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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숭례문 복원 소나무 러시아산 의혹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숭례문 복원 과정에서 국산 금강송 대신 저렴한 수입산 목재가 쓰였다는 제보를 입수해 확인하고 있다고 13일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국산 금강송이면 갈라질 수가 없다는 제보가 있어서 기초적인 자료를 확인하는 초기 내사 단계”라며 “아직 수사에 착수한 상태도 아니고 러시아 등 수입산인지 확인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경찰은 제보와 관련해 문화재청으로부터 복원공사에 쓰인 자재 등 관련 내역이 담긴 자료를 건네받아 분석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조사를 통해 숭례문 복원공사에 양질의 금강송이 아닌 수입산 소나무가 쓰인 사실이 확인되면 자재비 횡령 등을 놓고 파장이 클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청은 2008년 2월 화재가 난 숭례문을 지난 5월 복원했으나 나무 기둥이 갈라지는 등 부실 복원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 같은 의혹에 대해 숭례문 복원공사를 책임졌던 신응수 대목장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일축했다. 신 대목장은 “숭례문 복구에서 기존 부재 외에 새로 들어간 부재는 모두 국산”이라면서 “숭례문 복구 부실 논란이 일면서 근거 없는 의혹이 많이 제기되는데 어이가 없다”고 말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서동철의 시시콜콜] 문화유산의 정치적 오용을 막으려면

    [서동철의 시시콜콜] 문화유산의 정치적 오용을 막으려면

    경복궁 창건은 조선 태조 3년(1394) 신도궁궐조성도감(新都宮闕造成都監)을 열었고, 바로 이듬해 완성했다고 하니 엄청난 속도의 공사였다. 물론 당시는 근정전과 편전인 사정전을 비롯해 당장 필요한 390칸의 전각만 서둘러 지었다. 광화문을 비롯한 궁성의 4대문과 담장은 1398년이 돼서야 착공할 수 있었지만 이것도 이듬해 완공했다. 대원군 시대의 경복궁 중건 역시 속전속결이었다. 고종 2년(1865) 영건도감(營建都監)을 설치하고 공사를 시작해 1868년에는 새 전각으로 임금이 옮겨갔다. 이듬해는 영건도감을 철폐했으니 불과 4년이 걸렸다. 당시 세워진 전각은 5792칸이라는 엄청난 규모였다. 숭례문은 2008년 2월 방화로 타버린 뒤 2013년 5월 준공식까지 복원에 만 5년이 조금 넘게 걸렸다. 그러니 복원에 필요한 시간이 짧아 부실이 빚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무엇보다 숭례문은 그렇게 엉망진창으로 복원되지 않았다. 단청과 기둥에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옛 기술을 잃어버려 문제가 생긴 단청은 시간을 두고 해결책을 찾으면 될 일이다. 갈라진 기둥 역시 안전에는 문제가 없다. 목재는 철근이나 콘크리트처럼 균질한 재료가 아니다. 아무리 잘 말려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어느 정도 비틀어지고 갈라지는 것을 완전히 막지는 못한다. 철근 콘크리트 건물이 짓자마자 물이 새는 것하고는 차원이 다른 문제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많은 국민은 숭례문이 내려앉을 지경이어서 당장 해체해 복원 공사를 다시 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두고 마치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복합적 오류의 집약체인 것처럼 자조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당연히 단청과 같은 전통기법의 전승에 책임이 있음에도 소홀히 한 문화재 정책 당국에 일차적인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가장 큰 책임은 문화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세력에 있다. 숭례문 준공식은 정치적 필요에 따라 정해지고 변경됐다. 당초 준공식이 이명박 대통령 퇴임 직전으로 잡힌 것은 실적 과시를 위한 것이었다. 다시 잡힌 준공식 역시 새로운 대통령의 취임을 기념하는 의미가 부여되면서 정치적 성격에서 탈피할 수 없었다. 우리 사회는 철저하게 양쪽으로 갈려 있다. 정치적으로 이용된 문화재는 복원 시점부터 국민의 절반으로부터 흔쾌한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노무현 정부가 복원을 추진한 광화문도 다르지 않았다. 정치의 문화재 오용(誤用)을 막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다. 5년 임기의 정권이 업적으로 내세울 생각을 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하는 것이다. 몇년 동안의 복원이 마무리되면 3년 정도의 ‘하자보수 및 보호관찰’ 기간을 설정하는 방법이다. 복원에 문제가 있었다고 해도 모두 보완하고 준공식을 갖는다. 이런 제도만 있었더라도 숭례문 복원 문제가 이렇게 시끄러워질 일은 없었다.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강원도 관광홍보 남이섬이 다하네

    국내 대표 한류 관광지로 각광받는 강원 춘천 남이섬에 ‘강릉 솔향 숲 공원’이 조성되는 등 지방자치단체들의 홍보 창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강릉시는 12일 연간 300여만명(외국인 60만명)의 관광객이 찾고 있는 남이섬에 강릉의 이미지를 심어주고 문화·관광과 동계올림픽 개최 도시 홍보를 위해 강릉 솔향 숲 공원을 조성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솔향 숲 공원에는 남이섬의 야외 운동장 부지 3300㎡에 강릉을 상징하는 소나무, 오죽, 배롱나무 등을 심고 편의시설을 갖출 예정이다. 이곳에는 강릉의 대표 명승지인 경포대와 경포호수도 미니어처로 만들어진다. 내년쯤 공원이 마무리되면 ‘남이섬∼강릉 데이(day)’ 행사를 갖고 세계인류무형문화유산인 ‘미니 단오제’를 강릉 단오제 개최 보름 전에 개최할 계획이다. 공원 조성사업은 지난 10월 강릉시 문화·관광 및 동계올림픽 관련 공무원들이 남이섬을 찾아 남이섬 측과 실무협의를 통해 성사됐다. 앞서 2010년부터는 삼척의 쌀 브랜드 ‘삼척동자 오대쌀’을 남이섬에서 재배하며 홍보 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남이섬에서 하나뿐인 논 1500여㎡에 관광객들과 삼척시 공무원, 남이섬 직원 등이 참가해 직접 모내기를 하며 삼척동자 오대벼를 알리고 있다. 가을걷이 때는 삼척의 농특산물 직거래 판매와 홍보를 위한 ‘남이섬 삼척의 날’ 행사까지 열고 있다. 이 논에는 ‘삼척 쌀 논 습지’ 이름을 새긴 목재 표지판까지 세워져 남이섬 안의 작은 삼척 농촌으로 유명하다. 지난해에는 양구군 등 전국 9개 자치단체가 남이섬과 함께 지역관광 브랜드인 ‘상상나라 국가연합’을 출범시켜 각각의 특화된 관광상품을 하나의 공동 브랜드로 묶어 네크워크화 했다. 춘천·강릉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개화산 정상에 자리한 강서 주민들의 새 쉼표

    개화산 정상에 자리한 강서 주민들의 새 쉼표

    강서구 개화산이 마침내 낡은 군복을 벗고 주민 쉼터로 변신했다. 11개월 동안 군부대 설득과 주변 공사를 벌인 끝에 일군 성과다. 구는 개화산 정상 2만 3000㎡ 부지에 ‘개화산 해맞이 공원’ 공사를 끝내고 4일부터 주민들에게 개방한다고 3일 밝혔다. 6·25 전쟁 때 개화산 전투 전적지로, 육군과 공군 3개 부대가 군사훈련장으로 쓰던 지역이다. 따라서 흩어진 군사시설로 활용이 어렵고, 능선을 따라 폐타이어 방공호, 묘지 등이 길게 분포하고 있어 사람 발길이 뜸했다. 이에 구는 폐타이어 350t, 폐드럼통 80t 등 낡은 군사시설을 걷어내고 생태복원과 친환경적 정비를 거쳐 누구나 편하게 쉴 수 있는 휴식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공원 입구 진입로는 조경석과 산철쭉을 식재하여 아름다운 꽃길로 조성했다. 타이어 벽으로 둘러싸였던 낡은 포진지와 개인 방호진지 10여곳은 목재 축대벽을 쌓아 안전성을 높였다. 전망데크의 편의시설도 대폭 확충했다. 여유로운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야외 테이블과 등의자 등을 마련, 등산객들과 지역 주민들의 만족감을 높일 수 있도록 했다. 또 전망데크 양쪽에 그늘막을 설치, 뜨거운 불볕더위에도 불편이 없도록 했다. 조선시대 봉수대가 위치했던 개화산의 역사적 의미를 담아 높이 2m, 둘레 4m의 봉수대를 새롭게 설치하고, 이에 대한 설명을 담은 안내판도 세웠다. 구 관계자는 “개화산 정상은 아름다운 일출은 물론, 방화대교와 한강의 경관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조망이 뛰어난 곳”이라면서 “앞으로 이곳을 강서구의 명소로 가꿔 가겠다”고 말했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국내여행 | 부산 산복도로 르네상스- 이젠 초량동이다!

    국내여행 | 부산 산복도로 르네상스- 이젠 초량동이다!

    시작해 볼까 한다. 거의 40년 전 내가 태어났던 그곳에 대한 이바구를,걸음마를 시작할 때부터 오르내렸던 까꼬막에 대한 이야기를.당신이 준비할 것은 기차를 타기 전 2시간뿐이다. *경상도 사투리로 이바구는 이야기, 까꼬막은 비탈길을 뜻한다.고향에 대한 기억은 지극히 개인적이다.‘오빠야~’를 쫓아 경사진 산복도로를 뛰어다니느라무릎이 성할 날이 없었던 가시내의 기억은7살에 멈추었다.이후 내가 태어났던 외갓집과 초량동은쇠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사람들이 떠났고, 집들은 무너져 가고 있었다.그러나 32년 후 다시 찾아온 여행기자에게초량동은 ‘희망’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이바구 공작소가 생겼고, 유치환 선생과장기려 선생을 기리는 공간이 만들어졌고,손님들이 쉬어 갈 수 있는 전망대, 카페,까꼬막 게스트하우스가 생겼다.산복도로 위에서 보는 초량동과 부산항,북항대교의 풍경은 비탈을 극복한 자만이누릴 수 있는 아름다움이었다.근현대사의 축소판, 초량동여행애호가들은 다 아는 이야기. 감천문화마을(감천2동 산복마을)은 부산 산복도로에 말 그대로 ‘르네상스’를 몰고 왔다. 2012년 감천마을을 다녀간 여행자가 10만명이라니, 마을 사람들이 불편을 호소할 정도로 조용하던 산동네는 일약 관심의 중심이 됐다. 그리고 그 르네상스의 맥을 잇는 다음 주자가 나타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초량동이라고 했다. 초량동이라니! 전쟁 통에 결혼한 외할머니가 8명의 자식을 낳아 키웠고 그 자식의 자식인 내가 태어난 그 동네가 아닌가.초량동은 한국전쟁 당시 판자촌이 얼기설기한 피난민 마을에서 시작됐다. 그나마 물자와 일거리를 구하기 쉬웠던 항구 근처에 난민들은 터를 잡기 시작했고,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판잣집이 세워져 있곤 했다. 칸칸이 작은 방들로 이루어진 엉성한 집들은 서로 어깨를 기대며 구봉산龜蜂山(405m)의 거북이 등을 타고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집과 집 사이는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가는 미로 같은 골목이었고 우마차가 흙길을 다졌다. 산복도로의 시초였다.마을의 풍경은 태생적으로 아름답다. 감천마을의 경우 이미 부산의 산토리니라는 수식어를 거머쥐었다. 하지만 피난민촌의 역사를 알고 나면 이 풍경은 더 이상 이국적이지 않다. 파랑색 물탱크를 옥상에 이고 다닥다닥 어깨를 붙인 파스텔톤의 집들은 보따리를 하나씩 머리에 이고 산비탈을 오르는 어머니들을 닮았다. 치맛자락을 붙들고 따라 나선 계집아이의 얼굴엔 때구정물이 사라지지 않았다. 상수도가 없으니 급수차가 오는 날에는 아이들도 세숫대야라도 들고 나서야 했었다. 만만치 않은 세월이었다.감천마을에서 시작되어 산복도로를 타고 질주해 온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은 초량동이나 수정동 같은 낙후된 마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근현대사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는 동구의 생활문화사를 유적과 사진으로 볼 수 있는 곳인 이바구공작소를 포함해 새로운 랜드마크들이 올 초부터 줄줄이 문을 열었다. 웅장하거나 화려한 건물들이 아니다. 마치 숨은 그림 찾기를 유도하듯 평범한 주택들 사이에 전망대, 게스트하우스, 기념관, 카페 등이 자리를 잡았다. 이름이 무엇이든 이 모든 장소들은 최적의 전망대 역할을 한다. 이바구길을 따라가다 보면 한없이 주저앉아 경치를 감상하고 싶어지는 ‘구석’들이 한 둘이 아니다. 그러나 올라가는 과정이 고된 만큼 까꼬막길은 더 큰 보상을 안겨 준다.손쉬운 선택으로 산복도로에만 올라서도 건설 중인 북항대교는 물론이고 오른쪽으로는 남항대교, 왼쪽으로는 광안대교와 산 너머 해운대의 마천루까지 모두 보인다. 조금 더 욕심을 내서 큰일이 있을 때마다 불을 지펴 다급한 소식들을 한양으로 올려보냈던 구봉산 봉수대에 올라서면 부산 앞 바다의 경치는 더 너르고, 더 깊어진다. 그리고 밤이 되면 그 모든 풍경은 저마다의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참으로 은하수 같은 야경이다.굽이굽이 이바구가 들린다경험상, 도보여행은 가벼워야 한다.기차에서 내리자마자 부산 지하철역 사물함에 필요 없는 짐을 맡겨두고 길을 건너니 이바구길종합안내판이 쉽게 눈에 띄었다.길 안쪽으로 들어서자마자 부산 사투리, 중국어, 러시아어가 한꺼번에 들이닥친다. ‘이런 곳이 있었나’ 싶게 생경한 외국인 거리를 정신없이 통과하니 사거리 한쪽에 붉은 벽돌 건물이 우뚝 서 있다. 1922년 부산 최초의 근대식 종합병원이었던 구 백제병원 건물이었다. 한 때 외국의 의사들을 숱하게 초빙할 만큼 큰 병원이었지만 행려환자들의 시신을 인체표본으로 보관한 일이 밝혀지면서 도덕적 질타와 경영 악화로 문을 받았다는 이야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일평생 봉사하며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렸던 장기려(1911~1995) 박사가 알았다면 애통해 했을 일이다. 25년 동안 복음병원의 병원장을 지내며 1968년 의료보험의 시초인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을 만들었던 그는 평생 집 한 채를 소유하지 않고 병원 옥탑에서 생활하며 낡은 의사 가운과 청진기만을 유품으로 남겼다. 그의 뜻을 기리는 기념관 ‘더 나눔’은 올해 초량동의 복음병원 분원자리에 문을 열었다.병원에서 몇 발자국을 옮기자 이야기는 다음 장으로 넘어갔다. 부산 최초의 물류창고였던 남선창고터가 병원 뒤에 남아 있었다. 부산항에 도착한 물건들은 1,000평 규모의 창고를 거쳐서 경부선(1905년 개통)을 통해 전국 각지로 보내졌는데 주요 품목이 함경도산 명태여서 ‘명태고방’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부산토박이치고 남선창고 명태 눈알 안 빼먹은 사람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고. ‘최초’라는 수식어는 종종 ‘임시’라는 수식어와 연결된다. 한강 이남에 세워진 최초의 교회였던 초량 교회는 부산이 임시 수도였던 시절 이승만 대통령이 예배를 봤던 곳이다. 그 시절 임시 수도의 정부 교통부로 사용했던 건물은 부산지하철 좌천역 근처에 남아있다.그 당시의 마을 풍경 사진을 만날 수 있는 곳이 골목길 갤러리다. 흑백 사진 속의 그곳과 지금의 이곳은 수십년의 시차를 마주하게 한다. 그 시차를 극복한 사람들이라면 168계단이 선사하는 아찔한 고도 차이도 우습게 넘길 수 있을 것이다. 올려다보기에도, 내려다보기에도 아찔한 추억들은 168계단 옆 우물처럼 파도 파도 깊어진다. 시인 유치환, 개그맨 이경규, 노무현 대통령, 음악감독 박칼린, 가수 나훈아,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 박사, 국회의원 안철수, 연출가 이윤택 등 동구 출신들을 마치 가족처럼 자랑하는 주민들의 정서는 2013년에도 유효하다. 그들의 사진과 이력이 벽에 걸려 있는 초량초등학교 동구 인물사담장 앞에 서 있으면 “이~갱규가 이 학교 나왔다 아이가. 나하고 동갑인데… 갸가…”로 시작되는 대화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이 길을 오르내리며 학교를 졸업하고, 아이를 낳고, 손자를 마중 나가는 초량동 사람들의 이야기는 이제 겨우 시작이다.부산역 앞 초량이바구길 안내도부산역에서 망양로 산복도로를 오르는 짧은 길은 가난하고 아팠지만 따스했던 과거로 돌아가는 시간여행이다. 부산역에 내려 바로 앞의 횡단보도를 건너기만 하면 이바구길이 시작된다. 종합안내판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1~2시간의 산책은 애환 어린 피난시절부터 현재까지 부산의 역사를 꿰어 줄 뿐 아니라 부산 특유의 정서와 서민생활을 깊숙이 느끼게 해준다.Route (옛)백제병원▶남선창고터▶담장갤러리▶동구 인물사담장▶168계단▶김민부 전망대▶이바구공작소▶장기려박사 기념관 ‘더 나눔’▶유치환의 우체통▶까꼬막까지 이어지는 1.5km①부산역 1905년 서울-부산을 연결하는 경부선 계통 이후 부산역은 가장 중요한 부산의 관문 역할을 변함없이 해 왔다. 1953년 대화재로 이전의 부산역이 전소되면서 1968년 지금의 자리에 새로운 역사를 신축했고 2004년 KTX 개통으로 전국이 하루 생활권으로 묶이면서 부산역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다.②부산항 부산항은 원래 아주 조그만 어촌이었지만 고종 때 개항하면서 최초의 무역항이 됐다. 물자가 넘쳐나고 그만큼 일거리를 얻을 수 있는 곳. 전쟁이 터지자 고향을 떠나 부산으로 몰려든 사람들은 항구 근처에 머물렀다. 산복도로 아래 피난민 마을은 그렇게 형성된 곳이다.③상해문 청관거리(1884년 청나라 영사관이 이곳에 있었다)라고 불렸던 이 지역은 중국인들이 밀집한 차이나타운이지만 현재는 러시아, 필리핀 사람들도 대거 거주하는 외국인 거리가 됐다. 소문난 중화요리점들이 많은 것은 물론이고 독해 불가능한 외국어 간판이 이색적인 풍경을 만들어 내는 곳. 한때 텍사스골목이라는 불명예를 품기도 했었지만 2007년 7월 지역특화발전특구로 지정되어 새롭게 단장하고 있다.④(옛)백제병원 1922년 한국인 최용해가 만든 부산 최초의 근대식 개인종합병원은 5층 규모의 건물로 외국인 의사들을 초빙할 만큼 번성했었지만 10여 년 만에 경영 악화로 폐업하게 되었다. 이후 봉래각이라는 중국 요리집, 일본 아까즈끼부대의 장교 숙소로 사용되다가 해방 이후 치안대 사무소, 중화민국 영사관, 신세계 예식장 등 여러 용도를 거치며 파란만장한 역사를 이어가다가 현재는 임대사무실로 사용되고 있다. 1972년 화재로 5층 일부가 소실되어 현재는 4층 건물로 남아있으며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3층에는 부산그린트러스트가 입주해 있다. 주소 초량동 중앙대로 209번길 16⑤남선창고(터) 백제병원 뒤쪽 탑마트 주차장 정면에는 담쟁이가 엉켜 있는 붉은 벽돌담이 있다. 건물은 2009년 철거되고 담장만 남은 남선창고는 저 멀리 함경도에서 부쳐진 명태를 적재하던 창고라 하여 북선창고(1900년 건립)라고도 불리다 1914년 남선창고로 개명되었지만 명태고방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렸던 곳이다. 경원선이 개통되기 전까지 함경도의 수산물과 강원도의 목재는 부산으로 옮겨서 경부선을 통해 전국으로 보급되었었다. 백제병원 옆(탑마트 주차장). 주소 초량동 393-1⑥김민부 전망대 김민부(1941~1972)라는 이름을 잘 몰라도 ‘기다리는 마음(장일남 작곡, 김민부 작사)’이라는 제목은 잘 몰라도 ‘일출봉에 해 뜨거든 날 불러주오~’로 시작되는 노래를 기억하는 이들은 많을 것이다. 부산시 동구 수정동 출신인 그는 부산고 3학년 때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조부문에 당선되어 등단했을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다. 이후 부산과 서울 방송국에서 방송작가로 활동했었다. 부산항의 경치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전망대 겸 야외카페도 있다.⑦당산 어디 시골마을이나 남아있을 것 같은 당산이 오밀조밀한 주택가 한가운데 남아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다. 매해 음력 3월과 9월의 보름날에 초량마을의 수호신인 당산 신에게 마을의 풍요와 평안을 기원하는 제를 올린다. 어린 시절에는 당산이 무섭기만 했었지만 피난시절부터 지금까지 이런 기복신앙에 기대서 어려울 때마다 위로와 힘을 얻었던 사람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짠해진다.⑧이바구공작소 해방, 한국전쟁, 월남 파병 등의 굵직굵직한 이야기를 교과서적 역사가 아니라 삶의 이야기로 바꾸는 것은 6·25와 보릿고개를 넘으며 산복도로를 지켰던 어르신들의 생생한 목소리다. 2013년 3월 오픈한 이바구공작소는 산복도로를 관통했던 역사와 문화자원을 발굴하여 디지털 아카이브를 구축했다. 또 다양한 공연과 전시로 관광안내소와 지역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 주소 부산광역시 동구 망양로 486번길 14-13 관람료 무료 개관시간 오전 10시~오후 5시(매주 월요일 휴관) 홈페이지 www.ebagu.or.kr⑨유치환의 우체통 왜 갑자기 우체통? 의아할 수 있다. 청마 유치환(1908~1967) 선생을 기리는 대형 우체통이 동구의 산복도로에 세워진 이유는 그가 이곳 경남여고의 교장을 두 번이나 역임했고 학교 앞에서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부산항을 향한 통유리창 카페에 앉아 그리운 이에게 편지를 쓸 수 있는 특권을 놓치지 말자. 커피 한잔으로 쉬어 가기 좋은 곳이다. 부산역에서 333번 버스를 타고 컴퓨터과학고에서 하차.⑩천지빼까리 카페 마을 정자 옆에 만들어진 카페는 이름이 예술이다. 이른바 ‘천지빼까리 까꼬막 카페’. 동구청장이 아이디어를 냈다는 이 카페는 시원하게 뚫린 유리창을 통해 세상 어느 곳도 부럽지 않은 전망, 특히 근사한 야경을 선사한다. 부산역에서 33번 버스를 타고 초량6동에서 하차.⑪까꼬막 게스트하우스 마을에서 운영하는 체험센터라는 설명보다는 게스트하우스로 이해하면 훨씬 용도가 명확해지는 곳이다. 그것도 최고의 경치를 자랑하는 2층 방에 올라가 불을 끄고 창밖을 바라보면 산비탈 마을의 야경이 별빛과 함께 쏟아져 들어온다고. 1층은 주방 겸 거실이지만 취사를 금지하는 대신 배달 가능한 동네 맛집 목록을 준비해 두었다.☞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interview 新 르네상스의 건축가 김진우그는 초량동에 아무 연고가 없는 이방인이다. 서울에서 판문점 ‘평화의 집’을 설계했고 대학에서 강의를 하던, 지금도 성북동 주택을 설계하느라 바쁜 건축가다. 그런 그가 어느날 산복도로를 찾아와 집 한 채를 구입하더니 동네에게 가장 아름다운 집으로 변신시킨 것. 구청 직원들이 ‘꼭 가봐야 한다’며 앞장섰다. 이런 방문에 익숙하다는 듯 건축가 김진우 선생이 문을 활짝 열어 주었다. ‘놀 유遊’자에 ‘벗 붕朋’자, 유붕정이라는 이름이 게스트하우스화된 이 집의 용도를 설명해 준다면 파티에 최적화된 너른 주방과 식탁, 직접 디자인한 난로와 가구들, 거실 한 면을 장식하고 있는 앤디 워홀의 그림과 할리데이비슨 모터사이클은 그의 취향을 말해 준다. 비밀스럽게 자리잡은 황토찜질방과 화장실, 기둥 역할을 하는 계단 등등 구석구석이 감탄거리다. 산에서 바다로, 막힘없이 내리꽂히는 이곳의 경치에 반해 버렸다는 그는 산복도로 르네상스를 위해 기꺼이 앞장설 생각이다. 그에게 자극받은 이웃들도 스스로 집 단장에 나서고 있다니, 이미 르네상스는 시작됐다.글·사진 천소현 기자 취재협조 부산동구청 051-440-4281
  • 나무에 사랑 담아 ‘메리 크리스마스’

    산림청이 국산 목재가구를 만들어 지역아동센터에 친환경 자연공부방을 꾸며주는 ‘그린 산타클로스’로 나선다. 목재 이용의 중요성 및 국산 목재 소비 촉진을 위해 지난해부터 시행하고 있는 ‘I LOVE WOOD 캠페인’ 일환이다. 오는 30일 충주 문성목재문화체험장에서 자원봉사자와 각계 전문가, 공부방 학생들이 참가해 제1회 ‘친환경 자연공부방 꾸미기’ 행사를 연다. 참가자들이 국산 목재를 활용해 만든 책장과 책상은 사전심사를 통해 선정된 5개 지역아동센터 공부방에 기부된다. 이날 행사에는 한글을 회화로 풀어내는 금보성 작가가 참여해 한글회화 아트쇼를 진행한다. 대전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시론] 광화문과 남대문/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시론] 광화문과 남대문/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경복궁은 조선의 정궁이다. 서울의 동서남북에는 높고 크고 우람하지 아니하나 잘생긴 북악, 인왕, 낙산, 남산이 있고 북악산 북쪽에 북한산이 있고 남산 남쪽에 한강이 있고 그 남쪽에 관악산이 있다. 그 얼굴 부위의 가장 아름다운 곳에 경복궁이 있다. 주위 산천과 흔연히 어우러져 하나가 된 모습이다. 주위 산하와 꼭 맞는 비례로 크지도 작지도 않으면서 원래 그 자리에 자연 그대로 있었던 것 같다. 참으로 자연의 아름다움 그대로를 보는 듯한 모습이 경복궁이다. 위대한 예술가이기도 한 대원군이 1864년 재건한 당시에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만큼 아름다운 궁궐이었을 것이다. 이 아름다운 궁궐을 일제가 1910년 우리나라를 강점 후 바로 허물기 시작해 근정전, 경회루 등 몇몇 전각만 남겨 놓고 다 허물어 버렸다. 세계의 어느 침략자도 그 나라의 소중한 문화유산이요, 나라의 정궁을 무참히 짓밟은 예는 없다. 그것도 모자라 1915년에는 일제가 바로 거기서 축산박람회를 열어 짐승들의 분뇨로 경복궁을 욕보이고 또 바로 근정전 앞을 가로막고는 크고 높고 우람한 총독부건물을 지어 서울 장안을 위압적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1993년부터 1995년 사이에 일제만행으로 지어진 총독부건물철거 때 우리나라는 벌집을 쑤신 듯 찬반여론이 신문방송을 휩쓸었다. 천신만고 끝에 총독부 건물을 그래도 허물고 경복궁이 제 모습을 차츰 찾아가서 엉뚱한 곳에 콘크리트로 세워졌던 광화문도 허물고 새로운 광화문이 근 100년 만에 제자리에 다시 들어섰다. 그래도 워낙 일제의 만행이 극악하여 완전한 복원은 요원한 숙제로 남는다. 그렇지만 광화문과 그 북쪽으로 흥례문과 회랑이 들어서고 그 북쪽에 근정전이 보이고 북악산, 북한산 등 아름다운 경관을 다시 찾게 된 것이다. 조선 정궁인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 복원 공사가 한창인 2008년 2월 서울 도성의 정문인 숭례문에 일제가 아닌 우리나라 괴한이 불을 질러 참으로 무참하게 타서 무너져 버렸고 그 광경을 전 국민이 분노하고 비통하면서 바라보았다. 숭례문의 복원공사가 한창일 때인 2010년 8월 광화문 복원공사가 끝났다. 모두가 축하하고 경하해마지 아니하였다. 그런데 그다음 해인가 ‘광화문’ 현판에 금이 가고 갈라졌다고 언론기관이 연일 대서특필했다. 나무라는 것은 베어내어 목재가 되고 집이 돼서도 계속 살아 움직여 썩을 때까지 몇 백년이고 줄고 늘어서 금이 가고 터지고 휘고 튀어나오고 오그라든다. 이를 막기 위해 나무를 켜서 훈증해 쪄 말리고 바닷물에 오래 담가 다시 말리고 온갖 기술을 동원하여 그늘에 몇십 년이고 잘 말려도 온·습도에 역시 민감하다. 터지고 휘는 것 등은 마찬가지다. 박물관 창고에 잘 보관 중인 100년 넘은 목기들도 역시 온·습도에 민감하다. 하물며 광화문과 그 현판은 눈, 비, 바람과 햇볕에 그대로 노출돼 있지 아니한가. 2013년 숭례문이 복원됐다. 참담하고 비통한 마음을 달래며 모두가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단청에 문제가 생겼고 기와가 잘못되었다는 둥 신문 방송이 연일 떠들어 댔다. 언론이 문화재에 관심을 갖는 것은 좋으나 애정을 가지고 깊은 관심을 가지고 꼼꼼히 따져보고 여러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보고 신중하게 대처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사회부의 사건기사처럼 특종을 생각해선 올바른 기사가 될 수가 없을 것이다. 복원을 시작하기 전부터 대책이 잘 세워졌는지, 나무는 잘 마른 것을 쓰는지, 구재와 신재는 잘 조합이 되는지, 단청재는 나무에 칠해 보는 등 오랜 실험을 해보았는지 살펴보고 너무 복원을 서두르는 건 아닌지 등을 꾸준히 살폈어야 했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보다는 중구난방으로 눈에 보이는 흠집만 잡아내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부터라도 우리 모두 근본대책을 생각해보는 긴 안목으로 문화재를 바라봐야 할 것 아닌가. 문화재 복원에 관한 모든 것은 빨리빨리 서둘러서 시행하면 언제든지 하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교훈도 꼭 가슴에 담아야 할 것이다.
  • 주민의,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洞주민센터는 어디? 성북구 안암동에 생겨요

    주민의,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洞주민센터는 어디? 성북구 안암동에 생겨요

    요즘에야 이름도 주민센터로 바뀌고 새로 지어지며 주민 편의시설이 들어서는 등 조금씩 달라지고 있지만 원래 동사무소란 딱딱하고 권위적인 느낌을 짙게 풍겼다. 1층 민원실과 동장실, 2층 예비군 동대 본부, 3층 강당과 새마을문고 등이 전형적인 구조. 이용객 배려보다는 공무원 편의와 관청의 권위를 고려해 주민과의 거리감이 컸던 게 사실이다. 주민의, 주민을 위한, 주민에 의한 동 주민센터는 도대체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앞으로 성북구 안암동에 가면 답을 찾을 수 있을 듯하다. 국내 1호 인권 건축 공공건물이 될 안암동 복합청사가 28일 안암동2가 140에서 첫 삽을 떴다. 지하 1층, 지상 6층, 연면적 1586㎡ 규모로 내년 9월 완공된다. 들어선 지 36년이나 돼 불편한 주민센터를 새로 짓는 것이다. 구는 참여와 소통, 평등과 배려를 반영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전국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최초로 신축 공공건물 인권영향평가를 실시했다. 공모한 설계안도 인권 전문가를 포함한 심사위원회에서 선정했다. 인권건축감리단 자문도 받았다. 주민의견 반영을 위해 설문 조사와 네 차례 설명회도 거쳤다. 또 준법 시공, 인권 약자를 위한 실내 건축과 집기 구매, 주민 참여자치 프로그램 운영 등 설계부터 시공, 준공, 운영에 이르기까지 모든 단계에서 인권침해 요소를 없애고 친화 요소 반영에 애썼다. 청사는 문턱을 없앤 출입구 2개와 지상 주차장을 둬 접근성을 높인다. 민원실은 2층으로 올리고 복지 관련 민원인을 위한 별도 상담실도 둔다. 대신 1층엔 아이 돌봄방과 주민 모임방, 목재 데크를 깐 쉼터를 배치해 주민들이 스스럼 없이 청사에 들어설 수 있게 한다. 3~6층엔 인권도서관, 문화센터, 강의실, 대강당, 옥외테라스 등 편의시설을 두루 갖춘다. 특히 5층에는 마사지, 스트레칭 등을 위한 힐링센터가 들어선다. 많은 주민이 원한 시설이다. 미니 사우나실과 샤워실도 이웃한다. 건물 바깥도 각지지 않게 둥글게 만들고 데코 타일을 사용해 따뜻한 느낌을 전달하도록 한다. 김영배 구청장은 “첫 시도라 더디게 진행됐지만 주민 모두가 한데 어울리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 주는 소통과 나눔의 공간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아마추어부터 전문인까지…‘2013 목재산업박람회’ 개최

    아마추어부터 전문인까지…‘2013 목재산업박람회’ 개최

    최근 웰빙 트렌드가 확산되면서 친환경 제품과 그린 라이프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이 같은 소비자 성향의 변화에 따라 자연친화적인 목재제품과 목조주택에 대한 선호도가 점점 높아지는 추세다. 이러한 가운데 목재산업 전반을 다루는 전문 전시회가 개최될 예정이어서 주목을 받고 있다. (사)목재산업단체총연합회는 12월 5일부터 8일까지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2013 목재산업박람회(WOOD FAIR)’를 개최한다. ●생활 속 목재 문화 실현 목재산업박람회는 목재활용에 대한 바른 인식 및 다양한 활용법을 제시하고, 생활 속 목재문화를 실현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다. 전시분야는 ▲목재공급 (원목, 운송, 수입, 유통) ▲목재가공 (제재, 칲, 합판, 펠릿 등) ▲목공공구 ▲한옥/목조주택 ▲ 리빙우드 (원목가구, DIY가구, 인테리어 소품 등) ▲목공예품 ▲기타 목제품 (장난감, 교구, 악기, 캠핑용품 등) ▲목공교육 등 목재산업 전반에 걸쳐 있다. 또한, ‘2013 대한민국목조건축대전’ 수상작들과 온라인 목공카페 9곳(80여명)의 취미목공인들이 만든 목공 작품들이 전시되며, 작년에 이어 한국조형예술원 초대전(감성코드 WOOD- 나무, 세상을 수놓다)이 함께 진행되는 등 다양한 볼거리가 준비되어 있다. ●아마추어 목공인과 전문인이 어우러지는 축제의 장 금번 전시회에서는 다채로운 체험행사가 열릴 예정이어서 아이를 동반한 가족단위 참가자들에게 뜻깊은 시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아이방꾸미기존에서는 어린이 전용 친환경 목재가구와 인테리어 소품들이 전시되며, ‘목재감성체험관’에서는 직접 나무를 만지고 만들어 볼 수 있는 DIY체험존과. 우드볼, 카프라 등 목재장난감을 체험할 수 있는 ‘나무상상놀이터’가 운영되어 부모와 아이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목재산업 종사자를 위한 행사로는 12월 5일부터 6일 양일 간 컨퍼런스룸에서 ‘해외산림자원개발을 통한 산림바이오에너지산업 활성화 심포지엄’, ‘ 목재와 목조건축’, ‘국산목재의 주택건자재 이용활성화’ 등 다양한 주제로 컨퍼런스가 진행된다. 12월 6일에는 (사)목재산업단체총연합회 주최, 산림청 후원으로 목재산업 발전을 위한 자리인 ’목재의 날’ 행사가 개최된다. ‘목재의 날’은 목재관련 산, 학, 연, 관이 함께 모이는 상호교류의 장으로 기관 및 협단체의 한해 성과보고와 ‘목재산업발전 유공자 표창’ 등이 진행되는 목재산업 활성화와 정보교류를 위한 국내 목재산업 대표 행사이다. ‘2013 목재산업박람회’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진행되며, 공식홈페이지(www.woodfair.or.kr) 에서 온라인 사전등록을 하면 현장등록의 번거로움 없이 무료 참관이 가능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해발 2600m…‘세상에서 가장 위태로운 화장실’ 화제

    해발 2600m…‘세상에서 가장 위태로운 화장실’ 화제

    세계에서 가장 위태로운 화장실이 공개돼 화제가 되고 있다. 27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 등 외신에 따르면 최근 조사를 통해 가장 위태로운 화장실은 시베리아 알타이산맥의 해발 2600m 지점인 ‘카라-튜렉’에 있는 외딴 기상관측소 바로 옆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카라-튜렉’은 남부 알타이어로 검은 심장이란 뜻을 담은 알타이 산맥의 중심부다. 이곳 직원들은 한 달에 한 번 음식과 물, 그리고 쌀쌀해진 가을을 보낼 땔감으로 목재를 헬기로 공급받으며 날씨 정보를 전달할 수집자의 방문을 받고 있다. 이 화장실은 1939년 이래 세워진 이래 조금씩 개조돼 오늘날에는 세척을 위한 시설도 갖춰졌으며, 시베리아의 아름다운 경치도 관람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이번 조사에는 가장 위태로운 화장실 이외에도 가장 비싼 화장실이나 가장 무서운 화장실도 선정됐다. 가장 비싼 화장실은 홍콩에 있는 ‘스위스 혼 골드 팰리스’라는 거창한 이름이 붙여졌는데 금 3톤으로 만들어졌으며 준공에만 수년이 걸린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무서운 화장실은 멕시코 콰달라하라에 있는 15층 빌딩 꼭대기 펜트하우스에 있는 것으로 바닥이 유리로 돼 있어 1층까지 내려다 볼 수 있다. 이를 만든 설계자들은 어떤 사람이 사용해도 안전하다고 자부하고 있다. 한편 이번 조사를 소개한 러시아 인테르팍스 통신은 “이번에 선정된 가장 위태로운 화장실은 로맨틱하지 못한 장소일 수 있지만 특별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곳”이라면서 “이를 수년간 사용하면 두려움이 사라지기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위태로운 화장실로 꼽힐 만하다”고 말했다. 사진=시베리아 타임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춘천, ‘광주리 행상’ 거리 조성… 관광명소로 육성

    강원 춘천시가 시골 할머니들의 ‘광주리 행상’을 양성화시켜 관광명소로 육성한다. 춘천시는 20일 도심 중심지역인 중앙로 2가 일대에서 노점상을 하는 광주리 행상 상인들을 양성화해 인근 약사리고개 주변에서 영업할 수 있도록 ‘저잣거리’를 조성, 이를 관광명소화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광주리 행상 저잣거리는 약사리 고개 죽림동성당에서 중앙로 방향에 별도의 공간으로 마련된다. 이곳에는 명동과 중앙로 일대의 노점상들이 안정적으로 영업할 수 있도록 4면이 개방된 형태의 전통 초가지붕의 가림 시설과 목재 좌판이 설치된다. 원두막, 주막, 떡메 치기 등의 체험시설도 만들어 시골 정취를 느낄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시는 내년 신규사업으로 3억원의 사업비를 편성했다. 박병선 춘천시 관광과장은 “이들 광주리 행상들이 장사를 못 하게 내몰기보다는 지역관광과 재래시장 활성화에 도움이 되도록 저잣거리를 조성해 명물로 육성해 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춘천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명인·명물을 찾아서] 렘 쿨하스·아이 웨이웨이가 도심에… 명품 예술, 문화자산 활용

    [명인·명물을 찾아서] 렘 쿨하스·아이 웨이웨이가 도심에… 명품 예술, 문화자산 활용

    광주시가 시내 곳곳에 설치한 ‘광주폴리(소형 공공 건축물)’가 새로운 도심 명물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선보인 8곳의 ‘2차 폴리’와 2년 앞서 설치된 11개의 ‘1차 폴리’에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견학이 잇따르고 있다. 전국의 대학생들도 ‘광주폴리 투어’에 참여하는 등 도심 속에 꾸려진 삶과 교육·소통의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지난 10일 북구 임동 광주천 두물머리에서는 ‘광주주 폴리Ⅱ’ 개막식이 열렸다. 이곳 둔치에 세워진 ‘광주천 도서관’은 특이한 모형으로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영국의 데이비드 아자예와 미국 소설가 타이에 셀라시가 한국의 정자에서 영감을 받아 설계했다. 4개의 기단 위에 목재 지붕을 얹은 형태다. 천변을 산책하는 시민들이 쉬거나 책을 읽을 수 있도록 꾸며졌다. 옛 도심인 동구 충장로 광주학생독립기념회관 뒷골목에 설치된 ‘투표’는 세계적인 건축가인 렘 쿨하우스와 잉고 니어만의 공동 작품이다. 긴 가로등 형태의 배너에서 질문을 던지고, 참여자가 원하는 답변이 적힌 통로를 통과하게 되면 카메라가 자동 인식해 찬반을 집계하는 방식이다. 서도호씨와 서카이텍스의 작품인 ‘틈새 호텔’은 역시 옛 도심인 동구 불로동 15-3과 21-18 건물 사이에 배치됐다. 일인용 침대와 접이식 테이블 선반이 있으며 화장실도 쓸 수 있다. 광주역 교통섬에는 ‘혁명의 교차로’가 있다. 에얄 와이즈만은 1980년 5·18 민주화운동과 재스민 혁명 등 민주혁명의 진원지였던 교차로나 원형 광장의 의미를 반영했다. 여러 개의 원을 그리고 그 사이에 세계 각지의 민주혁명을 새겨 넣었다. 덴마크 출신 3명의 아티스트 그룹인 수퍼플렉스는 광주 공원 입구의 낡은 화장실을 철거하고 ‘유네스코 화장실’ 설치했다. 유네스코 본부의 상임위원화장실을 본떴다. 중국의 인권운동가이자 건축가인 아이 웨이웨이는 동구 푸른길 주변에 사각형 모양의 작은 ‘포장마차’를 설치했다. 4각형 형태로 외부에 모든 조리용품을 걸 수 있도록 기능성을 높였다. 도심을 걸으면서 따뜻한 음식을 만들고 즐길 수 있는 열린 사랑방으로 활용된다. 인도 출신 예술가 그룹인 락스 미디어 콜렉티브의 ‘탐구자의 전철’도 눈길을 끈다. 지하철 1호선 1개 차량 내부를 각종 시각예술품으로 꾸몄다. 자유롭게 휘갈긴 듯한 검은색 선을 시트지로 붙였으며, 영상·빛 등이 혼합되면서 지하철을 새로운 예술 공간으로 변화시켰다. 탑승객들은 기존 액정표시장치(LCD) 모니터를 통해 영상 작품도 감상할 수 있다. 지난해 열린 광주폴리 공모전 최우수상작인 고석홍과 김미희의 작품으로 금남지하상가에 설치된 ‘기억의 상자’는 가로 38㎝ 세로 34㎝ 높이 29㎝의 총 448개 소형 박스로 구성됐다. 시민들에게 분양된 메모리 상자는 광주와 시민들의 기억을 담는 전시 공간으로 활용된다. 광주비엔날레 재단이 주도한 이번 2차 폴리는 2011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 때 승효상 총감독이 진행한 1차 폴리와 연계된 사업이다. 광주시는 당시 옛 도심 재생에 중점을 두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들에게 작품설치를 맡겼다. 이번에 시내 전역으로 범위를 넓힌 2차 폴리와는 달리 구 도심인 옛 광주 읍성 둘레에 모두 11개의 폴리를 설치했다. 동구 장동, 궁동, 금남로, 충장로 등지에 명소를 만들고 이를 후세에 남길 수 있는 문화자산으로 활용한다는 구상이었다. 2차 폴리는 1차 폴리가 사람들의 이목을 끌면서 추가로 진행됐으며, 연차적으로 시내 곳곳에 100여개가 설치된다. 1차의 경우 스페인의 건축가 후안 헤레로스가 동구 장동 사거리의 가로수 사이에 ‘소통의 오두막’이란 조형물을 세우는 등 옛 광주읍성터를 에두르는 주요 지점을 중심으로 각종 조형물이 설치했다. 1차 프로젝트에는 후안 헤레로스를 비롯, 알레한드로 자에로 폴로(스페인), 플로리안 베이겔(독일), 나데르 테라니, 프란시스코 산인, 피터 아이젠만(미국), 도미니크 페로(프랑스), 요시하루 쓰카모토(일본), 조성룡, 승효상, 정세훈&김세진 등 6개국 11개 팀의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참여했다. 1차 폴리가 건립된 이후부터 각 지자체의 도시 디자인과, 문화기관 등의 답사가 끊이지 않고 있다. 광주비엔날레는 폴리가 입소문을 타면서 관람객이 몰리자 ‘폴리투어’, ‘폴리데이’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용우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는 “광주폴리는 획일화된 도시에 건축과 예술을 통해 생명력을 불어 넣는 ‘인문학적 도시 계획’의 실험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용어 클릭] ■폴리(Folly) 본래의 기능을 잃고 장식적 역할을 하는 건축물을 뜻한다. 파빌리온의 공간과 가로 시설물의 공공기능, 장식적 역할을 아우르며 도시재생에 기여할 수 있는 건축물을 의미한다.
  • [문화 In & Out] 부실 복원 논란 숭례문 국보 1호 해제론 ‘고개’

    [문화 In & Out] 부실 복원 논란 숭례문 국보 1호 해제론 ‘고개’

    대한민국의 ‘국보 1호’는 숭례문(남대문)이다. 조선 태조 4년(1395년) 짓기 시작해 3년여 만에 완공했으니 예나 지금이나 한국사람들의 성격은 무척 급했던 모양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도 숭례문은 불타지 않았다. 그리고 서울 도심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이란 점을 인정받아 1962년 국보 1호로 지정됐다. 요즘 이 숭례문이 또다시 핫이슈가 됐다. 5년 3개월여의 복원공사가 부실·졸속이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다. 단청의 균열·박락에서 비롯돼 부실 자재의 사용과 원칙 없는 전통 공법의 적용까지 공사 과정이 낱낱이 드러나고 있다. 급기야 대통령까지 나서 “철저히 의혹을 규명하라”며 기름을 부었다. 기실 국보 1호를 둘러싼 논란은 지난 반세기 동안 끊이지 않았다. 일제가 1934년 숭례문을 ‘조선고적 1호’로 지정한 것을 왜 그대로 받아들였냐는 주장이 거셌다.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이던 1996년에는 ‘일제 지정 문화재 재평가위원회’가 역사 바로 세우기 차원에서 국보 1호 교체를 심각하게 검토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인 2005년에는 감사원이 나서 문화재청에 국보 1호의 변경을 권고하기도 했다. 당시 문화재청장은 “숭례문이 대표성과 상징성을 갖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국보심의분과위원회에서 이 문제를 심각하게 논의했다. 조선총독부는 조선고적 1, 2호로 숭례문과 흥인지문(동대문)을 지정했다. 해방 이후 숭례문은 국보 1호, 흥인지문은 보물 1호로 명맥을 이어왔다. 반면 서쪽의 돈의문과 북쪽의 홍지문은 사라졌다.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인 혜문 스님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 선봉장인 가토 기요마사와 고니시 유키나가가 두 문을 통해 한양성에 입성한 기록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게다가 대문을 떠받드는 건 일본식 문화라는 지적도 불거졌다. 2000년대 여론조사에선 국보 1호를 훈민정음해례본(국보 70호)이나 석굴암(국보 24호)과 맞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요즘 물밑에선 다시 국보 1호 해제론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고 있다. 숭례문이 과연 ‘대한민국의 얼굴’이냐는 논란에 방점이 찍혔다. 복원 과정에서 기와와 단청, 성벽의 석재가 완전히 새것으로 바뀌었고, 목재는 절반가량이 교체됐는데 어떻게 옛 유적과 같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동안 화재로 문화재적 가치가 손상된 문화재는 자연스럽게 국보나 보물에서 해제됐다. 2005년 화재로 녹아버린 강원 양양의 낙산사 동종(보물 479호)이나 1984년 불탄 전남 화순 쌍봉사 대웅전(보물 163호)이 그렇다. 의미 없는 국보의 지정 번호를 폐기하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지정 번호는 가치순이 아닌 단순 관리 번호에 불과하며, 일제의 잔재인 ‘문화재 보호법’(1962년)에 따른 것이다. 일본마저도 국보의 번호를 없앤 상태다. 전 세계에서 국보에 번호를 매기는 곳은 남북한뿐이다. 2008년의 화재가 아니었다면 숭례문은 ‘국보 1호’란 타이틀을 뗄 운명이었다. 문화재청은 화재가 나기 한 달 전 국보와 보물에 일련번호를 없애는 방향으로 문화재 등급·분류체계 개선을 추진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섰듯 제대로 문화재를 복원하고 관리하는 것은 중대사안이다. 국보 1호 문화재의 지위에 이런저런 ‘뒷말’이 따라붙는 건 개운찮은 일이다. 국민적 공론화를 통해 상징성과 문화재적 가치 등을 충분히 고려해 문화유산의 좌표를 제대로 설정하는 작업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휠체어·유모차도 산으로~

    휠체어·유모차도 산으로~

    “휠체어에 앉아 있으면 사물이든 사람이든 늘 올려다봐야 하는데 휠체어를 타고도 산등성이에 오를 수 있어 참 좋았어요. 교통사고로 인한 중도장애인인 권세훈(35·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씨는 “안산 무장애 자락길 완공 소식을 접하고 주말에 다녀왔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등산로 폭이 넓어서 마주 오는 사람과 왕래하기 쉬웠다”고 덧붙였다. 문석진 서대문구청장은 12일 시청 기자실에서 브리핑을 갖고 “3년 만에 공사를 마치고 13일 개통식을 갖는다”고 밝혔다. 문 구청장은 “연장 7㎞로 전국에서 가장 긴 무장애 숲길”이라며 “계속 거닐다 보면 출발한 곳으로 되돌아오는 순환형이라는 게 특징”이라고 강조했다. 자락길은 폭 2m, 경사도 9% 미만이다. 휠체어 바퀴가 빠지지 않도록 바닥엔 평평한 목재데크나 친환경 마사토와 굵은 모래 등을 사용했다. 휠체어 교차에 불편하지 않도록 50~100m마다 폭 3~4.5m의 쉼터도 만들었다. 문 구청장은 “구민의 13.7%인 65세 이상 고령자, 유아, 임산부 등 보행약자도 안전하게 올라갈 수 있도록 했다”며 “메타세쿼이아, 아카시아, 가문비나무 등으로 이뤄진 숲을 걸으면 힐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락길 입구와 북카페 인근, 능안정 아래 전망대에서는 인왕산, 북한산, 청와대가 한눈에 들어오는 장관을 감상할 수 있다. 흔들바위, 북카페, 숲속무대 등 볼거리도 많다. 자락길을 통해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독립문, 이진아기념도서관, 서대문자연사박물관, 안산허브공원, 홍제천폭포마당, 천년고찰 봉원사도 함께 둘러볼 수 있다. 홍혜정 기자 jukebox@seoul.co.kr
  • [사설] 바닥 드러낸 문화재 관리수준 이대론 안 된다

    결국 국보 1호 숭례문은 두 번 죽는 꼴이 됐다. 2008년 2월 방화로 불탄 숭례문이 지난 5월 5년 만에 복구된 모습을 드러냈을 때 국민은 환호했다. 광화문 광장에서는 복구를 기념하는 신명난 판굿까지 열렸다. 그러나 지금 국민의 품에 안긴 숭례문의 모습은 참담하기 그지없다. 복원 반년 만에 단청은 벗겨지고 기둥과 추녀는 갈라지고 뒤틀렸다. 전통기법과 재료로 복구하기 위해 다양한 고증을 거쳤고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 등 최고의 장인이 참여해 복구했다는 말이 무색하다. 문화재 수리 자격증까지 불법 거래됐다니 문화재 관리의 토대가 무너진 셈이다. 숭례문을 이 모양으로 만들어 놓고도 복원 책임자들은 시간에 쫓겨 작업을 서두르다 보니 덜 마른 나무를 쓸 수밖에 없었다느니, 예산이 부족했다느니 ‘변명’하기에 바쁘다. 문화재청은 숭례문을 복원하면서 목재 구입에 2억 3000여만원을 쓰고 홍보성 사업 등에는 수십 억원을 썼다고 한다. 부실은 애초에 예견된 것이나 다름없다. 숭례문 복원은 온 국민의 염원인데 도대체 누구를, 무엇을 위해 홍보했다는 것인가. 문화재청 차원의 자체 감사와 별개로 감사원은 전면적인 감사에 나서야 한다. 예산 지출에 편법은 없었는지, 하도급 과정에 특혜는 없었는지 낱낱이 밝혀내야 한다. 관계 당국자든, 현장의 복원 기술자든 책임자에 대한 문책도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전국적으로 훼손 위기를 맞고 있는 문화재가 한둘이 아니다. 세계문화유산인 경주 석굴암(국보 제24호)에도 25곳의 균열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문화재청은 “아직까지 구조체의 안전에는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이번 ‘제2의 숭례문 참사’를 감안하면 온전히 믿기 어렵다. 문화재 전반에 대한 관리 상황을 철저히 파악하고 안전대책을 서둘러 마련하기 바란다. K팝을 비롯한 한류가 아무리 세계를 향해 뻗어나가도 진정한 문화강국의 길은 아직 멀기만 하다. 속살이 여물지 않고 겉만 번지르르한 것은 진짜 문화가 아니다. 백범 김구 선생의 말이 새삼 절실하게 다가온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도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현 정부는 문화융성을 국정과제로 내세웠다. 문화가 있는 삶을 약속했다. ‘숭례문 트라우마’ 를 치유해 구겨진 국민의 문화적 자존심을 되살려야 한다. 그 첫 단추는 부실 책임자에 대한 엄중한 문책이다.
  • 박대통령 “숭례문 등 부실복구 철저 조사 엄중 문책”… 비리 논란 정면 언급 파장

    박대통령 “숭례문 등 부실복구 철저 조사 엄중 문책”… 비리 논란 정면 언급 파장

    박근혜(얼굴) 대통령이 11일 숭례문(국보 1호) 부실 복구 등 문화재 보수사업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라고 지시하면서 문화재 부실 관리 문제를 둘러싼 파장이 커지고 있다. 박 대통령이 문화재 보수에 대한 부실 논란을 정면으로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박 대통령은 오늘 오전 숭례문의 부실 복구를 포함해 문화재 보수 사업 관리부실 등과 관련한 문화재 행정 전반에 대해 철저한 조사를 통해 문제점을 밝히고, 비위 관련자에 대한 엄중한 문책과 제도적인 보완책 마련을 지시했다”고 말했다. 이 수석은 “이것은 ‘비정상의 정상화’ 차원에서도 대통령께서 중요하게 여기고 있으며, 아침에 비서실장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 전에 비서실장에게 이렇게 지시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문화재 관련 비리를 원전 비리 못지않게 심각하게 여기고 있다고 전했다. 박 대통령의 이 같은 지적은 최근 숭례문 복원에 엉터리 목재가 사용되고 기둥·추녀가 갈라지고 틀어졌다는 사실이 언론에 집중보도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국보 24호인 석굴암의 균열 상태도 심각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수석은 “최근 숭례문 부실 복구 시비는 말할 것도 없고 석굴암 등 주요 문화재 등에 대해서도 비리가 있었다면 관련자는 당연히 엄중문책해야 할 것”이라면서 “최근 언론 등에서 보도된 문화재 수리 자격증 불법거래 현상 등은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한 문화재 전문가는 “문화재 비리를 원전 비리와 비교했다는 것은 문화재 부실 관리에 대한 대통령의 위기의식을 단적으로 보여 준 것”이라면서 “어떤 식으로든 제도적인 보완책이 확고히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가 추진하는 ‘문화융성’ 정책에 문화재 부실 관리 체계가 찬물을 끼얹는다고 대통령이 판단했다는 풀이들이다. 2008년 2월 화재로 소실된 숭례문은 지난달 초 복구된 지 5개월 만에 단청이 벗겨지는 등 부실 공사 논란을 빚었다. 문화재청과 공사를 맡은 전문가들은 단청 외에도 기와, 누각 기둥 등 여러 곳에서 부실 보수의 징후가 엿보인다는 의견을 개진해 왔다. 이에 문화재청은 지난달 숭례문 종합점검단을 꾸려 숭례문 현장과 덕수궁 회의실에서 여러 차례 대책을 논의했다. 위원장에는 경기대 명예교수인 김동욱 문화재위원회 건축분과 위원장이 선출된 상태다. 대통령까지 문화재 관리의 총체적인 부실을 지적하고 나섬에 따라 향후 문화재 관리 전반에 관한 감사원 감사나 검찰 수사가 뒤이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해할 수 없는 문화재청의 안이한 대응 태도도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문화재 관리 정상화 방안에 대한 대통령의 직접적인 지적이 있은 직후에도 문화재청 내부에는 특별한 긴장감이 읽히지 않았다. 한 고위 관계자는 “(청와대 등 상급기관에서) 어떤 지시도 내려오지 않았다. 문제점이 있으면 바로잡을 것”이라는 입장만 밝혔다. 문화재 행정을 둘러싼 개혁은 조만간 윤곽을 드러낼 전망이다. 당·청은 물론 문화재청의 상급기관인 문화체육관광부가 나서 관련 법률 제정 등에 나설 움직임이 있기 때문이다. 문체부 고위 관계자는 “문화재청의 안이한 행정에 대해 부처 내에서도 그동안 지적이 끊이지 않았지만 현실적으로 바로잡을 구속력이 없었다”면서 “이번 일을 계기로 어떤 형식으로든 행정 조치가 취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오일만 기자 oilman@seoul.co.kr
  • 북한산 도선사 진입로 새단장

    국립공원관리공단 북한산사무소는 지난해부터 시작한 우이동 진입도로에 보행자 전용로를 완성해 개방한다고 10일 밝혔다. 북한산 우이분소~도선사 간 2.0㎞ 구간의 진입도로(실제 보행 탐방로)는 차량과 도보이용 탐방객이 뒤엉켜 안전사고 위험으로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 보행자 전용도로는 우이분소~도선사 간 약 2.0㎞ 진입 도로변을 따라 기존의 갓길 공간과 숲속 샛길을 활용, 목재데크·교량 등을 재정비해 차량과 보행로를 분리시켰다. 공사는 토목, 환경단체 등 여러 전문가들의 자문을 거쳐 완성했다. 북한산의 탐방코스 중 최고봉인 백운대에 최단 코스로 가려면 우이동 도선사 진입로를 통해야 한다. 연간 60여만명의 탐방객이 이 도로를 이용하고 있다.
  • [커버스토리] 한국형 산림휴양 세계로 수출한다

    한국형 산림복지 모델의 세계 진출이 가시화되고 있다. 산림복지와 관련된 지원을 요청한 국가는 인도네시아와 중국이다. 지난달 10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한·인도네시아 양국은 산림 휴양 및 생태 관광 분야 협력에 대한 양해각서를 교환했다. 기존 목재, 바이오매스 에너지 확보를 위한 산림산업 위주의 협력을 산림 휴양 등으로 확대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인도네시아는 경제 개발 마스터플랜의 일환으로 롬복과 발리를 중심으로 지정된 경제벨트에서 생태 관광 사업을 추진 중이다. 발리 등은 관광산업과 휴양 문화는 앞서 있지만 산림 휴양에 대한 노하우가 부족하다. 한국의 참여를 요청한 롬복 지역은 생태 관광이 주요 산업으로, 한국이 앞선 경험을 전수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중국과도 지난달 16일 열린 제9차 한·중 산림협력회의에서 산림 휴양을 협력 분야로 정해 발굴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중국은 북경 인근에 조성할 예정인 숲체원(5곳)의 입지 선정 및 자문을 위해 우리 측에 전문가 파견을 요청했다. 중국 국가임업국 대표단은 청태산자연휴양림과 숲체원 치유의 숲을 찾아 프로그램을 직접 체험하는 등 적극적으로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대전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목재의 귀족’ 獨양벚나무 2년 만에 국내 증식 성공

    세계에서 가장 비싼 목재 중 하나로 ‘목재계의 귀족’으로 평가받는 독일산 양벚나무의 국내 공급이 가능해졌다. 국립산림과학원은 7일 독일산 양벚나무의 증식 기술을 개발해 식물검역을 최종 통과했다고 밝혔다. 산림과학원이 2011년 6월 독일 연방 서부산림연구소로부터 개량된 양벚나무 슈퍼 클론(10개체)을 도입한 이후 2년여의 연구 끝에 이뤄낸 성과로, 국내에서 야외 식재가 가능해진 것이다. 식물검역원은 2년여간 클론묘의 생장 주기에 따라 묘목에서 발생하는 병해충을 면밀하게 조사해 병해충 문제가 없다는 검역 완료를 통보했다. 양벚나무는 낙엽수종으로 높이는 15~32m, 직경은 1.5m까지 자란다. 꽃나무로 재배되는데 나무의 크기로 인해 주로 공원에서 키운다. 단단한 적갈색 체리목은 선반목가공재나 캐비닛, 악기재로 사용하는 등 가치가 높다. 문흥규 산림생명공학과장은 “외국 임목류 클론을 국내에 들여와 시험 통과한 것은 처음”이라면서 “야외 생장시험을 거친 후 보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산림과학원은 독일산 양벚나무 증식기술을 특허 출원했다. 대전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명인·명물을 찾아서] 인천 중구 ‘근대역사문화의 거리’

    [명인·명물을 찾아서] 인천 중구 ‘근대역사문화의 거리’

    우리나라에서 근대 개화기 유물이 가장 많은 곳은 어디일까? 이러한 질문을 받는다면 대개의 사람들은 ‘서울’이라고 답할 것이다. 오래된 수도인 데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점하기 전부터 일본인들이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정답은 개항의 관문이었던 ‘인천’이다. 인천 중구에는 제물포가 개항된 1883년부터 한일합병이 이뤄진 1910년대에 이르는 개화기 시대의 건물 50여채가 크게 훼손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당시로서는 생소한 용도의 건물인 은행·호텔·교회·기상대 등이 일본, 중국, 유럽 등 외국 양식에 따라 세워졌다. 중구는 지난달 3일 자유공원 등에서 ‘근대개항 거리문화제’를 열었다. 구는 이 일대가 우리나라 개항기 모습이 가장 잘 보존된 곳임을 강조하기 위해 3년째 거리문화제를 열고 있다. 실제로 중구는 개항기 건축물이 밀집한 데다 국내 최초의 도시계획구역이어서 ‘개항장 근대역사문화의 거리’로 불린다. 어찌 보면 치욕의 역사가 담겼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도시학적 측면에서 보면 다양한 형태의 각국 건물이 자리 잡고 있어 개항도시 인천의 포용성이 느껴진다. 중구청 앞 골목(중앙동2가)에 있는 옛 ‘일본58은행 인천지점’은 1892년 지어진 2층 석판 마감 건물로 발코니, 도머창, 맨사드지붕 등은 프랑스풍 르네상스 양식이다. 인천전환국에서 만든 신구 화폐를 교환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바로 옆에 있는 ‘일본18은행 인천지점’은 2006년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으로 바뀌어 근대 건축문화를 일목요연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18은행에서 50m쯤 떨어진 ‘일본제1은행 인천지점’은 1899년 건립돼 일본영사관 금고 역할을 했으나, 2010년 ‘인천개항박물관’으로 변신, 인천항을 통해 처음 소개된 근대문물 중 대표적인 것들을 소개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호텔이었던 ‘대불호텔’ 복원 방안도 추진된다. 이 호텔은 외국인들에게 최초로 커피를 팔아 인기를 끌었다. 경인 철도가 놓이기 전 인천에서 서울로 가려면 인천에서 하루 묵어야만 했고, 이런 수요 때문에 1888년 중앙동1가에 세워진 이 호텔은 서양식으로 설계된 3층 목재 건물이었다. 경인선 개통으로 수요가 감소하자 경영난에 직면한 대불호텔은 1918년 중국음식점인 ‘중화루’로 간판을 바꿨다가 1978년 건물이 헐렸다. 부지 소유주인 김모씨가 지난 9월 386㎡를 중구에 기부채납함에 따라 구는 다음 달 인근 부지까지 매입해 대불호텔 복원·활용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원형보존’ 조치가 내려진 지 2년 만이다. 중구청 앞 큰 길가에 있는 ‘아트플랫폼’은 본래 인천항 개항 후 물류운송 업무가 증가하면서 지어진 10여동의 적벽돌 창고였다. 구는 이곳을 지역 예술인들이 다양한 문화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했다. 지난 9월 한 창고 건물을 리모델링해 만든 ‘한국근대문학관’에서는 한국 근대문학을 체험할 수 있다. 중구청 뒤편에 있는 자유공원은 1888년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근대공원이다. 개항 이후 서구 열강들이 인천을 거류지로 삼고 세력을 확장해 가는 과정에서 완충 역할을 한 공간으로 처음에는 ‘각국공원’으로 불렸다. 인천기상대는 개항 뒤 선박 입출항이 빈번해진 인천항의 기상관측이 중요해지자 1905년 건립된 한국 최초의 근대식 기상대다. 1923년 항동6가에 지어진 인천우체국(현재 인천중동우체국)은 90년간 동일한 용도로 사용되고 있는 특이한 존재다. 이 외에도 청·일 조계지 ‘경계계단’(선린동), 인천 거주 외국인들의 사교클럽이었던 ‘제물포구락부’(송학동1가), 대한성공회 ‘내동교회’(답동), ‘청국영사관’(북성동3가, 현재 화교학교) 등이 한국 근대사에서 인천이 지니는 역사성을 몸소 증명하고 있다. 황은경(53)씨는 “인천에 오래 살면서도 근대 역사와 관련된 문화재가 이처럼 많은 줄 몰랐다”면서 “근대역사문화의 거리를 찾은 뒤 인천이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는 창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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