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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시애틀서 헬리콥터 추락…부산 원목수입상 2명 숨져

    원목을 수입하기 위해 미국 시애틀을 방문했던 한국인 원목수입업자 2명 등 4명이 탄 헬리콥터가 추락해 모두 숨졌다.AP통신 등에 따르면 2일 오후(이하 현지시간) 워싱턴주 이스턴 인근 산악 지대에서 ‘클래식헬리콥터’ 소속 로빈슨R44 레이븐2 헬기가 추락하며 화재가 발생해 송현길(44)씨와 이시영(45)씨, 조종사 미나카타 게이코(42·여), 로버트 해거맨(64) 등 4명이 사망했다. 부산의 원목수입업체 신송의 대표인 송씨와 서흥종합목재 대표인 이씨는 원목 수입을 위해 시애틀을 방문, 이날 오후 1시쯤 목재업체 ‘포어마크 포레스트 마케팅’ 대표인 해거맨과 함께 보잉사 비행장을 출발한 뒤 현장을 둘러보고 돌아오던 중 사고를 당했다. 이춘규기자 taein@seoul.co.kr
  • [종교건축 이야기] (33) 105년전 세운 ‘고딕식’ 대구 계산성당

    [종교건축 이야기] (33) 105년전 세운 ‘고딕식’ 대구 계산성당

    천주교 대구대교구 주교좌성당인 계산성당(대구광역시 중구 계산2가 71-1, 사적 제290호). 박해를 피해 모여든 신자들과 함께 산골에서 은둔하던 프랑스 선교사가 직접 설계해 1902년 지금 자리에 세워놓은 뾰족집이다. 초기 성당들과는 다르게 높은 언덕이 아닌 평지에 세워진 영남 지역 최초의 고딕 성당. 국내에선 보기 드문 정면쌍탑의 고딕식 건물이란 건축의 특이함에 더해 이 땅에 천주교가 전파되는 과정의 고충을 그대로 보여주는 귀한 신앙유산이다. ● 중세건축 흐름 이은 영남 최초의 ‘뾰족집’ 1886년 조불수호통상조약으로 천주교 전교가 트이고 신자들에 대한 족쇄가 풀렸지만 영남지역에서의 신앙생활은 조약 이후에도 여전히 험한 길이었다. 대구본당이 신설된 이듬해인 1886년, 그러니까 조불조약이 체결된 그 해에 대구본당 초대 주임으로 임명된 프랑스 선교사 로베르(김보록·Achille Paul Robert) 신부만 하더라도 몸을 피해 인근 산골에 꼭꼭 숨어 지내야 했다. 당시 신나무골(현 칠곡군 지천면 연화동)과 죽전 새방골(현 대구 서구 상리동)은 거듭되는 박해를 피해 전국에서 찾아든 신자들이 은밀히 모여 살았던 영남지역의 대표적 교우촌. 로베르 신부는 낮에는 바깥출입을 일절 하지 않고 밤마다 상복으로 변장한 채 신자들을 방문하며 성사를 주었다고 한다. 성당이 세워진 것은 신앙 길이 트이면서 읍내인 대야불(현 대구 중구 인교동)로 들어온 로베르 신부가 정규옥(1852∼1931) 승지의 집에서 활동할 때였다. 열성적인 신자였던 정규옥이 사랑채를 내줘 7년여간 임시성당으로 쓰다가 번듯한 신앙공간을 마련하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 로베르 신부는 성당 자리로 현재의 계산동 성당과 그 서편 동산 두 곳을 놓고 고민했는데 “높은 허허벌판 구릉에 성당을 지을 수 없다.”는 노인 신자들의 고집에 밀려 결국 지금 자리를 택했다고 한다. 그런데 1899년 지어진 처음 성당은 지금의 서양 고딕식 건물이 아닌, 한옥 기와지붕의 십자형 건물이었다.45칸이나 되는 큰 집이었는데 지붕 한가운데 대형 십자가를 올려 ‘주님의 집’임을 세상에 알렸다고 한다. ‘대구 본당 100년사’에는 당시 성당과, 한식 기와집의 2층 사제관 단청을 들이던 스님들이 천주교로 개종했다는 흥미로운 기록이 들어 있다. 그 무렵 약현(서울 중림동 1892년)성당, 인천 답동(1896년)성당, 종현(서울 명동 1898년)성당이 모두 서양식 뾰족집을 택했던 것을 볼 때 로베르 신부와 신자들이 건물을 통해서나마 신앙 토착화를 위해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다. 성당 건립의 기쁨도 잠시뿐. 한밤중 일어난 화재로, 세워진 지 40일 만에 성당이 모두 불타 없어졌다. 당시 대구에 큰 지진이 있었는데 제대에 켜놓은 촛불이 넘어지면서 성당 전체로 옮겨 붙은 것이었다. 한국에선 네번째로 세워진 성당이자 당시 유일한 순수 한식 성당이었지만 지금은 사진으로만 볼 수 있어 천주교계와 학자들이 두고두고 안타까워하는 건물이다. 로베르 신부가 파리외방전교회에 보낸 편지 글을 보면 당시 성당을 잃은 참담한 심경이 절실히 읽힌다. “한국 건축양식의 걸작으로 그토록 많은 노력과 정성을 들였던 아름다운 노틀담(성모 마리아)의 루르드성당이 하룻밤 사이에 잿더미가 됐다. 지금 나에게는 제의도 일상복도 생활 필수품도 없으며 고해를 듣기 위한 영대와 중백의 조차 없다.1000명이 넘는 신자들이 미사에 참석하는데 바람막이조차 없다.” 지금의 성당은 “천주께서 우리의 신덕을 시험하시고 더 큰 은혜를 주시고자 하심인 줄로 받아들이고 성당을 더 잘짓기로 한마음으로 협력하자.”는 로베르 신부의 호소문에 감동받은 신자들이 십시일반 격으로 추렴해 1902년 다시 세운 건물. 설계는 로베르 신부가 직접 했고 중국에서 벽돌공과 미장이, 목수를 데려와 일을 시켰다고 한다. 준공 이듬해에야 축성식이 열렸는데 당시 “영호남의 모든 신부들이 참석했고 사방 200리 안에 있는 수많은 신자들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인들까지 구름처럼 모여들어 대구 전체가 축제에 휩싸였다.”고 교회지는 기록하고 있다. 성당은 처음에는 주보성인으로 루르드의 성모를 택한 만큼 ‘성모님께 봉헌된 성당’이란 뜻에서 성당대문에 ‘성모당’이라 쓴 현판을 달아 놓았었다. 그런데 이 현판을 눈여겨보던 주민들이 “천주교는 하느님을 믿지 않고 성모 마리아를 믿는다.”고 수군대 할 수 없이 ‘천주당’으로 바꿔 걸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원래의 ‘성모당’ 현판은 성당 오른쪽 계산문화관 2층의 성당유물전시관에 보관돼 당시의 상황을 소리없이 전한다. 전체적인 구조는 로마네스크 양식에 가깝지만 평면 구성은 라틴십자형 3랑식 공간의 전형적인 고딕 양식. 서쪽 정면 출입구 위에 2개의 종탑을 높이 세운 쌍탑이 다른 곳에선 볼 수 없는 독특한 것이다. 외벽은 화강석 기초석 위에 붉은 벽돌과 회색 벽돌을 쌓았다. 세월이 흘러 대구교구 설정으로 주교좌 본당이 되면서 신자들이 급속히 늘자 미사며 전례행사 때마다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결국 1918년 신자들이 비용을 분담한 증축공사에 나서 신자석과 지성소 사이에 100평 정도의 공간을 새로 들이고 양쪽에 각각 신자석(익랑)을 만들어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종탑 지붕도 두 배가량 높여 더욱 뾰족해졌다. 1991년부터 1년여에 걸쳐 대대적인 보수공사가 있었는데 이 때 지붕을 함석 대신 동판으로 교체했고 바닥도 목재를 걷어낸 뒤 지금의 대리석으로 다시 깔았다. 현재 교적상의 신자는 6000명. 주교좌성당이란 위상과 역사적 가치 때문인지 한창 번창할 때는 주일미사에 1만 2000명이나 참석했다고 한다. 성당측이 인근 성당들로 신자들을 분리시키고 있지만 교적을 옮기지 않고 끝까지 이 성당에 남겠다는 신자가 적지 않다고 주임신부가 귀띔한다. kimus@seoul.co.kr ● 성당의 볼거리들 출입구 위 두 개의 종탑을 나란히 뾰족하게 올린 ‘전면쌍탑’은 계산성당의 트레이드마크. 이 쌍탑 사이에 만든 커다란 ‘장미꽃 창’은 성당 안에서는 제대 벽을 통해 제의공간을 환하게 밝히는 빛의 통로가 된다. 이 ‘장미꽃 창’은 신자석과 제의공간인 지성소 사이의 양쪽 익랑에도 설치되어 신앙공간을 한층 더 엄숙하게 장엄한다. 양쪽 벽을 빙 둘러 장식하고 있는 14처도 다른 곳의 것과는 달라 눈길을 끄는 부분. 성당 건립 초기에 중국에서 만들어 들여온 때문인지 14처 아래 붙인 중국어 표기가 이채롭다. 14처와 마찬가지로 양쪽 벽에 낸 스테인드글라스(색유리창)는 성당 건립때 프랑스에서 들여온 것. 예수부활을 증거한 12사도가 새겨져 있다. 하지만 성당을 증축하면서 늘린 좌우 회랑의 스테인드글라스에는 한국의 성인 6위를 모신 점이 눈길을 끈다. 신자석에 앉아 성당 공간을 나누는 기둥들을 눈여겨 보면 기둥에 새긴 독특한 문양의 십자가가 궁금해진다. 성당 축성때 로베르 주교가 만든 축성패인데 문양과 색채가 오랜 세월에도 변하지 않은 채 또렷하다. 폴란드에서 들여와 성당 출입문 윗쪽 성가대석에 세워 놓은 파이프오르간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 전자식이 아닌 기계식 오르간 가운데 명동성당의 것을 빼곤 가장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음색을 갖고 있다고 한다.
  • [서울신문 창간103주년] 베이징올림픽 1년 앞으로

    [서울신문 창간103주년] 베이징올림픽 1년 앞으로

    베이징올림픽이 약 1년 앞으로 다가왔다.1964년 일본 도쿄,1988년 대한민국 서울에 이어 아시아에서 세 번째로 열리는 이번 올림픽은 2008년 8월8일 개막,17일의 열전을 펼친다. 또 2회 연속 및 통산 6회 종합 10위권 진입을 노리는 한편 수영 등에서 새 역사 쓰기를 준비 중인 한국의 메달 전망을 짚어본다. 베이징올림픽 조직위원회 선전부 왕후이(王惠) 상무부부장과의 인터뷰 등을 통해 현지의 준비 상황과 달아오르는 열기 등도 살펴본다. ■ 베이징 여름올림픽 한국 메달 전망 2008년 베이징 여름올림픽에서는 한국스포츠 역사가 새로 쓰인다. 한국 수영 사상 첫 올림픽 메달을, 그것도 금메달을 캘 가능성이 짙다. 또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전병관 이후 16년 만에 역도 금메달이 유력하다. 유도와 탁구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2연패를 노린다. ●수영 불모지서 첫 금 캔다 한국이 올림픽 수영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60년 로마올림픽. 당시 다이빙 종목에 나섰으나 참가에 만족해야 했다. 적어도 2004년 아테네올림픽까지는 상황이 그랬다. 아테네서 부정 출발로 실격, 눈물을 뿌렸던 ‘18세 괴물’ 박태환(18·경기고)이 한국 수영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역할을 맡았다. 가파른 성장세를 보인 박태환은 지난해 도하아시안게임 3관왕에 올랐고, 호주 멜버른 세계선수권에서 남자 자유형 400m 금메달,200m 동메달을 따내며 세계적인 스타로 떠올랐다. 이제는 수영전문브랜드 스피도의 후원으로 전담팀을 꾸려 올림픽 정복을 위해 ‘열혈 자맥질’을 하고 있다. 중장거리 전문이지만 단거리에도 재능을 보인 박태환으로서는 여러 종목에 도전하기보다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아테네 여자 역도 75㎏이상급에서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은메달에 그쳤던 ‘피오나 공주’ 장미란(25·고양시청)은 베이징에서 메달 색깔을 금빛으로 바꿀 채비를 갖췄다. 중국 여자 역도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있는 장미란은 딩메이위안(시드니 금)과 탕궁훙(이상 28·아테네올림픽 금)의 뒤를 잇는 무솽솽(23)과 맞붙게 된다. 장미란은 무솽솽과 지난해 세계선수권과 아시안게임에서 장군멍군했다. 안방 텃세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확실한 실력의 우위를 쌓아야 하는 게 과제다. 유도 그랜드슬램에 빛나는 ‘한판승의 사나이’ 이원희(26·KRA)는 치열한 내부 경쟁을 뚫어야 한국 유도 사상 첫 올림픽 2연패에 도전할 수 있다.73㎏급에서 김재범(22·KRA), 왕기춘(19·용인대) 등 후배들의 도전이 거세기 때문. 이원희는 고질적인 발목 부상 치료를 위해 독일에서 수술받고 재활 중이다. 베이징을 위해 오는 9월 세계선수권 출전을 포기한 것. 이원희는 완벽한 몸상태로 대기록에 도전한다는 각오다. ●경계선을 뛰어넘어라 탁구와 배드민턴은 그동안 올림픽에서 각각 금메달 5개와 3개를 땄다. 세계적인 경기력을 감안한다면 조금 더 많은 금메달을 추수했어야 했지만 ‘최강’ 중국이 늘 걸림돌이었다. 이 종목에선 세계 1∼3위가 대부분 중국 선수들이다. 아테네에서 왕하오를 격파하고 남자 단식 정상에 섰던 유승민(25·삼성생명)이 만리장성 2회 연속 격파에 앞장선다. 맏형 오상은(30·KT&G)도 단·복식에서 칼을 갈고 있다. 배드민턴에서는 단식보다 복식에서 기대가 크다. 남자 복식과 혼합 복식의 기대주인 ‘제2의 박주봉’ 이용대(19·삼성전기)가 최근 손가락 골절 부상에서 벗어나 다시 올림픽을 위해 달리기 시작했다. 한때 남자 단식 세계 랭킹 1위였고 전영오픈 준우승을 일군 이현일(27·김천시청)이 국가대표로 복귀, 힘을 보탰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이에리사 태릉선수촌장 “한국은 TOP 10” “이번에도 종합 10위는 꼭 지켜내야죠. 하지만 베이징올림픽은 여러가지 의미에서 한국스포츠의 위기가 될 겁니다. 또 기회이기도 하고요.” 베이징올림픽 개막을 1년여 앞둔 ‘선수들의 요람’ 태릉선수촌의 풍경은 ‘정중동’이었다. 최초로 여성 촌장에 발탁, 햇수로 3년째 선수촌 살림을 꾸려가고 있는 이에리사(53) 촌장은 내년 베이징에서의 메달 전망을 묻는 ‘우문’에 적지 않은 부담을 느낀 듯했다. 그는 “지금 금메달 따기보다 어렵다는 올림픽 종목별 쿼터(출전권) 확보 전쟁이 한창”이라면서 “그런 만큼 섣부른 예단은 금물이지만 도하아시안게임이 끝나자마자 선수촌은 베이징올림픽 체제로 바뀌었고, 이제 가장 큰 목표는 4년 전 어렵게 복귀한 한 자릿수(9위) 종합순위를 지켜내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베이징올림픽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입니까. -중국은 우리에게 가장 가깝고 익숙한 곳입니다. 그러나 스포츠 환경으로 따지면 꽤나 먼 곳이죠. 중국은 올림픽 최초로 종합 1위를 벼르고 있습니다. 우리의 메달 전망 종목과도 많이 겹칩니다. 악재인 건 분명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스포츠의 위기입니다. ▶종합 10위를 지키기 위한 메달수는 예측할 수 있습니까. -아테네올림픽에서 우리는 금 9개, 은 12개, 동 9개로 ‘톱10’안에 재진입했습니다. 종목수가 다소 늘어나고 중국의 약진을 감안하면 최소한 금 12개는 따야 수성이 가능하리라고 봅니다. ▶현재 올림픽 출전권 현황은. -7월 현재 6개 종목에서 55명이 출전권을 획득했습니다. 농구는 아시아선수권 우승으로, 수영은 세계선수권을 통해 5명이 쿼터를 확보했습니다. 역도와 사격, 근대5종, 하키 등도 각급 선수권 상위 성적으로 출전이 확정됐습니다. 탈락한 건 지역 예선에서 4위에 그친 소프트볼이 유일합니다. ▶향후 선수촌 운영은 어떻게 합니까. -당연히 ‘베이징체제’입니다. 선수촌은 기존 110일에서 2단계에 거쳐 올해 연간 180일까지 훈련일수를 늘렸습니다.1인1실이던 지도자 방 배정도 2인1실로 바꿔 선수들에게 더 공간을 할애했고, 국가대표 1.5진까지 훈련할 수 있는 환경이 됐습니다. ▶베이징올림픽을 기대하는 국민들께 당부하고 싶은 말은. -올림픽은 항상 시작하는 시점입니다. 물론 메달도 중요하고 순위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결과를 통해 급변하는 세계 스포츠 환경 속에 한국스포츠가 어떤 위치에 서 있는지는 꼭 짚어봐야 합니다. 시드니올림픽 때 경기인들 사이에서는 “한국 체육의 위기”라는 의식이 팽배했습니다. 이후 4년 만에 우리는 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근근이 버틴 게 사실이고, 내년 또 다른 위기가 닥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결과에 대한 체육인들의 끊임없는 반성과 노력, 그리고 국민들의 애정과 관심이 지속된다면 그건 우리에게 위기가 아니라 기회입니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100년의 꿈 이뤄…中 저력 세계에 알릴 것” 중국인의 ‘100년간의 염원’이라는 베이징 올림픽 개막일이 1년여 앞으로 다가왔다. 중국은 단순한 스포츠 이벤트를 넘어 강대국으로서 위상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로 삼으려 하고 있다. 나아가 내부의 정치·경제적 모순까지 해결하는 기회로도 활용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같은 대내·외적인 민감성 속에 그동안 올림픽 준비는 극도의 ‘보안’ 속에 이뤄져 왔다. 올림픽조직위 관계자들의 언론 접촉이 통제되고 있는 가운데 어렵게 베이징올림픽조직위원회 선전부 왕후이(王惠) 부국장을 만나 준비상황을 들어봤다.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아녜요. 중국이 고른 날짜가 아녜요.” 2008년 8월8일 8시에 거행되는 2008년 올림픽 개막식 시간이 중국이 고른 것이 아니라고 손사래를 친다. 베이징 시내 중국 외교부 청사 대각선 방향에 위치한 올림픽조직위원회 선전부 건물에서 만난 왕후이(王惠) 부국장. 중국인이 좋아하는 숫자를 골라 개막일을 잡았을 것이라는 추측을 부인했다. 중국인은 ‘(돈을)벌다.’는 발(發·파)과 발음이 비슷해 아라비아 숫자 8(바)을 좋아한다. “우리는 당초 9월에 하길 원했지요. 가을 베이징의 날씨가 얼마나 좋은데요. 그런데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8월을 제안했던 거예요.” 그는 “8시 개막시간은 IOC 관례에 따른 것이고,8일은 양자간에 논의를 거쳐 결정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준비 상황은. -100년만의 꿈이 이뤄질 날이 1년 남짓 남았다.28개 주요프로젝트와 38개 하위,302개 단위 항목으로 나누어 진행할 일정이 모두 확정됐다. 여름올림픽, 장애인올림픽 2개 대회 모두 최대 규모로 치러질 것이다. 10만명의 자원봉사자를 모집하는데 신청자가 벌써 53만명을 넘을 정도로 열기가 뜨겁다. 지난 6월로 1차 표 예약이 마감됐다.700만장 가운데 490만장이 예약됐다.4000여종의 관련 상품이 개발됐다. 성화봉송로도 지난 4월 발표됐다. 시간도, 길이도 가장 길고 방문도시도 가장 많은 봉송로다. ▶왜 100년만의 꿈이라고 부르나. -1908년 톈진(天津)의 한 청년 잡지에 이같은 글이 실렸다.‘중국은 언제 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을까. 언제 첫 금메달을 딸 수 있을까. 언제 올림픽을 주최할 수 있을까.’그 뒤로 1932년 중국인으로는 류창춘(劉長春)이 처음으로 올림픽에 참가했고,1984년 처음으로 금메달을 땄다.(중화인민공화국의 이름으로 중국이 올림픽에 참여한 것은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이 처음이다.) ▶어떤 올림픽이 되기를 원하나. 중국은 이번 올림픽에서 무엇을 남기고 싶은가. -가장 특색있는, 중국적 특성을 남기고 싶다. 세계 역사에 하나의 문화적 유산으로 남기를 원한다. 중국과 중국 문화, 나아가 아시아, 동방의 문화를 보여주고 싶다. 아시아에서는 1964년 도쿄.1988년 서울 단 2곳만 올림픽을 개최했을 뿐이다. ▶과거와는 어떤 점이 다른가. -우리는 올림픽을 통해 돈을 벌 생각은 없다. 입장료는 대단히 싸다. 아테네의 3분의1∼5분의1 수준이다. 학생들에게 돌아가는 가장 싼 표는 10위안(1200원)짜리도 있다. ▶인류와 올림픽 역사에는 어떤 공헌을 할 수 있나. -중국의 4억명 청소년들이 지금 올림픽 정신을 일깨워가고 있다. 어떤 대회와도 비교할 수 없는 많은 숫자다.50만세트의 각종 교재가 전국으로 퍼져갔다.556개의 시범학교가 있다. 올림픽 경기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것 이상이다. ▶성적에 대해 얘기해 보자. 홈그라운드에서 미국을 꺾고 금메달 1위를 목표로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렇게 얘기들을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생각이 아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사실 가능성이 크지 않다. 아테네올림픽에서 미국은 35개, 중국은 32개, 러시아가 29개의 금메달을 땄다. 그러나 금·은·동 합계를 보면 상당한 실력차가 있다. 미국 103개, 러시아 92개에 비해 중국은 63개밖에 되지 않는다.(중국은 과거 공식적으로 ‘최선을 다해 금메달 1위를’이란 목표를 세운 적이 있다. 일부에선 미국을 제치고 종합 1위를 위해 관련 전력을 철저하게 비밀에 부치고 있다는 지적들도 있다.) ▶날씨 때문에 기록 경기에 큰 지장이 있을 거라는 우려도 있다. -베이징이 많이 더워졌다. 세계적인 온난화 현상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중국이 가장 온도가 높은 올림픽 개최도시는 아니다. ▶문제는 습도 아닌가. 베이징의 여름이 습도가 예전보다 많이 높아졌다. -이미 인공적으로 조절이 가능한 수준에 와 있다. 이번 7,8,9월 최종적인 기온 테스트를 하게 돼 있다. 그 결과를 보고 어떤 방법을 쓸 것인지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한국인들은 베이징 올림픽이 성공하길 바라고 있다. 그래서 남북화해와 동북아 평화에 기여하길 원한다. -지난해 9월 서울에 가서 많은 공부를 하고 왔다. 당시 한국민들이 베이징 올림픽의 성공을 진심으로 기원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느꼈다. 고맙다. jj@seoul.co.kr ■ “육상·수영 금맥 캐자” 中 119프로젝트 극비 진행 |베이징 이지운특파원|‘녹색·과학기술·문화올림픽’이란 베이징올림픽. 중국은 지난해까지 환경보호시설, 도시기반시설 등 대부분의 공사를 마쳤다. 점검 테스트와 조직 운영 등을 점검하고 있다. 총 37개 경기장 가운데 31개가 베이징에 위치해 있다. 칭다오, 홍콩에 각 1개씩이다. 이런 상황 속에 중국인들의 최대 관심사는 종합 우승 여부다.‘최선을 다해 금메달 1위를(力爭金牌榜第一)’ 중국이 안방에서 열리는 올림픽에서 미국을 꺾고 종합 1위를 따내기 위해 내건 표어다. 아테네올림픽에서 미국 35개에 이어 32개로 2위를 하는 등 상승세를 타고 있는 데다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살린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금메달 16개로 4위를 했던 중국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선 28개로 3위를 기록했다. 그러기 위해 중국은 체조, 다이빙 등 기존의 금맥 외에도 육상과 수영에서 돌파구를 마련해야만 한다. 중국이 2001년 8월 올림픽 개최 확정이후 ‘119 프로젝트’에 착수한 것도 이런 필요에 의해서다.119는 육상과 수영에 걸린 금메달의 합계. 육상, 수영에서의 열세를 반드시 극복해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중국 체육계는 곧바로 ‘5대 대책’을 수립하고 지도자 선발과 육성에 착수했다.‘밖으로 나가고 안으로 불러들인다.’(走出去,請進來)는 원칙 아래 선수들을 전지훈련 등으로 해외로 내보내고, 해외의 유능한 감독진을 유치했다. 많은 국제대회를 유치해 많은 선수들에게 경험을 축적시키는 데 애썼다. 중국 체육에 ‘과학’이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도 이 무렵부터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상당히 체계적인 선수 배양 능력을 갖추게 됐다.”고 평가하고 있다. 중국은 남부 고원지대인 윈난(雲南)성 쿤밍(昆明) 등 천혜의 훈련지도 갖고 있다. 국제 스포츠계는 오래전부터 고지대에서의 훈련을 통해 선수들의 경기력을 향상시켜왔다. 폐활량 증대와 지구력 향상에 탁월한 효과를 낸다. 서부 칭하이(靑海)성에 있는 또 다른 고원 훈련 캠프인 ‘국가 고원체육훈련기지’에서는 중국 선수들의 ‘특수 훈련’이 진행되고 있다. 1992년 세계청소년육상대회의 800m,1500m,3000m,1만m를 석권하고 1993년 독일 세계육상경기에서도 1500m,1만m에서 금메달을 휩쓰는 등 저력을 보여줬기 때문에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중국 전역 1만 7000개에 이르는 스포츠 아카데미에서 배출된 스포츠 재목에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더해져 어떤 효과를 낼지 가늠하기 쉽지 않다.2005∼2006 국제수영연맹 쇼트코스 월드컵에서 혜성같이 나타나 여자 평영 200m에서 은메달을 따낸 소녀 수영선수 왕췬처럼, 나이 어린 스포츠 스타의 탄생이 얼마든지 가능한 상황이다. 중국의 보배 110m 허들의 류시앙 등도 건재하다. jj@seoul.co.kr ■ 옥(玉) 넣은 메달 특색 중국 문화 알리기는 베이징올림픽의 주요 목표 가운데 하나다. 올림픽을 통해 세계 각국에 문화대국,‘문화 종주국’인 중국을 알리기 위해 세심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올림픽 상징물에서부터 각종 도안에 이르기까지 중국적이고 역사적인 것을 강조하고 있다. 메달부터 달라졌다. 옥을 넣었다. 금·은·동에 들어간 옥의 품질이 각각 다르다. 옥은 상대방을 존중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고대로부터 존귀한 사람들에게 보내는 선물이었다. 성화는 종이를 말아올린 모습이다. 중국의 4대 발명품 가운데 하나가 종이다. 성화를 장식하고 있는 상서로운 구름이나 자홍색도 중국적 특성이다. 로고는 고대 인장의 모습으로 한자의 모습과 달리는 사람의 모양을 나타낸다.
  • [김성호 전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32) 유일의 ‘ㅡ’자형 영천 자천교회

    [김성호 전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32) 유일의 ‘ㅡ’자형 영천 자천교회

    경북 영천시의 보현산 자락에 자리잡은 한옥형태의 자그마한 자천교회(화북면 자천3리·경상북도지방문화재 문화재자료 452호). 남아 있는 유일의 ‘一’자형 교회로 교회건축사에선 빼놓을 수 없는 독특한 예배 공간을 갖추고 있다. 건축의 독특함에 얹어 영남지역 교회사에서도 중요한 교회. 교인이 고작 30명 남짓하지만 1903년 건립된 뒤 이 지역에 처음으로 복음을 전파했던 신앙 요람이다.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경동노회에 소속되어 한때 주일예배 때 300여명이 예배당에 모일 만큼 교세가 컸던 교회. 하지만 6·25전쟁 직후 인근의 상송교회가 분가한 데 이어 입석교회가 독립했고 1970년대 목회자의 신앙 문제로 화북교회(합동)로 또 한 차례 갈라진 상처를 갖고 있다. 오랜 풍상 속에 교세는 형편없이 사그라졌지만 경북 동부와 동북지방 복음의 씨앗을 싹틔운 신앙 요람으로 끊임없이 회자된다. ■ 신점균 자천교회 담임목사 “성장과 발전도 필요하지만 초심을 살린 신앙열정을 키워나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지난 2001년 자천교회에 부임해 6년째 신자들의 예배와 신앙을 묵묵히 이끌고 있는 신점균(52) 담임목사. 교인 30명의 작은 교회지만, 초기의 변함없는 모습과 믿음을 간직한 신앙 요람을 지키는 것에 매우 만족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지은 지 100년을 넘긴 교회가 400여개 있지만 옛 모습을 온전하게 지키고 있는 교회는 열 손가락을 꼽을 정도입니다. 이 교회들은 대부분 교세가 보잘것없이 쇠락했지요. 하지만 이 교회들이야말로 초기 교회의 신앙을 되살릴 수 있는 중추입니다.” “1907년 한국사회와 교회에 큰 변혁을 몰고왔던 평양대부흥운동의 큰 뜻은 회개”라고 거듭 강조하는 신 목사. 그는 대형화, 물량화로 치닫는 교회들은 선교에 앞서 개인적인 회개를 생각해야 하며 그 첨병역할을 ‘때묻지 않은 초기 교회’들이 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인들이 적어 교회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소외감을 느끼지만 반면에 자부심이 큽니다. 자천교회 같은 초기의 작은 교회들이 순수한 신앙을 토대로 교류한다면 기독교 문화와 영성 차원에서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 100년을 견뎌낸 기와지붕 자천교회의 역사는 미국인 선교사와 서당 훈장의 우연한 만남으로부터 시작된다. 주인공은 바로 ‘영남지방의 어머니교회’라는 부산 초량교회를 세운 미국 북장로교 소속 배위량(W.M.Baird) 선교사의 처남인 안의와(J.E.Adams) 목사와, 경주의 작은 마을 선비 출신인 자천교회 설립자 권헌중 장로. 배위량 선교사의 뒤를 이어 영남지역 선교 책임을 맡아 대구에 들어온 안의와 목사는 경북 동부와 동북지역 선교여행에 나섰다고 한다. 같은 시기 경주에서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던 서당 훈장 권헌중은 일제의 착취와 압박을 피해 고향을 떠나 대구로 가던 길이었다. 각자 다른 목적으로 길을 떠났던 두 사람이 만난 게 1897년 지금의 영천시와 청송군의 경계지인 노귀재에서다. 서당 훈장의 식견 때문이었을까. 권헌중은 상당히 열린 의식을 갖고 있었던 인물이었던 것 같다. 안의와 목사에게 감화를 받아 대구로의 이사를 포기한 채 이삿짐을 내려놓고 영천 자천리에 초가삼간을 구입해 세운 게 자천교회의 모태이다. 초가 사랑방을 예배당겸 서당으로 써 낮에는 한문을 가르치고 저녁에는 성경을 공부했는데 당시 교인이라야 서당에 다니는 문동들과 권헌중을 따라온 노비와 머슴이 전부였다. 앞장서 상투를 자르고 데리고 있던 노비들의 문서를 불태워 자유의 몸으로 해방시키는 등 개방적이었던 권헌중에게 감화된 신자들이 늘어나면서 교회 건물을 키워야 했다.1903년 기와지붕을 얹은 목조 건물로 다시 세웠는데 지금의 자천교회는 당시의 골격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당시 다른 교회와 마찬가지로 주민들의 반대에 부닥쳐 교회를 세우기까지 여간 애를 먹은 게 아니었다. 결국 주민들에게 면사무소를 지어주고서야 교회를 지을 수 있었다고 한다. 기와지붕을 인 목조 예배당에 들어서면 일(一)자형 공간이 완연하다. 동네 목수들이 천장이며 보, 기둥들을 모두 만들었다고 하는데 울퉁불퉁한 목재들이 아주 투박하게 놓이고 이어졌지만 모양새와는 다르게 아주 탄탄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 아치형 공간을 만들어 선교사석과 설교자석을 두고 바로 앞에 강대를 놓았는데 남녀가 따로 앉아 예배를 보도록 신자석 가운데 칸막이를 쳤다. 남녀 신자석을 갈랐던 초기 교회들에서 대부분 휘장으로 공간을 구분한 것과는 달리 아예 나무 칸막이를 만들어놓은 게 특이하다. 물론 남녀 신자들은 서로를 볼 수 없고 설교자만 남녀 신자들을 모두 볼 수 있도록 한 장치이다. 일제시대 철거된 채 예배가 진행되어 오다가 지난 2005년 복원공사를 거쳐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출입문도 왼쪽은 남자, 오른쪽은 여자 신도가 따로따로 드나들도록 각각 냈는데 여자 신도 출입문을 2개나 만든 것은 당시 여 신도들이 더 많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여진다. 신자석 뒤쪽에 두 개의 방을 낸 것도 이 교회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 남녀 신자들이 따로따로 모여 예배를 드리고 성경공부도 하도록 방을 낸 것인데 역시 일제시대 때 없어졌던 것을 2005년 발굴조사를 거쳐 복원해 놓았다. 교회 안에서 ‘남녀칠세부동석’의 풍습을 살리면서 신앙을 이어가려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지금도 간혹 고령의 신자들은 부부가 함께 와서도 예배를 볼 때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앉는다고 한다. 예배당 지붕을 넓고 평평한 ‘우진각’ 형태로 얹은 것도 특이하다.‘우진각’ 지붕은 전통 한옥의 대문에 흔하지만 독립 건물에 쓰여진 것은 흔치 않다. 건물 네 면에 지붕면을 만들어 귀마루(내림마루)가 용마루에서 만나도록 한 것인데 일(一)자형 예배공간을 넓게 쓰기 위한 방편이었던 것 같다. 영천지역은 6·25전쟁 중 격전지로 유명한 곳. 모든 집들이 포화를 맞아 폐허가 되다시피했는데 교인들이 평평한 교회 지붕에 올라 흰 횟가루로 십자가를 그리고 ‘CHURCH(교회)’라 표시해 폭격을 피했다고 한다. 당시 영천 화북면 지역에선 이 자천교회와 교회 바로 옆 한옥만 폭격을 받지 않은 채 지금까지 남아 있다. 예배당 건물과 골격은 옛 모습 그대로지만 초기 교회에 있었던 성물은 신자석 뒤쪽 방 한 귀퉁이에 보존해 놓은 작은 강대상이 전부.1930년대 영천군의 ‘세번째 부자’로 통했던 자천우체국장 김영대의 어머니가 헌금한 당시 돈 70원으로 일본에서 ‘야마하’ 대형 풍금을 들여와 찬송 반주에 썼다지만 언제 어떻게 없어졌는지 알 수 없다. 당시 교인들은 이 풍금에 맞춰 ‘삼천리반도 금수강산’과 ‘만왕의 왕’이란 찬송을 즐겨 불렀다고 한다. 그 때만 하더라도 찬송가가 보급되지 않아 한지에 찬송을 붓글씨로 크게 써 흑판에 걸어놓고 불렀다. 마을에 찬송이 울려 퍼지자 ‘독립운동가들이 부르는 불온한 노래’로 여긴 일경이 금지곡으로 막아 이후 해방 때까지 불리지 못했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들은 서울의 한 신자가 헌금을 해 종과 종각을 지어놓았지만 일제의 강출로 모두 철거되었다. 노귀재에 우연히 뿌려진 한 알의 ‘복음씨앗’이 어려움 속에서 신앙의 꽃을 활짝 피워냈던 자천교회.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의 광풍에 휩싸여 교적부며 회의록 등 초기 교회의 모든 자료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교회사에선 선 굵은 복음의 요람지로 우뚝 서 있다. 그렇게 이어진 신앙내력 때문일까.1930년대 교회에 풍금을 들여놓게 한 천석꾼 김영대의 아들(2007년 작고)이 2006년 교회 앞 한옥 4개동과 대지를 교회에 증여하는 역사가 생겼다.6·25전쟁 중 교회 앞에 있어 폭격을 피할 수 있었던 바로 그 한옥이다. 교회측으로선 여간 반갑고 은혜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교회 옆 텃밭을 더 매입해 예배당을 중심으로 한 문화재 관람과 수련장, 한옥체험의 장을 묶는 성역화 사업을 차분하게 진행하고 있다. kimus@seoul.co.kr
  • 나무조각품 ‘목마와 책벌레 이야기’ 전

    경기도 장흥아트파크는 목수 김진송씨가 아이들을 위해 만든 목마 미끄럼틀, 기린 그네 등 나무 조각품 65점을 전시하는 ‘목마와 책벌레 이야기’전을 8월31일까지 연다.(02)031-837-0025.
  • [기고] 미래 국가경쟁력, 해양과학에 달렸다/염기대 한국해양연구원장

    21세기는 해양의 시대이다. 앞으로 국가의 성장은 해양자원을 더 잘 보전하고 지속가능하게 이용하느냐에 달려있다. 세계 각국은 이런 사실을 일찍이 깨닫고 지구 표면의 약 71%를 차지하며 지구 동식물의 80%가 서식하는 바다로 눈을 돌리고 있다. 해양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해양 분쟁이 격화되고 있다. 영해 이외에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EEZ) 제도의 정착에 따라 해양자원의 개발을 둘러싼 연안국간의 마찰이 심화되고, 공해상의 해양자원 개발 및 선점을 위한 국제 경쟁이 가속화되고 있다. 일본은 지난 4월20일 우리나라를 비롯한 중국, 동남아시아 국가들과의 해양주권 분쟁에서 장기적이고 일원화된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해양기본법’을 통과시켰다. 또 총리를 본부장으로 하고 해양정책담당대신 직위를 신설하는 것을 골자로 한 해양정책본부를 설치하였다. 우리나라도 지난 2000년 ‘해양수산발전기본계획(Ocean Korea 21)’을 수립하고 해양수산분야의 새로운 비전과 전략을 제시하였다. 이어,2004년 해양수산발전기본법에 따라 ‘MT 개발계획’을 마련,‘21세기 해양 부국실현과 동북아시대 중심국가 건설’을 위한 힘찬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러나 그 발걸음이 더디고 힘겹게 느껴진다. 앞서 일본의 경우처럼 전 국가차원의 해양정책 및 해양주권 확립을 위한 분위기도, 미국처럼 MT 개발을 위한 R&D에 3조 1000여억원(2004년 기준)의 화끈한 예산지원도 우리에겐 아직 없다. 해양과학 연구에 반드시 필요한 조사선을 비교해 보자. 우리나라에는 단 한 척도 없는 3000t급 이상 조사선을 일본, 중국은 각각 7척,10척 이상씩 보유하고 있다. 그중 중국이 5000t급 이상 조사선을 5척, 일본이 JAMSTEC 한 곳에서만 2척을 보유하고 있다. 일본은 심지어 5만 7000t급 지구심부탐사선 ‘지큐호’를 보유하는 등 막강 해양력을 자랑하고 있다. 큰 해양 조사선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소형 조사선에 비해 훨씬 오래 대양에 나가 탐사활동을 수행할 수 있고,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동시에 탑승하여 연구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손꼽힌다. 이에 비해 한국의 조사선 규모는 매우 초라한 수준이다. 국립해양조사원이 보유하고 있는 2500t급 ‘해양 2000호’가 가장 큰 조사선이며, 우리나라 해양과학 발전의 산 주역이라 할 한국해양연구원의 ‘온누리호’는 1400t급에 불과하다. 옛말에 “서투른 목수가 연장 탓한다.”는 말이 있지만 우리와 인접 국가가 보유한 조사선의 수준은 ‘호미’ 대 ‘굴착기’에 비유될 정도로 ‘연장’ 자체의 차이도 심한 것이 현실이다. 이제 먼 미래를 바라볼 때이다. 미래 국가 경쟁력이 해양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우리의 바다를 지키고, 바다를 좀 더 깊이 알고, 보다 효율적으로 관리·이용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결국 국가 경쟁력은 우리가 지닌 과학기술수준에 의해 판가름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바다에서 많은 것을 얻기 위해서는 올바른 이용과 보전을 위한 많은 정보와 지식을 축적해야 한다. 이 정보는 바다에서 금싸라기 땅을 선점할 수 있게 해줄 것이며, 주변국과의 분쟁에서도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우리의 바다를 지켜내도록 해줄 것이다. 비록 해양과학 연구가 눈에 보이는 뚜렷한 성과를 도출해 내기 힘들고 엄청난 비용과 시간 투입이 요구된다 해도 준비할 기회를 놓친다면 우리는 암울한 미래를 맞이하고 말 것이다. 바다를 구심점으로 전 국민의 뜻을 하나로 모아 차근차근 미래 경쟁력을 확보해 나가야 한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과 꿈은 저 멀리 우주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염기대 한국해양연구원장
  • “70여가구중 환갑 때까지 생존자 드물어”

    “70여가구중 환갑 때까지 생존자 드물어”

    지난 4일 서해안 고속도로를 두 시간쯤 달려 도착한 충남 홍성군 덕정마을은 전형적인 한국의 농촌이었다.40세 이하 젊은이를 찾아보기 힘들었고, 뜰에는 간간이 노인들의 모습만 보였다. 나지막한 뒷산이 마을을 넉넉하게 끌어안았고, 논에는 푸릇푸릇한 모가 종아리 높이로 자랐다. 이방인을 반갑게 맞이해 주는 노인들은 저마다 ‘석면의 공포’에 짓눌려 있었다. 지금은 70여가구밖에 남지 않은 덕정마을이 일제시대에 아시아 최대 규모의 석면광산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징용으로 끌려온 조선인을 포함해 1000여명의 노동자가 석면 원석을 캐고 나르던 기억은 이제 몇몇 주민들의 머릿속에 남아 있을 뿐이다. 그들이 전하는 석면광산의 기억은 평화로운 마을의 모습과 사뭇 대조적이었다. 3대째 이 마을에 살고 있는 이정석(79)씨는 광천석면광산의 50여년 역사를 두 눈으로 지켜봤다. 자신도 열두살 때부터 30년간 광산에서 일했다는 이씨는 “눈꽃이 핀 것처럼 돌가루와 석면가루가 소나무에 하얗게 쌓여 있었다.”고 회상했다.“석면 원석을 보면 가느다란 흰 줄이 있어. 그게 석면이거든. 그걸 뽑아 내려고 돌을 빻았지. 그땐 마스크 같은 게 있나. 그냥 먼지를 다 마시는 거야.” 건강검진은커녕 변변한 보신책(保身策)도 없었다.“수당받는 날 돼지고기 몇 점 사먹는 거지. 목에 쌓인 먼지 씻는다고….” ●일제시대 아시아 최대 석면 광산… 1000여명 일해 광복 이후 광산이 외지인에게 팔리면서 광천석면광산의 규모는 쪼그라들기 시작했다.1983년 폐광 직전엔 근로자 수가 100여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노출 후 잠복기가 긴 석면의 특성 탓에 광산과 주민 피해의 상관관계는 아직 공식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온 가족이 광산에서 일했다는 홍순표(48)씨는 가족의 대부분이 제 수명을 채우지 못하고 사망했다. 홍씨의 아버지 3형제가 모두 광산에서 일했는데, 아버지 홍종수씨는 1970년 51세에 사망했고, 큰아버지 홍갑수씨는 10년 뒤 66세에 세상을 떴다. 작은아버지 홍수복(74)씨는 형제 중 유일하게 살아있지만 관절염이 심하다. 홍씨의 고모와 고모부 역시 광산에서 일하다 30대의 젊은 나이에 폐병으로 요절했다. 홍씨의 형은 17세 때 굴이 무너지며 목숨을 잃었다. 홍씨는 “그땐 병원도 가지 못한 어르신들 대부분이 병명도 모르고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기침이 잦고 오랫동안 앓았던 기억만 남아 있다. ●“마스크 없이 석면가루 먼지 그대로 들이마셔” 마을회관에서 만난 이장 이조민(64)씨는 마을 출신 피해자를 거의 다 기억하고 있었다. 이장의 입에선 사람들의 이름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가장(家長)이 죽고 나머지 가족들이 외지로 간 사람도 많고…다하자면 한도 끝도 없어. 신○○ 형제도 둘 다 폐병으로 죽고, 강○○씨 아버지, 김○○씨 아버지…죄다 환갑잔치도 못 치르고 죽었으니 악상(惡喪)이 많았지.”이장 자신도 어머니(사망 당시 57세)를 폐암으로 잃었다. 지금은 서울에 사는 이석동(66)씨의 아버지도 광산 생활 15년이 죽음으로 돌아온 경우다.1967년 이씨의 아버지는 5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당시 진단은 폐결핵이었지만, 이씨는 석면으로 인한 폐암일 것으로 믿고 있다.“담배도 피우셨지만 워낙 석면 먼지를 많이 드셨어요. 돌아가시기 3∼4년 전까지 광산에서 일하셨으니까요. 정확한 병명을 모르니, 애꿎은 결핵약만 드셨지요.”아버지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주위에 환갑을 못 넘기고 돌아가신 분들이 많아요. 옛날엔 폐결핵이 흔했다지만, 덕정마을은 주변 마을에 비해 훨씬 심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게 다 석면 때문이지요.” ●인근 담산리 주민 중 폐질환 사망자 없어 대조적 국립 홍성의료원 진료기록에서도 덕정마을의 심각함은 드러난다. 내원자의 병명 기록이 남아 있는 2000년 이래 폐 관련 질환으로 병원을 찾은 상정리(덕정마을 포함) 주민은 41명이었고,7명이 폐암 판정을 받았으며,3명이 사망했다. 인구가 비슷한 인근 담산리 주민 중 같은 기간 폐 관련 질환으로 사망한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에 비하면 주목할 만한 수치다. 한때 수만평에 이르는 3개 광구를 갖췄던 덕정마을의 석면광산은 녹화작업으로 풀숲이 우거졌다. 지금은 석면 원석을 캐내 천길 낭떠러지가 된 절벽과 발에 차일 정도로 흔한 흰색 석면줄을 품은 돌멩이들이 당시의 엄청난 작업량을 짐작케 할 뿐이다. 광산은 과거가 됐지만, 광산이 남기고 간 석면의 상처는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홍성 이창구 김민희기자 window2@seoul.co.kr 그래픽 강미란기자 mrkang@seoul.co.kr ■앞으로 40년간 늘어날 환자 유럽 25만·일본 10만3000명 석면 사용량은 산업화에 비례한다. 건축 자재나 자동차 부품에 주로 쓰이기 때문에 산업화가 진행될수록 사용량도 폭증했다. 부작용도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 산업화가 먼저 진행된 미국·영국 등 선진국에서 대규모 피해가 먼저 나타났고, 한국 등의 후발 산업국가에서 피해 조짐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산업화 단계에 있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위험성을 따질 겨를도 없이 석면을 마구잡이로 사용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1950∼60년대 보일러공에게서 먼저 악성 중피종이 집단 발병했다. 보일러를 단열성이 뛰어난 석면으로 감쌌던 탓이다. 영국에선 1970년대 글래스고·버밍엄 등 공업지역을 중심으로 중피종이 확산됐다. 미국은 1972년부터 석면 규제를 시작했으나 세계적인 공감대는 1980년대에 이르러서 형성됐다. 일본은 1983년부터 일부 석면 제품의 수입을 금지하기 시작했다.1999년에는 유럽연합(EU) 13개국이 석면 사용을 전면 금지했고,2002년 1월엔 프랑스가 독일·이탈리아에 이어 8번째로 석면의 생산·수입·판매를 불법화했다. 우리나라는 1997년에서야 청석면·갈석면의 사용을 금지했고, 모든 석면의 사용 금지는 내년에야 실현될 전망이다. 하지만 선진국에서도 아직 석면 공포는 끝나지 않았다. 미국에서 발행되는 권위있는 보건잡지 ‘더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에 따르면 2004년에 환자수가 정점을 지난 나라는 미국 뿐이다. 유럽은 2015∼2020년, 일본은 2025년에 정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40년간 늘어날 환자의 수도 유럽 25만명, 일본 10만 3000명, 미국 7만 2000명, 호주 3만명 등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매년 10만명이 석면 관련 질병으로 사망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가톨릭대 의대 김형렬 교수는 “최근 일본에서 부작용이 속속 나타나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도 향후 25년간 석면 피해가 크게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앞으로 국제사회가 풀어야 할 과제는 급증하는 아시아의 석면 사용을 막는 일이다. 노동건강연대 이상윤 정책국장은 “현재 건설공사가 활발한 중국·인도·태국 등에서 석면 사용량이 늘고 있다.”면서 “비극을 답습하지 않도록 모든 석면 사용을 하루빨리 금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석면은 허가된 살인도구… 통제 못한 정부 책임 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 앞에 놓인 심정을 아십니까. 우리에게 내일은 없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노동·환경단체들은 지난달 18∼19일 서울대병원에서 ‘석면 문제 해결을 위한 한·일 공동 심포지엄’을 열었다. 석면 전문가, 환경 운동가, 직업병 전문의, 사망자 가족 등 100여명이 참석한 이 행사에서 단연 주목을 받은 이들은 악성 중피종과 싸우고 있는 한국과 일본의 두 피해자였다. ●“폐렴인 줄만 알았는데…” 창밖에는 비가 내렸다. 하이숙(54·여)씨는 “날이 궂으면 기침이 더 심해져 말을 제대로 할 수 없다.”며 힘겹게 말문을 열었다. 하씨는 국내 최대 석면공장이었던 부산 연산동의 제일화학에 1971년 5월부터 2년 4개월간 다녔다. 최근 집단 피해 조짐이 보이고 있는 바로 그 공장이었다. 현재는 ‘제일E&S’로 이름이 바뀌었고, 공장도 양산으로 옮겨졌다.1992년부터는 석면 제품을 생산하지 않는다. 하씨와 동료들은 천으로 된 일반 마스크만 쓴 채 석면 가루가 풀풀 날리는 공장에서 일했다. 석면 입자는 머리카락 굵기의 5000분의1 정도여서 공기중 분진을 99.97% 이상 걸러내는 특수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5년 전 하씨는 갑자기 기침이 심해져 보건소를 찾았다. 보건소에서는 폐렴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아무리 약을 먹어도 차도가 없어 큰 병원으로 갔으나 의사는 “왜 자꾸 폐가 굳어지는지 알 수가 없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씨는 1995년에 석면폐(진폐증)로 사망한 동생을 떠올렸다. 동생 역시 같은 공장에 다녔다. 하씨는 의사에게 “석면 공장에 다녀서 이렇게 된 것 아니냐.”고 물었지만 “당신이 뭘 아느냐.”는 면박만 돌아왔다. 폐병 환자라는 주변의 멸시를 참고 견뎌온 하씨는 결국 2005년에 악성 중피종 판정을 받았다. 다행히 직업병으로 인정돼 산재 처리를 받았다. 그러나 완치가 안 된다는 사실에 하루하루 좌절하며 살아간다. 같은 공장에 다녔던 하씨의 남편도 걱정이다. 남편 하재복(56)씨는 “죽어가는 아내를 보는 것도 괴롭고, 내가 언제 이 몹쓸 병에 걸릴지 몰라 괴롭다.”며 눈물을 훔쳤다. ●“한국은 심각성 깨닫지 못하는 것 같아” 38년 동안 건축 현장에서 일한 나카무라 사네히로(59) 역시 가쁜 숨을 내쉬었다. 목수로, 현장 감독관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일하던 나카무라는 2003년 2월 ‘사형선고’를 받았다.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의 심한 가슴 통증으로 병원을 찾았더니 흉막에 악성 중피종이 생겼다는 진단이 나왔다. 의사는 “기껏해야 2개월 정도 더 살 수 있다.”고 했다. 나카무라는 죽을 각오로 그해 5월 수술대에 올라 오른쪽 흉막을 들어냈다.15시간의 긴 수술이 다행히 성공적이어서 생명을 지금까지 연장할 수 있었다. 나카무라는 “수술이 아무리 잘 됐어도 완치가 안된다는 사실에 또 한 번 절망했다.”면서 “죽을 때까지 석면의 위험성을 알리는 것을 보람으로 여기며 살고 있다.”고 말했다. 나카무라는 요즘 석면피해자 가족 모임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지만 계단을 제대로 오르내리지 못할 정도로 심장이 약해졌다. 나카무라는 “일본은 석면 때문에 큰 홍역을 치러 위험을 잘 알고 있지만 한국은 여전히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는 것 같다.”면서 “허가된 살인도구인 석면 제품을 무책임하게 생산한 업자나, 그 위험성을 통제하지 못한 정부의 책임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처럼 큰 피해를 당하기 전에 한국은 미리 석면이 함유된 건축물과 제품을 잘 처리해 대재앙을 피해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용어클릭 ●석면 단열성, 내화성, 내마모성이 뛰어나 건설자재로 많이 사용되는 솜 같은 물질로 슬레이트, 자동차 브레이크 패드, 석고보드, 단열재 등에 널리 사용됐다. 몸 속에 들어가면 폐에 박혀 사라지지 않고 석면폐, 폐암, 악성 중피종 등을 유발한다. 청석면, 갈석면, 백석면, 악티노라이트, 안소필라이트, 트레모라이트 등으로 나뉜다. ●악성 중피종 석면에 의해서만 유발되는 암으로 흉막(폐막), 복막 등이 딱딱하게 굳어지며 사망한다. 석면 노출 후 20년 이상 경과한 뒤 발병하며, 치사율은 100%다. ●구보타 사태 석면을 함유한 외벽재와 파이프를 생산해 온 일본의 대형 석면공장인 구보타의 근로자와 주민에서 중피종 환자가 발견됐다고 1995년 발표돼 일본 사회를 큰 혼란에 빠트렸던 사건.1978∼2004년 사이에 근무한 전·현직 종업원 79명이 중피종 등으로 숨졌고,18명이 치료를 받고 있으며, 공장 주변 주민 3명에게도 중피종이 발생했다. 현재까지 구보타 피해자는 15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회에는 지하철 등 생활 주변의 석면 문제를 다룹니다.
  • 슈렉3-반짝반짝 더 빛나는 공주들

    ‘슈렉3’의 주인공은 슈렉이 아니다. 다시 말하자면 ‘슈렉3’의 주인공은 백설공주, 신데렐라, 잠자는 숲속의 공주, 라푼첼이다. 혹은 동화 속에 등장하긴 하나 독자로부터 외면만 당하던 백설공주의 늙은 난쟁이, 신데렐라의 심술쟁이 언니, 피노키오를 키운 목수, 피터팬을 괴롭힌 후크 선장이다. 영화 홍보를 위해 지난달 말 내한했던 제작자 제프리 카젠버그가 “이번엔 슈렉이 자신과 상대방을 알아가는 데서 한걸음 나아가 가정과 왕국에 대한 책임감을 배운다.”고 설명한 데서도 드러나듯,3편에서 슈렉은 자신은 뒤로 물러난 채 다른 캐릭터들이 승리의 주인공이 되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처럼 1편부터 기존 동화에 대한 패러디를 시도해온 슈렉시리즈는 3편에서는 보다 다층적이고 심도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려 노력한다. 영화는 슈렉과 피오나가 자신들의 늪으로 돌아와 평온한 일상을 즐기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달콤한 생활도 잠시, 피오나의 아버지 해롤드 왕이 위독해진다. 해롤드 왕은 왕위 계승을 사양하는 슈렉에게 “그렇다면 먼 친척 ‘아더 왕자’를 다음 서열로 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 ‘아더 왕자’를 찾아 여정에 오르는 슈렉. 그 사이 겁나먼 왕국은 왕위를 노리는 프린스 자밍에게 위협을 받는다. 이때 프린스 차밍은 동화 속의 온갖 조연·악당 등을 불러 모아 세를 규합하면서 이렇게 외친다. “그동안 누군가가 우리를 패배자로 만들었다. 이제 우리만의 해피엔딩을 만들어 나가자.” 곧 이들은 똘똘 뭉쳐 겁나먼 왕국을 습격한다. 피오나 공주는 슈렉의 빈자리를 대신해 릴리안 왕비, 백설공주 등 공주들을 대동하고 맞서 싸운다. 이때 라푼첼이 배신을 하고 슈렉도 후크선장에게 잡히면서 위기를 맞이하는데…. 지난달 18일 미국에서 첫선을 보인 ‘슈렉3’는 개봉 첫주, 역대 북미 영화사상 세 번째로 높은 흥행기록을 차지하면서 명성이 식지 않았음을 입증했다. 현재 우리나라 평단의 반응은 실망과 찬사로 엇갈리는 편이지만,1·2편에서 신선한 충격을 느꼈던 관객이라면 3편에서도 한층 성숙한 메시지가 주는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슈렉3’의 막바지에서 공주들은 ‘공주병’에서 벗어나 능동적이고도 주체적으로 승리를 이끌어간다. 패배감에 빠져있던 조연과 악당들 역시 잊고 있던 자신의 존재감을 찾아 새로운 삶의 희망을 꿈꿔나간다. 이처럼 ‘슈렉3’는 또 다른 ‘동화뒤집기’를 통해 ‘우리만의 해피엔딩’이란 옹졸한 늪에 갇히지 말고 ‘나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대지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나가라는 기특한 메시지를 던져준다.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11년 끈 장애인 판정 사흘만에 해결

    11년 끈 장애인 판정 사흘만에 해결

    “봉사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 혜택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더욱 많습니다. 그 틈새에 있는 분들을 살피는 게 공복이 해야 할 일 아닐까요.” 전문계약직으로 서울시 문화재관리과에 근무하게 된 젊은 보신각 종지기 신철민(33)씨는 31일 “공직에 몸을 담은지 3개월밖에 되지 않아 말이나 행동이 조심스럽다.”면서도 공복의 역할과 소신을 뚜렷하게 밝혔다. 그가 말하는 ‘역할’이나 ‘소신’이 안수만(65) 할아버지의 11년 숙원을 풀어주었다. 신씨가 안 할아버지를 만난 것은 1년 전. 동네 김밥집에서 걷기도 힘든 몸을 이끌고 잡일을 하던 안 할아버지의 모습이 안타까워 대화를 나누던 중 딱한 사정을 듣게 됐다. 안 할아버지는 1996년 공사장에서 목수로 일을 하다가 머리를 크게 다쳐 뇌 수술을 받은 뒤 수술 후유증으로 몸의 왼쪽 부분이 마비되면서 생계에 위협을 느낄 지경에 이르렀다. 장애인 판정을 받기 위해 병원을 찾았지만,40만원이 넘는 병원 검사비만 요구할 뿐 정작 판정을 받는 방법에 대해서는 누구도 말을 해주지 않아 속만 태웠다. 당시 이벤트 회사에서 근무하던 신씨는 40년간 보신각 지킴이로 일하던 조진호(80)씨가 세상을 뜨면서 후임으로 지난 3월 보신각 관리 업무를 맡게 됐다. 시청에서 근무하며 담당 공무원의 조언을 구하고 다양한 자료를 찾을 수 있었다. 안 할아버지가 뇌 수술을 받은 병원을 찾아 진찰을 받았다. 근전도,MRI 등 검사 비용은 담당 의사가 소개해준 병원에서 절반 정도에 해결할 수 있었다. “수술 담당 의사에게 수술 후유증으로 인한 장애진단서를 써달라고 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그는 “후유증을 문제삼기 위한 것이 아니니 사심 없이 진단을 내려달라고 설득해 결국 진단서를 받을 수 있었다.”고 떠올렸다. 무려 11년을 끌어온 고민이 사흘만에 해결돼 안 할아버지는 지난 4월 장애 2급 판정을 받았다. 안 할아버지는 “후사를 할 길이 없어 무작정 동네 PC방을 찾아 학생에게 부탁해 글을 올린다.”면서 “이런 훌륭한 공무원이 있다는 게 행운이고 복이다.”며 서울시 홈페이지에 신씨의 선행을 알렸다. 신씨는 “많은 공무원들이 알게 모르게 도움의 손길을 뻗고 있을텐데 부끄럽다.”고 말했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서울 4色 탐험-박물관 천국] (7) 인사동 ‘목인박물관’

    [서울 4色 탐험-박물관 천국] (7) 인사동 ‘목인박물관’

    목인박물관은 서울 인사동 골목길에 숨어 있다. 숨은 그림을 찾듯 이정표를 따라 조계사 맞은편 청석골길을 따라가면 소담한 마당이 반긴다. 목인(木人)이란 나무 인형을 말한다. 우리 선조들은 종교나 주술, 의례에 사용하기 위해 사람이나 동물을 나무로 조각했다. 대표적인 것이 마을의 수호신, 장승이다. 목인박물관은 이런 목조각상 5000여점을 소장한 국내 유일의 목조각상 전문박물관이다. 박물관은 다양한 볼거리를 층마다 품고 있다. 지하라운지에는 꽃이 가득했다. 상여의 난간을 장식하던 꽃판 조각상이다. 연꽃, 모란에서 무궁화까지 화려한 색채를 뽐낸다. 꽃과 함께 물고기와 새도 그려져 있다. 큐레이터 이진아씨는 “물고기는 다산을, 새는 하늘과 땅을 잇는 메신저를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회화·영상·설치 등 다양한 현대미술을 감상할 수 있는 목인갤러리(1층)를 지나 2층으로 올라가면 생활에 쓰였던 민속 목조각상 300여점이 펼쳐진다. ●근·현대 인물상 5000여점 상여 장식용 조각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상여는 시신을 운반하는 일종의 ‘가마’. 우리 선조는 상여를 장식할 때 나무 조각상을 많이 사용했다. 목인이 죽은 사람의 마지막 길동무 역할을 맡은 것이다. 특히 서민들이 다양한 목인을 활용, 상여를 화려하게 꾸몄다고 한다. 죽어서라도 한번쯤은 양반으로 근사하게 대접받고 싶었던 것이다. 근·현대를 살아간 다양한 인물상들이 박물관에서 나무 조각으로 살아 간다. 갓을 쓰고 담배를 물고 있는 양반, 소를 타고 쟁기질하는 농부, 한복을 곱게 입고 나들이 나선 아낙네…. 시대의 변화도 그대로 묻어난다. 양복 입은 신사, 양산을 든 여성, 다정히 껴안고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 책을 들고 학교 가는 학생, 총과 칼을 든 군인, 기모노를 입은 일본인이 그렇다. 최고의 볼거리는 남사당패. 줄 타고, 대접 돌리고, 가면 쓰고, 물구나무 선 광대들의 모습을 순간 포착해 실감나게 표현했다. 이진아씨는 “알려지지 않은 장인과 목수가 만든 조각상이라 작품마다 개성과 재기가 넘친다.”고 말했다. ●돌 조각상이 있는 옥상카페 옥상으로 올라가면 정원이 모습을 드러낸다. 박물관이 제공하는 설록차와 커피, 음료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파라솔 의자 주변에는 돌 조각상이 놓여 있다. 산들바람이 코끝을 간질이고 햇볕이 따사롭게 발을 덮는다. 작은 쉼터가 연인에게도, 가족에게도 여유로움을 선사한다. 이발소 표시등이 걸려있는 지하라운지에도 이발소처럼 편안하게 쉬고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세미나실이 자리잡고 있다. 목인박물관의 또 다른 특색은 소장품을 맘대로 만질 수 있다는 것. 또 언제라도 무엇이라도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박물관이 권위적이고 엄숙할 필요가 없다는 김의광 관장의 철학이 오릇히 담겨 있다. 김 관장은 “아이들이 인형놀이를 하듯 목인을 만지며 옛것의 소중함을 자연스레 배웠으면 좋겠다.”고 했다. 지난해 3월 박물관을 세운 김 관장은 1975년 외국인 집에서 목인을 처음 만난 뒤 “외국 사람도 우리 것의 아름다움을 알아보는데, 나는 무엇을 하고 있나.”라는 부끄러움 때문에 그후 30년간 목인을 수집했다. 전시공간이 부족해 소장품을 한꺼번에 전시하지 못한다. 그래서 비정기적으로 전시품을 교체하고 있다. 방명록에 이메일 주소를 남기면 작품이 교체할 때마다 연락해 준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韓·EU “공산품관세 10년내 철폐”

    한국과 유럽연합(EU)이 자유무역협정(FTA)을 위한 상품 양허(개방)안을 오는 6월 말에 교환하고, 공산품 관세를 협정 발효 10년 내에 모두 철폐한다는 데 합의했다. 또 전체 상품의 관세철폐 수준을 액수와 품목 모두에서 최소 95% 이상으로 하기로 의견을 같이했다. 한·EU FTA 1차 협상 사흘째인 9일 한국과 EU 협상단은 협상장인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만나 상품분야에서 이같은 합의안을 도출했다. 김한수 우리측 수석대표는 “상품 자유화의 목표는 사전 협의 때 나온 대로 품목수 및 금액기준으로 95%가 최소한이고, 공산품은 반드시 10년 내 모두 관세 철폐가 원칙이라는 데 양측이 공감했다.”고 말했다. 이어 “95%는 과거 우리가 한 FTA와 비교해 볼 때 무리 없으면서도 의미있는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상품의 관세양허 방식은 즉시 철폐와 3년 내 철폐,5년 내 철폐로 단순화하기로 하고 민감품목에 대해서는 철폐기간을 별도로 정하기로 했다.다만 민감 품목의 민감도를 반영하는 방식은 합의하지 못했다. 한편 이날 협의가 진행된 서비스·투자분야에서는 통신 및 우편택배 문제에서 EU가 높은 관심을 보여 쉽지 않은 협상이 진행될 것임을 예고했다.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서울대 또 수강권 매매 사태

    `계절학기 수강권 급구, 후사!’서울대에서 `계절학기 수강권 매매 사태’가 올해도 반복되면서 학생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지난해 수강권 매매 사태로 홍역을 치른 서울대가 당시 수강 정원 증원 등 재발 방지를 약속했지만 올해도 수요 예측을 잘못하면서 사태가 재연됐기 때문이다. 8일 서울대에 따르면 ‘2007년 계절학기(6월18일∼8월10일)’에 총 390개(정원 2만 1032명)의 강좌를 개설한 뒤 지난 7일부터 선착순 접수를 했다. 접수 마감일은 오는 11일이지만 졸업을 위해 반드시 이수해야 하는 ‘대학국어’와 ‘대학영어’ 등에 학생들이 몰리면서 접수가 시작되자마자 마감돼 버렸다. 대학국어와 대학영어 강좌는 각각 12개(360명)와 10개(240명)가 개설됐다. 서울대생들의 인터넷 커뮤니티인 ‘스누라이프’ 게시판에는 계절학기 수강권을 구하려는 학생들의 글이 쇄도하고 있다. ‘마코상어’라는 아이디로 글을 올린 한 학생은 “이번에 졸업해야 하는데 군대도 걸려 있고 해서 많이 절박하다.”며 ‘후사’를 전제로 수강권 양도를 요청했다. 아이디 ‘복학’은 “‘대학국어’ 25만원,‘수학 및 연습2’ 25만원” 등으로 구체적인 금액을 제시했고, 아이디 ‘florence’는 “정말 절실하기 때문에 10만원 사례하겠다.”라는 첫 번째 글을 올린 지 6시간도 안 돼 액수를 20만원으로 올리기도 했다. 지난해 계절학기 수강권 매매사태가 발생하면서 학교측은 부랴부랴 ▲졸업예정자에 한해 모두 구제 ▲수강정원 증원 ▲수강신청 폭주에 따른 사이트 마비 방지 등 대책을 내놨지만 1년 뒤 똑같은 사태가 반복됐다. 이에 대해 서울대 관계자는 “대학 1∼2학년 때 이수해야 할 과목을 4학년 마지막 학기에 듣는 등 학생들이 수강 기회를 놓친 게 근본 원인”이라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선착순으로 이뤄지는 수강신청 원칙상 수요 예측을 미리 한다는 게 쉽지 않다.”면서도 “사태가 되풀이되는 것은 학교의 대책이 미흡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고 인정했다. 한성실 총학생회장은 “수강권을 매매하는 학생들도 분명 잘못이지만, 개설된 강좌가 부족한 데다 학교측이 수강 희망자 수요예측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면서 “학생들의 의견을 모아 부족한 과목수 확충 등 대책 마련을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밀·포도주등 576개 관세 즉시철폐

    밀·포도주등 576개 관세 즉시철폐

    한·미 양국은 자유무역협정(FTA) 농업협상에서 미국산 밀과 포도주, 건포도, 옥수수 가루, 오이, 냉동 오렌지주스 농축액 등 576개 품목은 관세를 즉시 철폐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3일 한·미 FTA 협상단과 미국 무역대표부(USTR)에 따르면 관세를 즉시 철폐하기로 한 576개 품목은 전체 1531개 품목의 37%이며 수입금액으로는 16억 2732만달러로 미국에서 수입하는 농산물 29억 8331만달러의 54%에 이른다. 상당수가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거나 수입의존도가 높은 것들이다. 관세철폐 기간이 10년 이상 장기간인 민감품목은 쇠고기·돼지고기·닭고기·오렌지·감귤·송이버섯·사과·복숭아·밤·궐련(담배) 등 520개이다. 전체의 34%다. 금액 기준으로는 전체의 29.3%인 8억 7083만달러이다. 이 가운데 15년에 걸쳐 관세가 철폐되는 품목은 167개이다. 품목수로는 10.6%이고 수입금액 기준으로는 24.8%인 7억 3810만달러이다. 이 가운데 쇠고기·오렌지·포도·사과·배·대두·감자·분유·치즈·천연꿀·보리·맥아 등 111개 품목에는 세이프가드가 함께 적용된다. 감귤·송이버섯·표고버섯·밤·조제저장 딸기·궐련·필터담배 등 51개 품목은 관세만 15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없어진다. 양국이 합의한 농산물 양허안에서 2년 이내 관세철폐 대상 종목은 아보카도 레몬 자두 해바라기씨 등 6개이며,3년내 관세철폐는 해조류 등 33개이다. 5년내 관세가 철폐되는 품목은 완두콩, 냉동감자, 냉동딸기, 초콜릿, 말린 버섯, 자몽, 알파파 등 동물용 사료 등 310여개(20.7%)이며 수입금액으로는 3억 6000만달러에 이른다. 식용대두와 감자, 분유, 천연꿀은 현행 관세를 유지하되 무관세 쿼터를 제공키고 했다. 무관세 쿼터량은 식용대두가 첫해 2만 5000t, 식용 감자 3000t, 분유 5000t, 천연꿀 200t이며 해마다 3%씩 늘려 나간다. 고추·마늘·양파는 15년내 관세가 철폐되지만 세이프가드는 이보다 3년 긴 18년간 적용된다. 인삼도 18년에 걸쳐 관세가 점진적으로 없어지며 세이프가드는 20년간 적용된다. 사과 중에서 후지사과는 20년에 걸쳐 관세가 철폐되며 세이프가드는 23년간 적용된다. 나머지 사과 품목은 관세철폐 기간이 10년이다. 배 중 아시아 품종은 관세철폐 기간이 20년이며, 나머지는 10년이 적용된다. 이처럼 관세철폐 이후에도 세이프가드가 유지되는 품목은 34개이다. 세이프가드는 쇠고기·돼지고기·사과·고추·마늘·양파·인삼 등 73개 품목에 대해 도입되며 발동기준과 추가관세율 등은 부속서에 넣기로 합의했다. 김균미 이영표기자 kmkim@seoul.co.kr
  • ‘천년의 역사’ 부활

    ‘천년의 역사’ 부활

    공사착공 18년 만인 오는 30일 그랜드오픈예정인 경북 경주시 신평동 ‘신라 밀레니엄파크’ 조성 현장을 찾았다. 경주세계문화엑스포에서 보문호를 좌측으로 끼고 보문관광단지로 들어서자마자 우측에 공사차량과 인부들의 분주함이 한눈에 들어온다. 개장을 나흘 앞둔 27일 관계자의 안내로 진입로와 조경공사 등이 한창인 신라 밀레니엄파크를 둘러봤다. ●에밀레종 타워가 랜드마크 매표소를 지나자 석굴암 전실을 형상화한 정문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정면에는 천마상의 분수대가 시원스럽게 물줄기를 뿜어내고 있다. 분수대를 뒤로하고 발길을 옮기면 길 가장자리에 12지신(支神)상 석조물이 서 있다. 조금 더 가면 이곳의 랜드마크인 거대한 에밀레종이 웅장함을 자랑한다. 성덕대왕신종(국보 제29호)을 4.5배(높이 17m) 크기로 확대해 종 속을 4층짜리 사무실로 꾸몄다. 여기서부터 밀레니엄파크가 본격 펼쳐지기 시작한다. 이 파크는 삼부토건 계열사인 ㈜신라밀레니엄이 신평동 일대 부지 17만 8200㎡(5만 4000평)에 총 1000억원을 들여 신라역사 체험공간으로 꾸민 것이다. 에밀레종 타워 앞에는 지상 및 수변 무대로 꾸며진 주공연장이 마련됐다. 지상무대에는 성벽과 민가, 망루 등을 갖춘 신라의 성(城)이 자리를 잡았으며, 특히 수변무대에선 선박 7척이 동원돼 신라와 당나라의 해상전투가 재연된다. 주간에는 신라가 당나라를 무찌르는 내용의 ‘천괴의 비밀’, 야간엔 ‘(성덕)여왕의 눈물’이 각각 공연될 예정이다. 연출 감독은 ‘용의 눈물’의 김재형 총감독이 맡았다. 주변엔 신라 전성기인 8세기쯤, 세력면에서 경주와 어깨를 겨루었던 콘스탄티노플(로마), 바그다드(이라크), 장안(중국)을 재현한 세계 4대 도시 조형물이 배치됐다. 특히 장안엔 당나라 현종과 그의 애첩 양귀비가 함께 목욕했다는 화청지(華淸池)가 꾸며져 있다. 중국의 목수 등이 초빙돼 화청지와 건물 4동이 75% 크기로 정교하게 지어졌다는 것이다. ●다양한 체험형 공방과 공연 다시 에밀레 타워에서 남쪽으로 100여m 이어지는 소나무 오솔길을 따라가면 1300여년 전의 신라 속으로 들어간다. 관광객들은 40여채의 초가집에서 신라시대의 민예품인 토우·한지·칠기 등을 장인들과 함께 만들어 볼 수 있다. 이름하여 체험공방이다. 공방을 지나면 성골·진골·6두품 등 골품제에 맞춰 신분별 주택들을 추정 복원한 신라방(정방형 140×140m)이 자리잡고 있다. 성골 집은 회랑 등 삼국사기에 나와있는 대로 고증됐다. 주변엔 마상무예를 구경할 수 있는 원형극장 형태의 화랑공연장과 마당극이 펼쳐질 장보고공연장, 어린이 놀이터인 설화공원 등 신라를 소재로 한 다양한 테마공간이 들어서 있다. 입장료(1인)는 성인 2만원, 청소년 1만 5000원, 어린이 1만 2000원. 밀레니엄파크와는 별도 공간으로 정문 인근에 들어선 한옥 호텔촌인 ‘라궁(羅宮)’은 모두 16채의 객실을 갖췄다. 경복궁 보수 경력 등을 가진 국내 최고의 목수 100여명이 건축에 참여했다. 이 호텔은 객실마다 노천탕을 배치한 것이 특징이며, 하루 숙박비는 30만원 선. 전재홍 신라밀레니엄파크 사업기획팀장은 “개장 이후 ‘천년왕국, 신라의 꿈과 향수’를 주제로 다양한 공연 프로그램 등을 개발해 연간 1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을 유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경주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미래의 에너지 자원 ‘숲’] “방치된 나무들 보니 너무 아까워”

    “현장 동료들에게 ‘무늬만 여자’라는 핀잔 아닌 핀잔을 많이 들어요.”아궁이와 더블어 사라진 나무꾼이 재등장했다. 충남 아산시에서 나무꾼으로 활동하는 길향미(39·여)씨. 산물을 지고 산을 내려오는 작업이라 ‘한 덩치(?)’를 예상했지만 157㎝, 몸무게 52㎏의 작은 체구다. 보통 목재는 직경 20∼30㎝, 길이가 1m 안팎으로 무게는 20㎏ 정도다. 도고산을 내려오려면 ‘장난’이 아니다.“힘든 작업을 감당할 수 있겠냐.”는 질문은 우문이 됐다. 하루 목표량을 완수하는 데 어김이 없다. 직접 쓸 생각인양 버려진 나무들도 소홀히하지 않는다.“친정에서 화목보일러를 쓰는데 방치된 나무들을 보면서 아까웠다.”면서 “가능하다면 가져다 드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고 했다. 길씨가 산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해부터다. 중학생과 초등학생(6학년)인 두 아들이 있지만 목수인 남편(45)의 수입으론 안정적이지 못해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 “처음에 산에서 일을 한다니까 식구들, 특히 남편이 ‘여자가 무슨 노가다(막노동꾼)냐.’며 심하게 반대했다.”면서 “아프면 즉시 그만둔다고 약속하고 겨우 승낙받았다.”고 말했다. 결석이나 조퇴 한번 없었지만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은 감추지 못했다.‘소아당뇨’를 앓고 있는 둘째 아이를 현장에 데려다 놓고 작업도 했다. 산림법인이나 영림단을 운영하는 목표도 정했다. 그래서 숲가꾸기 일을 하다가 산물수집 전환을 자원했다. 지난 1월에는 독학으로 산림경영기능사 자격증을 땄다. 지금은 기사 자격증을 준비 중이다. 길씨는 “몸도 건강해지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은 것 같다.”면서 “주 5일 근무인데 토요일 근무를 지원해놨다.”고 의욕을 보였다. 아산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주가 싸다고… ‘액면분할의 함정’

    주가 싸다고… ‘액면분할의 함정’

    사례1.코스닥시장 상장사 세이텍의 주가는 20일 140원이다. 주가가 싸다고 생각되지만 액면가가 100원임을 고려하면 일반인이 느끼는 주가는 7000원이어야 한다. 사례2.유가증권시장 상장사 VGX인터내셔널 주가는 7320원이다. 보통의 주가라고 여겨지지만 액면가 200원을 고려하면 액면가 5000원일 때 주가는 18만 3000원이다. 액면가를 5000원으로 가정했을 경우 주가가 10만원 이상인 종목이 유가증권시장보다 코스닥시장이 많다. 전체 상장주식수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코스닥시장이 더 높다. 20일 굿모닝신한증권에 따르면 액면가를 5000원으로 환산했을 경우 주가가 10만원을 넘는 기업은 유가증권시장에서 59개로 유가증권 상장사의 8.7%다. 코스닥시장에서는 95개사로 코스닥상장사의 9.8%다. 환산주가가 5만∼10만원인 경우는 유가증권시장이 95개사, 코스닥시장이 195개사로 두배 수준이다.3만∼5만원인 경우는 유가증권시장이 117개사인 반면 코스닥시장은 203개사이다. 굿모닝신한증권 정의석 투자분석부장은 “환산주가를 따져보면 주가 2만원대 이상에서 코스닥시장 상장종목수가 유가증권 상장종목수보다 많은 기현상이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액면분할이 나쁘지만은 않다. 삼성화재 주가는 20일 16만 1000원이다. 액면가 500원을 고려하면 실제로는 161만원으로 삼성계열사 중 가장 높다. 삼성화재의 경우 유동성 부족에 따른 가치하락을 막기 위해 액면분할을 사용, 투자자의 참여를 높인 경우이다. 유가증권시장에서 액면가가 500원인 기업은 204개로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중 30%다. 미래산업, 주연테크 등은 액면가가 100원이고,VGX인터내셔널, 대영포장 등은 액면가가 200원이다. 반면 코스닥시장에서는 액면가가 500원인 기업은 848개로 87.3%나 된다. 코스닥시장에서 액면가가 5000원이 기업은 77개로 7.9%이고 서주관광개발은 액면가가 1만원이다. 문제는 투자자들이 액면가를 고려하지 않고 주가가 싸다는 이유로 산다는 점이다. 증권사들이 제공하는 종목보고서나 홈트레이딩시스템(HTS)에 액면가가 나온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액면가 5000원’이라는 타성에 젖어 액면가가 500원인 주가를 5000원으로 따져보지 않는 것이다. 다음으로 액면분할을 이용, 주가를 띄우는 경우이다. 현재 주가가 30일 연속 액면가의 20%가 안되면 관리종목으로 지정된다. 관리종목으로 지정된 뒤 90일 동안 액면가 20% 이상인 경우가 10일 이상 계속되고 누적일수가 30일이 넘어야만 상장폐지를 면한다. 액면분할로 액면가를 낮추면 관리종목 지정과 상장폐지를 막을 수도 있다. 정 부장은 “적자기업의 경우 투자자가 참고할 수 있는 주당순이익(EPS)이나 주가수익비율(PER)이 없기 때문에 액면가 대비 주가를 꼭 확인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주식도 강남 3구’

    서울시민이 가진 주식의 절반가량을 강남·서초·송파구 등 이른바 강남 3구민이 소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14일 증권예탁결제원이 집계한 ‘2006년 서울시민 주식투자현황’에 따르면 지난해말 기준 서울시민의 보유 주식수는 81억 2631만 7748주다. 이 중 강남구민이 가진 주식이 24.3%로 가장 많았고 서초구민이 14.0%, 송파구민이 6.7% 등이다. 강남 3구민이 가진 주식수가 45%이다. 지난해말 기준 서울시민 1035만 6202명 중 주식을 가진 사람은 97만 2818명으로 집계됐다.9.4명당 1명꼴로 주식에 투자하는 셈이다. 주식투자를 하는 서울시민 1인당 보유종목수는 3.1개이며 가진 주식수는 8353주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정부조달등 19개 분과중 ‘절반 타결’

    정부조달등 19개 분과중 ‘절반 타결’

    지난해 한국과 미국 통상장관이 워싱턴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개시를 선언한 뒤 13개월 동안 진행된 8차례의 공식 협상이 12일로 끝났다. 예상대로 쌀·쇠고기 등 농산물과 자동차, 무역구제, 섬유, 방송·통신, 개성공단, 지적재산권 보호기간 등 10여개의 핵심 쟁점들은 수석대표 등 고위급과 장관급 회담에서 2주 내에 담판을 지어야 한다. 특히 미국이 자동차에서 예상보다 강경한 입장을 고수, 자동차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다. 그래서 진짜 협상은 지금부터라는 말이 나온다. 양측은 다음주부터 열리는 고위급 회의들에서 상대방의 ‘마지노선’을 확인한 뒤 최고 결정권자(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30일전까지 최종 타결을 지을 것으로 보인다. 협상 결과에 대한 국내의 평가는 그리 녹록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양국간 개방 정도가 워낙 차이가 나 협상 시작부터 우리가 받아내는 것보다 내주는 게 많을 것이라는 지적이 많았고, 실제 수치로 환산 가능한 단기적 성과가 미측에 비해 적기 때문이다. ●19개 분과 중 절반가량 타결 총 17개 분과와 2개 작업반(자동차·의약품) 등 19개 분과 중 경쟁·정부조달·통관 등 3개 분과는 완결 타결됐다. 전자상거래와 기술장벽, 환경도 사실상 타결됐다. 정부조달 타결로 316조원의 미국조달시장 접근이 가능해졌다. 상품무역의 경우 공산품에서 상호 양허개선과 함께 상품 협정문 협상을 사실상 마무리했다.8차 협상 이후 양측 즉시철폐비율은 품목수 기준으로 한국이 85.2%, 미국이 85.4%이다. 통신·투자·서비스·금융·지적재산권 등도 1∼3개의 핵심 쟁점만 남겨놓고 있다. 투자자-국가소송제(ISD)와 관련, 부동산 정책 및 조세조치는 간접수용에 포함되지 않도록 수용부속서를 개정하는 쪽으로 절충안을 마련 중이다. 통신분과도 외국인지분제한을 제외하고 대부분 합의했다. 기술선택의 자율성도 사실상 합의했다. 무역구제의 경우 세이프가드 분야의 실질적인 쟁점에서는 합의를 봤고 반덤핑과 관련해서는 견해차를 좁히지 못했으나 다음주 워싱턴 수석대표 회의에서 결론이 날 것으로 보인다. ●어려운 건 서로 접은 ‘불완전한’ 협상? 양국은 쌀·쇠고기 등 농산물과 자동차 등 초민감 품목을 놓고 막판까지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지렛대로 사용하기 위해 섬유와 무역구제·의약품 등이 막판까지 최종 카드를 움켜쥐고 있다. 쇠고기와 자동차는 결국 최고위급까지 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밖의 분과들에서 서로 버티는 쟁점들은 현 수준을 유지하는 쪽으로 피해갔다. 서비스는 방송·통신 융합 서비스를 제외하고는 우리측의 87개 분야, 미국의 18개 분야는 현행 제도를 유지하기로 합의했다. 한·미 FTA로 서비스 분야의 경쟁력을 높일 것이라는 당초 협상 목표와 기대는 엇나갔다. ●남은 과제 최종 타결까지 남은 시간은 최대한 잡아야 보름 정도다. 이 기간 동안 쇠고기 시장 전면 재개방을 거세게 요구하는 미국의 압력을 적정한 수준에서 막아내고 쌀 등 민감품목을 최대한 개방 예외로 인정받느냐가 관건이다. 이와 함께 개성공단 원산지 인정이라는 난제도 협정문에 추후 협상이 가능하도록 여지를 확보할 수 있을지가 과제다. 김균미기자 kmkim@seoul.co.kr
  • 1400선 붕괴… 나흘새 47兆 ‘증발’

    엔캐리 청산과 미국의 경기둔화 우려, 중국의 긴축 정책 가능성 등의 글로벌 악재가 주식시장에 겹치면서 코스피 지수가 나흘째 하락,1400선 아래로 밀려났다.‘차이나 쇼크’에서 촉발된 증시 조정으로 나흘 만에 47조원 이상이 증발했다. 5일 코스피지수는 지난 주말보다 38.32포인트(2.71%) 떨어진 1376.15를 기록했다. 하락률은 지난해 6월 13일 이후 최대이며, 하락폭도 같은 해 6월 8일 이후 최대 수준이다. 하락 종목수도 650종목으로 지난해 10월 9일 780종목이 하락한 후 가장 많다. 코스닥 지수도 지난 주말보다 12.96포인트(2.14%) 떨어진 594.03으로 장을 마쳤다. 주식시장의 하락과 함께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5거래일 연속 상승하며 넉달 만에 950원대로 진입했다. 한편 일본과 중국 상하이·타이완·싱가포르·홍콩 등 아시아 각국의 주가지수도 동반 폭락했다. 도쿄의 닛케이평균지수는 575.68 포인트(3.34%) 급락한 1만 6642.25로 마감, 지난해 12월12일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중국 증시의 경우 외국인 거래가 가능한 상하이B지수가 무려 6.9% 폭락했으며, 홍콩 항셍지수와 타이완 가권지수, 싱가포르 ST지수도 각각 4%와 3.7%,4.08% 급락했다. 문소영 전경하기자 symun@seoul.co.kr
  • 살림살이 여전히 ‘팍팍’

    살림살이 여전히 ‘팍팍’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는데, 왜 가정경제의 주름은 펴지지 않을까.” 40대 회사원 김모씨의 의문이다.4인 가족의 가장인 김씨는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라는 것은, 연간 8만달러(7520만원, 환율 940원)의 수입이 생기는 것으로 단순히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의 명목수입은 몇년째 4000만∼5000만원에 고정돼 있다. 최근 김씨처럼 거시경제지표의 호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살림살이가 팍팍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지난해 경제성장률 5%를 달성했지만, 실제 소득이 늘어나지 않은 탓이다. 이유가 뭘까. ●유가상승으로 교역조건 나빠져 이에 대해 안길효 한국은행 경제통계국 국민소득팀장은 “국민총생산(GDP)과 국민총소득(GNI)의 괴리에서 발생하고, 그 괴리는 국제유가의 상승으로 교역조건이 나빠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경제활동의 정의에 따르면 국민총생산과 국민총소득은 일치해야 한다. 실제 2002년 GDP와 GNI는 모두 7.0% 성장했다. 그후 두 거시경제지표는 괴리가 발생해 2005년에는 GDP(4.0% 성장)와 GNI(0.5% 성장)에 큰 차이가 발생했다. 이 차이에 대해 안 팀장은 “수출상품의 가격은 낮아진 반면 고유가로 수입단가가 크게 오르면서 최악의 교역조건이 매년 갱신되고 있다. 즉, 교역조건의 악화로 2001년 이래로 무역손실 규모가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는 탓”이라고 설명했다. 안 팀장은 “지난해 말부터 유가가 안정되고 있어서 지난해 GNI 성장률은 2.1∼2.2%가 될 것”이라고 추정했다. 한편 전체 GDP의 10∼15%를 차지하는 공공행정서비스와 국방서비스의 확대도 실질 GNI를 낮추는 요인이다. ●수출·내수 연결고리 단절 수출의 호조가 내수로 연결되지 못하는 사회환경을 원인으로 찾기도 한다. 과거에는 수출호조가 투자·고용을 촉진시키고, 이것이 소비의 증가로 이어졌다. 그러나 지금은 그 연관관계가 약화됐다. 한국은행 조사국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1990년부터 지난해까지 16년간 수출은 8.3배 늘었지만, 내수는 겨우 2.03배 늘었다. 임호열 한은 구미경제팀장은 “수출과 내수의 비연결성이 독일·일본보다도 더 심화된 형태”라고 지적했다. 독일은 비슷한 기간에 수출이 2.4배, 내수는 19% 증가했고, 일본은 2001년 이래 수출은 51%, 내수는 4% 성장했다. 연계 약화는 설비의 자동화, 생산시설의 해외이전, 중간재의 해외조달 등으로 고용창출의 효과가 사라진 탓이다. 독일의 경우 1990년부터 2005년까지 제조업의 생산이 20% 늘었지만 고용은 40% 감소했다. 우리나라도 지난 16년간 제조업 생산성은 3.8배가 늘었지만, 고용은 13% 감소했다. 고용수 한은 아주경제팀장은 “수출호조가 내수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전통 소매업·음식숙박업 등 서비스 산업의 생산성이 높아져야 하고, 노동시장이 유연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적으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제거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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