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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 뉴멕시코주 차코 인디언 유적(세계 문화유산 순례:56)

    ◎1,000여년전 인디언 주거지 그대로/대지 4,000여평에 4∼5층 규모 방 800여개/돌 1억개·목재 20만개 사용… 2만여명 거주 【챠코 국립역사공원(미국)〓김재영 특파원】 흥청거리는 문명의 현장은 그냥 지나쳐도 기운이 돋궈지게 마련이다.그러나 사라진 문명의 남은 터를 응시하는 데는 상당히 강한 인내심이 필요하다.현대문명이 가장 발달하고 흥성한 미국에서 원주민 아메리카 인디언의 옛 문명을 구경하는 데는 특히 그러하다.미국에서 인디언 문명의 정화를 찾아가는 길은 현대인에게 익숙한 미국 문명을 잊어가는 행로이기도 했다. 미 대륙에서 인디언 문명의 꽃들은 묘하게 궁벽하고 척박한 곳에서 피어났다.아메리카 인디언의 운명과도 관계된 이 특징은 어떤 면에서 인간문명의 수수께끼의 하나인 것이다.인디언들은 5만년전 얼어붙은 베링해를 걸어 시베리아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왔다.그리고 태평양 연안에서부터 대서양의 동부에 이르기까지 빼놓지 않고 삶의 터전을 일궜다.하지만 기후좋고 먹을 것이 더 풍부한 태평양 연안이나 숲지고 농사짓기 알맞은 동부 지역보다는 서남부의 척박한 사막성 땅에서 인디언 문명이 한층 더 강렬한 색채로 꽃피었다.뉴 멕시코주의 챠코 유적도 그 하나라 할 수 있다. ○알브커키시 북쪽 250㎞ 인디언 문화의 정수를 느끼려면 미국 문명에서 멀리 떨어져야 한다.1천년전의 인디언 주거유적지인 챠코는 인구 40여만명의 뉴 멕시코주 최대 도시 알브커키에서 북쪽으로 250㎞ 정도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이동수단인 자동차가 고장이라도 나면 1천년 전의 그때로 곧장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원시적지역이다.챠코는 한국 절반 넓이로 뉴 멕시코 북서쪽 모퉁이를 차지한 산 후안 분지 한가운데에 있다.북서쪽으로 더 가면 그랜드 캐넌으로 흘러가는 콜로라도 강이고 동쪽으로 조금 떨어져 리오그란데 강이 있다.그러나 이 분지는 철저한 사막성의 황량한 평야다. 미국 서부쑥이라는 무릎 크기 식물이 땅을 뒤덮고 있을 뿐 먹을 만한 작물은 좀체 자랄 성 싶지 않다.피니언 소나무,노간주나무가 눈에 띄지만 사람키를 넘지 않아 마땅한 집지을 거리가 없어 보인다.드문드문 있는산도 거대한 암석 덩어리가 쑥 올라와 네모반듯한 대지를 이루며 몇 백만년을 부식해가고 있을 따름이다.강수량은 극히 적고 겨울은 또 길고 춥다.바닷가나 강가나 동부의 숲으로 가지 않고 왜 이런 황량하고 열악한 곳에다 삶터를 정했는지 이해가 안될 지경이다. 챠코는 서기 850년부터 1150년까지 지금은 없어진 아나사지 인디언들이 살던 마을 유적지이다.역사가 후세에 전해지지 않은 선사시대였고 도구도 석기 뿐이었다.1150년 아나사지 챠코인들이 마을을 버리고 떠난 뒤 폐허가 된 채 세월의 먼지에 싸여 있다.그러다 700년 만인 1849년 미 육군 중위에 의해 발견되었다.이를 계기로 남북 암석대지(메사) 사이를 가로지르는 챠코 계곡 일대 80㎢에서 3천여 개소의 주거시설을 찾아냈다.챠코의 핵심은 남 메사 바로 밑에 지은 ‘프에블로 보니토’와 ‘쳬트로 케틀’이란 대형 집단주거 시설로 되어 있다. 이 대형주거 시설의 특징은 집이자 마을이란 점이다.4천평에 가까운 대지를 뺑 둘러 담을 쌓고 광장,마당용으로 가운데 일부만 빼놓았다.나머지 땅전체를칸칸이 방으로 채웠으며 그것도 4,5층의 다층구조였다.아름다운 마을이란 뜻의 프에블로 보니토는 방이 모두 800개에 가까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849년 미 육군 장교 발견 키바라 부르는 종교적 성격의 원형 공동방을 빼곤 이 방들은 대부분 1∼2인이 거주하는 작은 크기다.벽에 난 창을 출입구로 하면서 계속 잇대어 있다.즉 복도나 정식 문이 없이 벌집같은 단일 연속 구조인 것이다.요새말로 하면 아파트다.고고학자들은 ‘1882년 뉴욕시 57번가에 고층아파트가 들어서기 전 세계에서 가장 높았던 아파트형 건축물’이라고 말한다.지금은 건물의 일부 층만 남아있다. 이 시설의 담,벽,방,문 할 것 없이 전체가 자잘한 돌을 차곡차곡 포개고 진흙을 발라 쌓아 세웠다.들보나 문틀받침엔 물론 나무가 사용됐다.석기로 뒷 메사 절벽에서 집채만한 돌을 뜯어내 이를 작고 네모반듯한 파편으로 일일이 쪼개낸 것이다.챠코 주거지에는 1억개가 넘는 돌조각과 20만개 이상의 크고 작은 목재가 사용됐을 것으로 짐작된다.목재 중에는 반 톤 가까운 것도 있다.이런나무들은 100㎞ 밖에서 사람들 맨 힘으로 끌고 왔다. ○1,000㎞ 도로 잘 닦여져 프에블로 보니토와 쳬트로 케틀을 중심으로한 챠코 일대에는 방 수로 보아 7천명에서 2만명의 인디언이 공동생활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작물이 풍성치 못한 사막성 자연환경을 감안하면 대도시 중의 대도시인 것이다.또 이 지역일대에 총 1천㎞에 이르는 반듯한 도로가 이리저리 닦여진 것이 항공사진을 통해 추적되었다.그러나 챠코도 결국 오랜 가뭄 등으로 인구를 먹여살리지 못하자 영원한 폐허가 되고 말았다. 챠코의 유적을 같은 시대 유럽의 성곽이나 요새에 비하면 원시적인 돌 마을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그러나 키작은 나무들과 집채만한 돌멩이 뿐인 사막성 땅 현지에 발을 딛고 보면 이 반쯤 무너진 돌 마을은 모래땅이 피워낸 예쁜 꽃임에 틀림없다. ◎여행 가이드/비포장도로… 우기땐 피해야 차코 인디언 유적지를 가려면 우선 뉴멕시코주 최대 도시 알브커키로 가야 한다.알브커키로 가는 미 국내항공편은 로스앤젤레스 등 주요 공항에서 매일 운행된다.알브커키에서 인터스테이트 고속도로 25번 상행선을 탄 뒤,주도 44번,산 후안 군도 7800번로 진입한다.군도의 대부분은 비포장도로여서 우천시는 피해야 한다.알브커키나 주도 산타페에서 호텔 등에 문의하면 단체관광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 “내년 1분기 경기 더 위축”/기업경기 실사

    ◎내수·수출 부진… 채산성 악화 기업들은 내년초 채산성이 더욱 악화되고 투자심리는 위축돼 체감경기가 더욱 냉각될 것으로 보고 있다. 25일 한국은행이 매출액 15억원 이상의 2천893개 법인기업체를 대상으로 벌인 기업경기실사조사(BSI)에 따르면 98년 1.4분기중 제조업 업황전망 BSI는 68,비제조업 60 등으로 나타나 기업들은 경기가 제조업 비제조업을 막론하고 매우 위축될 것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내년 1.4분기중 제조업 BSI는 BSI가 100을 넘는 업종이 전무한 가운데 목재.나무(44),자동차(49),비금속광물(55),기계.장비(59),전기기계(59) 등의 업종의 부진이 심할 것으로 조사됐으며 대기업(78)보다 중소기업(65)의 부진이 더 심각할 것으로 조사됐다. 제조업의 매출증가율전망 BSI는 87로 매출신장세가 둔화되며 수출(95)과내수(82) 둘다 부진할 것으로 조사됐다.채산성전망 BSI 역시 제조업 65,비제조업 61로 매우 낮아 기업들은 매출의 둔화와 채산성 악화의 이중고를 겪을 것으로 관측됐다.
  • ‘생태계의 보고’ 흥안령(흑룡강 7천리:15)

    ◎희귀 동식물 700여종… ‘관동의 보배’/진객 단정학­3보 ‘산삼·녹용·울로초’도 이곳에/인근 소삼협의 협용엔 천태만상의 비경이… 흑룡강 7천리 뱃길에는 절묘한 경치를 자랑하는 소삼협이 있다.호마에서 배를 타고 물결을 따라 얼마쯤 내려가면 소삼협이 나온다.금세 벼랑이 양안에서 맞죄어들어 강폭이 갑자기 좁아진다.물살이 셀 수 밖에 없다.그렇듯 센 물살이 소용돌이를 치는 통에 모래톱이 생겨나 수심이 얕아지는 여울목도 생겨났다. 그래서 흑룡강 뱃길에서 위험한 구간으로 꼽힌다.소삼협을 일컬어 ‘윤씨네 온돌’이니 ‘염왕의 콧구멍‘,‘모연산’이니 하는 까닭도 알고보면 위험한 뱃길과 연관되었다.‘윤씨네 온돌’은 지금 강위에 솟아난 여러 모래언덕을 말한다.이 모래언덕 근처를 지나자면 자칫 뗏목도 걸렸다.그래서 날이 어두워지면 뗏목꾼들은 강가에 살던 윤씨네 집에서 하룻밤 구들장신세를 져야 했다.그런 연유로 뱃길에 장애가 되는 모래언덕을 ‘윤씨네 온돌’이라 불렀다는 것이다. ○‘염왕의 콧구멍’ 소삼협 그 소삼협 물길을 막 벗어난 흑룡강가에는 윤씨네처럼 역참으로 생계를 꾸렸던 사람들이 많았다.‘계화참’이나 ‘이화참,회유참’ 등이 있었다.뗏목꾼들은 따뜻한 온돌에서 계씨나 이씨,또는 회씨 성을 가진 여인들과 어울려 술 한잔을 기울기며 회포를 풀었을 것이다.지금은 다 없어지고 ‘회유참’만이 작은 촌락으로 남았을 뿐 계화나 이화는 노인들 기억속에 머물고 있다.소삼협 협곡의 바위벼랑은 그야말고 장관이다.관세음보살상을 닮은 관음벽에 불조 형상과 흡사하다는 불조애 등 별별 이름이 다 붙었다.그렇듯 천태만상의 비경이기는 하나 소삼협 경치가 이웃에 사는 농사꾼들에게 밥을 먹여주는 것은 아니었다.계림처럼 관광업이 발달하지 못한 소삼협 언저리 마을에는 전기도 없다.회유참마을에는 흙벽돌로 지은 소학교가 하나 있었는데,무너지고 나서 아이들이 선생님집에 모여 공부를 하고 있는 판이다. 그러나 흑룡강 강줄기를 품에 안은 호마현 금산향 모연산에는 많은 양의석탄이 매장되었다.이는 산골 사람들의 희망이기도 했다.그리고 흥안령의 망망한 수림은 모두가 보배였다.대흥안령과 소흥안령을 합한 산지면적은 8만4천600㎢에 이른다.임산물 축적량은 모두 5억3천6백만㎥나 되어 해마다 365㎥의 목재를 흥안령 일대에서 생산하고 있다.중국 전체 목재생산량의 10%가 흥안령에서 나온다는 이야기다. 흥안령의 수종은 무려 170여종.낙엽송과 봇나무,운삼과 냉삼,홍송 등이 원시목으로 자라는 흥안령에는 약초도 319종이나 되었다.미후도와 산포도,초매,산삼,황계,오미자는 세상 의원들이 알아주는 흥안령산 약초다.그리고 66종의 동물과 229종의 조류가 서식하고 있다.동물로는 말사슴,동북범,곰,수달이 있는가 하면 단정학같은 진귀동물만도 16종이 노닌다. 중국 동북지방을 말하는 관동의 세가지 보배는 산삼과 녹용,울로초다.그 삼보가 모두 흥안령에 있다.그중에서 흥안령 물줄기 얕은 물에서 자라는 울로초는 하느님이 동북사람들에게 내린 가장 큰 보배라고 한다.그만큼 동북사람들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식물인데,울로초는 바로 추위를 막아주는 방한재인 것이다.울로초는 뜨거운 온돌이나 건들바람에 말려 막대기로 두들기면 목화솜에 버금하는 섬유질만 남는다.그 섬유질로 발을 싼 다음 가죽신을신으면 동상에 걸리는 법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에 고사리 대량 수출 그런데 중국정부가 수립되면 울로초는 솜에 밀려 났다.관동의 보배 울로초자리는 그 대신 수달피가 차지했다.후한서에 나오는 기록을 보면 수달피는 읍루에 좋은 것이 많다는 것이다.색깔은 검푸르고 가벼우면서도 따뜻했다는 내용도 이 사서에 적혀있다.그러니까 자고로 흥안령 일대 물가는 수달의 서식지였던 모양이다.그래서인지 흥안령 이웃에서는 지금수달 양식이 한창이다.어느 나라 귀부인 몸을 휘감을 수달이 우리속에서 통통하게 자라는 흥안령은 이래저래 아직 자연의 보고로 남아있다. 흥안령 일대에서는 여우사육도 성행했다.한 해에 한 차례씩 번식하는 여우의 생식능력은 대단해서 한 배에 열 마리 정도의 새끼를 낳는다.약 넉달을크면 가죽을 벗기는데,하북성 모피공장에서 모두 사들인다는 것이다.여우 한 마리에 드는 사육비 150원에 비해 가죽 한 장 값은 700원이라니 수입이 괜찮은 사업이다.여우는 다락식 우리에서 키웠다.그리고 다락 아래에서는 닭을 먹였다.여우 배설물을 아래서 받아먹고 사는 닭은 아주 무병하게 자란다는 것이다. 요즘은 별별 짐승을 다 키우고 있다.웅담을 채취하기 위한 곰 사육장도 여기저기 보였다.다만 동북범은 하얼빈 호림원에서만 관상용으로 사육했다.그렇듯 여러 동물은 사육하고 있으나 생태보호 차원의 동물사육은 치치하얼시차룽자연보호구의 단정학이 유일했다.자연보호구에서 봄부터 가을까지 살면서 번식하는 단정학은 세계적으로 희귀한 조류로 중국의 1급 보호동물이다.일부일처로 50∼60살의 일생을 사는 단정학은 장수를 상징하는 수조이기도 하다.그래서 노인들의 장수를 축원하는 그림속에 자주 등장했다. 한국과 무역거래가 이루어지면서 새삼스럽게 보배로 떠오른 식물도 있다.그것은 흥안령 고사리다.산에서 직접 꺾어온 사람들은 1근에 10원,이를 중간에서 수집한 상인들은 13원씩에 파는 고사리는 모두 한국으로 수출되었다.한국시장에 나오는 고사리는 거의가 흥안령산이라는 것이 여기 사람들이야기다.멀리서 보면 수줍음을 타는 소녀가 머리를 숙인채 서있는 듯 하고,가까이 다가가면 갓난아이손 같은 고사리.옛날 흥안령 사람들은 고사리가 돈이 될줄은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 철강왕국 포항제철:(우리가 세계최고:6)

    ◎첨단기술·서비스로 신철강시대 개척/코크스과정 생략 ‘코렉스’ 완공으로 생산성 혁신/납기단축·무조사 보상… 고객과 동반자관계로 모 철강업체 L부장은 요즘 포철 본사에 들어가는 일이 많이 줄었다.몇년전 까지만해도 포철 담당임원들이 원자재인 강판의 공급물량을 일일이 업체별로 배정해 ‘잘 보여야 했지만’ 이제는 컴퓨터로 주문하면 끝나기 때문이다.물론 주문처리를 위해 가끔 포철에 들어간다. L부장은 “김만제 회장이 취임하기 전에는 물량이 많이 달려 편의적인 기준에 따라 업체마다 다른 가격이 정해지기도 했다”면서 “그러나 김회장 체제 이후 일물일가 원칙이 적용돼 비리가 끼어들 소지가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일물일가’원칙 비리 제거 포철은 독점공급업체로서 늘 우월적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서비스란 것이 없었다.현금을 주고도 철강을 사기가 어려웠다.그러나 김회장 취임이후 포철은 공급자 우월주의에서 탈피,납기관리에서부터 불만처리에 이르기까지 수요업체의 불만요인을 원천적으로 제거해 나가고 있다. 포철은 수요자들의 물류공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중간 물류기지를 만들었다.대우자동차만해도 과거에는 포항에서 육로로 제품을 운송해와 전 물량을 공장에 비치해두고 썼으나 요즘은 포철이 배로 인천항까지 날라다 포철부담으로 항구 물류기지에 보관해주고 있어 필요할 때 가져다 쓰고 있다. 포철은 월말 출하분에 대해서는 외상기한을 연장(평균 15일)해주고 수요가를 대상으로 출하후 입금제도를 시행하고 있다.클레임처리제도를 개선,무조사 보상제도를 도입하고 보상범위도 확대했다. 최근에는 IMF사태로 심화된 철강수요업체의 자금난을 덜어주기 위해 전제품의 외상판매기간을 90일로 늘렸다.최단 30일에서 최장 75일까지 적용해오던 기간을 1년간 전제품 판매에 대해 90일로 연장해준 것이다.이 조치로 포철의 외상자금은 1조2천억원에서 1조7천억원으로 늘게 됐다.웬만한 업체같으면 외상기일을 줄여 현금화에 급급했겠지만 포철은 수요업체의 어려운 사정을 생각해 손실을 감수해가며 이같은 조치를 단행했다.물론 지난 4년에 걸친 구조조정과 경영혁신으로 올해에도 비교적 좋은 경영성과가 예상되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포철이 달라졌습니다.주문에서부터 제품입고까지 기간이 종전의 절반으로 단축됐습니다.과거에는 최장 60일이 걸렸습니다.현재 포철은 45일을 기준으로 잡고 있으나 긴급제품은 30일이면 나옵니다” 동명강판 서울사무소 최영우 과장(35)의 얘기다.동명강판은 포철의 판매전문 자회사인 포스틸의 대리점으로 충남지역에 냉연강판을 공급하고 있다. ○외상판매기간 90일로 늘려 최과장은 “90년대초까지만 해도 대리점들은 포철이 ‘고압적’이라고 느낄 정도였으나 이제는 대리점들을 동반자로 여기고 있고 오히려 수요가 위주의 시책을 펴고 있다”고 평가했다. 포철은 수요업체를 돌며 고객의 불편사항을 신속하게 해결해주는 서비스전문기술자들을 146명이나 운영하고 있고 고객사간의 전자문서거래도 97년 9월부터 가동중이다.과거 대리점들이 물건을 납품받으려면 월간 거래량에 해당하는 부동산을 담보로 제공해야 했으나 지금은 전량 신용거래다. 이같은 개선된 서비스에다 끊임없는 기술개발로 포철은 21세기를 착실히 준비해가고 있다. 자동차타이어안에 철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전체가 고무로 돼 있는 것같지만 타이어안에는 타이어코드라는 고강도 강선이 들어있다.이 강선은 펑크를 방지해 주는 역할을 한다. 스틸 캔용 강판도 마찬가지.가벼우면서도 충격에 강해 변형이 안되는 이스틸 캔용 강판의 제조기술은 포철의 제철기술이 완성경지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포철은 95년 11월 용융환원제철법으로 연산 60만t 규모의 코렉스설비를 준공했다.이 용융환원제철법은 코크스과정이 생략돼 그만큼 생산성이 높은 신제철법으로 세계에서는 남아프리카공화국(30만t) 외에 가동중인 곳이 없다.규모로는 포철이 최대다.이 공법은 기술도입때부터 고로(용광로)에서 생산되는 쇳물에 비해 질이나 생산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그러나 포철은 정상조업도를 세계 최단기인 8개월만에 달성했다.96년 상반기 89.45%에 달했던 가동률을 지난 2·4분기에는 94.1%로 끌어올렸다.올해는 조업도가 더 높아져 용선생산량은 73만t에 이를 전망이며 쇳물도 고로제품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18개국 35사 컨소시엄 구성 포철은 일부 조업 및 정비기술에서 자체 로열티를 받아낼 만큼 기술력도 확보했다.현재 인도의 진달(JINDAL)사와 남아공화국의 살다나(SALDANHA)사와 조업·정비기술의 판매를 협상중이다.스틸하우스,철골조 고층아파트 사업에도 뛰어들고 있다.스틸하우스는 목재대신 두께 1㎜정도의 도금강판(내구성을 높이기 위해 얇은 철판에 아연도금을 한 것)으로 외부치를 목재와 동일하게 ㄷ자 모양으로 만들어 조립하는 주택이다. 파이넥스(FINEX·8㎜ 이상의 괴광을 사용해야 하는 코렉스공법의 단점을 보완해 100%분광을 사용하는 방법)기술과 박판주조기술,스트립캐스팅기술(Strip Casting)도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다.스트립캐스팅 기술은 ‘꿈의 주조법’으로 불리는 차세대 신주조법으로 제철산업의 판도를 바꿔놓을 핵심기술이다.용광로에서 쇳물을 연속 주조,열간압연 및 냉간압연을 거쳐 냉연강판을 만들던 기존 공정을 축소,중간공정을 생략하고 용광로에서 쇳물을바로 뽑아냉연강을 만드는 것이다.현재 용강(쇳물을 담는 대형 용기) 10t 규모의 시험조업에 성공,상업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특히 김만제회장이 국제 철강협회회장에 피선된 뒤 신철강시대에 걸맞는 기술개발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대표적인 것이 초경량 차제구조.현재 18개국,35개사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총 2천2백만달러를 투자,차체의 무게를 현재보다 35%까지 줄이는 기술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ULSAB(초경량차제)으로 불리는 이 프로젝트는 지난 4월 서울 국제모터쇼에서 선보였고 내년 봄에 본격 상용화에 들어갈 것 같다. □특별취재팀 ·경제부=권혁찬 차장 손성진·오승호·김균미·박희준·이순녀 기자 ·국제부=이석우 북경 특파원
  • 지역공약 발표… 부동표 잡기 총력/3당후보 행보

    ◎이회창­강릉시장서 즉석 경제연설/김대중­파랑세유세단 수도권 순회/이인제­부산서 불자상대 지지호소 한나라당 이회창 국민회의 김대중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는 2일에도 지방을 돌며 지지를 호소하거나 대선공약을 발표하는 등 주로 부동층 흡수에 초점을 맞춘 중반 득표활동에 총력을 기울였다. ▷한나라당◁ 강원도 공략에 나선 이회창 후보는 이곳 출신 조순 총재와 함께 이날 강릉과 주문진의 시장과 광장 등에서 거리유세를 하며 지지표 확산에 주력했다.강원은 전통적인 여권표밭인데다 최근 최각규 도지사 등 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들이 대거 입당,이번 대선에서 과반 득표는 충분할 것으로 기대하는 지역이다.특히 영동지역의 ‘이회창 바람’을 영서지방,나아가 수도권까지 ‘서진시키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이후보는 먼저 강릉에 도착,오죽헌을 참배한 뒤 주문진 시장,강릉 석남동선프라자 광장,강릉 중앙시장을 잇따라 찾아 시민들을 상대로 20분동안의 즉석 연설을 했다.이후보는 연설의 대부분을 최근의 경제난에 할애,경제를 살리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거듭 다짐했다. 이후보는 거리유세를 끝낸뒤 곧바로 상경,시내 롯데호텔에서 인기사극 ‘용의 눈물’에서 태종역을 맡아 인기를 끌고 있는 탤런트 유동근씨를 만났다.유씨는 곧 이후보를 위한 TV광고에 출연,주부와 중·장년층의 지지를 넓히는데 한몫할 것으로 알려진다.이에 앞서 이후보는 마포당사에서 민주당 출신인사들로 구성된 별도의 선거대책본부 발족식에 참석,“김대중 후보가 정권교체를 주장하고 있지만 야당인 여러분이 있는 한나라당이 집권하는 것도 정권교체를 이루는 길”이라고 말했다.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가 중앙당사에서 공약발표를 하고 호흡을 고르는 동안 각 유세단은 서울과 수도권을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20∼30대 청년층 표심을 담당한 파랑새 유세단은 3개권역을 나눠 서울 종각과 충무로,신사역,강남역에서,인천의 경우 주안북부역과 동인천·제물포역 등을 무대로 지지를 호소했다.당내 청년특위도 ‘경제살리기 청년비상선언 주간‘을 선포,청량리와 압구정 일대에서 유세활동을 펼쳤다.추운 날씨 탓에 다소 썰렁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지만 각 유세단은 한나라당과 이회창 후보의 ‘경제파탄 책임론’을 앞세워 “경륜과 위기 관리능력을 겸비한 김대중 후보을 중심으로 희망의 경제를 건설하자”며 파상적인 공세에 나섰다. 정대철·노무현·김근태 부총재가 공동단장을 맡고있는 파랑새 유세단은 이날 “당명만 바꾼다고 집권당의 경제파탄 책임을 면할수 없다”며 “튼튼하던 경제를 불과 1년만에 부도로 몰고간 김영삼 대통령과 집권당 2인자인 이후보에게 전적인 책임이 있다”고 공세를 폈다.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 진영은 부산 일대의 대학가와 역광장·시장통을 숨가쁘게 도는 거리유세를 벌이며 정·경유착에서 비롯된 경제위기의 책임론을 강하게 거론,“젊은 일꾼을 뽑아 나라를 구하자면서 지지를 호소했다.아침 비행기로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간 이후보는 양산 통도사방문을 시작으로 부산대학과 양산 시외버스터미널·서면 롯데백화점·부산역 광장·고신대·국제시장·부산극장을 연결하는 버스투어 유세를 벌인뒤저녁 늦게 상경했다. 유세는 삼보사찰의 하나인 양산 통도사에서부터 시작됐다.한이헌 정책위의장·서석재 최고위원을 대동하고 통도사에 도착한 이후보는 대웅전에서 삼배한 뒤 바로 옆 불법전에서 열리는 ‘화엄산림법회’에 참가,1천여명의 신도와 자리를 함께 했다.이후보는 “집이 무너지면 허물어진 목재를 다시 써 집을 일으켜 세우기는 어렵다”고 경제위기와 관련해 현 정부를 질타한 뒤 “불자들이 애국심을 발휘해 나라 살리기에 앞장서 달라”면서 지지를 호소했다.부산대 앞에선 연설을 통해 “국가 경영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지역과 정파·학연을 가리지 않고 애국심있는 인재를 골고루 등용해 튼튼한 나라를 건설하겠다”고 사자후를 토했다. 이어 부산 아리랑호텔서 열린 ‘21세기를 위한 모래시계세대 청년포럼’ 발기식에 참석,청년 회원들을 격려한 뒤 부산 롯데백화점과 부산역 광장·부산극장앞 광장 일대에서 가두연설과 거리유세를 계속했다.
  • 남산골 공원/도심속에 재현된 600년전 서울

    ◎2만4천평 규모의 시민공원 조성/타임캡슐광장­생활문물 600점 매장… 2394년 공개/전통정원 조성­향토수중 식재… 옛남산 정취가 물씬/한옥마을 복원­민속적 가치 높은 한옥 5채 재건립 서울은 도읍지가 된지 600년이 넘었지만 ‘역사속으로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경복궁,비원 등 일부 고궁과 남대문,동대문 등의 유적이있지만 전체적으로 유구한 역사에 비해서는 빈약한 감이 없지 않다.보존보다는 허물고 새로 짓는데 길들여진 탓이다. 내년 봄이 되면 서울 남산에 서울의 과거,현재,미래를 볼수 있는 곳이 들어선다. 중구 필동 옛 수도방위사령부 터 2만4천여평에 조성되고 있는 남산골 공원이 바로 그 곳. 타임캡슐광장,전통정원,한옥마을 등 세부분으로 나뉘어진 이 공원은 타임캡슐광장,전통정원은 이미 조성이 끝났고 한옥마을은 거의 마무리단계에 와있다. 남산골 공원의 상층부에 위치한 타임캡슐광장은 서울의 미래를 잉태하고 있는 곳이다. 이곳에는 서울 시민들의 생활상을 엿볼수 있는 문물 600점이 지하 15m에 매장돼 있다.서울 정도 600주년인 지난 94년 11월29일의 일로 벌써 3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타임캡슐은 정도 천년이 되는 2천394년에 공개될 예정이다.그래서 분화구모양으로 된 광장의 회랑을 거닐면 600년전과 400년뒤가 함께 느껴져 상념에젖게 한다. 타임캡슐광장에서 내려오면 전통정원과 마주친다. 남산의 산세를 살리기 위해 구릉지와 계곡을 완만하게 조성한 이 정원에는 소나무 등 향토수종이 주로 배치돼 있으며 느티나무,수양버들 등이 뒤를 바치고 있다.옛 남산의 정취를 살리기 위해 골짜기도 인공적으로 조성해 놓았다.하류의 연못에서 물을 끌어올려 계곡으로 방류하는데 내년 봄부터 가동될 예정이다.골짜기 중턱에는 수필집을 통해 청렴,결백으로 상징되는 남산골선비의 모습을 일깨워준 일석 이희승 선생의 추모비가 서 있다. 또 구불구불한 산책로를 따라 내려오면 꿩과 까치가 양지바른 곳 잔디밭에서는 한가롭게 뛰노는 모습을 볼수 있으며 곳곳에 정자가 있어 발걸음을 쉬게 한다.전체적으로 번잡하지 않고 고즈넉한 분위기여서 도심이란 느낌이 들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곳이 전통한옥 복원지역.2천400여평에 형태가 독특하고 원형을 잃지 않아 민속자료로서 가치가 높은 정규엽가옥 등 5채가 복원되고 있는데 11월1일 현재 92%의 진척도를 보이고 있다.올 연말까지면 벽지,천정,장판,창호지 마감작업 및 마을 공동광장 마사토 포장이 모두 끝나게 된다. 이와 함께 내년 3월까지 가옥 내부에 장롱,문갑,뒤주 등 전문가의 고증을거쳐 제작한 가재도구를 배치할 예정인데 현재 75%정도의 공정을 보이고 있다. 한옥촌이 문을 열면 침선,공예,민화교실과 서당 등 다양한 취미강좌가 개설돼 시민들과 호흡을 함께 하게 된다. 한편 한옥촌 초입에 있는 공예전시관은 이미 공사가 끝났다. 이곳에서는 나전칠기 전통매듭 등을 만드는 방법이재현되고 각종 공예품도 판매된다. 공예전시관 앞 빈터는 소극장으로 활용될 예정이다.소극장은 누각과 연못을 마주보고 있어 널뛰기 그네뛰기,윷놀이 등 민속놀이와 전통혼례식을 개최하기에 적격이다. ◎남산골 공원지역 유래/조선시대 벌칭 청학동… 시인 묵객 많이 살아/1730년경 군대첫 주둔… 이후 군사용 활용 남산골 공원이 조성되는 곳은 옛부터 시인 묵객이 많이 살아 조선시대에는 청학동이라고 불려져 왔던 곳이다. 도교에서 청학은 영생하는 학을 말하는데 경치가 절경인 곳에서 산다.이곳이 청학동이라고 불린 것은 청학이살만큼 산수가 좋았기 때문이다. 빼어난 산수는 글재주가 있는 사람을 끌어 모운다. 조선조 초기 좌의정을 지낸 용재 이행은 이곳에 천우각이라는 정자를 지어 놓고 여름철 더위를 피했다.그는 중국 사신이 우리나라에 오면 찾았을 정도로 시에 능했다.또 그의 증손자인 이안눌도 시문에 뛰어났다. 남산은 수도 서울의 중앙에 있는 산이다.시민들의 쉼터도 될수 있지만 군사목적으로 이용될 수 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조선초 태조가 인왕산,남산을 연결하는 도성을 축조한 것이라거나 봉수대로 활용된 것이 이를 말해준다. 그러나 남산골 공원이 군사용으로 활용된 것은 한참뒤의 일이다.영조때인 1천730년대 조정은 이곳에 139칸의 집을 짓고 수도 서울을 지키는 남별영이라는 군대를 주둔시켰다.얼마전까지 수도방위사령부가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묘한 인연이다. 일제시대에는 헌병대사령부가,해방후에는 수경사가 들어서 지난 94년까지 주둔했다. 남산골 공원에 가는 방법은 지하철 4호선 충무로 역에서 내려 ‘한국의 집’쪽으로 가면 된다.공원내에 주차장이 없기 때문이다.전통 한옥촌은 공사가 한창이지만 이미 완공된 타임캡슐광장과 전통정원은 아직 알려지지 않은 탓인지 여유있게 구경할 수 있다. ◎복원예정 한옥 5채의 특징/정규업 가옥­순종때 지은 왕제사 행차용 집/이진승 가옥­철종때 부마 박영효의 개인집/서용택 가옥­정문 계단 난간석은 미의 극치/김홍기 가옥­안채∼사랑채 연결한 사대부집/조흥은 가옥­유리문 등 개량한옥 양식 도입 서울시내에 산재해 있다 남산골로 이전 복원되는 5채의 한옥은 모두 나름대로 특징이 있다. 동대문구 제기동 정규업 가옥은 조선 순종의 처삼촌인 윤덕영이 왕의 제사행차때 편의를 돕기 위해 지은 제사가옥이다.위에서 내려봤을때 사당을 정점으로 가옥구조가 으뜸 원꼴을 하고 있으며 목재는 경운궁을 헐면서 나온 홍송을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경인미술관에 있던 이진승가옥은 조선말 철종때 영혜공주의 사위 박영효의 집으로 서울 8대가 중의 하나다.부엌과 안방이 일자로 남향하고 있으며 서울에서 보기 힘든 개성지방의 주택양식이다. 종로구 옥인동 서용택 가옥은 조선말 순종 윤비의 저택이었다고 전해진다.이 가옥은 정문 계단 양쪽의 난간석이 매우 아름다운 구한말 최상류층의 가옥이다. 종로구 삼청동 김홍기 가옥은 안채와 사랑채가 전체적으로 연결돼 있다.사대부의 가옥이지만 전체적으로는 조선말기 서민주택의 양식을 볼수 있다. 중구 삼각동 조흥은행 관리가옥은 전통적인 안채와 별당채를 갖추면서도 유리문 등 개량한옥의 양식을 취하고 있다.지붕의 한쪽이 길고 한쪽은 짧은 특이한 양식을 띠고 있다. 서울시는 당초 이들 한옥을 뜯어 남산으로 옮겨 복원하려 했으나 70% 정도는 새 것으로 교체했다.대부분 지은지 100∼200년이 지나 목재의 상당부분이 썩거나 안전상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그러나 외국산 소나무를 전혀쓰지 않고 강원도 강릉과 설악산에서 소나무를 벌채,6개월간 건조시켜 사용했다.
  • 한국의 목공예/박영규 지음(화제의 책)

    ◎일상의 구석구석에 밴 한국의 멋 “책상이나 연상에는 운각을 새기지 말며,금구장식과 주황칠은 피하고 무늬목으로 고담하게 하라” 조선후기의 실학자 홍만선이 지은 ‘산림경제’에 나오는 말이다.우리 조상들은 이처럼 일상의 구석구석까지 기품 있는 ‘한국의 멋’을 생활화했다.우리의 미품 가운데 한국적인 아름다움이 가장 잘 드러나 있는 것을 무엇일까.세 가지만 든다면 그것은 단연 백자와 분청사기,그리고 목공예품을 꼽을수 있을 것이다.그중에서도 기능성과 건강한 조형미가 어우러진 목공예품은 목재 특유의 섬유질과 나뭇결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한층 깊이 느끼게 한다.이 책에는 이런 목공예품이 우리 생활속에 깊숙히 자리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가치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담겨 있다.“현재 제작되고 있는 창작목공예품들은 진정한 전통의 계승과는 거리가 있으며,전승목공예품들은 옛것의 외형만을 답습하고 있다”는게 지은이의 생각.이런 전제에서 이 책은 한국의 목공예 전반에 대한 이해를 돕는데 초점을 맞춘다. 한국 목공예의 두드러진 특성 가운데 하나는 여러 지방으로 나뉘어 다양하게 발전했다는 점이다.지방 특산의 목재와 생활양식에 따라 지방색이 강한 소품을 제작·사용했다.그 좋은 예로 반닫이와 장 겸용의 전주장,장롱의 전면판재에 조각을 넣은 보성장,예천지방의 정교한 떡살과 다식판,통나무속을 파낸 강원도 지방의 함지 등은 지방 특유의 형식을 보여준다.이 책은 목공예품의 기본 제작기법인 짜임과 이음·좌우대칭·부판·낙동법 등에 대해서도 소개한다.짜임과 이음은 선과 면분할로 구성된 한국의 가구에는 필수적인 기법이다.범우사 12만원.
  • 20세기 사상계 거목 영 이사야 벌린 타계

    【런던 AP 연합】 이사야 벌린경의 타계로 20세기 사상계의 한 거목이 사라졌다. 지난 5일 밤 옥스퍼드대 애클랜드 병원에서 88세를 일기로 작고한 철학자 겸 정치사상가인 벌린경은 정치사상사와 자유의 개념을 체계적으로 연구한 금세기 최고의 석학중 한명이다. 1909년 6월 6일 라트비아 리가에서 목재상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부모를 따라 1919년 영국으로 이주,옥스퍼드대 코퍼스 크리스티 칼리지에서 수학했다. 60여년간 미국·영국 등에서 강사,교수,단과대학장 등으로 일한 벌린은 에라스무스,리핀코트,아그넬리 상을 받았고 평생 시민자유를 옹호한 공로로 예루살렘상도 수상했다. 그가 남긴 저서로는 카를 마르크스에 관한 책(1939)을 비롯해 에세이집 ‘고슴도치와 여우’(1953년),‘1940년의 처칠’(1964년) 등이 있다. 그의 미망인은 한때 프랑스 골프 챔피언이었던 알린 드 귄즈부르.그들은 56년에 결혼했다.
  • EU,대한 특혜관세 폐지/홍콩·싱가포르도/빠르면 내년 1월부터

    【브뤼셀 연합】 한국이 유럽연합(EU)의 일반특혜관세(GSP) 적용에서 완전히 제외된다. 28일 현지 언론과 관련업계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는 한국,홍콩,싱가포르 등 3개국을 GSP 수혜에서 전면 배제하는 GSP 규정 개정안을 마련,곧 각료이사회의 승인을 받아 시행할 예정이다. EU는 한국 등에 대한 GSP 배제 시점을 아직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으나 빠르면 내년 1월1일자로 적용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EU는 95년부터 98년말까지 적용되는 공산품 GSP 규정안과 97년7월∼99년6월까지의 농산품 GSP 규정안에 한국을 수혜 대상으로 포함시켰으나 이번에 배제키로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은 95년 기준으로 EU지역에 대한 전체 수출 1백9억에큐(ECU,미화 약 1백20달러)중 43억에큐가 GSP혜택을 받았다. EU는 그동안 한국에 대한 GSP 혜택을 단계적으로 축소해와 공산품 중에서는 현재 신발,완구 등 경공업 제품과 염료 등 화학제품 등이 혜택을 받고 있다. EU의 이번 결정으로 김치,송어,게맛살 등 규모가 크지 않으면서도 꾸준히 시장을 개척해온대EU 주력 농수산품 수출도 타격을 받게됐다. EU는 또 GSP 규정을 개정,국제노동기구의 단체교섭 및 최저임금 관련 규범과 국제열대목재기구의 환경보호 기준을 준수하는 나라들에게 GSP 혜택을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 서울지하철 전동차 무더기 탈선 위험/감사원 감사

    ◎125개 차량 바퀴마모 허용치 초과상태 운영/5·7·8호선 역사 공중전화 감전사고 우려도 감사원은 지난 상반기 수도권 지하철 운영실태 감사에서 열차의 안전운행을 위협할 수 있는 차량설비 관리의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개선을 요구했다고 20일 밝혔다. 감사원에 따르면 서울시 지하철건설본부는 지난해 지하철 5,7,8호선용 전동차 834량을 구입하면서 차량설비에 전원을 공급하는 보조전원장치 성능실험을 제대로 하지 않아 7,8호선용 전동차 226량의 경우 보조전원장치 성능이 일부 확인되지 않은채 그대로 납품됐다. 또 전동차량 바퀴의 찰상(일종의 바퀴 마모)이 허용기준을 초과하면 열차의 탈선사고가 날 수 있으므로 바퀴를 수리해야 하는데도 지하철공사의 차량 1천944개중 125개 차량의 바퀴 237개에서 기준 이상의 찰상이 드러났다. 감사원은 이와함께 지하철 5,7,8호선 62개 역사 공중전화 단자함 167개의 전화선이 전기배선시설과 혼합 설치돼 감전사고의 위험이 있으며 광고판 397개 가운데 229개에서는 형광등 안정기가 가연성 목재 위에 설치돼화재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 오로촌족의 곰 숭배(흑룡강 7천리:7)

    ◎“곰에게서 조상 태어났다” 단군설화 비슷/“사냥꾼 아내 산속서 남편 찾다 곰으로 변해”설도/곰 호칭않고 조부모뜻인 “타인텐과 야아”로 불러 흑룡강성 치치하얼시에서 내몽골 자거타치로 가는 열차편으로 오로촌족기 대양수진에 도착했다.여기서 ‘기’는 깃발이 아니라 오로촌족 근거지를 의미하는 어떤 구역에 해당하는 것이다.대흥안령 동남비탈에 위치한 대양수진은 내몽골자치구에서 이름난 목재생산기지다.5만5천㎢에 이르는 임지에 2억9천만㎥의 임목을 보유하고 한 해에 1백20만㎥의 목재를 생산하고 있다. 나무값이 쇠값이라 대양수진 사람들의 생활이 윤택할 수 없다는 사실은 곧 피부에 와 닿았다.역광장에는 손님을 맞는 택시들이 즐비했다.마중나온 조선족 김창복씨(33)를 이내 만나 그가 운영하는 ‘금강산조선족음식점’으로 안내되었다.“웬 차가 그리 많으냐?”고 물었더니 “개인소유 차량만도 5천대가 넘는다”는 대답이었다.밤 10시인데도 술손님이 많았거니와 좀체로 자리를 뜨지 않았다. 술손님은 모두가 오로촌족들이었다.왁자지껄하는 소리가 얼핏 조선말처럼 들렸다.그러나 귀를 기울이면 전연 아니었다.대양수촌에는 3천여명의 오로촌족이 살고 있다.민족의 절반이 여기 산다는 것이다.1895년 청나라 정부의 호구조사에서 모두 1만8천여명이었던 대양수진의 오로촌족은 해마다 줄어들었다.1953년에는 2천256명으로까지 뚝 떨어졌다. ○목재생산지 대양수진 해방 이전까지만 해도 그들은 원시생활과 별 다름이 없는 삶을 살았다.강의연간에 국이침이 쓴 ‘이역록’을 보면 오로촌족은 사슴을 길러 타기도 하고 짐을 실어 부리는 민족이라고 했다.그러니까 사슴을 길들일 줄 아는 순록인이자,사냥을 주업으로 하는 수렵민족이었다는 이야기다.지금은 정부가 농업과 목축업을 권장하면서 정착생활로 유도했기 때문에 떠돌이는 별로 없다.김창복씨의 말을 들어보면 중국 정부도 그들을 보호하기 위한 여러가지 노력을 기울이는 모양이다. “중국 소수민족 자치기중에 오로촌족자치기가 맨먼저 세워졌디요.1951년 4월7일이네까 꼭 46년이 됐다 말입네다.당시만 해도 수렵을 생활수단으로 하는 민족이라 총알도 정부가 무상으로 지급했다고 기래요.여러가지 특수 보호정책이 많았디요.그중에서리 사형면제 정책은 오로촌족들만이 누린 특권이었을 겁네다.술에 취한 아들이 홧김에 아버지를 총으로 쏘아 죽인 일이 있었는데,석달 구류를 살고 나왔다고 합데다.물론 자수는 했디요.” 오로촌족에게는 부계씨족공동체조직이 있다.하나의 부계조상을 모신 그들의 공동체 이름은 무쿤(목곤)이다.씨족 내부의 모든 일은 씨족장에 해당하는 무쿤다(목곤달)이 총괄했다.같은 혈육간의 씨족조직인 무쿤은 민주적으로 운영되었다.범죄에 대한 재판도 씨족장이 연장자들과 협의하여 판결하는 것이 보통이다.그 벌금은 사냥물이나 곡식 따위로 대신했다는 것이다.치치하얼시 민족사범학교 교원 막대령선생은 혈연관계를 유지하는 비결을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는 정기적으로 무쿤대회를 엽니다.3년에 한번 여는 무쿤대회는 족보를 바로 잡는 것이고 10년에 한 번씩 여는 대회는 무쿤다를 뽑기위한 것이지요.대회기간에는 노래하고 춤을 추면서 별의별 놀이를 다 합니다.씨름,활쏘기,말타기 등 놀이를 겸한 시합을 통해 혈연간의 끈끈한 정을 나누지요.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학교 운동회와 같은 것입니다.이 회의는 최고 의결체 성격도 지녔기 때문에 씨족규범을 범한 사람에게 주는 벌을 논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불행하게도 문자가 없다.게다가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도 드물어서 오늘날의 사회법규로 다스리기는 사실상 불가능한지 모른다.오로촌족의 교육은 1914년에 시작되었지만 곧 유명무실해지고 말았다.산림속에 50리나 100리 거리를 두고 띄엄띄엄 살았으니 학교 교육이 이루어질 수가 없었다.그래서 오로촌족의 정상교육은 1953∼57년까지 국가가 집을 지어주고 강제적으로 정착시키고 나서 가능하게 되었다.1980년대에 들어 소학생 344명,중학생 131명이 겨우 통계로 잡혔다.대학입학은 무시험특례로 겨우 30명이 진학할 정도였다. ○사형면제제도 특전 중국 정부는 1996년 1월26일자로 오로촌족들로부터 총기를 모두 거두어들였다.실탄까지 무상으로 지급했던 관례를 깨고 사냥도 금지했다.산속에서 사냥하는 습관을 버리고 목축업과 농업에 종사토록 한 이 조치가 실효를 거두었는지는 아직 의문이다.왜냐하면 ‘금강산조선족음식점’에서 노루 생회가 나왔기 때문이다.주인 김창복씨는 노루회가 나온 연유를 이런저런 말로 이야기했다. “재작년에는 노루고기 한 근을 사자면 3원을 줬디요.지금은 12원씩을 합네다.잘못 걸리면 엄청난 벌금을 물어서리 그럴수 밖에 없디요.이 고기는 아까 해질녘에 잡은 것입네다.주로 밤 10시쯤에나 새벽 4시쯤에 사냥을 해서 몰래 밤에 지프차를 타고 가서리 헤드라이트를 비추면 노루눈 두 개가 파란점으로 나타납네다.기럴때 쏘면 백발백중으로 잡히디 뭡네까.” 그러나 직업 밀렵꾼은 없고 그저 재미로 노루를 잡는다고 했다.대부분은 사냥 대신 농사로 살아가고 있다.개고기와 생고기를 잘 먹는 오로촌족은 조선족이나 마찬가지로 매운 음식도 즐기는 민족이다.어딘가 우리 민족을 닮았다. 어떻든 오로촌족에게서는 여러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되고 있다.그 하나가 자신들을 ‘곰의 후손’으로 생각한다는 점이다.곰을 숭배하는 이면에는 두가지 설화가 깔렸다.그 하나는 암컷 곰이 사냥꾼과 잠자리를 함께 하고 나서 낳은 아이가 오로촌족 조상이 되었다는 이야기다.다른 하나는 산속으로 짐승을 잡으러 떠난 사냥꾼의 아내가 남편을 찾아나섰다가 길을 잃은 뒤에 곰으로 변했다는 설화다.첫번째 설화는 우리 단군설화와 일맥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한국인 때문에 곰 수난 그래서 곰이 혈연적 친족관계를 가졌다고 믿는 오로촌족들은 곰을 곰이라 부르지 않는다.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뜻하는 타인텐과 야아로 곰을 호칭하기가 일쑤고 더러는 외삼촌을 말하는 아마허로도 부른다.곰을 일부러 사냥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인데 어쩌다 잡을 경우는 의식을 곁들인다는 것이다.곰을 마을로 메고 와서 마을 사람들이 고기를 나누어 먹기는 하지만 머리는 건드리지 않는다고 한다.머리는 다른 뼈와 함께 나무에 걸어 풍장을 치렀다. 오늘날은 곰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달라져 곰을 잡는 경우가 있다.곰의 쓸개가 고가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조선족들이 뻔질나게 한국을 드나들면서 웅담을 구하러 대흥안령 동북비탈로 몰려든 것이 화근이 되었다.
  • ‘환경­개발’조화 일깨운 인니 산불(해외사설)

    인도네시아의 수마트라 섬과 보르네오의 인도네시아령에서 일어난 산불로부터 나온 연무가 싱가포르,브루나이,그리고 말레이시아·필리핀·태국의 일부를 뒤덮고 있다.산불은 가뭄에 의해 더욱 번졌지만 사람이 낸 것이었다.나무를 베어 파는데 열중하고 있는 아시아는 어느 대륙보다도 가장 심한 삼림벌채의 책임이 있다.환경론자들은 오래전에 그 결과를 경고했지만 아시아의 지도자들은 그 같은 비판을 동남아시아의 경제성장을 중단시키려는 서방측의 음모라며 묵살해 버렸다.아시아의 지도자들은 성장이 자연자원의 무자비한 파괴에 근거할 경우 도망가 버린다는 것을 이제 알아야 한다. 지금까지 산불들의 책임을 농토를 개간하는 농부들에게 돌렸던 인도네시아 정부는 이번에는 위성자료가 공개된 이상 산불이 주로 보르네오와 수마트라의 상업용 벌목지대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문제는 종이와 펄프를 위해 나무를 자르고 그루터기를 불태워 기름야자수나무·유칼리나무·아카시아 농장을 만든 벌목회사들이다.대부분의 열대 활엽수는 합판이나칩보드로 잘려 주로 일본의 공사장에서 사용된다.인도네시아 합판의 약 10%는 북미로 수출돼 공사장용이나 값싼 선반목재로 쓰인다.인도네시아에서 통나무 수출은 불법이므로 통나무는 잘려져 모하마드 하산이라는 수하트로 대통령 골프친구가 하는 카르텔에 의해 수출된다. 인도네시아 뿐아니라 삼림벌채는 보르네오의 말레이시아령에서 더욱 잦으며 캄보디아·태국등지에도 확산돼 있다.인도네시아에서는 그러나 상업벌목에 따른 황폐화 문제가 삼림이주 보조정책으로 더욱 심각하다.인구가 많은 자바의 농부들은 보르네오와 수마트라 삼림지역으로의 이주가 권고되고 있다. 이번 산불이 동남아시아와 주요 목재 수입국가들을 설득시킬 수 있다면 삼림보호를 위한 좋은 교훈이 될 수 있다.미국은 합판수입을 금지하거나 소비자들이 구매를 거부할 수 있도록 제품에 원산지명을 부착하게 해야 한다.환경적 관습을 도외시하고 만들어진 제품을 구매하는 일본도 수입정책을 재고해야 한다.그러나 결국 동남아시아의 환경관습은 부패와 권위주의가 줄어들지 않는한 크게 향상되지 않을 것이다.힘있는 사람들에게는 돈벌이로 남겠지만 무모한 성장을 지적하는 사람들에게는 관심이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뉴욕 타임스 9월27일〉
  • 목조주택 인기 되살아난다

    ◎과당경쟁·무자격업체 부실시공의 악몽 벗어나/‘그린 붐’ 타고 대형전문업체 공급 확대/횡성·포천 ‘통나무집짓기 교실’ 큰 성황 전원주택 붐을 타고 목조주택이 인기를 되찾고 있다. 목조주택은 90년대 초 큰 호황을 누렸으나 군소 목조주택 건설업체의 난립에 따른 과당경쟁과 무자격 업체들의 부실시공 등으로 최근 2∼3년간 수요가 대폭 줄어든 상태이다.그러나 아직도 강원도 횡성과 경기도 포천 일대 등에서는 내 손으로 직접 통나무집을 짓는 ‘통나무교실’이 연일 성황을 이룰 정도로 인기가 식지 않고 있다. 목조주택이 최근들어 인기를 되찾는 이유중의 하나가 나무에는 인체에 유익한 성분을 다량 함유하고 있다는 산림청 임업연구원의 연구결과와 무관치 않다는게 업계 관계자의 분석이다.또 최근 환경을 중요시하고 자연을 가까이 하려는 ‘그린 붐’의 확산,따뜻한 질감과 보기 좋은 외관 등의 장점도 한몫하고 있다. 대형 주택건설업체인 (주)벽산이 캐나다 전문업체와 손잡고 시공,분양하고 있는 경기도 용인시 구성면의 벽산가든빌은 지난해 1차분 10가구를 성공적으로 분양했다.지난 8월부터 분양을 시작한 2차분 9가구도 분양을 끝냈다. 벽산의 목조주택은 지난해와 올해에 분양한 19가구를 모두 다른 형태와 디자인으로 지어 분양 희망자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군소업체가 아닌 유명 주택업체가 건설했기 때문에 선진 목조주택 건설기술을 배우려는 목조주택 전문가들의 관심도 꽤 높다. 목조주택은 전문적인 지식과 시공경험이 거의 없는 무명업체에게 맡길 경우 부적합한 소재의 사용 등으로 경제적으로 큰 손실이 우려되는 주택건설 분야이다.피해보상 기준도 아직 모호해 시공업체의 선정에 주의해야 한다.시공이 간편한 반면 상하수도 시설,원재료인 목재의 뒤틀림이나 방열 방수 내화 등에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고 각종 생활편익시설의 설치 등에도 세심한 주의가 따라야 하는 공정이기 때문이다. 국내에 등록된 목재주택사업 전문회사는 이미 수천개에 이른다.그러나 뚜렷한 실적을 지닌,검증받은 업체는 20여개에 불과하다. 목조주택 전문가들은 “목조주택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는 일반소비자들은 비용을 조금 더 들이더라도 대형건설사에서 직영하는 전문사에 시공을 의뢰하는 것이 피해보상 및 사후 품질관리 등에 유리하다”고 지적한다.
  • 경제난 해결 방안(김정일의 북한:12)

    ◎“위기의 경제 탈출구는 중국식 개혁·개방”/‘우리식 사회주의’란 방어·수동적 개념 생존전략/한시 외자유치도 미봉책… 닫힌 체제빗장 풀어야 김정일체제가 들어서면서부터 북한은 ‘우리식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구호 아래 독자적인 발전의 길을 모색해왔다.‘우리식 사회주의’란 동구 사회주의권이 해체돼 고립무원의 상태에 처한 북한이 종래의 공세적이고 능동적인 차원과는 달리,방어적이고 수동적인 차원에서 생존을 모색하는 하나의 시도라고 분석된다. ○성공 가능성 극히 희박 우리에게는 마지막 절규처럼 들리기도 하는 이러한 시도는 연이은 자연재해와 북한체제의 구조적인 모순이 겹쳐 이제 성공할 가능성이 극히 적다는 것이 국내외 북한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견해였으며,금번 서울신문사와의 접경지대 현지조사에서도 이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급변하는 국제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폐쇄정책을 버리고,체제를 개혁·개방하는 것 외에는 달리 왕도가 있을수 없는 것이다. 중국의 경우 등소평이 등장한 이후 ‘사회주의 시장경제’를표방하면서 불합리한 제도와 체제를 과감하게 개혁하고 외자를 적극 유치하기 위해 대대적인 개방정책을 취했다.이러한 정책이 결실을 거둬 이제 중국은 만성적인 식량부족 상태를 극복하고,의식주를 비롯한 기본적인 생활문제는 해결한 상태이다.이로 인해 중국은 사회주의체제에서 시장경제체제로 전환한 성공적인 사례가 됐으며,북한도 결국은 중국이 취했던 것과 같은 길을 밟지 않으면 체제 자체의 존속이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북한이 현재 취하고 있는 조치들은 이와는 거리가 멀거나,극히 제한적이라고 밖에는 할 수 없다.이중 어느 방식을 따르더라도 북한이 처하고 있는 현재의 위기상태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없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군부를 비롯한 강경파의 경우 ‘우리식 사회주의’를 고수하며 사회주의는 영원히 멸망하지 않는다고 애써 주장하고 있다.이들은 사회주의가 현재 곤경에 처한 것은 사실이나 사회주의는 과학이기 때문에 결국은 승리할 것이며,경제발전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은 물질적인 자극이 아니라 인간의 사상 의식이라고 강조하는 김정일의 주장을 철석같이 믿고 있다.이에 따라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모든 것을 결정하는 철학적 원리’임을 역설한 주체사상의 학습이 중요한 과업으로 등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구호보다 옥수수 원해 그러나 구호를 먹고 살 수는 없기 때문에,금번의 현지조사에서도 확인한 바와 같이 북한 주민들은 허황되고 거창한 구호보다는 허기진 배를 채울수 있는 한줌의 옥수수가루를 더 필요로 하고 있었다.한적한 중국거리가 교통체증을 일으킬 정도로 목재를 실은 차량들이 꼬리를 물고 북한으로부터 나오고 있었고,이들은 다시 옥수수나 밀같은 먹거리를 싣고 들어갔다.이로 인해 북한의 산들은 벌거벗은 민둥산으로 변하고 있으며,중국측 접경지대에는 산더미처럼 나무를 쌓아놓고 이를 가공하는 목재소들이 즐비했고,이들은 한껏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장백에서 만난 중국인 관리조차 북한이 나무를 다 베어내면 자신들의 경제가 위축될지 모른다고 우려할 정도로,엄청난 규모로 벌채가 이뤄지고 있는 형편이다. 극심한 식량부족으로 주민이 굶어죽어가는 절박한 상황에서 제시된 ‘우리식 사회주의’라는 구호는 식량난과 경제위기 타개의 비전이나 정책이 결코 될 수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지도부가 개혁·개방을 외면하며 ‘우리식 사회주의’를 계속 고수할 경우,북한의 경제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고 이럴수록 대외의존은 불가피할 것으로 분석된다. 의식개혁과 사상교육을 강화한다고 해서 식량과 교환할 산림이나 지하자원이 솟아나는 것도 아니며,공장을 가동시킬 에너지가 생기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따라서 주민들의 의식주 문제를 국제사회의 인도주의적 원조에 의존해 해결할 수 밖에 없는 딜레마에 처하는 것이다.이처럼 ‘우리식’을 강조하는 것이 결국은 더욱 많은 남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것은 지극히 역설적인 현상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이것도 임시방편일뿐 언제까지고 외부에 의존하고 있을 수는 없기에,‘우리식 사회주의’는 이제 한계에 봉착했다고 할 수 있다.또한 북한의 현 지도부도 무책임하고 무능하다는 국제사회의 비난을 계속 외면하고만 있을 수는 없는 상황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외부 사정에 비교적 정통하다는 온건파의 경우도 사회주의 체제의 유지라고 하는 대전제 아래 제한적이고 부분적인 개방만을 하려는데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이의 전형적인 실례가 지난 91년12월 나진·선봉 자유경제무역지대 설치의 공표였다.이는 중국의 사례에서 나타난 것처럼 선진국의 자본과 기술의 도입 없이는 경제난 극복이 불가능하다는 현실적 판단에서 나온 조치였다.그러나 외자 유치에 따른 ‘자본주의적 오염’이 북한체제에 미치는 영향은 한사코 차단해야 한다는 전략으로 인해,그리고 남북관계의 경색으로 한국기업의 진출이 이뤄지지 않는 탓으로 인해,지금까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신용도 낮아 투자 꺼려 이와 아울러 북한 사회는 당간부의 지시나 명령이 법이나 제도보다 우선시돼 장기적이고 합리적인 사업계획의 수립이 불가능한 데다,대외신용도 마저 낮고,나진·선봉지역 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사회간접자본 시설에 대한 투자가 낙후돼 외국인들은 투자를 기피하고 있는 실정이다.투자를 기피하게 하는 또하나의 요인으로는 제도상의 미비점과 시행착오를 들수 있으며,이로 인한 피해도 적지 않아 커다란 문제점으로 부각되고 있다.이 분야에 정통한 연변의 한 조선족 교수는 초기에 나진·선봉지역에 투자했던 조선족 동포들이 7억원(한화 약 700억원)이나 떼였으며,이 과정에서 북한 역시 1억원(약 100억원)정도 사기를 당한 상태이기 때문에 북한에 대한 투자를 꺼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를 볼때 제한적인 범위내에서의 개방조치는 일시적인 미봉책에 불과하며,경제난을 근본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방책이 될 수 없다고 분석된다.따라서 최악의 경제위기에 처해 있는 북한이 경제를 회생시키기 위해서는 대외 개방정책의 채택으로 선진기술과 자본을 도입하고,제도와 체제의 개혁으로 이를 효율적으로 운영해 나가는 중국의 방식을 취하는 것뿐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집필=심지연 경남대 교수·정치외교학〉
  • 미 대상 최대 로비국은 캐나다/미지 10대 로비대국 선정

    ◎작년 513만불 뿌려… 2·3위에 멕시코·일본/내전지원 로비 아이티·앙골라 10위권 들어 로비 천국 미국에서 지난해 합법적으로 가장 많은 돈을 쓴 로비대국은 캐나다였으며 다음은 멕시코 일본 순으로 기록됐다.이같이 교역규모가 큰 국가외에 아이티 앙골라 등도 정치적 이유에서 로비대국에 포함됐다.2일 미시사주간지 유에스뉴스&월드리포트 최신호는 미국내 로비대국 10개국을 선정,그들의 로비목표,방법,효과 등을 소개했다. 이 보도에 따르면 현재 미국의 정책에 영향을 끼치기 위해 미의회 혹은 행정부처들을 상대로 활동하고 있는 로비스트나 로비단체들은 100개국에서 1천500여개.이들의 활동목표 또한 교역증진 외에 외환지원,무기계약,원조증액,내전지원 등 제각각이다. 지난해 1위를 차지한 캐나다는 5백13만달러의 로비비용을 들여 주로 목재,어업,항공우주제품 등 미국과의 교역증진을 위해 상무부와 국가안전보장위원회,의회 등을 대상으로 광범위한 로비를 벌였다. 2위 멕시코는 5백7만달러를 들여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미재무부와 연방준비은행 등을 대상으로 로비를 했다.3위 일본은 교역증진을 위해 주로 개인회사 차원에서 활약했고 4위 영국은 방산장비 판매를 위해 국방부와 의회를 대상으로 로비를 폈다.5위 대만은 미국의 지속적 지지를 위해 로비활동을 폈다. 그밖에 이스라엘은 미국의 보다 많은 원조를,아이티는 미국의 지속적 개입을,인도네시아는 전투기 구입을,앙골라는 내전 당사자로서 미국의 승인을,홍콩은 중국 복귀를 앞두고 미국의 대중국 최혜국대우(MFN) 연장을 위해서 로비활동을 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정부차원에서 가장 많은 로비를 펼친 곳은 멕시코를 비롯,이스라엘,아이티,인도네시아 등이며 기업차원에서 가장 많은 로비를 한 국가는 캐나다,일본,영국 등이다.또 기타 단체를 통한 로비는 대만,앙골라,홍콩 등이 앞섰다. 한편 로비스트로 고용되는 사람은 주로 의회나 행정부 실력자의 측근으로 멕시코의 시멘트회사인 시멕스사는 미 하원 다수당 원내총무인 톰 딜레이(공화,텍사스) 의원의 동생을,일본의 후지필름은 고어 부통령의 친구인 토마스 다우니 전 의원을 고용한 바 있다.
  • 침체되는 변경무역(김정일의 북한:10)

    ◎북 교역물자 바닥… 통상구 11곳 거래 줄어/민둥산 천지에 목재수출도 한계 맞아/민생투자 확대… 경제복구만이 해결책/“사올 물건이 없다” 조선족 보따리장수 발길 끊어 중국 임강에서 시장의 안내로 민간인 통제구역인 임강시­북한 중강진시를 연결하는 다리 중간까지 갈수 있었다.아래에는 압록강이 도도히 흐르고 건너 초소에는 북한군 병사가 쌍안경으로 경계하면서 어디엔가 전화하는 분주한 모습이었다. 이곳 임강­중강진 통상구는 중국과 북한간에 자유시장 원리에 따라 상호간에 교역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압록강·두만강을 따라 1천406㎞의 국경지대에는 이와 유사한 기능을 하는 통상구 11개가 설치돼 있다. 시장의 설명에 따르면 북한에서 매일 약 200여대의 트럭이 목재를 싣고 이 다리를 건너 임강에 와 식량과 교환하는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대부분 민둥산인 북한에서 계속 목재를 수출할 수 있느냐고 질문하니,그런 이유 때문인지 최근들어 점차 거래가 줄어들고 있으며 한계가 있지 않겠느냐고 자문자답(자문자답)하면서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시장은 꼭 안내하고 싶은 곳이 있다고 말했다.함께 간 곳은 압록강에 있는 조그만 모래섬으로 위락시설을 갖춘 공원이었다.김일성과 모택동간의 회담에서 압록강과 두만강의 국경지대에 있는 모든 섬들은 북한령으로 합의했기 때문에 모든 섬들은 북한령이다.그러나 이 섬만은 중국령이 됐다는 것이다.그것은 이곳이 본래 섬이 아니라 모래톱이어서 김일성­모택동 합의사항에서 제외돼 중국령으로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중국령이 된 뒤 임강시에서 이를 개발해 공원으로 조성했다고 한다. ○작년 교역액 260억원 조그마한 위락시설이지만 요모조모 갖춰져 저녁이 되니 가족 동반객,남녀 데이트족,놀러나온 선남선녀들로 제법 북적거리기 시작하면서 썰렁하고 캄캄한 북한과 대조를 이뤘다.특이한 것은 공원 중앙에 커다란 야외 무도회장(입장료 1인당 1원·한화 100원)이 있는데,동네 미남미녀 10여명이 파트너를 기다리고 있었다.필자 일행도 들어가 보라고 해 잠깐 구석에 앉았다.아무에게나 춤을 신청해 춰보라고 하지만 춤문화에 깜깜한우리 일행은 꿀먹은 촌놈처럼 어정쩡하게 앉아 구경만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일행중에 춤에 자신이 있다는 한두사람이 함께 간 안내양과 춤을 추기 시작했다.그러나 중국인들과 비교해 보니 그건 춤이 아니라 그냥 끌어안고 왔다갔다하는 모습이다.얼마 안돼 안내양이 안되겠다는 듯이 춤을 멈추고 돌아왔다.발을 너무 자주 밟아서 안되겠다는 것이다. 중국의 춤문화는 익히 정평이 나 있지만,이런 오지에서도 여전해 자유스런 중국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수십리 밖에 사는 사람들도 이곳에서 춤을 추기 위해 화려하게 차려 입고와 호흡이 맞는 파트너와 춤을 추려고 기다리고 있었다.춤을 추고 있는 몇쌍은 직업적인 댄서만큼이나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춤을 추고 있어 보는 이들에게도 아름답게 보여 춤하면 퇴폐적으로 흐르는 우리 문화와는 다르게 느껴졌다. 다음날 하루종일 압록강을 따라 비포장도로를 달려 장백현에 도착했다.임강­중강진시와 마찬가지로 장백현­북한 혜산시 통상구로 지정된 곳이다.이곳에서도 북한에서 목재를 싣고와 식량과 교환한다고 한다.작년 교역액은 중국돈으로 2억6천만원(한화 2백60억원)이었다고 장백현의 한 공무원이 알려줬다.이러한 거래는 공식거래로 이뤄지는 것으로 물물교환의 형태로,당일거래로 이뤄지기 때문에 지점이나 지사를 두고 있지 않다고 한다.교환비율은 어떻게 정하느냐는 질문에 국제시세에 맞춰 사전에 정해 놓은 교환비율을 적용한다고 한다. 그 외에도 사적거래나 밀무역은 얼마나 되는지 포착하기 어렵지만 당국에서 통제는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한다.사적거래는 고향방문의 형태가 일반적인데,북한에서는 중국으로 오기 어렵지만 장백현에 사는 사람들은 비자없이 혜산시에 30일동안 체류할수 있기 때문에(혜산시 이외의 곳을 방문하려면 비자를 받아야 한다고 함) 고향방문 신청을 하고 식량을 가져가 인삼·명태 등과 교환해 돌아온다고 한다.그러나 요즘은 북한에서 교환해올 만한 상품이 거의 없어 사적거래나 밀무역이 크게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시장경제 도입 실험대 옛 소련과 동구의 사회주의 체계가 일시에 시장제도를 채택하면서 사회주의 체제가붕괴된데 비해 현재까지 중국은 시장경제를 점진적으로 도입함으로써 정치적으로는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경제적으로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잘 조화시키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따라서 체제유지가 우선인 북한은 중국의 점진적 개방정책 노선을 견지할 것이라는 것이 예견됐다. 전환되고 있는 사회주의 체제를 보면서 북한 체제도 개방과 시장제도의 도입이 필연의 수순임을 감지할 수 있지만 체제유지라는 절체절명의 명제에 빠져 개방과 시장제도의 도입을 망설이고 있는 것 같다. 북한은 이미 84년 합영법을 제정해 제한적으로 자력갱생을 통한 자립적 민족경제 노선을 수정,문호개방을 준비했으며 91년 나진·선봉 자유무역지대 설립안을 발표해 시장경제의 제한적 도입과 세계시장을 상대로 한 개방정책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다른 한편으로는 북·중 변경무역을 통해 인접지역간에 필요한 상품들을 초급적인 국제무역방식으로 상호교역함으로써 수요와 공급을 조절하는 기능을 보완하면서 시장제도를 배우기 시작했다. 현재 북·중 변경무역은 양국 정부가 지정한 통상구(구안)안에서 이뤄지고 있는데,1류 통상구는 중국 도문­북한 남양,집안­만포,삼합­회령,단동­신의주의 4곳에 설치돼 있고 2류 통상구는 중국 권하­북한 원정리,고사자­샛별,개산둔­종성,남평­노덕리,숭선­무산,장백­혜산,임강­중강진의 7군데 설치돼 총 11곳에 통상구가 설치돼 있다. 북한의 개방정책이 현실화되고 있는 두가지는 나진·선봉 자유무역지대와 통상구라고 할 수 있다.이 두가지 정책이 성공되도록 돕는 것은 북한의 개방을 유도하고 북한 경제를 돕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가져올수 있는 방안이 될 것이다. ○통상구 활성화 시급 그러나 북한에서 교환해 올 상품이 거의 없는 상황이므로 통상구를 활성화시키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것같다.이는 북한의 산업 복구와 발전이 선행돼야만 하기 때문이다.현재 중국에서 북한으로 문호가 개방돼 있으므로 시장 메카니즘 형성에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되며,물물교환의 형태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국제통화로 거래되는 형태로 바뀔 것으로 예견된다.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북한은 상반기에도 민생에 필요한 투자는 안전에도 없이 금수산기념궁전 성역화 사업,김일성 부자 현지 지도비 및 사적비 사업 등 정치선전 상징물 건설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세계 청년학생 축전에 500명을 파견한다느니,전세기를 낸다느니 하고 있다.북한은 정치도 중요하지만 산업이 발전하고 통상구가 활성화돼야 인민이 먹고 입을수 있도록 하는데 힘써야만이 체제도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 산업 피폐상(김정일의 북한:8)

    ◎멈춘 공장 기계뜯어 고철로 팔아/가동중단 장기화… 폐허로 변한 공장 수두룩/석탄·전기없는 ‘암흑사회’… 채취산업으로 연명 북한에 대한 이야기는 뜬구름을 잡는 것 같다.경제가 어려워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같이 말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체제의 공고함이나 군사력 때문에 쉽게 쓰러지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공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금방이라도 쳐들어올 것처럼 이야기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말도 안된다는 의견도 있다. 이러한 이야기들이 155마일의 군사분계선만을 통해 북한을 바라보고 있던 시절에는 사실 확인이 불가능해 공허한 메아리로 맴돌곤 했다.그러나 중국의 개방과 함께 압록강과 두만강의 접경지대를 통해 북한을 바라볼수 있게 됐다.북한이 개방의 실타래를 조금씩 풀면서 우리는 베일에 싸인 세계의 단면을 들여다 보며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산업 가동률 30∼40%선 북한의 정치와 경제를 연구하는 우리 일행은 지난달초 압록강과 두만강을 따라 북·중 접경지역을 답사하면서 지금까지 연구되고 분석된 내용들의 진위를 밝혀보려고 노력했다.필자가 보기에는 북한의 경제상황은 학술적으로 분석된 내용보다 심각하다고 느끼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특히 북한 데이터에 북한 산업의 가동률이 30∼40%로 돼 있는 것을 인용하면서도 좀처럼 믿을수 없었던 것이 빙산의 일각이지만 이것이 사실이라는 확신을 갖게 돼 놀라웠다.더욱 놀라운 것은 보면 볼수록 북한의 현재 상황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고 느끼게 됐다는 것이다. 북한의 중강진과 혜산에는 연기나지 않는 공장들이 시커먼 폐허처럼 적막하게 서 있었다.일하는 이들은 전혀 볼수 없고 지붕이나 창문들은 얼마나 오랫동안 방치돼 있었는지 수리한 흔적이 없었고 기와는 깨어진채로,유리창도 깨어진 그대로였다. 중국 장백에서 북한 혜산을 넘겨다 보면서 혜산의 공장들이 언제부터 가동을 중단했느냐는 질문에 그곳에서 만난 김모씨(42)는 “벌써 3년째”라고 귀띔해줬다.밤이 돼 나가보니 중국쪽은 훤한 대낮같고 북한쪽은 캄캄한 칠흑속에 간간이 전기불이 반짝이고 있었다. 북한에서 중국으로 넘어오는 상품이라고는 원목·고철·해산물 등 채취산업 뿐이라고 하니 최소한의 경공업제품 조차도 조달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수 있었다.중국 연길에서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박모씨(48)는 거래 때문에 1년에 4∼5번씩 북한을 다녀오는데,최근 북한에서 기계를 뜯어 고철로 팔거나 전동기 코일을 훔쳐 식량과 교환하는 사례가 과거보다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이것은 공장의 가동중단이 장기화된 결과이며,산업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고 재가동이 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니,경제재건이 과연 가능하겠는가 의심스러운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백두산 천지에서 만난 모자장사를 하는 한 아낙네는 북한에서 모자를 대량 들여다 팔면 이곳에서 짭잘하게 돈을 벌수 있지만 자금이 부족해 할수 없다고 아쉬워했다.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며 북한이 경쟁력을 가질수 있는 경공업 분야를 활용하려면 개방정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확신이 섰다.백두산 천지가 안개에 쌓여 볼수 없어 아쉬웠지만 여유를 가지고 기다린다면 북한의 개방도,백두산의 천지도 볼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연길에서는 연변대 교수와 좌담회를 하는 도중에 나진·선봉지역에 관한 몇개의 문제점이 지적됐다.첫째 우리도 알고 있듯이 북한의 자금난으로 도로·철도·항만등 산업 인프라 형성이 늦어지고 있다.둘째 외국의 장기투자는 거의 없고 가라오케·사우나·카지노·호텔 등 외국인을 위한 오락시설 투자만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셋째 나진·선봉지역의 주된 투자자는 한국의 기업일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평년작 40%정도 수확 북한의 식량사정은 3년 연속으로 홍수가 발생하고 금년 들어서는 ‘왕가뭄’으로 천재라고 할 수 있지만,식량확보를 위한 원목 채취와 다락밭 만들기로 민둥산을 만든 것이 더 큰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더구나 금년에는 묘판을 만들때 사용하는 비닐,농약,비료가 부족해 평년작의 40%정도 밖에 수확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한다.산업의 피폐상이 어느 정도에 이르렀기에 농업의 필수적인 재료들까지 생산할수 없다는 것인가 짐작이 가고도 남음이 있다. 연길에서 민간차원의 원조를 추진하는 김교수의 말에 따르면 중국에서 식량원조를 처음에는 기차로 했는데 북한에 간 기차들이 한달이 넘도록 중국으로 반환되지 못해 중국의 철도운행에 지장을 초래함으로써 트럭으로 교체했다고 한다.북한의 철도망이 취약하고 화차가 부족해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 일행이 답사한 압록강과 두만강을 따라간 도로는 2차선 비포장도로이며,용정에서 연길로 가는 길만 도로를 포장하고 있었는데,거의 완공단계에 있었다.그러나 나머지 길은 모두 비포장도로였다.우리가 탄 15인승 밴은 이 길을 평균 30∼40㎞로 달릴수 있었는데 북한쪽의 길도 별로 다르지 않다고 연변대 교수가 말했다.그렇다면 북한의 도로사정은 우리나라 60년대 도로망 수준과 비슷한 것같아 보인다.나진·선봉자유무역지역의 발전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북한 청진∼중국 삼합간 도로건설도 한국업체 배제정책으로 어려움에 봉착해 있어 개방정책이 진척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이러한 열악한 철도망과 도로망으로 미뤄 보면 북한의 산업수준도 우리나라의 60년대 수준으로 퇴보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철도·도로망 60년대 수준 70년대초까지도 남한보다 월등한 경제력을 가진 북한의 경제가 어떻게 이 지경이 됐을까.사회주의 이념상 3차산업은 비판의 대상이 되니 논외로 치더라도 1차 및 2차산업이 황폐화된 까닭은 무엇인가.식량도 없고 경공업·생활필수품도 부족하면서 중공업 우선정책을 실시해 기다려 보라고 하더니,발전소도 광업(금속·제철·제련업)도 퇴보해 전기도 석탄도 없는 그야말로 산업이 전무한 사회가 됐다.또 인삼·명태·목재·석탄 등 채취산업만 존재해 원시사회처럼 돼어가는 것이 발전정책이라는 말인가. 이것은 자립적 민족경제를 목표로 자력갱생의 원칙에 집착하면서도 무기와 국방산업에만 전념한 결과이다.이제 북한은 군비를 억제하고 시장제도를 배우고 받아들이면서 개방정책을 더욱 구체화해야 한다.〈장맹렬 경남대 교수·경제학〉
  • 컴퓨터부품 제조 대만 무스탕그룹(G7으로 가는 길:80)

    ◎25년간 생산성향상 400배… 10대 중기로/“품질개선” 1인 연매출액 1억3천만원/전공정 컴퓨터로 자동화… 인력절감 출근길을 가득 메운채 질주하는 소형 오토바이 군단들.이들이 내뿜는 소음과 함께 인구 400만의 대북시 하루가 시작된다.꽉 막힌 도로위에 길게 늘어선 벤츠와 BMW,포드,닛산의 행렬.오토바이 군단들은 그 틈새를 요리조리 잘도 빠져 나간다.그 모습이 마치 선진국의 거대 기업들 사이를 비집고 세계시장을 누비는 작은 대만기업들을 연상케 한다. 대만에는 규모는 작지만 세계시장에서 1,2위를 다투는 기업들이 수두룩하다.세계 무대에서 위용을 떨치는 「작은 챔피언들」이다.컴퓨터 부품 제조업체인 무스탕그룹(중국어명 동협전기공업)도 그중 하나다. 대북현 신장시는 공장 밀집지역으로 서울의 구로공단과 흡사한 곳이다.무스탕그룹은 차 두대가 겨우 비껴갈수 있는 골목길의 양쪽 모퉁이를 차지하고 있다.한쪽은 사무실로 쓰는 낡은 2층 건물이고,건너편으로 육중한 몸집을 한 기계들이 쉴새 없이 돌아 가는 공장이 자리잡고 있다.허름한겉모습이 지난 25년동안 종업원 1인당 생산성을 400배나 높인 회사라고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제너럴·필립스사도 고객 이 회사는 컴퓨터 모니터에 들어가는 각종 플래스틱 및 금속제 부품들을 생산하고 있다.반도체 연결부품인 점퍼의 경우 50㏄(가로·세로·높이가 약 4㎝)들이 용기에 5천개를 담을수 있는 초소형 부품으로 1일 1백만개를 생산하고 있다. 무스탕그룹의 고객명단은 이 회사의 제품이 세계시장에서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를 잘 말해준다.제너럴 인스트루먼트,톰슨,필립스,포워드,미쓰미,에파 등 하나같이 세계 초일류 전자회사들이다. 무스탕그룹의 공장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모든 공정이 컴퓨터에 의해 통제되는 자동화 생산라인으로 이뤄져 있다.류팅판(류정반) 회장은 “지난 20여년간 임금이 평균 40배나 올랐기 때문에 수작업을 최대한 줄이고 자동화하지 않고는 살아남기 어렵다”고 말했다. 류 회장은 “회사 설립후 현재까지 생산성 및 품질 향상을 위한 끊임없는 투쟁의 연속”이었다고 말한다.그는 반도체 연결부품인 점퍼를 그 예로 들었다.인건비와 재료비를 합쳐 코스트는 회사설립 초기인 지난 72년에 비해 40배나 비싸졌다.무스탕그룹은 그런데도 공급가를 지난 72년에 개당 1달러에서 지금은 0.1달러로 대폭 낮췄다.생산성을 400배 이상 높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그는 비약적인 생산성 향상의 비결이 종업원들의 끈질긴 품질개선 운동과 자동화 투자라고 말했다. 대만에는 현재 1백만여개의 중소기업들이 활동하고 있다.컴퓨터 관련업체만도 수만개에 이른다.무스탕그룹은 이 가운데 대만 최초로 ISO-9002 인증을 획득했다.지난해의 종업원 1인당 매출액은 4백만원(한화 약 1억3천만원)이다. 무스탕그룹이 순탄한 길만 걸어온 것은 아니다.70년대 초반에 닥친 오일쇼크와 대만화폐의 강세는 무스탕그룹과 같은 수출형 중소기업들에게 심각한 경영위기를 초래했다. 기업에게 위기와 기회는 동전의 앞뒤면과 같다.7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줄곧 이어져온 무스탕그룹의 범사적 품질개선운동이 그 한 예이다.소규모 기업의 위기극복 사례연구 대상으로 삼아볼 만하다. 우선 각부서의 대표 1명씩 모두 40명이 참여하는 품질관리팀을 구성한다.품질관리팀은 매주 한차례씩 모임을 갖고 부서별로 소관 업무에 대한 종합적인 품질기준을 만든다.해당부서는 품질기준을 시행해 보고 개선이나 시정이 잘 안되는 문제점들을 파악한다.파악된 문제점들을 가지고 품질관리팀과 해당부서가 공동으로 해결책을 모색한다. ○범사적 품질개선운동 공장 건너편의 사무실용 낡은 2층건물 1충에는 품질관리부,플래스틱제품부,제품연구개발부 등이 들어있다.2층의 대부분은 경리부가 차지하고 있다.류 회장은 경리부 한쪽편에 붙어 있는 3평짜리 방을 회장실로 사용하고 있다.10년은 지났음직한 목재 테이블과 3명이 겨우 앉을수 있는 손님용 소파와 탁자가 가구의 전부이다. 무스탕그룹은 우수 종업원에 대한 이익환원과 회사의 경영개선이라는 두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기 위해 독특한 제도를 고안해냈다.이익배분제가 그것이다.회사는 매달 전체 수익률 뿐만 아니라 각 부서별 수익률도 따로 산출해 수익률이 높아진 부서의 종업원들에게 전달 수익금의60%를 보너스로 지급하고 있다.지난 해에는 경영실적이 우수하고 장래성이 있는 대만의 10대 중소기업으로 선정돼 정부로부터 중소기업상을 받았다. ○72년 창업 계열사 3개 류 회장은 지난 72년에 이 회사를 설립했다.지금은 동협전기공업 이외에 동걸소교,소주동협,동걸공업 등 3개의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다.그러나 이들 4개 회사를 모두 합해도 종업원이 200명이 안되는 미니그룹이다. 각 계열사들 간에는 권한 및 역할 배분이 잘 이뤄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모그룹인 동협전기공업은 계열회사의 재무관리만 한다.계열사는 주요제품별로 4개 사업부로 나눠 각 사업부의 장에게 독자적인 경영권을 부여하고 있다. ◎인터뷰/무스탕그룹 회장 류팅판/“최고의 품질 가장 큰 무기/한번 고객은 영원한 고객” ­이익배분제를 자세히 소개해달라. ▲예컨대 A부서의 수익률이 4월에 5%에서 5월에 6%로 높아졌다면 A부서의 종업원들은 월급날에 정규급여 이외에 4월분 수익금(5%)의 60%를 더 받을수 있다.이 제도 시행이후 종업원들의 사기와 근무열의가 한층 높아졌다.종업원들은 보너스를 받기 위해 더욱 열심히 일하고 있다.그 결과 회사는 더욱 많은 이익을 낼수 있어 일석이조다. ­연구개발투자는 얼마나 하고 있나. ▲지난 93∼95년중 전체 매출액에서 연구개발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연평균 2% 수준이다.중소기업이기 때문에 많은 재원을 연구개발에 투입 하기는 어렵다.그러나 이익배분제는 연구개발에도 큰 성과를 가져오고 있다.연구개발과 직접 관련이 없는 일반부서들도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이전보다 생산성이 높은 새 공정을 개발해 내는 등 독자적인 연구개발능력을 배양하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해외사장은 어떻게 개척하나. ▲제품의 우수성이 가장 큰 무기이다.우리의 옛 고객들이 새 고객을 소개해서 찾아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고객수가 많은 것은 아니다.그러나 대부분이 선진국의 유명회사들로 10년이상 장기거래를 하는 안정적인 고객층이라는 점이 큰 특징이다. ­근로자들의 임금인상 요구에는 어떻게 대처하는가. ▲근로자들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한다.근로자들이 무리한 요구를 하지는않는다.대만은 지난 수년간 연평균 소비자물가상승률이 3% 정도로 안정돼 있다.우리 회사는 연평균 8%정도 임금을 올렸다. ­대만기업들의 경쟁력의 비결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대만인들의 근면성과 노력의 결실이다.품질을 중시하는 풍토가 경쟁력을 높이는 요인이다.대만 기업들은 국제사회에서 인정을 받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 대통령상에 정권석씨 ‘버선농’/제22회 전승공예대전 입상작 발표

    ◎총리상엔 염종귀씨 ‘분청사기녹청보리문발’/입상작 12일부터 새달 13일까지 경복궁서 전시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주최하고 문화재관리국과 문예진흥원이 후원하는 제22회 전승공예대전에서 영예의 대통령상(상금 5백만원)은 벼락맞은 대추나무를 사용한 전통기법의 ‘버선농’을 출품한 정권석씨(24·경남 진주시 평거동 165의23)가 차지했다. 국무총리상은 ‘분청사기녹청보리문발’을 낸 염종귀씨(37·경기 양평군 강하면 왕창1리)에게 돌아갔고 문화체육부 장관상은 ‘야화야접초문등메’를 낸 최헌열씨(56·서울 양천구 목동 904)와 ‘천연염색 명주’를 출품한 신계남씨(53·경북 안동시 태화동 182의3)가 각각 차지했다.특별상에는 최남선씨(48·서울 강남구 자곡동 223의27)의 ‘피혁함’과 김문호씨(46·경기 안양시 만안구 박달동 617의 30)의 ‘유제반합’이 문화재위원장상,황해봉씨(45·서울 송파구 가락본동 5의11)의 ‘전통신’과 상기호씨(48·서울 강서구 염창동 268)의 ‘색지 의걸이장’이 문화재관리국장상,조성준씨(53·서울 강동구 고덕2동)의 ‘백동촛대’와 정명채씨(46·서울 은평구 구산동 209의12)의 ‘나전완자매죽문이층농’이 문예진흥원장상,김윤선씨(39·서울 광진구 화양동 58의3)의 ‘누비주머니’와 윤일수씨(48·서울 관악구 남현동 602의63)의 ‘화각약장’이 문화재보호재단 이사장상을 각각 받았다. 금속공예를 비롯한 8개 전승공예분야에서 302명이 987점을 출품한 올해 대전에서는 이밖에 30명 152점이 장려상,126명 346점이 입선작으로 선정됐다. 입상·입선작은 오는 12일부터 10월13일까지 경복궁내 한국전통공예미술관에서 전시된다. 장려상 및 입선자 명단은 다음과 같다. ▷장려상◁ ▲목축칠=양옥도 이종덕 배영달 이희만 서정용 허길용 ▲복식=박성호 최복희 심분화 조광복 장순례 ▲금속=박종군 김우성 문구 추용근 ▲도자=이병길 고영학 조세연 ▲피모각골=최성철 문상호 ▲단청=김재범 김성자 ▲악기=신재렬 ▲지=신계원 이경순 장용훈 이미연 ▲기타=임애경 홍성호 엄익평 ▷입선◁ ▲목축칠=홍성효 김재욱 박호준 유세현 유승현 최상훈 유제창 서신정 최학수최김동 이희만 김금철 추용호 정기섭 김기찬 천철석 정인석 유분순 김경자 강경생 조정훈 이진형 이재섭 이상목 ▲복식=이순귀 정정순 라상덕 홍경자 김은향 박순옥 이옥호 최복희 강남순 김점호 권련이 손경숙 손인숙 이규종 정관채 김주현 권명자 노연희 백문기 김미옥 김문숙 이덕순 김명자 유희순 차명순 김정화 김현숙 김정남 이영분 ▲금속=도정미 장추남 김일갑 오태홍 김원택 변지수 이형근 노용숙 이면규 승경난 한상봉 한상보 ▲도자=김영진 권영배 강성구 이륜재 김성태 이향구 고영학 김봉태 남궁북 신순승 김해익 최한식 유병호 유기정 임재영 유동문 염종귀 신은자 ▲피모 각골=김춘일 권오덕 유필무 정한욱 박극환 양진숙 지혜라 량화옥 배창수 ▲단청 불화=양선희 나혜안 문종임 김창순 홍영호 원동춘 홍종일 ▲악기=임선빈 손기주 김을호 남정식 이정기 김현곤 ▲지=조영옥 렴혜승 강헌행 이혜원 정삼순 이재원 나서환 김현란 안여선 정숙애 오석심 이형자 김안영 ▲기타=임애경 노재경 김동선 장금숙 홍성호 엄익평 김완배 ◎대통령상 정권석씨/“84년 공예대전서 아버지도 수상/아버님의 뜻 이제야 알것 같아요” “돌아가신 아버님께 감사드립니다” 제22회 전승공예대전에서 영예의 대통령상을 받은 정권석씨(24)는 지난 84년 이 공예대전에서 꼭 같은 대통령상을 수상한 아버님 정돈산씨(92년 작고)의 뜻을 이제야 알듯 하다면서 남다른 감회에 빠졌다.정씨는 이 공예대전 역대 대통령상 수상자중 최연소로 부자가 모두 대통령상을 받은 셈이다. ‘초등학교 6학년때부터 그냥 아버님의 공방을 드나들면서 호기심에 작업을 시작했는데 고교시절 본격적으로 아버님께 사사하면서부터 독특한 매력을 느껴 결국 중요무형문화재 55호 기능 보유자셨던 아버님의 이수자가 됐습니다” 수상작 ‘버선농’은 주로 2층으로 포개얹은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수장구인 버선농을 부분별로 독특한 목재와 소담한 장식을 써 나뭇결의 은은한 맛을 우러나게 만든 전통가구.집안의 재앙을 막고 복을 가져온다는 1천년 이상된 벼락맞은 대추나무를 구해 8년간 건조한뒤 비로소 지난 4월부터 작업에 들어가3개월만에 영예의 수상작을 만들어냈다. “벼락맞은 대추나무는 옛부터 도장이나 부적 등을 만드는 기복적인 성격의 재료인만큼 이 나무로 만든 머릿장이 독특한 멋을 지닌다는 생각에서 작품을 시작했습니다.뼈대격인 골재 재료로 흑감나무와 배나무를 썼는데 모두 단단한 재료여서 결 만드는 작업이 아주 어려웠습니다.”
  • 극광이 뜨는 북극촌(흑룡강 7천리:2)

    ◎중 최북단 북위55도 막하현엔 백야가…/짧은여름 긴겨울… 새벽3시면 해가 뜨고/조선족 250여명 거주 임업·광산업 종사 흑룡강 상류인 흑룡강성 막하현의 북쪽 끝은 중국대륙 전국토의 북단이기도 했다.신강성 북쪽 끝자락인 우의산보다 위도상으로 훨씬 더 북쪽에 있다.북위 55도 가까이 다가간 흑룡강성 막하현 막하향 북극촌이 바로 중국의 맨 북쪽 마을이다.말 그대로 중국 북쪽의 극지인 것이다.북극촌은 내몽골 어연구나하시 언연하다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북으로 굽어든 지점에 자리했다. 북극촌은 발원지에서 그리 멀지않은 거리다.그러나 강을 따라 내려갈 수 없기 때문에 90㎞를 우회했다.오던 길을 되돌아 남쪽으로 나와 다른 가지길을 찾아 북쪽으로 올라갔다.얼마쯤을 달리다가 이내 초병의 제지를 받았다.북극촌 주민들 말고는 통과할 수 없다는 것이다.국경경비대 대대본부를 찾아 조선족 장교의 소개장을 보여주고 대대장을 면담한 끝에 겨우 통행이 허용되어 어렵사리 북극촌에 도착했다. 이 국경마을의 여름은 늦게 찾아 왔다가 총총히 사라진다.5월 하순에야 봄 기운이 돈다니 여름은 짧을수 밖에 없다.여름에는 밤이 있으나마나 해서 9시에 해가 떨어지고 새벽 3시면 해가 떠올랐다.밤이라야 새벽녘처럼 희끄무레할뿐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 아니었다.이를 ‘막하의 백야’라 했다.이 지역에서는 극광인 오로라도 더러 볼 수 있다.오로라지대는 아니지만 그만큼 북극이 가까웠다. 그런 신비스러운 북변에도 조선족이 살았다. 북극촌의 유일한 조선족 최태건씨(32)는 그런대로 북극촌에 뿌리를 내린 사람이다.‘조선식당’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7년째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개장국과 냉면,붕어찜이 전문인 식당 단골손님은 물론 한족이 주류다.마을 사람들도 더러 찾아오고 국경경비대 군인들 가운데도 단골이 많다.생선을 주로 튀겨서 먹는 한족들에게 붕어찜은 별미라는 것이다. ○오로라 현상도 간간이 그만하면 조선음식도 국제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오늘날 중국사회에서 한국의 위치가 높아지는 것과 때를 같이 하여 조선음식 인기가 올라가는지도 모른다.어떻든 변방에 들어와서 조선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그리 싫지는 않았다.그보다도 젊은 사람이 혈혈단신 변방에서 터를 잡게된 동기가 퍽 궁금했다.그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건네 보았다.순진하기 짝이 없는 그는 장가를 든 사연부터 술술 털어놓기 시작했다. “내래 태어난 곳은 요령성이우다.군대에 들어와서리 북극촌에서 복무한 것이 인연이 되어 주저 앉았디요.부모곁으로 돌아갔댔자 농사나 질거이고해서리 객지에서 살길을 찾았다 이겁네다.내 안사람은 본래 북극촌 사람이디요.군복무때 사귀어서리 결혼도 여기서 했디요.한족처녀였습네다” 그는 군복무 당시 한족처녀인 지금의 아내와 눈이 맞아 결혼했다는 것이다.처음에는 처가에서 반대도 했으나,아기가 먼저 들어서는 바람에 결국 처가에서 혼례를 올려주었다고 한다.사랑에는 국경이 없다는 것을 실감하면서 국경지대에 사는 그는 아들 둘을 일찍 두어 모두 소학교에 다니고 있다. 한족 아내의 소원은 남편이 한국에 나가 돈을 벌어와서 하얼빈과 같은 대도시로 나가는 것이라고 했다.그래서 동행한 서울신문 기자에게 별별 말을 다물어보았다.한국 바람은 흑룡강유역 변방까지도 예외없이 불었다. 흑룡강성 막하현에 터를 잡은 조선족은 그리 흔치않다.최근 통계에 따르면 현내에 사는 조선족은 모두 250여명으로 집계되었다.농사를 지어 생계를 꾸리는 조선족은 한 사람도 없다.대부분이 공공기관에 근무하거나 임업·광산업 분야에 종사하고 있다.모두가 조선족집거구로 갈 요량을 대고 막하를 임시 거처지로 여기는 사람들인 것이다.본래 상지 태생의 조선족인 막하현기술감독국 박청천 국장(51)도 그런 사람의 하나다. “막하에 온디 그럭저럭 27년이 다 됐수다.조선족집거지로 가는 발판을 삼기위해 막하로 온 것이디요.나가겠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수다.여기 들어올때 을씨년스러웠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합네다.봄인데도 어찌나 추웠는지….아이들 만큼은 여기서 못살게 할 작정이디요.기래서리 목단강시에서 위생학교 졸업하고 실습중인 딸아이에게는 절대 막하로 들어올 생각을 말라고 했수다” ○12월엔 영하 40∼50도 그의 말대로 흑룡강 상류의 기후는 사람이 살아가기에 너무 가혹했다.그가 27년전 4월1일 발령을 받고 떠날때 하얼빈의 기온은 영상 2도였는데,막하의 낮기온은 영하 28도로 떨어져 있더라는 것이다.그도 그럴 것이 9월 중순부터 시작한 겨울은 이듬해 5월 중순에야 끝나기 때문이다.4월이라야 한 겨울일 수 밖에 없다.여름이 총총걸음으로 떠나고 나서 8월이 저물면 벌써 가을의 냉기가 돈다.그리고 10월1일을 앞뒤로 해서 큰 눈이 내린다.동지 무렵의 기온은 영하 40도에서 54도까지 떨어졌다. 지금은 여름이라 해가 길지만 겨울해는 쥐꼬리보다 짧았다.아침 10시에 해가 떠서 하오4시면 저버린다.그 짧은 해에 기온마저 50도로 떨어지면 대낮에도 5m 이상을 볼수가 없다.그래서 차량은 밤이 아닌데도 헤드라이트를 켜고 다닌다.여기 사람들은 그런 겨울을 일러 ‘모백연’의 계절이라 했다.흰 연기가 피어오르는 계절이라는 뜻이다.사람들은 그 길고 긴 겨울을 거의 집안에 갇혀 살아야 했다. 그렇듯 혹독한 추위를 견디다 보면 극한지지의 겨울을 살아남을수 있는 면역도 생겼다.추운 바깥 기온에 쉽사리 노출되는 손과 얼굴은늘 동상이 걸리게 마련이다.그러나 동상에 걸리고 또 낫기를 거듭하는 동안 피부가 두꺼워져 피부 자체가 보호막이 되었다.북극촌 ‘조선식당’주인 최태건씨는 일부러 손을 내밀어 보여주었다.소댕 같은 손이 무척 거칠었다.북극촌을 떠나고 싶다는 그는 이유를 대강 이렇게 설명했다. “북극촌 경기가 예전만 못하디요.본래 막하지역 경기는 목재가 좌지우지했다 말입네다.그런데 지금은 임업국이 베어내는 목재가 다 거덜나서리 벌채할 나무가 별로 없디요.나무에 매달리는 막하 경제가 좋을 턱이 있겠습네까.기리고 강상류에 금을 캔답시고 몰려든 채금꾼들이 마구 땅을 파헤쳐 강물까지 버려놓았디요.기러니 물고기도 전에 만큼 안잡힙네다.떠날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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