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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첨탑 개보수’와 관련 있는 듯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첨탑 개보수’와 관련 있는 듯  

    15일(현지시간)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화재 원인은 첨탑 개보수 작업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로랑 뉘네 프랑스 내무장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화재 원인이 무엇인지 단정하기는 이르다”고 말했다. 그러나 AP 통신을 비롯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파리 소방당국은 이번 화재가 잠정적으로 개보수 작업과 연관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그동안 600만 유로(78억 원 상당)를 들여 첨탑 개보수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에마뉘엘 그레그와르 파리 부시장도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첨탑에서 불이 시작됐다고 언급한 것으로 언론들은 보도했다. 소방당국은 개보수 작업이 화재가 시작된 요인인지, 화재를 더 확산시킨 요인인지 조사하고 있다. 현지 방송 화면에선 불타는 대성당 지붕 위에 개보수 작업을 위해 설치된 비계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다만 누군가 고의로 불을 지른 방화인지, 실수로 화재가 발생한 것인지는 아직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고 있다. 현지 언론은 경찰이 방화보다는 실화에 비중을 두고 조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파리지방 검찰청은 수사관들이 현재로선 이번 화재가 사고로 발생한 것으로 다루고 있다면서 테러 동기를 포함해 방화 가능성은 배제하고 있다며 경찰이 화재원인에 대해 계속 수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18세기 프랑스 혁명 때 건물이 심하게 파손됐다가 19세기에 대대적으로 복원됐는데 첨탑도 19세기에 복원돼 현재까지 유지돼왔다. 화재가 발생한 뒤 조기 진화에 실패, 피해가 크게 발생한 것은 노트르담 대성당이 12세기에 건축된 건물로, 내부 장식품이 대부분 목조로 돼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대성당 내에도 소화기가 비치돼 있지만 목재로 된 내부장식이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이면서 겉잡을 수 없는 속도로 번졌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노트르담 대성당 대변인은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모든 것이 불타고 있다. 화염으로 인해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노트르담 대성당에는 소중한 문화재가 많이 보관돼 있어 화재 진압방식도 상당한 지장을 받아 결국 피해를 키운 것으로 유추된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캐나다구스 다음 중국 보복 상대는 농산물?

    캐나다구스 다음 중국 보복 상대는 농산물?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의 체포 사태로 야기된 중국의 캐나다에 대한 반감이 양국 관계 긴장 및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18일 화웨이 사태로 악화된 양국 관계와 캐나다에 대한 중국인의 반감이 패딩 점퍼로 유명한 의류 상표 ‘캐나다 구스’에 이어 농산물과 임업 제품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 주말 베이징의 상업지구인 산리툰에서는 캐나다 구스 매장이 문을 열 예정이었으나 화웨이 사태로 연기된 바 있다.  중국 농업협회 측은 만약 캐나다가 중국과 미국 간의 정치 문제에 계속 개입하면 캐나다산 카놀라 등 오일시드 수입을 중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멍 화웨이 부회장은 이란 제재 위반 혐의로 지난 1일 캐나다 밴쿠버에서 체포되어 11일 보석으로 석방됐고 현재 가택 연금 상태다. 지난해 중국은 캐나다로부터 70억 달러어치의 농산물을 수입했으며 중국은 캐나다산 농산물의 두 번째 큰 구매 시장이다. 중국은 또 캐나다산 목재의 두 번째로 큰 무역 상대기도 하다. 캐나다는 그동안 미국과 중국 간 무역갈등의 수혜자로 중국이 미국산 대두 수입을 중단하면서 지난 8~10월 캐나다 대두 수출은 두 배나 늘었다.  캐나다 CBC 방송은 17일(현지시간) 중국 자동차 업계가 캐나다와 진행하던 투자 논의를 중단했다고 보도했다. 캐나다 자동차부품제조업체협회의 플리비오 볼프 회장은 이날 캐나다에 생산 확대를 위한 투자를 논의 중이던 중국 자동차업체들이 최근 이를 중단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볼프 회장에 따르면 협회는 지금까지 중국 자동차 업체 두 곳의 대캐나다 투자 대표단 방문을 주관했으나 업체들이 모두 논의를 중단했다.  볼프 회장은 “멍 부회장의 체포로 중국 업체들의 캐나다 확장 계획이 동결됐다”면서 “이들은 이 문제를 분명하게 지적하면서 논의 방향을 바꿨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 2대 강대국 간 냉전과 같은 상호 충돌이 벌어지고 있다”며 “우리는 그 흐름을 멈출 수도 없고 상대를 바꿀 수도 없는 처지에 몰려 있다”고 토로했다.  전날 대만에서는 자유시보 등이 캐나다 정부가 왕이(王毅)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장관)의 부인 첸웨이(錢韋)의 비자발급을 거부했다고 보도했으나 중국 측은 이를 부인했다. 대만 언론은 왕이 외교부장 일가가 캐나다에 호화주택 2채를 보유하고 있다고 전하면서 앞으로 중국의 많은 ‘훙얼다이’(紅二代·중국 공산당 혁명원로 자녀)가 서방 정보기관의 표적이 될 수 있다고 점쳤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떠날 수도 머물 수도 없었다…해방촌, 찬미와 절망의 동거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떠날 수도 머물 수도 없었다…해방촌, 찬미와 절망의 동거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8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28회 서울의 영화1(유현목의 오발탄) 편이 지난 10일 용산구 용산2가동 해방촌 일대에서 진행됐다. 서울미래유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영화인이 뽑은 ‘한국영화 100선’ 중 당당히 1위로 뽑힌 유현목 감독의 영화 ‘오발탄’의 무대를 누볐다. 영화의 원작인 이범선의 1959년작 단편소설 ‘오발탄’과 1961년작 영화 두 편 모두 서울미래유산 무형유산이다. 영화를 주제로 삼은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는 처음이다. 1950~60년대 한국전쟁 전후 오발탄의 무대인 해방촌이란 지명은 동네의 이미지일 뿐 행정지명이 아니지만 아직도 우리에게 익숙하다. 외국인 거주자와 젊은층을 중심으로 HBC(해방촌의 영문 이니셜)라는 전혀 다른 이름으로도 불린다.●한때 서울에만 20만채 판잣집 이날 오전 10시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 2번 출구에 집결한 투어단은 해방촌 입구의 명물 한신옹기를 지나 보성여고~해방촌 성당~해방촌교회~해방5거리~신흥시장~108계단~용산중·고교 간을 2시간여 동안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내리며 해방과 한국전쟁 전후 시기의 삭막한 풍경을 상상했다. 해설을 맡은 김미선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처음 시도한 영화투어에 현장감을 불어넣으려고 안간힘을 쏟았다. 설문응답자들은 “해설 없이 걸었다면 느끼지 못했을 감상에 빠졌다”, “몰라보게 변해버린 서울의 과거사를 떠올린 시간”, “불후의 소설과 영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는 소감을 남겼다.서울은 초거대 도시이다. 1000만명이 606㎢ 안에 살고 있다. 1㎢에 1만 7000명꼴이다. 국토의 0.6%에 인구의 20%가 몰려 있고, 인구의 절반 이상이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 생활권역에 묶여 있다. 서울은 메가시티(Mega City)이면서 인접 대도시와 띠로 연결된 메갈로폴리스(Megalopolice)이기도 하다. 1935년까지 30만명 선에 머물던 서울인구는 일제강점기 대륙침략을 위한 거점도시화하면서 1942년 100만명까지 늘었다. 불과 반세기 만에 10배로 팽창했다.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 100만명이 넘는 월남피난민, 중국과 일본으로 떠났던 해외동포의 귀환, 학교와 일자리를 찾아 상경한 농민들이 마구잡이로 유입됐다. 1959년 수용한도를 초과해 200만명이 몰려들면서 도심과 남산, 인왕산, 북한산, 관악산 아래와 한강 주변에 난민이 대거 자리잡았다. 서울 인구는 1972년 600만명을 돌파한 뒤 1988년 1000만명 시대에 접어들 때까지 ‘브레이크 없는 폭주기관차’ 마냥 마구 몸집을 불렸다. 판자촌은 북한에서 내려온 월남민들이 미군이 가져온 나왕, 미송 등 목재와 루핑, 깡통 등을 이용해 임시거처를 지은 데서 유래했다. 한때 20만채의 판잣집이 서울 곳곳에 달동네를 이루고 있었다. 한 맺힌 디아스포라의 절규이며 우리가 겪은 주거의 사회사이다. ●영화 속 판잣집 소통 불가의 현실 “해방촌 고개를 추어 오르기에는 뱃속이 너무 허전했다. 산비탈을 도려내고 무질서하게 주워 붙인 판잣집들이었다. 철호는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레이션 곽을 뜯어 덮은 처마가 어깨를 스칠 만치 비좁은 골목이었다. 부엌에서들 아무 데나 마구 버린 뜨물이, 미끄러운 길에는 구공탄 재가 군데군데 헌데 더뎅이 모양 깔렸다. 저만치 골목 막다른 곳에, 누런 시멘트 부대 종이를 흰 실로 얼기설기 문살에 얽어맨 철호네 집 방문이 보였다.…비틀어진 문틈으로 그의 어머니의 소리가 새어 나왔다. ‘가자! 가자!’” 원작 소설 속 해방촌 묘사이다. 그러나 백 마디 글보다 영화 한 컷이 더 웅변적이다. 영화에서 보여 주는 철호의 판잣집은 소통 불가의 현실이며, 안식처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공간이다. 로케이션 장면이 많은 영화는 근대적인 거리와 판자촌의 구불구불한 골목길, 공동수도 터, 푸세식 공동변소 등 당시의 모습을 생생히 눈앞에 펼쳐 보인다. 유현목 감독의 리얼리즘은 필설로 설명하기 어려운 해방촌의 가난과 절망을 영상으로 보여 준다. 영화는 군사혁명 당국으로부터 ‘상영 불가’ 판정을 받았다.●해방 후 이북·해외서 온 동포들 용산으로 당시 용산은 일본인의, 일본인에 의한, 일본인을 위한 도시였다. 한양도성 남산구간 바깥에서 한강까지 용산 전체의 20% 가까이 일본군영이 자리잡았고 나머지 지역은 철도부지와 일본인 거주지였다. 해방 이후 이북과 해외에서 들어온 동포와 월남민을 구제하기 위해 이 구역을 내줄 수밖에 없었다. 남산 서쪽 기슭인 용산2가동 일대의 국유림에 정착지를 조성했다. 이때 38선 이북에서 내려온 사람들을 ‘삼팔따라지’라고 냉대했다. ‘3·8’은 화투 도박에서 끗발이 가장 낮은 한 끗이므로 이를 비하해 한 끗짜리 인생이라는 뜻에서 따라지라고 한 것이다. 이들은 해방촌을 비롯해 이촌동, 용두동, 마장동 등지의 피난민촌에 모여 살았다. 해방촌이 자리잡은 남산 서쪽기슭은 인적이 없는 고요한 목장이었다. 김정호의 ‘경조 5부도’에 기록된 것처럼 갑오개혁 때까지 왕실 제사에 사용할 소와 양, 돼지를 키우던 전생서(典牲署) 터였다. 왕이 기우제를 지내던 남단(南壇)이 지척이었다. 이후 일제강점기 일본군 20사단의 사격장으로 변했다. 해방촌의 기원은 해방 직후 용산동 4가 일본군 관사에 무단 거주하던 월남 피난민 50여 가구가 서울에 진주한 미군에게 관사를 비워주고 미군 트럭에 실려 이곳에 내리면서 시작됐다. 1947년 평안북도 선천군 군민 400여 가구도 집단이주, 일본군이 관리하던 경성호국신사를 중심으로 피난살이가 본격화됐다. 일제가 패망하기 직전인 1943년 대륙침략전쟁 당시 전쟁전사자를 추모하고 승전 분위기를 고취시키고자 마지막 발악처럼 건설한 신사가 바로 108계단으로 남은 경성호국신사다. 판잣집은 호국신사 간판과 건물을 떼어다가 지었다고 한다. 당시 신문기사에 따르면 호국신사 자리에 대형 천막을 세워놓고 천막 1개에 5~6가구씩 들어가 생활하다가 한 가구당 5~6평씩 불하를 받았다.●서북청년단·영락교회 영향력으로 탄생 1949년 주민들은 용산동이라는 동명을 해방동으로 바꿨다. 반공으로 똘똘 뭉친 서북청년단의 기세가 해방촌 건설에 한몫했다. 서북청년단의 비호 아래 해방촌은 행정력이 미치지 않는 해방구가 됐다. 해방촌 형성과정에 영락교회의 영향력이 컸다. 영락교회는 분단과 전쟁 과정에서 월남민들 사이에서 ‘이북5도청’이나 마찬가지였다. “산등성이를 악착스레 깎아 내고 거기에다 게딱지 같은 판잣집을 다닥다닥 붙여 놓은 이 해방촌이 이름 그대로 해방촌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멀리 고향 쪽을 바라보며 떠날 수도 머물 수도 없는 철호 가족의 절망이 안타까운 영화에서 해방과 해방촌에 대한 역설이 등장한다. 당시 서울 인구의 반이 정부로부터 극소량의 식량을 배급받아야 하는 절대 빈민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해방촌이라는 지명은 해방을 맞아 몰려든 사람들이 만든 마을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주민들 스스로 이곳에서 벗어나는 걸 해방됐다고 표현할 정도로 터부시 됐던 마을이라는 이중적인 의미로 쓰였다. 해방촌은 디아스포라의 섬이다. 걸어다니는 사람들의 눈에는 차를 타고 풍경을 요약하는 사람들에게서 보이지 않는 것들이 들어온다. 골목길을 어슬렁거리는 도시의 만보객은 현대문명에 반하는 오래된 것들을 찬미함과 동시에 도시 근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낙오된 것들에 대해서도 절망감도 느낀다. 해방촌은 찬미와 절망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우리는 걸으면서 그 시간 속으로 걸어서 들어갔다가 나왔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원장 사진 문희일 연구위원 ●다음 일정 : 가리봉동(구로공단의 신화) ●일시 : 11월 17일(토) 오전 10시~낮 12시 ●집결장소 : 1호선, 7호선 가산디지털단지역 7번 출구 ●신청·안내 :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http://futureheritage.seoul.go.kr)
  • 성북, 청년 창작품 발굴·전시… 9~10일 ‘동북권 메이커 페스티벌’

    서울 성북구가 오는 9~10일 구청 바람마당 일대에서 ‘2018 동북권 메이커 페스티벌’을 연다고 4일 밝혔다. 이번 페스티벌은 서울 동북권 청년들의 참신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제작된 창작 작품을 전시·공유하고, 이들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는 행사로, 성북구민 제안을 통해 서울시 주민참여 예산으로 마련됐다. 출품작들을 대상으로 우수 작품을 선정하는 경연대회, 폐지·폐목재를 활용한 ‘업사이클’ 체험 등이 진행되고, 가상현실(VR)·증강현실(AR)·3D 프린터·3D펜·드론 시뮬레이터 등 4차 산업혁명 관련 체험 부스도 꾸려진다. 이승로 성북구청장은 “대학생들의 창작 작품이 창업 활동으로 이어지고, 동북권 지역 새로운 문화 형성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돌아오지 못한 ‘비운의 책’ 그 위대함과 위로 만나볼까

    돌아오지 못한 ‘비운의 책’ 그 위대함과 위로 만나볼까

    1377년 충북 청주 흥덕사에서 간행된 직지는 지구촌에 현존하는 금속활자로 찍은 인쇄물 가운데 가장 오래됐다. 서양의 구텐베르크 42행 성서보다 78년이나 앞섰다. 활자 인쇄술의 발명은 정보의 빠른 전파를 통해 중세적 사고를 근대적 사고로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인류의 위대한 발명품으로 꼽힌다. 유네스코는 그 가치를 인정해 2001년 9월 4일 직지를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했다. 다음달 1일부터 21일간 펼쳐지는 청주직지코리아국제페스티벌은 직지의 위대함을 세계인과 공유하는 행사다. 글로벌 축제답게 수준 높은 전시, 학술, 강연, 체험, 공연 등이 풍성해 눈과 귀가 심심할 틈이 없다. 행사 기간 세계인쇄박물관협회 창립총회도 열린다. 직지는 100여년 전 헐값에 팔려 프랑스로 건너가 돌아오지 못하는 ‘비운의 책’이지만 청주의 직지 사랑은 뜨겁다.●책속에 담긴 자기 수양과 치유 속으로 26일 청주시에 따르면 이번 행사의 주제는 ‘직지, 숲으로의 산책’이다. 직지와 숲은 다소 생뚱맞은 조합 같아 보이지만 직지의 속을 들여다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직지의 저자는 고려 말 승려 백운화상이다. 그는 공부하기 위해 중국 원나라에 갔다가 귀국하면서 스님 석옥청공에게 ‘불조직지심체요절’이란 책을 받아 왔다. 이 책은 부처 등 이름난 승려들의 말씀이나 편지 등에서 마음을 수양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을 모아 석옥청공이 정리한 책이다. 우리가 아는 직지는 백운화상이 불조직지심체요절을 보완, 수정한 책이다. 그래서 직지의 풀네임이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이다. 백운의 제자였던 석찬과 달잠은 스승의 가르침을 세상에 널리 펴기 위해 묘덕의 도움을 받아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직지를 간행했다. 직지코리아 조직위원회는 직지의 내용을 주목했다. 현대인들이 자기 수양과 힐링을 위해 숲을 찾듯이 고려시대 사람들은 직지를 읽지 않았을까. ‘직지’와 ‘숲’은 이렇게 하나가 됐다. 조직위는 직지의 내면적 가치를 강조하기 위해 메인 무대인 청주예술의전당 광장에 ‘직지숲’을 조성한다. 위로와 치유의 공간이다. 세계적 설치미술가인 한석현 작가가 버려진 목재를 활용해 18m 높이로 만든다. 숲 안에는 조용히 책을 읽을 수 있는 ‘책의 정원’이 꾸며진다. 직지가 간행된 해(1377년)를 기념해 시민들에게서 기증받은 1377권의 책으로 만든다. 행사 종료 후 이 책들은 작은도서관과 사회복지시설에 기부될 예정이다.●1377년 간행 기념한 1377권 ‘책의 정원’ 직지코리아의 한 축인 전시는 크게 주제전시와 기획전시로 나뉜다. 주제전시관은 수백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곳이다. 백운화상과 직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시주자라는 큰 역할을 한 묘덕의 의복을 재현한다. 백운화상의 초상화도 처음으로 공개된다. 백운화상은 남아 있는 자료가 많지 않아 잘 알려지지 못했으나, 최근 충남 청양군 장곡사에서 그의 친필이 발견되는 등 실체에 접근할 수 있는 장이 열렸다. 직지를 세상에 알린 사람들도 만날 수 있다. 직지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있다는 사실을 한국에 최초로 알린 박병선 박사, 직지 활자를 처음 복원한 오국진 금속활자장, 사이버외교사절단으로 불리며 직지세계화운동을 전개하는 반크 등이 소개된다. 또한 1886년 한불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된 후 초대 주한 대리공사로 부임해 우리나라에 근무하면서 직지 등 고서와 문화재를 수집해 프랑스로 건너간 콜랭 드 플랑시도 소개된다. 이후 직지는 1911년 경매를 통해 주인이 앙리 베베르로 바뀌었다가 1952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기증됐다. 안승현 직지코리아 홍보마케팅부장은 “직지와 관련된 인물들을 스토리텔링 전시로 풀어냈다”며 “이들을 통해 우리 문화의 소중함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기획전시는 직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다른 나라들의 세계기록유산을 모았다. 데스멋 컬렉션은 네덜란드 최초의 영화배급자인 장 데스멋이 1907년에서 1916년 사이 전 세계에서 제작된 900편 이상의 35㎜ 영화 필름과 원본 포스터, 홍보물 등을 수집한 것이다. 그림 형제가 만든 ‘그림 동화’는 종교 혁명의 시초가 된 루터의 성서에 버금갈 정도로 독일 문화사에서 가장 많이 알려지고 배포된 책이다. 인류 최초로 유럽과 동양의 모든 전통 동화를 체계적으로 편집하고 과학적으로 기록했다. ‘솜 전투 필름’은 1916년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프랑스 연합군과 독일군 간의 치열했던 솜 전투를 기록한 영상이다. 전쟁 준비와 전투 초기단계가 흑백의 35㎜ 무성필름에 담겼다. 약 70분 분량이다.‘직지로드’라는 전시공간도 꾸며진다. 이곳에는 1333년 교황 요한 22세가 고려 충숙왕에게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편지가 전시된다. 이 편지는 고려와 서양 간의 교류 가능성을 높여 주는 자료다. 고려의 금속활자기술이 구텐베르크 인쇄술에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이 허무맹랑한 얘기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 주는 자료이기도 하다. 직지코리아의 또 다른 축은 공연과 체험이다. 지난 행사보다 기간이 3배 가까이 길어진 만큼 주제에 걸맞은 공연과 프로그램이 넘친다. 청춘들의 고민을 나누는 토크 청춘콘서트, 음악과 차, 명상이 어우러진 다도가 있는 음악회, 고려의상 패션쇼, 젊은이들이 밴드와 함께 금요일 밤을 즐길 수 있는 Rock&Night, 고려 장터를 재현해 당시의 먹거리를 즐길 수 있는 고려 저잣거리 등이 마련된다. 색모래를 이용해 도로 위에 그림을 그려 보는 그라운드아트, 차 없는 거리에서 지역예술가들의 작품을 감상하고 구매할 수 있는 아트나잇 청주, 고려시대 금속활자 조판임무를 담당하던 군자장의 역할을 놀이로 만든 직지조판놀이, 직지를 맛으로 표현하고 즐겨 보자는 의미로 문자와 먹거리를 결합한 직지콜라시옹도 즐길 수 있다.●전 세계 인쇄문화 전문가 참여 학술회의도 세계인쇄문화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킬 수 있는 의미 있는 행사들도 속속 열린다. 직지코리아 개막일에는 전 세계 인쇄문화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세계인쇄박물관협회(IAPM)를 창립하기 위해서다. 세계 50여국의 80여개 인쇄박물관, 인쇄 관련 기관 관계자들이 참석할 예정이다. 이들은 2일과 3일 이틀간 학술회의를 갖고 기록유산과 인쇄문화의 보존, 지식정보발전을 위한 프로젝트 등을 논의한다. 김천식 직지코리아조직위 사무총장은 “세계 인쇄박물관 정보공동체인 IAPM 출범식 개최로 청주는 세계적인 기록문화 도시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기대했다.●개막식 때 유네스코 직지상 시상식 열려 개막식에서는 유네스코 직지상 시상식이 거행된다. 올해 수상자는 아프리카 이슬람 문서보존을 위해 힘쓴 비정부기구(NGO) 단체인 아프리카 말리의 ‘사바마-디’(SAVAMA-DCI)로 결정됐다. 사바마-디는 아프리카 말리 북부지역이 알카에다 연관 무장단체에 장악돼 많은 유적과 문서가 손실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말리의 ‘알 왕가리 도서관’ 등에 소장된 600여건의 문서를 디지털화했다. 직지가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것을 기념해 2001년 제정된 이 상은 기록유산의 보전·연구에 기여한 개인이나 단체에 유네스코가 2년에 한 번씩 주는 상이다. 수상자에게는 3만 달러가 상금으로 전달된다. 역대 직지상 수상자들이 모여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고 기록문화 발전을 위해 국제적 협력을 모색하는 자리인 ‘직지상2.0라운드테이블’도 열린다. 직지코리아 입장료는 성인기준 사전 예매 6000원, 현장 판매 8000원이다. 직지코리아는 정부 공인 국제행사로 2016년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광장’ 속으로 떠난 한국문학의 거장… “오직 글로 말한 예술가”

    ‘광장’ 속으로 떠난 한국문학의 거장… “오직 글로 말한 예술가”

    분단·현대사에 대해 깊이 고뇌해 온 삶 ‘회색인’부터 ‘화두’까지 작품에 오롯이 소설 ‘광장’ 205쇄 찍은 기념비적 작품남북한 체제와 이데올로기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소설 ‘광장’으로 전후 한국 문학의 지평을 새롭게 연 소설가 최인훈이 별세했다. 네 달 전 대장암 말기 진단을 받고 투병하던 작가는 23일 오전 10시 46분 경기 고양시 명지병원에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 84세. 최 작가는 1934년(공식 기록은 1936년) 함경북도의 두만강변 국경 도시 회령에서 태어났다. 목재 상인의 4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해방과 더불어 원산으로 이주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벌어지자 가족과 함께 원산항에서 해군 상륙함을 타고 월남했다. 1952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해 6학기를 마쳤지만 전후 분단 현실에서 공부하는 데 갈등을 느껴 1956년 중퇴했다. 생전에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고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크다”고 말했던 작가는 지난해 서울대 법학과에서 명예졸업장을 받았다. 최 작가는 1959년 군 복무 중 쓴 단편소설 ‘그레이 구락부 전말기’와 ‘라울전(傳)’을 월간 ‘자유문학’에 발표하며 등단했다. 이듬해 4·19혁명이 일어나고 7개월 뒤인 1960년 11월 월간 ‘새벽’에 문제적인 소설 ‘광장’을 발표했다. 남한과 북한의 정치 현실에 모두 환멸을 느낀 주인공 이명준의 역정을 다룬 이 작품은 한국 현대문학사 최고의 고전으로 꼽힌다. 작품이 발표된 이후 반세기가 넘도록 여전한 분단 현실 앞에서 작가는 낡지 않은 문제의식을 던진다. 2008년 등단 50주년을 앞두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최 작가는 이 작품을 두고 “4·19는 역사가 갑자기 큰 조명등 같은 것을 가지고 우리 생활을 비춰 준 계기였기 때문에 ‘광장’은 내 문학적 능력보다는 시대의 ‘서기’로서 쓴 것”이라며 자신을 낮췄다. ‘최인훈 전집’을 낸 출판사 문학과지성사의 이광호 대표는 “문학평론가 김현 선생께서 최인훈 작가를 ‘전후 최대의 작가’라고 하셨는데, 전후 뿐 아니라 한국 문학사에서 위대한 작가 중 한 사람”이라면서 “한국이 처한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지닌 의미를 보편적이고 철학적이고 세계사적인 문맥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성찰하게 해 준 작가”라고 말했다. 고인은 그간 시대의 존재론적 고뇌를 그린 ‘회색인’,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며 파격적 서사 실험을 선보인 ‘서유기’, 20세기인의 운명을 조망한 ‘화두’, 실험적 패러디 기법으로 고전을 새롭게 해석한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등의 소설과 희곡집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 산문집 ‘유토피아의 꿈’, ‘문학과 이데올로기’, ‘길에 관한 명상’ 등을 남겼다. 동인문학상, 이산문학상, 박경리문학상, 서울시문학상, 한국연극영화예술상 희곡상 등을 받았다. 이날 최 작가의 별세 소식에 문재인 대통령과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조화를 보내 애도했다. 수많은 동료, 후배 문인들의 애도도 이어졌다. 장례위원장을 맡은 김병익 문학평론가는 “작가로서 영향력이 컸지만, 문학권력이라고 할 만한 건 전혀 없었다”며 “오직 글만 쓰고 문학으로만 말한 예술가”라고 말했다. 공지영 작가는 트위터에 “책갈피를 넘기며 생각들이 떡갈나무 이파리들처럼 펄럭이게 했던 선배님 고이 잠드소서. 남은 후배들이 통일의 문학을 할 수 있게 빌어주소서”라고 애도 메시지를 올렸다. 유족으로는 부인 원영희씨와 아들 윤구씨, 딸 윤경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5일이다. 장례는 ‘문학인장’으로 치러진다. (02)2072-2091.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광장’ 최인훈 작가 84세 일기로 타계…한국 현대문학 거목

    ‘광장’ 최인훈 작가 84세 일기로 타계…한국 현대문학 거목

    소설 ‘광장’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등으로 한국 현대문학사의 거목으로 우뚝 선 최인훈 작가가 23일 오전 10시 46분 타계했다. 84세. 최인훈 작가는 4개월 전 대장암 말기 진단을 받고 투병하다 경기도 고양시 명지병원에서 가족들의 임종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 1934년(공식 출생기록은 1936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난 고인은 고등학교 재학 중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국군을 따라 남쪽으로 왔다. 아버지는 목재상이었고, 집안이 제법 부유한 편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1952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 6학기를 마쳤지만 1956년 중퇴했다. 전후 분단 현실에서 공부에 전념하는 데 갈등을 느꼈던 것으로 전해진다. 1958년 군에 입대해 6년간 통역장교로 복무했다. 군 복무 중인 1959년 단편소설 ‘그레이 구락부 전말기’와 ‘라울전(傳)’을 ‘자유문학’지에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이듬해 4·19 혁명이 일어났다. 그리고 7개월 뒤인 1960년 11월 ‘새벽’지에 중편소설 ‘광장’을 발표했다. ‘광장’은 이데올로기의 대립을 정면으로 다루며 그 안에서 실존을 고뇌하는 개인을 그려내 당시 문학계에 큰 파문을 던졌다. 고인은 자신의 대표작 ‘광장’에 대해 “4·19는 역사가 갑자기 큰 조명등 같은 것을 가지고 우리 생활을 비춰준 계기였기 때문에 덜 똑똑한 사람도 총명해질 수 있었고, 영감이나 재능이 부족했던 예술가들도 갑자기 일급 역사관이 머리에 떠오르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광장’은 내 문학적 능력보다는 시대의 ‘서기’로서 쓴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지금까지도 널리 읽히는 작품이며, 출간 이후 현재까지 통쇄 204쇄를 찍었다.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 최다 수록 작품이며, 대학수학능력시험 지문으로 두 번이나 출제됐다. ‘광장’ 외에도 ‘회색인’(1963), ‘서유기’(1966), ‘총독의 소리’(1967~1968) 연작, ‘화두’(1994),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태풍’, ‘크리스마스 캐럴/가면고’, ‘하늘의 다리/두만강’, ‘우상의 집’ 등 소설과 희곡집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 산문집 ‘유토피아의 꿈’, ‘문학과 이데올로기’, ‘길에 관한 명상’ 등의 작품을 냈다. 고인은 그 문학성을 인정받아 동인문학상(1966), 한국연극영화예술상 희곡상(1977), 중앙문화대상 예술 부문 장려상(1978), 서울극평가그룹상(1979), 이산문학상(1994), 박경리문학상(2011) 등을 받았다. 고인은 2003년 계간지에 발표한 단편 ‘바다의 편지’를 끝으로 새 작품을 내지 않았다. 그러나 2008년 신판 ‘최인훈 전집’ 발간을 기념한 기자간담회에서 “한 권 분량의 새 작품집을 낼 만한 원고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또 이듬해 자신의 희곡이 올려진 무대에서 관객들과 만나 “창작하는 사람들에게 은퇴란 없다. 지금도 여전히 글을 쓰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1977년부터 2001년 5월까지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교수로 많은 문인 제자를 배출했으며 퇴임 이후에도 명예교수로 예우받았다. 대학에서 오랜 세월 후학들을 길러냈으면서도 정작 본인은 대학을 제대로 마치지 않았던 데 대해 “열악한 환경에서도 최상의 혜택을 줬는데도 누리지 못한 그때의 내가 너무 밉다.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고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크다”고 깊이 아쉬워하기도 했다. 결국 2017년 2월 24일 서울대에서 명예졸업장을 수여하며 오랜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유족으로는 부인 원영희 여사와 아들 윤구, 윤경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02-2072-2020)에 차려진다. 이날 오후부터 조문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장례는 ‘문학인장’으로 치러지며, 위원장은 문학과지성사 공동창립자이자 원로 문학평론가인 김병익이 맡았다. 영결식은 25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내 강당에서 열릴 예정이다. 시간은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발인은 영결식 이후, 장지는 ‘자하연 일산’(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지영동 456)이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사직터널 사이로… 서쪽 서울 사람들의 시간을 잇다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사직터널 사이로… 서쪽 서울 사람들의 시간을 잇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8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3회 서울사방 서대문 안과 밖 편이 지난 26일 진행됐다. 봄바람과 봄볕을 따라 걷는 5월 마지막 주 해설이 있는 주말 나들이였다. 정원 30명과 대기자 및 진행자까지 40명이 결원 없이 모두 참가해 준비한 오디오 가이드 40개 전량이 동났다. 부부, 친구, 모녀, 동호인 등 다양한 관계와 연령의 조합이 환상적인 팀을 이뤘다.일행은 구수한 입담을 자랑하는 한세화 해설사를 따라 체부동 생활문화지원센터와 체부동 시장골목을 둘러본 뒤 사직터널로 향했다. 광화문풍림스페이스본 아파트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내수동과 신문로 골목을 이리저리 헤치고 나아가 옛 경희궁 궁역인 서울역사박물관에 도착했다. 서대문 안이다. 경교장이 있는 강북삼성병원부터 서대문 바깥이다. 돈의문 박물관마을을 조성하면서 서대문을 복원하지 않은 건 두고두고 아쉽다. 일제는 1915년 도시계획을 핑계 삼아 서대문을 철거한 뒤 목재값 205원 50전을 받고 팔아 버렸다. 100년이 지난 뒤에도 ‘서대문이 없는 서대문’은 여전하다. 참가자들은 4·19혁명기념도서관, 충정아파트, 미동아파트, 충정각, 손기정체육공원 등 우리 근현대사가 남긴 서대문 밖 풍경을 2시간 30분 동안 차근차근 돌았다. 독립문에서 광화문을 잇는 찻길인 사직터널로 말미암아 끊어진 서울의 서쪽 사람 길을 회복하는 여정이었다. 일행 중 답사 경험이 풍부한 몇몇은 우리가 서촌이라고 부르는 우대(웃대)에서 서대문으로 나가는 길이 사직터널을 사이에 두고 갈라져 있다는 점을 새삼 확인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새문안길을 통해 두 장소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도 일깨웠다. 서촌이라는 지명의 유전(流轉)이 증명하듯 장소의 역사는 머물지 않고 쉼 없이 흐른다. 서촌의 유래는 한양을 구성하는 5촌(동촌·서촌·남촌·북촌·중촌)에서 비롯됐다. 여기서 서촌은 서소문과 덕수궁 주위를 이른다. 요즘 경복궁 서쪽, 인왕산 아래 동네를 서촌이라고 부르는 건 잘못된 것이다. 그런 식이라면 경복궁 동쪽에 있는 북촌을 동촌이라고 불러야 할 판이다. 동촌은 엄연히 낙산 아래 대학로 주변이다. 북촌은 북악산, 남촌은 남산 아랫동네이며 중촌은 사대문 중앙을 흐르는 청계천 주변을 지칭한다. 조선의 5촌 또는 5부는 현대 서울의 25개 자치구 격이다. 굳이 서촌을 고집하겠다면 ‘인왕산 서촌’이라고 한정했으면 한다. 1929년 9월에 발행된 잡지 ‘별건곤’에 실린 ‘옛날 경성 각급인의 분포 상황’이라는 글을 보면 ‘서소문 내외를 서촌이라고 하고…(중략)…서촌에는 양반이 살되 문반 중 서인이 살며…(중략)…우대에는 육조 이하의 각사에 소속된 이배(吏輩)·고직(庫直)이 산다’고 적었다. 18세기 문인 이가환이 당대 우대에 사는 경아전들이 주축이 돼 결성한 모임 ‘송석원시사’의 시화첩에 붙인 서문 ‘옥계청유첩서’에서 ‘경복궁의 서쪽은 좁은 땅이다. 이 때문에 서리들이 많이 살며 일에 익숙하고 질박함이 적다’고 묘사했다.우대라고 불리는 경복궁 서쪽과 서북쪽 누하동 근처는 궁에 소속된 대전별감, 내시가 각각 살았다는 사실도 적시돼 있다. 우대는 인왕산 아래 옥인동·누상동·사직동·효자동·창성동·통인동·신교동 등을 이른다. 17세기 말 한양의 풍속을 묘사한 정래교의 ‘임준원전’을 기준으로 보면 인왕산~경복궁 사이, 사직로~북악산 사이쯤이다. 이배·고직이란 서울의 중인 계급인 경아전의 통칭이라고 보면 된다. 이를 서리 또는 겸인이라고도 했는데 행정관청에서 실무를 맡은 말단 관리이자 양반가의 비서에 해당하는 청지기를 이른다. 양반촌 서촌과 중인촌 우대는 별개의 장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촌은 한양도성의 서남쪽 서소문 일대이며 지금도 행정구역상 서소문동을 이룬다. 양화진과 마포 및 서강나루에 도착한 어물과 세곡선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교통 요충지였기에 점차 양반촌에서 상인 거주지로 변했다.우대 중인과 서촌 상인들이 사실상 서울의 주인 노릇을 했다. 17세기 한성부의 호적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서울 사람 열에 일곱은 노비였다. 서울의 특성상 지방보다 노비가 많기도 했지만 조선 전체로 따져도 1200만명 중 30~40%는 노비 계층이었다. 한양 인구 20만명 중 왕족과 양반·관료 및 유생·선비는 10% 안팎이었고, 경아전·별감·서리·겸인·내시 및 역관·의관·화원·율관 등 중인 계층과 시전을 운영하는 부유한 상인 계층 그리고 서울에서 근무하는 하급 장교와 일반 군사 등 중인·평민 계층이 20~30% 정도였다. 임지를 전전하거나 낙향이 잦았던 양반과 달리 중인 및 상인이 서울 사람의 주류를 이뤘다고 할 수 있다. ‘인왕산 서촌’과 서대문은 별개의 동네이면서도 늘 연결됐다. 인경궁과 경희궁은 광해군 때 지은 두 개의 궁이다. 인왕산 아래 인경궁은 누상동·누하동·누각동이라는 지명을 낳고 곧 사라졌다. 신문로(새문안) 일대의 왕기를 지우려고 세운 경희궁은 서궐의 역할을 했다. 도성 서쪽에는 서대문(敦義門)과 서전문(西箭門)이 있었다. 태종 때 세도가 이숙번이 자기 집 앞 서대문을 닫고, 문을 다른 곳에 짓도록 했기 때문이다. 새문은 ‘성문을 막은 문’(塞門)이라는 뜻과 더불어 ‘새로 지은 문’(新門)이라는 복합 의미를 가진다. 서대문을 대신한 서전문은 지금의 사직터널 앞쯤에 있었다. 사직터널을 뚫고 사직천을 복개해 사직로를 놓기 이전에는 고개로 막혀 있었다. 광화문을 돌아서 가야 하는 먼 길이었다. 조선의 왕들도 사직단에 갈 때는 광화문 육조대로를 지나 지금의 세종대로 네거리까지 나온 뒤 세종문화회관, 정부서울청사, 서울지방경찰청 앞길을 따라 사직단을 오갔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이원석 연구위원 ●다음 일정 : 서울사방 북촌(북촌개발자 정세권의 길)●일시 및 집결 장소 : 6월 2일(토) 오전 10시 안국역 2번 출구 앞 ●신청(무료):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 [성태윤의 경제 인사이트] 생산성을 반영하는 임금이 핵심이다

    [성태윤의 경제 인사이트] 생산성을 반영하는 임금이 핵심이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경제학 교수였던 킨들버거가 저술한 ‘경제 강대국 흥망사:1500~1900’는 유럽 국가들이 번성했다가 쇠퇴하는 과정을 흥미롭게 다루고 있다. 베네치아와 제노바같이 해상교역로 확대와 함께 상업혁명을 이루며 중개무역 및 배후지 산업으로 번영한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이 어떻게 쇠퇴했는지를 다루는 내용이 있다. 이들의 몰락에는 여러 원인이 작용했지만, 해운업과 조선업의 악화가 영향을 미쳤는데 생산성과 괴리된 임금이 중요 원인이었다고 지적한다. 비용 대비 생산성은 국제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이다. 생산성과 괴리된 임금하에서 국제경쟁에 노출된 해운업과 조선업이 몰락하는 것은 놀라운 일은 아니다. 이들 산업이 번성하던 초기에는 선박 건조에 필요한 산림이 풍부해 조선업 핵심 원자재인 목재 수급이 원활해 임금이 어느 정도 상승해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목재 공급 부족으로 비용은 올라가는데 임금까지 상승하자 감당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무역을 통한 개방경제로 성장을 이루었다는 점, 해운업과 조선업이 중요 산업이었다는 점은 유사한 발전 경로를 지닌 우리에게 시사점이 있다. 올해부터 적용되는 16.4%라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해 우리나라에서는 임금 관련 논의가 뜨겁다. 근로자들의 인간다운 삶의 보장과 성장을 위해 임금을 올리는 것이 중요한지, 반대로 경쟁력 확보를 위해 임금상승을 억제하는 것이 필요한지 논란이다. 그런데 핵심은 임금을 올리는 것도 억제하는 것도 아니고, 생산성을 반영하는 임금체계를 갖추고 있는지 여부다. 만약 임금이 생산성에 못 미친다면 임금을 올리는 것이 마땅하다. 이 경우 임금을 올리면 고용을 위축시키지 않으면서 근로자들의 가처분소득을 높여 내수 확대에 도움이 되는 선순환 구조가 될 수 있다. 반면 임금이 생산성을 상회해 기업들이 이미 한계상황에 처한 상태에서 임금을 올리면 기업이나 고용주는 고용을 축소하거나 소비자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물론 최저임금 이슈는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에게 중대한 문제여서 국제경쟁력 관점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일괄적인 최저임금 인상의 경우 광범위하게 적용되기 때문에 업종?지역에 따른 생산성 차이를 반영하기 어렵고, 최저임금 계층과 무관한 일반 임금을 끌어올리는 효과도 있다. 또한 명목 인상폭이 동일해도 시기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갖는다. 예를 들어 이번 같은 두 자릿수 인상이 2000년과 2007년 있었다고 하나, 그때는 경제성장률(8.9%, 5.5%)과 물가상승률(2.3%, 2.5%)이 지금에 비해 높던 시절이어서 고용주가 느끼는 부담은 다르다. 따라서 현재처럼 완만한 경제성장률에 머물고 있는 거시 환경 속에서 생산성 증대가 동반되지 않는 큰 폭의 최저임금 인상은 내수와 수출기업을 떠나 충격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생산성이 낮은 업종은 대개 고용주 자신도 소득이 높지 않아 ‘소득이 낮은 사람의 것을 거두어 소득이 더 낮은 사람에게 이전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킨들버거 교수는 같은 책에서 16~17세기 사회현상을 기록한 휘네스 모리슨의 여행기 일부를 인용한다. ‘이탈리아인들은 항해 기간이 얼마나 걸리든 매일 선원들에게 급료를 지불하는데, 이 때문에 그들은 가급적 폭풍을 피하고 항구에 머무르며, 바람이 적게 불 때만 항구를 나선다. (중략) 영국인들은 항해가 끝나야 보수를 받으므로 유리한 바람이 한 번 불면 바로 항해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구절은 보상체계가 어떻게 사람들 행동에 영향을 주는지 보여 준다. 즉 생산성을 반영하는 임금 체계는 그 자체가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따라서 업종, 지역, 규모 등을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최저임금을 크게 인상하기보다 어떻게 임금보상 체계를, 생산성을 반영하는 형태로 만들어 갈지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 각 상황을 고려한 유연한 최저임금 정책을 허용하는 한편 정말 생활이 어려운 분들에 대해 정부가 직접 이전지출 지원을 강화하고 실업급여를 강화하는 등 대상을 명확히 하는 정책이 중요하다.
  • [2017 제3회 서울신문 정책포럼] 안전만큼은 규제가 惡 아닙니다… 유통과정 제재 강화해야죠

    [2017 제3회 서울신문 정책포럼] 안전만큼은 규제가 惡 아닙니다… 유통과정 제재 강화해야죠

    가습기 살균제부터 생리대, 기저귀 등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제품 안전 문제가 끊임없이 불거지면서 소비자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소비자단체와 협업해 ‘생산·인증→수입·유통→사용·소비’ 등 단계별로 안전관리를 강화하는 ‘제3차 제품 안전관리 종합계획’을 마련했다. 하지만 최근 ‘살충제 달걀’ 파동만 보더라도 달걀이 농장에 있는지, 출하돼 마트에 있는지 등에 따라 소관 부처가 달라지며 책임 전가가 이뤄지고 있다. 체계적인 대책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대책이 제대로 실행되도록 하는 것 또한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서울신문은 지난 8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본사 회의실에서 ‘제2 가습기 살균제 사태 막으려면-제품안전관리 강화, 실행력 확보가 중요하다’라는 주제로 정책포럼을 열었다. 강경성 국가기술표준원 제품안전정책국장이 주제 발표를 맡고, 문은숙 소비자와함께 공동대표, 이만찬 한국제품안전협회 부회장, 이종영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정지연 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이 패널로 참석했다. ●“달성 힘든 목표만 잡은 건 아닌지 살펴야”정지연 사무총장(이하 정 사무총장) 2019년까지 3년짜리 종합계획으로 제품의 안전관리 체계를 바로 세울 수 있겠는가. 3년 단위 계획은 충분치 않다. 일본은 2030년까지 중장기 로드맵을 가지고 있다. 향후에는 장기적 관점에서 로드맵을 세운 뒤 그 속에서 단기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이만찬 부회장(이하 이 부회장) 우리는 중장기 계획 기간을 5년으로 잡는다. 요즘엔 제품 주기가 너무 빨라져서 실행의 적확성을 높이기 위해 3년으로 하고 있다.이종영 교수(이하 이 교수) 특정 산업을 ‘육성’하는 계획은 기본 틀을 5년으로 잡고, 연도별 시행계획을 수립한다. 그런데 안전 분야는 계획이라는 것 자체가 없었다. 포괄적인 안전관리 계획을 세우는 게 쉽지 않다. 계획이 잘 실행되면 국민들이 안심할 수 있어야 하는데 3년 뒤에 평가를 어떻게 할지도 중요한 대목이다.강경성 국장(이하 강 국장) 안전관리 계획은 계획 마련이 20%, 실행이 40%다. 나머지 40%는 소비자들과 소통하면서 끊임없이 보완 발전시켜야 한다. 평가 역시 소비자단체와 같이 해야 한다.문은숙 공동대표(이하 문 대표) 계획은 화려하지만 달성이 어려운 목표를 잡아 놓은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 소비자들이 체감할 수 없는 사업도 많다. ●“제조는 자율성 주되 유통과정 직접 관리 필요” 정 사무총장 위험 제품을 만들어 유통하다 적발되면 기업이 문을 닫을 수도 있는 법제도 정비가 이뤄져야 소비자의 실질적인 권익을 지킬 수 있다. 이 부회장 공감한다. 법정 벌금 최고액이 3000만원인데 실제 재판에서는 평균 200만원이 나온다. 잘 팔기만 하고 안전에 신경을 안 써도 된다는 한탕주의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 교수 안전 문제에서만큼은 정부가 규제 강화를 악(惡)으로 생각해선 안 된다. 규제를 무조건 풀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보니 각 부처가 새 규제를 만드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다. 그렇다 보니 안전 수준을 높이지 못했다. 재판에서도 판사들이 고의성이 없다고 판단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하지 않는다. 따라서 안전을 확인하지 않은 제품을 유통하면 수익을 한 푼도 챙길 수 없는 수준으로 징벌적 과징금을 세게 부과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 부회장 그렇다. 우리나라는 제조 과정에서 규제를 많이 하는 편인데, 유럽의 경우에는 제조 과정에선 자율성을 주되 시장에서 유통하다 걸리면 강하게 제재한다. 제품 생산 순환 주기가 짧아지는 최근엔 시장 유통 과정에서의 직접적인 관리가 더 중요하다. 우리도 기업의 제조 과정에는 자율권을 주되 사후 관리를 철저히 해 확실한 책임을 지게 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정 사무총장 사후 관리의 전제가 집단소송, 징벌적 손해배상 등의 법제도 강화다. 우리나라는 아직 이게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제조 과정에서의 자율성을 부여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강 국장 정부가 아무리 촘촘한 정책을 내놔도 기업은 피해 갈 방법을 찾아 간다. 현실적으로 징벌적 과징금을 도입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혈당 체크 스마트폰, 부처마다 인증 받아야” 이 교수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융합 제품이 많이 나오다 보니 기존 기준이 이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특히 각 분야별로 국가의 안전인증기관이 제각각이다 보니 새 제품이 나올 때마다 문제가 된다. 예를 들어 혈당 체크가 가능한 스마트폰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보건복지부 산하의 인증기관을 모두 거쳐야 한다. 유럽연합(EU)처럼 인증기관을 단일화할 필요가 있다. 정 사무총장 인증 기구를 하나로 통합하는 것은 기업 편의적인 측면이 강한 것 같다. 문 대표 완제품 이전 단계까지 안전 인증을 하겠다는 방향은 적절하다고 본다. 인증기관을 하나로 통합하는 취지가 국가의 인증이 모든 것을 보증하고 책임지겠다는 것이니까. 강 국장 국가기술표준원에서는 최종 제품만 체크한다. 물질 단계부터 금속류, 플라스틱류 등의 공통 안전 기준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이 교수 그렇다. 지금은 화학물질만 관리 대상이고 세라믹이나 목재에 대한 기준은 없다. 문제가 생기면 최종재 생산자가 책임을 지고, 물질 제조업체에 대해 구상권을 행사하는 방식이다. 물질 종류별로 기준을 세울 필요가 있다. ●“안전원칙 불변… 기업규모 따라 달라선 안 돼” 이 교수 정부가 중소기업이라고 안전관리에 예외를 허용하다 보면 결국 소비자가 피해를 보게 된다. 문 대표 그렇다. 안전관리 기준을 기업 규모에 따라 달리 적용해선 안 된다. 안전 원칙은 어떤 경우에도 흔들면 안 된다는 모습을 정부가 보여 줘야 한다. 안전 자체에 대한 책임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력추적제를 도입해 생산 과정 중 이전 단계에서 받아 쓰는 원자재의 안전을 확인하는 의무 정도는 부여할 필요가 있다. 예외는 없지만 보완을 해 주는 식으로 소상공인을 보호하는 것이 맞다. 이 부회장 이력 추적도 쉽지 않은 것이 불법 수입 제품이다. 온·오프라인 등 수입과 유통이 다변화되다 보니 시장 감시가 쉽지 않다. 이 교수 유통 분야는 활동적이기 때문에 소비자단체와의 협력이 중요하다. 시장 감시 실행력을 강화하기 위해선 처벌 강화만이 아니라 불법을 저지르면 무조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인식을 일반화해야 한다. 처벌을 강화해도 단속이 제대로 안 되면 기업들은 법을 어기게 된다. 문 대표 요즘 급증하는 구매대행을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전안법)의 예외로 둔 것은 잘못이다. 분명히 구매대행도 수익 목적으로 이뤄진다. 해외 직구나 구매대행에 대한 책임도 반드시 물려야 한다. ●“리콜 이행강제금·사후 재발 방지책 마련도” 이 교수 리콜도 손봐야 한다. 명령만 하고 있지 이행 기준이나 어디까지 수거해야 이행을 한 것으로 봐야 할지 등이 확실치 않다. 실행을 담보하기 위해선 이행강제금을 부과해야 한다. 강 국장 지금은 리콜 이행 계획서만 제출하면 된다. 계획서만 내고 이행을 하지 않아도 강제할 방법이 없다. 이행 점검 및 보완명령의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정 사무총장 리콜, 제품 인증 정보, 유해성 정보를 한 곳에서 손쉽게 모바일로 확인할 수 있게 하는 등의 접근성을 강화해야 한다. 문 대표 리콜과 사고 재발 방지를 접목해 사고가 발생하면 제품을 수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재발 방지책 마련과 실행까지 이행돼야 한다. 이 부회장 그런 측면에서 사고 조사가 중요한데 우리나라는 제조물 사고의 경우 원인 분석도 제대로 안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강 국장 제품안전기본법이 생긴 지 얼마 안 됐다. ●“산업부, 제품 안전업무 서자 취급도 문제” 이 교수 제품 안전관리 업무를 산업통상자원부가 전담하지 않았다면 제품안전관리원이 벌써 생겼을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산업 육성이 1차 목표인 산업부에서 안전 업무는 서자 취급을 당했다. 수출을 위해서라도 안전관리가 제대로 이뤄져야 하는데 정부가 안전의 중요성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했다. 정 사무총장 맞다. 제품안전관리원이 산업부 산하에 있으면 소비자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이 현실이다. 문 대표 소비자와의 소통을 정책 기획 단계부터 적극적으로 하는 것이 좋다. 필요성부터 평가까지 함께 고민하면 소비자의 이해와 신뢰도 깊어질 수 있다. 강 국장 좋은 지적이다. 소비자단체 등의 의견을 정책에 잘 반영할 수 있도록 하겠다. 정리 장형우 기자 zangzak@seoul.co.kr
  • 히틀러 트로츠키 티토 프로이드 스탈린이 함께 머물렀던 도시는?

    히틀러 트로츠키 티토 프로이드 스탈린이 함께 머물렀던 도시는?

    퀴즈 하나. 아돌프 히틀러와 레온 트로츠키, 요시프 티토, 지그문트 프로이드, 요시프 스탈린이 한 세기도 훨씬 전인 1913년 함께 머물렀던 도시는? 답은 오스트리아 빈. 영국 BBC 매거진은 우연의 일치치곤 기묘하게 한 도시에 삶의 궤적이 얽힌 다섯 인물의 빈 생활을 조명해 눈길을 끌고 있다. 그 해 1월 스타브로스 파파도풀로스란 이름의 여권을 지닌 인물이 폴란드 크라쿠프를 떠난 기차에 몸을 싣고 빈의 노스터미널 역에 도착했다. 커다란 수염을 달고 있었으며 목재 여행가방을 든 채였다. 그가 만났던 한 남자는 몇년 뒤 “난 테이블 앞에 앉아 있었는데 노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웬 낯선 남자가 들어왔다. 작고 땅딸막한 그는 회갈색 피부에 마마자국이 선명했다. 그의 눈에는 친근함 따위란 찾아볼 수가 없었다“고 적었다. 이 글을 쓴 이는 1907년부터 1914년까지 이 도시에 머무르며 러시아의 반체제 신문 프라우다를 발행했던 러시아 지성의 대표자 트로츠키였다. 그는 1907년부터 1914년까지 이 도시에 머무르며 니콜라이 부하린과 함께 ‘마르크시즘과 국가 문제’를 집필하고 있었다. 의문의 사나이는 태어날 때 이름이 Iosif Vissarionovich Dzhugashvili이며 친구들 사이에 Koba로 통했으며 지금은 요시프 스탈린으로 기억되는 인물이었다. 그해 1월 한달 동안 이 다섯 남자가 모두 빈 중심가에 흩어져 살고 있었다. 둘은 도망자 신세였으며 프로이드는 1860년대 빈에 이주해 1938년 나치가 오스트리아를 합병하자 이 도시를 떠났는데 당시는 베르가세란 곳에 살며 마음의 비밀을 연 남자로서 추앙받고 있었다. 나중에 유고슬라비아의 지도자 티토 장군으로 명성을 얻은 젊은 날의 Josip Broz는 빈 남쪽의 빈 노이슈타트에 있는 다임러 철강공장에서 일하며 돈을 벌며 좋은 날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중에 제국 군대에 자원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스트리아 북서부 출신으로 1908년부터 이 도시에서 살아 24세 나이에 화가의 꿈을 안고 비엔나 예술아카데미에서 공부하고 싶었으나 두 차례나 낙방하고 다뉴브강 근처 멜더만스트라세의 저급 여인숙에 기거하던 히틀러가 있었다. 다른 건 제쳐두더라도 이 도시의 호프버그 궁전은 1848년 혁명 이후 즉위한 프란츠 요세프 황제가 노년을 보낸 곳이다. 황태자 프란츠 페르난디드 대공은 근처 벨베데레 궁전에 머무르며 왕위 계승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가 암살되면서 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되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당시 빈은 15개 나라 5000만명이 훨씬 넘는 인구를 거느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수도였다. 이 도시에서만 17년 동안 살아왔고 오스트리아에서 유일하게 영어로 발행되는 월간지 ‘비엔나 리뷰’의 수석 편집자인 다르디스 맥너미는 ”딱히 ‘용광로’가 할 수는 없겠지만 비엔나는 제국의 야망이 한데 모이는 일종의 문화적 잡탕(soup)이었다“며 ”200만 시민의 절반 이하만 원래 이곳에서 태어난 이들이고 4분의 1씩은 보헤미아(지금의 체코공화국 서부)와 모라비아(지금의 체코공화국 동부)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독일어와 체코어는 물론, 10여개 언어가 혼용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오스트리아-헝가리 군대는 독일어 외에도 11개 언어로 명령을 내려야 했고 국가는 그 수만큼 공식 번역본이 있었다“고 소개했다. 이런 상황에 커피 하우스란 독특한 문화 현상이 출현했다. 물론 그 출발은 1683년 오스만 군대가 저유명한 터키 포위에 실패한 뒤 커피 종자를 빈에 들여온 것이었다. 해외정책 싱크탱크 채텀 하우스의 선임연구원이며 ‘1913-대전쟁 전의 세계를 찾아’의 저자인 찰스 에머슨은 ”카페 문화와 카페에서의 토론과 논쟁에 대한 언급들은 지금이나 그때나 빈 생활의 커다란 영역“이라며 ”빈의 지성 커뮤니티는 아주 작아서 모든 이들이 서로를 알았다. 문화적 경계를 뛰어넘어 모든 것들이 오갔다“고 지적했다. 도망 중인 반체제 인물들에게는 빈의 이런 풍토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에머슨은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도 아니었고, 아마도 약간은 느슨한 나라였다. 흥미로운 사람을 많이 만날 수 있으면서도 유럽에서 안전하게 숨을 장소를 찾는다면 빈은 그러기에 딱 좋은 장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트로츠키와 히틀러는 카페 센트럴에 자주 나타났는데 이곳에는 케이크, 신문, 체스와 무엇보다도 대화가 가능했다. 맥너미는 ”그 카페들을 중요한 장소로 만든 것들은 모든 이들이 간다는 것이었다“며 ”그래서 규율과 이해관계에 상관 없이 비옥한 사상의 토양이 만들어졌다. 나중에 서구 사상은 매우 엄격해졌는데 여긴 아주 물흐르듯 자유로웠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1867년 프란츠 황제가 시민권을 전면 보장하면서 학교와 대학 접근권이 보장돼 유대인 지성계와 새로운 자본가 계급의 에너지가 넘쳐나게 됐다“고 설명했다. 남성 지배 사회였지만 상당수 여성도 혜택을 누렸다. 구스타프 말러가 1911년 세상을 떠난 뒤 미망인 알마도 작곡자 겸 뮤즈가 돼 예술가 오스카르 코코슈카와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의 연인이 됐다. 빈은 음악과 호화 무도회와 왈츠의 상징이 됐지만 뒷모습은 암담해졌다. 엄청나게 많은 시민들이 슬럼가에 거주했고 거의 1500명이 한해 동안 자살했다. 히틀러가 트로츠키와 마주쳤는지, 티토가 스탈린과 만났는지 아는 이는 없다. 그러나 2007년 로렌스 마크스와 모리스 그랜이 만든 라디오 드라마 ‘프로이드가 히틀러를 진찰한다면’는 이런 만남을 상상해 만들어졌다. 이듬해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함으로써 빈의 지성계는 와해됐다. 1918년 제국이 붕괴되면서 히틀러와 스탈린, 트로츠키와 티토는 영원히 세계사에 아로새겨질 각자의 행로에 접어들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새 영화] ‘아브릴과 조작된 세계’

    [새 영화] ‘아브릴과 조작된 세계’

    기술 진보가 멈추거나 문명이 퇴보한 세상은 공상과학(SF) 장르에 자주 사용되는 세계관이다. 흔히 제3차 세계대전이나 핵전쟁을 거친 인류가 맞닥뜨리는 세상으로 나온다. 특히 20세기 산업 혁명을 이끈 기술 대신 19세기 증기기관 같은 옛 기술이 크게 발달한 과거나 그러한 과거에 뿌리를 둔 현재, 미래를 그린 작품을 스팀 펑크(Steam Punk)라고 하는 데 대표적인 작품이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출세작 ‘미래소년 코난’이다. 하야오는 이후에도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천공의 성 라퓨타’,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에서 스팀 펑크의 세계를 보여준 바 있다. ●기술 발전없는 과거 그린 스팀펑크물 15일 개봉하는 프랑스 애니메이션 ‘아브릴과 조작된 세계’도 스팀 펑크물이다. 그런데, 미래가 아닌 과거의 역사를 바꾼 가상의 역사를 만들어 기술의 진보가 멈춘 상황을 설정한다는 점이 특이하다. 원래 역사에서는 1870년 프랑스가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하며 제2제정이 무너지고 제3공화국이 들어서지만 ‘아브릴과 조작된 세계’에서는 전쟁은 결국 일어나지 않고 제국이 그대로 유지되는 것으로 나온다. 전쟁 전날 밤 나폴레옹 3세가 비밀병기를 의뢰한 과학자의 연구실을 방문했다가 폭발 사고를 당한 이후 수십년 동안 세계 곳곳에서 브랑리, 아인슈타인, 헤르츠, 마르코니, 노벨, 파스퇴르 등 수많은 과학자들이 거푸 실종된다. 그렇게 다다르게 된 1941년의 파리는 우리가 익히 알던 것과는 다른 세상이다. 에펠탑은 쌍둥이처럼 우뚝 서 있다. 전기나 텔레비전, 라디오는 발명되지 못했다. 새로운 에너지는 개발되지 못한 채 석탄만 주야장천 쓰는 바람에 공기는 심하게 오염됐고, 그나마 석탄도 바닥 나 목재를 확보하기 위해 전쟁이 일어날 판이다. 증기기관은 크게 발달해 자동차들은 증기의 힘으로 달리고, 거대한 증기 케이블카가 도시를 오간다. ‘아브릴과 조작된 세계’는 소녀 아브릴이 자신이 어렸을 때 실종된 과학자 부모를 찾아나서며 벌어지는 모험담을 그리고 있다. ●佛독특한 그림·설국열차 작가의 결합 ‘아브릴과 조작된 세계’는 고전적인 매력이 넘치는 작품이다. 프랑스 국민 만화가 자크 타르디가 그린 그림은 우리가 익숙한 할리우드나 일본 애니메이션과는 색다른 맛을 준다. 타르디의 작품 가운데 ‘포로수용소’, ‘파리 코뮌’ 등이 국내 출간됐다. 타르디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설국열차’의 작가인 뱅자맹 르그랑 등이 이야기를 빚었다. 2007년 칸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작인 ‘페르세폴리스’의 제작사 JSBC 등이 제작에 나서는 등 프랑스 만화 드림팀이 합작한 이 작품은 지난해 안시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대상을 받았다. 12세 관람가.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전설의 보물선, 700년의 기다림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전설의 보물선, 700년의 기다림

    “세상에는 보물선의 전설을 믿는 사람, 직접 보물을 찾겠다고 바다로 뛰어드는 사람, 그리고 그걸 재료로 돈을 버는, 재만 같은 사람들이 있다. 어디에나 이런 구조가 있다.” 2004년도 황순원 문학상을 거머쥔 김영하의 소설 ‘보물선’에 나오는 구절이다. 작품은 대학 동기 사이인 펀드매니저 ‘재만’과 순수한 꿈을 지닌 ‘형식’이 ‘보물선 인양’이라는 인간 욕망의 신기루를 통해, 그들이 접하고야 마는 자본주의 속살을 발라내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 작품에 등장하는 보물선의 모티프가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유독 설득력을 얻는 이유가 있다. 모두들 눈과 귀와 부러움으로 확인하였던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1975년 8월20일 목포 인근 서남해(西南海), 증도라는 섬 앞바다에서 한 젊은 어부가 도자기 6점을 그물로 건지는 일이 있었다. 송(宋), 원(元) 시대의 중국제 청자화병과 백자였다. 당시 그는 문어 한 마리보다 못한, ‘오지지 못하고 귄없게 생긴’ 밥그릇들을 마루 밑에 내팽개쳐 두었다. 이듬해 1월, 당시 국민학교 선생이었던 동생이 신안군청에 신고함으로써 신안 해저유물이 세상에 숨을 얻게 된다. ●중국 동전 28톤, 800만개! 세상이 놀라다 이후 인양된 유물들이 나올 때마다 세상은 아연실색을 한다. 규모가 너무 커 담당공무원이 ‘숨도 제대로 못 쉴 만큼’ 어마어마하였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옛날 동전 한 두 꾸러미가 물에서 나와도 박물관 한 켠을 차지한 채, 할로겐 불빛 받아가며 우아하게 관람객 눈알을 굴렸었다. 하지만, 이 때 발견된 중국 동전의 갯수만 800만개(!)가 넘는다. 그것도 1984년 11차 발굴까지 흡입기로 골라낸 것만이다. 지금도 증도면 방축리 앞 개펄에는 얼마나 더 많은 동전들이 묻혀 있는지 모르는 상태다. 더구나 동전의 종류도 화려해서 종류만 66여 가지에 이르고, 시기는 기원후 14년 시기의 동전부터 원나라 동전까지 다채롭다. 덕분에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중국 옛 동전들을 제일 많이 보유한 나라라는 독특한(?) 위치에 있게 된다. 동전 이외에도 증도 해역에는 14세기에 난파된 중국 원나라 무역선, 가칭 신안선(新安船)이 발견되어, 1976년부터 1984년까지 11차례에 걸쳐 유물을 발굴하였다. 금속류 제품 729점, 고급 목재인 자단목 1017본, 도자기 2만 661점, 배의 파편 조각 445편, 기타 생활용품 574점 등이 출토되어 세계 학계를 몇 번이나 뒤집어 놓았다. 많아도 너무 많았기 때문이고, 깨끗해도 너무 깨끗하게 보존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갯바닥이 산소접촉을 막은 것이었다. 진짜 ‘보물선’이 등장한 것이었다. 목포에 있는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이다. ● 1323년, 바다와 인간의 기록이 그대로 남다 목포에 있는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신안 해역에서 올린 유물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바닷속 문화재, 즉 수중문화유산들을 체계적으로 발굴, 보존, 전시, 유지하는 공간이다. 현재 이곳에서는 우리나라 전역, 250여 곳에서 문화재 10만여 점을 발굴 보존, 전시하고 있다. 연구소의 전시관을 우선 살펴보면, 총 4개의 전시실과 1개의 기획전시실, 어린이해양문화체험과, 해변 전시장으로 나눌 수 있어 볼거리가 아주 풍부한 것이 특징이다. 제1전시실은 서해와 남해에서 발굴된 고려시대 수중문화재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이곳에는 고려선의 선박 모형과 목포 달리도 앞바다 갯벌에서 건진 달리도선이 실물과 모형으로 제작 전시되어 있다. 이외에도 아주 다채로운 고려시대의 각종 고려청자와 항아리, 생활용품들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청자모란꽃넝쿨무늬 장고, 청자 사자모양 향로 등은 지금의 시각으로 보아도 뛰어난 디자인적 감성을 느낄 수 있다. 제 2전시실은 1323년에 중국에서 일본으로 항해하던 중 신안 바다에서 난파된 무역선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이 시기는 중국 원(元)나라 시기여서 중국과 일본의 교류가 활발했던 때였다. 신안선(가칭)에는 일본 교토의 사찰인 ‘도후쿠사(東福寺)’의 목간과 더불어 일본 사찰 이름이 적힌 기록들이 발견되었다. 따라서 이 무역선이 일본 사찰 재건에 사용될 물품들을 실었으리라 추정을 하고 있다. 또한 자단목 1017본과 동전 28톤은 배의 중심을 잡는 밸러스트(ballast·배의 무게중심을 잡는 바닥짐)으로 쓰였으리라 본다. 이외에도 700여 년 전 중국의 다양한 공예품과 더불어 고려청자, 일본 세토도자기, 동남아시아 향신료, 약재, 장기말, 주사위, 주방도구 등이 있어 관람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제3전시실은 세계의 배 역사실로 선사시대의 배의 원형부터 바이킹 시대의 선박, 대항해시대의 범선의 활동, 산업혁명 시기의 해상 운송 등에 관한 학술적 자료를 보여주고 있으며, 제 4전시실은 한국의 전통 배 ‘한선(韓船)’이라는 주제의 선박사를 전시하고 있다. 뗏목배 모형에서 거북선, 판옥선, 조운선 등 다양한 우리나라 배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장소이다. 이외에도 기획전시실에는 시기마다 소장 전시품의 테마별 특별전을 열고 있으며 어린이해양문화체험관에는 옛 등대, 선사시대 바위그림, 포토존을 제공하여 어린이들의 해양문화에 대한 관심을 올리고 있다. 목포의 해양문화재연구소의 소장품들은 일상적인 박물관의 전시품들과는 달리 바닷속 시간을 지나온 옛 선인들과 그들의 삶의 흔적들을 보고, 느낄 수 있는 귀한 공간임에는 분명하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목포를 방문한다면 첫 관람공간으로도 손색이 없다. 유달산, 갓바위와 더불어 목포를 알 수 있는 장소이다. 흥미면이나 교육적인 측면에서도 훌륭한 관람공간이다. 2. 누구와 함께? -초등학생 이상의 어린 자녀를 둔 가족이라면 적극 추천한다. 특히 연구소 맞은편에 자연사박물관이 있어서 한 나절 동안 다닐 넉넉한 곳들이다. 3. 주소는? -전라남도 목포시 남농로 136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061-270-2000) 4. 관람서비스? -디지털전시안내기를 무료 대여하고 있으며 물품 보관함도 운영중이다. 당연히 유모차, 휠체어는 무료 대여이다. 1층 안내데스크에 문의하자.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서울이었으면 매일 인산인해를 이룰 정도로 전시물들이 훌륭하고 다채롭다. 그 내실에 비해 유명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6. 관람시간과 입장료의 가성비? -관람료는 무료. 휴관일은 매주 월요일. 개관시간은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 7. 여행 전 기대감과 후기? -기대 이상이다. 단, 충분히 둘러볼 시간적인 여유를 가지고 방문하는 것이 좋다. 최소 2시간 이상은 걸린다. 8. 홈페이지 주소는? -www.seamuse.go.kr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많다. 바로 옆에는 천연기념물인 갓바위가 있으며, 맞은편에는 자연사박물관, 남농기념관 등이 자리잡고 있다. 먹거리도 풍부해서 남도 먹거리에 대한 정보가 없으면 목포 평화광장 주변 식당들을 추천한다. 10. 총평 및 당부사항 -예상보다 전시물들의 수준이 훌륭해서 만족스러운 박물관이다. 특히, 1층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목포 앞바다 풍광은 아름답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인류의 기억 디지털에 맡겨도 되나

    인류의 기억 디지털에 맡겨도 되나

    기억이 사라지는 시대/애비 스미스 럼지 지음/곽성혜 옮김/유노북스/348쪽/1만 5500원 인류의 정보는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면서 기하급수적으로 ‘인플레이션’되고 있다. 전 세계 웹 데이터는 2012년 27억 테라바이트(TB·1TB=1024GB)에서 지난해 80억TB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반면 기억의 유통기한, 즉 ‘데이터 수명’은 찰나적이다. 인터넷이 전 세계로 확산되던 1997년 당시 웹 페이지가 존재한 시간은 평균 44일이었다. 2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 시간은 불과 100일에 그친다. 현 인류의 속도감 있는 디지털 기억들은 사유를 위한 최소한의 ‘마찰 저항’조차 없이 우리의 기억을 기계화된 입력과 출력의 문제로 환원시킬 뿐이다. 신간 ‘기억이 사라지는 시대’는 급속히 증가하는 인류의 기억을 디지털에 위탁해도 되는지를 묻는다. 저자는 선사시대의 동굴 벽화부터 수메르인 필경사들이 창조해 낸 설형문자와 중세 인쇄술의 발명이 불러온 문자혁명 그리고 2010년 미국 의회도서관이 트윗을 보관하기로 한 결정까지 주요 역사적 지점마다 기억과 지식을 다뤄 온 인류의 방식을 ‘외주화’로 정의한다. 중세 이후 서구 사회는 지식 보급의 대전환이 일어났다. 값싼 목재 펄프 종이에 책을 대량으로 찍어내는 기술이 개발됐고 사진 촬영과 음향 녹음 기술은 인류로 하여금 훨씬 빠르게 정보를 기록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같이 지식과 정보를 저장하고 보존하는 기능은 인간의 두뇌가 아닌 별도의 장치에 외주화되면서 첨단화·고도화되어 왔다. 디지털 세례로 인해 인류는 컴퓨터와 구동 프로그램(OS), 파일, 심지어 전기까지 없게 되면 모든 일상이 마비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인류가 축적해 온 기억은 인간의 유전자(DNA)에는 내장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일찍이 문자의 발명을 탐탁잖게 생각했다. 그는 파피루스 두루마리에 인간의 생각과 경험을 쓰는 행위를 지식과 기억의 외주화로 여겼고, 인간은 지혜를 잃게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물론 소크라테스의 경고는 틀린 예측에 그쳤다. 인류는 그리스 로마 시대 이래 탁월한 문화적 성취를 문자로 기록했지만 지혜를 잃지는 않았다. 기억의 외주화는 인류의 원초적 욕망과 연관돼 있다. 4만년 전 호모 사피엔스가 남긴 벽화들도 따지고 보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전하고 싶은 기억을 이미지로 남겨 놓은 흔적이다. 저자는 호모 사피엔스의 이미지들을 “존재를 증언하고 싶은 욕망, 시공간이 멀리 떨어진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싶은 인류의 욕망”으로 묘사한다. 이 같은 욕망에 불을 지른 첫 기억 혁명이 바로 문자의 발명이다. 문자는 기록 문화를 만들어 냈으며, 지식을 조직화했고, 근대의 유물론은 과학 기술 혁신의 분기점이 됐다. 이 책의 부제인 ‘디지털 기억은 인간의 운명을 어떻게 바꾸는가’라는 질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안다. 개인정보 침해와 우발적 삭제와 해킹, USB와 외장하드 같은 저장 기술의 취약점 등 역설적으로 디지털 시대 들어 인류의 기억이 더 큰 위기에 처해 있다는 점을 말이다. 특히 저자는 “개인적 기억과 정체성을 컴퓨터에 더 많이 위탁할수록 우리는 자율성을 잃는 데 대한 두려움인 ‘데이터 소외’가 더욱 증가한다”고 지적한다. 우리의 기억을 유일하게 읽어내는 존재는 이제 디지털 기계뿐이며 ‘구글이 무엇을 아는지 알기 위해 항상 접속되어 있어야만 한다’는 오늘날의 금언처럼, 인류의 통제력을 기계에 내어주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대안이 있을까. 저자는 인류의 집단적 기억을 저장·보존하고 개방하는 주체로 공공성을 제시한다. 구글 같은 사기업들이 이윤 추구 이상의 인류적 가치를 실행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저자의 인식이다. 대신 세계 각지의 공공 도서관과 기록 보관소, 박물관, 인터넷 아카이브 등 공공 및 비영리 기관들을 통해 인류의 기억을 보존하자고 외친다. 그는 “지식에 대한 접근 가능성을 결정하는 일은 공익사업이 돼야 한다”며 “구글 같은 회사가 지식을 조작하게 내버려둔다면 인류는 집단 기억상실증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한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新국토기행] 엄마 품 같은 숲… 장흥, 쉼을 품었네

    [新국토기행] 엄마 품 같은 숲… 장흥, 쉼을 품었네

    전남 장흥군은 예부터 ‘문림의향’(文林義鄕)의 고장이라고 불린다. 글재주 좋은 문사와 충절심 강한 사람들이 많이 배출됐다는 의미다.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보다 25년 앞서 지어진 관서별곡의 지은이가 장흥 출신 문신이자 문장가인 기봉 백광홍(1522~1556)이다. 가사문학의 대가들이 많이 배출됐고, 그러한 문맥은 한국 현대문학 전집에 작품이 수록된 소설가 이청준, 한승원, 송기숙 등으로 이어진다. 지난달 프랑스의 공쿠르상, 노벨문학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평가받는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아시안인 최초로 수상한 작가 한강(46)의 부친이 한승원(77)이다. 2008년 전국 최초로 문학관광기행특구로 지정돼 대한민국 문학의 1번지로 불리는 등 문학적 스토리를 담은 아름다운 자연을 자랑한다. 산(천관산·제암산)과 들(동학농민혁명의 최후 격전지인 석대들·평화들), 강(탐진강), 청정 바다(득량만), 호수(장흥댐)가 함께 어우러진 뛰어난 생태 고을로 불린다. 청정한 바다를 이용한 친환경적 농·축·수산업 육성으로 최근 6년 연속 인구가 증가하는 등 활력 있는 농어촌으로 발전하고 있다. 서울 광화문을 기점으로 정남쪽에 위치해 ‘장흥 정남진’이라 불린다. 장흥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볼거리 ●비죽 솟은 바위가 천자의 면류관 같은 천관산 지리산, 내장산, 월출산, 변산과 더불어 호남의 5대 명산이다. 관산읍과 대덕읍 경계에 있는 723m의 산으로 온 산이 바위로 이뤄져 봉우리마다 하늘을 찌를 듯하다. 기바위, 사자바위, 부처바위 등 이름난 바위들이 제각기 모습을 자랑한다. 특히 꼭대기 부분에 비죽비죽 솟아 있는 바위들의 모습이 주옥으로 장식된 천자의 면류관 같다고 해서 천관산(①)이라 불린다. 천관산 자락에는 460개의 문학돌탑과 국내 유명 문인들의 문학비 54개가 세워져 있어 색다른 즐거움도 준다. 산에 오르면 남해안 다도해가 한 폭의 동양화처럼 펼쳐지고 북으로는 영암의 월출산, 장흥의 제암산, 광주의 무등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날씨가 맑으면 바다 쪽으로 제주도 한라산이 신비스럽게 나타난다. 능선 위로는 기암괴석이 자연조형물의 전시장 같고, 정상 부근 132만㎡(약 40만평)의 억새밭은 수만개의 별을 뿌려 놓은 듯 장관을 이뤄 황홀경을 연출한다. 매년 가을 천관산 정상 억새평원에서 천관산 억새제가 열린다. 산 중턱에는 신라 애장왕 때 영통화상이 세운 천관사가 있었으나 현재는 법당, 칠성각, 요사 등이 남아 있다. 천관사 3층 석탑(보물795호), 석등(전남 유형문화재 134호) 및 5층 석탑(135호) 등의 문화유적도 볼 수 있다. ●지친 심신 쉬어 가는 편백숲 우드랜드 장흥읍 억불산(518m) 기슭에 위치한 우드랜드에는 약 100㏊에 걸쳐 40~50년생 아름드리 편백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일반 수목에 비해 피톤치드와 음이온을 5배 이상 내뿜는 편백나무숲은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힐링의 명소로 이름나 찾는 이의 발길이 줄을 잇고 있다. 우드랜드는 통나무주택, 황토주택, 한옥 등 14개의 자연 친화형 숙박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생태 건축을 체험할 수 있는 목재문화체험관과 편백 톱밥 산책로, 노천 온천 등이 조성돼 있다. 목공체험장에는 목재를 이용해 어린이 장난감이나 생활에 필요한 공예품 가구 소품 등을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체험 공간도 갖춰져 있다. 천연섬유 재질의 가벼운 옷차림으로 편백나무가 내뿜는 피톤치드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삼림욕장도 있다. 편백나무 움막, 원두막, 토굴 등이 있어 취향에 맞게 자유로운 삼림욕을 즐길 수 있다. 우드랜드에서 억불산 정상에까지 이르는 등산로에는 길이 3736m의 ‘말레길’이 있다. 장흥 지역 방언인 ‘말레’는 ‘대청’을 의미하는 것으로 ‘가족 간의 이해와 소통의 장’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나무 데크로 조성된 말레길 코스를 이용하면 노약자와 장애인들도 편안하게 삼림욕을 즐기며 억불산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시~원하다 1급수 정남진 장흥 물축제 매년 7월 말이면 1급수로 유명한 탐진강을 중심으로 넓은 잔디밭과 갖가지 화초로 꾸며진 수변공원, 편백숲 우드랜드 일원에서 물축제(②)가 열린다.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2013~2015년 유망 축제, 2016년 우수 축제로 선정됐다. 매년 40여만명이 찾는다. 올해는 7월 29일부터 8월 4일까지 열린다. 체험료 수익금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지난해 230억원의 지역경제 효과를 얻어 6000만원을 유니세프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등에 기탁했다. 물을 최대한 이용한 특화된 프로그램을 통해 한바탕 축제를 즐길 수 있다. 살수대첩이라 불리는 물싸움 퍼레이드가 압권이다. 관광객과 주민이 참여해 장흥읍 시가지 도로를 막고 물총, 물바가지 등으로 서로에게 물을 뿌리거나 쏘는 형태로 진행된다. 2000여명이 동시에 체험장에 들어가 뱀장어, 잉어, 붕어, 메기 등을 잡는 맨손 물고기 잡기도 흥겨움을 준다. 야외 물놀이, 수상 레저 프로그램, 목공예품 만들기 등 주야간 즐길거리가 다양하게 운영된다. ●新의료서비스 모이는 국제통합의학박람회 ‘2016 장흥국제통합의학박람회’가 ‘통합의학, 사람으로 향하는 새로운 길을 열다’라는 주제로 장흥군 안양면 비동리 일원에서 오는 9월 29일부터 10월 31일까지 33일간 개최된다. 통합의학은 현대의학에 한의학과 보완대체요법을 통합적으로 접목함으로써 불치·난치병 질환을 치유하기 위해 등장한 새로운 의료 서비스를 뜻한다. 질병의 증상만을 제거하는 게 아니라 마음도 다스리는 등 정신적, 심리적, 사회적, 영적 건강을 가져다줄 수 있는 포괄적 의료서비스를 총칭한다. 현재 45개국, 89개 기관과 국내 145개 기관이 참가하기로 결정됐다. 2010년 시작해 지난해까지 국내 행사로 6차례 치렀다. 매년 40만명이 찾는다. 군은 국제 행사로 승격한 이번 행사에 내국인 90만명, 외국인 5만명 등 모두 95만명이 찾을 것으로 예상한다. 관람객들이 통합의료산업의 매력에 빠져들도록 스트레스통증관, 뷰티미용관, 각종 성인병 관련 만성성인병관, 국제관, 산업관, 체험 프로그램 등을 준비하고 있다. ●특산물·다문화 전통음식 거리 ‘토요시장’ 2005년 개장한 전국 최초의 ‘주말시장’인 토요시장(③)은 매주 토요일과 5일장에 열리며 지역 청정 농수산물을 판매한다. 지난해 문체부 선정 ‘한국 관광의 별’에 선정됐으며 특히 토요시장 한우는 가격이 저렴하고 품질이 뛰어난 것으로 유명하다. 토요일마다 이를 즐기기 위해 찾아오는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토요시장의 질 좋고 저렴한 장흥한우와 지역 특산물이 널리 알려지면서 주말 하루 평균 5000명의 관광객들이 찾아온다. 손수 재배하거나 산과 들에서 직접 채취한 나물과 채소를 판매하는 할머니들의 장터가 펼쳐진다. 각종 나물과 약초, 신선한 농수산물이 계절마다 종류를 달리해 관광객들을 맞는다. 일본, 베트남, 필리핀 등 8개국의 다문화 이주여성들이 직접 운영하는 다문화 전통음식 거리도 이색적인 볼거리다. 2008년과 2012년 전국 우수 시장 박람회에서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이러한 토요시장의 성공은 관광객뿐만 아니라 운영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 몰려드는 전국 지자체 관계자와 상인회의 벤치마킹지로도 각광받고 있다. ●‘엄지 척’ 전국 최초 해양낚시공원·수상 펜션 청정 해역 득량만에 있는 전국 최초 해양낚시공원은 다도해의 조망이 한눈에 펼쳐지는 곳으로 감성돔을 비롯한 다양한 어종이 낚인다. 전국 바다낚시의 명소로 알려진 회진면 대리에 낚시교와 잔교식, 부잔교식 낚시터, 육상 낚시터, 해양 펜션 및 파고라, 정자 등의 낚시시설과 휴게시설을 갖춘 전국 최초, 최대 규모의 낚시공원 시설이다. >>먹거리 ●온화한 기후 속 자란 ‘명품’ 장흥한우 풍부한 풀 사료와 온화한 기후 속에서 명품 한우를 사육하고 있다. 장흥군은 소의 개체 수가 인구보다 많다. 최근 ‘정남진 장흥 토요시장 생약초 한우특구’로 지정됐다. 한우 판매로 한 해 올리는 수익만 400억원을 웃돈다. 저렴한 한우고기 판매를 시작으로 한우생산이력제, 한우생산농가실명제, 한우판매상협의회의 지속적인 자정 노력으로 지금과 같이 유명해지게 됐다. 토요시장에서는 장흥군 한우 출하량의 38%를 소비한다. 지역에서 생산된 한우가 현지에서 바로 소비되며 ‘장흥한우’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갖추게 됐다. ●고단백·저칼로리 키조개 수심 15~50m의 진흙에 살며 다량의 단백질을 함유한 저칼로리 식품으로 필수아미노산과 철분의 함량이 많아 빈혈, 동맥경화 예방 효과가 탁월하다. ●한우·키조개와 3대 특산물 장흥 표고버섯 장흥 표고버섯은 무농약, 무비료로 재배한 대표적인 친환경 식품이다. 장흥한우와 득량만 키조개, 솔밭에서 자란 표고버섯 등 3가지 대표 특산물을 조합해 구워 먹는 장흥삼합은 관광객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장흥삼합은 한우판매점과 시장에서 재료를 구매해 인근 식당에 가져가면 차림비만 내고 저렴하게 맛볼 수 있다. ●산 사용하지 않는 전국 최초 친환경 무산김 김 양식에 사용하던 산을 사용하지 않은 전국 최초의 친환경 김으로 일반 김보다 밀도 있게 자라 김 고유의 향과 맛이 일품이다. ●비린내 없이 시원하고 담백한 된장 물회 여름철 별미로 이보다 더 특별한 제철 음식이 있을까 할 정도로 맛이 뛰어나다. 된장, 매실즙, 물김치에 생선이 어우러져 숙성된 얼얼하고 새콤한 맛에 얼음까지 더해져 무더위를 날리는 여름철 별미다. 된장을 풀어 넣어 생선 비린내가 없다. 된장 물회에 들어가는 생선은 평상시에는 어린 농어나 돔의 속살을 재료로 쓰고 6~7월에는 뱀장어, 8~9월에는 물절망둑을 주재료로 쓴다. 숙취 해소에 탁월한 효과가 있으며 시원하고 담백한 게 특징이다.
  • 어린 中금수저들 英귀족매너 겉핥기

    어린 中금수저들 英귀족매너 겉핥기

    ‘푸얼다이’ 하루 70만원 귀족학습반 열풍 요리·재무관리 스펙 갖춘 영국 집사는 ‘억대 연봉’“호화생활보다 귀족 책임감 배워야” 위완완, 英 귀족 무도회 참석에 시끌 아시아 최대 목재 회사 회장의 외동딸인 위완완(餘晩晩·26)은 요즘 영국 귀족 자제들의 모임인 ‘퀸샬럿 무도회’에 나가고 있다. 18세기 영국 국왕 조지 3세가 아내를 위해 준비한 생일 파티에서 비롯된 이 무도회의 1회 입장료는 무려 2500파운드(약 450만원)에 이른다. 돈보다 더 엄격한 선발 기준은 무도회에 맞는 학벌과 품위, 예절을 갖췄느냐는 것이다. 중국 저장성에서 태어난 위완완은 15살에 영국으로 건너가 귀족학교에서 예절 교육을 받았다. 런던 패션학원을 졸업한 뒤 옥스퍼드와 칭화대에서 공부했다. 위완완은 “귀족학교에서 영국 귀족들이 어떻게 입고, 걷고, 얘기하는지를 끊임없이 배워 이젠 그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다”고 말했다. 위캐피털이라는 투자 회사를 운영하는 위완완은 영국 패션위원회와 각종 귀족 모임의 최대 후원자다. 그는 “더 많은 중국인들에게 영국 귀족 문화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후원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예절도 조기교육” vs “열등감 표출” 지난달 초 홍콩 경제일보가 위완완의 이야기를 전하자 중국 내부에서는 뜨거운 논쟁이 일었다. 맹목적으로 영국 귀족 생활을 동경하는 개념 없는 ‘푸얼다이’(富二代·재벌 2세)의 전형이라는 비판이 주류를 이뤘지만, 세계적인 지탄을 받고 있는 ‘추한 중국인’에서 탈피하려면 어려서부터 제대로 된 예절 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인터넷 관영매체 펑파이는 “일반인들과 차별화된 모습을 보이고 싶어 하는 부자들이 영국식 귀족 교육에 몰두하고 있다”면서 “지나친 열등감의 표출”이라고 비평했다. 백화점선 英로열패밀리 패션 불티 중국 경제망도 최근 푸얼다이의 영국식 귀족 교육 실태를 보도하면서 “정말 고귀한 사람이 되려면 책임감과 사명감이 있어야 한다”면서 “영국 귀족처럼 먹고 입는다고 품격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 매체는 특히 “중국의 부자들은 영국 귀족의 호화로운 생활방식만 모방할 게 아니라 영국 귀족의 사회적 책임과 도덕성을 배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비판 여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중국 부자들은 2세들을 영국 귀족 집안의 자제처럼 키우려는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지난달 2일 영국 왕실의 윌리엄 왕세손 부부가 딸 샬럿 공주의 첫돌을 맞아 최근 모습을 담은 사진과 지난 1년 동안 전 세계 64개국에서 받은 선물을 공개하자 ‘귀족 신드롬’은 더 뜨거워졌다. 샬럿 공주의 옷과 장난감이 중국 백화점에서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으며, 샬럿의 어머니인 왕세손비 케이트 미들턴(34)의 패션을 좇는 중국 부유층이 늘고 있다. 참고소식망이 최근 소개한 상하이의 영국 귀족 교육 프로그램은 하루 수강료가 3800위안(약 69만원)이었다. 11~12세 아동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귀족 학습반’에선 영국의 예절 교육 전문가가 영국 왕자와 공주가 왕실로 초대했을 때를 가정해 교육을 한다. 전문가가 메이크업을 해주며, 식사 예절과 대화법 등을 가르친 뒤 인증사진과 수료증을 준다. ‘밀크티를 탈 때는 찻물부터 따르고 나서 우유를 따르고 12시 방향과 6시 방향 사이에서 저어야 한다’ ‘바나나를 손으로 들고 먹으면 안된다’ 등과 같은 아주 세부적인 테크닉까지 가르친다. 교육을 담당하는 제임스 시턴은 “뉴욕, 도쿄, 런던, 상하이에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단연 상하이의 교육생이 가장 많다”고 말했다. 중국 부자들이 영국 귀족 놀음에 푹 빠지면서 영국에선 ‘집사’가 유망 직종으로 떠올랐다. BBC 방송은 전문기관에서 교육받고 스마트 기기로 무장한 현대의 집사들이 중국 취업을 통해 연봉 15만 달러(약 1억 8000만원) 이상을 버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전했다. 방송에 따르면 영국에선 매년 350∼400명의 집사가 전문적인 교육과정을 수료하고 있다. 대부분이 수요가 많은 해외에서 취업을 하는데, 가장 많이 가는 곳이 중국이다. 그 밖에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등의 산유 부국으로 향하는 경우도 있다. 영국 집사가 환영받는 이유는 전통적인 영국 영어의 억양, 격식 있는 옷차림과 예절 등을 두루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요즘 영국에선 집사 양성 산업이 전성기를 맞고 있다. 소방안전 교육과 응급처치, 가죽·섬유·목재 다루는 법, 요리와 서빙, 와인, 바느질, 꽃꽂이, 세계의 예절, 재산 관리 등의 교육과정을 수료한 뒤 학위를 받는다. 고위관리 2세 ‘관얼다이’는 관직 대물림 푸얼다이들이 영국 귀족 학습에 열을 올리고 있다면 ‘관얼다이’(官二代·고위 관리의 2세)는 관직 대물림에 여념이 없다. 리펑(李鵬) 전 총리의 장남인 리샤오펑(李小鵬·53)은 국유전력 기업 회장과 산시성 부성장을 거쳐 지금은 성장 자리를 지키고 있다.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의 아들 후하이펑(胡海峰·46)은 정계에 입문한 지 3년 만에 지방 정부 고위직에 올랐다. 그는 2013년 5월 중국 공산혁명의 ‘성지’로 불리는 저장성 자싱시의 부서기로 임명됐으며 정법위 서기를 거쳐 올해 3월 시장으로 승진했다. 덩샤오핑(鄧小平)의 유일한 손자인 덩줘디(鄧卓?·31) 광시좡족자치구 바이써시 핑궈현 당위원회 부서기도 마찬가지다. 덩샤오디(鄧小弟)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그는 2013년 핑궈현 부현장으로 공직에 진출한 지 3년 만에 부서기로 임명돼 지방행정을 지도하는 고급 간부가 됐다. 미국 듀크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뉴욕 월스트리트 법률회사에서 일하다가 귀국한 그는 오는 7월 핑궈현의 인사에서 정처급(正處級·중앙부서 처장급)인 현당위원회 서기로 승진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에서 ‘몽고왕’(蒙古王)으로 불린 우란푸(烏蘭夫) 전 국가부주석의 손녀 부샤오린(布小林·58) 네이멍구자치구 당위원회 상무위원 겸 통일전선부장이 지난 3월 신임 대리주석에 임명돼 이 가문이 3대째 네이멍구 주석을 맡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흙수저는 점수 따려 밤새 ‘공산당장 필사’ 영국 귀족을 모방하는 푸얼다이와 아버지의 권력을 그대로 이어받은 관얼다이의 모습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직접 지휘하는 사회주의사상 강화 운동과 묘한 부조화를 이룬다. 시 주석은 지난 3월 마르크스주의를 강조하며 ‘양학일주’(兩學一做)를 제시했다. 양학일주는 ‘당장(黨章)과 지도자의 연설문을 익혀 참된 공산당원이 되자’는 뜻이다. 이후 당원은 물론 일반인들까지 1만 7000자에 이르는 당장을 필사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대학생들은 학점 관리를 위해, 직장인들은 인사평가를 위해 열심히 당장을 베껴 쓴다. 중국의 ‘금수저’들이 영국풍 무도회에 가기 위해 ‘포크질’을 배우는 사이 ‘흑수저’들은 밤새 베껴 쓴 필사본 ‘인증샷’을 학교와 직장 웹사이트에 올리고 있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나무로 만든 ‘말랑말랑’한 배터리 개발

    나무로 만든 ‘말랑말랑’한 배터리 개발

    -셀룰로스 섬유 소재 '신개념' 지난 수십 년간 배터리 기술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다. 과거 주로 사용되던 무거운 배터리들은 리튬 이온 배터리처럼 가볍고 성능 좋은 새로운 배터리로 교체되었다. 이런 배터리 기술의 진보는 현재의 IT 혁명을 가능하게 만든 주역이었다. 우리 주변의 스마트폰과 노트북은 고성능 배터리와 결합하면서 언제 어디서나 사용할 수 있는 기기로 탈바꿈했다. 하지만 현재의 배터리 기술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리튬은 매장량이 많지 않은 비싼 자원이며 열에 약하고 화재의 위험성이 있다. 특히 웨어러블 기기의 시대가 오면서 단단한 고체 형태인 리튬 이온 배터리 이외의 대안이 필요해졌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이제 리튬 이온 배터리를 넘어설 새로운 배터리의 요구가 커진 것이다. 스웨덴 왕립 기술원(KTH Royal Institute of Technology)과 하버드 대학의 연구팀은 일반적으로 배터리의 소재로는 상상하기 힘든 물질을 사용해 말랑말랑한 형태의 배터리를 개발했다. 이들이 주목한 소재는 목재를 기반으로 한 신소재인 CNF(Cellulose NanoFibrils)이다. -웨어러블 기기 시대에 안성맞춤 셀룰로스 섬유는 목재에 풍부한 물질이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셀룰로스는 배터리의 소재로 삼기에는 적당하지 않다. 그러나 나무에서 추출한 셀룰로스 섬유를 매우 미세하게 나눈 소재인 CNF는 여러 가지 재미있는 성질이 있다. CNF는 반도체의 소재로도 사용될 수 있으며 아주 가벼우면서 다공성 소재를 만드는데 적당하므로 연구팀은 이를 기반으로 에어로젤과 비슷한 3차원 소재를 만드는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팀에 의하면 이는 원자레벨까지 내려가는 매우 복잡한 작업이라고 한다. 그리고 CNF 소재로 만든 다공성의 3차원 소재에 특수한 잉크를 이용해서 전기를 저장할 수 있도록 개조했다. 다시 말해 CNF 소재로 만든 말랑말랑한 배터리를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 새로운 배터리는 기존의 배터리에 비해 다양한 형태로 가공이 가능할 뿐 아니라 충격에 강하면서 매우 가볍다. 물론 상용화를 위해서는 수명, 성능, 안전성 및 경제성의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만, 매우 독특한 형태의 배터리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과연 앞으로 CNF 기반 배터리가 여러 가지 웨어러블 기기에 탑재될 수 있는 신축성 있는 배터리로 발전할 수 있을지 미래가 주목된다. 고든 정 통신원 jjy0501@naver.com 
  • [열린세상] 녹색의 복지가 더 필요한 시대/윤영균 국립산림과학원장

    [열린세상] 녹색의 복지가 더 필요한 시대/윤영균 국립산림과학원장

    샤토브리앙은 19세기 프랑스의 정치가이자 위대한 작가다. 그는 젊은 나이에 북미의 원시 대자연을 여행하고 돌아와 단편소설 ‘아탈라’를 출간했다. 이 책은 미시시피강을 배경으로 치열한 사랑과 종교적 성찰을 다루고 있다. 출간과 동시에 대성공을 거둔 이 작품은 후세에 전기 프랑스 낭만주의의 대표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샤토브리앙은 자연 속에서만 인간 본연의 감정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때문에 당시 산업혁명으로 급속한 공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는 유럽의 모습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했다. 유럽에서는 필요한 연료 중 상당 부분을 나무로 충당하다 보니 벌채가 성행했고 이는 대규모 숲 파괴로 이어졌다. 그가 남긴 “문명 앞에 숲이 있고, 문명 뒤에 사막이 남는다”는 말을 통해 그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가늠해 본다. 우리나라도 유럽과 마찬가지로 숲이 심각하게 파괴된 시기가 있었다. 1910년부터 35년간 진행된 일제강점기의 목재 수탈과 1950년에 발발한 6·25 전쟁의 복구 과정에서 대부분의 산이 민둥산이 됐다. 산림 황폐화로 인한 잦은 산사태와 홍수는 국민의 생존권을 위협하기까지 했다. 또 산림생태계 및 경관의 파괴에 따른 경제적 피해와 정신적 황량함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기도 했다. 이때부터 전 국가적 차원의 국토 녹화 노력이 시작됐다. 우리나라의 국토 녹화 사업은 성공적이었다. 산림의 울창한 정도를 나타내는 임목 축적이 1960년 10㎥/㏊에서 2010년에는 126㎥/㏊까지 늘었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21㎥/㏊와 미국의 116㎥/㏊를 웃도는 수치다. 유엔환경계획(UNEP)의 아킴 슈타이너 사무총장은 2008년 ‘제10차 람사르총회’에서 “한국의 녹화 성공은 세계적 자랑거리”라고 말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산림을 활용해 국민 복리를 증진시키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2000년대 중후반부터 ‘산림치유’와 ‘산림교육’ 등의 서비스가 활성화되기 시작했고, 2013년에는 ‘산림복지로 국민행복 시대 실현’을 비전으로 하는 ‘산림복지종합계획’이 발표됐다. 국민의 노력으로 산림을 녹화하고 녹화된 산림을 다시 국민 복리 증진에 활용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샤토브리앙이 염려한 ‘문명 뒤의 사막’을 완전히 극복한 것일까. 하지만 우리나라 1인당 생활권의 도시 숲 면적은 8㎡에 불과하다. 아직도 세계보건기구(WHO)의 권고 수준인 9㎡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는 국민 대부분이 일상생활에서는 숲이나 산림생태계를 접하지 못하고 있으며, 생활권 내에 필요한 녹지의 최소 면적도 충족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우리나라의 도시화율은 2005년 이후 90%를 넘어섰다. 전체 인구의 대부분이 도시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2000년에는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7%인 고령화 사회가 됐다. 2026년에는 65세 이상 인구가 20% 이상인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도시 생활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숲 속에서 몸과 마음을 치유할 필요성이 커지고 산이나 숲으로의 이동에 따른 부담 역시 높아지는 것이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가까운 생활권에서 건강을 증진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녹색의 복지’다. 먼 곳이 아니라 내가 사는 집 근처에서 숲길을 산책하고, 우리 아이들은 숲 유치원을 다니며 고령자와 취약계층을 포함한 모든 이가 부담 없이 산림 치유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도시 내에서도 사람들이 수목 속에서 무리 없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현재까지 조성된 도시 숲은 2310곳에 이르지만 평균 면적은 1.3㏊에 불과하고 숲의 생태적 건강성도 미흡한 실정이다. 지금보다 녹색의 복지를 더 누릴 수 있도록 도시 숲의 규모를 넓히고 도시 외곽 숲과의 연결성을 강화해야 한다. 이를 통해 사람과 산림이 상생할 수 있는 ‘숲 속의 도시, 도시 속의 숲’을 실현해야 한다. 이러한 삶의 모습은 국민에게 쾌적한 환경뿐만 아니라 정신적 풍요로움을 가져다줄 것이다. 현재 우리의 최고 국정 목표인 ‘국민행복’을 달성하기 위해 도시 녹지의 확충과 지속 가능한 이용에 더욱 힘써야 할 때다.
  • 개성상인의 ‘홍삼로드’ 개척기

    개성상인의 ‘홍삼로드’ 개척기

    향대기람/공성구 지음 /박동욱 옮김/태학사/188쪽/1만 2000원 1928년 4월 30일 개성삼업조합의 조합장인 개성의 거부 손봉상, 부조합장 공성학과 그의 사촌 공성구 등은 미쓰이사의 직원 아마노 유노스케와 홍삼 판로 시찰을 떠난다. 이들은 6월 10일까지 홍콩과 타이완의 주요 지역을 돌며 동아시아 곳곳에 퍼져 있는 미쓰이 지사를 방문하고 지역의 명승지를 관광한다. 공성구는 42일간의 행로를 일기 형식으로 기록해 ‘향대기람’(香臺紀覽)을 남겼다. 예부터 아시아 지역에서 고려인삼의 명성은 자자했다. 조선시대에 왕실에서 인삼에 관한 이권을 장악했던 이유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 전매국이 홍삼과 관련한 권한을 보유하다 1914년 이후 미쓰이물산에 독점 판매권을 줬다. 이 때문에 당시 개성상인들은 홍삼 판매를 위해 미쓰이와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해야 했다. 개성상인들의 동아시아 시찰도 그렇게 이뤄졌다. 개성에서 시작된 여정은 부산과 시모노세키, 대만, 홍콩, 마카오, 상해까지 이른다. 그들은 곳곳에서 격랑의 근대 동아시아 역사와 마주한다. 5월 14일에는 타이베이에서 독립운동가 조명하가 일왕 히로히토의 장인인 육군 대장 구니노미야를 독검으로 찔렀다. 그 기간 중국 산둥성 지난에서는 일본군과 중국 국민당 혁명군이 무력 충돌해 중일전쟁을 촉발한 ‘지난 사건’이 벌어진다. 중국 각지에서 배일감정이 최고조에 달해 엔화를 거부하고 일본인을 공격하는 통에 육지에 오르지 못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는 무덤덤하다. 반면 곳곳에서 열린 미쓰이 지사 초대의 연회는 분위기까지 상세하게 기록하면서도 정치와 역사에 대해서는 담담하게 서술한다. 심지어 일본과 타이완의 신사에 꼬박꼬박 참배했다. 이들의 관심사는 신문물과 현대 문명에 집중됐다. 시모노세키에서 타이베이 항으로 가는 배에서는 선장에게 특별히 부탁해 배의 내부를 구석구석 시찰하기도 한다. 타이완에서 원시림의 거대한 목재를 운송하는 철도시설이나 운송 수단에 주목하는 등 조선에서 볼 수 없는 색다른 운송 및 교통수단, 도로, 기계에 큰 관심을 나타냈다. 주요 도시의 인구와 주요 산업을 점검하며 홍삼 판매량을 계산하기도 하는 철저한 상인의 모습을 보였다. 번역을 맡은 박동욱 한양대 기초융합교육원 교수는 “개성상인인 그들의 관심사는 정치나 역사보다 경제와 시장이었다”며 “책은 근대 한문학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 준다는 점, 일제강점기에 홍콩과 타이완을 여행하면서 일기 형식으로 상세한 묘사를 남긴 기록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 문헌사·역사적 사료로 높은 가치를 지닌다”고 박 교수는 평가했다. 책은 번역문과 원문을 함께 엮어 이해를 돕고 있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열린세상] 식목일엔 온실가스 저장고를 짓자/윤영균 국립산림과학원장

    [열린세상] 식목일엔 온실가스 저장고를 짓자/윤영균 국립산림과학원장

    춘분(春分)을 지나 때 이른 더위가 찾아오는가 싶더니, 어느새 24절기의 다섯 번째 절기인 청명(淸明)이자 식목일이다. 이 무렵 농·산촌에서는 논밭의 흙을 고르고 가래질을 하는 등 농사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산과 들에서는 얼었던 땅이 녹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새로운 생명을 심기 위한 움직임이 분주하다. 올해 나무심기는 지난 2월 하순부터 남쪽에서 시작돼 식목일을 맞이한 지금은 전국적으로 확대됐다. 올해로 예순아홉 돌을 맞이한 식목일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4월 5일이 식목일로 정해진 가장 큰 이유는 24절기의 하나인 청명 무렵이 나무 심기에 가장 적합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산림청에서는 따뜻한 남부지방부터 추운 북부지방까지 모두 고려하여 3월 1일부터 4월 30일까지 두 달간을 식목기간으로 정하고 있다. 통일된 한반도를 가정했을 때, 해당 기간의 가운데에 있는 식목일은 3월에 찾아올지 모르는 갑작스러운 추위까지도 감안한 것이다. 또한 이날은 역사적으로 조선조 성종(成宗)이 동대문 밖 선농단(先農壇)에서 직접 밭을 일군 날이기도 하다. 최근에 식목일은 사회적·환경적 변화에 따라 더 넓은 의미를 포괄하게 됐다. 과거에는 나무심기가 치산녹화와 목재생산에 한정된 것이었다면, 지금은 기후변화의 원인인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대기정화, 수원(水源)함양, 재해예방, 아름다운 경관 제공 등 다양한 역할이 더해졌다. 지난해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에서 발표한 제5차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인류에 의한 온실가스 배출 증가가 기후변화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산업혁명 이후 지구촌의 산업발전과 도시화는 산림을 파괴했고, 온실가스 배출의 급격한 증가로 기상이변을 포함한 기후변화를 초래했다. 아울러 세계기상기구(WMO)에서는 기후변화를 유발하는 대표적인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의 대기 중 농도가 산업혁명 전에 비해 38%나 증가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도 최근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루면서 화석연료 사용과 산지개발을 통해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했다. 2012년 우리나라 총 온실가스 배출량은 약 6.5억t으로, 이는 국민 1인당 12.9t을 배출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따라 지구의 평균 온도는 지난 100년간 0.74도 증가했으며, 산악 지역의 빙하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특히 한국의 평균기온은 지난 100년간 1.87도 증가했다. 이는 한국의 온난화가 평균적인 지구온난화보다 2.5배 더 빠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추세라면 21세기 후반에는 한반도 연평균 기온이 20세기 후반에 비해 3.0∼5.6도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미래가 어두운 것만은 아니다.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숲이 있기 때문이다. 숲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탄소저장고’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국립산림과학원은 우리나라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2012년 기준)를 상쇄하기 위해서는 국민 1인당 92그루의 소나무를 심어야 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산림청은 금년도 나무심기 기간 동안 여의도 면적의 75배에 달하는 2만 1780㏊에 5200만 그루의 나무를 심을 계획이다. 여기에는 나라꽃 무궁화를 비롯해 잣나무, 소나무, 편백나무, 자작나무, 밤나무, 대추나무, 옻나무 등이 포함된다. 이 나무들이 30년생 성목(成木)이 되었을 때 흡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이산화탄소량은 87만 9000 t/년이다. 이는 중형자동차 37만대가 1년 동안 동시에 내뿜는 이산화탄소량과 맞먹는다. 우리나라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유일한 나라로 인정받고 있으며, 그 토대를 제공한 것이 산림녹화라고 평가받고 있다. 또한 숲은 지구촌의 기후변화를 막는 탄소저장고로 활약하고 있다. 생활 속에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노력은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소극적인 활동이지만, 나무를 심어 숲을 늘려가는 노력은 우리가 배출한 이산화탄소를 다시 흡수하는 적극적인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식목일에는 신선한 흙냄새를 맡으며 온 가족이 나무를 심어보면 어떨까. 우리가 심은 한 그루의 나무는 미래의 희망인 탄소저장고가 되어 후손들에게 건강한 한반도를 물려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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