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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평범한 전관/최광숙 논설위원

    최근 광화문 사거리에서 한 전직 장관을 봤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운전기사가 딸린 관용차를 타고 다녔을 그가 도심 한복판을 홀로 걷고 있으니 왠지 낯설게 느껴졌다. 수행 비서가 챙기고 다녔을 서류 가방은 이젠 그의 손에 들려 있다. 재킷 안에 검은 터틀넥을 입은 편안한 옷차림도 한결 자유로워 보인다. 일상의 시민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흔적들이 여기저기서 묻어난다. 예전에 한 중진 의원이 동네 목욕탕만을 고집하는 이유를 말한 적이 있다. “잘나갈 때 호텔 사우나만 다녔다. 그런데 낙선한 이후 형편이 좋지 않은데도 선뜻 동네 목욕탕을 못 가겠더라. 훗날을 생각해 미리 대중탕을 다니는 연습을 하고 있다.” 아무리 고관대작이라도 관직에서 벗어나면 그 이전의 삶과는 달라지게 마련이다. 로펌 등에서 전관(前官) 예우를 받는 이들도 있지만 의미 있는 일을 찾아 소소한 일상을 즐기며 살아가는 이들도 적지 않다. 며칠 전 본 그 장관도 또 다른 명예나 이익을 좇지 말고 동네 목욕탕을 다니는 보통 사람들의 삶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마음이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키프로스發 악재… 롤러코스터 탄 환율

    키프로스發 악재… 롤러코스터 탄 환율

    원화 가치가 다시 요동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 초까지는 원화가치가 급격히 상승했으나 지금은 반대로 급락하고 있다. 북한발 리스크와 달러화 강세, 키프로스 구제금융 협상안 비준 실패 등이 맞물린 결과다. 이에 따라 금융거래세 등 한국형 토빈세 도입을 검토하던 금융당국의 셈법도 더욱 복잡해지는 양상이다. 규제 도입 시기를 가늠하기 힘든 상황이다. 20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4.5원 오른 1116.10원에 마감됐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1월 11일 1054.70원까지 떨어진 뒤 두달여 만에 61.4원이나 상승했다. 지난해 5월 말 1180.3원에서 1050원까지 130원 넘게 떨어졌던 것을 감안하면 환율이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셈이다. 환율 상승의 직접적 요인은 키프로스 악재다. 키프로스 의회가 구제금융 협상안 비준을 거부함에 따라 안전자산인 달러 선호 현상이 강해졌다. 대북 긴장 고조에 따른 ‘코리아 디스카운트’ 확대도 주요 원인이다. 지난달 북한 3차 핵실험과 이에 따른 대북 금융 제재, 북한의 강경 도발 등은 원화 가치 하락을 부추기고 있다. 반면 미국 경기 회복과 양적완화 종료 기대감은 달러화 가치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환율 상승의 또 다른 변수는 외환당국에서 나왔다. 은성수 기획재정부 국제금융정책국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기존 외환건전성 조치 강화와 별개로 다양한 형태의 금융거래세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면서 “자본유출입 변동성 완화가 목표”라고 설명했다. 재정부의 가장 큰 고민은 금융거래세 등 각종 규제책을 언제 도입할 것인가다. 1월 말까지만 하더라도 “한국형 토빈세 도입을 검토하겠다”(최종구 재정부 국제경제관리관)며 도입 가능성을 한껏 높였지만 이후 환율이 다시 상승세를 탔다. 외환 규제의 공식적 목적은 환율 변동성 완화다. 하지만 그 배후에는 고환율에 대한 거부감이 깔려 있다. 정부 입장에서 지금이 굳이 칼을 뺄 타이밍이 아니라는 뜻이다. 외환당국 고위 관계자는 “내일 어떻게 금융시장이 급변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섣불리 규제를 도입했다가 외화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악몽을 다시 겪지 말라는 법은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환율이 상승할 때 각종 규제를 취해야 한다는 의견도 상당하다. 다른 재정부 관계자는 “목욕탕 수리 공사는 비수기인 여름에 한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면서 “환율이 장기적으로는 하락할 여지가 큰 데다 (환율이 오를 때 규제를 하면) 환율 조작국이라는 국제 사회의 비난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다.”고 귀띔했다. 세종 이두걸 기자 douzirl@seoul.co.kr
  • 여야, SO변경허가 - 지상파 인허가권 합의문 해석 충돌

    여야, SO변경허가 - 지상파 인허가권 합의문 해석 충돌

    정부조직개편안이 국회 상임위 심의과정에서 표류하고 있다. 여야는 20일 본회의를 열어 정부조직개편 관련 법률 개정안을 처리하기로 했지만 합의문 해석을 놓고 이틀째 충돌을 빚으면서 처리에 실패했다. 이날 문화체육방송통신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여야는 지상파 방송 최종 허가권과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의 변경 허가권을 놓고 팽팽히 맞섰다. 새누리당 이철우 원내대변인은 “지난 17일 작성된 여야 합의문 9번 조항을 보면 ‘기술된 내용을 제외한 나머지 사항은 새누리당이 제출한 정부조직법 개정안대로 한다’고 돼 있다”면서 “합의하지 않은 내용을 들고 나온 민주통합당이 법률안 처리 지연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민주당은 “방송은 방송통신위원회에서, 통신은 미래창조과학부에서 각각 담당하는 것이 합의 내용”이라고 반박했다. 윤관석 원내대변인은 “큰 틀에서 합의해 놓고 합의문에 없다는 이유로 틈새를 노리는 것은 합의정신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또 새누리당은 지상파 방송 허가권을 미래부로 넘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합의문에 전파방송관리와 주파수 정책 관련 업무를 미래부로 이관하는 것으로 명시됐다는 이유에서다. 김기현 원내수석부대표는 “방통위 직제에 무선국 허가는 전파방송관리과의 소관 업무로 명시돼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합의문에 ‘방송용 주파수 관리는 방통위 소관으로 한다’, ‘지상파 방송정책 업무는 방통위에 존치한다’는 내용을 근거로 지상파 방송 허가권도 방통위에 두는 것이 합당하다고 주장했다. SO 변경허가권을 두고 새누리당은 “방송의 공정성 담보를 위해 방통위의 사전 동의를 받아야 하는 항목에서 제외된다”고 밝혔다. 이에 민주당은 “SO 변경허가권도 미래부 이관 업무인 만큼 허가·재허가권과 함께 방통위의 사전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원내대변인은 “새누리당이 계속 합의정신에 위배되는 주장을 하면 협상 자체를 원점에서 재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설전도 이어졌다. 민주당 유승희 의원이 “허가의 개념에 변경허가가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은 목욕탕에 가서 샤워하지 말라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하자 새누리당 김 수석부대표는 “1, 2층에 목욕탕과 헬스장이 있다고 할 때 한 번 돈 냈다고 모두 들어가는 건 아니다”라고 맞받았다. 문방위 여야 간사는 밤 늦게까지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각자 지도부와 협의한 뒤 다시 만날지, 원내대표 간 정치적 합의에 맡길 것인지를 놓고 저울질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본회의가 21일에도 예정돼 있어 막판 처리 가능성은 남아 있지만 여야가 이견을 좁히지 못해 이날 본회의 통과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이스라엘-신의 땅에서 울다가 웃다가 ①悲 로마의 구둣발에 짓밟히랴

    이스라엘-신의 땅에서 울다가 웃다가 ①悲 로마의 구둣발에 짓밟히랴

    ISRAEL 신의 땅에서 울다가 웃다가 강해 보이기만 했던 이스라엘을 옆에서 바라보니 곳곳에 흉터가 선명했다. 이스라엘이 낸 ‘민족과 종교’라는 어려운 문제를 풀면, ‘사해·사막·지중해’가 들어있는 3종 선물 세트가 기다린다. 글·사진 구명주 기자 취재협조 이스라엘관광청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悲 로마의 구둣발에 짓밟히랴 Masada마사다 & Qumran쿰란 강자 앞에서 당당하고 약자 앞에선 따뜻하고 싶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지리멸렬한 싸움을 지켜보는 내 마음은 팔레스타인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편향된 마음을 들킨 것인지, 이스라엘 여행은 처음부터 꼬였다. 출국을 코앞에 두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인 하마스 간의 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신문 국제면이 ‘이스라엘-하마스 교전 격화…전면전 가능’, ‘하마스 군 수장 사망’ 등 살벌한 이야기로 도배됐다. 사실 따지고 보면 안전한 나라가 그 어디 있는가. 내 나라만 하더라도 서로 남과 북으로 찢어져 으르렁거리고 있는데 말이다. 다행히 하늘이 도왔다. 출국일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을 때, 현지에서 연락이 온 것이다. “휴전에 합의했으니 안심하고 와도 좋다.” 100여 명을 일주일 만에 죽이고 1,000명을 다치게 했다는 이번 전쟁은 시작도 끝도 문을 여닫는 것처럼 간단해 보였다. 짧은 말다툼으로도 마음이 들들들 끓는데, 총과 칼을 내젓는 싸움이 쉬울 리 없다. 이스라엘을 여행한다는 건 피고름이 철철철 흐르는 그들의 과거사를 훑는 과정이다. 이스라엘의 조상은 신에게 아들이삭을 제물로 바치려고 했던 아브라함1). 아브라함이 신으로부터 받은 땅은 바로 ‘젖과 꿀이 흐른다’는 가나안이다. 신의 간택을 받았을지언정 아브라함의 자손은 끝없는 고통 속에서 광야를 헤맸다. 그들의 수난사를 읊자면 끝도 없다. 유대인에게 행복한 과거란 노역생활을 하던 이집트를 탈출해 가나안을 되찾았던 순간, 지혜로운 다윗과 솔로몬을 왕으로 삼았던 시절 정도였을 테다. 여기에 십자군전쟁의 박해, 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의 삶까지 더하면 ‘신은 정말 있습니까’ 하고 저절로 묻게 된다. 특히 이스라엘에서 로마제국의 발길질은 악명 높았다. 이탈리아를 지도에서 찾아보면, 지중해에 발을 담근 구두 한 짝과 같은 모양새다. 신발의 높다란 굽으로 로마군은 유대인을 마구잡이로 밟아댔다. 척박한 사막을 비집고 자리한 기괴한 마사다Masada 는 로마군과 유대인의 처절한 싸움을 그 자리에서 똑똑히 지켜봤다. 450m의 높이에 들어선 이 요새는 길이 600m, 너비 320m로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AD70년, 로마에서 온 디도 장군의 박해를 피하고자 유대인 960여 명이 마사다로 몰려들었다. 도망자들을 가만히 손 놓고 봐 줄 로마군이 아니다. 1만5,000여 명의 로마군은 마사다를 정복하고자 수를 쓴다. 하늘에 닿을 듯이 높은 마사다에 오르지 못해 쩔쩔매던 로마군은 요새로 들어가기 위한 경사로를 3년에 걸쳐 만들었다. 경사로가 마사다에 닿았을 때, 그곳에서 로마군을 기다린 것은 유대인의 시체 960구. 유대인들은 로마군에게 능멸을 당하는 대신 죽음을 택하기로 했던 것이다. 죽음을 도울 사람을 제비뽑기로 뽑고 최후의 1인은 자살하는 식으로 그들은 끝까지 ‘절개’를 지켰다. 마사다 정상에 오르면 900명이 넘는 유대인이 어떻게 3년간 마사다 꼭대기에서 생활할 수 있었는지 궁금증이 풀린다. 이곳엔 목욕탕, 창고, 채석장, 교회, 수영장 등이 아직도 남아 있다. 마사다의 본래 용도는 왕의 피난처였다. BC40년경 헤롯왕2)은 본인이 도망갈 곳으로 마사다를 지었고 온갖 시설을 갖추었다. 헤롯왕이 만든 시설을 이용하며 목숨을 부지하던 유대인은 빗방울을 모으려 도랑을 만들고 단백질을 섭취하기 위해 비둘기까지 길렀다고 한다. 마사다 정상까지는 케이블카로 금방이건만 많은 유대인은 가파른 마사다를 직접 두 발로 오르며 그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마사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쿰란 동굴Cave of Qumran이 있다. 쿰란 동굴 역시 마사다와 마찬가지로 로마에 굴하지 않은 유대인의 삶을 증명한다. 유대교의 한 종파인 에세네파는 쿰란 동굴에 숨어 살던 은둔주의자들이었다. 에세네파는 성경사본을 항아리에 담아 숨겨놓았는데 2,000년이 지난 1947년, 목동이 염소를 찾던 중 항아리를 발견한다. 그 속에서 사해본Dead Sea Scroll으로 불리는 양피지 두루마리 7개가 나왔다. 1)아브라함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이다. 그는 ‘아들인 이삭을 제물로 올리거라’는 신의 명령을 따르려 했을 정도로 신에게 충성했다. 현재 물과 기름 같은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는 사실 알고 보면 아브라함을 한 조상으로 삼고 있다. 2)헤롯왕 이스라엘 일대를 다니다 보면 이스라엘을 통치했던 헤롯왕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헤롯왕은 아기 예수가 두려워 ‘어린아이를 모조리 죽이라’고 지시했던 왕으로 유명하다. 악덕한 왕이긴 했지만 그는 건축에 조예가 깊었다. 무너진 예루살렘의 성전을 대대적으로 재건축했으며 자신의 피난처로 철옹성 같은 마사다를 축조했다. 1 로마의 발길질을 피하고자 발버둥친 유대인의 흔적을 이스라엘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국기에 새겨진 별은 ‘다윗의 별’로 불린다 2 검은 양복을 고수하는 정통 유대교인 3 ‘머리 위에 신이 있다’는 의미의 작은 모자, 키파 4 유대인은 예수의 이야기를 닮은 신약성서를 부정하고 구약성서만을 읽는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그것은 누구의 사원인가 Temple Mount성전산 & Western Wall통곡의 벽 마사다와 쿰란을 돌아보던 중 고개를 들었다. 모래바람이 풀풀 날리는 사막 한가운데서 보이는 것이라곤 너른 하늘과 뜨거운 태양뿐. 왜 유대인이 ‘하나의 신’만을 숭배하는지 퍼뜩 이해가 됐다. 그들에겐 이리저리 떠돌며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잡아 줄 강력한 절대자가 필요했을 것이다. 반대로 불교는 ‘숲의 종교’라 불린다. 울창한 숲은 사막과 달리 풍요로워 수많은 식물과 동물이 살아간다. 유일신이 필요 없다. 인간이 곧 신이 될 수 있으며 그저 인간은 자연과 더불어 살면 된다. ‘하늘에 계신 신’을 아버지로 삼는 건 유대교뿐만이 아니다. 유대교에서 뻗어 나온 기독교, 이슬람교도 마찬가지다. 한 발자국 떨어져서 보니 세 종교가 하나로 겹쳐져 보였다. 한 뿌리에서 뻗어 나왔을지언정 결코 세 종교를 같다고 말할 수도 없고, 말해서도 안 된다. 종교의 각축장인 예루살렘에 입성하면 세 종교의 정체를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다. 예루살렘을 조망할 수 있는 감람산에 올랐다. 공동묘지 너머로 성전산Temple Mount이 보였다. 성전산은 유대인, 기독교인, 이슬람교인 모두 ‘성지’라 여기는 곳이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 했던 산인 동시에 예수의 발길이 닿은 곳이며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마호메트가 말을 타고 승천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곳에 서니 세 개의 종교가 동시에 “우리가 진짜”라 외치는 것만 같아 현기증이 났다. 지금 성전산에는 황금색 모자를 쓴 황금사원Dome of Rock이 서 있다. 이슬람교도가 예루살렘을 점령하며 지은 이 사원은 오마르 모스크Mosque of Omar로도 불리며 메카와 메디나만큼이나 중요한 곳으로 여겨진다. 당연히 유대인은 이슬람교도가 축조한 황금사원을 보며 칼을 간다. 그들은 성전을 두 번이나 지었으나 두 번 모두 잃었다. 솔로몬왕 시절 지어진 첫 번째 성전은 전란 중 부서지고 말았고 두 번째 성전은 로마 디도 장군에 의해 처참하게 파괴됐다. 디도 장군은 과시용으로 성전의 서쪽 부분 일부를 남겨 두었는데 그 흔적이 통곡의 벽Western Wall이다. 땅을 잃은 백성은 수천년이 지난 오늘에서야 이 벽 앞에 선다. 세우면 무너지고, 찾으면 또 뺏기고…. 약자의 역사를 이해한다. 우리의 조상도 그랬을 것이다. 전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유대인은 성전을 다시 세울 ‘그날’을 기다리며 통곡의 벽에 머리를 조아렸다. 키파1)를 쓰고 몸을 앞뒤로 흔들며 토라2)를 읽는 그들의 모습은 생경하다. 구레나룻을 돌돌 말고 검은 양복을 입은 정통 유대교도도 여기선 흔하게 보인다. 1) 키파 유대인이 쓰는 테두리 없는 모자. ‘하느님이 내 머리 위에 있다’는 뜻으로 크기는 손바닥 크기 정도. 이스라엘 어디서든 쉽게 살 수 있으니 기념품으로 사 와도 좋다. 2) 토라Torah 유대인은 예수의 행적을 담은 신약성서를 인정하지 않고 구약성서만을 읽는다. 토라는 구약성서의 처음 다섯 권을 일컫는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교실서 강제로 바지 내려 성추행 담임교사는 폭력 알고도 침묵

    “최군의 집에서 한때 함께 지내기도 한 가해학생 김모군이 여럿이 있는 목욕탕에서 최군에게 자위행위를 시켰다.” 지난 11일 학교폭력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북 경산 고교생 최모(15)군에게 또 다른 성적 가해 행위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14일 경북 경산경찰서는 숨진 최군과 같은 중·고등학교를 다닌 동급생 16명을 대상으로 ‘학교 폭력 피해 또는 목격 여부’를 설문조사한 결과 위와 같은 증언을 받았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닌 한 동급생이 성적 가해 행위가 있었다고 증언했다. 이에 앞서 경찰은 동급생들로부터 최군이 중학교에 다니던 2011년 7월 가해학생의 강요로 같은 반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강제로 성기를 내보이는 수모를 당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바 있다. 설문조사에 응답한 동급생 16명 가운데 5명이 최군이 학교 폭력을 당하는 것을 봤다고 답했다. 또 5명 가운데 2명은 최군 말고 다른 학생이 가해학생 가운데 1명으로부터 빵셔틀 등 폭행을 당하다가 중학교 3학년 때 전학을 갔다고 응답했다. 이번 설문조사에서 ‘학교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학생 2명이 더 확인돼 피해학생은 최군을 포함해 모두 7명으로 늘었다. 경찰은 우선 최군의 유서에 적힌 가해학생과 피해학생을 15일 잇따라 소환해 조사할 방침이다. 최군의 유서에서 가해학생으로 지목된 중학교 동창생 권모(15)군은 중학교 때 속칭 ‘짱’으로 통하며 7, 8명이 몰려다니면서 학생들의 돈을 갈취하거나 폭행했다고 최군의 중학교 동창생이 경찰에서 진술했다. 또 다른 가해 학생으로 지목된 정모·배모·서모·김모군 등 4명도 2011년 3월부터 지난해 12월 사이에 교내에서 최군을 폭행했다고 동창생들은 밝혔다. 최군의 어머니(47)는 “돌이켜 보면 아들이 중학생이 된 후 학교 폭력에 시달리는 몇 가지 징후들이 간간이 보였다”면서 “아들이 하늘나라로 떠난 지금 그것을 미처 막지 못한 게 한으로 남는다”고 울먹였다. 최군이 올해 청도 J고교로 진학한 이후인 지난 6일 또는 7일쯤에도 또 다른 친구 박모(15)군이 학교 기숙사에서 발로 최군의 배를 한 차례 폭행했다는 것. 최군은 이 같은 폭행 탓에 기숙사에 들어간 지 일주일도 안 돼 집으로 돌아온 것으로 추측된다. 최군의 어머니는 “아들이 금방 나온다고 하니 순간 이상했지만 별다른 의심은 하지 않았으며, 그저 집이 편한가 보다라고만 생각했다”고 말했다. 최군이 다닌 중학교는 최군이 폭력에 시달린 사실을 알았지만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경찰은 최군이 2011년 여름쯤 학교 폭력을 당했고 담임교사가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학교 측은 같은 해 학교폭력방지위원회를 네 차례 열었지만 최군에 대한 폭력과는 관련이 없었다. 한편 경찰이 최군의 행적을 조사한 결과 투신하기 전 한 시간가량 아파트에 머물며 망설였던 것으로 추정했다. 최군은 11일 오전 6시 21분쯤 집에서 나와 경산역에서 기차를 타고 인근 청도역에 내려 학교 앞에 도착한 뒤 학교에 들어가지 않고 2학년 선배인 전모(16)군과 함께 학교 주변을 배회하다 버스를 타고 다시 청도역에 간 것으로 확인됐다. 최군은 오전 10시 43분쯤 경산역에 내려 인근 정평동 PC방에서 시간을 보내다 오후 1시~3시 30분쯤 공원을 배회한 뒤 전군에게 돈 500원을 빌려 오후 6시 30분까지 집 주변 PC방에 머물렀다. 폐쇄회로(CC)TV 확인 결과 최군은 오후 6시 43분쯤 자신이 사는 아파트에 들어선 모습이 포착됐고 한 시간 후 아파트 현관 지붕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 경산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중1 자유학기제 활용 ‘독서진로탐색법’

    올해 중학교 2학년에 올라와 자신의 진로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시작한 민수홍(15)군. 최근 들어 문화재 연구가의 길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우연히 읽은 책 한 권이 민군의 장래희망을 구체화하는 데 도움이 됐다. 역사와 문화재에 대해 평소 관심이 많았던 민군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읽은 뒤 문화재는 단순히 보존해야 하는 과거의 것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게 됐다. 민군은 “고대 로마에만 공중목욕탕이 있다고 알고 있었는데 제주도에도 공중목욕탕이 있었다는 것을 책을 통해 알게 되면서 문화가 곧 역사라는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었다”면서 “책을 읽은 뒤 내가 관심있는 분야를 확실히 알고 진로방향을 정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이 올 1학기부터 시내 11개 연구학교의 중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중1 진로탐색 집중학년제’를 시행하는 가운데 새 정부의 교육 공약으로 언급된 ‘자유학기제’에 대해 학생·학부모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자유학기제는 학생들이 입시를 위해 맹목적인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독서, 예체능, 진로체험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자신의 진로와 꿈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 보는 기회를 준다는 취지다. 아직 시범운영 단계지만 시험 부담을 덜고 진로 설계 기회를 넓혀 준다는 점에서 기대가 높다. 실습이나 직업체험 활동 등에 대한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에서 자유학기제의 취지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학생 개인의 노력이 중요하다. 특히 다양한 진로의 분야를 간접 경험해 볼 수 있는 독서진로 탐색은 가장 쉽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꼽히고 있다. 독서진로탐색을 하기 위해서는 총 세 가지 단계를 거쳐야 한다. 학생이 탐색할 대상이 되는 직업군을 결정하는 단계, 관련된 도서와 직업 체험을 학습을 할 수 있는 곳을 찾고 준비하는 계획 단계, 마지막으로 학생들이 직업 체험에 대해 추가적인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자료 검색을 하는 자율학습 단계다. 탐색 단계에서는 학생이 평소에 관심 있어 하는 분야와 개별적인 성격검사(MBTI), 직업흥미검사 등 객관적인 검사를 통해 나온 직업군을 취합한다. 개인적인 관심 분야와 객관적인 검사를 통해 나온 직업군이 한 해 동안 진행할 진로 탐색의 대상이 된다. 계획 단계에서는 매월 하나의 직업군을 이해하고 간접 체험할 수 있는 책을 한 권 선정한다. 책을 읽고 매월 마지막 주말쯤에 책에 관련된 직업군을 체험하는 활동을 진행하는 것이 좋다. 독서진로탐색에서는 독서를 통해 흥미를 느낀 직업군을 직접 체험해 봄으로써 진로와 적성을 찾아보는 데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자율학습 단계는 학생 스스로 진로에 대해 궁금한 점을 탐색하는 과정이다. 독서와 체험학습으로 학생이 관심 있어 하는 직업군에 대한 정보 수집 및 간접 체험을 마쳤다면 자율적으로 본인의 진로와 적성에 대해 추가 검색을 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방송’에 관심이 있어 ‘청소년 미디어 센터’를 방문했다면 방송과 관련된 구체적인 직업에 대해 조사해 보고 많은 직업 가운데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능력을 요구하는 직업이 무엇인지, 가장 흥미 있는 직업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는 것이다. 박기현 한우리 독서토론논술 책임연구원은 “아이들이 독서를 통해 다양한 직업군을 접하고 직업 체험을 해 보는 과정은 자신의 진로를 스스로 선택하는 데 효과적”이라면서 “자유학기제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면 학생들이 자신의 미래에 대해 주체적인 자세를 갖고 꿈과 진로를 다양하게 생각해 보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샘이나 기자 sam@seoul.co.kr
  • [DB를 열다] 1964년 손님 없어 한산한 서울의 어느 이발소

    [DB를 열다] 1964년 손님 없어 한산한 서울의 어느 이발소

    1964년 1월 21일에 촬영한 서울 시내의 어느 이발소다. 이발료가 오른 뒤 손님이 없어 한가한 모습을 취재한 것이다. 이즈음 물가는 급등하고 있었다. 이발료는 50원에서 80원으로 60%나 올라 서민들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요즘은 목욕탕 이발관이나 미장원에서 머리를 깎으니 옛날 이발소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변두리로 나가야 가끔 눈에 띌 뿐이다. 옛날 이발소 풍경은 사뭇 다르다. 사진에도 보이듯이 우선 벽 위쪽에는 ‘이발소 그림’이 걸려 있다. 주로 값싼 풍경화나 물고기 그림이 벽면을 장식한다. 태극기를 걸어놓은 이발관을 발견하기도 어렵지 않다. 손으로 움직이는 이발기에 머리카락이 끼여 고통스러워할 때도 잦다. 그래도 이발사들의 구수한 세상 이야기를 들으면 용서가 된다. 이발이 끝나고 뜨거운 수건으로 얼굴을 감싸 놓으면 수염은 부드러워져 깎기 좋은 상태가 된다. 길이 20㎝가 넘는 이발소 면도칼은 가죽띠에 쓱쓱 문지르면 날이 선다. 비누거품을 바르고 면도를 마치면 수건들과 함께 빨랫줄에 수십 장씩 걸어놓은 신문지 쪼가리 중에서 하나를 떼어 칼에 묻은 거품을 닦아 내버린다. 이발소 한쪽에는 타일을 붙인 세면대가 있다. 머리를 박박 감겨주고 나서는 작은 물뿌리개로 시원하게 물을 부어준다. 그 옆에는 한여름을 제외하고는 연통이 밖으로 연결된 연탄 난로가 있어 물을 데우고 공기도 훈훈하게 해준다. 손성진 국장 sonsj@seoul.co.kr
  • 장면 前총리 손때 묻은 그대로… 명륜동 가옥 복원

    장면(張勉·1899∼1966) 전 총리의 서울 명륜동 가옥이 원형대로 복원돼 4·19에 맞춰 일반인에게 공개된다. 서울 종로구는 명륜1가 36-1에 있는 장면 가옥을 복원하고 안채·사랑채 등 4개 동에 165㎡(50평) 규모의 전시시설을 설치해 오는 4월 19일 개방한다고 6일 밝혔다. 장면 가옥의 외부와 목욕탕, 재래식 부엌 등을 원형 그대로 복원했다. 장면 가옥은 1937년 건립된 절충식 가옥으로, 일제 강점기의 교육·문화운동과 광복 후 정치활동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장 전 총리는 1966년 서거할 때까지 이곳에서 거주했다. 구는 마당, 안채, 대청마루, 안방 등에는 유물과 영상물 등을 설치했다. 총 39점의 유물뿐 아니라 장 전 총리와 가족들이 쓰던 선풍기, 장롱 등 가구도 함께 전시된다. 전시 유물은 크게 ‘유학과 신앙활동’, ‘나라 세우기’, ‘나라 지키기’, ‘평화의 실천’, ‘일생의 반려,김옥윤 여사’ 등으로 나뉜다. 장 전 총리가 친필로 신앙을 정리한 노트, 화학실험서와 학습장, 묵주, 기도문 3권 등 유학·신앙활동에 관한 유물부터 주미대사 신임장, 유엔총회 대한민국 승인서, 유엔총회 연설문, 바티칸 교황청 훈장 등 건국 초기 대한민국사를 엿볼 수 있는 유물도 볼 수 있다. 특히 초대 주미대사로 활동하면서 사용한 ‘대한민국 1호 여권’과 당시 장면 내각이 준비했던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자료가 눈길을 끈다. 전시 유물 중에는 장 전 총리의 부인인 김옥윤 여사의 유물인 반짇고리, 옥비녀 2개, 옥반지, 꽃신, 돋보기,시계 등 생활용품도 있다. 장 전 총리 유족 관계자는 “대부분 고무신을 신던 김옥윤 여사가 귀한 자리에 초대받을 때에는 꼭 꽃신을 신었다”고 회상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머리 비우면 똑똑해지고, 생각 버리면 채워져”

    현대인들은 아웃 사이더가 되길 원치 않으며 늘상 비웃음과 창피함, 평가·평판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산다. 그 ‘소외의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소통과 정보에 집착한다. 스마트폰 이용자 중 60% 이상이 하루 평균 30회 이상 휴대전화를 들여다 본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최소 6분에 한 번 꼴로 휴대전화를 접속하는 셈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이 같은 휴대전화 과다 접속에 수반되는 뇌의 자극을 우려한다. ‘멍 때려라’(신동원 지음, 센추리원 펴냄)는 인간관계의 원초적 요건인 접촉보다 접속에 의존해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뇌의 휴식’을 상기시킨다. 인터넷, 스마트폰 등 각종 디지털 기기가 쏟아내는 정보 탓에 1분 1초를 제대로 쉬지 못하는 뇌를 위해, 책 제목 그대로 ‘멍 때리는’ 시간을 만들어 즐기라고 권한다. 성균관대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인 저자가 일관되게 주장하는 원칙은 ‘머리는 비울수록 똑똑해지고, 생각은 버릴수록 채워진다’는 것이다. 그 ‘머리 비우기’의 이론은 명쾌하다. 인간의 뇌는 휴식을 취할 때 내측 측두엽과 내측 전두엽, 후측 대상 피질 등 이른바 DMN으로 불리는 부위가 활성화된다고 한다. 뇌가 휴식을 통해 정보와 경험을 정리하고 기억을 축적하는 숙고의 시간을 갖고, 이때 불필요한 정보를 과감하게 삭제해 새 생각을 채울 여백을 만든다는 것이다. 뇌가 주입된 정보를 제대로 인식하고 처리하기도 전에 쉼 없이 들어오는 정보가 바로 사람의 판단과 선택을 흐리게 하고 정신적 에너지의 고갈을 불러온다는 주장이다. 저자의 주장대로라면 컴퓨터가 과부하에 걸리면 다운되듯, 끊임없이 오감을 자극하는 단순한 정보야말로 뇌를 바보로 만들어가는 원인이다. 그래서 그 반대로 뇌가 휴식하는 ‘멍 때리는’ 시간에 중대한 발견과 전환의 역사를 이룬 사례들이 설득력 있게 소개된다. 사과나무 아래 멍하니 있다가 만유인력의 실마리를 알아챈 뉴턴, 목욕탕에서 아무 생각 없이 앉아있던 중 부력의 원리를 발견한 아르키메데스, 산책과 대화를 통해 머리 비우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독일 철학자 칸트며 프랑스 천재 시인 랭보, 음악가 베토벤…. 그러면 그 ‘멍 때리는’ 머리 비움의 방법은 무엇일까. 저자가 제시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생각 고리를 차단하는 것이다. 머리가 무겁거나 멍하다고 느껴지는 순간 단 1, 2분이라도 눈을 감고 천천히 심호흡을 한다. 지하철을 타거나 거리를 걸을 때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지 않거나 잠자리에 들기 전 디지털 기기를 멀리해 뇌에 대한 자극을 최소화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어찌 보면 불교의 ‘무념무상’과도 맥이 닿아 있는 듯한 저자의 주장은 단순한 뇌 휴식을 넘어 사람에 대한 관심과 접촉의 확대로 뻗쳐 흥미롭다. 저자는 결국 이렇게 말한다. “매혹적인 생각, 치명적인 아이디어, 그리고 인생을 바꾼 만남은 언제나 모니터 밖의 세상에서 창조됐으니 지금 당장 당신에게 멍 때림을 허락하라.” 1만 4000원.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교비 1000억 빼돌린 이사장 구속기소

    사학 재단을 설립하면서 1000억원대의 교비를 횡령한 혐의로 광양 모 대학 설립자 이모(73) 씨와 이에 가담한 대학 총장 등이 구속됐다. 광주지검 순천지청은 26일 자신이 운영하는 병원 입원실에 법인 기획실을 몰래 설치하고, 각 대학의 재무회계를 통합하는 방식으로 4개 대학의 교비 898억원과 건설회사 자금 106억원 등 1004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광양 모 대학 설립자 이씨를 지난 20일 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또 법인 기획실 책임자 한모(51)씨, 대학 총장 김모(57)씨와 송모(58)씨를 구속 기소하고, 등기 명의를 빌려준 김모(45)씨 등 2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이 이사장은 20년간 전국적으로 6개 대학과 1개 대학원대학교, 3개 고교를 설립 운영하면서 자신의 처 등 친인척과 지인을 이사장과 총장으로 임명해 학교 예산을 손쉽게 횡령해왔다. 이씨는 교비 횡령의 편의를 위해 건설회사를 따로 설립 운영하면서 각종 학교 공사를 독식하는 한편 공사금액을 부풀리는 등 교비횡령의 도구로 악용하기도 했다. 또 횡령한 자금으로 2008년말부터 2010년 4월 사이 18필지 1만 1748㎡의 부동산을 구입, 자신의 아들 등 타인 명의로 등기한 혐의(부동산실명법 위반)도 받고있다. 김·송 총장은 이사장과 공모해 각각 교비 330억원, 15억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있다. 이 이사장의 외조카인 한씨는 이 이사장이 1004억원을 횡령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한 혐의를 받고있다. 이 이사장은 고등학교 생물교사로 재직하면서 목욕탕을 운영해 그 수익금으로 1977년 광주에 모 여상을 설립한 이래 현재까지 7개의 학교법인과 산하에 8개의 사립학교를 설립, 운영중이다. 이 이사장은 이번 사건과 같은 수법으로 1998년 교비 409억원을 횡령하고 이를 대학설립·이전비용, 병원인수비용, 자녀 유학비용 등으로 사용한 혐의로 구속 기소돼 1심에서 징역 3년 2개월, 2심에서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위성국 부장검사는 “학교설립을 교육이 아닌 치부의 수단으로 삼는 설립자로 인해 학생들은 턱없이 높은 등록금을 부담하고 있었다.”며 “정부지원 여부와 상관없이 교과부가 정기적으로 재정 분야에 대한 감사를 실시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순천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지방시대] 감천문화마을의 기적/김형균 부산시 창조도시본부장

    [지방시대] 감천문화마을의 기적/김형균 부산시 창조도시본부장

    부산의 대표적 산동네 마을인 ‘감천문화마을’은 부산의 서쪽 외곽에 자리 잡고 있다. 이 마을은 한국전쟁 때 피란 온 종교인들이 중심이 돼 산비탈을 일궈 주거지를 형성한 전형적인 산동네 마을이다. 한때 2만여명이 거주하기도 했으나 대부분 타지로 떠나고 현재는 4000여 가구 1만여명이 살고 있다. 산동네 특성상 주거환경이 열악했던 이곳이 최근에는 전국은 물론 외국에서도 관심을 두는 마을로 탈바꿈했다. 산동네 서민촌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단의 젊은 예술가들이 이 마을을 주목하고 정착해 마을 곳곳에 공공예술 작품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주민 반대와 냉대에 시달렸다. 그러나 조금씩 변화하는 마을 모습을 보고 이들의 참뜻을 안 주민들이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으며 열렬한 지지자가 됐다. 조형물과 벽화는 이제 마을의 상징과 자부심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처럼 문화와 예술을 바탕으로 외지인과 접목된 이들에게 행정적 지원이 가미된다. 부산시에서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 대상지에 이 마을이 선정되면서 본격적인 마을만들기형 사업이 주민의 손으로 추진되기 시작했다. 마을의 낡은 목욕탕을 고쳐 마을문화센터로 다시 살려내고, 음산하게 널브러져 있던 빈집 수십 곳을 문화예술 시설로 개조했다. 주민들이 합심해 빈집을 고친 마을카페와 아트숍도 마을기업으로 운영해 짭짤한 수익도 올리고 있다. 또한 지금 마을미술관, 마을박물관을 앙증맞게 만드는 등 마을 전체가 말 그대로 문화마을로 변신 중이다. 경사진 마을의 지붕 위 파란 물통이 어우러진 독특한 경관과 함께 마을의 문화시설이 소문과 함께 인터넷을 통해 알려지면서 요즘 하루 평균 200여명, 연간 7만~8만명이 마을을 찾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해마다 유네스코에서 개최하는 청년 워크캠프도 2차례나 열렸다. 세계 청소년들이 찾아와서 마을 주민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면서 봉사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동안 마을 리더를 중심으로 참여하던 주민들도 이제는 마음을 활짝 열고 스스로 즐기는 단계로 발전하고 있다. 마을합창단을 스스로 조직해 정기공연을 하는가 하면, 마을의 각종 강좌에 빠짐없이 참여해 스스로 마을의 문화를 만들고 즐기는 것이다. 최고의 압권은 마을신문이다. 순수하게 마을주민들로 구성된 마을기자들에 의해 매월 만들어지는 마을신문은 동네주민들 의사소통의 주요 창구기능을 톡톡히 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준비한 마을축제에 1만여명의 방문객과 관광객이 다녀갔으니 이제 감천문화마을은 전국구가 된 셈이다. 이 같은 변신을 한 감천문화마을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첫째, 문화와 예술의 마을재생능력이 여실히 증명됐다는 것이다. 토목과 건축보다 예술의 힘이 통한 것이다. 둘째, 행정은 적절한 장면에 적절한 거리에서 제한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민 필요에 의한 제한적 지원의 원칙이 통했다는 것이다. 셋째, 마을만들기 사업에서 주민들의 궁극적인 도달점은 자기 마을에 대해 자부심을 갖게 되는 변화라는 사실이다. 마을의 힘은 끈끈한 공동체적 자긍심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발견하게 되는 감천문화마을의 변신을 기적이라 부르고 싶다.
  • 내년 6월부터 성범죄, 합의해도 처벌한다

    내년 6월 19일부터는 피해자의 고소가 없어도 성폭력 범죄자에 대한 처벌이 가능해진다. 혼인빙자간음죄는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에 따라 60년 만에 폐지된다. 정부는 형법과 성폭력특별법이 이런 내용으로 개정돼 오는 18일 공포된다고 12일 밝혔다. 개정 법률은 공포 후 6개월이 지난 뒤부터 적용되기 때문에 실제 발효일은 내년 6월 19일이 된다. 단, 시행일 이전에 발생한 사건에 대해서는 소급적용되지 않는다. 가장 큰 변화는 성범죄에 대한 ‘친고죄’ 조항 삭제다. ‘친고죄는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만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다.’는 조항이다. 그간 사회적으로 약자일 수밖에 없는 성범죄 피해자들을 더욱 불리하게 만들고 합의금 등의 명목으로 고소를 취하하도록 해 성범죄자에 대한 단죄를 막는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최근 발생한 ‘성추문 검사’ 사건은 친고죄 조항의 폐단을 단적으로 드러냈다. 검찰은 해당 검사에게 사건 성격상 성폭행죄를 적용해야 하지만 검사가 상대 여성과 합의를 봤기 때문에 처벌할 근거가 없다며 무리하게 뇌물수수죄를 적용했다가 2차례에 걸쳐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1953년 9월 생겨난 혼인빙자간음죄는 2009년 11월 헌재의 위헌 결정에 따라 폐지된다. 헌재는 “남성이 결혼을 약속해 여성이 성관계를 맺는 착오를 저질렀다고 해서 국가가 형벌로 이를 보호하는 것은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보는 것”이라면서 “남녀평등에 어긋날 뿐 아니라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 밖에 강제로 유사 성행위를 한 범죄자를 2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하는 ‘유사강간죄’, 공중화장실·목욕탕 등 공공장소에서 이성의 신체를 몰래 훔쳐보는 행위를 처벌하기 위한 ‘성적 목적을 위한 공공장소 침입죄’ 등이 신설됐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길을 품은 우리 동네] (30·끝) 전북 전주 권삼득路

    [길을 품은 우리 동네] (30·끝) 전북 전주 권삼득路

    전북 전주시 완산구 권삼득로에는 예술과 문화의 맥이 흐르고, 전주와 전북 젊은이들의 긍지와 활력이 넘쳐난다. 전주고와 전북대 등 인재의 산실이자 판소리와 창(唱)의 고장, 전주의 진면목를 보여주는 도립국악원과 예술회관이 이 길을 따라 있고, 전주의 주요 공연장 중 하나인 삼성예술회관도 위치해 있다. 지난해 새로 지어진 전북대 박물관도 권삼득로에 붙어 있다. 전주와 전북의 주요 교육기관과 문화·예술 공연시설들이 이 길을 따라 포진해 있는, 교육·문화·예술의 메카다. 총연장 4662m. 10리도 넘는 길인 만큼 구간구간 성격도 다르다. 중노송동의 전주고에서부터 덕진동 2가 전주천 앞의 호반촌까지 남북으로 뻗어 있다. 새 주소길로 다시 이름 붙여지기 전까지는 남북로라고 불린 것도 이 때문이다. 전주 동부지역의 남북을 가로지르는 주축 도로인 기린로 동쪽에 위치해 있다. 권삼득로는 기린로와 철로의 양축을 이루듯 나란히 남북을 횡단하며 구도심의 측면을 잇고 있다. 4차선이라 해도 될 너비의 2차선으로 시작되지만 오르내림을 거듭하다가 전주사람들의 대표적인 휴식처인 덕진 공원에 이르게 될 무렵에는 4차선으로 넓어진다. 폭이 넓다고 하기 어렵지만 길이는 주축도로인 기린로에 못지않게 길어 이용량과 통행량이 적지 않고 활기차다. ●10리도 넘는 길… 구간구간 성격 달라 ‘호남 인재의 산실’ 전주고 앞에서 시작되는 길은 금암초등학교, 옛 KBS전주 총국 등을 지난다. 백제대로가 동서로 가로지르기 직전인 전북은행 본점 앞까지 권삼득로의 전반부는 주거지와 상가가 뒤섞여 있는 구시가지의 여느 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서민들의 애환이 담겨 있다. 주택들과 함께 건축자재점, 점집, 목욕탕, 모텔, 광고대행사, 조경업체, 꽃집 등이 아무런 연관성 없이 늘어서 있다. 안덕원길과 사거리를 이룬 뒤 권삼득로는 전주의 두 번째 큰 재래시장인 모래내시장 옆을 비켜 간다. 지안, 완주, 고산, 소양 등 전주 주변의 촌사람들이 산야채며 농산물 등을 바리바리 싸들고 와 내다 파는 정겨운 서민들의 교류지다. 백제대로를 넘어 전북대 교정을 서쪽으로 끼고 종단하면서 이 길은 확연한 교육과 문화, 예술의 길 성격을 드러낸다. 전북대 박물관, 삼성예술회관 등으로 진행된다. 전북대 옛 정문 앞으로는 전주의 대학로인 명륜길이 젊음과 열정을 뽐내며 권삼득로와 조우한다. 밤에도 삼삼오오 짝지어 다니는 학생들도 가득찬 이곳에는 커피숍, 책방, 휴대전화 상점, 미용실, 잡화점, 음식점 등이 밤을 잊은 채 불빛을 빛내고 있었다. 전북대 옛 정문을 따라 북쪽으로 길을 재촉하다 보면 4·19 혁명 때 전북대생들의 피끓는 열정을 기억하는 기념 표지석이 서 있고, 반대편에는 전북보훈회관(권삼득로 285번) 등이 나타난다. 이어 덕진 공원, 도립국악원, 덕진예술회관이 모여 있는 지역에 이르면 이 길은 판소리의 고장, 예향 전주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국악원과 예술회관을 지나노라면 어느 예인의 노랫소리인지 궁금케 하는 판소리 가락들이 흘러나오고,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인네들과 노인들의 분주한 발길과 접하게 된다. 목요 상설공연 등 해마다 100회 이상의 각종 공연을 실시하고 있다는 도립국악원은 판소리와 멋의 고장 전주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다는 자부심이 넘치고 있었다. 덕진 공원과 국악원 블록을 지나면 이름있는 부촌이던 호반촌이 나온다. 권삼득로의 막바지에는 지난 9월에 문을 연 도립문학관이 정읍사와 서동요의 고향임을 일깨우고 있었다. 혼불의 작가 최명희를 기리는 혼불문학공원도 지척에 있었다. 문학관 부지는 1980년대 대통령이 내려와도 묵고 갈 수 있을 정도로 널찍하게 지어졌던 도지사 관사가 있었던 곳이다. 한때 전북예술회관 분관과 전북외국인학교로 이용되다가 도립문학관에 자리를 내줬다. ●후백제·조선 등 유구한 역사의 배후지 권삼득로란 이름이 새주소 사업으로 붙여지게 됐지만 이 길을 둘러싼 주변 지역에는 유구한 역사를 증언하는 명소가 널려 있다. 견훤의 후백제와는 뗄 수 없는 사연들을 간직하고 있다. 전주고 남측 담을 경계로 물왕멀 마을이 펼쳐지는데 견훤이 쌓았던 내성과 도읍지가 있던 곳이다. 전주고와 전주동초등학교 사이의 물왕멀은 물왕마을의 준말로 무랑물, 무랑말, 수왕촌(水王村) 등으로 불렸다. “견훤이 물 좋은 물왕멀의 구릉지대를 중심으로 궁궐을 짓고, 방어선을 쳤다.”고 사서들은 전했다. 지금도 후백제 시대 와당 파편이 발견되고 있다. 지금은 비어 있는 금암동 옛 KBS전주 총국 입구에는 거북모양의 커다란 화강암 바위가 보인다. 견훤이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이 바위는 30여년 전만 해도 지역 수호의 상징이자 민간신앙의 대상이었다. 두툼한 돌거북이 산을 타고 올라가는 형상이다. 사신신앙(四神信仰)에서 북현무(北玄武)는 왕권의 상징이며 사방수호의 의미를 갖는다. 전주 북쪽의 ‘금암동 돌거북’은 견훤의 역사와 함께 전주를 지키려는 고인들의 바람이 담겨 있다. 조선시대 왕실 유적과 사연들도 권삼득로 주변을 에워싸고 있다. 덕진 연못은 “자연적으로 형성된 작은 연못을 이씨 왕실의 발원지인 전주의 북서방향의 지기가 허하다고 해서 제방을 쌓아 물을 늘려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었다.”고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전하고 있다. 조선시대 ‘완산팔경’의 하나였던 덕진 연못은 덕진 공원의 중심부를 이룬다. 단옷날 연못 부근 덕진교 아래에 부녀자들은 부끄러움도 잊은 채 웃옷을 벗고, 몸을 씻고 머리 감는 보기 드문 장면이 펼쳐졌던 곳이다. 공원 후문 건너 건지산 줄기에는 전주이씨 시조묘를 모신 조경단 등 왕실과 관련된 자취들이 남아 있다. 과거 왕실의 기를 북돋는다는 의미로 지어졌던 승금정(勝停)은 지금은 전주 이씨 종친회 건물로 쓰이는 화수각(花樹閣)으로 바뀌어 공원을 굽어보고 있었다. 글 사진 전주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도움말:김진돈 전주문화원 사무국장·이강식 전주시청 도시과 주무관
  • 흰 석고에 금박 배꽃장식 알현실… ‘황제 품격’ 은은히

    흰 석고에 금박 배꽃장식 알현실… ‘황제 품격’ 은은히

    대한제국의 황궁으로 사용하려다가 1910년 이후 ‘덕수궁 이태왕’(고종황제)의 거처로 전락했던 서울 중구 정동 덕수궁 석조전(동관) 복원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문화재청은 2013년 말 개관을 목표로 진행하는 덕수궁 석조전 복원공사의 75%가 진행된 3일 현재 복원상황을 언론에 공개했다. 모두 130억원이 투여될 복원공사는 1~3층, 옥상까지 훼손된 곳을 복원해 최대한 원형을 살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옛날 기념사진과 신문 등의 보도사진, 일본 하마마쓰 시립도서관에서 찾은 평면도를 참고했다. 현재까지의 진척 상황을 보면 구조체는 모두 복원했고, 내부 실내장식만 남겨놓은 상태다. 흰 석고로 마감한 벽 상단을 쭉 돌아가며 금박을 물린 황금빛 배꽃으로 장식했고, 노란색 벽지를 바른 것처럼 보이는 벽은 손바닥으로 살짝 훑으면 보드라운 융기를 느낄 수 있는 모직천이 발라져 있었다. 이런 사치스러움은 황제의 품격을 드러내는 방식인 모양이다. 존재하지만 확인되지 않았던 3층 목욕탕과 화장실은 평면도에서 찾아 복원했다. 공사를 맡은 선혜종합건축 강석목 이사는 “천장이나 장식용 기둥의 소재가 나무인지, 돌인지 사진으로는 파악할 수 없어 어려움을 겪었다.”면서 “일본 아카사카궁이나 영친왕 도쿄 저택 등을 참고해 보니 이미 20세기 초에는 나무나 돌 대신 석고를 많이 사용해 이를 이용했다.”고 밝혔다. 거실과 접견실의 벽난로는 고스란히 복원했지만, 건물 속을 관통해야 하는 연통 복원은 건물의 안전을 위해 포기했다.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한 고종황제는 처소와 사무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 같은 해에 영국 출신 총세무사 존 맥리비 브라운에게 석조전 영건(營建)을 발의했다. 1899년 영국인 존 레지널드 하딩의 설계로 1900년 공사에 들어가 1910년 완공됐다. 당시 구조체 공사는 일본이 담당하고 내부장식은 영국인 로벨이 했다. 석조전은 로코코 양식과 네오클래식 양식이 뒤섞인 것으로 화려하면서 우아하다. 석조전의 변형은 한국의 역사와 괘를 같이했다. 1919년 고종이 승하한 뒤 석조전은 훼손되기 시작했는데, 1933년 왕궁미술관으로 전용되면서 주요 내부장식과 구획, 창호가 변경됐고, 이때 굴뚝이 철거됐다. 1938년에 이왕가미술관으로 전용되는 과정에서 금박 장식이 훼손됐다. 1945년 해방 직후에는 미·소공동위원회 장소와 유엔한국위원단 사무실 등으로 사용됐다. 1950년 6·25전쟁 때는 북한군의 방화로 내부가 소실되고 구조체 일부가 파괴되기도 했다. 1954년 육군공병단이 복구한 석조전은 1955년 국립박물관으로, 1973년 국립현대미술관으로, 1992년 궁중유물전시관으로 각각 사용됐다. 2005년 덕수궁관리소 등으로 활용되면서 더 많이 훼손됐는데, 2000년대 중반부터 대한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에 힘입어 2008년 복원이 확정됐다. 문화재청은 2009년 훼손된 대한제국 황궁의 모습을 건립 당시의 모습대로 되살리고, 대한제국의 역사적 의미를 회복하기 위해 석조전을 가칭 ‘대한제국 역사관’으로 만들기로 했다. 복원되는 석조전은 1층에는 수장고, 전시실, 사무실이, 2층에는 홀, 알현실, 대식장, 소식당, 귀빈대기실, 전시실이, 3층에는 황제와 황후의 거실과 침실, 홀, 전시실이 자리 잡는다. 옥상에는 굴뚝과 장식물을 복원한다. 복원이 완료되면 현재 고궁박물관에 전시 중인 고종황제의 침대 등 유물이 석조전으로 돌아오게 된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어르신 요금 깎아 드려요”

    동작구는 29일 65세 이상 노인이 저렴한 가격으로 음식점·제과점·세탁소·안경점·미용실·목욕탕 등의 업소를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경로우대 할인’ 참여 업소를 모집한다고 밝혔다. 노인에게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동시에 주민이 지역 업소를 더 많이 이용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정책이다. 할인율은 5~20%이며, 참여 업소별로 자율적으로 결정한다. ●할인 업소 입구에 스티커 부착 노인이 손쉽게 할인 업소를 찾을 수 있도록 가게 입구에 스티커를 붙여 준다. 주민등록증이나 기타 신분증을 갖고 이 업소를 찾으면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또 구는 경로우대 할인 업소에 1년마다 30ℓ 종량제 쓰레기 봉투 40개를 지원하고 구 홈페이지(www.dongjak.go.kr)에 업소를 홍보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세탁소·안경점·목욕탕 등 대상 현재는 120개 업소가 경로우대 할인 업소로 지정돼 있다. 할인업소 신청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구 노인복지과(820-9709)로 문의하면 된다. 문충실 구청장은 “잊혀져 가는 경로효친 사상을 고취하고 훈훈한 정이 넘치는 지역사회를 만들기 위해 경로우대 할인제도를 시행하고 있다.”면서 “고령화 사회에 발맞춰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노인복지 정책 마련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내년 이스탄불 -경주엑스포 성공 개최 확신”

    “내년 이스탄불 -경주엑스포 성공 개최 확신”

    “‘이스탄불-경주 세계문화엑스포 2013’ 행사는 양국을 대표하는 우수한 역사·문화를 세계인들에게 소개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터키 이스탄불시 압둘라만 셴(57) 문화사회실장은 지난 23일(현지시간) “내년 9월 이스탄불 시가지 일원에서 엑스포 행사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겠다는 카디르 톱바스 시장의 확고한 의지에 따라 각종 준비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 시 직원 8명으로 구성된 태스크포스(TF) 팀원을 조만간 40여명으로 늘리고, 행사 기간에는 400~500명의 인력을 집중 투입할 계획”이라면서 “예산 750만 리라(약 50억원) 투입 방침도 확정해 놓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이스탄불은 그동안 세계 40개국과 자매결연을 맺고 소규모 문화 교류행사를 가진 적은 있지만 이번과 같은 대규모 문화행사는 처음”이라고 소개했다. 25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스탄불은 이번 행사의 콘셉트를 과거 로마, 비잔틴, 오스만 등 세계를 지배했던 3대 강국의 1600년 수도로서 찬란했던 면모를 유감없이 소개하는 것으로 정했다. 역사학자 토인비가 ‘인류 문명의 살아 있는 옥외박물관’이라고 격찬했던 이스탄불은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인류가 이룩한 문화 유산들이 살아 숨쉬는 곳이다. 고대 오리엔트문명부터 그리스·로마 문화, 초기 기독교 문화, 비잔틴 문화, 이슬람 문화의 진수들을 모두 만날 수 있다. 주요 유적으로는 비잔틴제국 최고의 건축물인 아야소피아 성당을 비롯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스크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술탄아흐메드 모스크, 오스만 제국 황제들의 거처였던 톱카프 궁전, 이스탄불 최초의 유럽 스타일 궁전인 돌마바흐체 궁전 등이 있다. 특히 이스탄불은 ‘이스탄불-경주 세계문화엑스포’ 개최를 앞두고 8500년의 세계 최대 역사도시를 새롭게 자랑하게 됐다. 셴 실장은 “최근 시내 ‘예니카프’ 지역에서 지하철공사를 하던 도중 지금까지 발굴된 유적보다 시대가 무려 6000년이나 앞선 목욕탕 등의 유물과 건축 기법이 발견돼 도시 전체가 흥분에 휩싸여 있다.”고 소개했다. 경주를 한 차례 방문한 적이 있는 셴 실장은 “극동지역 문화권에 속하는 경주와 이스탄불은 전통 가옥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측면에서 상호 유사한 전통문화를 갖고 있다.”고 강조한 뒤 “전시, 공연 등 행사 프로그램은 경주엑스포 조직위와 상호 협의를 통해 하나하나 결정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아시아, 유럽 50여개국도 행사에 참가시켜 명실상부한 국제행사가 되도록 하고, 행사 홍보를 극대화해 세계 각국의 보다 많은 관람객들을 불러 모으도록 노력하겠다.”고 의지를 보였다. 글 사진 이스탄불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연평도 포격 2년] 섬 곳곳 주택개량 한창… 연습 포성에도 당시 공포에 몸서리

    [연평도 포격 2년] 섬 곳곳 주택개량 한창… 연습 포성에도 당시 공포에 몸서리

    “그래도 대대로 살아온 이곳이 좋지요. 북한이 또다시 도발할까 두렵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달리 갈 데가 없지 않습니까.” 2010년 11월 23일 북한군의 포격으로 만신창이가 됐던 인천시 옹진군 연평도. 이곳 주민들은 김장을 하고 굴을 캐는 등 생업에 열중하면서 겨울날 채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포격 이후 육지로 피란 나와 “다시는 연평도에 들어가기 싫다.”며 인천시에 정주할 곳을 요구하던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포탄에 집이 날라가 연평초등학교에 임시로 마련된 조립식 목조주택에서 머물다 지난해 말 새로 지어진 자택으로 돌아온 김모(57·여)씨는 “‘예전처럼 섬에서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수십년 넘게 삶의 터전이었던 섬을 떠날 순 없었다.”면서 “시간이 약인지 새집에 들어온 뒤 예전 생활을 되찾아 가고 있다”고 말했다. 연평도의 주민등록 인구는 포격 당시보다 오히려 늘어났다. 22일 현재 2065명으로 2010년 1756명보다 300여명 증가했다. 장흥화 연평면 부면장은 “순수한 거주민이 늘어났다기보다는 군부대 증원으로 군 간부 가족들이 연평도로 이주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마을은 한눈에 보기에도 산뜻해져 있었다. 포격으로 파손돼 새로 지어진 32채 외에도 180채의 노후주택이 리모델링되었기 때문이다. 50채는 주택개량이 아직 진행 중이다. 30년 이상된 노후주택은 정부지원금과 자부담 8대2 비율로 개량할 수 있다. 이 밖에 통합 초·중·고교, 상가, 숙박업소의 신축이 한창이어서 마치 마을이 공사현장처럼 보이기도 했다. 여기저기서 중장비의 굉음이 들린다. 외지서 500여명의 공사인력이 몰려드는 바람에 여관·민박집의 방도 동이 났다. 연평초등학교 운동장에 신축되는 통합학교 건설현장에서 만난 최모(42)씨는 “우리도 공사장 인부 수를 잘 모를 정도로 공사인력이 많다.”면서 “숙박업소가 꽉 차 가정집 방을 빌려 잠을 자고 있다.”고 밝혔다. 포격 2주년을 맞아 23일 준공되는 안보교육장은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다. 안보교육장은 지하 1층, 지상 2층, 연면적 734㎡ 규모의 안보교육관과 피폭가옥 3채로 구성된다. 피폭가옥은 포탄을 맞아 철저히 부서진 당시 모습 그대로 보존되었는데 앞에는 ‘포격 1∼2분 전까지 사람이 있던 집입니다’라는 팻말을 붙여 놓아 긴박했던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주택 지붕은 포격에 날아갔는지 앙상한 철골 뼈대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고 그을린 가스통, 종잇장처럼 구겨져 나뒹구는 가재도구는 그날의 참상을 말해주는 듯했다. 연평도를 상징하는 꽃게잡이는 지난달 중순 이후 조업이 사실상 중단됐다. 꽃게 수가 갑자기 줄어들면서 이달 말까지 예정된 가을철 조업이 중단되고 지금은 바다에 나가도 어구 수거작업을 하는 정도라고 한다. 선주인 유모(50)씨는 “봄에는 꽃게가 많이 잡혔어도 크기가 작아 제 값을 못 받았는데 가을에는 그나마도 나오지 않아 올해 꽃게농사는 엉망”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부둣가에 나가 5만원의 일당을 받고 그물에서 꽃게를 떼내는 작업을 하던 주민들도 덩달아 돈벌이를 못하고 있다. 가을조업이 시작된 9월 이후 두 달간 연평도 꽃게 어획량은 87만 820kg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0% 가량 감소했다. 어획고도 56억원에서 30억원으로 줄었다. 마을 여성들은 연평도 인근 갯벌에 나가 굴을 캐 그런대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요즘은 ‘조금’ 때라 오후에 나가 서너 시간 굴을 캐면 하루 7만~8만원을 벌 수 있으니 제법 짭짤한 돈벌이인 셈이다. ‘거문여’로 불리는 곳에서 만난 김모(73) 할머니는 “하루 6㎏ 정도의 굴을 캐는데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만 할 수 있는 일이라 안정적이지는 못하다.”면서 “그래도 하루 3만 7000원 받는 취로사업보다는 낫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마을에 복귀한 뒤 대체로 일상적인 삶을 찾아가고 있지만 잠재된 불안을 호소하는 주민들이 적지 않다. 연평도에 주둔하는 군이 사격연습을 하면 2년 전의 악몽이 떠올라 놀랄 때가 많다는 것이다. 민모(50·여)씨는 “며칠에 한 번씩 포소리가 들릴 때마다 군부대 연습이려니 하면서도 불안한 마음에 밖에 나가보곤 한다.”면서 “면사무소에서 사전에 주민들을 안심시키는 방송을 하지만 못 들을 때가 많다.”말했다. 지난달 이명박 대통령이 불시에 연평도를 방문했을 때는 갑자기 헬기들이 섬에 들이닥쳐 놀란 주민들이 많다고 한다. 강박증과 불면에 시달리는 사람들도 있다. 옹진군은 정신건강 전문의 등 의사들을 주기적으로 연평도에 보내 우울증 등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 주민들에게 상담과 심리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김병문 연평초등학교 교장은 “지금은 아이들이 많이 밝아졌지만 상처가 완치된 것은 아니다.”라며 “학생들이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도록 유관 부처와 많은 사람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자가 연평도에 2박 3일 머물면서 느낀 것은 섬 사람들의 마음이 삭막해져 있다는 점이다. 이웃끼리 왕래나 대화가 포격 전보다 줄어들었고 대화를 하더라도 깊은 얘기는 되도록 삼가는 분위기다. 외지 사람들이 말을 붙이기는 더욱 힘들다. 지난 10여년간 6차례나 연평도를 찾았지만 이런 적은 없었다. 박모(53·여)씨는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포격사건 이후 이웃끼리 덜 친하게 된 것 같다.”면서 “어쩌다 이웃과 얘기를 나눠도 깊이 있는 얘기는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통령선거가 다가왔지만 이곳에서는 정치나 대선 후보들에 대해 얘기하는 일이 별로 없다고 한다. 이모(56)씨는 “지난번 대선 때만 해도 누가 낫느니 하면서 말들이 많았는데 이번에는 그렇지가 않다.”고 말했다. 한 주민은 “정말 하기 어려운 얘기”라고 전제한 뒤 포격으로 부서진 집 신축이 주민 간 반목의 원인이 되었다고 귀띔했다. 전에 허름했던 집이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말끔한 양옥으로 단장되자 이웃들이 시샘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주민들 간에는 ‘로또를 맞았다’는 빈정거림도 나왔다. 실제 집과 창고가 신축된 주민은 “이웃의 눈총으로 마음고생이 많았다.”고 밝혔다. 인심이 흉흉해진 데에는 당국에 대한 불만도 작용하는 것 같다. 성조차 밝히기를 거부한 주민은 “포격사건 이후 정부가 각종 지원책을 발표해 섬이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폭격 맞은 집이 새집으로 된 것 말고는 좋아진 것이 없다.”고 비꼬았다. 주민들은 가정용 보일러에 쓰는 기름에 대해 면세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일반 등유가 드럼당 39만원인 것에 비해 면세유는 21만원에 불과해 면세유를 공급받을 경우 생활비가 크게 줄어든다는 것이다. 최모(54)씨는 “무리한 요구일 수도 있지만 정부가 주민들에게 정주환경을 보장한다며 섬으로 돌아갈 것을 촉구했으면 그 정도는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주민 1인당 월 5만원의 정주생활지원금이 지급되지만 생활에 큰 보탬이 안 된다고 강조한다. 주민들은 나아가 의료시설과 생활편의시설 부족을 하소연한다.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300명이 넘어 보건소 만으로는 제대로 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당국이 섬에 작은 병원이라도 하나 세워주거나 주민이 군부대 의무실을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모(51)씨는 “목욕탕 하나 없어 목욕을 하려면 인천으로 나가야 하는 현실에서 주민들에게 위험을 감수하면서 섬에 살라고 하면 되겠는가.”라고 말했다. 겉으로는 안정돼 보이지만 내재된 불안과 불만, 포격 2주년을 맞은 연평도의 현주소다. 연평도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길을 품은 우리 동네] (27) 부산 임시수도기념로

    [길을 품은 우리 동네] (27) 부산 임시수도기념로

    부산시 서구의 임시수도기념로는 부민사거리에서 임시수도기념관까지 500m 남짓한 짧은 오르막길이다.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 1000여일간 대한민국의 임시수도로 자유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이자 경제 발전의 토대를 마련한 역사가 고스란히 간직된 길이다. 전쟁의 상처를 입은 나라와 피란민의 생살을 감싸 안은 부산의 저력은 문재인, 안철수 두 명의 대선 후보를 동시에 배출한 데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임시수도기념로 초입에서는 ‘말표 신발’ 광고가 붙은 전차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 전차는 현재 국내에 3대만 남아 있는 근대전차 가운데 하나다. 한국전쟁 복구 과정 중에 미국 신시내티에서 만들어져 애틀랜타에서 운행되던 전차 93대가 무상원조로 도입됐다. 1967년까지 부산 시내에서 운행되다 현재는 동아대학교에서 등록문화재 494호로 보관하고 있다. 나머지 두 대의 근대전차는 서울 신문로 역사박물관과 와룡동 국립서울과학관에 전시되어 있다. 이 두 대는 일본 전차다. 임시수도기념로의 전차는 국내 유일의 미국식 전차다. 임시수도기념로의 전차 내부는 현재의 지하철 의자 모양이 아니라 2명씩 앉을 수 있는 24개의 의자가 있는 형태다. 전차를 보관하고 있는 동아대박물관은 ‘내가 직접 만들어가는 부산임시수도정부청사’란 체험활동 등을 통해 전차 탑승권을 나눠 주고 전차에 탑승할 기회도 제공한다. 부산시는 버려진 철길 등을 재활용, 전차 운행을 복원할 계획도 갖고 있다. 한국전쟁 중 부산에는 이승만 전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청사, 국회, 법원 등 국가의 모든 기능과 학교 등이 통째로 옮겨졌다. 임시수도기념관은 전쟁 전에는 경남지사의 관사로 사용되다 전쟁 중에는 이 전 대통령의 관저가 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계속 도지사의 관사로 사용되다 1984년 임시수도기념관으로 개관했다. 임시수도기념관은 외부는 붉은 벽돌, 내부는 목조로 꾸며진 아름다운 근대 건물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을 추억하는 사람들과 잘 보존된 근대 건축물을 감상하려는 건축학도 등이 전국에서 많이 찾는다. 현재 이 전 대통령의 기념품이 있는 곳은 강원 고성군 화진포 별장과 제주도 서귀포 별장 그리고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가 살았던 서울 이화장이 있다. 전시품 중 이 전 대통령이 사용했던 물품 규모가 이화장을 따라갈 수는 없지만 임시수도기념관은 한국전쟁 당시 수도 부산에 대한 부산 시민의 자긍심이 담겨 있는 곳이다. 기념관 1층 서재에는 이 전 대통령의 밀랍인형이 있다. 또 화장실, 목욕탕, 이 전 대통령의 친필 연설 원고, 직접 입었던 옷 등이 그대로 전시되어 있어 관람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 전 대통령은 임시수도 관저에서 프란체스카 여사와 함께 살면서 국정을 수행하고 국빈들을 맞이했다. 1층에는 응접실과 서재, 거실, 식당, 부엌 등이 재현되어 있다. 2층에는 이 전 대통령이 전방부대와 훈련소를 시찰하면서 입었던 군용 방한복과 프란체스카 여사의 코트가 전시되어 있다.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엇갈린 평가는 잘 조성된 기념관과 훼손된 대통령의 동상이 대변한다. 지난해 3월 기념관 앞 계단에 이 전 대통령의 동상이 세워졌으나 3개월 만에 붉은색 페인트로 뒤덮이는 테러를 당했다. 아직 범인은 찾지 못했고, 동상의 수리도 끝내지 못해 동상이 세워졌던 자리만 남아 있다. 임시수도기념관뿐 아니라 길 자체도 지난해 23억원의 예산이 투입되어 테마거리로 조성되었다. 임시수도기념관으로 향하는 계단에는 입던 옷 그대로 보퉁이만 꾸려 피란을 나선 가족과 아들을 돌보는 어머니의 동상이 설치되었다. 인근 골목에는 흔히 ‘뽑기’라고 부르는 설탕과자를 연탄불 위에서 만드는 소년의 동상도 있다. 벽에는 피란민들의 생생한 생활상이 담긴 벽화가 그려져 있어 전쟁 세대에게는 임시수도기념로 자체가 생생한 추억의 현장이다. 기념관 바로 옆에 있었던 부산고등검찰청 검사장의 관사도 2002년 임시수도기념관으로 확장 개편됐다. 옛 검사장 관사는 좀 더 생동감 있는 전시공간이다. 전국에서 물밀듯이 밀려들었던 피란민의 판잣집과 피란열차, 전쟁 당시 임시교사의 일기, 문화수도이기도 했던 부산의 다방 ‘밀다원’, 장준하 선생이 만든 잡지 ‘사상계’ 등이 그대로 살아 있다. 특히 한국전쟁 당시 기장학교 교사로 재직했던 신경복의 일기에는 당시의 생활상이 재미나게 담겨 있다. 임시교사였던 신경복은 전쟁이 일어나자 전쟁터로 끌려갈 것을 걱정하다 결국 학교에서 기르던 토끼를 동료 교사들과 잡아 먹고 위생병으로 전장에 참여한다. 임시수도기념로 입구의 전차 옆에는 한국전쟁 때 정부청사로 사용됐던 동아대박물관이 있다. 동아대박물관은 전쟁이 끝나고 부산지방검찰청과 법원으로 사용되다 2009년 박물관으로 재탄생했다. 동아대박물관은 ‘문화재 속의 문화재’란 개념으로 붉은 벽돌로 만들어진 외형은 99% 보존하고 내부는 완전히 다시 지었다. 건물 안에 건물을 지은 것으로 문화재 보존의 모범적 사례로 꼽힌다. 동아대박물관이 성공적으로 개장하면서 전북도청이나 서울역사박물관도 외부는 보존하고 내부는 되살리는 방식을 택했다. 제주도와 부산 가운데 부산이 임시수도로 결정된 것은 단순히 국토의 남단 끄트머리에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항구 도시이자 일본강점기 이후 자체 산업기반을 갖추고 있어 임시수도가 될 수 있었다. 대한민국 제2의 도시는 부산이라는 확고부동한 위상은 수도권 쏠림 현상과 함께 인천이 부상하면서 퇴색했다. 하지만 부산은 영화의 도시이자 해양도시로 새로운 위상을 찾아가고 있다. 계속 변화하면서 도시의 생명력을 찾아가는 저력의 근원은 모든 것이 파괴됐던 이 나라의 발전 기초를 제공했다는 임시수도 부산시민의 자부심이다. 글 사진 부산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28회에는 대구 종로길을 소개합니다.
  • 시코쿠 기차 여행

    시코쿠 기차 여행

    매일 서너 시간씩 꼬박 기차를 탔다. 명승지가 많은 도시도 갔고, 역장 없는 간이역도 들렀다. 오솔길처럼 난 숲 속을 한 량짜리 기차로 달릴 땐 거의 창문에 매달려 갔다. ‘올 시코쿠 레일 패스’로 본전 뽑고 돌아온 시코쿠 기차 여행.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이동미 취재협조 럭키투어 02-734-6656 4박5일간의 느린 여행 기차여행에는 비행기나 배로 하는 여행과는 다른, 막연한 낭만이 있다.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들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떠올릴 때, 생각은 아무런 제약 없이 쑥쑥 커지고 상상이 되어 여행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알랭 드 보통 역시 <여행의 기술>에서 ‘모든 운송 수단 가운데에서도 생각에 가장 큰 도움을 주는 것은 기차일 것’이라고 썼다. ‘열차 밖의 풍경은 안달이 나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그러면서도 사물을 분간할 수 있을 정도로 느리게 움직이며’ 영감을 준다. 한가로운 논과 밭을 옆에 두고 달리면서 나의 생각들도 적당한 속도로 함께 달렸다. 2년 전에 왔던 시코쿠의 늦겨울을 기억해냈고, 폭염이 쏟아지는 시코쿠의 여름 속에 사람들은 모두 거리에서 사라졌다. 돌아다니느라 땀을 흠뻑 흘리고 올라탄 시코쿠의 열차는 시원한 여유와 휴식을 제공하며 다음 목적지로 데려다주었다. 4박5일 동안 기차를 타고 시코쿠에 있는 네 개의 현들을 모두 밟아 봤다. 시코쿠는 일본을 구성하는 네 개의 주요 섬 중 가장 작은 섬이지만, 섬 안에 네 개의 현(우리나라로 치면 도)이 있는 큰 섬이다. 때문에 네 개의 현을 다 다니려면 여간 부지런을 떨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도 ‘올 시코쿠 레일 패스’가 있어 더욱 살뜰히 돌아볼 수 있었던 여행이다. 올 시코쿠 레일 패스는 JR 노선뿐만 아니라 지역간 특급열차와 기타 사철, 전차 등을 정해진 기간 내에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패스다. 2일, 3일, 4일, 5일짜리 패스 중 자신의 일정에 맞게 선택해 원하는 지역으로 기차여행을 떠나면 된다. 한두 여행지에서 충분히 머무는 게 목적인 사람보다는 다양한 열차를 타고 시코쿠의 작은 마을들을 만나 보고픈 여행자에게 더 유용하다. 한 칸짜리 카이요도 하비 열차를 타고 좁은 숲속 길과 작은 마을의 간이역들을 지난 시간은 이번 기차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다. 덜커덩거리는 기차 소리를 들으며 과거의 시간 속으로도 다녀왔고, 무인역에서 일하는 개암나무 할아버지도 만났으며, 고치에 사는 요괴들도 만나고 왔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1 고토히라에서 고토덴 열차를 타고 리츠린 공원에 도착하는 중 2 오보케협곡을 따라 30여 분간 뱃놀이를 즐길 수 있다 3 세토내해의 드넓은 바다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던 이시즈치 특급열차 4 작은 간이역들과 깊은 산속 길을 달려 도착한 오보케역의 풍경 5 고토히라구 신사로 올라가는 길에 보이는 비석들. 신사에 헌금을 기부한 사람들의 이름을 새겨놓은 비석들이다 6 도롯코 열차로 갈아타기 위해 기다리던 도카와역 ▶travie info * 시코쿠 가는 방법 아시아나항공이 인천에서 다카마쓰(가가와현)와 마쓰야마(에히메현)로 가는 직항편을 일주일에 3회 운영하고 있다. 마쓰야마로 가는 항공편은 화·금·일요일, 다카마쓰로는 화·목·일요일에 출발한다. 다카마쓰로 입국하고 마쓰야마에서 출국하는 일정(그 반대)도 가능하다. 인천에서 소요시간은 각각 1시간 30분여 정도다. * ‘올 시코쿠 패스’란? JR뿐만 아니라 기타 사철 및 지역철도도 이 패스로 모두 이용할 수 있다. 한 칸짜리 특급 열차에서 전차, 지역간 특급열차 모두 탑승 가능하다. 자유석은 물론 패스를 이용해 좌석을 미리 지정할 수도 있다. 시코쿠의 다카마쓰역, 마쓰야마역, 도쿠시마역, 고치역 내 관광안내소와 간사이 우메다역에서 여권을 제시하고 판매 신청서를 작성하면 바로 구입 가능하다. 한국판매점 럭키투어 02-734-6656 www.tourismshikoku.kr 가격┃어른┃2일 패스 6,300엔, 3일 패스 7,200엔, 4일 패스 7,900엔, 5일 패스 9,700엔 어린이┃2일 패스 3,150엔, 3일 패스 3,600엔, 4일 패스 3,950엔, 5일 패스 4,850엔 칙칙폭폭 첫째 날 다카마쓰에서 시작하다 대개의 여행자들은 인천에서 바로 도착하는 가가와현의 다카마쓰 공항이나 에히메현에 있는 마쓰야마 공항을 통해 시코쿠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이번 여행은 다카마쓰에서 시작해 에히메현의 마쓰야마시를 거쳐 고치현의 시만토 강을 건너고, 도쿠시마현의 오보케 협곡을 지나 고토히라에서 머문 뒤 다시 다카마쓰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하루에 꼬박꼬박 3~4시간 이상 기차를 탔는데, JR기차를 포함해 호빵맨 열차, 피규어로 장식된 가이요도 하비 트레인, 사방이 뚫려 있는 토롯코 궤도열차 등 다양한 기차들로 갈아탔다. 게다가 내리는 역에서는 타고 온 기차 노선의 이름이 적힌 호빵맨 도장을 찍을 수 있었는데(심지어 기차 안에서도!), 꼬마들은 당연히 좋아하거니와 어른들도 꾹꾹 도장을 찍는 게 그리 유치한 행동은 아니었다. 어차피 여행은 평소에 하지 않는 일탈과 엉뚱함과 자유를 위한 시간 아닌가. 그래서 읽던 책 맨 뒤 페이지에 나도 호떡만큼 큰 호빵맨 도장을 꾸욱 찍고 다카마쓰역에 내렸다. 다카마쓰시가 있는 가가와현은 400년이 넘은 리츠린 공원과 연간 수백만명의 참배객이 찾는 고토히라 궁, 세토대교 부근에 위치한 세토우치 미술관 등 볼거리가 풍부한 여행지다. 특히 다카마쓰항에서 페리를 타고 들어가는 나오시마섬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지중 미술관과 베넷세 하우스 등 섬 전체가 세계적인 작가들의 예술품으로 꾸며진 ‘아트의 섬’으로 유명하다. 가가와현에서 하루 이상 머물 계획이라면 나오시마 섬을 들어가 보는 것도 좋다. 다카마쓰 시내에서 머문다면 다카마츠츄오 상점가는 필수 코스다. 총길이 2.7km에 이르는 일본에서 가장 긴 아케이드 상점가로, 이 안에는 무려 800여 개에 달하는 상점과 음식점들이 들어서 있다. 워낙 상점가가 거대하다 보니 안에는 다시 8개의 개성 강한 쇼핑거리로 나뉘어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중심이 되는 거리가 마루가메마치 상점가다. 20년에 걸쳐 단계별로 정비해 온 이 거리는 오래된 일본의 상점가를 되살리려는 사업 중 가장 성공한 사례로 손꼽힌다. 유리로 천장이 만들어진 아케이드는 더위와 추위를 막아 주고, 날씨에 관계없이 돌아다닐 수 있어 편리하다. 루이비통 매장까지 들어선 이 상점가의 한 이자까야에서 닭다리 구이와 맥주를 마시며 첫날밤을 보냈다. 다카마쓰에서 유명한 음식 중 하나가 닭다리 구이인데, 어미 닭다리 구이와 새끼 닭다리 구이 중에 선택할 수 있다. 살이 연하고 야들야들하면서도 독특한 후추맛이 나는 영계 닭다리 구이와 기린 생맥주를 마시니 일본 여행이 달착지근하게 감겨든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1 이시즈치 열차 앞 기차 안내원 2 현재 일본에 12개밖에 현존하지 않는 에도시대 이전에 건축된 천수의 마쓰야마 성 3 이마바리역 내에 위치한 자이언트 스토어 4 에히메현의 도고온천역 앞에 있는 봇짱 가라쿠리 시계. 매 정시마다 시계탑이 열리고 <봇짱>의 등장인물들이 나온다 5 정겨운 마을과 숲속 오솔길을 달리던 한 량짜리 카이요도 하비 트레인 칙칙폭폭 둘째 날 봇짱열차 타고 과거로 다카마쓰 ▶▶▶ 마쓰야마 도고온천 다카마쓰에서 마쓰야마로 가는 특급열차 ‘이시즈치’는 시코쿠섬 북서부의 세토내해를 굽이굽이 돌아간다. 창밖으로 보이는 탁 트인 바다와 경사면을 따라 자리한 마을의 경치를 기차에서 볼 수 있었던 유일한 코스다. 구루시마 해협 근처에 있는 아마바리역에 잠시 내려 구루시마 해협의 대교와 시마나미 바닷길도 헤아려 본다. 시마나미 해도는 이마바리와 히로시마현을 9개의 다리로 잇고 있는 해도로, 약 70km의 자전거 도로가 조성되어 사이클링 명소로도 손꼽힌다. ‘사이클링의 성지’답게 이마바리역 옆에는 유명한 스포츠 자전거를 대여할 수 있는 자이언트 스토어가 위치해 있다. 일본 전역에 있는 8곳의 자이언트 스토어 중 최초로 렌탈 사이클 서비스를 선보이는 이곳에는 전문장비와 샤워룸까지 갖추어져 있어 사이클링 루트의 거점 역할을 하고 있는 것. 사람들은 이곳에서 크로스 바이크와 헬멧을 대여해 ‘선라이즈 이토야마’로 먼저 간다. 60번째 사이클링 터미널인 이곳에 구루시마 해협 대교와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 좋은 카페가 있기 때문이다. 에히메현의 최대 도시인 마쓰야마에서는 도고온천을 빼놓을 수 없다. 3,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가장 오래된 온천으로, 1894년에 건축된 도고온천의 본관은 그 자체로 볼거리다.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목욕탕 ‘아부라야’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고,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봇짱(도련님)>에도 등장한다. 저녁 무렵이 되자 유카타를 입고 수건을 든 사람들이 온천 앞 거리를 활보한다. 그 풍경이 시계를 되돌려 19세기로 돌아간 듯 낯설고 옛스럽다. 마침 봇짱 가라쿠리 시계가 정각을 가리키며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튀어나왔고, 증기기관차의 기적소리가 울렸다. 나는 마쓰야마에서 봇짱열차를 타고 과거로 가고 있었다. 칙칙폭폭 셋째 날 호빵맨, 피규어와 함께 고치 ◀◀◀ 마쓰야마 아침 일찍 마쓰야마에서 우와지마로 가는 특급열차 ‘우와카이’에 올랐다. 특급열차들은 속도가 빠르고 편안했지만 셋째 날까지 타고 온 열차들이 비슷비슷해서인지 기차 여행에 대한 감흥도 점차 떨어지고 있었다. 그나마 이번에 탄 호빵맨 오렌지 열차가 동심 어린 볼거리를 던져 준다. 호빵맨 열차는 이 만화를 그린 야나세 다카시 작가가 고치현 출신이라 시코쿠에서 운행하는 열차노선에서 종종 볼 수 있다. 다행히 호빵맨 열차 뒤에 탄 카이요도 하비트레인부터 풍경은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푹푹 찌던 날씨도 태풍의 영향권에 들어 비를 뿌렸다. 카이요도 하비 트레인은 일본 피규어 제조회사인 ‘카이요도’사의 피규어들을 차량 안팎에 디자인한 기차인데, 달랑 한 량짜리 열차라는 점이 특이했다. 한 량짜리 기차에 기관사는 세 명이다. 앞에 두 명, 뒤에 한 명이 앉아 운전을 한다. 빗줄기가 굵어지자 철로가 미끄러워 열차는 경사면을 오르지 못했다. 기관사들이 내려 철로 위에 모래를 뿌려놓고 다시 조심스럽게 그리고 아주 천천히 기차를 몰았다. 그 숲 속에서 예고 없이 15분 정도가 흘렀다. 멀리서 나란히 달리던 논과 평야는 어느새 사라지고, 고치현의 산속 작은 마을들이 곁으로 다가왔다. 작은 마을과 간이역을 촘촘히 지나면서 비를 맞은 풍경은 더욱 싱그러운 녹색으로 진해졌다. 깊은 산속에서 흘러나와 도사만으로 흘러가는 시만토강이 모습을 드러냈고, 시만토강이 내려다보이는 마을 휴게소에서 이 지방에서 나는 재료들로 만든 소박한 점심도 먹었다. 도카와역에서 일행은 도롯코 열차로 갈아타고 여정을 이어간다. 이번엔 두 량짜리 열차다. 뒤에 달린 칸은 그나마 창문도 없다. 사방이 다 뚫린 기차는 터널과 숲속 길을 번갈아가며 열심히 달렸다. 비가 들이쳤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앞 칸으로 피하지 않았다. 시만토강을 내려다보면서 달리는 이 절경을 놓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도롯코 열차가 우쓰이가와역에 섰고 그곳에서 일행은 카이요도 하비관과 갓파관을 둘러보았다. 카이요도 하비관은 2009년에 폐교가 된 우쓰이가와 초등학교의 체육관을 개조해 만든 박물관으로, 카이요도사의 역사와 피규어 콜렉션을 모아 놓은 곳이다. 세계적인 프라모델들과 최신 피규어, 공룡, 미소녀에 이르는 방대한 양의 피규어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름부터 생소했던 갓파관은 쉽게 말하면 일본에서 전래되어 오는 상상의 동물 ‘갓파’를 모아 놓은 박물관이다. 시코쿠뿐만 아니라 여러 지방에서 전해 내려오는 갓파는 머리에는 접시, 손과 발가락에는 물갈퀴가 달렸고 입이 튀어나온 요괴인데, 인간의 나쁜 액을 막아 준다고 알려져 있다. 시코쿠의 내륙에는 깊은 산과 계곡이 많아서인지 산마을마다 전해 내려오는 요괴도 많다. 요괴 인형은 식당 한 자리에 자리를 잡고 있는가 하면, 사물함에도 붙어 있다. 마음 한켠에는 요괴에 대한 두려움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요괴들을 정겨운 이웃처럼 여기는 사람들의 태도가 인상 깊게 남았다. 1 폐교가 된 초등학교의 체육관을 개조해 만든 박물관 카이요도 하비관 2 개구리와 원숭이를 합쳐 놓은 듯한 상상의 동물 갓파를 다양한 조각과 캐릭터로 전시해둔 갓파관 3 기차 안 한켠에 공룡과 다양한 캐릭터의 피규어들을 전시해둔 카이요도 하비 트레인 4, 6 열차의 외관과 내부가 호빵맨과 그 친구들로 그려진 호빵맨 열차 5 지난해 7월 카이요도 하비관의 개장과 함께 1년간 운행하기로 했던 카이요도 하비 트레인은 지역 주민들의 호응이 좋아 1년 더 연장 운행 중에 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칙칙폭폭 넷째 날 비경을 가르는 도산선 루트 코토히라 ◀◀◀ 도쿠시마현의 오보케 ◀◀◀ 고치 시만토강을 굽어보고 고치를 거쳐 오보케 협곡을 지나는 JR 요도선과 도산선 루트는 이번 기차 여행의 하이라이트라 할 만큼 아름다운 길이었다. 고치의 자연 비경과 순박한 사람들을 고스란히 만나는 길이라 더욱 생동감이 넘쳤다. 오보케역에 내리니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 역장 모자를 쓰고 앞니가 두 개뿐인 남자 형상의 나무 조각상이 서 있다. “오보케역은 무인 간이역입니다. 도착하신 분들이 이곳에 아무도 없어 쓸쓸할까 봐 마을 사람들이 개암나무로 역장 할아버지를 만들었습니다. 여기 위에 보시면 위임장도 보이시죠? 고나키 할아버지는 작년 7월부터 이 역으로 출근을 하고 계신데요, 아직 한번도 안 나온 날이 없으시답니다.” 마을 관계자의 말을 듣고 보니, 고나키 역장의 표정이 마치 ‘어서 오십시오’하고 말하는 듯했다. 역 안에는 역무원 모자를 쓴 개의 사진도 걸려 있었는데, ‘고오타로’라 불리는 이 개는 매주 일요일마다 이곳에 출근해 고나키 역장 할아버지의 일을 돕는다고 했다. 이 정겨운 스토리에 나는 오보케 마을을 보기도 전에 마음을 빼앗겼다. 무인역 하면 아련히 떠오르는 쓸쓸함을 이 마을에선 찾아볼 수 없다. 오보케역에서 보이는 빨간 다리를 사이에 두고 이 지역은 오보케와 이야 마을로 나뉘는데, 우리가 들어선 곳은 이야 마을쪽이었다. 역 바로 앞에 있는 보께마트에서는 주인 유키코 아주머니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일행을 맞는다. 이 마트에서는 이야 마을에서 만드는 식료품들을 살 수 있는데, 겉이 매우 딱딱한 이와 두부와 이 마을에서 만든 녹차 등을 쉴 새 없이 권하신다. 훈훈한 이야기만큼 후한 인심과 정이 뚝뚝 묻어나는 마을이다. 일본에서 3대 비경으로 꼽히는 이야 계곡은 츠르기산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강의 물줄기가 시코쿠 산지를 날카롭게 파헤치며 20km에 걸쳐 이어진다. 우리는 2억년 전의 지층인 함력편암이 바위와 절벽을 이룬 오보케 협곡 아래의 강줄기를 따라 30분 동안 뱃놀이를 즐겼고, 덩굴나무를 엮어 만든 흔들다리 ‘카즈라바시’도 건넜다. 10여 미터 아래의 계곡물이 아찔하게 내려다보이는 길이 45m의 이 다리를 건너는 것은 고소 공포증이 있는 나로서는 영원히 건너지 못할 다리처럼 여겨졌으나, 거의 울다시피 하며 겨우 건넜다. 어쨌든 짜릿한 스릴을 느끼기에는 최고다. 신선한 가다랑어를 통째로 꼬치에 끼워 구운 것을 사람들이 핫도그처럼 들고 다니며 먹는 모습도 신기했다. 오보케의 마을에서만 만날 수 있는 소소한 일상의 모습이다. 오보케 협곡에서 뱃놀이와 다리 건너기로 기력을 소진한 채 난푸 20호를 타고 고토히라에 도착했다. 온천 호텔에 머물며 낮의 피로를 풀고 싶었으나, 온천욕은 밤으로 미루고 고토히라구에 먼저 올랐다. 일본에서 2대 신사로 꼽히는 이곳은 ‘곤피라산’이라 불리는 수호신을 참배하기 위해 일본 전역에서 사람들이 찾아온다. 에도시대부터 이어져 온 이 참배길은 사람이 못 오면 개의 목에 돈을 달아 대신 보낼 정도로 유명했고, 일생에 한 번은 참배하고 싶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785단의 긴 돌계단을 오르면 고혼구에 이르며, 여기서 583단의 계단을 더 오르면 최종 목적지인 오쿠샤에 다다른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부적을 사고 소원을 빈다. 탁 트인 사누키 평원과 평원 위에 우뚝 솟은 사누키 후지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사람들은 그 소원이 사누키 평원을 지나 후지산에도 닿기를,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다. 1 무인역인 오보케역에서 고나키 역장을 도와 일요일마다 역으로 출근을 하는 고오타로 강아지 2 덩굴나무만을 엮어 만든 카즈라바시 다리 3 오보케 협곡 유람선 표를 파는 지역 휴게소 내의 음식점 한켠에는 고치현에 사는 요괴 인형이 놓여 있다 4 고토히라구의 고혼구 부근에 세워져 있는 석등 5 오보케역에서 승객들을 맞이하고 있는, 개암나무로 만든 고나키 역장 6 고토히라역에서 내리면 유난히 낡은 상점과 집들이 과거로 돌아간 듯한 운치를 한껏 느끼게 해준다 1 이야 계곡 주변에는 카케나가시 원천의 노천탕을 갖춘 온천도 여러 곳 있다 2 100여 명이 채 안 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야마을의 오보케역에 놀러나오신 동네 할머니 3 이야마을로 시집 와 51년째 살고 있는 보께마트의 유키코 아주머니. 마을에서 직접 딴 고추 바구니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4 고토히라 신사에서 내려오는 길에 본 길거리의 작은 사물함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서울, 하루에 251명 “응애~” 부부 56쌍 “갈라서자”

    서울, 하루에 251명 “응애~” 부부 56쌍 “갈라서자”

    서울의 외국인이 지난 50년간 30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의 고령인구는 20배, 소비자 물가는 30배 증가했다. 지난해 하루 251명이 태어나고 110명이 사망했으며 196쌍이 결혼하고 56쌍이 이혼했다. 서울시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2012 서울 통계연보’를 25일 발표했다. 1961년 이후 매년 발간되는 통계연보는 인구, 경제, 주택, 교육, 교통 등 서울의 주요 사회지표를 담고 있다. 먼저 서울의 인구는 1960년 244만 5000명에서 지난해 1052만 9000명으로 51년 만에 4.3배 증가했다. 1992년 1096만 9862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한 후 감소해 오다 2004년부터 2010년까지 7년간 연속 증가세를 보였다. 외국인은 1960년 8772명에 불과했으나 32배 증가해 지난해 말 현재 27만 9095명이 거주하며 서울 총인구의 2.65%를 차지하고 있다. 1960년 5만 4354명이던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지난해 말 104만 9425명으로 19.3배 늘었다. 고령인구는 2001년 58만 9174명에서 10년 사이 46만 251명(78.1%)이 증가해 고령화 사회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서울 소비자물가도 크게 올랐다. 지난해 소비자물가지수는 103.8로 1965년(3.189)보다 32.5배, 2010년보다 3.8% 상승한 것으로 조사됐다. 중산층과 서민층의 대표적인 외식 메뉴인 자장면의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해 107.7로 1975년 4.072보다 26.4배 올랐다. 같은 기간 영화 관람료는 21.3배, 대중 목욕탕 요금은 28.9배 올랐다. 그 밖에 유치원 납입금 65.6배, 고구마 52.9배, 시내버스 요금 24.4배 등이었다. 하루에 6415명이 이사했고 지하철과 시내버스 승객은 각각 690만명, 465만명이었다. 지난해 말 현재 서울의 총주택 수는 344만 9176가구로 2010년 339만 9773가구보다 4만 9403가구(1.5%) 증가해 97.1%의 주택 보급률을 기록했다. 주택 유형별로는 아파트가 44.1%로 가장 많았으며 이어 다가구·단독주택 32.3%, 다세대주택 14.1% 등의 순이었다. 1960년에 인구 1000명당 5대 정도였던 자동차는 지난해 말 1000명당 283대로 증가했다. 10가구 중 7가구는 자동차를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7월에는 최초로 300만대를 돌파하기도 했다. 서울 시내 총도로길이는 8148㎞로 1960년 1337㎞보다 6.1배 증가했다. 공원 수는 1960년 124개에서 지난해 2643개로 21.3배 증가했으며 공원 면적도 25㎢에서 170㎢로 6.8배 늘었다. 초등학교의 교원 1인당 학생 수는 1960년 70.8명에서 18.1명으로 급감했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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