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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화 맞춰 「공직 전문화」 촉진/공무원 시험과목 개편 내용

    ◎기술고시 1차시험 「헌법」 없애/과목 대폭 줄여 우수인재 유치 정부가 6일 발표한 공무원시험과목개편안은 전문성을 높이고 정치색을 배제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사회 각 분야에서 진행되고 있는 국제화·전문화·과학화추세에 공직분야도 뒤떨어질 수는 없는 일이다.따라서 채용때부터 전문성을 중시하자는 게 공무원시험과목개편의 취지다. 이번에 새로 신설되는 채용분야는 주로 국제통상·환경·과학기술등이다.구체적으로 5급 행정고시는 현재의 8개 직류에서 국제통상·노동등 2개의 채용직류가 늘어났다.5급 기술고시에는 수질·식품위생·교통시설·도시계획·항공우주등이 추가되었다.7,9급 공채시험에도 비슷한 채용분야를 추가함으로써 중·하위직에도 전문성을 살린 인사가 가능하도록 했다. 지금까지 해온 채용직렬의 시험과목도 대폭 바뀌었다.5급 고등고시에 있어서는 지금 10∼12과목인 것을 7∼9과목으로 시험과목수를 3∼4과목씩 줄였다.이는 우수인재유치에 있어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배려라고 총무처 관계자는 설명했다.과목이 많아수험부담이 크면 우수인력이 민간분야를 선택할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교양과목을 중심으로 시험과목을 축소하는 대신 1차시험에서 전문과목의 비중을 높여 분야별 자격과 능력을 갖춘 전공자들이 보다 쉽게 시험에 합격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기술직시험에 있어서는 최근 새로운 학문영역의 개발에 따르는 과목들을 추가함으로써 공무원시험과목과 교육제도의 연계를 강화하고 있다. 이번 시험과목개편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국민윤리가 필수과목에서 빠진 것이다.80년8월 「5공정부」가 들어설 때 정부에 충성하는 사람들을 공무원으로 뽑는다는 생각아래 각종 공무원시험에 윤리과목을 넣었다.어찌 보면 정치적 목적에서 윤리과목이 들어간 셈이다. 새정부 들어 권위주의가 부정되면서 공무원시험에서 윤리과목을 빼자는 주장이 제기돼왔다.그러한 여론의 흐름에 맞춰 윤리과목의 폐지를 골자로 하는 시안이 지난달 중순 만들어졌으나 민자당과 정부일각에서 『인륜이 땅에 떨어지고 주사파가 날뛰는데 윤리과목을 제외할 수 있느냐』는 반론이 제기돼발표가 늦추어졌다.하지만 국민윤리는 전문과목이 아니라는 당초의 주장이 결국 그대로 채택되었다.같은 맥락에서 기술고시 1차시험의 헌법과목이 삭제되었다. 80년이후 14년만에 공무원시험과목이 전면손질되면 지방공무원시험과목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그에 따라 전국적으로 1백만명으로 추산되는 국가및 지방공무원 지망생들의 수험준비도 조금이나마 편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또 일반기업의 공채시험이나 교육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여겨진다.
  • 공무원시험 「국민윤리」 없앤다/96년부터 시행

    ◎「5급」 통상·교통 등 7개직종 신설 정부는 6일 행정수요의 국제화·전문화추세에 부응하기 위해 국제통상직·교통직등의 채용분야를 신설하고 공무원채용시험과목도 전문성위주로 개편하는 내용의 개선방안을 확정,발표했다. 이 개선방안은 5급 행정고시에 국제통상과 노동,기술고시에 수질·식품위생·교통시설·도시계획·항공우주등 7개 채용직렬을 추가하고 있다. 정부는 또 5급 고등고시및 7,9급 공채시험에서 국민윤리등 교양과목을 대폭 삭제하는 대신 전문과목을 추가해 전체 과목수를 3∼4개 줄이는 내용의 공무원임용시험과목개편안도 마련했다. 총무처는 이미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응시자들의 불편이 없도록 오는 96년부터 이들 시험과목개편안을 시행하기로 하되 국제통상·교통등 새로 신설된 분야는 내년부터 바로 채용시험을 실시할 계획이다. 이번의 공무원시험과목개편은 지난 74년과 80년의 전면개편에 이어 14년만에 이뤄지는 것이다. 임용시험과목개편안에 따르면 행정고시의 행정·공안직에 있어 1차시험 5과목가운데 민법총칙·정보체계론을 분야별 전문과목으로 대체하고 1차의 전문 2과목을 2차시험에도 중복편성함으로써 전문능력을 집중적으로 평가하기로 했으며 전체 시험과목도 12개에서 9개로 줄였다. 외무고시는 제2외국어시험에서 일본어와 말레이·인도네시아어,아랍어를 삭제하는등 현재의 12개 과목에서 8개 과목으로,기술고시는 10개과목을 7개과목으로 줄였다.
  • 연세대/내년 본고사 국어 모두 주관식 출제

    ◎논술배점 40%로 높이기로 95학년도 연세대 입시본고사에서 국어과목은 객관식문제가 없어지고 25%이던 논술배점이 40%로 상향조정된다. 연세대는 27일 지난해 객관식 16문항,주관식 18문항,논술 2문항을 출제했던 국어과목의 항목수를 20문항으로 줄여 모두 주관식으로 하며 1백점만점에 25점이던 논술점수를 40점으로 높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또 영어과목은 주관식 70%,객관식 30%로 하며 주관식의 출제경향은 긴 문장을 제시,독해능력측정에 비중을 두기로 했으며 수학은 변별력을 유지하기 위해 난이도를 다양하게 배분하고 작년과 같이 모두 주관식으로 출제하되 부분점수를 인정키로 했다.
  • 남대문/문:상(서울600년만상:53)

    ◎“국보1호” 원형보존된 서울의 상징/정고1년뒤 창건… 세종때 대대적 개축공사/일재 1907년 양쪽 성벽 헐고 도로개설 국보 1호인 남대문(숭례문)은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서울시내 건물중 가장 오래된 서울의 대표적 상징물이다.도성 4대문 가운데 가장 큰 남대문은 그러나 1907년 도시계획에 밀려 양쪽 성벽이 헐리고 길을 내는 바람에 접근로가 끊긴채 남대문로 한복판에 고립돼 점점 그 상징성을 잃어가고 있다. 정도 1년뒤인 1395년 태조가 창건한 남대문의 문루는 3년만에 완성됐다.그후 세종 29년(1447)8월 대대적인 개축공사를 시작,전라도 완주 지역의 인부 6천8백명과 목수,석수,대장,조각사등이 동원돼 이듬해 5월 마무리했으며 성종 10년(1479)과 고종때 증수됐다. 6·25동란으로 상동(상동)일부가 파괴되는 시련을 겪었으며 지난 56년과 62년 두차례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벌였다. 이에앞서 남대문은 1907년 10월 최대의 위기를 맞는다.을사보호조약으로 사실상 조선의 내정을 장악한 일본은 경인·경부·경의선 철도의 완공으로 서울역을 통해 성안으로 들어오는 교통량이 늘어나자 남대문과 주변의 성곽을 철거해 도로를 낼 것을 끈질기게 요구했다.특히 1907년 10월로 예정된 일본 황태자의 서울방문을 앞두고 『전차와 우마차의 통행으로 비좁은 남대문을 통해 황태자를 영접할수 없다』며 우선 남대문 서측 성곽을 헐고 도로를 새로 낼 계획을 강력 추진했다.당시 일본은 일본인 내무차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성벽처리위원회를 발족까지 했으나 빗발치는 우리 조정대신들과 국민들의 반대로 주춤했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이듬해 10월 남대문에 이어진 성곽을 부수고 석축을 쌓은뒤 길을 내고 성곽의 돌은 인천항을 축조하는데 사용하는 횡포를 저질렀다.남대문 보호석축도 지면과 수직으로 쌓아 올리는 우리의 전통석축양식과는 달리 안쪽으로 완만한 곡선을 나타내는 일본식으로 축성돼 『일본식 건축물이 국보1호를 둘러싸고 있다』는 비판이 지금도 일고 있다. 남대문은 일본군과 한국군이 합방이후 처음으로 격렬한 전투가 치러진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1907년 8월 일본의 군대해산으로 나라의 운명이 완전히 기울어지자 울분을 참지못한 시위 제1연대 1대대장 박성환이 『국가가 망해도 왜놈 한놈을 죽이지 못했으니 내가 군대해산을 명할수 없다』며 권총으로 자결했다.이 소식을 들은 우리군인들이 무기·탄약을 탈취해 일본군을 공격했으며 일본군들은 남대문 벽위에 기관총 2문을 설치해 우리를 공격했던 곳이다.또 석축에는 아직도 6·25전쟁의 탄흔이 남아있어 민족의 뼈아픈 한을 후세에 전해주고있다. 남대문의 「숭례문」현판은 풍수지리설에 따라 관악산이 화산이므로 도성안의 화재를 예방하기 위해 다른 문들과는 달리 종서로 쓰여진 것으로 전해진다.음양오행설에 따르면 「예」자는 불에 해당되고 「불」은 남쪽을 표시하는 것으로 관악산의 화기를 막기위해 숭례문 현판을 세로로 세워 놓아 불을 일으키면 맞불을 놓은 격이 되어 불길을 잡을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현판 글씨의 주인공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우선 태종의 장남인 양녕대군의 글씨로 보는이가 많으나 태종때의 명필이던 공조참판 암헌 신색이 썼다고도 하고 중종때 공조판서를 지낸 죽당 유진동이 썼다고 하는 주장도 있다.
  • 증시 옛 풍속도/격탁매매 모형 시연

    ◎증권거래소에 설치… 오늘부터 공개/매매성립 나무방망이 두드려 공표 『74년○월○일 증권거래소 시장.단상의 격탁수가 「지금부터 한전주에 대한 거래를 시작하겠습니다」라며 매매 시작을 알린다.시장 대리인이 손짓으로 「1천원에 10주를 팔겠습니다」,「1천원에 20주를 사겠습니다」라며 고객들의 매도 및 매수 주문을 낸다.잠시 뒤 매매주문 기록을 받아 쥔 격탁수가 「한전주 10주의 매매가 이뤄졌습니다」는 말과 함께 딱 딱 딱…』 사람의 4분의1 크기로 축소된 28개의 인형들이 지난 56년부터 74년까지 증권거래소에서 통용되던 격탁(일명 딱따기)매매의 장면을 재현했다.서울 여의도의 거래소 4층 관람실에 설치돼 5일부터 공개된다. 격탁매매는 나무로 만든 딱따기를 두드려 「매매 성립」을 알린 데서 붙여진 이름.상장 종목수가 급속히 늘어나며 도입된 포스트매매(컴퓨터에 의한 전산방식) 이후 사라졌다. 지난 3월부터 8천5백만원을 들여 제작된 모형은 가로·세로 2.5m 크기의 육각형 피라미드 안에 설치됐다.
  • 뛰어난 조탑술(백제를 다시본다:21)

    ◎미륵사 9층탑은 삼국최초의 석탑/무왕때 건립… 동·서 2개로 크고 웅장/정림사탑서 단아한 백제양식 완성/익산산 화강암 황등석을 재료로 사용… 석등 조형술도 발달 최근 발견된 금동용봉련래산향로는 백제의 문화가 부드럽고 온화하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그러면서도 생동감이 넘치는 뛰어난 예술감각을 지니고 있지 않은가.특히 성왕이 사비로 천도한 이후는 종래와 다른 다양한 장르의 예술을 탄생시켰고 또 백제의 것으로 완성한 시기이기도 하다. 백제의 문화는 도읍이 위치했던 지역에 따라 나름대로 특성을 가지고 발전을 거듭해 왔다.한강유역에서는 고구려로부터 지니고 온 전통을 바탕으로 독자적 문화창조 노력을 기울인 시험기를 살았다면 금강유역의 웅진(공주)도읍기는 부흥기라 할 수 있다.그 다음 사비(부여)도읍기는 이들 두 시기를 거치는 동안 축적한 문화역량 위에서 가장 백제적인 문화예술을 완성한 동시에 융성의 경지에 다다른 시기일 것이다. ○목탑건축양식 모방 사비시대는 특히 불교미술분야에 해당하는 여러 조형물이 축조되었다.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조형물을 만드는데 필요한 자료로 화강암이라는 돌을 채용했다는 점이다.그래서 사비시대 백제는 불교미술을 극치로 이끄는 가운데 걸작의 석탑과 석등을 후세에 남겼다.그 대표적 유물이 전북 익산 미륵사터와 충남 부여 정림사터에 있는 석탑이다. 백제인들이 석탑을 세우기 시작한 것은 종래 목탑이 지녔던 결함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다.다시 말하면 화재나 습기에 약한 목재 대신에 석재를 썼다.목재에 비해 다루기가 무척 힘이 드는 돌을 나무 다루듯 매만져 거대한 석탑을 조영했다.고도의 기술이 뒷받침되지 않고는 엄두도 못낼 일을 척척 해냈다.그 백제인들이야 말로 지혜로 충만한 사람들이었다. 익산 미륵사는 무왕 재위연간(AD600∼640년)에 창건된 것으로 알려졌다.그 미륵사에 남아있는 거대한 석탑의 잔영은 불가사의한 존재이거니와 우리나라 최초의 석탑으로 기록된다.조선시대 저술인 「동국여지승람」은 「유석탑고수장 동방석탑지최」라고 적어 그 규모와 높이가 대단했음을 일러준다.특히 화강암이라는 강한 재질의 석재를 목탑건립 형식에 꿰맞추었다는 사실은 백제인들의 건축기술 수준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미륵사 석탑은 목탑양식을 직모내지 번안한 것으로 보면 좋다.그 이유는 우선 낮은 단층의 기단위에 세웠다는 점이 목조건물을 짓는 수법과 같다는데 있다.그리고 초층 탑신에는 엔타시스가 뚜렷한 4개의 기둥을 배치,3칸 규모의 건물을 뚜렷이 재현했다.중앙칸은 내부로 통해 십자로 교차되게 설계했는데 내부에는 방형의 버팀기둥을 세웠다. 목조건물의 의도가 담긴 흔적은 또 있다.2층 이상의 탑신 2칸으로 규모를 축소시킨 가운데 엔타시스가 뚜렷한 동자기둥을 놓았다는 점이 그것이다.덮개돌(옥개석)의 추녀 끝이 반전한 것 역시 목조건축의 의사를 충분히 반영했다.발굴조사 결과 9층탑이라는 과학적 확신이 나와 동탑은 최근 9층으로 복원되었다. 목탑에서 석탑으로 전환되는 시기에 첫 작품을 9층이라는 높은 규모로 설계한 지혜가 놀랍다.그 높은 건축물을 석재를 써서 재현한 백제인들의 기술이나 수학적 능력,예술적 조형감각을 찬탄하지 않을 수 없다.특히 천년을 하고도 수 세기가 지난 후세에 동탑을 복원하면서 오늘을 사는 사람들은 백제인들에게 외경을 느낄 정도였으니까….컴퓨터에 의한 설계와 모든 신장비를 동원한 동탑 복원을 통해 백제를 다시 읽었던 것이다. ○조형감각 놀라워 미륵사터 석탑 건립에서 자신감을 얻은 백제인들은 도읍지 사비도성 한복판 정림사에 오층석탑을 건립한다.이 석탑은 초층 탑신 4면에 음각된 소정방의 공적문 때문에 한때 「평제탑」이란 이름이 붙기도 했다.그러나 1942년 발굴조사 결과 「대평팔년무진정림사대장당초」라는 새김글씨가 든 기와가 발견되어 탑자리가 정림사 경내였음이 확인되었다.또 1979년 조사에서도 이같은 사실이 다시 확인되어 정림사 오층탑으로 탑이름이 굳혀졌다. 이 정림사 오층석탑은 미륵사터 석탑이 보여준 거대한 규모에서 우선 탈피하고 있다.그래서 안정감을 안겨준다.단아하면서도 정제된 아름다운 자태는 백제석탑의 양식적 완성을 이룬 것으로 생각된다.이는 마치 신라가 분황사 모전석탑으로부터 의성 탑리 오층석탑과 감은사터 오층석탑 및 고선사터 삼층석탑을 거쳐 불국사 삼층석탑에 이르러 석탑양식이 비로소 정착되는 것과 같은 양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두나라 석탑양식을 보면 비교되는 측면을 지닌다.시원적 형식의 미륵사터 석탑에 이어 정림사터 오층석탑에서 양식적 완성을 이룬 백제 석탑과 신라 석탑은 사뭇 다르다.왜냐하면 신라는 몇 단계의 실험을 거친 후에 가서야 석탑의 정형을 완성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백제는 신라보다 한 수가 높은 문화창조의식을 가졌던 것이다.황용사 구층목탑을 건립하는데 백제의 아비지가 초청되었다는 사실도 결국 백제의 우수한 조탑술을 입증하는 예라 하겠다. 이같은 백제의 석탑은 국운이 다 하면서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만다.그러나 고려시대에 이르러 미륵사터 석탑과 정림사터 석탑 양식에 근원을 둔 백제계석탑이 백제의 옛 영토전역에 건립된다는 사실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려의 백제문화부흥운동으로 보아도 무방할 석탑양식의 계승은 불과 2기밖에 남지 않은 백제석탑이 우리 석탑발전사에 끼친 영향이 대단했음을 단적으로 일러준다. ○고려에 양식 계승 사비시대의 또 다른 독창적 석조미술이 있었다면 바로 석등일 것이다.애석하게도 완형의 석등이 전해지지는 않고 있다.하지만 여러 절터에서 수습된 부재들을 통해 사비시대의 석등 모습을 어느정도 상상할 수는 있게되었다.그 대표적 유물이 익산 미륵사터에서 나온 연화대석,화사석,옥개석이다.연화대석에는 팔각형의 구멍이 뚫려있는 것으로 보아 석등의 기둥 역시 팔각으로 추정된다.따라서 사비시대 처음 건립된 석등의 평면은 팔각의 구도를 취했다는 결론이 나온다.그리고 우리나라 석등의 시원도 미륵사 석등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석탑과 석등은 사원건축물,불상과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불가의 조형물이다.지금까지 우리 앞에 우뚝 버티고 있는 까닭은 그 재료가 화강암이라는데 있다.백제인들이 석조미술을 꽃피우기까지는 창의적 예술성이 밑바탕이 된 것은 물론이지만,주변의 자연을 지혜롭게 활용한 것도 큰 보탬이 되었다.지금도 그 유명한 순백의 화강암 황등석이 익산지역 일원에서 채석되고 있거니와 많은석재공장이 산재한다. 어떻든 금동용봉봉래산향로의 출현은 삼국 가운데 맨 먼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백제문화로서의 석조미술까지를 되돌아 보게했다.이 기쁨이 크다 할 것이다. ◎동탑 복원/돌 2천7백t·인력 4만5천명 동원/컴퓨터 등 첨단기법 이용… 옛보습 찾아 백제문화의 불가사의는 석조미술에서 발견된다.전북 익산군 금마면 기양리 미륵사터에 남아있는 석탑에 이르면 더욱 그렇다.돌을 다듬고 맞추어 쌓기를 목수가 나무를 다루어 집을 짓듯 하였으니,당시 사람들의 사고로는 경이로운 존재였을 것이다. 그 미륵사 석탑을 백제 멸망의 비극처럼 허물어진 가운데 서탑 1기만이 잔영으로 남아있을 뿐이다.현재 6층의 일부가 간신히 버티고 있는 이 서탑은 본래 9층이었던 것으로 학술조사 결과 밝혀졌다.서탑 옆에는 동탑이 존재했었다는 사실도 학술조사를 통해 확인되었다.동탑의 기단부와 함께 부재들을 찾아낸 문화재관리국은 이를 근거로 지난 93년 초 본래의 자리에 동탑을 복원한 바 있다. 동탑을 새로 복원하면서미륵사 석탑에 대한 신비가 풀리기 시작했다.우선 현존하는 서탑과 헐어져 나뒹구는 부재들의 수치를 기초로 컴퓨터 처리를 했을 때 웅장하고 아름다운 9층탑의 자태가 떠올랐다.그리고 지난 90년 2월 세부설계를 마친뒤 그해 11월 복원공사에 들어갔다.공사에는 불국사 복원공사 등에서 경험을 쌓은 인간문화재급 석수장들이 모두 참여했다. 석재는 이웃 황등돌을 썼다.한국동력자원연구소가 본래의 석재를 분석,황등돌과 일치한다는 통보에 따라 황등돌을 사용한 것이다.탑이 9층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데 큰 역할을 한 노반석 1개를 비롯,면석·계단석 등 모두 18개는 옛 부재를 그대로 활용했다.이 때에 들어간 돌은 자그마치 2천7백t에 이른다.돌을 다루는 공구는 물론 갖가지 현대장비를 투입하면서도 연인원 4만5천명이 동원되었다.얼마나 큰 대역사인가를 알 수 있다. 새로 복원된 동탑의 높이는 상륜부를 포함,27.8m에 이른다.웬만한 아파트 10층에 해당하는 높이다.47·11평의 기단 위에 세워졌다.탑이 건립될 무렵의 영화는 잠시이고,천년이 훨씬 넘는세월을 인고로 버틴 서탑 옆에 우뚝 서 있는 것이다.
  • 1910년 남북한 총인구1,331만명/통계로본 구한말 경제·사회상

    ◎60명이던 인구밀도 작년 4백44명/일인이 판검사 74%·경찰 40% 장악/외국인수 184,237명… 93년도의 2.7배/쌀 1가마 현재돈 4만6천원·쇠고기 1근 699원/서울 수도보급률 18%… 전화가입자 6,448명 오는 30일은 갑오경장이 일어난 지 1백주년이 되는 날이다.이때를 기점으로 근대적인 문물제도가 본격도입되면서 조선왕조의 봉건적인 제도는 일대변혁을 맞는다.국가통계도 의정부에 기록국이 설치되면서 근대적 의미의 통계가 시작됐다. 통계청은 28일 이날을 앞두고 조선총독부 통계연감 등 당시의 각종 통계자료를 종합한 「개화기의 경제·사회상」이라는 책자를 펴냈다.변혁의 회오리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던 한세기 전 우리 사회의 모습을 알아본다. ▷인구◁ 한일합방이 되던 해인 1910년 남북한을 합친 전국인구는 2백89만4천7백77호구에 1천3백31만3천여명.올해 남북한의 19%,남한의 30%수준이다.그러나 인구밀도는 60명(93년 남한 4백44명)수준으로 지난해 세계평균 41명보다 높아 당시에도 인구가 조밀했다.경북이 1백57만7천명으로 가장 많았다. ○외국인 90%가 일인 현재 남한인구의 4분의 1이 몰려 있는 서울은 당시 27만8천9백58명으로 전체의 2.6%에 불과,그동안의 인구집중추세를 여실히 알려준다.그동안 38배가 늘었다.당시 서울의 가옥은 초가집이 주종으로 기와집과 반기와집은 30%정도였다. 전체호구수의 84.1%가 농업에 종사했고 상업 6%,광공업 0.8%,날품팔이 0.2%였다. 생산활동을 하지 않는 양반과 유생은 2.5%였다.양반이 가장 많은 곳은 충남으로 전체호구수의 10.3%가 양반이었다.「충청도양반」이 헛말이 아닌 셈이다. 당시 외국인수는 18만4천2백37명으로 93년의 6만6천6백88명보다 2.7배나 많다.90%가 넘는 17만1천5백43명이 일본인으로 한반도쟁탈전에서 승리한 일본인들이 떼지어 밀려왔다.창기와 작부도 4천여명이나 됐다. 식수체계의 미비와 의료시설의 낙후로 수인성전염병에 의한 사망이 많아 1909년에는 인구 10만명당 12·2명이 콜레라에 감염됐고 치사율은 79.2%나 됐다.지금은 거의 사라진 천연두도 기승을 부려 1910년에는 4백45명이 이 병으로 숨졌으며 56%가 10세미만의 어린이였다.특히 이 해에는 발육 및 영양부족으로 죽은 어린이가 2천81명이나 됐다. ▷산업◁ 1909년의 농가당 경지면적은 1.03㏊로 지난해의 1.29㏊와 큰 차이가 없다.논은 전남이,밭은 평북이 가장 넓었고 전국 논밭의 43%가 관청과 향교 등에 소속돼 면세혜택을 받았다.쌀생산량은 7백45만8천섬으로 지난해의 23%수준.반면 보리·조·수수 등은 지금보다 수확량이 많아 잡곡이 주식이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1910년의 가축수는 소와 돼지가 각각 현재의 25%와 10%수준인 62만8천마리와 57만6천마리였다.주요교통수단으로 이용되던 말은 3만3천마리로 지금의 6배다. 개항과 함께 근대적 형태의 공장들도 들어섰다.1910년의 공장수는 전국에 1백51개,종업원은 8천4백77명이다.한 공장에 56명이 근무한 셈이며 공장당 건평은 현재의 33%인 1백62평이다.정미·인쇄·방직·철공장이 주종이고 전국 공장의 38%가 몰린 경기도가 전국생산량의 58%를 차지했다. 상거래는 5일장에서 주로 이루어졌다.시장수도 1908년 8백46개에서 3년 뒤 1천84개로 늘었다.농수축산물이 60%,직물이 21.7%로 거래품목의 대부분이었다. 1910년의 개인사업자는 14만여명으로 한국인 83·7%,일본인 15%였다.한국인은 음식점과 여인숙 등을 주로 했으며 일본인은 총포상과 화약상 및 고철상 등 13개 업종을 독점했다. ▷수도·철도·통신◁ 1910년까지 부산과 경성 등 4곳에 상수도시설이 갖춰지면서 1만6천여가구에 식수가 공급됐다.그러나 경성의 수도보급률은 18%에 그쳤다. ○전화 한통화에 2전 1899년 인천∼노량진 간 경인선을 시작으로 깔리기 시작한 철도망은 10년 뒤에는 1천86㎞(현재의 35%수준)로 늘어났다.하루평균 5천7백30여명의 여객을 수송했고,2천5백여t의 화물을 운송했다. 전화가입자는 1902년 3백10명에서 1910년에는 6천4백48명으로 21배가 됐다.경기(46.8%)와 경남(15.6%)이 전체의 60%를 넘었다.1구역의 전화요금은 한 통화에 2전으로 달걀 1개(1.5전)보다 비쌌다.요즘 달걀값과 비교하면 당시의 전화요금이 지금보다 비싼 셈이다. 교육·의료 보통학교도 있었지만 여전히 서당이 교육기관의 중심이었다.1910년 전국의 서당수는 1만6천5백40개로 한 서당에서 평균 9명이 배웠다.보통학교는 1백73개교로 학급당 학생은 34·3명이었다.여학생은 6%에 불과했다.결석률은 1911년의 경우 11·6%,중퇴율도 30% 가까웠으며 만학도가 많아 학생들의 연령층도 다양했다. 병원은 1백25개가 있었지만 한국인 소유는 고작 14개였다.그러나 1천7백38명의 의사 가운데 한국인이 1천3백44명으로 77%였다.의사 1인당 인구는 현재의 10분의 1수준인 7천6백60명이었다. ○목수 일당 쌀한말값 ▷물가·임금◁ 1898년 서울시장의 1등미 1섬의 가격은 8원(한가마 4원)이었다.닭 한마리는 0.2원으로 쇠고기 한근(0.12원)보다 비쌌다.요즘 화폐로 환산하면 쌀 한섬은 4만6천5백원,쇠고기 한근은 6백99원정도로 추정된다.당시 목수의 평균일당은 0.82원으로 쌀 1말정도를 살 수 있었다.요즘의 일당으로 구입할 수 있는 2.5말과 비교하면 당시 임금이 박했음을 알 수 있다.한국인 노동자의 임금은 일본인의 절반에 불과했다.공무원봉급은 격차가 더 심해 일본인이 2∼3배 많았다. ▷공공행정·치안◁ 1910년의 경찰은 5천8백81명으로 40%가 일본인이었다.특히 경찰의 고위직 대부분과 판·검사의 74%가 일본인으로 치안·사법계통을 일본인들이 거의 장악했다.다만 변호사의 경우는 한국인이 51명으로 일본인보다 20명정도 많았다. 1910년의 인구 10만명당 강도발생건수는 92년의 4배인 23.9건으로 개화기의 뒤숭숭한 세태를 반영했다. ○수입이 수출의 2배 ▷무역·금융◁ 1876년 개항이후 대외교역이 본격화되면서 교역량은 1910년까지 연평균 17%씩 늘었다.1910년의 수출은 1만9천9백원,수입은 3만9천7백원으로 수입이 2배나 됐다.엄청난 무역적자인 셈이다.일본과의 교역이 수출의 74%,수입의 60%를 차지했다.수출품은 농축산물·인삼·철광,수입품은 석탄·옥양목 등이 주종이었다. 화폐발행고는 1910년 2천16만4천원으로 8년 전보다 54.3% 증가했다. 은행예금보다 대출규모가 컸으며 금리도 1909년의 경우 예금 5∼6%,대출 11∼13%로 대출금리가 월등히 높았다. 1894년 당시 엔화환율은 1엔이 우리 돈 은화 5냥(50전) 수준이었다. ◎군예산이 전체의 25%로 최고/명성왕후 장례비 쌀4만섬값/재무예산 31% 대일채무상환/19세기말 국가예산 쓰임새 1899년의 우리나라 국고는 당시 화폐로 대략 6백40만원정도.예산편성은 지금의 재무부격인 도지부(탁지부)에서 했다.예산규모는 군부(국방부)·내부(내무부)·도지부·궁내부(청와대) 순으로 요즈음과 비슷하다.지세·가호세·관세 등으로 조달된 세금은 어디에 쓰여졌을까. 궁내부의 예산은 6만5천원.대부분 황제를 모시고 궁정을 유지하는 데 쓰였지만 제사비용도 1만5천원으로 23%나 됐다.1896년과 그 이듬해에는 일본인이 시해한 명성황후의 장례비로 농상공부 예산의 2배 가까운 35만5천원을 썼다.지금으로 치면 1백여억원규모며 당시 쌀 4만4천3백섬을 살 수 있는 돈이다. 1백30만원의 내부 예산 대부분은 지방의 행정기관과 경찰·감옥 유지에 쓰였다.서울시격인 한성부 예산이 내부 전체의 0.5%에 불과한 것이 이채롭다.창궐하던 천연두예방을 위해 종두접종을 의무화해 3천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탁지부 예산은 일본 차관금 상환여부에 따라 해마다 큰 차이가 났다.1899년의 예산은 2백여만원으로이중 대일채무상환용이 31%를 차지,가장 많았다.주로 정부의 채무를 갚는 데 예산이 집행됐다.각 도에서 징수한 세금을 서울로 운송하는 데 든 돈도 10%정도인 22만원이나 됐다.세금으로 거둔 1원짜리 동전의 무게가 1.8∼2㎏이나 돼 수송비용이 많이 들었다. 군부의 예산은 전체의 25%정도로 지금처럼 가장 비중이 높았다.1899년의 예산 1백43만8천여원의 90%이상이 군대유지비에 쓰여졌다.이중 대부분이 수도군의 유지비로 쓰였다.법부(법무부)의 예산이 3만8천9백여원으로 가장 적었다.지금과 달리 교도소 등 감옥이 법부가 아닌 내부 소속이었기 때문이다.
  • 작년 세계무역액 3조7천억불/10년만에 감소로 반전

    ◎전연비 1.8% 줄어 【도쿄 연합】 작년 세계무역액은 3조7천77억달러(명목수입액 기준)로 92년에 비해 1.8% 줄었으며 10년만에 감소로 돌아섰다고 일본 무역진흥회가 25일 발표했다. 무역진흥회가 이날 발표한 「세계와 일본무역」(94년판)에 따르면 이같이 세계무역이 감소한 것은 원유등 1차산품 가격이 하락세를 보인데다 달러에 대한 유럽통화의 대폭 가치하락이 큰 원인이다. 지역별로는 동아시아,미국,중남미의 수입이 크게 늘어난 반면 유럽은 경기침체로 부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선진국 무역액은 명목 기준으로 수출이 전년대비 4.2% 감소한 2조5천3백83억달러,수입은 6.4% 준 2조5천3백8억달러이며 개발도상국은 수출이 7.5% 증가한 1조1천9백24억달러,수입은 9.7% 늘어난 1조1천7백69억달러로 각각 나타났다. 세계의 성장중심지로 불리는 아시아의 비중은 점점 증가,한국·대만·중국·태국 등 동아시아는 수입액이 전년대비 13.2%나 늘어났다.
  • 절로가는 마음/신영훈지음(화제의 책)

    ◎전국 유명사찰 건축기법·배경 등 설명 종교적인 공간으로서의 절집이 아니라 한국인의 정서가 응집한 문화공간으로서의 절을 소개한 문화기행서. 전국의 유명사찰을 중심으로 대웅전·일주문등의 건축물,탑·불상등 조형물,그리고 불화·단청에 이르기까지 절의 영역에 포함된 모든 문화재를 다루었다. 4·4조 우리말 가락이 섞여 있는 유려한 문장으로 그 문화재를 만든 기법과 사상적 배경을 조목조목 짚어주고 있다. 문화재전문위원이자「한국 최고의 목수」로 불리는 지은이의 문화재에 대한 깊은 애정과 해박한 지식이 느껴진다. 책에 나오는 절 55곳의 소재지와 연혁,소장문화재들을 일목요연하게 담아 여행안내서로도 무난할 듯. 책만드는집 6천원.
  • 96­97 대입/본고사 논술위주로

    ◎교육부/국·영·수 위주 탈피… 현골격 유지 오는 96·97학년도 대학입시에서도 현행대로 대학별고사(본고사)가 대학자율로 치러진다. 다만 시험과목이 국어·영어·수학 중심에서 탈피해 과목수를 줄여 논술위주로 치러지는 방안이 마련된다. 교육부와 대통령 자문기구인 교육개혁위원회는 22일 교육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96학년도 이후의 대학입학제도」에 대한 이같은 정책방향을 발표했다. 양측은 현 고교 1·2학년생의 본고사 실시문제와 관련,『현행 틀 아래서 각대학이 자율적으로 실시토록 하되 국·영·수 위주에서 탈피,논술위주로 치르도록 각대학에 적극 권장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교육부 이태수대학정책실장은 『이는 입시제도의 예측가능성과 고교재학생의 신뢰이익을 존중하는 원칙을 준수함으로써 급격한 제도변화에 뒤따를 수험생과 학부모의 혼란을 덜어주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한편 교개위는 이날 상오 11시 발표때만 해도 『96학년도부터 본고사폐지를 포함한 개선안을 빠른 시일내에 추진하겠다』고 엇갈린 주장을 했다가 하오4시쯤 교육부 입장에 동의한다고 방침을 바꿨다.
  • 현 고1·2 대입안 교육부,오늘 발표계획

    교육부는 21일 현 고교 1∼2학년생에 대한 오는 96∼97학년도 대학입시 개선안을 확정,22일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개선안에는 현행대로 수험생들이 대학별고사(본고사)를 치를 수 있도록 하되 가급적 과목수를 1∼2과목으로 줄이고 수능시험의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출제항목수를 확대하는 방안등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 특차·전후기 5번까지 응시기회/95학년도 대입 어떻게 치르나

    ◎입시일 나눠져 복수지원 크게 늘듯/본고사 과목·반영률 예상보다 축소 95학년도 대학입시의 가장 큰 특징은 전형방법이 대학별로 더욱 다양화·구체화됐다는 것이다. 따라서 교육부나 각 대학이 추구하고 있는 입시 완전자율화에 한걸음 더 다가선 것으로 보여진다. 각 대학은 특차모집뿐 아니라 모집단위별·학과별·전공별로 고교내신·대학수학능력시험·본고사성적등의 반영방법과 비율을 나름대로 독특하게 반영하려 애썼다. 대학의 학생선발자율권이 미흡하나마 다소 신장됐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상위권 되레 불리 또 다른 특징은 대학별고사를 치르는 대부분의 대학들이 고교교육 정상화와 반대여론을 감안,당초 예상보다 반영비율과 시험과목수를 축소한 점이다.따라서 수능성적이 입시의 가장 중요한 척도로 떠올랐다. 아울러 전기대입시일자가 94학년도보다 더 분산됨으로써 중·하위권수험생의 복수지원기회가 실질적으로 넓어진 대신 상위권학생들의 지원기회는 상대적으로 좁아진 것도 주목된다. 특히 서울의 명문사립대 대부분의 입시일자가 서울대와 같은 1월13일에 몰려 있어 우수학생들의 선택폭은 올해처럼 여전히 좁다. 그러나 올해처럼 중·상위권 일부대학이 대거 정원미달사태를 빚거나 각 대학이 입시관리 부담으로 혼란을 겪는 일 등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모집요강별 주요내용을 간추린다. ▷모집인원◁ 대학정원이 94학년에 1만2천여명 늘어난 23만7천53명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내년도 정원은 25만명선에 이른다.특차모집은 전체의 10.2%인 2만5천5백명정도이다. 분할모집 18개대를 포함한 1백27개 전기대학의 모집정원은 전체의 82%로 94학년도보다 6.2%포인트 늘어났다.따라서 후기대의 정원은 7.8%로 줄게 된다.또 후기대의 경우 입시일이 같아 미등록충원 등의 관리부담을 덜게 된다. ▷입시일자및 복수지원◁ 전기대의 경우 1월13일 입시를 치르는 대학이 예상보다 줄어들어 이 날짜의 모집인원비율은 73.8%정도에 그친다.나머지 모집비율은 1월9일이 9.6%이고 1월17일은 16.6%이다.13일의 집중도가 떨어짐으로써 복수지원 기회가 그만큼 늘어난 셈이다. 94학년도에는 입시일이분산돼 외견상 최고 14회나 됐던 복수지원기회가 이번에는 특차를 포함,5회로 줄었으나 전체적으로 실질적인 응시기회는 더 넓어졌다.. 복수지원제의 활성화로 외형경쟁률은 실질경쟁률의 2∼3배 수준으로 높아지겠으나 94학년도와 같은 지나친 허수지원 경향은 사라질 전망이다. ○5개대는 논술만 ▷대학별고사◁ 숙명여대·강원대·공주대·충북대등 9개대가 당초와 달리 실시를 포기했다.선택과목수가 줄어 서울대와 고려대가 4과목,부산대등 9개대가 3과목,경북대등 17개대가 2과목,계명대등 11개대가 1과목만 치르고 동국대등 5개대는 논술만 시험본다.반영비율은 포항공대만이 50%를 적용하고 서울대·고려대·영남신대가 40%,경북대·경희대등 19개대가 30%,부산수대·계명대·한국외대등 9개대가 20%,대전가톨릭대등 7개대가 10%를 총배점에 반영한다. ○수능만으로 선발 ▷특차모집◁ 지원자격이 대학별·모집단위별로 다양화됐다.고려대·연세대·이화여대·숙명여대·성균관대·서강대등 서울의 명문사립대들이 수능성적만으로 우수학생을 선발한다.지난해의 수능성적분포로 볼때 특차정원 2만5천명안에 들려면 1백55점이상을 받아야하며 의예과등 인기학과에 지원하려면 1백70점이상을 받아야 할 듯하다. ○19개대 30% 반영 ▷전형비율◁ 1백3개대가 내신과 수능성적으로 선발하며 나머지 39개대는 대학별고사까지 반영한다.내신반영비율은 강릉대등 1백37개대가 40%,광운대등 5개대가 45∼55%이다. 수능성적은 영남신대가 10%,서울대·고려대가 20%,경북대·경희대등 19개대가 30%를 반영하고 강릉대·가야요업대등 71개대가 60%를 반영한다. ▷기타◁ 수능시험이 계열별로 출제되기 때문에 영역별성적에 가중치를 부여하는 대학이 지난번 28개에서 19개로 줄고 적용방법은 더욱 세분화됐다. 야간학과가 설치된 73개대중 71개대가 정원의 일정비율을 고졸후 2년이상 산업체에 근무한 청소년을 대상으로 특별전형한다.
  • 「성희롱재판」 여성학강의 “방불”/박용현 사회부기자(현장)

    ◎여대생까지 필기도구 들고 방청 법정은 여성학 강의실을 연상케했다. 방청석은 여성단체 회원들과 피고 신모교수의 과목수강을 거부한 서울대 자연대생들,학생회의 현장실습 권유로 나온 법대생들로 가득했다. 심지어 여성학과목의 숙제를 하기위해 필기구를 들고온 타대학 여대생까지 가세,법정바닥마저 차지하는 바람에 법정은 2백여 방청객의 체온만으로도 후끈거렸다. 국내 첫 「성희롱재판」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서울대 우모조교의 성희롱사건에 대한 4차 공판이 열린 22일 하오 8시30분쯤 서울 서초동 서울지법 562호 법정의 모습이다. 우씨는 조교로 근무하던 92년 5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20여차례에 걸쳐 신교수로부터 뒤에서 껴안는 듯한 자세와 머리·어깨를 어루만지는 등의 성희롱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얇은 옷을 입은 날 교수님이 밀착해오면 오물이라도 묻은 것처럼 털어내고 손을 씻을 수 밖에 없었어요』 우씨는 이같은 신체접촉은 연인사이에서나 가능하지 사제간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에대해 피고측 변호사는 『제자에 대한 친밀감을 표현한 것 아니냐』며 우씨를 과대망상으로 몰고갔다.법정 곳곳에서 야유섞인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공판이 끝나갈 무렵 재판장인 박장우부장판사는 『원고가 조교 재임용에서 탈락하지 않았더라도 피고의 행동을 문제삼았겠느냐』며 이례적으로 직접 신문에 나섰다. 우씨는 『그랬더라면 개인적인 성희롱 희생자로서 포기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겠지만 억울한 마음에 여기저기 수소문하다보니 여러 전임조교들도 피해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돼 더이상 묵과할 수가 없었다』고 진술했다. 우씨의 진술을 심각하게 듣고있는 것은 방청객만이 아니었다.법관석의 이은경판사와 원고측 변호인인 최은순변호사 역시 같은 여성이었다. 이들 표정에서도 차제에 성희롱에대한 개념규정과 이에대한 법적제재 방안등이 마련돼야한다는 공감대를 읽을 수 있었다. 수치심에 끝내 울음을 터뜨린 우씨를 보며 법정을 나오던 방청객들은 『성희롱문제를 사회적 관심으로 끌어낸 것은 우씨의 용기 덕분』이라고 입을 모았다.
  • 「대입 본고사」 필요한가(오늘의 쟁점)

    95대학입시에서는 대학별 본고사를 치르는 학교가 47개대학으로 늘어나자 한국교총과 서울시 고교교장단이 이를 재검토해 줄것을 요구하고 나섰다.대학 본고사실시와 관련, 이를 반대하는 김동연서울시고교교장단회의회장(창덕여고교장)과 지지하는 김대행교수(서울대 사범대학장보·국어교육과)의 주장을 쟁점으로 소개한다. ◎폐지론/김동연/학생 부담늘고 불법/고액과외 부추겨/「수능·내신」으로도 수학능력 파악가능 94학년도 입시에서 9곳에 불과했던 대학별 고사시행대학이 오는 95학년도 입시에서는 47개대학으로 늘어나고 고사과목도 대체로 국어·영어·수학 세과목에 한정된다고 한다. 이는 고등학교의 교육정상화라는 측면에서 볼때 심히 우려되는 일이다. 지난번 입시에서 처음 도입된 대학수학능력시험은 모처럼 고등학교 교육이 본연의 방향으로 나가는 전기를 마련했으며 일방적 주입식,단편지식위주의 입시교육에서 탈피하는 계기가 되었다. 학생들도 국·영·수 위주의 암기식 「족집게」과외보다는 정상적인 학교공부와 평소의 광범위한 독서,심오한 사고학습을 중요시하게 됐다. 그러나 95학년도 입시에서 47개대학이 대학별고사를 채택함으로써 이러한 교육정상화의 단초들은 심각한 위협을 받게 됐다. 원래 대학입학시험은 두가지의 기능이 있어야 한다.하나는 하급학교 교육정상화에 기여해야 하고 다른 하나는 상급학교인 대학의 수학능력 즉,대학에서의 학업성취능력의 정확한 예언이다. 현재 대학입학전형에서 고등학교 내신성적을 반영하는 것은 고등학교 교육의 정상화를 위한 것이며,대학수학능력시험은 말 그대로 대학수학성취능력을 얼마나 정확하게 예언하는가를 재는데 충분한 기능을 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따라서 수학능력시험만으로는 대학교육 성취능력을 잘 잴 수 없다하여 수학능력시험에서 충분히 학습능력을 측정한 국·영·수 세과목만을 대상으로 대학별고사를 실시한다는 것은 학생들에게 이중의 입시경쟁 부담을 안겨줄 뿐이다.대학의 자율성보장을 위해서 대학마다 특성있게 대학별고사를 확대 실시해야 한다는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대학의 독자성과 자율성을 보장받기 위해 대학별고사를 실시한다면 내신성적이나 대학수학능력시험과는 아주 다른 영역과 내용으로 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국·영·수 과목에 한정된 대학별고사는 대학의 자주성과 자율성 보장에 별다른 도움이 안될뿐만 아니라 불법고액과외를 부추겨 학부모의 사교육비 부담을 증가시키는 해악을 미칠것이 뻔하다. 따라서 대학별고사를 시행하되 국·영·수 교과만은 피해서 정치·경영·화학·생물 등 전공분야와 직결시켜 고도의 창의력과 사고력·조직력을 종합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과목을 중심으로 대학별고사를 치러야 할 것이다. 대학의 자율성과 특성화를 보장할 수 있는 독창적인 입학전형의 한 방법으로,면접구두시험을 통해 효율적인 학문수학의 가능성 또는 고도 지성인의 기본소양등을 측정해보는 방안도 고려해 볼 만한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많은 청소년중에는 이른바 「엉뚱한 천재」가 있을 수 있다. 발명왕 에디슨도,상대성이론을 창안한 아인슈타인도 획일적 정규학교교육에서는 실패했다. 대학별고사에서는이같은 「엉뚱한 천재」를 가려내 그 뛰어난 소질을 육성해 주어야 하며 정치·경제·문화·예술등 각 분야에서 탁월한 소질의 소유자,기상천외하고 기발한 착상의 천재를 발굴해야 한다. ◎존치론/김대신/창의력·사고력 측정엔 주관식 필수적/고교교육의 장상화·전인교육에 도움 95학년도에 많은 대학이 대학별고사를 시행하게 됨으로써 제기된 문제점을 중심으로 본고사의 뜻을 생각해 본다. 첫째,왜 굳이 대학별고사를 치르려고 하는가.대학은 창의적 사고능력을 중시하기 때문이다.객관식 시험은 그 능률성에도 불구하고 창의적 사고력을 개발하는데 한계가 있다. 주어진 조건속에서만 사고하는 사람은 대학이 지향하는 창의적 연구와 자기구현에 한계가 있으므로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력의 측정은 그 어떤 여론이나 부담과도 바꿀 수 없다. 둘째,채점상의 어려움을 무릅쓰고 왜 굳이 주관식으로 하는가.스스로 문제를 발견,그 해결방법을 모색하고 실천하는 자기개발 능력이 있어야 대학의 학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으며 미래 세계에서 경쟁력을 갖춘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입학한 뒤에야 그 능력을 개발하는 것은 시기적으로 너무 늦다. 셋째,시험과목이 왜 국어·영어·수학에 집중되는가.대학이 학생 선발을 위해 평가하려는 초점은 두가지로서 그 하나는 고등학교의 학업성취도이며 또 하나는 대학입학 뒤의 학문 가능성이다.이것을 예언해 주는데 상관도가 가장 높은 것이 이 세과목이다. 넷째,대학 또는 학과별로 한 과목만 치르면 안되는가.대학은 고등학교 일반보통교육을 통해 전인교육을 받아 균형있는 지식과 사고력을 갖춘 학생을 선발하려 한다. 대학이 원하는 것은 그 학과의 지식에만 탁월한 사람이 아니다.대학에 와서도 교양교육을 받도록 교육법이 규정하는 정신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학교교육의 정상화는 저해되어도 좋은가.고교의 정상화를 위해서 가장 바람직한 것은 고등학교의 전과목이 고루 시험과목이 되는 것이다. 과목수를 제한하게 된데는 여러 요인이 있겠으나 전과목을 채택하지 않는한 국·영·수 중심이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다.입시과목이 표준화되어야 대학과 학과의 선택이 자유롭다. 여섯째,고등학교 내신성적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언젠가는 그렇게 되리라고 본다. 그러나 고교교육이 입시에 좌우된다는 말은 무엇을 뜻하는가.입시가 그렇지 않으면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다는 증거로 간주해도 될 것이다.학력고사가 시행되는 동안 길러진 것은 오로지 객관식 문제나 풀 줄 아는 능력에 국한되었다는 그 동안의 뼈아픈 경험을 감추지 말아야 한다. 일곱째,학생들이 그토록 과중한 부담에 시달려도 되는가.교육은 자기 향상을 위해서 스스로 부담을 자청하는 행위이다. 중요한 것은 그 부담이 가치 있는 것인가,아니면 불필요한 부담인가 하는데 있다.과외나 사교육비의 증가문제도 이런 기준으로 살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가지.교육에 관한 논의는 교육의 목표와 본질에 근거하지 않고 시장논리에만 매달리게 될 때 파행을 부른다.개인과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위하여 진정 필요한 것을 도외시하지 않는 교육적 양식위에서 입시가 논의되기를 바란다.
  • 지하카바레 공사장 불… 7명 사망/상계동

    ◎용접작업중 불똥 인화… 5명 중태/정전으로 출구 못찾아 피해 커 3일 상오11시20분쯤 서울 노원구 상계6동 134의4 동방빌딩 지하1층 워싱턴카바레(주인 정차성·48)개축공사장에서 불이 나 이원철씨(37·용접공)등 인부 7명이 연기에 질식돼 숨지고 천영범씨(30·도배공)등 5명은 화상을 입고 근처 상계백병원 등으로 옮겨졌으나 중태다. 함께 작업을 했던 박태호씨(47·도배공·서울 양천구 목동아파트 14단지)는 『숨진 용접공 이씨가 벽면에 장식물을 붙이기 위해 용접작업을 하던중 불똥이 튀면서 마룻바닥에 깔아놓은 톱밥에 불이 옮겨붙어 불이 났다』고 말했다. 불이 나자 출입구 부근에 있던 인부들은 계단을 통해 빠져나왔으나 카바레 내부 칸막이 벽에서 도배를 하던 인부들은 갑자기 정전이 되는 바람에 출구를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다 질식돼 변을 당했다. 불이 난 공사현장에는 인부 36명이 작업을 벌이고 있었으나 뒷문이 닫혀있는데다 통풍구가 좁아 연기가 제대로 빠져나가지 못해 피해가 컸다. 경찰조사결과 이날 화재발생 30여분전에도 마루에서 용접불똥이 튀어 불이 나 인부들이 톱밥 등으로 진화했으나 아무런 안전조치없이 작업을 계속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날 불로 7층짜리 동방빌딩의 축협사무실직원과 증권사고객등 3백여명이 긴급대피하는 소동을 벌였다. 불이 난 곳은 지난해 12월까지 레스토랑이었으나 최근 정씨가 이를 인수,지난달 3일부터 인테리어업체인 「인터라인」(대표 조헌길·48)에 내부개조공사를 맡겼으며 오는 5일 완공할 예정이었다. 경찰은 조씨등 공사관계자들을 불러 자세한 사고경위를 조사하는 한편 조씨·용접책임자 전광린씨(67)등 2명을 중실화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사망자는 다음과 같다. △신제철(40·도배공·동작구 상도4동 211) △김왕규(49·도배공·중구 신당동 289) △이원철 △김석성(37·도배공) △장상석(33·목수) △공송오(54·도배공) △황모씨(목수)
  • 일가족살해범 영장

    서울 강동구 길동 일가족 살해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 강동경찰서는 20일 범인 조연씨(36·목수)에 대해 살인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그러나 조씨의 정신이상 여부부분에 대해서는 계속 수사를 벌이기로 했다.
  • 정신착란 30대 광란의 살인극/서울 길동

    ◎대낮 집주인 일가 4명 등 5명 살해/“잦은 면박에 앙심”/범인 대낮에 세입자가 주인집 일가족과 이웃 슈퍼마켓 주인등 5명을 잇따라 살해한뒤 경찰에 붙잡혔다. 19일 하오1시50분쯤 서울 강동구 길1동 402의13 신석균씨(41·자동차 출고대행업)집 1층 거실에서 이 집에 세들어 살던 조연씨(36·목수)가 신씨의 부인 김현숙씨(39),아들 승준군(1),장모 임영애씨(69)등 4명을 흉기로 목과 가슴 등을 마구 찔러 숨지게 했다. 조씨는 이어 20여m 떨어진 만물슈퍼에 들어가 『외상값을 갚으라』는 슈퍼주인 신복연씨(48·여)의 목을 찔러 숨지게 했다. 때마침 이곳을 지나다 사건을 본 김용현군(17·학생)은 『슈퍼앞을 지나는데 「강도야」하는 소리가 들려 뒤돌아보니 조씨가 칼로 슈퍼주인 신씨를 찌르고 있어 경찰에 신고했다』고 말했다. 조씨는 신씨를 살해한뒤 슈퍼마켓 2층으로 달아나 숨어있다가 출동한 경찰에 붙잡혔다. 조씨는 경찰에서 『평소 집주인 신씨 부부가 정신병자인 주제에 여자를 사귄다며 면박을 주고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시켜 원한을품어 왔다』면서 『10일전쯤에도 방을 내놓으라며 강제로 쫓아내 이같은 짓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조씨와 함께 신씨 집에 세들어 살던 하재명씨(65)는 『조씨가 지난해 6월부터 세들어 살아왔으나 평소 집주인과 자주 다퉈 1주일전쯤에도 현관문을 부수는등 행패를 부렸다』고 말했다. 경찰은 범인 조씨가 정신질환으로 10개월전 서울 중곡동 M정신병원에 1주일동안 입원했으며 범행동기에 대한 진술이 엇갈리고 있는 점등으로 미루어 정신착란상태에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조씨의 정신감정을 의뢰할 방침이다. 조씨는 전북 남원군 출신으로 지난 89년 7월 서울로 이사와 목수일을 해오며 생계를 유지해왔으나 정신병력 등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해오지 못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 벤젠 등 유독물질 기준치 새로 설정/음용수수질관리 강화

    ◎보사부,법령 개정키로 보사부는 14일 발암물질로 낙동강에서 검출된 벤젠과 톨루엔등에 대해 수질기준치를 설정,관리하는 등 수질기준을 선진국수준으로 높이기로 했다. 보사부는 이를 위해 오는 95년까지 수질기준항목수를 57개로,97년까지는 선진국수준인 85개로 늘리기로 했다. 보사부 전계휴위생국장은 『벤젠과 톨루엔이 이번 수돗물오염의 원인으로 밝혀진 만큼 빠른 시일내에 이들 유독물질에 대한 기준을 설정하는 방향으로 음용수수질기준을 개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미국과 일본 등은 이들 유독물질에 대한 허용기준을 상시검사항목 또는 감시항목형식으로 설정,운영하고 있다. 보사부는 음용수수질기준을 개정하면서 선진국에서 허용기준을 강화하고 있는 납과 망간 등에 대해서도 기준을 상향조정,엄격한 수질관리를 해나갈 계획이다. 현재 세계보건기구(WHO)는 벤젠과 톨루엔에 대해 각각 0.01㎎/ℓ와 0.7㎎/ℓ를,미국에서는 0.005㎎/ℓ와 1㎎/ℓ를 기준치로 설정,수질을 관리하고 있다.
  • 만기출소한 포로/북 주민접촉 승인

    【청주=김동진기자】 한국전쟁때 인민군으로 참전했다가 국군에게 붙잡혀 33년간의 옥살이를 했던 김영태씨(62·목수·청주시 내덕동 740의 11)가 최근 통일원으로부터 「북한주민 접촉승인」을 받아 북한의 가족들과 상봉할 수 있게 됐다. 평북 정주군 옥천면 장경리가 고향인 김씨는 지난 50년 인민군에 입대,남하하여 전투중 국군이 반격할때 미처 후퇴하지 못하고 빨치산으로 활동하다 54년 2월 지리산 함양지역에서 체포된뒤 비전향 장기수로 대구와 대전교도소등지에서 감옥생활을 했고 한때 출옥했다가 다시 투옥되기도 했다.
  • 목공일로 번 14억 장학금으로/7순 노부부 서울대에 희사

    ◎“돈없어 못배운 설움 없게” 집한채만 남겨 희수의 노부부가 평생 목수일등 허드렛일로 한푼두푼 절약해 모은 전재산을 대학 장학기금으로 내놓아 연초부터 훈훈한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해 12월30일 서울대학교에 장학금으로 써달라고 14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기증한 윤전수 할아버지(77·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와 이삼락 할머니(73).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난 윤할아버지는 소학교를 중퇴한 후 23살때 서울 충정로에 목공소를 차린뒤 65살 되던 82년초까지 오로지 한길로 목공소 일을 하며 돈을 모았고 부인 이할머니 역시 솜틀집을 하면서 「먹을 것 먹지않고 입을 것 입지않고」 알뜰하게 가계를 꾸려왔다. 『배우지 못한 것이 평생의 한이 됐다』는 노부부는 슬하에 2남2녀를 두었으나 젊은 시절 어려운 생활형편으로 장남만 고등학교를 보냈을뿐,나머지 자녀들은 중학교 문턱만 겨우 넘게하는 한을 또다시 되풀이했다고. 윤할아버지는 『죽기 전에 사회에 유익한 일을 하고 자식·손주들에게 올바른 인생의 모범을 보이고 싶어 전재산을 장학금으로 내놓게 됐다』며 『이제 못배운 한을 푼것같아 여한이 없다』고 말했다. 이번에 기증된 부동산은 경기도 부천시 자유시장 안의 지하1층 지상3층의 상가건물.김종운 서울대총장은 『평생 어렵게 모은 재산을 흔쾌히 기탁한데 감사드린다』고 말하고 당분간 입주 상점들에서 거두어지는 임대료를 장학금으로 활용하다 일정기간 경과후 팔아서 장학기금에 편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대학측은 이와함께 30여평짜리 연립주택 한채만 남게된 윤씨부부를 위해 매달 일정액의 생활비를 지급할 계획도 마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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