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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체단체장 25시] ‘청렴 DNA’ 뚝심 시장, 청정 해양관광도시를 만들다

    [자체단체장 25시] ‘청렴 DNA’ 뚝심 시장, 청정 해양관광도시를 만들다

    전남 22개 시·군 중 인구 30여만명으로 최대 도시인 여수시는 3년 전 시청 공무원의 80억원 횡령 사건으로 비리도시라는 오명을 얻었다. 하지만 여수는 지난 9일 국민권익위원회가 발표한 전국 공공기관 청렴도 평가 결과에서 도내 1위, 157개 자치단체 중 10위에 올랐다. 주철현(56) 여수시장이 취임 이후 반부패 청렴 특별대책으로 ‘시민공무원평가시스템’을 도입해 친절도와 청렴도 등을 지속적으로 관리해 온 결과다. 주 시장은 25년간 특수·공안·강력부에서 일했던 검사 출신이다. 서울지방검찰청 특수1부장,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장, 광주지방검찰청 검사장, 대검찰청 강력부장 등을 지냈다. 호남인으로는 드물게 대검찰청 선거전담 연구관과 과장도 맡았다. 대검 강력부장 시절엔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을 대변해 제5회 대한민국 법률대상 인권 부문 대상을 받기도 했다. 소농에 목수로 생업을 이은 가난한 집안의 1남 3녀 중 둘째인 그는 어떻게 살아야 옳은지를 잊지 않았다. 주 시장은 ‘현장에 모든 답이 있다’며 생활 행정을 중시한다. 동행 취재를 한 지난 16일 따뜻한 지역인 여수에서는 드물게 눈까지 내린 찬 바람 속에서도 직접 현장에 들러 공무원들을 격려하고 전문가들의 제언을 들었다. 주 시장은 공식 일정을 오전 10시 웅천 공공마리나 현장을 방문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주 시장은 마리나 시설을 개발해 여수시를 ‘국제 해양관광의 중심’으로 만드는 게 목표다. 이곳에 국내 최대인 500석 규모의 마리나 항만을 조성해 국제 마리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해양레저산업의 메카로 발전시키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시는 지난 7월 정부의 거점형 마리나 항만 개발사업 공모에 선정돼 국비 300억원을 지원받아 거점형 마리나 항만도 개발할 수 있게 됐다. 여수는 주변이 365개의 아름다운 섬들로 둘러싸여 태풍의 영향을 받지 않고 수심도 적당해 마리나 항만을 조성하기에 최고의 적합지로 불린다. 요트·윈드서핑·카약 등 다양한 해상 스포츠를 즐기고 선소 유적지, 예울마루 등을 활용해 역사와 문화를 어우르는 해양관광과 휴양활동이 가능한 최적지로 육성한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이 자리에서 주 시장은 6명의 자문위원들로부터 접안 시설이 부족해 더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을 받아들여 곧바로 공무원들에게 지침을 내리는 등 열린 시정을 펴는 모습이었다. 공사가 마무리되는 계류장과 3층 규모의 클럽하우스 등도 꼼꼼히 살폈다. 이어 오전 11시 여수상공회의소 주관의 2015 하반기 여수기업사랑협의회 위원회에 참석했다. 시와 여수상공회의소를 중심으로 25개 단체가 가입된 협의회는 친기업 정서를 시민들에게 확산시키고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통해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을 주고 있다. 주 시장은 도심 발전을 위해서는 지역민과 기업이 공생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여수산업단지 대기업들과 상생발전 공동 업무협약을 체결해 꾸준히 추진 중이다. ㈜엘지화학·롯데케미칼 등 18개 대기업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대기업들은 지역민 우선 채용과 지역 생산품 구매, 지역 내 중소기업을 이용한다는 약속이다. 시는 회사 로고를 제작해 청사 현관에 걸어 주고 도움을 주는 내용을 시민들에게 알려 준다. 산단 내 기업들의 창립기념일에 회사기를 시청 게양대에 걸어 주면서 기쁨을 함께 나누기도 한다. 박용하 여수상공회의소 회장은 “기업과 기업인을 존중하고 신뢰하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는 등 시민들과 기업 간 촉매제 역할을 잘 하고 있다”며 “기업들도 더 책임감을 느끼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한 시간의 회의 끝에 위원들과 점심을 한 주 시장은 여수의 별미인 통장어탕 한 그릇을 깨끗이 비웠다. 주 시장은 생선·해초류 등 바닷가 음식은 다 좋아한다. 요즘은 외지인들에게 살아 있는 장어를 통째로 잘라서 넣은 통장어탕과 굴구이 등을 추천한다. 오후 4시 30분에는 강풍으로 운항이 중단된 여수 해상케이블카 현장을 방문했다. 전국 최초로 바다 위를 통과하는 해상케이블카는 지난해 12월 개통 이후 지난 15일까지 219만명이 찾은 여수의 대표 관광 상품이다. 시민단체들의 반대와 지역 경제계의 찬성 등으로 갈등이 계속되자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며 운항 허가를 내준 후 대박을 터뜨리고 있다. 운영회사인 여수포마㈜는 입장권 판매 수익금 일부와 건물사용료 등으로 올해 12억여원을 시에 기부했다. 130명의 고용 창출 효과도 거뒀다. 오후 6시에는 여수엑스포역 광장에 마련된 KBC 광주방송 생방송 투데이에 출연해 관광객 1300만명 돌파에 대한 고마움을 표했다. 시는 지난 11일까지 지난해보다 31.3% 증가한 1303만명이 찾을 정도로 관광도시로 정착하고 있다. 제주에 이어 2위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 등록된 42개 관광지점에서 공식 집계한 기록이다. 주 시장은 저녁 회식 후 한 시간 정도 걷거나 청사에 있는 탁구장에서 땀을 뺀 후 귀가한다. 75타까지 쳐 본 골프는 접은 지 오래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만나게 되는 사람도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주말에는 직원들과 직접 족구를 할 정도로 체력도 좋다. 테니스는 수준급이다. 오랜 검사 생활과 농촌 출신이다 보니 표현이 서툴고 말투가 딱딱해 본의 아니게 오해도 받곤 한다. 검사라는 선입관과는 달리 상대방을 편하게 해 준다. 한번 만나본 사람들은 가슴이 따뜻하다는 말을 한다. 지난 15일 30주년 결혼기념일에는 장미꽃을 사들고 집에 들어가 부인과 단둘이 저녁을 먹고 고마움을 표했다. 지난 4월부터 직원들이 결혼하면 부부생활과 관련된 책과 결혼 십계명이 새겨진 액자를 선물하고 덕담도 건넨다. 주 시장은 “대한민국 소비자 신뢰 대표 브랜드 대상에서 해양관광 도시 부문 대상을 받을 정도로 대표적 관광 도시로 자리잡고 있다”며 “국제 해양관광도시의 중심지로 우뚝 설 것”이라고 말했다. 여수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이주일의 어린이 책] 팔만대장경 나무 집, 어떤 사람들이 지었을까

    [이주일의 어린이 책] 팔만대장경 나무 집, 어떤 사람들이 지었을까

    바람을 품은 집/조경희 지음/김태현 그림/개암나무/156쪽/1만 1000원 소화는 태어나자마자 엄마를 잃었다. 아버지는 전국 방방곡곡을 떠돌며 집 짓는 일을 했다. 홀로 소화를 키우게 되면서 먼 곳까지 일을 하러 다닐 수 없게 됐다. 소화의 젖동냥을 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합천에 눌러앉았다. 그토록 좋아하던 목수 일을 접고 남의 매를 대신 맞고 돈을 받는 ‘매품팔이’를 했다. 어느 날, 매를 독하게 치기로 소문난 점백이 나장에게 다른 사람의 매를 대신 맞은 뒤 숨을 거뒀다. 이웃 뱀골 영감은 아버지에게 받을 빚이 있다며 소화네 집을 빼앗아 버렸다. 뱀골 영감은 상인들 사이에서도 인정머리 없고 인색하기로 유명했다. 한순간에 아버지를 잃고 집까지 빼앗긴 소화는 곱게 댕기 드린 머리를 싹둑 자르고서 아버지 친구인 대목장 아저씨를 따라 길을 나섰다. 소화네 일행은 산속 깊이 자리한 절에 도착했다. 대목장 아저씨는 절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내릴 생각도 하지 않고 건물 지을 땅부터 살폈다. 절 경내를 한참 둘러본 뒤 절의 가장 위쪽에 있는 평평한 땅에 건물 지을 자리를 잡았다. 경남 합천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을 보관하는 장경판전 건축 과정을 문학으로 승화한 작품이다. 아버지 품 안에서 해맑게만 자라던 소화가 고난을 딛고 씩씩하게 삶을 추슬러 나가는 과정이 감동적이다. 장경판전은 바람의 드나듦을 조절해 자연적으로 온도와 습도가 적절하게 유지되도록 설계됐다. 그 우수성을 인정받아 1995년 팔만대장경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작가는 “우리 선조들은 장경판전을 지으면서 저마다의 바람을 담았다”며 “장경판전이 오랜 세월 꿋꿋하게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소박하고 순수한 바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초등 고학년.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우리나라 삶의 질 세계 40위... 출산율 166위,

     우리나라가 휴대폰·반도체·선박·자동차 등 제조업 분야는 세계 최상위권을 차지했지만 삶의 질·출산율·노동시간 등 노동·사회 분야에서는 선진국보다 뒤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27일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이 펴낸 ‘세계 속의 대한민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제조업은 휴대폰 출하량 1위, 반도체 매출액 2위, 선박수주·건조·수주잔량 2위 등을 기록했다. 자동차 생산대수는 5위, 조강생산량 6위였다.  포천 500대 기업에는 우리나라 기업이 16개가 포함돼 세계 7위를 차지했다. 삼성은 글로벌 브랜드 가치 분야에서 전년보다 한 단계 오른 7위에 올랐다. 전자정부지수 1위, 정보통신기술 발전지수는 2013년 기준 2위로 나타났다. 무역 부문은 지난해 기준 수출 세계 7위, 무역 규모 9위, 무역흑자는 13위로 전년도와 동일했다. 2013년 기준 1위 품목수는 12위(64개)를 기록했다. 중국은 1538개로 1위, 미국은 550개로 3위, 일본은 186개로 5위에 올랐다. 서비스 수출입은 각각 16위, 13위로 제조업보다 미흡했다. 제조업, 통신 부문의 높은 위상과는 달리 노동, 사회 등 삶의 질 부분은 선진국과의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여성경제활동 참가율은 57%로 30위, 출산율은 1.26명으로 올해 169개국 가운데 166위로 최하위권을 형성했다. 국민 1인당 연간 노동시간도 지난해 2124시간으로 세계에서 3번째로 많았고 올해 삶의 질은 10점 만점에 5.4점으로 40위로 낮아 경제적인 성취가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투명성지수는 10점 만점에 3.25점으로 40위로 미국(25위), 일본(26위)보다 뒤처졌다.  2013~14년 미국 유학생 수는 6만 8047명으로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았다. 일본(1만 9334명·7위)의 3배 수준이다. 중국은 27만 4439명으로 가장 많았다. 우리나라 1인당 국내총생산(GDP)는 3만 5379달러로 31위였다. 에너지 부문도 석유 소비량 8위, 원유 수입 5위 등으로 에너지 자립도에서 상대적으로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속의 대한민국’은 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이 해마다 170여개의 경제, 무역, 사회지표 기준으로 한국의 세계 순위를 정리한 것이다. 세종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처마에 걸린 티베트 문자 골목에 달린 낯선 상징들

    처마에 걸린 티베트 문자 골목에 달린 낯선 상징들

    한국 고유의 멋을 지닌 한옥과 현대적 건축물이 조화를 이룬 서울 서촌 골목에서 인류의 문화 다양성을 상징하는 문자들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이방인을 위한 낯선 문자의 골목 표지판이 설치되고, 다른 나라의 문자들이 알록달록한 모양으로 대문에 문패처럼 걸린다. 사단법인 세계문자연구소는 지난해 ‘세계문자심포지아 2014’에 이어 문자들이 실제 삶의 공간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 숨쉬는지를 체험할 수 있는 ‘세계문자 심포지아 2015-가가호호 문자’ 행사를 종로구 통의동(서촌) 일대에서 벌인다. 지난해 발족한 뒤 세계문자 서울선언을 채택한 세계문자연구소의 임옥상 소장은 “지난해 축제에서 어떤 행사를 할 것인가를 타진했다면 올해 행사를 통해선 문자가 그것을 쓰는 사람의 집 또는 골목과 거리, 마을과 나라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보여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6일부터 25일까지 열흘 동안 진행되는 행사는 학술대회, 문자 체험 프로그램, 전시와 퍼포먼스 등 예술 프로젝트로 구성된다. 학술 분야에선 전 세계 문자 정책의 방향, 글자 전쟁의 새로운 국면, 전 세계 문자 탄생지 조사, 유라시아의 문자와 언어정책 등을 주제로 한 패널 토론과 발표가 세종문화회관 예인홀에서 열린다. ‘가가호호 문자체험’ 프로그램은 통의동 일대 주택과 골목길, 카페, 상가들을 방문해 채집한 의미 있는 단어들을 번역하고 3D프린터로 출력해 세계 각국의 문자를 체험하도록 하는 전시다. 김종구 작가는 “문자는 문화의 교차점이자 공동체의 고유성과 정체성을 지켜주는 역사유산”이라며 “구글 번역기를 이용해 사랑, 안녕, 친구, 평화, 지혜, 합의, 가족 등 다양한 단어를 선택한 뒤 3D 입체조형물로 만들어 골목길에 전시함으로써 사람의 삶과 이야기가 함께하는 풍경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통의동 골목에는 덴마크의 공공예술가인 헤셀홀트와 마일방이 눈물, 독수리, 사슬, 사자, 얼굴, 별을 상징하는 이미지를 넣은 깃발을 설치하고 통의동 헌책방 ‘가가린’이 있던 자리에서는 낭독 퍼포먼스가 펼쳐진다. 아티스트 노윤희와 정현석은 한옥 지붕 위에 부탄과 티베트의 문자로 쓴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의 평등함’이라는 내용의 네온을 걸었다. 온그라운드갤러리에서는 목수 조전환이 ‘우물에 비친 말 그림자’라는 제목으로 한옥의 구조와 공법이 문자의 개념과 어떻게 확장되고 연결되는지를 보여 준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전통창호 40년 장인 “심용식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26호 소목장”

    전통창호 40년 장인 “심용식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26호 소목장”

    ‘서울 목공한마당’이 열리고 있는 시청광장의 한 부스에 심용식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26호 소목장의 작품들이 눈길을 끌고 있다. 현재 시청광장에는 나무로 만드는 생활가구를 주제로 시민투표를 통해 수상작을 선정하는 “목공대회”와 다양한 분야의 목수들이 생활 목공 경험을 시민들과 공유하는 “목공포럼” 등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심용식 수목장은 충남 예산에서 태어나 1969년 충남무형문화재 조찬형 선생님에게 소목과 전통창호 기법을 전수받았다. 이후 이광규, 최영한, 신영훈 스승님을 만나 우리문화와 전통건축에 대한 안목을 넓히며 공부의 깊이를 더했다. 1981년 성심공예원을 설립해 장신정신으로 작품활동과 국내외 중요전통건축물의 창호를 만들었다. 2008년 서울 북촌 한옥마을에 청원산방을 개원하여 전통창호의 대중화에 힘쓰고 있으며, 2010년 청원산방에 소목교육장을 열어 후학양성에 열정을 다하고 있다. 북촌한옥마을에 자리한 청원산방은 전통창호의 작은 박물관으로 무형문화재인 심용식 소목장의 40여년 열정과 장인정신이 담겨있다.이 산방에는 흔히 볼수 있는 세살문, 완자교살문, 용자살문, 꽃살문, 귀갑살문 등 170여짝 30여종의 다양한 전통창호를 감상할 수 있으며 여러 목공구도 전시돼 있다. 또 심 수목장은 귀농,귀촌을 준비하는 일반인 및 전문인을 위한 짜맞춤목공배움터도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매주 실기교육을 평일반과 주말반으로 나눠 운영하고 있는데 현재 80여명의 수강생들이 배우고 있다. 문의 청원산방소목학교 02-715-3342.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지금 서울광장에선] 친환경 목재놀이터, 목공예품 전시장 “나무야 놀자!

    [지금 서울광장에선] 친환경 목재놀이터, 목공예품 전시장 “나무야 놀자!

    목재문화진흥회(회장 강호양)와 서울특별시(시장 박원순)가 주최하는‘2015 가 ‘나무야 놀자’라는 주제로 23일, 24일 이틀간에 걸쳐 서울광장에서 개최된다. 이번 40여종의 목재체험 행사는 무료로 진행되며, 친환경 목재놀이터, 목공예품 전시는 상설 운영된다. 이밖에도 목재 OX퀴즈, 버스킹공연 등 풍성한 프로그램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특히, 서울특별시와 산림청·녹색사업단이 주최하고 목재문화진흥회가 주관하는 ‘제1회 서울 목공한마당’도 동시에 개최돼 더욱 풍성한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제공할 예정이다. ‘서울 목공한마당’은 나무로 만드는 생활가구를 주제로 시민투표를 통해 수상작을 선정하는 “목공대회”와 다양한 분야의 목수들이 생활 목공 경험을 시민들과 공유하는 “목공포럼” 등의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다. 또 서울 도봉구 등 자치구 희망목공소, 목공관련 사회적 기업·마을기업·협동조합이 참여해 목공전시 및 판매하는 목수의 보물창고와 우리나라 소목장분야 무형문화재인 창호분야 심용식, 가구분야의 김창식의 초청 전시를 열어 잊혀져가는 전통목공을 재조명한다. 강호양 목재문화진흥회 회장은 “이번 행사는 지속가능하고 친환경, 친건강 소재인 목재를 통해 영유아를 포함한 모든 국민의 행복시대로 도약하기 위한 발판이 될 것”이라며, 목재문화 활성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다양한 문화 행사를 이어 나갈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한편 서울광장 중앙무대에서는 오는 24일 저녁에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가 상영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새 영화] 극한도전 나선 그들이 정복한 것은... ‘에베레스트’

    [새 영화] 극한도전 나선 그들이 정복한 것은... ‘에베레스트’

    산악인들은 산을 오르는 이유에 대해 “그곳에 산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어찌 보면 삶을 살아내는 것과 산을 오르고 내리는 과정은 묘하게 닮아 있다. 에베레스트를 정복하고자 하는 인간의 열망이 가장 뜨거웠던 1996년, 베이스캠프에 도착한 수많은 원정대도 비슷한 심정으로 그곳을 찾았다. 상업 등반 가이드의 시대를 연 롭 홀이 이끄는 어드벤처 컨설턴트 팀과 갓 사업에 뛰어든 스캇 피셔의 마운틴 매드님스 팀도 그중 하나였다. 영화 ‘에베레스트’는 1996년 5월 해발 8848m 에베레스트 등정에 나선 두 팀의 실화를 그린 작품이다. 지상 위 산소의 3분의1, 온몸이 얼어붙는 영하 40도의 추위 속에서 총 20여명의 대원들은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도전에 나섰다. 이들이 산에 오르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목수, 집배원 등 고된 일을 하면서도 등정에 나선 더그 한센은 “보통 사람이 불가능한 꿈에 도전하는 걸 보여주면 아이들도 꿈을 키울 수 있을 것 같아서”라는 이유에서, 일본 여성 최초로 세계 6대륙 등정에 성공한 남바 야스코는 “평생 7개 중 6개 최고봉에 올랐으니까 7번째 도전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담담히 말한다.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산을 찾은 벡 웨더스는 두고 온 아내와 가족에게 돌아가기 위해 에베레스트 정복에 나섰다. 에베레스트는 이들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도전한 평생의 꿈이다. 영화는 이들의 험난한 도전을 쫓아가면서 광대한 에베레스트의 자연 속으로 관객을 안내한다. 대원들은 총 4개의 캠프를 지나 육체가 생존 기능을 상실하기 시작하는 데스존(8000m 이상)에 진입한다. 한 걸음을 뗄 때마다 6번의 숨쉬기를 해야 하는 사우스 서미트와 백두산 3개를 쌓은 높이에 해당하는 힐러리 스텝을 거쳐 최정상 8848m에 도달한다. 오르막에 순순히 길을 내주던 산은 내리막에 완전히 얼굴을 바꾸었다. 눈폭풍이 몰려오면서 한 걸음조차 내딛을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되고 이탈자가 속출한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영화는 감정에 경도되지 않고 담담하게 그 과정을 묘사한다. 감독과 배우들은 실제 에베레스트의 5000m 이상 현지를 등정해 직접 촬영을 진행해 실제감이 상당히 높다. 아이맥스 카메라로 촬영해 에베레스트의 자연과 극한의 재난 현장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빙벽 사이를 나무 다리에 의지해 아슬아슬하게 지나가는 장면에서는 3D 효과가 잘 살았지만 다른 장면에서는 그 장점이 크게 부각되지는 않는 편이다. 거대한 자연 재해 속에서 기적같이 살아 돌아온 이도 있고 그들이 사랑하는 산에서 영원히 잠든 이도 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마지막까지 그들을 붙든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 가족이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강한 극성을 지닌 블록버스터급 재난 영화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지만 진정성 있는 다큐멘터리로서 울림은 상당히 크다. 등정 대원으로 출연하는 제이슨 클락, 제이크 질렌할, 조슈 브롤린뿐만 아니라 롭의 임신한 아내 잰 역을 맡은 키이라 나이틀리와 가이드 역할로 출연하는 샘 해밍턴 등 할리우드 명배우들이 제몫을 다한다. 제72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됐다. 24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서울 핫 플레이스] 요리 보고~ 조리 보고~ ‘둘리’ 집에 놀러와요

    [서울 핫 플레이스] 요리 보고~ 조리 보고~ ‘둘리’ 집에 놀러와요

    서울의 최북단 도봉구. 도봉에는 연간 1000만명이 찾는 도봉산이 있다. 도봉구에는 ‘도봉산이 있고, 도봉산이 있고, 도봉산이 있다’고 할 만큼 도봉산만 있었다. 이 때문에 ‘도봉산을 타고 내려와 막걸리 한잔하고 돌아서면 땡인 동네’였다. 그러나 이동진 도봉구청장이 2010년 7월 취임한 뒤 구에 꼭꼭 숨어 있던 근현대 역사·문화 자원을 차근차근 발굴해 개발하면서 도봉은 온 가족이 즐길 만한 동네로 변모했다. ●‘조선 최고 부자·문화재 지킴이’ 간송 전형필 가옥 주말에 아이들과 함께 산도 타고 아빠·엄마의 어렸을 적 이야기도 들려주고 근현대사에 대한 교육도 하고 싶다면 ‘도봉역사관광문화벨트’를 추천한다. 먼저 북한산 둘레길을 가볍게 산책한 뒤 도봉산 옛길과 방학동길을 따라 쭉 내려오면 처음 만나는 곳이 간송 전형필의 가옥(시루봉로 149-18)이다. 간송은 1906년 종로4가에서 태어났다. 그의 증조부인 전계훈이 종로4가의 거의 모든 상권을 장악했고 왕십리, 답십리, 청량리까지 확장한 덕에 말 그대로 ‘금숟가락을 물고 나온 아이’였다. 일본 와세다대 유학생이던 그는 23살의 나이에 당대 최고 한학자로 불리는 위창 오세창 선생을 만나 민족 문화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24살 때 막대한 유산을 받은 뒤로 헐값에 일제로 흘러가던 우리 문화재를 사 모으게 된다. 간송이 사재를 털어 지킨 문화재는 훈민정음 해례본, 고려청자, 추사 김정희의 글씨, 겸재 정선과 단원 김홍도의 그림 등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기와집 10채 값을, 고려청자 20여 점은 기와집 400채 값을 치른 것으로 알려졌다. 복원된 가옥 옆에는 간송과 그의 아버지 전영기의 묘가 나란히 있다. 1900년대 초반 지어진 뒤 제대로 개·보수가 이뤄진 적 없었던 이 집은 2011년 이동진 도봉구청장이 산행 중 주민들과 함께 발견했다. 이후 구가 유족 등과 함께 문화재청에 문화재 지정신청을 한 뒤 최근에야 제 모습을 되찾았다. 간송 가옥의 첫인상은 “애걔”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별 볼일이 없다. 조선 최고 부자가 살았다고 하기에는 안방과 마루, 사랑채로 구성된 구조가 너무 단출하다. 간송의 본가는 서울 종로이고 도봉의 집은 땅을 관리하기 위해 전국에 지어 놓은 집 중 하나였다고 한다. 간송 시절에 도봉은 경기도 땅이었다. 종로 본가와 다른 가옥은 한국전쟁 등을 거치며 다 소실됐고 현재 이 집만 남았다. 규모는 작지만 향나무와 소나무, 자작나무를 재료로 ‘한 일(ㅡ)’ 자로 지어진 집은 명문가답게 고풍스럽다. 간송 가옥 보수에 참여한 목수는 “돌을 놓는 방법은 물론 문 크기, 빛이 들어오는 방향 등이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된 집”이라면서 “서울 명문 가옥의 축소판”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1일 정식 개관한 간송 전형필 가옥에선 앞으로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문화재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될 예정이다. ●‘불온한 시인’ 김수영문학관선 낭독의 체험 전형필 가옥을 나와 정의공주와 연산군묘, 원당샘공원을 지나면 ‘불온한 시인’ 김수영의 문학관이 나온다. 김수영이 도봉 쪽에 살았나 갸웃할 것이다. 김수영은 한국전쟁 때 의용군으로 징집돼 북으로 끌려간 탓에 1952년까지 거제도 포로수용소 생활을 했다. 그리고 1954년 부인 김현경씨 등 가족과 재회한다. 이때 새 삶의 터전이 도봉동이다. 지하 1층~지상 4층 규모의 김수영문학관은 전시실과 수장고, 도서관, 동아리방 등으로 구성됐다. 전시실에서는 그가 펴낸 시집을 비롯해 작품 초고, 산문 원고, 번역서, 펜과 수첩, 서재 등을 볼 수 있다. 특히 김수영 시인의 시를 직접 낭독하고 들을 수 있는 체험관이 있어 눈길을 끈다. ●책 보고 노래하고… 엄마·아빠·아이들의 놀이터 ‘둘리 뮤지엄’ 이쯤 되면 아이들 입에서 “이게 뭐야! 하나도 재미없어” 소리가 나오기 시작할 가능성이 99.99%다. 이때 눈앞에 둘리와 도우너, 또치, 마이콜, 희동이가 짠! 하고 나타난다. 바로 지난 7월 개관한 둘리뮤지엄이다. 도봉구가 ‘둘리 아빠’ 김수정 작가와 힘을 합쳐 만든 이곳은 한국 최대의 캐릭터 박물관이다. 둘리가 살았던 고길동의 집이 도봉구 쌍문동이라는 점에 착안해 만든 어린이 문화시설이다. 1층에 들어서 아이들이 “둘리야” 하고 큰 소리로 외치면 빙하 속에 잠자는 둘리가 눈을 뜨면서 모험이 시작된다. 1층에서는 둘리의 극장판 ‘얼음별 대모험’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도우너의 시간 여행 미끄럼틀과 우주버스 타기, 우주의 적 바요킹과의 대결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바요킹을 무찌르고 나면 스튜디오에서 둘리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 2층은 둘리 연재 만화를 보고 자란 어른들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2층은 2009년 새로 제작된 ‘고길동의 아마존 표류기’와 ‘둘리와 친구들의 저승행차’ ‘마법의 피라미드 여행’ ‘유령선 탈출기’ ‘알 수 없는 나라’ 등의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각각 포토존이 있다. 캐릭터 전시 공간에 들어가면 둘리 소시지, 둘리 책가방, 둘리 필통, 둘리 물감 등 엄마·아빠가 초등학생 때 썼던 물건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둘리뮤지엄의 수장고에는 이런 물품 1000여점이 보관돼 있다. 시설 관계자는 “키덜트들이 특히 좋아하는 공간”이라면서 “이곳을 보고 마이콜 뮤직스테이지로 가면 엄마와 아빠가 손을 잡고 ‘요리 보고~ 저리 보고~’ 하며 둘리 주제가를 열창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3층으로 올라가면 시계 그네와 정글짐 등 아이들이 몸으로 놀 수 있는 키즈카페가 마련돼 있다. 1, 2층에서 꼬마들을 데리고 다니느라 진을 뺀 부모를 위한 커피숍도 이곳에 있다. 몸으로 뛰놀기에 체력이 달리는 아빠들은 근처 어린이 도서관을 이용해도 좋다. 어른 5000원, 어린이 7000원을 받는 뮤지엄동과 달리 도서관은 ‘공짜’다. 현재 5000여권의 책을 소장한 어린이 도서관은 ‘숲속의 둘리’라는 주제로 꾸몄다. 아이들이 뒹굴면서 책을 볼 수 있다. 책의 종류도 둘리 성격에 맞춰 ‘공부’보다는 ‘놀이’와 ‘친구들과 잘 지내는 법’ 등에 맞춰 구비됐다. 어른들을 위한 만화책도 있다. 학교 때 만화방을 들락거렸다면 부모들도 심심하지 않다. 앞으로는 구연동화와 종이접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진행할 예정이다. ●한적한 골목엔 ‘한국의 간디’ 함석헌 선생의 흔적 가득 둘리뮤지엄을 나와 정의여고 방향으로 걸으면 한적한 주택가가 나온다. 이 골목 한쪽에 ‘한국의 간디’ 함석헌 선생 기념관(쌍문동 도봉로 123길 33-6)이 있다. 생의 마지막 7년을 보낸 집을 수리해 기념관으로 만들었다. 1901년 평안북도 용천에서 태어난 그는 한국의 대표적 인권운동가이자 시인이자 철학자이자 종교인이다. 기념관에선 그의 책과 저서, 생활용품 등 유품 400여점과 생전 육성이 담긴 강의 테이프, 동영상 등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지하 1층 세미나실은 게스트룸으로 이용할 수 있다. 함석헌기념관을 다 봤다면 주변 주택가를 한번 휙 둘러봐도 좋다. 기념관을 주변으로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 김병로, 전태일 열사 등 한국 근현대사를 빛낸 쟁쟁한 인물들의 집터가 남아 있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이야기 12] 17세기 추상미술의 대가 미수 허목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이야기 12] 17세기 추상미술의 대가 미수 허목

    현대미술에 관심을 가질수록 옛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는 사람을 심심치 않게 만난다. 초기의 한자는 3차원인 표현 대상을 2차원으로 묘사한 일종의 구상화라고 할 수 있다. 이 구상화는 곧 해체와 재조합 과정을 거쳐 진전된 형태의 한자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이렇게 태어난 한자, 혹은 한자의 배열을 조화롭게 재구성하는 작업이 서예라고 할 수 있다. 구상에서 추상으로 이행한 서양미술의 발전 단계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강원도 삼척에 있는 척주동해비(陟州東海碑)를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던 적이 있다. 미수 허목(1595~1682)의 삼척부사 시절 글씨다. 척주(陟州)는 삼척의 옛 이름이라고 한다. 20세기 추상화를 보는 듯한 전서체(篆書體)로 크게 씌어진 ‘척주동해비’ 다섯 글자는 조형적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주는데, 현대적 감각이 물씬 풍긴다. 역시 전서체인 비문의 작은 글씨 하나하나에도 창조 정신이 짙게 배어있다. 척주동해비는 글씨의 아름다움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신이(神異)한 능력을 발휘한 설화로도 유명하다. 허목 부사 당시 삼척은 파도가 읍내까지 밀려오고, 오십천이 범람해 피해가 극심했다고 한다. 이에 미수가 ‘동해송’(東海頌)을 지어 정라진에 척주동해비를 세우자 바다가 잠잠해졌다는 것이다. 허목의 능력이라기보다는 그의 예술적 성취가 발산한 영기(靈氣)가 천지자연마저 감응시킨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허목은 눈썹이 눈을 덮을 정도로 길어 눈썹 미(眉), 늙은이 수 자로 호를 지었다고 자신의 문집 ‘기언’(記言)에 밝혔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그의 초상화도 희고 두터운 눈썹이 남달라 보인다. 화폭 상단에 적힌 채제공의 글에 의하면, 정조는 허목의 인물됨에 크게 감동하여 은거당이 그린 82세의 허목 초상을 당대 최고 화사 이명기에게 재현하도록 했다고 한다. 채제공은 정조시대 탕평책을 추진한 핵심인사다. 미수는 만년에 남인의 핵심인물로 부상하기도 했지만, 오랫동안 정치적 소수파에 머물렀다. 예술가로서 허목은 산림(山林)에 머물던 시절 중국의 상고시대 문자를 탐구해 특유의 서체를 만들었는데 세상은 미수의 전서라는 뜻에서 미전(眉篆)이라고 불렀다. 그의 글씨에 담긴 미래지향적 창조정신은 당시 사람들에게도 크게 인정받았던 것 같다. 허목의 예술정신은 오늘날 더욱 각광받는다. 국가 및 지방 문화재만 각각 22건과 26점에 이른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허목수고본’(許穆手稿本)에는 척주동해비의 원본 글씨도 들어 있다. 안동 하회마을의 ‘충효당’(忠孝堂) 편액은 지금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징비록’ 특별전에 가면 만날 수 있다. 정작 하회에는 복각본이 걸려있다. ‘완귀정’(玩龜亭)은 영천에 있는 완귀 안증(1494~1553)의 정자를 위해 쓴 것이다. 이 글씨에는 미수가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즐겁게 바라본다는 뜻의 완(玩)자는 한쪽이뚫린듯 허전하다. 미수는 같은 의미를 가진 완(?)자로 과감하게 대체했다. 획이 많아 번다해 보이는 거북이 구(龜)자는 연못에서 헤임치는 새끼거북이를 연상시키는 모습으로 변형시켜 조화를 완성해 냈다. 17세기 작업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추상의 놀라운 경지다. 서동철 수석논설위원 dcsuh@seoul.co.kr
  • 13년 들여 만든 세계최고가 100억 원짜리 ‘인형의 집’

    13년 들여 만든 세계최고가 100억 원짜리 ‘인형의 집’

    최고의 실력을 갖춘 장인들이 13년에 걸쳐 만들어 낸 총 가치 약 101억 원짜리 ‘걸작’ 인형의 집이 공개돼 관심을 끌고 있다. ‘아스톨라트 성(城)’이라고 불리는 이 인형 집은 미니어처 아티스트 엘레인 딜이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시인 테니슨의 작품 ‘샬럿의 처녀’(Lady of Shallot)에 묘사된 성을 모델로 삼아 1980년대에 처음 설계한 것이다. 딜은 설계를 마친 이후로 전 세계 전문가들을 동원해 13년의 세월에 걸쳐 작품을 완성했다. 목수, 금·은 세공사, 유리 세공사 등이 포함된 이들 전문가는 성 안에 들여놓을 1만 점 이상의 모형 가구, 장식품, 보석, 인형, 동물, 차량 등을 만들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모형들의 값어치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성 안을 꾸미고 있는 모형 그랜드 피아노는 7000달러(약 835만 원), 붓 털 한 가닥으로 그린 초소형 초상화는 1840달러(약 220만 원)다. 3300달러(약 400만 원)짜리 1949년형 지프 승합차나 5000달러(약 600만 원)를 호가하는 목재 수납장도 있다. 성에는 와인 저장고, 무도회장, 도서관, 무기고 등 29개의 방이 있고, 안에 배치하는 장식품의 종류에 따라 전체 무게는 370~400㎏ 정도로 달라진다. 원래 이 작품은 민간에 공개하지 않았었지만, 자폐증 환자 지원 단체 ‘어티즘 스픽스’(Autism Speaks) 및 기타 아동 지원 단체에 성금을 모아줄 목적으로 올해 크리스마스부터 최초로 전시회를 개최하게 됐다. 이번 전시 프로젝트를 기획한 장본인이자 전시 장소인 내소 카운티 미술관의 큐레이터이기도 한 폴라 길훌리는 “아스톨라트 성은 세공기술, 예술, 공학이 만나 만들어낸 하나의 작품으로 현대 공예품들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자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전했다. 사진=ⓒ아스톨라트 돌하우스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장인들이 만든 세계최고가 100억 원짜리 ‘인형의 집’

    최고의 실력을 갖춘 장인들이 13년에 걸쳐 만들어 낸 총 가치 약 101억 원짜리 ‘걸작’ 인형의 집이 공개돼 관심을 끌고 있다. ‘아스톨라트 성(城)’이라고 불리는 이 인형 집은 미니어처 아티스트 엘레인 딜이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시인 테니슨의 작품 ‘샬럿의 처녀’(Lady of Shallot)에 묘사된 성을 모델로 삼아 1980년대에 처음 설계한 것이다. 딜은 설계를 마친 이후로 전 세계 전문가들을 동원해 13년의 세월에 걸쳐 작품을 완성했다. 목수, 금·은 세공사, 유리 세공사 등이 포함된 이들 전문가는 성 안에 들여놓을 1만 점 이상의 모형 가구, 장식품, 보석, 인형, 동물, 차량 등을 만들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모형들의 값어치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성 안을 꾸미고 있는 모형 그랜드 피아노는 7000달러(약 835만 원), 붓 털 한 가닥으로 그린 초소형 초상화는 1840달러(약 220만 원)다. 3300달러(약 400만 원)짜리 1949년형 지프 승합차나 5000달러(약 600만 원)를 호가하는 목재 수납장도 있다. 성에는 와인 저장고, 무도회장, 도서관, 무기고 등 29개의 방이 있고, 안에 배치하는 장식품의 종류에 따라 전체 무게는 370~400㎏ 정도로 달라진다. 원래 이 작품은 민간에 공개하지 않았었지만, 자폐증 환자 지원 단체 ‘어티즘 스픽스’(Autism Speaks) 및 기타 아동 지원 단체에 성금을 모아줄 목적으로 올해 크리스마스부터 최초로 전시회를 개최하게 됐다. 이번 전시 프로젝트를 기획한 장본인이자 전시 장소인 내소 카운티 미술관의 큐레이터이기도 한 폴라 길훌리는 “아스톨라트 성은 세공기술, 예술, 공학이 만나 만들어낸 하나의 작품으로 현대 공예품들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자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전했다. 사진=ⓒ아스톨라트 돌하우스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힐링 황정민, 삶 리셋한다면 배우 안한다? “10년 내내 연기 고민만 했다” 이유 들어보니

    힐링 황정민, 삶 리셋한다면 배우 안한다? “10년 내내 연기 고민만 했다” 이유 들어보니

    힐링캠프 황정민, 삶 리셋한다면 배우 안한다? “어렸을 때 OO 되고 싶었다” ‘힐링캠프 황정민, 힐링 황정민’ 배우 황정민이 SBS 예능프로그램 ‘힐링캠프’ 개편 후 첫 게스트로 출연해 인간 황정민과 배우 황정민에 대해 이야기 했다. 27일 방송된 SBS 예능 프로그램 ‘힐링캠프-500인’에서는 첫 게스트로 황정민이 출연했다. 이날 방송에서 황정민은 “삶을 리셋하고 싶을 때는 없었나”라는 질문을 받았다. 황정민은 “삶을 돌릴 수 있다면 일단 배우는 안 할 거다”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황정민은 “이 고민을, 이 힘든 걸 어떻게 다시 하나”라면서 고개를 저었다. 이어 그는 “저는 나무 만지는 걸 좋아해서 어렸을 때는 목수가 되고 싶었다”며 “대학 때도 전공이 연기가 아닌 무대미술을 전공했다”고 전했다. 배우를 하지 않겠다는 황정민 말에 한 팬이 서운함을 드러내자, 황정민은 “30대에는 연기를 치열하게 했다. 10년 내내 연기를 잘해야 한다는 고민만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중압감이 왔다”고 고백했다. 이어 “그런데 종이 한 장 차이로 바뀌었다. 생각의 차이다”고 말하며 인간 황정민과 배우 황정민을 분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한 방청객이 “너무 간절히 바라지만 아직 때가 오지 않아 기다리고 있다. 기회가 많이 주어지는 환경이 아니기 때문에 답답한 현실”이라고 고민을 토로하자, 황정민은 “나도 그랬었다”면서 “어쩔 수 없이 기다려야 한다”고 진심어린 조언을 건넸다. 황정민은 연봉 300만원을 받은 적이 있다고 고백하며, 자기 직업에 대해 행복해 하고 프라이드가 있어야 한다고 거듭 조언을 건넸다. 황정민은 “내 일에 대해 얼마나 고민하고 몰두하고 있는지 짚어보면 나중에는 주변에서 자기를 찾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개편 후 첫방송된 ‘힐링캠프’는 말이 모이고 생각이 뭉치고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힐링캠프가 된다는 콘셉트로 누구라도 말하고, 누구라도 들을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의 토크쇼로 진행된다. 사진=SBS 힐링캠프 방송캡처(힐링 황정민) 연예팀 seoulen@seoul.co.kr
  • 힐링캠프 황정민, “삶 돌릴 수 있다면 배우 안 할 것” 단호한 태도

    힐링캠프 황정민, “삶 돌릴 수 있다면 배우 안 할 것” 단호한 태도

    27일 방송된 SBS 예능 프로그램 ‘힐링캠프-500인’에서는 첫 게스트로 황정민이 출연했다. 이날 방송에서 황정민은 “삶을 리셋하고 싶을 때는 없었나”라는 질문을 받았다. 황정민은 “삶을 돌릴 수 있다면 일단 배우는 안 할 거다”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황정민은 “이 고민을, 이 힘든 걸 어떻게 다시 하나”라면서 고개를 저었다. 이어 그는 “저는 나무 만지는 걸 좋아해서 어렸을 때는 목수가 되고 싶었다”며 “대학 때도 전공이 연기가 아닌 무대미술을 전공했다”고 전했다. 배우를 하지 않겠다는 황정민 말에 한 팬이 서운함을 드러내자, 황정민은 “30대에는 연기를 치열하게 했다. 10년 내내 연기를 잘해야 한다는 고민만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중압감이 왔다”고 고백했다. 이어 “그런데 종이 한 장 차이로 바뀌었다. 생각의 차이다”고 말하며 인간 황정민과 배우 황정민을 분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힐링캠프 황정민, “어렸을 때 OO 되고 싶었다”

    힐링캠프 황정민, “어렸을 때 OO 되고 싶었다”

    27일 방송된 SBS 예능 프로그램 ‘힐링캠프-500인’에서는 첫 게스트로 황정민이 출연했다. 이날 방송에서 황정민은 “삶을 리셋하고 싶을 때는 없었나”라는 질문을 받았다. 황정민은 “삶을 돌릴 수 있다면 일단 배우는 안 할 거다”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황정민은 “이 고민을, 이 힘든 걸 어떻게 다시 하나”라면서 고개를 저었다. 이어 그는 “저는 나무 만지는 걸 좋아해서 어렸을 때는 목수가 되고 싶었다”며 “대학 때도 전공이 연기가 아닌 무대미술을 전공했다”고 전했다. 배우를 하지 않겠다는 황정민 말에 한 팬이 서운함을 드러내자, 황정민은 “30대에는 연기를 치열하게 했다. 10년 내내 연기를 잘해야 한다는 고민만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중압감이 왔다”고 고백했다. 이어 “그런데 종이 한 장 차이로 바뀌었다. 생각의 차이다”고 말하며 인간 황정민과 배우 황정민을 분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박문각 남부고시학원과 함께하는 실전강좌] 한국사

    [박문각 남부고시학원과 함께하는 실전강좌] 한국사

    서울신문은 가장 많은 수험생이 응시하는 7·9급 국가직 및 지방직 공무원시험에 대비해 국어·영어·한국사 등 시험 필수과목과 행정학·행정법·사회 등 선택과목에 대한 실전 강좌를 마련했다. 공무원시험 전문학원인 박문각 남부고시학원 강사들의 도움을 받아 매주 과목별 주요 문제와 해설을 싣는다. (문제)<가><나> 사건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만을 [보기]에서 고른 것은? <가>지주와 대치 중인 전남 무안군 암태도 남녀 500여명이 지난 8일 오후 6시쯤에 광주 지방 법원 목포 지청에 몰려 들어오자, 경찰 당국은 정·사복 경관을 늘어세우고 엄중한 감시를 하였다. <나>원산에서 2000여명의 노동자가 파업을 단행한 결과 운수, 인쇄 및 기타 모든 기관의 업무가 중단되었다. 이에 일본 자본가, 상업 회의소, 국수회 등의 알선으로, 시내 각 상점의 점원, 목수, 미장이 등 50여명의 일본인 노동자가 동원되어 매일 부두에 나가 작업을 하였다. [보기] ㄱ. (가)-소작료를 낮추는 성과를 거두었다. ㄴ. (나)-항일 민족 운동의 성격을 띠었다. ㄷ. (가), (나)-사회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ㄹ. (가), (나)-조선 노농 총동맹이 결성되는 계기가 되었다. ① ㄱ, ㄴ ② ㄷ, ㄹ ③ ㄱ, ㄴ, ㄷ ④ ㄱ, ㄷ, ㄹ (해설)<ㄱ>1923년 전남 신안군 앞바다 암태도에서 지주의 고율의 소작료에 항의하여 소작농들이 소작쟁의를 벌였고, 결국 소작료 인하에 성공한다. <ㄴ>원산 총파업의 시작인 일본인 공장 관리인의 조선인 노동자 폭행으로 시작되어, 조선 노동자들의 일제의 항쟁으로 확대되었지만 일제의 탄압으로 실패하였다. <ㄷ>1920년대 사회주의 사상의 영향으로 농민·노동자 항쟁이 시작되었다. <ㄹ>조선 노농 총동맹은 1924년 조직되어 1927년 조선 노동 총동맹과 조선 농민 총동맹으로 분리되었다. 시기상 연관짓기 어렵다. (정답) ③ (문제)다음 사료에서 등장한 국왕시기의 사건으로 옳은 것은? 왕은 즉위하기 전에는 총명하고 인후하였으며, 백성의 기대가 모두 그에게 집중되었다. 또 즉위한 후에는 정치에 노력하였으므로 국내외가 크게 기뻐하였고, 태평 세상에 대한 기대를 가졌다. 그러나 노국공주가 죽은 후부터는 과도히 슬퍼하여 의지를 상실하고 정치를 신돈에게 일임하였으며, 공훈 있고 어진 신하들을 내쫓거나 죽이고 토목 공사를 크게 일으킴으로써 백성의 원망을 샀다. <고려사> ①몽골풍 의복과 변발을 폐지하고, 원의 관제와 연호를 폐지하고 문종 때 원래의 관제로 환원하였다. ②정치도감을 설치해 부원세력 척결을 시도하였다. ③3성은 첨의부로, 6부가 4사로 축소되었다. ④충숙왕에게 전위 후 북경에 들어가 그곳에서 만권당이라는 연구소를 차리고, 조맹부, 염복 등과 고려 이제현을 모아 유학을 연구 토론하였다. (해설)공민왕은 왕위에 오른 뒤 중국 원나라를 배척하고 친원파인 기씨(奇氏) 일족을 제거하였고, 쌍성총관부를 폐지하였으며 빼앗긴 영토를 수복하는 등 개혁 정책을 단행하였다. ② 충목왕, ③ 충렬왕, ④ 충선왕에 대한 설명이다. (정답) ① (문제)신라시대 골품제도에 대한 설명으로 바르지 못한 것은? ①관등 승진의 제한에 따른 불만을 무마하고자 중위제를 실시하였다. ②진골들도 잘못을 저지르면 6두품으로 강등되는 경우도 있었다. ③6두품은 득난이라 불리며, 중대에는 왕권과 결탁하여 진골에 대항하였다. ④6두품은 집사부 시중직과 각부의 장관직을 맡고 있었다. (해설)6두품은 진골에 비해 관직 진출 및 신분상의 제약이 다소 강했지만, 전체적으로 득난(得難)으로 불릴 정도로 귀성이었다. 중대(통일기)에는 왕권과 결합하여 진골에 대항하지만 신라 하대에 반신라 세력이 된다. ④6두품은 집사부 ‘시랑’직과 각부의 차관직인 ‘경’을 맡고 있었다. (정답) ④ 현창원 박문각 남부고시학원 강사
  • 행정 관행 깬 택시기사 건축심의위원

    행정 관행 깬 택시기사 건축심의위원

    “도심을 누비면서 평소 생각해 왔던 문제점을 건축 심의 때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부산시가 건축 심의에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담고자 건축위원회 교통분야 심의위원으로 현직 개인택시 기사를 위촉해 화제에 오르고 있다. 건축 및 교통 관련 비전문가로서는 부산에서 처음으로 1일 부산시 건축위원회 교통분야 심의위원으로 위촉된 개인택시 기사인 신영형(51)씨는 “주부로서 운전을 생업을 하는 자신에게 건축분야는 낯선 만큼 열심히 배워가며 일하도록 하겠다”고 위촉 소감을 밝혔다. 그는 또 “도심에서 운전을 하다 보면 도로 주변에 왜 저 건물이 들어서 있을까 의아하게 생각한 적이 더러 있다”며 “아마 부산시에서도 이 같은 현장의 목소리를 담기 위해 건축 관련 비전문가인 저를 교통분야 심의위원으로 위촉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어 “직업상 시내 구석구석을 누비며 누구보다 부산의 교통 문제를 체감하고 있다”며 “학문적이 아닌 현실적인 시각으로 문제점과 대안을 제시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개인택시 운전 등 14년여 동안 운전대를 잡고 있는 신씨는 무사고 등 일정한 자격을 갖춘 개인택시기사에게 시가 자격을 부여하는 등대콜 회원이다. 그는 등대콜 상벌위원을 맡는 등 개인택시 업계의 발전을 위해서도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부산시가 신씨를 건축위원회 교통분야 심의위원으로 위촉한 것은 지금까지 대학교수 등 전문가 위주로 심의위원을 선발했던 관행을 벗어난 파격으로 받아들여진다. 신씨의 심의위원 위촉에 대해 부산시는 “현장 중심으로 사용자 의견을 직접 반영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시정구호인 시민 중심, 현장 우선을 실현하고자 건축위원회 심의가 사용자 중심으로 이뤄지도록 심의제도 전반을 개선했으며, 특히 건축위원회 교통분야 심의는 대형건축물로 말미암은 교통 문제에 관한 현장경험이 요구되는 만큼 신씨를 심의위원으로 뽑았다고 설명했다. 부산시는 현장 위주의 건축심의가 되려면 현장 전문가가 건축심의에 참석하는 길이 열려 있어야 하는 만큼 신씨에 이어 앞으로 목수 등 현장 전문가를 심의위원으로 위촉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방침이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삼풍 사고나 메르스나 정부 초기 대응 미흡한 건 여전”

    “삼풍 사고나 메르스나 정부 초기 대응 미흡한 건 여전”

    1995년 6월 29일 오후 6시. 당시 서른일곱 살이었던 목수 최영섭씨는 차를 타고 집으로 가다 믿기지 않는 뉴스를 들었다. 지상 5층, 지하 4층에 단일 매장으로 전국 두 번째 규모였던 삼풍백화점이 무너져 내렸다는 소식이었다. 집에 오자마자 TV를 켰다. 영화에나 나올 법한 처참한 붕괴의 현장. 저 속에 사람은 얼마나 묻혀 있을까, 살아 있는 사람은 없을까, 가족들 심정은 어떨까. 그날 밤 뜬눈으로 TV 앞을 지키고 있는데 뉴스 앵커가 “톱이나 망치가 없어 현장에서 구조 활동을 못하고 있다”고 다급한 목소리를 냈다. 그는 곧바로 주섬주섬 옷을 입고 톱 10자루를 챙겼다. 현장에 도착한 것은 30일 새벽 1시쯤. “상황실도 없었어요. 톱이 필요하다고 해서 가져왔다고 몇 번을 말해도 공무원들은 저를 귀찮게만 여기더군요.” 502명의 목숨을 앗아간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가 일어난 지 어느덧 20년. 최씨도 이제 환갑에 가까운 나이가 됐다. 최씨를 비롯해 김성기(66·승강기 수리기사), 육광남(64·부동산 중개업), 이호현(58·전파상)씨 등 민간인으로서 구조 활동에 나섰던 사람들이 29일 한자리에 모였다. 서울 종로구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 사무실에서 만난 이들은 폐허 속에서 생존자를 찾아 헤매던 당시를 떠올렸다. 김씨는 사고가 나고 3일이 지나도 생존자 수색에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하자 회사에 월차 휴가를 내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경찰이 설치한 통제선을 겨우 뚫고 헬멧, 작업화, 손전등을 갖고 지하 3층으로 들어갔지요.” 그는 처음 시신을 수습했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했다. “시신을 누르고 있는 콘크리트를 망치로 아무리 부숴도 꺼낼 수가 없더라고요. 안타깝게 죽음을 맞은 고인을 빨리 가족들 곁으로 보내드려야 하는데 말이죠. 결국 겨드랑이와 목을 밧줄로 묶어 밖에 있던 특전사 대원들이 꺼내도록 했는데 차마 못 보겠더라고요.” 육씨는 “당시 공무원들이 사고 수습을 도와주러 온 민간인들을 통제하려고만 했기 때문에 민관 협력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초기 대응 실패는 당시뿐만 아니라 세월호 참사,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도 거듭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진광 인추협 대표는 “우리 사회의 재난 예방·대응 시스템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면서 “비상 시 컨트롤타워의 지위와 역할을 명확히 하고, 긴밀한 민관 협력 체계 구축을 범국가적으로 모색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글 사진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한·중 FTA 정식서명…미국·EU 등 3대 경제권과 모두 FTA

    한·중 FTA 정식서명…미국·EU 등 3대 경제권과 모두 FTA

    ‘한·중 FTA 정식서명’ 한·중 FTA 정식서명이 이뤄졌다. 1일 한국과 중국간 자유무역협정(FTA) 정식 서명은 ‘글로벌 3대 경제권’과 FTA 네트워크를 완성한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큰 것으로 평가된다. 한·중 FTA를 계기로 우리나라는 미국과 유럽연합(EU)에 이어 세계 최대 규모의 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까지 글로벌 3대 경제권과 FTA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됐다. 한중 FTA를 포함하면 우리나라는 전세계 52개국과 FTA를 타결했다. 한국과 상대국 국내총생산(GDP)를 합친 FTA 시장 규모는 전세계의 약 73.45%에 이른다. 세계 5위에서 3위 규모로 도약한 것이다. 중국이라는 거대 시장을 제2의 내수시장으로 선점할 기회를 갖게 됐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중국 GDP는 10조4천억달러로 한국의 1조4천억달러의 7배 이상이고 매년 GDP 성장률이 7% 이상으로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앞으로 국내 중소·중견 기업의 수출기지로 부상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FTA 발효 즉시 무관세로 거래되는 품목의 교역액은 대중 수출 730억달러, 대중 수입 418억달러로 한-미 교역액 규모를(1천36억달러)를 훌쩍 넘어서게 된다. 최장 20년 내 관세 철폐 대상 품목 금액도 중국이 1천417억달러로 한국의 736억달러에 비해 배에 이른다. 국내 농수산 시장을 최대한 방어하면서 중국 시장 진출 기회를 마련한 점도 이번 FTA의 긍정적 부분이다. 한국이 맺은 FTA 중 농수축산물 자유화율(품목수 기준/수입액 기준, 단위 %)은 이번 한·중 FTA가 70/40으로, 한·미 FTA(98.3/92.5), 기체결 10개 FTA 평균(78.1/89.0)에 비해 크게 낮다. 국내 수출·투자 기업의 손톱 밑 가시를 제거하는 등 비관세 장벽을 해소한 것도 성과로 꼽힌다. 통관은 48시간 이내 통관을 원칙으로 하고 700달러 이하는 원산지증명서 제출을 면제했다. 주재원 체류기간 및 복수비자를 확대하고 비관세 조치 시행 전 유예기간을 확보했다. 비관세 조치 분행 해결 중개 절차도 도입됐다. 도시화 관련 산업과 문화, 유통 등 중국 유망 서비스 시장의 빗장을 일부 열어젖히고 유럽과 미국으로 향하는 중국 기업들과 중국을 겨냥하는 미국, EU, 일본 기업들의 한국에 대한 투자 증대 효과도 기대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밖에 이번 FTA는 한·중 관계 심화와 문화·관광 교류 활성화, 한류 확산에도 기여하고 동아시아 경제공동체 구축 및 한반도 평화와 안보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인도네시아서 꿈 키우는 청년 조각가의 도전

    인도네시아서 꿈 키우는 청년 조각가의 도전

    대학에서 유기신소재료학을 전공한 신희철(30)씨는 직업학교에서 가구 제작을 배우던 중 사군자를 새겨 넣은 쌀뒤주를 보고 조각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이후 한 조각가의 문하생이 돼 본격적으로 조각 기술과 목공, 서예, 문인화, 전각, 옻칠 등을 배우기 시작한 희철씨는 목수였던 할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아 최고의 목공예 겸 조각가, 가구 디자이너를 꿈꾸게 됐다. 그가 꿈을 이루기 위해 향한 나라는 인도네시아다. 목수의 아들이 대통령으로 선출될 만큼 목재 산업의 선진국이다. 대다수 국민이 벌목부터 목재 가공, 가구 및 목공예까지 나무 관련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희철씨는 입체 조각 거리와 가구 공장이 밀집한 ‘즈파라’ 거리를 찾는다. 입체 조각 명인으로 불리는 40년 경력의 조각가 마리토를 찾아가 그의 문하생이 되려 한다. 한국에서 직접 만든 조각 작품을 선보이고 명인의 수제자들과 함께 벌목 작업에 참여하는 등 대가의 마음을 얻기 위한 힘겨운 노력이 시작된다. 눈대중과 속성으로 입체 조각 테크닉을 익히는 과정은 험난하기만 하다. 손에 익지 않은 인도네시아식 조각도로 티크나무나 마호가니나무를 능수능란하게 깎아 내는 작업은 결코 만만치 않다. 하지만 인도네시아 동료들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희철씨는 손이 부르트도록 꽃잎 조각 작업에 열중한다. 자신감이 생긴 그는 10대 청년 조각가 제프리에게 조각 대결을 제안한다. 또 경력 10년 이상의 전문가만이 제조할 수 있는 앤티크 조각 가구 만들기에도 도전한다. 30일 오후 7시 50분 EBS 1TV에서 방송되는 ‘청춘 세계도전기’에서 그의 여정을 함께할 수 있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목수의 인문학(임병희 지음,비아북 펴냄) 문학도에서 신화 연구가로, 다시 목수로 변신을 거듭한 저자가 일상에서 건져 올린 인문학의 묘미. ‘공부도 할 만큼 했다’는 목수가 지난날의 삶에서 깨친 ‘인생미정(人生未定)’의 철학을 바탕으로 지금 일들을 덤덤하게 풀어낸 이야기 묶음이다. 공방에서 가구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 빗대 ‘삶의 재료’들, ‘삶을 바꾸는 공구들’, ‘삶의 찬란한 마감재들’이란 세 개의 카테고리로 묶은 에피소드들이 동·서양 고전의 어렵지 않은 덧칠로 풀어진다. ‘나도 내가 목수 될 줄 몰랐다’는 식의 덤덤하지만 앙금 있는 글 투르기가 녹록지 않은 인문학 지식과 어울린 ‘생활 속 인문학’ 읽기랄까. “삶이란 죽는 그 순간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므로 스스로 한계 짓지 말라”는 맺음 부분의 당부도 저자 개인의 삶과 맞물려 호소력 있는 울림으로 전해진다. 목공 일을 하면서 겪거나 부닥치는 일상의 일들이 이야기의 주 테마인 만큼 공방과 직접 만든 가구 모습으로 만나는 목공예의 풍경은 덤이다. 264쪽. 1만 4000원. 생각은 죽지 않는다(클라이브 톰슨 지음, 이경남 옮김, 알키 펴냄) “디지털 기술은 인류의 생각하는 능력을 갉아먹는다” 2011년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니컬러스 카) 출간 이후 통념이 된 명제. 그 명제와 달리 ‘새 기술은 사고 패턴을 좋은 쪽으로 바꾼다’고 강조, 글쓰기·인쇄술을 포함해 기술혁신이 우려를 낳았던 해프닝들을 소개한다. 글쓰기가 그리스의 웅변술 전통을 파멸시킬 것이라 했던 소크라테스 등 염세주의자들의 불찰도 들어 있다.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이 어떤 사실을 기억하지 않고 적으려고만 든다고 걱정했다. 저자는 마주치는 것들을 머릿속에 저장할 필요가 없어졌을 때 비로소 복잡한 생각을 할 수 있게 됨을 소크라테스는 보지 못했다고 말한다. 소크라테스의 우려는 전자책이 종이책을 대체하고, 스마트폰이 필수품이 되면서 우리가 갖게 된 두려움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 맥락에서 디지털 기술특성을 조목조목 짚어 인간정신에 미치는 영향을 다각적으로 분석한다. 456쪽. 1만 6800원. 네트워크의 부(요하이 벤클러 지음, 최은창 옮김, 커뮤니케이션북스 펴냄) 2006년 영문 초판이 발행된 직후 큰 반향을 일으킨 책. 인터넷 시대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전망해 많은 미래학 관련 논문·저서에 인용됐다. 제목 ‘네트워크의 부’는 인간의 이기심에 의해 작동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사회적 진보와 공공선을 가져오는 원동력이라고 했던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 빗댄 표현이다. 저자는 인터넷의 출현에 따라 개인들이 네트워크로 연결되고 이들이 사회적 존재로서 공유와 협업을 통해 비시장적으로 정보·문화·지식을 생산하는 네트워크 정보경제가 도래했다고 주장한다. 시장에 의존하지 않고 이루어지는 생산인 ‘사회적 생산’이 소셜네트워크를 기본으로 한 동료생산을 통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네트워크 정보경제에서 창출된 사회적 부가 정치·경제·문화적 자유와 성찰을 증진시킨다는 것이다. 초판 발행 이후 변화된 상황을 한국어판 서문에 직접 썼다. 876쪽. 2만 9000원. 이화림 회고록(장촨제외 엮음, 박경철·이선경 옮김, 차이나하우스 펴냄) 중국 상하이로 망명해 김구 선생이 이끄는 한인애국단에 가담한 뒤 이봉창·윤봉길 거사에 협력했던 여성 독립운동가 이화림(1905-1999). 김구 선생의 비서로 한인애국단 활동을 시작했다는 이화림의 이야기가 ‘백범일지’에 단 한 줄도 보이지 않는 이유는 뭘까. 이화림은 윤봉길 의사와 일본인 부부로 위장해 상하이 훙커우 공원을 정탐하는 등 의열활동의 숨은 조력자 임무를 성공적으로 해낸 여성이다. 나라 잃은 여인으로서 고난과 역경에 굴하지 않고 조국독립과 해방을 위해 평생을 살았던 걸출한 인물이다. 하지만 한국전쟁 중 중국인민지원군으로 참전했다는 이유 등으로 사실상 잊혀지고 묻혀 금기시돼 왔다. 책은 그 독립운동가를 발굴해 역사 속에서 부활시켰다. 이화림의 회고를 바탕으로 중대 사건과 관련한 그의 활동을 꼼꼼하게 붙였다. 중국 내 항일구국·민족해방과 국가독립 쟁취의 역사 재현을 통해 중국 현대에서 잊혀진 빈 공간을 채운 기록이 눈길을 끈다. 388쪽.1만 5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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