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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木工’ 인생 2막 뚝딱…난 목수다

    ‘木工’ 인생 2막 뚝딱…난 목수다

    “무념무상(無念無想)의 경지에 빠져듭니다.” “한 시간쯤 된 줄 알았는데 네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는 시간입니다.” 목공에 매료된 이들의 한결같은 반응이다. 신중년들이 목공에 몰입하는 새로운 풍속이 등장하면서 도심 아파트 상가 곳곳에서 목공소가 터를 잡아 가고 있다.올해로 3년째 경기도 일산에서 목공소를 운영 중인 유성하 대표는 “경제적 여유가 있는 중년들이 인생 2막을 준비하거나 오랜 직장 생활의 스트레스와 무력감을 해소하기 위해 찾는 것 같다”며 “45세 이상의 중년들이 요즘 가장 많이 걸음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목공에 한번 발을 들이면 누구라도 그 매력에 푹 빠져든다. 단순 호기심을 넘어 평생 지속 가능한 생산적 작업이기 때문이다. 취미로 시작했더라도 익힌 기술로 작품을 만들어 인터넷을 통해 판매까지 할 수 있다. 취미가 생활의 방편이 돼 선순환이 가능한 셈이다.신발 유통업을 하는 최준석(48)씨는 3년째 목공 일을 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기계를 만지고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나이 들어 우연히 접한 목공으로 ‘인생 2막’을 장식해 볼 심산이다. 첫 작품으로 대형 좌탁을 만든 이후 지금은 매월 트레이 60여점을 인터넷으로 판매하고 있다. 자녀들의 학업이 끝나는 5년 후에는 제주도로 이주할 것이라며 한껏 들떠 있다. 부인과 함께 공방과 카페를 만들 계획까지 짜 놨다. 정보기술(IT) 기업의 연구소장인 최용석(52)씨는 목공을 배운 지 3주밖에 안 됐지만 손끝에 전해지는 나뭇결의 감촉에 이미 매료됐다. 전기대패, 전기톱, 전기드릴을 구입하고 유튜브를 보며 집에서 독학을 했다. 그러다 목재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을 쌓고 다양한 장비를 활용해 보고 싶어 목공소를 찾았다. 그는 “낚시, 골프, 등산 등 다양한 활동을 해 봤으나 오롯이 혼자서 자기만족을 느끼며 여가 활동을 하는 데는 목공만 한 작업이 없다”고 예찬론을 펼쳤다. 토요일 오후에 찾은 경기도 파주의 한 공방. 지난해 1월 20년의 증권맨 생활을 마무리한 강영석(48)씨도 팔각상 마무리 작업에 여념이 없었다. 그는 “한때는 수제 초콜릿 만들기, 가죽공예 등을 시도해 봤지만 목공이 가장 흥미롭고 적성에도 잘 맞는다”며 웃었다.이들은 “목공의 즐거움을 더 많은 사람이 누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목공의 대중화를 위해서는 누구나 다양한 재료로 열린 공간에서 창조적인 작업에 참여할 수 있는 ‘메이커 스페이스’(Maker space) 개념이 도입돼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고가의 장비와 작업 공간이 필요한 목공 작업은 열린 작업실이 더욱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목공은 손으로 직접 자르고 깎고 다듬는 아날로그적 감성에 충실한 작업이다. 어릴 적 공작 시간이면 나무토막을 주물러 근사한 작품을 만들고 싶었던 그 아련한 향수, 목재에서 전해지는 향기롭고 따뜻한 물성(物性). 중년들의 발길이 지남철에 이끌리듯 목공소로 이어지고 있는 까닭이다. 글 사진 김명국 선임기자 daunso@seoul.co.kr
  • “거대 야당 중심으로 힘 합쳐달라” 선거권 없는 박근혜 옥중 메시지

    “거대 야당 중심으로 힘 합쳐달라” 선거권 없는 박근혜 옥중 메시지

    40여일 앞둔 총선 구도 지각변동 예고 황교안 “승리 향해 매진… 부응할 것” 선거법 위반 논란… 중앙선관위도 주목수감 중인 박근혜(얼굴) 전 대통령이 4일 “기존 거대 야당을 중심으로 태극기를 들었던 모두가 하나로 힘을 합쳐라”는 내용의 ‘옥중 메시지’를 발표했다. 4·15 총선을 40여일 앞두고 보수층에 여전한 영향력을 가진 박 전 대통령이 사실상 미래통합당 중심의 ‘보수 대단결’을 요구한 것으로 총선 구도에 어떤 변화를 몰고 올지 주목된다. 단 수감 중인 박 전 대통령의 메시지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어 향후 논란 또한 예상된다. 박 전 대통령은 옥중 메시지에서 “비록 탄핵과 구속으로 제 정치 여정은 멈췄지만 북한의 핵 위협과 우방국과의 관계 악화는 나라를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기에 구치소에 있으면서도 걱정이 많았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의 실정을 비판하고 견제해야 할 거대 야당의 무기력한 모습에 울분이 터진다는 목소리들도 많았다”며 “나라의 장래가 염려돼 태극기를 들고 광장에 모였던 수많은 국민들의 한숨과 눈물을 떠올리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고 했다.그러면서 야권을 향해 “서로 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고 메우기 힘든 간극도 있겠지만, 더 나은 대한민국을 위해 기존 거대 야당을 중심으로 태극기를 들었던 여러분 모두가 하나로 힘을 합쳐 주실 것을 호소드린다”며 “여러분의 애국심이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다. 저도 하나가 된 여러분들과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메시지는 측근인 유영하 변호사가 국회 정론관에서 대독하는 형식으로 발표됐다. 유 변호사는 “대통령께서 자필로 쓴 것을 정식 절차를 밟아 우편으로 오늘 접견에서 받았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농단 등으로 현재 파기환송심을 받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의 메시지에 대해 통합당 황교안 대표는 “대한민국을 걱정하는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지는 서신”이라면서 “총선 승리를 향해 매진해 오늘의 뜻에 부응할 것”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태극기 세력과의 통합 등에 대해서는 뚜렷한 입장을 내지 않았다. 한편 1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그 집행이 종료되지 않은 사람은 선거법상 선거권이 박탈된다. 선거권이 없으면 선거운동도 할 수 없는데 이번 박 전 대통령의 편지가 선거운동으로 해석될 경우 선거법 위반이 될 수 있어 관련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이 같은 내용을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한·베트남 FTA로 연간 교역량 16.5% 증가

    한·베트남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후 매년 교역량이 크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양 국은 수입에서 FTA를 적극 활용하는 것과 달리 수출에서 활용률은 저조했다. 20일 관세청에 따르면 2015년 12월 20일 한·베트남 FTA가 정식 발효된 후 지난해 교역량이 692억 달러로 집계됐다. 2015년(376억 달러)대비 84% 증가하면서 연간 16.5% 성장한 것으로 분석됐다. 베트남 수출은 지난해 482억 달러로 전년대비 0.8%(4억 달러) 감소했고 수입은 6.6%(13억 달러) 증가한 210억 달러를 기록하면서 272억 달러 흑자를 달성했다. 베트남에 대한 주요 수출품목은 반도체 등 전자부품으로 상위 4대 전자부품이 수출의 49.5%를 차지했다. 수입품목은 핸드폰 및 그 부분품과 같은 무선통신기기(56억 9100만 달러)와 의류(36억 4600만 달러)에 달했다. FTA 발효 이후 한국의 수출·입 품목수는 각각 795개, 1575개로 증가해 다양성이 개선됐다. FTA 활용률은 수출이 46.1%인 데 비해 수입은 85.7%로 격차가 컸다. 과세가 유보돼 FTA 활용 실익이 없는 베트남 보세공장 반입 수출물품이 많은 것이 수출활용률 저조 요인으로 분석된다. 또 원산지증명서 불인정과 증명서의 형식적 요건 불충족 등 절차상 하자 등으로 인한 통관애로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관세청은 “수출물품이 원활하게 특혜관세를 적용받을 수 있도록 원산지증명서 전자교환(EODES)을 지속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가구디자이너 겸 제작자 정재원 개인전

    가구디자이너 겸 제작자 정재원 개인전

    Made by JEONG JAE WON 展 가구디자이너 겸 제작자 정재원이 개인전을 연다. 2007년 가락시장 한 쪽 작은 목공방에서 무임으로 시작한 정재원의 목공여정은 방배동 지하 4층, 5층 작업실을 거쳐, 2010년 경기도 광주시 능평리로 옮겨가게 된다. ‘내가 하고 싶은 가구’를 만들기 위한 공간이 절실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는 창뜰마을 입구에 창고 한 동을 빌렸고 가구가 팔릴 때마다 목공 기계를 하나씩 늘리기 시작했다. 그때를 추억하면 어렸고, 꿈을 꾸었고, 힘찼다고 그는 얘기한다. 이 때 첫 간판을 걸게 되는데 ‘JEONG JAE WON’이 정식 상표로 자리매김한 시기이자, 동시에 정재원만의 노하우로 만들어진 가구들이 동시대 트렌드와 제품들 사이에서 ‘가구를 조각 한다’는 개념 아래 독특한 위치를 형성해 나간 시간이기도 하다. 정재원은 조소과 출신답게 가구를 도구적인 것에 한정 짓는 것이 아니라 마치 흙을 빚어 조소하듯 나무를 빚어 가구를 만든다. 딱딱한 재료를 빚는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만큼 나무를 다루는 그의 손은 야무지다. 그리고 치밀하다. 가구를 단순히 사물로 여기지 않은 목수의 마음가짐이 바로 손놀림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여기에서 정재원만의 가구 분위기가 형성되고, 이 분위기가 조형미를 만들어 내는데 이 때문에 가구를 조각한다는 특징을 갖게 된 것이다. JEONG JAE WON은 ‘이유’와 실용‘을 강조하면서 여전히 목재가구를 고집하는 곳이기도 하다. 목재가구를 고집하는 이유는 현대적이거나 주류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기본과 정통을 기반으로 가구는 장식에서 벗어난 것이라는 것을 주장함에 있다. 여기에 정재원의 디자인적인 목표가 기능적이고 내구성이 뛰어난 동시에 미학적으로 평온한 가구를 만드는데 있음을 기억해 둔다면, 그가 정통을 유지하며 현대를 이야기하고자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곡선과 직선의 조화에서 우러나온 현대적인 실루엣의 표현, 재료를 최소한으로 사용하고 세부사항을 너무 많이 사용하지 않은 것, 단순한 기하학적 모양으로 축소한 디자인에서 정재원의 모토가 그대로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Made by JEONG JAE WON’ 가구 전시회는 돌산의 거친 조각이 그대로 살아있는 부암동의 석파랑 아트홀에서 열린다. 정재원의 가구 초창기 모델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가구들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정재원은 주 재료인 목재에 스테인리스라는 다른 물성을 결합한 가구들을 선보인다. 이는 물질과 빛 사이의 긴장감 넘치는 교감과 유동하는 빛을 드러내 보여줌으로써 나무를 더 나무답게 보여주기 위한 정재원의 시도이다. 정재원은 현재 파주 대동리에서 목공방과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 전시제목: Made by JEONG JAE WON - 전시작가명: 정재원 / Jeong Jae Won - 전시기간: 2020. 2. 10 - 2020. 3. 15 - 주최: 석파랑 아트홀 - 기획: JEONG JAE WON - 입장료/관람료: 없음 - 관람가능시간 및 휴관일: 11:00am~07:00pm - 전시장정보 석파랑 아트홀 Seokparang Arthall 주소 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 309(홍지동125) 전화번호 02-395-2500 - 작가정보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새오리로 211-19 010-8901-8662, http://jeongjae.com/ https://www.instagram.com/jeongjaewon_furniture/ 첨부사진 1. Big table, designed in 2017 2. Wedge console, designed in 2013 3. CC console, designed in 2019 4. Made by JEONG JAE WON 展, 석파랑 아트홀, 2020 5. 크래프트 클라이막스, 경기도미술관, 2017 6. J1 chair, designed in 2010 7. Line chair, designed in 2014
  • [인사] 방위사업청, 경남도교육청(유·초등), 경남도교육청(중등), 충북도교육청

    ■ 방위사업청 ◇ 과장급 전보(직위 승진) △ 절충교역과장 조민식 ■ 경남도교육청(유·초등) [교육장·직속기관장] ◇ 신임 교육장·직속기관장 △ 사천교육지원청 김법곤 △ 거제교육지원청 유영갑 △ 함안교육지원청 정상율 △ 산청교육지원청 장태분 △ 함양교육지원청 이종윤 △ 경상남도교육청 산촌유학교육원 오인태 [장학(교육연구)관] ◇ 본청 과장 △ 본청 학교정책국 학교혁신과 김정희 △ 본청 학교정책국 초등교육과 강호경 ◇ 전직(교장·공모교장→장학관·교육연구관) △ 경상남도교육청 교육연구정보원 장종욱 △ 경상남도교육청 학생안전체험교육원 박영구 △ 창원교육지원청 교육지원국 김성근 △ 진주교육지원청 김영옥 △ 김해교육지원청 김승오 △ 창녕교육지원청 김정애 △ 남해교육지원청 이명주 ◇ 전보(장학관·교육연구관) △ 본청 학교정책국 초등교육과 이외숙 △ 경상남도교육청 과학교육원 우포생태분원 김정희 △ 양산교육지원청 박종현 ◇ 전직(장학관·교육연구관→교장) △ 창원 명서초 원기복 △ 창원 소답초 류경이 △ 창원 의창초 주창돈 △ 창원 창원초 하현희 △ 김해 김해외동초 김진규 △ 밀양 밀주초 장운익 △ 남해 미조초 정순자 △ 함양 함양초 노명환 △ 거창 창동초 박은우 △ 통영잠포학교 박용학 [교(원)장] ◇ 중임(초등교장) △ 창원 도계초 안영선 △ 창원 사화초 이남식 △ 창원 상북초 이영대 △ 창원 자여초 성기엽 △ 창원 창원한들초 이수광 △ 마산 감천초 강정미 △ 마산 마산신월초 성경은 △ 마산 봉덕초 양정숙 △ 마산 삼계초 정중기 △ 진주 금산초 유정희 △ 진주 문산초 강은희 △ 진주 봉곡초 박정희 △ 진주 수곡초 정영선 △ 진주 충무공초 오은숙 △ 김해 월산초 강은원 △ 김해 이작초 정삼옥 △ 밀양 초동초 김명섭 △ 거제 거제고현초 김민규 △ 거제 아주초 윤성운 △ 거제 옥포초 박종찬 △ 양산 가양초 박정민 △ 함안 호암초 박순기 △ 남해 지족초 임경숙 ◇ 중임(유치원장) △ 창원 토월유 홍경혜 ◇ 전보(초등교장) △ 창원 안민초 허은호 △ 마산 산호초 손연식 △ 마산 성호초 윤정애 △ 마산 양덕초 손득춘 △ 마산 완월초 조필래 △ 마산 용마초 최정숙 △ 마산 월영초 박순점 △ 마산 하북초 김연정 △ 마산 현동초 윤영숙 △ 진해 덕산초 이민선 △ 진해 안청초 변경희 △ 진해 웅동초 이숙남 △ 진해 웅천초 김종식 △ 진해 제황초 오성택 △ 진해 진해냉천초 하은숙 △ 진해 풍호초 김상연 △ 진주 금곡초 정분임 △ 진주 금호초 천현숙 △ 진주 무지개초 강동숙 △ 진주 미천초 김점순 △ 진주 서진초 강옥순 △ 진주 장재초 김계옥 △ 진주 정촌초 이영주 △ 진주 주약초 강선자 △ 진주 지수초 이희숙 △ 진주 진주초 이영숙 △ 통영 원평초 안경애 △ 통영 유영초 조필제 △ 통영 충렬초 김현숙 △ 통영 통영초 원필숙 △ 사천 대방초 윤영순 △ 사천 동성초 석길환 △ 김해 계동초 최영숙 △ 김해 금동초 전계숙 △ 김해 김해율산초 강홍중 △ 김해 분성초 박봉호 △ 김해 삼방초 김선숙 △ 김해 석봉초 이향점 △ 김해 신어초 조숙남 △ 김해 율하초 심광보 △ 김해 이북초 안남수 △ 김해 진례초 최선희 △ 김해 한림초 임철종 △ 밀양 부북초 이두흠 △ 밀양 산외초 강인석 △ 밀양 삼랑진초 이종조 △ 거제 마전초 곽선열 △ 거제 사등초 박춘섭 △ 거제 양지초 이순복 △ 거제 중곡초 이성림 △ 양산 소토초 변준섭 △ 양산 신기초 김민성 △ 의령 남산초 권순현 △ 의령 대의초 김정란 △ 의령 화정초 석현원 △ 고성 거류초 김보상 △ 산청 금서초 장회경 △ 산청 산청초 백남순 △ 함양 백전초 안창남 △ 거창 남상초 고영기 △ 거창 남하초 김유학 △ 거창 마리초 변명규 △ 합천 쌍백초 허태순 △ 합천 영전초 송옥희 △ 합천 용주초 이원희 ◇ 전보(유치원장) △ 진해 곰내유 윤영일 △ 진주 진주누리유 전경옥 △ 진주 한울유 강경숙 △ 밀양 밀양유 이경화 △ 함안 함안유 주득선 △ 창녕 창녕유 허정숙 ◇ 승진(초등교장) △ 마산 가고파초 강래동 △ 마산 진전초 윤구석 △ 마산 해운초 이성수 △ 통영 남포초 유상길 △ 통영 원량초 송삼영 △ 통영 인평초 서회영 △ 통영 한려초 정숙임 △ 사천 노산초 박찬이 △ 사천 삼천포초 구제공 △ 김해 대동초 이연미 △ 밀양 산동초 정진수 △ 거제 거제상동초 박재희 △ 거제 연초초 허명순 △ 거제 장목초 구향숙 △ 거제 진목초 위종건 △ 거제 하청초 정순희 △ 양산 금오초중 최진호 △ 양산 상북초 김수찬 △ 양산 신명초 김일경 △ 양산 양주초 서경숙 △ 양산 영천초 최천학 △ 양산 오봉초 이학정 △ 양산 웅상초 권해정 △ 양산 평산초 권영득 △ 양산 하북초 임종인 △ 의령 궁류초 남정숙 △ 의령 낙서초 송순옥 △ 의령 유곡초 김민숙 △ 의령 정곡초 정선희 △ 함안 월촌초 이혜정 △ 창녕 대지초 홍미자 △ 창녕 이방초 서보장 △ 고성 구만초 김우영 △ 고성 동해초 성해언 △ 고성 삼산초 홍성표 △ 고성 율천초 최 미 △ 남해 고현초 백종필 △ 남해 도마초 정금도 △ 하동 궁항초 정민석 △ 하동 쌍계초 김성호 △ 거창 거창초 신정희 △ 거창 월천초 김미경 ◇ 승진(유치원장) △ 창원 창원남산유 정영희 △ 거제 거제유 박은좌 △ 의령 의령유 이명자 △ 하동 하동유 정영숙 ◇ 공모(초등교장) △ 창원 창원남산초 김기태 △ 진주 관봉초 박문희 △ 거제 거제초 백승룡 △ 양산 가촌초 박재영 △ 하동 화개초 김점중 △ 거창 주상초 송성동 [교(원)감] ◇ 전보(초등교감) △ 창원(창원) 곽민동 △ 창원(창원) 김덕자 △ 창원(창원) 박성근 △ 창원(창원) 장영경 △ 창원(마산) 정민숙 △ 창원(진해) 조영래 △ 진주 김춘애 △ 진주 현정숙 △ 사천 박남준 △ 사천 정정남 △ 김해 민영종 △ 김해 배정환 △ 거제 서영인 △ 거제 이동근 △ 의령 송민정 △ 함안 이동일 ◇ 전보(유치원감) △ 창원(창원) 정혜경 △ 진주 강미경 △ 진주 김민선 △ 거제 김미경 △ 창녕 한지미 △ 고성 김경숙 △ 남해 이정숙 △ 하동 최수연 △ 산청 한기숙 △ 함양 박미숙 △ 합천 이영란 ◇ 승진(초등교감) △ 창원(창원) 박두명 △ 창원(마산) 조재호 △ 창원(진해) 김범숙 △ 창원(진해) 이미선 △ 창원(진해) 장지은 △ 창원(진해) 허경호 △ 김해 김명희 △ 김해 김종영 △ 김해 배상열 △ 김해 변정환 △ 김해 양미현 △ 김해 양선영 △ 김해 한정수 △ 밀양 남국종 △ 양산 김성실 △ 양산 김종희 △ 양산 김혜정 △ 양산 박강식 △ 양산 변수란 △ 양산 안중안 △ 양산 양성준 △ 양산 하한수 △ 양산 황정선 △ 함안 윤재순 △ 함안 조양래 △ 함양 이동호 △ 거창 이은숙 △ 거창 정영혜 △ 거창 정창범 △ 합천 안미선 ◇ 승진(원감) △ 창원(마산) 이점자 △ 창원(진해) 양미옥 △ 김해 배해정 △ 밀양 김병순 △ 거제 정경윤 △ 거제 최창숙 △ 양산 김민경 △ 양산 김봉선 △ 양산 정의선 △ 양산 조미숙 ◇ 전직(교육전문직원→교감) △ 창원(마산) 김정혜 △ 진주 김현지 △ 김해 김경숙 △ 밀양 이종원 ◇ 전직(교육전문직원→원감) △ 창원(마산) 황 미 [장학(교육연구)사] ◇ 전보(교육전문직원) △ 본청 정책기획관 강창대 △ 본청 정책기획관 김영회 △ 본청 안전총괄담당관 조성대 △ 본청 학교정책국 학교혁신과 김경래 △ 본청 학교정책국 유아특수교육과 김은경(유) △ 본청 학교정책국 초등교육과 임미은 △ 본청 학교정책국 교육과정과 조순금 △ 본청 미래교육국 창의인재과 오영범 △ 본청 미래교육국 창의인재과 이동수 △ 본청 미래교육국 민주시민교육과 신재봉 △ 본청 미래교육국 민주시민교육과 이정은 △ 본청 행정국 교육혁신추진단 홍기표 △ 경상남도교육청 교육연수원 최진수 △ 경상남도교육청 교육연구정보원 강태경 △ 경상남도교육청 교육연구정보원 곽형준 △ 경상남도교육청 학생안전체험교육원 최 혁 △ 창원교육지원청 정은주 △ 창원교육지원청 진현정 △ 창원교육지원청 최명옥 △ 진주교육지원청 김성렬 △ 사천교육지원청 김숙이 △ 김해교육지원청 이경점 △ 김해교육지원청 이경희(유) △ 밀양교육지원청 하경호 △ 거제교육지원청 박천주 △ 거제교육지원청 이호일 △ 양산교육지원청 정연주 ◇ 전직(교감→교육전문직원) △ 통영교육지원청 류은주 △ 거제교육지원청 공미련 △ 함안교육지원청 김연정 △ 함양교육지원청 최영수 ◇ 전직(원감→교육전문직원) △ 본청 학교정책국 유아특수교육과 박경숙 △ 경상남도교육청 유아교육원 조필례 ◇ 전직(교사→교육전문직원) △ 본청 학교정책국 학교혁신과 백기열 △ 본청 학교정책국 학교혁신과 조용국 △ 본청 미래교육국 평생교육급식과 정혜숙(영양) △ 경상남도교육청 과학교육원 구민회 △ 경상남도교육청 유아교육원 우경미(유) △ 경상남도교육청 특수교육원 조혜진(특수) △ 진주교육지원청 성복선 △ 사천교육지원청 황연아 △ 김해교육지원청 권영웅 △ 양산교육지원청 백정원(유) △ 고성교육지원청 김동욱 △ 남해교육지원청 강수연 △ 남해교육지원청 전수정 △ 하동교육지원청 안혜진 △ 하동교육지원청 임화숙 △ 거창교육지원청 정종성 △ 합천교육지원청 한태희 ■ 경남도교육청(중등) [교장급] ◇ 교육장 △ 창원교육지원청 정우석 △ 양산교육지원청 박종대 △ 진주교육지원청 허인수 △ 고성교육지원청 곽봉종 ◇ 본청 과장 △ 도교육청 미래교육국 창의인재과 정홍균 △ 도교육청 미래교육국 민주시민교육과 박세권 ◇ 직속기관장 △ 경상남도교육청 특수교육원 이석희 ◇ 전직(장학관↔교장) △ 통영여자고등학교 최병헌 △ 김해교육지원청 강신영 △ 도계중학교 강 주 △ 웅천고등학교 강계천 △ 관동중학교 강인숙 △ 김해대청고등학교 강호상 △ 수월중학교 김철수 △ 고성동중학교 김회정 △ 김해율하고등학교 이서영 △ 창원명지여자고등학교 정영렬 △ 경남해양과학고등학교 하정원 △ 창원봉림고등학교 황성윤 ◇ 전직(교감→장학관·교육연구관) △ 도교육청 교육과정과 김상문 △ 경상남도교육청 교육연수원 민재식 △ 도교육청 교육과정과 전제동 △ 경상남도교육청 교육연구정보원 홍정희 ◇ 교장 승진(장학사→교장) △ 해운중학교 이중화 △ 감계중학교 정윤남 ◇ 교장 승진(교감→교장) △ 생림중학교 강창옥 △ 미리벌중학교 김봉애 △ 석동중학교 김재길 △ 화개중학교 김희경 △ 설천중학교 박종후 △ 거제중앙고등학교 박주환 △ 양산중학교 박진수 △ 밀양여자중학교 백태정 △ 김해분성여자고등학교 서행련 △ 창원예술학교 심규철 △ 거창공업고등학교 안병규 △ 김해삼문고등학교 이동욱 △ 진해냉천중학교 이성락 △ 마산용마고등학교 이용수 △ 수남중학교 이종민 △ 서창고등학교 임계수 △ 범어고등학교 임성택 △ 김해대동중학교 정동석 △ 진해고등학교 정성진 △ 활천중학교 하정화 △ 거제장평중학교 허 엽 △ 경남산업고등학교 홍세철 ◇ 장학관·교육연구관 승진 △ 도교육청 정책기획관 강인수 △ 도교육청 교육과정과 김익수 △ 거창교육지원청 김인수 △ 창원교육지원청 성갑선 △ 도교육청 교육과정과 이은지 △ 과학교육원 이화순 △ 교육연수원 장정익 △ 거제교육지원청 정병일 △ 합천교육지원청 차수범 ◇ 교장 전보 △ 연초중학교 김기산 △ 반송중학교 안혜련 △ 모산중학교 이광봉 △ 진해용원고등학교 이근배 △ 산청중학교 정한규 △ 양곡중학교 최대용 △ 김해여자중학교 김경희 △ 창녕슈퍼텍고등학교 김계태 △ 경남항공고등학교 김금룡 △ 창원중앙여자고등학교 김대수 △ 김해수남고등학교 김미원 △ 김해분성고등학교 김소동 △ 초계중학교 김진희 △ 물금고등학교 박규하 △ 진주여자중학교 박상병 △ 단성고등학교 박정희 △ 거창덕유중학교 신현배 △ 곤양중학교 안성인 △ 대곡고등학교 양상수 △ 경남정보고등학교 양재석 △ 김해삼방고등학교 오의균 △ 하청중학교 이도상 △ 함안중학교 이상오 △ 함양여자중학교 이영수 △ 소가야중학교 이한기 △ 마산중학교 임미란 △ 진서고등학교 정화영 △ 창원기계공업고등학교 최노식 △ 통영중앙중학교 하재태 ◇ 장학관 전보 △ 창원교육지원청 김주석 ◇ 교장 중임 △ 김해외국어고등학교 강무석 △ 창원사파고등학교 김관용 △ 김해건설고등학교 김호영 △ 거창여자중학교 문삼종 △ 거제중앙중학교 손정충 △ 삼가중학교 이성인 △ 수동중학교 하옥둘 △ 연초고등학교 한문수 △ 경남과학고등학교 한철우 △ 거창중학교 허덕수 ◇ 공모교장 △ 김해가야고등학교 권명숙 △ 거제제일고등학교 김민환 △ 거창연극고등학교 서용수 △ 금곡무지개고등학교 조생연 △ 한다사중학교 하 철 △ 성포중학교 함영복 [교감급] ◇ 교감 전보 △ 거제공업고등학교 박종배 △ 통영고등학교 김덕일 △ 진주(중) 김병길 △ 창원[창원](중) 김영혜 △ 장유고등학교 김인석 △ 김해(중) 김희곤 △ 사천(중) 박태식 △ 창원[마산](중) 서광엽 △ 초계고등학교 안종길 △ 김해제일고등학교 양상진 △ 창원[창원](중) 위재원 △ 함안(중) 이근세 △ 창원중앙고등학교 이성태 △ 창원[창원](중) 이연삼 △ 남해(중) 이영수 △ 하동고등학교 이종인 △ 거제여자상업고등학교 임창수 △ 합천고등학교 장재구 △ 산청(중) 정경수 △ 합포고등학교 조황배 △ 창원[마산](중) 차경순 △ 진주(중) 최용환 △ 창원[창원](중) 하길조 △ 삼천포공업고등학교 하병형 ◇ 교육전문직원 전보 △ 경상남도창원교육지원청 강은경 △ 경상남도교육청 학교정책국 중등교육과 박계정 △ 경상남도진주교육지원청 박관영 △ 경상남도진주교육지원청 박미현 △ 경상남도양산교육지원청 박영애 △ 경상남도통영교육지원청 박을순 △ 경상남도함양교육지원청 양경식 △ 경상남도교육청 행정국 교육혁신추진단 오용주 △ 경상남도진주교육지원청 이영희 △ 경상남도교육청 정책기획관 정화영 △ 경상남도창원교육지원청 조경순 △ 경상남도밀양교육지원청 조정희 ◇ 교감 승진(교사→교감) △ 남해(중) 강미선 △ 김해(중) 강종석 △ 웅천고등학교 고득용 △ 함안(중) 구남이 △ 한국나노마이스터고등학교 권오영 △ 김해(중) 김노곤 △ 통영(중) 김서연 △ 김해삼방고등학교 김영도 △ 김해건설공업고등학교 김영철 △ 밀양(중) 김완수 △ 창원[마산](중) 김재인 △ 김해(중) 김종세 △ 양산(중) 김창수 △ 창원[창원](중) 김화선 △ 김해(중) 김효제 △ 경남항공고등학교 남상규 △ 창원봉림고등학교 류미순 △ 김해(중) 신동진 △ 양산(중) 옥철종 △ 경남산업고등학교 위재수 △ 창녕(중) 윤란자 △ 의령(중) 윤해영 △ 창원[마산](중) 이강식 △ 창원[진해](중) 이두성 △ 구산고등학교 이영문 △ 창원과학고등학교 이창수 △ 창원[진해](중) 정재헌 △ 김해(중) 정종영 △ 창원[창원](중) 허종문 ◇ 전직(교감→장학사) △ 경상남도교육청 학교정책국 교육과정과 김지종 ◇ 전직(장학사→교감) △ 진주(중) 박종태 △ 창원[마산](중) 송기호 △ 창원명지여자고등학교 이미숙 △ 창원[마산](중) 황영숙 ◇ 전직(교사→장학사·교육연구사) △ 경상남도남해교육지원청 강기현 △ 경상남도교육청 과학교육원 김결수 △ 경상남도교육청 학교정책국 중등교육과 김동기 △ 경상남도창원교육지원청 김둘련 △ 경상남도교육청 학교정책국 교육과정과 김선향 △ 경상남도교육청 미래교육국 창의인재과 김시론 △ 경상남도교육청 미래교육국 민주시민교육과 김재우 △ 경상남도거제교육지원청 김향숙 △ 경상남도창원교육지원청 노해수 △ 경상남도교육청 학교정책국 중등교육과 류영길 △ 경상남도거제교육지원청 문정원 △ 경상남도교육청 학생안전체험교육원 박유현 △ 경상남도교육청 학교정책국 교육과정과 박윤정 △ 경상남도교육청 학교정책국 학교혁신과 백혜란 △ 경상남도산청교육지원청 서병희 △ 경상남도의령교육지원청 심우향 △ 경상남도사천교육지원청 염정희 △ 경상남도교육청 교육연구정보원 유병준 △ 경상남도합천교육지원청 이연호 △ 경상남도창녕교육지원청 이영주 △ 경상남도통영교육지원청 이인숙 △ 경상남도통영교육지원청 이정하 △ 경상남도창원교육지원청 이혜진 △ 경상남도교육청 교육연수원 이환출 △ 경상남도양산교육지원청 장희선 △ 경상남도김해교육지원청 정찬수 △ 경상남도창원교육지원청 조규환 △ 경상남도교육청 미래교육국 체육예술건강과 최우람 △ 경상남도교육청 미래교육국 민주시민교육과 최재규 △ 경상남도교육청 미래교육국 민주시민교육과 하상수 △ 경상남도교육청 미래교육국 창의인재과 황진석 ◇ 전직(교육연구사→장학사) △ 경상남도교육청 행정국 총무과 전진양 △ 경상남도교육청 학교정책국 교육과정과 정창욱 ◇ 전직(장학사→교육연구사) △ 경상남도교육청 낙동강학생교육원 김철근 △ 경상남도교육청 교육연수원 이상래 △ 경상남도교육청 교육연수원 정재훈 ◇ 교육부 교류 △ 교육부 구경모 △ 경상남도교육청 감사관 김서연 ■ 충북도교육청 ◇ 유·초등 장학(교육연구)관 △ 유아교육진흥원 원장 김혜숙 △ 충주교육지원청 교육장 김응환 △ 교육국 학교자치과장 최경희 △ 자연과학교육원 융합인재부장 우관문 △ 단재교육연수원 교육연수부장 안순자 △ 교육국 학교혁신과 장학관 노영신 △ 교육국 미래인재과 장학관 문은경 △ 교육국 학교자치과 장학관 신남숙 △ 청주교육지원청 유초등교육과장 김긍수 △ 괴산증평교육지원청 교육과장 함종철 △ 단양교육지원청 교육과장 이혜용 ◇ 초등교장·유치원장 △ 청주 덕성초 김순태 △ 청주 모충초 양길석 △ 충주 충주남산초 김남주 △ 충주 충주중앙초 박화영 △ 충주 소태초 허현숙 △ 제천 남당초 이재훈 △ 보은 속리초 권형자 △ 보은 수정초 송종헌 △ 영동 심천초 강창석 △ 영동 구룡초 김보현 △ 진천 금구초 김미영 △ 진천 진천상신초 이진성 △ 진천 백곡초 임은정 △ 괴산증평 장연초 신정호 △ 음성 동성초 김혜용 △ 단양 별방초 권미경 △ 단양 단양유 오세화 △ 청주 가경초 김경호 △ 청주 가덕초 김상국 △ 청주 덕벌초 김현순 △ 청주 중앙초 이정순 △ 청주 새터초 이형숙 △ 청주 흥덕초 임태빈 △ 청주 개신초 류봉순 △ 청주 용담초 허영강 △ 청주 원봉초 홍찬기 △ 충주 충주중앙탑초 김미한 △ 충주 덕신초 김상국 △ 충주 오석초 김정식 △ 충주 충주대소원초 류병완 △ 충주 가흥초 박은희 △ 충주 충주남한강초 오미숙 △ 충주 엄정초 전병화 △ 충주 단월초 한대현 △ 제천 장락초 고경석 △ 제천 제천덕산초 장용한 △ 제천 내토초 조기자 △ 제천 화산초 홍준락 △ 옥천 안남초 김옥경 △ 괴산증평 죽리초 이수호 △ 단양 어상천초 조은성 △ 청주 옥산유 유혜란 △ 제천 의림유 조재현 △ 음성 동성유 김종숙 △ 청주 각리초 마상인 △ 청주 증안초 박길순 △ 청주 사천초 심신동 △ 청주 문의초 이혜경 △ 청주 현도초 장월궁 △ 청주 양청초 주경례 △ 청주 북이초 황계자 △ 제천 두학초 안선민 △ 옥천 안내초 김영임 △ 영동 황간초 김영미 △ 진천 진천상산초 김정현 △ 음성 능산초 유정희 △ 음성 남신초 이혜숙 ◇ 초등 공모교장 △ 청주 봉명초 손희순 △ 청주 우암초 이상철 △ 괴산증평 감물초 배상호 △ 괴산증평 송면초 오기석 ◇ 유치원·초등·특수학교 교(원)감 △ 청주교육지원청 김영숙 △ 청주교육지원청 김재연 △ 청주교육지원청 서민경 △ 청주교육지원청 손봉동 △ 청주교육지원청 최형욱 △ 영동교육지원청 서창호 △ 영동교육지원청 신경희 △ 음성교육지원청 김정숙 △ 청주교육지원청 이순희 △ 충주교육지원청 우혜숙 △ 충주교육지원청 허기순 △ 제천교육지원청 권순미 △ 음성교육지원청 임수연 △ 청주교육지원청 이상철 △ 청주교육지원청 정충원 △ 충주교육지원청 피연수 △ 제천교육지원청 최지영 △ 옥천교육지원청 김대중 △ 영동교육지원청 홍성효 △ 진천교육지원청 이부원 △ 충주교육지원청 김윤아 △ 청주교육지원청 김정희 △ 청주교육지원청 오서연 △ 청주교육지원청 이호영 △ 청주교육지원청 조재앵 △ 영동교육지원청 양명희 △ 괴산증평교육지원청 장경숙 △ 음성교육지원청 조경희 △ 청주교육지원청 박현숙 △ 청주교육대학교부설초 서석호 △ 청주교육지원청 전호영 △ 청주교육지원청 조종현 △ 청주교육지원청 조창연 △ 청주교육지원청 홍경희 ◇ 초등 교육전문직 △ 공보관 조기영 △ 기획국 정책기획과 홍부동 △ 교육국 학교혁신과 구애숙 △ 교육국 학교혁신과 남지현 △ 교육국 학교혁신과 박명선 △ 교국 학교자치과 강미정 △ 교육도서관 박병희 △ 교육연구정보원 김선화 △ 교육연구정보원 이유미 △ 특수교육원 라희순 △ 청주교육지원청 김미희 △ 청주교육지원청 이정희 △ 청주교육지원청 장영수 △ 청주교육지원청 장우정 △ 충주교육지원청 하상우 △ 보은교육지원청 김희자 △ 진천교육지원청 신경미 △ 진천교육지원청 이학수 △ 진천교육지원청 조복형 △ 괴산증평교육지원청 목수미 △ 기획국 체육건강안전과 지혜경 △ 교육국 학교자치과 김정진 △ 충주교육지원청 최경숙 △ 제천교육지원청 김명주 △ 제천교육지원청 김영미 △ 제천교육지원청 조영주 △ 보은교육지원청 박종화 △ 보은교육지원청 오희진 △ 진천교육지원청 신선희 △ 괴산증평교육지원청 노선하 △ 단양교육지원청 남인석 △ 단양교육지원청 백춘옥 △ 한국교원대학교 정책대학원 박종원 △ 충주교육지원청 한영숙 ◇ 중등 장학(교육연구)관 △ 진로교육원장 김기선 △ 제천교육장 안태영 △ 진천교육장 박창호 △ 단양교육장 조성남 △ 학교혁신과장 김동영 △ 교원인사과장 최명렬 △ 학교혁신과 장학관 김정희 △ 학교혁신과 장학관 손기향 △ 미래인재과 장학관 고종현 △ 자연과학교육원 창의인재부장 이범모 △ 단재교육연수원 기획지원부장 이원익 △ 청주교육지원청 중등교육과장 홍석중 △ 충주교육지원청 교육과장 김도현 △ 제천교육지원청 교육과장 서주선 △ 교육국 교원인사과 장학관 홍순두 ◇ 중등 교장 △ 증평여중 강문규 △ 영춘중 강현구 △ 영동산업과학고 김원구 △ 충주혜성학교 남경희 △ 괴산북중 박정애 △ 연풍중 신명수 △ 보은여고 신배식 △ 산척중 연재흠 △ 괴산중 연정흠 △ 충주여중 이동복 △ 수산중 조봉주 △ 안내중 조석기 △ 국원고 구본극 △ 흥덕고 손기준 △ 충북산업과학고 정성교 △ 내토중 정진 △ 청주중앙중 최동일 △ 봉명고 김명철 △ 한국호텔관광고 김철규 △ 진천여중 노영임 △ 현도중 문종훈△ 청주중앙여고 민병하 △ 청주중앙여중 박정윤 △ 남성중 박종원 △ 제천제일고 손진원 △ 문의중 신완식 △ 운동중 신해인 △ 청주동중 윤인숙 △ 율량중 이미숙 △ 백운중 이영두 △ 서경중 장경환 △ 용암중 조동기 △ 옥산중 하재주 △ 서원고 김승환 △ 충북공고 유영로 ◇ 중등 공모교장 △ 한국바이오마이스터고 류영목 △ 은여울중 신현규 △ 단양고 이정도 △ 충주고 홍승현 ◇ 중등 교감 △ 진천교육지원청 강준길 △ 영동교육지원청 김기회 △ 제천교육지원청 김진영 △ 괴산증평교육지원청 류원걸 △ 청주교육지원청 박창봉 △ 보은교육지원청 서영일 △ 제천교육지원청 심춘보 △ 음성교육지원청 엄기찬 △ 충주교육지원청 유혜순 △ 옥천교육지원청 이상용 △ 음성교육지원청 이점자 △ 괴산증평교육지원청 장보순 △ 괴산증평교육지원청 장용 △ 보은교육지원청 최순식 △ 청주교육지원청 유성부 △ 청주교육지원청 이병호 △ 청주교육지원청 이영순 △ 청주교육지원청 정한진 △ 제천교육지원청 최재호 △ 청주교육지원청 황윤성 △ 청주교육지원청 정혜란 ◇ 중등 교육전문직 △ 학교혁신과 이일래 △ 학교혁신과 백상철 △ 미래인재과 황의관 △ 교원인사과 한성학 △ 단재교육연수원 김순화 △ 교육도서관 김은주 △ 특수교육원 이정희 △ 청주교육지원청 신행자 △ 충주교육지원청 최영미 △ 보은교육지원청 서현주 △ 옥천교육지원청 이윤희 △ 청주교육지원청 추주연 △ 제천교육지원청 서경원 △ 보은교육지원청 이소영 △ 영동교육지원청 최혜순 △ 음성교육지원청 김은희 △ 학교혁신과 권영식
  • 청년, 농촌으로 가다…‘시골가면 어떻게 살아?’

    청년, 농촌으로 가다…‘시골가면 어떻게 살아?’

    퇴근길 버스 차창에 비친 자신의 우울한 얼굴을 본 어느 날, 두 사람은 도시를 떠나기로 했다. 한 사람은 배낭을 메고 무작정 충남 홍성으로 내려와 컨테이너 집을 구했고, 또 한 사람은 잘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홍성의 농가주택에 새 둥지를 틀었다. 도시의 생활은 숨이 막혔고, ‘살고자’ 그들은 귀촌을 선택했다. 충남 홍성에서 만나 ‘로컬스토리’란 미디어 주식회사를 꾸린 정명진(39) 씨와 서혜림(40) 씨의 얘기다. 도시도 아닌 농촌에서 갓 창업한 청년들에게 세상은 녹록지 않았다. 한 달에 20만 원을 받는 달도, 80만 원을 받아 가는 달도 있었다. 셋이서 마을의 빈집을 빌려 시작한 협동조합은 귀촌한 청년들과 귀촌 1.5세대(부모가 귀촌) 청년 9명이 운영하는 어엿한 주식회사가 됐다. 이들은 귀촌 청년들과 함께 지역의 다양한 미디어 콘텐츠를 만든다. 청년이 지역을 성장시키고, 그렇게 성장한 지역이 청년을 성장시키는 생태계의 선순환을 꿈꾼다. 그들에게 물었다. “농사짓지 않고 청년이 농촌에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홍성에는 어떻게 내려오게 됐나요. “(서혜림)홍성에 처음 온 건 2015년 8월이었어요. 처음 와본 홍성이 마음에 들어 9월에 배낭 하나 메고 와서 살 곳을 찾았죠. 그렇게 찾은 집이 컨테이너 집이었어요. 그곳에서 8개월을 살았어요. 서울에선 영어 강사를 했어요.” -홍성에 연고가 있었나요. “(서혜림)아니요. 인터넷 검색으로 찾은 지역이에요. 귀농·귀촌·유기농·청년 등의 키워드로 검색했어요. 젊은 사람들이 많고 유기농을 하는 지역을 찾고 있었거든요. 홍성이 딱 좋았고, 이곳 사람들과 함께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생 2막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들었죠. 솔직히 다 지겨웠거든요. 서울에서 또 다른 직업을 찾을 생각은 안 했어요. 외국에 나가 살거나 새로운 삶을 살고 싶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TV프로그램을 보다가 목수가 하고 싶다는 거예요. 남편도 영어 강사였거든요. ‘외국에 나가 살 게 뭐 있나, 시골로 가서 목수를 하자’ 이렇게 된 거예요. 정말 추진력 있는 부부지요?” -명진씨는 어떻게 홍성에 살게 됐어요? “(정명진) 혜림씨는 이사온지 4~5년밖에 안됐지만 저는 홍성에 산지 10년이 됐어요. 서울에선 기자를 했어요. 당시 다니던 회사를 떠나 다른 곳에서 일하고 싶었는데, 마침 아내가 귀농 운동본부 사이트에서 구인 공고를 본 거예요. ‘농사하면서 기자 하실 분 구합니다’라는 홍성 신문의 공고였어요. ‘아니, 정말 농사지으면서 기자까지 할 수 있는거야?’ 귀가 쫑긋했죠. 한마디로 낚여서 내려왔어요. 예전에 있던 언론사에서는 남북관계 등 거시적인 것을 주로 다뤘거든요. 그러다 보니 진짜 사람 사는 모습을 글로 옮기고 싶다는 갈증이 일었어요. 아내도 30년을 산 도시를 떠나고 싶어했고요. 모든 게 맞아떨어졌어요.” -내려온 뒤에는 어떻게 살았나요. “(서혜림)1년 정도는 한량처럼 살았어요. 하지만 돌아보면 그 1년이 가장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일종의 안식년 같은 한 해였어요. 그 한 해가 있어 살아갈 힘이 생겼어요. 대신 한 달간은 벌이가 없었죠. 이후에는 돈을 벌려고 6개월간 농장에서 일했어요. 그때 나는 농사 등 몸으로 하는 일은 할 수 없는 사람이란 걸 깨달았죠. 무릎이 심하게 붓고 응급실 실려갈 상황이 되고서 귀농은 포기했어요. 대신 이곳에서 다른 일을 찾아 귀촌을 한 거죠.” “(정명진)농사를 지으며 기자가 하고 싶었는데, 결국 저도 농사는 못 지었어요. 신문사는 2015년 8월에 그만뒀어요. 예전보다는 더 사람 냄새 나는 기사를 썼지만 신문이라는 틀에 갇히니 다양한 시도를 하지 못했어요. 좀 더 자유로운 글쓰기를 하고 싶었어요. 새로운 미디어를 지역에 접목시키는 일도 하고 싶었고요. 지역에는 다양한 가능성이 존재하는데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어요. 그때 혜림씨를 만났어요. 글을 쓰는 나와 영상을 하는 친구, 그리고 행사 기획을 하는 혜림씨와 협동조합을 만들었어요.”-그게 바로 로컬스토리의 시작이군요. “(서혜림)사무실도 없어서 매일 카페에 모여 일했어요. 그러다 보니 너무 지치는 거예요. 그래서 딱 3평짜리 사무실을 빌렸죠. “(정명진)처음에는 한 달에 20만 원 받아가는 달도 있고, 80만 원 받는 달도 있었어요. 서로 일한 만큼 월급을 가져가기도 하고 20만 원, 30만 원씩 나눠갖기도 했어요. 그러다 200만 원짜리 일을 받고선 감동해서 다 울었어요. 농촌에선 마을 만들기 사업이라는 걸 하는데, 충남 마을 만들기 지원센터에서 우리에게 일을 준거죠. 그 뒤론 매달 월급을 받을 수 있을 만큼 일이 들어왔어요. 홍성군 홍동면에 지역 공동체 금융조직인 ‘도토리회’라고 있거든요. 회원들 공동출자로 협동기금을 만들고 그 자금으로 공익적인 마을 사업이나 생활에 필요한 급전을 무이자로 빌려주는 곳이에요. 그곳에서 1000만 원을 빌려 1년 뒤 1300만 원의 흑자를 냈어요.” -홍동면에는 그런 협동조합이 많은가 봐요. “(정명진)작은 마을인데 그런 협동조합 등 주민조직이 50여 개 있어요. 시골의 파라다이스 같은 곳이죠. 귀농, 귀촌이 많고 청년들도 많아요.” “(서혜림)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청년들이 살아갈 인프라가 부족해 안타까웠어요. 사람이 살려면 얼마나 필요한 게 많아요. 청년들은 이곳에서 연애도 해야 하고 취업도 해야 하고 결혼해선 아이들 교육도 시켜야 해요. 그런 인프라 자체가 부족해요. 지역 콘텐츠는 너무 천편일률적이에요. ‘00사과’, ‘00한우’처럼 예전의 콘텐츠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지역이 청년들에게, 또 외지인들에게 매력적으로 비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알고보니 외국보다 좋네?’ 이런 생각이 들게 말이죠.” -말하자면 청년이 살 수 있는 지역 생태계 만들기를 고민하기 시작한 거군요. “(정명진)로컬스토리의 목표를 ‘지역과 청년이 함께 성장하는 생태계를 만들자’로 정했어요. 시골에선 농사를 짓지 않는 한 청년이 살 수 있는 환경이 안돼요. 일자리가 많은 게 아니잖아요. 돈이 있다면 땅을 사서 농사를 지을 수 있겠지만, 청년들은 그런 재산이 없잖아요. 게다가 농사도 아무나 짓는 게 아니에요. 그러면 농사를 짓지 않는 청년들은 농촌을 떠나야 할까요? 귀농하지 않고 귀촌한 청년들이 지역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농사는 짓지 않지만, 농촌에서 살고 싶은 청년들의 이야기. 그게 로컬스토리가 처음 만든 콘텐츠였어요. 지역은 미디어 역량이 많이 떨어져요. 하지만 귀촌한 청년들은 미디어에 밝죠. 그런 청년의 재능이 지역에 도움이 될 수 있겠다 싶었죠. 청년이 지역을 성장시키고, 성장한 지역이 청년을 돕는 생태계의 선순환을 이뤄보자 결심했어요.” -지역에서 관심을 많이 두던가요? “(서혜림)‘우리 동네는 시골이지만, 로컬스토리 같은 회사가 있어’라고 마을 분이 자랑하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청년들이 귀촌해서 사는, 그만큼 매력있는 지역이라는 자부심이 엿보였어요. 우리의 존재 자체가 자랑거리가 될 수 있다니 뿌듯했죠. 그래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최소 2주에 한 번씩은 ‘로컬스토리 뭐하나’라는 콘텐츠를 올려요. 그만큼 관심을 많이 두시거든요. 한 번은 한 농가를 인터뷰하고 그분의 정보를 노출했더니 갑자기 그 농가의 농산물 판매량이 증가한 거예요. 장문의 감사 편지를 받았죠.”-미디어 콘텐츠를 만드는 것 외에 또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요. “(정명진)마을 주민들 글쓰기 교육도 해요. 마을에서 살아온 기억을 주제로 수필 한 편씩 쓰기를 한 적이 있어요. 평생 글이라고는 써보지 않았던 분들이 교육 시간에 자신이 쓴 수필을 모아 책을 냈어요. 고기도 삶고 국수도 삶아 우리끼리 출판기념회도 하고 낭독회도 했어요. 지금도 기억에 남는 분이 있어요. 글을 모르는 할머니셨는데, 글쓰기 수업에는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출석을 하신 거예요. 그리고 마지막 날 글쓰기 수료증이 나왔는데, 무척 좋아하시면서 자신이 죽을 때 그 수료증을 관에 넣어달라고 하셨어요. 그만큼 배움에 대한 한이 깊으셨던 거죠.” -창업할 땐 어떤 점이 어려웠나요. “(정명진)우리의 첫 사무실은 빈 시골집이었어요. 2만 평 옥수수밭 한가운데 있었죠. 이곳에 우리 나름대로 작업실을 꾸렸는데, 기본적으로 영상을 만들려면 비디오 제작 사업 신고를 해야 해요. 이걸 하려면 건축물 대장, 임대차 계약서가 있어야 해요. 그런데 이 빈집은 너무 오래전에 지어진 거라 건축물 대장이 없는 거예요. 귀촌한 청년들이 시골의 빈집을 얼마든지 사무실로 활용해 쓸 수 있는 데 말이죠. 그런 작은 것부터 힘들었어요.” “(서혜림)창업 과정을 안내해주는 멘토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창업하고서 일을 하려면 행정적으로 각종 자격 요건을 갖춰야 하는데, 그걸 하나부터 열까지 찾아야 해요. 처음에는 그게 가장 어려웠어요. 도시는 선배도 많고 네트워크도 많아 물어가며 할 수 있는데, 시골은 그런 게 없어요.” -귀촌한 청년이 마을에 잘 안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정명진)우선 인사를 잘해야 해요. 그러면 ‘쟤들은 서울에서 왔는데 예의가 참 바르다’라고 좋게 보시거든요. 다만 도시에서 살다 귀촌한 청년들과 지역에 사시는 어르신들은 살아온 방식도, 생활 방식도 달라요. 처음부터 너무 마을 깊숙이 들어가면 이런 면에서 서로 부딪히는 게 있을 수 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서로 적절한 거리를 두는 게 좋아요. 그러면서 마을에서 필요한 일이 있을 때, 예를 들면 서류 쓰는 일 등을 도와드리면서 가까워지면 돼요.” -귀촌한 선배로서, 귀촌을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조언해준다면. “(정명진)무작정 귀촌하는 것보다 먼저 일자리를 알아보고 내려오세요. 일자리가 없다면 오래 머물 수가 없어요. 시골에서 소일거리를 하며 일당을 받는 것도 한계가 있어요. 육체노동을 안 하던 사람이 갑자기 하면 탈이 나요. 단단히 각오해야 해요.” “(서혜림)지금 도시에서 회사에 다니고 있다면, 무작정 사표를 내고 귀촌할 게 아니라 일단 휴직을 하고서 한 달 살기를 해보세요. 그리고 나서 결심이 서면 사표를 내세요. 무작정 오는 것은 말이 안 돼요. 이민 준비하듯이 준비한다 생각하면 될 거예요.”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가요. “(정명진)로컬스토리를 처음 만들었을 때의 ‘청년과 지역 생태계의 선순환’이란 비전을 실천하며 살고 싶어요. 이 지역에서 얼마나 의미 있는 성과와 가치를 만들어내느냐, 그게 로컬스토리의 힘이 될 거예요. 지역 청년들에게 좀 더 나은 일자리가 제공돼야 지역에서의 삶이 지속 가능해져요. 기껏 귀촌했는데 삶은 개선되지 않고 똑같이 박봉에 시달린다면 지속 가능성이 없는 거잖아요. 로컬스토리에는 우리처럼 귀촌한 청년들이 함께 일하고 있어요. 이들의 성장을 위해서라도 좀 더 큰 프로젝트를 하며 급여도 많이 줄 수 있는 안정된 시스템을 만들고 싶어요.” “(서혜림)지역의 가치, 그리고 청년을 성장시키는 가치, 미디어 기업으로서의 자질을 쌓아가고 싶어요. 지역의 작지만 강한 기업, 우리가 추구할 방향이에요.” 홍성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기업이 행한 침묵의 살인…그들의 공모

    기업이 행한 침묵의 살인…그들의 공모

    에코사이드/마리 모니크 로뱅 지음/목수정 옮김/시대의창/400쪽/1만 9800원 ‘혁신적’이라는 광고와 함께 제품이 시장에 뿌려진다. 그러나 부작용이 점차 드러난다. 기형아가 태어나고, 사망자도 생겨난다. 기업은 그럼에도 “안전하다”, “유해성이 검증되지 않았다”고 변명한다. 진실은 서서히 밝혀진다. 돈만 밝히는 기업 뒤에는 자신의 양심을 팔아버린 연구자, 이를 모른 척한 무능한 정부가 있었다. 세계적인 제초제 생산기업 몬산토와 이에 맞선 시민들의 싸움을 그린 ‘에코사이드´의 내용이다. 이 사건이 낯설지 않은 건 2011년 발생한 옥시 가습기 살균제 참사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2008년 ‘몬산토: 죽음을 생산하는 기업’을 출간하고 다큐멘터리 영화로 이를 알린 저널리스트 마리 모니크 로뱅의 신간 ‘에코사이드’는 다시 한 번 몬산토를 추적했다. 저자는 2016년 10월 15, 16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몬산토 국제법정’을 기획했다. 시민 법정에 증인 24명, 재판관 5명, 청중 400여명이 세계 최대 규모 농화학 기업 몬산토의 ‘에코사이드’(생태학살)를 국제법상의 형사처벌 대상으로 삼을 것을 요구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책은 이 시민 법정을 열기까지 저자가 유럽, 북미, 남미, 아시아를 누비며 만난 피해자와 몬산토에 맞선 이들에 관한 기록이다.베트남전쟁에 사용한 고엽제 ‘에이전트오렌지’를 제조한 몬산토는 1970년대 ‘글리포세이트’를 주성분으로 하는 제초제 ‘라운드업’을 시판한다. 두 번만 뿌리면 농부의 손길이 필요없을 정도로 모든 잡초와 벌레가 말끔히 제거된다. 몬산토는 이 제품에 관해 ‘소금보다 덜 위험하고’, ‘단 한 번만 뿌려도 되는’ 제초제라고 광고했다. 그러나 독성 강한 제초제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끔찍했다. 곳곳에서 이상 징후가 드러난다. 시민 법정에서는 임신 중 글리포세이트에 중독돼 기형으로 태어난 아이의 존재를 알린 엄마, 제초제 농장에서 일하다가 암을 비롯한 각종 질병에 시달리는 이들이 증언자로 나섰다. 이들을 도운 이들도 제초제에 관해 정밀 조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의를 추구하고 민중과의 연대를 추구한 의사들, 최초 몬산토 소송을 통해 이후 수천 건의 법정투쟁을 이끌어낸 농민과 변호사, 미국 정보법을 이용해 몬산토의 비밀 서류들을 찾아낸 기자 등이다. 책은 이에 맞서는 몬산토 측의 변명과 그 뒤에 숨은 거짓말을 집요하게 따라갔다. 몬산토가 관리하는 수많은 연구자들은 과학적인 방식으로 자료를 조작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언론 종사자들은 제대로 된 검증도 하지 않고 몬산토의 입장을 대변한 뉴스를 퍼뜨렸다. 물론 그 뒤에는 무능했거나 비양심적인 정부가 있었다.수십 년 동안 이어진 고발과 여러 증거에도 불구하고, 미국, 유럽 연합 등은 ‘공개되지 않은’, ‘기업 제공 평가 자료’에만 근거해 글리포세이트의 사용 허가를 갱신했다. 그러나 현재 몬산토 제초제와 관련, 전 세계에서 1만 8000여건의 소송이 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옥시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겪었던 우리로선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살균제에 들어간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 성분이 인체에 유해할 수 있다는 내부 의견을 묵살했고, 실험 의뢰를 받은 교수는 옥시에 유리하도록 내용을 조작한 혐의를 받고 있다. KC(국가통합인증) 마크를 붙여준 정부는 문제가 커지자 2016년에야 뒤늦게 전담 수사팀을 꾸렸다. 이렇게 볼 때 글리포세이트 제초제 사용을 여전히 규제 없이 허용하며 유전자조작 식품을 대량 수입하는 한국의 현 상황이 아찔할 따름이다. 저자는 한국어판에서 이에 우려를 표하며 “책을 읽은 한국의 독자들 역시 행동에 나서 달라”고 요청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삼총사 의기투합… 목공소 옆 갤러리 열다

    삼총사 의기투합… 목공소 옆 갤러리 열다

    서울 서대문구 홍은사거리 인근에 있는 ‘목공거리’는 1960년대부터 문짝과 가구를 만드는 목공소가 하나둘 생겨 한때 40여곳에 이를 정도로 번성했던 곳이다. 하지만 지금은 재개발 사업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단 두 곳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철거를 앞두고 빈 가게들이 폐허처럼 방치된 이 황량한 거리에 난데없이 갤러리가 들어섰다. 지난해 12월 중순 문을 연 ‘갤러리 유진목공소’다. 목공거리를 지키는 두 곳 중 한 곳인 유진목공소는 청와대 상춘재의 전통 문창살 99짝 교체를 담당했던 전통 창호 전문 목공소다. 55년 경력의 윤대오 사장과 아들 종현씨가 운영한다. 갤러리는 유진목공소와 붙어 있다. 원래는 10여년간 독학으로 회화 작업을 해 온 종현씨가 보일러 설비업체가 있던 이웃 가게를 빌려 작업실 겸 개인 전시장으로 사용하던 공간이었다. 설비업체가 빠져나간 어지러운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이곳이 어쩌다 갤러리가 됐을까. 갤러리 유진목공소는 공동 대표 체제다. 목수 윤종현(37), 미술평론가 반이정(50), 중학교 과학교사 이민재(53) 등 분야가 다른 세 사람이 같이 운영한다. 대학원에서 미술이론을 공부한 이민재와 미술비평이 본업인 반이정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지만 윤종현과는 1년 반 전에 처음 인연이 닿았다. “제 블로그에 자주 방문하던 종현씨가 어느 날 장문의 메일을 보냈어요. 본인 작업에 대한 멘토링을 받고 싶다고. 이후 가끔 만나서 전시회에 동행하고, 창작 관련 이야기를 나누면서 친분을 쌓게 됐어요.”(반이정) “그림에 대한 열망만 가득했지 늘 혼자 작업해서 외로웠어요. 반이정 선생님을 알게 된 뒤 다른 작가들과 소통하고, 전시장에 함께 가서 동시대 미술의 흐름을 공부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습니다.”(윤종현) 반이정은 지난해 목공소 옆 작업실을 처음 방문하고선 울퉁불퉁한 벽면과 조명이 뜯겨진 천장이 그대로 노출된 독특한 공간에 반해 갤러리 설립을 제안했다. 전시기획자로도 활동하는 그는 “과거 전성기를 누렸으나 어느 순간 잊혀진 중견 작가나 주목받을 만한 실력을 갖추고도 조명받지 못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로까지 연계하는 상업 화랑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민재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갤러리의 필요성을 고민했다. “이 거리가 재개발 때문에 사라진다는 게 너무 아쉬웠고, 문화인프라가 부족한 이 지역 주민들이 가까이서 즐길 만한 문화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미술이 돈 많고 여유 있는 사람만 향유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갤러리 유진목공소는 개관전으로 윤종현의 첫 개인전 ‘그녀에게’(1월 25일까지)를 열고 있다. 회화, 드로잉, 목조각, 사진 콜라주 등 40여점이 전시됐다. 미술 전공은커녕 동네 화실조차 제대로 다녀본 적 없는 윤종현이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실연의 상처였다. 2010년 여자친구와 헤어진 뒤 그녀를 잊지 않기 위해 마음가는 대로 캔버스에 붓칠을 했다. 그가 지금까지 그린 회화 대부분이 ‘그녀’의 얼굴이다.아버지 곁에서 목수로 일한 지 10년이 됐지만 그 전까지 윤종현은 굴곡 많은 청춘을 보냈다. 영화감독이 하고 싶어 10대 후반 고교를 자퇴하고 무작정 충무로로 뛰어들었다. 영화 조명팀에서 5년을 일한 뒤엔 수행자의 뜻을 품고 해인사와 불국사에서 1년 반을 지냈다. 절을 나오고서도 수년간 방황은 거듭됐다. 그 사이 만성조울증으로 정신병원 폐쇄병동에 네 차례 입원하기도 했다. 윤종현은 회화 작업에 더해 아버지에게서 익힌 목공 기술이 반영된 입체 작품 제작을 병행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 나온 목조각 2점은 반이정과 아이디어를 상담하고 공유한 결과물이다. 그는 “이왕이면 아버지가 평생 해오신 전통 창호를 응용한 작품도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글 사진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인물화, 시대를 담다

    인물화, 시대를 담다

    갤러리현대 개관 50주년 기념 특별전 첫 서양화 기법의 누드화 ‘해질녘’ 등 시대정신 구현한 작가 51명 작품 담아 근현대미술 100년 작가·사회 변화 표현평양 능라도를 배경으로 나신의 두 여인이 등을 돌리고 선 채 목욕을 하고 있다. 저 멀리 대동강 위로 불그스름한 노을빛이 어른거린다. 목욕하는 여인을 주제로 한 유럽 후기 인상주의의 전형적인 누드화를 닮은 이 그림은 1916년 도쿄미술대학 유학생 김관호(1890~1959)가 졸업작품으로 제작해 그해 ‘제10회 문부성미술전람회’에서 특선을 차지한 ‘해질녘’이다. 그러나 한국인이 서양화 기법으로 그린 최초의 누드화를 당시 조선인들은 볼 수 없었다. 김관호의 특선 소식을 대서특필한 ‘매일신보’는 ‘여인의 벌거벗은 그림인고로 게재치 못한다’며 사진을 싣지 않았다. 내년 개관 50주년을 맞는 갤러리현대가 191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한국 근현대미술 100년을 인물화로 돌아보는 ‘인물, 초상 그리고 사람’ 전시의 첫 작품으로 ‘해질녘’을 선정한 취지도 이 그림을 통해 근대미술 태동기에 화가의 달라진 인식과 사회적 맥락을 동시에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김관호를 비롯해 도쿄미술대학 졸업생인 고희동, 이종우, 오지호, 김용준의 1920~30년대 자화상이 나란히 소개된 점도 의미가 있다. ‘해질녘’과 자화상 5점은 현재 도쿄예술대학(도쿄미술대학 후신) 소장품으로 이번 전시를 위해 모처럼 서울 나들이를 했다. 미술평론가 유홍준·최열, 미술사학자 목수현·조은정, 박명자 현대화랑 회장이 자문위원으로 참여한 전시에는 파란만장한 근현대사 흐름 속에서 당대의 시대정신을 구현하고, 자신만의 독창성을 화면에 담아낸 화가 51명의 작품 71점이 선보인다. 미술사적으로 귀중할 뿐 아니라 평소 만나기 어려운 희귀한 고전 명작들이다. 본관에서 열리는 1부 전시는 191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제작된 근대미술의 대표적 인물화가 장식한다. 1930년대에는 조선의 향토색이 드러나는 인물화가 많이 그려졌다. 조선미술전람회를 관장하는 일본 심사위원들이 식민지로서 조선의 특색을 요구한 데 따른 것이다. 오지호의 ‘아내의 상’(1936), 이인성의 ‘가을 어느 날’(1934) 등이 인물의 형태와 의상, 배경 등에서 향토색이 두드러진 작품들이다. 1940년대에는 이쾌대의 ‘군상 Ⅲ’(1948)에서 보듯 해방의 기쁨과 좌우 이데올로기 갈등 속에서도 희망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려는 인물들이 등장한다.신관으로 이어지는 2부 전시에선 195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해방 이후 파란만장한 현대사를 건너온 한국인의 내면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한 인물화가 선보인다. 전쟁의 폐허에서 아이를 업은 단발머리 소녀를 그린 박수근의 ‘길가에서’(1954)와 소달구지에 가족을 싣고 남쪽 나라로 향하는 가장의 모습을 담은 이중섭의 ‘길 떠나는 가족’(1954)은 생사를 오가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끈질기게 삶을 이어 가는 인간의 본성을 옹골차게 담아냈다. 20세기 후반에 접어들면 화가의 자화상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담배를 피우는 여성의 옆모습을 그린 천경자의 ‘탱고가 흐르는 황혼’(1978), 폐교에서 발견한 칠판에 김치를 담그는 여성을 그린 김명희의 ‘김치 담그는 날’(2000) 등은 화가의 내밀한 감정을 투사한 자화상이자 시대의 초상으로 읽힌다.전시 마지막은 1980년대 이후 민중미술이 주목한 새로운 유형의 인물화를 한자리에 모았다. 이종구 ‘활목할머니’, 오윤 ‘비천’, 박생광 ‘여인과 민속’, 임옥상 ‘보리밭’, 신학철 ‘지게꾼’ 등을 통해 불의와 억압에 저항하는 능동적이고 강인한 인물상과 격변의 시대를 묵묵히 통과해 온 평범한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느낄 수 있다. 자문위원인 유홍준 평론가는 “근현대 미술의 성장과 발자취를 이처럼 요약적으로 보여 주는 전시는 없었다”면서 “이번 인물화전이 근현대사를 새롭게 성찰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전시는 18일부터 내년 3월 1일까지 열린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책꽂이]

    [책꽂이]

    살아 있는 한, 누구에게나 인생은 열린 결말입니다(강의모 지음, 목수책방 펴냄) 10년 넘게 SBS 러브FM ‘책하고 놀자’의 작가로 일해 온 저자가 독서를 주제로 쓴 글을 모아 엮었다. 그간 책을 매개로 만난 사람과 그들과 함께한 시간 속에서 건져 올린 경험들을 적었다. 작가에 따르면 책 읽기는 ‘겸손과 비굴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아야 하는 삶 속에서 버틸 수 있게 해 준 힘’이다. 200쪽. 1만 3000원.소소하지만 단단하게(배연국 지음, 글로세움 펴냄) 천사들이 인간 세상의 ‘소확행’을 찾으러 가는 여정과 그들이 찾아낸 지혜 보따리를 28가지 ‘인생 우화’에 담았다. 신화와 별자리 설화 등을 재가공한 천사의 존재, 실존 인물 및 작가의 상상력으로 그려 낸 우화 주인공들의 얘기가 소소하지만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인간 삶의 허구를 꿰뚫는다. 272쪽. 1만 4000원.우리가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해(마커스 드 사토이 지음, 박병철 옮김, 반니 펴냄) 양자물리학과 우주론, 지각과 인식, 신경과학 등 첨단과학의 경계를 탐험하는 책. 옥스퍼드대학의 과학 대중화 사업을 이끌고 있는 저자는 우주는 무한한지, 빅뱅 이전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등 여러 의문에 대해 지식의 한계를 시험한다. 596쪽. 2만 8000원.무지개는 더 많은 빛깔을 원한다(한국성소수자연구회 지음, 창비 펴냄) 교육학, 법학, 보건학, 사회복지학, 사회학, 신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결성된 연구자 모임인 한국성소수자연구회에서 펴낸 책. 혐오의 세상을 살아 가는 성소수자의 삶을 면담 자료와 통계를 통해 그려 내고, 성소수자의 가족구성권과 재생산권, 트랜스젠더 성별정정 등 여러 쟁점을 논한다. 344쪽. 1만 8000원.광장의 법칙(한병진 지음, 곰출판 펴냄) ‘정치의 본질은 싸움’이라고 보는 정치학자가 광장 정치의 본질인 싸움과 투쟁의 작동 과정을 고찰한 저작. 소수의 정치 세력뿐 아니라 민주적 의지를 지닌 시민의 집단적 힘으로 광장에서 싸움에 승리하는 전략과 전술을 제시한다. 292쪽. 1만 7000원.베로니카의 눈물(권지예 지음, 은행나무 펴냄)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을 연달아 수상한 작가가 10년 만에 펴낸 소설집. 한 편의 중편과 다섯 편의 단편으로 묶인 소설집은 파리, 발칸반도 등 ‘이국’과 ‘낯선 장소’라는 장치를 적극 활용해 인물 사이에 느껴지는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그리고 있다. 336쪽. 1만 4000원.
  • ‘블루칼라의 시인’ 거장 켄 로치 감독 영화 셋, 감동 셋!

    ‘블루칼라의 시인’ 거장 켄 로치 감독 영화 셋, 감동 셋!

    노동자의 삶을 아름다운 영상과 단단한 이야기로 풀어내 ‘블루칼라의 시인’으로 불리는 영국의 거장 켄 로치 감독의 영화 3편이 관객을 맞는다.메가박스 영화 큐레이션 브랜드인 ‘필름 소사이어티’는 다음달 12~18일 메가박스 코엑스점에서 켄 로치 감독 특별전을 연다고 27일 밝혔다. 그의 작품 가운데 엄선한 ‘미안해요, 리키’, ‘나, 다니엘 블레이크’,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을 상영한다. 다음달 19일 정식 개봉하는 ‘미안해요, 리키’는 택배 회사에 취직한 가장 리키가 예상 밖 난관을 마주하며 가족의 행복을 되찾고자 노력하는 이야기다. 일상 속 행복과 삶의 애환을 함께 녹여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아이콘 부문에 초대돼 예매 오픈과 동시에 전회 매진되기도 했다.69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는 심장병이 악화해 일할 수 없게 된 목수 다니엘이 실업급여를 받고자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다. 두 아이와 함께 런던에서 이주한 싱글맘 ‘케이티’를 만나 서로 의지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기계적인 관료제와 냉정한 신자유주의를 맞닥뜨리며 ‘진정한 복지 사회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진다.‘보리밭을 흔드는 바람’(2006)은 아일랜드 독립을 놓고 격렬하게 대립한 의사 ‘데이미언’과 그의 형 ‘테디’의 이야기다. 형제는 아일랜드 독립운동에 뛰어들지만, 아일랜드 평화조약을 두고 이견을 보이면서 갈등을 겪는다. 59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으로, 로치 감독은 7번이나 황금종려상 후보에 오른 끝에 이 작품으로 첫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어린이 책] 60년간 읽혀온 ‘빵학년’ 수학책

    [어린이 책] 60년간 읽혀온 ‘빵학년’ 수학책

    옛날 옛적, 어느 왕이 왕비의 생일을 맞아 왕비에게 딱 맞는 침대를 선물로 주려고 했다. 길이를 잴 수 있는 측정 도구가 없는 이 나라에서, 고민하던 왕은 왕비를 바닥에 누워보라고 한 후 그 주위를 조심스레 걸어 다니며 너비와 길이를 쟀다. 너비는 발 3개, 길이는 발 6개. 이 소식을 들은 목수는 자신의 발로 길이를 재서 발 3개의 너비, 발 6개 길이의 침대를 만들었다. 이렇게 완성된 침대는 왕비에게 딱 맞았을까? 어른들이야 그 답을 뻔히 알지만, 아이들에게 물으면 고개를 갸웃할 것이다. 그림책 ‘발 하나는 얼마나 클까요?’는 도서출판 이음에서 펴낸 취학 전 아동들을 위한 수학 그림동화 시리즈 ‘빵(0)학년 수학’ 중 하나다. ‘발 하나는 얼마나 클까요?’는 1962년 미국에서 출간된 이래 6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널리 애용되고 있다. 책을 읽으며 아이들은 왕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손과 발을 단위 삼아 여러 가지 사물의 길이를 재고, 자로 잴 때와 무엇이 다른지 생각해 볼 수 있다. 목수는 안타깝게도 발이 작아, 그가 만든 침대는 왕비에게 턱없이 작았다. 감옥에 갇히는 천신만고 끝에, 결국 왕의 발을 본떠 만든 조각상으로 정확하게 치수를 재 왕비에게 맞는 침대를 만들게 된다. 너의 발과 나의 발 길이가 다른 데서 오는 불편함을 극복하기 위해 도량형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알려줄 수 있다. 함께 출간된 시리즈 ‘고양이 칠교놀이’, ‘샹그릴라로 떠나요’, ‘열 명의 아이들이 침대에 있어요’는 각각 네덜란드와 스위스, 독일에서 사랑받아온 어린이 수학책이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김기중 기자의 책 골라주는 남자] 책을 사랑하시나요? 그러면 좋은 책장을…

    [김기중 기자의 책 골라주는 남자] 책을 사랑하시나요? 그러면 좋은 책장을…

    목공을 배울 때 생각했습니다. 실력이 늘면 가장 먼저 거실에 둘 큰 책상을 만들겠다고. 우여곡절 끝에 길이 2m에 이르는 8인용 책상을 만들었습니다. 소파를 몰아내고 각 방에 있는 책장을 불렀습니다. 책상을 사이에 두고 벽면에 마주 보게 책장을 세웠습니다. 그저 그런 거실이 근사한 서재로 거듭났습니다. 뿌듯합니다. 책상이 해결되자, 이제 책장에 불만이 조금 생깁니다. 책장 여러 개가 크기도 색도 제각각인 데다가 MDF 재질에 나무 무늬 필름으로 마감해 그다지 예쁘지 않습니다. 책장을 만드는 데에 참고할 책이 있을까 싶어 도서관에 들러 책을 들췄습니다. ‘인테리어 세계’ 편집장이자 열렬한 독서가인 데이미언 톰슨이 지은 ‘책과 집’(오브제)이 우선 눈에 들어옵니다. 책 수집가로 알려진 디자이너, 건축가, 화가, 사업가 등의 서재를 사진으로 보여 주고, 저자가 이를 설명합니다. “한쪽 벽면 전체를 책으로 덮으면 공간 규모가 좀더 인간적으로 느껴진다”든가, “아이들 방에는 책이 늘 손쉽게 닿는 곳에 책을 두고, 일상생활에서 늘 배경을 이루는 존재로 만들어야 아이들이 책에 몰두한다”는 내용이 와닿습니다. ‘아무튼, 서재´(제철소)는 한 손에 들어오는 에세이집 ‘아무튼’ 시리즈 가운데 하나입니다. 목수 김윤관이 책과 가구에 관해 쓴 에세이를 모았습니다. 저자는 한국의 애서가들에 관해 “책에 관해서라면 열흘 밤낮을 이야기할 수 있지만, 책장을 주제로는 단 10분도 대화를 이어나가기 어렵다”고 비판합니다. 책이란 사람 손보다 책장에 더 오래 있으니, 애서가라면 마땅히 좋은 책장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저자는 또 자신만의 서재를 가지라고 조언합니다. 그게 바로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책장에 쓸 목재로 묵직한 월넛이 좋을까, 아니면 밝은 색 오크가 좋을까 고민합니다. 책은 안 보고 책장 고민만 한다고 타박할 수도 있겠네요. 그래도 좋습니다. 아무튼, 제 서재니까요. gjkim@seoul.co.kr
  • “처벌 규정 담은 경제법령 20년새 1868개→2657개… 형벌규제 공포”

    한경연, 285개 경제법령상 형사처벌 항목 전수조사 “기업인 양벌규정 과도한 형벌규제… 투자의욕 꺾어” 어겼을 때 처벌하는 형벌규정을 담은 경제법령이 지난달 말 현재 2657개로 파악됐다. 1999년 1868개였던 것이 20년 만에 42% 증가했다. 2657개 형사처벌 항목 중 기업과 기업인을 동시에 처벌하는 양벌규정이 83%로 2205개였고, 징역형을 줄 수 있는 인신 구속형이 89%인 2288개로 집계됐다. 기업인들이 ‘형벌 규제’에 시달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10월 말 현재 285개 경제법령상 형벌규정을 전수조사한 결과 이같은 통계를 얻었다고 13일 발표했다. 한경연 유환익 혁신성장실장은 “우리 기업과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형벌 규제가 심각한 수준으로 늘어나고 있다”고 총평하며, 기업·기업인에 대한 처벌 규정 정비를 촉구했다. 노무 관계에서 범법행위가 일어났을 때 대표이사 책임성을 강화하는 추세가 반영되면서 경제법령 처벌항목 2657개 가운데 2205개는 범죄 행위자인 종업원 뿐 아니라 법인과 사용주까지 함께 처벌할 수 있게 설계된 것으로 나타났다. 대표이사가 현실적으로 파악하거나 통제하기 불가능한 경우에도 종업원 등의 범죄행위로 인해 처벌받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근로기준법은 종업원의 연장근로, 임산부 보호위반, 성차별과 같은 범법이 사업장에서 발생했을 때, 관련 사실을 지시하지 않았거나 몰랐더라도 대표이사가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게 했다. 연장근로나 임산부 보호 위반 행위가 일어났을 때엔 2년 이하의 징역형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고, 성차별 행위에 대해선 500만원 이하 벌금을 부과받을 수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의 재해발생시 작업중지 규정 위반 행위의 처벌 상한은 징역 5년, 벌금 5000만원이고 산업재해현장 훼손죄가 인정될 때 처벌 상한은 징역 1년, 벌금 1000만원이다. 화학물질관리법의 유해화학물질 취급기준 위반의 경우엔 위법행위자와 대표이사 모두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을 물 수 있다. 한경연은 형벌 조항을 종류별로 살펴본 결과 징역 또는 벌금 중 선택할 수 있는 경우가 2288개(86%)로 가장 많았고 벌금(9%), 징역(3%), 몰수(2%) 순이라고 집계했다. 20년 전인 1999년과 비교하면 형사처벌 항목수가 42% 증가한 것과 더불어 처벌 강도도 강화됐다. 징역 또는 벌금형의 경우 20년새 평균 징역 상한은 2.77년에서 3.00년으로, 평균 벌금 상한은 3524만원에서 5230만원으로 늘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시리아 민간구조대 ‘하얀 헬멧’ 설립자 숨진 채 발견

    러 비난 속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시리아에서 무수한 생명을 구한 민간구조대 ‘하얀 헬멧’의 설립자 제임스 르 메슈리어가 터키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11일(현지시간) BBC는 영국군 장교 출신인 메슈리어가 이스탄불 자택 근처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경찰은 메슈리어의 사인을 밝히지 못한 상태다. 오전 4시 30분쯤 거리에서 발견된 시신은 머리와 다리에 골절상을 입고 있었다. CNN에 따르면 메슈리어의 아내는 지인인 프리랜서 기자 오즈 카터지에게 메슈리어가 발코니에서 떨어졌다고 말했다. 카터지는 발코니 높이가 그렇게 높지 않다면서 피살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메슈리어는 ‘하얀 헬멧’과 산하 자원봉사자 훈련 단체인 ‘메이데이 레스큐’를 설립했다. 내전 중인 시리아에서 민간인 구조 활동에 이바지한 공로로 2016년엔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대영제국 장교 훈장’(OBE)을 수여하기도 했다. 2014년 설립된 하얀 헬멧은 전직 제빵사, 재단사, 목수 등 전문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시리아에서 민간인, 반군, 정부군을 불문하고 인명을 구조했으며 건물 경비, 수리, 재건 등도 그들의 업무다. 단체는 지금껏 약 10만명의 목숨을 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과정에서 회원 252명이 숨지고 500명이 부상을 당했다. 단체는 2016년 노벨평화상 후보에도 올랐다. 하지만 러시아와 시리아 정부 측은 이들이 테러 단체를 지원한다며 비난해 왔다. CNN에 따르면 메슈리어 사망 소식이 전해진 건 러시아 외무부가 그를 전직 영국 정보국(MI6) 요원이라고 밝힌 지 불과 며칠 뒤였다. 마리야 자카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메슈리어는 전 세계 많은 갈등에 불을 붙여 왔다”면서 “서방이 이들 지역의 안정을 해치는 역할을 해 온 걸 감안하면 영국 정보부 요원이 그곳에서 뭘 했는지 추측하기는 쉽다”고 말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전두환 신군부 계엄포고 10호 위헌”…법원, 재심청구 인용..

    1980년 전두환 신군부가 발령한 계엄포고 10호가 위헌·위법해 무효라는 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6일 수원지법 성남지원에 따르면 형사1단독 정용석 부장판사는 전두환 정권 시절 계엄법 위반죄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신모(60)씨가 낸 재심청구를 받아들였다. 정 부장판사는 결정문에서 “계엄포고 10호는 전두환 등 신군부가 시국을 수습한다는 명목 아래 전두환 퇴진을 요구하는 국민 저항을 제압하기 위해 발령한 것으로 당시 국내외 정치·사회 상황이 옛 계엄법에서 정한 ‘군사상 필요한 때’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표현의 자유 등 국민의 기본권도 침해한다”고 밝혔다. 목수인 신씨는 1980년 12월 서울의 한 포장마차에서 지인들과 술을 마시다 당시 내란음모죄로 사형을 선고받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관련 ‘김대중은 똑똑한 사람이어서 전두환이 잡아넣었다’고 말했다가 계엄포고 10호에 따라 재판에 넘겨졌고, 다음해 1월 군사법원에서 계엄법 위반죄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뒤 38년여만인 지난 4월 재심을 청구했다. 전두환 신군부는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을 전국에 확대하며 정치활동 중지,정치목적 집회·시위 금지,언론 사전검열,대학 휴교,국가원수 모독·비방 불허 등의 내용을 담은 계엄포고 10호를 발령했다. 성남지원 관계자는 “계엄포고 10호가 헌법과 법률에서 정한 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발령돼 무효라는 취지”라며 “계엄포고 10호에 대한 위헌·위법 판단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신씨의 재심청구를 도운 이상희 변호사는 “5·18 민주화운동 관련자들이 ‘5·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재심을 통해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신씨처럼 술자리 비방을 이유로 처벌된 사건은 특별법에 따른 재심 청구가 애매했는데 이번에 법원이 계엄포고 10호에 대해 무효 판단을 해 재심이 가능하게 됐다”며 “법원 판단이 확정되면 계엄포고 10호 위반 피해자들 구제가 가능해진다”고 설명했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2020년 ‘혼템’이 주목하는 건 공간 아닌 공감

    2020년 ‘혼템’이 주목하는 건 공간 아닌 공감

    혼자서 밥을 먹는다는 뜻의 ‘혼밥’이 등장한 뒤 몇 년 동안 ‘혼술’(혼자서 술 마시기), ‘혼영’(혼자서 영화 보기)과 같은 이른바 ‘혼○’이 유행어가 됐다. 이런 단어만 무려 40개 정도가 있다고 한다. 누군가는 밥 먹을 사람조차 없는 빈약한 관계라며 부정적으로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상사, 동료들과 거의 매일 같이 먹는 점심이 썩 유쾌하지는 않을 터다. ‘혼코노’(혼자서 코인노래방 즐기기)는 회식은 싫지만 노래방은 가고 싶은 심리를 반영한 것일 수도 있다. 신간 ‘2020 트렌드 노트’는 다음소프트 생활변화관측소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살펴본 한국 사회의 모습이다. 생활변화관측소는 월 1억 2000만건의 소셜 빅데이터에서 1000여개 키워드를 뽑아 변화상을 관찰한다. 몇 년간 떠오른 키워드들을 살펴본 뒤 우리 사회가 ‘자기만의 즐거움을 찾아 모이고 흩어지는 혼자만의 시·공간’으로 바뀌고 있다고 생활변화관측소는 설명한다. ‘혼○’과 같은 유행어는 관계 단절이 아닌, 즐거움을 자발적으로 찾아가는 적극적인 행동에서 나온다는 뜻이다. 책은 이를 바탕으로 해 우리 사회의 공간, 관계, 소비의 변화에 집중한다. 오늘도 많은 사람이 집을 꾸미고자 조명, 수전, 문고리 등을 공부하고, 서툴지만 셀프 페인트칠을 한다. 소비 패턴도 바뀌었다. 어차피 소비할 것, 가급적 더 좋은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이왕이면’이라는 단어의 언급도 부쩍 늘었다. 택시보다 비싸지만 기사가 말을 걸지 않고 불평도 하지 않는 ‘타다’ 이용률이 급격하게 늘어난 게 무관하지 않다. ‘○○계의 명품’이란 말도 유행어가 됐다. 1개에 2만원이 넘는 ‘루치펠로’와 같은 고가 상품을 일명 ‘치약계의 샤넬’로 부르는 식이다. 공간, 관계, 소비 변화를 읽다 보면 앞으로 어떤 사업이 유망할지 짐작할 수 있다. ‘셰어하우스’나 ‘공유오피스’의 미래가 낙관적이지는 않다. 사람들이 공유하고자 하는 것은 관심사이지 사적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장사를 잘하려면 소비자와 친구가 되라고 강조한다.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미디어에 자신의 작업물을 멋지게 소개하고, 질문이 들어오면 친절하게 답하는 목수나 도배사에게 일을 더 맡기고 싶은 것처럼.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기술의 숙련은 성별과 상관없죠, 해봐야 잘할 수 있어요

    기술의 숙련은 성별과 상관없죠, 해봐야 잘할 수 있어요

    “기술과 그를 활용한 작업은 여전히 남성을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자신의 일 속에서 주체성과 철학을 가지고 작업을 이어 나가는 여성들이 있습니다. 저희는 ‘기술’이 ‘모두의 기술’이 되길 바랍니다. 비단 여성뿐만이 아니라 기술이라는 영역에서 보이지 않는 ‘사람’과 ‘일’에 주목하며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자 합니다.” 여성 기술자를 양성하는 교육과 여성들의 네트워킹을 주도하는 ‘여기공 협동조합’(이하 여기공)의 홈페이지에 적혀 있는 이 팀의 모토다. 지난해 8월 ‘여성기술자 네트워킹 플랫폼 여-기’라는 프로젝트 팀으로 활동을 시작한 여기공은 현재 협동조합 법인화 과정에 있다. 여기공의 ‘여기’는 ‘여성 기술자’의 줄임말이다. ‘공’은 물건을 만드는 공작의 공(工), ‘함께’를 뜻하는 공(共), 공공성의 공(公), 공간의 공(空)을 아우른다. ‘기술을 개발하고 사용하는 주체는 남자’라는 고정관념을 바꾸고 여성들이 기술에 좀더 가까이 다가가 기술을 생활 속에서 향유할 수 있는 다양한 ‘판’을 마련한다는 함축적인 의미가 담겼다.지난해부터 여기공이 기획한 워크숍의 면면을 보면 이들이 하고자 하는 일의 윤곽이 뚜렷해진다. 여기공이 그간 해 온 프로젝트는 헌옷을 이용해 타피스트리라는 직조 방식으로 직물을 만드는 ‘일상 속의 직조: 직조 속의 일상’ 워크숍을 비롯해 나무 장작을 연료로 사용하는 오븐을 직접 만드는 ‘화목 오븐 워크숍’, 용접에 대한 기본적인 이론을 배우고 실습하는 ‘용접의 기술-시작하는 용기’, 드라이버, 전동드릴, 망치 등 일상생활에서 자주 접하는 도구의 사용법을 배우는 ‘공구 사용법 워크숍’ 등이다. 20대 후반 여성 5명으로 구성된 여기공의 이사장을 맡고 있는 인다(이현숙·26)와 세모(민재희·29) 이사를 지난 4일 서울 영등포구 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하자센터)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수평적인 관계 형성을 위해 외부에서 활동을 하거나 워크숍에서 만난 수강생, 외부 강사들과 대화할 때도 닉네임을 사용한다. 2017년 두 사람은 하자센터가 설립한 하자작업장학교에서 청년을 대상으로 한 ‘청년작업장’ 과정 중 만났다. 도시에서의 생태적이고 지속가능한 삶에 대해 고민하는 이 학교에서 두 사람은 내 삶에서 필요한 것을 나 스스로 만드는 ‘적정기술’을 배웠다. 적정기술 장인들로부터 직조, 목공, 용접, 흙미장 등을 배운 두 사람은 손에 잡히지 않는 최첨단 기술이 아닌 일상의 구체적인 기술이야말로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여기공이 생각하는 ‘기술’은 무엇인가요. 인다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그 과정은 점점 눈에 보이지 않고 우리의 일상과 많이 멀어지게 되죠. 자본주의 시대에서 회사가 기술을 독점하려 들거나 ‘발전주의’ 시각으로 기술을 대할 때 기술의 과정을 들여다보지 않고 결과만 중시하는 풍토에서 나오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저희는 기술의 과정을 이해하고 일상의 문제를 ‘기술’을 통해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적정기술을 배우면서 그 철학에 많이 공감했습니다. 다만 저희가 생각하는 기술을 적정기술이라고 하지 않는 이유는 저희의 기술에는 ‘젠더’에 대한 고민도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기술의 범주를 어디까지로 볼 것인지보다 기술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공은 어떤 계기로 만들어졌나요. 세모 “기술을 접하면서 늘 궁금했어요. ‘어딘가에 여성 기술자들이 많을텐데 그 기술자들은 다 어디에 있을까’, ‘여성 기술자들이 모여서 한목소리를 낸다면 안전한 기술 터전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재미있는 상상이 이뤄지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기술을 다루는 현장에 가면 50~60대 남성이 대부분이거든요. 그 분들을 만나면서 저희가 고민했던 건 ‘기술판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젠더 문제나 인권 감수성 이슈를 어떻게 풀어 갈 수 있을까’ 였어요.” 인다 “실제로 기술을 배우러 갔을 때 현장에서 ‘여자가 이런 걸 할 수 있나’, ‘여자 얼굴에 흠집 나면 어떡하려고’ 이런 말들을 종종 들어요. 이런 불편함이 없는 기술 워크숍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해 왔고 관련해서 공부를 했습니다. ‘기술 영역 내 젠더 갈등’이라는 소재는 여기공 내 연구 커뮤니티인 ‘여기LAB’에서 계속 연구할 예정입니다.” 두 사람이 여성 기술자를 양성하는 교육 활동에 나서게 된 건 본인들이 직접 기술을 배우면서 경험한 삶의 변화가 바탕이 됐다. 두 사람은 기술이 “생각보다 든든한 자립의 동반자이자 고민을 실체감 있게 풀 수 있는 도구”라고 입을 모았다. 삶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하면 많은 것을 ‘소비하는 인간’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거다. 두 사람은 주변에 있는 공구를 직접 손에 쥐어 보면 그 순간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질 거라고 자신했다. -기술을 직접 배우고 난 뒤 개인적으로 달라진 점이 있나요. 세모 “하자센터 청년작업장 과정을 마친 직후였던 지난해 3월부터 약 1년간 경남 진주로 귀농을 했었어요. 생태적이고 자립적인 삶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때 저와 비슷한 고민과 목표를 지닌 청년 동료들과 농사도 하고 집을 짓기도 하고 작업복을 만들기도 했어요. 재미있게도 모두 의식주와 관련된 일이고, 무언가를 짓는 행위더라고요. 삶을 이루는 기본적인 것들이고 소비적 관점에서는 잘 알고 있었지만 제가 직접 만들어 보니 먹는 것, 입는 것, 사는 공간이 입체적으로 보였어요. 도시에서는 모든 것을 소비할 때 항상 피로하고 불안했었거든요. 이제는 조금 달라졌어요. 짓는 행위가 실체감 없이 붕 떠 있었던 제 삶에 단단한 기반을 만들어 준 것 같아요. 어디서든 굶어 죽진 않겠다는 근본적인 자신감, 예전보다 더 주체적이고 독립적이지만 더 많은 사람과 연결되어 있다는 걸 인지하게 됐어요. 이런 무모한 일들을 가능하게 했던 건 드릴을 사용해 보는 아주 사소한 계기들이에요. 그동안 도시에서, 직장인으로, 여성으로 살아가는 동안 거의 한번도 주어지지 않은 경험이었죠. 처음 드릴을 잡았을 때, 용접을 해 봤을 때 정말 짜릿했어요. 사소한 기술 하나로 앞으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엄청 많아졌으니까요.” -워크숍에 참여한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인다 “용접 수업에 참여했던 한 친구가 인상적이었어요. 선천적으로 불을 두려워해서 불꽃놀이도 못 봤대요. 근데 막상 해 보니 저희보다 용접을 잘할 정도로 실력이 좋더라고요. 그 친구가 용접이라는 기술을 접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면 자신의 능력을 알 기회도 없었겠죠. 이런 분들을 만날 때 참 반가워요. 워크숍에 40~50대 여성도 한두 분씩 꼭 계시거든요. 한 50대 여성이 본인이 어떤 작업을 하고 있는데 늘 마지막에 용접 부분만 남자에게 부탁하셔야 했대요. 어느날 자존심이 상해서 ‘그냥 내가 해야지’라고 마음을 먹었는데 정작 배울 기회가 없어서 저희 워크숍에 오셨다고 하시더라고요.” 세모 “해 볼 기회가 있어야 앞으로도 직접 할 수 있잖아요. 누가 ‘이거 고칠 수 있는 사람 있냐’고 질문했을 때 제일 많이 나서는 건 경험 있는 사람이잖아요. 그 사람은 조금 더 경험이 많은 남성일 확률이 높고요. 그런 의미에서 용접 워크숍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남성들도 배우지 않으면 쉽사리 하기 어려운, 문턱이 가장 높은 영역이니까요. 용접이라는 기술을 익히면 그 아래 단계에 있는 기술은 어렵지 않게 마음 내서 도전할 수 있거든요.”-워크숍을 할 때 여기공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 있다면요. 인다 “최근 공구 워크숍 때도 수강생들과 ‘용기’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워크숍 한 번으로 전문가가 되길 바라는 것보다 ‘나도 이걸 할 수 있다’는 한 번의 경험이 중요해요. 기술은 숙련이 필요하기 때문에 단번에 어떤 근육이 완성되기는 어렵지만 삶의 물꼬를 트는 용기를 내보는 경험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워크숍 때 비중 있게 합니다.” 여기공은 기술 워크숍뿐 아니라 기술자들을 위한 젠더 감수성 교육을 중요 과제로 생각하고 있다. 당장 건설 산업 현장만 보더라도 여성 노동자는 남성의 보조 역할에만 머무르거나 남성에 비해 기능이 떨어진다는 편견에 시달리고 있다. 여성의 신체 조건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근무 환경 역시 ‘기술 노동자’라는 범주 안에서 여성을 배제한 결과다. 두 사람은 “기능을 익히기 위한 숙련의 시간도 중요하지만 기술을 다루는 과정에 참여하는 사람을 생각하는 시간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여성 기술자들이 일하는 환경은 얼마나 열악한가요. 인다 “저희가 최근에 기획한 ‘여기의 기술자들을 위한 젠더스쿨’이라는 강좌에서 강연자로 모셨던 김경신 타워크레인 기사가 그런 이야기를 하셨어요. 건설 현장에 보조인력으로 투입된 사람들은 여자 남자 할 것 없이 2년 정도 보조 기간을 거친대요. 이후 남자는 현장에서 기술을 전수받고 기능공으로 올라가지만 여성에게는 배움의 시간이 주어지지 않고 안전관리 같은 보조적 업무만 하게 된다고요. ‘여성은 기능공을 잘할 수 없다’는 오래된 업계 내 성차별적 인식 때문이죠.” 세모 “최근까지만 해도 건설 현장에 여성을 위한 탈의실이나 샤워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었대요. 휴게실도 따로 없어서 남자들 틈바구니에서 여자 혼자 쉬어야 한다든지 현장에서 여자들이 옷을 갈아입을 여건이 되지 않으니까 아예 집에서 작업복을 입고 왔다가 그대로 퇴근을 하기도 하고요.” -사람들이 기술을 일상에서 향유할 수 있다면 기술자의 성평등에도 도움이 될까요. 인다 “건설 현장에서 여성 노동자가 남성과 임금을 동등하게 받을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여자가 남자보다 기술에 대한 숙련도가 떨어진다는 성인식 때문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차별 없이 기술을 향유한다면 이런 인식은 바뀔 거라고 봅니다. 실제로 민주노총 건설노조에서 매년 기술자 대회를 여는데 작년에 최초로 출전한 여성 목수가 2등을 하셨어요. 처음 출전한 것도 의미가 있는데 2등까지 했다는 소식에 깜짝 놀랐어요. 기술의 숙련은 성별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 기술을 어떻게 숙련하고 이어 가는지가 더 중요하죠. 사람들이 일상에서 이런 장면을 더 많이 마주한다면, 그리고 스스로도 기술에 대한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면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봐요.” 세모 “그런 점에서 저희는 우선 작업 현장의 기존 기술자들이 새로 진입하는 여성 기술자들과 어떻게 하면 소통할 수 있는지, 또 어떻게 하면 젠더 감수성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 을 함께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내년에는 어떤 활동을 계획하고 계신가요. 인다 “올해 저희가 여성기술자 인터뷰 잡지 ‘그리고’를 제작하면서 여성 기술자 7명을 인터뷰했어요. 다양한 영역의 기술자들을 발굴하면서 이들 사이의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절감했어요. 여성 기술자들이 모일 수 있는 네트워킹 파티와 이들이 자신의 기술을 통해 다른 여성과 연대할 수 있는 협업 프로젝트를 만들려고 합니다. 내년에는 경북 의성으로 활동 공간을 확장할 예정이에요. 저희 팀이 서울시에서 하는 지역연계형 청년 창직·창업 지원 프로그램인 ‘넥스트 로컬’에 선정됐거든요. 내년 4월까지 의성에서 여성 기술자 양성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4월 이후에는 여성 친화 ‘메이커 스페이스’(maker space)를 조성할 계획입니다. 여성 기술자들의 거점 공간이자 도시 여성과 지역 여성이 만날 수 있는 사랑방 같은 공간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한옥, 현대성·전통성 갖춘 건축양식으로 되살아나”

    “한옥, 현대성·전통성 갖춘 건축양식으로 되살아나”

    “과거에 한옥은 춥고 불편한 옛날 집이나 문화재 정도로 인식됐습니다. 그러나 21세기 현대 한옥은 아파트 생활에 익숙한 현대인이 불편 없이 살 수 있는 기능과 공간을 갖추면서도 전통성을 잃지 않은 시대의 건축양식으로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한옥 전문 건축사사무소 ‘자향헌’(紫香軒)을 운영하는 박상욱(55) 대표는 13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옥이 다시 우리나라의 대표적 건축양식으로 자리매김하도록 불씨를 살려 나가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박 대표는 지난 11일 국토교통부가 주최한 대한민국 한옥 공모전에서 은평한옥마을의 현대 한옥 ‘월문가’로 ‘올해의 한옥대상’을 수상했다. 울산 울주군이 고향인 박 대표는 어릴 때 한옥에서 자랐고, 대학 시절 건축학을 전공하면서 전국의 사찰과 서원 등을 찾아다니며 전통 건축양식을 섭렵한 ‘한옥 마니아’다. 그는 ‘삼우’ 등 유수한 건축사사무소를 거친 뒤 2000년대 들어 독립 사무소를 차렸고 주로 공공 건축 설계 등을 맡았다. 하지만 한옥에 대한 열정을 잊을 수 없던 그는 2012년 12월 한옥에만 전념하기 위해 ‘자줏빛 향기를 품은 집’이란 의미의 자향헌을 설립했다. 박 대표는 “관급 공사로 안정적 수입이 보장됐지만 내가 추구하던 건축가로서의 삶이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것인지 자문자답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옥 건축만으로 밥벌이를 하는 건 쉽지 않았고 처음 2년간은 빚만 늘어났다. 박 대표는 “한옥은 재료비와 목수들의 인건비 부담이 높아 공사비가 일반 건축의 3배가량 든다”면서 “일반적으로 부유층의 별장 정도로만 인식돼 수요가 많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밝혔다. 2015년 서울 은평뉴타운에 한옥마을이 본격적으로 들어서면서 박 대표의 노력도 결실을 보게 됐다. 박 대표가 설계해 지난해 준공한 월문가는 204.7㎡의 작은 부지에 2층과 지하층을 만들어 공간을 확장한 미래형 한옥이다. 단열, 냉난방, 주방, 화장실 등은 현대 주택과 다를 바가 없는 설비를 갖췄고 마당과 안채, 사랑채, 별당, 민흘림기둥, 건조 목재 등 전통한옥의 요소를 최대한 살렸다. 무엇보다 골목에 접한 창을 통해 이웃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란 평가를 받았다. 올 들어 7채의 한옥 설계를 맡고 있는 박 대표는 “현대 한옥은 전통성과 현대성을 모두 갖춰야 하기 때문에 한옥 전공 건축사는 최소 3년 이상 전국 곳곳을 답사하고 치열하게 공부해야 한다”며 “앞으로 경쟁력을 갖춘 명품 현대 한옥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늘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70년 만에 돌아오는 러브레터, 67년 해로한 남편 먼저 떠나보내고

    70년 만에 돌아오는 러브레터, 67년 해로한 남편 먼저 떠나보내고

    열여덟아홉 청춘 때 남자친구와 주고받은 러브레터 뭉치가 70년 만에 내 손에 돌아온다면 어떤 기분이 될까? 더욱이 남자친구와 결혼해 67년을 해로하다 몇 개월 전 세상을 떠난 뒤라 더욱 애틋할 것 같다. 5일(현지시간) 영국 BBC에 따르면 킴 로는 최근 다락방을 정리하다 구두상자에 든 편지 뭉치를 다시 봤다. 1948년과 이듬해에 노르마 홀이란 켄트주 소녀가 해외에 파견된 영국군 병사 봅 비슬리와 주고받은 편지들이었다. 로의 어머니 체리 발랜스가 20년 전 앨더샷에 살 때 다락방에서 발견한 남의 편지들을 계속 보관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 발랜스 역시 다른 이의 러브레터란 사실 때문에 함부로 버릴 수 없다고 생각해 간직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너무 많이 흘렀으며 이제 두 사람이 생존하는지도 알 수 없으니 불쏘시개로 던져버리자고 했지만 정작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어머니는 2016년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이번에 다시 러브레터들이 담긴 구두상자를 다시 보게 된 로는 두 사람을 너무 늦기 전에 찾아 돌려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녀는 “정보를 알아내려고 딱 두 통만 읽어봤다. 나머지는 두 사람의 프라이버시도 있고 하니 열어볼 수 없었다. 봅이 노르마를 무척 사랑했으며 노르마가 편지들을 간직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로는 편지 한 통의 겉봉을 사진 찍어 페이스북에 올리고 친구들에게 두 애틋한 주인공의 소재를 추적해달라고 부탁했다. 그 글이 1만 1000회 공유되고 1500개의 댓글이 달릴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로의 페이스북친구 한 명이 웹 서핑을 열심 히 해 두 사람이 1951년 억스브리지에서 결혼했으며 남자 이름은 하워드 로버트 비슬리라며 주소 하나를 알려줬다. 로는 설레는 마음으로 편지를 보냈는데 노르마 비슬리가 봅과 1940년대 울위치 페리에서 처음 만나 친구가 된 뒤 나중에 연인으로 발전하고 결혼해 67년을 해로한 것이 맞다고 답장을 보내왔다. 이제 여든여덟 살이 된 노르마는 로의 편지를 받고 충격을 받았다며 “특히 내가 넣어뒀던 구두상자 안에 여전히 편지들이 간직돼 있다는 데 놀랐다”고 털어놓았다. 그리고 남편 봅이 지난해 12월에 세상을 먼저 떠나 안타깝다고도 했다. 두 사람은 봅이 중동과 이집트 근무를 마치고 돌아오자 얼마 안돼 결혼식을 올려 버킹엄셔주 이베르 마을에서 신접 살림을 차렸다. 남편은 항공기 제작 공정에 목수로 일했고, 노르마는 사무직으로 일했다. 다섯 자녀에 여섯 증손주를 뒀다. “처음에는 친구로 편지를 썼다. 그러나 곧 더한 관계로 발전했다. 그는 자신의 인생 얘기를 많이 했고 난 집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적었다. 내 삶은 이집트를 여행하는 그만큼 재미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난 편지쓰는 것을 즐기지는 않는 편이었지만 매주 한 통은 썼던 것 같다. 매주 잡지를 보내곤 했다.”노르마는 또 편지가 돌아오는 것은 반갑지만 남편 봅이 떠난 상황이라 혼자 편지를 열어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그녀는 부모 집에 편지들을 놔둔 것으로 기억하고 있지만 어떻게 앨더샷을 거쳐 서머싯까지 옮겨졌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다만 부모들이 켄트에서 도르싯의 크라이스트처치로 이사했을 때 우연히 어딘가에 놔둔 것으로 추정했다. “난 편지들이 영원히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로와 노르마는 전화번호를 교환했고 지난달 처음 통화했고, 곧 만날 계획이다. 로는 노르마에 대해 “사랑스러운 웃음 소리를 지닌 놀랍도록 따듯한 숙녀였다”고 말했다. 둘은 서로 편지를 나누기로 했다. “이 사연의 메시지가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전자 커뮤니케이션 시대에 사랑하는 이에게 편지를 쓴다. 편지지에 적고 스네일 우편(snail mail, 전자 우편에 비해 도착 시간이 늦는 보통 우편)으로 말이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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