰어들었는데 그가 신파극단 신극좌의 대표 김도산과 손잡고 만든 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활동사진 연쇄극 ‘의리적 구토(義理的仇討)’이다. 당대 최고의 흥행사 박승필 제작에 김도산 각본·연출, 그리고 일본의 촬영기사까지 동원된 ‘의리적 구토’는 1919년 10월27일 단성사에서 처음 공연돼 10만명이나 관람하는 흥행 성공을 거뒀다. 이후 단성사는 ‘장화홍련전’(1924년), 나운규 원작 및 주연의 ‘아리랑’(1926년),‘춘향전’(1935년)을 상영하며 한국영화의 개척기를 지켰다. 단성사가 최고의 전성기를 누린 것은 196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이다.‘역도산’(1965년),‘겨울여자’(1977년),‘장군의 아들’(1990년),‘서편제’(1993년) 등이 단성사에서 상영돼 최고 흥행을 기록했다. 한국 영화의 역사를 지켜 온 101년 역사의 단성사가 23일 최종 부도처리됐다.2005년 총 10개관 1800여석의 멀티플렉스 영화관으로 재개관했으나 무리한 재건축에 따른 자금난을 이기지 못한 결과라고 한다. 극장을 임대해 운영하고 있는 ㈜씨너스 측은 건물주가 바뀌어도 영화상영은 계속할 것이라고 하지만 왠지 얼마 되지도 않는 우리 문화의 살점이 뚝 떨어져 나간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복원된 시인 이상화 고택 공개

    복원된 시인 이상화 고택 공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로 유명한 민족시인 이상화의 대구 고택이 복원돼 12일부터 일반인에게 공개된다. 7일 대구시에 따르면 이상화 시인이 말년에 머물렀던 옛집인 중구 계산2가 84 단층 목조건물 두 채(대지 205㎡, 건평 64.5㎡)에 대한 보수와 전시물 설치를 완료했다. 시는 12일 오후 6시 개관식을 가질 예정이다. 현판 제막과 함께 사물놀이 공연, 시낭송, 특별공연도 갖는다. 이 건물은 군인공제회에서 인근 주상복합아파트를 건립하면서 매입, 지난 2005년 대구시에 기부채납한 것으로 고택보존시민운동본부에서 모금한 재원으로 고택 내 전시물 등이 설치됐다. 시는 고택과 인접한 3·1운동길과 뽕나무골목, 진골목 등을 이 시인이 살았던 시대 배경에 맞춰 근대골목으로 다시 디자인해 도심 관광 코스로 개발할 계획이다. 1901년 대구에서 출생한 이상화 시인은 서울 중앙학교를 수료했고 대구에서 3·1운동 거사를 모의했다.1943년 위암 진단을 받고 투병하다 이번에 복원된 대구 자택에서 숨졌다. 대구시 관계자는 “저항시인으로 알려진 이상화 선생의 우국정신과 문학업적을 계승하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夜~好 그곳의 밤은 낮보다 아름답다

    夜~好 그곳의 밤은 낮보다 아름답다

    여행은 밤에도 멈추지 않는다. 은은한 경관 조명이나 교교한 달빛 아래 낮보다 빼어난 자태를 뽐내는 여행지가 적지 않다.‘꿈결 같은 야간 여행´에 걸맞은 여행지를 모았다. # ‘별 헤는 밤´ 경기 양주 송암천문대 송암천문대는 스페이스센터와 천문대, 호텔급 숙소 등을 갖추고 있는 천문테마파크다. 첨단우주체험기기로 가득 차 있어 낭만과 즐거움을 찾는 연인, 가족 모두에게 제격인 별 여행지. 천문테마파크 너머 북한산까지 이어진 능선 위로 총총하게 박혀 있는 별들이 더할 수 없이 아름답다. 천문대 아래 스페이스 센터에는 사계절의 별자리를 감상할 수 있는 디지털 플라네타륨과 우주공간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시뮬레이션 그래픽으로 관찰할 수 있는 챌린저 러닝센터 등이 갖춰져 있다. 개관시간 주중 오전 11시∼오후 10시, 주말은 오전 10시∼오후 10시. 천문대 이용권+케이블카 왕복 탑승권+플라네타륨 관람권 어른 2만 6000원, 청소년 2만 3000원.3인 가족은 패밀리티켓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6만 1000원. 양주시청 문화체육과 031)820-2121, 송암천문대 894-6000∼2. # ‘천년의 도시´ 전북 전주 한옥마을 한옥마을은 1930년대 일본인의 세력 확장에 반발한 인사들이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한옥촌을 형성하면서 시작됐다. 이 일대 한옥군은 주변 일본 가옥들과 대조를 이루는 한편, 화산동 선교사촌 등 서구식 건물들과 어우러지며 기묘한 도시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해질 녘 한옥마을 야경 탐방에 나서면 호젓하게 도보여행을 즐길 수 있다. 경기전을 기점으로 도보로 10분 거리에 풍남문, 전동성당, 오목대 등의 볼거리는 물론 감칠맛 나는 오모가리탕 집들이 늘어선 가리내길 등 전주를 대표하는 맛집들이 늘어서 있다. 덕진공원 야경도 빼놓으면 서운하다. 여름이면 연꽃이 만발해 전국의 사진작가들을 불러모은다. 전주시청 문화관광과 063)285-5151, 전주한옥마을 282-1330. # 화려한 신라의 달밤 경북 경주 경주 야경의 백미로 꼽히는 임해전지(안압지)와 월성, 계림, 첨성대 등은 국립경주박물관과 대릉원 사이 7번 국도 1.5㎞ 구간에 모여 있다. 천천히 걸어도 20분 정도면 닿는 거리. 저마다의 야경도 화려하거니와 이들을 자연스레 이어주는 산책로 또한 무척 운치가 있다. 임해전지에서는 매주 토요일 오후 7시30분 공연이 펼쳐진다. 신라문화원에서 마련한 ‘달빛·별빛 역사기행’도 인기 프로그램. 매월 보름을 전후한 토요일에 경주시 유적지를 둘러본다.14일,21일 출발. 참가비는 별빛 1만 4000∼1만 6000원, 달빛은 1만 6000∼1만 8000원. 경주시청 문화관광과 054)779-6061, 신라문화원 774-1950. # “밤이 멋져부러∼” 전남 여수 수많은 섬과 전형적인 리아스식 해안이 어우러지며 빼어난 자태를 자랑하는 여수는 밤만 되면 화려한 옷으로 갈아입고 관광객들을 유혹한다. 야경의 하이라이트는 유람선 투어. 해맞이 포인트로 유명한 오동도의 음악분수대 앞에서 출발해 자산공원∼해양공원∼돌산대교∼국동 어항단지를 1시간가량 돌아본다.10월 말까지 운항한다. 여수의 또 다른 관광명소인 진남관은 충무공 이순신이 전라좌수영의 본영으로 사용하던 곳. 단층 목조건물로는 국내 최대 규모다. 향일암은 한국 4대 관음기도처 중 한 곳. 암자 내 울창한 동백나무숲과 아열대 식물이 금오산 주변 기암괴석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항아리 속처럼 오목한 방죽포 해수욕장도 가볼 만하다. 여수시청 관광진흥과 061)690-2037. # 달빛 아래 젖는 효심(孝心) 수원 화성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수원시 화성은 조선 22대 임금 정조의 지극한 효심이 배어 있는 곳.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 가까이에서 어머니 헌경왕후(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살기 위해 2년8개월에 걸쳐 축성했다. 저녁이 되면 수원화성 전체가 은은한 조명 속에서 한껏 매력을 드러낸다. 특히 정조의 어좌가 있었던 방화수류정의 용연은 ‘용지대월(龍池待月)’이라 해서 수원8경의 하나로 꼽힌다. 하늘에 뜬 달이 용연과 술잔에 비치고, 다시 그 달들이 연인의 눈동자에 뜬다는 것.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무예 24기 시범, 장용영 수위의식 등 다양한 상설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 창룡문 근처에 활쏘기체험장, 용차탑승장 등이 있다. 활쏘기 체험은 초등학교 1학년 이상이면 누구나 가능하다.1순(5발)당 1000원. 용차는 연무대앞과 팔달산 강감찬 장군 동상 앞을 순환하는 코스로 운영된다.1500원. 수원시청 문화관광과 031)228-2068, 수원시화성사무소 228-4410∼4, 수원시티투어 256-8300. # 야(夜)한 곳 찾아가는 여행상품 ▲‘감춰진 보석 김천! 별빛기행’은 김천시에서 지난달 31일 처음 시작한 야간 프로그램. 해 지는 직지사 경내를 둘러보는 산사체험과 경쾌한 음악 분수쇼를 즐길 수 있다. 솔항공여행사 02)2279-5959. ▲‘야(夜)∼한 밤에 섬&크루즈’는 퇴근 후 데이트를 즐기고픈 커플들을 위해 저녁시간대에 유람선을 출발시킨다. 인천 연안의 고즈넉한 섬, 세어도에서의 도보 데이트와 서해 야경을 즐기는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현대마린개발 032)885-0001. ▲‘별 따라 소리 따라 남도 선비여행’은 첫날 전남 장흥 천문문학관에서 별 헤는 밤을 체험하고, 이튿날 밤 목포 루미나리에 거리 야경을 감상한다. 롯데관광개발 1577-3700.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자료제공 한국관광공사
  • [Metro] 경기도, 화재 오인 행위땐 과태료

    경기도소방재난본부는 앞으로 소방서에 신고하지 않고 연막소독 등 화재로 오인할 만한 행위를 하면 과태료를 물게 된다고 25일 밝혔다.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한 ‘경기도 화재안전 조례’ 시행규칙이 28일부터 시행된다. 이번 조례에서는 화재로 오인할만한 우려가 있는 불을 피우거나 연막소독을 하려는 사람은 사전에 일시, 장소 및 사유 등을 소방서에 신고하도록 하고, 신고를 하지 않아 소방차가 출동할 경우 2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하고 있다. 신고 의무 대상은 소방기본법령에서 정한 시장 지역, 공장·창고 밀집 지역, 목조건물 밀집지역, 위험물의 저장 및 처리시설 밀집지역, 석유화학제품 생산공장 지역, 주거용 비닐하우스 지역, 축사시설 밀집지역 등이다. 본부 관계자는 “작년 한해 동안 119에 들어온 허위 및 오인신고는 경기도에서만 2442건에 이른다.”며 “이번 조례 제정으로 오인출동에 따른 소방력 낭비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日 교토 문화재 방재시설 탐방기

    日 교토 문화재 방재시설 탐방기

    |글 사진 교토 서동철특파원|숭례문 방화사건 이후 문화유산 보호 시스템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가 높다. 일본은 우리보다 먼저 갖가지 문화재 테러로 중요한 문화유산을 적지 않게 잃어버린 나라. 명지대 한국건축문화연구소(소장 김홍식 교수)의 ‘일본 교토지역 문화유산 방재시설 탐방’은 그들의 ‘앞선 경험’에서 참고할 대목이 없는지 확인해 보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숭례문에서 불이 났을 때 왜 초기진압에 실패했는지 아주 이상했다. 엄중한 경비태세가 되어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어서 놀랐다.” 리쓰메이칸(立命館)대학 건축도시디자인학과의 야마자키 마사후미(山崎正史) 교수는 탐방단을 교토의 전통적인 게이샤 거리인 기온신바시(祗園新橋)로 안내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옛 목조건물 주변에 무질서하게 얽혀있는 전깃줄을 바라보면서 “일본은 어떤가 하고 생각해 보면 아직도 자신 없는 부분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불나면 곧바로 통보… 5분내 소방차 출동 같은 대학 역사도시방재연구센터의 마스다 가네후사(益田兼房) 교수는 “교토는 종이와 목재의 도시”라고 했다. 일본은 분명 문화유산 방재의 필요성을 일찍부터 절감한 나라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건축문화재의 대부분이 목조인 그들이 갖고 있는 고민은 여전히 적지 않은 듯했다. 역대 덴노(天皇)의 영정이 있는 진언종(眞言宗)의 총본산 닌나지(仁和寺)는 1993년 폭탄테러를 겪었다. 입헌군주제를 반대하는 세력이 금당 밑바닥에 일종의 시한폭탄이라고 할 수 있는 자동발화장치를 설치한 것이다. 닌나지는 이후 경내 96곳에 감지기를 설치했다. 불이 나면 곧바로 종무소와 소방서에 통보하여 소방차가 3∼5분이면 출동한다. 전각에는 전기설비를 아예 하지 않은 것은 물론 방화총과 소방호스를 설치했다. 소방당국이 주관하는 정기 훈련 말고도, 자율적인 방재훈련을 해마다 10차례 이상 갖는다. 탐방단의 한 관계자는 그러나 “이런 대책을 세워놓았다고 해도 숭례문처럼 휘발성이 높은 인화물질을 대량으로 뿌려놓는다면 아무도 진화를 장담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요 문화재에 24시간 인력 배치해야 김홍식 명지대 교수는 “진단이 제대로 되어야 숭례문 참사의 재발을 막을 수 있다.”고 전제하고 “닌나지에 자동발화장치를 설치한 것을 일본에서는 테러로 못박고 있듯이, 숭례문 방화도 분명한 테러”라면서 “우리도 테러에 노출된 단계에 접어들었으며, 그 대상 목록에 문화재가 올라와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건축전문가인 윤홍로 문화재위원은 “결국 설비의 문제라기보다는 사람의 문제”라면서 “중요한 문화재에 인력을 배치하여 24시간 경비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렇게 된다면 우리가 돌아본 료안지(龍安寺)나 기요미즈테라(淸水寺)처럼 양동이에 담아놓은 방화수와 방화용 모래만으로도 초기진화가 가능하다.”면서 “실제로 우리도 법주사 팔상전의 화재를 양동이만으로 초기에 진압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dcsuh@seoul.co.kr
  • [사라진 숭례문] 보험금 고작 9508만원

    숭례문 화재 보험금은 고작 최고 9508만 2000원인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해 낸 보험료는 8만 3120원이었다. 숭례문에서도 문루(누각)만 가입돼 있다. 숭례문은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문화재청이 아닌 서울시 중구가 관리를 맡고 있다. 보험 가입은 서울시가 숭례문을 포함해 23개 문화재를 한국지방재정공제회의 재해복구공제에 일괄 가입했다. 공제회는 지방자치단체 공유재산의 재해복구, 공공청사정비 등을 지원하는 공제기관이다. 공제회 관계자는 “문화재가 아닌 단순 건물로 규정, 화재 발생 가능성과 복구에 드는 비용 등을 계산해 보험료와 보험금액을 산정했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보신각은 보험료 8만 2340원에 보험가입 금액이 2억 5228만원이다. 철근 구조물이라는 점이 고려됐다. 왕들의 의복·기록 등을 보관하는 종친부는 보험료 8만 8400원에 보험가입 금액 1억 112만 4000원이다. 숭례문은 국보 1호지만 공제에 가입한 23개 문화재 중 보험료는 2위, 보험금액은 3위다. 특히 문화재의 경우 가치산정이 어렵다. 보험에 가입한다 해도 고액의 보험료를 지방자치단체나 개별 단체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목조건물은 화재발생 위험이 크고 진화가 어려워 보험사들도 가입을 꺼리고 있다. 이에 따라 가입이 쉽고 보험료가 싼 공제 가입이 선호되고 있는 실정이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아,숭례문!

    민족 문화유산의 상징인 국보1호 숭례문(남대문)이 사라졌다. 그제 발생한 화재로 누각은 전소해 내려 앉았고 그 자리에는 타다 만 나무들의 잔해만이 석축 위에 어지러이 널려 있을 뿐이다. 숭례문은 조선 건국 직후인 1398년 완공돼 지난 600여년 민족의 도읍지를 지킨 성문(城門)이었다. 그 무게는, 단순히 역사가 오래되었다거나 건축물의 웅장함에서 비롯된 게 아니다. 임진왜란·병자호란의 양대 외침(外侵)과 동족상잔인 6·25의 비극을 겪으면서도 꿋꿋하게 위용을 유지한 민족의 자존심이었다. 그런데 그 민족의 자존심이, 오히려 평화로운 시기에, 후손들이 방심한 탓에 일순 잿더미로 변했다. 이 막중한 역사적 죄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는가. 숭례문에 불이 나 전소한 과정을 되짚어 보면 우리가 과연 선조의 유산을 향유할 자격을 갖고나 있는지 자괴하지 않을 수 없다. 숭례문은 2006년 일반에게 개방됐다. 그래서 시민들은 자유로이 성문을 드나들며 가까이서 그 아름다움과 웅장함, 역사적 의미를 즐길 수 있었다. 반면 개방에 따른 보존·관리 대책은 전무하다시피해 항상 불안요인으로 지적돼 왔다. 특히 야간에는 상주 관리인이 없어, 이번 화재에서 보듯이 돌발사건에는 속수무책일 것임이 예견됐다. 게다가 숭례문에는 그 흔한 스프링클러조차 없이 소화기 몇 개만 비치한 것이 화재 대책의 전부였다니 이러고도 우리에게 국보를 보유할 자격이 있는지 다만 부끄러울 따름이다. 화재진압 과정의 미숙함 또한 지적받아 마땅하다. 처음 불이 나 연기가 솔솔 뿜어져 나올 때만 해도 숭례문이 몽땅 타버리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문화재청은 훼손 위험성만을 들어 신중한 작업을 요구했고, 소방 당국은 당국대로 조기 진압한 것으로 오판해 진화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국보1호가 불에 타고 있는데도 문화재청·소방당국·서울시 등 어느 부서 하나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다. 이러니 우리는 숭례문을 비롯한 주요 문화유산에 관한 화재예방·진화 매뉴얼이 존재했는지조차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화재 원인과 진화 과정을 철저히 점검해 관련자들을 엄중 문책하는 한편으로 다시는 이런 비극이 재발하지 않게끔 대책을 완벽하게 마련해야 한다. 더욱 걱정되는 일은 숭례문 말고도 전국에 산재한 주요 문화재 가운데 목조건물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아울러 사회불만자들의 방화 역시 급증하는 추세이다. 수원 화성의 서장대가 방화범에 의해 재로 화한 것을 비롯해 숱한 문화유적이 이미 불길에 사그라졌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문화재 보호를 위해서는 관리·경비 인력을 강화하고 일반인 출입을 일정부분 제한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대책은 우리 국민 누구나가 문화유산의 소중함을 이 기회에 뼈저리게 체득하는 일이다. 문화재는 우리 세대만이 향유하는 대상이 아니라 자손 만대에 넘겨 주어야 할 민족 공동의 자산이라는 사실에 공감해야 한다. 지금 숭례문은 흉측한 몰골로 우뚝 서 우리의 무지와 무관심·무책임을 꾸짖는다. 말로 다할 수 없는 비통한 현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국보1호 상실’이라는 고통과 분노, 좌절을 딛고 일어서 숭례문을 다시 세워야 한다. 오랜 세월이 걸릴지라도 숭례문의 원형을 찾아 완전하게 북원해야만 한다. 그것만이 우리가 후손들에게 지은 죄를 그나마 줄이는 유일한 길이다. 숭례문 복원에 온 민족이 슬기와 땀을 한데 모으기를 충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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